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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아ㆍ태 핵감축협상 촉구/미ㆍ일외 1∼2국포함/로가초프 외무차관

    ◎극동군 12만 추가 감축계획 【콸라룸푸르 로이터 연합】 소련은 아시아ㆍ태평양지역의 현대적 핵및 해군전력에 우려,이 지역 군사긴장완화 방안에 대해 미국측과의 협의를 원하고 있다고 이고르로가초프 소련외무차관이 8일 말했다. 로가초프 차관은 이틀간의 말레이시아 방문을 마치면서 가진 기자회견을 통해 『우리는 아ㆍ태지역의 해군력 및 핵무기가 급속히 현대화되고 있는 반면 이에 대한 억지수단이 전혀 없다는데 우려,미국측과 이 지역내의 군사적대치와 긴장완화 문제만을 전적으로 다루는 새로운 회담들을 시작하길 원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미ㆍ소양국이 유럽에서 진행해온 재래무기 및 핵무기 감축협상과 유사한 협상을 이 지역에서도 시작해야하며 유럽지역의 협상시작후 협정안 체결까지 수십년이 걸린 것을 감안하면 아ㆍ태지역 협상 시작도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고 강조했다. 이 협상에는 일본 및 다른 1∼2개국이 함께 참여할 수 있으며 이와 관련,예두아르트 셰바르드나제 소련외무장관은 올해말로 예정된 일본방문에서 이같은 제의를일측에 내놓을 것이라고 로가초프 차관은 덧붙였다. 로가초프 차관은 한편 소련측은 소ㆍ중,중ㆍ베트남간 관계개선등 아시아지역의 군사적 긴장이 완화추세를 보임에 따라 아시아지역 배치군사력을 감축해왔으며 오는 92년까지는 극동지역군 병력을 12만명 추가감축할 계획이라고 밝히면서 이와 함께 금세기말까지는 모든 해외주둔군을 철수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 「신사고 바람」의 주역 고르바초프/정상회담 계기,재조명 해본다

    ◎“이념보다 빵”… 실용주의 노선 추구/동구권 개혁ㆍ냉전종식에 큰역할 베를린장벽 붕괴등 동구의 대변혁을 가져오고 2차대전이후 지속되던 냉전체제를 화합의 새시대로 바꿔가는 고르바초프 소련대통령은 기왕에도 세계 여론의 주목대상이었지만 4일 한반도주변상황에 역사의 새 지평을 열 전격적인 한소정상회담을 가짐으로써 다시 한번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소연방으로부터의 독립을 선언한 리투아니아공화국에 대해 소련이 천연가스의 공급감축등 경제봉쇄란 강경조치를 취했는데도 미국을 필두로 한 서방세계는 말로만 이를 비난했을뿐 리투아니아의 독립을 지원할 수 있는 실제행동은 전혀 취하지 않았는데 이는 순전히 고르바초프가 서방측이 취할 어떤 행동으로 타격을 받아서는 안된다는 우려 때문이었다. 그만큼 고르바초프는 서방 세계로부터 절대적인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있다. 그가 올해초 미시사주간지 타임으로부터 80년대의 인물로 선정된 것이라든지 지난달 영국에서 전유럽을 대상으로 창간된 유러피안이 창간특집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자유선거로 통합유럽의 대통령을 뽑을 경우 고르바초프가 1위를 차지할 것이란 결과가 나온 것등이 고르바초프에 거는 서방세계의 기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라 할 수 있다. 고르바초프는 또 과거의 다른 지도자들과는 달리 아시아에도 유럽에 못지 않은 관심을 갖는 지도자로 평가할 수 있다. 고르바초프는 지난 86년 7월 소련이 아시아ㆍ태평양국가의 일원임을 천명한 블라디보스토크연설 이래 89년 9월 크라스노야르스크에서 한반도정세의 전반적인 개선으로 한국과 경제관계를 맺을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는가 하면 지난 3월 김영삼 민자당대표의 방소때는 한국과 외교관계를 맺고 싶다고 밝히는 등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에 꾸준히 눈길을 돌리고 있다. 물론 이는 일본을 선두로 한 한국 등 아시아의 신흥경제세력들이 이룩한 급속한 경제성장으로 세계경제에서 아시아가 차지하는 비중이 점차 커진데 따른 필연적인 결과라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세계의 새 조류를 재빨리 간파,때를 놓치지 않고 그 조류에 올라타며 스스로 그 흐름의 방향을 조정해 나가는데서 세계를 이끄는 지도자로서 고르바초프의 탁월한 면모를 엿볼 수 있다. 4일의 한소정상회담 개최도 이같은 고르바초프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한소정상회담을 발판으로 한국과 소련과의 경제협력이 강화되면 자연 일본도 여기에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으며 일본까지 소련경제에 참여하게 되면 아시아쪽에 주도권을 뺏기는 것을 우려,구미경제도 대소경제협력에 눈을 돌리지 않을 수밖에 없다는 계산이다. 3일 미소정상회담을 마감하는 백악관회견에서 자신의 일본방문계획을 피력한 것도 이같은 맥락에서이며 한소에서 소일,소ㆍ구미로 이어지는 소련경제회복 전략을 보여준 것이라 할 수 있다. 지난 85년 고르바초프가 소련의 최고지도자로 등장한 이래 그에겐 언제나 개혁세력이나 수식어가 따라다녔으나 사실 그에겐 개혁세력이라기보다는 실용주의자라는 표현이 더 어울릴 것 같다. 고르바초프가 내세운 「인간의 얼굴을 한 사회주의」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그에게 있어선 인간의 삶의 질이 최우선이며 여기에 위배될때는 기존의 이념 따위는 언제든 버릴 수 있다. 그가 지난 85년 소련의 최고지도자로 등장한 즉시 개혁과 개방을 제1의 기치로 내건 것도 종래의 이념이나 이론에 얽매이지 않고 실제로 국민생활을 향상시킬 수 있다면 어떤 것이든 할 수 있다는 실용주의적 생각에서 비롯된 것이라 할 수 있으며 오랫동안 우방이었던 북한의 불만을 무릅쓰고 전격적인 한소정상회담을 갖는 것도 현실을 속박하는 과거로부터의 틀은 과감히 깨뜨려야 한다는 그의 사고가 반영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소련내에서 최근 옐친 등 급진개혁파가 급격히 부상함으로써 이들 급진개혁파들이 개혁세력으로 지칭되고 고르바초프자신은 여기서 떨어져 중도노선의 정치인으로 분류되고 있는 것은 이제야 그에 대한 올바른 평가가 나오기 시작한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러나 옐친등 이른바 새 개혁세력의 주장도 역시 그 뿌리는 고르바초프가 내건 페레스트로이카에 두고 있기 때문에 고르바초프는 여전히 소련개혁의 아버지일 수밖에 없다.
  • 미ㆍ소 정상,대결시대 종식 선언의 의미

    ◎아태지역 새질서 구축의 “청신호”/“북한개방이 평화정착 열쇠”판단/소도 냉전구도 청산을 강력 희망/크렘린,한ㆍ일 등과 경협 확대… 긴장완화 추구 미국과 소련의 두 정상은 3일 양국정상회담을 마무리짓는 합동기자회견을 갖고 『이번 정상회담으로 미소양국의 대결시대는 끝났다』고 선언했다. 회담의 구체적인 성과에 대해서는 서로 다른 평가들이 있겠지만 이번 회담으로 전후냉전체제를 이끌어온 두나라는 대결시대를 마무리하고 상호협조의 터를 다지는 하나의 이정표를 마련했다. 통일독일의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가입문제에 대해 양측의 이견이 아직 좁혀지지 않았으나 지난 6개월여 계속돼온 동유럽의 변화는 이번 미소의 만남으로 사실상 마무리가 됐다고 볼 수 있다. 이에 따라 이제 세계의 관심은 한반도를 비롯,중국ㆍ베트남 등 마지막 남아 있는 아시아공산국들의 변화여부에 모아지고 있다. 고르바초프 소련대통령도 3일 백악관 기자회견에서 『미와의 새관계를 바탕으로 앞으로 태평양권에도 새질서를 발전시키겠다』고 말해 다음의 외교목표를 아시아지역에 두겠다는 뜻을 밝혔다. 고르바초프는 이 계획의 일환으로 아태국들과의 경제협력체 구성을 위해 내년초 일본방문을 검토중이라고 말했다. 노태우대통령과의 전격적인 한소정상회담 합의와 대한수교의사는 고르바초프의 이러한 정책의 구체적인 첫결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소련은 고르바초프 집권이후 아시아 지역에서의 새 질서모색을 위해 정기적으로 여러 제안들을 내놓았다. 지난 86년 7월 블라디보스토크 선언에서 중국과의 화해를 천명한 것을 비롯,그해 11월에는 아태지역의 비핵화 등 군축을 제의한 「뉴델리 선언」,그리고 88년에는 이 지역국들의 경제협력과 집단안보 구상을 골자로 한 크라스노야르스크선언을 내놓았다. 이러한 노력의 결과 아프가니스탄과 캄보디아주둔 베트남군의 철수가 이뤄졌고 89년 5월과 금년 4월 두차례에 걸쳐 중국과의 수뇌회담이 성사돼 양국 국경의 병력감축 합의가 발표됐다. 그동안 동유럽에서는 소위 「브레즈네프 독트린」의 페지로 거의 모든 나라에서 공산정권이 무너지는 일대 변혁이 진행됐다. 그러나 중국과 북한 등 아시아 공산국들은 좀체 변화의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물론 이들도 80년대 들어 정치체제를 고수하면서 경제적인 변화만 추구한다는 소위 「위로부터의 개혁」방식을 도입,나름대로 변화를 모색했지만 그 정도는 너무 미약했다. 정치와 경제체제를 한꺼번에 바꿔버린 동유럽의 변혁물결이 일자 이들은 결국 체제안보를 위해 변화시도 자체를 보류할 수밖에 없었다. 지난해 6월 북경의 천안문 사태가 그 단적인 예이다. 북한은 동유럽 각국에서 유학생들을 불러들이고 남북대화를 교착상태에 빠지게 했다. 소련으로서는 아시아지역에서 유럽에 상응하는 군축,그리고 시베리아를 포함한 극동지역 개발을 위해 보다 적극적인 변화노력을 이곳에서 펼칠 때가 된 것이다. 아시아에서 동서대결구도가 청산되지 않는한 북한이 가지고 있는 전략적인 가치를 소련은 포기하기 어렵다. 북한은 주한미군과의 대치지역이고 블라디보스토크항에서 발진한 소태평양함대가 태평양으로 빠지는 길목이기 때문이다. 이번 정상회담에서 미소양국은 한ㆍ미ㆍ소 3국이 북한을 설득,개방을 촉진함으로써 남북한 대화와 미ㆍ북한관계개선 그리고 이 지역의 군축에 진척을 가져오고 궁극적으로 한반도에서의 긴장완화를 위해 노력한다는데 합의를 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한국과의 수교를 단기적으로 북한에게는 충격이겠지만 결국 이지역의 긴장완화를 위해서는 이 길밖에 없다는 게 소련의 판단인 듯하다. 북한의 충격완화를 위해 일시적으로는 주한미군철수,휴전협정의 평화협정으로 대체 등 북한의 입장을 부분적으로 지지하겠지만 소련이 한반도에서 바라는 것도 결국은 독일식의 해결방안일 것이라는게 전문가들의 견해이다. 북방4개섬 반환문제로 진전을 보지 못하고 있는 일본과의 관계개선도 아시아지역의 새질서 구축에 큰 도움을 줄 것이라는 분석이다. 일본과의 본격 협력시대를 열어 새 아태협력체를 구성시키겠다는 것이 소련의 전략이라는 것이다. 물론 이는 북한ㆍ중국을 포괄하는 구상이다. 고르바초프의 내년 방일은 이런 점에서 큰 의의를 지닌다. 그러나 동유럽의 변혁물결과 본격화될 소련의 아시아정책에도 불구하고 이 지역에 유럽대륙에서와 같은 화해의 새바람이 불기에는 아직 넘어야 할 과제가 많다. 오는 9월 북경아시아게임을 고비로 중국도 대외개방과 민주화를 추진할 것이란 전망들이 있으나 아직은 뚜렷한 변화조짐이 없다. 노대통령은 3일 한소정상회담을 위해 출국하면서 출국인사를 통해 『우리의 분단상황은 결코 21세기로까지 이어질 수 없다』고 말했다. 10년안에 한반도의 통일이 이루어지기 위해서 남북한과 미ㆍ소ㆍ중ㆍ일 등 관련국이 무엇보다 먼저 할일은 이 지역의 긴장완화와 대결구도 청산일 것이다. 남북한을 포함한 아시아인들에게 주는 이번 미소정상회담의 의의는 바로 이런 노력의 첫발을 내딛게 하는 것이라 여겨진다.
  • 글라이스틴,「노­고르비회담」진단

    ◎“소,유럽재편 맞춰 「아시아신질서」모색”/북한,과격행동 가능성… 신중대처 필요/평양측,모스크바에 「북경카드」쓸지도 월리엄 글라이스틴 전주한미대사는 1일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대통령이 샌프란시스코에서 노태우 대통령과 전격적으로 정상회담을 갖고 한소관계 정상화를 모색하는 것은 유럽의 질서가 새롭게 형성돼 가는데 따라 아시아에 대한 소련의 원대한 계획을 실천하기 위해 이루어진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학회 회장직을 맡고 있는 글라이스틴 전대사는 이날 본통신과의 회견에서 유럽의 재편이 통일독일의 위상 때문에 아직 완결되지 않고 있고 경제문제 등 소련의 국내문제가 아직도 산적해 있지만 고르바초프가 노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갖는 것은 대중국관계 개선에 이어 대일본관계 개선으로 넘어가는 중간단계로서 소련의 대아시아정책구상을 착실하게 실천해감을 뜻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글라이스틴 전대사와의 회견내용은 다음과 같다. ­고르바초프의 대아시아정책은. ▲중국과의 긴장을 완화하고 한국과 수교하며 일본과의 관계를개선하는 것이다. 또한 아시아에서 군축을 실현하고 일본 및 한국과 경제협력을 강화하는 것이다. ­한국과의 관계개선이 이번 정상회담을 통해 이루어질 것으로 전망되는 데 일본과의 관계개선 전망은. ▲고르바초프가 내년에 일본방문을 계획하고 있다. 내년에 일본을 방문하면 일소간의 관계개선에 주요장애가 되고 있는 북방4개도서 문제에 대해 얼마간 양보함으로써 관계개선을 모색할 것이다. ­이번 한소정상회담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역사적인 일로서 환영할만한 일이다. ­한소정상회담 개최가 북한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는가. ▲북한은 극도로 불쾌해 하고 있을 것이다. 북한은 단기적으로 좌절감을 맛보면서 과격한 행동을 취할지 모르나 장기적으로는 변화에 대한 압력을 더욱 받게될 것이다. ­앞으로 한국이 북한에 대해 취해야 할 자세는. ▲북한이 좌절과 분노에서 어떠한 행동을 취할지 모르기 때문에 한국은 북한측에 적대감을 불러일으키지 않도록 매우 신중한 자세를 취해야 할 것이다. ­고르바초프가 이번에 노대통령과정상회담을 갖고 관계를 정상화하려는 동기는 어디에 있다고 보는가. ▲소련의 경제사정이 어렵기 때문에 한국의 경제협력을 기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중국은 한소정상회담을 어떻게 보고 있는가. ▲한소관계가 너무 급속하게 진전되는 것을 보면서 놀라고 불편함을 느낄 것이다. 북한은 중국의 입장을 이해하면서 소련의 대한접근책에 대한 대책으로 중국을 이용하려 들 것이다. ­그렇다면 한국은 중국에 대해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 ▲정치ㆍ안보측면에서 어느 정도 중국과의 협조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 북한이 중국에 밀착해서 중국과 한국의 관계진전에 제동을 걸려고 하겠지만 장기적으로는 한반도의 안보환경이 좋아지게 될 것이다. ­한소정상회담 후의 미ㆍ북한관계 전망은. ▲대북한 관계개선에 대한 미국의 입장은 분명하다. 북한이 지난주 미군유해를 송환함으로써 미국에 호의적인 제스처를 취했지만 미ㆍ북한관계 진전을 위해서는 핵안전협정 가입등 미국이 요구하고 있는 사항에 대해 북한측이 조치를 취해야만 할 것이다.
  • “한ㆍ소 긴밀한 유대 맺을 시점”/소 공보담당 알렉셰에프 인터뷰

    ◎시베리아개발등 경협확대 기대/남ㆍ북한문제는 한국민 “자결사항” 소련국영 노보스티통신의 간부로서 워싱턴 미소 정상회담 프레스센터의 소련측 공보담당자인 블라디미르 알렉셰에프는 31일 『소련은 동서독과 다같이 좋은 관계를 유지해오고 있듯이 남북한과도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음은 알렉셰에프와의 일문일답이다. ­한소관계를 어떻게 전망하는가. 『한국은 아시아의 지도적 공업국으로서 영향력 있는 국가이다. 우리는 한소관계의 증진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지난 수개월간 양국관계는 빠른 속도로 개선돼왔고 앞으로 머지않은 장래에 더욱 크게 발전할 것이다. 우리는 한국과 소련이 긴밀한 유대관계를 맺을 시점에 도달했다고 본다』 ­소련은 한국과의 경제협력에 얼마나 관심을 갖고 있는가. 『큰 기대를 갖고있다. 우리는 특히 시베리아개발을 위한 한국의 협력에 큰 관심을 갖고있다. 한국과의 관계개선은 제한없이 한국과 직접 교역할 수 있다는 점에서 우리의 관심을 끈다. 양국간 교역이 크게 늘어날것으로 기대한다』 ­소련경제가 심각하다는 것이 사실인가. 『어려운 건 사실이다. 사람이 심하게 아프면 수술을 필요로 한다. 이를 경제에 비유하면 급격한 개혁이 필요하다는 얘기가 된다. 우리에게는 과감한 개혁이 필요하다. 그러한 조치들은 충격흡수에 시간이 걸리고 또 쉬운 일도 아니다』 ­한소 관계개선이 소­북한관계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는가. 『우리는 북한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그것이 한국과의 우호ㆍ선린관계의 배제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소련은 동서독과 다같이 좋은 관계를 유지해 왔다. 남북한과도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 ­셰바르드나제 소련외무장관이 실존하지도 않는 한국의 콘크리트장벽에 관해 언급한 것이 남북관계에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고 보지 않는가. 『남북한문제는 한국인들끼리 결정할 문제다. 우리는 동구국가들에 대해서도 자결을 고무하는 정책을 취했다. 그들은 지금 그들 운명을 스스로 결정해 나가고 있다』 ­샌프란시스코 한소 정상회담은 어느쪽이 먼저 제의한 것인가. 『상호 필요와 희망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다』 ­한소간의 전면 국교수립은 언제쯤 이루어질 것으로 보는가. 『수교까지에는 정리되어야 할 문제가 몇가지 있다고 본다. 정상회담을 지켜보자』 ­고르바초프대통령의 서울 방문 가능성은 없는가. 내년 일본방문시 한국방문을 생각해 볼 수 있는 것 아닌가. 『기다려 보자』
  • 조총련,북송행불자 진상규명 추진/북한체제 비판 움직임속 새파문

    ◎전ㆍ현직간부,「귀국자문제협」 발족… 본격 활동/북ㆍ일적에 생사 확인,명단공개 등 요구키로 【니가타ㆍ도쿄 연합】 한일양국간의 거센 외교마찰을 무릅쓰고 강행된 재일교포북송을 둘러싸고 최근 조총련내부 일각에서 북송사업의 실상을 폭로하고 북한의 비인도적인 처사를 비판하는 움직임이 가시화되고 있어 관심을 끌고있다. 「차별과 멸시로부터 해방된 지상낙원」이라는 북한의 선전을 믿고 북송선 만경봉호에 올랐던 교포들이 비참한 생활고에 시달리고 있는데다 이들중 상당수가 행방불명된 것으로 확인됨에 따라 조총련 일부 인사들이 이의 진상규명 및 대책마련에 나서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움직임은 북한의 철저한 지시와 감시를 받고있는 조총련의 폐쇄적인 성격으로 볼때 극히 이례적인 것으로 특히 조총련 내부에서 북한체제 비판 움직임이 일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 가운데 나온 것이어서 더욱 파문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현재 북송사업진상규명에 앞장서고 있는 인사들은 당시 북송사업에 직접 간여했던 조총련 전 현직간부와 북송자가족들로 이중 20여명은 이미 도쿄에 「공화국 귀국자문제협의회」(회장 이춘수ㆍ82)를 정식 발족,사무실을 마련하고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갔다. 북한의 북송사업비판과 관련,조종련에서 밀려난 인사들이 대부분인 것으로 알려진 이들은 우선 정치성을 배제하고 인도적인 입장에서 활동을 벌여 나간다는 계획아래 행방불명된 교포들의 신고접수 및 북송교포 실상확인 등의 내부작업을 벌여나갈 예정이다. 재일거류민단 본부에 따르면 이들은 행불자 생사확인 및 명단공개를 북한과 일본 적십자측에 요구하는 등 대책 마련을 촉구하는 한편 북송교포들의 일본방문을 추진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일본적십자사 통계에 따르면 지난 1959년 12월14일 2백38가구 9백75명의 재일교포가 귀국 제1선을 타고 니가타(신석)항을 출항한 이래 지금까지(84년 현재) 1백87차례에 걸쳐 모두 9만3천3백39명(2천8백48가구)이 북한으로 건너간 것으로 집계되고 있으며 이 가운데 6천∼7천명의 일본인이 한국인 남편 또는 부인을 따라 북송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처럼이씨 등 전 현직 조총련인사들이 북송사업 실상파악에 나서게 된 것은 북송후 소식이 두절된 교포들이 속출하는데다 일본에 남아있는 이들 가족과 일본인들로부터 생사확인 요청 등 항의가 빗발치면서 당시 북송사업에 관여했던 당사자들로서 심한 고뇌와 죄책감을 느꼈기 때문이라는 것. 조총련 전직간부들은 행방불명자 문제는 차치하고라도 최근까지도 생활고를 호소하며 생필품과 엔화를 보내달라는 절규가 담긴 편지들이 일본내 가족들에게 전달되는 것을 보고 이른바 「귀국운동」의 실상을 알기 시작,북송사업에 대한 새로운 문제점을 제기하다가 조총련에서 밀려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현재 북송교포의 행방불명문제는 조총련계 인사들 사이에서는 공공연한 사실로 돼있으나 북한의 통제와 은폐로 구체적인 숫자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처음부터 줄곧 북송사업에 관여했던 전 조총련 정치간부였던 박동식씨(59ㆍ남ㆍ가명)는 최근 일본의 계간잡지 「민도」에 기고한 「귀국운동,그 실상은」이라는 글에서 『니가타대의 학부를 졸업,북한으로 간 한 동포는 과거 미군관계 병원에서 인턴으로 일했다는 이유로 미국 스파이로 몰려 시달린 듯 자살했다』며 『행방불명자가 지금도 속출하고 있다』고 밝혔다. 박씨는 또 『북송교포들의 참상은 조총련 최고간부들을 포함,모두가 알고 있는 공개된 비밀이다』면서 『10만여명에 달하는 북송교포중 소수만이 대접을 받고 있을 뿐 대부분이 비참한 지경에 빠져 있고 행불자가 이유도 없이 속출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북송사업 실무책임자로 죄책감과 깊은 고뇌를 느끼게 됐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재일거류민단 니가타현지부 박영기 부단장(63)은 『조총련으로부터 밀려난 인사들이 주축이 돼 북송문제 진상규명 및 대책마련에 나서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올 민단사업의 하나로 「조총련 내부의 민주화지원」이 설정돼 있는 만큼 이들이 추진하는 일을 적극 도울 방침』이라고 밝혔다.
  • “경제ㆍ사회 안정 연내 꼭 이룩”/노대통령,민자세미나 연설

    ◎물가 잡고 투기 발본/한일 산업협력위 조속구성/역조개선등 방일 후속조치 마련/각의ㆍ당정회의 주재 민자당총재인 노태우대통령은 28일 『나는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연말까지 경제ㆍ사회안정을 확고히 이룩할 것』이라고 강조하고 『부동산투기가 사라질 때까지 강력하게 대처해 나갈 것이며 물가안정과 경제활성화,불법적 노사분규 근절,민생치안의 확립을 위하여 통치권자로서 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다 동원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노대통령은 이날 낮 서울 송파구 가락동 당중앙정치교육원에서 3당통합이후 처음 개위된 당소속의원 세미나에 참석,연설을 통해 이같이 말하고 『공식기강의 단호한 쇄신조치등 사회전반의 분위기를 바로잡아 법과 공권력의 권의를 확립하도록 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노대통령은 이어 국가기강을 바로잡고 민주주의의 정착과 경제활력 회복에 힘과 지혜를 모아야 한다는 국민적 공감대가 이룩되어 있다고 전제한 뒤 『집권당인 우리가 이러한 국민적 요구를 어떻게 수용하고 해결해 나가느냐에 따라 국가의 장래가 결정된다』고 말했다. 노대통령은 민자당 운영방향과 관련,▲민주적인 의사결정 ▲당기구의 활성화 ▲국민속에 파고드는 정당활동 ▲책임있는 정치인으로서 역할 ▲깨끗한 정치윤리 구현 ▲일관성있는 정책집행을 강조하면서 『집권당의 일원으로서 행한 발언과 행동에 대해 책임을 질 수 있는 자세를 갖춰야 할 것』이라고 당부했다. ◎임시국회대책도 논의 노태우대통령은 28일 일본방문 결과에 대해 『이번 방일은 지난날의 문제로 인한 한일간 우호협력관계의 장애를 제거하고 미래지향적인 한일관계를 여는 계기를 마련했다』고 평가하고 국무위원과 정부 각부처에 대해 『방일중 체결된 협정과 합의사항의 구체적 진전을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하라』고 지시했다. 노대통령은 이날 상오 청와대에서 강영훈국무총리ㆍ이승윤부총리,그리고 최호중외무ㆍ이종남법무ㆍ박필수상공ㆍ정근모과기처장관 등 수행장관을 포함,전 각료가 참석한 가운데 열린 임시국무회의를 주재한 자리에서 이같이 지시하고 『특히 산업기술 협력문제와 무역역조 개선을 위한 한일간 산업기술협력위원회가 빠른 시일내에 구성되고 이 위원회가 일본과의 경제협력관계를 실질적으로 강화하는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하라』고 지시했다. 노대통령은 과거사문제와 관련,『일본정부의 상징인 일왕과 정부를 대표하는 일본총리,그리고 일본 중ㆍ참 양원의장이 공식발언을 통해 일본이 우리에게 불행했던 시기를 초래했고 일본의 행위에 의해 우리 국민에게 엄청난 고통을 주었다는 점을 인정하고 분명히 사과 반성했다』고 말하고 『일왕과 총리,일본국회의 이 모든 의사표시를 일본의 사죄로 보고 우리는 과거문제를 여기서 매듭짓고 전진적인 한일관계를 열어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노대통령은 이에앞서 이날 상오 청와대에서 민자당의 김영삼대표최고위원과 김종필,박태준최고위원등 민자당 수뇌부와 강영훈국무총리 최호중외무장관이 참석한 가운데 고위당정회의를 열고 이번의 방일결과에 따른 후속대책과 함께 6월초로 연기된 여야총재회담및 임시국회 운영대책 등을 논의했다. 이날 회동에서 김대표는 임시국회대책과 관련,후반기 원구성을 위해 소집되는 29일의 임시국회를 예정대로 강행하는 한편 평민당측이 주장하는 국회상임위원장 4석할애 요구에는 응할 수 없다는 당의 방침을 보고했다.
  • 노대통령의 방일을 보고(특별기고)

    ◎한일은 「마음의 벽」부터 헐때/동반시대 발맞춰 젊은세대 교류 넓혀야 노태우대통령이 일본을 방문중이던 지난 25일 도쿄(동경)도내의 학교에 강의를 나가기 위해 자동차로 아오야마(청산)에서 이치가야(시□곡)를 경유할 때의 일이었다. 평소의 분위기와는 어딘가가 다르다는 느낌이 들었다. 경비가 삼엄한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아무래도 그것만은 아니었다. 그것은 일한 양국의 국기가 도로 양쪽의 가로등에 장식되어 5월의 바람에 나부끼고 있는 광경 때문이었다. 1984년 한국대통령의 방일 때에도 그런 풍경은 있었지만 그때는 필자가 미국유학중이었기 때문에 도쿄거리에 두나라 국기가 나란히 펄럭이는 것을 본 것은 처음이었다. 비가 많은 도쿄의 봄인데도 이번주는 보기 드물게 5월의 맑은 날이 많아 푸른하늘을 배경으로 한 그 풍경은 잘도 어울렸다. 필자가 한국에 유학했던 13년 전에 이런 분위기를 상상하기란 어려웠다는 것을 기억하고 있다. 지금 일본에 있어서 「한국」은 크게 변했다. 한국가수가 일본의 TV에 상시 출연하게끔 되었고 일본의 가라오케 술집에서는 한국노래 전용의 가요곡집이 구비되어 있다. 아카사카(적판)을 걸으면 「군고구마」라고 한글로 씌어있는 리어카를 만난다. 특히 젊은 세대의 한국에 대한 이미지가 변화하고 있다. 한국으로 수학여행을 가는 일본고교생이 늘고 있고 올림픽때 정도는 아니지만 일본인 사이에 한국어 학습은 여전하다. 인기가 있는 학교에서는 제2외국어로서,배우는 학생숫자의 순위는 외국어 가운데 5번째 안에 든다. 서울∼도쿄사이 비행기 안에는 젊은 일본인관광객이 넘친다. 또 규슈(구주)간사이 (관서)를 중심으로 한국으로부터의 관광객과 마주치는 일도 흔해졌다. 거리의 2개의 국기가 도쿄의 풍경에 잘어울렸다는 사실은 아직도 많은 과제가 남아 있다고는 하나 80년대에 급속히 개선되어온 일한관계를 상징하고 있는듯 했다. 국제정치로 눈을 돌리면 1989년은 동구를 중심으로 유럽정세가 크게 변한 해였다. 현재 독일통일의 기본방향이 잡혀가고 있으며 유럽의 장래가 보인다. 그것과 비교한다면 아시아에서는 남북한통일문제등 한반도를 중심으로 정치ㆍ경제적으로 여러가지 복잡한 요소가 아직 남아있다. 1990년대는 동아시아의 정세가 어떻게 변화할 것인가에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는 10년이 될 것이다. 그 가운데서도 지금까지 변하기 쉬운 역사를 가진 일한관계가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가가 주목되고 있다. 그같은 속에 노태우대통령의 방일이 실현된 것이다. 되돌아보면 일한관계는 3단계의 시대를 거쳐왔다. 제1기는 1948∼1965년이다. 이 시기는 양국간에 국교가 없이 마찰이 많았던 시기였다. 제2기는 1965년부터 현재까지이다. 박정희정권의 「우선 건설을」이라는 정책을 출발점으로 국교가 수립되어 일한관계는 급속히 개선됐다. 그러나 과거 일한관계의 고난의 역사위에 구축된 관계이기도 했기 때문에 80년대에는 교과서문제 및 경제협력문제 등이 양국간에 일어났다. 이번 일본방문에서 앞으로의 관계에 대해 노태우대통령은 『양국은 과거의 어두운 그림자를 씻고 보다 깊은 선린우호관계를 수립할 필요』를 지적했고 가이후 도시키(해부준수)총리는 『일한양국의 선린우호는 일본의 노력이 한국민에게 납득되어야 비로소 흔들리지 않는 것이 된다』고 말했다. 이처럼 일본과 한국은 「미래지향적 관계」를 구축하는 일에 대해 쌍방이 같은 생각을 갖게끔 되었다. 아시아ㆍ태평양의 번영을 위해 양국이 협력관계를 한층 더 높여 간다는 총론에서 양국이 같은 생각을 갖게된 것이다. 즉 전후 일한 관계사의 제3의 단계에 접어 든 것이다. 이것은 각론은 이제부터다라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이번 대통령의 방일은 하나의 계기이며 이것을 앞으로 어떻게 살려나가느냐 하는 것이 중요성을 갖게 됐다. 『일의 시작이며 앞으로 살려야만 의미가 있는 것이기에 일한관계를 일보 진전시키는 기운이 솟아났다고 의미를 부여해야 한다』(스노베 전주한대사)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일한관계의 장래를 생각할 때는 다음과 같은 사항을 이해하는 것이 적어도 중요하게 될 것이다. 첫째로 한국에는 『일본은 한반도가 통일되면 통일코리아가 일본의 라이벌이 되기 때문에 현상고정을 바라고 있다』라는 견해가 있다. 일본인은 결코 한반도통일에 반대하고 있는 것은아니다. 실제는 일반의 일본인은 한반도통일문제에,혹은 분단이라는 의미에 대해 구체적으로 생각해 본 일은 적다. 그러나 한반도ㆍ아시아지역의 현실을 깊이 생각,일본의 역할을 강구해보자는 젊은이가 일본에는 늘어나고 있다. 일본의 대학에서 증가해온 국제정치관계의 학부와 강의,한국관계의 강의는 그같은 사실을 나타낸다. 북미와 유럽의 케이스에 있는 것처럼 하나의 지역이 번영을 위해 노력할 때,한 나라의 경제만이 돌출하기 보다는 복수의 동등한 경제력을 갖는 국가가 서로 경쟁하는 것이 그 지역의 경제이익으로 되는 것이며 또 지역의 안정에도 도움이 되는 것이다. 북미에서의 미국과 캐나다,유럽의 서독 프랑스 네덜란드 등이다. 한반도가 통일되었을 때 일본과 한반도와의 관계는 한층 성숙한 파트너의 관계가 되며 동아시아의 경제발전에 기여할 것은 세계의 역사가 증명하는 그대로일 것이다. 둘째로 일한의 상호인식이다. 일본인은 한국인이 반일일색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한국의 대일협력요청이라는 예를 들어 보더라도 한국의 대일기대감이 나타나 있는 것이기 때문에 반일이라는 말만으로는 설명이 되지 않는 것이다. 또 일찍이 「어두운」이라는 한국이미지는 개선되어 급속히 실상에 접근하고 있다. 활기에 넘치며 낙천적이고 감정표현이 직선적이다. 동시에 격렬하고 다정하다고 하는 한국인의 성격은 일본에서는 겨우 최근에 들어 알려지게 되었을 뿐이다. 쌍방의 상호이미지를 실상에 접근시키기 위해서는 인적 교류,특히 젊은 세대의 교류를 축적시키는 방법밖에는 없을 것이다. 앞으로 진정한 선린우호관계의 구축을 위해 양국의 노력이 시작되려고 하고 있다. 90년대의 아시아에서 예상되는 복잡한 국제정치상황을 생각할 때,이 일한간의 좋은 분위기를 소중히 여겨 협력관계를 구축해 나가야 할 것이다.
  • “한국의 국제적 지위 격상” 실감/노대통령 방일을 보는 일의 시각

    ◎노대통령 환대 속마음으로부터의 표현/70만 재일동포에겐 자긍심 심어준 계기 일본의 대한인식은 최근 두번 변했다. 한번은 88서울올림픽때였으며,또 한번은 이번 노태우대통령의 방일때였다. 서울올림픽때 일본국민들이 보여준 관심과 지원은 대단한 바 있었다. 「스바라시이」(훌륭하다)를 연발했으며,재일한국인들은 모처럼 어깨를 펴고 다녔다. 이때 일본인들은 같은 아시아권에,그것도 가장 가까운 거리에 이처럼 「큰 나라」가 있다는 사실에 새삼 놀랐으며 자긍심마저 느꼈었다. 서울올림픽의 성공은 한국의 국제적 지위를 일거에 부상시킴과 동시에 일본의 대한인식을 근본적으로 전환시키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이번 노대통령의 경우도 우선 그 인상부터가 만점이었다. 「노 스마일 하네다(우전)착륙」등의 사회면 톱기사 제목이 보여주는 바와 같이 그의 부드러운 미소는 일본국민들의 마음을 적어도 사흘동안은 사로 잡았다. 궁중만찬,사상최초의 국회연설,일본기자클럽에서의 한국대통령의 모습은 늠름하기 그지없었다. 지금의 한국을 일본인들은 군사정권의 연장이라고는 결코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노대통령의 당당한 체격에서만은 「군출신」임이 느껴진다고 말한다. 한살차이의 동년배인 아키히토(명인) 일왕과 나란히 선 그의 모습은 월등했다. 노대통령이 체일하는 사흘동안은 물론 방일 휠씬 전부터도 일본의 언론들은 한ㆍ일의 현안과 노대통령에 관한 기사로 지면을 가득가득 채웠다. NHK를 비롯한 각 TV방송도 노대통령의 도착광경에서부터 영빈관에서의 환영행사등 각종 이벤트를 그때그때 생중계했다. 거리에는 「국빈의 일본 공식방문때문에」 교통을 통제한다는 알림이 곳곳에 나붙었지만 누구하나 불평하는 기색이 없었다. 오히려 더욱 협조적이었다. 경시청은 당초 대통령의 방일기간중 도심교통량의 30%정도를 줄인다는 목표를 세우고 도쿄시민들에게 협조를 요청했으나 실적은 그 목표를 웃돌았다. 평소보다 휠씬 한적해진 도심을 달리는 택시운전사들은 『대통령이 자주 왔으면 좋겠다』고 싱글벙글했다. 일본정부당국이 사상유례없이 세심하게 배려한 이번 대통령의 방일행사는 무드 그자체만으로도 대성공이었다. 다만 아키히토 일왕의 「역사청산」에 관한 발언 『통석의 염을 금할 수 없습니다』라는 내용의 사죄의 뜻을 포함하느냐의 여부에 논란은 있으나 전체적인 방일성과는 대성공이었다. 전후 45년만에 골라낸 사죄용 어휘 「통석」에서 나타난 바와같이 일본인들은 확실히 인색한데가 있다. 좀더 알기 쉬운 말로 『일본이 잘못을 저질렀다. 죄송하게 생각한다. 그 책임을 느껴 앞으로 잘해 나가겠다』라고 말하면 충분하지 않느나고 생각하는 한국측의 입장에 흡족할 만한 표현은 일본측은 이번에도 하지 않았다. 일본은 일왕의 상징성,헌법상의 제약,정치ㆍ외교적 한계등을 내세우고는 있으나 실상 그 속사정은 다른 데 있다. 『일왕의 말 한마디로 일왕에의 충성을 맹세하며 목숨을 바친 수많은 「황국신민」의 가족들이 남아있는데 이제와서 천황이 내가 잘못했소라고 말한다면 이 유족들의 입장은 무엇이 되느냐』라는 표현하지 않는 일본인들의 속마음이다. 그나마 노대통령의 방일에 이만한 표현이라도 나온 것은 한일 언론의 힘이었다. 노대통령이 여러차레 밝힌바와 같이 일왕의 표현,가이후 도시키(해부준수) 총리의 직접적인 사죄,중ㆍ참의원의장의 전례없는 사죄코멘트 등 전반적인 정황으로 미루어 볼때 과거역사의 인식에 있어서 일본측이 책임을 통감하고 반성하고 있다는 사실은 틀림없다. 다만 일왕의 표현만이 해석상의 뉘앙스를 남길 뿐이다. 이를 두고 어떤 일본인은 『혼네(본음)와 다데마에(건전)의 역전』이라고 말한다. 진정한 속마음을 표시하는 「혼네」와 겉으로 나타내는 행동 「다데마에」가 다른 것이 일본사람이다. 겉으로는 상냥하고 친절하게 잘하면서도 속으로는 딴 생각을 하고 있다는 의미에서 나온 「혼네 다네마에론」은 일인들이 갖고 있는 단점으로 지적되기도 한다. 따라서 「다데마에」는 항상 「혼네」보다 화려하며 외교적인 것이 상례이다. 그러나 이번 노대통령의 방일의 경우에는 이것이 거꾸로 되었다는 것이다. 속마음으로는 더 해주고 더 표현하고 싶은데도 여러가지 「사정」이 있기 때문에 겉으로의 「대접」이 그 정도에 머물렀다는 견해이다. 노대통령은 26일 귀국에 앞서 가진 일본기자클럽에서의 오찬회견에서 『나는 사흘간의 일본방문을 통해 새로운 것을 보았습니다. 이번 방문에서 일본국민의 따뜻한 우의를 느끼며 새로운 시대를 열려는 두나라간의 공통된 열의를 확인했습니다』라고 말했다. 노대통령이 지적한 「새로운 것」은 바로 일본의 대한인식의 변화이며,그 변화는 『이제 한국은 만만치 않은 존재이다』라는 인식에서 나온 것임은 물론이다. 전후 45년동안 변화한 것은 일본이 아니라 바로 한국과 한국민 그 자신이었던 것이다
  • 노대통령 방일계기/「불행한 역사」청산/민단논평

    【도쿄=이경형특파원】 재일 대한민국 거류민단 중앙본부(단장 박병헌)는 노태우대통령의 방일이 끝난 26일 성명을 발표,『이번 노대통령 일본방문은 양국간의 불행했던 과거역사가 해소되는 계기가 됐으며 새로운 관계를 여는 출발점으로 우리 재일한국인은 높게 평가한다』고 말했다.
  • 미래를 위한 동반자관계 필요(사설)

    한일간의 우호협력관계를 보다 긴밀히 만드는 것이야말로 현안의 해결을 위해서나 아시아·태평양시대를 열어 나가려는 공동목표를 추구하기 위해 두나라 모두에 꼭 필요한 일이다. 노태우대통령의 이번 일본방문은 이같은 인식을 양국 국민들에게 확산시켰을 뿐 아니라 가시적이고도 실질적인 양국 협력방안을 이끌어내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고 믿는다. 우리가 노대통령의 방일을 통해 과거사에 대한 일본의 반성과 사과를 요구했던 것은 일제의 한반도 강점과 식민통치라는 과거가 우리 국민들의 마음속에 응어리져 양국관계의 차원높은 개선을 제약하는 요인이 되어왔기 때문이다. 따라서 상징적으로나마 과거청산이 필요했고 그럼으로써 양국간 새로운 협력관계도 보다 밀도있게 진전될 수 있다는 생각에서 그 계기를 잡은 것이 노대통령의 방일이라고 할 수 있다. 일본의 진정한 사과는 양국간에 보이지 않게 가로놓인 감정의 벽을 무너뜨릴 수 있다고 본 것이다. 아키히토 일왕은 노대통령을 맞는 만찬사에서 「통석의 염」이란 말로 과거사에 대한 사과를했다. 그 어의를 놓고 해석이 구구하지만 양국 정부가 이 말속에 사과와 반성의 뜻이 있는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고 과거보다는 현재와 미래의 발전이 더욱 중요하기에 더 이상 일왕의 말뜻을 갖고 왈가왈부하고 싶지는 않다. 다만 이번 사과가 지난 84년 당시의 전두환 전대통령 방일때 고 히로히토 일왕이 표시한 사과에 비하면 한단계 진전된 표현이고 일본정부를 대표한 가이후총리가 노대통령과의 1차 정상회담에서 「겸허히 반성」 「솔직한 사과」 등 구체적 표현을 썼기에 일본이 사과한 것은 틀림없다고 본다. 따라서 사과의 심도에 대한 논란 보다는 이 사과를 기초로 하여 일본이 해야 할 일을 촉구하고 실질적으로 양국의 우호에 도움이 되는 진정한 협력을 늘려 나가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것이 노대통령의 방일 목적과도 부합되는 것이다. 그중 가장 중요한 것이 우리의 안보와 통일에 대한 일본의 역할이다. 남북분단이 일제 강점통치의 후유증에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에 일본은 한반도의 안정과 나아가 통일을 도와야 할 응분의 도덕적 책임이있다. 과거를 반성한다면 행여 분단을 악용하여 혼자만의 잇속을 챙기려는 어떤 기도도 있어서는 안되며 통일을 돕는 가시적 노력을 끊임없이 해야 한다. 우리는 또 이것을 요구해야 한다. 보다 현실적인 문제로 과거청산과 관련하여 일본의 성의가 요구되는 사안들이 적지 않다. 특히 재일교포의 법적 지위에 관한 문제는 개서되어야 마땅하다. 지문날인등 이른바 4대 악의 철폐는 물론 각종 차별대우가 하나하나 시정되어 나가야 할 것이다. 이밖에 원폭피해자와 사할린동포를 돕는 문제에도 보다 적극성을 보여야 사과문제가 실질적으로 일단락되고 보다 가까운 이웃이 될 것이다. 우리가 노대통령의 이번 방일을 계기로 특히 주목하는 것은 양국이 과연 미래지향적 동반자관계를 제대로 맺어나갈 것이냐 하는 점이다. 이를위해 우선 필요한 것은 무역역조의 시정과 첨단기술 이전이다. 한일간의 진정한 우호를 위해 이 부문에 대한 양국의 지속적 노력이 있어야 할 것이다. 노대통령 방일의 참뜻이 제대로 구현되기를 기대한다.
  • 한ㆍ일 정상외교… 이렇게 생각한다

    ◎동북아 평화에 도움… 경협실천이 숙제로/한반도문제 새로운 변화 관심/윤정석 노태우대통령의 방일 성과중 가장 주목할 부분은 남북한관계를 포함한 동북아 안정문제가 심도있게 논의됐다는 점이다. 우리측은 그동안 추진해온 북방정책에 대한 설명을 했을 것이며 일본측은 북한과의 관계설정에 대한 자신들의 입장을 분명히 했을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노대통령의 이번 방일을 계기로 남북한 또는 일본·북한간 관계를 포함해 한반도문제에 대한 새로운 변화가 이루어질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기존의 한일관계는 큰 변화가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번 방일이 양국간 첨단기술이전이나 무역역조개선 등을 촉진하는 분위기를 조성해주었을 수는 있으나 이러한 문제는 근본적으로 사기업간에 이루어지는 것들이므로 정부차원에서의 역할에는 한계가 있다. 일본의 경우 군사과학기술개발을 정부가 하지 못하고 사기업에서 하고 있다. 따라서 일본정부는 한일 양국 공동기술연구소 설치나 기술이전을 위한 자금지원을 할 수 있을 뿐이며 실질적인 기술이전이 가능키 위해서는 일본의 첨단기술업체가 우리의 재일교포나 유학생들을 취업시키는 방안이 강구되어야 한다. ◎우리가 원하는 신기술 이전을/이수빈 한일 관계는 진실한 동반자관계로 나가야 할 것이라고 볼때 이번 노태우대통령의 일본방문은 만족스러운 결실을 맺지 않았나 본다. 특히 경제적 측면에서 볼때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에 관한 협정의 체결과 원자력협력협정을 통한 정부간 원자력협력협의회 구성은 물론 복수비자발급등은 한일 양국의 경제협력증진에 진일보한 것이다. 현재 양국 경제의 최대 현안으로 돼있는 무역불균형문제도 일본이 이번 회담을 계기로 대규모 구매사절단을 파한키로 한 데 따라 우리의 대일 무역적자의 완화가 기대되는 대목이다. 그러나 구매사절단의 성과에 기대를 걸어 보면서도 이같은 일본의 약속이 과거 여러차례 있어 왔으나 결과는 언제나 별무 성과였다는 점에서 실질적인 불균형 시정노력이 더욱 요청되고 있다. 무역역조문제와 더불어 일본기업의 첨단기술이전문제도 조속히 해결돼야 할 과제이나 일본은 이번에 앞으로 5년간 1천명 수준의 우리 기술자를 초청,연수시키고 일본 기술자가 우리나라에 와 기술향상을 지원키로 한 것은 다행스런 일이다. 이왕 일본이 기술이전을 하려면 지나간 기술이 아닌 우리가 원하는 신기술의 이전이 이뤄져야 할 것이다. 양국의 교역증대추세에서 보아왔듯이 한국의 발전은 일본에 나쁜 결과를 주기보다는 무역의 확대등 긍정적 효과가 컸다는 점을 유념해야 할 것이다. ◎구체적 교류방법등 제시해야/김문환 노태우대통령의 방일은 한국과 일본이 공동으로 노력해 태평양시대를 열어 나가자고 선언한 데 의의가 있으나 상호주의원칙이란 측면에서 구체적으로 우리측의 교류방법이나 원칙을 제시하지 못해 미흡했던 것으로 본다. 노대통령이 일본 국회에서 연설할 때 우리가 할 수 있는 얘기를 완곡하게 표현하기는 했으나 일본 국회의원들은 일반적인 말을 할 때는 박수소리가 컸지만 재일교포지위문제나 일본의 과오에 대해 발언할 때는 의외로 박수소리가 적었다는 점에서 일본인들이 진심으로 대한관계를 청산하려는 것이 아니라 소극적으로 국제적인 추세에 따라가는 것으로 밖에 볼 수 없다. 앞으로 우리 각료들은 이번 노대통령의 방일에서 구체적으로 제시하지 못한 상호교류의 원칙이나 공동투자 방식을 모색해야 할 것이며 위성통신에 의한 대중문화의 압력,문화교류에 대한 원칙등 현안문제도 시급히 해결해야 할 것이다. ◎속은 역사 허다… 행동이 문제/박성수 한국이 일본에 속은 역사로 말하자면 이루 열거할 수 없을 정도로 많다. 그중에서도 가장 큰 사기는 임진왜란때였다. 그때 일본이 패전하고 나서 국교재개를 요구해 왔다. 번번이 퇴짜를 맞고서 8년만에야 성공했는데 그때 수교문서의 중요한 한 구절이 거간꾼인 대마도주에 의해 개서되어 있었다. 순진한 한국정부는 그것도 모르고 국교정상화에 도장을 찍었다. 그러나 한국측은 중대한 단서를 붙였다. 앞으로 통신사가 왕래하게 되겠지만 조선통신사는 일본 동경(강호)까지 가고 일본 통신사는 부산 동래까지로 제한한다는 것이었다. 일본은 그때 무조건 이 단서조항을 받아들이고친선우호를 굳게 약속했다. 우리는 진정한 한일문린을 희망했고 더 이상의 아무것도 바라지 않았다. 바랐다면 그들이 강제 납치해 갔던 도공들의 송환뿐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가엾은 조선도공들을 돌려보내지 않았다. 그뿐인가. 그 뒤 다시 그들은 일제 침략전쟁을 감행함으로써 임란때 보다 몇십 몇백갑절이나 모진 고통을 이 착하디 착한 이웃에 「맛보게」했다. 오늘의 가이후총리가 그때 그 시절의 일본인의 후손인 이상 그가 언약한 소위 「언필신 행필과」란 말을 믿어도 될까. 노대통령의 방일성과는 오로지 일본측의 이 「행필과」에 달려있다고 믿는다.
  • “한일 선린우호의 새 시대 확신”/노대통령 귀국인사

    ◎“일의 사죄 아량으로 수용”/일의 대북접촉 사전협의 촉구/가이후와 2차회담 산업구조조정위 설치 제의/일왕에 “방한실현 기대” 직접 전달 노태우대통령은 2박3일간의 방일공식방문을 마치고 26일 하오 대한항공 특별기편으로 서울공항에 도착,귀국했다. 노대통령은 공항에서 귀국인사를 통해 『아키히토 일왕과 가이후 총리는 일본이 우리에게 그같은 불행과 과거를 초래했었음을 솔직히 인정하고 일본의 행위에 의해서 우리국민이 겪은 고통과 슬픔에 대해 분명히 사죄하고 반성했다』고 밝히고,『저는 이번 일본측이 표명한 사죄와 조치가 설사 우리국민이 기대하는 수준에 미치지 못한다고 느낄지라도 일본이 잘못을 솔직히 인정하고 반성,사죄한이상 우리는 그것을 아량으로 받아들여 이제는 선린우호의 새로운 시대를 만들어야 한다고 확신하다』고 말했다. 노대통령은 이어 『일본의 조야와 국민들은 저의 일본방문을 계기로 이제야말로 진실된 역사인식을 바탕으로 한일간에 새로운 시대를 열어야 겠다는 결의를 다지고 있다』고 전하고 『이번 일본방문이 국교정상화 4반세기를 맞는 양국관계에 새로운 장을 열게 되었다고 확신하며 국민여러분의 성원에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노대통령은 귀국에 앞서 이날 상오 숙소인 영빈관에서 가이후 도시키(해부준수) 일본총리와 제2차 정상회담을 갖고 한반도정세및 국제협력,양국간의 실질협력문제,앞으로의 외교일정 등에 관해 논의했다. 노대통령은 이어 작별인사를 위해 상오 11시 영빈관을 찾아온 아키히토(명인) 일왕과 약 10분간 환담하는 가운데 아키히토 일왕내외의 방한이 실현되기를 바란다는 뜻을 전했다. 노대통령은 가이후총리와 약 1시간30분동안 가진 정상회담에서 현재의 남ㆍ북한 대화상태와 우리의 입장,한민족공동체 통일방안,중 소등과의 북방외교현황 등을 설명했다. 노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북한은 중ㆍ장기적으로 볼대 변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며 금세기내에 한반도의 통일이 이뤄질 수 있을 것으로 확신한다』고 전망했다. 가이후총리는 일본의 대북한 정책방향을 설명했다. 노대통령은 이와관련,『일본의 대북접촉은 무방하나 한국과의 긴밀한 사전협의가 필요하다』고 지적하고 일본의 대북접촉의 선결조건으로 북한의 남북대화재개및 핵안전협정가입등 2개항을 제시했다. 노대통령은 한국의 대일무역적자 해소와 기술협력증진을 위해 양국간의 민관합동의 산업구조조정촉진위원회를 구성할 것을 제의했다. 양국 정상은 양국간의 무역확대균형과 산업과학기술협력 확대,인적및 문화교류확대에 의견을 모으고 아ㆍ태 시대에 대비,국제분야에서의 협력을 강화키로 했다. 노대통령은 그러나 한일대중문화 교류문제는 여러가지 상황을 감안,단계적 점진적으로 실현해 나가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노대통령은 이날 낮 도쿄프레스센터에서 가진 일본기자클럽 오찬회견을 끝낸뒤 하오 2시20분 하네다(우전)공항을 출발,오사카(대판)국제공항에 도착,공항 라운지에서 관서지방 교포를 위한 리셉션을 가졌다. 노대통령은 이어 오사카의 주요인사들도 접견한 뒤 하오 5시 오사카를 출발,귀국길에 올랐다.
  • 미ㆍ영 언론서도 일측 사과 논평

    ◎45년만에 일침략행위 명백히 표명 WP지/일인들에 역사적과오 깨우친 계기 영지 미국언론들은 일본의 과거 한국식민통치에 대한 아키히토 일왕의 사과 발언을 크게 보도했다. 25일자 뉴욕 타임스지는 아키히토 일왕이 공식 만찬석상에 참석한 노태우대통령 옆에서 사과 연설하는 사진을 1면 머리에 보도한후 5면에 실린 기사에서 『일본이 그러한 고위 레벨에서 전시침략에 대해 명확한 책임 인정을 표명하기는 이번이 처음』이라고 논평했다. 타임스지는 『아키히토 일왕이 일본 식민통치시대에 한국민이 겪은 고통에 대해 통석(deepest regret)의 염을 금할 수 없다고 언급한 것은 선왕 히로히토가 사용한 한정된 표현에서 바뀐 것』이라고 지적하고 『히로히토는 미국과 중국을 상대로 한 연설에서 전시를 「유감스러운」 또는 「불행한 시기」라고 지칭했을 뿐 어떠한 일본의 책임도 인정하지 않았다』고 상기시켰다. 타임스지는 그러나 주변국들의 대일감정이 예민하기 때문에 한국국민들이 아키히토일왕의 언명을 충분한 사죄로 받아들일지는 분명치 않다고보도했다. 타임스지는 또 『가이후 일본총리도 과거 일본이 한국민에게 견딜수 없는 고통과 슬픔을 안긴데 대해 「겸허히 반성하고 솔직히 사죄한다」며 분명한 용어로 사과했다』고 보도하고 일본관리들의 말을 인용,『이것도 일본의 전시행동에 대해 역대 일본총리가 표명한 것 가운데 가장 강력한 사과 발언』이라고 전했다. 워싱턴 포스트지(25일자)는 외신면 톱기사에서 『일본정부가 2차대전이 끝난지 45년만에 한국식민통치에 대해 최초로 분명하게 사과했다』고 보도하고 히로히토 일왕과 가이후총리의 사과발언 내용을 소상하게 소개했다. 포스트지는 『종전의 일본 지도자들은 「실수」는 인정했지만 「사과」라는 용어는 아무도 사용하지 않았었다』고 지적했다. 영국신문들은 25일 일왕 아키히토와 가이후 도시키 총리의 대한사과발언을 크게 보도하고 일본관리들은 이번 사과발언이 한국의 일반국민들이 갖고 있는 반감을 무마할 수 있기를 바라고 있다고 보도했다. 파이낸셜 타임스지는 지난 84년 전두환대통령의 방일때 고히로히토 일왕이 『유감스럽고 불행했던 과거』라고 한 모호한 표현이 당시 한국인들을 분노케했다고 말하고 이번 노태우대통령의 일본방문은 일본이 과거에 저지른 아시아 침략에 관해 잘 모르고 있는 일본인들에게 역사교육을 시킨 계기가 되었다고 평가했다. 이 신문은 일본의 중등교과서가 일본의 한국침략에 관해 겨우 반페이지밖에 싣고 있지 않은데 비해 한국의 중등교과서에는 무려 60페이지에 걸쳐 다루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 신문은 일본외무성대변인이 이처럼 분명한 대한사과를 하는데 45년이나 걸린 이유를 질문받자 양국이 근년들어서야 성숙했으며 일본인들이 한국인에 대해서 갖고 있는 우열의 콤플렉스가 극복됐기 때문이라고 답변했다고 전했다.
  • 일왕,“불행했던 시대” 대목서 긴장/노대통령 방일여로 이모저모

    ◎도이 사회당위장도 “엄청난 과거사과”/가이후총리 “동년배끼리 대화로 풀자” 노태우대통령은 24일 낮 12시 특별기편으로 일본 하네다공항에 도착한 뒤 환영행사 참석,일왕 예방,도쿄도지사 접견,일본 유력인사 개별접견에 이어 가이후총리와의 1차 정상회담,일왕 주최 만찬참석 등 잠시의 틈도 없이 바쁜 일정. ▷일왕 주최만찬◁ ○…과거사에 대한 사과문제로 가장 관심을 모은 아키히토 일왕의 만찬사는 24일 저녁 8시40분쯤 시작. 미리 준비된 만찬사를 천천히 읽어 내려가던 아키히토 일왕은 과거사에 언급하면서 『우리나라에 의해 초래된 이 불행했던 시기에 귀국의 국민들이…』라는 대목에서 잔 기침을 해 다소 긴장한 듯한 모습. 그러나 아키히토 일왕은 젊은이들의 교류를 비롯한 양국의 장래문제를 언급하면서는 밝은 어조로 바꾸면서 『노대통령의 방일은 21세기로 이어지는 새로운 양국관계의 초석이 될 것으로 확신한다』고 강조. ○애국가 연주뒤 축배 만찬사가 끝난 뒤 애국가 연주에 이어 아키히토 일왕은 한국과 한국국민의 번영을 기원하는 축배를 제의. 이어 노대통령은 만찬답사에서 전후 일본의 발전과 아키히토 일왕의 즉위를 축하하고 고대로부터의 양국간 문화교류를 선린우호의 역사를 담담한 어조로 지적한 뒤 근세에 있어서의 어두웠던 과거에 언급. 노대통령은 『역사의 진실이 지워지거나 망각될 수는 없다』고 힘을 주어 강조하고 『그러나 우리는 과거의 속박에 언제까지 묶여 있을 수 없다』고 새로운 시대를 열어나갈 것을 역설. 노대통령은 『일본의 역사와 새로운 일본을 상징하는 폐하께서 이 문제에 깊은 관심을 보여주신 것은 의미 깊은 일』이라고 이날 아키히토 일왕이 과거사 문제를 언급한 데 대해 평가하고 『과거 역사의 그늘을 걷고 잔재를 치우는 데 모두 노력하자』고 다짐. 만찬이 진행되는 도중 노대통령 내외의 입장,아키히토 일왕의 만찬사,노대통령의 답사,민속공연은 보도진에게 공개됐는데 이때마다 취재기자들이 열띤 취재경쟁. ○…노대통령 내외는 이날 하오 7시50분쯤 일왕 궁성인 황거내 만찬장 호메이 덴(풍명전) 현관에 도착,기다리고 있던 아키히토일왕내외로부터 영접을 받고 반갑게 악수. 노대통령과 아키히토일왕은 만찬장인 호메이 덴 2층으로 오르면서 잠시 환담을 나누고 『오늘 만찬을 통해 반가운 사람들을 모두 만나게되어 기쁘다』고 인사. 이어 하오 8시35분쯤 노대통령과 아키히토일왕을 선두로 대통령부인 김옥숙여사,미치코왕비,나루히토(덕인) 왕세자부처,그밖의 왕족들 순서로 만찬장에 입장했는데 이순간 미리 테이블에 착석해있던 귀빈들이 일제히 일어섰으며 궁내청소속의 실내악단이 서울올림픽 공식가요 「벽을 넘어서」를 은은히 연주. 노대통령 내외와 아키히토 일왕 내외가 착석한 헤드 테이블에는 가이후총리 내외,사쿠라우치 중의원의장 내외,다케시타 나카소네 전총리 내외,쿠사바최고재판소장관 내외 등 일본측 인사와 최호중외무부장관등 우리측 수행장관들이 같은 열에 나란히 착석. 이날 만찬 음식은 제비집스푸 연어구이 등 주로 서양식이었으며 메인디시는 쇠고기였고 포도주와 일본주도 포함. ○…노대통령 내외는 하오 10시45분쯤부터 순쥬노바로 자리를 옮겨 일본 민속공연 「아악」을 일왕 내외와 약 20여분간 관람. 노대통령이 관람한 아악은 고대 한반도에서 전래한 고려악형식이었으며 노대통령은 민속공연이 끝난 뒤 연주자석으로 가 피리모양의 악기를 입에 대보기도 하며 연주팀을 격려. 이날 궁성만찬은 당초 하오 8시부터 10시30분까지 2시간30분간 진행될 것으로 예상했으나 노대통령과 아키히토일왕 사이에 환담이 길어지는등 화기애애한 분위기에 따라 45분이 길어진 밤 11시15분께야 종료. ▷1차 정상회담◁ ○…이날 하오 영빈관에서 열린 노대통령과 가이후총리간의 제1차 정상회담은 접견환담및 확대정상회담의 순서로 진행 ○가벼운 담소로 시작 하오 6시 정각 영빈관에 도착,접견실인 2층 사이란 노마홀에 들어선 가이후총리는 곧이어 입장한 노대통령과 환한 얼굴로 악수를 나누며 사진기자들을 위해 잠시 포즈. 노대통령과 가이후총리는 이어 2명씩의 배석자와 함께 자리에 앉아 가벼운 담소로 대화를 시작. 가이후총리는 이 자리에서 일본측의 사정으로 노대통령의 방일이 두차례씩 지연된 데 대해 송구스러움을 표한 뒤 한국내에 노대통령의 방일을 반대하는 목소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일본방문을 결심한 데 대해 사의를 표명. 노대통령은 이에대해 『정달 어려운 방일이었다』고 털어놓고 『그런만큼 뜻있는 방문결과가 나오기를 기대한다』며 『20세기를 깨끗이 정리하여 밝은 21세기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하자』고 강조. 가이후총리는 『각하께서 6ㆍ29 민주화선언의 선두에 나서 보통사람의 위대한 시대를 개척해 나가시는 것을 보고 신선한 인상을 받았다』며 『우리는 같은 연대 출신이므로 뜻을 나누면 대화로써 모든 것이 해결될 수 있을 것』이라고 피력. 가이후총리는 이어 『곧 있을 정상회담에서도 솔직히 말씀드리겠지만 과거의 역사를 깊이 반성한다』며 「공식 사죄」에 앞서 사죄의 뜻을 간략히 표명. 노대통령은 이에 「고맙다」고 응답한 뒤 자신가 가이후총리,아키히토 일왕이 가가가 32,31,33년생임을 들어 『서로 배짱이 통하는 동년배의 우리가 진정한 대화를 나누면 긴 역사속에서 짧고 불행했던 기간은 능히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 ▷각계 인사접견◁ ○…노대통령은 영빈관에서 스즈키 도쿄도지사를 접견한 데 이어 나카소네(중증근),다케시타(죽하) 전총리,도이(토정)사회당위원장,이시다(석전)공명당위원장,오우치(대내) 민사당위원장 등 일 정계원로및 중진들을 차례로 접견. 다케시타 전총리는 노대통령을 만나 『이번 방문이 성공적이기를 빈다』고 했고 도이 사회당위원장은 『과거 양국간에 있었던 엄청난 일에 마음으로부터 사과한다』고 36년 식민통치등에 대한 사회당으로서 입장을 전달. ○일왕과 1호차 탑승 ▷환영식◁ ○…노대통령 내외는 이날 하오 1시20분 숙소인 영빈관 앞뜰에서 아키히토일왕 내외 나루히토(덕인)왕세자 왕족대표인 마사히토(정인) 일왕제 가이후 일총리부처 일본 전각료들이 참석한 가운데 베풀어진 환영식에 참석,일 자위대 의장대를 사열한 뒤 일본측 환영인사들과 인사를 교환. 노대통령은 하오 1시19분 아키히토 일왕 부처와 영빈관 현관 입구에서 첫 인사를 교환한 뒤 붉은 카펫이 깔린 테라스에서 일왕 부처와 나란히 서서 의장대가 연주하는 애국가와일본국가를 들으며 새로운 한일 선린우호관계 발전을 다짐. 노대통령은 다나카 요시모토(전중의구) 수석영접위원의 안내로 사열대에 올라 의장대의 총례를 받은 뒤 도보로 의장대를 사열. 노대통령은 사열을 마친 후 환영식에 참석한 사쿠라우치요시오(앵내의웅) 일 중의원의장 쓰치야 요시히코(토옥의언) 참의원의장및 일 각료들과 차례로 악수를 나누며 인사. 노대통령은 10분간에 걸친 환영식이 끝나자 아키히토 일왕과 국빈 1호차에 탑승하면서 환영나온 도쿄 한국인학교 학생,일본국민교생,재일교민 등 2백명을 향해 손을 들어 인사했고 이들은 양손에 든 태극기와 일본국기를 흔들며 환호. ▷일 하네다 공항◁ ○…노대통령 내외는 24일 정오 도쿄 하네다 국제공항에 도착,이원경 주일대사및 다나카 요시모토(전중의구) 일 외무성 의전장의 기상영접을 받은 뒤 21발의 예포가 울려퍼지는 가운데 트랩을 내려와 역사적 일본방문을 시작. 노대통령 내외는 이어 다나카 의전장의 소개로 나카야마다로(중산태랑) 일 외무장관 내외와 야나기 겐이치 주한 일본대사 내외등 일본측 영접인사들과 인사를 나눈 뒤 재일동포 화동으로부터 꽃다발을 증정받고 대기하고 있던 국빈차량에 탑승. 이날 하네다 공항에는 경호관계로 일반 환영객은 출입이 금지됐고 공항구내에는 일본경호요원들이 50∼1백m 간격으로 배치돼 삼엄한 경비를 펼쳤으며 일본 NHK­TV는 정오 뉴스시간에 생중계로 도착광경을 방영.
  • 노대통령,오늘 일본 공식 방문/2박3일 일정

    ◎가이후총리와 2차례 정상회담/일왕 주최 만찬서 “선린우호” 강조 노태우대통령 내외는 일본의 가이후 도시키(해부준수)총리 초청으로 2박3일간 일본을 공식 방문하기 위해 24일 상오 대한항공특별기편으로 서울공항을 출발,일본으로 떠난다. 우리나라 대통령으로서는 두번째로 일본을 공식 방문하는 노대통령은 이번 방문에서 가이후총리와 두차례 정상회담을 갖고 재일교포법적지위ㆍ원폭피해자 문제등 과거사 관련 현안과 복수비자발급 확대등 범국민적 차원의 교류확대방안을 논의한다. 노대통령은 또 정상회담에서 한반도 주변 정세변화에 따른 동북아지역국가간의 협력및 아시아ㆍ태평양지역 국가간의 협력문제와 무역불균형시정및 첨단기술 이전등 경제ㆍ과학기술 협력문제도 광범위하게 협의할 계획이다. 양국간의 당면 최대현안으로 부각되고 있는 과거 일제식민지시대에 대한 일왕의 사과문제는 노대통령의 방일 첫날인 24일 저녁 아키히토(명인)일왕의 주최로 열리는 궁성만찬에서 일왕만찬사를 통해 표명될 예정이다. 노대통령은 방문 첫날인 이날하오 일본 도쿄 영빈관에서 개최되는 환영행사에 참석한 뒤 가이후총리와 1차 정상회담을 가지며 저녁에는 아키히토일왕이 주최하는 만찬에 참석,만찬답사를 통해 과거역사의 잔재 청산을 바탕으로 한 선린우호 관계 발전을 강조할 것으로 보인다. 노대통령은 방일 이틀날인 25일 상오 우리나라 대통령으로서는 처음으로 일본국회에서 연설,한일관계를 역사적으로 조명하면서 과거사 청산을 강조한 뒤 급변하는 세계정세 속에서 한일양국간의 미래지향적인 협력의 동반자 관계정립을 역설할 예정이다. 노대통령은 또 방문 마지막날인 26일 상오 가이후총리와 2차정상회담을 갖고 양국간 실질협력문제를 집중논의하며 이날 낮에는 일본기자 클럽에서 오찬회견도 갖는다. 노대통령은 이날하오 귀국길에 오르면서 오사카(대판)에 들러 교민리셉션을 갖고 현지교민들을 격려할 예정이다. 이번 노대통령의 일본방문에는 최호중외무 이종남법무 박필수상공 정근모과기처장관과 이원경 주일대사내외 이현우대통령경호실장 정호근합참의장 김진재민자당총재 비서실장 김종인대통령경제수석비서관 김종휘대통령외교안보보좌관 노창희대통령의전수석비서관 이수정대통령공보수석비서관 최규완대통령주치의 박건우외무부의전장 김정기외무부 아주국장등 16명이 공식으로 수행한다. 노대통령의 방일 주요 일정은 다음과 같다. ◇24일 ▲상오=서울항공출발 ▲하오=환영행사(일 영빈관),일본내외예방,1차정상회담,일왕주최 공식만찬 ◇25일 ▲상오=국회연설,경제단체주최 오찬연설 ▲하오=교민리셉션,일총리주최만찬 ◇26일 ▲상오=2차정상회담 ▲하오=일본기자클럽 오찬회견,교민리셉션(오사카),귀국.
  • 과거청산과 새로운 한일관계/노태우대통령의 방일에 부쳐(사설)

    일본을 일컬어 흔히 「가깝고도 먼나라」라고 한다. 지리적으로는 가까우나 감정적인 측면에서나 이해조정이라는 측면에서 괴리가 크다는 표현이리라. 우리는 24일부터 2박3일간 있을 노태우대통령의 일본방문이 이같은 괴리를 줄이는 중요한 계기가 되기 바란다. 노대통령의 방일을 앞두고 양국정부간에는 그동안 재일동포 3세의 법적지위문제와 일본국왕의 사죄문제 등으로 지루한 교섭이 오간 것을 국민들은 지켜보아 왔다. 특히 사과문안을 놓고 밀사가 오가는 막후교섭까지 계속되고 있으나 결과가 신통찮은 점에 대해 분노를 느끼며 대통령 방일을 반대하는 의견마저 있어온 터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대통령의 방일은 움직일 수 없는 사실이 되었다. 그렇다면 노대통령은 왜 그곳에 가는가. 현재 한일양국간에 특별한 현안은 없다는 것이 외교당사자들의 말이다. 그런데도 방문정상외교를 펴려는 것은 장차 동북아의 발전을 도모한다는 측면에서 두나라의 관계개선과 협력이 필요하다는 판단이 섰기 때문이다. 또 안보와 경제분야에서의 협력과 보완이 두나라의 국익과도 일치한다는 기대가 있기 때문이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사과문제에 대한 상식적 결론이 나올수 있다. 양국간에는 강점과 탄압이라는 역사가 있고 이에따른 국민감정문제가 엄연히 존재하는 까닭에 장래의 진정한 협력과 발전을 이루려면 이같은 과거의 청산이 있어야 함은 당연하다. 가해자인 일본이 이같은 기본인식을 외면하고 진심이 담긴 사과 한마디에 인색하다면 우리 국민들의 대일감정은 풀릴 수 없다. 노대통령이 꼭 일왕의 사과를 받으러 가는 것은 아니지만 일본으로서는 과거를 사과하고 장차 선린관계를 발전시킬 좋은 기회를 갖게 되는 것이다. 또 우리가 입은 피해가 엄청난 것인 만큼 얼버무리는 정도의 사과는 반드시 다른 기회에 또다시 이 문제를 재론케 만들 것이다. 우리는 과거역사에 대한 일본의 사과가 수사뿐이 아닌 행동으로 나타나야 된다는 점을 강조한다. 현재 두나라간의 현안중에는 일본의 과거 잘못으로 파생된 현실적 문제들이 적지 않다. 특히 재일교포의 법적지위문제는 개선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당면현안이다. 일제의 희생자로서 당초 본인의 뜻과는 다르게 일본사회에 살게 된 재일교포들이 여러가지 제약과 차별대우를 받고 있음은 인과관계로 보아서도 부당하다. 지난 4월말 열린 양국 외무장관회담에서 지문날인,외국인 등록증 상시휴대,강제추방제도,재입국허가 등 이른바 4대악 제도의 일부적용 완화와 교포3세의 법적지위문제에 대체적 합의를 보았으나 4대악제도 폐지와 취업차별철폐 등 차별대우의 시정을 위한 외교적 노력이 계속되어야 마땅하다. 노대통령의 방일이 교포지위를 개선해 나가는데 있어 새로운 시발점이 되어야 할 것이다. 이밖에 노대통령의 방일에서 국민들이 주시하고 있는 바는 경제분야의 가시적 협력이 이루어질 것이냐이다. 양국간에는 무역역조와 첨단기술 이전문제가 경제현안으로 대두되어 있다. 첨단기술문제는 국제시장에서 경쟁의 한계를 보이고 있는 우리 업계에 일본의 첨단기술을 접목시켜 재도약의 기회를 마련하려는 발상이지만 첨단기술을 갖고 있는 일본의 민간기업이 잠재적 경쟁자인 우리에게 얼마나 기술을 전수할지는 의문이다. 그러나 연간 40억달러에 달하는 무역역조를 줄이기 위한 노력이 정상외교를 전후하여 전개된다면 어느정도 효과를 거둘 수 있지 않을까 기대된다. 이를 위해서는 비관세장벽을 낮추고 대한수입을 정책적으로 확대하도록 만들어야 할 것이다. 이런 여러가지 현안들이 대통령의 방일기간중 꼭 가시적으로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중요한 원칙이 결정될 수 있으며 앞으로의 외교교섭에 앞서 돌파구를 열 수도 있다. 이같은 현실적 기대와 아울러 우리의 통일까지를 내다본 먼 장래를 내다보며 한일간의 구조적 문제점을 풀어나가고 우호협력관계를 증진하는데 이번 정상외교의 목표가 두어져야 함을 강조해 둔다.
  • “보통사람 오신다” 차분한 대통령맞이/노대통령 방일 앞둔 일 표정

    ◎교포들,현수막등 내걸고 환영준비/궁중만찬선 「손에 손잡고」 연주 계획/한인 원폭희생자비 방화 등 일극렬파 극성 여전 ○…노태우대통령 방일을 맞는 일본에서는 전반적으로는 환영무드가 일고 있으나 좌ㆍ우익 과격파 단체등이 각각의 톤으로 방일반대운동을 벌이고 있어 경시청당국은 연일 2만여명의 경찰병력을 동원,노대통령 일행이 통과할 주요 간선도로변의 맨홀을 점검,봉인하고 교통규제를 실시하는 등 있을지도 모르는 좌ㆍ우익 과격파의 테러에 대비,24시간 비상경계체제를 펴고 있다. 당국은 아키히토(명인)국왕의 과거역사 사죄발언에 반대하는 우익과격파의 테러는 물론,천황에 반대하는 시민단체와 기독교단체 등 좌익단체들도 노대통령 방일이 자기들의 주장을 알리는 호기가 될것으로 판단,각종 테러를 자행할 우려가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노대통령 방일을 맞는 재일동포사회의 환영분위기도 전두환 전 대통령때와는 여러가지 의미에서 달라져 시대의 변화를 실감케 하고 있다. 전두환 전대통령 방일때는 한국국가원수의 첫 일본방문인데다 당시의 국내분위기가 재일동포 사회에까지 이어져 다소 긴장된 가운데 일견 요란한 듯한 환영행사가 많았으나 이번에는 『보통사람 대통령을 보통의 기분으로 따뜻이 맞이하면 된다』는 분위기가 주류를 이뤄 전에 비해 차분해진 느낌. 도쿄(동경)도내에 있는 재일거류민단본부에는 며칠전부터 「대통령 방일을 환영합니다」라는 현수막이 내걸렸고 민단 기관지 한국신문은 22일자 컬러판별쇄로 노대통령의 인물소개와 함께 「21세기의 한일관계 구축」「동포문제는 전후처리차원에서」등의 특집을 실었으나 전에 비해 절제된 분위기. ○…일본정부와 언론ㆍ재일동포사회의 이같은 환영분위기와는 달리 자칭 1백30개단체,1천6백명의 회원을 거느리고 있다는 우익단체연합회 전애회의와 재일한국청년동맹 등 좌ㆍ우익단체들은 전국 각지의 전철역 등지에서 방일반대전단을 돌리는 등 노대통령 방일반대운동을 벌이고 있다. 이들은 전단에서 『언제까지나 과거에 집착,일본을 모욕한다면 한일기본조약을 폐기하라』고 요구하고 『한일합방은 역사의 추세였으며당시 한국정부에 통치ㆍ외교능력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터무니없는 주장을 펴기도 했다. ○…일본경찰은 연일 2만명의 경찰병력을 동원,24시간 경비태세를 펴고 있는데 특히 과격 게릴라와 테러리스트들이 사정이 긴 화약류를 이용하거나 원격조정장치를 사용하는 등 활용범위가 넓어지고 있음을 고려,3백여군데에 검문소를 설치하고 경비범위를 전두환 전대통령때의 주요 시설물로부터 1m이상에서 이번에는 3m이내로 확대했다. 또 10대의 헬기와 29대의 순시선을 노대통령의 방문여로에 배치. ○…일본 국내청은 노대통령을 맞아 아키히토(명인)일왕이 24일 저녁에 베푼 궁중만찬에서 노대통령내외를 위해 요리와 음악ㆍ여흥 등에서 이례적으로 여러가지 특별서비스를 할 것으로 알려졌다. 궁내청에 따르면 궁중만찬의 경우 국왕이 손님을 만찬장으로 맞아들일때 일본음악인 「친애」가 연주되는 것이 관례이지만 노대통령이 서울올림픽 조직위원장을 역임했음을 고려,이번에 한해 올림픽 주제가의 하나였던 「손에 손잡고」를 연주키로 했다는 것. 당국은 이밖에 궁중행사의 경우 보통 국왕 한사람에게만 붙이도록 돼있는 통역을 표현의 차이로 인한 오해를 없애기 위해 노대통령에게도 한국인 통역을 따로 두기로 했으며 보통 국빈에게 제공되는 국화문양의 국왕전용 승용차(닛산ㆍ프린스 로얄)대신 가까운 곳에서 다이너마이트가 터져도 끄떡없는 외무성의 특별장비차를 제공키로 했다. ○…노태우대통령의 방일을 앞두고 나고야(명고실) 오사카(대판)등지에서 극우극력분자들의 소행으로 보이는 방화ㆍ테러사건이 빈발하고 있는 가운데 23일에는 히로시마(광도)평화공원부근에 세워진 한국인 원폭희생자 위령비의 대좌에 놓여있던 추모용 종이학이 방화로 불에 탔다. 이들 종이학은 수학여행온 학생들이 바친 것으로 이날 상오 1시20분쯤 불이 붙고있는 것을 통행중인 트럭운전사가 발견,소화기로 진화했다. 이날 방화로 위령비자체에는 피해가 없었다. 경찰은 이 사건이 노대통령의 방일을 반대하고 있는 극렬분자들의 소행으로 보고 수사중이다.
  • 84년 「유감」보다 진전… 대승적 차원서 수용

    ◎일왕 「사과문안」 최종절충 안팎/가ㆍ피해자 명시됐지만 「책임」은 약해/일왕ㆍ총리 사과 합치면 우리측 요구수준 될듯 노태우대통령 방일시 아키히토(명인) 일왕이 궁정만찬석장에서 밝히게 될 대한사과문안에 대한 한일 양국간 협상은 방일 하루전인 23일 일단 마감됐다. 야나기 겐이치(유건일) 주한일본대사가 이날 하오 최호중외무장관을 예방,일본측이 과거사에 대해 가해자와 피해자를 명시하고 사과의 주체를 밝히는 내용의 최종적인 일왕사과문안을 전달했기 때문이다. 최장관도 이날 야나기 주한일본대사를 만난 뒤 기자들에게 『일본측이 노대통령을 정중하게 맞이하는 자세를 견지,신중하고도 많은 고심을 한 결과라고 일단 평가한다』며 일본측이 제시한 최종사과문안에 대한 소감을 피력한 데 이어 『이번 방일에서 아키히토 일왕이 밝힐 사과수준은 84년 전두환 전대통령 방일당시 히로히토(유인) 일왕이 말한 「유감표명」보다는 진전된 것』이라고 강조,우리측 요구가 상당부분 수용됐음을 시사했다. 일본측이 제시한 최종문안은 ▲한일 양국간 과거사에 있어 가해자및 피해자 명시 ▲사과주체의 표시 ▲84년 당시의 「유감」보다는 더 강도가 높은 사과표현이 담겨져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당초 우리정부가 요구한 가해자와 피해자의 적시,식민지배에 대한 「책임」과 「반성」을 분명히해야 한다는 수준에는 못미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같은 수준을 토대로 일왕사과문안을 정리해본다면 『본인(일왕)은 금세기 한 시기에 있어서 우리나라(일본)가 한국에 끼친 불행했던 과거가 있었던 데 대해 고통과 슬픔을 통절히 느끼며 다시는 이같은 일이 되풀이되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로 될 수 있을 것 같다. 결국 양국간의 이번 협상은 우리측의 강력한 입장개진과 일본측의 양보가 어우러져 마무리된 것으로 판단된다. 그러나 이번에야말로 완전한 과거청산을 희망했던 국민들의 반응이 어떻게 나타날지는 미지수라고 할 수밖에 없다. ○…일본측은 84년때와 마찬가지로 이번에도 정식외교경로 전달방식을 선택,이날 하오 야나기 대사가 최장관을 예방하는 자리에서 일왕의 최종사과문안을 한국측에 전달. 일본측은 이에앞서 22일 밤 고위특사인 세지마 류조(뇌도용삼)씨의 보고를 토대로 가이후(해부) 총리 주재로 나카야마 외상,사카모토 관방장관등이 참석한 가운데 대책회의를 열고 최종문안을 23일 제시키로 결정했다는 후문. 일본측은 이 자리서 일왕발언의 헌법상 허용문제를 감안,일왕의 사과표명을 한국측의 요구수준보다는 낮추되 대신 가이후 총리가 한국측의 요구를 대폭 수용,깊은 반성과 책임을 밝힌다는 기존의 방침을 재확인했다고. ○…야나기 대사는 당초 예정시간보다 35분가량 늦은 이날 하오 2시35분쯤 외무장관접견실로 최장관을 예방,최종문안 전달과 함께 일본측의 전반적인 상황을 설명했다고 한 배석자가 전언. 40여분간 계속된 이 면담에서 최장관은 『양국관계의 밝은 미래를 위해서도 일왕의 사과문안이 우리국민의 기대를 상당한 정도 담기를 희망한다』면서 일본측의 성의있는 자세를 재차 강조했으며 야나기 대사는 이에대해 어려운 일본 국내사정을 설명하며 양해를 구했다고. 일본대사관측은 야나기 대사가늦게 도착한 이유에 대해 『본국정부로부터 텔렉스 도착이 늦었기 때문』이라고 밝혀 일본측이 우리측에 공식통보하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진통을 겪었음을 시사. 최장관은 특히 야나기 대사가 『늦어서 미안하다』며 인사말을 건네자 약간 상기된 표정으로 『일왕의 최종사과문안 제시가 온 국민의 관심사항이 되고 있다』고 답변,일본측이 우리국민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사과문안을 갖고 왔음을 의식한 듯한 발언을 하기도. 최장관은 또 야나기 대사와 악수하는 포즈를 잡아달라는 사진기자들의 요청에 『그냥 앉아서 얘기하는 표정을 찍는 것이 낫지 않느냐』며 신중한 자세를 견지. 최장관은 면담을 끝낸 뒤 청와대로 직행,노대통령에게 최종사과문안및 일본측 정황등을 상세히 보고. ○…최외무장관은 이날 노대통령에게 일측 사과문안을 보고한 뒤 노재봉대통령비서실장과 만나 한동안 문안내용을 놓고 숙의. 노실장은 이어 삼청동에서 외무부관계자들과 대책을 논의,청와대로 돌아와 이수정공보수석비서관을 급히 찾았는데 주변에서는 『일측의 사과문안과관련한 우리측 대응입장을 다시 수정하기 위한 것이 아니냐』는 관측들. 노실장은 기자들이 『일왕사과문안은 절충이 모두 끝났느냐』는 물음에 직접적인 답변은 회피하면서 『비행기 타는 일만 남은 것 아니냐』고 말해 양국간의 절충이 사실상 마무리됐음을 시사. 노실장은 일왕의 사과수준을 캐묻자 『일왕과 총리의 사과내용을 합치면 우리가 요구하는 수준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해 다소 미흡함이 있음을 우회적으로 답변. 노실장은 이날 전달된 일본의 사과내용을 국민들이 납득할 수 있겠는가라는 질문에는 『당장 문안을 펼쳐보일 수는 없으나 긍정적일 것으로 본다』고 조심스레 피력. 청와대의 한 관계자는 일측 사과문안과 관련,『노대통령의 일왕주최 만찬답사ㆍ국회연설ㆍ일총리주최 만찬답사 등을 일부러 다시 손댈 필요는 없다』고 말하고 『일본측의 사과수준과 외교적으로는 정상적인 것 같다』고 피력해 다소 우리의 당초 기대에는 못 미치지만 「84년 사과수준」보다는 강도가 있는 것임을 시사. 이 관계자는 『일측의 사과문안이 일본내에서는 많은 반대견해가 있을 수도 있는 것으로 일본정부로서는 나름대로 노력을 했다고 볼 수 있다』고 언급. ◎노대통령 맞는 동경의 기류/「침략국」인상 씻고 “평화지향 일본” 부각 겨냥/“한ㆍ일 신협력시대”들어 실리 치중 말은 안해도,노태우대통령의 일본방문에 대해 일본측이 전례없이 중점을 두고 배려하고 있는 것은 다음과 같은 몇가지 「사정」에 기인한다. 물론 표면상으로는 미래지향적 우호ㆍ협력관계의 구축을 노대통령 방일실현의 첫번째 목적으로 꼽는다. 앞으로 다가올 아시아ㆍ태평양시대의 이니셔티브를 잡기 위한 두나라 공동전선을 구축하며,세계경제 블록화에 대처하기 위해 보조를 맞춘다는 명분론을 들고 있으나 그 「필요성」은 더욱 현실적인 데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우선 국내의 정치적 기반이 취약한 가이후(해부)정권의 장기안정화를 꾀하기 위해 외교에 치중할 필요가 있다. 오는 8월이면 발족 1년을 맞는 가이후내각으로서는 고르바초프 소련대통령 방일실현,한국과의 유대강화,동구제국과의 관계개선등 외교실적을 통해 국제적 지위를 부상시킴과 동시에 「본격정권」으로서의 이미지를 내외에 인식시켜줄 필요가 절실하다. 두번째는 일왕의 방한실현 타진이다. 침략군국주의의 대명사 쇼와(소화) 일본의 인상을 씻고 평화지향의 헤세(평성) 일본을 부각시키기 위해서는 아키히토(명인) 일왕의 한국방문이 필요하다. 일왕의 한국방문이 갖는 상징성은 매우 강하기 때문이다. 세번째는 경쟁상대로 떠오르고 있는 한국과의 경제협력을 원활히 함으로써 세계적 경제마찰의 초점을 분산시키자는 등의 계산이 깔려있다고 볼 수 있다. 동시에 신칸센(신간선)같은 대형 프로젝트의 판매등을 통해 기존시장을 확대하려는 의도도 없지않은 것으로 해석된다. 일본의 이같은 외교목표 설정은 한국의 그것과는 일치하지 않음으로써 지금까지도 불협화음을 빚고 있다. 지난 3월 일본의 학자ㆍ변호사ㆍ종교인등 58명은 『의회는 36년간의 식민지지배를 통해 일본이 한민족에게 헤아릴 수 없는 고통을 준 데 대해 반성하고 국민의 이름으로 사과한다』는 결의를 채택하도록 일본 중ㆍ참의원및 각 당에 요구했다. 와다 하루키(화전춘수) 동경대교수,다카키 겐이치(고목건일),변호사 다케우치 겐타로(죽내겸태랑) 일본기독교협의회장 등을 대표로 하는 이들은 「한국병합조약 80주년을 맞아 조선식민지 지배 반성의 국회결의를 요구하는 성명」을 통해 이같이 촉구했다. 이것은 진정한 인식전환만이 우호의 바탕이라는 사실을 일본인 스스로가 자각하고 있다는 증거이다. 평화ㆍ안전보장연구소 회장인 이노키 마사미치(저목정도)씨는 최근 산케이(산경)신문에의 기고를 통해 일왕은 일본의 책임소재를 명쾌히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일본국의 상징으로서,일본을 대표하고 있는 것은 천황이다. 노일전쟁으로부터 종전까지 일본은 가해자였으며 한국은 피해자였다는 것은 명확한 사실이기 때문에 천황의 사죄내용에 「일본의 책임에 의해」라는 의미가 명시되어야 한다. 총리가 제아무리 노력하더라도 한국민은 결코 만족하지 않을 것』이라고 간파했다. 그러나 이같은 식자들의 우려와는 달리 평소 일본의 대한관에서는 불과 반세기도 지나지 않은 일제의 침략과 수탈에 대한 뉘우침과 반성의 뚜렷한 기미를 찾아볼 수 없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오히려 최근의 오사카(대판) 나고야(명고옥)등지에서의 극우국수주의자들에 의한 폭발테러사건등에서 볼 수 있는 바와같이 일제당시의 의식과 시각을 그대로 갖고 있는 언행들을 많이 접할 수 있다. 과거 일본교과서의 역사왜곡도 그 좋은 예의 하나이다. 일본법원은 일본군의 「침략」과 「대학살」표현을 완화토록 지시한 문부성의 수정지시가 합법적이라는 판결까지 내렸었다. 역사적 사실을 수정하도록 강요하는 정부,또 이를 마땅한 것으로 판단하는 법조에 이르기까지 일본의 일부 지배층의 기본인식이 근본적으로 바뀌지 않는 한 진정한 의미의 한ㆍ일우호관계는 수립될 수 없다. 일본의 잘못된 대한인식과 태도는 지난번 재일한국인의 법적 지위보장ㆍ처우개선 협의에서도 잘 드러났다. 우여곡절끝에 「3세문제」에 대해서는 최소한도의 합의를 보았으나 1ㆍ2세문제는 거론되지도 않았다. 70여만명에 달하는 재일동포들의 법적 지위문제는 바로 인간의 기본권인인권과 생존권의 문제이다. 일본에서 태어나고 교육울 받으며 일본사회에서 살고 있는 재일동포와 그 자손들의 법적 안정성 보장및 차별철폐,원폭피해자문제,사할린거주 한국인문제등 일본이 역사적 책임을 져야만 하는 문제는 많다.
  • 「사과수준」막판 “접점찾기” 신경전/일 특사 세지마의 “서울행보”

    ◎일 제시 최종문안 가해자 명시 불분명/84년 수준보단 진전… 기대에 크게 미흡/일측,여론의식… 후쿠다서 세지마로 특사 교체한 듯 노태우대통령의 일본방문 첫날인 24일 하오 궁정만찬석상에서 밝히게 될 한일양국간 불행했던 과거사에 대한 아키히토(명인) 일왕의 사과수준을 놓고 팽팽한 줄다리기를 계속했던 양국간 협상이 막바지 「초읽기」에 돌입했다. 일본측이 22일 상오 가이후(해부) 총리주재로 관계장관회의를 열어 한국측에 제시할 최종적인 사과문안을 사실상 확정한데다 가이후 총리의 특사로 세지마 류조(뇌도용삼) 이토주(이등충)상사 상담역을 서울에 보내 일본측의 전반적인 정황 등을 한국측에 설명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측이 이날 제시한 최종문안은 사과수준이 84년 당시 유감표명 보다 진전된 내용을 담고있기는 하나 가해자인 일본의 명시가 불분명한 것으로 알려져 가해자와 피해자를 분명히 밝힐 것을 요구했던 정부의 당초 기대와는 동떨어져 미흡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에따라 실질적인 최종사과문안은 양국간의 막바지 협상결과에 의해 다소 유동적일 것으로 보인다. 주무부서인 외무부는 이같은 점을 인식,비록 일측이 제시한 최종문안이라 하더라도 우리측의 기본입장을 재차 강조하면서 새로이 문안조정을 촉구할 방침임을 굳혀 사과문제를 둘러싸고 양국간에는 마지막 신경전이 전개되고 있다. ○…일본측 특사로서 커다란 관심을 끌고있는 세지마씨는 양국간 현안해결이라는 막중한 임무를 띠고 이날 낮12시5분 서울에 도착한뒤 평소 두터운 친분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박태준 민자당최고위원과 함께 노대통령을 예방하기 위해 청와대로 직행. 이날 노대통령은 세지마씨를 하오1시반부터 3시까지 1시간30분동안 접견,일왕 사과문제등 현안에 관해 의견을 교환. 이수정청와대 대변인은 『노대통령은 가이후총리의 개인적인 부탁을 받고 방한한 세지마씨를 통해 노대통령 방일에 따른 가이후총리의 생각과 일본내 상황을 청취했다』고 간단히 발표했으나 이자리에서 한일간 외교적 쟁점이 되고있는 일왕의 사과문제가 거론됐는지에 대해서는 『아는바 없다』로 일관. 이대변인은 그러나 세지마씨가 일본측의 마지막문안을 노대통령에게 전달하고 설명한 것이 아니냐는 질문에는 『그 문제와 관련,문서를 전달하거나 한 일이 없다』고 좀더 적극적으로 부인. 한편 세지마씨는 불과 다섯시간정도 서울에 머무른뒤 이날 하오5시15분 출국. ○…일왕사과문제를 둘러싼 양국간의 외교적 분쟁을 해소,우호적인 분위기를 만들기 위한 방안의 하나로 당초 양국정부는 지난 14일 김정기 외무부아주국장의 방일시 외무부를 중심으로 양국간 고위특사의 상호파견 문제를 신중히 검토 했다는 것. 이에따라 우리측은 박최고위원의 재방일을 공식화 했으나 일본측은 일본국민들의 감정을 자극할 우려가 크다고 판단,막판까지 극비에 붙이면서 우리측에도 절대보안을 요구했다는 후문. 일본측은 누구를 특사로 파한할 것인지를 두고 최종순간까지 고심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지난 20일까지는 전직수반협의회 제8차 총회 참석차 방한하는 후쿠다(복전) 전총리를 통해 사과문안을 전달한다는 방침이었으나 일본측 여론이 『우리가 정계거물까지 보내 머리를 조아릴필요가 있느냐』는 비판론 쪽으로 기울자 21일 가이후총리 주재 회의에서 현재 반은퇴상태에 있는 세지마씨를 특사로 낙점했다고 외무부 고위당국자가 귀띔. ○…외무부는 일본측이 일왕 사과문안과 관련,가해자를 분명히 표시하지 않고 얼버무리는 쪽으로 점점 기울어지자 막판까지 일측의 성의를 촉구하면서 대응책 마련에 고심. 정부측의 대응방안으로는 노대통령이 방일기간중 일왕주최 만찬사,총리주재 리셉션,일본 기자구락부의 기자회견 등 적절한 기회에 우리측의 불편한 심기를 나타내는 방법과 함께 일왕의 방한을 초청하지 않는 방법등이 검토될 수 있다고 한 당국자는 추가 설명. 외무부의 다른 당국자는 이와 달리 『일본내 여론은 일정부에 의해 충분히 순치될 수 있으며 일정부도 우리측 요구를 수용하려고 최대한 노력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해 가해자와 피해자를 명시할 것을 요구하고 있는 우리측 요구가 수용될 수도 있을 것으로 기대. ○…한편 세지마씨와 거의 같은 시간에 일본항공편으로 내한한 후쿠다 전 일본총리는 이날 하오 민자당사로 김영삼대표최고위원을 예방. 김대표는 이자리에서 『한일 양국간 현안에 대해 한국국민의 감정은 대단히 민감하다는 점을 유의해 달라』고 말하고 『따라서 한국국민의 감정에 거슬리는 행위는 양국선린관계에 좋지않은 영향을 미칠것으로 우려된다』는 견해를 피력. 후쿠다 전총리는 노대통령의 방일과 관련,『노대통령의 이번 방일이 명예로운 것이 되도록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말하고 『지문날인등 재일동포 3세문제가 완전히 타결된 것으로 알고 있으며 나머지 문제도 잘 해결될 것』이라고 말했다. 후쿠다 전총리는 김대표에 이어 김종필최고위원도 방문하고 양국관심사에 대해 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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