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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병현 부진 늪 탈출

    미프로야구의 김병현(28·콜로라도)이 세번째 시범경기에서 삼진을 6개나 솎아내며 부진에서 벗어났다. 추신수(25·클리블랜드)는 타이완 출신 왕첸밍(뉴욕 양키스)을 상대로 또 안타를 빼냈다. 김병현은 12일 캔자스시티전에서 두번째 투수로 5회에 나와 4이닝동안 1안타 2볼넷 1실점(비자책)하고 삼진을 6개나 뽑았다.1실점도 수비진의 실책 탓이었다. 또 지난 8일 밀워키전(4볼넷)에서 남발했던 사사구가 절반으로 줄어 제구력도 안정감을 되찾았다. 콜로라도가 5-4로 이겼다. 추신수는 양키스전에 우익수 겸 5번 타자로 선발 출장,1타수 1안타 2볼넷 1득점했다. 특히 추신수는 베이징올림픽 본선 티켓을 놓고 맞설 가능성이 있는 왕첸밍에게 지난 7일에 이어 또 안타를 빼앗아 한국대표팀 차출에 청신호를 드리웠다. 클리블랜드의 4-3 승. 한편 일본인 투수 마쓰자카 다이쓰케(보스턴)는 볼티모어전에 두번째 선발 등판해 4이닝동안 홈런 2개를 포함해 6안타 4실점, 패전의 수모를 당했다. 보스턴이 3-5로 졌다.김영중기자 jeunesse@seoul.co.kr
  • 아베, 北보다 지지율이 중요?

    |도쿄 이춘규특파원|북한에 의한 일본인 납치피해자 문제가 주된 원인이 돼 사실상 결렬된 ‘북·일 국교정상화’ 실무회의가 앞으로도 상당기간 난항을 겪을 것으로 보인다. 일본은 극우세력을 중심으로 납치 문제를 북·일 실무회의에서 계속 제기해야 한다는 입장이지만 북한측은 “그 문제는 이미 해결이 끝난 일”이라는 입장이 팽팽하기 때문이다. 특히 지지율 저하에 시달리고 있는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납치피해자 문제를 집중제기, 지지율 만회를 통해 지방선거와 참의원선거에 이용하려 한다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어 북·일 국교정상화 실무회의는 적어도 당분간 큰 성과를 거두기 힘들 전망이다. 이런 가운데서 아베 총리는 이날 공영 NHK방송의 ‘총리로부터 듣는다’는 프로그램을 통해 “국제사회에서 고립화되고 있는 것은 일본이 아니고 북한이다.”며 납치문제를 계속해서 추궁할 의지를 내비쳤다.아베 총리는 “미국의 체니 부통령에게 ‘납치 문제의 해결이 없으면 미국이 테러 지원국가의 지정을 해제하지 않을 것이라고 북한에 말해 달라고 했다.”면서 외교 노력을 한층 더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아베 총리는 “북한은 일본이 취하고 있는 제재 조치를 해제해 주기를 바라면, 납치 문제에 성의있는 대응을 해야 한다. 상황이 악화된다면 제재를 강화하는 것도 검토하지 않을 수 없다.”는 초강경입장을 피력했다.taein@seoul.co.kr
  • [어린이책꽂이]

    ●100년 전 우리나라에 가다!(이돈수 지음, 서울문화사 펴냄) 지금의 서울 충무로 거리는 예부터 ‘진고개’라 불렸다. 그러나 일본 공사관이 이곳에 들어서자 일본인들은 ‘혼마치’라고 부르면서 일본인 마을을 만들었다. 수표교는 광통교와 함께 가장 유명한 청계천의 다리로 1420년(세종2년)에 만들어졌다. 당시 이곳에는 마밭이 있어 ‘마전교’라고 했지만, 훗날 개천의 수위를 측정하기 위해 다리 옆에 수표석을 세운 다음부터는 ‘수표교’라 불렸다. 옛날 희귀 사진을 곁들인 어린이 역사문화기행서.1만원. ●도도는 왜 동물원에 없을까?(프레드 얼리치 지음, 이예미 옮김, 바다어린이 펴냄) 도도는 날개가 퇴화해 날지 못하는 오리만한 새다. 모리셔스 섬에 살던 이 새는 지금부터 약 300년 전에 멸종됐다. 이 책에서는 도도 외에 매머드, 검치호랑이, 티라노사우루스, 모아새, 콰가얼룩말 등 멸종된 동물들을 만날 수 있다. 어떤 동물이 보통 50년 동안 모습이 보이지 않으면 멸종된 것으로 간주된다. 실러캔스, 매너티, 아메리카흰두루미, 피리물떼새 등 멸종위기에 처한 동물들의 이야기도 실려 있다.8000원. ●레오나르도 다빈치(브리지트 라베 등 지음, 신혜정 옮김, 다섯수레 펴냄) 레오나르도 다빈치(1452∼1519)는 ‘그리스도의 세례’를 그릴 때 당시 이탈리아 화가들이 즐겨 쓰던 에그 템페라, 즉 물감에 달걀 노른자와 물을 섞어 갠 것을 쓰지 않았다. 대신 북유럽 네덜란드 화가들이 쓰던 유채물감을 썼다. 이렇게 해서 여러 겹으로 덧칠된 섬세한 색감을 표현할 수 있었다. 르네상스 시대의 찬란한 문화를 이끈 천재 이야기. 프랑스 국왕 프랑수아1세는 이 세상에서 레오나르도보다 학식을 더 많이 쌓은 사람을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9000원. ●달은 어디에 떠 있나?(정창훈 지음, 웅진주니어 펴냄) 우리 속담에 “그믐달 보려고 초저녁부터 기다린다.”는 말이 있다. 무슨 일을 너무 서두른다는 뜻이다. 어떤 달이 언제 뜨는지 모르면 그믐달을 보려고 초저녁부터 기다렸다가 허탕을 치게 될지도 모른다. 책은 달과 지구, 태양과의 관계를 밝힌다.8500원. ●암행어사 호랑이(김향수 지음, 한솔수북 펴냄) 바람무늬 휘날리며 착한 사람을 도와주는 호랑이 이야기. 글을 읽다 보면 절로 어깨춤이 들썩이고,‘얼쑤’‘그렇고 말고’ 등의 추임새가 금방이라도 나올 것 같은 흥을 안겨준다. 까치가 소나무에 앉아 있고, 소나무 아래 호랑이가 익살스러운 얼굴로 까치를 바라보고 있는 민화풍 그림이 이야기의 실감을 더해 준다.8900원.
  • 한반도 정세 美·中 전문가 진단

    한반도 정세 美·中 전문가 진단

    북한과 미국의 관계정상화를 위한 뉴욕 실무회담이 성공적으로 마무리되는 등 북·미관계 진전이 급물살을 타고 있다. 북·미가 50년 동안의 적대관계를 풀고 정상 국가관계로 돌아갈 수 있을까. 최근 북·미관계 진전이 한반도와 남북관계에 미치는 영향은 무엇인가. 미국과 중국의 한반도 전문가들을 통해 회담 결과 및 향후 진전방향을 진단해 봤다. ■ “북-미 북-일 수교 진전 따라 6者회담 향방·속도 달라질것” 이번 북·미 관계정상화 실무회담은 두 나라간 신뢰감 형성에 상당히 긍정적인 역할을 했다. 상대방이 무엇을 원하는지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하는지 좀더 분명하게 알게 된 계기였다.50년동안 적대 상태를 유지해 온 두나라가 관계 개선의 기초를 놓았다고 할 것이다. 그러나 기초가 아무리 좋더라도 당장 중요하고, 실질적인 진전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많은 전망과 추측이 나오고 있지만 적어도 공개된 것들을 보면 이번 실무회담이 실질적인 성과를 거뒀다고 하긴 어렵다.‘2·13합의’는 ‘행동 대 행동 원칙’을 전제로 하고 있어 기본적으로 긴 시간을 필요로 한다. 예컨대 미국은 테러지원국 명단에서 북한을 지우기에 앞서 북한의 구체적인 조치를 반드시 기다릴 것이다. 원칙적인 문제에서 아직 근본적인 성과와 변화를 기대하긴 이르다. 북한이 연락사무소 단계를 건너뛰고 바로 대사관 설치를 요구한 것으로 알려진다. 현재는 단계별로 가는 게 더 좋을 수도 있는 상황이다. 관계 진전의 걸림돌이 됐던 금융 제재는 앞서 북·미간 베를린 회의에서 어느 정도 정리가 됐다고 봐도 좋을 것이다. 진전 속도와는 별도로 북·미간의 관계 개선모색 움직임은 한반도 남북관계를 더 빠르게 진전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 주고 있다. 한편 현재 빼놓을 수 없는 주요한 변수중 하나는 북·일 관계정상화 문제다. 일본이 납치 문제를 집중 거론해 북한이 먼저 회의를 결렬시켰다. 북·일 관계는 북·미 회담과도 맞물려 돌아가고 있다. 일본의 태도는 앞으로 상당히 부정적인 요소로 작용할 것이다. 이같은 상황에선 북·일 회담이 속도를 내지 못할 것임은 분명해 보인다. 나아가 6자 회담 전체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칠 것이다. 주의깊게 봐야 할 것은 6자 회담의 각 주체들이 서로 각각 상호 작용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관련 국가들이 국익의 최대 확보를 위해 움직이고 있고 ‘글로벌 차원´의 틀속에서 북한 핵 문제의 해결 및 한반도문제의 해결을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 앞으로 진행될 중국과 일본간 관계 개선 모색도 어떤 식으로든 이 문제에 작용하게 될 것이다. 중국과 미국과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그럼에도 북한과 미국이 오랜 대치 속에서 해빙(解)을 시도한 일 자체의 의미는 퇴색될 수 없을 것이다. 한국과 중국 등 주변국뿐 아니라 전체적인 국제 정세가 북·미, 북·일 수교와 6자 회담 전체의 향방과 속도를 결정할 것이다. 정리 베이징 이지운특파원 jj@seoul.co.kr ■ “북핵 완전히 포기 않는 한 美·中 모델 따르기 어려워” 미국과 북한의 관계정상화에는 어느 정도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부시 대통령의 임기 내에 이뤄지지 않을 수도 있다. 물론 북한이 경제적 이익을 얻기 위해 미국과의 관계정상화를 서두르려 할 가능성은 높다. 그러나 북·미 관계의 개선이 미·중이나 미·베트남 관계 복원의 모델을 그대로 따르기는 어려울 것이다. 북·미 관계 정상화에는 반드시 해결돼야 할 몇가지 어려운 문제들이 놓여 있기 때문이다. 크리스토퍼 힐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차관보는 뉴욕에서 북·미 관계정상화 실무그룹 회의를 마친 뒤 가진 브리핑에서 “핵을 가진 북한과의 관계정상화는 상상하기 힘들다.”고 강조했다. 북·미 관계 정상화를 위해 북한은 핵무기를 완전히 제거해야 하며, 그 과정은 몇년이 걸릴 것이다. 또 북한은 테러지원국 명단에서도 빠져야 하며, 일본인 납치 문제도 해결해야 한다. 이와 함께 북한은 위조 지폐 제작과 유통, 돈세탁, 마약 밀수 등의 불법행위도 완전히 중단해야 하며, 인권에 대한 우려도 해소해야 한다. 북한은 모든 핵 프로그램을 완전히 포기할 수 있을까?핵 무기 보유가 북한의 중심적인 안보 목표였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평양 당국이 이를 포기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또 북한은 과거에도 국제적인 약속을 위반해온 전례가 있다. 만약 북한측이 이런 의혹들을 해소하려면 북 영토를 샅샅이 뒤져볼 수 있는 사찰단의 방문을 허용해야 한다. 예를 들어, 북한이 신고하지 않은 시설을 사찰단이 통보 즉시 방문해 조사할 수 있어야 한다. 부시 대통령의 대북 정책에 변화가 온 것은 이라크 전에 대한 지지가 떨어지고, 지난해 중간선거에서 공화당이 민주당에 패배했기 때문이다. 부시 행정부는 외교 분야에서의 성공을 얻기 위해서 협상에 커다란 유연성을 발휘해야만 했다. 또 미 정부는 이란의 핵 개발에 좀더 강력하게 대응하기 위해 북한 핵 문제를 안보 어젠다에서 털어내고 싶었던 측면도 있다. 한국은 6자회담의 재개와 북·미간의 양자협상 착수를 대북 포용정책 재가동의 신호탄으로 삼으려 할 것이다. 한국 정부는 대북 인도적 지원을 재개하고, 남북 경제협력을 강화하고, 유엔의 대북 제재를 완화해 보려 할 것이다. 일본은 미국이 납치 문제를 해결하지 않은 채 북한과의 관계를 정상화한다면, 동맹국으로부터 배신을 당했다고 느낄 것이다. 또 중국은 북·미 양자협상이 시작됨에 따라 핵무기를 놓고 북한과 직접 충돌하지 않는다는 전략이 먹혀 들었다고 생각할 것이다. 정리 워싱턴 이도운특파원 dawn@seoul.co.kr
  • [씨줄날줄] 아베와 개헌/황성기 논설위원

    요즘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변신이 놀랍다. 일제의 군위안부 동원에 강제성은 없었다는 3·1망언으로 국제사회를 놀라게 하더니 개헌에도 부쩍 드라이브를 거는 모양새다. 개헌에 쏟는 집착은 한국이나 일본의 두 지도자가 쏙 빼닮았다. 이런 총리를 두고 일본 언론들은 ‘보수 색깔내기’라고 꼬집는다. 거기엔 이유가 있다. 지난해 9월 취임 이후 지지율이 한차례도 오른 적 없이 하강곡선을 그리고 있어서다. 떨어지는 지지율을 만회하기 위해 얼굴 뒤에 감추어둔 보수성을 유감없이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개헌은 보수층 결집에 유효한 각별한 카드다. 아베의 변신에 대해 일본 정가에서는 외할아버지 기시 노부스케 전 총리에 가까워지고 있다고 말한다. 조부가 못이룬 개헌을 제 손으로 이루겠다는 손자 아베의 결심을 두고 하는 말이다. 아베는 저서 ‘아름다운 나라로’에서 “나라의 골격은 일본 국민 손으로 백지에서 만들어내야 하며 그렇게 해야 진짜 독립을 회복할 수 있다.”고 했다. 미군정이 만든 헌법을 뜯어 고쳐야 한다는 뜻이다. 자민당의 개헌안 초안은 9조 개정이 핵심이다. 전력 보유와 교전권을 금지한 조항을 고쳐 자위군을 보유토록 했다.‘전수방위’원칙을 버리고 동맹국의 전쟁에도 가담하는 집단적 자위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게 개헌파들의 생각이다. 주변국들의 경계를 사는 대목이다. 어제 중의원에서는 정기국회 들어 처음으로 헌법조사특별위원회가 열렸다. 개헌을 논의하는 국회 내 기구다. 총리 재임 중 개헌을 하겠다는 아베는 일본의 헌법기념일인 5월3일까지는 국민투표법안을 통과시키겠다는 결의를 다지고 있다고 한다. 국민투표법안은 1947년 제정 이래 한차례도 해본 적이 없는 헌법 개정을 위한 국민투표의 절차를 담았다. 아베 총리는 올 여름 참의원 선거의 쟁점으로 개헌을 내걸고 국민 심판을 받겠다는 복안인 듯하다. 아사히 신문의 지난 1월 여론조사에서는 아베 총리의 개헌 제기에 대해 타당하지 않다(48%)가 타당하다(32%)를 크게 웃돌았다. 정치생명을 건 개헌 어젠다를 일본인들이 어떻게 받아들일지 열도의 7월 선거가 주목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황성기 논설위원 marry04@seoul.co.kr
  • [사설] 北·日, 2·13합의 걸림돌 안돼야

    북·일 국교정상화 실무회의가 북한측의 결렬 선언으로 성과없이 끝났다.6자회담 ‘2·13합의’ 이후 북·미 관계와 남북관계는 급진전하고 있다. 그런데 북·일 관계가 이렇듯 경색되는 것은 양측의 유연성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동북아 평화와 안정은 연관 국가들의 관계가 톱니바퀴처럼 순조롭게 맞물려 돌아갈 때 이룩된다. 북·일 관계가 ‘2·13합의’의 걸림돌이 되지 않도록 양측의 각성이 필요하다. 일본은 이번 실무회의에서 일본인 납북자 문제에 지나치게 집착했다. 일본인 납북자 전원 석방, 납북의심자에 대한 정밀 재조사, 납북 책임자 처벌과 인도를 북한측에 요구했다. 기존 주장보다 강경한 내용이었다. 일본인 납북자 문제가 끝났다고 강조하는 북한의 태도를 바꾸려면 달래는 정책이 필요했다. 당근은 없이 채찍만 휘두르려다가 북한의 반발을 불렀다. 납북자 문제 해결이 중요하긴 하지만 일의 선후가 있다. 북핵 해결이라는 절체절명의 과제를 우선 풀겠다는 지혜가 있어야 한다. 북한은 미국과 협의가 잘 되면 일본은 따라올 수밖에 없다고 생각할 것이다. 아베 행정부가 소모적인 대북 강경책으로 국제고립을 자초하고 있다고 일본 야당이 비판하고 나선 이유를 제대로 깨달아야 한다. 회담을 파행시킨 북한의 태도 또한 옳지 못했다. 양측의 입장차가 크더라도 인내심을 갖고 대화를 계속하는 모습을 보여야 했다. 송일호 북한측 대표는 납북자 재조사를 과거청산 문제와 연관해 고려해 보겠다는 뜻을 밝혔다. 북·일간에 접점을 찾을 방안이 전혀 없는 것도 아닌데 성의있는 대화를 갖지 못한 상황이 아쉽다. 북·일 수교협상이 진척되면 일본의 경협자금이 북한으로 들어가게 되며, 대북 에너지 지원에 일본의 동참이 필수적이다. 북한은 일본을 곁가지로 치부해선 안될 것이다.
  • 북·일 실무회의 성과없이 끝나

    |도쿄 이춘규특파원|북핵 2·13합의 이행조치의 일환으로 7일부터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 북·일 국교정상화에 관한 6자회담 실무회의가 8일 하노이에서 재개됐으나 양측의 근본적인 입장 차이만 다시 확인하고 성과없이 종료됐다. 이날 북한대사관으로 장소를 옮겨 열린 마지막날 회의에서는 일본측이 요구하는 일본인 납치문제와 북한측 요구사항인 식민지배 청산 등을 포함한 국교정상화 문제를 의제로 협의에 들어갔으나 45분만에 끝났다. 차기 회의 개최시기도 결정되지 않았다. 다만 양국 실무회의는 계속해 대화통로는 유지하기로 했다.북한측 수석대표인 송일호 북·일국교정상화 교섭담당 대사는 회의 종료후 기자들에게 “일본은 해결이 끝난 납치문제를 들고나오지 말고 6자회담 공동성명을 착실히 이행할 것을 강력히 요구한다.”고 강조했다. 고하리 스스무 시즈오카현립대 교수는 “이번 실무회담과 관련, 다른 6자 회담 참가국들이 일본에 냉담한 시선을 가지게 될 수 있다.”며 “특히 한국과 중국이 위안부 문제에 대한 아베 총리의 발언 등으로 일본 입장을 응원하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taein@seoul.co.kr
  • “日 납치문제 해결만 고집” 北, 정상화회의 한때 거부

    |도쿄 이춘규특파원|7일 결렬 위기를 맞았던 베트남 하노이의 북·일 국교정상화 실무회의가 8일 오전 10시 하노이 북한대사관에서 속개된다고 하라구치 고이치 일본측 수석대표가 밝혔다. 하라구치 대표는 “일본대표단 관계자들이 7일 밤 북한대사관을 방문, 설득작업을 벌인 끝에 북한측으로부터 회담을 재개하겠다는 합의를 얻어냈다.”고 발표했다. 심야까지 계속된 양측의 접촉에다 한국, 미국, 중국 등 관계국들의 중재, 회의 결렬에 대한 양측의 책임 부담 문제도 작용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북·일 양측은 이날 오후 북한대사관에서 회의를 속개해 일본인 납북자 문제를 논의할 계획이었으나 북한측의 일방적 통보로 회의가 열리지 못했다. 일본측은 납치문제 해결을 고집하고, 북한측은 “납치문제는 이미 끝난 일”이라고 맞서 한 때 결렬위기를 맞았었다.taein@seoul.co.kr
  • [사설] 북·미 급속 해빙 대비할 때다

    북·미 관계정상화 1차 실무협상이 모양 좋게 끝났다. 하노이 북·일 실무협상은 일본인 납치 문제로 난항을 겪고 있지만 북·미 관계의 급속한 해빙 조짐은 변함없을 전망이다. 특히 김계관 북측 대표는 연락사무소를 뛰어넘어 수교단계로 나아가길 희망한다는 뜻을 밝혔다. 북·미 외교관계가 정상화되고, 한반도 평화체제가 구축되는 시기는 빠를수록 좋다. 다만 그 과정에서 우리의 국익이 훼손되는 일이 없도록 정부는 면밀한 대비를 해야 한다. 북·미는 영변원자로 폐쇄뿐 아니라 고농축우라늄(HEU) 프로그램을 포함한 북핵 폐기를 포괄적으로 논의했다. 북한을 테러지원국 명단에서 빼는 문제도 협의했다. 이어 한반도 정전체제를 대체할 평화 메커니즘에 대한 의견교환이 있었다고 크리스토퍼 힐 미측 대표가 전했다. 북핵 폐기, 북·미 수교,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등 새 동북아 질서를 짜는 로드맵이 공식 협상테이블에 오른 셈이다. 이제 첫 단추를 끼웠다는 평가가 있지만 북·미 양측 정상들의 결단이 있으면 우리가 상상하는 이상으로 해빙의 속도가 빨라질 수 있다.1994년 북·미 제네바 합의가 이뤄질 당시 한국은 협상에서 소외되어 있었다. 사후에 대북 경수로 비용 대부분을 떠안음으로써 국민부담을 가중시켰다. 최근 부시 행정부나 김정일 정권의 움직임을 보면 제네바 합의 이상의 결과가 나올 여지가 있다. 북·미 양자협상이 6자회담이라는 큰 틀안에서 움직이도록 이끌어야 한국의 입지가 흔들리지 않을 것이다. 한·미 양국간 정보교류, 사전협의 및 보조일치가 어느 때보다 요구된다. 북·미 관계와 남북관계가 상호보완 속에 균형을 이루며 전진해야 한다. 한반도 평화체제의 궁극적 당사자는 남북한이란 점을 미국을 비롯한 주변국에 분명히 인식시킬 필요가 있다. 정부 유관기관 조율체제를 강화하고, 북·미 관계정상화 평가모임을 정례적으로 갖기 바란다.
  • [이종현의 나이스샷] 절약정신이 아쉬운 한국 골퍼들

    얼마 전 국내 골프장 대표이사와 라운드를 가질 기회가 있었다.E골프장의 J대표이사는 아주 재미난 통계를 이야기했다. 영남에 있는 골프장에 내려갔을 때 골프장 목욕탕을 관리하는 직원으로부터 한국 골퍼와 일본 골퍼의 타월 소모량에 대한 내용을 들었다는 것이다. 일본 골퍼들은 목욕탕을 이용할 때 평균 1.5장을 사용했고 한국 골퍼들은 2.5장의 타월을 썼다는 것이다. 이같은 통계는 골프장 직원이 몇 달에 걸쳐 샤워 후에 사용한 타월수를 한국, 일본인을 대상으로 체크해서 낸 수치라서 눈길을 끈다. 사실 우리나라 골퍼들은 국내 골프장을 이용할 때 풍부한 시설과 일회용품 등을 아낄 줄 모르는 편이다. 내 것이 아니라서 그런 것인지 아니면 습관적인 행동인지 모르지만 절약정신이 다소 부족하다. 화장실을 이용하고 손 닦는 화장지도 한 장이면 충분한데 서너 장씩 꺼내 쓰고 수도꼭지를 열어놓고 면도를 하거나 샤워기를 틀어놓고 다른 볼 일을 보는 것을 종종 본다. 그뿐만이 아니다. 샤워 후 머리를 말리고 나서도 드라이기를 계속 켜놓거나 보디로션과 선블록 크림을 필요 이상으로 많이 짜내 남으면 화장지로 씻어내는 것을 볼 때면 아깝다는 생각에 앞서 문화인으로서의 자세가 아니라는 생각부터 든다. “독일 사람들은 3명이 모여야 성냥불을 켠다.”고 교육받은게 불과 20∼30년 전 일이다. 우리 골퍼들은 지나치게 풍족함을 즐기고 있는지도 모른다. 골프장 역시 내용물이 떨어지기 무섭게 새것으로 바꿔 놓는다. 이것이 명문골프장을 가늠하는 잣대라면 골퍼들의 의식수준부터 바꿔야 한다. 골프장에서 사용하는 수건 하나면 머리부터 발끝까지 사용함에 모자람이 없다. 그러나 우리나라 골퍼들은 물기를 닦기도 전에 또 다른 수건을 들고 물기를 닦는다. 그리고 마지막 발을 닦기 위해 새 수건을 집어드는 것을 볼 때면 괜히 얼굴이 화끈거려 온다. 아무리 풍족한 시설과 용품들이 널려 있다 해도 필요 이상의 소비는 지양해야 한다. 룰과 에티켓을 지키는 것 이상으로 중요한 부분이다. 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고 했다. 골프장 시설이 곧 내 집의 시설이란 생각으로 아끼고 소중하게 여기는 골퍼정신을 가다듬어야 할 때다.레저신문 편집국장 huskylee1226@yahoo.co.kr
  • 예수님은 일본여자와 살았다고

    예수님은 일본여자와 살았다고

    한 여름밤의 꿈 같은 이야기가 있다. 인류 구원의 은인으로 널리 숭앙받고 있는「예수·그리스도」가 일본을 두번이나 방문, 일본에서 살았으며, 십자가상에서 죽은「예수」는「예수」가 아니라 그와 쌍둥이 처럼 닮은 동생이다. 예수는 106세를 살고 일본에서 죽었으며, 일본과「유대아」사이를 오가는 동안에 인도에서 석가의 불교 정신도 닦았다는 등의 이야기가 아주 그럴 싸하게 그리고 신학자들의 증명까지 곁들여가면서 일본에 번지고 있다. 십자가(十字架) 부정설 나오자 이야기가 새삼스럽게 관심을 모으게 된 것은 5년전 미국의 신학자「스코필드」박사가「나자렛·예수」는 십자가상에서 죽지 않았다는 저서를 발표,「베스트·셀러」가 된 뒤 그 내용과 일본고대의 전설이 일치되는 점이 많다는데서 비롯된 것. 그는 책 속에서 어리석은「로마」인들이 십자가상의 처형과 부활을 꾸민 한「현인」의 꾀에 넘어가 속은 것이라고 주장했었다. 이 자체만으로도 큰 물의를 일으켰던 것인데, 이 저서를 모르는 일본 북부 주민들은 이와 유사한 전설을 알고 있으며 믿고 있다는 것이다. 일본에서의「예수」에 관한 전설은「예수」의 소년시절과 성년시절 사이의 시간적인「갭」에서 시작된다. 이야기의 진원지는 일본 본토 북부지방「아오모리」현「미사와」남쪽 10「마일」지점에 있는「하지오네」마을이다. 예부터 성지(聖地)로 알려져 이 지방은 예로부터 성지로 알려진 곳이다. 언제부터 이 곳이 성지가 되었는지는 알려져 있지 않지만, 일본에「예수」가 왔다는 전설은 2천년 전 이곳에서 시작되었다. 이에 의하면 예수는 해뜨는 나라 일본을 두번이나 방문한 것으로 되어있다. 이야기는「예수」가 21세때 일본에 왔으며 그의 목적은 물론 종교를 연구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런데 왜「예수」가 꼭 일본을 방문해야만했던가? 그것은 일본의「신도이즘」을 알기 위해서였다고 설명한다. 그리고「예수」는 일본에서 10년이상 머물렀으며 34세에「유대아」로 돌아갔지만「유대아」에서는 별로 좋은 대접을 받지 못했다는 것이다.「로마」사람들은 그를 십자가에 못박아 죽이려고 했다. 그러나 그들은「예수」와 아주 쌍동이처럼 닮은 동생「이시키리사」를 잡아갔으며「예수」는 피신, 다시 일본으로 왔다는 것. 계속해서 이 전설은「예수」가 「하지오네」지방의「하다로」「하바기리」등 촌락을 다니며 설교를 했으며,「예수」의 유적으로 주장된 흔적이 이 지방 곳곳에 남아있다. 이 지방 동부에는「오니가추」라 불리는 성지가 있는데, 이는 거대한 이방인이 상륙한 곳이란 일본말이다. 그리고 이 전설은 또 「예수」가「미요꼬」라는 이름의 아름다운 일본 처녀와 결혼했다고 되어 있는데 여기서 난 세 아이의 첫 딸의 후예라고 주장하는「사와구찌」씨가 지금도 이 지방에 살고 있다. 중동의 풍습과 닮아 그는 일본인보다는「유대」인을 더 닮았다는 것이 보는 이의 인상이며, 가내 보물로 전해 내려오는「유대」의 휘장까지 갖고있다는 것. 아뭏든 전설은「예수」가 1백6세에 조용하고 평화스러운 죽음을 했다는 것으로 끝나고 있다. 이 전설을 한층 신비스럽게 해주는 것은 이 지방 풍속이다. 이 지방 여인들은 중동에서의 습관처럼 얼굴에「베일」은 가리고 다니며 어린 아이의 머리에 재를 뿌리는 습관이 있다. 정확한 근거 없으나 이같은 전설은 많은 물의를 일으키고 또 침소봉대되어 전해지고 있는데「요꼬하마」신학교를 졸업한「기꾸·야마네」여사는 이 문제를 연구, 동방에서의 빛이란 책자를 내기까지 했다. 그런데 그녀가 내린 결론도「예수」가 일본에 왔다는 것. 그녀는 학문적으로 이를 연구, 이상의 사실을 구체적으로 정립시키고 있다. 물론 정확한 논거를 제시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녀의 이야기는 12세때「예수」가 진리를 찾아 부모를 떠나서부터 다시「유대아」로 돌아올 때까지를 내용으로 하고 있는데「예수」가 집을 나온 것은 동방의「인도」에서 수도하기 위한 것이었다는 것. 인도에서 그는 불교의 원조 석가의 수도방법을 배웠을는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전설아닌 전설로서 이렇게해서「예수」의 일본방문 전설은 전설 아닌 전설처럼 그럴듯하게 새끼를 치며 번져가고 있는데, 그러면「예수」가 일본에서 죽었다면 그 무덤이 있을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을 남긴다. 그런데 이 전설은 거의 완전무결하게 의문을 하나도 남기지 않는 것이 오히려 더 수상스러울 지경. 실제로 일본에는「예수」의 무덤으로 주장되는 무덤이 있으니 말이다. 이 지방의「신고」마을엔 불교사원이 있고 여기에「예수」의 무덤이란 무덤이 지금도 있다. 그러나 이 사실의 진위를 밝히는 것은 영원한 숙제라는 것. [선데이서울 70년 7월 12일호 제3권 28호 통권 제 93호]
  • 北, 연락사무소 조기개설 제안

    北, 연락사무소 조기개설 제안

    |뉴욕 이도운특파원|5일 뉴욕에서 시작된 미국과 북한의 관계정상화 실무그룹 회의에서는 두 나라의 적대적 관계를 해소하고 궁극적으로 수교를 목표로 한 관계 복원의 구체적 단계들이 논의됐다. 다음은 주요 쟁점 및 양측 입장. ●테러지원국 명단 삭제·제재 해제 이 문제에 대해 미국은 시간이 걸린다고 설명했다. 국내법에 따라 의회·정부가 이행해야 할 필요한 절차를 거쳐야 하기 때문이란 것이다. 그동안 미국은 일본인 납치 문제 때문에 북한을 테러국으로 계속 지정한다는 입장이었다. 북한은 적성국교역법에 따라 동결된 미국 내 북한 자산 해제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대북 제재 결의 해제도 함께 요구했다. ●연락사무소 설치 북한은 미국측에 관계 정상화의 상징적 조치로 조기에 워싱턴과 평양에 연락사무소를 개설하자고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은 연락사무소 설치의 전 단계로 평양의 외국 공관 가운데 한 곳을 이익대표부로 지정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이익대표부는 직접 사무소를 개설하는 대신 현재 평양에 있는 스웨덴 등 외국 공관에 미국의 입장을 대변하는 역할을 맡기는 것이다. ●미 고위 인사의 북한 방문 크리스토퍼 힐 차관보의 방미가 확실시되고 있는 가운데 북한은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과 존 네그로폰테 국무부 부장관 등 미국의 고위급 인사들의 북한 방문을 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미국은 신중한 입장이다. 북한은 부시 행정부에서도 지난 2000년 매들린 올브라이트 당시 국무장관의 북한 방문과 같은 방문이 이뤄져야 한다는 입장을 전달했다고 소식통들이 전했다. ●BDA 동결 북한 자금 해제 북한은 마카오 방코델타아시아(BDA)에 동결된 자금 2400만달러 모두 해제해달라고 요청했다. 미측은 BDA의 북한 자금 가운데 실제로 돈 세탁과 관련된 자금과 위조 지폐가 섞여 있기 때문에 불법이 아닌 것으로 밝혀진 800만∼1200만달러 정도를 해제하겠다는 입장이다. ●미사일·마약·인권 미국측은 북한과의 외교 관계가 완전히 정상화되기 위해선 북한 주민의 인권 문제가 개선되고 북한 당국이 미사일과 마약, 가짜담배 등의 판매를 중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미측은 그같은 행위가 중단되지 않으면 행정부도 북한과의 관계 개선을 계속하기 어려우며 미 의회에서도 이를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dawn@seoul.co.kr
  • 일제 침략·위안부 동원 상세 기술

    일제 침략·위안부 동원 상세 기술

    ‘미래를 여는 역사’(2005년)→‘마주 보는 한일사’(2006년)→‘한일 교류의 역사’(2007년). 한·중·일과 한·일간 역사인식의 심각한 차이는 상대국 역사교과서에 대해 ‘왜곡’이라는 비판을 쏟아내게 만든다. 이런 현실은 또 정치적으로도 동아시아의 긴장 심화라는 형태로 확대 재생산되기 마련이다. 이를 극복하기 위한 한·중·일과 한·일 역사학자나 역사교사들의 ‘역사공감’ 노력은 10여년전부터 본격화됐다. 화해와 공존을 명분으로 내건 그 결과물들이 잇따라 나오고 있다.‘한일공통 역사교재’를 표방하면서 지난 1일 한국과 일본에서 동시에 출간된 ‘한일 교류의 역사’도 이같은 종류의 책이다. ‘미래를 여는 역사’(2005년)→‘마주 보는 한일사’(2006년)→‘한일 교류의 역사’(2007년). 한·중·일과 한·일간 역사인식의 심각한 차이는 상대국 역사교과서에 대해 ‘왜곡’이라는 비판을 쏟아내게 만든다. 이런 현실은 또 정치적으로도 동아시아의 긴장 심화라는 형태로 확대 재생산되기 마련이다. 이를 극복하기 위한 한·중·일과 한·일 역사학자나 역사교사들의 ‘역사공감’ 노력은 10여년전부터 본격화됐다. 화해와 공존을 명분으로 내건 그 결과물들이 잇따라 나오고 있다.‘한일공통 역사교재’를 표방하면서 지난 1일 한국과 일본에서 동시에 출간된 ‘한일 교류의 역사’도 이같은 종류의 책이다. ●공동교재 최초의 통사 ‘한일 교류의 역사’(혜안 펴냄)는 선사시대부터 현대까지 모든 시대를 다루고 있다. 공통교재 최초의 통사(通史)라고 한다. 한국에서는 서울시립대 교수들이 중심이 된 역사교과서연구회, 일본은 도쿄 가쿠게이(學藝)대학 연구진 중심의 역사교육연구회가 10년에 걸친 토론과 합의를 통해 공동으로 집필했다. 이 책의 통사적 의미는 남다르다. 실제 2006년 출간된 ‘마주 보는 한일사’(사계절 펴냄)는 선사시대부터 개항기까지를 다뤘고,2005년 한·중·일 3국 연구자들이 집필한 최초의 한·중·일 공동역사교재 ‘미래를 여는 역사’(한겨레출판 펴냄)는 근현대사만을 대상으로 했다. ‘한일 교류의 역사’는 전 시대에 걸쳐 문화의 일방적 전파가 아닌 상호교류를 강조하고 있다. 신석기시대 한국의 대표적인 토기인 빗살무늬토기가 일본에서도 발견되고, 일본의 소바타식 토기가 한반도 남부에서 출토된다는 점 등을 자세히 밝혔다. 또 일본 특유의 묘제인 전방후원분(앞쪽은 사각형, 뒷부분은 둥근 무덤형태)이 한반도 남쪽에서 발견되는 등 한반도와 일본 사이에 활발한 주민교류가 있었다는 점도 비중있게 서술했다. 근현대사에서 재일한국인과 재조선일본인의 역사도 크게 다루고 있다. 임진왜란은 일본의 조선침략이라는 성격을 명확히 했다. 일본내 ‘정한론’의 등장과정 등도 비교적 자세하게 다뤘지만, 일본이 한국을 식민지배한 대목은 ‘한국병합’으로 다소 애매하게 처리했다.‘위안부 강제동원’ ‘패전직후 재조선 일본인의 참상’ 등도 상세한 설명을 덧붙여 기술했다. ●한·중역사서는 일본 비판 그렇다면 이전의 공동연구 결과물은 비슷한 내용을 어떻게 서술했을까. 선사시대부터 개항기까지 다룬 ‘마주 보는 한일사’는 ‘한일 교류의 역사’와 마찬가지로 문화교류를 강조하면서도 각각의 역사를 모두 기술하고 있다. 특히 ‘일본서기’와 ‘삼국사기’ 부분은 관련내용을 해석의 문제점과 함께 소개하고 있다.‘마주 보는 한일사’는 시대순으로 정리하면서도 불교 등 주제별로 양국의 문화를 설명하는 데 많은 주안점을 뒀다. 한·중·일 공통교재를 표방한 ‘미래를 여는 역사’는 민감한 근현대사를 다루고 있지만 상당부분 한국과 중국쪽 입장에서 쓰여졌다는 평을 듣고 있다. 일본의 동양침략을 합리화한 후쿠자와 유키치의 ‘문명론’, 일본의 한국 ‘강점’,‘문화정치’의 실상, 일본의 침략전쟁 등을 상세하게 설명했다. ‘위안부’ 문제와 야스쿠니 신사문제 등 현재 한·일간 민감한 문제도 가감없이 거론하고 있다. ●주류 학계 “객관성·실증성 미흡” 그럼에도 공동의 역사연구 및 교재출간은 많은 한계를 갖고 있다는 게 중론이다. 이번 ‘한일 교류의 역사’에서도 한·일학계에 민감한 ‘임나일본부설’ 등은 아예 기술대상에서 제외했다. ‘한국병합’은 따옴표로 처리하고, 별도로 ‘불법적인 강제점령이라는 것이 한국의 견해’라고 지적했다. ‘마주 보는 한일사’는 아예 논란이 큰 근현대사는 논의에서 제외했다. 주류 학계에서는 이런 종류의 공동연구 결과물들에 대해 “객관적이며 실증적이어야 할 역사를 외교협상 하듯이 양보하고, 타협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극단적인 반응까지 나오고 있다. 이런 비판에 대해 ‘한일 교류의 역사’ 저자들은 “아직 완성된 공통의 역사인식을 보여주는 것은 아니다.”라면서 “충분히 만족할 만한 역사의 공통인식을 추구하는 것이 얼마나 곤란한 일인지 강하게 인식하고 있다.”고 일정부분 수용하고 있다. 박홍환기자 stinger@seoul.co.kr
  • [종교건축 이야기] (23) ‘유일한 일본식 사찰’ 군산 동국사(東國寺)

    [종교건축 이야기] (23) ‘유일한 일본식 사찰’ 군산 동국사(東國寺)

    서해안 대표 항도(港都) 군산의 동국사(전북 군산시 금광동 135의1, 등록문화재 제64호)는 일제강점기 이 땅에 있던 500여개의 일본 사찰 가운데 유일하게 남은 것이다. 경술국치(한일합방)가 있던 바로 전해인 1909년 일본인 승려에 의해 개창된 뒤 1913년 철저하게 일본불교 전통의 건축양식으로 지어져 지금도 초창기 모습을 그대로 갖추고 있다. 해방후 대한민국 정부에 이관됐다가 조계종 제24교구 선운사 말사로 등록됐지만 군산 시민을 포함한 일반인은 물론 신도들에게조차 생경할 정도로 ‘소외된 사찰’. 하지만 한국을 찾는 일본인 관광객들을 위한 안내책자에 꼭 소개될 만큼 일본엔 각별한 의미를 갖는 문화재로 우리에겐 일제 식민지시대의 아픔을 담고 있는 역사의 큰 흔적이다. 북·남부로 금강과 만경강이 흐르며 넓은 평야를 형성하는 군산은 예로부터 빼놓을 수 없는 호남의 주요 곡창.1899년 개항과 함께 개항장의 외국인 전용주거지역인 조계지가 설정되면서 일본화되었던 도시다. 군산시지에 따르면 동국사가 창건될 당시 전체 인구 4900명 가운데 일본인이 절반에 가까운 2000여명이었으니 일제가 얼마만큼 군산에 눈독을 들였는지를 알 수 있다. 대부분의 열강들이 조선 개항에 종교를 앞세웠던 것처럼 일본도 똑같은 수순을 밟았다.1877년 부산 개항과 동시에 일본정부의 강요에 따라 정토진종과 일연종 등 각종 불교 종파가 물밀듯이 들어왔다. 이 불교세력들이 각 지역에 자리잡는 데는 물론 넓은 토지를 확보한 일본인 유지들이 앞장섰다. 군산에도 여러 종파가 들어왔으며 동국사가 창건되기 전 이미 6개의 일본 사찰이 운영되고 있었다고 한다. 동국사는 한일합방 전해인 1909년 일본 조동종(曹洞宗) 승려 우치다 붓관(內田佛觀)이 금강선사(錦江禪寺)란 이름으로 개창했지만 사찰 자체는 4년 뒤인 1913년 세워졌다. 사찰 관련 기록이 남아 있지 않아 여러 이야기들이 떠돌았으나 동국사 스님들이 지난 2005년 대웅전 남쪽의 범종 명문을 탁본해 밝혀낸 것이다.1919년 일본인 주지 현정이 쓴 명문에는 “천황의 은덕이 영원히 미치게 하니, 국가의 이익과 백성의 복락이 일본이나 한국이나 같이 굳세게 될 것이다.”라고 적혀 있어 당시 이 사찰의 사격이 어땠는지를 짐작케 한다. 명문에 붙인 발기인들은 김제 등 호남평야의 대부분을 차지해 지금도 군산시 지적부에 이름이 남아 있는 일본인 유지들. 일본 게이오대를 졸업한 뒤 군산에 자리잡고 900만평을 경작했다는 구마모토 리헤이(熊本利平)며 도요사키 게타로(富岐佳太郞), 오사와 도주로(大澤藤十郞) 등 대지주 6명이 들어 있다. 사찰의 설계자와 건축자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일본 에도(江戶) 건축양식을 그대로 따랐다.”는 문화재청의 기록화 조사보고서대로 사찰 안에 들어서면 자연스레 일본 분위기에 휩싸인다. 우선 정면 5칸, 측면 5칸에 팔작지붕을 인 정방형의 대웅전과 전형적인 일식 건축인 요사채가 한 건물로 이어져 있다. 법당과 요사채가 떨어져 있는 한국의 사찰들과는 영 딴판이다. 대웅전을 들어가려면 요사채와 연결된 복도를 통해야 하며 요사채의 각 방에는 일본 가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수납장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다. 한국의 사찰과는 달리 장식이나 벽화를 일절 쓰지 않은 맨 벽의 대웅전 뒤편에는 원래 납골당이 붙어 있었지만 1960년대에 헐렸다. 납골당의 유골들을 모두 수습해 금강에 뿌렸는데 이 소식을 들은 후손들이 찾아와 대성통곡하며 절 마당의 흙을 담아갔다고 한다. 대웅전의 앞쪽과 양측면엔 모두 창호를 설치해 습기가 많은 섬나라의 건축 양식을 그대로 보여준다. 대웅전 기둥이며 이 기둥들을 잇는 인방과 불단, 공포의 목재는 모두 직접 일본에서 날라온 쓰기목(일본 향나무종)을 썼다. 대웅전 출입 공간인 정면 앞 칸의 바닥이 시멘트로 마감된 것도 독특하다. 법당에서 신발을 벗지 않고 선 채로 예배를 드리는 일본 불교 전통에 맞춘 것이다. 대웅전 바닥엔 원래 다다미가 깔렸으나 한국전쟁 중 인민군이 철거했고 대신 장마루가 깔려 있다. 건물 뒷벽에 조성된 불단에는 소조 석가모니불좌상을 중심으로 양 옆에 가섭·아난 존자 등 삼존불을 모셨다. 주불인 석가모니불은 해방 이후 이 사찰을 인수해 ‘동국사’란 이름으로 개명한 남곡(1983년 입적) 스님이 김제 금산사에서 이운해왔다. 남곡 스님은 조계종 총무원 재무·교무부장과 조계사·선운사 주지를 지낸 조계종의 이름난 스님. 절의 이름을 ‘해동대한민국’을 줄인 동국사로 바꾸고 불단의 석가모니불을 애써 금산사에서 옮겨온 것을 볼 때 일제의 흔적을 지우려 무던히 애를 썼던 것 같다. 그럼에도 대웅전의 석가모니불 머리 위 천장에서 내리건 보산개는 치우지 않았다. 한국 사찰 대웅전의 닫집 격인 보산개는 일본 사찰에서만 볼 수 있는 장엄물이지만 워낙 특이하기 때문에 그대로 둔 것이 아닐까. 범종각에 걸린 범종도 지면과 거의 맞닿아 있는 한국의 범종과는 달리 종각 지붕에 높다랗게 매달려 있어 특이하다. 범종각 앞에 늘어선 석불상에선 주술과 밀교성격이 강한 일본 불교가 그대로 읽혀진다. 우리 사찰에선 흔한 불탑 대신 관세음보살이 중생을 교화하기 위해 33가지의 모습으로 현현한다는 33신과 여래·보살상 7기를 세웠는데 지금은 2기가 없어진채 38기만 남아 있다. 절에 들어온 일본인 신도들은 맨 먼저 12개의 띠별로 조성된 이 석불상에서 소원을 빌고 석불상 앞에 일종의 세숫대야로 만들어놓은 황등(黃燈)에서 손을 씻은 뒤 법당에 들어갔다고 한다. 해방이 되면서 일본 사찰들은 다른 일본 건물들과 마찬가지로 대부분 훼손되거나 사라져갔다. 동국사도 석불상과 사찰 입구 기둥에 새겨진 일본 글씨들이 하나도 남김없이 망치로 뭉개졌고 조선총독부 건물로 쓰였던 옛 중앙청 건물이 헐린 1995년 무렵엔 군산시청이 철거를 시도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웅전이며 요사채, 범종이 온전하게 남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남곡 스님의 법맥을 이은 동국사 회주 재훈(71) 스님의 대답은 이렇다.“아픈 역사도 엄연한 역사인데 지우려고만 든다고 지워지나요. 반면교사로 삼아 후대에 교훈으로 남겨야지요.” 스님 말마따나 총무 종걸 스님은 지난해부터 일본 조동종 본부와 창건주의 후손들을 만나며 동국사지를 정리하고 있다.1주일 평균 50여명씩 찾아드는 일본인 관광객이며 건축학도들도 살갑게 맞이한다. kimus@seoul.co.kr 사진 군산 남상인기자 sanginn@seoul.co.kr ■ 고은시인이 한쪽청력 잃고 19세때 출가한 곳 동국사는 절 자체가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군산 출신인 고은(74) 시인이 출가한 절이란 사실을 아는 이는 더욱 드물다. 고은 시인의 출가후 환속까지에는 여러 이야기들이 전해지지만 동국사에 얽힌 이야기는 별로 없다. 다만 작품에 동국사의 만리향을 언급한 대목이 자주 등장한다. 이 만리향은 대웅전 앞의 것을 비롯해 5그루가 있었는데 지금은 4그루만 남아 있다. 동국사 스님들에 따르면 고은 시인은 어린 시절부터 동국사를 자주 찾곤 했다.6·25전쟁 직후 극약을 먹고 자살하려 했으나 후유증으로 한쪽 귀의 고막을 심하게 다친 뒤 방황하다가 이곳에 머물던 객승 혜초 스님을 만나 참선을 배우며 불교에 빠져들었다. 군산북중 미술교사로 있던 19세 때인 1952년 마침내 혜초 스님에게 중장이란 법명을 받아 출가했다고 한다. 동국사 회주 재훈 스님에 따르면 기승(奇僧)으로 알려진 혜초 스님은 고은 시인과 전국을 떠돌았는데 “너는 나의 제자이지만 스승”이라며 고은 시인과 절을 주고받았다고 한다. 하루는 고은 시인이 은사인 혜초 스님에게 절을 받고 다음날은 혜초 스님이 고 시인에게 절을 받곤 하였던 것이다. 결국 혜초 스님은 고은 시인의 그릇을 알아본 때문인지 당시 통영 미래사에 주석하던 효봉 스님을 은사로 추천했으며 고은 시인은 효봉 스님을 찾아가 일초라는 법명을 새로 받았다고 한다. 27세 때 2개월간 해인사 주지 서리 소임을 맡기도 했던 고은 시인은 이후 조계종 총무원 간부와 불교신문 주필, 전등사 주지를 지낸 뒤 만행을 계속하다가 1962년 환속했으며 틈날 때마다 출가사찰인 동국사를 찾곤 했다.
  • [토요영화]

    ●박치기(MBC 밤 12시40분) 재일교포는 두 분류다. 1965년 한·일 국교정상화가 이루어진 후 한국과 북한의 미묘한 신경전 속에 일본 땅에 살던 그들도 남북으로 나뉘게 됐다.1968년 일본 교토를 배경으로 한 영화 ‘박치기’는 힘들게 살아가는 재일 조선인들의 이야기다. 혹시 영화가 무거울지도 모른다는 예감은 영화가 시작되면서 박치기 한 방에 사라진다. 조선고 패거리는 매일같이 일본인 학생들과 싸움을 한다. 이념보다는 자신의 생존과 존재를 위한 싸움이다. 경자(사와지리 에리카)에게 한눈에 반한 고스케(시오야 슈운)에게 일본인과 조선인의 구분은 의미없는 일. 고스케의 사랑은 얼핏 순탄하게 이루어지는 듯 보인다. 강물은 남으로 흐르고 물새들도 남으로 가건만, 분단된 조국에서 남으로 가지 못하는 심정을 담은 노래 ‘임진강’을 부르는 경자와 고스케의 모습은 가슴 뭉클한 무엇인가를 전해준다. 연일 치고받는 싸움이 계속되는 가운데 고스케는 선생님의 명령으로 조선고에 친선 축구시합을 제안하러 가게 된다. 그곳에서 고스케는 플루트를 부는 청순한 경자를 만나 첫눈에 사랑에 빠진다. 경자에게 다가가기 위해 사카자키(오다기리 조)로부터 금지곡 ‘임진강’을 배우고 한국어를 공부하는 고스케. 고스케가 용기를 내어 경자에게 한 발씩 다가서는 동안, 두 학교 학생들 간의 싸움은 더욱 격렬해진다. 조선 학생들과 일본 학생들 사이에 평화가 찾아올 수 있을까? 고스케는 경자의 마음을 얻을 수 있을까? ●뻔뻔한 딕앤제인(캐치온 오후 10시) 잘 나가는 IT기업의 홍보담당자 딕(짐 캐리)은 부사장으로 승진해 행복에 들떠 있다. 그러나 꿈을 이룬 순간, 불행이 닥친다. 딕이 승진하고 첫 출근한 바로 그날 회사가 파산한 것. 하루아침에 천국에서 지옥으로 떨어진 딕과 제인은 빚더미에 오르고 재취업은 커녕 일용직도 하늘의 별따기다. 이제 뻔뻔해져야 한다고 다짐하는 딕과 제인. 처음엔 강도짓을 일삼던 두 사람은 차츰 대담해져 사상 최대의 뻔뻔한 복수극을 계획한다. 한준규기자 hihi@seoul.co.kr
  • 프로가 인정받는 사회

    도쿄특파원으로 부임한지 만 3년이 다 돼 귀국이 임박했다. 일본의 구석구석을 `탐욕스럽게´ 돌아다니고 사람을 만나며 ‘경제대국 일본의 원동력’이 무엇인지를 치열하게 탐구했다. 최근들어 거의 연일 지인들의 송별식을 받느라 분주한 가운데서도, 특히 일본인 지인들과의 송별회 때는 일본을 강하게 한 원동력 찾기에 열중이다. 그 결과 ‘어느 분야라도 프로가 인정받는 것이 세계 2위 경제대국인 일본의 큰 원천’이라는 1차 결론에 이르렀다. 학력이나 배경에 관계없이 각 분야의 최고가 적절히 인정받아, 세계 최고의 인재들이 길러졌다는 것이다. 1990년대 후반 종신고용이 무너지며 구조조정이 확산되고, 장기불황 후유증으로 수십·수백년 된 기업과 가게들이 시대에 적응하지 못해 무너지면서 적지않은 프로가 위기를 맞았지만, 대부분 일본의 프로들은 건재하다. 일본에서 프로가 중시되기 시작한 것은 멀리 400년 전 이상 거슬러 올라간다. 전국시대 일본 통일의 기반을 다졌던 오다 노부나가가 조총, 칼, 찻잔, 종 등 각 분야의 기술자들에게 “천하제일의 물건을 만들면 인정하겠다.”라는 천하제일주의를 내세우면서, 분야별 프로들이 대접받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후 프로들이 대접받는 기반이 된 ‘천하제일주의’는 천연자원이 부족한 일본 경제를 떠받치는 기둥이 됐다는 게 정설이다.‘온리 원(Only One·단 하나)’의 정신이 돼 세계 최고 수준의 일본 제조업을 유지시키는 힘이 됐다. 치열한 프로(장신)정신의 현장은 열도 여기저기에 산재해 있다. 세계 최고의 자동차업체인 도요타자동차의 아이치현 본사 공장에서는 세계 최고의 자동차를 만들어내는 수많은 프로들의 묵묵한 자기정진을 볼 수 있었다. 오사카 북구 산토리의 연구 현장에서도 불가능의 상징인 푸른장미를 만들어낸 프로연구원과 만날 수 있었다. 오사카부 사카이시에서는 400년 이상 전통을 이은 수많은 프로들이 일본 프로요리사 90% 정도가 사용하는 최고의 사시미(회) 칼을 만들어 냈다. 도쿄의 중소기업 밀집지역인 오타구의 한 중소기업은 세계 최고수준의 항공기 핵심 부품을 만들어내 놀라움을 주었다. 이밖에도 반도체, 기타, 로봇, 안경, 도자기, 전통종이 등 세계 최고의 제품을 만들어내는 중소기업의 프로들이 사회적인 인정을 받아, 생계 걱정을 하지 않으며 엄숙하고 치열하게 한 우물을 파는 모습은 경이로울 정도였다. 제조업 외에도 프로들은 즐비하다. 법조인 출신이 법복을 벗은 뒤 자신이 즐기는 횟집을 경영하며 행복해 한다. 프랑스에서 문학을 전공한 이가 운영하는 라면집에 가보는 건 유쾌하다. 부친이 숨지면 대학교수직을 버리고 가업인 승려가 되는 일도 예사롭지 않다. 이처럼 가업이나 전통을 소중히 여기는 프로들이 생존할 수 있는 풍토는 “프로를 프로로서 충분히 인정한다.”라는 사회적인 공감대가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 이틀 전 한 프로요리사가 운영하는 허름한 식당에서 식사를 함께 했던 와세대대학 한 교수의 설명이다. 그러나 그에 따르면 프로를 중시하는 일본사회도 최근 분위기가 변하고 있다. 서구식 합리주의, 신자유주의 등이 급속히 침투하면서다. 인터넷 보급률이 높아지면서 일본 사회의 변화 속도를 더욱 끌어올리는 것도 프로들의 존재공간을 위협하는 요인이다. 일본도 서구적 신자유주의 가치가 맹위를 떨치며 ‘한 우물을 파는’, 즉각적인 성과물을 내지 못하는 프로들이 설 공간이 좁아지고 있는 상황이 됐다. 그래도 아직까지 일본 사회는 프로들이 생존해가기에는 비교적 행복한 토양이라는 게 일반적인 시각이다. 이런 일본에 비해 한국은 조금씩 개선 중이긴 하지만 프로들이 아예 인정받지 못하는 풍조였다고 이 교수는 지적했다. 그렇다. 한국사회도 이제는 프로들의 가치를 인정해야 한다. 그것이 사회적 다양성을 풍부하게 해주는 길이다.taein@seoul.co.kr
  • “역사왜곡 日·바로잡기 소홀 韓 모두 반성을”

    “역사를 왜곡한 일본이나 바로잡기에 소극적인 한국 정부 모두 반성해야 합니다.” 일제의 반인륜적 범죄에 대한 한·일 정부의 대응에 대해 일본 시민단체인 ‘미쓰비시 조선여자근로정신대 소송을 지지하는 모임’의 다카하시 마코토(高橋信·65) 대표는 단호한 비판으로 말문을 열었다.3·1절을 즈음해 식민 지배와 관련된 사료(史料)들이 잇따라 공개되고 있지만 정작 선고를 앞둔 근로정신대 재판은 관심 밖인 현실을 답답해했다. 나고야 아쓰다 현립고 세계사 교사로 36년간 재직한 뒤 2003년 퇴직한 그는 지난 20년 동안 여자근로정신대 문제에 천착해 왔다. 오는 5월 ‘나고야 미쓰비시 조선여자근로정신대’ 항소심 판결을 앞두고 전화와 이메일로 인터뷰했다. 일본에서는 관례적으로 선고공판 두 달 전인 이달 말 재판부가 판결 내용을 최종 조율하기 때문에 이때까지 한·일 양국에서 벌인 서명운동 결과를 전달, 최대한 압박한다는 것이 그의 복안이다. 하지만 국내 서명인은 고작 300여명뿐이다.●“법정에서 오열하던 피해자 잊지 못해” 1943년부터 미쓰비시중공업 등 군수업체들이 노동력을 충원하기 위해 조선의 10대 소녀들을 꾀어 데려갔던 ‘여자근로정신대’의 진실을 접한 것은 지난 86년. 덧칠된 역사를 제대로 가르쳐야겠다고 마음먹은 그는 나고야가 전투기 생산의 중심이었다는 것을 알게 됐다. 또 ‘일본에서 일하면서 학교도 보내주고 급료도 받을 수 있다.’는 사탕발림과 협박에 끌려온 소녀들의 피눈물이 뿌려진 것도 밝혀냈다. 이 재판은 99년 3월1일, 생존피해자 5명이 미쓰비시를 상대로 민사소송을 제기하면서 불을 댕겼다.2005년 2월 나고야지방재판소는 “65년 한·일협정에 따라 개인의 손해배상 청구권은 소멸됐다.”며 청구를 기각했다. 하지만 원고단은 2005년 3월 나고야고등재판소에 항소했다. 힘겨웠던 1심에 이어 항소심까지 갈 수 있었던 것은 양심적인 일본인들의 도움 덕분이다. 지원모임은 시민 1000여명으로 구성돼 있다. 이들은 미쓰비시와 내각, 의원회관을 항의 방문해 재판부를 압박하고 사회적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원고들이 수십 차례 법정을 오갈 수 있었던 것도 지원모임에서 교통편과 숙박비를 마련해 줬기 때문에 가능했다.●“역사에서 배우지 못한 일본에 미래는 없다” “법정에서 오열하던 할머니들을 잊지 못한다.”는 다카하시 대표는 “항소심 재판도 어려울지 모르지만 원고들만 원한다면 끝까지 갈 생각”이라고 말했다. 그는 “그분들은 이제 여든 살에 가깝다. 살아서 한을 풀어야 하지 않겠냐.”며 굳은 의지를 드러냈다. 재판 과정에서 일본 정부와 사법부의 역사 의식 부재에 그는 분노했다.“일본의 역사 왜곡이나 우경화는 용서할 수 없다. 반성이 앞서야 하고 교과서에 기술해 재발하지 않도록 해야 하는데 거꾸로 가고 있다. 역사에서 배우지 못한 일본에 미래는 없다.” 한국 정부의 소극적인 태도에 대해서도 아쉬워했다.“근로정신대나 군 위안부, 히로시마 피폭자 문제 등에 한국 정부가 강력한 의지를 보였으면 한다. 피해자들이 살아 있을 때 일본 정부에 보상을 요구하고 받아내야 한다.”고 지적했다. 언론에도 관심을 호소했다.“서울신문을 시작으로 보도가 이어졌으면 좋겠다.2월20일부터 ‘일제강점하강제동원피해자유족회(www.truelaw.net)’에서 시작된 온라인 서명운동에 참여하면 힘이 될 것”이라고 당부했다.임일영 김동현기자 argus@seoul.co.kr
  • 한국의 일본인 처 질곡의 60년 말한다

    일제 식민지 시절 한국인과 결혼해 살다가 광복과 함께 한국에 남게 된 일본인 여자들이 있다. 광복 이후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단지 한국 남자를 사랑한 죄로 엄청난 고통과 수모를 겪으면서도 신음 소리 한번을 내지 못하고 살고 있는 것이 이들의 현실이다. 오는 3일 오후 11시5분에 방송되는 SBS TV ‘그것이 알고 싶다-아카타 할머니의 세 가지 소원’은 이들 ‘일본인 처’의 기구한 삶을 들여다본다. 한국에선 일본인이라는 이유로 주변 사람들에게 손가락질당해 결혼생활을 제대로 이어가기 힘들었고, 친정인 일본에선 한국인과 결혼했다는 이유로 쫓겨났다. 결혼한 뒤 남편을 따라 한국으로 왔지만 본가의 반대로 호적에 오르지 못한 경우도 대부분이었다. 하루 아침에 한국인도, 일본인도 아닌 이방인이 되었고 이제 60여 년이 흘렀다. 비록 고통 속에서 살아온 삶이지만 이들은 자신들이 살아온 땅이 한국이고, 자식들이 살아가야 할 곳도 한국이기 때문에 여생을 한국에서 보내기를 희망한다. 하지만 대부분은 국적 문제로 생활보호 대상자로 지정되지 못하고, 지원도 거의 받지 못하고 있다. 제작진은 “아직도 반일 감정이 존재하고 있는 상황에서 ‘가해국’ 출신의 소수자 인권까지 다뤄야 하느냐는 반발도 생길 수 있다.”며 조심스럽게 접근했다. 그러면서도 “이들의 문제에 관심을 가지는 것은 우리의 민족주의에 대한 성찰이 필요하기 때문”이라며우리의 그릇된 인권의식 중 지나칠 수 없는 게 ‘자민족 중심주의’”라고 낮지만 강한 어조로 지적한다.한준규기자 hihi@seoul.co.kr
  • 100주년 서울대병원 뿌리 논란

    100주년 서울대병원 뿌리 논란

    서울대병원이 1907년 설립된 대한의원 창립 100주년기념사업을 추진중인 가운데 일왕이 임명한 일본인 대한의원 창설위원장의 사진이 담긴 개원식 기념엽서가 처음으로 발견돼 논란이 일고 있다. 이는 대한의원을 대한제국이 만들었다는 서울대병원측의 기존 주장을 뒤집는 중요한 자료다. 연세대 의사학과 여인석 교수가 연세대 동은의학박물관에서 찾아 28일 공개한 이 엽서는 1908년 10월25일 대한의원 개원식을 기념해 발행됐다. 엽서에는 대한의원 창설위원장이었던 사토 스스무(佐藤進)의 사진이 실려 있다. 그는 우리나라를 침략한 이토 히로부미 통감과 메이지 일왕이 임명한 인물이다. 옆서 밑부분에는 한문 전서체로 “대한의원 개원식기념”이라고 써 있다. 여 교수에 따르면 당시 창설위원회 위원은 전원 일본인이었고 초대 원장은 을사오적 가운데 한 사람인 이지용이었다. 조선총독부가 펴낸 ‘총독부통계연보’를 보면 1908년에서 1910년 사이에 경기도에 거주하는 일본인의 18.9%가 대한의원을 이용한 반면 같은 지역에 거주하는 조선인은 0.5%만 이 기관을 이용했다. 또 일본 군의총감이 설립 실무를 맡았으며 대한의원이란 이름 자체도 이토 히로부미가 지었다고 한다. 여 교수는 “서울대병원은 공식적으로 대한의원을 대한제국이 만들었다고 주장하지만 전통적으로 병원을 만드는 것은 백성에 시혜를 베푸는 차원에서 왕이 주도하는 것”이라면서 “만일 서울대병원 주장대로라면 고종황제가 엽서에 나와야 하는 게 당연하다.”고 강조했다. 즉, 사토 설립위원장을 돋보이게 하는 엽서는 대한의원을 대한제국이 아니라 통감부, 나아가 일본이 주도해서 설립했다는 것을 드러낸다는 게 여 교수 설명이다. 이에 대해 서울대병원 관계자는 “대한의원을 부정하는 것은 중요한 역사적 자산을 잃는 것이기 때문에 재조명하고 성찰하려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또 서울대병원 홈페이지에 대한의원을 대한제국이 주도해서 설립한 것으로 설명한 것에 대해 “대한의원을 대한제국이 아닌 통감부가 주도해서 설립했던 것은 사실”이라면서 “홈페이지 내용은 수정해야 한다.”고 인정했다. 한편 서울대병원은 13억원을 들여 오는 15일 대한의원100주년기념식 등 다양한 기념행사를 개최할 예정이다. 그러나 이 사업에 대해 학계와 관련 시민단체들에서 반대가 거세게 제기되고 있다. 민족문제연구소 관계자는 “대한의원 설립은 대한제국 황실의 위상을 낮추면서 통감부의 권위는 높이려는 이토 통감의 명령에 따른 것”이라면서 “100주년 기념사업을 즉각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강국진기자 betulo@seoul.co.kr
  • 로봇과 대화하고 컴퓨터가 약처방

    로봇과 대화하고 컴퓨터가 약처방

    |도쿄 이춘규특파원|‘첨단 로봇이 사람과 일상대화를 척척해내며 생활을 돕는다. 리니어신칸센차를 타고 도쿄에서 오사카까지 50분 만에 주파한다….’ 앞으로 18년 뒤인 2025년 일본인들의 미래 생활상이 27일 공개됐다. 쇼핑 때는 상품을 바구니에 넣고 계산대를 통과하면 계산이 끝난다. 알츠하이머에 걸려도 약이 좋아진 덕분에 건강한 사람처럼 생활한다. 일본 다카이치 사나에 이노베이션(혁신) 담당상의 사적 자문기관인 ‘이노베이션 25 전략회의’는 26일 2025년 일본인이 목표로 하는 모습을 그린 ‘이노베이션25-중간정리’ 결과를 발표했다. 중간정리는 2025년의 모습을 ‘이노베’ 라고 하는 여섯명으로 된 가족의 하루라는 형태로 소개했다. 이에 따르면 이노베 집안의 조부(77)와 조모(74)는 기상 즉시 컴퓨터로 건강상태를 체크한다. 컴퓨터가 유전자 타입까지 고려해 약까지 처방한다. 아버지(50)가 통근에 이용하는 버스는 모두 전기자동차나 연료전지차다. 이산화탄소를 에너지원으로 해 달리는 자동차도 등장한다. 슈퍼마켓 쇼핑 비용이나 교통요금 등은 모두 카드 한 장으로 결제함으로써 어머니(51)는 ‘올해들어 아직 현금을 보지 못했다.’고 한다. 가정용 로봇은 벌써 2대째다. 일상 대화 정도는 척척 구사한다. 목욕탕에서 목욕준비도 해준다. 리니어신칸센 열차로 도쿄와 오사카 사이를 50분 만에 주파한다. 다카이치 담당상은 ”이러한 미래상을 구현하기까지에는 기술, 제도, 사회면에서 높은 장벽들이 남아 있다.’고 지적했다. 일본 사회에는 ‘관존민비’ ‘대기업 숭배’ 등의 혁신을 저해하는 반대편의 가치관이 자리잡고 있기 때문에 국민 한사람, 한사람의 의식 개혁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전략회의는 최종보고서를 5월 말까지 만들어 정부의 ‘핵심방침’에 반영할 예정이다.taei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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