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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월의 독립운동가 김중건 선생

    국가보훈처는 2월의 독립운동가로 북간도 지역에서 교육과 농촌계몽운동을 펼치고 독립군을 양성한 소래(笑來) 김중건(金中建·사진·1889.12.6∼1933.3.24) 선생을 30일 선정했다. 그는 함남 영흥에서 태어나 한학,전통유학,노장사상을 공부했으며 17세에 서당훈장을 지낼 정도로 문재를 자랑했다. 종교적 구도에 의한 사회개혁을 모색한 그는 1907년 대한매일신보에 실린 ‘토국민신보(討國民新報)’란 사설을 읽고 사회개혁을 위한 신학문의 필요성을 인식,서당을 연명학교로 개조해 어린이들에게 신학문을 가르쳤다. 선생은 북간도에 도전학원,건원학원,입포강 학원,경신학원 등을 설립,민족 교육 운동을 펼치는 한편 1920년 무장투쟁단체인 대진단(大震團)과 대한국민단을 결성했다. 1922년 독립군 관련 기밀문서가 발각돼 일본 경찰에 체포된 뒤 고향으로 축출된 선생은 학원 설립을 통한 교육과 교세 확장에 힘쓰고 북간도의 교도들에게 북로군정서,고려혁명의혈군 등에 가담해 독립운동을 전개토록 지시했다. 그뒤 1931년 만주사변이 일어나자 원종교도로부대를 결성해 길림구국군과 연합전선을 구축,일본군과 교전을 벌이기도 했다. 정부는 선생의 업적을 기려 1977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그의 공적을 기리는 전시회가 2월 한달간 독립기념관과 서울 서대문독립공원에서 열린다. 조승진기자 redtrain@
  • 기초생활수급자·모자가정·탈북자등 국민임대주택 우선입주 혜택

    국민임대주택 입주때 가점을 받을 수 있는 계층이 기초생활수급권자,모자가정,탈북자,일본군위안부 등의 소외계층으로 확대된다. 건설교통부는 사회 취약계층에 대한 국민임대주택 입주 기회를 늘려주기 위해 ‘주택공급에 관한 규칙 개정안’을 23일 입법예고한 뒤 3월부터 시행한다고 22일 밝혔다. 이에 따르면 국민임대주택 입주경쟁시 3점의 가점을 받는 계층은 국민기초생활보장법상 기초생활수급자(월 평균 소득이 최저생계비 101만 9000원 미만인 자·140만명)와 차상위계층(월 평균 소득이 최저 생계비의 120% 이내인 자·320만명),일본군위안부,모자가정,탈북주민,국가유공자 등이다. 영구임대주택에 사는 청약저축 가입자(3만 6000가구)와 기초생활수급권 상실자(6만 4000가구)에게도 가점 3점을 줘 이들의 퇴거를 촉진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4만명에 달하는 영구임대 입주 희망자의 대기 기간이 현재의 2∼3년에서 크게 단축될 전망이다. 이밖에 개발제한구역(그린벨트) 해제예정지의 토지·주택 소유자 가운데 택지를 보상받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그사업지구에서 공급되는 분양주택 또는 임대주택을 공급할 방침이다. 류찬희기자 chani@
  • 책꽂이/판매인 외

    ●판매인(이태희 지음,디자인 예닮 펴냄) 20여년동안 자동차 판매 현장을 지켜온 저자가 들려주는 자동차 판매 노하우.긍정암시법·추정승락법·결과지정법 등 고객에 맞는 다양한 판매기법을 소개한다.6000원. ●우익에 눈먼 미국(데이비드 브록 지음,한승동 옮김,나무와숲 펴냄) 보수파 정치잡지 ‘아메리칸 스펙테이터’ 등의 기자를 지낸 저자가 고발하는 미국 보수진영의 어두운 면.기득권에 집착하는 현대 미국의 보수 내지 우익 주류세력의 위선과 기만,이기주의를 비판한다.이 책은 ‘섹스 매카시즘’이 현대 우익정치에 도입된 대표적인 예로 클린턴 시절의 모니카 르윈스키,폴라 존스,제니퍼 플라워스 사건 등을 꼽는다.철저하게 미국 우파의 이익에 봉사하는 헤리티지 재단 관계자들이 왜 한국이나 일본을 들락거리는지도 엿보게 한다.한국은 헤리티지 재단 금고를 채워준 주요 해외 자금제공처 가운데 하나다.1만 3900원. ●히타이트(비르기트 브란다우 등 지음,장혜경 옮김,중앙M&B펴냄) 기원전 17∼12세기 지금의 터키 아나톨리아 일대에서 세력을 떨쳤던 철기문명 국가 히타이트의 역사와 문화를 소개.이집트나 바빌로니아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수많은 속국을 거느리며 영화를 누렸고,이집트인 못지 않은 찬란한 문화를 꽃피웠던 히타이트 왕국은 왜 권력의 절정기에 멸망하고 말았을까.고고학의 최신이론을 토대로 이 불가사의한 민족의 역사를 살핀다.히타이트인들은 전쟁에서 승리하면 정복한 민족의 신을 자기 나라로 데려와 모시는 습성이 있었기 때문에 히타이트의 신전에는 늘 신상이 넘쳐났다는 사실도 밝힌다.1만 3500원. ●이름 없는 하느님(김경재 지음,삼인 펴냄) 기독교의 유일신 신앙에 대한 비판서.기독교 신학자인 저자에 따르면 한국의 기독교인들은 성경이 주장하는 강렬한 배타적 유일신 신앙 때문에 지독한 종교적 이기심에 젖어 있다.이 책은 그러한 명목론적인 일신론 신화를 비판한다.서로 다른 종교에 대한 열린 마음과 포용의 자세가 필요하다는 것이다.1만원. ●영국(박우룡 지음,소나무 펴냄) 영국의 국회의원들은 2∼3명이 한 사무실을 공동으로 쓰며 손수 커피를 끓이고 단 1명의 사무보조원으로부터 함께 도움을 받으면서 업무를 수행하는데,그런 사회적 풍토는 어떻게 가능할까.또 아일랜드는 80년전에 독립했는데 어째서 북아일랜드는 여전히 영국에 속하는가.이 책은 ‘근대 서구문명의 어머니’로 인식되는 영국의 사회와 문화,지역,일상생활 등을 우리가 잘 모르는 사실들에 초점을 맞춰 살폈다.1만 8000원. ●순간의 미학(가스통 바슐라르 지음,이가림 옮김,영언 펴냄) 프랑스 철학자 바슐라르가 베르그송 철학을 비판하면서 제시한 새로운 시간론.“시간은 본질적으로 비연속이다.”라는 주장을 펼친다.바슐라르는 물·불·공기·흙 등 4원소에 대한 독자적인 ‘물질 상상력’이론을 정립,프랑스 신비평 분야의 대부로 추앙받는 인물.그의 초기 베르그송주의 비판서인 ‘순간의 직관’이 ‘순간의 미학’이란 이름으로 국내에 처음 출간됐다.9000원. ●세상을 뒤바꾼 책사들의 이야기-일본편(이수광 지음,일송 북 펴냄) 일본 신화에서 태양의 신으로 등장하는 아마테라스,경부선 건설의 책략가 오오미와 초오베,가마쿠라 막부를 연 미나모토 요리토모,일본 야쿠자 대부인 고다마 요시오 등 시대를 풍미한 책사들의 이야기.8500원. ●나눔의 집,일본군 ‘위안부’ 역사관을 찾아서(나눔의 집 역사관 후원회 엮음,역사비평사 펴냄) 경기도 광주시 퇴촌면 원당리에는 과거 일제의 만행을 고발하는 역사의 현장이 있다.이곳에는 ‘위안부’ 출신 할머니들의 생활공간 등으로 이뤄진 ‘나눔의 집’과 일본군 ‘위안부’ 역사관이 들어서 있다.우리나라 최초의 ‘인권박물관’이자 세계 최초의 ‘군위안부 박물관’이다.생생한 역사체험장에 대한 정보를 정리해 실었다.9000원.
  • ‘나눔의 집’ 10명 8년째 선행/恨많은 위안부… 限없는 베풀기…

    “‘광에서 인심난다.’는 말 있지.돈만 넉넉하면 누군들 못 돕겠어.하지만 어려운 살림도 쪼개서 돕는 게 진짜 나눔이야.” 경기도 광주군 퇴촌면 ‘나눔의 집’에는 과거 식민지 시절 일본군 종군위안부로 끌려가 한 서린 청춘을 소진한 할머니 10명이 모여 살고 있다.할머니들은 지난 연말 국제민주연대와 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등 3개 시민단체에 20㎏짜리 쌀 5포대씩을 연말선물로 보냈다. 할머니들은 광주에 보금자리를 튼 지난 95년부터 소년소녀가장들과 살림이 어려운 시민단체들을 남몰래 도와왔다.지난해 설날에는 각종 단체에서 기부받은 쌀과 할머니들이 푼푼이 모은 돈을 갹출,광주군내 30명의 소년소녀가장들에게 도서상품권과 쌀 20㎏씩을 전달했다. 특히 ‘나눔의 집'에는 평생 모은 전 재산을 시민자선단체에 기증한 할머니도 있다.김군자(77) 할머니는 2000년 3월 아름다운재단(이사장·박원순)에 “가난하고 부모없는 아이들에게 배울 기회를 주고 싶다.”며 가정부 생활을 하며 어렵게 모은 5000만원을 기증했다.할머니의 기부금을 종잣돈으로조성된 ‘김군자 할머니 기금’은 아름다운재단의 ‘1% 나눔운동’에 참여하는 기부자들의 작은 정성이 보태져 6670여만원으로 늘어났다. 8일 서울 종로구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린 정대협의 540차 정기수요집회에는 박옥련(83),김순덕(82)할머니 등 ‘나눔의 집’ 식구 5명이 참석했다.강일출(75) 할머니 등 2명은 중국에 있는 친지를 방문중이고 김군자 할머니 등 3명은 지병이 악화돼 외출이 어려운 상태다.김순덕 할머니는 “살아 생전 우리가 바라는 사랑과 나눔이 가득한 세상을 보았으면 여한이 없겠다.”고 말했다. 이세영기자 sylee@
  • 안해룡의 ‘침묵의 외침‘ 다큐전

    김씨 할머니는 담배에 불을 붙이고 한숨을 토해내듯 담배 연기를 길게 뿜어냈다.시선을 먼 데 고정시킨 할머니는 토막 말로 “우리 아버지는 명대로 살지도 못했어.내가 없어져 버렸으니까.”라고 털어놓는다.손을 모아쥐고 만지작거리던 할머니,술기운 없이는 차마 이야기할 용기를 내기 어려웠는지 소주 한 잔을 입에 급하게 털어넣고는 “연일 군인들 들어오면 상대하고…(군인들이)쭉 서 가지고 있을 때도 있고….그 고생하고 울긴 나 참 많이 울었어.”라며 쥐어짜내듯 이야기를 마친다. 할머니와 같은 일본군 ‘위안부’출신 할머니들의 삶은 더 이상 뉴스거리가 아니다.한국인이라면 누구나 막연하게나마 상식적으로 아는 이야기가 됐다.그래서 위안부 할머니의 사연은 우선 관심사에서 밀려나 구석에서 먼지만 쌓이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이 낡은 스토리에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은 전시가 있다.일주아트하우스에서 새달 10일까지 열리는 다큐멘터리 작가 안해룡의 ‘침묵의 외침-일본군 위안부 출신 할머니들의 목소리’전이다.전시는 다채널을 활용한 미디어 작업으로,비디오·사진·웹 등 세 공간에서 진행된다. 안씨는 여성부의 요청에 따라 위안부를 지낸 할머니 30명의 ‘비디오증원집’을 만들고 있다.그는 그 작업을 기초로 일본 정부의 전쟁관련 기록영화,그가 지난 10여년 찍어온 정신대 관련 영상과 사진을 믹스해 비디오 영상 작품을 만들었다.이 중에서 관심을 모을 만한 몇몇 영상을 정지화면으로 전환해,5장의 사진을 한 세트로 하는 사진 작품을 내놓았다.비디오 속의 음성은 사진 옆에 사진설명으로 덧붙였다.웹 영상 작품은 일종의 ‘슬라이드 쇼’로사진작품들을 관람할 수 있도록 했다.여기에는 음악이 사진설명 구실을 한다. 안씨는 “비디오·사진·인터넷 등 매체가 가진 특성을 표현의 궁극적인 목적으로 인식하지 않고,표현을 위한 수단으로 자유롭게 사용했다.”고 밝혔다.이 과정에서 디지털 기술이 효자 노릇을 톡톡히 했다. 이런 시도 덕분에 ‘증언집’의 위안부 할머니들의 삶은,지루하고 평면적·서사적인 것이 아니라,입체적으로 다가온다.영상 이미지를 따라만 간다고 해서 이해되는 것이 아닌 만큼,사유하고 사색하는 공간으로 변화했다. 일제강점기에 일본군의 성적 노리개가 돼야 했던 어린 처녀들의 무너져버린 푸른 꿈과,쏟아지는 총알 속에서 구사일생으로 살아돌아온 뒤로 자신의 경험을 부모에게조차 숨기며 샛노랗게 응어리진 50년 한이 고스란히 들어 있다.추악한 일본의 전쟁과 식민지 역사의 진실을 밝혀내려는 용기가 전시장에서 파릇파릇하게 돋아나는 듯하다.그 용기가 일본 정부에 공식적 사과를 요구하는 시퍼런 힘이 되고 있는 것이다.(02)2002-7777. 문소영기자 symun@
  • 애국지사 엄기선여사 별세

    애국지사 엄기선(嚴基善) 여사가 9일 대전 을지병원에서 심장질환으로 타계했다.73세. 엄 여사는 중국 상하이(上海)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 선전부장 엄항섭 선생의 장녀로 태어났으며,1938년 광복군의 전신인 한국광복진선청년전지공작대에 참가해 연극과 무용활동 등을 통해 적국의 정보를 수집했다.그 뒤 43년 2월부터 중국 방송을 통해 임정의 활동과 중국에서의 일본군 만행을 동맹국에 알리는 한편 일본군 내의 한국인 및 국내 동포들에게 염전(厭戰)사상을 고취시켰다. 엄 여사는 서울대 문리대를 수료하고 6·25 때는 경기도 여주에서 교사로재직했다.64년부터 현재까지 대전시 중구 선화동의 루시모자원을 운영하는등 복지활동에 전념해 왔다.93년에는 건국포장을 받기도 했다. 빈소는 대전 을지병원 장례식장(042-254-4306)이며,12일 오전 11시 대전 국립묘지 애국지사 제2묘역에 안장된다. 대전 이천열기자 sky@
  • 南불상·北광배 ‘제짝’ 맞을까

    호암미술관이 소장한 국보 제118호 금동반가사유상 불신(佛身)과,평양역사박물관에 있는 금동광배의 해후(대한매일 11월14일자 1면)에 미술사학계가 지대한 관심을 갖고 지켜보고 있다.남쪽의 불신과 북쪽의 광배는 오랫동안 한짝을 이루는 것으로 알려져 왔지만 학계 일부에서는 두 유물의 연관성에 의문을 가져온 것도 사실이기 때문이다. 불신과 광배가 세트를 이룬다는 것은 불신의 원 소장자 김동현씨의 주장에 따른 것이다.17.5㎝ 높이의 사유상 불신은 1940년 5월 평양시 평천리에서 일본군이 병기창 공사를 하던 중 발견돼 한 인부가 이를 김씨에게 팔았다.골동상을 운영하던 김씨는 몰래 보관하다가 해방후 남쪽으로 가지고 내려왔다는 것이다. 당시 반가상 불신이 나온 곳에는 광배도 있었으나 수습하지 못했다는 얘기도 퍼졌다.그런데 1946년 같은 지역에서 금동광배가 하나 나와 평양박물관이 소장하게 됐다.다음해 김씨 부부는 이 광배를 직접 살펴본 뒤 불신에 있던 것이라고 주장해 왔다. 나아가 1963년 한 일본학자가 반가상 관련유물을 일본에 소개하면서 광배는 물론 광배와 함께 수습된 책상형 금동제품을 반가상 대좌로 추정하여 발표한 적도 있었다. 21㎝ 높이의 금동광배에는 ‘영강 7년’(永康 七年)이라는 연호가 새겨져있어 출토 당시부터 이목을 집중시켰다.작고한 고고미술사학자 김원룡 박사는 ‘영강’이라는 연호는 중국의 동진(東晋) 후연(後燕) 서진(西秦)이 모두 썼으나 7년까지 간 것은 서진뿐이며,영강 7년은 418년에 해당한다고 설명했다. 김 박사는 그러나 불신의 목에 나타난 세줄기 삼도(三道) 등은 육조 말기의 중국불상과 같은 양식으로 6세기 말에 만들어진 것이어서 광배 제작시기와는 100년 이상 차이 나는 만큼 연관시킬 수 없다는 결론을 내린 바 있다. 또 황수영 동국대 명예교수는 광배의 양식이 훨씬 시기가 뒤로 내려가는 만큼 ‘영강’이라는 연호는 고구려의 것일 가능성이 많다고 보았다.사유상 불신과 광배가 서로 다른 시기의 작품으로, 같은 지역에서 출토된 것일 수도 있는데 확실치 않은 두 유물을 연관시키는 것은 학문적 자세가 아니며 두 유물을 비교해 보아도 연관성을 찾기 함들다고 설명하고 있다. 사유상 불신과 광배가 출품되는 ‘특별기획전 고구려’는 새달 6일부터 서울 코엑스 특별전시장에서 열릴 예정.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 등 전시회주최 측은 지금도 두 유물이 한 짝을 이루는 것으로 확신하는 듯 하다.하지만 두 유물이 한 자리에 모이면 쉽게 확인할 수 있다. 불신의 머리 뒤에는 광배를 꽂을 수 있도록 네모꼴로 삐죽이 솟은 장치가 있고,광배의 중앙부 조금 아래쪽에도 고정하는 데 쓰는 홈이 만들어져 있다.둘을 합쳐 보면 한 짝인지 아닌지를 판단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주최측이나 미술사학계가 모두 ‘상봉일’을 기다리는 것도 이 때문이다. 서동철기자 dcsuh@ ■금동일광삼존불·금동여래입상·금동계미명삼존불 '삼각관계' 수수께끼 풀리나 ‘특별기획전 고구려’에 출품될 평양역사박물관 소장품 가운데 일반인의 관심이 금동반가사유상에 쏠려 있다면,학계는 ‘연가 7년명’ 금동일광삼존불에 주목한다. 국립중앙박물관이 소장한 국보 제119호 연가 7년명 금동여래입상,간송미술관이 갖고 있는 금동계미명삼존불과의 ‘삼각 관계’가 밝혀질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일광삼존불에는 여래입상과 똑 같은 연호가 새겨져 있고,계미명삼존불과는 쌍둥이처럼 닮았다. 학계는 ‘연가(延嘉)’를 고구려 연호로 본다.중국에는 없는 연호이기 때문.황수영 동국대 명예교수는 여래입상에 새겨진 ‘연가’와 ‘기미년’을 연결할 때 539년이나 599년일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본다.강우방 이화여대 교수는 539년으로 확정한다.따라서 ‘연가’,그것도 같은 7년이라는 명문이 새겨진 일광삼존불도 당연히 6세기에 만든 고구려 불상으로 보는 데는 이론이 없을 것 같다. 문제는 간송미술관이 소장한 계미명삼존불을 삼국 가운데 어디에서 만들었느냐는 것이다.일광삼존불과 계미명삼존불은 세부적으로 작은 차이가 있지만,지역적으로나 시대적으로 확실한 동질성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동안 적지 않은 학자들이 계미명삼존불을 백제 것으로 분류했다.다만 강우방 교수가 계미명삼존불의 둥그런 육계와 평평하고 길쭉한 얼굴,수직으로 올리고 내린 손의 모습 등에서 고구려 불상으로 보았을 뿐이다. 이렇듯 이번 전시회를 계기로 삼국시대 불상의 제작지를 두고 그동안 학계의 논란 가운데 하나가 해결될 가능성이 커졌다.문화재 분야를 포함한 남북교류가 더욱 활발해져야 할 당위성을,평양역사박물관 유물의 서울 전시는 확실하게 증명하는 셈이다. 서동철기자
  • 클로즈 업/ KBS1 역사스페셜 - 임란승리의 주역 항왜는?

    “제 소원은 예의의 나라에서 성인의 백성이 되고자 할 뿐입니다.” 임진왜란 초기 일본군 선봉부대 장수 사야가가 보내온 투항서의 일부이다.1592년 4월초 대군을 이끌고 가고야섬을 출발한 일본군 장수 사야가는 1주일만에,선조가 하사한 이름 김충선으로 일본군과 맞서 싸웠다. KBS1 역사스페셜 ‘임진왜란 비사! 왜군과 싸운 왜군들’(오후 8시)에서는 일본에서 새롭게 조명되는 인물 김충선을 통해 ‘항왜(降倭)’에 관해 알아본다.항왜란 임진왜란중 조선에 투항한 1만여명의 일본군을 일컫는 말.제작진은 “항왜야말로 임진왜란 승리의 주역”이라고 주장한다.이들을 통해 조총 제조기술과 전술을 전수받는 등 당시 조선의 승리에 이들이 큰 몫을 했다는 것.항왜는 어떤 사람들이며 왜 조국에 등을 돌린 것일까. 답은 도요토미 히데요시와 선조를 중심으로 한 당시 국제정세 속에 있다.무리한 일본의 전국통일 과정에서 생긴 반 도요토미 세력,장기화한 원정에서 싸울 의미를 찾지 못한 일본 군사들,그리고 선조의 항왜 유인정책 등등. 역사스페셜 ‘임진왜란 비사’는 이를 자세히 알아보고자 사야가가 저술한 글을 모았다는 ‘모화당문집’,후손들이 모여산다는 대구 우록마을 집성촌,조선왕조실록과 일본역사서,사야가 연구 학자들을 찾아 한일 양국을 뒤졌다. 채수범기자 lokavid@
  • “”日,北에 외눈박이 분노””, 獨언론 “”자신치부 외면””지적

    (베를린 연합) 북한 공작원의 일본인 납치사건에 대한 일본인들의 충격과 분노는 이해할 수 있는 일이지만 이는 한반도 식민지배와 당시 자신들이 저지른 범죄행위는 외면하는 ‘외눈박이의 분노’라고 독일 언론이 지적했다. 독일의 쥐트도이체 차이퉁은 16일 “북한에 납치됐다 24년 만에 일본을 찾은 일본인 생존자 5명이 겪었던 운명은 냉전의 시대가 빚어낸 산물이며,북한 정권의 매우 잔혹한 면모를 보여준 것”이라고 밝혔다. 이 신문은 그러나 “일본인들이 큰 충격을 받고 분노하는 것은 이해할 수 있지만 일본 내의 집단적 분노에는 유감스러운 부작용(副作用)도 동반돼 있다.”면서 “일본은 북한의 일본인 납치사건에 대한 분노 표출로 북한과 일본간에 상존하는 또 다른 역사적 문제를 밀어내고 있다.”고 지적했다. 신문은 이어 일본 내의 논쟁에서는 과거 일본의 한반도 식민지배와 당시 자국이 저지른 범죄행위는 거의 거론되지 않고 있다고 소개했다. 일본이 수만명의 한반도 여성들을 강제로 일본군 종군위안부로 동원해 성노예로 삼았던 사실을상기시키는 북한의 주장은 정당한 것이라고 신문은 평가하면서 “역사적 범죄는 서로 상쇄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고 강조했다.
  • 책/ 살육과 문명-서구는 전쟁에 이길 수밖에 없었다?

    세계사적으로 중요한 9가지 전투를 문화사적으로 그린 이 책을 읽다 보면 ‘이런 주장을 하는 지은이는 과연 어떤 사람일까?’하는 궁금증부터 든다. ‘서구는 왜 승리했는가’란 제목으로 프롤로그를 시작한 것에서 보듯 서구는 군사적으로 비서구지역을 제패했다는,비(非)서구인들에겐 매우 오만해 보일 수 있는 전제 하에서 저자는 서술하고 있다. 저자는 저술의도에 대해 ‘서구인들은 어떻게 자신의 문명을 이용하여 다른 문명권 사람들을 죽이는 데 그토록 능숙했을까?’‘어떻게 자기들은 죽지 않으면서 그토록 난폭한 전쟁을 벌일 수 있었을까?’라는 의문을 풀어주기 위해서라고 밝힌다. 여기에 덧붙여 ‘과거와 현재,미래에 이르기까지 전 세계의 군사활동에 관한 이야기는 결국 용맹스러운 서구의 무력에 대한 탐구나 마찬가지다.’라는 서구의 ‘절대 우월주의’로 비칠 수 있는 표현까지 마다하지 않는다. 캘리포니아주립대 역사학 교수인 저자는 ‘서구적 전쟁방식’‘전투의 본질’등을 쓴 전쟁사가.지금까지 그리스·로마시대의 전쟁을 주제로 책을 많이 썼다. 그러나 이번 책에서 보듯 그는 세계사의 승리자는 서구이며,그것은 필연적 귀결에 의한 것이란 서구 우월적 시각을 지닌 대표적 지식인이기도 하다. 그는 이 책에서 9가지 전투를 통해 서구 군대 승리의 필연성을 주장한다.먼저 서기전 480년 페르시아와 그리스가 맞붙은 살라미스해전서 그리스가 승리한 요인에 대해 자유를 존중하는 문화의 승리로 든다.즉 그리스인들은 전쟁의 향방이 주로 절대적 가치의 문제에 달려 있다고 믿었으며,개개인의 자유에 가치를 둔 그리스 군대가 병력·경제력에서 압도적으로 우세한 페르시아군대를 물리쳤다는 것이다. 서기전 216년 한니발의 카르타고 군이 로마군을 대파했으나 1년 뒤엔 로마군이 같은 장소의 전투에서 승리한 것에 대해서도 비슷한 잣대를 댄다. 즉 법치체제를 갖춘 로마군은 1년만에 완전히 새로운 군단을 만들어 나선 반면 전제군주제에서 벗어나지 못한 카르타고는 1차전투에서 승리했음에도 불구하고 병력을 충원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아울러 한니발은 수만명의 강인한 군사를 거느렸지만 로마의 공화주의와 시민군국주의라는 얼굴 없는 제도와 마주하게 됐으며,시민이야말로 가장 치명적 학살자였다고 덧붙인다. 이러한 분석은 1942년 벌어진 일본과 미국의 미드웨이 해전에서도 이어진다.당시 미군은 개인주의자,일본군은 사고력 없는 자동기계였다며 미국의 승리는 정치적·사회적·문화적 제도 전체에 뿌리를 두었다고 주장한다. 그는 그러나 미국의 베트남전 패배 원인에 대해선 다소 모순된 논리를 들이댄다.즉 자기비판에 충실한 전통에 편승해 미국 언론은 전쟁의 부도덕성을 부추기고 베트남을 동정하는 보도를 집중 내보내면서도 북베트남의 만행에 대해서는 언급을 회피함으로써 미국 전력을 붕괴시켰다는 점,베트남 전투는 민간인과 구분이 안되는 적,정글,게릴라작전 등으로 전통적 타격전이 불가능했다는 점을 주장한다. 사회·문화적 체제,가치의 문제로 전투의 향방이 갈렸다는 앞서의 주장에서 많이 벗어나 있음을 알 수 있다.3만 2000원. 임창용기자 sdragon@
  • 새달 3일 개봉 YMCA야구단/ 갓쓰고 한복입고 ‘스윙’ 조선 최초야구 ‘폭소 홈런’

    새달 3일 개봉하는 김현석 감독의 데뷔작 ‘YMCA야구단’(제작 명필름)은 특화한 장점이 뚜렷한 코미디 영화다.무엇보다 작품의 소재.100여년전 조선 최초의 야구단 이야기라니! 귀밝은 관객이라면 진작에 꿰고 있을 주인공들의 면면도 기대치를 훌쩍 끌어올린다.송강호가 도포자락 휘날리며 야구방망이를 휘두르고,김혜수는 조신한 신여성 옷차림으로 조선 최초의 야구단을 이끄는 감독이다. 역시나,영화는 송강호의 별쭝난 캐릭터로 단단히 점수를 벌고 들어간다.돼지 오줌보로 만든 축구공을 버선발로 이리저리 굴리는 익살맞은 모습은 관객들을 덮어놓고 ‘무장해제’시킨다.그의 극중 역은 글공부보다는 운동이 더좋은 젊은 선비 이호창.YMCA회관에서 선교사들과 야구를 하는 신여성 민정림(김혜수)을 본 그날부터 ‘베쓰뽈’(베이스볼)을 향한 넘치는 호기심을 주체하지 못한다. 극의 무대는 을사조약 체결로 불안한 정국이 이어지던 1905년의 황성(서울).그즈음의 종로거리,동서양의 문물이 혼재하는 풍속을 재현한 오픈세트 자체가 대단한 볼거리다.호창은난생 처음 보는 야구공도 신기하거니와 야구의 매력을 또랑또랑 설파하는 정림에게도 꼼짝없이 맘을 빼앗긴다.“지금 베이스볼을 하게 되면 조선 최초의 야구선수가 됩니다.”라는 정림의 설득에 빠져 서당을 맡으라는 아버지(신구)의 분부는 귓등으로 흘려듣는 판이다. 신분 고하를 막론하고 야구가 좋아 한데 뭉친 조선 최초 YMCA야구단.모자 대신 갓,유니폼 대신 헐렁한 한복을 입은 선수들이 폭소를 연발케 한다.외교관인 아버지를 따라 세계여행을 하고 돌아와 말끝마다 “∼한답니다.”식의 경어체를 구사하는 정림,친일파 아버지를 둔 호창의 단짝친구 광태(황정민)가 호창과 함께 이야기의 틀거리를 세우는 인물들이다.정림과 호창이 은근한 로맨스를 엮는 것도 극의 재미를 돋우는 큰 흐름. 자칫 코믹 상황극으로 들뜰 영화를 균형 잡아주는 소재는 항일(抗日)이다.정림의 애인이자 동경유학생으로 항일운동에 가담해온 야구단의 투수 대현(김주혁)이 그 몫을 구현하는 캐릭터.일제에 맞서 정림의 아버지가 자결하자 대현은 정림과 함께 친일파 테러를 벌인다.YMCA야구단이 일본군 클럽팀과 자존심을 걸고 대결하는 장면들도 항일 메시지를 돋을새김하는 데 주효했다. 보기 드문 코믹 시대극은 내내 입가에 미소를 물게 만든다.시나리오(감독이 직접 썼다.)의 재치를 감지할 수 있는 대사들도 감미료 노릇을 톡톡히 했다.‘스트라이크’가 ‘수투락’(秀投樂·빼어나게 잘 던지니 즐겁다)으로 둔갑하고,아버지 상을 당한 정림 앞에 뜬금없이 조문 대신 호창의 연애편지가 읽히는 장면 등은 객석을 요란스레 뒤집어놓을 만하다. 그러나 미덕만큼이나 아쉬운 대목들도 눈에 띈다.뭔가 허전하다 싶은 뒷맛은,지나치게 흐릿한 선악 개념과 촘촘하지 못한 갈등구도 탓.대현이 광태의 아버지를 암살하려다 실패한 뒤 둘 사이에 고개든 갈등이 ‘술에 물탄 듯’어물쩍 넘어간 것도 관객을 뜨악하게 만들 성싶다. 황수정기자 sjh@
  • 한가위/안방서 즐기는 TV영화(20일)

    ◆글래디에이터(SBS 오후9시45분) 리들리 스콧 감독이 지난해 아카데미 5개부문상을 휩쓴 화제작.로마시대 검투사로 출연하는 러셀 크로의 카리스마가 돋보인다. 서기 180년.로마황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친아들 코모두스(호아킨 피닉스)를 제치고 평소 총애해 온 막시무스 장군(러셀 크로)에게 황위를 넘기려고 한다.이에 분노한 코모두스가 황제를 죽이고 막시무스 가족까지 몰살하자 검투사로 전락한 막시무스는 복수를 벼른다. ◆태양의 제국(EBS 낮12시) 주연 존 말코비치,감독 스티븐 스필버그.상하이 외국인 자치구의 부유한 영국인 가정에서 자란 제이미는 비행사가 꿈인 11세 소년.태평양전쟁으로 피란길에 올랐다가 어머니를 잃고 눈물겨운 홀로서기에 들어간다.일본군에게 체포돼 포로수용소에 갇혀 ‘가미카제’파일럿들을 보며 동경과 비애를 함께 느끼는데….스필버그 감독의 작가정신을 살펴볼 수 있는 반전영화. ◆런딤(MBC 오후2시55분) 100% 컴퓨터로 작업한 국산 디지털 3D애니메이션.사람의 몸에 센서를 부착한 뒤 동작을 일일이 찍어 다시 작품 속 캐릭터에 입히는,이른바 ‘모션캡처’방식을 도입했다.덕분에 움직임이 놀랄 만큼 부드럽고 사실적이다. 국가간 장벽이 완전히 사라진 2050년이 무대.핵폐기물을 이용해 세계정복을 노리는 비밀단체 네서스와 지구수호단 ‘그린 프론티어’의 대결을 그렸다.신세대 탤런트 김정현과 소유진이 목소리 연기를 맡았다.
  • 前 동해선 기관사 강종구옹 “통일기적 울리며 북녘땅 달리고파”

    “남북을 잇는 열차가 기적을 울리며 다시 달리는 모습을 살아서 볼 수 있다니 꿈만 같습니다.후배 기관사들과 함께 반세기 전보다 성능이 월등한 기관차를 몰고 원산을 거쳐 시베리아 벌판과 북한의 정든 마을을 찾아 달려보고 싶습니다.” 해방 전이던 1942년부터 44년까지 함흥지방철도국 고성기관구 소속 기관사로서 동해북부선을 따라 강원도 양양과 함경남도 원산을 오가며 열차를 운행했던 강종구(姜鍾九·81·강원 고성군 현내면 대진리)옹은 한국동란으로 끊긴 동해선 철도 연결 공사가 18일 시작되자 새로운 감회에 젖었다. 당시에는 석탄을 때는 증기기관차가 하루 왕복 12회 운행했고 5∼6량의 화물칸과 3량의 일반 칸이 연결됐다.금강산을 통과하는 동해북부선은 일본과 외국의 왕족이 이용하기도 했다. 강옹은 “나라를 잃고 일본인 기관사의 차별 속에 일했지만 나름대로 보람과 낭만도 있었다.”면서 “식량을 구하려고 남쪽으로 이동하던 난민들을 기관실에 숨겨준 일이 기억에 남는다.”고 50여년 전의 추억을 떠올렸다.그는 44년 일본군으로 끌려가 중국에서 탈출한 뒤 광복군으로 활동하다 해방 후 귀국했다. 고성 조한종기자 bell21@
  • 9월의 독립운동가 고이허 선생

    국가보훈처는 29일 ‘9월의 독립운동가’로 조선혁명당 중앙집행위원장을 지내며 만주지방에서 항일무장투쟁을 벌이다 일본군에게 붙잡혀 총살된 고이허(高而虛·1902∼1937)선생을 선정했다. 1902년 황해도 수안에서 태어난 고이허(본명 최용성) 선생은 배재고보 재학시절 학생운동에 뛰어들어,항일투쟁을 시작했다.이로 인해 일본 경찰의 수배를 받게 되자,선생은 1920년 중반 러시아를 거쳐 만주로 망명,1930년대 중반까지 본격적인 항일무장투쟁을 펼쳤다. 특히 선생은 1929년 분열돼있던 만주지방 독립운동단체들을 통합,국민부·조선혁명군·조선혁명당을 세워 효율적인 독립운동을 펼치는 데 큰 기여를 했다.이후 선생은 위 단체들의 중앙집행위원장 등 중추간부를 맡아 조선혁명당 계열의 독립운동가들에게 민족사회주의 이념과 사상을 제공했다. 1936년 12월 관전현 보달원에서 일본군 토벌대와 전투 중 붙잡힌 선생은 다음해 2월 봉천성 부근에서 일본헌병대에게 총살돼 35세의 나이로 순국했다. 서울 독립기념관과 서대문형무소 역사관은 9월 한달 동안별도 전시실을 마련,유품을 전시해 선생의 뜻을 기리기로 했다. 오석영기자 palbati@
  • 미사여구 분칠한 ‘친일문인 행적’, 민족작가회의 참회의 고백

    ‘마쓰이 히데오/그대는 우리의 오장 우리의 자랑/그대는 조선 경기도 개성 사람/인(印)씨의 둘째 아들 스물 한 살 먹은 사내/마쓰이 히데오/그대는 우리의 가미가제 특별공격대원/(중략)/우리의 동포들이 밤과 낮으로/정성껏 만들어 보낸 비행기 한 채에/그대,몸을 실어 날았다가 내리는 곳/쪼각쪼각 부서지는 산더미같은 미국군함/수백 척의 비행기와/대포와 폭발탄과/머리털이 샛노란 벌레같은 병정을 싣고/우리의 땅과 목숨을 뺏으러 온/원수 영미의 항공모함을/그대/몸뚱이로 내려쳐서 깨었는가/깨뜨리며 깨뜨리며 자네도 깨졌는가’ 미당 서정주가 카미가제 특공대로 전사한 조선청년을 위해 썼다는 ‘송정오장송가(松井伍長頌歌)’를 읽으며 시방 우리는 슬프다.고운 시심으로 ‘질마재 신화’를 빚어낸 미당이,자살특공대로 나섰다가 산화한 조선 청년 ‘마쓰이 오장’의 죽음을 찬양한 이 시를 읽으며 문학사에 커다란 여백 하나를 남겨야 하는 일 때문에 참으로 슬프다.그러나 그의 재능이 아무리 준절하고 시심이 아름다워도 그를 ‘아름다운 시인’이라고찬양할 수는 없다. 이렇게 민족의 아픔을 등지고 입신양명의 길을 내달은 친일문인들의 반민족행위가 최근 공개됐다.민족문학작가회의(이사장 현기영)가 선배 문인들의 훼절과 반민족적 문학행각을 반성하는 참회와 함께 공개한 친일문학의 실체는 광복후반세기를 넘긴 지금에도 새삼 낯뜨겁다 친일단체 일진회의 수령을 지낸 송병준이 일개 일본군 참모에게 보낸 ‘삼가 재배하고 아뢴다.’는 편지글이나중추원 고문 출신인 윤치호의 ‘반도학도 출진독려문’은 오히려 가소롭다. 우리에게 신체시로 잘 알려진 최남선은 ‘보람있게 죽자’는 글을 통해 ‘오늘날 대동아인으로서 이 성전에 참가함은 대운 중의 대운임이 다시 의심없다.(중략)순정의 청년들아,공론을 집어치우고 대운에 들어서서 신선하게 역사적 임무를 담착하여 보세나.’라며,내놓고 조선인들의 참전을 독촉했다.소설가 김동인은 문인들에게 “스스로 내 손으로 총을 잡지 못하고 대포를 잡지 못하였다고 퇴축(退縮)치 말고 이 전쟁을 좌우할 중차대한 열쇠를 잡았노라는 자각과 긍지 아래 우리의무기인 문필을 가장 효과있게 이용할 것이다.”라는 궤변을 늘어놓았다.카프(KAPF)결성에도 참여한 팔봉 김기진은 ‘신전에 맹세하네 무엇부터 맹세할까/열가지 백가지를 한목 용서 못하리라/천황께 이 한몸 바쳐 뒷일 걱정 안하오.’라며 차마 못할 부끄러움까지 고백하는 용기를 보여주었다. 이런 친일 아첨 행각은 대구 출신 김문집이란 자의‘조선민족 발전적 해소론 서설’에서 극치를 이룬다.그는 “내선의 민족적일원화는 분수식으로 ‘A+c(조선민족)/A+b(대화민족)=1’로 표현된다.”며“1은 대화(大和)민족이나 조선민족이 아니라 양 민족의 우생학적 합명제,즉 한만(漢滿)남양(南洋)등의 외래 혈액을 약간 조미한 동근적(同根的)내선고대민족(內鮮古代民族)의 일대 재창조”라는 황당무계한 논리를 끌어대기까지 했다.그는 결국 일본에 귀화했다. ‘사나운 국경에도/험준한 산협에도/네가 날아가는 곳엔/꽃은 웃으리 잎은춤추리라’라고 한 모윤숙의 시가 장산곶매를 노래했더라면 얼마나 좋을까만은 그에게는 불의의 시대에 맞설 지조가 없었다.그래서 광강소년항공장(廣岡少年航空兵)에게란 제목의 이 몹쓸 글을 남긴 것이다.민족문학작가회의는 “선배문인들의 역사적·문학적 과오에 대해 후진들이 속죄하고 자성하는 ‘과거사에 대한 문단의 고해성사’”라고 이번의 친일작가 선정과 그에 따른 참회선언문 발표에 의미를 부여했다. 심재억기자
  • “”평생을 위안부 할머니들의 아들되어…”” 선대의 죄값 치르는 日人

    “저라도 대신 죄값을 치르고 싶습니다.” 광복절을 하루 앞둔 14일 ‘한국정신대문제 대책협의회’가 주최한 521회 수요 정기집회에 한 50대 일본인 남자의 모습이 보였다.일본 나고야(名古屋)시 후지소학교 교사인 오노 마사미(小野政美·55).그는 집회가 열린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에서 위안부 할머니들의 아픔을 달래주려는 듯 손을 꼭 쥐었다. 오노는 2년째 방학 때면 어김없이 위안부 할머니들이 기거하는 경기 광주‘나눔의 집’에서 자원봉사자로 일하고 있다.오랜 생채기로 악몽에 밤잠을 설치는 할머니들 곁에서 말벗도 되고 잔심부름도 마다하지 않는다. 한달 이상 숙식을 함께 하면서 할머니들과 잔정도 많이 쌓았다.이곳을 찾는 일본인들을 안내하기도 한다. “지난 91년 일본을 방문한 위안부 할머니들의 참상을 듣고 평생을 바쳐 속죄하겠다고 결심했습니다.” 중·고교 시절 모친으로부터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형과 누나가 굶어 죽은 얘기를 들으며 항상 ‘전쟁의 피해자’라고만 생각했던 스스로가 부끄러워졌다고 했다.오노는 특히 “직업군인으로서 한반도 침략에 동참했던 부친과 한국인의 악연을 결자해지(結者解之) 차원에서 풀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뒤 오노는 ‘구(舊)일본군에 성적(性的) 피해를 당한 여성을 지지하는 모임’과 ‘일본인을 위한 학습회’를 만들어 운영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95년 이후 매월 넷째주 토요일에는 나고야시의 한 백화점 앞에서 일본 정부의 공식 사과와 보상을 요구하는 1인시위도 벌이고 있다. 일본 시민과 학생들에게 위안부 할머니들의 참혹한 실상이 담긴 사진과 비디오 테이프도 보여 줬다.그는 “믿기지 않는다며 하염없이 우는 주부들과 일본 정부의 태도를 이해할 수 없다고 격분하는 학생들을 보면서 조금이나마 보람을 느꼈다.”고 말했다. 이날 집회에서 한복을 곱게 차려 입고 구호를 외치던 김순덕(金順德·80)할머니는 “한가족처럼 정이 들었다.”면서 “한국 정부나 한국인보다 훨씬 낫다.”고 했다.김 할머니는 “각종 집회에 참석하기 위해 일본을 방문할 때마다 오노가 일본 우익단체의 테러로부터 우리를 보호하기 위해 여관문 앞에서 밤을지새는 것을 보고 감동을 받았다.”고 눈시울을 붉혔다.또 다른 할머니는 “오노가 처음엔 부끄럽고 참담해 한국땅을 밟지 못하겠다고 하더니,이제는 위안부 할머니들의 ‘아들’이 됐다.”고 웃었다. 오노는 할머니들의 삶이 담긴 역사관을 일본 땅에 세워 역사의 교훈으로 남기는 것이 그의 꿈이다. 오노는 “지난 10년 동안 61명의 위안부 할머니가 세상을 떠났는데,한·일양국 정부는 도대체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답답하다.”고 꼬집었다. 집회에 이어 종로 YMCA앞길까지 행진을 마친 오노는 “위안부 피해자를 위한 싸움은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려는 몸부림”이라며 할머니들의 손을 잡고‘나눔의 집’으로 발길을 돌렸다. 구혜영기자 koohy@
  • 항일투쟁 3형제 건국훈장 애국장

    경남 거창군 출신으로 항일투쟁에 앞장 섰던 3형제가 나란히 건국훈장 ‘애국장’을 받는다.형제나 자매들이 독립운동을 벌였던 공적이 인정돼 나란히 훈장을 받는 것은 이례적이다. 13일 마산보훈지청에 따르면 일제때 의병으로 참가했다가 일본경찰에 붙잡혀 희생된 박화기(朴華箕·1871년생)·수기(洙箕·1873년생)·민기(珉箕·1875년생) 3형제 애국지사가 애국장 수상자로 선정됐다.15일 광복절 57주년 기념식장에서 유족들이 훈장을 받는다. 거창군 북상면 월성리에서 태어난 3형제는 1905년 월성리 서당에서 지역민 40여명과 함께 쇠퇴한 국운을 회복하기 위해 ‘월성의병’을 조직,국가의 앞날을 토론하고 의병활동에 나서기로 결심했다. 이들은 덕유산 의병들에게 자금 및 군수물자를 조달해 주다 이듬해인 1906년 9월 호서의병과 합류,전북 장수와 무주전투에서 일본군 수십명을 살상하는 전과를 올렸다.1907년에는 거창읍 일본경찰 주재소를 습격했고,1908년에는 구천동과 삿갓골전투에서 일본군들을 크게 무찔렀다. 그러나 1909년 전북 장수군 계북전투에 참가했다가 친일파의 밀고로 일경에 체포돼 박화기·수기 형제는 총살당했다.막내 민기는 일본 경찰에 체포돼 7년간의 옥고를 치른 뒤 고문 후유증으로 1939년 숨졌다. 창원 이정규기자 jeong@
  • [우리고장 NGO] 제주 4·3연구소

    제주 4·3연구소(소장 강창일 배제대 교수)는 1989년 5월 제주도 안팎의 문화예술·학계 인사들이 4·3문제를 심층적으로 다루기 위해 설립한 순수 민간 연구단체다. 4·3의 역사적 진실을 밝히고 이에 대한 정당한 평가를 통해 우리 역사 발전에 올곧게 기여함을 목표로 하고 있다.‘순이삼촌’‘변방에 우짖는 새’의 작가 현기영이 초대 소장이었고,고창훈 제주대 교수(2·3·4대)와 지금의 강창일 소장 체제로 이어지고 있다. 주요 활동으로는 ▲4·3피해 증언조사 및 자료 수집 ▲4·3유적지 발굴 및순례 ▲4·3학술세미나 ▲4·3추모 및 대외사업 ▲출판사업 ▲역사교실 개최 등을 꼽을 수 있다. 4·3피해 증언조사와 자료 수집 활동은 연구소 개소 1년 전부터 진행된 북제주군 애월·조천읍 지역에 대한 증언 채록과 피해조사를 시작으로 본격화됐다. 지난 92년 4월 북제주군 구좌읍 다랑귀굴에서 4·3피해 유골 11구를 발굴,4·3 진상 규명에 획기적인 단초를 마련했고 2년 뒤인 94년 3월에는 애월읍발이오름에서 유골 1구를 추가로 발굴하는 개가를 올렸다. 4·3 당시 제주도내 유일한 일간지였던 제주신보의 1947년 1월부터 48년 4월까지의 4·3관련 기사를 찾아내 영인본으로 출간했고 47년에 작성된 남로당 문건을 발굴,연구자료로 공개하기도 했다. 4·3유적지 발굴 사례로는 남제주군 안덕면 큰넓궤,북제주군 조천읍 낙선동 4·3성터 등 10여개소가 있으며,89년부터 매년 2회이상 이들 유적지 순례행사를 갖고 있다. 4·3연구단체라는 특징에 맞게 학술세미나와 토론회 개최,출판 및 교육 등의 활동도 왕성하다. 90년 ‘제1회 사월제 학술세미나’를 시작으로 ‘제주4·3 치유를 위한 도민토론회’‘제주4·3 제50주년 기념 동아시아 평화와 인권 국제학술대회’‘4·3특별법 시행과 그 과제’ 등 그동안 10여회에 걸쳐 전국 규모의 세미나와 학술토론회를 주관했다.‘4·3연구회보’ 등 정기간행물 5종과 ‘이제사 말햄수다’ 등 단행본 10여권을 발간하는 한편 ‘제주민중항쟁사’‘다랑쉬의 슬픈 노래’ 등 다수의 영상자료를 제작,4·3 홍보자료로 활용하고 있다. 최근에는 88년부터 92년까지 제주도내 일간지와 중앙지,주간지 등에 보도된 4·3관련 기사를 모은 ‘제주4·3 신문자료집’을 발간,눈길을 끌었다. 이밖에 제주의 선사유적,고려·조선시대 유적,일제 강점기 시대의 일본군유적,4·3유적지 등의 기행문화를 선도하면서 제주섬에 점철된 고통과 수난의 역사를 극복하며 살아온,제주인의 독특한 공동체 정신을 이해시키기 위한 노력도 계속하고 있다. 제주 김영주기자 chejukyj@
  • 평화여정 나선 한·일대학생

    광복절을 앞두고 한·일 청년 대학생들이 어두웠던 역사의 아픔을 인식하고 공유하며 평화의 미래를 다짐하기 위한 여정을 준비,주목을 받고 있다. 화제의 주인공은 한국어를 배우고 한국문화를 체험하기 위해 한남대를 방문중인 일본 나고야(名古屋) 난잔(南山)대 및 오키나와(沖繩) 국제대학 학생 25명과 한남대 학생 및 임원 15명. 이들은 12일 오전 10시 한남대 대학교회에서 김모(86) 할머니 등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2명의 역사적 증언을 들은 뒤 ‘역사의 아픔을 인식하고 평화의 미래로 내달리자.’라는 주제의 세미나로 여정을 시작했다. 이들은 앞으로세계 최초의 성노예 테마 인권박물관인 경기도 퇴촌의 일본군 위안부 역사관을 방문하고,10여명의 피해자 할머니들이 공동체를 이뤄 살고 있는 ‘나눔의 집’에서 1박2일 동안 봉사활동을 펼치고 선물과 성금도 전달할 예정이다. 이어 마지막 날인 14일에는 판문점을 방문해 한반도 분단의 책임있는 당사자인 일본에 대한 역사인식 교육을 촉구하고 냉전체제 종식 및 한반도 평화를 기원하는 기도회를 갖게 된다.이번 여정에 참가한 오키나와 국제대학 사회학과 4학년 야마모토 게이코는 “세미나를 통해 할머니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만으로도 그분들의 아픔을 느낄 수 있었다.”며 “이번 행사가 긍정적인한·일 관계로 나아가는 시발점이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대전 이천열기자 sky@
  • [씨줄날줄] 보천보 전투

    북한의 김일성 전 주석은 1930년대 초 감옥에서 풀려난 뒤 중국의 항일 유격대에 가담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그 때부터 성주라는 본명 대신 일성(一星)을 쓰다가 나중에는 일성(日成)으로 개명했다고 한다.남한에서는 오랫동안 김 전 주석이 ‘항일투쟁의 영웅 김일성’과 다른 인물이라고 주장해왔으나,이제 학계에서는 김 전주석이 바로 그 김일성임을 인정하는 데 이의가 없는것 같다. 김 전주석은 대략 32년부터 40년까지 만주 일대에서 동북항일연군(東北抗日聯軍) 소속으로 중국 사령관의 지휘를 받으며 일본군과 싸웠다.34년에는 동북항일연군 제1로군 제2군의 2독립사 1단 3지대 전사였는데 계속 진급해 나중에는 제6사장의 자리에 올랐다고 한다.김 전 주석은 일본 군부와 ‘만주국’정부가 대대적인 유격대 토벌 및 투항 권유에 나서면서 더 이상 활동이 어렵게 되자,40년 10월 소련으로 넘어가 소련군 특별여단에 편입됐다가 광복후 돌아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북한이 내세우는 김 전 주석의 최대 항일 전적은 1937년 6월4일 만주 접경함경남도 갑산군보천면 보천보 전투다.김 전 주석이 이끄는 200명의 유격대는 면사무소,경찰 주재소 등을 습격해 갇혀있던 주민들을 구하고 불을 지른뒤 만주로 철수했다가 일본 경찰이 추격해오자 회군해 격퇴함으로써 일제를 깜짝 놀라게 했다고 한다.학계에서 보천보 전투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김일성 유격대가 ‘재만(在滿)한인조국광복회’와 협조 아래 전투를 치른 데다,그 전에는 한반도가 아니라 주로 만주에서 ‘비적’으로 활동했기 때문이다.아울러 ‘조국광복회’ 조직은 보천보 전투를 계기로 739명이 체포됐으며훗날 ‘갑산파’라는 이름으로 숙청될 때까지 북한 정권을 이끈 주요 파벌가운데 하나였다. 보천보 전투가 고교 2·3학년용 일부 한국근·현대사 검정교과서에 실렸다고 한다.10여년 전만 해도 반공 이데올로기에 묻혀 ‘김일성은 가짜’라고 깎아내린 것을 생각하면 정말 격세지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그동안 북한은 과장되고 확증없는 사실로 김 전 주석을 우상화해왔다.그러나 우리는 허구로부터 사실을 가려내 비판적으로 평가할 필요가 있다.그래야 분단 과정과 남북한의 정치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고 통일도 앞당길 수 있기 때문이다. 황진선 논설위원 jshw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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