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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종교·문화재플러스] 29일부터 ‘추사글씨 귀향전’

    과천시와 경기문화재단은 29일부터 11월7일까지 과천시민회관 전시실에서 추사 김정희 연구의 선구자인 일본인 학자 후지쓰카 쓰카시(1879∼1948)의 아들이 지난 2월 기증한 추사 자료의 첫 전시회 ‘추사글씨 귀향전’을 개최한다.‘두 아우에게’ 등 추사 친필 26건과 청나라 학자들과 주고받은 글·그림 등 100여점이 전시된다.(02)500-1343
  • 韓流문화관 보러옵서예

    제주도에 일본, 중국, 동남아 한류팬들을 겨냥한 ‘한류문화관’이 들어설 전망이다. 열린우리당 김재윤(서귀포시)의원은 기획예산처, 문화관광부 등과 협의,‘한류문화관’ 건립사업의 기본계획 및 실시설계 용역비 20억원(국비)을 내년 정부 예산안에 반영했다고 25일 밝혔다. 한류문화관은 2008년 말 완공을 목표로 서귀포시 3000여평의 부지에 국비와 지방비 150억원씩 모두 300억원을 투자하게 된다. 주요 시설로는 한류스타 팬미팅과 콘서트를 할 수 있는 뮤지컬하우스, 뮤지컬 박물관, 한류영화관, 인기드라마 세트장, 한류소품 상품관, 한류열풍 기업홍보관 등이다. 김 의원은 “한류문화관은 제주가 한류문화의 중심지로 자리를 굳히는 계기가 될 것”이라며 “이를 활용한 관광홍보 및 수익증대 효과는 엄청날 것”이라고 말했다. 제주지역에는 ‘올인’ 드라마 촬영지인 성산읍 섭지코지와 ‘대장금’ 촬영지인 제주민속촌박물관 등지를 둘러보기 위해 국내외 관광객들이 꾸준히 몰려들고 있다. 특히 최근에는 ‘욘사마’ 배용준이 주연을 맡은 역사드라마 ‘태왕사신기’가 본격 촬영되면서 일본인 관광객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한편 오는 11월11일에는 한류스타와 팬들이 만나는 ‘한류엑스포 2006 제주 그랜드 오프닝’ 행사가 제주국제컨벤션센터에서 열릴 예정이다.제주 황경근기자 kkhwang@seoul.co.kr
  • [책꽂이]

    ●과학 지식인의 탄생 토머스 헉슬리(폴 화이트 지음, 김기윤 옮김, 사이언스북스 펴냄) ‘종의 기원’ 이후 벌어진 진화론 논쟁에서 찰스 다윈의 열렬한 지지자로서 보인 전투적 태도로 인해 ‘다윈의 불도그’라 불린 토머스 헉슬리. 그를 포함한 과학분야에 종사하던 영국인들은 1840년대부터 줄곧 자신들을 과학자라 부르지 않고 ‘과학지식인(man of science)’이라 불렀다. 과학자라는 말이 기술자와 같은 특정 분야의 전문인으로, 사회·문화적인 제반 사안에 균형잡힌 시각을 지닌 지식인과는 동떨어진 페르소나를 암시하는 듯했기 때문이다. 이 책은 빅토리아 시대 한 사람의 과학지식인이 어떻게 탄생했는가를 보여준다.1만 8000원.●인도 경제를 해부한다(삼성경제연구소·KOTRA 지음, 삼성경제연구소 펴냄) 미국의 투자회사 골드만삭스는 인도가 2012년경에 중국의 경제성장을 추월하고 2050년엔 세계 3대 경제대국으로 올라설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러나 인도는 중국과 달리 인구가 광활한 지역에 골고루 분산돼 있다. 인구 1000만명 이상인 도시는 뭄바이·델리·콜카타 정도이며,100만명 이상인 도시가 30여 곳에 이르고, 나머지 대부분은 드넓은 농촌에 흩어져 있다. 때문에 시장을 공략하기가 매우 어렵다. 풍부한 현장경험을 토대로 한 인도진출 조감도라 할 이 책은 그런 점에서 큰 도움이 된다.1만 8000원. ●우경화하는 神의 나라(노 다니엘 지음, 랜덤하우스 펴냄) ‘신의 나라’라는 일본인 특유의 정신세계를 통해 일본의 우경화를 분석. 일본인에게 일본은 ‘세계에서 하나뿐인 신의 나라’다. 월간중앙 객원 편집위원인 저자는 이런 신의 나라가 영원히 지켜지는 만세일계(萬世一系)를 위해 아시아에 ‘진출’해 전쟁을 일으키고 식민통치를 한 것은 불가피한 선택이었다는 것이 일본인의 생각이라고 주장한다. 저자는 천황주의 사상을 지닌 우익인사와 일본 극우인사들의 총본산인 ‘일본회의’,‘신도정치연맹’ 등 거대 보수단체를 ‘신의 나라의 마법사’라고 부르며 이들의 언행을 전한다.1만 2000원.●보쉬의 비밀(페터 뎀프 지음, 정지인 옮김, 생각의나무 펴냄) 15세기 네덜란드 화가 히로니뮈스 보쉬의 대표작 ‘쾌락의 정원’의 비밀을 추적한 아트 미스터리. 보쉬는 450여년 전 초현실주의 화풍을 탄생시킨 화가로 특히 육체적 쾌락에 대한 갈망과 죽음의 공포 등을 기괴한 상징으로 표현한 작품 ‘쾌락의 정원’은 지금도 끊임없는 연구 대상이 되고 있다. 이 책는 보쉬가 이단이었다는 독일 미술사가 빌헬름 프랭거의 학설을 축으로 ‘쾌락의 정원’에 담긴 그림 속 상징과 수수께끼들을 흥미진진하게 파헤친다. 전2권. 각권 9800원.●한국 사회의 신빈곤(한국도시연구소 엮음, 한울 펴냄) 한국 사회가 안고 있는 빈곤문제의 실상을 주제별·대상별로 분석. 오늘의 한국 사회의 빈곤현상을 ‘신빈곤’이라는 개념으로 접근, 새롭게 빈곤층으로 편입되고 있는 이주노동자와 탈북자의 문제까지 다룬다. 상대적 박탈은 신빈곤의 중요 원인. 이런 종류의 신빈곤으로는 주거빈곤, 건강상의 빈곤, 교육적 빈곤 등을 꼽을 수 있다. 책은 신빈곤이라는 새로운 개념은 그 담론적 족쇄 때문에 빈곤문제의 진정성을 놓쳐버릴 수 있다는 경계의 메시지도 던진다.2만 4000원.
  • [아베의 新일본] (하) 동북아에 평온함 찾아올까

    [아베의 新일본] (하) 동북아에 평온함 찾아올까

    |도쿄 이춘규특파원|아베 신조 일본 자민당 총재 시대의 도래와 함께 동북아시아에 평온함이 찾아올까. 일단 동북아 신질서 태동에 대한 낙관은 금물이란 시각이 우세하다.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의 집권 5년반 동북아시아는 고이즈미의 야스쿠니신사참배 강행과 역사왜곡문제, 헌법개정 기도 등으로 인해 평온함을 찾지 못했다. 그러면서 일본의 고립은 심화됐다. 따라서 아베 시대는 동북아외교 복원이 최우선 과제로 꼽힌다. 하지만 현실은 냉엄하다. 일본만이 변한다고 동북아시아의 평온이 유지되기 어렵다는 지적이 많다. 동북아 패권을 놓고 중국과 일본이 팽팽히 장기 대치하는 시대적 배경이 동북아 긴장의 근본 원인이란 분석도 있다. 그렇다고 해도 일단 아베호(號)는 중국·한국과의 관계회복을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줄 것으로 전망된다. 북한에 대해서는 일본인 납치문제 해결 압박용으로, 경제제재를 적어도 당분간 강화할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한국과 중국과의 관계 회복 노력은 활발하게 진행 중이다. 일본 연립정권을 구성하는 자민당과 공명당은 아베 정권 출범을 앞두고 한국 및 중국과 관계 개선의 중요성을 강조한 연립정권 합의문안을 마련했다고 일본 언론들이 22일 보도했다. 이는 고이즈미 총리 재임 중 악화된 한·중 양국과 관계개선을 주장해온 공명당의 입장을 배려한 것으로, 합의문 원안에는 “한·중 양국 및 주변의 모든 나라들과의 우호를 중시한다.”고 명시하고 있다고 언론들은 전했다. 양당은 25일 아베 총재 및 오타 아키히로 공명당 새 대표가 당수회담을 갖고 합의문에 정식 서명한다. 이처럼 아베 정권은 출범초기 최우선 과제로 한·중과의 관계회복을 설정, 양국에 관계개선 의지를 보이고 있다. 일본 외교소식통은 이에 대해 “중국과의 조속한 정상회담 재개를 위해 양국이 다양한 외교경로를 통해 물밑접촉을 강화하고 있듯이 한국과도 활발한 접촉이 있는 것으로 안다.”고 일본 외교가의 분위기를 전했다. 실제 한·일의원연맹 회장인 문희상 열린우리당 전 의장은 22일 일본측 회장인 모리 요시로 전 총리를 만나 오는 11월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정상회의 이전, 한·일 정상회담 개최를 위해 상호노력키로 의견을 모았다. 전문가들은 입을 모아 아베가 양국, 동북아 외교의 복원을 위해 적어도 내년 7월 참의원선거 이전에는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하지 않는 등 신중한 행보를 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역사왜곡, 헌법개정도 집권초반에는 신중에 신중을 기할 것으로 보고 있다. 호시 히로시(51) 아사히신문 편집위원(정치 담당)은 “아베 시대의 최대 초점은 아시아 외교가 될 것”이라면서 “특히 야스쿠니 신사 참배가 당면 현안이 되겠지만, 적어도 당분간은 참배하지 않을 것”으로 예상했다. 호시 위원은 아울러 “총리에 취임하면 11월 APEC회담에서 한·중 정상을 만날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 많지만 그 전에라도 양국으로 날아가 정상회담을 가질 가능성 높다.”고 전망했다. 특히 일본과 한·중 외교관계는 급속히 회복될 가능성을 높게 봤다. 그는 그 근거로 일본 국내정치 일정의 영향을 꼽았다.10월 보궐선거, 내년 4월 통일지방선거,7월 참의원 선거 등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자민당 지지층 외에 무당파층 지지가 핵심인데, 이들은 아시아 주변국과의 관계개선을 바라는 층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란다. 다만 내년 참의원 선거전을 앞두고 국내 정치 형세가 불리하게 돌아갈 경우 보수성향의 표를 결집하기 위해 야스쿠니신사 참배 강행 등 강경책으로 돌파구를 찾으려 할 가능성도 있을 것으로 호시 위원은 전망하기도 했다. 반대의 전망도 나왔다. 동북아시아의 경제·외교문제를 연구하는 에리나의 요시다 스스무 소장은 “한·일, 중·일관계 관계 개선은 아베 정권의 최대 과제”라면서도 문제 해결이 어려울 것으로 전망했다. 아베가 국내에서 진퇴양난의 형국에 처해있기 때문이다. 즉 아베는 개인적으로 야스쿠니를 참배하고 싶어하지만, 외교복원을 위해선 당당히 못가는 상황이다. 반면 총리가 된 뒤 가지 않으면 “한국과 중국의 압력에 굴복했다.”는 인상을 주고, 애매한 태도를 계속 유지하면 “남자로서 뭐야.”라는 일본내 비판도 받는 상황이라 선택폭이 좁다는 얘기다. 자민당 관계자도 “동북아 외교는 전반적으로 어려울 것”이라며 아베는 중국과 북한에 대해서는 원칙적으로 강하게 나갈 것이지만 한국과는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려 할 것으로 내다봤다. 야스쿠니신사는 불필요하게 한·중 양국을 자극하지 않으면서 참배는 계속할 것으로 전망했다. 일본 여론조사들은 참배에 찬·반이 반반인 상황이다. 주일미군 재편문제도 변수로 지목됐다. 자민당 한 국방전문 의원은 오키나와의 후덴마기지를 나고시로 이전하는 문제, 오키나와 주둔 미군 해병대 8000명을 괌으로 옮기기 위한 수조엔의 재원 조달 등이 현지 주민 반발 등으로 어렵거나 불가능할 것으로 전망하면서 “그러면 미·일관계는 매우 위험해질 수 있고, 동북아 새 질서에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분석했다. taein@seoul.co.kr
  • [데스크시각] 서울시장님,그거 문화재 되겠습니까? /서동철 공공정책부장

    육조(六曹)거리였던 세종로에서 조선시대 관아(官衙)의 흔적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1967년이다. 당시까지만 해도 대원군 시대에 부활된 삼군부(三軍府)의 청헌당(淸憲堂)이 남아 있어 옛 체신부의 일부가 들어 있었다. 이 청헌당을 공릉동의 육군사관학교로 옮기고 지은 것이 정부중앙청사이다. 문화재를 몰아낸 자리에 관청 건물을 세운다는 것은 요즘 같은 ‘보존 지상주의’시대에는 상상도 못할 일이다. 당시 정부는 아예 청헌당을 건축자재로 매각하는 방안까지 검토했다고 한다. 자칫 붐을 이루던 일본인 기생관광용 요정으로 추락할 수도 있었다. 조선초기 삼군부에서 예조(禮曹)로, 다시 삼군부로 역사를 이어온 터에 중앙청사가 지어지는 과정을 몰문화적 군사정권의 횡포로만 보고싶지는 않다. 개발시대에도 개발시대 나름의 논리는 있게 마련이다. 당시 청헌당 보존과 중앙청사 건립을 국민투표에 부쳤다면 ‘조국 근대화’시대에 걸맞은 현대식 정부청사에 기꺼이 ‘한 표’를 던질 국민이 아마도 더 많지 않았을까. 요즘 경복궁이 단계적으로 복원되어 옛 모습을 조금씩 찾아가면서, 조선시대 육조거리도 복원하면 더욱 훌륭한 문화관광자원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2000년 역사도시 서울이 고풍스러운 모습을 조금이라도 되찾기를 바라는 보통사람들의 목소리일 것이다. 행정중심복합도시 건설이 계획대로 이루어진다는 전제가 필요하지만, 이들은 세종로 주변의 정부기관들이 옮겨간 이후 정부의 의지만 있다면 황당한 꿈만은 아니라고 날개를 편다. 물론 문화예술 관련 시민사회단체들은 벌써부터 정부기관이 떠난 세종로는 문화공간과 열린광장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반면 정부는 중앙청사까지 매각해 행정도시 건설비에 충당하겠다는 완강했던 방침에서 한발 물러서 길 건너편의 문화관광부 청사만 매각한다는 수정안을 최근 내놓았다. 문화재로 떠받들어지는 건축물이라고 지을 때부터 후세의 인정을 받겠다고 벼르지는 않았을 것이다. 특히 궁궐도 아닌 관아는 쓰임새에 충실하면 되지 않았을까. 청헌당이 서울시 유형문화재로 지정된 것은 조선시대 조정의 관아라는 희소성이 먼저 작용한 것은 틀림없다. 나아가 지금도 날선 듯 치켜올라간 청헌당의 처마선에서 열강의 침략이 가시화되던 시기, 문약(文弱)해진 조선의 분위기를 추슬러 보겠다는 의지를 읽었다면 너무 ‘오버’하는 것일까. 깊은 뜻은 몰라도, 중앙청사라도 보존하겠다는 정부의 방침은 일단 환영할 만하다. 중앙청사의 보존은 20세기 후반기 대한민국 정부의 ‘물리적 흔적’을 남기는 일이기 때문이다. 육조거리가 복원되면 참 멋있겠다고 생각하면서도, 흔쾌하지 않았던 것도 한 시대를 조금 더 되살리기 위해 다른 한 시대를 포기해야 하기 때문이었다. 중앙청사는 예술품일 수 없지만 ‘정부의 역사’라는 측면에서 중요한 문화재라고 생각한다. 개발독재시대 권위주의의 상징이라는 비난은, 한편으로 이 건물에 내포된 시대정신이기도 하다. 같은 차원에서 이조(吏曹)터에 자리잡은 문화부 청사를 팔겠다는 방침을 고수하고 있는 것도 아쉽다. 조선왕조에서 대한민국에 이르는 ‘관가(官街)’라는 세종로의 역사성이 훼손되리라는 것은 너무나도 뻔하기 때문이다. 정부청사를 보존할 것인가, 말 것인가를 놓고도 이렇듯 골치가 아픈데, 고유한 건축양식마저 완전히 생명력을 잃어버린 마당에 상징성있는 관청 건물을 새로 짓는 것은 정말로 큰 일이다. 21일 아침 서울신문은 서울시가 새청사를 세우는 데 속도를 내고 있다는 소식을 전했다. 너무 서두르지 말라는 판에 박힌 충고는 하고 싶지 않다. 다만 ‘문화시장’이 되겠다는 오세훈 서울시장에게 이것만은 묻고 싶다. “시장님, 새로 짓는 건물이 훗날 문화재가 되겠습니까?” 서동철 공공정책부장 dcsuh@seoul.co.kr
  • 고이즈미가 남긴 것

    |도쿄 이춘규특파원|전후 세번째 장기집권인 5년5개월간 높은 지지율로 일본을 이끌어 온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가 20일 일단은 정치 주역의 도리에서 물러섰다. ‘자민당을 깨부수겠다.’는 말로 일본 대개조를 목청껏 외쳤던 고이즈미 총리는 취임 초기 85.5%라는 사상 최고의 지지율을 보이기도 했다. 이후 부침을 거듭, 임기말에도 50%의 지지율로 느긋한 퇴임을 앞두고 있다. 섭정설, 총리 재복귀설이 나돌 정도다. 가부키와 오페라를 즐기면서 ‘무리에서 벗어난 한마리 외로운 늑대’처럼 돌출행동을 자주 해 일본 정계의 이단아로 비쳐졌지만 ‘단명한 정권’에 불안해했던 일본 국민들에게는 개혁투사로 비쳐지는 데 성공, 장수했다. 하지만 임기가 종료되면서 그의 개혁방향과 정치수법에 대한 평가는 극명하게 엇갈린다. 고이즈미는 파벌과 금권정치라는 자민당의 후진적 낡은 정치를 일부 깨부셨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러면서 국민들을 직접 상대하는 대중정치 시대의 토대를 다졌다는 평이다. 아베 신조 새 자민당 총재가 이런 고이즈미 정치개혁의 최대 수혜자다. 그의 이미지 정치에 대한 평가는 상반된다. 당내 기반이 전무하다시피 한 고이즈미가 장수할 수 있었던 최대 비결은 뛰어난 이미지 정치에 있다. 자민당 총재이면서도 자민당을 부정하는 발언으로 국민들의 마음을 사로잡아 지지율을 높이며 오히려 자민당을 강화한 것은 최대 역설이기도 하다. 지지율이 하락하던 2002년 9월 전격적인 북한방문을 통해 ‘평양선언’을 발표하고 북한의 일본인 납치를 시인받는 등 고비마다 승부수를 던져 상황을 반전시키는 정치적 감각은 탁월하다는 평을 받았다. 지난해 우정민영화 법안이 참의원에서 부결되자 ‘자폭 해산’이라는 비난을 받으면서도 총선을 치러 압승을 거둔 것도 같은 맥락이다. 하지만 고이즈미 개혁은 장기불황 종식이라는 절반의 성공일 뿐, 양극화 심화와 재정상황 악화 등 과제도 많이 남겼다는 지적을 받는다. 도로공단이나 우정사업 민영화 등은 개혁의 시늉만 했을 뿐 성과가 불투명하다. 소비세 인상과 같은 껄끄러운 과제는 다음 정권으로 떠넘겨 버렸다는 지적이 많다. 고이즈미의 최대 실정은 야스쿠니신사 참배를 끝까지 강행, 아시아 외교를 붕괴시킨 점이다. 한국·중국의 반발로 일본은 숙원인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 진출 등 외교현안에서 잇달아 실패했다. 특히 납치피해자 문제에 대한 강경대응을 통해 일본 우익세력이 정치·사회전반에 급격히 떠오르도록 함으로써 일본의 균형감각을 상실하게 한 것도 커다란 폐해로 지적된다. taein@seoul.co.kr
  • 막오른 아베시대…‘강한 일본’ 큰소리 외교

    막오른 아베시대…‘강한 일본’ 큰소리 외교

    |도쿄 이춘규특파원|아베 신조(安倍晋三·52) 관방장관이 일본 집권 자민당의 제21대 총재로 선출됐다. 임기는 3년간이다. 이에 따라 아베 총재는 26일 소집되는 임시국회에서 총리 지명을 받고 새 내각을 발족시킬 예정이다. 일본 국회의 총리 지명선거는 연립여당이 과반석을 차지하고 있어 형식에 불과하다. 아베 장관은 20일 실시된 총재 선거 투표에서 전체 703표(국회의원 403표, 당원 300표) 가운데 464표를 얻어 아소 다로(66) 외상과 다니가키 사타카즈(61) 재무상을 크게 따돌리고 새 총재에 당선됐다. 아소 외상은 136표, 다니가키 재무상은 102표를 각각 얻는 데 그쳤다.1표는 무효로 처리됐다. 하지만 아베 총재의 득표율이 70%를 넘을 것이라던 예상과 달리 66%에 그친 것에 의미를 두는 시각도 있다. 자민당 한 중진의원은 “아베를 지지하지 않으면 반(反) 아베로 찍힐 것을 우려, 지지하는 척하는 의원들이 적지 않았다.”고 말해 자민당내 아베 지지기반이 견고하지는 않음을 시사했다. 전후세대 첫 총리로 최연소 기록도 갈아치운 아베 총재는 이날 당선뒤 기자회견을 통해 애국심을 함양할 수 있는 방향으로 개정을 추진 중인 교육기본법과 테러방지특별조치법의 연장안을 이번 임시국회에서 우선적으로 처리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교육문제의 헌법과 같은 교육기본법은 논의 과정에서 민족주의를 부추길 수 있다며 야당측의 강한 반발을 샀던 법안으로, 국회에서 통과될 경우 일본의 보수·우경화 가속화 추세와 맞물려 주변국의 경계감을 한층 증폭시킬 가능성이 있다. 아베 총재는 또 일본이 테러에 취약하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오는 11월 만료되는 테러방지특별조치법을 1년간 연장하는 법안도 시급히 처리할 것이라고 밝혔다. 아베 장관은 고이즈미 총리에 의해 일찌감치 후계자로 발탁돼 관방 부장관, 간사장, 간사장 대리, 관방장관을 차례로 역임하며 집중적으로 ‘총리 수업’을 받아왔다. 특히 2002년 9월 이후 북한의 일본인 납치 문제 등 북한에 대한 강경 대응을 주장하면서 일약 ‘총리감’으로 떠올라 1993년 중의원에 첫 당선된 뒤 13년만에 총리직을 거머쥐게 됐다. ‘강한 일본´ ‘주장하는 외교’를 표방하고 있는 아베 총재는 교육기본법 개정과 함께 평화주의의 정신을 담아 교전권 등을 금지한 헌법의 전면 개정을 의욕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외교면에서는 미·일 동맹을 중시, 동맹을 강화하면서 고이즈미 총리의 야스쿠니신사 참배로 악화된 한국, 중국과의 관계 개선에도 노력하겠다는 입장을 밝혀 귀추가 주목된다. taein@seoul.co.kr
  • [박성서의 7080 가요 X파일] ‘가을 편지’의 샹송가수 최양숙 (2)

    [박성서의 7080 가요 X파일] ‘가을 편지’의 샹송가수 최양숙 (2)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본인 목소리의 노래가 방송되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학장실에 불려가 추궁까지 당했던 가수 최양숙. 당시 여건에서 명문대생이 대중가요 가수로 활동한다는 것이 결코 쉽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사례이기도 하다. 아울러 그 무렵 연습 삼아 불러보았던 또 한 곡의 노래가 ‘내 옛날 온 꿈이(김영랑 시, 손석우 작곡)’. 가수 최양숙이 처음 취입한 이 노래 역시 매우 생소한 이름,‘주미옥’이란 이름으로 표기되어 발표된다. 본인의 이름을 밝힐 수 없었기 때문이다. 최양숙은 대학을 졸업한 것과 때를 같이해 방송국 합창단 활동을 접고 모교인 서울예고의 음악교사로 교단에 선다. 그러나 1년 뒤 교편생활을 접고,‘최양숙’이라는 본명으로 본격적인 가수 활동을 시작한다. 첫 히트곡은 ‘황혼의 엘레지(박춘석 작사, 작곡)’. 이 노래를 시작으로 그녀는 작곡가 박춘석씨를 비롯해 손석우, 김광수, 최창권, 김호길, 김인배, 김민기 등 대부분 대중적이라기보다는 음악적 완성도를 추구하는 작곡가들과 손잡고 분위기 있는 곡들을 주로 발표한다. 가창력과 표현력이 뛰어났던 그녀는 해외무대로도 진출한다.67년, 몬트리올국제박람회장의 한국관에서 공연을 갖기도 했던 그녀의 활동을 지켜본 작곡가이자 일본 NHK방송국의 합창단 지휘자 ‘고지 요시유키(新律善行)’에 의해 일본에서 활동할 것을 권유받고 일본 진출을 시도한 것. 최양숙씨가 이때 사용한 예명은 ‘베로니크(VERONIQUE)’, 그녀의 가톨릭 본명이다. 음반 타이틀은 ‘MIDNIGHT SPECIAL 11 P.M’. 타이틀 그대로 ‘매혹적인 밤의 무드’를 달콤하게 그리고 있는 이 노래들은 ‘클래식과 대중가요’의 접목이라 할 만큼 음악적 완성도가 높은 세미클래식의 장르를 한껏 구사하고 있다. 정통 음악도의 길을 걷고자 했다가 대중가요가수로 전향해 활동하던 그녀가 비로소 일본무대를 통해 역행했던 자신의 길을 다시 되찾아 거슬러 올라가는 듯했다. ‘클래식 기법의 노래들을 클래시컬한 창법으로, 그리고 아름다운 노래를 아름다운 발성으로 채색해, 들을수록 여자의 사랑스러움이 배어난다.’는 것이 당시 한 일본 평론가로부터 받은 호평의 일부다. 그러나 이러한 찬사를 받을 만큼 뛰어난 음악성에도 불구하고 이 노래들은 빛을 보지 못하고 이내 묻히고 만다. “당시 일본인 매니저로부터 이전 한국에서의 활동 경력을 접고 다시 신인으로 시작해야 할 것을 요구받았고 아울러 ‘한국인 가수임을 가급적 강조하지 말아 달라.’는 조건을 제시해왔기 때문이었어요. 받아들일 수 없었지요.” 그녀의 회고다. 결국 이 조건에 응할 수 없었던 최양숙은 적극적으로 활동할 의욕을 잃고 음반만을 취입한 뒤 곧바로 귀국한다. 70년. 다시 고국무대에 선 최양숙은 해외무대의 미련을 떨치고 새로운 음반 ‘꽃피우는 아이’를 발표하며 국내 활동을 개시한다. 이 음반은 당시 방송국 PD로 있던 오빠 최경식씨로부터 서울대 후배인 가수 겸 작곡가 김민기씨를 소개받으면서 취입이 이루어졌다. 이 음반은 특히 노래 전반에 깔리는 김민기씨의 기타반주가 압권으로 그녀의 분위기와 매우 잘 어우러진다. 사실 최양숙씨는 반주에 매우 예민한 편으로 반주가 거슬리면 노래에 몰입을 못하는 성격이라고 털어놓는다. 그녀는 이 음반을 통해 김민기의 곡 ‘가을편지’ ‘꽃피우는 아이’ 를 비롯해 ‘세노야’ 등 포크 명곡들을 발표한다. 최양숙은 90년대 중반, 극작가 김숙씨의 제의로 드라마에도 간간이 출연, 오랜만에 브라운관을 통해 연기자로서 대중 앞에 모습을 드러내기도 했다. 그러나 정작 본인은 지금까지도 연예인으로서 대중 앞에 섰던 것이 잘 선택한 것인지 혹은 그렇지 않은 것이었는지 분명한 판단이 서지 않을 정도로 갈등이 심했다는 그간의 심정을 토로했다. 그러나 이제금 본명 ‘최양숙’으로 돌아와 아름다운 노래 ‘황혼의 엘레지’처럼 어느덧 황혼을 맞은 그녀. 그녀는 현재 그 이름 그대로 맑고 깊은, 그리고 아름다운 삶을, 듬직한 두 아들 가족과 더불어 아름답게 황혼을 펼쳐 보이고 있다. sachilo@empal.com
  • 日 ‘종신 고용’ 사라진다

    오랜 경기침체를 겪은 일본에서 종신고용이란 말은 사라지고 있으며 계약직이나 임시직이 전체 노동인구 6500만명 가운데 3분의1을 차지할 정도로 노동시장이 유연해지고 있다고 일간 인터내셔녈 헤럴드 트리뷴 주말판이 보도했다. 이렇듯 채용 관행이 급격히 바뀌면서 임시직 자리를 소개하는 업체들이 한 해 매출만 3조엔(약 26조원)을 기록할 정도로 급성장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14년 전에는 10%밖에 되지 않았던 기업의 계약직 비율이 20%까지 뛰어올랐다고 주장한다. 계약직이나 임시직이 크게 늘어난 것은 경기침체에도 불구하고 대량 감원 대신 정규직 사원을 비정규직으로 전환시키는 것을 선호하기 때문으로 분석된다고 신문은 전했다. 정규직을 고집할 때 기대되는 이익이 현저히 줄었고, 특히 중년 언저리 사원들은 감원 대상이 될지 모른다는 공포 때문에 계약직으로의 전환에 동의하곤 한다. 일부에선 집단 정체성을 목숨처럼 여겼던 일본인들이 점차 개인의 특성을 강조하는 경향으로 옮아가는 것이 이같은 변화를 낳고 있다고 보고 있다. 인재관리 회사인 ‘파소나’의 남부 야스유키 최고경영자(CEO) 겸 사장은 현재 대학 졸업생 3명 중 1명은 첫 직장을 때려치우고 있다고 전했다. 이 회사는 계약직이나 임시직 자리를 희망하는 10만명의 회원을 갖고 있으며 매년 10%씩 늘고 있다. 싱글맘인 이와부치 나오미(34)는 스스로 정규직 자리를 박차고 나와 시간제 근로를 하고 있다. 정규직 대우에는 못 미치지만, 그녀는 “임시직 자리가 내게 훨씬 더 어울린다.”며 “남은 시간 마음대로 다른 일을 볼 수 있어 좋다.”고 말했다. 한 가지 의문은 경기 회복이 가시화되고 있는 일본에서 이런 업종이 계속 성장할 수 있겠는가하는 점이라고 신문은 전했다. 세계적인 인재관리 회사인 아데코의 회장 겸 최고운영책임자(COO)인 우에사토 마사키는 “경기가 안 좋았을 때 우리 업계는 훨씬 빠르게 성장했다.”고 말했다.임병선기자 bsnim@seoul.co.kr
  • 징용도 서러운데 영혼까지 죽이나…

    일본 우익인사들이 태평양전쟁을 미화한 기념비를 세우면서 전쟁에서 사망한 한국인들의 이름을 제멋대로 새겨넣은 것으로 드러났다. 유족들은 관련자들을 상대로 명예훼손 소송을 낼 계획이다. 일본 이시카와현 가나자와시 이시카와 호국신사에 있는 ‘대동아성전대비(大東亞聖戰大碑)’에 한국인 8명과 한국계로 추정되는 6개 단체의 이름이 무단으로 각명된 사실이 14일 최초로 확인됐다. 폭 4m, 높이 12m인 이 비는 2000년 8월 우익단체 ‘일본을 지키는 모임’이 주축이 된 건립위원회가 1억엔을 들여 세웠다. 정면에는 일장기 ‘히노마루(日の丸)’ 모양의 붉은 원이 새겨져 있고 뒷면에는 ‘전 세계는 천황 아래 한 집안’이라는 뜻의 ‘팔굉위우(八紘爲宇)’가 적혀 있다. 이 때문에 이 비는 건립 당시 주변 국가들로부터 큰 비난을 받았다. 이름이 새겨진 한국인 중 7명은 모두 1945년 종전 직전에 전사한 사람들로 가고시마현 특공기념관에 있는 한국 출신 특공대원 11명의 이름 중 한국 이름이 확인되는 7명과 일치한다. 한국인의 이름을 새겨 효과를 극대화하려고 한 의도가 확인되는 부분이다. 이들은 야스쿠니 신사에도 합사돼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6개 단체의 이름도 의친왕(고종 황제의 둘째 아들)의 손자인 이근의 위령현창회, 조선출신특공대전몰자현창회 등 실체가 불분명한 단체들이 대부분이다. 이 과정에서 일본 우익들은 국내 유족의 동의를 전혀 받지 않았다.7명 중 한 명인 최정근씨의 동생 최창근(78)씨는 “형은 군에 입대한 후에도 일왕을 위해 죽을 수 없다고 말할 만큼 소신이 뚜렷한 사람이었다. 어린 나이에 침략전쟁에 동원돼 죽음을 당했는데 60년이 지난 지금 일본이 영혼까지 죽이고 있다.”고 말했다. 성전비가 세워질 당시 일본인 중에서도 ‘소년철혈근황대’‘히메유리학도대’ 등 본인 동의 없이 이름이 올려졌다고 항의하는 소동이 벌어져 건립위원회가 “지원자 외에 새롭게 이름을 추가했다.”고 시인하기도 했다. 성전비의 철거를 주장하는 일본인들의 모임인 ‘대동아성전대비의 철거를 요구하고 전쟁 미화를 용서하지 않는 모임’(철거회)의 쓰루조노 유타카(56) 공동대표는 “우익단체들이 후원금을 대납하고 본인·유족 동의 없이 이름을 올린 것으로 확인됐다. 타이완, 브라질, 하와이 출신들도 수십명의 이름이 무단으로 각명됐다.”고 말했다. 철거회는 성전비가 세워진 2000년 결성돼 매년 8월 건립회가 성전비 기념제를 전후로 반대모임을 갖고 있다. 그러나 건립위원회의 세력은 점점 커져 올 기념제에 400명 이상이 참석한 반면 철거회 모임은 참여율이 저조해 올해 100명이 채 안됐다. 쓰루조노는 “1995년 처음 일부 우익인사들이 성전비를 세운다고 했을 때 장난 수준으로 보고 얼마 못가 없어질 거라고 생각했는데 없어지기는커녕 점점 더 커지는 것 같다.”면서 “2000년대 들어 나타난 급격한 우경화의 반영”이라고 말했다. 7명의 유족들은 철거회의 도움을 받아 성전비 건립을 허가한 이시카와현 지사와 건립위원회, 호국신사 등을 상대로 명예훼손 소송을 낼 계획이다. 쓰루조노는 “미래의 후손들에게 역사의 진실을 일깨워야 할 책임이 우리들에게 있다.”고 강조했다.윤설영기자 snow0@seoul.co.kr
  • [한민족 문화유전자를 찾아서] (9) 언어·예술상징(상)

    [한민족 문화유전자를 찾아서] (9) 언어·예술상징(상)

    “선진(先進)이 후진(後進)이 되고 후진이 선진이 된다.”고 했던가? 이번에 소개할 우리 민족의 문화 상징들인 고구려 고분 벽화, 고려 청자, 팔만대장경, 직지심체요절 등을 돌아보면 이런 생각이 든다. 그렇게 막강했던 고구려가 마침내는 삼국 중 가장 약했던 신라에 망하고, 중세 시대까지만 하더라도 모든 면에서 앞섰던 우리나라가 근대에는 일본에 나라를 내주지 않았던가? 그러나 한 시대의 위대한 문화는 그 시대적 관점에서 제대로 평가될 필요가 있다. 그것이 문화에 대한 기본적 시각이 아니겠는가? 2004년 북한이 신청한 북한 소재 ‘고구려 고분군’과 중국이 신청한 중국 영토 내의 ‘고구려 수도, 귀족과 왕족의 무덤’이 모두 유네스코 세계 문화 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이것은 한때 요하(遼河) 이동의 요동은 물론 북만주 지역까지 차지하고, 남으로는 한반도의 절반 이상까지도 내려와 있었던 고구려라는 하나의 강력한 나라의 역사를 인정하는 것인 동시에 이들 고구려 고분들에 있는 상당수 벽화들을 인류 문화적 차원에서 인정한 것을 뜻한다. 현재 고분 벽화가 있는 고구려의 고분은 무려 107기 정도에 이른다. 고분 벽화는 어느 나라에나 있을 수 있지만, 고구려 고분 벽화처럼 일정한 역사 기간(4∼7세기)에 그 규모나 수적 차원에서 이렇게 방대하게 이뤄진 것은 세계에서 유례를 찾기 힘들다. 고구려 고분 벽화에 영향을 준 중국의 경우도 고분 벽화 고분은 10기 정도에 머물며, 그 수준도 고구려에 비할 것이 못 된다. 고분 벽화에 있어서만은 고구려는 세계적 위치에 있다. 현재 서울 역사박물관에서 전시 중인 ‘고구려 고분 벽화’(9.2∼10.22)는 북한 소재 고분들 중 6기의 고분들에 있는 벽화들만 사진으로 전시하고 있다. 그렇지만 이들 속에 있는 인물 풍속화, 각종 상징 문양, 청룡, 백호 등의 사신도(四神圖), 널방의 천장에 장식된 하늘 세계의 모양들은 관람자들의 찬탄을 받고 있다. 오늘날 고구려의 영광은 이들 고분 벽화로부터 다시 시작되고 있는 것이다. # 세계 유례 드문 고구려 고분벽화 우리나라에서는 ‘반가사유상’(半跏思惟像)이라고 하면, 미륵 보살이 대좌에 앉아 왼쪽 다리는 내리고 오른쪽 다리는 왼쪽 무릎 위에 올려 놓은 채, 오른팔을 굽혀 손가락을 오른 뺨에 대고 몸을 앞으로 약간 굽힌 상을 뜻한다. 이것은 미래불인 미륵불이 중생 제도를 위해 명상을 하는 모습이다. 이러한 반가사유상은 6세기경 삼국 통일 직전의 신라에서 크게 유행한 미륵 신앙과 관련, 경북 안동에서 발견된 보관(寶冠)을 쓴 ‘금동미륵반가사유상’과 경주에서 출토된 삼산관(三山冠)을 쓴 ‘금동미륵반가사유상’이 가장 유명하다. 이 두 반가사유상은 첫눈에 봐도 불교 예술품의 걸작인 것을 알 수 있다. 이들 ‘금동미륵반가사유상’은 그 동안 해외의 전시들에서도 많은 주목을 받아왔다. 서산 마애삼존불은 충남 서산군 운산면 용현리에 있다. 서산군 운산면은 중국의 불교 문화가 태안 반도를 거쳐 부여로 가는 행로상에 있었는데, 마애삼존불이 조성된 위치도 당시에는 경개가 절승(絶勝)한 곳이었다 한다. 오늘날에도 경상도 부처님은 무섭고, 전라도 부처님은 온화하다. 서산마애불은 흔히 ‘백제의 미소’라고 하듯 햇빛이 비치면 웃는 모습을 짓는다. 복스러운 얼굴에 눈은 행인형(杏仁形, 살구씨 모양)으로 약간 큰 편이며, 입도 약간 벌리고 있는 형태이기 때문이다. 여래불을 중심으로 왼쪽에 보살상, 오른쪽에 반가사유상이 배치되어 있는데, 현재의 부처인 석가, 과거의 부처인 제화갈라(提和渴羅) 보살, 미래의 부처인 미륵 보살이 형상화된 것이다. 오늘날 남아 있는 백제 시대의 대표적 불상이다. # ‘반가사유상’ 해외서도 주목 팔만대장경은 우리가 받아들인 불교 문화를 또다른 차원에서 완성한 것이다. 대장경은 부처의 말씀을 적은 경(經)을 비롯, 불교와 관계되는 서적들을 모은 것으로, 기독교의 성경, 회교의 코란에 해당한다. 그래서 불교를 받아들인 나라들은 모두 이 대장경을 갖추어 두고자 했다. 그래서 중국, 거란, 고려, 몽고, 티베트, 서하 등 여러 나라들에서 여러 차례 대장경들을 마련하여 오늘날 알려진 것만 해도 20여종에 이른다. 이 중 그 규모나 엄정성, 보관 상태 등을 볼 때, 고려 고종 때16년에 걸쳐 이뤄진, 우리가 흔히 ‘팔만대장경’이라고 하는 고려 대장경이 단연 압권으로 현재 중국과 일본 대장경의 전범이 되고 있다. 팔만대장경은 모두 8만 1258장으로 되어 있고, 이에는 1501종 6708권의 불서들이 들어 있다. 고려 청자, 분청사기, 백자는 각기 고려, 조선 전기, 조선 후기의 도자기들이다. 일상생활 용기들로 쓰인 이런 도자기들이 왜 중요한가? 그것은 이들이 자기(磁器)이기 때문이다. 인류가 용기들로 사용한 토기, 도기(陶器), 자기 등 중 자기가 사용된 시기는 길지 않다. 자기는 점력을 가진 점토로 모양을 만들고 그 위에 유약을 입혀 1300도 정도의 고화도로 구워낸 것을 말하는데, 이러한 자기를 만들 수 있는 나라는 15세기 이전만 하더라도 중국과 우리나라뿐이었다. 자기 중 먼저 이뤄진 것이 청자다. 청자는 중국에서도 당나라 때부터 본격적으로 만들어지기 시작하였고, 우리나라도 통일 신라 후기 때부터 이뤄지기 시작했다.14,15세기에 이르자 청자 문화는 백자 문화로 전환되고, 다시 백자가 확산되는 과정에서 일본, 동아시아, 서아시아, 지중해 연안과 서부 유럽으로 널리 퍼져 갔다. 시작은 중국이, 그리고 한국이 이를 뒤따랐다. 그리고 중국인도 ‘천하제일’이라 한 고려청자만의 비색(翡色)을 완성한 점, 태토(胎土)에 홈을 파고 흑토나 백토를 넣어 메워 굽는 상감(象嵌) 기법을 개발한 것, 산화동(酸化銅) 안료로 붉은 색을 내었던 것 등은, 그대로 우리나라 자기사의 업적인 동시에 인류 자기사의 업적이 되는 것이다. # 일본의 국보된 진주민가 제기 한편 분청사기(粉靑沙器)는 청자 바탕에 백토를 입혀 여러 모양들을 낸 것으로, 우리나라에 15∼16세기 약 200년간 이뤄지다 이후 백자로 발전하였다. 이렇듯 고려 청자, 분청사기, 백자 등은 일종의 생활 용기들이지만 수준 높은 예술품이었기에, 조선 시대에는 국가 차원에서 이러한 요업(窯業)을 관리했고, 궁궐에 소속된 화공들도 이러한 자기 제작들에 동원되어 그림을 그리곤 했다.2004년 11월 현재,307종의 국보들 중 청자가 24점, 분청사기가 5점, 백자가 17점 등 모두 46점의 자기가 국보로 되어 있다. 이러한 청자, 백자 등과 달리 막사발은 말 그대로 적당히 점토를 빚어 유약물에 한 번 담가 구워 만든 것으로, 대중용으로 대량생산을 한 것이다. 이러한 막사발은 밥그릇, 국그릇, 술잔 등으로 민가에서도 흔하게 사용된 것인데, 임진왜란 때 이런 막사발조차도 만들지 못했던 일본인들은 이러한 막사발을 많이 가져다 차그릇인 다완(茶碗)으로 썼다. 그리고 이들 중 몇 점은 현재까지도 일본 국보나 보물, 명품 등으로 소중하게 관리되고 있다. 현재 일본의 1급 국보인 기자에몬이다(喜左衛問 井戶) 다완은 임진왜란 때 경남 진주 근처의 민가에서 제기(祭器)로 사용되던 것을 가져간 것이다. 일본에 있어 국보인 도자기는 이것이 유일하다. 조선과 일본의 자기 문화 격차와 간단한 그릇에도 들어 있었던 조선 도공들의 미의식이 빚어낸 하나의 역사적 결과다. 한지는 중세 문화인 불교·유교 문화를 우리가 받아들여 문화 생활을 하게 되는 과정에서 일찍부터 중국에서부터 받아들여 우리나라에서 발전시킨 것이다. 요즘은 나무로 만든 펄프 종이로 인해 한지는 우리 문화의 한 구석으로 밀려났지만, 우리나라의 오랜 문화생활과 관계되는 이 한지는 문화사적으로 그렇게 가볍게 보아 넘길 일은 아니다. 직지심체요절(1377)도 그렇다. 이 책은 고려말 명승인 경한(景閑,1298∼1374)이 지은 것인데, 책의 내용도 내용이지만 이것이 우리 문화에서 중요한 것은, 세계 최초의 금속 활자본이기 때문이다. 독일인 구텐베르그의 ‘42행 성경’보다 무려 80년이 앞선 것이다. 이 책은 1887년 주한 프랑스 대리 공사로 서울에 왔던 콜렝드 드 플랑시에 의해 수집되어, 현재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 이러한 각 시대를 대표하는 우리나라의 문화 유적이나 유물들을 돌아볼 때, 우리 시대는 과연 어떤 문화를 가장 중요시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미국의 시인 존 업다이크는 자본주의 사회인 미국이 가장 문화적 힘을 모으는 곳은 15초짜리 스폿(spot) 상업 광고라고 한 적이 있다. 우리나라도 과연 그럴까? 지금까지의 우리 문화사로 볼 때, 적어도 우리나라만은 그렇지 않으리라 여겨진다. 손태도 문화재 전문위원
  • ‘대한협회’ 창립 기념사진 첫 공개

    1900년대 초 조직되어 활발한 애국계몽운동을 펼쳤던 ‘대한협회’의 창립 기념사진이 처음으로 공개됐다. 한미사진미술관은 오는 23일부터 열리는 ‘우리 사진의 역사를 열다’전 을 앞두고 13일 가진 기자간담회를 통해 대한협회 창립 기념사진과 의친왕의 아들 이우의 결혼사진(아래 사진)앨범 등 근대 모습을 담은 희귀사진들을 선보였다. 1909년 대한협회 창립 2주년을 기념해 찍은 사진에는 협회 조직을 주도한 오세창, 장지연, 윤효정을 비롯, 애국계몽운동에 참여했던 50여명의 모습이 담겨 있다.‘대한자강회’의 후신인 대한협회는 1907년 조직되어 폐습 교정, 근면저축 실행, 권리와 의무 등 국민의식 고취를 위한 활동을 벌이다가 1910년 한일합방후 해체됐다. 20.3×26.1㎝ 크기의 이 사진은 당시 유일하게 한국인이 운영하던 천연당사진관이 찍은 것으로, 보성학원 단체기념 사진, 손병희 선생의 우이동 사저 사진과 함께 오세창 선생의 구장품으로 처음 공개된다. 이번 전시에선 또 1930년대 촬영된 의친왕의 차남 이우(李·1912∼1945)의 결혼기념 사진 앨범과 고종의 30대 모습을 담은 초상화(가운데)도 공개된다. 이밖에 구한말 사진가로 활동한 황철, 지운영의 사진 등 한국인과 일본인들이 운영한 사진관 사진들이 대거 전시된다. 황실과 궁궐 사람들의 초상, 상류층의 초상, 서민들의 초상과 기념사진, 관광사진, 각종 교육·사회단체의 행사사진 등을 선보일 예정.12월22일까지.(02)418-1315.임창용기자 sdragon@seoul.co.kr
  • [씨줄날줄] 사형수의 증언/강석진 수석논설위원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에 출품된 ‘매장되지 않은 남자’의 상영관에 관객이 꽤 들었다.1956년 헝가리 사태 당시 인민정부의 총리를 맡았던 임레 나지의 최후를 그린 정치 영화였다. 처음 수감됐을 때 바퀴벌레를 구두로 때려잡던 영화속의 나지는 수년후에는 바퀴벌레를 쓰다듬어 주며 친구처럼 말을 건다. 인상적이었다. 수년동안의 수감생활과 반복되는 취조, 가족도 만날 수 없는 고독, 비밀재판에서 내려진 사형선고. 인간을 짓누르는 하염없는 침울함 속에서 그는 어디서 마음의 여유를 찾았을까. 사형수의 대열에 들어서보지 않고서는 짐작조차 하지 못하리라. 굴곡진 우리 현대사에도 정치적 사형수는 종종 등장한다. 조봉암은 형장에서 생을 마쳤고, 김대중 전 대통령은 살아남아 정권교체의 주역이 되었다. 젊은 피도 민주주의의 제단에 뿌려졌다.1975년의 인혁당 재건위 사건은 사법살인으로 비난받은 대표적인 사건이다. 인혁당 재건위 세력이 민청학련 주동학생을 배후 조종했으며 국가변란을 기도했다는 것이 당시 청년 8명을 사형시킨 이유였다. 민청학련 사건으로 사형 선고를 받았던 유인태(국회의원), 이철(철도공사 사장) 두 사람이 11일 인혁당 재건위 사건 재심 공판에 증인으로 나섰다. 사형 집행 31년만이다. 고문과 조작의 증언은 많이 접했지만 새롭게 느껴지는 증언도 있었다. 검사가 ‘일본이 우리 정부에 압력을 넣고 있어 정부가 굴복할 수밖에 없다. 이게 다 너희 때문이다. 아무리 미워도 조국 아니냐. 일단 우리 정부가 체면 유지는 해야 하지 않나.’라고 설득했으며 “어쭙잖은 애국심으로 ‘일본인 기자가 공산혁명을 사주했다.’는 허위 진술조서를 인정하고 말았다.”는 사형수 이철의 증언은 느낌이 각별하다. 학생의 애국심을 최후의 한 방울까지 이용하는 국가 권력의 교활하고 악랄한 모습이 영화장면처럼 눈앞에 선하게 떠오른다. 사형수들이 살아 증언대에 섰다. 이제 증언의 순서는 고문과 조작을 행한 자들에게 넘어간다. 진실의 편에 서야 할 사람들은 또 있다. 법과 법 집행을 독재정치의 폭력수단으로 변질시킨 당시 사법부 구성원들도 빛으로 나와야 한다. 진실은 지하에 묻히지 않는다고 하지 않는가. 강석진 수석논설위원 sckang@seoul.co.kr
  • [쳄피언스리그] 축구팬 ‘잠 못드는 밤’ 시작됐다

    [쳄피언스리그] 축구팬 ‘잠 못드는 밤’ 시작됐다

    ‘한국 팬들이 다시 올빼미가 된다.’ 13일 06∼07시즌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본선이 ‘킥오프’됐다. 세계 최고의 스타들이 최고 클럽을 가리기 위해 자존심을 걸고 뛴다. 국가대항전인 유럽축구선수권(유로)과 함께 유럽 최고의 축구 축제로 꼽히며, 동시에 세계 팬들의 시선을 사로잡는 대회다. 물론 한국 팬도 밤잠을 설치게 된다. 앞서 두 달간 57개 팀이 예선전을 벌여 16개 팀이 살아남았고, 본선 자동 출전 16개 팀과 32강을 이뤘다. 단판인 결승을 빼놓고는 모두 홈앤드어웨이 승부다. 조별리그와 16강 토너먼트를 뚫고 결승에 오른 두 팀이 내년 5월24일 그리스 아테네 올림픽스타디움에서 ‘지존’을 가린다. ●지성, 어게인 04∼05 한국 선수 중 박지성(25·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이 유일하게 모습을 드러낸다. 한국인으로서는 첫 4시즌 연속 출장이다. 맨유는 지난 시즌 프리미어리그 2위로 이번 본선 자동출전권을 획득했다. 반면 이영표(29)의 토트넘 홋스퍼는 리그 마지막 라운드에서 아스널에 밀려 UEFA컵에 나서게 됐다. 이영표가 AS로마(이탈리아)로 옮겼다면 출전할 수 있었다. 최근 맨유 주전 경쟁에서 밀리고 있는 박지성에겐 ‘꿈의 무대’가 곧 ‘기회의 무대’다.04∼05시즌 PSV에인트호벤(네덜란드) 소속으로 팀을 챔피언스리그 4강으로 이끌었다. 올랭피크 리옹(프랑스)과의 8강 1차전에 이어 AC밀란(이탈리아)과의 준결승 2차전에서도 골을 터뜨렸다. 당시 인상적인 활약으로 그는 명문 맨유에 입단할 수 있었다. 맨유는 벤피카(포르투갈), 셀틱(스코틀랜드), 코펜하겐(덴마크)과 F조에 속했다.14일 오전 4시45분 홈에서 셀틱을 맞아 1차전을 치른다. 이날 박지성은 선발 출장 가능성이 높다. 경쟁자인 크리스티아누 호날두(21)가 경고 누적으로 빠지기 때문이다. 셀틱에는 프리킥이 빼어난 일본인 미드필더 나카무라 스케(28)가 버텨 자존심을 건 한·일 맞대결도 흥밋거리다. ●아이쿠, 또 만났다! 디펜딩 챔피언 FC바르셀로나(스페인)와 프리미어리그 챔피언 첼시가 속한 A조가 눈에 띈다. 두 팀은 04∼05,05∼06시즌 연속 16강에서 만나 장군멍군했다. 이번에는 아예 같은 조에서 얼굴을 맞댔다. 여기에 독일월드컵 득점왕 미로슬라프 클로제(28)의 베르더 브레멘(독일) 등이 가세, 관심을 더한다. 바르셀로나는 챔피언스리그 우승팀과 UEFA컵 우승팀이 자웅을 겨룬 지난달 슈퍼컵에서 세비야(스페인)에 0-3으로 완패, 수모를 당했다. 공격수 안드리 첸코(30), 미드필더 미하엘 발라크(30) 등 거물을 영입한 부자구단 첼시는 창단 후 첫 우승을 꿈꾼다. E조의 ‘초호화 군단’ 레알 마드리드(스페인)와 프랑스리그 챔피언 올랭피크 리옹의 대결도 흥미롭다. 챔피언스리그 역대 최다 우승(9회)을 자랑하는 레알이 지난해 9월 챔피언스리그 본선 조별리그 1차전에서 리옹에 0-3으로 무릎을 꿇었기 때문이다.16강에 무난히 오를 것으로 예상되는 F조 맨유가 지난 시즌 본선 조별리그 탈락의 수모를 안긴 벤피카에 어떻게 설욕하느냐도 관심이다. 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 주택가 침투한 ‘짝퉁’ 공장

    짝퉁 명품 공장이 일반 주택가에까지 확산되고 있다. 서울경찰청 수사과는 10일 유명 상표를 도용한 가짜 명품 핸드백과 지갑을 만들어 외국인 관광객 등에게 팔아온 유모(41)씨를 상표법 위반 혐의로 구속하고 판매상 이모(41)씨 등 6명을 불구속 입건했다. 유씨 등 5명은 지난해 4월 서울 개봉동의 한 다세대 주택 지하에 공장을 차려 놓고 외국 유명 브랜드 상표와 디자인을 도용한 가방과 지갑 등 2만 5500여점(정품가 154억원 상당)을 만들어 소매상에 팔아온 혐의를 받고 있다. 이씨 등 소매상 2명은 서울 이태원의 한 주택 지하에 외국인만을 상대로 한 비밀 전시장을 차려 놓고 관광 가이드의 소개로 찾아 온 일본인 등 외국인 관광객들에게 유씨에게서 납품받은 가짜 명품 3억원어치를 팔았다가 적발됐다. 경찰은 “최근 지적재산권 보호를 위해 가짜 명품 단속이 강화되자 ‘짝퉁’ 명품의 제조와 판매 거점이 주택가까지 파고 들고 있다.”면서 “가짜 명품을 뿌리뽑기 위해 제품을 만들 때 필요한 원단 등 부자재를 공급하는 업자들까지 수사를 확대하겠다.”고 말했다. 서울 영등포경찰서도 이날 가짜 명품 핸드백 4000여개을 만들어 유통시킨 박모(54)·김모(42)씨를 상표법 위반 혐의로 구속했다. 박씨는 지난해 11월 영등포에 40여평 규모의 비밀공장을 차린 뒤 여성용 가짜 명품 핸드백 2460개을 만들어 판매,1억 3000여만원의 부당 이득을 취한 혐의를 받고 있다. 김씨는 경기도 부천에서 남성용 가짜 명품 지갑 1590개를 만들어 8000여만원의 부당이득을 얻었다.김준석기자 hermes@seoul.co.kr
  • 대도시 못잖은 산골 방과후 학교

    ‘대도시 부럽지 않아요.’ 강원도 한 산골 초등학교가 지역사회의 도움으로 대도시에 못지않은 다양한 방과후 수업을 운영, 관심을 모으고 있다. 이 학교는 이효석의 ‘메밀꽃 필 무렵’으로 유명한 강원 평창군 봉평면에 자리잡고 있는 면온초등학교. 전교생이 50명에 불과하지만 지난해부터 영어, 프랑스어, 일본어 등 외국어와 스키, 음악, 미술, 골프 등 25종에 이르는 방과후 수업을 성공적으로 진행하고 있다. 이런 방과후 수업의 성공은 지역의 적극적인 협조가 있어서 가능했다. 인근 명문고인 횡성 민족사관고 ‘기쁨공부방’ 동아리 회원 30여명은 매주 두차례 면온초를 찾아 영어, 프랑스어와 과학 등을 가르치고 있다. 인근 군부대 장병들은 태권도와 수학을 지도하고 봉평중·고교 미술교사들은 그림 그리는 법을 가르치고 있다. 일본인 학부모는 일본어를, 지역 언론사는 합창과 신문활용교육을 학생들에게 방과후 수업을 각각 해주고 있다. 또 보광휘닉스파크는 교내에 소형 골프연습장을 만들어 골프를 지도하고 스키시즌엔 특별히 면온초등학교 학생을 상대로 무료 스키강습을 해준다. 이같은 소문이 퍼지면서 4년 전까지만 해도 전교생 20여명으로 폐교위기에 있었던 면온초는 지난 1학기에 6명이 새로 전학을 오는 등 활기를 찾아가고 있다. 이 학교 유치원 대기자도 16명에 이를 정도로 인기다. 서대식 교장은 “지역에서 ‘학교 살리기’에 자발적으로 동참하면서 질 높은 교육이 이뤄지고 있다.”며 “학부형들도 좋아하고 있다.”고 말했다.평창 조한종기자 bell21@seoul.co.kr
  • 41년만에 왕자 탄생… 日열도 흥분

    41년만에 왕자 탄생… 日열도 흥분

    |도쿄 이춘규특파원|아키히토 일왕의 둘째 며느리이자 후미히토 왕자의 부인인 기코(39)비가 6일 도쿄도내 아이쿠 병원에서 제왕절개 수술로 아들을 순산했다. 일본 왕실에서 41년 만의 아들 출산이다. ●제왕절개로 순산 궁내청은 기코비가 이날 오전 8시27분쯤 건강한 남아를 출산했다고 발표하면서, 신생아는 체중 2.56㎏, 키 48.8㎝로 표준을 밑돌지만 임신 37주째의 발육이 충분한 상태의 출산이어서 문제는 없다고 밝혔다. 이날 태어난 남아는 현재의 왕실전범이 유지되면 나루히토 왕세자와 아버지인 후미히토 왕자 다음의 왕위 계승 서열 3위가 된다. 일본 정부는 지난해부터 여계·여성 왕을 인정하는 내용의 왕실전범 개정을 추진해 왔으나 이날 남아가 태어남에 따라 당분간 전범개정 논의는 잠잠해질 것으로 보인다. 다만 전범개정이 안 되면 일본 왕실의 계승 위기는 해결되지 않을 것이란 것이 중론이다. 따라서 왕실의 아들 출산은 오히려 향후 왕실전범 개정 논의를 복잡하게 만들 것으로 전망된다. 여전히 왕실내에 후계가 될 남아가 지극히 적기 때문에 여계·여왕을 인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하지만 극우파를 중심으로 여계·여왕론에 대한 거부감이 심해 1947년 왕적이 박탈된 옛 11개 왕족의 왕적 복귀를 통해 남계 왕을 지속시키려는 특별법 제정 움직임도 일고 있다. ●여왕 인정 vs 왕적복귀로 남계지속 이날 태어난 남아는 아키히토 일왕 내외로서는 4번째 손주이며, 남자 손주로는 처음이다. 일본 왕실에서 남아가 태어난 것은 1965년 일왕의 차남 후미히토 왕자 이후 처음이다. 장남인 나루히토 왕세자는 네살 여아 한 명만 두고 있으며, 후미히토 왕자도 앞서 딸만 둘을 낳았다. 일본 왕실에서 제왕절개로 출산한 것은 처음이며, 왕가가 민간병원에서 출산한 것 또한 처음이다. 왕실은 당초 자연분만을 예정했으나 지난달 정기검진에서 태아가 자궁 입구에 위치하는 ‘전치태반(前置胎盤)’ 진단을 받아 출산 때 대량 출혈이 예상됨에 따라 예정일을 20여일 앞당겨 제왕절개 수술을 했다. ●호외 발행·TV 특별방송 ‘떠들썩´ 홋카이도를 방문중인 아키히토 일왕 내외는 투숙중인 호텔에서 남아 출산 소식을 전해듣고, 탄생 후 최초의 의식으로 손자에게 보신용 검(劍)을 하사했다. 이름은 7일째인 오는 12일 붙여진다. 일본 신문은 왕실의 남아 출산 소식을 담은 호외를 발행했고, 방송은 긴급뉴스로 전했다. 특히 TV 방송들은 출산한 병원과 궁내청 등을 수시로 연결하고 전문가를 출연시켜 특별방송을 내보냈다. 백화점이나 상당수 건물은 경축 현수막을 내거는 등 일본 열도가 축제 분위기에 휩싸였다. 이날 출산 영향으로 많은 일본인들이 결혼과 출산 의욕을 보이는 등 1500억엔(약 1조 2330억원)의 경제효과가 예상된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차기 총리가 확실시되는 아베 신조 관방장관은 이날 “산모와 신생아가 건강하다는 소식을 국민들과 함께 기쁘게 생각한다.”면서 앞으로 왕실 전범 문제에 대해서는 국민 여론을 들어 신중하게 논의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taein@seoul.co.kr
  • [눈에 띄네] 사진집 낸 영화 ‘괴물’의 배두나

    [눈에 띄네] 사진집 낸 영화 ‘괴물’의 배두나

    “이 배우 최초의 흥행작이 되길 바랍니다.”(송강호) 어째 놀리는 것 같던 덕담 덕택일까. 영화 ‘괴물’이 지난 주말 역대 흥행1위에 올랐다. 화끈하게 굴러온 이 복덩이, 당사자인 배두나는 정작 볼멘소리다.“그러게요. 여러 차례 나눠주시지. 한번에 너무 몰아주셨어요.” 이전 출연작의 성적을 들먹이려자 화들짝 손사래친다.“저 (그런 부분에) 예민하거든요. 하핫∼.” ‘괴물’ 이전, 호평받았으나 그다지 흥행하지 못한 작품들이 못내 가슴 아픈가보다. 이번엔 11월 OCN에서 방영예정인 16부작 드라마 ‘썸데이’를 택했다. 케이블 채널임에도 “좀 더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어 좋다.”고 말한다. 맡은 역할은 일본인·한국인 부모 밑에서 자란 만화가 ‘야마구치 하나’. 사랑은 호르몬 장난에 불과하다는 냉소적인 캐릭터다. 원래 성격은 엉뚱한 무정부주의자 ‘영미’(영화 ‘복수는 나의 것’)에 가깝단다.“그래도 재밌어요. 한번 보시면 알 거예요.” 요즘은 새로운 재밋거리, 사진에 빠졌다. 마니아들이 그렇듯, 돈 아까운 줄 모르고 장만한 장비 두고 좋다고 희희낙락이다. 아예 ‘두나´s 런던놀이´라는 사진집도 냈다. 올 봄,‘괴물’ 촬영을 끝내고 런던을 돌며 찍은 사진들이다. 이게 또 베스트셀러 조짐을 보인다. 이래저래 최고점을 찍고 있는 시절인데, 본인은 얼른 다시 놀러가서 사진 찍고 싶을 뿐이란다. 속세 사람들이 성공을 부러워할 무렵, 배두나는 이미 사진의 세계로 ‘유체이탈’(다른 생각하느라 멍∼해질 때마다 주변에서 이렇게 부른단다.)해버렸다.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주일 미군기지를 가다] (상) 美·日 ‘국방공조’의 현장 요코다·요코스카 기지

    [주일 미군기지를 가다] (상) 美·日 ‘국방공조’의 현장 요코다·요코스카 기지

    |요코다·요코스카(일본) 김상연특파원|기자는 지난달 28일부터 지난 1일까지 일본 도쿄 인근과 오키나와에 위치한 주일 미군기지를 둘러보고 미·일동맹의 현주소를 체감했다. 그 소감을 2차 세계대전 당시 연합군 사령관과 한국전 당시 유엔군 사령관으로 활약한 더글러스 맥아더와의 가상대화 형식으로 두차례로 나눠 소개한다. ●기자 처음 뵙겠습니다. 한국에서 왔습니다. ●맥아더 어서 오세요. 그런데 세상 등지고 쉬고 있는 늙은이는 뭣하러 불러내셨소. ●기자 ‘한국’의 기자가 ‘일본’에 있는 ‘미국’의 군 기지에 왔으니, 당연히 장군을 찾아야죠. 장군의 이름을 빼고 한·미·일의 근현대 전쟁사를 논할 수 있나요. ●맥아더 그렇게 되나요. 사실 2차대전 종전 전후가 내 인생의 전성기였죠. 일본인이 신처럼 떠받드는 천황을 쥐락펴락하고, 또 한국전쟁에서는 인천 상륙작전으로 그림같은 역전 드라마를 일궈냈죠. 그때 공산주의자들 끝장을 봤어야 했는데. 트루먼 그 자만 아니었다면…. 참, 이거 내가 손님을 앞에 두고 흥분하다니. 실례가 많소. 그래, 둘러본 소감이 어떻소. ●기자 뭐랄까요. 여기 오기 전엔 한·미동맹과 미·일동맹은 별개의 집합이란 인식이었습니다. 그런데 한반도에서 한발 물러서 바라보니, 휴전선을 경계로 해양 자유주의 세력(남한·일본·미국)과 대륙 공산주의(북한·중국) 세력이 덩어리져서 대치하는 그림이 확연히 부각되더군요. 알고보니 미국의 입장에서 한국은 공산주의에 대항하는 최전방, 일본은 후방부대 개념이더군요. ●맥아더 그걸 이제야 아셨소?본토의 요코다, 자마, 요코스카, 사세보와 오키나와의 가데나, 후텐마, 화이트 비치 등 주요 미군기지는 한반도 유사시 즉각 병력 투입이 가능한 유엔사 후방부대들이라오. 미군이 괜히 일본에 5만여명이나 주둔하고 있는 줄 아시오? ●기자 그런데 이번에 보니까 주일 미군기지의 재배치 계획이 2014년 완료를 목표로 한창이더군요. ●맥아더 그럴 때가 됐지요. 사실 처음 미군이 한국과 일본에 들어왔을 때는 전쟁 통에 경황이 없어 아무 데나 막 기지를 건설하고 그랬어요. 이젠 두 나라의 국력도 커지고 국제정세도 변했으니 합리적으로 정비해야죠. 어떻게 바뀌나요. ●기자 가장 큰 변화는 섬 전체가 미군기지화돼 있는 오키나와에서 예고되고 있습니다. 이곳 주민들의 민원을 받아들여 미 해병대 8000여명이 2014년까지 미국령인 괌으로 이전합니다. 후텐마 해병 항공부대 기지도 오키나와 북부의 슈와브로 이전할 계획입니다. 본토에서도 변화가 있는데, 미국 워싱턴주의 미 육군 1군단 사령부가 도쿄 인근의 자마 기지로 2008년까지 이전합니다. ●맥아더 복잡하군요. ●기자 이렇게 보시면 됩니다. 주일 미 육군의 허브 기지는 자마, 해군의 허브는 요코스카, 공군의 허브는 요코다(수송)와 오키나와의 가데나(전투)기지입니다. ●맥아더 내가 오히려 브리핑을 받다니…. 요코다, 자마, 요코스카 기지는 도쿄에서 차로 1시간 이내 거리에 있지요. 직접 보니까 어떻소. ●기자 먼저 주일미군 사령부와 미 5공군 사령부가 있는 요코다 공군기지를 찾았습니다. 주일미군은 해·공군 위주이기 때문에 공군의 3성(星)장군이 주일미군 사령관을 맡고 있는 게 특이했습니다. 그런데 도쿄돔 153개를 모아놓은 크기라는 요코다엔 채 10대의 항공기도 눈에 띄지 않았습니다. 알고보니 평소엔 거의 비어 있다가 한반도 등에 비상사태가 발생하면 군수품과 병력의 집결지 역할을 한다고 하더군요. 항공기 100대의 동시 작전이 가능한 규모랍니다. ●맥아더 요코스카는 어땠습니까. ●기자 세계에서 가장 큰 해군기지라는데, 겉보기에는 그리 무시무시하지 않았습니다.1조원을 넘는다는 이지스함이 2척 이상 정박해 있었는데, 외양은 그냥 평범한 군함같았습니다. ●맥아더 이지스함이라는 게 따로 있는 게 아니라, 일반 순양함이나 구축함의 하드웨어에 첨단 이지스 체계를 갖춘 것이니 그렇겠지요. ●기자 최신 무기인데도 잘 아시는군요. 미 해군의 최신 이지스 구축함인 ‘머스틴’(2003년 취역)과 스탠더드 요격 미사일(SM-3)을 싣고 샌디에이고에서 막 투입된 이지스 순양함 ‘샤일로’가 나란히 정박해 있었습니다. 그 중 머스틴에 직접 오르는 기회를 얻었는데, 배 앞뒤의 대포와 발칸포를 제외하곤 어떤 화기도 돌출해 있지 않은 게 특이했습니다. 심지어는 레이더도 안에 내장돼 있더군요. 이지스 체계를 종합지휘하는 ‘전투정보센터’는 적의 공격을 피해 배의 정중앙에 꽁꽁 숨어 있었습니다. 가로·세로 60㎝가량의 SM-3 발사대가 앞쪽 갑판에 32개, 뒷 갑판에 64개가 뚜껑에 덮인 채로 비치돼 있는 것도 인상적이었습니다. ●맥아더 요즘 주일미군의 최대 관심사가 북한 대포동 미사일 요격인가 보군요. ●기자 그런가 봅니다. 미국은 또 10월까지 도쿄 인근과 오키나와에 최신 패트리엇 미사일(PAC-3)을 다수 배치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맥아더 아∼, 요코스카에 한번 가보고 싶군요. 어떻게 변했을지. ●기자 참, 그렇지요. 요코스카는 장군께서 일본으로부터 항복 서명을 받은 곳이지요. 이번에 듣고 놀란 게, 미군이 전후에 요코스카 항을 사용하려고 전쟁 당시 일부러 항만시설에 폭격을 가하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그 와중에 그런 머리를 내다니, 미국이란 나라는 정말 용의주도하다는 생각입니다. ●맥아더 그렇습니다. 미국이란 나라가 감정적으로 뭔가를 결정한다고 생각하는 것만큼 어리석은 착각은 없을 겁니다. ●기자 이번에 주일미군 기지를 돌아보면서 한국내 전시(戰時) 작전통제권 환수 논란과 관련해 일부 보수 진영에서 국면을 호도하고 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습니다. 미국이 한국 정부에 불만을 품고 감정적으로 나오고 있다는 논리는 둘째치고,‘일본은 연합사 체제로 가는데, 한국은 왜 거꾸로 가려고 하느냐.’‘이러다가 주한미군 사령관은 3성장군으로 전락하고, 주일미군 사령관이 4성장군이 될 수도 있다.’는 그들의 주장에 대해 주일미군 관계자들에게 물어보니까 “금시초문”이라며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더군요. 오히려 “연합사가 없어도 미·일간에 긴밀한 작전협조가 충분히 이뤄지고 있다.”고 자부하더군요. 요코스카에서는 “해상자위대와 미 해군은 1년에 100회 이상 합동훈련을 통해 전 세계에서 가장 강한 유대를 자랑한다.”는 얘기도 들었습니다. ●맥아더 아, 작통권 말씀이군요. 이승만 대통령이 나한테 작통권을 넘겼을 때 한국군의 역량은 너무나 미약했지요. 지금과는 비교가 안될 겁니다. ●기자 이번에 미국사람들의 얘기를 직접 들으면서 한국사람으로서 참 부끄럽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주일미군 사령관에게 작통권 논란에 대해 물었더니 “한국은 자유민주주의 국가로서, 국민이 직접 선출한 지도자의 판단을 따르는 데 자부심을 가져야 한다.”는 답이 돌아오더군요. 우리가 그동안 자기비하에 너무 길들여진 것은 아닌지 자괴감이 들었습니다. “인간은 모름지기 스스로를 모욕한 연후에 남으로부터 모욕을 받는다.”는 맹자(孟子)의 경구는 바로 우리를 겨냥한 것이 아닐까요. 대통령이 안보를 자주(自主) 운운하면서 정략적으로 이용하는 것도 문제지만, 국민의 다수가 선출한 대통령을 좌파적이니, 친북적이니 하고 공격하는 것은 결국 우리 얼굴에 침을 뱉는 자해행위는 아닌지…. ●맥아더 어디가나 국가 대사를 놓고 편을 가르는 것을 즐기는 무리들이 있으니 어쩌겠습니까. 군인들이라도 중심을 잡고 ‘의무’‘명예’‘조국’이란 숭고한 단어를 향해 나가야지요. 다음 행선지는 어디입니까. ●기자 오키나와입니다. ●맥아더 아∼, 오키나와…. 태평양 전쟁 당시 참으로 격렬했던 곳이지요. carlos@seoul.co.kr
  • [세계의 싱크탱크] (7)노무라종합연구소

    [세계의 싱크탱크] (7)노무라종합연구소

    |도쿄 이춘규특파원|노무라종합연구소(NRI)는 1965년 설립된 일본 최초의 싱크탱크라고 자부한다. 현재 연구소 성격은 크게 변했다. 전통적인 싱크탱크 업무 비중은 15% 정도다. 기업처럼 운영되는 연구소 총매출의 85%는 시스템개발이 차지한다. 즉, 사용자가 요구한 어떤 문제점에 대한 해답이나 해결책을 하드웨어나 소프트웨어, 네트워크 등에 반영해 재구축하는 일이 연구소 업무의 대부분을 차지하게 됐다. 하지만 현재도 아시아는 물론 세계적으로도 유명한 싱크탱크이기는 변함이 없다. 특히 아시아 지역 사업에 큰 비중을 두고 있기 때문에 상하이에는 현지 법인을 설립한 상태이고, 서울과 타이완, 싱가포르에 지점을 두고 있다고 오하라 아이 전문연구원은 밝혔다. 2006년 3월 결산에서 연 매출이 2855억엔(약 2조 3696억원)일 정도로 거대 기업이기도 하다. 직원수도 4429명. 이 중 400여명이 싱크탱크 업무에 종사하고 있다. 총매출의 구성비율은 62.4%가 금융업체 등에 대한 문제를 해결해 주고 있고, 세븐 일레븐과 이도요카도 등 유통업체가 17.4%를 차지한다. 그 외 민간업체들에서의 매출이 12.9% 이다. 관공서의 컨설팅이나 시스템개발을 해주는 것을 통해 총매출의 7.4%가 관공서에서 나온다. 민영화가 확정된 우정공사의 시스템 개발도 했다. 연구소가 지금의 모습을 갖춘 것은 1988년.1966년 설립된 노무라전자계산센터와 합병,(주)노무라종합연구소로 출범하면서 시스템개발 업무와 싱크탱크 기능을 병행하게 됐다. 후지누마 아키히사 사장은 연구소의 사명에 대해 “부가가치가 높은 선진적인 서비스를 제공, 고객의 기업가치를 높여가는 것”이라고 밝혔다. 일본경제나 기업의 재생·발전에 공헌하고 싶다는 것이다. 연구소는 한국과는 특별한 인연을 맺고 있다.1970년대부터 조사와 컨설팅 업무를 시작한 뒤 1995년에는 서울지점을 개설, 기업의 경영컨설팅, 중앙 및 지방정부의 폭넓은 컨설팅 업무 등을 수행하고 있다. 서울지점에는 30여명의 직원 중 지점장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이 한국인 고급인력이다. 조만간 직원수를 늘릴 계획이라는 것이 노무라측의 설명이다. 일본 기업의 한국진출도 돕고 있다. 노무라종합연구소측은 산업자원부의 용역을 받아 한·일간 심각한 무역역조를 시정하는 방안을 연구, 고도의 기술을 가진 일본 기업들이 한국에 대한 투자를 늘리는 방안을 마련했다. 그 결과물이 ‘재팬 데스크(Japan Desk)´의 설치다.2004년 2월 일본계 첨단부품과 소재기업 투자유치 전담기구로 설치돼 운영되고 있다. 한국진출 마스터플랜과 조세감면 혜택 등의 인센티브 설계 및 신청 대행 등을 해주고 있다. 그 결과 린텍(LINTEC), 치소(CHISSO), 쿠라모토(KURAMOTO) 등 총 14개사의 한국진출을 지원했다. 지난 4월부터는 일본경제 회복에 따라 일본진출을 희망하는 한국 중소기업에 대한 지원활동도 전문기관과 협력, 제공하고 있다. 한국 대기업들과도 뗄 수 없는 관계다. 요네야마 스스무 아시아·중국 담당 총괄팀장은 “한국의 거대기업 10개 중 7개 기업이 컨설팅 계약을 맺고 있다.”면서 “고객들의 세부정보는 공개할 수 없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전자, 자동차, 화학업체 등에게는 사업개발컨설팅을 하고 있으며, 유통이나 건설업체는 업무혁신 컨설팅을 해주고 있다고 밝혔다. 통신업체에는 마케팅전략 컨설팅을 해주고 있으며, 해외사업에 대한 컨설팅도 한다. 국내 지역개발 사업 컨설팅도 20년정도 해오고 있다. 남해안 관광벨트 사업의 계획 작성과 인천시의 섬개발 프로젝트에도 참가했다. 국토연구원과 공동으로 고속철도 KTX와 관련된 지역개발 연구도 진행한 바 있다. 일본 정부나 기업들을 상대로 한국사정에 대한 컨설팅사업도 펴고 있다. 브로드밴드시장 조사도 했으며, 기업들을 상대로는 VIP마케팅에 대한 컨설팅을 해줬다. 일본 정부의 의뢰로 금융제도조사도 실시했다. 이처럼 한국과의 깊은 인연 때문에 2004년 12월에는 요네야마 스스무 당시 서울 지점장이 노무현 대통령으로부터 표창장을 받기도 했다. taein@seoul.co.kr ■ 노무라硏 ‘2010’등 출간 노무라종합연구소는 지난해 9월 ‘2010년, 일본의 미래상’을 제안했다. 노무라연구소가 일본의 미래전략을 제안하는 싱크탱크라는 것을 보여 주는 사례다. 제안은 ‘2010년의 일본’이라는 책으로 출판돼 인기다. 연구소는 이 책에서 현재 일본이 역사적인 전환점에 서 있다고 진단하며 “2010년은 조직이 사람들을 활용하는 고용사회에서 사람이 자신의 이니셔티브로 조직을 활용하는 ‘기업(起業)사회´로 전환할 호기가 온다.”며 기업들과 개인의 중기전략을 제시했다. 나노테크시장을 진단,‘비즈니스로서의 나노테크 대전(大全)’을 8월 출간했다. 지난 3월에는 스팸메일의 문제를 다룬 ‘전자메일·위기’도 내놓았다.‘제3의 소비스타일’이라는 책은 일본의 소비스타일 변화를 추적, 새로운 마케팅전략도 제시했다. ‘베이비붐 세대 은퇴-저출산고령화사회의 정책대응’(2004년),‘경제정책의 과제-경제개혁으로부터 디플레 출구 전략까지’(2004년),‘일본 재생에의 처방전-성장신화의 임종과 새로운 도전’(2003년) 등 화제의 단행본을 계속 출간하고 있다. ■ “한국인, 빠르고 프런티어정신 강해” |도쿄 이춘규특파원|노무라종합연구소의 아시아·중국 담당 총괄팀장인 요네야마 스스무 부장은 “우리 연구소는 구미의 싱크탱크와는 달리 정당과 연결돼 있지 않아 중립적”이라며 “주식회사로서 이익을 내는 것도 목표”라고 설명했다. 민간회사로서 기업과 중앙·지방정부 등이 요구하는 경영 개선 방안을 마련해 준다는 것이다. 그는 최근 3년 동안 서울지점장으로 근무했다. ▶한국경제에 필요한 것은. -국제경쟁력 있는 차세대 성장산업을 만들어가는 것이 중요하다. 삼성,LG, 현대자동차 등 국제경쟁력을 갖고 있는 기업들에 이어 한국의 경쟁력을 담당할 기업들이 나오지 않고 있다. 예를 들면 일본 기업들이 재팬 데스크를 통해 한국에 직접 투자하는 것은 대부분 삼성,LG, 현대차 등과 거래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차세대를 리드할 새로운 기업들이 나오지 않으면 앞으로 투자가 안 들어갈 것이다. ▶한국경제의 약점은. -국내경제 규모가 너무 작다. 외국에 나가지 않으면, 수출하지 않으면 안되는 숙명이 한국기업들에는 있다. 저출산, 고령화 문제도 있다. ▶한국경제의 강점은. -부산이나 광양 등 항구들이 전략적으로 좋은 위치에 있다. 부산항이 성장한 것은 아시아 중심에 있기 때문이다. 인재도 매우 우수하다. 교육 정도도 높다. 아울러 매우 공격적이다. 프런티어 정신도 두드러진다. 매우 빠르기도 하다. 예를 들면 세계가 인도를 주목한다. 일본에는 인도를 주목, 진출한 기업이 적지만 한국의 LG 등은 인도진출을 전략적으로 착착 진행해 일본 기업보다 앞서 있다. 중국을 봐도 삼성은 브랜드 조사에서 일본의 유명 전기전자업체보다 인지도가 매우 높다. 한국 기업은 국내 시장이 좁다 보니, 해외전략에 치중해 일본 기업보다 빠르게 멀리 앞서가는 것으로 보고 있다. ▶한국기업에 대한 조언은. -차세대 신산업과 신상품개발에 대한 집중과 선택을 강화해야 한다. 일본 기업도 마찬가지이지만 휴대전화나 자동차산업 등의 다음에 (한국경제를 견인할) 산업이 뭔가는 아직 보이지 않는다. 일본과 한국 기업이 상호 강점을 취합, 전략적인 제휴·연대를 강화해 가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삼성이 소니와 연대하는 등의 구체적인 연대가 중요하다. 그런데 아직도 적은 상태다. 조금 더 강화해야 한다고 본다. ▶동아시아 경제권 구상에서 한국이 취해야 할 입장은. -5월말 삿포로에서 열린 한·일경제인회의 때 연사로 얘기했지만 한국과 일본은 자유무역협정(FTA), 경제연대협정(EPA)을 둘러싼 커뮤니케이션이 거의 정지된 상태다. 그 대화를 우선 재개해야 한다.FTA는 단기적으로는 손해인 면도 있겠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장점이 있을 것이다. 벌써 2년 가까이 FTA 실무협상이 열리지 않는 것은 문제다. ▶정치적으로 한·일관계가 아주 냉랭한데…. -정치와 경제는 분리해 생각해야 한다. 경제 분야는 결코 나쁘지 않다. 일본의 직접투자가 줄고 있긴 하지만 서로가 아주 주요한 파트너라는 것은 변하지 않는다. 예를 들면 첨단기술부품의 대일 무역적자가 나쁘다고만 보면 안된다. 삼성이 휴대전화 부품을 수입, 조립해서 부가가치를 높여 수출하는 것은 한국에 도움이 된다. ▶한국에 대한 인상은. -한국인이 일본인보다 나은 점은 의사결정이 빠르다는 점이다. 일본인은 느리다. 이것은 명백한 차이다. 재벌이라는 조직, 오너가 있는 조직의 특성도 있지만 일반인들도 빠르다. 특히 비즈니스면에서 한국인은 빠르다. taei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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