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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롤러코스터 탄 첫 만남… 李 ‘칭찬의 기술’에 미소 지은 트럼프

    롤러코스터 탄 첫 만남… 李 ‘칭찬의 기술’에 미소 지은 트럼프

    이재명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25일(현지시간) 첫 정상회담은 극단의 ‘롤러코스터’를 탔다. 트럼프 대통령의 ‘기선 제압’식 소설미디어(SNS) 메시지에 긴장도는 회담 시작도 전에 최고조에 이르렀지만, 이 대통령은 ‘칭찬 전략’으로 맞섰고 회담은 우려와 달리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진행됐다. 트럼프 ‘기선제압’ SNS회담 직전 “사업 못 해” 폭탄 발언이어 “교회·미군기지 압수수색” 약속된 회담도 30분 밀려 긴장감회담을 2시간 40분 앞두고 트럼프 대통령이 트루스소셜에 올린 메시지에 방미 수행단은 발칵 뒤집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인가. 숙청 또는 혁명같이 보인다”며 “거기서 사업할 수 없다”고 썼다. 10분 뒤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은 브리핑에서 관련 질문을 받자 상황을 인지하지 못한 듯 “공식 계정인지 확인을 해 봐야 한다”며 ‘가짜뉴스’ 가능성까지 언급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돌발 발언을 두고 ‘협상 전략’,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에 대한 비판’이란 해석들이 나오며 혼란은 가중됐다. 이 와중에 트럼프 대통령의 오전 행정명령 서명 일정이 길어지면서 약속 시간을 넘기는 상황까지 벌어졌다. 트럼프 대통령은 두 번째 폭탄도 던졌다. 행정명령 서명 후 기자들과 질의응답에서 ‘한국 정부의 교회에 대한 압수수색, 미군기지에서 정보를 수집한 것’을 언급하며 “우리는 그런 일을 용납할 수 없다”고 말한 것. 땀을 쥐게 한 1시간 회담李 “금빛 집무실 품격” 분위기 띄워“北 트럼프 월드서 골프를” 농담도트럼프 “의지 있는 지도자” 화답예정된 시간보다 33분 늦은 낮 12시 33분, 이 대통령이 탄 차량이 백악관 웨스트윙에 도착했다. 정문에 모습을 드러낸 트럼프 대통령은 이 대통령과 웃으며 악수하고 이 대통령의 어깨를 두드리며 안내했다. 10분 후 두 정상은 백악관 오벌 오피스(집무실)에 나란히 앉았다. 공개 소인수 회담을 시작하며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이 와서 (미국의 조선 산업을) 재건하기를 바란다”, “한국이 미국의 군사장비를 많이 구매할 것을 기대한다”며 압박성 발언을 이어 갔다. 여기에 이 대통령은 칭찬 공세로 맞섰다. 이 대통령은 오벌 오피스를 금색 장식으로 꾸민 데 대해 “품격이 있어 보이고 미국의 새로운 번영을 상징하는 것 같다”고 운을 뗐다. 그러고는 “다우존스지수가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 미국이 다시 위대해지고 있는 것 같다”, “피스 메이커로서의 역할이 눈에 띈다”, “북한에 트럼프월드를 지어서 거기서 저도 골프를 칠 수 있게 해 달라” 등 트럼프의 관심사를 반영한 ‘맞춤형 칭찬’을 이어 갔다. 그러자 무뚝뚝한 표정을 짓던 트럼프 대통령도 웃음을 보였다. 이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자신의 친분을 강조하며 “한국의 어느 지도자보다도 북한의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의지가 있는 대통령”이라고 화답했다. 결정적 한방 ‘피스메이커’트럼프 대북 해결사 치켜세운 뒤李 “난 페이스메이커” 쐐기 박아예정된 질의응답 시간도 훌쩍 넘겨한방을 터뜨린 것은 ‘피스메이커·페이스메이커’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북한) 문제를 풀 수 있는 유일한 인물이 트럼프 대통령”이라며 “대통령께서 피스메이커를 하시면 저는 페이스메이커로 열심히 지원하겠다”고 말했다. 이 발언이 통역되자 트럼프 대통령은 물론 표정을 잘 풀지 않던 JD 밴스 부통령을 포함한 미측 참석자들이 일제히 소리 내어 웃기 시작했다. 이어 진행된 언론 질의응답도 화기애애한 분위기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저희(이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가 방중을 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같이 전용기에 탑승하면 연료를 절감할 수 있겠죠”라며 농담을 던졌다. 껄끄러울 수 있는 순간도 두 정상 모두 자연스럽게 넘어갔다. 트럼프 대통령은 ‘교회 압수수색’과 관련한 질문이 나오자 이 대통령에게 답변의 기회를 넘겼고, 이 대통령의 설명을 들은 후 “오해라고 확신한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 과정에서 자신을 수사·기소한 잭 스미스 특별검사를 ‘정신나간, 역겨운 인간’이라고 언급한 뒤 “농담”이라고 말해 좌중에서 웃음이 터지기도 했다. 또한 트럼프 대통령이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언급하며 “한국과 일본을 다시 화해시키기가 결코 쉽지 않았다”고 하자 이 대통령은 “미리 일본 총리와 만나서 대통령께서 걱정할 문제를 다 정리했다”며 민첩하게 대처했다. 소인수 회담과 약식 언론 질의응답은 예정된 30분을 넘겨 50분가량 진행됐다. 트럼프 공략법 통했다李 “트럼프 ‘거래의 기술’ 읽은 대로참모들 우려 상황 안 올 거라 확신”외신 “호스트 돋보이게 했다” 호평이 대통령은 이날 정상회담 직후 미국 싱크탱크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초청 강연 자리에서 “우리 참모들 사이에서는 ‘젤렌스키·트럼프 (회담 당시와) 같은 상황이 벌어지지 않을까’ 우려했다”고 전했다. 그러나 이 대통령은 “저는 이미 그러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알고 있었다”며 “트럼프 대통령이 쓴 ‘거래의 기술’을 읽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책에) 상대가 감내하기 어려운 조건을 던지지만, 최종적으로 불합리한 결론에 이르게 하지는 않는다는 것을 이미 본인이 써 놓았다”고 했다. BBC는 트럼프 대통령의 SNS 메시지에 대해 “(한국 대표단은) 자신들이 지뢰밭이나 함정에 빠진 것이 아닌지 의심했을 것”이라며 “그러나 한미 정상회담에서 매복 공격은 없었다”고 전했다. 미 정치 전문 매체 폴리티코는 “이 대통령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한반도의 새로운 평화 시대를 여는데 도움을 줄 것을 요청하며 호스트를 돋보이게 했다”고 평가했다.
  • 일본 도쿄 향하는 李대통령 “한일 협력 확대가 저의 신념”

    일본 도쿄 향하는 李대통령 “한일 협력 확대가 저의 신념”

    취임 후 처음으로 일본을 방문하는 이재명 대통령이 일본 언론 공동 인터뷰에서 “한일 간 협력을 확대해 나가는 것이 저의 신념이자 우리 정부의 대일 외교 원칙”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이번 방일에서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와 안보 경제 등 여러 분야의 공조 방안을 허심탄회하게 논의하겠다고 했다. 이 대통령은 23일 오전 일본 출국 전 공개된 아사히신문, 마이니치신문, 니혼게이자이신문, 산케이신문과의 서면 인터뷰에서 “나쁜 측면 때문에 유익한 면을 포기할 필요는 없다”며 이렇게 말했다. 과거사 문제에 대해서는 “해결에 이르지 못한 여러 문제가 남아 있는 것도 사실”이라면서도 “문제에 너무 매몰돼선 안 된다”고 했다. 이어 “현실을 인정하고 서로 존중하고,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일은 최대한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일본군 위안부와 강제동원 피해자 문제 등 과거 보수 정부가 합의한 내용을 뒤집지 않겠다는 뜻도 거듭 밝혔다. 앞서 이 대통령은 지난 21일 요미우리신문과의 인터뷰에서도 이와 관련해 “국가 간 약속을 뒤집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한 바 있다. 다만 이 대통령은 “강제동원과 위안부 문제는 대표적인 과거사 문제이자 국민으로 매우 가슴 아픈 일”이라며 “경제적 문제가 아닌 진실과 감정의 문제로 사실을 인정하고 사과하며 진심으로 위로하는 과정이 더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이 대통령은 이날 일본·미국 정상과의 연쇄 회담을 위해 순방길에 올랐다. 이 대통령은 오늘 오후 이시바 총리와 정상회담을 진행하고, 이 밖에 재일동포와 일본 의회 주요 인사들을 잇따라 만난다.
  • 경제 따로, 과거사 따로… 미래에 힘 싣는 이재명식 ‘新대일외교’

    경제 따로, 과거사 따로… 미래에 힘 싣는 이재명식 ‘新대일외교’

    이재명 대통령이 한일 일본군 위안부 합의와 강제동원 피해자 제3자 변제 합의 등 박근혜·윤석열 정부에서 이뤄진 양국 합의를 유지하겠다고 밝힌 것은 ‘실용 외교’ 기조에 따른 판단으로 풀이된다. 합의를 파기해 정책 일관성을 떨어뜨리고 양국 관계를 악화시키기보단 관계 개선에 방점을 찍으면서 과거사는 과거사대로 반성을 요구하겠단 것이다. 이 대통령은 21일 보도된 일본 요미우리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위안부·강제동원 피해자 문제에 대해 “가급적 현실을 인정하고 서로 이해하려고 노력하며 대립적으로 되지 않도록 해결해 나가자”고 했다. 또 “과거 합의의 외교적 의미를 비롯해 피해자의 명예와 존엄 회복과 마음의 상처 치유라는 기본 정신을 함께 존중하는 동시에 피해자의 온전한 명예 회복을 위한 해결 방안을 함께 모색해 나가고자 한다”며 “해원(解寃)이라는 말처럼 원한 같은 것을 푸는 과정으로 가야 한다”고 말했다. 2015년 박근혜 정부와 아베 신조 내각의 위안부 합의와 2023년 윤석열 정부와 기시다 후미오 내각의 강제동원 제3자 변제 합의 등이 충분한 여론 수렴을 거치지 않아 각종 비판에 휩싸였다. 일본 정부의 10억엔(약 95억원) 출연을 골자로 한 위안부 합의를 두고 문재인 정부에서는 파기 주장까지 나왔다. 그럼에도 이 대통령은 이런 합의들이 국가 간 약속인 만큼 존중할 수밖에 없다는 한계를 인정한 것이다. 이 대통령은 일본이 “매우 중요한 존재”라며 “한국도 일본에 있어 유익한 존재가 될 수 있다. 양쪽 모두에게 이익이 되는 길을 발굴해 협력할 수 있는 분야를 넓혀 가야 한다”고 말하며 미래에 방점을 찍었다. 이어 “한미동맹은 매우 중요하고 일본에도 미일동맹이 기본 축”이라며 “이를 기반으로 하는 한미일 3국 협력은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헀다. 이 대통령은 일본과의 경제 협력과 관련해 “동아시아를 포함한 태평양 연안국들의 경제협력기구를 확고하게 만들어 나가는 일도 이제는 진지하게 논의해야 할 때가 됐다”고 했다. 또 한일이 미래지향적 관계로 나아가게 만든 계기가 된 1998년 김대중·오부치 공동선언과 관련해 “선언을 계승해 이를 뛰어넘는 새로운 공동선언을 발표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다만 이 대통령은 후쿠시마 등 일본 일부 지역의 수산물 수입 요구 등에 대해서는 “한국 국민의 일본산 수산물에 대한 신뢰를 회복하는 것이 먼저 이뤄져야 한다”고 선을 그었다. 이원덕 국민대 일본학과 교수는 이날 서울신문과의 통화에서 “과거사를 포기한 것은 아니지만 이를 쟁점화하지 않으면서 한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일본과의 협력을 강조해 협상을 보다 유리한 쪽으로 이끌겠다는 전략”이라고 이 대통령 발언을 분석했다. 그러나 시민단체에선 비판의 목소리도 나왔다. 이나영 정의기억연대 이사장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2015년 한일 합의는 반인도적 범죄인 일본군성노예제에 대한 어떠한 인정, 사죄, 배상이 없는 정치적 합의”라며 “정부는 잘못된 합의가 아니라 범죄 피해를 당한 자국민을 돌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97) 할머니도 ‘정신대할머니와함께하는시민모임’ 유튜브 채널에서 “2015년 합의는 절대로 따를 수 없다. 이는 돌려놔야 한다”고 말했다.
  • “북핵, 동결 → 축소 → 비핵화… 위안부 합의 뒤집지 않는다”

    “북핵, 동결 → 축소 → 비핵화… 위안부 합의 뒤집지 않는다”

    이재명 대통령은 북핵 문제와 관련, “1단계에서 핵과 미사일을 동결, 2단계에서 축소, 3단계에서 비핵화를 목표로 하겠다”며 ‘3단계 비핵화’ 해법을 제시했다. 이 대통령이 직접 북핵 해법을 밝힌 건 처음이다. 한일 일본군 위안부 합의 등에는 “번복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했다. 이 대통령은 21일 공개된 일본 요미우리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목표하고 있는 것은 한반도 전역의 비핵화로 중요한 것은 객관적 현실”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인터뷰는 23일 이 대통령의 첫 방일 및 두 번째 한일 정상회담을 앞두고 지난 19일 대면으로 진행됐다. 이 대통령은 “한국 정부는 미국과 긴밀한 공조를 유지하는 가운데 적극적인 남북 대화를 통해 핵을 동결, 축소, 폐기까지 갈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 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남북이) 평화적으로 공존하고 인정·존중하는 공동번영의 길을 찾아야 한다”고 했다. 또 위안부·강제동원 피해자 문제에 대해 “우리 국민으로서는 매우 받아들이기 어려운 지난 정부의 합의지만 국가적 약속이기 때문에 번복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했다. 2015년 박근혜 정부의 위안부 합의, 2023년 윤석열 정부의 강제동원 피해자 제3자 변제 합의를 유지하겠다고 밝힌 것이다. 그러면서 “경제적 문제이기 전에 감정의 문제이므로 진심으로 위로의 말을 건네는 것이 중요하다”고 진심 어린 사과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한중 관계에 대해선 “지리적·경제적으로 뗄 수 없는 가까운 존재로 경쟁, 협력, 대결과 대립적인 측면이 함께 존재한다”며 “다양한 측면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관리해 나가야 한다”고 했다. 이 대통령은 부인 김혜경 여사와 함께 23일 일본으로 출국해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와 정상회담을 진행한다. 다음날 미국으로 향한 뒤 한미 정상회담을 진행하고 오는 28일 새벽 귀국한다. 이 대통령은 이날 수석보좌관회의를 주재하며 “정말 고민되는 건 국가의 국력을 키워야 되겠다는 생각”이라며 “호혜적인 외교안보 정책이 실현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각오를 밝혔다.
  • 금천서 다시 울려 퍼진 “대한 독립 만세”

    금천서 다시 울려 퍼진 “대한 독립 만세”

    구민 500명 한목소리로 만세삼창광복회 회원 10명에게 감사장 수여 뮤지컬·소녀상 헌화식 등 행사 다채유성훈 구청장 “광복 의미 되새기길” 광복 80주년과 개청 30주년을 맞아 서울 금천구 금나래아트홀에는 지난 14일 태극기 수백개가 펼쳐졌다. 이는 금천구가 민족의 해방을 축하하고 구민의 통합을 위해 마련한 ‘구민 대화합을 위한 광복절 경축식’이었다. 금천구민 500여명은 태극기를 꺼내 들고 “대한 독립 만세”를 함께 삼창하며 환하게 웃었다. 이날 금천구는 곳곳에서 평화의 소녀상 헌화식, 태극기 열쇠고리 만들기 체험 부스, 태극기 변천사 전시, 북콘서트 등 광복의 의미를 느낄 수 있는 다채로운 행사를 열었다. 순국선열과 애국지사의 희생을 기리며 광복회 금천구지회 회원 10명에게 감사장도 수여했다. 우용준 광복회 금천지회장은 “광복의 정신은 과거의 기억이 아니라 우리가 계승해야 할 소중한 유산”이라면서 “올바른 역사관을 세우고 공정하고 정의로운 사회를 만드는 게 우리의 과제”라며 행사를 연 유성훈 금천구청장에게도 감사를 표했다. 금천구는 지난해부터 독립유공자 후손과 함께하는 마을살이대학 등 독립유공자 발굴과 지원을 강화하고 있다. 이날 행사에서는 독립운동 사적지 탐방이나 금천 초등학생 독도수호대를 비롯해 금천구가 역사 교육 등을 위해 진행한 사업을 소개하는 영상도 상영됐다. 축하 공연으로는 초등학생 5학년부터 중학생 29명이 남북은 광복을 이뤄 낸 한 민족이라는 주제를 담은 창작 뮤지컬 ‘우리 반 전학생, 리옥순’을 선보였다. 남북 교류를 위한 시범가정으로 서울에 온 평양 출신 리옥순양과 금천구 하늘초 6학년 학생들이 광복 80주년 기념행사에서 선보일 댄스 공연을 준비하며 서로를 이해하는 과정을 그려 냈다. 광복 80주년을 맞아 금천구에 기증된 80㎝ 크기의 달항아리 ‘서울의 달’도 구청 1층에 공개됐다. 달항아리의 웅장함과 아름다움에 감탄한 주민들은 인증샷을 찍기 위해 줄을 섰다. 작품을 기증한 도예 명장 묵심 이학천 작가는 “금천구민들이 달항아리를 보며 해방의 기쁨을 다시 느끼고 희망을 얻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기림의 날’이기도 한 이날 구청사 앞을 오가는 주민들은 평화의 소녀상에 헌화했다. 독산동에 사는 박모(75)씨는 “고모나 어머니뻘인 위안부 피해자 생존자들이 제대로 대우받아야 함에도 오히려 폄하하는 사람이 있어 가슴이 아프다”면서 “이제는 그런 일이 없기를 바란다”며 길게 묵념했다. 유 구청장은 “광복의 의미를 되새기고, 독립을 위해 헌신하신 분들의 고귀한 희생정신을 기리는 문화가 지역사회에 확산되기를 바란다”고 했다.
  • 러 공산당수, 김정은에 광복절 축전 보내 밀착 과시

    러 공산당수, 김정은에 광복절 축전 보내 밀착 과시

    북한 ‘조국해방의 날’(광복절)을 계기로 북러가 다시 밀착 관계를 과시했다. 우크라이나 전쟁 종식을 위한 ‘알래스카 담판’이 ‘노딜’로 끝난 가운데 러시아 측은 북한군 파병에 거듭 감사를 표했다.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러시아 공산당 겐나디 안드레예비치 주가노프 중앙위원회 위원장이 김정은 국무위원장에게 축전을 보내 왔다고 17일 보도했다. 주가노프 위원장은 김 위원장에게 광복 80주년을 축하하며 “오늘의 전쟁 상황은 우리를 더욱 단결시켰으며 80년 전의 그날처럼 우리는 어깨를 겯고 파시즘을 반대해 투쟁하고 있다”며 “쿠르스크주 해방을 도와준 데 대해 진심으로 사의를 표한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정의로운 세계와 우리의 공동 자유를 위해 피를 흘린 영용한 조선군인들의 위훈을 영원히 잊지 않을 것”이라며 양국 관계가 모든 방면에서 계속 강화할 것이라고 ‘굳게 확신한다’고 밝혔다. 통신은 김 위원장이 지난 15일 옛 소련군을 추모하는 해방탑을 찾아 ‘소련군 열사들의 공적을 우리는 잊지 않는다’는 글귀가 적힌 화환을 진정했다는 소식도 전날 전했다. 평양 해방탑은 1945년 북한 지역에서 일본군을 몰아내다 전사한 소련군을 추모하는 상징물이다. 김 위원장은 헌화한 뒤 “두 나라 선열들의 고귀한 정신을 계승하여 세기를 이어 다져진 불패의 조로(북러) 친선은 앞으로 더욱 굳건히 강화될 것”이라고 밝혔다. 앞서 14~15일에는 뱌체슬라프 볼로딘 러시아 하원(국가두마) 의장을 비롯한 러시아의 광복절 경축사절단이 방북하기도 했다.
  • ‘사면’ 윤미향 “할머니들 잊지 않아…참해방 위한 노력 포기 않을 것”

    ‘사면’ 윤미향 “할머니들 잊지 않아…참해방 위한 노력 포기 않을 것”

    이재명 정부 첫 특별사면 대상으로 확정된 윤미향 전 의원이 15일 “일본 정부가 사죄·배상하고, 분단된 나라가 하나가 돼 평화가 오는 참해방의 그날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윤 전 의원은 이날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그동안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 운동의 원칙을 세우고 나아갈 방향, 길이 되어준 할머니들 잊지 않겠다”며 이같이 말했다. 윤 전 의원은 “광복 80주년을 맞이한 오늘 일제강점기 때 일제에 의해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고통을 겪으셨던, 그러나 그 고통을 딛고 일어나 힘차게 평화의 날갯짓을 하셨던 일본군성노예제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기억하며 다시 찾아온 오늘을 시작한다”고 입을 열었다. 이어 “그 목소리가 잊혀지지 않고, 그 목소리에 담겨있는 참해방을 위한 노력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는 다짐을 새롭게 한다”고 강조했다. 윤 전 의원은 또 “30년이라는 거친 광야에서 만들어진 평화와 희망이 더 큰 날갯짓으로 더 큰 세상을 향해 날아 가 여전히 전쟁으로 고통받고 상처입고, 죽임을 당하고 있는 숱한 생명들에게 희망으로 다다갈 수 있기를 기도한다”고도 했다. 윤 전 의원은 그러면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과거 발언들도 소개하기도 했다. 앞서 이재명 대통령은 윤 전 의원에 대해 광복절 사면·복권을 단행했다. 윤 전 의원은 지난해 11월 14일 대법원에서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정의기억연대 전신) 후원금 횡령 등 혐의로 징역 1년 6개월에 집행유예 3년을 확정받았다. 대법원은 윤 전 의원이 후원금을 7957만원 횡령하고, 김복동 할머니 장례비 등을 자신의 개인 계좌로 모집한 혐의, 국고보조금 6520만원을 부정하게 사용한 혐의 등을 인정했다. 윤 전 의원은 지난 11일 사면·복권 소식이 알려진 직후 페이스북에 “고맙습니다”라고 짤막한 글을 올렸다.
  • [사설] ‘반쪽’ 광복절 국민임명식… 통합 과제 크고 무겁다

    [사설] ‘반쪽’ 광복절 국민임명식… 통합 과제 크고 무겁다

    오늘은 제80주년 광복절이다. 우리는 불법 계엄의 민주 질서에 대한 도전을 강력한 회복력으로 극복하는 저력을 보였다. 세계 10대 강국으로 발전한 경제력에 더해 수준 높은 국민 의식까지 명실상부한 선진국의 자격을 갖췄음을 국제사회에 증명했다. 어두운 터널을 힘겹게 지나온 우리였기에 오늘만은 이념이나 정파를 따지지 않고 한마음 한뜻으로 경축해야 마땅했을 것이다. ‘광복절 국민임명식’이 사실상 ‘반쪽’으로 열리는 것은 그래서 더욱 안타깝다. 6·3 대선이 치러진 이튿날 곧바로 집무를 시작할 수밖에 없었던 이재명 대통령이 취임의 각오를 다시 한번 다지는 자리다. 온 국민이 광복절과 새 정부 출범을 함께 축하하면서 새로운 국가적 동력을 얻는다는 의미도 있다. 국민 모두가 하나 되어 자축해야 할 국민임명식이 통합과는 거리가 먼 모습으로 치러지는 것은 그래서 더욱 유감스럽다. 오늘 기념행사는 광복절 경축식이 오전에 세종문화회관에서, 국민임명식이 포함된 ‘국민주권대축제’는 오후에 광화문광장에서 각각 예정됐다. 하지만 야당인 국민의힘과 개혁신당은 오후 행사에 불참하기로 했다.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도 국민임명식이 사실상의 취임식인 만큼 전례에 따라 초청됐음에도 참석하지 않을 것이라고 한다. 야당이 국민임명식에 참석하지 않는 것은 무엇보다 광복절 특사로 풀려난 여권 인사 가운데 납득하기 어려운 대상들이 포함됐다고 보기 때문이다. 실제로 많은 국민은 정부의 첫 사면에 이런 비판적 시각을 갖고 있다. 정부는 광복절 특사 대상자를 발표하면서 “사회적 갈등이 봉합되고 국민대통합이 이뤄지길 기대한다”고 했다. 그러나 다른 날도 아닌 광복절에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후원금을 빼돌린 혐의로 집행유예를 선고받은 인사를 사면하는 것이 어불성설이라는 시중의 지적이 높다. 집권여당 대표는 “악수는 사람과 하는 것”이라며 야당과의 대화를 공개 거부했다. 이런 움직임에는 공감하는 사람보다 불안을 느끼는 사람이 더 많을 것이다. 사회 갈등과 정치 부재의 상황을 반길 국민은 없다. 한국 사회가 두 쪽으로 갈라진 책임을 정부에만 돌리는 것은 물론 이치에 맞지 않는다. 그럼에도 이 대통령이 ‘다른 편’까지 아우르는 국민 통합의 궁극적 책임을 감당해야 한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오늘 행사에서는 국민의 마음을 다시 한데 모을 수 있는 대통령의 통합 메시지를 기대한다. 광화문 주변에서는 보수진영의 시위도 예고돼 있다. 안타깝게 쪼개진 광복절을 보면서 사회 구성원 모두가 통합의 가치를 다시 한번 가슴 깊이 새겨야 한다.
  • 野 불참 속… 국민대표 80명, 李대통령에게 ‘빛의 임명장’ 수여

    野 불참 속… 국민대표 80명, 李대통령에게 ‘빛의 임명장’ 수여

    장갑차 막은 부부 등 국민 대표에박근혜·이명박 등 야권 참석 안 해송언석 “‘셀프 대관식’ 납득 어려워”李, 임명식 전 주한외교단과 만찬독립유공자 후손 만나 “예우 강화”15일 광복 80주년을 맞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이재명 대통령의 ‘국민임명식’이 열린다. 조기 대선으로 출범한 이재명 정부가 국민에게 정통성을 인정받으며 윤석열 전 대통령 계엄·탄핵 사태로 훼손된 국격을 끌어올리고 국민 통합에 나설 계획이다. 14일 대통령실과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국민임명식은 약 1만명이 참석하는 가운데 ‘함께 찾은 빛, 대한민국을 비추다’라는 주제로 15일 오후 8시부터 100분간 열린다. 핵심 키워드인 ‘빛’은 이 대통령이 윤 전 대통령 퇴진 운동을 ‘빛의 혁명’이라고 부른 데서 따왔다. 행사의 정점은 국민대표 80명이 자신이 직접 쓴 ‘빛의 임명장’을 가지고 입장할 때부터다. 국민대표에는 광복군 목연욱 지사의 아들인 목장균씨와 이국종 국군대전병원장 등이 선정됐다. 12·3 비상계엄 당일 장갑차를 막아섰던 유충원·김숙정씨 부부 등도 포함됐다. 국민대표로부터 국민임명장을 받은 이 대통령은 감사 인사를 하고 참석자들은 윤 전 대통령 퇴진 운동의 상징곡이 된 ‘다시 만난 세계’를 다같이 부르며 2부는 마무리된다. 행사장 무대는 수평 구조로 광장의 모습을 구현하는 방식으로 만들어졌다. 좌석 배치는 주요 인사 중심으로 하지 않고 일반 국민도 무대 주변에 앉도록 했다. 유튜버 등 1인 미디어도 자유롭게 행사를 중계하도록 했다. 현장 경호도 강화한다. 경찰은 경비와 각종 집회·시위에 대응하기 위해 15일 서울 도심에 6000여명을 투입한다. 다만 박근혜·이명박 전 대통령이 불참하는 등 야권 관계자들이 행사에 참석하지 않으면서 여권만의 대관식이 된다는 아쉬움도 나온다. 송언석 국민의힘 원내대표 겸 비상대책위원장은 비대위 회의에서 “마치 순국선열의 영광에 숟가락을 얹듯 ‘셀프 대관식’을 벌이려는 모습은 도저히 납득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국민임명식에 앞서 청와대 영빈관에서 117개국 대사 및 30개 국제기구 대표 등 주한외교단과 만찬을 한다. 경제단체장들도 함께 한다. 이 대통령은 광복절 전날인 14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독립유공자 후손 등 80여명을 초청해 ‘광복 80주년 대통령의 초대’ 행사를 열었다. 이 대통령은 “‘독립운동하면 3대가 망한다’는 말은 더는 통용될 수 없도록 국가를 위한 희생에는 예우도 높게, 지원은 두텁게 하겠다”고 강조했다. 이 대통령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기림의 날인 이날 페이스북에 “위안부 피해자분들의 명예와 존엄이 온전히 회복될 수 있도록 총력을 다하겠다”고 약속했다. 이와 관련해 이 대통령은 광복절 경축사에서 한일 간 역사 문제는 원칙을 가지고 대응하되 양국 간의 신뢰와 정책 연속성에 기반해 미래지향적 협력을 추진해 나가겠다는 방향성을 제시할 계획이다. 과거를 직시하며 신뢰를 바탕으로 더 큰 협력을 만들어 나가야 한다는 의지도 밝힌다.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은 경축사 예고 브리핑에서 “남북 간 신뢰 회복의 필요성을 강조할 예정”이라면서 “과거 남북 대화 과정에서 맺어진 남북 간 주요 합의서의 의미와 정신을 평가하고 이를 존중해 나가겠다는 의지를 밝힐 계획”이라고 말했다.
  • 김영록 지사, 위안부 아픔·역사 인식 확산 앞장

    김영록 지사, 위안부 아픔·역사 인식 확산 앞장

    김영록 전남지사는 14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분들의 아픔을 기억하고 올바른 역사 인식을 확산하는 데 앞장서겠다”고 밝혔다. 김 지사는 이날 ‘위안부 기림의 날, 함께 기억하고 함께 나아가겠습니다’라는 메시지를 내고, 일제강점기 강제로 끌려가 고통받은 피해자분들의 아픔을 기억하며, 그 진실을 세상에 알린 용기에 경의를 표했다. 위안부 기림의 날은 1991년 8월 14일 고 김학순 할머니께서 처음으로 일본군 위안부 피해 사실을 증언한 것을 기념해 2017년 국가기념일로 제정됐고 이후 다른 피해자분들의 증언이 이어졌다. 현재 정부에 등록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240명 중 생존자는 단 6명에 불과하며, 실제 피해자 규모조차 온전히 파악되지 못한 실정이다. 전남에는 2명의 피해자가 있었으나 지금은 모두 고인이 되셨다. 김영록 지사는 “80주년 광복절을 맞아 해방의 기쁨을 되새기는 동시에 아직 치유되지 않은 역사의 상처를 직시해야 할 때”라며 “피해자분들의 명예가 온전히 회복되고 역사적 정의가 실현될 때, 비로소 광복의 참된 의미가 완성될 것”이라고 말했다. 전남도는 이날 목포시 근대역사관 1관 앞 평화의 소녀상 일원에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기림의 날 기념식’을 열고 기념식과 추모문화제, 공동선언문 낭독 등 피해자들의 아픔을 되새기고 인권과 평화의 가치를 되새겼다.
  • ‘친한파’ 日 축구 전설, 광복절 앞두고 ‘이것’ 언급했다 사과

    ‘친한파’ 日 축구 전설, 광복절 앞두고 ‘이것’ 언급했다 사과

    일본의 ‘축구 전설’로 불리는 혼다 케이스케(39)가 제2차 세계대전 종전 80주년을 앞두고 일본군이 중국에서 저지른 ‘난징대학살’을 부정하는 듯한 발언을 했다 이를 철회하고 사과했다. 우익 네티즌들이 “난징대학살은 실체가 없다”고 주장하는 댓글을 달았지만, 혼다는 “역사적 사실”이라며 자신의 입장을 바로잡았다. 14일 중국청년보 등 중국 언론과 일본 제이캐스트 등에 따르면 혼다는 지난 8일 자신의 엑스(X)에 “나도 그렇게 믿는다”며 영상을 게시했다. 영상은 일본의 극우 정치인인 이시하라 신타로(1932-2022) 전 도쿄도지사와 가와무라 다카시 일본보수당 중의원의 2012년 기자회견 장면 중 일부였는데, 당시 이시하라 전 지사는 “난징대학살은 없었다는 생각은 지금도 변함이 없나”는 질문에 “일본군이 점령한 그 짧은 시기에, 당시의 무기 체계에서 40만명을 학살했다는 증거를 내놓아달라”고 맞받아쳤다. 이어 “난징의 사람들을 죽인건 장제스의 군대”라며 “일본이 다시 점령한 뒤 시민들이 돌아왔다”고 주장했다. 가와무라 중의원도 “일본이 난징에서 40만명을 죽였다면 모든 일본인이 난징에 가서 무릎을 꿇어도 용서되지 않을 것”이라면서 “만약 아니라면, 이제는 ‘죄송하다’가 아니라 제대로 말할 수 있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난징대학살 없었다” 주장 리트윗했다 뭇매난징대학살은 1937년 중일전쟁 당시 일본군이 중국 장쑤성 난징시에 진입해 중국군 패잔병을 수색한다며 약 6주 동안 중국군과 민간인들을 대량 학살한 사건이다. 학살당한 중국인들은 최소 수만 명에서 많게는 30만여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되며, 고문과 강간 등 잔혹한 전쟁범죄가 대거 벌어졌다. 난징대학살은 아직까지도 중국 내에서 반일감정이 해소되지 않는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 일본 정부는 난징대학살 자체를 공식적으로 부정하지 않지만, 극우 성향 정치인들은 “완전한 허구”, “난징대학살은 없었다”며 부인하는가 하면 일부 학계에서도 “30만명이 살해됐다는 건 과장”이라는 주장이 나온다. 축구 전설이 돌연 민감한 역사에 대한 발언을 하자 이를 둘러싼 갑론을박이 벌어졌다. 혼다의 게시물에는 “가자지구에서 제노사이드는 없었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 “세계적인 스포츠 스타가 역사 수정주의에 찬성한다는 건 명성을 땅에 떨어뜨리는 일” 등 난징대학살을 부정하는 혼다를 비판하는 댓글들이 달렸다. 한편에서는 “난징 사람들을 학살한 건 중국국민당이다. 모르는 사람들은 공부해라”, “1937년 난징 인구는 20만명인데 어떻게 30만명을 죽였겠나” 등 극우 성향 네티즌들의 댓글도 쏟아졌다. 한 네티즌은 “유명인의 용기있는 발언에 경의를 보낸다. 이런 말을 하는 유명인이 늘어나면 (난징대학살의 진위에 대해) 논의조차 허용되지 않는 분위기를 바꿀 수 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파장이 커지자 혼다는 이튿날 엑스에 재차 글을 올렸다. 혼다는 난징대학살을 목격한 외신 기자와 선교사 등이 남긴 기록을 열거하며 “이들 사료는 전쟁 후에 창작된 것이 아니라 난징대학살 직후부터 존재하며, 여러 국가 사람들의 입장에서 적힌 기록이 일치해 학술적으로 신뢰도가 높다”면서 “1차 자료들을 자세히 살펴보니 거의 역사와 같다고 생각했다”고 인정했다. 이어 “이시하라 전 지사를 좋아하기도 하고, 역사에 대해 알고 있었다고 생각했지만, 나의 실수였다”면서 “다시 공부할 기회를 주셔서 감사하다”고 밝혔다. “역사적 자료 살펴봐…창작된 것 아냐”혼다는 2010년대 일본 축구 국가대표팀 공격의 핵심으로 활약하며 2010 국제축구연맹(FIFA) 월드컵 남아공 16강과 2011 아시아축구연맹(AFC) 아시안컵 카타르 우승, 2018 월드컵 러시아 16강 등을 이뤄낸 축구스타다. 2014년에는 이탈리아 세리에A AC밀란에 입단해 총 4시즌을 뛰었으며, 현재는 은퇴한 뒤 감독 겸 구단주, 벤처 투자자 등 다방면으로 활동하고 있다. 국내 축구팬들 사이에서는 ‘친한파’로도 잘 알려져 있다. 선수 시절 일본 내 조선학교에 방문해 학생들을 격려하는가 하면 소셜미디어(SNS)에서 남북 정상회담을 축하하기도 했다. 2022 FIFA 월드컵 카타르에서는 해설진으로 참여한 박지성과 만나 한국의 16강 진출을 응원하기도 했다.
  • [포토] ‘기억의 터’ 찾은 이용수 할머니

    [포토] ‘기억의 터’ 찾은 이용수 할머니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기림의 날을 하루 앞둔 13일 피해자 이용수 할머니가 서울시 김병민 정무부시장과 함께 지난 7월 재조성된 중구 남산공원 ‘통감관저 터’에 위치한 추모 공간 ‘기억의 터’를 찾았다. ‘기림의 날’은 1991년 고(故) 김학순 할머니가 일본군 위안부 피해 사실을 처음 공개 증언한 날로, 피해자들의 존엄과 명예 회복, 역사적 진실 알리기를 위해 제정된 법정 기념일이다. ‘기억의 터’는 서울시가 지난 2016년 조성한 위안부 피해자 추모·기림 공간이다. 피해자들의 존엄과 용기를 ‘빛’과 ‘목소리’로 형상화해 시민들이 걸으며 기억하고 연대할 수 있도록 꾸몄지만, 2023년 참여 작가의 성범죄 전력 논란으로 일부 조형물이 철거되면서 재조성이 추진됐다. 이날 현장을 찾은 김 부시장과 이용수 할머니는 기억의 터를 함께 둘러보며, 조용히 추모하는 시간을 가졌다.
  •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을 기억합니다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을 기억합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기림의 날’을 하루 앞둔 13일 경기 광주시 나눔의집에 세워진 고인이 된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흉상 앞에 꽃다발이 놓여 있다. 연합뉴스
  • 유관순이 2위…도서관에서 가장 많이 빌린 ‘광복 위인전’ 1위는

    유관순이 2위…도서관에서 가장 많이 빌린 ‘광복 위인전’ 1위는

    지난 3년간 시민들이 주요 공공도서관에서 가장 많이 빌려 간 광복 관련 주제 도서는 안중근(1879-1910) 의사에 관한 그림책인 것으로 나타났다. 13일 국립중앙도서관은 광복 80주년을 맞이해 2022년 8월부터 올해 7월까지 3년간 공공도서관 광복 관련 도서 대출 현황을 분석한 결과를 발표했다. ‘광복 관련 도서’란 한국십진분류법(KDC) 911.059(고종·순종)와 911.06(일제강점기)으로 분류된 도서 중 독립운동이나 광복을 주제로 한 책이다. 대출 건수 상위 20권 중 16권은 아동서인 것으로 나타났다. 일제강점기와 독립의 역사를 어린이들이 상대적으로 많이 접하고 있다는 점에서 고무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가장 많이 대출된 도서는 김향금·오승민 작가의 ‘나는 안중근이다’였다. 안중근 의사의 말과 글을 담은 그림책으로, 해당 기간 대출 건수 총 8274건으로 1위에 올랐다. 2위는 김진·다나 작가의 ‘유관순을 찾아라’였다. 유관순(1902-1920) 열사의 일대기를 그린 그림책으로, 대출 건수는 총 7866건이다. 3위는 한윤섭·백대승 작가가 쓴 항일 의병 운동 관련 동화책 ‘너의 운명은’(6383건)이 차지했다. 이번 조사에서는 광복 관련 독서 경향의 뚜렷한 변화도 드러났다. 지난 2016년 8월부터 2019년 7월까지의 대출 현황 조사에서는 일본 군함도(하시마) 강제 동원, 일본군 위안부 등 일제강점기의 비극을 다룬 책이 약 35%를 차지했다. 반면 최근 3년간은 독립운동가 등 저항의 역사를 조명한 책의 대출 건수 비중이 60%까지 늘었다. 광복 관련 도서의 대출량은 2019년에 16만 1650건으로 가장 많았다. 2019년은 3·1운동 및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이 되던 해라는 점에서 관련 도서 대출량도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네이버와 구글 등 주요 포털사이트에서도 2019년에 ‘광복’ 검색량이 가장 많았던 것으로 나타나 이러한 분석을 뒷받침한다고 국립중앙도서관은 설명했다. 이현주 국립중앙도서관 디지털정보기획과장은 “이번 분석이 리 사회 구성원 모두에게 광복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하고, 세대 간 기억과 감동을 함께 나누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 “일본군이 조선인 무차별 살해, 시신은 총검 훈련용으로 사용” [핫이슈]

    “일본군이 조선인 무차별 살해, 시신은 총검 훈련용으로 사용” [핫이슈]

    일본군이 1945년 8월 패전한 후에 지금껏 알려지지 않았던 조선인 학살 사건을 추가로 벌인 사실이 새롭게 확인됐다. 일본 마이니치신문은 11일(현지시간) 사할린주 향토박물관 관계자가 2019년 러시아 정부에 자료 공개를 요청해 입수한 수사 기록 분석 결과를 공개했다. 이 자료에서 사할린 연구자들은 1945년 8월 15일부터 9월 초까지 사할린 남부 각지에서 일본인이 조선인을 학살한 사건을 추가로 확인했다. 사할린 조선인 학살 사건은 일본군과 경찰, 민간인 자경단 등이 소련군과의 전투와 혼란 속에서 조선인 노동자와 그 가족들을 무차별적으로 공격하면서 벌어졌다. 피해자는 탄광과 벌목장 노동자, 의용대 소속 조선인 등 다양한 계층이 포함돼 있었다. 정확한 통계는 없으나 일본 시민단체와 연구자들은 최소 수십 명에서 수백 명이 살해된 것으로 추정한다. 러시아 정부가 기밀 해제한 자료에 따르면 이 사건은 소련군과 일본군의 전투가 끝난 1945년 8월 25일 이후부터 9월 초순 사이에 벌어졌다. 당시 일본군은 사할린 북서부에서 소련군의 공습을 받던 중 한 조선인 남성이 신호를 보냈다고 주장하며 간첩 혐의를 씌웠다. 일본군 병사 8명이 동시에 총으로 쏴 살해했고, 시신은 일본인 27명이 총검 훈련용으로 썼다. 살해된 조선인 남성의 시신에서는 수많은 상처 자국이 발견됐다. 사할린 북동부에서도 의용대에 소속된 조선인 남성이 일본군과 같은 무장을 요구했다는 이유로 총살됐다. 9월 초순에는 또 다른 조선인 남성이 소련군에게 무기 은닉 장소를 폭로할지 모른다는 의심을 사 총살됐다. 사할린 주립 향토박물관의 진 율리야 박사는 “전후 80년 가까이 지나서야 밝혀진 사건도 있다”며 “조선인은 일본인과 함께 살아가는 동료였는데, 전쟁 상황 때문에 시민이 시민을 죽이는 사건으로 이어졌다”고 말했다. 이노우에 고이치 홋카이도대 명예교수는 마이니치신문에 “소련군이 남하하면서 지상전이 임박하자 일본의 군국주의가 조선인들에게 공격의 창끝을 향했을 것”이라며 “다만 당시 수사 자료는 소련 시각에서 작성한 것으로, 일본이나 조선 측의 시점은 결여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 “일본군이 조선인 무차별 살해, 시신은 총검 훈련용으로 사용”

    “일본군이 조선인 무차별 살해, 시신은 총검 훈련용으로 사용”

    일본군이 1945년 8월 패전한 후에 지금껏 알려지지 않았던 조선인 학살 사건을 추가로 벌인 사실이 새롭게 확인됐다. 일본 마이니치신문은 11일(현지시간) 사할린주 향토박물관 관계자가 2019년 러시아 정부에 자료 공개를 요청해 입수한 수사 기록 분석 결과를 공개했다. 이 자료에서 사할린 연구자들은 1945년 8월 15일부터 9월 초까지 사할린 남부 각지에서 일본인이 조선인을 학살한 사건을 추가로 확인했다. 사할린 조선인 학살 사건은 일본군과 경찰, 민간인 자경단 등이 소련군과의 전투와 혼란 속에서 조선인 노동자와 그 가족들을 무차별적으로 공격하면서 벌어졌다. 피해자는 탄광과 벌목장 노동자, 의용대 소속 조선인 등 다양한 계층이 포함돼 있었다. 정확한 통계는 없으나 일본 시민단체와 연구자들은 최소 수십 명에서 수백 명이 살해된 것으로 추정한다. 러시아 정부가 기밀 해제한 자료에 따르면 이 사건은 소련군과 일본군의 전투가 끝난 1945년 8월 25일 이후부터 9월 초순 사이에 벌어졌다. 당시 일본군은 사할린 북서부에서 소련군의 공습을 받던 중 한 조선인 남성이 신호를 보냈다고 주장하며 간첩 혐의를 씌웠다. 일본군 병사 8명이 동시에 총으로 쏴 살해했고, 시신은 일본인 27명이 총검 훈련용으로 썼다. 살해된 조선인 남성의 시신에서는 수많은 상처 자국이 발견됐다. 사할린 북동부에서도 의용대에 소속된 조선인 남성이 일본군과 같은 무장을 요구했다는 이유로 총살됐다. 9월 초순에는 또 다른 조선인 남성이 소련군에게 무기 은닉 장소를 폭로할지 모른다는 의심을 사 총살됐다. 사할린 주립 향토박물관의 진 율리야 박사는 “전후 80년 가까이 지나서야 밝혀진 사건도 있다”며 “조선인은 일본인과 함께 살아가는 동료였는데, 전쟁 상황 때문에 시민이 시민을 죽이는 사건으로 이어졌다”고 말했다. 이노우에 고이치 홋카이도대 명예교수는 마이니치신문에 “소련군이 남하하면서 지상전이 임박하자 일본의 군국주의가 조선인들에게 공격의 창끝을 향했을 것”이라며 “다만 당시 수사 자료는 소련 시각에서 작성한 것으로, 일본이나 조선 측의 시점은 결여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 전남도, 항일독립유산 8건 도 문화유산 지정

    전남도, 항일독립유산 8건 도 문화유산 지정

    전남도는 광복 80주년을 맞아 도민 공모를 통해 항일독립유산 8건을 도 지정 문화유산으로 지정했다. 지난 3월부터 시군 공모를 통해 11개 시군에서 22건의 유산을 접수해 문화유산 전문가의 서면 검토와 현지 조사를 거쳐 역사적 가치와 보존 상태가 뛰어난 8건을 선정했다. 지정 항일독립유산은 ▲ 여수 거문도 항일 유적 ▲ 광양 매천 황현 생가와 묘소 ▲ 구례 고광순 항일전적과 순절비 ▲ 고흥 만경암 항일 의병 전적 ▲ 화순 양회일 항일 의병 유산 ▲ 해남 심적암 항일 의병 전적 ▲ 완도 오석균의 편지 ▲ 신안 두류단과 바위글씨 등이다. 여수 거문도 항일 유적은 임병찬 순국터와 안노루섬 고두리영감 제당으로 구성된 복합 유적으로 거문도 주민의 항일 저항과 민족운동의 발자취를 간직하고 있다. 광양 매천 황현 생가와 묘소는 경술국치에 절명시를 남기고 순국한 지식인 매천 황현의 정신을 기리는 공간이다. 구례 고광순 항일전적과 순절비는 1907년 연곡사 전투에서 순국한 고광순 의병장을 기리는 남도 의병사를 대표하는 순절 기념비다. 고흥 만경암 항일 의병 전적은 1909년 전남 의병 항쟁의 마지막 격전지로, 당시 전투 상황이 문헌에 상세히 기록돼 사료적 가치가 높다. 화순 양회일 항일 의병 유산은 순의비, 옥중 간찰, 문집 등으로 구성돼 의병사와 문학사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해남 심적암 항일 의병 전적은 의병과 대흥사 승려가 일본군에 맞서 싸운 현장이며 완도 오석균의 편지는 비밀결사 ‘수의위친계’의 활동을 보여주는 기록유산이며, 신안 두류단과 바위 글씨는 유배와 의병 활동, 근대 유학의 계승을 보여주는 역사유적이다. 강효석 전남도 문화융성국장은 “광복 80주년에 맞춰 곳곳의 항일정신이 깃든 도 문화유산 지정으로 도민과 후손이 역사적 자긍심을 느끼는 계기를 마련했다”며 “항일 정신을 일상에서 체험하고 계승하도록 힘쓰겠다”고 말했다.
  • 천하람 “광복절에 윤미향 사면? 어린이날에 조두순 사면하는 꼴”

    천하람 “광복절에 윤미향 사면? 어린이날에 조두순 사면하는 꼴”

    정부가 광복절 특별사면 대상자에 윤미향 전 의원을 포함시킨 것에 대해 천하람 개혁신당 원내대표가 “어린이날에 조두순을 사면하는 꼴”이라며 강하게 비판했다. 12일 정치권에 따르면 천 원내대표는 전날 유튜브 방송 ‘정치를 부탁해’에 출연해 “이재명 정부가 정치적 부담을 감수하면서까지 이런 사면을 하는 게 이해가 안 된다”며 이같이 지적했다. 천 원내대표는 윤 전 의원의 사면에 대해 “광복절에 위안부 할머니들 돈을 떼먹은 사람을 어떻게 사면하나”면서 “어린이날에 조두순을 사면하자는 것 아니냐. 말이 안 되는 일”이라고 맹비난했다. 이어 “유권자들로부터 여기(더불어민주당)는 내로남불과 위선이 생활화된 집단이라는 비판을 받을 수 있다”면서 “(이재명 대통령이) 사면을 하고 싶었던건지 어쩔 수 없이 하는건지 둘 중 뭐든간에 이 대통령의 처지가 이상한 길로 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일본군위안부 피해자 지원 단체인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사무총장을 거쳐 정의기억연대 이사장을 역임한 윤 전 의원은 2020년 제2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더불어민주당의 ‘위성정당’이었던 더불어시민당 비례대표로 국회에 입성했다. 이후 더불어시민당이 더불어민주당에 흡수돼 20대 국회에서 더불어민주당 소속으로 활동했지만, 2021년 부동산 명의신탁 의혹이 제기돼 제명됐다. 윤 전 의원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후원금을 횡령한 혐의로 기소돼 대법원에서 징역 1년 6개월에 집행유예 3년을 확정받았다. 이어 이재명 정부의 첫 사면 대상자로 거론되자 윤 전 의원은 지난 8일 소셜미디어(SNS)에 “억지 판결로 1심의 무죄를 2심에서 유죄로 돌렸다. 마치 보수 언론들은 제가 할머니 조의금을 다 먹은 것처럼 기사를 써댔다”며 “욕하는 것들이 참 불쌍하다”라고 항변했다.
  • 대한민국 백 년의 질문: ‘진짜 죄인’은 누구인가

    대한민국 백 년의 질문: ‘진짜 죄인’은 누구인가

    1909년 10월 26일, 만주 하얼빈역에 군악대 소리가 울려 퍼졌다. 마침내 열차 문이 열리고 이토 히로부미가 모습을 드러냈다. 수많은 인파 속에서 기회를 엿보던 한 사나이도 모습을 드러냈다. 이토 히로부미가 러시아 재무장관과 의장대의 환영을 받으며 천천히 발걸음을 옮기자, 모두의 시선이 그에게 집중됐다. 그 순간 사나이는 품속에서 권총을 꺼내 들었다. “코레아 우라!” (대한독립만세) 사나이의 외침과 함께 세 발의 총성이 울렸다. 총알은 정확히 이토 히로부미의 몸을 관통했다. 이토는 쓰러졌고 주변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다. 총을 쏜 사나이는 다시 한번 “코레아 우라!”를 외쳤고, 러시아 헌병대가 그를 제압했다. 그는 순순히 체포되었지만, 그의 얼굴에는 당당함이 가득했다. 우리 근현대사에서 안중근 의사의 의거는 절대 빠질 수 없는 역사적 사건이다. 하지만 이 의거가 갖는 근본적 의미보다 ‘대한제국 의병이 일본 고위 관료를 저격했다’는 사실만 부각되는 점이 아쉽다. 대한제국 의병의 처절한 역사 1905년 러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은 군대를 동원해 고종황제가 있던 경운궁을 포위했다. 그리고 을사오적을 앞세워 을사늑약을 강제로 체결하게 했다. 을사늑약으로 대한제국은 외교권을 박탈당해 사실상 일제의 식민지로 전락했다. 이 모든 것을 지휘한 인물이 바로 이토 히로부미였다. 을사늑약 소식이 알려지자 전국 각지에서 의병이 일어났다. 을사의병이라고 불린 이 항일 투쟁에는 신분을 가리지 않고 수많은 백성이 참여했다. 1907년 일본은 헤이그 특사 사건을 빌미로 고종을 강제 퇴위시키고 군대를 해산시켰다. 근대식 무기와 군사 전술에 익숙한 해산 군인들이 의병에 합류하면서 의병의 전력은 향상되었고 활동 지역도 넓어졌다. 당시 의병 활동을 정미의병이라고 부른다. 한일 합방을 계획하던 일본은 의병 부대 제거를 위해 대대적인 토벌 작전을 시작했다. 의병으로 의심되는 마을은 포위한 뒤 닥치는 대로 사람들을 죽였다. 그 과정에서 무고한 사람들이 희생되었다. 일제의 토벌 작전으로 한반도 남부의 의병들은 뿔뿔이 흩어졌고, 북부의 의병들은 토벌을 피해 만주와 연해주로 이동할 수밖에 없었다. 안중근 의사가 쏜 총알의 의미 당시 의병 부대는 대부분 소규모였고, 정식 군사 훈련을 받은 일본군을 상대하기에는 무기와 보급이 열악한 상태였다. 의병들의 무기는 화승총과 죽창 등 재래식 무기였다. 해산 군인들이 의병에 합류하면서 신식 소총을 확보했지만 그 수가 턱없이 모자랐고 총알도 부족했다. 일본군의 탄압은 날이 갈수록 심해졌고, 항일 의병 활동도 점차 위축되었다. 심지어 패배주의 분위기마저 감돌았다. 그러던 1909년, 하얼빈에서 안 의사가 조선 침략의 원흉이자 최고 사령관인 이토 히로부미 저격에 성공했다는 소식이 들렸다. 이 소식은 항일 의병들에게 “우리도 해낼 수 있다”는 희망을 주었고 항일 투쟁 활동에도 다시 불이 붙었다. 나아가 평범한 사람들의 항일 투쟁 의식을 고취해 1919년 3·1 운동과 같은 전국적인 독립운동으로 이어졌다. 안타까운 건 당시 안중근 의사의 의거를 ‘살인’으로 보는 시각도 있었다는 점이다. 당시 그가 속한 천주교 교단에서는 의병의 무력 투쟁 활동을 폭력으로 간주하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 그래서 일부 교인은 안중근 의사와 거리를 두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그런데 안 의사가 총을 쏘게 만든 ‘진짜 죄인’은 누구일까. 서울 남산 안중근 의사 기념관 버스를 타고 남산도서관에 내리면 바로 옆 계단을 통해 안중근 의사 기념관을 만날 수 있다. 이곳은 안중근 의사라는 위대한 인물을 기리기에는 너무 작은 공간이라는 느낌을 준다. 정문에 있는 안중근 의사의 좌상에 인사하고 안으로 들어서면 그의 출생과 의병 활동, 의거, 순국에 이르는 빛나는 일생을 만날 수 있다. 특히 안중근 의사가 여순 감옥에 있을 때 썼다고 전해지는 ‘一日不讀書口中生荊棘’(하루라도 책을 읽지 않으면 입안에 가시가 돋는다)라는 글귀도 볼 수 있다. 이곳을 나설 때면 역사적 사실을 넘어, 잊어버린 애국정신과 뜨거운 나라 사랑의 마음을 느낄 수 있다.
  • 대한민국 백 년의 질문: ‘진짜 죄인’은 누구인가 [한ZOOM]

    대한민국 백 년의 질문: ‘진짜 죄인’은 누구인가 [한ZOOM]

    1909년 10월 26일, 만주 하얼빈역에 군악대 소리가 울려 퍼졌다. 마침내 열차 문이 열리고 이토 히로부미가 모습을 드러냈다. 수많은 인파 속에서 기회를 엿보던 한 사나이도 모습을 드러냈다. 이토 히로부미가 러시아 재무장관과 의장대의 환영을 받으며 천천히 발걸음을 옮기자, 모두의 시선이 그에게 집중됐다. 그 순간 사나이는 품속에서 권총을 꺼내 들었다. “코레아 우라!” (대한독립만세) 사나이의 외침과 함께 세 발의 총성이 울렸다. 총알은 정확히 이토 히로부미의 몸을 관통했다. 이토는 쓰러졌고 주변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다. 총을 쏜 사나이는 다시 한번 “코레아 우라!”를 외쳤고, 러시아 헌병대가 그를 제압했다. 그는 순순히 체포되었지만, 그의 얼굴에는 당당함이 가득했다. 우리 근현대사에서 안중근 의사의 의거는 절대 빠질 수 없는 역사적 사건이다. 하지만 이 의거가 갖는 근본적 의미보다 ‘대한제국 의병이 일본 고위 관료를 저격했다’는 사실만 부각되는 점이 아쉽다. 대한제국 의병의 처절한 역사 1905년 러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은 군대를 동원해 고종황제가 있던 경운궁을 포위했다. 그리고 을사오적을 앞세워 을사늑약을 강제로 체결하게 했다. 을사늑약으로 대한제국은 외교권을 박탈당해 사실상 일제의 식민지로 전락했다. 이 모든 것을 지휘한 인물이 바로 이토 히로부미였다. 을사늑약 소식이 알려지자 전국 각지에서 의병이 일어났다. 을사의병이라고 불린 이 항일 투쟁에는 신분을 가리지 않고 수많은 백성이 참여했다. 1907년 일본은 헤이그 특사 사건을 빌미로 고종을 강제 퇴위시키고 군대를 해산시켰다. 근대식 무기와 군사 전술에 익숙한 해산 군인들이 의병에 합류하면서 의병의 전력은 향상되었고 활동 지역도 넓어졌다. 당시 의병 활동을 정미의병이라고 부른다. 한일 합방을 계획하던 일본은 의병 부대 제거를 위해 대대적인 토벌 작전을 시작했다. 의병으로 의심되는 마을은 포위한 뒤 닥치는 대로 사람들을 죽였다. 그 과정에서 무고한 사람들이 희생되었다. 일제의 토벌 작전으로 한반도 남부의 의병들은 뿔뿔이 흩어졌고, 북부의 의병들은 토벌을 피해 만주와 연해주로 이동할 수밖에 없었다. 안중근 의사가 쏜 총알의 의미 당시 의병 부대는 대부분 소규모였고, 정식 군사 훈련을 받은 일본군을 상대하기에는 무기와 보급이 열악한 상태였다. 의병들의 무기는 화승총과 죽창 등 재래식 무기였다. 해산 군인들이 의병에 합류하면서 신식 소총을 확보했지만 그 수가 턱없이 모자랐고 총알도 부족했다. 일본군의 탄압은 날이 갈수록 심해졌고, 항일 의병 활동도 점차 위축되었다. 심지어 패배주의 분위기마저 감돌았다. 그러던 1909년, 하얼빈에서 안 의사가 조선 침략의 원흉이자 최고 사령관인 이토 히로부미 저격에 성공했다는 소식이 들렸다. 이 소식은 항일 의병들에게 “우리도 해낼 수 있다”는 희망을 주었고 항일 투쟁 활동에도 다시 불이 붙었다. 나아가 평범한 사람들의 항일 투쟁 의식을 고취해 1919년 3·1 운동과 같은 전국적인 독립운동으로 이어졌다. 안타까운 건 당시 안중근 의사의 의거를 ‘살인’으로 보는 시각도 있었다는 점이다. 당시 그가 속한 천주교 교단에서는 의병의 무력 투쟁 활동을 폭력으로 간주하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 그래서 일부 교인은 안중근 의사와 거리를 두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그런데 안 의사가 총을 쏘게 만든 ‘진짜 죄인’은 누구일까. 서울 남산 안중근 의사 기념관 버스를 타고 남산도서관에 내리면 바로 옆 계단을 통해 안중근 의사 기념관을 만날 수 있다. 이곳은 안중근 의사라는 위대한 인물을 기리기에는 너무 작은 공간이라는 느낌을 준다. 정문에 있는 안중근 의사의 좌상에 인사하고 안으로 들어서면 그의 출생과 의병 활동, 의거, 순국에 이르는 빛나는 일생을 만날 수 있다. 특히 안중근 의사가 여순 감옥에 있을 때 썼다고 전해지는 ‘一日不讀書口中生荊棘’(하루라도 책을 읽지 않으면 입안에 가시가 돋는다)라는 글귀도 볼 수 있다. 이곳을 나설 때면 역사적 사실을 넘어, 잊어버린 애국정신과 뜨거운 나라 사랑의 마음을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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