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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中 관광객 57% “언어소통 불편”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의 주인공 천송이가 착용한 액세서리를 사고 싶었지만 중국어 안내 책자가 없어 애를 먹었다.”(중국인 관광객 A씨) “관광 가이드의 안내에 따라 들른 상점에서 건강식품 시식을 권한 뒤 상품 구입을 독촉해 쇼핑하는 내내 찜찜했다.”(일본인 관광객 B씨) 위 사례처럼 한국을 찾은 쇼핑 관광객 중 중국인은 의사소통의 어려움, 일본인은 상품 강매가 가장 큰 불만인 것으로 조사됐다. 대한상공회의소는 한국 관광을 마치고 출국하는 중국인과 일본인 각각 150명을 대상으로 쇼핑 실태를 조사한 결과 한국에서 쇼핑할 때 가장 불편한 점으로 중국인은 ‘언어소통 불편’(57.3%)을, 일본인은 ‘상품구매 강요’(29.3%)를 꼽았다고 7일 밝혔다. 중국인 관광객은 이어 ‘안내표지판 부족’(34.0%), ‘불편한 교통’(21.3%), ‘비싼 가격’(17.3%)이 불편하다고 답했다. 일본인 관광객은 ‘언어소통 불편’(22.7%), ‘안내표지판 부족’(21.3%), ‘종업원 불친절’(16.7%) 등이 문제라고 꼽았다. 두 나라 관광객 모두 명동을 가장 자주 찾는 쇼핑 장소로 꼽았지만 선호하는 쇼핑 장소는 각각 달랐다. 중국인은 동대문(72.0%)을, 일본인은 남대문(51.3%)을 가장 선호했다. 대한상의는 “중국인은 명동에서 의류와 화장품을 구매한 다음 한약재 시장이 밀집된 동대문을 찾는 반면 일본인은 명동에 들른 후 김과 건어물을 사러 남대문을 주로 찾는 경향이 있다”고 분석했다. 쇼핑 장소로 중국인은 시내면세점(76.7%)을, 일본인은 소규모 전문점(60.0%)을 가장 선호했다. 홍콩과 싱가포르처럼 국가적 쇼핑 축제가 생기면 한국을 재방문할 의향이 있는지 묻자 중국인 관광객의 90.7%, 일본인 관광객의 66.7%가 긍정적으로 답했다. 김진아 기자 jin@seoul.co.kr
  • 소녀상 철거 소송, 미국 일본계 강력 반대 속에 12개 현지 변호사 단체 지지

    소녀상 철거 소송, 미국 일본계 강력 반대 속에 12개 현지 변호사 단체 지지

    ‘소녀상 철거 소송’ 미국 캘리포니아주 일본계 변호사협회가 일본계 미국인이 낸 캘리포니아주 글렌데일의 일본군 위안부 소녀상 철거 소송에 대해 반대 의사를 밝혔다. 미국 캘리포니아주 일본변호사협회는 7일(현지시간) 현지 한인변호사협회와 함께 발표한 공동성명을 통해 “글렌데일 소녀상 소송은 일본군 위안부에 대한 역사적 사실을 왜국하고 위안부 피해을 외면했다”고 지적했다. 두 단체는 “소녀상 철거 소송의 원고는 위안부 동원의 강제성을 일본 정부가 인정한 고노 담화를 간과하고 있다”면서 “역사 왜곡을 통해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위안부의 희생을 최소화하려 한다”고 비판했다. 또 “철거 소송은 민족 간 분열을 야기하거나 열심히 만들고 키워온 혁신적인 다민족 공동체의 기반을 무너뜨린다”고 주장했다. 두 단체는 “어느 누구도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위안부 희생자들이 겪었던 엄청난 고통을 잊어서는 안된다”면서 “위안부 소녀상은 혐오감을 조장하거나 다른 이들에게 적개심을 표현하는 상징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공동성명이 나오자 멕시코계 미국인 변호사협회와 남가주 중국인변호사협회, 태국계 미국인 변호사협회, 아시아·태평양계 미국인 변호사협회, 로스앤젤레스카운티 변호사협회, 베벌리힐스변호사협회 등 12개 변호사 단체도 지지를 선언했다. 일본계 시민단체는 지난해 7월 글렌데일 시립공원에 일본군 위안부 희생자를 기리는 소녀상이 세워지자 소녀상이 미국 외교 업무를 관장하는 연방 정부의 권한을 침해했다는 등의 이유로 철거를 요구하는 소송을 글렌데일 시정부에 냈다. ‘소녀상 철거 소송’을 접한 네티즌들은 “소녀상 철거 소송, 개념있는 일본인이네” “소녀상 철거 소송, 동상을 철거하라니 손으로 하늘을 가리는 짓거리” “소녀상 철거 소송, 많은 변호인들이 지지해주길” 등의 갖가지 반응을 보였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개성상인의 ‘홍삼로드’ 개척기

    개성상인의 ‘홍삼로드’ 개척기

    향대기람/공성구 지음 /박동욱 옮김/태학사/188쪽/1만 2000원 1928년 4월 30일 개성삼업조합의 조합장인 개성의 거부 손봉상, 부조합장 공성학과 그의 사촌 공성구 등은 미쓰이사의 직원 아마노 유노스케와 홍삼 판로 시찰을 떠난다. 이들은 6월 10일까지 홍콩과 타이완의 주요 지역을 돌며 동아시아 곳곳에 퍼져 있는 미쓰이 지사를 방문하고 지역의 명승지를 관광한다. 공성구는 42일간의 행로를 일기 형식으로 기록해 ‘향대기람’(香臺紀覽)을 남겼다. 예부터 아시아 지역에서 고려인삼의 명성은 자자했다. 조선시대에 왕실에서 인삼에 관한 이권을 장악했던 이유다. 일제강점기에 조선총독부 전매국이 홍삼과 관련한 권한을 보유하다 1914년 이후 미쓰이물산에 독점 판매권을 줬다. 이 때문에 당시 개성상인들은 홍삼 판매를 위해 미쓰이와 긴밀한 협력 관계를 유지해야 했다. 개성상인들의 동아시아 시찰도 그렇게 이뤄졌다. 개성에서 시작된 여정은 부산과 시모노세키, 대만, 홍콩, 마카오, 상해까지 이른다. 그들은 곳곳에서 격랑의 근대 동아시아 역사와 마주한다. 5월 14일에는 타이베이에서 독립운동가 조명하가 일왕 히로히토의 장인인 육군 대장 구니노미야를 독검으로 찔렀다. 그 기간 중국 산둥성 지난에서는 일본군과 중국 국민당 혁명군이 무력 충돌해 중일전쟁을 촉발한 ‘지난 사건’이 벌어진다. 중국 각지에서 배일감정이 최고조에 달해 엔화를 거부하고 일본인을 공격하는 통에 육지에 오르지 못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상황을 대하는 그들의 태도는 무덤덤하다. 반면 곳곳에서 열린 미쓰이 지사 초대의 연회는 분위기까지 상세하게 기록하면서도 정치와 역사에 대해서는 담담하게 서술한다. 심지어 일본과 타이완의 신사에 꼬박꼬박 참배했다. 이들의 관심사는 신문물과 현대 문명에 집중됐다. 시모노세키에서 타이베이 항으로 가는 배에서는 선장에게 특별히 부탁해 배의 내부를 구석구석 시찰하기도 한다. 타이완에서 원시림의 거대한 목재를 운송하는 철도시설이나 운송 수단에 주목하는 등 조선에서 볼 수 없는 색다른 운송 및 교통수단, 도로, 기계에 큰 관심을 나타냈다. 주요 도시의 인구와 주요 산업을 점검하며 홍삼 판매량을 계산하기도 하는 철저한 상인의 모습을 보였다. 번역을 맡은 박동욱 한양대 기초융합교육원 교수는 “개성상인인 그들의 관심사는 정치나 역사보다 경제와 시장이었다”며 “책은 근대 한문학의 마지막 모습을 보여 준다는 점, 일제강점기에 홍콩과 타이완을 여행하면서 일기 형식으로 상세한 묘사를 남긴 기록을 거의 찾아볼 수 없다는 점에서 문헌사·역사적 사료로 높은 가치를 지닌다”고 박 교수는 평가했다. 책은 번역문과 원문을 함께 엮어 이해를 돕고 있다. 함혜리 선임기자 lotus@seoul.co.kr
  • “남성은 가혹한 조건서 예쁜 여성 선호하지 않아”

    “남성은 가혹한 조건서 예쁜 여성 선호하지 않아”

    가혹한 조건에 처한 남성은 예쁜 여성을 선호하지 않는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29일(현지시간) 미국 과학전문 라이브사이언스 등에 따르면 핀란드 과학자들이 28개국 젊은 남성들을 대상으로 선호하는 여성 얼굴을 조사한 결과, 남성들이 처한 조건에 따라 다른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팀은 온라인을 통해 모집한 이성애자 남성(18~24세) 1972명에게 여성스럽거나, 그렇지 않게 보이도록 비교 가공한 백인 여성의 얼굴 사진 20장을 보여주고 그들이 선호하는 사진을 고르도록 했다. 이후 이들은 조사대상자들이 사는 나라의 사회적·인구학적 등 다양한 특성을 비교했다. 그 결과, 세계의 남성들은 일반적으로 여성스러운 외모를 지닌 여성을 더 선호하는 것으로 확인됐지만 선호하는 정도는 다양한 것으로 분석됐다. 평균수명과 산모·유아 사망률 등 요인을 측정해 건강이 나쁜 환경 혹은 조건에 있는 남성들은 여성스러운 여성에 덜 관심을 보였다. 조사에서 예쁜 외모에 가장 관심이 없었던 남성은 네팔인이며 나이지리아인, 콜롬비아인이 그 뒤를 이었다. 반면, 가장 예쁜 여성을 선호한 남성은 일본인으로, 호주인이 뒤를 이었고 미국인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번 연구에 참여한 투르쿠대학 박사과정 연구원인 우르슐라 마친코프스카는 “가혹한 조건에서 남성은 자원(생활에 필요한 것들)을 보유할 수 있는 여성과 결혼해야 살아남을 수 있고 자녀를 가질 기회가 더 높을 수 있다”면서 “이들에게 여성스러운 여성은 사회적 지배에서 동떨어져 있다고 여겨져 이런 환경에서는 여성스러움이 발달하기 어려운 조건일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와 비슷한 맥락으로 지난해 3월 바이롤로지 레터스에 실린 한 연구에서도 남자다운 ‘마초 남성’은 저개발된 국가에서 더 선호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이런 남성의 강인한 유전자를 아이에게 물려줘 살아남을 수 있을 것으로 여겨졌기 때문. 이번 연구를 검토한 미국 미시간대학 심리학자 댄 크루거 박사는 “여성스러운 외모는 생식력이 발달한 것을 나타낸다”고 말했다. 이어 “건강한 환경에서 남성은 잠재의식적으로 많은 아이를 낳을 수 있는 여성스러운 여성을 선호하지만 그렇지 못한 환경의 남성에게는 살아가는 것이 더 중요해 절충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연구팀은 이전 연구에서 남성 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의 수치가 낮은 남성은 여성스러운 얼굴을 덜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났는 데 일반적으로 가혹한 환경에 사는 남성은 테스토스테론 수치가 낮다고 설명한다. 따라서 이런 호르몬 변화가 인간이 처한 환경과 외모 선호의 관계를 나타내는 메커니즘이 될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연구팀은 이번 연구를 온라인을 통해 모집한 남성을 대상으로 했기 때문에 이런 호르몬 수치는 분석하지 못했다면서도 그렇다고 이런 특성이 매력에 영향을 주는 유일한 요인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라고 밝혔다. 연구팀은 여성들을 대상으로 한 남성 얼굴 선호도에 관한 정보도 수집했으며 이를 통해 출산에 미치는 영향을 조사할 예정이다. 한편 이번 연구결과는 영국 왕립학회가 발행하는 학술지 ‘바이올로지 레터스’(Biology Letters) 29일 자로 게재됐다. 사진=우르슐라 마친코프스카 제공 윤태희 기자 th20022@seoul.co.kr
  • 틴틴월드캠프, 필리핀 영어의 신 캠프…여름방학 집중적 멘토링 ‘눈길’

    틴틴월드캠프, 필리핀 영어의 신 캠프…여름방학 집중적 멘토링 ‘눈길’

    초∙중등학생의 여름 방학이 다가오고 있다. 벌써부터 해외캠프 업체들은 여름방학 집중 영어몰입 해외캠프를 마련해 학부모들에게 알리고 있다. 그 중 초등학교 2학년부터 6학년까지 참가할 수 있는 ‘틴틴월드캠프-필리핀 영어의 신 캠프’는 중앙일보 공부의 신 프로젝트의 멘토들로부터 멘토링을 받을 수 있어 눈길을 끈다. 이 캠프는 8주(6/26~8/20), 5주(7/17~8/20) 프로그램으로 구성돼 있으며, 필리핀 따가이따이 캠퍼스에서 진행된다. 따가이따이는 세계적인 휴양지로 연평균 기온이 22-24℃ 정도로 필리핀의 다른 지역과 달리 여름에도 기온이 많이 올라가지 않고, 시원한 날씨를 보인다. 이에 학업을 진행하기에도 적절한 곳이라고 알려졌다. 틴틴월드캠프-필리핀은 보안과 안전을 우선으로 운영될 계획이다. 현지 기숙사는 일본인이 운영하는 경비업체가 맡고 있으며, 리조트에는 신원이 확인된 사람만 출입이 가능하다. 리조트는 기본 적으로 캠프 직원과 학생들만 이용하고 외부 사람은 출입이 일체 금지된다. 학생들이 기숙사에 머물 때는 학생 4명 당 1명의 사감 선생이 학생들과 함께 숙식을 하며 안전을 책임진다. 무엇보다 이 캠프에서는 캠프기간 내내 대학생 멘토들과 함께 지내면서 공부방법에 대한 노하우를 제공받을 수 있기 때문에 학습 동기를 탐색할 수 있는 캠프로 전해졌다. 이 때 멘토는 성적 및 진로 관련 상담까지 맡아 학생을 밀착 관리하고, 심층 개별 상담을 통해 개인별 문제점과 개선점을 짚어준다. 따라서 방학캠프 기간 동안만의 반짝 학습이 아닌 캠프 이후에도 학생의 자기주도학습 지속이 가능하다. 여기에 영어 학습 프로그램은 영어의 4가지 영역(Speaking, Writing, Listening, Reading)을 고루 강화 할 수 있도록 구성돼 있다. 영어만 사용하는 English Only Zone을 통해서 영어를 피부로 느끼며, 사용 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할 뿐만 아니라 저널, 독서 감상문, 일기 등의 첨삭지도를 통해 올바른 쓰기 습관을 체득할 수 있도록 운영된다. 캠프 기간에는 J Golf에서 제공하는 미국 PGA 골프 입문 프로그램인 S.N.A.G 프로그램을 통해 공부에 지친 아이들의 심신을 단련시키는 시간도 갖게 된다. 캠프 마지막 주에는 수료증이 수여되는 데일 카네기 리더십 프로그램이 진행돼 리더쉽과 글로벌 마인드도 고취시킬 계획이다. 틴틴월드캠프 관계자는 “틴틴월드캠프-필리핀은 주요 내신 과목 관리, 다양한 액티비티로 구성돼 영어 실력 향상과 학습 동기부여, 우등생이 되기 위한 올바른 공부 습관 형성을 동시에 얻을 수 있어 학부모들의 관심을 얻고 있다”고 설명했다. 한편 틴틴월드캠프는 학부모들에게 캠프에 대한 자세한 정보를 제공하기 위해 오는 30일(수), 다음달 8일(목), 10일(토) 오전 11시 반포1동 주민센터 2층(문의 02-2031-1552)에서 설명회를 개최한다. 또한 틴틴월드캠프에서는 등록 이벤트를 마련해 등록 시 혜택을 얻을 수 있도록 했다. 설명회 당일 등록 시 혹은 다음달 15일까지 등록 시 할인을 받게 된다. 기존 참가자, 동반등록, 지인 소개 시에도 할인이 적용된다. 미국 유학에 관심 있는 학부모들에겐 중고등 사립학교 및 미국대학 무료 컨설팅도 실시해준다. 이외 엄마와 함께하는 Kids English 가 필리핀에서 유치부와 초저학년 대상으로 진행된다. 신청자 전원에겐 화상영어 1개월 수강권 및 비자 수수료 할인 서비스도 제공한다. 자세한 사항은 홈페이지(www.teenteenworld.com)에서 확인할 수 있다. 나우뉴스부 nownews@seoul.co.kr
  • 조선과 일본의 근대화 성패 무엇이 갈랐나

    조선과 일본의 근대화 성패 무엇이 갈랐나

    고종과 메이지의 시대/신명호 지음/역사의 아침/544쪽/2만원 19세기 중반 역사적 전환기에 조선과 일본은 모두 혼란을 겪었다. 하지만 그 극복 과정과 결과는 확연히 달랐다. 조선의 고종은 근대화에 실패한 군주가 됐지만 일본의 메이지는 근대화를 성취한 군주로 떠올랐다. 저자는 이렇게 된 원인을 고종의 개인적 능력에 한정하지 않고 ‘전환기’라는 세계사적 흐름에서 조망했다. 고종이 즉위하던 19세기 중반 동북아시아는 중국 중심의 국제 질서가 붕괴되고 약육강식의 제국주의 논리가 투영된 새로운 질서로 재편되는 과정에 있었다. 1863년에 만 11세의 나이로 왕이 된 고종은 흥선대원군의 10년 섭정을 거쳐 1874년 봄 친정에 나섰다. 그러나 고종도 친정 초기에는 흥선대원군과 다를 것이 없었다. 청나라가 서양 열강의 통상 요구에 굴복한 이유를 ‘힘의 부족’이 아니라 ‘내부 배신’에서 찾은 것이다. 또 청의 이홍장(李鴻章)이 1879년 ‘영국, 독일, 프랑스, 미국과 수호 조약을 맺는다면 단지 일본만 견제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러시아인들이 엿보는 것까지도 아울러 막아낼 수 있다’는 내용의 밀서를 보낸 데 대해 고종은 ‘우리나라는 옛 법을 지켜 편안히 거처하며 나라 안이나 다스렸지 외교할 겨를이 없습니다’라고 답장을 보냈다. 이는 당장은 서양 각국과 통상을 맺을 수 없다는 것이었다. 고종은 뒤늦게나마 변화의 흐름을 인식하고 새 시대를 준비하려 부단히 노력했다. 그러나 그런 노력은 지도력의 한계와 청, 일본 등 주변국들의 끊임없는 간섭으로 빛을 보지 못했다. 생부인 흥선대원군은 하야한 뒤에도 권력에 집착해 고종과 권력 투쟁을 지속했고, 위정척사파라 불린 보수 유림과 중앙 관료들도 개화 정책에 반대했다. 메이지는 1867년 만 16세의 나이로 천황에 즉위했다. 같은 해 에도 막부의 쇼군이 메이지에게 정치권력을 헌상한 대정봉환(大政奉還), 이듬해에는 메이지 유신 등 역사적 사건들이 발생했다. 결과적으로 메이지는 전환기의 혼란을 이겨내고 성공했지만 그의 역할은 한정적이었다. 혼란을 극복한 주역은 사실상 사쓰마번(薩摩藩)과 조슈번(長州藩) 같은 웅번(雄藩)이었다. 메이지는 이들 웅번이 성취해 낸 성과에 편승했을 뿐이다. 이런 점에서 메이지는 운이 좋았다고 할 수 있다. 한·일 간에는 오늘날에도 역사 인식에 현격한 차이를 보인다. 안중근은 조국의 독립과 동양 평화를 위해 싸운 위인인가, 아니면 테러리스트인가. 한국인이라면 안중근 의사를 민족의 상처와 아픔을 대변해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한 위인으로 인식한다. 그러나 일본인들은 동양 평화의 파괴자로 본다. 우리의 주권을 강탈한 원수이자 동양 평화를 깨뜨린 흉악범으로 우리가 인식하는 이토 히로부미를 일본인들은 동양 평화의 수호자로 여긴다. 한국과 일본 간에 보호 조약이 체결된 을사년(1905년)은 우리에게 크나큰 상처이자 아픔이다. 그런 을사년이 일본인들에게는 동양 평화가 확립된 해로 인식된다. 러일 전쟁의 승리로 동양에 평화가 왔다고 인식하는 것이다. 같은 사건을 두고 우리의 인식과 상반되는 인식과 주장이 현재의 일본 사회에서 횡행하고 있는 역사적 배경과 그런 인식과 주장이 가져왔던 참혹한 결과들을 살펴보는 책이기도 하다. 유상덕 선임기자 youni@seoul.co.kr
  • 오바마 日방문서 감탄한 음식, ‘초밥’이 아니라… 아베 ‘헛발질’?

    오바마 日방문서 감탄한 음식, ‘초밥’이 아니라… 아베 ‘헛발질’?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아베 일본 총리가 일본을 방문한 버락 오바마 대통령에게 최고급 스시(초밥)를 대접했지만 정작 오바마 대통령의 입맛을 사로잡은 것은 ‘녹차 아이스크림’이었다. 25일 산케이신문 등 현지언론에 따르면 오바마 대통령은 24일 일본 왕실이 주최한 만찬을 마치고 떠나며 아키히토 일왕 부부에게 “녹차 아이스크림에 감사한다”고 말했다. 이날 만찬에서는 오바마 대통령은 후지산 모양을 본뜬 녹차 아이스크림을 먹었다. 오바마 대통령이 녹차 아이스크림에 대한 애정을 보인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오바마 대통령은 어제 만찬에서 “어머니가 나를 일본에 처음 데리고 온 지 거의 50년이 지났다.나는 집을 멀리 떠나온 여섯 살 아이에게 일본인이 보여준 친절을 잊지 못한다”고 말했는데 당시 그를 사로잡은 것이 바로 녹차 아이스크림으로 알려졌다. 오바마 대통령은 2009년 12월 일본을 방문해 연설할 때 ‘대불보다 녹차 아이스크림에 더 열중했다’고 가마쿠라에 있는 가마쿠라 대불을 방문했던 어린 시절 일본 여행을 추억햇다. 이어 2010년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참석차 일본을 방문했을 때 다시 가마쿠라를 찾아가 실제로 녹차 아이스크림을 먹었다. 반면 국빈방문 첫 일정에 등장해 관심을 끌었던 스시 만찬의 효과에는 의문이 제기되는 분위기다. 애초 아베 총리는 만찬 후 취재진에 오바마 대통령이 “평생 가장 맛있는 스시였다”는 발언을 했다고 전했지만 이 스시만찬은 ‘참다랑어(bluefin tuna)’가 재료로 쓰인 것으로 알려져 논란이 됐다. 참다랑어는 다랑어의 한 종류로 남획으로 인해 최근 멸종 위기에 몰려 국제 환경 단체들이 보호에 나선 어종이다. 국제 환경보호 단체 ‘그린피스(Greenpeace)’는 이날 성명을 내고 오바마 대통령은 음식 선택에 있어서 더욱 신중을 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세월호 침몰-자원봉사 물결] 팽목항의 푸른 눈 선생님들 “가르치던 제자들 생각나서…”

    [세월호 침몰-자원봉사 물결] 팽목항의 푸른 눈 선생님들 “가르치던 제자들 생각나서…”

    “물에 잠긴 아이들이 마치 우리가 가르치는 학생처럼 생각돼 돕게 됐습니다.” 조용한 마을이 좋아 전남 진도고교에서 교사생활을 하는 미국인 사라 피터슨(26·여)은 지난 16일 세월호 침몰 소식을 접하고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진도고에서 멀지 않은 진도 실내체육관으로 몰려드는 실종자 가족들을 매일 같이 마주치고, 실종된 자녀의 사진을 목에 걸고 절규하는 어머니들의 모습을 접할 때마다 그의 가슴은 먹먹해졌다. 마침 고교생을 가르치고 있어 실종 학생들의 소식이 남의 일 같지 않았다. 사라는 진도에서 함께 교편을 잡고 있는 남편 자크(26)를 비롯한 3명의 외국인 교사와 함께 실종자 가족을 위한 기부운동을 벌이기로 했다. 이들은 전국 각지에 흩어져 있는 친구들에게 전화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기부를 권유했다. 친구들이 뜨거운 반응을 보여 금세 700달러가 모였다. 100명 이상이 참여해 모인 200달러로 지난 18일에 1차 기부를 했고, 20일에는 300달러 상당의 구호 물품을 팽목항 구호물품지원센터에 접수했다. 24일 팽목항에서 만난 피터슨 일행은 양손에 200달러 상당의 쌀, 커피, 칫솔, 샴푸, 비타민C 등 구호물품 보따리를 들고 있었다. 갑작스러운 외국인 일행의 등장에 봉사단원들은 잠깐 놀랐지만 이내 기부를 하러 왔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생큐’를 연발했다. 일본인이 팽목한 구호물품지원센터를 방문한 적은 있지만 서양인이 이곳에 구호물품을 접수한 것은 이들이 유일했다. 진도 고성중 영어교사인 자크는 “뉴스에서 세월호 사건을 접하고 선생의 한 사람으로서 가슴이 너무 아팠지만 해줄 수 있는 게 별로 없었다”면서 “다행히 친구들이 혼쾌히 응해줘 이렇게 구호물자를 가져올 수 있었다”고 말했다. 남아공 출신으로 진도 군내북초등학교에 근무하는 손카 올리비에(27·여)도 “다른 나라에선 재난이 발생하면 그저 애도의 목소리만 넘쳐나는데 이번 실종자 가족들은 정부와도 다투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가슴이 아팠다”며 한숨을 쉬었다. 이날 구호물품 접수를 마친 이들은 “이번 주 토요일에 다시 구호물품을 가지고 올 예정이다”고 말한 뒤 팽목항을 떠났다. 글 사진 진도 한재희 기자 jh@seoul.co.kr
  • 오바마, 스시 가장 좋아했다고? 천만의 말씀…가장 좋아한 일본 음식은

    ‘오바마 스시’ 아베 일본 총리가 일본을 방문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에게 최고급 스시(초밥)를 대접했지만 정작 오바마 대통령의 입맛을 사로잡은 것은 ‘녹차 아이스크림’이었다. 25일 산케이신문 등 현지 언론에 따르면 오바마 대통령은 24일 일본 왕실이 주최한 만찬을 마치고 떠나며 아키히토 일왕 부부에게 “녹차 아이스크림에 감사한다”고 말했다. 이날 만찬에서는 오바마 대통령은 후지산 모양을 본뜬 녹차 아이스크림을 먹었다. 오바마 대통령이 녹차 아이스크림에 대한 애정을 보인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오바마 대통령은 24일 만찬에서 “어머니가 나를 일본에 처음 데리고 온 지 거의 50년이 지났다. 나는 집을 멀리 떠나온 여섯 살 아이에게 일본인이 보여준 친절을 잊지 못한다”고 말했다. 당시 오바마 대통령을 사로잡은 것은 바로 녹차 아이스크림으로 알려졌다. 오바마 대통령은 2009년 12월 일본을 방문해 연설할 때 ‘대불보다 녹차 아이스크림에 더 열중했다’고 가마쿠라에 있는 가마쿠라 대불을 방문했던 어린 시절 일본 여행을 추억햇다. 이어 2010년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참석차 일본을 방문했을 때 다시 가마쿠라를 찾아가 실제로 녹차 아이스크림을 먹었다. 반면 국빈방문 첫 일정에 등장해 관심을 끌었던 스시 만찬의 효과에는 의문이 제기되는 분위기다. 애초 아베 총리는 만찬 후 취재진에 오바마 대통령이 “평생 가장 맛있는 스시였다”는 발언을 했다고 전했지만 이 스시만찬은 ‘참다랑어(bluefin tuna)’가 재료로 쓰인 것으로 알려져 논란이 됐다. 참다랑어는 다랑어의 한 종류로 남획으로 인해 최근 멸종 위기에 몰려 국제 환경 단체들이 보호에 나선 어종이다. 국제 환경보호 단체 ‘그린피스(Greenpeace)’는 이날 성명을 내고 오바마 대통령은 음식 선택에 있어서 더욱 신중을 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2박 3일 일본 국빈방문을 마치고 25일 방한해 1박 2일 일정을 이어간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노주석의 서울택리지] 지역색 (상)

    [노주석의 서울택리지] 지역색 (상)

    ●조선시대 한양은 ‘경조 5부’ 행정구역으로 구분 오늘의 서울에도 강·남북이라는 지역 차가 실재하지만, 전통적으로 서울은 지독한 지역색이 작용하던 도시였다. 대개 남과 북으로 갈라지는 양태를 보였다. 조선 500년 내내 개천(청계천)을 경계로 북쪽과 남쪽 두 개 구역으로 양분됐다. 일제강점기에는 종로를 중심으로 한 조선인 거주지역과 남산아래 본정통(충무로) 중심의 일본인 거주지역으로 진화했다. 광복 이후 갈라진 좌우 이데올로기는 결국 국토의 허리를 남과 북으로 끊어놓았고, 1960년대 말부터 1970년대 초반 전개된 남·북한의 체제 안보경쟁이 강남개발을 촉발했다. 이때 서울은 한강을 경계로 강북과 강남 두 개의 도시로 양분됐다고 할 수 있다. 서울은 두 개의 도시로 이뤄졌다. 서구개념으로 치면 강북은 구도심(Old Town)이요, 강남은 신도심(New Town)이다. 한강은 나루터와 나룻배가 사라진 대신 다리로 촘촘하게 이어졌지만 두 도시의 거리는 점점 멀어지고, 격차도 심화된 느낌이다. ‘한강의 기적’이란 엄밀히 말하자면 한강 이남의 초고속 성장사였다. 양극화는 한강을 사이에 둔 남과 북 양극에서 빚어진 현상일 수도 있다. ‘강남스타일’이라는 노래가 전 세계적으로 유행할 만큼 문화적 이질성도 고착화하고 있다. 몇 년 전 조사에서 강남과 강북 아파트의 평균매매가 차이가 3.3㎡당 무려 1337만원이었다. 강남이란 ‘나’와 ‘남’이 다름을 보여주는 주거의 ‘차별 짓기’를 통해 몸값을 부풀린 아파트 왕국이다. 서울 강남·북을 뺨치는 지역색이 조선시대 한양에 존재했다. 도시학자들은 서울을 전통도시와 근대도시가 공존하는 ‘이중 도시’(Dual City)로 분석한다. 도시사학적 시각에서 서울의 공간적 특성을 근대 이전과 이후로 나눠 본다면 근대 이전 서울은 남촌과 북촌으로, 근대 이후는 강남과 강북으로 양립하고 있다. 조선시대 한성부(서울시청)는 ‘경조 5부’(京兆 5部)라고 하여 동부·서부·남부·북부·중부 등 5개의 행정구역으로 나눠 다스렸다. 오늘날 서울의 25개 자치구 중 경기도 시흥·과천·용인·광주였다가 서울로 편입된 한강 이남 10개 구를 제외한 한강 이북 15개 구 가운데 사대문 안에 해당하는 종로·중구·서대문·동대문 등 4개 구가 옛 경조 5부의 대부분이라고 보면 된다. 경복궁과 사대문을 축으로 나눠보면 북부는 경복궁~창덕궁 사이, 동부는 창덕궁~흥인지문 사이, 서부는 돈의문~숭례문 사이, 남부는 숭례문~흥인지문 사이쯤이다. 5부(部)가 곧 5촌(村)이다. ●사색당파, 제사·옷고름·갓끈 등으로 차별화 경조 5부 가운데 북부(가회동·계동·안국동·재동·경운동)와 동부(이화동·동숭동·혜화동·충신동)를 북촌체제로, 서부(정동·새문안)와 남부(필동, 묵동, 남산동·주자동, 인현동)를 남촌 체제로 구분할 수 있다. 개천을 경계선으로 긋는다면 북쪽은 권문세가와 현역 벼슬아치 그리고 그들을 돕는 아전(衙前) 및 겸인(?人)들의 주거지구였다. 개천부터 목멱산(남산)까지 남쪽에는 지체 낮은 관리나, 퇴락한 양반, 별 볼 일 없는 무반들이 주로 모여 살았다. 서울연구가 전우용은 ‘서울은 깊다’에서 “남촌 사람들은 술을 빚어 마시는 것을 즐겼고, 북촌 사람들은 떡을 자주 만들어 먹었다는 ‘남주북병’(南酒北餠)이란 속담은 두 구역 사람들의 기질이나 처지가 그만큼 달랐음을 일러준다”고 분석했다. 동·서·남·북촌이 양반이나 관료 그리고 그들을 떠받치는 아전들의 거주구역이라면 중촌(中村)은 중인(中人)들의 터전이었다. 의관, 역관, 율사, 화원, 도사 등 중인에다 상인, 군속들이 중부(다동·무교동·수표동, 입정동, 주교동, 관수동) 일대에 둥지를 틀었다. 오늘의 을지로와 청계천변이라고 보면 된다. 중인이란 용어도 중부 혹은 중촌에 사는 사람에서 생겼다. 케케묵은 조선의 행정구역인 경조 5부를 들먹이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중인이 사는 중촌을 제외한 4개의 양반 촌을 중심으로 조선 중기 사색당파(四色黨派)가 발원했기 때문이다. 동인의 거두 김효원(1532~1590)이 낙산 아래 동촌에 산다고 하여 그 일파가 동인(東人)이 되었으며, 이에 맞선 심의겸(1535~1587)이 인왕산 아래 서촌에 살았다고 하여 서인(西人)이라고 명명한 것이다. 동인 중 남산 아래 진고개에 사는 일파가 남인(南人)이 되었고, 경복궁과 창덕궁 사이에 거주하는 몇몇이 북인(北人)을 형성했다. 1623년 광해군을 몰아낸 인조반정 이후 정권을 잡은 서인이 노론(老論)과 소론(少論)으로 분리됐다가 노론이 영조와 정조를 거쳐 고종에 이르기까지 150년 이상 득세했다. 노론의 거주지가 이른바 북촌이었다. 풍수에서 한양의 최고 명당은 백악 아래 경복궁이었다. 다음이 응봉 아래 창덕궁과 종묘, 성균관 자리다. 백악과 인왕산 사이 장동·청류계·백운동·옥류동·인왕산동도 빠지지 않았고, 백악과 응봉 사이 지금의 율곡로 일대도 최고 길지의 하나였다. 남산을 바라보는 풍광이 좋고 터가 넓어 권문세가들이 큰 집을 짓고 교류했다. 이에 비해 남산골은 음지였으나 배수가 잘되고 지하수가 풍부해 하급관리들이 살 만한 곳으로 쳤다. 고종 대인 1864년부터 1887년까지의 기록인 ‘매천야록’에서 황현은 “서울의 대로인 종각 이북을 북촌이라고 부르며 노론이 살고 있고, 종각 남쪽을 남촌이라 하는데 소론 이하 삼색이 섞여서 살았다”라고 썼다. 조선 말기 북촌에는 노론이 살았고, 소론과 남인, 북인은 주로 남촌에 어울려 살았음을 알 수 있다. 이들 붕당(朋黨)은 제사 모시는 법, 옷고름이나 갓끈 매는 법을 서로 달리 하면서 차별 짓기를 했다. 사화(士禍)가 이 같은 지역색에서 비롯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작금의 강·남북 구별 짓기가 무색할 지경이다. ●서촌은 새문안·정동, 상촌이나 윗대로 불러야 서울의 지역색과 구역분화는 생각보다 심각했다. 1924년 발행된 개벽 6월호 ‘경성중심세력의 유동’에서 소춘은 “경성은 오촌(五村), 양대, 자내(字內), 오강(五江)으로 나뉜다”라고 주장했다. 조선후기 들어 신분과 계층이 세분화되고 신분에 따라 거주지역이 정해진 것을 보여준다. 여기서 오촌은 경조 5부의 지역공간과 겹친다. 양대는 윗대(웃대)와 아랫대로 나뉜다. 윗대는 상촌(上村)이라고도 했는데 경복궁 주변의 육조 관아가 있던 사직동·내자동·당주동·도렴동·체부동·순화동·통의동에 살던 아전이나 겸인, 내시의 거주지를 일렀다. 아전이란 ‘관아 앞에 사는 사람’이라는 조어였고, 겸인은 권문세가의 경호원 또는 비서격이었다. 이들은 경복궁의 서문인 영추문을 통해 궁을 드나들었다. 인사동을 중심으로 중촌에 살던 중인과는 완전히 다른 부류였다. 정교는 ‘대한계년사’에서 “상촌인은 평민 중에서 각 부의 서리 및 공경가의 겸인이 되는 자인데, 그들은 평민 중에서 가장 우수한 자라고 칭한다”라고 했고, 정래교는 ‘임준원전’에서 “경성의 민속은 남과 북이 다르다. 백련봉 서쪽에서 필운대까지가 북부인데 주로 가난한 집들로 얻어먹는 사람들이 산다. 그러나 때때로 의협 있는 무리가 의기로 서로 사귀고 남에게 베풀기를 좋아하며, 약속을 중히 여긴다. 또 시인 문사들이 시를 다투었다. 풍속이 그러했던 것이다”라고 윗대의 풍속을 평했다. 또 이가환은 ‘옥계청유첩서’에서 “경복궁의 남쪽은 육조이다. 그 서쪽은 좁은 땅이다. 때문에 서리들이 많이 살며 일에 익숙하고 질박한 이 적다”라고 윗대의 지역을 구분했다. 요즘 서촌이라고 부르는 경복궁 서쪽지역이 바로 윗대이다. 일제강점기 옛 옥류동과 인왕산동을 강제로 합쳐 만든 새로운 동 이름인 옥인동 쪽으로 흐르는 옥계천의 상류라는 의미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북촌에 빗대 서촌이라고 불렀지만 애당초 잘못된 지명이다. 서촌이란 조선시대 경조 5부 중 돈의문 부근을 지칭하던 지명임은 이미 설명한 바 있다. 경복궁의 서쪽이라 하여 서촌이라고 한다는 논리대로라면 북촌은 동촌이 돼야 할 판이다. 구태여 새로운 지명이 필요하다면 지금이라도 윗대 혹은 상촌이라고 부르는 것이 마땅하다고 본다. 아랫대(下村)는 중촌과 남촌 중간지대를 지칭하는데 지금의 오간수문~광희문 사이쯤이다. 이 일대에 자리 잡았던 어영청이나 훈련원 소속 군병들이 주민을 이뤘다. ‘개벽’(1924년 6월)에서 “우대(웃대)는 육조 이하 각사에 소속된 이배, 고직 족속이 살되 특히 다방, 상사동 등지에 상고 통칭 시정배가 살았고…아래대(아랫대)는 각종 군속이 살았으며 특히 궁가를 중심으로 하여 경복궁 서편 누하동 근처는 대전별간파들이 살고…”라고 구역특징을 설명했다. 황성신문(1900년 10월 9일자)은 “사대부의 말투는 극히 화미절이하며, 북촌 사람들의 말투는 매우 부드럽고 조심스러우며, 남촌 사람들의 말투는 빠르며, 상촌사람들의 말투는 공경스러우며, 중촌사람들의 말투는 기민하며, 하촌사람들의 말투는 상스러우며…”라면서 조선말 오촌, 양대사람의 인적특성을 총정리했다. 자내란 한양도성을 쌓거나 보수, 경비하고자 한성부가 담당구역을 정한 구역을 말한다. 천자문의 ‘천(天)자’이면 이 글자가 적힌 구간에 거주하는 사람을 뜻했다. 성안을 돌아다니며 계란이나 채소, 장작을 팔았고 분뇨를 퍼다가 가축을 키웠다. 오강은 한강과 용산, 서강 등 3강에 마포삼개와 망원을 합해 오강이라고 이름 붙였다. 오강주민들은 나루에서 먹고사는 사람들이었다. 나루터에서 잔뼈가 굵은 사공, 짐꾼이거나 전국 각지를 돌아다니며 물건을 떼다 파는 기가 센 사람들이었다. 선임기자 joo@seoul.co.kr
  • 日 납치문제 담당상 또 야스쿠니 참배

    日 납치문제 담당상 또 야스쿠니 참배

    후루야 게이지 일본 납치문제 담당상이 20일 오전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했다. 아베 내각 각료가 야스쿠니 신사 춘계 예대제(21~23일)에 맞춰 태평양전쟁 A급 전범이 합사된 야스쿠니를 참배한 것은 지난 12일 신도 요시타카 총무상에 이어 두 번째다. NHK 보도에 따르면 후루야 납치 담당상은 이날 오전 8시쯤 신사를 방문, ‘국무대신 후루야 게이지’라고 서명한 뒤 본전에서 참배하고 사비로 ‘다마구시’(玉串·물푸레나무 가지에 흰 종이를 단 것)’공물료를 냈다. 그는 참배 뒤 “나는 첫 당선 이후 봄·가을 예대제, 종전기념일인 8월 15일에는 반드시 참배하고 있다. 장관 취임 이후에도 바뀌지 않는다. 춘계 예대제는 21일이지만 공무에 지장이 없도록 일요일에 참배했다.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영령에게 애도의 표현을 하는 것은 일본인으로서 당연한 일”이라는 내용의 성명을 발표했다. 후루야 납치 담당상은 지난해에도 춘·추계 예대제와 8월 15일에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했다. 지난해 말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전격 강행한 아베 신조 총리는 각료의 야스쿠니 참배를 각자 판단에 맡겨 왔다. 아베 총리는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방일 등을 감안, 이번 춘계 예대제 때는 공물 봉납으로 참배를 대신할 것으로 알려졌다. 도쿄 김민희 특파원 haru@seoul.co.kr
  • 한반도의 호랑이 어떻게 사라졌나 일본인의 사냥기

    한반도의 호랑이 어떻게 사라졌나 일본인의 사냥기

    정호기(征虎記)/야마모토 다다사부로 지음 이은옥 옮김/이항·엔도 기미오·이은옥·김동진 해제/에이도스/216쪽/2만원 야생 호랑이가 한반도에서 사라진 주요 이유로 해로운 맹수들을 퇴치해 세상을 편안하게 한다는 명목으로 일제강점기에 시행된 해수구제(害獸驅除) 정책이 지목된다. 조선총독부의 ‘조선휘보’에 따르면 1915~1924년(1917·1918년 통계 누락) 일제의 해수구제 정책으로 호랑이 89마리, 표범 521마리가 사살됐다. 통계에서 두 해가 누락된 이유를 알 수는 없지만 그 기간에도 일제의 한국호랑이 소탕작전이 강도를 더했으면 더했지 멈춘 것은 아니었다. 한국어로 번역 출간된 ‘정호기’(征虎記)는 1차 세계대전 때 선박업으로 엄청난 부를 쌓은 일본인 사업가 야마모토 다다사부로가 1917년 11월 20일 도쿄를 출발해 부산으로 입국해 한 달간 조선에 머물며 벌인 호랑이 사냥기록이다. 야마모토는 사냥에 동행했거나 후원한 사람들에게 기념선물로 나눠 주기 위해 사냥 기록과 일기를 엮어 비매품 한정판으로 책을 만들었다. 한국 호랑이의 자취를 추적해 온 한국범보전기금이 일본의 인터넷 고서점에서 가까스로 구했다. ‘정호기’에는 사냥기록을 순차적으로 담은 희귀한 사진 97장을 비롯해 사냥지역을 표시한 지도 2장, 사냥과정 기록, 야생동물의 서식 상황, 포획방법 등이 구체적으로 기록돼 있다. 호랑이 관련 자료가 전무한 국내 상황에서 귀중한 사료다. 야마모토는 강용근, 이윤회, 백운학 등 조선에서 이름을 날리던 포수들을 비롯해 몰이꾼 150여명을 동원했으며 모두 8개 반으로 조를 짜 함경도, 강원도, 금강산, 전라도 등지에서 대대적인 호랑이 사냥에 나섰다. 일본과 조선의 언론사 기자들도 특파원 형식으로 초대돼 정호군의 활약을 즉각 알렸고, 사냥이 끝나고 경성의 조선호텔과 도쿄 제국호텔에서 열린 호랑이 고기 시식회에는 당시의 실력자들이 대거 참석했다. 야마모토가 조선반도에서 호랑이 사냥 이벤트를 벌인 이유에 대해 이항 서울대 수의과대 교수 등은 책 해제에서 “겉으로는 총독부의 해수구제 정책과 같은 맥락이지만 실제로는 대자본가의 개인적 소영웅심의 발로, 부의 과시, 일본군 사기 진작, 제국주의적 이데올로기 확산 등 복합적 의도가 작용했다”고 설명했다. 가난한 인쇄공에서 대자본가로 출세해 조선 반도에 호랑이 덫을 놓았던 야마모토는 1차 대전 종전 후 찾아온 세계적 불황으로 몰락해 1927년 4월 54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도쿄 제국호텔에서 시식회를 연 뒤 10년 후의 일이었다. 한편 이 교수 등은 야마모토 사냥팀에 의해 함경도에서 잡힌 뒤 박제된 호랑이를 교토의 도시샤 고등학교 표본관에서 92년 만에 찾아냈다. 야마모토에 관한 인물정보를 수집하던 중 그가 사냥한 호랑이와 표범을 박제해 자기 모교에 기증했다는 내용을 파악하고 해당 고등학교를 방문, 표본을 찾아내 DNA 시료 채취에 성공했다. 현재 이 교수팀은 채취한 DNA 시료로 한반도 호랑이의 계통분류 연구를 계속하고 있다. 함혜리 선임기자 lotus@seoul.co.kr
  • “日 혐한 분위기, K팝엔 새출발하는 좋은 계기”

    “日 혐한 분위기, K팝엔 새출발하는 좋은 계기”

    “최근의 혐한 분위기가 오히려 K팝에는 잘된 일이다. 원점으로 돌아가 일본 내 서브컬처(하위 문화)로서의 좋은 부분을 어필할 수 있게 됐다.” 동방신기를 일본에 맨 처음 소개한 것으로 유명한 K팝 평론가 후루야 마사유키(40) 홋카이도과학대 객원 부교수가 지난 17일 저녁 도쿄 와세다대에서 이 대학 한국학연구소(소장 이종원 교수)가 기획한 연속 강좌의 첫 연사로 나서 ‘K팝은 일본인의 한국관을 어떻게 바꿨는가?’란 주제로 강연했다. 후루야 부교수는 최근 혐한 분위기가 과도한 K팝의 마케팅 전략과 연관이 있다고 분석했다. 그는 “2012년에 일본에서 활동하는 한국 아이돌은 40개에 달했다. 한류 드라마가 10년에 걸쳐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은 것과는 달리, K팝은 3~4년 만에 그런 위치에 오르려고 했다”면서 “서브컬처로서 사랑받던 한류가 메이저급으로 올라가기 위해 무리를 하면서 혐한 분위기가 일어났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지나치게 비싼 공연 입장료 등 K팝의 문제로 지적됐던 사항들이 최근 혐한 분위기 때문에 개선되고 있다. 지금 K팝의 위상은 2010년 카라가 등장하기 전, 대부분의 사람들이 K팝을 잘 모르던 때로 돌아간 듯하다”고 지적한 뒤 “이제야말로 한국 엔터테인먼트를 좋아하는 사람들끼리 모여 자유롭게 즐길 수 있게 됐다. K팝의 좋은 점을 보고 많이 사랑해 줬으면 좋겠다”는 말로 끝을 맺었다. 와세다대는 오는 5월 15일 요모타 이누히코 전 메이지가쿠인대 교수의 ‘한국 영화와 신파의 전통’, 6월 12일에는 아사쿠라 도시오 국립민족학박물관 교수의 ‘음식으로 본 한국 문화’, 7월 10일에는 소설가 쓰시마 유코의 ‘한국의 현대 문학을 읽자’ 등 매달 강좌를 진행할 예정이다. 글 사진 도쿄 김민희 특파원 haru@seoul.co.kr
  • [모닝 브리핑] 北·日 납치문제 재조사 이달 중 합의

    북한과 일본이 지난 12~13일 중국 다롄(大連)에서 과장급 극비 협의를 가졌으며, 이르면 이달 중 납치 문제 재조사 실시에 합의할 전망이라고 일본 산케이신문이 15일 보도했다. 오노 게이이치 일본 외무성 북동아시아과장과 북한의 과장급 당국자가 나선 이번 협의에서 북한은 일본인 납북 피해자들에 대한 재조사를 실시하고, 일본은 북한에 대한 독자적 제재 조치의 일부를 해제하는 방안을 최종 조정했다. 일본은 북한이 재조사에 응할 경우 북한 국적자에 대한 왕래 금지 조치와 북한 전세기 일본 입국 금지 등의 제재를 해제한다는 방침을 굳힌 것으로 알려졌다. 도쿄 김민희 특파원 haru@seoul.co.kr
  • [세계의 창] 아베 5월 방북설 솔솔…북·일 ‘Again 2004’?

    [세계의 창] 아베 5월 방북설 솔솔…북·일 ‘Again 2004’?

    ‘어게인(Again) 2004’가 이뤄질 수 있을까. 최근 북한과 일본 간 불고 있는 훈풍이 점차 거세지고 있다. 일본 정계 안팎에서는 2002년과 2004년 고이즈미 준이치로 당시 총리의 두 차례 평양 북·일 정상회담 이후 10년 만에 아베 신조 총리가 이르면 5월에 방북할지도 모른다는 얘기가 흘러나오고 있다. 북·일관계가 이처럼 급물살을 타고 있는 배경은 무엇일까. 가장 큰 이유는 북한과 일본 수뇌부의 이해관계가 어느 정도 맞아떨어지기 때문이다. 2012년 4월 권력을 승계받은 북한의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은 선대보다는 국제사회에 개방적이며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는 것으로 평가된다. 올초 신년사에서 남북관계 개선을 언급하는 등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를 완화시키려는 의도도 엿보인다. 2012년 12월 출범한 아베 신조 정권은 김정은 체제에서 일본인 납치 문제의 해결 가능성이 높다고 본 것 같다. 일본인 납치에 직접 관여하지 않은 김 제1위원장이라면 파격적인 돌파구가 마련될 수도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아베 총리는 2002년 평양 정상회담 당시 자민당 간사장 대리로 고이즈미 총리와 함께 방북했다. 그는 일본인 납치 문제에 대해 김정일 국방위원장으로부터 사과를 받기 전에는 평양 선언에 서명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을 관철시켜 스타 정치인으로 떠올랐다. 그는 취임 직후 납치 피해자 가족들과 만나 “(납치 문제를) 반드시 아베 내각에서 해결하고 싶다”고 공언할 만큼 납치문제는 정치적 승부수이기도 하다. 북한 입장에선 정권이 자주 바뀌면서 대북 기조 역시 흔들려온 일본의 상황을 염두에 둔다면 장기 집권이 예상되는 아베 정권과 협상하는 편이 낫다고 판단할 수 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이와 관련해 북한의 한 관계자가 “협상이 가능할 만큼 안정적으로 장기 집권할 수 있는 정권을 기다리고 있었다. 사상이 좌편향이든 우편향이든 관계없다”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적십자 회담 재개 등 관계 급물살 이런 이유로 북한의 두 차례 핵실험(2006·2009년)과 장거리 미사일 시험 발사(2012년 12월)로 인해 두절됐던 양국 관계는 올 들어 크게 진전됐다. 적십자 회담을 통해 물꼬를 트고, 정부 간 협의를 재개한 뒤 공식·비공식 협의를 통해 구체적인 합의를 도출하는 현재의 기류는 과거의 패턴과 꼭 닮아 있다. 지난달 3일 1년 7개월 만에 적십자회담을 재개한 북한과 일본은 일주일 뒤인 10~14일 몽골 울란바토르에서 일본인 납치 피해자의 상징인 요코다 메구미의 부모와 손녀 김은경(26)씨의 첫 상봉까지 잇따라 추진했다. 이어 한 차례 더 적십자 회담을 가진 양측은 30~31일 중국 베이징에서 1년 4개월 만에 정부 간 협의를 재개하는 등 숨가쁜 일정을 소화하고 있다. 일본 언론 보도에 따르면 지난 5~6일 중국 선양에서 외교 당국자 비공식 협의를 가졌으며, 조만간 추가로 비공식 협의를 갖는 데 합의했다고 한다. 2002년 9월 17일 이뤄진 고이즈미 준이치로 당시 총리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정상회담도 똑같은 수순을 밟았다. 정상회담은 2001년 가을부터 추진됐다. 일본의 다나카 히토시 당시 외무성 아시아·대양주국장과 일본이 ‘미스터 X’라고 불렀던 북한 측 담당자와의 물밑 협의는 중국 등 제3국에서 20차례 진행됐다. 수면에서는 2002년 8월 평양에서 적십자 회담과 외무성 국장급 협의가 계속 이뤄졌고 결국 8월 30일 고이즈미 총리는 9월 17일 북한 방문 공식 일정을 발표한다. 당시 평양 정상회담에서 고이즈미 총리는 일본인 납북자 5명 귀국이라는 달콤한 성과를 갖고 온다. 이 때문에 최근 일본 정계 안팎에서는 “아베 총리가 5월 방북하는 것 아니냐”는 설이 파다하게 퍼지고 있다고 한 소식통은 전했다. ●북·일 비공식 협의 계속될 듯 일본 언론에 따르면 현재 일본 정부는 지난 5~6일 비공식 협의에서 북한이 제재 완화를 조건으로 납치문제 재조사에 응할 용의가 있다고 전해옴에 따라 북한에 대한 제재 조치의 완화를 단계적으로 실시하는 준비 작업에 들어갔다. 재조사는 정부가 인정한 납치 피해자 17명 중 귀국하지 않은 12명뿐 아니라 납치 가능성이 있는 특정 실종자도 대상에 포함하도록 요구하고 있다. 일본 정부는 납치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실종자를 860명으로 보고 있다. 일본은 유엔 안보리의 결의에 근거한 제재에 더해 일본의 독자적인 제재 조치로 북한 국적 보유자의 입국 금지, 북한 국적 선박의 입항 금지, 항공 전세기가 북한에서 일본으로 취항하는 것을 금지하는 등의 조치를 취하고 있다. 북한은 도쿄 지요다구에 있는 조선총련 중앙본부의 매각을 허용한 도쿄지방법원 결정의 재검토를 요구하는 한편 조선총련 간부의 여행 제한 해제도 원하고 있다. 북한이 재조사 실시를 확정하고 조사에 착수하면 그에 응하는 형태로 총련 간부의 여행 제한 해제 등 일본의 독자적인 제재 조치의 일부를 완화하는 방향으로 조정을 추진한다는 것이 일본 정부의 입장이다. 납치 피해자 조사가 재개될 경우 일본은 북한이 주도하는 조사를 어떻게 확인할 것인지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 이 때문에 과거에는 북·일 합동 조사 구상이 부상한 적도 있었다. 북·일 양국은 일정한 합의가 도출될 때까지 비공식 협의를 계속할 전망이다. 한 전직 외무성 간부는 “북한은 비밀 협의가 아니라면 이야기가 정리되지 않는다”고 말했다고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전했다. 도쿄 김민희 특파원 haru@seoul.co.kr
  • 막가는 日… 집단자위권 허용 헌법초안 마련

    일본 내각법제국이 집단적 자위권을 행사하는 방향으로 전환하는 헌법 초안을 마련했다고 지지통신이 13일 보도했다. 통신에 따르면 내각법제국은 ‘헌법 9조 해석상 집단적 자위권은 행사할 수 없다’는 지금까지의 해석에서 벗어나 ‘일본 방위를 위해 필요한 최소한도’의 자위권에 집단적 자위권 일부가 포함된다는 견해를 제시했다. 구체적으로는 어떤 국가가 일본의 이웃 국가를 공격해 점령하려는 것을 방치할 시 일본도 침공을 받을 명백한 경우 등에 한해 집단 자위권 행사가 가능하다는 입장을 정리했다. 다만 자민당과 아베 신조 총리의 사적 자문기관인 ‘안전보장 법적기반 재구축 간담회’가 검토 중인 일본 근해에서의 미국 함정 방어, 미국으로 향할 가능성이 있는 탄도 미사일 요격 등은 “개별적 자위권이나 경찰권 확대로 대처가 가능하다”는 점을 고려해 집단적 자위권 행사 대상에서 제외했다. 집단적 자위권은 자국이 공격받지 않아도 동맹국이 공격받았다는 이유로 타국에 반격할 수 있는 권리를 뜻한다. 일본 정부(내각법제국)는 “국제법에 따라 일본도 집단적 자위권이 있지만 헌법 9조가 인정하는 자위권은 일본을 방위하기 위해 필요한 최소한도의 자위권으로 집단적 자위권 행사는 그 범위를 벗어나기 때문에 헌법상 허용되지 않는다”는 입장을 견지해 왔으나, 아베 총리는 일본도 집단적 자위권 행사가 가능하도록 이러한 헌법 해석을 바꾸려 하고 있다. 한편 아베 내각의 대표적 극우 성향 각료인 신도 요시타카 총무상이 12일 태평양 전쟁 일본인 A급 전범들이 합사된 야스쿠니 신사에 참배했다. 신도 총무상은 제2차 세계대전 말기 이오지마 수비대를 지휘한 구리바야시 다다미치(1891~1945) 육군 대장의 외손자로, 구리바야시 대장은 야스쿠니 신사에 합사돼 있다. 신도 총무상이 야스쿠니 신사 춘계 예대제(21일~23일)보다 일찍 참배한 것과 관련, 오는 23~25일로 예정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방일을 의식한 것이라고 일본 언론은 전했다. 도쿄 김민희 특파원 haru@seoul.co.kr
  • 200년 전으로 떠나는 행궁 한 바퀴

    200년 전으로 떠나는 행궁 한 바퀴

    완연한 봄 날씨를 보인 11일 오후 3시 경기 수원시 팔달구 신풍동 화성행궁 신풍루 앞. 갑옷 등으로 무장한 조선의 무사 17명이 나타났다. 무사는 자신의 키보다 훨씬 큰 장창과 칼날이 달처럼 생긴 월도를 자유자재로 휘두른다. 큰 기압 소리와 함께 세워진 볏짚단과 대나무가 한번에 잘려 나갈 때면 관객들의 입에서 탄성이 절로 나온다. 궁수들은 전쟁터를 연상시키듯 활을 들고 뛰어가면서, 때론 옆으로 돌면서 민첩하게 움직이는 자세로 과녁을 향해 화살을 날린다. 신라시대 화랑들이 익힌 권법인 본국검과 창검무예를 익히기 전에 배웠던 권법도 보여준다. 실전을 방불케 하는 이들의 기합 소리, 허공을 가르는 검과 창 동작 속에서 웅장한 조선 무사의 기백이 다시 살아나는 듯하다. ●행궁 초입서 본 ‘무예24기’와 장용영 수위의식 화성행궁에 가면 볼 수 있는 ‘무예 24기’ 공연이다. 월요일을 제외한 매일 오전 11시와 오후 3시 두 차례 공연을 한다. 무예 24기는 조선 정조시대 때 지상무예 18가지와 마상무예 6가지를 합해 만든 24가지 무예로, 무예 교과서인 ‘무예도보통지’에 실려 훈련도감, 장용영 등 중앙 군영을 비롯해 전국 군영에서 사용됐다. 조선 무예는 화려하고 현란한 액션의 중국 무술이나 날카로운 검으로 정제된 동작을 구사하는 일본 무예와는 전혀 다르다.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크고 활달한 동작으로 단호하고 강인한 힘을 발산하는 것이 무예 24기의 특징이다. 신풍루 앞에서는 매주 일요일 2시 장용영의 수위 의식이 열린다. 정조대왕의 친위 부대였던 장용영 군사들의 화성행궁 수위 및 훈련을 보여주는 의식이다. 토요일에는 궁중무용, 무등돌이, 전통 줄타기 등의 상설 공연도 펼쳐진다. 장용영 수위 의식과 연계해 진행되는 정조대왕 거둥은 정조의 능행차를 축소한 것으로 매월 둘째, 넷째 주 일요일에 시연된다. ●화성열차 등 행궁 안 체험 천국 화성행궁 안으로 들어가면 다양한 볼거리와 즐길 거리를 체험할 수 있다. 왕과 왕비의 의상 체험, 한지 탁본 뜨기, 구슬공예, 뒤주 체험, 한자스티커 붙이기, 전통 다도 체험, 도자기 만들기, 한자 부채 만들기 등의 다양한 프로그램이 관광객들을 기다리고 있다. 홍보관 지하 영상실에서는 ‘화성이와 함께하는 수원화성 여행’이란 3차원(3D) 애니메이션이 무료로 상영된다. 화성행궁과 화성 주요 지점을 오가는 화성열차도 타볼 만하다. 이곳에서 만난 일본인 관광객 가즈 다카는 “일본에서 화성행궁을 배경으로 한 드라마를 보고 찾아왔는데 역사는 물론 무예 등 역동적인 분위기를 느낄 수 있어 무척 좋았다”고 말했다. 화성행궁은 정조가 융릉을 참배할 때 머물던 임시 처소로, 우리나라 행궁 가운데 규모가 가장 크고 아름다워 행궁 가운데 백미로 꼽힌다. 정조의 모친인 혜경궁 홍씨의 회갑연이 열리기도 했다. 수원문화재단 라수홍 대표는 “일제에 의해 훼손된 것을 화성 축성 당시 행궁을 비롯한 건축물 모습과 특징까지 모두 기록해 놓은 화성성역의궤를 토대로 주요 건물 482칸을 복원했다. 전문가들의 철저한 고증도 거쳤다”고 설명했다. TV 드라마 ‘대장금’ ‘이산’과 영화 ‘왕의 남자’ 등이 이곳에서 촬영되는 등 영화 촬영 장소로도 인기다. 관광객들의 편의를 위해 주요 관광지를 자전거로 탐방할 수 있도록 자전거 대여소도 운영하고 있다. 대여소는 화성행궁광장, 연무대 국궁체험장, 화서문 입구, 장안문 종합안내소 등 화성 주변 4곳에서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운영된다. 자전거는 화성행궁광장에 60대 등 모두 135대가 비치돼 있으며 하루 이용 요금은 1000원이다. 초등학생 이하 어린이는 보호자가 있어야 빌릴 수 있다. ●행궁 뒤 성곽둘레길 5.4㎞ 나들이 코스로 딱! 화성행궁 뒤편 팔달산에 오르면 화성 성곽둘레길을 만날 수 있다. 제주에 ‘올레길’이 있다면 수원에는 ‘화성 성곽둘레길’이 있다. 성곽 둘레길은 걷는 재미와 함께 200년 전 역사가 살아 숨 쉬는 성곽 여행을 떠날 수 있다는 점에서 자녀를 동반한 가족 봄나들이 코스로도 제격이다. 성곽둘레길은 서남암문(화양루)~서장대~화서문(서문)~장안문(북문)~화홍문~방화수류정~동장대(연무대)~창룡문(동문)~봉돈~동남각루를 잇는 5.4㎞ 코스다. 성을 한 바퀴 도는 데 걸리는 시간은 2~3시간 정도이며 일부 구간을 제외하고는 길이 험하지 않아 노약자들도 부담 없이 걸을 수 있다. 둘레길은 큰 원형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어느 곳에서 출발해도 좋다. 성곽 가운데 팔달산 정상에 있는 서장대는 군사 지휘소로, 동서남북 모든 방향에서 벌어지는 전투나 군사훈련을 지휘하던 곳이다. 서장대에서 성곽을 따라 내려가면 다산 정약용이 설계한 화서문을 만난다. 문 옆에는 공격하는 적들을 삼면에서 저격할 수 있도록 지은 서북공심돈이 자리한다. 성곽 옆에 조성된 장안공원을 지나면 화성의 북쪽 문인 장안문을 만난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성문으로 문루의 높이가 13.5m, 너비가 9m에 달한다. 국보 1호인 서울 숭례문보다도 크다. 일제시대와 한국전쟁을 거치는 동안 크게 훼손됐으나 1975년부터 5년간 복원했다. 이어 7개의 아치형 수문을 거느린 화홍문과 방화수류정이 나타난다. 화홍문은 7칸의 홍예 위에 정면 3칸, 측면 2칸의 누마루 형식 문루를 세운 것이다. 연못을 끼고 있는 방화수류정 주변은 경치가 아름다워 수원 8경 중 하나로 꼽힌다. 화홍문을 지나면 연무대가 나타난다. 동장대로로 불리는 이곳은 당시 군사들이 활을 쏘며 무예를 연습하던 군사 훈련장이다. 관광객들을 대상으로 국궁 체험장을 운영하고 있다. 이어 화성의 동문인 창룡문과 봉돈을 지나 계속 걷다 보면 동남각루에 이른다. 여기서 팔달문 사이는 성곽이 한국전쟁 때 파괴된 데다 시장과 상가 건물들이 밀집해 있어 복원되지 못했다. 보물 402호인 팔달문은 사통팔달로 통한다는 의미로 지었다. 서울의 남대문이나 동대문과 모양은 비슷하지만 문루의 네 귀에 높은 기둥이 없는 점이 다르다. 이렇듯 화성의 시설물들은 지형 조건을 최대한 활용해 효율적으로 방어할 수 있도록 배치됐다는 점에서 여타의 성과는 다르다고 평가받고 있다. 이종석(55·교수·수원시 망포동)씨는 “도심 속에 이렇게 아름다운 성곽이 보존돼 있다는 게 놀랍다. 구불구불한 성곽길을 따라 걸으면 조선시대 역사의 숨결을 느낄 수 있고 제주 올레길 못지않은 매력도 있어 건강 삼아 지인들과 자주 찾는다”고 말했다. ●외국 같은 생태교통마을 행궁동 지난 한 해 동안 외국인을 포함해 모두 144만 6000여명의 관광객이 화성행궁을 비롯한 화성을 찾았다. 화성행궁이 있는 행궁동은 생태교통마을로 유명하다. 지난해 9월 주민들이 차 없는 불편을 체험하는 ‘생태교통 수원 2013’ 행사가 치러졌기 때문이다. 2200가구 주민 4300명이 한달간 석유 연료가 고갈된 상황을 전제로 자동차를 포기하는 ‘불편 체험’ 행사에 자발적으로 참여해 주목받았다. 거리 상가 간판과 벽면을 깔끔하게 단장하고 도로는 아스팔트 대신 대리석을 깔고 자동차보다 보행자가 우선되는 특화거리로 리모델링해 마치 외국에 온 듯한 착각이 들게 한다. ●공방거리로… 행궁길은 변신 중 화성행궁 앞을 통과하는 행궁길은 공방거리로 변신 중이다. 규방공예와 한지, 서각, 칠보, 가죽 등의 공예공방과 갤러리 30여개가 자리 잡고 있다. 최근에는 나눔갤러리가 문을 열었다. 행궁길 초입에 설치된 솟대도 공방거리의 명물로 인기를 끌고 있다. 다양한 높이와 알록달록한 색채를 자랑하며 조화롭게 서 있는 솟대는 지역 주민과 공방작가들이 만들었다. 주말 행궁길에는 거리 판매대가 설치되고 공예 체험 행사와 벼룩시장, 다양한 먹거리 판매 행사 등이 마련돼 화성행궁을 찾는 관광객들이 반드시 거쳐 가는 코스로 자리매김했다. 김민서(49·여·용인시 서천동)씨는 “화성행궁의 역사와 공방, 갤러리, 카페 등이 오밀조밀하게 이어지는 풍경이 오묘한 조화를 이루는 것 같다. 서울 인사동 부럽지 않은 매력이 있어 행궁에 올 때면 반드시 들른다”고 말했다. 김병철 기자 kbchul@seoul.co.kr
  • [주말 영화]

    ■밀양(OBS 일요일 밤 10시 15분) 남편을 잃은 신애(전도연)는 아들 준과 남편의 고향인 밀양으로 향하고 있다. 피아니스트의 희망과 남편에 대한 꿈도, 여자는 너무 많은 것을 잃었다. 하지만 이 작은 도시에서 피아노 학원을 연 후 새 시작을 기대한다. 한편 밀양 외곽 5㎞ 떨어진 곳에서 종찬(송강호)은 신애를 처음 만난다. 신애의 차가 고장나 서 버린 탓에 카센터 사장인 그를 부른 것이다. 그리고 운명처럼 만난 여자는 종찬에게 잊히지 않는 삶의 일부가 돼 버린다. 종찬은 밀양과 닮았다. 특별할 것이 없는, 보통 사람들의 욕심과 속물성, 순진함이 배어 있는 남자는 언제나 신애 곁에 묵묵히 서 있다. 자신처럼 평범하지 않은 여자를 바라보는 남자, 자신처럼 아파하는 여자의 곁을 지키고 있는 남자는 운명을 어떻게 헤쳐갈까. ■가비(SBS 일요일 밤 11시 50분) 1896년은 고종(박희순)이 러시아 공사관으로 피신해 대한제국을 준비하던 혼돈의 해였다. 러시아 대륙에서 커피와 금괴를 훔치다 러시아군에게 쫓기게 된 일리치(주진모)와 따냐(김소연)는 조선계 일본인 사다코(유선)의 음모로 조선으로 오게 된다. 따냐는 고종의 곁에서 커피를 내리는 조선 최초의 바리스타가 되고, 일리치는 그녀를 지키기 위해 사카모토라는 이름으로 스파이 생활을 시작한다. 그리고 그들은 사다코로 인해 은밀한 고종 암살 작전에 휘말리게 되는데….
  • “유엔, 北인권 모든 사법적 수단 동원 해결”

    “유엔, 北인권 모든 사법적 수단 동원 해결”

    “유엔의 창조성을 과소평가하지 말라.” 유엔 북한인권조사위원회(COI) 조사차 일본을 방문한 마르주키 다루스만(69) 유엔 북한인권특별보고관은 10일 일본 도쿄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북한 인권 문제를 유엔이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사법적 수단을 통해 해결할 것”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인도네시아 검찰총장 출신인 그는 지난해 5월부터 유엔 북한인권특별보고관으로 임명돼 COI 보고서 작성에 관여했다. 지난달 28일 유엔 인권이사회는 1년간의 조사를 거쳐 내놓은 COI 보고서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 제출하고 북한의 인권 침해 가해자들을 국제 사법 체제에 회부하는 것을 내용으로 하는 북한인권결의안을 채택했다. 이사회는 이 자리에서 다루스만 보고관의 임기도 1년 연장했다. 다루스만 보고관은 “이번 보고서를 통해 북한 내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인권 침해 실태가 종합적으로 전 세계에 알려졌다”면서 “유엔이 최근 주창한 ‘인권 우선’ 이니셔티브를 통해 그동안 유엔의 각 기관에서 개별적으로 담당했던 북한 관련 문제를 한데 모아 이 문제를 실질적으로 해결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를 위해 유엔 안보리에서 북한인권결의안을 채택한 뒤 국제사법재판소(ICC)에 회부하는 안이 거론되고 있지만 전문가들은 안보리 상임이사국인 중국이 거부권을 행사할 가능성을 제기하고 있다. 이에 대해 다루스만 보고관은 “ICC 회부가 최우선이지만 상임이사국의 거부권이 나올 경우 특별 법정도 가능하다. 특별 법정은 ICC에 비해 다룰 수 있는 범죄의 범위가 넓다는 장점이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17일 유엔 안보리가 비공식 협의 방식인 ‘아리아 방식’을 통해 북한 인권 문제를 논의한다”면서 “안보리 상임이사국에 북한 인권과 관련해 폭넓은 설명을 하면서 ICC 회부를 위한 분위기를 조성하겠다”고 말했다. 지난 8일 방일한 다루스만 보고관은 기시다 후미오 외무상, 후루야 게이지 납치문제담당상을 비롯해 일본인 납치 피해자 가족, 시민단체 관계자 등 북한의 일본인 납치 문제에 대한 조사를 진행했다. 글 사진 도쿄 김민희 특파원 haru@seoul.co.kr
  • [기고] 한·일, 이젠 갈등 접어야/엄호열 동아시아문화교류협회 고문

    [기고] 한·일, 이젠 갈등 접어야/엄호열 동아시아문화교류협회 고문

    최근 국내 일본인 관광수입이나 일본 기업의 한국 투자 등 일본과 관련된 수익이 감소되고 있다는 기사들이 자주 눈에 띈다. 경영인으로서 악화된 한·일 관계가 한국 국민에게 어느 정도 심각한 악영향을 끼치고 있고, 일본 및 일본 문화에 대한 이미지와 관심이 얼마나 저하돼 있는지를 파악하기 위해 지난달 15일 ‘코리아 리서치’에 여론조사를 의뢰했다. 조사는 전국 19~60세 1000명을 대상으로 진행됐다. 조사 결과는 의외로 양호한 편이었다. 78.0%가 한·일 간의 ‘정치외교적인 대립’과 ‘경제·문화·민간교류’는 구분해 생각하고 인식해야 한다’고 답변했다. ‘한·일 양국이 서로 돕고 협력하는 관계로 발전하는 것이 좋다고 보십니까’라는 설문 항목에도 88.3%가 ‘그렇다고 본다’고 답했다. 영토문제나 역사문제는 일본 측의 끊임없는 노력을 통해 개선돼야 한다. 그러나 이 문제들을 추궁하며 생기는 갈등으로 인해 한·일 교류가 전면적으로 정체된다면 이 또한 국익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게 이번 조사를 통해 드러난 한국 국민의 생각이다. 한국인들은 일본 정부의 한국 관련 발언이나 태도를 심히 유감스럽게 생각하고 우려하는 것이지, 일본이나 일본인 자체를 싫어하는 것은 아닌 것으로 이번 조사 결과 명백히 밝혀진 셈이다. 일본 측 분위기는 어떨까. 3월 초 일본에 출장갔을 때, 일본 사회에서 유행하는 혐한 상황을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혐한 서적과 그에 관한 보도가 현저히 늘어났고, 일류 주간지조차 혐한 특집 기획물을 내놓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전에 없던 사회적 분위기에 이의를 제기해야 할 중도 언론마저도 입을 다물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앞으로 일본 사회에서 혐한이 계속 확산되고, 많은 일본인이 혐한 의식에 물들어 간다면, 대다수의 한국인도 혐일로 돌아설 것이다. 그렇게 되면 한·일 관계는 양국 국민들이 대립하며 증오하는 상황으로 치달으며 돌이킬 수 없는 관계가 될 것이다. 내년 2015년은 ‘한·일수교정상화 50주년’이다. 지금의 한·일관계는 반세기 동안 양국의 국민이 착실히 쌓아온 친선의 노력이 단박에 무너지기 직전까지 몰려 있는 상황이다. 한국 내 일본 전문가들도 “이번 코리아리서치 조사에는 비교적 긍정적인 결과가 나오긴 했지만, 앞으로 지금과 같은 한·일 갈등이 지속되고 일본 내 혐한 현상이 확산된다면 우리 국민들의 대일 의식 또한 크게 악화될 것으로 본다”고 우려했다. 한·일 간의 갈등과 문제들은 반드시 해결돼야 한다. 그러나 해결해야 할 현안들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그중 어떤 것도 단박에 풀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는 데 고민이 크다. 앞으로도 한·일 갈등은 계속 되풀이될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기나긴 갈등의 시대’에 양국 국민들이 정치외교적인 대립과 경제·문화·민간교류를 구분해 인식하는 게 매우 중요하다. 한국과 일본 국민들이 이러한 현명한 자세를 취했을 때만이 큰 차원에서 두 나라 간의 국익 손실과 소모를 줄이고 양 국민 간 격앙된 감정을 제어할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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