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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양~시모노세키 항로에 관광객 몰려

    전남 광양~일본 시모노세키 간 정기항로 개설 이후 일본 관광객들이 전남으로 몰려들고 있다. 18일 도에 따르면 오는 3~4월 남도의 봄을 만끽하기 위해 뱃길 예약을 마친 일본인들은 1000여명. 광양과 시모노세키·모지항을 연결하는 광양훼리㈜의 광양비츠호는 국내 관광객뿐만 아니라 일본인 관광객들 사이에도 인기를 얻고 있다. 특히 3월 18일과 25일에는 일본 요미우리여행사의 1박3일 상품에 각 80명씩 160명이 예약을 마쳤다. 광양 최종필기자 choijp@seoul.co.kr
  • 일본 기발한 로봇 상위 ‘톱 10’은?

    일본 기발한 로봇 상위 ‘톱 10’은?

    21세기 로봇 산업이 발달하면서 기상천외한 로봇들이 속속히 개발되고 있다. 17일(현지시간)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는 일본에서 개발된 신기하고 이색적인 로봇의 상위 ‘톱 10’을 뽑아 소개했다. 1위는 결혼식 주례 로봇이 선정됐다. 일본 코코로 주식회사가 630만 엔(한화 약 8400만 원)의 개발비를 들여 제작한 ‘아이 페어리’(I-Fairy)는 어린아이 키 정도 되는 약 120cm 높이의 로봇으로 실제 일본 커플의 결혼식에서 직접 주례를 해 화제를 모은 바 있다. ‘아이 페어리’는 결혼식에서 미리 녹음된 주례사를 낭독하면서 주변 사람들을 인식하고 자연스러운 움직임을 따라 할 수 있다. 이어 일본의 한 패션쇼에서 피날레 무대를 장식한 여성형 패션모델 로봇 ‘미임’(Miim)이 2위를 차지했다. 이 로봇은 160cm라는 비교적 늘씬한 키에다 무대 위를 모델처럼 걸을 수 있으며 무대 끝 부분에 잠시 멈춰서 포즈를 취할 수도 있다. 3위에는 캐나다에 사는 일본인 컴퓨터 전문가 리 트룽(Le Trung)이 개발한 ‘아이코’(Aiko)라는 로봇이 선정됐다. 이 로봇은 요리와 청소는 물론 간단한 셈과 신문을 읽을 수 있고, 심지어 1만 3000여 문장의 영어와 일본어를 말할 수 있어 ‘퍼팩트 와이프’로 불리고 있다. 이 밖에도 소믈리에로 알려진 와인 전문가 로봇인 ‘와인-봇’(Wine-bot)가 4위를 차지했고, 치의대생들의 교육 목적으로 개발된 치과 환자 로봇 ‘심로이드’(Simroid)가 5위에 뽑혔다. 또한 6위에는 인간형 로봇이, 7위는 미용사 대신 손님의 머리를 감겨주고 말려주는 미용 로봇이 선정됐다. 특히 일본의 한 연극 무대에 여배우와 함께 등장했던 배우 로봇은 8위에 올랐다. 제미노이드 F(Geminoid F)라는 이 로봇은 여배우 바이어리 롱과 거의 똑같이 생겨 주목을 받았다. 9위는 집을 청소하고 영화도 보여주는 ‘RIDC-01’이라는 로봇이 선정됐다. 끝으로 순위권에 오른 로봇으로는 일본이 아닌 중국 로봇이 선정됐다. 이 로봇은 국수 면발을 뽑을 수 있어 요리사 추이(Cui)로 불리고 있다. 다음은 해당 순위 1. 결혼식 주례 ‘아이 페어리’ 2. 패션모델 ‘미임’ 3. 완벽한 아내 ‘아이코’ 4. 와인전문가 ‘와인-봇’ 5. 치과 환자 ‘심로이드’ 6. 인간형 로봇 ‘더 휴먼’ 7. 미용 로봇 ‘더 헤어드레서’ 8. 여배우 ‘제미노이드 F’ 9. 홈 크리잉&시네마 로봇 ‘RIDC-01’ 10. 국수 요리사 ‘추이’ 서울신문 나우뉴스 윤태희 기자 th20022@seoul.co.kr
  • 日 온천명소 나가사키현 ‘운젠 지옥’

    日 온천명소 나가사키현 ‘운젠 지옥’

    산간 마을 여기저기에서 수증기가 구름처럼 솟아오릅니다. 멀리서 보자니 꼭 선계(仙界)입니다. 그런데 가까이 다가서면 척박한 땅의 바위 사이로 온천수가 부글부글 끓어 오릅니다. 대기에 스민 유황 냄새는 마을 전체를 감싸고 있습니다. 지옥과 닮았다는 일본 시마바라 반도의 ‘운젠지옥’(雲仙地獄) 풍경입니다. 관광객들의 평온한 표정과 주변 건물들의 넉넉한 자태가 없었다면 영락없이 지옥이라 여겼겠지요. 사람과 화산이 공생하는 독특한 여행지, 일본 규슈 서쪽의 시마바라반도를 다녀왔습니다. ●화산과 사람의 공생 나가사키현 운젠시는 1934년 일본의 첫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작은 온천마을이다. 후쿠오카 공항에서 차로 세 시간쯤 걸린다. 운젠지옥은 땅 속 마그마가 지상으로 고온의 가스를 뿜어내면서 늪처럼 형성된 곳으로, 운젠시에서 으뜸가는 볼거리로 꼽힌다. 관광객들은 이곳에서 산책을 하거나 계란 등을 삶아 먹으며 ‘지옥’을 즐긴다. 화산과 사람이 공생하고 있는 셈이다. 운젠온천을 제대로 즐기기 위해서는 먼저 화산의 역사를 알아야 한다. 게다가 최근 규슈 남단 가고시마현과 미야자키현 사이의 신모에다케가 ‘폭발적 분화’를 거듭하고 있어 궁금증이 더할 터다. 1990년 11월 운젠국립공원의 주봉인 후겐다케(普賢岳·1359m)가 용암과 가스를 내뿜으며 분화를 시작했다. 이듬해엔 화구 분화로 형성된 용암돔이 붕괴, 시속 100㎞가 넘는 화쇄류로 돌변하면서 시마바라(島原)시 남쪽 마을을 덮쳤고, 취재진과 화산학자 등 43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이때 분화로 후겐다케 위에 높이가 124m나 되는 헤이세이신잔(平成新山·1483m)이 새로 만들어졌다. 화쇄류는 1996년 5월 1일까지 총 9432회 발생했다. 앞서 1792년엔 대규모 분화와 대지진, 그리고 산의 붕괴와 쓰나미로 무려 1만 5000명이 희생됐다. 시마바라시 문화관광해설사 하세가와는 “당시 후겐다케 옆의 마유산(眉山) 3분의1이 무너졌고, 화쇄류로 324채의 집이 매몰됐다.”며 “바다가 메워져 산에서 800m 떨어져 있던 아리아케만(灣)이 지금은 1.5㎞ 거리가 됐다.”고 전했다. 약 700m의 바다가 뭍으로 변한 셈이다. 덩달아 시마바라 시내도 평균 6m가 높아졌다고. 마유야마의 붕괴로 아리아케만에선 높이 23m의 쓰나미가 일었다. 20㎞ 떨어진 맞은편 구마모토현을 오가며 피해를 키웠다. 시마바라시의 시라치(白土) 호수도 이때 만들어졌다. 하지만 운젠시가 속해 있는 시마바라반도가 남규슈의 신모에다케와 100㎞ 이상 떨어진 데다, 바람도 태평양쪽으로 불고 있어 여행에는 아무 지장이 없다. ●350년 역사 자랑하는 온천지대 화산이 재앙이라면, 온천은 축복이다. 시마바라반도의 온천을 대표하는 운젠온천은 화산의 역사가 켜켜이 쌓인 후겐다케 남서쪽 산자락의 해발 700m 고지에 터를 잡았다. 350년 역사를 자랑하는 온천지대다. 이중 6㏊의 펄펄 끓는 늪지대가 운젠지옥이다. 운젠지옥 주변에 2㎞의 ‘지옥 산책로’가 조성돼 있다. 천천히 돌아보는 데 한 시간이면 충분하다. 크고 작은 지옥마다 이름이 붙여져 있다. 갖가지 나쁜 생각들을 경계하라는 ‘팔만지옥’, 수다스러움을 멀리하라는 ‘참새지옥’도 있다. ‘대규환지옥’(大叫喚地獄)은 운젠지옥 중에서도 가장 압력이 높고 수증기 끓는 소리가 큰 곳. 분출할 때 소리가 땅 아래 망자들이 울부짖는 절규처럼 들린다고 해 이름 지어졌다. 350년 전에는 개종을 거부한 천주교 신자들을 고문하고 사형시킨 ‘진짜 지옥’으로 이용되기도 했다. 운젠온천은 유황이 함유된 강산성 온천이다. 온천수 온도는 70~100도. 하루 400t가량 솟는다. 히로시 히데야마 운젠관광협회 사무국장은 “온천수를 파이프로 연결해 운젠온천마을의 20개 료칸과 호텔 등에 공급한다.”며 “살균효과가 뛰어나 습진 등 피부병과 신경통, 미용 등에 효험이 있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그는 “입욕 전 충분히 수분을 섭취하고, 발끝이나 손끝부터 천천히 물을 묻혀 피부 혈관을 확장시킨 뒤 어깨까지, 고혈압 환자인 경우 하반신만 물에 담가야 한다.”며 “이마에 땀이 맺히기 시작하면 물에서 나와 휴식을 취해야 한다.”고 권했다. 온천은 숙박시설에 딸린 곳도 있고, 공동 온천도 있다. 온천욕만 할 경우 500~1000엔 정도 받는다. 100엔짜리 대중탕도 두 곳이 있다. 유노사토와 신유 공동온천으로, 역사가 100년을 헤아린다. 운젠시 서남쪽 해안마을인 오바마(小浜)는 해수온천으로 이름난 곳. 지하에 고였던 바닷물이 데워진 뒤 마을 해안길이나 바닷가 테트라포드(삼발이)를 가리지 않고 솟구친다. 용출량이 많은 곳엔 발을 담글 수 있는 무료 족탕과 고구마, 달걀 등을 온천수에 쪄 먹을 수 있는 시설을 해 놓았다. 족탕 길이는 온천수 온도와 같은 105m. 일본에서 가장 길다. 105도의 온천수를 80도로 식히고, 다시 바닷물과 섞어 40도로 낮춘 뒤 흘려 보낸다. 족탕 끝엔 애완견 전용탕도 마련해 뒀다. 바다 경치를 보며 온천을 즐기는 노천탕도 있다. 1시간 300엔. 만조 때는 타는 듯 붉은 바다가 눈앞에 넘실댄다. 여기에 따뜻한 사케(정종) 한 잔 기울인다면 세상에 더없는 호사겠다. ●사무라이 숨결 오롯한 시마바라 운젠 인근 시마바라시도 잊지 말고 찾자. 시마바라성(城)을 중심으로 발달한 고도(古都)다. 운젠시에 견줘 제법 고풍스러운 건물들이 남아 있다. 헤이세이대분화 때 마유산이 방벽 구실을 했기 때문이다. 해자로 둘러싸인 시마바라성을 중심으로 무사도의 숨결이 오롯한 사무라이저택, 시라치 호수 등 관광지가 몰려 있다. 후쿠오카에서 원자폭탄 피폭지인 나가사키를 통해 운젠을 오갈 경우 한번쯤 고속도로를 버리고 옛 도로를 이용하길 권한다. 현도(縣道) 128호선이다. 산자락과 바닷가를 고루 아우르며 달리는데, 편백나무와 삼나무 우거진 길이라 영혼까지 맑아지는 느낌을 받는다. 자로 잰 듯한 일본의 현대식 풍경과는 전혀 다른, 조금은 남루한 일본의 시골 풍경과도 마주할 수 있다. 여기에 나가사키 시내 폭심지에 들러 일본인의 아픔까지 공유한다면 나가사키 여행으로 모자람이 없겠다. 글 사진 운젠·시마바라(일본 나가사키현) 손원천기자 angler@seoul.co.kr ■여행수첩 ▲인천~후쿠오카는 대한항공·아시아나항공이 각각 하루 3회, 부산~후쿠오카는 대한항공 하루 2회, 아시아나항공 하루 1회 운항한다. 후쿠오카공항에서 지하철로 JR하카다역으로 이동한 뒤 특급 갈매기를 타면 이사하야역까지 1시간 30분(일반표 3790엔, 약 5만 1000원), 이사하야역에서 운젠온천까지 버스로 1시간 20분(1300엔) 걸린다. 운젠온천마을(www.unzen.org)에 숙소를 예약한 경우 후쿠오카 하카다역에서 운젠온천으로 가는 버스를 이용할 수 있다. ▲운젠온천마을에 일본 10대 료칸 가운데 하나인 한즈이료(半水盧·81-957-73-2111)가 있다. 경북 청도 출신의 재일동포 가네우미 류카이(海龍海·61·유코그룹 회장)가 운영하는 최상급 료칸이다. ‘평생에 한번, 최상의 음식과 서비스’가 모토다. 바깥세상과 차단된 가운데 쾌적한 휴식을 즐길 수 있는 14동의 복층형 독채 객실이 들어서 있다. 객실마다 별도의 정원이 딸려 있고, 요리사 8명 등 35명의 종업원이 ‘1손님 1종업원 서비스’를 제공한다. 특실엔 전용 노천탕도 있다. 숙박료는 1인 5만엔부터. 민박은 보통 7000~1만엔, 호텔과 료칸은 1만 5000엔선이다. 부산 나가사키시 관광사무소 (051)463-3111, ▲시마바라의 향토 음식 구조니(具雜煮)를 꼭 맛볼 것. 찹쌀떡에 버섯과 야채, 장어 등 10여 가지 재료를 넣고 끓였다. 농민 봉기 ‘시마바라의 난’을 이끌었던 소년 지도자 아마쿠사 시로(天草四郞)가 농민군과 나눠 먹었던 데서 유래했다고 전해진다. 시마바라성 정문 앞 히메마쓰야(姬松屋) 등이 유명하다. 유부초밥을 곁들인 구조니 정식이 1200엔부터. 나가사키 짬뽕도 빼놓을 수 없다. 오바마온천지역 내 자노메(蛇の目) 등이 유명하다. 850~1050엔.
  • [동남권신공항 지상논쟁] “동남권 신공항 내 지역구 유치를” 의원 2인의 강변

    [동남권신공항 지상논쟁] “동남권 신공항 내 지역구 유치를” 의원 2인의 강변

    ‘부산 대(對) 대구·울산·경북·경남’한나라당이 집안싸움에 몸살을 앓고 있다. 두 패로 갈린 의원들이 동남권 신공항 유치전으로 맞붙으면서 연일 티격태격이다. 끼리끼리 뭉쳐선 제각각 가덕도와 밀양을 최적지라고 치켜세우며 갑론을박이다. 양쪽의 경쟁이 과열되면서 당내에선 전통적 텃밭인 영남권의 분열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유치 경쟁에 뛰어든 의원들로부터 왜 그 지역에 유치해야 하는가에 대한 논리를 직접 들어봤다. ■ “텃밭서 싸우단 共倒同亡…가덕 좌절땐 민심 심판” ‘가덕도론’ 김정훈 한나라 의원 “이러다간 다 죽는다.” 한나라당 부산시당 위원장인 김정훈 의원은 15일 동남권 신공항 유치전에서 맞은편에 선 대구·경북·경남 지역 의원들을 향해 ‘공도동망’(共倒同亡. 함께 넘어지고 같이 망함)을 경고했다. 김 의원은 오전 국회 의원회관에서 가진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24시간 운영되는 안전한 공항’ 입지로 가덕도를 꼽으며 부산 민심의 불편한 심기를 함께 전했다. 그는 “가덕 신공항이 좌절될 경우 한나라당이 차기 총선에서 부산 민심의 심판을 받게 될 것이다. 그때는 정권 재창출도 물 건너간다.”고 말했다. 김 의원은 우선 “안전성과 경제성 측면에서 가덕도가 비교우위에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밀양에 국제공항을 건설하기 위해선 덕암산, 무측산, 신어산 등 해발 500~700m의 산 20여개를 해발 200m이하로 깎아내야 하는데 안전 문제뿐 아니라 10억t 정도의 흙을 파면서 생기는 환경 파괴 문제도 고려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KTX 터널 공사 때 벌어졌던 ’천성산 도롱뇽’ 문제를 상기시켰다. 그는 “깎아내야 할 산 중에는 김해김씨 시조산인 신어산도 포함될 뿐 아니라 이 산들에 산재해 있는 사찰 17개도 함께 없애야 하는데 김씨 문중과 불교계의 반발을 어떻게 막을 것이냐.”고 반문하기도 했다. 김 의원은 또 “국토연구원의 발표에 따르면 밀양공항 건설에는 10조 3000억원이 들지만, 가덕도는 이보다 5000억원 정도 아낄 수 있다.”면서 “더구나 부산시 검토 결과로는 매립 활주로를 조금 변경할 경우 7조 9000억원까지 비용을 낮출 수 있다.”고 경제성을 치켜세웠다. 그는 “가덕 신공항은 부산신항과 함께 물류연계가 가능하고 호남 접근성이 뛰어날 뿐 아니라 일본 규슈와도 40여분 거리밖에 안 돼 일본인 국제여행객까지 끌어안을 수 있는 등 신(新)허브 공항이 될 수 있다.”고 기대했다. 이어 “대형 항공기 이착륙에 요구되는 안전성이 확보되지 않는, 어중간한 지점의 밀양에 쓸모없는 공항을 만들어선 안 된다.”고 덧붙였다. 김 의원은 밀양과의 입지 경쟁과 관련, “신공항 사업은 대형 항공기 이착륙에 제약이 있는 김해공항의 확장 이전을 위해 비롯된 문제”라며 부산의 기득권을 주장하고 “(한나라당의 텃밭에서 벌인)제로섬 게임을 당장 중단해야 한다.”며 3월로 예정된 입지 선정 연기를 요구했다. 그는 유치 실패에 따른 민심이탈 방지책으로 각 후보지에 대한 환경영향평가 결과 등의 공개와 외국 공항전문기관에 의한 입지평가 의뢰를 통한 객관성과 전문성 확보를 제안했다. 홍성규기자 cool@seoul.co.kr 사진 이호정기자 hojeong@seoul.co.kr ■ “부산 정치권 騎虎之勢…제구실 할 기회놓쳤다” ‘밀양론’ 조해진 한나라 의원 “부산 정치권이 동남권 신공항 유치전으로 뒤늦게 내몰리면서 호랑이 등에 올라타 중도에 내릴 수도 없는 기호지세(騎虎之勢) 형국이 됐다.” 조해진(경남 밀양·창녕) 한나라당 의원은 15일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부산 정치권이) 여론에 등 떠밀려 독립변수가 아닌 종속변수로 작용하면서 제구실을 할 기회를 놓쳤다.”면서 이 같이 말했다. 이는 신공항이 밀양에 들어서면 김해 김씨의 시조산인 신어산을 비롯해 적지 않은 산과 사찰이 사라질 것이라는 부산발 ‘네거티브 홍보전’에 대한 반발 차원이다. 조 의원은 “밀양에 신공항을 짓는 문제는 2005년부터 정부 차원의 검토가 이뤄졌고, 타당성 조사까지 마친 것”이라면서 “활주로 방향이나 항공기 항로 등을 조정하면 해결할 수 있는 문제를 부풀리는 것은 일방적인 흠집내기이자 정치적 선동에 불과하다.”고 일축했다. 대신 밀양이 동남권 신공항이 들어서기 적합한 이유로 ▲접근성 ▲경제성 ▲안전성 ▲환경성 등 4가지를 꼽았다. 조 의원은 “대구·창원·울산·포항 등 영남권 주요 도시에서 1시간 이내에 접근할 수 있고, 공사비도 가덕도에 비해 적게 들어 나중에 공항을 확장하는 데도 용이하다.”면서 “사고 유발 가능성이 큰 지반 침하나 태풍과 같은 환경적 위험 요인이 거의 없고, 가덕도와 달리 김해공항과 양립할 수 있다는 점도 이점”이라고 강조했다. 영남권 승객·화물이 지리적으로 멀리 떨어진 인천국제공항을 이용하는 데 따른 연간 6000억여원의 사회적 비용을 줄일 수 있고, 각각 20만명과 17조원에 이르는 고용·생산 유발효과도 낳을 수 있다는 것이다. 때문에 정부가 내릴 수 있는 최악의 선택은 어느 쪽 손을 들어주느냐가 아니라, 입지 선정을 연기하거나 사업 자체를 백지화하는 것이라고 지적한다. 조 의원은 “이미 2009년부터 지금까지 입지 선정을 3차례나 미뤘다. 정치적 논리에 따라 또다시 연기하면 신공항뿐만 아니라 이명박 정부가 추진하는 국책사업 전반이 표류할 수밖에 없다.”면서 “이는 남은 2년 동안 일을 못하는 정부라는 부정적 인식을 가져올 수 있다.”면서 ‘연기 불가론’을 폈다. 그는 이어 “신공항 유치 경쟁이 치열한 상황이지만 신공항이 들어서면 영남권 전체가 상생할 수 있는 공통의 자산으로 역할할 수 있다.”면서 “어느 지역이 이기고 지느냐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에 공정한 경쟁을 거친 뒤 결과에 승복하는 자세를 보여야 한다.”고 덧붙였다. 장세훈기자 shjang@seoul.co.kr 사진 이호정기자 hojeong@seoul.co.kr
  • [고규홍의 나무와 사람이야기] (19) 부산 기장 죽성리 곰솔

    [고규홍의 나무와 사람이야기] (19) 부산 기장 죽성리 곰솔

    나무가 사람을 품었다. 한 그루만으로는 사람들의 마음과 뜻이 지나치게 컸던 때문일까. 다섯 그루가 한데 모여서, 사람의 희망과 소원을 켜켜이 담은 서낭당을 품었다. 처음엔 여섯 그루를 심고 그 나무들 가운데에 돌무지 탑을 세웠다고 한다. 그로부터 300년이 훨씬 지난 지금은 돌무지 탑 대신 서낭당이 들어섰고, 여섯 그루의 나무 가운데 한 그루는 가뭇없이 사라졌다. 눈 씻고 당집을 여러 차례 돌아가며 짚어봐야 다섯 그루뿐이다. 바람 따라 구름 따라 사람들이 들고 났던 것처럼 나무도 이미 오래전에 사라진 것이다. ●윤선도가 7년 유배 생활했던 마을 미역으로 유명한 부산 기장군의 어촌 마을, 기장읍 죽성리는 대나무가 많고 성곽이 있다 해서 죽성(竹城)이라는 이름을 가졌다. 세월 지나며 그 많던 대나무도 사라졌고, 임진왜란 때 일본인들이 지었다는 성곽도 푸른 이끼에 휩싸였다. 그러나 여전히 120가구의 삶이 오롯이 살아 있는 비교적 큰 마을이다. 꿈을 안고 대처로 떠난 사람도 있겠지만, 좌절된 꿈을 부여안고 들어온 사람도 있었다. 조선 중기의 시인 윤선도가 그렇다. 1618년에 윤선도는 이 마을에 들어와 7년 동안 유배 생활을 했다. 그는 소나무 몇 그루가 듬성듬성 서 있는 바닷가의 작은 둔덕에 황학대라는 이름을 붙였다. 황금빛 학이 날아오르는 바위라는 뜻으로, 이백과 도연명의 자취가 남아 있는 양쯔강의 황학루를 떠올린 것이다. 황학대 뒤편으로 이어지는 낮은 동산 마루에 커다란 나무가 있다. 국수당이라고 부르는 마을 서낭당을 품고 서 있는 다섯 그루의 곰솔이다. 멀리서 바라봐도 이 정도면 마을의 자랑이라 할 만큼 훌륭한 나무다. “저 나무가 얼마나 귀한 나무인지 잘 모르는 사람들도 많지. 절반은 새로 들어온 사람들이거든. 하지만 여기서 오래 살아온 사람들한테 저 나무는 버팀목이지. 언제 심은 나무인지는 정확히 모르지만, 나 어릴 때에도 저만큼 컸어. 그때부터 지금까지 마을에서는 정월 대보름이면 나무에 당산제를 지내고 있어.” 이곳에서 태어나 80년 동안 한집에서 살아온 장묘윤(80) 노인의 이야기다. 사람 좋은 표정으로 나그네를 방 안에 들인 노인은 엎드려 누운 채 나무 이야기를 풀어낸다. 불편해 보이는 몸이지만 싱그러운 기색이다. 나무 이야기에 신명이 담겼다. “내가 몸이 안 좋아서 일어나질 못해. 네 살 때 곱사등이가 돼서, 지금까지 이렇게 살지. 요즘이야 잘 고치는 병이라고 하지만, 그때는 어쩔 수 없었어. 그 바람에 멀리 나가지 못하고, 팔십 평생 그저 저 나무만 바라보며 살았지.” ●사람이 심은 나무가 되레 사람을 지켜줘 기쁠 때나 슬플 때나 사람들은 하늘을 바라본다. 죽성리 사람들이 바라보는 그 하늘 가장자리에는 큰 나무가 걸려 있다. 부산시 기념물 제50호인 기장 죽성리 곰솔은 그렇게 마을 사람들의 모든 기쁨과 슬픔을 보듬어 안고 살았다. 처음에야 사람이 나무를 보살폈겠지만, 사람의 도움으로 잘 자라난 나무는 이제 거꾸로 사람을 지켜주는 듬직한 나무가 됐다. 자동차는 언감생심 드나들 수 없는 좁은 골목길. 나무는 그 길 너머 마을 뒷동산 마루에 우뚝 서서 오랜 세월 동안 마을 사람들의 버팀목 노릇을 했다. 돌무지 탑 대신 당집을 처음 놓은 게 언제인지는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다. 그러나 다섯 그루 가운데에 떡하니 자리 잡은 당집은 처음부터 그 자리에 있었던 듯 견고하다. 마을 사람들은 곰솔 가운데의 서낭당을 국수당이라고 부른다. 국수당은 서낭당의 다른 이름으로, 옛 사람들이 소원을 빌기 위해 지은 당집이다. 당산나무 근처에 당집이 있는 게 남다르다 할 건 없지만, 여러 그루의 큰 나무가 서낭당을 둘러싸고 있는 경우는 아마도 유일한 풍경이지 싶다. “누가 심었는지는 알 수 없어. 마을의 평화와 안녕을 기원하는 마음으로 옛날에 여섯 어른이 한 그루씩 심은 나무라고만 알고 있어. 국수당은 몇 차례 다시 지은 거야. 나무야 세월 지나도 끄떡 없지만 사람이 지은 당집은 허물어지게 마련이잖아.” 다섯 그루의 나무들은 하늘을 향해 12m 넘게 자랐고 제가끔 펼친 품을 합하면 무려 20m를 넘는다. 그중 한 그루는 아예 긴 세월 동안 지탱해온 몸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제 가지를 땅 바닥에 내려놓을 참이다. 머지않아, 언덕 위에 무거운 제 몸을 가만가만 내려놓고 사람들에게 천천히 다가설 듯하다. ●다섯 그루가 모여 빚어 더 아름다운 풍경 더 놀라운 건 다섯 그루의 나무가 마치 잘생긴 한 그루의 나무처럼 서로를 배려하며 지어낸 풍경이다. 가지를 한껏 뻗어 냈지만, 다른 나무의 자람을 방해하지 않는 쪽으로만 멀리 뻗어 냈다. 바다를 바라보고 서 있는 나무는 온 힘을 다해 바다 쪽으로 가지를 뻗었고, 마을에 가까이 서 있는 나무는 마을 사람들을 향해 몸을 풀었다. 자신에게 주어진 햇살만으로 이토록 옹골차게 제 살림살이를 꾸려냈다. 결국 한 그루로서는 도저히 지어낼 수 없는 장관을 이루었다. 멀리서 보면 영락없이 아름다운 한 그루의 나무다. 그래서 마을 사람들도 이 다섯 그루의 나무를 복수형으로 부르지 않고 단수형으로 그저 ‘국수당 곰솔’ 혹은 ‘우리 나무’라고 부른다. “워낙 생김새가 좋은 나무여서 찾아오는 사람들이 끊이지 않아. 그래서 오년 전에는 마을 당산제와 별도로 별신굿을 크게 올렸지. 일주일 동안 굿을 지냈으니 얼마나 컸는지 알 만하지.” 창밖으로 어둠이 짙게 내렸지만 장 노인의 나무 이야기는 끝 모르고 이어진다. 그의 삶을 짓누른 등짝만큼 고통스러웠던 삶의 무게를 나누어 품었던 나무에 대한 경배이지 싶다. 세상의 모든 나무가 사람살이를 더 아름답고 평화롭게 한다지만, 기장 죽성리 곰솔만큼 사람살이를 온몸으로 품는 나무는 흔치 않음이 틀림없다. 글 사진 부산 고규홍 나무칼럼니스트 gohkh@solsup.com >>가는 길 부산 기장군 기장읍 죽성리 249. 기장군을 가려면 부산 울산 간 고속국도의 기장 나들목을 이용하는 게 좋다. 나들목에서 4㎞쯤 남쪽으로 가면 기장군청이 나온다. 군청 정문에서 남쪽으로 500m 가면 나오는 오거리에서 7시 방향으로 돌아 신천리로 들어선다. 2.7㎞ 가면 죽성초등학교가 나오는데, 학교를 지나면서 곧바로 오른쪽으로 난 좁다란 길로 들어서면 언덕 위로 나무가 보인다. 마을 안 골목이 비좁아 자동차는 마을 입구의 공터에 세워야 한다.
  • ‘해체사태’ 겪은 카라 “홍보효과 500억”

    ‘해체사태’ 겪은 카라 “홍보효과 500억”

      해체 위기에서 벗어나 최근 일본 활동을 재개한 걸그룹 카라가 뜻밖의 홍보효과를 얻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스포츠한국은 8일 일본 엔터테인먼트업계 관계자 1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8명이 홍보 효과를 크게 누렸다고 답했고, 일부는 그 가치가 500억원 이상이라는 답변을 했다고 보도했다. 이 매체는 “카라 사태를 보도한 신문의 지면 크기, 방송 분량 등을 실제로 광고로 집행했다고 가정한 뒤 환산한 금액을 계량화할 경우를 가정했다.”고 설명했다.  이 매체는 또 일본 대형 기획사의 고위관계자 말을 인용, “불에 기름을 부은 꼴이 됐다. 카라의 이름을 모르는 일본인이 드물 정도로 알려졌다.”고 썼다. 실제 카라는 일본 활동을 재개한 뒤 현지에서 발매한 앨범 ‘걸즈토크’가 오리콘 차트 2위에 오르는 인기를 누리고 있다.  카라가 출연한 TV도쿄 드라마 ‘우라카라(URAKARA)’의 지난 4일 시청률도 지난 달 21일 첫방송때 보다 높게 나왔다. 이날 방송 분이 소속사와의 분쟁으로 촬영이 지연돼 하이라이트로 대체된 것을 감안하면 이례적이다.  한편 카라 사태는 지난달 19일 강지영 정니콜 한승연 등 3명의 멤버가 소속사 DSP미디어 측에 전속 해지를 주장하면서 불거졌다.  인터넷서울신문 event@seoul.co.kr
  • 1년간 매일 마라톤 뛴 ‘마라톤의 신’

    ‘마라톤의 신’을 자처하는 남자가 등장했다. 스테판 엥겔스라는 이름을 가진 벨기에의 49세 남자가 1년 동안 365회 마라톤대회에 출전해다고 밝혀 화제가 되고 있다. 엥겔스가 마지막으로 마라톤을 뛴 건 지난 5일.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자신을 위해 설치된 마라톤코스를 완주했다. 그는 결승점에 도착한 후 “유럽, 미국, 멕시코 등지를 돌면서 12개월 동안 365회 마라톤에 참가했다.”고 밝혔다. 기록이 공인된다면 그는 기네스에 등재될 수 있다. 이 부문 기네스기록은 2009년 일본인 아키노리 쿠스다가 세운 52회 출전이다. 그는 자신의 인터넷 홈페이지에 “1년간 매일 마라톤을 달렸지만 결코 이를 고통으로 여기지 않았다.”며 “원하든 원하지 않든 매일 출근하는 직장인처럼 일상생활처럼 마라톤을 뛴 것”이라고 말했다. 엥겔스는 “항상 달리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는 건 사실”이라며 “하지만 달리고 난 뒤에는 반드시 샤워를 하고 1시간 동안 물리요법으로 몸을 풀어주고 있다.”고 말했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해외통신원 손영식 voniss@naver.com
  • 히말라야 절벽 비행하는 ‘닌자 염소’ 화제

    히말라야 절벽 비행하는 ‘닌자 염소’ 화제

    날개 없는 염소가 절벽을 거의 날아서 내려오는 것이 가능할까. 히말라야 고산지대에 사는 야생 염소들이 기상천외한 모습으로 순식간에 절벽을 내려오는 영상이 공개돼 눈을 의심케 하고 있다. 터키 언론매체 휴리에트(Hürriyet)가 촬영해 일본 방송사에서 더빙을 한 것으로 추정되는 영상에는 액션영화 ‘스파이더맨’의 주인공처럼 염소 떼가 경사 90도의 아찔한 절벽 사이를 날아서 순식간에 땅으로 내려오는 모습이 담겼다. 30~40마리의 염소들이 절벽을 내려오는 데는 요령이 있었다. 염소들은 한 마리씩 절벽 꼭대기에 오른 뒤 2m정도의 바위에서 차례차례 뛰어내렸고 반동으로 건너편에 있는 절벽에 발을 딛었다. 다시 그 반동으로 원래의 절벽으로 돌아와 땅에 안전하게 착지하는 원리였다. 능숙하게 한 마리씩 착지한 염소들은 다시 빠른 속력으로 숲으로 달려 사라졌다. 일본인 성우는 이 모습을 일본 전통무술 수련자인 ‘닌자’ 같다고 설명했으며, 일부 네티즌들은 맨손으로 건물 사이를 뛰어다니는 익스트림 스포츠를 연상케 한다고 놀라워 했다. 이달 초 공개된 이 영상은 며칠 만에 유투브 등에서 조회수 수십만 건을 기록하는 등 네티즌들의 뜨거운 관심을 받았다. 지난해 10월 인터넷에서 화제가 된 이탈리아의 가파른 신지노의 댐 벽을 미끄러지지 않고 오르는 아이벡스 염소 이후 최고의 명장면이라는 네티즌들의 반응이 쏟아졌다. 한편 히말리아의 험준한 벼랑에 무리지어 서식하는 히말리아염소는 흔히 히말라야타르·히말라야 영양이라고 불린다. 몸길이가 130~170cm에 달하는 염소들은 발정기가 지나면 수컷과 암컷들이 따로따로 생활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강경윤기자 newsluv@seoul.co.kr  
  • 이시하라 도쿄도 지사”日 핵무장해야” 망언

    극우적이고 인종차별적인 발언으로 인해 ‘망언 지사’로 불려온 이시하라 신타로(78) 도쿄도 지사가 이번에는 일본이 북한과 중국에 맞서 자국을 지키기 위해 핵무기를 개발해야 한다는 주장을 내놓았다고 영국 텔레그래프가 4일 인터넷판에서 보도했다.  이 신문에 따르면 이시하라는 최근 센카쿠(尖閣) 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釣魚島>)를 둘러싼 중국과의 영토 분쟁에 대해 “일본이 핵무기를 가졌다면 중국이 센카쿠에 침입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고,북한이 일본인을 납치하는 일도 없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시하라는 2009년 초 조지 W.부시 미국 전 행정부가 북한에 납치된 일본인의 석방 문제를 해결하는 데 제대로 지원하지 않았다고 미국을 비판했었다.  이시하라는 “북한은 핵무기를 보유한 나라”라며 “미국이 리비아와 핵이슈 등으로 충돌을 빚었을 때 리비아의 트리폴리를 공격했고,당시 어린이들까지 사망하는 비극이 일어났지만 결국 리비아는 변했다”고 소개했다.그는 “북한에 대해선 이보다 보다 더 ‘심각한’ 접근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시하라는 그간 ‘난징 대학살 사건’이 중국 공산당에 의해 조작된 사건이라고 주장하는가 하면 게이나 레즈비언을 ‘장애인’으로 묘사하는 등 발언을 서슴지 않아 동아시아 주변국 등 국제 사회의 비난을 사 왔다.
  • [아시안컵] ‘한국의 발’이 일본 살렸다

    30일 카타르 도하의 칼리파 스타디움. 일본-호주의 아시안컵 결승전 연장 0-0으로 팽팽하게 맞선 전반 7분. 알베르토 자케로니 일본 감독이 도박했다. J-리그 득점왕 마에다 료이치(이와타)를 빼고 이충성(26·일본명 리 다다나리)을 투입한 것. 그의 A매치 두 번째 경기였다. 이충성은 연장 후반 4분 일을 냈다. 나가토모 유토가 왼쪽 측면에서 올려준 크로스를 페널티지역 오른쪽에서 그림 같은 발리슛으로 골인시켰다. 그의 A매치 데뷔골이자 일본에 아시안컵 통산 네 번째 우승을 안겨준 보물 같은 골이었다. 관중석으로 다가가 화살을 쏘는 세리머니를 하는 그의 등에 새겨진 한국식 성 ‘LEE’. 그는 2007년 귀화한 재일교포 4세다. 할아버지를 따라 도쿄에 터를 잡은 이충성의 아버지 이철태씨 역시 실업축구 선수였다. 아버지의 재능을 물려받은 그는 J-리그 FC도쿄에서 프로 데뷔전을 치른 뒤 2004년 한국 19세 이하(U-19) 대표팀에 소집됐다. 그곳에서 그는 큰 충격에 빠진다. 자신을 ‘반쪽바리’라고 부르며 빈 공간에 있어도 패스를 해주지 않는 배척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그때 이충성은 “나는 한국인도 일본인도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했다. 정체성 고민 속에서도 기량은 날로 성장했다. 2005년 가시와 레이솔로 이적한 뒤 주전이 됐다. 2009년 현재의 산프레체 히로시마로 옮겼다. 이때 이충성은 구단에 등번호 9번을 요구했다. 한국인 최초의 J-리거 노정윤의 등번호였다. 2007년 이충성은 당시 일본 올림픽 대표팀 소리마치 야스히루 감독의 귀화 제안을 받아들였다. 그렇다고 대표팀에 자동 선발되는 상황은 아니었다. 그러나 한국인도 일본인도 아닌 축구선수로서 2008년 베이징올림픽 같은 큰 무대에 서보고 싶다는 꿈이 그에겐 있었다. 결국 이충성은 올림픽에 출전해 주전 공격수로 활약했고, 아시안컵을 앞두고 자케로니 감독의 러브콜을 받으며 A대표팀에 처음 호출됐다. 천금 같은 아시안컵 결승골로 단숨에 일본의 영웅이 된 이충성은 경기 직후 자신의 공식 블로그에 ‘히어로’란 제목으로 글을 올려 “솔직히 잠이 오지 않는다. 내 인생에서 최고의 1페이지를 쓴 일이 벌어졌으니….”라고 소감을 밝혔다. 그의 활약에 온라인에서는 재일교포 3세로 한국에서 가수로 활동하기도 한 아유미와의 연애 사실, 이충성을 자세히 소개한 책 ‘우리가 보지 못했던 우리 선수’(신무광·왓북) 등이 온종일 화제가 되기도 했다. 한편 대회 득점왕은 5골 3도움의 구자철(제주)에게 돌아갔다. 한국 선수로서는 1960년 조윤옥, 1980년 최순호, 1988년 이태호, 2000년 이동국에 이어 5번째. 한국은 페어플레이상도 차지했다. 주장 박지성(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이 대표팀을 대표해 시상대에 올랐다. 최우수선수(MVP)는 일본의 ‘처진 스트라이커’ 혼다 게이스케(25·CSKA모스크바)가 받았다. 김민희기자 haru@seoul.co.kr
  • [글로벌 시대] 한국의 반일 감정과 민족주의/고토 노부유키 홍익대 교양외국어학부 교수

    [글로벌 시대] 한국의 반일 감정과 민족주의/고토 노부유키 홍익대 교양외국어학부 교수

    일제 식민지 시대의 역사에만 초점을 두고 한·일 간의 역사문제를 논하는 것에 의문을 느끼고 있다. 물론 식민지 시대의 역사도 중요하지만, 오히려 해방 후의 한국과 일본의 현대사, 한·일 기본조약 체결 이래 20세기 후반의 한·일 관계사에 대한 무지(無知)가 일반 대중에게 여러가지 오해를 낳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10여년 전 일본 도쿄 진보초(神保町)의 고서점에 책을 사러 간 적이 있다. 헌책 몇 권을 사면서 가게 주인인 60대 할아버지와 잠시 이야기를 나눴다. 내가 “한국에서 일한다.”고 하자, 할아버지는 말했다. “한국에서 일한다니 힘들겠네. 반일감정이 아직 있을 테니까. 일본 패전 때 반일감정은 거의 없었네. 패전을 맞아 조선에 살던 일본인들이 일본으로 돌아가려고 했을 때, 조선인들 중에는 ‘왜 일본으로 돌아가는 거지? 여기서 함께 살자’고 눈물을 흘리며 이별을 아쉬워했던 사람도 있었다네. 그런데 이승만 대통령의 반일정책 때문에 손바닥을 뒤집은 것처럼 일본을 혐오하게 되었어.” 식민지 상황에서 일본인과 조선인이 사이좋게 살고 있었고, 해방 때에는 눈물을 흘려 이별을 아쉬워했다고 하는 이야기는 처음 들었기 때문에 조금 놀랐다. 4년 정도 지나, 한국인 사회학 교수와 이야기할 기회가 있었다. 그는 다음과 같은 말을 한 것으로 기억한다. “식민지 상황에서 일본인과 조선인이 사이좋게 살았고, 해방 때에는 눈물을 흘리며 이별을 아쉬워한 일이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해방 후 새롭게 나라를 규합해 운영하려고 할 때 국민이 일제 황국신민의 의식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하면, 독립국가가 될 수가 없지요? 국민의식을 일제 황국신민으로부터 탈각시키기 위해서는 반일정책을 해야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되찾을 수가 있었어요.” 현대의 일본인에게는 한국인의 반일감정이 때로는 불합리하게 느껴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식민지 시대와 해방 이후의 역사를 고려함으로써 관용정신을 가지고 한국인을 이해해 주기를 바란다. “60여년 전의 역사문제가 자신에게 과연 무슨 관계가 있을까.”하고 느끼는 일본 젊은 세대에게는 현재에 이를 때까지의 경과를 설명하는 편이 역사문제를 올바르게 이해할 수 있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역사는 단순한 ‘과거’가 아니라 인간정신의 ‘현재’를 구성하는 기저 요소라는 것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또 현대의 한국인에게는 ‘반일 세뇌 정책’이라고 하는 것이 해방 후에 한국 국민으로서의 정체성을 확립하기 위해 필요한 정책이었다는 것을 인식해 주었으면 좋겠다. 일본 정치가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와 같은 사건에 대해서는 추상적인 ‘반일 감정’에 호소할 것이 아니라, 일본인이든 한국인이든 민족의 벽을 넘어 함께 반대의 목소리를 높이는 것이 좋지 않을까? 민족주의 사상은 그 민족성이 부정되고 시달리는 상황이나, 해방 후의 한국과 같이 국민으로서의 정체성이 형성되어 있지 않았던 상황에서는 민족을 규합해 그 존엄을 지키는 수단으로서 귀중한 것일 수 있다. 그러나 시대는 크게 바뀌었다. 지금은 한국이 독립국가인 것을 의심하는 사람은 없다. 한국의 국제적 지위도 비약적으로 올랐다. 군사정권이나 개발독재 시대도 있었지만, 근면한 국민성과 끊임없는 노력에 의해 경제발전과 사회자본 정비, 기술력 향상 등 여러가지 면에서 선진국화하고 있다. 이미 독립해서 풍부한 사회를 구축한 상황에서 민족주의를 너무 강조하면 단순한 자민족 우월주의, 인종주의 사상에 빠질 우려가 있다. ‘민족주의 세뇌정책’은 사회에 다양한 폐해를 가져올 것이다. 획일적이고 예외가 없는 자민족상(自民族像)을 추구한 나머지, 같은 민족 내에서 이질적인 인격이나 사고방식을 배제하고, 사회집단에서 다양성을 소멸시켜 버릴 것이다. 그러한 사회는 창조적인 사고활동의 환경을 억압하기 때문에 바람직하지 않다. 자민족상의 심리적 투영 작용으로서 타민족에 대해서도 획일적인 이미지를 가지고 파악해 버리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 “아버지도 세습 반대했었다”

    “아버지도 세습 반대했었다”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장남인 김정남이 “아버지(김정일)는 (3대) 세습에 반대했었다.”고 밝혔다고 도쿄신문이 28일 보도했다. 도쿄신문은 이달 중순 중국 남부의 한 도시에서 가진 김정남과의 인터뷰를 전하면서 이같이 보도했다. 김정남은 이 인터뷰에서 김 위원장의 후계자로 발탁된 이복동생 김정은을 향해 북한 주민의 생활향상과 연평도 포격으로 긴장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한국과의 화해를 당부했다고 도쿄신문은 전했다. 지난해 9월 결정된 북한의 3대 세습에 대해 그는 “중국의 마오쩌둥 주석마저 세습은 없었다. 사회주의에 맞지 않고, 부친도 반대했다.”고 밝혔다. 김정남은 그러면서 “(후계는) 국가체제 안정을 위한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 북한의 불안정은 주변의 불안정으로 연결된다.”며 3대 세습이 이뤄질 수밖에 없는 불가피성을 설명했다. 중국이 북한의 3대 세습을 용인한 이유에 대해서도 “세습을 인정했다기보다는 북한이 선택한 후계구도를 지지했다.”고 덧붙였다. ●연평도 포격 군부소행 시사 지난해 11월 북한의 연평도 포격의 배후와 관련해 “교전지역의 이미지를 강조해 핵 보유나 군사우선정치에 정당성을 갖게 하려는 사람들이 있다.”고 언급, 포격이 군부 주도로 이뤄졌을 것이라는 견해를 피력했다. 그는 우라늄 농축 등을 포함한 핵 개발문제에 대해서도 “(북한의) 국력은 핵에서 태어나고 있어 미국과의 대결상황이 있는 한 포기할 가능성은 낮다.”고 말했다. 김정남은 또 김 위원장의 건강상태와 관련해 “답할 수 없다.”며 즉답을 회피한 뒤 “때때로 (아버지에게) 직접 의견을 전달하고 있다. (김정일을 보좌하는 김경희나 장성택과도) 좋은 관계를 지속하고 있다.”고 말했다. 후계 구도에서 밀려난 이후에 퍼진 암살미수설이나 중국 등으로의 망명설도 “근거가 없는 소문이다. 위험을 느낀 적은 없다.”고 부인했다. 김정남은 동생 김정은에게 바람도 전했다. 그는 “연평도 사건처럼 비극이 일어나지 않도록 남북관계를 조정하기 바란다.”며 “이것은 동생에 대한 나의 순수한 바람이다. 동생에게 도전하거나 비판하려는 의미가 아니다.”고 말했다. ●“北 핵포기 없을 것” 북한이 2009년말 단행한 화폐개혁에 대해서는 “실패였다. 개혁·개방에 관심을 둬야 한다. 현 상태로는 경제 대국이 될 수 없다.”고 잘라 말했다. 그러면서 북한이 가장 바라고 있는 것은 미국과의 관계정상화와 한반도에서의 평화 정착이라고 주장했다. 일본인 납치사건과 관련, “지금과 같이 북한과 일본의 논의가 평행선이라면 해결이 어렵다.”면서 북·일 간 대화재개가 필요하다는 인식을 나타냈다. 그러면서 납치 피해자와 만난 적은 없지만 최근 납치 피해자들에 대한 북한 당국의 정보관리가 엄격해졌다고 전했다. 2001년 5월 위조여권을 사용해 나리타 공항으로 입국하려다 불법입국자로서 강제출국 당한 사실에 대해서는 “그 사건으로 내 인생이 변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며 “정치에 관심이 없다. 자유로운 생활을 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도쿄 이종락특파원 jrlee@seoul.co.kr
  • [열린세상] 오코노기 교수의 마지막 강의/장제국 동서대 부총장

    [열린세상] 오코노기 교수의 마지막 강의/장제국 동서대 부총장

    일본의 한반도 문제 권위자인 오코노기 마사오 게이오대 교수의 정년 퇴임을 앞두고 마지막 강의가 지난 18일 게이오 대학에서 있었다. 필자도 제자 자격으로 참석했는데, 400여명이 강당을 가득 메웠다. 재학생뿐만 아니라 일본의 내로라하는 한반도문제 전문가, 도쿄 주재 한국 특파원들을 비롯한 한·일 양국 주요 언론인, 그리고 졸업생 등이 시종 진지한 표정으로 교수의 마지막 강의에 귀를 기울였다. 선생은 차분한 목소리로 한국 연구를 시작하게 된 동기, 한국과의 인연, 그리고 그간의 연구 성과 등에 대해 설명을 이어갔다. 마치 현대한국정치사 강의를 듣고 있다는 착각을 일으킬 정도로 선생은 격동의 한국정치를 잘 설명하고 있었다. 선생의 인생진로가 한반도와 얽히게 된 계기는 학부생 때 한국에 대해 연구해 보라는 지도교수의 조언 때문이었다고 회상했다. 당시(1960년대) 군사독재정권하에 있던 빈곤한 한국에 대해 일본사회는 극도의 부정적인 인상을 가지고 있었고 그러다 보니 그의 지인들은 한결같이 ‘한국을 공부해서 뭐하느냐.’는 만류가 대세를 이루었다고 했다. 그러나 이러한 회의론이 그의 한반도 연구에 대한 의지를 꺾지 못했고, 그는 일본인 한국교환유학생 1호라는 기록을 남기게 된다. 강의가 무르익어 갈수록 오코노기 선생이 명성을 누리고 있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 당장 인기가 없고 미래도 없어 보이는 한국에 대해 연구하겠다고 하는 ‘인생을 건 결단’이 있었다는 점이다. 특기할 만한 것은 개인적 결단에 대해 국가가 그냥 내팽개치지 않았다는 점이다. 각종 연구지원이 잇따랐고, 그러한 지원이 한국전쟁과 관련한 1차자료 수집을 위한 장기간의 미국 워싱턴 체류를 가능하게 했다고 말했다. 그는 그때가 인생에 있어서 ‘아무 걱정 없이’ 마음껏 공부할 수 있었던 시기였다고 했다. 이는 외로운 결단을 한 연구자에 대한 사회적 ‘보상 시스템’이 존재함을 의미한다고 하겠다. 사실 일본에서는 비인기 분야에 대한 연구가 비교적 활성화되어 있다. 예를 들어, 홋카이도 대학의 슬라브 연구소에서는 국경문제를 전문적으로 연구하고 있다. 매년 중국과 러시아 국경을 연구원들이 걸어서 답사하며 변경 지역의 문화, 언어, 역사, 풍습 등을 이 잡듯이 조사연구하고 있다. 이러한 철저한 국경연구가 영토분쟁 시 체계적인 논리를 펼 수 있는 밑거름을 제공함은 물론이다. 과연 우리나라에는 이러한 비인기 분야의 연구자들이 발이나 붙일 수 있는 곳이 있을까. 잘나가는 분야에만 온통 쏠리는 우리네 연구 풍토가 한국판 ‘오코노기’를 배출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두 번째는 자신의 연구 분야에 대해 끊임없는 열정을 보여 왔다는 점이다. 선생은 한국의 대표적 학자들은 물론, 정계와 관계의 주요 인물들과 광범위한 인맥을 쌓아 왔다. 이들과의 지속적인 의견 교환을 통하여 생각을 정리 분석하여 수많은 논문을 내놓았다. 선생의 취재 수첩은 깨알 같은 정보로 가득하다. 세 번째는 대학교수로서 그는 오직 한 길만 걸었다는 점이다. 조금만 학문적 업적이 쌓이고 명성을 얻으면 정계에 진출해 버리는 일부 우리 학계의 현실과는 달리 선생은 오직 자신의 영역을 고집스럽게 지켜온 것이다. 선생은 강의 말미에 자신의 지도교수가 일러준, 대학교수로서 가져야 할 교육·연구·대학행정·사회공헌·후진양성이라는 5가지 덕목을 지키려고 최선을 다했다고 했다. 그는 소위 잘나가는 ‘유명’ 교수임에도 불구하고 교육자로서의 모습을 한번도 흩트린 적이 없었음을 필자는 기억한다. 필자의 서툰 일본어로 작성된 학기말 논문을 선생은 언제나 손수 빨간색 펜으로 빼곡히 수정해 돌려주었는데, 이에 긴장하고 감탄한 적이 한두번이 아니다. 그는 앞으로의 한·일관계는 일본이 한국 통일과정에 얼마나 공헌하는가에 달려 있다는 말을 뒤로하고 90분 강의를 마무리했다. 한반도 연구에 평생을 바쳐온 선생의 한·일관계 처방인 것이다. 오코노기 선생의 건승과 퇴직 후에도 보다 왕성한 연구 활동을 이어 나가기를 간절히 기원한다.
  • “10년전 그의 용기 잊지 않았다”

    “10년전 그의 용기 잊지 않았다”

    2001년 1월 26일 일본 유학 중 전철 선로에 떨어진 일본인 남성을 구하려다 숨진 이수현씨의 10주기 추모 행사가 일본에서 열렸다. 추모식은 도쿄 지요다구에 있는 ‘주부회관 플라자 F’에서 이씨의 아버지 이성대(71)씨와 어머니 신윤찬(61)씨 등 3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진행됐다. 아버지 이씨는 추모식에서 “수현이는 어릴 때부터 정의감이 강하고, 약한 이를 보면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성격이었다.”며 “아들의 죽음이 헛되지는 않았다고 믿고 있다.”고 말했다. 이씨는 이어 “무엇보다도 일본의 많은 시민들이 아들의 죽음을 추모하는 모습을 보고 위로와 감동을 받았다.”면서 “한·일 양국의 많은 분들이 아직도 아들을 잊지 않고 있다는 점에 감사드린다.”고 덧붙였다. 이명박 대통령은 권철현 주일 한국대사가 대독한 추모사에서 “고귀한 인명을 구하려는 고인의 용기 앞에서 국경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며 “‘한·일 양국의 가교가 되고 싶다’던 고인의 뜻을 깊이 생각해 양국의 우호·협력 관계를 더 발전시키고자 노력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간 나오토 일본 총리도 기쿠타 마키코 외무성 정무관이 대독한 글에서 “일본 국민은 10년이 지난 지금도 고인의 용기 있는 행동을 잊지 않았다.”고 전했다. 이 밖에도 하토야마 유키오 전 총리 등 저명 인사들이 추모사를 전달했고, 사고 당시 일본 외무상을 지낸 고노 요헤이 전 의원 등 300여명이 참석했다. 마에하라 세이지 외무상과 한류스타 배용준씨 등 10여명은 화환을 보냈다. 2002년부터 이수현 장학금을 받은 아시아 16개국 학생 485명 중 일부도 참석, 의미를 더했다. 도쿄 이종락특파원 jrlee@seoul.co.kr
  • “기성용 선수, 이수현씨를 생각합시다”

    일본에 있는 한국기자가 기성용 선수에게 보내는 편지 “이수현씨를 생각합시다”  기성용 선수,  저는 도쿄에서 특파원으로 일하고 있는 서울신문 이종락기자입니다. 저도 지난 25일밤 카타르 도하에서 열렸던 한·일전을 밤잠을 설쳐가며 새벽 2시까지 일본 TV를 통해 지켜봤습니다. 기 선수가 전반전에 페널티킥을 성공시켰을 때 너무 기뻐 껑충 뛰며 소리치다 집 사람의 제지를 받기도 했습니다. 쥐 죽은 듯이 조용한 일본 주택가에서 큰 소리를 치면 경찰에 신고를 할 수도 있는 심각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어쨌든 꼭 이겼으면 하는 경기를 연장전 끝에 승부차기에서 패해 분한 마음에 좀처럼 잠자리에 들 수 없었습니다. 스포츠는 스포츠로 받아들여야 하는 데 한·일전이 어디 그렇습니까. 한국인에게는.  그런데 아침에 일어나보니 이상한 일들이 벌어졌더군요. 저는 기 선수의 세레모니를 언뜻 봐서 이해하지 못했는데 그게 일본인을 원숭이로 조롱하는 제스처였다는 말을 딸에게 들었습니다. 그렇잖아도 조금은 과하다 싶었는데 이날 오후에 양국 언론과 네티즌 사이에서 기 선수를 비난하는 글들이 쏟아지더군요.  27일자 요미우리 등 몇몇 유력 신문들도 기 선수가 일본인을 경시하는 의도에서 원숭이 흉내를 내는 세레모니를 했다는 기사를 실었습니다. 그러나 오늘 일본 신문의 기사들 중 더 눈길을 끄는 것은 2001년 1월 26일 철로에 떨어진 한 취객을 구하려다 전철에 치여 숨진 고 이수현씨 기사가 압도적으로 많았습니다. 도쿄신문은 1면 톱기사로 “이씨의 죽음이 한·일 국민들간에 불행했던 과거에 대한 아픔을 메우는 다리가 되고 있다.”고 보도했습니다. 다른 신문들도 “이씨의 뜻과 용기가 양국 국민들에게 전승되고 있다.”며 대서 특필했습니다. 이씨의 부모님과 함께 이씨를 추모하는 장학회를 운영하고 있는 아라이 토키요시씨는 26일 도쿄에서 열린 10주기 추모식에서 “이씨의 용기있는 행동은 일본인의 한국에 대한 감정을 변화시켜 민간차원의 교류가 활발해지는 기초가 됐다. 앞으로도 이씨의 뜻이나 용기를 전승해 나가겠다.”고 말했습니다.  실제로 당시 이 사건을 계기로 한국인을 보는 일본인의 시선이 크게 바뀌었고, 일본 내 한류 붐에 큰 영향을 줬다는 평가가 지배적입니다. 일본 지상파와 위성 TV채널 11개에 35개의 한국드라마가 매일 방송되고 있고, 소녀시대와 카라 등 K-POP이 일본 젊은이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습니다. 이런 시기에 기 선수의 원숭이 세레모니는 뭔가 생뚱맞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기 선수는 이제 스물두살입니다. 어린 나이에 세계의 모든 축구선수들의 꿈의 무대인 영국에서 활약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무궁무진한 능력을 지닌 기 선수는 단순히 셀틱에서뿐만 아니라 더 큰 팀으로 이적해 세계 톱 플레이어가 될 것이라고 저는 믿고 있습니다.  그런 톱 플레이어가 되기 위해서는 행동도 톱스타다워야 합니다. 물론 저도 “일본 제국주의의 상징인 욱일승천기를 관중석에서 보는 순간 눈물이 났다.”는 기 선수의 심정을 충분히 이해합니다. 누구나 실수는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것이 잘못됐다고 생각되면 바로 정중하게 사과하는 게 톱스타로서의 올바른 자세입니다. 잘못된 행동을 일본인에게 인정한다고 해서 비굴해지는 게 아닙니다. 오히려 솔직히 사과하는 모습에서 기 선수의 성숙함을 일본인들에게 각인시켜줄 수 있는 계기가 될 겁니다. 29일 우즈베키스탄과의 3·4위전에 앞서 대스타로서 면모를 보이는 기 선수의 모습을 기대합니다.  도쿄 이종락특파원 jrlee@seoul.co.kr
  • 동아시아 관점서 꿰뚫어 본 한·중·일

    동아시아 관점서 꿰뚫어 본 한·중·일

    역사에 국가적 자존심 문제를 대입하면 답이 없다. 지난해 한·일병합 100년을 맞아 간 나오토 일본 총리의 사죄 담화가 나왔지만, 역사교과서 문제는 여전히 화약고다. 시진핑 중국 국가 부주석은 한국전을 두고 ‘정의로운 전쟁’이라고 표현하기까지 했다. 그렇다고 한국이 마냥 피해자인 것만은 아니다. 베트남 파병 문제가 걸려 있다. 베트남도 캄보디아를 침공한 전력이 있다. 이런 갈등을 치유하기 위해 공통의 역사교과서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꾸준히 있어 왔다. 독일이 프랑스, 폴란드와 공동 역사교과서를 만들어 낸 것이 일종의 모범 사례다. 물론 처지가 다르다는 회의론도 있다. 비슷한 국력의 작은 나라들로 분할되어 있어 협상을 통한 공존에 익숙한 유럽과 달리, 동아시아는 중국와 일본이라는 두개의 거대 패자가 버티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학자들의 도전은 계속된다. 유용태(54) 서울대 역사교육과 교수, 박진우(55) 숙명여대 일본학과 교수, 박태균(45)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중국이나 일본이 아니라 한국이기에 화해를 주도할 수 있다.”고 잘라 말한다. 세 사람이 최근 펴낸 ‘함께 읽는 동아시아 근현대사’(창비 펴냄)는 이런 믿음을 책으로 옮긴 것이다. 이전 논의들과 달리 한·중·일 기계적인 균형에서 벗어났다는 점이 우선 눈에 띈다. 5년간 집필 작업을 진두지휘한 유 교수의 얘기를 대표로 들어봤다. →그간 한·중·일 공동 역사교과서에 대한 논의는 많았다. 2005년 출간된 ‘미래를 여는 역사’처럼 대개 3국 역사학자들이 토론과 합의를 거쳐 책을 내곤 했는데 이번에는 한국 학자들만 집필에 참여했다. -토론과 합의를 거치다 보니 서술이 지나치게 기계적 균형에 치우치는 대목이 있어 꼭 이런 방식이어야 하는가에 대한 근본적 회의가 있었다. 물론 여건이 성숙되면 그런 작업도 바람직하다. 하지만 누가 쓰든 가장 중요한 것은 제국주의 의식을 상대화하고 자국 중심주의를 성찰하는 것이다. 목적에 충실하다면 집필자 국적은 문제가 안 된다. →통상 동아시아 근대는 개항을 기점으로 삼는다. 중국은 아편 전쟁, 한국은 강화도조약을 거론하는 식이다. 이번 책은 17세기부터 서술을 시작하는데. -통상적인 분류는 그게 맞다. 그런데 우리는 17세기 초, 그러니까 조·일, 조·청 전쟁(임진왜란이나 병자호란이란 명칭은 한국 관점에서 나온 표현) 이후 동아시아 정세가 안정된 때부터 서술했다. 이때부터 19세기까지 200년 동안 동아시아에 큰 전쟁이 없다. 이 무렵 안정된 동아시아 질서가 19세기 유럽 문명과 맞닥뜨려 어떻게 변화하고 왜곡되는지를 살펴봐야 그 다음을 이해할 수 있다고 봤다. 그래서 개항 이전의 시기, 즉 ‘해금’(海禁) 시기를 넣었다. →가장 신경 쓴 대목은. -연관과 비교다. 기존의 역사 서술은 특정 사건을 한 나라의 관점에서만 설명한다. 지역과 국가, 국가와 국가, 나아가 동아시아적으로 어떤 의미가 있는지 연관시켜 서술하는 노력이 부족했다고 본다. 그래서 이번 책은 최대한 동아시아 관점에서 다루려 했고, 여의치 않을 경우 다른 나라들은 그 사안에 어떻게 대응했는지 비교사적 관점을 넣으려 했다. 한마디로 자국 중심주의 색깔을 최대한 빼려 노력했다. →결론은 반전 평화로 귀결되던데. -근대 이후 중국은 늘 서구 제국주의의 피해자인 척한다. 하지만 소수민족 문제에 관한 한 중국도 그렇게 자유롭지 못하다. 그런데 소수민족 문제나 중국 내 인권 문제를 거론하면서 중화주의에 제동을 거는 이들도 따지고 보면 소(小)중화주의를 추구한다. 근현대사를 살펴 보면 한·중·일 누구도 딱 잘라 피해자, 혹은 가해자라고 할 수 없다. 일본도 원자폭탄 투하라는 측면에서는 분명 피해자인 면이 있다. 우리가 먼저 성찰하는 모습을 보여야 남들에게도 성찰과 반성을 요구할 수 있다. 그게 분쟁을 해결하고 예방하는 최선의 방법이라 생각한다. →한국에 대한 사죄를 주장하는 일본인들은 대개 좌파 성향이다. 우리도 김대중·노무현 정부 때 베트남전 사과 문제가 국가정체성 논란으로 이어지면서 시끄러웠다. -그런 주장들은 사회의 주류보다는 자본과 권력에서 소외된 이들에게서 많이 나온다. 그래서 이웃 나라와의 화해는 국가 대 국가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국가 내부의 문제이기도 하다. (책에서) 지역, 국가, 민중이라는 3가지 차원을 설정한 것도 그 때문이다. 베트남전 문제는 우리 사회에 분명 이견이 존재한다. 국가 내부의 성찰이 있어야 국가 대 국가의 평화가 가능해진다. 이번 책이 그런 문제 제기의 한 방식으로 읽혔으면 좋겠다. →일본이나 중국 반응은. -‘동아시아사’(史)라는 개념 자체는 일본이 가장 빨랐다. 그걸 고등학교 선택과목(2012년부터)으로 정한 것은 한국이 맨 먼저였다. 일본 학자들의 관심이 무척 크다.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씨줄날줄] 공귀족/이춘규 논설위원

    과거 우리의 명절은 사계절 농사 주기와 관계가 깊었다. 농사일을 시작하는 음력 1월 1일은 설날이고, 수확기인 8월 15일은 추석이었다. 우리네 조상들은 설날에는 전해 가을 수확한 곡식으로, 추석 때는 햅쌀과 햇과일로 상을 차려 조상들에게 제사 지내고, 일가친척들이 모여 앉아 덕담을 주고 받았다. 1990년대까지만 해도 설날 마을 어른들을 찾아다니며 집단 세배하는 풍경이 낯설지 않았다. 명절 풍습은 1960년대 이후 급속한 산업화·도시화로 크게 변했다. 마을공동체 구성원들이 모여 놀이를 하던 단오·칠석 등 명절은 빠르게 쇠퇴했다. 설과 추석이 되면 고향을 떠났던 많은 사람들이 기차·버스를 타고 고향을 찾았다. 기차 객차는 물론 기관차 빈 곳, 짐칸도 사람들이 빽빽이 타고 이동했다. 사고도 많아 1960년 1월 서울역 압사사고로 31명이 숨졌고, 1975년 9월에는 용산역 참사로 4명이 숨졌다. 명절은 기쁨이자 고통이었다. 명절은 보통 며느리들에게 아픔이다. 살림이 빠듯한 어머니들의 명절 고통은 심하다. 한동안 며느리, 어머니의 명절 고통이 조명을 받았다. 최근 들어서는 말은 못하고 삭이는 아버지, 특히 장남들의 명절 고통이 부각되고 있다. 시댁 식구들과 함께하기 꺼려하는 부인이나 형제들의 누적된 갈등을 중재해야 하는 장남의 고통이 심각하다는 것. 남북 이산가족이나 직장을 구하지 못한 청년실업자들의 명절 고통은 말할 필요조차 없을 터. 보통 일본인들의 명절나기도 힘겹다. 일본에서는 연말연시와 어린이날 전후, 오봉(추석) 연휴 때 대이동을 한다. 철도·비행기·버스가 임시 증편된다. 평소보다 요금은 비싸지만 고향 가는 귀성전쟁은 연례행사다. 취직빙하기를 맞은 청년 미취업자나 미혼들은 여러가지 이유로 명절 스트레스에 시달린다. 인터넷에는 며느리들의 명절 스트레스 하소연이 넘친다. 미국·유럽에서도 추수감사절이나 크리스마스 휴가 때 귀성전쟁이 만만찮다. 중국에서는 춘제(설) 귀성을 두려워하는 공귀족(恐歸族)이 늘었다고 현지 언론들이 전했다. 열차표 구하기, 부모 선물, 친척 세뱃돈 등이 부담스럽다. 맞선을 보라는 부모 독촉까지 겹치면 물심양면의 부담이 가중된다. 중국언론 인터넷여론조사에 따르면 ‘왜 귀성하고 싶지 않으냐’는 질문에 젊은이 44%가 ‘비용 과다’를 꼽았다. 대졸자 월급 1~2개월 분인 4000위안(약 68만원) 안팎 귀성비용은 공포란다. 명절이 원수 같다던 어른들의 말씀처럼 명절 고통은 만국공통인가 보다. 이춘규 논설위원 taein@seoul.co.kr
  • [아시안컵] 구자철 “일본 전, 우승 향한 과정일 뿐”

    “일본전은 우승으로 가는 과정일 뿐.” 구자철(제주)의 출사표가 야무지다. 구자철이 ‘숙명의 라이벌전’을 앞두고 24일 카타르 도하의 메인미디어센터에서 열린 공식 기자회견에서 ‘입’으로 일본을 제압했다. 득점 공동선두(4골)를 달리고 있는 구자철은 “부담이나 두려움을 안고 경기한 적은 단 한번도 없다. 한·일전이 아니라 월드컵 결승이라고 해도 항상 자신감을 갖고 나설 것이다. 출전하는 동안 모든 체력과 정신력을 쏟아붓겠다.”고 말했다. 이어 “일본과의 경기가 좀 더 흥미롭고 긴장되겠지만, 우승으로 가는 과정일 뿐이다. 경기장에서 모든 것을 말하겠다.”고 선전포고했다. 조광래 감독은 “한·일전은 이번 대회 최고의 빅매치다.”면서도 “일본과의 차이점은 내일 그라운드에서 보여주겠다.”고 불을 질렀다. 조 감독은 “체력적으로 우리가 일본보다 (하루를 덜 쉬기 때문에) 지장이 있다. 그러나 우리 선수들의 열정을 봤을 때 큰 문제없다. 일본전에서도 앞선 경기같은 플레이를 한다면 체력적인 요소는 해소될 것”이라고 자신감을 나타냈다. 알베르토 차케로니(이탈리아) 일본 감독도 기싸움에서 지지 않았다. 차케로니 감독은 “한국은 준비가 잘됐다. 하지만 우리는 경기를 거듭할수록 경기내용이 좋아지고 있다.”고 여유를 보였다. 지난해 10월 평가전(0-0)과 비교해 달라는 질문에는 “한국은 그 후 별로 달라진 게 없다. 우리는 90분간 우리 스타일로 플레이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을 아꼈다. 주장 하세베 마코토(볼프스부르크)는 “일본인으로 자긍심을 갖고 싸우겠다. 결승보다 부담스럽지만 우승하려면 반드시 한국을 꺾어야 한다.”고 비장하게 말했다. ‘설전’은 끝났다. 이제 ‘실전’만 남았다. 조은지기자 zone4@seoul.co.kr
  • “日왕가 이세신궁은 조선신 모셨던 사당”

    “日왕가 이세신궁은 조선신 모셨던 사당”

    신흥무관학교 설립 100주년을 맞아 사단법인 국학원 산하 광복의병연구소는 12일 서울 여의도 국회도서관 대강당에서 ‘동아시아 평화를 위한 새로운 한·일 관계의 모색’을 주제로 한·일 공동 학술대회를 연다. 신흥무관학교 설립자이자 독립운동가인 우당 이회영(1867~1932)의 삶을 재조명하는 자리다. 우당은 일제 침탈이 가속화되자 전 재산을 처분하고 만주로 건너가 신흥무관학교를 세운다. 단군을 믿는 대종교 신도로서 철저한 민족주의자로 살다가 일제의 호된 고문에 숨졌다. 발표 논문 가운데는 홍윤기 한·일천손문화연구소장의 ‘한·일 고대사의 올바른 인식’이 가장 눈길을 끈다. 홍 소장은 일본 왕가의 상징인 이세신궁(伊勢神宮)이 사실은 조선신을 모셨던 사당이었다는 주장을 내놓는다. 신라에서 일본으로 건너간 아메노히보코(한국의 ‘연오랑 세오녀’ 신화)가 일본에 ‘곰신단’(熊の神籍)을 세웠고 여기서 부여의 영고, 고구려의 동맹을 본뜬 제사를 지냈다는 것이다. 흥미로운 사실은 일본 도쿄대 사학과 교수였던 구메 구니다케(久米邦武·1839~1931)도 연구 끝에 1891년 이런 결론에 다다랐다는 점이다. 물론 구메 교수의 최종 주장은 “그러니까 조선땅을 되찾는 것이 일본 본연의 임무”라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일본 극우파들은 이런 주장이 일왕의 신성성을 해친다고 여겨 일본도를 들고 구메 교수의 집을 기습했다. 아울러 끝내 그를 도쿄대 교수 직에서 내쫓았다. 정경희 국학학술원장은 “이렇듯 뿌리가 같은 한국과 일본이 근대에 이르러 적대적으로 만난 것은 역사적 아이러니”라고 지적했다. 정 원장은 “우당은 1931년 항일구국연맹을 결성하면서 한국인뿐 아니라 중국인과 일본인까지 참여토록 했다.”면서 “우당의 이런 정신을 새로운 동아시아 평화론의 기원으로 삼아야 한다.”고 역설했다.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길섶에서] 한국인·일본인/이춘규 논설위원

    아이는 일본 도쿄 시내 공립 중학교를 3년 다닌 뒤 졸업장까지 받았다. 동급생 유일의 외국인 학생이었다. 3년간 부대끼면서 일본인을 어느 정도 이해했다고 자부했다. 귀국 후엔 계속 편지로 소식을 교환했다. 곧 고교를 졸업하는 아이가 최근 중학교 동창들을 만났다. 새삼 한국인과 다른 일본인들을 체험했다고 한다. 점심은 각자 먹은 것을 계산했다. 간식값도 각자 먹은 만큼 냈다. 노래방이 백미. 먼저 들어간 5명과 나중에 합류한 2명이 시간에 맞추어 요금을 다르게 나누어 냈다. 스티커사진은 가위바위보를 해 2명은 공짜고, 나머지가 나눠 냈다. 승부를 좋아하고, 각자 계산하는 일본인답다. 이자카야에서는 단 단위까지 나눠 각자 계산했다. 아이는 오랜만에 만난 한국인 친구라 해서 혹시 계산에서 빼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지만 아니었다고 한다. 부담이 없어 좋았단다. 기자도 자매회사 사장 주최 만찬에서 각자 계산한 적이 있다. 각자 계산은 냉정·쪼잔한 것 같지만 장점도 많다. 투명사회 건설에 일조한다. 이춘규 논설위원 taei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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