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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은미의 뮤지엄 천국] 영국박물관 일본실의 백제관음

    [이은미의 뮤지엄 천국] 영국박물관 일본실의 백제관음

    지난해 런던에 있는 영국박물관을 찾았다. 덴마크국립박물관 객원연구원으로 2년 동안 유럽에 머무르면서 한 번은 가보리라 작정했던 터였다. 세계 문명을 보여 주는 전시실 사이를 거닐다가 일본실에 들어서면서 예기치 못한 만남에 놀랐다. 전시실 입구에서 관람객을 맞아 주는 늘씬하고도 우아한 자태의 부처님, 일본 호류지(法隆寺)의 백제관음이 아닌가. 오래전 일본 나라현 한적한 동네의 유서 깊은 절에서 만나 시선을 사로잡았던 그 불상이 틀림없다. 설명문을 보니 한자로 백제관음입상(百濟觀音立像), 영어로 구다라 관음상이라고 정확하게 이름이 적혀 있다. ‘구다라’는 일본에서 백제를 부르는 말이다. 어떻게 일본이 자랑하는 국보급 불상이 영국박물관 일본 상설실에 전시될 수 있단 말인가. 아무리 영국박물관이 세계에서 손꼽히는 박물관이라 해도 그것은 상식적으로 가능한 일이 아니다. 이 의문은 설명문을 읽으면서 허망하게 풀렸다. 이 불상은 ‘진품’이 아닌 ‘복제품’이었다. 비록 1930년쯤에 만들어졌다 하더라도 가짜인 셈이다. 그렇다면 왜 영국박물관은 일본실에서 만나는 첫 작품으로 이 복제품 불상을 전시했을까. 일반적으로 박물관의 본질은 유물에 있다고 한다. 진짜 유물이 가지고 있는 ‘아우라’가 전시의 정수를 맛보게 해 주고 전시의 명성을 좌우한다. 유럽에서도 수준 높은 일본 유물을 소장하고 있다고 알려진 영국박물관이다. 백제관음은 누가 어디에서 제작했는지를 두고 의견이 분분하다. 이 불상을 전시실 입구에 전시함으로써 이러한 제작지에 관한 논란을 뛰어넘어 고대 일본의 문화가 아시아 주변국과의 교류와 영향 속에서 성립했음을 선명하게 이야기하고 있다. 백제관음 앞에는 18세기에 만들어진 나전칠기 시계도 전시돼 있었다. 이는 일본의 근대문화가 고대 아시아 대륙과의 교섭을 바탕으로 하는 전통의 토대 위에 서양의 문화를 받아들여 이루어진 것임을 보여 준다. 전시실 입구의 두 전시물은 일본 문화가 세계와의 교류 속에서 성립했다는 사실을 강조하려는 전시의 기본 의도를 상징적으로 드러내기 위한 선택인 셈이다. 소위 ‘일본적인’ 아우라를 발산하고 있는 미술 명품을 진열하던 과거의 일본실과는 사뭇 다른 접근이다. 이 도입 전시물을 지나면 일본의 역사가 고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시대순으로 다양한 유물을 통해 다차원적으로 펼쳐진다. 외국 박물관 일본실이나 중국실에 비해 빈약한 한국실에 관한 이야기를 종종 듣는다. 수준 높은 한국 문화를 보여 주기에는 유물의 양과 질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영국박물관 일본실의 사례를 보면 우리 문화를 해외 박물관에서 외국인들에게 이해시키는 데 꼭 여러 점의 국보급 진품이 동원돼야 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 준다. 박물관 전시는 전시물을 통해 맥락을 만들고 메시지를 전달하는 교육적이고도 정치적인 장이다. 유물이 주인공인 전시회도 있지만 유물이 보조 수단인 전시도 성공적일 수 있을 것이다. 또 하나. 우리라면 한국 미술 전시회에 중국에서 만든 논란이 있는 불상을 전시회 프롤로그에 내세울 수 있었을까 하는 것이다. 영국박물관 일본실 전시를 보고 일본 문화에 대한 이해를 높였으면 높였지 ‘일본 문화는 한국의 아류’라고 생각한 관람객은 아마 한 사람도 없었을 것이다. 우리 문화 중심주의는 박물관의 전시 기획자들이 한 번 생각해 볼 만한 과제라고 생각한다. 물론 영국박물관 전시도 일본인이 아니라 아마도 영국인이 기획했기에 객관적일 수 있었을 것이다.
  • [핵잼 사이언스] 아플 땐 약 대신 욕… 고통 ‘내성’ 높여요

    [핵잼 사이언스] 아플 땐 약 대신 욕… 고통 ‘내성’ 높여요

    모서리에 부딪히거나 넘어지는 등 사람들이 참기 힘든 고통을 경험할 때, 속으로 감내하기보다 차라리 시원하게 욕설을 내뱉는 편이 통증을 완화시키는 데 효과적일 수 있다는 새로운 연구 결과가 발표됐다.지난달 26일(현지시간) 영국 데일리메일은 영국 킬대학과 센트럴랭커셔대학 연구원들이 고통 경감을 위한 ‘약’ 대신 ‘욕’이라는 훨씬 단순한 비법을 찾아냈다고 전했다. 최근 두 대학 연구팀은 영국인과 일본인을 대상으로 ‘욕설이 실제 고통에 대한 내성을 높일 수 있는지’ 실험 연구를 했다. 서로 다른 국적을 가진 지원자를 동원한 것은 문화적으로 욕설에 대한 용인 수준 차가 있는 영국과 일본인의 반응을 비교하기 위해서였다. 연구팀은 지원자들에게 평소 잘 쓰지 않는 손을 얼음물에 넣게 하고, 영국인과 일본인 참가자 절반에게 영어 혹은 일본어로 욕설을 여러 차례 해달라고 요청했다. 반면 나머지에겐 저속하지 않은 단어들을 사용하라고 일렀다. 실험 결과 욕설을 한 영국인 지원자들은 1분 18초 동안 차가움을 견뎌낸 반면 욕을 하지 말도록 요구받은 영국인들은 45.7초를 버티는 데 그쳤다. 욕을 사용한 일본인들도 55.6초 동안 고통을 참았고, 욕을 하지 않은 일본인은 그절반인 단 25.4초를 버텼다. 욕의 유무와 관계없이 일본인 지원자들이 영국인들보다 고통을 참지 못했지만, 전체적으로 욕을 내뱉은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거의 두 배 이상 손이 시린 고통을 견딜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결과를 바탕으로 해당 연구진들은 스칸디나비아 통증연구학회지를 통해 “영국과 일본 둘 다 욕설을 할 때 고통스러운 자극에 더 관대하며, 욕을 하는 행위가 자극 완화를 돕는 데 효과적인 방법으로 권장될 수 있다”는 의견을 밝혔다. 안정은 기자 netineri@seoul.co.kr
  • 아플 땐 약 먹는 대신 욕하는 게 낫다

    아플 땐 약 먹는 대신 욕하는 게 낫다

    모서리에 부딪히거나 넘어지는 등 사람들이 참기 힘든 고통을 경험할 때, 속으로 감내하기보다 차라리 시원하게 욕설을 내뱉는 편이 통증을 완화시키는 데 효과적일 수 있다는 새로운 연구 결과가 발표됐다. 지난달 26일(현지시간) 영국 데일리메일은 영국 킬대학과 센트럴랭커셔대학 연구원들이 고통 경감을 위한 ‘약’ 대신 ‘욕’이라는 훨씬 단순한 비법을 찾아냈다고 전했다. 최근 두 대학 연구팀은 영국인과 일본인을 대상으로 ‘욕설이 실제 고통에 대한 내성을 높일 수 있는지’ 실험 연구를 했다. 서로 다른 국적을 가진 지원자를 동원한 것은 문화적으로 욕설에 대한 용인 수준 차가 있는 영국과 일본인의 반응을 비교하기 위해서였다. 연구팀은 지원자들에게 평소 잘 쓰지 않는 손을 얼음물에 넣게 하고, 영국인과 일본인 참가자 절반에게 영어 혹은 일본어로 욕설을 여러 차례 해달라고 요청했다. 반면 나머지에겐 저속하지 않은 단어들을 사용하라고 일렀다. 실험 결과 욕설을 한 영국인 지원자들은 1분 18초 동안 차가움을 견뎌낸 반면 욕을 하지 말도록 요구받은 영국인들은 45.7초를 버티는 데 그쳤다. 욕을 사용한 일본인들도 55.6초 동안 고통을 참았고, 욕을 하지 않은 일본인은 그절반인 단 25.4초를 버텼다. 욕의 유무와 관계없이 일본인 지원자들이 영국인들보다 고통을 참지 못했지만, 전체적으로 욕을 내뱉은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거의 두 배 이상 손이 시린 고통을 견딜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결과를 바탕으로 해당 연구진들은 스칸디나비아 통증연구학회지를 통해 “영국과 일본 둘 다 욕설을 할 때 고통스러운 자극에 더 관대하며, 욕을 하는 행위가 자극 완화를 돕는 데 효과적인 방법으로 권장될 수 있다”는 의견을 밝혔다. 안정은 기자 netineri@seoul.co.kr
  • 한국 와서 살던 60대 일본인, 처형 둔기 살해

    한국 와서 살던 60대 일본인, 처형 둔기 살해

    이혼문제로 처가 식구들과 갈등을 빚다 처형을 살해한 60대 일본인이 경찰에 붙잡혔다. 경기도 하남경찰서는 29일 살인 등 혐의로 A(69·일본 국적)씨를 체포해 조사하고 있다.A씨는 전날 오후 8시 30분쯤 경기도 하남시 소재 처형 B(69)씨의 집에서 둔기로 B씨를 때려 살해한 혐의를 받고 있다. 또 범행 직후 B씨 집을 찾아온 아내 C(65)씨를 둔기로 때려 다치게 한 혐의도 받고 있다. A씨는 경찰에 현행범으로 붙잡혀 범행을 모두 시인했다. A씨는 경찰조사에서 “최근 금전문제로 아내와 다투다가 처가 식구들이 ‘이혼해주면 일본으로 돌아가도록 경비를 지급하겠다’라고 한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고 생각해 이 같은 범행을 저질렀다”고 진술했다. 2010년 일본에서 C씨를 만나 결혼한 A씨는 2012년 한국으로 와 생활해왔으며, 최근에는 C씨가 이혼을 요구하며 집에 들어오지 못하게 하자 며칠 동안 노숙생활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A씨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할 방침이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이제 36명 남았다…위안부 피해 하상숙 할머니 별세

    이제 36명 남았다…위안부 피해 하상숙 할머니 별세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하상숙 할머니가 28일 오전 9시 10분쯤 별세했다. 89세. 하 할머니 별세로 정부에 등록된 위안부 피해자 가운데 생존자는 36명으로 줄었다.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는 이날 “하 할머니가 노환으로 병원 생활을 하던 중 패혈증으로 유명을 달리했다”고 밝혔다. 하 할머니는 1928년 충남 서산에서 태어났다. 1944년 16살 때 공장에 가면 “돈을 벌 수 있다”는 일본군 위안부 모집책의 말에 속아 경성(서울), 평양 등을 거쳐 중국 우한 지역으로 끌려갔다. 위안소에서 8개월 가까이 수용생활을 했고, 그 후유증으로 자궁을 들어냈다. 해방 후 일본군에게 수치를 당한 몸으로 고향 사람들을 볼 낯이 없다며 중국에 남았다. 27살 때인 1955년 세 딸을 가진 중국인과 결혼했다. 아이를 낳을 수 없었던 하 할머니는 남편의 아이들을 친자식처럼 길렀고, 1994년 남편과 사별한 뒤에도 막내딸과 함께 지냈다. 하 할머니는 광복 이후 중국에서 조선 국적으로 남았지만 남북 분단 과정에서 중국 내 조선 국적은 모두 북한 국적으로 분류된 탓에 북한 국적으로 바뀌었다. 1999년 민간단체 도움으로 한국 정부의 국적회복 판정을 받은 뒤 한국 국적을 회복했다. 2003년 중국에 머문 지 59년 만에 귀국했다. 하 할머니는 이후 주한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리는 수요시위와 일본 규탄 집회 등 위안부 문제 해결 활동에 참여했다. 2000년 일본 도쿄에서 열린 ‘일본군 성노예 전범 여성 국제법정’에 증인으로 참석해 위안부 피해를 증언하기도 했다. 2013년 서울에서 열린 ‘제1회 세계 일본군 위안부 기림일 기념 국제심포지엄’에서는 “일본인은 ‘그런 일을 한 적 없다’고 거짓말을 한다. 우리가 바라는 것은 돈이 아니라 잘못했다는 사과의 말이다. 내가 그 사람들에게 잘못했다는 말을 듣기 전에는 못 죽는다”며 눈물로 호소했다. 고국 땅을 밟은 지 2년여 뒤 하 할머니는 딸들의 권유로 가족이 있는 중국 우한으로 돌아갔다. 지난해 2월 중국인 이웃과 말다툼을 벌이다 2층 계단에서 밀려 넘어지면서 건강이 악화됐다. 갈비뼈와 골반 등이 부러지는 중상을 입고 한국으로 돌아와 병원 생활을 했다. 빈소는 서울 강동경희대학교병원 장례식장 12호실에 차려졌다. 문경근 기자 mk5227@seoul.co.kr
  • 욕설 내뱉으면 고통 참을성 늘어난다 (연구)

    욕설 내뱉으면 고통 참을성 늘어난다 (연구)

    모서리에 부딪히거나 넘어지는 등 사람들이 참기 힘든 고통을 경험할 때, 속으로 감내하기보다 차라리 시원하게 욕설을 내뱉는 편이 통증을 완화시키는데 효과적일 수 있다는 새로운 연구결과가 발표됐다. 26일(현지시간) 영국 데일리메일은 영국 킬 대학과 센트럴 랭커셔 대학 연구원들이 고통 경감을 위해 ‘약’대신 ‘욕’이라는 훨씬 단순한 비법을 찾아냈다고 전했다. 최근 두 대학 연구팀은 영국인과 일본인을 대상으로 ‘욕설이 실제 고통에 대한 내성을 높일 수 있는지’ 실험 연구를 실시했다. 서로 다른 국적을 가진 지원자를 동원한 것은 문화적으로 욕설에 대한 용인 수준 차가 있는 영국과 일본인의 반응을 비교하기 위해서였다. 연구팀은 모든 지원자들에게 평소 잘 쓰지 않는 손을 얼음물에 넣게 하고, 영국인과 일본인 참가자 절반에게 영어 혹은 일본어로 욕설을 여러 차례 해달라고 요청했다. 반면 나머지에겐 저속하지 않은 단어들을 사용하라고 일렀다. 실험 결과, 욕설을 한 영국인 지원자들은 1분 18초 동안 차가움을 견뎌낸 반면 저속한 단어를 사용하지 않은 영국인들은 45.7초를 버티는데 그쳤다. 욕을 사용한 일본인들도 55.6초 동안 고통을 참았고, 욕을 하지 않은 일본인은 그에 절반인 단 25.4초를 버텼다. 욕의 유무와 관계없이 일본인 지원자들이 영국인들보다 고통을 참지 못했지만, 전체적으로 욕을 내뱉은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거의 두 배 이상 손이 시린 고통을 견딜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결과를 바탕으로 해당 연구진들은 스칸디나비아 통증연구학회지(Scandinavian Journal of Pain)를 통해 “영국과 일본 둘 다 욕설을 할 때 고통스러운 자극에 더 관대하며, 욕을 하는 행위가 자극 완화를 돕는데 효과적인 방법으로 권장될 수 있다”는 의견을 밝혔다. 안정은 기자 netineri@seoul.co.kr
  • [열린세상] 역사 왜곡, 개방된 역사관으로 대응해야/이현주 동북아역사재단 사무총장

    [열린세상] 역사 왜곡, 개방된 역사관으로 대응해야/이현주 동북아역사재단 사무총장

    올해 광복절에도 일제의 만행과 피해의 서러운 역사가 되새겨졌다. 문재인 대통령은 “역사 문제를 매듭지을 때 한·일 간의 신뢰가 더 깊어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일본뿐 아니라 중국의 역사 왜곡도 여전히 진행중이다. 우리 역사에 대한 왜곡을 하루빨리 바로잡아야겠지만, 피해 의식에 맺힌 민족주의 역사관으로는 어렵다. 일본이 19세기 말 유럽의 근대역사학을 선점하면서 한국과 중국의 역사를 왜곡해 침략을 합리화하는 데 이용한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문제는 일본이 지금도 여전히 왜곡된 역사관을 고집해 역사 갈등을 야기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편 중국의 역사학자들은 1920년대부터 바로 그 일본 우월적 역사관을 모방한 중화민족사관으로 일본의 만주 역사 왜곡에 대항했다. 그것이 오늘날 중국 영토 내의 역사와 문화는 모두 중국의 것이라는 통일적 다민족 국가론의 기초가 되고, 동북공정의 뿌리가 됐다. 이 과정에서 한국의 역사는 일본에 의해 왜곡되고 중국에 의해 부정됐다. 한국에서 피해 의식에 기초한 민족주의 역사관이 뿌리내린 것은 당연한 귀결인지도 모른다. 일본과 중국은 최근 신민족주의적 행태로 역사 왜곡 논쟁을 악화시키고 있는데, 이는 동북아의 안보협력을 저해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 필자는 얼마 전 동북아역사재단을 방문한 폴란드 역사학자의 “폴란드는 피해자 역사 인식이 없다. 왜냐하면 폴란드인들뿐만 아니라 러시아인들도 차르나 스탈린 폭정시대의 똑같은 희생자이기 때문이다”라는 말을 듣고 한·일 간 역사 문제를 다시 생각해 보게 됐다. 우리가 일본에 역사 반성을 요구하는 것은 일본이 침략의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만약 우리가 일본에 대해 군대 위안부 문제나 군함도 탄광의 강제노동과 징용자에 대한 반성과 배상을 요구하면서 동시에 일본인 위안부나 일본인 탄광 노동자에 대한 인권유린, 반세기가 지난 후에야 겨우 소액을 보상받은 시베리아 억류자나 국채를 상환받지 못한 일본인들의 비슷한 고통도 함께 배려하고 연구한다면 일본 국민도 피해자로서 같은 역사 인식을 공유할 수 있게 되지 않을까. 피해 의식에 갇힌 배타적인 민족주의 역사관으로는 중국이나 일본의 역사 왜곡을 이기지 못한다. “역사는 같은 지역에서 공존해 온 여러 민족 공동의 유산”이라는 생각이 서구 역사학계의 주류다. 2000여년 전의 단군이 ‘우리만의 할아버지’는 아니라는 개방된 역사 인식이 오히려 우리 역사의 무대를 확대하는 길이 아닐까. 광개토대왕의 광대한 영토만이 오늘날 한민족의 위대성을 보증하는 것은 아니다―영국, 프랑스, 독일의 조상은 모두 야만족이었지만 지금은 선진국이다. “낙랑이 평양에 있었다면 고조선의 영토가 작았다는 것이 된다”고 낙랑의 위치 문제로 식민사관 논쟁을 하는 것도 실은 일본의 침략사관 프레임을 벗어나지 못한 것이다. 반면 역사의 해석을 독점하려는 학문 권력은 과거 조선시대의 사문난적(斯文亂賊)론과 다름없다. 많은 사람의 공통된 기억은 가까운 과거의 사실을 입증한다. 기록은 더 오랜 과거의 사실을 전달해 준다. 과거 사실에 대한 기억과 기록이 융합돼 역사로 계승된다. 그러나 어떤 사실이나 역사 해석에 대한 반론이 허용되지 않거나 믿도록 강요된다면 그것은 신성불가침의 역사 신화로 굳어진다. 그런 신화는 북한, 일본과 중국, 한국에도 있고, 한·일 역사 논쟁에도 존재한다. 역사 신화의 노예가 되지 않으려면 역사학도 개방적이고 민주주의적이어야 한다. 개방된 역사관은 역사 사료뿐 아니라 언어학, 인류학, 사회학, 문학 등 인문학을 아우르는 폭넓은 학제 간 연구를 요구한다. 그래야만 ‘한국은 중국의 속국이었다’라는 말을 들어도 흥분하지 않고 자신 있게 대응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역사학은 인간과 로봇이 공존하는 미래사회에서 역사가 어떤 의미가 될지에 대해서도 대답해야 한다. 나아가 역사학은 대중에게 좀더 친밀해지고 어린 학생들의 호기심과 꿈을 자극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역사학은 인문학의 핵심이고, 역사학자들은 더 넓은 학문적 섭렵이 필요한 것이다. 역사 갈등 문제는 대통령이나 외교관에게 미룰 일이 아니다.
  • 고이케 日도쿄지사, 조선인 학살 추도문 거부

    일본의 차기 총리감으로 높은 지지율을 얻고 있는 고이케 유리코 도쿄도지사가 그동안의 관례를 깨고 간토(관동)대지진 조선인 희생자 추도식에 추도문을 보내 달라는 주최 측의 요구를 거절했다고 도쿄신문이 24일 보도했다. 간토대지진 당시 일본인 자경단 등에 의해 학살된 조선인 희생자들을 기리는 이 행사는 일·조(日朝)협회 등 일본 시민단체들 주관으로 매년 열려 왔다. 역대 도쿄도지사들이 매년 추도문을 보냈으며 고이케 지사도 취임 직후인 지난해에는 추도문을 보냈다. 고이케 지사의 입장 변화 배경에는 조선인 희생자 수와 관련된 논란이 있다. 지난해 자민당 소속 도쿄도의원들은 비문에 적힌 희생자 수의 근거가 희박하다고 추궁해 왔고, 고이케 지사는 “내용을 살펴본 뒤 추도문 발표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말했다. 이에 그가 간토대지진 당시 조선인 학살을 부정하는 움직임을 조장한다는 비판이 제기됐고, 극우 색깔을 드러낸 것이라는 평가도 나왔다. 당시 독립신문은 6661명의 조선인이 살해됐다고 전했고, 일본 정부의 2009년 보고서는 “사망·행방불명자는 10만 5000명 이상이며 이 가운데 1%에서 수%가 피살된 것으로 추정된다. 피살 대상자는 조선인이 가장 많았다”고 밝혔다. 일본 극우들은 간토대지진의 피해자 수가 부풀려졌고, 조선인 학살은 당시 조선인들이 일으킨 폭동에 대한 정당방위였다고 주장해 왔다. 도쿄 이석우 특파원 jun88@seoul.co.kr
  • 에바, “시어머니, 속옷 빨래 민망” 시월드 비화 공개

    에바, “시어머니, 속옷 빨래 민망” 시월드 비화 공개

    방송인 에바 포피엘이 ‘아침마당’에 출연해 결혼생활을 공개하며 근황을 전한 가운데, 과거 시어머니에 대한 발언이 눈길을 끈다. 에바는 23일 KBS1 ‘아침마당’에 남편 이경구씨와 함께 출연했다. 이날 에바는 “남편이 생활비로 100만원 준다“며 “아이가 둘이다 보니까 필요한 돈이 많다. 아이들 때문에 경제 활동을 못해서 불만이 생겨서 남편에게 말했더니 ‘왜 나랑 결혼했어?’라고 했다”며 서운함을 토로했다. 앞서 에바는 지난 2014년 11월 채널A ‘웰컴 투 시월드’에서 시어머니에 대한 에피소드를 털어놨다. 에바는 “시어머니가 오셔서 산더미 같이 쌓인 빨래를 다 해주시는데 그 안에 있는 속옷까지 빨아주셨다”라고 말했다. 이어 “시어머니가 우리 부부 화장실까지 청소해주신다고 하시더라”라며 “끝까지 말렸지만 결국 청소를 하셨다”고 말했다. 또 에바는 “너무 민망하고 죄송스러웠다. 부부 공간이기 때문에 거기까지는 안 들어오셔도 되는 것 같다”고 한국의 부부와 시댁 관계에 대해 당황스러움을 토로했다. 한편 영국인 아버지와 일본인 어머니를 둔 일본 국적의 에바 포피엘은 지난 2006년 KBS2 ‘미녀들의 수다’를 통해 인기를 모았다. 이후 2010년 이경구 씨와 결혼, 슬하에 두 아들을 두고 있다. 사진 = 서울신문DB 연예팀 seoulen@seoul.co.kr
  • 알리페이·투지아 등 中 넘어 日까지 삼키나

    인터넷, 온라인 서비스로 대륙을 석권한 중국의 신생 기업들이 이번에는 일본 열도를 겨냥하고 관련 서비스를 속속 상륙시키고 있다. 알리바바는 중국인 5억명이 사용하는 스마트폰 결제 애플리케이션(앱)인 알리페이(즈푸바오)와 동일한 서비스를 내년 봄부터 일본에서 서비스할 계획이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21일 알리바바가 올해 안에 가전 양판점 등 알리페이를 사용하는 대응 점포를 약 5만곳으로 늘릴 방침이라고 전했다. 알리바바 산하 금융회사인 안토파이낸셜 재팬의 관계자는 “현금으로 치우친 일본의 결제 문화를 바꾸겠다”고 전의를 불태웠다. 1억 8000만명이 전용 앱을 다운받은 민박알선 서비스업체 ‘투지아’는 일본 통신판매를 장악한 라쿠텐과 손을 잡았다. 투지아는 내년 1월부터 라쿠텐의 상품을 자신들의 사이트에도 올리는 등 상호 협력하는 윈윈 전략을 세웠다. 투지아는 미국의 에어비앤비를 위협하는 최대 라이벌로 떠오르고 있다. 중국의 공유자전거 서비스업체인 모바이크는 22일부터 삿포로시에서 일본 최초의 서비스를 시작한다. 모바이크는 부동산 대기업인 만커 등 중국계 5개 기업과 함께 세계적인 물류회사인 싱가포르의 글로벌 로지스틱 프로파티즈(GLP)를 인수하면서, 이미 97곳의 거점을 둔 일본 최대의 물류 시설 운영 회사가 됐다. 일본은행에 따르면 2016년 중국의 대일 직접투자는 4372억엔으로 센카쿠열도를 둘러싼 영토 분쟁의 최악의 시점을 거친 2013년 이후부터 3000억~5000억엔(약 3조 1300억~5조 2000억원)으로 안정적인 추이를 보이고 있다. 니시무라아사히 법률사무소 관계자는 “투자 대상이 소비·서비스 분야로 확산됐다”고 말했다. 제조업에서도 인수 등을 넘어선 새로운 움직임이 일고 있다. 중국 굴지의 통신회사인 화웨이는 지바현 후나바시시에 우선 50억엔을 투자해 연내 통신 기기 연구·제조 거점을 세울 계획이다. 정보나 기술자가 풍부한 일본발 연구능력 확대를 겨냥하고 있다. 니혼게이자이는 “과거 중국 기업의 일본 진출은 브랜드나 기술을 노린 제조업 인수가 중심이었지만, 소비·서비스로 분야가 확산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불안정한 중·일 관계 등으로 많은 문제가 남아 있다. 잠재적인 적대국가인 중국에 일본인들의 신상 정보를 자유롭게 흘려보내고, 자금 결제를 어디까지 허용할 것인가 등의 문제다. 일본 규제 당국이 팽창하는 중국 경제권의 ‘공습’ 속에서 대안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도쿄 이석우 특파원 jun88@seoul.co.kr
  • [강명구의 문화로 세상읽기] 결혼포기, 결혼지연, 그리고 결혼파업

    [강명구의 문화로 세상읽기] 결혼포기, 결혼지연, 그리고 결혼파업

    오랜 역사 동안 결혼은 남녀가 경제를 공유하고 아이를 낳아 기르고 서로 의지하고 사랑을 나누는 사회의 근간이었다. 그러나 20세기 말, 1970년대부터 서구를 시작으로 결혼하지 않고 동거하거나, 결혼연령이 늦어지는 현상이 두드러지기 시작했다. 이혼율도 동시에 증가해 왔다. 요즘 유행하는 혼밥, 혼술이라는 문화적 현상은 선호하는 라이프스타일이기도 하지만, 결혼과 가족관계, 남녀관계, 일과 가정의 양립과 같은 삶의 근본적 변화, 사회문화 심층에서의 변화와 맞닿아 있다 할 수 있다. 결혼포기, 지연, 파업이라는 표층 아래 깊은 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문화구조의 변화를 들여다보면 어떨까.먼저 결혼포기. 생애미혼율은 50세가 될 때까지 결혼을 한 번도 하지 않은 사람의 비율을 가리킨다. 2015년 한국 남성은 9명 중 1명, 여성은 5명 중 1명에 달했다(2015 통계청). 일본 남성은 4명 중 1명, 여성은 7명 중 1명이 50세가 될 때까지 결혼을 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일본인구와 복지연구소 2015, Japan Times 보도). 이들이 노후에 결혼할 가능성이 낮다고 보면 결혼을 평생 한 번도 하지 않은 사람이 이렇게 많은 셈이고, 이 비율이 점차 늘어나고 있다. 결혼을 하고 싶어도 하지 못한 사람들이 있고, 자신의 선택에 의해 혼자 사는 삶을 택한 경우도 있다. 한국과 일본 모두에서 생애미혼자의 대다수가 비정규직으로 일한다는 조사가 나와 있다. 결혼지연은 생애 첫 결혼 연령이 늦어지는 추세를 가리킨다. 2015년 유엔 통계에 따르면 한국 남성은 32.6세, 여성은 30세로 나와 있다. 일본은 30.9, 29.3세이고, 미국은 29.2, 27.1세이다. 대다수 유럽국가들은 한국보다 더 늦게 생애 첫 결혼을 하는 것으로 나타났지만 동거라는 커플 형태를 고려하면 한국과 일본의 청년들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가장 늦게 첫 결혼에 이르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여기에 한국과 일본 등 아시아 국가는 동거 비율도 유럽이나 미국에 비해 대단히 낮게 나타난다. 프랑스, 영국, 스웨덴 등 대다수 나라에서 정부에 등록한 동거는 혼인관계와 동등한 법적 인정과 권리를 누린다. 이들 국가의 남녀 70% 정도는 생애 한 번 이상 동거한 경험을 갖고 있다. 동거를 거쳐 결혼에 이르는 과정으로서의 동거도 있고, 결혼의 대안적 형태로서의 동거도 있다. 한국과 일본은 동거에 관한 공식 통계가 없지만(일본은 부분적으로 통계를 내기 시작했는데 의외로 25% 정도의 미혼여성이 동거 경험이 있다는 비공식적 조사가 있기는 하다) 몇몇 조사에서는 2~5%로 나타난다. 결혼의 대안적 형태로서의 동거가 유럽에 일반화되면서 결혼하지 않은 여성의 출산율 역시 크게 증가하기 시작했다. 유럽의 대다수 국가는 전체 출산의 40% 이상을 비혼여성이 차지하고 있다(OECD, 2014). 미국 역시 2015년 전체 출산 아동 40.3%(160만명)가 비혼커플의 자녀였다. 그런데 이 보고서는 동아시아의 대표적 회원국인 한국, 일본의 비혼출산율이 2~3%에 불과하다며, 약간은 놀라운 수치라는 느낌으로 서술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결혼 파업은 ‘나는 혼자 살겠다’고 작정하는 선택을 가리킨다. 비혼이 늘어나면서 일본의 경우 30대 여성의 3분1이 싱글이고, 한국에서도 고학력 여성에서 크게 높아지고 있다. 최근에는 남성들 역시 결혼파업을 선언하는 비율이 늘어나고 있다. 일본에서 초식남은 아예 결혼과 데이트 등 여성에 관심이 없이 자신이 좋아하는 일에 시간과 돈을 쓰는 결혼파업의 전형이다. 스스로 선택해서 혼자 사는 삶은 자유롭고 독립적이다. 그것을 원하는 청년 특히 여성이 증가하고 있다. 결혼지연과 파업은 이들의 선택이다. 결혼포기와 지연의 상당수는 원하지 않았기 때문에 불행하고 외롭다. 사회의 심층에서 서서히 그렇지만 도도하게 변화하고 있는 가족관계, 남녀관계에 좀더 주목할 필요가 있다. 가족제도가 제공해 온 소속감과 안락함을 대체할 수 있는 대안적 사회적 관계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겠다.
  • [특파원 칼럼] 민족의 유산과 오래된 미래/이석우 도쿄 특파원

    [특파원 칼럼] 민족의 유산과 오래된 미래/이석우 도쿄 특파원

    1961년 이후에만 재일 한인학생 및 유학생 7만 8000여명에게 장학금을 지원해 온 재일 장학재단이 있다. 1960~80년대 일본에서 유학하던 상당수의 한국인 유학생들도 혜택의 예외는 아니었다.조선장학회이다. 대한민국을 모국으로 삼고 자유민주주의를 신봉하는 민단(재일본대한민국민단),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북한)을 추종하는 총련(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이 각각 추천하는 재일 동포들과 저명한 일본 학계인사 등 3자가 공동 운영하는 일본 법규에 의거한 공익재단법인이다. 장학회 이름에 ‘조선’이 붙은 탓에 ‘총련이나 북한이 직접 운영한다’는 오해도 없지 않았지만 장학생 가운데 훗날 주일 한국대사가 된 유학생도 있다. 출발점은 1900년 대한제국의 주일 한국공사관에 설치됐던 ‘유학생 감독부’로 거슬러 올라간다. 국권을 빼앗기면서 일제 산하기관 등으로 변신을 거듭하다가 1945년 일제 패망으로 그해 11월 재일 한인들로 구성된 이사회가 출범하며 전기를 맞는다. 남북 분단 등 한반도 내 좌우익 충돌의 영향으로 공중분해돼 일본 국고로 환수될 위기도 여러 차례 있었지만, 재일 좌우익 동포사회의 자제와 타협, 뜻 있는 일본 지성인들의 중재와 성원으로 지금에 이르렀다. 주요 사안을 결정하는 재단 이사회 및 평의회를 재일동포 사회의 좌우익이 같은 수의 구성원으로 운영하고 있다. ‘다수결이 아닌 합의를 전제로 한 운영’이 재단 운영의 묘(妙)였다. “이사회나 평의원회에서 (민단과 총련이 추천하는) 구성원들이 합의하면 일본인 이사와 평의원들도 합의해 주는 것이 관례”라고 한다. 이데 요시노리 도쿄대 명예교수 등이 비상임 이사로, 오쿠시마 다카야스 전 와세다대 총장, 다나카 유코 호세대 총장, 와다 하루키 도쿄대 명예교수 등이 평의원으로 각각 재단에 참여하고 있다. 도쿄의 9개 전철 노선이 교차하는 신주쿠역에서 서쪽 출구 쪽으로 3~4분 걷다 보면 육상과 지하 통로로 이어지는 지하 3층, 지상 9층의 장학회 본관을 만나게 된다. ‘장학회관’이란 이름의 신주쿠의 장학회 본관 등에서 나오는 임대료가 장학회 재원이다. 지난해 경상수익이 13억 4600만엔(약 141억 1348만원)이었고, 그 가운데 3억 8257만엔이 장학금으로 쓰였다. 대한제국에 연원을 둔 오랜 유산이 민족 후세들을 위해 쓰이고 있었다. 장학회의 역사는 어떻게 민족을 위해 함께해야 하는가를 보여준 ‘오래된 미래’이다. 그러나 재일교포 6세들이 나오는 시대적 변화 속에서 장학회도 변신과 미래를 고민하고 있다. 지속가능한 발전과 젊은 교포들의 민족적 구심점 유지에 어떻게 기여할까 등이다. 민족 교육의 이념을 어떻게 정립할지에 대한 숙제도 산적해 있다. 이념의 대척점에 서 있는 재일동포사회의 좌우익들이 재단을 여기까지 끌고 온 것만도 경이롭지만, 미래는 늘 도전과 시련을 안겨 준다. 재일동포사회가 어떻게 대립과 갈등을 넘어 새로운 정체성과 구심점을 확립해 나갈 수 있을까. 조선장학회는 재일동포사회의 과거 성취와 함께 미래 도전을 상징하는 단면이다. 빠른 속도로 일본 사회 속으로 녹아들어가는 원심력이 커진 젊은 재일동포들과 재일동포사회를 어떻게 유지시켜 나갈 수 있을까. 애환의 민족 근대사가 서려 있는 117년 역사의 민족 유산은 좌우익의 대립, 동포사회의 해체 등 우리가 함께 풀어 나가야 할 문제들을 던지고 있다. jun88@seoul.co.kr
  • 엄지온 폭풍 성장에 깜짝 놀란 야노시호 “오랜만에 재회”

    엄지온 폭풍 성장에 깜짝 놀란 야노시호 “오랜만에 재회”

    KBS2TV 육아 예능 ‘슈퍼맨이 돌아왔다’에 출연했던 추사랑과 엄지온이 만났다. 격투기선수 추성훈의 아내이자 일본인 모델인 야노시호는 17일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지온이와 오랜만에 재회”라는 글과 함께 사진을 게재했다. 흑백사진에는 우아한 포즈로 서있는 엄지온과 소파에 엎드려 여전한 장난기를 보이고 있는 추사랑의 모습이 담겨 있다. 배우 엄태웅 딸인 엄지온은 부쩍 성숙해진 외모로 눈길을 끌었다. 방송에서 하차한 후에도 우정을 유지하고 있는 모습이 훈훈함을 자아낸다. 한편 추성훈과 야노시호, 추사랑은 SBS의 새로운 가족여행 예능 ‘추블리네가 떴다’에 출연한다. 오는 26일 토요일 오후 6시10분 첫 방송을 앞두고 있다. 이보희 기자 boh2@seoul.co.kr
  • 문재인 대통령 광복절 경축사서 호명한 ‘독립운동가 5인’

    문재인 대통령 광복절 경축사서 호명한 ‘독립운동가 5인’

    의사 출신 이태준, 과학자 김용관…영화감독 나운규간도 참변 취재 중 실종된 장덕준·‘독립군 어머니’ 남자현 문재인 대통령이 15일 제72주년 광복절 경축식 경축사에서 독립운동가 5인의 이름을 일일이 불러 관심이 쏠리고 있다.문 대통령이 호명한 독립운동가 5인은 우리나라의 대표 독립운동가로 손꼽히는 인물들로 대부분 국가보훈처 선정 이달의 독립운동가에 뽑혔다. 이날 문 대통령은 의사·기자·과학자 등 다양한 분야에서 독립을 위해 애쓴 이들의 이름을 부르며 숭고한 희생을 기렸다. 우선 이태준(1883∼1921) 선생은 몽골에서 의술을 펼치면서 독립운동을 도왔다. 경남 함안 출신으로 세브란스의학교를 졸업한 선생은 안창호 선생의 추천으로 비밀결사 신민회의 외곽단체인 청년학우회에 가입해 활동하다 일제가 날조한 ‘105인 사건’으로 체포 위기에 처하자 몽골로 망명했다. 선생은 몽골 고륜(지금의 울란바토르)에서 동의의국이라는 병원을 열어 근대 의술로 몽골인들을 치료했고 황제의 주치의까지 지냈다. 선생은 신한천년당 대표로 파리강화회의에 파견된 김규식에게 독립운동 자금을 지원한 열렬한 독립운동가였다. 몽골을 점령한 러시아 백위파(러시아 혁명 반대세력) 대원에 의해 38세의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장덕준(1892∼1920) 선생은 황해도 재령 출신으로 1914년 평양 일일신문사에 입사해 언론인이 됐다. 1915년 일본으로 유학을 갔다가 이듬해 돌아와 동아일보 창간에 참여했고 ‘추송’이라는 필명 하에 ‘조선 소요에 대한 일본 여론을 비평함’이라는 논설로 일본의 3·1 운동 왜곡을 비판했다. 1920년 만주에서 일본군이 독립군의 청산리 대첩에 대한 보복으로 조선인 수천 명을 학살한 ‘경신참변’이 발생하자 현장으로 가 일본군의 만행을 취재했다. 취재 중 일본인에게 불려 나간 뒤로 소식이 끊겼는데 상하이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 발간한 독립신문은 선생이 일본군에 암살당했다고 보도했다. 선생은 한국 언론사상 첫 순직 기자가 됐다. 남자현(1872∼1933) 선생은 1919년 3·1 운동에 참가한 뒤 만주로 망명해 서로군정서·대한통의부 등 항일 단체에 가담했다. 북만주 일대에서 예수교회와 여성교육기관을 만들어 여성계몽운동을 벌이고 1920년 청산리 대첩에서 부상한 독립군 치료에 힘을 쏟아 ‘독립군의 어머니’로 불렸다. 1932년에는 왼손 무명지를 잘라 흰 수건에 쓴 ‘한국독립원(韓國獨立願)’이란 혈서와 손가락을 국제연맹조사단에 보내 조선의 독립을 호소하기도 했다. 1933년 일본 고위관리를 암살하려고 무기를 운반하다 하얼빈에서 일본경찰에 체포돼 6개월간 옥고를 치른 뒤 ‘독립은 정신으로 이뤄진다’는 말을 남기고 순국했다. 김용관(1897∼1967) 선생은 경성공전을 졸업하고 조선총독부 장학생으로 일본 유학을 다녀와 과학기술 대중화에 앞장선 운동가였다. 민족의 힘을 키우는 데는 과학의 부흥이 필요하다고 생각해 1932년 ‘발명학회’를 조직했고 이듬해 일제강점기 대표적 대중 과학기술 잡지인 ‘과학조선’을 창간했다. 일본의 탄압 속에서도 발명학회의 활동은 활발하게 이뤄졌지만 1937년 중일전쟁 발발 후 일제의 군국주의가 노골화하며 급속히 위축됐고 김 선생도 일선에서 물러났다고 한다. 1967년에 암으로 세상을 떠난 것으로 알려졌다. 나운규(1902∼1937) 선생은 영화 ‘아리랑’을 통해 민족의식을 고취한 독립군 출신 영화감독으로 비교적 잘 알려진 인물이다. 함경북도 회령 출신인 선생은 고향에서 1919년 3·1 운동에 참여했다가 일본 경찰의 수배를 받게 되자 연해주를 거쳐 북간주로 이주했다. 간도지역에서 무장 독립운동이 활발할 때는 철도와 통신 등 일제의 기관시설 파괴 임무를 띤 독립군으로 활약했다. 철도 파괴 계획이 일본의 손에 들어가 2년간 옥고를 치른 선생은 1924년 극단 예림회에 가입, 연극배우로 활동했고 ‘심청전’, ‘흑과백’ 등의 연극에도 출연했다. 1926년 민족주의 성향이 강한 영화 ‘아리랑’을 제작해 주목을 받았고 ‘풍운아’, ‘잘 있거라’, ‘사랑을 찾아서’ 등의 작품도 만들었다. 1937년 폐병으로 35세의 젊은 나이에 생을 마감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일본인들이 사들이는 ‘핵폭탄 벙커’ 내부는

    일본인들이 사들이는 ‘핵폭탄 벙커’ 내부는

    미국과 북한 간 긴장이 고조되면서 일본인들이 핵 공격에 대비한 ‘지하 셸터’를 사들이고 있다고 14일 마이니치신문이 보도했다. 이에 따르면 미 캘리포니아주에 있는 지하 셸터 제조회사인 ‘아틀래스 서바이벌 셸터스’는 북한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급 ‘화성 14형’ 발사에 성공했다고 발표한 지난달 초 이후 미국 안팎에서 문의가 쏟아지고 있다. 특히 일본으로부터의 주문이 급증하고 있어 일본발 수요 증가에 대응하기 위해 일본 사무소를 개설하고 남부 텍사스주에는 일본 수출 전용의 셸터 제조공장을 세웠다고 신문은 전했다. 이 회사는 자사 홈페이지에서 ‘핵폭탄을 피할 수 있는 유일한 벙커’라고 제품을 홍보하고 있다. 6개월~1년간 피난생활이 가능한 이 셸터에는 침대와 소파, 주방 등 가구들이 완비되어 있다. 셸터의 크기와 시설에 따라 가격이 다른데, 주택의 지하에 설치하는 소형 셸터는 배송비와 공사비를 포함해 3만 달러(약 3400만원)다. 피난용 터널과 제염실이 갖춰진 셸터는 6만 달러(약 6800만원) 이상이다. 6명이 거주할 수 있는 ‘호화 모델’은 가죽소파와 침대, 전자레인지, 냉장고 등 호텔급 시설은 물론 피난용 터널과 샤워 시설을 갖춘 제염실도 딸려 있다. 가격이 10만 달러가량 하는데도 지난달 이후 일본으로부터 30건 이상의 주문이 들어와 있다고 회사 관계자는 전했다. 론 허버드 사장은 주문 급증의 배경에 대해 “미국과 북한이 상대방을 계속 도발하면서 일본에서 비상사태가 일어날 수 있다는 위기를 느끼게 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민희 기자 haru@seoul.co.kr
  • 매국노 이완용이 소유했던 땅 규모, 현재 여의도 면적의 7.7배

    매국노 이완용이 소유했던 땅 규모, 현재 여의도 면적의 7.7배

    조선의 국권을 일본에게 넘겨주는데 앞장섰던 대표적인 매국노 이완용의 전체 재산 규모가 처음으로 확인됐다.SBS는 노무현 정부 때 출범해 4년 동안 활동했던 친일재산조사위원회 내부 보고서를 입수해 이완용의 재산 규모를 확인했다고 14일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과거 친일재산조사위원회는 조선총복부 지적 원도까지 찾아서 이완용이 소유했던 전국의 땅 규모를 확인했다. 그 결과 이완용이 광복 전까지 소유했던 부동산은 알려진 것보다 663만㎡ 더 많은 2234만㎡로 조사됐다. 이는 여의도 면적의 7.7배 크기로, 친일재산조사위원회가 4년 간의 활동 끝에 친일파 168명으로부터의 환수를 결정한 전체 토지의 1.7배 규모이기도 하다. 이준식 전 친일재산조사위원회 상임위원은 “전국 각지에 이완용이 땅을 안 갖고 있는 곳이 없다고 할 정도로 많은 땅을 소유하고 있었고, 그 많은 땅이란 게 결국은 친일의 대가였다”고 말했다고 SBS는 전했다. 이완용이 소유했던 토지 분포 현황을 체적으로 살펴보면, 군산·김제·부안 등 전북에 73%, 서울과 경기에 27% 정도가 있었다. 친일재산조사위원회는 이완용이 러·일 전쟁 전후로 곡창지대인 전북에 대거 진출한 일본인들에게 비싼 값에 팔아넘기기 위해 전북 땅을 집중매입했다고 결론을 내렸다. 실제로 이완용 일가는 소유했던 토지의 98%를 4명의 일본인 지주에게 광복 전에 팔아넘긴 것으로 확인됐다. 이 전 상임위원은 “이완용은 일시적으로 소유한 땅은 굉장히 많은데 그 땅을 계속 소유한 게 아니라 계속 처분을 했다”면서 “이완용 별명이 현금왕이었다”고 덧붙였다. SBS는 이완용이 부동산은 다 팔아 치우고, 그가 갖고 있던 현금 규모는 파악조차 어렵다면서 친일재산조사위원회가 환수 결정한 이완용의 땅은 1만 928㎡, 즉 그가 소유했던 토지의 1%도 안 되는 0.05%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오세진 기자 5sjin@seoul.co.kr
  • 명성황후 초상화 공개 “왕비라기엔 너무 초라하다” 반론도

    명성황후 초상화 공개 “왕비라기엔 너무 초라하다” 반론도

    광복절을 앞두고 고종의 비인 명성황후(1851∼1895)를 그린 것으로 추정되는 새로운 초상화가 나왔다.서울 종로구 다보성갤러리는 대한제국 선포 120주년,광복 72주년을 맞아 14일 개막한 특별전에서 평상복 차림의 ‘전(傳) 명성황후 초상’을 공개했다. 이 초상화는 세로 66.5㎝, 가로 48.5㎝ 크기로,두건을 쓰고 하얀 옷을 입은 여성이 손을 가지런히 모은 채 서양식 의자에 앉아 있는 모습을 묘사했다. 족자 뒷면에는 ‘부인초상’(婦人肖像)이라는 글자가 세로로 적혀 있다. 다보성갤러리 측은 적외선 촬영 결과 ‘부인’ 글자 위에 ‘민씨’(閔氏)라는 글씨가 있었으나 나중에 훼손된 것으로 확인했다고 밝혔다. 다보성갤러리는 그림 속 인물이 착용한 신발이 고급 가죽신인 데다 이승만 전 대통령이 쓴 ‘독립정신’의 명성황후 추정 사진과 용모와 분위기가 비슷하다는 점을 들어 명성황후의 초상화가 맞다고 주장했다.이어 왕비가 평상복을 입어 격이 맞지 않는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저고리와 치마에 무늬가 있어서 평민이 입던 옷과는 다르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학계에서는 이 그림을 명성황후 초상화로 단정할 만한 결정적 단서가 없다는 반론이 나왔다. 미술을 전공한 한 교수는 실물을 보지 못해 정확한 감정이 어렵다면서도 “한복에 대한 이해도가 떨어지는 점을 보면 화가가 한국인이 아니라 일본인일 확률이 매우 높다”고 말했다. 그는 “사진을 보고 얼굴과 두건만 베껴 그린 뒤 옷과 의자는 꾸며서 그린 것 같다”며 “초상화의 얼굴 모양도 일본인과 흡사하다”고 덧붙였다. 근대사 분야의 또 다른 교수도 명성황후의 초상화가 아닐 것으로 판단된다면서 “옷차림이나 용모를 보면 왕비의 초상화라고 하기에는 너무 초라하다”고 말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김욱동의 창문을 열며] 새 시대에는 새 아이콘을

    [김욱동의 창문을 열며] 새 시대에는 새 아이콘을

    요즈음 일본은 2020년 하계올림픽을 앞두고 그 준비로 여간 분주하지 않다. 가득이나 꼼꼼하기로 유명한 일본인들은 외국 손님을 맞는 데 한 치의 착오도 없이 준비하려고 그야말로 야단법석이다. 그중 하나가 지금까지 일본 지도나 신호, 관광 안내문 등에서 사용해 온 공공시설 안내 표지를 새롭게 정비하는 일이다. 가령 최근 일본에서는 그동안 사용해 온 불교 사찰 상징(卍)을 흔히 ‘하켄크로이츠’로 일컫는 나치 상징(?)과의 혼동을 피하기 위해 다른 상징으로 교체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실제로 이 두 상징은 얼핏 보아서는 쉽게 구분할 수 없다. 그러나 삼라만상에 대한 자비를 최대 미덕으로 삼는 불교는 인류 역사에 치욕을 남긴 나치와는 달라도 너무 다르다. 불교에서는 길가에 나뒹구는 돌멩이 하나에도 불성이 깃들어 있다고 보는 반면 나치주의자들은 유대인들을 ‘사회적 기생충’으로 간주해 박멸 대상으로 삼지 않았던가. 현재 독일에서는 나치나 나치의 상징물을 사용하는 사람들은 형법에 따라 처벌받는다. 이런 상황에서 전통적인 불교 사찰 표지는 외국인들에게 자칫 나치를 찬양하는 표지로 오해받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또 일본의 도시와 시골 곳곳에 붙어 있는 온천이나 목욕탕 표지도 정비 대상으로 검토 중에 있다. 현재 일본에서 사용하는 표지는 타원형 위에 하늘로 올라가는 듯한 수증기 세 개로 표현한다. 한국에서 사용하는 표지와 거의 비슷하다. 그렇다면 일본 정부는 왜 이 표지를 변경하려고 하는 걸까. 두말할 나위 없이 외국인이 볼 때 온천이나 목욕탕보다는 우리네 설렁탕 같은 따뜻한 요리가 나오는 식당으로 오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종래의 표지 대신 어른 2명과 어린아이 1명이 타원형 안에 몸을 담그고 있는 장면을 묘사한 디자인을 새로운 온천 표시로 선택하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 일본 정부의 여론조사에서는 외국인의 70%가 새 온천 표지가 이해하기 쉽다고 답한 반면 일본인의 60%는 현재의 표지가 이해하기 더 쉽다며 현행 표지를 유지할 것을 주장했다. 일본 정부는 전문가와 일반인, 여행객 등의 의견을 좀더 듣고 나서 새 표지를 확정할 계획이다. 그러나 일본 온천 업계는 이 표지를 바꾸려는 정부의 방안에 부정적인 입장이다. 일본 정부가 안내 표지 변경을 위해 개최한 회의에서 온천이 밀집해 있는 오이타(大分)현과 군마(群馬)현에서 온 온천 업계 관계자들은 2020년까지 온천 표지를 모두 바꾸기란 현실적으로 힘들다며 현재의 표지를 계속 사용할 것을 요청하고 있다. 그렇다면 2018년 강원도 평창에서 열리는 제23회 동계올림픽대회를 바로 코앞에 두고 있는 한국의 사정은 과연 어떠한가. 일본인들은 2020년 올림픽을 앞두고 벌써부터 이렇게 철저히 준비하고 있는데 한국은 온갖 표지를 어떻게 정비하고 있는지 자못 의문이다. 가령 공중 화장실 표지만 해도 그러하다. 남자 화장실은 바지를 입고 있는 남성의 이미지로, 여자 화장실은 치마를 입고 있는 여성의 이미지로 만들어 사용한 지 이미 오래됐다. 그러나 요즈음 치마를 입는 여성보다는 바지를 입는 여성이 훨씬 많다. 이런 상황에서 바지와 치마로 성별을 구별 짓는 이미지는 시대에 잘 들어맞지 않는다. 공중 화장실을 사용할 때 어느 쪽을 사용해야 할지 망설이는 사람이 한둘이 아닐 것이다. 여러 번 두리번거리다가 ‘남자’나 ‘여자’라는 글자를 확인하고 나서야 비로소 안심하고 들어가는 것이 보통이다. 현재 한국에서 사용하는 표지 중에 국제 표준과 다른 것이 있으면 과감하게 바꿔야 한다. 전통적인 것이라고 하여, 또 예로부터 관행적으로 사용해 왔다고 하여 고집 부릴 이유가 전혀 없다. 언어는 국가나 문화에 따라 서로 다를지언정 상징이나 표지는 국제사회가 하나로 통일해 사용하는 공통어다. 이런 상징이나 표지가 서로 다르면 교통신호 체계가 서로 다를 때처럼 큰 혼란이 빚어질 것이다.
  • “강제징용자상 세우는 데 일본보다 한국서 시간 더 걸려”

    “강제징용자상 세우는 데 일본보다 한국서 시간 더 걸려”

    “강제징용 피해 노동자들의 고통을 하나의 형상으로 압축하기 쉽지 않았습니다.”서울 용산역광장에 세워진 ‘일제 강제징용 노동자상’을 만든 작가 김운성(52)씨는 지난 12일 동상 제막식에서 “일제강점기 일본에 강제로 끌려간 조선인들은 징병, 광산, 농장, 군수공장, 토목공사 등 너무나 다양한 형태로 고통을 겪었다”며 이같이 강조했다.용산역은 일제가 조선인을 강제로 징용하거나 모집해 일본으로 데려간 전초기지로 어린이와 여성을 포함해 최소 100만명이 넘는 조선인이 용산역광장에 집결해 나가사키 군함도 등 일본과 사할린, 쿠릴 열도, 남양군도 등으로 끌려갔다. 대부분은 고국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질병과 지진, 원자폭탄 투하 등으로 사망했다. 일본대사관 앞에 있는 ‘평화의 소녀상’을 부인 김서경(53)씨와 제작했던 김씨는 이번 노동자상 제작에 대해 “일본에는 바로 세워졌는데 오히려 한국에 세우는 데 시간이 더 걸렸다”면서 “(동상을) 만들긴 작년에 다 만들었다. 이는 아직도 친일파들이 알게 모르게 작동한다는 걸 방증하는 거라고 본다”고 말했다. 노동자상은 지난해 8월 24일 일제 강제징용 역사를 증언하는 일본 교토시 단바 망간광산 기념관에 처음 세워졌다. 이어 두 번째 동상을 바로 제작했지만 세우는 일은 쉽지 않았다. 당초 올해 삼일절에 제막식을 하려고 했으나 박근혜 정부에서 ‘국가 부지라 부적절하다’며 건립을 불허했기 때문이다. 김씨는 “이번 노동자상은 평화의 소녀상과는 달리 ‘예술로의 승화’ 측면에서 성에 차지 않는다”면서 “동상을 세우기에 앞서 조사를 하다 들은 애절하고 애잔한 많은 얘기를 형상화해야 하는데 이를 승화시키지는 못한 것 같다”고 고백했다. 김씨는 “이번에는 탄광에서 일한 피해자만을 형상화했지만 다른 방식으로 착취당한 피해자들도 반드시 작품으로 다뤄 사람들이 강제징용 피해자 모두를 기억하게 하고 싶다”면서 “앞으로 강제징용 피해자들을 ‘시리즈’로 만들어 나갈 생각”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조선인 피해자뿐 아니라 이들을 도와준 일본인들의 아름다운 이야기도 작품에 담아 내고 싶다”면서 “예술을 통해 슬픔과 아픈 과거를 잊지 말자는 메시지를 던질 수 있고, 그래야지 더 참혹한 일을 당하지 않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문경근 기자 mk5227@seoul.co.kr
  • ‘VR+모바일’ 특별한 다큐 세계로의 초대

    ‘VR+모바일’ 특별한 다큐 세계로의 초대

    올해 14회를 맞이하는 EBS국제다큐영화제(EIDF)가 오는 21~27일 경기 고양과 서울에서 열린다. 이번 EIDF에서는 가상현실(VR)과 모바일 단편 등 최첨단 기술들을 활용해 표현을 확장한 특별전이 신설돼 더욱 눈길을 끈다. 얀 쿠넹, 빌 모리슨, 아모스 기타이 등 거장들의 신작과 틸다 스윈턴, 헬렌 미렌, 콜린 파렐 등 세계 유명 배우들이 참여한 작품들도 주목할 만하다.●마르투족 고향으로의 가상여행 ‘흔적들’ 영상 미술과 다큐멘터리 제작을 넘나드는 리넷 월워스 감독의 ‘흔적들’(Collisions)은 VR기술을 활용해 호주의 원주민 마르투족의 고향을 아름답게 재현해낸다. 서호주 필바라 사막의 원주민 마르투족은 1960년까지 전통을 유지하며 살고 있었다. 그러나 서구 문명이 밀려들어 오기 시작하고, 마르투족의 원로 니아리 모르간이 처음 마주친 현대 문명은 단 한 번도 본 적 없었던 핵실험이었다. 이 작품은 지난해 선댄스영화제에서도 크게 화제가 됐다. 월워스 감독은 “VR은 관객을 단순히 보는 사람으로 놔 두지 않고 영상 속으로 끌어들인다”고 했는데, 관객은 기존 카메라가 바라보는 관점에서 벗어나 자신이 바라보는 방향에 따라 360도 다른 모습을 볼 수 있다. 월워스 감독은 화면에 비쳐지는 모습에 따라 화자의 목소리도 달라질 수 있도록 설정함으로써 VR의 경험을 보다 생생하게 전달한다.●조선인을 도운 일본인 ‘기록작가 하야시의 저항’ 주목할 만한 아시아 다큐멘터리를 한자리에 모은 ‘아시아의 오늘’ 섹션에서는 일본,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인도에서 제작된 4편의 영화가 소개된다. 일본 후쿠오카 지역 방송의 PD인 니시지마 신지 감독이 만든 ‘기록작가 하야시 에이다이의 저항’은 불편한 역사의 진실을 끝까지 외면하지 않고 기록하려는 용기 있는 작품이다. 후쿠오카 탄광으로 끌려간 조선인 징용 노동자들을 돕다가 고문당해 죽은 아버지로 인해 ‘비국민’으로 비난받으면서도 평생 역사의 진실을 기록하며 저항해 온 작가 하야시의 일대기를 담았다. 하야시는 50년 동안 조선인 강제 연행을 기록하며 57권의 책을 냈는데, 류승완 감독 역시 영화 ‘군함도’를 쓰면서 하야시를 만났다고 밝힌 적이 있다. 오는 24일 오후 6시 30분 일산 메가박스 킨텍스에서 영화 상영 후 ‘다큐 콘서트’를 통해 니시지마 감독과의 대담이 열린다.●낯선, 그러나 본 듯한 기억들 ‘모자란 기억’ ‘월드 프리미어’에 소개된 박군제 감독의 ‘모자란 기억’은 EIDF가 직접 발굴한 작품으로 실험정신이 돋보인다. 경기 남양주 마석가구공단에 간 감독은 어디서 본 것만 같은 느낌에 사로잡힌다. 어릴 적 인천 남동공단에서 외국인 노동자와 함께 살았던 추억이 어렴풋이 떠올랐지만, 그 시절을 기억할 수 있는 건 사진뿐이다. 기억을 더듬어 그린 그림과 애니메이션, 사진, 그리고 어머니의 목소리들이 모여 영화를 완성한다. 기억을 통해 복원된 모습은 20여년 전 경제 개발 논리가 지금도 사라지지 않은 채 외국인 노동자들이 그 자리를 대신 메우고 있는 공단의 모습이다.●중동의 지형을 바꾼 여성 ‘바그다드에서 온 편지’ ‘월드 쇼케이스’에는 전 세계에서 제작된 거장들의 신작, 화제작, 논쟁작들을 모았다. ‘설국열차’와 ‘옥자’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틸다 스윈턴이 제작과 해설을 맡아 더욱 화제가 된 ‘바그다드에서 온 편지’는 영국의 고고학자 거트루드 벨의 삶의 궤적을 쫓는다. 옥스퍼드대에서 공부한 뒤 중동에 수시로 드나들며 오스만제국의 해체와 이라크 건국에 관여한 벨은 ‘아라비아의 로렌스’로 알려진 영국 정보국 장교 토머스 로렌스 못지않게 중동의 현대사에 중요한 역할을 한 인물이지만 여성이라는 이유로 제대로 조명받지 못했다. 서빈 크라옌부히, 제바 오엘바움 등 두 여성 감독은 그동안 공개되지 않았던 벨의 일기와 편지, 사진, 엽서 등을 토대로 주변인물들의 인터뷰를 재연한다. 개막작으로는 청소년들이 문학과 음악, 미술 교육을 통해 성장해 나가는 모습을 담은 찰스 오피서 감독의 ‘나의 시, 나의 도시’가 선정됐다. 신은실 EIDF 프로그래머는 “최근 몇 년 동안 세계적으로 난민과 이주노동자, 어린이 등 소외된 계층과 빈곤 문제에 대한 관심이 높게 나타났다”면서 “동시에 유명 배우들의 참여와 예술가들의 삶을 다룬 전기가 많아졌고, 관객과의 대화를 통해 대중에게 다가가기 위한 노력도 활발해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신융아 기자 yashi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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