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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포토] ‘할머니 죄송합니다’ 고개숙인 아베?

    [포토] ‘할머니 죄송합니다’ 고개숙인 아베?

    20일 서울 종로구 옛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린 제1379차 일본군성노예제 문제해결을 위한 정기 수요시위에서 한 참가자가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가면을 쓰고 ‘할머니 죄송합니다’ 팻말과 함께 고개를 숙이고 있다. 2019.3.20 뉴스1
  • ‘소녀상 말뚝테러’ 일본인 6년째 재판 불출석…법원 “인간성 말살 범죄행위 처벌에 국경 없어”

    ‘소녀상 말뚝테러’ 일본인 6년째 재판 불출석…법원 “인간성 말살 범죄행위 처벌에 국경 없어”

    2012년 일본군 위안부 소녀상에 ‘말뚝 테러’를 한 극우 성향 일본인 스즈키 노부유키(54)씨가 사건 접수 6년이 지나도록 우리나라 법원에 출석하지 않고 있다. 검찰은 지난해 일본 정부에 범죄인 인도 청구를 했지만 아직 일본 정부의 공식 입장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20일 서울중앙지법 형사1단독 이상주 부장판사는 명예훼손 등 혐의로 기소된 스즈키씨에 대한 올해 첫 공판을 열었다. 스즈키씨는 2012년 6월 서울 종로구 주한 일본대사관 건너편 위안부 소녀상에 ‘다케시마는 일본 영토’라고 적은 말뚝을 묶어놔 피해자들의 명예를 훼손하고, 윤봉길 의사 순국비에도 비슷하게 ‘말뚝 테러’를 한 혐의로 2013년 2월 기소됐다. 2015년 5월에는 경기도 광주에 있는 ‘나눔의 집’에 위안부 피해자를 모욕하는 소녀상 모형을 국제우편으로 보내 추가 기소됐다. 이날까지 총 16회의 공판기일이 잡혔지만 스즈키씨는 소환장을 송달받고도 한 번도 출석하지 않았다. 이에 법원이 2016년부터는 강제 구인을 위한 구속영장까지 수차례 발부했지만 효과가 없었다. 결국 지난해 4월 이 부장판사는 법무부 장관이 일본 정부에 범죄인 인도를 청구할 것을 검토하라고 검찰에 명령했고, 법무부는 지난해 9월 스즈키씨에 대한 인도 청구를 했다. 2002년 서명·발효된 한일 범죄인인도조약에 따르면 인도 청구를 받은 나라는 인도 청구에 대한 결정을 청구국에 신속히 통보해야 한다. 이날 이 부장판사는 “종군위안부 사건과 같이 인간의 존엄성을 부정하고 인간성을 말살하는 범죄 행위나 이를 사실상 옹호해 참혹한 비극의 재발을 초래할 수 있는 범죄행위를 처벌하는 데 있어선 국경이 없다고 판단했다”고 인도 청구 배경을 설명했다. 이어 그간 진행 경과를 묻는 이 부장판사의 질문에 검찰은 “(지난해 9월) 인도 청구와 별도로 지난 1월에도 이 사건 인도를 적극 검토해달라고 요청했지만 아직 공식 입장은 없다”고 밝혔다. 이 부장판사는 “일본에서의 인도 절차 진행을 기다려봐야 하는 상황이다”면서 “피의 자발적 출석을 기다리기 위해 다음 공판기일을 4월 3일로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유영재 기자 young@seoul.co.kr
  • [In&Out] 박용만의 대조선국민군단 병영터 현장을 찾아서/심헌용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선임연구원

    [In&Out] 박용만의 대조선국민군단 병영터 현장을 찾아서/심헌용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선임연구원

    군사편찬연구소는 지난해 12월 탐방단을 꾸려 항일 독립운동가 박용만의 무장투쟁 행적을 찾기 위해 하와이에 다녀왔다. 하와이에 한인이 처음 도착한 때는 1903년 1월 13일이다. 한인들은 어려운 노동 과정에서도 자신들의 수입 25%를 독립 의연금으로 내놓았다. 이민자 사이에 독립운동가 박용만도 포함됐다. 1905년 2월 도미한 박용만은 1908년 9월 네브래스카주 헤이스팅스대학에서 정치학을 배우며 ROTC에 입단했다. 그는 대학의 한 건물을 임차해 학생들을 기숙시키고 군사훈련을 시켰다. 해외 한인사회 최초의 일이었다. 그는 1909년 6월 커니 농장에서 시작된 한인소년병학교를 이듬해 4월 헤이스팅스 기숙학교로 옮겨 운영했다. 미래 독립 전쟁에 나설 군인을 양성하는 게 목적이었으나 일본의 압력과 재정난으로 지속하지는 못했다. 그럼에도 박용만은 훗날 독립 전쟁을 수행할 부대와 군인을 양성하고자 2000~3000명의 장정으로 구성된 병학교를 창설하고자 했다. 박용만은 자금을 모으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했다. 이때 파인애플 농장을 운영하려던 박종수가 뜻밖에 농장을 내놓았다. 이번 답사 중 확인한 ‘박종수 수기’에 따르면 그는 1913년 말 오아후섬 동쪽 카할루 지역에서 파인애플 농장 관리 회사로부터 땅 400여 에이커를 5년간 임차하고 있었다. 박용만의 포부를 들은 박종수는 자신의 농장을 선뜻 박용만에게 인계해 대조선국민군단이 정식으로 창설됐다. 박용만은 군단장, 박종수는 대대장을 맡았다. 코올라우산 너머에 위치한다 하여 ‘산 넘어 병학교’라 불렸다. 대조선국민군단은 하와이 한인사회에서만이 아니라 상하이나 간도 지방에서도 학생이 지원했다. 선발된 학생 240명은 대략 17~35세 사이의 장정들이었다. 이 중 75명이 대한제국 군인 출신인 ‘광무군인’(光武軍人)이었다. 국민군단 학생은 오전 4시 기상해 5시 식사를 마치면 7시부터 농장 작업을 하고 9시에서 11시까지는 군사훈련에 임했다. 오후 1시부터 5시까지 농장 작업에 투입되고 7시부터 학교 교육에 임하는 등 노동과 학습, 군사훈련을 병행했다. 그러나 병학교는 지속되지 못했다. 최영호 전 하와이대 교수는 하와이 주정부 문서보관소에서 찾은 문서를 단서로 일본의 견제로 병학교 운용이 더이상 불가능했다고 추론했다. 1915년 7월 6일 미 국무장관은 하와이 주지사에게 한인들의 반일 활동에 대한 주미 일본대사관의 불만 내용을 전했다. 하와이 주지사는 조사 후 일본의 주장이 사실이 아니라고 회신했지만, 분란의 소지를 계속 안고 있을 수는 없었다. 그 후 대조선국민군단은 카후쿠로 이동했다가 다음해 해체됐다. 그럼에도 박용만은 미래 독립 전쟁에 대비한 군인 양성 사업을 무장투쟁론 실현을 위한 핵심이란 지론을 견지해 나갔고, 3·1운동의 촉발로 그 실천 장소는 미주 하와이가 아니라 만주 연해주로 이어지게 됐다.
  • ‘소녀상 말뚝 테러’ 극우 일본인 재판, 올해도 공전 거듭할까

    ‘소녀상 말뚝 테러’ 극우 일본인 재판, 올해도 공전 거듭할까

    2012년 6월 일본군 위안부 평화비(소녀상)에 ‘말뚝 테러’를 한 극우 성향의 일본인 스즈키 노부유키 재판이 올해 7년째를 맞는다. 하지만 스즈키의 거듭된 출석 불응과 일본 정부의 비협조적 태도로 재판은 공전을 거듭하고 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1단독 이상주 부장판사는 오는 20일 명예훼손 등의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스즈키의 올해 첫 공판을 열 예정이다. 스즈키는 2012년 6월 당시 서울 종로구 주한 일본대사관 맞은편에 세워진 소녀상 옆에 ‘다케시마(일본에서 독도를 부르는 말)는 일본땅’ 등이 적힌 말뚝을 묶어놔 피해자들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2013년 2월 기소됐다. 그는 2012년 9월 윤봉길 의사의 순국기념비에 ‘말뚝 테러’를 하고 윤 의사를 ‘테러리스트’라고 모욕한 혐의(사자명예훼손)도 받고 있다. 2015년 5월에는 경기 광주에 있는 ‘나눔의 집’ 등에 피해자를 모욕하는 소녀상 모형과 ‘다케시마는 일본 고유의 영토’라는 일본어가 적힌 흰색 말뚝 모형을 국제우편으로 보낸 혐의로도 이듬해 추가 기소됐다.하지만 일본에 있는 스즈키는 출석통지서를 적법하게 송달받고도 2013년 9월 열린 첫 공판기일부터 법정에 출석하지 않았다. 법원은 그를 법정에 데려오기 위해 구속영장을 발부하기도 했지만 일본 정부의 비협조 탓에 집행되지 못했다. 지난해 재판에도 스즈키가 불출석하자 법원과 검찰은 범죄인 인도 청구 절차를 밟았다. 재판부의 주문에 검찰이 법무부에 스즈키의 범죄인 인도를 청구해달라고 건의했다. 그러나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스즈키가 올해에도 법정에 나타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일본 정부가 협조적인 태도를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앞서 2013년 7월 법원이 윤봉길 의사의 조카가 스즈키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 “1000만원을 배상하라”고 원고 승소 판결했다. 하지만 스즈키는 이 민사재판 변론기일에도 출석하지 않았고, 출석 대신 재판부에 나무 말뚝을 보냈다. 오세진 기자 5sjin@seoul.co.kr
  • 지켜봐라, 일본아…피해자 없는 싸움 더 큰 울림될테니

    지켜봐라, 일본아…피해자 없는 싸움 더 큰 울림될테니

    최대 20만명으로 추정되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 여성 중 우리 정부에 공식 등록된 이는 모두 240명이었다. 이 중 생존자는 22명뿐이다. 올해만 벌써 3명이 별세했다. 28년째 주한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리는 수요시위에 놓인 할머니들의 자리는 요즘 부쩍 비어 있다. 할머니들이 하나 둘 세상을 뜨며 생긴 변화다. 일각에선 ‘피해자 없는 위안부운동’이 힘을 잃을 것이라고 우려한다. 그러나 위안부운동은 여전히 뜨겁다. 지난 1월 타계한 인권운동가 김복동 할머니를 비롯한 할머니들의 빈자리는 이제까지 할머니들과 함께해 온 활동가들과 미래 세대가 채워가고 있다. 그들은 “피해자 없는 싸움도 이미 준비됐다”고 말한다. 죽은 이들의 역사를 함께 부둥켜 안고 하는 싸움은 더 강한 메시지로 전 세계로 뻗어가고 있다.지난 6일 서울신문은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윤미향 정의기억연대(정의연) 이사장과 이태준 국민대 평화의소녀상 건립추진위원회 ‘세움’ 대표를 만났다. 윤 이사장은 오랜 시간 할머니들의 곁을 지켜왔고, 이 대표는 학내에 평화의 소녀상을 건립하기 위해 20여명의 학우들과 활동하고 있다. 윤 이사장은 김 할머니가 28년간 뿌린 씨앗이 곳곳에서 싹을 틔우고 있다고 자신했다. 그 발자취를 따라 걷는 ‘후발주자’ 이 대표에게는 미래에 대한 진중한 고민이 엿보였다. 이들에게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물었다. 우선 두 사람이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처음 관심을 가진 계기가 궁금했다. 윤미향(이하 윤) “어쩌면 대한민국 여성으로 태어났다는 것, 그 자체가 계기죠. 원래 여성운동에 관심이 많았어요. 그러다가 1991년 김학순 할머니의 증언을 신문 기사로 접하고 충격 받았죠. 그들의 고통을 몰랐다는 반성을 했고,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 간사에 자원했죠.” 이태준(이하 이) “제 경우엔 좀 늦은 시기라 부끄럽습니다. 2015년 겨울, 한일 일본군 위안부 합의 때서야 이 문제를 마주했죠. 당시 수요집회 때 김복동 할머니가 ‘수백억원을 줘도 이 문제를 (이렇게) 해결할 수 없다’고 하셨죠. 비록 남성이지만, ‘우리 엄마였다면, 또 할머니였다면 어땠을까’ 하는 질문이 맴돌았습니다. 위안부 문제를 시작으로 우리의 아픈 역사를 돌아봐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1991년에서야 김학순 할머니의 증언으로 처음 공론화됐다. 그전까진 피해자들이 목소리를 낼 수 있을만 한 사회적 분위기가 형성되지 못했다. 한 예로 김학순 할머니 고백 이후 피해 증언을 받기 위해 개설한 전화엔 할머니에 대한 입에 담지 못할 욕설을 쏟아내는 사람들이 많았다. ‘정절을 잃은 게 무슨 자랑이라고 말하고 다니느냐’는 비난이 일본이 아닌 한국에서 나왔다.할머니들은 더 절박하게 사회에 목소리를 냈다. 하지만 정권이 바뀔 때마다 이 문제는 진전과 답보를 오가다 결국 제자리를 맴돌았다. 한일합의는 대표적 예다. 2015년 12월 28일, 일본 정부는 “해당 문제에 대해 책임을 통감한다”며 화해치유재단을 설립해 일본 정부 예산으로 10억엔(약 100억원)을 출연했다. 하지만 피해자 중심적 접근이 이뤄지지 않는 등 성과보다 문제점이 더 많았다. 할머니들은 합의 파기를 요구했고, 결국 화해치유재단도 해산됐다. 윤 “한일합의가 미친 영향이 컸어요. 한일합의 직전 박근혜 전 대통령은 적극적으로 이 문제를 해결할 것처럼 말했죠. 솔직히 안심했었어요. 하지만 그 합의 이후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비정부기구(NGO)는 정부와 독립적으로 정부를 비판하고 감시해야 한다는 걸. 대중의 인식도 변했어요. 피해자들의 절규와 상반된 정부의 모습을 통해 ‘이제 더이상 피해자만의 문제는 아니구나’ 깨달았죠. 각 지역에 소녀상들이 세워지는 등 역동적 활동들이 생겨난 것도 그 즈음입니다. 이 “우리도 그런 인식을 바탕으로 소녀상을 학내에 세우려 하는 겁니다. 한 친구가 ‘소녀상은 고통을 듣고 싸우는 사람이 돼야 한다는 상징’이라면서 ‘소녀상으로 (학우들이) 할머니의 삶과 온기를 기억했으면 좋겠다’고 하더라고요.” ‘세움’은 디자인부터 제작까지 학생들 손으로 평화의 소녀상 건립을 준비했고 성금도 모아왔다. 학생들은 포기하지 않고 있다. 5일부터 받은 서명에는 3일 만에 1900여명의 학우가 참여했다.윤 “소녀상은 할머니들을 대신하는 존재입니다. 다만 소녀상으로만 활동이 끝나선 안 된다는 이야기를 꼭 해주고 싶었어요. 소녀상을 세운 그 이후가 더 중요합니다.” 이 “윤 이사장님 말씀에 공감해요. 우리(세움)도 그 부분을 얘기하고 있습니다. 같이 활동하는 친구들끼리 ‘위안부 문제 해결뿐 아니라 강제징용이나 징병, 독립운동가 등 아직 청산되지 않은 친일 문제까지 폭넓게 이야기해보면 좋겠다’는 공감대를 이뤘어요. 하지만 당면 과제는 소녀상을 국민대생의 손으로 제대로 건립하는 것이죠.” 윤 “‘정치적’이라는 이유로 소녀상 건립을 반대하는 건 위안부 문제를 잘못 인식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처음 위안부운동을 정치적이라고 말한 건 일본 정부였어요. 위안부 문제는 한일 간 정치적 문제가 아닙니다. 보편적인 여성 인권의 문제죠.” 이 “사실 학교의 반대보다 학생들의 지지를 받지 못할 때 더 뼈 아픕니다. ‘순도 100%’ 학생들이 주체가 돼 해결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10대부터 소녀상을 세우기 위한 활동이나 기념 제품을 제작해 성금을 했던 학우들의 도움을 많이 받고 있습니다.” 윤 “나 또한 청소년들을 통해 우리 운동의 미래를 봅니다. 인권·평화 감수성이 뛰어나더라고요. 내가 강연을 나갔다가 배워올 정도입니다. 우리 세대들은 피해자에게 오히려 책임을 묻는 시대에 자신의 피해 사실을 고백한 김학순 할머니를 보고 자랐습니다. 일종의 ‘미투’인 셈이죠. 이 ‘미투’를 ‘위드유’로 만든 건 김복동 할머니의 삶이었습니다. 미래 세대들은 그런 김복동 할머니를 보고 자랐죠. 내가 미래 세대에 기대를 거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그러나 여전히 갈 길은 멀다. 특히 ‘일본군 위안부의 역사가 역사왜곡’이라는 일본 측 주장에 맞서기 위해선 피해 할머니들의 증언을 뒷받침할 문서 등 탄탄한 자료가 필요하다. 이를 위해선 체계적 연구를 이끌 정부의 의지가 중요하다. 최근 여성가족부가 한국여성인권진흥원에 위탁해 일본군위안부문제연구소를 세우려 했지만 3개월여 만에 초대 소장이 물러나는 등 파행을 빚은 뒤 사실상 활동을 멈췄다. 민간단체 활동에도 한계가 있다. 단적인 예는 얼마 전 불거진 곽예남 할머니의 양녀 사건이다. ‘봉침 목사’로 알려진 한 목사가 곽 할머니의 수양딸이 된 것을 두고 시민단체가 “곽 할머니를 이용하려는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민간단체에 권리는 없고, 책임과 의무만 지워진 게 아닌가 고민이 됐다”던 윤 이사장의 말처럼 정부가 제대로 책임지지 않는 틈을 타 선의가 아닌 다른 의도가 개입할 수 있음을 보여준 셈이다. 존재 자체로 묵직한 울림을 주던 할머니들마저 다 세상을 떠난다면 위안부운동이 더 어려워지지 않을까 하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이 “저 역시 할머니들이 없는 위안부운동을 떠올리면 먹먹해져요. 일본 정부의 사죄도 받아야 하고 아직 싸울 날이 많은데 할머니들에게 많이 의존하고 있었던 게 아닌가 스스로 반성도 하고요.” 윤 “이건 피해자의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의 문제 같아요. 우리 곁에 육체적으로 없다고 해서 모든 것이 사라지나요? 그렇지 않죠. 피해자는 없지만 김복동의 정신은 살아 곳곳으로 퍼져 나가고 있습니다. 이를테면 우리(정의연)는 위안부 문제뿐 아니라 전쟁 성폭력, 여성 인권 등 좀더 보편적이고 글로벌한 이슈로 확장시켜 나가는 데에서 답을 찾았죠. (내전 때 성폭력을 겪었던) 우간다 여성들은 김복동 할머니를 ‘엄마’라고 부릅니다. 할머니들을 보면서 희망을 얻었다고 이야기해요. 연대하며 우리의 문제의식을 확장시켜 나가고 있는 것이죠. 할머니는 스스로 노력했고, 세계로부터 영웅이라는 칭송을 받으셨습니다. 연대한 세계인들도 일본을 함께 비난하고 있습니다. ‘아직 해결된 게 없다’는 얘기도 있지만 우린 이미 이긴 것이나 마찬가지에요. 김복동 할머니께서 눈 감으시기 전 남기신 마지막 말씀이 뭔지 아세요? ‘우리가 이겼어’ 였어요.” ‘우리가 이겼다’는 할머니의 말은 곁을 오랜 시간 지킨 활동가들에게 큰 힘이 됐다. 남은 할머니들이 편히 눈을 감으실 때까지, 그 이후에도 할머니들이 쌓아온 인권과 평화에 대한 노력이 헛되지 않도록 하겠다는 다짐을 하게 하는 원동력이다. 이 “위안부 할머니들을 위한 활동을 하면서 우리가 살아나갈 땅이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 고민을 하게 됩니다. 주권이 없었던 식민 시대, 침략 속에서 유린된 평화를 떠올리죠. 다시는 이런 역사가 반복되어서는 안 된다는 문제의식을 가지고 사회를 살아나가는 어른이 되겠다고 다짐합니다.” 윤 “이 문제는 피해 당사자가 스스로 명예회복의 주체가 되는 것과 피해자 인권 감수성이 있는 사회가 되는 것, 그리고 가해자가 제대로 책임지는 것, 이 세 가지를 다 이뤄야 해결됐다고 할 수 있습니다. 때로는 무지개처럼 멀리 느껴지죠. 하지만 우리가 걸어온 길을 돌아보면 이미 사회는 조금씩 변해가고 있음을 느껴요. 그 자체로 우리의 걸음들은 가치가 있습니다. 앞으로도 뜻을 함께하는 사람들과 같이 걸어갈 거예요.” 이근아 기자 leegeunah@seoul.co.kr 이하영 기자 hiyoung@seoul.co.kr
  • [포토] ‘아베 총리, 사과는 이렇게’

    [포토] ‘아베 총리, 사과는 이렇게’

    6일 오후 서울 종로구 옛 주한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린 ‘제 1377차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 해결을 위한 정기 수요시위’에서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가면을 쓴 한 참가자가 사죄와 반성을 하는 모습을 연출하고 있다. 연합뉴스
  • [서울포토] 수요집회 참가한 트럼프 마스크 쓴 시위자

    [서울포토] 수요집회 참가한 트럼프 마스크 쓴 시위자

    27일 서울 종로구 주한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린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 해결을 위한 정기 수요시위’에서 트럼프 마스크를 쓴 한 참가자가 ‘한일합의 폐기하라’가 적힌 손피켓을 들고 있다. 2019.2.27 정연호 기자 tpgod@seoul.co.kr
  • [서울포토] ‘김복동 할머니를 추모하며’

    [서울포토] ‘김복동 할머니를 추모하며’

    27일 오후 서울 종로구 주한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린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 해결을 위한 정기 수요시위’에서 참석자들이 돌아가신 김복동 할머니를 위해 기도하고 있다. 2019. 2. 27 정연호 기자 tpgod@seoul.co.kr
  • [서울포토] ‘한일합의 폐기하라’… 수요집회 참가한 트럼프?

    [서울포토] ‘한일합의 폐기하라’… 수요집회 참가한 트럼프?

    27일 서울 종로구 주한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린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 해결을 위한 정기 수요시위’에서 트럼프 마스크를 쓴 한 참가자가 ‘한일합의 폐기하라’가 적힌 손피켓을 들고 있다. 2019.2.27 정연호 기자 tpgod@seoul.co.kr
  • [서울포토] 수요집회에 참가한 트럼프(?)

    [서울포토] 수요집회에 참가한 트럼프(?)

    27일 서울 종로구 주한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린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 해결을 위한 정기 수요시위’에서 트럼프 대통령 마스크를 쓴 한 참가자가 두손을 모으고 있다. 2019.2.27 정연호 기자 tpgod@seoul.co.kr
  • 독립운동 투쟁 기록, 영·독·일서 잇따라 나왔다

    독립운동 투쟁 기록, 영·독·일서 잇따라 나왔다

    김규식, 英 총리에 보낸 독립청원 서한 영문 국호 ‘Republic of Korea’ 첫 사용 1920년대 주독 日대사관 외교전문엔 獨 유학 한인들 독립운동 사찰한 정황 日 개인 소장 독립선언서 초판 원본도1919년 3·1운동 이후 대한민국 독립을 위해 해외 각지에서 분투한 지사들의 활동상을 한눈에 알 수 있는 사료들이 잇따라 발견됐다. 대한민국의 영문 국호 ‘Republic of Korea’를 처음으로 사용한 임시정부 외교문서에 이어 일본이 독일에서 한인 유학생들의 조직적 독립운동을 사찰했다는 정황도 드러났다. 주미 특파원 출신 언론인 모임인 한미클럽은 26일 미국 존스홉킨스대 제임스 퍼슨 교수의 도움을 받아 영국 국립문서보관소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1919년 5월 데이비드 로이드조지 당시 영국 총리 앞으로 전달한 외교문서를 발견했다고 밝혔다. 이 문서에 따르면 1차 세계대전 전후 처리를 논의한 파리 평화회의에 임시정부를 대표해 파견된 김규식 선생이 ‘대한민국’(Republic of Korea) 국호를 사용한 영문 독립 청원 서한을 1919년 5월 24일 로이드조지 총리 앞으로 전달했고, 영국 정부는 5월 30일 이를 접수했다. 청원 서한에는 국제사회가 새로운 대한민국과 임정을 한국민 전체를 대표하는 정통성 있는 체제로 인정해 줄 것과 임정이 3·1운동 등 일본에 항거한 독립운동의 결과로 창설됐다는 내용 등이 담겼다. 한미클럽이 발견한 다른 영국 외교문서에는 미 소재 대한인국민회 총회장인 안창호 선생이 1919년 4월 초 로이드조지 총리에게 전문을 보내 민족자결주의에 따라 한민족의 독립이 인정돼야 한다고 강조한 내용도 담겨 있다. 그러나 이 전문에 첨부된 영국 정부 문서에는 ‘일본을 자극하지 않기 위해 요청을 수용하지 말 것’을 건의하는 의견서도 첨부돼 있어 당시 냉혹한 국제질서를 보여 준다.일본 측이 1920년대 독일에서 한인 유학생들의 조직적 독립운동을 사찰했다는 문서도 처음으로 확인됐다. 독일 본대학 박희석 일본한국학과 교수는 1920년대 일본 외교전문 등을 분석한 결과 주독 일본대사관이 베를린 인근 소도시 포츠담의 건물에서 정기적으로 모인 한인들을 사찰한 사실이 드러났다고 25일(현지시간) 밝혔다. 이극로·이미륵 선생이 주축이 된 재독 한인 유학생 조직 ‘유덕고려학우회’는 1923년 10월 23일 베를린에서 집회를 열고 일본의 한인 학살과 식민지배에 항거했는데 이 건물에서 사전 모의를 한 것으로 분석됐다. 주독 일본대사가 1925년 일본 외무대신에게 발신한 전문에는 “베를린 근교 포츠담 알테 루이지엔슈트라세 85번지에 한인들이 모이는 곳이 있다. 지난번 관동대지진과 관련해 전단을 만드는 등 비밀작업을 하는 곳으로 보인다”고 적혀 있다. 한편 일본 아사히신문은 3·1운동 때 국내에 배포됐던 독립선언서의 초판 원본이 일본 나가사키의 한 개인 주택에서 발견됐다고 전했다. 이를 소장한 사람은 전직 교사인 사토 마사오(67)로 3·1운동 당시 평양에서 도자기 가게를 운영하던 그의 할아버지가 당국의 감시를 뚫고 몰래 일본으로 반입한 것으로 추정된다. 아사히는 “한국에서도 원본은 박물관과 개인 등 8장만 남아 있다”고 설명했다. 서울 하종훈 기자 artg@seoul.co.kr 도쿄 김태균 특파원 windsea@seoul.co.kr
  • 한·아세안센터 설립 10주년 리셉션

    서울에 본부를 둔 국제기구인 한·아세안센터(사무총장 이혁 전 주베트남 대사)가 18일 서울 롯데호텔에서 설립 10주년 기념 리셉션을 열었다. 조현 외교부 제1차관과 올해 아세안 의장국인 태국의 수리야 친다웡서 외교부 국장이 한·아세안 간의 발전 방향과 비전에 대해 축사를 했다. 이날 행사에는 한국에 주재하는 아세안 10개국 대사들을 비롯, 나가미네 야스마사 주한 일본대사, 제임스 최 주한 호주대사 등이 참석했다. 또 오제세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 재계·언론계·문화계 인사 등 200여명이 참석했다. 이혁 사무총장은 기념사에서 “문재인 정부의 신남방정책 등에 힘입어 한·아세안 간의 공동 번영을 위한 노력이 심화되고 있다”면서 “새로운 협력 영역을 넓혀 나가자”고 제안했다. 이석우 선임기자 jun88@seoul.co.kr
  • 연휴에도 중단 없는 수요집회

    연휴에도 중단 없는 수요집회

    설 연휴 마지막 날인 6일 서울 종로구 옛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린 수요시위의 참가자들이 최근 별세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김복동 할머니를 추모하며 일본 정부의 사죄를 요구하고 있다. 위안부 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수요시위는 1992년 1월 시작해 이날로 1373차를 맞았다. 도준석 기자 pado@seoul.co.kr
  • “태국서 韓남성에게 폭행당해…1억원 빼앗겨” 日남녀3명 피해 주장

    최근 태국에서 일본인 남녀 3명을 감금·폭행하고 1억여원 상당의 금품을 빼앗은 혐의로 20대 한국인 남성이 현지 경찰에 체포됐다고 알려진 가운데 피해를 주장하는 당사자들의 인터뷰가 나왔다. 일본 후지TV계열 ‘FNN 프라임’은 4일 지난달 28일 태국 경찰에 체포된 한국인 국적 황모씨(27·무직)에게 최대 3개월 동안 감금·폭행과 협박을 받아왔다고 주장하는 일본인 남녀 3명과의 인터뷰 내용을 공개했다. 보도에 따르면, 지난해 6월부터 태국에서 거주한 황씨는 그해 9월 데이트 사이트에서 알게 된 일본인 여성 A씨(24)를 방콕에 있는 자택 아파트에 감금했다. A씨는 그달 방콕으로 여행 왔다가 돈이 떨어져 처음에 황씨의 집에 얹혀살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A씨에 따르면, 자신이 황씨의 집에 들어가자 그는 곧바로 폭력을 행사하기 시작했다. A씨는 “공포가 지배하는 삶의 시작”이었다고 말했다. 또한 황씨는 “마피아와 아는 사이다”, “도망가면 죽인다” 등의 말로 여성을 반복해서 위협했고, 여성은 결국 저항할 수 없어 황씨를 따를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여성은 황씨가 요구하는대로 부모에게 “태국에서 체포돼 돈이 필요하다” 등의 거짓말로 200만엔을 송금받아 황씨에게 전달했다. 여성의 감금생활이 시작된지 한 달여 만에 황씨는 다시 여성을 위협해 여성의 남동생 B씨(21)를 태국으로 오게 했다. 금품을 갈취하기 위한 새로운 목표였던 것이다. A씨는 “방콕에서 돈벌이가 있다” 등의 말로 남동생 B씨에게 거짓말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B씨에게 기다리던 것은 돈벌이가 아닌 폭행과 협박에 의한 공포의 감금생활이었다. 구속 상태는 아니었지만 외출할 때는 항상 그 이유를 대야만 했다. 그리고 “빨리 돌아오라”는 전화가 걸려오는 등 항상 감시당하는 상태였다고 한다. “도망가면 아는 마피아가 널 죽일 것이다”, “태국 경찰은 내 지시로 널 출국 정지시킬 수 있다” 등의 말로 반복해서 위협한 것으로 전해졌다. 황씨는 또한 B씨의 친구들에게 연락해 “(B씨를) 죽여서 장기를 팔겠다”고 협박했다. 결국 B씨는 지인 등을 통해 총 800여만엔을 뜯겼다. 황씨의 폭력은 술을 마시고 기분이 나쁠 때 특히 심해졌다. 뜨겁게 달궈진 프라이팬을 팔에 대거나 식용유를 강제로 마시게 하고 수영장 물속에 오랫동안 잠수하게 하고 속눈썹을 뽑기도 했다. 그리고 올해 1월 황씨는 B씨를 통해 그의 친구 C씨(21)를 방콕으로 불러들였다. 방콕에 온 C씨는 폭행을 당해 가지고 있던 모든 현금과 휴대전화를 빼앗겼다. 그리고 빼앗은 휴대전화를 이용해 거짓말과 협박으로 가족 친지들에게 돈을 보내게 했다. 빼앗은 현금 액수는 모두 83만엔에 이르렀다. C씨는 풀려난 뒤 언론 인터뷰에서 “노예 같은 생활이었다. 빨리 돌아가고 싶었지만 마피아에게 죽을 수 있다는 생각에 도망치지 못했다”면서 “무서웠다”고 말했다. A씨는 지난해 11월 황씨에게서 도망쳐 나와 현지 일본대사관을 통해 귀국했고 이후 아들의 피해를 알게 된 C씨의 어머니가 지난달 25일 대사관에 신고하면서 황씨가 체포되기에 이르렀다. 태국 경찰과 태국 출입국관리국에 의한 수색에서 B씨와 C씨 모두 풀러날 수 있었다. 체류 비자를 취소당한 황씨는 구금됐다가 지난 1일 현지 경찰에 의해 폭행·협박 등의 혐의로 체포됐다. 하지만 황씨는 경찰조사에서 자신의 혐의를 모두 부인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피해자들은 감금 생활을 했다고는 하지만 외출할 수도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이들이 왜 빨리 도망치려고 하지 않았는지 궁금해하는 사람도 많다. 그렇지만 반복된 폭력에 의해 공포와 절망 속에 있던 피해자들은 무엇을 하든 도망칠 수 없다고 세뇌된 상태였다고 한다. 공포와 절망으로 도망칠 마음조차 없는 상태는 미국의 심리학자들이 발표했던 ‘학습성 무기력’이라는 상태와 같다. 일본에서 출간된 한 책에는 “노력해도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 없는 상황이 계속된 결과 무엇을 해도 무의미하다는 생각이 들어 불쾌한 상태를 벗어나려고 노력하지 않게 되는 것”이라고 기록돼 있다. 이에 대해 FNN 프라임은 피해자들은 공포에 세뇌돼 무기력을 느껴 도망가고 싶어도 도망치지 못한 것으로 생각된다고 말했다. 또한 감금생활에서 풀려난 두 남성은 처음에 대사관조사에서 황씨의 폭력 사실을 인정하지 않으려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대사관 직원들이 “당신들은 피해자”라고 거듭 설명하고 나서야 폭행당한 사실을 말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만큼 황씨에게 겁을 먹고 있었다고 이 매체는 설명했다. 또한 “도망치지 못한 것은 황씨가 폭행을 거듭한 뒤 도망가면 죽이겠다고 협박하며 계속 공포를 심어준 결과였다”면서 “두 사람은 황씨가 풀려나면 또 무슨 일을 저지를지 모른다며 불안해했다”고 전했다. 윤태희 기자 th20022@seoul.co.kr
  • 지난해 한일 인적교류 1000만명 첫 돌파

    지난해 한일 인적교류 1000만명 첫 돌파

    지난해 한일을 오고 간 인적교류 규모가 1000만 명을 처음으로 돌파했다. 1965년 국교 정상화 당시 민간교류 수준(연간 약 1만 명)의 1000 배 규모다. 주한 일본대사관이 1일 발표한 한일 간 인적교류 추이 자료를 보면 지난해 일본에 온 한국인은 753만9000명으로 전년보다 5.6% 늘어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또 한국을 찾은 일본인은 27.6% 급증한 295만명으로 양국 간 인적 왕래 규모가 처음으로 1000만 명을 넘어섰다. 대사관 측은 일본인의 낮은 여권 보유율(2017년 말 기준 23.4%)과 저조한 해외여행(2018년 1895만명)을 고려하면 지난해 방한 일본인의 증가 폭과 전체 출국자 대비 비중(16%)은 고무적이라고 평가했다. 저가항공 취항에 의한 좌석 공급량 확대와 케이팝(K-POP) 등 한류 고정 팬 등이 일본인의 방한을 견인했다. 한편 주일 일본대사관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인의 일본 취업자 수가 1828명에 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석우 선임기자 jun88@seoul.co.kr
  • [서울포토] 꼭 잡은 손

    [서울포토] 꼭 잡은 손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 할머니가 1일 서울 종로구 옛 일본대사관 앞에서 엄수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故 김복동 할머니 영결식에 참석해 소녀상의 손을 잡고 슬픔에 잠겨 있다. 박윤슬 기자 seul@seoul.co.kr
  • [서울포토] 헌화하는 시민들

    [서울포토] 헌화하는 시민들

    1일 서울 종로구 옛 일본대사관 앞에서 엄수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故 김복동 할머니의 영결식에서 참석자들이 헌화를 하고 있다. 박윤슬 기자 seul@seoul.co.kr
  • [서울포토] 나비가 된 故 김복동 할머니

    [서울포토] 나비가 된 故 김복동 할머니

    1일 서울 종로구 옛 일본대사관 앞에서 엄수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故 김복동 할머니의 영결식에서 참석자들이 헌화를 하고 있다. 박윤슬 기자 seul@seoul.co.kr
  • [서울포토] 이제는 훨훨 나소서

    [서울포토] 이제는 훨훨 나소서

    1일 서울 종로구 옛 일본대사관 인근에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故 김복동 할머니의 영결식이 거행되고 있다. 박윤슬 기자 seul@seoul.co.kr
  • [서울포토] 할머니의 목소리는 계속될 것입니다

    [서울포토] 할머니의 목소리는 계속될 것입니다

    1일 서울 종로구 옛 일본대사관 인근에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故 김복동 할머니의 영결식이 거행되고 있다. 박윤슬 기자 seul@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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