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일본인
    2026-08-13
    검색기록 지우기
  • 음악제
    2026-08-13
    검색기록 지우기
  • 부자재
    2026-08-13
    검색기록 지우기
  • 해돋이
    2026-08-13
    검색기록 지우기
  • 세리에A
    2026-08-13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12,933
  • ‘이상한 나라의 며느리’ 오정태 파격 제안, 시어머니 쓴웃음 ‘궁금증 UP’

    ‘이상한 나라의 며느리’ 오정태 파격 제안, 시어머니 쓴웃음 ‘궁금증 UP’

    ‘이상한 나라의 며느리’가 또 한 번의 ‘역대급 에피소드’를 공개한다. 3일 오후 방송되는 MBC ‘이상한 나라의 며느리’에서는 새댁 이현승의 이야기를 전한다. 출산을 앞두고 집에서 쉬고 있던 현승‧현상 부부를 시아버지가 불러낸다. 이날 방송에서는 긴장한 현승 앞에 시부모가 내놓은 종이에 작명소에서 받아온 아기의 이름이 적혀 있어 눈길을 끈다. 종이를 받아든 현승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소신 발언을 하고 이에 시부모들이 당황하며 분위기는 무거워졌다. 모두가 불편한 이 자리는 어떻게 마무리될까. 또한 일본인 며느리 시즈카의 에피소드가 이어진다. 해외 공연을 마치고 귀국한 남편 창환을 위해 시즈카는 미역국과 수육을 준비하고, 창환의 생일을 축하해준다며 시어머니도 김치찌개를 끓여 방문했다. 이어 생일파티가 시작되고 시누이의 한마디에 ‘시즈카표 미역국’과 ‘시어머니표 김치찌개’ 사이에 신경전이 벌어진다. 창환의 대처가 주목된다. 마지막으로 시댁에서 3주간 생활하게 된 전업주부 며느리 백아영의 이야기가 공개된다. 남편 정태는 아영과 어머니의 평화로운 동거를 위해 규칙 정하기에 나서고 정태의 파격적인 제안에 아영은 웃고 시어머니는 쓴웃음을 지었다. 본격적으로 3주간의 시댁 생활이 시작된 가운데 아영을 손님으로 대해달라던 정태의 바람은 이루어질 수 있을지 궁금증이 더해지고 있다. 한편, MBC ‘이상한 나라의 며느리’는 3일 오후 8시 55분에 방송된다. 임효진 기자 3a5a7a6a@seoul.co.kr
  • 유럽 경험자가 무려 21명, 아시안컵 첫판 상대 필리핀 의외의 면모

    유럽 경험자가 무려 21명, 아시안컵 첫판 상대 필리핀 의외의 면모

    현재 유럽에서 뛰는 선수는 3명 뿐이지만 과거에도 뛰었던 선수까지 포함하면 아시안컵 출전 엔트리 23명 가운데 21명이나 된다. 7일 밤 10시 30분 아랍에미리트(UAE) 두바이에서 아시아축구연맹(AFC) 아시안컵 조별리그 C조의 첫 경기 상대인 필리핀 대표팀의 잘 알려지지 않은 면모다.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 116위에 키르기스스탄과 나란히 대회 본선에 처음 데뷔한다. 필리핀은 새해 첫날 카타르 도하의 그랜드 하마드 스타디움에서 박항서 감독이 이끄는 베트남과의 비공개 평가전을 2-4로 졌는데 전력을 제대로 보여줬는지 파악할 길이 없다. 산전수전 다 겪은 스벤 예란 에릭손(71·스웨덴) 감독이 선수들보다 더 낯익다. 그는 과거 포르투갈 명문 벤피카와 이탈리아 라치오를 리그 우승으로 이끈 뒤 잉글랜드 삼사자군단 감독까지 역임했던 명장이다. 하지만 선수들에 대해 우리는 잘 모른다. 현재 자국 리그에서 활약하는 선수는 14명, 이웃 말레이시아, 태국에서 뛰는 선수는 6명이다. 유럽 무대를 누비는 선수는 덴마크 1부 리그 호어센스의 골키퍼 케빈 레이 멘도사, 루마니아 1부 리그 셉시의 수비수 다이스케 사토(이상 24), 독일 분데스리가2(2부 리그) 에르츠게비르게 아우에의 미드필더 욘-파트릭 스트라우스(22) 뿐이다. 스트라우스는 RB 라이프치히 유소년 아카데미 및 2군 출신으로 2015년부터 2017년까지 라이프치히 2군 소속으로 4부 리그에서 뛴 뒤 2부 리그를 누비고 있다. 일본인 어머니를 둔 다이스케는 J리그 명문 우라와 레즈 유소년 시스템을 통해 성장해 붙박이 왼쪽 풀백으로 입지를 굳히고 있다. 그러나 23명 가운데 자국 리그에만 몸담은 선수는 골키퍼 나다니엘 빌라누에바(23)와 측면 공격수 조빈 베딕(28, 이상 가야FC)뿐이다. 나머지 21명은 모두 유럽 무대를 경험했다. 측면 수비와 미드필더 두 포지션을 소화할 수 있는 슈테판 슈뢰크(32)는 2012~14 두 시즌을 분데스리가 아인트라흐트 프랑크푸르트와 호펜하임에서 보냈다. 고향 팀 그로이터 퓌르트에서도 오랜 기간 활약해 2부 리그에서 잔뼈가 굵었다. 측면 공격수 파트릭 라이켈트(30), 미드필더 마이크(26)와 마누엘(23) 오트 형제, 케빈 인그레소(25), 수비수 슈테판 팔라(29) 모두 독일 하부 리그 출신이다. 또 187㎝의 알바로 실바(34)는 2004~15시즌 스페인 프리메라리가 말라가에서 프로 무대에 데뷔한 후 세군다 디비시온(2부 리그)에서 주로 활약한 뒤 아제르바이잔과 쿠웨이트를 거쳐 2015년부터 이듬해까지 K리그 대전 시티즌에 몸담았다. 그 뒤 베트남을 거쳐 말레이시아 무대를 누비고 있다. 미드필더 미겔 탄톤(29), 칼리 데 무르가(30), 공격수 하비에르 파티뇨(30)도 스페인 하부 리그 출신이다. 공격형 미드필더 폴 멀더스(37)는 네덜란드 에레디비지 덴 하그 등에서 유럽축구연맹(UEFA) 유로파 리그까지 경험한 뒤 자국 리그 세레스-네그로스 유니폼을 입고 있다. 공격수 필과 제임스 영허즈번드 형제는 나란히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명문 첼시 유소년 아카데미 출신이며 측면 공격수 커트 다이존(24)은 크리스털팰리스, 미드필더 아담 리드(27)는 선덜랜드, 루크 우드랜드(23)는 볼턴 유스 아카데미를 거쳐 잉글랜드 하부 리그를 누볐다. 무려 9명이 필리핀 풋볼 리그(PFL) 2연패를 일군 세레스-네그로스 소속인 점도 흥미롭다. 이 클럽은 스페인에서 풍부한 지도자 경력을 쌓은 세르비아 출신 리스토 비다코비치가 지휘하는데 최종 엔트리의 3분의 1 이상을 에릭손 감독이 꾸린 것은 조직력을 극대화하려는 복안으로 보인다. 임병선 선임기자 bsnim@seoul.co.kr
  • 신라면세점, 김포공항점 9일 오픈… ‘면세 트로이카’ 완성

    호텔신라가 운영하는 신라면세점이 인천국제공항, 제주국제공항에 이어 김포국제공항에도 입성하며 국내 3대 국제공항을 아우르는 ‘면세 트로이카’를 갖추게 됐다. 신라면세점은 오는 9일부터 김포공항점 운영을 시작한다고 2일 밝혔다. 지난해 8월 신규 특허권을 취득한 이후 5개월 만이다. 신라면세점 김포공항점은 ‘KT&G’, ‘아이코스’, ‘발렌타인’, ‘조니워커’ 등 주류·담배 브랜드 100여개가 입점한 주류·담배 매장 90평(약 297㎡)과 ‘정관장’, ‘롱샴’, ‘코치’, 선글라스 등 식품 및 패션·잡화 브랜드 30여개가 들어선 패션·잡화 매장 131평(약 433㎡) 등 모두 221평(약 730㎡) 규모다. 특히 주류·담배 구역은 신라면세점 단독 운영이다. 신라면세점에 따르면 김포공항의 출국객은 지난해 말 기준 내국인이 전체의 51%, 일본인 29%, 중국인 11% 등으로 내국인과 일본인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이에 따라 신라면세점은 비즈니스 고객과 외국인 고객이 선호하는 식품이나 와인 세트 등 선물용 세트 상품을 다양하게 기획·판매한다는 방침이다. 김희리 기자 hitit@seoul.co.kr
  • [대한민국 임시정부 100년] 3·1운동 진원지 서울 한복판서 ‘한성임시정부’ 수립 선포

    [대한민국 임시정부 100년] 3·1운동 진원지 서울 한복판서 ‘한성임시정부’ 수립 선포

    <1부> 새 역사 임시정부의 형성 ③서울 ‘한성임시정부’ 1919년 3·1운동이 전국으로 퍼지자 일제는 헌병을 동원해 주모자를 검거·학살했다. 특히 조선의 수도이자 이번 운동의 진원지인 서울에 대한 감시를 강화했다. 이런 상황에서도 우리 민족은 대담하게 적지(敵地)가 된 서울 한복판에서 임시정부 설립을 선언했다. 바로 노령정부(러시아)와 상하이정부(중국)에 이어 세 번째로 수립된 한성정부다. 이 정부는 인민의 뜻을 수렴하기 위해 민주적 절차를 지키려 했다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는다.3·1운동 당시 감리교 전도사 이규갑(1888∼1970)은 평양 대표로 시위에 참석했다가 일제의 검거령으로 친척 집에 숨어 있었다. 3월 5일 오후 9시쯤 그에게 동지 8명이 찾아왔다. 이들은 “이번 시위로 우리나라가 독립이 될 수도 있으니 서둘러 임시정부를 수립하자”고 제안했다. 이규갑은 “정부를 세우는 건 한두 사람의 기분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국민의 총의를 모을 지역 대표부터 뽑자”고 설득했다. 이렇게 또 하나의 임정이 만들어졌다. 임정 설립 주도자는 검사 출신 홍면희(홍진·1877~1946)와 목사 출신 이규갑 등이다. 이들은 조선 황실 인사나 독립운동가 33인 등과 관계없는 순수 민간인이었다. 17일에는 검사 한성오(생몰연대 미상)의 집에 20여명이 모여 임시정부 준비위원회를 열었다. 정부 명칭을 ‘한성임시정부’로 정하고 민주공화제에 기반한 집정관총재 제도를 택했다. 이들은 보름 뒤인 4월 2일 인천 만국공원(현 자유공원)에서 ‘13도 대표자회의’를 열기로 했다. 각 도 대표들이 모여 민주적으로 결의하면 조선 국민 전체 의견으로 봐도 된다는 생각에서였다. 임정 준비위는 곧바로 전국 각지를 돌며 민족 대표 25명을 모집해 13도 대표자회의를 개최했다. 당시 풍경을 묘사한 이규갑의 증언이다. “당일(4월 2일) 아침 권혁채와 홍면희, 안상덕 등과 서울역에서 기차를 타고 인천으로 향했다. 그때는 3·1운동 뒤 각 지역에서 만세 시위가 일어나던 때라 일경(일본 경찰)의 경계가 심했다. 인천역에 내리자 불심검문을 받았다. 홍면희는 변호사여서 무사했지만 나는 검색을 당했다. 그러자 홍면희가 ‘이 사람은 약장사로 우리와 일행’이라고 둘러대 위기를 면했다.” 이날 만국공원에 찾아온 이들은 많지 않았다. 종교계와 서울·경기 지역 대표들만 참석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100년’ 취재에 동행한 이원규(72) 작가는 “13도 대표자회의 장소를 만국공원으로 정한 것은 당시 이곳이 일본인을 중심으로 외국인이 모여 살던 곳이었기에 조선 독립 의지를 보여줄 좋은 장소로 판단했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대표자회의 참석자들은 같은 달 23일 서울 종로 중식당 봉춘관에서 총회 격인 국민대회를 열어 임시정부를 선포하고 보신각에서 민중 시위를 벌이기로 했다. 3·1운동의 여파가 끝나지 않은 때 한번 더 일제의 허를 찌르겠다는 전략이었다. 실제로 이날 종로 일대에는 임시정부 선포문과 국민대회 취지서 등이 뿌려졌다. 집정관총재 이승만(1875~1965)과 국무총리 이동휘(1873∼1935), 내무총장 이동녕(1869∼1940) 등 각료 명단도 나왔다. 이런 내용은 미국의 UP통신(현 UPI)을 통해 전 세계에 타전됐다. 덕분에 한성정부는 국내외에서 가장 인지도가 높은 임시정부가 됐다.●현실적 제약으로 ‘미완의 시도’ 평가도 다만 한성정부가 완전하게 수립된 임정으로 보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있다. 인천에서 열린 13도 대표자회의는 성원을 채우지 못했고 서울의 국민대회 역시 소수 학생들이 전단을 살포하는 수준에서 마무리됐다는 것이다. 노령·상하이정부와 달리 국민 전체의 뜻을 반영해 민주공화정을 탄생시키고자 했지만 일제의 압박 등 현실적 제약이 많아 ‘미완의 시도’에 그쳤다는 설명이다. 그럼에도 이현희(1937~2010) 전 성신여대 사학과 명예교수는 “한성정부는 13도 대표나 임시정부 준비위원회 위원들을 집행부 임명에서 배제하는 등 공평무사한 인사를 단행하려고 했다. 절차적 정통성을 확보하려고 최대한 노력했다. 이 덕분에 1987년 9차 개헌 당시 헌법 전문에 대한민국의 법통이 (한성정부를 계승한) 임시정부에 있음을 명확히 선언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논란의 중심에 선 임정 초대 대통령 “(해방 당시) 대한민국이 갓 도입한 자유민주주의 체제는 정부와 국민 모두 낯설고 서툴렀다. 이승만 정부는 (불가피하게 권위주의 방식으로 통치했지만) 그래도 헌법을 정지시키거나 국회를 해산하거나 언론의 자유를 근본적으로 훼손하지는 않았다.”(이주영 건국대 명예교수) “이승만 정권에 대한 평가는 (같은 진영인) 박정희·전두환 정권에서조차 좋았던 적이 없다. 그럼에도 독재·반공 이데올로기는 이승만 정권과 연관성이 높기에 그를 치켜세워야 (독재·반공 정치체제가) 합리화된다. 이승만의 재평가 시도는 반대편을 종북이나 용공세력으로 몰아가려는 의도다.”(서중석 성균관대 명예교수) 한성정부 집정관총재에 추대돼 훗날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에 오르는 우남 이승만은 지금까지도 논란이 끊이지 않는다. 그를 비판하는 이들은 “독립운동의 분열과 남북 분단, 한국전쟁 당시 그릇된 대처, 부정부패, 독재정치에 가장 큰 책임이 있다”고 꼬집는다. 하지만 이승만을 옹호하는 사람들은 “우리가 마음놓고 그를 비난하는 자체가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확립한 그의 공로”라며 “과(過)보다 공(功)이 훨씬 큰 만큼 업적을 재평가해야 한다”고 반박한다. 1896년 기독교인을 중심으로 독립협회가 만들어졌다. 자주독립과 천부인권 존중, 한글 사용 등을 강조했는데, 배후에는 헨리 거하드 아펜젤러(1858~1902) 등 서양 선교사들이 있었다. 아펜젤러는 배재학당을 만들어 조선인에게 영어와 민주주의를 가르쳤다. 이승만은 이 학당의 학생이었다.●“일단 비위 거슬리면 타인 이해하려 안해” 독립협회는 종종 대중 집회인 만민공동회를 열었다. 배재학당 학생들도 대거 참여했다. 이승만은 여기서 주도적 역할을 하다가 고종 폐위 음모에 가담했다는 혐의로 7년간 옥살이를 했다. 이때부터 이승만은 민주주의를 거부하는 조선사회에 환멸을 느꼈다. 조선이 일본으로부터 독립하면 반드시 기독교 이념에 입각한 미국식 민주주의 체제를 갖춰야 한다고 믿었다. 배재학당의 경험과 기독교의 이분법적 선악 개념 등이 더해져 훗날 남과 타협하지 않는 특유의 성격이 생겨난 것 같다. 이승만을 가까이서 도왔던 정치인 허정(1896∼1988)은 “평소 장난도 잘 치고 유머러스했지만 일단 비위에 거슬리는 일이 생기면 조금도 자기 뜻을 굽히거나 남의 사정을 봐주려 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그는 한성정부 집정관총재를 시작으로 중국 상하이로 통합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첫 대통령이 됐다. 하지만 그는 임정 대통령 재임기간 5년 6개월 가운데 상하이에는 반년 정도만 머물렀다. 대부분 기간은 미국에 혼자 머물며 전보를 이용해 ‘원격 통치’를 했다. 이 때문에 이동휘(1873~1935), 안창호(1878~1938) 등과 마찰이 생겼고 훗날 임정 전체가 내분에 휩싸이는 원인이 됐다.●“정부가 단 한 사람 때문에 법을 바꾼 사례” 그는 또 한성정부 집정관총재에 임명된 때부터 스스로를 집정관이 아닌 ‘대통령’(president)으로 칭해 논란이 됐다. 교민 성금 유용 의혹과 윤봉길(1908~1932) 의거 비난 등으로 구설에 올랐다. 최근에는 1918년 10월 그가 미국에서 작성한 1차 세계대전 징집 카드에 국적을 한국이 아닌 일본으로 적은 것이 알려져 비난을 샀다. 당시 미국에서 일본에 대한 이미지가 매우 좋았다는 점을 감안할 때 의도적 오기였다는 분석이 나온다. 김주용(53) 원광대 교수는 “원래 상하이정부는 국무총리 제도였다. 하지만 이승만이 끝까지 대통령 직함을 고집해 결국 임정이 1919년 9월 개헌 때 통치제도를 대통령제로 바꿨다. 정부가 한 사람 때문에 법을 바꾼 보기 드문 사례”라고 설명했다. ●루스벨트·윌슨과 인연… 지도자로 급부상 그럼에도 이승만은 1919년 4월 15일 중국 길림성에서 선포된 고려임시정부에서 국무총리로, 17일 평안도에 설립된 신한민국임시정부에서 국방총리로, 19일 인천에서 수립된 조선민국임시정부에서 집정관총재에 선임되는 등 거의 모든 임정에서 1, 2인자로 지목됐다. 조선 사회는 왜 이승만을 새 나라의 최고 지도자로 여겼을까. 그는 31살이던 1905년 8월 기독교계의 주선으로 미국 대통령 시어도어 루스벨트(1858~1919)를 만나 한국의 독립을 청원한 경험이 있다. 또 민족자결주의를 주창해 약소 민족에게 희망을 준 미국 대통령 우드로 윌슨(1856~1924) 역시 이승만이 프린스턴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을 때 학교 총장이었다. 당시 한국인으로서 갖기 힘든 경력이었다. 우리 민족에게 있어 이승만은 1차 세계대전 뒤 최강국이 된 미국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외교 카드’였다. 류지영 기자 superryu@seoul.co.kr
  • 무대서 부활한 그날의 그 함성

    무대서 부활한 그날의 그 함성

    안중근 생애 다룬 뮤지컬 ‘영웅’ 10주년 만주 피난민의 귀향 소재 오페라 ‘1945’ 서울시합창단 ‘유관순 오페라 칸타타’ 등 독립운동 시대상 담은 작품 연달아 개막올해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독립운동과 일제시대 당시 시대상을 다룬 공연이 연이어 무대에 오른다. 공연제작사 수키컴퍼니는 3·1운동 100주년 기념 창작뮤지컬 ‘여명의 눈동자’를 오는 2~4월 서울 구로구 디큐브아트센터에서 선보인다. 일제강점기에서 한국전쟁에 이르는 격동의 시대를 관통하는 장대한 서사와 남녀 주인공들의 운명적 사랑 등을 담은 동명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이 작품은 드라마로 만들어져 큰 사랑을 받았다. 남녀 주인공 ‘여옥’과 ‘대치’로 출연한 배우 채시라와 최재성의 ‘철조망 키스신’은 한국 드라마 역사상 최고의 명장면 중 하나로 꼽힌다. 오페라와 뮤지컬을 오가며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는 변숙희 프로듀서의 총괄 아래 노우성 연출가와 원미솔 음악감독 등이 이번 작품을 위해 손을 잡았다. 뮤지컬 버전에서는 원작과 다른 인물관계 등을 창조해 극적 몰입도를 높일 것으로 알려졌다.뮤지컬 ‘영웅’은 초연 10주년 기념공연으로 3~4월 서울 세종문화회관 대강당 무대에 오른다. 안중근 의사의 마지막 1년을 다룬 작품인 ‘영웅’은 2009년 초연 후 10년째 이어지고 있는 대표적인 창작뮤지컬이다. 주인공 ‘안중근’ 역에는 2017년 공연 때 출연했던 안재욱과 정성화, 양준모가 다시 캐스팅됐다. 제작사 관계자는 “공연 준비가 본격화되면 3·1운동 100주년의 의미와 작품의 연관성을 더욱 강조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국립오페라단은 3·1운동 100주년 기념작으로 5월과 9월에 각각 로시니의 ‘윌리엄 텔’과 창작오페라 ‘1945’ 등 두 작품을 선보인다. 독일 시인 쉴러 원작의 ‘윌리엄 텔’은 오스트리아 압제 아래 있던 스위스의 독립투쟁을 다룬 작품으로, 특히 서곡 가운데 ‘스위스 군대의 행진’ 부분은 음악 교과서에 단골로 소개될 만큼 유명하다. 유럽에서도 쉽게 무대에 올리지 못하는 4시간이 넘는 대작으로, 이번 무대는 한국 초연이다. 지난해 국립오페라단 ‘마농’의 지휘를 맡아 호평을 받았던 세바스티안 랑 레싱과 최근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에서 ‘발퀴레’를 연출한 베라 네미로바가 작품에 함께한다. 유럽에서 ‘윌리엄 텔’ 무대에 올랐던 테너 강요셉이 이번 프로덕션에 참여한다. 창작오페라 ‘1945’는 국립극단 무대에 올랐던 배삼식 극본의 동명 원작이 소재다. 2017년 7월 국립극단에서 선보였던 ‘1945’는 갑작스러운 독립을 맞이한 만주 피난민들의 귀향을 다룬 작품이다. 일본군 위안소에서 있었던 한·일 위안부 여성 ‘명숙’과 ‘미즈코’ 등 역사의 장대한 흐름 속에서 자신들의 삶을 찾아가던 인간군상의 모습을 그렸다. 이번 오페라 버전에는 프라하 국립 오페라 하우스 등에서 활동한 일본인 소프라노 유키코 긴조가 참여해 눈길을 끈다. 이번 작품의 연출은 고선웅 극공작소 마방진 예술감독이, 작곡은 최우정 서울대 작곡과 교수가 각각 맡았다. 음악 공연도 예정돼 있다. 서울시합창단은 이용주 작곡의 ‘유관순 오페라 칸타타’ 국내 초연 무대를 준비 중이다. 3월 2일 세종문화회관에서 선보이는 이 작품은 유관순 열사와 일대기를 통해 자유인권 운동이었던 3·1절의 의미를 되새기기 위해 마련된다. 서울시소년소녀합창단도 독립운동과 해방을 기념하고 평화통일의 염원을 담은 정기연주회 ‘통일을 향한 어린이들의 합창’을 4월 5~6일 세종문화회관에서 선보일 예정이다. 안석 기자 sartori@seoul.co.kr
  • [그림과 詩가 있는 아침] 고형렬/두루미

    [그림과 詩가 있는 아침] 고형렬/두루미

    - 두루미/고형렬 하늘에 두 사람이 날아가고 있다 이야기하며, 귀로 들으며, 고개를 끄덕이며, 서로 쳐다보며 - 연하장 보낼 이름들을 적어 본다. 이름들 사이 고요히 함박눈이 내린다. 좋은 사람들. 생의 향기가 솔솔 스미어 나오는 사람들. 그들 곁에서 이야기하고 듣고 고개를 끄덕이고 눈을 쳐다보고 싶어진다. 이름을 생각하면 불편해지는 이름도 있다. 그들에게도 연하장을 쓴다. 트럼프씨와 아베씨에게. 지난번 차가운 물 위에 띄운 종이배에 태워 드려 미안했어요. 차가운 물이라야 조금 정신이 들지 않겠는지요. 새해에는 두 분이 좀 더 착하고 이성적이었으면 해요. 아기와 함께 국경을 넘어오는 난민들에게 관대히 대해 주세요. 담장을 쌓는 천문학적인 돈으로 그들을 도울 방법은 없을까요. 70년 넘게 헤어져 살아온 8000만 사람들 서로 손잡을 수 있도록 기도해 주세요. 평화는 안 돼! 라고 말하는 무기수출상에게 판로 변경을 진지하게 생각해 보시오! 라고 말해 주세요. 지난날의 역사를 반성하지 않는 것은 선배들을 영예롭게 하지 못해요. 과오를 부끄러워하고 참회하는 것은 인간성이 지닌 최고의 미덕이에요. 한마디면 되요. 부끄럽습니다. 좋은 일본인이 되겠습니다. 전 세계 사람들이 환호할 거예요. 종이배 위에 꽃을 가득 싣고 두 분을 초대합니다. 전 세계의 항구에서 사람들이 만세를 부르며 두 분을 맞이할 거예요. 하늘의 두루미처럼 서로 보고 웃고 따뜻이 얘기하고 볼을 꼬집고 생을 즐기세요. 곽재구 시인
  • ‘이상한 나라의 며느리’ 오정태 “우리 가족 손님으로 생각해달라” 선언

    ‘이상한 나라의 며느리’ 오정태 “우리 가족 손님으로 생각해달라” 선언

    27일 방송되는 MBC ‘이상한 나라의 며느리’에서는 먼저 새댁 이현승의 이야기를 전한다. 출산을 앞둔 현승을 위해 몸보신 재료 미꾸라지를 준비한 시부모님. 과연 평소 먹지 않는 재료로 만든 시아버지표 추어탕을 맛있게 먹을 수 있을까. 또, 이어진 식사 자리에서 다시 등장한 자연분만 이야기에 똑 부러진 며느리 현승의 반응도 함께 공개된다. 한편 어린 두 딸과 함께 시댁으로 향한 일본인 며느리 시즈카의 에피소드도 이어진다. 시즈카는 남편 창환이 해외공연을 간 사이 시어머니, 시누이와 함께 순무 김치를 담그게 됐다. 둘째 소라를 업고, 부엌을 누비는 첫째 하나를 돌보며 김치를 담가야 하는 난감한 상황 속, 몸이 열 개라도 부족한 시즈카는 무사히 김장을 마칠 수 있을까. 마지막으로 전업주부 며느리 백아영의 이야기가 공개된다. 오랜 기간 시부모와의 합가 문제로 고민이 많았던 아영, 드디어 고민을 끝내고 이사를 결정한다. 이삿날이 서로 맞지 않아 3주간 시댁에서 지내기로 하고, 도착하자마자 남편 오정태는 부모님께 “우리 가족을 ‘손님’으로 생각해달라”고 선언한다. 이를 들은 시어머니의 반응은 어땠을지 관심이 모인다. 한편, MBC ‘이상한 나라의 며느리’는 27일 오후 8시 55분에 방송된다. 임효진 기자 3a5a7a6a@seoul.co.kr
  • 고래고기맛 못잊는 일본, 고래 잡기 위해 국제기구 탈퇴

    고래고기맛 못잊는 일본, 고래 잡기 위해 국제기구 탈퇴

    일본이 30년 만에 상업 포경(판매용 고래잡이) 재개를 위해 국제포경위원회(IWC)를 탈퇴하기로 했다. 일본 정부가 식용 고래를 포획할 목적으로 고래 남획 방지를 위한 국제기구에서 탈퇴하기로 결정함에 따라 국제사회의 비판의 목소리가 거세질 전망이다. 교도통신에 따르면 일본 정부는 25일 각의(국무회의)에서 IWC 탈퇴안을 의결했다. 일본의 국제기구 탈퇴는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일본은 IWC 탈퇴 이후 일본 근해나 일본의 배타적경제수역(EEZ)에서 고래잡이에 나설 방침이다. IWC 탈퇴는 과거 상업포경을 활발히 해 오던 홋카이도와 아오모리, 미야기현 등을 지역구로 둔 여당 의원들의 상업포경 재개 압박을 일본 정부가 수용해서 이뤄지게 됐다. IWC의 규정에 따라 일본 정부가 내달 1일까지 탈퇴 의사를 통보하면 내년 6월 30일에 발효된다. 탈퇴가 확정되면 상업 포경은 가능해지지만, 남극해에서 연구 조사를 위한 고래잡이는 할 수 없게 된다. 일본은 그동안 IWC에 상업 포경을 허용해 달라고 요청했다. 그러나 지난 9월 브라질 총회에서 해당 안건이 회부됐지만 반대가 많아 부결됐다. 이 때문에 일본 정부는 IWC 회원국으로 남은 채 고래잡이에 나서는 것은 곤란하다고 보고 탈퇴를 결정한 것이다. 일본인들은 고래고기를 즐겨 먹는 것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니혼게이자이신문 등에 따르면 일본의 고래 소비량은 1960년대에는 연간 23만t을 넘었다. 이후 고래잡이 과정의 잔혹성 및 식용에 대한 국제적인 비판과 포경 제한으로 소비가 줄었지만 여전히 연간 5000t 가량이 유통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규환 선임기자 khkim@seoul.co.kr
  • 납북 아들 가슴에 묻고 최계월씨 별세

    납북된 아들을 평생 가슴에 묻고 살아온 최계월 여사가 22일 숙환으로 별세해 주위를 안타깝게 하고 있다. 1978년 전북 군산에서 납북된 김영남 씨의 모친 최씨가 22일 숙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95세. 고인은 납북된 아들을 못잊어 안타까워 했다. 딸 김영자(60) 씨는 “어머니가 영남이를 가슴에 묻고 가셨다. 의식이 있을 때 자주 영남이 사진을 꺼내 보시면서 혼잣말로 영남이 이름을 부르곤 하셨다.”고 전했다. 김영남 씨는 1978년 고교 1학년 재학 당시 전라북도 군산시 선유도 해수욕장에서 납북됐다. 아들의 생사 조차 모르고 지냈던 고인은 뜻밖에 감격적인 재회를 했다. 2006년 6월 금강산호텔에서 열린 남북 이산가족 특별상봉 행사에서 아들 영남 씨와 28년 만에 짧은 만남을 가졌다. 큰 관심 속에서 진행된 당시 상봉에서 고인은 딸 영자 씨와 함께 상봉장에 나가 아들 영남과 그의 부인 박춘화 씨, 손녀 은경, 손자 철봉을 만났다. 이 가운데 은경 씨는 영남 씨가 일본인 납북자 요코타(橫田) 메구미와 결혼해 낳은 딸이다. 북한은 요코타 메구미(실종 당시 13세)가 1994년에 자살했다고 주장했다. 이후 최씨는 아들을 한번이라도 더 만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으나 끝내 꿈을 이루지 못하고 이승을 하직했다. 고인은 2014년 요코타 메구미의 부모가 몽골의 수도 울란바토르에서 은경씨를 만났다는 소식에 “나도 죽기 전에 아들과 함께 손녀의 얼굴을 꼭 한번 보고 싶다”는 심경을 밝혔다. 고인은 납북자가족모임과 함께 평양이나 제3국에서 재상봉을 여러 차례 시도했으나 끝내 무산됐다. 지난 4월 일본 교도통신은 영남 씨가 모친을 평양에 초청하는 계획을 북한 당국과 함께 추진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빈소는 전북 군산시 은파장례문화원에 마련됐다. 발인은 오는 24일 오전 11시다. 전주 임송학 기자 shlim@seoul.co.kr
  • 레알 마드리드, 알아인 4-1 꺾고 클럽월드컵 3연패, 네 번째 우승

    레알 마드리드, 알아인 4-1 꺾고 클럽월드컵 3연패, 네 번째 우승

    레알 마드리드가 클럽 월드컵 3연패와 함께 통산 네 번째 우승을 일궜다. 스페인 프로축구 레알 마드리드는 23일(한국시간) 아랍에미리트(UAE) 아부다비의 자예드 스포츠시티 스타디움에서 열린 결승에서 루카 모드리치와 마르코스 요렌테, 세르히오 라모스의 연속 골과 상대 자책골을 묶어 한 골을 만회한 알아인(UAE)을 4-1로 물리치고 국제축구연맹(FIFA) 클럽월드컵 우승을 차지했다. 2016년부터 3년 연속 우승 위업을 달성하며 2014년 우승까지 더해 통산 네 번째 대회 정상에 오르며 FC바르셀로나(세 차례)를 제치고 대회 최다 우승 기록을 썼다. 미드필더 토니 크로스는 2013년 바이에른 뮌헨 시절까지 포함해 자신의 여섯 번째 클럽 월드컵 대회에서 다섯 번째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리는 감격을 맛봤다. 준결승에서 개러스 베일의 해트트릭을 앞세워 가시마 앤틀러스(일본)를 3-1로 꺾고 결승에 오른 레알 마드리드는 남미 챔피언 리버 플레이트(아르헨티나)를 승부차기 끝에 물리친 알아인과 결승에서 만났다. 카림 벤제마를 원톱으로 세우고 베일과 루카스 바스케스를 공격 삼각편대로 세운 레알 마드리드가 초반부터 강하게 알아인을 밀어붙였다. 선제골은 올해 발롱도르 수상자인 모드리치의 몫이었다. 전반 14분 아크 정면에서 강한 왼발 슈팅으로 알아인 골문을 열어제쳤다. 그는 레알 유니폼을 입고 15번째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렸는데 이 대회 결승에서 골맛을 본 것은 이날 처음이었다. 레알 마드리드는 후반 15분 요렌테가 25야드 하프발리슛으로 프로 데뷔 골을 신고하고, 후반 33분 라모스가 선제골 주인공인 모드리치의 패스를 세 번째 득점으로 연결해 3-0으로 달아났다. 알아인은 후반 41분 일본인 선수 시오타니 쓰카사가 한 골을 만회했지만 후반 추가시간 야히아 나데르가 자책골을 헌납하면서 결국 1-4로 무릎을 꿇었다. 전날 밤 3, 4위 결정전에서는 리버 플레이트가 루카스 마르티네스의 두 골을 앞세워 한국 축구 대표팀의 수비수 정승현이 뛴 가시마를 4-0으로 완파하고 3위를 차지했다. 마르티네스는 미국 메이저리그사커(MLS) 애틀랜타 유나이티드로 이적하기 전 마지막 경기에서 멀티 골을 신고했다. 임병선 선임기자 bsnim@seoul.co.kr
  • 이탈리아서 만든 가짜 명품가방 진품으로 속여 국내유통 시킨 무역상 등 2명 구속

    이탈리아에서 만든 가짜 샤넬 가방을 국내로 들여와 유통한 일본인 무역상 등 2명 등이 구속됐다. 부산 부산진경찰서는 사기,상표법 위반 혐의로 일본인 무역상 A(55)씨와 국내 유통업자 B(55)씨 등 2명을 구속했다고 19일 밝혔다. A씨는 지난해 3월부터 올해 10월까지 이탈리아에서 만든 가짜 샤넬 가방을 국내로 들여와 유통한 혐의를 받고 있다. B씨는 A씨에게 건네받은 가짜 샤넬 가방 181개를 인터넷쇼핑몰 업주 등에게 이탈리아에서 직수입한 제품이라고 속여 판매해 4억7000만원 상당을 챙긴 혐의를 받는다. A씨는 이탈리아 위조 조직이 만든 가짜 샤넬 가방을 국제 우편 또는 입국 시 직접 가지고 들어왔다. 경찰 관계자는 “온라인 쇼핑몰에서 해외 유명 브랜드를 저가에 판매하는 경우 위조품일 가능성이 높아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부산김정한 기자 jhkim@seoul.co.kr
  • [씨줄날줄] 日 관광객 3000만 시대/황성기 논설위원

    [씨줄날줄] 日 관광객 3000만 시대/황성기 논설위원

    지난 11월 말 나리타공항을 통해 일본에 입국했는데, 놀라운 변화 하나를 발견했다. 입국 심사는 물론 지문 확인 및 얼굴 사진 촬영까지 입국심사대에서 다 하던 것을 지문 확인과 촬영은 심사대에 들어서기 전 기계 하나씩을 맡은 노인과 외국인 피고용자들이 나눠 하고 있었다. 외국인이 몰려 입국심사 시간이 늘어나는 것을 조금이라도 줄이려는 의도였다. 심사대의 법무성 직원에게 확인했더니 “외국인 관광객의 입국 불편을 최소화하기 위해 심사 절차를 분리했다”고 대답했다.20년 전만 해도 일본 공항의 입국심사 때 ‘외국인’ 줄은 항상 길게 늘어져 있어 30~40분 기다리는 것은 예사였던 것과 비교하면 장족의 발전이다. 일본 법무성은 지난해부터 국내 각지의 공항 입국 대기시간을 조사해 공표하고 있다. 입국에 소요되는 목표 시간을 20분 이내로 설정하고 있는데 20분 이내 입국 달성률은 전국 평균 80%였다. 이 모두 도쿄하계올림픽이 열리는 2020년 외국인 관광객 4000만명을 달성하려는 ‘관광 입국’ 일본이 안간힘을 쏟는 현장 중 하나다. 일본의 첫 하계올림픽이 열린 1964년에 35만명이던 외국인 관광객은 2013년 처음으로 1000만명을 돌파했다. 그 전까지는 한때 외국인 관광객 숫자에서 한국에도 뒤졌던 일본이지만 2008년 국토교통성에서 관광청을 외청으로 독립시킨 뒤 정부, 지방자치단체, 민간, 비정부기구 등이 혼연일체가 돼 외국인 유치에 나서면서 매년 10~20%의 가파른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2016년 2403만명이 되더니 지난해 2869만명, 어제는 드디어 대망의 3000만명을 찍는 사상 초유의 기록을 달성하고 기념식도 가졌다. 지난해 외국인 입국자 가운데 최다는 중국(735만명)이지만 한국(714만명)이 2위를 기록해, 우리 국민의 14%가 일본을 다녀왔을 정도로 한국은 최대 고객이다. 놀라운 것은 지난해 한국인 일본 입국자 가운데 일본을 처음 찾은 사람은 31.81%로 가장 많았지만, 다수 방문자도 많다는 점이다. 일본 방문이 두 번째인 경우는 21.8%, 세 번째는 12.4%인데 네 번 이상도 34.8%에 달했다. 한번 일본 관광에 맛들인 한국 사람은 몇 번이고 일본에 간다는 뜻이다. 각 지방의 토종 요리를 합쳐 일본식 요리만 수천 가지, 일본 사케(정종) 종류는 1만여개, 소주의 본고장 가고시마현의 소주 종류만 240개가 넘는 다양성이야말로 몇 번이고 일본을 다시 찾게 만드는 매력일 것이다. 한·일 관계에 상관하지 않고 일본에 가는 한국인과 달리, 양국 관계에 민감한 일본인이 한국 방문을 자제하고 있다고 푸념만 하지 말고 다양성을 개발하는 노력을 지금부터라도 기울였으면 한다.
  • 미스터리 쇼퍼·나눔의료… 세계인 사로잡는 ‘강남표 의료관광’

    미스터리 쇼퍼·나눔의료… 세계인 사로잡는 ‘강남표 의료관광’

    서울 강남구가 외국인 의료관광 메카로 뜨고 있다. 지난해 강남구를 찾은 외국인 의료관광객은 약 7만 2346명으로, 2016년에 이어 2년 연속 7만명을 돌파했다. 우리나라 전체 의료관광객 32만 1574명의 22%로, 2위 경기(3만 9980명), 3위 대구(2만 1867명)보다 월등히 앞선다. 지난해 진료수입도 2420억원에 달해 우리나라 전체 진료수입의 37.8%를 차지했다. 글로벌 의료서비스대상인 ‘메디컬 아시아’에서 2010년부터 9년 연속 의료관광 인프라 기초자치단체 부문 대상을 받기도 했다.강남구 의료관광은 강남메디컬투어센터가 이끈다. 강남의료관광 컨트롤타워로, 2013년 6월 압구정동 현대백화점 옆에 문을 열었다. 지역 의료기관 정보를 제공하고, 방문객 피부 상태 측정, 체성분 분석, 가상성형 등 다양한 의료 체험도 진행한다. 영·중·일·러 4개 언어의 의료관광 전문 코디네이터가 상주하며 통역을 지원하고, 공항 픽업까지 차별화된 원스톱 서비스를 제공한다. 강남구의 의료관광 행정은 선도적이다. 2010년엔 전국 최초로 의료관광 전담팀을 구성했다. 2012년엔 전국 최초로 ‘의료관광 코디네이터 통역단가 표준안’을 마련했다. 표준안은 삼성서울병원 등 강남구 협력의료기관, 강남구 의료관광 코디네이터, 사단법인 대한의료관광코디네이터협회, 대한병원코디네이터협회, 한국관광공사와 한국보건산업진흥원 등의 의견을 바탕으로 작성됐다. 현재 강남구 의료관광 소속 통역코디네이터는 9개 언어 55명이 활동한다.지난해엔 국내 최초로 ‘외국인환자 미스터리 쇼퍼’를 도입했다. 의료관광 협력기관을 대상으로 외국인 환자들에게 제공하는 의료 서비스를 평가, 외국인 환자들의 불편을 없애고 서비스 질을 획기적으로 높이기 위해서다. 올해엔 외국인 환자로 가장한 미스터리 쇼퍼 5명이 지역의 성형의료기관 48곳을 찾아 환자 권리와 의무에 대한 안내, 외국인 환자를 위한 통역 서비스, 대기시간 안내, 수술에 대한 정확한 상담과 부작용에 대한 충분한 설명, 수술비용 사전 안내와 적정성, 의료분쟁 프로세스 안내, 계약금 환불규정 등을 평가했다. 그 결과 JK성형외과, 미소유성형외과, 뷰성형외과, 아이디병원이 우수기관으로 선정됐다. 구는 이들 기관에 ‘서비스 우수기관 인증패’를 수여하고, 외국인 환자 유치 홍보 활동도 지원한다. 구 관계자는 “평가 대상 의료기관에 평가 결과를 토대로 맞춤형 컨설팅도 제공하고, 평가 결과를 공유해 의료 서비스 질도 업그레이드한다”고 말했다. 해외 시장 개척에도 적극적이다. 태국, 인도네시아, 베트남, 카자흐스탄, 러시아 등 신흥 시장 개척을 위해 홍보 마케팅 활동에 주력했다. 지난 9월 20~23일 일본 도쿄 관광박람회(Tourism Expo Japan 2018)엔 136개국 1441개 업체가 참여했고, 20여만명의 관람객이 다녀갔다. 구는 의료관광 홍보관을 설치, 강남구의 의료 인프라와 관광명소·문화를 소개했다. 일본인들이 피부미용 시술을 선호하고, 차 문화와 한방침술에 관심이 높다는 점에 착안, 발광다이오드(LED) 피부마사지 체험, 오미자차 시음, 체질별 나만의 티 테라피 체험존을 운영해 큰 호응을 얻었다. B2B 상담회를 통해 9개 여행업체와 관광 상품 개발 등 모객 관련 신규 네트워크를 구축했다. 지난 10월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선 ‘케이메디&뷰티 프리미엄 로드쇼’를 개최했다. 국내 12개 의료기관 등 협력기관 15곳과 현지 경제단체·의료단체·여행자협회 등 관련 업계 100여곳이 참가했다. 구는 올해 강남구의료관광협회·의료관광협력기관과 함께 해외 저소득층이나 난치 환자를 초청해 무료로 치료하는 ‘글로벌 나눔의료사업’도 시작했다. 첫 대상 환자는 인도네시아의 리도 버디만(25)으로 ‘양측성 구순구개열’이라는 선천성 기형을 갖고 태어났다. 현지에서 수술을 세 번이나 했지만 입술과 코의 불균형이 심해 지난 7월 추가 수술을 받기 위해 입국했다. 강남구의료관광협회에서 환자와 보호자의 항공료와 체류비를, 의료기관에선 수술비를 지원했다. 구는 나눔의료사업 관련, 국내외 대표 포털사이트를 통한 검색 광고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운영 등 온라인 홍보에도 힘을 쏟고 있다. 위쳇, 왓츠앱 등을 통한 실시간 채팅과 무슬림을 위한 아랍어로 된 안내서·가이드북 제작으로 해외 환자들이 쉽게 정보를 접할 수 있도록 했다. 구 관계자는 “인류애를 실천하는 동시에 강남구의 우수한 의료기술을 알리고 의료관광 시장 개척에도 기여할 것”이라고 했다. 이어 “의료관광은 융·복합 사업으로 높은 성장 잠재력과 경쟁력을 갖고 있다”며 “내년에도 협력기관과 함께 국제 의료관광 허브가 될 수 있도록 공격적인 사업을 펼칠 것”이라고 말했다. 김승훈 기자 hunnam@seoul.co.kr
  • [글로벌 인사이트] 아베 개헌·푸틴 경제 맞물린 ‘쿠릴’ 반환… 양국 새달 담판 짓나

    [글로벌 인사이트] 아베 개헌·푸틴 경제 맞물린 ‘쿠릴’ 반환… 양국 새달 담판 짓나

    일본은 대부분의 주변국들과 영토 갈등을 빚고 있는 나라다. 한국에 대해서는 독도의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고, 중국과는 ‘센카쿠 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를 놓고 대립하고 있다. 북쪽 홋카이도 바로 위 ‘쿠릴열도 4개 섬’을 놓고도 러시아와 70년 이상 분쟁을 지속하고 있다. 최근 쿠릴 4개 섬을 둘러싼 양국 간 대화가 급진전될 조짐을 보이면서 국제적인 관심을 받고 있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4개 섬 영유권 협상 타결과 이를 통한 평화조약 체결에 어느 때보다 강한 의욕을 보이고 있다. 쿠릴 4개 섬을 둘러싼 양국 갈등의 역사와 협상 전망, 과제 등을 문답으로 알아본다.→일본과 러시아 간 쿠릴열도 4개 섬 분쟁은 언제 시작됐나.-쿠릴열도는 홋카이도~캄차카반도 사이 1300㎞ 바다 위에 줄줄이 이어진 56개의 섬과 바위섬들을 말한다. 이 가운데 문제가 되는 것은 에토로후, 구나시리, 하보마이, 시코탄 등 열도 최남단의 4개 섬이다. 이곳을 실효지배하고 있는 러시아는 ‘남쿠릴열도’(사할린주)라고 부르고, 일본은 ‘북방영토’라고 부른다. 2016년 기준 4개 섬에 1만 6700명의 러시아인이 살고 있다. 일본이 러시아에 섬들을 돌려달라고 요구하는 데는 나름의 역사적 근거가 있다. 4개 섬은 메이지유신 이전인 1855년 일본 막부와 러시아 사이에 맺어진 통상조약에 의해 일본에 편입됐다. 일본의 영유권과 실효지배는 1905년 러·일 전쟁 승리로 더욱 공고해졌다. 그러나 제2차 세계대전 중 미국을 비롯한 연합국 진영은 1943년 카이로선언과 1945년 얄타협정을 통해 쿠릴열도 전체에 대해 소련(현재의 러시아)의 영유권을 인정했다. 이에 따라 소련은 일본 패망 직후인 1945년 8월 28일~9월 5일 4개 섬을 점령하고 일본인 주민 1만 7300명을 추방했다.→4개 섬은 홋카이도에 바짝 붙어 있는데, 러시아에 중요한 이유는. -러시아는 4개 섬 면적 합계의 93%를 차지하는 에토로후(63%)·구나시리(30%)에 군인 3500명을 주둔시켰다. 2016년에는 미국·중국을 의식해 지대함 미사일을 배치했다. 이 지역이 동부 최대 항구도시이자 군항인 블라디보스토크와 북극해 항로를 연결하는 군사적 요충지이기 때문이다. 최근 10년간 러시아 정부는 에토로후·구나시리를 중심으로 도로, 항만 등 사회기반시설을 대폭 확충했다. →지금까지 양국 간에 4개 섬 반환협상은 꾸준히 이어져 왔는데. -일본은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 9월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연합국과 강화조약을 체결했다. 이를 통해 주권국가로서 지위를 회복했다. 그러나 당시 소련은 일본의 재무장 가능성 등을 이유로 조약 서명에 불참했다. 이 때문에 두 나라는 법적으로는 계속 전쟁 상태에 있게 됐는데, 1953년 소련의 철권통치자 스탈린이 사망하고 흐루쇼프가 집권하면서 국교 정상화 협상이 시작됐다. 협상에서 소련은 “쿠릴 4개 섬은 제2차 세계대전의 결과로 정당하게 얻은 것”이라고 주장했으나 최종 단계에서는 ‘하보마이, 시코탄 등 2개 섬은 돌려줄 수 있다’는 타협안을 제시했다. 당장 전쟁 상태를 종식하는 게 급했던 일본은 소련의 제시안을 토대로 1956년 10월 일·소 공동선언에 합의했다. 러시아가 2개 섬을 일본에 넘겨주는 것을 전제로 평화조약 협상을 계속하되 2개 섬의 인도는 조약 체결 후에 하는 것으로 정리됐다. →그런데도 2개 섬의 반환이 이뤄지지 않은 이유는. -일·소 공동선언이 1956년 12월 발효됐지만, 공교롭게도 그 이후 동서 냉전이 심해졌다. 소련은 1960년 미·일 안전보장조약이 새롭게 체결되자 “주일미군이 철수하지 않으면 하보마이·시코탄의 인도는 불가능하다”며 반발했다. 이에 일본도 ‘4개 섬 전체 일괄반환’을 주장하며 강경 모드로 돌아섰다. 이후 고르바초프의 등장과 소련의 붕괴 등 거대한 세계사적 변화를 거치며 협상은 진전의 기회를 맞기도 했으나 최종 타결은 번번이 무산됐다. →앞으로 양국 협상은 어떻게 전개되나. -아베 총리와 푸틴 대통령은 1956년 일·소 공동선언을 바탕으로 한 협상 추진에 합의했다. 일본으로서는 강하게 주장해 온 ‘4개 섬 일괄반환’에서 후퇴해 ‘2개 섬 반환’으로 요구 수위를 낮춘 셈이다. 협상은 각각 고노 다로 외무상과 세르게이 라브로프 외무장관을 책임자로 하는 양국 실무협상단이 담당한다. 여기에서 나온 결과를 토대로 내년 1월 아베 총리가 러시아를 방문해 대강의 합의를 도출하고 이후 6월 오사카에서 열리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 뭔가를 결정짓는다는 게 양국의 구상이다. →일본이 ‘4개 섬 일괄반환’에서 ‘2개 섬 반환’으로 입장을 완화한 이유는. -러시아가 구나시리와 에토로후를 돌려줄 가능성이 없다는 현실적인 판단이 결정적이다. 그러나 2개 섬 반환으로 수위를 낮춘 데 대해 벌써부터 일본 내부에서 부정적인 평가가 나오고 있다. 이를 의식하고 있는 일본 정부는 ‘우선 2개 섬 반환+알파(α)’를 표방하고 있다. 여기에서 α는 돌려받지 못하는 구나시리·에토로후에 대해 특별한 권리를 확보한다는 것인데 현실성은 없다는 관측이 많다. →아베 총리와 푸틴 대통령은 왜 협상을 서두르나. -역대 일본의 정치 지도자들은 ‘북한과 국교 정상화’와 ‘러시아와 평화조약 체결’을 가장 중대한 외교적 과제로 인식해 왔다. 내년 11월이면 일본 역사상 최장수 총리 기록을 세우는 아베 총리는 2021년 9월 말까지인 자신의 임기 내에 적어도 일·러 평화조약만큼은 이뤄낸다는 강한 의지를 갖고 있다. 스스로 쿠릴 반환을 ‘일본 전후(戰後) 외교의 총결산’이라고 표현할 정도다. 외교적 성과를 바탕으로 내년 참의원 선거에서 대승을 거둔다는 계산도 깔려 있다. 최근 도쿄신문은 아베 총리가 대러시아 외교를 자신의 숙원인 개헌의 지렛대로 활용하려 한다고 분석했다. 푸틴 대통령이 노리는 것은 일본의 돈이다. 자국 내 경기침체가 이어지는 상황에서 일본의 경제협력과 직접투자를 갈망하고 있다. 러시아는 틈만 나면 일본 측에 “일본 기업인들에게 대러시아 투자 확대를 독려해 달라”고 요청해왔다. →협상을 서두르기에는 러시아의 부담이 클 것 같은데. -아무리 경제적 이득을 위한 것이라지만, 당장 갖고 있는 영토를 포기하는 방향의 협상이 되다 보니 러시아는 대외적으로 지극히 신중한 자세를 보이고 있다. 푸틴 대통령은 지난달 기자회견에서 “1956년 공동선언에는 단순히 소련이 2개 섬을 양도할 준비가 돼 있다고 언급돼 있을 뿐 어떤 근거로 누구의 영유권하로 들어갈지는 언급돼 있지 않다”고 말해 기대에 부풀어 있는 일본 측을 당혹스럽게 만들기도 했다. 그럼에도 일본은 영토를 돌려받으려는 입장이다 보니 러시아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고노 외상은 지난 11일 쿠릴 반환과 관련한 기자들의 질문을 대놓고 무시해 구설수에 올랐다. 특히 일본에 돌려준 섬들이 자국을 겨냥한 미군의 기지로 활용될 가능성도 러시아로서는 우려하는 부분이다. 아베 총리가 직접 푸틴 대통령에게 미군이 들어오는 일은 절대로 없을 것이라고 밝히고 있지만, 기본적인 미·일 관계를 감안할 때 100% 장담하기는 어려운 부분이다. →최종 협상타결 가능성은 어느 정도나 될까. -양국 정상이 저마다 노리는 목표가 분명해 협상타결 가능성을 높게 보는 전문가도 있지만, 그동안에도 잘나가다 무산된 적이 몇 차례 있었기 때문에 예단하기는 어렵다. 특히 러시아는 자국민의 반발을 크게 우려하고 있다. 경기침체로 푸틴 대통령의 지지율이 낮아져 있는 상태라는 점도 과감한 협상에 걸림돌이 될 수밖에 없다. 지난 15일 사할린주 유즈노사할린스크에서는 2개 섬 반환을 중지할 것을 요구하는 주민 집회가 열리기도 했다. 도쿄 김태균 특파원 windsea@seoul.co.kr
  • [책꽂이]히피, 할머니를 업은 할머니 외

    [책꽂이]히피, 할머니를 업은 할머니 외

    히피(파울로 코엘료 지음, 문학동네 펴냄) ‘영혼의 연금술사’ 파울로 코엘료가 1970년대 자신의 이야기를 들고 왔다. ‘히피’로 살았던 자신의 청년 시절 경험, 깨달음을 얻게 되기까지 모험과 방황, 사랑과 상처 등을 담았다. 소설 속 주인공이자 작가이기도 한 파울로는 1968년 여자친구와 함께 볼리비아 라파스를 지나 잉카의 옛 도시 마추픽추로 향한다. 첫 히피 순례길을 통해 세상은 진정한 교실임을 깨닫는다. 2년여 후 그는 진정한 내면 탐구를 위해 암스테르담으로 떠난다. 광장에서 우연히 카를라를 만나 ‘매직 버스’에 탑승하며 두 번째 본격적인 히피 순례를 시작한다. 암스테르담을 떠나 오스트리아, 터키 이스탄불 등을 지나 네팔 카트만두로 향하는 길 위에서 파울로와 카를라는 다양한 길동무를 만나 마침내 ‘나 자신’을 발견한다. 360쪽. 1만 4500원.할머니를 업은 할머니(김형진 지음, 최지영 그림, 파란정원 펴냄) 한집에 사는 두 명의 할머니. 나이가 동갑이고 해와 달만큼 다르게 생겼지만, 둘은 무척 친하다. 손녀의 가족은 외할머니를 그냥 할머니, 다른 할머니를 ‘작은 할머니’라 부른다. 어느 날부터인가 할머니의 몸이 불편하다. 건강했던 할머니가 지팡이를 짚고, 휠체어를 타게 된다. 정신마저 흐릿해져 사랑했던 가족들 얼굴도 하나하나 잊어 간다. 손녀는 이런 할머니의 모습에 마음 아프다. 하지만, 해줄 수 있는 건 그저 곁에서 손을 잡아 주는 일 뿐. 사람은 누구나 죽음을 맞는다. 남은 가족은 사랑하는 가족을 떠나보낸다. 같은 날 세상을 떠난 두 할머니를 바라보는 손녀의 마음을 애잔하게 표현했다. 할머니가 할머니를 어떻게 업는다는 것일까. 작가는 작은 할머니의 정체를 마지막에서야 알려준다. 작은 할머니의 정체를 아는 순간 ‘아하!’ 하면서 무릎을 칠 것이다. 80쪽. 1만원.우리를 지키는 더러운 것들(김철 지음, 뿌리와이파리 펴냄) 문학평론가이자 연세대 국문과 명예교수인 저자가 2010년부터 발표한 글을 모은 산문집이다. 독립투사도, 부일협력자도 아닌 일제강점기 2000만 조선인, 그리고 그냥 그렇게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우리의 정체성은 누가, 어떻게 만들었는가” 묻는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초상을 자기동일성 혹은 정체성에 대한 병적인 강박, 공포에 시달리는 근대인으로 설명한다. 소설 토지의 일본인, 위안부 문제 등의 주제로 다양한 일제 식민지의 시공간과 우리 모습을 들춘다. 한국 근대문학을 통해 식민주의, 민족주의, 제국주의 문제를 분석하는 데 노력해온 저자는 식민지 조선이 한국 정치의 수원지이며, 마르지 않는 폭력의 저수지라고 지적한다. “모든 혐오는, 타자에게서 보이는 자신의 모습에 대한 공포와 혐오라는 점에서, 결국은 자기 혐오이자, 그 공포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욕망의 표현”이라는 말이 섬뜩하다. 272쪽. 1만 6000원.재미있는 곁말 기행(박갑수 지음, 역락 펴냄) 조선 명종은 유명한 점쟁이 홍계관을 궁으로 불러 “궤짝 안에 무엇이 있는지 맞춰보라”며 문제를 낸다. 홍계관은 “쥐 세 마리가 있습니다”라고 답하지만 쥐는 두 마리뿐이었다. 왕은 홍계관을 죽이라 하고, 광나루 밖에 있던 한 산에서 홍계관의 사형이 집행된다. 왕이 이상히 여겨 뒤늦게 암컷 쥐의 배를 갈라 보니, 새끼 쥐가 한 마리 더 있었다. 왕은 선전관을 보내 사형을 멈추라 하지만, 간발의 차로 홍계관의 목이 떨어진다. 선전관이 “아차! 늦었구나”라고 해서 산의 이름이 아차산이 됐다는 설이 있다. 그러나 이 설은 사실일까. 빗대어 표현하는 해학과 풍자가 담긴 말, 또는 동음어와 유의어, 다의어를 사용한 언어유희, 속담, 수수께끼, 육담과 같은 해학적인 표현을 통틀어 ‘곁말’이라 부른다. ‘월간중앙’에 연재됐던 박갑수 서울대 명예교수의 글을 모으고 덧붙여 두 권의 책으로 냈다. 346쪽, 349쪽. 각 권 2만원. 김기중 기자 gjkim@seoul.co.kr
  • 해묵은 건물 사이, 켜켜이 쌓인 열강의 흔적…오래된 골목 사이, 틈틈이 쌓인 동심

    해묵은 건물 사이, 켜켜이 쌓인 열강의 흔적…오래된 골목 사이, 틈틈이 쌓인 동심

    건축물은 시간과 공간을 담는 그릇입니다. 건축물을 둘러본다는 것은 그 안에 쌓인 시간과 공간의 역사를 헤아린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인천 개항장 역사문화의 거리의 건물에는 개항 후부터 지금까지 130여년의 시공간이 담겨 있습니다. 모르고 보면 낡은 일본식 목조건물과 서양의 르네상스식 건물에 불과하지만, 알고 보면 1883년 개항 당시 조선을 속국으로 만들려 했던 열강들의 세력 다툼과 우리나라 근현대사의 아픔이 읽힙니다. 적산가옥이 늘어선 거리를 거닐자 오늘과 당시의 시간이 겹쳐집니다. 세월에 빛바랜 건물에서 과거를 들여다보고, 또 다른 기억이 덧씌워지는 중인 현재를 마주합니다.뚜우우우. 뱃고동이 울린다. 배에서 치파오를 입은 중국 상인이 내린다. 부두에는 쌀가마니를 발밑에 내려놓은 나가사키 상인들이 모여 있다. 1883년 인천 제물포항이 개항하자 한적하던 어촌에 외국의 신문물이 쏟아진다. 외국인 전용 거주지, 바다 건너온 물건을 파는 가게, 외국인을 대상으로 한 무역회사와 호텔이 들어선다. 일본은 조선 수탈을 위한 방편으로 일본 제1국립은행 인천지점, 일본 제18국립은행 인천지점 등을 세운다. 개항장 역사문화의 거리 일대는 인천의 개항기를 간직한 건축물로 가득하다. 거리 전체가 한국의 근현대사를 훑어 볼 수 있는 역사문화공간인 셈이다. 인천역 부근의 인천아트플랫폼부터 신포국제시장 인근의 답동성당까지 찬찬히 걸으면 반나절도 걸리는 거리지만 핵심 장소는 일본풍 거리를 중심으로 모여 있다. 개항기 역사가 오롯이 담긴 거리의 건물은 오늘날 박물관, 아트플랫폼, 카페로 변모해 사람들을 끌어당긴다.●개항기 인천의 모습을 겹쳐 보다 개항장 역사문화의 거리 여행의 출발점은 인천아트플랫폼이다. 세월이 깃든 건물과 아티스트의 예술적 기운이 만난 공간이다. 인천시는 1888년에 지어진 일본우선주식회사(등록문화재 제248호)를 비롯해 개항기와 1930~40년대 건축물을 리모델링해 복합문화공간으로 조성했다. 국내와 일본의 물류 운송을 담당하던 일본우선주식회사 건물은 인천아트플랫폼 사무실, 해방 후에 지어 최근까지 대한통운 창고였던 건물은 공연장, 1940년대 문인과 예술가들의 사랑방이었던 금마차다방은 생활문화센터로 재단장했다. 전시장, 공연장, 창작 스튜디오 등 총 13개 동이라 규모가 상당하니 홈페이지에서 관심 있는 전시를 확인하고 가는 편이 좋다. 인천아트플랫폼 뒤편으로 발걸음을 옮기자 과거의 시공간이 펼쳐진다. ‘혼마치도리’라고 불리던 은행 거리다. 길가에 일본 제1국립은행 인천지점, 일본 제18국립은행 인천지점, 일본제58은행 인천지점 등 이국적인 석조 건축물이 나란하다. 초가집이 대부분이었을 개항기에 멀끔한 외국 건축물이 들어섰으니 조선인이 느끼는 웅장함은 지금의 수십 배였으리라. 인천개항박물관은 당시 일본 제1국립은행 부산지점 인천출장소였다. 은행의 설립 목적은 조선 수탈이었다. 은행은 조선에서 나는 금괴와 사금을 사들였고 인천항에 들어오는 무역 상인에게 해관세를 받는 업무도 병행했다. 개항기 인천을 갈무리하는 박물관으로 문을 연 것은 오랜 세월이 흐른 뒤인 2010년. 우리나라 최초의 감리교회인 내리교회, 최초의 철도인 경인선, 우편제도 등 개항 후 인천으로 들어온 다양한 근대문물을 전시한다. 건물을 구경하는 재미도 크다. 좌우대칭을 이룬 르네상스식 석조건물 내부는 붉은 벨벳 커튼, 아치형 창문, 샹들리에 조명으로 고풍스러운 분위기가 물씬하다. 인천개항장 근대건축전시관은 개항장 일대의 건물 모형을 한데 모았다. 이곳의 전신은 일본제18국립은행 인천지점. 일본이 조선 쌀을 싼값에 사서 되파는 일을 했던 나가사키 상인들을 지원하고자 설립한 금융기관이었다. 일본, 청나라 등 각국의 건축양식으로 지은 조계지 건물부터 지금은 소실된 건물, 개항장 거리에 현존하는 건물까지 살펴볼 수 있어 흥미롭다. ●계단으로 나뉜 일본 조계지와 차이나타운 은행 거리의 이국적인 분위기는 일본식 목조주택이 늘어선 거리, 일본풍 거리로 이어진다. 인천 중구청 앞은 개항기 일본인이 거주하던 일본 조계지였다. 가옥은 점포가 딸린 2층 목조주택과 나가야식(일본식 다가구주택) 1층 목조주택이 대부분이다. 목재 골조, 반듯한 직사각형 창, 검은 기와의 어울림은 언뜻 봐도 우리의 것이 아니다. 거리에는 조계지 시절에 지어진 건물과 최근에 세워진 근대식 건물이 뒤섞여 130여 년 전의 아픔을 말없이 전해준다. 건물의 역사성은 유지하되 쓰임새는 달리해 과거와 현재를 잇는 일도 한창이다. 개항기 하역회사 사무실이던 건물은 2011년, 원형에 가까운 복원을 거쳐 카페 ‘팟알’로 문을 열었다. 목조 골격을 살린 카페 내부는 낮잠이 들 만큼 아늑하다. 팟알 바로 옆의 관동갤러리 역시 목조가옥의 외관을 유지한 채 갤러리가 됐다. ‘1883년 일본이 조계지를 만들자 1년 후 청나라는 반대편에 차이나타운을 형성한다.’ 이 역사적 사실을 단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곳이 일본풍 거리와 차이나타운이 맞닿은 지점에 자리한 청·일 조계지 경계 계단이다. 청국과 일본 조계지의 경계가 되는 계단을 중심으로 왼쪽은 중국식 건물, 오른쪽은 일본식 건물이다. 계단 양쪽 석등도 모양이 다르다. 30여개 계단 끝자락에는 중국 칭다오에서 기증한 공자상이 서 있다. 뒤를 돌면 차이나타운의 오색찬란함과 일본풍 거리의 차분함이 한눈에 담기고 저 너머 인천항이 펼쳐진다.●배다리 헌책방 골목 읽혔으나 누군가에게 다시 읽히길 기다리는 책을 우리는 ‘헌책’이라고 부른다. 인천의 배다리 헌책방 골목은 빛바랜 책이 모인 거리다. 헌책방의 향수를 그리워하는 이, 절판된 책을 찾아 헤매는 이, 오래된 책의 종이 냄새에 파묻히고 싶은 이를 품어 주는 골목의 시간은 느리게 흐른다. 배다리에 헌책방 골목이 들어선 것은 한국전쟁 후. 남루한 마을에 책을 쌓은 리어카가 모이고 책이 주는 지혜에 목마른 이들이 몰려들며 헌책방이 하나둘 생겨났다. 한때 헌책방이 40여곳까지 늘며 서울의 청계천, 부산의 보수동과 함께 전국 3대 헌책방 골목으로 불리기도 했단다. 세월이 흐른 지금은 아벨서점, 한미서점, 삼성서림 등 다섯 곳만이 남아 배다리를 지킨다. 45년 전 6.6㎡(두 평) 남짓 쪽방에서 시작한 아벨서점은 오늘날 헌책방 골목의 터줏대감이다. 내년이면 일흔을 바라보는 주인은 찾는 책이 없어 헛걸음하는 손님이 없도록 ‘어느 책방이 문을 닫는다더라’ 하는 소식을 들으면 한달음에 달려가 책을 사들였다. 그렇게 모은 것이 4만여권, 창고에는 그의 세 배가 넘는 책이 쌓여 있다. 도서 검색대 대신 책장마다 ‘프랑스 문학’, ‘여행’ 등의 견출지가 붙어 있고 비범한 기억력의 주인이 책을 찾아준다. 문화공간으로서의 역할에도 충실하다. 한 달에 한 번 열리는 시 낭송회는 어느덧 100회를 넘겼다. 최근에는 인천 출신의 이설야 시인이 시를 읊었다. ‘살아 있는 글들이 살아 있는 가슴에.’ 아벨서점 간판 옆에 붙은 글귀다. 손때 묻은 책을 뒤적이며 살아 있는 글과 정신을 호흡하는 곳, 배다리 헌책방 골목이다.●동심 한 조각을 되찾다, 송월동 동화마을 동화 줄거리가 가물가물해진 어른이 됐다. 꿈속에서 피터 팬과 같은 편이 돼 후크 선장을 물리치던 때도 있었는데. 차이나타운의 북쪽 끝과 맞닿은 송월동 동화마을은 고마운 공간이다. 기억 저편으로 사라진 동화 속 주인공들을 되살려 냈으니 말이다. 송월동 동화마을은 세계 명작 동화를 테마로 조성됐다. 입구의 아치형 조형물을 지나면 도로시 길, 빨간 모자 길, 전래동화 길 등 열한 가지 테마의 골목이 발길을 붙잡는다. ‘미녀와 야수’의 주인공이 담벼락에 들어가 있는가 하면 벤치에 피터 팬이 앉아 있고 계단은 색색의 무지개다리다. 사람들은 포토 존에서 사진을 찍으며 동화 속 공주님과 어깨를 나란히 한다. 개항 후 독일인이 주로 거주하며 부촌이던 송월동은 1970년대 젊은이들이 인천 주변 도시와 서울로 빠져나가며 노인만 남게 됐다. 낙후된 마을은 2013년 중구청의 주거 환경 개선 사업을 통해 동화마을로 되살아났고 인천의 새로운 명소로 자리매김했다. 알록달록한 동화 세상에서 눈길을 사로잡는 건 주민들의 생활상과 동화 속 장면이 뒤얽힌 면면이다. 가스계량기는 ‘오즈의 마법사’에 나오는 양철 나무꾼의 몸통이고, 전봇대는 ‘잭과 콩나무’의 콩나무다. 가스 사용량을 재는 생활은 현실이고 동화는 비현실이다. 현실과 비현실이 중첩되는 순간은 동화를 잊지 말아야 할 이유를 알려 준다. 전봇대에서 하룻밤 새 하늘까지 자라던 콩나무를 상상할 때 우리의 현실은 그렇게 팍팍하지만은 않을 수 있다. 글 이수린(유니에스 여행작가) 사진 장명확(사진작가) ■여행수첩(지역번호 032) →가는 길:서울에서 승용차로 갈 경우 경인고속도로와 인천대로를 지난다. 경인고속도로 신월IC 통과 후 경인고속도로를 따라 17㎞가량 이동한다. 인천항사거리에서 제2외곽고속도로 방면으로 우회전한 후 수인사거리에서 중구청 방면으로 좌회전한다. 인중로와 제물량로218번길을 지나 신포로23번길을 따라가면 개항장 역사문화의 거리의 시작점, 인천아트플랫폼이다. →맛집:인천의 맛을 이야기할 때 짜장면을 빼놓을 수 없다. 한국식 짜장면은 1883년 인천 개항 후 중국인들이 인천 부두 근로자에게 국수에 볶은 춘장을 비벼 먹는 음식을 팔며 시작됐다. 붉은 간판과 홍등이 수놓은 거리, 차이나타운의 만다복(773-3838)은 하얀 짜장으로 유명하다. 취향대로 고기장과 육수를 넣어 먹는 것이 특징이다. 동인천 삼치거리에는 삼치와 막걸리를 파는 생선구이 집 10여개가 모여 있다. 인천집(764-6401)은 삼치구이와 조림을 반반씩 맛볼 수 있는 ‘반반 삼치’가 대표 메뉴다. 쌀밥에 겨울이 제철인 삼치 한 점 올려 먹으면 다른 반찬이 필요 없다. →잘 곳:인천중구청 뒷길에 자리한 호텔아띠(772-5233)는 차이나타운, 자유공원, 개항장 역사문화의 거리 등과 가까워 인천의 대표 여행지를 둘러보기 수월하다. 베니키아 월미도 더 블리스 호텔(764-9000)은 월미 문화의 거리에 자리한 호텔이다. 비즈니스센터와 세미나룸이 있어 출장 시 묵기 편리하며 객실에서 인천대교와 영종대교가 한눈에 내다보인다.
  • [논설위원의 사람 이슈 다보기] 세계는 ‘쓰레기 대란’… 매립지 확보·재활용 묘수 찾기 ‘올인’

    [논설위원의 사람 이슈 다보기] 세계는 ‘쓰레기 대란’… 매립지 확보·재활용 묘수 찾기 ‘올인’

    세계 각국에서 ‘쓰레기 대란’이 일어나고 있다. 세계 재활용 쓰레기의 절반 정도를 수입해 처리하던 중국이 지난해 7월 세계무역기구(WTO)에 “환경 보호와 보건위생 개선을 위해 플라스틱 쓰레기와 전자제품 폐기물의 수입 제한 조처를 하겠다”고 선언했기 때문이다. 올해부터 24종의 재활용 쓰레기에 대해 수입을 전면 금지하고 있다.중국의 쓰레기 수입 제한 조처로 당장 인접국인 동남아에 불똥이 튀었다. 올해 들어 지난 5월까지 태국으로 수입된 재활용 쓰레기와 전자제품 폐기물 규모는 21만 2000t으로 이미 지난해 연간 수입량(14만 5000t)을 넘어섰다. 베트남은 2016년 34만t에서 지난해 55만t으로 급증했다. 같은 기간 말레이시아는 29만t에서 45만t으로, 인도네시아는 12만t에서 20만t으로 폭증했다. 쓰레기 대란은 또 하나의 고민을 안게 됐다. 이들 쓰레기를 재활용하고 처리할 시설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지난달 27일부터 28일까지 이틀간 일본 후쿠오카에서 흥미 있는 행사가 열렸다. 유엔 해비탯이 ‘아시아 도시의 폐기물관리 실태’에 대한 세미나를 주최한 것이다. 행사에서는 아시아 각국의 도시들이 직면한 쓰레기 문제에 대한 토론이 이어졌다. 또한 선진국이 채택하고 있는 쓰레기 매립과 소각 방식에 대한 논의도 이뤄졌다. 회의 장소가 일본인 만큼 당연히 일본의 쓰레기 처리 방식에 대해 관심이 쏟아졌다. 일본은 1980년대 후반부터 혐오시설 등이 자신들이 살고 있는 지역에 들어서는 것을 반대하는 ‘님비현상’으로 인한 매립부지 확보난에 직면했다. 이 때문에 쓰레기 처리를 소각 방식으로 전환해 대부분의 가연성 쓰레기를 소각한 후 소각잔재물 위주로 매립하고 있다. 매립된 쓰레기는 주변 환경오염을 최소화하고 매립부지를 조기 활용하기 위해 ‘준호기성 매립 방식’을 개발해 대부분 지역에서 채택하고 있다. 준호기성 매립은 매립지의 침출수 집배수 관로를 통해 공기가 자연적으로 유입되도록 유도해 매립지 내부 집수관 주변이 미호기 또는 준호기성 상태가 유지되도록 해 매립폐기물의 조기 안정화를 유도하는 기술이다. 후쿠오카대 명예교수인 하나지마 마사타카 교수가 개발한 방식이다. 이번 행사에서도 일본의 소각 기술과 매립 방식을 쓰레기 대란을 겪고 있는 동남아에 수출하려는 의도가 엿보였다.반면 우리나라는 쓰레기를 처리하는 데 소각과 매립 방식을 병행하고 있다. 서울시에서 배출되는 생활쓰레기는 지난 1995년 쓰레기 종량제 실시 이후 감소 추세를 보이고 있다. 2005년 생활쓰레기 발생량은 일일 1만 1170t이었으나 2014년 9613t으로 주는 등 매년 감소 추세다. 발생된 쓰레기는 재활용을 비롯해 매립 또는 소각처리되고 있다. 서울은 마포 자원회수시설을 비롯해 강남, 노원, 양천, 은평 등에 소각장을 운영 중이며 생활쓰레기 92% 정도를 소각처리하고 있다. 하지만 주민들의 반대로 더이상의 소각시설을 짓는 게 불가능해 8% 정도는 인천시 서구와 김포시 양촌면에 걸쳐 있는 수도권 매립지에 쓰레기를 묻고 있다. 이 수도권 매립지는 여의도 6배 크기인 1600만㎡로 세계 최대 규모다. 하지만 이 매립지도 주민의 반대로 2025년이면 사용이 중단될 운명이다. 인천시가 환경부와 수도권 3개 시·도 4자 협의를 통해 수도권 쓰레기 매립지 3-1공구 103만㎡의 사용을 2025년에 종료하겠다는 뜻을 밝히고 있기 때문이다. 불과 7년 정도 남은 셈이다. 대체 매립지 후보는 인천·경기 지역 13곳 정도가 거론되고 있다. 정부는 내년 3월 대체 후보지를 3, 4곳으로 압축한 뒤 선정 절차를 밟는다는 계획이지만, 해당 지역 주민들의 반발에 직면할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지난 2014년 대체 매립지 후보로 인천 옹진군 영흥도가 검토되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인근 시흥시, 안산시, 송도국제도시 주민까지 들고일어나 극렬하게 반대했다. 현재의 수도권 매립지만큼 넓은 지역을 찾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어서 서울시와 경기도는 곤혹스러워하고 있다. 홍수열 자원순환사회경제연구소장은 “서울시, 경기도가 대체 매립지를 구하는 건 거의 불가능할 것”이라고 진단했다. 홍 소장은 소각장시설의 추가확충도 어려운 만큼 현재로선 타는 쓰레기와 타지 않는 쓰레기를 선별해 매립지로 가는 쓰레기의 양을 최대한 줄이는 방법밖에 없다고 조언했다. 현재 서울시의 경우 생활쓰레기 중 매립지로 보내는 비율이 8%인데 최대한 3% 정도로 줄이고 에너지 회수를 활용할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글 사진 후쿠오카 이종락 논설위원 jrlee@seoul.co.kr
  • [2018 서울미래유산 그랜드 투어] 빨래터 아낙들은 알았을까… 청계천변에 닥칠 자본주의 물결을

    [2018 서울미래유산 그랜드 투어] 빨래터 아낙들은 알았을까… 청계천변에 닥칠 자본주의 물결을

    서울신문이 서울시, 사단법인 서울도시문화연구원과 함께하는 ‘2018 서울미래유산-그랜드 투어’ 제32회 서울의 문학4(박태원의 천변풍경) 편이 지난 8일 청계천 일대에서 진행됐다. 이날 오전 10시 종각역 5번 출구에 모인 참석자들은 무교동과 다동에 걸쳐 있는 ‘오래된 맛집’ 용금옥~부민옥~북어국집을 차례차례 탐방한 뒤 관철동으로 향했다. 삼일빌딩~베를린광장~종로양복점~안동장~송림수제화 등 방문 코스 모두가 미래유산이어서 마치 서울미래유산 전시장을 방불케 했다. 3시간에 걸친 일정은 수표교~세운상가~광장시장에서 마무리됐다.이날 올겨울 들어 가장 낮은 체감온도 영하 19도의 한파가 몰아쳤지만 서울미래유산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열정을 막을 순 없었다. 예약자 30명과 대기자 10명까지 40명이 모두 참석해 청계천변과 골목을 맘껏 누볐다. 해설을 맡은 황미선씨와 견문기 필자 신수경씨는 막간을 이용해 ‘천변풍경 풍자극’을 즉석 무대에 올려 웃음보와 함께 추위를 녹여줬다. 참가자들은 “소설 속 빨래터 아낙네들의 대화를 만담으로 전달해줘 재미와 이해도를 높였다”는 소감을 남겼다. 문학은 사회의 반영이며, 시대의 산물이다. 1930년대 청계천 주변에 살던 하층민들의 삶을 영화처럼 보여주는 장편소설이 박태원의 ‘천변풍경’이다. 1936년과 1937년 중편소설로 ‘조광’에 연재됐고, 1937년 장편소설로 개작돼 1938년 박문서관에서 단행본으로 출간됐다. 청계천변에 사는 사람들의 일상을 그린 이 소설은 뚜렷한 주인공 없이 70여명의 등장인물을 중심으로 50가지 이야기가 펼쳐지는 세태소설이다.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에서 시도했던 모더니즘과 처음 구현한 리얼리즘의 양 극단을 아우르는 작품이다. ‘천변풍경’은 최고의 찬사를 받았다. 구보가 글을 배운 당대 최고봉 춘원 이광수는 “박태원씨의 ‘천변풍경’은 내가 일생에 읽은 문학 중에 가장 인상 깊은 것 중의 하나이다. 나는 이 소설에서 톨스토이의 만년 작품에서 받은 것과 방불한 감동을 받는다. 작가의 그 진지하고도 경건한 태도, 그 꾸밈없는 붓을 아끼는 필법, 그 표현의 효과 그 어느 것으로 보든지 나는 이 작품을…인류의 문학적 작품들 중에 참여할 것으로 믿는다”고 극찬했다. 문단 선배인 월탄 박종화는 구보가 춘원과 횡보 염상섭을 능가했다고 추켜세웠다. “지금으로부터 7~8년 전 조선 문단에는 실로 기기괴괴한 ‘갑바’ 머리에 너부죽한 이마를 앨 써 좁히고…이른바 최첨단(?)을 걷는 문학의 청년사도가 한 사람 나타났다. …‘천변풍경’을 통독하고 나니 아하! 박태원은 순수한 조선학파 문인이다. 그보다도 더 한 걸음 나아가 순수한 경알이(서울)파 문인이다. …순수한 경알이 문학을 세워 놓았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태원은 확실히 대 춘원을 능가하고 서울 중류가정 시어머니, 며느리, 시뉘, 올케의 풍파를 잘 쓴다는 거벽 (염)상섭을 물리칠 수 있다.”월탄의 장담처럼 구보는 순수한 서울파 문인이다. 청계천변 수중박골(다동 7번지)에서 태어나 28세에 관철동으로 분가하기 전까지 천변에서 자란 이른바 ‘천변사람’이다. 여기서 ‘경알이’란 서울말을 쓰는 서울토박이란 뜻이다. 월탄은 “순 경알이적 풍속 행동 언어는 여태껏 다른 작가가 감히 건드려 보지 못하던 난숙한 솜씨요, 묘사다. 더욱이 그 순 경알이적 어휘에 있어서는 조선말을 수집하는 어학자로 앉아서도 경알이 말의 노다지를 발견했다고 찬탄하여 당목치 않고는 못 배길 정도”라고 말했다. 서울말은 ‘~구료(구려)’, ‘~에요(어요)’ 등 특유의 어미 활용과 ‘것두’, ‘깎재두’ 같은 ㅗ모음의 ㅜ모음으로의 상승 경향이 특징이다. 소설에는 서울방언이 생생하고 풍부하게 기록돼 있으며 표준어로 쓰여 있다. 서울말과 표준어를 구분해 대화는 사투리로 하고, 지문은 표준어로 사용하고 있다. 지금은 서울사람을 이르는 변변한 호칭조차 없지만 한때 서울내기, 서울깍쟁이, 서울토박이 같은 호칭이 널리 쓰였다. 서울내기 혹은 서울깍쟁이는 비하하는 성격이 강해서 대중성을 갖지 못했고, 일부에서 애착을 갖는 서울토박이의 경우 ‘토박이’가 서울 사람을 특정하지 않는다는 흠이 있다. 외국인 관광객 2000만명 시대를 앞 둔 요즘은 서울라이트, 서울메이트, 서울러 같은 국적불명의 영어식 별칭이 청년층을 중심으로 사용되지만 보편적이지 않다. 오히려 경알이가 설득력이 있지 않을까 싶다. 부유한 조선 사람들이 사는 북촌과 일본인들의 거주지 남촌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중촌, 청계천변에는 빨래터, 한약방, 포목전 등 전통적 시설과 이발소, 하숙집, 카페 등 근대적인 시설이 공존했다. 전통과 근대의 변화상이 교차하는 공간인 청계천변은 전통사회에서 근대사회로 이행하는 과정의 세태상이 백일하에 드러나는 변혁의 공간이다. 주요 공간 중 빨래터와 한약국집, 이발소, 카페는 상징성을 갖는 장소이다. ‘정이월에 대독 터진다는 말이 있다. 딴은, 간간이 부는 천변바람이 제법 쌀쌀하기는 하다. 그래도 이곳, 빨래터에는, 대낮에 볕도 잘 들어, 물속에 잠근 뺄래꾼들의 손도 과히들 시립지는 않은 모양이다.’라는 소설의 첫 대목에서 등장하는 빨래터는 여성 공동의 작업장이자 사교와 친목의 공간이었다. 천변에서 일어나는 사건 소식을 가장 먼저 알 수 있는 곳이었다.돈을 주고 빨래하는 일은 과거의 전통적 사고로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지만 소설 속 인물들은 도시의 자본주의 논리를 이미 수용했음을 알 수 있다. “소문을 들으면, 무어 청계천을 덮어 버린단 말이 있지 않어? 위생이 나쁘다든가…덮긴 말이 그렇지, 이 넓은 개천을 그래 무슨 수로 덮는단 말이유? 온, 참….”이라는 청계천 복원에 대한 샘터 문답이 나온다. 청계천 복원 얘기가 나돌자 빨래터 주인 김첨지의 걱정이 크다. 1920년대부터 제기된 청계천 복원은 1934년 경성계획이 수립되면서 복개와 고가철도 건설 계획이 발표됐으나 재정 문제로 실현되지는 못했다. 위생 문제 해결 때문이 아니라 경성을 일본 본토와 중국 대륙을 잇는 대륙 침략의 거점으로 활용하는 군수물자 수송대책 차원이었다. 한약국집은 작중 가장 따뜻한 공간이다. 실제로 작가는 공애당이라는 약국집의 4남 2녀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부친이 경영하던 공애당과 숙부가 운영한 공애병원이다. 자유연애로 결혼한 신식커플은 1934년 결혼한 자신이 모델이었다. 돈과 권력, 정력에만 관심 있는 50대 사법서사 민주사와 이발사 재봉이가 등장하는 이발소도 전통적인 사회와 근대적인 사회를 선명하게 구분 짓는 장소이다. 이발사는 1895년 고종의 단발령 이후 생긴 신흥 직업이었다. 전통사회에서 머리카락을 자른다는 것은 천한 사람이나 승려로 여겼다. 소설에 등장하는 평화카페는 광교 모퉁이 다동 1번지쯤에 있었다. ‘하나꼬’와 ‘기미꼬’라는 일본 이름을 가진 카페의 여급은 ‘여자급사’의 줄임말로 근대화가 낳은 새로운 여성 직업이었다. 천변풍경은 정치적인 사건이나 지배계급을 중심으로 한 역사가 아니라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을 중심으로 잔잔하게 펼쳐진다. 1930년대 경성 청계천변에 살았던 사람들의 삶이 담겨 있다. 근대 서울과 서울사람 탄생의 비밀을 품고 있는 시절이다. 글 노주석 서울도시문화연구원 원장 사진 문희일 연구위원 ●다음 일정: 서대문(안산 아랫동네) ●일시: 12월 15일(토) 오전 10시~낮 12시 ●집결장소: 지하철 5호선 서대문역 8번 출구 ●신청·안내: 서울미래유산 홈페이지(futureheritage.seoul.go.kr)
  • ‘임신 5개월’ 아오이 소라, 남편 DJ NON “내 과거 받아준 남자”

    ‘임신 5개월’ 아오이 소라, 남편 DJ NON “내 과거 받아준 남자”

    일본의 성인배우 출신 아오이 소라가 임신 5개월임을 알려 뜨거운 화제가 되고 있다. 이에 아오이 소라의 남편 DJ NON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다. 일본에서 유명 성인 배우로 활동한 아오이 소라는 지난 1월 자신의 SNS를 통해 DJ NON과의 결혼 소식을 알렸다. 당시 아오이 소라는 DJ NON에 대해 “잘생기지도 않고 돈이 있는 사람도 아니지만 내 과거의 일을 받아들여줬다”면서 “예전의 일을 후회하지 않지만, 나를 받아주다니 정말 엄청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힌 바 있다. 아오이 소라의 남편 DJ NON은 일본인으로 트랙 메이커, 편곡자로서도 활동하고 있다. 한편 아오이 소라는 11일 자신의 SNS를 통해 남편 DJ NON과 찍은 사진 공개와 함께 임신 5개월임을 알렸다. 아오이 소라는 “‘왜 아이를 낳느냐, 아이가 불쌍하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나는 낳고 싶었다”면서 “좋은 엄마가 되도록 노력하겠다”고 전했다. 이보희 기자 boh2@seoul.co.kr
  • 일본 ‘난폭운전’ 1년동안 2배로 급증한 이유, 알고보니…

    일본 ‘난폭운전’ 1년동안 2배로 급증한 이유, 알고보니…

    앞차에 극단적으로 가까이 붙어 간다든지 차와 차 사이를 아슬아슬하게 통과해 추월하는 ‘칼치기’를 한다든지 하는 난폭운전 적발건수가 올들어 일본에서 급증했다. 난폭·보복운전 문제가 갈수록 심각해지면서 일본 경찰이 단속을 대폭 강화한 결과다. 지난해 보복운전으로 화목한 일가족에 참사를 안긴 가해 운전자에 대한 재판이 진행되고 있는 가운데 일본에서 난폭운전에 대해 경각심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10일 니혼게이자이신문에 따르면 일본에서 올들어 10월까지 경찰에 적발된 ‘차간거리 미준수’ 사례는 지난해 같은 기간의 2배가 넘는 1만 873건에 달했다. 이 가운데 9864건이 고속도로에서 발생했다. 일본에 ‘난폭운전’이라는 별도 항목의 통계는 없기 때문에 경찰은 차간거리 미준수 단속실적을 통해 대략적인 난폭운전의 실태를 추정하고 있다.물론 1년 새 일본인들의 운전습관이 갑자기 거칠어져서 그런 것은 아니고 경찰이 난폭운전에 대한 단속활동을 강화한 게 주된 원인이다. 경찰청 관계자는 “단속을 강화했음에도 불구하고 난폭운전에 의한 교통사고가 이어지고 있어 앞으로 감시를 한층 강화할 것”이라고 니혼게이자이에 말했다. 일본에서는 지난해 고속도로에서 발생한 일가족 참사 관련 가해자 재판이 진행되면서 분노운전을 포함한 난폭운전의 위험성이 다시 부각되고 있다. 지난해 6월 5일 밤 한 20대 남성이 가나가와현 도메이 고속도로에서 옆에 가던 차에 대해 반복해서 보복운전을 한 끝에 결국 사고를 유발, 피해차량에 타고 있던 40대 남성 부부가 사망하고 두 딸에게 중상을 입혔다. 운전을 시작하기 직전 주차장에서 피해 남성으로부터 주차매너에 대해 주의를 들은 데 대한 보복이었다. 이 피의자는 10일 열린 재판에서 검찰로부터 징역 23년을 구형받았다.일본에서는 난폭운전으로부터 자신을 방어하는 방법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교통사고 전문인 가모 다카야스 변호사는 “운전기록 영상을 남기는 블랙박스를 장착하고, 그 사실을 다른 운전자가 알수 있도록 차체에 스티커를 붙이는 것이 효과적”이라고 조언했다. 그는 고속도로에서 난폭·보복운전을 당할 때의 대응법과 관련해 “고속도로 노상에 바로 차를 세우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며 “휴게소에 진입하거나 일반도로로 나와 CCTV가 있는 편의점 앞 등에 차를 세운 뒤 경찰에 신고해야 한다”고 말했다. 도쿄 김태균 특파원 windsea@seoul.co.kr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