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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종로의 아침] ‘천인갱’과 국가의 책무/최광숙 정책뉴스부 선임기자

    [세종로의 아침] ‘천인갱’과 국가의 책무/최광숙 정책뉴스부 선임기자

    아버지는 일제강점기 20대 청춘에 징용에 끌려가 일본 오키나와에서 강제 노역을 했다. 아버지는 그에 대한 보상으로 정부로부터 150여만원을 받았다고 했다. 필리핀으로 끌려가 굶주리면서 중노동에 시달렸다는 지인의 할아버지는 약주만 드시면 우셨다고 했다. 하지만 강제 노역 사실을 증명할 수 없어 한 푼도 보상받지 못했다. 그래도 아버지와 지인의 할아버지처럼 ‘사지’(死地)를 가까스로 벗어나 고국에서 결혼도 하시고 자식 낳고 평범한 삶을 살다가 돌아가신 것은 어찌 보면 천운이다. 두 분처럼 일제강점기 국외 전쟁터와 노역장으로 강제 동원된 조선인은 125만여명으로 추산된다. 이들 중 20만~60만명이 고향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머나먼 이역에서 한 많은 생을 마감했다. 하지만 사망자 숫자가 무려 40만명 차이가 날 정도로 우리 정부는 얼마나 많은 강제 동원자들이 나라 밖에서 억울한 죽음을 당했는지에 대한 정확한 통계조차 없다. 우리가 일본에 요청해 받아낸 관련 자료는 1971년 ‘구일본군 제적 조선출신 사망자 연명부’(2만 2919명 등재) 등 손에 꼽을 정도다. 최근 중국 하이난섬에 있는 일제강점기 강제징용 조선인들의 집단 매장지 ‘천인갱’(千人坑)을 취재하면서 가슴이 먹먹해졌다. 하이난섬에 끌려가 노역에 강제 동원됐다가 숨진 조선인 징용자 1200여구의 유골이 묻혀 있는 ‘천인갱’은 일본의 야만성과 반인륜적 만행을 생생하게 보여 주는 증거다. 그런데도 아직도 진심 어린 반성과 사죄를 하지 않고 적반하장의 행태를 일삼고 있는 게 일본이다. 태평양전쟁이 끝난 지 70년이 넘었지만 이곳에서 수습된 100여위의 유해를 모셔 오지 못하는 현실은 정부의 존재 이유에 대해 강한 의문을 불러일으킨다. 지난해 대법원의 강제 징용자 피해 배상 판결 이후 한일 갈등은 최악인 상황이다. 강제 징용에서 살아남은 이들은 일본 정부와 기업에 손해배상을 요구하며 소송을 벌일 수 있지만 천인갱에 묻힌 이들의 한 맺힌 삶은 누가 대변해 줄 것인가. 일본은 2차 대전 당시 국외에서 전사한 일본군과 군무원, 민간인 240만명 중 절반 정도인 127만위를 찾아내 본국으로 송환했다. 2016년 관련법까지 제정해 체계적으로 유해 발굴 및 송환에 나서고 있다. 하지만 우리의 경우 살아 돌아오지 못하고 유해로 돌아온 강제 징용자는 1만 1069위에 그쳤다. 지난해 유해 봉환을 위한 한일 실무자협의에 참석한 행정안전부 관계자는 일본 측 실무자로부터 이런 소리를 들었다. “과장님이 또 바뀌셨네요.” 일본은 유해 발굴 전문가들이 10여년 이상 붙박이로 일하는 반면 우리는 순환 배치 인사 관행에 따라 매년 실무자가 바뀌는 것을 비꼬는 말이다. 일본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예산과 인력은 말할 것도 없다. 유해 발굴에 대한 ‘국가 의지’가 이렇듯 차이가 난다. 현 조직도 행안부의 태스크포스(TF)다. 정권이 바뀌면 이 조직 또한 어떤 운명에 처할지 모른다. 과거 유해 송환 문제를 다룬 조직인 ‘대일 항쟁기 강제동원 피해조사 및 국외 강제동원 희생자 등 지원위원회’는 2015년 아무도 모르게 문을 닫았다. 전쟁 피해자 유해 송환 숫자 ‘1만 대 127만’은 양국 정부의 책임성을 극명하게 대비시키는 또 다른 척도다. bori@seoul.co.kr
  • “과거사 사죄 없는 일본, 이웃국가와 새 시대 못 열어”

    “과거사 사죄 없는 일본, 이웃국가와 새 시대 못 열어”

    2007년 美하원 위안부 결의안 초안 작성 전범국가인 日 2차대전 범죄 해결 못 해 한일 무역갈등 원인, 강제징용 배상 판결 ‘북핵 해결에 한일 협력 필수’ 美에 어필을 미국내 위안부 운동 역사 자료집 준비 중한일 과거사 문제 등에 목소리를 내온 데니스 핼핀 전 미 하원 전문위원은 “과거사의 진정한 사죄 없이 일본은 한국 등 이웃 국가들과 새로운 시대를 열 수 없다”고 강조했다. 핼핀 전문위원은 14일(현지시간)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일본이 독일, 이탈리아 등 다른 전범국과 달리 2차 세계대전의 범죄 문제를 완전히 해결하지 못한 것이 한국뿐 아니라 중국, 필리핀 등과의 관계에도 먹구름을 남겼다”며 이같이 말했다. “전범 국가인 이탈리아는 베니토 무솔리니의 파시스트 독재에 협력한 사보이 왕가를 폐지했고 56년간 이들 왕가 친족들의 이탈리아 입국을 불허했습니다. 하지만 일본은 이러한 ‘자기 성찰’이 없었습니다. 하루빨리 일본이 과거사에 대한 사죄와 자기 성찰에 나서야 합니다. 그것이 과거 역사에 대해 속죄하는 길입니다.” 핼핀 전문위원은 2007년 7월 미국 하원에서 사상 처음으로 채택된 ‘일본군 위안부 결의안’(HR121)의 초안을 작성하는 등 일제강점기 이슈들에 대해 깊은 관심을 보여 온 인사다. 그는 “일본은 2017년 11월 이방카 트럼프 백악관 보좌관과 함께 도쿄에서 국제여성회의를 열었지만, 위안부 문제를 외면했다. 이는 일본의 이중성을 그대로 드러내는 대목”이라며 “독일의 홀로코스트(제2차 세계대전 중 나치 독일이 자행한 유대인 대학살)에 대한 인정과 배상은 일본의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로드맵”이라고도 강조했다. 핼핀 전문위원은 최근 심화된 한일 무역갈등 역시 일본학 연구의 최고 권위자인 이언 부루마가 뉴욕타임스에 기고한 글을 인용하며 책임이 일본에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아베 신조 총리가 최근 한국의 화이트리스트 제외 이유로 국가 안보를 언급했지만 믿는 사람은 몇 명 없다. 지난해 한국 법원의 강제징용 배상 판결과 한국 내 일본 기업 자산 압수가 결정적 원인’이라고 말한 부르마의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한다”고 말했다. 핼핀 전문위원은 “미국의 적극적인 중재가 가장 좋은 해법”이라며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한일 관계뿐만 아니라 국제 문제의 적극적인 개입을 좋아하지 않는다. 따라서 문재인 정부는 ‘북핵의 완전한 해결을 위해서 한일의 지속적인 협력이 필수’란 사실을 트럼프 대통령에게 강하게 어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핼핀 전문위원은 이정실 워싱턴 정신대문제대책위원회(정대위) 회장과 함께 27년 미국 정대위 역사와 미국 내에서 펼쳐진 위안부 운동에 대한 방대한 자료를 정리한 영문판 자료집을 만들고 있다. 그는 “올해 안으로 출간될 위안부 운동 자료집은 1992년부터 시작된 미국 내 위안부 운동을 총정리하는 작업”이라면서 “이는 위안부 문제의 완전한 해결을 위한 밑거름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워싱턴 한준규 특파원 hihi@seoul.co.kr
  • “1965년 대일청구권자금 돌려달라”…日 강제징병 피해 유족들 헌법소원

    “1965년 대일청구권자금 돌려달라”…日 강제징병 피해 유족들 헌법소원

    “경제협력자금으로 사용… 목숨값 횡령 국회, 보상 입법 소홀… 위로금도 상향을” 일제강점기 일본군에 의해 강제 징집된 피해자들의 유족들이 1965년 한일청구권 협정으로 일본에서 받은 자금을 피해자에게 돌려줄 입법 의무를 국회가 이행하지 않았다며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일제 강제징병 피해자 유족 83명은 14일 헌법재판소에 “대일청구권자금을 유족에게 보상하는 내용의 입법을 하지 않은 것은 위헌”이라며 헌법소원 청구서를 제출했다. 현행법에는 위로금 명목으로 1인당 최대 2000만원을 지급한다는 내용만 규정돼 있다는 것이다. 일본은 1965년 한국 정부와 10년에 걸쳐 무상으로 3억 달러와 차관으로 2억 달러를 제공한다는 한일청구권 협정을 체결했다. 당시 합의 의사록에 적시된 ‘한국의 대일청구 요강’ 8개 항목에는 ‘피징용 한국인의 미수금, 전쟁에 의한 피징용자의 피해의 보상’이 포함돼 있었다. 유족들은 “대일청구권자금에 대한 직접적인 청구권을 가진 강제징병 피해자들에게 보상금을 지급하지 않고 경제협력자금으로 사용해 버렸다”면서 “이는 국가가 강제징병 피해자들의 목숨값을 횡령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 결과 강제징병된 피해자들의 유족들은 한평생 생활고에 시달리며 살아왔다”면서 “이제라도 피해자들의 동의 없이 사용한 대일청구권자금을 피해자 및 유족들에게 반환해야 할 의무가 있다”고 주장했다. 유족들은 “위로금 2000만원도 그 액수가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에 특별생활지원금 형식으로 위로금 액수를 상향 조정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한편 유족들은 대일청구권 자금 반환과 일본 정부의 불법적 징병에 따른 손해배상 책임은 별개라는 입장인 것으로 전해졌다. 김헌주 기자 dream@seoul.co.kr
  • “끝까지 싸워다오… 사죄를 받아다오”

    “끝까지 싸워다오… 사죄를 받아다오”

    “가엾은 우리 엄마. 미안하고 죄송합니다. 그 깊은 슬픔과 고통을 안고 얼마나 힘드셨을지 가슴이 아파 옵니다.” 광복절을 하루 앞둔 14일 서울 용산구 효자동 백범김구기념관에서 열린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기림의 날’(이하 기림의날) 기념식에서 위안부 피해자의 유족이 이제는 세상에 없는 어머니를 그리워하며 쓴 편지가 낭독됐다. 배우 한지민씨가 대독한 이 편지에서 유족은 “그 많은 사람 가운데 하필이면 우리 엄마가 겪은 일이라는 게 더 무섭고 싫기만 했다. 혹시라도 내 주변의 친구들이 이런 사실을 알게 되면 어쩌나 그저 두렵기만 했다”며 “철없는 저는 엄마가 부끄러웠다”고 했다. 이 유족은 피해자인 어머니가 수요집회에 나가고, 아픈 몸을 이끌고 미국과 일본까지 오가며 일본의 위안부 만행을 알리는 모습을 보며 자신의 어머니가 겪은 참혹하고 처절했던 시간들을 하나씩 자세히 알게 됐다고 적었다. 생전에 어머니는 ‘끝까지 싸워다오, 사죄를 받아다오. 그래야 죽어서도 원한 없이 땅속에 묻혀 있을 것 같구나’라는 유언을 남겼다고 한다. 이 편지는 기념식 참석자들의 심금을 울렸다. 낭독을 듣는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눈에도, 편지를 대독한 한씨의 눈에도 눈물이 맺혔다. 8월 14일은 1991년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고 김학순 할머니가 위안부 피해 사실을 최초로 공개 증언한 날이다. 올해는 두 번째 기념식이다. 일본 아베 정부의 경제 보복으로 과거사 청산 움직임이 더 커진 가운데 열린 이날 기념식에선 2007년 미국 하원 일본군 위안부 결의안 통과의 주역인 마이크 혼다 전 미국 하원의원, 아찬 실비아 오발 ‘우간다 골든위민비전’ 대표 등 국제사회 인사들의 연대 메시지가 상영됐다. 이현정 기자 hjlee@seoul.co.kr
  • “지울수록 번지리라”… 세계 37개도시 ‘연대의 날갯짓’

    “지울수록 번지리라”… 세계 37개도시 ‘연대의 날갯짓’

    국내 13개 도시 남녀노소 수만명 참가 종이 노란나비 티셔츠·가방에다 붙여 길원옥 할머니 “싸워 승리하자” 격려 성범죄생존자들 “함께한다” 지지 영상 도쿄·나고야·교토 등지서도 공개 증언“일본대사는 늙은이 말 똑똑히 들으세요. 이 늙은이들 다 죽을 때까지 기다리지 말고 죽기 전에 사과하고….”(올해 1월 별세한 김복동 할머니) “나라고 생각하고 다시 한번 얼마나 아프면 저러는지 생각해 주면 좋겠다.”(길원옥 할머니)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인 두 할머니가 수요시위에서 했던 외침들은 전시 일본의 만행을 전 세계에 알리는 기폭제가 됐다. 1992년 1월 시작돼 매주 수요일마다 열린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 해결을 위한 정기 수요시위’가 14일 정오 서울 종로구 옛 일본대사관 앞에서 1400번째 열렸다. 이날은 ‘제7차 세계 일본군 위안부 기림일’이기도 했다. “죽기 전에 사과하라”는 김복동 할머니의 바람이 끝내 이뤄지지 않았기에 1400번째 수요시위에서도 참가자들은 일본 정부가 전쟁 범죄를 인정하고 위안부 동원을 사죄하라고 촉구했다. 이날 35도가 넘는 무더위 속에서도 수요시위에는 2만여명(주최 측 추산)이 참여해 할머니 곁을 지켰다. 노란 나비 모양의 종이를 티셔츠와 가방 등에 붙인 참가자들은 “끝까지 함께 싸웁시다”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일본 정부는 피해자들에게 공식 사죄하라”고 외쳤다. 이날 수요시위에 참석한 길원옥(91) 할머니는 “더운데 많이 오셔서 감사합니다. 끝까지 싸워서 이기는 게 승리하는 사람”이라며 참가자들을 격려했다.국내 13개 도시뿐 아니라 일본, 미국, 대만, 호주 등 세계 12개국 37개 도시에서도 1400번째 날갯짓을 함께했다. 한일 갈등이 깊어지고 있음에도 일본 시민사회는 도쿄, 나고야, 교토 등에서 집회를 열고 1991년 8월 14일 일본군 위안부 피해 사실을 공개 증언했던 고 김학순 할머니를 기렸다. 윤미향 정의기억연대 이사장은 “수요시위가 이제는 대한민국을 넘어 일본과 세계 각국으로 확대됐다”며 “위안부 할머니들이 알려준 평화와 인권의 정신에 세계 시민들이 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필리핀, 대만, 북이라크, 짐바브웨, 콜롬비아, 미국, 우간다, 일본 등에서 보내온 연대의 메시지도 수요시위 현장에서 영상을 통해 공개됐다. 대만 타이베이 여성구제재단은 “대만에는 이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가 두 분만 남았다”며 “정의 실현을 위해 일본 정부가 법적 책임을 이행할 때까지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세계 성범죄 생존자들의 목소리도 현장에서 울려 퍼졌다. 내전 중 성범죄 피해를 당한 타티아나 무카니레(콩고민주공화국)는 “할머니를 만나 제가 어떤 고통을 겪었는지 이야기를 하면서 성폭력 피해자에 대한 사회의 인식을 바꾸고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걸 알게 됐다”며 고마움을 표했다. 이날 시위에서는 학생들의 자유발언도 이어졌다. 광주 신가중학교 학생회 학생들은 “중학생인 저희도 잘못하면 제일 먼저 진심 어린 사과를 하라고 배웠다”면서 “(일본은) 미래를 이끌어 갈 후손들에게 부끄럽지 않느냐”고 일갈했다. 기민도 기자 key5088@seoul.co.kr
  • #끝까지 #함께 #싸웁시다

    #끝까지 #함께 #싸웁시다

    12개국 37개 도시서도 연대 집회 文 “피해자들 존엄 회복 위해 최선”일본 정부에 전쟁 범죄 인정과 위안부 동원 사죄 등을 촉구하며 27년간 이어져 온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 해결을 위한 정기 수요시위’가 광복절을 하루 앞둔 14일 1400번째로 열렸다. ‘세계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기림일’이기도 한 이날은 서울뿐 아니라 일본, 미국, 대만, 호주 등 세계 12개국 37개 도시에서 집회가 함께 진행돼 의미를 더했다.수요시위가 열린 서울 종로구 옛 일본대사관 앞에는 중고생과 시민 등 2만명(주최 측 추산)이 모여 위안부 문제에 대한 진상 규명과 일본 정부의 공식 사죄, 배상을 포함한 법적 책임 이행 등을 요구했다. 위안부 피해자인 길원옥(91) 할머니도 자리를 지켰다. 참가자들은 성명서를 통해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이 시작한 미투(성폭력 피해 사실을 공개 고발하는 것)는 각지에서 모인 우리들의 위드유(피해자에 연대와 지지 뜻을 밝히는 것)를 통해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의 정의로운 해결과 전시 성폭력 추방을 위한 연대를 만들었다”고 평가했다. 북한 측 단체인 ‘조선일본군성노예 및 강제련행피해자문제대책위’도 연대 서한을 통해 “일본의 과거 죄악을 청산하고 그 대가를 받아내기 위한 반일 연대 운동을 더욱 힘차게 벌여 나가자”고 했다. 한편 문재인 대통령은 이날 페이스북에 “정부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의 존엄과 명예를 회복하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라며 “인류 보편적 관점에서 위안부 문제를 평화와 여성 인권에 대한 메시지로서 국제사회에 공유하고 확산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또 “세계 시민사회와 연대해 다른 나라 피해자들에게도 희망을 주셨던 수많은 할머니들과 김복동 할머니를 기억하겠다”고 했다. 기민도 기자 key5088@seoul.co.kr임일영 기자 argus@seoul.co.kr
  • 청와대 직원들, 日우익 실체 다룬 다큐영화 ‘주전장’ 관람

    청와대 직원들, 日우익 실체 다룬 다큐영화 ‘주전장’ 관람

    청와대 직원들이 광복절을 앞두고 일본 우익의 실체를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주전장’을 단체로 관람했다. 이들은 위안부 피해자들의 아픔을 잊지 않기 위해서라고 관람 취지를 밝혔다. 청와대는 14일 페이스북 계정을 통해 강기정 정무수석, 윤도한 국민소통수석, 김거성 시민사회수석 등을 비롯한 직원들이 전날부터 이틀에 걸쳐 영화 ‘주전장’을 관람했다고 올렸다. ‘주전장’은 일본계 미국인 유튜버 미키 데자키가 일본군 위안부의 과거를 숨기고 싶어하는 우익의 실체를 추적하는 내용이다. 청와대는 “이번 단체 관람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의 아픔을 공감하고 우리의 역사를 잊지 않기 위해 마련됐다”고 설명했다.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도 지난달 30일 ‘주전장’을 감상한 뒤 페이스북에 “다수의 한국인이 위안부 문제의 논점을 다 안다고 생각하기 십상이나 그런 분에게 영화는 ‘지피지기’가 필요함을 알려준다”는 내용의 감상평을 올렸었다. 강주리 기자 jurik@seoul.co.kr
  • [포토] 이용수 할머니, 세 명의 소녀상과 꼭 잡은 손

    [포토] 이용수 할머니, 세 명의 소녀상과 꼭 잡은 손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기림의 날인 14일 오후 서울 중구 남산의 조선신궁터 인근에서 열린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기림비’ 동상 제막식에서 이용수 할머니가 제막된 동상과 손을 잡고 있다. 동상은 당당한 모습으로 정면을 응시하며 손을 맞잡은 세 명의 소녀(한국, 중국, 필리핀)와 이들을 바라보는 고(故) 김학순 할머니의 모습을 실물 크기로 표현했다. 김학순 할머니는 위안부 피해 사실을 최초로 공개 증언한 인물이다. 2019.8.14 연합뉴스
  • 日정부 “상대방 비판 자제 명시한 위안부 합의 지켜” 韓에 요구

    日정부 “상대방 비판 자제 명시한 위안부 합의 지켜” 韓에 요구

    文 “위안부 문제 국제사회 확산” 발언 공격교도 “일본 가해 책임은 언급 안해” ‘위안부 기림의 날’ 文 페북글에 항의 차원 일본 아베 정부가 박근혜 정부 때인 2015년 체결된 한·일 위안부 합의를 준수할 것을 외교 경로를 통해 한국 측에 요구했다고 교도통신이 14일 보도했다. 교도는 이날 “위안부 합의는 국제 사회에서 상대방에 대한 비판을 서로 자제하도록 하고 있다”는 일본 정부 관계자의 발언을 인용하며 이렇게 보도했다. 교도가 인용한 일본 정부 관계자의 발언은 문재인 대통령이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를 “국제 사회에 공유하고 확산해 나가겠다”고 밝힌 데 대한 언급에서 나왔다. 앞서 문 대통령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기림의 날인 이날 자신의 페이스북에 “인류 보편적 관점에서 위안부 문제를 평화와 여성 인권에 대한 메시지로서 국제 사회에 공유하고 확산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교도는 문 대통령의 메시지를 거론하며 “일본의 가해 책임은 언급하지 않았다”고 전했다. 14일은 1991년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인 김학순 할머니가 피해 사실을 최초로 공개 증언한 날로, 이날은 2012년 일본군 위안부 문제해결을 위한 아시아연대회의에 의해 ‘세계 위안부의 날’로 지정됐다.이후 민간 차원에서 다양한 활동을 벌이다 정부가 지난해 6월 13일 ‘일제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에 대한 보호·지원 및 기념사업 등에 관한 법률’을 시행함으로써 ‘위안부 피해자 기림의 날’이 국가기념일로 지정됐다. 문 대통령은 페이스북에 “정부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의 존엄과 명예를 회복하는 데 최선을 다할 것”이라면서 “세계 시민사회와 연대해 다른 나라의 피해자들에게도 희망을 주셨던 수많은 할머니와 김복동 할머니를 기억하겠다”고 밝혔다. 문 대통령은 “우리가 오늘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을 기릴 수 있는 것은 28년 전 오늘 고(故) 김학순 할머니가 처음으로 피해를 증언했기 때문”이라면서 “그날 할머니는 ‘내가 살아있는 증거입니다’라는 말씀으로 오랜 침묵의 벽을 깨셨다”고 언급했다. 문 대통령은 “평화로운 한반도를 만들어가는 것이 할머니들의 희망을 이어 나가는 것”이라면서 “오늘 기림의 날, 항상 슬픔이 희망으로 승화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앞서 박근혜 정부 시절인 2015년 12월 한·일 양국 정부는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합의를 하고 위안부 피해자와 유족의 지원사업을 수행할 ‘화해·치유재단’을 설립했다. 화해치유재단은 일본 정부의 출연금 10억엔으로 설립됐다.그러나 피해 당사자인 위안부 할머니들은 당시 정부가 일본과 합의하는 과정에서 협의나 상의도 없었고 잘못에 대한 반성 없이 돈으로 보상하는게 아닌 일본 정부의 공식적인 사과와 법적 배상을 요구했다. 할머니들의 주장은 박근혜 정부 당시에는 받아들여지지 않다가 이후 출범한 문재인 정부에서 이 합의로는 위안부 피해자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없다고 지적하며 지난해 11월 화해·치유재단의 해산 방침을 발표했다. 이로써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성과라고 평가했던 위안부 합의는 사실상 파기된 상태가 됐고, 일본 정부는 이를 받아들일 수 없다며 반발했다. 강주리 기자 jurik@seoul.co.kr
  • 17개 광역의원 공동 기자회견…‘전범기업 제품 공공구매 제한 조례안’ 전국 확산

    17개 광역의원 공동 기자회견…‘전범기업 제품 공공구매 제한 조례안’ 전국 확산

    자치단체에서 일본 전범기업 제품 구매를 제한하는 조례 제정 움직임이 전국적으로 확산되고 있는 가운데, 이 조례를 대표 발의한 전국 광역의원들이 일본 대사관 앞에서 공동 기자회견을 가졌다. 전국 최초로 「일본 전범기업 제품 공공구매 제한에 관한 조례안」(이하 ‘조례안’)을 대표 발의한 서울시의회 도시안전건설위원회 홍성룡 의원(더불어민주당·송파3)은 14일 일본 대사관 평화비소녀상 앞에서 조례안을 대표 발의한 전국 17개 광역의원들과 함께 조례 제정의 취지와 당위성, 쟁점사항 설명 등에 대해 공동 기자회견을 개최했다고 밝혔다. 홍 의원은 “조례안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전국의 많은 광역의원들로부터 조례안에 대한 뜨거운 관심이 있었고, 조례 제정 의지도 강했다”면서 “전국적인 지지와 관심에 힘입어 이번 공동 기자회견을 개최하게 됐다”고 전했다. 홍 의원 이어 “14일은 위안부할머니 수요집회 1,400회가 되는 의미 있는 날”이라면서 “이날 전국 광역의원들과 함께 기자회견을 하게 되어 매우 뜻깊게 생각한다”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홍 의원은 공동 기자회견문에서 국민들께 드리는 말씀 형식을 통해 조례안 제정 취지와 당위성을 설명하고, 일본 제품 불매운동이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생활 속에서 자연스러운 문화현상으로 자리잡아 극일(克日)로 가는 기회로 삼자는 당부의 말을 전했다. 한편, 공동 기자회견 후 참석자들은 일본군 ‘위안부’ 기억의 터(서울 중구 퇴계로26가길 6)를 방문하여 위안부할머니들을 추념하는 시간을 가졌다. □ 조례안 17개 광역의회 대표발의(예정) 의원 명단 △홍성룡 의원(서울시의회) △손용구 의원(부산시의회) △김동식 의원(대구시의회) △고존수 의원(인천시의회) △조석호, 신수정 의원(광주시의회) △윤종명 의원(대전시의회) △윤덕권, 장윤호, 김선미, 김시현 의원(울산시의회) △윤형권, 노종용 의원(세종시의회) △권정선 의원(경기도의회) △곽도영, 김혁동 의원(강원도의회) △박형용, 서동학, 허창원 의원(충북도의회) △오인철, 김대영 의원(충남도의회) △문승우, 최영규 의원(전북도의회) △최명수, 전경선 의원(전남도의회) △황병직 의원(경북도의회) △김진기, 이옥철 의원(경남도의회) △홍명환 의원(제주시의회)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광명동굴 평화의 소녀상 앞서 위안부피해자 기림의 날 기념식

    광명동굴 평화의 소녀상 앞서 위안부피해자 기림의 날 기념식

    경기 광명시는 14일 광명동굴 평화의 소녀상 앞에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기림의 날 기념식’을 개최했다고 밝혔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기림의 날’은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국내외에 알리고 피해자들을 기리기 위해 고 김학순 할머니가 위안부 피해 문제를 세상에 처음 알린 1991년 8월 14일을 기념해 법률로 제정, 지정된 국가 기념일이다. 이달까지 정부에 등록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240명 가운데 생존자는 20명뿐이다. 행사에는 박승원 시장과 박덕수 시의회 운영위원장, 시·도의원, 평화의 소녀상 꽃밭조성 청소년 기획단, 시민 등 100여명이 참석했다. 참여자들은 우리의 아픈 역사를 기억하고 위안부 피해자들의 인권과 명예회복을 기원하는 뜻깊은 시간을 가졌다. 행사에서는 평화의 소녀상 앞에서 헌화와 헌시에 이어 광명동굴 예술의 전당에서 경과보고, 기념공연과 UCC상영, 공모전 시상식 등이 진행됐다. 박승원 시장은 “일본정부는 역사 왜곡과 위안부 피해자에 대해 반성의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며, “일본 정부의 진심어린 사과로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인권과 명예가 하루 속히 회복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광명시 평화의 소녀상은 2015년 8월 15일 광복 70주년을 기념해 광명 시민들이 모은 성금으로 세워졌다. 시민들은 소녀상 둘레에 평화를 위한 소녀의 꽃밭을 만들었다. 또 시는 2016년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지원 업무협약을 맺고 2017년부터 광명동굴 입장료 판매 수입금의 1%를 광주시 나눔의 집에 해마다 지원하고 있다. 이명선 기자 mslee@seoul.co.kr
  • 70대 남성, 옛 일본대사관 앞에서 오물 봉투 투척 소동

    70대 남성, 옛 일본대사관 앞에서 오물 봉투 투척 소동

    한 70대 남성이 옛 일본 대사관 앞에 오물이 담긴 봉투를 던지는 소동이 벌어졌다. 경찰에 따르면 70대 남성 A씨는 14일 오전 11시쯤 미리 준비한 인분이 담긴 봉투를 서울 종로구 옛 일본 대사관을 향해 투척했다. A씨가 투척한 오물 봉투는 공사장 가림판에 맞고 떨어졌다. 다만 봉지가 터지지 않아 내용물이 쏟아지진 않았다. A씨는 근처에서 경비 중이던 경찰에 제지당했고, 경찰이 A씨를 서울 종로경찰서로 임의동행했다. A씨는 경찰 조사에서 최근 일본 정부의 경제 보복 등에 항의하는 의미에서 비닐봉투를 던졌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 관계자는 “정확한 상황을 확인하고 있다”면서 “재물손괴 미수 혐의로 입건 여부를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이날은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 해결을 위한 정기 수요시위가 1400회를 맞는 날로, 옛 일본대사관 앞에서는 ‘피해자의 Me Too에 세계가 다시 함께 외치는 With you! 가해국 일본 정부는 피해자의 목소리를 들어라’라는 주제로 집회가 벌어졌다. 신진호 기자 sayho@seoul.co.kr
  • 정세 오판과 사욕이 빚은 비극. ‘자유시 참변’의 진실

    정세 오판과 사욕이 빚은 비극. ‘자유시 참변’의 진실

    ‘자유시 참변’ 또는 ‘자유시 사변’은 1921년 6월 28일 한인부대들과 극동공화국 인민혁명군이 자유시에서 무장충돌한 사건을 말한다. 이 결과로 수십명에서 수백명까지의 한인들이 사망했으며 독립운동이 큰 타격을 입었다. 특히 냉전시기에는 이 사건이 러시아에서 발생하고 한 쪽이 주로 러시아인들로 구성된 부대이었다는 이유로 공산당이나 러시아가 한인을 속여 독립군을 죽였다는 주장이 강했다.하지만 1990년대에 러시아의 문서보관소가 개방됨에 따라 러시아 연구자들과 임경석, 윤상원 등 한국근대사 연구자들은 러시아 자료를 사용하여 자유시사변의 원인과 과정에 대한 우리의 지식을 넓혔다. 1990년대 이후 나온 연구에 따르면 자유시사변의 주요 원인은 민족해방운동 내부의 권력 투쟁 (특히 이르쿠츠크파와 상해파 공산당 간의 갈등)과 정치 조직 간의 소통 문제 등이었다. 이에 따라 오늘날 학계에서 “독립군을 공산당이 죽였다”는 주장은 설득력을 완전히 잃었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의 잔재는 야인시대 같은 예술작품에도 나오고, 누리꾼들이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 애용하는 인터넷 백과사전에도 자주 등장한다. 예를 들어, 자유시 참변은 위키백과에는 “러시아 적색군이 대한독립군단 소속 독립군들을 포위, 사살한 사건”으로 규정되었고 나무위키에는 “독립군을 포함한 한인 무장 병력과 소련 적군이 교전을 벌인 사건”으로 나오며 심지어 신뢰성이 비교적 높은 한민족문화백과사전에도 비슷한 서술이 있다. 하지만 1921년에는 소련이 아직 설립되지 않았고 극동지역에는 붉은군대가 없었다. 하지만 자유시 참변은 무엇보다도 권력 욕심과 정세 오판의 위험성을 잘 보여주는 사건이기도 하다.제1차 세계대전 도중 1917년 러시아에서 10월 혁명이 발생하였으며 러시아공산당(볼셰비키)를 비롯한 좌익세력들에 의해 소비에트 정권이 수립되었다. 1918년, 소비에트 정권을 지지하는 세력과 반대하는 세력(백위파) 간의 내전이 벌어졌다. 러시아에 커다란 피해를 가져온 제1차 세계대전의 참전을 끝내려는 볼셰비키의 결정을 막기 위해 연합국은 군대를 파견해서 러시아 내전에 개입했다. 일본은 이를 구실로 내세워 1918년 4월 5일 밤 블라디보스토크에 파병함으로써 러시아에 쳐들어왔다. 일제의 시베리아 출병의 영향을 받은 러시아 지역 한인들은 빨치산부대를 결성하여 볼셰비키의 붉은군대와 함께 항일투쟁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하지만 최신 무기로 무장한 전투력이 뛰어난 일본군을 무력으로 쫓아내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전쟁으로 경제가 폐허가 된 상황에서 일본과의 전쟁을 피하려는 소비에트 정부는 극동지역에서 소비에트 정권을 수립하는 것을 공식적으로 포기하고 1920년 4월 멘셰비키와 사회주의혁명당 등과 함께 극동공화국이라는 완충국가를 설립하기로 하였다. 극동공화국은 이에 극동에 있던 붉은군대의 부대들과 빨치산 부대, 그리고 극동공화국 정부 편으로 넘어간 전(前) 백위파 부대들으로 구성된 혼합 인민혁명군을 창설했다. 극동공화국은 극동지역의 대부분을 점령한 일본군의 철수에 외교적인 노력을 기울이는 한편 일제가 지원하는 백위파 군대와 싸우는 데 집중했다. 이러한 전략 때문에 일본은 극동지역의 군사 점령을 더 이상 정당화할 수 없게 되었으며 주둔군을 유지하는 것도 경제적 손실로 이어졌다.이와 동시에 무장부대 통합운동이 전개되고 있었다. 봉오동 전투 이후 일제가 실시한 대대적 토벌작전 등으로 한인부대들이 간도에서 러시아령으로 넘어가기 시작하였다. 러시아공산당 극동국 한인부는 민족해방운동을 강화하기 위해 1921년에 중국과 극동지역에서 무장투쟁 부대 대표 회의를 열어 단일 지휘체계의 구축, 군사학교 설립 등 문제를 논의할 것을 결정했다. 이와 동시에 1921년 1월 15일 코민테른은 극동지역대표부를 설치하고 보리스 슈먀츠키를 대표로 임명하였다. 슈먀츠키는 한인부대를 가능한 한 빨리 극동공화국으로부터 벗어나서 조선 쪽으로 이동할 계획을 세웠으며 무장부대들을 통합하기 위해 창설된 고려혁명군정의회의 위원장으로 조지아 출신인 깔란드라쉬빌리를 파견하였다. 깔란드라쉬빌리는 극좌 무정부주의자로서 전략적으로 사고하는 것보다 감정적으로 행동하는 편이었다. ‘극동의 나폴레옹’을 꿈꾸던 그는 슈먀추키와 이르쿠츠크파 빨치산부대장 오하묵, 최고려 등과 함께 한국 국내에서 무장투쟁을 공공연하게 벌이려고 했다. 하지만 무기도 병력도 열세인 상태에서 조선을 향해 진격하는 것은 자살행위에 다름없었다. 그 뿐만 아니라, 통솔권을 독점하려던 깔라드라쉬빌리와 오하묵 등 사람들의 비타협적인 태도는 자유시에 집결한 빨치산 부대들의 항의를 불러일으켰다. 이러한 상황에서 소비에트러시아 외무인민위원장 치체린은 1921년 6월 9일 러시아공산당 중앙위원회 앞으로 보낸 서한에서 한인 빨치산들을 비밀리에 반드시 지원해야 하지만 지금은 (일제에) 공공연한 적대행위를 해서는 안된다고 강조하였다. 6월 10일, 볼셰비키의 지도자인 레닌은 이 서한을 보고 당분간 공공연한 행위를 하지 말고 비밀행동에 초점을 맞추라고 하였다. 같은 날 러시아공산당 중앙위원회는 ‘한인부대들은 러시아 영토에 머물면서 적극행동에 나서기 위해 적절한 기회를 기다려야 한다’는 치체린의 제안을 채택했다. 다시 말하자면, 볼셰비키들은 한인빨치산들을 지원하는 것을 거부한 것이 아니라 일제가 극동지역에서 철수한 후에야 군사행동을 계획해도 좋다고 주장한 것이며 사실상 깔란드라쉬빌리의 모험을 중단하라는 명령을 내린 것이다. 그러나 이 결정은 깔란드라쉬빌리 행동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했으며 참변은 불가피해졌다. 통솔권을 독점하려는 깔란다리쉬빌리는 최고려 등 사람들의 지도를 거부한 한인빨치산들로 구성된 사할린부대와 몇 차례의 타협을 시도했으나 실패했다. 이에 깔란다리쉬빌리는 6월 28일 극동공화국 인민혁명군 소속 자유시 수비대에게 사할린부대를 무장해제시킬 것을 요청하였다. 인민혁명군의 최후통첩을 받은 사할린부대 책임자들은 무장해제하지 않고 깔란드라쉬빌리 사령부에서 ‘미움받는 사람들’을 축출하면 항복하겠다고 대답했다. 양측은 7시간동안 동안 이 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하려고 노력했지만 실패했다. 결국, 오후 2시 20분 인민혁명군 병력 1000명과 깔란드라쉬빌리 사령부에 속한 한인 병사 300명은 더 이상 기다리지 않고 공격을 시작했다. 그러나 30분만인 오후 3시쯤 전선은 평정되었다. 3시 50분 반항하는 병사들이 진압됐고 4시 사랄린부대의 한인들은 백기를 들고 항복하기 시작했다. 오후 8시 17분 전투는 거의 정리되었다. 자유시사변의 사망자는 최소 36명에서 최대 400명으로 추측되지만, 사상자에 대한 신뢰성이 높은 자료는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 자유시 참변으로 빨치산부대 통합운동은 완전한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글 사진: 바실리 V 레베데프(고려대 사학과 석사)
  • [서울포토] ‘세계가 위드유!…일본, 피해자 목소리를 들어라’

    [서울포토] ‘세계가 위드유!…일본, 피해자 목소리를 들어라’

    세계 일본군 위안부 기림일이자 74주년 광복절을 하루 앞둔 14일 서울 종로구 옛 주한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린 ‘제1,400차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해결을 위한 정기 수요시위’ 참가자들이 ‘피해자의 미투에 세계가 다시 함께 외치는 위드유! 가해국 일본정부는 피해자의 목소리를 들어라’라는 주제로 집회를 하고 있다. 이날 수요시위는 국내 13개 도시를 비롯해 일본, 미국 등 해외 9개국 21개 도시에서 함께 개최됐다. 오장환 기자 5zzang@seoul.co.kr
  • 한지민, ‘위안부였던, 사랑하는 엄마에게’ 눈물의 편지 [전문]

    한지민, ‘위안부였던, 사랑하는 엄마에게’ 눈물의 편지 [전문]

    배우 한지민이 위안부 기림의 날을 맞아 유족의 편지를 대독했다. 8월 14일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였던 故(고) 김학순 할머니가 위안부 생존자 중 최초로 피해 사실을 공개 증언한 날이다. 28년 전 이 증언 이후 위안부 문제가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했으며, 정부는 이를 바탕으로 지난해부터 매해 8월 14일을 ‘위안부 기림의 날’로 지정했다. 올해로 2회째를 맞이해 서울 용산 백범 김구기념관에서 열린 위안부 피해자 기림의 날 기념식에는 배우 한지민이 참석했다. 이날 한지민은 위안부 피해자였던 어머니를 향한 마음을 담은 유가족의 편지를 직접 낭독했다. ‘위안부였던, 나의 사랑하는 엄마에게’라는 내용의 편지를 읽기 시작한 그는 “엄마 나이 열일곱, 전쟁 때 다친 사람들을 간호하러 가신 게 아니구나. 누군가에게 강제로 끌려가 모진 고생을 하신 거구나. 어렴풋이 짐작만 할 뿐이었습니다”는 말로 편지 대독을 시작했다. 이어 “가엾은 우리 엄마. 미안하고 죄송합니다. 그 깊은 슬픔과 고통을 안고 얼마나 힘드셨을지 생각하면 가슴이 아파 옵니다”며 눈물을 글썽이기도 했다. 끝으로 “엄마가 생전에 하시던 말씀이 생각납니다. 끝까지 싸워다오. 사죄를 받아다오. 그래야 죽어서도 원한 없이 땅속에 묻혀 있을 것 같구나. 이 세상에 다시는 전쟁이 없어야 해. 다시는 나 같은 아픔이 없어야 해. 끝내 가슴에 커다란 응어리를 품고 가신 우리 엄마. 모진 시간 잘 버티셨습니다. 이런 아픔이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저희가 이어 가겠습니다. 반드시 엄마의 못다 한 소망을 이루어내겠습니다. 이제 모든 거 내려놓으시고 편안해지시길 소망합니다”라고 떨리는 목소리로 대독을 마무리했다. 한편 한지민은 김복동 할머니가 일본의 사죄를 받아내기 위해 투쟁했던 지난 27년간의 세월을 담은 영화 ‘김복동’ 내레이션에도 직접 참여하며, 위안부 피해자들을 위해 목소리를 내는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이하 한지민이 낭독한 편지 전문 엄마 나이 열일곱, 전쟁 때 다친 사람들을 간호하러 가신 게 아니구나. 누군가에게 강제로 끌려가 모진 고생을 하신 거구나. 어렴풋이 짐작만 할 뿐이었습니다. 뼈가 튀어나올 정도로 다친 어깨와 허리 때문에 팔을 들어 올리지도 못하시는 엄마를 보면서도 무엇을 하다 그렇게 심한 상처를 입으신 건지 엄마한테는 차마 물어보지 못했습니다. 겁이 났습니다. 그런 일들이 있었다는 것이 무섭기만 했고 그 많은 사람들 가운데 하필이면 우리 엄마가 겪은 일이라는 게 더 무섭고 싫기만 했습니다. 혹시라도 내 주변 친구들이 이런 사실을 알게 되면 어쩌나 그저 두렵기만 했습니다. 엄마는 일본말도 잘하시고 가끔은 영어를 쓰시기도 하셨지만 밖에 나가서 이야기를 하실 때는 전혀 사용하지 않으셨습니다. 어디 가서 다른 사람들에게는 엄마 얘기를 절대 해서는 안 된다며 제게도 항상 신신당부하시곤 했었죠. 그렇게 세월이 흘렀습니다. 아무것도 모른 채 아니, 어쩌면 저는 아무것도 알고 싶지 않았던 것 같아요. 그래서 애써 외면했습니다. 제가 알게 된 엄마의 이야기를 모른 체하고 싶었습니다. 철없는 저는 엄마가 부끄러웠습니다. 가엾은 우리 엄마. 미안하고 죄송합니다. 그 깊은 슬픔과 고통을 안고 얼마나 힘드셨을지 생각하면 가슴이 아파 옵니다. 엄마. 엄마가 처음으로 수요 집회에 나갔던 때가 떠오릅니다. 처음에는 어디 가시는지조차 몰랐던 제가 그 뒤 아픈 몸을 이끌고 미국과 일본까지 오가시는 것을 보면서 엄마가 겪은 참혹하고 처절했던 시간들에 대해 하나씩 하나씩 자세하게 알게 되었습니다. 엄마가 생전에 하시던 말씀이 생각납니다. 끝까지 싸워다오. 사죄를 받아다오. 그래야 죽어서도 원한 없이 땅속에 묻혀 있을 것 같구나. 이 세상에 다시는 전쟁이 없어야 해. 다시는 나 같은 아픔이 없어야 해. 엄마는 강한 분이셨어요. 그러나 엄마는 그렇게 바라던 진정한 사죄도, 어린 시절도 보상받지 못하시고 우리 곁을 떠났습니다. 살아있는 모든 순간이 고통과의 싸움이었을 엄마를 생각하며 저는 울고 또 울었습니다. 엄마. 끝내 가슴에 커다란 응어리를 품고 가신 우리 엄마. 모진 시간 잘 버티셨습니다. 이런 아픔이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저희가 이어가겠습니다. 반드시 엄마의 못다 한 소망을 이루어내겠습니다. 이제 모든 거 내려놓으시고 편안해지시길 소망합니다. 나의 어머니. 우리 모두의 어머니. 사랑합니다. 사진 = 서울신문DB 김채현 기자 chkim@seoul.co.kr
  • 국민 울린 딸의 편지 ‘위안부였던, 사랑하는 엄마에게’ [전문]

    국민 울린 딸의 편지 ‘위안부였던, 사랑하는 엄마에게’ [전문]

    배우 한지민, 위안부 피해자 유족 편지 대독“반드시 엄마의 못다 한 소망을 이뤄내겠다” “철없는 저는 엄마가 부끄러웠습니다. 가엾은 우리 엄마. 미안하고 죄송합니다. 그 깊은 슬픔과 고통을 안고 얼마나 힘드셨을지 생각하면 가슴이 아파 옵니다.” 14일 서울 용산구 효창동 백범김구기념관에서 열린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기림의 날’ 정부 기념식에서 위안부 피해자의 유족들이 어머니에게 보내는 편지 한 통이 낭독됐다. ‘위안부였던, 나의 사랑하는 엄마에게’라는 제목을 단 편지는 배우 한지민이 대신 낭독했다. 여성가족부는 2명 이상의 유족을 인터뷰한 내용을 바탕으로 편지를 완성했다. 다만 인터뷰에 응한 유족들이 신원 노출을 극도로 꺼려 한씨가 낭독하는 것으로 대신했다. 편지 주인공은 어머니가 매주 수요일 광화문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리는 수요집회에 참여한 때를 상기한다. 딸은 “처음에는 엄마가 어디 가시는지조차 몰랐다”라면서 “아픈 몸을 이끌고 미국과 일본까지 오가시는 것을 보면서 엄마가 겪은 참혹하고 처절했던 시간을 하나씩 하나씩 자세하게 알게 됐다”고 말했다. 어머니는 딸에게 부탁한다. “끝까지 싸워다오. 사죄를 받아다오. 그래야 죽어서도 원한 없이 땅속에 묻혀 있을 것 같구나. 이 세상에 다시는 전쟁이 없어야 해. 다시는 나 같은 아픔이 없어야 해.” 유족은 “엄마는 그렇게 바라던 진정한 사죄도, 어린 시절도 보상받지 못하고 우리 곁을 떠났다”며 “이러한 아픔이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저희가 이어가겠다. 반드시 엄마의 못다 한 소망을 이뤄내겠다”라고 다짐했다. 대독 영상을 접한 네티즌들은 “너무 슬퍼 끝까지 볼 수가 없다”, “마음 한켠이 뭉클해진다”, “그 뜻을 저희도 잘 이어나가겠습니다”라며 큰 호응을 보내고 있다. 아래는 편지 전문. 엄마 나이 열일곱, 전쟁 때 다친 사람들을 간호하러 가신 게 아니구나. 누군가에게 강제로 끌려가 모진 고생을 하신 거구나. 어렴풋이 짐작만 할 뿐이었습니다. 뼈가 튀어나올 정도로 다친 어깨와 허리 때문에 팔을 들어올리지도 못하시는 엄마를 보면서도 무엇을 하다 그렇게 심한 상처를 입으신 건지 엄마한테는 차마 물어보지 못했습니다. 겁이 났습니다. 그런 일들이 있었다는 것이 무섭기만 했고 그 많은 사람들 가운데 하필이면 우리 엄마가 겪은 일이라는 게 더 무섭고 싫기만 했습니다. 혹시라도 내 주변 친구들이 이런 사실을 알게 되면 어쩌나 그저 두렵기만 했습니다. 엄마는 일본말도 잘하시고 가끔은 영어를 쓰시기도 하셨지만 밖에 나가서 이야기를 하실 때는 전혀 사용하지 않으셨습니다. 어디 가서 다른 사람들에게는 엄마 얘기를 절대 해서는 안 된다며 제게도 항상 신신당부 하시곤 했었죠. 그렇게 세월이 흘렀습니다. 아무것도 모른 채 아니, 어쩌면 저는 아무것도 알고 싶지 않았던 것 같아요. 그래서 애써 외면했습니다. 제가 알게 된 엄마의 이야기를 모른 체하고싶었습니다. 철없는 저는 엄마가 부끄러웠습니다. 가엾은 우리 엄마. 미안하고 죄송합니다. 그 깊은 슬픔과 고통을 안고 얼마나 힘드셨을지 생각하면 가슴이 아파 옵니다. 엄마. 엄마가 처음으로 수요 집회에 나갔던 때가 떠오릅니다. 처음에는 어디 가시는지조차 몰랐던 제가 그 뒤 아픈 몸을 이끌고 미국과 일본까지 오가시는 것을 보면서 엄마가 겪은 참혹하고 처절했던 시간들에 대해 하나씩 하나씩 자세하게 알게 되었습니다. 엄마가 생전에 하시던 말씀이 생각납니다. 끝까지 싸워다오. 사죄를 받아다오. 그래야 죽어서도 원한 없이 땅속에 묻혀 있을 것 같구나.이 세상에 다시는 전쟁이 없어야 해. 다시는 나 같은 아픔이 없어야 해. 엄마는 강한 분이셨어요. 그러나 엄마는 그렇게 바라던 진정한 사죄도, 어린 시절도 보상받지 못하시고 우리 곁을 떠났습니다. 살아있는 모든 순간이 고통과의 싸움이었을 엄마를 생각하며 저는 울고 또 울었습니다. 엄마. 끝내 가슴에 커다란 응어리를 품고 가신 우리 엄마. 모진 시간 잘 버티셨습니다. 이런 아픔이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저희가이어가겠습니다. 반드시 엄마의 못다 한 소망을 이루어내겠습니다. 이제 모든 거 내려놓으시고 편안해지시길 소망합니다. 나의 어머니. 우리 모두의 어머니. 사랑합니다. 정현용 기자 junghy77@seoul.co.kr
  • 문 대통령 “위안부 피해자들 명예 회복에 최선 다할 것”

    문 대통령 “위안부 피해자들 명예 회복에 최선 다할 것”

    일본군 위안부 강제동원 가해책임이 있는 일본 정부에 공식 사죄와 법적 배상을 촉구하는 ‘수요집회’가 1400번째를 맞은 14일 문재인 대통령이 “정부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의 존엄과 명예를 회복하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밝혔다. 문 대통령은 이날 페이스북을 통해 “오늘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기림의 날’이다. 지난해 처음으로 국가기념일로 지정했고, (올해로) 두 번째 기림의 날을 맞았다”면서 “오늘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을 기릴 수 있었던 것은 28년 전 오늘, 고 김학순 할머니의 피해사실 첫 증언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날 할머니는 ‘내가 살아있는 증거다’라는 말씀으로 오랜 침묵의 벽을 깨셨다”고 말했다. 이어 “김학순 할머니의 용기에 힘입어 슬픔과 고통을 세상에 드러낸 할머니들께서는 그러나, 피해자로 머물지 않으셨다. 여성인권과 평화를 위해 연대하는 인권운동가가 되셨고, 오늘 1400회를 맞는 수요집회를 이끌며 국민들과 함께 하셨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문 대통령은 “정부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의 존엄과 명예를 회복하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라며 “인류 보편적 관점에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평화와 여성인권에 대한 메시지로서 국제 사회에 공유하고 확산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문 대통령은 “할머니들의 노력에 감사드린다. 할머니들이 계셔서 우리도 진실과 마주할 수 있었다”면서 “세계 시민사회와 연대하여 다른 나라의 피해자들에게도 희망을 주셨던 수많은 할머니들과 김복동 할머니를 기억하겠다”고 말했다. 아울러 “평화로운 한반도를 만들어가는 것이 할머니들의 희망을 이어나가는 것”이라면서 “오늘 기림의 날, 항상 슬픔이 희망으로 승화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오세진 기자 5sjin@seoul.co.kr
  • “미국, ‘강제동원 배상’ 일본 입장 이해 표명”…日 보도 이어져

    “미국, ‘강제동원 배상’ 일본 입장 이해 표명”…日 보도 이어져

    마이니치 이어 요미우리도 보도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배상 문제와 관련해 한일 정부가 해석을 다르게 하고 있는 한일청구권협정에 대해 미국이 일본의 입장을 지지하고 있다는 취지의 일본 언론 보도가 이어지고 있다. 요미우리신문은 14일 복수의 일본 정부 관계자를 인용해 미국 정부가 1965년 체결된 한일청구권협정으로 강제동원된 개인의 배상 문제가 해결됐다는 일본 정부 입장에 이해를 표명했다고 보도했다. 고노 다로 일본 외무상은 지난 1일 태국 방콕에서 열린 동남아국가연합(ASEAN) 관련 외교장관 회의 때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과 서서 대화하면서 이 문제를 거론했다는 것이다. 고노 외무상은 “샌프란시스코 강화 조약을 뒤집는 것은 안 된다”고 설명했고, 이에 대해 폼페이오 장관은 “알고 있다”고 반응했다고 요미우리는 전했다. 요미우리는 강제동원 손해배상 청구권을 인정하는 한국의 주장을 받아들일 경우 샌프란시스코 강화 조약이 규정한 전후 처리에 영향을 줄 수 있고, 이런 사정에 폼페이오 장관이 이해를 표시한 것이라고 해석했다. 이는 지난 11일자 마이니치신문이 일본 정부 관계자를 인용해 한국 법원의 강제동원 피해자 배상 판결이 한일청구권협정에 배치된다고 주장하는 일본 주장을 미국이 지지했다고 보도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마이니치에 따르면 미국에서는 2000년대 들어 옛 일본군의 포로로 잡혔던 미국인들이 일본에서 강제노동에 시달렸다며 일본 기업을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소송이 잇따랐다. 미 국무부는 당시 “샌프란시스코 강화 조약으로 청구권을 포기했다”면서 원고 측 청구에 반대되는 의견서를 법원에 제출했고, 미국 법원도 원고의 청구를 기각했다고 마이니치는 보도했다. 이러한 보도에 대해 고민정 청와대 대변인은 지난 12일 정례 브리핑에서 마이니치신문의 보도를 거론하며 “거의 수시로 소통하고 있는 한미 NSC(국가안전보장회의) 차원에서 미국 측에 확인한 결과 사실이 아니라는 답을 들었다”고 밝힌 바 있다. 신진호 기자 sayho@seoul.co.kr
  • “할머니들 명예를 위해”… 성북 학생들의 손편지

    “할머니들 명예를 위해”… 성북 학생들의 손편지

    ‘그날의 통한이 오늘까지 이어지고, 날이 갈수록 아픔과 분노가 켜켜이 쌓여만 갈 뿐 풀릴 길이 없으니 정말 마음이 아픕니다. 할머니들의 명예와 인권 회복을 위해 우리 세대가 할 일을 묵묵히 해나가겠습니다.” 서울 성북구 청소년들이 ‘나눔의 집’에서 생활하는 일본군 성노예 피해자 할머니들에게 편지를 썼다. 한 자 한 자 진심 어린 마음을 담아 꾹꾹 눌러 썼다. 지난 12일 오전 10시, 성북구청 성북배움터에서 열린 ‘일본군 위안부를 아시나요’ 프로그램에서다. 프로그램은 미래 세대를 위한 역사바로세우기 일환으로 마련했다. 성북구는 만해 한용운 등 수많은 독립운동가들이 활동했던 지역으로 이승로 성북구청장 취임 이후 청소년들이 우리 역사를 제대로 알도록 하기 위해 공을 들이고 있다. 행사에는 지역 중·고등학생 22명이 참여했다. 이들은 ‘일본군 성노예 피해자 문제’를 주제로 한 나눔의 집 안신권 소장의 강연을 듣고 할머니들에게 편지를 썼다. 학생들은 직접 자수 손수건도 만들었다. 손편지와 손수건은 나눔의 집 할머니들에게 전달된다. 이 구청장은 “관내 70개교 아동·청소년뿐 아니라 일반 주민들도 참여할 수 있는 역사바로세우기 프로그램을 마련해 지속적으로 운영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김승훈 기자 hunnam@seoul.co.kr
  • 27년, 쉼없이 달려온 수요집회… 연대·평화의 장으로 거듭나다

    27년, 쉼없이 달려온 수요집회… 연대·평화의 장으로 거듭나다

    김학순 할머니의 용기있는 첫 신고로 정대협, 1992년 1월 8일 첫발 내디뎌 1000회 때 ‘평화의 소녀상’ 건립 성과 70~80%가 청소년… 인권교육 산실로 할머니들 숙제 아닌 미래세대 연대를단일 주제 집회로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 이어져 온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 해결을 위한 수요시위’가 광복절 하루 전인 14일로 1400회째를 맞는다. 1992년 1월 처음 열려 27년 동안 단 한 주도 거르지 않았다. 피해 사실을 용기 내 고발한 할머니들과 역사적 아픔에 함께 분노하고 연대한 시민들이 똘똘 뭉쳐 이뤄 낸 결과다. 한경희 정의기억연대 사무총장은 “일제의 위안부 만행이 보편적 여성 인권을 침해하는 전시 성폭력이었다는 점이 알려지면서 수요시위에 국내외 많은 시민이 동참하게 됐다”며 “이제는 매주 시민들이 모여 연대와 평화를 외치는 상징적 집회가 됐다”고 말했다. 14일 집회는 한국과 일본 등 10개국 34개 도시에서 함께 진행된다. 수요시위의 역사는 1991년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로 걸려 온 한 통의 신고전화에서 시작됐다. 김학순 할머니였다. 이상화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 대외협력본부장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신고전화를 개설했을 때 김 할머니가 첫 신고자였다”고 회고했다. 이 본부장은 “김 할머니는 ‘일본에 구걸하듯 사과를 받아 낼 게 아니다. 일본이 응당 사과해야 하고 반성해야 한다’며 당당하게 일본의 태도를 꾸짖었다”고 전했다. 피해 할머니들은 국내에서도 곱지 않은 시선을 이겨 내야 했다. 이 본부장은 “김 할머니가 증언할 당시에는 지식인들 사이에서도 위안부 피해 여성을 국가적 망신으로 여기는 사람이 많았다”면서 “위로나 공감은 고사하고 사회가 피해 여성들의 이야기를 들을 준비조차 안 돼 있었다”고 지적했다. 이나영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할머니들이 증언하실 때는 성폭력특별법도 없었다. ‘민족의 더러운 여자들’이라고 침을 뱉고 지나갈 때 용감하게 피해 사실을 드러내고 활동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수요시위는 김 할머니가 1991년 8월 14일 피해 사실을 공개 증언한 이듬해부터 시작됐다. 미야자와 기이치 당시 일본 총리의 방한을 계기로, 36개 여성단체로 구성된 정대협 주도하에 1월 8일 첫 시위를 열었다. 회원 30여명은 일본대사관 주변을 돌며 일본 정부에 위안부 강제 연행 사실 인정과 공식 사죄, 피해자에 대한 배상, 희생자 추모비 건립 등을 요구했다. 주변 시선을 의식해 참석하지 못했던 할머니들도 용기를 내 7번째 집회부터 함께했다. 2011년에는 1000회를 맞아 옛 일본대사관 앞에 평화의 소녀상을 세웠다. 정대협과 국제연대 단체들이 2012년 12월 대만에서 개최한 아시아연대회의에서는 김 할머니가 피해 사실을 증언한 8월 14일을 세계 일본군 위안부 기림일로 정하기도 했다. 또 2011년 3월 동일본 대지진 때는 항의집회를 추모집회로 대신하며 비탄에 잠긴 일본 국민들에게 위로를 건네기도 했다. 수요집회를 이어 온 많은 할머니가 일본의 사죄와 배상을 받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났다. 올해 1월에는 여성 인권운동가이자 평화운동가인 김복동 할머니도 별세했다. 현재 정부에 등록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중 생존자는 20명이다. 평균 연령은 91세다. 이용수(91) 할머니는 서울신문과의 전화 인터뷰 도중 연신 기침을 하며 “힘이 든다”고 토로했다. 하지만 활동을 멈출 생각은 없다고 했다. 이 할머니는 14일 위안부 기림일을 맞아 서울 남산에 설치되는 소녀상 제막식에 참석한다. 그는 “우리는 30년 가까이 진실을 말해 왔는데, 일본 사람들은 계속 거짓말만 해 너무 속상하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일각에서는 ‘피해자 없는 수요시위’가 동력을 계속 유지할 수 있을지 걱정하기도 한다. 그러나 위안부 문제 해결에 관심을 가지는 젊은 세대가 늘고 있다는 점은 희망적이다. 한 사무총장은 “수요시위가 1000회를 넘어서면서부터 청소년 참여가 기하급수로 늘었다”며 “지금은 70~80%가 청소년이다. 인권과 평화를 기억하고 교육하는 장으로 수요집회가 발전했다”고 평가했다. 소녀상 세우기 운동을 하는 이태준(28) ‘세움’ 대표는 “위안부 피해 문제는 할머니들의 숙제가 아니라 미래세대인 우리가 받아 안고 해결해야 할 숙제”라고 강조했다. 이 교수는 “우리 사회는 수요시위 현장에 서린 할머니들의 용기와 연대 정신을 계승해야 할 책임이 있다”고 말했다. 기민도 기자 key5088@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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