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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특파원 칼럼] 정권의 운명 쥐락펴락하는 日신문/이종락 도쿄 특파원

    [특파원 칼럼] 정권의 운명 쥐락펴락하는 日신문/이종락 도쿄 특파원

    며칠 전 일본 신문기자, 대학교수와 함께 스모 선수들이 먹는다는 창고나베 식당에 갔다. 최근의 한·일관계에 대해 의견을 나누다가 양국 신문기자가 있어서인지 화제가 자연스럽게 두 나라의 신문으로 넘어갔다. 참석자 중 한 명이 다소 황당하면서도 재미있는 질문을 불쑥 꺼냈다. 한국과 일본 언론 중 누가 더 영향력이 있느냐는 우문(愚問)이었다. 일본 교수와 기자는 한국 언론이 더 세다고 주장했다. 정부 부처 장관실을 불쑥불쑥 드나들 수 있는 한국기자가 더 파워풀해 보인다고 했다. 6개월째 일본 언론을 접해 본 기자는 손사래를 쳤다. 일본 언론, 특히 일본 신문이 훨씬 영향력이 있고 사회의 어젠다를 이끌고 있다고 응수했다. 입씨름이 계속됐지만 결국 기자의 주장에 두 사람이 승복하는 걸로 술자리를 파했다. 일본 신문은 세계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최근 발표한 2008년 기준 30개 회원국의 유료 일간지 발행부수 조사 결과 일본이 5100만부로 1위를 차지했다. 한국은 1300만부로 미국(4900만부), 독일(2000만부), 영국(1500만부)에 이어 5위를 차지했다. 일본인구가 2008년 기준 1억 2728만명인데 이 당시 신문 구독률은 90.25%(일본 신문협회조사)에 이른다. 글을 읽을 수 없는 어린이를 제외하고 거의 모든 성인이 종합일간지, 지방지, 스포츠지 등을 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다 보니 일본 신문은 힘이 세다. 인터넷의 발달로 신문 구독자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지만 일본 신문의 영향력은 줄어든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 아사히, 요미우리, 마이니치, 도쿄, 니혼게이자이, 산케이신문 등 6개 신문사가 일본의 여론을 이끈다. 서울신문과 제휴 중인 도쿄신문은 나고야에 본사를 둔 주니치신문사의 도쿄 지역지(블록지)이지만 6개 신문 중 가장 진보적인 논조를 보이는 중앙지 대우를 받는다. 이들 신문은 방송사도 소유하고 있다. 아사히는 아사히TV, 요미우리는 니혼TV, 산케이는 후지TV, 니혼게이자이는 TV도쿄의 대주주이고 마이니치는 TBS의 지분을 소유 중이다. 그러다 보니 한국과 달리 신문이 해당 계열사 TV의 논조를 좌지우지하는 형국이다. 한국의 경우 대통령선거 기간 언론의 보도가 어느 정도 선거의 향배에 영향을 미칠 수 있지만 결정적인 승패를 가르진 못한다. 일단 대통령이 선출되면 잘하든 못하든 5년 임기가 보장된다. 언론이 대통령을 중도에 낙마시킨다는 건 상상도 할 수 없다. 하지만 일본 신문은 정권의 운명도 쥐락펴락한다. 내각책임제인 일본 정치는 여당의 대표가 총리를 맡는다. 임기제가 아니어서 여론의 향배에 따라 물러나야 한다. 여론 형성은 당연히 신문이 주도한다. 신문들은 진보(아사히, 마이니치, 도쿄)와 보수(요미우리, 니혼게이자이, 산케이) 등 이념적 성향에 따라 정부의 정책과 총리를 평가하고 비판한다. 특히 신문사들은 매월 여론조사를 통해 내각 지지도를 발표한다. 보통 한 번 조사하는 데에 200만엔(약 2700만원)을 들여 1000여명을 대상으로 조사를 벌인다. 하토야마 총리 재임 때에도 그랬듯 내각 지지도가 10%대로 떨어지면 총리가 옷을 벗을 준비를 해야 한다. 일본에서 여론조사는 ‘참고사항’이라는 본래의 취지에서 벗어난다. 정치와 정당의 머리 위에 앉아 있다. 언론사들이 편향적, 자극적 설문으로 여론조사의 부작용을 조장할 위험성도 내포하고 있다. 신문사의 입맛에 맞춘 ‘권력 개입’을 하고 있는 셈이다. 정치인들은 언론, 특히 신문기자들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이유로 일본 기자들은 종종 공정성이 도마에 오른다. 객관적인 위치에서 정권을 비판해야 할 신문기자들이 기득권 세력이 돼 정부와 유착관계를 맺고 있다는 신랄한 지적도 듣는다. 언론인이 독립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중립적이어야 한다는 얘기가 신화로 들릴 정도다. 일본 신문체제를 도입한 한국 언론이 되짚어봐야 할 대목이기도 하다. jrlee@seoul.co.kr
  • [열린세상] 아아, 안중근/고영회 성창특허법률사무소 대표·변리사

    [열린세상] 아아, 안중근/고영회 성창특허법률사무소 대표·변리사

    100년 전 8월이었군요. 대한제국은 1905년 을사늑약으로 외교권을 잃고, 1907년에는 군대마저 해산당해 주권을 잃은 상태였고, 1910년 8월29일에는 남아 있던 겉모습마저 없어졌습니다. 을사늑약이 맺어진 뒤 사람들의 행동이 몇 갈래 나뉩니다. 당시 기울어져 가는 나라의 관리들 가운데 의분을 느낀 사람은 자결도 하며 부당함을 호소하기도 했지만, 권력자들 중 많은 사람이 나라를 팔아서라도 권력과 부를 누리려 했습니다. 그들은 일제에 더 잘보이기 위해, 나라를 더 빨리 팔아먹도록 일제에 충성경쟁을 했더군요. 대한제국 말기의 영웅 안중근 의사를 떠올립니다. 교과서에서 1909년 10월26일 하얼빈역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하고 뤼순감옥에서 사형됐다는 정도만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하얼빈에 있는 안중근 기념관에서 ‘안중근 연구’란 책을 사 읽어 봤습니다. 위인의 행동과 뜻도 모르고 있었다는 사실에 낯이 뜨겁습니다. 안중근 의사는 법률지식이 높았다고 합니다. 국제관계법과 일본형법을 잘 알아, 일본 형법에는 국사정치범은 사형에 처할 수 없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고 합니다. 이토 히로부미를 쏴 죽임으로써 일제가 부당하게 조선을 점령하고 있다는 것을 재판절차를 통해 온 세계에 알리려고 했습니다. 그 당시 일본은 선진국인 것처럼 자랑하고 있었는데 사건을 엉터리로 처리한다면 세계의 조롱거리가 될 것이니 어느 정도 절차는 지킬 것이라는 것을 활용한 것이지요. 안중근 의사를 체포한 러시아는 일본과의 관계를 고려하여 그를 일본에 넘깁니다. 안중근 의사는 독립전쟁을 수행한 것이니 국제사법에 따라 처리하라고 요구합니다. 한국법에 따라 처리하는 것이 맞지만, 일본은 을사늑약을 빌미로 일본법에 따라 관동도독부 법원에서 재판합니다. 검사·변호인·판사 거의 일본인인 가운데 재판이 진행되는데, 그 과정에서 일제의 범죄를 낱낱이 법정에서 진술합니다. 안중근 의사는 “이토 히로부미를 죽인 것은 목적(한국의 독립과 동양평화)을 달성할 기회를 얻기 위한 것이므로 나쁜 짓을 한 것이 아니니 도망갈 이유가 없다. 그를 쏴 죽인다고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것을 안다. 하나 둘 행동이 쌓이면 반드시 독립을 이룰 수 있다.”라고 큰 뜻을 밝혔습니다. 이 재판은 중국은 말할 것도 없고 세계의 관심을 많이 받았다고 합니다. 안중근 의사는 공정한 재판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것을 알고 법원장과 협상하여 항소를 포기하는 대신 책을 쓸 시간을 얻습니다. 옥중에서 자서전 ‘안응칠역사’를 씁니다. 동양평화론은 5장을 계획했지만 2장까지 쓰고, 시간을 더 달라고 했지만 거절당합니다. 그리고 의연하게 사형장으로 들어갑니다. 김좌진 장군의 독립운동역사를 보면 독립운동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알 수 있습니다. 자신은 말할 것도 없고, 재산과 가족까지 희생해야 합니다. 반면에 나라를 팔아먹은 자들은 나라 팔고 받은 돈으로 잘살고, 자기 민족을 괴롭히는 권력까지 가졌습니다. 그 결과 독립운동가의 후손은 지금까지 힘들게 살고 있고, 나라를 팔아먹은 사람들은 그 후손까지 잘살고 있다는 기사를 봅니다. 안중근 의사 아들 안중생은, 아버지의 일을 이토 히로부미 아들에게 사죄했다 하여 ‘호랑이 같은 아버지에 개 같은 아들’이라고 비난받았다고 합니다. 아들도 아버지처럼 죽음 앞에서 의연할 수 있었다면 좋았겠지만 보통 사람이야 그럴 수 있겠습니까. 안중생은 아버지 얼굴조차 보지 못했고, 거사 때문에 핍박을 받고 살았을 것입니다. 일제의 회유와 압박에 어쩔 수 없이 사죄한 것인데, 안중생을 그렇게까지 비난했다는 게 이해되지 않습니다. 비난 정도는 자기의 행위에 대해 걸맞아야 할 것입니다. 나라를 팔아먹은 사람, 친일행각에 나선 유명인사들, 그들보다 더 안중생을 비난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아버지가 큰 별이어서 상대적으로 비교되어 큰 비난이 돌아간다면 이치에 맞지 않습니다. 하늘에 계신 선열들이 ‘내가 왜 독립운동을 했을까?’하고 후회하고, 나라를 팔아먹은 사람들이 ‘그래 그때 잘했어!’하며 웃음 짓는 나라가 되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 [한·일 100년 대기획] 한·일 새로운 100년을 위해-日 한국전문가 3인 좌담

    [한·일 100년 대기획] 한·일 새로운 100년을 위해-日 한국전문가 3인 좌담

    서울신문이 한·일 강제병합 100년을 맞아 신년호에 한완상 교수와 와다 하루키 도쿄대 명예교수의 지상 대담을 시작으로 연재한 한·일 대기획이 19일 23회로 막을 내린다. 서울신문은 피해자와 가해자로 엇갈려 한 세기를 보낸 두 나라가 과거의 상흔을 씻고 새로운 100년을 열어 가는 길을 닦는다는 취지로 연중 시리즈를 시작했다. 시리즈 연재 중에 간 나오토 총리는 지난 10일 일본의 식민지배를 사과하고, ‘조선왕실의궤’를 비롯해 궁내청에 보관돼 있는 한국의 문화재를 돌려주겠다는 뜻을 밝혔다. ‘한·일 병합은 원천 무효’라는 한·일 지식인 1000명의 외침을 외면한 담화이기는 하나 새로운 한·일 100년 역사를 열어 나가기 위해 고심한 흔적이 엿보인다는 평가도 나오고 있다. 과연 한·일 양국은 새로운 우호협력의 100년을 열어 나갈 수 있을 것인가. 이에 대한 일본 내 시각과 향후 100년의 바람직한 양국관계에 대해 일본 내 한국 전문가 3명의 좌담을 마련했다. 기미야 다다시 도쿄대 대학원 종합문화연구과 준교수, 마나베 유코 도쿄대 동양문화연구소 교수, 오타 오사무 교토 도시샤대(동지사대) 글로벌 스터디스 연구과 교수가 참여했다. 좌담은 지난달 30일 도쿄대 대학원 정보학환 연구동에서 진행됐고 간 총리 담화 이후 추가 질문을 하는 형태로 이뤄졌다. →간 나오토 총리 담화를 평가해 달라. -기미야 다다시 교수(이하 기미야) 무라야마 담화와 동일한 수준일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일본의 식민지배가 한국인의 의사에 반해 이뤄진 것을 명기한 것은 일단 적극적으로 평가하고 싶다. 다만 한국 정부와 사회가 요구한 것처럼 1910년 한·일 병합에 이르는 조약이 법적으로 무효이고, 성립하지 않는다고 하는 점까지는 접근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그 과정에서 일본 측의 강제가 있었다고 하는 것을 명기하는 편이 좋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다. 담화에서 한·일조약에 이르는 과정에서 강제가 있었다는 것도 포함됐다고 해석할 수 있지만 한편으로는 표현이 애매해서 그렇지 않다고 생각할 수 있다. 물론 이 정도로는 한국정부와 한국사회의 비판이 해소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 문제를 둘러싸고 전개된 일본 사회의 여론 동향을 생각하면 무라야마 담화보다는 한 발 나아간 담화였다고 생각한다. -마나베 유코 교수(이하 마나베) 간 총리 담화와 관련해 일본에서는 무라야마 담화의 답습이라는 점이 강조됐다. 내용을 비교해 읽어 보면 ‘자민당적이지 않다’는 점이 공통점일 뿐 결코 답습이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오히려 (원자폭탄) 피폭국이라는 점을 내세운 무라야마 담화보다는 적극적인 인상을 받았다. 이것은 동아시아 공동체라는 패러다임이 있기 때문이라고 느꼈다. 사할린 한국인 지원이나 문화재 반환 등까지 언급하는 등 아슬아슬한 선까지 표현한 점에 대해서는 평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난 5월 한·일 지식인 100명이 “한·일 강제병합은 원천무효”라는 선언을 한 데 이어 지난달에는 1000여명의 지식인들이 동참했다. 한·일 병합강제조약의 적법성을 놓고 한·일 양국에서 논란이 뜨거운데. -오타 오사무 교수(이하 오타) 한·일 지식인 공동선언의 핵심은 1910년 한·일 병합조약을 어떻게 이해할 것이냐는 점이다. 저도 이번 공동선언에 서명했지만 이것은 법률적인 문제가 아니라 역사인식의 문제다. 지난 2005년부터 한국과 일본 사이에 새롭게 공개된 한·일회담 문서에는 ‘원천무효(null and void)’라는 것을 한국 측이 1952년 제1차 교섭 때부터 주장한 것으로 돼 있다. 이에 일본 정부는 법 이론상 여러 가지 문제가 있기 때문에 한국 측의 주장에 모순이 있다고 맞섰다. 1965년 한·일 국교화 정상화 단계에서는 ‘이미(already)’라는 표현을 넣어 양국 정부가 따로 해석하기로 한 것이다. -기미야 이 문제에 대해 어쩐지 일본에서는 별로 이해를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일본 내에서도 한국과 일본이 대등한 입장에서 합의에 의해 병합됐다고 믿는 사람은 아마도 거의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오히려 강제적으로 그렇게 됐다는 것이 일반적이라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왜 무효인지, 왜 한국정부나 한국사회가 1910년에 체결된 조약이 무효라는 것에 연연하는지 궁금해한다. -마나베 한·일병합과 한·일조약의 무효 논란에 대해서는 비록 강제에 의한 불평등 조약이었다고 해도 국가 간에 체결된 조약에 대해 법적으로 무효라고 하는 논의는 진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결국 양국의 역사인식 차이라고 생각하는데. -마나베 역사인식을 양국이 공유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역사인식은 각자가 만들어 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제가 한국 연구에 발을 들여놓게 된 계기는 1982년 역사 교과서 문제 때문이다. 이토 히로부미가 한국에서는 한·일병합의 악인이라고 알려지고 안중근은 영웅인데 일본에서 이토 히로부미는 지폐에까지 등장한다. 역사적 진실은 하나일 텐데 말이다. 결국 역사인식이라는 것은 만들어져 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기미야 역사인식은 옳은가 그른가의 문제라기보다 서로의 관계를 어떻게 생각해 어떤 역사인식을 서로 가지려 하는가 하는 정치적 의지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예를 들면 1965년 한·일 국교정상화 당시 한·일 관계는 일본 측에 힘이 있었다. 당시 식민지배를 정당화했다고 일컬어지는 1950년대 구보타 발언이 있었는데 당시 일본에서 상당히 상식으로 통하는 견해였다. 그러나 지금은 한·일 관계가 진정한 의미에서 상당히 대등하게 됐다. 일본 내에서도 역사인식이 변화했다. →화제를 좀 돌려서 현재의 한·일 관계는 어떻게 평가하는가. -오타 전체적으로 보면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앞으로도 다소 우여곡절은 있을지 모르지만 이런 두터운 관계는 바뀌는 일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지금 일본의 언론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한국의 제대로 된 목소리를 전하지 않는다. 예를 들면 천안함 사건과 관련해 한국의 민주화운동 단체들이 성명을 내거나 정부를 비판하고 있지만 일본 언론은 좀처럼 이런 비판의 목소리를 보도하지 않는다. 북한에 대해서도 배제하려는 움직임이 높아지고 있다. 이런 움직임의 배경에는 식민지배가 기인한다. 식민지배 논리에 바탕이 되는 배제라는 논리가 일본 사회에 아직도 여전히 뿌리 깊게 남아 있다고 느껴진다. -기미야 표면적으로는 좋아 보이는 한·일 관계가 배후를 보면 여전히 한반도에 대한, 특히 북한에 대한 배제와 차별 분위기가 남아 있다. -마나베 지난 5월 8년 만에 한국에 다녀왔다. 하네다 공항에 한류스타의 사진이 여기저기 붙어 있었다. 한국행 비행기 티켓을 구하기가 어려웠다. 일본인 마음속에 한국이라는 울타리가 굉장히 낮아졌다. 삼성과 같은 대기업들이 계속 발전해 나가고, 한글을 공부하는 이들도 많이 생겨 80년대 초반과 비교해 한·일 관계가 정말 좋아졌다. 하지만 아직 일본인이 한국에 대해 가지고 있는 인식은 온도차가 있다. 일본 언론이 광주항쟁 30주년 행사를 한 줄도 전달하지 않는 등 한국의 참모습을 보여 주는 노력이 부족한 것 같다. -오타 올해 한·일병합 100년을 맞아 양국에서 집회나 심포지엄이 많이 열리고 있다. 그만큼 양국 시민사회의 노력이 크다고 봐야 할 것이다. 다만 과거 식민지배의 역사에 대한 젊은이들의 관심은 대단히 낮은 것 같다. -마나베 도쿄대 첨단 과학기술연구소에 ‘아시아 암 포럼’이라고 하는 특별한 기구가 있다. 특별연구원인 가와하라 노리에의 개인적인 생각에서 시작됐다. 한국에서도 연세대 의대 교수가 동참하고 있다. 그의 부친은 난징대학살 당시 군무원으로 근무해 대학살에 가담했다. 아버지가 갖고 있던 역사적 부채를 유산으로 바꾸지 않으면 안 된다는 생각으로 그 일을 시작했다. 한국인 원폭 피해자와 화학무기 등에 의해 오염된 중앙아시아 사람들 중 암에 걸린 환자들을 치료해 주기 위한 프로젝트다. 과거를 직시해 과거의 아픔을 계속 안고 살아 오고 있는 이들의 삶을 극복하려는 취지에서 암 포럼이 운영될 예정이다. →한국과 일본의 향후 관계가 어떻게 될 것으로 생각하는가. -오타 식민지배 청산의 프로세스를 서로 탐구해 나가는 게 특히 미래지향적인 것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양국이 서로 식민지배 청산 문제를 직시함으로써 인권과 평화를 소중히 여기는 사회가 만들어지는 실마리를 제공할 수 있게 되지 않을까 싶다. 문화재 반환에 대해서도 제대로 된 조사가 이뤄지지 않았다. 한·일조사회 같은 것을 만들어 문화재가 반출된 경위 등도 제대로 조사해 식민시대에 부당하게 반출된 것들을 반환해야 한다. 한국과 일본이 논의해 가는 과정에서 서로가 대화할 수 있고, 서로에 대해 알아 가는 커뮤니케이션이 가능할 것으로 본다. 세계에서도 식민지배를 청산하는 것은 지금까지 없었던 일로, 세계사의 관점에서 보면 획기적인 일이다. 식민지배 관계에 있던 나라들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모델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기미야 앞으로 100년의 한·일 관계는 여러 가지 의미에서 균형이 잡히게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서로의 협력이 플러스가 되는 경험을 더욱 많이 인식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특히 북한을 둘러싼 한·일 협력이 어떠한 형태로 잘 발전해 갈 수 있을지 시금석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한·일 양국이 서로 이해하는 프로세스를 만들자는 제안도 있었는데 한·일 공통의 역사 교과서를 만들자는 의견도 있다. -오타 서로 각급 수준의 교재를 함께 만들고 이를 학교 현장에서 사용하는 일이 앞으로 점점 많아질 것이다. 좋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마나베 전혀 다른 나라 사이에서 공통의 교과서를 사용하는 게 조금 무리이지 않나 생각한다. 다만 한·일병합 100년이라는 역사 속에서 이웃 나라의 사람들은 이러한 생각을 갖고 있었고, 이렇게 느끼고 있었다는 것을 경험하면서 상상력을 환기시키는 것과 같은 교재라면 공유할 수 있다고 본다. 도쿄 이종락특파원 jrlee@seoul.co.kr
  • “나는 생체 실험했던 군의관이었다”

    “나는 생체 실험했던 군의관이었다”

    100년 전 ‘아시아를 넘어 전 세계의 왕’이 될 것이라 호언장담했던 일본. 한·일 병합조약도 바로 이런 제국주의 야욕의 연장선이었다. 100년이 흐른 지금, 일본은 국제사회로부터 과거를 반성하지 않는 전범국가가 됐다. 부메랑으로 날아온 전쟁의 상흔이다. 특히 제국주의 전범국가에 태어난 원죄로 전쟁의 도구가 될 수밖에 없었던 세대들도 과거는 분명 상처일 터. 아리랑TV는 오는 22일 오후 8시 한·일강제병합 100년 특집 다큐멘터리 ‘고백’에서 침략전쟁에 동원됐던 일본인들의 생생한 증언을 담는다. 죽어가는 사람을 살리는 것이 의사의 본분. 하지만 살아 있는 사람을 해부해야 했던 일본군 전 군의관의 정신적 고통은 아직도 그를 짓누른다. 조선인 병사가 목숨을 구해줬지만 ‘황국사관’으로 인해 조선인을 경멸했던 일본군 노병의 때늦은 후회도 이어진다. 일본의 패전으로 빠른 퇴각을 위해 환자들을 안락사시켜야 했던 전 일본군 간호사는 통한의 눈물을 흘린다. 한 일본군 노병은 밤마다 처연하게 울려 퍼졌던 조선 출신 일본군 위안부의 아리랑이 지금도 생생하다며 가슴아파한다. 전쟁의 가해자도 결국 피해자가 될 수 밖에 없는 역설적인 상황이다. 다행스러운 것은 일본 내에서 가해의 상처를 스스로 치유하기 위한 움직임이 나오고 있다는 점이다. 방송은 식민지에서 끌려온 조선 소녀들의 억울한 죽음에 대한 진실규명과 피해 보상을 위해 20년 동안 자비를 들여 싸우고 있는 ‘나고야 미쓰비시 조선여자정신근로대 할머니들을 위한 소송지원회’ 사람들을 소개한다. 성노예 생활을 했던 한국 할머니들을 위해 매주 수요일마다 연극을 공연하고 서명활동을 펼치는 ‘극단 수요일’ 멤버들의 이야기도 담는다. 방송은 가해의 기억이 어쩌면 피해의 기억만큼이나 끔찍한 것일 수 있다고 강조한다. 한·일강제병합 100년의 의미를 입체적으로 분석하고 양국 국민의 정서와 현재적 모습을 타임캡슐로 기록한다. 23일 오전 2시, 9시와 오후 3시 세 차례 재방송. 이경원기자 leekw@seoul.co.kr
  • ‘디플레 수렁’ 日경제 3대 미스터리

    ‘디플레 수렁’ 日경제 3대 미스터리

    ‘잃어버린 10년’이란 긴 터널을 빠져나온 일본이 또 다시 고환율과 디플레이션의 딜레마에서 헤매고 있다. 탈출 노력에도 불구하고 경제는 수렁에서 쉽사리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더욱 깊숙이 빨려드는 듯한 모습도 나타난다. 이런 가운데 일본경제에는 일반 경제이론으로 쉽게 이해되지 않는 현상들이 나타난다. (1) 돈 풀어도 경기 요지부동 →노후 걱정에 소비 자제 일본에서는 정부가 돈(재정지출)을 풀면 시장이 살아난다는 케인스의 ‘유효수요이론’이 통하지 않는 듯하다. 실제 일본은 경기부양을 위해 1990년대에만 137조엔이라는 천문학적인 재정을 쏟아 부었지만 큰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 하지만 정부의 재정지출 늘리기는 현재진행형이다. 지난 16일 간 나오토 총리는 새 경기 부양책을 검토하라고 경제 각료들에게 지시했다. 올 1·2분기 경제성장률이 예상보다 크게 낮은 0.1%(전분기대비)를 기록한 직후 나온 조치다. 추가 경기 부양책에 1조 7000억엔(약 23조 5000억원)이 쓰일 것이라는 예상이지만, 효과는 미지수다. (2) 곳간 비어도 엔高 여전 →엔=안전 굳건한 신뢰 최근 일본의 고민은 엔고에 있다. 지난주 도쿄 외환시장에서 엔·달러 환율은 한때 달러당 84.72엔까지 내려갔다. 엔화 가치가 1995년 7월 이후 최고로 올라간 것. 지난해 상반기만 해도 엔화는 달러당 100엔대 전후였지만, 하반기 90엔대로 떨어진 이후 결국 올 들어 80엔 초반까지 내려앉았다. 보통 나라의 경제가 좋지 않으면 해당 국가의 돈 가치는 떨어지기 마련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현재의 엔고는 의외다. (3) 그리스 2배 빚 걱정없다? →국채 95% 자국인 투자 국민 1인당 빚이 그리스의 두 배 수준이지만 정작 일본은 글로벌 금융위기나 외환위기로 자유롭다. 그만큼 부채상환 압력이 높지 않다는 말이다. 일본 재무성에 따르면 일본의 국가채무는 지난 3월 말 현재 882조 9235억엔으로 역대 최대를 기록 중이다. 지방자치단체의 채무까지 합친 국가채무 잔액은 지난해 말 국내총생산(GDP) 대비 218.6%로 미국(84.8%)과 영국(68.7%)의 3배 안팎이다. 하지만 적어도 세계 경제위기에 일본의 외환위기를 논하는 이는 없다. 전문가들은 이런 몇 가지 의문점을 풀어나가는 것이 일본 경제를 이해하는 키워드라고 말한다. 먼저 재정을 풀어도 내수가 살지 않는 것은 일본 경제의 구조적인 문제와 연결된다. 일본의 내수가 살지 않는 것은 쓸 돈이 없어서가 아니라 고용과 노후문제 등 미래가 불안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김양희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일본인은 가구 당 평균 우리 돈으로 3억~4억원 수준의 자산을 가지고 있지만 노후를 위해 소비를 자제하고 있다.”면서 “결국 정치권이 구조적인 불안심리를 해결하지 못한다면 내수가 살아나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금융위기 이후 급등한 엔화가치는 여전히 엔화가 3대 기축통화로의 자리를 유지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유로화도 미 달러화도 믿을 수 없는 시점에서 투자자들에게 엔화는 안전자산이라는 신뢰를 주고 있다는 말이다. 게다가 일본은 세계 최대의 순채권국이다. 또 높은 국가채무 비중에도 일본이 외풍에 흔들이지 않는 이유는 국채의 95%는 자국(일본)투자가라는 점이다.일본은 1400조엔이 넘는 막대한 규모의 가계 금융자산이 국채시장을 뒷받침하고 있다. 일본 투자가들은 금리가 높은 외국자산보다도 일본 국채가 안전하다고 생각해 자국의 국채를 보유한다. 결국 일본이 아무리 흔들린다고 해도 국가채무때문에 국외로 빠져나갈 돈은 최대 5% 정도라는 말이다. 유영규기자 whoami@seoul.co.kr
  • “요코이야기 여전히 교재로 쓰여”

    “요코이야기 여전히 교재로 쓰여”

    “‘요코이야기’가 끝나기는커녕 여전히 계속되고 있습니다. 70세 일본인 저자가 아직 미국 학교를 순회하며 강연을 하고 있고요.” 4년 전 요코이야기 퇴출 투쟁을 시작한 재미동포 아그네스 안씨와 셰일라 장씨, 두 사람의 힘겨운 투쟁을 돕고 있는 김민정 매사추세츠 주립대 교육대학원 교수가 17일 한국을 찾았다. 이들은 한국인 대다수가 ‘요코이야기’가 다 끝난 것처럼 인식하고 있는데 대해 안타까움을 표시했다. 지난해 11월 미국 샌프란시스코 총영사관과 한국교육원 주최로 ‘요코이야기’ 교재 퇴출 성공 축하 기념회가 열렸지만, 매사추세츠를 비롯한 다른 지역 학교에서는 여전히 이 엉터리 역사 교재가 나돌고 있다. ‘요코이야기’는 일본계 미국인 요코 가와시마 왓킨스의 자전적 소설로 일본인 소녀와 가족들이 2차 대전 직후 한반도를 떠나는 과정을 그리면서 조선인들이 일본 부녀자들에게 강간과 폭력을 일삼았다는 등 왜곡된 내용을 담고 있다. 장씨는 “매사추세츠는 각급 학교에서 이 책을 교재로 활용하고 있고 아이들도 좋아한다.”면서 “이 책을 퇴출하기 위해 한인 학부모들이 노력하고 있지만 쉽지 않다.”고 말했다. 이 책이 학생들 사이에서 인기가 좋은 이유는 살인과 강간 등 아이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기 때문이라고 이들은 설명했다. 지난 6월 김 교수와 두 사람은 한국국제교류재단의 지원을 받아 매사추세츠 주립대 교육대학원의 미국인 교수들이 강사로 참여하는 ‘코리안 스터디 워크숍’을 열었다. 이들은 워크숍에 참석한 현지 교사 27명과 함께 토론을 갖고 ‘요코이야기’가 왜 잘못됐는지를 지적하며 대책을 협의했다. 김 교수는 “워크숍 이후 동료 교수들이 ‘요코이야기’가 잘못된 역사 인식을 심어 줄 수 있다는 의견서를 내는 성과가 있었다.”고 말했다. 안씨와 장씨, 김 교수의 이같은 노력은 작은 결실을 예고하고 있다. 매사추세츠주 교육부가 올가을 새 교육과정 도입과 함께 교재목록을 바꾸기로 한 것. 장씨는 “주 교육당국이 권장도서 목록을 거의 20년만에 처음 바꾸려 한다는 데 의미가 있다.”면서도 “문제는 교육부가 목록에서 요코이야기를 제외해도 일선 학교에서는 이 책을 계속 교재로 활용할 수 있기 때문에 지속적인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연합뉴스
  • [옴부즈맨 칼럼] 日총리 담화 공론장 역할 아쉬워/이종혁 경희대 언론정보학 교수

    [옴부즈맨 칼럼] 日총리 담화 공론장 역할 아쉬워/이종혁 경희대 언론정보학 교수

    “한일병합 100년을 맞아 간 나오토 일본 정부가 낸 총리담화는 한마디로 혼란스럽다.” 서울신문(사설, 11일자)의 진단대로 일본의 사죄 담화를 평가하기는 매우 어렵다. 한일병합의 강제성은 인정했는데, 불법성은 언급하지 않았다. 문화재 인도라는 가시적 조치가 계획됐지만, 일본군위안부나 강제징용 등에 대한 배상은 제외됐다. 15년 전 무라야마 담화보다 진전됐지만, 여전히 부족한 수준이라고 한다. 서울신문이 이번 담화를 1면(11일자) 톱기사로 전하며 “성의, 한계, 미래”라는 다면적이고 모호한 제목을 뽑은 것도 평가의 어려움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날 신문을 접한 독자들의 혼란은 더 컸을 것이다. 우리 정부는 일단 간 나오토 담화에 대해 대체로 긍정적 평가를 한 반면, 시민단체들은 이념 성향에 따라 엇갈린 반응을 보였다. 서울신문을 포함한 대부분 언론의 결론은 “반걸음 진전은 있었지만 여전히 부족하다”는 것이었다. 많은 사설이 담화 내용에 대한 명확한 평가보다 사후 실천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데에 그쳤다. 이런 상황에서 독자들은 이번 담화를 반겨야 할지 비판해야 할지 갈피를 잡기 힘들었을 것이다. 심지어 스스로 평가해 보고자 담화 전문을 꼼꼼히 읽은 경우도 있었을 것이다. 평가에 대한 혼란 탓인지 인터넷에 이와 관련된 의견들은 많이 눈에 띄지 않는다. 과거 일본 각료의 망언이나 독도 분쟁의 경우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이다. 물론 사과 행위와 적대적 행위에 대해 반응은 다를 수밖에 없다. 하지만 명확한 평가의 어려움이 의견 제시 부족으로 이어지고, 이는 광범위한 의견 교류를 어렵게 했을 것이란 짐작도 그럴 듯하다. 간 나오토 담화는 한·일 과거사에 대한 국제적 평가와 향후 양국 관계의 방향 설정에 있어 매우 중요한 역사적 의의를 갖는다. 우리가 혼란 속에 조용히 있기에는 너무 중대한 이슈이다. 담화에 대한 광범위한 국민적 토론이 있어야 한다.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을 비교해 가며 우리의 공통 입장을 정리해야 한다. 일본 정부의 후속 실천을 주시함과 동시에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에 대한 합의가 도출돼야 한다. 국민적 토론과 합의를 가능하게 하는 데에 언론은 필수적이다. 중요 의제에 대해 끊임없이 토론 과제를 던져 가급적 많은 독자들이 자유롭고 합리적으로 의견을 교환하도록 할 의무가 있다. 의제 설정(agenda-setting)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공론장(公論場, public sphere)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서울신문의 역할을 짚어보자. 지난 11일 간 나오토 담화가 처음 보도됐다. 이날 4개 지면과 사설을 통해 이를 주요 의제로 설정했다. 하지만 이날 이후 단발성 기사들만 몇 개 있었을 뿐, 독자들의 토론을 유발할 만한 관련 기사는 눈에 띄지 않았다. 독자들에게 이 사건은 보도 첫날만 주요 의제로 인식됐을 뿐, 이후 국민적 평가도 제대로 받지 못한 채 관심에서 잊힌 셈이다. 역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의제가 공론장에 들어오지도 못한 것이다. 언론의 책임이 크다. 만약 서울신문이 간 나오토 담화에 대해 각계 전문가 인터뷰, 지면 토론 중계, 인터넷 토론방 개설, 독자 의견 게재 등으로 토론을 활성화하고자 했다면 어땠을까? 명확한 평가가 나오지 않더라도, 국민적 공감대 형성만으로 서울신문의 공론장 역할은 주목 받았을 것이다. 최근 한 여론조사에서 한국인이 가장 먼저 떠올리는 일본인으로 이토 히로부미가 꼽혔다. 우리 국민의 일본에 관한 의식이 거의 100년 전에 머물러 있는 것이다. 가깝고도 먼 일본이라고 하지만 우리 공론장에서 다뤄지는 일본 관련 이슈는 너무 적다. 일본 각료의 망언 사건처럼 일회성으로 달아올랐다 쉽게 꺼지는 비정상적 공론도 개선돼야 한다. 이번 간 나오토 담화 보도는 서울신문의 공론장 역할에 대해 재점검할 기회가 될 것이다.
  • [글로벌 시대] 한국의 광복과 역사의 그늘/아르촘 산지예프 로시스카야 가제타 서울특파원

    [글로벌 시대] 한국의 광복과 역사의 그늘/아르촘 산지예프 로시스카야 가제타 서울특파원

    최근 몇 주 간 극심한 더위가 유럽을 강타하고 있다. 곳곳에서 산불이 발생하여 경작지와 마을이 잿더미가 되고 있기도 하다. 자연재해는 우리 세계가 얼마나 견고하지 못한지, 한순간에 어떤 심각한 변화가 발생할 수 있는지를 일깨워 준다. 이번 여름의 무더위로 수많은 나라가 겪고 있는 불행은 오래전의 사건, 즉 제2차 세계대전이라는 비극을 떠올리게 하는 상징이 되고 있다. 물론 그 원인이야 성격이 전혀 다른 것이지만, 제2차 세계대전으로 인한 피해와 희생은 지구상에 발생했던 그 어떤 자연재해보다 훨씬 더 심한 것이었다고 할 수 있다. 어제는 한국이 일본의 식민통치로부터 나라를 되찾은 지 65년이 되는 날이었다. 9월2일에는 전 세계가 6년간 지속되면서 수많은 인명피해를 초래했던 제2차 세계대전 종전 기념일을 맞게 된다.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국가들을 일본으로부터 해방시키기 위한 대일전쟁은 유럽에서 시작된 세계대전의 논리적 귀결이었다. 대일전쟁은 소련군이 참전하기 몇 년 전에 미국이 시작했다. 그러나 미국은 주로 공중과 해상에서 일본군과 싸웠다. ‘떠오르는 태양의 나라’의 육상 주력부대인 ‘관동군’은 당시 중국 북동부에 배치되어 있었다. 대일전쟁에 참전한 소련은 바로 이 관동군을 격파하기 위해 군대를 파견했다. 1945년 8월9일 소련군은 국경을 넘어 관동군의 한반도 퇴로를 차단했고, 관동군은 몇 주 만에 궤멸됐다. 이 과정에서 소련군은 4700명이 전사했는데, 그중 1963명이 한반도에서 전사했다. 당시 모스크바의 조치 덕분에 인명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을 뿐 아니라 일본인들이 남겨두고 간 한반도의 인프라와 산업시설도 보존될 수 있었다. 소련 정부는 주로 한반도 북부를 지원했으며, 그 결과로 한반도 북부에 조선인민민주주의공화국이 건설됐다. 당시 모스크바의 정책은 주로 대외정치적, 이데올로기적 동기에 따른 것이었다. 따라서 한반도 해방에서 소련의 역할에 관한 기억은 소련군의 묘지와 기념비가 남아 있는 북한에서 주로 유지되고 있다. 안타깝게도 세계사의 흐름은 한민족의 운명에 커다란 시련을 안겨 주었다. 해방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한반도는 양분됐고, 서로 다른 정치체계를 추구하는 두 개의 국가가 형성됐다. 그리고 그 후에 이어진 한국전쟁과 냉전은 오랜 세월 동안 한민족을 분단시켰고, 한국인들의 운명을 바꾸어 놓았다. 최근 새로운 문서들이 공개되면서 역사학자들이 당시의 사건들을 재검토하고 있으며, 새로운 의견과 가설들을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그들의 의견이 항상 객관적인 것은 아니며, 때로는 완전한 정치적 색채를 띠기도 한다. 전쟁에서 공정한 측면을 찾는다는 시도는 대부분 저급한 센세이션을 일으키거나, 전쟁을 겪어본 적이 없어 TV를 통해서만 전쟁에 대해 인식하고 있는 젊은이들의 사고를 교란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나는 그 어떤 전쟁도 본질적으로 침략행위이므로, 거기에서 미덕을 찾는 것은 무의미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전쟁이 침략자에 맞서는 것이라고 해도 그렇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공동의 적이 어떤 슬픔과 고통을 초래했고, 많은 사람의 운명을 망쳐 놓았는지에 대해서보다는 그 적에 맞서 싸웠던 여러 국가들 간의 우호와 협력에 대해 말해야 할 것이다. 오래전에 발생했던 비극에 대해서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런 점에서 나는 청년들이 민족을 위해 목숨을 바친 조상들의 희생을 잊지 않도록 하기 위해 한국정부가 개최하는 대규모 행사들을 항상 환영하는 입장이다. 미래세대 교육에서 자국의 역사를 알도록 하는 것은 극히 중요하다. 지난 세월의 사건들에 관한 기억이 사라지는 순간, 역사 스스로가 과거에 어떤 일이 있었는가를 상기시키려 할 것이고, 산불의 연기와 같은 위협적인 그늘이 드리워지게 될 것이다. 한국의 독립은 일본 제국주의에 맞서 싸운 연합국의 공동노력의 결과였다. 조국의 독립을 위해 오랜 세월에 걸쳐 혈전을 벌였던 한국 독립투사들의 공도 있었다.
  • 빅뱅 지드래곤과 열애설…미즈하라 키코는 한국계 일본 모델

    빅뱅 지드래곤과 열애설…미즈하라 키코는 한국계 일본 모델

    빅뱅 지드래곤과 열애중인 것으로 알려진 미즈하라 키코(水原希子, 20)는 한국계 일본인 모델이다. 미즈하라 키코는 1990년 10월 15일 생으로 키는 166cm, 2003년 세븐틴지가 주최하는 미스세븐틴에 선정되면서 모델로 데뷔했다. 세븐틴지 모델로 데뷔후 패션잡지 ‘ViVi’의 전속모델로도 활동하며 스캔들 없이 사생활이 깨끗하고 특히 입술이 매력의 포인트라는 평을 받고있다. 지난해 5월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村上春樹, 60)의 소설 ‘상실의 시대’(원제:노르웨이의 숲(ノルウェイの森)) 를 영화로 제작하는 데 연기경력이 전무한 모델 미즈하라가 여주인공으로 전격 캐스팅돼 화제가 되기도 했다. 모델에서 배우로 활동영역을 넓히고 있는 미즈하라는 미국인 아버지와 재일교포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로 한국어와 일본어, 영어에 능통한 것으로 알려졌다. 14일 일본 산케이스포츠는 두 사람은 지난해 6월 빅뱅이 일본 메이저 음악시장에 데뷔하며 알게된 후 연인으로 발전, 지드래곤이 한국과 일본을 오가는 바쁜 스케줄 사이에서도 미즈하라 키코와 원거리 연애를 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지드래곤 소속사는 “친한 사이는 맞지만 교제는 사실이 아니다”고 밝혔다. 빅뱅은 지난해 연말 한국인 그룹으로서는 처음으로 일본 레코드대상 시상식에서 최우수 신인상을 받는 등 현재 일본에서 활발한 활동을 벌이고 있다. 사진 = 서울신문NTN DB, ‘ViVi’ 공식홈페이지 서울신문NTN 뉴스팀 ntn@seoulntn.com 서울신문NTN 오늘의 주요뉴스 ▶ 유재석, 팬들 마련 아들 백일 포함 생일 이벤트에 감동 ▶ 양동근, 김태희의 ‘병풍남’ 변신…자상 매력 ‘눈길’ ▶ 나르샤, 13일의 금요일 ‘삐리빠빠’ 귀신분장 ‘폭소’ ▶ 화성인’에 수학강사 ‘공부의 신’ 등장…서울대 150명 입학시켜 ▶ 김연아, 애교 작렬…‘런닝맨’ 유재석에 “오빠~!” ▶ 농심 새우깡, 쥐머리에 이어 ‘쌀벌레’ 가득 충격 ▶ 앙드레김 300억원대 재산 상속자 중도씨… 네티즌 관심 집중
  • 지드래곤, 영웅재중 이어 ‘韓스타+日모델’ 열애설

    지드래곤, 영웅재중 이어 ‘韓스타+日모델’ 열애설

    그룹 빅뱅의 지드래곤이 한국계 일본인 모델 미즈하라 키코와 열애설의 주인공이 됐다. 일본 산케이스포츠는 14일 “지드래곤이 지난해 6월 빅뱅의 일본 데뷔 이후 알게된 미즈하라 키코와 연인으로 발전했다”며 “지드래곤은 한국과 일본을 오가는 바쁜 스케줄 사이에서도 미즈하라 키코와 원거리 연애를 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지드래곤 소속사 측은 두 사람의 관계에 대해 “친한 사이는 맞지만 교제는 사실이 아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팬들과 네티즌들은 열애설의 주인공인 미즈하라 키코에 깊은 관심을 드러내며 열광적인 반응을 보였다. 1990년생인 미즈하라 키코는 한국계 일본인 모델로, 미국인 아버지와 재일교포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이다. 2003년 모델로 데뷔한 미즈하라 키코는 일본 패션지 ‘ViVi’의 전속 모델로 활동했다. 또 지난해 5월에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동명 원작 소설을 영화화하는 ‘상실의 시대’에 캐스팅되는 등 배우로 활동영역을 넓혔다. 한편 지드래곤에 앞서 동방신기의 영웅재중도 한국인 아이돌 스타와 일본인 모델의 열애설에 휩싸인 바 있다. 일본 주간지 ‘주간여성’은 지난 6월 “영웅재중과 일본 모델 야노 미키코가 시부야 근처에서 데이트를 즐기는 현장이 목격됐다”고 보도해 열애설이 불거졌다. 또한 영웅재중은 지난해 11월에는 일본 여배우 아비루 유와의 열애설에도 휩싸인 바 있다. 사진 = 서울신문NTN DB, ViVi, 야노 미키코 블로그 서울신문NTN 뉴스팀 ntn@seoulntn.com 서울신문NTN 오늘의 주요뉴스▶ ’슈퍼스타K2’ 14세 이재성 노래, 이승철-아이비 녹였다▶ 김희선 무대실수 당시 故앙드레김의 배려 장면 ‘눈길’▶ 유재석, 팬들 마련 아들 백일 포함 생일 이벤트에 감동▶ 김태균 폭로 “김지선 각방 선언하고 넷째 출산”▶ 김혜수 ‘W’ 진행중 격분 "끔찍한 일이 아직도…"▶ ’보아 꽃다발 논란’ 이하늘 "진심 담긴 사과 준비 하겠다"▶ 앙드레김, 300억 재산은 아들 중도씨…유언장 관심집중
  • 日야구 센트럴리그 대혼전과 임창용

    日야구 센트럴리그 대혼전과 임창용

    일본프로야구 센트럴리그가 종반으로 갈수록 점입가경이다. 한신 타이거즈와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1위싸움, 아직 리그 1위 꿈을 버리고 있지 않은 3위 주니치 드래곤스와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낱같은 희망을 품고 있는 야쿠르트 스왈로즈의 싸움은 시즌이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다. 시즌 중반까지만 해도 요미우리,한신,주니치는 확실히 A클래스 팀으로 분류됐다. 어느 팀이 1위를 하느냐가 문제였지 특별한 이변이 없는한 이대로 시즌을 끝마칠 분위기였다. 하지만 8월 중순에 접어들면서부터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임창용이 속해 있는 야쿠르트 스왈로즈의 막판 분전때문이다. 최근 야쿠르트는 주니치,요코하마,요미우리로 이어지는 3연전에서 모두 승리를 거두며 9연승의 신바람을 내고 있다. 특히 요미우리전 싹쓸이는 한신과 선두싸움을 하고 있는 요미우리 입장에선 치명적인 결과였다. 리그 순위표에 지각변동을 몰고 온 야쿠르트는 덕분에 3위 주니치에 3경기 반차이까지 추격하며 막판 역전 기회를 잡았다. 임창용은 최근 팀 상승세와 때를 같이해 등판 횟수도 늘어가고 있다. ◆ 야쿠르트 포스트시즌 진출 희망, 임창용 있음에.. 올 시즌 야쿠르트는 마치 롤러코스터를 타는것과 같은 굴곡된 모습을 보여줬다. 선발 투수진들의 붕괴는 임창용의 마운드 출격을 방해했고 팀 성적도 도저히 포스트 시즌에 올라갈 희망조차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최근 야쿠르트는 전혀 다른팀으로 변모했다. 최근 선발 투수들의 활약만 놓고 보면 리그 최강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이시카와 마사노리-사토 요시노리-무라나카 쿄헤이-나카자와 마사토-타테야마 쇼헤이-토니 바넷. 이 6인 선발 로테이션은 마치 톱니바퀴가 맞물리듯 최근 팀 연승의 주역들이다. 선발진들의 활약은 곧 임창용의 세이브 기회와 직결되는 문제다. 시즌 한때 선발진들의 부진으로 개점휴업 기간이 길었던 때와 비교하면 전혀 다른 상황이다. 야쿠르트의 좌완 에이스인 이시카와는 개막전부터 6연패를 당하며 팀 몰락의 주범으로 지목됐던 투수다. 하지만 이시카와는 최근 등판한 6경기에서 모두 승리를 따냈다. 한 시즌을 치르면서 이렇게까지 굴곡을 보였던 적이 있었나 싶을정도로 전반기와 후반기의 모습이 다르다. 여기에다 기존의 무라나카와 신인 나카자와의 활약은 한때 팀이 시즌을 접을거란 절망을 되살린 장본인들이다. 일본프로야구 토종 투수들 가운데 가장 빠른 공을 던지는 요시노리의 분전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7월 29일(히로시마전)경기에서 자신의 프로 첫 완투승, 8월 5일(주니치전)에는 첫 완봉승, 그리고 12일 요미우리와의 경기에선 7이닝 3실점 승리투수가 되며 최근 3연승을 내달렸다. 히로시마전에서 158km의 광속구로 역대 일본인 최고구속 타이기록을 세웠던 요시노리는 요미우리와의 경기에서도 다시한번 158km를 뿌리며 팬들을 놀라게 했다. 최근 1군에 다시 복귀한 지난해 리그 다승왕인 타테야마, 그리고 외국인 투수 바넷까지 연승행진에 가담, 이젠 야쿠르트도 거칠것이 없는 선발진이 완성됐다. 현재 리그 세이브 1위는 주니치의 이와세 히토키(31세이브)다. 그 뒤를 임창용(25세이브)이 뒤쫓고 있는데 한때 세이브왕 타이틀은 언감생심이었지만 이젠 이부문 타이틀을 노려볼만 하다. 12일 현재 야쿠르트는 100경기를 소화하며 리그에서 가장 많은 경기를 치른 주니치(105경기)보다 5경기가 여유로운 상태다. 주니치는 지난해와 비교해 확실히 선발투수들의 무게감이 떨어진다. 최근 경기에서 연승과 연패를 반복하고 있는것도 이때문이다. 선발 원투펀치인 요시미 카즈키(9승 6패)와 첸 웨인(9승9패)을 제외하면 믿을만한 선발투수가 부족한 주니치다. 아사오 타쿠야가 선발이 아님에도 7승이나 거두고 있는 것은 팀의 현실을 대변해 주고 있다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지금과 같은 페이스라면 이제는 이와세보다 임창용의 세이브 기회가 더 늘어날것으로 전망된다. ◆ 센트럴리그 우승의 키는 야쿠르트가 쥐고 있다 자고 나면 순위가 뒤바뀐다. 요미우리의 4년연속 리그 우승을 호언장담했던 하라 감독의 마음속엔 벌써 임창용이 들어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임창용은 요미우리와의 3연전(10-12일)에서 모두 마운드에 올라 2세이브를 챙기며 하라 감독의 짝사랑을 실험했다. 요미우리는 12일 경기마저 패하며 57승 45패(승률 .559)가 돼 이날 히로시마에게 승리한 한신(54승 2무 42패 승률 .563)에게 다시 1위 자리를 내줬다. 승차 없이 승률에서 뒤져 2위로 내려앉긴 했지만 무엇보다 지난 주말 주니치에게 3연패를 당한 한신을 완전히 밀어내지 못한게 뼈아팠다. 그렇다고 해서 한신의 1위 자리도 안심할수 없는 상황이다. 이번 주말 3연전(13-15일)에서 야쿠르트를 상대하기 때문이다. 리그 일정표가 기가 막히다. 선두 요미우리를 2위로 추락시킨 야쿠르트가 이번엔 한신을 상대로 1위 자리 유무를 결정할것으로 보인다. 최근 9연승의 상승세를 타고 있는 야쿠르트라면 요미우리 뿐만 아니라 한신을 상대로도 몹쓸짓(?)을 할 가능성이 크다. 이쯤되면 올해 리그 우승의 키는 야쿠르트가 쥐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야쿠르트는 이뿐만 아니라 한신전에서도 연승을 이어가 멀게만 느껴졌던 3위 주니치를 사정권 안에 넣을수 있는 발판을 마련할 계획이다. 어떻게 보면 올해 센트럴리그는 1위 싸움 못지 않게 3위 싸움도 치열해 포스트시즌 진출팀은 시즌이 끝나봐야 알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또한 알렉스 라미레즈,크레이그 브라젤,아베 신노스케의 홈런왕 싸움 3파전, 토노 순과 마에다 겐타의 다승왕 경쟁 등,올 한해 일본야구는 야구를 좋아하는 팬들의 이목을 끌만한 요소가 너무나 많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해외야구통신원 윤석구 http://hitting.kr/
  • [씨줄날줄] 광화문과 柳宗悅/노주석 논설위원

    유종열은 일본 당대 최고의 미술평론가이자 ‘공예의 아버지’로 칭송받는 야나기 무네요시의 한국식 이름이다. ‘야나기 무네요시(柳宗悅·1889~1961)’라고 일본이름 표기법대로 쓰지 않은 까닭은 그의 이름이 갖는 상징성을 강조하기 위해서다. 여느 조선인보다 조선을 더 사랑한 특별한 일본인이었기 때문이다. 명문가 출신의 종교철학자였지만 우연히 조선도자기 ‘청화모깎기초화문표주박형병’을 접한 뒤 인생항로를 바꿨다. ‘조선의 친구에게 보내는 글’에서 그는 “깊은 존경의 마음을 조선에 바치지 않을 수 없다.”라고 고백했다. 석불사의 조각에 대하여, 조선의 민화, 조선의 석물, 조선의 연적, 조선 도자기의 특질, 조선의 항아리, 조선의 찻잔, 조선의 목공예품, 조선의 석공, 조선의 금공, 조선 도기의 미와 그 성질 등등이 남긴 글의 제목이다. 조선의 미학과 예술품에 대한 존경심과 찬미는 끝이 없었다. 우리가 모르던 우리의 아름다움을 알려준 사람이다. 조선의 미를 ‘비애(悲哀)의 미’로, 지배적 정서를 ‘한(恨)’으로 정의한 것도 그였다. “가장 슬픈 생각을 노래한 것이 가장 아름다운 시가(詩歌)”라는 영국의 낭만파 시인 셸리의 시구대로 비애를 미의 극치로 여겼다. 훗날 패배주의를 부추긴 또 하나의 식민사관이라는 비판이 따랐다. 저술가 정일성은 ‘야나기 무네요시의 두 얼굴’에서 “일제 식민통치법을 문화통치로 바꾸는 데 일조한 제국주의 공범이자, 민예운동가가 아닌 문화정치 이데올로그”라고 평가절하했다. 조선독립을 원하지 않은 문화통치의 브레인에 불과했다는 것이다. 반면 깐깐한 민족주의자 송건호 선생 같은 이는 “유종열씨의 글을 통해 우리 민족의 예술에 대해 비로소 눈을 크게 뜨게 됐다.”라고 긍정적으로 평가했었다. 광화문이 복원돼 광복절날 첫선을 보일 예정이다. 그의 광화문 연가는 유명하다. 1922년 일제의 광화문 철거계획이 알려지자 도요대(東洋大) 교수였던 그는 일본 월간지(개조)에 ‘장차 잃게 된 조선의 한 건축을 위하여’라는 장문의 글을 기고했다. “광화문이여! 광화문이여! 너의 생명이 조석(朝夕)에 절박하였다./어찌하면 좋을까?/ 가령 일본이 쇠약하여 궁성이 폐허가 되고 에도성이 헐리는 모습을 상상해 주기 바란다.”라고 반대의 깃발을 들었다. 총독부는 여론에 굴복, 계획을 철회해 경복궁 동쪽으로 광화문을 옮기는데 그쳤다. 유종열에 대한 평가는 엇갈리지만, 광화문을 살린 일등공신임에는 틀림없다. 노주석 논설위원 joo@seoul.co.kr
  • [한·일 100년 대기획] “이젠 韓 부러워”

    일본의 경제주간지 ‘동양경제’는 지난달 31일자에서 ‘한국의 실력’이라는 제목으로 38쪽 분량의 대특집을 보도했다. 80쪽 남짓한 이 주간지로서는 절반 정도를 한국 특집에 할애한 셈이다. 한국의 경제, 정치, 교육, 사회 등 각 분야의 장점과 단점을 두루 점검했지만 특히 삼성, LG, 현대차, 포스코, NHN을 집중 분석했다. ●IMF이후 구조조정·전략사업 강화 일본 경제신문도 지난 3월 ‘삼성을 추격하자’라는 제목의 기획기사를 5차례에 걸쳐 게재하며 삼성이 급성장한 비결을 조명했다. 일본 언론에서 한국 경제와 한국기업의 특집 기사를 다루는 것은 이제 화제도 되지 않는다. 신문, TV, 잡지 등 모든 매체에서 수시로 한국 경제가 지난해 금융위기를 어떻게 이렇게 빨리 극복하고 강해졌는지에 대한 보도가 쏟아지고 있다. 이런 일본 언론의 잇단 칭찬 릴레이에도 국내에서는 일본인들의 혼네(속마음)와 다테마에(겉으로 드러나는 마음)를 감안해 들뜨지 말자며 차분함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들린다. 적절한 대응이라고 여겨지지만 일본의 한국에 대한 시각은 불과 2~3년전과 비교해도 확연히 달라졌다는 게 한·일 관계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평가다. 일본이 최근 들어 집중조명하는 한국 경제의 장점은 세 가지로 요약된다. 우선 1997년과 1998년 IMF사태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추진한 구조조정과 전략사업강화가 결실을 보고 있다는 평가다. 일본의 경기침체가 ‘잃어버린 10년’을 넘어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위기를 기회로 만든 한국 경제에 진정어린 부러움을 표시한다. 기존 시장에 안주하지 않고 제3세계 등 해외시장 개척에 적극 도전하는 것을 한국의 최대 장점으로 꼽는다. 실제로 삼성이나 LG는 매출액의 약 90%를 해외에서 번다. 일본에서는 소니가 70%, 파나소닉이 50%를 차지한다. 이처럼 한국기업의 해외 매출액 비율이 높은 데는 국내총생산(GDP)이 지난해 기준 8325억달러로 일본 5조 675억달러보다 5분의1 수준으로 작기 때문이다. “해외시장에서 지면 절체절명의 위기”라는 의식이 한국기업을 강하게 만든 비결이라는 얘기다. 정부가 법인소득세의 실효세율을 24.2%로, 일본보다 무려 15%나 낮춰 기업을 측면지원한 점도 일본은 주목하고 있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정부의 산업재편으로 제품마다 1, 2개사로 집약돼 자국기업을 상대로 소모전을 치를 필요가 없다는 점도 한국 기업의 장점으로 거론한다. ●빨리빨리 경영은 모든 기업의 롤 모델 ‘빨리빨리 경영’도 한국기업들의 약진비결로 꼽는다. 시장이나 경쟁기업을 철저히 관찰한 뒤 신속하게 움직이는 스피드가 돋보인다는 평가다. 삼성전자는 지난 2월 하순 ‘3D TV’를 경쟁기업보다 먼저 내놓았다. 당초 3월 발매 예정이었지만 이를 앞당긴 덕에 LG전자나 파나소닉, 소니보다 우위를 점할 수 있었다. 빨리빨리 경영이 세계 각지에서 ‘삼성=3DTV’라는 인식을 각인시킬 수 있었다는 평가다. 이명박 대통령도 일본 언론이 반드시 꼽는 한국 경제의 강점 중 하나다. 최고경영자(CEO) 출신의 대통령이 ‘신속한 의사결정’이나 ‘집중투자’라는 경영방법으로 리더십을 발휘하고 있다는 얘기다. 중동이나 남미 등지에서 원전이나 무기. 플랜트를 연이어 수주하는 등 이 대통령의 방문지가 ‘성과발표’의 무대가 되는 경우가 많다고 전한다. 도쿄 이종락특파원 jrlee@seoul.co.kr
  • 日총리 “한국인 뜻 反해 식민지배 통절한 반성”

    日총리 “한국인 뜻 反해 식민지배 통절한 반성”

    1910년 8월 단파 라디오에 귀를 기울이던 일본인들은 순간 환호성을 내질렀다. 한국이 일본에 병합됐다는 소식이 전해졌기 때문이다. 도쿄나 오사카의 번화가에서는 사람들이 술잔을 기울이며 한일합병을 축하했다. 그로부터 꼭 100년이 지난 2010년 8월10일 오후 일본 94대 간 나오토 총리가 마이크 앞에 섰다. 그는 “식민지 지배가 가져온 다대한 손해와 고통에 대해 다시 한번 통절한 반성과 마음으로부터의 사죄를 표명한다.”는 내용의 담화문을 읽어 내려갔다. 간 총리는 한·일 간 과거사와 관련해 “3·1독립운동 등의 격렬한 저항에서도 나타났듯이 정치·군사적 배경하에 당시 한국인들은 그 뜻에 반해 이뤄진 식민지 지배에 의해 국가와 문화를 빼앗기고, 민족의 자긍심에 깊은 상처를 입었다.”며 이같이 사과했다. 간 총리는 또 “일본이 통치하던 기간에 조선총독부를 경유하여 반출돼 일본 정부가 보관하고 있는 조선왕실의궤 등 한반도에서 유래한 도서에 대해 한국민의 기대에 부응하여 가까운 시일에 이를 인도하고자 한다.”고 덧붙였다. 일본 정부가 1965년 국교정상화 당시 문화재협정에서 일부 강탈 문화재를 돌려준 뒤 공식적으로 정부 차원의 문화재 반환 의사를 표명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역대 한·일 관계는 과거사 인식에 따라 협력이나 갈등 등 우여곡절을 겪었다. 박정희 정권은 1965년 한·일 국교정상화를 통해 일본으로부터 총 5억달러에 달하는 유·무상 경제협력자금을 지원 받았다. 1998년 김대중 정부 때는 한·일 파트너십이 체결됐다. 반면 김영삼 정부와 노무현 정권에서는 일본 자민당 출신 총리들의 망언과 야스쿠니신사 참배 등으로 한·일 외교관계가 최악의 국면으로 치달았다. 이번 간 총리의 담화 내용도 한계를 드러냈다는 지적이다. 한·일 지식인 1000여명이 지난달 성명을 내고 “한국병합조약은 조선(한국)인의 의사에 반해 강제된 것으로 원천 무효”라는 내용을 총리 담화에 포함하라고 요구했지만 이번 담화에 반영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간 총리의 이번 담화를 계기로 한·일 관계가 더욱 공고해질 것이라는 예상이 지배적이다. 새로운 한·일 100년이 더 중요하고, 이를 위해서는 과거사를 넘어 독도나 교과서 문제 등에 대한 보다 전향적인 일본의 자세가 기대되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 간 나오토 내각 각료 17명 전원이 오는 15일 종전기념일에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하지 않기로 했다고 현지 언론이 10일 보도했다. 종전기념일에 모든 각료가 야스쿠니신사에 참배하지 않는 것은 30년 만에 처음이다. 한편 이명박 대통령은 10일 간 나오토 일본 총리의 ‘식민지 지배 사과 담화’ 발표와 관련, “앞으로 일본이 이를 어떻게 행동으로 실천하는지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오전 11시부터 20분 동안 간 총리와 전화통화를 갖고 이렇게 말했다고 김희정 청와대 대변인이 전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양국 간 현안이나 협력 방안에 대해 진정성을 갖고 지혜롭게 협력해 가자.”고 말했다. 간 총리는 “일본 내각의 결정을 담은 담화문의 내용을 상세히 설명하고 제 소회도 이 대통령에게 전하고 싶어 전화를 했다.”면서 이 대통령에게 담화문의 내용을 자세하게 설명했다. 간 총리는 담화문 내용이 본인의 뜻일 뿐 아니라 내각 구성원과 충분히 상의한 ‘일본의 뜻’이라고 설명했다. 구체적 실천 방향과 관련해서는 “반성할 것은 반성하면서 미래를 보겠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간 총리는 또 오는 11월 열리는 서울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와 요코하마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 앞서 이 대통령이 일본을 방문해 달라고 요청했다. 이에 대해 이 대통령은 긍정적으로 답변했다. 이에 따라 양국 정부는 이 대통령의 방일과 관련한 실무 협의에 들어갔다. 도쿄 이종락특파원·김성수기자 jrlee@seoul.co.kr
  • [길섶에서]감동/함혜리 논설위원

    일본에서 소포가 왔다. 겉봉의 일본인 이름은 낯설기만 하다. 성급히 소포를 뜯었다. 꽃무늬 프린트가 된 널따란 천이 한장 들어 있다. 설명서를 보니 보자기, 책보, 가방 등으로 다양하게 사용할 수 있다고 한다. 보내준 성의는 가상한데 아무래도 좀 싱겁다. 포장지를 버리려다가 속을 들여다봤다. 편지 봉투가 들어 있다. 하마터면 버릴 뻔한 편지. 만년필로 꼼꼼히 적어 내려간 사연이 장장 석장이나 된다. 짧은 일본어 실력을 총동원해 대충 읽어 보니 그제서야 소포를 보낸 주인공이 떠올랐다. 한국에 취재 차 왔던 NHK의 여성 PD였다. 인사를 나누고 얘기를 하다가 노자의 상선약수(上善若水)가 쓰여 있는 부채를 선물했다. ‘최상의 선은 물과 같은 것’이라는 말을 항상 마음에 담고 일하면 잘 견뎌낼 수 있을 것이라는 말도 곁들였다. 너무 깊은 감동을 받았고, 평생 그 말을 기억하겠단다. 부채를 액자에 넣어 걸어두고, 한국말 공부도 시작할 계획이란다. 나는 그날 일을 까맣게 잊고 있었는데 이렇게 감동을 받았다니 정말 감동이다. 함혜리 논설위원 lotus@seoul.co.kr
  • [고전 톡톡 다시 읽기] 조주선사의 화두 ‘끽다거(喫茶去)’

    ‘벽암록’의 근간이 되는 텍스트는 설두중현(雪竇重顯·980~1052) 스님이 설두산의 자성사에 머물면서 옛 조사들의 고칙(古則) 100개를 정리하고 여기에 송을 붙여 만든 ‘설두송고’다. ‘벽암록’은 송대에 원오극근(1063~1135) 스님이 ‘설두송고’를 바탕으로 수행자에게 제창하기 위해 만든 어록으로, 설두 스님의 본칙과 송에 원오 스님의 수시, 평창, 착어가 더해져 1125년에 완성되었다. 원오 스님은 중국 후난성 창더에 있는 협산사에서 ‘벽암록’을 집필했다고 하는데, 전하는 바에 따르면 쏟아지는 졸음을 쫓기 위해 벽암천의 온천수를 길어와 그 위에 찻잎을 띄워 마셨다고 한다. 스님이 일본인 제자에게 남겨주었다는 ‘다선일미(茶禪一味)’라는 말도 있지만, 차와 관련된 유명한 화두는 뭐니뭐니해도 조주선사의 ‘끽다거(喫茶去)’ 화두다. 절에 와본 적이 있다는 학인에게도, 와본 적이 없다는 학인에게도, 조주가 한 말은 “차 마시게.”였다. 학인들이 돌아간 후 “어째서 와보았다 해도 차나 마시라 하고, 와본 적이 없다 해도 차나 마시라고 하십니까?”라고 묻는 원주(院主)에게도 조주 스님은 말한다. “자네도 차나 마시게!” 조주 스님은 시종일관 그저 ‘차 마시게.’라는 한마디를 했을 뿐이다. “누구나 매일 마시는 차로써 수월하게 종지를 전하는 방식에 세파의 인연을 귀찮다 하지 않고 유연하게 따르는 조주의 비결이 나타난다. 조주가 학인들의 전력을 가리지 않고 권한 뜻과 일치해야 조주가 정성껏 올린 한 잔의 차 맛을 진실로 음미할 수 있을 것이다.”(김영욱, ‘화두를 만나다’)하지만 여전히 알 수 없다. 우리 같은 범인으로서는, 차나 한잔 하고 ‘벽암록’을 펴드는 수밖에! 서울신문·수유+너머 공동기획
  • [서울광장] 광화문 복원과 日帝의 조선왕궁 말살기/노주석 논설위원

    [서울광장] 광화문 복원과 日帝의 조선왕궁 말살기/노주석 논설위원

    돌아오는 광복절날 제대로 된 광화문을 보게 될 모양이다. 조선의 법궁(法宮)인 경복궁의 정문 광화문이 본래 모습 그대로 태어난다니 말이다. 광화문은 조선왕궁 수난사와 궤를 같이한다. 임진왜란 때 불탔다가 흥선대원군이 다시 지었지만, 일제에 나라를 빼앗기고 이리저리 옮겨지는 과정에서 훼손되고 뒤틀렸다. 일제는 민족정기와 조선왕실의 권위를 훼절시키고자 궁궐을 철저하게 파괴했다. 일제의 조선왕궁 말살정책은 용의주도했고 결과는 참담했다. 5궁 가운데 경복궁은 해체되다시피 했고, 창덕궁은 피폐해졌으며, 창경궁은 동물원으로 둔갑했다. 경희궁은 학교가 됐고, 경운궁은 덕수궁으로 이름이 바뀌어 퇴위한 고종과 순종의 거처로 쓰였다. 훼손되기 전 경복궁 전경 사진이 공개된 적이 있다. 1915년쯤 촬영된 경복궁은 높은 담 뒤로 전각이 빽빽하게 들어선 웅장한 궁궐이었다. 우리가 아는 쪼그라든 경복궁이 아니었다. 1867년 중건 당시 경복궁 전각은 모두 7226칸이었고, 궁성 밖 후원에 489칸의 전각이 따로 있었다. 모두 7715칸으로 규모 면에서 9999칸을 자랑하는 중국 자금성에 못지않았다. 창덕궁의 4500칸을 합치면 오히려 더 컸다. 일본 교토의 천황궁은 넓이에서 경복궁의 4분의1에 불과한 작은 궁에 불과했다. 서울신문의 전신인 대한매일신보 1910년 5월1일 자에 ‘경복궁 없어지네’라는 제목의 가슴 아픈 기사가 실려 있다. ‘경복궁이 명성황후 시해사건 이후 을씨년스러운 곳으로 변한 것은 모두 알지만 얼마 전 왕실사무를 관장하는 궁내부에서 경복궁 안에 공원을 짓고자 전각 4000여 칸을 경매에 부쳤다. 10여명이 한 칸당 15~27환씩에 샀다. 이 중 3분의1을 사간 일본인은 척식회사 총재의 첩자로 알려졌다.’는 내용이다. 경복궁 안에서 박람회를 열고, 총독부를 근정전 앞에 짓기 이전부터 왕궁의 전각들이 일본인의 손에 헐값에 부지기수로 넘겨졌음을 알 수 있다. 바다 건너 일본에 팔려간 전각은 개인 미술관이나 정자, 정원의 일부가 됐다. 심지어 상점이나 기생집 문으로 사용됐다. 경복궁의 파괴는 식민통치의 업적을 자랑하는 박람회 개최 과정에서 가속화됐다. 1915년 조선물산공진회, 1923년 조선부업품공진회, 1925년 조선가금공진회, 1926년과 1929년 조선박람회, 1935년 조선산업박람회 등 모두 6차례의 박람회를 통해 자행됐다. 경복궁의 유서 깊은 전각들은 유흥장소와 오락장으로 변했다. 행사 때마다 일본 총독이 근정전 임금의 용상에 앉아 상장을 주고, 훈시를 했다. 한·일 강제병합 100년을 맞아 이제야 자리를 찾은 광화문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광화문 제자리 찾기는 일제가 허문 조선 척추의 복구이다. 20년 걸려 광화문-흥례문-금천교-근정문-근정전-사정문-사정전-강녕전-교태전으로 이어지는 경복궁의 등뼈를 겨우 맞췄다. 1990년에 시작된 복원은 아직도 진행형이다. 착수 당시 남아 있는 전각은 36개 동에 불과했지만 지난 20년 동안 89개 동을 지어 125개 동을 갖췄다. 중건 당시 500여개 동의 25% 수준이다. 조선법궁의 격을 떨어뜨리는 흉물스러운 민속박물관과 고궁박물관, 주차장의 철거는 별개의 문제이다. 경복궁과 나머지 궁궐을 완전 복원하려면 앞으로 얼마나 시간이 더 걸릴지 아무도 모른다. 일본의 간 나오토 총리가 광복절 즈음 사과 담화문을 발표할 예정이라고 한다. 1965년 한·일국교정상화 당시 사토, 종전 50주년의 무라야마, 종전 60주년의 고이즈미 총리에 이은 네 번째 공식 사과가 될 전망이다. 내용을 놓고 일본열도가 떠들썩하다. 1995년 무라야마는 “통절한 반성의 뜻을 표한다.”고 해 놓고 2개월도 못 가 “조선에 대한 식민지배는 정당했다.”라고 말을 바꿨다. 일본정부는 지난해 강제징용 피해자에게 껌 한 통 살 수 없는 돈 99엔을 보상했다. 외교적 레토릭은 신물이 난다. 조선왕궁 말살 같은 정신적·문화적 피해는 어떻게 보상할 셈인가. joo@seoul.co.kr
  • [MLB] 秋 “마쓰자카 꿇어”

    ‘추추 트레인’ 추신수(28·클리블랜드)가 일본인 투수 마쓰자카 다이스케를 상대로 의미있는 부상 복귀 첫 축포를 쏘아올렸다. 추신수는 6일 미국 보스턴 펜웨이파크에서 열린 미프로야구 보스턴과의 원정 경기에서 1회초 솔로 홈런을 포함해 4타수 2안타 1타점 1득점의 맹타를 휘둘렀다. 타율은 .295로 치솟았고, 시즌 50타점째를 수확했다. 추신수가 홈런을 때린 건 지난달 1일 토론토전 이후 36일 만이다. 지난달 3일 엄지손가락 부상을 당한 추신수는 21일 만에 탬파베이전을 통해 복귀한 뒤 14일만에 대포를 쏘아올렸다. 시즌 14호째. 이로써 추신수는 20(홈런)-20(도루) 클럽 가입 가능성까지 한층 높였다. 특히 상대선발 마쓰자카와의 자존심 대결에서 이겼다는 점이 고무적이다. 추신수는 그동안 강속구 투수로 알려진 마쓰자카에게 7타수 1안타(3삼진)로 약한 모습을 보였다. 지난해 3월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한·일전에서도 2타수 무안타로 물러나는 수모를 당했다. 하지만 이날 3번타자 겸 우익수로 선발 출장한 추신수는 1회초 2사 주자없는 상황에서 마쓰자카의 시속 151㎞ 낮은 직구를 통타, 가운데 담장을 훌쩍 넘겼다. 추신수는 6회초 1사에서도 마쓰자카를 상대로 중전안타를 뽑아내 앞으로의 맞대결에서도 자신감을 가질 수 있게 됐다. 아쉬운 건 추신수의 맹활약에도 불구하고 클리블랜드는 보스턴에 2-6으로 역전패했다는 점이다. 황비웅기자 stylist@seoul.co.kr
  • [미술플러스]

    우죽 양진니 10일부터 개인전 우죽 양진니 전 서예협회 이사장의 개인전이 10일부터 23일까지 서울 인사동 서울미술관에서 열린다. 서예계 거목인 변석정·손재형,일본인 이노우에 가토에게 가르침을 받은 그는 전통서예의 맥을 고집스럽게 지켜온 원로 서예가이다. 2006년 한국 서예 3대가전 이후 쓴 작품 등 400여점을 선보인다. (02)732-3325. 아트페어 ‘아트 로드 77’ 6일 개막 경기 파주 헤이리의 갤러리들이 참여하는 아트페어 ‘아트 로드 77’이 6일부터 26일까지 헤이리 일대에서 열린다. 헤이리를 지나는 자유로의 국도 번호인 77에서 이름을 딴 행사는 국내 20~30대 청년작가 발굴과 지원을 목표로 지난해 시작됐다. 유망 청년작가 77명을 소개하는 본전시를 비롯해 중견·원로 작가들이 기부한 작품으로 구성되는 ‘중견작가전’ 등이 함께 열린다. 수익금은 국제아동구호단체인 세이브더칠드런에 기부된다. (031)057-1005.
  • 부여·공주 “백제문화 영광 되살린다”

    부여·공주 “백제문화 영광 되살린다”

    백제의 고도(古都) 충남 부여·공주가 신라의 고도 경북 경주시를 따라잡을 수 있을까. 경주 양동마을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는 등 역사도시로 발전과 영화를 누리는 가운데 충남도와 자치단체들이 쇠락한 백제 고도 살리기에 나섰다. 충남도는 5일 세계유산신청서 작성과 자료보완 등을 거쳐 2015년 ‘공주·부여 역사유적지구’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도는 지난 1월11일 공주 무령왕릉 등 공주·부여지구 19개 유산을 세계문화유산 잠정목록으로 등재시킨 바 있다. 다음 달 2일부터는 롯데부여리조트가 문을 연다. 부여 규암면 합정리에 들어선 이 콘도는 객실 322실 규모다. 역사·문화 테마리조트인 이곳은 올해 안에 유명 브랜드가 입점한 ‘프리미엄 아웃렛’과 18홀 규모의 골프장을 착공한다. 이어 2013년까지 백제테마정원, 인공 선화호, 롯데어린이월드, 팜파크 등을 조성할 계획이다. 전준호 충남도 백제역사지원계장은 “보문단지가 경주의 획기적 발전을 이끌었듯이 부여리조트는 백제 고도 발전의 시발점이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다음 달 18일 세계대백제전 개막과 함께 문을 여는 인접 백제문화단지도 왕궁촌 등 백제역사와 문화를 재현해 기대를 모은다. 하지만 경주와는 아직 관광인프라 등 격차가 크다는 지적이 많다. 경주 보문단지는 특급·관광호텔 15개, 555실을 갖춘 콘도 8개가 있다. 부여는 45실짜리 2급 호텔 1곳, 공주에는 49실짜리 관광호텔 1개가 전부다. 전체 숙박시설은 경주가 338개에 이르지만 부여는 69개, 공주는 118개에 불과하다. 일반 음식점도 경주 4768개, 부여와 공주가 각각 870개와 1938개로 상당한 차이를 보인다. 부여·공주에는 위락시설이 아직 한곳도 없다. 연간 관광객은 지난해 부여와 공주가 각각 478만명과 308만명을 기록한 반면 경주는 828만명에 이른다. 외국인 관광객도 경주는 51만명이 넘었으나 부여와 공주는 10만여명과 2만 8000명으로 격차가 크다. 경주시 관계자는 “경주는 통일신라까지 1000년의 역사지만 부여는 123년, 공주는 63년으로 짧아 유적과 유물의 수와 다양성에서 차이가 많다.”고 설명했다. 부여군 관계자는 “경주는 역대 정부의 정책적 배려가 있었고, 역사상 승자와 패자라는 부분도 격차를 벌려 놓았다.”고 지적했다. 충남도는 다음 달 19일부터 10월17일까지 공주·부여 일대에서 ‘700년 대백제의 꿈’을 주제로 세계대백제전을 연다. 주요20개국(G20) 정상회의에 앞서 참가국 관광장관들이 모이는 ‘T20’ 회의도 10월11~14일 부여에서 개최된다. 4대강 사업으로 백마강 주변에 생태습지, 자전거도로, 데크 등이 들어서는 것도 관광자원으로 한몫할 것으로 주민들은 기대하고 있다. 공주시는 다음달 16일 웅진동 공주문화관광지에서 단체용 한옥 6동으로 구성된 구들방 한옥촌을 연다. 내년 6월 이곳에 추가로 단독 한옥 23채가 들어선다. 2012년에는 국제컨벤션센터와 백제문화공원 등으로 이뤄진 고마아트콤플렉스를 개장한다. 박순발 충남대 고고학과 교수는 “공주·부여는 발굴조사가 덜 이뤄진 데다 도굴도 많아 한계는 있다.”면서도 “불교 유적은 백제가 압도적이고, 일본인 관광객이 부여를 많이 찾을 정도로 백제가 동아시아의 중심이었다는 것을 부각시키면 가능성이 없지 않다.”고 전망했다. 대전 이천열기자 sky@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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