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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8독립선언’ 제105주년 기념행사 도쿄에서 열린다

    3·1운동의 도화선이 됐던 2·8독립선언 제105주년을 기념하는 행사가 8일 오전 11시 일본 도쿄 재일본한국YMCA회관에서 열린다. 7일 국가보훈부에 따르면 이번 기념식에는 이희완 보훈부 차관과 배경택 주일본대사관 총영사 등 150여명이 참석할 예정이다. 2·8독립선언은 1919년 2월 8일 도쿄에서 일본유학생들이 결성한 조선청년독립단 명의로 선언서와 결의문을 선포한 것으로, 당시 유학생 600여명이 참석했다. 3·1운동을 비롯해 항일 투쟁에 결정적 영향을 줬으며, 국내외 독립운동단체 조직과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계기를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 차관은 “정부는 2·8독립선언 선열들이 이룩한 자랑스러운 애국의 역사를 우리 미래세대들이 기억하고 계승할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라고 말했다.
  • “잡지 속 선각자들의 고뇌 확인”… ‘한국잡지 120년’ 학술대회 열린다

    “잡지 속 선각자들의 고뇌 확인”… ‘한국잡지 120년’ 학술대회 열린다

    “역사를 바라볼 때 그동안 왕조사 위주로 많이 봤지만, 서적과 잡지 기록물의 중요성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잡지 속에서 선각자들의 민족의식과 고뇌, 독립 의지를 확인할 수 있으니까요.” (부길만 동원대 명예교수) 120년에 걸친 한국 잡지의 역사를 되돌아보는 학술대회가 열린다. 한국출판학회는 오는 28일 오후 2시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한국잡지 120년, 시대를 말하다’라는 주제로 제41회 정기학술대회를 연다고 밝혔다. 노병성 한국출판학회 회장(협성대 교수)은 12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 기자회견장에서 열린 간담회에서 “학계 입장에서 창간호와 잡지를 중심으로 한 단일 연구들은 있었어도 학술대회를 본격적으로 개최해 다양한 접근을 한 것은 처음”이라며 “잡지 창간호에 대한 소중함과 귀중함이 국민에게 잘 전달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한국인에 의한 최초의 근대 잡지는 1896년 2월 5일 일본 도쿄에서 대조선인 일본유학생친목회가 창간한 ‘친목회회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학술대회는 가천문화재단이 후원한다. 가천문화재단이 운영하는 가천박물관은 ‘대한자강회월보’(1906년)와 ‘낙동친목회학보’(1907년), 근대 종합 잡지의 효시인 ‘소년’(1908년) 등 2만 657종의 잡지 창간호를 소장하고 있다. 또 가천박물관은 국내 최대 의료사 전문 박물관으로 총 10만 점의 자료를 소장하고 있다. 학술대회에서 부길만 동원대 명예교수는 ‘잡지로 보는 일제강점기-잡지 창간호를 중심으로’라는 발제에서 일제강점기 역사를 왕조 사관이나 경제 사관이 아닌 서적과 잡지의 출판이라는 출판문화 사관으로 살핀다. 일제 강점기 온갖 악조건 속에도 민족 독립, 민생 해결, 문화 창달이라는 시대정신을 구현해낸 최남선, 방정환, 김동환, 차상진 등 대표적인 잡지 출판인의 활동에 대해 발표한다. 윤세민 경인여대 교수는 ‘한국 최장수 잡지 ‘경향잡지’의 120년 시대정신’을 주제로 잡지와 한국 천주교의 역사를 연결해 연구한 성과를 발표한다. 경향잡지는 한국 천주교가 참된 개화의 방향을 제시하고 신자들에게 올바른 교리 지식과 시사 문제를 제공하고자 1906년 10월19일 창간됐다. 김진두 서일대 교수는 ‘1930년대 잡지 ‘삼천리’ 여성관 연구’라는 주제 발표에서 봉건적 이데올로기를 타파하고 여성의 지위를 높이기 위한 당시의 노력을 조망한다. 인천대 교육학 박사과정에 재학 중인 김희주 솟대커뮤니케이션 대표는 1940년대부터 1990년까지의 교육 잡지 창간호 22종을 살펴 연도별로 교육 가치관이 어떻게 변했는지를 살펴본다.
  • 진중권 “‘토착왜구’ 조정래, 실수로 못할 소리 했다 하면 될 일”

    진중권 “‘토착왜구’ 조정래, 실수로 못할 소리 했다 하면 될 일”

    조정래 작가와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가 ‘토착왜구’ 발언을 놓고 격한 논쟁을 벌이고 있다. 사태의 발단은 지난 12일 열린 조 작가의 등단 50주년 기념 기자간담회였다. 조 작가는 이 자리에서 반민특위를 부활해서 150~160만명에 이르는 친일파를 단죄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토착왜구라고 부르는, 일본에 유학을 갔다 오면 무조건 다 친일파가 되어 버린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진 전 교수는 “이 정도면 ‘광기’라고 해야죠”라며 시대착오적 민족주의 안에 잠재되어 있는 극우적 경향이 주책없이 발현됐다고 주장했다. 이어 “대통령 따님도 일본 고쿠시칸 대학에서 유학한 것으로 아는데… 일본유학 하면 친일파라니 곧 조정래 선생이 설치하라는 반민특위에 회부되어 민족반역자로 처단당하시겠네요”라고 비판했다. 이와 같은 언급에 박진영 민주당 부대변인은 삼국지에서 조조에게 독설을 퍼붓다 죽임을 당한 예형이란 인물에 진 전 교수를 빗대는 논평을 발표하기도 했다. 조 작가는 14일 KBS라디오 ‘주진우 라이브’에 출연, 진 전 교수의 비판에 대해 “작가를 향해서 광기라고 말을 한다. 저는 그 사람한테 대선배”라며 “인간적으로도 그렇고 작가라는 사회적 지위로도 그렇고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고 대통령의 딸까지 끌어다가 어떻게 이렇게 할 수 있나”라고 했다. 또 “그래서 진중권씨에게 이 자리에서 공식적으로 정식으로 사과하기를 요구한다”며 “만약에 사과하지 않으면 명예훼손을 시킨 법적 책임을 분명히 물을 것”이라고 했다.진 전 교수는 15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조 작가의 사과 요구에 그의 발언은 ‘일본에 유학을 갔다 오면 무조건 다 토착왜구라 부르는 친일파가 됩니다. 민족반역자가 된다’라고 해석하는 것이 매끄럽다고 주장했다. 이어 조 작가에 대해 “그냥 순간적으로 감정이 격해져 실수로 못할 소리를 했다고 하면 될 일을”이라고 한탄하며 “한 가지 당혹스러운 것은 자신을 ‘대선배’라 칭하고 사회적 지위를 내세우며 ‘무례와 불경’을 말한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스스로를 신성불가침의 존재로 여기는 조 작가의 권위의식이 매우 불편하다고 덧붙였다. 진 전 교수는 조 작가의 고소에 대해 존중한다며, 맞고소를 하지 않고 학문적 논쟁을 벌이겠다고 밝혔다. 그는 “고소 당한 기념으로 좀 더 진지한 저술작업으로 연결시켜 지긋지긋한 역사정치에 적어도 이론적으로나마 종지부를 찍고 싶다”며 “학문은 이념이나 정치의 수단이 아니라 그냥 학문이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윤창수 기자 geo@seoul.co.kr
  • 조정래 “진중권, 대선배에 ‘광기’라니…사죄 안 하면 법적대응”

    조정래 “진중권, 대선배에 ‘광기’라니…사죄 안 하면 법적대응”

    조정래 작가가 “일본에 유학 갔다 오면 전부 친일파가 된다”는 자신의 발언에 대해 해명하며 이를 비난한 진중권 동양대 전 교수에게 사죄를 요구했다. 조 작가는 15일 오전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논란이 된 자신의 발언 관련 “정치권에서 저한테 사실 확인을 하지 않은 채로 신문 보도된 것만 갖고 말을 하니까 시끄러워지더라”고 말했다. 그는 “저는 분명히 ‘토착왜구’라고 그 대상을 한정하고 제한했다”며 “그런데 언론이 가장 핵심적인, 중요한 주어를 빼버리고 ‘일본에 유학 갔다 오면 전부 친일파 된다’는 문장만 집어넣어서 기사를 왜곡함으로써 이렇게 일파만파 오해가 생기는 일이 벌어진 것”이라고 해명했다. 이어 “오늘부로 그러한 소모적인 논쟁 그만하시고 그야말로 민생을 위한, 국민 전체를 위한 민생 국회로 빨리 돌아가시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조 작가는 또 “진중권이라는 사람이 저를 비난하고 심지어 대통령 딸까지 끌어다가 조롱했는데, 그 사람도 사실 확인하지 않았다. 그래서 저는 지금 그 사람한테 공개적인, 진정 어린 사죄를 요구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만약에 사죄하지 않으면 작가의 명예를 훼손한 법적 책임을 묻겠다”고 밝혔다. 앞서 조 작가는 14일 KBS라디오 ‘주진우 라이브’에서도 진 전 교수에 대해 “진중권씨는 자기도 대학 교수를 하고 한 사람이면 엄연히 사실 확인을 분명히 했어야 한다. 저한테 전화 한 통화도 없이 아주 경박하게 두 가지의 무례와 불경을 저지르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작가를 향해서 ‘광기’라고 말을 한다. 저는 그 사람한테 대선배다. 인간적으로도 그렇고 작가라는 사회적 지위로도 그렇고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고 대통령의 딸까지 끌어다가 어떻게 이렇게 할 수 있느냐”면서 “그래서 진중권 씨에게 이 자리에서 공식적으로 정식으로 사과하기를 요구한다. 만약에 사과하지 않으면 명예훼손을 시킨 법적 책임을 분명히 물을 것”이라고 했다.조 작가는 지난 12일 등단 50주년을 기념하는 기자간담회에서 “일본 유학을 다녀오면 무조건 다 친일파가 된다”고 말했다. 이를 두고 진 전 교수는 그 다음 날인 13일 페이스북을 통해 “이 정도면 ‘광기’라고 해야 한다”면서 “대통령의 따님도 일본 고쿠시칸 대학에서 유학한 것으로 안다. 곧 조정래 선생이 설치하라는 반민특위에 회부되어 민족반역자로 처단 당하시겠다”라고 비꼬았다. 그러자 더불어민주당은 박진영 상근부대변인의 논평을 통해 “최소한의 인격은 남겨두기 바란다”며 직격탄을 날렸다. 그동안 진 전 교수가 여당이나 여당 인사에 대해 많은 비난 발언을 쏟아냈지만, 민주당이 당 차원에서 공식 논평으로 맞대응한 것은 이례적이다. 박 부대변인은 “조정래 선생의 말씀이 다소 지나쳤다 하더라도, 그런 식의 비아냥이 국민과 함께 고난의 시대를 일궈 온 원로에게 할 말인가”라고 따지며 “품격은 기대하지도 않겠다. ‘예형’의 길을 가고자 한다면 그리하십시오”라고도 했다. 삼국지에 등장하는 예형은 조조와 유표, 황조를 조롱하다 처형을 당하는 인물이다. 이에 진 전 교수는 즉각 반응했다. 그는 페이스북에 “이분들이 실성을 했나. 공당에서 이게 뭐 하는 짓인지”라며 민주당을 원색적으로 비난했다. 이어 “저 분노는 조정래 선생을 위한 것인가요? 아니면 대통령 영애를 위한 것인가요?”라며 “대통령 따님이 일본유학 했다고 친일파로 몰아간 사람은 따로 있어요. 민경욱이라고. 대한민국 베스트셀러 작가가 그런 극우파와 같은 수준이라는 것 자체가 스캔들”이라고 덧붙였다. 이보희 기자 boh2@seoul.co.kr
  • 與 “이론도 없고 예의도 없어”... 진중권 “이게 뭐 하는 짓인지” (종합)

    與 “이론도 없고 예의도 없어”... 진중권 “이게 뭐 하는 짓인지” (종합)

    더불어민주당과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가 날 선 비판을 주고 받았다. 앞서 지난 12일 조정래 작가는 등단 50주년 간담회에서 “일본을 유학을 다녀오면 무조건 다 친일파가 된다. 민족 반역자가 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진 전 교수는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대통령의 따님도 일본 고쿠시칸 대학에서 유학한 것으로 아는데….”라며 “곧 조정래 선생이 설치하라는 반민특위에 회부되어 민족반역자로 처단 당하시겠다”라고 지적했다. 그러자 13일 민주당은 박진영 상근부대변인의 논평을 통해 “최소한의 인격은 남겨두기 바란다”고 비판했다. 진 전 교수의 비난 발언에 민주당이 당 차원에서 공식 논평으로 맞대응한 것은 이례적이다. 박 부대변인은 진 전 교수에게 “이론도 없고 소신도 없는 줄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예의마저 없다”면서 “말 한마디 한마디를 언론이 다 받아 써 주고, 매일매일 포털의 메인뉴스에 랭킹 되고 하니 살맛 나지요? 신이 나지요? 내 세상 같지요? 그 살맛 나는 세상이 언제까지 갈 것 같나”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조정래 선생의 말씀이 다소 지나쳤다 하더라도, 그런 식의 비아냥이 국민과 함께 고난의 시대를 일궈 온 원로에게 할 말인가”라고 따졌다. 그는 “품격은 기대하지도 않겠다. ‘예형’의 길을 가고자 한다면 그리하십시오”라고 덧붙였다. 삼국지에 등장하는 예형은 조조와 유표, 황조를 조롱하다 처형을 당하는 인물이다. 이에 진 전 교수는 페이스북을 통해 “아니요, 너희 세상 같아요. 살맛 나냐고요? 아뇨. 지금 대한민국에서 너희들 빼고 살맛나는 사람이 있나요? 하나도 없거든요”라고 응수했다. 그러면서 “이분들이 실성을 했나. 공당에서 이게 뭐 하는 짓인지”라며 민주당을 원색적으로 비난했다. 그는 “근데 저 분노는 조정래 선생을 위한 것인가요? 아니면 대통령 영애를 위한 것인가요?”라며 “대통령 따님이 일본유학 했다고 친일파로 몰아간 사람은 따로 있어요. 민경욱이라고. 대한민국 베스트셀러 작가가 그런 극우파와 같은 수준이라는 것 자체가 스캔들”이라고 덧붙였다. 임효진 기자 3a5a7a6a@seoul.co.kr
  • [씨줄날줄] 49년 마르지 않던 샘터/박록삼 논설위원

    [씨줄날줄] 49년 마르지 않던 샘터/박록삼 논설위원

    한국의 근대는 ‘잡지의 시대’였다. 1896년 당시 일본 유학생들이 만든 ‘대조선일본유학생친목회보’를 국내 최초의 잡지로 꼽는다. 국한문 혼용체의 이 계간 잡지는 교육·국방·정치·외교·문화 등 다방면에 걸쳐 새로운 견해와 방향을 담은 독립사상, 개화사상의 선구자 역할을 했다. 이후 일제강점기 때도, 해방 이후에도 여러 분야와 내용의 잡지들이 끊임없이 나왔다. 앎에 목마른 이들에게 또 다른 언론으로서 역할을 하기도 했고, 특정한 전문적인 분야의 식견과 깊이를 더하기도 했다. 심지어 한국전쟁 중에도 잡지 발행의 맥은 끊기지 않았다. 마종기, 윤후명, 황동규, 이승훈, 최인호 등 이름 짜한 시인, 소설가를 배출한 잡지 ‘학원’도 피난 중 창간됐다. 군사독재 불의에 맞서 시대의 어둠을 밝힌 잡지 ‘사상계’의 시작도 한국전쟁 중이었다. 오히려 세월이 흐른 1980년대가 잡지의 암흑기였다. 신군부는 ‘창작과비평’, ‘문학과지성’, ‘뿌리깊은나무’ 등 사회비판적인 내용을 담은 잡지들을 줄줄이 폐간시켰다. 출판사와 작가들은 1980년 ‘실천문학’처럼 정기간행물이 아닌 ‘무크’(매거진+북) 운동으로 양심과 지성의 목소리를 담아내기 위해 몸부림쳤다. 세상 물정 몰랐던 어린이들이야 ‘어깨동무’, ‘소년중앙’, ‘소년경향’ 등을 보며 키득대던 시절이었다. 1970년 4월 창간된 월간 ‘샘터’는 그러한 시대 속에서도 독야청청했다. ‘평범한 사람들의 행복을 위한 교양지’를 표방한 창간 당시 가격은 100원. 담뱃값보다 싸야 한다는 발행인 김재순(전 국회의장)의 고집이 반영됐다. 그리고 한 차례도 거르지 않고 쉼 없이 49년 동안 샘터는 퍼올려졌다. ‘샘터’에는 피천득, 법정 스님, 이해인 수녀, 정채봉, 장영희 등 글쟁이 명사들의 편안한 글뿐만 아니라 일반인들에게도 지면을 기꺼이 내줬다. 당연히 정치와 이념 같은 골치 아픈 얘기는 없었다. 그저 평범한 이웃의 삶과 일상 속 소소한 행복을 빼꼼히 들여다보는 내용이었다. 남들의 삶도 자신과 다르지 않음에 위로받았고, 큰 불행을 슬기롭게 헤쳐 나가는 의지에 눈물 훔치며 격려했다. ‘샘터’ 정기구독권은 좋은 이에게 슬며시 전하는 마음의 선물이기도 했다. 40대 이상의 나이라면 ‘샘터’와 얽힌 추억 한 자락 없는 이가 별로 없을 정도로 큰 인기를 누렸다. 일상 속 감사, 행복 등 긍정 에너지를 퍼나르던 ‘샘터’가 오는 12월호 598호를 마지막으로 무기한 휴간한다. 계속 쌓여 가는 적자 구조를 더는 버티기 어렵게 된 탓이다. 인수자가 나타나지 않으면 사실상 폐간하는 수순을 밟을 수밖에 없다. 벌써 허전하다. 늘 곁에 있어 소중함 느끼지 못했던 친구가 멀리 떠나는 느낌이다. youngtan@seoul.co.kr
  • ‘녹두꽃’ 윤시윤, 상투 자르고 서양옷 입었다 “창씨개명까지..”

    ‘녹두꽃’ 윤시윤, 상투 자르고 서양옷 입었다 “창씨개명까지..”

    ‘녹두꽃’ 윤시윤이 달라졌다. SBS 금토드라마 ‘녹두꽃’은 125년 전 이 땅을 뒤흔든 민초들의 우렁찬 사자후 동학농민혁명을 그린 민중역사극이다. 단 녹두장군 전봉준(최무성 분)의 일대기가 아니다. 그 시대를 살던 사람들의 이야기다. 이를 통해 더 강력한 메시지, 몰입도를 선사하고 있다. 사람들의 이야기 ‘녹두꽃’의 극을 풀어내는 중요한 방식이 ‘인물의 변화’이다. 백이강(조정석 분), 백이현(윤시윤 분), 송자인(한예리 분) 허구인물인 세 주인공은 격동의 시대에 휩쓸리며 각자 다른 변화를 겪는다. 이 변화가 시대의 아픔을 보여주기도, 아픔 속에서도 민초들이 꿈꾸는 희망을 보여주기도 한다. 그중에서도 가장 강력한 변화를 겪는 인물이 백이현이다. 백이현은 아전 집안의 아들로 태어나 일본유학까지 다녀왔다. 그곳에서 문명의 힘을 직접 목격한 백이현은 조선에도 문명과 개화의 빛을 밝히고 싶었다. 하지만 폐쇄적인 사회, 여전히 신분제가 지배하는 계급사회는 이 같은 그의 꿈을 짓밟아버렸다. 뿐만 아니라 그를 전쟁터로 내몰았고, 더 큰 좌절과 마주하게 됐다. 결국 백이현은 진흙 위 연꽃 같은 소년에서 핏빛 야수가 되고 말았다. 지난 ‘녹두꽃’ 28~32회는 백이현 캐릭터에 역대급 전환점이 찾아왔다. 고부의 집강이 되어 개혁을 추진하며 마음 속 도채비(도깨비)를 몰아내려 애쓰던 백이현에게 더 강력한 시련이 찾아온 것. 정혼자 황명심(박규영 분)이 위기에 처한 가운데 백이현은 결국 총을 들었고, 순식간에 살인자가 된 채 한양으로 도주했다. 그런 백이현에게 일본에서 인연을 맺은 다케다(이기찬 분)가 손을 내밀었다. 조선의 개화, 계급사회로 인한 좌절을 번갈아 떠올리던 백이현은 결국 다케다의 손을 잡았다. 그는 상투를 스스로 잘랐고, 이름 역시 일본 이름인 ‘오니(도깨비)’를 사용하겠다 선언했다. 이런 가운데 6월 20일 ‘녹두꽃’ 제작진이 180도 달라진 백이현의 모습을 공개해 이목을 집중시킨다. 사진 속 백이현은 길었던 머리를 싹둑 자르고 도포자락을 길게 휘날리던 한복도 벗어 던진 모습. 대신 셔츠와 타이 등 서양의 옷을 착용했으며, 머리에도 갓 대신 서양식 모자를 쓰고 있다. 무엇보다 눈길을 끄는 것은 백이현의 한층 서늘하고 냉철해진 눈빛이다. 전에 없던 날카로움과 함께 많은 비밀까지 품은 듯 날카롭게 번뜩이는 눈빛이, 외형뿐 아니라 마음까지 달라진 백이현을 암시한다. 대체 그는 어떻게 변화한 것인가. 이 변화로 인해 그는 어떤 삶을 살게 될 것인가. 이와 관련 ‘녹두꽃’ 제작진은 “내일(21일) 방송되는 ‘녹두꽃’ 33~34회에서는 스스로 변화를 선언한 후 달라진 백이현의 모습이 그려진다. 폭풍처럼 휘몰아치는 격동의 조선. 그 안에서 변화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백이현의 삶과 그로 인해 달라진 그의 운명, 이를 그려낼 배우 윤시윤의 처절한 열연과 막강한 존재감에 많은 관심과 기대 부탁드린다”고 전했다. 한편 백이현의 180도 달라진 모습과 운명은 내일(21일) 금요일 밤 10시 방송되는 SBS 금토드라마 ‘녹두꽃’ 33~34회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보희 기자 boh2@seoul.co.kr
  • ‘녹두꽃’ 조정석, 최무성 횃불 민란에 당혹 “백성에겐 쌀을”[종합]

    ‘녹두꽃’ 조정석, 최무성 횃불 민란에 당혹 “백성에겐 쌀을”[종합]

    ‘녹두꽃’에서 조정석이 최무성의 횃불 민란을 마주하며 최고시청률 14.7%를 기록했다. 이처럼 첫방송부터 두자리수를 돌파하며 큰 관심을 이끌어 낸 것. 26일 첫방송된 ‘녹두꽃’ 1, 2회 시청률의 경우 닐슨코리아 수도권기준으로 각각 10.1%(전국 8.6%)와 13.2%(전국 11.0%)로 기록했다. 최고시청률은 마지막에 이르러 14.7%까지 치솟았다. 덕분에 드라마는 동시간대 지상파와 케이블, 종편에서 방송된 모든 프로그램을 통틀어 1위 자리에 안착했다. 또한, 광고관계자들의 판단지표인 2049시청률에서도 ‘녹두꽃’은 각각 3.0%와 4.1%를 기록하며 동시간대 지상파 1위에 안착할 수 있었다. 특히 ‘열혈사제’의 후속인 드라마는 첫방송부터 극본과 연출, 그리고 연기자의 열연이 조화롭게 이뤄지며 대작의 기운을 느끼게 했고, 동시에 ‘월화수목녹두일’의 시작을 알릴 수 있었던 것이다. 이날 방송분은 19세기 말 전라도 고부를 중심으로 스토리가 펼쳐졌다. 지역 실세인 이방 백가(박혁권 분)의 아들 이강(조정석 분)은 아버지의 명령에 따라 관아에 협조하지 않는 백성들에게 폭력을 행사하며 지내고 있었다. 심지어 그는 백가로 부터 유월(서영희 분)을 면천시켜 주는 대신 새로운 사또를 협박하라는 명령에도 묵묵히 따를 태세였다. 그런가 하면 일본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이현(윤시윤 분)은 백가의 요청에 따라 과거준비를 위해 나서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다 이복형인 이강이 자인(한예리 분)과 함께 있던 덕기(김상호 분)에게 흠씬 두들겨 맞는 것을 목격하자 이내 나서서 중재하기도 했던 것. 이 자리에서 이현은 이제 자신은 고부를 뜰 것이라며 이강을 향해 ‘거시기’가 아닌 원래이름인 이강으로 살아갈 것을 간곡히 부탁하기도 했다. 한편, 자인은 전봉준(최무성 분)을 만난 자리에서 민란을 주도했던 사람임을 눈치채고는 미리 입수했던 사팔통문을 가지고서 다시금 부임한 조병갑(장광 분)을 찾아갔다. 하지만, 헐벗은 백성을 뒤로한 채 호화로운 잔치를 벌이는 그를 보고는 말문이 막히고 말았던 것이다. 마지막에 이르러 전봉준(최무성 분)이 횃불을 든 백성들을 향해 “고부관아를 격파하고, 모리배들의 목을 베겠다”, “백성에겐 쌀을, 탐관오리에겐 죽음을”이라는 구호와 함께 민란을 일으켰고, 이를 목격한 이강은 당혹해하고 만 것이다. 이에 따라 후속으로 전개될 스토리에 대한 관심이 더욱 커졌다. 한편, 정현민 작가와 신경수 감독의 ‘녹두꽃’은 1894년 동학농민혁명의 소용돌이 속에서 농민군과 토벌대로 갈라져 싸워야 했던 이복형제의 파란만장한 휴먼스토리로 매주 금,토요일 오후 10시에 방송된다. 3, 4회는 4월 27일 밤 10시에 방송된다. 이보희 기자 boh2@seoul.co.kr
  • 내년 4월 새로운 일본어 능력시험 나온다…JLPT, JPT 단점 보완

    내년 4월 새로운 일본어 능력시험 나온다…JLPT, JPT 단점 보완

    JLPT와 JPT 등 기존의 시험과 다른 새로운 일본어 능력시험이 내년 4월부터 일본 국내외에서 시행된다.니혼게이자이신문은 8일 “외무성이 외국인 노동자 확대에 대응하는 새로운 일본어 능력시험을 신설, 국제교류기금 등을 통해 내년 4월부터 시행한다”고 보도했다. 아직 명칭이 확정되지 않은 이 새로운 시험은 외국인 노동자의 일본 취업 자격 테스트에 활용된다. 일본에서 일하는 외국인이 직장에서 원활한 의사소통을 할 수 있는 기초역량을 갖추고 있는 지에 초점을 맞추게 된다. 구체적으로 전화응대나 일정확인 등에 반드시 필요한 어휘 표현 등 일상생활 및 업무관련 통화에 필요한 어학능력이 주된 출제방향이다. 현재 시행되고 있는 일본어 시험은 JLPT와 JPT의 양대 ‘일본어능력시험’ 외에 ‘일본유학시험’(EJU), ‘실용일본어검정’, ‘비즈니스일본어능력테스트’(BJT) 등이 있으나 주로 대학 강의와 학생생활 등 학업 관련이어서 외국인 근로자에 요구되는 능력 테스트에는 적합하지 않다는 지적이 있어 왔다.외무성은 노동 현장의 수급 특성을 감안해 신속하게 응시자에게 결과를 알려주는 컴퓨터 활용 시험을 검토하고 있다. 문제는 ‘듣기’와 ‘독해’의 2가지를 기본으로 향후 ‘쓰기’와 ‘말하기’를 추가될 수 있다. 니혼게이자이는 “일본내 취직을 원하는 외국인은 일본에 오기 전 자국에서 응시할 수 있으며, 베트남이나 필리핀 등 동남아에서 우선적으로 시행하는 방안이 추진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일본 후생노동성에 따르면 지난해 10월 말 기준 일본내 외국인 노동자는 약 128만명으로, 1년 전에 비해 18%나 증가하며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내년 4월에는 일손 부족이 특히 심각한 건설, 농업, 돌봄 등 분야를 대상으로 최장 5년간 일본에서 일할 수 있는 새로운 외국인 취업자격도 마련된다. 도쿄 김태균 특파원 windsea@seoul.co.kr
  • ㈜유학피플, 2018 사이버 유학박람회 개최

    ㈜유학피플, 2018 사이버 유학박람회 개최

    현재 청년 실업률이 사상 최고치를 갱신하면서 많은 청년들이 취업난에서 살아남기 위해 하루하루 고군분투 하고 있다. 높은 실업률을 뚫고 취업을 했다고 하더라도 직장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더 많은 노력을 해야 하는 것이 현실이다. 이에 취업준비생과 직장인들은 자신의 가치를 높이기 위하여 ‘영어’에 더 많은 시간과 비용을 할애하고 있다. 해외유학 및 어학연수 전문기관 ㈜유학피플에서는 영어실력을 높이기 위해 해외 유학과 어학연수를 준비하는 분들을 위해 오는 9월 3일부터 14일까지 사이버 유학 박람회를 개최한다고 밝혔다. 이번 사이버유학박람회는 취업 준비생과 직장인들 뿐만 아니라 대학생과 공무원들을 대상으로 진행된다. 해외 어학연수와 관련한 내용은 물론 해외 대학 진학을 목표로 하는 고등학교 3학년 이하 학생들을 위한 조기유학 프로그램과 명문대 진학프로그램에 대한 정보도 받아볼 수 있다. 구체적으로는 △미국어학연수 △미국유학 △미국인턴쉽 △미국공립교환학생 △미국조기유학 △캐나다어학연수 △캐나다유학 △캐나다인턴쉽 △캐나다컬리지 △캐나다조기유학 △영국어학연수 △영국유학 △호주어학연수 △호주유학 △호주워킹홀리데이 △필리핀어학연수 △필리핀조기유학 △몰타어학연수 △아일랜드어학연수 △뉴질랜드유학후이민 △공무원어학연수 등 영어권 국가에 대한 전반적인 내용과 인기 급부상 중인 △일본유학 △일본어학연수 △일본워킹홀리데이 프로그램에 대한 정보를 알아 볼 수 있다. 특히 이번 사이버유학박람회는 1년 중 가장 크게 개최되어 그 어느 때보다도 다양한 혜택과 비용 할인을 받을 수 있다. ㈜유학피플 사이버 유학 박람회 담당자는 “해외어학연수와 유학을 준비하는 데 적지 않은 비용과 시간이 소요되는데 이러한 부담을 완화시켜드리고자 항공권 티켓 지원, 수속비 지원, 현지 숙소비 지원 등 비용 절감을 위한 다양한 할인 혜택을 제공해 드리고 있다”며 “특히 수월한 현지 적응을 위하여 무료 캐나다 원어민 회화 수업도 제공한다”고 덧붙였다. ㈜유학피플 대표는 “영어는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된 지 이미 오래되었다. 입시와 취업의 무한 경쟁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더 이상 국내에만 머물러 있으면 안 된다”며 “보다 넓은 곳으로 나아가 영어 실력 향상은 물론 높은 안목과 넓은 시야를 갖출 수 있어야 한다”고 전했다. 한편 이번 사이버 유학 박람회는 바쁜 현대인들의 일상을 감안하여 시간과 공간의 제약 없이 각자의 편의에 따라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통해 진행되며 9월 1일까지 사전 신청을 하게 되면 더 많은 혜택을 받을 수가 있다. 이번 박람회와 관련한 자세한 내용은 ㈜유학피플 홈페이지를 참고하면 되고, 참가신청은 강남역 유학원과 부산유학원, 대구유학원과 ㈜유학피플 홈페이지를 통해 할 수 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이호영의 그림산책3]수화(樹話) 김환기(金煥基)-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이호영의 그림산책3]수화(樹話) 김환기(金煥基)-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점, 점, 점. 수없이 찍혀진 점과 점들. 화면은 찍혀진 점들로 가득하다. 푸른 점. 점은 하나로 출발하여 둘이 되고, 둘은 여럿으로 무리진다. 그리하여 하나의 점은 수많은 점들이 되어 화면 전체를 이룬다. 화면 가까이 서면 화면은 점을 보여주고, 멀어지면 거대한 일렁임이 있는 점들의 합창을 들려준다. 그 합창이 노래하는 것은 푸른 하늘, 별, 그리고 그 별빛을 머금은 물빛 바다이다. 화면이 들려주는 이미지는 울림이 되어 보는 사람을 휘감는다. 공명하는 거대한 화면. 김환기의 공간, 작품이다. 점, 선, 면. 화면을 이루는 기본적인 요소를 말할 때 늘 언급되는 세 가지. 평면의 화면은 수학의 기본도형 원리와 그 궤를 같이한다. 점은 그러므로 선을 이루는 기초 단위이고, 선은 면을 이루는 최소 단위가 된다. 평면의 조건. 평면의 최소단위 점. 점으로만 이루어진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작품은 그러므로 가장 기본적 근간-점을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근원에 대한 작가의 시선과 관심을 읽을 수 있다. 뉴욕에서 작품 활동을 하고 있던 김환기가 한국일보사가 개최하는 제1회 한국미술대상전에 이 작품을 출품하여 대상을 받았다. 1970년의 일이었다. 1964년 뉴욕으로 건너 갈 때 김환기는 52세. 안정적인 모든 것을 내려놓고 뉴욕 행을 결행하였다. 전남 신안 기좌도(현 안좌도) 부농의 아들로 태어난 김환기는 일본에서 유학하였다. 유학을 통하여 새로운 흐름의 미술에 눈을 떴고, 새 경향의 미술을 추구하였다. 귀국 후 서울대학교 교수. 홍익대학교 교수, 학장을 역임하면서 한국 미술 추상의 1세대로 주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다. 일견 안주할 수 있는 여건. 당시의 한국의 미술은 식민지 시대의 구시대 미술을 걷어내고 새로운 미술을 추구하고자 하는 열기로 뜨거운 시기를 보내고 있었다. 한국 앵포르멜 운동이 뜨겁게 몰아치던 시기. 청년 미술의 태동이 있었지만 그것이 자유스럽고, 풍부하고 다양한 방식으로 전개되기에는 정치적이고, 문화적인 한계를 지니고 있었다. 일본유학과 파리에서의 체류로 세계적인 흐름을 목격한 김환기에게는 만족할 수 없는 환경이었을 것이다. 세계적인 작가. 새로운 작품. 더 나은 작품을 남기는 작가. 그의 그러한 욕망은 현대미술의 본 고장, 뉴욕으로 가는 계기를 만들었다.그의 작품세계는 일본유학시기(1930년대~1940년대 초반), 해방 후부터 뉴욕으로 떠나기 전까지(1945~1963), 뉴욕시기(1964~1974)로 구분하는 경향을 보인다. 일본 유학시기에서 해방 전의 작품은 많이 남아 있지 않으나 ‘론도’(그림 2)에서 보여 지는 구성주의적 요소의 추상작업을 선보였다. 뉴욕으로 떠나기 전 그의 작품은 한국적인 소재로 그리는 반추상의 그림이었다. 달, 여인, 사슴, 매화, 항아리 등이 등장하는 그의 그림에는 대상들이 단순화 되고, 반추상 되어 나타난다. 물감을 두껍게 발라올린 두터운 질감의 화면은 그려지지 않은 여백을 단순한 공간이 아닌 서정의 공간으로 연출하였다. 서정이 깃든 빈 여백. 그 공간들은 한국의 미가 비어있음, 여백의 미로 보는 그의 시선에 기인한다고 보여 진다.(그림3 사슴) 뉴욕 행 이후 김환기의 작품에서는 알고 있는 대상이 사라진다(그림4,5,6) 알 수 있는 사물이 사라진 화면을 차지하는 것은 점들이다. 점이 만드는 세계. 이 세계를 만나기 위해 그는 모든 것을 비우고 고향을 떠났다. 그러나 그가 떠난 것은 몸일 뿐 그의 정신은 외려 고향에 닿는다. 밤하늘의 별을 통해 그 별이 만든 점들을 통해. 낯선 이국의 하늘 아래에서 그는 고향의 하늘을 그리워했을 것이다. 별들은 뉴욕의 밤하늘에서 빛났고, 그 별을 통하여 고향의 하늘, 소식을 들으려 했을 것이다. 별, 점, 그 속에는 농밀하게 번지는 그리움이 있다. 그 그리움은 별이 빛나듯이 화면에도 스며들어 있다. 거대한 화면이 울림으로 다가온 것은 그러한 그리움을 별들로, 점으로 스미어 놓았기 때문이다.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는 제목이면서 김광섭(金珖燮) 시의 구절이다. 시인 김광섭은 김환기의 친구. 친구의 시집 『성북동 비둘기』에 실린 「저녁에」(아래 상자 참조)를 읽고 붙인 제목이다. 유심초가 부른 동명의 노래도 있다. 제목 그대로 언제고 만나고 싶은 마음. 그리움은 별빛이 되어 화면을 가득 채운다. 점은 그러므로 별이고, 동시에 그리움이라 말할 수 있다. 별과 그림과 노래와 시가 하나의 제목에서 만났다. 틀에 천을 씌우고, 천에 아교 칠을 하면서 퍼져가는 무한의 공간, 우주와 별. 그리고 그리움을 상상했을 작가. (물감의 농담을 위해 작가는 면천에 아교 칠만 하였다.) 점과 점을 그려가면서 물감이 만드는 농담을 통해, 전해지는 것은 작가의 숨결이다. 김환기 작품의 풍부한 덕목은 작품에 작가의 숨결이 녹아 있다는 것이다. 그 숨결이 드러나는 것은 점과 점 사이의 농담이다. 점은 점마다 각자의 농도로 자리하고 있어 들숨 날숨처럼 호흡을 지닌다. 그 호흡이 확장되어 화면은 거대한 리듬으로 울림을 만든다. 그 울림은 고향의 울림이며, 바다와 별들의 울림이다. 저녁에 ― 김광섭 ​저렇게 많은 중에서 별 하나가 나를 내려다본다. 이렇게 많은 사람 중에서 그 별 하나를 쳐다본다. ​밤이 깊을수록 별은 밝음 속에 사라지고 나는 어둠 속에 사라진다. ​이렇게 정다운 너 하나 나 하나는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 [이사람 e향기] “중국 뷰티시장, 내 손안에 있소이다”

    [이사람 e향기] “중국 뷰티시장, 내 손안에 있소이다”

    장창남(49) 한중뷰티산업협회(www.kcbia.or.kr) 회장. 그는 오늘날 중국 뷰티산업의 메카라 불리는 후난성 창사를 있게 한 숨은 공로자 겸 기린아로 꼽힌다. 중국 정부가 최초로 2016년 후난성 닝샹경제개발구를 ‘중한뷰티밸리’로 조성할 계획을 발표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는 이유다. 장 회장은 청년기를 80년대 민주화 운동 시대와 함께 보냈다. 그때 장 회장은 노태우 정부의 고급인력양성 정책에 따라 시행된 외교부 산하 한국국제협력단의 국가유학생으로 선발돼 90년대를 일본유학으로 시작했다. 일본 동경 비쥬얼아트스쿨 대학교 방송예술 전공이 그것이다. 유학 후 그는 SBS 방송사에 입사해 첫 직장을 드라마 방송현장을 누비는 것으로 시작한 뒤 KBS영상사업단에서 방송아카데미를 담당했다. 장 회장의 방송교육 경험은 한양대학교에서 온라인 방송콘텐츠 제작으로 승화됐다. 이는 오프라인 교육을 온라인에 접목시킨 최초의 사례로 꼽힌다. 현재의 한양사이버대학의 원천역할을 했다는 평가다. 온라인 교육시스템을 국내 최초로 도입한 그는 다시 새로운 비즈니스에 도전했다. 그는 태국 정부 항공공항운영사업과 SOC사업, 필리핀 정부 국방사업과 SOC사업 등 해외사업으로 보폭을 넓혀 나갔다. 그런 가운데 그는 또 중국에 큰 비전을 안고 한국 자치단체와 중국 지방정부(성, 시)와 자매우호도시 결연사업을 추진했다. 경상남도, 경상남도 거창군, 경기도 안양시 등과 중국 후난성 간 자매결연을 성사시켰다. 이같은 성과를 기반으로 그는 중국 후난성 정부의 신뢰를 한 몸에 받게 됐고, 중국 후난성 상무청 한국대표처의 수석고문에 위촉됐다. 그가 후난성 한국대표처 수석고문에 위촉될 때 가장 먼저 생각한 것이 한중 기업들 간의 상호신뢰를 높여 성공적인 비즈니스 거래를 성공시킬 방안이었다. 중국 후난성이 미래성장 사업 중 가장 발전 가능성이 높은 ‘뷰티산업’을 메인 사업으로 채택한 것은 그가 밑받침을 놓은 또 하나의 결실이다. 이제, 그는 ‘한중뷰티산업협회’의 수장으로서 새로운 도전을 하고 있다. ‘올바른 뜻을 가지고 꾸준히 노력하면 반드시 성취한다’는 ‘유지자사경성(有志者事竟成)’을 좌우명으로 삼고 있는 장 회장. 그의 아름다운 도전은 오늘도 멈추지 않고 계속되고 있다. 편집자 주다음은 일문일답이다. →(사)한중뷰티산업협회는 어떤 단체인가요. -중국과 한국 정부로부터 공식적인 활동 승인을 받은 한·중 합작협회인데요. 지난해 7월 11일 자로 산업통상자원부 동북아통상과 산하 법인으로 인가를 받았습니다. 한·중 양국 간 뷰티산업 발전을 도모하고 기술교류를 통해 뷰티문화의 진흥과 글로벌 경쟁력 확보를 설립 취지로 하고 있습니다. →협회 명칭에 ‘한·중’이 들어간 특별한 이유가 있습니까. -보통 협회는 관련 단체의 사람이나 업체들을 모아서 중앙정부나 지자체에 설립인가 절차를 밟아 창립합니다. 그런 다음 국내외 활동을 하는 것이 일반적인 유형입니다. 그렇지만 본 협회는 중국정부가 먼저 솔선해서 단체설립을 추진한 경우로 매우 독특하고 이례적인 절차로 창립됐습니다. 중국 정부 주도로 협회의 그림이 만들어지고, 창립된 다음 한국 내 설립절차가 진행된 경우입니다.→중국의 지방정부, 후난성 정부가 나서 협회설립을 추동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2013년 전후로 한중간 성형 붐이 일었습니다. 그러자 중국 후난성 정부는 한국과의 교류를 위해 ‘후난성 상무청 한국대표처’를 2015년 우리나라에 설립하게 됩니다. 그때 나는 이 한국대표처의 수석고문직으로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한 1년 반 정도 활동할 즈음 후난성 정부의 성장이 바뀌게 되면서 후난성 정부가 수석고문인 나에게 후난성 정부에서 할 수 있는 신규사업계획서를 만들어달라고 요청을 해 옵니다. 그때 나는 미래사업 중 하나로 ‘뷰티산업’을 중심으로 사업제안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를 계기로 후난성을 기반으로 협회를 먼저 만들게 되었고, 이후 한국에서 단체설립을 추진하게 되었습니다. 잘 아는 바와 같이 한중수교 25년간 양국은 많은 교류와 교역을 해 왔습니다. 그런 가운데 양국 간 좋은 기술과 네트워크, 자본을 매칭해서 서로 상생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면 좋겠다는 제안을 후난성 성장님께 하게 되었습니다. 이후 후난성 상무청의 승인이 나왔고, 후난성 국무위원이자 후난성 화장품경영자협회 이찡핑 회장과 공동으로 한중뷰티산업협회를 설립하게 되었습니다. 이찡핑 회장은 중국미용미발협회 회장이기도 하신 분입니다. 한중뷰티산업협회는 이찡핑 중국회장과 장창남 한국회장 체제로 출범하게 되었습니다.→그럼, 협회의 설립 목적은 무엇인가요. -한마디로 한·중 간 뷰티산업의 표준화를 만들자는 겁니다. 나아가 한국과 중국 양국의 정부기관이 뷰티산업 분야의 서로 신뢰 되는 기업을 모아 연결해 마케팅의 비즈니스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하는 겁니다. 시장경쟁력 있는 우수 기업들 간 통상교역을 강화시키자는 겁니다. →협회의 회원 구성은 어떻게 이루어져 있나요. -한국 내 회원 구성은 화장품·의료기기·병원(성형외과, 피부과, 산부인과 등)·건강식품·요식업·의류 등 다양합니다. 중국은 먹고, 바르고, 치장하고, 입는 것까지를 패키지로 묶어서 ‘뷰티’라고 합니다. 또 산업통상이라는 측면에서 중국이 이 분야를 원하고 있는 것도 관련돼 있습니다. 참고적으로 중국협회는 현재 484개 업체가 회원사로 참여해 활동하고 있습니다.→그렇다면 협회의 설립 취지와 목적을 ‘중국통상교역의 확대’로 봐도 되겠습니까. -그렇습니다. 양국 간 뷰티업계의 단순한 우호나 친선적인 교류가 목적이 아닙니다. 한국의 입장에서 국내 뷰티산업의 업종별·종목별 기업들 가운데 중국 뷰티시장 진출을 희망하는 우수기업, 비즈니스 마인드를 갖춘 시장선도 기업의 발굴과 진출이 협회의 활동 목적입니다. 이것은 협회 출범 당시 처음부터 중국 정부가 협회에 요청했던 겁니다. 한국의 기술력, 한국에서 신뢰할 수 있는 경쟁력 있는 기업들, 말하자면 기술과 콘텐츠가 있는 기업들을 중국 뷰티시장에 진출시켜 달라는 것입니다. 서로 간에 이익이 될 수 있는 ‘이익 추구형의 생산적 관계’의 방향으로 협회가 활동해 주기를 바랐던 겁니다. →해석에 따라서는 중국뷰티시장 진출을 희망하는 한국 내 우수기업 발굴과 그 대행자 역할로 협회를 이해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어떻게 보시는가요. -잘 보았습니다. 현재 이것이 한중간의 부인할 수 없는 팩트라고 봅니다. 한중 양국은 이제 친선우호 도모의 수준을 넘어 ‘경제적 이익창출 단계’로 진입한 지 오래됐습니다. 양국 기업들이 원하는 것을 끝까지 책임질 수 있고, 또 정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해진 것이지요. 이것은 신뢰가 전제돼 있는 정부기관이 뒷받침해 주어야 합니다. 지금 중국은 이 같은 역할을 해 줄 수 있는 기관단체를 원하고 있고, 그런 가운데 출범한 단체가 바로 한중뷰티산업협회입니다. 정부가 직접 해 줄 수 없으니 정부가 인가해 인정한 협회가 그 역할을 해야 하는 거죠. →중국 정부가 왜 이렇게 한다고 보시는가요. -한국무역협회와 화장품 업계의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1월부터 7월까지 중국에 수입된 한국화장품 규모는 3억 7100만 달러(23억 5500만 위안)입니다. 전년 동기대비 매출액 증가는 250.6%로 폭증했고, 시장점유율은 전년 대비 12.3%에서 22.1%로 증가했습니다. 이에 따라 한국은 중국에서 프랑스 다음가는 제2의 화장품 수입국이 되었습니다. 특히, 사드문제 이후 중국이 말하는 ‘따이공 시장(일명 보따리 장사)’ 역시 급속히 팽창했습니다. 비공식 루트를 통해 세금 없이 중국에 들어오는 한국 상품이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성장하고 있습니다. 중국에 공식 혹은 비공식으로 수입되는 한국 상품을 어찌할 방법이 없게 된 것이죠. 그래서 나온 것이 여러 가지 수입제제 조치들을 내놓은 것인데, 이마저도 역설적이게 ‘따이공 시장’의 급격한 확대로 나타나자 중국 정부가 당황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나아가 한국화장품을 비롯한 한국 상품들의 시장점유율이 중국시장에서 급속히 커지는 것을 중국이 두려워하고 있다고 할 수도 있습니다. 중국 정부가 고민에 빠진 이유입니다. 그래서 나온 정책이 ‘한국 기업의 중국 현지화’의 강화입니다. 한국 기업의 수입품에 대한 통관허가는 가능한 한 어렵게 해서 내주지 않고, 설령 통관이 된다고 해도 절차를 까다롭게 하는 것이지요. 중국에 수출하려 하지 말고, 중국 현지에 생산공장을 설립해 판매하라는 것입니다. 중국 정부의 정책적인 변화로 볼 수 있습니다. →중국 정부의 대(對) 한국수입품 규제가 정책적인 변화에 따른 것인데요. 후난성이 주목받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후난성에 닝샹경제개발구라는 국가급 특별 개발구가 위치해 있기 때문입니다. 닝샹경제개발구는 중국 중부지역의 첫 번째 국가급 신구인 샹지앙신구의 중요한 구성 부분으로 2002년에 설립되었습니다. 중국 정부가 2016년 최초로 ‘중한뷰티밸리’로 이 닝샹경제개발구를 조성하기로 했기 때문입니다. 이 신구는 식품·음료, 첨단 설비제조, 신소재의 3가지 주도산업과 임산부·영유아용품, 건강보조식품·화장품의 2가지 특별산업, 그리고 현대 상업무역·서비스업을 체계화하는 ‘321’ 현대산업구도를 갖추고 있습니다. 중국 정부가 한국뷰티 기업들을 후난성의 이 특별구로 유치해 제품의 생산과 판매를 하면 좋겠다고 한 데 그 이유가 있습니다. →중국에 여러 성이 있는데요, 후난성 창사가 중국뷰티산업의 메카로 불리게 된 특별한 이유가 있습니까. -후난성 창사는 본래 뷰티산업의 메카는 아니었습니다. 제가 후난성 창사의 문을 두드린 지 4년 정도 됐는데요. 2015년 뷰티산업의 중요성을 담은 사업제안을 한 것이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고 자부합니다. 나의 제안을 받은 이후로 후난성은 뷰티산업을 메인 사업의 하나로 선정했고, 이를 근거로 중국 중앙정부의 큰 지원을 받아 급속히 성장하게 됩니다. 특히 창사시는 중국의 동쪽과 서쪽을 연결하는 중심도시라는 강점도 역할을 했다고 봅니다. →중국정부가 닝샹경제개발구를 ‘중한뷰티밸리’로 지정한 것이 협회와는 어떤 관련이 있습니까. -중국이 원하는 것은 한국기업들이 산발적인 것보다 어느 한 곳에 집중돼 움직이는 것입니다. 개별적 혹은 산발적인 것은 자국민보호법에 따라 외국인을 보호하지 않지만, 중국 정부가 지정해 놓은 테두리 안에서 하면 지켜 주겠다는 것입니다. 세금부터 시작해서 한 눈에 보이니까 어쩌면 관리하기 쉬운 이점이 있는 거죠. 이것은 잘 알려진 중국 정부의 정책 방향입니다. 이번에 중한뷰티밸리를 중심으로 협회와 중국 정부가 합의한 것도 바로 이 부분입니다. 다른 점은 한국기업이 모르는 중국 땅에 와서 생산설비 등 공장을 설립하게 되면 ‘중국 정부가 마케팅과 판로를 확보할 수 있게 지원해 줘야 한다’는 부분입니다. 여기에 한 가지를 더해 협회는 중국 정부에 ‘장가계’를 관광단지로 연계해 개발하자는 제안도 했습니다. 한국기업들이 들어와 상품을 생산하는 것도 보고, 마음에 들면 저렴하게 구매할 수도 있게 하자고 한 거죠. ‘뷰티밸리’의 성공을 위한 다양한 채널이 열려 있기 때문에 합의가 가능하고, 자유롭습니다. →그럼, 한국 정부는 협회와 무엇을 합니까. -지금은 한국 정부가 산업통상자원부 산하 기관인 협회에 대중국 프로젝트가 수월하게 추진될 수 있도록 많은 지원을 해 주어야 합니다. 지금은 한중 교역의 중요한 시점이 아닙니까. 어려울 때일수록 성공사례가 나와야 합니다. 그러자면 한국의 많은 기업이 중국시장을 공략해야 합니다. 현재는 협회가 외로이 혼자서 ‘중한뷰티밸리’ 사업을 알리는 데 주력하고 있습니다만 한국정부의 힘이 필요합니다. 이번 기회에 꼭 한국의 우수기업들이 중국시장에 진출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이렇게 했을 때 협회의 이익은 무엇인가요. -협회는 비영리단체로 수익사업을 직접 할 수는 없습니다. 협회의 이익은 정부가 인가해 준 사업내용의 역할을 충실하게 이행하는 것입니다. 현재는 협회 임원과 회원사의 사비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협회가 영리 목적이 아닌 수익구조는 갖추고 있어야 할 것인데요. 언제까지 사비를 들여 운영할 수만은 없지 않겠습니까. -한국 정부의 예산지원이 반드시 필요합니다만, 한국과 달리 중국에서는 수익사업을 할 수 있는 구조는 갖추고 있습니다. 현재 협회는 올해 4월과 7월 두 번에 걸쳐 보건복지부로부터 교육사업과 민간자격증을 발급할 수 있는 인가를 받은 상태입니다. 네일아트·피부관리·퍼머넌트·메이크업·헤어 등 5가지 분야입니다. 이는 중국 사람들을 상대로 유일하게 줄 수 있는 민간자격증입니다. 협회의 민간자격증을 취득할 경우 중국에서는 물론 한국에서도 활동할 수 있지만, 중국이 주된 타깃입니다. 이 부분을 중국 정부가 크게 평가해 주고 있습니다. 또 중국 닝샹시 정부와 교육센터를 건립하고 있습니다. 닝보시는 교육센터가 완공된 상태입니다. 중국 여러 각성의 교육프로그램은 현재 저희 협회와 협의 중이고, 또 진행 중입니다. 중국은 지난 6월 1일 인터넷뉴스 정보서비스 관리규정을 발표했습니다. 중국 국가왕씬반 1호령입니다. 앞으로 중국 내에서 왕홍 활동을 하려면 AIS라는 중국 아시아 인터넷스타 연맹의 통제를 받아야 합니다. 협회는 이 단체의 주석과 구체적인 업무교류 합의도 맺은 상태입니다. 우리 협회가 가지고 있는 민간자격증을 왕홍들에게도 응시할 수 있도록 필수과목으로 만들어 중국 내 뷰티시장에서 다양한 사건·사고를 축소시킬 계획입니다. 협회는 중국 인터넷 통제정부관과도 합의해 샤오미, 알리바바 등 중국 최고의 네트워크 회사들과 공동법인 설립을 추진 중입니다. 협회가 갖고 있는 민간자격증과 온라인 뷰티콘텐츠 제작을 통해 중국 전 뷰티 종사자들을 대상으로 중국 내 뷰티 표준화를 실시할 계획입니다. 이렇듯 협회는 중국 중앙정부, 지방정부와 다양한 뷰티정책을 함께 논의하고 준비하고 있습니다. 일례로 중국 닝보시에서는 뷰티온라인 콘텐츠 제작을 위해 협회에 30억원의 제작비용을 지불하겠고 약속했습니다. →그렇다면 나아가, 협회가 중국 뷰티시장에 진출하는 한국의 기업들에 제공할 수 있는 특별한 무엇은 있습니까. -협회가 중국 정부에 요청한 것 가운데 하나가 ‘CFDA(중국위생허가)’ 발급 요건의 완화입니다. 중국 정부가 한국의 좋은 기술을 유치하려면 그 가운데 창구역할을 닝샹시가 맡아서 해주면 좋겠다는 내용입니다. 중국위생허가 직원이 닝샹시에도 파견돼 있으니, 협회가 한국 우수기업을 1차 검증절차를 거쳐 선발해 제공하면 그 업체에 대해서는 기술문제만 검증해 CFDA를 발급해 주라는 것입니다. 이 부분은 중앙정부와 협의를 거쳐 답변을 주겠다고 했습니다. →마지막으로 평소 소신이나 좌우명, 철학은 무엇인가요. -개인적으로 중국 후한서 경험전에 실린 ‘유지자사경성(有志者事竟成)’이라는 고사성어입니다. 올바른 뜻을 가지고 이를 이루기 위해 꾸준히 노력하면 반드시 성취할 수 있다는 뜻인데요. 나의 평소 소신과 비슷합니다. 좀 어려운 일이지만 미래를 바라보고 뜻을 세운 만큼, 그 뜻 또한 바르게 실현하고자 합니다. 그게 나라를 위하고, 기업을 위하는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서원호 객원기자 guil@seoul.co.kr
  • [탐방 플러스] ‘敬’으로 빛나는 퇴계 종손… ‘살아 있는 교과서’

    [탐방 플러스] ‘敬’으로 빛나는 퇴계 종손… ‘살아 있는 교과서’

    21세기 퇴계 이황의 철학사상과 실천적 삶을 몸으로 보여주는 사람이 있다. 86세 이근필 옹이다. 이 옹은 퇴계 이황의 16대 종손이다. 그런데 이 옹은 노환으로 소리를 거의 듣지 못한다. 세월이 유수처럼 흘러 청년이 노년이 된 때문이다. ‘만물은 유전하고 변화한다’는 명제를 실감케 한다.하지만 늘 한결같은 분이 계시다. 흔들림의 변화도 없다. 퇴계 종택의 이 옹이다. 이 옹의 퇴계 이황 할아버지가 남긴 유지를 정성과 성심을 다해 봉양하는 정행의 삶이 바로 그것이다. ‘무릎 꿇는 퇴계 종손’, 이미 오래전부터 세간에 알려졌다. 세월이 흐르고 또 흘러도 ‘무릎 꿇는 퇴계 종손’은 변함이 없다. 남녀노소를 차별하지 않는다. 신분의 높고 낮음도 따지지 않는다. 퇴계 종택을 찾는 사람을 맞이할 때면 그 누구를 막론하고 ‘무릎을 꿇는다’. 평생을 지극정성으로 변함없는 한길을 걸었다. 종손으로 산다는 것. 종손은 한 해 서른 번이 넘을 정도의 제사와 수많은 대소사를 치러야 한다. 몸도 마음도 편하게 쉬기 어렵다. 하지만 이 옹은 상상 못 할 피로와 가볍지 않은 삶을 운명으로 받아들였다. 그리고 이 옹은 예(禮)를 다해 상대를 배려하고 존중한다는 경(敬)의 마음으로 인간존중·인간사랑을 실천했다. 그렇다 보니 그 예는 무릎 꿇음이 됐고, 경은 겸손이 되어 사람들의 심금을 울려 감동을 일으켰다.86세 퇴계종손의 무릎 꿇는 가르침 퇴계 이황은 성리학적 삶의 표상이다. 그분은 경(敬)으로써 명덕(明德)한 성리철학을 삶에 녹여내는 지행합일의 실천적 삶을 사셨다. 그래서인지 퇴계 이황의 유전자를 받은 16대 종손 이 옹 역시 ‘무릎 꿇는 삶’으로 ‘경’을 실천하고 있다. 이에 대해 김병일 도산서원선비문화수련원 이사장은 퇴계 종택을 “퇴계 선생의 아주 검소한 서당”이라고 묘사했다. 퇴계 종택이 500년 전 이황 선생이 사셨던 오래된 옛집이 아니란 뜻이다. 퇴계 종택은 이황 당시에도 그랬듯이 지금에도 여전히 ‘배움의 학교’란 설명이다. ‘서당’은 그래서 훈장만 바뀌었지, 예나 지금이나 그대로 서당이다. 예전에는 퇴계 이황이었고, 21세기 오늘에는 16대 종손 이 옹이다. 사람은 오고 갔지만 정신과 삶은 그대로이다. ‘무릎 꿇고 공손하게 말하는 86세 종손의 삶’은 그래서 현장이고, 실제상황이다. 그리고 ‘살아있는 책, 교과서’이기도 하다. 퇴계 이황이 빛나는 이유다.퇴계 종택은 살아 있는 책 경북 안동시 도산면 토계리에 위치한 퇴계 종택은 퇴계의 13대 후손인 하정공 이충호가 1926년~1929년에 새로 지었다. 원래의 가옥은 1907년 왜병의 방화로 모두 타 없어졌다. 1982년 12월 1일 경상북도기념물 제42호로 지정되었다. 이 종택은 야산을 등지고 비교적 평탄한 지형에 동남방으로 앉았다. 이 종택은 5칸 솟을대문과 ‘ㅁ’자형 정침이 있다. 정침이란 주택의 가장 중심이 되는 집과 방을 말한다. 오른쪽에 5칸 솟을 대문과 추월한수정(秋月寒水亭)이 있다. 그 뒤에 솟을삼문과 사당이 있다. 본채인 ‘ㅁ’자형 정침은 사랑마당을 건너 사랑채와 마주한다. 그 뒤가 안채이다. 이 종택은 근대에 지어졌음에도 사대부가의 공간영역을 구비했다. 대종가로서의 품격을 드러내면서 동시에 옛 살림살이의 풍모를 간직하고 있다. 특히 퇴계 종택 앞에 논이 있어 씨 뿌리고 거두는 자연과 인간의 합일을 보여 준다.도산서원, 퇴계의 성리학적 자연관 담아 종택에서 10여분 거리에 도산서원이 있다. 퇴계 이황이 세상을 떠난 후 그의 제자들이 건립했다. 현재의 도산서원은 퇴계가 생전에 성리학을 깊이 연구하며 제자들을 가르쳤던 도산서당과 퇴계 사후에 스승의 학문과 덕행을 기리기 위해 지은 도산서원으로 나눌 수 있다. 앞쪽이 도산서당이고 그 뒤편이 도산서원이다. 도산서당은 3칸밖에 안되는 작은 규모의 남향 건물이다. 서쪽 1칸은 골방이 딸린 부엌이고, 중앙의 온돌방 1칸은 퇴계가 거처하던 완락재이며, 동쪽의 대청 1칸은 마루로 된 암서헌이다. 퇴계는 이곳에서 자연과 합일하는 퇴계성리학적 자연관을 표현하고자 했다고 전한다. 도산서원은 퇴계가 세상을 떠나고 삼년상을 마치자 그의 제자들과 온 고을 선비들이 1574년 봄 “도산은 선생이 도를 강론하시던 곳이니 서원이 없을 수 없다”해서 서당 뒤의 두어 걸음 나가 조성됐다고 한다. 그 이듬해인 1575년 8월 낙성과 함께 선조로부터 ‘도산(陶山)’이라는 사액을 받았다. 1576년 2월에 사당을 준공해 퇴계 선생의 신위를 모셨다. 권기창 안동대 교수는 “도산서원은 퇴계 이황 선생의 삶의 철학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유일한 현장”이라며 “급격하게 변화하는 시대의 흐름 속에서 나 자신을 되돌아볼 수 있는 최적의 장소”라고 평가했다. 선비문화수련원, ‘오늘의 선비’ 양성 목표 도산서원 부설기관으로 도산서원 선비문화수련원은 퇴계 종택 왼쪽 위에 자리하고 있다. 2001년 11월 퇴계 선생 탄신 500주년을 맞아 설립됐다. 개개인의 바른 인성과 선진 도덕사회 구현, 지와 덕을 겸비한 인재로서 오늘의 선비육성을 목표로 하고 있다. 수련원은 150~200명 숙박이 가능하다. 제1원사와 제2원사로 구성돼 있다. 제1원사와 제2원사는 강의실, 실습실, 토의실, 숙박시설을 갖추고 있다. 구내식당은 150명을 동시에 수용할 수 있다. 수련원은 “선비정신은 21세기 문화의 시대, 우리의 자랑스런 국민정신이다”를 모토로 ▲나보다 남을 위하는 겸손과 배려의 박기후인의 자세 ▲자기인격을 닦고 나서 사회에 기여하는 수기치인의 삶 ▲공동체가 어려울 때 자신을 희생하는 견위수명의 실행을 실천덕목으로 삼고 있다. 권 교수는 “퇴계 이황 선생은 우리나라 최고의 성리학자로 학문연구와 유교문화의 이념을 몸소 실천하신 세계적인 인물”이라며 “각박하게 변하는 지금의 이 시점에서 지속가능한 미래를 만들기 위한 가장 중요한 노력 중의 하나가 퇴계 선생의 삶을 배우고 실천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권 교수는 “안동은 한국인본정신의 본향이고, 전통문화의 중심지”라면서도 “가장 보수적인 지역이면서도 전국에서 가장 많은 독립운동가를 배출한 가장 혁신적인 곳”이라고 소개했다. 우리 인류가 지향해야 할 보편적 가치가 바로 안동에 있다는 설명이다. 권용진 객원기자 spangle007@seoul.co.kr퇴계 이황은 퇴계 이황(退溪 李滉, 1501~1570년)은 한국정신문화 원류의 한 축인 조선시대 성리학의 대가이다. 그는 지금의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온혜리에서 태어나 조선 지성사에서 사림의 성장기를 살아갔다. 당시 연속된 사화는 사림의 학문에 치열성을 더함으로써 사림의 세를 전국적으로 확장시켰다. 특히 퇴계의 학문은 한국역사를 통해 영남을 배경으로 한 주리적(主理的)인 퇴계학파를 형성했다. 퇴계의 학풍을 따른 학자는 당대의 류성룡·김성일 등을 위시한 260여 명에 이르렀다. 그리고 일본유학의 기몬학파와 구마모토학파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다. 아울러 개화기 정신적 지도자에게서도 크게 존숭을 받았다. 한국뿐만 아니라 동양 3국의 도의철학의 건설자이며 실천자로 평가받는 이유다. 퇴계가 세상을 떠난 지 4년 만에 고향 사람들이 도산서당 뒤에 서원을 짓기 시작해 이듬해 낙성하여 도산서원의 사액을 받았다. 그 이듬해 2월에 위패를 모셨고, 11월에는 문순(文純)이라는 시호가 내려졌다. 그의 위패가 있는 도산서원은 제5공화국 때 크게 보수 증축되어 우리나라 유림의 정신적 고향으로 성역화되었다.
  • 한국관광대학교 관광일본어과, 일본 유학 전액교비지원

    관광특성화 대학인 한국관광대학교(경기도 이천 소재)는 전액교비지원 일본 유학길에 올랐던 관광일본어과 학생들이 지난 6일 귀국했다고 밝혔다. 지난해 9월 7일, 한국관광대학교 관광일본어과 15명은 ‘2학기 전액교비지원 일본유학’에 최종 선발돼 일본 오카야마로 출국했으며, 오카야마상과대학에서 1학기 동안 학비와 기숙사비를 지원 받으며 일본어공부와 일본 현지 문화체험을 마쳤다. 관광일본어과 김성훈 학생은 “한국에선 느끼지 못할 일본만의 문화를 체험할 수 있었고, 실제로 생활을 하며 나의 일본어 수준은 어느 정도인지, 또 내 지식은 어느 정도인지를 생각해볼 수 있는 좋은 경험이 됐다”고 소감을 전했다. 관광일본어과 담당자는 “앞으로도 글로벌 인재양성을 목표로 재학생들을 위한 해외유학 프로그램의 지속적인 운영에 적극 나서겠다”고 말했다. 한국관광대학교는 전액교비지원 한 학기 해외유학과 하계어학연수 프로그램을 해마다 실시하고 있다. 지난 해 2학기 글로벌 전액교비지원유학 프로그램에서는 하와이주립대학 KCC(36명), 중국 남경사범대학(15명), 일본 오카야마상과대학(20명) 등 총 71명에게 전액교비지원의 혜택을 제공했다. 한국관광대학교는 오는 14일까지 2017년도 정시2차 신입생 모집(13개 학과, 정원 내외 총 15명)을 실시한다. 한국관광대학교 입학 담당자는 “이번 정시 2차에서는 가·나형 구분 없이 수능 우수 2개 과목 백분위 점수만을 반영한다”며 “한국관광대학교의 경우 전 학과가 관광분야에 취업이 가능하므로, 수험생들은 학과별 복수지원을 통해 합격률을 높일 수 있다”고 조언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엔젤루트, 일본유학장학금으로 학비 반값 지원

    엔젤루트, 일본유학장학금으로 학비 반값 지원

    국제 도시 홍보 마케팅 기업 ㈜엔젤루트재팬이 설립한 비영리 기부단체 ‘엔젤루트 장학회 국제 교류 장학 센터’(이하 엔젤루트)가 장학사업 확대 계획을 발표했다. 엔젤루트(대표 예욱진)는 ’엔젤루트 장학회 국제 교류 장학 센터'를 구성해 일본 유학 준비생 및 어학연수생을 대상으로 장학금을 지원하고 있다. 2012년부터 해외 인재 육성을 위해 일본의 어학연수, 전문학교, 대학교에 입학하는 학생들에게 학비의 40%를 일본유학장학금, 일본어학연수장학금 등의 형식으로 나눔 지원해오던 엔젤루트는 일본 기업들의 후원에 힘입어 지원 학비를 50%로 상향 조정할 계획이다. 40%에서 50%로 상향 조정되는 엔젤루트의 반값장학금은 2016년 7월 학기부터 매 학기 지원자에게 적용될 계획으로 일본 유학이나 어학연수를 준비하고 있는 학생들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엔젤루트 장학생으로 일본 어학연수를 떠난 학생들은 어학교 졸업 후 전문대학이나 대학교 진학 시 별도의 심사 없이 어학교의 평가만으로 입학할 수 있으며, 대학 등록금도 동일하게 지원받을 수 있다. 이와 함께 최근에는 엔젤루트가 나고야에서 교육컨텐츠를 운영하는 신생기업 주식회사 라온과 MOU를 체결하면서 그 동안 도쿄지역에 치중되었던 장학지원이 나고야나 오사카 등으로 확대될 예정이다. 나고야나 오사카는 자동차 등 전문 기술학교가 많아 해외 인재 육성에 박차를 가할 것으로 기대된다. 엔젤루트는 유학이나 어학연수가 아니더라도 일본워킹홀리데이를 준비하고 있는 학생들에게도 반가운 소식을 전한다. 그간 일본으로 워킹홀리데이를 떠나는 한국 학생들이 일본어를 제대로 배워오지 못하는 경우가 있었으나, 워킹홀리데이의 목적에 맞게 일과 병행해 일본어학원을 다닐 경우에도 3개월마다 장학금을 통해 학비를 지원받을 수 있게 됐다. 엔젤루트의 반값장학금은 일본 유학이나 어학연수 등을 계획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지원할 수 있다. 보다 자세한 내용은 엔젤루트 장학회 국제 교류 장학 센터 홈페이지(http://angelroute.org)에서 확인 가능하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창립 27주년 일본전문유학원의 새로운 출발

    창립 27주년 일본전문유학원의 새로운 출발

    전 세계적으로 K-Pop의 열풍이 불고 있는 현재, ‘한류열풍’이 처음으로 시작된 곳은 이웃 나라 일본이었다. 배용준을 필두로 하여 이병헌과 송승헌, 현빈, 현재 장근석에 이르기까지. 더군다나 최근 장근석은 포털사이트 구글 재팬에서 2011년 연간 검색 랭킹 상위권을 휩쓸며 한류의 ‘대세’임을 다시 한 번 입증한 바 있다. 이처럼 한류열풍이 현재 진행형인 지금, 연예인뿐만 아니라 일본 내 한국 유학생들 역시 한류열풍을 주도하는 데 큰 역할을 하고 있다. 우리 민족의 따뜻한 정을 전하면서, 성실함과 높은 집중력으로 일본의 장인정신과 전문성을 배우는 자세가 매우 높이 평가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와 함께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던데, 반세기 이상을 ‘일본유학’이란 한 길에 전념하고 있는 주식회사 해외교육사업단이 지난 10월 1일로 창립 27주년을 맞이하며 전문적인 일본유학원으로서 세간의 주목을 받고 있다. 지구촌 시대를 끌고 가는 인재육성을 신조로 1984년 서울 여의도에서 출발한 (주)해외교육사업단(이하 HED)은 부설로 한국유학개발원을 운영하며 한때는 영어권 유학도 폭넓게 다뤘었다. 그리고 1998년부터는 해외교육이란 특성을 살리고 학생들의 입장에서 심도 있는 상담과 절차대행을 제공하기 위해 전문화를 전면적으로 내세우면서, 98년부터 현재까진 일본유학만을 고집하고 있는 일본유학원이다. 현재 사단법인 한일협회의 이사장직도 겸임하고 있는 HED의 송부영 원장은 “한국과 일본은 가까운 이웃으로서 장래에는 국경을 초월하여 경제활동을 하고 하루 생활권에서 함께 살아가는 시대가 올 것이다. 더 멀리 이러한 미래 예측을 내다본다면, 일본 유학의 필요성과 중요성이 더욱 이해될 것”이라고 강조하며 한국과 일본의 민간교류, 특히 청소년교류에 적극적인 지원활동을 펼치고 있다. 이에 송부영 원장은 “27주년을 맞이한 현재. HED 한국유학개발원은 일본유학 전문업체로서 더욱 전문성을 발휘하고자, 일본에서 유학 후 현지 취업 및 유학 후 귀국하여 취업하는 문제에 대응하고자 한다. 앞으로는 그들을 위한 취업 사이트를 개설하여 궁극적으로 유학의 목적이 취업으로 연결되도록 도울 것”이라고 각오를 피력하였다. HED는 학생들에게 정확하고 폭넓은 정보를 제공하기 위해 창립 초기부터 2000년대까지, 영어권 및 일본유학정보에 관한 책자를 다수 발행하였으나 차츰 인터넷이 보급되면서부터는 일본유학정보 홈페이지를 개설하여 유학 관련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일본 유학의 포털 사이트를 표방한다는 취지 아래 HED는 방대한 자료를 바탕으로 유학 준비정보와 학교선택정보, 유학수속정보, 현지생활정보, 기타 관련정보로 구분하여 홈페이지를 운영 중이다. 이 홈페이지는 일본어 연수를 비롯한 고등학교 유학, 전문학교 유학, 대학 유학, 대학원 유학을 세분화하여 구성하고 있어, 전문적인 일본유학사이트로써 일본유학을 준비하는 학생들에게 매우 유익한 지침서가 되어준다. 나아가 HED는 ‘일본전문학교정보센터’라는 별도의 사이트와 ‘홈스테이 인 재팬’이라는 일본인 가정 홈스테이를 전문적으로 소개하는 홈페이지도 개설하여 세세한 정보까지 놓치지 않고 있다. 또한 앞으로 ‘일본대학정보센터’ 및 ‘일본어학교정보센터’라는 정보 가득한 일본학교홈페이지를 개설 준비하고 있어, 유학생들의 이목을 집중시킨다. 그뿐만 아니라 일본전문 유학원으로서 유학생들을 위해 존재하는 HED는 다수의 일본 교육기관과 제휴하여 한국인 유학생 모집사무소 역할까지 맡고 있으니 그 가치가 더욱 높다. 그리하여 HED는 각 제휴 학교의 한국어판 일본학교사이트를 개설하여 일본어연수 및 일본고등학교 유학, 전문학교 유학, 대학 유학을 준비하는 학생들에게 학교 선택의 폭을 넓혀 주고, 상세한 학교 정보를 제공하여 안심할 수 있는 유학을 만들어 주고 있다. 현재 HED가 한국어판 홈페이지를 개설한 학교로는 아래와 같은 학교가 있으니, 참고하면 된다. -고등학교 : 이즈카고등학교, 지바국제고등학교, 일본항공고등학교, 가시마가쿠엔고등학교 -대학교 : 도쿠야마대학, 도쿄준신여자대학 -전문학교 : 중앙공학교, 중앙공학교오사카, 중앙동물전문학교, 일본항공전문학교, 관서외국어전문학교, 트라이덴트외국어전문학교 -일본어학교 : 중앙공학교부속일본어학교, 중앙공학교오사카교, 나가누마스쿨 동경일본어학교, 인터컬트일본어학교, 아크아카데미 일본어학교, 에도컬쳐센터일본어학교 -기타 HED 개설 사이트 : 일본전문학교정보센터, 홈스테이인재팬 한편, HED는 일본의 각 학교와 협의를 통해 유학생 일본장학금제도와 기숙사 이용에 대해서 만전을 기하고 있어 주목을 받는다. 제휴 학교와 협력하여 학업 성적이 우수한 학생, 일본어를 잘하는 학생, 스포츠에 뛰어난 학생, 취주악 연주를 잘하는 학생들에게 학비 감면이나 장학금 지급 등의 혜택과 저렴한 기숙사 제공 등의 혜택을 주고 있는 것이다. 또한 일상적으로 학생의 신변에 문제가 발생하거나 애로상황이 발생하는 경우, 학교로부터 연락을 받고 학부모와 연락하여 즉시 대응하는 체제를 구축하고 있어 더욱 믿음이 간다. 유학 기초 상담에서부터 학교선택의 심층 상담, 완벽한 유학수속 대행, 현지 유학생활 서포트, 유학 후의 취업 지원에 이르기까지. 풀코스 유학 업무를 통해 “시대를 리드하는 인재육성”이라는 사명을 다하고자 하는 해외교육사업단의 새로운 출발에 기대를 걸어 본다. 서울신문 나우뉴스부 nownews@seoul.co.kr
  • [고전 인물로 다시 읽기] (25) ‘만세전’의 작가 염상섭

    [고전 인물로 다시 읽기] (25) ‘만세전’의 작가 염상섭

    염상섭(1897~1963)은 널리 알려진 ‘국민작가’다. 염상섭이 ‘국민작가’인 것은 물론 그의 걸출한 문학작품 덕분이지만, 그의 삶이 근대 이후 한국사의 중요한 맥락들과 궤를 같이해 온 때문이기도 하다. 그가 철들 무렵 조선은 식민지가 되었고, 그는 한일병탄 2년째인 1912년 일본 유학생활을 시작한다. 1930년대에는 만주로 건너갔다가 해방이 되자 신의주를 거쳐 38선을 간신히 통과해서 서울로 돌아왔고, 이후 종군작가로 한국전쟁을 체험한다. 이처럼 식민지 조선과 제국 일본, 해방과 한국전쟁을 마주했던 염상섭의 삶의 국면들은 100편이 훨씬 넘는 그의 장·단편 소설에 고스란히 녹아있다. 가히 문제적 시대를 살아낸 문제적 작가인 셈이다. 그러나 역사와 시대가 문제적이었다고 해서 반드시 문제적 작가가 되는 것은 아니다. 흔히 한국문학사에서 염상섭을 일컬어 ‘리얼리즘의 최고봉’이라 하는데, 이 찬사 속에는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생생하게 재현해냈다는 평가가 담겨있다. 그렇다면 염상섭이 바라본 ‘있는 그대로의 사실’은 어떤 것이었을까. ●선망과 자괴 사이에서 일본 유학생 시절, 그는 식민지인이라는 피해자의 입장과 제국 일본을 선망하는 학습자 사이에 놓여 있었다. 이른바 ‘친밀한 적’을 마주해야하는 고통, 즉 일본을 본받고 따라하면서도 그런 자신을 경멸하고 자책하는 이중적 상황이었던 것이다. 이는 당시 일본에 유학한 조선인이라면 누구나 다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염상섭의 경우는 좀 더 특별난 데가 있었다. 그의 유학이 일본군 육군 중위였던 맏형의 보살핌 아래에 있었기 때문이다. 맏형 염창섭은 대한제국 시절, 영친왕이 유학이라는 명분 아래 일본으로 인질처럼 끌려갈 때 그 시종으로 따라갔다. 이후 염창섭은 대한제국의 유학생 신분으로 일본 육군사관학교에 들어간다. 하지만 대한제국이 일본의 식민지가 되면서, 그는 일본군대로 편입하는 길을 선택한다. 곡절 많은 내력이지만, 현실에서 일본군 장교라는 위치는 대단한 것이었다. 그런 형 덕분에 염상섭도 사립학교나 학원가를 전전하던 조선유학생들과는 달리 정규 일본 명문중학교를 다닐 수 있었다. 이후 염상섭은 동아일보 정경부 기자(일본특파원)를 비롯해서 시대일보, 조선일보, 심지어 총독부기관지였던 매일신보, 만주국의 홍보지 역할을 했던 만선일보에서까지 두루두루 일한다. 할 일 없이 이 거리 저 거리를 헤매고 다녔다는 가난한 식민지 지식인의 이미지와는 거리가 먼 셈이다. 게다가 염상섭만큼 일본어와 일본문학에 정통한 문인은 없었다고 한다. 그런 만큼 염상섭에게는 ‘군복자락 콤플렉스’, ‘현해탄 콤플렉스’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녔다. 일본군 장교인 형은 든든한 버팀목이었지만 부끄러운 존재였고, 조선과 일본 사이의 바다 현해탄을 오가는 것처럼 일본을 선망하다가도 한편으로는 식민지인임을 자각하고 괴로워하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그 콤플렉스를 잘 보여주는 것이 오사카 독립선언서 사건이다. 염상섭은 2·8독립선언서, 기미독립선언서에 영향을 받아 1919년 3월 18일 오사카에서 단독으로 독립선언문을 기초하고, 거사를 꾀하다가 체포되어 3개월의 미결수 생활을 겪는다. 이 독립선언문에는 ‘오사카 한국 노동자 일동 대표 염상섭’이라고 쓰여 있다. 그 전해에 병으로 대학을 자퇴했고, 작은 신문사의 기자생활을 하긴 했지만 그가 노동자 대표라기엔 다소 억지스럽다. 게다가 정규 일본 명문 중학을 졸업하고, 귀족자제들이 다니던 게이오 대학 문과에 입학했던 그의 이력을 떠올리면 생뚱맞기 짝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굳이 노동자를 자처하고 나선 것은 그의 깊은 콤플렉스 때문이었다. 염상섭의 내면에는 일본 육군장교의 동생, 안온한 일본유학생이라는 자괴감이 늘 존재했고, 그 반작용의 심리로 자신을 노동자대표로 내세우고 싶었던 것이다. ●군복자락으로부터 야차의 길로 식민지 상황에 대해 어떤 이는 어쩔 수 없는 것이라 받아들이고 체념했다. 또 어떤 이는 식민지를 벗어나기 위해 일본과 투쟁하는 것만이 최선이라 했다. 어떤 이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자신을 부끄럽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그 괴로움으로 현실을 등지거나 스스로 자기 파멸로 내몰아가기도 했다. 물론 자기이익만을 챙기기에 급급한 무리들도 있었다. 이런 가운데 염상섭은 자기 삶을 글쓰기로 옮겨놓음으로써 자괴감으로부터 벗어나 자기 세계와 대면하고자 한다. 염상섭의 대표작으로 널리 알려진 ‘만세전’(1924)은 자전적 경험이 깊이 투영된 일본 유학생 ‘이인화’를 주인공으로 내세우고 있다. ‘이인화’는 답답한 현실에 대해 맹렬하게 발작을 일으킬 정도이면서도 딱히 해결방법을 찾지 못하는 괴로움을 여실히 보여준다. 자기변명과 자기연민, 자조가 뒤범벅인 소설 속 인물. 그런 인물을 그려놓는 일, 바로 글쓰기를 통해 염상섭은 새로운 길을 만난다. 그는 1923년 첫 창작집 ‘견우화’를 발간하면서 자신의 소설쓰기를 이렇게 설명한다. “소설이란 것이 인생과 그 종속적 제상을 묘사하는 것인 이상 인간이 어떻게 고민하는가를 그리는 것은 물론이다. 소설에 예술적 생명을 불어넣어 주는 것은 연극적·음악적·회화적·조각적 요소를 어떻게 약배하며 약동하도록 그리겠느냐는 문제이지만, 기초적 조건은 역시 사람은 어찌하여, 어떻게, 얼마나 고민하는가, 또는 그 고민이 어떻게 전개되며 어떻게 처리되는가를 묘사함에 있다. (중략) 이러한 의미로 나의 처음 발간하는 단편집에 대하여 야차(夜叉)의 마음을 가진 보살을 의미하는 ‘견우화’라는 표제를 택하였거니와…….” (‘견우화’의 서문) 그에게 소설쓰기는 세련된 기교를 펼쳐 보이는 일이 아니었다. 그것은 예술적 사명감이라기보다는 인간의 내면을 가차 없이 속속들이 살펴보는 괴롭고 고통스러운 일이다. 오죽하면 첫 단편집을 “야차의 마음을 가진 보살을 의미하는 ‘견우화’”라고 이름 붙였다고 스스로 해명하는 것일까. 혼란스럽고 복잡한 세상 속에서 인간의 내면을 그리는 일은 스스로 야차(악마)가 되기를 자처하는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스스로 야차되기를 선택함으로써 그는 군복자락으로부터 벗어날 수가 있었다. 일본 육군장교의 동생이자 독립선언을 하는 식민지 조선인, 총독부 기관지의 정치부장이자 조선인 소설가. 이러한 극단들을 오가던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기. 그러한 자신이 속해있는 두 세계를 두 눈으로 똑똑히 보기. 그것이 염상섭의 작가적 출발이자, 글쓰기의 의미였다. 물론 두 눈으로 세계를 똑똑히 본다고 해서 쉽게 해답을 발견할 수는 없다. 오히려 염상섭의 작가적 두 눈은 해답보다는 일상적 삶 속에 가려져 보이지 않는 삶의 미세한 진실을 바라보고자 했다. 일상 속에서는 아무도 순결하거나 정의롭지 않다는 것 그리고 사람들은 박쥐 같은 양면성으로 살아가고 있으며, 가족들조차도 핏줄보다는 돈(욕망)으로 움직이고 있다는 것 등. 1930년대 ‘삼대’가 그려낸 풍경은 그러한 삶의 이면에 대한 해부였다. 그래서 염상섭의 작품은 우리가 쉽게 지나치거나, 마치 외눈박이처럼 하나로만 바라보는 것을 온전히 다 보여준다. 해방 이후, 이데올로기의 각축장이 되었던 역사적 현장이나 전쟁 상황에서도 염상섭의 이러한 자세는 계속 이어진다. 한국전쟁 발발 직후에서 1·4후퇴 때까지의 긴박한 상황을 생생하게 드러낸 ‘취우’(1953)는 전쟁의 극한상황이나 고통을 묘사하기보다는 그 와중에도 노골적으로 돈에 집착하는 인간의 욕망을 그려내고 있다. 이 지점에 이르면, 왜 염상섭이 국민작가로 회자되는지 짐작할 수 있다. 역사와 삶을 대면하는 방식으로서의 글쓰기. 그리고 단면적인 세계, 양가적인 판단을 넘어서는 복잡다단한 세계를 그려내는 작가. 그의 글쓰기는 현실의 복잡함 속에서 길을 잃어버리지 않도록 두 눈 크게 뜨고 자신과 자신의 삶을 응시하는 것이었다. 자기 삶의 응시가 그로 하여금 글쓰기로 나아가게 했고, 그것이 국민작가 염상섭이 우리에게 전해주는 것일 터이다. 김연숙 남산강학원
  • [무슨 영화 볼까]

    ■이번 일요일에(드라마/전체 관람가) 감독 겐모치 사토시 줄거리 짝사랑하는 선배와 함께하고 싶어서 엄마의 만류에도 일본유학을 감행한 순정파 소녀 소라(윤하). 일본에 도착하자마자 짝사랑 선배 현준(양진우)의 자취방을 찾지만 그는 집안사정으로 학교를 자퇴하고 이미 귀국한 상태다. 청천벽력 같은 소식에 좌절할 시간도 없이 소라에게 낯선 일본생활과 학교 적응이 문제로 다가온다. 이 과정에서 신문배달원으로 동에 번쩍 서에 번쩍, 무시로 출몰하는 의문투성이의 남자 마쓰모토(이치카와 소메고로)를 만나게 된다. 감상 조용하고 순수하게. ■크레이지 하트(드라마·로맨스/15세 관람가) 감독 스콧 쿠퍼 줄거리 환갑을 바라보는 배드(제프 브리지스)는 한때 잘 나가던 컨트리 뮤지션이었으나 지금은 술을 친구 삼아 지방 무대를 전전하는 한물간 가수다. 그러던 어느 날 배드는 자기를 취재하겠다고 찾아온 지방 신문기자 진(매기 질렌할)과 사랑에 빠진다. 4살 난 아이와 살아가는 싱글맘 진과의 달콤한 데이트를 즐기던 배드는 한때 자신이 키웠지만 지금은 스타가 된 토미(콜린 파렐)의 오프닝 무대에 서달라는 제안을 받는다. 감상 신인감독, 저예산의 한계를 뛰어 넘은 역작. ■행복한 울릉인(다큐멘터리/전체 관람가) 감독 황석호 줄거리 울릉도에서 태어나고 자라서 이제는 할아버지가 된 이상호 할아버지. 칠십넷 평생을 남에게 해를 끼치거나 부담 주는 일 없이 노동을 하며 살아왔다. 해맑은 미소가 매력적인 상호 할아버지는 흔히 말하는 ‘동네 바보’. 하지만 울릉도에서 없어선 안 될 인물이다. 울릉인에게는 꿈과 희망이자 삶의 여유를 돌아보게 하는 보석 같은 존재다. 그런 상호 할아버지에게도 평생의 소원, 꿈이 있다. 감상 추억 속 바보. 그 안에 담겨진 따뜻함.
  • ‘모든 생명체는 좌우대칭이다’

    조각가 문신(1923∼1995)의 ‘채화’ 전시회가 내년 1월5일까지 서울 본화랑 인사동 전시장에 마련된다.‘모세혈관(생명)의 합창’전에는 1970년대부터 작고하기 직전까지 작가가 그린 유작 52점이 선보인다. 채화란 일종의 색채 드로잉. 선과 면으로 이뤄진 추상 드로잉으로,‘모든 생명체는 좌우대칭’이라는 문신 조각의 원리가 잘 드러나 있다. 작가가 남긴 채화는 모두 400점쯤 된다. 이 가운데 마산시립 문신미술관이 100여점, 삼성재단이 150여점을 각각 소장하고 있다. 이번 전시에 나온 작품은 작가의 아내인 화가 최성숙씨가 갖고 있는 것들이 대부분이다. 작업 중 척추를 다친 1973년, 병실에 누워 프랑스 아트지에 건축펜으로 선을 치고 중국잉크로 면을 채우는 드로잉을 시도했던 것이 그의 ‘채화’세계의 시발점이 됐다. 초기에는 완전추상이던 것이 1980년대 후기에는 호랑이 얼굴 등 구체적인 형태와 부드러운 채색를 띠는 변화를 보이기도 했다. 전시에 나온 채화는 명함만 한 6.5×7㎝ 크기에서부터 65×50㎝ 짜리까지 다양하다. 채화 말고도 해외순회 조각 7점, 몇 안되는 수채화로 꼽히는 ‘가고파’, 일본유학 시절 그린 자화상이 소개된다.(02)732-2367.황수정기자 sjh@seoul.co.kr
  • [정치플러스] “한국의 몽마르트 언덕 만들자”

    “‘한국의 몽마르트 언덕’을 만들자!”‘간판도 문화다.’ 등 기발한 아이디어로 눈길을 끈 한나라당 이계진 의원이 17일 ‘의사상자와 의생자를 위한 국립 추모공원 조성법안’을 국회에 제출한다. 법안의 골자는 지하철에서 떨어진 사람을 구하려다 죽은 일본유학생 고(故) 이수현씨 등 의로운 일을 하다가 사망하거나 부상한 사람, 의로운 일에 삶을 바친 민간인 등 ‘의인(義人)’을 위한 별도의 묘역을 조성한다는 것이다.‘순교자의 언덕’으로 불리는 프랑스의 몽마르트 같은 공간을 한국에 만들어 의인들의 넋을 기리는 명소로 만들겠다는 취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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