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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위안부는 매춘” 류석춘 교수 “위안부 사실관계 확인해야” (공식입장)

    “위안부는 매춘” 류석춘 교수 “위안부 사실관계 확인해야” (공식입장)

    입장문 발표…“학생에게 매춘 권한 것 아니다”“강의실 발언은 교수·학생 간 토론으로 끝나야” 강의 중 일본군 위안부가 매춘의 일종이라고 발언해 파문을 일으킨 류석춘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가 “쟁점이 되고 있는 위안부 문제에 대한 논쟁은 전문가들 사이에서 공개적 토론을 거쳐 사실관계를 엄밀히 확인하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류석춘 교수는 23일 기자들에게 입장문을 보내 “(위안부 문제 논쟁) 과정에서 생길 수 있는 이견, 나아가서 갈등을 외부에 의도적으로 노출해 기존 주장과 다른 주장을 하는 교수에게 외부의 압력과 통제가 가해지도록 유도하는 일은 대학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강의실에서 이뤄진 발언과 대화를 교수 동의 없이 녹음하고 외부에 일방적으로 유출한 행위는 더욱더 안타까운 대목”이라며 “강의실에서 발언은 교수와 학생 간의 토론과 대화로 끝나야 한다”고 말했다. 류석춘 교수는 학생에게 ‘한번 해볼래요’라고 발언한 데 대해서는 매춘 권유가 아닌 조사를 권유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학생에게 매춘을 권유하는 발언이 절대 아니다”라면서 “‘궁금하면 학생이 조사를 한번 해볼래요’라고 역으로 물어보는 취지의 발언이다. 차별 혐오 발언이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이어 “매춘이 식민지 시대, 오늘날 한국, 전 세계 어디에도 존재한다는 설명을 하면서 매춘에 여성이 참여하게 되는 과정이 가난 때문에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이뤄진다는 설명을 했다”면서 “일부 학생이 설명을 이해 못 하고 질문을 반복하자 현실을 정확히 이해할 필요가 있음을 강조하기 위해 말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강의를 할 때 직선적으로 전달하는 스타일이기 때문에 일부 학생들은 그것을 좋아하고 다른 일부 학생들은 불편해한다”면서 “이 문제는 스타일의 문제이지 옳고 그름의 문제는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류석춘 교수는 “학문의 영역은 감정의 영역이 아니고 이성의 영역”이라며 “이번 강의에서도 이영훈 교수 등의 연구 성과를 인용하면서 직선적으로 설명했다. 강의 내용에 동의 못 하는 일부 학생이 있다는 사실도 충분히 인지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강의실에서 발언을 맥락 없이 이렇게 비틀면 명예훼손 문제까지도 고려할 수 있다”면서 “이영훈 교수 등이 출판한 ‘반일 종족주의’ 내용을 학생들이 심도 있게 공부해서 역사적 사실관계를 분명히 파악할 필요가 있다는 취지의 발언을 한 것 뿐”이라고 말했다. 류석춘 교수는 “이번 사태에 대한 학생회와 대학 당국의 대처를 보면서 깊은 우려를 표하지 않을 수 없다”며 “학생회와 대학 당국이 저의 발언을 두고 진의를 왜곡한 채 사태를 혐오 발언으로 몰고 가는 것 아닌가 하는 의심마저 든다”고 주장했다. 류석춘 교수는 이달 19일 사회학과 전공과목 ‘발전사회학’ 강의에서 “(위안부 관련) 직접적인 가해자는 일본(정부)이 아니다”라며 “(위안부는) 매춘의 일종”이라고 말했다. ‘위안부 피해자들이 자발적으로 갔다는 것인가’라는 학생들 질문에 류석춘 교수는 지금도 매춘에 들어가는 과정이 자의 반, 타의 반이라고 설명하며 “궁금하면 한번 해볼래요”라고 학생에게 되물었다. 한편 시민단체 서민민생대책위원회는 류석춘 교수를 허위사실유포, 명예훼손, 성희롱 등 혐의로 서울서부지검에 고발했다고 23일 밝혔다. 신진호 기자 sayho@seoul.co.kr
  • “위안부는 매춘” 류석춘 연세대 교수, 검찰 고발당해

    “위안부는 매춘” 류석춘 연세대 교수, 검찰 고발당해

    허위사실유포·명예훼손 등 혐의로 고발“여학생에 ‘한번 해볼래요?’는 성희롱” 강의 중 일본군 위안부가 매춘의 일종이라고 발언해 논란을 일으킨 류석춘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가 검찰에 고발당했다. 시민단체 서민민생대책위원회는 류석춘 교수를 허위사실유포, 명예훼손, 성희롱 등 혐의로 서울서부지검에 고발했다고 23일 밝혔다. 이 단체는 류석춘 교수가 해당 발언으로 역사를 왜곡해 허위사실을 퍼뜨렸고, 위안부 피해 할머니의 명예를 훼손했으며 질문한 여학생을 상대로 성희롱을 했다고 주장했다. 이 단체는 고발장에서 “류석춘 교수의 망언은 천인공노할 행위”라며 “위안부 피해 할머니와 국민, 당시 강의를 들은 제자들에게도 석고대죄하는 것이 당연하지만 독선과 아집으로 본인 주장에 매몰돼 교만한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질문한 여학생에게 ‘궁금하면 (매춘) 한번 해볼래요?’라고 말한 것은 명백히 모욕감을 동반한 성희롱”이라고 덧붙였다. 류석춘 교수는 이달 19일 사회학과 전공과목인 ‘발전사회학’ 강의에서 “(위안부 관련) 직접적인 가해자는 일본(정부)이 아니다”라며 “(위안부는) 매춘의 일종”이라고 말했다. ‘매춘부와 과거 위안부를 동급으로 보는 것인가’라는 학생 질문에는 “그런 것과 비슷하다”고 답했다. 신진호 기자 sayho@seoul.co.kr
  • [사설] 위안부가 매춘이라는 현직 교수의 참담한 망언

    류석춘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가 강의 중 일본군 위안부를 매춘과 동일시하는 발언을 했다. 류 교수는 지난 19일 사회학과 전공 과목 시간에 “(위안부 피해자 관련) 직접적인 가해자는 일본이 아니다”라면서 “위안부는 매춘의 일종”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믿기조차 어려운 망언이라고밖에는 할 말이 없다. 류 교수는 수업 도중에 어쩌다 한두 마디의 말 실수를 한 것이 아니었다. 일제의 위안부는 강제 동원된 것이 아니냐는 학생의 질문에 “지금도 살기 어려운데 조금 일하면 돈 받는다는 매춘 유혹이 있다. 예전에도 그런 것”이라고 답했던 모양이다. 질문한 여학생에게는 “궁금하면 (매춘) 한번 해볼래요? 지금도 그래요”라고까지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체 현직 교수가 강단에서 할 수 있는 발언들인지 경악스러울 뿐이다. 일본군 위안부는 국제사회에서도 이미 ‘전시 성노예’라는 인식이 확고하게 정립된 사안이다. 지난해 8월 유엔 인종차별철폐위원회는 일본 정부가 피해자들에게 충분한 사죄와 보상을 하지 않았다고 공개 비판하기도 했다. 지난달 1400회를 맞았던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수요시위’가 세계적 주목을 끌었던 것도 그런 공감대가 형성됐기 때문이다. 위안부 동원의 강제성과 일본군 및 관헌의 직접 개입을 인정했던 1993년 고노 담화를 뒤엎고 위안부를 강제로 끌고 간 증거가 없다는 아베 정부의 억지 주장은 일본의 양심적 지식인들조차 개탄하고 있는 현실이다. 연세대 총학생회의 즉각적인 규탄과 함께 학교 차원에서도 류 교수 징계 여부를 검토하기로 했다. 정치권도 한목소리로 비판하고 있으며, 그가 한때 혁신위원장으로 몸담았던 한국당에서도 부적절했다고 선 긋기에 나섰을 정도다. 역사적 진실을 함부로 왜곡하는 행위는 역사에 대한 폭력이며, 보호받을 어떠한 명분도 가치도 없음을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한다.
  • “위안부는 매춘”… 책임지는 이 없는 강단 위 망언

    “위안부는 매춘”… 책임지는 이 없는 강단 위 망언

    학계 “제재 수단 필요” “스스로 변화”강의 중에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를 매춘부에 비유해 논란이 된 류석춘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에 대해 각계의 비판이 거세지고 있다. ‘정의기억연대’ 등 위안부 피해자 지원단체와 연세대 총학생회 등 학내외 단체는 물론 정치권에서도 류 교수의 발언을 규탄하며 사과와 파면을 촉구했다. 류 교수는 지난 19일 ‘발전사회학’ 수업시간에 “(위안부 관련) 직접적인 가해자는 일본이 아니다. (위안부는) 매춘의 일종”이라며 “살기 어려운데 ‘조금 일하면 돈 받는다’는 매춘의 유혹이 있고 예전에도 그런 것”이라고 발언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질문을 한 여학생에게 “궁금하면 (매춘) 한번 해볼래요. 지금도 그래요”라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연세대 총학생회에 접수된 제보에 따르면 류 교수는 교양수업이나 전공수업에서도 비슷한 취지의 발언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위안부 피해자들이 자발적 의도를 가지고 있었고 일본만 비판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는 취지의 발언으로 풀이된다. 정의기억연대는 22일 성명을 내고 “일본군 성노예제의 진실을 악의적으로 왜곡한 류 교수를 규탄한다”며 “법적 대응을 포함해 모든 방법을 강구하겠다”고 밝혔다. 연세민주동문회와 연세대 총학생회 등 5개 단체도 “왜곡된 매국적 역사관을 규탄한다”며 “류 교수가 파면될 때까지 총장실 항의 방문 등을 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더불어민주당과 바른미래당, 정의당, 민주평화당은 류 교수 파면을 촉구했고 류 교수가 혁신위원장을 지냈던 자유한국당은 “부적절한 발언이었다”며 유감을 표했다. 연세대는 류 교수의 징계 여부를 검토할 것으로 전해졌다. 교수들이 부적절한 발언을 해 물의를 빚는 일은 최근 계속되고 있다. 부산 동의대에서는 한 교수가 “전쟁이 나면 여학생은 제2의 위안부가 되고, 남학생은 총알받이가 될 것”이라는 막말을 한 뒤 징계절차 전 사표를 냈다. ‘반일 종족주의’의 공동저자 이영훈 전 서울대 교수도 공개적으로 위안부 피해자를 비하하는 발언을 해 비난받았다. 학계에서는 이러한 망언을 제재할 강한 수단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이택광 경희대 교수는 “최근 성범죄에 대해서는 그나마 경각심이 생겼지만, 학교가 혐오 발언을 징계한 적은 거의 없다”면서 “다만 징계위원회를 열어도 제 식구 감싸기 태도가 계속되는 한 개선되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신경아 한림대 사회학과 교수는 “교수가 누리는 권위와 학문적 자율성에는 책임이 따르지만, 그 책임에 대해서는 대학 사회가 소홀한 측면이 크다”면서 “학생들의 문제 제기에 부랴부랴 수습하는 것이 아니라 학교 당국과 교수들 스스로 어떻게 책임을 물을지 고민하고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지예 기자 jiye@seoul.co.kr
  • “위안부는 매춘” 망언 류석춘 연세대 교수에 총학생회 “강력 규탄”

    “위안부는 매춘” 망언 류석춘 연세대 교수에 총학생회 “강력 규탄”

    연세대 측, 류 교수 징계 여부 검토연세대 총학생회가 강의 시간에 일본군 위안부가 매춘의 일종이라고 발언한 류석춘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에 대해 강력히 규탄한다며 가능한 한 모든 대응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학교 측에서도 류 교수에 대한 징계 여부를 검토하기로 했다. 연세대 총학은 22일 페이스북에 ‘류석춘 교수 발전사회학 수업 중 발생한 발언에 대한 총학생회의 긴급 공지’라는 제목의 글을 올리고 “류 교수의 수업 중 발언들을 강력히 규탄하며 가능한 모든 대응을 준비하고 있다”고 올렸다. 총학은 “20일부터 사회학과 학생회에서 관련 사항을 논의하고 있다”면서 “총학은 사회학과 학생회, 사회과학대학 학생회와 함께 대응 방안을 논의할 것”이라고 전했다. 이어 “23일 정기 중앙운영위원회에 관련 안건을 상정해 본 사안에 대응해 나가도록 하겠다”고 천명했다. 총학은 류 교수가 이전에도 문제성 발언을 했을 것으로 판단하고 추가적으로 피해를 입은 사례에 대해 제보해달라며 요청했다. 총학은 “류 교수의 발전사회학 수업을 들은 학우들의 제보를 부탁드린다”면서 “언론에 노출된 문제 발언을 포함해 추가적인 피해 사례가 있다면 제보를 부탁한다”고 덧붙였다.학생회의 움직임과는 별개로 연세대는 학교 차원에서 이번 사안을 엄중히 받아들이고 류 교수의 징계 여부를 검토할 것으로 전해졌다. 연세대 정관은 ‘직무의 내외를 불문하고 교원으로서의 품위를 손상하는 행위’에 대해 교원징계위원회를 열어 징계 처분을 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연세대 관계자는 “사실관계를 파악하고, 필요할 경우 절차에 따라 처리 방안을 마련할 것”이라고 말했다. 류 교수는 지난 19일 사회학과 전공과목 ‘발전사회학’ 강의에서 위안부와 관련해 “직접적인 가해자는 일본(정부)이 아니다”라면서 “(위안부는) 매춘의 일종”이라고 말했다. ‘매춘부와 과거 위안부를 동급으로 보는 것인가’라는 학생 질문에는 “그런 것과 비슷하다”고 답한 뒤 “매춘이 도덕적으로 잘못됐지만, 일본 정부에게만 책임을 지라고 하는 것은 잘못됐다”고 주장했다. ‘일본이 좋은 일자리를 준다고 속여 위안부 피해자를 데려갔다’고 학생들이 반발하자 류 교수는 “지금도 매춘 들어가는 과정이 그렇다. ‘매너 좋은 손님 술만 따라주고 안주만 주면 된다’고 말해서 접대부 되고 매춘을 시작한다”며 위안부 피해자들을 매춘과 동일시했다. 또 질문을 하는 여학생에게는 “궁금하면 (매춘) 한번 해볼래요. 지금도 그래요”라고 말하기도 했다. 류 교수는 위안부 피해 할머니 지원 단체인 ‘정의기억연대’(정의연)가 순수한 단체가 아니라며 위안부 피해자를 교육해 서로의 기억을 만들어 냈다는 비난도 이어갔다. 그는 “정대협(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의연 옛 이름)이 개입해 할머니들을 교육한 것”이라면서 “(위안부 피해자들은) 해방 이후 쥐죽은 듯이 와서 살던 분들인데 정대협이 개입해 국가적 피해자라는 생각을 갖게 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강주리 기자 jurik@seoul.co.kr
  • 여야, ‘위안부 매춘’ 발언한 류석춘 교수 일제히 비판…“파면하라”

    여야, ‘위안부 매춘’ 발언한 류석춘 교수 일제히 비판…“파면하라”

    여야는 21일 류석춘 연세대 교수가 강의 시간에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을 ‘매춘부’에 빗대어 발언한 것에 대해 일제히 비판했다. 류 교수는 자유한국당 혁신위원회 위원장을 지내는 등 정치 활동에도 활발히 참여해왔다. 더불어민주당과 바른미래당, 정의당, 민주평화당은 류 교수가 입에 담지도 못할 망언을 했다면서 연세대에 류 교수의 파면을 촉구했다. 한편 한국당은 부적절한 발언이었다면서 국민에게 유감을 표하는 정도에 그쳤다. 민주당 이해식 대변인은 논평에서 “천인공노할 짓으로 일본 극우 집단에서조차 찾아볼 수 없는 망언 중의 망언”이라며 “과연 류 교수는 한국인이 맞는가. 사람은 맞는가. 류 교수는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과 국민들 앞에 석고대죄하고 한국을 떠나라”고 역설했다. 한국당 김성원 대변인은 구두 논평에서 “류 교수의 반국민적 발언으로 상처를 받으신 위안부 피해자와 유가족 그리고 국민 여러분께 깊은 유감을 표한다”고 말했다. 김 대변인은 “류 교수의 발언은 매우 부적절하고 국민께 지탄받아 마땅하다”고 덧붙였다. 바른미래당 김정화 대변인은 논평에서 류 교수를 ‘정신적 살인자’라고 지칭하며 “’얄팍한 지식’과 ‘간악한 혀’로 일제의 만행을 용인한 사실에 분노를 느낀다”고 비판했다. 이어서 “즉각 파면이 답이다. 수치스럽고 혐오스러워 더는 논평도 못 하겠다”고 토로했다. 정의당 오현주 대변인은 논평에서 “일본 극우 인사도 한꺼번에 하기 힘든 ‘망언 종합세트’로 연세대는 즉각 류 교수를 파면하라”고 강조하면서 “이런 역사 인식을 가진 사람이 그동안 강단에 서왔고 심지어 한국당 혁신위원장까지 했다니 한탄스러울 따름”이라고 말했다. 평화당 이승한 대변인도 논평을 내고 “류 교수의 망언에 분노를 넘어 허탈감을 느낀다. 지식인층이 잘못된 역사관으로 매국적 발언을 했을 뿐만 나라를 잃고 꽃다운 나이에 순결까지 잃은 위안부들의 상처에 소금 뿌리는 것”이라며 류 교수의 사퇴를 촉구했다. 류 교수는 최근 발전사회학 강의에서 학생들과 일제강점기와 관련해 토론하던 중 위안부 피해자를 ‘매춘 여성’으로 지칭했다. 자신의 발언에 대해 반박한 여학생에게는 “궁금하면 (매춘) 한번 해볼래요”라고 말하기도 했다. 또 “매춘이 도덕적으로 잘못됐지만, 일본 정부에게만 책임을 지라고 하는 것은 잘못됐다”면서 일본 정부를 두둔하기도 했다. 곽혜진 기자 demian@seoul.co.kr
  • 류석춘 연세대 교수 “위안부는 매춘부…일본 정부 책임 없어”

    류석춘 연세대 교수 “위안부는 매춘부…일본 정부 책임 없어”

    연세대 교수가 강의 시간에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을 ‘매춘부’에 빗대어 발언해 논란이 일었다. 류석춘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는 최근 발전사회학 강의에서 학생들과 일제강점기와 관련해 토론하던 중 위안부 피해자를 ‘매춘 여성’으로 지칭했다. 류 교수는 “(위안부 관련) 직접적인 가해자는 일본(정부)이 아니다”라며 “(위안부는) 매춘의 일종”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서 “위안부는 일본 민간이 주도하고 일본 정부가 방치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한 학생이 ‘위안부 피해자는 자발적으로 간 것이 아닌 강제 연행된 것이 아닌가’라고 반발하자, 류 교수는 “살기 어려운데 조금 일하면 돈 받는다는 매춘 유혹이 있다. 예전에도 그런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매춘부와 과거 위안부를 동급으로 보는 것인가‘라는 학생 질문에는 “그런 것과 비슷하다”고 답했다. 이러한 발언은 위안부 피해자들이 당시 자발적 의도를 가지고 있었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일본이 좋은 일자리를 준다고 속여 위안부 피해자를 데려갔다’는 학생들의 반발이 이어지자, 류 교수는 “지금도 매춘 들어가는 과정이 그렇다. ‘매너 좋은 손님 술만 따라주고 안주만 주면 된다’고 말해서 접대부 되고 매춘을 시작한다’고 설명했다. 특히 자신의 발언에 대해 반박한 여학생에게 류 교수는 “궁금하면 (매춘) 한번 해볼래요. 지금도 그래요”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는 “매춘이 도덕적으로 잘못됐지만, 일본 정부에게만 책임을 지라고 하는 것은 잘못됐다”면서 일본 정부를 두둔하기도 했다.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을 지원하는 단체들을 폄훼하기도 했다. 류 교수는 “(위안부 피해자들은) 해방 이후 쥐죽은 듯이 와서 살던 분들인데 정대협(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이 개입해 국가적 피해자라는 생각을 갖게 한 것”이라며 ‘정의기억연대’(정대협의 현재 명칭)가 위안부 피해자들의 기억을 조작했다고 주장했다. 연세대 관계자는 “학교는 이번 일을 엄중하게 받아들이고 있다”며 “사실관계를 파악한 뒤 필요할 경우 절차에 따라 처리 방안을 마련할 것”이라고 밝혔다. 류 교수는 자유한국당 혁신위원회 위원장을 지내는 등 정치 활동에도 활발히 참여하고 있다. 곽혜진 기자 demian@seoul.co.kr
  • 독립운동가였던 ‘나의 아버지 최재형’

    독립운동가였던 ‘나의 아버지 최재형’

    일제강점기 연해주 항일독립운동 대부인 최재형(1860~1920)의 독립투쟁을 세밀하게 볼 수 있는 책이 출간됐다. 최재형의 딸 올가 페트로브나와 아들 발렌틴 페트로비치의 육필 원고를 러시아 전문가인 정헌 전 모스크바대 교수가 우리말로 옮긴 ‘나의 아버지 최재형’(표지·도서출판 상상). 임시정부 초대 재무총장을 지냈으면서도 그동안 잘 알려지지 않았던 독립운동가의 면모가 상세하게 드러나 눈길을 끈다. 함경북도 경원에서 노비인 아버지와 기생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최재형은 어릴 적 러시아 연해주로 건너가 무역업으로 큰 부를 쌓았다. 이를 기반으로 항일독립운동 조직을 결성하고 이끌었지만 국내에 행적이 잘 알려지지 않았다. 한민족평화재단 등이 추적해 마지막 거처인 우수리스크에 기념비를 세운 것도 지난달의 일이다. 올가와 발렌틴의 기억과 회상을 반반씩 묶은 책에서 전해지는 최재형의 실상은 그야말로 눈물겹다. “아버지가 점령자 일본과 싸웠다”고 거듭 밝힌 딸은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안중근의 거사를 생생하게 증언한다. “우리 집에서 (안중근 의사가) 집 창고 벽에 세 명의 모습을 그려놓고 그들을 향해 총을 쏘는 연습을 했다”고 기억하는가 하면 “결국 안 의사가 하얼빈으로 넘어가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했다”고 원고에 적었다. 최재형은 1920년 4월 일본군에 체포된 뒤 총살됐다. 올가는 그의 마지막 모습을 이렇게 쓰고 있다. “아직 해도 뜨지 않았을 무렵 아버지가 방 덧문을 열었고, 5분 정도 뒤 총을 든 일본군이 나타났다. 마지막으로 본 아버지는 팔이 뒤로 묶여 잡혀 가는 모습이었다.” 발렌틴이 회상하는 최재형은 주로 계몽과 사회활동을 하며 한인들의 문화 수준 향상에 큰 의미를 뒀던 인물이다. 공부를 잘하는 학생이 민족 지식인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다른 도시로 유학을 보내기도 했다고 적고 있다. 1937년 스탈린의 강제이주 정책으로 한인들이 연해주에서 대거 중앙아시아로 옮겨 간 뒤에 겪었던 정치적 핍박에 대해서도 증언한다. 발렌틴과 올가는 모두 중앙아시아 이주 뒤 체포돼 감옥살이를 했으며 출소 뒤 1995년, 2001년 각각 세상을 떴다. 한민족평화나눔재단 이사장 소강석 새에덴교회 담임목사는 “그의 이름은 아직도 우리 가슴의 별빛 언덕 위에 쓰여 있다”며 “그의 딸과 아들이 전하는 이야기이기에 더욱 가슴 시리게 한다”고 밝혔다.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 ‘조국 사태’ 뒤 소모적 정쟁… 그 뒤엔 바뀌지 않은 친일파 세상

    ‘조국 사태’ 뒤 소모적 정쟁… 그 뒤엔 바뀌지 않은 친일파 세상

    조국으로 시작해서 조국으로 끝난 한 달여 시간을 보냈다. 전 국민이 조국 사태에 매달렸다. 그 상황의 중심에 정부 여당과 자유한국당의 적대적 대결이 존재했고 그 가운데 조국 사태가 있었다. 특이하고 낯선 광경이지만 비슷한 상황을 2년 내내 겪었다. 그러나 그 전인들 달랐으랴. 정치권의 후진적인 광경을 언제까지 봐주어야 할지 의문이다. 인류사회의 가장 오래된 질문은 싸움에 관한 것인데 한반도는 지난 200년 동안 원치 않는 싸움을 겪었다. 조선 후기의 농민반란과 동학혁명, 망국에 저항한 의병운동, 식민통치하에서의 독립운동과 전시동원 등 형극의 길을 걸었다. 동학혁명 후 자행된 대량 살육과 식민지 말기에 군국주의가 강요한 징병과 징용, 정신대와 위안부 등 전방위적인 수탈은 가혹한 고통이었다. 이 모든 상황이 독립으로 보상될 것으로 믿었다. 그러나 해방된 조선은 역사로부터 배신당하고 강대국에게서 배신당했다. 조선이 좌파도 우파도 아닌 친일파에게 점거되면서 해방의 꿈은 사라졌다. 해방된 조선에서 친일파의 부활은 모든 환란의 원인이었고 또 다른 고통의 시작이었다. 구약 말씀을 빌리면 ‘태초에 친일파가 있었다’. 해방으로 일본군은 물러갔지만 친일파로 인해 일본의 흔적은 지워지지 않았다. 제1공화국에서 지금의 제6공화국에 이르기까지 대통령은 거듭 바뀌었지만 친일파의 세상은 바뀌지 않았다. 4월혁명으로 들어선 제2공화국이 군사쿠데타로 무너졌을 때 그 자리는 일본 육사를 나온 박정희가 차지했다. 일본군 장교가 정권을 장악하면서 음지의 친일 권력은 양지로 확장됐다. 이 상황은 1960~70년대의 박정희 시대를 관통했고 박정희가 사라진 1980년대로 연장됐다. 1990년대에도 무늬만 바뀌었다. 그러므로 친일파 문제는 1945년 이전의 과거사가 아니라 오늘날까지 지속되고 있는 현재진행형이며 반일종족주의로 드러난 식민지근대화론은 그 하나의 병증에 불과하다. 과거를 잊은 민족에게 역사는 되풀이되는 경향이 있다고 했다. 그것도 비극적으로 되풀이된다. 그래서 역사청산에 거듭 실패했다. 1940년대에는 해방에도 불구하고 친일파를 청산하지 못했다. 반민특위는 해산됐고 애국자가 학살되고 배제된 자리를 친일파가 채웠다. 1960년대에는 4월혁명에도 불구하고 제1공화국을 청산하지 못했다. 1980년대에는 전두환의 광주학살로 박정희를 청산하지 못했다. 1990년대에는 6월항쟁에도 불구하고 전두환 시대를 청산하지 못했다. 그래도 역사는 발전했고 그 정점에 6월항쟁이 있다. 해방 후 정치는 6월항쟁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 특히 정치변동의 경우 1987년 이전의 정변이 6월항쟁 후에는 대통령선거 방식으로 바뀌었다. 이승만 정권은 4월혁명으로, 장면 정권은 군사쿠데타로, 박정희 정권은 부마항쟁 직후 암살로, 전두환 정권은 6월항쟁으로 무너졌다. 모두가 정변이었다. 그러다가 6월항쟁으로 대통령직선제가 부활하면서 선거가 정치변동의 제도적 계기로 작동했다. 한 단계 질적 도약을 이룬 것이다. 1987년 6월항쟁은 1980년 광주항쟁의 좌절을 7년 만에 성공으로 복원해 낸 희망의 횃불이었고 한국 현대사의 거듭된 실패를 바로잡을 수 있는 황금 같은 기회였다. 그러나 6월항쟁으로 쟁취한 대통령직선제의 첫 번째 결과는 노태우 집권이었고, 두 번째 결과는 3당 합당이었다. 기대에 반하는 두 번의 실패로 전두환 독재는 사실상 살아남았다. 전두환뿐만 아니라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으로 이어진 굴절된 현대사가 살아남았고, 부패 기득권 세력은 반성도 처벌도 없이 민주사회에 정착해 민주화의 혜택을 누렸다. 오늘날의 모순적인 정당체제, 언론체제, 재벌체제, 신앙체제, 교육체제가 그 미완성의 산물이며 소모적인 정치적 대결도 여기서 시작됐다. 돌이켜보면 정치적 민주화의 진전과 역사청산의 실패, 이 두 가지 언어의 모순적인 조합이 6월항쟁 이후 한국 정치의 갈등 구조를 만들었다. 민주주의 제도는 작동하지만 청산되지 못한 역사가 민주주의를 껍데기로 만드는 상황, 새로운 대한민국을 향한 열망은 간절하지만 친일파와 부패 기득권 세력이 압도하는 상황, 정의와 도덕을 향한 의지는 강하지만 불의와 부도덕이 판치는 세상, 이 둘 사이에서 벌어지는 끝없이 소모적인 대결, 이것이 민주화된 대한민국의 현주소다. 한국 정치는 이렇게 구조화된 역사사회적 대결 구조를 여의도 방식으로 지루하게 반복적으로 표출한다. 이것이 여의도 현실 정치의 민낯이다. 지금 우리 사회는 다시 이명박·박근혜 시대를 청산하는 과제와 맞닥뜨려 있다. 이 과제는 지난 9년간의 국정 파탄을 정리하는 일이지만 그 속에 청산되지 못한 현대사가 오롯이 녹아 있다. 두 전직 대통령과 몇몇 측근이 구속됐지만, 중요한 것은 인신 구속이 아니라 나라를 바로 세우는 일이다. 그러나 쉽지 않다. 정부와 정치권의 한계도 있지만, 역사청산에 반대하는 기득권의 저항이 만만치 않다. 탄핵 이전의 헌정 질서 문란과 탄핵 이후의 정치적 갈등 역시 그 저항의 일환이다. 대통령 탄핵 이후의 국회는 소란한 동물국회와 무능한 식물국회를 합친 동식물 합동국회로 전락해 버렸다. 삼권의 한 축인 국회에서는 모든 안건이 논란으로 비화하고, 논란은 저급하기 짝이 없고, 어떤 형태의 시시비비조차 가리지 못하고, 어떤 결정도 내리지 못하는 상태가 돼 버렸다. 국회는 가장 나쁜 사람들의 집합소인 양 타락해 버렸다. 국회가 실종되고 삼권분립체제가 무너진 상황이다. 그 근저에 친일파가 있고 친일파에서 변신을 거듭해 오늘에 이른 부패 기득권 세력이 있다. 친일파는 해방 정국에서는 반공주의자로, 군사쿠데타 후에는 경제역군으로, 6월항쟁 후에는 자칭 산업화 주역으로 변신을 거듭했다. 그러나 그 뿌리가 친일파이고 근본 속성이 부패 기득권이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민주화 과정에서 친일 전력과 부패 문제가 불거지자 이들은 반공안보 논리에 기대어 격렬하게 저항했다. 이유는 간단하다. 민주화가 부패 기득권을 위협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싸움은 추상적 이념 대결이나 단순한 정책 대결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미래상을 만들어 가는 본질적인 과정이다. 결국 현대사의 누적된 이 갈등 구조를 해결해야 하는데, 그 방식이 역사적 대결일지 역사적 타협일지를 결정해야 할 양자택일의 임계점에 도달했다. 지금까지는 묵인과 지연이 용납됐지만, 더이상은 어려운 상황이다. 지금과 같이 소모적인 정파적 대결이 계속되면 민주주의를 유지할 수도 없고 장차 나라의 미래가 위협받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국민들도 저급한 정파적 대결을 더이상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이 국면에서 역사적 대결론은 확실한 역사청산을 통해서 현대사를 바로잡고 그것으로 새로운 대한민국을 건설하자는 것이다. 역사적 타협론은 부패 기득권 세력이 역사적 과오를 시인하고 우리 사회가 그 반성을 수용하는 방식으로 공존을 모색하자는 것이다. 어느 경로를 선택하든 내년 국회의원 총선거와 그 후의 대통령선거가 역사청산의 마지막 계기가 될 것이다. 바로 이 역사의 전환기 국면에서 촛불이 혁명으로 발전했고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촛불은 과거를 태워 미래를 밝힌다. 촛불혁명은 30년 전 거세게 타올랐던 6월항쟁의 횃불을 계승해 6월항쟁의 미완성 의지를 복원하기 위한 혁명으로 자리잡았다. 촛불혁명은 부패 권력의 국정농단에 대한 저항이라는 1단계 현재시제를 표상하지만 아울러 6월항쟁이 이루지 못한 역사청산의 최종적인 종결을 지향하는 과거완료형인 동시에 조만간 다가올 통일된 대한민국의 미래 비전을 제시하는 미래완료형으로서 과거와 미래까지 함축한다. 새로운 대한민국을 준비하는 마음으로 그 2단계와 3단계를 기대한다. 상지대 총장
  • 독일 베를린에 위안부 소녀상 상설 전시

    독일 베를린에 일본군 위안부 등 전쟁 피해 여성을 주제로 한 작품과 기록물을 상설 전시하는 공간이 마련됐다. 독일에서 활동하는 한국 관련 시민단체인 코리아협의회는 지난 13일(현지시간) 사무실에 전시관 ‘무언 다언’을 개관했다. 전시관에는 ‘평화의 소녀상’ 등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와 관련된 작품들이 전시된다. 소녀상은 김운성·김서경 작가의 올해 작품이다. 지난달 일본 최대 국제예술제인 ‘아이치 트리엔날레’에 출품됐다가 현지 정치인들과 극우 세력의 압박 때문에 전시가 중단된 소녀상도 이들의 작품이다. ‘무언 다언’에서는 또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군의 성폭력, 연합군의 성폭력, 베트남전쟁 당시 한국군과 미군의 성폭력에 대한 작품과 기록물도 선보인다. 이와 함께 무장테러단체 ‘이슬람국가’(IS)에 의해 납치돼 성폭력을 당한 이라크 소수민족 야지드족 여성들의 이야기 등 현재 전 세계 분쟁 지역에서 발생하는 성폭력도 고발한다. 한정화 코리아협의회 대표는 현지 언론에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한일 간의 문제를 넘어 전쟁에서 발생하는 여성들의 성폭력 피해를 보여 주는 것”이라며 “현대사에서 여성들이 입은 전쟁 성폭력 피해를 관람객들과 소통하면서 함께 알려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이기철 선임기자 chuli@seoul.co.kr
  • 180cm인가, 185cm인가…조국 키까지 팩트체크 해봤다

    180cm인가, 185cm인가…조국 키까지 팩트체크 해봤다

    “실제 키 180cm인데 185cm로 속였다” 주장조국, 2010년 인터뷰서 “키는 180cm” 밝혀알고리즘이 수집한 구글 인물정보상 185cm진중권 교수, 방송서 말한 키 얘기 와전된 듯가족을 둘러싼 여러 의혹에 시달린 조국 법무부 장관이 뜬금 없이 ‘거짓으로 키를 부풀렸다’는 논란에 휘말렸다. 실제 키가 180cm 정도인데, 185cm라고 속였다는 것이다. 보수 유튜버들이 촉발한 키 논쟁에 민경욱 의원 등 자유한국당 일부 의원까지 가세하면서 조 장관을 거짓말쟁이로 몰았다. 조 장관을 흠집내려는 의도가 다분한 이 의혹은 사실관계(팩트)가 틀린 가짜뉴스로 파악됐다. 조 장관은 과거 인터뷰에서 자신의 키가 180cm라고 밝혔을 뿐, 키를 부풀려 말한 적이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보수 유튜브 채널 ‘가로세로연구소’를 운영하는 강용석 변호사는 이날 생방송에서 조 장관이 지난 10일 열린 국무회의에 참석할 때 “보통 신사화와 다른 키높이 구두를 신었다”며 “굽이 최소 7cm는 돼 보인다”고 주장했다. 강 변호사는 “많이 봐줘야 177~178cm인데 185cm라고 뻥을 치고 (키를 부풀렸다는 논란이) 마음에 걸리니 키높이 구두를 신은 것”이라며 “연예인이나 프로필에 키를 써 넣지, 누가 키를 써 넣는가”라며 비웃었다.민경욱 한국당 의원도 이날 페이스북에서 조 장관의 키를 언급했다. 그는 같은 당 정진석 의원과 함께 찍은 사진을 올리곤 “정진석 의원의 키가 184cm다. 남들보다 머리 하나는 더 크신 분”이라며 “조국이 185cm라면 얼마나 커야 하는지를 잘 안다. 만약 자기 키까지 과장을 한 거라면 그의 병이 깊다”고 적었다. 앞서 14일 강연재 한국당 법무 특보도 페이스북에서 “중요한 건 아니지만 조국씨 키가 185? 인생 포장을 그렇게까지 하며 살고 싶을까. 키도 XX칠 정도면 연예인을 했어야지. 연기도 실력도 최상급”이라며 비속어를 써가며 조롱했다.이들은 조 장관의 포털 인물정보를 문제 삼은 것으로 보인다. 구글에서 조 장관의 이름을 검색하면 오른쪽에 인물정보가 표시된다. ‘대한민국 법학자’로 소개된 조 장관의 출생, 가족 관계, 학력 등의 정보가 노출되는데 특이하게도 키가 185cm로 표기돼 있다. 구글 인물 정보 편집은 사람이 아니라 알고리즘이 정보를 수집해 배열한다. 조 장관이 직접 등록한 정보가 아니라는 얘기다. 구글 알고리즘은 위키백과나 주요 뉴스 사이트 등을 토대로 인물 정보를 수집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구글 인물정보 신뢰도는 논란 대상이다. 지난해 1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인 고 문옥주 할머니를 ‘매춘부’로 표기해 문제가 불거졌다.구글코리아는 당시 발표한 성명에서 “알고리즘이 인물 정보를 생성하는 과정에서 유감스럽게 사실과 다른 내용이 반영되는 경우가 있다”고 오류를 인정하고 사과했다. 그렇다면 구글 알고리즘은 어떤 근거로 조 장관의 키를 185cm라고 파악했을까. 단서는 지난 2017년 5월 16일 방송된 채널A 프로그램 ‘외부자들’에서 찾을 수 있다. 정치 이슈에 대한 보수, 진보 측 패널의 토론을 다룬 이 프로그램에서 진중권 동양대 교수가 문재인 정부 출범 후 첫 민정수석에 임명된 조 장관에 대해 언급한 부분이다. 조 장관과 대학 때 가까운 친구였다는 진 교수는 당시 방송에서 조 장관에 대해 “얼굴이 잘 생겼죠. 거기다가 키도 커요. 185인가 그래. 공부도 잘 하잖아요”라고 말했다.진 교수의 이런 평가를 여러 언론이 인용해 기사화하면서 구글 알고리즘이 이 정보를 사실로 착각한 것이라는 추측이 가능하다. 그러나 조 장관은 스스로의 키를 180cm라고 밝혔다. 지난 2010년 12월 6일 경향신문에 실린 ‘[이종탁이 만난 사람] 대담집 진보집권플랜 펴낸 서울대 조국 교수’ 인터뷰에서 조 장관은 키를 묻는 기자의 질문에 “180cm입니다”라고 말했다.기본적인 사실 관계조차 확인하지 않고 한국당을 비롯한 보수 진영에서 조 장관을 ‘키까지 부풀린 사람’으로 매도하는 것은 도가 지나치다는 지적이 나온다. 오달란 기자 dallan@seoul.co.kr
  • 도쿄올림픽 욱일기 금지요청…IOC “사안별 판단”

    도쿄올림픽 욱일기 금지요청…IOC “사안별 판단”

    국제올림픽위원회(IOC)는 우리 정부가 일본 도쿄올림픽에서 전범기인 욱일기 사용을 금지할 것을 요청한 것과 관련해 사안별로 판단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IOC는 12일 NHK 방송을 통해 “당초부터 경기장은 어떠한 정치적 주장의 장소도 돼서는 안 된다고 말해 왔다. 대회기간 문제가 발생할 경우 개별적으로 판단해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도쿄올림픽 경기장에서 욱일기를 금지할지에 대해서는 명확히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일본 언론들에 따르면 2020년 도쿄올림픽·패럴림픽 조직위원회는 욱일기를 반입 금지품으로 하는 것은 상정하지 않고 있다는 방침을 정했다. 한국 정부의 문화체육관광부는 11일 IOC 토마스 바흐 위원장 앞으로 장관 명의 서한을 보내 욱일기 사용의 부당성을 설명하고 사용 금지 조치를 요청했다. 욱일기는 일본군이 과거 태평양전쟁 등에서 전면에 내걸고 일본 군국주의와 제국주의의 상징물로 사용한 전범기다. 국제축구연맹(FIFA)의 경우 경기장 내에서 욱일기 사용을 금지하고 있고, 아시아축구연맹(AFC) 역시 지난 2017년 4월 AFC챔피언스리그에 출전한 일본팀 가와사키(川崎) 프론탈레의 서포터즈가 경기장에서 욱일기를 펼쳐들자 이 팀에 벌금을 부과했다. 김유민 기자 planet@seoul.co.kr
  • 아베, 反韓 극우내각 도발… 한국, WTO에 日 제소

    아베, 反韓 극우내각 도발… 한국, WTO에 日 제소

    장관 17명 교체해 7년 만에 최대폭 개각 역사왜곡 모테기·하기우다·세코 등 영전 자위대 명문화 위한 개헌 총력체제 갖춰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11일 극우보수 성향의 측근 인사들을 권력의 핵심에 전진 배치하는 내용의 대대적인 내각 개편을 실시했다. 자위대를 명문화하는 내용의 헌법 개정을 궁극의 지향점으로 하는 ‘개헌 총력체제’로, 과거사 부정과 군비 강화 등 우경화 행태가 한층 심화할 것으로 보인다. 아베 총리는 이번 개각에서 전체 19명의 각료(장관) 중 아소 다로 부총리 겸 재무상과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 등 2명을 제외한 17명을 모두 바꿨다. 2012년 12월 2차 집권에 성공한 이후 최대 규모의 내각 개편이다. 한일 관계의 중심인 외무상에는 경제산업상 등 요직을 두루 거친 자신의 최측근 모테기 도시미쓰 경제재생상을 임명했다. 일본 최대 우익단체인 일본회의를 지원하는 ‘일본회의 국회의원 간담회’ 소속이다. 강제징용 문제 등에서 전임자보다 더 강경한 자세를 보일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해 10월 한국 대법원의 징용배상 판결 이후 무례한 언동을 계속해 온 고노 다로 외무상은 방위상으로 옮겼다. 한국에 대해 강행하고 있는 무역보복 조치를 실무에서 총괄하는 경제산업상에는 극우 성향 인사로 알려진 스가와라 잇슈 중의원 의원이 임명됐다. 그는 일본군 위안부 만행을 사죄한 ‘고노 담화’를 부정하고 헤이트 스피치(혐오발언) 규제에도 반대해 온 인물이다. 아베 총리는 특히 한국에 대한 무역보복을 주도하거나 강경 발언을 한 인사들을 크게 우대했다. 무역보복 조치를 기획하고 이끈 하기우다 고이치 자민당 간사장대행을 문부과학상에 임명한 것을 비롯해 수출 규제를 실무에서 주도한 세코 히로시게 경제산업상을 참의원 간사장으로 영전시켰다. 또 경제제재의 설계자로 알려진 아마리 아키라 자민당 선거대책위원장을 핵심 직책인 자민당 세제조사회장에 기용했다. 아베 총리가 이렇게 대한 강경파들을 우대한 것은 한국에 대한 수출 규제 등 경제 조치가 성공했다는 인식을 유권자들에게 적극적으로 알리기 위한 것으로 분석된다. 도쿄 김태균 특파원 windsea@seoul.co.kr日 보복 69일 만에 “정치적 동기로 차별” 양국 2개월 협의 뒤 결렬 땐 패널 요청 日 “위반 아니다” 中 “日제재 실패할 것” 우리 정부가 11일 일본을 상대로 세계무역기구(WTO) 제소라는 ‘칼’을 꺼내 들었다. 일본이 반도체·디스플레이 3개 소재에 대한 수출 규제를 단행한 지 69일 만에 국제법상 공식 대응에 나선 것이다. 유명희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은 이날 정부서울청사에서 브리핑을 갖고 “정치적 목적으로 교역을 악용하는 행위가 반복되지 않도록 일본의 조치를 WTO에 제소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일본 정부는 지난 7월 4일 우리 대법원의 강제징용 배상 판결에 대한 보복 조치로 대(對)한국 수출 규제를 단행한 데 이어 지난달 28일에는 자국 백색국가(수출절차 우대국)에서 한국을 제외했다. 유 본부장은 “일본의 수출 제한 조치는 정치적인 동기로 이뤄진 것이며 우리나라를 직접 겨냥한 차별 조치”라고 제소 배경을 설명했다. WTO 제소 절차는 이날 양자협의 요청 서한을 일본 정부(주제네바 일본대사관)와 WTO 사무국에 전달하면 공식 개시된다. 이후 약 2개월간 일본과 합의가 이뤄지지 않으면 WTO 재판부에 해당하는 패널 설치를 요청하게 된다. 우리 정부는 일본의 백색국가 배제 조치를 이번 소송에 포함하지 않았지만 배제에 따른 수출 제한 효과와 증거가 쌓일 경우 소송에 추가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정부는 WTO 제소에 이어 이르면 다음주 일본을 우리 백색국가 명단에서 제외할 예정이다. WTO 제소와 관련해 일본 경제산업성 간부는 “(일본 정부의 조치는) WTO 규칙을 위반한 것이 아니다. (우리의 입장은) 지금까지 설명해 온 그대로”라며 말을 아꼈다. 일본 정부 대변인인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도 “WTO 협정에 정해진 절차에 맞춰 적절히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추궈훙 주한 중국대사는 이날 인천 쉐라톤그랜드호텔에서 열린 ‘새얼아침대화’ 초청 강연에서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역사 문제를 이유로 (한국에 대한) 경제제재를 가하는 것은 성공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일본 경제보복 국면에서 중국 정부 인사가 공개적으로 한국을 지지한 건 처음이다. 이두걸 기자 douzirl@seoul.co.kr
  • “쓸쓸한 마지막에 불안한 독거노인… 무덤까지 책임지는 공영장례 생각할 때”

    “쓸쓸한 마지막에 불안한 독거노인… 무덤까지 책임지는 공영장례 생각할 때”

    “삶의 존엄한 마무리할 기회를 주는 것”“홀로 죽게 되더라도 사회가 나를 버리지 않는다는 믿음이 있다면 삶의 질이 조금은 달라지지 않을까요?” 무연고 사망자를 위한 장례를 돕는 비영리 단체 ‘나눔과 나눔’ 사무실에는 ‘2019년에도 기억해야 할 이름들’ 375개가 적혀 있다. 기초생활수급자 13명을 제외하곤 모두 지난해 시신 인수가 되지 않은 무연고 사망자다. 죽어서도 외로운 이들의 장례를 치르는 ‘나눔과 나눔’의 박진옥 상임이사는 8일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고독사가 사회적 문제로 떠올랐지만 죽음 이후에 대해서는 무관심한 것이 아쉽다”면서 “공영장례는 죽음까지도 외로웠던 이들의 삶을 사회가 함께 기억해야 한다는 취지로 시작한 일”이라고 했다. ‘나눔과 나눔’은 2011년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김선희 할머니의 장례를 시작으로 무연고자와 기초생활수급자 등의 장례를 무료로 치러 왔다. 올해부터는 민간이 아닌 공영장례 제도로 정착시켜야 한다는 이 단체의 의견을 서울시가 받아들여, 정식으로 업무협약을 맺고 공영장례지원상담센터도 함께 운영한다. 죽음 뒤 장례는 오롯이 가족의 몫이다. 혼자 살던 사람들이 세상을 뜨면, 구청은 연고자를 찾아 “시신을 인수하겠느냐”고 묻는다. 인수를 포기할 경우 한 장짜리 시신포기 각서에 짧게 이유를 적는다. 대부분 경제적인 어려움이나 관계 단절 때문이다. 박 상임이사는 “70대 노모가 50대 아들의 시신을 포기하면서 ‘노령이라 경제적으로 어렵다’고 적었다”면서 “죽은 자식의 시신을 돈 때문에 포기해야 하는 부모의 마음은 가늠하기 어려웠다”고 말했다.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이들의 마지막 길을 배웅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박 상임이사는 “삶의 존엄한 마무리를 위해서”라고 말한다. 그는 “자식이나 형제와 연락을 끊었고 죽어서 그들에게 내 죽음을 맡기고 싶지 않은데 어떻게 해야 하느냐”는 걱정과 불안이 섞인 질문을 종종 받는다고 한다. 살아 있으면서도 자신의 마지막이 외롭게 끝날까 봐 우려하는 것이다. 그는 “공영장례는 ‘혼자인 내가 죽어도 사회가 나를 버리지는 않는구나, 최소한 삶을 존엄하게 마무리할 기회를 주는구나’ 하는 인식을 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이런 인식을 주는 것은 곧 곧 삶의 질을 달라지게 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지난해에만 375명의 장례를 치렀다. 하루 한 명꼴이다. 올해도 비슷하다. 박 상임이사는 “죽음을 이야기하는 건 곧 삶을 이야기하는 것”이라면서 “돌아가신 뒤에야 무연고자 분들의 고된 삶을 만나지만, 이 역시 새로운 만남이라는 생각으로 그분들의 존엄한 생의 마무리를 위해 힘쓸 것”이라고 말했다. 이근아 기자 leegeunah@seoul.co.kr
  • [대법원장, 피고인석에 서다-28회] “되도 않는 소리…설마 되겠어?” 외교부 사무관 수첩 속 정황들

    [대법원장, 피고인석에 서다-28회] “되도 않는 소리…설마 되겠어?” 외교부 사무관 수첩 속 정황들

    “되도 않는 소리를 장·차관들이 하고 계십니다.” 청와대와 외교부가 대법원의 판결에 영향을 미치려고 하는 취지의 지시를 전달받은 변호사 출신 외교부 사무관은 상급자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재판에 개입한다는 것이 법조인의 상식에도 맞지 않는 데다 가능하지도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가 상급자를 통해 받아적은 내용들은 그 상식과는 거리가 멀어 보였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5부(부장 박남천) 심리로 6일 열린 양승태 전 대법원장과 박병대·고영한 전 대법관의 27회 재판에는 외교부 정모 사무관이 증인으로 출석했다. 국제법규 관련 업무를 하던 정 사무관은 2012년 5월 대법원에서 강제징용 사건이 파기환송된 뒤인 2013년 8월 만들어진 외교부 한일 청구권협정 대책 태스크포스(TF)에 포함돼 청와대와 외교부 고위 인사들의 논의 내용과 지시사항을 받아 적은 다수의 문건과 메모를 작성했다. 2013년 12월 1일 대통령 비서실장 공관에서 열려 김기춘 당시 비서실장과 차한성 법원행정처장(대법관), 윤병세 외교부 장관이 참석한 1차 소인수회의에서 보고될 문건도 작성했다. 정 사무관이 남긴 기록들 안에는 대법원의 정보는 물론 재판에 영향을 미치기 위한 다양한 방안들이 담겼다. 주로 2012년 5월 원고 승소 취지로 파기환송된 강제징용 사건의 재상고심 선고를 미뤄야 한다는 취지였다. ●“주철기, ‘대법관 직·간접적 접촉’ 강제징용 판결 외교적 문제점 전달 지시” 2013년 9월 2일 정 사무관은 주철기 당시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의 주재로 열린 회의에 참석했다. 회의에 앞서 정 사무관은 ‘강제동원 피해자 문제 관련 대응방향(안)’, ‘강제동원 피해자 관련 법률 전문가 간담회 결과 보고’ 등의 문건을 작성했는데, 주 전 수석과의 회의 이후 작성된 ‘강제동원 피해자 관련 법률 전문가 간담회 결과 보고’ 문건에 이전 보고서보다 ‘대응방향’이 늘어났다. ‘대법원을 상대로 한 외교적 문제점 설명. (2012년)대법원 판결 확정 시 외교적 문제점을 적정한 채널로 알리고 최대한 신중하게 판결하도록 하고 대법관 직접 접촉이 어려우면 세미나 등 간접적인 방법이 필요. 최소 1년이 요구되는 바 대법원 판결이 조기에 선고되지 않도록 노력하자’ 판결을 번복하거나 늦추기 위해 대법관을 직접 접촉하거나 그게 안 되면 대법관들에게 의견이 전달될 만한 경로로 ‘간접적’으로 접촉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정 사무관은 앞서 검찰 조사에서 이러한 내용에 대해 “대법원 재판에 영향을 준다는 건 청와대 등에서 결정했을 것이라 생각했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정 사무관은 “지금도 그렇게 생각하느냐”는 검찰의 질문에 “네”라고 답했다. 정 사무관은 이러한 ‘대응방향’은 곧 청와대와 외교부가 대법원 재판에 영향력을 미치겠다는 뜻이라며 “되도 않는 이야기를 장·차관들이 한다”고 자신의 상급자인 강모 당시 국제법률국장에게 불만을 토로했다고 말했다. 정 사무관은 이후 양 전 대법원장의 변호인이 ‘되도 않는 이야기’라고 한 이유를 다시 묻자 “2012년 판결이 그대로 확정될 때 외교적 파장을 논의했는데 그 이후 논의 방향이 바뀌게 됐고, 사건 당사자가 아닌 행정부가 어떤 식으로 의견을 제시한다거나 결론을 바꿀 수 있다는 게 가능하지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정 사무관이 검찰에 임의제출한 업무일지에는 더욱 자세한 내용이 나온다. 2013년 9월 2일자 업무일지에는 ‘주, 2장으로 요약. 팩트 볼드 크게. 상세하게. documentation(의견서) 필요하다’는 문장과 함께 다섯 개의 별(☆) 모양이 표시됐다. 또 ‘여기저기 뿌리고 설명하고 해야지. 개인적으로 사법부도 접촉하고, 대법원장에게도 문제제기’라는 내용도 적혔다. 이에 대해 정 사무관은 “제 기억에는 (주 전 수석이) 본인이 하겠다고 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런 심각한 문제를 외교부가 안일하게 대응하고 있다고 말씀하신 걸로 기억한다”고 밝혔다. ●변호사 출신 외교부 사무관 “대법원 재판에 관여한다는 게 설마 되겠나?” 그로부터 일주일여 뒤인 9월 10일자 정 사무관의 업무일지에는 ‘주 수석, 외교부 불만 다’, ‘‘2차관, 움직이겠다. 사법부, 일본에 대한 액션. 중재가면 대 망신’, ‘가능한 전원합의체’라는 기록들이 남겨져 있었다. 상급자로부터 주 전 수석의 발언내용을 전달받은 그대로 적었다고 한다. 정 사무관은 “국장에게도 전달받았고 청와대 가서 회의할 때도 느꼈다”며 주 전 수석이 당시 외교부에 대해 불만을 갖고 있었다고 기록한 이유를 설명했다. 상급자들의 지시가 이어졌고 그것을 빼곡하게 받아적었지만 정 사무관은 속으로는 ‘대법원 재판에 관여한다는 게 설마 되겠어?’라는 생각을 가졌다고 했다. 그런데 점점 설마하던 일들이 구체화되는 모양새가 됐다. 정 사무관의 2013년 11월 1일자 업무일지에는 ‘유기준 의원 → 대법원 애로사항(주재관 파견 문제→대법원 기조실장) → 검찰 판사 분쟁 → deal(거래) 거리가 有(있음)’이라는 메모가 있다. 정 사무관은 국제법률국장에게서 주 전 수석이 한 이야기라며 들은 것을 받아적은 메모라고 말했다. 이날 법정에서 정 사무관은 이 메모의 의미를 묻는 검찰과 변호인들의 질문에 “전혀 기억이 안 난다”고 했다. 다만 지금 읽어봤을 때 어떻게 이해가 되냐는 물음에는 “유기준 자유한국당 의원이 대법원의 애로사항을 이야기했고, 주재관(법관) 해외 파견 문제 관련이고, (법원행정처) 기획조정실장이 의원이 얘기해서… 검찰 판사 분쟁은 주재관 파견 숫자 등 법원 검찰 간의 문제라고 한 것 같다. 딜(deal) 거리가 있다는 부분은 모르겠다”고 답했다. 검찰은 이를 두고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당시 기획조정실장)이 서울대 법대 동기인 유 의원에게 법관 재외공관 파견 문제를 언급하며 협조를 부탁했고 유 의원이 주 전 수석에게 이를 전달하자 주 전 수석이 법관 파견 문제를 강제징용 사건과 거래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라고 지목하고 있다. 검찰이 정 사무관에게 “해외공관 파견과 강제징용 사건을 연계시켜 얘기하는 것을 들어본 적 있느냐”고 묻자 그는 “강 국장이 그런 얘기하는 사람이 있다고 언급하면서 어이없다는 반응을 보였다”고 말했다. “연계된 사안도 아니고 무게도 다른 건데 외교부 입장에선 그 두 개를 연계한 것을 어이없어 했다”는 것이다. 다만 누가 그런 이야기를 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면서 “외교부 사람이 아니라는 것은 확실하다”고 덧붙였다. 정 사무관은 “법률가이기 때문에 주 전 수석 또는 행정부가 노력하면 대법원의 입장을 바꾼다는 게 이해되지 않을 때가 있었다”는 취지로 검찰 조사에 이어 이날 법정에서도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 ●업무일지 속 윤병세 “VIP 표정 상상됨…판결 번복되면 작살난다” 그러나 상식적으로 이해되지 않는 일들도 당시 정부와 청와대엔 진심이었다. 2013년 11월 23일 정 사무관의 업무일지에는 ‘1차 소인수회의’를 앞둔 외교부 고위직의 분위기가 고스란히 묻어난다. ‘조.(조태열 전 외교부 2차관)팩트 위주로 우리 논리가 말이 안 된다는 점+과거 해석 협정 등 많은 이용’, ‘윤.(윤병세 전 외교부 장관) 국제적으로 지면 정치적 외교적으로 심각한 문제. 정권이 날아가는 문제’. 다음 페이지에는 윤 전 장관이 한 말을 적었다는 내용이 이어진다. ‘VIP(박근혜 전 대통령) 표정 상상됨. 쏘 왓. 결론을 내야 한다. 판결나면 끝이다’. 그리곤 이런 표현도 적혀있다. ‘판결 번복되면 외교부 작살난다(조심해야) 청와대 총리실 관계 부처 끌어내야. 범정부적 입장 마련’. 지난 5월 27일 임 전 차장의 재판에 증인으로 나온 윤 전 장관은 “국익을 위해서”라고 강조했다. 대법원의 심리 진행내용이 외교부까지 넘어왔거나 법원행정처가 외교부와 청와대, 피고 소송 대리인 등과 접촉한 정황도 정 사무관의 업무일지와 문건을 통해 드러났다. 그의 2014년 5월 29일 업무일지에는 ‘①주심 지정 → 전합 여부 판단 ② 이인복, 박병대, 민사2부 → 김용덕, 신영철, 김소영, 이상훈. 주심배당은 무작위로 하고 심층 검토, 상고기각’이라는 내용이 있다. 또 ‘6/13 신건 검토연구관 보고 필(재판연구관 배정 X), 6/25 심리(빠르면) 재판부, 합의되면 7/10 → 상고기각, 합의 안 되면 → 재판연구관 style 배정할 의도가 없어 보인다’는 기록이 있다. 정 사무관이 작성한 ‘강제동원 피해자 배상 판결 관련 대법원 심리 진행상황’ 문건에는 ‘신건 검토연구관의 검토의견 보고가 6월 14일에 완료된 것으로 확인’이라는 내용도 담겨있다. 정 사무관은 모두 상급자들에게 전달받은 내용을 그대로 작성했다고 했다. 외교부의 의견을 대법원에 전달할 수 있도록 법원행정처는 2016년 1월 민사소송규칙을 바꿔 사건 당사자가 아닌 제3자도 재판부에 의견을 낼 수 있는 제도를 만들었다. 그런데도 외교부가 의견서를 내지 않자 임 전 차장이 피고인 일본 기업 소송 대리를 맡은 김앤장 법률사무소 측에 “외교부가 의견을 낼 수 있도록 의견서 제출 촉구서를 써달라”고 했고, 김앤장이 이를 써냈다는 게 지난 4일 최건호 김앤장 변호사와 유명환 전 외교통상부 장관의 증인신문을 통해 확인됐다. 정 사무관의 업무일지에도 ‘K&C → 대법 → 외교부. 대법원 기조실장/ 2차관 식사’라는 메모가 2016년 6월 12일자로 남겨져 있다. 같은 날짜에 ‘타이밍, 공문 언제, 연내 가안. draft. 사법자제, 법리 바꾸긴 어렵다’는 단어들도 포함됐다. 정 사무관은 이 메모들 역시 상급자를 통해 들은 내용을 적은 것이라고 하면서 “사법 자제 내용을 외교부 의견 초안에 넣을지 말지를 적은 것 같은데 그 내용을 의견서에 쓰는 것은 무리라는 뜻에서 기록한 것 같다”고 말했다. 김앤장의 이른바 ‘프로젝트’ 팀과는 다른 인물도 등장한다. 바로 헌법재판관에서 퇴임한 뒤 김앤장 사회공헌위원장을 맡고 있는 목영준 전 재판관이다. 정 사무관은 2013년 11월 12일자 ‘강제동원 피해자 관련 목영준 헌법재판관 의견(첨부: 한일협정 해석)’ 문건을 작성했다. 앞서 외교부 한일 청구권협정 대책 TF에 목 전 재판관이 낸 의견서를 첨부했고, 이모 국제법률과장이 목 전 사무관을 만나 듣고 온 의견을 전달받아 정리한 문건이다. 목 전 재판관은 강제징용 사건과 관련해 “전원합의체 심리가 필요하다”고 의견서에 밝혔다. 그리고 정 사무관이 정리한 문건에는 “대법원장에 보고해 직권으로 전원합의체에 회부되도록 결정한다”는 내용이 있다. “증인이 그렇게 생각한 건가, 목 전 재판관이 그렇게 말한 건가“라고 물은 검찰에 정 사무관은 “직접 만난 게 아니라 확인할 수 없지만 그 페이퍼에 제 생각이 들어있지는 않다”고 말했다. 그리고 해당 보고서의 여백에는 정 사무관의 ‘전원합의체 가야 한다 ⓛ소송대리인이 ②민정수석 - 법원행정처장/차장 - 대법원장에게 → 직권으로 전원합의체 회부 결정하도록’이라는 메모가 더해졌다. 역시 이모 과장에게 목 전 재판관의 이야기를 전해듣고 쓴 것이라고 정 사무관은 말했다. 목 전 재판관은 과거 헌법재판관 시절에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해 국가의 부작위(방기)가 위헌이라는 취지의 결정을 했다. 허백윤 기자 baikyoon@seoul.co.kr 서울신문은 전직 대법원장이 법정에 피고인으로 선 헌정 사상 초유의 사태를 기록으로 남기기 위해 2019년 5월 29일부터 매주 최소 두 차례 이상 열리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재판을 지면 제약에서 벗어난 온라인을 통해 글로 생생하게 중계합니다.
  • [박록삼의 시시콜콜] 욱일기 허용 도쿄올림픽, ‘결단’ 내릴 때가 됐다

    [박록삼의 시시콜콜] 욱일기 허용 도쿄올림픽, ‘결단’ 내릴 때가 됐다

    2008년 올림픽은 중국 베이징에서 열렸다. 당시 올림픽을 앞두고 주중국 일본대사관은 자국민들에게 ‘올림픽 관람 때 욱일기를 가지고 오면 문제가 될 수도 있다’고 주의를 줬다. 올림픽 자국팀을 응원하기 위해 베이징을 찾은 일본인들이라면 행동거지에 각별히 주의해야만 했던 분명한 이유가 있다. 1937년 12월 13일 욱일기를 휘날리며 중국 난징(南京)을 침략한 일본군은 6주 동안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민간인 30만명을 학살했다. 기관총을 난사하며 무차별적으로 죽였고, 부녀자들을 겁탈한 뒤 죽였고, 젊은 장교 둘은 중국인을 무릎 꿇려 일본도로 참수 대결을 벌여 각각 106명, 105명의 목을 베기도 했고, 과일 파는 7살 아이가 중화민국 정부에서 발행한 소액 화폐를 갖고 있다 해서 그 자리에서 즉살했다. 총알을 아낀다며 산 채로 생매장했고, 살아있는 이들에게 기름을 끼얹고 불을 질렀다. 그저 문자와 기록을 보는 것만으로도 호흡이 가빠질 정도로 끔찍하고 처참한 장면들이다. 학살자들이야 감추고 싶거나 애써 잊고 싶은 과거이겠지만, 중국 사회와 중국인으로서는 결코 잊을 수 없는 역사의 기억이다.일본은 1940년대 태평양전쟁을 일으켜 한국은 물론, 중국, 필리핀, 태국, 인도네시아 등 수많은 아시아 국가들에게 씻을 수 없는 공포와 분노를 불러 일으킨 전범국가다. 욱일기는 이러한 침략전쟁과 학살, 모든 반인륜적 범죄의 상징이다. 실제 아시아권에서 욱일기는 나치의 하켄크로이츠와 똑같은 전범기(戰犯旗)로 통한다. 지금도 일본은 욱일기를 육상자위대와 해상자위대의 군기로 사용하고 있다. 군국주의를 지향하며 ‘침략 가능 정상국가’를 꿈꾸는 일본으로서도 욱일기는 포기할 수 없는 상징과도 같다. 또한 일본의 극우세력들 또한 ‘혐한 시위’ 때면 어김없이 욱일기를 들고 나선다. 도쿄올림픽조직위원회는 올림픽 응원 도구로서 욱일기를 금지하지 않겠다고 공식 발표했다. 스가 요시히데 일본 관방장관 또한 지난 5일 “욱일기 게시 자체는 정치적 선전이 아니다. 올림픽에서도 허용되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 또한 별다르게 제재할 의사를 보이지 않는, 뜨뜻미지근한 반응이다. 어떡해야 하나. 난감하게 됐다. 펄럭이는 욱일기 앞에서 침략당하며 겪었던 치욕스러운 과거를 떠올려야 하고, 전쟁 범죄의 공포의 기억을 소환해야 하는 아시아 국가들은 내년 7월 하순부터 보름 남짓 동안 올림픽 기간 내내 도쿄 현지에서, 또 TV 중계를 통해 꼼짝없이 욱일기에 둘러싸이게 됐다. 이뿐 아니다. 이미 지난 4월 26일자 서울신문에서 ‘도쿄올림픽이 안전 올림픽 될 수 없는 이유’라는 칼럼을 통해 도쿄올림픽의 무분별한 방사능 위험성에 대해 지적하며 사실상 올림픽 보이코트를 검토할 것을 촉구한 바 있다. 도쿄올림픽조직위는 올림픽 기간 동안 후쿠시마산 농수산물을 식재료로 공급한다는 계획을 세웠고, 후쿠시마산 목재를 선수촌 관련 건물 건축 등에 썼다. 야구 종목 경기 일부는 아예 후쿠시마 원전 근처 경기장에서 열린다. 전세계 올림픽 참가 선수들도, 응원단도 모두 방사능 위험에 무방비로 노출될 수밖에 없게 됐다. 올림픽이야 모든 운동선수에게는 꿈의 무대다. 하지만, 그들의 순수함은 일본의 군국주의 부활, 팽창주의, 확인되지도 않은 후쿠시마 방사능 안전의 홍보 수단으로 전락하게 될 위기에 놓였다. 쉽지는 않다. 그럼에도 이제 결단을 내릴 때가 다가오고 있다. 일본의 침략전쟁에 피해를 입고, 제대로 된 사과도 받지 못한 채 여전한 갈등과 위협에 놓여있는 나라들이 한마음으로 연대해야 한다. 모두 함께 머리를 맞대고 올림픽 보이코트의 장·단점 등을 꼼꼼히 들여다보자. 박록삼 논설위원 youngtan@seoul.co.kr
  • 구미 독립운동가 왕산 허위 광장 명칭 변경 논란

    구미 독립운동가 왕산 허위 광장 명칭 변경 논란

    경북 구미시와 지역 시민단체가 독립운동가 왕산 허위(1855~1908) 선생의 이름을 따 조성한 광장과 누각 등의 명칭을 갑자기 지역명으로 변경하는 문제를 놓고 갈등을 빚고 있다. 5일 구미시에 따르면 한국수자원공사가 2016년부터 구미국가4산업단지 확장단지(산동면) 3만 60000㎡에 58억원을 들여 조성 중인 ‘산동물빛공원’ 내 광장·누각의 명칭을 산동광장·산동루로 변경하기로 했다. 애초 시와 수자원공사는 2016년 1~9월 주민공청회·설문조사 등을 통해 공원 명칭과 광장·누각의 명칭(왕산광장·왕산루)을 정했다. 또 1억 5000만원을 들여 광장에 허위 선생 가문 독립운동가 14인의 동상을 세우기로 했다. 구미 출신 허위 선생의 가문은 3대에 걸쳐 14명의 독립운동가를 배출한 대한민국 최고의 독립운동가 집안이다. 수자원공사는 공원이 준공되면 구미시에 기부채납할 예정이다. 하지만 시의 이 같은 명칭 변경은 장세용 구미시장이 지난해 취임 이후 “인물 기념사업을 태생지 중심으로 해야 한다”고 요구한 것과 무관치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시 관계자는 “공원 사용 주체인 산동면 주민들이 명칭을 지명으로 변경해 달라는 민원을 접수해 변경했고, 이를 한국수자원공사에 통보했다”고 말했다. 산동면 주민들은 광장 내 허위 가문 14인 동상을 왕산 허위 기념관(임은동)으로 이전·설치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이에 지역 시민단체가 반발하고 나섰다. 민족문제연구소 구미지회는 최근 성명을 통해 “구미를 상징하는 인물인 허위 선생의 호를 따 왕산광장·왕산루로 결정한 것”이라며 “주민공청회로 결정한 사안을 일부 주민 의견을 이유로 바꾼 것은 잘못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 “왕산광장은 서울시청 앞 잔디광장(6435㎡)보다 크고, 왕산루는 안동의 병산서원 만대루보다 크다”며 “광장과 누각이 어우러진 공간에 열네분의 독립운동가 동상이 들어서는데 명칭을 바꾸면 역사와 전통을 훼손할 수 있다”고 말했다. 왕산 허위 선생은 구한 말 대표적인 의병장으로, 1897년과 1907년 의병을 일으켰다. 한때 ‘13도 연합 의병부대’를 결성해 서울 진공작전을 강행, 성문 밖 30리까지 진격하기도 했으나 일본군에 분패했다. 허위 선생은 작전이 실패한 뒤에도 임진강과 한탄강 유역에서 항일전을 벌이다가 1908년 결국 체포됐고, 9월 27일 교수대에 올라 51세의 일기로 순국했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1962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추서했고, 왕선허위선생기념사업회는 1962년 10월대구 중구 달성공원에 왕산 허위 선생 순국기념비를 세웠다. 구미 김상화 기자 shkim@seoul.co.kr
  • 북한 매체, 이영훈 ‘반일종족주의’ 비난… “친일 역적 단호히 징벌해야”

    북한 매체, 이영훈 ‘반일종족주의’ 비난… “친일 역적 단호히 징벌해야”

    북한 선전매체 우리민족끼리가 6일 이영훈 전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등이 집필한 ‘반일종족주의’를 비난하며 “매국도서를 출판한 친일역적들을 민족의 이름으로 단호히 징벌해야 한다”고 했다. 우리민족끼리는 이날 ‘단호히 징벌해야 할 추악한 친일역적들’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최근 남조선(남한)에서 친일분자들이 일제의 식민지 지배 역사를 날조한 도서 ‘반일종족주의’를 출판한 것이 커다란 물의를 일으키고 있다”며 “지난 7월에 발간된 도서 ‘반일종족주의’는 일제가 강제징용, 성노예, 쇠말뚝 등 우리 민족에게 들씌운 죄악을 전면부정하고 일제의 ‘식민지근대화론’을 정당화한 매국도서”라고 소개했다. 이어 “매국도서출판에 가담한 자들이야말로 섬나라 오랑캐들의 피가 뼈속까지 들어찬 매국노들이 틀림없으며 온 민족의 이름으로 하루빨리 능지처참해버려야 할 추악한 친일역적들”이라며 “과거 일제 식민지 통치 시기 창씨개명하고 친일매문으로 더러운 목숨을 부지한 추악한 민족반역자들의 후예들이 아직까지도 활개치고 있는 것은 남조선 사회의 비극이며 민족의 수치”라고 원색 비난했다. 매체는 “바로 이런 역적 무리들이 길잡이 역할을 놀고 있기에 일본 반동들이 더욱 기고만장하여 남조선에 대한 경제침략을 단행하고 저들의 과거 식민지 지배를 정당화하는 망발을 함부로 내뱉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매체는 “문제는 이러한 친일매국의 독버섯들이 민족의 존엄과 이익을 섬나라 족속들과 같은 외세에 팔아먹으며 재집권 야망을 추구하는 보수세력이라는 썩은 서식지에서 자라고 있는 것”이라며 “친일매국노들이 활보하고 있는 남조선의 현실은 친일매국과 보수는 쌍둥이이며 일본의 만고 죄악에 대한 철저한 사죄와 배상을 받아내기 위해서는 보수패당을 완전히 매장해버려야 한다는 것을 똑똑히 보여주고 있다”고 주장했다. ‘반일종족주의’는 지난 7월 10일 출간됐으며,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가 지난달 페이스북에 “구역질 나는 책”이라고 비난하면서 화제에 올랐다. 이후 ‘반일종족주의’는 교보문고 지난달 2~4주차 베스트셀러 순위에서 3주 연속 1위에 올랐으며, 5주차에는 5위로 하락했다. ‘반일종족주의’ 집필자들은 책 소개에서 “아무런 사실적 근거 없이 거짓말로 쌓아올린 샤머니즘적 세계관의, 친일은 악(惡)이고 반일은 선(善)이며 이웃 나라 중 일본만 악의 종족으로 감각하는 종족주의. 이 반일 종족주의의 기원, 형성, 확산, 맹위의 전 과정을 국민에게 고발하고 그 위험성을 경계하기 위한 바른 역사서”라고 표방했다. 하지만 일제의 강제징용과 식량수탈, 일본군 위안부를 부정하고 한국의 독도 영유권 주장에 대해서도 학술적 근거가 부족하다는 주장을 담아 논란이 됐다. 박기석 기자 kisukpark@seoul.co.kr
  • [금요칼럼] 홍대용의 편지/백승종 한국기술교육대 겸임교수

    [금요칼럼] 홍대용의 편지/백승종 한국기술교육대 겸임교수

    1766년(영조 5) 홍대용은 청나라 선비 반정균에게 편지를 보냈다. 그보다 한 해 전 그들은 연경에서 친구가 되었다. 숙부 홍억이 연경에 사신으로 파견되었을 때였다. 홍대용은 비공식 수행원(‘자제군관’)으로서 연경에 갔다. 이후 평생 동안 그는 청나라 선비들과 편지를 주고받았다. 홍대용은 중국에 편지를 보낼 때 자신의 소논문을 동봉하기도 하였다. 그중에는 한국에 관한 중국인들의 편견을 고치기 위한 것도 있었다. 지난밤에는 귀뚜라미 소리가 유난하였다. 나는 홍대용의 편지를 꺼내어 읽고 또 읽었다. 그 시절 청나라에서는 ‘명기집략’(明記輯略·저자 朱璘)이라는 역사책이 인기였다. 문제는 그 가운데 오류가 적지 않았다. 반정균에게 보낸 편지에서 홍대용은 그 문제를 다루었다(홍대용, ‘담헌서’, 외집 1권). 그 책에서는 임진왜란의 책임이 선조에게 있다고 보았다. 선조가 술에 빠져 정치가 어지러웠다고 했다. 홍대용은 이를 반박했다. 선조는 자질도 뛰어났고, 성품도 과감하였으며, 선왕의 정치를 펴고자 노력했다고 주장하였다. 당쟁의 과열 문제였다고 홍대용은 진단했다. 의주 행재소에서 선조는 다음의 시로 신하들을 타일렀다. “대신들이여 오늘 이후에도(朝臣今日後)/ 서인이니 동인이니 할 터인가(寧復名西東).” 그러나 선조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당쟁이 그치지 않았다고 하였다. 훌륭한 임금이었는지는 나로서는 확신하기 어렵다. 그러나 선조가 공부를 좋아한 것은 맞는 것 같다. 당쟁의 병폐를 강조한 홍대용의 주장은 더더욱 옳다. 요즘 국회가 돌아가는 모양을 보면, 이것이 바로 당쟁이라는 망국병이란 생각이 절로 든다. 편지에서 홍대용은 이이의 십만양병설도 소개하였다. 오늘날 역사학자 중에는 십만양병설을 숫제 허구로 간주하는 경우가 많다. 홍대용이 제시한 문헌을 보면, 병조판서를 역임한 이이가 국방력을 기르자고 주장한 사실을 부정할 이유가 없다. 홍대용은 편지에서 이이의 양병설을 정면으로 반대한 이가 유성룡이었다고 기록했다. 이이는 자신의 고충을 이렇게 토로했단다. “이현(而見, 유성룡)도 이렇게 말하는구나. 나랏일을 의논할 사람이 아무도 없다.” 그때는 왜란이 발생하기 10년 전이었다. 유성룡이 양병설을 반대했대서 비난하기는 곤란하다. 나라의 재정형편이 매우 어려웠기 때문이다. 장차 일어날지 모르는 난리 때문에 막대한 국방예산을 집행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홍대용은 유성룡의 고충도 십분 헤아렸던 듯하다. 그는 유성룡을 마구 비판하지 않았다. 끝으로, 편지의 마지막 부분에서 홍대용은 이순신의 공적을 높이 평가했다. 우선 그는 ‘명기집략’에 이순신의 이름이 ‘이순’이라고 오기된 사실을 지적하였다. 이어서 이순신의 활약이 있었기에 조선이 무사했다는 점을 차분히 설명했다. 그뿐만 아니라 명나라 역시 이순신 덕을 보았다고 강조했다. 일본군은 바다를 건너 중국 동남쪽으로 쳐들어가려 했으나 이순신에게 길목이 막혔다고 주장했다. 오늘날의 입장에서 보아도 탁견이다. 알다시피 조선후기 식자층은 임진왜란에 관하여 왈가왈부 말들이 많았다. 어떤 사람들은 명나라의 은혜를 지나치게 강조하였다. 그러나 홍대용의 견해는 분명히 달랐다. 다시 생각해 보면 그가 선조를 과연 현명한 임금이라 여겼을지 잘 모르겠다. 어쩌면 중국인들이 조선 임금을 얕보는 것이 못마땅해 애써 두둔하였을 가능성도 있다. 그런데 이순신의 공적을 설명하는 대목에 이르면 행간에서 조선 선비의 자존감이 절로 느껴진다. 아, 18세기 후반에도 조선지식인 홍대용은 민간 외교사절을 자임하였구나.
  • 구국 영웅들의 빛바랜 흔적… 근현대사 야외박물관 산책

    구국 영웅들의 빛바랜 흔적… 근현대사 야외박물관 산책

    서울신문이 서울시, ㈔서울도시문화연구원과 함께하는 2019서울미래유산-그랜드투어 ‘제19회 망우리’ 편이 지난달 31일 중랑구 망우동 일대에서 2시간 30분 동안 진행됐다. 무더위와 장마를 피해 저녁 시간대에 진행한 5차례의 혹서기 야간투어 프로그램이 끝나고 오전 10시 평상 투어로 돌아온 날이다. 서울미래유산을 사랑하는 참석자 40여명은 집결지 망우역을 출발, 지역 명물 동부고려제과와 우림시장을 둘러봤다. 우림시장 앞에서 165번 시내버스를 타고 동부제일병원 정류장에서 내려 망우리 공원으로 향했다. 망국의 한이 서린 13도 창의군 탑을 지나 이태원 묘지 무연고자 합장묘역의 유관순 열사 추정묘에서 묵념을 올렸다. 열사에게 띄우는 편지를 써서 기억의 나무에 매다는 추도 이벤트도 가졌다. 이어 유상규, 방정환, 한용운 선생 묘를 차례로 순례했다. 망우리에 묻힌 49위의 독립지사와 문인·예술가의 자취를 둘러보기에 2시간은 턱없이 짧았다. 특히 유관순 열사 추정묘는 드높은 이름에 비해 열악한 참배길과 무너진 봉분, 조악한 가짜 꽃이 엄숙함을 흐리게 했다. 이날의 서울미래유산은 동부고려제과와 망우리 공원 2곳이었다. 해설을 맡은 이지현 서울도시문화지도사는 13도 창의군 탑 앞에서 충과 효의 갈림길에 선 지도자의 선택과 독립지사들이 남긴 구국의 목소리를 조곤조곤 들려줬다. 8월의 마지막 날 서울의 동쪽 끝자락에서 한국 근현대사를 되돌아본 뜻깊은 시간이었다.망우리는 과거와 현재, 죽음과 삶이 공존하는 공간이다. 망우리 묘지인지, 망우리 공원인지 헷갈리는 사람이 아직도 많다. 공동묘지에서 공원으로 바뀐 지 반세기가 흘렀건만 아직 정체성을 찾지 못한 탓이다. 행정지명은 중랑구 망우동 산57-1이지만, ‘경기도 양주군 망우리’라는 ‘고리짝’ 지명이 여전히 쓰이고 있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망우리는 공원으로 거듭났지만 여전히 공동묘지인 것이다. 망우리라는 지명이 망우산이라는 자연지명을 잡아먹었다. 망우리 공동묘지라는 섬뜩하고 부정적인 죽음의 공간에서 벗어나서 망우산이라는 멋진 산 이름을 활용, ‘망우산역사문화공원’으로 자리매김할 필요가 있다. 해발 282m의 망우산은 중랑구 망우동과 면목동, 경기 구리시에 걸터앉은 나지막한 산이다. 서울의 동쪽 경계인 용마산과 봉화산, 아차산과 첩첩이 겹쳤다. 망우산은 백악산~낙산~남산~인왕산으로 이어지는 서울의 안쪽 경계 ‘내사산’과 함께 삼각산~용마산~관악산~덕양산으로 이어지는 서울의 동쪽 바깥경계 ‘외사산’의 일부를 형성한다. ‘망우’란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가 자신의 묏자리를 정하고 돌아오는 고개 위에서 잠시 발길을 멈추고 “근심을 잊게 됐다”고 말했다고 해서 붙었다. 이성계의 건원릉을 비롯해 조선 역대 왕과 왕비 등 9기 17위가 모셔진 구리시 동구릉에서 직선거리로 1㎞ 남짓 떨어진 곳이다. 동구릉 가는 길목에 자리한 망우산에 오르면 한강 이북의 도봉산과 수락산, 불암산이 줄줄이 펼쳐지고 한강 이남 검단산과 예봉산이 한눈에 들어온다.조선시대 서울에 사는 백성이 죽으면 서소문 밖 애오개(아현), 광희문 밖 신당, 남산 바깥 이태원, 동소문 바깥 미아리에 각각 묻혔다. 멀리 서쪽 은평구 이말산과 북쪽 도봉구 초안산은 양반이나 궁녀, 내관, 중인층의 묘역으로 쓰였다. 잘나가는 서울양반은 고향 선산까지 내려가거나 경기·충청 일대에 묻혔다. 특히 남산 밖 이태원 부근 지금의 용산 미군기지 일대는 서울 최대의 공동묘지였다. 1905년 일본군이 이 땅을 군사기지로 수용할 때 무려 117만여기의 무덤자리를 확인한 바 있다. 일제강점 후 경성 부립 공동묘지가 사대문 밖에 조성됐는데 경성이 점차 확장되면서 1933년 양주군 망우리에 83만2800㎡ 규모의 공동묘지를 조성하기에 이르렀다. 용산구 이태원 일대와 마포구 노고산 등지에 있던 공동묘지를 옮겨왔다. 이후 1973년까지 40년 동안 서울시민 전용 묘지 구실을 했다. 이 시기 서울에서 사망한 사람의 운구는 잘났거나 못났거나 대개 망우리로 향했다. 1963년 서울의 면적을 두 배 이상 확대하는 서울시 행정구역 확장에 따라 경기도 지역 12개 면 90개 리가 서울에 편입됐을 때 서울 동북부의 변방 망우리도 서울특별시가 됐다.망우리에는 한때 5만기 가까운 묘역이 조성됐고 폐장되기 전까지 해방과 한국전쟁, 4·19혁명 등 격동의 근현대사를 품었다. 1960년대 중반부터 묘 터가 부족해지자 경기도 벽제리, 용미리, 언주리(양재) 등에 공동묘지를 조성해 화장과 이장 등이 이뤄졌다. 묘지 사용이 중단됐어도 한식, 추석 때면 조문행렬로 들썩거렸다. 무덤이 빠져나간 터에 나무를 심어 숲을 조성했다. 지금처럼 숲이 우거진 것은 20년이 채 안 된다. 이전에는 봉분만 가득한 민둥산이었다. 1990년대 후반부터 4.7㎞의 망우리 순환로를 ‘사색의 길’로 정비했고 길가에 연보비를 세워 묘역의 주인을 알리는 작업을 진행했다. 죽음의 공간이 삶의 공간으로 옷을 갈아입었다. 지금은 7360기가 남아 있다. 유관순, 한용운, 오세창, 방정환, 지석영, 박인환, 이중섭 등 이름만 들어도 알 만한 독립유공자와 저명한 예술가, 문인재사 46명이 영면해 있다. 안창호, 송진우, 나운규, 김영랑도 한때 이곳에 묻혔다. 18세 소녀 유관순 열사는 3·1운동 이듬해인 1920년 9월 서대문감옥에서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뒤 이태원 공동묘지에 안장됐다가 망우리로 옮길 때 2만 8000여명의 이름 모를 유해와 함께 화장돼 합장됐다. 잇따른 투옥과 순국으로 집안이 풍비박산 나면서 열사의 묘지를 망실한 때문이다. 열사의 묘는 지금껏 ‘이태원묘지 무연분묘’ 속 한 명으로 기억되다가 지난해 9월 기념사업회 등에서 ‘유관순 열사 분묘합장 표지비’를 마련, 비로소 이름을 얻었다. 딱한 일이다. 중국 뤼순감옥에서 사형당하기 전 “고국에 묻어 달라”고 간절한 유언을 남겼으나 시신조차 찾지 못한 안중근 의사 사례와 닮은꼴이다.망우리 공원 초입 13도 창의군 탑은 항일의병의 구국 혼을 기리는 기념비적 조형물이다. 망우산 고개는 경기 동북부에서 양주를 거쳐 서울 동대문으로 들어오는 관문이었다. 1908년 수도를 탈환하겠다며 전국 13도에서 모인 창의군의 진격로이기도 했다. 1907년 정미7조약에 의해 군대가 해산되자 총대장 이인영을 위시한 1만 의병이 들고일어난 조선말 대사건이다. 군사장 왕산 허위는 300여명의 선발대를 이끌고 동대문 밖 30리 지점인 망우리까지 진공했으나 이인영이 부친상을 당해 고향으로 내려간 사이 사기를 잃은 병력이 흩어지는 바람에 일본군의 공격에 패퇴했다. 이후 길을 잃은 의병항쟁은 국외로 무대를 옮겨야 했다. 게릴라전을 벌이던 허위는 체포돼 서대문형무소 첫 사형수로 처형됐다. 동대문~신설동~청량리 구간 간선도로에 허위의 호를 딴 왕산로라는 도로명이 남아 서울진공작전 실패의 아쉬움을 달랠 뿐이다. 망우산은 사연 많은 산이다. 그 산에 깃든 망우리 공원은 단순히 과거의 공동묘지이거나 현재의 공원이 아니다. 마치 살아 있는 야외 역사박물관처럼 느껴진다. 명멸한 숱한 인물을 통해 근현대사를 더듬어 볼 수 있는 소중한 자산이다. 한국내셔널트러스트가 2012년 ‘꼭 지켜야 할 자연·문화유산’으로 지정한 데 이어 2015년 서울시가 서울미래유산으로 선정한 까닭이다. 글 노주석 서울도시문화연구원장사진 김학영 연구위원 ■다음 일정 : 제20차 홍릉숲길 산책 ■일시 및 집결장소 : 9월7일(토) 오전10시, 고려대역 3번 출구(개찰구 안) ■신청(무료) : 서울미래유산 홈페이지(http://futureheritage.seoul.go.kr) ■문의 : (사)서울도시문화연구원 (www.suci.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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