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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700명 탄 英 크루즈 인천 첫 입항

    3700명 탄 英 크루즈 인천 첫 입항

    3700명의 여행객을 태운 영국의 대형 크루즈 ‘퀸메리 2호’가 27일 인천항에 처음 입항했다.퀸메리 2호는 14만 8000t급 초대형 크루즈로, 지난 1월 10일 영국 사우샘프턴을 출발해 유럽, 아프리카, 호주, 아시아 등을 119일간 일주하고 5월 8일 영국으로 귀항할 예정이다. 영국인 929명을 비롯해 호주인 454명, 미국인 210명, 일본인 140명 등 2500여명의 관광객과 1200여명의 승무원이 탑승하고 있다. 이날 인천신항 크루즈 전용부두에서는 한국관광공사, 인천광역시, 인천관광공사 주관으로 환영 행사가 열렸다. 국악 공연과 함께 ‘2018 평창동계올림픽’ 마스코트인 ‘수호랑’과 ‘반다비’의 환대 이벤트가 진행됐다. 크루즈 승객들은 이날 하루 여러 그룹으로 나뉘어 인천, 경기, 서울 등의 주요 관광지를 둘러봤다. 한국관광공사의 설경희 음식크루즈팀장은 “중국 의존도가 지나치게 높았던 크루즈 관광 시장을 일본, 동남아 등 여러 국가로 다변화하고 지자체 등 관계기관과 함께 월드 크루즈 유치에도 더욱 힘쓸 예정”이라고 말했다. 관광공사는 오는 30일 인천항에 처음 입항하는 미국 선적 5만t급 크루즈 ‘크리스털 심포니호’의 환영 행사도 개최할 예정이다. 손원천 기자 angler@seoul.co.kr
  • [역사속 공무원] 전하~ 소신 고등어는 억울합니다

    [역사속 공무원] 전하~ 소신 고등어는 억울합니다

    고기 좋아하던 세종엔 ‘욕받이’… 中 사신이 꼭 챙긴 필수 아이템 중국에서 날아오는 황사란 불청객이 어김없이 등장했다. 황사와 함께 대기오염물질인 미세먼지 성분이 고등어 구이 때 발생한다는 환경부 발표로 인해 고등어는 지난해 억울했다.고등어의 억울한 누명은 또 있다. 지속적인 우리말 사용하기로 요즘은 거의 사라졌지만, 한때는 ‘사바사바’라는 표현이 유행했다. 떳떳하지 못한 뒷거래나 아부, 비위 맞추기 등을 ‘사바사바한다’고 하는데, 고등어의 일본 이름인 ‘사바’에서 비롯되었다는 설이 있다. 일제강점기 때 한 일본인이 관청에 민원을 부탁하러 가면서 고등어 두 마리를 작대기에 꿰어 메고 갔는데 이를 본 이웃이 그것이 무엇이냐고 묻자, 당연히 ‘사바사바’(고등어)라고 했는데, 바로 여기서 지금의 ‘사바사바’라는 말이 나왔다는 것이다. 길이가 30~50㎝ 정도로 옆면이 약간 납작한 방추형인 고등어는 언제부터 이렇게 불렸을까. 정확한 유래는 전해지지 않고, 다만 등이 둥글게 올라 있는 데서 붙여진 이름이 아닐까 추정하고 있다. ‘조선왕조실록’에는 고등어, 고도어(古道魚)로 표기하고 있다. ‘조선왕조실록’에는 세종 3년인 1421년 고등어가 처음 등장한다. ‘세종실록’ 1월 13일자에는 예조가 각 도의 진상물품의 허실에 대해 보고한 내용이다. 각 도가 올린 진상물목에는 빠진 특산물이 많다. 함길도는 고등어는 기재했으나, 내장 젓은 기재하지 않았으며, 제주도는 진상품목이 아주 많으니 계절에 따라 품목을 정하여 진상하게 할 것으로 건의했다. 이에 임금은 “물목(物目)에 기재되지 않은 품목을 모두 진상하게 하라”고 명했다. 세종 11년인 1429년 중국에 사신을 보내는데, 중국이 요청한 물목에 고등어가 포함되었다. 4월 13일자에는 임금이 지신사 정흠지에게 내린 명이다. “듣건대 중국 사신들이 어물을 많이 요구한다는데, 중국에서 생산되는데도 고도어와 대하를 요청할 것 같다. 그때 가서 준비하려면 힘들 터이니 미리 준비해 두어라.” 3개월여 후인 7월 19일자는 중국에 보내는 물품목록이다. 지난 5월 2일 서울에 도착한 흠차태감 창성, 윤봉 등이 전한 물목대로 해물을 좌군동지총제 권도를 통해 보낸다는 내용으로 고등어 200근을 포함한 17종의 생선과 황어젓 6통 등 젓갈류 10종이다. 세종은 지나치게 고기를 좋아해 생선은 즐기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실록에는 몇 년째 진상품으로 고등어가 올라오자 짜증을 내는 장면이 있다. 1434년 5월 4일자에는 함길도 감사가 송어와 고등어를 올리니 임금이 물었다. “이미 처음 나온 물건이 아니면 진상하지 말라고 명했는데, 어찌 이 물건을 또 올렸느냐?” 이에 도승지 안승선이 아뢰었다. “감사가 처음 나온 물건만 한번 올리고 다시 올리지 않으면 송구스러워 또 가져 왔다고 했다. 또 고등어는 다른 도에서는 잘 잡히지 않고 별미여서 올린 것”이라고 했다. 이에 임금은 “신하가 진상하는 마음을 탓할 것은 아니지만, 내가 하지 말라 한 것을 어긴 것은 잘못이다. 고등어를 다시는 올리지 마라”고 하였다. 세종의 이 명 때문인지 안타깝게도 실록에서는 고등어에 관한 내용을 더 찾아볼 수 없다. 이날로부터 67년여가 지난 연산군 7년인 1501년 ‘연산군일기’에 고등어가 등장하는데, 국내 고등어와는 관련 없는 것으로 일본에 표류했다가 돌아온 제주도 관노 장회이가 일본에서 보고 겪은 일을 아뢴 것이다. “왜인들은 노루, 사슴, 멧돼지, 꿩, 물개 등을 사냥하는데 사슴과 노루는 가죽만 벗기고 고기는 먹지 않고 버린다. 해안가에 사는 사람들은 고등어, 오징어, 방어, 도미, 대구 등을 잡는데, 날것을 소금에 절여 보관하더라”는 내용이다. 최중기 명예기자( 국가기록원 홍보팀장)
  • “꿈을 향해 달려가는 메탈과 철이 이야기 멈추고 싶지 않아”

    “꿈을 향해 달려가는 메탈과 철이 이야기 멈추고 싶지 않아”

    “영원한 생명을 얻고 싶냐고요? 저는 인간으로서 한정된 삶을 열심히 살고 싶어요. 영원히 살 수 있는 기계인간이 되면 삶을 대충대충 살게 되지 않을까요? 시간은 꿈을 배반하지 않으며, 꿈도 시간을 배반하지 않는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네요.”‘은하철도 999’의 아버지 마츠모토 레이지(79)가 26일 한국을 찾아 팬들과 만났다. ‘은하철도 999’ 40주년 특별전이 꾸려진 서울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다. 특별전은 오는 5월 1일까지 열린다. 늦었지만 한국에 꼭 와보고 싶었다는 그는 “어려서 후쿠오카에서 자랄 때 한국 친구들이 많이 있었고, 집에 놀러가 저녁을 먹기도 했다”면서 “오늘 이렇게 보니 한국 사람이나 일본 사람이나 모두 똑 같아 보인다”고 말했다. 열 다섯에 데뷔해 60년 넘게 만화를 그려온 마츠모토 레이지는 ‘은하철도 999’를 비롯해 ‘우주전함 야마토’, ‘우주해적 캡틴 하록’, ‘천년여왕’, ‘퀸 에메랄다스’ 등으로 한국에서도 널리 알려졌다. 그의 작품은 여러 철학적인 함의가 담긴 것으로 유명하다. 미래의 우주를 배경으로 한 작품을 많이 그린 것과 관련해 그는 “어려서 시골에 살아서 밤 하늘의 많은 별들을 볼 수 있었고, 그 별 속에 무엇이 있는 지 관심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원래 꿈이 기계공학자였다는 그는 그러나, 형편이 어려웠던 아버지, 어머니를 돕기 위해 만화를 그리기 시작했다고 돌이켰다. 또 실제 기계공학자가 되어 로켓을 만들고 있는 남동생이 자신의 꿈을 대신 이뤄줬다며 ‘우주전함 야마토’의 주인공 스스무는 동생에게서 모티브를 따왔다고 덧붙였다. “돈이 없었는데 만화 편집자가 기차표를 보내줘 간신히 도쿄에 갈 수 있었죠. 도쿄로 가는 기차가 터널을 통과해 밖으로 나오는 순간 우주 세계를 본 느낌이었어요. 저는 우주로 날아가고 싶었죠. 그때부터 은하철도 999를 머릿 속에서 게속 생각하고 있었어요. 그때 기차를 타지 않았으면 저는 이 자리에 없었을 겁니다.” 철이를 분신이라고 소개한 마츠모토 레이지는 자신이 탄생시킨 수많은 캐릭터 중 메텔, 천년여왕, 에메랄다스와 하록 선장을 가장 좋아하는 캐릭터로 꼽았다. 특히 메텔에 대해서는 “라틴어로 엄마라는 뜻”이라며 “메텔은 소년의 꿈이자 청춘이자 엄마”라고 설명했다. 일부 작품에서 군국주의를 옹호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는 질문에는 “그런 의도는 전혀 없다”고 고개를 가로 저었다. 그는 ‘우주전함 야마토’의 경우 “야마토는 어렸을 때 봤던 가장 큰 배였을 뿐이고 그 큰 배가 하늘을 날아가는 모습을 그리고 싶었다”며 “지구가 위험에 처했을 때 일본인이든, 한국인이든, 미국인이든 여러 사람을 태워 우주로 나갈 수 있는 있는 그런 배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지구는 하나라고 말하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마츠모토 레이지는 ‘은하철도 999’를 최종 완결 짓지 않고 지금도 꾸준히 그리고 있다. “999라는 숫자는 끝없이 1000을 향해 다가가는 미완의 의미를 담고 있어요. 꿈에 도착하면 이야기가 끝나버리니까 계속 스토리를 만들며 언제나 꿈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메탈과 철이를 그리고 싶어요. 영원한 여행을 지금 나도 하고 있고, 은하철도 999도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글·사진 홍지민 기자 icarus@seoul.co.kr
  • 신동빈 “중국을 사랑해...사드는 오해, 사업은 꼭”

    신동빈 “중국을 사랑해...사드는 오해, 사업은 꼭”

    롯데그룹 신동빈(62) 회장이 24일자 미국 월스트리트저널과의 인터뷰에서 “중국을 사랑한다”고 말했다. 신동빈 회장은 롯데마트 매장에 대한 영업정지 등 중국 정부의 보복 조치에 대해서는 “일부 오해가 있었던 것 같다”면서 “중국을 방문해 갈등을 풀려고 했지만 (최순실 게이트로) 출국금지를 당해 (해결이) 불가능했다”고 강조했다. 그는 사드 배치와 관련해서는 “정부가 우리 같은 사기업에 정부정책을 위해 부지를 포기하라고 하면 (어느 기업도) 정부를 거부할 수 있는 여유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신 회장은 “중국은 롯데가 50억 달러를 투자하고 2만5000명을 고용하며, 그룹 전체 매출의 10%를 차지하는 곳”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롯데그룹 창업주인 신격호(96) 총괄회장은 그룹의 대표 계열사인 롯데쇼핑의 등기이사에서 46년만에 물러났다. ‘원 롯데 원 리더’ 시대를 맞아 신격호 총괄회장이 퇴장하고, 신동빈 회장 체제로 강화하는 모양새다. 롯데쇼핑은 이날 오전 서울 영등포 빅마켓 내 회의실에서 주주총회를 열고 이같은 안건을 처리했다.이에 따라 신격호 총괄회장의 사내이사 직함은 롯데자이언츠와 롯데알미늄 등 일부만 남았다. 한편 신동빈 회장의 차녀인 신승은씨가 일본 민영방송인 TBS 아나운서인 이시이 도모히로와 5월에 결혼식을 올린다는 보도와 관련해 네티즌들은 “롯데 애들은 전부 일본인하고 결혼하네..서미경딸도 일본남자와 결혼하고...”라는 반응을 보였다. 서미경(57)씨는 신격회 회장의 셋째 부인으로 일컬어지고 있다.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기고] 노기 마레스케와 안중근/서상문 고려대 한국전쟁 아카이브 연구교수

    [기고] 노기 마레스케와 안중근/서상문 고려대 한국전쟁 아카이브 연구교수

    노기 마레스케.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의 전쟁 영웅. 러일전쟁에서 육군 중위인 두 아들을 잃고도 비통함을 내색하지 않은 외강내강형. 국가 중대사에는 늘 “노기 장군을 부르라”고 한 명치 일왕의 총애를 한몸에 받은 백작. 일왕 출상 직후 10년 연하 아내와의 동반 할복으로 63세의 생을 마감한, 일본인들에게 군신으로 추앙받는 인물이다.하지만 노기는 전근대형 군인의 한계를 넘지 못한 고루한 황국주의자의 표상일 뿐이다. 그가 강조한 인간의 도는 일본인에게만 국한된 편협함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이었다. 그는 일본 왕족 자제들에게 “인간이 도에 벗어난 짓을 하고도 수치를 모르는 자는 금수만도 못하다”고 가르쳤지만, 그가 말한 ‘도’란 일본인에게만 적용된 것이다. 승전의 대가와 군의 사기진작을 명분으로 전쟁범죄도 당연히 여겼다. 자의적으로 날조한 ‘구미위협론’과 국수주의를 넘지 못한 근대형 군인의 한계였다. 세기 전 전쟁에서는 전쟁범죄가 횡행했다. 1860년 청나라 수도 베이징을 점령하자 병사들에게 포상으로 3일간 무제한 약탈, 강간, 방화 등 온갖 범죄를 자행하도록 허용한 영불연합군이 비근한 예다. 청일전쟁 시 일본군도 뤼순 점령 후 4일간에 걸쳐 최소 2만여명을 학살하고 닥치는 대로 약탈했다. 당시 한 일본군 병사가 가족에게 “적지에서의 노획은 이긴 자의 자유”라고 써 보낸 편지는 이를 방증한다. 일본군 병사들의 노략질에 중국이 항의하자 노기는 “그대들은 자신의 영토도 지키지 못했다. 우리는 막대한 경비를 들이고 무수한 생명을 희생시키면서 그대들의 국토를 대신 수복시켰다. 저 하찮은 여성과 재물을 우리 군대에 바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며 야만성을 감추지 않았다. 전쟁범죄가 공공연한 시대였다고 하지만 지휘관이 모두 그런 건 아니다. 사람으로서의 도리, 인륜, 도덕과 군인으로서의 품위, 명예와 군기를 생명처럼 중요시한 군인도 많았다. 같은 시기 우리에겐 안중근이 있었다. 그는 근대형 군인의 한계를 넘어선 시공 초월적 군인상의 남상(濫觴)이다. 인도주의적 입장에서 일본군 포로들을 풀어 주기도 했고, 동양 평화를 파괴한 침략 원흉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 저격 시에도 이토만 가슴과 복부에 정확하게 3발을 조준 사격했을 뿐 수행비서 3명에게는 치명상을 입지 않도록 오른팔과 오른발만 맞히었다. 하얼빈역 현장에서 현행범으로 체포된 안중근이 옥중에서 쓴 ‘동양평화론’은 일국을 넘어 아시아와 세계 평화를 지향한 것이다. 노기와 달리 안중근이 한국인과 중국인은 물론 세계인들로부터도 숭고한 사상가와 의사로 숭앙받는 이유다. 일본인들 중엔 안중근을 신으로 모시는 이들도 있다. 그의 웅혼한 사상과 순결한 영혼을 숭배하는 것이다. 이런 안중근에게 일본 극우파는 ‘테러리스트’로 ‘역사 테러’를 가해 왔다. 아베 정권은 평화헌법 개정에 필요한 맹목적 애국심을 이끌어 내기 위해 황국주의자 노기를 군신으로 떠받들고 있다. 안중근 순국일(3월 26일)을 앞두고 일본은 당장 정치적 오브제로 악용하는 협량함에서 벗어나 노기를 군신 자리에서 내려놓고 세계주의와 인류보편사상을 실천한 안 의사를 평화 사상가로 받들어야 할 것이다.
  • ‘미움받을 용기’ 日 기시미 1위…톱20 중 철학자 7명으로 최다

    ‘미움받을 용기’ 日 기시미 1위…톱20 중 철학자 7명으로 최다

    지난 10년간 우리나라 독자에게 가장 사랑받은 인문도서와 저자는 ‘미움받을 용기’의 일본인 철학자 기시미 이치로였다. 일본 교토대에서 그리스·로마 철학을 연구한 철학자인 그는 알프레드 아들러의 심리학을 소개한 ‘미움받을 용기’로만 국내에서 135만부를 판매했다. 22일 교보문고가 2007년부터 지난해까지 온·오프라인 서점의 인문도서 판매 현황을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1위부터 20위까지 주목받는 인문 저자 중 철학자가 7명에 달했다. 2500년 전 인물인 그리스 철학자 플라톤이 9위에, 중국 철학자 공자는 17위에 자리했다.2위는 하버드대 정치철학 교수 마이클 샌델이 차지했다. 그는 ‘정의란 무엇인가’로 세계적인 돌풍을 일으키며 베스트셀러 저자로 떠올랐다. 국내에 출간된 그의 책 12종의 교보문고 판매부수는 36만부로, 기시미 이치로의 39만부(20종)를 바짝 쫓고 있다. 마이클 샌델의 뒤를 잇는 이는 국내 작가인 채사장이다. 깊이보다는 이해하기 쉽게 펴낸 인문 교양서인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은 국내에서 110만부가 팔린 토종 밀리언셀러다. 4위는 ‘거리의 철학자’로 불리며 직설적인 돌직구 화법을 구사하는 강신주 박사다. 그가 그동안 펴낸 35종의 책 중에서는 철학자 스피노자의 사유를 풀어낸 ‘감정수업’이 지금까지 35만부가 팔렸다. 대표작 ‘책은 도끼다’를 통해 깊은 사유와 수준 높은 큐레이션을 보여 준 광고인 박웅현씨가 5위에 올랐다. 국내 출간 종수에서도 철학자들의 고전 저서들이 상위권에 있었다. 플라톤 관련 책이 국내에만 100종으로 가장 많았고, 중국 고대 역사가 사마천이 95종으로 뒤를 이었다. 프리드리히 니체 75종, 공자 70종, 김용옥 45종의 순이었다. 철학자들의 저서가 국내에서 각광을 받은 이유는 무엇일까. 장동석 출판평론가는 “철학은 ‘나’를 이해하고 ‘나’를 찾는 방식에 대한 공부인 만큼 인문학적으로 다양하게 변주할 수 있는 폭이 넓다”며 “국내 인문학 열풍의 트렌드와도 연관돼 있다”고 짚었다. 그는 “한국 사회에서 어떤 사안이나 사건을 다루는 데 있어 지성에 기반해 해석하고 판단하는 현상은 잘 보이지 않는다. 삶을 변화시키기보다는 지적 유희에 만족하며 머물고 있다”면서 “인문 저서조차 개인의 지적 수준을 발전시키는 자기계발서 성격이 짙었고, 아이러니하게도 그런 책들이 베스트셀러로 선택받았다”고 지적했다. 살기 빡빡한 우리 시대의 개인들을 어루만지는 ‘힐링’이라는 사회적 분위기를 반영하듯 정신과 의사와 심리학자들도 상위권에 들었다. ‘서른살이 심리학에게 묻다’ 저자인 정신과 의사 김혜남씨(8위), ‘너는 나에게 상처를 줄 수 없다’ 저자인 독일 심리학자 배르벨 바르데츠키(11위), 문화심리학자로 ‘나는 아내와의 결혼을 후회한다’를 쓴 김정운 여러가지문제연구소 소장(12위), 지난해 ‘자존감 수업’을 펴낸 정신과 의사 윤홍균씨(18위)도 독자들의 주목을 끌었다. 김은옥 교보문고 인문 분야 MD는 “심리학과 철학 분야의 저서들이 지난 10년간 인문 분야를 이끌어 왔다”며 “국가, 정치, 개인의 삶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변주되면서도 불안한 사회상이 드러내듯 자존감 등 삶을 대하는 방식을 인문학적 사유로 풀어낸 저자들의 책이 인기가 많다”고 말했다. 안동환 기자 ipsofacto@seoul.co.kr
  • [新전원일기] 강화 해풍 먹고 자랐다, 쑥쑥쑥… 그 쑥을 발효시켰더니, 슈퍼쑥

    [新전원일기] 강화 해풍 먹고 자랐다, 쑥쑥쑥… 그 쑥을 발효시켰더니, 슈퍼쑥

    겨울이 가고 얼었던 땅이 풀리자 쑥이 고개를 내밀고 있다. 흔하고 흔해서 누구도 귀히 여기지 않는 풀이다. 신화이긴 하지만 쑥은 곰도 인간으로 만들어 내는 약성을 가진 풀이다. 웅녀가 쑥과 마늘을 먹고 인간이 됐다는 건 쑥과 마늘의 효능이 뛰어나다는 말이다. 쑥은 그처럼 우리 땅에서 자생한 역사가 굉장히 긴 풀이다. 어머니는 들이 몸을 풀기 시작하면 자식들과 바구니 들고 들로 나갔다. 발품을 한 시간 남짓 팔면 땅을 뚫고 올라온 쑥 한 바구니를 채울 수 있다. 아버지는 들에서 캐 온 쑥으로 만든 쑥개떡을 좋아했다. 병을 앓던 중에도 쑥개떡이 먹고 싶다고 하실 정도였다. 쑥 캐다 쑥떡도 해 먹고 쑥국도 끓여 먹었다. 키가 좀 큰 ‘사자발 약쑥’의 쑥대는 여름철 모깃불을 대신하기도 했다. 예전엔 흔하던 것들이었는데 이젠 쑥떡 맛보기도 힘들고 쑥대의 모깃불 구경하기도 힘든 세상이 됐다. 그래도 쑥은 수천 년 전에도 가장 낮은 곳에서 피었고 그 시절 그대로 변하지 않은 모습으로 오늘도 피어 있다. 곰을 인간으로 만드는 약성도 그대로 간직한 채 수천 년 세월을 견딘 후 봄과 함께 우리의 들에 왔다. 종류에 관계없이 쑥들은 모두 약성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식용으로도 널리 쓰인다는데, 어쩌면 단군은 가난했던 서민들의 먹을 것과 병을 스스로 구할 수 있게 해 주기 위해 이 땅에 그 씨를 뿌려 주었던 건 아닐까. 단군은 특히 강화도에 좋은 쑥을 내려 주었던 모양이다. 오래전부터 마니산과 해안가를 중심으로 좋은 약쑥이 자생했다고 한다. 지금도 강화도 여러 곳에서 재배되는 강화도 사자발 약쑥이 바로 그 쑥이다. 사자 발바닥 모양으로 단순하게 갈라져 잎 끝이 뾰족하고 약간 위로 오므려진 형태의 쑥으로, 강화의 산물 중 으뜸의 특산물이었다.지난 13일 강화도로 가기 위해 강변길을 달렸다. 강화대교를 넘자 갯내와 해풍이 밀려들었다. 좌우 야트막한 야산들이 푸르게 옷을 입고 있는데, 들이며 산 곳곳이 봄을 알리려 몸을 풀고 있었다. 논과 들판은 ‘복토’를 하며 갈아 엎었는가 하면 병충해를 예방하기 위해 들불을 놓은 논밭들도 보였다. 멀리 보면 아지랑이가 들판을 덮으며 피어 오르기도 했다. 밭두둑에는 싹들이 땅을 뚫고 올라오는 게 보였다. 눈여겨보니 희미하게 쑥의 싹도 보였다. 하루 이틀 사이로 기온이 오르면서 모두 얼굴을 내밀 듯했다. 아마 수백 년 전에도 그 자리에 배곯은 어떤 아낙이 쪼그려 앉아 쑥을 캤을 것이다. 지금도 그 자리에 쑥이 나오고 있다. 쑥은 여느 풀들과 달리 굉장한 서사를 가진 풀이라는 걸 깨달았다. 나는 지금 이 봄에 누구보다 소중한 이를 만나러 강화도에 온 것이다. 길에, 밭에, 논두렁과 밭두둑 따위에 흔한 쑥을 약으로 만들어 내는 농부인 강화약쑥마당의 전종덕(61) 대표를.#“해외에 ‘사자발 약쑥’ 알리기 위해 일·중·필리핀 어디든 갑니다” 사자발 약쑥을 재배하는 전 대표는 이틀 전 일본 도쿄국제식품박람회에 다녀와 여독이 채 가시지 않은 채 나를 맞이했다. “이렇게 해외에 우리 쑥을 알리려고 다니는 겁니다. 쑥 하면 몸을 따뜻하게 하는 풀이라는 거 다들 알잖아요. 그런 인식을 외국 사람들에게도 심어 주려고 해요. 쑥을 차로 만들어 수출을 하고 있는데 차 문화가 발달한 일본이나 중국을 상대로 한 번 도전해 보는 거죠.” 올해로 두 번째 일본을 다녀왔다고 한다. 필리핀, 싱가포르, 중국 등 차 문화가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달려갔다. 쑥은 어느 나라에나 흔하다고 한다. 그리고 쑥은 어느 나라에서나 명약의 역할을 해 왔다. 중국의 전설적 명의인 화타도 쑥으로 능히 병을 고칠 수 있다는 기록을 남겼다. 명나라의 본초강목에는 특히 여성의 생식에 이롭다는 내용이 있다. 쑥은 분명 맛은 쓰지만, 성질은 따뜻한 풀이다. 예전 우리 할머니들은 임신한 여자가 아랫배 통증이나 하혈 등 유산의 기미가 보이면 쑥을 뜯어다 먹였다고 한다. 쑥은 불규칙한 생리 주기를 고르게 해 주고 얼음장처럼 찬 손발을 따뜻하게 해 준다고도 한다. 그리고 쑥은 옛날부터 생명력과 다산의 상징이었다. 생명력이 강해 어느 곳에서라도 잘 자라고 번식력이 왕성한 풀이다. 원자폭탄 투하 지역에서도 살아남은 강한 생명력의 쑥. 모질고 끈질긴 약초임이 분명하다. 그래도 그 약성에서는 우리나라 쑥을, 특히 강화도의 사자발 약쑥의 약성을 따라올 쑥이 없다고 한다.#“아내의 종양, 우연·정성이겠지만 쑥뜸으로 몇 년 만에 사라져” “집사람이 자궁경부암 진단을 받았어요.” 이젠 쑥처럼 흔한 병이 돼 버린 암. 전 대표와 부인 고효숙(57)씨는 지인들의 권유로 쑥뜸만으로 병이 치유되기를 바랐다. “강화도 사람들은 집안 어른들을 통해 그냥 뜸뜨는 걸 배워요. 밖에 나가서 그런 걸 하면 의료법이나 그런 것에 걸리지만 내 가족의 간단한 질병은 어른들로부터 배워 온 뜸으로 치료하고는 하죠. 암도 그렇게 치료하려고 했어요.” 하지만 암이니 자가 치료로 병을 구할 수 있을지 자신할 수는 없었으리라. 그것도 하찮은 쑥으로 암을 이길 수 있을까 싶기도 했을 것이다. 고씨는 결국 자궁 절반을 들어내는 수술을 받았다. 그런데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암이라는 녀석이 지독한 구석이 있어서 전이가 되는데 소화기 쪽 검사 과정에서 폐에 종양이 있다는 걸 알게 됐다고 한다. 고씨와 전 대표는 차마 그 과정을 더이상 겪을 수가 없어 뜸으로 해결해 보자고 다짐했다. 그런 후 병원 치료를 중단했다. 우연과 정성의 힘이었겠지만 그 후 뜸자리를 확인하고 집에서 그렇게 뜸을 뜨기 시작한 지 몇 년 만에 병원으로부터 종양이 사라졌다는 진단을 받았다고 한다. 그게 본격적으로 강화도 약쑥 농사를 짓게 되는 계기가 됐다.“우리 곁에 흔한 쑥인데 그렇게 치료가 되는 걸 보니까 별스럽게 생각하지 않았던 우리 동네 쑥이 대단해 보이더라고요. 그래서 다른 거 모두 접고 약쑥 재배를 시작한 겁니다.” 강화도 토박이로 어려서부터 집안일을 돕는 등 농사에 필요한 노동은 익숙하게 해 왔던 그였다. 해군 제대한 후 자연스럽게 식물 사업부터 시작해 조경도 해 보고 토목 일도 하면서 제법 규모 있는 회사를 꾸려 나갔다. 그런데 토목 분야에서 마지막 하청업체이다 보니 간혹 건설사가 부도 나면 그동안의 자재비나 인건비를 고스란히 떼먹히곤 했다고 한다. 그 후 전 대표는 ‘농업경영인 강화군연합회’ 사무국장을 맡아 2000년부터 농민들의 소득 증대를 위해 강화군의 특산물들을 전국에 홍보하러 다니는 일을 했다. 연합회장을 맡았던 2006년부터는 사자발 약쑥의 상품화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보성의 녹차 산지에 직접 내려가서 한 달 동안 숙식을 하며 녹차 덖는 장인으로부터 기술을 전수받을 정도로 열정을 갖고 일했다. 이때 배운 녹차 덖는 기술을 사자발 약쑥에 접목해 사자발 약쑥차를 최초로 개발했다. 하지만 쑥 농사는 귀농 작물로 염두에 두기엔 부적합하다고 한다. 지역의 특성도 고려해야 하고 많은 노동력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한 철만 수확해야 하고 판로 확보에도 신경을 곤두세워야 한다. 그래도 쑥을 다양하게 활용하는 방안을 연구해 보면 새로운 길들이 보이리라. 단군이 이 땅의 서민들에게 쑥을 줄 땐 만인이 은혜 입기를 바라지 않았을까.#“딸이 인터넷 홍보·판매 담당하는 마케터… 작년 매출 3억 넘어” “그나마 딸이 나를 도와주겠다고 와서 크게 시름을 놨지요.” 딸 은진(27)씨가 강화약쑥마당에 합류했다. 주로 인터넷 홍보나 판매 등을 담당하는 마케터 역할이다. 딸이 오기 전에는 재배부터 생산, 가공, 포장, 택배, 수출까지 전 대표 혼자서 다 해냈다. 그래도 지난해 매출액이 3억 5000만원이었고 이 중 6000만원은 수출로 이룬 성과였다. 올해는 수출에서만 그 3배를 이루는 게 목표라고 했다. “이제 내수 시장에서의 매출은 정해져 있어요. 수출에서 매출을 증대하려는 거죠. 그래서 지난주에도 일본을 다녀온 겁니다.” 나들이를 떠난 길이 아니라 도쿄 근처의 민박집을 얻어 동행한 분들과 밥 해 먹으며 박람회를 쫓아다녔다. 강화 약쑥을 알리기 위해서. 환갑이 넘은 나이이지만 그는 젊은이 못지않은 열정으로 하루하루를 살아 내고 있다. #“상부 잎 15㎝만 채취해 세 번 세척해 덖어 주고… 72시간 발효” 약쑥마당 쑥차의 뒷맛이 달콤했다. 일반적으로 사자발 약쑥은 매우 쓴데 전 대표의 쑥차는 단맛이 났다. 비결은 보성에서 배워 온 녹차 덖는 방법에 있었다. 약쑥마당의 쑥차는 매년 단오를 전후해 상부 잎 15㎝만 채취한 후 세 번 세척해 덖어 주고, 비벼 주는 과정을 네 번 반복하고 중온에서 72시간 발효해 만들기 때문이다. “발효하는 과정이 매우 중요하며 이때 어떻게 해 주는가에 따라 뒷맛이 정해지죠.” 이런 그만의 장인 정신을 한국인들보다 일본인이 먼저 알아봐 주었다. 지난해 도쿄국제식품박람회에서 만난 일본인 바이어 아리마가 ‘쑥 스토리’까지 만들어 그의 눈앞에 내밀었다고 한다. 그리고 아리마가 지어 준 이름이 ‘슈퍼 쑥’이었다. 지금 일본 수출은 그와 일을 진행하고 있다. 쑥 농사는 풀과의 싸움이라고 한다. 풀을 잡지 못하면 그해 쑥 농사는 망한다. 그래서 봄에는 새벽 5시에 일어나도 시간이 모자란다고 한다. “정치적인 문제 때문에 중국 시장은 망했죠.” 그는 쑥차를 팔기 위해 중국에도 다녀왔다. 그런데 지난 연말에는 그 이전 해와 달리 박람회장 부스조차 구석 자리인 데다 찾는 손님마저 없었다고 한다. “그래도 강화도 사자발 약쑥차를 세계적인 상품으로 만드는 게 제 꿈이죠.” 유럽에도 쑥차를 들고 나가 볼 생각이란다. 머잖아 전 대표의 강화 약쑥차를 프랑스의 몽마르트르 언덕의 한 카페에서 마실 수 있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 그 즈음 나도 몽마르트르 언덕을 해찰하며 어슬렁거릴 수 있었으면 좋겠다.■ 글쓴이 소설가 전민식 제8회 세계문학상 수상. 주요 작품으로 ‘개를 산책시키는 남자’, ‘불의 기억’, ‘13월’, ‘9일의 묘’ 등.
  • 인천공항 ‘日·동남아 마케팅’ 36만명 신규 여객 수요 유치

    인천공항이 ‘사드’ 배치와 관련해 중국인 관광객들이 급감한 가운데 동남아와 일본인 관광객 유치로 활로를 찾고 있다. 인천국제공항공사는 최근 일본에서 열린 ‘2017 아시아 루트 회의’에서 36만명에 이르는 동남아·일본 신규 여객 수요를 인천공항에 유치했다고 21일 밝혔다. 아시아 루트 회의는 아시아 지역 주요 항공사와 공항, 지자체 등 200여개 업체와 기관이 참석하는 항공 관련 회의다. 지난 19∼21일 사흘간 열린 이번 국제회의에서 공사 측은 일본과 동남아 항공사를 대상으로 적극적인 마케팅을 펼쳤다. 그 결과 일본의 에어아시아재팬, 말레이시아항공, 싱가포르 녹스쿳항공 등 14개 항공사가 신규 취항이나 증편 의사를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공사 관계자는 “풍부한 항공네트워크를 활용한 창의적 마케팅으로 최근 중국발 수요 감소의 영향을 최소화하는 등 ‘중국 위기’를 뛰어넘을 것”이라고 말했다. 홍인기 기자 ikik@seoul.co.kr
  • [씨줄날줄] 이름 선물/이동구 논설위원

    [씨줄날줄] 이름 선물/이동구 논설위원

    이름은 누구나 세상에 태어난 후 첫 번째로 받는 선물이다. 평생을 간직해야 할 소중한 것이다. 부모는 자식이 좀 더 행복하고, 바르게 살아가길 바라며 세상의 좋은 의미가 모두 담긴 아름다운 글자로 이름을 지어준다. 설령 이름값을 제대로 못하고 살지언정 이름은 생을 마친 후에도 오래도록 남아 있다. 중국, 일본 등 동양권에서는 황제나 국왕이 이름을 하사했다. 국가나 왕실에 큰 업적을 쌓은 충신에게 성씨와 이름을 지어주고, 후손들은 이를 자랑스럽게 여기며 대대로 간직해왔다. 전쟁 등으로 새롭게 편입된 이민족들에게도 이름을 내렸다. 조선왕조실록에 따르면 조선에 귀화한 김씨 중에는 여진족이 가장 많았다. 6진 개척 당시 세종은 귀화한 여진족 수백명에게 김씨 성을 줬다. 광해군 때는 여진족이 조선 어디서든 살 수가 있어서 곳곳에서 그들을 볼 수 있었다는 기록이 있다. 현재 여진족을 시조로 하는 김씨는 하나도 없다고 한다. 조선 중기를 거치면서 족보에서 사라진 것. 임진왜란 때 조선에 투항한 일본인 김충선이나 베트남의 왕자 이용상을 시조로 하는 성씨도 있다. 몽골계와 박연, 하멜 일행 등 서양에서 온 후 이름을 선물 받은 경우도 있다. 최근에는 국내 거주 외국인의 증가와 국제결혼 등으로 귀화한 사람들이 한국 식의 성씨와 이름들을 새롭게 등록한다. 토착 성씨보다 오히려 많다고 한다. 귀화는 아니지만 우리나라에 살면서 자천타천으로 한국식 이름을 가진 외국인들도 많다. 방송인으로 잘 알려진 로버트 할리의 우리나라 이름은 하일이다. 이참 전 관광공사 사장, 김도훈 오비맥주 대표 등 한국 이름으로 명성을 쌓아 가는 외국인들이 늘고 있다. 마크 리퍼트 전 주한 미국대사는 서울에서 태어난 아들에게 세준이란 이름을 선물하기도 했다. 한발 더 나아가 자치단체나 시민, 또는 각종 단체가 외국인에게 이름을 선물하기도 한다. 우리나라를 지극히 사랑했거나, 인연이 깊은 외국인들에게 친근감과 존경의 표시로 건네는 선물이다. 34번째 민족대표로 꼽히는 스코필드 박사의 한국 이름 ‘석호필’이 대표적이다. 2002년 월드컵 4강 신화를 일군 히딩크 감독에게는 ‘희동구’라는 이름을 선물했다. 해병대사령부는 최근 한·미 연합 훈련에 참가한 니컬슨 사령관(중장)에게 ‘이건승’(李建勝)이라는 한국 이름을 선물했다. 언제나 승리를 기원하는 뜻과 니컬슨이란 이름을 음차(音借)한 것이다. 니컬슨은 이튿날 연합작전 때부터 이건승이 적힌 해병대 명찰을 달았다고 한다. 김영란법 이후 가장 값진 선물이 아닐까. 이동구 논설위원 yidonggu@seoul.co.kr
  • “유커 없어 조용” “해고될까 불안”… 엇갈린 관광지

    “유커 없어 조용” “해고될까 불안”… 엇갈린 관광지

    태국·日 등 다국적 여행객 북적… 여유 찾은 제주엔 내국인 13%↑ “한국 여행이 금지됐다더니 경복궁에서 아예 중국인 관광객을 찾아볼 수가 없을 정도네요. 상인들이 힘들어진다니 걱정도 되지만, 솔직히 말해 고궁 본연의 조용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어서 좋습니다.”-박수현(30·여)씨. “정규직이 아니라 파견업체 소속이다 보니 중국인 단체 여행객 감소로 해고되지 않을까 걱정입니다. 매출이야 다시 늘어날 수도 있겠지만 저희 같은 경우는 바로 살길이 막막해지니 걱정입니다.”-면세점 직원 정모(39·여)씨.중국 정부의 한국 여행 금지령 5일째이자 첫 주말을 맞은 19일 중국인 단체 관광객이 자취를 감춘 가운데 서울 경복궁, 명동 등에서 만난 시민들은 상반된 반응을 보였다. 매출 타격을 입은 상인들은 어려움을 호소했고 상점 직원들은 일자리를 잃을까 우려했다. 반면 내국인 관광객들은 ‘휴일의 여유’를 되찾았다며 고궁의 봄을 만끽했다. 주말이면 중국인들을 태운 관광버스로 주차 전쟁을 앓았던 경복궁 주변에서는 버스나 여행사 직원이 들던 깃발을 전혀 볼 수 없었다. 그 자리는 태국·말레이시아·일본·터키 등 다른 국가의 여행객과 봄나들이를 나온 시민들이 대신했다. 일본인 여행객 후지와라 미도리(28·여)는 “한국의 주요 관광지는 중국인 관광객들이 점령한 수준이라고 들었는데 실제 와 보니 전혀 그렇지 않다”고 말했다. 직장인 김모(42)씨도 “백화점에 가면 점원이 중국인을 상대하느라 정작 내국인에게 소홀한 모습이었는데 이제 성의껏 응대하는 것을 보니 관광객이 과도하면 부작용이 나타나는 것 같다”며 “돈도 좋지만 고궁 같은 문화재는 우선 세금을 내는 시민들이 충분히 이용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제주의 경우 중국 정부의 한국여행 금지령 이후 중국인 여행객의 감소 인원보다 국내 여행객의 증가분이 다소 많은 상태다. 제주관광협회에 따르면 지난 15일부터 18일까지 외국인 여행객은 1만 8062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3만 3599명)보다 1만 5537명(46.2%) 줄었지만 내국인은 12만 1882명에서 13만 7839명으로 1만 5957명(13.1%) 늘었다. 직장인 손모(32)씨는 “중국인지 제주인지 헷갈릴 정도여서 안 갔는데 요즘에는 진짜 제주를 즐길 수 있다고 해서 이달 16일부터 18일까지 제주도를 찾았다”며 “조용한 분위기에서 즐긴 성산일출봉과 용두암은 절경이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중국인 여행객이 많이 찾던 명동, 동대문시장, 연남동 상권은 폐업까지 걱정하는 상황이다. 제주 역시 중국인 대신 내국인 관광객이 늘면서 ‘제주 속의 중국’이라 불리던 제주시 바오젠 거리 등 특화 지역은 한산한 분위기다. 특히 면세점·여행업계 종사자들은 고용 불안을 우려한다. 민주노총 전국서비스산업노동조합연맹에 따르면 서울 및 제주의 일부 면세점과 호텔들은 이미 중국인 여행객 감소를 이유로 직원들에게 무급휴직 사용을 강요하고 있다. 명동의 한 화장품 매장에서 일하는 중국 동포는 “중국인이 줄어드니 중국어를 하는 직원도 필요 없어지는 상황”이라며 “언제 해고될지 걱정하는 처지”라고 말했다. 홍인기 기자 ikik@seoul.co.kr 명희진 기자 mhj46@seoul.co.kr
  • ‘食’ 누구나 먹는다, 아프고 슬퍼도… 고로 존재한다

    ‘食’ 누구나 먹는다, 아프고 슬퍼도… 고로 존재한다

    먹는 인간/헨미 요 지음/박성민 옮김/메멘토/364쪽/1만 6000원“너덜너덜한 인간세계”의 풍경에서 포착한 ‘먹는 인간’의 모습은 애잔하고 슬프지만 풍요롭고 아름답다. 일본 아쿠타가와상 수상 작가인 헨미 요의 ‘먹는 인간’이 그려 낸 세계의 실재는 이런 모습이 아닐까. 교도통신 외신부 기자인 저자는 어느 날 기사 몇 줄로 세상을 해석하는 데 염증을 느낀다. 방글라데시, 베트남, 크로아티아, 러시아, 우크라이나, 에티오피아, 우간다, 한국 등 15개 나라를 떠돌며 ‘식’(食)과 ‘생’(生)의 현장을 찾아 나선다. 포식에 길들여져 아무 감동도 느끼지 못하는 자신의 혀와 위장을 반성하며.헨미 요는 음식을 씹고 쩝쩝거리는 일상 속으로 들어가 그들이 먹는 음식을 함께 먹고 마신다. 그렇게 먹은 음식은 다카의 음식 찌꺼기, 고양이 통조림, 쌀국수, 되네르 케밥, 유고 난민용 구호 식품, 낙타 고기와 젖, 체르노빌의 방사능 오염 식품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저자는 여행에서 돌아온 후 쓴 글에서 “그곳에는 신과 같은 사람들이 살고, 악마와 같은 사람들이 생활하고, 저마다 예외 없이 먹고 있었다”고 말한다. 이야기는 고매하지도 거룩하지도 않다. 오감을 느끼며 먹는 행위에 집중하는 사람들에게 간직된 이야기는 아프고 슬프고, 폭력적인 동시에 존재들이 뿜어내는 역사의 발화다.저자는 이 책이 빚어낸 풍경 가운데 가혹하고 격렬했던 음식의 기억으로 한국의 위안부 할머니들을 떠올린다. 1994년 1월 25일 서울의 일본대사관 정문에서 시퍼런 빛을 뿜는 식칼로 자살을 시도했던 이용수·문옥주(1996년 별세)·김복선(2012년 별세) 할머니. 두 번째 자살 시도를 단념하지 않는 할머니들을 쫓아다니며 저자는 ‘그러지 마시라’고 애원한다. 일본인인 저자에게 ‘사과하라’며 울부짖던 할머니들은 저자와 함께 밥을 먹으며 끔찍했던 개인사와 맛의 기억을 떠올린다. 분노의 맛, 증오의 맛, 슬픔의 맛…. 열여덟 살 나이에 미얀마의 ‘랑군 군인 위안소’에서 미쓰코로 불린 김복선 할머니는 하루 20~30명의 일본군에게 범해졌다. “매일 강가에서 (콘돔을) 씻었어. 모두 웅크리고 앉아서. 괴로웠지. 한심했어.” 그녀에게 유일한 음식의 기억은 끌려가던 중 일본 오사카의 포장마차에서 허겁지겁 먹은 ‘우동’이 전부다. 요시코로 불린 문옥주 할머니는 랑군에서 일본 병사가 던져 준 꽁치 통조림 한 통을 떠올린다. 채소를 얹어 위안소 여자 열 명이 나눠 먹은 한 통의 통조림을 “맛있었다”고 말한다. 저자는 부모님의 묘소 앞에서 “엄마…엄마…”를 부르며 끝없이 오열하는 이용수 할머니의 처절한 상처를 목격한다. 그리고 “한 사람 한 사람의 고난이 다른 위안부 할머니들의 비참함과 같이 보여도 하나하나 세세하게는 역시 자기 자신만의 것”(337쪽)이라는 걸 깨닫는다.굶주림으로 죽어가는 소말리아 난민들에게 전해진, 싸구려 개밥보다도 못한 구호 식품의 실체도 고발한다. 원전 사고에도 고향을 떠나지 못한 채 방사능에 오염된 식재료로 연명하는 체르노빌 주민들, 크로아티아와 세르비아 간의 살육전 속에서 난민 급식소가 제공한 돼지고기를 얼굴빛 하나 변하지 않고 맹렬히 씹어대는 무슬림 여성을 통해 전쟁과 종교도 어쩔 수 없는 ‘먹고사는’ 일의 실존이라는 것을 환기시킨다. 책은 세계 도처에서 ‘먹는 인간’과 ‘먹는 행위’의 광경들을 관능적으로 그려 낸다. 저자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이 책은 고단샤 논픽션상을 수상하며 비평가들로부터 극찬을 받았다. 안동환 기자 ipsofacto@seoul.co.kr
  • [서동철 칼럼] ‘승복’해야 할 것이 하나 더 남았다

    [서동철 칼럼] ‘승복’해야 할 것이 하나 더 남았다

    쓰시마서 훔쳐온 부석사 불상 돌려줄 필요 없다는 1심 판결 논란 속 항소심 재판 개시 일본의 문화재 파괴·약탈을 낱낱이 드러내는 계기로프랑스의 루브르박물관은 이집트 유물의 보고(寶庫)로 불린다. BC 4세기에서 AD 4세기에 이르는 5만점 남짓한 이집트 유물을 소장하고 있다. 루브르의 이집트 유물은 숫자만 많은 것이 아니라 그 질(質)도 뛰어난 것으로 평가받는다. 유물의 다채로움에서는 아무래도 이집트의 카이로국립박물관에 못 미치겠지만 학술적 가치는 오히려 뛰어날 수도 있다. 루브르의 이집트 유물은 대부분 약탈했거나 약탈에 준하는 과정을 거친 것이다. 그런데 루브르에 가면 입구에서부터 스핑크스를 비롯한 이집트 유물이 줄지어 늘어선 것을 볼 수 있다. 루브르는 이집트 유물을 20개 전시관에 나누어 전시하고 있기도 하다. 이집트 사람들이라면 안타까우면서도, 한편으로 인류 역사를 대표하는 유물로 융숭하게 대접하고 있다는 사실이 다행스러울 수도 있다. 제국주의의 문화재 약탈은 경제적 수탈보다 악질적이다. 빼앗긴 부(富)는 다시 쌓을 수 있지만 한 번 훼손된 정신세계는 복구가 불가능하다. 그래도 루브르의 이집트 유물처럼 의미를 부여해 관람객들에게 내보이고 있다면 빼앗긴 나라 사람들도 그나마 덜 속상할지도 모른다. 국외소재문화재재단에 따르면 다른 나라에 있는 우리 문화재는 지난해 현재 16만 7968점에 이른다. 42.52%를 차지하는 7만 1422점은 일본에 있다. 이 숫자는 물론 허구다.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외국에 있는 문화재’가 아니라 ‘외국에 나가 있는 것으로 확인된 문화재’다. 특히 일본의 경우는 그야말로 빙산의 일각이다. 10분의1이 아니라 100분의1에도 미치지 못할 수도 있다. 깊숙이 숨어 존재를 모르는 것이 대부분이다. 박물관에서라도 볼 수 있다면 안타까움은 덜할 것이다. 이것들이 모두 약탈품이라고 말하지는 않겠다. 문화재 약탈보다 훨씬 악질적인 범죄는 문화재 파괴다. 합천 해인사의 산내 암자인 홍제암의 비림(碑林)에는 열 십(十) 자로 쪼개져 네 동강 난 비석이 서 있다. 사명대사 유정을 기리는 ‘자통홍제존자 사명대사 석장비’다. 만화책에도 등장했으니 모르는 사람이 없겠지만, 유정이라면 임진왜란 당시 의승군을 이끌어 혁혁한 전공을 세웠던 고승이다. 태평양전쟁도 막바지에 접어든 1943년 당시 합천경찰서의 일본인 서장 다케우라가 해머로 내리치고 조각을 땅속에 파묻었다. 지난주 찾았던 금산 칠백의총의 ‘중봉 조선생 일군 순의비’는 더욱 참혹했다. 1940년 금산경찰서장 이시카와 미치오는 아예 다이너마이트로 순의비를 산산조각 냈다. 일제가 왜 비석만 골라 파괴했는지는 조선총독부 학무국이 1943년 남원의 황산대첩비를 철거 대상으로 명시해 경무국장에게 보낸 한 장의 공문에서 짐작할 수 있다. 한마디로 ‘이성계에게 왜구가 패했다는 사실을 담고 있는 비문(碑文)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것이다. 일제가 태평양전쟁 말기에 파괴한 우리 석조 문화재는 20개 남짓이라는 이야기도 있고 200개에 이른다는 주장도 있다. 하지만 어디에 있는, 어떤 문화재가 어떤 과정을 거쳐 파괴됐는지는 알기가 어렵다. 그동안 국가 차원의 종합적인 현황 파악은 없었던 듯하다. 너무나도 늦었지만, 이제라도 일제 조사를 벌여 백서라도 발간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문화재 약탈과 파괴에 얽힌 이야기를 길게 앞세운 것은 도둑이 일본에서 훔쳐온 서산 부석사 관음보살상 때문이다. 잘 알려진 것처럼 “왜구가 약탈한 것”이라며 소유권을 주장한 서산 부석사는 1심 법원에서 승소했다. 그런데 21일부터 항소심 재판이 열린다고 한다.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문제의 해결을 손쉽게 법원에 맡기는 것이 마땅치 않다. 개인적으로는 1심 판결 자체도 그리 흔쾌하지가 않다. 그럼에도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결정에 온 국민이 승복해야 하듯 2심 판결도 누구나 승복해야 한다고 믿는다. 더불어 그들이 이 땅의 문화재에 어떤 일을 저질렀는지 제대로 확인하는 노력의 시발점이 되었으면 한다. ‘진실’이 제대로 알려졌을 때 일본도 “선의의 표시로 받은 선물”과 같은 주장을 하지 못할 것이다.
  • [책꽂이]

    [책꽂이]

    마지막 의식(이르사 시구르다르도티르 지음, 박진희 옮김, 황소자리 펴냄) 대학 내 잔혹한 살인사건을 중세 흑마술, 마녀사냥, 북유럽 신화 등으로 대담하게 직조한 추리소설. 500쪽. 1만 4800원. 제2차 세계대전(앤터니 비버 지음, 김규태·박리라 옮김, 글항아리 펴냄) 인간 본성의 최선과 최악을 보여준 전쟁의 본질과 그 안의 인간 서사를 치밀하게 되살린 전쟁사의 역작. 1288쪽. 5만 5000원. 라멘의 사회생활(하야미즈 겐로 지음, 김현욱·박현아 옮김, 따비 펴냄) 일본인의 ‘소울푸드’ 라멘의 진화를 통해 일본의 사회사, 일본인들의 집단 기억을 들여다본다. 304쪽. 1만 6000원. 낯선 시선(정희진 지음, 교양인 펴냄) ‘부끄러움을 모르는 시대’로 요약되는 이명박·박근혜 정권의 주요 사건들을 여성의 언어로 새롭게 규정한다. 304쪽. 1만 4000원. 희망의 도시(서울연구원 엮음, 최병두 외 12명 지음, 한울 펴냄) 인문, 지리, 도시계획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자본의 폭력에서 벗어난 새로운 도시의 가능성을 탐색한다. 544쪽. 2만 9000원. 고사리밭에 공룡이 살까?(류정희 지음, 자정 그림, 문화기획달 펴냄) 지리산 소년 동이는 고사리밭에서 공룡을 봤다는 할머니의 이야기에 기대에 부푼다. 지리산에 깃들어 사는 여자들이 짓고 그린 소담한 그림책. 32쪽. 1만 3000원.
  • 조선의 소반과 도자기 뺏지 않고 지킨 일본인

    조선의 소반과 도자기 뺏지 않고 지킨 일본인

    소설 다쿠미-조선을 사랑한 일본인/박봉 지음/솔과학/283쪽/1만 4000원‘한국의 산과 민예를 사랑하고 한국인의 마음속에 살다 간 일본인, 여기 한국의 흙이 되다.’ 망우리 공동묘지 아사카와 다쿠미의 무덤에 새겨진 글귀다. 해방 이후 일제 잔재가 걷어내지는 과정에서 그의 묘가 소중히 가꿔진 이유는 뭘까. 그는 ‘조선소반’, ‘조선도자명고’라는 두 편의 기록을 남겼다. 조선의 소반과 도자기가 사라지고 잊혀지는 게 안타까운 마음에 남긴 작품이다. 같은 일본인들이 조선의 예술품을 무자비하게 약탈해 갈 때 그는 자신이 모은 이 땅의 민예품을 모아 우리에게 전해줬다. 얄궂은 운명으로 맺어진 두 나라 사이에서 묘한 가치관을 가지고 살았던 인물의 삶에 이 소설은 다시 숨을 불어넣는다. 정서린 기자 rin@seoul.co.kr
  • [서동철 기자의 스토리가 있는 문화유산기행] 관군이 외면한 서인의 ‘행동대장’… 칠백의총에 서린 기개

    [서동철 기자의 스토리가 있는 문화유산기행] 관군이 외면한 서인의 ‘행동대장’… 칠백의총에 서린 기개

    우리가 아는 중봉 조헌(1544~1592)은 임진왜란 때 금산전투에서 순절한 의병장이다. 금산 칠백의총에 남은 ‘중봉 조선생 일군 순의비’(重峰 趙先生 一軍 殉義碑)에 새겨진 “죽을지언정 국난이 닥쳤는데도 구차하게 살 수는 없다”는 사실상의 유언처럼 그의 죽음은 극적이다. 그럴수록 붕당정치가 본격화하던 시절 율곡 이이와 우계 성혼을 따른 서인의 중심인물이었다는 사실은 잘 알려지지 않았다. 동서분당 이후 서인의 ‘사상적 행동대장’ 역할을 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조선왕조실록에는 조헌이 수없는 상소로 조정을 당혹하게 했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그의 상소문에는 격렬한 표현의 강경한 비판이 담기기 일쑤였다. 율곡조차 “경세제민(經世濟民)의 큰 뜻을 가지고 있다고는 하나 재능은 미치지 못하며 고집이 극심하여 시세를 헤아리지 않는다”고 했다. 조헌의 또 다른 아호는 ‘율곡 정신을 계승한다’는 후율(後栗)이다. 이런 스승조차 제자의 앞뒤 가리지 않는 성격이 마땅치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조헌은 선조 22년(1589)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사신을 보내오자 강경 대응을 촉구하는 ‘청절왜사소’(請絶倭使疏)를 올렸다. 상소는 삼소(三疏)로 이어졌고, 일본 사신의 목을 베라는 ‘청참왜사소’(請斬倭使疏)가 더해졌다. 군제를 개혁하고 일본과 외교를 끊으라는 상소도 거듭했다. 여기에 상소를 받아들이지 않으려거든 이 도끼로 목을 치라는 뜻의 지부상소(持斧上疏)가 이어지자 선조는 같은 해 5월 조헌을 함경도 길주로 유배를 보낸다. 그런데 조헌은 유배가 7개월 만에 풀려 돌아오는 길에 대신들을 꾸짖는 소를 올린다. 선조는 “조신들을 다 탄핵하고 몇 사람만 찬양하면서 직언(直言)이라 하니 웃을 일”이라며 노했다. 그러면서 “조헌은 간귀(奸鬼)”라면서 “아직도 두려워할 줄 모르고 조정을 경멸하여 더욱 거리낌 없이 날뛰니, 다시 마천령을 넘게 될 것”이라고도 했다. 다시 귀양을 갈 것이라는 뜻이다. 정치적 주도권을 잡고 있던 동인에게도 귀찮기만 한 존재였을 것이다. 임란 이전 이야기를 꺼낸 것은 칠백의총에서 마주친 부자(父子) 때문이다. 마흔 안팎의 아버지와 초등학교 5~6학년으로 보이는 아들이었다. 아버지는 봉분 앞에 세워진 ‘조헌 선생 일군 순의비’의 복제비 내용을 읽으면서 분개했다. 조헌 의병이 관군의 도움을 받기는커녕 오히려 방해에 시달렸다는 대목이었을 것이다. 아버지는 아들에게 “이것 봐, 조선시대나 지금이나 정부가 문제야”라는 말을 되풀이했다. 분노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조헌의 생애를 돌아보면 ‘조선생 일군’과 관군은 어차피 협력이 불가능하지 않았을까 싶다. 조헌을 인정하지 않았던 조정의 분위기를 감안하면 관군 지휘관이 중봉 휘하에서 싸울 마음은 애초부터 들지 않았을 것이다. 옳다고 믿으면 물불 가리지 않고 저지르고, 집착에 가까울 만큼 매달리는 조헌의 품성은 정치적 반대파의 부정적 평가와 순탄치 못한 벼슬길을 자초했다. 그러나 이런 저돌적인 성격이 또한 ‘금산의 감동’을 만들어 치욕의 역사 속에서도 우리가 한 가닥 자존심을 지킬 수 있게 했다. 조헌을 중심으로 임진왜란의 역사를 따라가는 여행은 아무래도 충남 금산이 중심이 될 수밖에 없다. 칠백의총은 조헌과 영규가 의병과 의승을 이끌고 왜적과 싸우다 순절한 자리에 조성됐다. 불교계에서는 800명 의승이 더 가세해 모두 1500명이었는데, 유림이 주도한 척불(斥佛)의 역사가 의승군의 자취를 감춰 버렸다고 목소리를 높이기도 한다. 조헌의 제자들은 금산 싸움이 있은 나흘 뒤 칠백의사의 유해를 한 무덤에 모셨다. 선조 36년(1603)과 인조 25년(1647) 각각 순의비와 사당을 세웠고, 현종은 1663년 이 사당에 종용사(從容祠)라는 이름을 내렸다. 그런데 일제강점기 일본인들이 의총을 파헤치고 순의비는 폭파했으며, 종용사는 허물어 버렸으니 치욕이 되풀이된 꼴이었다. 칠백의총의 정문에 해당하는 의총문으로 들어서면 오른쪽에 비각이 나타난다. 1940년 금산경찰서장 이시카와 미치오가 산산조각 냈던 ‘중봉 조선생 일군 순의비’다. 당시 주민들은 몰래 비석 조각들을 땅에 파묻어 보관했고, 1971년 조각을 파내어 비석을 다시 세웠다. 2009년에는 국립문화재연구소가 다시 해체해 정밀하게 복원하고 몸돌에서 분리된 상태였던 머릿돌도 이어 붙였다. 일제의 비석 파괴는 조직적이었다. 조선총독부 학무국이 1943년 경무국장에게 보낸 ‘유림의 숙정 및 반시국적 고적의 철거에 관한 건’이라는 공문은 전북 남원 운봉의 황산대첩비를 철거 대상으로 명시하고 있다. ‘황산대첩비가 왜구의 한반도 침입 역사를 보여 주는 것은 자랑스럽지만, 이성계에게 패했다는 사실을 담고 있는 것은 바람직스럽지 못하다’는 내용이다. 앞서 ‘조선생 일군 순의비’가 폭파된 것도 비슷한 과정을 거쳤을 것이다.조헌이 칠백의총이 아닌 충북 옥천에 묻혔다는 사실은 모르는 사람도 없지 않겠다. 조헌의 동생 조범은 금산에서 조헌의 시신을 거두어 형이 낙향해 살던 옥천 안읍에 장사 지냈고, 인조 14년(1636) 멀지 않은 지금의 안남면으로 옮겼다. 금강을 막은 대청호가 지척으로 가슴으로 파고드는 공기에서 티끌 하나 느껴지지 않을 만큼 청정하다. 무덤 아래 사당인 표충사(表忠祠)와 재실인 영모재(永慕齋)가 그림처럼 자리잡고 있다. 무덤으로 올라가려면 신도비를 모신 비각이 먼저 나타난다. 효종 7년(1656) 세워진 것으로 김상헌이 비문을 짓고 송준길이 글씨, 김상용이 비문 머리글을 전서로 썼다. 청음 김상헌이라면 병자호란 당시 척화파의 대표 인물로 절개와 지조의 상징적 존재가 아닐 수 없다. 선원 김상용은 병자호란 당시 강화도에서 스스로 순절한 인물이다. 그런데 선원은 1637년 세상을 떠났으니 신도비 건립이 호란으로 늦어졌음을 짐작하게 한다. 동춘당 송준길 역시 두 사람과 같은 서인의 영수급으로 당대를 대표하는 문인의 한 사람이다. 조헌의 고향은 경기도 김포다. 김포시 감정동의 옛집 터에는 ‘조헌 선생 유허 추모비’가 세워졌고 그를 기리는 우저서원(牛渚書院)도 남아 있다. 그럼에도 옥천이 조헌을 상징하는 고장이 된 것은 보은현감을 지내다 물러난 그가 한양이나 고향 김포로 가지 않고 이웃한 옥천으로 낙향했기 때문이다. 먼저 옥천에 후율정사(後栗精舍)를 지었으니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을 위한 공부방이다. 그 흔적은 후율당(後栗堂)으로 남았다. 대전과 옥천을 잇는 국도에서 그리 멀지 않은 이지당(二止堂) 역시 조헌이 주도해 인재를 배출한 뜻깊은 장소다. 금강의 지류인 소옥천이 휘감아 도는 이지당 주변은 그야말로 선경을 방불케 한다. 처음에는 마을 이름을 따서 각신서당(覺新書堂)이라 했으나 송시열이 ‘시전’(詩傳)의 ‘고산앙지 경행행지’(高山仰止 景行行止)라는 문구에서 이지당이라는 이름을 따왔다고 한다. ‘큰 산을 우러르며 그 뜻을 따르기를 그치지 않는다’는 뜻이다. 조헌은 임진왜란 직후 옥천에서 의병을 모으기 시작했다. 의승장 영규와 만나 뜻을 모은 곳도 옥천 가산사(佳山寺)다. 조헌의 무덤에서 멀지 않은 옥천 안내면 채운산 기슭에 있는 가산사의 영당에는 지금도 조헌과 기허당 영규대사의 영정이 모셔져 있다. 조헌의 흔적을 따라가는 여행에서 빼놓아서는 안 되는 장소가 충북 청주다. ‘조헌 전장기적비’(趙憲 戰場記蹟碑)는 시내 한복판의 중앙공원에서 만날 수 있다. 숙종 36년(1710) 청주 서문동에 세웠던 것을 일제강점기에 옮겼다고 한다. 금산전투에 앞서 조헌 의병과 영규 의승군, 화천당 박춘무의 향토 의병이 합세해 왜군에 빼앗겼던 청주성을 탈환한 것을 기념하는 비석이다. 이 싸움을 이제는 ‘청주대첩’이라 불러도 좋지 않을까 싶다. 금산전투도 패배한 싸움이라고 할 수 없다. 왕조실록에는 금산전투 직후 ‘금산에 주둔했던 적이 밤에 도망했다’는 기록이 보인다. ‘비록 조헌 등의 군사가 순절하기는 했지만, 죽거나 다친 왜군이 매우 많았고 관군이 이를 틈타 공격할까 두려워해 도망가니 호남이 다시 완전하게 되었다’고 적었다. 그러니 금산 싸움 역시 결과적으로는 ‘이긴 싸움’으로 평가를 달리해야 할 것이다. 글 사진 논설위원 dcsuh@seoul.co.kr
  • [World 특파원 블로그] 여전히 아픈 동일본 대지진 6주년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한 채 가설 주택 등에 흩어져 사는 12만 3000여명의 도호쿠지역 방사능 이재민들, 시신조차 찾지 못한 2552명의 지진 해일(쓰나미)실종자들, 수십 년 이상 걸릴 것으로 보이는 방사능 처리 등 원전 정리 작업….” 동일본대지진이 11일로 6주년이 되지만 대지진과 쓰나미(지진 해일), 이로 인한 후쿠시마 원전 폭발 및 방사능 유출 사고의 상처와 아픔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이달 초 대지진 당시 쓰나미에 휩쓸려 숨진 6살짜리 딸이 살아있다면 중학교에 입학할 나이가 됐다며 중학교 교복을 손수 만든 한 어머니의 이야기가 일본 열도를 울렸다. 최근에는 또 당시 실종됐던 한 60대의 유골이 어부 그물에 걸려 수습돼 일본인의 마음을 무겁게 했다. 미야기현 시치가 하마마치 해안에서는 9일에도 지진 해일에 실종된 사람 단서를 찾기 위한 경찰과 해상 보안부의 합동 수색이 이뤄졌다. 일본 정부는 2011년 3월 11일 당시 대지진과 후쿠시마 제1원전 사고 이후 피해지역 부흥에 박차를 가했다. 그렇지만 피해 주민은 방사능을 걱정해 귀환을 꺼리고 있다. 최근 마이니치신문 집계 결과, 피난 지시가 해제된 지역에 거주지가 있는 5만 2370명의 주민 중 귀환했거나 귀환을 예정한 사람은 7.9%에 불과한 4139명에 그쳤다. 정부는 돌아가서 살아도 좋다고 말하고 있지만 돌아가지 않겠다는 주민은 절반이 넘었다. 지역에 따라서는 60~70%를 훌쩍 넘겼다. NHK가 피해자 1437명을 설문조사한 결과, 피해자의 61%가 “심신에 악영향이 계속되고 있다”고 답했다. “잘 자지 못한다”(31%),“약이 필요하다”(30%)고 답한 사람도 30%가량 됐다. 우울증 증상을 호소하는 사람도 비슷한 수치로 나왔다. 복구가 더디다는 반응도 늘고 있다. “남편을 잃고 혼자 살며 금전적, 정신적 불안을 느끼는 정도가 심해지고 있다”는 70대 노파, “처가 숨지면서 아무런 의욕도 이제 없다”는 60대. 전문가들은 집과 생활의 재건이 안 된 채 남겨진 사람이 초조함과 고립감이 깊어가고 있다고 진단했다. 누출 핵연료의 제거 등 원전 수습을 위해 투입됐던 탐사로봇은 강한 방사능에 잇따라 활동을 멈췄다. 원전 주변의 제염 작업 등에 드는 비용은 당초 4조엔(약 40조 6400억원)보다 두 배가량 늘어날 전망이다. 동일본대지진은 리히터 규모 9.0이라는 전례를 찾기 어려운 강진이었지만 이 사건은 원전 안전 신화를 다시 되돌아보게 했다. 아베 신조 정부는 원조 재가동을 강행하고 있지만 아베의 정치적 멘토인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는 원전 반대 운동을 벌이고 있다. 사고위험성은 물론 오염물질 처리에만도 경제적이란 주장은 거짓이라며 고이즈미 전 총리는 원전 가동정책을 비판하고 있다. 동일본대지진 6주년은 한국의 원전 안전성과 에너지 정책을 다시 한번 살펴보고 고민해 보는 계기가 돼야 한다. 안전에는 신화가 없다. 도쿄 이석우 특파원 jun88@seoul.co.kr
  • 제주도, ‘사드’ 충격 유커 급감에 일본 시장 공략 나서

    중국인 의존 제주 관광업계가 직격탄을 맞는 가운데 제주도와 제주관광공사가 일본인 관광객 유치에 본격 나선다. 도와 관광공사는 오는 13~14일 일본 도쿄 현지에서 일본 여행업계를 대상으로 제주 관광 설명회는 여는 등 대대적인 제주 홍보 행사를 벌인다고 9일 밝혔다. 도는 일본 지상파 TV 광고 및 제주 특집방송 제작, 일본인 개별관광객 제주여행 상품 개발, 상품광고 지원, 제주행 신규 항공 및 전세기 유치를 위한 인센티브 제공 등을 추진할 계획이다. 앞서 도와 관광공사는 지난 2~3일 양일간 서일본 주요거점지역 여행업계를 대상으로 제주관광 설명회를 벌였다. 이번 설명회에서 일본 현지 여행업계는 제주에 대한 일본인 관광객의 수요가 점차 회복되고 있다며 항공 접근성만 개선되면 상품개발과 모객이 활성화 될 것이라는데 의견을 제시했다. 또 일본 여행업계는 올 하반기 개장 예정인 서귀포 강정 크루즈항과 복합리조트인 제주신화월드 개장 등 신규 제주관광 인프라와 리마인드 웨딩, 축제, 수학여행, 제주 전통 체험상품 콘텐츠 등에 관심을 보였다. 도 관계자는 “일본인 관광객 유치는 항공 접근성 개선에 달려 있어 앞으로 제주~중국 간 항공기 운항이 중단되면 여유가 생기는 제주공항 슬롯을 활용해 일본~제주 직항 항공 노선을 유치하고, 일본 크루즈에 대해서는 선석을 우선 배정하는 등 지원을 집중해 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제주를 찾은 일본인 관광객은 1993년 18만 9053명으로 최다 방문 기록을 세운 후 2006~2012년 17만~18만명 수준을 유지했다, 하지만 중국인 관광시장이 급성장하면서 2013년 12만 8879명, 2014년 9만 6519명, 2015년 5만 9402명으로 대폭 감소했다. 제주 황경근 기자 kkhwang@seoul.co.kr
  • [유쾌한 꼰대씨 송복이 말하는 나, 우리, 대한민국] 영원히 꺼질 수 없는 위대한 정신

    [유쾌한 꼰대씨 송복이 말하는 나, 우리, 대한민국] 영원히 꺼질 수 없는 위대한 정신

    오늘날 이 역동적(力動的) 한국 사회의 창출은 도대체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한국 사회의 이 역동적-다이너미즘(dynamism)은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찾아보기 어렵다. 그래서 안전사고가 속출하지만. 그것은 한국 사회의 다이너미즘이 안전사고 대비 속도를 늘 넘어서고 있다는 증거다. 아무리 안전교육을 강화하고 안전대비책을 세워도 사회 역동성의 속도, 역동성과의 큰 폭을 줄이지 않는 한 안전사고는 계속될 것이라는 것이다.도대체 이 역동성은 어디서 나왔을까. 그 기원은 어디일까. 미상불 3·1운동이 그 기원이고. 3·1운동 때까지 올라가서 보아야 이 역동성의 진면목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어느 사회든 그 당시의 단면으로는 그 시대의 시대상 그 시대의 진정한 특징을 알 수가 없다. 그 시대가 시작되는 시원까지 거슬러 올라가 보아야 그 시대로 이어져 오는 생태를 알 수 있다. 지금의 한국 사회는 3·1운동이 일어났던 근 한 세기 전의 한국 사회와는 아예 비교가 되지 않는다. 3·1운동 때의 우리 사회와 지금의 우리 사회는 구조와 기능면에서 그 차이를 도저히 가늠할 수 없을 만큼 달라져 있다. 생활양식은 물론 사고방식이며 행위유형에서 3·1운동을 일으킨 우리 선인(先人)들과 오늘의 우리는 완전히 다른 사람들이다. 지금 한국인은 3·1운동을 일으킨 그 선인들의 생물학적 후손일 뿐 사회학적 후예는 아니다. 그 선인들에게서 이어받은 것은 오로지 DNA(유전자 본체)며 혈통일 뿐, 그 외의 모든 것은 단절되고 변화되었다. 얼굴도 달라지고 키도 달라지고 몸무게도 달라졌다. 읽는 책도 달라지고 (한문 위주에서 영어 위주), 쓰는 어휘도 달라지고 (한자 위주 어휘에서 한글·영어 위주 어휘), 말하는 스타일도 달라졌다.(점잖고 느린 데서 단순하고 빠른 데로) 그렇다면 100년 전 3·1운동의 그 무엇이 꺼지지 않고 아직도 타고 있다는 것인가. 그것은 우리 헌법의 전문(前文)이 잘 보여주고 있다. 지금까지 9차례의 개헌이 이루어졌지만 전문의 시작은 내내 그대로다. 그것은 바로 3·1운동이다. # 자유는 전 국민 절규로 국가건설 지향점이 된 것 이 3·1운동, 3·1 정신은 다음 4가지 면에서 오늘날 이 역동적인 대한민국을 만들어 낸 기초이며 바탕이고, 그리고 우리가 어떤 나라를 건설할 것인가의 지향점을 제시한 것이다. 첫째로 ‘자유’의 정신이다. 어느 나라 어느 국민이든 자유는 근대의 개념이다. 우리에게 있어 이 근대적 개념인 자유가 온 국민에게 각성되고 실감되고 절규되는 것은 기미독립선언서의 ‘오등(吾等)은 자(玆)에 아(我) 조선(朝鮮)의 독립국(獨立國)임과 조선인(朝鮮人)의 자주민(自主民)임을 선언(宣言)하노라’ 부터다. 물론 그 이전 소소하게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3·1운동 때처럼 전 국민적으로 절규한 때는 없었다. 오늘날 우리는 이 3·1운동 때 외쳐진 이 ‘자유’를 먹고 산다. 3·1운동이 일어나기 2년 전 레닌의 러시아 혁명 여파로 고조된 평등사상도 우리에게 꼭 같이 근대사상의 한 축을 이루었지만 우리는 평등보다는 자유를 근간으로 해서 오늘날 우리의 대한민국을 만들어 왔고, 그 자유에 대한 신념과 갈구, 그리고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모든 측면에서의 이 자유의 생활화, 제도화가 오늘날 북한과의 현격한 차이를 만들어 냈다. 3·1정신. 그것은 바로 ‘자유’의 정신이고 그것은 곧 오늘날 대한민국을 존립하게 하고 번성케 한 정신이다. 그 정신의 뿌리는 3·1정신이다. 둘째로 ‘개방화의 정신’이다. 이 개방화는 오늘날의 세계화 정신에 비견할 만하지만 오늘날의 글로벌리제이션(globalization) 개념과 꼭 같다고는 할 수 없다. 그러나 그 정신과 기운과 활동에서 우리가 세계로 뻗어 나가겠다고 하는 점에선 오늘날의 세계화 개념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 ‘인류적(人類的) 양심(良心)의 발로(發露)에 기인(基因)한 세계개조(世界改造)의 대기운(大機運)에 순응병진(順應竝進)하기 위하여 차(此)를 제기(提起)함이며’에서와 같이 세계를 새롭게 고치고 만들며 변화시키는 그 큰 기회에 우리도 순응해 함께 나아가겠다는 선언이 오늘날로 말하면 세계화 선언이다. 지금 우리는 그 어느 나라보다 세계화에 앞장서 있고, 그 어느 나라보다 앞장서서 다른 나라와 교류하면서 신자유주의로 향한 세계개조의 기틀을 만들어 가고 있다. 한·유럽연합(EU) 자유무역협정(FTA), 한·미 FTA는 이러한 세계 개조의 일환이다. 이미 100년 전에 이 세계화의 기대와 욕구가 있었기에 지금 우리는 무역 1조 달러 시대를 열어가고 있고, 이 같은 대 성취는 이미 3·1정신, 3·1운동에서 비롯되었다고 보아야 한다. 셋째로 ‘창의성’의 정신이다. 개방화 세계화는 적나라한 경쟁을 불러온다. 옷을 입은 신사가 벌리는 경쟁이 아니라 발가벗고 치열하게 달려드는 격렬하기 이를 데 없는 경쟁이다. 이 경쟁에서 살아남는 방법은 오직 창의성 독창성을 발휘하는 길 뿐이다. ‘신예(新銳)와 독창(獨創)으로 세계문화(世界文化)의 대조류(大潮流)에 기여(寄與)보비(補裨)할 기연(機緣)’을 되찾겠다는 의지나, ‘아(我)의 자족(自足)한 독창력(獨創力)을 발휘(發揮)하여 춘만(春滿)한 대계(大界)에 민족적(民族的) 정화(精華)를 결뉴(結紐)’ 하겠다는 다짐. 이는 모두 우리 민족이 갖고 있는 창의성을 최대한 발휘해서 다른 나라들에 대해 우리의 능력 우리의 자긍심 그리고 우리의 정체성을 드러내겠다는 100년 전의 비전이며 자신감이다. 이러한 비전 이러한 자신감이 있었기에 오늘날 우리는 특허출원 건수에서 미국 일본 독일 다음의 4번째 지위에 올라 있을 뿐 아니라 2차 대전 후 신생한 140개 국 중에서 산업화와 민주화를 함께 이룩한 나라가 되어 있다. 이 모두 그 시작을 거슬러 올라가면 3·1정신, 3·1운동에 가 닿는다. # 저항, 분노할 줄 모르는 민족은 일어설 힘도 없어 넷째로 저항의 정신이다. 저항하고 분노할 줄 모르는 민족은 일어설 힘도 도전할 의지도 없는 민족이다. 3·1정신은 저항·분노의 정신이고, 3·1 운동은 분노·저항의 결실이다. 근대 중국의 선각자 양계초(梁啓超)는 여한십가문초(麗韓十家文抄)의 서문에서 ‘지금 한국인은 아무 쓸모없는 소수점 이하의 사람들’ (生爲今日韓人者宜若爲宇宙間一奇零之夫無可以自效於國家與天壤)이라 했다. 양계초가 그렇게 말한 것은 3·1운동이 일어나기 5년 전인 1914년이었다. 그러나 양계초는 한국인을 몰랐다. 한국인은 중국인에 비해 10배, 100배로 ‘분노’하고 저항할 줄 아는 민족이다. 3·1운동 같은 활화산을 만들어 낸다는 것을 그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민족이다. 당시 (1910년대)는 제국주의의 기세가 극에 달한 시대로, 중국인은 일본인들에게 한국인 이상으로 당하고도 안중근 의사 같은 혹은 윤봉길열사 같은, 의사 열사 한 명도 내지 못한 민족이다. 말할 것도 없이 3·1운동 같은 엄청난 폭발력의 대저항 운동이 일어나리란 것은 일본도 중국도 생각할 수가 없었다. 일본에 비해 당시의 조선은 경제적으로 사회적으로 문화적으로 너무 열악했고 너무 열패(劣敗)했고, 너무 열등했다. 더구나 일본의 군사력과 경찰력은 전 아시아를 휩쓸고도 남음이 있었다. 폭력의 차원에서 한국은 전무했다. 오직 맨주먹이었다. 그런데 어떻게 들고 일어날 수 있었는가. 이는 어떤 이유, 명분으로도 설명 되지 않는 오직 한국인만이 갖는 ‘저항·분노’의 정신이 설명해 준다. 우리가 우리 역사 이래 한번도 가져보지 못한, 아니 결코 가질 수 없었던 자유·자주의 정신 개방화·세계화의 정신 창의와 독창성의 정신 그리고 저항·분노의 정신은 모두 3·1정신에서 연원하고 그리고 3·1운동에서 그 정신의 동력을 찾았다. 그 정신 그 동력으로 오늘의 이 ‘위대한, 대한민국이 만들어졌다면, 3·1정신은 영원하다. 그것은 지금 현재만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라 미래에도 꼭 같이 의미를 갖는다. 그것은 영원히 꺼질 수 없는 한국인 정신이다. 인류가 3·1 정신이 품고 있는 그 정신을 거부하지 않는 한 그 의미는 계속된다. 연세대 명예교수
  • 싼커·동남아·日관광객 잡아라… 지자체, 中 관광보복 대책 부심

    싼커·동남아·日관광객 잡아라… 지자체, 中 관광보복 대책 부심

    서산~룽청 여객선 취항 불투명 제주 올 中관광객 200만명 줄 듯 관광수요 다변화 등 방안 논의 중국 정부가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보복 조치로 한국 관광상품 판매를 전면 금지하면서 국내 관광시장이 큰 타격을 입고 있다. 전국 지방자치단체들은 민관대책회의를 갖고 여행시장 다변화, 싼커(중국인 개별관광객) 유치 확대, 내국인 관광 활성화 등 대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7일 지자체 등에 따르면 중국 보복 조치에 따른 피해가 곳곳에서 속출하고 있다. 오는 27일 2박 3일 일정으로 대구를 찾으려 했던 중국 광장무 동호회원 600명의 방문이 전격 취소됐다. 제주도에 따르면 이날 기준 중국 관광객 11만 1000여명이 제주관광 예약을 취소했다. 이 추세대로라면 올 한 해 중국 관광객 200만명이 줄어들 전망이다. 한·중 선사 합작으로 추진 중인 서산 대산항~중국 산둥(山東)성 룽청(榮成) 간 국제여객선 취항도 불투명해졌다. 주 3회 운항하는 이 여객선(2만t급)은 1000명을 한꺼번에 태울 수 있어 올해 6만명의 유커를 유치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를 모았다. 윤진섭 충남도 관광기획팀장은 “오는 4월에서 5월로, 다시 7월로 취항이 연기됐는데 어떻게 될지 몰라 답답하다”고 하소연했다. 서울시는 이날 관광업계와 한국관광공사 등 유관기관 관계자들과 긴급 대책회의를 가졌다. 시는 이 자리에서 중국 정부가 판매금지한 건 한국 단체관광 상품인 만큼 싼커 유치 확대를 위한 주요 관광시설 할인 혜택 상품 개발, 매년 7월 열리는 ‘서울서머세일’ 5월 조기 개최, 중국 시장에 편중된 관광수요를 일본, 동남아, 무슬림 등으로 확대·다변화, 서울의 숨은 명소·자치구별 축제 홍보를 통한 국내 관광 활성화 등의 대책을 내놨다. 경기, 전라, 경상, 충청 등 다른 지자체들도 마찬가지다. 이들 지자체도 대책회의를 갖고 태국, 베트남,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등 동남아 관광시장 개척을 통해 중국 의존도를 낮추기로 했다. 일본인 관광객 유치를 위한 마케팅도 강화하기로 했다. 충북도는 도내 여행사가 일본인 관광객의 충북 방문을 성사하면 다른 나라 관광객의 두 배가 넘는 1인당 3만원의 인센티브를 지급하기로 했다. 경북도는 한큐교통사 등 일본 여행사와 협조해 올해 2만명, 향후 5년간 10만명의 일본인 관광객을 유치할 계획이다. 직격탄을 맞은 제주도는 지난 6일 원희룡 지사를 본부장으로 하는 대책본부를 꾸렸다. 큰 피해가 예상되는 전세버스, 숙박업, 외식업계 등의 단기적인 충격에 대해선 관광진흥기금 지원 등 재정적·제도적 지원 방안을 마련할 예정이다. 서울 김승훈 기자 hunnam@seoul.co.kr 홍성 이천열 기자 sky@seoul.co.kr 대구 김상화 기자 shkim@seoul.co.kr
  • 말없이도 통했던 무대, 中 불통에 난타당하다

    말없이도 통했던 무대, 中 불통에 난타당하다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에 대한 보복성 조치로 중국이 자국민들에게 한국 관광 금지령을 내리면서 외국인 관광객을 대상으로 한 공연 관광 시장이 직격탄을 맞았다. 중국인 관광객 등을 중심으로 외국인 단체 관광객의 주요 관광코스 중 하나인 비언어극(넌버벌 퍼포먼스) 공연 제작사들이 서둘러 몸집 줄이기에 나선 가운데 그동안 중국 관객 의존도가 높았던 공연 관광 시장이 이번 사태를 계기로 체질을 개선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한국 최초 비언어극 ‘난타’ 제작사 PMC프로덕션은 국내 전용관 4곳 중 600여석 규모로 가장 큰 서울 충정로 극장을 4월부터 휴관하기로 했다. 김용제 PMC프로덕션 대표는 “지난해 사드 배치 결정 이후 중국 최대 명절인 춘제(설)를 기점으로 중국 관객이 급격히 줄었다”면서 “외국인 단체 관광객만 수용했던 충정로 극장의 경우 현재 손님이 ‘0’이라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이어 “향후 국내외 상황을 지켜보고 충정로 극장 폐쇄 여부를 고려할 계획”이라고 밝혔다.대사 없이 리듬과 비트, 상황만으로 구성된 뮤지컬 퍼포먼스 ‘난타’는 1997년 10월 초연 이후 인기를 얻으며 2000년 7월 우리나라 최초로 전용 공연장을 개관, 연간 약 120만명의 관람객을 모아 왔다. 하지만 최근 중국의 한한령 여파로 충정로와 제주 전용관을 찾는 중국인 관광객이 뚝 끊긴 상황이다. 김 대표는 “제주 전용관의 경우 90%가 중국인 관광객이고 그중에서도 80~90%가 단체 관광객이기 때문에 찾는 손님이 거의 없다”면서 “향후 중국 이외에 한국을 많이 찾는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필리핀 등 동남아시아 국가를 대상으로 한 마케팅에 신경 쓸 계획”이라고 말했다.중국인 단체 관광객보다 개인 관광객을 중심으로 마케팅을 펼쳐 온 ‘점프’의 경우도 상황은 비슷하다. ‘점프’ 제작사 예감의 김성량 홍보팀장은 “2015년부터 개인 관광객 중심의 마케팅을 펼쳐 온 이후 이제서야 관객 수가 반등하고 있는데 이번 사태로 위축이 우려된다”면서 “최근 방문율이 늘고 있는 일본인 관광객 등 다양한 국가의 관광객을 모객할 수 있는 구조로 재편하는 노력을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2008년부터 공연한 미술 넌버벌 퍼포먼스 ‘오리지널 드로잉쇼’는 서울 중구 명보아트홀 내 전용관을 잠정 휴관했다. 관계자는 “공연사·극장 등 내부 사정으로 인해 지난 1일부터 운영을 잠정적으로 중단했다”면서 “향후 재개관 일정은 미정인 상태”라고 밝혔다. 명보아트홀 내 전용극장에서 공연을 선보여 온 타악 퍼포먼스 ‘드럼캣’도 2월 말로 계약을 만료하고 공연을 종료한 상황이다. 2004년 10월 초연 이후 2008년부터 9년간 상설 공연을 해 온 댄스 뮤지컬 ‘사랑하면 춤을 춰라’(사춤)는 지난해 12월 31일 서울 종로구 시네코아 전용관 공연을 마치고 오는 5월 대학로에서 ‘사춤 시즌2’로 새롭게 시작할 예정이다. 하지만 갑작스러운 중국의 한국 여행 금지령 탓에 공연장 이전을 앞두고 고민이 커지고 있다. ‘사춤’ 제작사 두비커뮤니케이션의 최광일 대표는 “12년여 만에 작품 내용을 업그레이드하는 시간을 갖기 위해 잠시 정비 기간을 갖고 있는데 이번 사태가 터지는 바람에 공연장 문을 열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할 정도로 향후 대책 마련에 고심 중”이라면서 “장기적으로 봤을 때 내국인 관객을 대상으로 한 프로모션을 강화하는 방향도 고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공연관광협회장이기도 한 최 대표는 “그동안 공연 관광의 중국 의존도가 심하다 보니 공연 품질이 낮아진 면이 있었다”면서 “이번 계기를 통해 여행사·면세점 등을 통한 판촉 형태가 아닌 관객들이 직접 선택할 수 있는 예술성 있는 공연 제작에 시선을 돌려야 한다”고 지적했다. 조희선 기자 hsnch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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