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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부산 실내사격장 화재] 순식간에 유독성가스 질식 추정

    [부산 실내사격장 화재] 순식간에 유독성가스 질식 추정

    14일 일본인 관광객 등 10명이 숨진 부산 중구 신창동 실내 실탄사격연습장 화재는 ‘펑’ 소리와 함께 불이 시작돼 짙은 검은색 연기가 순식간에 번졌다. ●유독성 연기 확산 피해 키워 소방관과 목격자들은 불이 급격히 번지면서 다량의 짙은 유독가스가 순식간에 사격장 내부를 뒤덮어 사람들이 연기에 질식해 쓰러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날 불은 오후 2시25분쯤 사격연습장 내 휴게실소파에서 시작된 것으로 소방당국은 추정하고 있다. 사격장은 2층 출입구 앞에 화장실과 휴게실이 있고 휴게실 맞은편에 사격장과 탄약고가 붙어 있는 구조다. 숨진 채 발견된 7명은 모두 휴게실에서 발견됐다. 불이 나면서 많은 양의 짙은 연기가 발생하면서 사격장 휴게실에 있던 사망자들이 출입구를 찾지 못했을 개연성이 높다. 연기가 많이 났던 이유는 사격장 실내가 나무 합판으로 돼 있고 휴게실에 있던 소파가 불에 탔기 때문이다. ●‘펑’ 소리와 함께 연기와 불길 목격자 김미자(60·여)씨는 “2층 사격장 아래 1층 출입구에 다른 여성 2명과 함께 앉아 있는데 갑자기 ‘펑’하는 소리가 났고 곧이어 거센 바람소리가 났다.”면서 “2층 사격장 출입구 쪽을 바라봤더니 출입구 유리창이 금방이라도 터질 듯이 건물 바깥쪽으로 휘어져 있었다.”고 사고 당시를 전했다. 그는 “곧바로 시커먼 연기가 1층 출입구 쪽으로 빠르게 밀려 왔고, 순간 앞을 분간할 수 없을 정도로 매연이 뿜어져 나와 숨을 못 쉴 정도였다.”면서 “옷이 불에 타고 찢긴 일본인이 나오기에 ‘괜찮냐.’고 물었더니 바닥에 엎드린 채 아무 말이 없었다.”고 덧붙였다. ●사격장 일본 관광객 주요 코스 피해 일본인 관광객들은 후쿠오카 하카다항에서 선박편으로 이날 오전 11시25분 부산항에 도착한 뒤 인근 국제시장에서 쇼핑 겸 관광을 하고 곧바로 실탄사격장을 찾았다. 일본인 관광가이드 등에 따르면 실탄사격장은 쇼핑과 함께 부산을 찾는 일본인 관광객들의 주요 관광코스다. 일본 남성들은 군에 입대해 실제 사격을 경험하는 한국 남성들과 달리 사격을 접할 기회가 거의 없다. 뿐만 아니라 일본에는 아직 실탄사격장이 없다. 따라서 실탄사격장은 총기에 대한 호기심을 충족시키고,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일석이조의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1~2년 전부터 부산을 찾는 일본인 관광객들 사이에 꼭 찾고 싶어하는 코스로 꼽히고 있다. ●일본인 유가족 부산 도착 문제의 실탄사격장은 자체 대인 보험을 들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부산 중부경찰서에 따르면 화재가 난 건물은 국내 모 보험사에 최고 6억원짜리 보험에 가입돼 있지만, 건물 피해만 해당할 뿐 대인보상은 어려운 것으로 파악됐다. 이에 따라 사망자 유족과 부상자들은 건물주와 실탄사격장 주인을 대상으로 별도의 보상협의를 진행해야 할 것으로 예상된다. 한편 이번 화재로 사망하거나 중상을 입은 일본인 관광객들의 유가족 등 42명이 쾌속선을 타고 15일 오후 부산에 도착했다. 이들은 도착 직후 부산시 측에서 마련한 버스 등으로 시신이 안치된 양산부산대병원(시신 7구)과 부산대병원(시신 3구), 중화상자들이 입원 중인 하나병원 등을 방문했다. 부산 김정한 박정훈기자 jhp@seoul.co.kr
  • 부산 실탄사격장 화재… 일본인 8명등 10명 사망

    지난 14일 발생한 부산 신창동 실내 실탄사격장 화재는 휴게실 소파에서 불이 붙기 시작해 내부로 삽시간에 번진 것으로 추정되지만 경찰은 발화 원인을 찾지 못해 정확한 사고원인 규명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사격장 화재를 수사 중인 부산 중부경찰서는 15일 “화재는 사격장 출입구 오른쪽 휴게실 소파에서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이갑형 부산 중부경찰서장은 이날 강희락 경찰청장이 참석한 가운데 브리핑을 갖고 “화재현장에 대해 1, 2차 감식을 벌였지만 정확한 화재 원인을 밝히진 못했다.”며 “사격장 실내에 설치된 CCTV 화면에도 화재원인을 밝혀줄 만한 장면은 없었다.”고 설명했다. 경찰은 사고 당시 사격장 내에 스프링클러가 설치돼 있었지만, 실제 작동은 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또 사고 현장에 설치됐던 8대의 CCTV 중 7대는 작동했으나 최초 발화지점으로 추정된 휴게실 소파를 비추는 CCTV는 고장난 상태였던 것으로 확인됐다. 이 서장은 “일본인 사망자에 대해서는 가족과의 DNA 조사로 신원을 최종 확인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에 앞서 지난 14일 오후 2시23분쯤 부산 신창동 ‘가나다라 실내 실탄사격장’에서 화재가 발생, 아라키 히데테루(36) 등 일본 관광객 8명과 한국인 가이드 이명숙(40·여)씨, 사격장 종업원 심길성(31)씨 등 10명이 숨지고, 하라다 요헤이(37) 등 일본인 3명과 종업원 등 6명이 중화상을 입고 인근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 정운찬 국무총리는 15일 시신이 안치된 양산부산대병원을 찾아 가족들을 위로하고 대책본부에 사고 수습에 만전을 기해줄 것을 당부했다. 일본의 주요 신문은 사격장 화재사고를 15일자 1면과 사회면 톱 기사로 다루는 등 비상한 관심을 보였다. 언론들은 대부분 화재가 발생한 부산 실내사격장의 안전 소홀과 화재 등에 대비한 방재 시설 미비가 참사를 불렀다고 보도했다. 아사히신문은 한국에서 사격장을 개설할 경우 엄격한 총기안전 관리와 방음시설을 하도록 규정돼 있으나 방재대책이 소홀한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고 전했다. 요미우리신문은 창이 1개도 없었으며 출입구는 비상구를 포함해 2개에 불과했다고 지적했다. 부산 김정한 박정훈기자 도쿄 박홍기특파원 jhp@seoul.co.kr
  • 오바마,日王에게 90도 각도로 인사 논란[동영상]

    오바마,日王에게 90도 각도로 인사 논란[동영상]

    ’미국의 새 대통령이 세계의 왕들 앞에 얼마나 더 고개를 숙여야 하나.” 15일부터 중국 방문에 들어간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일본 방문 마지막 일정으로 전날 아키히토(76) 일왕을 찾아 허리를 90도 가까이 숙여 인사하는 사진을 14일(현지시간) 게재한 로스앤젤레스 타임스가 던진 질문이다.일왕은 전통을 좇아 손만 맞잡은 채 약간 고개만 숙였을 뿐 답례로라도 허리를 숙이지 않았다. 신문은 2007년 딕 체니 부통령이 아키히토 일왕 관저를 찾았을 때 뻣뻣한 자세를 유지한 사진과 비교해보자고 했다.신아시아 정책을 표방하고 순방길에 오른 오바마 대통령으로선 많은 나이 든 일본인들이 여전히 존경을 표하는 일왕에게 고개를 숙임으로써 자신의 정책에 대한 지지를 끌어내고 싶어했을 것이라고 신문은 풀이했다. 하지만 일부 미국인들은 체니 전 부통령처럼 악수하는 것이 낫지 않느냐 생각할 것이라고 신문은 지적했다. 이런 모습은 오바마 대통령 부부가 영국 버킹엄궁을 방문했을 때 미셸 여사가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등에 손을 얹는 등 친근한 모습을 연출한 것과도 많이 다르다.더욱이 오바마 대통령은 사우디아라비아 국왕을 만났을 때 너무 허리를 숙여 인사하는 바람에 귀국한 뒤에도 한참 눈총을 산 바 있다. 미국인들은 특히나 아키히토 일왕의 아버지인 쇼와 일왕이 2차대전 종전 항복 선언을 할 때 더글라스 맥아더 장군 옆에 초라한 모습으로 서있던 사진을 기억하고 있어 더욱 감회가 새로울 것 같다. 신문은 민주당 출신 대통령이 등장하면 이런 모습이 연출됐다며 저자세 외교의 시발로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을 꼽았다.1994년 아키히토 일왕이 백악관을 예방했을 때 클린턴 대통령이 허리를 숙여 인사하자 언론이 일제히 과공은 비례 아니냐고 따지고 들었고 정부 관리들은 그리 볼 일이 아니라고 반박했다고 신문은 전했다. 미국 행정부 고위관리는 “오바마 대통령은 단지 외교적 의례(protocol)을 지켰을 뿐”이라며 “이 문제를 정치쟁점화하려는 사람들은 본질에서 한참 동떨어져 있는 것”이라고 비판했다.또 ”오바마 대통령이 일본에서 행한 연설과 이에 대한 반응, 또 (미.일 정상의) 양자회동 모습을 지켜본 사람들이라면 오바마 대통령이 미국의 위상을 끌어올렸다고 말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이번 방일은 중요한 시기에 이뤄진 훌륭한 방문이었다”고 반박했다. 인터넷서울신문 event@seoul.co.kr
  • [사설] 친일재산 반납과 일왕의 과거 망각 우려

    과거의 성찰과 반성없이 화해와 통합의 장밋빛 미래를 운운함은 어불성설이다. 화해와 통합에는 잘못된 과거사를 인정하고 수용하는 용기가 긴요하다. 그제 친일행위자 후손이 물려받은 재산을 국가에 반납했다는 친일반민족행위자재산조사위 발표가 있었다. 전날 아키히토 일왕은 즉위 20년 기념회견서 일본인들이 전쟁역사를 잊어 걱정이라 했다. 과거사 직시와 반성 차원의 도드라진 사건들이 아닐 수 없다.친일행위자의 재산환수는 2006년 특별법 제정 이후 3년여 계속되고 있는 사안이다. 친일파 114명의 재산에 대해 국가귀속 결정이 내려졌지만 후손들은 모두 60여건에 달하는 반대소송을 제기했다. 관련 소송은 갈수록 늘어 올해만도 26건이나 된다. 그런 상황에서 1905년 을사조약 당시 중추원 고문을 지낸 고희경의 후손이 토지 매각대금 4억 8000만원을 반납했다. 법적 분쟁을 벌이지 않고 친일재산을 국고에 자진 납부한 첫 사례이다. 현실적 이해에 얽매이지 않는 마음씀씀이가 단연 돋보인다.아키히토 일왕의 과거사 발언도 크게 주목된다. 아키히토 일왕은 과거 침략전쟁과 관련, 책임과 반성을 담아 ‘통석의 염’ ‘크나큰 고통’ ‘깊은 슬픔’의 말들을 남겨왔다. 일왕이 과거사의 직시를 거듭 당부한 것은 이런 언급의 연장선상이다. 하토야마 민주당 정권의 과거사 청산 의지와도 맞물리는 것이다. 일왕은 특히 전후 태어난 일본인들에게 제대로 역사를 전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고 한다.어두운 과거를 묻어둔 채 현실에 안주하면 더 큰 아픔과 비극을 부르기 마련이다. 화해와 통합을 위한 대국적 이해와 열린 자세가 절실하다. 고희경 후손의 용기 있는 결단이 확산되기를 기대한다. 친일인명사전 수록 인사를 둘러싼 논란도 그런 차원에서 수습해야 한다. 일왕의 예사롭지 않은 과거사 발언이 의미를 갖는 까닭이기도 하다. 이제는 말만의 청산이 아닌, 실천하는 청산이 이뤄져야 할 때이다.
  • 즉위20년 아키히토 일왕 “日 과거역사 망각해 걱정”

    │도쿄 박홍기특파원│아키히토(76) 일왕은 12일 열린 일본 정부 주최 즉위 20년 기념식에 앞서 11일 가진 기자회견에서 “일본이 과거의 역사를 잊고 있다는 것이 걱정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일본의 장래에 대한 우려가 있느냐.’는 질문에 “고령화 사회 및 경제상황이 악화하면서 과거 역사를 망각하고 있다.”며 일본인들 사이에서 과거 침략전쟁의 기억이 약해지는 것을 우려했다. 그러면서 “쇼와(昭和·1926~89) 60여년은 우리에게 여러가지 교훈을 줬다.”면서 “과거의 역사적 사실을 충분히 알고 미래를 준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회견은 기념식에서 연설을 생략하는 대신 이뤄졌다. 즉위 20년 동안 떠오르는 해외사건으로 ‘베를린 장벽 붕괴’를 꼽은 뒤 “그후 세계의 흐름은 유감스럽게도 평화를 추진하는 방향으로 나가지 않았다.”며 9·11테러, 이라크 전쟁, 아프가니스탄 전쟁 등을 거론했다. 국내 사건으로 6400명 이상이 희생된 1995년 한신대지진이라고 밝힌 뒤 “정말 참혹했다.”고 회고했다. 건강과 관련, “지금 (건강) 상황이라면 평소대로 (업무를) 계속하고 싶다.”고 말해 더 이상의 업무 경감책이 필요없다고 했다. hkpark@seoul.co.kr
  • 햇막걸리, 보졸레 누보 제쳤다

    햇막걸리, 보졸레 누보 제쳤다

    ‘햇막걸리’의 인기가 ‘햇와인’의 아성을 무너뜨렸다. 롯데백화점은 6~11일 배혜정누룩도감의 ‘가막2009’(1만원·375㎖)가 652병 예약판매됐다고 12일 밝혔다. 가막은 올해 가을에 추수한 햅쌀로 빚은 막걸리이다. 반면 올해 수확한 포도로 만든 프랑스산 보졸레누보의 경우 이 백화점이 지난달 26일부터 예약판매를 시작했지만, 11일까지 판매량이 320병에 그쳤다. 다른 백화점에서도 사정은 마찬가지이다. 6~10일 현대백화점에서 예약판매된 가막은 620병으로 보졸레누보 판매량 206병의 3배를 기록했다. 같은 기간 신세계백화점에서는 가막 햇막걸리 판매량이 1000병으로 보졸레 누보 판매량 200병을 압도했다. 일반 막걸리에 비해 고가인 햇막걸리 열풍은 젊은층과 일본인 관광객들이 주도하는 것으로 파악됐다. 현대백화점 김남희 주류 바이어는 “특히 유행에 민감한 압구정 본점에서 햇막걸리 판매량(307병)이 보졸레누보 판매량(50병)보다 6배 가까이 많았다.”면서 “트렌드에 민감한 20~30대 젊은 여성들이 보졸레누보를 사러 왔다가 햇막걸리를 대신 사가곤 한다.”고 전했다. 롯데백화점 주류CMD 안재호 과장은 “최근 막걸리가 주류업계 화두로 떠오른 가운데 햇막걸리가 일본인에게까지 관심을 얻고 있다.”고 말했다. 예상하지 못했던 막걸리의 선전에 고무된 백화점들은 대규모 행사 계획을 마련했다. 롯데백화점은 19~23일 본점에서 ‘막걸리 대전’을 열고 가막2009를 비롯해 참쌀이탁주·화요낙락 생막걸리·정헌배 인삼탁주 등 3종의 햇막걸리를 선보인다. 현대백화점은 지역 유명 막걸리 등 프리미엄급 막걸리 상품을 확대해 전문 막걸리 코너를 선보이기로 했다. 홍희경기자 saloo@seoul.co.kr
  • 월드시리즈도 ‘亞 야구의 힘’

    팀의 운명은 엇갈렸지만 한국과 일본을 대표하는 아시아의 두 ‘영웅’은 월드시리즈 무대를 한껏 빛냈다. 뉴욕 양키스는 5일 홈인 뉴 양키스타디움에서 열린 미 프로야구 월드시리즈(7전4선승제) 6차전에서 필라델피아를 7-3으로 꺾고 시리즈 4승2패로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새 홈구장에 둥지를 튼 첫 해 정상에 오른 양키스는 9년 만에 역대 최다인 통산 27번째 월드시리즈 챔피언에 올랐다. 반면 ‘디펜딩 챔프’ 필라델피아는 59년 만의 양키스와 재대결에서 또다시 눈물을 흘렸다. 양키스를 정상으로 이끈 일본인 타자 마쓰이 히데키(35)는 미국 진출 7시즌 만에 아시아인 최초로 최우수선수(MVP)의 영예를 안았다. 반면 미국 진출 15년 만에 월드시리즈 무대를 밟은 박찬호(37·필라델피아)는 4경기 연속 무실점으로 눈부신 활약을 했지만 끝내 우승 반지를 끼는 데는 실패했다. 마쓰이는 이날 선제 2점포 등 무려 6타점을 혼자 쓸어 담았다. 이는 49년 만에 나온 월드시리즈 한 경기 최다 타점 타이기록. 마쓰이는 이번 월드시리즈에서 홈런 3방 포함, 13타수 8안타(.615)에 8타점을 수확하는 괴력을 뽐냈다. 2차전 역전포 등 ‘영양가 만점’의 타격을 뽐낸 마쓰이는 이날 6차전에서도 0-0으로 맞선 2회말 2점포로 승리의 물꼬를 텄고 3회 2사 만루에서는 2타점 중전 적시타, 5회 1사 1·2루에서 2타점 2루타를 때리며 선봉에 섰다. 2005년 말 박찬호에 이어 아시아 선수로는 역대 두 번째인 4년간 5200만달러(614억원)의 ‘연봉 대박’을 터뜨린 그의 내년 시즌 거취가 주목되는 대목. 메이저리그 진출 뒤 다섯 번째 팀에서 우승 반지를 노렸던 박찬호 또한 한국야구의 힘을 유감없이 과시했다. 3승3패(평균자책점 4.43)로 정규 시즌을 마친 박찬호는 리그 챔피언십시리즈 4경기에 등판, ‘친정팀’ 다저스를 4승1패로 격파하는 데 힘을 보탰다. 박찬호는 이어 월드시리즈에서도 6차전까지 4경기에 등판해 3과 3분의1이닝 동안 단 2안타(1볼넷)만 내준 채 무실점으로 역투, ‘불펜의 핵’으로 한몫 단단히 했다. 박찬호는 이날 3-7로 끌려가던 6회말 1사1루에서 네 번째 투수로 마운드에 올라 1이닝을 무실점으로 봉쇄, 4경기 연속 무실점 호투를 이어갔다. 손원천기자 angler@seoul.co.kr
  • [테마 스토리 서울] (18) 예술공단 변신 문래동

    [테마 스토리 서울] (18) 예술공단 변신 문래동

    서울의 도심 한복판 낡은 철공소 거리에 가면 뜻밖에도 젊은 예술가들의 힘찬 망치질을 볼 수 있다. 대한민국 ‘철강 1번지’로 불리던 이곳은 지금 새롭게 ‘예술 공단’으로 바뀌어 있다. 가난한 예술가들의 창작 공간으로 유명한 프랑스 파리 몽마르트처럼 이곳 또한 ‘한국의 몽마르트’로 불리기에 손색이 없다. ●조선시대 때 목화실로 유명 문래동과 공장은 떼려야 뗄 수 없는 오랜 인연이 있다. 조선시대부터 목화실로 유명하던 이곳은 일제 강점기 당시 일본인들이 ‘실을 뽑는 마을’이라는 뜻의 사옥정(絲屋町)으로 불렀을 만큼 섬유공업이 번성한 곳이었다. 이곳에 철공소 거리가 생겨난 것은 이 때부터. 1919년 지어진 경성방적 등에 소규모 기계를 납품하고 수리하기 위해 크고 작은 철공소들이 모여들면서 규모가 커져 명성을 얻었다. 공사용 철근과 난로 연통, 놀이터 미끄럼틀 등 각종 금속제품을 만들어내며 1980년대까지 1000여개의 공장들은 한국을 대표하는 ‘철강 메카’로 자리잡았다. 밤낮없이 철공소의 불빛을 밝히며 일하던 까까머리 노동자들은 자신들이 만든 생산품을 새벽 트럭에 실어 전국 각지에 내보내며 기름때가 묻은 셔츠로 이마를 닦던 아련한 기억을 지금도 갖고 있으리라. ●80년대까지 1000여개 공장 하지만 1990년대 들어 철제산업이 쇠퇴하면서 공장들은 하나둘 부천이나 안산 등 수도권으로 빠져나갔다. 사회 전반에 ‘인권의식’이 높아지면서 이곳의 상징이던 전기톱과 프레스는 ‘위험한 노동환경’의 대명사로 의미가 변했다. 여기서 일하던 이들 중에는, 그래서 많은 이가 손가락 절단 사고 경험을 갖고 있다. 이런 철공소의 쇠퇴가 뜻밖에도 돈 없는 예술가에게는 기회가 됐다. 저렴한 임대료에 매력을 느낀 예술가들이 7~8년 전부터 이곳을 찾아와 빈 공간을 메웠다. 현재 70여개 작업실에서 160여명의 예술가들이 모여 창작활동이 한창이다. 서울시의 의지도 컸다. 최근 경기침체가 이어지면서 홍익대 부근에 터를 잡고 있던 예술가들도 하나 둘 이곳으로 옮겨오는 추세다. ●임대료 저렴 작가들 공간으로 지난 7월 서울시의회는 준공업지역 공장부지에 최대 80%까지 아파트를 건립할 수 있도록 조례를 개정했다. 지금 이곳은 철공소 공장을 헐고 아파트를 지으려는 ‘투기 열기’로 가득하다. 예술가들은 그저 불안하기만 하다. 이제 막 터를 잡은 소중한 창작공간이 사라질 위기에 놓여 있어서다. 김강 예술과도시사회연구소 연구원은 “재래산업인 철공 노동과 예술 노동이 어우러져 즐거운 도시 공동체로 거듭날 수 있도록 지자체의 정책이 돕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의미의 도심재생”이라고 설명했다. 류지영기자 superryu@seoul.co.kr
  • 다시보는 최승희… 새 사진·영상 공개

    다시보는 최승희… 새 사진·영상 공개

    “지금 생각하면 춤을 처음 배울 때 참 바보스러운 아이였는데 선생이 괜찮다고, 계속 노력하면 된다고 독려해 주었기에 춤에 대한 애정을 갖게 됐죠. 선생은 춤이라는 것이, 이렇게 아름답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고, ‘자기 민족의 예술을 발전시켜야 한다.’는 예술관을 심어준 분입니다.” 장주휘(73) 전 중국발레무극단장(중국 국립발레단)이 기억하는 한국의 무용가 최승희(1911~1969년)의 모습이다. 장 전 단장은 중국 여류소설가 딩링(丁玲)의 딸이자 중국 무용계의 거물로 꼽힌다. 13살 때인 1949년부터 3년 동안 북한에서 최승희에게 춤을 배운 직계 제자이기도 하다. 그는 무용가 최승희 기념사업회 주최로 4일 서울 용산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리는 ‘최승희 춤 축제 국제 포럼-다시 최승희를 말한다’에 참석하기 위해 한국을 처음 방문했다. 포럼에 앞서 3일 대학로 서울연극센터에는 포럼 참석자들이 최승희를 회고하고, 알려지지 않은 사진과 영상을 미리 공개하는 자리가 마련됐다. 이날 만난 장 전 단장은 1949년 3월 평양에서 찍은 사진을 보여주며 “특별히 춤을 사랑했던 어머니에게 당시 상무대사가 ‘예술학원에 유명한 사람이 있으니 배워 보라.’고 주선해 스승을 만나게 됐다.”고 회상했다. “처음 배운 조선민족무용은 너무 느리고 어려웠어요. 선생에게 ‘무용이 이런 거요?’ 물었더니 얼굴을 어루만지면서 ‘처음에는 힘들지만 나중에는 복잡해져도 간단하게 느껴지면서 더욱 아름다워질 것이다.’라고 말해 주었습니다. 그해 겨울 중국 공연에서 부채를 들어주는 작은 역할로 선생과 무대에 섰는데, 선생의 멋지고 아름다운 춤을 보면서 그 의미를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장 전 단장이 기억하는 최승희는 굉장한 노력파였다. 1951년에 세운 최승희무용연구반에서 경극의 대가들을 불러 무용을 가르치게 하고, 그는 연습실에서 점심을 먹으며 이들의 춤을 정리했다. 이게 중국의 경극·곤극의 기본 바탕이 됐다. 이날 자리를 함께한 이애순 중국 옌볜대 예술연구소장은 북한에서 찍은 최승희 열사묘와 현재 북한에 있는 친척 사진과 최승희 춤 경연대회 장면을 공개했다. 최노사(최승희 오빠의 딸), 최호섭(오빠의 막내아들) 등을 만난 사진, 2003년에 조성된 열사묘 이장식의 장면들이다. 한편 이번 포럼에는 무용가 최승희 관련 연구 발표와 토론, 제자들의 증언, 미공개 영상물과 시연 등을 곁들여 최승희를 다양한 시점에서 조명한다. 이 소장은 포럼에서 ‘최승희와 동양무용’을 발표한다. 일본의 문학평론가 고노 에이지가 ‘일본인들이 본 최승희’를, 최해리 한국춤문화자료원 연구위원이 ‘한국에서의 최승희 춤 연구, 어디까지 와있나’를 각각 발제한다. 장 전 단장과 김백봉 예술원 회원 등 국내외에 거주하는 제자들이 스승을 회고하고, 그의 제자였던 박용원을 사사한 이영욱 전 옌볜대 무용과 교수가 박력있고 남성적인 최승희 춤의 기본 움직임과 이를 현대적으로 발전시킨 동작들을 소개한다. 아울러 오랜기간 최승희의 궤적을 추적해 다큐멘터리를 제작한 정수웅 작가는 ‘추적 30년, 영상으로 찾은 최승희’를 통해 그가 추적한 최승희의 행적, 뉴욕 할렘가 생활 등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를 들려준다. 최여경기자 kid@seoul.co.kr
  • “교과서서 배운 참여민주주의 체험할 기회 없어”

    “교과서서 배운 참여민주주의 체험할 기회 없어”

    1929년 11월3일 광주고등보통학교 학생들이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며 거리로 뛰쳐나왔다. 통학열차 안에서 일본인 학생들이 조선 여학생들을 희롱한 데 대한 항의에서 시작된 패싸움은 금세 ‘식민지 노예교육 철폐, 조선본위 교육확립’을 요구하는 격문과 함께 들불처럼 번졌다. 3일은 광주학생운동을 기념하는 날이다. 서울 송곡고등학교 2학년 김인식(17)군에게 80주년을 맞는 올 학생의 날은 감회가 새롭다. 김군은 학생회 부회장 신분으로 교내 학칙개정운동과 촛불시위를 주도했다는 이유로 학교로부터 학생회장 입후보를 저지당한 뒤 지난 7월 이 같은 부당함을 국가인권위원회에 제소한 주인공이다. 김군은 “80년 전 학생들이 국권회복에 힘을 기울였다면 우리 시대 학생들은 인권을 말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날 아침도 학생의 날을 기념하는 홍보물로 학교 측과 실랑이를 벌였다. 김군은 학생회 간부들과 함께 등교시간 교문 앞에서 일제고사 및 입시획일화 정책을 비판하는 글을 담은 홍보물을 학생들에게 배포하려 했다. 그러나 학교 측은 “사전허락이 없었다.”며 개인소지품과 함께 압수했다. 김군은 “학생이면 공부나 하면 그만이라는 어른들의 강압적 시선에 눌려 할말을 제대로 할 수 없는 분위기가 많다. ”면서 “그러다보니 교과서에서 배운 참여민주주의 등을 실제 체험할 기회가 전무하다.”고 아쉬워했다. 지난해 함께 학생회 활동을 했던 친구의 어머니는 김군에게 “학교랑 사사건건 부딪치는 바람에 우리 아들이 대학가는 데 지장 있으면 어떻게 할거냐.”는 항의전화도 했다고 한다. 그래도 김군과 학생회 친구들의 노력 덕분에 1년간 학교에는 많은 변화가 있었다. 함께 촛불시위를 했던 친구가 회장에 당선됐다. 학내 민주화를 위한 노력이 친구들의 신임을 얻게 된 것이다. 김군은 “80년전 학생의 날 주인공이었던 우리들이 이젠 입시에 치여 여러 사회 이슈에 관심을 갖기 힘든 현실이 안타깝다.”면서도 “어른들과 사회가 학생들을 어리다고 치부하지 말고 창의적인 의견을 발언할 기회도 줬으면 좋겠다.”고 기대했다. 이재연기자 oscal@seoul.co.kr
  • 일제강점기 宮의 굴욕

    일제강점기 宮의 굴욕

    #1. 일제 강점기 일본인 거주지역이었던 남산과 그 주변에는 많은 일본계 사찰이 모여 있었다. 이중 박문사는 이토 히로부미를 기리는 사찰로 일본인 및 친일파 위령제, 태평양전쟁 필승대회 등이 행해진 곳이다. 1932년 경희궁의 정문인 흥화문이 이곳으로 옮겨져 정문으로 사용됐다. 박문사는 경복궁의 선원전과 그 부속건물까지 옮겨와 사찰 건물로 삼았고, 원구단 자리에 있던 석고전까지 해체해 종각으로 사용했다. 흥화문은 1973년 신라호텔에 인수돼 정문으로 활용되다 1988년 경희궁 복원 계획에 따라 현재의 위치로 옮겨졌다. #2. 풍경궁은 1902년 고종이 평양에 건설한 대한제국의 이궁(離宮)이다. 하지만 일제 강점기에 식민 의료기관인 자혜의원으로 변모하면서 훼손되거나 철거됐다. 풍경궁의 정문인 황건문은 건축적 아름다움과 우수성으로 이름 높았는데 1925년 경성 조계사의 요청으로 수레 열한 대에 실려 230㎞를 이동해 산문으로 사용됐다. 황건문은 이후 동국대 정문으로 쓰이다 1971년 철거됐다. 남한에 남아 있던 평양 풍경궁의 유일한 건축 유산이 속절없이 사라진 것이다. #3. 경복궁의 도면인 ‘북궐도형’(1907년 제작 추정)에 나타난 경복궁 내 건물 수는 509동이다. 하지만 광복 후 남은 건물 수는 40동에 불과했다. 일제는 조선물산공진회를 준비하던 1914년 근정전 전면에 있는 흥례문과 회랑 등을 제거했다. 이때 방매된 궁궐 전각 중 상다수가 남산동, 필동, 용산에 있는 일본계 사찰과 요정, 일본인 부호의 저택으로 팔려 나갔다. 경성부 서사헌정의 남산장은 건춘문 내의 비현각을, 남산정 화월별장은 수정전 남쪽의 한 전각을 이건한 것이었다. 조선 왕조와 대한 제국기의 주요 궁궐은 지난 100년간 역사의 격랑 속에서 처참히 붕괴되거나 훼손됐다. 하지만 지금까지 이에 대한 학계의 관심은 그리 크지 않았다. ‘궁궐의 눈물, 백 년의 침묵’(효형출판)은 경복궁, 덕수궁, 창덕궁 등 서울의 주요 궁궐과 평양 풍경궁이 일제 강점기에 어떻게 훼철(毁撤)되었는지를 실증적으로 연구·분석한 결과물이다. 우동선 한국예술종합학교 건축과 교수 등 8명의 전문가가 공동 집필했다. 1부 ‘황권 강화를 위한 근대 조선(대한제국)의 움직임’에선 대한제국과 고종황제가 추진한 조선 변혁의 움직임을 궁궐 건축의 변화상을 중심으로 펼쳐 보인다. 일본, 러시아 등 외세의 영향력 속에서 고종황제는 중국에 대한 사대의 예를 폐기하고, 근대국가로의 진입을 꾀했는데 이러한 시대적 움직임은 경복궁 중건 및 경운궁(덕수궁), 원구단 건설, 궁궐 의례의 변화로 이어졌다. 2부 ‘일제에 의한 조선 궁궐 수난사’에선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까지 조선의 궁궐이 어떻게 훼손되어갔는지를 본격적으로 살핀다. 경복궁, 경희궁, 풍경궁의 굴욕과 더불어 창경궁이 벚나무가 심어진 종합 위락시설 ‘창경원’으로 전락한 과정을 추적한다. 3부 ‘조선의 궁에 들어선 근대건축물’은 경운궁, 창경궁, 경복궁 등지에 지어진 근대건축물의 건설 배경과 건축양식, 쓰임에 대해 파악한다. 특히 경복궁이 일제 식민지 경영의 선전장인 박람회장으로 쓰이면서 맞이한 변화상을 건축양식 측면에서 분석하면서 일제의 국력 과시 욕망과 조선인에 대한 상징 조작 행태를 들여다본다.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생막걸리 中 상륙

    국산 ‘생막걸리’가 일본에 이어 중국에도 진출한다. 농수산물유통공사(aT)는 이번 주부터 중국 상하이(上海)의 한국인과 일본인 밀집 지역 한식당을 중심으로 한국산 생막걸리를 공급한다고 2일 밝혔다. 첫 수출 물량은 750㎖들이 12병이 담긴 50상자이며 앞으로 매주 80상자씩을 2회에 나눠 선적할 계획이다. 그동안 상하이 교민식당, 한식당에도 막걸리가 유통되긴 했지만 모두 살균막걸리였다. 살균처리를 하지 않은 생막걸리는 막걸리 고유의 맛을 유지하는 데다 유산균이 살아 있어 웰빙 바람을 업고 인기를 얻고 있다. 그러나 유통 기한이 짧아 지금까지 일본에만 소량 수출되고 있었다. 올해 막걸리 수출액은 지난 9월 말 현재 356만 2000달러로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23.2% 늘었다. 이 가운데 90%가량이 대(對)일본 수출이다. 이두걸기자 douzirl@seoul.co.kr
  • 한국국적 취득자 10명중 6명 “만족”

    한국국적 취득자 10명중 6명 “만족”

    결혼이민자 77.8%가 고국의 지인이나 친구에게 한국인과 결혼을 추천하겠다고 답했다. 한국생활에 만족(10점 만점에 6.81점)하기 때문이다. 법무부가 30일 발표한 ‘체류 외국인 생활실태 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결혼이민자 10명 가운데 8명은 한국 국적을 취득할 의향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필리핀과 베트남 출신의 결혼이민자는 대부분(94%) 한국 국적을 취득할 생각이지만, 일본인은 40.3%만이 그렇다고 대답했다. 이들은 한국생활의 가장 힘든 점으로는 의사소통(59.1%)을 꼽았다. 외국인에 대한 편견·차별(8.8%), 식생활(7.7%), 임금·취업문제(3.7%), 경제활동(3.1%), 병원이용·건강보험(1.1%) 등이 뒤따랐다. 국적취득자 10명 가운데 6명(63.7%)은 한국 생활에 만족하며 평균 만족도는 7점이었다. 그래서 58.9%가 주위 사람들에게 한국 국적 취득을 권유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한국사회는 외국인에게 차별적인가.’라는 물음에 66.9%가 공감한다고 밝혔다. 차별요인으로 출신국가(51.0%), 언어(23.7%), 직업(11.6%), 피부색(10.4%) 등을 꼽았다. 이들은 다른 문화를 존중·인정하는 국민의식 전환(37.7%)과 한국어 교육 및 상담(26.4%) 등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한편 이중국적자들은 한국에 체류할 때도 미국 여권을 사용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미국이나 캐나다 국적이 있는 304명 가운데 80.6%가 한국에서도 외국 여권을 사용하고 있다고 답했기 때문이다. 특히 13.2%(외국 태생)가 국적법에 따라 국적을 선택해야 한다면 한국 국적을 포기하겠다고 답해 외국 국적을 포기하겠다는 응답(10.9%)보다 다소 높았다. 국적을 결정하지 못했다는 응답은 76.0%로 압도적으로 높았다. 우리나라에서 태어났으나 부모가 국제결혼해 이중국적자(응답자 210명)가 된 경우에는 11.0%가 한국 국적을, 47.6%가 외국 국적을 포기하겠다고 밝혀 차이를 보였다. 법무부 관계자는 “출생에 따른 이중국적자는 미국, 캐나다 등 선진국 국적자가 많기 때문으로 풀이된다.”고 말했다. 설문조사는 법무부가 여론조사 업체 월드리서치에 의뢰해 올 5∼6월 재한외국인 3547명을 대상으로 시행됐다. 95% 신뢰수준에서 오차 범위는 ±3.06%다. 정은주기자 ejung@seoul.co.kr
  • [월드시리즈]박찬호 마침내 꿈의 무대에

    박찬호(36·필라델피아)가 생애 처음으로 꿈의 월드시리즈 무대를 밟았다. 한국선수로는 2001년 애리조나 소속으로 우승 반지를 낀 김병현(30)에 이어 두 번째다. 박찬호는 30일 뉴 양키스타디움에서 열린 뉴욕 양키스와의 미프로야구 월드시리즈(7전4선승제) 원정 2차전에서 두 번째 투수로 등판, 두 타자를 상대로 각 1타점 적시타와 탈삼진을 기록했다. 1994년 LA 다저스에 입단한 박찬호는 이로써 데뷔 15년 만에 다섯 번째 팀에서 월드시리즈 마운드를 밟는 감격을 맛봤다. 2006년 샌디에이고 소속으로 디비전시리즈에 등판, 포스트시즌에 처음 출전했고 지난해 다저스 소속으로 내셔널리그 챔피언십에서 필라델피아를 넘지 못해 주저앉았다. 그러나 필라델피아 소속이 된 올해 월드시리즈 등판의 꿈을 이뤘다. 1-2로 뒤진 7회말 무사 1·3루의 위기에서 선발 페드로 마르티네스에 이어 두 번째 투수로 마운드에 오른 박찬호는 대타 호르헤 포사다와 맞섰다. 볼 카운트 2-1에서 4구째 147㎞짜리 바깥쪽 싱커를 던졌으나 중전 안타를 허용, 1실점했다. 박찬호는 이어 ‘캡틴’ 데릭 지터를 스리 번트 삼진으로 돌려세운 뒤 스콧 아이어와 교체됐다. 계속된 1사 1·2루에서 아이어가 조니 데이먼을 병살타로 유도해 박찬호의 자책점은 기록되지 않았다. 박찬호는 7개의 공을 뿌렸고 최고 구속은 148㎞를 찍었다. ‘악의 제국’ 양키스는 필라델피아에 3-1로 역전승, 시리즈 1승1패로 동률을 이뤘다. 양키스는 2회초 2사 2루에서 상대 맷 스테어스에게 적시타를 얻어맞아 선취점을 내줬다. 그러나 4회 마크 테세이라, 6회 일본인 타자 마쓰이 히데키의 솔로포로 2-1 역전에 성공했다. 양키스는 7회에도 포사다의 적시타로 1점을 보태 승리를 매조졌다. 3차전은 1일 필라델피아의 시티즌스 뱅크 파크에서 열린다. 손원천기자 angler@seoul.co.kr
  • ‘대마도는 한국 땅’ 日지도 첫 공개

    대마도(對馬島·일본명 쓰시마)가 한국 땅으로 표기된 옛 지도 2점이 처음으로 공개돼 관심을 끌고 있다. 부산외국어대 일본어학부 김문길 교수는 28일 경남 마산문화원에서 열린 ‘대마도 고지도 전시회’에서 대마도가 한국 땅으로 표기된 ‘대마여지도(對馬與地道)’와 사본을 전시했다. 대마여지도는 1756년 6월 일본 지리학자 모리고안(森幸安)이 에도시대 막부의 명을 받아 제작한 뒤 공인을 받은 것으로 현재 원본이 교토 기타노덴만구(北野天滿宮)에 소장돼 있는 것을 김 교수가 찾아냈다. 2003년 출간된 모리고안 지도에 수록된 이 지도에는 ‘부시준조선국지지례칙부향군령지470리(釜示准朝鮮國地之例則府鄕郡令之470里·대마도의 부·향·군 모든 법칙은 조선국 부산에 준한 것이다. 거리는 470리다.)’라고 적혀 있다. 김 교수는 “지난여름 일본에서 이 지도를 찾아냈는데 사본으로만 볼 수 있어 아쉬웠지만 일본의 지리학자가 공식적으로 직접 표기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또 1834년에 제작된 청구도 동래부 기장현 지도는 현재 고려대 도서관에 소장돼 있는데 김 교수가 직접 확인해 사본으로 햇빛을 보게 됐다. 이 지도에는 ‘본예신라수로470리재동래부지동남해중지실성왕7년무신왜치영어차도(本隸新羅水路四百七十里在東萊府之東南海中至實聖王7年戊申倭置營於此島)’라고 적혀 있다. 이는 ‘대마도는 원래 신라 땅에 예속되어 있고, 실성왕 7년까지 동래부에 속한 섬으로 470리 거리 동남쪽 바다에 있다. 무신년에 왜(일본인)가 들어와 살기 시작했다.’는 뜻이다. 김 교수는 “이 지도는 동래부 기장현을 중심으로 그린 것으로 대마도가 지금의 부산 동래부 기장현에 예속된 것을 의미한다.”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역사를 되짚어 각종 자료와 고증을 통해 대마도가 한국 땅이고 그 땅에 대한 정확한 역사인식을 후세에 심어주기 위해서라도 대마도의 실체에 대한 연구를 계속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마산 강원식기자 kws@seoul.co.kr
  • “호기심 갖고 즐기면서 학문 대했으면…”

    │도쿄 박홍기특파원│지난해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한 난부 요이치로(88) 미국 시카고대학 명예교수는 26일 교토대에서 ‘자연법칙의 대칭성과 깨짐’에 대한 강연에서 “배우는 것뿐만 아니라 혼자서 진지하게 생각하는 습관이 몸에 배도록 했으면 좋겠다.”고 젊은 연구자들에게 조언했다. 일본계 미국인인 난부 교수는 노벨상을 탄 뒤 처음으로 일본에서 강연을 가졌다. 지난해 현대 소립자물리학의 중심개념인 ‘대칭성 깨짐’을 수학적으로 정리한 업적으로 함께 연구한 마스카와 도시히데(68) 교토산업대 교수와 고바야시 마코토(64) 고에너지가속기연구기구 명예교수 등과 함께 노벨상을 받았다. 난부 교수는 “일본이나 미국의 젊은 연구자는 우수하지만 정보 과잉으로 느긋하게 생각할 여유가 없다.”며 연구 현실도 지적했다. 또 완벽하게 좌우대칭인 중국 건조물과 약간 비대칭인 일본 건조물의 사진을 보여주면서 “대칭이 아름답다고 하는 생각도 있지만 그것은 사람이나 문화에 따라 다르다.”면서 “태어나 자란 환경이 ‘대칭성의 깨짐’이라는 이론을 낳는 배경”이라고 소개했다. 즉, 대칭인 물건을 아름답다고 생각하지 않는 (일본인) 감각이 바탕이 됐다.”고 덧붙였다. 난부 교수는 고교생들에게 “호기심을 갖고 즐기면서 학문을 대했으면 한다.”고 당부한 뒤 “학생 때부터 스스로 생각하고 연구를 계속했던 것이 성과로 연결됐다.”고 설명했다. hkpark@seoul.co.kr
  • 앙겔라 랑프 퐁피두센터 학예실장-한국 루오전을 말한다

    앙겔라 랑프 퐁피두센터 학예실장-한국 루오전을 말한다

    │파리 문소영특파원│“오는 12월 한국에서 열리는 전시의 의미는 세계 최초로 루오 말년에 다량으로 존재했던 미발표작들이 해외에서 공개된다는 것입니다.” 앙겔라 랑프 퐁피두센터 학예실장은 서울신문과 퐁피두센터가 주최해 오는 12월 예술의전당에서 열리는 ‘색채의 연금술사 루오’전에 대해 이렇게 의미를 부여했다. 랑프는 “이 미공개작들은 루오 사망시 화실에 있었던 작품들로, 1953년 국가에 기증됐고 10년 뒤 퐁피두센터로 왔는데, 그 후로 프랑스를 떠난 적이 없다.”고 덧붙여 설명했다. 이들 미공개 작품은 루오 사후 10년 기념전이 루브르박물관에서 열렸을 때 말년 작품을 다 보여줄 수 없어 일부만 전시하고 퐁피두가 보관해 왔던 것이다. 인터뷰는 지난 19일(현지 시간) 퐁피두센터 학예실에서 이뤄졌고, 2명의 프랑스어 통역이 인터뷰 내용을 교차 체크해 정확성을 확보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12월 한국에서 열리는 루오전의 구성은 어떻게 되나. -풍경화, 종교화 등 4개의 주제로 연대기 식으로 보여줄 것이다. 어두운 화면을 그린 초기부터 색채가 폭발적으로 나타나는 말년까지, 진화되는 루오의 작품세계를 확인할 수 있다. 전시작품은 모두 168점이고, 이 가운데 미공개작이 80여점 정도로, 프랑스인 관객들조차 보지 못한 작품도 있다. 전세계에 처음으로 발표하는 미발표 작품이 14점이나 나온다. 프랑스에서만 공개된 작품도 69점이고, 스테인드 글라스 작품인 ‘비트라이어’는 1975년 뮌헨에서 전시된 후 처음 공개되는 작품이다. 판화도 58점이다. 전시장 구성과 관람객 동선은 중요한 작품을 집중해서 볼 수 있도록 하고, 많은 작품을 볼 수 있게 구성할 예정이다. 특히 미제레레(Miserere)와 같은 판화는 방 하나에 여러 줄로 걸어놓고 관객이 볼 수 있도록 전시 방식도 다양하게 준비하고 있다. →2006년 대전에서 열린 루오전과는 어떤 차이가 있나. -그때는 단순한 회고전이었다. 이번에는 루오의 아틀리에에 들어가서 루오의 머릿속을 보는 것처럼, 왜 이런 그림을 그리게 됐는지를 전혀 다른 앵글에서 심화해서 보는 것이다. 당시에는 작품 구성이 일본 미술관들과 프랑스 루오 재단 측, 퐁피두센터가 소장한 몇 작품 등으로 구성됐다. 이번에는 170여 점 모두 퐁피두 소장 작품1000점 중에서 골랐다. →루오를 흔히 20세기 최고의 종교화가로 생각하는데. -종교화가라는 좁은 의미로 그의 작품세계를 이해하는 것은 충분하지 않다. 그는 종교적 소재를 그린 화가인데, 평생을 강박관념을 가지고 형태와 색채, 하모니에 집착해서 같은 주제를 그리며, 경지에 이른 작가다. 루오의 작품은 예수 등 종교적인 신성과 창녀, 광대 등 세속적인 소재가 어떻게 결합되어 있는지, 또한 세속적인 주제를 종교적으로 어떻게 다뤘는지, 종교적인 소재를 어떻게 세속적으로 그렸는지를 모두 봐야 한다. 예수의 모습을 봐도 모두 인간이 된 모습이다. 이번 전시는 20세기 최고의 종교화가 이상의 것을 보여줄 것이다. 퐁피두에서 이번 전시의 가제를 ‘신성과 세속(가제)’이라고 잡은 이유다. →루오가 영향을 미친 작가군들이 후세에 있나. -루오는 특정한 화풍으로 분류하기 어려운 독특한 화가다. 시류를 따르지 않고, 제자를 가르치지 않았으며, 주제가 있는 구상화를 그렸기 때문이다. 당시 유럽은 2차 세계대전 전후로 추상화로 옮겨갔다. 다만 기이하게 일본과 한국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2차 세계대전에서 패망한 탓인지 일본인들이 열광했다. 루오의 80세 한국인 제자가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퐁피두센터가 이번에 서울신문과 루오전을 열게된 이유가 뭐냐. -한국에 인상파 등이 많이 소개됐고, 한국의 관람객들이 이제 현대적인 작품을 보고 싶어하는 단계에 이르렀다고 본다. 20세기 현대미술은 미국의 국립현대미술관(모마)과 프랑스의 퐁피두센터가 50대50으로 양분돼 있는데, 퐁피두센터의 정책이자 사명은 우리 수장고의 작품들을 대여하는 등으로 전세계에 작품을 널리 알리는 것이다. 수년 전부터 일본· 중국과는 많은 문화교류가 있었는데, 한국과는 그렇지 않아서 더 신경을 쓰고 있다. →왜 이 시기에 루오 전시가 필요한가. -세계적인 경제위기로 생활이 어려워지고 가치가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루오에 대한 르네상스가 있다. 2006년 프랑스 스트라스부르그, 2008년 프랑스 생트로페(프랑스 최고의 휴양지) 등에서 전시를 했고, 루오 풍경화로 전세계 순회전이 진행되고 있다. 최근 미국 보스톤에서도 루오 전시를 했다. 한국은 1997년 외환위기와 2008년부터 시작된 세계경제위기, 급속한 경제성장으로 인한 가치의 상실 등으로 혼란스런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관람객은 이번 루오전에서 루오가 그림을 그리면서 느꼈던 평화와 조화, 안정, 숭고한 경지를 얻을 수 있다고 본다. 글 사진 symun@seoul.co.kr
  • [특파원 칼럼] 재일 한국인과 일본 지방참정권/박홍기 도쿄특파원

    [특파원 칼럼] 재일 한국인과 일본 지방참정권/박홍기 도쿄특파원

    일본 보수우익들의 준동이 시작됐다. 10월 들어 본격적이다. 자신들의 전유물로만 여겼던 정권을 빼앗아 뒤엎은 민주당을 겨냥한 발호다. 지난 3일 거리선전에 나서더니 지난 17일엔 집회도 가졌다. 1400명이 집결, 국회 앞까지 행진하며 “어느 나라 정당이냐?”고 목청을 돋웠다. 아베 신조 전 총리는 화상 메시지로 분위기를 띄웠다. 다음달 14일 다시 모일 작정이다. 문제는 보수우익들의 정치적 반격으로만 봐 넘길 수 없다는 점이다. 초점이 ‘외국인 지방참정권 부여 반대’에 맞춰진 까닭에서다. 역사와 전통을 깨는 데다 화를 자초할 ‘괴물’이라는 궤변을 늘어놓고 있다. 요미우리신문과 산케이신문 같은 보수우익지들까지 가세하고 나섰다. 민주당 정권이 지방참정권의 틀을 짜 나갈수록 보수우익들의 기승이 한층 심해질 것은 뻔하다. 민주당은 1998년 결당 때 기본정책에 외국인 지방참정권 실현을 내걸었다. 하토야마 유키오 총리, 오자와 이치로 간사장 등 내각과 당의 핵심 멤버들이 지방참정권 추진파이다. 오카다 가쓰야 외무상은 지난해 1월 “이 문제는 민주당의 비원(悲願)이다.”라고 규정했다. 지방참정권 행사는 재일 한국인, 특히 특별영주권자들의 숙원이다. 일제 강점과 맞닿아 있다. 특별영주권자들은 강점 시기에 강제로 또는 스스로 일본에 정착한 한국인들이다. ‘일본인’으로 취급당하다 패전 이후 ‘외국인’으로 내쳐졌다. 역사의 피해자다. 법무성의 통계에 보면 특별영주권자는 자녀들까지 포함, 남북 구분 없이 42만여명에 이른다. 각국의 일반영주권자는 49만명 정도다. 특별영주권자들의 요구는 간명하다. 납세 의무를 다하며 지역 발전에 힘쓰는 주민으로서 지역 대표자의 선출에 주체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기본적인 권리를 요청한 것이다. 국정선거권을 욕심내는 게 아니다. 참정권도 피선거권이 아닌 투표권만이다. 패전 이후 60년 이상 삶의 터를 일궈온 외국인으로서의 최소한의 권리인 셈이다. 법적 근거도 갖췄다. 1995년 2월 일본 정부를 상대로 싸워 최고재판소로부터 ‘헌법상 금지돼 있는 것은 아니다. 다만 국가입법 정책에 해당하는 사항”이라는 판결을 이끌어 냈다. 판결을 기준으로 삼더라도 15년간 계속된 투쟁이다. 그러나 보수우익들의 반발은 집요하고도 거세다. 꽉 막힌 원리주의자 같다. 참정권을 갖는 유일한 수단으로 귀화만을 종용하고 있다. 한국에서 2005년 영주 외국인들에게 지방참정권을 인정하자 한때 내세웠던 상호주의 원칙도 거둬들였다. 대신 한국과는 영주 외국인수의 차이가 커 논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억지 논리를 만들었다. 이중 선거권도 들먹이고 있다. 지방참정권을 주면 한국에서는 국정선거권을 가진 만큼 양국에서 선거권을 행사한다는 주장이다. 얼토당토않다. 주민의 22%가량이 한국인인 오사카 이쿠노(生野)구와 같은 생활근거지도 트집의 대상이다. 심지어 국가 안보가 위험에 처했을 때 군사기지, 원자력시설 등의 안전을 담보할 수 없다는 차별적인 음해성 발언도 서슴지 않는 실정이다. 피해의식이나 다름없다. 하토야마 총리는 지난 9일 한·일 정상회담에서 “적극적으로 결론을 도출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국민 정서, 감정이 아직 통일돼 있지 않다.”고 솔직히 밝혔다. 보수우익의 반발은 언제든 넘어야 할 과제다. 세계 40개국이 영주 외국인에게 지방참정권을 주고 있다. 흐름이다. 주요 선진 7개국 가운데 영주 외국인의 참정권이 없는 국가는 일본뿐이다. 지방참정권 인정 문제는 민주당 정권의 몫이다.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 닫힌 섬나라가 아닌 다양한 가치관을 인정하는 열린 국가임을 내보일 수 있는 또 다른 출발점이기 때문이다. 또 한·일 관계의 새로운 이정표이기도 하다. 박홍기 도쿄특파원 hkpark@seoul.co.kr
  • 원더걸스 놀라운 걸

    원더걸스 놀라운 걸

    여성그룹 원더걸스가 국내 가수로는 처음으로 미국 빌보드 메인 차트 가운데 하나인 싱글차트 ‘핫 100’에 진입했다. 박진영이 작곡한 원더걸스의 ‘노바디’는 10월 셋째주 ‘핫100’에서 76위를 차지하며, 국내 프로듀서가 만들고 국내 가수가 부른 곡이 빌보드 메인 차트에 이름을 올리는 첫 사례가 됐다. 원더걸스는 지난 6월부터 미국에서 ‘노바디’를 발표하고 인기밴드 조나스 브러더스의 북미 투어 오프닝 무대를 꾸미는 한편 각종 라디오 방송에 출연하며 프로모션 활동을 펼쳐왔다. 활동 결과 미국 미디어베이스에서 집계한 라디오 방송횟수 분석차트에서 ‘노바디’는 주간 65회 이상 방송됐으며 순위가 전주 123위에서 107위로 16계단 올라섰다. 빌보드는 모든 음악 장르를 아울러 70여개의 차트를 매주 발표하는데 앨범 차트인 ‘빌보드 200’과 싱글 차트인 ‘핫 100’이 메인 차트로 꼽힌다. 앞서 지난 3월 보아가 미국에서 발표한 1집이 발매 첫주 메인 차트 가운데 하나인 ‘빌보드 200’에서 127위로 진입한 바 있지만 작곡가가 일본인이었다. 한편 원더걸스는 미국 활동을 끝내고 22일 국내에 돌아왔다. 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 안중근의사 친필 유묵 34점 한곳에

    안중근의사 친필 유묵 34점 한곳에

    안중근(1879~1910) 의사는 중국 뤼순 감옥에서 사형이 언도된 1910년 2월14일부터 3월26일 순국까지 최후 40여일간 글씨를 써서 남겼다. 유묵의 수신자는 모두 일본인이다. 이에 대해 안 의사는 옥중에서 쓴 자서전 ‘안응칠 역사’에서 “법원과 감옥의 일반 관리들이 내 손으로 쓴 글로써 필적을 기념하고자 비단과 종이 수백 장을 사 넣으며 청구하였다. 나는 부득이 자신의 필법이 능하지도 못하고, 또 남의 웃음거리가 될 것도 생각지도 못하고서 매일 몇 시간씩 글씨를 썼다.”고 밝혔다. ●日 류코쿠대 소장품 3점 국내 첫 공개 지금까지 확인된 안 의사의 친필 유묵은 50여점이다. 이 가운데 34점이 100년 만에 처음으로 한자리에서 공개된다. 예술의전당 서예박물관이 안중근 의사 의거와 순국 100주년을 기념해 26일부터 내년 1월24일까지 여는 ‘안중근-독립을 넘어 평화로’ 특별전에서다. 이들 유묵은 안 의사의 손때가 묻은 유일한 유품임에도 지금까지 한 곳에서 전시되거나 체계적으로 연구된 적이 없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이번에 전시되는 유묵 34점은 국·공립박물관 및 개인 소장 국가보물 20점과 미공개 작품 5점, 일본 소장품 7점, 중국과 미국 소장품 각 1점 등이다. 서예박물관은 이들 유묵을 내용별로 정리해 ▲독립·평화 ▲의거·순국 ▲인간 안중근 등으로 재구성함으로써 독립투사로서의 면모뿐 아니라 ‘동양평양론’을 주창한 사상가, 종교인, 선비로서의 안중근을 복원시킨다. 특히 일본 류코쿠(龍谷)대의 소장품 3점은 국내에서 처음 공개되는 것이어서 주목을 끈다. 또 안 의사의 유묵 내용 중 가장 널리 알려진 ‘一日不讀書 口中生荊棘’(일일부독서 구중생형극·하루라도 글을 읽지 않으면 입안에 가시가 돋친다)의 실물(동국대박물관 소장)이 일반에 공개되는 것도 드문 일이다. 서예박물관 이동국 학예사는 “안중근 글씨의 서체 및 서풍은 엄정 단아한 해서와 해행이 주가 되고 있는데, 한 글자 한 글자 모두가 침착 통쾌한 안중근의 성정 기질이 그대로 녹아 있다. 또 유묵의 내용은 안중근의 사상과 실천을 고스란히 담고 있어 안중근 실존의 삶 그 자체다.”라고 말했다. ●의거서 순국까지 담은 사진원본도 이번 전시에는 이들 유묵 외에 의거에서 순국까지 5개월간의 과정을 담은 사진 원본 28점과 관련 자료 10점이 함께 공개된다. 1909년 10월20일 이토 히로부미 일행이 뤼순 이룡산에 올라 러시아군 전몰자의 무덤에 참배한 뒤 찍은 사진과 의거 다음날인 1909년 10월27일 하얼빈에 도착한 안 의사의 부인 김아려 여사와 두 아들의 사진은 처음 공개되는 것이다. 체포된 지 얼마 되지 않아 찍은 안중근 의사의 상반신 사진 원본도 전시된다. 전시회 기간 동안 매주 토요일 오후 2시에 ‘안중근 동양평화학교’특강이 열린다. 최서면 국제한국연구원장, 김호일 안중근 기념관장, 김우종 중국 하얼빈대 교수, 이태진 서울대 명예교수 등이 강사로 참여한다.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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