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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울신문 보도 그후] ‘평화의 소녀상’ 종로 공공조형물 지정

    국내에 처음 들어선 일본대사관 앞 ‘평화의 소녀상’이 서울 종로구의 공공조형물로 지정돼 함부로 철거할 수 없게 됐다. 이 평화의 소녀상은 2011년 4월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가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정기 수요집회 1000회 기념비석을 세우겠다고 하자 김영종 종로구청장이 대안으로 제시, 설치됐다. 김 구청장은 당시 검정 치마에 흰 저고리 차림으로 일본군에게 잡혀갈 때의 어린 소녀의 모습이 일본인들이 가장 부끄러워할 모습이라며 소녀상 설치를 제시했다. 이를 시작으로 9월 현재 전국 70여곳과 일본, 미국 등 세계 10여개 도시에 소녀상이 건립됐다. 그러나 일본 측이 소녀상 철거를 지속적으로 요구,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공공조형물이 아니라 공공 도로를 점용할 근거가 없어서다. 종로구는 이에 지난 7월 1일 ‘종로구 도시공간 예술 조례 개정안’을 제정, 법적 근거를 마련했다. 종로구와 도시공간예술위원회는 이를 근거로 소녀상을 종로구 공공조형물 1호로 최근 지정했다. 이에 따라 정대협이 소유하지만 관할 관청인 종로구가 유지·관리할 수 있게 됐다. 김 구청장은 “위안부 할머니들을 상징하는 소녀상은 국민적 합의 없이 철거할 수 없는 일이라고 여겨 왔다”면서 “공공조형물 지정을 계기로 더욱 적극적으로 소녀상을 보호하겠다”고 말했다. 주현진 기자 jhj@seoul.co.kr
  • [하프타임] LA다저스 시즌 100승 달성

    미국프로야구(MLB) LA 다저스가 26일(한국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LA 다저스타디움에서 열린 샌디에이고와의 경기에서 9-3으로 승리를 거뒀다. 이로써 1974년(102승60패) 이후 43년 만이자 구단 역사상 일곱 번째 시즌 100승(57패) 달성을 이뤘다. 일본인 선발투수 다르빗슈 유(31)는 7이닝을 2피안타 1실점 9탈삼진으로 막아 팔꿈치 수술을 받기 전인 2014년(10승7패) 이후 3년 만의 두 자리 승수인 10승(12패)을 채웠다.
  • 칙칙했던 왕십리 모텔촌, 쉬엄쉬엄 걷고픈 여행자거리로

    칙칙했던 왕십리 모텔촌, 쉬엄쉬엄 걷고픈 여행자거리로

    지난 22일 저녁 서울 성동구 왕십리역 인근 ‘여행자거리’ 내 도선동상점가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일대 식당·호프집 150여곳은 20대 젊은이들뿐 아니라 중장년층들로 가득했다. 일본, 중국, 러시아, 베트남, 태국 등지에서 관광차 온 외국인들도 곳곳에서 눈에 띄었다. 서울의 번화가 1번지로 꼽히는 강남, 홍대 일대를 연상케 했다. 대학 친구들과 함께 온 이민지(23·강남구 일원동)씨는 “강남에서도 가깝고, 쇼핑센터·식당 등 즐길 거리·먹거리도 다양해 젊은층이 많이 찾는다”고 했다. 직장 동료들과 회식하러 온 박수연(34·중랑구 면목동)씨는 “모텔이 밀집해 있어 이미지가 좀 음침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밝고 깨끗해서 놀랐고, 사람들이 많아 또 한번 놀랐다”고 말했다.여자 친구와 함께 한국을 찾은 일본인 와타나베 호시이(23)는 “한국의 골목상권이 죽어가고 있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는데, 이곳을 보면 전혀 그런 생각이 들지 않는다”며 “생기가 넘쳐서 좋다”고 했다. 와타나베는 일본 내 여행사 사이트를 통해 여행자거리 내 숙박촌을 알게 돼 지난해에 이어 두 번째로 이곳을 찾았다. 그는 “성동구의 여행자거리 내 숙박촌은 다른 곳보다 저렴하고, 교통이 편리해 일본인들이 즐겨 찾는다”며 “낮에는 경복궁, 남산 등지를 둘러보고 밤에는 여행자거리 내 식당에서 저녁을 먹는다”고 말했다. 고사 직전의 왕십리 도선동 골목상권이 살아나고 있다. 여행자거리 조성으로 국내외 젊은이들이 몰리면서 지역 경제가 활력을 찾고 있다. 도선동 골목상권은 왕십리역에서 채 5분도 걸리지 않는 초역세권에 형성돼 있다. 하지만 많은 유동인구와 지역민들로 시끌벅적한 왕십리역 일대 다른 곳과 달리 적막했다. 모텔촌이라는 ‘오명’ 탓이다. 상가가 모텔들과 인접해 있어 모텔촌이 풍기는 어둡고 부정적인 이미지가 사람들 발길을 돌리게 했다. 이곳 모텔촌은 1970년대 형성됐다. 다른 지역보다 교통이 편리한 데다 숙박료도 저렴해 동대문을 찾은 상인들이 대거 몰리면서다. 모텔들이 우후죽순 생기면서 거리는 생기를 잃고 칙칙해졌고, 모텔을 이용하는 차량들로 사람들이 지나다니기도 어려웠다. 보다 못한 상인들이 뭉쳤다. 말 그대로 살기 위해서다. 이들은 2015년 서울시 ‘골목형 육성사업’에 응모해 선정됐다. 이기백 도선동상점가번영회장은 “시에서 5억여원을 지원받아 상권을 살리는 사업을 했지만 역부족이었다”며 “전통시장은 상가가 한곳에 모여 있어 집약적으로 투자할 수 있지만 이곳은 식당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고 예산도 부족해 상권을 살리는 데 한계가 있었다”고 설명했다. 상인들은 성동구에 도움을 청했다. 구에서 ‘여행자거리’ 조성 안을 꺼내 들었다. 도선동 일대 모텔촌의 숙박료가 싸고 교통이 편해 외국인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점을 감안, 태국 방콕 ‘카오산 로드’처럼 만들어 보자고 제안했다. 카오산 로드는 방콕 방람푸 시장 인근에 1970년대 숙박촌이 형성되면서 만들어진 여행자거리다. 400m 정도의 2차선 도로에 수많은 게스트하우스, 인터넷 카페, 레스토랑, 기념품점 등이 들어서 있다. 외국인 여행객들이 몰리면서 전 세계 배낭여행자들의 베이스캠프로 통한다. 지금은 외국인뿐 아니라 현지인들도 즐겨 찾는 관광 명소로 자리잡았다. 외국인 여행객들이 이곳을 찾는 이유는 숙박료가 저렴하고, 교통이 편리하기 때문이다. 도선동 숙박촌도 카오산 로드와 조건이 비슷하다. 일대에는 호텔 4곳, 모텔 18곳을 비롯해 커피숍·음식점 150여곳이 성업하고 있다. 지하철 2·5호선, 분당선, 경의·중앙선 등이 통과하는 교통 요지인 데다 숙박료도 저렴하다. 호텔 4곳의 일일 평균 숙박료는 주중 7만원, 주말 9만원이다. 상인과 구가 의기투합했다. 지난해 4월부터 12월까지 예산 3억원을 투입, 재생사업을 시작했다. 환경부터 개선했다. 모텔촌 일대의 어둡고 칙칙한 분위기를 싹 걷어내고 밝고 깨끗한 거리를 조성했다. 밤에도 화사한 빛을 발하는 아트월도 설치했다. 아트월은 나무 조형물에 ‘세계는 한 권의 책이며 여행자들은 그 책의 한 페이지를 읽었을 뿐이다’라는 문구를 새겨 넣어 만들었다. 도로포장도 다시 하고, 보행자 중심의 걷기 편한 거리로 만들었다. 거주자 우선 주차선을 없애 모텔 앞 도로에 진을 쳤던 차들을 모두 사라지게 했다. 외국인 관광객들을 위해 다국어 관광 안내 표지판을 설치하고, 외국인들이 자주 찾는 21개 음식점에는 다국어 식당 메뉴판을 제작, 배포했다. 숙박시설엔 서울숲, 성수동 수제화거리 등 지역 내 명소 소개 책자를 비치했다. 여행자거리 출발점인 왕십리문화공원엔 고산자 김정호 동상을 세웠다. 구청 앞 도로 이름이 고산자로인 데 착안, 대동여지도를 만들기 위해 전국을 떠돈 김정호를 여행자거리 상징으로 정했다. 여행자거리는 왕십리문화공원에서 시작해 할리스커피숍~호텔컬리넌과 힐모텔~리전트모텔, 두 개 구간(360m)으로 이뤄져 있다. 여행자거리 조성 사업이 시작되면서 외국인 관광객부터 급증했다. 호텔컬리넌·비전호텔의 2015년 중국·일본·동남아 등 외국인 투숙객은 5만 8510명이다. 이 두 호텔과 2015년 10월 신설된 아모렉스호텔을 합하면 지난해에 14만 6739명으로 껑충 뛰었다. 지난해 8월 문을 연 호텔포레스트와 모텔 투숙 해외 젊은 배낭족까지 합하면 지난 한 해만 20만명이 넘는 외국인이 이곳을 찾았다. 이마트 왕십리점은 제주를 제외하면 중국인 관광객들이 가장 많이 이용하는 곳이기도 하다. 족발가게를 운영하는 이기백 회장은 “불과 3년 전과 비교하면 천지개벽 수준으로 바뀌었다”고 했다. 그는 “예전엔 일 매출이 100만원도 되지 않았다. 아내와 둘이서 겨우 운영했다. 여행자거리 조성 후 일평균 매출이 200만원으로 올랐고, 직원 6명을 두고 장사하고 있다. 우리뿐 아니라 일대 식당, 호프집 매출이 두 배 이상 늘었다”고 말했다. 고깃집을 하는 한 업주는 “여행자거리 조성으로 어둡고 낡은 모텔촌 이미지가 확 바뀌면서 죽었던 골목상권이 정말 기적같이 살아났다”며 “중장년층들만 드문드문 오가던 거리와 상가에 젊은 사람들까지 찾아들고 있다”고 밝혔다. 한 호텔 관계자는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여파로 중국인 단체 관광객은 줄었지만 개별 관광객들이 늘고, 일본이나 동남아 관광객들도 많다”며 “사드 여파로 다들 힘들다고 하는데, 이곳 호텔들의 객실 가동률은 95% 수준을 기록하고 있다”고 했다. 다른 호텔 관계자는 “국내 여행사와 연계해 외국인 관광객들을 모객하고 있다”며 “아직 여행자거리 조성 사업 초기라 카오산 로드와 비교할 순 없지만 사업이 진전되면 카오산 로드를 능가하는 관광 명소로 자리매김할 것”이라고 말했다. 성동구는 2단계 여행자거리 조성 사업을 계획하고 있다. 정원오 성동구청장은 “모텔촌으로 낙후되고 기피되던 동네가 여행자거리 조성으로 활력을 찾았다”며 “앞으로 게스트하우스 유치, 통역 서비스 제공 등을 통해 외국인들이 더 많이 찾게 하고, 내국인도 일부러 찾아오고 싶은 거리로 만들겠다”고 말했다. 김승훈 기자 hunnam@seoul.co.kr
  • 60년 전 독도 영웅 33인 섬 모습과 함께 재현하다

    60년 전 독도 영웅 33인 섬 모습과 함께 재현하다

    역사기록물·활동상 있는 그대로…“국토수호정신 기르는 산 교육장”울릉도에 독도 수호를 상징하는 기념관이 세워졌다. 독도의용수비대기념사업회는 경북 울릉군 북면 천부4리에 신축 중인 ‘독도의용수비대기념관’을 이달 중 준공한다고 25일 밝혔다. 이 기념관은 천부4리 일대 부지 2만 4302㎡에 총 129억원을 들여 지상 2층(연면적 2118㎡)으로 지어졌다. 땅은 울릉군이 무상으로 제공했다. 날씨가 맑으면 독도가 육안으로 보이는 곳이다. 기념관 마당에는 독도 형상 조형물이 세워졌다.1층에는 의용수비대가 창설돼 활동(1953년 4월20일~1956년 12월30일)했던 1950년대 독도의 자연을 재현해 놓은 모형과 의용수비대 역사 기록물, 일본인이 독도에 설치했던 독도 팻말 10여점, 목(木)대포, 생활상 등이 설치됐다. 2층엔 의용수비대원 33명의 활동상 및 훈·포장, 포토존, 영상관 등이 자리잡았다. 정부는 1996년 홍순칠 대장에게 보국훈장 삼일장을, 나머지 대원에게 각 보국훈장 광복장을 수여했다. 국토 수호 정신을 되새기고 애국정신을 기르는 교육관과 체험시설도 갖췄다. 준공식은 다음달 24일 열린다. 기념사업회는 최근 기념관 초대 관장에 조석종(61) 전 울릉군 주민복지실장을 뽑았다. 임기는 3년이다. 울릉도 출신인 조 관장은 고 조상달 독도의용수비대원의 아들이다. 조 관장은 “기념관은 독도의용수비대원들의 숭고한 나라 사랑 정신과 확고한 영토 주권 수호 의지를 계승하는 산 교육 현장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독도의용수비대는 1953년 홍순칠 대장(1929∼1986)을 비롯한 6·25 참전용사 16명과 울릉도 거주 청년 17명 등 33명으로 결성됐다. 1956년 경찰에 임무를 인계할 때까지 독도를 침탈하려던 일본 순시선과 수차례 총격전을 벌이며 독도를 지켰다. 울릉 김상화 기자 shkim@seoul.co.kr
  • 후지이 미나, 비현실적인 얼굴 옆라인 공개 ‘남다른 분위기’

    후지이 미나, 비현실적인 얼굴 옆라인 공개 ‘남다른 분위기’

    일본인 배우 후지이 미나의 일상이 공개돼 화제다.최근 후지이 미나는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오랜만에 홍대에 가봤는데 예쁜 카페나 옷가게가 많았어요. 그리고 주말이었으니 길거리공연도 있어서 너무 즐거웠습니다”라는 글과 함께 사진을 올렸다. 사진에는 후지이 미나가 창문을 통해 카페 바깥을 보는 모습이 담겼다. 후지이 미나는 또렷한 이목구비와 남다른 분위기로 눈길을 사로잡았다. 한편, MBC에브리원 예능프로그램 ‘어서와 한국이지’ 측은 “후지이 미나가 러시아 편에 스페셜 MC로 녹화에 참여했다”고 밝혔다. 사진=인스타그램 임효진 기자 3a5a7a6a@seoul.co.kr
  • 이헤경 서울시의원, 아원고택서 삼청각 활용 해법을 찾는다

    이헤경 서울시의원, 아원고택서 삼청각 활용 해법을 찾는다

    전통공연과 연회장, 고급 한식당으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삼청각. 7.4 남북공동성명 직후 남북 적십자 대표단의 만찬이 열렸던 역사적 장소이자 한때 대표적인 국빈 접대와 정치회담 장소로 꼽히기도 했던 삼청각은 앞으로 어떤 모습으로 변화해야 할까.이혜경 서울시의원(중구2, 새누리당)은 지난 9월 18~19일 양일간 삼례문화예술촌 등 완주군 일대를 방문, 삼례문화예술촌과 아원고택을 중심으로 한 인근 지역의 문화‧예술‧관광인프라를 견학하고 이를 통해 삼청각의 활용방안 모색하는 뜻깊은 시간을 가졌다. 전북 완주군 삼례읍에 위치한 삼례문화예술촌은 1920년대 일본인 지주가 만든 양곡창고로 추정되던 곳을 완주군이 매입해 미술관, 공연장, 북아트 체험센터, 디자인 뮤지엄, 김상림 목공소, 책박물관 등이 들어선 복합예술공간으로 조성했다. 역사의 흔적을 간직한 지역의 대표적 자산을 새롭게 재구성한 도시재생의 새로운 모델로 각광받고 있다. ‘우리들의 정원ʼ이란 뜻의 아원고택은 경남 진주의 250년 된 한옥을 완주군 종남산 자락 아래 오성마을로 옮겨 이축한 한옥 스테이이자 복합문화공간이다. 천지인-만휴당, 사랑채-연화당, 안채-설화당, 별채-천목다실 등 4개의 숙박동과 아원갤러리카페. 음악감상실. MUSEUM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전문 장인들과 힘을 모아 한 채에 3년씩 정성을 쏟아 이축하고, 그 곁에 현대식 건축물을 완성할 때까지 총12년의 시간이 걸렸다고 한다. TV, 침대, 냉장고 등이 없이 오롯이 자연이 품은 한옥 속에서 하룻밤 머무는 특별한 경험을 할 수 있다. 서울관광마케팅주식회사 권혁빈 관광사업팀장과 남원재 전략기획팀장, 세종문화회관의 김영환 삼청각 TF사업팀장과 백마리아 정책기획팀장, 서울시 문화본부 이혜경 문화시설 추진단장과 김현강 주무관 등이 동행한 이번 현장방문에서 이혜경 의원은 삼례문화예술촌과 아원고택 외에도 최근 한옥형태의 리모델링으로 이슈가 되었던 전북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전북대학교 내 문화카페 오스스퀘어, 인근의 오스갤러리와 오스컬쳐카페 등을 찾아 컨셉과 운영 등을 꼼꼼히 살폈다. 바쁜 일정 중 완주군청을 방문, 현재 추진하고 있는 문화마을 사업에 대해 경청하는 시간을 갖기도 했다. 이혜경 의원에 따르면, 현장방문 기간 동안 열린 삼청각 활용방안 모색을 위한 토론에서는 지역의 대표적인 문화관광컨텐츠로 자리잡은 삼례문화예술촌과 아원고택 중심의 복합문화공간에 대한 호평과 함께 삼청각을 한식에 국한시키기보다 다양한 가능성을 열어두고 접근해야 한다는데 의견을 모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혜경 의원은 “아원고택을 둘러본 참가자 대부분이 역사성과 지속가능성을 담은 복합문화시설의 필요성과 함께, 열린 공모를 통해 다양하고 창의적인 사업계획서를 채택해야한다는 점에 공감했다”고 전하며, 서울시는 삼청각 활용에 대한 기본계획을 다시 세우고, 전향적인 자세로 복합문화관광 공간으로 활용‧발전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삼청각은 2000년 서울시가 인수한 이후 2009년부터 현재까지 (주)세종문화회관에서 운영하고 있다. 방문객 감소와 경영난을 겪던 중 지난해 세종문화회관 간부의 ‘갑질식사’ 논란이 일기도 했다. 최근 서울시는 최근 ‘복합한식문화 공간’을 선언하고 내년 3월까지 삼청각 내 공연장인 일화당과 별채 5동을 42억6000만원을 들여 리모델링할 계획이나, 새로운 민간위탁 사업자 공모에서 적격사업자를 찾지 못하고 연달아 3번 유찰된 바 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역사 속 공익신고] 살인자 수배 뜨자 농민들 우르르…도망간 노비들 쫓는 ‘추노’ 활개…아예 생업 삼은 현상금 사냥꾼들

    [역사 속 공익신고] 살인자 수배 뜨자 농민들 우르르…도망간 노비들 쫓는 ‘추노’ 활개…아예 생업 삼은 현상금 사냥꾼들

    세종 11년(1429년). 한밤중 한양 대로변에서 잔혹한 살인 사건이 벌어졌다. 피살자는 일본 무역을 위해 마련된 왜관에서 일하는 통역사 이춘발이었다. 왕은 일본의 연루 가능성을 고려해 합동수사본부를 설치해 대대적으로 수사하게 했다.인적이 드문 밤에 살인 사건이 발생하다 보니 목격자가 나오지 않았다. 조정에서는 “범인을 고발하거나 붙잡는 자에게 면포 100필과 그 범인의 재산을 준다”고 거리에 방을 걸었지만 제보는 들어오지 않았다. 왕은 “신고자에게 면포 200필을 준다. 공모한 자가 자수하면 죄를 면해 주고 고발한 것이 맞지 않아도 죄를 묻지 않는다”며 보상금을 크게 높여 다시 방을 붙였다. 며칠 뒤 조선에 귀화한 한 일본인이 “왜관에서 같이 일하는 홍성부가 피살자 이춘발과 관계가 나빠져 살해한 것 같다”고 신고했다. 의금부에 끌려 간 홍성부는 신문이 시작되자 겁에 질려 “살인자는 김생언”이라고 실토했다. 알고보니 홍성부는 이춘발이 맡던 왜어통사(일본어 통역사) 자리가 탐났고 김생언은 왜인과 금은을 밀거래하다가 이춘발에게 들통나 처벌받는 것이 두려웠던 것이었다. 결국 김생언이 동료 이득시와 수하를 개천교 근처에 매복시킨 뒤 “통역이 필요하다”고 이춘발을 꿰어내 살해한 것이었다. 사건의 전모가 드러나자 이득시는 남산으로 도망쳤다. 병조에서는 군졸을 풀어 곳곳을 찾았지만 행방을 알 수 없었다. 그러자 며칠 뒤 원만과 부호, 두언, 금록 등 네 명의 농민이 나타났다. 이득시를 잡아 조정이 내리는 보상금을 받기 위해서였다. 이들은 이득시가 승려로 변장해 경기도 광주 모처에 숨어 있다는 사실을 확인한 뒤 그를 급습해 관군에 넘겼다. 조정은 추적을 주도한 원만에게 면포 120필, 부호 40필, 금록과 두언에게 각각 20필을 상으로 내렸다. 이들은 보상금을 타내고자 전문적으로 활동하는 ‘바운티 헌터’(현상금 사냥꾼)였다. 조선에서는 백성의 신고로 몰수한 재산의 일부를 신고자에게 주는 방식으로 보상이 이뤄졌다. 오늘날 정부가 각종 신고자에게 보상하는 방식과 흡사하다. 조선 초기에는 도망간 노비에 대한 보상금이 가장 컸다. 노비는 신분 질서의 근간을 유지하는 기본 바탕인 동시에 국부의 원천인 농업 생산력과 직결돼 있었기 때문이다. 태종 때 실시한 노비진고법(奴婢陳告法)에서는 도망간 노비를 신고한 이에게 잡은 노비 수의 3분의1을 상으로 줬다. 성종 때는 쌀자루에 모래를 섞거나 물에 불려서 나쁜 쌀을 판 자를 신고할 경우 그가 번 재산을 몰수한 뒤 이 가운데 3분의1을 보상금으로 줬다.이렇듯 신고를 하면 보상금을 준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이를 노린 사람들이 크게 늘었다. 예종 1년(1469년)에는 “고발로 상을 받는 것을 생업(生業)으로 하는 자가 너무 많다”며 상금이 과도하다는 주장이 나왔다. 이에 따라 성종 12년(1481년)에는 도망 노비를 신고하면 노비 대신 면포로 보상금을 주거나 신고자가 죽으면 보상금을 국가에 반환하도록 하는 개선안이 나왔다. 성종은 호랑이 포상금을 제때 주지 않아 백성의 원성이 커지자 특별 교지를 내려 전국 8도 수령에게 “호랑이를 잡은 자에게 현장에서 바로 보상금을 주라”고 지시했다. 조선의 왕들은 각종 보상금을 통해 백성에게 조정의 주요 현안에 직접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줬다. 백성도 공동체의 이익을 위해 적극적으로 정부의 보상금 사업에 참여하려는 의식을 키웠다. ■출처:세종 11년(1429년) 5월20일, 23년(1441년) 2월13일, 예종 1년(1469년) 6월 29일, 성종 1년(1470) 4월 29일 곽형석 명예기자(국민권익위원회 대변인)
  • “일왕 퇴위 전 방한 양국관계 개선 도움”

    “일왕 퇴위 전 방한 양국관계 개선 도움”

    이낙연 국무총리가 아키히토 일왕의 퇴위 전 한국 방문을 제안했다. 이 총리는 지난 23일자 아사히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일왕이) 퇴위하기 전에 한국에 와서 그간 양국이 풀지 못했던 문제에 대한 물꼬를 터 준다면 양국 관계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며 “그런 분위기가 빨리 조성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신문은 한·일 관계의 중요성에 대해 언급해 온 일왕의 한국 방문이 양국 관계 개선의 큰 계기가 될 것이라고 기대하는 목소리가 한·일 양국에 있다고 설명했다.아키히토 일왕은 개인적으로 줄곧 한국을 방문하고 싶어 했다. 일본의 국가원수로서 한국을 방문해 식민지 지배 등 과거사에 대한 ‘유감’ 등을 통해 화해를 모색하려는 의사를 종종 밝혀 왔다. 한국 정부도 일왕의 방한을 희망해 왔지만 정부가 나서서 구체적으로 이를 준비한 적은 없었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24일 “방문하려는 측(일본)의 여건이 돼서, 진지한 검토가 있어야 일(방문 준비)이 진행되는데, 그런 여건이 마련되지 않았었다”고 설명했다. 다만 전두환·노태우·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 등이 일왕의 초청으로 국빈 방문했을 때 일왕 주최 만찬 및 환담 등 만남 자리에서 자연스럽게 일왕의 방한을 요청해 왔다고 도쿄의 외교 소식통들은 전했다. 그러나 내년 퇴위가 예정돼 있는 일왕의 한국 방문은 현재로선 실현 가능성이 대단히 낮다. 일왕의 방한 여부는 일본 정부가 결정한다. 일왕은 헌법 4조에 따라 상징적인 국가원수이며 정치적인 행위를 할 수 없다. 해외 방문 등도 정부와 정밀한 사전 협의가 필요하다. 일본 정부는 줄곧 일왕의 방한에 부정적이었다. 갈등이 상존하는 상황에서 일왕의 방한은 자칫 관계 악화의 계기가 될 수 있고, 일본인들의 구심점인 일왕의 권위를 훼손시킬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 때문에 아키히토 일왕은 퇴위 이후 사적인 방문이 검토된 것으로 알려진다. ‘일본통’인 이 총리의 인터뷰 발언도 이를 실현시킬 수 있는 “분위기 조성”이란 언급에 무게가 실려 있다. 일왕의 방한이 실현될 수 있는 좋은 관계를 만들어 나가자는 데 방점을 찍은 것이다. 한편 이 총리는 인터뷰에서 남북 간 대화의 중요성을 강조했으며 핵무장은 검토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도쿄 이석우 특파원 jun88@seoul.co.kr
  • 조계종 “청와대 불상, 경주로 옮기지 말라” 왜?

    조계종 “청와대 불상, 경주로 옮기지 말라” 왜?

    대한불교조계종이 100여 년 전 일본인이 경주에서 서울로 옮긴 ‘청와대 석불좌상’의 경주 이전에 반대하고 나섰다.조계종 관계자는 24일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청와대 경내에 있는 통일신라시대 석불좌상의 원래 봉안처가 규명될 때까지는 그대로 두는 것이 좋겠다는 의견을 이달 초에 청와대, 문화재청, 서울시에 전달했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경주 이전 장소로 거론되는 국립경주박물관으로 불상이 가서는 안 된다”며 “신앙의 대상인 불상이 박물관에 가면 전시물로 전락할 가능성이 크다”고 덧붙였다. 학계에서는 청와대 석불좌상의 제자리를 놓고 경주 남산이라는 의견과 도지동에 있었던 이거사(移車寺)라는 견해가 엇갈리고 있다. 경주 지역에서는 불상의 출처를 이거사로 보는 시각이 우세하지만, 남산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조계종이 청와대 석불좌상의 이전을 미뤄야 한다고 주장하는 표면적 이유는 불상의 봉안처로 국립경주박물관이 적합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불상의 조속한 경주 이전을 촉구해 온 경주 문화계는 이전 장소가 문제라면, 합의를 통해 다른 곳으로 옮기는 것도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박임관 경주학연구원장은 “국가 소유인 청와대 불상의 이전 장소로 국립경주박물관이 주로 논의된 이유는 안전하고 공신력 있는 국가기관이기 때문”이라며 “국립경주박물관이 싫다면 경주시청이나 불국사로 가도 상관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지금처럼 불상이 청와대에 있으면 접근할 수 있는 사람이 거의 없다”며 “많은 불자와 문화재를 사랑하는 국민이 가까이에서 불상을 볼 수 있도록 하루빨리 고향인 경주로 돌려보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문화재계 일각에서는 조계종이 청와대라는 상징적인 정치 공간에 불상을 두고 싶어하는 속내가 있어서 석불좌상 이전을 꺼린다고 지적한다. 불교계는 이명박 정권 당시 일부 개신교 단체가 종교적 편향성을 이유로 청와대 불상 이전을 요구할 때마다 “전통문화의 산물인 불상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려 한다”고 반박했다. 학계 관계자는 “조계종은 개신교계의 주장에 쫓겨 불상을 이전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했을 것”이라면서도 “10년 전쯤에는 종교적 색채가 옅은 문화재라는 논리로 청와대 불상 이전을 반대했던 조계종이 지금은 거꾸로 신앙의 대상이라는 이유를 내세운 것이 아이러니하다”고 꼬집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윤기자의 콕 찍어주는 그곳] 물 사시오! 수돗물 사시오!…수도박물관

    [윤기자의 콕 찍어주는 그곳] 물 사시오! 수돗물 사시오!…수도박물관

    “똥구멍이 원수로다!” 1908년 10월 23일, 대한매일신보(서울신문의 옛 제호)의 시사평론은 이렇듯 한탄했다. 지금 보기에는 황당하기만한 글이지만, 당시 조선의 사정에서는 결기마저 느껴질 정도의 과단한 사설이었다. 이유인즉슨 절실하기만 하다. 그때 일본인들이 길거리 널린 조선인의 인분을 모아 거름으로 돈을 벌었기에 똥을 함부로 길바닥에 누는 것도 친일행위라는 것이다. 똥조차도 항일(抗日)을 해야 하던 시기였다. 우리나라에 공중화장실이 들어선 것은 1904년 6월에 제정된 ‘위생청결법’ 이후였다. 이전에 서민들은 주로 큰 길이든, 장터 한 가운데든, 골목 뒤안길이든 상관하지 않고 일(?)을 처리하였다. 자연히 봄 여름 한양 도성은 말 그대로 인분과 가축 분뇨 냄새로 숨을 못 쉴 지경이었고, 도성의 길바닥 청소는 개가 담당하고 있다는 우스갯소리에도 웃지 못하던 시절이었다. 상황이 이러하다보니 당시 서울 시민들의 주요 상수원 공급처인 중랑천과 청계천은 사시사철 분뇨와 두엄찌꺼기, 생활하수들로 인해 이미 어지간한 오염 단계를 훌쩍 넘어섰다. 더구나 홍수라도 한 번 나게 되면 수인성(水因性) 질병인 콜레라, 장티푸스, 이질은 늘 창궐하였으며 호열자니, 염병이니 하는 명칭으로 귀신처럼 우리의 역사에 달라붙어 왔다. 1927년 경성의대 자료에 의하면, 당시 조선인 평균수명은 33.7세였으며 유아 사망률을 포함하면 생존수명이 24세에 불과했다. 2017년 현재 한국인 평균수명이 80세를 넘어가는 것에 비하면 그때 조상님들의 삶을 말해 무엇하겠는가? 깨끗한 물이 필요했다. 서울 수도박물관이다. 1900년대 초 한양의 수도(水道)사업 문제는 단순한 식수 해결의 차원이 아니라, 백성의 안위가 달린 문제였다. 이에 고종황제는 1903년 12월 9일 미국의 기업인 콜브란(C.H.Collbran)과 보스트위크(H.R.Bostwick)에게 상수도 부설 경영에 관한 특허권을 준다. 1906년 8월 대한수도회사(Korean Water Works Co.)는 뚝도수원지 제1정수장을 준공하여 1908년 9월에 처음으로 4대문 안과 용산 일대 주민들에게 하루 1만 2500㎥의 수돗물을 공급하였다. 당시의 정수방식은 화학식 정수가 아니라 완속여과방식으로 모래와 자갈틈으로 물을 천천히 통과시켜 정수하는 물리적 정수방식이었다. 이로써 근대 상수도 역사의 첫 단추가 꿰어진다. 이후 서울시내 공용수도 220전(栓)이 만들어졌고 이 곳에서 물장수들의 연합체인 수상조합원들이 집집마다 요사이 생수 배달하듯이 깨끗한 물을 배달했고 이런 형태는 상수도가 본격화되던 1960년대 말까지 이어졌다. 당시의 뚝도정수장은 현재 ‘뚝도아리수정수센터’로 탈바꿈하여 현재 35만㎥의 시설용량을 갖추고 102만 5000여 서울시민들에게 하루 평균 25만㎥의 아리수를 공급하고 있으며, 일부는 수도박물관으로 조성하여 체험학습의 장으로서 활용하고 있다. 1900년대 초에 이루어진 한양의 상수도 기반의 건설은 아시아권에서는 굉장히 빠른 사회 기반 시설이었고, 이에 점차 4대문 도성 안 백성들의 수인성 질병으로 인한 사망률은 급격히 낮아졌다. 서울의 수도박물관은 단순히 물을 정수하는 곳이라는 의미를 벗어나 국가에 의한 사회 기반 시설 인프라가 어떻게 국민 복지에 기여하는가를 알 수 있게 하는 우리 역사의 산 증거물이다. 초가을, 선선한 바람을 아리수 가득한 한강변에서 맞아보는 것도 좋을 듯 하다. <서울 수도박물관에 대한 여행 10문답> 1. 꼭 가봐야 할 정도로 중요한 여행지야? -서울숲에 가 볼일이 있다면 2. 누구와 함께? -초등학교 학생들의 견학 장소. 3. 가는 방법은? -지하철 2호선 뚝섬역 2번 출구→초록버스 2224번, 2413번 환승 (3번째 정거장 이동 ‘뚝도아리수정수센터/수도박물관’ 하차) 4. 감탄하는 점은? -서울 상수도 역사의 오래됨. 완속여과장치. 5. 명성과 내실 관계는? -조용하다. 서울 시내 조용한 휴식장소로서는 최고 수준. 6. 꼭 봐야할 장소는? -완속여과지 7. 주의할 점은? -막연히 가지 말고 서울 상수도 역사에 대해 좀 더 배우는 시간이 되길. 8. 홈페이지 주소는? -http://arisumuseum.seoul.go.kr/content/c1/sub1.jsp 9. 관람 정보는? -휴관일:매주 월요일/ 1월 1일, 설날 및 추석 당일/ 무료 10. 총평 및 당부사항 -음식물을 준비해와서 박물관 야외 휴식공간이나, 한강사업본부 옥상정원 혹은 서울숲에서 휴식을 취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글·사진 윤경민 여행전문 프리랜서 기자 vieniame2017@gmail.com
  • “부산에 의인 ‘이수현 길’ 만들자” 한·일 대학생, 명예 도로명 추진

    “부산에 의인 ‘이수현 길’ 만들자” 한·일 대학생, 명예 도로명 추진

    2001년 일본 지하철역인 신오쿠보역에서 선로에 떨어진 일본인을 구하려다 숨진 이수현(당시 26세)씨를 기리기 위해 한·일 대학생들이 ‘이수현 길’ 명예 도로명 만들기에 뜻을 모았다.한·일 대학생들로 구성된 ‘아름다운 청년 이수현 모임 2017’은 이씨의 모교인 부산 금정구 내성고 앞에서 부곡시장으로 향하는 금정구 서동로31번길의 이름을 ‘이수현 길’로 바꾸기 위해 서명운동에 들어간다고 20일 밝혔다. 일본 유학생 16명과 한국 대학생 15명으로 구성된 모임은 오는 23일부터 금정구 부산대 인근에서 이수현 길 만들기 서명운동을 진행한다. 서명운동에 앞서 이씨 추모비와 묘소에 들러 추모하는 시간을 가진다. 이들은 서명을 받아 금정구청과 금정구의회에 전달할 계획이다. 이수현 길 만들기를 제안한 한·일문화교류협회 오수웅 차장은 “16년 전 용기 있는 행동을 한 이씨가 사람들의 기억에서 사라지는 것 같다”며 “명예 도로명을 지정해 그를 기억했으면 한다”고 밝혔다. 부산 김정한 기자 jhkim@seoul.co.kr
  • [유엔총회] 北 우방국도 핵실험 맹비난… ‘로켓맨’ 표현은 트럼프가 직접 골라

    19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의 유엔본부에서 열린 유엔총회 일반토의 첫날 연설에 나선 미국과 브라질 등 34개국 정상들은 한목소리로 북한의 핵실험과 탄도미사일 발사 행위를 규탄했다. 지난해와 다른 것은 북한의 우호국이라고 여겨졌던 나라들까지 북한 비난 행렬에 동참했다는 점이다. 브라질의 미셰우 테메르 대통령은 “최근 한반도에서의 핵과 미사일 실험은 우리 중 누구도 무관심할 수 없는 심각한 위협”이라고 지적하면서 “브라질은 이런 (북한의) 행동을 최고로 격렬하게 비난한다”고 강조했다. 무함마드 부하리 나이지리아 대통령은 “북핵 위기의 평화적 해결을 위해 모든 압박과 외교적 노력을 가해야 한다”고 말했다. 안드레이 키스카 슬로바키아 대통령 역시 “이번 문제(북한 핵과 미사일 도발)는 오늘날 국제 평화와 안보에 최악의 위협 중 하나”라고 지적했다. 또 안제이 두다 폴란드 대통령도 “최근 북한의 핵실험과 미사일 개발은 국제법과 안보리 결의에 대한 노골적인 위반”이라고 강조했다. 프랑스와 스위스, 기니 정상 등도 북한이 핵무기를 포기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날 북한 비난의 정점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찍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은 엄청난 힘과 인내력을 갖고 있다”며 “하지만 우리 스스로와 동맹을 방어해야 한다면 북한을 완전히 파괴하는 것 말고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고 주장했다. 이어 “로켓맨(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은 그와 그의 정권을 자살로 몰아넣는 미션을 하고 있다”면서 “미국은 준비가 됐다. 그럴 의향도 있고 역량도 있지만 그럴 필요가 없기를 바란다”고 강조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에 억류됐다가 풀려난 뒤 숨진 미국인 대학생 오토 웜비어, 13세 때 북한에 피랍된 일본인 요코타 메구미, 이복형인 김정남 암살 사건 등을 언급하며 북한의 인권 실태를 비판하기도 했다. “옳은 다수가 사악한 소수에 맞서지 않으면 악이 승리한다”면서 “올바른 사람과 국가들이 역사의 방관자가 되면 파멸의 세력들이 권력과 힘을 키울 뿐”이라고 강조했다. 총회장에는 트럼프 정부 외교안보참모들이 총출동했고, 부인 멜라니아와 큰딸 이방카 부부, 차남 에릭도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연설을 듣던 존 켈리 비서실장은 고개를 숙인 채 얼굴을 가린 모습이 언론 카메라에 잡혀 화제가 됐다. 트위터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는 “켈리의 표정이 많은 것을 말해 준다”는 평가가 이어졌다. 한편 ‘로켓맨’, ‘북한 정권의 자살 미션’ 등의 표현은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연설문에 넣은 것으로 알려졌다. 백악관 고위관계자는 “대통령이 직접 표현을 다듬고, 미세 조정하는 데 엄청난 시간을 썼다”고 설명했다. 워싱턴 한준규 특파원 hihi@seoul.co.kr
  • 日, 北납치문제 언급 트럼프 연설에 반색…“日정부 입장 이해”

    日, 北납치문제 언급 트럼프 연설에 반색…“日정부 입장 이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9일(현지시간) 뉴욕 유엔본부에서 한 기조연설에서 북한의 일본인 납치 문제를 언급한 것에 대해 일본 정부가 환영의 뜻을 표했다고 연합뉴스가 20일 보도했다.교도통신에 따르면 아베 신조 총리와 함께 미국을 방문 중인 니시무라 야스토시 관방 부장관은 이날 트럼프 대통령이 납치 문제의 조기해결을 추진하는 일본 정부의 입장을 이해했다며 환영했다. 니시무라 부장관은 “아베 정권은 납치 문제를 가장 중요시하는 과제로 다루며 각국에 이해와 협력을 구해 왔다”며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은) 이해가 잘 전달된 결과다. 북한의 핵·미사일 문제와 함께 납치 문제에 대해서도 해결을 위해 전력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기조연설에서 북한에 억류됐다 풀려난 뒤 사망한 미국인 대학생 오토 웜비어 사건 등 북한의 인권 탄압 행위를 거론하며 “북한이 간첩을 위한 언어교사로 활용하기 위해 일본 해변에서 13세 소녀를 납치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언급한 13세 소녀는 지난 1977년 북한에 의해 납치된 것으로 알려진 요코타 메구미를 지칭한 것이다. 그는 “모든 국가가 북한이 적대적 행위를 멈출 때까지 김정은 정권을 고립시키기 위해 함께 할 때”라고 강조했다. 일본 언론들도 20일자 조간신문에 트럼프 대통령의 이 발언을 대대적으로 다루며 높은 관심을 보였다. 극우성향 산케이 신문은 1면 머리기사로 “트럼프 대통령이 유엔 연설에서 북한의 일본인 납치를 규탄했다”며 기조연설 내용을 자세히 소개했다.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은 이날 정례 브리핑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납치 문제를 포함한 대북 현안 해결을 위해 애쓰는 자세를 보여준 것을 높이 평가한다”며 “북한의 비핵화 방침을 확인하고 압력 강화를 국제사회의 협력을 강조했다는 점도 높이 평가한다”고 말했다. 스가 장관은 트럼프 대통령이 연설에서 “미국과 동맹을 방어해야 하는 상황이 오면 우리는 북한을 완전히 파괴하는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언급한 데 대해서도 “모든 선택지가 테이블 위에 있다고 트럼프 대통령이 표명하고 있는 입장을 높이 평가한다”며 “안보 분야에서 미일 협력을 이어나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미국을 방문 중인 고노 다로 외무상은 “트럼프 대통령이 납치 문제에 대해 상당히 확실히 언급했다”며 “일본의 (미국에 대한) 노력이 주효했다”고 기자들에게 말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김민희 기자의 B컷 월드] 노키즈존의 도래

    [김민희 기자의 B컷 월드] 노키즈존의 도래

    내 눈을 의심했다. 한국이 아닌 일본에서 이런 일이 일어나다니. 분명 지난 8일자 아사히신문에 난 기사였다. 내용인즉슨 이렇다. 오카야마현 소자시에 있는 한 카페가 최근 ‘미취학 아동을 데려온 손님을 받지 않습니다’라고 공표해 화제가 됐다. 지난 7월 카페 안 옛날식 미닫이문 종이가 찢어졌는데 엄마를 따라온 어린이의 소행으로 드러난 게 결정적 계기였다. 이전에도 엄마들이 대화에 빠져 있는 동안 아이들이 메뉴판을 망가뜨리거나 다다미에 음료수를 엎지르는 사고가 2~3일에 한 번꼴로 있었다고 한다. 카페 주인은 “가게의 분위기나 종업원의 부담을 생각해 아이 동반 손님을 받지 않기로 했다”고 말했다. 드디어 일본에도 ‘노키즈존’이 상륙했다. 한국에선 3년 전쯤부터 카페나 식당에서 어린이들의 출입을 금지하는 움직임이 나타났다. 아이들이 소란을 피우며 가게와 손님에게 유·무형의 손해를 끼치는 동안 엄마가 아이를 방치한다는 것이 이유였다. 아이들은 ‘진상’, 엄마는 ‘맘충’이라 불리며 혐오의 대상이 됐다. 그런데 이상했다. 적어도 내가 경험한 범위 안에서 일본인은 그럴 리 없었다. 그들의 지상 목표는 ‘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는 것’이다. 나는 지난 2년간 도쿄에서 아이를 키웠다. 그 기간 동안 나는 공공장소에서 소리를 지르거나 뛰어다니거나 기물을 파손하는 아이를 단 한 명도 본 적이 없다. 젖먹이도 마찬가지다. 아기가 앵 하고 울라치면 부모는 고개 숙여 사과한 뒤 지하철에서 내리거나 식당 밖으로 나간다.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내 아이보다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게 일본 사회의 분위기다. 일본이 다른 행성에 있지 않는 이상 ‘진상’과 ‘맘충’은 있을 테지만 소수는 어디에나 존재하게 마련이다. 충격을 추스르고 생각해 봤다. 그러고는 깨달았다. 엄마들이 아무리 아이들을 호되게 단속해도 노키즈존은 없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걸. 왜냐하면 노키즈존은 어린이라는 사회적 약자를 배제하고 싶어 하는 욕망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위에서 언급한 카페 주인만 해도 그렇다. 그가 든 노키즈존 도입의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기물 파손과 영업 분위기 침해. 그렇다면 그 카페에서 어린이를 제외하고 기물 파손과 영업 분위기를 침해하는 손님은 단 한 명도 없는가? 할머니도 음식을 먹다 다다미에 흘릴 수 있고, 술에 취해 난동을 부리는 아저씨도 있을 테다. 그런데 출입이 금지되는 건 왜 어린이뿐인가. 어린이는 생래적으로 통제가 불가능하고 심지어 구매력도 없다. 그런데 어린이에 대해 부담해야 할 사회적 비용은 상대적으로 크다. 그런 부류와 함께 사회적 공간에 머무르며 그들을 위해 나의 권리(돈을 지불하고 확보한 카페에서의 자유)를 침해당할 어떤 희생도 하고 싶지 않다. 노키즈존의 속내다. 어린이는 사회적 약자이고, 이들은 주류 사회에서 배제되고 있다. 이게 한국에 이어 일본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이다. ‘출산은 애국’이라며 아이를 낳으라더니, 낳아서 키우는 건 눈에 안 보이는 곳에서 하란다. 엄마들은 아이를 낳는 순간 눈에 띄어서는 안 되는 ‘소수자’가 된다. 한국의 출산율 1.17은 괜히 나오는 게 아니다.
  • “日정부, 위안부 동원 조직적 개입… 법적 책임 있다”

    “日정부, 위안부 동원 조직적 개입… 법적 책임 있다”

    일제강점기 일본군의 위안부 동원 과정에 일본 정부가 깊이 개입했다는 내용이 담긴 일본 측 공식 문건이 처음으로 공개됐다. 일본 정부는 위안부 동원에 일본군이 관여했다는 사실은 인정했지만 정부의 책임을 직접 언급한 적은 없었다.호사카 유지 세종대 교수 겸 독도종합연구소장은 19일 “1937년 일본군 난징 대학살 사건 이후 위안소 설치가 본격화됐다”면서 “이 과정에서 일본 정부가 조직적으로 개입했다는 문서가 발견됐다”고 밝혔다. 호사카 교수는 이날 서울 광진구 세종대 학생회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1997년 아시아여성기금이 출판한 ‘정부 조사 종군위안부 관계자료 집성’ 총 5권 중 1권을 번역, 분석한 결과를 발표했다. 이 문서는 와다 하루키 도쿄대 명예교수 등 세 명의 학자가 1930년대 일본 외무성, 경찰청 등 정부 문서를 수집한 자료다.이 문서에는 ‘일본군이 주둔 지역의 일본 외무성 총영사관에 위안부 모집을 의뢰하면 총영사관은 일본 내무성이나 경찰서에 위안부를 동원하는 업주에게 편의를 제공해 줄 것을 요청했다’는 등 위안부 동원 과정에서 일본 정부가 어떤 역할을 했는지 고스란히 담겨 있다. 이날 호사카 교수가 공개한 1938년 2월 7일 경찰청 문서 ‘시국이용 부녀유괴 피의사건에 관한 건’에는 오사카부 경찰서가 상하이 파견군 위안소의 종업작부(위안부) 모집에 관해 ‘상당한 편의’를 제공했다는 내용이 기록돼 있었다. 호사카 교수는 “일본 정부가 적극적으로 협조했다는 것은 위안부 동원 시스템의 일부였다는 것을 보여 주는 중요한 단서”라면서 “일본 정부도 일본군과 함께 위안부 문제의 공범이기 때문에 법적 책임을 면할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또 1938년 2월 18일 경찰청 문서인 ‘지나(중국) 도항 부녀 취급에 관한 건’에 일본 정부가 성매매업에 종사하는 만 21세 이상인 일본인(일본 국적의 한국인, 대만인 포함)에 대해선 위안부 동원을 묵인했다는 내용도 공개했다. 호사카 교수는 “여성을 현지로 보낼 때 부모의 허가가 필요하지만 허가를 내줄 사람이 없으면 그 사유를 명시하기만 해도 위안부가 될 수 있다는 예외조항을 달았다는 점이 핵심”이라고 설명했다. 일본으로 건너간 당시 조선인이 이 예외조항에 따라 대거 위안부로 동원됐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그는 “위안부 동원 과정은 취업사기를 빙자해 부녀자를 유괴하거나 납치하는 범죄와 다를 게 없다”면서 “1993년 ‘고노담화’에는 일본 정부의 책임이 빠져 있는데 이 부분은 명백히 시정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헌주 기자 dream@seoul.co.kr
  • “사이비 일본인 나가” 日 ‘레이하라’ 확산

    “사이비 일본인 나가” 日 ‘레이하라’ 확산

    혐오금지법 작년 시행됐지만 외국인 84% “일상 속 배제” 미즈하라 기코(27). 발랄하고 개성 넘치는 이미지로 젊은층에 인기를 끌고 있는 일본의 모델 겸 배우다. 한국에서는 아이돌그룹 빅뱅의 리더 지드래곤과 열애설이 불거지며 얼굴이 알려졌다. 그런 그가 최근 인종차별적 테러를 당했다. 일본의 주류회사 산토리가 미즈하라를 모델로 기용한 ‘프리미엄 몰츠’ 맥주 광고를 지난 7일 트위터에 올렸는데, 거기에 ‘왜 일본인을 기용하지 않는 것인가’, ‘미즈하라는 사이비 일본인’이라는 댓글이 달리며 불매 운동 협박도 받았다. 이유는 미즈하라가 미국인 아버지와 재일한국인 어머니를 뒀다는 것. 미즈하라는 지난 15일 트위터를 통해 “하루빨리 이 세상의 인종이나 성별 등에 대한 편견이 없어졌으면 좋겠다”고 심경을 토로했다.지난 몇 년간 일본에서 기승을 부리던 ‘헤이트스피치’(특정 인종·집단에 대한 혐오 발언)는 지난해 6월 헤이트스피치대책법이 시행된 이후 사그라든 분위기다. 그러나 미즈하라의 경우처럼 자신의 주변 사람들에 의해 일상생활 속에서 흔히 발생하는 ‘레이하라’는 여전하다고 아사히신문이 19일 전했다. ‘레이하라’는 인종적 괴롭힘(Racial Harassment)을 줄인 말로, 학교나 직장 등 일상생활 속에서 특정 인종, 민족, 국적에 대한 부적절한 언동이나 행위를 하는 것을 뜻한다. 직장 내 성희롱을 일컫는 ‘세크하라’(Sexual Harassment), 상사의 위계를 이용한 부당행위인 ‘파와하라’(Power Harassment)에 이어 ‘레이하라’가 사회 문제로 떠오른 것이다. 고질적 흑백 갈등을 겪고 있는 미국 등에서는 ‘레이하라’가 예전부터 심각한 문제였지만 단일민족이라는 믿음이 강한 일본에서는 이를 규제하는 법률이 없는 상태다. 그러나 최근 일본 사회도 외국인 부모를 두거나 외국 국적이어도 일본에 거주하는 등 다양한 인종의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레이하라’ 같은 마찰음이 발생하고 있다. 교토의 한 사립대에 재학 중인 재일한국인 3세 여성은 수업 중 시간강사로부터 ‘한국은 부끄러운 나라’, ‘한국은 근대국가가 아니다’ 등의 발언을 들었고, 교실에 있으면 안 될 것 같은 기분이 들어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고 아사히는 소개했다. 또 독일인 아버지와 일본인 어머니를 두고 1997년부터 일본에 살고 있는 칼럼니스트 산드라 헤페린은 “일본어 할 줄 아나?”, “정말 일본인 맞나?” 같은 질문을 계속 들어 왔다고 말했다. 오사카에 있는 시민단체 다민족공생인권교육센터가 지난해 일본이 아닌 외국에 뿌리를 두고 있지만 일본에 거주하는 102명을 대상으로 여론조사를 실시한 결과 “학교나 직장 내에서 일본인밖에 없다는 것을 전제로 한 조직 운영이나 대화가 이뤄지고 있다”고 느낀 사람이 84.3%(86명)에 달했다고 아사히는 전했다. 인권 문제에 정통한 니와 마사오 변호사는 “레이하라로 인해 제기되는 소송이 일본 각지에서 늘고 있다”면서 “세크하라나 파와하라가 사회적으로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라는 인식이 있는 반면 레이하라에 대한 대책은 뒤떨어진 감이 있다”고 지적했다. 김민희 기자 haru@seoul.co.kr
  • 서울광장 3.5배 크기 옛 일본인 토지 되찾았다

    법원 “4만 6612㎡ 등기이전” 검찰이 광복 이후 국고로 환수되지 못한 전국 최대 규모의 옛 일본인 토지 환수 재판에서 승소했다. 해당 토지는 국유지로 이전된다. 춘천지법 강릉지원 민사1단독 정지은 판사는 9일 대한민국(검찰)이 정모씨를 상대로 낸 소유권 이전 등기 소송에서 “정씨는 국가에 땅 4만 6612㎡의 소유권 이전 등기 절차를 이행하라”고 판결했다. 해당 토지는 강원 강릉시 왕산면에 소재한 임야로, 서울 광장(1만 3207㎡)의 약 3.5배에 이르는 면적이다. 일본인 명의의 땅을 해방 후 불법 등기한 10건(11명 소유)의 토지 5만 8000여㎡ 가운데 가장 큰 면적을 차지해 그동안 재판에 관심이 쏠렸다. 이 재판은 피고 정씨가 소장에 대한 답변서를 제출하지 않아 변론 없이 종결됐다. 판결이 그대로 확정되면 해당 토지는 국유지로 이전 등기된다. 검찰이 벌여온 일본인 땅을 되찾아 국가 소유로 하는 재판은 그동안 두 차례 있었다. 첫 재판은 지난달 대구지법 안동지원에서 진행한 것으로 ‘5250㎡의 땅 소유권을 국가로 이전하라’는 승소 판결이었다. 이어 창원지법 밀양지원에서도 법원은 같은 취지의 결정을 내렸다. 정모씨에게 ‘252㎡의 토지 소유권을 국가로 이전하라’며 화해 권고 결정했다. 이번 강릉지법 검찰 승소 판결로 일제강점기 일본인 땅을 되찾기 위한 10건의 재판 중 3건이 마무리됐고 7건이 남게 됐다. 일제강점기 일본인이 보유했던 땅은 대부분 해방 이후 미 군정에 귀속됐고, 1949년 시행된 귀속재산처리법에 따라 국유지로 환수됐다. 하지만 6·25 전쟁을 거치면서 토지대장이 누락·소실돼 불법 등기 등을 거쳐 미환수된 땅이 남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조달청으로부터 일제강점기 일본인 토지대장을 정리해 만든 ‘국유화 조사 대상 토지’ 자료를 받아 환수에 나섰다. 등기부 등본을 추적해 최초 소유자를 확인하고 일제강점기 거주 일본인 명단과 대조 과정 등을 거쳐 환수 대상을 선정, 소송을 제기했다. 강릉 조한종 기자 bell21@seoul.co.kr
  • 서울광장 3.5배 크기 옛 일본인 토지 되찾았다

    검찰이 광복 이후 국고로 환수되지 못한 전국 최대 규모의 옛 일본인 토지 환수 재판에서 승소했다. 해당 토지는 국유지로 이전된다.  춘천지법 강릉지원 민사1단독 정지은 판사는 9일 대한민국(검찰)이 정모씨를 상대로 낸 소유권 이전 등기 소송에서 “정씨는 국가에 땅 4만 6612㎡의 소유권 이전 등기 절차를 이행하라”고 판결했다. 해당 토지는 강원 강릉시 왕산면에 소재한 임야로, 서울 광장(1만 3207㎡)의 약 3.5배에 이르는 면적이다. 일본인 명의의 땅을 해방 후 불법 등기한 10건(11명 소유)의 토지 5만 8000여㎡ 가운데 가장 큰 면적을 차지해 그동안 재판에 관심이 쏠렸다.  이 재판은 피고 정씨가 소장에 대한 답변서를 제출하지 않아 변론 없이 종결됐다. 판결이 그대로 확정되면 해당 토지는 국유지로 이전 등기된다.  검찰이 벌여온 일본인 땅을 되찾아 국가 소유로 하는 재판은 그동안 두 차례 있었다. 첫 재판은 지난달 대구지법 안동지원에서 진행한 것으로 ‘5250㎡의 땅 소유권을 국가로 이전하라’는 승소 판결이었다. 이어 창원지법 밀양지원에서도 법원은 같은 취지의 결정을 내렸다. 정모씨에게 ‘252㎡의 토지 소유권을 국가로 이전하라’며 화해 권고 결정했다.  이번 강릉지법 검찰 승소 판결로 일제강점기 일본인 땅을 되찾기 위한 10건의 재판 중 3건이 마무리됐고 7건이 남게 됐다.  일제강점기 일본인이 보유했던 땅은 대부분 해방 이후 미 군정에 귀속됐고, 1949년 시행된 귀속재산처리법에 따라 국유지로 환수됐다. 하지만 6·25 전쟁을 거치면서 토지대장이 누락·소실돼 불법 등기 등을 거쳐 미환수된 땅이 남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조달청으로부터 일제강점기 일본인 토지대장을 정리해 만든 ‘국유화 조사 대상 토지’ 자료를 받아 환수에 나섰다. 등기부 등본을 추적해 최초 소유자를 확인하고 일제강점기 거주 일본인 명단과 대조 과정 등을 거쳐 환수 대상을 선정, 소송을 제기했다. 강릉 조한종 기자 bell21@seoul.co.kr
  • “4·3 사건 함께 못한 죄책감이 건축물 같은 픽션 쌓아”

    “4·3 사건 함께 못한 죄책감이 건축물 같은 픽션 쌓아”

    “일본 첫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가와바타 야스나리가 1970년대 초반 ‘조선을 문학의 주제로 삼으면 보편성이 없다’는 얘기를 했어요. 어찌나 굴욕적이던지 일본 문예지에 반론을 쓰려 했는데 작가가 자살하면서 기회를 놓쳤어요. 그 말은 일본이 조선을 식민지로 삼던 지배 논리의 잔재이자 문학적 제국주의나 마찬가지 아니오. 그래서 일본어로 조선에 대해 쓰더라도 보편성을 지닐 수 있다는 걸 보여 주려고 일본어란 외피로, 상상력을 무기로, 제주 4·3사건을 소설로 썼죠. 험하고 외로웠지만 그것이 작가로서의 내 자유와 정체성을 지키는 길이었지.”재일조선인 작가 김석범(92)이 제주 4·3사건의 비극을 알리고 진상을 밝히는 데 평생을 걸었던 이유다. 내년이면 70년을 맞는 제주 4·3사건은 작가의 마음속엔 여전히 역사가 바로잡히지 않은 현재진행형의 비극이다. 서울 은평구청이 제정한 이호철 통일로 문학상 초대 수상자로 시상식 참석차 방한한 그는 18일 기자들과 만나 “4·3사건을 전해 들으며 받은 충격과 그 지옥세계에 함께 있어 주지 못했다는 죄책감이 건축물 같은 픽션, 하나의 우주를 쌓아 올리게 했다”면서 여러 차례 눈시울을 붉혔다. 1925년 일본 오사카에서 태어난 그는 1957년 발표한 소설 ‘까마귀의 죽음’으로 제주 4·3사건의 참혹함을 처음 전 세계에 알렸다. 1976년 일본 문예 춘추사 ‘문학계’에 연재를 시작해 1997년 완성한 원고지 2만 2000매의 소설 ‘화산도’는 4·3사건과 해방 직후의 혼란상을 그려 폭력의 한가운데 인간의 존엄을 일깨운 역작이다. “화산도는 발표 직후 10년간은 일본에서 영 평가를 못 받았어요. 사소설이 주류인 일본 문학과는 달라 이단자 취급을 받기도 했지만 ‘너희도 이런 세계를 알아야 한다’는 마음으로 억지로 (작품을) 밀어 댔죠. 일본 문단에 빌붙어서 등장하지 않고 주류 문단에 머리 숙이지 않았다는 것, 그것만 해도 내겐 큰 긍지요.” 그는 남북한과 일본, 어느 쪽의 국적도 거부하는 조선적(朝鮮籍)을 고수해 고국을 찾을 때마다 여행 증명서를 받아야 한다. 제주를 그린 ‘화산도’를 쓰면서도 입국이 허락되지 않아 상상력에 의존해야 했던 그는 “고향 산천 냄새를 맡고 땅도 밟아 보고 싶었다”고 울먹이며 “1988년 42년 만에 고국에 왔을 때는 흥분해서 하루에 평균 두어 시간 자면서 고국을 둘러봤다”고 했다. 2015년 4월 제주 4·3평화상 수상 당시 이승만 정부의 정통성에 대해 문제를 제기한 연설이 논란이 되며 그해 10월 심포지엄 참석을 위한 입국이 불허되기도 했다. 하지만 후회는 없다. ‘분단된 나라의 국민이 되고 싶지 않다’는 것 자체가 그의 삶을 지탱해 온 사상이었기 때문이다. “해방 직후 일본에서 일본인이 아니란 증거로 재일 조선인이란 등록표를 만들어 줬어요. 그건 국적이 아니지, 말하자면 기호죠. 남과 북, 어느 쪽의 국적도 선택하지 않은 건 분단된 나라, 동강난 한 조각의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아서야. 한겨레의 한 사람이 되고 싶어서였지.” 아흔을 넘긴 나이지만 하루 한 시간씩 체조와 산책을 빼먹지 않으며 건강을 유지한다는 그는 아직도 창작의 열망이 깃든 눈빛으로 말했다. “화산도를 마치면 연애소설을 쓰고 싶다고 말해 왔지. 여자가 남자를 지배하는 세상에 대해 써 보고 싶거든. 나는 페미니스트인데 여자 편에 서고 싶은 자기반성이 있는 거죠. 어디까지나 내가 한번 여자가 돼서 남자를 부려먹고 싶소.”(웃음) 글 사진 정서린 기자 rin@seoul.co.kr
  • [글로벌 인사이트] “경제사회적 격차·분단 보완할 시점…한국 재벌 개혁 성공해야 경제 발전“

    [글로벌 인사이트] “경제사회적 격차·분단 보완할 시점…한국 재벌 개혁 성공해야 경제 발전“

    강상중 일본 도쿄대 명예교수는 “한국도 세계화로 벌어진 국내의 경제사회적 격차와 분단을 보완·시정해 나가야 할 때”라면서 “재벌 개혁이 성공해야 한국 경제도 한 단계 더 나아갈 수 있다”고 말했다. 한반도 상황에 대해서는, “긴장 고조 속에서도 오는 10월 전기를 마련할 수 있다”고 전망하면서 “북·미 직접 대화 실현 등 급격한 상황 변화 등에도 경계를 늦추지 말 것”을 주문했다. 서울대 일본연구소 주최 재일 한국인 관련 세미나의 기조연설과 지난해 말 일본에서 출간된 자신의 저서(‘역경에서 일하는 방법’)의 한국어판인 ‘나를 지키며 일하는 법’ 출간 기념 강연 등을 위해 오는 29일 한국을 방문하는 강 명예교수를 지난달 29일 만났고, 전화 인터뷰 등을 추가했다. 저명한 정치학자이자, 일본에서 유력한 오피니언 리더의 한 사람으로 꼽히는 그로부터 한반도 및 한·일 관계, 국제사회 변화, 한국사회 진단 등을 들어봤다.→북한으로 인해 불안정이 커지고 있다. -한반도 및 동북아 위기 상황이 고조됐지만, 협상 가능성은 있다. 다음달 조선노동당창설 72주년과 남북 정상회담 10주년 기념일 등이 계기가 될 수 있다. (과거 패턴처럼) 긴장이 더 고조되다 타협 계기를 찾을 수 있다. 렉스 틸러슨 국무장관, 제임스 매티스 국방장관 등 미국 외교안보 사령탑들도 현실적인 성향이다. 10월은 한국이 한반도 문제의 당사자라는 위상과 발언권을 확보하기 위해 놓치지 않고 활용해야 할 둘도 없는 기회이다.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 강화 등으로 한국 정부의 대북 대화정책은 시련을 겪고 있다. -한국은 한반도 긴장이 전쟁으로 비화되지 않도록 위기관리에 전력을 다하면서 미국과 중국·러시아 사이의 전략 차이에 주목해야 한다. 이를 바탕으로 국제적인 발언권을 위해 균형점을 모색해야 한다. 대북 압력을 가하면서 외교적 해결법을 열어놓고 있는 문재인 대통령의 방향성은 옳다. 문 대통령은 주도적으로 북한을 마주 대하기 위해서도 미국과 소통이 필요하다고 판단한다. 그는 김대중·노무현 정권의 여러 경험 속에서 교훈을 얻고 있다. 미국 정부가 한국, 일본에 통보 없이 북한과 직접 담판도 진행할 수 있다. →한국은 최근 중국과 사드 문제로 갈등을 겪고 있다. 국력이 커진 중국은 미국, 일본과도 부딪치고 있다. -사드를 둘러싼 중국의 행태는 그들의 경제가 정부 통제 아래 움직여지고 있음을 보여줬지만, 중국은 다시 국가사회주의로 돌아갈 수 없다. 중국은 옛 소련과는 달리 세계 경제 속에 한 부분으로 들어와 있다. 그래서 타협 가능성이 있다. 중국을 적으로 돌리면 한국의 발전은 더뎌질 수 있다. 지정학적인 변화 속에 그들의 영향력은 더 커질 것이다. 관건은 중국이 미국을 밀어내고 패권국가가 될 수 있겠느냐는 ‘패권교체’의 문제다. 미국에 중국은 최대 라이벌이지만 공존이 가능하다. 둘의 관계가 제로섬이 될 필요가 없다는 점에서 (미래를) 낙관한다. →동아시아에서 평화적인 공동체를 만들 수는 없나? -유럽연합(EU)처럼 지역 국가들이 동질감을 공유하고 있지 못한 동아시아에서 한국, 일본, 대만, 베트남 4개국의 협력이 지역 공동체를 만들어 나가는 데 매우 중요하다. 근대화와 민주화를 진행시켜 온 나라들로서 공동체 구성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 미국과의 양자 관계만으로 미래를 결정하던 시대는 지났다. 복합적인 외교관계망을 만들어나가야 한다. 이런 미래시대를 위해 일본의 과거사 청산은 중요하다. 한·일 간 과거사에 대해서 일본 정부는 “‘1965년 한·일 협정’에 의해 모든 것이 다 해결됐다”고 주장한다. 양측이 기존 합의를 지키면서 한 차원 높은, 새 합의를 만들어 내는 것이 해결 방안의 하나이다. 일본 총리, 외무상 등이 위안부 할머니들을 만나서, 또는 사과 편지를 보내서 사죄 입장을 명확히 밝히는 것이 필요하다. 유무형의 성의를 표시해야 한다. →징용공 문제도 새로 불거졌다. -노무현 정부 때는 한·일조약으로 개인 청구권 문제도 외교 청구권과 함께 종결됐다고 밝혔다. 한국에서 근년 들어 (개인청구권은 존재한다는) 판결이 있었다. 일본 측에서는 “한·일 협정으로 모든 것이 끝났다”는 입장을 되풀이하고 있다. 1990년대 일본 정부는 2차세계대전 당시, 일본인에 대한 옛 소련의 가혹행위 등과 관련, “일본인 피해자들의 개인청구권은 살아 있다”는 입장을 견지했다. 1997년 오부치 정권 때도 그랬다. 한·일 징용공 문제 해결의 실마리가 될 수 있다. →아베 신조 정부는 헌법을 개정하고 전후 체제를 벗어나려고 한다. -간단히 과거로 되돌아갈 수는 없다. 많은 국민들은 헌법 개정을 원하지 않고 있다. 일본의 문제는 집권 자민당이 압도적으로 강하고, 여당에 대한 대안이 없다는 점이다. 집권당을 대체할 야당이 있는 한국과는 사정이 다르다. 자민당보다 더 보수적인 (여권) 정당이 나타날 가능성이 커진 것도 문제이다. 고이케 유리코 도쿄도지사의 도민퍼스트회의 움직임도 그런 우려를 키우고 있다. →한국 사회의 문제는 무엇이라고 보나. -세계화는 국가 공동체 내부에서 분단과 격차를 초래했다. 내부로부터 국가가 와해되고 있다. 한국도, 일본도, 국내 격차와 내부 분단이 심화됐다. 이명박·박근혜 정권 10년 가까이 한국 사회에 허무주의도 커졌다. 사회적 연대도 약화됐고, 개인주의가 심화됐고, 사회는 초경쟁화됐다. 젊은 사람들이 자신의 성공만을 생각하는 경향도 강해졌다. 한국은 민주화를 진전시켜왔지만, 경제적 격차와 집중화는 더 심화됐다. 금융위기 극복을 위한 김대중 정권의 글로벌화, 노무현 정권의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등은 사회 내부 격차를 벌렸고 재벌을 더 키웠다. 세계화는 피할 수 없지만 문제점을 보완, 시정해 나가는 것은 필요하다. →한국은 어디를 향해 가야 할까. -한국은 국내총생산(GDP) 규모 세계 11위로 이탈리아에 근접하고 있지만 국민 불만은 더 높아졌다. 노력에 맞는 대가와 보수를 못 받고 있다고 여기고 있다. 부의 사회적 재분배로 경제사회적 성취가 좀 더 많은 이들에게 더 돌아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육아, 교육, 의료, 노인 및 장애자 돌봄 등을 더 안심하고 받을 수 있는 그런 사회로 나아가지 않으면 안 된다. 공생과 보다 다양성 있는 사회로 이끌어야 한다. →재벌 개혁에 큰 의미를 두고 계신데. -박근혜 정권의 퇴진은 정경유착을 끊을 수 있는 계기를 만들었다. 일본의 재벌 해체와 청산은 패전 및 미군정 지배를 통해 이뤄졌다. 박 정권의 퇴진은 그런 계기와 힘을 줬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한 판결은 한국 재벌이 변하지 않을 수 없음을 보여줬다. 재벌 개혁은 일시적으로 한국의 무역 및 경제성장을 둔화시킬 수도 있다. 이겨내야 재벌을 합리화시키고, 경쟁력도 높이게 된다. 재벌이 변해야 벤처 및 중소기업들이 더 활성화된다. 일본은 독점금지법 등을 통해 탄탄한 중소기업을 키워왔다. 재벌 개혁이 성공해야 한국 경제를 새로운 단계로 끌어올릴 수 있다. →인간 성찰과 현대사회의 고뇌·갈등 해결을 모색한 저서들로 큰 반향을 일으켜왔는데. -인간은 병, 죽음, 재난 등을 피할 수 없다. 그러나 사회적으로 불행과 사고가 인위적으로 일어나지 않게 하는 사회적 제도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세월호 사건으로 한국 사회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 필연적이지 않은 세월호 사건 같은 것들이 일어나지 않도록 막는 것이 사회적인 힘이다. 인간은 갈등, 병, 죽음 등에서 벗어날 수 없다. 그러나 사람과 사람 관계를 통해서, 사회적 연대를 통해서 그 불행을 치유하고 바꿀 수 있다. 인간이 갖고 있는 고뇌, 염려는 혼자 해결할 수 없다. 불행을 타인과 함께 짊어지는 사회적인 연대, 그런 제도를 만들어 나가지 않으면 안 된다. 사회적 연대와 그런 마음 마음들이 연동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와 시스템을 만들어 나가야 한다. 도쿄 이석우 특파원 jun88@seoul.co.kr ■ ‘나를 지키며 일하는 법’ 저자 강상중 日도쿄대 명예교수는 1950년 일본 구마모토 현에서 재일교포 2세로 태어나서 자랐다. 와세다대 정치학과와 독일 뉘른베르크대학에서 공부했다. 1998년 한국 국적자로는 최초로 도쿄대 정교수가 됐다. 2013년 4월부터 2년간 세이가쿠인대학 총장을 역임했고, 2016년 1월부터 구마모토 현립극장 이사장 겸 관장으로 있다. 정치뿐 아니라 사회현상, 역사, 사상 등 다양한 분야에서 논리정연한 분석과 사회 및 인간에 대한 깊은 성찰 및 호소력 있는 어필로 일본의 대표적인 오피니언 리더로 자리를 잡아왔다. 저서 ‘고민하는 힘’ 등은 밀리언셀러가 됐고, ‘내셔널리즘’ ‘오리엔탈리즘을 넘어서’ ‘두 개의 전후와 일본’ 등 왕성한 저작 활동을 벌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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