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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中서부 대개발 현장을 가다](6)다국적기업들 각축장

    산악과 사막으로 뒤덮인 불모의 땅 서부는 중국 역사에서도 늘 주변부의 설움을 겪어왔다.개혁·개방 이후에는 낙후된 경제때문에 국내총생산(GDP)의 평균치를 갉아먹는 ‘천덕꾸러기’로 취급받을 정도였다.하지만 4년 전 서부대개발을 계기로 서부는 세계적인 다국적 기업들의 투자 경쟁장으로 바뀌면서 서서히 역사의 전면에 등장하기 시작했다.지금까지 서부의 대표적 거점도시인 청두(成都)와 충칭(重慶),시안(西安) 등 3개축으로 몰렸던 다국적 기업들은 현재 신장(新疆)·윈난(雲南)·광시(廣西) 등 외각지역으로 투자 범위를 확대 중이다.대부분 지역이 교통 인프라가 구축되는 과정이기 때문에 동부같은 열풍의 수준은 아니다.그럼에도 시장 선점과 내수시장 확대를 위해 다국적 기업들은 투자의 시동을 걸면서 암중모색하고 있다. |청두 충칭 시안 오일만특파원|일본 최대 자동차 메이커인 도요타가 중국 서부에 진출한 것은 1998년.서부대개발의 거점인 쓰촨(四川)성 정부의 끈질긴 요구를 받아들여 95년부터 3년 동안 시장조사에 착수,합작회사인 쓰촨펑톈치처(四天豊田汽車)유한공사를 설립했다. 성도(省都)인 청두(成都) 외곽지역에 자리잡은 도요타 공장은 정문부터 일반 중국 공장과 다르다.시원한 잔디밭이 펼쳐져 있고 일본 특유의 깔끔한 인상이 한눈에 들어온다. 2층 사무실에는 직원들이 컴퓨터와 전화통에 매달려 업무에 열중이고,사무실앞 흡연실에는 중국어와 일본어가 뒤섞여 흘러나와 50 대 50 중·일 합작회사임이 실감난다. ●“서부를 잡아라” 도요타는 1998년 서부대개발 직전에 청두에 진출했다.매년 30% 안팎의 판매 신장률을 기록중이다.톈진(天津)·청두의 완성차 공장을 비롯,중국 전역에 40여개의 부품공장이 있다. 도요타의 서부지역 공략은 서부대개발 시점과 공교롭게 맞물려 순항중이다.이소가이 마사시(磯貝匡志) 총경리(사장)는 서부대개발로 교통 인프라가 구축되면서 자동차 수요가 증가 일로에 있다며 “2000년대 들어 불기 시작한 관광붐도 일조하고 있다.”고 최근 분위기를 설명했다. 이소가이 총경리는 수요자들의 욕구를 충족시키는 새로운 모델들을 계속 개발 중이라며 “산악지대가 많은 서부에서는 승용차보다 미니밴이나 버스가 더 효율적”이라고 설명했다. 곽복선 청두 코트라 무역관장은 “다국적 기업들의 초기 진출시 투자유치에 혈안이 된 성 정부의 파격적인 지원을 받았다.”며 “청두만 해도 500대 다국적기업들이 선점의 효과를 노려 경쟁적으로 진출중”이라고 밝혔다.투자의 60∼70%가 홍콩·타이완의 자본이지만 미국과 일본·독일 등 대기업들이 앞다퉈 문을 두드리는 상황이다. ●타이완 기업들의 본토 공략 청두는 교통 요충지이자 서부 거점도시답게 타이완이나 홍콩 자본들의 투자 열기도 뜨겁다.90년대 중·후반부터 충칭직할시(3000만명)를 포함,쓰촨성(1억 1500만명)의 내수시장을 겨냥한 투자가 활발했다. 청두 시내에서 자동차로 한시간 거리의 해협양안(海峽兩岸) 기술산업개발구에 위치한 퉁이(統一)식품유한공사도 비슷한 케이스다.타이완 7대 재벌인 퉁이그룹이 청두에 진출한 것은 지난 1993년이다. 음료수와 간이국수 등 식품 종합회사인 퉁이그룹은 80년대 개혁·개방이 시작되면서 본토 투자를 시작했고 현재 50개의 생산기지에 모두 18억달러(2조 1600억원)를 투자했다.청두 공장만 1년 매출액이 10억위안(1500억원)에 달한다. 타이완인인 저우창잉(周長盈) 관리부장은 “현재 쓰촨 음료수 시장의 40%,편의국수는 30%의 시장을 점유하고 있다.”며 “타이완에서 최고의 기술을 가져와 품질에는 손색이 없다.”고 자랑했다. 하지만 퉁이도 초기에는 고전을 면치 못했다고 한다.공장 설립부터 관여했다는 저우 부장은 “5년 동안 수익이 없다가 6년째 비로소 이익을 남겼다.”며 “브랜드 인지도가 높아지고 시장에서 호평을 받은 것이 주효했다.”고 설명했다.뤄훙빈(羅洪斌) 판공실(홍보실)직원은 “지금은 중국 가짜 제품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고 귀띔했다. ●세계적인 IT기업들 다투어 진출 IT 분야의 다국적 기업들은 서부지역 정중앙에 위치한 시안에 눈독을 들이고 있다.지난해부터 미국 IBM은 2000만달러(240억원)를 투자, 시안소프트웨어 연구소를 합작 설립했고 미국 HP사는 5000만 달러(600억원) 규모의 전자비즈니스 기술센터를 세웠다. 시안시 판공실 청리쥐안(成麗娟·여) 주임은 “시안을 서부의 IT 중심기지로 육성한다는 것이 중앙정부의 확고한 방침”이라며 “시 정부도 세금 우대는 물론 물류비 지원까지 외국자본에 대해 최대한의 편의를 제공할 것”이라고 밝혔다. 2∼3년전부터 다국적 기업들이 청두 등 중점도시에 IT 공장 설비를 세우기 시작해 최근에는 연구개발기지 건설 붐이 유행처럼 일고 있다.미국의 모토롤라와 일본 도시바·산요 등 인터넷 시스템 연구 등 첨단기술 개발에 시동을 걸었다. ●IT 연구개발기지 이전 가속화 네덜란드 필립스사는 최근 본부의 기초실험실을 아예 시안으로 옮겼고 인텔과 마이크로소프트사 등은 현재 이전을 전제로 시장조사에 착수했다. 서부에 진출한 한국 IT기업 1호인 시안화천통신유한공사 한일수 총경리는 “시안이나 청두·충칭 등은 50년대 말부터 중국이 국방 과학 연구기지로 육성했던 곳”이라며 “현재 과학기술 전문인력이 130만명이 넘고 인건비도 상하이 등과 비교해 3분의 1에 불과하다.”고 설명했다. 시안의 경우 현재 50여개의 전문대·대학교,140여개의 과학기술연구소가 있다. 최근 들어 투자 유치에 기를 쓰는 다른 서부지역에도 서서히 열기가 전해지고 있다.윈난의 경우 산악지대에 산재한 약초산업을 바탕으로 미국이나 스위스 등의 제약회사들이 합작투자를 진행 중이고 광시의 경우 동남아 진출을 위한 홍콩기업들이 들어와 있다. 하지만 서부지역이 동부 연안지역처럼 투자에 불이 붙으려면 경제 인프라가 어느 정도 구축된 4∼5년 이후라는 것이 대체적인 시각이다. ●물류중심 기지로 몰리는 외국 자본 인구 3000만명의 충칭시는 최근 싼샤(三浹)댐 개통과 함께 동·서를 잇는 물류 전략기지로서 각광을 받고 있다. 1998년 이곳에 진출한 프랑스 자본의 충칭 자러푸(家樂福)는 중산층의 성장과 함께 대형 슈퍼마켓으로 확실하게 자리잡았다.자러푸는 21개 도시에 36개 체인점을 갖고 있으며 서부에만 4개의 지점이 있다.지난해 매출액은 110억위안(1조 6500억원)에 달했다. 충칭시 중심가 맨화제(棉花街)에 위치한 자러푸는 평일에도 북적거릴 정도로 성업중이다.허페이룽(何沛溶) 총경리는 “싼샤댐 건설로 인한 물류비용이 30% 이상 절감돼 보다 저렴한 가격에 물건을 공급하고 있다.”며 “서부 대개발로 인민들의 소득이 올라갈 것에 대비해 우루무치 등 각성의 거점도시에 지점을 신설,중국 전역에 70개의 체인점을 세울 것”이라고 청사진을 밝혔다. oilman@ ■이소가이 ‘도요타 청두’ 사장 |청두 오일만특파원|서부대개발의 핵심 거점도시인 쓰촨(四川)성 청두는 다국적기업들의 경쟁장으로 변한 대표적 도시다.쓰촨펑톈치처(四天豊田汽車) 유한공사의 이소가이 마사시(磯貝匡志·사진) 사장은 “아직 미개척지인 만큼 동부보다 서부가 빠른 속도로 자동차 소비가 늘고 있는 중”이라고 밝혔다.이소가이 사장은 현대 쏘나타가 중국에 입성했다는 소식을 들었다며 “앞으로 좋은 경쟁자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서부에 투자한 이유는. ­쓰촨성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 약속과 회사의 종합적인 전략이 서로 맞아떨어진 결과다.동부지역에로의 몰림 현상을 해소하고 내수시장을 보다 확대한다는 것이 회사 전략이다.50대 50의 합작회사를 세워 역할 분담이 잘 이뤄지고 있다. 소기 목표는 달성했는지. ­2001년 2000대를 팔았고 올해 목표는 3300대다.내년에는 5300대가 목표다.서부지역이 차지하는 GDP(국내총생산)는 14%에 불과하지만 도요타의 중국 전체 판매량중 26%에 해당된다.서부대개발과 함께 소득 수준이 높아지고 관광사업이 활발해지면서 자동차 수요도 함께 늘고 있다. 도요타의 성공비결은. ­(웃으면서)아직 성공이라고 말하기는 이른 것 같다.판매가 늘고 있는 것은 무엇보다 품질이 좋아졌기 때문이다.고객들의 입을 통해 우리 차가 광고됐고 판매 실적도 향상됐다.판매망(대리점)을 34개에서 64개로 늘린 것도 주효했다. 현재 자동화율은 10% 미만이고 앞으로도 늘릴 계획은 없다.이 때문에 중국 근로자에 대한 교육 훈련이 가장 중요하다.우리는 매년 일본 본사로 중국 직원들을 보내 교육 훈련을 실시하고 있다. 앞으로 치열한 각축장이 될 텐데. ­업체끼리 경쟁도 치열해지고 있지만 수요자들의 품질 요구도 높아지는 추세다.우리는 차종을 늘리고 시장조사를 통해 수요자들의 요구를 최대한 수용한다는 방침을 정했다.
  • “무념무상속 옛도공 솜씨 되살리죠”/‘이도다완’ 대가 민영기 씨

    도예가 민영기(閔泳麒·56).그는 오늘을 살고 있는 옛 도공이다.임진왜란 이후 400여년간 국내서 완전히 자취를 감춘 ‘이도(井戶)다완’을 다시 탄생시킨 장본인이다.지난 78년 가마를 박은 경남 산청군 단성면 방목리 ‘산청요’에서 옛 솜씨로 요즘 그릇을 만들며 전통을 계승하고 있다.대학 졸업후 ‘늦깎이’로 도예에 입문했지만 타고난 성실함과 열정,그리고 실험정신이 오늘의 그를 가능케 했다.그는 지난 4월 일본 도쿄의 고미술화랑 ‘고주쿄(壺中居)’에서 세번째 다완전을 열었다.고주쿄는 100년 이상의 전통을 자랑하는 화랑인 데다 당시 가져간 이도다완 30여점은 전시회가 열리기 전 모두 판매될 정도였다.일본서 다완으로는 이도를 첫째로 친다.이도다완은 아주 자연스럽고,아무렇지 않은 소박한 그릇이지만 조건은 까다롭기 그지없다.우선 굽이 듬직하게 높고,몸통이 곧게 벌어져야 하며,유약은 황백색이어야 한다.그밖에 바닥의 비짐눈 자국과 몸통의 물레 흔적,굽의 대나무마디 자국 등도 따진다.조선시대 경남 일대에서 만든 것으로 추정되는 이도다완은 임진왜란 당시 일본으로 건너가 소박하고 꾸밈없는 아름다움으로 일본사람들을 사로잡았고,특히 말차(抹茶)잔으로 각광받았다. 민씨는 “이도다완은 흙이나 몇가지 형태와 유약등 외형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라면서 “욕심없이 만들고,쳐다 봐서 마음이 편하면 그것이 바로 이도”라고 말한다. 그리고 “조선시대 잘 만든 그릇을 보면 ‘황금분할’을 발견할 수 있다.”면서 “당시 상당한 기술 수준의 도공들이 특별한 기교를 부리지 않고 일상적으로 무념무상의 상태에서 만들었을 것”이라고 말했다.황금분할(Golden Section)은 조형예술 분야에서 다양한 통일의 원리로 널리 활용되는 가장 조화로운 비례(1:1.618).고대 로마의 건축가 ‘비트로비우스’가 그리스의 건축양식에 이 비례가 적용된 것을 발견한 이래 중시돼 왔다. 민씨는 1947년 산청에서 태어났다.부산 동아대 원예과를 나온 그가 도자기와 인연을 맺게 된 사연은 남다르다.대학 시절 부산 고미술협회장을 맡은 사촌형의 영향으로 옛 도자기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마침 조선도공의 후예로서 일본의 5대 도예가문으로 손꼽히는 ‘나카자토(中里)가문’의 13세손인 나카자토 다로우에몽(中里太郞右衛門)이 모국귀향전을 가졌다.나카자토는 선대로부터 물려받은 도예기술을 모국의 젊은이에게 되돌려 주려는 계획도 갖고 있었다. 민씨는 도자기에 관심은 많았지만 그때까지 물레를 돌려보지는 않았다.그러나 나카자토는 오히려 이 점을 높이 사 그를 문하생으로 거뒀다.이렇게 해서 일본으로 건너갔지만 수업은 상상 밖으로 힘들었다.일본사람에게 질 수 없다는 의지는 앞섰지만 무엇보다 그를 괴롭힌 것은 일본적인 치밀함과 완결을 위한 끊임없는 추구였다.이때 익힌 치밀함과 완전함으로 이도다완을 재현할 수 있었고,30년이 지난 지금 그에게 가장 큰 장점이 됐다.하지만 당시로서는 참기 어려운 고통이었다.이를 익히는 데 당초 예정한 3년이 부족해 2년을 더 보태야 했다. 5년 만에 귀국한 민씨는 산청에 가마를 박고 분청사기를 만들었다.꾸준히 도자기를 만들었지만 ‘나카자토식’으로 훈련된 조형감각을 털어내지 못해 고민했다.자신에게 채워진 스승의 흔적을 지우기 위해 그는 박물관과 국내에 흩어져 있는 옛 가마터를 답사했다.그곳에서 접하고 눈에 익힌 옛 도자기를 스승으로 삼아 무언의 가르침을 받고서 비로소 털어낼 수 있었다. 그가 다완에 관심을 갖게 된 때는 지난 90년.평소 민씨의 물레질을 아끼던 당시 국립중앙박물관장 정양모(鄭良謨·현 경기대 석좌교수)씨의 소개로 세계 제일의 다완평론가 하야시야 세이조(林屋晴三·74)를 일본서 만난 것이 계기였다.정씨는 “옛날 솜씨로 요즘 것을 만들어 보자.”면서 이도다완을 다시 만들도록 권유했다.하야시야도 “일본사람이 못 만드는 그릇을 만들면 일본서 전시회를 열어주겠다.”면서 부추겼다. 그로부터 7년간 그는 다완이라는 화두를 붙들고 씨름을 했다. 일본의 명품 이도다완을 직접 만져 보고 감을 익히며 작업을 되풀이했지만 만족스러운 결과는 나오지 않았다.그 시절 그는 1년에 1만개씩 다완을 만들어 깨버려야 했다.한 해에 15번씩 가마에 불을 지피고,가마에서 나온 300여점 중 10점만 남기고 나머지는 모두 부숴버렸다.민씨는 “10점을 골라내려면 눈알이 빠지고 머리가 빠개지는 듯했다.”고 고통스러웠던 당시를 떠올렸다. 방황의 세월을 보내고 이도의 모습이 드러나자 지난 96년 5월 일본 도쿄의 고미술화랑 고주쿄에서 처음 전시회를 열었다.당시 반응은 “정말 이도다완답다.”는 것이었다.이도다완의 재현을 꿈꿔온 하야시야는 “민영기의 이도다완”이라고 극찬했다.그후 2001년과 올 4월에도 같은 장소에서 전시회를 열었다.그래서 그런지 그는 국내보다 오히려 일본에서 더 유명하다. 민씨는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우리나라 도예는 암흑기를 맞았다.”면서 “만드는 사람이 없으니 사용하는 사람도 없고,그러니 안목이 없어져 좋은 그릇을 만들지 못했다.”고 말한다. 그는 작가로서 상당한 경지에 다다랐지만 아직도 만족하지 못하고 물레를 돌리고 있다.좋은 흙을 찾아 산청 골짜기를 뒤지는 것도 모자람을 채우기 위함일 것이다. 그의 꿈은 한 차원 높은 이도다완을 만드는 일이다. 산청 글·사진 이정규기자 jeong@
  • [씨줄날줄] ‘히로히토 기념관’

    일본의 히로시마는 인류 최초의 원폭 피해 현장이다.미국은 1945년 8월6일 히로시마에 원자탄을 투하했다.히로시마 평화공원에는 원폭의 아픔이 그대로 남아 있다.‘원폭 돔’과 평화기념자료관의 수많은 피폭자료들은 원폭피해의 참혹함을 증언하고 있다.히로시마 피폭 현장을 최초 보도한 영국 신문 ‘데일리 익스프레스’는 “폭발 중심부에 가까이 있었던 수천명은 흔적조차 남지 않았다.”고 전했다. 일본의 원폭 피해는 참혹했다.일본인들은 비극적인 피해자들이었다.그러나 일본은 히로시마와 또 다른 원자탄이 투하된 나가사키에서만 피해자다.일본 본래의 모습은 전쟁 가해자다.일본의 군국주의는 한국·중국 등 많은 아시아인들을 죽음으로 몰아넣었다.일본의 식민지 지배와 태평양 전쟁에서의 잔혹함은 역사의 어두운 장으로 남아 있다.미국의 역사학자 허버트 빅스는 그의 저서 ‘히로히토와 현대 일본 만들기’에서 히로히토 일왕이 일본의 침략전쟁에 깊숙이 관여했다고 말했다. 일본정부는 전쟁에 책임이 있는 히로히토 왕을 기념하는 ‘히로히토 기념관’을 건립하기로 했다고 한다.도쿄 근처 다치카와(立川)시에 있는 쇼와(昭和)기념공원에 ‘쇼와천황기념관’을 2005년에 개관할 예정이라고 한다.쇼와는 히로히토 왕 재위기간(1926∼1989년)에 사용된 연호(年號)다.일본정부는 또 히로히토 왕을 기리기 위해 일본판 식목일인 4월29일을 ‘쇼와의 날’로 바꾸기로 했다. 일본에서는 이처럼 히로히토 왕을 우상화하고 있다.이는 일본사회 우경화 움직임의 한 단면이다.일본은 북한의 군사적 위협과 미국의 지원을 배경으로 군사력 강화를 가속화하고 있다.그런 가운데 일본이 히로히토 왕을 우상화하는 것은 과거 침략에 대한 사죄를 더욱 어렵게 한다.일본은 자신의 ‘천황’을 부정할 수 없어 침략행위에 대한 사죄에 소극적인 면이 강했다. ‘히로히토 기념관’에는 일왕 부부의 유품이 전시될 예정이라고 한다.유품들이 전시되는 것은 당연하다.유품만이 아니라 전쟁 가해자의 자료도 전시하면 어떨까.히로시마 평화기념관에 피해자 자료를 전시하듯 ‘히로히토 기념관‘에 전쟁 가해자의 자료도 전시한다면일본의 평화 사랑 의지가 진솔하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을 것이다. 이창순 논설위원
  • 정명훈·도쿄 필하모닉 내한공연

    한국을 대표하는 지휘자 정명훈을 지금은 일본사람들이 더 좋아하는 것 같다.일본에서 인기가 하늘을 찌르는 정명훈이 이번에는 90여년 전통을 가진 도쿄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를 이끌고 내한한다.29일 부산문화회관,30일 대구 경북대 대강당,31일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이다. 1911년 나고야의 청소년 오케스트라로 출범한 도쿄 필하모닉은 2001년 신세이니혼(新星日本)오케스트라와 합병하여 166명의 단원을 거느린 일본 최대의 교향악단으로 거듭났다.이 즈음 정명훈도 도쿄 필하모닉의 특별예술고문으로 취임했다. 이후 정명훈은 도쿄 필하모닉과 정기연주회를 지휘하는 것을 비롯하여 지난해 6월부터는 베토벤 교향곡 전곡연주회를 갖고 있다.오는 12월22일 ‘에그몬트’서곡과 합창 교향곡으로 대미를 장식한다.지난 6월21일에는 ‘심포닉 재즈’연주회를 열어 바칼로프의 ‘미사 탱고’를 일본 초연했고,나흘 뒤에는 베토벤의 교향곡을 발췌한 ‘청소년을 위한 파워 뮤직’을 지휘하여 높은 평가를 받았다. 이런 성가를 바탕으로 정명훈은,일본의 대표적 음악잡지 ‘Mostly Classic’이 지난달 실시한 ‘2002년 독자들이 뽑은 지휘자’에서 2위에 올랐다.1위는 발레리 게르기예프,‘일본의 자존심’ 오자와 세이지는 3위로 밀어냈다.도쿄 필하모닉 역시 ‘일본 최고의 오케스트라’에서 NHK교향악단을 제치고 2위를 차지했다. 1위는 요미우리 교향악단이었다.음악전문지 ‘음악의 벗’도 최근 정명훈을 사이먼 래틀,발레리 게르기예프와 함께 ‘차세대 위대한 지휘자 3인’으로 선정하여 특집기사를 실었다. 라디오 프랑스 필하모닉 음악감독 및 상임지휘자,로마 산타체칠리아 오케스트라 상임지휘자도 겸하고 있는 정명훈은 이번 내한 무대에서 말러의 교향곡 1번 ‘거인’과 브람스의 피아노 협주곡 1번을 들려준다.피아노는 역시 한국이 자랑하는 백혜선이다. 한편 정명훈과 도쿄 필하모닉은 내한에 앞서 26·27일에는 싱가포르에서 공연한다.일본 바이올리니스트 다이신 카시모토와 중국 첼리스트 자오징이 협연한다.(02)518-7343. 서동철기자 dcsuh@
  • 韓·日교류 추진 日 공산당 / 82년 北과 단절… 日우경화 견제세력

    |도쿄 황성기특파원|일본 공산당은 위험한 존재인가,단지 ‘공산당’이란 이름만으로 알레르기를 느낄 뿐인가.북한식 혁명노선인가,아니면 서구식 공산주의 정당의 길을 걷고 있는가.노무현 대통령의 ‘공산당 용인 발언’으로 관심이 쏠리고 있는 일본 공산당.특히 시이 가즈오(志位和夫) 당위원장이 지난 11일 한국 방문 희망을 강하게 밝힘에 따라 일본 공산당의 정체성이 큰 관심사로 부상하고 있다. ●중앙 정계에서는 소수파,지방에서는 다수파 지금의 일본 공산당은 간단히 말해 ‘북한과는 관계를 끊고 일본 내에서 자민당 독주체제를 견제하는 좌파 소수세력’이라고 정의내릴 수 있다.이들은 소수파이다.1억 2500만 인구의 일본에서 당원은 39만명.집권 자민당의 170만명에 비하면 4분의1 수준이다. 국회에서는 중원·참원 합쳐 724명의 의원 가운데 공산당 소속은 40명이다.자민당(355명),제1야당 민주당(173명),연립 여당 공명당(55명)에 이어 4위이다.7개 정당과 무소속을 한덩어리로 볼 때 중간 정도이다.2001년 7월의 참의원 선거에서 7.9%의 득표율을 올렸다.의석으로 이어지지 않아도 무시못할 지지층은 있는 것이다. 지방 의회로 가보면 얘기는 180도 달라진다.전국 지방 의회에서 공산당 의원 숫자는 4209명으로 다른 정당을 제치고 단연 제1위이다.최근의 무소속 선호 경향으로 자민당 지원을 받더라도 무소속으로 출마,당선되는 경향이 늘어난 점도 공산당 소속 의원이 가장 많게 된 이유이기도 하다. ●혁명노선 고수하되 온건한 사회주의 지향 일본 공산당은 강령에서 혁명을 지상과제로 내걸고 있으나,북한 같은 프롤레타리아 혁명,무력 혁명이 아니라 ‘민주주의 혁명’과 ‘사회주의적 혁명’이라는 2단계 무혈 혁명을 지향하고 있다.이런 점이 북한과 갈라서게 된 결정적인 이유이기도 했다. 일본에서 공산당의 혁명이 가능할 것이라고 믿는 사람은 공산당원이 아닌 일반 시민들 사이에서는 거의 없다.1인당 국민총생산(GNP)이 4만달러에 육박하고,일견 일본식 사회주의로도 보이는 ‘열도 총 중산층’을 자랑하는 일본에서 무산계급 혁명에 관심을 두는 사람이 있을 리 만무하다. 1922년창당 이후 지하에서 활동할 때만 해도 공산당의 과격한 강령이나 행동,주장은 노동자계층 사이에 받아들여졌다.사회혼란을 우려한 일본 당국은 2차대전 패전 전까지 공산당을 집중 탄압해 적지 않은 당원이 희생된 어두운 시절도 있었다. ●시대흐름에 맞춰 변화의 움직임 공산당은 시장경제와 계획경제를 배합한 경제시스템을 지향한다.궁극적으로 자본주의 성장에 의한 사회주의로의 이행이 가능하다고 본다.따라서 기업의 국유화나 토지몰수 같은 강령은 취하지 않고 있다. 오는 21일 중앙위원회 총회에서는 강령에서 인정하지 않던 자위대와 ‘천황제’를 한정적으로 용인하는 강령 개정안을 낼 것으로 전해져 주목된다.현행 강령이 현실과는 동떨어진 부분이 적지않아 손질하지 않고서는 다른 당과의 정책연합이 어렵다고 판단한 때문으로 풀이된다. 강령은 ‘미 제국주의’와 ‘일본 독점자본’을 타파해야 할 두 개의 적으로 분류하고 있다.개정안은 미 제국주의를 ‘미 패권주의’나 ‘미 신식민주의’로 바꿀 것을 검토할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나름대로시대 흐름에 맞춰 변화하려고 애를 쓰고 있는 것이다.그러나 우파 세력들은 “혁명 정당이라는 본질을 바꾸는 것은 아니다.”라고 비판하고 있다. ●우경화 일본사회내 견제세력으로 소수이지만 공산당은 자민당의 사실상 1당 독주체제에 사민당과 함께 제동을 거는 ‘건전한 비판세력’으로 자리매김해 가고 있다.목소리는 작아도 우경화되고 있는 일본 사회의 견제세력이기도 하다. 중·참 양원을 막론하고 의원의 90% 가까이 찬성표를 던졌던 유사법제에 공산당은 사민당과 함께 끝까지 반대했다.5월16일(중의원)과 6월6일(참의원)의 법안 통과 때 의원 전원이 반대표를 던졌다.이라크에 자위대를 파병하는 ‘이라크 부흥특별조치법안’에도 물론 반대입장을 취하고 있다.자민당을 중심으로 논의가 전개되고 있는 헌법 개정에 대해서도 전후 일관되게 “털끝 하나라도 고쳐서는 안 된다.”는 호헌론을 견지하고 있다. 금권정치가 판치는 일본에서 공산당의 당 운영은 선진적이라고 할 수 있다.정치자금이나 정당보조금은 일절 받지 않는다.기관지인 ‘신문 아카하타(赤旗)’의 수입,당원의 당비,개인 기부금,국회의원의 세비로 운영한다.의원들의 세비는 전액 당 본부로 입금된다.본부가 모든 수입을 관리해 의원들 월급,사무실 유지비,활동비를 지급한다.본부 직원,기관지 기자 월급도 같은 주머니에서 나간다.살림의 규모는 크지 않지만 공산주의식으로 한데 벌어서 한데 쓰는 독특한 운영을 하고 있는 셈이다. ●80년대 초 북한과 관계 단절 전후 남한과 관계를 맺지 않았던 공산당은 북한 노동당과는 교류를 가졌다.그러나 1960년대 북한 공작원의 청와대 침입기도 사건을 계기로 사이가 나빠지기 시작했다.공산당이 비공식 사절을 보내 청와대 테러를 비판했기 때문이다. 70년대 들어 북한이 일본에 ‘김일성 주체사상 연구회’를 만들어 주체사상을 ‘수출’하려는 움직임에 대해서도 일본 공산당이 비판을 가하면서 사이가 틀어져 1982년부터 완전히 교류가 끊겼다.그래서 일본 공산당은 남이건 북이건 한반도에서는 어떤 접점도 갖지 못하고 있다.1997년 마쓰모토 의원이 한국을 방문하면서 호칭을 비로소 ‘남조선’에서 ‘한국’으로 공식변경했다. ●당원 감소 등으로 고민 조직이 고령화된 점이 고민으로 꼽힌다.한때 50만명이던 당원은 시대의 변화에 따라 서서히 줄어들고 있다.젊은 세대의 충원이 쉽지 않은 것이다.일본인 납치,북핵 문제 등이 터질 때마다 공산당과 북한 노동당이 연관된 것 아니냐는 유권자들의 오해 때문에 이미지가 나빠지고 있다.최근에는 뜻밖에 “실업률 증가,이라크 전쟁 여파로 20대의 입당이 다소 늘었다.”는 것이 관계자의 설명. ●기관지 서울지국 개설이 최대 현안 ‘신문 아카하타’는 1997년 처음으로 서울 지국 개설의 의향을 김영삼 정권측에 전달했다.당시 한국 정부의 반응은 “지금은 아니다.”는 것이었다.2명의 특파원을 두는 지국 개설을 공식적으로 신청한 것은 4년 뒤인 2001년 국정홍보처를 통해서이다.주일 한국대사관을 통해 전달된 구두회답은 “아직은 때가 아니다.”였다.한국 내 뿌리깊은 ‘공산당’ 거부감 때문으로 아카하타측은 분석하고 있다. 워싱턴,런던,베이징,하노이 등 11개국에 특파원을 보내고 있는 아카하타는 현안이 있을 때마다 기자를 한국에 보내 취재활동을 벌이고 있으나 역시 지국개설이 최대 현안이다.평양에도 지국을 두었으나 노동당과의 불화가 겹치면서 1973년 북한측 요구로 철수했다. 아카하타 관계자는 “일간지 50만부 가운데 구독이 의무화된 당원이 40만부를 소화하고 나머지를 일반 시민이 구독하고 있다.”고 밝혔다.이밖에 주간지로 ‘신문 아카하타 일요판’을 150만부 발행하고 있다.일본 공산당의 수입 중 아카하타가 벌어들이는 돈이 가장 많다.그래서 당원과 기관지 확장은 동전의 양면과 같은 일본 공산당의 최대 과제이다. marry01@ ■40대 시이 가즈오 위원장은 |도쿄 황성기특파원| 시이 가즈오(48) 위원장은 2001년 11월부터 일본 공산당을 이끌고 있다.노무현 대통령이 지난 9일 일본 국회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공산당 발언’의 파장을 낳은 장본인이다. 도쿄대 공학부 재학시절 일본 공산당에 입당해 승승장구,35세에 위원장 바로 아래 자리인 서기국장으로 발탁되면서 세간을 놀라게 했다.1997년에는 타임지에 ‘일본을 바꿀 11명’의 한 사람으로 등장했다.98년에는 후하 데쓰조 당시 위원장과 함께 중국을 방문,장쩌민 국가주석과 회담을 갖고 중·일 공산당의 화해를 이뤄내기도 했다. ●‘盧 공산당 발언' 파장 낳은 장본인 시이 위원장의 등장은 조직의 고령화로 고민하는 공산당의 변신이자 몇세대를 뛰어넘는 과감한 세대교체였다.일본에서 처음으로 창당된 공산당 81년 역사는 미야모토 겐지 전 의장의 1세대-후하 전 의장의 2세대-시이 위원장의 3세대로 나눌 수 있다.일본의 전후 부흥기 때부터 ‘공산당의 얼굴’로 막강한 카리스마를 발휘해 온 후하 의장에서 40대의 시이 위원장으로 세대교체 때 “약하다.”는 평가가 많았던 것도 사실이다. ●도쿄대시절 입당… 35세에 서기국장 그런 그의 대북관,북핵해결의 방법론은 어떨까.지난 4일 일본의 위성방송 ‘아사히 뉴스타’에 출연해 밝힌 그의 시각을 정리하면 이렇다.“북한은 국제사회에서 고립돼 있다.왜 고립돼 있는가.무법행위를 청산하지 않아서이다.미얀마 아웅산 테러 사건,항공기 폭파,게다가 (일본인)납치,갖가지 무법행위를 했다.그것을 본격적으로 청산하고 ‘물리적 억지력’ 논리에 의한 핵개발을 포기하고,국제사회에 들어오는 것이 (북한의)안전에 최선이라는 점을 말할 필요가 있다.” 전후 세대답게 북한에 대해서는 상당히 비판적인 그는 지난 11일의 기자회견 때 노 대통령이 일본 공산당의 대표단을 받아들일 가능성을 밝힌 데 대해 “대통령의 발언을 무겁게 받아들이고 있다.꼭 그런 기회를 만들고 싶다.”고 방한에 의욕을 보였다. 방한이 성사되면 일본 공산당 최고지도자로서는 처음으로 한국땅을 밟게 된다.
  • [지식창고] 포털의 中·日사이트 자동번역 서비스

    정보의 바다에서 언어의 장벽이 사라졌다. 인터넷 포털사이트들이 일본어,중국어로 된 홈페이지를 한글로 자동번역하는 서비스를 속속 선보이고 있다.일본과 중국 사이트를 한글로 검색할 수도 있다. 일본 연예인이나 드라마 팬인데 일본어를 몰라 인터넷에서 정보를 구하기가 힘들었거나 중국에 여행을 가는데 현지인이 직접 들려주는 정보를 알고 싶었다면 정말 긴요하다. 현재 네이버의 인조이재팬(enjoyjapan.naver.com),다음의 와우!재팬(japan.daum.net),야후(kr.japan.yahoo.com),엠파스(japan.empas.com)등 4개의 포털에서 일본 사이트 자동번역 및 검색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일본 홈페이지 주소를 주소창에 치기만 하면 한글로 자동 번역된다. 번역서버에 의한 자동번역이라 ‘고사(告祀)’를 ‘돼지머리 의식’으로 표현하는 등 틀린 번역이나 말도 안 되는 문장들이 많지만 전혀 이해가 안될 정도는 아니다. 일본사이트의 한글 자동번역은 다음이 무제한 무료이용이 가능해 편리하다.네이버,야후,엠파스는 하루에 10개의 일본 웹페이지만 무료로 한글 번역해준다. 유료회원으로 가입하면 자동번역 프로그램을 내려받아 사용할 수 있다. 일본어 사전은 네이버에서 제공되는 것이 탁월하다.일본 글자인 히라가나와 가타가나를 직접 입력할 수 있으며,한글에 해당하는 일본어도 찾아준다. 한글로 일본 사이트를 검색하는 경우에도 네이버가 빠르다.네이버는 직접 일본 데이터베이스를 갖추고 있어 검색엔진이 검색을 끝낸 뒤 다시 한글로 번역하는 다른 사이트에 비해 속도가 빠른 편이다. 엠파스는 영어,일본어 자동번역에 이어 2일부터 중국어 자동번역 및 검색서비스(china.empas.com)도 시작했다.이달말까지는 무료로 이용할 수 있으므로 한글로 번역된 중국의 인민일보 인터넷판에서 생생한 중국 정보를 맛보는 것도 좋겠다. 윤창수기자 geo@
  • 7세기이전 일본 은 없었다

    일본이란 무엇인가 - 아미노 요시히코 지음 박훈 옮김 / 창작과비평사 펴냄 지금 일본에선 사실상 전시동원법이라 할 수 있는 유사법제(有事法制)가 중의원을 통과한 뒤 참의원에서 심의중이다.최근 고이즈미 총리도 개헌지지 발언을 하는 등 자위대를 실질적인 군대로 인정하려는 움직임이 힘을 얻고 있다. 일본 군국주의 망령이 다시 고개를 들고 있는 것일까.고이즈미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역사교과서 왜곡,고대사 날조 등 최근 일본에서 일고 있는 우경화 현상은 더이상 무시할 수 없는 단계에 이르렀다. 일본의 대표적인 사학자인 아미노 요시히코(網野善彦·75)는 그의 저서 ‘일본이란 무엇인가’(박훈 옮김,창작과비평사 펴냄)에서 일본사회의 뿌리깊은 군국주의와 우경화 경향을 역사적 맥락에서 분석하며 ‘일본’이란 국가의 허상을 짚어낸다. 1999년 나가사키 원폭 투하일인 8월 9일,일본 국회는 히노마루와 기미가요를 국기와 국가로 규정하는 국기국가법안을 압도적 다수로 통과시켰다. 저자는 이런 국가중심적이고 전체주의적인 흐름에 동참하거나 침묵하는 일본사회에 문제를 제기한다.저자에 따르면 국기와 국가가 대표하는 ‘일본’이란 허구의 나라에 불과하다. ‘일본’이란 국호는 7세기 말이 돼서야 처음 역사에 등장했다.그것은 일본열도의 야마토 사신들이 당(唐)제국으로부터 자립한 제국의 존재를 명시하기 위해 대외적으로 처음 사용한 국호이자 왕조의 이름이었다. 그 이전엔 ‘일본’도 ‘일본인’도 존재하지 않았다.그러므로 ‘일본인’이란 말은 일본국의 국가제도 아래 있는 인간집단을 가리킬 따름이며,‘일본’도 지명이 아니라 특정 시점에서 특정한 의미를 담아 특정한 사람들이 정한 국가의 이름을 뜻할 뿐이란 게 저자의 견해다. 그러나 메이지 이후 일본정부는 일본의 건국신화를 역사적 사실인양 국가적 교육을 통해 국민에게 철저히 각인시켰다.교과서에선 아직도 ‘조몬시대 일본’‘야요이시대 일본인’ 등 오랜 옛날부터 ‘일본인’이 있었던 것처럼 서술하고 있다. 천왕의 존재에 대해서도 비판적이다.‘일본’이란 국가의 건국기념일,즉 기겐세쓰(紀元節)는 기원전 660년 일본의 초대 천왕이라고 일컬어지는 짐무(神武)천왕의 즉위일을 근거로 삼고 있다. 그러나 천왕 역시 중국 대륙의 대제국의 칭호인 ‘천자(天子)’에 대응하기 위해 채택된 것이며,이것 또한 7세기에 등장했다는 것. 그러나 일본인들은 ‘천황’이 아득한 옛날부터 존재했던 것처럼 인식한다.요컨대 일본이란 야마토를 중심으로 성립한 국가의 국호이고,천왕을 왕의 칭호로 정한 왕조명에 불과하다는 설명이다. 이같은 관점에서 저자는 ‘일본’이란 국호의 타당성 여부와 천왕 자체의 존폐문제까지 재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한다.저자에 의하면 일본이 동해를 ‘일본해’라고 부르는 것 또한 참칭(僭稱)이다.일본은 지명이 아니고 특정국가의 이름이기 때문에 여러 국가에 둘러싸인 이 바다에 특정 국가의 이름을 붙이는 것은 어울리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저자는 일본 내부에 단일한 일본역사와 문화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단언한다.예컨대 지금의 간토지역을 중심으로 한 동국(東國)과 간사이지역을 중심으로 한 서국(西國) 사이엔 문화와 관습은 물론 인종과 언어까지도 달랐다는 것이다. 그런 전제에서 저자는 일본열도에 존재했던 문화를 남의 문화(오키나와),중의 문화(이른바 일본본토),북의 문화(홋카이도)로 나누고 나아가 중의 문화를 동의 문화와 서의 문화로 나눠 최소한 4개 지역의 문화로 구분해야 마땅하다고 주장한다. 여성이나 노인,어린이 등 역사에서 ‘누락’된 주체들에 대해서도 각별한 관심을 쏟는다.특히 생산과 상업의 당당한 주체였던 여성의 지위를 언급하며 가부장적 질서를 확립시킨 호적제도에 대해 비판한다. 조세를 체계적으로 거둬들이기 위해 시작한 호적제도는 유교사상을 토대로 한 중국대륙의 남성중심적 제도를 차용한 것임을 밝혀낸다.근대의 ‘대일본제국’이 식민통치 시절 타이완과 한반도에 일본식 호적제도를 강제적으로 시행했다는 사실도 빼놓지 않는다. 일본 중세사의 새로운 지평을 연 ‘아미노사관(網野史觀)’은 일본 주류사학과는 대척점에 서 있다.저자는 일국사관·진보사관(발전단계론)·유럽중심사관·생산력 중심·농촌주의 등 일체의 편협한 사관을 거부한다.대신 주류사학에선 다루지 않는 사료들을 꼼꼼히 검토,고고학·민속학·문화인류학 등 인접학문을 넘나드는 특유의 연구방법론을 구사한다. 일본사의 ‘상식’을 뒤엎는 그의 시각은 일본학계의 주류라고 할 수 있는 ‘진보사학’계로부터 ‘이단’ 취급을 받고 있다.그런 만큼 이 책은 일본학계가 자국의 역사를 어떻게 구성하고 있는가를 총체적으로 파악하는 데는 일정한 한계가 있다. 그러나 90년대 들어 새롭게 부상한 일본의 신민족주의가 여전히 기승을 부리는 현실을 감안하면,우리에겐 무엇보다 ‘경계의 대상’으로서의 일본을 주체적으로 이해하는 일이 긴요하다.비록 일본 학계의 주류 시각은 아니지만 이 책의 의미는 그런 점에서 결코 반감되지 않는다.1만 5000원. 김종면기자 jmkim@
  • 치욕 서린 건물도 문화재 등록

    영동 노근리 쌍굴다리와 옥천 죽향초등학교,진천의 옛 덕산양조장,김제의 농장사무실…. 문화재청이 지난주 문화재로 등록을 예고한 15건의 근대 문화유산 가운데 일부이다. 조금 과장하면 노근리 쌍굴다리는 그야말로 볼품없는 콘크리트 덩어리.그러나 잘 알려진 대로 한국전쟁 당시 수백명의 민간인이 피살된 곳이다. 죽향초등학교와 덕산양조장은 건축적 가치도 있지만 박정희 전 대통령의 부인 육영수 여사가 다녔고,현재도 3대가 가업을 이어 전통주를 생산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했다. 김제의 농장사무실은 일본인에 의한 토지수탈의 역사를 간직한 건물로 조정래의 대하소설 ‘아리랑’의 무대로 등장하기도 했다. 그동안에는 건조물이 얼마나 ‘건축적 가치’를 갖고 있는지가 문화재로 등록되는데 결정적 영향을 미쳤다면,이제는 ‘역사’가 전면에 부상하고 있다. 무엇보다 치욕의 역사와 부정적인 역사도 간직해서 후세에 물려주어야 할 문화 유산으로 과감하게 수용하고 있다는 데서 등록 문화재 제도의 변화를 감지할 수 있다. 대표적인 예가 경성부청사였던 서울시청청사.경복궁안에 있던 일(日)자모양의 옛 조선총독부청사는 헐렸지만,본(本)자 모양으로 짝을 이루던 옛 경성부청사는 등록문화재로 보존하게 된다. 일본사찰인 군산의 금강사 대웅전도 포함됐다.1913년 일본에서 건축자재를 들여와 지은 전형적인 에도(江戶)시대 사찰건축을 보여준다.제천기관차사무소 수검고가 등록 대상으로 예고된 것도 눈길을 끈다.1937년 철근콘크리트로 지어진 뒤 한국전쟁 당시 미군의 오폭으로 남쪽 부분이 파괴되자 외장을 벽돌로 쌓아 복구했다.건축물로는 순수성을 잃어버렸지만,근현대사의 굴곡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는 점에서 문화재적 가치는 더 크다는 것이다. 김정동 문화재위원(목원대 건축학과 교수)은 “이런 것까지 문화재로 등록해야 하느냐는 비판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면서 “그러나 좋은 역사만 역사라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된 시각”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무엇보다 이런저런 의미를 부여하려고 해도 남아 있는 근대문화유산 자체가 별로 없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라면서 “문화재로 등록하여 당시의 흔적이나마 남겨놓을 수 있는 제도가 있다는 것이 다행스럽다.”고 말했다. 등록 문화재 제도는 1876년 개항 이후 한국전쟁에 이르는 동안 만들어진 근대문화유산을 효율적으로 보존하고자 지난해 3월 도입됐다.현재까지 서울 태평로 옛 국회의사당과 강경 남일리 옛 남일당한약방 등 모두 66건이 등록되거나,등록이 예고되어 있다. 서동철기자 dcsuh@
  • [기고]독일과 프랑스 그리고 韓·日

    지난 겨울을 런던에서 보내며 진기한 광경을 목격하였다.TV에서 독일과 프랑스 양국의 우호조약체결 40주년을 기념하는 행사를 방영해 주었는데 그것은 나에게는 충격이었다.독일 프랑스 양국민은 다투었던 역사로 사이가 좋지 않아 상대국 언어조차도 쓰려들지 않는다고 들었기 때문에 그들의 우정에 우선 놀랐고,그 친선과 화해를 위한 쌍방의 노력이 이미 40년이나 됐다는 사실에 또한 놀랐다. 영원히 미워하는 우리와 일본사이 한·일관계를 생각할 때 서로 미워하고 배척하던 그들이 가슴속에 자리잡은 반독,반불의 감정을 억제시키고 어떻게 협력하고 존중하는 사이로 발전할 수 있었는지 궁금하고 부러웠다.세계대전이 1945년에 끝났으니 그로부터 18년 지나 1963년에 뿌리깊은 적대적 관계를 청산하고 양국선린을 위한 대화합의 새 장을 연 것이다.불행하게도 우리의 한·일관계는 전후 58년이 지나도록 변함없이 그 자체다. 독일과 프랑스는 유럽대륙을 두고 숱하게 싸워서 역사적으로 반목의 골이 깊다.30년전쟁과 보·불전쟁 외에도 근현대에 와서 1차2차 세계대전에서 서로 치고받았다.또 정치·군사적 대결외에도 사회경제적 문화적 자존심경쟁에서도 앞서거니 뒤서거니 양보가 없다.그런 그들이기에 40년전 프랑스 드골대통령과 독일(서독) 아데나워 총리에 의한 양자 협력의 약속 즉 엘리제조약 체결은 경이롭다. 이번에 양국의 정상 프랑스의 시라크와 독일의 슈뢰더가 조약 40돌을 기념하여 발표한 청사진은 놀랄 만한데,정기적으로 양국 합동각료회의를 개최하고,자국 거주 상대 국민에게는 이중 국적을 허용하며,국제규모 체육대회를 위해서 대표선수를 공동으로 선발하겠다는 것이다.우리 처지로서는 한·일간에는 상상도 못할 일이 아닌가. 적대와 반목의 역사라는 관점에서 보면 유럽의 독·불관계는 아시아의 한·일관계와 흡사하다.한·일관계는 독·불처럼 맞서 치고받았던 관계라고 볼 수는 없으나 서로 미워하고 불신하는 것은 한가지다. 미워하는 이 관계를 우리는 정작 청산할 수는 없는 것일까? 독·불이 했던 것처럼 사과할 것은 사과하고 오해는 풀고 용서해 줄 수 있는 것은 용서해 줄 수는없겠는가? 왜 우리는 이 미움과 증오의 역사를 세대를 넘어서까지 물려주는가? 나도 일본이 싫지만 한편으론 싫음의 역사를 접고 일본을 좋은 이웃으로 두고 싶다.교과서를 왜곡 기술하는 것이나 정신대해결에 대한 소극적 자세나 재일동포에 대한 부당한 처우나 야스쿠니 신사참배에 이르기까지 일본은 진짜 맘에 들지 않는다.최근 군위안부 조기보상에 관한 유엔의 권고를 거부한 것도 우리를 더욱 성마르게 한다.독·불의 지도자들이 보여주었던 용서와 화합의 리더십을 일본의 지도자들은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이보다 더 못마땅한 것은 그들의 이런 자세에 대해서 우리 지도자들이 대응해왔던 외교적 역량과 처신이다.그간 우리나라 지도자들은 한·일 양국관계의 화해와 개선을 위해서 무엇을 하였던가.왜 보다 적극적으로 나서서 비판도 하고 설득도 하고 요구도 하고 때로는 참고 달래고 타협하려 들지 않는가.막말로 양국관계 개선이 보다 절실하고 아쉬운 것은 그들인가 우리인가? 새 정부는 남북문제는 물론 한·일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노력해야 할 것이다.더 이상 우리가 반일의 정신적 멍에에 갇히는 것을 방치하지 말라.정치지도자들은 나서서 독·불동맹 못지않은 한·일동맹을 만들라. 이제 우리가 일본과 독·불처럼 하나되어 다가오는 태평양시대를 리드해야 하는 것은 1억 한민족의 시대적 지상과제다. 황 필 홍 단국대 교수 명예논설위원
  • 책꽂이/ 사랑의 빵속에 담긴 작은 행복이야기 외

    ●사랑의 빵 속에 담긴 작은 행복이야기(박경희 지음,평단 펴냄) 굶주림으로 죽어가는 아이들을 돕는 따뜻한 이야기.극동방송의 ‘김혜자와 차 한잔을’에 소개된 내용이 골격을 이룬다.책 판매수익의 일부는 월드비전 구호기금으로 쓰일 예정.8000원. ●하워드의 유럽IT 재발견(하워드 리 지음,다산출판사 펴냄) 유로화 시대를 맞아 점차 중요성을 더해가는 ‘유럽공화국’의 첨단정보산업을 업종별·국가별로 고찰.1만9000원. ●학문의 권장(후쿠자와 유키치 지음,남상영 등 옮김,소화 펴냄) ‘탈아론(脫亞論)’을 주장해 일본의 조선침략을 부추겼다는 비판을 받고 있는 후쿠자와 유키치의 저작.그의 인생과 학문,실천이 응집돼 있어 텍스트로서의 가치가 크다.‘서양사정’‘문명론의 개략’과 함께 저자의 3대 명저의 하나로 꼽히는 책이다.6800원. ●무인시대와 삼별초(유현종 지음,대산출판사 펴냄) 1170년 고려 무신정변부터 삼별초의 대몽항쟁까지 고려 100년사를 다룬 역사소설.전 3권 각권 9000원. ●곽희의 임천고치(林泉高致)(곽희·곽사 지음,신영주 옮김,문자향 펴냄) 11세기 중국 북송시대 산수화의 대가 곽희와 그의 아들 곽사가 지은 산수화 이론서.곽희가 이 책에서 내세운 화론 가운데 가장 유명한 것은 삼원(三遠),즉 고원(高遠)·심원(深遠)·평원(平遠)이다.이것은 일종의 원근법으로 이후 동양 산수화의 전범으로 자리잡았다.1만3000원. ●죽음도 없이 두려움도 없이(틱낫한 지음,허문명 옮김,나무심는 사람 펴냄) 죽음과 두려움이라는 존재론적인 문제를 정공법으로 다룬 에세이.행선(行禪),즉 걷기명상을 통한 평화로운 발걸음,정성을 다 쏟는 호흡,측은지심으로 우러나오는 행동을 통해 두려움과 외로움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다고 주장한다.9000원. ●로댕(베르나르 샹피뇔르 지음,김숙 옮김,시공사 펴냄) 조각가 오귀스트 로댕은 공무원이 되기 원했던 아버지의 바람과는 달리 어린 시절 제대로 글을 쓰거나 간단한 셈조차 하지 못한 열등생이었다.명성과 천재성에 가려진 로댕의 인생과 작품에 대한 열정을 살핀다.1만5000원. ●새로 쓴 일본사(아사오 나오히로 등 엮음,이계황 등 옮김,창작과비평사펴냄) 2000년 일본에서 나온 ‘요설(要說)일본역사’를 번역한 것.일본의 현역 연구자들이 새로 쓴 정통 일본통사로,실증적으로 인정된 학설과 자료를 기반으로 균형잡힌 시각에서 접근한다.2만2000원. ●마을민속보고 어떻게 할 것인가(안동대 민속학연구소 엮음,민속원 펴냄) 민속학의 생명은 현지조사지만 학자들이 만나는 연구자료는 민속의 실상이 아니라 조사보고서 속의 기록이다.지난해 ‘마을 민속조사 어떻게 할 것인가’에 이어 펴낸 민속조사보고 방법론.1만원.
  • 기타노우미 日스모협 이사장,日스모선수 40명 6월 첫 한국 방문

    |도쿄 황성기특파원| 일본 씨름 스모가 오는 6월 서울을 찾는다.스모의 한국방문은 처음.40명의 최고장사(마쿠노우치·幕內)를 이끌고 한국에 갈 일본스모협회 이사장 기타노우미(49)는 24일 기자들과 만나 “위성방송으로 스모를 보는 한국팬들을 위해,한국측 요청도 있고 해서 공연을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스모협회는 해외에서의 경기를 ‘공연’이라고 표현한다.흥행보다는 전통문화인 스모를 알린다는 측면이 더 강하다는 의미를 띠고 있는 셈이다.협회의 해외 공연은 캐나다,호주,프랑스를 포함해 지금까지 10차례.한국에서는 이틀간(14,15일) 토너먼트로 우승을 가린다.도쿄,오사카,나고야,후쿠오카 등 4개 도시를 돌며 한해 6차례 공식경기를 치르는 스모는 15일간 40명의 장사가 시합을 가져 우승자를 내는 전통방식을 유지해오고 있다.모래판이나 샅바·규칙 등에서 우리의 씨름과는 판이한 스모는 최근 스타부재,일본인 씨름꾼의 약세 등으로 인기가 떨어져 위기감이 고조된 상태이다.지난 1월 일본인 스타 다카노하나가 은퇴하고 몽골 출신의 아사쇼류가 최고 서열인 요코즈나로 승진함으로써 외국인 2명이 요코즈나를 차지하는 스모 사상 첫 이변을 기록했다. “요코즈나가 왜 일본사람이 아니냐.”는 항의성 편지가 협회에 온다고 전하는 기타노우미는 “외국 선수들은 ‘헝그리 정신’이라고 할까,찬스에 강하고 우승에 대한 집착이 강하다.”고 덧붙였다. 일본이 자랑하는 전통문화 스모에 아이로니컬하게 외국세가 거세다.전체 씨름꾼 674명 가운데 외국인 제한(53명)에 육박하는 51명(7.6%)이 활약하고 있다.한국인은 2명.씨름꾼 중에서도 진짜 장사로 대접받는 마쿠노우치에 김성택(스모 선수명 가스가오)이 승승장구하고 있다. 협회는 4월에 김성택 등을 한국에 보내 대구지하철 사고 위로금 300만엔을 기탁할 예정.스모 인기 부활이라는 짐을 걸머진 기타노우미 이사장은 최연소 요코즈나 승진기록(21세)을 아직도 보유하고 있는 왕년의 장사이기도 하다. marry01@
  • 구와바라 시세이 다큐전/ 日 사진작가가 담아낸 60년대의 한국풍경

    사진은 리얼리티의 기록이다.동시에 그 리얼리티에 대한 사진가의 견해도 함께 기록한다.좀 거창하게 말하면 사진은 사회를 변혁시키는 하나의 수단이다.일본 사진작가 구와바라 시세이(桑原史成·사진·67)의 작품은 그런 점에서 단순한 기록 이상의 의미를 전한다. 구와바라는 지난 64년부터 지금까지 해마다 두세 차례씩 한국을 방문,한국의 현실을 기록해온 일본의 대표적인 다큐멘터리 전문작가.그의 고향인 시마네현 쓰와노에는 그를 기념하는 ‘쓰와노 다큐멘터리 포토 갤러리’도 세워져 있다. 구와바라의 사진전이 28일부터 새달 2일까지 서울 중구 태평로 서울갤러리 1전시실에서 열린다.한·일 국교정상화 반대시위,베트남 파병,판문점 모습,시골 풍경 등 한·일 국교정상화가 이뤄지던 1960년대 당시의 한국 풍경을 흑백사진에 담았다.이번 전시는 2001년 1월 일본 전철역 신오쿠보(新大久保)역에서 선로에 떨어진 승객을 구하려다 숨진 한국인 유학생 이수현씨와 일본사진가 세키네 시로(關根史郞)를 추모하기 위해 결성된 ‘신오쿠보 SPIRIT’ 실행위원회(위원장 추광호)가 주최하는 것.60여점의 출품작 중엔 최근 연결공사가 추진중인 경의선 문산역 철도변 수로에서 빨래를 하는 여인들의 모습(1963년),시멘트 교량공사가 한창 진행중인 청계천고가도로 현장(1968년),베트남에 파병되는 아들을 만나기 위해 시골에서 올라온 할머니와 국군묘지의 아들 무덤 앞에서 오열하는 어머니(1965년)의 모습 등이 포함돼 있다.구와바라는 ‘보도사진의 성자’로 불리는 미국 사진작가 유진 스미스보다 10년이나 먼저 미나마타병과 관련된 사진을 발표해 주목받은 ‘환경주의자’.그는 유진 스미스의 충격적인 ‘도모코 사진’이 윤리적으로 문제가 될 수 있지만,보도사진가의 진정한 임무는 그처럼 사실을 보여주고 참상을 알리는 것이라고 강조한다.한국의 어두운 현실을 사진에 담아온 그는 실제로 지난 89년 ‘한국-격동의 4반세기’라는 사진전을 한국에서 처음 열면서 거친 항의를 받기도 했다. 구와바라는 지금도 변함없이 인간을 둘러싸고 있는 암울한 정치적·사회적 상황을 사진작업의 화두로 삼는다.“포토 저널리스트로서 한국의 근대사는 가장 ‘혜택받은 취재의 현장’”이라는 게 그의 말이다.(02)2000-9737. 김종면기자 jmkim@
  • 황성기 특파원의 도쿄이야기/스모스타 은퇴 日열도 ‘호들갑’

    과문한 탓인지,스포츠 스타의 은퇴에 일본 열도가 이토록 떠들썩하기는 이 곳 도쿄에 와서 처음있는 일 같다. 일본 씨름 ‘스모’의 최강자 다카노하나(30)의 은퇴가 발표된 20일 오전 마침 도쿄 중심가 긴자에서 은퇴 소식을 장식한 호외를 받아들고 깜짝 놀랐다. 놀람은 그뿐 아니었다. 시청률 지상주의 민방의 호들갑은 그렇다치더라도 공영방송 NHK마저 호들갑에 가세했다. NHK는 오후의 은퇴 기자회견에 배경이나 파장을 분석한 기사를 장시간,그것도 생방송으로 내보냈다. 그의 은퇴가 호외나 생중계를 통해 일본인들이 꼭 알아야 할 뉴스이거나 의미있는 일인가.고이즈미 총리,정부 대변인인 관방장관까지 “은퇴 유감” 논평을 냈다.스모에 그다지 관심에 없었던 만큼 의아함,궁금증은 더 커질 수밖에 없었다. “왜들 난리법석이냐.”일본인들의 대답은 십인십색.그렇지만 “그는 시대의 상징”이라는 공통점은 있었다.다카노하나는 15년전 중학생 때 스모 인생을 시작했다.일본의 거품경제 붕괴와 시기를 같이한다. 그는 ‘최연소’가 따라붙는 기록을 잇달아 갈아치운다. 18살에 최고서열 장사(요코즈나)를 쓰러뜨리는 파란을 일으킨다. 이듬해 씨름판 왕자에 등극한다.1994년에는 요코즈나로 승진한다.22차례의 우승을 거머쥔 스모 천재 다카노하나이지만 지난 19일 서열이 한참 아래인 후배에게 치욕적인 패배를 당하고 이튿날 은퇴를 발표한다. 경제가 위축되고 자신감이 사라지고 자랑거리가 없어진 일본에 그는 우뚝선 우상이었다.상대를 쓰러눕히고 씨름판에서 포효하는 그의 강한 모습은 경제난에 짓눌려 축 늘어진 일본인들의 어깨를 치켜올리는 자극제였다. 요미우리 신문 사장이자 요코즈나 심사위원장인 와타나베 쓰네오씨는 말한다.“경제와 더불어 일본사람 전체가 정신적으로 퇴조하고 있다.다카노하나의 은퇴가 쇠퇴현상의 상징이 아니길 바란다.”일본인들이 그의 은퇴를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잘 보여주는 언급이다. “그의 부활을 기대했다.”는 고이즈미 총리의 말처럼 다카노하나의 은퇴는 추락하는 일본 시대와 오버랩되면서 일본인들 마음을 한층 어수선하게 만드는 것처럼 보인다. marry01@
  • 책꽂이/해신 외

    ●해신(최인호 지음) 중앙일보에 연재했던 소설을 보완한 다큐멘터리 소설.3권 가운데 1·2권이 우선 출간됐다.최근 이 소설을 바탕으로 중국 일본 이라크 터키 이집트 등지를 작가가 돌며 장보고의 행적을 추적한 다큐멘터리 ‘해신,장보고’가 제작돼 KBS 창립 30주년 기념작으로 방영중이다.열림원 전3권 각권 9000원. ●환각의 다리(이어령 지음) 1950년대 이후 발표한 이씨의 단편소설을 묶은 단행본.문학사상사의 ‘이어령 라이브러리’ 다섯번째 책으로 4·19혁명을 소재로 한 표제작을 비롯,해방 직후 정치테러를 그린 ‘암살자’,전쟁과 산업화로 잃어버린 고향에의 향수를 담은 ‘홍동백서’ 등이 실렸다.1만원. ●만리장성의 나라(박경리 지음) ‘토지’를 집필 중이던 박경리씨가 1989년 중국을 기행한 뒤 엮은 책으로 13년만에 재출간됐다.완성된 ‘토지’ 가운데 중국 관련 본문을 인용하고,작가가 현지에서 촬영한 사진을 곁들여 새롭게 꾸몄다.나남출판 1만 2000원. ●샤넬에게(우광훈 지음) 장편 ‘플리머스에서의 즐거운 건맨생활’로 오늘의 작가상을 수상한 저자의 신작 장편소설.여류 사진작가와 남자모델 사이의 파격적이고 위험한 사랑을 그렸다.사진작가 박찬성씨의 작품을 삽입했다.영림카디널 8000원. ●영광 전당포 살인사건(한차현 지음) 유전자 합성인간인 리플리컨트 등을 등장시켜 사회악을 응징하는 추리소설이자 사회소설.리플리컨트 김시민이 전직 고문기술자인 전형근을 살해하나 그가 죽인 사람은 복제인간.주인공 차연은 영광전당포를 운영하는 진짜 전형근을 찾아가 결국 처단한다.생각의나무 9500원. ●그는 내 가슴에 가시나무를 심었다(고나형 지음) 올해 71세인 저자가 이혼 후 40여년간 가슴에 한을 품고 살아온 이야기를 써내려간 자전소설.한림원 전2권 각권 8000원. ●왈패이야기(오세영 지음) 시인이자 문학평론가인 저자가 낸 산문집.진돗개 ‘왈패’를 키우며 겪은 이야기를 담은 표제작을 비롯,유복자로 태어나 외가에서 맞은 설에 대한 유년시절의 추억,우리 문화에 대한 고찰을 담은 ‘우리의 음식문화’ 등 다수의 산문을 실었다.화남 9000원. ●지상에서의 마지막 가족(무라카미류 지음,양억관 옮김) 현대 일본사회의 사회병리현상 가운데 하나로 외부와 접촉을 끊고 방에 틀어박혀 지내는 이십대를 가리키는 ‘히키고모리’를 주인공으로 내세워 일본의 전통 가족관계가 해체되는 과정을 그렸다.웅진닷컴 8000원.
  • 세계가전업체 서울 격돌“한국시장 넘어야 세계시장 잡는다”

    ‘한국 시장을 잡아야 세계 시장을 잡는다.’우리나라가 세계 가전 및 전자시장의 최대 격전지중 한곳으로 떠올랐다. 특히 프리미엄급 가전시장의 급부상 등으로 한국시장이 세계시장의 ‘바로미터’로 인식되면서 일본과 유럽 업체들의 공략이 거세지고 있다. 7일 업계에 따르면 기존에 진출한 외국업체들은 마케팅 ‘공격’을 대폭 강화하는 한편 지금까지 국내 시장을 도외시하던 유럽,일본 등의 업체들도 속속 국내 시장에 진출하고 있다.기존 위스키와 화장품 등의 고급신제품 테스트장에 이은 것이다. ●‘한국에서 겨루자.’ 세계적인 가전그룹인 스웨덴의 일렉트로룩스는 이날 한국법인 출범식을 갖고 한국 시장에 대한 본격적인 공략을 선언했다.이 회사는 냉장고,청소기,드럼세탁기,공기청정기 등 가전제품의 세계적인 브랜드인 일렉트로룩스,AEG,자누시 등을 보유하고 있다.유럽시장에서는 점유율 1위,미주시장에서는 2위를 차지하고 있는 세계적 업체다.세계 150여개국에서 연간 140억달러(16조 8000억원)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3년내 국내에서 외국브랜드중 1위를 차지한다는 목표다. 소니,올림푸스,필립스,JVC 등 기존에 진출한 외국업체들은 시장선점 차원의 각종 마케팅으로 대응하고 있다.특히 애프터서비스 등 고객밀착형 마케팅이 눈길을 끈다. 소니코리아는 365일 AS체제를 구축했고,올림푸스한국은 고객 집을 직접 방문해 AS할 물건을 가져가 수리한 후 다시 고객에게 직접 전달해주는 ‘도어투도어’ 서비스를 제공중이다. 한국 시장의 중요성이 인식되면서 사장부터 직원까지 한국인의 채용도 늘고 있다.소니코리아는 지난해 처음으로 공채를 실시,30여명의 신입사원을 선발했다. ●‘타임투 코리안마켓’ 외국업체들이 한국시장을 얼마나 중요하게 여기는지 알 수 있는 신조어도 등장했다.이른바 ‘타임투 코리안마켓(Time to Korean Market)’.한국시장에 적합한 제품을 제때에 공급한다는 뜻과 함께 최첨단 제품의 한국시장 우선 공급이라는 두가지 의미다. 실제로 일렉트로룩스코리아는 세계 최초의 로봇 진공청소기인 ‘트릴로바이트’를 국내에 선보였다.228만원이라는 부담스런 가격에도 불구하고 큰 호응을 받을 것으로 자신했다. 소니코리아도 일본 본사와 거의 같은 시기에 신제품을 출시하는 ‘타임투 코리안마켓’ 정책을 구사중이다.특히 PDP TV(벽걸이TV),프로젝션TV 등 프리미엄급 디스플레이 제품과 디지털캠코더,디지털카메라,바이오노트북,홈시어터 등은 일본에서 신제품이 개발되면 곧바로 한국내 매장에 진열된다.이명우 사장은 “본사에서 회의가 있을때마다 ‘타임투 코리안마켓’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들 외에도 특히 디지털카메라 등 디지털기기를 중심으로 한국의 앞선 IT 인프라를 염두에 둔 첨단제품의 우선 출시가 두드러지고 있다. 이처럼 대리점망을 제대로 갖추지 못한 외국업체들은 백화점,할인점,양판점 등을 중심으로 국내 시장을 서서히 잠식하고 있다.그러나 국내 업체들은 여전히 대리점 위주의 판매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해 발빠른 외국업체들의 행보와 대조적이다. 박홍환기자 stinger@
  • [열린세상]북핵위기, 민족공조 기회로

    지난 14일 저녁 일본 고이즈미 총리는 한 강연회에서 북핵문제로 기세를 올렸다.지금 일본사회에 팽배한 ‘북한 때리기’ 풍조와는 달리 ‘대화노선’을 역설했다.“개인적으로 김정일 위원장을 신용하는 것도 불신하는 것도 아니다.어느 쪽이든 간에 교섭해야 되는 상대인 것은 사실이 아닌가? 일본의국익과 세계 평화을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라도 교섭에 임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납치에 이은 새로운 핵개발 문제로 북·일관계 전망에 대한비관론과 강경론이 지배적인 매스컴과 여론을 생각할 때 당돌한 느낌조차 든다. 그러나 핵문제가 불거진 이후 일본의 외교적 움직임은 오히려 활발해지고있다.후쿠다 관방장관,가와구치 외무장관이 연일 북·일교섭의 재개,한·미·중·러 등 관계국과의 협의를 강조하고 나섰고,중·일 외무장관의 전화회담,한·일 수뇌 전화회담에 이어 17일부터 개최되는 미·일 안보회담을 거쳐 1월의 고이즈미 총리 방러까지 시야에 넣은 외교전략 구축이 한창이다.여기에는 두가지 배경이 있다. 그 하나는 핵문제가 강조될수록납치문제가 상대화되고,경색된 북·일관계를 타개할 국내정치적 계기로 삼을 수 있다는 계산과 판단이다.일부 우파들의 주도권 하에서 일본의 민족주의적인 ‘국민감정’과 직결되어 버린 납치문제는 좀처럼 ‘해결’이 어려운 상황이다.도대체 무엇이 ‘해결’인지도불분명하다.북한도 대일교섭에의 기대를 포기하고 ‘대미일변도’의 종래 자세로 되돌아 가 북·일간의 채널을 모두 닫고 있다.당분간 북한이 굽히고 나올 가능성은 높지 않다.교착 상태를 타개하기 위해서는 일본이 먼저 움직일필요가 있지만 그를 위해서도 우선 소규모의 인도적 식량지원마저 ‘매국노’로 규탄되는 경직된 국내여론을 바꾸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에 있다.핵위기의 고조가 오히려 일본여론이 문제를 현실적으로 바라보는 기회가 될 수도있다. 둘째는 미국이 북·미간의 양자교섭 구도를 회피하고 지역내 관계국을 포함한 다자간 협조체제에 의한 대응을 강조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는 점이다.부시 정권내에도 아직 의견이 갈려 있어 궁극적으로 어떠한 대북정책을 취할것인지 불분명한 점이 많다.그러나 “대결도 타협도 하지 않는다.”는 것이큰 틀로 보인다.북한의 체제와 대량파괴무기에 대한 원칙적 문제제기와 대응은 하되 직접적 관여는 최소한으로 낮추려는 방향성이라 할 수 있다.이것은단기적으로는 이라크 전쟁에 집중하려는 의도에 기인한다.그러나 장기적으로도 북한 문제에의 관여를 축소하려는 발상이 부시정권내에 엿보이는 점이 주목된다.전략적으로 그리 중요하지 않은 북한의 체제 보장이나 핵개발 문제등의 ‘부담’을 미국이 떠맡을 필요가 없으며 중국을 포함한 지역내 국가들에 맡기는 것이 현명하다는 주장이다.90년대에 자주 논의된 ‘관대한 무시’(benign neglect)의 변형으로서 ‘적대적 무시’라고 표현할 수 있다. 최근의 러시아 및 일본의 활발한 수면하의 외교적 움직임은 이같은 경향과무관하지 않다.문제는 정작 당사자인 남북의 진정한 의미에서의 ‘민족공조’가 오히려 퇴보를 거듭하고 있는 점이다.선거의 와중에 있는 한국의 외교가 거의 정지상태에 있는 것은 정치적으로 피할 수 없는 현실인지도 모른다.하지만 대통령 당선자는 취임이전에라도 시급히 거국적 태세를 갖추고 남북관계 타개와 전방위 외교에 나서야 한다.북한을 안심시키면서 바람직한 ‘민족공조’ 틀로 끌어 들이도록 노력을 경주해야 한다. 가장 중요한 열쇠는 말할 것도 없이 북한이 쥐고 있다.현재의 교착과 긴장상황을 타개하기 위해서는 북한이 종래의 ‘대미일변도’ 전략에서 전환할필요가 있다.북한이 핵과 미사일 카드를 통한 벼랑끝 전략을 구사해서 대미교섭에 집착해 온 것은 90년대 초반의 국제적 고립감과 위기의식에 그 배경이 있다.그러나 지금은 한반도 주변 환경이 이전과는 다르다.북한의 급속한붕괴보다 점진적 변화에의 유도가 바람직하다는 공통 인식이 서서히 형성돼왔다.김정일 정권도 경제재건을 향한 정책전환 의사와 관리능력을 내외에 밝히는 것이 무엇보다 확실한 체제 유지의 ‘보장’이 될 것이다. 이종원 일본 릿쿄대 교수
  • 고급차 서비스 경쟁 후끈/국산차,보증기간 늘려 방문점검

    국내 자동차업체와 수입차업체의 고급 승용차 서비스 경쟁이 후끈 달아올랐다. 수입차업체들은 올해 사상 처음 매출 1조원을 돌파한 여세를 몰아 그동안국내업체들보다 취약했던 판매·서비스망의 대폭 확충에 나서는 등 공격적인 마케팅을 펼치고 있다. 국내업체들도 수입차업체의 공격 마케팅에 맞서 보증기간을 늘리는 한편 1대1 서비스 등 고객밀착형 서비스를 잇따라 선보이고 있다. 도요타의 최고급 브랜드 ‘렉서스’ 수입·판매업체인 한국도요타자동차는최근 일본 본사에서 최고급 엔지니어 1명을 데려와 국내에 상주시키고 있다.또 국내에서 정비가 어려운 차량은 일본에 보내 고쳐주고,그 기간에는 다른차량을 무료로 빌려준다. 벤츠 수입사인 한성자동차는 최근 대형 애프터서비스(AS)센터를 잇따라 개설,현재 전국에 7곳의 서비스센터를 운영중이다.서비스센터에서는 AS 뿐 아니라 차량정비교육까지 해준다. 아우디와 폴크스바겐을 수입·판매하는 고진모터임포트는 지난 9월부터 ‘모빌리티 개런티’서비스를 도입,차량 구매와 동시에 추가비용 없이 3년간무상 서비스를 제공한다.긴급출동이나 견인서비스는 물론,수리기간에 렌터카를 제공하며 수리비와 호텔 숙박비까지 지원한다. 수입차업체들의 공격적인 서비스전략이 호응을 얻자 국내업체들도 앞다퉈대응책 마련에 나섰다.그동안 전국적인 AS망을 무기로 느긋하게 내수시장을지켜왔으나 최근들어 수요자 인식이 급변하고 있음을 실감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국내업체들은 최근 국내 생산 차량의 일반부품 보증수리기간을기존 2년·4만㎞에서 3년·6만㎞으로 늘렸다.엔진·미션 등 핵심부품의 보증수리기간도 4년·8만㎞에서 5년·10만㎞로 연장했다. 이밖에 소모성 부품의 무상 교체,방문점검서비스,렌터카 제공 등 고객 밀착형 서비스를 앞다퉈 도입하는 등 전례없는 서비스 경쟁에 열을 올리고 있다. 전광삼기자
  • 유봉학 교수, 일제행정구역·문화재 인식비판

    “수원시에는 옛수원이 없고,화성시에는 화성이 없다.” 이렇듯 혼란스러운 상황은 일제시대의 행정구역 설정과 문화재 인식을 오늘날 답습한 결과라는 것이 유봉학 한신대 국사학과 교수의 탄식이다. 조선 정조는 천하명당이라는 옛 수원읍치에 아버지 사도세자의 무덤을 만들면서,팔달산 아래 신도시 화성(華城)을 세웠다.그러나 일제는 화성 신도시가 아닌 성곽만 국한하여 수원성이라 명명했고,해방 후에도 수원은 그대로 화성신도시의 이름으로 답습됐다.수원 화성은 결국 정조가 건설한 화성이 아니라 일본사람들의 수원성이고,이것이 문화유산 정책의 현주소라는 것이다. 피상적으로 보면 그런대로 잘 정비된 듯하여 ‘문화유산 보존과 활용의 모범’으로까지 이야기되기도 하는 ‘세계문화유산 수원 화성’도 이런 역사적 의미에 주목한다면 “겉으로는 그럴 듯하지만 실제로는 잘못된 사이비”라고 까지 질타한다. 유 교수는 화성이 우리에게 소중한 의미가 있다면 유형의 문화유산도 문화유산이지만,“건설과정에서 보여준 무형의 정신적 유산 때문”이라고 단언한다. 화성성곽이 대부분 훼손됐음에도 원형복원이 가능했던 것도 우리 시대의 역량이나 역사 연구의 결과라기보다는 정조 시대의 철저한 기록문화에 힘입고있음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1996년 화성 건설 200주년을 맞아 기념행사가 진행되던 한편에선만석거저수지를 지방비 326억원을 들여 매립하고,축만제(서호)도 상당부분메웠다. 근대를 향한 조선 후기 농업진흥의 꿈을 담고 농업실험을 행하던 유서깊은터전이라는 점을 인식하지 못했기 때문이다.게다가 1922년 대홍수로 남수문·북수문이 떠내려가자 일본사람들조차 북수문을 복원했는데,수원시는 남수문을 복원하기는커녕 남수문 터에 복개도로를 내는 ‘만행’을 저질렀다고분개했다. 유 교수는 “주먹구구식 문화재 보존은 후진적 문화의식의 산물이며 우리시대의 구조적 문제”라면서 “문화재의 우수성뿐 아니라 그를 가능하게 했던 배후의 정신적 유산을 인식할 수 있도록 가꾸려는 노력이 선진적 민족문화 건설의 기초”라고 결론짓는다. 유 교수는 이런 내용을,한국문화재보호재단이 3일 서울 필동 한국의 집에서 여는 ’문화유산의 가치인식과 활용’세미나에서 ‘세계문화유산 보존 시책의 미명과 허실-수원 화성을 중심으로’라는 제목으로 발표한다.(02)555-9337. 서동철기자
  • [마당] 누구 혹은 무언가를 안다는 것

    나의 첫번째 제부(弟夫)이름은 시오카와 도모타카다.그 결혼을 필사적으로 반대하는 부모를 설득해 결국 결혼 승낙을 받아낸 사람은 나였다.그때만 해도 나는 도모가 일본 사람이라는 걸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다.왜냐하면 도모는 서울에서 삼 년째 살고 있었고 외국인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한국말을 유창하게 했다.밥 먹을 때 김치가 없으면 섭섭해 했고 무엇보다 자신의 나라인 일본에 대해 부정적인 눈치였다.그리고 그는 내게 직접 ‘가능하면 한국에서 살고 싶어요.’라고 말한 적이 있었다.나는 깜빡 속아 넘어갔다. 결혼식이 끝나자 도모는 내 여동생과 일본으로 떠났다.얼마 후 그쪽에서 일본식 결혼피로연이 있어서 나는 부모를 모시고 일본으로 갔다.어쩌면 그 사이에 도모가 한국말을 잊어버렸을까 봐 비행기 안에서부터 초조했다.만약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혼자 여러 가지 비약적인 궁리를 해댔다.일본으로 떠날 때부터 사실 나는 도모에게 더 이상 호의적일 수가 없었다.뭣하러 저도 싫다는 나라에 가서 산담,내 여동생까지 덥석 데리고.여동생 집에 머무른 열흘 동안 우리는,그러니까 나와 내 부모,여동생,도모는 비좁은 집에서 복닥복닥거리며 함께 자고,밥 먹고 여행을 다녔다.그런데 도모는 서울에서만 보아온,내가 거의 한국사람이라고 생각했던 도모가 아니었다.그는 진짜 일본사람이었다.그가 일본말로 밥을 시키고 일본말로 전화통화를 하는 모습이 그토록 낯설 수가 없었다.나는 당황했다. 서울에 있을 때는 몰랐다.그저 예의가 바르고 친절한 젊은이라고 생각했다.함께 일본 여행을 하면서 깨달았지만 도모는 친절한 일본인 중에서도 유난히 친절한,우리 가족이 생각하기에는 지나치게 예의가 바른 청년이었다.어느땐 나는 짜증이 나서 도무지 견딜 수가 없는 상황도 있었다. 나는 그의 몸에 밴 친절이 ‘나도 너 안 건드릴 테니까 너도 나 건드리지마.’식의 친절일까 봐 두려워지기까지 했다.그래서 나는 도모 앞에서 부러 무례하고 무뚝뚝하게 굴기도 했다.하지만 그건 단지 ‘친절’의 문제만은 아니었다. 여행이 끝나갈 무렵부터 우리는 마치 나무나 밧줄로 만든 흔들다리를 함께 건너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그건 너와 내가 다르다는 생각을 미처 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태어날 때부터 눈이 먼 소년도 당황했을 때는 손으로 제 얼굴을 가리는 건 생득적으로 결정된 유전적 영향이다.뉴질랜드의 마오리족은 오랫동안 떨어져 있던 친구를 만나면 반갑다는 인사로 엉엉 운다.장례식 때 서양사람들은 검은색 옷을 입지만 중국인들은 흰색이나 자주색 옷을 입고 이집트인들은 노란색 옷을 입으며 집시들은 빨간색을 입는다. 도모와 내가 여행 말미에 서먹해진 점이 있다면 서로 다르다는 걸 인정하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그건 슬픈 일이지만 그러나 인정할 수밖에 없는 사실이었다.도모는 일본사람이었고 나는 한국인이었다.우리가 서로의 문화나 그것에서 파생되는 정서에 대해 무지하다는 것은 누구의 잘못이 아니라 서로의 불행이 될 것이다.아마 다음에 다시 일본에 가게 된다면 나는 나의 제부가 일본사람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기 위해서 애를 쓰게 되겠지. 서울로 돌아오면서 나는 도모에게 내 여동생을 부탁한다는 것 외에 한가지를 더 부탁했다.도모는 그 약속들은 꼭 지키겠노라고 씩씩하게 대답했다.나는 안심하고 서울로 돌아왔다.내 부탁은 한국어를 잊지 말아 달라는,나로서는 꽤나 간절한 것이었다. 조경란 소설가
  • [열린세상] 고령화 사회와 한국경제

    ‘인구구조는 운명’이라는 시적 표현이 있다.경제의 앞날에 결정적 영향을 준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우리사회가 급속히 고령화되고 있다.2000년 현재 65세 이상의 노령인구가 전체 인구 중에 차지하는 비율이 7%를 돌파하여 이미 고령화사회로 진입하였다.2020년께에는 고령인구 비율이 14%를 상회할 것으로 전망되어 고령사회인 선진국 수준에 도달할 것으로 보인다.인구구조의 고령화가 단순히 우리들의 자연적 수명이 연장된다는 것만을 의미하면 반가운 일임에 틀림없다.인간은 본능적으로 오래 살기를 원한다.그러나 우리 사회를 먹여 살릴 생산가능 인구가 감소한다면 경제적 파장은 간단치 않다. 15세에서 65세의 생산가능 인구비율이 2000년의 72% 수준에서 2025년에는 68%,2050년에는 55%수준으로 감소할 것이라 한다.생산가능인구의 감소를 상쇄할 만한 노동생산성의 증가 없이는 경제성장은 둔화될 수밖에 없다.사회가 노령화돼 활력을 잃기 때문이다.90년 이후 일본이 겪고 있는 장기침체는 거품 붕괴에 따른 금융기관의 부실이 1차적 원인이지만일본사회의 고령화로경제가 탄력을 상실한 점도 무시할 수 없다.노인들의 소비지출은 신제품보다는 의료서비스등 건강 관련 서비스에 집중되기 쉽다.경제의 활력을 증진시키는 이노베이션에 대한 촉진효과가 적을 수밖에 없다. 노령인구의 증가는 청·장년 층의 부양비율을 높인다.사회전체를 놓고 볼때 생산가능인구들이 부담해야 하는 부양인구수가 증가하는 것이다.이 경우 저축률은 떨어진다.주어진 소득으로 늘어난 노인들을 먹여 살려야 하기 때문이다.저축률 하락은 가용자금 부족과 투자위축으로 이어진다.투자 없이는 생산성 향상을 기대할 수 없다.성장잠재력 자체가 훼손되어 생활수준이 하락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고령화 사회는 사회 안전망이 불충분한 우리 경제에 큰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다.지금까지 우리나라는 자식들이 노인이 된 부모를 부양하는 가족중심의 사적인 노후보장 시스템이었다.효를 중시하는 유교문화 자체가 사회보장 시스템이었다.자식교육은 부모 입장에서는 투자와 저축이었던 셈이다.자신들이 젊었을 때 자식에 투자한 과실을 노인이 되었을 때 자식으로부터 되돌려 받는 시스템이었다.이러한 구조 하에서는 노인인구에 대한 정부의 역할과 관심은 상대적으로 미약하게 마련이다.그러나 핵가족과 개인주의의 확산으로 부모봉양의 미풍양속은 점차 사라질 것이고 사라지고 있다.정부가 자식의 역할을 담당해야 하는 것이 현실이다.이미 우리나라도 공적 연금제도를 도입하여 이에 대비하고 있기는 하지만 충분하지 않다.고령화 사회가 급속히 진전됨으로써 당초 예상과는 달리 연금지출이 수입을 초과할 전망이다. 생산인구의 감소로 세입은 감소하고 지출은 증가하는 구조로 전환되어 정부재정에 큰 부담이 될 가능성이 높다.취업자 수의 감소,연금납부자의 감소,경제성장의 둔화 등으로 조세수입과 사회보장기금의 축소 등이 불가피하다.반면 연금수혜자의 증가,노인의료비 및 노인복지비 증가 등으로 정부지출의 지속적 증가가 전망된다.이 경우 자칫 선진국에서 보듯이 만성적인 재정적자가 불가피하다.재정수지 악화는 국가부채의 증가로 이어져 조세부담 증가와 민간투자지출을 억제하는 악순환의 함정으로 빠져들 가능성이 있다. 고령화로 인한 경제적 부담이 눈에 보이는데도 우리의 준비자세는 부족하다.대비책이 필요하다.먼저 생산가능인구의 지속적 확보가 중요하다.장기적으로는 여성 1인당 출산율을 높일 필요가 있다.현재 우리나라의 출산율은 1.4명으로 OECD국가 중 낮은 편에 속하고 현재의 인구구조를 유지하는데 필요한 2.1명에 비해 크게 부족한 실정이다.가족계획만이 능사가 아니다.여성들의 경제활동 참가율이 다른 나라에 비해 낮은데 이를 높여 양질의 노동인력을 계속 주입할 필요가 있다.또한 노령인구에 대한 재교육,합리적인 이민정책,연령차별금지,민간연금의 개발 등 갈 길이 멀다.고령화 문제는 먼 미래의 일이 아니라 현안이다. 홍순영 삼성경제연구소 상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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