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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新 대한민국 24시] (1)제주 신풍속도

    [新 대한민국 24시] (1)제주 신풍속도

    대한민국의 하루는 바삐 돌아간다. 24시간이 모자란다. 누구라 할 것도 없다. 분야도 가리지 않는다. 매우 역동적이다. 새로운 풍경은 사회 트렌드와 사람들의 살아가는 모습을 바꾼다. 놓치지 않아야 할 것들이 많다. 이를 소개하는 기획 시리즈 ‘신 대한민국 24시’를 주 1회 게재한다. #풍경 하나 “이 더위에 왜 길을 나서느냐고요?” “당신도 한번 걸어 보세요 스스로 행복해진답니다.” 요지경이다. 더워서 숨이 턱턱 막힐 지경인데 4~5시간 걸어 보란다. 그러면 행복해진다니. 태양이 작렬하는 7월의 제주섬에는 올레꾼들이 넘쳐난다. 오직 걷기 위해서 돈 써 가며 비행기 타고 제주에 온 사람들이다. 이해불가다. 하지만 무작정 간세다리(게으름뱅이를 뜻하는 제주어)처럼 걸어 보란다. 그것도 혼자서. 그러면 왜 제주 올레길이 행복한 길인지를 스스로 알게 된다고…. 그렇게 사람들은 하나둘 올레길을 걷기 시작했고 다들 행복해했다. 불 같은 7월. 사람들은 연신 땀을 훔치며 기꺼이 올레길을 걷는다. 푸른 바다와 오름, 곶자왈 숲을 따라 살포시 펼쳐지는 제주의 속살에 모두들 열광한다. 걸음걸음을 뗄 때마다 내 안에 쌓이고 쌓였던 무언인가가 눈녹듯 사라져 간다. 사람들은 그것을 ‘치유’라고 불렀다. 내 안의 상처를 걷어내자 내면은 깊이를 더해 갔다. 어디 올레꾼들만 행복할까. 올레길 마을 제주섬 사람들도 덩달아 행복해졌다. 손님이 없어 문을 닫았던 올레길 주변 동네 구멍가게는 다시 문을 열었다. 소박한 시골집은 ‘할망민박’이란 이름을 달았고 할망들의 주머니도 두둑해졌다. 이보다 더 좋을 수가 있을까? 절정으로 치닫는 여름. 올레길은 오늘도 누군가에게 위로받고 싶은 사람들로 북적인다. 올레길에서 만나 서귀포 작은 포구에 신혼집을 차린 그들은 여전히 행복한지…. 군 입대를 앞둔 아들의 손을 꼭 잡고 올레길을 찾았던 어머니의 허한 가슴은 아직도 여전할까. 실연의 아픔으로 올레길에서 눈물을 떨구었던 젊은 도시 여자는 다시 사랑하게 됐을까. 직장을 잃은 막막한 마음을 올레길에 쏟아냈던 50대 가장은 다시 일터로 돌아갔을까. 세상에 상처 없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 서울에서, 부산에서, 광주에서 한 해 200만명이 자신들의 사연을 올레길에 쏟아낸다. 제주올레 안은주 사무국장은 “올레길은 세상사에 상처받아 치유받고 행복해지고 싶은 사람들의 친구 같은 존재”라며 “올레길에서는 모두가 행복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요즘 제주는 올레가 대세다. 아직도 ‘치유의 길’ 제주 올레 한번 걸어 보질 않았나요? #풍경 둘 천하를 통일한 진시황은 신하 서복에게 동방의 나라에 있다는 불로초를 구해 오라고 명했다. 서복은 불로초를 찾아 한라산까지 왔다가 서귀포 정방폭포 암벽에 ‘서복이 이곳을 지나갔다’는 ‘서복과지’(徐福過之)라는 글귀를 남겼다. 진시황이 불로초가 있을 거라고 믿었던 제주섬. 제주는 요즘 유커(游客·중국인 관광객)의 세상이다. 베이징, 상하이, 칭다오, 항저우, 하얼빈, 광저우…. 중국 전역에서 쉴 새 없이 비행기들이 유커를 제주로 실어 나른다. 제주와 중국을 잇는 하늘길은 거미줄이 다 돼 간다. 저녁 무렵 제주시내는 우루루 길거리 쇼핑에 나선 유커들로 만원이다. 가게마다 빨간 중국어 간판과 메뉴판은 필수가 됐다. 지난해 1만 2000여명의 대규모 인센티브 여행단(기업의 포상휴가)을 제주로 보낸 것에 대한 화답으로 신제주에는 중국기업 바오젠의 이름을 붙힌 거리도 등장했다. 중국어가 거리를 지배하고 중국 화폐가 자연스럽게 통용되는 바오젠거리는 흡사 중국 어느 도시를 옮겨 놓은 듯하다. 혹시나 잃어버릴까 봐 여권과 지갑을 넣은 작은 전대를 허리춤에 꽉 조여 맨 유커들. 좌변기를 사용할 줄 몰라 당황하기도 하고 해수탕에서는 샤워도 하지 않은 채 풍덩 탕 속에 뛰어들어 눈총을 받기도 한다. 떼를 지어 우루루 도로를 가로지르기도 하고 호텔이고 식당이고 아무 곳에서나 독한 중국산 담배 연기를 뿜어댄다. 유명 관광지 화장실과 일부 식당가에는 친절한 좌변기 사용 안내문도 등장했다. 아마도 1989년 해외 여행 자유화 이후 우루루 동남아로, 중국으로, 일본으로 난생 처음 해외관광을 떠났던 우리의 모습도 그러했으리라. ‘닥치고 쇼핑.’ 저녁이 되면 제주시내 쇼핑거리는 유커들 차지다. 중국에선 명품 대접을 받는다는 중저가 국산 화장품은 단연 유커들의 최고 인기상품. 인삼과 꿀, 담배, 술을 닥치고 쇼핑한다. ‘메이드 인 코리아’(Made in Korea)여야만 지갑을 연다. 제주 오일장 할망들도 중국어 한마디는 할 줄 알아야 한다. 유명 면세점은 매일 즐거운 비명이다. 하루 내내 유커들을 태운 관광버스들이 줄을 잇고 매장 안은 밀려드는 유커들로 발 디딜 틈이 없다. 유명 면세점 한 곳의 한 달 매출액만 1610만 달러 수준이다. 유커들이 제주에서 자고 먹고 쇼핑하는 데 쓰는 돈은 1인당 157만원 정도(2013년 5월 제주관광공사 외국인 관광객 실태조사)다. 큰손들도 수두룩하다. 전세기를 타고 제주의 특급호텔 카지노에 머물며 수억원을 베팅하거나 면세점 명품 가방과 고급 시계를 싹쓸이하기도 한다. 싸구려 중국 여행 가서 중국 사람들이 해주는 발마사지 한 번 안 받아본 한국 사람 어디 있을까. 제주에서는 전세 역전이다. 밤이 되면 관광에 쇼핑에 지친 유커들의 발마사지는 이제 한국 사람의 몫이다. 영주권을 주는 5억원짜리 고급 콘도도 날개 돋친 듯 팔렸고 제주에는 중국 영사관도 들어섰다. 다들 이구동성이다. 중국의 해외여행 바람은 이제 시작에 불과하다고. 1~3시간 비행의 뛰어난 접근성에다 멈추지 않을 것 같은 한류 바람, 세계자연유산 신비의 화산섬 제주로 유커들이 계속 몰려들 거라고. 중국인들이 뽑은 신혼여행지 1위 제주섬. 사랑하는 사람과 가장 설레는 여행을 제주에서 하고 싶단다. 과연 그럴까? 한때 엔화를 팍팍 뿌렸던 일본인들의 모습은 이제 제주에서 찾아보기 어렵다. 김의근 제주 국제대 교수(관광학)는 “중국 경제는 계속 성장할 것이고 아울러 중국인의 해외여행 바람은 앞으로 더 거세게 불 것”이라며 “동북아에서 접근성이 우수한 제주가 이들의 휴양 관광지로 계속 관심을 끌 것”이라고 말했다. #풍경 셋 여행만 가지 말고 아예 제주에서 눌러살아 볼까. 먹고살기 팍팍했던 배고픈 시절 섬 사람들은 하나둘 섬을 등졌다. 더 나은 삶을 위해 뭍으로 뭍으로 떠났다. 예전에 제주섬도 그랬다. 땅은 척박했고 거센 바다는 아버지를 삼켜버리곤 했다. 믿거나 말거나, 가난이 지긋지긋했던 시절, 제주섬 여성들의 일등 신랑감은 철도 기관사였다. 기차가 없는 제주섬으로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터이니. 세상사 돌고 돈다 했던가. 제주섬은 요즘 뭍에서 이주민들이 몰려든다. 지난해 인구가 무려 6000여명이나 늘어났다. 모두 뭍에서 제주로 이주해 온 사람들이다. 아니 이민 온 사람들이다. 제주는 이주가 아니라 이민이라 불러야 한다. 외국어 수준의 제주 사투리와 낯선 풍습들. 어딜 가든 텃세가 없으리라만은 ‘육지것들이’ 하는 제주섬의 텃세는 등급이 다르다. 예전에는 정 붙이고 살지 못하고 다시 떠난 사람도 많았다. 하지만 요즘 도시 사람들은 과감하게 제주 이민에 나선다. 수두룩하던 제주 변두리 시골 빈집은 이제 모두 그들이 차지했다. 5분이면 탁 트인 푸른 바다고 5분이면 한라산 울창한 숲이다. 거대한 콘크리트 덩어리 서울에서는 상상도 못할 일이다. 제주영어교육도시에는 서울에서 역유학 온 도시 아이들로 가득하다. 옛말에 ‘사람은 서울로, 말은 제주로 보내라’ 했던가? 이젠 말도 사람도 모두 제주로 보내는 시대다. “어디 제주 한적한 시골 마을에 빈집을 구할 수 있나요?” 제주의 부동산 중개업소는 이민자를 위해 시골 빈집 구하기 바쁘다. 제주에서 ‘안단테 안단테’ 느린 삶을 즐겨 보겠다는 이민자들이다. 바야흐르 르네상스 제주다. 수년 전 대구에서 이주, 섬 속의 섬 우도에 카페를 차린 이상국(48)씨는 “생각하면 할수록 제주로 이주한 게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며 “사계절 아름다운 자연과 시간에 쫓기지 않는 한 박자 느린 일상 등은 도시에서는 누리지 못한 큰 즐거움”이라고 자랑했다. 제주 황경근 기자 kkhwang@seoul.co.kr
  • [피플 인 라운지] 하계 농아인올림픽 배드민턴 대표 정선화

    [피플 인 라운지] 하계 농아인올림픽 배드민턴 대표 정선화

    “마지막 대회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유종의 미를 거뒀으면 좋겠습니다.” 6년 전 인터뷰<서울신문 2007년 4월 20일자 23면>했을 때와 달라진 것이 없었다. 날렵한 몸매에 귀여운 외모까지 스물 아홉 살 나이를 떠올리기가 쉽지 않을 정도. 16일 오후 서울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 대강당에서 열린 제22회 하계 농아인올림픽(Deaflympics) 대한민국 선수단(단장 여준규 여성메디파크병원장) 결단식에 앞서 장애인 배드민턴의 ‘기둥’ 정선화를 만났다. 그녀는 이 대회에서만 7개의 금메달을 목에 걸어 국내 선수로는 금메달을 가장 많이 수집했다. 그녀는 오는 26일부터 다음 달 4일까지 불가리아 소피아 대회에서 개수를 늘리기 위해 나선다. 지난 두 달 동안 서울을 오가며 훈련에 비지땀을 쏟은 경북 김천시청 배드민턴단의 권성덕 감독, 동료 선수 10여명과 함께 김천에서 올라온 길이었다. 권 감독은 “지난 2009년 타이베이대회에서 호흡을 맞춘 뒤 두 달 전 다시 만나 깜짝 놀랐다”고 했다. 몸도 기량도 엉망이었다는 얘기다. 태어나면서부터 전혀 들을 수 없는 정선화는 이도희(42)씨의 수화 통역으로 진행된 인터뷰에서 “2011년 졸업한 천안 나사렛대학에 다니느라 훈련에 집중할 수 없었고 무릎이 좋지 않았다”고 돌아봤다. 하지만 권 감독은 두 달 훈련을 통해 4년 전의 기량을 회복했다고 전했다. 정선화는 이번 대회 전망에 대해선 “여러 대회에서 만나본 선수들이어서 체력만 보강하면 풍부한 경험으로 좋은 승부를 펼칠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밝혔다. 하루에 여러 차례 경기를 할 수 있어 출국할 때까지 체력을 키우도록 각별히 신경쓰겠다고 했다. 라이벌에 대한 분석을 마쳤느냐는 질문에는 “당연히 이미 끝냈다. 그보다 나와의 싸움이 중요할 것 같다”고 말했다. 대회를 마치고도 계속 선수로 뛰는 게 어떻겠느냐고 떠보자 “6년 전 인터넷 채팅을 통해 만나 사랑을 키워 온 일본인 치다 다이스케(33)와 내년 1월 결혼식을 올린 뒤 일본에 살림집을 꾸릴 생각”이라며 “1년에 세 차례만 만나 애잔하기만 한 예비신랑과 행복한 삶을 꾸리고 싶다”고 밝혔다. 각종 대회 우승을 휩쓸다시피 해서 받고 있는 연금은 아버지 정세영(58)씨와 어머니 김정임(55)씨에게 맡기고 본인은 일본에서 일자리를 구할 계획이라고 했다. 아이는 셋을 낳고 싶다는 욕심까지 비쳤다. 정선화는 후배들에게 꼭 남기고 싶은 말을 주문받자 손짓을 동원해 “도전하는 정신과 꿈을 잃지 않는 자세가 중요하다. 도전하고 노력하면서 다양한 체험을 하면 분명히 기회는 온다”고 강조했다. 두 귀의 청력이 각각 55dB 이상이어야 출전할 수 있는 이번 대회는 18개 종목에 90개국 5000여명이 참가하며 한국은 10개 종목 115명의 선수단(선수 69명, 임원 31명, 수화통역 15명)이 출전한다. 선수단은 태권도, 볼링, 배드민턴, 유도, 사격 등에서 금 14개, 은 12개, 동메달 12개를 따내 3위를 지켜내겠다며 여느 결단식의 “파이팅”을 대신해 기합 소리를 냈다. 임병선 기자 bsnim@seoul.co.kr ◆정선화가 걸어온 길 ▲1984년 9월 27일 서울 출생 ▲168㎝, 57㎏ ▲애화학교-신건중-미림여자정보과학고-천안 나사렛대학 ▲ 2000년 아시아태평양 농아인체육대회 단체전·여자복식 2관왕, 2001년 농아인올림픽 단체전·여자복식 2관왕·대한민국 맹호장, 2003년 장애인체육대회 단·복식 2관왕, 2005년 농아인올림픽 2관왕 2연패, 2009년 농아인올림픽 3관왕
  • [MLB] 류현진 성적표는 ‘A-’

    류현진(26·LA 다저스)이 올 전반기에 ‘A급’ 성적표를 받았다. 미국 ‘야후스포츠’는 16일 다저스의 전반기 경기력을 평가하면서 류현진에게 ‘A-’ 평점을 매겼다. 클레이턴 커쇼에 이어 팀에서 두 번째로 많은 경기를 소화한 루키 류현진에 대해 “다저스가 그에게 더 바랄 것이 없을 것”이라며 팀의 기대치 이상이라고 전했다. 매체는 선발투수 중 커쇼(A+)와 류현진에게만 A를 줬다. 잭 그레인키(B), 크리스 카푸아노(C-), 스티븐 파이프(B+), 맷 매길(D), 조시 베킷(F), 테드 릴리(F) 등에 대한 평가는 박했다. 불펜에서는 켄리 얀센(A)과 파코 로드리게스(A-)가 A를 받았다. ESPN은 투수 평가에서 류현진을 메이저리그 전체 48위에 올렸다. ESPN 자체 평가 순위, 일라이어스(Elias), 인사이드 에지(IE), 더 베이스볼 인사이클로피디아(TBE) 등 미국 스포츠통계업체가 매긴 순위의 평균으로 작성된 명단에서 류현진은 142.3점으로 48위에 랭크됐다. 1위는 커쇼. 일본인 투수 다르빗슈 유(11위·텍사스), 이와쿠마 히사시(14위·시애틀), 우에하라 고지(16위·보스턴) 등은 류현진보다 높은 순위에 자리했다. 강력한 신인왕 후보 셸비 밀러(세인트루이스)는 류현진보다 낮은 69위에 그쳤다. 김민수 선임기자 kimms@seoul.co.kr
  • [MLB] ‘류’스타…류현진, 유니폼 판매 11위

    [MLB] ‘류’스타…류현진, 유니폼 판매 11위

    류현진(26·LA 다저스)이 미프로야구(MLB) 유니폼 판매 순위에서 전체 11위에 올랐다. 데뷔 첫해부터 큰 인기를 끌고 있다는 방증이다. MLB 공식 홈페이지(MLB.com)가 12일 공개한 리그 유니폼 판매 순위에 따르면 류현진은 상위 20명 중 11위에 이름을 올렸다. 팀 내에서는 ‘쿠바 괴물 신인’ 야시엘 푸이그(10위)에 이어 두 번째다. 프랜차이즈 스타 맷 켐프(14위)와 에이스 클레이턴 커쇼(15위)보다 유니폼이 많이 팔렸다. 전체 1위는 지난해 내셔널리그(NL) 최우수선수(MVP) 버스터 포지(샌프란시스코)가 차지했고 일본인 투수 다르빗슈 유(텍사스)는 18위에 머물렀다. 홈페이지는 “젊은 선수의 유니폼이 판매에서 강세를 보인다. 상위 20명 중 30세 이하가 18명에 달하고 24세 이하 선수도 5명이나 있다”고 밝혔다. MLB 공식 온라인숍에서 판매되는 선수용 유니폼 가격은 220.99달러(약 25만원), 복제 유니폼은 99.99달러(약 11만원)다. 한편 올스타전 출전을 노리던 푸이그는 NL ‘최후의 1인’ 투표에서 프레디 프리먼(애틀랜타)에게 밀렸다. 지난달 3일 빅리그에 데뷔한 푸이그는 35경기에서 타율 .394에 8홈런 19타점의 놀라운 활약을 펼쳐 크게 주목받고 있다. 그러나 79경기에서 타율 .313에 9홈런 60타점을 기록한 프리먼의 벽을 넘지 못했다. 프리먼은 전체 7920만표 중 1970만표(24.9%)를 휩쓸었다. 푸이그가 얻은 표는 공개되지 않았으나 근소한 차이였다고 MLB사무국은 전했다. 다저스는 이날 콜로라도와의 홈 경기에서 선발 크리스 카푸아노의 호투와 장단 13안타를 터뜨린 타선의 활약에 힘입어 6-1로 이기고 5연승을 달렸다. NL 서부지구 선두 애리조나도 밀워키를 5-3으로 꺾어 승차는 1.5경기를 그대로 유지했다. 카푸아노는 6과 3분의 1이닝 동안 삼진 8개를 낚으며 6피안타 무실점으로 선전했다. 푸이그는 4타수 2안타로 뜨거운 방망이를 과시했다. 임주형 기자 hermes@seoul.co.kr
  • 광기·비뚤어진 열망… 日 군국주의의 최후

    일본은 ‘갖지 못한 나라’다. 국토는 좁고 자원은 빈약하다. 그렇다고 늘 궁색하게 살 수는 없지 않은가. ‘가진 나라’가 되고 싶다. 당연한 열망이다. 그런데 ‘가진 나라’를 지향하는 과정이 파괴적이고 착취적이라면 결말은 달라진다. 책은 바로 이 지점, 그러니까 ‘갖지 못한 나라’가 ‘가진 나라’를 꿈꾸고, 계획을 세우고, 실행하다 최후를 맞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저자가 원했건 그러지 않건, 책을 통해 일본 극우파의 사상적 원류를 개략적이나마 가늠하는 부수입도 올린다. 저자가 판단컨대, 일본이 ‘가진 나라’에 대한 열망을 불사르게 된 발단은 1차 세계대전이었다. 제국주의가 기승을 부리던 20세기 초 유럽의 ‘가진 나라’들이 화염에 휩싸인 동안 바다 건너 일본엔 황금비가 내렸다. 불구경도 재밌는데 전쟁 덕에 벼락부자까지 된 것이다. 졸부가 된다는 게 어떤 이들에겐 종종 ‘잔혹사’로 가는 지름길로 작동하기도 한다. 불행히도 러·일 전쟁 승리에 도취된 일본인에게 1차 대전은 마약이었다. 일본은 1차 대전을 지켜보며 미국, 유럽 등 ‘가진 나라’들을 상대로 승리할 방법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당시 나온 결론이 ‘총력전’이었다. 현실은 달랐다. 저자의 진단처럼 일본만큼 근대의 총력전에 적합하지 않은 나라는 없었다. 총력전에 필수적인 공업 자원이나 인적 자원이 불충분했고, 총력전을 이끌 정치 기구도 없었다. 일본 군부가 무모한 줄 알면서도 극단적인 정신주의에 기댈 수밖에 없었던 이유다. 이 와중에 승부의 합리적 예측과는 관계없이 설령 1대1000이 되더라도 죽을 때까지 싸운다는 ‘진예’(眞銳), 일본과 조선, 타이완 등의 전 인구가 함께 죽자는 ‘일억옥쇄’, 천황폐하 만세를 외치며 돌격하는 병사는 스스로 살아있는 신이 된다는 ‘마코토’와 ‘마고로코’ 등의 사상들이 각광받기 시작한다. 1차 대전 중 13만명의 독일군이 50만명의 러시아군을 괴멸시킨 ‘타넨베르크 전투’는 이 같은 무모함에 밑거름이 됐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군국주의의 광기에 사로잡힌 일본은 결국 미국을 상대로 승산 없는 게임을 벌이다 참패했다. 저자는 이를 두고 “마음으로 속임수를 쓰는 데는 한계가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6·25전쟁을 통해 수혈받은 피로 또 다시 군국주의의 부활을 꿈꾸는 일본 극우세력들이 새겨들어야 할 대목이다. 책은 지난해 제16회 시바 료타로상을 받았다. 손원천 기자 angler@seoul.co.kr
  • 예술성·감동 다 버렸다…2000t 로봇 전투쾌감 위해

    예술성·감동 다 버렸다…2000t 로봇 전투쾌감 위해

    이야기에 대한 기대는 버리자. 예술 영화의 작품성 같은 것은 찾지도 말자. 11일 개봉한 ‘퍼시픽 림’(Pacific Rim)은 거대 로봇과 외계 괴수의 전투를 그린 영화다. 서사적 감동은 없지만 극한으로 끌어올린 전투 장면의 쾌감은 두 말할 여지 없이 끝내준다. 스케일만 놓고 보면 ‘트랜스포머’는 애들 장난 같다. 2025년, 태평양 연안의 심해에 균열이 일어나 엄청난 크기의 괴생명체가 출현한다. ‘카이주’라 불리게 된 괴수들의 공격에 지구는 순식간에 초토화된다. 궁지에 몰린 인류는 ‘범태평양 연합 방어군’을 결성해 초대형 로봇 ‘예거’를 개발한다. 반격은 성공하는 듯 보이지만 진화하는 카이주의 공격에 예거는 하나 둘 쓰러진다. 그 사이 형과 함께 예거를 몰던 최정예 조종사 롤리(찰리 헌냄)는 카이주와의 전투 중 형을 잃고 세상을 등진다. 연합 방어군은 카이주를 개별적으로 상대하는 대신 ‘브리치’라 불리는 카이주의 근원지를 파괴하기로 하고 최후의 전투를 준비한다. 예거 군단을 지휘하는 펜테코스트(이드리스 엘바)는 5년 만에 롤리를 불러들인다. ‘사이즈에 전율하라’는 홍보 문구처럼 ‘퍼시픽 림’은 무엇보다 크기가 중요한 영화다. ‘헬보이’와 ‘판의 미로’ 등을 만든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은 프란시스코 고야의 ‘거인’이 영화의 유일한 영감이 됐다고 밝힌 바 있다. 예거는 25층 빌딩에 해당하는 80m의 키에 2000t에 이르는 몸집을 자랑한다. ‘트랜스포머’의 ‘옵티머스 프라임’이 8.5m에 불과한 데 비하면 9배 이상 크다. 예거와 카이주가 주먹을 날릴 때마다 대형 건물들이 종잇장처럼 부서진다. 예거는 수백t짜리 유조선을 몽둥이처럼 휘두른다. 화면을 압도하는 전투 장면의 육중한 타격감도 크기에서 비롯된다. ‘드리프트’라는 독특한 설정이 등장하는 것 역시 크기 때문이다. 거대한 예거를 조종하기 위해서는 조종사 두 명이 필요한데, 이들은 드리프트라는 신경 연결 프로그램을 통해 로봇에 접속한다. 일본 만화 ‘에반게리온’을 연상시키는 이러한 설정은 로봇 팬들의 판타지를 충분히 만족시킨다. 롤리가 형을 대신할 새로운 파트너로 일본인 여성 마코(기쿠치 린코)를 맞는 과정이 초반과 후반 전투 사이를 채운다. 영화는 무식할 정도로 로봇과 괴수의 육박전을 밀어붙인다. 예거와 카이주는 미사일이나 칼 같은 무기를 쓰기보다는 대부분 주먹과 주먹으로 부딪친다. 감독은 미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내가 원하는 것은 오로지 하나, 전투의 강렬함뿐”이라고 밝혔다. 분위기도 전반적으로 어둡다. “‘트랜스포머’의 아류가 쏟아지고 있다”는 마이클 베이 감독의 말에 감독은 “예쁘고 반짝거리는 자동차 광고 같은 영화에는 관심이 없다”고 되받아쳤다. 2000억원이 넘는 제작비를 투입한 만큼 시각 효과는 매우 뛰어나다. “배우와 관객에게 최대한 사실감을 주고 싶었다”는 감독은 예거와 조종석 세트를 실제로 제작해 디지털과 아날로그를 적절히 조합했다. 아이맥스 화면의 장대하고 시원한 매력도 살아 있다. 반면 감독은 강하게 반대했지만 제작사가 밀어붙여 후반 작업에서 완성한 3D는 평이하다. 아이맥스 전용관이나 큰 스크린을 찾는 것은 좋지만 굳이 비싼 돈 내고 3D를 고집할 필요는 없다. 11일 기준 영화 평점 사이트 로튼토마토의 지수는 ‘월드워 Z’(67%), ‘맨 오브 스틸’(57%)보다 높은 75%다. 131분. 12세 관람가. 배경헌 기자 baenim@seoul.co.kr
  • 日 파워재킷 소식에 中 군사로봇 ‘선행자’ 화제

    日 파워재킷 소식에 中 군사로봇 ‘선행자’ 화제

    SF(공상과학)영화에서나 등장하던 ‘파워재킷’(입는 로봇)이 일본에서 시판돼 화제가 되자 10여 년 전 중국에서 개발한 군사 로봇 ‘선행자’(先行者)가 새삼 주목받고 있다. 12일 일본의 인터넷매체 ‘로켓뉴스 24’는 과거 중국 매체 둥팡왕(東方網)에 실린 보도를 인용, 2000년 중국 후난성 창샤시에 있는 중국 국방과학기술대학이 개발한 군사용 2족 보행 로봇 ‘선행자’를 소개했다. 이 매체는 “일본 기업 ‘사가와 전자 주식회사’가 파워재킷 MK3의 판매를 시작해 전 세계에서 화제가 되고 있지만 중국에서는 10년 전 군사 로봇 ‘선행자’를 개발해 이러한 기밀 정보를 알고 있던 일부 일본인들을 떨게 만들고 있다”고 전했다. 이어 이 매체는 “중국 최첨단 기술을 구사해 개발한 선행자의 주요 장비는 기체 중심부에 장착된 캐논포처럼 보이는 무기”라고 설명했다. 일명 ‘중국 캐논’으로 불리는 이 무기는 파괴력이 일본 자위대의 최신예 10식 전차도 쉽게 파괴할 수 있을 정도로 전해졌다. 또 선행자는 원격 조작이 가능하며 기본적인 대화 기능도 탑재했다고 한다. 이에 대해 이 매체는 “미군이 사용하는 드론(무인 항공기)조차 대화 기능은 없기 때문에 터미네이터 프로토타입처럼 무서운 로봇일 지도 모른다”고 설명했다. 한편 선행자는 이러한 고사향을 갖췄음에도 중량은 20kg, 전장은 1.4m로 알려졌다. 사진=선행자(위), 파워재킷 MK3 윤태희 기자 th20022@seoul.co.kr
  • ‘10대 오원춘’ 용인 살인사건 살해범이 봤다는 ‘호스텔’ 어떤 내용이길래

    ‘10대 오원춘’ 용인 살인사건 살해범이 봤다는 ‘호스텔’ 어떤 내용이길래

    용인 살인사건의 엽기 살해범인 심모(19)군이 예전부터 잔인한 영화를 많이 봤다면서 언급한 영화 ‘호스텔’은 어떤 내용이었을까. 2007년 미국에서 개봉했던 영화 ‘호스텔’은 유럽의 한 마을에서 배낭여행족들을 납치해 잔혹하게 살해하는 내용을 담은 영화다. 영화는 유럽으로 배낭여행을 떠난 미국인 배낭족들이 여행도중 만난 남자의 소개로 슬로바키아에 가게 되면서 시작된다. 암스테르담에 머물던 주인공들은 알렉스라는 남자를 만났고 그는 “슬로바키아에 가면 미녀와 멋진 하룻밤을 보낼 수 있다”며 어느 호스텔을 알려준다. 주인공들은 그의 말대로 슬로바키아의 브라티슬라바로 향했고, 기대만큼 멋진 밤을 보냈다. 그러나 다음날부터 일행 중 한명이 사라지고 같은 호스텔에 묵던 일본인 배낭여행객까지 행방불명이 되는 등 종적을 감춘다. 일행들을 찾으러 나선 주인공도 결국 끔찍한 고문실에 갖히게 된다. 네티즌들은 잔혹한 고문과 살해 장면이 담긴 이 영화를 영화 ‘쏘우’와 비교하기도 했다. 심군은 취재진이 ‘호스텔’이란 영화를 봤냐고 묻자 “봤다”면서 어떤 느낌을 받았냐고 하자 “그냥 이런 영화도 있구나 했다”며 덤덤하게 말해 더욱 놀라움을 주고 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정전협정 60년] 현재진행형 비극 (하) 참전 군인들 인터뷰

    [정전협정 60년] 현재진행형 비극 (하) 참전 군인들 인터뷰

    ■윌리엄 웨버 ‘한국전 미군참전용사 기념재단’ 회장 “참전 증인들 사라져가 안타까워” “세월이 흐름에 따라 생존한 한국전쟁 참전용사들이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는 사실이 안타깝습니다. 한국전쟁에 대해 가장 직접적인 지식을 갖고 있는 우리가 모두 사라져 버리면 한국전쟁이 미국인의 의식에서 완전히 실종될 것만 같아 걱정입니다.” 인생 거의 전부가 ‘한국전쟁의 역사’인 노병(老兵)은 자신의 사후(死後)에 한국전쟁의 역사가 겪게 될 운명을 벌써부터 걱정하고 있었다. 한국전 정전 60주년을 맞아 서울신문이 만난 윌리엄 웨버(87·예비역 대령) ‘한국전 미군 참전용사 기념재단’ 회장은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한국전 참전용사다. 해마다 6월 25일이 다가오면 그는 언론들의 1순위 인터뷰 대상이 된다. 한국전에 참전했다가 한쪽 팔과 다리를 잃은 그의 외모 때문만이 아니다. 그 누구보다 한국전쟁을 기억하고 한국을 사랑하는 일에 대한 열성이 그를 특별하게 하고 있다. 그는 워싱턴의 한국전 참전기념비 옆에 서 있는 19명의 미군 병사 조각상 가운데 하나의 실제 모델이기도 하다. 지난 5월에는 미국을 방문한 박근혜 대통령을 직접 만나기도 했다. 웨버 회장은 1943년 17살의 나이에 직업 군인으로 미 육군에 입대해 2차대전에 참전했다. 이어 1950년 8월 육군 187 공수 낙하산부대 소속 대위로 인천 상륙작전과 함께 한국 땅을 처음 밟았다. 서울 수복 후 그는 평양 등 북한 내 요충지 곳곳에서 벌어진 전투에 참여해 승전보를 울렸다. 하지만 중공군의 개입으로 중부전선까지 밀린 그는 1951년 1월 격전지 강원도 원주에서 북한군의 수류탄에 오른쪽 팔꿈치 아래와 오른쪽 무릎 아래를 잃고 말았다. 이 부상으로 그는 전선과 이별했다. 지난달 24일(현지시간) 워싱턴에서 열린 북핵 문제 관련 세미나에 의족에 의지한 몸을 이끌고 나타난 그에게 ‘20대 젊은 나이에 소중한 팔다리를 잃은 것을 유감스럽게 생각하지 않느냐’고 물었다. 그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유감스럽지 않다. 한국전에서 정규군으로 복무한 것은 내게 무한한 영광”이라며 마치 젊은 현역 군인처럼 우렁차게 답했다. 정전 60주년을 맞는 소회를 물었더니 그는 이렇게 답했다. “지난 60년간 또 다른 전쟁이 없었다는 사실에 감사한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참전용사들이 세월이 흘러감에 따라 죽어 가고 있다는 것이 슬프다. 앞으로 15년 뒤에는 정전 75주년 기념식이 열린 텐데 그때는 극소수의 참전용사만 살아 있을 것이라는 얘기를 우리 참전용사들끼리 하곤 한다. 왜냐면 지금 가장 어린 참전용사가 80살이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그는 “한국전쟁은 ‘알려지지 않은 전쟁’에서 ‘잊혀진 전쟁’이 돼 가고 있는데 앞으로 완전히 미국 역사에서 실종될까 걱정된다”고 덧붙였다. 그는 “2차대전에 참전해 일본군과 싸울 때만 해도 한국과 중국, 일본 사람은 모두 똑같은 줄 알았지만 1950년 한국 땅에 처음 왔을 때 한국인은 일본인과 완전히 다른 문화를 가진 다른 사람들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면서 “그런 한국인들을 위해 싸운 것은 더없이 가치 있는 일이자 영광, 특권이었다”고 힘주어 말했다. ‘한국 정부가 참전용사들에게 충분히 보답하고 있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그는 “그건 말할 필요도 없다. 진심을 다해 끊임없이 미국에 감사를 표하는 나라는 세계에서 한국밖에 없다”고 했다. ‘다시 한국전이 일어난다면 참전하겠느냐’는 질문에 그는 단 1초의 머뭇거림도 없이 “당연히 참전할 것이다. 그건 물어볼 필요 없다. 내가 할 수 있는 역할이 있다면 다 할 것이다. 바로 1950년에 나는 그렇게 했다”고 답했다. 웨버 회장에게 한국전은 박제된 역사가 아니다. 90세를 바라보는 고령임에도 그는 미국에서 ‘한국전 알리기’의 선봉장 역할을 하고 있다. 현재는 워싱턴의 링컨기념관 앞에 있는 한국전 기념비 옆에 미군과 카투사 전사자들의 이름을 모두 새긴 ‘한국전 추모벽’ 건립을 위해 백방으로 뛰는 중이다. 2002년 참전 이후 51년 만에 한국을 방문한 이후 올해 세 번째이자 마지막이 될지 모르는 한국행을 계획하고 있는 웨버 회장은 이렇게 말했다. “이제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올해가 가기 전에 마지막으로 원주를 꼭 한 번 가보고 싶습니다.” 글 사진 워싱턴 김상연 특파원 carlos@seoul.co.kr ■ 중국인민지원군 출신 자빙수 전 中인민공안대 교수 “美의 침략 언론보도 믿고 참전” “한국전은 중국에서 ‘항미원조’(抗美援朝·미국에 대항해 조선을 돕다)로 표현한다. 이 말과 같이 한국전은 중국이 미국의 침략에 맞서 나라를 지키기 위해 북한을 도와 목숨 바쳐 싸운 정의로운 전쟁이라는 믿음에는 변함이 없다. 그러나 그로 인해 남북이 분단됐는데 한국전쟁 정전일인 7월 27일이면 항미원조 승리 운운하며 자축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한국전쟁에 참전했던 중국 인민지원군 출신의 자빙수(査秉樞·81) 전 중국인민공안대 교수는 매년 7월 27일을 ‘한반도정전기념일’로 고쳐 불러야 한다며 이같이 말했다. 지난 5일 베이징 무시디(木?地) 자택에서 만난 그는 “세월이 지나면서 언론 등을 통해 한국전쟁은 북침이 아닌 남침이란 사실을 알게 됐다”면서 “하지만 중국 인민지원군은 미군이 턱밑까지 치고 올라온 탓에 나라를 구하기 위해 전쟁에 참여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라며 전쟁의 정당성을 주장했다. 자 전 교수는 고등학교를 졸업하던 1949년 신중국 건국과 함께 자원 입대했다. 타이완을 수복해 통일을 이루려는 국가정책에 따라 인민해방군 25군 75사 소속으로 푸젠(福建)성 최전방에 배치됐다. 그러나 이듬해인 1950년 6월 한국전쟁이 발발했다. 이후 미군이 단둥(丹東) 변경을 폭격했다는 등 미군의 침략에 초점이 맞춰진 언론 보도로 미국이 타이완 국민당 정부를 도와 중국을 칠 것이란 위기감이 고조됐다. 부대 전환 배치를 신청해 한국전에 참여한 데는 이 같은 국내 분위기가 작용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전투로는 1952년 7월 13일부터 14일 동안 강원도 상감령 동북쪽 남대천에서 벌어진 ‘금성(城) 반격전’을 꼽았다. 중국 입장에서는 원래 북의 땅에 침입한 미군을 물리쳤다는 의미에서 이 전투를 반격전이라고 부른다. 그는 “이 전투만 버텨 내면 미국과 정전협정을 체결해 전쟁이 끝날 것이라는 말을 듣고 우리는 죽을 힘을 다해 싸웠다”고 회고했다. 미군을 상대로 중국 인민지원군 25만여명이 참가한 이 전투에서 그는 오른쪽 다리와 허리를 다쳤다. 그는 정전 이후에도 북한 재건 사업에 투입되며 1953년 10월부터 황해남도로 배치돼 1년간 고 유옥례씨 집에서 지냈다. 당시 14세이던 유씨의 딸 김영희로부터 조선인민군진군가, 조선국가, 아리랑, 봄노래, 샘물터의 노래, 푸른 하늘의 노래 등 27개의 북한 노래를 배웠다. 한국 노랫말을 중국어로 표기해 적어 둔 노래 연습장과 유씨 가족의 사진을 보며 지금도 그 시절을 회상한다. 영희씨와 주고받은 100여통의 편지도 간직하고 있다. 서로 말이 통하지 않은 탓에 지인들의 도움을 받아 두 나라 언어로 적어 가며 수십년간 소통의 끈을 이어 갔다. ‘세상에서 가장 존경하는 오라버니’라는 문구 등 편지 내용 곳곳에 깊은 우의가 배어 있다. 문화대혁명 등의 시기를 제외하고 영희씨가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줄곧 연락을 주고받았다. 의료품, 식료품, 의류 등을 북에 보내 주기도 했다. 그는 “중국은 참전하지 않을 수 없었지만 만약 참전하지 않았더라면 남북은 분단되지 않았을 것”이라면서 “외세의 개입 없이 남북이 자체적으로 통일하도록 돕는 것이 중국이 (한국에) 진 빚을 갚는 일”이라고 말했다. 글 사진 베이징 주현진 특파원 jhj@seoul.co.kr ■‘재일학도의용군 동지회’ 부회장 김완기씨 “조국의 전쟁 소식에 태극기 혈서 쓰고 참전” 1950년 6월 25일. 22살의 청년은 아침을 먹으며 라디오를 듣다 자신의 귀를 의심하는 소식을 접한다. 현해탄 건너 조국에 전쟁이 발발했다는 것이다. “어쩌다 같은 민족끼리 총칼을 들이대게 됐나”라는 참담한 심정으로 잠을 이루지 못하던 청년은 개전 3일 만에 인민군이 서울을 점령했다는 소식을 듣고 참전을 결심한다. 그후 63년이 속절없이 흘렀고, 청년의 얼굴엔 주름살이 내려 앉았다. 재일학도의용군으로 한국전쟁에 참전한 김완기(85)씨를 지난 3일 만났다. 충남 공주에서 태어난 김씨는 12살 때인 1940년 공부를 하기 위해 부모님과 함께 큰아버지가 있는 구마모토현으로 갔다. 대학에 진학해 엘리트가 되라는 부모님의 바람과 달리 광복 이후 진학을 포기하고 민단 소속으로 조직 활동에 앞장섰다. 전쟁이 터지자 김씨를 포함한 642명의 재일학도의용군은 태극기에 혈서로 참전 의사를 밝히고 조국으로 향했다. 미군 부대에 배치돼 1950년 9월 15일 인천상륙작전을 시작으로 김씨는 전쟁의 참상을 온몸으로 경험했다. “고막이 터져 육군병원에 입원한 적이 있었다. 일본에서 함께 배를 타고 참전한 친구들을 그곳에서 만났는데 동상 때문에 손발이 잘린 전우들이 수두룩했다”고 김씨는 회고했다. 미군의 순환배치 방침에 따라 1·4 후퇴 즈음인 1951년 1월 일본으로 복귀한 김씨는 “이대로 그만둘 수는 없다”며 다시 입대를 자원했다. 100여명이 지원해 58명이 국군에 재입대하게 됐고, 김씨는 1952년 6월까지 전선에 머물렀다. 이후 김씨는 일본으로 돌아가려고 했지만 일본 정부가 “허락 없이 참전했고 일본 거주도 불확실하다”며 입국을 막았다. 결국 부산 소림사에서 재일학도의용대(현 재일학도의용군 동지회의 전신)를 만든 뒤 정전 후인 1953년에는 서울 종로구 인사동 탑골공원 뒤편에 사무실을 꾸렸다. 그곳을 본적으로 등록하고 1961년까지는 수용대기소에서 생활했다. 국내 안착도 일본 귀환도 아닌 애매한 생활의 연속이었다. 그 사이 일본에 있던 김씨의 가족은 전쟁통에 모두 유명을 달리했고, 공주에 남아 있는 가족들도 정전 이후에야 겨우 연락이 닿았다. 현재 동지회 부회장으로 일하고 있는 김씨는 “전쟁을 경험하지 못한 국민들이 학도의용군의 존재를 모르는 게 가장 안타깝다”고 말했다. 정부는 종전 후 10년 뒤인 1963년에야 일본에 안치돼 있던 전사자 53명의 유해를 국립서울현충원에 안장했고, 1968년 재일학도의용군을 국가유공자로 인정했다. 글 사진 김민희 기자 haru@seoul.co.kr
  • ‘처녀성 경매’ 미녀 여대생 “감독에게 당했다”

    ‘처녀성 경매’ 미녀 여대생 “감독에게 당했다”

    지난해 자신의 ‘처녀성’을 온라인 경매에 부쳐 논란을 일으킨 브라질 출신 여대생이 경매를 주관한 다큐멘터리 감독에게 속았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최근 카타리나 미글리오리니(21)는 미국 허밍턴포스트와의 인터뷰에서 “감독 저스틴 시실리에게 이용당했으며 돈 한푼 받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지난해 9월 미글리오리니는 한 온라인 경매사이트에 자신의 ‘처녀성’을 경매에 부쳐 논란을 일으켰다. 실제로 이 경매에 수많은 남성들이 참여해 나츠라는 이름의 일본인이 78만 달러(약 8억 8000만원)에 낙찰받은 바 있다. 이에대해 미글리오리니는 “애초 계약조건은 하룻밤을 소재로 한 다큐멘터리 판매 대금의 20%와 경매비 전액을 받기로 했다” 면서 “감독은 여행 경비는 물론 약속한 돈을 주지 않았다”고 밝혔다. 이어 “나츠 라는 이름의 일본인은 존재하지 않는 가공의 인물인 것 같다” 면서 “난 이 사건의 피해자이며 감독이 나 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을 상대로 사기쳤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나 이에대해 시실리 감독은 오히려 “미글리오리니가 계약 조건을 위반했다”며 주장 모두를 일축했다.       나우뉴스부 nownews@seoul.co.kr 
  • ‘말뚝테러’ 일본인 “1000만원 배상해야”

    ‘말뚝테러’ 일본인 “1000만원 배상해야”

    위안부 소녀상과 윤봉길 의사 순국비 등에 ‘말뚝테러’를 벌였던 일본인 스즈키 노부유키(47)가 윤 의사 유족에게 손해배상을 해야 한다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서울중앙지법 민사26단독 이재은 판사는 10일 윤 의사의 조카인 윤주씨가 스즈키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 “1000만원을 배상하라”고 원고 승소 판결했다. 이 판사는 “스즈키의 불법행위로 인해 윤 의사 유족의 정신적 피해가 청구금액인 1000만원을 초과하는 것으로 인정된다”고 설명했다. 재판은 당초 지난달 5일과 19일 두 차례 변론기일이 잡혔고, 법원은 스즈키에게 소장과 출석통지서 등을 보냈다. 그러나 스즈키는 출석 대신 재판부에 나무 말뚝을 보냈다. 이 판사는 스즈키가 ‘말뚝테러’를 자백한 것으로 판단, 이날 판결을 선고했다. 하지만 실제 손해배상 처리가 이뤄지기까지는 어려움이 많다. 한국 법원의 판결이기 때문에 스즈키의 국내 재산에 대해서만 강제력이 있는 이유에서다. 만약 국내에 스즈키의 재산이 없는 것으로 확인되면 일본 법원에 다시 소송을 내 집행판결을 받아야 한다. 스즈키는 앞서 지난해 9월 일본 이시카와현 가나자와시에 있는 윤 의사의 순국기념비 옆에 ‘다케시마(독도)’는 일본의 고유 영토다’라고 적힌 나무 말뚝을 박았다. 이같은 사진과 글을 자신의 블로그에 올렸고 윤씨는 이 블로그를 본 뒤 고인에 대한 명예훼손을 당했다며 소송을 제기했다. 그는 또 지난해 6월에는 서울 중학동 일본대사관 맞은 편에 있는 위안부 소녀상 옆에 같은 말뚝을 세워놓기도 했다. 윤봉길 의사와 위안부 할머니들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기소돼 형사재판도 앞두고 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정전협정 60년] 국군포로·납북자 현황

    국군 포로와 납북자 가족들은 지난 60년 동안 저마다 가슴속에 커다란 ‘멍에’를 안고 평생을 견뎌 왔다. 사랑하는 가족을 지척에 두고도 만나지 못하는 현실은 정전 체제의 한반도가 풀어야 할 커다란 숙제 가운데 하나다. 정부는 1990년대 이후 귀환한 국군 포로와 탈북자들의 증언에 근거해 현재 북한에 있는 국군 포로를 500여명으로 추산하고 있다. 앞서 국가정보원은 2006년 6월 공개한 자료에서 탈북자 신문 등을 통해 국군 포로 총 1734명의 신원이 확인됐으며 이 중 생존자는 548명, 사망자는 885명, 행방불명자는 301명이라고 밝힌 바 있다. 이 가운데 북한을 탈출해 한국으로 돌아온 국군 포로는 1994년 조창호 소위를 비롯해 80명에 불과하다. 북한은 정전협정에 따른 포로 교환으로 국군 포로 문제가 일단락됐으며 강제 억류 중인 국군 포로는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명칭도 ‘국군 포로 출신’이란 표현을 사용한다. 하지만 포로 교환 당시인 1953년 유엔군사령부가 집계한 국군 실종자 8만 2318명 가운데 공산군이 최종 송환한 국군 포로는 8343명뿐이다. 북한이 2000년 이후 이산가족 상봉자 명단 교환 과정에서 공식적으로 생사를 확인해 준 국군 포로는 19명이며 이 중 17명이 남측 가족과 상봉했다. 국군 포로와 납북자 송환 운동을 벌여 온 사단법인 ‘물망초’(이사장 박선영)는 지난 4월 북·중 국경 인근의 북한 탄광 지역에 국군 포로 113명이 생존해 있다며 이들의 명단을 공개하기도 했다. 정부가 추정하는 ‘전후 미귀환 납북자’ 숫자도 517명에 달한다. 대부분 선원들이다. 귀환한 전후 납북자 3318명 중 3310명은 납북 후 1년 이내에 송환됐지만 8명은 30년 이상 북한에 억류돼 있다 2000년 이후 탈북에 성공해 귀환한 것으로 전해졌다. 6·25전쟁 당시 납북된 ‘전시 납북자’는 공식 집계된 인원만 1991명이다. 북한은 송환은 커녕 납북 사실을 시인도 하지 않고 있다. 일본과의 관계를 개선하기 위해 일본인 납북자 및 그 가족까지 돌려보내고 있는 것과 대조적이다. 이현정 기자 hjlee@seoul.co.kr
  • [MLB] ‘올스타 탈락’ 추신수, 보란 듯 멀티히트

    추신수(31·신시내티)가 올스타에서 탈락한 아픔을 역전 결승타로 풀었다. 추신수는 7일 그레이트 아메리칸 볼파크에서 열린 ‘친정’ 시애틀과의 미프로야구 홈 경기에서 1번 타자, 중견수로 나서 4타수 2안타 1타점 1볼넷으로 활약했다. 3-3으로 맞선 4회 중전 적시타로 결승 타점까지 올렸다. 추신수의 멀티 히트는 2경기 만이며 시즌 28번째. 4경기 연속 안타를 이어간 추신수의 타율은 .270에서 .273으로 좋아졌다. 세 차례나 살아나가면서 출루율도 .417에서 .419로 높아졌다. 추신수는 선발 제러미 본더맨을 상대로 1회 2루 뜬공, 3회 투수 땅볼로 물러났다. 하지만 1-3으로 뒤진 4회 2사 1·2루에서 맷 레이토스의 2타점 2루타로 동점을 이루자 중전 적시타로 레이토스를 홈으로 불러들여 역전을 일궜다. 6-4로 쫓긴 6회에는 바뀐 투수 카터 캡스의 발에 맞는 강한 타구로 내야 안타를 만든 뒤 득점에 성공했고 8회에도 볼넷으로 나가 다시 득점했다. 신시내티는 13-4로 이겼다. 한편 추신수와 함께 류현진(26·LA 다저스)은 메이저리그 사무국이 이날 발표한 올스타전 출전 선수 명단에 들지 못했다. 추신수가 경합한 내셔널리그 외야수 부문에서는 카를로스 벨트란(세인트루이스), 카를로스 곤살레스(콜로라도), 브라이스 하퍼(워싱턴)가 영예를 안았다. 리그 투수 부문에는 다저스 에이스 클레이튼 커쇼가 선발됐지만 류현진의 자리는 없었다. 다저스의 쿠바 괴물’ 야시엘 푸이그도 탈락했다. 하지만 팬들이 한 명씩 더 뽑는 ‘최후의 2인’ 후보에 들어 불씨를 남겼다. ‘코리안 듀오’는 빠졌지만 일본인 투수 다르빗슈 유(텍사스)와 이와쿠마 히사시(시애틀)는 아메리칸리그 올스타로 뽑혔다. 김민수 선임기자 kimms@seoul.co.kr
  • [아시아나機 美서 사고] 中 비상체제 가동… 시진핑, 치료·안정 만전 지시

    미국 샌프란시스코 공항에서 착륙 사고를 낸 아시아나항공 OZ214편의 탑승객 대다수가 중국인인 것으로 확인되면서 중국 당국과 언론이 비상한 관심을 보이고 있다. 중국 당국은 즉각 비상 체제를 가동하고 총력 대응에 나섰다. 중국 외교부는 7일 오전 성명을 내고 아시아나 항공기 추락 사고를 당 중앙 및 국무원 지도자들이 매우 중시하고 있다고 밝힌 뒤 외교부가 긴급 비상 체제를 가동했다고 전했다. 외교부의 친강(秦剛) 대변인은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이 인명 피해가 발생한 데 깊은 관심을 표시했으며 외교부와 중국 대사관, 샌프란시스코 주재 중국 총영사관, 주한 중국대사관에 부상을 입은 중국 국민을 치료하고, 무사한 다른 중국 국민이 안정을 찾도록 만전을 기하라고 지시했다고 전했다. 시 주석은 또 한국 정부와 연락을 유지하면서 중국민의 사후대책 문제 등을 적절히 처리하라고 당부했다. 중국 언론들은 탑승객 가운데 안전이 확인된 승객들의 명단을 실시간으로 전하거나 사고기에 탔던 생존자들과의 인터뷰를 내보내는 등 관련 소식을 집중 보도했다. 사고기에 단체 탑승했던 저장(浙江)성 장산(江山)중학교 학생들은 연락이 끊긴 2명의 이름을 웨이보(중국판 트위터)에 공개해 실종자 찾기에 주력하는 모습도 보였다. 자국민 3명이 사고 항공기에 탑승한 인도의 현지 매체 ‘인디아 투데이’ ‘원인디아뉴스’ 등도 사고 소식을 집중 보도했다. 매체들은 비슈누 프라카시 주한 인도 대사의 말을 인용해 “1명은 쇄골 골절상을 입었지만 나머지 2명은 경상”이라고 보도했다. 일본 언론도 일제히 아시아나 항공기 착륙 사고를 주요 뉴스로 전했다. NHK 등은 이날 내내 관련 속보를 비중 있게 다뤘다. NHK는 샌프란시스코 일본 총영사관 관계자의 말을 빌려 탑승자 중 일본인은 남성 1명이고 가벼운 부상에 그쳐 생명에는 지장이 없다고 보도했다. 베이징 주현진 특파원 jhj@seoul.co.kr 김민희 기자 haru@seoul.co.kr
  • [아시아나機 美서 사고] 중국인 141명… 대부분 인천공항 경유 환승 승객

    [아시아나機 美서 사고] 중국인 141명… 대부분 인천공항 경유 환승 승객

    7일 사고가 난 아시아나항공 소속의 보잉 ‘B777-200ER’(OZ214편)에는 중국인 탑승객이 가장 많았다. 전체 탑승 인원 307명(승무원 포함) 가운데 절반에 육박하는 141명이 중국인 탑승객이었다.아시아나항공 관계자는 “중국인 탑승객 대부분은 환승 승객으로 파악되고 있다”면서 “중국에는 미국 직항 노선이 많지 않아 중국인 관광객 상당수가 미국 여행을 할 때 인천공항을 경유해 한국 국적 여객기로 갈아탄다”고 설명했다. 실제 중국인 승객 대부분은 중국 상하이에서 탑승해 인천공항을 통해 미국으로 향하는 단체 관광객이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 가운데 34명은 수학여행을 떠나는 고교생이었고 1명은 이들을 인솔하는 교사였다. 사고 항공기에는 승객 291명과 승무원 16명(한국인 12명, 태국인 4명) 등 모두 307명이 타고 있었으며 이 가운데 중국인을 빼고 한국인 77명, 미국인 61명, 인도인 3명, 일본인 1명 등으로 확인됐다. 아시아나항공 측은 “미국인의 경우 한국계 미국 시민권자가 다수 포함된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고 밝혔다. 명희진 기자 mhj46@seoul.co.kr
  • [아시아나 사고]中당국 긴급 비상체제 가동…웨이보 통해 실종자 찾기도

    미국 샌프란시스코공항에서 착륙 사고를 낸 아시아나항공 OZ214편의 탑승객 대다수가 중국인인 것으로 확인되면서 중국 당국과 언론이 비상한 관심을 보이고 있다. 사고 비행기는 지난 6일 중국 상하이공항을 출발해 인천공항을 경유한 터라 중국인 탑승객이 많았다.  OZ214편의 총탑승자 307명 중 중국인은 141명으로 가장 많았고 사망자 2명도 중국 여성이었다. 중국 당국은 즉각 비상 체제를 가동하고 총력 대응에 나섰다. 중국 외교부는 7일 오전 성명을 내고 아시아나 항공기 추락 사고를 당 중앙 및 국무원 지도자들이 매우 중시하고 있다고 밝힌 뒤 외교부가 긴급 비상 체제를 가동했다고 전했다. 특히 미국 정부를 상대로 중국인 사상자에 대한 신속한 응급 조치 실시를 촉구했으며 미 국무원 측도 적극 협조하겠다는 뜻을 전해 왔다고 밝혔다. 또 샌프란시스코 총영사관, 주미 및 주한 대사관이 중국인 피해자 상황 파악에 총력을 쏟고 있으며 샌프란시스코 총영사관이 비상 태스크포스팀을 가동해 피해 중국인들을 지원하고 있다고 밝혔다.  중국 언론들은 탑승객 가운데 안전이 확인된 승객들의 명단을 실시간으로 전하거나 사고기에 탔던 생존자들과의 인터뷰를 내보내는 등 관련 소식을 집중 보도했다. 사고기에 단체 탑승했던 저장(浙江)성 장산(江山)중학교 학생들은 연락이 끊긴 2명의 이름을 웨이보(중국판 트위터)에 공개해 실종자 찾기에 주력하는 모습도 보였다.  일본 언론도 일제히 아시아나 항공기 착륙 사고를 주요 뉴스로 보도하고 있다. NHK 등은 이날 내내 관련 속보를 비중 있게 다뤘다. NHK는 샌프란시스코 일본 총영사관 관계자의 말을 빌려 탑승자 중 일본인은 남성 1명이고 가벼운 부상에 그쳐 생명에는 지장이 없다고 보도했다. 베이징 주현진 특파원 jhj@seoul.co.kr 김민희 기자 haru@seoul.co.kr
  • 아시아나 사고기,중국인 탑승객 왜 많았나

    아시아나 사고기,중국인 탑승객 왜 많았나

    7일 사고가 난 아시아나항공 소속의 보잉 ‘B777-200ER’(OZ214편)에는 중국인 탑승객이 가장 많았다. 전체 탑승 인원 307명(승무원 포함) 가운데 절반에 육박하는 141명이 중국인 탑승객이었다.  아시아나항공 관계자는 “중국인 탑승객 대부분은 환승 승객으로 파악되고 있다”면서 “중국에는 미국 직항 노선이 많지 않아 중국인 관광객 상당수가 미국 여행을 할 때 인천공항을 경유해 한국 국적 여객기로 갈아탄다”고 설명했다.  실제 중국인 승객 대부분은 중국 상하이에서 탑승해 인천공항을 통해 미국으로 향하는 단체 관광객이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 가운데 34명은 수학여행을 떠나는 고교생이었고 1명은 이들을 인솔하는 교사였다.  사고 항공기에는 승객 291명과 승무원 16명(한국인 12명, 태국인 4명) 등 모두 307명이 타고 있었으며 이 가운데 중국인을 빼고 한국인 77명, 미국인 61명, 인도인 3명, 일본인 1명 등으로 확인됐다. 아시아나항공 측은 “미국인의 경우 한국계 미국 시민권자가 다수 포함된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고 밝혔다.  명희진 기자 mhj46@seoul.co.kr
  • [주말 인사이드] 민단 상공인들, 한인사회 주도권 다툼… 한인회는 신·구 집행부 알력

    [주말 인사이드] 민단 상공인들, 한인사회 주도권 다툼… 한인회는 신·구 집행부 알력

    일본 내 60만 한국인 사회가 흔들리고 있다. 한국인 단체 내 세력다툼이 치열하게 벌어지는 등 내홍을 겪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에는 두 개의 거대 한국인 단체가 있다. 1946년에 결성된 재일동포의 대표 조직인 재일본대한민국민단(재일민단·단장 오공태)과 2001년 5월 만들어진 ‘재일본 한국인연합회(한인회)’다. 민단은 1945년 해방 직후 좌우익의 대립이 본격화 된 이후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조총련)와 맞서며 일본에서 한국을 대표하는 정통 단체로 자리매김해왔다. 민단은 도쿄의 중앙본부 산하에 48개의 지방본부와 300여개의 지부를 두고 재일교포의 권익을 옹호하는 데 매진했다. 재일동포 32만명이 소속돼 있다. 여기에다 1988년 해외여행 자유화 이후 일본에 건너간 ‘뉴 커머’(New Comer)들도 다양한 업종에서 일하며 재일동포의 한 축을 이루고 있다. 일본 유학파와 한국기업의 일본주재원 출신들이 주류를 이룬다. 새 터전을 찾아온 만큼 무역·정보통신·경영투자 등 직업군도 다양하다. 16만명 정도를 뉴커머로 분류한다. 이들 중 한인회 소속 회원은 8000명 정도 인것으로 알려졌다. 민단내 분열은 200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민단내 재일한국상공회의소(이하 한상련) 선거에서 레저업 등을 운영하고 있는 기업가 최종태 후보와 파친코 회사인 ‘마루한’ 회장 한창우 고문계의 후보가 대립했다. 최 회장이 가까스로 당선된 뒤 한 고문을 해임했으며 한창우계가 장악했던 3개 지방한상(후쿠우카, 지바, 도치기현)을 한상련에서 축출했다. 그러자 한 고문계는 세계한국인상공인총연합회(세총)를 결성, 최 회장과 맞섰다. 민단 지도부엔 한 고문측인 세총계 인사들이 포진, 최 회장과 반목을 거듭했다. 급기야 최 회장은 한상련을 민단에서 따로 떼낼 수 있는 사단법인화를 주장하고 2011년 5월 총회에서 사단법인화 추진을 결의했다. 결국 최 회장은 같은 해 11월 경제산업성으로부터 일반사단법인 허가를 받고, 12월 한상련이 민단 중앙본부의 산하단체에서 이탈하는 독립을 선언했다. 최 회장측은 “한상련이 민단 산하단체로 남는 것은 일본 상공회의소법에 저촉된다”는 주장을 폈다. 이후 민단과 한상련 측은 주일 한국대사관의 중재로 협상을 벌였지만 결렬됐다. 그러자 신각수 당시 대사 등이 나서 한상련을 민단의 직할단체라는 조치를 내렸다. 이에 민단은 한상련 사무실을 접수하는 한편 문서를 압수하고 신임 회장에 홍채식 전 회장을 선출했다. 민단 측은 또 최 회장을 비롯해 박충홍 회장 등 측근 4명을 제명조치했다. 그러자 최 회장 측은 민단을 상대로 한상련 명칭사용 중지, 건물명도 청구, 제명무효 청구, 손해배상 등 7개 본안소송을 일본 법원에 제기하고, 일본 경시청에 형사고소하는 등 법정다툼을 벌이고 있다. 결국 한상련은 최 회장 측의 ‘구 한상련’과 민단 산하단체인 ‘신 한상련’으로 갈려 도저히 접점이 없을 듯한 대립을 지속 중이다. 조직이 양분된 상태여서 서로 한상련 명칭을 쓰고 있어 양측 간 감정의 골이 깊어지는 상황이다. 한상련 지방조직도 분열됐다. 22개 지방 조직 중 17개는 민단과 함께하기로 결의했고, 효고 상공회는 최 회장을 지지했다. 교토 상공회는 해산을 결정했고, 기후, 와카야마, 군마현 상공회등은 휴회 중이다. 오공태 민단 중앙단장은 한상련 문제와 관련해 “재일 한국인 사회내에서 해결해야 할 문제를 일본 사법부와 경찰을 끌어들이는 행위는 선배들에 대한 배신행위”라며 최 회장 측을 비난하면서 “재판이 아닌 대화로써 서로 상의하며 문제를 해결하자”고 말했다. 민단 측에 의해 새로 선임된 홍채식 신 한상련 회장도 “구 한상련의 결정과 행위는 어디까지나 개인차원에서 이뤄지는 결정과 행위”라며 “구 한상련은 재일한상의 50년 역사를 계승하는 단체가 아니다”라고 못박았다. 반면 최종태씨 측은 “재일동포가 일본 사회로부터 신뢰를 받고 안정된 사업활동을 하기 위해서는 법과 도리를 지키는 게 제일 중요하다”며 “최근 도쿄고등재판소의 결정에 따라 한상련의 권리는 우리에게 있다”고 주장했다. 뉴 커머들이 조직한 한인회도 최근 분규에 휩싸여 있다. 한인회는 2001년 창립한 뒤 10년동안 별다른 문제 없이 원활하게 운영됐다. 하지만 2010년쯤부터 주일 한국대사관을 통해 우리 정부가 민단에 지급하는 지원금 중 일부인 400만엔을 매년 받기 시작하면서부터 회장을 차지하기 위한 선거전이 치열해졌다. 여기에다 지난해 3월 신주쿠 발전위원회 독립을 놓고 신구 집행부가 대립했다. 한인타운으로 불리는 신주쿠구 신오쿠보에는 한국인이 많이 살아 2008년 신주쿠 발전위원회를 만들었다. 이 위원회가 한인회 소속이다 보니 음식업협회, 농식품유통연합회, 신주쿠 민단, 한인무역협회 등이 모여 독립 방안을 논의했다. 5대 박재세 회장이 중심이 돼 신주쿠 발전위원회를 한인회에서 독립하는 방안을 추진했다. 하지만 3~4대 한인회 회장을 지낸 조옥제 고문이 반대하고 나서 백지화되자 회원들 간에 갈등이 불거졌다. 지난해 6대 백영선 회장이 이끄는 집행부는 구 집행부와의 다툼 끝에 회장직을 그만둬 조 고문이 비상대책위원장을 맡고 있는 상황이다. 이에 대해 한인회 한 관계자는 “한인회에 비대위가 구성돼 있다고 하지만 누가 비대위원인지도 모를 정도로 외면을 받고 있다.”며 대표성을 지적했다. 이에 대해 조 비대위원장은 “백 전임회장이 사임한 것은 건강상의 이유인 것으로 알고 있다”며 “백 회장이 비대위원장을 맡아 달라고 요청해 할 수 없이 맡았지만 후임 지도부를 선출한 뒤 바로 그만둘 계획”이라고 말했다. 비대위는 오는 8일과 9일 차기 회장 선거 공고를 내는 등 새 집행부 구성을 서둘러 마친다는 입장이다. 한인단체의 잇따른 내분으로 주일본 한국대사관은 노심초사하고 있다. 특히 이병기 신임대사가 지난달 부임한 상황이라 한인 사회의 내분을 봉합하기 위한 방안 마련에 고심 중이다. 5일 신오쿠보에서 한인 간담회를 연 데 이어 오는 18일에는 주일 지역 공관장 회의를 열어 재일 한인사회 통합을 위한 해법을 찾는 의견수렴에 나설 계획이다. 하지만 한인 단체 회원들 간 내부갈등이 워낙 뿌리가 깊어 좀처럼 해결책을 찾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일본에서 사업체를 운영중인 김모(38)씨는 “민단이 우리에게 별 도움이 안되는 것은 사실이고 그렇다고 한인회 역시 대안 세력으로 자리 잡기는 아직 한참 멀었다.”며 재일 한인 단체의 현주소를 지적했다. 그는 이어 “솔직히 신세대 뉴커머들은 일본에서 정착하며 하루하루 살아가기도 힘들어 한인 단체 내분에 신경 쓸 겨를조차 없다”면서도 “한인 사회 분규가 일본인들에게 널리 알려질까봐 걱정된다”고 말했다. 김민희 기자 haru@seoul.co.kr
  • [씨줄날줄] 이사지왕/안미현 논설위원

    1921년 9월 경주 노서리 주막집 주인 박문환은 주막을 늘리기 위해 뒤뜰을 팠다. 그런데 난데없이 유물이 나왔다. 경주경찰서의 일본인 순경 미야케 고조는 소문을 듣고 즉시 박문환의 집으로 달려갔다. 땅 파기는 중단됐고 27일부터 30일까지 유물 수습 작업이 이뤄졌다. 4일 만의 ‘뚝딱 발굴’로도 유명한 금관총이 세상과 만나는 순간이었다. 1927년 11월 10일 총독부박물관 경주분관에 도둑이 들었다. 금관만 남기고 허리띠, 귀걸이 등 순금 유물이 감쪽같이 사라졌다. 이구열이 쓴 ‘한국문화재비화’의 한 토막. “차마 금관까지는 손댈 수 없었는지 아니면 가져가기 거추장스러웠는지 금관만 무사했다. 천수백년 전에 만들어진 금세공품은 아무리 녹여도 금방 알아볼 수 있다느니, 무덤 속 물건을 갖고 있으면 변고가 생긴다느니 온갖 헛소문까지 퍼뜨렸지만 허사였다.” 심리전이 효력을 발휘한 것은 그로부터 6개월이 지나서였다. 1928년 5월 20일, 도둑은 경주경찰서장 관사 앞에 유물 보따리를 슬그머니 놓고 갔다. 그때 다시 찾은 허리띠가 지금의 국보 88호다. 지난 3일 그 금관총 출토유물(고리자루큰칼)에서 ‘이사지왕’(?斯智王)이라는 글자가 발견되었다. 정체는 아직 미스터리다. 내물왕 등 신라시대 여섯 마립간(왕)의 다른 이름이거나, 왕이 아닌 고위 귀족일지 모른다는 등 가설만 무성하다. 일본 규슈지방 출신 왕의 이름이 이사지라는 얘기도 있다. 만약 왕이라면 서기 503년 지증왕이 ‘왕’이라는 칭호를 처음 썼다는 종전 역사는 다시 쓰여야 한다. 금관총의 주인이 여자라는 학설도 위협받고 있다. 이사지왕이 금관총 여주인의 남편일 수도 있다. 고고학자는 물론 일반 국민들까지도 이사지왕이라는 네 글자를 앞에 두고 무한한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양상이다. 그런데 말이다. 이사지왕의 칼을 발굴하고도 거기 새겨진 글자를 찾아내는 데 무려 92년이 걸렸다. 그동안 국립중앙박물관 수장고에 방치돼 있다가 올해 초에야 ‘조선총독부 박물관 자료 공개사업’이 시작된 탓이다. 박물관 측은 해방 이후 우리가 발굴한 문화재를 복원하는 데만도 손이 달려 일제강점기 발굴 유물에는 미처 눈을 돌리지 못했다고 해명한다. 그렇더라도 역사 앞에 부끄러운 일이다. 이왕지사, 박근혜 정부가 ‘문화융성’을 기치로 내건 만큼 이제라도 국가 차원에서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인력과 예산 배정에 앞서 문화재 전문가들의 학자적 양심과 열정이 우선해야 함은 말할 것도 없다. 지금 이 순간에도 어디에선가 또다른 이사지왕이 우리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을지 모르니 말이다. 안미현 논설위원 hyun@seoul.co.kr
  • 해마다 혈세 10억… 간판만 외국인 전용 택시

    해마다 혈세 10억… 간판만 외국인 전용 택시

    외국인 전용 관광택시(인터내셔널 택시)가 서울시의 잘못된 수요 예측과 홍보 부족으로 시민 혈세를 낭비하는 천덕꾸러기로 전락했다. 외국인 고객이 없다 보니 주로 내국인을 태워 무늬만 외국인 전용택시가 된 것이다. 더구나 서울시는 이를 유지하기 위해 연간 10억~15억원을 예산으로 메워주고 있어 시민의 세금이 줄줄 새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서울시는 관광 활성화를 위해 2009년부터 외국인 전용 관광택시 사업을 위탁으로 진행하고 있다. 현재 서울에는 390여대의 외국인 전용택시가 등록돼 있으며 이 가운데 실제 운행되는 택시는 330여대 수준이다. 지난해 집계된 외국인 이용자 수는 하루 평균 280명으로, 최소 50여대의 택시가 외국인을 하루에 한 명도 태우지 못했다는 계산이 나온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택시업계도 외국인 전용 관광택시 사업을 꺼리고 있다. 지난해 말 A 택시업체는 서울시로부터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지만 계약을 포기했다. 당시 서울시는 택시 1대당 하루 평균 ‘2콜’을 유지할 것을 조건으로 제시했지만 지난 4년간 실적으로 볼 때 현실적으로 하루 평균 ‘1콜’도 채우기 힘들다는 게 A 업체의 판단이었다. 서울시의 조건을 충족하지 못하면 사업 지원비를 받을 수 없는 만큼 스스로 사업에서 손을 뗀 것이다. 서울시는 올해도 외국인 전용 관광택시 사업의 확대 운영비 명목으로 예산 10억원을 배정했다. 예산은 운전기사 지원비와 콜센터, 안내데스크의 운영비 등으로 쓴다. 외국어 시험과 면접을 통해 선발된 외국인 전용택시 기사도 외국인 승객이 없어 답답해 한다. 그럼에도 매년 외국인 전용택시 운전기사 모집에 지원자들이 몰리는 이유는 월급을 일반 택시기사의 2배 정도 받는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중국어와 일본어를 익힌 외국인 전용택시기사 박찬경(가명)씨는 4일 “높은 경쟁률을 뚫고 뽑혔지만 좀처럼 외국어 실력을 발휘할 기회가 없다”면서 “공항이 아니면 외국인을 태우는 게 쉽지 않고 외국인 콜이 없을 때에는 내국인들도 가리지 않고 태운다”고 털어놨다. 홍보가 부족하고 일반택시와 차별성이 없다는 점도 이용률 저조의 원인으로 꼽힌다. 중국인 유학생 윤유(24)는 “인천공항을 여러 번 이용해 봤지만 인터내셔널 택시가 있는 줄 몰랐다”고 말했다. 일본인 사토 유이(25)는 “있으면 좋을 것 같지만 실제로 이용해 본 적은 없다”면서 “지하철이나 일반택시도 관광하기에 괜찮다”고 했다. 이에 대해 서울시 관계자는 “외국인 이용이 저조하다는 지적이 있어 이를 개선하기 위해 공항 안내데스크를 24시간으로 연장하고 택시업체도 관광 사업에 특화된 새로운 사업자로 바꾸었다”면서 “외국인을 위한 안내 팸플릿을 만들어 배포하는 등 홍보에 힘쓰고 있다”고 밝혔다. 신융아 기자 yashi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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