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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독박(讀博) 육아일기](30) ‘도긴개긴’ 韓·日 육아 환경…초저출산국 이유있었다

    [독박(讀博) 육아일기](30) ‘도긴개긴’ 韓·日 육아 환경…초저출산국 이유있었다

    해외에서 ‘독박육아’를 하고 있는 사촌 언니들 덕분에 다른 나라에서 아이를 키우는 것은 어떤지 간접적으로나마 경험했다. 그 중 일본에 사는 언니의 이야기를 들으며 일본의 육아 환경이 우리와 매우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본 나가노현에 사는 언니 김경은(40)은 2006년 일본인 형부와 결혼해 2008년 남자 아이 한 명을 낳아 키우고 있다. “바깥 일은 남자가 하고 아내가 가사와 육아를 책임지는 것”이라는 생각이 깊게 박혀있는 형부와 살다 보니 진정한 ‘독박육아’를 했다고 토로한다. 나와 언니의 경험을 통해 한국과 일본의 보육환경을 비교해 본다. -일본: 일본도 요즘 한국처럼 저출산 문제가 심각하다. 아이를 키우는 데 정부의 지원도 부족한 편이고 경제적인 이유와 이혼율이 높아지는 이유 등으로 아이를 많이 낳고 있지 않다. (일본은 저출산 관련 대책 부서까지 마련했다. 지난 7일 아베 신조 총리는 ‘1억 총활약담당상’에 측근을 앉혔다. ‘1억 총활약담당상’은 50년 뒤에도 1억 인구를 유지할 수 있도록 현재 1.4% 수준의 합계출산율을 1.8%로 끌어올리는 특명을 가진 장관이다.)-한국: 한국에서도 오랜 사회 문제다. 지난해 한국의 합계출산율은 1.21명이었다. 갈수록 직장을 잡기 어렵고 경제적인 이유 등으로 결혼과 출산이 미뤄지고 있다. 나는 아이를 낳았지만 둘째는 엄두도 못 내고 있다. 일본의 보육정책은 어떤가. 한국에서는 주로 아이를 집에서 키울 경우 양육수당을 매달 20만원씩 받고, 어린이집에 보낼 경우 어린이집 비용(0세의 경우 40만 6000원)을 지원받는다. 나는 직장을 다니니 출산과 육아를 하면서 총 1년 3개월 동안 휴직했다. 출산휴가 3개월 중 두 달은 회사에서 기본급을 받았고, 육아휴직 기간 중 6개월은 기본급의 70%를 노동부에서 받았다. 하지만 돈과는 다른 문제인 것 같다. 아이를 맡기고 마음 놓고 일할 수 있는 환경이 절실하다.-일본: 여기서는 정해진 출산휴가는 6~8주 정도에 불과하다. 육아휴직은 회사마다 정책이 다르다. 1~2년까지 가능하고, 휴직 급여도 회사마다 지급방법이 다르지만 매달 지급되는 방식이 아니라 대부분 복직한 뒤에 일부를 환급받거나 무급휴직이 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일본 엄마들은 몇 개월 되지도 않는 어린 아기들을 어린이집에 맡기고 일하러 가는 사람들이 아주 많다.출산을 하면 지역별로 출산축하금을 주는데, 우리 동네의 경우 첫째가 5만엔, 둘째는 10만엔, 셋째는 15만엔이고 넷째 이상은 20만엔을 지급받는다. 또 출산 일시금으로 정부에서 42만엔 정도를 받는데 분만 자체가 보험이 안 되기 때문에 대부분 병원비로 전액 충당한다. 때문에 일부 한국인 부부들은 한국에 가서 출산을 한 뒤 일본에서 출산일시금을 받아 생활비로 충당하기도 한다.정부에서 지급되는 육아수당은 아이 한 명당 월 1만엔이다. 2월, 6월, 10월에 4개월치를 한꺼번에 받는다. 유치원이나 어린이집 비용은 첫째 아이는 전액을 다 내야 하고 둘째부터는 할인을 받는다. 각 도시별로 부모 수입에 따라 원비 지원금이 1년에 한 번 나온다. -한국: 아이가 아프거나 기본적인 건강검진, 예방접종은 어떻게 하나. 한국은 필수 예방접종과 영유아 건강검진을 정해진 시기에 무료로 받는다. 나머지는 의료보험의 적용을 받는다. -일본: 지역별로 정해진 병원에서 필수 전염병에 대한 예방접종은 무료다. 영유아 건강검진은 시청 가정복지후생과에서 받는다. 의료비는 기본적으로 의무교육대상(중학생)까지 지원받을 수 있고, 우리 동네의 경우 만 18세까지 무료다. 일단 병원이나 약국에서 의료비를 지출한 뒤 육아수당을 받는 통장으로 환불받는 방식이다. -한국: 나는 아기를 낳고 아는 것이 없는 데다 육아정보를 얻는 것도 너무 어려웠다. 임신과 출산에 관한 정보는 따로 책을 사 읽었고 보건소에서 기본적인 정보를 얻을 수는 있었다. 하지만 더 구체적인 육아정보는 주로 인터넷 육아 관련 커뮤니티에서 다른 엄마들의 경험을 통해 접했다. 아이가 아플 때 병원에서 의사선생님들에게 가끔 물어보지만, 주로 아픈 증상과 관련된 것으로 제한됐다. -일본: 각 지역에서 무료로 육아상담을 받을 수 있고 또래 엄마들끼리 정보를 공유하기도 한다. 하지만 일본은 개인주의가 강한 곳이라 ‘내 아이는 내가, 나의 방식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육아로 고민하는 엄마들도 많지만 별로 내색하지 않는다. 가까운 친구에게라도 고민을 잘 나누지 않는다. 주로 시청 상담사나 어린이집 선생님 등 전문가에게 의존하는 편이다. 친한 친구가 잘못된 방식으로 육아를 하고 있더라도 간섭하거나 조언하지도 않는다.-한국: 육아에 대한 어려운 점이나 스트레스를 또래 엄마들과 나누는 것이 정말 큰 도움과 위로가 되었는데 가까운 사이라도 고민을 잘 이야기하지 않는다고 하니 놀랍다. 일본에서 아이를 키우며 가장 필요했던 것은 무엇인가.-일본: 누군가의 도움이다. 특히 아이를 맡길 곳이 아무 데도 없었다. 친정은 한국에 있고 시어머니는 연세도 많으신데다 멀리 떨어져 계신다. 나는 일을 하고 싶었는데 아이가 유치원을 마치는 시간 전에 퇴근을 해야하고 공휴일이나 주말에도 무조건 쉬어야 한다. 그런데 정규직으로 그런 일자리를 갖기가 어려웠다. 도쿄 같은 대도시에서는 베이비시터를 구할 수 있지만 내가 사는 지역은 베이비시터를 거의 볼 수 없다. 친구나 지인의 집에 맡기는 것도 한 두번이지, 일본에서는 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는 것이 미덕이라 불가능하다. 특히 몸이 아플 때에는 혼자 아이를 돌보며 내 몸을 추스려야했기 때문에 평소보다 두 배 이상 힘들었다. -한국: 남편의 역할은 어떤가. -일본: 일본 남성들은 여전히 ‘일을 열심히 하는 것이 가정을 위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강하다. 최근 들어 남성들도 육아를 돕고 실제로 육아휴직을 쓸 수도 있긴 하지만 극소수에 불과하다. 주말도 없이 일을 하는 경우가 많고 집에 있을 때에도 아이보다는 자신의 휴식을 더 중요하게 여긴다. 우리 남편이 생각하는 육아란, 엄마가 없을 때 아이를 몇 시간 돌봐주는 게 전부다. 그마저도 게임을 하거나 함께 텔레비전이나 애니메이션을 보는 게 고작이다. 아이와 운동을 하거나 만들기를 하는 것은커녕 아이의 공부를 봐주고 훈육을 하는 것까지 모두 나의 몫이다.-한국: 그럼 더욱 힘들었을 것 같다. 한국에서는 ‘아빠 육아’의 중요성이 점점 크게 인식되는 분위기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일본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출산하면 남편 회사에서 사흘의 휴가가 주어지는 게 다였다. 운이 좋게 아기가 수요일에 태어나면서 일요일까지 닷새를 쉬었다. 지난해부터 ‘아빠의 달’이라는 제도도 도입됐고 아빠들도 법적으로 1년까지 육아휴직을 사용할 수 있다. 육아휴직 비율이 지난해보다 40% 높아지기는 했지만 여전히 아빠들은 바쁘고, 일에 열중할 수밖에 없는 분위기다. 휴직까지 행동에 옮기는 것은 ‘간 큰’ 일로 여겨진다. 그나마 휴일에는 아빠들도 육아에 많은 참여를 하려고 노력하는 것은 같다. 아이를 데리고 외출하고 놀아주며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물론 엄마가 느끼기엔 턱 없이 부족하고 함께 하는 것이 아니라 ‘도와주는 것’일 뿐이지만. -한국: 미국이나 호주의 육아경험을 들었다. 서구 국가의 엄마들과 한국 엄마들의 임신·출산·육아에서의 가장 차이점이 뭔지를 물었더니 공통적으로 ‘산후조리’를 꼽더라. 일본은 동양 체질로 한국과 비슷할 것 같은데 출산 이후 어떻게 산후조리를 하나.-일본: 여기도 산후조리의 개념이 별로 없다. 출산 후 일주일 정도는 병원에 입원하지만 산후조리원은 따로 없다. 각자 집에서 한 달 정도 외출하지 않고 있는 경우가 많다. 최근의 젊은 엄마들은 별로 구애를 받지 않고 갓난아기를 데리고 쇼핑하러 가는 것도 많이 본다. 일반적으로는 한 달 정도는 밖에 나오지 않고 생후 1개월 검진을 받으러 병원에 간 뒤에 남자아기는 31일째, 여자아기는 33일째 신사에 절하러 데리고 가는 풍습이 있다. 출산 후에 음식도 아무거나 좋아하는 걸로 먹는다. 찬 것을 바로 먹거나 출산 후 바로 샤워를 하기도 한다. 몸을 따뜻하게 해야한다는 생각도 없다.  -한국: 엄마가 아이를 대하는 점은 한국과 비슷한가. -일본: 아니다. 일본은 가족중심적 사회라기 보다는 개인중심적 사회다. 아이에 대해서도 엄마의 소유물이라거나 강한 모성애를 드러내기 보다는 아이를 한 인간의 개체로 보고 객관적으로 대한다. 특히 아이들과의 스킨십도 한국 엄마들에 비하면 적은 편이다. 특히 아버지와 아이의 스킨십은 아주 드물다. 사람들의 눈이 있는 곳에서는 아이들에게 애정표현을 하는 엄마들도 적다. 우리 아들도 밖에서 뽀뽀를 하거나 꼭 안아주려고 하면 부끄러워하고 하지 말라고 한다. 그만큼 표현을 하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다만 나는 아이에게 평소에도 사랑한다는 말을 많이 해주고 스킨십도 많이 하려고 노력한 때문인지 다른 일본 아이들보다 엄마에 대한 애정이 더 강한 것 같다.또 일본에는 ‘일하는 엄마’들이 매우 많다. 오히려 내가 보기에 너무 어린 아이를 둔 엄마들이 왜 이렇게 빨리 일을 하는지 이해하지 못할 때도 있다. 아이들의 인성을 양육하는 중요한 시기에 엄마와 떨어져 있어야만 하는 아이들이 많아 안타까울 때도 있다. 그러나 전업주부로 아이와 함께하든, 일을 하든 남의 가정사이기 때문에 왈가왈부하는 사람은 적은 편이다. 도시에서는 아이를 맡기고 일하는 사람이 많지만, 지방의 경우에는 집에서 아이를 돌보는 경우가 많고, 전업주부로 있는 것을 좋게 인식하는 경향도 있다.-한국: 개인중심이라고 하니 아이와 엄마들을 바라보는 시선도 궁금하다. -일본: 한국처럼 식당에서 아이가 떠드는데 방치하거나 테이블을 어지럽히고 그대로 나오는 엄마들에 대한 시선이 좋지는 않다. 하지만 누구도 대놓고 주의를 주지는 않는다. 뒤에서 “저 사람 왜저래?”하고 수근거리거나 종업원에게 넌지시 건의할 뿐이다. 한국은 ‘노 키즈존’이 생기기도 한다는데 일본 식당은 손님이 우선이기 때문에 아이를 데리고 오지 말아달라거나 하는 말을 하지 않는다.  일본의 육아 경험을 접했을 때 처음에는 ‘그래도 우리나라가 훨씬 사정이 좋구나’라고 위안을 삼았다. 가장 큰 이유는 남편 때문이었고, 다음으로는 어쨌든 나도 누군가에게 아이를 맡기고 일을 할 수 있는 환경이 주어졌기 때문이다. 친정엄마가 해외에 살고 있지만 아이를 어린이집에 정부 지원을 받아 보낼 수 있고, 가까이 사는 베이비시터를 구해 아기를 맡길 수 있다. 남편도 집에 늦게 들어오기는 하지만 자기도 육아에 많은 참여를 해야한다는 인식은 크게 하고 있다. 그런데 통계상으로는 우리가 일본보다 나은 점이 없어 보였다. 지난 19일 발표된 OECD ‘2015 삶의 질’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 어린이들이 부모와 함께하는 시간은 하루 48분으로 OECD 국가 가운데 가장 짧았다. OECD 평균은 151분이다. 특히 한국 아빠가 아이와 함께하는 시간은 하루 6분(OECD 평균 47분)이었고 아빠가 같이 놀아주거나 공부를 가르쳐 주거나 책을 읽어주는 시간은 고작 3분에 불과했다. 일본은 아빠와 함께 놀거나 공부하는 시간이 하루 12분으로 조사됐다. ‘언니는 도대체 어떻게 버티면서 육아를 했을까’라며 위로를 하던 내가 머물고 있는 현실이 오히려 숫자상으로는 더 암울했다.허백윤 기자 baikyoon@seoul.co.kr ▼ 이 기사의 관련기사(24)깜깜한 초보엄마를 깨워줄 길잡이가 필요하다 (25)아들 딸 구별 말자던 세상, 정말 달라졌을까 (26)가끔은 그냥 ‘나’이고 싶다 (27)1년에 단 며칠인데 뭐가 그리 힘드냐고요? (28)좋은 엄마 나쁜 엄마 따로 있나요 (29)1인실 쓰고도 출산비 ′0원′…호주·미국 육아맘에게 물었다 ▶1회부터 23회까지는 여기서 보실 수 있습니다. ☞허백윤 기자의 독박 육아일기 / ☞블로그
  • 한·미·일 국민 과반 이상, “미군 아·태 전력 현 수준 유지” 지지

    미국이 아시아 재균형 정책에 따라 아시아·태평양 지역에 군사력을 배치하는 것에 대해 미국인은 물론, 한국인과 일본인은 현재 수준으로 유지하는 것을 지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중국인은 감축을 선호했다. 미 시카고 카운슬 국제문제협의회(CCGA)가 19일(현지시간) 발표한 한국과 미국, 중국, 일본 4개국 국민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미국인 64%와 한국인 61%, 일본인 53%는 아·태 지역에서 미군 전력이 현재 수준으로 유지되는 것을 지지한다고 밝혔다. 이 지역에서 미군 증강을 지지한다는 응답은 한국인 14%, 미국인 11%, 일본인 9%에 그쳤다. 미국인 22%와 중국인 58%는 미군 전력이 지금보다 줄어들어야 한다는 의견을 보였다. 또 미국인 49%는 미국의 아시아 재균형 정책을 지지한다고 밝혔다. 이는 절반에 가까운 응답이지만 지난해 조사 때 같은 질문에 대한 응답(60%)보다 11%포인트 내려간 것으로, 아시아 정책의 호응이 줄어들었음을 보여준다. 만약 남북 통일이 이뤄진다면 그 뒤에도 미군이 한국에 주둔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한국인 49%와 미국인 32%가 지지한다는 의견을 보였다. 이에 비해 한국인 44%와 미국인 44%는 남북 통일 이후에는 미군이 한국을 떠나야 한다는 의견을 밝혔다. 같은 의견을 보인 중국인은 66%로, 주한미군에 대해 부정적 인식을 드러냈다. 미국인은 한국보다 일본을 선호하고 있음도 드러났다. 미국인 78%는 일본을, 66%는 한국을 믿을 만한 파트너라고 답했다. 미국인 58%는 일본이 국제문제를 책임감 있게 다룰 수 있다고 답한 반면 36%만 한국이 그럴 것이라고 답했다. 이번 여론조사는 지난 4~9월 한국인 1010명, 미국인 2034명, 중국인 3142명, 일본인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됐다. 워싱턴 김미경 특파원 chaplin7@seoul.co.kr
  • [최동호 새벽을 열며] 노벨상에 목마른 한국

    [최동호 새벽을 열며] 노벨상에 목마른 한국

    해마다 외신으로부터 노벨상 소식이 들려오지만 한국인들은 노벨상에 대한 목마름을 풀지 못하고 있다. 올해 중국과 일본에서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했지만 한국은 한 명의 수상자도 내지 못했다는 것이 한국인들에게는 자존심 상하는 일이다. 노벨상이나 세계문학을 염두에 두고 생각한다면 우리는 편협한 시각을 한 차원 높여 문학과 예술에 대해 다음과 같은 두 가지 문제를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하나는 인류의 보편적인 문제를 심각하게 고민하고 인간의 본성 파괴나 환경문제를 심도 있게 형상화한 문학을 깊이 탐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종교적 영성의 문제와 인류 생존의 문제와 관련이 깊다. 2015년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벨라루스의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의 소설에 대해 노벨상 위원회가 ‘알렉시예비치의 문학은 인류의 사건사(史)가 아니라 인류의 감정의 역사이며 영혼의 역사’라고 요약한 것에서도 알 수 있는 것처럼 ‘인류 문화 발전에 기여’라는 노벨상의 기준을 가지고 문학과 예술에 접근해야 한다. 체르노빌 핵발전소 폭발 사건을 다룬 ‘체르노빌의 목소리, 미래의 연대기’에서도 알렉시예비치가 과거를 통해 미래를 조망하고 그것을 인류 보편적 차원에서의 영원한 가치 지향을 생생한 현장의 목소리를 통해 보여주고 있다는 사실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지난 반세기 동안 수많은 작품이 6·25전쟁을 소재로 창작되었지만 아직 세계인을 감동시킬 위대한 문학을 산출하지 못한 이유를 근원적으로 생각해 보아야 한다. 다른 하나는 한국을 배경으로 세계사적으로 부각된 문학은 탈북문학이다. 한국의 많은 문인이 이상스럽게 침묵하고 있는 이 문제는 우리만의 중요 관심사가 아니라 세계사적 관심사이며 인간의 생존권 문제라는 점에서 보편적 의미를 지닌다. 북한의 핵은 남한의 안전을 위협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주변의 그리고 세계적인 정치적, 경제적 문제이다. 주민은 굶주림에 시달리는데 정치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엄청난 경제력을 투입하여 핵을 개발하고 있는 북한의 현실을 보편적 시각에서 승화시킨 문학 작품이 발표된다면 이는 앞으로 세계의 주목을 받을 것이다. 북한의 참혹한 현실을 조롱하거나 정치적으로 악용하는 것이 아니라 문학적으로 형상화한 시와 소설을 생산해야 보편적 공감을 얻을 수 있다. 이는 분단이 아니라 통일 시대의 문학을 조망하는 일이 될 것이며 나아가 세계문학으로 도약해 인류사에 기여하는 문학적 발판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제 한국이 이만큼 발전했는데 우리에게도 노벨문학상을 주어져야 하지 않겠느냐는 소망은 외국의 문인이나 예술가들에게는 어쩌면 하나의 응석 어린 투정으로 들릴 가능성이 크다. 공식적으로 노벨상 위원회는 후보자 명단을 한 번도 발표한 적이 없다. 노벨상은 세간에서 인기몰이 하는 특정 후보를 선정하는 장기자랑의 무대가 아니다. 현 상황이라면 한국의 경우 문학이 아니라 자연과학 분야에서 먼저 노벨상을 수상하게 될 가능성도 크다. 노벨상이 내세운 일반적이며 보편적인 기준에 한국의 자연과학의 학문적 수준이 객관적으로 더 많이 근접해 있기 때문이다. 올해에도 자연과학 분야에서 두 명의 수상자를 배출한 일본이 벌써 20개 이상의 노벨상을 수상했다고 해서 이를 부러워하거나 선망할 필요는 없다. 노벨상을 위해 문학이 존재하고 노벨상을 위해 학문이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우리의 길을 찾아야 한다. 올해 일본인 수상자들이 일본에서만 공부한 사람들이고 모두 지방대 출신이라는 사실과 중국의 노벨상 생리의학 분야 수상자가 16세기 중국의 전통의학에서 영감을 받아 개똥쑥에서 말라리아 퇴치 물질을 개발하여 전 세계에서 100만명 이상의 환자를 치료했다는 사실은 그냥 지나쳐 갈 일이 아니다. 자기 분야를 끝까지 탐구한 사람들만이 노벨상을 받는다고 한다. 노벨상은 우리의 문학이나 학문이 객관적인 의미에서 세계 정상을 차지해 당연한 결과로 주어지는 상이 될 때 우리 자신도 당당한 자부심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 [서울신문이 만난 사람] ‘국내 4년제 대학 유일 외국인 총장’ 존 엔디컷 우송대 총장

    [서울신문이 만난 사람] ‘국내 4년제 대학 유일 외국인 총장’ 존 엔디컷 우송대 총장

    반핵운동가 겸 한반도 문제 전문가. 두 차례에 걸친 노벨 평화상 후보. 국내 4년제 대학 총장 중 유일한 외국인 총장. 직접 강의도 하는 총장. 대전에 있는 우송대 존 엔디컷(79) 총장이다. 2007년 미국에서 솔브릿지대학 교수로 부임, 2009년부터 7년째 총장으로 재직 중이다. 대학가의 해외석학 초빙 사업이 기대만큼 성과를 거두지 못한다는 비판이 있는 가운데 외국인으로서 국내 대학 총장으로 일하는 그를 만나 대학 운영과 정부의 고등교육 정책에 대한 입장 등을 들어 봤다. 인터뷰는 지난 5일 우송대 솔브릿지 경영대학 내 사무실에서 했다. →두 차례나 노벨 평화상 후보로 올랐다고 들었다. -지난 20년간 조지아공대 교수 및 국제전략정책센터 소장으로 근무하며 동북아 정세를 연구했다. 1991년 한반도·일본·대만·몽골·시베리아·중국 동북부에서 핵무기를 완전히 제거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국제 민간운동인 ‘동북아제한적비핵지대화회의’(LNWFZ-NEA) 개념을 이끌어 내는 등 동북아 비핵화를 위해 노력했다. 그런 노력 덕분인지 2005년에 LNWFZ-NEA 사무국과 함께 노벨 평화상 후보에 올랐으며 2009년에도 올랐다. 2005년에는 후보 랭킹 7위였다. →한국과의 개인적 인연이 있다면. -처음 한국을 방문한 건 미 공군 장교로 일본에서 근무하던 시절이다. 1959년이다. 오산 미 공군기지에서 2주간 파견 근무했다. 국민소득 60달러였을 때로 민둥산에 황량한 분위기였다. 이후 1968년 푸에블로호 사건이나 김신조 습격 사건 등 남북 간 중요 사건이 있을 때도 방문했다. 제 분야가 동북아 연구였던 만큼 한국에 언제나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미 공사 교수로 있을 때는 ‘동아시아의 정치학’이라는 입문서도 공동 저술했다. 한국, 북한, 일본 부문 기록을 내가 맡았다. 고향인 애틀랜타의 한인들과도 교류하고 미 중서부 상공회의소 소장도 맡은 적이 있다. 베트남 복무 시에는 따뜻한 된장찌개를 안주 삼아 맥주를 마시며 백마사단 관계자와 정보를 교환하기도 했다. →총장 취임 당시 다짐과 성과에 대한 평가를 한다면. -총장직을 수행하기 시작할 때 설정한 목표는 학생들에게 최상의 교육을 제공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교육에서 가장 중점을 둔 부분은 학생들의 소프트 스킬, 그러니까 인간적 기반 능력 자체를 강화시키는 것이었다. 1991년부터 동북아시아 비핵화 운동을 하며 세운 ‘이웃 사촌 아시아’라는 개념의 현실화 또한 부수적인 목표로 세웠다. 개인적으로 평가하자면 전자는 매우 성공적이며 후자는 여전히 진행 중이다. 현재 우리 졸업생들은 사회에서 기대하는 인재상에 점점 더 가까워지고 있고, 우송대는 아시아에서 손꼽히는 특성화 대학으로 성장하고 있다. 솔브릿지대의 경우 2007년 개강 당시 학생 29명에 교수 8명으로 출발했으나 지금은 유학생만 38개국에서 1000명 이상이 와 있을 정도로 성장했다. 모든 수업은 영어로 진행하며 유학생들에게는 한국어를, 한국 학생들에게는 중국어를 의무과정으로 3년간 듣도록 하고 있다. 성적을 매기자면 5점 만점에 4.5점이 적합하지 않을까 싶다. →총장이면서 직접 강의도 한다고 들었다. -그렇다. 일반적으로 미국도 총장이 강의하는 것은 드물다. 하지만 나는 내 관심 분야에서 학생들과 지속적으로 소통하는 게 좋다. 지금은 미국사 강의를 하고 있으며, 다음 학기에는 동북아 정치를 할 계획이다. 한번은 중국 유학생이 고구려는 중국 역사라고 하길래 그렇게 생각하느냐며 웃으며 말해 주었다. 역사적으로 한국 역사라고 말이다. →우송대는 1년 4학기제를 운용하는데 2학기제와 비교해서 어떤 이점이 있나. -내가 오하이오주립대를 다녔는데 4학기제였다. ROTC 후보생이었던 관계로 다른 학교 생도들보다 4개월 일찍 임관하면서 더 많은 기회를 잡을 수 있었다. 그런데 한국에 와 보니 방학기간이 너무 길더라. 방학이 길면 외국어를 배우더라도 까먹는다. 집중도가 떨어진다. 그래서 2010년부터 4학기제를 운영하고 있다. 간호학과처럼 국가고시를 준비하는 학과생들과 필요에 의해 졸업을 늦추려는 학생들을 제외하면 대부분이 3년 6개월 만에 졸업하고 있다. 졸업생들이 사회 진출 준비를 집중적으로 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고 본다. 다른 대학에서도 우리를 벤치마킹하러 온다. 4학기제를 다른 대학들도 도입할 만하다고 본다. →교수진의 연구 역량 강화, 학생 취업률 제고, 대학 경영 개선에도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는 게 국내 대학의 현실이다. 대학 총장의 역할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연구 부문에 중점을 두고 답변드리자면 우송대는 연구 중심 대학이 아니라 교육 중심 대학이다. 물론 교수 연구를 독려하고 우수한 연구자에게는 충분한 인센티브를 부여하지만 연구의 전반적 방향성은 주로 학생들의 수혜를 목표로 한다. 취직의 경우는 취지는 잘 이해하고 있다. 대졸자들이 직장을 찾기 힘든 것은 세계적 문제다. 박근혜 대통령이 청와대로 전국 대학 총장들을 초대한 적이 있다. 학생들에게 좋은 직장을 갖게 노력해 달라고 했는데 공감했다. 다행히 우리 대학은 특성화 대학으로서 이 분야에서 꽤 훌륭한 성적을 거두고 있다. 하지만 정부 압박으로 인해 대학가 전반에서 “우리가 취업 알선가인가, 교육자인가”라는 의문이 제기되는 것 또한 사실이다. 개인적인 의견은 약간 부담이 될지라도 대학이 학생들의 취업에 도움을 주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어려운 여건 아래 대학 총장이 할 일은 학교의 상징으로서 우뚝 서고 교원, 직원, 학생들의 잠재력을 펼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각종 행사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학술적, 윤리적 표본으로서 모두에게 각인되고, 대학에서 행하는 모든 것이 궁극적으로 학생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준비하는 것이 요지라고 할 수 있다. 결국 학생들이 우리의 미래 아닌가. →등록금 규제나 대학 총장 간선제 등 정부의 고등교육 정책은 어떻게 보나. -선거를 통해 임명된 게 아니기에 한국 대학의 총장 선거에 대해서는 제 의견을 피력할 수 없음을 알아주셨으면 한다. 등록금 규제 문제의 경우 미국에서도 부모 지원보다는 학생 대출에 의존하는 관계로 졸업생들이 20만 달러(약 2억 2000만원) 이상의 빚을 지는 모습이 흔할 정도다. 정부의 고등교육 정책은 교육 발전을 위한 정책이어야지 규제를 위한 정책이 돼서는 안 된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자유경쟁이라는 시장 논리로 해결될 수 있는 과제를 억지로 붙들어 매는 형태가 돼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학생들에게 최선, 최신의 교육을 제공하려면 등록금은 교육 방식의 발전에 따라 증가한 비용을 반영하는 게 맞지 않나 싶다. →연구윤리 위배 등 교수 사회의 이해하기 어려운 행태에 대해서는. -전 부정에 대해서는 누가 됐든 타협하지 않는다. 윤리란 국가와 국민의 수준을 가늠하는 척도인 만큼 관계가 어떻게 되든 그 누구도 예외가 돼서는 안 된다. 한밤중에 아무도 없는 횡단보도의 초록불에 멈추는 것부터 페리선의 선박 규정까지 법과 규정은 동일한 관점으로 엄중히 관리, 집행돼야 한다. 그런 맥락에서 다른 이의 학술적 성취를 무단 도용하는 것은 절대로 가볍게 넘겨서는 안 된다. →취업 때 지원자 학벌보다 실력을 중시하는 채용 문화가 한국에 형성됐다고 보는지. -50년간 사회인으로서 활동한 제 경험에 기반해 말씀드리면 개인의 능력이 학력을 압도하는 현상이 점점 증가 추세에 있다고 본다. 아직도 사람의 배경이 취직 첫 단계에서는 어느 정도 영향을 주는 건 사실이지만 그 단계를 넘어가고 실무에 투입됐을 때는 결국 업무 능력에서 승부가 갈리게 돼 있다. 물론 고학력이 요구되는 직종은 유형별로 다른 과정이 있을 수 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대한민국 교육열기 칭찬에 대한 견해는 어떻게 보나. -제가 보기에 오바마 대통령의 한국 교육에 대한 감탄은 한국 학생들의 PISA 시험 점수 통계에 기반한 게 아닌가 싶다. PISA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를 대상으로 시행하는 국제 학생 평가 프로그램으로 한국 학생들은 대체로 수학과 과학 부문에서 높은 점수를 받고 있다. 오바마 대통령은 이를 토대로 미국도 한국처럼 가족 전체가 학생들의 학습과 성취에 관심과 열정을 가졌으면 하는 기대감을 표출한 게 아닌가 싶다. 하지만 PISA 시험은 교육 성과의 수많은 스펙트럼 중 일부만을 보여 줄 수 있다. 혁신성, 창의성, 유연성 등에 대한 평가는 결여돼 있는 체계다. 미국의 교육 방식은 PISA 시험 점수는 낮게 나올지는 몰라도 위의 3대 요소에서는 더욱 우수한 성과를 보이고 있는 게 사실이다. →카이스트 로플린 박사나 서남표 박사가 대학 개혁 문제로 내부 구성원들과의 갈등 끝에 총장직에서 중도 낙마했다. 외국인 총장으로서 어떻게 생각하나. -로플린 총장의 경우는 잘 모르겠다. 서 총장의 경우 내가 한국에 있을 때 있었던 일로 비극적인 일이라 안타깝다. 관찰자 입장에서 보자면 너무 상의하달 식으로 대학 구성원들을 몰아붙인 게 부작용을 가져온 것 아닌가 싶다. 여유를 갖고 했더라면 좋지 않았을까 싶다. 카이스트는 정년을 보장받은 교수가 많은 등 기득권 체제가 있어 갈등이 있을 수 있었다고 본다. 하지만 우송대는 신생 대학으로서 그런 점에서 갈등 요인이 없었다. 게다가 저를 조직의 일원으로서 받아줄 만큼 개방적인 교수, 직원과 학생들이 있었다는 것도 저로서는 정말 운이 좋았다고 생각한다. →얼마 전 서울신문은 해외 석학 초빙사업이 빈껍데기라는 취지로 보도한 바 있다. 해외 연구진을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권 대학에서 제대로 활용하려면 어떻게 해야 한다고 보나. -해외 석학 활용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유지 부문으로 이를 위해 소속감을 부여하는 것이 최우선 과제다. 교수회의를 예로 들면 외국 교수들의 참석을 요구하지만 그들에 대한 배려가 없는 것, 교수 회의에 아예 참석을 요청하지 않는 것과 같은 행위가 이들로 하여금 조직의 일원으로 느끼기 힘들게 한다. 우리는 외국 교수들을 위한 오리엔테이션을 오랜 시간 동안 충실히 한다. 공문서는 기본적으로 한글로 작성하지만 영어 등 외국어 구사가 가능한 직원을 외국 교수 연구실에 배치해 의사소통 문제를 최소화하고 있다. 내가 주재하는 회의도 사전에 한국말로 번역해 자료를 배포한다. 외국인 교수 자녀에 대한 지원도 생각해야 한다(서울은 기회가 많으나 대전은 연간 2만 달러가 들어가는데 부담이 된다. 외국인 교수 유치를 위한 지원책이 있으면 좋겠다). 박현갑 부국장 eagldudo@seoul.co.kr >> 엔디컷 총장은 엔디컷 총장의 첫 인상은 79세라는 나이가 믿기지 않을 정도로 에너지가 넘친다는 점이다. 실제 나이보다 젊어 보인다는 덕담에 환하게 웃으며 뭐든지 물어봐도 좋다고 말할 정도로 유머 감각도 넘친다. 직접 강의도 하며 손자 손녀뻘 되는 학생들과 격의 없이 소통할 정도로 열정적이다. 프로야구 한화 이글스의 광팬이기도 하다. 두 차례에 걸쳐 시구도 했다. 이뤄지기 힘들지 모르나 한화가 코리안 시리즈 우승하는 걸 보고 싶단다. 두 명의 자녀는 미국에 있으며 한국에는 일본인 부인과 함께 있다. 부인도 이 대학에서 일본어를 가르친다. ●1936년, 미 오하이오주 출생. 58년 오하이오주립대 졸업. 1973년 하버드대, 터프츠대 공동 운영 과정 프레처스쿨 외교학 석사 및 국제학 박사 취득. 1989~2007년 조지아공대 국제전략기술정책센터 소장 겸 샘넌 국제대학원 교수. 미 국방부 산하 국가전략연구소장. 1996년 미·일 간 극동아시아 비핵화지대위원회 위원장. 2005년, 2009년 노벨 평화상 후보.
  • 北 비판 늘리고 박정희 功過 재조명…좌편향 손보는 ‘우향우’

    北 비판 늘리고 박정희 功過 재조명…좌편향 손보는 ‘우향우’

    “북한에 대해서는 독재라는 말이 2차례 나오는데 남한에 대해서는 24차례나 나온다. 남한과 북한의 분량 차이를 고려해도 국민 정서상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다.” 김재춘 교육부 차관이 지난 12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역사 교과서 발행체제 개선 방안’ 브리핑에서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전환의 배경으로 들었던 특정 교과서의 ‘좌편향’에 대한 예시다. 야권과 학계 및 시민사회단체가 국정화 전환 자체에 격렬하게 반발하는 상황에서 내년 말 모습을 드러낼 국정교과서가 이념 편향성 논란에서 자유로울 리 없다. 교육부가 명명한 대로 진보와 보수 모두 수긍할 수 있는 ‘올바른 역사 교과서’를 만들려면 논쟁이 되는 부분들에 대해 이념과 세대를 아우르는 큰 틀의 소통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교육부는 “역사 교과서 검정제는 국민을 통합하고 건전한 국가관과 균형 있는 역사 인식을 기르는 데 이바지하지 못한 채 지속적인 이념 논쟁과 편향성 논란을 일으켜 왔다”고 국정화 전환의 당위성을 강조했다.  교육부가 검정체제의 한국사 교과서에서 문제로 꼽았던 부분은 대부분 진보와 보수의 대립이 첨예하게 전개되는 근현대사 부분이다. 교육부가 검정교과서를 분석한 비공개 자료인 ‘고교 한국사 교과서 분석’을 보면 ▲해방 후 남북한의 토지개혁 ▲6·25전쟁 ▲대한민국의 정통성(건국) ▲이승만에 대한 평가 ▲5·16군사정변 ▲박정희의 공과 ▲10월 유신 등 18개 주제에서 문제점이 있다고 돼 있다. 2013년 교학사 교과서 파문이 났을 때 교육부가 다른 7종의 교과서에 대해 집중적으로 수정을 지시했던 부분들이기도 하다. 바꿔 말하면 국정교과서가 출간됐을 때 진보 진영에서 해당 부분의 서술을 놓고 반발할 가능성이 높은 대목이기도 하다. 양정현 한국역사교육학회장(부산대 교수)은 “새 국정교과서의 필진이 구성되지 않고 내용 역시 나오지 않은 상태이지만, 국정화를 추진해 온 교육부와 새누리당의 그간 움직임으로 미뤄 볼 때 근현대사 부분은 현재 박근혜 정부가 원하는 식으로 기술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우선 국정교과서에서는 북한에 대한 비판의 강도가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검정교과서 가운데 금성출판사의 서술인 ‘임시인민위원회는 일본인과 친일파 소유지, 지주 소유 토지 등을 몰수해 농민에게 무상으로 나눠 주는 ‘무상몰수, 무상분배’의 방식으로 토지개혁을 실시했다(373쪽)’는 대목은 사라질 것으로 보인다. 교육부는 2013년 금성출판사 측에 ‘분배된 토지에 대해서는 매매와 소작, 저당이 금지됐다는 점을 기술하라’고 수정명령을 내린 바 있다.  6·25전쟁 부분에는 북한의 기습 남침을 직접적으로 보여 주는 자료들이 대거 들어갈 수 있다. 미래엔 교과서에는 ‘동기로 본다면 인민공화국이나 대한민국이나 조금도 다를 바 없을 것이다’(317쪽)라고 기술돼 있다. 교육부는 이런 부분에 대해 ‘6·25전쟁의 책임이 남북 모두에 있다고 오해할 소지가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이에 대해서는 ‘정찰명령 제1호’나 ‘전투명령 제1호’ 등 북한의 기습 남침을 보여 줄 수 있는 자료들을 수록하라고 지시했다.  대한민국의 정통성과 관련해선 ‘건국일’을 두고 의견 충돌이 일어날 가능성이 크다. 보수 진영에서는 “대한민국 건국은 이승만 정부가 수립된 1948년”이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진보 진영은 “대한민국 건국은 임시정부가 수립된 1919년”이라는 입장이다. 교육부는 이번 국정화와 별도로 앞서 개정된 2015 교육과정에서 기존의 ‘대한민국 정부 수립’이라는 용어를 ‘대한민국 수립’으로 바꿨다. 교육부 관계자는 “북한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수립’으로 쓰는데 우리는 ‘정부 수립’이라고 쓰며 스스로 격하한다는 지적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속인 정진후 정의당 의원은 이에 대해 “국가기록원도 1948년을 ‘대한민국 정부 수립’으로 쓰고 있다”고 지적한다. 조한경 전국역사교사모임 회장은 “1948년 8월 15일을 건국일이라고 주장하는 뉴라이트 계열의 입장을 반영한 것”이라고 말했다. 교육부가 현재 검정교과서의 문제로 든 18개 주제 가운데 4개 주제는 박정희 정부에 대한 것이다. 국정교과서에서는 박정희 정부의 공적은 부각시키고 잘못은 줄일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5·16군사정변’에 대해 비상교육과 미래엔, 천재교육 등에서는 “군사정권으로 인해 민주화를 지향한 4·19혁명 정신이 사실상 부정됐다”고 문제 제기를 한 바 있다.  교육부는 박정희 시대 경제성장과 관련해 ‘외자 도입을 통한 경제개발과 수출 주도형 성장 정책 역시 성과가 컸던 만큼 부작용도 많았다’ ‘1997년 외환위기가 일어나는 원인 중 하나’(금성출판사) 등으로 서술한 부분에 대해서도 문제를 지적한 바 있다. 교육부는 ‘인과관계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이 부분에 대한 삭제를 집필진에 지시했다. 반면 새마을운동의 경우 보수 성향의 교학사 교과서는 ‘세계사에서 유례없는 농촌 발전운동’이라고 했는데 교육부는 이러한 문제 제기에 대해 “허용될 수 있는 수준에서의 관점의 차이”라고 했다.  이준식 민족문제연구소 연구원은 “새 국정교과서가 스스로를 비하하는 ‘자학사관’의 문제점을 들어 지나치게 밝은 부분만 쓰려고 한다면 결과적으로 현 정권에 유리한 내용만 쓰게 될 수 있다”고 밝혔다. 그는 “박정희의 5·16정변이 쿠데타라는 역사적인 사실과 20년 가까운 세월 동안 민주주의가 억압됐다는 점 등을 수록하지 않고서는 결코 공정한 교과서라고 말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베트남 파병에 대해서는 교학사를 제외한 7종의 교과서가 그로 인한 후유증을 서술한 점이 논란이 됐다. 교육부는 “천재교육, 두산동아는 ‘베트남 민간인 학살’을 직접 언급했는데 이러한 표현은 전쟁의 불가피성과 교과서임을 감안할 때 과도한 표현으로 부적절하다”는 입장이다. ‘학살’이라는 표현은 의도성, 무모함, 잔혹함 등을 내포한 것으로 자칫 국군 명예를 훼손시킬 수 있다고도 했다. 이에 따라 국정교과서에서는 베트남 파병의 당위성과 효과 등에 국한돼 기술될 가능성이 높다.  조성을 한국사학사학회장(아주대 사학과 교수)은 “교육부가 검정교과서에 대해 비판하는 부분은 뉴라이트에서 만든 자료들과 유사한 측면이 많다”며 “논란이 되는 부분에 대해 교육부가 직접 나서서 학술적 근거가 타당한지 각계각층의 이야기를 듣는 작업을 선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기중 기자 gjkim@seoul.co.kr  이성원 기자 lsw1469@seoul.co.kr
  • [씨줄날줄] 월산대군과 신동주/최광숙 논설위원

    조선시대 왕이 될 운명의 세자는 모두 27명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들 중 12명의 세자가 왕좌에 오르지 못했다. 권력의 비정함으로 이들은 어린 나이에 삼촌이나 이복형한테 죽거나, 아니면 동생에게 밀려서 쓸쓸한 최후를 맞이했다. 미치광이 짓으로 아버지 영조에게 미운털이 박혀 뒤주에 갇혀 죽은 사도세자를 비롯해 의안대군, 양녕대군 등이 왕이 되지 못하고 기구한 삶을 살다 간 세자들이다. 그들 가운데 월산대군은 두 번이나 왕이 될 기회를 놓친 비운의 왕세자다. 세조의 장남인 아버지 의경세자가 일찍 죽으면서 장남인 월산군(4살)이 응당 보위를 계승해야 했지만 임금이 되기에는 너무 어려 그보다 4살 더 많은 삼촌 예종이 왕위에 올랐다. 예종도 임금이 된 지 불과 열여섯 달 만에 승하하면서 월산군에게 다시 기회가 왔다. 왕실의 어른인 정희왕후(세조의 부인)의 고심이 시작됐다. 실록에서 정희왕후는 “원자(예종의 아들 제안군)는 포대기 속에 있고, 월산군은 본디부터 질병이 있다. 자산군은 나이가 비록 어리지만 세조께서 매양 그의 기상과 도량을 일컬으면서 태조에 견주기까지 하였으니, 그로 하여금 주상(主喪)하게 하는 것이 어떻겠는가?”라며 왕으로 자산군(성종)을 택한 이유를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정희왕후의 손자 셋 중 장손인 월산군은 처음에는 강보에 싸여서, 그다음에는 병약하다는 이유로 두 번이나 왕이 되지 못한 것이다. 하지만 실상은 다르다. 월산군이 동생 자산군(성종)에게 밀린 것은 자산군의 장인이 당대의 실세이던 한명회였기 때문이다. 정희왕후로서는 어린 손자가 명실상부 왕이 되기까지 보호막이 필요한데 바로 그 적임자가 한명회였다. 최근 롯데가 장남인 신동주 전 일본 롯데홀딩스 부회장이 한국과 일본에서 소송을 하면서 ‘형제의 난’ 2라운드가 시작됐다. 롯데그룹의 계승자로 보였던 장남이 차남 신동빈 롯데회장에게 밀린 것은 경영상의 성과 차이도 있겠지만 결정적인 이유 중의 하나가 일본인 어머니가 차남에게 힘을 실어 준 것도 작용했을 것이다. 그 과정에서 권력 향배의 캐스팅을 쥔 그들의 어머니도 정희왕후와 같은 고심을 하지 않았을까. 그 마음을 알 수 없겠지만 능력 있는 차남이 자신과 같은 일본 재계 거물의 딸인 일본인 며느리까지 맞이했다면 한국인 첫째 며느리를 맞이한 장남보다 더 마음이 가지 않았을까 싶다. 월산대군은 훗날 어떤 의심도 받지 않으려고 조심하며 세월을 보냈다고 한다. 그의 시 ‘추강(秋江)에 밤이 드니 물결이 차노매라/낚시 드리치니 고기 아니 무노라/무심한 달빛만 싣고/빈 배 저어 오노라’를 읽노라면 그의 헛헛한 마음이 절로 느껴진다. 하지만 지금은 조선시대와 달라 동생에게 밀려난 형은 시(詩)를 지으면서 초야에 묻혀 살지 않는다. ‘소송’으로 복수의 칼을 뺀다. 최광숙 논설위원 bori@seoul.co.kr
  • 北 비판 늘리고 박정희 功過 재조명… 좌편향 손보는 ‘우향우’

    北 비판 늘리고 박정희 功過 재조명… 좌편향 손보는 ‘우향우’

    “북한에 대해서는 독재라는 말이 2차례 나오는데 남한에 대해서는 24차례나 나온다. 남한과 북한의 분량 차이를 고려해도 국민 정서상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다.” 김재춘 교육부 차관이 지난 12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역사 교과서 발행체제 개선 방안’ 브리핑에서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전환의 배경으로 들었던 특정 교과서의 ‘좌편향’에 대한 예시다. 야권과 학계 및 시민사회단체가 국정화 전환 자체에 격렬하게 반발하는 상황에서 내년 말 모습을 드러낼 국정교과서가 이념 편향성 논란에서 자유로울 리 없다. 교육부가 명명한 대로 진보와 보수 모두 수긍할 수 있는 ‘올바른 역사 교과서’를 만들려면 논쟁이 되는 부분들에 대해 이념과 세대를 아우르는 큰 틀의 소통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교육부는 “역사 교과서 검정제는 국민을 통합하고 건전한 국가관과 균형 있는 역사 인식을 기르는 데 이바지하지 못한 채 지속적인 이념 논쟁과 편향성 논란을 일으켜 왔다”고 국정화 전환의 당위성을 강조했다. 교육부가 검정체제의 한국사 교과서에서 문제로 꼽았던 부분은 대부분 진보와 보수의 대립이 첨예하게 전개되는 근현대사 부분이다. 교육부가 검정교과서를 분석한 비공개 자료인 ‘고교 한국사 교과서 분석’을 보면 ▲해방 후 남북한의 토지개혁 ▲6·25전쟁 ▲대한민국의 정통성(건국) ▲이승만에 대한 평가 ▲5·16군사정변 ▲박정희의 공과 ▲10월 유신 등 18개 주제에서 문제점이 있다고 돼 있다. 2013년 교학사 교과서 파문이 났을 때 교육부가 다른 7종의 교과서에 대해 집중적으로 수정을 지시했던 부분들이기도 하다. 바꿔 말하면 국정교과서가 출간됐을 때 진보 진영에서 해당 부분의 서술을 놓고 반발할 가능성이 높은 대목이기도 하다. 양정현 한국역사교육학회장(부산대 교수)은 “새 국정교과서의 필진이 구성되지 않고 내용 역시 나오지 않은 상태이지만 국정화를 추진해 온 교육부와 새누리당의 그간 움직임으로 미뤄 볼 때 근현대사 부분은 현재 박근혜 정부가 원하는 식으로 기술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우선 국정교과서에서는 북한에 대한 비판의 강도가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검정교과서 가운데 금성출판사의 서술인 ‘임시인민위원회는 일본인과 친일파 소유지, 지주 소유 토지 등을 몰수해 농민에게 무상으로 나눠 주는 ‘무상몰수, 무상분배’의 방식으로 토지개혁을 실시했다’(373쪽)는 대목은 사라질 것으로 보인다. 교육부는 2013년 금성출판사 측에 ‘분배된 토지에 대해서는 매매와 소작, 저당이 금지됐다는 점을 기술하라’고 수정명령을 내린 바 있다. 6·25전쟁 부분에는 북한의 기습 남침을 직접적으로 보여 주는 자료들이 대거 들어갈 수 있다. 미래엔 교과서에는 ‘동기로 본다면 인민공화국이나 대한민국이나 조금도 다를 바 없을 것이다’(317쪽)라고 기술돼 있다. 교육부는 이런 부분에 대해 ‘6·25전쟁의 책임이 남북 모두에 있다고 오해할 소지가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이에 대해서는 ‘정찰명령 제1호’나 ‘전투명령 제1호’ 등 북한의 기습 남침을 보여 줄 수 있는 자료들을 수록하라고 지시했다. 대한민국의 정통성과 관련해선 ‘건국일’을 두고 의견 충돌이 일어날 가능성이 크다. 보수 진영에서는 “대한민국 건국은 이승만 정부가 수립된 1948년”이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진보 진영은 “대한민국 건국은 임시정부가 수립된 1919년”이라는 입장이다. 교육부는 이번 국정화와 별도로 앞서 개정된 2015 교육과정에서 기존의 ‘대한민국 정부 수립’이라는 용어를 ‘대한민국 수립’으로 바꿨다. 교육부 관계자는 “북한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수립’으로 쓰는데 우리는 ‘정부 수립’이라고 쓰며 스스로 격하한다는 지적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속인 정진후 정의당 의원은 이에 대해 “국가기록원도 1948년을 ‘대한민국 정부 수립’으로 쓰고 있다”고 지적한다. 조한경 전국역사교사모임 회장은 “1948년 8월 15일을 건국일이라고 주장하는 뉴라이트 계열의 입장을 반영한 것”이라고 말했다. 교육부가 현재 검정교과서의 문제로 든 18개 주제 가운데 4개 주제는 박정희 정부에 대한 것이다. 국정교과서에서는 박정희 정부의 공적은 부각시키고 잘못은 줄일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5·16군사정변’에 대해 비상교육과 미래엔, 천재교육 등에서는 “군사정권으로 인해 민주화를 지향한 4·19혁명 정신이 사실상 부정됐다”고 문제 제기를 한 바 있다. 교육부는 박정희 시대 경제성장과 관련해 ‘외자 도입을 통한 경제개발과 수출 주도형 성장 정책 역시 성과가 컸던 만큼 부작용도 많았다’, ‘1997년 외환위기가 일어나는 원인 중 하나’(금성출판사) 등으로 서술한 부분에 대해서도 문제를 지적한 바 있다. 교육부는 ‘인과관계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이 부분에 대한 삭제를 집필진에 지시했다. 반면 새마을운동의 경우 보수 성향의 교학사 교과서는 ‘세계사에서 유례없는 농촌 발전운동’이라고 했는데 교육부는 이러한 문제 제기에 대해 “허용될 수 있는 수준에서의 관점의 차이”라고 했다. 이준식 민족문제연구소 연구원은 “새 국정교과서가 스스로를 비하하는 ‘자학사관’의 문제점을 들어 지나치게 밝은 부분만 쓰려고 한다면 결과적으로 현 정권에 유리한 내용만 쓰게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박정희의 5·16정변이 쿠데타라는 역사적인 사실과 20년 가까운 세월 동안 민주주의가 억압됐다는 점 등을 수록하지 않고서는 결코 공정한 교과서라고 말할 수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베트남 파병에 대해서는 교학사를 제외한 7종의 교과서가 그로 인한 후유증을 서술한 점이 논란이 됐다. 교육부는 “천재교육, 두산동아는 ‘베트남 민간인 학살’을 직접 언급했는데 이러한 표현은 전쟁의 불가피성과 교과서임을 감안할 때 과도한 표현으로 부적절하다”는 입장이다. ‘학살’이라는 표현은 의도성, 무모함, 잔혹함 등을 내포한 것으로 자칫 국군 명예를 훼손시킬 수 있다고도 했다. 이에 따라 국정교과서에서는 베트남 파병의 당위성과 효과 등에 국한돼 기술될 가능성이 높다. 조성을 한국사학사학회장(아주대 사학과 교수)은 “교육부가 검정교과서에 대해 비판하는 부분은 뉴라이트에서 만든 자료들과 유사한 측면이 많다”며 “논란이 되는 부분에 대해 교육부가 직접 나서서 학술적 근거가 타당한지 각계각층의 이야기를 듣는 작업을 선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기중 기자 gjkim@seoul.co.kr 이성원 기자 lsw1469@seoul.co.kr
  • 50대 일본인 여성 中서 스파이혐의로 구속

    일본인의 중국 내 스파이 활동 의혹이 커지는 가운데 최근까지 중국에서 구속된 것으로 알려진 일본인이 4명으로 늘어났다. 교도통신은 11일 일본 정부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올해 6월 50대 일본인 여성이 중국 국가안전부에 의해 구속됐다고 전했다. 이에 앞서 스파이 활동에 연루된 것으로 알려진 일본인 남성 3명이 올해 5, 6월 중국에서 각각 구속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로써 중국 당국에 구금된 일본인 수는 모두 4명으로 늘어난 것으로 일본 당국은 파악하고 있다. 이번에 구속된 여성은 도쿄도 신주쿠에서 일본어학교 경영에 관여하고 있으며 최근 간간이 중국을 방문했다. 아사히신문은 이 여성이 원래 중국 국적자였다가 나중에 일본 국적을 취득했고 평소에는 중국에 살지 않는 민간인이라고 전했다. 이 여성이 어떤 혐의로 구속됐는지는 아직 명확하지 않다. 그러나 국외 정보 수집을 하거나 중국 내 스파이 활동을 감시, 단속하는 국가안전부가 체포한 점에 비춰 볼 때 중국에서 정보 수집 활동을 하다가 스파이 혐의로 붙잡혔을 것이라는 분석에 무게가 실린다. 마이니치신문과 요미우리신문 등 일부 언론은 이 여성이 스파이 행위에 관여한 혐의나 스파이 혐의로 구속됐다고 보도했다. 앞서 일본, 중국 양국 정부는 일본인 2명이 올해 5월 중국 랴오닝성과 저장성에서 각각 중국 당국에 구속됐다고 밝혔다. 중국 정부는 이들이 간첩 활동을 한 혐의로 체포됐다고 주장한 반면 일본 정부는 스파이를 중국에 보내지 않았다고 맞서고 있다. 도쿄 이석우 특파원 jun88@seoul.co.kr
  • 을미사변의 치욕 반복하지 않기 위해…

    을미사변의 치욕 반복하지 않기 위해…

    “을미년 8월 20일 일본인이 우리 국모 명성황후를 시해하니 그 사건의 대략적인 전말은 다음과 같다.(중략) 새벽녘에 서문에 이르러 훈련대와 일본군이 서로를 앞뒤로 호위하며…(중략) 광화문에 도착해 바로 근정전으로 들어가니,…(중략) 연대장 홍계훈이 소식을 듣고 달려와 궁궐로 난입한 훈련대를 큰소리로 꾸짖다가 일본군에게 살해되었다. 궁내부 대신 이경직 또한 일본 병사의 칼에 죽었다.”(박은식의 ‘한국통사’ 중에서) 1900년 9월 남산 아래 장충단이 생겼다. 1895년 10월 8일(음력 8월 20일) 을미사변 당시 순국한 홍 장군과 이 대신, 부령 염도희, 영관 이경호 등을 배향해 제사를 지냈다. 그러나 5년 뒤 을사늑약이 체결됐고 1908년 8월 일제에 의해 장충단이 폐사되면서 제향도 맥이 끊겼다. 이것을 1988년에 중구가 복원해 매년 추모제향을 올리고 있다. 8일 중구는 남산공원 장충자락(옛 장충단공원)에서 120주기 추모제향을 거행했다. 이날 최창식 구청장이 초헌관을, 이경일 중구의회 의장이 아헌관을, 이도철 참령의 증손인 이해권 제천문화원장이 종헌관을 각각 맡아 봉향했다. 제례위원은 후손들과 15개 동 자치위원장으로 구성했다. 이날 장충단제는 추모제향에 이어 추모시 낭송, 한국무용, 추모곡 및 판소리 연주 등으로 진행됐다. 마지막 헌화에는 선열의 후손들과 일본인 등이 참석했다. 수염을 붙이고 제관복을 갖추며 초헌관을 충실히 재현한 최 구청장은 “추모제향은 선조들의 숭고한 정신을 되새기고 애국애족의 마음을 다지는 소중한 기회”라며 “역사는 항상 반복된다. 과거 뼈아픈 역사를 잊으려 하지 말고 교훈으로 삼아야 한다”고 말했다. 최여경 기자 cyk@seoul.co.kr
  • 노벨 과학상 21대0… 일본은 “실력” 한국은 “간판”

    노벨 과학상 21대0… 일본은 “실력” 한국은 “간판”

    “한 우물을 파는 장인 정신, 기술과 실질에 대한 사회적 존중, 배경보다 실력을 중시하는 진검(眞劍) 승부 풍토….” 과학 분야 노벨상 수상자를 21명이나 배출한 ‘기초과학 일본’의 저력이 자리한 배경이다. 1949년 유카와 히데키를 필두로 지난 6일 물리학상 수상까지 20명이 넘는 수상자가 배출된 것은 고유의 사회·문화적 풍토 속에 연륜 깊은 연구가 쌓인 결과였다. 연구자들은 한눈팔지 않고 수십년 동안 한 연구 테마를 송곳처럼 파고들며 사회가 그런 환경을 만들어 준다. 명망 높은 과학자들이 장관, 기관장 자리를 탐하거나 꿰차는 일은 생각지도 못하고 있을 수도 없다. 실험실에서 시료를 뒤집어쓴 백발의 과학자가 젊은 학생들과 머리를 맞댄 모습은 이곳에선 상식이다. 일본인들이 입에 달고 사는 “열심히 하겠다”라는 ‘잇쇼켄메이’(一生懸命)는 “목숨 걸고 하겠다”란 뜻을 담고 있다. 지금 일을 천직으로 삼아 모든 힘을 다한다는 결의가 그들의 DNA 속에 면면하다. 그 대신 정치가와 관료도 과학자의 영역을 존중하고 간섭하지 않는다. 이 같은 금도가 지켜지는 가운데 과학기술자들의 자율과 진검 승부에 의해 대학, 연구소, 학계가 움직인다. 21명의 수상자 가운데 교토대(6명), 도쿄대(4명) 등 ‘빅2’를 뺀 절반 이상은 ‘무명 대학’ 등에 골고루 퍼져 있다. “어느 대학을 나왔느냐”가 아니라 “뭘 할 수 있느냐”를 따지고 실력으로 평가하는 진검 승부의 전통이 과학계를 건강하게 전진시킨다. 이름 없는 대학을 나와도 노벨상을 받도록 키워 준다. 이번 생리의학상 수상자 오무라 사토시는 비교적 무명인 야마나시대를 나왔고 물리학상의 가지타 다카아키도 사이타마대를 나와 도쿄대 교수로 있다. 한국은 만능 인재를 요구하지만 일본은 한 곳을 파고드는 ‘오타쿠’도 꽃피울 수 있게 한다. 반면 함께 나누는 협동과 팀워크 중시 전통은 융합연구를 가능하게 하고 스승의 발상을 제자들이 함께 연구 결실로 이어 나간다. 오랜 봉건체제 속의 분권적 지방 간 사활을 건 경쟁의 역사는 간판이나 명분보다는 기술과 생산력, 실질과 진검 승부 등을 일본인들의 뼛속 깊이 새겨 놓았다. 기본과 기초, 원칙과 협력 중시의 초·중등교육도 기초과학의 강국을 만든 또 다른 축이다. 초등학교 교사들은 학생의 숙제를 일일이 검사해 고쳐 주고 부모들의 사인과 확인을 받아 오게 한다. 한국 학생들이 입시용 문제에 매달릴 때 일본 아이들은 원리를 찾으려고 긴 시간을 골똘히 ‘허비’하며 보낸다. 일본 학교는 학생들이 하고 싶은 일을 찾도록 다양한 체험 기회를 주고 취미 생활과 동아리 활동을 통해 가능성을 탐색하게 한다. 도쿄 이석우 특파원 jun88@seoul.co.kr
  • [손성진 칼럼] 예측, 그 무거움과 가벼움

    [손성진 칼럼] 예측, 그 무거움과 가벼움

    몇 년 전 혹한이 닥친다는 일기예보를 믿고 아웃도어 업체들이 두꺼운 등산복을 많이 만들었다. 그러나 예보는 빗나갔고 업체들은 재고 소진에 골머리를 앓았다. 물론 적지 않은 손실을 보았을 것이다. 날씨에 절대적인 영향을 받는 기업들에 틀린 예보는 막대한 피해를 준다. 미래 예측의 중요성은 기업들엔 존망을 결정지을 만큼 절대적이다. 트렌드의 변화를 읽지 못하는 기업은 하루아침에 도태될 수 있다. 필름 카메라 시장을 100년간 지배한 코닥과 피처폰 1위 기업 노키아의 몰락은 애써 강조할 필요가 없는 주지의 사례다. 반대로 삼성이 최강의 전자그룹이 된 것은 미래를 읽을 줄 알았기 때문이다. 와병 중인 이건희 삼성 회장은 집무실에서 공상과학이나 우주에 관한 비디오물을 보며 경영전략을 구상했다고 한다. 미래를 내다보려는 노력이 지금의 삼성을 만든 것이다. 조지 오웰이 소설 ‘1984’에서 예측한 137가지를 미래학자 데이비드 굿먼이 1978년에 검토했더니 실현된 게 100가지가 넘었다고 한다. “과학기술이 인간 사이의 소통을 뛰어넘을 그날이 두렵다. 세상은 천치들의 시대가 될 것이다.” 아인슈타인의 말이다. 가족끼리, 연인끼리 식사를 할 때도 스마트폰을 손에서 놓지 못하는, 모바일 기기가 인간을 지배하다시피 하는 현실을 보면 예언은 적중한 셈이다. 그러나 미래 예측은 쉽지 않다. 10여 년 전 미국에서 정보를 가진 증권사와 화살을 쏘아 종목을 고르는 개인의 주식투자 대결에서 증권사가 졌다는 일화가 있다. 유수의 연구기관들도 1년에도 몇 번씩 경제성장률 예측치를 바꾼다. 그만큼 변수가 많다는 뜻이다. 국제통화기금(IMF)이 올해 우리나라의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2.7%로 내렸다. 올해만 네 번째다.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섣부른 예측은 예기치 못한 피해를 유발하기도 한다. 증권사의 주가 예측을 믿고 투자했다가 낭패를 본 사람은 허다하다. 집값이 계속 오를 것이라는 자칭 전문가의 말을 듣고 덥석 부동산을 사들였다가 ‘상투’를 잡은 경험이 있는 이들도 한둘이 아닐 것이다. 맞지도 않을 예측은 넘쳐나는데 사기를 제외하면 책임지는 일은 없다. A씨는 2년 전 집값이 떨어질 것이라는 S전문가의 말을 듣고 주택 구입을 포기했다. 그런데 집값은 20% 이상 올랐고 A씨는 그 말을 믿은 것을 크게 후회하고 있다. 미래 예측의 중요성은 변화의 속도와 정비례해 커진다. 경제주체들에게 예측, 정확한 예측만큼 중요한 게 없는 시대다. 자고 나면 세상이 달라질 정도로 변화의 속도는 점점 빨라지고 있기 때문이다. 예측은 성공과 실패를 가른다. 예측을 잘못하거나 잘못된 예측을 믿었다간 크나큰 위기에 봉착할 수 있다. 거꾸로 정확한 예측을 통한 경영은 성공의 지름길이 된다. 어떤 이는 이를 ‘예측 경영’이라 이름 붙여 부르기도 한다(‘비즈니스의 99%는 예측이다’, 김경훈). 한국의 주요 산업은 중대기로에 놓여 있다. 혁신이 한계에 이른 상황에서 미래를 지배할 새로운 전략산업을 선점해야 한다. 변화의 트렌드를 읽어 내는 예지력이 필요하다. 30여 년 전에는 반도체, 20여 년 전에는 휴대전화의 발전 가능성을 읽었듯이 말이다. ‘일본 맥도날드사’를 창립, 일본에 햄버거 선풍을 일으킨 후지다 덴이라는 사람이 있다. 세계의 유대인으로부터 ‘긴자의 유대인’이라고 불린 그는 일본인들의 걸음걸이가 빨라지는 모습을 보고 햄버거를 선택했다고 한다. 국가, 정부라고 해서 다를 것은 없다. 미래 산업은 국가가 주도해서 발굴해야 한다. 국가 차원의 미래 전략 연구가 태동한 것은 20여 년 전이다. 이후 미래기획위원회가 설립됐고 현 정부 들어서는 정부 부처로 미래창조과학부가 발족됐다. 국회에서도 ‘국회미래연구원’ 법안이 제출돼 설립이 추진되고 있다. 하지만 얼마만큼 실질적인 미래 연구가 이뤄지고 있는지 믿음이 가지 않는다. 30년, 또는 50년 이후의 한국은 지금 미래를 어떻게 내다보고 준비하느냐에 좌우될 것이다. 입법·행정·민간이 힘을 모아 체계적인 미래 연구에 나서야 한다. 후손들의 미래 삶은 우리 손에 달렸다. 논설실장
  • [열린세상] 을미사변 120주년의 교훈, ‘작지만 강한 나라’를/이종각 동양대 교양학부 교수

    [열린세상] 을미사변 120주년의 교훈, ‘작지만 강한 나라’를/이종각 동양대 교양학부 교수

    꼭 120년 전인 1895년 10월 8일 동이 터 올 무렵. 당시 주한일본공사 미우라 고로(三浦梧樓·1847~1926)의 지시를 받은 일본군 수비대, 낭인 등 폭도들이 경복궁에 난입해 조선의 왕비(1897년 명성황후로 추존)를 침전에서 참살하는 비극이 일어났다. 일본인 폭도들은 시신을 부근 녹산(山)으로 옮겨 장작더미 위에 올려놓고 석유를 끼얹어 불태운 뒤, 타다 남은 유해는 근처 연못에 버렸다가 증거 인멸을 위해 다시 건져 올려 녹산에 묻었다. 일본인치고는 조금은 양심적이던, 당시 일본 경성영사관의 젊은 외교관 우치다 사다쓰치(內田定槌·1865~1942)가 ‘역사상 일찍이 없었던 흉악한’ 사건으로 본국 외무성에 보고한 을미사변이다. 일국의 왕비가 자신의 나라 수도 한복판에서, 그것도 시위대가 지키는 왕궁 안에서 외국 군대와 폭도들에 의해 무참히 살해되고 불태워진 것이다. 그야말로 세계사에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극악무도한 야만행위였다. 그런 만큼 을미사변은 우리 민족의 자존심에 가장 커다란 생채기로 남아 있다. 당시 조선 군대는 서양 근위대를 본떠 만든 왕실경호부대인 시위대(2개 대대 약 800명)와 정부 직속의 훈련대(2개 대대 약 970명)로 구성돼 있었다. 그러나 싸울 생각도 않은 채 총을 버리고 줄행랑치기에 급급했다. 목숨을 걸고 국왕 일가와 궁궐을 지켜야 할 조선 최정예 부대의 한심한 작태다. 당시 청일전쟁(1894~1895)에서 승리한 일본은 조선의 지배권을 둘러싸고 러시아와 각축하고 있었다. 일본이 을미사변을 일으킨 것은 ‘인아거일’(引俄拒日), 즉 러시아 세력을 끌어들여 일본을 물리치려는 조선 친러세력의 정점이었던 명성황후를 제거하기 위해서였다. 일본 측은 왕비의 시아버지이면서도 정치적으로 견원지간이었던 흥선대원군을 ‘괴뢰’로 내세워 쿠데타로 위장, 이날 이른바 ‘여우사냥’을 결행한 것이다. 을미사변은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 등 당시 일본 정부 및 군부 최고지도자로부터 암묵리에 동의를 받은, 오늘날의 대사에 해당하는 당시 주한 일본공사가 조직적·계획적으로 조선의 왕비를 살해한 사건이었다. 하지만 일본 측의 은폐와 왜곡, 증거 인멸 등으로 사건 발생 120년이 지난 오늘날까지도 진상 규명은 요원한 상태다. 명성황후 시해범도 그동안 ‘일본 낭인’이라는 게 통설로 돼 있으나 재일사학자 김문자씨의 ‘조선왕비살해와 일본인’(2008년) 등 최근의 연구 성과에 따라 일본군 수비대의 미야모토 다케타로(宮本竹太郞) 소위가 범인이라는 사실이 드러나고 있다. 명성황후 시해범이 민간인 신분의 낭인인 경우와 일본 군인인 경우는 의미가 전혀 다르다. 당시 주한 일본공사의 지휘를 받아 동원된 일본군 부대에 소속된 군인, 그것도 장교가 시해범일 경우 당시 일본 정부의 법적·외교적 책임은 더욱 무거울 수밖에 없다. 따라서 사건의 계획과 지시를 비롯해 은폐와 왜곡 등 을미사변에 대한 진상 규명이 시급하다. 왜 명성황후는 궁궐 안에서 참변을 당했는가.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한마디로 그녀는 약소국의 왕비였기 때문이다. 서세동점의 서양 제국주의 물결이 동아시아로 밀려들고, 일본은 메이지유신(1868년)으로 서양식 근대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었으나 당시 조선 정부는 이 같은 국제사회의 변화에 눈감고 있었다. 일본의 강요에 의한, 친일 내각의 갑오개혁이 있었지만 자율적으로 근대화를 추진할 의식도, 능력도 없었다. 일본은 을미사변 이후 조선 침략의 야욕을 본격화했다. 을사늑약(1905년)에 이은 강제합병(1910년)으로 한국은 일본의 식민지로 전락해 35년간 신음했다. 해방 이후엔 동족 상잔의 전쟁과 남북 분단이라는 현대사의 비극이 계속되고 있다. 그런 점에서 을미사변은 실패한 한국 근·현대사의 서곡이나 다름없다. 을미사변은 약육강식의 국제사회에서 약소국가, 약소민족은 언제 당할지 모른다는 평범한 교훈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었다. 따라서 국력 신장밖에 없다. 국력의 기초인 단단한 경제력에다 탄탄한 국방력을 가진 ‘작지만 강한 나라’(强小國)를 만들어 다시는 일본을 비롯한 주변국들의 먹잇감으로 전락하지 않는 것이 을미사변의 치욕을 조금이나마 씻는 길이다.
  • 해외여행 | 먹고 또 먹는 타이베이④중산中山 -원한다면 꺼내 먹어요

    해외여행 | 먹고 또 먹는 타이베이④중산中山 -원한다면 꺼내 먹어요

    ●중산中山 원한다면 꺼내 먹어요 빌딩 숲과 작은 골목 안의 개성있는 가게들이 어우러진 동네로 한국 여행자보다는 일본 여행자들이 즐겨 찾는다. 일본인 여행자들의 기호에 맞춘 탓인지 타이베이의 다른 지역에 비해 마사지 숍과 차 판매점이 굉장히 많다. 한국인들이 많이 가는 음식점은 장어 덮밥으로 유명한 페이첸우肥前屋. 개성 만점의 음식점들도 많다. 파스타 & 빙수 우시니엔다이 봉주르 하오츠 午食年代 蹦啾好吃 중산의 작은 골목에 숨은 독특한 분위기의 음식점. 나무로 된 미닫이문을 열고 들어서면 50년대 풍경이 펼쳐진다. 가게 이름도 그래서 우시니엔다이午食年代. 오십년대五十年代와 중국어로 발음이 같다. 내부에는 찻잔, 전화기, 카메라, 부채, 재떨이, 인형 등 잡동사니 골동품이 가득하다. 대표 메뉴는 파스타. 로제, 크림, 매운 조개 등으로 다양한데 재료의 맛을 잘 살렸다. 세트 메뉴를 주문하면 함께 나오는 마늘빵과 샐러드는 옛 경양식 집 스타일이다. 빙수도 괜찮다. 이 집에서는 ‘빙수 기계를 돌린다’는 뜻의 ‘춰빙剉冰’을 선보인다. 주문 즉시 골동품 같은 빙수 기계에서 얼음을 갈기 시작한다. 손님이 직접 얼음을 갈아도 된다. 고명으로 올라가는 볶은 밀가루麵茶黑糖나 팥紅豆黑糖도 옛 방식 그대로 준비된다. MRT 중산역 1번 출구에서 도보 1분 台北市南京西路18巷6弄8之1號 금~월요일 11:30~21:00, 15:00~21:00, 화~목요일 15:00~21:00 파스타 세트 TWD290부터, 춰빙 TWD60 +886 2 2559 9101 타이베이를 조망하며 더 탑 THE TOP 타이베이의 국가공원인 양밍산陽明山은 우리나라로 치면 서울의 북한산쯤 된다. 볼거리 많은 양밍산에는 먹거리 또한 많은데 대부분의 레스토랑들이 산 곳곳에 숨어 있다. 더 탑은 양밍산을 대표하는 분위기 좋은 레스토랑 중 하나. 데이트족은 물론 가족 단위 손님들이 몰리는 주말에는 예약조차 힘들어 현장에서 번호표를 받고 몇 시간을 기다려야 한다. 실내외에 좌석이 마련된 레스토랑은 남국의 리조트 풍경이다. 산 아래가 내려다보이는 타이베이 풍경은 오랜 기다림에 지친 마음을 보상한다. 台北市士林區凱旋路61巷4弄33號 일~목요일 12:00~03:00, 금~토요일 12:00~05:00 +886 2 2862 2555 www.compei.com 타이완식 아침식사 푸항떠우지앙 阜杭豆漿 타이베이의 웬만한 맛집은 줄을 서야 먹을 수 있다. 타이베이 여정을 아름답게 마무리하려면 기다림에 익숙해져야 한다. 정신건강을 위해서라도 말이다. 화샨시창華山市場 2층에 자리한 푸항떠우지앙은 타이베이에서 가장 줄을 길게 서는 집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은 물론 1층의 건물을 에워쌀 정도로 사람들이 몰려든다. TWD25짜리 떠우지앙을 맛보러 택시를 타고 오는 이들까지 있으니 더 이상 설명이 필요 없다. 떠우지앙豆漿은 타이완의 아침 메뉴 중 하나다. 우리나라로 따지면 두유 정도. 차갑게도 먹고 따뜻하게도 먹는다. 따뜻하게 먹는 떠우지앙은 우리의 순두부찌개와 거의 흡사하다. 떠우지앙과 더불어 즐기는 메뉴도 다양하다. 길게 튀긴 빵인 요티아오油條는 얇은 것과 두꺼운 것 등 가지각색이다. 넓은 빵 종류인 허우빙厚餠은 화덕에서 구워 바로 내온다. 허우빙은 그냥 먹어도 되지만 계란을 넣어 먹으면 더 맛있다. 푸항떠우지앙은 사람들이 워낙 많은지라 주문이 급하게 진행된다. 메뉴는 중국어로만 돼 있으므로 이름 정도는 알고 가야 주문에 어려움이 없다. MRT 샨다오쓰역 5번 출구에서 바로 台北市忠孝東路一段108號2樓華山市場二樓 05:30~12:30, 월요일 휴무 떠우지앙 TWD25, 요티아오 TWD22부터, 허우빙 TWD28부터 +886 2 2392 2175 야시장 닝샤이에스 寧夏夜市 늦은 밤까지 사고파는 열기로 휩싸이는 야시장은 타이베이 여정이 선사하는 독특한 재미다. 어둠이 서서히 내리기 시작하면 활기를 띈다. 닝샤이에스는 중산 인근 도심 한가운데에 자리한 야시장. 접근성이 좋아서인지 현지인들이 저녁식사를 해결하기 위해 즐겨 찾는다. 의류나 잡화를 판매하는 가게는 거의 없고, 350m가량 이르는 거리 대부분을 음식점이 메우고 있다. 차가 다니지 않는 도로 위로는 각종 샤오츠 노점들이 두 줄로 빼곡히 들어선다. 도로변 상점에는 커짜이지엔(蚵仔煎, 타이완식 굴전) 등 줄을 서서 먹는 오랜 역사의 음식점들이 많다. 야시장 최고의 인기 가게는 토란 튀김 노점이다. 줄이 길어 위치를 몰라도 잘 찾을 수 있다. ▶중산의 볼거리 오늘의 예술을 만나다 당대예술관 當代藝術館 일제 당시, 초등학교였다가 이후 타이베이 시청으로 쓰인 건물에 자리했다. 시청이 신이로 이전하며 리노베이션을 통해 예술관과 더불어 중학교가 들어섰다. 건물 자체가 유적이라 유적 내에 예술관, 중학교가 공존하는 독특한 형태다. 이름 그대로 예술관에서는 당대를 대표하는 현대 예술 작품들을 전시한다. 전시는 약 2개월마다 바뀌며 하나의 주제 아래 2~3명의 작가가 참여한다. 주제가 바뀔 때마다 바뀌는 티켓도 아주 예쁘다. 여권을 맡기면 영어 오디오 가이드를 무료 대여해 주므로 예술 작품 감상에 도움이 된다. MRT 중산역 1번 출구에서 도보 5분 長安西路39號 10:00~18:00(매표 마감 17:30), 월요일 휴무 TWD50 +886 2 2552 3721 www.mocataipei.org.tw 착한 가게 타이완하오, 띠엔 臺灣好, 店 공정무역을 지향하며 2009년에 문을 연 착한 가게. 타이완 각 지역 주민 혹은 원주민이 생산한 상품을 판매한다. 1~2층에서 소품, 식품, 도자기, 패브릭, 목공 제품 등을 선보이며, 3층은 여행자들의 휴식 공간으로 쓰인다. 종이로 만든 부엉이 모양의 저금통TWD90, 새끼로 엮은 비누TWD180 등이 인기 상품이다. 디자인이 예쁜 제품들이 많아 선물이나 기념품으로 그만이다. MRT 중산역과 이어진 지하도 R8번 출구 앞 台北市南京西路25巷18-2號 화~일요일 12:00~21:00, 월요일 휴무 +886 2 2558 2616 www.lovelytaiwan.org.tw 에디터 손고은 기자 글 Travie writer 이진경 사진 Travie photographer 노중훈 취재협조 타이완 관광청 www.taiwan.net.twa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 [사이언스 톡톡] 노벨상

    벌써 10월이 됐나. 매년 돌아오는 10월이지만 나, 알프레드 노벨에게 10월은 좀더 특별하다네. 인류의 문명 발달에 기여한 사람들에게 내 이름으로 상을 주는 때이니까 말야. 올해에도 5일부터 12일까지 생리의학상, 물리학상, 화학상, 평화상, 문학상, 경제학상 수상자가 줄줄이 발표된다네. 잘 알다시피 노벨상은 1895년 내 유언으로 만들어진 상이지. 처음에는 5개 분야만 있었는데, 1968년 스웨덴 중앙은행이 창립 3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경제학상을 만들면서 6개 분야로 늘었지. 경제학상의 정식 명칭은 ‘알프레드 노벨을 기념하는 스웨덴 중앙은행 경제학상’이야. 엄격히 따지면 노벨상이라고 하기는 어렵지. 그렇지만 다른 수상자들과 같이 12월 10일 스톡홀름에서 스웨덴 국왕에게서 증서와 메달을 받아. 상금도 똑같고. 노벨상이 지금처럼 유명해진 건 엄청난 상금 때문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라네. 1901년 첫 수상자에게 돌아간 상금은 1만 5000크로나(약 2500만원)였는데, 당시 스웨덴 대학교수의 25년치 연봉이었고, 미국 대학교수로 치더라도 15년치 연봉이었지. 상금은 재단의 재정 사정에 따라 다르기는 하지만 꾸준히 증가해 왔다네. 올해 수상자는 800만 크로네(약 11억원)의 상금을 받게 되지. 최근 과학 분야 수상자들은 한 분야에서 2~3명씩 나오고 있어서 ‘n분의1’로 나눠야 하지만 그래도 꽤 많은 돈 아닌가. 사실 난 노벨재단 기금 운용자들에게 노벨경제학상을 주고 싶다네. 115년 동안 경제 상황도 많이 달라졌고 물가도 꾸준히 올랐지만 기금을 잘 운용해 상금을 꾸준히 늘려 왔으니 말야. 한국 사람들은 한국인 노벨과학상 수상자가 나오기를 무척이나 바란다는 얘기를 들었네. 그런데 재미있는 얘기 하나 해주지. 한국인은 아니지만 한국에서 출생한 사람이 노벨상을 받은 적은 있다는 걸 알고 있나. 1987년 노벨화학상을 받은 찰스 피더슨(1904~1989) 박사가 바로 그 사람이지. 피더슨 박사는 부산에서 태어났다네. 아버지는 북한 지역의 운산광산에서 기계기사로 근무했던 노르웨이인이었고 어머니는 한국에서 농산물 무역을 하던 일본인의 딸이었지. 피더슨은 여덟 살이 될 때까지 한국에서 살았지만 한국어는 못했다고 하더군. 만약 피더슨이 한국어를 할 줄 알아서 노벨상 시상식 때 한국어로 인사를 했다면 어땠을까. 어쨌든 올해 어떤 사람들이 수상의 영광을 안을지 궁금하구먼. 그렇지 않나? 유용하 기자 edmondy@seoul.co.kr
  • ‘유커의 귀환’ 면세점 성장은 장밋빛

    ‘유커의 귀환’ 면세점 성장은 장밋빛

    해외 여행객이 꾸준히 늘고 중국인 관광객(유커)이 ‘귀환’함에 따라 국내 면세점 시장이 다시 가파른 성장세를 이어 갈 전망이다. 면세점 시장을 둘러싼 대기업의 각축전도 더욱 치열해지고 있다. 5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지난 6월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여파로 매출이 급감했던 국내 면세점 시장은 7월 이후 매출 감소폭이 둔화되면서 올해 연간 성장률 2.7%를 달성할 전망이다. 전체 면세점 매출은 올해 말 8조원을 넘어서고 내년에는 10조원을 돌파할 거란 예상이 나온다. 국내 경제 전반은 저성장 흐름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지만, 면세점 시장만은 내년 25%, 2017년 18% 등의 고성장이 기대된다. 이런 ‘장밋빛 전망’의 배경은 유커와 늘어나는 해외 관광객이다. 2000년 44만명에 불과했던 국내 입국 중국인 수는 한·중 관계 개선과 중국 경제성장 영향으로 2007년 100만명을 넘어선 데 이어 지난해 600만명을 돌파했다. 특히 2011년 동일본 대지진으로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발생한 이후에는 한국 쏠림 현상이 이어졌다. 중국인의 여권 소지 비율은 아직 5%에 불과하다. 중국인의 해외여행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날 것으로 보는 이유다. 지난해 중국 밖으로 나간 중국인 수는 1억 1600만명으로 전년보다 18.4% 증가했다. 이 중 홍콩, 마카오, 대만 등 중화권으로의 출국자 비중이 60%를 넘는다. 매년 15% 증가를 가정하면 2020년에는 2억 6800만명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이성호 CLSA증권 연구원은 “구매력이 높은 중국 동북부 지역에서 가깝다는 지리적 이점과 패키지 여행 기준 일본의 절반 수준인 가격 경쟁력 등으로 유커의 한국행이 지속되고 있다”며 “정보 공유가 활발한 유커들 사이에서 시내 면세점 선호도 크게 오르고 있어 중장기적으로도 성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여기에 국내 여행객의 해외여행 수요 증가도 면세점 시장 성장을 뒷받침한다. 2005년 1000만명을 넘어선 해외여행객 수는 지난해 1600만명에 이르렀다. 앞으로도 10% 내외의 안정적인 성장이 전망된다. 김기영 SK증권 연구원은 “금융위기나 메르스 등 일시적인 충격은 수요를 이연시킬 뿐 근본적인 수요에는 변화를 주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그는 “엔화 약세로 일본인 관광객이 줄었지만 1인당 지출액이 상대적으로 작아 면세점 매출의 중요 변수는 아니다”라며 “결국 유커가 중장기 면세점 성장의 ‘열쇠’를 갖고 있다”고 말했다. 세계 면세 시장 규모도 2011년 510억 달러에서 2016년 710억 달러로 성장할 것으로 추정된다. 특히 아시아·태평양 지역이 전체 면세 시장의 40%를 차지할 전망이다. 이에 발맞춰 정부는 지난 7월 서울 시내에 새로운 면세점을 여는 특허를 HDC신라면세점(용산)과 한화갤러리아타임월드(여의도) 등에 줘 글로벌 면세점 경쟁을 지원하고 나섰다. 다음달부터 심사가 진행되는 2차 신규 면세사업자 선정에도 대기업들의 물밑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다. 이정수 기자 tintin@seoul.co.kr
  • 노벨 생리의학상 캠벨·오무라·투 공동수상

    노벨 생리의학상 캠벨·오무라·투 공동수상

    2015년 노벨 생리의학상은 기생충 감염 치료법을 발견한 미국·일본의 과학자와 말라리아 치료법을 개발한 중국 과학자에게 돌아갔다. 스웨덴 카롤린스카연구소 노벨위원회는 5일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로 윌리엄 캠벨(왼쪽·85) 미국 드류대 명예교수, 오무라 사토시(가운데·80) 일본 기타사토대 명예교수, 투유유(屠??·오른쪽·85) 중국 중의과학원 명예교수 등 3명을 선정했다고 밝혔다. 오무라 교수의 수상으로 노벨 과학상 명단에 이름을 올린 일본인은 20명이 됐다. 투 박사의 수상으로 중국은 첫 번째 노벨 과학상 수상자를 배출하게 됐다. 노벨위원회는 이 3명의 과학자가 천연물에서 추출한 물질을 토대로 아프리카와 같은 저개발국가 사람들에게 심각한 위협이 될 수 있는 말라리아와 기생충 등의 치료제를 개발한 공로를 높이 평가했다. 캠벨 교수는 아일랜드에서 태어나 더블린대를 졸업하고 1957년 미국 위스콘신 메디슨대에서 기생충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1990년까지 세계적인 제약회사인 머크 연구소에 재직하다가 1990년부터 2010년까지 드류대 교수로 있었다. 야마니시현 출신인 오무라 교수는 도쿄대에서 약학박사와 화학박사 학위를 받고 1975년부터 2007년까지 기타사토대에서 기생충학을 연구했다. 두 사람은 1979년 ‘아버멕틴’이라는 천연물을 발견하고 단 한 번의 화학적 처리를 통해 ‘이버멕틴’이라는 구충제를 만듦으로써 아프리카와 중남미 일부에서 유행하는 ‘회선사상충’을 박멸할 수 있는 길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투 교수는 1955년 중국 베이징의대 약학과를 졸업하고 1965년부터 우리나라의 한의학연구원과 같은 중의과학원에서 연구원으로 근무했다. 투 교수는 중의학 관련 문헌을 연구해 개똥쑥에서 말라리아 치료제인 ‘아테미시닌’을 발명했다. 그 공로로 ‘예비 노벨생리의학상’이라고 불리는 래스커상 임상연구 분야에서 2011년 수상자로 선정되기도 했다. 투 교수가 발명한 아테미시닌을 기초로 하는 약물은 말라리아 표준 치료방안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백경란 삼성서울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이번 수상자들은 기생충 감염질환 치료에 새로운 전기를 만든 사람들로 평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생리의학상 수상자들에게는 상금 800만 크로네(약 11억 1900만원)가 주어지는데 공헌도에 따라 투 교수에게 절반인 400만 크로네, 나머지 두 명에게 각각 200만 크로네가 돌아갈 예정이다. 노벨위원회는 6일 물리학상, 7일 화학상, 9일 평화상, 12일 경제학상 수상자를 차례로 발표한다. 문학상 수상자 발표 날짜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시상식은 노벨상을 만든 알프레드 노벨의 사망일인 12월 10일 스웨덴 스톡홀름과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열린다. 유용하 기자 edmondy@seoul.co.kr
  • 투수로 깜짝 변신 이치로, 1이닝 1실점 “내 꿈 하나 이뤘다” 최고 구속 확인해 보니

    투수로 깜짝 변신 이치로, 1이닝 1실점 “내 꿈 하나 이뤘다” 최고 구속 확인해 보니

    투수로 깜짝 변신 이치로, 1이닝 1실점 “내 꿈 하나 이뤘다” 최고 구속 확인해 보니 ‘투수로 깜짝 변신 이치로’ 메이저리그에서 활약 중인 일본인 타자 스즈키 이치로(42·마이애미 말린스)가 투수로 변신했다. 이치로는 5일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필라델피아 시티즌스뱅크파크에서 열린 2015 메이저리그 필라델피아 필르스와 시즌 최종전에서 3회 우익수 대수비로 교체 출장했다. 이어 그는 마이애미가 2대 6으로 뒤진 8회말 구원 등판했다. 메이저리그 통산 2357경기를 뛰며 2935안타를 때린 ‘타격 기계’ 외야수 이치로가 투수로 나선 것은 처음이다. 이치로가 투수로 깜짝 변신한 것은 팬 서비스 차원으로 마이애미의 시즌 마지막 이닝을 책임진 것. 이치로는 팀의 4번째 투수로 마운드에 올라 1이닝 동안 2안타를 맞고 1실점했다. 총 투구수는 18개로 스트라이크 11개, 볼 7개. 최고 구속 88마일로 약 142km까지 나왔다. 패스트볼뿐만 아니라 체인지업-슬라이더-커브까지 모든 구종을 자유자재로 구사하며 투수로서의 재능을 뽐냈다. 우투좌타 이치로는 고교 시절까지 투수로 던진 경험이 있었다. 일본 프로야구 오릭스 블루웨이브 시절인 1996년 올스타전에서 투수로 나온 바 있지만, 메이저리그 공식 경기에서 투수 등판은 처음이다. 이치로는 메이저리그 홈페이지 MLB닷컴에 실린 인터뷰에서 “고교시절과 일본프로야구 올스타전에서 투수로 공을 던져보긴 했지만 메이저리그 마운드에 오른 것은 내 꿈 하나를 이룬 것”이라면서 “하지만 다시 그러기를 바라지는 않는다” 말했다. 사진: AFPBBNews=News1(투수로 깜짝 변신 이치로) 뉴스팀 seoulen@seoul.co.kr
  • 투수로 깜짝 변신 이치로, 1이닝 1실점..최고 구속 142km ‘대박’

    투수로 깜짝 변신 이치로, 1이닝 1실점..최고 구속 142km ‘대박’

    메이저리그에서 활약 중인 일본인 타자 스즈키 이치로(42·마이애미 말린스)는 5일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필라델피아 시티즌스뱅크파크에서 열린 2015 메이저리그 필라델피아 필르스와 시즌 최종전에서 3회 우익수 대수비로 교체 출장했다. 이어 8회말 마이애미의 4번째 투수로 깜짝 변신했다. 이치로는 마이애미가 2-7로 뒤진 8회말 마운드에 올랐다. 타격은 좌타자이지만 투구는 오른손이었다. 첫 타자 오두벨 에레라에게 2구째 81마일 체인지업을 공략당해 우측 2루타를 맞고 득점권 위기에 몰렸지만 카메론 러프를 3구째 86마일 체인지업으로 중견수 뜬공 처리했다. 이어 대타 다넬 스위니에게 초구 87마일 포심 패스트볼이 우측 2루타로 연결돼 첫 실점을 허용했다. 하지만 계속된 1사 2루에서 프레디 갈비스를 4구째 80마일 슬라이더로 2루 땅볼, 애런 알테르를 풀카운트 승부 끝에 8구째 78마일 커브로 좌익수 뜬공 처리하며 추가점을 허락하지 않았다. 투수로 깜짝 변신한 이치로의 투구 성적은 1이닝 2피안타 1실점. 총 투구수는 18개로 스트라이크 11개, 볼 7개. 최고 구속 88마일로 약 142km까지 나왔다. 사진: AFPBBNews=News1(투수로 깜짝 변신 이치로) 뉴스팀 seoulen@seoul.co.kr
  • 투수로 깜짝 변신 이치로, 1이닝 1실점..최고 구속 얼마인가 보니 ‘깜짝’

    투수로 깜짝 변신 이치로, 1이닝 1실점..최고 구속 얼마인가 보니 ‘깜짝’

    투수로 깜짝 변신 이치로, 1이닝 1실점 역투..최고 구속 얼마인가 보니 ‘깜짝’ ‘투수로 깜짝 변신 이치로’ 메이저리그에서 활약 중인 일본인 타자 스즈키 이치로(42·마이애미 말린스)가 투수로 깜짝 변신했다. 이치로는 5일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필라델피아 시티즌스뱅크파크에서 열린 2015 메이저리그 필라델피아 필르스와 시즌 최종전에서 3회 우익수 대수비로 교체 출장했다. 이어 8회말 마이애미의 4번째 투수로 깜짝 변신했다. 이치로가 투수로 깜짝 변신한 것은 팬 서비스 차원으로 마이애미의 시즌 마지막 이닝을 책임진 것. 이치로는 마이애미가 2-7로 뒤진 8회말 마운드에 올랐다. 타격은 좌타자이지만 투구는 오른손이었다. 첫 타자 오두벨 에레라에게 2구째 81마일 체인지업을 공략당해 우측 2루타를 맞고 득점권 위기에 몰렸지만 카메론 러프를 3구째 86마일 체인지업으로 중견수 뜬공 처리했다. 이어 대타 다넬 스위니에게 초구 87마일 포심 패스트볼이 우측 2루타로 연결돼 첫 실점을 허용했다. 하지만 계속된 1사 2루에서 프레디 갈비스를 4구째 80마일 슬라이더로 2루 땅볼, 애런 알테르를 풀카운트 승부 끝에 8구째 78마일 커브로 좌익수 뜬공 처리하며 추가점을 허락하지 않았다. 투수로 깜짝 변신한 이치로의 투구 성적은 1이닝 2피안타 1실점. 총 투구수는 18개로 스트라이크 11개, 볼 7개. 최고 구속 88마일로 약 142km까지 나왔다. 패스트볼뿐만 아니라 체인지업-슬라이더-커브까지 모든 구종을 자유자재로 구사하며 투수로서의 재능을 뽐냈다. 우투좌타 이치로는 고교 시절까지 투수로 던진 경험이 있었다. 일본 프로야구 오릭스 블루웨이브 시절인 1996년 올스타전에서 투수로 나온 바 있지만, 메이저리그 공식 경기에서 투수 등판은 처음이다. 한편 이날 경기는 필라델피아가 7-2로 승리했고, 마이애미는 71승91패가 돼 내셔널리그 중부지구 3위로 시즌을 마쳤다. 타석에서 이치로는 2타수 무안타 2삼진으로 물러났다. 올 시즌 최종 성적은 153경기 타율 2할2푼9리 91안타 1홈런 21타점 45득점 11도루. 메이저리그 데뷔 후 가장 저조한 타율을 기록했다. 통산 안타는 2935개로 대망의 3000안타까지 65개를 남겨놓고 있다. 사진: AFPBBNews=News1(투수로 깜짝 변신 이치로) 뉴스팀 seoulen@seoul.co.kr
  • 투수로 깜짝 변신 이치로, 1이닝 1실점 ‘커브-체인지업 자유자재’ 최고 구속 보니

    투수로 깜짝 변신 이치로, 1이닝 1실점 ‘커브-체인지업 자유자재’ 최고 구속 보니

    ‘투수로 깜짝 변신 이치로’ 메이저리그에서 활약 중인 일본인 타자 스즈키 이치로(42·마이애미 말린스)가 투수로 깜짝 변신해 눈길을 끌었다. 이치로는 5일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필라델피아 시티즌스뱅크파크에서 열린 2015 메이저리그 필라델피아 필르스와 시즌 최종전에서 3회 우익수 대수비로 교체 출장했다. 이어 8회말 마이애미의 4번째 투수로 깜짝 변신했다. 이치로는 마이애미가 2-7로 뒤진 8회말 마운드에 올랐다. 첫 타자 오두벨 에레라에게 2구째 81마일 체인지업을 공략당해 우측 2루타를 맞고 득점권 위기에 몰렸지만 카메론 러프를 3구째 86마일 체인지업으로 중견수 뜬공 처리했다. 이어 대타 다넬 스위니에게 초구 87마일 포심 패스트볼이 우측 2루타로 연결돼 첫 실점을 허용했다. 하지만 계속된 1사 2루에서 프레디 갈비스를 4구째 80마일 슬라이더로 2루 땅볼, 애런 알테르를 풀카운트 승부 끝에 8구째 78마일 커브로 좌익수 뜬공 처리하며 추가점을 허락하지 않았다. 투수로 깜짝 변신한 이치로의 투구 성적은 1이닝 2피안타 1실점. 총 투구수는 18개로 스트라이크 11개, 볼 7개. 최고 구속 88마일로 약 142km까지 나왔다. 패스트볼뿐만 아니라 체인지업-슬라이더-커브까지 모든 구종을 자유자재로 구사하며 투수로서의 재능을 뽐냈다. 우투좌타 이치로는 고교 시절까지 투수로 던진 경험이 있었다. 이날 경기는 필라델피아가 7-2로 승리했고, 마이애미는 71승91패가 돼 내셔널리그 중부지구 3위로 시즌을 마쳤다. 타석에서 이치로는 2타수 무안타 2삼진으로 물러났다. 사진: AFPBBNews=News1(투수로 깜짝 변신 이치로) 뉴스팀 seoule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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