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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북·일 납치 재조사 합의 이후] 美·中만 보다 日에 뒤통수… 공식입장도 심야문자로 부랴부랴

    [북·일 납치 재조사 합의 이후] 美·中만 보다 日에 뒤통수… 공식입장도 심야문자로 부랴부랴

    북한과 일본이 지난 29일 저녁 일본인 납북 문제 재조사와 대북 독자제재 완화 등의 합의안을 전격 발표하기 직전까지도 우리 정부의 외교안보 라인은 구체적 내용을 파악하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한반도 안보 상황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대북 제재 해제 문제가 북·일 간 논의되는 상황에서도 사전에 이상 신호를 감지하지 못했고 북·일이 어떤 시나리오를 갖고 움직일지 예측하지 못하는 등 정보력 부재를 드러냈다는 평가다. 정부 관계자는 30일 북·일 간 제재 해제 방안 등을 파악한 시점을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북·일 회담 내용을 예상했고 (합의 등의) 여러 가능성도 열어 놓고 있었다”며 곤혹스러워했다. 그러면서도 정부는 이날 여러 관계자들의 입을 통해 미국도 한국과 마찬가지로 발표가 임박해서야 통보를 받았다고 해명하는 데 급급했다. 한·미가 알게 된 시점이 거의 시차가 없다는 점도 강조됐다. 우리 외교력의 문제가 아닌, 일본 정부의 투명하지 않은 외교가 문제라는 데 무게를 둔 셈이다. 일본 정부는 29일 오후 아베 신조 총리의 기자회견이 거의 임박한 시점에서 우리 측에 발표문을 전달했다. 그날 낮까지도 외교부는 “별다른 내용이 없다”는 입장이었다. 북·일 회담이 진행된 스웨덴 스톡홀름 현장을 주시했던 국가정보원과 현지 공관의 사전 관련 보고도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실무 부처 상황이 이렇다 보니 청와대도 29일 오후 늦게 예정에 없던 아베 총리의 기자회견 소식이 전해지자 일본 측 발표 내용을 탐문했다는 후문이다. 물론 북한과 일본이 양국 최고지도자의 재가를 받기 전까지 철저히 보안을 유지한 탓도 있다. 북·일 협상 장소를 스웨덴으로 택한 것도 한국과 중국을 의식한 행보로 풀이된다. 중국은 북·일 어느 쪽에서도 사전 설명을 받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미 국무부 젠 사키 대변인은 29일(현지시간) 정례 브리핑을 통해 북·일 합의 내용을 “미리 전달받았다”고 확언했다. 윤병세 외교부 장관은 29일 밤 예정에 없던 대책회의를 주재했고, 우리 정부의 공식 입장은 이날 밤 11시 53분 외교부 출입기자들에게 단체 문자 메시지로 발송됐다. 정부 관계자는 “대북 공조에 문제가 있었다고 평가하기는 이르다”며 “중요한 건 일본이 앞으로 북한과의 진행 상황을 한·미와 사전에 투명하고 충분하게 협의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안동환 기자 ipsofacto@seoul.co.kr
  • [사설] 北·日 합의 노림수 따져보고 대응책 서둘러야

    북한과 일본이 일본인 납북자 실태에 대한 전면 재조사와 일본의 대북 제재 해제 등에 전격 합의했다. 양측은 한발 더 나아가 북·일 국교 정상화 및 일본의 대북 인도적 지원까지 언급했다. 일본은 그제 아베 신조 총리가 이 같은 내용을 직접 발표함으로써 극적인 효과를 높이기까지 했다. 이번 합의로 일본은 납북자 문제를 조사할 북한 특별조사위원회의 활동이 대략 3주 후쯤 시작되는 것을 확인하는 대로 북한에 대한 독자적인 제재를 풀게 된다. 일본의 대북 제재가 해제되는 것은 8년 만이다. 문제는 그동안 ‘전략적 인내’를 키워가며 북핵 문제 해결에 합심 전력해 온 국제사회의 노력이 자칫 물거품이 될 수도 있다는 점이다. 우리는 북핵 억지를 위한 한·미·일 3각 공조체제에 켜진 ‘빨간불’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물론 북한으로 끌려간 일본인 납북자나 그 가족의 고통을 해결하는 것은 일본 정부의 기본 책무이긴 하다. 하지만 왜 하필 합의 시점이 지금이냐는 것이다. 핵개발과 경제발전을 동시에 추진하는 ‘핵·경제 병진’을 내세운 북한 김정은 정권은 올 초부터 제4차 핵실험을 예고해 왔다. 또한 ‘장성택 처형’ 이후 체제 내부 단결을 위해 연일 대남 비방에 나서며 대외적 도발의 강도를 높이고 있다. 국제사회의 제재가 장기화되면서 북한 체제가 느끼는 압박감은 한층 높아지고 있는 상황이다. 6자회담 재개에 앞서 진정성 있는 비핵화 조치를 취하라는 국제사회의 압박이 워낙 공고한 까닭에 김정은 정권은 극도의 초조감에 시달리고 있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런데 일본이 덥석 손을 잡아줬다. 일본의 제재가 풀리면 막혀 있는 돈줄도 트일 것이다. 북한 입장에선 마른하늘에 단비가 될 수도 있다. 아베 정권이 그걸 모를 리 없다. 북한이나 일본 모두 외교적 고립을 탈피하기 위해 손을 맞잡는 데 의기투합했을 수도 있겠다. 우리 정부는 어떻든 뒤통수를 맞은 셈이다. 함께 북한을 압박해야 할 일본이 돌연 한·미·일 3각공조에서 이탈함으로써 북핵 공조에는 상당한 균열이 불가피해졌다. 일본은 유엔 차원의 제재는 유지하면서 일본이 독자적으로 취했던 조치만 해제할 것이라고 의미를 축소했지만 북한에 잘못된 신호를 준 것만은 분명하다. 그 돈으로 북한이 무엇을 하겠는가. 이제 문제는 후속 대응책이다. 북·일 양측의 노림수를 면밀히 따져보고, 양측 합의가 북핵 협상에 미치는 영향력 등을 철저하게 점검한 뒤 국제공조의 새로운 모멘텀을 찾아내야 한다. 일본에도 북한과의 협력이 인도적 차원에 국한하도록 미국과 한목소리로 강력한 메시지를 보내야 한다. 이를 위해 현재 공석 상태인 국가안보실장을 비롯해 외교안보 라인의 재정비를 서둘러 마쳐야만 할 것이다.
  • [북·일 납치 재조사 합의 이후] 美 “납치문제 투명한 방법 해결 노력 지지” 中 “대화 통한 관계개선 지역 평화에 도움”

    북한과 일본이 일본인 납북 문제 재조사에 합의한 데 대해 미국 정부는 “투명한 방법으로 납치 문제를 해결하려는 일본의 노력을 계속 지지한다”고 밝혔다. 젠 사키 국무부 대변인은 29일(현지시간) 브리핑에서 “일본을 포함해 우리의 동맹 및 파트너 국가들과 긴밀하게 협력하고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합의 발표 전 일본으로부터 통보를 받았느냐는 질문에 사키 대변인은 “미리 전달받았고 (일본 측과) 정기적으로 접촉하고 있다”고 답했다. 그는 일본의 독자적인 대북 제재 해제 방침에 대해서는 “(일본 측의) 계획에 대해 어떤 확인도 받지 못했다”며 일본 정부에 확인하라고 덧붙였다. 겉으로는 북·일 간 납치자 문제 협상 합의를 이해하면서도 속으로는 불편한 속내를 내비친 것으로 풀이된다. 중국도 겉으로는 원칙적인 입장을 재확인했다. 친강(秦剛) 외교부 대변인은 30일 정례 브리핑에서 북·일 간 합의에 대한 중국의 입장을 묻는 질문에 “우리도 관련 보도를 봤다”면서 “양측이 대화를 통해 상대의 우려를 해결하고 관계를 개선하는 것은 지역의 평화와 안정에 도움이 된다고 본다”고 말했다. 중국 정부는 지난 3월 베이징에서 북·일 정부 간 공식 협상 계획이 발표된 직후에도 외교부 브리핑을 통해 양측의 관계 개선을 희망한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6자회담 재개를 바라는 중국 입장에서는 북한과 관련국 간 관계 개선을 기대해 왔다. 그러나 중·일 관계가 최악인 때에 북·일 관계 개선을 추진하는 것은 달갑지 않다는 점에서 이를 바라보는 심기가 편하지만은 않을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워싱턴 김미경 특파원 chaplin7@seoul.co.kr 베이징 주현진 특파원 jhj@seoul.co.kr
  • 불쑥 가까워진 북·일… 한·미·일 對北 3각 공조 균열 우려

    불쑥 가까워진 북·일… 한·미·일 對北 3각 공조 균열 우려

    북한과 일본이 29일 일본인 납치 피해자 전면 재조사와 대북 독자 제재 해제 등의 북·일 합의안을 발표한 데 대해 우리 정부는 한·미·일 대북 3각 공조 체제에 미칠 파장 등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북한이 5·24조치 해제 불가 등 남북 관계가 꽉 막힌 사이 일본을 돌파구로 활용하고 나섰다는 점에서 정부의 대북 정책 운용에도 상당한 부담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서울신문과의 통화에서 “일본 정부가 아베 신조 총리의 기자회견 직전인 이날 오후 주한 일본대사관을 통해 우리 측에 북·일 교섭 내용을 사전 설명했다”면서도 “북한의 4차 핵실험 동향이 감지되는 시점에서 북한에 대한 국제사회의 단합된 행동에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우려했다. 정부는 지난해 5월 아베 총리의 자문역인 이지마 아사오 내각관방 참여가 돌연 방북할 때부터 “한·미·일 대북 공조에 도움이 되지 않으며 한·미와 협의해야 한다”는 분명한 입장을 전달해 왔다는 점에서 일본의 독자적 행동에 대한 불편한 기색도 감지된다. 윤병세 외교부 장관도 지난 2월 존 케리 미국 국무장관과의 공동 기자회견에서 “북·일 접촉이 6자 당사국 간 충분한 사전 협의 없이 이뤄진다면 북한과 관련해 유지된 한·미·일, 6자 간 협조에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일각에서는 아베 총리의 ‘자국 이기주의’, 북·일간 ‘정치적 불륜’이라는 비판도 나온다. 이번 합의는 북·일 간 정치적 이해가 맞아떨어진 결과로 평가된다. 아베 정권은 납치 피해자 재조사를 이끌어 내며 자국의 핵심 현안을 국내의 정치적 카드로 쓸 수 있다. 북한은 최고지도자 김정은의 외교적 업적으로 선전하며, 한·미·일 공조 체제를 약화시켜 고립을 탈피할 수 있다. 제재 해제를 통해 일본 내 북송 재일교포 가족들의 대북 송금과 북한 만경봉호 재취항으로 물자 반·출입이 가능해지는 등 경제적 실익도 적지 않다. 일본이 북·일 관계의 실질적 진전을 꾀하며 대북 공조 구도에서 이탈할 여지도 있다. 북·일 양자가 이번에 국교 정상화 실현 의사를 재확인한 만큼 2002년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의 정상회담에서 합의된 평양선언을 기초로 북·일 국교 정상화 교섭을 본격화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북한 역시 국교 정상화가 이뤄질 경우 일본으로부터 막대한 배상을 받을 수 있다는 기대가 커 대일 외교에 적극 나설 공산이 크다. 동북아 구도상으로 볼 때 북한이 대일 관계 개선에 속도를 내는 건 현재의 남북 관계에 대한 압박뿐 아니라 한국과 밀착 면을 넓히고 있는 중국에 대한 ‘시그널’로도 해석된다. 중·일 간 대립이 격화되는 상황에서 북한이 일본 쪽으로 다가서는 건 시진핑 체제 출범 이후 냉각된 북·중 관계에 대한 불만의 메시지이자 북한식 ‘이이제이’(以夷制夷·오랑캐로 오랑캐를 제압) 외교술이라는 시각이다. 안동환 기자 ipsofacto@seoul.co.kr 안석 기자 ccto@seoul.co.kr
  • 아베, 동북아 외교 고립 돌파구…김정은, 꽉 막힌 대외관계 물꼬

    29일 북한이 일본인 납치 피해자에 대한 전면 재조사에 응하기로 한 것은 파격적인 조치로 받아들여진다. 이는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그만큼 북·일 관계 정상화에 대해 강한 의지를 보이고 있음을 방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이날 도쿄 총리관저에서 기자들에게 납치 문제 재조사를 공식 표명하며 “아베 정권에서 납치 문제의 전면 해결은 중요한 과제 중 하나다. 모든 납치 피해자 가족이 자신의 손으로 자녀를 포옹할 날이 올 때까지 우리의 임무는 끝나지 않는다는 결의를 가지고 노력할 것”이라며 “(이번 재조사가) 납치 문제 해결을 위한 첫걸음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일각에서는 북한이 2008년 8월 열린 북·일 실무자 협의에서 납치 문제 재조사 조기 개시에 합의한 뒤 재조사위원회 설치 연기를 통지하고 핵실험을 강행한 것을 상기시키며 북한의 ‘진정성’에 의문을 제기하기도 한다. 그러나 평양 사정에 밝은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조선총련) 관계자는 “이번 협의에서는 중대한 진전이 있을 것으로 보이므로 주시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가 인정한 납치 피해자 중 귀국하지 않은 12명(총 17명 중 2002년에 5명 귀국)뿐 아니라 납치 가능성이 있는 특정 실종자도 대상에 포함한 것은 이례적인 조치라는 것이다. 일본 정부는 특정 실종자의 규모를 860명으로 파악하고 있다. 일본인 납치 피해자 전면 재조사가 김 제1위원장과 아베 총리의 이해관계를 모두 충족시킨다는 점도 이번 재조사에 진전이 있을 것으로 예상되는 이유 중 하나다. 김 제1위원장으로서는 6자회담이 유명무실해진 상황에서 미국과의 관계 개선에 진전이 없고, 박근혜 대통령의 ‘통일 대박론’으로 남한과의 관계 개선도 불투명한 상황에서 대일 관계 진전을 통해 대외 관계의 물꼬를 터 보겠다는 판단을 한 것으로 보인다. 장성택 전 북한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의 숙청으로 중국과의 관계도 소원해지면서 일본의 대북 제재 완화, 나아가 국교 정상화를 통해 경제 발전을 꾀하겠다는 계산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아베 총리로서도 한국·중국 등 주변국과의 관계가 경색된 상황에서 납치 문제 해결을 통해 동북아에서의 외교적 고립에서 탈피하는 것은 물론, 역사에 남을 만한 실적을 남기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다는 판단을 했을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앞으로의 과제 역시 만만치는 않다. 2007년 평양에서 열린 남북 정상회담에서 김 국방위원장이 노무현 당시 대통령에게 “일본인 납치 피해자는 더 없다”고 발언한 바 있는데, 이런 발언에 대해 김 제1위원장이 어떻게 돌파하며 일본과의 관계를 풀어 나갈지가 가장 큰 과제다. 일본으로서는 가장 먼저 해결해야 할 대표적인 피해자 요코다 메구미 문제도 변수다. 도쿄 김민희 특파원 haru@seoul.co.kr
  • 北·日 “납치 재조사… 독자 제재 해제”

    北·日 “납치 재조사… 독자 제재 해제”

    북한과 일본 양측이 일본인 납치 문제 재조사에 합의했다. 일본은 납치 피해자 재조사가 시작되는 단계부터 대북 독자 제재를 해제하고 대북 지원을 검토하기로 했다. 북한과 일본은 지난 26~28일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열린 국장급 협의에서 이같이 약속했다고 29일 오후 동시 발표했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이날 도쿄 총리관저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북한이 납치 피해자와 납치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이른바 특정 실종자에 대해 포괄적인 전면 조사를 하겠다고 약속했다”며 “특별조사위원회가 설치돼 조사를 시작할 것”이라고 밝혔다. 특별조사위원회 설치는 3주가량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따라 일본은 북한에 대한 독자적 제재 조치를 해제하고 적절한 시기에 인도적 지원을 검토할 것이라고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이 밝혔다. 일본은 유엔 안보리의 결의에 근거한 제재에 더해 독자적인 제재 조치로 ▲북·일 간 인적 왕래 규제 ▲송금 및 휴대금액 제한 ▲인도주의 목적의 북한 국적 선박 입항 금지 등의 조치를 취하고 있다. 북한 조선중앙통신도 이날 협의 결과와 함께 “쌍방은 조·일 평양선언에 따라 불행한 과거를 청산하고 현안 문제를 해결하며 국교 정상화를 실현하기 위하여 진지한 협의를 진행하였다”고 보도했다. 이어 “호상 희망하는 관계자와의 면담과 관계 장소에 대한 방문을 실현시켜 주며 관련 자료들을 공유하면서 적절한 조치를 취하기로 하였다”고 밝혀 양국 간 추가적인 협의가 있을 것임을 시사했다. 도쿄 김민희 특파원 haru@seoul.co.kr 서울 안석 기자 ccto@seoul.co.kr
  • 日 오리콘 프로듀서 톱10에 이수만 대표 3년 연속 뽑혀

    日 오리콘 프로듀서 톱10에 이수만 대표 3년 연속 뽑혀

    SM엔터테인먼트의 이수만 프로듀서가 일본 ‘오리콘 연간 히트 랭킹-프로듀서 톱 100’에 3년 연속 10위권에 이름을 올렸다. 27일 SM에 따르면 이 프로듀서는 일본 대표 음악사이트 오리콘이 발행하는 주간지 ‘오리지널 컨피던스’가 매년 발표하는 ‘오리콘 연간 히트 랭킹-프로듀서 톱 100’에서 2011·2012년 싱글 부문 3위에 이어 지난해 결산 순위에서도 싱글 부문 6위를 차지했다. 3위 기록은 이 차트가 발표된 이래 해외 프로듀서 사상 최고 순위였으며, 이번 6위 기록도 일본인을 제외한 해외 프로듀서 중 가장 높은 순위다.
  • 청나라 문인이 달아준 비평에… 박제가는 감격했네

    청나라 문인이 달아준 비평에… 박제가는 감격했네

    18세기 한중 지식인의 문예공화국/정민 지음/문학동네/720쪽/3만 8000원 지난해 2월 27일 낮 12시 미국 하버드대 옌칭도서관 세미나실에서 한문학자 정민(한양대 국문과) 교수는 조촐한 연구발표회를 가졌다. 그가 방문교수로 와서 지난 6개월간 발굴한 ‘하버드 옌칭도서관의 후지쓰카 컬렉션’에 대해서였다. 제임스 청 옌칭도서관장과 사서 등 도서관 관계자들과 한국학, 일본학, 중국학 연구자 등 세미나실에 모인 사람들 중 후지쓰카가 누군인지 아는 이는 없었다. 후지쓰카 지카시(1879~1948)는 훗날 국보 180호가 된 추사의 세한도(歲寒圖)를 소장하다 태평양전쟁 끝 무렵 서예가 소전 손재형에게 아무 대가 없이 넘겨줬다는 일화의 주인공이다. 청(淸)조의 학술과 문예가 어떻게 조선에 전해졌는지, 두 나라의 학자들이 어떻게 교유했는지를 연구하는 데 푹 빠져 평생 엄청난 양의 서적을 중국과 조선에서 수집한 인물이다. 나고야 대학의 전신인 제8고등학교 교수를 거쳐 베이징 파견 연구학자, 일제 강점기 경성제국대학 교수를 지낸 그는 특히 추사에 매료돼 18~19세기 한·중 지식인의 교류와 관련된 자료는 고서부터 메모, 그림까지 무엇이든 수중에 넣었다. 1940년 정년을 맞은 그는 수집한 사료들을 가지고 일본으로 돌아갔다. 그가 모으거나 베껴 쓴 책들의 일부가 우여곡절을 거쳐 미국 하버드대 옌칭도서관까지 흘러들어 갔다. 60여년간 옌칭도서관 선본실 서가에 잠들어 있던 이 책들은 2012년 8월 방문학자로 옌칭연구소를 찾은 정 교수에 의해 빛을 본 것이다. 이날 발표는 “중국에 대해 연구하다 조선에 빠진 일본인 학자가 소장하고 연구했던 책들이 하버드 옌칭도서관에 오게 된 경위와 그 자료의 가치를 한국인 학자가 미국에서 설명하는 다국적 주제였다”고 정 교수는 요약한다. 신간 ‘18세기 한중 지식인의 문예공화국’은 정 교수가 열정적 자료 탐구와 남다른 지식 생산력으로 시공을 넘나들며 지식의 바다에서 길어 낸 한·중 지식인의 교류사다. 문학동네가 펴내는 ‘우리 시대의 명강의’ 6번째 책으로, 정 교수가 지난해 3~12월 문학동네 네이버 카페에 매주 연재한 글 40편을 모았다. ‘문예공화국’은 17세기 후반부터 18세기에 유럽 각국 인문학자들이 라틴어를 매개로 문화와 언어의 차이를 넘어 서로 소통하던 지적 공동체를 일컫는다. 물리적 국경을 초월한 상상 속의 문예공화국 안에서 글이 오가며 토론하는 가운데 지식인들 사이에 끈끈한 연대가 싹텄고, 이는 실질적인 계몽주의의 토대가 됐다. 18세기 청나라와 조선의 지식인들은 공통 문어(文語)인 한문을 사용해 필담으로 시와 학문을 나누고 우정을 다지며 또 다른 문예공화국을 형성했다. 동심원을 그리듯 점점 깊어지고 넓어진 지식 네트워크의 시초는 북학(北學)의 기틀을 다진 담헌 홍대용(1731~1783)이다. 그는 숙부 홍억의 자제군관 자격으로 연행사(燕行使)가 되어 1765년 베이징에 갔다가 향시를 보러 온 절강의 선비인 엄성, 육비, 반정균 등과 우연히 만나 사귀며 천애지기를 맺는다. 정 교수는 옌칭도서관에서 후지쓰카가 자신의 전용원고지에 베껴 쓴 엄성의 ‘철교전집’과 엄성·육비·반정균의 향시 답안지를 따로 모아 묶은 ‘절강향시주권’을 우연히 발견하면서 조선과 청조 지식인의 교류사를 본격적으로 파고들기 시작했다. 홍대용이 막을 열고 박제가가 발전시킨 18세기 한·중 문예공화국은 당시 양국 간 정치적 위계와 무관하게 평등한 지식 네트워크의 모습으로 지속적으로 확장했음을 후지쓰카가 수집한 필사본 ‘한객건연집’ 등 사료들은 증명하고 있다. 1776년 11월 연행길에 오른 유금(柳琴,1741~1788)은 연암 그룹의 문우인 이덕무·박제가·유득공·이서구의 시를 모은 ‘건연집’(巾衍集) 을 가지고 ‘월동황화집’이라는 시집을 쓴 청 조정의 관리 이조원을 찾아가 서문과 비평을 부탁했다. 이조원은 우연히도 홍대용이 오래전 우정을 맺은 반정균과 가까운 사이였다. 이조원·반정균 두 사람은 조선문인 네 사람의 시집에 ‘한객건연집’이라는 제목을 달아주고 각 시에 정성껏 비평을 달아주었다. 청색, 적색 글씨로 우아하고 정중하게 쓰인 비평을 받아든 박제가 등은 감격을 금치 못한다. 상대방의 지적 역량을 확인하고 인정하는 가운데 만남이 만남을, 우정이 우정을 낳는 과정을 그들의 후학인 정 교수는 방대한 지식과 치밀한 자료 탐색, 감성적인 스토리텔링으로 한 장면씩 되살려낸다. 옌칭도서관을 뒤져 후지쓰카 컬렉션을 하나둘씩 찾아내고, ‘18세기 한·중 지식인의 문예공화국’이라는 아름다운 그림을 완성해가면서 어떤 때는 “좋아 펄쩍펄쩍 뛰며 연구실을 뱅뱅 돌았다”는 정 교수의 모습을 상상해 본다. 공자가 논어 첫머리에서 말했던 학문의 즐거움이란 바로 이런 것일 게다. 함혜리 선임기자 lotus@seoul.co.kr
  • 의료 한류 열풍

    의료 한류 열풍

    # 지난해 몽골에서 태어난 남자아이 월강다미르는 출생 직후 폐렴 및 폐동맥고혈압을 동반한 심실중격결손이란 진단을 받았다. 시급히 심장수술을 받아야 했지만, 몽골에는 이런 고난도 수술을 할 수 있는 의사가 없었다. 다미르의 부모는 수소문 끝에 한국의 대학병원에서 수술을 받기로 하고 현재 수술 날짜를 기다리고 있다. # 아랍에미리트연합(UAE)에서 온 술탄알자비(58)는 신장이식 수술을 받기 위해 자신이 다니던 UAE의 군 병원과 중국의 모 대학병원을 전전하다 최근 서울의 한 대학병원에 입원했다. UAE에는 신장이식을 할 수 있는 병원이 없었고, 중국의 대학병원은 수술을 거부했다. 마지막으로 한국을 찾은 이 남성은 무사히 수술을 받고 회복 중이다. 월강다미르와 술탄알자비처럼 의료서비스를 이용하기 위해 한국을 찾은 해외 환자는 지난해 21만명을 기록했다. 이에 따른 진료 수입만 4000억원, 해외 환자의 가족들이 한국에 머무는 동안 쓴 체류비 등 연계수익을 포함하면 한 해 수천억원을 벌어들인 셈이다. 드라마·케이팝에만 한류가 있는 게 아니라 의료에도 한류 열풍이 불고 있다. ●1인당 평균 진료비 186만원 내국인의 1.8배 보건복지부가 최근 외국인 환자 진료기관의 사업실적을 집계한 자료에 따르면 해외 환자는 2009년 이후 꾸준히 늘어 연평균 36.9%의 증가율을 보였다. 국적별로는 중국인이 5만 6000여명(전체 26.5%)으로 가장 많았고, 미국, 러시아, 일본, 몽골 순으로 나타났다. 정부는 2020년까지 외국인 환자 100만명을 유치한다는 계획이다 이들이 한국의 의료서비스를 이용하기 위해 지출한 금액은 상상을 초월한다. 1인당 평균 진료비는 186만원으로, 내국인 1명이 한 해에 지출하는 진료비 102만원의 1.8배 정도 되는 규모며 최근에는 1억원 이상 고액환자(117명)도 2012년에 비해 약 43.0% 증가했다. 고액환자 대부분은 산유부유국인 UAE 국적자다. 지난해 한국을 방문한 UAE 환자는 1151명으로 아직 숫자는 적지만 정부 간 환자송출 협약에 힘입어 2012년에 비해 그 수가 237% 증가했고 앞으로도 더 늘어날 전망이다. 이들은 1인당 평균 1771만원을 진료비로 지출했다. 국가별 1인당 진료비 1위다. UAE에서 온 중증환자들은 이보다 6배 많은 평균 6000만원을 한국의 의료서비스를 이용하는 데 쓴 것으로 조사됐다. 환자 본인뿐만 아니라 함께 온 가족들이 지출하는 비용도 만만치 않다. ●中·美·러·日·몽골 순… 종합병원 유치 경쟁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UAE 환자의 경우 한국의 병원을 찾을 때 대개 4명 이상의 가족을 동반하는데, 이들이 한국에 머무는 동안 체류비와 쇼핑 등으로 지출하는 돈이 1억~1억 4000만원에 달한다”면서 “진료비를 포함해 1가족당 2억원 정도를 쓰고 있다”고 말했다. UAE 환자들은 진료비 전액과 가족 1명의 체류비를 자국 정부로부터 지원받는다. 평균 보름가량을 체류하지만 진료비와 체류비 부담이 없다 보니 씀씀이도 크다. 병원뿐만 아니라 정부 입장에서도 유치해야 할 VIP 중의 VIP인 셈이다. ●고액환자 대부분 UAE… 2년새 237% 증가 의료기술이 발전하지 않은 UAE는 선진 의료기술을 가진 국가와 환자 송출 협약을 맺고 정부 부담으로 한 해 1만여명의 환자를 해외로 보내고 있다. 북미, 유럽, 캐나다, 미국 등이 이미 UAE와 협약을 맺어 환자를 받고 있다. 한국은 후발 주자다. 정호원 복지부 보건산업정책과장은 “높은 의료기술과 서비스, 합리적인 가격면에서 한국이 다른 의료선진국에 뒤처진다고 할 수 없기 때문에 후발주자지만 충분히 경쟁할 수 있다”고 말했다. 정부는 카자흐스탄, 몽골, 우즈베키스탄 등과도 국가 간 환자송출 협력을 진행 중이다. 이 가운데 카자흐스탄은 한국에서 환자 1인당 평균 456만원을 진료비로 지출하는 국가별 1인당 진료비 2위 국가다. 대형 병원들은 이들 돈 많은 해외 환자를 잡기 위해 치열한 유치 경쟁을 벌이고 있다. 상급종합병원의 경우 아랍어에 능통한 의료 코디네이터를 두는 것은 물론 문화적·종교적 특수성을 고려해 아랍식 식단, 환자의 기도 시간을 배려한 회진 및 치료, 아랍어권 TV채널 서비스 등을 제공하기도 한다. 외국인 전용 병동을 따로 두고 병원 내 기도실을 운영하는 곳도 있다. 기도실 이용이 여의치 않은 환자의 가족들을 위해 서울 이태원에 위치한 이슬람 사원까지 교통 편의도 제공한다. 외국인 특화 서비스는 UAE 환자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의 환자 모두에게 제공된다. 그중 환자 전용 식단은 호텔의 룸서비스를 방불케 한다. 외국인 환자들이 자기 나라의 언어로 된 전용 메뉴판에서 메뉴를 고르면 원하는 시간에 맞춰 식사를 할 수 있도록 음식을 제공하는 시스템이 갖춰져 있다. 대개 입국 후 시차 등으로 제때 식사를 하지 못하는 환자들이 많기 때문에 40분 전에만 음식을 주문하면 새벽 2시까지 음식을 제공하는 병원도 있다. 환자 가족을 위해 고급 숙박시설도 연계해 운영한다. ●아랍식 식단·기도시간 배려 회진도 다르게 이 밖에 대형병원들은 신속한 예약·진료수납을 위한 원스톱 서비스, 진료비 후불 계약 등 외국인 환자만을 위한 다양한 서비스를 확대하고 있다. 한국과 미국 양국에서 의사 면허와 전문의 자격을 취득한 교수들을 외국인 환자 이용률이 높은 진료과목에 전진 배치시켜 문화와 정서적인 면까지 꼼꼼히 챙겨주기도 한다. 한국의 의료 수준을 홍보하기 위한 해외 의료진 초청 연수, 외국 현지에서의 의료기술 전수 등도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한국의 의료기술을 직접 체험한 해외 의료진이 많을수록 환자 유치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중국과 러시아도 주목해야 할 나라다. 2012년에 비해 외국인 환자가 5만명이나 늘어난 데는 중국과 러시아 환자의 증가가 한몫을 했다. 중국 환자는 2012년 대비 72.5% 증가했고, 러시아 환자는 46.2% 늘었다. 지출한 총진료비는 중국이 1016억원으로 주요 국적 환자 가운데 1위고, 러시아는 879억원으로 환자 수 규모는 4위, 진료수입 규모로는 2위다. 특히 중국 환자는 40%가 성형외과를 찾을 정도로 성형 의료서비스 이용이 잦았고 내과, 피부과 진료도 선호했다. 러시아 환자는 내과, 검진센터, 산부인과, 일반외과, 피부과를 많이 이용한 것으로 나타났다. 러시아는 우리가 공을 들여 시설 투자를 많이 한 나라로, 환자 대부분이 의료관광 형태로 한국을 방문하고 있다. 가까운 일본의 환자들은 2011년까지만 해도 의료서비스를 이용하기 위해 한 해 2만명 이상 한국을 방문했지만 최근 몇 년 간 한·일 관계가 냉각되면서 꾸준히 감소하고 있다. 덩달아 일본인이 애용했던 한방 쪽 외국인 환자 수도 줄고 있다. ●일부 성형외과 브로커 고액 지불 부실 논란도 의료 한류는 한국 의료시장에 새로운 활로가 되고 있지만, 경쟁이 치열한 만큼 부작용도 적지 않다. 일부 성형외과가 해외 환자를 끌어오기 위해 고액의 수수료를 브로커에게 지불하고 부실 성형을 해 논란이 된 적도 있다. 정상적인 외국인 환자 유치 기관은 10~15%를 수수료로 받지만, 불법 브로커들은 2배가 넘는 30%를 수수료로 요구하기도 한다. 수수료 상한선이 법으로 정해져 있지 않다 보니 제재할 방법도 없다. 지난해에는 중국 국영 CCTV와 관영신문 인민일보가 한국의 성형관광 열풍을 보도하면서 바가지 상혼과 성형 부작용을 특집기사로 다뤄 파장이 일기도 했다. 외국인 환자 수를 늘려 실적을 세우는 것보다 내실을 기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이현정 기자 hjlee@seoul.co.kr
  • [특파원 칼럼] 집단적 자위권 다시 보기/김민희 도쿄특파원

    [특파원 칼럼] 집단적 자위권 다시 보기/김민희 도쿄특파원

    “국민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서입니다.” NHK가 전국에 생중계한 30여분의 기자회견 내내 그는 이 말을 몇 번이고 반복했다. 지난 15일 집단적 자위권 행사 용인 방침을 공식화한 아베 신조 일본 총리 얘기다. 안보나 헌법 같은 어려운 말 대신 아베 총리는 단순한 논리로 대중에게 어필했다. 절묘한 선택이었다. 단순화는 힘이 있다.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에 대해 한국에서 널리 받아들여진 논리 역시 단순명쾌하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우익이다. 일본을 ‘전쟁할 수 있는 나라’로 만들고 싶어하기 때문에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추진하고 있다’는 정도로 정리된다. 유감스럽게도 이 논리는 한국에서 바라보고 싶은 측면만 받아들인 느낌이 있다.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 행사는 동북아 전체의 판을 뒤흔드는 ‘게임 체인저’다. 단순히 한·일 간 과거사나 아베 총리의 성향과 연관지으면 큰 그림을 보기 어렵다. 처음으로 돌아가보자. 아베 정권은 왜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추진할까. 물론 군사력 강화도 이유 중 하나일 것이다. 그렇다고 전쟁을 하고 싶어한다고 말하는 건 비약이다. 일본 내부에서는 동맹국의 전쟁에 휘말려 일본인의 피를 흘리는 것을 경계하는 분위기다. 그보다는 ▲미·일동맹 강화를 통해 중국을 견제하고 ▲국제사회 공헌을 통해 영향력을 확대, 제2차 세계대전 패전국에서 ‘보통국가’로 가는 초석을 쌓는다고 봐야 한다. 아베 총리와 자민당이 집단적 자위권 행사 추진을 서두르는 것은 연내 예정된 미·일 방위협력지침(가이드 라인) 재개정에 이를 반영하기 위해서다. 목적은 중국 견제다. 미·일 가이드 라인은 1978년 첫 제정 땐 소련, 1997년 개정 때엔 북한을 위협 요소로 상정했는데 이번에는 대상이 중국으로 바뀌는 것이다. 미·일 가이드 라인 재개정과 집단적 자위권 행사 용인을 통해 미국은 동북아 안보의 짐을 일본에 더 지우려 한다. 그동안 일본에서 PKO법(1992년), 주변사태법(1999년) 등이 만들어지면서 일본의 군사적 역할이 확대된 것도 미국의 필요에 의해 이뤄진 측면이 있다. 집단적 자위권과 함께 논의되는 집단안전보장을 통해 아베 정권은 유엔평화유지활동(PKO)에 참가하는 자위대의 역할 확대를 꾀하고 있다. 그동안 공적개발원조(ODA)처럼 한정적이었던 국제 공헌에 적극적으로 나섬으로써 ‘보통 국가’로 가는 데 다른 국가의 지지를 받으려는 복안이 깔려 있다. 이와 맥락을 같이하는 것이 일본의 ‘20년 숙원사업’인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 진출 시도다. 한국이 예의주시해야 하는 것은 이로 인해 요동칠 동북아 역학 구도다. 중국의 군사력 팽창에 일본이 집단적 자위권 행사 용인으로 맞불을 놓게 되면 동북아 지역의 긴장은 더욱 고조될 태세다. 전문가들은 열전(熱戰)의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한다. 한국의 입장을 정립하기 위해서는 시작 단계인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 논의가 어떻게 구체화하는지 지켜보는 것이 중요하다.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 행사는 한국에 득이 되는 경우도, 실이 되는 경우도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아울러 미·일동맹 강화가 한·미동맹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검토하는 작업도 필요하다. 전시작전통제권 전환, 미사일방어(MD)체계 가입 등 현안과 맞물려 있어 중요성은 더욱 크다. haru@seoul.co.kr
  • 손가락뼈 갉아먹는 호르몬? 희귀 의학 사례

    손가락뼈 갉아먹는 호르몬? 희귀 의학 사례

    지나친 호르몬 분비가 ‘손가락 골 파괴’로 이어진 희귀 의학 사례가 공개돼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지난 21일(현지시간), 국제 의학저널 뉴잉글랜드 저널 오브 메디슨(New England Journal of Medicine)에는 호르몬 과다분비가 골 파괴로 이어진 한 40대 남성 환자의 의학 사례가 게재됐다. 일본인으로 알려진 이 45세 남성의 손가락 엑스레이 사진을 보면 골밀도가 현저히 감소되어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와 관련해 미국 미네소타 메이요 클리닉 내분비학자 바트 클라크 박사는 해당 질환의 원인을 ‘부갑상선호르몬’의 과다분비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이 호르몬은 체내 칼슘 농도가 저하되면 부갑상선(parathyroid glands)으로부터 분비돼 혈액 속 칼슘 농도를 증가시키는 작용을 한다. 주로 뼈(bone)와 신장(kidney), 장(intestine)에 작용하는 호르몬이다. 문제는 이 호르몬이 특정 조건에 의해 과다 분비될 경우 칼슘, 인산, 골(骨)대사에 이상이 생기는 부갑상선 기능 항진증으로 이어질 위험이 높다는 것이다. 부갑상선호르몬이 증가하면 혈중 칼슘이 증가하고 인산은 감소하는데 이는 요로결석, 소화성 궤양 그리고 엑스레이처럼 골 파괴를 야기할 수 있다. 해당 남성의 부갑상선 호르몬이 과다 분비된 건 갑상선 땀샘에 자리한 양성종양 때문으로 추정된다. 이 종양이 필요 이상으로 부갑상선 호르몬 분비를 촉진시켜 이와 같은 골 파괴로 이어졌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다. 클라크 박사는 “양성종양이 손가락 골 파괴를 야기할 정도로 많은 양의 부갑상선 호르몬 분비를 촉진시킨 경우는 매우 드물다”며 “해당 사례는 부갑상선 기능 항진등과 관련되 가장 교과서적인 사례”라고 설명했다. 한편 해당 질환의 대한 치료는 크게 약물 치료, 수술 치료로 나뉜다. 약물치료는 부갑상선호르몬 분비를 억제시키는 칼슘유사체를 투입하는 방식으로 진행되며 수술 치료에는 부갑상선 절제술 등이 있다. 사진=New England Journal of Medicine 조우상 기자 wscho@seoul.co.kr
  • [김준의 바다 맛 기행] 멸치도 생선!… 부산 기장 ‘대멸’

    [김준의 바다 맛 기행] 멸치도 생선!… 부산 기장 ‘대멸’

    생선은 ‘말리거나 절이지 않은, 잡은 그대로 성한 물고기’로 회, 구이, 탕 등의 식재료로 사용할 수 있다. 그렇다면 멸치는 생선인가. 볶음, 조림, 국물을 우려내는 데 사용하는데 생선이라 하기도 뭐하고 아니라고 하기도 어색하다. 그렇다면 부산의 대변항이나 경남 남해의 미조항에서 멸치회, 멸치찌개, 멸치구이를 먹어보시라. 먹고 나면 생각이 바뀔 것이다. 그 주인공은 멸치 중에서도 크기가 10~15㎝에 달하는 ‘대멸’이다. 살이 부드럽고 통통해 지는 오뉴월이 제철이다. ●볶음·무침·국물용 등 쓰임새마다 크기 달라 멸치는 세멸, 자멸, 소멸, 중멸, 대멸 등 크기가 다양하다. 쓰임새도 볶음용, 무침용, 국물용, 젓갈용 등으로 다르다. 멸치를 좋아하는 일본인들은 지리, 가이리, 고바, 주바, 오바 등으로 구분한다. 그런데 놀라운 건 이들 멸치가 모두 한 종류라는 것이다. 다만 태어나고 자라는 시기가 다를 뿐이다. 멸치는 봄과 여름에 산란한다. 멸치 한 마리가 4000~5000개의 알을 낳는다고 하면 믿겠는가. 하긴 그 정도 낳지 않으면 상위 포식자는 물론 인간마저 불을 켜고 잡겠다고 달려드는 등쌀에 진즉 씨가 말랐을 것이다. 멸치는 산란 후 하루 이틀이면 부화를 한다. 그리고 이른 봄에 태어난 멸치의 경우 봄이 가기 전 어민들에게 기쁨을 줄 만큼 빠르게 자란다. 그만큼 생식주기가 짧다. 보통 물고기의 나이는 비늘을 보고 알아 내지만 비늘이 없는 멸치는 이석, 즉 귓속에 들어 있는 돌로 태어난 시기를 알아낸다고 한다. ●멸·메르치·멸따구·밀… 쓰임만큼 이름도 다양 멸치는 먹이를 따라, 산란할 장소를 찾아, 월동을 위해, 동해부터 서해까지 여러 해역을 회유한다. 그래서 부르는 이름도 멸, 메르치, 멸따구, 밀, 행어 등 다양하다. 겨울에는 제주도까지 내려갔다가 봄과 여름에 연안으로 접근해 산란하고 서해와 동해로 북상한다. 그리고 가을철에는 남해를 거쳐 남해 외해와 제주도로 내려온다. 이때 멸치를 먹고사는 갈치와 고등어, 돔, 농어 등이 뒤를 따른다. 심지어 상괭이나 돌고래도 자주 출몰한다. 결국 멸치가 있는 곳에 어장이 형성된다. 바다가 인간들의 식량창고가 아니듯이 멸치는 인간만이 즐기는 생선이 아니다. 그것이 해양생태계다. “에야나 차이야, 에야나 차이야.” 대변항과 미조항 끝자락에서 멸치를 터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수십년 멸치잡이 배를 탔던 대변항의 한 어부는 이 소리를 ‘아이고 죽겠네’라는 소리라며 웃었다. 이곳에서는 유자망을 이용해 멸치를 잡는다. 유자망은 폭은 10m에 불과하지만 길이는 무려 2㎞에 이르는 그물이다. 무게만 해도 1t에 달한다. 여기에 멸치가 주렁주렁 매달렸다고 상상을 해보자. 게다가 바닷물을 잔뜩 먹은 그물이다. 그 그물을 털어 멸치를 빼내는 일은 멸치잡이 중에서 가장 힘든 일이다. 그래서 힘이 아니라 요령과 ‘깡다구’로 하는 것이다. ●멸치잡이는 ‘깡다구’… 2㎞짜리 유자망으로 잡아 이때 손이 맞아야 한다. 소리에 따라 왼손과 오른손이 번갈아가며 장단을 맞춰야 서로 힘이 덜 들고 멸치도 잘 떨어진다. 멸치잡이 배는 10여명 선원이 작업을 한다. 어부들은 30, 40년은 기본이요, 50년 동안 배를 탄 사람도 있다. 새벽에 나가서 멸치 어군이 확인되면 투망을 하고, 한 시간 후 그물을 건져 항구로 돌아온다. 얼마나 빨리 어군을 확인하고 그물을 바다에 넣어서 멸치를 잡느냐가 선장의 능력이다. 단 한 번 그물질에 만선을 할 수도 있지만 빈 그물을 올릴 때도 있다. 어획량이 너무 작으면 배에서 그물을 턴 후 다시 투망을 하기도 한다. 이런 날은 멸치털이 작업이 새벽 2, 3시까지 이어지기도 한다. 다음 날 새벽에 출어를 해야 하기 때문에 배 안에서 잠을 자기도 한다. 글 사진 전남발전연구원 책임연구원 joonkim@jeri.re.kr ■어떻게 먹을까 오뉴월 15㎝ ‘대멸’ 대세… 기장 미역에 싸먹거나 천일염에 버무려 젓갈로 ‘기장’ 하면 양식 미역은 물론이고 ‘미역짬’이라 부르는 갯바위에서 뜯는 자연산 돌미역까지 유명한 미역의 고장이다. 하지만 오뉴월이면 미역보다 젓갈용 ‘대멸’이 대세다. 오뉴월이면 멸치젓을 사려는 사람은 물론 멸치요리를 찾는 사람들로 북새통이다. 기장에서 멸치요리로 가장 오래된 할매식당을 찾았다. 빈자리가 없어 기다려야 할 정도로 손님이 많았다. 이미 미조항에서 멸치무침을 먹어 봤던 터라 멸치구이와 멸치찌개를 주문했다. 양이 좀 많을 듯했지만 미조항에 비해서 값이 싸서 부담은 덜했다. 멸치요리를 먹기 위해 들어온 손님들이 제일 먼저 찾는 것이 멸치회무침이다. 식사보다 먼저 소주 한 잔 하려는 생각 때문이다. 미리 뼈를 발라낸 멸치에 미나리, 양파, 상추 등 각종 채소와 함께 초무침을 하는 것이 멸치회다. 상추에 싸 먹어도 좋지만, 기장미역에 싸 먹으면 더욱 좋다. 대변항에서는 판매하는 횟감용 멸치를 구입해 직접 만든 초장에 각종 야채를 넣어서 무쳐 먹어도 좋다. 비린내를 없애려면 매실과 함께 청주나 소주를 약간 넣어 초장을 만들면 좋다. 성질이 급한 사람은 멸치구이부터 주문한다. 연탄불에 구워서 주는 곳도 있다. 바삭한 식감과 고소한 맛, 그리고 따뜻하고 물컹한 멸치 살이 입안에 가득하다. 멸치찌개는 먼저 우거지나 시래기를 된장에 잘 버무린 다음 생멸치를 넣고 육수를 자작하게 부어 버섯 등을 넣고 끓인다. 이때 중요한 것은 육수가 반쯤 줄어들고 나서 먹어야 한다는 것. 그래야 간도 맞고 멸치에서 나온 육수와 된장이 서로 어우러진다. 대변항에서는 생멸치를 고르면 그 자리에서 천일염과 버무려 포장해 준다. 그대로 집에 두고 숙성되기를 기다렸다 김장할 때 사용하면 좋다.
  • [하프타임] 추신수, 이와쿠마에 무안타 침묵

    미국프로야구(MLB) 텍사스 레인저스의 추신수가 21일 텍사스주 알링턴 글로브 라이프 파크에서 열린 홈경기 시애틀 매리너스의 일본인 투수 이와쿠마 히사시와의 시즌 첫 대결에서 무안타로 돌아섰다.
  • 목판으로 만나는 유교 집단지성의 산물

    목판으로 만나는 유교 집단지성의 산물

    강원 원주시 치악산의 명주사 고판화박물관에는 1797년(정조 21년) 왕명으로 간행된 ‘삼강행실도’와 ‘이륜행실도’ 합판본이 존재한다. 백제 도미 부인의 열녀설화 등을 새긴 것으로, 유일하게 전하는 오륜행실도 목판이다. 하지만 이마저도 온전한 형태를 갖추진 못했다. 일제강점기 때 일본인들이 화로를 보호한다며 나무 싸개로 사용한 탓이다. 문집 간행을 위한 목판 제작에 웬만한 집 한 채 값을 아깝지 않게 써 버리던 우리 조상들이 알면 까무러칠 일이다. 예컨대 1843년 ‘퇴계선생문집’을 다시 간행하는 과정에선 책판 2500여장과 인력 2000명, 비용 4144냥이 들었다. 오늘날로 치면 6억 2000만원을 웃도는 걸로 추산된다. 조선시대 유학자들은 문집을 찍어 내기 위해 정성을 쏟았고, 이렇게 책판 형태로 유교 덕목의 가르침을 전할 수 있었다. 국립민속박물관은 다음 달 23일까지 제1기획전시실에서 ‘목판, 지식의 숲을 거닐다’ 특별전을 연다. 정부가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유교 목판(718종 6만 4226장)의 등재를 신청한 것을 기념해 준비한 전시다. 이곳에 나오는 목판 대부분은 경북 안동시의 국학진흥원이 2001년부터 ‘유교 목판 10만장 수집운동’을 벌여 모은 6만 5000여장 가운데 가려 뽑은 것들이다. 수집운동에는 전국 305곳 문중과 서원들이 참여했다. 대동여지도 목판(보물 제1581호), 도산서원 현판을 비롯해 포은 정몽주 초상, 포은 선생 문집 등 목판 관련 유물 총 122종 268점이 전시된다. ‘종이에 쓰다’, ‘나무에 새기다’, ‘세상에 전하다’, ‘생활에 묻어나다’의 4개 영역으로 구성된 전시는 다양한 문방구와 함께 판각 과정도 보여 준다. 국학진흥원 측은 “유교 목판은 편집과 판각, 간행, 전승 등이 민간의 자발적인 힘으로 이뤄진 세계사에 유례없는 집단지성의 산물”이라고 설명했다. 이번 전시에는 유교 목판의 세계기록유산 등재를 기원하는 뜻도 담겨 있다. 유네스코에 한국을 대표하는 12번째 세계기록유산 후보로 오른 유교 목판의 등재 여부는 내년 5월 세계기록유산 국제자문위원회 총회에서 결정된다. 오상도 기자 sdoh@seoul.co.kr
  • 거식증 아내, 캐나다 어학연수 중 처음만나 결혼 ‘29kg인 이유는?’

    거식증 아내, 캐나다 어학연수 중 처음만나 결혼 ‘29kg인 이유는?’

    거식증 아내가 화제다. 19일 방송된 EBS ‘달라졌어요’에는 캐나다 어학연수 중 처음만나 결혼에 골인한 한국인 남성과 일본인 여성 커플의 사연이 전해졌다. 결혼 5년차인 부부는 한·일 국제커플을 위한 인터넷 동호회에서 활발히 활동하며 서로의 문화를 존중하고 이해하려고 노력했던 커플이다. 하지만 결혼 후 알게 된 아내의 거식증이 아내의 몸뿐 아니라 가정의 행복까지 메마르게 하고 있다. 입맛에 맞지 않은 한국음식 대신 초콜릿과 사탕만 먹는 아내는 키 150cm에 몸무게 29kg이다. 하지만 아내는 ‘거식증’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다. 남편은 아내의 병을 고치려고 한약도 먹이고, 억지로 병원에도 데리고 갔지만 소용이 없었다. 함께 밥 먹는 즐거움을 잊은 부부. 거식증은 부부관계도 멀어지게 하고 있다. 더욱 문제인 것은 먹지 않는 아내가 아이를 양육하는 것 또한 불안하기 그지 없다는 것. 아내는 물이 뜨거운지 확인도 하지 않고 아이에게 주는가하면, 요리를 하면서 간도 보지 않는다. 바닥을 닦던 걸레로 아이 얼굴을 닦아주기도 하고, 기저귀를 채우는 것도 서툴기만 하다. 남편은 아내의 육아도 살림도 모든 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남편은 사소한 것도 물어보는 아내를 향해 잔소리로 화답한다. 이렇다보니 남편은 하나부터 열까지 잔소리만 하고 ‘그것도 모르냐’고 화를 낸다. 아내의 행동에 사사건건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시키기만 하는 남편 때문에 아내는 남편의 눈조차 마주하기가 겁이 난다. 아내의 역할도, 엄마의 역할도 인정해주지 않고 못미더워하는 남편으로 인해 아내는 한국에서 가족이 없다고 느낀다. 다행히 ‘달라졌어요’를 찾은 이 부부는 전문가들과의 상담을 통해 서로를 이해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거식증 치료에 대한 아내의 마음을 열기란 쉽지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 늘 아내에 대한 걱정을 잔소리로만 표현했던 남편은 차차 변화를 시도했고 아내도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거식증 아내’ 방송을 접한 네티즌은 “거식증 아내, 힘 내시고 건강 찾으시길” “거식증 아내..문화적 차이도 힘들텐데 남편이 많이 도와주세요” “거식증 아내..살만 좀 찌면 더 예쁠 것 같다” “거식증 아내..힘내세요” 등의 반응을 보였다. 사진 = 서울신문DB (거식증 아내) 온라인뉴스부 seoulen@seoul.co.kr
  • ‘부상 병동’양키스...“日트리오 활약 호기” 들뜬 日언론

    ‘부상 병동’양키스...“日트리오 활약 호기” 들뜬 日언론

    미국 프로야구 메이저리그(MLB) 뉴욕 양키스가 주전 선수들의 잇단 부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가운데 일본 언론들은 양키스에 소속된 ‘일본인 트리오’의 활약을 기대하는 눈치다. 일본 스포츠 전문지인 풀카운트는 19일 “부상 악재에 시달리는 양키스에서 일본인 트리오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는 MLB 공식 홈페이지 기사를 전하며 “일본 선수들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양키스에 소속된 일본인 선수는 투수 다나카 마사히로(26)와 구로다 히로키(39), 타자 스즈키 이치로(41) 3명이다. 양키스는 최근 ‘부상 병동’이나 다름 없다. 외야수 카를로스 벨트란이 팔꿈치 통증을 겪고 있고, 구원투수 션 켈리는 허리 부상으로 부상자 명단에 올라있다. 지명타자 마이클 피네다는 오른쪽 어깨 부상, 에이스 C.C. 사바시아는 무릎 통증으로 신음하고 있다. 올해 월드시리즈 우승을 목표로 하고 있는 양키스로서는 주전 선수들이 대거 이탈한 상황이 달갑지 않다. 지난해 부상 선수들을 대체하기 위해 마이너리그 선수들을 대거 투입해야 했던 괴로움이 재현되고 있는 셈이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양키스에 소속된 일본인 선수들은 최근 호조를 보이고 있다. ‘괴물 투수’ 다나카는 15일 뉴욕 메츠와의 리그 교류전에서 미국 진출 후 첫 완봉승을 거뒀다. MLB 첫 시즌에서 6연승, 일본 프로야구 기록을 포함하면 34연승째다. 20일 시카고 컵스와의 경기에도 등판을 예정하고 있다. 일본 매체들은 다나카의 활약을 연일 대서특필하고 있다. 올 시즌 별 활약을 보여주지 못한 구로다도 19일 피츠버그 파이어리츠와의 경기에 등판해 6경기만에 시즌 3승을 거뒀다. 이치로는 이날 경기에서 1안타를 추가, 누적 2763안타로 MLB 통산 3000안타를 노리고 있다. 일본 매체들은 “최고 명문 구단에서 일본 선수들의 활약이 주목받고 있다”며 들뜬 분위기다. 사진=미국 메이저리그 뉴욕 양키스에서 활약 중인 일본인 투수 다나카 마사히로.(방송화면 캡처) 이진석 도쿄 통신원 genejslee@gmail.com
  • [현장] 71세 폴 매카트니 日공연 일부 중단...28일 서울은?

    [현장] 71세 폴 매카트니 日공연 일부 중단...28일 서울은?

    5만5000여 명의 관객이 운집한 18일 도쿄도 신주쿠구 국립 가스미가오카 육상경기장. 2020년 도쿄올림픽을 앞두고 새 경기장을 짓기 위해 다음달부터 본격적인 철거를 시작하는 이곳에서는 이날, 1958년 준공 이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외국인 가수의 방일공연이 열릴 예정이었다. 주인공은 ‘비틀즈’의 멤버이자, 밴드 해산 후 솔로 활동으로도 세계적인 인기를 얻은 폴 매카트니(71). 지난해 5월부터 올해 8월까지 열리는 월드투어 ‘아웃 데어(Out There)’의 일환으로 17, 18일 일본 국립경기장에서 공연을 가질 예정이던 매카트니는 공연 개막시간인 오후 5시 30분을 1시간여 남기고 스태프를 통해 비보를 전했다. ‘바이러스성 염증’을 이유로 17일 공연이 중지된 데 이어 이를 대체하기 위한 19일 공연, 예정대로 개최 예정이던 18일 공연도 모두 중지한다는 내용이었다. 공연 중지의 공식 발표를 앞두고 경기장 주변은 웅성거렸다. 기다리던 관객들 사이에서 “공연이 열리지 않을 것”이라는 입소문이 퍼지면서다. 매카트니가 숙박 중인 치요다구 페닌슐라 도쿄 호텔 앞에서 카메라를 들고 기다리던 열성팬들은 트위터를 통해 “폴이 아직 호텔에서 나오지 않고 있다”고 전했다. 오후 3시 50분쯤 경기장 입구가 열리면서 웅성임은 잦아들었다. 관객들의 불안이 잠시 안도로 바뀌는 듯 했다. 입장은 좀처럼 시작되지 않았다. 오후 4시를 조금 넘겨서야 현장 스태프가 확성기를 들었다. “오늘 공연은 중지되었습니다.” 급히 준비된 공연 중지 안내문이 경기장 밖에 나붙고 관객들의 손을 통해 전해졌다. 인근 기차역인 도에이선 국립경기장역과 요요기역, 신주쿠역에도 안내방송이 흘러나왔다. 허탈한 한숨이 경기장 주변을 메웠다. 제법 따가운 햇살 아래 줄을 서서 기다리던 70대 부부는 발표가 믿겨지지 않는 듯 스태프를 잡고 “어떻게 된 일이냐”고 되물었다. 유니언잭과 매카트니의 이름이 새겨진 T셔츠를 입고 있던 중년의 팬들, 비틀즈의 음악을 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듯한 젊은 청년들 일부는 눈시울을 붉혔다. 바닥에 주저앉거나 얼굴을 감싸고 흐느끼는 모습도 눈에 띄었다. 공연 중지가 발표됐지만 관객들은 좀처럼 경기장을 떠나지 못했다. 서로를 다독이거나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어 상황을 설명하고, 공연 중지에 따른 주최 측의 향후 대응을 알아보기도 했다. 일부는 못내 아쉬운 듯 경기장 주변에 세워진 매카트니의 투어 트레일러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거나, 가려진 천막 너머로 무대가 철거되는 모습을 엿봤다. 예정대로라면 공연이 한창 무르익었을 시간이 되어서야 사람들은 발길을 돌리기 시작했다. 스태프에게 항의를 하거나 화를 내는 관객은 찾아볼 수 없었다. “후쿠오카에서 비행기를 타고 왔다” “무리해서 회사 일을 미루고 휴가를 받았는데 어쩌냐”는 등 불평의 소리가 나오기도 했지만, 대부분 “어쩔 수 없는 일”이라며 믿고 싶지 않은 상황을 받아들이는 듯 했다. 아쉬움보다 고령인 매카트니의 건강을 걱정하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양친과 함께 미야기현에서 신칸센을 타고 왔다는 일본인 주부 스기모토 케이코 씨(34)는 “몇달간 기다려왔던 공연이 취소되어 안타깝지만 어쩔 수 없는 일 아니냐”면서 “전 세계인에게 사랑 받는 아티스트가 일본 체류 중 건강이 악화돼 마음이 아프다. 공연보다도 폴이 꼭 회복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다만 당일 개막 직전이 되어서야 공연 중지를 발표한 주최 측에는 항의의 목소리가 컸다. 주최사인 교도도쿄의 페이스북 홈페이지에도 늦은 대응을 비판하는 댓글이 적지 않았다. 18일 공연 취소에 따른 대체 공연이나 환불 여부는 미정이다. 19일 대체공연까지 중지된 17일 공연 예매자에게는 희망자에 한해 환불 조치를 취하고 있다. 일본에서도 흔치않은 대규모로 열릴 예정이던 이번 공연의 중지는 상당한 경제적 손실로 이어질 전망이다. 일본 소셜미디어 컨설턴트인 칸다 토시아키 씨는 “순수 티켓 매출액만 17억500만 엔(약 175억 원), 일본 각지에서 공연장을 찾은 관객들의 교통비는 2억7500만 엔(약 27억5000만 원)으로 추산된다”면서 “환불을 요청하는 관객 비율이 얼마나 될 지 모르지만, 경기장 사용료와 무대장치 설치비용 등을 따져보면 적어도 수억 엔의 기회비용이 소요될 것”이라고 말했다. 매카트니는 공연 중지 결정 후 공식 메시지를 통해 안타까움을 전했다. 그는 “안타깝게도 하룻밤 휴식으로는 몸 상태가 회복되지 않았다”면서 “팬들을 실망시켜 정말로 미안하다”고 말했다. 매카트니의 대변인은 “폴은 오늘 아침까지도 의사의 판단을 거스르고 공연을 강행하려 했지만 주변에서 이를 허락하지 않았다”면서 “지금까지 폴의 공연이 중지된 사례는 매우 드물었던 만큼 본인이 몹시 안타까워하고 있다. 폴은 팬들을 실망시키는 걸 정말로 싫어한다. 일정을 조정해 대체공연을 할 수 있는 지 알아보라고 본인이 스태프들에게 지시한 상태”라고 밝혔다. 매카트니가 대체공연을 하더라도 외국인 역사상 첫 일본 국립경기장 공연은 무산될 가능성이 크다. 이달 31일 폐장 기념행사 ‘사요나라 국립경기장 파이널’을 마지막으로 문을 닫는 이 경기장은 25일 일본과 홍콩 국가대표팀의 럭비경기, 28~29일 ‘파이널 위크 저팬 나잇’ 콘서트 등 다양한 일정으로 채워진 상태다. 국립경기장과 비슷한 수용규모를 가진 공연장은 요코하마 닛산스타디움, 도쿄 아지노모토스타디움 등이 있다. 매카트니는 이달 28일 서울 잠실 종합운동장 주경기장에서 사상 첫 한국공연을 앞두고 있다. 교도통신 측은 21일 일본 도쿄 부도칸과 24일 오사카 얀마스타디움에서 열릴 공연은 예정대로 실시한다는 방침이다. 일본에서 열리는 남은 공연의 성사 여부에 따라 역사적인 내한공연의 향방도 가늠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사진=18일 폴 매카트니의 공연이 열릴 예정이었던 도쿄도 신주쿠구 국립 가스미가오카 육상경기장의 주변 모습과 천막이 드리워진 객석 입구(이진석 도쿄 통신원) 이진석 도쿄 통신원 genejslee@gmail.com
  • [노주석의 서울택리지 테마기행] 지역색(하)

    [노주석의 서울택리지 테마기행] 지역색(하)

    ●이중도시 서울, 북촌·남촌에서 강북·강남으로 양분화 조선 내내 사대문 안 북촌과 남촌의 양촌 체제가 공고했다. 그러나 대한제국기 고종이 중국의 천자나 일본 천황과 같은 황제에 오르는 이른바 ‘칭제건원’(稱帝建元)을 선언하고서 북촌 체제의 중심인 경복궁을 버리고 서촌에 위치한 경운궁(덕수궁)으로 정궁을 옮겨 가면서 상황이 변했다. 건국 500년 만에 나라의 중심이 백악(북악)을 중심으로 한 북촌에서 종로를 넘고, 청계천을 건너 서울시청 쪽으로 이전한 것이다. 대한제국 시기 이러한 정치권력의 공간이동은 이후 식민지 시기와 한국전쟁, 산업화 과정을 거치면서 조선시대에는 없던 태평로를 서울의 경제 중심지로 만들었다. 1926년 조선총독부 신청사가 경복궁 안에 건립돼 정치권력은 북촌으로 회귀했지만, 자본주의의 꽃인 경제권력은 태평로에 남았다. 확장된 경제권력이 1970년대 한강을 넘어 강남과 여의도를 향해 중심이동하기 전까지. 강남으로의 팽창과 더불어 서울은 2000년 전 한성백제의 수도 한강 이남으로 수도를 옮겼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청와대는 강북에 남았지만, 자본주의 권력의 원천인 경제자본과 대의기관인 국회가 강을 건너가 버렸기 때문이다. 조선의 서울이 강북 사대문 안이었다면, 대한민국의 서울은 강남이 됐다. 사대문을 남북 체제로 나누는 경계의 역할을 하던 개천(청계천)이 복개되면서 남·북촌이 하나로 통합되는가 했더니 급기야 한강을 사이에 두고 강남과 강북으로 양분돼 버린 것이다. 서울의 남북 경계선이 청계천에서 한강으로 옮겨 간 셈이다. 도시사학 분야에서 ‘이중 도시’(Dual City)의 개념은 식민지를 경험한 도시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박찬승(한양대 사학과) 교수는 “식민지 도시는 토착 집단에 대한 외래 집단의 지배 공간이었고 양자의 문화적 이질성은 사회적, 공간적 격리로 나타났다. 대체로 토착민들의 자생적 주거지는 전통적·전근대적 성격을 띠었고, 식민권력에 의해 개발된 새로운 주거지는 근대적·서구적 성격을 띠는 것이 일반적이다. 식민지 권력은 외래 식민집단의 주거지를 토착민들의 열악한 주거공간과 분리시켜 근대적이고 서구적인 주거지로 만들어 식민권력의 압도적인 힘을 과시하고 문명에 의한 지배의 정당성을 선전하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서울의 양분 정치적 기획의 산물인가, 체제경쟁의 산물인가 조선시대 한양도성이 북악 아래 경복궁과 창덕궁 사이에 자리를 잡은 북촌, 낙산 아래 동촌, 인왕산 아래 서촌 그리고 남산 아래 남촌과 청계천변 중촌이 서로 아우르는 모습을 보였다면 식민 시기 경성은 일제의 의도적인 정치적 기획의 산물로서 남·북촌 체제로 양분됐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동·서·남·북촌을 중심으로 정치적 이해관계를 같이하는 사람들이 어울린 사색붕당(四色朋黨)이 식민지 사관의 혐의를 받는 것과 마찬가지 논리다. 다른 풀이도 있다. 안창모(경기대 건축전문대학원) 교수는 “청계천을 품에 안고 내사산으로 둘러싸인 인구 10만명을 수용하는 계획도시로 출발한 한양이 600여년의 시간이 흐르면서 한강을 품에 안고 외사산으로 둘러싸인 인구 1000만명의 대도시로 성장했다. 외견상 인구는 100배 이상 증가했고, 면적도 30배 이상 확대됐다. 600년 시차를 가진 조선의 한양과 한국의 서울은 전혀 다른 상황 속에서 존재했다”고 말했다. 현재의 서울은 계획됐다기보다는 근대화와 경제성장을 거치면서 급증하는 인구를 수용하려는 방편으로 확장됐고 결과를 추인하는 방향으로 성장했다는 것이다. 시대적 상황이 도시의 물리적 성장과 변화 배경에 영향을 미쳤다고 볼 수 있다. 특히 남북 분단과 강남 개발은 서로 얽혀 있다. 비록 도시화와 산업화의 결과이지만 1976년 건설된 잠수교로 말미암아 한강은 서해 뱃길이 끊어지면서 자연 울타리가 됐다. 유사시 30만~40만명이 대피할 수 있는 요새화 차원에서 뚫린 3개의 남산터널과 정부청사의 과천이전 등은 한국전쟁과 남북 분단이 서울의 도시구조 변화에 남긴 대수술 자국이다. 경부고속도로와 한남대교(제3한강교)의 건설로 강남이 개발돼 현대 서울의 모습이 한강을 중심으로 강북과 강남 두 개의 도시로 나뉜 것도 결국은 남북 체제경쟁의 산물이다. ●일제강점기 서울은 어떻게 분열됐을까 서울은 식민시기 어떤 분열과정을 거쳤을까. 일본인의 서울 진출과 일본인 거류지의 형성을 중심으로 살펴보면 답이 보인다. 일본공사관은 1880년 서대문 밖 천연동 청수관에 처음 자리를 잡았다. 임오군란 때 소실되자 1884년 교동 박영효 저택에 공사관을 지어 사대문 깊숙이 진출했으나 같은 해 갑신정변 와중에 또 타버렸다. 1885년 남산 아래 예장동으로 옮긴 뒤부터 식민지배 권력의 본거지가 됐다. 남산과 일본을 잇는 역사의 끈은 질기고도 질겼다. 일본 사신이 묵었던 왜관(동평관)이 조선 초 자리 잡았고, 임진왜란 때 왜군이 7년 동안 진지를 구축한 왜장대가 있었다. 개항기 조선과 대한제국 조정은 일본공사관을 사대문 안에 들이지 않으려고 애썼고, 사대문 안으로 들어오더라도 개천을 건너지 못하도록 했다. 삼강오륜에서 부부유별(夫婦有別) 따지듯 북남유별(北南有別)을 따졌지만, 결과는 남북 역전으로 나타났다. 남촌은 식민지 조선의 새로운 메인스트리트였다. 조선 신궁(남산식물원)이 일본 정신을 상징했고, 통감부(서울애니메이션센터)와 헌병사령부(남산한옥마을)가 무력통치를 상징했다. 일본인 거주 지역인 충무로, 진고개 일대는 본정통(本町通)이라고 하여 조선의 유일한 동서 간 대로인 종로를 대신했다. 일제는 황토마루(黃土峴)를 광화문통, 구리개(을지로)를 황금정(黃町), 명동을 명치정(明治町), 소공동을 장곡천정(長谷川町), 다방골(茶洞)을 다옥정(茶屋町)으로 멋대로 바꿔 버렸다. 남촌에는 조선은행(한국은행)과 경성우체국(중앙우체국)이 들어서고 미쓰코시백화점(신세계백화점)과 히라타(平田) 등 대형 유통업체가 진출해 상권을 장악했다. 2~4층의 현대식 상점 진열대에는 일제와 서구 외제 상품이 휘황찬란한 전등불 아래 진열됐다. 도로는 포장되고 플라타너스 가로수가 식재됐다. 광고탑과 마네킹, 네온사인이 불야성을 이뤘다. 본정통은 식민지 서울이 아니라 도쿄를 여행하는 듯했다. 지금의 강남 격이다. 한국인이 상권을 쥐고 있던 종로통은 상대적으로 낙후됐다. 1935년 시인 임화는 ‘다시 네거리에서’라는 시에서 “번화로운 거리여/내 고향 종로여/웬일인가/너는 죽었는가/모르는 사람에게 팔렸는가”라고 외쳤다. 별건곤 1930년 6월호에서 김화산은 “달리는 차, 매연, 여자의 스커트, 자욱한 연애, 주머니 속의 1전짜리 동전, 비애, 주점, 여자에 대한 증오, 정거장, 잡다한 사상을 가진 군중, 쇼윈도, 밤의 샹들리에와 카페의 홍수, 길에 버려진 영화광고지…”라면서 남촌의 화려함을 묘사했다. 당시 경성은 전차 120여대, 자동차 250여대(관용차와 자가용 제외), 승합차 70대, 버스 40대가 뒤섞여 달리는 혼잡한 대도시였다. 식민지 통치권력과 외국 자본에 의해 서울 사람은 서울의 객이 돼 버렸다. 1936년 행정구역 확대에 따라 경기도 고양군과 시흥군, 김포군이 서울로 각각 편입됐다. 고양군 용강면(오늘의 공덕동, 아현동)과 연희면(신촌), 은평면(홍제동), 숭인면(성북동, 청량리), 한지면(이태원, 서빙고)이 서울 땅이 됐다. 시흥군 영등포와 노량진, 상도동이 서울에 포함됐다. 서울의 팽창은 인구 집중과 더불어 지역 분화를 재촉했다. 동소문 일대 주택지대를 문화촌이라고 했고, 광희문 밖 신당동에는 달동네가 형성됐다. 정동 일대에는 서양인촌이, 용산 일대에는 공업촌, 서울역과 봉래동 일대에는 노동촌, 다동·청진동·관철동 일대에는 기생촌 등 특수촌이 형성됐다. 홍제동, 돈암동, 아현동에는 경성부가 운영하는 토막 수용 시설이, 종로와 본정통, 명치정, 장곡천정에는 다방과 카페, 영화관 같은 유흥업소가 밀집했고, 쌍림동에는 유곽이 있었다. ●서울·지방 나누듯 서울도 신분 따라 거주지 나눠져 전우용은 ‘서울은 깊다’에서 “서울(사대문)이라는 작은 공간 안에서 오촌(동·서·남·북·중촌)과 양대(윗대·아랫대), 자내(성밖 거주지)와 오강(한강변 거주지) 지역의 문화가 달랐다. 18~19세기 양반문화만 놓고 보아도 동서남북 사촌이 다 달랐고, 그들 사이에는 쉬 해소될 수 없는 차별의식과 적대감이 가로놓여 있었다”고 분석했다. 서울은 조선 500년 내내 유일한 도시였다. 조선이라는 나라는 한양이라는 도시와 나머지 지방으로 나눠졌다. 중엽 이후 서울과 지방의 인적 교류가 막히면서 경인(京人)과 향인(鄕人)의 차이가 벌어졌다. 지방 출신이 벼슬길에 오르는 것조차 어려웠다. 말씨와 문체가 다르다는 이유로 시골 선비는 무시되기 일쑤였다. 영조 대 이후 지방 출신을 과거급제자에 할당할 정도였다. 심지어 고종 때 서울내기 군관이 시골뜨기 예조좌랑(교육부 사무관급)을 멸시하고 구타하는 하극상이 벌어지기도 했다. 나라가 서울과 지방으로 나눠졌듯 서울도 나눠졌다. 궁궐 주변인 북촌과 동촌, 서촌에는 고관대작과 그들의 시중을 드는 아전, 겸인배(집사)들이 살았다. 남산 아래에는 쇠락한 양반이나 무반이 거주했고, 인사동과 청계천 주변에는 역관이나 의관, 화원 같은 중인들이 중촌을 이뤘다. 상민은 윗대나 아랫대 혹은 사대문 밖 자내, 오강에 터전을 잡았다. 거주 지역에 신분과 지위, 직업 정보가 새겨졌다. 선임기자 joo@seoul.co.kr
  • 日 “납북자 구출땐 한국 동의 없어도 자위권 발동”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자문기구인 ‘안전보장의 법적 기반 재구축에 관한 간담회’가 지난 15일 아베 총리에게 제출한 보고서에서 자위대의 일본인 납북 피해자 구출 상황을 상정, 영역국의 동의 없이도 외국에서 자위권을 발동할 수 있는 예외적인 경우가 있다는 주장을 한 것으로 18일 알려졌다. 간담회는 보고서에서 재외 일본인 보호와 구출을 위한 자위권 발동과 관련, “영역국의 동의가 없어도 자국민의 보호, 구출은 국제법상 소재지 국가가 외국인에 대한 침해를 배제하는 의사나 능력을 갖지 않고, 외국인의 신체·생명에 대한 중대하고 긴박한 침해가 있어 다른 구제의 수단이 없을 때 자위권 행사가 허용되는 경우가 있다”고 명시했다. 이 문구는 “자위대가 일본인 납북 피해자를 구출할 수 있도록 하려는 것”이라고 산케이신문이 간담회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보도했다. 즉 한반도 유사시 헌법상 남북한 모두를 영토로 규정하고 있는 한국의 동의가 없더라도 자위대가 북한에서 일본인 납북 피해자를 구출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 두는 내용으로 해석된다. 보고서는 아베 총리가 발표한 ‘기본적 방향성’의 토대가 된 자료라는 점에서 정부 입장과 깊은 관련이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또 향후 아베 총리가 집단적 자위권 관련 헌법 해석 변경을 위해 마련할 각의(국무회의) 결정 문안에도 참고 자료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일본 정부 고위 당국자는 간담회 보고서 내용에 대한 한국의 반응을 염두에 둔 듯 일본인 납북자 구출을 위한 작전의 경우 “한국의 동의가 필요할지 모른다”고 말했다고 신문은 덧붙였다. 한편 아베 총리는 집단적 자위권 행사 용인 구상을 공식화한 다음날인 16일 미국 보수 성향 싱크탱크인 헤리티지재단의 짐 드민트 이사장과 만난 자리에서 “집단적 자위권 행사로 한국과 전쟁하는 일은 100% 없다”고 말했다고 신문은 전했다. 도쿄 김민희 특파원 haru@seoul.co.kr
  • [사설] 日 집단자위권 한반도 개입 여지 차단해야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그제 일본 자위대의 집단적 자위권 행사와 관련해 현행 평화헌법에 대한 해석을 변경하는 형식으로 추진하겠다는 방침을 공식화했다.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는 국가가 공격을 받을 경우 이를 자국에 대한 공격으로 간주해 일본 자위대가 반격에 나설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으로, 그동안 ‘집단 자위권을 보유는 하지만 행사하지는 못한다’고 돼 있는 헌법 해석을 정부 차원에서 임의로 변경하겠다는 뜻이다. 이는 2차 세계대전 패전 이후 70년간 지속돼 온 전후 체제의 근본적 변화를 뜻하는 것으로, 당장 한반도 안보상황에 군사적으로 개입할 여지를 열어 놓게 된다는 점에서 그 의미와 파장이 중차대하다고 할 것이다. 일본이 집단자위권을 실질적으로 행사하려면 자위대법 개정 등 몇 단계의 절차가 남아 있으나 대내외 정세를 감안할 때 이는 이제 시간문제로 보인다. 중국에 맞선 미국이 일본의 보다 적극적인 군사적 역할을 주문하고 있는데다 일본 스스로도 중국의 아시아 중심 전략에 능동적으로 대응할 태세인 까닭이다. 그제 아사히신문이 사설을 통해 “집단적 자위권을 행사하는 순간 상대국에 일본은 적국이 되는 것으로, 동아시아의 긴장이 높아질 것”이라며 강력히 반대하고 나섰으나 이런 반대 여론은 일본 안에서는 소수에 그치고 있는 게 현실이다. 북한이라는 안보 변수를 지닌 우리로서는 침략의 과거사조차 온전히 인정하지 않고 있는 일본의 고삐 풀린 군사력 확대를 지켜보고만 있을 수는 없는 일이다. 우리 정부가 즉각 “한반도 안보와 우리의 국익에 영향을 미치는 사항은 우리의 요청 또는 동의가 없는 한 결코 용인될 수 없다”고 선을 그었지만 이런 수사적 대응에 머물 수 없음은 자명하다. 한반도 유사 시 일본의 군사 개입을 적극 제어할 강력하고 세밀한 대책이 마련돼야 한다. 실제로 북한의 전면적 무력도발이나 체제 붕괴로 인한 급변사태가 벌어지면 자국민 보호를 구실로 일본의 군사 개입이 얼마든 이뤄질 개연성을 배제할 수 없는 게 현실이다. 심지어 일각에선 한반도 주변 공해상에서 일본 자위대가 북한 선박을 나포함으로써 북에 도발 명분을 제공할 가능성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아베 총리도 그제 “전쟁을 피하려는 한국 내 일본인들이 탄 미국 선박이나 항공기가 북한의 공격을 받아도 자위대가 손을 놓고 있어야 되겠느냐”는 말로 다양한 군사개입 가능성을 내비쳤다. 일본의 집단 자위권이 한·미·일 안보협력에 도움이 된다는 지적도 있으나 이런 긍정적 효과를 위해서라도 정부는 능동적으로 일본 집단자위권에 대응해야 한다. 양국 간 협의는 물론 한·미 방위조약의 틀 속에서 대일 견제력 강화를 모색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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