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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일 정상 수교 50주년 행사 교차 참석, 朴대통령 메시지 내용 ‘주목’

    한일 정상 수교 50주년 행사 교차 참석, 朴대통령 메시지 내용 ‘주목’

    한일 정상 수교 50주년 행사 교차 참석, 朴대통령 메시지 내용 ‘주목’ 수교 50주년 행사 교차 참석 박근혜 대통령은 22일 오후 서울 주한 일본대사관에서 개최되는 ‘한일 국교 정상화 50주년 기념 리셉션’에 참석해 축사를 한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도 우리 정부 주최로 도쿄에서 열리는 리셉션에 참석할 예정이다. 양국 정상이 이처럼 한일수교 50주년 기념행사에 교차 참석함으로써 경색된 한일관계가 진전되는 계기가 될 지 주목된다. 박 대통령은 축사에서 한일관계 ‘정경분리’ 기조에 맞춰 양국이 과거 50년을 넘어 향후 50년의 발전을 향해 미래지향적인 협력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대일 메시지를 발신할 전망이다. 다만 과거의 아픔을 치유하기 위해 일본군 위안부 문제나 과거사 왜곡 문제 등에서 일본 정부의 선제적이면서 의미있는 태도 변화가 필요하다는 점을 우회적으로 강조할 것으로 보인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한·일 ‘日세계유산에 강제징용 반영’ 사실상 합의

    휴일이던 21일 도쿄에서 열린 한·일 외교장관 회담은 지난 3년 동안 냉랭하게 얼어붙으면서 악화돼 오던 한·일 관계가 다시 정상화를 향해 움직이기 시작했음을 보여준다. 윤병세 외교부 장관과 기미다 후미오 외무상은 이날 일본 산업혁명 시설의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추진과 관련, “협의를 통해 원만하게 타결하자는 공통인식을 갖고 이 문제를 긴밀히 협의키로 했다”고 밝혔다. 또 이날 양국은 한·일 정상이 다음날인 22일 도쿄와 서울에서 열리는 국교정상화 50주년 기념 리셉션에 교차 참석키로 했음을 발표하는 등 양국 관계의 진일보한 상황을 전했다. 한·일 간의 새로운 갈등으로 떠오른 일본의 세계문화유산 신청과 관련해서 양측이 협의를 약속했다는 대목은 “조선인 강제징용 사실을 알리라”는 한국 측의 요구를 일본 측이 어느 정도 수용해 이 같은 사실을 적은 표지판 설치 등의 절충점을 찾아냈음을 의미한다. 양측이 이달 말부터 독일에서 열리는 세계문화유산 선정위원회 표결까지 가지 않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길을 찾은 셈이다. 이날 회담에서 양측은 관심을 끌어온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한 해법에서는 별다른 돌파구를 열지 못했다. 양측은 이날 회담에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와 관련해서 일본 정부의 법적 책임과 일본이 요구하는 ‘사안의 최종 종결 보장’ 등을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윤 장관은 “군위안부 피해 문제에 대해 우리 입장을 분명히 전달했다”고만 밝혔다. 앞서 지난 20일 유흥수 주일 한국대사는 마이니치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이 문제가 정상회담의 전제조건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그러나 이날 윤 장관은 “(정상회담을 위한) 좋은 여건이 조성돼야 하지 않겠느냐”면서 “성공적인 회담이 되려면 여러 가지 정지작업이 필요하고, 두 나라 관계개선을 가로막는 몇 가지 장애물을 하루 빨리 제거하는 게 좋겠다”고 역시 이 문제가 관건임을 에둘러 전했다. 한편 윤 장관이 기시다 후미오 일본 외무상과 4년 만에 가진 이날 한·일 외교장관 회담은 양국의 관계 개선과 정상회담을 위한 정지 작업이라는 평을 받고 있다. 윤 장관은 기시다 외무상에게 금년에 방한해 달라고 초청했고, 기시다 외무상은 이를 수락함에 따라 서울에서 한·일 외교장관 회담이 열리게 됐다.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한·일 외교 수장이 6번 만났지만 다자 회의가 아니라 ‘순수’ 한·일 양자 외교장관 회담으로는 양국 현 정부 출범 후 처음이자 이명박 정부 시절인 2011년 5월 당시 김성환 장관이 한·중·일 정상회담 수행차 방문한 이후 4년 만이다. 이날 윤 장관이 이동한 하네다공항과 회담장인 이이쿠라 공관 등에서는 우익 인사들이 확성기로 시위를 벌여 최근 3년간 악화일로를 겪은 한·일관계의 현주소를 체감케 했다. 도쿄 이석우 특파원 jun88@seoul.co.kr
  • 한·일 정상, 수교50년 기념식 참석 무산

    오는 22일 도쿄와 서울에서 각각 열릴 예정이던 한·일 수교 50주년 기념식에 두 나라 정상의 참석이 무산됐다. 대신 정부 대표로 윤병세 외교부 장관이 이날 일본을 방문해 아베 신조 총리를 만날 예정인 것으로 전해졌다. 요미우리신문은 19일 한·일 양국 정부가 고려해 오던 수교 50주년 기념식에 정상들의 참석을 ‘미루기로 했다’고 전했다. 이어 양측의 정부 대표가 박근혜 대통령과 아베 총리의 메시지를 대독하기로 했다고 덧붙였다. 일본 정부 고위 관계자는 이와 관련, “국회 일정으로 인한 사정”이라고 밝혔다. 메르스 확산이 진정되지 않는 상황에서 박 대통령의 참석이 부담스러운 한국 측의 입장도 작용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 대표는 일본에선 한·일 의원 연맹 회장을 맡은 누카가 후쿠시로 전 재무상이, 한국은 윤병세 외교부 장관이 맡기로 했다고 신문은 전했다. 장관 부임 후 처음 일본을 방문하는 윤 장관은 기시다 후미오 외무상과 21일 회담한 뒤 다음날 아베 총리를 예방한다. 윤 장관과 아베 총리의 면담에 대해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은 “일본과 한국의 여러 문제에 대해 폭넓은 의견 교환을 할 것으로 생각한다”고 19일 밝혔다. 아베 총리와 면담에 앞서 윤 장관과 기시다 외상은 일본군 위안부 문제 등 양국 현안과 북한 문제 등 국제정세 등을 협의할 계획이다. 도쿄 이석우 특파원 jun88@seoul.co.kr
  • 인천상륙작전 성공 하고도…맥아더 해임된 결정적 이유는

    인천상륙작전 성공 하고도…맥아더 해임된 결정적 이유는

    6·25전쟁은 ‘잊혀진 전쟁’이라 한다. 16개국에서 전투부대를 파견한 국제전이었던 이 전쟁은 결코 잊지 못할 전쟁임에도 정치, 이념적 시선에 따라 판이하게 평가된다. 우리 민족에겐 여전히 상흔이 씻기지 않는 최대의 비극이다. 6·25전쟁 발발일을 즈음해 관련 서적들이 봇물을 이룬다. 논란이 분분하거나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들을 담아 주목된다. 이 가운데 ‘맥아더’(플래닛 미디어), ‘6·25전쟁과 미국’(청미디어)은 한국전쟁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 더글러스 맥아더(1880~1964)와 미국 수뇌부 동향을 집중 분석했다. 미국의 전쟁전문가 리처드 B 프랭크가 쓴 맥아더 평전 ‘맥아더’는 당시 유엔군사령관 맥아더의 진짜 얼굴이 도드라진다. 책 속의 맥아더는 ‘최고의 업적과 최악의 실패가 공존하는, 매우 복잡한 인물’이다. 한국전쟁은 특히 그에겐 ‘최고 영광과 최악 수모를 함께 안겨 준 사건’이다. ‘5000대1 확률’의 도박 같은 인천상륙을 감행, 전세를 역전시키고도 중공군 개입을 불렀다. 합동참모본부 명령과 반대로 국경 근처까지 돌진해 중국을 자극한 것이다. 맥아더는 제3차 세계대전 확산을 우려한 트루먼 대통령을 공개 비난하고 맞서 해임됐다. 책에서 그 해임 사건은 “너무나 분명하게 그리고 공개적으로 국가 정책에서 벗어나 해임당한 것이며 적절한 조치였다”고 평가된다. 생체실험을 자행한 일본군 731부대장이 전후 전범재판서 무죄받는 조건으로 미국에 실험자료를 건넨 거래에 맥아더가 개입됐다는 내용도 흥미롭다. 언론인 출신 남시욱 세종대 석좌교수의 ‘6·25전쟁과 미국’도 맥아더 행적을 촘촘하게 추적하고 있다. 트루먼 대통령, 애치슨 국무장관과 비교한 맥아더의 전쟁 수행 과정이 도드라진다. 트루먼 행정부가 전략적 가치가 없다는 이유로 군사력으로 방어할 대상 국가에서 제외한 한국에 지상군까지 파병하기로 결정한 과정이 명쾌하다. 당초 38선 이북으로의 북한군 격퇴를 목적으로 했던 유엔군 작전 목표를 북진통일로 바꾼 과정, 북한 완전 점령을 눈앞에 둔 크리스마스 공세가 중공군 개입으로 참패한 원인도 흥미롭다. 맥아더 해임을 놓고는 “맥아더의 아시아 중시주의에 대한 트루먼과 애치슨의 유럽 중시주의의 승리”라고 잘라 말한다. 트루먼, 애치슨이 전략적으로 유럽을 중시하고 한반도에 깊게 발을 들여놓지 않으려고 한 반면 맥아더는 공산주의에 대항하기 위해 한반도를 굳게 지켜야 한다고 믿었으며 그 차이가 6·25전쟁 당시 한반도에 대한 미국 정책에 혼선을 불렀다고 본다. 전쟁 전 태평양 방어선에서 한국을 빼는 애치슨 발언이나 트루먼이 1951년 4월 맥아더를 해임하고 휴전으로 나아간 것도 유럽 중심주의 때문이다. 반면 맥아더는 공산주의 척결을 위해 북진 당시 평양∼원산 라인에서 방어선을 치고 중국 참전에 대비해야 한다는 의견을 무시한 채 압록강까지 진격해 패했다는 주장이다. 트루먼, 애치슨, 맥아더의 긴밀한 협력이 있었다면 맥아더 해임 사태가 없었을 것이며 6·25전쟁도 다르게 전개됐을 것이라고 진단한다. 6·25전쟁 당시 외국 군대의 개입 배경과 전쟁 실상을 추적한 책들도 눈길을 끈다. ‘그을린 대지와 검은 눈’(책미래 펴냄)은 영국군과 오스트레일리아 지상군을 조명하고 있다. 영국인 저널리스트 앤드루 새먼이 50여명의 생존자 인터뷰를 바탕으로 쓴 책에서 저자는 놀랍게도 이렇게 말한다. “한국전쟁은 영국이 2차 세계대전 이후 치른 전쟁 중 가장 인명 피해가 크고 잔인했다. 그럼에도 당시는 물론 지금도 영국인들은 그 전쟁을 모르고 있다.” 전쟁에서 영국군은 포클랜드 전쟁, 이라크 전쟁, 아프가니스탄 전쟁의 전사자를 모두 합친 수(783명)보다도 더 많은 1087명이 전사했다. 영국 제27여단과 41코만도 부대, 그리고 왕립오스트레일리아연대의 참전기를 통해 전황이 가장 격렬했던 1950년 마지막 몇 개월의 최전선 상황이 생생하다. 특히 불과 1주일 전에 출발 명령을 받아 무기나 보급품도 제대로 없는 상태로 파병된 영국군의 부산 방어선 전투와 인천상륙작전, 장진호 전투, 흥남철수 작전 수행 등 극적인 순간들이 소개된다. 박실 전 의원이 쓴 ‘6·25전쟁과 중공군’(청미디어 펴냄)은 1990년대 이후 풀리기 시작한 공산권 공문서·자료를 통해 전쟁 시기 중공군의 움직임을 집중 추적했다. 북한 인민군의 주력이 된 팔로군의 조선인들, 전쟁을 앞두고 김일성이 40여 차례나 스탈린을 조른 이야기, 마오쩌둥의 아들까지 참전한 배경, 마오쩌둥의 지구전 방침, 38선 경계를 둘러싼 줄다리기 과정이 실감난다.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 한일 외교장관 ‘위안부 담판’ 무얼 담을까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둘러싼 한·일 양국 간의 협의가 막바지에 달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이 문제가 어떻게 해결될지도 관심을 모으고 있다. 당장 니혼게이자이신문은 18일 일본 정부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를 재정 지원하고 사죄의 성명을 발표하는 대신 한국 정부가 문제의 최종 해결을 보증하는 구상이 양국 간에 논의되고 있다고 전했다. 그렇지만 노광일 외교부 대변인은 이 같은 보도에 대해 고개를 가로저으며 “사실과 부합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정부는 그동안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해 일본 정부·군이 조직적으로 동원한 만큼 법적인 책임을 인정하고 정부 예산으로 위안부 할머니에 대한 보상을 해야 한다는 입장을 굽히지 않았다. 일본 정부 및 일본군이 군 시설로 위안소를 관리 통제하고 본인의 의사에 반해 위안부가 된 만큼 정부 차원의 보상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정부는 지난해 4월부터 최근까지 진행된 8차례의 한·일 국장급 협의에서도 이 같은 내용을 강조한 것으로 전해졌다. 또 일본의 책임을 인정하고 사죄의 내용이 포함된 성명을 아베 신조 총리가 발표하고 주한 일본대사가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를 만나 고개를 숙이는 방안도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는 타협의 특성상 어느 한쪽의 입장을 모두 담아내기 힘들다는 점을 감안할 때 일본군 위안부와 관련한 일본 정부의 법적인 책임을 어떻게 인정하느냐다. 정부는 일본 정부의 책임을 명확하게 하고 싶은 반면 일본은 정부 예산을 사용해 위안부 할머니에 대한 지원은 하겠지만 어디까지나 인도적인 차원이라는 점에 방점을 두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일부에서는 한·일 수교 50주년을 맞아 일본을 처음으로 방문하는 윤병세 외교부 장관이 기시다 후미오 일본 외무상과 한·일 외교장관회담에서 위안부 문제에 대한 최종 담판을 이끌어 낼 가능성을 제기하지만 성급한 기대는 이르다는 관측도 만만치 않다. 외교부 고위관계자도 “너무 큰 기대를 걸기보다는 차분하게 보면서 현안이 진전되는 방향으로 보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즉 윤 장관 방일을 계기로 위안부 문제가 풀리기에는 넘어야 할 산이 많다는 얘기다.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역시 법적인 책임을 명확하게 하길 원하지만 문서화 등이 불가능할 경우 일본 정부 예산으로 보상이 이뤄진다는 선에서 묵인할 가능성도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외교부 관계자는 “협상은 상대방이 있는 만큼 100대0이라는 스코어가 아닌 51대49로 마무리된다”며 “결국 위안부 문제도 각자 해석의 여지를 남기는 방식으로 마무리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제훈 기자 parti98@seoul.co.kr
  • [사설] 윤병세 장관 방일, 한·일 관계 개선 계기가 돼야

    윤병세 외교부 장관이 오는 21일 취임 후 처음으로 일본을 방문한다. 한·일 국교정상화 50주년을 맞을 앞두고 최악의 상황에 빠진 한·일 관계를 고려한 외교적 조치다. 윤 장관은 이번 방일을 통해 기시다 후미오 일본 외무상과 회담을 갖고 22일 주일 한국대사관이 도쿄에서 개최하는 국교정상화 50주년 리셥션에도 참석할 예정으로 알려졌다. 양국 외교장관 회담에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비롯해 조선인 강제노동 현장이 포함된 일본의 근대산업시설 세계유산 등재 추진, 일본산 수산물 수입규제 등의 현안이 한꺼번에 논의될 전망이다. 이번 윤 장관의 방일과 외교장관 회담 한번으로 당장 손에 잡히는 가시적 효과가 없을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실타래처럼 얽혀 있는 양국 관계가 새로운 단계로 진전되는 계기를 마련하는 게 중요하다. 윤 장관의 방일 자체로 우호적인 분위기 조성과 관계 회복의 동력으로서 의미가 있다는 것이 우리의 생각이다. 양국 관계를 풀어갈 핵심 고리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다. 박근혜 대통령이 최근 워싱턴포스트와의 인터뷰에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한 한·일 간 협의와 관련해 ‘상당한 진전이 있다. 마지막 단계에 와 있다’고 언급한 바 있다. 현재 양국은 아베 신조 총리의 사과편지와 위안부 할머니에 대한 보상 등이 핵심인 ‘사사에안’을 중심으로 양국 국장급 회담이 진행되고 있는 상황이다. 윤 장관과 기시다 외무상이 이번 회담에서 위안부 문제에 대해 최종 담판을 시도할 가능성도 높다. 위안부 문제에서 돌파구가 마련되고 아베 신조 총리가 오는 8월 종전 70주년을 맞아 발표할 아베 담화에서 과거 식민지배와 침략에 대해 진정성 있는 반성의 뜻을 명확하게 피력하게 되면 한·일 관계는 정상회담까지 일사천리로 갈 수 있는 동력을 얻게 된다는 것이 많은 전문가의 분석이다. 윤 장관의 방일은 사실 모험이자 결단이다. 아직도 뜨거운 국내의 반일 여론에도 불구하고 먼저 대승적 차원에서 가해자인 일본에 손을 내민 것으로 볼 수 있다. 아베 정부가 윤 장관의 방일에도 불구하고 편협한 기존의 입장을 고수한다면 한·일 관계 개선의 기회는 당분간 오기가 힘들 것이다. 일본은 과거사를 직시해 사죄의 결단을 내려야 하고 한국은 이를 토대로 미래로 가는 용기가 필요하다. ‘가해자 일본’이 먼저 주변국들의 고통을 경청하고 수용하는 것이야말로 한·일 관계는 물론 동북아 전체의 공존과 공영의 첫걸음이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 위안부 아픔의 역사, 세계인과 함께하다

    위안부 아픔의 역사, 세계인과 함께하다

    영국에서 일본군 위안부 피해 여성 문제를 다룬 영화가 상영된다. 동북아역사재단과 일본 릿쿄대는 19~20일 영국 셰필드 쇼룸워크스테이션에서 ‘일본군 위안부, 그들의 목소리를 듣다’라는 주제 아래 다큐영화 ‘낮은 목소리 1·2’, ‘끝나지 않은 전쟁’, ‘나의 마음은 지지 않았다’ 등 4편을 상영하고 현지 전문가들이 참석하는 심포지엄을 연다. 셰필드는 유럽에서 동아시아 연구가 가장 활발한 곳으로, 셰필드대 동아시아학과와 할람대 인권연구센터 학자들이 심포지엄에 참석한다. 변영주 감독, 김동원 감독, 이향진 릿쿄대 교수, 가와이 유코 릿쿄대 교수 등이 참석해 관객과의 대화도 갖는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한국, 중국, 필리핀 등 아시아 지역에 피해가 국한됐지만 최근 여성인권 측면에서 세계적 이슈로 떠올랐다. 그럼에도 피해자들이 실제로 어떤 일을 당했는지 등에 대해서는 국제사회의 구체적인 인식이 부족한 것이 현실이다. 동북아역사재단 관계자는 “지난해 재단에서 발간한 영문 핸드북 ‘일본군 위안부의 진실’을 행사장에서 무료 배포할 계획”이라면서 “이번 행사를 통해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한 관심을 국제사회에 확산시키고, 이해를 높일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박록삼 기자 youngtan@seoul.co.kr
  • 윤병세 21일 첫 방일… 냉각관계 풀리나

    윤병세 21일 첫 방일… 냉각관계 풀리나

    윤병세 외교부 장관이 한·일 국교정상화 50주년을 맞아 21~22일 일본을 방문한다고 한·일 양국이 17일 밝혔다. 취임 후 처음으로 일본을 방문하는 윤 장관은 당초 2013년 4월 일본을 방문하려 했으나 아소 다로 부총리 겸 재무상이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자 방문 계획을 취소한 바 있다. 한국 외교장관의 일본 방문은 2011년 이후 4년 만으로 윤 장관은 21일 도쿄에서 기시다 후미오 외무상과 외교장관 회담을 갖고 22일에는 주일 한국대사관에서 열리는 한·일 국교정상화 50주년 기념리셉션에 참석한다. 일본에서 한·일 외교장관 회담이 열리는 것은 2011년 5월 이후 4년 만이다. 외교부 관계자는 “윤 장관은 리셉션 참석에 앞서 아베 신조 일본 총리를 예방하는 방안을 추진 중인데 아직 면담 여부가 확정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리셉션에서는 박근혜 대통령을 포함한 양국 정상의 축하 메시지가 낭독될 것으로 전해졌다. 윤 장관의 이번 방일은 22일이 한·일 국교정상화 50주년으로 이를 계기로 수교 이후 최악이라는 한·일 관계 개선에 적극 나서겠다는 의지를 보인 것으로 볼 수 있다. 특히 막바지 단계로 알려진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놓고 윤 장관이 기시다 외무상과 담판을 벌일 가능성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 박 대통령은 최근 워싱턴포스트와의 인터뷰에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둘러싼 한·일 양국의 협의가 상당한 진전이 있었으며 마지막 단계에 이르렀다고 언급했다. 그러나 이 같은 박 대통령의 언급에 일본 측은 당혹스러워한 것으로 알려져 눈길을 끌었다. 따라서 윤 장관이 일본 방문을 통해 위안부 문제 등을 놓고 진전된 결과를 얻어낼 경우 이번 방일이 선순환 효과를 일으켜 정상회담까지 이어질 수 있다는 기대감도 높아지고 있다. 일부에서는 당장 위안부 문제에 대한 결론을 기대하는 것은 성급하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지만 관계 개선을 위한 분위기 조성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보고 있다. 한편 아베 총리의 외교 특사인 야치 쇼타로 국가안전보장국장은 한국대사관에서 열리는 리셉션에 참석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전해졌다. 외교부에서는 부인하고 있지만 그가 이병기 청와대 비서실장과 군 위안부 문제를 놓고 별도 협의 채널로 최종 조율을 하는 것 아니냐는 해석도 나오고 있다. 이제훈 기자 parti98@seoul.co.kr 문경근 기자 mk5227@seoul.co.kr
  • 절망, 그 끝엔 시대의 비극

    절망, 그 끝엔 시대의 비극

    1938년은 우리 민족에게 많은 일들이 일어났다. 일제는 이른바 ‘제3차 교육령’을 선포하고, ‘국어상용화 정책’을 폈다. 이는 내선일체(內鮮一體)를 주창하고 조선어교육을 폐지하며 민족을 말살하려는 황국신민화 정책의 일환이었음이 오래지 않아 확인됐다. 나아가 제국주의적 탐욕과 침략의 마지막 발악이었던 강제징병, 창씨개명의 신호탄이었다. 이와 함께 작은 의문의 사건도 하나 발생했다. 그해 언론에도 제법 자세히 보도되며 세간에 화제가 됐던 ‘경성 근처 한 기숙학교에서 발생한 여학생 연쇄 실종사건’이 있었다. 한 달에 한 명씩 무려 16명이 실종됐다는 내용이었다. 사건은 호사가들의 술자리 안주거리로도 오래 지속되지 못한 채 단순 가출실종으로 마무리되고 말았다. 영화 ‘경성학교-사라진 소녀들’은 1938년 실제 발생했던 사건의 뼈대에 많은 것을 기대며 이야기를 풀어간다. 배경은 세상과 철저히 단절된 여학생 기숙학교다. 선택된 단 두 명만 일본 도쿄로 유학 떠날 수 있다. 이를 유일한 꿈이자 목표로 여기는 여학생들이 함께 생활하며 공부하는 공간이다. 폐병을 앓는 주란(박보영)이 유학온 뒤 따돌림을 받는다. 급장 연덕(박소담)이 주란을 챙겨주려 하지만 그 역시 마음속 깊은 곳에 친구로부터 배신당했다는 상처를 안고 있다. 반 친구들이 하나씩 사라지는 가운데 주란이 미스터리한 사건의 유일한 목격자가 된다. 늘 자상한 미소를 잃지 않는 교장(엄지원)이 오히려 공포스러운 사건의 주체였음을 확인한다. 절묘하다. 어디로도 닿을 수 없는 폐쇄된 절망적인 공간, 기껏 도망쳐봐야 거대한 일본군의 병영을 발견할 따름이다. 파리한 표정으로 각혈하는 유약한 식민지 학생, 지도한다는 명분으로 뺨을 마구 갈기는 교사가 있는 학교는 식민지에서 겪어야 할 불가피한 장면이었다. 주체를 잃어버린 시대는 제국주의 괴물이건, 피압박 민중의 괴물이건 어떤 형태로든 괴물들을 양산한다. 여학생이 잇따라 실종됐지만, 이를 지켜줄 국가와 민족이 없었으니 각자도생만이 살 길이었다. 물론, 비극적인 시대에 행복한 결론을 바라는 것은 지나친 기대다. 마지막에 교장이 울부짖듯 진심 어린 표정으로 말한다. “다 너희를 위해서야. 너희들은 약하고 힘이 없잖니.” 악의 평범함 같은 더 무서운 현실이 아닌, 익히 들어왔던 뻔한 얘기다. 그럼에도 분노가 치밀어 오름은 슬픈 역사가 여전히 현재형으로 어른거리고 있는 현실이 있는 탓일 테다. 광복 70주년, 그리고 한·일 국교정상화 50주년을 맞아 일본에 소개해도 좋음직하다. 일본의 영화관객들이 당시 피압박 백성들의 심경과 정서를 우회적으로나마 짐작할 수 있는 작품이다. 18일 개봉. 15세 관람가. 박록삼 기자 youngtan@seoul.co.kr
  • 위안부 협상 한·일 막후 채널 역할했나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놓고 박근혜 대통령이 한·일 간 협의가 마지막 단계에 이르렀다고 밝히면서 공식 채널 외에 비공식 막후 채널이 어떤 역할을 했는지 관심을 모으고 있다. 막후 채널의 존재 여부는 민경욱 청와대 대변인의 언급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민 대변인은 15일 박 대통령의 워싱턴포스트 인터뷰 발언 내용과 관련, “대통령은 ‘막후 협의에서 의미 있는 진전이 있었으며 협의의 구체적인 부분에 대해서는 언급하기 어렵다’고 말했다”고 소개했다. 따라서 지금까지 8차례 진행된 양국 외교부 국장급 협의 외에 별도의 협상 창구에서 위안부 문제를 둘러싼 진척이 있었다는 얘기로 들린다. 이와 관련, 눈길을 끄는 것은 최근 일본이 아베 신조 총리 산하의 국가안전보장국(NSC)을 중심으로 한·일 관계 복원을 위해 중·일 정상회담 당시 활용했던 특사 교환 방식을 검토했다는 것이다. 대일 관계에 정통한 외교 소식통은 “NSC를 중심으로 중·일 관계 정상화에 막후 채널로 가동됐던 야치 쇼타로-양제츠 라인과 같은 비공식 채널을 한·일 간에도 만들 것을 검토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일본은 아베 총리의 심복이나 다름없는 야치 NSC 사무국장을 특사로 내세우고 한국 측에서도 그에 상응한 파트너가 나오기를 희망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 소식통은 “야치 국장의 공식적인 카운터파트는 김관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지만 주일대사를 지내며 신뢰를 쌓은 이병기 청와대 비서실장이나 야치 국장과 친분이 두터운 유명환 전 외교부 장관이 나와도 좋다는 뜻을 일본 측이 가진 것으로 알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 같은 움직임에도 불구하고 오는 22일 한·일수교 50주년을 앞두고 위안부 문제가 타결될 가능성은 높지 않다는 게 전문가들의 관측이다. 다만 타결된다면 타협안은 2012년 언급됐던 ‘사사에안’을 기초로 만들어질 가능성이 높다. 사사에안은 사사에 겐이치로 당시 일본 외무성 사무차관이 2012년 3월 방한 때 제시한 뒤 추후 논의를 통해 구체화된 협상안으로 주한 일본대사의 사과와 인도적 조치를 위한 자금 지원, 피해자에 대한 일본 총리의 편지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이제훈 기자 parti98@seoul.co.kr
  • 할머니, 꼭 기억할게요… 대구 위안부 역사관 문 연다

    할머니, 꼭 기억할게요… 대구 위안부 역사관 문 연다

    대구 일본군 위안부 역사관이 광복절에 문을 연다. 대구시와 정신대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은 ‘희움 일본군 위안부 역사관’을 오는 8월 15일 개관한다고 15일 밝혔다. 희움은 ‘희망을 모아 꽃피움’이라는 뜻으로 지난 3월 이름 짓기 공개 모집을 통해 선정됐다. 위안부 역사관은 대구 중구 서문로1가에 지상 2층 연면적 83.29㎡ 규모로 건립됐다. 1층은 전시실, 2층은 기획전시실과 교육관으로 꾸며진다. 내부에는 영상 감상 코너, 위안부 문제 해결 운동 안내, 대구·경북 지역 위안부 피해 할머니 소개, 위안부 스토리 검색대 등이 배치될 예정이다. 희움 위안부 역사관은 2009년 12월 시민사회에서 건립추진위원회를 만들면서 본격 추진됐다.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갔던 고 김순악 할머니가 ‘대구에 위안부 역사관을 건립하는 데 써 달라’며 내놓은 5000만원이 계기가 됐다. 건립에는 모두 12억 5000만원이 들어갔다. 시민모금운동에다 여성가족부와 대구시가 각각 2억원, 대구 중구청이 4000만원을 보탰다. 개관일에 맞춰 위안부 관련 기획전도 열린다. 기획전에서는 위안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수십년간 활동해 온 일본인의 이야기가 주로 다뤄진다. 위안부 역사관은 지난해 12월 1일 문을 열 예정이었으나 건물 보강 공사와 내부 콘텐츠 보강 등을 이유로 2차례 더 연기됐었다. 대구 한찬규 기자 cghan@seoul.co.kr
  • 종전 70주년 담화 아베 “반성 담을 것”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올해 종전 70주년을 계기로 8월에 발표할 이른바 ‘아베 담화’에서 반성을 비롯해 전후 일본이 걸어온 평화의 길과 앞으로 일본이 걸어갈 국가 청사진이 담길 것이라고 말했다. 2012년 아베 총리 취임 이후 처음, 일본 총리로서는 7년 만에 처음으로 중화권 언론과 인터뷰한 자리에서 나온 말이다. 아베 총리는 15일 일본 도쿄 총리관저에서 홍콩 봉황위성TV와 인터뷰를 갖고 이 같은 메시지를 던졌다. 아베 총리는 인터뷰에서 “일본은 과거의 전쟁을 심각하게 반성했고, 앞으로 절대로 전쟁의 전철을 밟지 않을 것”이라고 한 뒤 “일본의 새로운 안보 관련 법은 중·일 간 군사적 충돌로 이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아베 총리는 또 일본군위안부 동원의 강제성을 인정하고 사죄한 1993년 ‘고노 담화’와 일본의 식민 지배와 침략 전쟁을 인정하고 사죄한 1995년 ‘무라야마 담화’를 역대 내각이 전체적으로 계승해 왔다고 강조했다. 아베 총리가 이례적으로 중화권 매체와 인터뷰를 한 숨은 의도가 이목을 끌었다. 아울러 8월 아베 담화에서 실제 ‘침략’이란 단어가 사용될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교도 통신에 따르면 고가 마코토 전 일본 자민당 간사장이 아베 담화에 과거 침략 행위를 인정하는 표현을 넣기를 촉구하는 등 일본 안팎에서 평화주의자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지만, 정작 담화에서 사과보다 전후 일본의 대아시아 지원 정책 등이 부각될 가능성이 높게 점쳐지는 상황이다. 아베 총리는 이날 봉황위성TV와의 인터뷰에서도 “일본이 70년 전 과거에 대해 반성했고, 계속해서 아시아 국가들의 발전을 위해 공헌할 것으로 기대해 왔다”는 취지의 설명을 이어가며 미래 경제적 지원을 할 수 있는 일본의 역량에 방점을 찍었다. 베이징 이창구 특파원 window2@seoul.co.kr
  • “위안부 진전” 朴대통령 언급에 日 ‘당혹’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둘러싼 한·일 양국 간의 줄다리기가 막바지에 달했다는 박근혜 대통령의 언론 인터뷰에 대해 협상 창구인 외교 당국이 난감해하고 있다. 협상이 막바지에 이른 것은 사실이지만 협상이라는 것이 최종 타결 순간을 앞두고 틀어질 수 있어 어느 때보다도 조심스럽기 때문이다. 실제로 외교부는 박 대통령의 언론 인터뷰 내용을 묻는 질문에 반응을 자제했다. 대통령의 언급인 만큼 토를 다는 것이 부담스럽다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조심스럽게 성급한 기대에는 선을 그었다. 외교부 관계자는 14일 “협상이 막판 단계인 것은 맞다”면서도 “내일 당장 타결될 것처럼 여기는 것은 아직 성급하다”고 강조했다. 박 대통령의 언급에 대해 일본은 당혹해하는 분위기다. 아사히신문은 외무성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어떤 인식에 따라 박 대통령이 말한 것인지 모르겠다”고 전했다. 양국 외교부가 손사래를 치고 있지만 위안부 문제를 둘러싼 협의가 막바지에 달했다는 정황은 곳곳에서 감지된다. 당장 오는 22일 개최되는 한·일국교정상화 50주년 기념행사 때 윤병세 외교부 장관이 일본을 방문할 가능성이 매우 높은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일부에서는 윤 장관의 방일이 위안부 문제 막판 조율을 위한 것이라는 해석을 내놓기도 한다. 일본에서도 일한의원연맹 회장인 누카가 후쿠시로 전 재무상이 서울을 방문해 양국 국교정상화를 축하할 예정이다. 당초 기시다 후미오 외무상이 참석하려 했으나 일정상 어렵게 되자 윤 장관과 같은 장관급을 보내기로 했다는 후문이다. 이 때문에 박 대통령이 처음으로 위안부 협의에 진전이 있었다고 밝힌 점과 윤 장관의 방일 가능성 등을 종합해 보면 조만간 위안부 협의가 마무리되는 것 아니냐는 기대도 있다. 이제훈 기자 parti98@seoul.co.kr
  • 맺힌 恨 못 풀고… 같은 날 떠난 두 위안부 피해 할머니

    맺힌 恨 못 풀고… 같은 날 떠난 두 위안부 피해 할머니

    30분 간격을 두고 두 명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가 한 맺힌 생을 마감했다. 여성가족부는 경북 포항에 사는 김달선(왼쪽·91) 할머니와 경기 광주의 김외한(오른쪽·81) 할머니가 노환으로 별세했다고 12일 밝혔다. 김달선 할머니와 김외한 할머니는 각각 11일 오후 9시 15분, 오후 8시 40분에 눈을 감았다. 두 할머니의 별세로 정부에 등록된 위안부 피해자 238명 가운데 생존자는 50명만 남게 됐다. 김달선 할머니는 1925년 경북 포항시 북구 환여동에서 3남 3녀 중 둘째로 태어났다. 19세 때인 1943년 어머니를 따라 흥해읍에서 청어를 팔던 중 일본 경찰에 의해 미얀마로 끌려갔다. 그곳에서 무참히 성을 유린당하며 자궁 수술을 두 차례 받고 자살을 시도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해방이 된 뒤 꿈에 그리던 고향으로 돌아왔지만 위안소에서 받은 고초로 평생 병원과 요양원을 전전했다. 고인의 여동생 김만금(73)씨는 “생전에 ‘일본놈들이 우리가 가고 싶어서 간 것이라고 하는 데 죽기 전에 자꾸 이야기를 해 진실을 밝혀야 한다’고 자주 말하셨다”면서 “언니는 평생 사과 한마디 없는 일본 정부를 증오했다”고 전했다. 경기 광주 나눔의집에서 생활해 온 김외한 할머니는 1943년 위안부로 끌려가 일본 훗카이도에서 혹독한 생활을 했다. 위안부 피해 후유증으로 오랜 기간 병을 앓아온 김외한 할머니는 1998년 12월 공식 피해자로 등록됐다. 김희정 여성가족부 장관은 이날 오후 김외한 할머니의 빈소가 차려진 안동의료원 장례식장과 김달선 할머니 빈소인 포항시민장례식장을 각각 찾아 조문했다. 김 장관은 “일본군의 위안부 만행은 피해 당사자가 없는 상태에서의 사과는 의미가 없다”면서 “생전에 사과하지 않는다면 또 한 번의 씻을 수 없는 역사적 과오로 인류사에 기억될 것임을 가해 당사국이 명심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윤수경 기자 yoon@seoul.co.kr
  • “한·일 위안부 협상 상당한 진전… 마지막 단계”

    박근혜 대통령은 12일 일본군 위안부 문제와 관련, “위안부 문제에 있어 한국과 일본 간 논의에 상당한 진전(considerable progress)이 있었으며 현재 협상의 마지막 단계(final stage)에 있다”고 밝혔다. 박 대통령은 전날 청와대에서 진행한 워싱턴포스트(WP)와의 인터뷰에서 “매우 의미 있는 한·일 국교정상화 50주년을 기대하고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고 WP가 이날 인터넷판으로 보도했다. 다만 박 대통령은 협의의 진전 내용에 대한 물음에는 “물밑 협의가 진행 중인 만큼 협의의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서는 언급을 자제하겠다”고 답했다. 박 대통령은 ‘아베 총리가 군 위안부 문제와 관련해 사과하길 원하느냐’는 질문에 “일본 학자뿐 아니라 전 세계 학자들이 우리가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일본이 과거에 무엇을 했는지 분명히 밝히라고 일본 리더십에 요구하고 있다”면서 “군 위안부 피해자들이 돌아가시기 전에 그들의 상처를 치유하고 명예를 회복시킬 의무가 일본에 있다”고 말했다. 미국이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의 한반도 배치를 요청하면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우리의 국가 안보 이익에 맞는지를 포함해 다양한 요소를 고려하면서 미국과 함께 살펴볼 것”이라고 말했으며 중국의 반대에는 “안보 문제에 관해서는 특정 국가의 입장에 따라 가부를 정할 게 아니다. 우리가 어떻게 우리 국민을 잘 보호할 것인지가 최우선 순위”라고 강조했다. 북한 상황에는 “공포정치가 계속되고 있다. 공포정치는 단기간에는 작동하지만, 중장기적으로는 체제의 불안정을 키운다”고 평가한 뒤 한 북한 노동당 간부의 탈북 사실을 언급하면서 “(고위 탈북자가) 측근그룹까지 포함해 광범위한 숙청이 계속돼 자신들의 생명을 걱정하고 있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북한의 붕괴 가능성에는 “내 희망은 붕괴 시나리오를 보지 않고 평화적인 해결을 보는 것”이라고 말했다. 박 대통령은 또 미국 국무부가 최근 의회에 제출한 공식 보고서에서 북한이 영변 이외에 비밀 핵시설을 운영하고 있을 것으로 추정한 것과 관련, “국제원자력기구(IAEA) 조사관이 (오랫동안) 북한에 들어가지 못했다. 그것이 진실일 개연성(probability)이 있다”며 조속한 북한 비핵화의 필요성을 거듭 지적했다. 남중국해 문제에는 “안보와 항해 자유는 한국에 중요하다. 우리는 상황이 악화되지 않길 희망한다”고 말했다. 이지운 기자 jj@seoul.co.kr
  • 朴 대통령은 ‘서울기념식’ 아베는 ‘도쿄기념식’ “한·일 정상, 수교 50주년 행사 교차참석 검토”

    박근혜 대통령과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양국 대사관 주최로 열리는 한·일 국교정상화 50주년 기념행사에 교차 참석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관측됐다. 복수의 도쿄 외교 소식통은 11일 “한·일 양국 정부는 오는 22일 서울과 도쿄에서 각각 열리는 국교정상화 50주년 기념행사에 양국 정상을 초청한 상태”라며 “양측 모두 정상의 참석에 대해 긍정적인 입장을 교환한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한·일 국장급 간 8차 협의에 참석한 이상덕 외교부 동북아국장은 “(수교) 50주년 기념행사에 양국 정부 인사가 참석하는 문제에 관해 협의가 있었다”면서도 “구체적으로 정해진 것은 없다”고 밝혔다. 외교 소식통들은 “한·일 양측 모두 (정상의 교차 참석을) 실현하기 위해 최종 조율 중”이라고 덧붙였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이날 “한국 측은 ‘아베 총리가 도쿄에서 열리는 (주일 한국대사관 주최) 기념식에 참석하면 박 대통령도 서울에서 열리는 (주한 일본대사관 주최) 기념식에 참석할 것’이라는 입장을 비공식적으로 일본 측에 전했다”고 보도했다. 일본 정부 관계자들은 “아베 총리의 참석에는 큰 어려움이 없다”면서 “세월호 참사 당시 아베 총리는 당시 한국대사관이 총영사관에 설치한 분향소를 찾아 참배하는 등 한·일 관계 개선에 대한 긍정적인 자세를 갖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과 일본은 수교 40주년을 맞았던 2005년에도 당시 노무현 대통령과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가 기념행사에 교차 참석한 전례가 있다. 이와 관련해 일본 정부 대변인인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은 이날 정례회견에서 양국 정상의 기념식 참석 가능성에 대해 “서울과 도쿄의 대사관 기념식에 각각 누가 참석하는지 등 자세한 내용은 현시점에서 아직 아무것도 정해지지 않았다”고 밝혔다. 도쿄 이석우 특파원 jun88@seoul.co.kr
  • 또… 별이 된 위안부 진실

    또… 별이 된 위안부 진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김외한 할머니가 11일 밤 세상을 떠났다. 80세. 김 할머니는 정부에 등록된 위안부 피해 생존자 중 최연소자다. 경기 광주 나눔의 집에서 생활해 온 김 할머니는 건강이 악화돼 이날 오후 참조은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오후 8시 40분쯤 숨진 것으로 알려졌다. 빈소는 경북 안동의료원에 차려질 예정으로 안동에는 김 할머니의 남편이 살고 있다. 김 할머니의 별세로 정부에 등록된 위안부 피해자 238명 중 생존자는 51명으로 줄었다. 이슬기 기자 seulgi@seoul.co.kr
  • [메르스 비상] 한·미 원자력협정 개정안 서명 연기

    박근혜 대통령이 10일 메르스 확산을 이유로 미국 방문을 연기하면서 자연스럽게 한국과 미국 사이에 예정됐던 외교 현안도 줄줄이 순연되거나 차질을 빚게 됐다. 당장 눈에 띄는 것은 박 대통령이 참석한 가운데 윤병세 외교부 장관과 존 케리 미 국무장관 등이 한·미 원자력협정 개정안에 정식으로 서명하려던 계획이 틀어진 일이다. 한·미 관계의 새로운 틀을 마련하는 이벤트라 상징성이 큰 행사였다. 이 때문에 정부도 지난 9일 국무회의를 열고 대통령 재가까지 마치는 등 국내 절차를 마무리한 상태였지만 뜻밖의 암초를 만났다. 외교부 관계자는 “대통령의 미국 방문을 계기로 협정에 서명하면 모양새도 좋고, 한·미 관계의 새로운 모습도 보여줄 수 있는 기회였는데 안타깝다”고 말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최근 북한의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사출 시험 성공에 따라 찰떡같은 한·미 관계를 과시하려던 계획도 차질을 빚게 됐다. 박 대통령의 중요한 방미 목적은 북한의 SLBM 위협에도 불구하고 굳건한 한·미 동맹 관계를 대내외에 과시하는 것이었다. 이를 통해 북한에 전향적인 자세를 바탕으로 대화를 촉구하고 압박을 가하려던 계획도 무산됐다. 특히 지난달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일본 총리로는 사상 처음으로 상하원 합동연설을 통해 ‘부동의 동맹’ 관계를 선언하며 신 미·일 밀월 관계를 대내외에 과시한 상황에서 박 대통령은 북핵 문제 공조 등을 통해 굳건한 동맹을 넘어 혈맹 관계를 과시하려 했었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둘러싸고 미국의 확고한 지지를 얻어낼 수 있는 기회도 사라졌다. 한 외교소식통은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이번 박 대통령 방미에서 위안부 문제에 대한 질문이 있을 경우 행위 주체를 언급할 가능성이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다만 방미 연기로 고민도 해결됐다. 남중국해를 둘러싼 미국과 중국 간 갈등 국면에서 미국을 두둔하는 모양새를 당분간 피할 수 있게 됐다. 실제로 독일 바이에른주 크륀 지역에 모인 주요 7개국(G7)이 공동성명에서 남중국해 문제와 관련해 중국을 비난하면서 정부의 입장은 더욱 난처한 상황이었다. 이제훈 기자 parti98@seoul.co.kr
  • [사설] 아베 정부, 고노·무라야마 고언에 귀 기울여라

    무라야마 도미이치 전 일본 총리와 고노 요헤이 전 일본 관방장관은 아베 신조 총리의 ‘전후 70년 담화’(아베 담화) 발표 때 역대 정권의 담화를 계승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무라야마 전 총리는 그제 일본 도쿄 일본기자클럽에서 고노 전 관방장관과의 대담에서 “아베 총리는 무라야마 담화 등 역대 정권의 담화를 확실하게 계승하겠다는 뜻을 밝힘으로써 국제사회가 제기하고 있는 의문을 해소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고노 전 장관도 일본군 위안부 모집 과정에서 명백하게 강제 연행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라고 밝혔다. 그는 강제성에 주목하면서 “군이 이동하면 군이 준비한 차에 타고 이동했다. 완전히 군의 관리에 의한 것이고 이를 보면 명확하게 강제성이 있다고 보는 것은 당연하다”고 말했다. 식민지 지배와 침략에 대한 분명한 사죄를 표명한 무라야마 담화와 일본군 위안부 강제성을 인정한 고노 담화의 계승과 관련해 아베 정부의 기조는 아직 온도 차가 크다. 이들의 정신을 계승한다는 말은 하고 있지만 담화의 핵심인 ‘침략에 대한 사죄’에 대한 계승은 아직 분명하게 말하지 않고 있다. 되레 물밑에서는 사죄와 관련한 대목을 걷어내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이 역력하다. 아베 담화 관련 자문 기구 측은 “총리가 더이상 사죄하는 데 대해 일본 국민 내에 위화감이 강하다”며 사죄란 표현을 넣는 데 반대하고 있다. 아베 측근들은 일본 국민의 정서를 핑계 삼지만 이는 현실과 동떨어진 인식이다. 최근 들어 과거의 잘못을 뉘우치라는 요구가 일본 내에서도 빗발치고 있다. 일본 지식인 281명은 지난 8일 성명을 통해 아베 담화에 반성과 사죄의 뜻을 담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와다 하루키 도쿄대 명예교수 등 양심 세력은 “침략과 식민 지배가 아시아 이웃 나라 국민에게 손해와 고통을 초래했다는 점을 재확인한다”며 일본의 진심 어린 반성과 사죄를 촉구했다. 아베 정부는 일본 국내에서 울리고 있는 일본 정치인·지식인들의 목소리가 일본의 양심을 대변하고 있다는 점을 직시해야 한다. 아베 총리는 공식 석상에서 미래지향적 한·일 관계를 주장하지만 한국인들의 가슴에 대못을 박으면서 손을 내미는 것은 옳은 방향이 아니다. 무라야마 담화와 고노 담화에 포함됐던 통절한 반성과 사죄를 이번 아베 담화에도 담는 게 앞으로 한·일 관계 개선을 위해 절실하다.
  • “속여서 위안부 모집, 軍 차량으로 이동…명백한 강제 연행”

    “속여서 위안부 모집, 軍 차량으로 이동…명백한 강제 연행”

    일본 제국주의의 한국 식민지 지배를 일본 총리로서는 처음으로 사죄한 ‘무라야마 담화’의 주인공인 무라야마 도미이치 전 총리와 일본군 위안부 동원의 강제성을 인정하고 사죄한 ‘고노 담화’를 낸 고노 요헤이 전 관방장관이 9일 오후 공개 대담을 가졌다. 두 사람은 무라야마 정권 당시 총리와 부총리를 지냈다. 일본기자클럽 주최로 열린 대담은 일본의 패전 70년을 결산한다는 의미에서 시종 진지한 분위기 속에서 1시간 35분 동안 진행됐다. 고노 전 관방장관은 위안부 문제를 도외시하려는 일본의 일부 분위기와 관련해 “사실을 인정하는 게 중요하다. 있었던 것을 없었던 것처럼 부정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다음은 대담의 주요 내용. ●무라야마 도미이치 전 총리(이하 무라야마)1995년에 담화를 낸 것은 내게 역사적인 역할이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 내각이 아니면 못 하는 일, 전후 50년의 역사를 정리하는 것이었고 그게 내 사명이었다. 그게 안 되면 총리를 할 의미가 없었다. 그런데 20년이 지난 지금 아베 신조 총리가 돼서 이것이 문제가 되고 있다. 과거의 역사를 반성하고 전쟁을 하지 않는다는 결의를 표명할 필요가 있어 담화를 낸 것이다. 당시에도 침략이라는 말을 놓고 논의가 있었지만 일본의 군대가 중국을 침략하고 한국을 36년간 식민 지배했다는 역사적 사실을 솔직히 인정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고노 요헤이 전 관방장관(이하 고노)미야자와 기이치 전 총리가 한국 측으로부터 위안부 문제에 관한 조사 요청을 받고 조사를 약속했다. 미야자와 당시 총리는 방한 전부터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가 일본에 와서 소송을 제기하는 상황 등을 보며 심각한 문제라는 것을 알았다. 총리가 귀국한 후 조사가 시작됐다. 정부 부처에 있던 위안부 관련 문서와 증인을 찾았고 미국까지 가서 조사했다. 20여년이 지나서 이렇게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은 정말이지 유감이다. 수십년간 일·한 관계가 잘 진행돼 오다 최근 몇 년간 유감스러운 상황이 됐다. 서로에 대한 신뢰도가 저하됐다. 가장 가까운 한국과 이렇게 되면 안 된다. 서로의 이해가 진행됐으면 한다. ●무라야마 제2차 아베 정권 들어 국회에서 위안부 문제가 재현됐다. 확고한 증거가 없지 않으냐는 문제 제기가 있었다. 증명할 조사를 하지 않았다는 문제 제기다. 하지만 일어난 사실은 틀림없으니 사과하는 것이 맞고 보상하는 게 맞다. ●고노 위안부 모집, 관리에 관한 문서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손을 잡아서, 잡아끌었다는 게 문서에 남아 있지 않았기 때문에 그걸 (담화에) 쓸 수는 없었다. 관헌에 의해서, 거짓말을 해서, 일할 곳이 있다고 해서 모았고 인신매매에 의한 사례도 있었다. 본인 의사에 반해서, 뿐만 아니라 모인 다음 강제적으로 일하게 됐다. 군이 이동하면 이동할 때마다 군이 준비한 차량에 의해 이동했는데 분명하게 강제성이 있었다고 보는 게 당연하다. 네덜란드인 위안부 여성의 사례에서 보면 인도네시아에 모인 여성을 강제적으로 끌고 가 위안부로 일하게 했다. 네덜란드 정부의 조사에서도 밝혀져 있다. 사실은 분명히 있다. 강제 연행도 있다고 할 수 있다. ●무라야마 한국을 가 보면 한국인들은 모두 일본의 우경화를 걱정한다. 그런 걱정을 하지 않아도 좋을 정도로 일본이 해야 한다. 한국에 ‘결자해지’라는 좋은 말이 있다. 위안부 문제는 일본이 한 것이기 때문에 일본이 해결해야 하고, 나아가 정상회담을 열어 해결해야 한다. 위안부 문제가 해결되면 (한·일 간에) 대단한 문제는 없다. ●고노 중국은 아베 담화가 어떻게 나올 것인지를 놓고 완전히 일본을 신용하는 것 같지는 않다. 중·일 간에 경제, 문화 교류 등이 진전돼 왔는데 이런 흐름을 정치가 멈춰서게 해선 안 된다. 한·일 간에도 풀뿌리 교류가 진행되고 있다. 하지만 내향적인 민족주의에 의해 상쇄되는 것은 유감스럽다. ●무라야마 일본의 헌법은 집단적 자위권을 인정하지 않는다, 전쟁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것을 일개 (아베) 내각이 바꿨다. 허용할 수 없다. 입헌주의를 부정하는 일, 헌법 해석을 개정하는 것은 허용하면 안 된다. ●고노 아베 정권의 안전보장에 관한 법제 정비는 너무 빠르고 난폭하다. 비밀보호법을 제정하고, 무기 수출을 완화하고, 각의결정에 의해 헌법 해석을 바꾼 것은 지금의 아베 정권이 서두르지 않으면 안 되는 이유가 있는가 생각하게 한다. 안전보장 정책에 대해서는 헌법학자들이 위헌이라고 주장하는 가운데 (아베 총리의) 방식은 옳지 않고 국민들의 이해를 얻을 수 없다. 도쿄 황성기 특파원 marry04@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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