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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떠들썩한 대응」 일에 놀아나는 꼴”/「일 독도시비」 정부대응

    ◎접안·관측시설 공사 차분히 진행 지난달 1일 총선을 앞둔 일본 자민당이 「독도 영유권」을 공약으로 채택했을 때 외무부의 한 일본 전문가는 『군사대국으로 치달으려는 일본의 움직임이 피부로 느껴진다』고 비공식 논평한 바 있다.일본 정부는 총선에서 나타난 일본사회의 전반적인 민족주의·보수화 물결에 밀릴 수도 있고,또 이를 활용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일본 외무부가 1일 주일한국대사관 김용규정무공사를 불러 독도 부두시설 공사 중단을 요청한 것은 일본내 일부 국수적인 언론등의 강한 압력 때문이었다고 한 관계자는 설명했다.일본 언론은 조어도(일본명 센카쿠) 등대설치를 둘러싼 일·중간의 갈등을 겪으면서 한편으로는 독도 문제를 계속 제기해왔다.일본이 실효적으로 지배하고 있는 조어도에 등대를 설치한데 대해 중국·대만·홍콩 등은 격렬히 항의하는데 일본은 왜 한국의 독도 부두공사에 아무런 항의를 하지 않느냐는 주장이다.이 때문에 일본정부는 올해초부터 『독도에 부두공사가 진행되는가』라는 국회와 언론의 질문공세에 『확인중』이라는 답변을 되풀이해왔으나 더이상 버티지 못한 것 같다는게 당국자의 설명이다.일본은 실제로 여러차례 외교경로를 통해 부두시설 공사여부를 문의했으나 우리측에서는 단 한번도 답변을 하지 않았다. 그같은 전후사정에도 불구하고 ▲일본정부가 처음으로 우리 대사관 관계자를 불러 부두시설공사 중지요청을 한데다 ▲이같은 사실을 기자회견에서 먼저 공개한 것은 지금까지의 상대적으로 「수동적인」 대응양식과는 다른 면이 보인다.주한일본대사관의 일부 관계자들은 『독도가 일본 땅이 아니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그러나 일본정부로서는 일본국민들 때문에 그렇게 말할 수는 없는 것 아니냐』고 말하고 있다. 독도 영유권에 대한 정부의 입장은 일관돼있다.독도는 역사적으로나 국제법적으로나 우리 영토이며,또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가 실효적으로 지배하고 있다는 것이다.일본도 한국과의 모든 관계를 포기하면서까지 독도영유권을 주장할 처지는 못된다는 것도 알고 있다.따라서 정부는 부두시설 공사가 끝나면 관측기지를 설치하는 등 독도를완전하게 영토화하는 사업을 착착 진행시킨다는 방침이다.
  • 작년 일 경찰청장관 저격/옴교도 현직경찰관 소행

    ◎독사스 수사본부 근무/1년7개월만에 해결 지난해 3월 발생한 일본 구니마쓰 다카지 경찰청장관을 저격했던 범인이 25일 옴진리교 신자인 현직 경찰관(31)으로 드러나 일본사회를 경악시키고 있다. 당시 사건은 도쿄 지하철에 옴진리교단이 사린 독가스를 살포,5천명이 죽거나 다친지 열흘 뒤여서 일본인들을 테러의 공포로 몰아넣었었다.사건이 발생했을 때부터 옴진리교의 소행으로 의심이 됐지만 1년7개월 만에 해결의 실마리가 잡힌 것이다. 범인은 사린사건이 발생하자마자 차출돼 사린사건 수사본부에서 일한 것으로 나타나 일본인들은 「고양이에게 어물전 맡긴 꼴」이라며 어처구니 없다는 표정들이다.
  • 일본열도 극우복귀 신호탄/일 보수 대변 자민련 총선승리 이후

    ◎과거 반성 소극적… 군사대국화 추구/영유권 주장·망신 등 주변국과 갈등 일본이 총보수화되고 있다.국제사회는 20일의 일본총선이 보수세력을 대표하는 자민당의 승리로 끝남에 따라 우려섞인 눈길을 보내고 있다.특히 영유권문제,과거침략사에 대한 인식문제,망언파동,군사적 역할증대 문제등으로 일본과 갈등을 겪고 있는 주변국들의 우려가 강하게 제기되고 있다. 이번 선거결과 자민당은 과반수를 차지하지는 못했지만 이에 육박하는 승리를 거두었다.정국 주도의 갈림길이라는 235석을 4석이나 넘어 정국의 주도권을 쥐게된 것이다. 또 선거에서 패배했다고 하지만 신진당도 자민당과 같은 뿌리.신진당의 156석까지 합하면 중의원의 79%를 보수세력이 점하게 됐다.반면 사민당은 30석에서 15석으로,신당사키가케는 9석에서 2석으로 괴멸적 타격을 입었다.이들은 연립정권하에서 그나마 극우보수의 목소리를 견제하는 소금의 역할을 해왔었다.「피해국가에 대한 진정한 사죄」,「종군위안부에 대한 국가보상」을 주장한 하토야마 유키오의 민주당은 52석에서 단 1석도 늘리지 못했다.침략의 과거사에 대해 진보적 자세를 보이고 있는 공산당이 약진했지만 일본정치계에서는 공산당이 득세하면 보수주의자들의 목소리가 높아지는 길항관계가 존재해왔다.역시 총선결과는 보수주의자들의 파워가 강화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자민당은 이번 선거를 앞두고는 우리 땅인 독도를 자국영토라고 주장하는 공약을 내걸었다.예전에 없던 선거공약을 새로 집어넣은 것이다.또 중국과 영토분쟁을 겪고 있는 센카쿠열도(중국명 조어도)에 대해서도 고유영토라고 주장,중국 대만 홍콩과의 갈등을 증폭시키고 있다.최근까지는 러시아와의 사이에 문제가 되고 있는 북방 4개섬의 해결만을 주장해왔었다.자민당과 일본정부가 동북아시아지역에 갈등의 불씨를 먼저 던진 것이다. 또 야스쿠니신사(신사)의 공식참배 실현을 약속했다.하시모토총리는 지난 7월 야스쿠니신사를 공식참배하기도 했었다.나카소네 야스히로 전총리이후 2번째의 총리공식참배였다. 자민당은 선거를 앞두고 득표력을 높이기 위해 이같이 보수색을 강화시켰다.자민당의 승리는 선거제도가 중선거구제에서 소선거·비례대표병립제로 바뀐 때문도 있겠지만 보수색을 강화한 것이 주요 원인일 것으로 보여 주변국가들의 우려를 증폭시키고 있는 것이다. 평소 야스쿠니신사를 버젓이 참배하고 망언을 집요하게 해온 오쿠노 세이스케와 같은 정치인들도 대부분 당선됐다.이들은 앞으로 자신감을 갖고 보수화,군사대국화의 길을 주장하게 될것 같다.특히 이웃나라들의 이해에는 아랑곳하지 않은채 유엔안보리 상임이사국에 진입,강대국으로 발돋움하려는 노력을 강화할 것으로 보인다. 자민당은 지난 93년 총선에서 패배했지만 55년이후 만년여당이었다. 자민당은 일본의 번영을 가져오면서도 과거사 책임에 대해서는 소극적 입장으로 일관해왔다.또 소리가 크게 나지 않지만 꾸준하게 군사력을 증강시켜 왔다.이미 일본의 군사력은 세계 2위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망언을 늘어놓는 정치인들은 자민당 소속이 대다수를 차지해왔다.이런 자민당이 93년 패배를 극복하고 완연한 회복세를 보인 것이다. 일부에서는 보수세력이안정화됨으로써 오히려 여유를 갖게돼 이웃나라를 자극하는 일들을 삼갈 것이라는 관측도 내놓고 있지만 선거결과에서 보듯이 단순히 자민당의 승리를 넘어 일본사회가 총보수화되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도쿄=강석진 특파원〉
  • 「동아시아와 일본의 전후 50년」/국제심포지엄 주제논문 요약

    ◎본사·한양일본학회 공동 주최 서울신문사가 한양일본학회와 공동으로 주최하는 국제학술 심포지엄이 4·5일 이틀간에 걸쳐 한국프레스센터 20층 국제회의장에서 열린다.「동아시아와 일본의 전후 50년」을 주제로 한 이번 학술심포지엄에는 한국과 일본의 저명한 학자와 전문가 9명이 참가,한·일 양국이 공유할 수 있는 역사인식을 도출하기 위한 다각적인 의견개진과 함께 심도있는 토론을 벌인다.주제 논문 6편의 내용을 간추린다. ◎「탈아」시대에서 「입아」시대로/지명관 한림대 일본학 연구소장 19세기 후반 일본은 서구문명을 추종하는 「탈아」의 길에 들어섰다.이는 곧 제국주의로의 이행을 말한다.일본의 제국주의적인 침략은 아시아 국가에 반일의식을 불러일으켜 이것이 동북아의 탈아로 이어지게 된다.이에따라 아시아의 거의 모든 국가는 문명화라는 이름아래 탈아의 길을 걷게되었다. 전후 일본의 아시아에 대한 무관심은 계속되었다.그리고 동북아시아에 대해 취해온 자세에 대한 반성도 이렇다할 것이 없었다.이것은 다시 동북아시아의 탈아를 부추겼다. 그후 미·소 냉전체제에 접어 들어서면서 그 현상은 더욱 심화되었다. 아시아경제 규모가 커지고 일본의 아시아지역에 대한 수출비중이 대미 수출량을 능가하기 시작하면서 아시아의 「입아」가 새로운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근대사에 있어서 일본과 아시아의 탈아,그리고 과거의 차별의식을 청산함으로써 아시아 입아의 새로운 계기를 마련하려는 움직임이다.그런만큼 경쟁하면서도 협력한다는 마음가짐으로 어떻게 경쟁과 협력의 균형을 꾀하고 이를 어떻게 평화와 발전의 요인으로 삼을 것인가에 대해 다각적인 고찰과 현명한 판단이 요구되는 것이다. ◎전후 일본과 동아시아/다나카 나오키 평론가 60년까지 일본의 흐름은 경제부흥에만 급급해 중국 한국등 동아시아와의 외교에는 큰 비중을 두지 못했다.이후 60년에서 72년까지는 역사상 가장 높은 경제성장률을 기록하고,이케다,사토 정권은 경제를 정치와 연계시키려고 했다.미국은 68년 월남전에 참전한 이래 경제가 불안정하게 되었고 일·미간 무역마찰도 심해졌다.일본은 이에대한 회피책으로 엔화절상이란 정책을 택했지만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일본은 70년대 말에는 「일본 넘버원」이라는 평가가 나올 정도로 성장했다.그러나 한국,중국등 동아시아로의 관심은 높아지지 않았다.결국 일본은 경제적으로 성공을 이뤘지만 동아시아와의 외교면에선 성숙함을 보이지 못했다. 80년대 후반에도 거품경제로 동아시아에 대해 별 관심이 없었다.일본의 관심은 유럽이지 아시아가 아니었던 것이다. 일본 기업의 직접투자의 예를 보더라도 이러한 현상은 오늘날에도 이어지고 있다.중국과 대만간의 새로운 국면,권위주의 체제 이후의 새로운 테마,한반도 통일의 가능성등 이러한 동아시아의 상황에서 일본이 어떠한 외교를 해 나갈 것인가 주목되고 있다. ◎생활의 사상/이시재 카톨릭대 교수 전후 일본사상은 보수와 반체제등 대립의 상황이 전개되었다.90년대 현 시점에서 현대 일본의 대중사상을 특징짓는다면 「생활의 사상」이라는 개념으로 파악할 수 있다.80년대말 현실 사회주의 붕괴이후 새로운 패러다임을 추구하는 노력들이 곳곳에서 나타나는시점에서 생활의 사상은 새로운 대안을 추구하는 하나의 출발점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일본의 사상은 소극적인 측면과 생활현장을 특권화하는 경향이 있다.또한 일본인들의 자녀교육방법,즉 사회화의 방법에 있어서도 다양한 표현과 운동이 있다.「생활학」이라는 학문이 만들어진 것도 전후 일본의 독특한 현상이며 사회학에서의 「생활구조이론」,「환경론」 등은 일본의 사회과학에서 독특하게 발전된 이론들이다. 생활의 사상은 구조적 문제와의 관련성,인식의 어려움으로 자칫 고립성,폐쇄성에 빠지기 쉬운데,이는 개별적 생활경험이 사회과학적 통찰을 통해 반성될 때 객관화될 수 있다.현대 일본의 생활사상이 세계인식과 비판의 도구로 성립되기 위해서는 생활의 여러 이론들이 다양한 현실과의 대질을 통해서 더욱 연마되고 객관화할 필요가 있다. ◎일본의 전후 사상/가노 마사나오 와세다대 교수 전후 일본인들의 근대에 대한 인식은 세번의 변화를 보인다.첫째 「희망으로서 근대」상을 형성하던 시기이다.여기엔 봉건제의 극복이라는 기치아래 민주화의 내실이 강하게 담겨있다. 또 군국주의로부터의 해방이라는 의식은 근대화=민주화라는 등식 형성에 큰 기여를 했다. 서구시민사회를 전형으로 한 근대화개념이나 다른 사람들에 의한 「삶」의 강조도 큰 영향을 미쳤다. 그 다음 「풍요로움의 근대」로 대치된다.국제정세의 변화를 배경으로 전쟁과 궁핍으로부터의 탈출을 지향하게 된 것이다.이는 기술혁신과 고도성장의 결과로 일본주식회사가 형성되는 시기이다. 이들 단계를 통해 국가의 기본목표는 경제대국화에 놓여지고 국민총생산(GNP)의 성장과 근대화=생산력이라는 의식이 확대되었다.이 시기 「또 하나의 근대」는 석유파동이후 풍요로움이라는 척도로 오늘날에도 유지되고 있지만 그 달성감의 이면에는 생명,삶,환경등의 파괴나 격차의 확대라는 문제가 도사리고 있다.세계구조의 변화도 인식의 변화를 촉발했다.이로인해 「제도로서의 근대」라는 상이 사람들의 마음에 자리잡아가고 있다. ◎전후 일본문화론의 동향/하가 도오루 국제일본문화연구센터 교수 전후 일본내외의 일본론은 빠른 속도로변천해왔다.몇개의 예시를 하겠지만 먼저 적시할 것은 루스 베네딕트의 「국화와 칼」이다.이 책이 만들어진 것은 종전후 일본점령이라는 구체적인 필요에 의해 구상된 것이지만 일본학 전문가가 아닌 문화인류학자에 의해 집필됐다는 점에서 매우 독특한 책이다.이책은 절대 도덕기준을 가진 서양문화와 대비되면서 「부끄러움의 문화」와 집단주의적 사회행동이라는 패턴을 선명하게 드러내보이고 있다. 60년대 전후해서는 서구적 가치를 보편시하고 일본문화와 사회를 특수한 것으로 보아 이것을 자기부정의 성급한 동향에서 눈을 돌려 아시아도 포함하는 보다 넓은 시야에서 일본과 구미의 역사를 재조명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나기 시작됐다.라이샤워 등에 의해 일본근대화연구 시리즈가 나온 것도 이 때이다. 이후 일본의 근대화를 재평가하는 움직임이 더욱 두드러졌고 일본인의 역사적,사회적 정체성에 더욱 다양하고 세밀한 분석과 음미,그리고 비판이 뒤따랐다.한국의 지일파 이어령씨는 「축소지향형의 일본인」을 써서 서양형 확대를 추구하는 일본인들을꼬집었다. 그렇지만 일본경제의 팽창과 국내외적인 마찰이 많아지자 이를 비판하는 일본론이 구미측에서 널리 퍼지기 시작했다. ◎전후 일본인론의 동향/김용운 한양대 명예교수 전후 일본인론은 다음과 같은 3기로 나누어 볼 수 있다.제1기에는 베네딕트의 「국화와 칼」이 있는데,이 책의 내용은 분수를 지키는 일,의리와 은혜,부끄러움의 개념등 일본인들의 조직적인 생활규범을 부각시킨 것들이다.케인의 「일본일기」는 민주주의를 수용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일본의 반응을 기술하고 있다. 제2기에서는 일본인들의 특수성에 대해 좋게 보는 경향이 강하게 나타났다.70년대에는 일본 찬양론으로 방향을 잡았으며 일본의 성공적인 경제성장은 외국인들로부터 찬사를 받았다. 제3기에는 일본경제가 세계 제일이 되었을 때이다.이로인해 서구로부터 부정적인 반응이 나타나기 시작하자 이에대해 일본쪽에서도 「NO라고 말할 수 있는 일본」과 같은 책이 일본인에 의해 출간되기 시작했다. 이들 1,2,3단계중 외국인의 입장에서 보면 좌절­자신­오만으로 보이고 일본인의 입장에서는 동정­찬양­두드리기라고 할 수 있다.그동안 일본은 많은 변모를 해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므로 얼마든지 다른 일본인론이 쏟아져 나올 것이다.
  • “군기” 빠진 무질서/공유식 아주대 사회학과 교수(굄돌)

    일본의 백화점이나 상점에서 무엇하나 살라치면 아무리 간단한 것이라도 기분좋게 말끝마다 똑부러지게 「하이 하이」를 연발하며 굽실거려 일단 고객을 기분좋게 해준다.나 자신을 낮추고 상대방을 존중해 주는 전형적인 모습이다.그런데 놀라운 것은 그러한 말과 행동거지가 단지 상술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일상생활의 면면에 뿌리내려져 사회질서의 기초가 되고 있다는 점이다. 흔히 우리는 일본사람들의 그런 말과 행동이 우리가 그토록 중요시하는 정이 없는 그저 형식적이고 의례적인 것이라고 자위섞인 비판을 한다.그러나 여행객들은 일본의 자로 잰 듯한 질서정연함 속에서 불안감보다는 오히려 편안함을 느낀다.반면 외국인 여행자들이 한국에 대해 갖는 인상은 무질서에 가까운 자유분방함이며,그래서 편안함보다는 오히려 불안감을 갖는다.너무 비좁아 도저히 질서를 찾을수 없는 공항을 빠져 나오면 기다리는 것은 우리도 눈치를 봐 가면서 타야하는 택시이다.차가 넘치고 넘쳐서 모든 규칙이 무시되는 교통지옥에는 곡예운전이 최상의 방법이다.우리야익히 알고 있지만 여행객으로서는 불안하기 짝이 없다. 이제 무질서는 단순히 외국인 여행자를 불안하고 긴장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좁은 땅에서 살아남기 위해 가뜩이나 경쟁적이고 된 우리의 삶의 투쟁과 전쟁의 장으로 만들고 있다.오죽하면 귀가도 전쟁이고 휴가도 전쟁으로 표현하는가.이게 다 나 편한대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무질서의 결과이다.일본이 질서에 관한한 온 사회가 군사훈련을 받은듯 군기가 바짝 들어있다면,우리는 군기가 빠진 정도가 아니라 아예 군기가 없다. 또다시 군대문화로 돌아가도 좋으니 선후배를 따지고 선배 몰라본다고 두드려 패는,아무 쓸데없는 강압적 위계질서 말고 상대방을 먼저 생각하는 오싹할 정도의 질서(군기)확립은 어떨지.
  • 일 사민당/51년만에 해체 위기

    ◎중의원 40∼50명 신당 「민주당」 합류 전망/보수화 기류로 기반 상실 “예정된 행로” 일본 사민당(옛 사회당)이 51년만에 사실상 해체의 길로 접어 들었다. 사민당은 12일 상임간사회를 열어 당분간 참의원,지방조직,지방의원은 남아 있되 중의원 선거에 입후보할 중의원등은 하토야마 유키오의원,간 나오토후생상 등이 추진하고 있는 신당(잠정명 민주당)에 참가하는 것을 용인하기로 결정했다. 사민당 중의원 63명 가운데 신당으로 합류할 것으로 여겨지는 의원은 40∼ ­50명선.이로써 지난 45년 창당돼 전후 일본정치의 한 축으로 활동해 왔던 사회당(지난 1월 사민당으로 개칭)은 51년만에 해체의 길로 들어서게 됐다. 사민당이 이러한 결정을 내리게 된 것은 하토야마의 신당에 합류하려는 「창지회」,「리버럴 96」 그룹이 선거를 앞두고 신당으로 몰려 나갈 경우 사민당은 공중분해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사민당은 일본사회의 보수화 현상속에서 치러질 다음 중의원 선거에서는 20여명만이 당선되는 참패가 예상돼 왔다.이에 따라 사민당 안에서는 신당으로 이행해야 한다는 주장이 거세게 제기됐고 다음 총선에는 신당으로 임할 것이 결의되기도 했지만 사실상 신당으로의 이행은 좌절돼 왔다.사회당을 고수하려는 충성파와 당내 기득권을 놓지 않으려는 장로그룹들이 신중을 앞세워 반대해 왔기 때문이다. 결국 많은 의원들이 하토야마의 신당에 얹혀 갈 수밖에 없게 됐지만 그나마 당을 존속시키기로 고집하고 있는 것은 사민당에 대한 미련과 함께 연간 50억엔에 달하는 정당조성금을 받기 위한 것으로 분석된다. 하지만 막상 개인참여방식에 의한 창당작업을 벌이고 있는 하토야마의원등은 사민당의원들이 몰려 오는 것은 정당합당이나 마찬가지라면서 탐탁치 않게 여기고 있다.신당에 온다 하더라도 공천을 무조건 주지는 않겠다고 말하고 있기도 하다.일본 사민당 의원들은 보호해줄 아무런 힘도 갖지 못한 「망국의 백성」이 되고 있다.
  • 영 왕실 편찬 세계지도/“동해는 한국해”

    ◎229년전 발간… 미 교포가 구입 우리나라와 일본사이의 공해인 동해의 지명이 이미 2백29년전에 「한국해」(Sea of Korea)로 표기됐음이 드러났다. 이러한 사실은 그동안 동해를 둘러싼 한·일간의 오랜 지명분쟁 해결에 결정적인 자료가 될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영국의 조지 3세 국왕 집정당시(1760∼1820) 토머스 샐몬이 영국왕실의 명령을 받아 쓴 「지리및 역사 입문서」의 13쪽 세계 지도편에서 동해를 「Sea of Korea」로, 그리고 3백95쪽의 아시아 지도편에서는 「Sea of Corea」로 각각 표기했다. 1767년 6월 영국 에든버러에서 인쇄된 이 책은 서문에서 국왕인 조지 3세가 전세계의 풍속과 지리·날씨등을 기록한 안내책을 펴내도록 명령함에따라 집필,발간하게 됐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이 책은 4백32쪽에 게재된 중국 지도에서는 일본해(Sea of Japan)로 표기하는 등 혼선을 빚고 있었다. 이 책의 원소유주였던 윌리엄 H 밀턴씨는 책 안쪽의 제목밑에 『1782년 5월에 이 책을 구입함』 이라고 적어 놓고 있었다. 이 책은 지난 73년 미국으로이민,현재 뉴저지주 메이플우드에 살고있는 조대현씨(54·충북 제천 출신)가 지난 7월 중순 오랜 친구이자 현재 버지니아주 리치먼드박물관장인 조지 윌턴의 소개로 이 책을 소장하고 있던 조우 밀턴씨(리치먼드 거주)로부터 거액을 주고 구입했다.
  • MS사 CD롬 오기는 시정되어야(사설)

    ◎「한국 바로알리기」에 적극 나서자 한나라의 국제적 위치는 그 나라에 대한 학문적 관심과 정비례한다고 할 수 있다.그런 점에서 미국 마이크로소프트사의 CD롬 백과사전과 지도가 한국의 역사와 지리를 왜곡한 사실은 우리를 착잡하게 한다. ○범정부차원의 노력 배가를 마이크로소프트사의 CD롬 「엔카르타 월드 아틀라스」에 독도가 일본땅으로,백두산 천지가 중국땅으로 표기돼 충격을 안겨준데 이어 또 다른 CD롬 「엔카르타 엔사이클로피디어 96」에 서기 4세기경 일본이 한반도의 일부를 지배했다는 일본사학계의 왜곡된 「임나일본부」설이 그대로 기록된 것으로 밝혀졌다. 이 사건을 외국 기업의 부주의에 의한 사실왜곡이라고 가볍게 보아 넘겨선 안된다.지금 우리는 OECD 가입등 선진국 대열 진입을 앞둔 시점에 서있다.경제적으로는 한국의 국제적 위상이 높아졌음에도 불구하고 국제사회에 우리나라가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음을 이 사건은 극명하게 보여준다. 따라서 마이크로소프트사를 대상으로 왜곡사실의 시정과 문제된 CD롬의 리콜 등을 민간차원에서 강력하게 요구하는 한편 국제사회에 한국을 제대로 알리기 위한 전반적인 노력을 범정부적인 차원에서 대대적으로 펼쳐야 한다고 우리는 본다. ○한국왜곡 외국교과서 많다 오랫동안 문제가 된 외국 교과서의 한국왜곡이 지금도 여전하고 「브리태니커」를 비롯한 세계유수의 백과사전들에도 한국이 잘못 기술되고 있는 상황이다.지난해 교육부가 국회에 제출한 국정감사 자료에 의하면 「한국은 독일의 식민지」(멕시코)라든가 「남한의 수도는 평양」(스페인)이라고 기술하는등 어처구니없게 한국을 왜곡한 외국교과서가 아직도 비일비재하다.이런 외국문헌들이 고쳐지지 않는한 이번과 같은 사건은 계속 일어날 수 밖에 없다.마이크로소프트사의 한국 왜곡도 일본과 중국의 잘못된 문헌을 바탕으로 한 탓이다. 지난 82년 일본 교과서의 한국왜곡이 문제화 된 이후 잘못된 외국 교과서의 시정작업과 한국 제대로 알리기 노력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공보처에 「한국관 시정사업추진협의회」가 설치되기도 했으나 그 성과는 지지부진하다.외국교과서의 한국왜곡 현황 파악도 아직 전반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은 형편이다. ○인력·예산 모두 일본에 뒤져 지난 52년 설립된 일본의 국제교육정보센터는 외국교과서를 분석하고 잘못된 내용의 시정자료를 개발·배포하며 외국 교과서 제작 관련인사를 초청해 세미나를 갖는등의 작업에만 연간 몇백억의 예산을 투입하고 있다.우리는 지난 80년대 초에야 교육개발원에 그런 일을 맡은 기구를 만들었으나 일본의 5분의 1도 안되는 인력에 2천만원의 예산을 투입하고 있을 뿐이다.따라서 한해 고작 2∼3개국에 관계자를 파견해서 교과서를 수집하고 잘못된 내용을 분석해서 시정자료를 개발·배포하고 있으나 밑빠진 독에 물을 붓는 형국이다. 최근 총리실에 대외홍보위원회가 만들어져 그동안 외무부 공보처 교육부 문체부 등에서 개별적으로 펼쳐온 한국알리기 작업을 통합해서 그 효율성을 높이는 시도가 이루어지긴 했다.그러나 이번 사건은 당국의 한국 알리기 작업에 근본적인 허점이 있음을 시사한다.국제사회에 한국을 알리는 것도 정보화 시대에 걸맞는 전략을 갖추어야하며 문제가 생길때만 목청을 북돋우고 흥분하다가 금방 잊어버리는 우리의 자세를 바꾸어야 한다. ○기업도 「한국학」 적극지원을 당국은 충분한 인력과 예산을 투입해서 한국에 관한 외국문헌의 잘못된 점을 시정하고 체계적·지속적으로 국제사회에 우리의 참다운 모습을 알려야 할 것이다.한국에 대한 인식 개선을 위한 기반사업인 한국학을 진흥시키기 위해 민간차원의 학술교류도 활발히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외국에서의 한국학에 대한 지원이 일본학에 대한 일본의 지원에 비해 5%에 불과하다고 한다.한국학 발전을 위한 당국과 기업의 적극적 지원도 요청된다.
  • 대북문제 한·일 전략적 협조 긴요/오코노기 마사오(지구촌 칼럼)

    ◎4자회담·일­북 수교 등 기본 틀 조율 바람직 지난해 2차례에 걸쳐 실시된 북한에 대한 쌀지원(55만t)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북한과 일본사이에는 국교정상화 교섭이 재개되지 않고 있다.지난 3월 중순에는 북경에서 외무성 담당과장급의 접촉이 있었고 그 뒤 양측 외무성 외곽단체간의 교류가 실현됐지만 결국 커다란 성과는 없었다. 오히려 그 사이에 독도를 둘러싼 한·일간 감정마찰이 높아진데다 북한대사관원이 관계된 동남아시아에서의 위조달러화사건,일본으로부터 북한으로의 화학물질 밀수사건,비무장지대에서의 북한군의 불온한 행동등이 잇따른 탓으로 북·일교섭재개의 움직임도 좌절되고 말았다. ○일 전폭적 지지 표명 그러나 그 이상으로 중요한 것은 4월 중순 김영삼·클린턴 회담에서 중국을 포함한 4자회담제안이 발표돼,이것이 북·일교섭재개에 브레이크가 되고 있다는 점이다.왜냐하면 북한측의 긍정적인 회답이 있기 전에 북·일교섭을 재개하는 것은 일본정부의 4자회담 지지 입장과 일치하지 않을 뿐아니라 그것을 방해하는 행위가 되지 않을까라는 배려가 있기 때문이다. 사실 한·미 양측으로부터 사전에 설명을 들었기 때문에 일본정부는 4자회담제안에 신속하게 반응했다.하시모토 총리는 바로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위해 커다란 의의가 있으며 일본으로서도 이를 지지한다』는 담화를 발표했다.또 클린턴 대통령과의 미·일정상회담에서도 『북한에 일련의 움직임(비무장지대에서의 불온한 행동)이 있어 현재는 본교섭에 나설 상황이 아니다』라고 설명했던 것이다. 게다가 총선거가 끝나길 기다려 한국을 방문한 연립여당대표단도 4자회담제안에 전면적인 지지를 표명하고,북·일교섭재개에 대해서는 한국과의 연대·협조를 배려,신뢰관계를 유지하면서 진행시킬 것을 약속했다.야마사키 단장은 김영삼 대통령에게 『북·일국교정상화는 정부간 외교가 정면에 나와 진행돼야 한다』고도 분명히 말했다. 야마사키 정조회장이 정부간 외교를 강조한 것은 과거에 가네마루 신·와타나베 미치오등 자민당 유력자가 사회당이나 신당사키가케의 대표단과 함께 북한을 방문해 한국과의 관계를 혼란시켰던 사실에 대해 반성한데 따른 것이다.따라서 일본의 대북한외교의 이니셔티브는 자민당으로부터 외무성,외무성으로부터 총리관저로 옮겨가고 있다고 보아도 좋다. ○북 변칙 제의 가능성 다만 북한이 4자회담에 긍정적인 태도를 보이는 경우,북·일교섭이 재개를 향해 움직여 나가는 것은 거의 확실하다.이런 의미에서는 일본측의 신중한 태도가 북한에 4자회담의 수락을 재촉하며,북한의 긍정적인 태도가 북·일교섭재개를 재촉하는 것이 된다.6월 김영삼·하시모토회담에서도 4자회담과 북·일교섭은 이렇게 연결됐다고 보아도 좋을 것이다. 남은 문제는 이러한 연계를 어디까지 강력하게 유지해야만 하는가라는 한·일 양측의 「의사와 전술」의 문제다.양자를 강하게 연계시키면 북·일교섭의 재개는 곤란하게 되지만 4자회담에 대한 북한측의 태도도 경화될 것이다.또 한국은 4자회담 실현후 북·일국교정상화에 협력적이지 않으면 안되게 된다. 한편 느슨한 연계도 가능하다.예를 들면 한국정부가 주장하는 4자회담에 대해서의 「3자설명회」(남북한과미국)가 실현돼 한반도의 평화체제에 대한 논의가 진전되면 그것은 사실상의 「3자회담」을 의미하게 된다.북한은 굳이 중국의 참가를 요구하지는 않을 것이다.그렇다고 한다면 「3자설명회」의 개최가 북·일교섭재개의 계기가 될지도 모른다. 또 지금까지의 주장으로 본다면 북한측은 이러한 대등한 형식의 3자회담보다는 「변칙3자회담」,즉 남북회담과 북·미회담의 개별 내지는 평행적인 개최를 주장할지도 모른다.그들이 무엇보다도 기대하고 있는 것은 「미국과 북한에 의한 평화보장」이며 북·미평화협정을 체결함에 따라 안전보장분야에서 한·미동맹과 대항하기 위한 거점을 확보하는 것이다. 여하튼 북·일국교정상화를 단순한 외교문제로서 생각해도 좋을 시기는 과거사가 됐다.폭력적인 사태를 회피하면서 북한의 단계적인 개방을 촉진시켜 한반도 통일에 따르는 코스트를 분산시키는 것이 한·일 양측의 목표라고 한다면 북·일 관계정상화도 그러한 커다란 틀속에서 논의되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예를 들면 북한의 조기붕괴를 기대해 북·일국교정상화를 조금이라도 늦춰야만 할 것인가,아니면 북·일국교정상화는 교차승인을 완성하고 한반도의 평화체제구축에 기여한다고 생각할 것인가.또 이는 일본자본의 북한 진출이라는 의미에서 경계의 대상이 돼야할 것인가,아니면 통일코스트의 분산(선행자본)이라는 의미에서 환영받아야 할 것인가.이러한 전략적인 문제에 한국측도 차츰 명확한 회답을 보여주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한국서 전략 제시를 역사의 무거운 짐으로부터 도망칠 수 없는 일본으로서는 장래에 예상되는 공동작업을 위해 스스로 이니셔티브를 발휘하기는 곤란하다.그러나 지역적인 경제대국으로서 일본은 동북아시아의 국제경제 시스템을 유지할 책임을 면할 수 없다.바꿔 말하면 북한 정세에 대처하기 위한 최초의 전략적 처방전은 한국측이 제시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이다.
  • 조선총독/이땅에서 저지른 온갖 만행 고발

    ◎가람기획,광복51주년 맞아 「조선총독 10인」 펴내/의병학살·토지수탈 등 죄목 낱낱이 밝혀/김삼웅·정운현씨 등 친일문제연구가 7인 공동집필 지난 6월 일본 문부성은 역사교과서 검정과정에서 『국가간 전후 보상문제는 완전 해결됐다』고 기술토록 저자들에게 요구했다고 한다.『위안부 문제 등은 그 후에 나온 개인적인 요구』라는 것이다.끝없는 침략전쟁 미화 발언·독도망언 등 일본의 이같은 역사몰각 태도는 도대체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그 후안무치함의 뿌리는 일단 그들의 극도로 이기적이고 편협한 애국심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한 「일본적 애국심(충성심)」의 화신이라고 할 수 있는 일제시대 조선총독들의 죄상을 낱낱이 들춰낸 연구서 「조선총독 10인」(가람기획)이 최근 출간돼 관심을 모으고 있다. 「조선총독 10인」은 일제하 친일 반민족주의자들의 행적을 연구·조사,그 실태를 공개해온 친일문제연구회(회장 김삼웅)가 「일제잔재 19가지」「친일변절자 33인」「반민특위」「일제침략사 65장면」에 이어 펴낸 역사자료집.특히이 책은 광복 51주년을 맞은 오늘의 시점에서 광복의 의미를 객관적인 시각에서 냉철하게 짚어보고,일본의 실체를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한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조선총독은 일제강점기 일왕의 대리권자로서 조선의 제반 통치행정을 책임졌던 장본인이자 우리 독립운동가들에게는 「처단 제1호」의 대상이었다.이들은 마치 식민지 이전의 조선국왕과 같은 지위를 누리며 행정·입법·사법·군사통수권까지 장악한채 조선을 포괄적으로 통치했다. 친일문제연구가 김삼웅·정운현,국사학자 조명철씨 등 7명이 공동 집필한 이 연구서는 초대 조선통감 이토 히로부미와 초대 조선총독인 데라우치 마사다케에서부터 마지막(9대) 조선총독 아베 노부유키에 이르기까지 일제 조선통치의 최고책임자 10인의 행적을 더듬는다. 1905년 초대 조선통감에 부임해 1909년까지 4년여동안 통치한 이토는 제왕에 버금가는 권세를 누리며 의병학살·토지수탈 등 온갖 만행을 저질렀다.그는 경운궁의 호칭을 덕수궁으로 고쳐 이곳에 고종을 유폐하고,순종을 허수아비로 만들어 창덕궁에 안치시켰다.또 고종이 귀여워한 왕자 은을 인질로 일본에 끌어가기도 했다. 초대 조선총독인 데라우치 마사다케의 만행 또한 이토에 못지않다.데라우치는 일제가 한국을 침략하는 데 중추세력을 이뤘던 조슈 번(장주번) 군벌을 계승한 대표적인 무사였다.1910년 10월 초대총독이 된 데라우치는 무사출신답게 헌병경찰제도와 조선주차군을 도구삼아 무단정치를 강행,조선인의 생살여탈권을 쥐고 흔들었다.그는 통감부시대의 각종 악법위에 다시 조선민사령,조선형사령,조선보안법,조선태형령,범죄즉결례 등을 제정해 조선인의 민족운동을 압살했다. 1916년 조선에 온 제2대 총독 하세가와 요시미치는 의병운동과 3·1운동을 무차별 탄압해 결국 1919년 총독직에서 물러났으며,이어 제3대 총독에 오른 사이토 마코토는 이른바 「문화정치」로 포장된 강압통치로 우리 문화를 말살하고 민족을 분열시켰다.이와 관련,김익한씨(배재대 강사)는 『사이토 총독이야말로 일본사회의 「혼네」(속마음)·「다테마에」(겉으로 나타내는 표현방식)구조를 전형적으로 체현한 인물』이라며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식민지 근대화론」도 현상적 「다테마에」의 측면보다는 「혼네」의 측면이 평가의 기준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밖에 이 책은 황민화정책을 통해 천황제 이데올로기를 주입시키기 위해 광분한 제7대 조선총독 미나미 지로,태평양전쟁 개전이후 조선을 「결전체제」로 끌어올려 인적·물적 자원을 수탈한 제8대 고이소 구니아키 등의 만행에 대해서도 소상히 밝힌다. 일제시대사 특히 일제침략사는 조선총독에 대한 연구를 빼놓고는 첫 장을 써나갈 수도 없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에 관한 국내 학자들의 연구는 거의 「백지상태」인 형편이다.이같은 반성에서부터 비롯된 「조선총독 10인」은 독립운동사연구에만 매달릴 뿐,정작 침략원흉에 대한 인물연구를 소홀히 하고 있는 우리 역사학계에 보내는 하나의 경종이 될 만하다.
  • 일 군국주의 부활하는가(사설)

    패전 51주년이 되는 15일,일본 도쿄는 사뭇 추모와 경배의 분위기였다고 한다.6명의 현직각료와 1백83명의 현역의원이 대거 야스쿠니신사에 참배했을 뿐 아니라 야스쿠니신문(신문) 입구에는 불타는 전투기에 몸을 싣고 미군 함정을 향해 돌진하는 가미카제특공대의 모습등 섬찍한 전쟁기념화전이 열리고 있었다.또 군국일본군의 제복에 대형 일장기를 앞세운 2차대전 참전병사의 추모행사도 있었다. 이런 일이 처음 있는 것은 물론 아니다.그러나 그 규모나 분위기가 달라지고 있다는 데 유의하지 않을 수 없다.86년이래 중단된 일본총리의 야스쿠니 참배가 지난달 29일 재개된 데다 전후 한때 금기시돼오던 일본 각료의 신사참배가 이제 공식화돼가고 있다. 『일본사람이 일본의 가미사마(신)를 참배하는 데 무엇이 잘못이냐』고 항변하는 일본인이 있으나 2차대전의 A급전범이 추모의 대상이 된다면 그 전범으로부터 참략을 받고 수없이 죽어간 피해국민은 어떻게 되는가.『태평양전쟁이 백인침략으로부터 아시아를 지키기 위한 위대한 전쟁이었다』면 백인 아닌일본인의 침략을 받은 다른 아시아인은 또 어떻게 되는가. 우리는 도쿄의 「8·15」분위기가 일본의 모든 것이라고는 물론 생각지 않는다.일본의 시사주간지 「아에라」가 최근 조사한 것을 보면 일본국민의 74%는 태평양전쟁이 침략전쟁이었다고 믿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국가정책이 건전한 시민의 상식에서가 아니라 소수 강경론자에 의해 결정되는 경우가 흔히 있다는 사실에 있다.도조(동조)의 군국주의 하에서도 이를 비판하던 세력이 일본내에 없었던 게 아니다. 일본인의 마음속에 대국의식이 확대되는 추세에 있고 이것이 일본의 경제력과 결부돼 어떤 결과를 빚을지에 대해 우리는 우려하고 있는 것이다.세계는 일본의 보수화 내지 군국화에 항상 경계를 게을리해서는 안된다.
  • 8월 남산의 일본인들/안병준 특집기획부장(서울논단)

    애국가 2절의 「남산」은 우리의 기상을 상징한다.그래서 남산은 비단 서울사람들만의 것이 아닌 것이다.봄 여름 가을 겨울 많은 사람들이 남산을 찾는다.외국인들에게도 남산은 주요 관광코스의 하나이다.남산에는 서울시가 지난 94년 복원한 봉화대를 비롯해 많은 유적과 기념관들이 산재해있다. 광복51주년을 맞는 1996년8월의 남산.안중근의사기념관과 서울시과학교육원 사이 주차장에 대형 관광버스들이 거의 시간대별로 일본인 관광객들을 쏟아놓고 있다.그들의 계층은 다양해 보인다.초등학생들도 있다.그들은 각본을 짠듯이 식물원을 배경으로 ○○견학단이라는 플래카드를 앞에 들고 사진을 찍는다.그리고 삼삼오오 흩어져 이것저것을 구경한다.꼼꼼한 국민성답게 대부분 열심히 기록을 한다.식물원은 일제 때 신사가 있던 자리이다. 남산으로 피서를 온 한국인들은 느티나무 아래에서 낮소주를 마시며 담소를 한다.그들의 대화는 광범위하다.제6차 범청학련통일대축전을 둘러싼 경찰과 학생들의 충돌,97년 대권을 향한 정치권의 혼전,8·8개각에서의 국방장관 유임,공권력을 무시한 강력범죄의 잇단 발생,경제난과 무역수지적자,곰발바닥을 찾는 한국인관광객의 추태,사치와 과소비풍조 등등.어떤 사람들은 라면박스를 펴고 낮잠을 잔다.평화롭다.담론과 평화를 사랑하는 백의민족.그들 사이로 조깅을 좋아하는 미국인 세명이 땀을 흘리며 지나친다.무표정한 얼굴로 한국인들을 내려다 보며.미국인들은 아마 휴일을 맞은 미8군 병사들이었으리라. 법무부에 따르면 한국을 찾는 일본인들은 91년 이래 꾸준히 증가,지난 5년간 7백68만명 이상인 것으로 집계했다.열린 세계화(Globalization)시대에 이들 모두가 물론 정탐원은 아니겠으나,우리는 지난 역사를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조선은 세종 때 신숙주가 일본을 방문한 이후 무려 134년동안 일본을 가지 않았다.그에 반해 일본은 임진왜란 1년전인 1591년만 해도 이런저런 신분으로 무려 5천명을 보내 조선을 정탐케 했다. 일본은 항상 미래에 대한 준비를 철저히 하는 민족으로 유명하다.첨단기술을 바탕으로 한 일본의 군사력은 올4월 미국과 일본이 신안보선언을 함으로써 아시아·태평양 지역에 대한 영향력을 더욱 확대할 것이 분명하다.한양대 김경민 교수는 최근 일본의 군사력을 분석한 논문에서 『일본은 적의 레이더를 피하는 스텔스폭격기와 실전에서 F­15 및 F­16이 대항하기 어려운 F­2전투기는 물론,세계 정상급의 구축함과 잠수함 생산능력을 확보하고 있다』며 『일본은 비상사태가 발생하면 언제든 우수한 기술력으로 핵무기는 물론 첨단무기를 대량생산할 능력을 갖추고 있다』고 분석했다. 지난 1월 일본 보수우익의 대표적 인물인 하시모토 류타로 총리가 자민·사회·신당사키가케의 3당 연립정권을 출범시킨 이래 계속되고 있는 일본각료들의 신사참배와 망언도 우리가 유념해야할 부분들이다.그들은 「치고 빠지는」 전략을 반복하고 있는 것이다.안중근의사기념관측에 따르면 지난 7월 일본사회당 간사장 사토 간즈 등 참의원일행 9명을 비롯,한해 9천명 정도의 일본인들이 꼭 안의사기념관을 찾았다.대한민국 국회의원들은 잘 찾지도 않는 이곳을 왜 그들이 열성적으로 오는가.그들의 영웅 이토 히로부미를쏴죽인 안의사 영정 앞에서 그들은 무엇을 생각한 것일까.또 무엇을 기원했을까. 8월의 남산은 우리들에게 「대비」를 요구하고 있다.그런데 우리네는 뭔가 빈수레처럼 시끄럽기만 하다.낮소주로 시끌버끌 결론없는 담론만 나누는 한국인들 너머 서울하늘이 뿌옇다.
  • 일 관방 망언 배경과 정부 대응

    ◎일 보수층/남북통일에 부정시각 표출/“이미 사과했다” 정부선 일단락 움직임 『한반도에 분쟁이 발생할 경우 일본내에서도 남북간의 내분상태가 되어 시가전,게릴라전이 예상된다…』는 가지야마 세이로쿠(미산정육)일본 관방장관의 망언은 한반도와 한국인을 바라보는 일본 보수층의 시각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것이다. 특히 지금까지 일본 정치인들의 망언이 주로 과거사와 관련된 것이었던데 비해 가지야마 장관이 8일 야마나시 현에서 개최된 일경련 주최 최고경영자 세미나에서 했다는 한반도 관련 망언은 양국의 현재,미래 상황에 대한 것이어서 주목된다. 일본정부는 지금까지 한반도의 안정과 평화적 통일이 일본의 국익과 합치한다는 공식적인 입장을 계속 되뇌어 왔다.그러나 일본정부의 대변인인 가지야마 장관이 『무엇보다 무서운 것은 남북한이 함께되고(통일되고) 미국이 존재하지 않는 상황으로서,한국은 확실히 피폐해질 것이며,그렇게 되면 식민지 시대의 배상을 재차 제기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고 발언한 점을 보면 한반도 통일에 대해일본 보수층은 상당히 부정적 시각을 갖고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일본육사 출신으로 자민당의 원로그룹인 가지야마 장관의 이같은 발언은 지금까지의 과거사 망언이 그렇듯 몇가지 노림수를 갖고 있다. 우선 실질적으로는 자민당이 추진하고 있는 이른바 「유사립법」을 강하게 뒷받침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자민당은 현재 한반도에서 분쟁이 발생할 경우,난민의 유입을 전제로 질서유지를 위한 자위대의 활동범위 등을 규정하는 입법을 추진하고 있다. 가지야마의 발언은 지난해 종전 50주년을 계기로 급격히 보수화·국수화되어가는 일본사회의 흐름을 타고 있는 것이다.하시모토 류타로(교본용태낭)총리가 현직총리로서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한 것과 맥락을 같이한다.자민당은 늦어도 내년 2월 안에는 치러질 총선을 염두에 뒀다는 해석이다. 가지야마의 발언내용이 매우 충격적인데 비해서 우리 정부의 대응은 다소 미온적인 것으로 보인다.외무부는 9일 상오 가지야마 장관이 김태지주일대사에게 전화를 걸어 사과의 뜻을 표명하자 곧바로 이를 받아들인뒤 사태를 일단락지으려 하고 있다.한 당국자는 『가지야마 장관의 발언은 개인의 특수한 생각이 아니라 일본내에서 널리 거론되는 말들의 일단을 표출한 것일 뿐』이라고 말했다. ◎일관방 망언 정치권의 반응/여­“일 당국자 국제감각 부재” 질타/야­“좌시못할 비이성적 발언” 비난 여야는 9일 「한반도 유사시 일본 국내에서 남북간 시가전이 예상된다」는 내용의 일본 가지야마 세이로쿠 관방장관의 망언에 대해 오랜만에 한목소리로 일제히 비난하고 나섰다.신한국당은 일본 당국자의 국제적 감각의 부재를 질타했고,국민회의와 자민련은 한걸음 더 나아가 사과를 요구했다. 신한국당 김철 대변인은 성명을 내고 『유사시에 대한 일본인의 개별적 상상에 대해서는 말하고 싶지 않다』며 조심스런 반응을 보이면서도 『일본 내각의 대변인격인 관방장관이라면 당국자로서 예의를 갖춰야 하며 결과에 대해서도 책임있는 사과를 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대변인은 『일본 정치인들의 일견 무신경해 보이는 일련의 경박한 발언의 배경에는 최근의 복고적 분위기가 작용하고 있다고 본다』고 풀이했다. 국민회의 박홍엽 부대변인은 『일본이 이웃 국가의 국민감정은 아랑곳하지 않고 비이성적인 발언을 서슴지 않는 것을 볼 때 과연 우리와 미래를 함께 할 동반자인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며 『괴상한 망상으로 우리민족에게 모욕을 주는 것은 도저히 좌시할 수 없는 망발』이라고 비난했다. 자민련 이규양 부대변인은 『일국의 각료로서 최소한의 양식과 과거 역사에 대한 죄의식도 없이 이처럼 서슴없는 망언을 일삼고 있는 것은 국민 모두의 지탄을 면치 못할 것』이라고 비난했다.
  • 일 관방 망언 파문 확산/외무부 유감 표명… 민단비난 성명

    ◎가지야마 망언 사죄 정부는 9일 가지야마 세이로쿠(미산정육) 일본 관방장관의 한반도 관련 망언과 관련,『일본정부의 각료가 유사시에 대비한 법률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과정에서 한국통일에 대해 비우호적인 생각을 언급한데 대해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면서 『일본의 국법을 준수하며 일본사회에 건설적 기여를 하고 있는 재일한국인에 대한 경계심을 조장하는 발언을 한 것도 심히 유감된 일로 생각된다』고 밝혔다. 외무부의 서대원 대변인은 이날 성명을 통해 『정부는 이 기회에 일본의 지도층 인사들이 올바른 역사인식과 참다운 선린우호정신에 입각하여 양국간 진정한 미래지향적인 관계의 구축을 위해 노력해 나갈 것을 촉구한다』고 말했다. 【도쿄 연합】 재일대한민국민단 중앙본부와 조총련은 9일 가지야마 세이로쿠(미산정육) 일본 관방장관의 한반도 유사 폭언을 비난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민단은 신용상단장 명의의 성명에서 『가지야마장관의 발언은 지역사회에서의 공생을 바라는 재일한국인에게 찬물을 끼얹고 평화스런 재일동포사회에 풍파를 일으키려는 유감스런 발언』이라고 비난했다. 【도쿄=강석진 특파원】 가지야마 세이로쿠(미산정육) 일본 관방장관은 한반도 유사시 일본국내에서 남북간 내분가능성을 언급한 자신의 발언을 둘러싼 파문과 관련,9일 김태지주일대사에게 전화를 걸어 사죄의 뜻을 표명했다고 주일대사관이 밝혔다. 『가지야마 장관은 이날 김대사에게 8일 야마나시(산이)현 강연에서 자신이 한 한반도 유사관련 발언의 경위를 설명하고 부적절한 사례를 들어 한반도와 관련해 지나친 이야기를 함으로써 한국정부와 국민에게 폐를 끼치게 된 데 대해 사과 및 사죄의 뜻을 표명했다』고 대사관측은 전했다.
  • 일 민족주의 부활을 경계한다(박화진 칼럼)

    『근대 일본사의 일관된 목표는 일본민족의 우월의식을 바탕으로한 아시아 제패였다.도쿠가와 막부 말기에는 「아시아 연대」로,메이지 시대에는 「대아시아주의」로,그리고 쇼와 시대엔 「동아연맹­대동아 공영권」이란 모습으로 나타났다.이름만 다를뿐 그것은 일본이 지배하는 아시아 건설이었고 일본의 번영을 위한 아시아의 희생을 의미하고 있었다.그리고 그러한 목표의 추구가 결국 2차대전으로 이어졌고 수많은 아시아인과 일본인의 희생을 가져오는 좌절의 결과를 낳았다』 일본 근대정치사를 연구하고 있는 저명한 국제정치학자의 「일본의 국가주의」란 저서에서 내리고 있는 결론이다. 다시 8월이고 우리에게는 광복절이지만 일본에게는 패전기념일인 51번째의 「8·15」를 맞으면서 점점더 공공연해지고 노골화되고 있는 일본민족주의 부활을 상징하는 총리·각료 및 정치인들의 야스쿠니(정국)신사 참배및 종군위안부 대응,극우파의 독도영유주장 한국대사관 자동차테러 그리고 계속되는 각종 망언소동 등을 보면서 다시 한번 되새기고 음미하게 되는의미심장한 지적이 아닐수 없다. 야스쿠니(정국)신사는 무엇이며 우리와 중국등 아시아 이웃들의 격렬한 반발에도 불구하고 왜 일본총리를 비롯한 일부 각료·정치인들은 해마다 기어이 그곳을 참배하려드는 것인가.야스쿠니신사는 도쿄중심가에 자리잡고 있으며 2백50여만명의 일본전몰자 위패가 안치된 말하자면 일본국립묘지와 같은 곳이다.메이지 유신 이듬해인 1869년 「초혼사」란 이름으로 문을 열었으며 야스쿠니신사로 개명된 것은 그 10년 뒤로 「국사로 죽은자」를 이곳에 합사하기 시작해 지금에 이르고 있는 것이다.그렇다면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져야 할 일본총리및 각료들의 참배가 아닌가.그런데도 해마다 이웃나라들의 격렬한 반대에 부딪치고 문제가 되는것은 그것이 갖는 상징적 의미와 배후에 숨겨진 불순한 의도 때문이다. 야스쿠니신사에는 도조 히데키(동조영기)를 비롯 군국일본을 주도하고 2차 세계대전을 일으켰으며 패전후 연합군 전범재판에 회부되어 단죄당한 7명의 A급전범 위패도 지난 78년부터 합사되어 있다.현직총리나 각료가이곳을 참배한다는 것은 곧 군국일본의 침략전쟁을 공인하고 그 주모자들을 추도·추앙하는 결과가 되는 것이다.독일의 경우와 비교한다면 히틀러와 나치스를 공인하고 추모·추앙하는 것과 같은 꼴이다. 특히 48년 처형 당하기전 45년에 자살을 기도하기도 했던 도조는 군국주의 일본이 범한 과오와 지은 죄과에 대해서는 단 한마디의 사죄나 반성도 없이 다음과같은 독기어린 유서를 남긴 인물이다.『일본은 힘이 모자라 졌을 뿐이다.나는 이 사실을 인정한다.하지만 영미국인 당신들은 원자탄으로 죄없는 무수한 비전투원을 죽였다.나는 이 사실을 고발하지 않을수 없다.일본국민은 힘이 모자라 졌지만 조국은 불멸이란 사실을 잊어서는 안된다.일본은 앞으로 다시 일어날 것이다』 아시아를 위한다는 구실로 한반도를 식민지화하고 중국을 침략했는가 하면 그를 통해 확립한 아시아패권을 지키기위해 미국을 상대로 전쟁을 일으켜 아시아에 참을수 없는 재난과 희생을 강요한 일제는 전혀 잘못이 없다는 너무도 당당하고 오만한 자세가 아닌가.그러한 그의 78년야스쿠니신사 합사는 「사실상의 사면」을 의미하는 것이었으며 총리와 각료들의 야스쿠니신사 참배는 곧 그들 전범과 그들의 생각,그들이 이끈 군국주의 일본에 대한 참배요 공인이며 「공식사면」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일본총리와 각료의 끈질긴 야스쿠니신사 참배노력은 입만 열면 사죄를 하고 곧바로 망언으로 그것을 뒤집는 오늘의 일본도 결국은 지난날의 군국주의·제국주의를 내심으로는 결코 잘못된 과오로 생각지 않고 있으며 도조가 지적한 것처럼 힘이 모자랐을 뿐이라고 생각하고 있다는 행동의 증거라 할수 있다.과거를 잘못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것은 언제든지 다시 그러한 행동을 되풀이할 수도 있음을 보여주는 증거이기도 하다. 그동안의 모든 행동이나 정황증거로 미루어 일본은 정치·군사대국화와 새로운 아시아지배의 패권추구를 지향하고 있음이 분명하다.그것은 이제 어느 누구도 어쩔수없는 방향으로 보인다.구미의 장벽에 막혀 탈구입아로 돌아선 일본은 다시한번 아시아를 기반으로 51년전의 좌절을 설욕해보려 하는 것이 아닌가 우려를 갖게한다.이미 중국과의 아시아 패권경쟁은 시작된 조짐이다.우리에게도 냉전시대의 자유우방은 아닌 느낌을 주고있다.일본민족주의에 희생당한 구한말의 비극을 되풀이않고 우리와 아시아의 21세기 평화와 번영을 지킬수 있기 위해 무엇보다 긴요한 것은 오로지 정확한 일본파악과 부국강병의 빈틈없는 자강노력임을 명심해야 할것이다.총리·각료 등의 야스쿠니신사 참배 등 최근 일본이 보이고있는 변화는 그것을 일깨우는 경고로 받아들여야 할것이다.
  • 김치와 일본인(외언내언)

    『요즘 일본사람도 제법 매운 음식을 즐겨 먹고 있다.특히 젊은 세대는 매운것을 즐겨 먹는 사람이 꽤 많다.그렇게 된 가장 큰 이유는 뭐니뭐니 해도 역시 김치가 보급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지난 94년 서울신문사가 국내 처음 마련한 「한국김치대축제」의 한 행사 「외국인김치글짓기대회」에서 준장원을 차지한 일본인 후세 겐이찌씨의 글은 이렇게 시작한다.그의 글을 좀더 읽어 보자.『일본의 여러 도시나 지방의 식료품점을 들여다 보면 김치 없는곳이 없다.작은 가게에도 꼭 한두가지가 놓여 있고 슈퍼마켓 같은 곳이라면 몇가지나 놓여 있다.그중에서도 가장 인기있는것이 한국에서 수입된 것이다』 겐이찌씨는 한국김치가 인기있는 이유로 다음 3가지를 든다.첫째는 맛.일본의 「가짜김치」(기무치)와 한국의 「진짜김치」맛은 비교가 안된다는것.둘째는 자연재료를 사용해 건강에 좋다는것.인공양념과 조미료를 사용하는 일본김치보다 값이 비싼데도 한국김치를 즐겨 사먹는 이유다.셋째는 김치가 건강뿐 아니라 미용에도 좋다는것.고춧가루에 몸의 지방을 분해하는 성분이 있고 김치의 섬유질이 장운동을 활발하게 한다.한국여성의 피부가 아름다운 이유는 김치를 즐겨먹기 때문이라고 김치 먹는 일본인들은 생각한다는것. 농촌진흥청 농촌생활연구소가 한국인과 일본인을 대상으로 최근 실시한 「김치 기호도」조사결과 일본인들이 김치를 더 좋아하는것으로 나타났다.맛 냄새 색 질감등 김치에 대한 항목별 기호도에서 평균 7.7점(만점 9점)으로 한국인들의 6.3점보다 더 높았다는것.반면 한국의 남자어린이 10.4%와 도시 여대생 5.8%는 아예 김치를 먹지 않으며 매끼 김치를 먹는 여대생은 31.7%에 불과했다. 이러다가 김치종주국의 위치를 일본에 넘겨줄까 겁난다.지난 93년 한국방문에 앞서 일본에 들른 클린턴 미국대통령부부에게 김치를 대접한 일본은 94년 한국에 앞서 김치의 국제규격화를 시도한 바도 있다.세계 김치시장의 70%는 일본의 「기무치」가 차지하고 있기도 하다.일본인들이 한국김치를 좋아하는것은 기분 좋은 일이지만 우리가 김치를 외면하고 김치의 지적소유권을 잃는것은 어리석은 일이다.〈임영숙 논설위원〉
  • 재일교포/퇴거 강제·지문날인 의무 배제해야

    ◎「한·일협정개정안」에 관한 공청회/“문화재 약탈 불법이므로 반환” 내용 명문화해야 「한일협정개정안」에 관한 공청회가 26일 세종문화회관 대회의장에서 열렸다.한일과거청산 범국민운동본부(상임의장 김명윤 국회의원)가 주최한 이 공청회에서는 강창일 배재대 교수와 한상범 동국대 교수,이장희·노명준 외대 교수,정인섭 서울대 교수,김대순 연세대 교수가 분야별로 주제발표를 했다.이 가운데 두교수의 발표내용을 요약한다. ◇재일교포법적지위협정(정인섭 교수)=재일교포의 법적지위는 1991년 「재일교포후손 법적지위 보장에 관한 한일 양국 외무장관 합의각서」의 체결로 많은 개선이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그러나 1965년 한일협정 체결 당시를 추적해보면,한마디로 일본정부의 역사적 책임 방기와 한국정부의 기민정책의 발로였다는 것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일본은 재일교포 발생의 역사적 책임은 망각한 채 한 사람이라도 더 내쫓는 것을 목표로 했고,한국은 식민지배 피해자인 재일교포의 비참한 현실을 외면하고 협정의 체결에만 급급했다. 앞으로는 무엇보다도 재일교포의 존재에 대한 일본정부의 역사적 책임 인정과 아울러 재일교포는 외국인이기에 앞서 일본사회의 구성원이며 그렇기에 이들에 대한 포괄적인 내국민 대우 원칙을 천명할 필요가 있다. 현재 제기되고 있는 구체적 권리 요구 항목은 ▲퇴거강제의 완전배제 ▲재입국 허가제의 배제 ▲지문날인 의무 배제 ▲외국인 등록증 휴대의무 배제 ▲민족교육 확보에 대한 제도적·재정적 지원 ▲사회보장의 동등 대우 ▲취업보장(사기업 취업 고취,지방공무원·교원채용의 완전개방) ▲지방참정권 인정 등으로 이에 대한 구체적인 실시가 명시되어야 한다. ◇한일 문화재협정(김대순 교수)=먼저 문화재 약탈은 불법임을 명시해야 한다.따라서 새로운 협정의 명칭도 「대한민국과 일본국간의 문화재 반환및 문화협력에 관한 협정」으로 바뀌어야 한다. 현행 협정은 문화재 반환을 요구할 한국정부의 법적 권리의 성격이 모호하기 짝이 없다. 따라서 개정안의 전문에는 「특히 과거의 전시(임진왜란)또는 식민통치 시대에 직접,간접으로 발생한강제적인 문화재의 반출과 소유권의 양도는 불법으로 간주하고 이러한 문화재들을 반환함을 원칙으로 하며,확인한다」는 내용을 추가해야 한다. 또 일본정부는 문화재 반환에 관한 적극적 협력의무를 명문화해야 한다. 다음은 한일 양국정부가 주도하여 양국의 전문가 회의를 설치,일본 소재 한국 출처 문화재를 완벽하게 목록화하는 작업이 선결되어야 한다. 또 조사된 문화재는 신속히 반환되어야 한다. 또 합의의사록에 규정된 「사유문화재의 자발적인 반환의 규정」에 입각한 실천적 조치를 명문화한다. 반환비용에 대해서도 특히 사유문화재는 일본정부의 합리적인 지원이 있어야 한다는 점을 새롭게 규정하여야 한다.〈정리=서동철 기자〉
  • 일,자녀와 함께사는 가정 33%뿐/후생성 생활기초조사 결과

    ◎고령화 가속… 노인 단독세대 전체 30% 자식이 없는 일본가정이 전체 가구의 3분의 2에 달하고 혼자 사는 노인도 10년 사이에 배로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일본 후생성이 13일 발표한 95년 국민생활기초조사 결과에 따르면 지난 85년 조사당시에는 자식있는 가구가 절반을 넘었으나 이번 조사에서는 33.3%로 감소했다. 또 혼자 사는 노인(65세이상)의 수도 85년의 14.6%에서 30.1%로 늘어났으며,자식없이 부부들만 사는 고령자(남자 65세,여자 60세이상)가구도 과거 최고인 5백61만6천가구로 전체의 13.8%로 추계되는 등 일본사회의 소자·고령화가 더욱 두드러지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1가구당 가족수 역시 전년조사보다 0.04명이 줄어든 2.91명으로 과거 최저를 기록했다. 반면 가구당 연간 평균소득은 6백64만2천엔으로 전년보다 6만7천엔이 늘어난 것으로 조사됐다.〈도쿄 연합〉
  • 극한 치닫는 일 우익 근성/도쿄 한국대사관 테러 계기로 본 실태

    ◎92년현재 850단체 조직원 12만여명/과거사 규명 등 불안감이 폭력 “부채질” 일본 우익들이 발호하고 있다.주일한국대사관에 12일 우익단체 「황국헌정당」 차량이 돌진한 사건은 우익들의 한국에 대한 발호가 테러성 폭력으로까지 나아가고 있음을 보여준다. 일본의 우익단체는 지난 92년 6월 8백50여개 단체,12만명의 조직원이 소속돼 있는 것으로 조사된 바 있다.우익이 공통적으로 표방하는 것은 「천황」숭배 반공주의에 입각한 국가주의이다. 우익단체들은 전전부터 계보를 이어받은 조직도 있지만 70∼80년대에 걸쳐 급격히 늘어났다.배경에는 60년대 대학에서의 신좌익운동에 대항하기 위해 신우익이 탄생했고 70년대 들어서는 폭력단에 대한 단속이 강화되면서 총회꾼이나 폭력단들이 우익 정치단체로 간판을 바꿔 달고 활동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경찰은 우익단체들 가운데 활동적인 단체가 7백50여개,조직원은 1만5천명정도로 보고 있다.특히 이 가운데 앞서 말한 폭력단 계열의 우익은 3백20여개 단체에 4천2백명 정도로 추산하고 있다. 한국대사관에 차량을 돌진시킨 황국헌정당도 일본경찰은 폭력단이 앞세우고 있는 우익단체일 것으로 보고 있다.이들은 우익단체 가운데 그다지 이름이 알려져 있지는 않았지만 지난 6일 16명이,8일에는 3명이 구일본군 군복차림으로 대사관 앞에서 독도반환등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였다.85년 결성된 이 단체는 에히메현(시코쿠지방) 도요(동자)시에 본부를 두고 있으며 회원수는 10∼20명 정도로 알려져 있다. 이 단체의 총재는 지하정명(56)으로 알려져 있으며 지난 93년 10월 5일 러시아대사관에 연막통 5개를 투척,단원 2명이 체포된 바 있다. 최근들어 우익들은 일본사회의 전반적인 보수 우경화에서 힘을 얻는 반면,과거사에 대한 최소한의 진실등이 교과서에 반영되는 실태에 초조감을 느껴왔다.이것이 우익정치인들로 하여금 줄을 이어 망언하도록 만들고 단체들로 하여금 테러성 행동에 나서도록 하고 있는 것이다.또 우익들에게는 뒷돈을 대는 세력도 있다. 이들은 한국 공관뿐 아니라 러시아와의 북방영토문제,프랑스의 핵실험,중국의 핵실험과 군비증강등 국가주의적 요소가 개입될 여지가 있는 문제가 있는 경우 해당국 대사관에 몰려 가 시위를 벌이곤 한다.〈도쿄=강석진 특파원〉
  • 「일의 중국정책 변하고 있다」/마이클 그린·폴 니츠(해외논단)

    ◎일의 중국정책 냉전이후 강경선회/중 팽창정책 경계… 미와 안보위협 강화 등 적극대응/양국관계 악화땐 아태안보 중대위험 초래 가능성 중국에 대한 일본의 정책기조가 적대적으로 바뀌고 있으며 양국관계의 악화로 자칫 아태전역에 큰 불안이 초래될 수도 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일본이 미국과 군사동맹관계를 강화하고 지역분쟁에 적극개입을 다짐하는등 최근 지역안보와 관련해 적극적인 움직임을 보이는 것도 주목적은 중국의 팽창주의를 막기 위한 것이라는 분석이다.미국방위분석연구소의 마이클 그린 선임연구원과 존스 홉킨스대 부설 국제연구소의 폴 니츠교수가 공동집필해 미시사계간 「서바이벌」 여름호에 기고한 「일본의 중국정책이 변하고 있다」를 요약소개한다. 지난 40여년의 냉전기간에 일본의 중국정책은 기본적으로 유화적이고 저자세적인 것이었다.그런데 냉전시대가 마감되자 일본의 중국정책도 변하기 시작했다.일본은 중국이 아시아지역에서 새로운 강대국으로 탈바꿈해 팽창정책을 펴려는 움직임에 대해 적극적인 대응을 모색하고 있다. 과거 일본은 가능한 한 중국에 가까워지려고 노력했다.1960년대 들어 일본은 중국의 최대교역국이었고 72년 미국이 중국과 국교정상화를 이루자 일본은 기다렸다는 듯이 그 뒤를 따랐다.89년 천안문사태이후 제일 먼저 중국에 대한 원조를 재개한 나라도 바로 일본이었다. 최근 변화의 첫번째 기점은 냉전종식이다.최근에 중국이 감행한 일련의 핵실험,대만에 대한 무력시위,영유권분쟁이 있는 일부영토에 대한 영유권주장등을 보는 일본의 태도는 분명 예전과 다르다.60년대 중·소분쟁이후 미·일·중국은 아시아에서 소련의 팽창정책을 저지하자는 일종의 공감대를 갖게 됐다.그래서 일본은 72년 국교정상화,79년의 평화우호조약체결 때 중국과 함께 발표한 공동성명에서 명백히 소련을 지칭하는 「패권주의에 대한 경계」를 명문화했던 것이다. 그런데 냉전의 종식은 일본 안보정책의 최우선대상을 소련 대신 남북한문제,지역영유권분쟁등 지역문제로 바뀌게 만들었다.미국도 일본에 대해 지역분쟁에 보다 큰 역할을 해주도록 주문했다.그렇게 해서 76년에체택된 일본의 방위계획대강(NDPO)이 수정됐다.새 방위계획대강은 냉전이후 새로운 안보위협에 대처하는 미·일협조관계를 한층 더 강조했다. 일본의 방위담당자들이 1차로 염두에 둔 것은 한반도의 돌발사태였다.지난 93년 미국이 북한에 대해 금수 및 봉쇄조치를 계획했을 때 일본의 효과적인 지원태세미비가 문제가 된 적이 있기 때문이다.그런데 중국으로서는 한반도 돌발사태에 대한 미·일공조가 대만해협 긴장에도 똑같이 적용될 수 있다는 점이 꺼림칙했다. 중국은 미·일안보동맹의 강화를 자국안보에 위협요인으로 생각했다.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미국이 탄도미사일방어체제인 전역미사일체제(TMD)구축에 동참하라고 일본측에 요청한 것이다.일본도 이를 필요하다고 판단했다.92년 북한이 노동1호미사일을 동해쪽으로 시험발사하자 일본으로서는 이에 대한 필요성이 더 절실해졌다. 중국은 이에 대해 매우 과격한 반응을 보였다.미·일의 합동미사일체제가 중국의 핵억지력을 크게 위협한다는 것이다.중국은 일본을 겨냥한 다탄두미사일을 배치하겠다고나섰다.일본 역시 무기현대화·핵실험·영토문제등과 관련한 중국의 팽창주의에 경계심을 드높였다. 일본 국내정치의 판도변화도 영향을 미쳤다.일본정계의 세대교체는 다나카 전 총리 같은 친중국인사의 영향력을 급속히 약화시켰다.사회당과 일부 언론등 일본사회의 전통적인 친중국여론층도 일제히 중국의 강대국화에 대해 경계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과거사문제에서도 일본의 새 세대 정치인은 공세적인 자세를 취했다.이 정도 선에서 중국도 일본의 사과를 받아들여야 하며 더이상 과거를 들먹이지 말라는 식이다.경제면에서도 부정적인 요인은 적지 않다.예를 들어 95년도 일본의 대중국 무역적자액은 1백40억달러에 달했다.적자액이 누적될 경우 자칫 중국이 일본국민감정의 표적이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가 없다. 일본은 중국의 팽창주의를 저지하기 위해 미군사력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판단한다.그래서 주일미군의 계속주둔등 미·일군사협력을 강화하고 재무장은 물론 집단자위권발동을 추진한다.일본의 이같은 움직임은 중국에 대한 「제한적인 억지전략」이라고 할 수 있다.그래서 일본은 미국뿐 아니라 아세안(동남아국가연합)과 안보대화를 확대하고 중국이 지지해온 미얀마에도 원조를 재개했다.아울러 금년 3월 이케다외상이 모스크바를 방문하는등 러시아를 지렛대로 다시 끌어들이려는 노력도 보이고 있다.혼자서 중국을 억제하기는 힘겨우니 미국과 러시아를 적극 이용하겠다는 것이다.일본이 지향하는 바는 다자간안보체제다. 미국·중국,그리고 아세안국가등 모든 이해당사국은 중국에 대한 일본의 정책기조가 달라지고 있다는 점을 깨닫고 하루빨리 적절한 완충장치를 만들어내야 한다.이 두 나라가 정면충돌해 적대관계로 돌아설 경우 이는 아태국가 모두에게 손실이기 때문이다.〈미 방위분석연 연구원·우드로 윌슨연 교수/정리=이기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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