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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단독] [일본형 저성장 경고음] “끓는 물속 개구리, 뜨거움 느끼는 단계… 성장엔진 꺼져간다”

    [단독] [일본형 저성장 경고음] “끓는 물속 개구리, 뜨거움 느끼는 단계… 성장엔진 꺼져간다”

    “끓는 물속 개구리처럼 서서히 무감각해지던 한국 경제가 이제는 개구리가 뜨거움을 느끼는 단계까지 왔다. 2030년에는 성장엔진이 소멸될 것이라는 우려까지 나온다.”(김종석 홍익대 경영대 교수) “가장 큰 문제는 외환위기나 금융위기처럼 위기가 확 와닿게 오는 것이 아니라 천천히 와서 그런지 정부와 정치권에서 불황을 인식하지 못하는 것이다.”(이승철 전국경제인연합회 상근부회장) 한국경영자총협회가 27일 서울 중구 웨스틴조선호텔에서 ‘한국 경제 긴급진단’을 주제로 개최한 포럼에서 쏟아져 나온 경고들이다. 재계가 주도한 세미나라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우리 경제에 대한 위기의식이 와닿는다. 기획재정부 고위관계자는 “올해 우리 경제 성장률이 (한국은행이 전망한) 3.5%에도 못 미칠 것 같다”고 사석에서 털어놓았다. 한은은 지난달 경상 흑자가 90억 달러로 32개월째 흑자라고 이날 발표했다. 하지만 수출 증가보다 수입이 더 줄면서 나타나는 ‘불황형 흑자’다. 몸은 비쩍 말랐는데 배만 나온 ‘올챙이형 경제구조’로 가고 있는 것이다. 물가는 24개월째 1%대다. 디플레이션(물가 하락)에 허우적거리면서도 막대한 경상수지 흑자를 기록한 1990년대 일본 경제를 떠올리게 한다. 노년층이 소비를 안 하는 것도 일본의 복사판이다. 이 때문에 우리 경제가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을 밟고 있다는 우려가 갈수록 커지고 있다. 우리와 일본이 가장 닮은 점은 얼어붙은 소비심리다. 이달 소비자심리지수(CCSI)는 103으로 10월보다 2포인트 하락했다. 지난해 9월 이후 14개월 만에 최저치다. ‘세월호 참사’ 여파가 반영된 5월 지수도 105였다. 그때보다 더 안 좋다는 얘기다. 문제는 정부가 경기부양에 41조원을 쏟아붓고 한은이 기준금리를 0.5% 포인트 내렸음에도 불구하고 소비심리가 살아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밑바닥 경제지표인 소비심리를 살리지 못하면 백약이 무효다. 일본이 반면교사다. 실질금리가 마이너스여도 은행에 돈을 맡기고 안 쓰는 일본인의 소비심리 탓에 ‘윤전기 아베’(윤전기를 돌려서라도 돈을 무제한 찍어내겠다는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별명)도 손을 들었다. 일본처럼 생살을 도려내는 구조개혁 없이 ‘약’(재정)만 먹여 내성을 키우고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돈이 안 돌고 안 쓰니 성장잠재력도 낮아지고 있다. 국내외 주요 경제기관들이 이미 한국의 올해 성장률을 3%대 중후반으로 내린 가운데 정부도 조만간 전망치를 낮출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내년 성장률도 4.0%가 안 될 것으로 보고 있다. 무엇보다 성장엔진이 안 보인다. ‘한강의 기적’을 만든 제조업은 이미 비틀거리고 있다. 지난해 한국 제조업의 출하액과 부가가치는 1998년 외환위기 이후 처음 감소했다. 통계청이 이날 발표한 ‘2013년 기준 광업·제조업조사 잠정 결과’에 따르면 광업·제조업 출하액은 1495조 4220억원으로 1년 전보다 1.0%(15조 2000억원) 줄었고, 부가가치도 481조 7140억원으로 0.2%(9670억원) 감소했다. 김종석 교수는 “우리 경제가 실업난, 가계부채 과다, 소득분배 악화, 디플레 가능성 등 다양한 문제에 봉착해 있는데, 이 모든 문제의 뿌리는 저성장 기조의 장기화”라면서 “문제는 이 추세가 상당히 앞당겨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김준경 한국개발연구원(KDI) 원장은 “성장 동력을 회복하려면 (규제 등의) 혁신과 구조개혁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세종 김경두 기자 golders@seoul.co.kr 세종 장은석 기자 esjang@seoul.co.kr
  • 산업현장 보호구 일본 수출길 열려

    # 국내 방진마스크 제조업체인 A사는 미국과 호주, 유럽 등에서 인증을 획득했다. 그러나 일본 수출을 위해 지난해 하반기부터 안전 인증을 신청했지만 지금껏 취득하지 못하고 있다. # 안전모를 생산하는 B사는 일본 민간대행사를 통한 인증취득 부담으로 일본인이 운영하는 현지 판매 대리점을 통한 우회 인증절차를 밟아 10개월 만에 제품 인증을 획득했다. 이처럼 국내 보호구 제품의 일본 수출에 걸림돌로 작용했던 일본 내 안전인증 획득이 크게 완화될 전망이다. 안전보건공단은 지난 21일 서울에서 일본의 보호구 인증기관인 산업안전기술협회(TIIS)와 보호구 시험성적서에 대한 상호인증에 협력기로 합의했다. TIIS가 인정하기로 한 시험성적서는 안전모와 안전대, 방진마스크, 방독마스크 등 4개 품목이다. 양 기관은 지난 9월부터 통일된 시험기준과 인정기준 등에 대한 협의를 진행했다. 세종 박승기 기자 skpark@seoul.co.kr
  • [新국토기행] 전남 순천시

    [新국토기행] 전남 순천시

    <볼거리> 물과 숲으로 둘러싸인 전남 순천은 남도의 부드러운 대지의 기운을 받아 자연경관이 빼어나다. 조상들의 문화유산과 아름다운 고풍이 간직돼 있어 곳곳이 힐링의 명소다. 교통이 편리하고, 도심에도 유명 관광지가 있어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순천은 다양한 문화재를 종류별로 보유한 유일한 도시다. 순천만, 선암사, 승선교, 송광사는 프랑스의 세계적인 여행 가이드 ‘미슐랭’으로부터 최고 점수인 별 세 개를 받았다. [낙안읍성] 조선시대 모습을 간직하고 있으면서 실제로 사람이 사는 마을이다. 1983년 민속마을(사적)로 지정됐다. 성곽 높이 4m, 둘레 1410m 안에 초가 108가구가 정겹게 살아간다. 500여년 전의 모습을 고스란히 볼 수 있어 한국 영화, 드라마 촬영장소로도 유명하다. 한국의 옛 삶을 체험하는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짚으로 만든 짚물공예체험, 산과 들에서 자생하는 열매·잎·풀과 황토로 하는 천연염색, 대장간 체험 등이 있다. 외국인에게 가장 한국적인 관광명소다. [송광사] 보조국사 지눌을 비롯해 16국사를 배출한 한국 삼보 사찰 중 하나다. 목조삼존불감 등 희귀 불교 문화재가 많다. 우리나라 대표 불교박물관인 성보박물관이 있다. 부속 암자인 천자암에는 천연기념물 제88호로 지정된 곱향나무 두 그루 쌍향수와 사찰에서 국재를 모실 때 몰려든 대중에게 나눠 주려고 밥을 저장했던 목조 용기인 바사리 구시 등이 있다. 송광사는 평생 무소유로 살다 가신 법정 스님과도 인연이 깊다. 산속 암자 불일암은 1975년부터 법정 스님이 혼자 지내면서 수많은 글을 집필한 곳으로 여전히 많은 사람이 찾는다. [선암사] 신라 말기인 서기 875년 도선국사가 창건한 사찰. 무지개 모양의 보물 400호 승선교와 강선루에 이르는 숲길 양옆에는 참나무, 삼나무 등의 많은 나무가 운치를 더한다. 아름다운 사찰의 옛모습을 가장 잘 보존하고 있다. ‘나의 문화유산답사기’를 쓴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이 최고의 산사로 꼽을 정도다. 선암사는 매화 피는 봄철이 으뜸이다. 선암매로 불리는 매화 50여 그루는 2007년 천연기념물로 지정됐다. 선암사에는 꼭 봐야 할 세 가지로 철불, 보탑, 부도가 있다. 산비탈에 있는 녹차 야생차밭은 규모는 크지 않지만 귀한 차로 대접받는다. [순천 드라마 촬영장] 3만 9600㎡(약 1만 2000평) 부지에 200여채가 들어선 대규모 오픈 세트장이다. 1960년대 순천읍내, 1970년대 서울 변두리, 1980년대 변두리 번화가 등을 지었다. 아이들에게는 살아 있는 교육의 장으로, 어른들에게는 향수를 준다. 이웃과 따뜻하게 숨 쉬는 모습이 담겨 있어 갈수록 인기다. SBS ‘사랑과 야망’, KBS ‘제빵왕 김탁구’ 등 드라마와 영화, 예능 프로그램 주무대로 주목받는다. [순천만] 세계 5대 연안습지의 하나다. ‘무진에 명산물이 없는 게 아니다. 그것은 안개다. 아침에 잠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오면 밤사이에 진주해 온 적군들처럼 안개가 무진을 빙 둘러싸고 있는 것이다.’ 김승옥의 단편소설 ‘무진기행’에서는 순천만을 이렇게 표현했다. 순천만 갈대는 4계절 색깔이 다르다. 봄은 보리색, 여름은 초록색, 가을은 은빛이다. 겨울은 앙상하게 남은 누런 갈대들이 색다른 아름다움을 준다. 용이 누워 있는 모양을 한 용산의 전망대는 필수 코스. 순천만의 유명한 S자 수로와 낙조, 수많은 철새를 볼 수 있다. 매년 8만~12만 마리의 철새가 온다. 흑두루미·노랑부리저어새 등 천연기념물 30종과 먹황새·뜸부기 등 희귀 조류의 천국이다. 순천만을 30분간 돌아보는 생태체험선 ‘에코피아’는 예약해야 탈 수 있다. [순천만정원] ② 지난해 440만명이 찾아와 성공한 대회로 평가받는 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장이 지난 4월 순천만정원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순천시가 미래 100년을 만들어갈 새로운 도약으로 삼고 있다. 개장 6개월 만에 300만명을 돌파했다. 111만 2000㎡ 규모의 정원이 주는 편안함과 싱그러움 덕에 최고의 힐링 장소가 됐다. 봄에는 튤립, 철쭉동산, 유채꽃, 꽃양귀비, 여름에는 물놀이체험, 호수정원, 가을에는 억새, 겨울에는 눈꽃 얼음 등 계절별 맞춤형 테마로 운영된다. 2~5m 높이로 설치된 국내 유일의 무인궤도차를 타면 순천만 인근과 동천 등을 볼 수 있는 색다른 즐거움이 있다. 소요시간은 20여분. 순천 최종필 기자 choijp@seoul.co.kr <먹거리> 전남 순천은 연중 풍성한 농작물을 수확해 좋은 음식을 만들기에 최고 적합한 조건을 지닌 고장이다. 남도의 건강한 토양에서 재배되는 각양각색의 농산물은 훌륭한 식재료로 손색이 없다. 한정식과 백반은 나오는 반찬의 가짓수에 놀라고, 그 맛에 한번 더 놀라고, 마지막으로 값을 치를 때 또 한번 놀란다. 임금님이 순천 한정식을 맛봤더라면 수라상을 거절하고, 순천의 음식을 택했을 것이라는 약간의 과장 섞인 이야기도 흔히 나오는 말이다. [순천한정식] 남도 맛의 진수를 맛볼 수 있다. 보통 토하젓·정어리젓·새우젓 등 각종 젓갈을 비롯해 음식 가짓수도 15개가 넘는다. 한끼 6000~7000원 하는 기사식당만 해도 고등어조림, 김치찌개 등 15개 이상 반찬이 나온다. 정통 한정식집 대원식당은 4인 기준 한상에 8만~10만원이지만 예약하지 않으면 자리가 없다. 상다리가 휠 정도의 20여 가지 음식에 눈이 동그래진다. 이 식당 맛을 잊지 못해 다시 순천을 찾을 정도다. 음식이 나올 때마다 직원이 재료와 먹는 방법을 알려줘 고향의 어머니가 주는 느낌을 받는다. 1966년부터 장천동 현재 자리를 지키고 있다. 다시 찾은 손님은 몇 년이 지나도 단번에 기억하는 주인 이혜숙(64)씨의 눈썰미에도 놀란다. [짱뚱어탕] 순천만은 썰물 때 광활하게 펼쳐지는 갯벌이 아름답다. 바로 이곳에 청정한 갯벌을 상징하는 짱뚱어가 산다. 도마뱀처럼 잽싸게 갯벌 바닥을 돌아다닌다. 색깔도 거무튀튀한 게 메기를 닮았다. 무척 영리해서 그물을 피해 다닌다. 솜씨 좋은 낚시꾼들이 홀치기 낚시로 한 마리씩 잡을 뿐이고, 양식도 어려워 그 수가 많지 않다. 짱뚱어는 봄부터 가을까지 잡히지만 겨울잠을 자기 전에 영양분을 비축하는 가을에 가장 맛이 좋다. 짱뚱어를 100마리 먹으면 감기에 걸리지 않는다고 해서 일찍부터 순천에선 보양음식이었다. 1980년대 언론에 소개되면서부터 순천의 별미가 됐다. 아무것도 먹지 않고 한 달을 사는 짱뚱어의 특징 때문에 스태미너 음식으로 알려졌다. 청정 갯벌이 줄어들면서 순천만을 상징하는 음식이기도 하다. 짱뚱어는 전골로 끓이거나 그냥 구워 먹는다. 순천에서는 탕으로 즐겨 먹었다. 추어탕처럼 삶아 체에 곱게 거른 뒤 육수에 된장을 풀어내 시래기, 우거지, 무 등과 함께 걸쭉하게 끓여낸다. 시원한 국물이 일품. 순천만 인근 식당들은 짱뚱어를 맛보려는 관광객들로 항상 북적댄다. [화월당] 순천에는 1928년부터 3대째 이어오는 전통의 손맛을 느낄 수 있는 빵집이 있다. 찹쌀떡과 볼 카스텔라 딱 두 종류만 판매한다. 택배로 주문하면 사나흘 만에야 올 정도로 제품이 달린다. 매장으로 찾아가더라도 오후 늦은 시간엔 빵이 동난다. 화월당은 1920년 현재의 자리에 일본인이 문을 열었다. 1928년부터 점원으로 일하던 조병연씨의 아버지가 광복 때 인수했다. 특히 선대로부터 물려받은 레시피를 고수한다. 화월당 찹쌀떡은 크기가 프랜차이즈 제과점 등에서 파는 것보다 50% 이상 더 크다. 피가 얇고 대신 팥소의 양이 많다. 하얀 떡살이 물렁물렁하면서 씹히는 게 부드럽다. 볼 카스텔라는 테니스 볼처럼 생겼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반죽을 얇게 펴 카스텔라를 만든 뒤 팥소를 넣고 말아 공 모양으로 빚는다. 방부제는 물론 떡이 딱딱해지는 걸 막는 첨가제도 넣지 않는다. [웃장 국밥] 순천 웃장 하면 국밥이다. 먼 곳에서 먹으러 오는 이들도 많다. 순천 웃장 국밥은 맛도 있지만 다른 곳과 차별화돼 있다. 국밥보다 먼저 수육이 나온다. 6000원짜리 국밥 두 그릇 이상 주문하면 1만원 상당의 수육이 공짜로 나온다. 100년 된 동외동 순천 웃장에 있는 국밥골목에는 가게가 15개 있다. 지역에서 생산한 재료만 쓴다. 냉동실에 들어가지 않은 돼지머리 고기, 콩나물, 야채 등의 싱싱한 재료만을 사용한다. 일반 국밥과는 달리 돼지 창자인 곱창을 재료로 사용하지 않고 삶은 돼지머리에서 발라낸 살코기만 쓴다. 국물 맛이 깔끔하고, 뒷맛이 개운한 게 특징이다. 순흥식당은 35년, 상원·신화식당은 30년 됐으며 대부분 10~20년 이상 된 식당들로 특유의 맛을 자랑한다. 주말이면 대형버스를 타고 온 관광객들이 줄을 잇는다. 순천 최종필 기자 choijp@seoul.co.kr
  • [‘남대문’이 답한 정책 아이디어] “정책 좀 쉽게 만들어 줘”

    [‘남대문’이 답한 정책 아이디어] “정책 좀 쉽게 만들어 줘”

    지난 20일 찾은 서울 남대문시장은 이른 아침부터 분주했다. 오전 9시쯤 찾은 시장에는 상인들이 하루 영업을 준비하는 모습이 대부분이었지만 30분이 지나자 행인들이 늘어나기 시작하더니 10시부터는 취재진이 질문하기가 미안할 정도로 상인과 행인들로 시장이 북적였다. “내년에는 무엇이 바뀌었으면 좋겠느냐”는 질문에 대부분 상인들은 “지금은 바빠서 대답하기 어렵다”고 손사래를 쳤지만 질문을 거듭하자 “먹고사는 문제, 즉 민생 문제를 해결하라”고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공무원연금 등에 대한 불만은 자연스럽게 국민연금 문제와 노후 걱정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더불어 상가 임대료 인하, 노점 단속 등 남대문시장과 직접 연관된 민생 문제에 대해서도 정치권이 좀 더 관심을 두기를 바랐다. 또 한·일 관계와 같은 거시적인 문제가 결국 민생과 연결된다는 지적도 나왔다. ●“시장 살리기가 곧 경제 활성화” 남대문시장에서 만난 상당수 시민들은 ‘경제활성화가 곧 남대문시장 살리기’라고 입을 모았다. 대형유통매장 규제와 재래시장 활성화가 우선돼야 한다고 강조한 주부 최인영(35)씨는 “대형마트에 가면 우리 돈이 기업에 가지만 재래시장에 가면 우리 돈이 서민에게 간다”고 말했다. 일부 상인은 지하주차장을 만들어 남대문시장을 활성화하자는 제안도 내놨다. 유동인구가 더 많아야 남대문시장이 산다고 말하는 상인들은 서울시가 추진하는 서울역 고가도로 공원화 사업에 대해서는 반대 목소리를 냈다. 일부 상인들은 관련 내용을 언론 보도를 통해 알았다며 서울시가 협의 없이 공원화 사업을 진행했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임광옥(65·여)씨는 “현재도 남대문시장의 주차시설은 부족한 상황”이라며 “고가도로를 공원화하면 차량 유입이 더 어려워진다”고 우려했다. 이어 “결국 과도한 공원화 때문에 찾아오는 사람이 줄어들 수 있는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한·일 관계 나빠서 日관광객 줄어든다” 엔화 약세 등으로 뚝 끊긴 일본인 관광객 유치 전략을 새롭게 만들어야 한다는 조언도 나왔다. 대한상공회의소의 최근 발표에 따르면 중국인은 명동과 동대문시장을 선호하는 반면 일본인은 명동과 남대문시장을 선호한다는 조사가 나올 만큼 일본인들의 ‘남대문 사랑’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15년째 신발가게를 운영하는 안승영(44)씨는 “경제적인 이유도 있지만 일본과의 관계 악화라는 외교적 문제 때문에 남대문시장의 일본인 관광객이 더욱 줄어든 것 아니냐”면서 한·일 관계 개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환전상 이모씨는 “내년에는 노점 단속 좀 그만하게 해 달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단속 노이로제’가 걸렸다고 자신을 소개한 이씨는 “신문 보고 단속반이 나를 찾아오면 큰일나는 것 아니냐”며 이름은 물론 나이까지도 절대 말할 수 없다고 답을 피했다. 이씨는 “저축한 돈도 있고 땅도 있으면 이렇게 노점을 하겠냐”면서 “그날 벌어서 그날 먹어야 하기 때문에 줄줄이 나와서 노점을 하는데 단속해서 벌금을 매기니 하루하루 살기가 불안하다”고 걱정했다. 그는 “나이라도 알려달라”는 취재진의 요청에 “요즘 강남에서 노점 철거한다는 뉴스를 봤는데 걱정이 더 커졌다”면서 “70대로만 알라”고 했다. 젊은 상인들도 노점상 문제 해결을 당부했다. 단속이 필요하지만 무작정 내쫓아서는 안 된다는 당부였다. 신발가게에서 일하는 김원민(28)씨는 “시장이 좀 더 활성화되기 위해서는 노점상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면서 “무작정 철거하면 충돌이 일어나니 대안을 찾아야 한다”고 말해 ‘생계형 노점’에 대한 대책 마련을 주문했다. ●“서민대출 이자 싸고 무조건 손쉽게” 비싼 임대료와 대출 이자 등은 상인들의 큰 걱정이었다. 정부가 홍보하는 ‘서민 대출’에 대한 불만도 컸다. 양말가게를 운영하는 50대 상인은 “은행에서 돈 빌리는 게 생각보다 복잡하고 종류도 많다”면서 “아는 사람만 알고 모르는 사람은 모르게 되니 결국 일부만 혜택을 받고 나 같은 사람은 바보처럼 비싼 이자를 주고 돈을 빌리게 된다”고 말했다. 이어 “차라리 이것저것 하지 말고 싼 이자로 손쉽게 빌릴 수 있도록 했으면 좋겠다”면서 “국민 입장에서 정책을 쉽게 만들어 주기를 바란다”고 당부했다. 상인들은 임대료 문제에 특히 관심이 많았다. 28년째 남대문시장에서 의류사업을 하는 이성철(65)씨는 “권리금을 보호할 수 있는 임대차 보호법 개정이 가장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최근 정부가 발표한 ‘상가 임대차 보호법 개정안’ 등 관련 정책에 대한 의구심도 컸다. 옷가게를 운영하는 임경숙(47·여)씨는 “정치권이나 정부는 상인들의 임대료 문제나 서민 전·월세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하는데 실제 가능하겠냐”면서 “결국 상가는 개인 재산인데 임대료를 올리지 말라고 강제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80세 이상은 모두 기초연금 줘야” 상인들은 정치권의 공무원연금 개혁 움직임에 동조하면서도 복잡하게 얽힌 국민연금과 기초연금 문제에 대해서도 변화를 촉구했다. 자신을 해군 출신의 국가유공자라고 소개한 정모(81)씨는 “공약대로 했어야 하는데 왜 삭감을 했냐”며 기초연금 공약 수정 문제에 강하게 항의하며 제도 개선을 제안했다. 정씨는 “80세 이상은 재산과 무관하게 기초연금을 줘야 한다”면서 “재산이 아닌 나이에 따라 액수를 다르게 줘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어 “어차피 80세 이상은 사람도 얼마 없지 않으냐”고도 되물었다. ‘야쿠르트 아줌마’ 손모(60)씨는 “얼마를 벌면 얼마의 연금을 준다는 건지 이해하기가 어렵다”면서 “내가 얼마를 받게 될지를 모르니 어느 정도로 노후를 준비해야 할지도 모르겠다”고 말했다. 이어 “그렇기 때문에 연금 정책을 좀 더 단순하게 만들어 줬으면 좋겠다”고 제안했다. ●“일하는 앞줄보다 노는 뒷줄이 배불러…” 남대문시장의 한 카메라 수리점에서 만난 이경승(40·여)씨는 건강보험 개혁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씨는 “수입도 제대로 없는데 집 한 채 가지고 있다고 보험을 내라고 한다”면서 “내가 무슨 돈으로 돈을 낼 수 있냐”고 되물었다. 이어 “아무리 돈을 많이 벌어도 보험료는 한도가 있다고 하는데 말이 안 된다”면서 “보험료 최고 한도를 좀 더 높이면 가난한 사람들이 보험료를 덜 낼 수 있지 않겠냐”고 제안했다. 이씨는 “내년에는 좀 더 공평한 세상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은행에 가면 일은 앞줄에 앉은 아가씨들이 다 하는데 돈은 뒤에 앉은 간부들이 더 많이 번다”면서 “뒷줄보다 앞줄에 있는 사람이 더 배부를 수 있는 정치를 해 달라”고 말했다. 안석 기자 sartori@seoul.co.kr 강병철 기자 bckang@seoul.co.kr
  • 만경봉호 출항지 니가타에서 韓·日-北·日 관계를 논하다

    만경봉호 출항지 니가타에서 韓·日-北·日 관계를 논하다

    “북한에 의해 납치된 일본인 문제가 상당 부분 진전되기 전에는 일본 정부의 의미 있는 대북한 제재 해제는 생각하기 어렵다.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 때처럼 몇 명의 납북자를 일본으로 돌려보낸다고 해서 제재를 누그러뜨리지 않을 것이다.” 히라야마 이쿠오 전 니가타현(縣) 지사는 지난 10일 구천서 미래재단 이사장을 만난 자리에서 이같이 말하면서 “일본 정부와 사회가 북한에 의한 일본인 납치 문제의 보다 철저한 해결을 요구하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대담은 히라야마 이쿠오 전 주지사가 총장으로 있는 니가타 국제정보대학(NUIS)에서 이뤄졌다. 구 이사장이 이날 탈북 청년 12명 등 미래재단의 통일지도자아카데미 8기 회원 및 관계자들과 함께 NUIS를 방문했다. 두 사람은 일본인 납치 및 북·일 관계, 종군 위안부 문제 및 한·일 관계, 동북아공동체 구상 등을 논의했다. 구천서 이사장 지난 5월 스웨덴 스톡홀름 북·일 회담에 이어 9월 말 베이징회담, 10월 말 일본 외무성 대표단의 평양 방문 등이 이어지면서 납치자 문제 해결과 양국 관계가 개선의 가닥을 잡은 듯했었다. 그러다 최근 다시 납북 사망자 문제 등을 둘러싸고 걸림돌에 걸린 분위기다. 히라야마 이쿠오 총장 북한은 일본에 ‘납치자 문제에 대한 일본 정부 요구에 응할 테니 제재를 풀어 달라’며 접근했다. 그러나 그들은 일본인 납북자 의혹 사건에 대해 더 새로운 사실을 밝히지 않아 일본 측을 다시 실망시켰다. 메구미 사건은 일본인 납치 문제를 상징한다. 일본은 북한이 그녀와 관련된 모든 정보를 제공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그녀가 사망했다’며 다른 사람의 유골을 보내오는 등 다시 우리를 속여서는 안 된다. 메구미가 살아 있을 것으로 희망한다. 구천서 지사를 세 번 연임하면서 납북자 문제에 관여해 왔고, 피해자 가족과 남다른 인연도 있는 것으로 안다. 북한에 의해 1977년 이곳 니가타에서 납북된 메구미의 사망설이 최근 일부 언론에 보도되기도 했다. 일본은 납치 문제에 대해 어떻게 접근하고 있나. 한·일 공조 강화도 필요하다고 본다. 히라야마 인도주의 사안인 납치 문제에 대한 국제 공조 강화를 환영한다. 그러나 일본과 다른 나라들의 이 문제에 대한 중점과 우선순위는 다를 수밖에 없다. 북한은 이 문제를 갖고 흥정하려고 했지만 흥정 대상은 될 수 없다. 일본은 채찍을 들었다. 경우에 따라서는 ‘엿’(당근의 일본식 표현)을 흔들 수도 있지만 한계가 있다. 납북자 가운데 상당수는 니가타 지역에서 납치됐다. 메구미의 아버지는 일본은행에서 나와 같이 근무한 옛 직장 동료다. 그는 니가타 일본은행 지점장으로 근무할 때 딸인 메구미의 납치를 겪었다. 같은 납북자로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의 방북 후 2002년 일본으로 귀환한 하스이케 가오루는 나의 고교 후배다. 현 지사를 두 번째 맡던 1992년 납치 문제가 불거졌는데 피해자 가족들이 일본 정부에 도움을 요청하고, 증거들이 나오면서 사회적인 쟁점이 됐다. 구천서 일본이 북한에 줄 수 있는 ‘엿’, 유인책은 무엇인가. 남북 관계가 나빠지고 금강산 관광 등에서 얻던 현금 확보 길이 막힌 상태에서 국제적인 대북 제재 공조가 더욱 조여져 왔다. 북한은 경제가 더 어려워지자 대일 관계 개선을 통해 숨통을 틔워 보려고 했다. 국제 공조를 허물기 위해 일본을 대북 공조 체제에서 떼어내려고 안간힘을 쓰는 전략도 엿보인다. 일본 정부는 모든 납치 피해자의 전원 귀국, 북한 측의 납치 피해 진상 규명, 납치를 실행한 공작원의 일본 인도 등을 요구하고 있다. 일본은 ‘납치 피해자 문제의 해결 없이는 국교 수립은 없다’는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 히라야마 그렇다. 그러나 일본의 대북 제재 효과는 제한적이다. 한국, 일본, 중국 세 나라가 한 박자가 돼 북한을 압박해야 효과가 나는데 그게 힘들다. 중국은 나름대로 제재에 참가하고 있다고 하지만 ‘북한 목을 세게 조르지는 않고 있다’는 것이 일본 내 평가다. 에너지와 식량은 중국이 공급하는 가운데 일본은 의약품과 사치품, 하이테크 제품 및 기술협력이라는 지렛대를 갖고 있다. 북한에 영향력이 제일 큰 나라 역시 중국이다. 구천서 그래도 일본의 대북 제재로 북한 지도층이 상당한 고통을 겪지 않았나. 일본은 북한의 탄도 미사일 발사 이후인 2006년부터 만경봉호의 니가타항 입항을 금지했다. 히라야마 총장께서도 당시 지사로서 대북 제재에 중요한 역할을 하면서 납치자 구출 모임의 첫 후원회장 역할을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구출 모임은 납치 문제 해결을 위해 1000만명의 서명을 받기도 했다. 히라야마 만경봉호의 니가타항 입항이 금지되자 ‘최대 희생자는 김정일’이라는 뼈 있는 농담이 유행했다. 김정일은 멜론 등 니가타 지역의 과일을 즐겨 먹었는데 입항 금지로 과일과 일본 술의 직수입이 불가능해져 매우 낙담했다는 말이 돌았었다. 사치품의 수입 금지도 북한 지도층에는 타격이었다. 만경봉호로 북한을 왕래하던 조총련 인사들과 조총련계 재일 조선인 학생들의 수학여행 및 방북 금지도 경제적·전략적으로 적지 않은 타격이 됐다. 해마다 4000명에서 1만여명이 만경봉호를 타고 방북했다. 납치자 문제의 완전 해결은 북한 체제가 바뀌어야 가능할지 모르겠지만 이 문제의 진전 없이는 의미 있는 대북 제재 해제 등 북·일 관계 진전은 불가능하다. 이런 입장이 최근 일본 내에서 더 강화됐다. 납치자 구출 모임에는 지금도 참여하고 있다. 구천서 일본인 납북자 문제도 한·일 협력과 공조의 필요성을 다시 확인케 한다. 두 나라의 협력은 동북아시아 경제 번영과 정치 안정을 위해서도 절실하다. 그런데 일부 일본 정치지도자들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와 위안부 문제 등 역사를 거스르는 행보가 관계 진전을 흔들고 있다. 한·일 관계 개선을 원하는 많은 이들을 안타깝게 하고 있다. 히라야마 1급 전범들이 함께 묻혀 있는 야스쿠니 신사를 정치인과 국가 지도자들이 참배하러 가는 것에는 나도 반대한다. 영토 문제와 관련해선 현상을 건드리지 않는 그대로 놓아 두는 현상유지책이 중요하다. 일·중 관계에서도 일본은 센가쿠열도의 지위 변화 등 문제를 일으켰다. 많은 한국인들이 그러하듯 한·일 관계 개선을 일본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원한다. 우리는 서로 필요로 한다. 협력 강화는 양측에 이득과 번영을 가져다 줄 것이다. 그렇지만 일본군 위안부 문제 등과 관련, 일본 내 인식과 한국 등 국외의 인식에 많은 격차가 있다. 당초 한·일 간에 독도 문제가 가장 큰 갈등 거리였는데 이제는 위안부 문제가 더 큰 쟁점이 됐다. 인식 차가 더 벌어졌다. 일반 국민들의 감정과 태도는 일본 정부보다 한국 측의 인식과 거리가 더 크다는 데 심각성이 있다. 구천서 정치 지도자들의 역할과 공감대 형성 노력이 필요하다. 미래를 위해 무엇이 바람직한지를 판단해 국민을 설득하고 공감대를 이뤄 나가야 한다. 일반 국민들의 관심도가 그리 높지 않을 수 있다. 문제를 풀어 가는 정치인들과 여론주도층의 적극적 역할이 절실한 시점이다. 히라야마 동감한다. 한 가지 지적하고 싶은 점은 한·일 두 나라가 고노 담화 수준에서 이를 정치적으로 타결해 매듭 짓고, 이에 기초해 후속 작업이 이뤄졌어야 했다. 한국도 고노 담화 수준에 만족하지 못했고, 이를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실천하지 못했다. 일본에선 이런 한국 태도에 불만이 높아졌고, 아베 신조 총리에 대한 지지로 이런 감정이 일부 전환됐다. 위안부 문제와 관련, 정부 관여와 강제성을 입증할 확실한 증거와 문서를 찾기 힘들다는 게 일본 측 시각이다. 살아 있는 피해자의 증언, 탄광 노동자 등 강제 징용 피해자들의 증언에 신빙성을 제기하는 의견도 있다. 구천서 꽃다운 청춘을 희생당한 당사자들이 눈을 시퍼렇게 뜨고 살아 있는데 더 확실한 증거를 어디서 찾겠나. 물론 이와 관련한 일본학계 내 논의 등에는 주목하고 있다. 일본 내 여론 가운데 ‘60여년이 지났는데 언제까지 사과만 요구할 건가’라는 주장을 듣고 있다. 계기가 있을 때마다 독일의 총리와 정치지도자들이 과거에 국가가 저지른 죄악의 책임을 반성하는 행동이 국격과 국제사회에서 지도력을 높였다는 사실은 일본에도 본보기가 될 수 있다. 미래는 올바른 과거 인식에서 출발한다. 히라야마 동감이다. 역지사지의 정신으로 임해야겠다. 탈북 청년 등 한국 청년들이 구 이사장과 함께 우리 학교를 찾아와 줘서 고맙다. 우리 학교 학생 40여명과 한국의 젊은이들은 저녁을 함께 하면서 바로 친해졌다. 몇 시간의 만남 뒤에 서로 헤어지는 것을 아쉬워하며 우정을 나누는 것을 지켜보면서 한·일 관계의 희망을 발견했다. 탈북 청년 등 이곳에 온 한국 젊은이들은 한국의 통일과 화해를 상징하는 희망이다. 한·일 젊은 세대의 교류를 더욱 확대해 나가자. 50년, 100년을 보고 나아가야 한다. 구천서 니가타는 많은 상념에 잠기게 하는 곳이다. 1959년부터 1984년까지 9만 3339명의 재일교포와 그 가족들이 니가타 항구를 통해 북송됐고, 북한 요원들에 의해 무구한 일본 소년 소녀와 양민들이 납치된 곳이기도 하다. 바다 너머가 바로 한반도다. 이번에 일본을 찾은 한국 젊은이 가운데는 어머니가 이곳 니가타에서 1960년대 초 만경봉호를 타고 북송됐던 재일교포의 딸도 포함돼 있다. 과거 한국인과 일본인의 고통과 절망을 상징했던 니가타가 협력과 화해, 번영과 평화를 위한 동북아시아 공동체의 허브 지역으로 발돋움하고 있는 데 대해 뜻깊게 생각한다. 히라야마 니가타는 바다를 사이로 한국, 북한, 러시아 등을 마주 보고 있다. 지사를 세 차례 연임하면서 이곳을 남북한과 중국, 러시아 등 동북아 국가들의 교류 중심으로 키우려고 노력했다. 한반도와 니가타 사이의 바다를 화해와 번영의 내해(內海)로, 지역공동체의 거점으로 키워 나가려는 노력이 한·일 양측에서 활발하게 이어지고 있다. 내년이면 한·일 국교 정상화 50주년을 맞는다. 두 나라가 관계 발전의 좋은 계기를 마련하기 위해 힘을 모을 때다. 정리 니가타 이석우 선임기자 jun88@seoul.co.kr ■구천서 이사장 1950년생(64). 충북 보은 출생, 고대 경제학과 졸업, 15·16대 국회의원,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 공동의장, 한국산업인력공단 이사장, 베이징대 박사, 현 한반도미래재단 이사장 및 한·중경제협회 회장 ■히라야마 이쿠오 前 지사 1944년생(70). 니가타현 출생, 요코하마국립대 경제학과 졸업, 일본은행 니가타지점장, 니가타현 지사(3선), 러시아 과학아카데미 명예박사, 현 니가타 국제정보대학(NUIS) 총장
  • 납북자 문제 해결 않고는 北·日 관계 정상화 없다는 원칙 재확인

    납북자 문제 해결 않고는 北·日 관계 정상화 없다는 원칙 재확인

    주말인 지난 15일 니가타 시민예술문화회관에서는 1000여명의 참석자들이 파란 리본을 가슴에 달고 집회를 가졌다. ‘잊지 말자 납치, 11·15 현민(縣民)’ 집회였다. 13살이던 요코타 메구미가 북한 공작원들에 의해 니가타에서 납치된 1977년 11월 15일을 잊지 말고 기억해야 한다는 의미다. 일본 내에서 북한에 의한 납치자들의 조속한 석방 및 송환을 촉구하고 비인도적인 이 문제의 심각성을 알리는 상징적인 연례 모임이다. 야마다니 에리코 내각 납치문제담당장관, 이즈미다 히로히코 니가타현 지사, 시노다 아키라 니가타 시장, 쓰카다 이치로 참의원 의원, 이시자키 도루 중의원 의원 등 주요 인사들도 참석해 납치 피해자 문제의 조속한 해결 필요성과 납치문제 해결 없는 북·일 관계 정상화는 없다는 원칙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야마다니 장관은 이날 “납치 문제에서 납득할 만한 성과가 없으면 북한이 유골 및 무덤 문제, 행방 불명자 문제, (북송 한국인의) 일본인 처 문제 등에서 아무리 좋은 성과를 낸다고 해도 일본은 평가하지 않겠다”고 단호한 태도를 밝혔다. 북한은 ‘납치자 문제는 해결된 사안’이라고 주장해 오다 입장을 바꿔 지난 7월 납치 문제 특별조사위원회를 설치하는 등 일본 측 요구에 일부 응하며 관련 조사에 협조하고 있다. 일본 정부가 공식 인정한 북한에 의한 납치 피해자는 17명이다. 이 가운데 요코다 메구미 등 5명이 니가타 출신이다. 북한은 “17명 가운데 메구미 등 8명은 이미 사망했고, 4명은 북한에 들어온 적이 없다”고 주장해 왔다. 일본 정부는 “북한이 주장하는 사망자 8명의 사인이 모두 석연치 않다”며 피해자 유골의 반환을 요구해 왔으나 북한 측은 “메구미와 마쓰키 가오루 외에 6명의 유골은 유실됐다”고 설명하고 있다. 2002년 9월 고이즈미 준이치로 당시 일본 총리는 평양을 방문해 납치 피해자 5명을 귀국시킨 바 있다. 니가타 이석우 선임기자 jun88@seoul.co.kr
  • [세종로의 아침] 특별한 졸업여행/이석우 정책뉴스부 선임기자

    [세종로의 아침] 특별한 졸업여행/이석우 정책뉴스부 선임기자

    만경봉호가 기항하던 자리에는 일본 화물선이 대신 자리하고 있었다. 선박 위로 거대한 기중기들만 화물 컨테이너를 옮기느라 분주했다. 동해 너머 한반도와 마주하고 있는 일본 니가타항 국제 부두. 지난 10일 항구를 찾은 25명의 청년은 만경봉호가 기항하던 부두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한 해 20차례 이상 입항하던 만경봉호는 2006년 일본 정부의 입항 금지 조치로 니가타 항에 들어올 수 없게 됐지만 청년들은 9만 3339명의 재일교포와 그 가족들을 북으로 실어날랐던 만경봉호가 금세 떠난 것처럼 항구와 바다 쪽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청년들은 한반도미래재단이 운영하는 통일지도자아카데미 수료생들이었다. 과정을 마치고 구천서 이사장 등 미래재단 관계자들과 함께 니가타로 수료를 기념한 ‘졸업 여행’을 온 참이었다. 20대 초반에서 30대의 탈북 청년 12명도 있었다. 1959년에서 1984년까지 186차례에 걸쳐 진행된 북송 현장에서 그들은 더 침통하고 숙연해했다. 함흥, 회령, 새별 등 고향도 다양하고, 집안 환경이나 삶의 역정도 제각각이지만 목숨을 걸고, 사선을 넘어왔다는 점은 같았다. “외할머니는 돌아가시는 날까지 평생 후회하며 살았다. ‘왜 우리를 여기에 데려왔느냐’는 엄마의 원망은 늘 외할머니를 짓눌렀고, 자책과 눈물 속에 괴로워하는 모습이 눈에 선했다” 북송교포 가족인 영숙(가명)씨는 니가타항에서 흘러내리는 눈물을 주체하지 못했다. “오사카에 사셨던 외할머니가 13살이던 엄마와 외삼촌들을 데리고 1962년 바로 이 자리에서 북송선을 탔다. 그 모습을 생각하니 가슴이 꽉 막혀왔다” 외할머니의 후회와 엄마의 원망, 그리고 그 원망과 회한을 영숙씨도 3대째 대물림하고 있었다. 항구 부근 재래시장을 지날 때 영숙씨는 “외가 식구들이 이곳에서 내복과 식료품 등을 박스째 사 갖고 북송선을 탔다는 이야기를 귀에 목이 박히도록 들었다”고 기억했다. 그는 고향 청진을 떠나 2년여 동안 중국과 동남아를 떠돌다가 10여년 전에 서울에 안착했다. 다른 11명의 탈북 청년들도 제각각의 사연과 상처를 안고 있었다. 배가 고파 중국으로 넘어갔다가 중국 농촌으로 팔려갔던 이도 있었고, 휴전선에서 근무하다 지뢰밭을 넘어 남으로 온 북한군 출신도 있었다. 북한에선 남부럽지 않게 살았지만 자유의 갈증에 사선을 넘은 젊은이도 있었다. 북송 현장에서 “북에 있는 엄마를 보고 싶다”고 한 청년도 있었고, 깊은 한숨만 연거푸 쉬는 이도 눈에 들어왔다. 몇몇 탈북 청년들은 외모나 말씨에서나 전혀 남한 출생자들과 구별이 가지 않았다. 동행한 남한 출신 청년들도 그들과 하나가 돼 함께 하고 있었다. “내 소원은 평범한 한국인으로 사는 것”이란 한 탈북 청년의 말이 가슴을 파고들었다. 이들은 요코다 메구미 등 일본인들이 북한에 의해 납치된 니가타 주변 해안도 살펴봤다. 때마침 니가타 현은 ‘잊지 말자 납치, 11월 15일 현민(縣民) 집회’를 준비하느라 공항과 역, 시내 주요 시설물 이곳저곳에 사진 전시회를 열고 안내문을 붙여놓고 있었다. jun88@seoul.co.kr
  • 야마모토 세이코, 메이저리거 다르빗슈 유와 공개 연애…야마모토 세이코는 누구?

    야마모토 세이코, 메이저리거 다르빗슈 유와 공개 연애…야마모토 세이코는 누구?

    ‘야마모토 세이코’ ‘다르빗슈 유’ 메이저리그에서 활약하고 있는 일본인 투수 다르빗슈 유(28·텍사스 레인저스)와 레슬링 선수 출신 야마모토 세이코(34)가 공개연애 중이다. 다르빗슈 유는 18일 자신의 트위터에 “둘이서 상의한 끝에 공개 연애를 결정했다”라며 “응원을 부탁드린다”고 야마모토 세이코와 열애 사실을 전했다. 이와 함께 공개한 사진에는 다르빗슈 유와 야마모토 세이코가 포옹을 하면서 환한 미소를 짓고 있다. 한편 다르빗슈 유는 메이저리그에 진출해 있는 일본인 투수다. 그는 2007년 배우 사에코와 결혼했다가 2012년 이혼한 바 있다. 야마모토 세이코는 세계선수권 3연패, 3체급 4개 선수권 우승 등 레슬링 선수로서 뛰어난 실력을 인정받았으며 코치로 활동하고 있다. 그 역시 2009년 한 차례 이혼했다. 다르빗슈 유와 야마모토 세이코 연애 소식에 네티즌들은 “다르빗슈 유-야마모토 세이코, 축하한다”, “다르빗슈 유-야마모토 세이코, 깜짝 소식이네”, “다르빗슈 유-야마모토 세이코, 솔직하고 보기 좋다” 등의 축하를 건넸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26억원의 도전 불가능은 없었다

    26억원의 도전 불가능은 없었다

    닭고기 전문업체 하림그룹의 김홍국 회장이 세계적인 관심이 쏠렸던 나폴레옹 1세의 모자를 프랑스 경매에서 약 26억원에 사들여 화제를 모으고 있다. 16일(현지시간) AFP 통신 등에 따르면 프랑스 퐁텐블로 오세나 경매소는 이날 모나코 왕실이 소장해 오다 경매에 내놓은 나폴레옹의 이각(二角) 모자가 모자 경매 가격으로는 역대 최고인 188만 4000유로(약 25억 8000만원)에 하림에 낙찰됐다고 밝혔다. 경매소가 예상했던 낙찰 가격(50만 유로)보다 4배 높은 것이다. 경매에 참가한 하림 직원 이태균씨는 AFP에 “상사(boss)를 대신해 왔다”며 “회사가 현재 신사옥을 건설 중인데 이 모자를 전시해 많은 사람이 찾도록 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 회사와 직원들은 (나폴레옹과 같은) 한국의 개척가”라고 덧붙였다. 하림도 이날 보도자료를 내고 “김 회장은 평소 나폴레옹의 ‘불가능은 없다’는 도전정신을 높이 사왔으며 기업가 정신을 다시 한번 일깨우는 의미에서 모자를 구매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김 회장은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마지막까지 일본인과 경쟁하느라 낙찰 가격이 다소 올라갔지만, 벌써 30% 더 줄 테니 팔라고 하는 사람도 있을 정도”라고 말했다. 하림은 이 모자를 사람들이 볼 수 있는 장소에 비치해 나폴레옹의 도전과 개척정신을 공유하는 방안을 생각하고 있다고 밝혔다. 낙찰된 모자는 나폴레옹이 지휘하던 부대의 수의사에게 선물한 것으로, 오랜 세월이 지났지만 사용하지 않고 보관만 해 왔기 때문에 크게 닳지 않은 상태다. 이각 모자는 양쪽으로 챙이 접힌 모서리가 있으며 19세기 프랑스 등에서 유행했다. 경매소 측은 이 모자를 쓰고 전투에 나선 나폴레옹을 보고 적들은 그를 박쥐라고 부르기도 했다고 소개했다. 모나코의 현 국왕 알베르 2세의 증조부인 루이 2세가 수의사의 후손으로부터 이 모자를 직접 사들여 왕실 소장품으로 삼았다가 이번에 경매에 내놓았다. 나폴레옹의 모자 120개 중 현재 남아 있는 모자는 19개뿐이며 이 가운데 2개만 민간인이 소장하고 있다. 박상숙 기자 alex@seoul.co.kr
  • 나폴레옹 모자 하림 김홍국 회장 낙찰 “벌써부터 30% 더 줄테니 팔라는 사람 있어”

    나폴레옹 모자 하림 김홍국 회장 낙찰 “벌써부터 30% 더 줄테니 팔라는 사람 있어” 16일(현지시간) AFP 통신 등에 따르면 퐁텐블로의 오세나 경매소는 이날 모나코 왕실이 소장해오다 경매에 내놓은 나폴레옹의 모자가 모자 경매가격으로는 역대 최고인 188만 4000유로(약 25억 8000만원)에 낙찰됐다고 밝혔다. 경매에 참가한 하림 직원 이태균씨는 AFP에 “상사(boss)를 대신해 왔다”며 하림 측이 현재 건설 중인 신사옥을 위해 이 모자를 샀다고 말했다. 이씨는 “우리는 이 모자를 전시해 사람들이 오게 하고 싶다”며 “또 우리 회사 직원들은 (나폴레옹과 같은) 한국의 개척가”고 덧붙였다. 이와 관련, 하림그룹은 나폴레옹의 모자 구매자는 김홍국 회장이라고 밝혔다. 그룹 측은 보도자료를 통해 “김 회장은 평소 보나파르트 나폴레옹 1세의 불가능은 없다는 도전정신을 높이 사왔으며 기업가 정신을 다시 한번 일깨우는 의미에서 마침 경매로 나온 모자를 구매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하림 측은 이어 “어린 시절 키웠던 병아리 10마리를 기반으로 연 매출액 4조 8000억원 대의 하림그룹을 일군 김 회장은 평소 ‘안전지대를 떠나라’며 현실에 안주하지 않는 도전과 개척 정신을 강조해왔다”며 “나폴레옹의 도전정신은 기업가 정신이 절실한 이 시대에 주는 메시지가 있는 만큼, 이 모자를 사람들이 볼 수 있는 장소에 비치해 도전과 개척정신을 공유하는 방안을 생각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김홍국 회장은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마지막까지 일본인과 경쟁하느라 낙찰 가격이 다소 올라갔다. 벌써부터 30% 더 줄테니 팔라고 하는 사람이 있을 정도로 환금성도 좋다. 투자를 염두에 둔 것은 아니지만 이런 기회를 놓칠 수 없었다”고 말했다. 낙찰된 나폴레옹의 검은색 펠트 모자는 나폴레옹이 지휘하던 부대의 수의사에게 선물한 것으로, 오랜 세월이 지났지만 사용하지 않고 보관만 해왔기 때문에 크게 닳지 않은 상태다. 모나코의 현 국왕 알베르 2세의 증조부인 루이 2세가 수의사의 후손으로부터 이 모자를 직접 사들여 왕실 소장품으로 삼았다가 이번에 경매에 내놓았다. 이각 모자는 양쪽으로 챙이 접힌 모서리가 있는 모자로 19세기 프랑스 등에서 유행했으며 나폴레옹도 직접 썼다. 경매소 측은 애초 낙찰 가격을 50만 유로(6억 9000만원)로 예상했으나 4배에 가까운 높은 가격에 팔렸다. 나폴레옹의 모자 120개 중 현재 남아있는 모자는 19개뿐이며 이 가운데 2개만 민간인이 소장하고 있다. 경매소 직원 알렉상드르 지클로는 “나폴레옹은 당시 이 상징물이 위력을 갖고 있음을 알고 있었다”면서 “전투 현장에서 적들은 나폴레옹을 박쥐라고 불렀다. 이 모자를 써서 그런 모습이었기 때문이었다”고 소개했다. 나폴레옹과 먼 친척 관계인 모나코 왕실은 이 모자와 함께 수십 개의 메달과 장식용 열쇠, 문서, 보석이 박힌 칼, 총알 구멍이 난 부대 깃발을 포함한 다양한 나폴레옹 유품을 함께 경매에 내놓았다. 알베르 2세는 경매 안내 카탈로그에서 모나코 왕궁 보수비용을 대고자 소장품을 매각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네티즌들은 “나폴레옹 모자 하림 김홍국 회장 낙찰, 정말 제대로 이슈가 됐네”, “나폴레옹 모자 하림 김홍국 회장 낙찰, 하림 회장의 신의 한수다”, “나폴레옹 모자 하림 김홍국 회장 낙찰, 모자 구경이라도 한번 해봤으면 좋겠다” 등 다양한 반응을 보였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나폴레옹 모자 하림 김홍국 회장 “벌써부터 돈 더 줄테니 팔라는 사람 있어” 왜?

    나폴레옹 모자 하림 김홍국 회장 낙찰 “벌써부터 30% 더 줄테니 팔라는 사람 있어” 16일(현지시간) AFP 통신 등에 따르면 퐁텐블로의 오세나 경매소는 이날 모나코 왕실이 소장해오다 경매에 내놓은 나폴레옹의 모자가 모자 경매가격으로는 역대 최고인 188만 4000유로(약 25억 8000만원)에 낙찰됐다고 밝혔다. 경매에 참가한 하림 직원 이태균씨는 AFP에 “상사(boss)를 대신해 왔다”며 하림 측이 현재 건설 중인 신사옥을 위해 이 모자를 샀다고 말했다. 이씨는 “우리는 이 모자를 전시해 사람들이 오게 하고 싶다”며 “또 우리 회사 직원들은 (나폴레옹과 같은) 한국의 개척가”고 덧붙였다. 이와 관련, 하림그룹은 나폴레옹의 모자 구매자는 김홍국 회장이라고 밝혔다. 그룹 측은 보도자료를 통해 “김 회장은 평소 보나파르트 나폴레옹 1세의 불가능은 없다는 도전정신을 높이 사왔으며 기업가 정신을 다시 한번 일깨우는 의미에서 마침 경매로 나온 모자를 구매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하림 측은 이어 “어린 시절 키웠던 병아리 10마리를 기반으로 연 매출액 4조 8000억원 대의 하림그룹을 일군 김 회장은 평소 ‘안전지대를 떠나라’며 현실에 안주하지 않는 도전과 개척 정신을 강조해왔다”며 “나폴레옹의 도전정신은 기업가 정신이 절실한 이 시대에 주는 메시지가 있는 만큼, 이 모자를 사람들이 볼 수 있는 장소에 비치해 도전과 개척정신을 공유하는 방안을 생각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김홍국 회장은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마지막까지 일본인과 경쟁하느라 낙찰 가격이 다소 올라갔다. 벌써부터 30% 더 줄테니 팔라고 하는 사람이 있을 정도로 환금성도 좋다. 투자를 염두에 둔 것은 아니지만 이런 기회를 놓칠 수 없었다”고 말했다. 낙찰된 나폴레옹의 검은색 펠트 모자는 나폴레옹이 지휘하던 부대의 수의사에게 선물한 것으로, 오랜 세월이 지났지만 사용하지 않고 보관만 해왔기 때문에 크게 닳지 않은 상태다. 모나코의 현 국왕 알베르 2세의 증조부인 루이 2세가 수의사의 후손으로부터 이 모자를 직접 사들여 왕실 소장품으로 삼았다가 이번에 경매에 내놓았다. 이각 모자는 양쪽으로 챙이 접힌 모서리가 있는 모자로 19세기 프랑스 등에서 유행했으며 나폴레옹도 직접 썼다. 경매소 측은 애초 낙찰 가격을 50만 유로(6억 9000만원)로 예상했으나 4배에 가까운 높은 가격에 팔렸다. 나폴레옹의 모자 120개 중 현재 남아있는 모자는 19개뿐이며 이 가운데 2개만 민간인이 소장하고 있다. 경매소 직원 알렉상드르 지클로는 “나폴레옹은 당시 이 상징물이 위력을 갖고 있음을 알고 있었다”면서 “전투 현장에서 적들은 나폴레옹을 박쥐라고 불렀다. 이 모자를 써서 그런 모습이었기 때문이었다”고 소개했다. 나폴레옹과 먼 친척 관계인 모나코 왕실은 이 모자와 함께 수십 개의 메달과 장식용 열쇠, 문서, 보석이 박힌 칼, 총알 구멍이 난 부대 깃발을 포함한 다양한 나폴레옹 유품을 함께 경매에 내놓았다. 알베르 2세는 경매 안내 카탈로그에서 모나코 왕궁 보수비용을 대고자 소장품을 매각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네티즌들은 “나폴레옹 모자 하림 김홍국 회장 낙찰, 정말 제대로 이슈가 됐네”, “나폴레옹 모자 하림 김홍국 회장 낙찰, 하림 회장의 신의 한수다”, “나폴레옹 모자 하림 김홍국 회장 낙찰, 모자 구경이라도 한번 해봤으면 좋겠다” 등 다양한 반응을 보였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나폴레옹 모자 하림, 김홍국 26억 원 베팅한 이유 “일본 때문에?” 왜?

    나폴레옹 모자 하림, 김홍국 26억 원 베팅한 이유 “일본 때문에?” 왜?

    ’나폴레옹 모자 하림 김홍국’ 프랑스 황제 나폴레옹 1세의 모자 낙찰자가 닭고기 전문기업 하림의 김홍국 회장인 것으로 알려져 화제다. AFP통신은 16일(현지시각) 프랑스 파리 퐁텐블로의 오세나 경매소에서 진행된 나폴레옹의 모자 경매가 188만4천유로(약 25억8천만원)에 한국인 수집가에게 낙찰됐다고 보도했다. 경매에 참가한 하림 직원 이태균씨는 AFP에 “상사(boss)를 대신해 왔다”며 “현재 건설 중인 신사옥을 위해 이 모자를 샀다”고 말했다. 이씨는 “우리는 이 모자를 전시해 사람들이 오게 하고 싶다”며 “또 우리 회사 직원들은 (나폴레옹과 같은) 한국의 개척가”고 덧붙였다. 하림그룹은 보도자료를 통해 나폴레옹의 모자 구매자는 김홍국 회장이라고 밝혔다. 김홍국 회장은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마지막까지 일본인과 경쟁하느라 낙찰 가격이 다소 올라갔지만, 벌써 30% 더 줄 테니 팔라고 하는 사람도 있을 정도로 환금성도 좋다”며 “투자를 염두에 둔 것은 아니지만, 이런 기회를 놓칠 수 없었다”고 말했다. 평소 보나파르트 나폴레옹 1세의 불가능은 없다는 도전정신을 높이 산 김홍국 회장은 기업가 정신을 다시 한 번 일깨우는 의미에서 마침 경매로 나온 나폴레옹 1세의 2각 모자를 구매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김홍국 회장이 낙찰받은 이각모는 나폴레옹이 지휘하던 부대의 수의사에게 선물한 것으로, 1926년 현 국왕 알베르 2세의 증조부인 루이 2세가 수의사의 후손으로부터 이 모자를 직접 사들여 왕실 소장품으로 삼았다. 당초 이 모자의 낙찰가는 30만~40만 유로(약 4~5억5,000만원) 사이가 될 것으로 예상됐으나 5배 가까운 가격에 팔렸다. 나폴레옹 모자 하림 김홍국 회장 소식을 접한 네티즌들은 “나폴레옹 모자 하림 김홍국, 마케팅 효과 짱” “나폴레옹 모자 하림 김홍국, 회사도 알리고 모자도 얻었네” “나폴레옹 모자 하림 김홍국, 괜찮은 마케팅 기법이다” “나폴레옹 모자 하림, 나도 한 번 써보고 싶다” “나폴레옹 모자 하림 김홍국 회장..모자 구경하러 가야지” 등의 반응을 보였다. 사진 = AFPBBNews (나폴레옹 모자 하림 김홍국 회장) 뉴스팀 chkim@seoul.co.kr
  • “살아돌아온 者 의무로 북송동포 인권구제를”

    “살아돌아온 者 의무로 북송동포 인권구제를”

    재일동포의 북송사업 반세기를 맞아 북한에 건너간 재일동포와 일본인에 대한 인권구제 사업이 일본에서 시작된다. 교토 출신으로 재일동포 2세인 가와사키 에이코(72)는 조선총련이 설립한 조선인학교 고급부 3년생이던 1960년 17살의 나이에 ‘귀국선’에 올랐다. 하지만 지상낙원으로 선전했던 북한의 실정은 딴판이었다. 김일성 주석 사망(1994년) 이후 대규모 기아에 시달리는 아비규환을 목격하고 탈북을 결심했다고 한다. 기회를 엿보던 그는 북·중 국경의 강을 건너 2004년 일본으로 입국했다. 가와사키는 16일 “살아 돌아온 자의 의무로서 일본으로 돌아오고 싶어 하는 재일동포와 일본인을 돕고 싶다”고 말했다. 북송 재일동포와 자녀, 일본인 처의 신분으로 탈북해 일본으로 직행한 사람은 200여명. 남한을 선택한 탈북자 2만 7255명(10월 말 현재)의 1% 미만이다. 가와사키는 국제인권단체인 휴먼라이트워치의 일본사무소 측과 북송사업의 부당성과 책임소재를 가리고, 일본으로의 귀국을 원하는 사람들을 돕는 사업을 추진한다는 포부를 밝혔다. 지난 13일에는 이를 실행하는 ‘모두 모이자’라는 시민단체도 결성해 대표가 됐다. 가와사키는 “최근의 북·일 교섭 결과에 따라 일본인 배우자들이 귀국을 하면 그들에 대한 지원도 할 생각”이라고 덧붙였다. 도쿄 황성기 특파원 marry04@seoul.co.kr
  • [한·일 물가비교] ‘아베노믹스 쇼크’ 장바구니물가 들썩…日서도 실질임금까지 줄어 지갑 닫아

    ‘잃어버린 20년’을 겪어온 일본은 오랜 기간 진행된 디플레이션 때문에 물가가 거의 변동이 없었다. 그러나 최근 들어 아베 신조 정권이 추진하는 경제정책 ‘아베노믹스’의 영향으로 물가가 상승하기 시작하며 실질임금이 떨어지는 등 일본의 서민들은 고통을 겪고 있다. 디플레이션이 한창이던 2000년과 2014년 물가를 비교해 보면 큰 차이가 없음을 알 수 있다. 일본 총무성 통계에 따르면 2000년 160엔(도쿄 기준)이던 지하철 기본요금은 2014년 170엔으로 14년 동안 10엔밖에 오르지 않았다. 같은 기간 시내버스 기본요금도 200엔에서 210엔으로 10엔 오르는 데 그쳤다. 택시 기본요금은 660엔에서 730엔으로 70엔 상승했고, 휘발유 ℓ당 가격(전국 평균)은 108엔에서 163엔으로 ℓ당 60엔 올랐다. 나라별 경제지표로도 활용되는 맥도날드 빅맥 햄버거(단품)의 경우 2000년 280엔에서 2014년에는 370엔으로 90엔 올랐다. 대학 등록금 역시 2000년 47만 8800엔(국립대 1년 수업료 기준)에서 2014년 53만 5800엔으로 5만 7000엔 상승했다. 오히려 가격이 떨어진 품목도 있다. 쌀의 경우 2000년 3955엔(5㎏ 기준)이었던 것이 2014년에는 오히려 2177엔으로 대폭 하락했다. 영화 관람요금도 1262엔에서 1246엔(2013년 기준)으로 조금 내렸다. 물론 디플레이션의 영향으로 임금 역시 크게 오르지는 않았다. 대졸 평균 연봉의 경우 남성은 398만 1000엔에서 395만 4000엔으로 오히려 떨어졌고, 여성은 275만 8000엔에서 281만 3000엔으로 조금 올랐다. 그러나 2012년 12월 아베 총리가 집권한 뒤 디플레이션 탈출을 위해 양적 완화, 재정지출 확대, 엔화 약세 유지 등으로 물가상승률 2%를 실현하겠다는 ‘아베노믹스’ 정책을 추진하면서 잔잔하던 일본의 서민 경제가 요동치고 있다. 특히 일본 정부가 양적 완화를 상쇄하기 위해 지난 4월 소비세를 5%에서 8%로 올리면서 서민들의 장바구니 살림은 어려워졌다. 일본 후생노동성이 지난 5일 발표한 9월 실질임금 지수(속보치)는 80.3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9% 하락했다. 2013년 7월 이후 무려 15개월 연속 마이너스를 기록 중이다. 오랫동안 변화가 없던 물가가 요동치는 반면에 임금은 그만큼 오르지 않아 서민들은 좀처럼 지갑을 여는 데 인색해지고 있는 것이다. 도쿄에서 7년째 유학 생활을 하고 있는 대학원생 윤희리(26)씨는 “생필품은 어쩔 수 없지만 15만엔 정도 하는 노트북은 세금이 오르면서 비싸진 것 같아 구입을 망설이고 있다”면서 “주변 일본인들도 비싼 물건을 구입할 때는 주저하는 경향이 많은 것 같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도쿄 김민희 특파원 haru@seoul.co.kr
  • 26억 원에 한국인에게 낙찰, 경매소 인물과 산 사람이 다르다? ‘누구길래..’

    ‘26억 원에 한국인에게 낙찰’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의 상징과 같은 이각 모자가 26억 원에 한국인에게 낙찰됐다. 나폴레옹이 쓰던 모자를 26억에 낙찰받은 한국인이 닭고기 전문기업 하림의 김홍국 회장으로 밝혀졌다. 김 회장은 17일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평소 나폴레옹을 존경해 왔는데 그의 유품이 경매된다는 소식을 듣고 입찰하게 됐다”고 말했다. 김 회장은 이날 프랑스 파리 퐁텐블로의 오세나 경매소에 나론 나폴레옹의 이각모를 188만4천유로(약 25억8천만원)에 낙찰 받았다. 김 회장에게 낙찰받은 나폴레옹 모자는 나폴레옹이 지휘하던 부대의 수의사에게 선물한 것이다. 모나코의 현 국왕 알베르 2세의 증조부인 루이 2세가 수의사의 후손으로부터 이 모자를 직접 사들여 왕실 소장품으로 삼았다가 이번에 경매에 내놓았다. 경매소 측은 애초 낙찰 가격을 50만유로로 예상했으나 4배에 가까운 높은 가격에 팔렸다. 나폴레옹의 모자 120개 중 현재 남아있는 모자는 19개뿐이며 이 가운데 2개만 민간인이 소장하고 있다. 경매소 직원 알렉상드르 지클로는 “나폴레옹은 당시 이 상징물이 위력을 갖고 있음을 알고 있었다”면서 “전투 현장에서 적들은 나폴레옹을 박쥐라고 불렀다. 이 모자를 써서 그런 모습이었기 때문이었다”고 소개했다. 김 회장은 “마지막까지 일본인과 경쟁하느라 낙찰 가격이 다소 올라갔지만, 벌써 30% 더 줄 테니 팔라고 하는 사람도 있을 정도로 환금성도 좋다”며 “투자를 염두에 둔 것은 아니지만, 이런 기회를 놓칠 수 없었다”고 말했다. 한편 경매소 측은 낙찰자의 신원을 공개하지 않았지만, 낙찰자는 하림 김홍국 회장 측 대리인 이태균 씨로 알려졌다. 26억 원에 한국인에게 낙찰 소식을 접한 네티즌은 “26억 원에 한국인에게 낙찰..도대체 돈이 얼마나 많길래”, “26억 원에 한국인에게 낙찰..내가 돈이 있었다면 저 모자를 샀을 것” “26억 원에 한국인에게 낙찰, 왠지 나폴레옹의 모자가 너무 멋져 보인다” “26억 원에 한국인에게 낙찰..나폴레옹의 기를 받을 수 있을 거 같아”등의 반응을 보였다. 사진 = AFPBBNews (26억 원에 한국인에게 낙찰) 뉴스팀 chkim@seoul.co.kr
  • [당신의 책]

    [당신의 책]

    카페 사르트르(한국사르트르연구회 지음, 에크리 펴냄) 실존주의 철학자, 노벨문학상 수상을 거부한 소설 및 극작가, 실천적 지식인, 여성철학자 시몬 드 보부아르의 평생 동반자…. 화려한 수식어를 단 장 폴 사르트르(1905~1980)는 전후 정신적 공황 상태에 있던 젊은이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한국도 예외가 아니어서 그는 서구 지성의 대명사가 됐고, 실존주의 철학은 국내 학계에도 깊은 영향을 미쳤다. 지난 20년 동안 한결같이 사르트르 연구에 매진해 온 한국사르트르연구회 소속 학자들이 연구회 발족 20주년을 기념해 연구서를 펴냈다. 사르트르의 철학이 탄생한 주무대인 파리 생제르만데프레의 카페에서처럼 다양한 스펙트럼을 지닌 학자와 연구자들이 다채로운 시각으로 사르트르를 새롭게 읽어낸다. 580쪽. 3만 5000원. 트렌드 코리아 2015(김난도 등 지음, 미래의창 펴냄) ‘대한민국 청춘 멘토’ 김난도 교수가 이끄는 서울대학교 생활과학연구소 소비트렌드 분석센터의 2015년 예측 보고서. 연구소가 선정한 내년의 10대 소비트렌드 키워드는 양의 해에 걸맞게 ‘카운트 쉽’(COUNT SHEEP)이다. 도처에 불안한 요소들이 남아있음을 반영한 것이다. 책은 ‘다크호스’를 키워드로 했던 2014년 한 해가 어떻게 전개됐는지를 리뷰한 뒤 본격적으로 명암이 공존하는 2015년의 모습을 경제, 나라 살림, 정책 방향, 기술 변화, 사회문화적 동향을 전망한다. 2014년의 소비는 세월호와 함께 차가운 바다에 침몰했고 정치권 갈등은 최고조에 달했다. 책은 2015년의 경우 오프라인 매장과 모바일 앱 기술의 결합으로 소비자에게 끊김 없는 쇼핑 환경을 제공하지만 ‘정답’을 찾지 못하면서 소비는 크게 호전되지 않을 것으로 전망한다. 411쪽. 1만 6000원. 상실과 노스탤지어(이소마에 준이치 지음, 심희찬 옮김, 문학과 지성사 펴냄) 일본의 종교 및 역사학자인 이소마에 준이치 국제일본문화센터 교수가 근대 일본인들의 내면을 분석했다. 저자는 한국의 탈식민주의 연구자들과 활발히 교류하면서 재일 조선인, 소수자, 디아스포라를 주제로 학문적 영향력을 넓혀 온 소장학자다. 그는 책에서 일본의 정체성을 이도 저도 아닌 어중간하게 끼인 ‘인 비트윈’(in between)으로 정의한다. 일본의 근대는 서양문물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과감한 체제개혁을 단행한 메이지 유신으로 시작되어 이후 태평양전쟁에서의 패전으로 수많은 사상자를 낳고 미국의 점령을 받는 등 사회격동 한가운데 놓이게 됐다. 근대 일본이 사로잡혀 있는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는’ 이질감 내지 상실감을 포착해 그 근원을 살피고 나아갈 방향을 성찰한다. 327쪽. 1만 6000원. 유라시아 고고기행(황규호 지음, 주류성 펴냄) 오랫동안 문화재·종교·학술 담당기자로 뛰며 전세계 문명과 종교의 발상지를 답사하고 고고학 발굴현장을 취재해 온 저널리스트가 쓴 대중을 위한 고고학과 미술사 교양서. 저자가 프랑스 파리 고인류연구소에서 열린 한국-프랑스 구석기 워크숍에 초청돼 이 분야의 지식을 나눈 경험에서 비롯된 책은 인류 구석기 메카로 통하는 발로네 동굴, 라자레 동굴 등 프랑스 주요 선사유적을 둘러 본 경험을 소상히 다룬다. 이밖에 파키스탄 정부 초청으로 방문했던 서남아시아의 인류문명과 불교미술 발상지, 시베리아 고고민족학연구소가 주최한 시베리아 100년의 파노라마 국제학술회의 참석 당시 방문한 시베리아와 알타이 문화도 조명한다. 책의 후반부는 약 35년 전 전기 구석기 유물로 만능 연장으로 사용된 아슐리안 주목도끼의 고장인 한반도 중부 한탄강변 전곡리 유적에 집중한다. 동서양의 시공간을 입체적이고 유기적으로 투영해 우리의 고고학에 접근할 수 있는 길잡이다. 258쪽. 1만 5000원.
  • [재계 인맥 대해부 (2부)후계 경영인의 명암 삼성그룹] 시진핑·앨 고어 등과도 친교…글로벌 CEO형 후계자 수업

    [재계 인맥 대해부 (2부)후계 경영인의 명암 삼성그룹] 시진핑·앨 고어 등과도 친교…글로벌 CEO형 후계자 수업

    올해 재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인물은 단연 이재용(46) 삼성전자 부회장이다. 지난 5월 아버지(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입원 이후 경영 전면에서 연매출 390조원(지난해 기준)의 삼성그룹을 진두지휘하고 있기 때문이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응우옌푸쫑 베트남 공산당 서기장 등 국가주석급 인사들과 잇달아 만나 매스컴을 화려하게 장식하고 있다. 삼성의 3세 시대가 활짝 열렸다. 한국 현대사의 모진 풍파에 수많은 우여곡절을 겪었던 앞선 두 세대와는 달리 이 부회장은 이미 삼성이 재계 1위로 우뚝 선 안정적인 환경에서 후계자 수업을 받고 자라났다. 재계에서는 그가 27세인 1995년 이미 후계 절차가 시작됐다고 보고 있다. 당시 아버지 이 회장으로부터 증여받은 60억 8000만원을 이용해 계열사를 사고파는 과정을 거쳐 삼성그룹 순환출자 구조의 최정점에 있는 에버랜드의 최대 주주(25.1%)가 됐다. 형들(이맹희 전 제일비료 회장, 이창희 전 새한미디어 회장)과 십수년간 치열한 경쟁을 통해 후계자로 낙점된 아버지 때와는 사뭇 다르다. 이 부회장은 서울 경기초(1981년), 청운중(1984년), 경복고(1987년)를 졸업했다. 삼성그룹 오너 아들인지 잘 드러나지 않을 정도로 평범했고 친구들과 잘 어울려 고교 땐 3년 내내 반장을 맡았다. 진로를 정할 땐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서울대 동양사학과로 진학할 땐 할아버지인 고 이병철 선대회장의 조언이 컸다. 대학 전공을 놓고 고민하자 이 선대회장은 “경영자가 되려면 경영이론도 중요하지만 우선 인간을 이해하는 폭을 넓혀야 한다. 학부 과정에서는 사학, 문학 같은 인문학을 전공하고 경영학은 외국 유학을 가서 배우면 좋겠다”고 조언했다. 대학 3~4학년 때는 승마 국가대표로도 활약했다. 이 부회장이 처음 승마를 배운 것은 1982년 교통사고로 하반신을 심하게 다쳤다가 승마로 완치된 이 회장의 권유 때문이었다. 1989년엔 국내 10개 대회 중 8개 대회에서 우승할 만큼 기량이 뛰어났다. 운동신경이 뛰어난 이 부회장은 미국 유학 시절 배운 골프에도 일가견이 있다. 이름난 골프광인 손정의 일본 소프트뱅크 회장이 2007년 국내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한국 기업가 중 골프 맞수로 구본무 LG그룹 회장과 이 부회장을 손꼽았다. 1995년 일본 게이오대 경영대학원에서 석사과정을, 2001년 미국 하버드 경영대학원에서 박사과정을 마쳤다. 그가 미국보다 일본에서 먼저 유학했던 것 역시 아버지의 조언 때문이다. “미국을 먼저 보고 나서 일본을 나중에 보면 일본 사회의 특성, 일본 문화의 섬세함과 일본인의 인내성을 알지 못한다. 유학을 가려면 일본에 먼저 가라”고 말했다고 한다. 이 부회장이 본격적인 경영 수업에 뛰어든 건 2001년 삼성전자 경영기획팀 상무보로 재입사하면서부터다. 1991년 삼성전자 총무그룹에 잠시 입사했으나 근무하지 않고 곧바로 유학길을 떠났다. 재입사 후 이 부회장은 한 해 100일 이상 해외 법인을 둘러보고 각국 주요 거래처와 접촉했다. 2003년 상무, 2007년 전무로 승진하면서 비교적 천천히 직급을 밟아 승진했다. 범(汎)현대가 3세로 두 살 아래인 정의선(44) 현대차그룹 부회장은 1999년에 상무를, 2002년에 전무를 다는 등 고속 승진했다. 정 부회장은 경복고 후배로 이 부회장과 친하게 지내며 사석에서는 이 부회장에게 형이라고 부른다. 아버지 이건희 회장 역시 36세이던 1978년 이미 부회장(삼성물산)에 올랐다. 이런 더딘 승진은 확실한 기초를 만들겠다는 이 회장의 의지가 담겨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이 회장은 2007년 1월 언제 경영권을 승계할 것이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이 부회장이) 자격을 갖춰야 할 것 아니냐. 기초는 만들어 줘야 하지 않겠냐”면서 “고객과 실무 기술자, 연구소 등을 더 깊이 알도록 훈련할 것”이라고 말했다. 최고고객책임자(CCO) 등의 직함으로 해외를 돌며 이 부회장은 애플, IBM, AT&T, 소니, 닌텐도 등의 전자·통신업계 최고경영진은 물론 시 주석, 앨 고어 전 미국 부통령 등 해외 유력 인사들과도 친분을 쌓았다. 이 부회장이 처음 경영에 뛰어들었을 땐 그의 능력을 의심하는 시각이 많았다. 재입사 직전 이 부회장이 개인 자금을 투자(2000년 5월)한 ‘e삼성’이라는 벤처투자회사가 8개월 만에 200억원 가까운 적자를 내고 문을 닫았기 때문이다. 이후 제일기획 등의 계열사가 이 부회장 지분을 넘겨받으면서 검찰의 수사 대상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2004년 삼성과 소니의 합작사인 S-LCD(액정표시장치)의 등기이사를 맡아 삼성이 LCD부문 세계 정상급 기술·생산 능력을 갖출 수 있는 기반을 만든 것은 이 부회장의 공로 중 하나로 꼽힌다. 2006년 삼성전자가 처음으로 소니를 꺾고 9년째 글로벌 1위를 지키고 있는 기틀도 이때 마련됐다. 2009년 최고운영책임자(COO·부사장)로 승진했을 때부터 삼성전자는 사실상 이재용 체제로 개편됐다. 당시 이 회장은 2008년 삼성특검으로 일선에서 물러난 상태였다. 삼성의 한 관계자는 “갤럭시 신화로 스마트폰이 세계 1위로 자리 잡는 데 이 부회장의 기여가 컸다”면서 “2012년 2년 만에 사장에서 부회장으로 승진했을 때 공로를 인정받은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여전히 ‘이건희에게 반도체가 있지만 이재용은 무엇을 보여줬나’라는 질문에 명확한 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최근 이 부회장이 중국 사업, 2차 전지 사업, 의료기기 사업 등에 총력을 쏟고 있지만 아직은 주주와 사회가 납득할 만한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는 평가도 있다. 김양진 기자 ky0295@seoul.co.kr
  • [특파원 칼럼] 비둘기 쿠키의 교훈/김민희 도쿄특파원

    [특파원 칼럼] 비둘기 쿠키의 교훈/김민희 도쿄특파원

    요즘 한·일 관계에 관심 있는 이들과 얘기를 나누다 보면 한숨과 한탄이 빠지지 않는다. 양국 관계는 점점 꼬여만 가는데, 어디서부터 풀어야 할지 도통 답이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안타까운 것은 정치권 일부가 아니라 일본 사회의 전반적인 분위기가 한국에 호의적이지 않은 방향으로 흘러간다는 점이다. 서점에 가 보면 ‘슬픈 반도국가 한국의 결말’, ‘대혐한시대’ 등 혐한(嫌韓) 서적들이 당당하게 베스트셀러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한 재일조선인 지인은 “트위터 프로필에 한국식 이름을 걸어 놨다는 이유로 ‘너희 나라로 돌아가라’는 멘션을 많이 받는다. 일본에서 나고 자랐지만 이런 적은 처음”이라며 씁쓸함을 감추지 못했다. 이런 얘기를 듣고 있노라면 저절로 가슴속 깊은 곳에서부터 한숨이 차오른다. 그렇다고 절망만 할 수는 없다. 그럴 때마다 나는 ‘비둘기 쿠키’를 떠올린다. 쿠키에 얽힌 사연은 이렇다. 지난해 여름 사무실로 일본인 독자 두 명이 찾아왔다. 자신들이 사는 요코하마시의 교육위원회가 중학생용 부교재인 ‘요코하마 알기’ 2013년판에 1923년 관동대학살 관련 기술을 대폭 줄였다는 것이다. 퇴직 역사 교사로서 이런 일을 두고 볼 수 없어 요코하마 교육위원회에 청원서를 보냈는데 한국 언론도 이를 다뤄 줬으면 좋겠다는 것이었다. 진심 어린 눈빛으로 얘기를 풀어 놓는 이분들을 보면서 쌓여 있던 절망감이 사르르 녹는 느낌이었다. 외면해도 그만인 일에 이렇게까지 헌신적으로 나서는 이가 있구나, 이래서 한국과 일본은 함께 갈 수밖에 없는 나라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다. 이분들이 선물로 주신 것이 비둘기 쿠키였다. 흔한 과자려니 했는데 평화의 상징인 비둘기 쿠키에 마음을 담아 가져왔다고 했다. 알고 보니 이분들은 서울신문이 일본에서 발행하고 있는 월간지 ‘테소로’의 제1호 정기구독자였다. ‘한국을 좀 더 깊고 풍부하게 알리고 싶다’는 취지로 지난해 11월 탄생한 테소로가 어느덧 창간 1주년을 맞았다. 지난 1년간 테소로를 만들면서 많은 일본 독자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던 것은 남다른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동방신기를 좋아한다”는 한류 팬부터 “한국을 비난하는 주간지의 보도가 너무 심하다고 생각한다. 한국에 대해 더 공부하고 싶어서 구독을 신청한다”는 학습형 독자, “지금의 한·일 관계가 너무 안타깝다. 이럴 때일수록 한국의 모습을 제대로 전하는 테소로를 읽어야 한다”는 열혈 독자…. 한국과 한·일 관계에 대해 소중하게 생각하는 마음이 일본에 살아 있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혼자 알기에는 너무 아까워서 보통 일본인들의 한국에 대한 이런 마음을 기사로 소개하고 싶지만, 그러기에는 일본 정치권의 돌아가는 사정이 한가하지 않다. 안타까운 일이다. 일본에 거주하는 한국인으로서 가장 답답할 때는 “한국 사람은 전부 일본을 싫어한다면서?”라는 질문을 받을 때다. 같은 맥락에서 일본 안에서도 우익이나 혐한뿐 아니라 다양한 스펙트럼이 존재한다는 건 당연한 사실인데도 자주 간과되는 부분이다. 이제 겨우 첫돌을 맞은 테소로가 오래오래 지속돼서 한국과 일본 양쪽에 서로의 진짜 모습을 알려 주는 가교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다고 다시 한번 다짐한다. 그러기 위해서라도 비둘기 쿠키의 교훈을 잊어버리면 안 되리라. haru@seoul.co.kr
  • 하루키 “日의 문제는 책임회피”

    하루키 “日의 문제는 책임회피”

    “일본이 안고 있는 문제에는 공통적으로 자기책임의 회피가 있다.” 노벨문학상 후보로 자주 거론되는 일본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65)가 3일 마이니치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일본 사회를 작심하고 비판했다. 공식석상에 모습을 거의 드러내지 않는 것으로 유명한 그이지만 최근 들어 현안에 대해서는 곧잘 날카로운 발언을 해왔다. 2011년 6월 스페인에서 카탈루냐 국제상을 받을 때도 “일본은 핵에 대해 계속 ‘아니오’라고 말했어야 했다”는 소감을 밝히기도 했다. 그는 근대 일본의 전쟁을 다뤘던 작가로서 내년에 종전 70년을 맞는 것과 관련해 “1945년의 종전(패전)에 대해서도, 2011년 후쿠시마 원전사고에 대해서도 누구도 진심으로 책임을 지고 있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고 운을 뗐다. 그는 “가령 종전 후에는 결국 누구도 잘못하지 않은 것이 돼버렸다. 잘못한 것은 군벌이며 천황(일왕)도 멋대로 이용당했고 국민도 모두 속아서 지독한 일을 겪은 것으로 됐다. 그렇게 되면 중국인도, 한국인이나 조선인도 화를 낸다. 일본인에게는 자신들이 가해자였다는 발상이 기본적으로 희박하고 그런 경향이 점점 강해지고 있는 것처럼 생각된다”고 말했다. 그는 또 “원전 문제도 누가 가해자인지를 진지하게 추궁하지 않았다. 물론 가해자와 피해자가 뒤섞여 있기도 하겠지만, 이대로 간다면 ‘지진과 쓰나미가 최대의 가해자였고 그 외에는 모두가 피해자였다’ 는 식으로 덮일 수밖에 없다. 그것이 가장 걱정되는 일”이라고 했다. 하루키는 냉전 후의 혼란스러운 세계에 대한 질문에는 “냉전 붕괴로 동이냐 서냐, 좌냐 우냐는 축(軸)이 없어지고 혼돈이 일상이 됐다. 내가 소설에서 쓰려고 했던 것도 말하자면 축이 없어진 세계다. 베를린 장벽이 붕괴된 즈음부터 내 소설이 유럽에서 받아들여지기 시작했고, 미국에서는 9·11 사고가 일어난 후에 받아들여졌다. 축의 상실이 키워드가 된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우리 세대는 ‘세계가 좋아질 수밖에 없다’는 식의 이상주의를 갖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 젊은 세대는 세계가 오히려 나빠질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면서 “이런 젊은 세대를 향해 소설을 쓰고 싶다. 우리가 1960년대에 갖고 있던 이상주의를 새로운 형태로 변환시켜 넘겨주는 건 중요한 작업이다. 축이 없는 세계에, ‘가설의 축’을 제공하는 것이 소설의 임무라고 믿고 있다”는 다짐으로 인터뷰를 매듭지었다. 도쿄 김민희 특파원 haru@seoul.co.kr
  • [新국토기행] 피로회복제 재첩…항암특효약 참게

    [新국토기행] 피로회복제 재첩…항암특효약 참게

    하동은 깨끗한 바다와 강, 지리산 덕분에 청정한 자연산 먹거리가 풍부하다. 전국적으로 유명한 섬진강 재첩은 애주가들에게는 간장약으로 통한다. 하동방언으로 갱조개(강조개·민물조개라는 뜻)라고 부르는 하동재첩은 지름 1~2㎝ 크기의 작은 조개다. 민물과 바닷물이 만나는 섬진강 하류지역 염분이 적은 사질 토양에 서식한다. 1급수인 깨끗한 섬진강에 서식하는 하동재첩은 빛깔이 선명하고 육질이 연하며 맛이 담백하다. 아미노산인 메티오닌을 많이 함유하고 있어 간장 활동을 도와주고 타우린이 담즙분비를 활발하게 해 해독작용이 뛰어난 것으로 알려졌다. 크기가 10배나 큰 바지락보다 영양가가 세 배쯤 높다. 다른 음식과 함께 먹어도 부작용이 없고 눈을 맑게 하며 피로회복에 좋은 음식으로 알려졌다. 특히 숙취를 푸는 데는 시원한 하동재첩국이 최고로 꼽힌다. 하루도 빠짐없이 하동재첩국을 먹었더니 간 기능이 회복됐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일본인들도 좋아해 1999년부터 일본으로 수출도 한다. 하동재첩은 5~6월이 제철이다. 강 깊이에 따라 두 가지 방법으로 채취한다. 깊은 강에서는 재첩 채취선과 갈고리를 매단 대나무 장대를 이용해 거둬들인다. 얕은 강에서는 호미로 강바닥을 긁어 채취한다. 대표적인 요리는 재첩 알맹이를 끓여 담백하고 시원한 국으로 먹는 것이다. 재첩국에 부추를 넣는 것은 비타민A를 풍부하게 해 영양을 보충하고 맛을 돋우기 위해서다. 덮밥이나 부침을 만들거나 삶은 재첩을 회로 만들어 먹기도 한다. 재첩 알맹이에 하동 배를 채로 썰어 넣고 초장으로 비벼 요리하는 재첩무침도 별미다. 과거에는 보관이 어려웠으나 지금은 팩에 담아 장기간 보관할 수 있어 일년내내 먹을 수 있다. 섬진강에서 나는 참게로 요리한 참게탕도 하동의 특산물 가운데 하나다. 섬진강 참게는 조선시대 왕의 수라상에 올랐을 만큼 명성이 높다. 섬진강 참게탕은 담백하고 고소한 특유의 맛과 향을 자랑한다. 민물 참게는 비린내가 나지만 바닷물과 민물이 만나는 섬진강에서 사는 참게는 향이 강하다. 강어귀나 모래 속에 서식하는 섬진강 참게는 주로 탕으로 요리해 먹는다. 끓인 간장에 절여 게장으로 먹기도 한다. 하동 참게는 8월 말부터 바다로 내려가 다음해 3~4월에 산란을 한다. 부화한 어린 게는 다시 섬진강을 따라 올라와 자란다. 9월 말부터 약 한 달간 산란을 위해 바다로 내려가는 것을 잡았을 때가 가장 맛이 좋다. 암컷의 등딱지 안에 단맛을 내는 내장물이 가장 풍부하게 차 있기 때문이다. 참게 껍질에는 키토산이 많아 항균, 항암 효과가 있으며 저지방 고단백 식품으로 소화가 잘돼 허약하거나 비만, 고혈압, 간장병이 있는 사람에게 좋은 것으로 알려졌다. 참게는 주로 통발을 이용해 잡는다. 돼지비계가 든 통발을 강바닥에 내려놓고 다음날 아침에 통발을 걷어 올려 그 안에 든 게를 잡는다. 우리나라 야생차 시배지인 하동에서 생산되는 야생녹차는 미국 등 해외로도 수출되는 명품 특산품이다. 신라 흥덕왕 3년 김대렴이 당나라에서 차씨를 가져와 왕명으로 하동군 화개면 운수리 쌍계사 주변에 심은 게 우리나라 야생차 재배 시초로 기록돼 있다. 야생차 재배지역인 화개면 일대는 섬진강과 화개천이 인접해 안개가 많고 다습하며 차 생산시기에는 밤낮의 기온 차가 커 차 재배에 최적의 환경조건을 갖추고 있다. 토양도 약산성의 자갈이 많은 사력질로 차나무 생육에 알맞다. 이 같은 환경 덕분에 하동 야생녹차는 맛과 성분, 품질에서 최고로 꼽힌다. 화개면, 악양면, 하동읍 등을 중심으로 160여개 제다업체가 야생차 재배·제조 기술과 노하우를 바탕으로 우전, 세작, 중작, 대작 등 최고급 녹차를 생산해 국내외에 공급한다. 2100여 농가가 1100여㏊에 야생녹차를 재배해 한해 260억원 안팎의 소득을 올린다. 하동 강원식 기자 kws@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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