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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새로운 군사전략(일본 「21세기 야망」:6)

    ◎자위대 행동반경 전세계로 확대/전수방위전략 탈피… PKO명분 적극 파병/군비 계속 증강… 93년 방위비 지출 세계 2위/“미안보그늘 벗고 독자노선 걷자” 보수·우익 세력 꿈틀 1992년 9월17일.일본 히로시마 하늘에 옛일본 해군이 애창하던 「군함행진곡」이 울려퍼졌다.그 장엄한 군함행진곡을 울리며 일장기의 물결속에 3척의 자위대 함정이 히로시마현에 있는 구레기지를 미끄러지듯 빠져나갔다. 교쿠지쓰(욱일)기를 휘날리며 떠난 자위대 함정에는 4백20여명의 자위대원들이 타고 있었다.캄보디아로 파견되는 자위대원 제1진이었다.일본군이 47년만에 아시아대륙에 다시 상륙하기 위해 발진하던 역사의 현장 구레기지.미야시타 소헤이(궁하창평)당시 방위청장관은 출정식에서 『자위대의 캄보디아 파견은 역사의 새로운 페이지를 장식하는 것』이라고 격려했다.미야시타 전방위청장관의 말대로 자위대의 캄보디아 파견은 일본의 군사전략이 전통적인 전수방위(전수방위) 개념에서 세계전략으로 대전환하는 새로운 역사의 시작이다. 일본은 유엔평화유지활동(PKO)협력법을 바탕으로 캄보디아의 재건과 평화유지를 위해 자위대를 파견했다.국내의 많은 논란과 당시 야당이었던 사회당등의 강력한 반대속에 92년6월 만들어진 PKO협력법은 일본군이 다시 해외에 파견될 수 있는 길을 열어놓았다.평화라는 이름으로 일본군이 세계 곳곳에 파견될 수 있는 발판이 마련된 것이다.자위대가 파견된 캄보디아 남부 다케오 기지에도 일장기와 함께 평화의 상징인 유엔기가 나란히 게양돼 있었다.PKO협력법은 유엔평화유지활동에 참가함으로써 일본의 과거 침략자적인 이미지를 약화시킴과 동시에 군비증강의 명분을 제공하고 있다. ○침략자 이미지 제거 일본의 군비증강과 군사적 대외전략의 확대는 70년대 후반부터 본격화되기 시작했다.7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일본은 집단자위권과 교전권을 인정하지않는 평화헌법아래 군사력 없는 경제대국 전략과 평화주의를 유지해왔다.1969년 사토 에이사쿠(좌등영작) 총리는 자위대의 행동반경을 일본 영토에 한정시키겠다는 「전수방위」개념을 도입했다.그러나 일본은 옛소련이 75년 통일된베트남을 후원하고 79년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하는등 아시아에서 군사적 팽창주의노선을 강화하자 미·일안보조약을 바탕으로 군사력 증강전략으로 전환했다. 군사전략의 전환은 군사력및 국방예산의 증가와 자위대의 행동반경 확대를 축으로 하고 있다.스즈키 젠코(영목선행)총리는 81년5월 미국을 방문,레이건 당시 대통령에게 「1천해리 해역」의 방위를 일본이 맡겠다고 약속했다.과거의 전수방위 개념이 지역방위전략으로 확대된 것이다.나카소네 야스히로(중증근강홍)총리도 83년 미국을 방문,「1천해리 방위」를 재확인하고 일본열도의 「불침 항모론」을 공언하며 군사력 증강을 역설했다.그는 그동안 유지돼온 군사비의 GNP 1% 한계론을 깼다.87년부터 89년까지 방위비 예산은 GNP의 1%를 넘어섰다.그후 방위비는 다시 GNP의 1%이하로 낮아졌지만 방위비의 증가는 멈추지않고 있다. ○세계 군축조류 역행 일본의 방위비 증가는 냉전후 미국과 러시아·유럽의 주요 국가들이 국방비를 줄이고 있는 가운데 계속되고 있다는 데 주목할 필요가 있다.일본은 군축의 시대적 흐름을 거스르고 있는 것이다.영국의 국제전략연구소(IISS)가 93년10월에 발표한 「군사균형(1993∼94)」에 따르면 일본의 93년 방위예산은 약4백억달러로 미국에 이어 세계 2위로 나타났다.일본은 더욱이 앞으로도 방위예산을 계속 증가시킬 예정이다. 일본은 군사력의 증강과 함께 자위대의 해외 파견을 적극화하고 있다.자위대의 캄보디아 파견이 성공적이었다고 분석하고 있는 일본은 자위대를 아프리카 대륙에 파견한 데 이어 골란공원등 중동과 다른 지역의 파견도 검토하고 있다.일본은 자위대의 해외 파견을 통해 군사대국화의 길을 모색하고 있다. 일본의 군사대국화는 앞으로 상당기간 동안 미국과 유엔과의 협조체제를 바탕으로 추진될 것으로 보인다.일본은 냉전이 끝났지만 러시아는 여전히 위협적이며 중국의 계속되는 군비증강및 북한의 핵개발등 주변의 안보위협 때문에 미국과의 협조체제가 필요하다고 인식하고 있다.일본은 또 아시아 주변국가들의 불안을 없애고 정치적 신뢰를 얻기위해서도 미·일안보조약및 유엔의 틀안에서 군비증강을 하지않으면 안된다고 판단하고 있다. ○연 방위비 4백억불 일본의 이러한 전략은 미국의 국익에도 맞는 일이다.미국은 세계전략 차원에서 일본의 도움이 필요하고 동아시아지역에서의 일본의 군사적 역할을 어느정도 인정하고 있다.하지만 그 역할이 미국의 국익을 위협하는 수준까지 증강되는 것은 원치않고 있다.미국의 이러한 전략은 그러나 일본사회 일각에서 나타나고 있는 강경 보수·우익세력의 「미국으로 부터의 독자노선」과 21세기 어느날 심각한 마찰을 불러일으킬지 모르며 지금과 같은 미·일안보체제가 언제까지 유지된다는 보장도 없다. 미·일안보조약의 수정속도나 그 방향은 아직 미지수다.그러나 미국이 일본이나 아시아에서 안보부담을 덜기 위해 미군을 감축한다면 이 지역의 안보균형이 깨질지도 모른다.그럴 경우 일본·중국등이 군비증강을 가속화하여 동북아시아에 불안한 긴장이 조성될 위험성이 있다. 일본은 물론 독자적인 군사대국화는 한동안 추진하지 않을 것이다.그러나 역사는 오늘로 끝나지 않는다.역사는 많은 변수를 안고 영속하며 중요한 것은 시대흐름의 방향이다.군사력 없는 경제대국의 실험을 끝낸 일본.그 일본이 전후 50년을 계기로 경제력과 군사력을 동시에 갖춘 대국으로의 새로운 실험을 하고 있다.
  • 팥쥐어멈처럼(송정숙 칼럼)

    단 20초만에 첨단문명의 구조물을 건설쓰레기로 만드는,무서운 재앙을 만난 일본사람들이 그들의 시련을 어떻게 수렴하는지를 우리는 보았다.발달된 정보통신기기로 시차와 거리를 완벽하게 극복한채 볼 수 있었다.그들은 몸부림치며 실신하지도 않았고 악을 쓰며 누구를 원망하지도 않았다.그런 중에서도 줄을 섰고 무엇보다도 「조용」했다. 그 모습은,졸지에 불행과 만난 이웃이 안쓰럽고 걱정스럽던 우리 마음 한편에 어떤 예감을 심었다.아마도 그들은 이 불행조차도 세계의 칭송속에 「극복」할 것이고,그것은 동시에 우리의 자학증(자학증)을 발동시키리라는 예감이었다.과연 두 예감은 다 적중했다.그들은 현명하게 대처했고,마치 의붓자식 지청구 주듯 「우리사람들」을 빗대는 신랄함을 발휘하며 우리의 입 있는 사람들은 이구동성으로 『과연 일본사람들은 다르고,훌륭하다』고 침이 마르도록 칭찬했다.다른 외국의 보도를 인용하여 그 신빙성을 보증하며 칭찬했다. 기회있는대로 남의 미덕을 기리고 대비하여 자기반성을 하는 일은 나쁜 일이 아니다.그러나 콩쥐 구박하는 팥쥐어멈같은 이런 지청구식 비판에 이제는 진력나고 신물도 난다.그보다는 그들이 어떻게 그럴 수 있었는지를 찬찬히 훑어보는 일이 더 긴요하련만. 그들 지진시민들 곁에는,어려운 상황이 벌어지면 위로한답시고 달려가 원한의 핑계를 만들어주는 「마이크」도 없었고 설움을 부추기며 「억울한 넋두리」를 확성하여 반복하는 「활자」도 없었다.지진의 도괴밑에 깔린 주검들을 파내는 처참한 모습에 망원렌즈까지도 서슴없이 들이대고 공개하여 두려움을 확대재생산하고,성급하게 「보상금」을 충동하고,누구에게 책임의 올가미를 씌울까를 「특종」으로 경쟁하는 어마어마한 위력의 「매스컴」도 없어 보였다.영안실에 안치된 즐비한 주검들을 시시때때로 클로즈 업 하여 보도용으로 활용하는 따위는 할 줄 모르는 듯한,냉철하게 시민을 존중해주는 사회.시민들의 「조용한 질서」는 그것과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일본의 지진이 일어난 곳은 「간사이」지방이다.지진 이전에 「간사이」하면 우리에게 떠오르는 것은 간사이 국제공항이었다.첨단공법으로 최근에 완공시킨 거대한 구조물이다.이 국제공항의 지역이름이 지진 지역과 같다는 것이 안팎사람들에게 일깨워지는 일을 일본의 보도들은 거의 하지 않는 것 같았다. 국제공항만이 아니다.국제도시 「오사카」가 지진지역과 인접한 곳임을 상기시키는 일도 별로 눈에 안 띄었다.오직 「고베」로만 국한시키는 절묘한 「축소보도」였다.「공정보도 신드롬」같은 것에 안 걸리는 「불공정한」 나라.성수대교사고 뒤 서울의 모든 다리가 당장 주저앉게 될지도 모른다는 염려를 세계 방방곡곡에 들리도록 외친 우리의 「양심적인 보도」에 비하면 매우 「비양심적」이기도 한 나라. 오래전에 일본에서 민항기사고가 난 적이 있었다.그때 일본의 언론은 일제히 항공기결함의 가능성에만 눈에 불을 켰다.모든 보상과 책임의 문제가 다 끝난 뒤에 일본의 한 잡지는 그때 그 비행기 조종사의 정신건강에 문제가 있었음을 오랜 시간에 걸쳐 조사하여 특집으로 실었다.그들의 「양심의 발현」은 그렇게 시간이 걸렸다.항공기사고가 날 때마다 목청이 터지도록 종사자들의 잘못을 캐내는 일에 혈안이 되는 우리와는 정말 다르다. 시민을 지청구 줘서 애정결핍에다 의심꾸러기를 만들지 않고 주검의 품위까지 완벽하게 보호하여 모두가 함께 가장 현명한 해결을 할 것이라는 신뢰를 쌓아온 나라의 국민은 질서와 예의를 지키는 일에 신념이 생긴다.고베시민도 그랬다. 「구호품」을 선뜻 받았다가 「비지떡」받고 「쌀떡」으로 갚는 일이 될까봐 손을 함부로 내밀지 못하고 조심스레 선별수용하는,생선회칼보다 예리한 이기주의.그게 자율적으로 뭉쳐 국가단위의 집단이기주의로 발달하니까 세계사람들이 미덕이라고 칭찬이 자자했다. 소단위로 분할된 우리의 집단이기주의가 자괴와 자학의 원인이 되는 것에 비하면 얼마나 약고 얼마나 현명한가.그러면서도 노상 제식구 지청구 주기에 신명이 나 있는 우리는 꼭 서로가 의붓 부모자식만 같다.
  • 고베지진과 한국이미지/김은상 무역협회 부회장(일요일 아침에)

    WTO발족에 따라 무한경쟁시대는 이미 시작되었다.또 우리상품의 생산코스트가 계속 상승하고 있어 이에 맞춰 품질도 어느 정도 향상되고는 있으나 우리 상품의 국제적 성가가 낮아 제값을 못받고 있다는 걱정도 크다.상품의 성가는 바로 국가나 그 구성원인 국민의 이미지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데 우리에 대한 대외이미지가 결코 만족스럽지 못해 앞으로 무한경쟁시대를 어떻게 뚫고 나갈지 걱정이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우려들을 들으면서 최근 일본의 고베지진 때 보여준 일본사람들의 행동과 우리나라에서 일어난 일련의 사건들을 비교해 보면서 다시 한번 우리의 대외이미지 개선문제를 생각해 보게 된다. 일본은 과거 2차대전을 일으켰고 중상주의적 통상정책으로 여러 나라들과 많은 마찰을 겪고 있지만 일본인은 예의바르고 정직하며 끝없는 개선을 추구하는 민족으로 그 이미지가 비교적 좋은 편이다.더구나 이번 고베지진 때 보여준 침착함,경탄할 만한 질서의식과 자존심은 비록 이번 재앙으로 엄청난 희생을 치렀지만 대외적으로는 일본인의 좋은 이미지를 더욱 좋게 해줄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떠한가.우리는 스스로 지금까지 한번도 외국을 침번한 일이 없는 평화를 사랑하는 민족으로 5천년의 찬란한 문화와 동방예의지국임을 자랑하고는 있지만 외국에 비치는 우리 이미지는 반드시 우리생각과 일치하지는 않는 것 같다. 한국인은 열심히 일하고 어떠한 어려움에 부딪치더라도 좌절하지 않고 이를 꿋꿋하게 극복하는 저력있는 국민이라는 좋은 이미지도 있지만 반면에 한국인은 조급하고 거칠며 자기들끼리만 어울린다는 등의 좋지 못한 이미지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예를 들면 작년쯤인가 우리나라에서 상영이 금지된 바 있는 「폴링 다운」이라는 할리우드영화에 비쳐진 한국인의 이미지는 『무식하고 돈밖에 모르는 졸부들』로 묘사되고 있다.또 국내 산업현장에서 근무하는 외국인 근로자들은 우리를 『성질이 불같고 거칠며 상소리를 많이 하고(못사는 나라에서 왔다고)비웃고 사소한 일에도 의심이 많다』고 평하고 있다 한다.인도네시아에서는 한국의 산업현장을 대단히 어려운 것으로 보고 현지에서실시하는 특수훈련에 합격한 사람만을 한국에 근로자로 내보낸다고 할 정도이니 우리의 이미지가 어떤지 상상하고도 남을 일이다.게다가 한국의 욕설이 동남아에서는 국제어로 되어가고 있다고 하지 않는가. 뿐만 아니라 똑같은 시기에 일본과는 반대로 이런 우리의 이미지를 더욱 나쁘게 하는 사태가 국내에서는 계속 일어나고 있다.성수대교 붕괴사고는 그동안 쌓아 올린 건설업계의 실적에 비해 대단한 이미지 손상을 주었으며 외국인 근로자에 대한 차별적인 대우와 이들의 불만표출 또한 동남아 각국에 과장되게 알려져 우리의 이미지를 손상시킬 것이 틀림없다. 지금 우리는 세계화를 부르짖고 있다.세계화란 세계인과 더불어 살아가기 위한 의식개혁 운동으로 세계로부터 사랑받을 수 있는 행동을 해야 한다는 것이 그 기본이라 할 것이다.이러한 의미에서 우리의 이미지 개선이 바로 세계화의 길이며 우리가 세계속에서 기회를 확대하는 첩경이라 하겠다.그리고 그것이 반드시 그렇게 어려운 것만은 아닐 것이다.이번 고베지진 때 보여준 우리의 조그만 지원과 같은 일이 앞으로도 어려운 일을 당하는 이들에게 계속 이어진다면 말이다.
  • 「시대흐름 읽은 통찰력」일 부흥 일궜다(신 지도자론:4)

    ◎21세기 선진한국 이끌 리더십/새진로 찾는 일본/「군사력없는 경제대국」 국가목표 설정/요시다/보수화 국제조류 타고 “정치대국”발진/나카소네/「록히드」등 정치자금 스캔들 사회자정 계기로 일본은 역사의 적응력이 가장 뛰어난 국가중의 하나이다.시대의 흐름을 국가발전에 활용하는데 탁월한 능력을 갖고 있다.그러한 능력은 세계정세의 변화를 읽는 지도자의 통찰력과 국민의 단합된 힘의 합작품이다. 일본이 전후 반세기만에 세계적 경제대국으로 부상한 원동력도 시대변화에 대응한 지도자의 정책과 그것을 충실히 실행한 국민의 힘이었다.그 대표적인 지도자가 요시다 시게루.요시다는 참담한 패전의 절망속에서 오늘의 일본을 있게 한 탁월한 지도자였다.46년부터 54년까지 5차례의 총리를 역임한 요시다는 「군사력 없는 경제대국」이라는 국가목표를 설정했다. 그는 국가의 모든 에너지를 경제건설에 집중 투자했다.요시다는 전후 일본이 필요한 것은 경제부흥이라는 비전을 제시했으며 그의 전략적 선택은 시대의 흐름을 정확히 읽은 올바른 판단으로 평가받고 있다.요시다는 미·소냉전속에서 미국과 안보조약을 체결,안보는 미국의 맡기고 오로지 경제발전에 전념했다. 요시다는 그러나 경제지상주의자는 아니었다.그는 열렬한 천황숭배주의자였으며 그의 저서 「세계와 일본」에서 『당시 일본이 재무장하는 것은 경제적·사상적·사회적으로 불가능했다.그러나 국가의 안보를 언제까지라도 외국에 의존해야 한다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라고 쓰고 있다.요시다는 시대가 무엇을 요구하는 가를 냉철하게 읽고 경제지상주의 전략을 선택했다고 할 수 있다.그의 선택은 결국 주어진 상황을 가장 적절하게 활용하면서 국익을 극대화하기 위한 통찰력 있는 선택이었으며 전후 전혀 새로운 상황은 통찰력과 뚝심있는 요시다 같은 지도자를 필요로 했다. 요시다의 뒤를 이어 기시 노부스케,사토 에이사쿠총리 등도 「군사력 없는 경제대국」 전략을 충실히 실행해왔다.국가주의 신본자인 기시총리는 여론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미·일안보조약을 개정했다.일본지도자들은 전후 기술과 시장을 함께 제공한 미국의 중요성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요시다이후 70년대 가장 강력한 정치지도력을 발휘한 지도자는 다나카 가쿠에이 총리였다.그는 「결단과 실행」의 정치인 답게 「일본개조론」을 내세우며 전 국토의 개발이라는 과감한 성장정책을 추진했다.그의 개발론은 부동산 폭등이라는 부작용을 낳았지만 일본경제를 더욱 부흥시키는 계기를 마련했다. 다나카는 또 외교에도 과감했다.미국이 중국과 국교정상화 움직임을 보이자 「컴퓨터가 장착된 불도저」라는 별명에 걸맞게 84일만에 중국과 국교정상화를 이룩했다.다나카는 중국의 중요성을 잘알고 있었다.물론 다른 지도자들도 아시아에 있어서 중국이 차지하는 무거운 비중을 모르는 바는 아니었다.다나카는 그러나 과거사문제등 복잡한 문제들이 얽혀있었지만 과감하게 정상화를 이루어 지도자의 결단력의 중요함을 일깨웠다. 그러나 그는 지도자의 중요한 덕목인 청렴성이 부족했다.그는 개발이익을 정치자금과 연결시켰다는 비난을 받았으며 더욱이 「록히드 사건」으로 기소되는 불행을 맞았다.많은 일본인들의 존경을 받았지만 쓸쓸히 사라진 그의 비극은 정치가에게 도덕성의 중요성을 말해준다. 로널드 레이건 미국 대통령의 등장으로 세계정치에 보수화물결이 나타나자 일본에서도 새로운 지도자가 등장한다.나카소네 야스히로 총리.일본이 세계적 경제대국이 되며 민족적 자신감이 되살아나는 사회분위기속에서 나카소네는 일본의 보수정치를 선도했다.나카소네는 레이건 대통령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며 국제무대에서 정치력을 높혔다.나카소네는 전후 일본이 고수해왔던 평화주의를 부분적으로 거부하고 군비증강을 시도했다.그의 정책은 내외에 적지않은 비판을 받았으나 그는 지금의 일본의 정치대국화를 위해 발진할 때라고 인식했다. 그러나 일본정치에는 고질적인 정치자금 스캔들이 반복됐다.다나카 뿐만아니라 다케시타 노보루 총리도 정치자금 스캔들로 사임했고 마야자와 기이치 총리도 스캔들에 연루됐다.정치자금 스캔들은 그러나 일본사회를 정화하는 중요한 자정의 계기가 됐다.일본인들도 고도성장기에는 정치자금 스캔들을 어느정도 묵인했지만 21세기 새로운 도약을 위해서는 깨끗한 정치가 필요함을 깨달았다. 그러한 시대의 변화를 배경으로 나타난 지도자가 호소카와 모리히로 총리였다.그는 참신한 이미지를 배경으로 국민들의 높은 인기속에 정치개혁을 적극 추진했다.그러나 호소카와도 정치자금의혹에 연루되며 8개월 만에 총리를 사임하지 않으면 안됐다.그러나 호소카와가 추진한 정치개혁은 단순히 깨끗한 정치만을 위한 것은 아니었다.더욱 중요한 것은 21세기 일본이 급변하는 세계정세속에 살아남기위한 국가개조의 시작인 것이다.일본은 지금 정치적 혼돈속에서 새로운 국가진로를 모색하고 있다.일본은 전후 경제제일주의라는 전략적 선택으로 경제신화를 이룩하고 지금은 경제력을 정치력으로 전환하는 실험을 하고 있다.그러나 정치적 혼돈은 그러한 실험이 아직 국민적 합의를 이루지 못하고 있음을 나타내고 있다.일본은 새로운 국가진로를 위해 국민의 합의를 이끌어낼수 있는 지도자를 필요로 하고 있다.일본의 새로운 지도자는 다양한 국민의 욕구를 잘 조화시킬수 있는 인물이어야 할 것 같다.
  • “이야기도 신토불이”/「오사리 잡놈들」/「흥부의 작은 마누라」

    ◎토박이 얘기책 2권 눈길/원로국문학자 이훈종씨,선조들 재담·풍속 모아 출간/사라진 풍습·고유의 말 재미있게 엮어 「이야기도 신토불이」.한국사람들의 토박이 이야기가 되살아났다. 원로 국문학자 이훈종 우리문화연구원장(77)이 최근 펴낸 「오사리 잡놈들」「흥부의 작은 마누라」(이상 한길사 펴냄)는 TV의 박제된 이야기들이 화제를 독점하는 요즈음 사라져가는 토종 「생짜이야기」들을 싣고 있어 관심을 끈다. 「흥부의 작은 마누라」「복날 견공이 수난받는 까닭」등 우리 선조들이 평소 일상에서 주고받았을 재담과 풍속을 묶은 이 책들은 사라진 우리 풍습이나 고유의 말,생활도구들을 소재로한 익살과 괘사(행동으로 웃기는 것)거리를 풍부히 담았다.따라서 이 책을 읽다보면 풀풀 날리는 선조들의 삶의 흥취를 엿볼 수 있고 우리 것에 대한 애착도 무럭무럭 솟아난다. 이 책에 소개되는 것으로 「흥부전」 연구학자들도 모르는 「흥부의 작은 마누라」 얘기는 이렇다.제비가 가져온 박에서 보물이 쏟아져 나와 부자가 된 흥부가 네번째 박을 켜니그 안에서 양귀비가 나왔다는 것.우리나라 사람들이 형편 좀 피었다 하면 첩을 얻는 세태를 비꼰 이야기다.이야기는 더 나아가 흥부가 양귀비를 얻은데 샘이 난 놀부가 박을 켜 「비」를 얻으려 한 장면으로 이어진다.그러나 놀부가 얻은 「비」는 양귀비같은 「비」가 아니라 삼국지에 나오는 장비여서 혼쭐만 난다는 것. 사돈에게 울지 못하는 수탉을 팔아먹고 능갈치는 이야기도 나온다.사돈이 찾아와 울지 못하는 수탉을 팔았다고 항의하자 사내는 사돈에게 암탉이 있느냐고 묻는다.사돈이 여러 마리 있다고 대답하자 사내는 『그 놈이 무어가 부족해서 울어?』하며 둘러댄다. 또 일본사람이 우리나라 사람을 죽일 요량으로 고추를 들여왔는데 오히려 기운을 펄펄 나게 했다는 얘기,미숫가루가 가장 더러운 음식인 이유,신혼 부부에게 「깨가 쏟아진다」고 말하는 연원 등도 들려준다.이같은 이야기들 속에는 선조들의 지혜와 날카로운 풍자가 문득문득 드러난다. 저자인 이훈종 원장은 『우리의 전통과 정서가 담겨져 있는 우리 이야기가 점점 사라져가는 것이 안타까워 책을 내게 됐다』고 밝혔다. 독자들에게 이원장의 구수한 입담으로 우리 이야기를 전하는 이야기마당도 출판사에 의해 마련되고 있어 관심을 더해주고 있다.26일 서울 신사동 강남출판문화센터 이벤트홀에서 열리는 이 행사는 청중들이 모인 앞에서 이원장이 이야기의 흥을 돋우는 고수의 추임새에 맞춰 이야기를 늘어놓는 공연형태로 진행된다.일반인들에게 신명나는 우리 이야기를 소개하는 한편 우리 이야기가 연희의 훌륭한 소재거리가 될 수 있음을 드러내보일 의욕이다.이 신토불이 「토크쇼」에는 국악인 임진택씨가 추임새를 넣는다. 한편 우리 선조들의 유머감각에 초점을 맞춘 이원장의 또다른 이야기모음집도 올해안에 출간될 예정이다.
  • 집요한 유엔외교(일본 「21세기 야망」:4)

    ◎엔화 앞세워 안보리상임국 진출노린다/유엔헌장 개정회의서 상임국수 늘리기 로비/비용분담금 12% 넘어… 갈리총장도 호의적/“정치대국화” 우익 지식인들 앞장… 일 국민 56%가 찬성 여론 『패전국 외교는 50년간 침묵한다』영국 외교관들이 잘 인용하던 말이 지금 지구 반대편 아시아에서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일본이 패전 50년간의 오랜 침묵을 깨고 국제정치적 파워로서의 등장을 본격화하고 있는 것이다.그러나 그 침묵을 깨는 소리는 많은 아시아인들에게 일본의 전후 경제지상주의와 평화주의 한시대를 마감하는 조종의 소리로 들려온다. 일본은 지금 경제지상주의로 축적한 힘과 국제무대에서의 왜소한 정치적 파워의 불균형을 깨기 위해 「사무라이의 칼」을 뽑고 있다.경제적 파워에 걸맞는 정치·외교적 영향력의 확대를 꾀하고 있는 것이다.그 야망의 결정체가 일본의 유엔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 진출.일본외무성의 총합외교정책국은 안보리상임이사국 진출 시나리오와 함께 21세기 정치대국 일본의 위상을 구상하고 있다. 고노 요헤이(하야양평)외상은 외무성 기관지 「외교포럼」 신년호에서 『글로벌 협력이라는 일본외교의 큰 좌표축을 확립하기 위해서도 일본은 유엔상임이사국으로 진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고노 외상의 이러한 발언은 일본 외무성이 얼마나 적극적이고 집요하게 상임이사국 진출을 꾀하고 있는가를 상징적으로 말해주고 있다. 자민당 총재인 고노 외상은 각료가 되기 전 일본의 상임이사국 진출은 아직 때가 되지 않았으며 신중하게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해 왔다.그는 오자와 이치로 신진당간사등의 적극적인 국제공헌론과 보통국가론을 「신국가주의의 대두」라고 강력히 비난했었다.그러나 그러한 고노 자민당총재도 외무성에 들어가자 관리들이 추진하는 정치대국화의 큰 흐름에 합류되고 있다.보수·우익 정치인,지식인들은 관리들보다 앞서서 정치대국화의 나팔을 불고 있다. 안보리상임이사국 진출은 일본외교의 최대 목표다.1995년은 일본의 패전 50주년인 동시에 유엔 창립 50주년이기도 하다.유엔은 50주년을 맞아 헌장개정등 기구개편을 추진하고 있으며 일본은 이를 활용,상임이사국의 야심을 실현하려 하고 있다. 일본 사회에는 미국에 이어 두번째로 많은 유엔분담금을 내는 일본이 당연히 안보리상임이사국이 되어야 한다는 소리가 확산되고 있다.일본의 유엔분담금(93년)은 12.45%로 미국(25%)다음이고 상임이사국인 영국·프랑스·중국등 3개국을 합친 액수보다도 많다.유엔도 든든한 물주 일본이 필요하다.냉전 종식 이후 지구촌 곳곳에서 민족분쟁등이 발생하면서 유엔의 평화유지활동에 대한 수요가 급증하고 있지만 돈이 모자라기 때문에 일본의 엔화가 필요한 것이다. 갈리 유엔사무총장은 자주 일본을 방문하여 유엔상임이사국이 되고 싶은 일본의 야망을 대변하고 있다.그는 더 나아가 일본은 유엔평화유지군에 참가하기 위해 헌법을 고쳐야 한다고 역설한다.일본이 상임이사국이 되어야 한다는 대합창은 태평양 건너 미국에서도,엔블록이 형성된 아세안국가에서도 들려온다.그렇다고 일본의 상임이사국 진출이 간단한 문제는 아니다. 일본이 상임이사국이 되기 위해서는 상임이사국의 수를 늘리는 유엔헌장개정과 기구개편이 필요하다.그러나 헌장개정은 모든 상임이사국과 회원국 3분의 2 이상의 찬성이라는 결코 쉽지않은 과정을 거쳐야 한다.일본과 독일에 주어진 적국조항도 없어져야 한다.강대국들의 정치적 역학관계도 미묘하다.상임이사국 진출에 대한 국론도 아직은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반대하는 세력이 적지않은 것이다. 그러나 일본 사회에는 상임이사국이 되어야 한다는 여론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최근 총리부가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56%가 상임이사국 진출을 찬성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사회당의 반대속에 지난 92년 만들어진 유엔평화유지활동(PKO)협력법은 일본의 변화를 상징적으로 말해주고 있다.PKO협력법은 상임이사국 진출의 교두보이며 군비증강의 명분을 제공하는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다. 일본은 PKO협력법을 바탕으로 자위대를 해외에 파견,평화유지활동을 적극화하고 있다.평화유지활동은 상임이사국이 되기 위한 실적을 쌓아가는 중요한 과정인 동시에 과거 군국주의적 이미지를 평화주의 이미지로 바꿀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일본은 생각하고 있다.자위대가 거의 반세기만에 다시 아시아대륙에 상륙하고 그 활동범위를 세계로 확대하고 있지만 군국주의의 상징인 일장기는 평화의 상징인 유엔깃발 아래 묻히고 있다.일본은 이 때문에 냉전이후 새로운 국제질서에서 유엔중심주의를 강조하고 있다.유엔은 평화라는 이름아래 정치·군사력의 증강을 꾀하는 일본의 야망을 「정당화」시켜주고 있다. 일본이 적극적으로 활용하려는 유엔은 걸프전이후 그 위상과 역할이 중요해지고 있다.현실주의자들은 여전히 미국중심의 세계질서를 강조하고 있지만 이상주의자들은 신질서는 유엔중심의 세계공동체 형성이라고 말한다. 일본의 상임이사국 진출은 이같이 유엔의 역할이 증대되는 새로운 세계질서에서 국제정치의 결정자가 되는 것을 의미한다.패전국이 반세기만에 세계적 정치대국이 되는 것이다. 일본사회에는 상임이사국이 되기전에 과거 침략사의 청산으로 아시아국가들의 불신감을 없애야 한다는 주장이 적지않다.그러나 그러한 양심의 소리는 경제적 슈퍼파워와 국제정치력을 모두 갖춘 강대국,새로운 일본의 등장이라는 거대한 흐름에 거추장스럽고 공허한 메아리일 뿐이다.일본의 상임이사국 진출은 시간의 문제이며 우리하게 필요한 것은 그러한 새로운 현실에 대한 대응 전략이다.
  • “「견고성」위주 일 건축방식에 문제”/불하원 지진연구위원장 지적

    ◎「유연성 무시」 설계로 「고철덩어리」 양산 일본의 건축방식에 문제가 있다는 의견이 프랑스에서 제기됐다.프랑스 하원 지진연구위원회의 크리스티앙 케르 위원장은 지진에 대비한 건축에는 크게 견고하게 짓거나 유연하게 짓는 2가지 방법이 있는데 일본의 건물은 유독 견고하게만 지어져 있다고 밝혔다.그는 『견고하게만 짓는 일본의 오래된 건물들은 고철덩어리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케르 위원장에 따르면 지진의 충격에 대비하는데는 4가지 건축방식이 있다.우선 건물 사이에 맞붙은 외벽에 탄성고무를 마주세워 충격을 완화하는 유연방식이 있다.일본은 이를 도입하려 했으나 건물 미관을 고집하는 건물주 때문에 채택되지 못했다는 것이다. 또 일본식으로 견고하게 짓는 나라는 중국이 있다.중국은 건물 2개층마다 강철로 된 금속테를 씌우는 방식으로 지진 대비를 한다. 다음으로 액체 충격완화방식이 있는데 건물의 하부에 물 등 액체를 넣고 유동시켜 지진으로 인한 충격을 줄이는 방식.파리 에펠탑을 받치고 있는 다리 4개 사이에는 이런 방식으로 지진 대책이 세워져 있다. 마지막으로 건식 유연방식이 있다.금속판과 탄성고무를 번갈아 건물 하부에 깔아 놓는 방식으로 프랑스에서 개발된 후 미 캘리포니아 지방에서 확산되고 있다. 이같은 지적이 나오는 것과 함께 일본 건축전문가들 사이에서도 고속도로및 기타 건축물 건설시 강도와 유연성 가운데 어느 쪽에 비중을 둘 것이냐를 놓고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고도의 내진 기술을 갖췄다고 자부해 왔던 일본사람들에게 규모 7.2의 이번 지진에 최근에 지어진 건물 1만2천여채가 붕괴되거나 파손돼 충격을 준 것.일본 건축학계에서는 이번 지진을 계기로 일본의 지진공학을 근본적으로 재검토해야 한다는 자성의 소리가 나오고 있다.
  • 재고해야할 우리의 건물방재계획/최재필 명지대교수·건축학(특별기고)

    ◎비상통로 직선화 등 대비책 시급 성수대교 붕괴와 아현동 가스폭발 등의 사고로 온 나라가 떠들썩 하더니,이번에는 이웃나라 일본에서 강도 7.2의 지진이 발생해서 고베라는 항구도시 하나가 거의 폐허로 변해버렸다.눈부신 과학기술의 발달로 1백년전에 비해 엄청나게 살기 좋아진 우리네 삶,이제 곧 다가올 눈부신 21세기의 꿈을 비웃기라도 하듯,텔레비전 화면에는 끊어진 다리,무너진 건물의 모습이 쉴틈없이 비춰진다.이것들이 아프리카의 어느 미개발국가도 아닌 소위 선진국이라는 일본이나 동아시아의 신흥공업국 한국의 모습이다. 우리나라의 사고가 인재였던데 비해 일본의 사건은 사람의 힘으로는 막을 수가 없었던 천재이니 비슷한 시기에 앞서거니 뒤서거니 재앙을 입었더라도 일본사람들이 그래도 좀덜 창피할 것이다.그런데 피해는 일본쪽이 몇백배 더 크게 나타났다.그래서 사람보다는 하늘이 더 무섭다던가. 건축을 전공으로하는 사람으로서 폭삭 주저앉은 건물,불타는 거리를 보는 필자의 심정은 보통 사람보다 더 착잡하다.인간이 온갖 지혜를다 동원해 땅위에 이룩해 놓은 구조물들이 자연의 힘앞에서 한줌의 재로 변하고 있는 것이다. 건축은 한마디로 중력과 땅의 합작품이다.건물은 그 자체의 무게(중력)로 인해 계속 밑으로(지구 중심으로)내려가려 하는데 그래도 땅이 굳건하게 받쳐준다.중력과 땅이 절묘한 평형을 이루기 때문에 건물은 원래 만들어진 모양대로,원래 위치에서 아무런 동요없이 서 있을 수가 있는 것이다.이 점 달동네 판잣집이건 여의도 63빌딩이건 마찬가지다. 우리는 땅이란 으레 나와 내 집을 든든히 받쳐주는 존재로 쉽게 믿어버리고,전혀 불안해 하지 않는다.하늘이 무너져 내리지 않듯,땅도 발 밑으로 꺼져버리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그런데 지진이 일어나면 이러한 믿음이 송두리째 뒤집혀 버린다.그토록 딱딱하던 땅이 갑자기 물렁물렁해져 버린다.그러니 건물이 주저앉고,다리나 철길이 흐느적거리며 무너진다. 사람은 땅의 굳건함과 같은 기본 전제가 깨어지고 사방의 벽들이,주위의 가구들이 저마다 멋대로 춤을 추기 시작하면 매우 당황하게 된다.이때 평소에는 아주침착하던 사람들 조차도 제정신을 잃고 우왕좌왕하게 된다.이런 현상을 「패닉」이라고 하는데,이렇게 되면 의식이나 이성이 우리의 행동을 지배하기 보다는 비이성적 행동이 앞서게 된다. 실제로 땅이 흔들리는등 지진이 지속되는 시간은 길어야 1∼2분 정도이다.물론 이 기간동안에는 아무일도 할수가 없다.단지 최대한 빨리 가스밸브를 잠그고 식탁이나 책상밑에 들어가 떨어져 내리는 천장이나 가재도구로부터 자신의 몸을 보호하는 것이 상책이다. 일본이나 미국에서 행해진 연구들에 의하면 일단 지진의 시작시점에서 종료시점까지의 짧은 시간동안에는 사람들이 상당히 이성적으로 행동한다고 한다.그런데 막상 지진이 끝난 직후부터 패닉현상이 나타난다는 것이 문제이다.건물의 구조가 취약해졌기 때문에 곧 무너져 내리거나 도시가스관이 파열되어 곧 불이 붙을 터라 빨리 건물에서 벗어나 안전한 곳으로 대피해야 하는데도 사람들은 망연자실,그 자리에 앉아 있거나 주위의 하찮은 물건들… 떨어진 액자나 넘어진 의자등…을 줍는등의 비이성적 행동을하게된다고 한다.그러니 인명피해가 배가될 수밖에 없다. 이런 패닉현상은 지진 뿐만 아니라 화재시에도 마찬가지로 일어난다.자연의 파괴력앞에 무능해질 수밖에 없는 인간의 모습이다.우리는 지진에 대비하여 건축이나 토목구조물의 안전성을 충분히 구현해 놓아야 하기도 하지만,이러한 비상시에 건물내부에 있던 사람들이 패닉한 가운데도 동물적 본능만을 가지고 재빨리 대피할수 있는 배려를 충분히 해놓는 것도 중요하다.비상구로 가는 통로를 가능한한 직선으로 만들어 놓고,비상구 안내판을 눈에 잘 띄게 설치해 놓는 등의 일을 말하는데,이런 배려를 하는 것을 건물방재계획이라고 일컫는다. 우리나라도 지진에 안전할수 없다는 것도 문제지만 성수대교 사건에서 보듯 언제 어디서 황당한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현실에서 우리나라 건축계의 건물방재계획분야 수준을 생각해 볼때 차라리 아찔하기만 한 것은 필자만의 우려는 아닐 성싶다.
  • 정치판도 우경화(일본 「21세기 야망」:3)

    ◎“유리한 국제질서 창조” 신보수주의 대두/해외파병 제약 평화헌법 개정론 점차 확산/오자와 등 뉴리더들,“권력집중” 양당제 구상/무라야마 등장,사회당 해체 앞당겨 역사에 적응력 과시 『일본으로부터 미국에 좋지않은 두가지 소식이 날아왔습니다.달러하락과 사회주의 총리의 등장이라는 뉴스입니다』 일본에 사회당총리가 탄생한 다음날인 지난해 6월30일 미국의 NBC TV방송이 도쿄발로 보도한 뉴스다. NBC방송은 무라야마 도미이치 사회당위원장이 일본총리로 선출된 것을 이같이 미국에 나쁜 뉴스라고 보도했다.뉴욕 타임스도 같은날 『사회주의자가 일본 지도자로 등장한 것은 놀라운 일』이라고 전했다.미·일안보조약을 부정하고 냉전시대 「거대한 악」이었던 사회주의자가 아시아 동맹국 일본의 지도자로 등장한 것은 놀라운 일이며 미국에 나쁜 뉴스임에 틀림없을 것이다. 그러나 좋지않은 뉴스의 더 심오한 의미는 사회당위원장이 총리가 된 오늘의 정치상황이 아닌 다른 차원에 있을지도 모른다.무라야마 총리의 등장은 사회당의 몰락을 앞당기고 대국주의를 지향하는 정치세력의 강화를 촉진하며 미국과의 전략적 동맹관계를 중시하면서도 조금씩 독자적인 목소리를 내는 일본의 거시적 변화의 속도를 빠르게 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무라야마 위원장도 자신의 총리선출이 사회당의 몰락을 촉진할 것이라는 사실을 예감해서일까 당시 그의 표정은 어두웠다. 사회당 총리의 등장은 사회주의의 퇴조라는 세계사의 거대한 흐름을 역류하는 것처럼 보일지도 모른다.그러나 그것은 역사의 역류가 아니라 일본의 놀라운 역사의 적응력을 다시한번 확인시켜주는 일이다.사회당 총리의 등장은 국제공헌이라는 새로운 환경변화에 따라 전후 반세기동안 1국 평화주의와 경제지상주의를 표방했던 사회당의 퇴조를 가속화하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사회당의 퇴조와 함께 일본에서는 미국의 보수화 회귀와 마찬가지로 보수주의 물결이 더욱 거세지고 있다.그것은 일본정치의 총보수화라는 거대한 정치적 흐름으로 나타나고 있다.보수화가 일본정치의 큰 흐름으로 나타나기 시작한 것은 1982년 나카소네 내각의 등장 때라 할수 있다.그는 저서 「새로운 보수의 논리」에서 『지금은 국내경제본위라는 틀에서 벗어나 더욱 넓은 세계를 향하여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이 필요한 시대다.그것은 곧 보수통치의 부활이다』하고 역설했다. 안으로는 보수화,밖으로는 대국화를 지향하는 나카소네 전총리의 이러한 보수정치와 「전후정치의 총결산」 외침은 2차대전전 일본의 전통적 가치였던 국가주의와의 연속성을 밑바닥에 깔고 있다.그러나 전후 교육을 받은 뉴리더들의 신보수주의는 천황제나 신도사상등 복고주의적 가치를 지향하지 않는다.그들은 국제적 변화에 대응 일본도 국가개조를 하여야 한다는 현실주의자들이다.오자와 이치로 신진당 간사장,하타 쓰토무 전총리등 뉴리더들은 극우파의 호전적이고 극단적인 민족주의자들과는 다르다.그들은 일본 국왕을 신으로 보지 않으며 군사력으로 현대판 대동아공영권을 구축하여야 한다는 극우파의 제국주의적 환상도 거부한다. 현실주의적 신보수주의자들은 오늘의 일본은 국제적 책임과 권리가 동시에 커졌다고 인식하고 있다.막강한 경제·산업·기술력을 갖고 있는 일본은 과거와는 달리 국제질서에 순응하는데 그칠 것이 아니라 국제정치에서 일본에 유리한 국제질서를 창조하는 적극적인 역할을 하여야 한다는 논리다. 전후세대들은 물론 민주주의 이념과 제도속에서 성장했기 때문에 보편적 가치를 추구할 수 있는 바탕이 마련됐다고 할 수 있다.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과거의 침략과 패전의 아픔보다는 성장과 풍요로움만을 기억하고 있는 그들은 민족적 우월감과 자신감에 도취하여 또다른 패권의 유혹을 받을지 모른다.그러한 우려는 민족주의적 성향이 강한 신보수주의 뉴리더들의 군사적 국제공헌론과 일본사회에서 나타나고 있는 「대국화 의식」에서 읽혀진다. 신보수주의자들은 냉전후 국제상황에 맞지않는 국내체제를 무너뜨리고 다이내믹한 체제를 만들기 위해 정치개혁을 단행하여야 한다고 강조해 왔다.그 결과로 나타난 것이 소선거구·비례대표 병립제의 선거개혁이다.소선거구제가 도입됨에 따라 일본정치는 2대 정당제로 재편되지 않을 수 없으며 그 과정에서 사회당·공산당등 혁신세력은 설땅을 잃어가고 있다.오자와는 급변하는 국제정세속에 일본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결단을 내릴 수 있는 권력집중형 양당제가 필요하다고 강조해 왔다. 그러나 신보수주의자들이 그리는 일본의 국제화·대국화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건너야 할 강이 하나 남아 있다.헌법의 개정문제다.평화헌법은 교전권과 집단자위권을 인정하지 않고 자위대의 해외파병을 제약하고 있다.물론 지금도 유엔평화유지활동(PKO)을 위해 자위대가 해외에 파견되고 있다.그러나 훨씬 더 적극적인 해외파병과 군사력 증강을 위해서는 개헌이 필요하다. 일본의 개헌은 물론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최근 일부 여론조사에서 개헌 찬성이 50%를 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으나 아직은 「평화주의 유토피아」에서 안주하려는 세력이 강하다.그러나 평화헌법은 미군점령기의 굴욕적 유산이라는 민족주의자들의 외침속에 헌법을 바꾸어야 한다는 인식이 점점 확산되고 최대의 평화헌법 수호자인 사회당은 그 존재가치가 사라지고 있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헌법을 바꾸는것은 일본이 강요된 속박에서 벗어나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오는 한 과정일지 모른다.일본이 언제까지나 평화헌법 틀안에 있을 것이라는 생각은 지나치게 순진한 역사인식이다.일본은 본래의 모습으로 조금씩 돌아오고 있다.그러한 변화는 그러나 아시아인들에게는 불길한 조짐으로 받아들여진다.그것은 역사적 체험 때문이다.일본방위아카데미 책임자를 역임한 온건보수파 지식인 마사미치 이노키도 『평화헌법의 개헌은 마치 판도라의 상자를 열어서 나머지 마귀들이 모두 튀어나와 밤공기를 어지럽히는 사태와 같아질 것』이라고 경고한다.
  • 고국서도 홀대… 재일동포 「2중 설움」/도쿄=강석진(특파원코너)

    ◎일 생활 어려운데 서울가도 멸시받아 도쿄와 맞붙어 있는 가와사키시에는 코리아타운이 형성돼 있다.한글 간판은 물론이고 한국 음식과 메뉴도 흔한 이곳에서 간이술집(이자카야)을 하는 K씨는 요즘 속이 꽤나 편치 않다. 일본에서 나서 일본서 자란 그는 한국말은 잘 하지 못하지만 「한국인」임을 잊은 적은 없다.늘 생활에 쫓겨 오다가 지난해에는 큰 맘 먹고 고국을 찾았다.그러나 지금 그는 『두번 다시 안 가겠다』면서 분노하고 있다. 처음 찾은 고국에서 그는 양친이 모두 한국인임에도 불구하고 일본에서 나서 자랐다는 이유로 『반쪽발이구만』이라는 말을 정면으로 들어야 했다.그리고 한국말을 하지 못한다는 것 때문에 온 몸을 훑는 듯이 쳐다보는 눈길을 여러 번 마주치기도 했다.한국말은 못하지만 「반쪽발이」가 어떤 말인지는 익히 알고 있다. 택시운전을 하고 있는 S씨는 『한국인은 거칠다.나쁜 사람이 많다』고 일본말로 외치다시피 격앙되게 내뱉는다.왜 그러냐는 질문에 『나도 한국피가 섞여 있지만 쉽게 싸우고 매너가 없는 한국인이싫다』고 말했다.그는 한국말을 잘 알아듣는 듯했다.이 해프닝을 이곳 한국인에게 얘기하니 대부분은 『운전사가 이상한 사람』이라는 반응들이었지만 재일동포에게 하니 『일본국적을 취득한 동포가 아닐까』라면서 『고국과의 접촉을 통해 설움을 당하거나 나쁜 인상을 받은 동포들이 많다』고 말한다.반응이 사뭇 다른 것이다. 2세인 S씨(여)는 『할아버지 때 경상도에서 서울로 이사하면 손주 때 서울말 쓰지 않느냐』면서 『일본서 자란 동포들이 한국말을 모르거나 서툰 것을 본국인들이 이해해야 하지 않느냐』고 말한다.그녀는 『국민으로서도,주민으로서도 투표해 본 적이 없다』면서 쓰게 웃는다.또 고국방문시 재일동포라면 바가지를 씌우는 경우도 많이 듣고 있다고 말한다.대부분의 동포들은 일본사회에서 어렵게 살고 있는데도. 지난해 11월 「일본은 없다」의 일본어판 출판 기념 토론회에 참석한 와세다대 재학생 재일동포 H군은 자신을 『한국인도 일본인도 아닌 아무개입니다』라고 소개하기도 했다.역사의 희생자인 이들 재일동포들은 일본 뿐만아니라 고국에도 뿌리를 내리기 어렵다는데 생각이 미치면 우울하다. 세계화의 목소리가 높다.해외동포들이 할 수 있는 역할도 클 것이다.세계인의 삶을 이해하고 세계가 우리의 문화를 이해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해외동포들에게 비친 한국의 인상이 이런 정도라면 「일부의 거친 언행,일부의 반응」이라고 치부할 수 만은 없다는 생각이 든다.
  • 헬로! 코리언(임춘웅 칼럼)

    사람은 누구나 내가 남에게 어떻게 보이고 있는가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그래서 사람들은 늘 외모를 단정히 하려하고 외모 따위는 거들떠보지 않는 사람들까지도 남들의 평판에는 예민하다. 우리나라사람들은 특별히 외국인들이 우리를 어떻게 보고 있느냐에 관심을 보이는 편이다.일본사람들도 비슷한 성향을 갖고 있다.같은 동양계이면서도 중국사람들은 우리나 일본사람들과는 사뭇 다르다.중국사람들은 어떤 나라사람이 자기를 어떻게 보고 있는지에 관심이 없어 보인다.적어도 겉으로 보기엔 그렇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외국사람들의 눈에 비친 한국인의 모습이란 한마디로 엉망이다.우리보다 앞서 있는 선진국사람들의 평도 좋은게 아니지만 우리보다 뒤져있는 나라사람들이 갖고 있는 인상이란 더욱 우려할만한 것이다.유별난 관심과는 반대되는 결과다. 지난해 연말께 한 조사기관이 우리나라에 와서 일하고 있는 외국근로자들을대상으로 조사한 것을 보면 이들의 한국인에 대한 평가가 심상치 않다.그들이 그동안 받은 인상이란 대충 「한국사람들은 대체로 후진국사람들을 깔본다」「잘살기는 한것 같은데 사람들이 너무 거칠다」「성격이 급하고 불같다』「아랫사람들을 함부로 다루고 모욕주기를 예사로 한다」따위다. 미국에 있는 한 한국언론기관이 1년여전 재미교포업소에서 일하는 외국인근로자들을 상대로 여론조사를 한 일이 있었다.거기서도 거의 같은 결과가 나왔다.절대수가 남미계인 이들의 반응이란 「한국사람들은 욕하기를 좋아하고 「바보새끼」같은 모욕적인 언사를 자주쓴다」「잘못한다고 꿀밤을 먹이거나 한국사람들끼리 모이면 외국인을 욕한다」등이었다. 선진국사람들의 평가란 것도 성격은 다소 다르나 좋을게 없다.「한국사람들은 능력은 있는데 세련되지 못했다」「열심히 일하나 남을 의식하지 않는다」「한국사람들은 언제나 자기들 끼리만 몰려다닌다」는것 등이다. 이런 반응들을 종합해보면 한국사람들은 자기보다 못한 사람들위에 군림하려하고 고압적이다.이는 한때 우리들이 선진외국인들에게 너무「사대적」이 아니냐하는 반성이 있었던 것과 대조적이다.다시 말하면 우리는 강자 앞에서는 약하고 약자 앞에서는 강한 매우 이중적인 일면을 가지고 있다는 얘기다. 며칠전에는 네팔근로자들이 영하의 추운 날씨속에 명동성당으로 몰려가 시위를 벌이는 사태까지 생겼다.고용주들의 비인간적인 처우에 항의하기 위해서 였다.그들의 구호중엔 『제발 때리지마세요』라는게 들어있다.부끄럽다. 지난 연말 롯데복지재단이 돈을 내어 외국인근로자들을 위한 세밑모임이 있었다.열악한환경에서 일하는 이들을 위로하려는 행사였다.작은 「출발」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보다 앞서 우리들 모두가 마음을 열어야 한다.조금 나아졌다고 거드름을 피우는 것은 너무나 얄팍하다.양심의 형평을 잃어서는 성숙한 인간이라 할 수 없다.
  • 광복 50년/양국 유학생들이 본 「갈등의 골」 극복 방안

    ◎“세계화시대… 한일 「협력의 폭」 넓히자” 올해는 광복 50주년과 한·일국교정상화 30주년이다. 그동안 한·일간에는 과거사문제등 많은 현안을 두러싼 갈등과 대립이 반복돼 왔다. 그러나 80년대 말부터 과거에만 집착하지 말고 미래지향적 우호관계를 정립하자는 움직임도 활발해졌다. 오늘의 한국과 일본및 앞으로의 한·일관계를 일본에 유학하고 있는 한국 학생들과 한국에 와있는 일본 유학생들에게 들어본다. ◎서울의 일본 학생들/「과거사」에 얽매여 대일비난 하는데 당혹감/일은 진정으로 과거청산… 양국우호 힘쓸때 ▲요리타 다케시(33·서울대 보건대학원·교토대 교육심리학과졸)=한국은 일본의 이웃에 있지만 특별히 의식하지 않고 그저 지구상에 있는 하나의 국가라고 처음에 생각했었다. 그러나 한국의 나병실태등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관심이 높아졌다. 한국사람들은 정이 깊고 활력과 힘이 있는 것 같다. 한국사람들의 솔직한 표현에서는 인간미를 느낄수 있다. 한국사람들은 또 일본을 감정적으로 보는 경향이 강하다. 물론 객관적으로 냉정하게 보는 사람들도 있고 경제·기업관계자들중에는 일본을 배워야 한다며 좋게 평가하는 사람들도 많다. 그러나 지난 여름 독립기념관에 갔을때 어린이의 손을 잡고 온 어른들이 일본을 격렬하게 비난하는 것을 보고 한일간에는 여전히 많은 과제가 남아있구나 하는 생각과 함께 절망감까지 느꼈다. ▲고무라 가오리(31·한양대 국악과대학원·한양대 국악과졸)=한국의 판소리,사물놀이,창극등이 너무 매력적이어서 국악을 공부하고 있다. 한국은 알수 없는 힘을 갖고 있다. 국악속에는 과학적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영적인 힘이 있는 것 같다. 한국은 활기찬 나라이며 자신의 주장이 강하고 사소한 일에는 신경을 쓰지않는 대륙기질을 갖고 있는 것 같다. 한국인들은 특히 일본에 대한 라이벌의식이 강하며 지고 싶지 않다는 오기를 느끼게 한다. 그러나 한국인들이 노골적으로 일본을 지나치게 비난 할 때는 속이 상할 때도 있다. 일본은 물론 과거청산을 하여야하지만 한국도 지나치게 과거문제에만 매달려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할 경우스스로를 약하게 하고 결국은 지게될지도 모른다. 한국이 보다 강한 나라가 되기위해서는 대범해져야하며 넓은 세계적 시각으로 양국관계를 보아야한다는 생각이 든다. ▲기우치 아키라(27·서울대 체육교육과 대학원·와세다대 인간과학대졸)=중학교때 재일한국인에 대해 알고부터 한국에 관심이 많아졌다. 처음에는 신문·방송등을 통해 한국을 알았고 어른에 대한 공경심이 강한 전통적인 유고국가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실제 한국에 와보고 조금은 실망했다. 어른들에 대한 공경심은 여전히 남아있었지만 당초 생각했던 것보다는 약했다. 그러나 한국인들은 친절하고 정이 많은 사람들이라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에는 일본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이 여전히 강하게 남아 있음을 느낀다. 같은 사실이라도 부정적인 시각에서 보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지나 히로시마 아세안게임 보도를 볼때 마치 일본과 「전쟁」을 하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대부분의 기사들은 일본을 꺾었다는 등 일본과의 대전을 중심으로 쓰고 있었다. 일본에 대한 감정적인식이 강한 것 같다. ▲고가 사토시(31·연세대 국어국문학과 대학원·주오대 사회학과졸)=국민학교 6학년때 옆반에 있던 재일한국인을 친구로 사귄후 한국과 한국문화에 대해 관심을 갖게됐다. 한국에 온후 많은 친구도 사귀고 한국문화도 접할수 있어 하루하루가 재미있다. 한국사람들은 개성적이며 친구가 되면 매우 친절하다. 한국은 21세기에 많은 가능성을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에게 욕을 하는 것들을 보며 거칠다는 인상을 받았다. 한국인들은 또 일상생활에서 많은 일들을 남의 탓으로 돌리는 경향이 있으며 자기비판이 조금은 약한것 같다. 물론 일본도 과거문제를 말끔히 청산하지 않은 점이 있으며 그것을 부끄럽게 생각한다. 그러나 양국간의 우호관계가 필요하며 그것이 양국의 이익을 위해서도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가세타니 도모오(32·고려대 사회학과 대학원·고베대 경영학과졸)=백제의 관계가 깊었던 나라현에서 자라며 한국및 중국등에 관심이 많았다. 한국은 처음에 완고한 유교국가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직접와보니 한락가가 있는등 어느면에서는 성에 대해 노골적인 면이 있는 것 같다. 한국인들은 사람을 사귈때 일본사람들과는 달리 거리를 두지않고 지낸다는 인상을 받았다. 그러나 한국을 어떤 나라라고 단정하기에는 아직 이른것 같다. 하지만 한국에서 베스트셀러가 되고 있는 「일본은 없다」라는 책을 보고 유감스러웠다. 일본의 부정적인 면을 강조한 그책은 일본인을 대상으로 썼다면 하나의 좋은 충고가 될수 있으나 한국인이 일본을 이해하는데는 나쁜 영향을 미칠지도 모른다. 물론 일본은 말이 아닌 행동으로 과거청산을 하여야하며 개인보상도 하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일본에는 과거침략행위에 대해 진심으로 잘못됐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는등 여러부류의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아주었으면 좋겠다. ◎도쿄의 한국 학생들/감정적 일본혐오 벗어나 객관 인식 바람직/문화·경제장점 서로 배워 공동이익 창출을 ▲채원호(33·도쿄대 대학원 행정학과졸)=올해는 한국으로서는 해방 50년,일본으로서는 패전 50년이 되는 해다.일본은 가까이 하고 싶지 않아도 이웃한 나라라는 숙명적 관계에 있는 나라다.앞으로 국제화·개방화·지역경제의 블록화등으로 일컬어지는 상황은 양국의 교류 및 협력관계를 더욱 요구할 것이다.과거의 식민통치 경험이 일본의 한국에 관한 지식의 축적을 가져 왔다면 해방후 일본은 연구의 대상이 아니라 그저 빨리 잊고 싶은 망각의 대상일 수 밖에 없었기 때문에 일본에 대한 객관적 인식과 객관적 인식에서 비롯돼야 하는 일본연구는 지체될 수 밖에 없었다.그러나 새로운 인식의 틀에서 활발한 일본연구가 필요하며 양국의 정치·경제적 이해가 맞물리는 분야에서는 공동의 이익을 극대화할 수 있는 창조적인 모델이 만들어져야 한다. ▲박종문(31·와세다대 경제학과 대학원·연세대 경영학과졸)=대학시절 민주화를 둘러싼 학생들과 정권의 주장이 맞서고 있을 때 진짜와 가짜가 무엇인가를 탐구하기 위해 유학을 선택했다. 어려서부터 『일본은 경제대국이지만 정신적인 면에서 한국보다 열등한 나라다』라고 배워왔기에 그 말이 사실인 것같은 착각을 느꼈다.7년이 지난 지금 『일본은 선진국이고 한국은 개발도상국일 뿐』이라는 현실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일본이 정신적인 면에서 한국에 못미친다는 말은 거짓이다.정신적인 선진성없이 경제의 선진화는 이룩될 수 없다. 물론 한국인으로서 불안해 할 필요는 없다.그러나 일본이라는 나라를 다시 한번 생각하고 이해해야 한다.이유없는 반일감정,이유없는 일본 멸시언행은 우리를 영원히 일본과 같은 선진대열에 끼지 못하도록 할 것이다. ▲김기석(34·와세다대 경영학과 대학원·동아대 화공과졸)=일본식 경영법을 만들어 낸 일본의 사회·문화·윤리를 직접 보고 배우고 싶었다.일본은 여러가지 면에서 한국보다 질서가 잘 잡혀 있고 사회가 안정돼 있다는 인상을 받고 있다. 한일관계에 있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감정적으로 한일관계를 보기보다는 이성적으로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역사문제·종군위안부 문제등은 물론 일본이 원인제공을 했지만 처리과정에서는 이성적이기보다는 감정적으로 대응한 면이 없지 않다고 본다. 최근 한국에서는 일본을 부정적으로 묘사한 「일본은 없다」라는 책이 베스트 셀러가 되고 있다.확실히 일본에도 부정적인 면이 많지만 부정적인 면보다는 아직 보고 배워야 할 점이 많다고 생각한다.이성보다 한국인의 감정에 호소한 이런 책은 일본에 대한 편견을 가져와 일본을 이해하는데 방해가 될 뿐이다.바람직한 한일우호관계를 위해서는 지도층의 교류보다 최근 활발해진 시민단체등의 상호 교류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신경순(27·여·조지대 신문학과 대학원·추계예술대문예창작과졸)=한국은 오랜 역사적 관계에도 불구하고 현대 일본에 대한 연구나 인식이 빈약하다고 느껴진다. 일본에 대한 인상은 긍정적인 것만은 아니다.외국인에 대한 차별등이 엄존한다.지나친 풍요로움에 때론 불편을 겪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일본의 저력은 막강하다.일본은 외국문화의 흡수력이 대단하며 외래어를 단순하게 일본어화하는 것을 보면 놀라움을 금할 수 없다.일본은 또 공공교통수단이 잘 발달돼 있어 시간계산을 잘하면 효율적인 생활을 할 수 있도록 돼 있다.더욱이 정보화·산업화 과정은 과연 경제대국이 될 수 있는 나라라는 점을 깨우쳐 준다. 바람직한 한일관계를 위해서는 같은 문화권안에 있지만 너무도 다른 문화가 존재하고 있다는 점을 보다 적극적으로 인식하는데서 출발할 필요가 있다.양국간에 전문적인 지식을 가진 인재육성도 필요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들을 활용할 수 있는 사회적인 조직·구성의 마련이다. ▲김정준(35·도쿄대 공학부 대학원·서울대 공업화학과졸)=바람직한 한일관계를 위해서는 우선 언론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국민의 감정을 부추기는 기사보다는 이성적 보도가 필요하다.반복되는 일본 지도층의 망언에 대해서도 매번 흥분할 것이 아니라 배경과 진원지를 분석해 주면 좋겠다. 양국간에는 직접적인 경험과 교류를 통한 상호이해와 함께 문화교류의 활성화가 필요하다.「김치를 먹고 치마저고리를 입는 분단된 나라」,「스시(생선초밥)와 기모노의 나라」라는 정형화된 이미지를 벗기 위해서도 생활양식 정서를 느낄 수 있는 문학작품·음악·연극등 문화교류가 필요하다.우리 젊은이들이 아무 생각없이 일본문화에 빠져들지 않을 것으로 확신한다. 그러나 일본에 와서 우리나라의 너무 많은 책들이 일본 책을 그대로 베낀 것을 보고 기성세대에 대한 배신감을 느끼고 있다.한국은 일본에 대한 올바른 역사인식이 필요하며 국제화에 대한 정확한 이해와 감각을 가져 상대방에게 매력있는 파트너가 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 세계제일(외언내언)

    일본식 씨름인 「스모」(상복)를 두고 가장 일본적 이라고 흔히 말한다.일본문화가 사무라이(시) 문화라면 스모보다 더 사무라이적인 것도 없기 때문일 것이다.사무라이의 싸움에는 한판 승부가 있을 뿐이며 「다시 한번」은 없다.패배는 죽음을 의미한다.스모도 비슷하다.우승자와 패자만 있고 2∼3위등은 없는 것이 일본 스모다.제일이 아니면 안되는 것이다. 일본에 살면서 자세히 들여다 보면 이같은 사무라이 정신은 스모 말고도 일본문화와 생활의 구석구석에 스며있는 것을 자주 느끼게 된다.한마디로 그것은 제일주의다.「닛본 이치(일본일)」(일본제일)의 추구요 그에대한 존경과 복종인 것이다.일본인들은 모두 최선을 다해 자기분야에서 일본제일을 달성하려 애쓰고 노력한다.정치·경제·학문등 고상한 분야뿐만 아니라 요리,기술,토목,심지어는 생선처리등 어떤 분야에서건 마찬가지다. 「닛본 이치」로 인정되면 그는 해당분야에 관한한 일본최고의 권위로 존경을 받는다.뿐만아니라 일반적으로도 노력과 성공의 보편적 상징으로서 거의 절대적인 사회적 인정과 존경 그리고 대접을 받는 것을 본다.일본제일에 대한 존경심 또한 일본사람들의 가장 중요한 특성의 하나인 것이다.일본사람들은 도둑도 일본제일이라면 존경할 것이라는 농담이 있을 정도다. 일본인들의 이 「닛본 이치」추구와 존경및 복종이야말로 오늘의 경제대국 일본을 만들어낸 원동력이 아닌가 생각할 때가 많다.이젠 「닛본 이치」가 곧 「세카이 이치」(세계제일)가 되다시피 했다.우리의 세계화와 세계일류 달성에 참고삼을 대목도 많지않는가.외제와 같아서는 안되며 능가해야 한다는 CM도 있지만…
  • 덕담(외언내언)

    외 세수가 되면 덕담을 나누는 게 우리의 풍습이다.덕담이란 상대방의 복을 기원하는 말이다.세수에 일가친척,동네 어른들,가까이 지내는 친지들을 찾아 하는 덕담은 말하자면 신년덕담이다. 요즘에는 건강에 대한 관심이 많아져 『건강 하십시오』같이 건강을 비는 덕담이 늘었으나 우리나라 덕담의 주종은 아무래도 『복많이 받으십시오』일 것이다. 우리의 복은 행복같은 정신적인 것도 있으나 물질적인 시혜의 뜻도 함축하고 있다.연세대의 최정호교수는 『복은 한국인의 삶을 그 밑바탕에서 움직이고 있는 가장 끈질기고 가장 보편적인 동기』라고 말하고 있다. 특정인의 특정 소망을 말하는 경우도 있다.장가들 나이가 된 노총각에겐 『금년엔 꼭 장가드십시오』따위다.『소원 성취 하십시오』도 우리가 많이 쓰는 덕담이고 말을 과거형으로 하는 관습도 있다.『새해에는 지병이 다 나으셨다지요』라고 소망한 바를 과거로 말해 기정사실화하는 것이다. 외국에도 덕담의 풍속이 있다.서양사람들의 경우 해가 바뀌는 것을 기념하는 행사는 요란하나 덕담은 우리보다 간단하다.『HappyNewYear』정도가 고작이다.중국 사람들은 좀더 구체적이다.돈을 많이 버십시오의 뜻으로 광동발음으로 『꿍헤이 팟초이』(공희발재)다.일본사람들은 『새해가 열린 것을 축하합니다』라는 담백한 덕담을 나눈다. 덕담은 왜 나누는 것일까.우리의 선조들은 음성에 신비한 힘이 들어 있어서 말로 빌어주면 그것이 그대로 실현된다는 말의 영역을 믿었다.언령관념이다.또 남에게 복을 빌어주면 나에게도 그만큼의 복이 온다는 믿음도 있다. 경위야 어떻든 미풍양속이란 바로 이런 것이다.
  • “「뿌리지키기」 열망 뜨겁습니다”/일본서 맞는 「한핏줄」의 감회

    ◎2·3세 「한국적」 유지 세계사 유례없어 광복이후 어언 반세기가 된다.일본에서 생활하면서 정신적으로는 잊을수 없는 조국과 일본과의 틈바구니에서 살아온 「마지널 맨(경계인)」으로서의 반세기라고나 할까. ○1세대 5%만 생존 일본에 사는 우리동포사회는 그동안 크게 탈바꿈했다.그중에서도 가장 두드러진 것은 한국에서 출생한 제1세가 해마다 줄어들고(아마 5%정도)일본에서 출생한 세대가 주류를 이룸에 따라 동포사회가 「일본화」되는 날이 그리 멀지 않다는 사실이다. 한국의 해외동포는 총5백여만명으로 알고 있다.동포수의 순위는 중국·미국·일본·옛소련이 될 것이다.그중 재일동포는 68만명이며 광복전에 일본에온 제1세와 그 자손이 58만명이다.최근에 일본에 온 한국인을 「뉴 커머(NewComer」라 한다면 광복전에 일본에 온 한국인과 그 자손을 「올드 커머(OldComer)」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일본에서와 같이 올드 커머의 제1세가 거의 없어지고 제2·3·4…세가 「한국」또는 「조선」국적을 가지고 외국인으로서 생활한다는 것은 해외동포가 사는 다른 나라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유일한 예가 아닌가 생각한다. 금년은 한일 국교가 정상화된지 30주년이기도 하다.그 당시 일본정부는 물론 한국정부도 3·4세들은 점차 일본화될 것으로 예측했을 것이다.사실 한국대표가 그런 언질을 준 일도 있다. 최근의 인구통계를 보면 올드 커머의 인구수가 해마다 줄어들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귀화자가 인구증가율을 웃돌고 있기 때문이다.귀화해서 일본국적을 얻으면 적어도 법적·제도적 민족차별은 없어진다.일본에서 출생한 젊은 세대들은 귀화해서 일본인과 동일한 권리를 취득할 것인가,아니면 불평등이 있더라도 민족적 입장을 고수해서 살 것인가,그 갈림길에서 흔들리고 있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물론 일본사회의 민족적 차별과 멸시속에서 자기의 희망과 능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귀화할 경우 아쉬움은 남는다.하지만 후대들이 그런 설움에서 해방되기를 바라는 부모의 심정 또한 당연하다. ○「민족대학」 수강 열기 그러나 차별속에서 오히려 자기의 뿌리를 생각하게 되고 민족적 아이덴터티(주체의식)을 되찾아서 살아야 하겠다는 의지도 끈질기다. 그러한 의지는 지난 1993년 1월부터 지난해 연말까지 오사카(대판)를 효시로 도쿄(동경) 요코하마(횡빈)·나고야(명고옥)교토(경도) 히로시마(광도) 후쿠오카(복강)에서 한국 민단주체로 개설된 「민족대학」강좌에서 나타나고 있다. 『「민족대학」강사는 재일한국인의 학자와 전문가가 중심이었다.매주 토요일에 열린 강좌는 한국역사·조국에 대한 기초지식·한국과 일본과의 관계사·재일한국인의 역사를 비롯,생활에 필요한 법적지위 및 세금대책에 이르기까지 모두 12과목이었다. ○10대∼80대까지 참여 나는 오사카에서 제1회 강좌가 시작되기 전에 수강생이 50명 내지 1백명이 모이면 성공한 편이 아닌가 생각했다.그러나 실제 뚜껑을 열고 보니 당초의 모집예정인원 2백명을 훨씬 넘는 3백60여명이 참가하여 강의실은 열기로 가득찼다. 다른 도시에서도 모집예정인원을 웃도는 대성황을 이루었다. 40·50대를 중심으로 10대후반에서 80대까지 남녀노소를 망라한 수강생들의 열기어린 눈초리에 나는정말 눈시울이 뜨거웠다. 이 글 첫머리에 재일한국인을 「마지널 맨」이라 불렀지만 재일동포들은 일본 생활속에서 완벽한 한국인은 되지 못하더라도 조금이라도 한국인에 접근하려는 의지가 대단하다는 것을 「민족대학」강좌를 통해 배웠다. 나는 이 글에서 감히 「재일교포」란 용어를 피하고 「재일동포」라 했다.「교」자를 풀이하면 「붙어 살고」즉 남의 집에 붙어서 산다든가,타향 혹은 타국에 임시로 붙어서 산다는 뜻이 된다. 『재일동포의 절대다수를 차지하는 올드커머는 일본에서 영주권을 가지고 사는 한국인이다.따라서 「교포」란 용어는 그들의 생활실태에 어긋나는 표현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내가 아쉽게 생각하는 것은 일본에서 자란 젊은 세대들이 자기 뿌리를 찾는다고 고향을 방문했을때 한국말을 못한다고 면박을 당해서 실망했다는 이야기가 많이 들리고 있는 점이다. ○한글 몰라도 애정을 그들은 일본에서 한국말은 몰라도 살수 있지만 일본말을 모르고서는 하루도 살 수 없다.일상생활에서 필요없는 말을 다만 민족적 자각에서 터득한다는 것은 그리 쉬운일이 아니다. 가령 한국말을 모른다 하더라도 자기의 뿌리를 찾겠다는 그 심정을 찬양해준다면 얼마나 조국과 고향을 피부로 느끼게 되고 오히려 모국어를 비롯해서 자기조국을 더 잘 알기 위한 용기를 얻을 수 있겠는가. 과장된 표현을 한다면 일본에서 출생한 젊은 세대들이 대를 이어서 민족적인 입장을 고수해서 산다는 것은 세계사적인 실험이라 생각한다.그러기에 나는 앞으로도 그들의 삶을 따뜻하게 지켜보고 싶다.
  • 중 2년생 자살/일열도 떠들썩/3년간 동료에 맞고 돈 빼앗겨

    ◎학교당국 무관심… 사회문제로/“괴로워서 자살… 가족들엔 감사” 유서남겨 아이치현 니시오시 도부중학교 2년생인 오코우치 기요테루가 집 뒤뜰 나무에 목을 매 짧은 삶을 마감한 것은 지난 11월말.「흔히 있는 사건」으로 관심을 끌지 못하던 그의 죽음은 그러나 1일 그의 책상서랍에서 발견된 유서를 통해 이제 겨우 13살인 기요테루를 죽음으로 몰고간 사연과 그간의 번뇌가 드러나면서 일본열도에 엄청난 충격을 던졌다. 펜글씨로 빽빽이 적은 노트 4장 분량의 유서는 「언제나 4명이 돈을 뺏아갔다」는 말로 시작된다.기요테루는 동급생들에게 소학교(국민학교) 6학년부터 3년동안 이지메(특정인을 두고두고 괴롭히는 집단학대행위)를 당했다.그들은 심심하면 기요테루를 때리고 괴롭혔다.기요테루는 이들에게 1백만엔 이상을 뺏겼다고 적고 있다.이지메같은 단어는 일본어말고 다른 언어에는 별로 없을 것이다.탈출구없는 그 이지메에 기요테루가 걸려든 것이었다. 유서 뒷부분에는 『오늘도 4만엔을 빼앗겼다.이제 정말 죽어야겠다』면서 『왜 일찍 죽지못했는가.가족들이 잘 해주었기 때문이다.가족과 함께 있을 때가 가장 행복했다』고 말했다.중학교 입학 때 입학생 대표로 『한 사람이라도 더 많은 친구를 사귀고 싶다』는 「입학결의」까지 했던 기요테루였지만 실제는 반대였다. 부친 요시하루씨는 지갑에서 돈이 없어지곤 해서 『이지메당하는 것 아니냐』고 묻기도 했지만 기요테루는 자살 전날까지도 부인하기만 했다.요시하루씨는 아들의 일이 걱정돼 11월에는 호주로 가족여행을 다녀오기도 했다.기요테루도 유서와 함께 발견된 「여행일기」에서 『아버지,호주여행 정말 고마왔습니다』라고 감사의 말을 남기기도 했다.여행일기는 괴로운 생활 가운데 유일한 즐거움이었던 가족 여행을 어렸을 때부터 회상해 가면서 적은 것이어서 심적 고통으로부터 벗어나 보려는 가여운 모습을 여실히 보여 주었다. 문제는 학교.그동안 몇차례 기요테루로부터 도움을 요청하는 신호도 있었고 이지메당하고 있음이 확인되기도 했지만 아무런 행동도 취해지지 않았다. 일본 경찰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10∼19살 학생 1백13명이 이지메 등 교내문제로 자살한 것으로 나타났다.이지메의 주된 표적은 성적이 우수하거나 신체부자유 학생,또 외국에서 생활한 학생과 재일외국인 자녀 등. 무라야마 도미이치 총리가 5일 뒤늦게 참의원에서 유사사건 재발 방지 대책 마련을 역설했지만 「약자를 끝까지 괴롭혀 망가뜨리는」 이지메가 당하기도 하고 가하기도 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일본사회에서 얼마나 실효가 있을지….
  • 일 연립여당 대표단/방북포기 결정

    【도쿄=강석진특파원】 일본 연립 여당은 여당대표단의 북한 파견이 당분간 어렵다고 보고 이를 포기하기로 29일 최종 결정했다. 연립 여당은 이에 따라 다음달 3일로 예정했던 선발대의 북한파견도 취소하기로 했다. 구보 와타루 일본사회당 서기장은 이날 기자 회견을 통해 『북한측이 일본 정부의 자세등을 이유로 현시점에서는 의원으로 구성된 여당 대표단의 북한 방문을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회답을 해옴에 따라 의원단 및 선발대의 파견을 단념하게 됐다』면서 이같이 말했다. 구보 서기장은 이에 앞서 재일조총련의 허종만 부의장등과 회담을 갖고 의원대표단의 북한 파견에 따른 북한측의 입장을 타진했다. 이에 대해 허부의장은 ▲북한 유엔대표부에 대한 주미 일본대사관 고위 당국자의 발언 ▲1990년 3당 공동 선언의 재검토가 필요하다고 밝힌 다케무라 대장상의 발언,의원 대표단이 북한을 방문하기에 앞서 한국과의 사전 조정 필요성을 언급한 이가라시 관방장관의 발언 ▲선발대의 북한방문에 앞선 한국방문 등을 이유로 「의원 선발대의 북한 입국은 곤란하다」는 뜻을 통고했다.
  • 「한국해」 표기 서양고서지도 발견/1615년 포르투갈인 제작

    동해 표기를 지금까지 알려진 것보다 95년이나 앞서 「한국해」라고 적어 놓은 서양지도가 26일 확인됐다. 이 지도는 포르투갈 말라카 태생의 지도제작자인 마노엘 고딘호씨(1563∼1623)가 1615년에 만든 아시아 지도로 한국과 일본사이에 있는 바다의 고유명칭을 「Mar Coria」(한국해)라고 표기하고 있다. 가로 31㎝·세로 22㎝의 이 지도는 포르투갈대사관과 문화원이 서초구 국립중앙도서관 전시실에서 「포르투갈 지도제작술과 세계형상의 구현」이라는 이름아래 30일까지 전시하고 있는 1480년대에서 1640년대 사이에 제작된 지도와 해도 47점 가운데 하나다. 이번에 발견된 지도는 한국의 바다라고 표기된 서양지도가운데서 가장 오래된 것으로 알려진 1710년 이탈리아 지리학자 TI 슈포트가 제작한 「지나제국도」(로마고문서관 보관)보다 1세기나 앞서 만들어진 것이어서 주목된다.
  • 휴가 권유 받는 일직장인/류상덕 국제1부 기자(오늘의 눈)

    일본의 40대 중년들이 「일벌레」라는 명칭을 얻은 것은 꽤 오래 됐다.이들은 일본이 서구를 따라잡으려고 할 때인 70년대초부터 일하기 시작한 사람들로 회사와 국가경제발전을 위해 희생하도록 배운 세대이다.「일에 미친 장인」,「벌 줄만 알뿐 쓸 줄 모르는 구두쇠」 등 다른 나라 사람들로부터 혹평을 받고 있지만 그에 아랑곳하지 않고 회사업무에만 전념해 「회사인간」이라는 달갑잖은 별명도 갖고 있다. 일본의 한 노인재단이 1천명의 중년남성을 대상으로 조사한 바에 따르면 47.8%가 일에 빠졌을 때만 성취감을 느낀다고 응답했고 불과 5.5%만이 가족과 함께 하는 시간에서 성취감을 느낀다고 대답할 정도로 이들의 일에 대한 중독증은 심각하다. 일본의 중년남성들이 이같이 너무 일에만 얽매이지 말고 여가도 찾고 친구도 사귀어야 한다는 충고를 받아 관심을 끌고 있다.일본경제기획청은 최근 펴낸 「국민 라이프스타일 연례보고서」를 통해 『전후 베이비붐 세대인 중년 남성들이 회사업무에만 지나치게 매달리지 말고 자기생할을 찾아야 하며 가족들과도 함께 어울리는 생활을 해야 한다』고 권유했다. 일본정부가 이처럼 40대 중년남자들의 사회활동을 적극 권장하고 나선 것은 일단 직장에서 정년퇴직만 하면 오갈데 없게 되어버리는 노인 남성들의 문제가 미래에 더 큰 사회문제화하는 것을 예방하자는 차원인 것으로 보인다.또 일본정부가 수년내에 「생활대국」이 되겠다고 다짐한 바와 같이 1년에 1∼2달씩 휴가를 보내며 각국을 여행하거나 자신의 취미생활을 즐기는 서구를 의식,「경제대국」이라는 위상에 걸맞는 국민여가생활을 유도하겠다는 의도도 있는 것같다. 아직 일본은 노인문제가 유럽처럼 심각하지는 않지만 근년 들어 일본이 최장수국이 되었기 때문에 앞으로 퇴직자들에 대한 문제 해결이 가장 큰 사회문제가 될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현재 일본의 65세 이상 고령인구는 전체의 14%로 연금수령자들을 부양하고있는 납세자들이 6배쯤 더 많지만 서기 2040년에는 납세자대 노인인구의 비율이 2대1로 예상될 정도로 고령화 사회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한국은 어떤가.서방에서는 한때『일본사람을 게으름뱅이라고 보는 유일한 민족이 바로 한국인』이라고 까지 했었는데 오늘의 우리 중년남자들에겐 문제가 없는 건가.
  • 고전도 바뀐다(외언내언)

    「고전을 읽자」는 말처럼 우리에게서 일상화된 사회적 구호는 없다.그런가 하면 무엇이 고전이고 왜 고전을 읽자는 것인가에 대해 우리처럼 또 막연한 나라도 드물다.그저 책은 읽어야 하는 것이고 책중엔 옛책이 좋은 것이라는 정도의 순박한 상식에 머물러 있다. 그러나 고전도 바뀌고 고전도 파괴된다.너새니얼 호손의 「주홍글씨」는 미국문학의 대표작이다.하지만 70년대부터 미전역의 학교도서관에서 이 소설은 추방됐다.이 시대에 성장하고 있는 젊은 학생에게 유효한 어떤 지혜나 메시지도 갖고 있지 않다는 것이 도서선정 위원회의 판정이었기 때문이다.같은 이유로 마크 트웨인의 「허클베리 핀의 모험」도 밀려났다. 80년대초 하버드대학의 중핵교육안에서도 교양교육의 목표는 바뀌었다.「교육받은 사람은 우주와 사회와 인간에 대한 지식과 이해를 얻는 과정에 비판적 안목을 가져야 하며」 「교육받은 사람은 편협하거나 지역적이어서는 안되며」 「교육받은 사람은 윤리적 문제에 있어 분별의 능력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 새로 정리한 교양교육의목표다.물론 새목표에 맞는 도서목록이 새로 마련됐다. 우리 사회의 고전도서목록은 무엇인가.19세기말에서 20세기초 일본사회가 만들어낸 목록을 기초로 하고 있다.그 뒤 한번도 제대로 된 검토를 한 일이 없다.그런가 하면 책을 권하는 사람은 늙은 세대가 됐다.그저 옛기억을 더듬어 말하고 있을 뿐이다.여기에 70년대이후 시대를 뛰어넘어 진보주의적 도서목록이 집중적으로 교양도서목록에 뛰어들었다.편협한 사태가 피할 수 없이 만들어진 것이다.이 역시 다시 들여다본 바 없다. 서울대 인문·사회계열에서 지난해부터 고전강독강좌를 시작했다.그 반응이 좋아 앞으로는 전계열에 확대할 것이라는 원칙을 세웠다.이 시도는 바람직하다.그러나 더 호소력을 얻으려면 그 의도를 설명할 수 있는 새 목록이 나와야 한다.현재 쓰는 목록은 사실상 20세기 전반부의 목록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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