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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식민 굴욕 겪은 조선인, 무의식에 남은 ‘불안’

    식민 굴욕 겪은 조선인, 무의식에 남은 ‘불안’

    식민지 트라우마/유선영 지음/푸른역사/388쪽/2만원 조선 사람들은 식민지라는 공동체에서 치욕스러운 역사를 경험한 ‘레 미제라블’(비참한 사람들)이다. 이들은 일제와 서구 열강에 의한 굴욕이 일상화되면서 자존감, 인격이 훼손되는 것은 물론 정체성을 부정당하는 끔찍한 시간을 견뎌야 했다. 식민 지배 경험이 아니었다면 겪지 않았을 정신의 상흔은 민족과 역사의 심연에 켜켜이 쌓여만 갔다. 과연 식민지 경험이 조선인들에게, 현재 한국 사회에 남긴 상처는 얼마나 깊은 것일까.신간 ‘식민지 트라우마’는 식민 지배를 정치적 억압, 경제적 착취, 사회적 불의의 역사가 아닌 민족이 겪은 ‘감정’들로 이루어진 역사로 바라본다. 장기간 모욕과 폭력에 노출된 조선인들은 논리가 결여된 복합적인 감정에 사로잡혔다. 일본의 근대성을 접한 뒤 일본인을 경외하게 된 조선인들은 어쩔 수 없는 힘의 차이를 자각하면서 스스로 약자, 야만인이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만다. 그리하여 근대성은 과거, 전통, 역사를 부정하고 파괴하면서까지 힘써 도달해야 하는 맹목적인 목표가 되기에 이른다. 자기 주도권을 상실하고 모욕감에 사로잡힌 사람들은 이민족을 향해 분노와 공격성을 드러내기도 했다. 일본인이 조선인을 개돼지처럼 여기듯 조선인들은 중국인을 업신여기고 홀대했던 것이다. 이처럼 비교를 통해 우위를 확인하는 나르시시즘은 조선인들이 살아가는 힘이었기 때문이다. 또 그들은 양복을 입고 영화를 보고 영자신문을 주머니에 꽂는 등 서양 문물을 숭배하며 자기 존재를 인정받고 싶은 욕구에 사로잡히기도 한다. 근대성에 대한 트라우마는 결국 근대성의 성취를 통해서만이 치유될 수 있었던 현실적 한계 탓이다. 저자는 각종 신문과 잡지, 책 등의 자료에서 얻은 구체적인 사례를 수집해 식민지 당시의 다양한 풍경을 꼼꼼히 그려낸다. 저자는 그간 우리가 미처 몰랐던 식민사회 조선인의 생생한 민낯을 바라보는 일은 현재를 직면하기 위한 통과의례 같은 것이라고 말한다. 한국은 식민지 상태에서 벗어난 후 전 세계적으로 유례없는 빠른 경제성장과 민주주의를 성취했지만 여전히 알 수 없는 불안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이다. 인종차별과 식민주의에 맞선 사상가인 프란츠 파농이 식민지의 민족문화를 복원하는 것이야말로 완전한 탈식민화라고 했듯이 저자는 식민지민의 피부 밑에 서린 감정을 온전히 파악해야 한국 사회가 새롭게 시작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조희선 기자 hsncho@seoul.co.kr
  • [2017 서울미래유산 그랜드투어] 가슴 먹먹했던 조선인들의 ‘치욕의 자리’

    [2017 서울미래유산 그랜드투어] 가슴 먹먹했던 조선인들의 ‘치욕의 자리’

    집결지인 남산골 한옥마을에 도착하니 일행 30여명이 벌써 와 있었다. 해설을 맡은 노주석 원장님의 “서울 살면서 한옥마을에 처음 온 분이 있다면 반성해야 한다”는 말씀에 뜨끔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한옥마을에 발을 들였으니 말이다.경쾌했던 출발과는 달리 여정 내내 마음이 무거웠다. 권력의 말초신경 역할을 했던 중앙정보부와 안기부 건물을 지나 일본이 식민통치를 위해 세운 통감부 터에 도착했다. 경술국치 이후 106년 만인 2016년 8월 29일에 조성된 ‘위안부 기억의 터’에는 네 개의 구조물이 전시돼 있다. 가운데엔 통감부 터였음을 알리는 푯돌과 을사늑약에 날인한 일본공사 하야시 곤스케의 동상 기둥석이 거꾸로 세워져 있고 양옆엔 위안부 할머니 247명의 성함과 증언들이 새겨진 ‘대지의 눈’과 기억하지 않는 역사는 되풀이된다는 글귀가 4개 국어로 새겨진 ‘세상의 배꼽’이 설치되어 있다. 가슴이 먹먹했다. 서울애니메이션센터에 도착했을 때 만화캐릭터의 구조물 속에서 1921년 조선총독에게 폭탄을 던진 김익상 의사의 의거 터라는 표석과 한국통감부 조선총독부 터라는 표석을 보았다. 서울미래유산으로 선정된 남산원 자리는 일제강점기 노기신사 자리였다. 안중근 의사 동상이 서 있는 남산 중턱엔 조선신궁이 있었고 신사와 신궁을 포함한 이 일대는 일본 거류민을 위한 공원으로 조성됐던 자리라니, 110년 전 이곳은 조선인들에게는 치욕의 자리요, 일본인들에게는 능욕의 자리였던 셈이다. ‘한양공원’이라고 한자로 쓰인 비석 앞에 다다랐다. 한양공원은 1910년 일본 거류민들의 휴식공간으로 조성됐다. 당시 한양도성이 1000만 평이었는데 공원 규모가 30만 평이었다 하니 어마어마한 규모다. 허수아비 황제였던 고종은 공원 개장을 축하하며 ‘한양공원’이라는 이름을 보냈다. 고종이 한양공원이라는 글을 꾹꾹 눌러쓰는 심정을 상상해 봤다. 위안부 할머니들이 그랬듯이, 통감에게 폭탄을 던진 김익상 의사와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한 안중근 의사가 그랬듯이 말이다. 기억해야 할 것은 고종 황제가 ‘한양공원’이란 글자를 쓰던 바로 그 시간이다. 고종의 필적을 가슴에 새겨 오늘의 기억을 삶 속에서 실천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박정아 서울도시문화연구원 서울미래유산연구팀
  • [2017 서울미래유산 그랜드투어] 고종이 쓴 ‘한양공원비’… 불행했던 남산을 품었네

    [2017 서울미래유산 그랜드투어] 고종이 쓴 ‘한양공원비’… 불행했던 남산을 품었네

    서울미래유산으로 지정된 한양공원비는 서울 중구 소파로 57 남산케이블카 승강장에서 100여m 올라간 지점에 무심히 서 있다. 차를 타고 남산을 드라이브하는 사람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외진 곳이다. 한양공원비의 내력을 설명하는 표석이나 안내문은 없다. 비석보호용으로 보이는 사각 돌기둥 3개가 꼽혀 있다.한양공원은 기억이나 사건 목록에 없는 이름이다. 서울에 거주하는 일본인들이 1908년 남산 기슭 30만평을 무상임대받아 조성한 위락시설이며 이를 기념하기 위해 1910년 공원 입구에 표지석을 세웠다는 기록이 있다. 비석의 정체는 표지석이었다. 표지석 앞에 또 표지석을 세울 수는 없는 노릇이니 혼자 서 있는 상황이 이해된다. 갑신정변이 일어난 다음 해인 1885년 불과 19가구 89명에 불과하던 국내 일본인 수가 1905년 러·일전쟁 승리 후 1986가구 7677명으로 불었다. 열도에서 건너온 일본인 가족용 놀이터였다. 앞면에 새겨진 한양공원(漢陽公園)이라는 네 글자는 고종의 친필글씨이다. 1910년이면 끈 떨어진 권력이지만 황제의 글씨를 함부로 길거리에 세우지는 않았을 터인데 왜 친필을 내렸을까. 남산땅을 야금야금 잠식한 채 곳곳에 신사와 공원을 세우는 것을 보다 못한 고종이 이곳이 조선땅이라는 사실을 알려주기 위해 지명이 들어간 비석을 하사한 게 아닌가 추측해 볼 뿐이다. 비석은 왜 이곳에 있을까. 한양공원은 공원 구실을 못했다. 일제는 공짜로 얻은 땅에 13만평 규모의 조선신궁을 짓기로 하면서 무성하던 소나무를 송두리째 뽑았다. 해방 이후 행방이 묘연하던 비석은 2002년 케이블카 승강장 근처 철조망 안쪽 풀숲에서 발견됐다. 비석 뒷면은 곰보딱지처럼 무참하게 정으로 쪼여 글자를 알아볼 수 없는 상태다. 비석 뒷면을 놓고 말이 많았다. 비석을 세우는 데 돈을 댄 친일 부역자의 명단이라는 설이 난무했다. 그러나 조선총독부가 조선신궁 건립 10주년 기념으로 발간한 사진집인 ‘은뢰’에 실린 비문 뒷면 사진을 통해 문구 대부분이 해독됐다. 전체 내용은 일본인 경성거류민단장이 쓴 평범한 ‘한양공원기’에 불과했다. 한양공원비는 홀로 남산의 불행했던 과거를 품고 비바람 앞에 서 있다. 노주석 ㈔서울도시문화연구원장
  • [2017 서울미래유산 그랜드투어] 약탈과 인권유린 공간… 기억하기 싫은 역사를 기억하다

    [2017 서울미래유산 그랜드투어] 약탈과 인권유린 공간… 기억하기 싫은 역사를 기억하다

    서울신문이 서울시 및 ㈔서울도시문화연구원과 함께하는 ‘2017 서울미래유산-그랜드투어’ 5차 탐사가 남산 아랫마을 남촌 일대에서 진행됐다. 6월의 넷째주 주말인 지난 24일 오전 10시 집결지인 남산골 한옥마을을 출발할 때만 해도 불볕더위가 기승을 부렸지만 종착지인 안중근장군동상 아래서 파할 무렵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타는 목마름을 채워 주기엔 부족했지만 경건한 순례에 화답하는 듯했다. 투어단 30여명은 남산골 한옥마을~필동문화예술거리~서울소방재난본부~통감관저 터와 위안부 기억의 터~서울문학의 집~애니메이션센터~남산원~한양공원비~삼순이계단~안중근의사기념관까지 눈부신 신록과 화려한 스트리트 뮤지엄 그리고 나라 잃은 부끄러움과 인권유린의 기억이 겹겹이 버물린 남산길을 2시간 30분여간 뚜벅뚜벅 걸었다.코스 중 옛 중앙정보부 청사들, 남산원, 남산육교 고가차도, 범바위, 한양공원비가 각각 서울미래유산으로 지정돼 있다. 시간관계상 1961년에 만들어진 남산육교 고가차도와 남산 범바위 그리고 인권유린의 현장인 서울유스호스텔과 남산창작센터는 그냥 지나쳐야 했다. 길이 41m의 남산육교는 남대문에서 남산 가는 길을 내기 위해 한양도성을 깔아뭉개고 만든 문화재 훼손의 주범이며 범바위는 남산 무속신앙의 본거지로 유명하다. 남산 예장자락 숲을 파괴한 옛 중앙정보부 청사 30여동은 서울시 등 여러 기관이 사용 중이다. 이 중 서울미래유산으로 지정됐던 중앙정보부 제6국과 교통방송 등 건물 두 채가 철거된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서울시는 이 공간에 인권의 소중함을 상기하는 메모리얼 홀과 광장을 조성한 뒤 ‘국치의 길’과 ‘인권의 길’ 같은 역사교훈여행(다크투어) 코스를 운영할 예정이다. 취지는 좋지만 ‘네거티브 헤리티지’도 엄연한 문화재다. 미래에 남길 유산으로 스스로 지정한 건물을 헐지 않고 활용하는 방법을 찾지 않은 점이 아쉽다.남산은 한양의 수호신 목멱대왕을 모신 상징산이며, 한양을 지키는 남쪽 울타리다. 사대문 중심의 한양에서는 남쪽 산이었지만 서울이 한강 너머 강남으로 확대된 1963년 이후에는 서울의 강남과 강북을 잇는 중앙산이 됐다. 남산은 기원전 18년 한강변 한성백제의 융기와 몰락, 신라·고구려·백제 삼국의 한강 쟁패기, 고려의 남경시대, 조선 한양의 흥망성쇠를 묵묵히 지켜봤다. 남산은 지금도 한양도성 성곽과 봉수대, 남산타워가 자리한 서울의 대표 경관이며 도심과 한강을 연결하는 생태녹지축의 중심이다. 서울의 대표적인 꽃구경(木覓賞花)과 순성 순례지이기도 했다. 지금도 서울을 찾는 외국인관광객 40%가 방문하는 관광명소이다. 2000년 서울의 역사를 오롯이 담고 있는 유일한 그릇이다.남산은 서울의 영광과 안녕을 상징하는 산이지만, 강점기 일제에 약탈당하고 군부정권기 인권말살이 자행된 영욕의 공간이다. 신라 경주의 남산, 고려 개경의 남산과 함께 이 땅의 자랑스러운 전통을 잇는 수도의 ‘앞산’인 남산은 근대 100년 넘게 ‘공포의 산’으로 전락한 불행한 역사를 품고 있다. 필동, 묵동, 남산동, 회현동, 예장동, 장충동 등 남산 아랫마을에 살던 ‘딸각발이’ 선비들은 일제강점기 옛 동평관과 왜장대로 몰려온 일본인과 일제 통치기구에 의해 쫓겨났다. 경성으로 몰려온 일본인 7만명이 경성의 사유지 70%를 점유한 1930년대, 충무로를 본거지로 남대문로와 소공로, 명동, 을지로와 용산까지 남산을 둘러싼 지역 대부분은 일본인 차지였다.이토 히로부미는 수양대군이 한명회와 더불어 계유정난을 획책하던 권람의 옛집 후조당(녹천정)에 통감관저를 세웠다. 1910년 8월 29일 한일병탄조약이 체결된 통한의 장소이건만 2010년 민간단체가 ‘통감관저터’라는 푯돌을 세우기 전까지 아무도 몰랐던 치욕의 현장이다. 삼청동·인왕동·백운동·쌍계동과 더불어 한양의 5대 명소로 꼽힌 청학동(남산골한옥마을)은 일본 헌병대사령부와 정무총감의 관저로 변했다. 100만 평이 넘는 남산의 녹지 3분의1이 공원을 조성한다는 명분 아래 재경성일본거류민단에 무상대여됐다. 일제는 한양공원 안에 일본열도의 창조신과 살아 있는 천황을 모시는 거대한 조선신궁을 세우고 신사참배를 의무화했다. 안중근, 김구, 이시영 선생의 동상이 서 있는 남산공원 회현자락이 바로 그 자리이다.아직도 남산 곳곳이 흉터투성이다. 예장자락의 경우 정보기관이 일제 침탈의 자리를 이어받아 인권을 유린했다. 남산 본관(서울유스호스텔), 대공수사국(서울시 남산별관), ‘나는 새도 떨어뜨린’ 중앙정보부장 관저(문학의 집)와 경호원 부속건물(산림문학관), 고문으로 사람을 짓이겼기에 ‘육국’으로 불렸던 제6국(서울시 도시안전본부), 감청과 도청의 안테나가 높았던 감찰실(교통방송), 사무동(서울소방방재본부), 지하 유치장(서울소방종합방재센터)이 그곳이다. 남산의 수호신이자 조선의 호국신인 목멱대왕의 혼을 되찾는 일도 남겨진 과제다. 왕이 나라에 제사 지내는 국사당(國祀堂)은 본래 남산 정상 현재의 팔각정 자리에 있었지만 바로 아래에 조선신궁을 지은 일제가 “신궁 머리 위에 국사당이 존재하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면서 민간에 불하해 인왕산 기슭으로 옮겨졌다. 조선의 성리학자들은 이름마저 스승(단군, 최영, 이성계, 무학대사)을 모시는 국사당(國師堂)으로 강등시켰고 지금은 개인 소유의 굿집이다. 귀를 기울여 보면 “나는 치유받고 싶다”고 외치는 소리가 들린다. 일제강점기와 근대기에 마구 파괴된 한양도성 성곽을 복원하는 게 전부가 아니다. 통감부 자리에 들어선 ‘위안부 기억의 터’처럼, 돌아온 한양공원비처럼, 노기신사 터의 돌수조처럼, 조선신궁 배전 터처럼…. 부끄럽지만 있는 그대로 드러냈을 때, 남산도 빛나는 정기를 되찾지 않을까. 노주석 ㈔서울도시문화연구원장 사진 김학영 연구위원
  • 보스턴 마라톤 제패… 세계에 ‘KOREA’ 새긴 영웅

    보스턴 마라톤 제패… 세계에 ‘KOREA’ 새긴 영웅

    대한민국 정부 수립 1년여 전에 보스턴 국제대회를 제패했던 ‘영원한 마라토너’ 서윤복 옹이 27일 새벽 94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1923년 서울에서 태어난 서 옹은 24세이던 1947년 4월 19일 미국 보스턴 국제마라톤에 출전해 당시 세계최고기록(2시간 25분 39초)으로 우승했다. 세계 4대 마라톤의 하나인 이 대회 첫 동양인 우승자였다. 광복을 맞았지만 정부가 수립되지도 못한 채 어렵고 힘들기만 하던 시절 국제마라톤대회를 제패함으로써 한국인의 웅혼한 기상을 만방에 알렸다.고인은 일제강점기 일본인들이 입던 헌 옷을 걸치고 동대문에서 헌 스파이크 운동화를 구해 밑창의 못을 빼고 리어카 바퀴의 고무를 잘라 덧대 신었다. 더군다나 대회 참가를 위해 미국으로 건너가는 군용기를 얻어 타야만 했다. 당시 육상 대표팀 감독이 1936년 베를린올림픽 마라톤 금메달리스트인 고 손기정(1912~2002) 옹이었다. 서윤복의 우승이 확정된 뒤 서로 얼싸안은 채 펑펑 눈물을 쏟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듬해 초대 대통령이 된 이승만은 귀국한 서윤복에게 “난 몇십 년 동안 독립운동을 했는데도 신문에 많이 나오지 못했는데 그대는 겨우 2시간 조금 넘게 뛰고도 신문의 주목을 받는구나”라고 농담을 건넸다는 일화도 남겼다. 김구 선생과 함께 경교장에서 기념촬영한 사진도 전해진다. 역대 보스턴 마라톤 한국인 우승자는 고인과 1950년 함기용, 1994년 이봉주 셋뿐이다. 1950년에는 고 송길윤(1927~2000)이 2위, 최윤칠(89) 옹이 3위를 차지하는 등 한국인이 1~3위를 싹쓸이했다. 고인은 1948년 런던올림픽을 마치고 현역에서 은퇴한 뒤 대한육상연맹 전무이사와 부회장, 고문, 대한체육회 부회장 등을 지냈다. 1961년부터 17년 동안 서울시립운동장장으로 일했으며 1978~1981년 대한체육회 이사로 전국체전위원장 직을 수행했다. 2013년엔 대한체육회에서 스포츠 영웅으로 선정해 생활비 등을 지원했다. 지난해 2월 김정행 전 체육회장 등이 서울 강동구 길동 자택을 찾아 지원금 등을 전달했을 때도 휠체어에 앉은 채로 일행을 맞을 정도로 건강한 편이었다. 장례는 대한체육회장으로 거행되며 빈소는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 32호에 마련됐다. 선수와 지도자들을 위해 태릉과 진천선수촌에도 임시분향소를 설치한다. 발인은 29일 오전 9시, 장지는 경기 안성 천주교 공원묘지다. 임병선 선임기자 bsnim@seoul.co.kr
  • 김국영이 뛰면 대한민국이 빨라진다

    김국영이 뛰면 대한민국이 빨라진다

    “2018년 자카르타아시안게임에서는 반드시 9초대에 진입하겠다.”김국영(26·광주시청)이 한국인으로는 처음 100m를 10초0대에 달렸다. 이틀 만에 자신의 다섯 번째 한국기록을 경신하며 오는 8월 런던세계선수권 출전권도 손에 쥐었다. 한국 선수로는 첫 9초대 진입까지 겨냥했다. 김국영은 27일 강원 정선종합경기장에서 열린 2017 코리아오픈 국제육상경기대회 남자 100m 결선에서 10초07에 결승선을 통과했다. 이틀 전 같은 곳에서 열린 KBS배 육상대회 준결선에서 작성한 자신의 네 번째 한국신기록(10초13)을 다시 100분의6초 앞당겼다. 런던대회 출전 기준 기록(10초12)도 단숨에 넘어섰다.이날 예선에서 출발할 때 발이 미끄러지고도 10초22를 기록하며 예열을 마친 김국영은 6레인을 달린 결선에서 바로 옆 7레인의 몽골 선수가 부정 출발하는 악재에도 침착하게 출발해 다소 반응속도가 늦었지만 30m 지점부터 가속을 시작해 결승선을 통과할 때까지 속도를 늦추지 않아 쾌거를 이뤘다. 전광판에는 10초08이 새겨졌다가 나중에 10초07로 정정됐다. 뒤바람도 초속 0.9m로, 이틀 전 KBS배 결선 때 10초07에 결승선을 통과하고도 초속 3.6m의 뒤바람 탓에 공인되지 못한 아픔도 비켜 갔다. 광주 하계유니버시아드대회 이후 2년 가까이 한국기록 경신 행진을 멈춘 김국영은 지금까지 출발은 좋으나 막판으로 갈수록 힘이 떨어지고 가속이 붙지 않는 단점을 극복하기 위해 중거리 훈련에 역점을 둬 왔다. 상대적으로 작은 키(176㎝)에 짧은 주폭으로 발을 많이 움직이던 것에서 탈피, 주폭을 늘리며 손발 동작을 예전 빠르기대로 움직이는 주법으로 바꿨다. 지난해부터 남자 110m 허들의 간판이었던 박태경(37) 광주시청 플레잉코치와 호흡을 맞춘 덕도 보고 있다. 스타트 후 큰 동작으로 지면을 세게 밟아 그 탄력으로 가속하는 주법을 익히고 있어 효과를 보고 있다. 윤여춘 대한육상연맹 부회장은 “김국영은 출발 반응속도가 느릴 때도 20∼30m 지점에서 속도를 끌어올리는 특이한 선수”라며 “막판 스퍼트가 점점 좋아지고 있는데 30m 지점까지 끌어올린 속도를 마지막까지 유지한다면 기록 단축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김국영은 지난해 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에서 1996년 애틀랜타올림픽의 진선국 이후 20년 만에 100m를 뛰었지만 10초37을 기록, 조 9명 중 7위에 그쳐 예선에서 탈락했다. 물론 김국영의 인생 목표는 한국인 최초의 9초대 진입이다. 그는 “언제나 내 목표는 9초대 진입”이라며 “오늘 9초대 고지 앞인 10초0대로 들어섰으니까 9초대를 향해 자만하지 않고 노력하는 선수가 되겠다. 그래서 내년 자카르타아시안게임에서는 반드시 10초의 벽을 허물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하지만 그는 우선 8월 런던세계선수권에서 한국인 최초의 준결선 진출을 노린다. 올 시즌 최고의 기록(9초82)을 작성한 크리스티안 허먼(미국)이나 10초03이 시즌 최고기록인 우사인 볼트(자메이카) 등 세계적인 선수들과 경쟁하기엔 무리라는 평가를 받지만 일본 최고의 스프린터인 사니 브라운 압델 하키무(18)와 다툴 만하다. 가나인 아버지와 일본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사니 브라운은 사흘 전 일본육상선수권 100m 결선에서 10초05의 역대 일본 선수 6위 기록으로 우승했다. 김국영과의 격차는 겨우 100분의2초라 둘의 경쟁은 흥미로운 관전 포인트가 될 전망이다. 임병선 선임기자 bsnim@seoul.co.kr
  • ‘동양인 최초 보스턴 마라톤 우승’ 서윤복옹, 94세로 타계

    ‘동양인 최초 보스턴 마라톤 우승’ 서윤복옹, 94세로 타계

    보스톤 마라톤에서 동양인 최초 우승을 일궈냈던 육상 원로 서윤복 옹이 27일 별세했다. 94세.서윤복 옹은 이날 오전 4시 40분쯤 별세했다고 대한육상연맹이 밝혔다.서윤복 옹은 1923년 서울에서 태어나 24세이던 1947년 4월 19일 보스턴 국제마라톤 대회에서 2시간 25분 39초의 당시 세계신기록으로 우승했다. 세계 4대 마라톤 중 하나인 보스턴 마라톤의 사상 첫 동양인 우승이었다. 그는 광복 이후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전 어렵고 힘든 시절에 국제마라톤 대회를 제패, 한국의 존재를 세계만방에 알리고 국민에 희망을 줬다. 정부가 수립되기 전이니 엄밀히 말하면 무국적이다. 서윤복은 일본 강점기 일본인들이 입던 헌 옷을 입고 동대문에서 헌 스파이크 운동화를 구해 밑창의 못을 빼고 리어카 바퀴의 고무를 잘라 덧대 신고 훈련에 매진했다. 보스턴 마라톤 참가를 위해 미국으로 건너갈 때는 미군 군용기를 얻어타고 갔다. 당시 우리나라 육상대표팀 감독은 1936년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 금메달리스트인 고 손기정 옹이었다. 서윤복의 우승이 확정된 뒤 두 사람은 서로를 얼싸안고 펑펑 울었다고 한다. 이듬해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이 된 이승만 선생은 귀국한 서윤복에게 “난 몇십 년 동안 독립운동을 했는데도 신문에 많이 나오지 못했다. 그대는 겨우 2시간 조금 넘게 뛰고도 신문의 주목을 받는구나”라는 농담했다고 전해진다. 김구 선생은 ‘족패천하’(足覇天下: 발로 천하를 제패하다)라는 휘호를 써줬다. 장례는 대한체육회장으로 거행된다. 빈소는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 32호에 마련됐다. 발인은 29일 오전 9시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암 투병 블로거 고바야시 마오 34세 짧은 삶 마감

    암 투병 블로거 고바야시 마오 34세 짧은 삶 마감

    텔레비전 앵커와 암 투병 블로거로 널리 알려진 일본 여성 고바야시 마오가 지난 22일 늦게 도쿄 자택에서 34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고바야시는 유방암과 투병하는 상황을 꼼꼼이 적어 이를 많은 이들과 공유한 파워 블로거였는데 남편이자 가부키 배우인 이시카와 에비조가 자신의 블로그를 통해 “오늘은 내 인생에 가장 슬픈 날”이라며 부인의 죽음을 알렸다고 영국 BBC가 23일 전했다. 지난해 영국 BBC는 고바야시를 올해 100명의 여성 중 한 명으로 선정했다. 고바야시의 블로그는 일본 사람들이 개인사를 얘기하길 꺼리는 풍토에 매우 이례적인 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다른 이들처럼 그녀 역시 대중에게 자신의 투병 사실을 알리길 꺼렸는데 일본인들의 “완벽한 어머니” 상을 좇으려면 병에 걸렸다는 사실을 숨겨야만 했기 때문이었다. 두 아이의 어머니인 고바야시는 BBC에 기고한 글을 통해 “스스로를 탓하고 내가 살 수 없다면 실패로 여겨야 한다고 생각했다. 난 고통 뒤에 숨어 지냈다”고 털어놓았다. 언론 매체들이 그녀의 질환에 대한 얘기를 공개하자 그녀는 “햇볕에로 나가기로 했다”고 결심했고 그녀를 응원하는 사람들이 줄을 이었다.고바야시는 세상을 뜨기 이틀 전인 20일 블로그에 마지막 글을 올렸는데 어머니가 갈아준 오렌지주스 맛을 즐기고 있다고 털어놓아 안타까움을 더했다. 또 네살 배기 아들의 다음달 3일 생일잔치를 보고 싶다는 소망을 덧붙였는데 불행히도 그럴 수 없게 됐다. 4년 전 유명 가부키 배우였던 아버지 이시카와 단주로를 폐렴 때문에 여의었던 이치카와는 23일 기자회견을 통해 전날 장모가 딸의 용태를 파악하고 가족들을 소집해 임종을 지킬 수 있었다고 밝혔다. 그는 “그저께만 해도 고바야시는 말할 수 있었는데 어제는 할 수 없었다. 세상을 뜰 때 그녀는 날 쳐다보며 ‘사랑해’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떠났다”고 말했다. 이시카와는 부인이 마지막까지 가족들에게 미소를 보여주려고 노력했고 “암과 힘겨운 싸움을 벌였는데 암을 치유할 수 있다면 다른 이에게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블로그를 시작한 것도 그 때문이었다. 언론 때문에 그녀의 병이 대중에게 알려졌지만 그건 그것대로 좋은 일이었다. 블로그를 시작하면서 그녀는 같은 병과 싸우는 이들과 느낌을 공유할 수 있었다. 그녀는 대단한 사람이었다. 난 그녀로부터 계속 배워나갈 것이란 점을 알고 있다”고 말했다. 임병선 선임기자 bsnim@seoul.co.kr
  • [MLB] 86구 만에 강판 ‘비정규직 선발’

    [MLB] 86구 만에 강판 ‘비정규직 선발’

    피홈런 두 방… 불펜 난조 더해 승 놓쳐 류현진(30·LA 다저스)의 ‘선발 입지’가 다시 흔들리고 있다. 류현진은 23일 LA 다저스타디움에서 열린 미국프로야구(MLB) 뉴욕 메츠와의 경기에서 선발 등판해 5이닝 동안 5안타 2볼넷 2실점했다. 3-2로 앞서 승리 요건을 갖췄지만 6회 마운드에 오른 크리스 해처가 동점을 내줘 승리를 날렸다. 이로써 지난 18일 신시내티전에서 시즌 3승(6패)이자 1021일 만에 원정승을 거둔 류현진의 시즌 첫 2연승과 4승은 불발됐다. 이날 류현진은 최고 구속 93마일(150㎞)를 찍었지만 다시 홈런 두 방을 내줘 아쉬움을 남겼다. 올 시즌 피홈런은 14개로 늘었다. 평균자책점은 4.35에서 4.30으로 좋아졌다. 6-3 승리를 거둔 다저스는 7연승으로 내셔널리그 서부지구 선두를 지켰다.●“더 던지겠다 말했지만… 감독 결정” 최근 일본인 투수 마에다 겐타와의 선발 잔류 경쟁에서 승리한 류현진은 선발 입지를 굳히는 압도적인 투구를 펼치지 못했다. 류현진이 1이닝을 더 소화할 수 있을 정도로 투구 수에 여유가 있었지만 데이브 로버츠 다저스 감독은 교체를 강행했다. 코치진의 신뢰를 얻지 못한 것이다. 류현진이 직구 구속을 회복했고 커브 위력을 과시한 게 그나마 위안이다. ‘브룩스베이스볼’에 따르면 투구 수 86개 중 직구가 38개(44.2%)로 직전 경기(18일 신시내티전) 직구 구사율(29.5%)보다 크게 늘었다. 커브도 18개(20.9%)로 주무기인 체인지업(15개, 17.4%)보다 많았다. 2013년 9.5%, 2014년 13.8%였던 커브 구사율은 17.1%로 높아졌다. ●다저스 선발 투수 입지 또다시 ‘흔들’ 류현진은 5회 말 공격 때 더그아웃에서 로버츠 감독과 나눈 대화에 대해 “더 던질 수 있다고 했지만 감독의 선택을 따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로버츠 감독은 “1회 그랜더슨에게 한가운데 실투했지만 93마일짜리 공도 몇 개 있었고 슬라이더, 체인지업이 좋았다“고 설명했다. 5회 강판에 대해서는 ”몇 년간 투구를 하지 않았다는 점과 다음 상대 타순(중심 타순)을 고려했다“고 덧붙였다. 김민수 선임기자 kimms@seoul.co.kr
  • 일본 앵커 출신 암 투병 블로거 고바야시 결국 저세상으로

    일본 앵커 출신 암 투병 블로거 고바야시 결국 저세상으로

    텔레비전 앵커로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은 고바야시 마오가 유방암 투병 끝에 지난 22일 늦게 도쿄 자택에서 34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고바야시는 유방암과 투병하는 상황을 꼼꼼이 적어 이를 많은 이들과 공유한 파워 블로거였는데 남편이자 가부키 배우인 이시카와 에비소가 23일 자신의 블로그를 통해 “오늘은 내 인생에 가장 슬픈 날”이라며 부인의 죽음을 알렸다고 영국 BBC가 전했다. BBC는 고바야시를 지난해 100인의 여성으로 선정했다. 고바야시의 블로그는 개인사를 드러내길 꺼리는 일본 풍토에서 매우 이례적인 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다른 이들처럼 그녀 역시 대중에게 자신의 투병 사실을 알리길 꺼렸는데 일본인들이 꿈꾸는 “완벽한 어머니”란 이상을 계속 좇으려면 병에 걸렸다는 사실을 알려선 안됐기 때문이었다. 두 아이의 어머니인 고바야시는 BBC에 기고한 글을 통해 “스스로를 탓하고, 살 수 없다면 실패로 여겨야 한다고 스스로 여겼다. 난 고통 뒤에 숨어 지냈다”고 털어놓았다. 언론 매체들이 그녀의 질병에 대한 얘기를 공개하자 그녀는 “햇볕에로 나가기로 했다”고 결심했고 그녀를 응원하는 사람들이 줄을 이었다. 고바야시는 세상을 뜨기 이틀 전인 20일 블로그에 마지막 글을 올렸는데 어머니가 갈아준 오렌지주스 맛을 즐기고 있다고 털어놓았다. 또 네살 배기 둘째 아들의 다음달 3일 생일잔치를 보고 싶다는 소망을 덧붙였는데 불행히도 그럴 수 없게 됐다. 4년 전 이름난 가부키 배우였던 아버지 이시카와 단주로를 폐렴 때문에 여의었던 이시카와는 23일 기자회견을 통해 전날 장모가 딸의 상황이 회복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고 가족들을 소집해 임종을 지켰다고 밝혔다. 그는 “그저께만 해도 고바야시는 말할 수 있었는데 어제는 할 수 없었다. 세상을 뜰 때 그녀는 날 쳐다보며 ‘사랑해’라고 말하는 것 같았는데 그 뒤 우리를 떠났다”고 말했다. 이시카와는 부인이 마지막까지 가족들에게 미소를 보여주려고 노력했고 “암과 힘겨운 싸움을 벌였는데 암을 치유할 수 있다면 다른 이에게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블로그를 시작한 것도 그 때문이었다. 언론 때문에 그녀의 병이 대중에게 알려졌지만 그건 그것대로 좋은 일이었다. 블로그를 시작하면서 그녀는 같은 병과 싸우는 이들과 느낌을 공유할 수 있었다. 그녀는 대단한 사람이었다. 난 그녀로부터 게속 배워나갈 것이란 점을 알고 있다”고 말했다. 임병선 선임기자 bsnim@seoul.co.kr
  • [지금, 이 영화] ‘파리의 밤이 열리면’, 대책 없는 남자의 마법 같은 하룻밤

    [지금, 이 영화] ‘파리의 밤이 열리면’, 대책 없는 남자의 마법 같은 하룻밤

    루이지(에두아르 바에르)는 파리의 에투알 극장을 운영하는 남자다. 먼저 그가 극장 소유주가 아니라 고용된 매니저라는 점을 확실히 해 두자. 10년 넘게 여기서 일하고 있지만 루이지는 늘 빠듯한 예산에 허덕인다.일본인 연출가를 초빙해 야심 차게 준비한 이번 연극도 마찬가지다. 당장 내일이 초연인데, 공연에 꼭 필요한 원숭이도 포스터에만 그려 놓았을 뿐 구하지 못했고, 스태프들에게 줄 임금도 두 달이나 밀린 상태다. 이 문제를 해결하라며 스태프들은 파업에 돌입한다.지금까지 루이지를 헌신적으로 돕던―더 정확히 말하면, 그가 대책 없이 저지른 일들을 수습하던 동료 나웰(오드레 토투)도 마땅한 방안을 찾을 수 없다. 루이지는 극장 밖으로 나간다. 딱히 돌파구가 있어서가 아니다. 누구라도 만나다 보면 뭔가 방법이 생기겠지, 그런 마음으로 자리를 벗어난 것이다. 산적한 골칫거리를 처리해야 한다는 목적은 있는데, 그것을 해낼 수 있는 목적지는 없는 상황. 루이지의 난감한 여정에 인턴 파에자(사브리나 와자니)가 엉겁결에 동참한다. 정신을 차려 보니 그녀는 이미 그와 함께 택시를 타고 있다. 루이지는 이제까지 대체 어떻게 극장을 운영해 왔나 싶을 정도로 제멋대로 말하고 행동한다. 반면 파에자는 책임감이 강한 사람이다. (나웰 대신) 그녀는 루이지의 막무가내 언행을 뒤치다꺼리한다. 이렇게 쓰고 보니 루이지는 단점투성이 인간 같다. 그렇지만 그는 뒷일을 신경쓰지 않는 만큼이나 인정이 많다. 예전에 한 직원이 곤경에 처했을 때 루이지는 서슴없이 그에게 큰돈을 내주었다. 그 직원은 당시의 고마움을 잊지 못하고 있다. 비록 현재는 루이지의 임금 체불에 맞서 싸우고 있긴 해도 말이다. 그나저나 루이지는 파에자와 같이 하룻밤 안에 무엇을 바꿔 놓을 수 있을까. 다들 불가능하다고 고개를 가로저을 것이다. 그러나 이 영화는 불가능 따위 코웃음 한 번으로 가능하게 만드는 코미디 장르를 표방하고 있다. 게다가 이곳은 낭만의 도시 파리이고, 이때는 마법이라도 펼쳐질 만한 토요일 밤이 아닌가. 이것은 할리우드 영화로 따지면 ‘크리스마스의 기적’ 같은 만능키다. 정색하고 보면 황당하기 짝이 없지만, 너그럽게 보면 웃고 지나갈 수도 있는 것이다. ‘파리의 밤이 열리면’ 안 될 것이 뭐가 있나. 루이지를 연기한 배우이자 이 영화의 감독인 에두아르 바에르도 주장한다. “가장 심혈을 기울인 부분은 ‘활기찬 영화’를 만드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는 애초에 영화적 개연성은 염두에 두지 않은 듯 보인다. 서사는 충동적인 흐름에 따라 요동친다. 덕분에 영화 내내 활기는 넘쳐난다. 하지만 관객의 반응은 양분될 것 같다. “뭐, 이런 영화가 다 있어” 혹은 “뭐, 이런 영화도 있는 법이지”라고. 나는 어떤가 하면 영화 중간까진 전자였다가 영화가 끝날 때쯤 슬그머니 후자로 옮겨왔다. 시종일관 우기는 것도 능력은 능력이다. 22일 개봉. 12세 관람가. 허희 문학평론가·영화칼럼니스트
  • [씨줄날줄] 웜비어, 2002년의 기억/황성기 논설위원

    [씨줄날줄] 웜비어, 2002년의 기억/황성기 논설위원

    미국 청년 오토 웜비어(22)의 사망은 김정일에 의한 2002년 일본인 납치 고백 직후 일본을 경험한 필자로선 북한의 ’학습효과 제로’에 절망하게 했다. 2016년 1월 평양에 놀러 갔다가, 호텔에서 ‘제국주의 타도’란 선전물을 훔치고는 15년의 노동교화형을 선고받고 혼수상태에서 미국으로 귀환한 웜비어의 사망 소식이야말로 북한이란 국가의 100점 만점 평가에 감점 70점을 줘도 모자라지 않다.웜비어 쇼크는 북한 납치 고백의 미국판이다. 광기란 똑같은 짓을 끊임없이 되풀이하면서 다른 해답을 구하는 것이라는 아인슈타인의 명언을 나쁘게 해석하면 꼭 김정일·정은 부자를 두고 하는 말이다. 김정일은 평양으로 불러들인 일본 총리 고이즈미 준이치로에게 중대한 고백을 한다. “아랫것들이 충성 경쟁을 하느라 일본인을 납치했다”고. 일본과 국교 정상화, 100억 달러 규모의 경제 원조를 위해 ‘납치’의 산을 넘자고 했던 김정일식 ‘통 큰’ 도박이었다. 김정일은 유감을 표시하고 북·일의 ‘평양선언’이 나온다. 고백만 하면 잘 풀릴 줄 알았을 것이다. 최고 지도자가 고백을 하면 그것으로 끝일 것이란 평양의 집단사고가 작용한 것이다. 일본인 납치 피해자 5명을 고이즈미의 전용기에 태워 보냈지만 일본 여론은 ‘야만 국가 북한’ 때리기로 들끓었다. 그중에서도 납치 피해의 상징인 여중생 요코타 메구미(1977년 북에 의해 납치·당시 13세)의 자살에 의한 사망 통보를 놓고 한번 돌아선 일본인의 대북 악감정은 지금까지도 개선될 기미를 보이지 않은 채 ‘2002년의 벽’을 넘지 못하고 있다. 웜비어도 마찬가지다. 지난 5월 북·미 접촉을 통해 웜비어를 돌려보내기로 김정은식 통 큰 ‘결단’을 한다고 했을지 모른다. 미국 땅에 내리면서 TV에 비친 혼수상태, 그리고 사망에 이른 웜비어는 자유민주주의 사회에서는 상상할 수 없다. 2009년의 미국인 여기자 억류의 ‘성공 사례’를 생각하면서 평양의 ‘김정은 아랫것’들은 웜비어를 잡아다 ‘인질 외교’를 하려고 했을 가능성이 크다. 멀쩡한 청년을 식물인간으로 만들고 사망에 이르게 한 원인이 무엇이든 변명은 통하지 않는다. “식중독이다, 수면제다” 하는 북한 말을 누가 믿겠는가. 김정은도 “아랫것들이 했다”는 아버지를 따를지 모르지만 이미 너무 늦었다. 어리석은 자는 경험에서 배우고, 현명한 자는 역사에서 배운다고 했다. 경험이든, 역사든 배워서 고치려 하지 않는 북한 체제야말로 납치와 억류와 같은 불행한 사건을 앞으로 되풀이할 수 있다는 점에서 그 광기와 경직성을 용납해선 안 된다. marry04@seoul.co.kr
  • 케이팝 스타들 日진출 잇따라…제2 한류 불까

    케이팝 스타들 日진출 잇따라…제2 한류 불까

    日 케이팝시장 5000억~6000억원 “팬심 사로잡기 치열한 경쟁”케이팝 스타들이 새달 잇따라 일본에 진출한다고 선언하면서 제2의 한류 열풍을 일으킬지 주목된다. 독도 문제, 위안부 한·일 합의를 둘러싼 논란 등이 계속되면서 일본 내 한류는 주춤한 형국이었다. 대형 기획사들이 다시 일본 공략의 신발끈을 조여 매는 이유가 있다. 한한령(한류금지령)으로 중국 공략이 불확실한 가운데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규모가 크고 강한 ‘팬덤’이 자리잡고 있는 일본은 안정적 성장을 담보할 수 있는 여전히 매력적인 시장이다. 가장 시선을 끄는 것은 7월 일본에서 데뷔전을 치르는 차세대 걸그룹 트와이스와 블랙핑크다. 이들은 2010년 일본에서 데뷔해 케이팝 한류 붐을 일으켰던 소녀시대와 카라의 뒤를 잇는 한류 열풍의 주역으로 떠올랐다. 2015년 데뷔한 트와이스는 히트곡 ‘치어업’에 이어 ‘TT’, ‘시그널’ 등이 연타석 홈런을 치며 데뷔 2년도 안 돼 국내 걸그룹 정상에 올랐다. 트와이스는 탄탄한 국내 입지를 등에 업고 오는 28일 일본 데뷔 베스트 앨범 ‘#트와이스’(#TWICE)를 발표하고 다음달 2일 쇼케이스를 연다. 트와이스는 모모, 사나, 미나 등 일본인 멤버가 포함돼 일본 팬들의 호감도가 높고 미디어도 우호적이다. JYP엔터테인먼트의 고위 관계자는 “정식 데뷔도 하기 전에 현지 유력 방송사들이 이례적으로 트와이스에 대한 집중 보도를 내놓고 일본 여고생들 사이에서 트와이스의 ‘TT’ 댄스가 유행하는 등 사전 인지도가 많이 쌓였다”면서 “올 초부터 꾸준히 홍보 활동을 펼쳤다. 2011년 앞서 열도를 밟아 한류 스타로 자리잡은 2PM의 노하우를 적극 활용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2PM 준호는 7월부터 일본 5개 도시에서 콘서트를 열 예정이다.YG엔터테인먼트의 걸그룹 블랙핑크도 다음달 20일 일본 부도칸에서 ‘블랙핑크 프리미엄 데뷔 쇼케이스’를 연다. 8월 9일엔 정식 데뷔 음반을 내놓는다. YG가 2NE1 이후 8년 만에 선보인 걸그룹인 블랙핑크는 데뷔곡 ‘붐바야’와 ‘휘파람’, ‘불장난’을 연이어 히트시키며 가요계의 ‘괴물 신인’으로 평가받았다. 일본의 닛칸스포츠는 “빅뱅의 동생 그룹이자 유튜브 총 조회수 6억회에 달하는 블랙핑크가 일본에 온다”면서 관심을 드러냈다. 가요평론가 김윤하씨는 “2010년 일본에서 소녀시대는 젊은 여성들의 워너비 스타로, 카라는 친숙한 이미지로 국민적인 사랑을 받았다”며 “트와이스는 카라형, 블랙핑크는 소녀시대형으로 분류할 수 있다”고 말했다. 김씨는 “케이팝 붐이 일던 7년 전과 달리 반한류 등 침체기가 있었던 만큼 완성도 높은 곡으로 승부해야 승산이 있다”고 조언했다.SM은 엑소 등 소속 가수들이 총출동하는 ‘SM 타운 라이브 월드투어’를 7월 일본 교세라돔과 도쿄돔에서 여는데, 이 자리를 통해 신인 아이돌 그룹 NCT 127을 자연스레 소개할 예정이다. 가요 관계자들은 기획사들이 일본 시장을 다시 정조준한 이유에 대해 “6조원 규모의 일본 시장에서 케이팝 점유율이 10%(5000억~6000억원)에 달하는 만큼 고정 팬 확대에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다”고 입을 모았다.신인 아이돌 그룹 아스트로의 경우 특별한 현지 프로모션 없이도 데뷔 6개월 만에 현해탄을 건너가 지난해 2차례 팬미팅을 매진시켰다. 이에 고무돼 8월에는 도쿄, 오사카 등 5개 도시에서 콘서트도 열 예정이다. 소속사인 판타지오뮤직의 우영승 대표는 “현지화 전략과 프로모션에 치중했던 일본 진출 초기와 달리 요즘은 유튜브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가 케이팝 팬들과 통하는 주요 통로”라면서 “현지 팬들도 한국 내 음악 방송이나 음원 차트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등 한국에서의 인기가 외국에서 그대로 이어지는 편”이라고 말했다. 이은주 기자 erin@seoul.co.kr
  • 트와이스 ‘TT’ 일본판 뮤비 공개, 한국판과 어떻게 다를까

    트와이스 ‘TT’ 일본판 뮤비 공개, 한국판과 어떻게 다를까

    일본 데뷔를 앞둔 걸그룹 트와이스가 ‘TT’(티티)의 일본어 버전 뮤직비디오를 21일 공개했다. 앞서 공개된 한국어 버전 뮤직비디오에서 트와이스가 인어공주, 피노키오, 팅커벨, 엘사 등 동화 속 캐릭터로 분해 동심을 자극했다면, 이번에 공개된 일본어 버전 뮤직비디오는 자동차 극장에서 안무를 중점적으로 선보이는 멤버들의 모습이 담겼다.한편 트와이스는 멤버 중 모모, 사나, 미나가 일본인으로 데뷔 전부터 일본 현지 팬들에게 친숙함과 함께 높은 관심을 얻고 있다. 특히 이미 일본 여고생들 사이에서는 트와이스의 ‘TT’ 댄스가 유행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트와이스는 오는 28일 일본 데뷔 베스트 앨범 ‘#트와이스’(#TWICE)를 발매한다. 이어 7월 2일에는 일본 데뷔 쇼케이스를 개최하며 본격적인 현지 활동을 펼칠 예정이다. 영상팀 seoultv@seoul.co.kr
  • [MLB] 선발경쟁 한·일전… 류, 윈

    [MLB] 선발경쟁 한·일전… 류, 윈

    마에다는 불펜-선발 ‘스윙맨’류현진(30·LA 다저스)이 일본인 투수 마에다 겐타(29)와의 선발 경쟁에서 승리했다. LA타임스는 20일 미국프로야구(MLB) 다저스가 5인 선발 체제로 복귀한다고 데이브 로버츠 감독의 말을 인용해 전했다. 로버츠 감독은 이날 뉴욕 메츠와의 홈 경기에 앞서 “선발 로테이션을 5명으로 돌리겠다”면서 “마에다는 며칠 휴식을 취한 뒤 롱릴리프로 뛸 것”이라고 밝혔다. 이로써 류현진은 마에다를 제치고 선발 잔류에 성공했다. 다저스는 지금껏 6명으로 선발진을 운용하면서 다소 부진한 류현진과 마에다를 놓고 불펜행을 저울질했다. 하지만 이제부터는 클레이턴 커쇼-알렉스 우드-브랜던 매카시-리치 힐-류현진 등 5명으로만 선발진을 가동한다. CBS 스포츠는 마에다가 전날 신시내티전에서 5이닝 1실점으로 시즌 5승째를 올렸으나 선발로 꾸준한 투구를 보여 주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마에다가 불펜과 선발을 오가는 ‘스윙맨’으로 나설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에 따라 류현진은 오는 23일 뉴욕 메츠와의 홈 경기에 선발 등판해 시즌 4승에 도전한다. 당초 류현진은 24일 콜로라도전에 나서고 23일에는 우드가 등판할 예정이었다. 일정이 바뀐 이유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우드가 상대적으로 콜로라도전에 강했기 때문이라는 보도가 나왔고 류현진이 좀더 편안한 상대를 만나도록 배려했다는 분석도 있다. 류현진은 올 시즌 내셔널리그 서부지구 선두 콜로라도를 상대로 3경기에서 모두 졌다. 홈런을 4방이나 허용한 데다 ‘천적’ 놀런 아레나도가 버티고 있어 껄끄럽다. 하지만 내셔널리그 동부지구 4위 메츠는 상대적으로 만만한 상대다. 통산 3경기에 등판해 2승 무패에 평균자책점 1.80으로 호투했다. 류현진이 ‘5인 선발진’에 잔류했다고 해서 안심할 처지는 아니다. 아직도 상대를 압도하는 종전의 모습을 보이지 못하고 있다. ‘퀄리티 스타트’(6이닝 이상 투구에 3점 이하 자책점)를 펼치면서 승전고까지 울려야 코칭스태프의 확실한 믿음을 붙잡을 수 있다. 김민수 선임기자 kimms@seoul.co.kr
  • 순식간에 50대 차량 추월…영화처럼 달리는 中택시

    순식간에 50대 차량 추월…영화처럼 달리는 中택시

    단 2분 만에 50대의 차량을 추월하는 택시의 영상이 공개돼 논란이 일고있다. 지난 19일 중국 영자매체 상하이스트는 푸둥국제공항에서 손님을 싣고 과속으로 질주하는 택시의 영상을 공개했다. 중국판 트위터인 웨이보에 공개돼 논란이 일고있는 이 영상의 촬영자는 신원이 공개되지 않은 일본인 승객. 영상을 보면 공항을 나와 고속도로로 접어든 택시는 마치 영화처럼 순식간에 50여대의 차량을 추월해 달린다. 승객은 "택시 운전사가 마치 비디오 게임을 하듯 고속도로를 달렸다"면서 "내 평생 타본 택시 중 가장 아찔했던 경험이었다"고 털어놨다.   나우뉴스부 nownews@seoul.co.kr 
  • ‘컬투쇼’ 이제훈, 300만 공약 “분장 그대로 재출연..뭐든 하겠다”

    ‘컬투쇼’ 이제훈, 300만 공약 “분장 그대로 재출연..뭐든 하겠다”

    ‘컬투쇼’ 이제훈이 영화 ‘박열’이 300만 관객 돌파시 “영화 속 복장으로 ‘컬투쇼’에 재출연해 뭐든 하겠다”는 공약을 걸었다. 19일 SBS 파워FM ‘두시탈출 컬투쇼’(이하 ‘컬투쇼’)에서는 영화 ‘박열’의 이준익 감독과 영화에 출연한 배우 이제훈, 최희서가 게스트로 출연하는 모습이 그려졌다. 이날 이제훈은 “(관객) 300만 명 돌파 시 영화 ‘박열’ 속 복장 그대로 ‘컬투쇼’에 재출연하겠다”며 “춤을 추든 뭐라도 하겠다”라는 공약을 걸었다. 그는 “냄새도 날 수 있고 지저분하겠지만, 여러분과 만나는 시간을 갖고 싶다”고 말했다. 이에 MC들은 “와서 그룹 트와이스 ‘시그널’에 맞춰 춤도 추라”고 제안했고, 이제훈은 당황한 모습을 감추지 못하며 웃음을 자아냈다. 영화 ‘박열’은 1923년 도쿄, 6000여 명의 조선인 학살을 은폐하려는 일제에 정면으로 맞선 조선 최고 불량 청년 박열(이제훈 분)과 그의 동지이자 일본인 연인 후미코(최희서 분)의 믿기 힘든 실화를 그린 영화다. 오는 28일 개봉. 사진=SBS 파워FM ‘컬투쇼’ 방송 캡처 임효진 기자 3a5a7a6a@seoul.co.kr
  • 日고베서 ‘한국노래 자랑대회’

    日고베서 ‘한국노래 자랑대회’

    일본인과 재일동포들의 한국노래 소리가 올해로 개항 150주년을 맞이하는 항구도시 고베에 널리 울려 퍼졌다.주고베 한국총영사관과 고베신문사가 공동 주최하는 ‘고베 한국노래 자랑대회’가 17일 고베시 고베신문사 마쓰카타홀에서 열려 지역예선을 거친 15개 팀이 자웅을 겨뤘으며 이날 720석 규모의 공연장을 가득 메운 방청객들의 열띤 호응 속에 영예의 대상은 이선희의 ‘그중에 그대를 만나’라는 곡을 부른 시라이 히토미가 차지했다. 히토미는 우승 트로피와 함께 한국 왕복 항공권, 5성급 호텔 2박 숙박권 및 삼성 스마트워치 등을 부상으로 받았다. 이날 행사를 축하하기 위해 한국과 일본에서 활동 중인 케이팝 가수인 B.I.T와 원우 등의 축하공연이 있었고, 고베에서 유학 중인 김보민 KBS 아나운서가 재능기부 형식으로 사회를 맡았다. 2010년부터 열린 이 대회는 일본 최초의 한국 노래대회로 고베의 대표적인 한류 이벤트로 자리잡았다. 도쿄 이석우 특파원 jun88@seoul.co.kr
  • 되찾은 구속·위기 관리… 그래도 불안한 류

    되찾은 구속·위기 관리… 그래도 불안한 류

    7K 불구 5이닝 105개 ‘과잉 투구’ 감독 만족 못해 선발 굳히기 불안 ‘구속 회복 + 위기 관리 능력 = 불안한 3승.’ 류현진(30·LA 다저스)은 18일 그레이트 아메리칸 볼파크에서 열린 미국프로야구(MLB) 신시내티와의 원정 경기에 선발 등판해 5이닝 동안 삼진 7개를 솎아내며 8안타 2볼넷 2실점했다.8-2로 앞선 6회 타석에서 교체된 그는 모처럼 폭발한 타선 덕분에 10-2로 이겨 지난달 19일 마이애미전 이후 30일 만에 3승(6패)째를 따냈다. 2014년 9월 1일 샌디에이고전 이후 2년 9개월 16일(1021일) 만에 거둔 ‘원정승’이어서 기쁨을 더했다. 평균자책점도 4.42에서 4.35로 조금 내려갔다.류현진은 이날 회복된 구속과 예리한 커브, 위기 관리 능력으로 6일 만의 ‘리턴 매치’에서 신시내티에 설욕했다. 그러나 부활 기대와 함께 우려도 낳아 일본인 투수 마에다 겐타(29)와의 선발 경쟁에서 우위를 굳히기에는 다소 모자랐다는 평가를 들었다. 류현진은 이날 올 시즌 한 경기 최다인 105개 공을 던졌다. 앞선 신시내티전에서 내준 대포 세 방을 의식한 듯 낮게 제구하다 투구 수가 너무 많아졌다. 대신 3경기 만에 홈런을 맞지 않았다는 게 위안이었다. 직구 최고 시속은 152㎞를 찍었다. 그것도 투구 수 100개를 넘어선 이후 나와 건강 이상 우려를 말끔히 씻었다. 류현진은 7-2이던 5회 2사 3루에서 스콧 셰블러를 상대로 100구째 초구로 150㎞(93.2마일), 2구째는 이날 최고인 152㎞(94.5마일)를 뿌렸다. 이어 3구째 151㎞, 5구째 151㎞ 등 빠른 직구를 잇따라 구사했다. 앞선 12일 경기에서는 145㎞(90.5마일)가 최고였다. 또 류현진은 3회 연속 3안타로 자초한 무사 만루 위기에서 위기 관리 능력을 과시했다. 에우헤니오 수아레스를 볼넷으로 보내 2013년 빅리그 진출 이후 첫 밀어내기 볼넷을 허용했지만 이후 유격수 직선타와 투수 앞 병살타로 대량 실점 위기에서 벗어났다. 하지만 류현진은 5이닝 동안 한계 투구 수인 100개를 넘겨 과제로 떠올랐다. 매 이닝 위기에 몰리면서 정면 승부를 피하려다 투구 수가 늘어났다. 악순환이 우려되는 대목이다. 류현진은 “힘든 경기였다”면서 “실점을 최소화하려고 노력했고 그런 측면에서는 잘해낸 것 같다”고 말했다. 데이브 로버츠 다저스 감독은 류현진에 대한 불안감을 드러냈다. LA 타임스는 “로버츠 감독이 류현진이 직선타, 병살타로 처리하지 못했다면 5회를 마치지 못했을 것이라고 밝혔다”고 전했다. 아울러 로버츠 감독이 초구부터 전력 투구를 촉구했으나 류현진은 2회까지 공 50개를 던질 정도로 (감독의) 기준을 충족하지 못했다고 덧붙였다. 김민수 선임기자 kimms@seoul.co.kr
  • 그곳에 조선인들이 있었다…‘군함도’ 뜨거운 전율의 메인 예고편

    그곳에 조선인들이 있었다…‘군함도’ 뜨거운 전율의 메인 예고편

    ‘끌려온 이유는 달랐지만 살고자 하는 마음만은 같았던 조선인들의 이야기!’ 영화 ‘군함도’가 조선인들의 긴박감 넘치는 탈출을 담은 메인 예고편을 공개했다. ‘군함도’는 일제 강점기, 일본 군함도(하시마, 군함 모양을 닮아 군함도라 불림)에 강제 징용된 후 목숨을 걸고 탈출을 시도하는 조선인들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다. 류승완 감독과 배우 황정민, 소지섭, 송중기, 이정현의 만남으로 2017년 최고 기대작 중 하나다. 공개된 예고편은 짙은 어둠을 틈타 탈출을 시도하는 수많은 조선인과 이들을 쫓는 일본인들의 모습으로 시작한다. 이후 끌려온 이유는 달랐지만 살고자 하는 마음만은 같았던 조선인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생존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모습이 그려진다.특히 해저 1000미터 깊이에 있는 갱도의 끝 막장에서 강제 노역을 하는 조선인들의 모습은 지옥 같은 군함도에서의 고통이 고스란히 전해져 먹먹함을 자아낸다. 조선인들에게 저지른 만행을 은폐하기 위한 일본의 속셈을 알게 된 박무영(송중기)이 “나갈 거요, 여기 있는 조선 사람들 다 같이”라고 말하는 모습과 탈출을 시도하는 조선인들의 모습은 보는 이의 가슴을 뜨겁게 만든다. 특히 탈출을 향한 조선인들의 결연한 의지가 폭발하는 장면은 ‘군함도’의 거대한 스케일과 액션을 기대케 한다. 또 황정민, 소지섭, 송중기, 이정현, 김수안의 열연이 묵직한 여운을 예고한다. ‘우리는 반드시 돌아간다’라는 카피와 함께 예고편 마지막 장면까지 시선을 압도하는 영화 ‘군함도’는 7월 개봉 예정이다. 문성호 기자 sungh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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