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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현희-다구치가족 만남] “다구치 살아있다?” 납치문제 재점화

    ■ 日 표정·파장 │도쿄 박홍기특파원·서울 김미경기자│“다구치는 살아 있다.” 대한항공(KAL)기를 폭파, 사형을 선고 받은 뒤 사면된 김현희(47)씨의 주장은 11일 일본 열도를 술렁이게 했다. 김씨와 북한에 납치된 다구치 야에코 가족의 첫 만남을 계기로 일본에서는 또다시 납치문제가 핫이슈로 떠올랐다. 김씨의 등장은 한국보다 일본에서 훨씬 더 반겼다. 김씨가 지난 1월16일 일본 NHK와의 인터뷰에서 “다구치 가족을 만나고 싶다.”고 밝힌 이후 면담 추진은 급물살을 탔다. 납치문제를 되살리는 ‘불씨’로 작용했다. 김씨가 기폭제가 된 셈이다. 다구치의 오빠이자 납치피해자가족회 대표인 이즈카 시게오(70)는 정부가 1991년 5월 김씨에게 일본어를 가르친 일본인 납치피해자 ‘이은혜’가 다구치라고 결론을 내리자 1997년 가족회를 결성했다. 그후 이즈카는 여러 차례 외무성에 김씨를 만나게 주선해 달라는 편지를 보냈다. 하지만 편지는 김씨에게까지 전달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에 유화정책을 견지했던 김대중·노무현 정권에서는 불가능했다는 게 일본 정부 측의 분석이다. ●“호소력 크다” 아소정권에 호재 일본 정부는 발빠르게 움직였다. 진전 없는 납치문제의 새로운 대안이자 돌파구로 삼았다. 납치문제는 다구치보다 요코타 메구미(1977년 납치 당시 13세)에 맞춰져 있던 터였다. 다구치 가족들의 노력도 계속됐다. 외무성은 주일 한국대사관을 창구로 한국 정부 측에 집요하리만큼 김씨와 다구치 가족의 면담을 요청했다. 결정적으로 한국 정부가 적극 나섰다. 유명환 외교통상부장관은 지난달 11일 나가소네 히로후미 일본 외무상과의 회담 때 “납치문제에 대해 인도주의적인 차원에서 가능한 한 지원을 계속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이소자키 아쓰히토 게이오대 조교수(북한담당)는 “김씨와 다구치 가족의 만남은 아소 정권의 이해관계와도 맞아떨어졌다고 볼 수 있다. 아소 정권에는 호재다. 납치문제는 북핵보다 국민들의 마음에 호소할 수 있는 힘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北 태도변화 기대 어려워 김씨와 다구치 가족의 만남은 남·북, 북·일 관계에 적잖은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납치문제는 일본뿐만 아니라 국제 여론의 주목을 받게 됐다. 일본은 지난해 8월 북한과 합의했던 납치문제의 재조사 이행을 더 강하게 촉구하는 등 대북 압력을 강화해 나갈 가능성이 크다. 또 6자회담에서 북핵과 같이 의제로 다루도록 치고 나올 수도 있다는 관측도 제기됐다. 일본의 한 외교 관계자는 “북한은 납치문제에 대해 이미 종결됐다는 기존의 방침을 고수할 가능성이 커 갑작스러운 진전을 바라기는 어렵다.”고 내다봤다. hkpark@seoul.co.kr
  • [김현희-다구치가족 만남] “KAL기 유가족 北테러 인정땐 만날 용의”

    [김현희-다구치가족 만남] “KAL기 유가족 北테러 인정땐 만날 용의”

    11일 김현희씨와 다구치 야에코 가족의 90분간 비공개 면담은 시종 화기애애하게 진행됐다. 이들은 서로에 대한 근황과 안부는 물론 다구치에 대해 많은 얘기를 나눈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김씨는 첫 만남에서 다구치의 장남 이즈카 고이치로의 손을 꼭 붙잡고 놓지 않아 각별함을 더해 줬다. 기자 회견장에 들어설 때 이들은 팔짱을 끼고 입장해 다정한 모자와 같은 느낌을 줬다. 고이치로 역시 회견에 앞서 짤막한 소회를 말하면서 “김씨가 자신을 ‘한국에 있는 양어머니’로 생각하라고 했다.”며 친밀감과 고마움을 나타냈다. 면담은 주로 다구치의 오빠 이즈카 시게오와 고이치로가 다구치에 대해 묻고, 김씨가 답하는 형식으로 이뤄졌다.이 과정에서 김씨는 북한에서 친자매처럼 지냈던 다구치가 1978년 6월 북한으로 납치된 이후 살아온 인생 역정 등을 비교적 소상하게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씨는 고이치로가 한 살일 때 어머니가 납북돼 모정을 제대로 느끼지 못한 채 외삼촌인 시게오의 양자로 자란 점에 대해 무척 안타까워한 것으로 전해졌다. 김씨와 시게오는 간단한 선물도 주고받았다. 시게오는 다구치가 납치된 1970년대의 일본 가요 등을 모은 음악 CD 2장과 치즈 케이크, 손수건을 전달했다. 비공개 면담에서는 ‘어머니가 납치됐을 때 저는 한 살이었다’는 제목의 만화책과 시게오가 쓴 책 ‘여동생에게’ 등도 전달된 것으로 전해졌다. 비공객 면담 후 20여분간 진행된 공동 기자회견에서 질문 대부분이 김씨에게 집중됐다. 다음은 김씨와의 일문일답. →북한 정부가 납치 문제를 명확히 밝히게 할 수단이 있나. -북한의 마음을 움직이는 연구를 하면 기적이 일어날 수도 있다. 2002년에 5명이 돌아오기도 했으니까 북한에서는 죽은 사람이 살아있기도 하니까 계속 노력해야 한다. →만나고 싶다는 내용의 다구치 가족들이 보낸 편지를 받아 봤는가. -은둔생활 속에 편지를 받지 못했다. 녹화된 TV 내용을 통해 다구치 가족이 만나기를 희망한다는 사실을 알고 만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1997년 이후 12년간 공개석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이유는. -사건 이후 유가족들의 아픈 마음을 생각하며 조용하게 지냈다. →KAL기 폭파사고 수사결과 발표 진위에 대한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유가족들을 만날 의향은. -97년 12월 수기 인세를 유족들에게 전하고 만난 자리에서 많이 울었다. 유가족들이 북한의 테러임을 인정한다면 언제든지 다시 만날 용의가 있다. →또 다른 북한에 의한 일본인 납치 피해자 요코다 메구미 소식은. -제 공작원 동지 김숙희에게 일본어를 가르쳤고, 87년 남조선 사람과 결혼해 딸을 낳았다는 얘기도 들었다. 메구미가 사망했다는 것은 믿을 수 없다. 다구치 장남 고이치로와 오빠 시게오는 “김씨를 만난 뒤 피랍자들이 모두 생존해 있다는 것을 믿게 됐다.”며 “앞으로 한·일간 피랍자들에 대해 구체적인 대책이 마련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부산 김정한 박정훈기자 jhkim@seoul.co.kr
  • [김현희-다구치가족 만남] 김현희·다구치 日語 제자·스승 ‘2년 합숙’

    [김현희-다구치가족 만남] 김현희·다구치 日語 제자·스승 ‘2년 합숙’

    ■ 김현희·다구치 인연 제자와 스승의 인연이었다. 김현희씨(이하 김현희)와 다구치 야에코(가명 이은혜)의 첫 만남은 31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다구치는 납북되기 직전 일본 도쿄에서 세 살 된 아들과 한 살 된 딸을 키우며 카바레의 호스티스로 일했다. 그녀는 1978년 6월(당시 22세) 한 남자와 함께 차를 타고 신주쿠의 베이비 호텔에 두 자녀를 맡긴 뒤 도쿄 이케부쿠로 인근에서 납북됐다. 북한 당국은 다구치에게 김일성과 김정일 은혜를 입었다고 해서 이은혜라는 가명을 지어 줬다. 납북 이후 다구치의 첫 동거인은 김현희였다. 다구치는 북한에 납치된 뒤 약 2년간 김씨와 함께 살며 일본어를 가르쳤다.1989년 2월3일 검찰이 KAL기 폭파 혐의로 기소한 김현희의 공소장과 그해 4월 사형선고가 내려진 김씨 판결문에 따르면 다구치와 김씨는 친자매 이상으로 가까운 사이였다. 김현희는 다구치와의 동거 생활 동안 모든 일상생활 용어는 일본어만을 사용했다. 김현희는 오전에 다구치가 작성한 강의안을 중심으로 일본어 설명을 듣고, 오후에는 강의 받은 내용을 복습했다. 일본 영화나 텔레비전 프로는 녹화기로 보거나, 평양시 보통강 구역 서장동에 있는 공작원 전용 영화관에서 함께 관람하기도 했다. 김현희는 아침에는 다구치와 함께 일어판 주체사상 교육을 받았다. 김현희는 지난 1월15일 일본 NHK TV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자신에게 일본어를 가르친 이은혜가 1978년 실종된 일본인 다구치 야에코라는 사실을 재차 확인하면서 “다구치 야에코와는 2년간 국적을 떠나 친자매처럼 살았다.”고 고백했다. 다구치로부터 일본어 교육을 받은 김현희는 1987년 11월29일 북한 공작원 김승일과 함께 하치야 마유미, 하치야 신이치라는 일본인으로 위장, 총 115명을 태우고 이라크 바그다드에서 서울로 가던 대한항공 858편 보잉 707기를 미얀마 근해에서 공중폭파했다. 김승일은 수사기관의 조사 중 음독 자살을 기도해 숨졌다. 김현희는 그해 12월 서울로 압송됐다. 김현희는 이듬해 4월 사형선고를 받았지만 1990년 사면됐다. 김정은기자 kimje@seoul.co.kr
  • “인간 본성 밝히는 소설 쓰고 싶다”

    “인간 본성 밝히는 소설 쓰고 싶다”

    11일 서울 인사동에서 열린 방한 기자간담회에서 만난 일본 소설가 나카무라 후미노리는 농담처럼 “인간 본성의 모든 것을 밝히는 대하소설을 쓰고 싶다.”고 말했다. 대하소설을 쓰기에는 아직 앳된 서른 두살의 젊은 작가. 그는 수시로 자신의 유머감각을 자랑했다. 하지만 발랄함과는 달리 그는 어떤 젊은 일본 작가들보다 무거운 주제를 다루고 있다. 그는 일본에서 일상적 서사보다는 죄, 악, 절망 등 삶의 본질적 문제를 잘 다루는 것으로 평가받는다. 한국과 일본의 문예지에서 공동연재되다 다시 단행본으로 공동출간된 소설 ‘모든 게 다 우울한 밤에’(이룸 펴냄)도 사형을 소재를 다룬다. 일본도 한국 못지않게 사형 제도 찬반론이 격하게 충돌하고 있다. 작가는 스무살에 사형수가 된 주인공을 내세워 사형과 생명문제, 인간의 내면 등을 그렸다. 그는 “생명과 죽음의 문제를 지난 7년간 계속 고민하고 있다.”면서 “이런 상황에 사형은 꼭 한번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라고 생각했다.”고 이 작품을 쓴 의도를 설명했다. 일본에서는 오는 5월 국민배심원 제도가 시행될 예정이어서 그의 작품은 더욱 주목받고 있다고 한다. 나카무라는 한국에서 2005년 이쿠타가와 상 수상작 ‘흙속의 아이’가 소개되며 주목을 받았다. 지난해 5월 ‘2008 서울, 젊은 작가들 페스티벌’에도 참여했다. 당시 여러 한국 작가를 만났다는 그는 ‘헝그리 정신’이란 말로 한국 작가를 정의하며 “무엇이든 하려고 하는 의지가 넘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나카무라의 한국 문학 사랑도 특별하다. 그는 취재진에게 요즘 읽고 있는 작품집이라며 일어로 번역된 한국 단편 소설집을 꺼내 보였다. 공지영, 신경숙, 김형경 등 여성작가들의 단편집이었다. 그는 “한국을 배경으로 일본에서 한국에 도망쳐 온 일본인이 겪는 에피소드를 소설로 쓰고 싶다.”고도 했다. 나카무라는 이날 오후엔 동국대에서 문학강연회을 갖고 12일 귀국한다. 현재 그는 빈부격차 속에서 일어나는 인간 문제를 소재로 다음 작품을 구상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나카무라 소설의 한·일 공동 연재를 주도한 이룸 출판사는 역시 한국작가 작품의 한·일 공동연재를 기획하고 있다고 밝혔다. 출판사 관계자는 현재 김애란의 ‘달려라 아비’ 등을 일본문예지 문예춘추, 신조 등과 협의해 공동 연재하는 방안을 타진하고 있다고 밝혔다. 강병철기자 bckang@seoul.co.kr
  • 김현희 “KAL기 유가족 北테러 인정땐 만날 용의”

    11일 김현희씨와 다구치 야에코 가족의 90분간 비공개 면담은 시종 화기애애하게 진행됐다. 이들은 서로에 대한 근황과 안부는 물론 다구치에 대해 많은 얘기를 나눈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김씨는 다구치의 장남 이즈카 고이치로의 손을 꼭 붙잡아 각별함을 더해 줬다. 기자 회견장에 들어설 때 이들은 팔짱을 끼고 입장해 다정한 모자와 같은 느낌을 줬다. 고이치로 역시 회견에 앞서 짤막한 소회를 말하면서 “김씨가 자신을 ‘한국에 있는 양어머니’로 생각하라고 했다.”며 친밀감과 고마움을 나타냈다. 면담은 주로 다구치의 오빠 이즈카 시게오와 고이치로가 다구치에 대해 묻고, 김씨가 답하는 형식으로 이뤄졌다. 이 과정에서 김씨는 북한에서 친자매처럼 지냈던 다구치가 1978년 6월 북한으로 납치된 이후 살아온 인생 역정 등을 비교적 소상하게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씨는 고이치로가 한 살일 때 어머니가 납북돼 모정을 제대로 느끼지 못한 채 외삼촌인 시게오의 양자로 자란 점에 대해 무척 안타까워한 것으로 전해졌다. 김씨와 시게오는 간단한 선물도 주고받았다. 시게오는 다구치가 납치된 1970년대의 일본 가요 등을 모은 음악 CD 2장과 치즈 케이크, 손수건을 전달했다. 비공개 면담에서는 ‘어머니가 납치됐을 때 저는 한 살이었다’는 제목의 만화책과 시게오가 쓴 책 ‘여동생에게’ 등도 전달된 것으로 전해졌다. 비공개 면담 후 20여분간 진행된 공동기자회견은 대부분 김씨에게 질문이 집중됐다. 다음은 김씨와의 일문일답. →다구치 가족들이 만나 보고 싶다는 내용으로 보낸 편지를 받아 봤는가. -은둔생활 속에 편지를 받지 못했다. 녹화된 TV 내용을 통해 다구치 가족이 만나기를 희망한다는 사실을 알고 만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1997년 이후 12년간 공개석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이유는. -사건 이후 유가족들의 아픈 마음을 생각하며 조용하게 지냈다. →KAL기 폭파사고 수사결과 발표 진위에 대한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유가족들을 만날 의향은. -97년 12월 수기 인세를 유족들에게 전하고 만난 자리에서 많이 울었다. 유가족들이 북한의 테러임을 인정한다면 언제든지 다시 만날 용의가 있다. →또 다른 북한에 의한 일본인 납치 피해자 요쿠다 메구미 소식은. -제 공작원 동지인 김숙희에게 일본어를 가르쳤고, 87년 남조선 사람과 결혼해 딸을 낳았다는 얘기도 들었다. 메구미가 사망했다는 것은 믿을 수 없다. 다구치 장남 고이치로와 오빠 시게오는 “김씨를 만난 뒤 피랍자들이 모두 생존해 있다는 것을 믿게 됐다.”며 “앞으로 한·일간 피랍자들에 대해 구체적인 대책이 마련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글 / 서울신문 부산 김정한 박정훈기자 jhkim@seoul.co.kr 영상 / 멀티미디어기자협회공동취재단 @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한국 설욕전 日 순간 최고시청률 ‘50.8%’

    한국 설욕전 日 순간 최고시청률 ‘50.8%’

    한국의 짜릿한 설욕전을 일본 2가구당 1가구는 속쓰리게 지켜본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9일 열린 제 2회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제 1라운드 한국과 일본의 1·2위 결정전의 순간 최고시청률이 도쿄 등 관동지방이 47.2%, 오사카 등 관서지방이 50.8%를 각각 기록했다. 10일 ‘요미우리 신문’ 등 현지 언론이 시청률 조사기관 ‘비디오 리서치’의 조사결과를 인용해 보도한 바에 따르면 한국이 일본에 1-0 완봉승을 거두며 예선 1위가 된 이날 경기의 평균 시청률은 관동지방이 33.6%, 관서지방이 37.3%로 나타났다. 이날 경기 중 최고시청률을 기록한 순간은 9회 말 일본의 선두 타자 무라타 슈이치가 타석에 선 오후 9시 39분으로 관동지방 47.2%, 관서지방 50.8%를 각각 기록했다. 이는 한국과 일본의 첫 대결이었던 지난 7일 경기의 순간 최고시청률인 관동지방 46.3%, 관서지방 49.7%를 상회하는 수치다. 완봉패를 눈앞에 두고 4번 타자의 한 방을 기대한 일본인들의 간절한 심정을 대변한 것으로 분석할 수 있다. 이에 반해 한국은 40% 내외의 순간 최고 시청률을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 시청률 조사회사 AGB닐슨미디어에 따르면 이 경기 시청률은 MBC TV 13.8%, KBS 2TV 10.7%로 합계 24.5%를 기록했다. 분 단위 최고 시청률은 MBC는 오후 9시33분대의 22.6%, KBS 2TV는 오후 9시34분대의 17.3%였다. 사진=스포츠 호치 온라인판 캡처 문설주기자 spirit0104@seoul.co.kr/@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동성애자·성전환자 모집, 日원정 성매매 5억 갈취

    한국인 동성애자와 성전환자 수십명을 일본으로 보내 현지 남성들과 성매매를 하도록 알선한 일당이 경찰에 붙잡혔다. 서울지방경찰청 외사과는 9일 성매매 알선 등 행위의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 등의 혐의로 성매매 알선업자 박모(41)씨를 구속하고 수금책 임모(45)씨를 불구속 입건했다. 이들의 소개로 일본에서 성매매를 해온 이모(27)씨 등 14명도 불구속 입건했다. 박씨는 2007년 1월부터 최근까지 성전환자와 동성애자 30여명을 일본 성매매 업소에 소개하고 이들로부터 알선수수료, 보호비 등 명목으로 5억원을 뜯어낸 혐의를 받고 있다. 박씨의 소개를 받은 남성들은 요코하마 성매매 거리에서 한 차례 1만 5000~2만엔(약 23만~31만원)의 화대를 받고 일본인 남성들과 성관계를 맺어온 것으로 드러났다. 이재연기자 oscal@seoul.co.kr
  • [깔깔깔]

    ●남녀의 차이 남 : “여자들은 다른 여자들 앞에서 옷을 벗느니보다 남자들 앞에서 옷을 벗는 게 더 편하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더군요. ” 여 : “ 농담하지 마세요. ” 남 : “정말입니다. 여자들은 옷에 관해 이러니 저러니 쑤군거리지만 남자들은 그저 감사할 뿐이라서 그렇다더군요. ” ●넥타이 고르는 법 프랑스인:이거 최신 유행하는 것입니까? 독일인:이거 얼마나 오래 맬 수 있습니까? 미국인:이거 세계에서 제일 좋은 겁니까? 영국인:이거 신사들이 매는 겁니까? 사우디인:이거 알라신이 허용한 겁니까? 중국인:이거 팔면 얼마 이익이 납니까? 일본인:이거 얼마나 깎아줄 수 있습니까? 한국인:이거 진짜입니까? 가짜입니까?
  • [WBC] 김광현 “마쓰자카 나와라”

    타이완전 승리로 WBC 아시아 예선 통과에 한 걸음 다가선 한국팀이 7일 ‘숙적’ 일본과 맞붙는다. 물론 객관적인 전력으로는 일본이 앞선다. 그러나 라이벌전이 그렇듯 변수가 많아 누구도 승부를 예단하기는 어렵다. 한국은 일단 타이완전 승리로 자신감이 넘친다. 게다가 지난해 베이징올림픽이나 3년 전 1회 WBC에서처럼 일본전만큼은 선수들의 투지가 높다. 2연승 길목에서 한국이 만나게 될 일본팀 선발투수는 ‘괴물’ 마쓰자카 다이스케. 일본의 명실상부한 에이스다. 2000·2004년 올림픽 2연속 탈삼진왕, 2006년 WBC MVP에 빛나는 귀하신 몸이다. 지난해 메이저리그에서 18승3패, 평균자책점 2.90으로 명문 보스턴의 에이스 몫을 했다. 노모 히데오(41·은퇴)의 일본인 한 시즌 최다승(16승)도 경신했다. 지난 시즌엔 좀처럼 안타를 허용하지 않았다. .213의 피안타율은 리그 최저였다. 하지만 괴물에게도 약점은 있다. 우선 투구폼이 크고 퀵모션이 느리다. ‘그린 라이트’를 부여받은 한국의 준족들이 기동력을 살리기에 유리하다. 김인식 대표팀 감독도 “마쓰자카는 주자가 나가면 흥분을 잘해 쉽게 무너지는 스타일”이라며 누상에서 마쓰자카를 흔들 비책이 준비됐음을 시사했다. 경기당 투구 수가 많은 것도 단점이다. 이번 WBC는 1라운드 투구 수를 70개로 제한했다. 따라서 물고 늘어지기에 강한 한국 ‘테이블세터’진이 유인구에 헛손질하지 않고 물꼬를 터준다면 의외로 쉽게 무너질 수도 있다. 한국과의 경기에서 이겨본 적이 없다는 것도 걸림돌이 될 수 있다. 2000년 시드니올림픽 동메달 결정전을 포함해 마쓰자카의 한국전 통산성적은 2경기 17이닝 동안 13피안타(1홈런) 6볼넷 20탈삼진 1패다. 5자책점으로 방어율은 2.65이지만 실점은 8점이다. 에이스답지 않은 성적표다. 시드니올림픽 패배 후 눈물을 흘리며 한국전 설욕을 별러 왔다고는 하나, 자라 보고 놀란 가슴은 솥뚜껑을 보고도 놀라는 법이다. 손원천기자 angler@seoul.co.kr
  • ‘엔 공습’ 두얼굴

    ‘엔 공습’ 두얼굴

    ■내수 활성화 엔화가 몰려오고 있다. 최근 원·엔 환율이 100엔당 1600원선까지 치솟자 일본의 거대 자본들이 엔고(高)-원저(低) 환경을 최대한 활용, 국내 부동산과 기업 투자를 서두르고 있다. 일본 관광객들도 밀물처럼 몰려와 악화일로에 빠진 국내 소비를 떠받치는 데 일조하는 양상이다. 그러나 외환위기 이후 외자의 ‘먹튀’를 씁쓸하게 지켜본 경험이 있는 만큼 대일 경제 종속의 심화를 경계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5일 코트라(KOTRA)에서 열린 ‘일본기업 투자유치 상담회’에 참석한 구도 료세이 일본 정책 투자은행 참사역은 “지금이 한국 투자의 적기”라고 말했다. 실제로 지난해 9월 엔화가 100엔당 900원선이었던 것과 비교하면 일본 투자자는 한국의 자산을 절반 가까운 헐값에 살 수 있게 됐다. 일본 부동산투자 사모펀드인 바나월드는 이날 코트라와 인천 송도경제자유지역에 30억달러 규모의 개발사업을 벌이겠다는 투자의향서(LOI)를 체결했다. 상담회에는 일본 벤처캐피털 및 금융회사 14개사, 부동산개발 6개사, 서비스업 4개사 등이 참여했다. 2박3일간 한국에 머물며 55개 기업과 90여건의 투자 상담을 할 예정이다. 일본 자본의 유입은 외화 유동성 위기와 투자 및 내수 위축에 시달리고 있는 우리 경제에 분명 희소식이다. 그러나 대일 무역수지 적자(2008년 327억달러)가 전혀 개선되지 않는 상황에서 국내 핵심 자산이나 금융, 유통, 정보기술(IT) 등 미래성장동력 산업까지 일본 자본의 통제 아래 놓인다면 장기적으로 대일 경제 의존도가 심화될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삼성경제연구소 정영식 박사는 “일본 자금의 유입은 한국 경제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면서도 “부동산의 경우 일본 투자자들이 실수요자가 아닌 만큼 환차익과 시세차익을 실현하고 대거 빠져나가면 한국 시장이 요동칠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전성인 홍익대 경제학과 교수는 “원·엔 환율 급등 국면을 잘 활용해 대일무역적자의 주범인 부품·소재 수입선의 다변화와 국내 양산을 서둘러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창구 윤설영기자 window2@seoul.co.kr ■찬바람 제주 5일 오후 제주시 연동 G호텔 주변. 주로 일본인 관광객을 상대로 하는 상가에는 찬바람이 불었다. 원화가치 하락과 엔고 바람으로 서울과 부산 등지에는 일본인 관광객이 넘쳐 나지만 제주에는 엔고 특수를 누리지 못하고 있다. 호텔주변에서 10년째 일본인 관광객을 상대로 장사를 하고 있는 김모(44)씨는 “다른 지역은 엔고 특수라면서 난리들인데 제주에 일본 관광객이라곤 노인들뿐이고 돈도 잘 쓰지 않는다.”고 말했다. 5일 법무부제주출입국관리소에 따르면 지난해 제주로 입국한 일본인은 전년보다 1만여명 감소한 15만 1138명에 그쳤다. 지난해 환전실적도 엔화는 1억 2104만달러로 전년에 비해 1.2% 감소했다. 지난 1월 제주를 찾은 일본인 관광객은 1만 547명으로 전년 1월의 1만 651명보다 1.0% 감소했다. 2월에는 1만 4027명으로 지난해 같은 달보다 16.5%가 늘어났다. 하지만 서울 52%, 부산 39%의 증가세에 비하면 여전히 미미해 엔고 특수를 누리지 못하고 있다. 제주를 찾은 일본인 관광객 나가시 마사노부(48)는 “제주는 일본에도 잘 알려진 관광지인데 대형 쇼핑센터가 없는 게 이상하다.”며 “할인점에서 인삼이나 김을 사는 게 제주에서 할 수 있는 쇼핑의 전부”라고 말했다. 한해 600만명의 내·외국인 관광객이 찾고 있지만 제주는 관광의 핵심 인프라인 대형 쇼핑센터가 없는 게 현실이다. 제주국제자유도시개발센터는 수년 전부터 일본 등 외국인 관광객 유치를 위해 명품 아웃렛 쇼핑센터 설치 등을 추진해 왔지만 시내 상권이 무너진다는 상인들의 반대여론에 떠밀려 손을 놓고 있는 실정이다. 지난해 제주를 방문한 일본 관광객 가운데 50대 이상이 9만 1623명으로 60.6%를 차지했다. 구매력이 왕성한 20~40대는 35.4%에 불과했다. 일본관광객 가이드 현모(34)씨는 “일본 노인 관광객은 패키지 관광요금만 지불하고 돈을 거의 쓰지 않는다.”면서 “일부는 쇼핑센터를 안내해 달라고 하지만 마땅하게 추천할 곳도 없어 난감한 실정”이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구매력이 있는 일본의 젊은층 관광객 유치를 위해선 쇼핑과 위락시설, 의료관광 등의 인프라 확충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글ㆍ사진 제주 황경근기자 kkhwang@seoul.co.kr [다른 기사 보러가기] ”민주노동당 설계부터 잘못됐다” 노 전대통령 정치하지 말라 해놓곤… 교육 의료에 자본의 논리 불어넣자고? WBC 타이완전 지상파로 본다 열차와 트럭에 깔리고도 멀쩡한 사내 어느 연예 전문기자의 소신
  • “北 납치문제 해결 위해 한·일 협력을”

    “北 납치문제 해결 위해 한·일 협력을”

    │도쿄 박홍기특파원│지난 1987년 대한항공(KAL)기 폭파사건으로 사형을 선고받았다가 사면된 김현희(사진 왼쪽·47)씨가 일본인 납치문제의 해결을 위해 한·일 양국이 협력하기를 호소하는 내용의 편지(오른쪽)를 산케이신문에 보냈다. 5일 신문에 따르면 김씨의 편지는 구로다 가쓰히로 산케이신문 서울지국장에게 인편으로 전달됐다. 편지지 5장 분량의 편지에는 조만간 이뤄질 북한에 의한 납치 피해자이자 자신의 일본어 교사였던 다구치 야에코(북한명 이은혜) 가족과의 면담에 대한 심경을 피력했다. 또 “이 만남이 개인적인 기쁨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고 한·일 양국이 서로 이해해 협력하는 공간으로 확대될 것으로 믿고 있다.”고 기대감을 드러냈다. 특히 “지금까지 노무현 정부 아래서 피난생활을 해왔지만 한·일 양국의 추천으로 다구치 가족과의 만남이 다가오고 있다.”며 노무현 정권 때 제기된 ‘KAL폭파 조작설’에 대한 불만도 내비쳤다. 김씨는 “나도 또한 북한에 그리운 부모와 형제가 있다. 그러나 가족의 생사를 알 수 없다. 내가 가족과의 생이별을 운명이라고 그대로 받아들이기에는 이 세상이 너무 원망스럽고 가혹하다.”며 가족을 향한 그리움도 표시했다. 또 “다구치가 장성한 아들 이즈카 고이치로가 어머니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한국에서 나를 만난다는 사실을 안다면, 그녀는 기쁜 나머지 그 큰 눈에서 눈물을 흘릴 것”이라면서 “그녀는 새로운 희망을 품고 아이와 만날 수 있는 날을 기다리며 살아갈 것”이라고 말했다. 다구치는 아들 아즈카가 한 살 때 납치됐다. 아즈카는 현재 가족들과 함께 어머니 구출운동에 나서고 있다. 김씨는 “한국과 일본에는 북한에 의한 수많은 납치 피해자가족이 있다.”고 전제한 뒤 “정말로 어떻게 하면 북한 당국의 체면을 살리고 그 마음을 움직이게 할 수 있을까.”라고 자문하기도 했다. 이어 “지성이면 감천”이라면서 “내가 다구치 가족과의 면회를 앞두고 있는 것처럼 일본 정부가 북한 당국의 폐쇄된 마음의 문을 열어 ‘결국 다구치 야에코가 그 가족을 만날 수 있게 됐다.’는 1면 기사가 보도되길 기원한다. 2009년 3월 초순 김현희”라며 편지를 끝맺었다. 김씨는 “(구로다 지국장과) 만난 지 20년 가까이 된다. 최근에도 산케이신문이 나에 관한 기사를 게재했다고 들었다. 언제나 관심을 가져주고 성원해 줘 감사한다.”며 산케이신문에 편지를 건넨 배경을 설명했다. hkpark@seoul.co.kr
  • 한국전 나설 日예상 투수 ‘우완-좌완-잠수함’

    한국전 나설 日예상 투수 ‘우완-좌완-잠수함’

    박빙의 승부가 예상되는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이하 WBC) 아시아라운드 한-일전은 경기의 중요성 만큼이나 선발투수에 대한 관심이 특별하다. 이번 한-일전은 특별한 일이 없는 한 마쓰자카 다이스케(보스턴 레드삭스) vs 김광현(SK 와이번스)의 격돌이 예상된다. 다만 투구수 제한(아시아 1라운드 70개)에 따른 조치로 ‘선발투수’ 보다는 ‘첫번째 투수’ 의 의미가 더 짙은데 양팀 에이스의 투구수 관리도 경기 결과에 중요한 포인트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번 대회 일본대표팀 엔트리에 포함된 투수는 총 13명. 그중 4명의 투수가 한국전에 모습을 드러낼 것으로 예상된다. 마쓰자카 다이스케 (우완- 첫번째 투수) 일본시절 ‘괴물투수’로 명성이 자자했던 마쓰자카는 우리에게 낯이 익은 선수다. 특히 2000년 시드니 올림픽 당시 우리와 두번씩이나 맞붙은 바 있는 그는 2007년 메이저리그에 진출해 보스턴의 선발투수로 맹활약을 펼치고 있다. 현재 구위는 대표팀 내에 최고는 아니지만 투심, 포크볼, 체인지업, 슬라이더의 제구력이 뛰어나고 좌우 핀포인트를 이용한 위닝샷이 위력적이다. 작년 시즌 마쓰자카는 보스턴에서 총 29경기를 선발로 등판해 167.2 이닝을 던져 18승 3패 평균자책점 2.90을 기록했다. 작년시즌 투구패턴을 보면 좌타자에겐 바깥쪽 빠른공, 우타자에겐 몸쪽 투심이나 포크볼을 결정구로 사용했는데 빠른 승부를 즐겨하는 패턴이라 한국타자들의 적극적인 타격성향이 필요하다. 한국팀의 좌타자들인 이종욱-이용규-김현수와 같이 컨택트 능력이 뛰어난 타자들은 몸쪽 공을 버리고 바깥쪽 공을 노릴 필요가 있다. 지난 1일 요미우리와의 평가전만 놓고 보면 아직 페스트볼이 140km 초반에 머물러 정상궤도에 오르지 못하고 있는데 과거처럼 150km 이상의 강속구는 보기 힘들 것으로 예상된다. 스기우치 토시야 (좌완- 두번째 투수) 대표팀에서 탈락한 와다 츠요시와 더불어 소프트뱅크 호크스의 좌완 에이스다. 지난 1회 대회와 작년 베이징 올림픽 때도 우리와 상대한 경험이 있는 그는 공을 오랫동안 감추고 던지는 특이한 투구폼으로 인해 140km 초반의 페스트볼임에도 불구하고 타자가 느끼는 체감 스피드는 훨씬 빠르게 느껴진다. 위닝샷은 역시 포크볼이다. 약점이라면 퀵 모션이 빠르지 않기에 쉽게 도루를 허용한다는 점에 있다. 기동력이 뛰어난 선수들이 많은 한국팀 입장에서는 출루 이후 적극적인 2루 훔치기를 노릴 필요가 있다. 만약 마쓰자카가 초반에 무너질 경우 스기우치가 긴 이닝을 책임질 가능성이 큰데 소속팀에서는 선발투수로 활약하고 있고 작년시즌 8차례나 완투 할 만큼 체력이 뛰어난 것도 특징이다. 위기시 한국의 좌타자들을 막아낼 적임자로 평가받고 있는 선수다. 와타나베 순스케 (잠수함- 이대호 상대) 치바 롯데 마린스 소속의 와타나베는 거의 지면에 팔이 닿을 정도의 투구폼과 릴리스 포인트를 가지고 있는 선수다. 제 1회 WBC 한국전에도 등판했던 경험이 있다. 작년 시즌 그는 13승 8패 평균자책점 4.17을 기록했다. 특히 볼넷을 겨우 29개(172.2이닝)만 허용했을 정도로 면도날 제구력을 가지고 있는 투수다. 하지만 공이 가볍고 전성기에 비해 구위도 확실히 위력적이지 못하다는 평가다. 와타나베가 출전한다면 일본 언론에서 호들갑을 떨고 있는 이대호를 상대로 마운드에 오를 것이 유력시 된다. 와타나베는 몸쪽 승부를 즐겨하는 편인데 그도 그럴것이 잠수함 특유의 투구폼으로 인해 우타자가 봤을시 타자자신의 몸에 맞을것 같은 공의 궤적때문이다. 만약 찬스에서 이대호가 그를 상대할 시 몸에 맞을것 같은 공은 거의 100% 인코스로 들어오는 공이란 생각을 가지고 타격에 임할 필요가 있다. 후지카와 큐지 (우완- 마무리투수) 일본 제 1의 마무리 투수다. 한신 타이거즈 소속으로 작년에 38세이브(평균자책점 0.67)를 거둔 후지카와는 우리와 인연이 깊은 투수중 한 명이다. WBC 1회 대회 한국과의 두번째 경기에서 이종범이 결승 2루타를 쳐낸 선수가 바로 후지카와다. 155km에 육박하는 엄청난 페스트볼과 더불어 포크볼, 슬라이더가 주무기다. 굳이 약점을 들춰내자면 여타의 일본투수들에 비해 구종이 단조로운 편이다. 빠른 공과 슬라이더를 주로 사용하는데 과감하게 타자 몸쪽으로 승부하는 배짱은 없는 편. 자신의 공을 믿고 구위로 윽박지르는 스타일이다. 지난 대회 당시 이종범에게 허용했던 안타와 베이징 올림픽때 이진영(SK)에게 얻어맞았던 안타도 가운데로 몰린 공이었다. 한가지 구종을 선택해 게스히팅을 한다면 한국타자들이 호락호락 밀리지는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이번 일본대표팀 주전 포수는 조지마 겐지(시애틀 매리너스)가 유력하다. 포수로는 일본인 최초로 메이저리그에 진출했던 조지마는 11년간 일본프로야구에서 통산 타율 .299 홈런 211개를 쳐냈을 정도로 장타력이 뛰어난 공격형 포수였다. 일본시절 6차례나 최우수 배터리상을 수상했을 정도로 뛰어난 ‘인사이드 워크’ 능력을 가졌지만 빅리그에 진출해서는 그 빛이 다소 감소한 경향이 두드러지고 있다. 국제대회에서는 포수 능력이 제일시 된다는 점을 고려할때 최고의 수비형 포수인 호소카와 토오루(세이부 라이온스)의 탈락이 이번 대회에서 어떤 영향을 미칠지 궁금하다. 이밖에 아베 신노스케(요미우리 자이언츠)와 이시하라 요시유키(히로시마 도요카프)가 포수 엔트리에 등록되어 있는데 이번 한-일전에서 아베는 포수보다는 대타요원으로 나설 가능성이 크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일본프로야구통신원 윤석구 rock7304@hanamil.net@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환율따라 웃고 우는 사람들

    환율따라 웃고 우는 사람들

    경기침체로 환율이 폭등하면서 업계에 따라 희비가 교차하고 있다. 관광업계는 밀려드는 일본인들 때문에 일손이 모자라고 백화점 명품매장엔 가방이 동났다. 해외로 나간 근무자들은 높은 환율 때문에 실질소득이 50% 가까이 늘었다. 반면 수입차 판매업자나 현지에서 직수입하는 총판, 그리고 해외로 나간 유학생들은 치솟는 환율에 비명을 지르고 있다. ●고마워~고환율! 한국관광공사가 지난 1월 한국을 찾은 외국인 관광객을 분석한 결과 일본인은 23만 7816명으로 전체의 39%를 차지했다. 주목할 것은 일본 여성 관광객이 13만 8105명으로 지난해 1월보다 94%가 증가했다는 점이다. 국내외국인 여행 업무를 담당하는 한진관광 박미숙 과장은 “3월 단체 예약자 수만 봐도 작년 3월 9800명에서 50% 이상 늘어난 1만 5000명으로 예상돼 매일 야근을 하는 등 손이 모자랄 지경”이라고 말했다. 일본인 관광객이 늘면서 백화점의 명품 판매량도 급증했다. 2일 유통업계에 따르면 롯데백화점은 1, 2월 비수기에도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매출이 5.7% 늘었다. 이는 일본인 쇼핑이 늘면서 루이뷔통 등 명품매출이 71% 늘어난 덕이다. 홍보실 관계자는 “명품 백의 경우 현지에 비해 최소 30~40% 저렴한 데다 최근 할인 판촉행사 덕분에 일본인들의 구매가 늘었다.”고 말했다. 중국 선전에서 한국 의류 수입업체 지사장으로 근무하는 최낙훈(34)씨는 요즘 신이 났다. 재작년 중국으로 발령이 날 때만 해도 친구도 없고 생활환경도 불편해 일을 그만둘까 고민했었지만 최근 위안화가 급등하면서 실제로 받는 월급이 늘었다. 최씨가 한국에서 근무할 때 받던 돈은 월 300만원 정도였지만 현지에서 지금 받는 월급은 약 2만 5000위안이다. 500만원이 넘는다. ●고환율~이제 그만! 수입차 업계는 비상이다. 작년 대비 환율이 40% 이상 오르면서 현지 화폐로 수입대금을 결제하는 영업 구조상 차를 한 대 팔 때마다 적게는 수백만원에서 많게는 1000만원 이상 손해가 난다. 혼다코리아에 따르면 지난해 총 3113대를 판매한 CR-V(2WD)의 가격을 2일 3590만원으로 올렸다. 한 번에 450만원 올린 셈이다. 엔고(高)의 압박을 더이상 견디지 못한 때문이다. 혼다코리아 정지영 과장은 “환율 때문에 차를 팔면 팔수록 손해”라면서 “1월부터는 판촉과 광고를 중단했다. 올해 판매예상대수는 정할 수도 없는 상황인 데다 직원들도 경영 환경에 대한 불안감 때문에 정신이 없다.”고 말했다. 수입과일 값도 폭등했다. 2일 수입유통업계에 따르면 오렌지, 바나나, 파인애플, 키위 등 수입과일은 30~100%까지 올랐다. 3월 현재 이마트에서 팔리는 오렌지는 개당 800원으로 지난해보다 2배 올랐고, 바나나도 170원에서 240원으로 30%나 비싸졌다. 파리에서 유학 중이던 대학생 박비나(23)씨는 지난달 급히 귀국했다. 환율 때문에 도저히 유학비용을 감당할 수 없어서다. 학비와 생활비를 포함해 월 150만원이던 유학비는 최근 유로화 상승으로 200만원 이상으로 뛰었다. 박씨는 “파리의 현지 물가도 최근 많이 올라 지난 두 달간 빵만 먹고 지냈다.”며 “예정한 1년을 다 마치지 못해 아쉽지만 부모님께 더는 부담을 드릴 수 없었다.”고 말했다. 최재헌기자 goseoul@seoul.co.kr
  • 한·일 본선 결승가면 최다 5차례 맞대결

    2006년 제1회 WBC 1·2라운드에서 한국은 숙적 일본에 각 3-2, 2-1의 짜릿한 승리를 거뒀다. 완벽한 계투 작전에다 이진영(SK), 박진만(삼성) 등의 ‘명품 수비’ 덕분이었다. 프로야구 스타들이 총출동한 국가대표팀 간의 맞대결이었기에 ‘야구는 일본이 한 수 위’란 고정관념을 품은 일본인들에게 큰 충격을 안겼다. 하지만 이상한 대진방식 탓에 한국은 같은 조의 일본과 준결승에서 또 만났고, 결국 0-6으로 졌다.그렇다면 2회 대회에선 몇 번이나 일본을 상대하게 될까. 이론적으론 5번까지 가능하다. 이번 대회에 첫 도입된 ‘더블 일리미네이션(이중 패자부활전)’ 제도 때문. 한국이 도쿄돔에서 열리는 1라운드 첫 경기(6일)에서 타이완을 누르고, 일본도 예상대로 중국을 꺾을 경우 한·일전은 7일 열린다. 양국 가운데 패한 국가가 패자부활전에서 승리할 경우 9일 1라운드 1·2위 결정전에서 다시 한·일전이 벌어진다.샌디에이고 펫코파크에서 열리는 2라운드에서 한국과 일본은 같은 조에 편성된다. B조(호주·쿠바·멕시코·남아공) 예선 통과팀과 1라운드에서와 똑같은 방식으로 우열을 가리게 된다. 최대 2번까지 맞대결이 가능한 셈. 지난 대회의 폐단을 막기 위해 4강전은 크로스 토너먼트로 바뀐 덕분에 일본을 피할 수 있다. 한·일 두 나라가 나란히 결승에 오를 경우 LA 다저스타디움에서 최후의 일전을 펼치게 된다.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 “아직도 日제삿밥 먹는 아버지…”

    “아직도 日제삿밥 먹는 아버지…”

    “억울하게 일제의 제삿밥을 먹고 계신 아버지 넋의 한을 언제나 풀어드릴 수 있을지….” 태평양전쟁피해자보상추진협의회 공동대표인 이희자(66)씨는 지난 24일 일본 도쿄 지방법원 원고석에서 결국 눈시울을 붉혔다. 태평양전쟁 한국 유족 252명을 대표해 일본 정부를 상대로 ‘합사취하, 유골반환, 손해배상청구’ 상고심 최후 진술을 한 자리에서였다. 할머니 인생에서 마지막이 될지 모르는 최후의 호소였다. ‘일본 정부는 더 이상 책임이 없다.’는 분위기의 싸늘한 항소심에서 기댈 건 ‘인륜’밖에 없었다. “아버지 자식으로 부끄럽지 않은 딸이 되는 게 제 인생에 남은 과제고 소원입니다. 바로 제 아버지 이름을 야스쿠니 신사에서 빼는 것입니다.” 일제시대 강제징용된 뒤 생사여부도 끊어진 아버지를 찾아 헤맨 지 올해로 20년째. 이씨는 1997년에야 중국 광시성 유장(柳江)현 전투 중 사망한 아버지 이사현씨가 야스쿠니 신사에 합장돼 있다는 청천벽력 같은 사실을 알아냈다. 2002년 소송을 시작했지만 2006년 5월 재판부는 이유 없다며 기각했다. 야스쿠니 신사에는 240여만명의 일본인 이외에 2만 1000여명으로 추정되는 한국인 위패가 모셔져 있다. 그러나 전쟁이 끝난 뒤 일본은 유족들에게 사망통지를 하거나 위패 봉안 사실을 알린 적이 없다. 생존자 중 엉뚱하게 합사돼 있는 이들 숫자는 파악조차 되지 않는다. 일본 정부는 여전히 합사는 합당한 의무였다고 주장한다. 이씨가 그동안 합사 철폐를 위해 현해탄을 오간 횟수만 90여차례. 3·1운동 90주년을 맞는 올해지만 애끓는 심정은 여전하다. 그는 “금전적 보상이 중요한 게 아니다.”고 했다. “일본 정부는 1965년 한·일 협정때 보상은 모두 끝났다고 외면하지만 유족들 입장에선 절대로 끝난 일이 아니다.”고 말했다. “생사여부도 알려주지 않아 피해자들이 일일이 관련 기록을 찾아 발로 뛰었어요. 진상규명특별법이 만들어지기 전까진 한국정부에서도 모른다고 했고…제사도 한번 제대로 못 차려 드렸는데 후손들에게 어떻게 끝난 일입니까.” 이씨의 목소리는 절절했다. 그는 2001년 8월14일 아버지 이름을 위패에서 빼달라는 요청서를 들고 야스쿠니 신사를 방문했던 날을 죽을 때까지 잊을 수 없다. 정문을 지키고 있던 일본인들이 “더러운 조센징, 들어오지도 말라. 꼴도 보기 싫으니 물러가라.”며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고 들어가지 못하도록 했다. 이씨는 그때 더욱 맘을 굳혔다. “야스쿠니 신사는 A급 전범 등 일본 군국주의의 혼이 모셔진 곳입니다. 일제 피해자인 아버지 넋을 그런 곳에서 쉬시게 할 수는 없습니다.” 신사측이 전몰자들의 개별명부(제신명부)에서 한국인들의 이름을 삭제할 것 같다는 소식이 들려오지만 이씨는 단호하다. “신사 안에 있는 위패(영새부)에 새겨진 아버지 이름이 완전히 지워지는 날까지 싸움을 계속할 겁니다.” 이재연기자 oscal@seoul.co.kr [서울신문 다른기사 보러가기] 전여옥 폭행사태 진짜 테러맞나 휴가 내놓고 ‘출근하시는’ 우리 부장님은 7억에 살수있는 세계의 집 TV 없이도 vs TV가 없으면 미친 금값, 팔땐 왜 이리 쌀까
  • [만나고 싶었습니다] ‘조선왕조 500년’ 극작가 신봉승

    [만나고 싶었습니다] ‘조선왕조 500년’ 극작가 신봉승

    “역사를 관장하는 신이 있다고 믿습니다. 역사는 언제나 나의 감시자였고, 나는 그 역사의 섭리 안에서 살아왔지요. 역사와 벗하며 살아온 지난 40년은 나의 존재이유인 사극을 쓰기 위한 지적 몸부림의 세월이었습니다.” 1980년대 만 8년 동안 MBC TV를 통해 방영된 대하사극 ‘조선왕조 500년’을 기억하는 이들에게 신봉승이란 이름은 결코 낯설지 않다. 1972년 ‘사모곡’을 시작으로 정통 사극에 천착해온 그는 ‘연화’ ‘인목대비’ ‘임금님의 첫사랑’ ‘왕조의 세월’ ‘한명회’ 등 숱한 히트작을 내며 역사드라마의 현장을 지켜온 한국의 대표 극작가.올해로 77세, 붓을 드는 데 지쳤을 법한 나이지만 1975년에 발표한 ‘임금님의 첫사랑’을 새롭게 고쳐 쓰며 10여년 만에 우리 곁으로 다시 돌아왔다. 내년 초 SBS에서 방영될 이 작품은 벌써부터 사극 팬들의 기대를 모으고 있다. 지난 주말 서울 인사동 한국역사문학연구소에서 그를 만났다. 그는 사극 얘기뿐 아니라 최근 공개된 정조 어찰의 의미, 문단 데뷔시절 일화, 정치권과의 인연 등 다양한 화제를 예의 청산유수 같은 말솜씨로 풀어놨다. 연구소에 들어서니 책꽂이 한 편에 가득 꽂힌 ‘조선왕조실록’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오늘의 작가 신봉승을 만든 건 8할이 조선왕조실록이다. “조선왕조실록 국역본은 모두 413권입니다. 하루 100페이지씩 읽어도 꼬박 4년이 걸려요. 웬만해선 진력이 나 그거 다 못 읽습니다. 나는 40년 세월을 그걸 붙들고 살았어요. 그러지 않고는 사극을 쓸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죠.” 총 48권의 대하소설 ‘조선왕조실록 5백년’도 펴낸 역사마니아인 그는 요즘 사극작가들에게 할 말이 많은 듯했다. “사극을 잘쓰는 비결은 실록을 통독하는 것입니다. 자기 작품에서 다루는 시대만 골라 읽으면 안 돼요. 적어도 앞뒤 30년의 역사는 드라마와 직접 관련이 없어도 반드시 찾아 읽어야 합니다. 그래야 인물에 대한 온전한 해석이 가능하죠. 예컨대 양반집 첩의 소생으로만 알았던 조선 성종 때 권신 유자광이 경복궁 문지기인 갑사(甲士) 벼슬을 했다는 사실은 그가 죽고 30년 뒤에 나온 얘기입니다.” ●역사의식 심어주는 게 사극 임무 사극이든 역사소설이든 그는 철저한 독서와 고증을 통한 ‘정통’ 역사물을 고집한다. 그러면 이번에 새롭게 선보이는 ‘임금님의 첫사랑’은 어떤 모습일까. 이전 작품과 마찬가지로 강화도령 철종의 사랑을 다룬다. 하지만 철종은 더이상 땔나무나 하는 ‘바보’ 도령이 아니라 사뭇 똑똑한, 갈등하는 임금으로 등장한다. 철종 때 좌의정을 지낸 심암(心庵) 조두순이 쓴 철종 행장기에 나오는 ‘성군의 자질이 보였다.’라는 대목을 참고했다. “더벅머리 총각이 14년 동안이나 임금 자리에 있었다는 것은 세계사에서 유례를 찾기 어려운 일입니다. 무엇이 그것을 가능하게 했을까요. 이 작품의 극적 재미는 여기서 출발합니다.” 사극이든 역사소설이든 그가 작품을 통해 이루고자 하는 것은 대중에게 역사의식을 불어넣는 일이다. 그것이야말로 작가, 특히 역사작가의 몫이라고 굳게 믿는다. 그런 맥락에서 그가 주목하는 작가가 일본의 시바 료타로다. “일본이 시바 료타로 같은 역사소설가를 갖고 있다는 것은 큰 축복입니다. 그는 전후 실의에 빠진 일본인들에게 확고한 역사의식과 민족적 긍지를 심어줬어요. ‘료마가 간다’라는 그의 소설 한 권이 오늘의 일본을 만들었다고 하면 과장일까요. 그가 소설을 통해 부각시킨 메이지 유신의 영웅 사카모토 료마는 지금도 일본인들이 가장 존경하는 인물로 뽑히지요. 우리에게도 그런 의식 있는 역사작가가 있어야 합니다.” 그는 자신이 한국과 일본에서 종종 ‘한국의 시바 료타로’로 불리는 게 싫지 않은 표정이다. 조선왕조사에 정통한 그에게 정조 어찰의 의미에 대해 물었다. 기존의 ‘정조 독살설’은 이제 폐기돼야 하는 것 아니냐는 질문에 그는 “정조가 반대세력인 노론 벽파 영수 심환지에게 수백통의 어찰을 내렸다고 해서 둘 사이가 가까웠고, 따라서 정조 독살설의 배후가 심환지일 수 없다는 논리는 지나친 비약”이라며 “임금의 독살 문제는 속성상 언제나 설(說)로 끝날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했다. 정조 어찰을 통해 개혁군주 정조의 인간적 면모를 알고 시대사 자료를 얻게 된 데서 의미를 찾아야지 독살설 논란은 본질을 벗어난 것이라는 얘기다. 작가 신봉승은 스스로 “문자로 하는 장르는 모두 섭렵했다.”고 말한다. 시인, 문학평론가, 소설가, 극작가 등 가히 르네상스맨이라 할 만하다. 그는 1957년 청마 유치환의 추천을 받아 ‘현대문학’에 ‘이슬’이란 시를 발표하며 문단에 나왔다. 시로 출발해 역사드라마로 입신하기까지 그의 삶은 곧 우리 문학사의 축도다. “데뷔 당시 우리 문단엔 100명 정도의 문인밖에 없었어요. 청마 선생은 추천이 박하기로 유명했습니다. ‘추천받을 만하지만 당신의 분발을 위해 추천하지 않는다.’는 식이었죠. 미당 서정주 선생의 추천을 받은 사람은 100명이 넘었지만 청마의 추천을 받은 이는 10여명에 불과했어요.” 그 뒤 그가 평생 문학스승으로 삼은 사람은 편운(片雲) 조병화 시인이다. 조 시인이 중앙대에서 경희대 교수로 자리를 옮기자 학생 신봉승 또한 잘 다니던 중앙대를 떠나 경희대 국문과로 편입, 사승(師承)관계를 분명히 하기도 했다. ●‘크리스마스 카고’ 영화화되길… 온갖 장르를 넘나들며 활동해온 그이지만 다시 돌이키고 싶지 않은 기억도 있다. 1970년 ‘해변의 정사’라는 영화의 메가폰을 잡았던 일이다. “윤정희·남성우 주연의 멜로영화였지요. 시나리오 창작 경험만 믿고 불쑥 남의 세계에 뛰어들었던 것입니다. 참패했지요. 그러곤 미련 없이 돌아섰습니다.” 하지만 지금도 꼭 영화로 만들었으면 하는 작품이 있다. 물론 감독이 아니라 시나리오 작가로서다. “마지막으로 쓴 ‘크리스마스 카고(cargo)’라는 시나리오가 있습니다. 신상옥 감독이 연출을 맡기로 했는데 갑자기 타계하는 바람에 영화가 되지 못했어요. 1·4후퇴가 한창인 크리스마스 전날, 10만명의 민간인을 배에 태우고 흥남 부두를 떠나면서 벌어지는 극적인 상황을 다룬 작품입니다.” 재주 많은 사람에게 뛰어난 재주 없다는 서양속담이 있다. 하지만 작가 신봉승에게 그 말은 공허하게 들린다. 그는 드라마와 소설, 시나리오에서 남다른 재능을 발휘해 모두 일가를 이뤘다. 그 중에서도 특히 그에게 의미있는 것은 역사드라마다. 젊은 시절 연비의식을 치르고 법련거사(法蓮居士)라는 법명까지 받은 불교신자이지만 그는 “나의 종교는 역사다.”라고 강조한다. ●“남의 밭에서 노는 건 위험” 선 굵은 보스 기질과 해박한 역사지식으로 늘 주위를 압도하는 그는 문화계 최고의 마당발이다. 문화 쪽뿐 아니라 정·관계, 재계, 종교계까지 그의 그림자가 드리워지지 않은 곳이 없다. 그러나 “역사를 알기에 절대로 발을 담그지 않은” 곳이 있다. 정치다. “나는 아마 현대그룹 고(故) 정주영 회장의 ‘사업가 아닌 유일한’ 친구였을 겁니다. 정 회장이 국민당 대통령 후보로 나갈 때 선거캠프 대변인을 맡아달라고 그렇게 간청했는데, 나는 출마하지 말라고 그렇게 말렸으니…. 한운사 선생을 비롯해 당시 한 가락 하는 극작가들이 모두 국민당 발기인 목록에 이름을 올렸지요. 나는 그것도 거부했습니다. 그 대신 내가 추천한 탤런트 K씨, C씨 등은 나중에 국회의원이 됐지요.” “남의 밭에서 노는 건 위험한 일”이라는 것이 그때나 지금이나 그의 변함없는 소신이다. ●“친구여, 심려치 말게…” 희수(喜壽)의 나이임에도 여전히 몸도 마음도 강건한 노()작가. 대한민국예술원 회원인 그는 지금도 한달에 10여차례 대중강연에 나서고, 추계예술대 영상문예대학원 석좌교수로 학생들을 가르친다. “이 나이에 내가 강의하면 나 때문에 강의를 맡지 못하는 젊은이가 하나 생기는 것입니다. 그래서 연전에 대학 강의를 그만두겠다고 했어요. 그런데 학교측에서 오히려 ‘석좌’라는 타이틀까지 주며 부탁해 아직 선생 노릇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날로 이악해져 가는 세상이기에 그 따뜻한 배려의 마음씨가 더욱 아름답게 다가온다. 작가는 인터뷰를 마친 기자에게 얼마 전에 쓴 것이라며 ‘요즘 형편’이란 시 한 구절을 들려줬다. “친구여, 심려치 말게/목조이듯 밀려드는/숨가쁜 약속은/미움을 받더라도 거절하기로 했네/설혹, 어쩌다가 가게 된/호화로운 연석이라도/사진 찍히는 헤드 테이블 근처에는/얼씬거리지 않기로 했다네” 김종면 편집위원 jmkim@seoul.co.kr ●극작가 신봉승 약력 ▲1933년 강원도 강릉 출생 ▲강릉사범·경희대 국문과 및 동대학원 졸업 ▲한국시나리오작가협회 회장,대종상심사위원장,공연윤리위원회 부위원장 역임 ▲한국방송대상,서울시문화상,대한민국예술원상 등 수상 ▲저서:‘조선왕조 5백년’‘한명회’‘왕건’‘이동인의 나라’등 소설과 ‘직언’‘신봉승의 조선사 나들이’‘국보가 된 조선 막사발’‘조선의 마음’등 역사에세이 외 다수 ▲현재 대한민국예술원 회원,추계예술대 영상문예대학원 석좌교수,한국역사문학연구소장 ‘조선왕조실록’이라는 역사의 대하(大河)에 빠져 지내는 신봉승씨. 그는 “‘역사를’ 배우기보다 ‘역사에서’ 배워야 한다.”고 강조한다. 류재림기자 jawoolim@seoul.co.kr
  • “日·동남아 관광객 유치로 승부수”

    신세계가 다음달 3일 부산 센텀시티에서 국내 최대 규모의 종합쇼핑몰을 오픈한다. 롯데의 텃밭인 부산에서 한번도 점포를 운영해 보지 않은 신세계로서는 새로운 도전이다. 신세계 구학서 부회장은 26일 부산 웨스틴조선호텔에서 기자간담회를 갖고 “부산 신세계 센텀시티가 부산뿐 아니라 영남·수도권, 멀리는 일본·동남아 관광객을 끌어들이는 랜드마크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한다.”며 “부산 경제 활성화에 기폭제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신세계 센텀시티는 영업장 면적 12만 6447㎡로 개발계획 발표 당시부터 국내 최대 규모로 주목을 받았다. 백화점 뿐 아니라 온천·아이스링크·극장·골프연습장 등 레저시설을 갖췄다. 부산에서는 최초의 복합 시설 쇼핑공간이다. 건축 설계와 인테리어·외부 표지물 디자인까지 미국과 일본의 전문가 손을 빌렸다. 홍콩 하버시티, 일본 라라포트·롯폰기힐스 등 유명 쇼핑몰을 벤치마킹했다. 투자금액이 5980억원에 이른다. 유통업계는 오래 전부터 경쟁업체 롯데의 텃밭인 부산에서 신세계가 얼마나 선전할 수 있을지에 관심이 모아졌다. 롯데는 부산에 서면점 등 3개 점포를 운영하고 있다. 롯데 센텀시티점은 신세계 센텀시티와 1m도 안 되는 거리에 붙어 있다. 구 부회장은 롯데와의 한판 승부에 대해 “경쟁사를 의식하지 않을 순 없지만, 싸워서 이기는 게 아니라 새로운 시장을 얼마나 더 창출하느냐가 중요하다.”면서 정면대결 구도를 애써 피했다. 그는 “부산 고객은 50% 정도를 생각하고 있다. 일본이나 주변지역 고객의 유치 여부가 성공의 관건이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신세계는 광고 물량의 40%를 울산·창원 등으로 배분하고, 일본 규슈에도 대형 광고물을 설치키로 했다. 구 부회장은 “백화점에 온천을 개발한 것도 일본 관광객을 겨냥한 것”이라면서 “울산~해운대 고속도로와 거제~부산간 거가대교가 완성되면 1시간내 이동이 가능해져 고객 유입 효과는 더 클 것으로 기대한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소비가 꽁꽁 얼어붙은 현재 상황에서 어떻게 소비자들의 지갑을 열게 할지는 신세계가 풀어야 할 숙제다. 바로 옆 롯데백화점의 연간 매출액이 겨우 2000억원 정도다. 구 부회장은 “올해 매출 4300억원, 내년에는 6000억원으로 손익분기점을 넘길 것”이라면서 “3년 안에 부산 1위 쇼핑몰로 키울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엔고 현상으로 일본인 관광객 유치도 순조로울 것”이라면서 자신감을 내비쳤다. 부산 윤설영기자 snow0@seoul.co.kr
  • 간도 독립운동가 180명 ‘햇빛’

    간도 독립운동가 180명 ‘햇빛’

    일제강점기 간도 지역 독립운동가 201명 각각의 활동과 추방 당시 이들의 미공개 사진 등이 담긴 재류(체류)금지 처분 문서들이 발굴됐다. 대한매일신보를 창간하고 신흥무관학교를 세워 독립군 양성에 힘쓴 양기탁 선생 등 이미 독립유공자로 서훈된 21명에 대한 알려지지 않은 행적을 포함, 역사 뒤편에서 묻혀 있던 무명(無名) 독립운동가 180명의 활동 내역, 직업, 검거 당시 연령 등도 새로 확인됐다. 국가보훈처는 26일 당시 중국에 있던 일본영사관들이 작성한 ‘본방인 재류금지 관계잡건(本邦人在留禁止關係雜件)’ 4000여장을 수집·분석 중이라고 밝혔다. 광복 이후 60여년만에 발굴된 이번 문건은 일본 교토(京都)대 이승엽 교수가 일본 외무성 외교사료관에서 찾아 지난해 12월 국가보훈처에 전달했다. ‘본방인’은 일본인을 지칭하며 재류 금지는 일제강점기 특정 지역에 거주하지 못하게 추방하는 행정처분이다. 중국에 사는 일본인을 통제하고자 도입됐지만 1905년 을사늑약 이후에는 중국, 특히 간도(間島), 길림(吉林) 등 동만주 지역에 있던 조선 독립운동가들을 추방하는 제도로 악용됐다. 무명 독립운동가들의 직업은 초등학교 교감부터 교사, 농민, 품팔이까지 다양했다. 연령대도 10대부터 60대까지 두루 참여했던 것으로 파악됐다. 간도 지역에서 독립기성회로 활동했던 최우화(체포 당시 36세·약종상), 이홍준(29·지나관립여학교 교사), 김하수(60·서당교사) 등은 1919년 4월 민심 소요 우려를 이유로 일본 간도총영사가 재류금지 처분을 내렸다. 또 1921년 11월 만세시위 운동을 계획한 천도교청년동맹회 회원 8명도 체포돼 1922년 1월13일부터 각각 3년동안 재류금지 처분을 받았다. 양기탁 선생이 일제 천진영사관으로부터 1918년 12월11일부터 3년간 재류금지 처분을 받았다는 사실도 새로 알려졌다. 처분 사유로는 양 선생이 만주지역 조선인의 독립운동 기반 조성을 위해 한족생계회 결성을 추진했으며 중국 혁명당원들과 길림, 장춘, 상해 등에서 동지를 규합했다고 제시돼 있다. 1910년대 간도 지역에서의 양 선생의 구체적 활동 내역을 파악할 단초가 된다. 발굴 문서에는 일제 영사경찰이 찍은 인물 사진 174명분이 포함돼 있다. 이승엽 교수는 본지와 국제전화 통화에서 “재판기록이 소실됐거나 판결문은 있지만 조서가 남아 있지 않아 활동 상황을 확인할 길이 없었던 간도 지역 독립운동가들과 한인들의 활동상도 이 기록을 토대로 보다 소상하게 확인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안동환기자 ipsofacto@seoul.co.kr
  • ‘시베리아 삭풍회’ 아물지 않는 상처

    ‘시베리아 삭풍회’ 아물지 않는 상처

    “일본으로, 소련으로 끌려다니며 죽도록 고생만 하다 5년 만에 돌아왔는데…. 양친이 다 돌아가셨더라고.” 백발이 성성한 황희성(85)옹은 65년 전 1944년 1월을 잊지 못한다. 전라북도 완주군 삼례읍 출신인 황씨는 초등학교 졸업 후 부모님의 농사를 거들던 열여덟살 청년이었다. 그해 강제징집 대상이 됐다는 통지를 받은 황옹은 “이듬해까지 만주와 쿠릴열도에서 철도관리와 섬 경비업무를 하면서 보냈제. 그러다 8월15일 일왕이 항복했다면서 우리를 배에 태우더라고. 귀향길이라 철석같이 믿고 올라탔건만….” 그러나 그를 비롯한 전쟁포로들이 도착한 곳은 고향이 아닌 차디찬 바람이 부는 소련 하바롭스크항이었다. 그후 4년간 시베리아 밀공장에서 돈 한 푼 받지 못한 채 강제노역에 시달렸다. 49년 옛 소련이 한반도에서 철수하면서 고국 땅을 밟았지만 고난은 계속됐다. 부모님은 이미 세상을 떴고 고향 사람들은 “일본군에 협력한 친일파”, “소련에 머물렀던 빨갱이”라며 손가락질했다. 결국 고향을 떠나 전국을 전전하며 평생을 연탄장수로 보냈다. 황옹은 “일생이 끔찍혀. 그렇다고 국가가 변변하게 보상해 준 것도 없어.”라며 눈물을 삼켰다. 황옹처럼 일본과 옛 소련으로부터 강제징용과 강제노역 등 이중 착취에 시달린 ‘시베리아 억류 조선인’은 1만여명. 60여년이 지난 지금 남한 내 생존자는 고작 18명뿐이다. 당초 남한 생존자 56명은 91년 ‘시베리아 삭풍회’라는 단체를 만들고 억울한 세월에 대한 보상을 요구했다. 2003년 일본 정부를 상대로 도쿄지방재판소에 미지불 임금반환 및 손해배상소송을 냈지만 기각됐다. 65년 체결된 한·일청구권협정으로 보상이 이뤄졌다는 게 이유였다. 반면 일본은 삭풍회 회원들과 동일한 피해를 당한 일본인 시베리아 억류자 지원을 위한 ‘전후 강제억류자 특별 조치법안’을 마련해 국회에 상정을 준비 중이다. 그러나 일본 정부는 한국인 피해자들에 대해서는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 같은 전범국인 독일이 2007년 강제노역자 167만명에게 모두 43억 7000만유로(약 5조 4250억원)의 보상을 완료한 것과 대비된다. 우리 정부 역시 냉대로 일관했다. 문민정부 이후 여러 차례 문제제기를 했지만 보상은 없었다. 지난해 일제 강점하 강제동원 피해진상규명위원회가 생존자들에게 각각 80만원을 지급한 것이 전부다. 삭풍회 이병주(84) 회장은 “보상은커녕 숨진 원혼을 달랠 위령탑 하나 세우지 못한 형편”이라고 말했다. 생존자들은 현재 미지불 임금반환 항소 소송을 진행 중이지만 힘이 부친다. 모두 80세를 넘긴 생존자들에게 시간은 얼마 남지 않았다. 이 회장은 “피해자들이 한을 풀고 눈감는 게 간절한 소원”이라고 하소연했다. 삭풍회와 민족문제연구소는 27일부터 다음달 15일까지 시베리아 억류자 귀환 60주년 기념 전시회를 국회도서관 2층에서 연다. 이번 전시회에는 시베리아 억류 당시의 상황을 담은 자료 75여점이 전시된다. 유대근기자 dynamic@seoul.co.kr ■용어클릭 ●시베리아 삭풍회 일제의 조선인 징병 방침에 따라 1944~45년 강제동원돼 만주(중국의 동북 3성) 북부나 쿠릴열도에 배치됐다가 소련군에 일본군 포로로 잡혀 3~4년씩 억류됐던 사람들의 모임. 1990년 12월 노태우-고르바초프의 샌프란시스코 정상회담을 거쳐 그해 9월 한국과 소련이 정식수교를 하자 6명이 모임을 결성했다.
  • [열린세상] 힐러리 순방외교가 남긴 것/이원덕 국민대 국제학부 교수

    [열린세상] 힐러리 순방외교가 남긴 것/이원덕 국민대 국제학부 교수

    힐러리 클린턴 미 국무장관이 일본, 인도네시아, 한국에 이어 중국을 마지막으로 동아시아 순방을 끝냈다. 그는 분 단위로 짜인 빡빡한 일정을 열정적으로 소화하며 오바마 정부의 화려한 외교수장으로서 국제무대 데뷔를 성공적으로 마쳤다. 대통령 부인과 상원의원, 민주당 대선후보를 거치면서 다져진 지도력과 카리스마를 맘껏 과시하며 막강한 마담 세크리터리의 등장을 동아시아 전역에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 우선 그는 도쿄 방문을 통해 일본인들에게 세 가지의 분명한 메시지를 던졌다. 첫째, 미국의 아시아 태평양 외교의 초석은 미·일 동맹이며 일본이야말로 미국의 최대 아시아 우방이라는 점을 밝혔다. 둘째, 그는 대북 피랍자 가족과 만나 납치문제에 대해 비상한 관심을 표명함으로써 일본 국민의 정서에 다가가는 모습을 연출했다. 향후 미국의 대북정책이 핵, 미사일 문제와 더불어 납치문제를 중시하겠다는 자세를 예고한 것이다. 셋째, 그는 아소 다로 총리와 더불어 민주당의 오자와 이치로 대표와 회담을 가짐으로써 일본의 정권교체 가능성을 포석에 둔 과감한 외교적 퍼포먼스를 보였다. 민주당으로 정권이 바뀌어도 미·일 관계는 걱정 없다는 메시지를 일본 국민에게 강력하게 주고 싶었던 것으로 해석된다. 힐러리의 서울 방문은 20시간 남짓의 짧은 일정이었음에도 불구, 강렬한 메시지를 남겼다. 주목되는 점은 그가 북한의 미사일 발사 등 도발적인 움직임에 대해 강력한 경고를 발함과 동시에 완전하고 검증 가능한 방식으로 북한의 비핵화를 추진하겠다는 결의를 밝힌 것이다. 또한 오바마 정부는 6자회담과 양자 대화를 통해 북한에 대한 핵 포기 압력을 결코 포기하지 않을 것이며 동시에 북한이 핵을 포기할 경우에는 대북관계를 정상화하고 국제적 대북지원 체계를 가동할 것이라는 것도 분명히 했다. 북한과의 대화를 위해 보즈워스 전 주한대사를 북한 특사로 임명하겠다는 뜻도 피력했다. 더불어 힐러리 장관은 북한의 이른바 ‘통미봉남’ 전술에 대해서도 쐐기를 박았다. 한·미는 “북한 문제에서 한마음”이라고 강조하고 “북한이 한국과의 대화를 거부하고 한국을 비난하는 한 미국과 다른 형태의 관계를 얻을 수 없을 것”이라는 점을 분명하게 언명했다. 그가 던진 메시지는 북한이 진정으로 워싱턴으로 오고 싶으면 핵을 포기하고 서울을 경유해 오라는 것이다. 이로써 오바마 신행정부의 한반도 정책 기조는 어느 정도 윤곽을 드러냈다고 볼 수 있다. 이어서 힐러리는 베이징 방문에서 미·중 양국이 국제사회에서 영향력이 가장 큰 국가이자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양자관계라는 점을 확인하고 글로벌 금융위기와 기후변화 등의 세계적 이슈에 양국의 긴밀한 협력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오바마 행정부로서는 2조달러의 외화보유국이고 무역·투자 면에서 슈퍼파워이며 동아시아의 안전보장 문제에도 가장 큰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 중국과의 협조는 필수적일 수밖에 없다는 점을 분명히 한 것이다. 힐러리 장관이 동아시아 지역을 첫 해외 방문지로 선택한 것은 미국 외교사 맥락에서 보더라도 그 자체가 매우 이례적인 결단이라고 할 수 있다. 오마바 정부가 이 지역과의 관계를 얼마나 중요하게 보고 있는지를 말해 주는 징표로 해석된다. 미국발 경제위기의 돌파와 반테러, 비핵확산, 기후 변화, 신성장 동력의 창출 등 미국이 당면한 글로벌 이슈를 해결하기 위해 동아시아 국가와의 협조야말로 핵심적인 관건인 것이다. 그는 미국 대외정책의 기조로서 하드 파워와 소프트 파워의 적절하고 균형 있는 사용을 추구하는 이른바 스마트 파워론을 제창한 바 있다. 그가 추구하는 스마트 파워 외교가 구체적으로 어떻게 구현될지는 아직 더 두고 볼 일이지만 이번 동아시아 순방외교는 한·중·일 3국의 국내정세와 북한 핵 문제를 포함한 동북아 국제정치 지형에 적지 않은 파장과 영향을 미쳤다는 점은 분명하다. 이원덕 국민대 국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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