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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람은 밉지 않다”… 말 없이 말했다

    “사람은 밉지 않다”… 말 없이 말했다

    “난 일본군의 칼을 맞고도 살아남았어. 그 원한이 평생 가슴에 사무치지만, 그들도 인간인 걸 어떡해. 너무 불쌍해. 울지 말고 힘내서 일어났으면 좋겠어.” 16일 낮 12시 서울 중학동 일본대사관 앞.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 다섯명이 매주 수요일마다 그래 왔던 것처럼 건물에 내걸린 일장기를 바라보며 의자에 걸터앉았다. 하지만 집회 때마다 항의의 표시로 할머니들 손에 들려있던 노란색 나비모양의 손 팻말은 없었다. 대신 흰색 바탕에 검은 글씨로 ‘희생자 명복을 빕니다. 일본 시민 여러분 힘내세요.’라고 적은 손 팻말이 보였다. 집회의 시작을 알리던 대학생들의 흥겨운 춤과 노래도 없었다. 조용한 음악만이 집회 현장을 채웠다. 이날 열린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제930차 수요집회’는 동일본 대지진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침묵시위’로 진행됐다. 위안부로 모진 고초를 겪었던 이옥선(84)·이용수(84)·길원옥(84)·김순옥(89)·박옥선(86) 할머니가 참석했다. 할머니들은 정신대대책문제협의회 관계자가 일본인의 안전과 무사 구출을 기원하는 내용의 성명서를 낭독하자 눈을 지그시 감고 고개를 숙였다. 이어 10분간 묵념을 했다. 평소의 집회였다면 주먹을 불끈 쥐고 “일본 정부는 사죄하라!”고 외쳤을 할머니들이었다. 할머니들은 일본 정부에 대한 한(恨)으로 가득한 가슴으로 일본인들이 겪고 있는 시름과 고통을 끌어안았다. 길원옥 할머니는 “우리가 (일본에 짓밟혀) 아팠던 것이 생각나지만, 고통받는 일본 사람들이 빨리 힘내야 할 텐데….”라며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다. 이용수 할머니는 “죄는 미워도 사람은 밉지 않다.”면서 “진심으로 일본 지진 희생자들의 명복을 빈다.”고 말했다. “힘내세요!”라고 외치는 이 할머니의 음성은 울먹임으로 떨리고 있었다. 정대협 허미례 간사는 “희생자를 추모하는 마음에서 침묵이라는 방식을 택한 것”이라고 밝혔다. 김소라기자 sora@seoul.co.kr
  • 통영 매물도… 봄이 오는 길목 호젓한 나들이

    통영 매물도… 봄이 오는 길목 호젓한 나들이

    경남 통영에서 뱃길로 1시간 20분 남짓. 매물도는 그렇게 먼바다 위에 고절한 자태로 떠 있었습니다. 유명하기로야 등대섬을 품은 소매물도가 단연 앞섭니다. 해마다 40만명 가까운 관광객들이 등대섬과 소매물도를 찾습니다. 반면 매물도는 유명세에서 한발 물러서 있습니다. 보다 정확히는 소매물도로 가는 도중 잠시 들렀다 가는 곳 정도에 머문다고 보는 게 맞겠습니다. 하지만 가려져 있다고 풍경이 없는 건 아니지요. 어린 시절 소풍 가서 보물찾기 놀이를 하다 뜻하지 않은 곳에서 보물을 찾았을 때의 그 기쁨, 딱 그만큼의 풍경을 매물도는 숨겨 두고 있습니다. 특히 장군봉에서 마주한 장쾌한 풍경은 쉬 잊혀지지 않을 만큼 강렬했습니다. ●섬, 문화의 옷으로 갈아입다 매물도에 들면 적요하다. 이곳이 ‘전국구 관광 명소’ 소매물도를 지척에 둔 섬인가 의아할 정도다. 음식점이 없고 펜션이 없는 데다 자동차도 없다. 3무(無)의 섬이다. 소란의 근원이 될 곳들이 없으니 당연히 소란스러울 까닭도 없다. 선착장에 섬사람과 뭍사람들이 들고 날 때 잠깐 인기척이 느껴졌다가 이내 절해고도 특유의 적막감에 젖어든다. 매물도는 통영에서 26㎞쯤 떨어져 있다. 본섬과 소매물도, 등대섬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흔히 소매물도와 구분 짓느라 ‘대매물도’로 부르지만, 공식 명칭은 매물도다. 주민들도 대매물도라 불리는 걸 달가워하지 않는다. 매물도가 최근 문화의 옷으로 갈아입었다. 단초는 2007년 문화체육관광부의 ‘가고 싶은 섬’ 사업이었다. 시범 사업지로 선정된 이후 매물도 주민과 다움문화예술기획연구회가 함께 새로운 관광 패러다임을 모색했고, 그 결과물이 구체적인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매물도 특유의 생활과 문화를 녹여 낸 공공미술 예술 작품들이 설치됐고, 섬을 한 바퀴 돌아볼 수 있는 탐방로 등의 시설도 정비됐다. ‘어부 밥상’ 등 섬에서만 맛볼 수 있는 음식 콘텐츠도 개발됐다. 다행스러운 건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섬 고유의 경관을 잃지 않도록 각별히 노력을 기울였다는 것. 섬 주민들의 편의를 위한 ‘재정비’와 관광객을 위한 ‘보존’ 사이에서 최대공약수를 찾은 셈이다. 매물도를 한 바퀴 돌아보는 탐방로는 그중 가장 앞세울 만하다. 전체 길이는 5.2㎞. 다 둘러보는 데 세 시간이면 족하다. 당금, 대항 등 매물도의 두 마을 주변을 에둘러 돌아간다. 물론 새로 난 길은 아니다. 예전 마을 사람들이 나무하러 가던 길, 옆 마을로 마실 가던 길 등을 잇고 다듬어 걷기 좋은 산책로로 만들었다. ●매물도의 아틀리에, 장군봉 탐방로의 최고 풍경 포인트는 장군봉이다. 매물도 어디서든 풍경이 주인이 된다. 장군봉은 당금마을보다 대항마을에서 가깝다. 선착장에서 채 1㎞가 못 된다. 높이는 210m. 섬 산행이 늘 그렇듯 대항마을 선착장에 들어선 순간부터 산행은 시작된다. 매물도엔 장군봉이 두곳이다. 첫 번째 장군봉은 선착장에서 30분 남짓 올라가야 만난다. 예전부터 주민들이 장군봉이라 부르던 곳이니 앞에 ‘원조’를 붙여도 무방하겠다. 산 중턱에 너럭바위가 펼쳐져 있고, 까마득한 발아래로는 대항마을과 선착장이 아련하다. 주변을 둘러치고 있는 다도해의 섬들은 그대로 병풍이 된다. 매물도의 아틀리에라 불러도 손색 없을 풍경. 통영항 출발 전 이 지역의 관광업체 대표가 꼭 장군봉에 오르라 중언부언한 까닭이 그제야 가슴에 와닿는다. ‘원조’ 장군봉에서 20분 남짓 오르면 산 정상이다. 두 번째 장군봉이다. 몇 년 전만 해도 폐쇄된 군 레이더 기지와 막사, 병기고 등으로 살풍경한 몰골을 하고 있던 곳이다. 2007년 말 철거 작업이 마무리됐고, 그제야 장군봉도 제 모습을 찾았다. 산 정상에서 천천히 한 바퀴 돌아보시라. 거칠 것 없이 탁 트인 한려해상국립공원이 360도 파노라마로 펼쳐진다. 무인도인 등가도가 혈혈단신 바다 위에 떠 있고, 소매물도와 등대섬은 서수(瑞獸)의 뿔처럼 불쑥 솟았다. 내 나라 안 어디서고 쉬 마주하기 어려운 풍경이다. 맹장(猛將) 아래 약졸(弱卒) 없다. 장군봉에서 바라보는 풍경이 이토록 장한데 그 아래 풍경인들 뒤질까. 억새 무성한 탐방로를 따라 곳곳에 풍경의 보고를 숨겨 뒀다. 해안에서 소매물도 쪽으로 불쑥 튀어나온 ‘꼬돌개’는 낙조 감상 일 번지다. 마을을 지키는 당산목 후박나무도 빼놓으면 섭섭한 볼거리. 장군봉 아래에선 일본군들이 파놓은 진지 동굴들도 볼 수 있다. ●생활의 거리에서 마음을 데우다 당금마을은 매물도의 ‘명동’이다. 대항마을에 견줘 겨우 몇 명 더 살 뿐이지만 섬 주민들은 그렇게 농을 던지며 적적한 섬 생활을 위로한다. 외형상 매물도의 변화를 이끌고 있는 건 ‘생활의 거리’다. 골목길을 따라 마을 곳곳에 미술 작품들을 설치했다. 골목길 민박집엔 주인을 닮은 이름들도 붙였다. 물때와 고기 종류 등을 잘 아는 아저씨가 사는 ‘고기 잡는 집’이 있고, 화초 기르기를 좋아하는 ‘꽃 짓는 할머니의 집’도 있다. 생활의 거리는 이처럼 주민들의 정서가 듬뿍 담긴 골목길을 따라 펼쳐진다. 골목길은 주민 저마다의 삶을 담아내는 한편, 그를 통해 공동체성을 하나로 묶어 낸다. 골목길이 소곤대는 이야기를 따라 한발한발 내딛다 보면 외지인들은 어느 결엔가 주민들의 일상에 꼼짝없이 빠져들고 만다. ‘바다 마당을 가진 집’에서 잠시 다리쉼도 해야 하고 ‘제주 해녀를 데려온 할머니 집’에 들러 속사정도 들어 봐야 한다. 골목길이 들쑥날쑥 굽이치며 이어지는 것은 그런 까닭이다. 어느 길로 가도 마을은 통하고 누구네 집이건 한번은 지나친다. 그 길에서 서로를 보듬고 살피며 살아온 골목의 정서를 느낄 수 있다. 풍경과 먹을거리, 그리고 특유의 정서가 온전한 섬. 매물도를 돌다 보면 어느새 마음이 데워진다. 글 사진 통영 손원천기자 angler@seoul.co.kr ●여행 수첩(지역번호 055) →가는 길: 통영항 여객터미널에서 오전 7시·11시, 오후 2시에 운항한다. 매물도 출항 시간은 오전 8시 15분, 낮 12시 20분, 오후 3시 45분. 주말에는 증편된다. 왕복 2만 7300원. 645-3727. 거제시 저구항에서도 하루 4차례 여객선이 운항한다. 등대섬 물때는 한솔해운 홈페이지(www.nmmd.co.kr)에서 확인할 수 있다. →맛집: 매물도에는 음식점이 없어 민박집에서 식사를 해결해야 한다. 1인 6000원. “회 5만원어치만 썰어 주세요.” 하면 주민들이 물고기를 잡아다 회도 쳐 준다. 석화와 볼락구이, 성게알쌈, 방풍나물 등으로 구성된 ‘어부 밥상’은 올여름부터 선보일 예정이다. →잘 곳: 당금·대항마을 주민 대부분이 민박을 운영한다. 당금마을 박성배 이장(010-8929-0706)·김인옥 어촌계장(010-3844-9853), 대항마을 이규열 이장(010-4847-9696)·김정동 어촌계장(010-6340-1514), 소매물도 이석재 이장(010-2810-7704).
  • [사설] 日 대재앙 짜임새 있는 총력지원에 나서자

    일본 열도가 대지진 여파로 인한 원전 폭발로 또다시 불안에 떨고 있다. 12, 14일 후쿠시마 제1원전 1, 3호기에 이어 어제는 2·4호기가 잇따라 폭발해, ‘체르노빌 참사’ 같은 방사능 누출 가능성마저 우려되고 있다. 일본 정부는 이미 후쿠시마 원전에서 20㎞ 안에 거주하는 사람들에게 피난 명령을 내렸다. 지금까지 대지진과 해일로 인한 사망자는 공식적으로는 수천명이지만 생사가 확인되지 않은 사람들이 수만명이어서 10만명이 넘을 것이라는 예측도 나오고 있다. 우리 정부와 국민은 일본의 고통과 슬픔을 같이해야 한다. 현재 선진국인 일본을 도울 수 있는 정부의 가용 예산은 4만 달러에 불과하다고 한다. 정부는 다른 예산을 전용해서라도 총력 지원에 나서야 한다. 복구단 파견과 구호물품 지원 등에 필요한 예산은 50만~60만 달러로 예상된다고 한다. 우리 국적의 교민들에게 각별한 관심을 기울이기 위해서라도 꼭 필요한 조치다. 구조 및 지원 활동과 관련한 교섭창구는 외교통상부가, 각 부처의 지원 업무는 국무총리실이 조정하기로 했다고 한다. 지원 활동이 중구난방이 되면 방해가 될 수 있으므로 당연한 조치다. 민간 차원의 지원은 대한적십자사가 중심이 돼 맡기로 했다. 민간의 활동 중에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기반으로 5달러, 10달러 짜리 기부 쿠폰을 사고파는 방식이 특히 눈에 띈다. 국내에서는 싸이월드에서 소셜게임을 이용한 기부를 시작했다. 배용준 등 한류스타와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 종교 및 시민단체 등도 지원에 앞장서고 있다. 삼성그룹은 성금 1억엔과 인명구조단·의료봉사단을 파견하기로 했다.일본은 우리의 수출 3위국, 수입 2위국이다. 일본 경제가 어려워지면 우리도 어려움에 처할 가능성이 크다. 경제적 이유에서뿐이 아니라, 지구촌이라는 말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제 인류는 이웃이요 가족이라는 점을 깊이 새겨야 한다. 민족적 편견은 버리고 인류 가족의 구성원으로 기꺼이 일본을 위로하고 복구하는 데 범국민적으로 동참해야 한다. 그래서 이번 재앙이 오히려 한·일관계를 새로 정립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아울러 지원은 절박한 상황에 실제적으로 도움이 될 수 있는 내용과 절차로 짜임새 있게 이뤄져야 함을 다시 한번 강조한다. 요란함이 아니라 내실이 중요하다.
  • “사람 죽는데 돕는 게 도리”… 원수도 끌어안은 모성애

    “사람 죽는데 돕는 게 도리”… 원수도 끌어안은 모성애

    “일본이 너무 불쌍해. 도와줘야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윤순만(80) 할머니는 15일 “동일본 강진을 TV로 지켜봤다.”면서 처절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렇게 당하셨는데 밉지도 않으세요.”라는 물음에 윤 할머니는 “사람이 죽는데 안타깝지…. 돕는 게 도리야.”라고 답했다. 13살 어린 나이에 충남 예산에서 일본군에 끌려가 모진 고초를 당해 한(恨) 서린 인생을 산 그다. 하지만 그는 일본 정부에 자신들의 죄과에 대해 사과와 배상을 요구하는 ‘투사’이기 이전에 아픔을 껴안는 ‘어머니’였다. 일본 정부가 자신들의 과거에 대해 공식적으로 잘못을 인정하지 않은 상황에서도 윤 할머니는 자신의 고통보다 이웃나라 국민의 아픔을 먼저 보듬는 ‘어른’이었다. 자신의 인생을 망가뜨린 일본의 아픔도 품에 안는 모성애로 승화시켰다. 그는 서울 우면동 한 임대아파트에서 말년을 보내고 있다. 최근엔 낙상으로 외출도 못하는 윤 할머니는 “편찮은 데 없으시냐.”는 물음에 “손자가 제대하고 취직도 해서 좋다.”며 웃었다.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이 일본 지진 희생자들을 애도하는 추모집회를 연다.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는 매주 수요일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던 ‘위안부 문제해결을 위한 수요시위’를 16일에는 ‘일본 강진 희생자 추모집회’로 대신한다고 15일 밝혔다. 정대협이 수요시위를 중단하는 것은 1995년 일본 고베 대지진 이후 16년 만이다. 특히 정대협은 일본에 사는 유일한 위안부 피해자인 송신도(89) 할머니가 이번 강진에 실종된 만큼 생사를 파악하려고 외교통상부 등에 할머니의 생존 확인과 구조 요청을 한 상태다. 송 할머니는 이번 강진으로 큰 피해를 입은 미야기현에 살았다. 윤미향 정대협 대표는 “위안부 할머니들도 동일본 대지진으로 수많은 사람이 희생된 것을 진심으로 안타까워하고 있다.”면서 “구호를 외치지 않고 침묵으로 우리의 마음을 전달하려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위안부 문제와 관련된 요구를 거두는 것은 아니고 계속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윤 대표는 자신들의 이번 결정을 ‘특별한 일’로 보는 시각을 경계했다. 그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이 전쟁을 겪은 분들인데 사람의 아픔에 대해 더 깊이 알고 계신다.”면서 “우리 행동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사람들을 보면 이들이 얼마나 이분법적인 사고에 젖어 있는지를 보여 줘 안타깝다.”고 말했다. 김양진기자 ky0295@seoul.co.kr
  • [지청천 ‘자유일기’] 근·현대사 조명 중요사료 평가

    [지청천 ‘자유일기’] 근·현대사 조명 중요사료 평가

    백산 지청천의 ‘자유일기’는 1919년 그가 일본군을 탈출해 독립운동을 위해 만주로 망명하면서부터 시작돼 타계하기 한달여 전인 1956년 12월 11일까지의 ‘숨겨졌던’ 기록이다. 일기에는 만주와 상하이 등지에서의 독립운동과 해방 직후 한국 정치사에 중요한 사안들에 대한 그의 시각과 견해가 꼼꼼히 담겨 우리나라 근·현대사를 조명하는 중요 사료로 평가되고 있다. 백산이 시장주의에 반대해 계획경제를 주장한 것과 관련, 김희곤 안동대 사학과 교수는 “임시정부는 정치적으로는 자유민주주의를 바탕으로 했으나 경제적으로는 대토지 국유화 등 사회주의 계획경제를 지향했다.”며 “이는 당시의 상황에서 보면 매우 선진적인 시각”이라고 해석했다. 이승만 정부와 대립한 백산에 대해 정재정 서울시립대 국사학과 교수는 “백산의 일기는 독립군 노선과 이승만 노선이 서로 결합했다가 흩어지는 과정, 독립군 노선이 밀려나는 과정을 보여주는 사료로서 큰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한국전쟁 중에 독립운동 시절의 기록인 50년 이전의 일기를 모두 잃어버린 점은 아쉽다. 현재는 그 이후의 기록인 일기장 5권과 수첩 2권만이 전해진다. 일기를 소장해 온 백산의 딸이자 독립운동가인 지복영(池復榮·1920∼2007) 여사가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안이 많아 살아 생전에는 절대 공개 못 한다.”고 할 만큼 50년대 이승만 정부 당시 국내 정세, 민생, 개헌, 노동 문제 등이 소상하게 기록돼 있다. 특히 항일독립운동가이자 대표적 우파 정치인인 그가 이승만 독재정권의 부정부패와 용인술을 준엄하게 꾸짖고 건국 초기 국가의 발전 방향을 두고 고심하는 대목에서는 당시 이념 논쟁이 극심한 가운데서도 민생 안정과 진정한 자주독립을 이루려 한 독립운동가의 우국충정과 고뇌를 엿볼 수 있다. 김동현·윤샘이나기자 moses@seoul.co.kr
  • [지청천 ‘자유일기’] “외조부는 극우 아닌 민족주의자”

    [지청천 ‘자유일기’] “외조부는 극우 아닌 민족주의자”

    백산 지청천 장군의 외손자인 이준식(55) 전 친일재산조사위원회 위원은 외조부를 “강직한 군인”이라고 회고했다. 해방 이후 대동청년단의 설립에 관여해 극우적인 성향이 강했다는 일각의 평가에 대해서도 “(외조부는) 넓은 의미에서 사회주의자들과도 생각을 나눌 만큼 열린 민족주의자였다.”고 말했다. 이 전 위원은 지난해까지 친일재산조사위 활동을 하며 3대째 나라 바로 세우기를 위해 헌신하고 있다. →외손자로서 기억하는 지청천 장군의 모습은? -내가 태어난 지 몇 달 되지 않아 돌아가셔서 직접적으로 기억하는 모습은 없다. 대부분 어머니를 통해 들었는데 강직하고 약속을 중히 여기는 분이셨다. 일본 육사에 들어가 독립운동에 헌신할 것을 결의하면서 육사 내 동지들과 ‘아오야마의 맹세’라는 것을 하셨다고 들었다. 이후 김경천 장군과 외조부는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 독립운동에 투신했다. 하지만 홍사익이란 분은 일본군 중장까지 지내다 전범으로 처형되기도 했다. →지 장군이 독립운동을 하면서 겪은 일 가운데 알려지지 않은 부분은? -외조부가 항일투쟁을 위해 만주로 가려 했는데 이게 쉽지 않았다. 그래서 일부러 식음을 전폐해 몸을 초췌하게 해 일제의 감시를 피했다고 한다. 그렇게 한 뒤 요양을 한다며 귀국했다가 만주로 넘어가셨다. 이후 제일 먼저 찾아가신 곳이 신흥무관학교였다. →외조부가 극우 성향으로 분류되기도 하는데. -대동청년단 창립 등에 관여해서 그런 것 같다. 하지만 외조부는 사회주의자들과도 이야기를 나누는 분이셨다. 이번에 공개한 자유일기를 봐도 전면적인 자유시장경제보다 계획경제가 1950년대 상황에 더 맞다는 의견을 피력하셨다. 극우는 아니었던 것으로 안다. →어머니 지복영 여사도 독립운동을 하셨는데. -어머니도 광복군에 입대를 하셨다. 초창기 멤버인데, 심순호·오광심 여사 등 5~6명 정도였던 것으로 알고 있다. 1930년대 중국 관내로 이동하면서 광복군의 모병업무를 맡으셨다고 들었다. 특히 중국 방송국을 빌려 대적방송을 할 때는 일본군들의 타깃이 돼 경호원을 서너명씩 대동하고 다닐 정도였다고 들었다. →최근 친일 문제가 사회적으로 많이 잊히고 있는데. -걱정이 많다. 특히 올해는 신흥무관학교 설립 100주년이다. 이런 마당에 정부가 한·일 군사협정을 추진한다고 하는데도 사회적 관심이 너무 부족하다. 역사는 되풀이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정부에서 논의 과정 없이 밀어붙이려고 하는 것은 아닌가 우려된다. 김동현기자 moses@seoul.co.kr
  • [지청천 ‘자유일기’] 백산 지청천장군은 누구인가

    [지청천 ‘자유일기’] 백산 지청천장군은 누구인가

    백산(白山) 지청천 장군은 한국 광복군의 총사령관으로, 항일 무장독립운동을 진두지휘한 대표적인 독립운동가였다. 1888년 서울 삼청동에서 태어난 지 장군은 홀어머니를 모시고 살다 1904년 한국무관학교에 입학해 일찌감치 군인의 길로 들어섰다. 이후 신문물을 배우기 위해 1908년 스무살의 나이에 일본으로 건너간 그는 정부 유학생으로 선발돼 육군유년학교를 거쳐 일본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했다. 조국에서 3·1운동이 발발한 1919년은 백산에게도 중대한 전환기가 됐다. 일본군을 탈출해 만주 봉천성으로 망명한 그는 본격적으로 독립운동의 대열에 합류했다. 대형(大亨)이라는 본명을 청천(靑天)으로 개명한 것도 이 무렵이었다. ‘푸른 하늘을 되찾겠다’는 의미의 ‘청천’이란 이름에는 일제의 탄압에서 벗어나 조국의 독립을 되찾겠다는 의지가 담겼다. 일본 육사에서 정규 교육을 받은 백산은 만주에 설립돼 있던 신흥무관학교 교장으로 취임해 독립군 양성에 힘을 쏟았다. 당시 “조국 광복을 위해 싸웁시다. 싸우다, 싸우다 힘이 부족할 때에는 이 넓은 만주벌판을 베개 삼아 죽을 것을 맹세합시다.”라는 그의 독립 의지를 담은 개교식 연설은 독립군들 사이에 두고두고 회자되기도 했다. 1920년 김좌진·홍범도 장군과 함께 청산리전투에서 일본군을 대파한 뒤 보복을 피해 헤이룽장성(黑龍江省) 자유시로 옮긴 백산은 이곳에서 다시 고려혁명군관학교를 세워 독립전쟁을 위한 전열을 가다듬었다. 1925년 양기탁·오동진 등과 항일독립운동단체인 정의부를 조직해 만주 일원에서 일본군과 전투를 벌이는 등 혁혁한 공을 세운 그는 1937년 임시정부에 합류, 국무위원과 한국독립당 집행위원 등을 맡아 임시정부를 항일투쟁의 구심체로 자리매김하는 데 크게 공헌했다. 1940년 9월 17일 한국광복군 창설에 참여하고 총사령관을 맡아 한국 군을 대표하게 된 백산은 중국을 비롯한 연합군과 협력해 일본군과 직접 전투를 벌이는 데 앞장섰다. 1946년 4월 28일 광복을 맞은 조국으로 돌아온 백산은 혼란한 국내 정세를 바로잡기 위해서는 청년이 힘을 길러야 한다며 전국 규모의 대동청년단을 결성하기도 했다. 이후 1947년 제헌국회 의원, 정부 수립 후 초대 무임소장관을 역임했으며, 제2대 국회의원, 민주국민당 최고위원을 지냈다. 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이 추서되었다. 윤샘이나기자 sam@seoul.co.kr
  • “남·북 교회 공동으로 3·1절 기념예배”

    개신교 교단 협의체인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가 경색된 남북 관계 회복에 팔소매를 걷어붙이고 나섰다. 3·1절 92돌 기념 예배를 남북 교회가 공동으로 열기로 합의하고 스스로 인도적 대북 지원에 나서는 한편, 이명박 대통령에게는 인도적 차원의 대북 지원을 촉구하는 공개 서신을 보냈다. 교회협 화해통일위원회는 21일 오후 한국기독교회관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북쪽 조선그리스도교연맹(조그련)과 오는 27일 남북 교회가 공동으로 3·1절 92돌 기념 예배를 열고 남북 교회 공동 선언문을 발표하기로 합의했다.”면서 “공동 선언문을 통해 일본 정부에 과거의 죄를 진심으로 참회할 것과 일본군 위안부와 강제 징용자들에게 합법적인 배상을 할 것 등을 촉구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교회협은 대통령에게 보내는 서신을 통해 “3~4월 춘궁기에 북한에 더 많은 아사자가 속출할 것이라는 소식을 접하면서 조그련을 통해 식량 지원을 하기로 결의했으며 이를 위해 통일부에 허가 신청서를 제출할 것”이라며 정부에 민간 차원의 식량·의료 지원을 즉시 허가해 줄 것을 요청했다. 교회협은 또한 “정치적인 남북 대화나 교류·협력이 정체된 상황에서도 민간 차원, 특히 종교인들의 대화나 협력은 부단히 지속되어야 하며 무엇보다 심각한 식량난으로 고통받는 북한 동포들에게 인도적인 식량 지원은 시급히 재개되어야 한다.”고 대북 지원에 나선 배경을 밝혔다.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젊은이들에게 올바른 역사 전달되길…”

    “젊은이들에게 올바른 역사 전달되길…”

    한·일 전 법무장관이 13일 경기 광주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보금자리인 ‘나눔의 집’을 찾아 할머니들을 위로했다. 순수한 민간 차원에서 실상을 살피고 아픔을 함께 나눈 것이다. 김성호(61) 전 장관과 스기우라 세이켄(77) 전 장관은 오후에 나눔의 집을 방문, 추모공원에 헌화한 뒤 위안부 교육관과 역사관을 차례로 둘러봤다. 이 자리에는 나눔의 집 후원회장인 이한성 국회의원, 이창구 한국문화재단 이사도 함께했다. 스기우라 전 장관은 피해 할머니들에게 개인 자격으로 왔다고 전제한 뒤 “위안부 역사관을 보고 할머니들을 만나 피해를 확인하고 싶었다.”며 방문 취지를 설명했다. 이어 “오늘 확인한 것을 일본에 가서 그대로 알리고 싶다.”면서 “미래를 믿고 젊은이들에게 올바른 역사가 전달되길 바란다.”고 피해 할머니들을 위로했다. 이에 할머니들은 “한·일 과거사 청산 의지를 보이지 않는 일본 정부의 사죄와 보상을 받기 전까지 절대로 죽지 않겠다.”고 했다. 김군자 할머니는 “보상도, 사죄도 필요없다. 우리 청춘만 돌려 달라.”고 스기우라 전 장관에게 호소했다. 김 전 장관은 “일본의 사죄를 기다리려면 할머니들이 오래 사셔야 한다.”며 “자주 찾아뵙고 물심양면으로 돕겠다.”고 말했다. 나눔의집 관계자는 “한·일 양국의 전 법무장관이 순수 민간 차원에서 역사의 아픈 현장을 방문해 피해 할머니들의 실상을 살피고 아픔을 나눈 뜻깊은 자리였다.”고 말했다. 광주 나눔의집에는 전국에 생존한 위안부 피해 할머니 75명 가운데 8명이 공동생활을 하고 있다. 윤상돈기자 yoonsang@seoul.co.kr
  • [부고] 日 위안부 피해자 박분이 할머니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인 박분이 할머니가 지난 3일 오후 경북 영천의 한 요양병원에서 노환으로 별세했다고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가 9일 밝혔다. 91세. 경북 출신인 박 할머니는 17살에 일본을 거쳐 싱가포르로 끌려가 강제로 일본군 위안부 생활을 했으며 해방 전인 1943년 한국으로 돌아왔다. 이번 겨울이 시작된 지난해 12월부터 현재까지 6명의 위안부 피해자가 세상을 떠나 정부에 등록한 피해 생존자는 75명으로 줄었다.
  • [부고] 위안부 피해자 김선이·임정자 할머니 한날 별세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인 김선이 할머니가 13일 오후 울산의 한 병원에서 별세했다고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가 14일 전했다. 83세. 김 할머니는 2년 전부터 건강이 좋지 않아 병원과 요양원, 집을 오가며 수술과 치료를 받았다. 하지만 최근 병세가 급격히 악화해 중환자실에 입원해 있다 숨을 거뒀다. 김 할머니의 장례는 가족장으로 치러지며 발인은 15일이다. 같은 날 오후 11시 45분에는 임정자 할머니가 89세로 경남 마산의 한 병원에서 지병으로 별세했다. 경남 진주에서 태어나 부산에서 자란 임 할머니는 1938년 만주로 끌려가 8년 동안 타이완과 홍콩, 중국 상하이와 하얼빈 등지에서 위안부 생활을 강요당했다. 광복되고 나서 1946년 귀국해 경남 충무(현 통영)에 정착했으며 1996년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로 신고했다. 위안부 피해자 생존자의 잇따른 별세로 정부에 등록된 피해 생존자는 76명으로 줄었다.
  • [이슈 Q&A]北·中 밀월에 日과 협력 필요… 군사동맹은 힘들 듯

    한국과 일본의 군사적 교류가 점차 늘어가고 있다. 일부에서는 한·일 간의 ‘안보 동맹’ 체결 가능성이라는 섣부른 추측까지 나온다. 한·일 군사협력이 논의되는 배경과 앞으로의 전망을 짚어본다. Q:한·일 군사동맹은 가능한가. A:힘들것 무엇보다 한·일 간에는 군사동맹을 맺을 만한 신뢰관계가 형성돼 있지 않다. 내가 피해를 입으면 동맹의 당사자가 구하러 와야 하는데 한·일관계는 그렇지 못하다. 과거사에 대한 일본 정부의 입장도 오락가락하고, 독도 영유권까지 주장하는 상황이다. 또 동맹이 되려면 공동의 적이 있어야 한다. 양국이 북한 문제에 있어서는 입장이 비슷할지 모르나 중국에 대해서는 다르다. 일본은 중국으로부터 위협을 더 많이 받고 있지만 한국은 안보 위협을 받는 수준은 아니다. Q:현재 한·일 간 군사협력은 어느 정도인가. A:참관 수준 겉으로는 옵저버로서 서로의 훈련을 참관하는 정도다. 지난해 7월과 10월, 12월에 일본군이 한국 영해에서 실시된 훈련에 참관, 눈길을 끌었다. 하지만 이 정도는 한국과 중국, 한국과 러시아 간의 군사교류에 비해 크게 높은 수준은 아니라는 지적도 있다. Q:일본은 왜 한국과의 군사 협력에 적극적일까. A:중국 견제 일본으로서는 동북아에서 중국에 완전히 패권을 내주는 상황이 도래할 것으로 판단, 한국과의 군사동맹으로 몸집을 불리려는 의도로 보인다. 특히 센카쿠 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 영토 분쟁 등 최근 중국과의 충돌에서 받은 충격이 한국과의 군사협력을 재촉했을 수 있다. 일본으로서는 한국과 군사동맹을 하면 러시아와의 북방 4개섬 영토 분쟁에서도 유리하게 활용할 수 있다. 나아가 한국과의 군사동맹은 ‘군대 아닌 군대’인 자위대의 정상군대화를 자연스럽게 촉진하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일본으로서는 북한의 연평도 포격 도발과 천안함 사건 등으로 한국에 안보 위기가 부각된 현 상황을 한·일 군사동맹 추진의 호기로 인식하는 것 같다. Q:한국은 왜 일본의 군사협력 제안을 일축하지 않나. A:필요성은 인정 북한의 잇단 도발 이후 북·중이 가까워지면서 한국 입장에서는 일본을 끌어안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통일 과정에서 일본과의 군사협력이 필요한 측면도 있다. 사실 기본적으로 한반도 유사시 주일 미군기지가 배후기지로 활용된다는 점에서 한·일 군사동맹이 부존(不存)한다고 말하는 것은 어불성설일 수도 있다. 장광일 국방부 정책실장은 지난달 한·미·일 연합훈련 가능성에 대해 “중·장기적인 문제이지, 당장 실현될 문제가 아니다.”라고 했다. 뒤집어 보면 시간이 좀 지나면 가능할 수도 있다는 얘기다. Q:미국은 한·일 군사동맹에 어떤 입장인가. A:적극적 미국으로서는 중국의 부상을 견제하고 아시아에서 영향력을 확대하는 도구로 한·미·일 3각동맹을 활용한다는 구상이다. 이미 지난달 서울에서 마이클 멀린 미국 합참의장이 공개적으로 한·미·일 공동 군사훈련을 주장했다. 최근 한·일 국방 당국의 밀착 움직임은 미국의 추동력에 의한 것일 수도 있다. Q:앞으로 한·일 군사협력은 어떤 식으로 진행될까. A:인도주의적 접근 장광일 국방부 정책실장은 지난달 한·미·일 연합훈련 가능성에 대해 “인도적 차원의 해상해난구조 훈련 등 양국이 부담없이 수용할 정도의 훈련은 모를까 갑자기 한·일 연합훈련으로까지 가기는 힘들다.”고 했다. 우선 유엔 평화유지활동(PKO) 등과 관련한 인도주의적인 훈련을 통해 주변국들의 거부감을 피하면서 점차적으로 군사협력의 수위를 높이는 방법을 선호한다는 얘기로 들린다. Q:우리가 일본과의 군사교류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은. A:군사기술 일본은 잠수함 기술 등 첨단 군사기술을 확보하고 있다. 따라서 일본과의 군사동맹이 이런 실질적인 혜택으로 직결될 수 있도록 전략적인 접근을 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Q:한·일 군사협력이 독도 문제에는 어떤 영향을 줄까. A:영향 없을 듯 독도 문제는 기본적으로 외교 현안이다. 하지만 한국 내에는 일본과의 군사동맹이 자칫 독도 영유권에도 영향을 주지 않을까 하는 노파심이 존재하는 만큼 독도에 대한 한국의 영유권을 사전에 명확히 한 뒤 군사동맹으로 가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오이석·유지혜·김정은기자 carlos@seoul.co.kr ■ 도움말 주신분 윤덕민 외교안보연구원 교수, 김호섭 중앙대 국제정치학과 교수, 김용현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 양무진 북한대학원대 교수, 국방부 관계자들.
  • 일제시대 한국의 모더니즘 리얼리즘과 어떻게 다른가

    일제시대 한국의 모더니즘 리얼리즘과 어떻게 다른가

    일제시대에 대한 상식적 기억은 늘 두가지다. 하나는 만주벌판에서 무장독립투쟁을 벌이는 모습이다. 다른 하나는 일제의 가혹한 수탈과 착취에 신음하는 농민이다. 식민지 경험이 안겨다 준 충격과 공포가 클수록 더더욱 그렇다. 여기에 미묘한, 아니 제법 큰 균열이 생기기 시작한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가령 김지운 감독의 영화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은 일제시대 만주벌판에서 일본군과 독립군만 뛰어다닌 것이 아니라, 돈에 눈먼 잡놈들도 돌아다니고 있었다고 증언한다. 이 영화에서 아편은 독립운동 자금을 마련하기 위한 은밀한 상품이 아니라, 개개인의 퇴폐와 쾌락을 보여 주는 소재로 등장한다. 최근 당대의 신문·잡지를 열심히 뒤져서 그때도 자본주의적 욕망이 모락모락 피어나는 ‘황금광’ 시대가 있었고, ‘모던 뽀이’와 ‘모던 껄’들은 ‘딴스홀’을 욕망했다는 주장이 나오는 이유다. 예전 일제시대 연구자가 당시 신문·잡지에 실린 사회면 기사를 보고서 식민지적 암울한 현실을 이끌어 냈다면, 최근 연구자들은 사회면 기사 대신 가벼운 가십거리나 아예 기사를 벗어나 신문 하단에 실린 광고에 집중한다. 가벼운 가십이나 광고에서야말로 대중들의 은밀한 욕망 냄새를 맡을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꽤 그럴듯해 보이는 주장인데 여기에도 난점은 있다. 과연 그것이 당대 조선인의 평균적인 삶과 얼마나 가까우냐 하는 문제다. 문맹률도 높고 인쇄술도 좋지 않던 시절에 자극적이고 흥미로운 내용만 골라 담은 신문·잡지 내용을 얼마나 일반화할 수 있느냐다. 한마디로 서울 청담동 클럽에서 만난 젊은이들의 얼굴에서 21세기 대한민국 20대 남녀의 평균적 얼굴을 추출했을 때, 싱크로율(일치율)을 얼마로 볼 것인지는 의문이다. 이는 모더니즘과 리얼리즘이 같은 것이냐, 다른 것이냐 하는 논쟁과 상통한다. 구체적 삶보다 예술의 형식성을 탐구하는 것이 모더니즘인 만큼 리얼리즘과는 다르다는 주장이 한쪽에 있다면, 신형기 연세대 국어국문과 교수가 쓴 ‘분열의 기록’(문학과지성사 펴냄)은 모더니즘을 일러 좀 다른 차원의 리얼리즘이라고 주장하는 쪽에 서 있다. 책은 흔히 모더니스트 문인으로 꼽히는 이상(1910~1937), 박태원(1909~1986), 최명익(1903~?), 허준(1910~?), 유향림(1914∼1980), 현덕(1909~?) 6명 작가들의 삶과 작품세계를 좇았다. 모더니즘과 리얼리즘이 다르다고 보는 쪽에서는 모더니스트들의 삶은, 극단적으로 표현하자면 ‘어정쩡한 기생충 같은 삶’이다. 집안이나 머리가 좋아 뭘 많이 보고 익혔는데, 그 지식을 어디에 어떻게 써야 할지 모르고 그냥 낭비해 버리다 말기 때문이다. 무력 항일투쟁을 벌인 것도 아니요, 억압받는 조선 민중의 심장을 벌렁이게 할 명문장을 남긴 것도 아니요, 하다못해 농민들에게 뛰어들어 교육사업에 매달린 것도 아니다. 문학이네 뭐네 하다 이상은 자살해 버렸고, 나머지 작가들은 1930년대 말 일제의 총동원 체제가 가동된 뒤 초기의 산뜻하고 실험적인 작품세계마저 잃어버린 채 단편적인 역사소설만 남발했다. 또 월북해서는 북한의 집단주의에 매혹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책 제목이 암시하듯, 그리고 부제 ‘주변부 모더니즘 소설을 다시 읽다’에서 드러나듯 신 교수는 이를 ‘주변부 모더니즘’이 겪을 수밖에 없는 ‘분열’로 규정한다. 지식인들의 이런 자기 분열적 행보야말로, 즉 일제시대 모더니즘 그 자체가 바로 식민지의 아픈 경험을 폭로하는 리얼리즘이라는, 역설적 그림을 그려낸다. 이상을 제외하고는 월북 작가들이다. 때문에 해금된 지 그리 오래되지 않은 작가들이기도 하다. ‘분열의’는 북한문학 전문가가 쓴 책이기에 이들 작가에 대한 입문서로도 좋을 법하다.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부고] 위안부 피해자 정윤홍 할머니

    [부고] 위안부 피해자 정윤홍 할머니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인 정윤홍 할머니가 지난달 31일 오후 9시쯤 경기 일산 자택에서 노환으로 별세했다. 90세.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에 따르면 1920년 충남 당진에서 태어난 정 할머니는 33년 결혼해 두 아이를 낳았으나 22살이던 1942년 연행돼 중국 둥안에서 위안부 생활을 하다 1945년 광복 직전 임신한 채 돌아왔다. 1982년 경기 평택으로 옮겨 노점상을 하며 생계를 이어왔다. 1995년 위안부 피해자 신고를 했다. 정현용기자 junghy77@seoul.co.kr
  • 충무로·할리우드 물량공세 개봉박두

    충무로·할리우드 물량공세 개봉박두

    지난해 국내 극장가는 사상 최고 호황을 누렸다. 2009년 1조 998억원으로 입장 매출 1조원을 처음 돌파한 데 이어 지난해 사상 최고치(11월 기준 1조 486억원)를 경신했다. 2010년 전체 매출은 1조 2000억원에 육박할 것으로 점쳐진다. 하지만 마냥 장밋빛은 아니다. 매출이 늘어난 것은 영화 관람료 인상 몫이 컸다. 전체 관람객은 줄어들었다. 한국 영화는 점유율과 매출액 모두 하락했다. ‘잭팟’도 드물었다. 국내 영화는 ‘아저씨’(622만명)와 ‘의형제’(546만명)가, 해외 영화는 2009년 말 개봉한 ‘아바타’를 빼면 ‘인셉션’(587만명)이 유일하게 500만명을 넘어섰다. 몇몇 적신호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영화계 관계자들은 올해 국내 영화 시장 규모가 더욱 확대될 것으로 내다봤다. 미국 할리우드 프랜차이즈 대작들이 많이 밀고 들어오고 3차원(3D) 입체 영화 개봉도 꾸준히 늘고 있기 때문이다. 워낙 할리우드 강세라 일각에서는 한국 영화 약세를 점치기도 하지만 제작비 100억원대의 국산 대작들이 줄줄이 대기 중이어서 성급한 비관론이라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100억대 통큰 국산영화 출격 올해 가장 관심이 쏠리는 작품은 강제규 감독의 다국적 프로젝트 ‘마이웨이’다. 강 감독은 다시 한번 전쟁 스펙터클에 도전하며 2003년 ‘태극기 휘날리며’ 이후 8년 만에 영화계로 복귀한다. 장동건을 비롯해 일본의 오다기리 조, 중국의 범빙빙 등 아시아 대표 배우들이 총출동한다. 제2차 세계대전 중 일본군에 징집됐다가 독일 나치 병사가 된 남자의 이야기다.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이 갖고 있는 국내 최대 제작비(160억원) 기록을 갈아치울 것으로 예상되는 작품이다. 순제작비 300억원이 거론된다. 연말쯤 개봉 예정. 설 연휴를 앞두고 오는 27일 김석윤 감독의 ‘조선명탐정: 각시투구꽃의 비밀’과 코믹 사극 맞대결을 펼치는 이준익 감독의 ‘평양성’도 대작에 가깝다. 전쟁 장면이 많아 제작비가 80억원가량 투입됐다. 2003년 히트작 ‘황산벌’의 속편으로 백제 멸망 뒤 나당 연합군이 고구려 평양성을 공격하며 벌어지는 내용을 다룬다. 정진영, 이문식이 ‘황산벌’에 이어 또다시 출연한다. 여름에는 괴물을 소재로 한 공상과학(SF) 해양 스릴러 ‘7광구’가 주목된다. ‘화려한 휴가’로 광주 민주화운동을 생생하게 그렸던 김지훈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 망망대해의 석유시추선에서 벌어지는 괴생명체와 인간의 대결을 그린다. 제작비 100억원 이상. 1000만명 관객 돌파 영화 ‘해운대’의 윤제균 감독이 제작을 맡았고, 하지원, 안성기 등이 출연한다. 3D라는 점에서 더욱 관심이 쏠리는 작품이다. 100억원대의 전쟁 스펙터클 ‘고지전’도 여름을 공략한다. ‘영화는 영화다’, ‘의형제’로 흥행 감독 입지를 굳힌 장훈 감독이 연출하고 드라마 ‘선덕여왕’의 박상연 작가가 시나리오를 써 관심이다. 고지 탈환을 위해 목숨을 건 공방을 벌이는 남북 병사들의 사연을 담았다. 신하균과 고수가 출연한다. 가을 즈음에는 새로운 오토바이 액션이 선보인다. ‘퀵’이다. ‘해운대’ 커플 이민기와 강예원이 주연을 맡았다. 오토바이 퀵 서비스 맨이 폭발물을 배달하게 되며 일어나는 사건을 다뤘다. ‘뚝방전설’의 조범구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 연말에는 ‘범죄의 재구성’, ‘타짜’, ‘전우치’의 최동훈 감독이 범죄 스릴러 ‘도둑들’을 갖고 돌아올 예정이다. 강우석 감독 등 지난해 ‘이끼’ 멤버들이 그대로 뭉쳐 청각장애인 야구부의 전국대회 도전기를 그린 ‘글러브’(1월 개봉), ‘개구리 소년 실종 사건’을 스크린으로 옮긴 이규만 감독의 ‘아이들’(2월 개봉), 임권택 감독의 101번째 작품인 ‘달빛 길어올리기’(3월 개봉)도 블록버스터는 아니지만 주목되는 작품들이다. 美 대작 시리즈물 속편 상륙 할리우드는 프랜차이즈 시리즈물이 대세다. 신세대 공포 영화의 대명사 ‘스크림’이 11년 만에 찾아온다. 전편의 주인공들이 뭉치고 웨스 크레이븐이 메가폰을 잡은 4편이 4월 공개된다. 3D다. 조니 뎁 주연의 ‘캐리비안의 해적: 낯선 조류’는 5월에 찾아온다. 시리즈의 4번째 작품이다. 올랜도 블룸, 키이라 나이틀리가 하차한 대신 페넬로페 크루즈 등이 가세했다. ‘엑스맨’ 시리즈의 다섯 번째 작품인 ‘엑스맨 : 퍼스트클래스’는 6월 개봉 예정이다. 원래 시리즈보다 더 앞선 시절을 그리는 프리퀄인 이 작품에서 ‘원티드’의 제임스 맥어보이가 자비에 교수의 젊은 시절을 연기한다. 국내에서 1편과 2편을 합쳐 1500만명 관객을 사로잡았던 마이클 베이 감독의 ‘트랜스포머3’가 7월 여름 대목의 정점을 찍는다. 1969년 인류가 달에 첫발을 내디딘 날 외계 생명체 ‘트랜스포머’를 발견했다는 내용을 담아 호기심을 자극한다. 역시 3D로 로봇의 화려한 변신을 입체적으로 감상할 수 있다는 점이 눈길을 끈다. 샤이아 라보프가 여전히 주연. 감독과의 불화로 하차한 메건 폭스 대신 영국 출신의 모델 로지 헌팅턴 휘틀리가 합류했다. 해리포터 시리즈의 완결판인 ‘해리포터와 죽음의 성물 2부’ 3D도 여름 시장을 겨낭한다. 어둠의 제왕 볼드모트와 죽음의 마법에서 살아남은 해리포터가 드디어 목숨을 건 마지막 대결을 펼친다. 여성팬들의 가슴을 설레게 했던 트와일라잇 시리즈 완결판의 첫 포문인 ‘브레이킹던 1부’는 11월 개봉을 준비하고 있다. ‘트와일라잇’, ‘뉴문’, ‘이클립스’로 이어지는 이 시리즈는 수많은 여심(女心)을 설레게 했던 로버트 패틴슨과 테일러 로트너의 매력이 흥행 요소. 2부는 2012년 개봉 예정이다. 연말은 톰 크루즈가 ‘미션 임파서블 4’를 통해 대미를 장식할 예정이다. 3D 여부는 아직 미정. 드림웍스가 5월 선보이는 ‘쿵푸 팬더2’와 디즈니가 6월 출격시키는 ‘카2’, 스티븐 스필버그와 피터 잭슨이 손을 잡고 연말에 선보일 예정인 디지털 3D ‘틴틴의 모험’ 등 할리우드 대작 애니메이션들도 관심거리다. 홍지민·이경원기자 icarus@seoul.co.kr
  • [객원칼럼] 돌아온 장고/김동률 KDI 연구위원

    [객원칼럼] 돌아온 장고/김동률 KDI 연구위원

    ‘돌아온 장고’(Django. 1966년 작)라는 서부영화가 있다. 스파게티/마카로니 웨스턴의 대표작이다. 마카로니 웨스턴이란 정통 서부극보다 더 잔혹하고, 또 천편일률적인 권선징악의 구도에서 벗어난 이태리풍의 서부영화 장르를 말한다. 프랑코 네로가 주연한 영화는 자신의 아내를 죽인 원수를 갚는다는 외로운 총잡이의 복수극을 그린 지극히 뻔한 얘기. 그러나 ‘돌아온’ 총잡이의 복수와 고난을 그렸기 때문에 당시 꽤 인기를 끌었다. TV 주말의 영화를 통해서도 자주 방영되어 볼 만한 사람들은 대부분 보았던 유명 서부극이다. 돌아온다는 것은 돌아오지 않는다는 것과는 개념이 다르다. 연평도 사태에서 보듯이 ‘돌아오지 않은 해병’과 돌아온 해병의 차이는 엄연하다. 돌아온다는 것은 하나의 실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터미네이터의 아널드 슈워제네거가 펄펄 끓는 용광로에 들어가며 근사한 목소리로 “I’ll be Back.”을, 맥아더 장군 역시 일본군에 패해 필리핀을 떠나며 “I shall Return.”을 내뱉지 않았던가. 모두가 돌아온다는 말에 매력을 느낀다. 그러나 돌아온다는 말을 하는 사람들의 운명이란 대부분 돌아오지 못할 운명. 그래서 “돌아온다.”는 말은 인간에게 묘한 느낌을 준다. 지난해 3월, 한 교사가 파면되었다. 서울 양천구에 위치한 양천고에서 19년간 국어를 가르쳐 온 교사다. 교사에게 파면은 가장 높은 수위의 징계다. 파면 조치는 교사에게는 사형선고와 같다고들 한다. 그는 무슨 이유로 파면까지 되었을까? 학교 측은 근거 없이 학교의 명예를 실추시켰다는 등을 이유로 들고 있다. 해당 교사는 재직 중이던 2008년 “재단 측이 공사비를 부풀리고 운영위 회의록을 조작하는 등의 방법으로 공금 수십억원을 횡령했다.”고 폭로하면서 세상에 알려졌다. 하지만 감사를 벌인 서울시 교육청은 관련자에게 경고를 주는 데 그쳤고, 앙심을 품은 학교 측은 그를 파면했다. 교사는 교원소청심사위원회에 호소해 복직 결정을 받았지만 재단은 또 다시 다른 이유를 들어 파면 조치한다. 거리로 내동이쳐진 그는 검찰과 시교육청 등 힘있는 기관에 억울함을 호소했지만 세상은 철저히 외면했다. 해당 교사는 지난 6·2 지방선거에 시 교육위원에 당선되었고 드라마는 잘 짜여진 한편의 각본처럼 반전의 국면에 들어선다. 그동안 꿈쩍도 않던 검찰이 선거 직후 양천고에 대해 압수수색과 계좌추적을 벌여 5억 7000만원을 챙긴 재단이사장을 기소한다. 대한민국 검찰의 진면목을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서울시 교육청의 대응은 더욱 극적이다. 특별 감사에 착수, 해당 교사를 파면시켰던 양천고 이사진 8명 전원에 대해 비리가 명백하다며 취임 승인을 취소하는 극약 처방을 내렸다. 이뿐만 아니다. 이 학교 전·현직 교장 7명을 모두 중징계하고 교육청 보조금 1억 8000만원도 환수하겠다고 선언했다. 불똥은 옆 학교까지 튀었다. 시교육청은 횡령 의혹이 있는 인근 진명여고에 대해 감사를 벌여 임원 5명의 취임 승인을 취소하고 전·현직 교장 2명을 중징계하라고 재단 측에 요구했다고 발표했다. 우리가 이번 사태에 대해 두 눈을 부릅뜨고 봐야 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돌아온 교사의 얘기는 어느 할리우드 영화보다도 더욱 드라마틱하다. 거리로 내동이쳐졌던 그는 천신만고 끝에 ‘돌아온 장고’가 되어 우리 앞에 나타났다. 그의 곤고하기 짝이 없었던 지난 1년간의 행로는 과연 대한민국이 진정 공정사회인가 하는 깊은 회의를 던져주고 있다. 모두가 살기 위해 살고 있는 것은 아닌가. 부끄럽고 허허한 마음으로 또 한해를 과거 속으로 보내며 고개를 떨군다. 잘 가라 2010! (서울신문 독자와 지난 2년간 만났다. 이제 이별할 때가 왔다. 떠나는 자가 한 말씀 드린다. “오랫동안 꿈을 꾼 자, 마침내 그 꿈의 주인공이 된다.” 평생을 사숙해온 앙드레 말로의 말이다. 새해에는 더욱 좋은 꿈을 꾸시기 바란다. 그 동안의 관심에 깊이 감사 드린다.)
  • 위안부 피해자 황금자 할머니… 세번에 걸쳐 기부

    위안부 피해자 황금자 할머니… 세번에 걸쳐 기부

    일본군 종군위안부 피해자인 황금자(86·서울 강서구 등촌동) 할머니가 애써 모은 재산 1억원을 장학금으로 내놔 눈길을 끈다. 강서구는 황 할머니가 27일 구청에서 장학금 3000만원을 기탁했다고 밝혔다. 황 할머니는 2006년과 2008년에도 각각 4000만원, 3000만원을 기부했다. 국민기초생활수급자인 황 할머니는 임대아파트에 살면서 정부지원금과 연료비 등을 아껴 장학금을 마련한 것으로 알려졌다. 강서구는 황 할머니가 기탁한 1억원을 강서구장학회로 편입, 매년 어려운 대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지급한다. 1924년 함경도에서 태어난 황 할머니는 13살 때 길을 가다 일본 경찰에게 붙잡혀 흥남의 한 유리공장으로 끌려갔다. 3년 뒤 다시 간도지방으로 끌려가 위안부 생활을 했다. 광복 후 고국에 돌아온 황 할머니는 가정을 꾸릴 생각도 못한 채 길에서 떠도는 아이를 양녀로 삼고 키웠으나, 이 아이가 10살 때 죽는 바람에 다시 혼자가 됐다. 노현송 강서구청장은 “황 할머니는 우리 사회에 건전한 기부문화를 정착시키는 귀감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준규기자 hihi@seoul.co.kr
  • 육군도 베레모 쓴다

    육군이 내년부터 전투모를 베레모로 교체한다고 24일 밝혔다. 육군 관계자는 “내년 신형 전투복 보급과 함께 베레모를 공급하기로 했다.”면서 “베레모를 쓰면 강인한 이미지를 주고 넓은 시야를 확보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고 말했다. 육군은 신형 베레모의 색깔을 흑녹색으로 정해 특수전사령부의 검은 베레모와 차별화했다. 현재 전투모는 1948년 창군 당시 일본군과 미군 모자를 본뜬 것으로 우리 군의 역사성과 정체성 정립 차원에서 개정이 필요했다고 육군은 설명했다. 오이석기자 hot@seoul.co.kr
  • 한·일 변호사, 日정부에 위안부 해결 입법 요구

    대한변호사협회(회장 김평우)는 일본변호사연합회와 지난 11일 도쿄에서 심포지엄을 열고 일본 정부 및 국회에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입법을 촉구하는 내용의 공동선언문을 채택했다고 12일 밝혔다. 양국 변호사단체는 선언을 통해 “법안에는 일본군이 설치·운영한 위안소가 여성의 존엄을 심각하게 손상하는 것임을 일본이 인정하고 그에 대한 책임으로 금전적 보상 등의 조치를 취하는 내용이 담겨야 한다.”고 주장했다. 선언문에는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과 관련해 비공개 상태인 일본측 관계 문서를 공개하고 전범 기업이 기금을 조성해 징용 피해를 보상할 것을 요구하는 내용도 포함돼 있다. 강병철기자 bckang@seoul.co.kr
  • [데스크 시각] 한반도 안보 위기의 현장들/이도운 정치부장

    [데스크 시각] 한반도 안보 위기의 현장들/이도운 정치부장

    북한을, 정확히는 북한 사람을 처음 만난 것은 1994년 3월 16일이었다. 3월이지만 영하 20도의 추위가 몰아치는 시베리아의 한복판 체그도민에서 북한 공안요원 세명과 마주쳤다. 북한 벌목장과 탈북자를 취재하러 온 기자에게 북 요원들은 “왜 쳐다보는 기야!”라며 살기 어린 눈을 부라렸다. 다음날 상점에서 빵을 사러 나온 북한 벌목공 두명을 만났다. 고단해 보이는 얼굴에는 땟국이 흐르고, 갈라진 손등은 자라 껍질 같았다. 그 추위에 양말도 없이 다 떨어진 운동화를 신고 있었다. 측은함이 아니라 회의감이 밀려왔다. ‘풍요롭게 자란 한국 젊은이들이 과연 이들과의 통일이란 걸 원하기나 할까.’ 1995년 6월 초여름이 시작될 무렵, 일본 외무성 초청 프로그램으로 홋카이도의 자위대 지부를 방문했다. 자위대 간부에게 직설적인 질문을 던져봤다. “한국과 일본이 전쟁을 한다면 누가 이길까?” 그 간부는 당황스러운 기색 없이 “한국군도 강하다고 들었지만, 일본군의 전력도 전혀 뒤지지 않는다.”고 답했다. 얼마 뒤 그 얘기를 전해 들은 군사전문가는 말했다. “우린 이지스함도 없고(당시는 그랬다)… 전력상 일본을 상대하기 어렵다.” 1996년 3월 24일 오전. 4박 5일간 중국을 방문한 공로명 외무부장관이 장쩌민(江澤民) 주석, 리펑(李鵬) 총리 등 지도부를 연쇄 면담한 뒤 미국으로 출발하기 위해 베이징 국제공항에 도착했다. 공 장관이 배웅 나온 중국 외교부의 천젠(陳健) 대변인에게 조심스럽게 말하는 것이 들렸다. “시간이 없어 (공식 면담에서) 미처 얘기 못했는데, 앞으로 한국과 중국의 군사지도자들이 정기적으로 교류했으면 한다고 전해 달라.” 2005년 1월 24일 저녁. 워싱턴의 보수적 싱크탱크인 미국기업연구소(AEI) 12층 콘퍼런스 홀에서 ‘네오콘 포럼’이 개최됐다.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재선을 축하하는 신보수주의자들의 축하파티 겸 단합대회 성격이었다. 두 시간 넘게 진행된 포럼에서는 South든, North든 Korea라는 단어가 단 한번도 나오지 않았다. 포럼이 끝난 뒤 ‘네오콘 선집’(Neocon Reader)의 저자 어윈 스텔저와 워싱턴포스트의 네오콘 이데올로그 찰스 크라우트해머에게 물었다. “당신들은 한반도 문제에는 관심이 없는가?” 그들이 답변했다. “한반도는 중동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지역이다. 미 정부는 앞으로도 중동정책에 집중하고, 북한 정책은 현상을 유지하는 데 주력할 것이다.” 2010년 8월 말, 정부와 청와대 개편으로 새로 임명된 고위관계자와의 오찬. 그는 우리 군이 안고 있는 심각한 문제들에 대해 털어놓기 시작했다. “정권이 몇 차례 바뀌면서 능력 있는 지휘관은 정치바람에 다 날아가고, 그저 무난한 사람들만 남았다. 중간 간부들은 열악한 처우 때문인지 재테크 등 다른 곳에 생각이 많이 가 있는 것 같고….” 2010년 11월 23일 오후. 북한의 연평도 포격이라는 충격적인 소식을 접하는 순간, 기억 저편에 숨어 있던 단편적인 사건들이 마치 파편들처럼 머릿속에서 터져나왔다. 현실은 과거의 기억들보다 좀처럼 더 나아가지 못한 것 같다. 북한의 지도부는 무모할 만큼 호전적이고, 인민들은 절망에 빠져 있다. 햇볕정책도, 압박정책도 북한의 변화를 가져올 수 없었다면 대안은 무엇일까. 한반도를 면밀히 관찰해온 일본은 “한국군의 전력이 예상외로 약한데….”라며 ‘조롱’하는 것 같다. 해상자위대가 독도에 접근할 때 한국 해군이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가 이미 이들의 머릿속에 있지 않을까. 중국은 여전히 경제 말고는 한국보다 북한을 우선시하는 태도를 바꾸려 하지 않는다. 중국에 한국은 동북아의 독립된 정치·군사적 주체가 아닌 것일까. 미국 공화당의 유력한 차기 대권주자는 “북한이 우리편”이라고 말할 정도로 한반도 문제에 대한 무지와 무관심을 드러내고 있다. 한·미 간의 전략적 이해는 어느 단계까지 일치할 수 있을까. 이런 것들이 연평도 포격을 보며 새삼 되돌아보게 된 한반도 안보 위기에 대한 단상들이었다. daw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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