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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日배상금이라던 10억엔… 위안부재단 위원장은 “치유금”

    日배상금이라던 10억엔… 위안부재단 위원장은 “치유금”

    “비영리단체로 민간 모금” 발언도재단 성격 부합하는지 논란 일 듯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지원을 위한 재단 설립 준비위원회 위원장으로 31일 선출된 김태현 성신여대 명예교수가 일본 측이 출연키로 한 10억엔(약 107억원)에 대해 “치유금이지 배상금이 아니다”라고 말해 논란이 예상된다. 김 위원장은 이날 서울 종로구 대한민국역사박물관에서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재단 설립은 피해 당사자인 할머니들의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는 방법을 고민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며 이같이 말했다. 정부는 지금껏 일본 정부가 지원 재단에 출연키로 한 돈을 일본 측의 책임 인정에 따른 사실상의 ‘배상금’이라고 설명해 왔다. 김 위원장의 설명은 정부 입장과 완전히 배치되는 셈이다. 김 위원장은 이후 이어지는 질문에도 “일본 정부가 책임을 인정하고 피해자의 명예를 존중하겠다고 10억엔을 출연한 것으로 배상금으로 보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다만 김 위원장은 이 같은 설명이 정부 입장과 다른 게 아니냐는 취재진의 질문이 이어지자 “제가 단호하게 배상금이 아니라고 했지만 여러 의견이 있을 수 있어 여지를 남기겠다”고 한발 물러섰다. 김 위원장은 또 피해자 지원 재단이 비영리 민간법인 형태로 운영되는 이유에 대해 “정부는 한계가 있다. 민간인들에게 펀드레이징(모금)을 해서 지원 사업을 좀 더 구상할 수 있다”고 말했다. 향후 국민들을 대상으로 모금을 해 지원 사업을 벌이겠다는 의미이지만 이 역시 지원 재단의 성격에 부합하는지를 두고 논란이 일 가능성이 있다. 그동안 정부는 지원 재단은 우선 일본이 출연하는 예산으로 사업을 한다는 입장이었다. 주한 일본대사관 앞 평화의 소녀상 이전에 대해서는 “민간단체가 하는 일로 정부와 무관하다”면서 “10억엔 출연과 관계가 없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지원 재단 활동에 반대하고 있는 나눔의집 등 위안부 관련 단체 등에 대해선 “설득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이날 첫 회의를 연 준비위원회는 유명환 전 외교통상부 장관, 여성가족부 차관 출신인 김교식 아시아신탁회장, 이원덕 국민대 국제학부 교수 등 각계 인사 총 11명으로 구성됐다. 강병철 기자 bckang@seoul.co.kr
  • “한·일 위안부합의, 당사자 방치했다” 日 15개 역사연구단체들 연대 성명

    일본의 주요 역사학 연구단체들이 지난해 12월 한·일 정부 간의 일본군위안부 합의가 피해자들을 도외시했다는 연대 성명을 발표했다. 일본역사학협회·역사학연구회 등 역사연구 관련 15개 단체는 30일 도쿄 중의원에서 발표한 연대 성명에서 한·일 정부는 “위안부 피해자들의 명예와 존엄이라는 인권과 깊이 관련된 문제에서 당사자를 방치한 채 타결을 도모했다”고 주장했다. 이들 단체는 성명에서 “일·한 합의에는 대체로 당사자의 마음과 의사를 고려하려는 자세가 보이지 않는다”며 “정부 간에 일방적으로 ‘해결’을 선언하고 이후의 논의를 봉쇄하는 듯한 수법으로는 위안부 문제의 근본적 해결은 없다”고 비판했다. 또 “이번 일·한 합의는 위안부 제도의 책임을 모호하게 했다”며 “역사연구는 일본 정부와 일본군이 일본군의 시설로서 위안소를 입안·설치·관리·통제했던 점, 위안부 제도의 본질은 ‘성 노예’ 제도였다는 점, 당시 국내법과 국제법을 위반하고 있다는 점을 밝혀냈지만 합의는 그것들에 입각하지 않고 위안부 제도의 책임에 대해서는 ‘군의 관여’라는 애매한 인정에 그치고 있다”고 꼬집었다. 성명은 이어 “이번 합의 중 ‘위안부 문제가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으로 해결된 것을 확인하고 국제사회에서 상호 비난을 자제한다’는 표현으로 인해 앞으로 역사연구의 진전과 함께 새로운 평가를 하고 문제를 해결할 가능성을 잃게 되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주장했다. 이와 함께 “이번 합의는 역사교육을 언급하지 않았다”며 “교육을 통해 역사적 사실을 전할 것을 다시 한번 요구한다”고 강조했다. 도쿄 이석우 특파원 jun88@seoul.co.kr
  • [최광식 문화가 있는 삶] 한·일 국보 반가사유상의 만남

    [최광식 문화가 있는 삶] 한·일 국보 반가사유상의 만남

    지난 23일 국립중앙박물관에서 한국의 국보 제78호 금동반가사유상과 일본 주구지(中宮寺)의 목조반가사유상을 함께 전시하는 개막식이 열렸다. 6월 12일까지 일반에 공개되고 있다. 6월 21일부터는 장소를 옮겨 일본의 도쿄국립박물관에서 3주일간 공동 전시가 이루어질 예정이다. 이는 2015년 한·일 국교 정상화 50주년 기념사업의 일환으로 한국과 일본의 문화교류를 통해 ‘가깝고도 먼 나라’로 인식되고 있는 한·일 양국 사람들의 간극을 보다 좁히려는 의도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그러나 두 반가사유상의 형태나 제작 기법이 달라서 개막식에 참석한 관람객들은 유사성이 잘 엿보이지 않는다고들 하면서 왜 모습이 닮은 고류지(廣隆寺)의 목조반가사유상과 국립중앙박물관의 국보 제83호 금동반가사유상을 함께 전시하지 않았느냐고 궁금해했다. 반가사유상은 한쪽 다리를 다른 쪽 무릎 위에 얹고 손가락을 뺨에 댄 채 생각에 잠긴 모습이다. 이런 자세의 불상은 인간의 생로병사를 고민하며 생각에 잠긴 출가 전 싯다르타 태자의 모습에서 비롯된 것이다. 전 세계의 어느 반가사유상을 봐도 한결같이 고뇌에 찬 표정을 짓고 있지만 삼국시대 것은 살짝 미소까지 짓고 있다. 그런데 국보 제83호 반가사유상과 고류지 반가사유상은 미소까지 닮아 있다. 2013년 한·일 전시교류검토위원회가 구성돼 여러 차례 모임을 통해 한·일 국교 정상화 50주년을 맞아 국립중앙박물관의 국보 제83호 반가사유상과 일본 고류지의 반가사유상을 함께 전시하기로 의견을 모으고 공동 전시를 추진했다. 왜냐하면 두 반가사유상의 모습이 너무 흡사하며, 재질만 다르지 형태와 제작 기법이 같아 한국과 일본 고대 문화와 예술의 관련성을 상징하는 아이콘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고류지에서는 사찰 밖으로 반가사유상을 반출하기 어려우며, 더구나 외국 반출은 불가능하다 하여 난관에 부딪치게 됐다. 여러 차례 설득을 시도했으나 결국 불가능하게 돼 2015년 공동 전시는 이루어지지 못하게 됐다. 그러나 한·일 간의 우호증진을 위한 문화교류라는 취지를 살려 대안으로 주구지의 반가사유상과 국보 제78호 반가사유상을 공동 전시하자는 의견이 제시돼 주구지의 협조를 얻은 것이다. 사실 2015년 한·일 국교 정상화 50주년을 맞이했지만 두 나라 관계를 보다 밀접하게 할 만한 일들이 별로 이루어지지 못했다. 일본의 역사 교과서 왜곡은 시정되고 있지 않고, 일본군 위안부 문제도 일본의 사과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으며, 걸핏하면 독도를 일본의 영토라고 주장하는 일본 정치인들의 망언을 생각하면 과연 우리가 일본과 가깝게 지내려고 노력을 해야 하는가 하는 의문이 들 때도 있다. 그러나 국제사회의 일원으로서 인근 국가와 친선관계를 갖고, 시민사회의 연대를 통해 동아시아의 평화와 발전을 도모한다는 취지에서 두 나라 지식인들과 문화예술인들은 서로를 더 잘 이해하고 협력해 나가도록 공동 사업을 지속해 나가야 할 것이다. 이를 통해 일본의 역사 교과서 왜곡이 조금이라도 시정되고, 일본군 위안부 문제도 다소 진전이 이루어지며, 독도가 일본의 영토라고 하는 정치적 망언도 점차 사라지고 한국과 일본이 보다 긴밀해져 ‘가깝고도 긴밀한 나라’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그런 점에서 한·일 국교 정상화 55주년이나 60주년에는 반드시 한국의 국보 83호 반가사유상과 일본 고류지의 반가사유상이 공동으로 전시돼 한국과 일본의 관람객들이 이 두 불상을 보며 한국과 일본은 고대로부터 아주 가까운 나라라는 인식을 갖도록 노력해야겠다는 다짐을 해 본다. 그때는 지금과 같이 10m 떨어져 두 불상이 서로를 마주 보고 있는 모습이 아니라 두 반가사유상이 옆에 나란히 전시돼 관람객들이 한눈에 볼 수 있는 전시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그렇게 되면 한국과 일본은 서로 떨어져 마주 보는 ‘가깝고도 먼 나라’가 아니라 바로 옆에 있는 동반자로서 ‘가깝고도 긴밀한 나라’로 인식될 수 있을 것이다.
  • 中, 오바마 日히로시마 방문에 “난징대학살 잊으면 안돼”

    왕이(王毅) 중국 외교부장은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일본 히로시마(廣島)를 방문한 27일 “히로시마(원폭피해)는 주목받을 가치가 있다. (그러나) 난징(南京)(대학살)을 잊으면 더욱 안된다”라고 말했다. 중국중앙(CC)TV에 따르면, 왕 부장은 이날 광시좡족(廣西壯族)자치구 글로벌 홍보행사에 참석해 한 내외신 기자회견에서 오바마 대통령의 이번 히로시마행에 관한 질문을 받자 이같이 대답했다. 난징대학살은 중일전쟁이 한창이던 1937년 12월부터 이듬해 2월까지 일본군이 난징을 점령한 뒤 20여만명 이상을 학살한 사건이다. 왕 부장은 또 “피해자는 동정을 받아야 하지만, 가해자는 영원히 자신의 책임을 회피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중국은 전날 외교부 대변인을 통해서도 “우리는 모두 일본 군국주의가 일으킨 전쟁이 아시아 인민들에게 엄청난 재난을 가져왔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며 “오늘날 (일본은) 전쟁의 책임을 심각하게 반성해야 하고, 역사적 교훈을 깊이 흡수해야 한다”고 밝혔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위안부’ 피해 김복동 할머니 “대통령이 국민들 죽는지 사는지 모르고 외국만 다녀”

    ‘위안부’ 피해 김복동 할머니 “대통령이 국민들 죽는지 사는지 모르고 외국만 다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인 김복동(89) 할머니는 26일 아프리카 순방 중인 박근혜 대통령을 겨냥해 “국민들을 잘 좀 부탁드리려고 대통령에 뽑아 놓으니까 국민들이 죽는지 사는지 모르고 만날 외국만 나다닌다”고 지적했다. 김 할머니는 이날 오전 국회에서 우상호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와 만난 자리에서 “앞으로 대선에서 (사람을) 보아가면서 뽑을 것”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김 할머니는 “우리가 정부를 믿었던 게 탈이다. 아베가 사죄하면 (할머니들도) 말 들을지 모르는데 한 마디 말도 없이 자기들(정부)끼리 속닥속닥 해서 타결됐다고 한다. 무엇이 타결되었나, 지금”이라면서 “엉뚱하게 돈을 받아서 재단을 (설치한다고). 우리가 재단이 뭐가 필요하냐”며 토로했다. 그러면서 “우리가 일본하고 싸우고 있는 것이 돈이 크게 욕심나서 싸우는 게 절대 아니다”면서 “억울하게 끌려가서 당한 걸 생각하면 지금까지도 자다가 깜짝 놀라 일어나는 게 한두 번이 아니다. 그것을 어떻게 잊을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김 할머니는 “너무도 속이 상한다. 아베의 사과와 자신들이 끌고 갔다는 것을 밝히고 우리 명예를 회복시켜 달라는 것”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이에 대해 우상호 원내대표는 “지난해 협상을 보고 저도 깜짝 놀랐다. 전 국민이 가지고 있는 상처를 일본이 거듭된 역사 과오를 부인하는 행태를 봐왔는데 어찌 이걸 돈으로 해결할 수 있단 말인가”라면서 “그 발상 자체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비판했다. 우 원내대표는 “(한일 위안부 합의가) 더 큰 국론 분열만 야기시켰다”면서 “20대 국회가 개원하면 이 문제에 대해 해당 상임위에서 논의해보겠다”고 강조했다. 우 원내대표는 윤병세 외교부 장관을 겨냥해 “대통령의 지시를 받아 했겠지만 지금이라도 생각을 바꿔야 한다”면서 “서두를 이유가 없지 않나. 누가 (협상을) 해달라고 했나. 자기들이 나서서 하자고 해놓고 왜 분란을 일으키는지 모르겠다”고 꼬집었다. 또 “정말 이해할 수 없는 건 누가 이 할머니들의 동의를 받았다고 보고를 해서 이 사단이 났는지 20대 국회서 규명해 봐야겠다”고 밝혔다. 이 자리에 동석한 윤미향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상임대표도 “25년 동안 정부는 뒷짐지고 있었다. 아시아 국제사회가 공조해서 (성과를) 이뤘는데 한국 정부가 (지난 연말 합의로) 장벽을 만들어 놓은 상태”라면서 “슬기롭게 잘 거둬야 또 다른 희망을 줄 텐데 국제사회도 주의깊게 지켜보는 상황이다. 긴박한 상황이라 생각해서 거듭 부탁드린다”고 당부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駐일본대사에 이준규 前 인도대사 내정… ‘위안부 합의’ 이행 실타래 풀까

    駐일본대사에 이준규 前 인도대사 내정… ‘위안부 합의’ 이행 실타래 풀까

    사의를 표한 유흥수 주일본 대사의 후임으로 이준규 전 주인도 대사가 내정된 것으로 24일 알려졌다. 이 내정자는 직업 외교관 출신으로 지난해 12·28 한·일 일본군 위안부 합의 이후 재정립되고 있는 한·일 관계를 임기 말까지 무리 없이 관리하는 임무를 주로 수행할 것으로 보인다. 충남 공주 출신인 이 내정자는 서울대 법학과를 졸업했다. 외시 12회로 1978년 외무부에 입부한 뒤 38년 동안 외교관으로 활동하며 아시아·태평양국 제2심의관, 주뉴질랜드 대사, 재외동포영사대사, 외교안보연구원장, 주인도 대사 등을 역임했다. 대(對)일본 업무와 관련해서는 일본 쪽 경제·통상을 담당하는 통상1과장, 주일본 참사관을 역임했다. 특히 1995년에는 일본 게이오대에서 방문연구원으로 연수해 일본어 실력이 뛰어나고 일본 쪽 인사들과의 네트워크 역시 탄탄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내정자는 일본 측에서 아그레망(임명 동의)을 하면 공식 임명 절차를 거쳐 현지에 부임할 것으로 보인다. 주재국의 아그레망은 보통 빠르면 1주일에서 길게는 40일 정도 걸린다. 주일 대사로 공식 부임하게 되면 위안부 합의의 후속 조치를 비롯해 현재 유 대사가 이어온 한·일 관계 개선을 위한 업무를 주로 맡을 것으로 보인다. 당장 위안부 피해자 지원재단 설립 및 일본 정부의 10억엔 거출 문제 등 현안이 놓여 있다. 박근혜 정부의 남은 임기를 고려하면 이 내정자는 이번 정부의 마지막 주일 대사일 가능성이 크다. 이 내정자는 애초 주일 대사 하마평에서는 후보로 주목받지 못했다. 하지만 외교부 내에서 소탈한 성품과 깔끔한 업무 스타일, 업무 능력 등을 높이 평가받고 있어 주일 대사 임무 수행에 별 무리가 없을 것이란 평가가 나온다. 이 내정자는 2008년 5월 국회의원 신분이던 박근혜 대통령이 뉴질랜드를 방문했을 당시 대사로서 박 대통령을 만난 적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 2014년 1월 박 대통령의 인도 방문시에도 대사 역할을 수행한 인연이 있다. 박 대통령과는 서울 중구 장충초등학교 동문이기도 하다. 강병철 기자 bckang@seoul.co.kr
  • “오바마, 무고한 시민 살해 사과해야… 日, 사과했어야… 한국인 이중피해”

    “오바마, 무고한 시민 살해 사과해야… 日, 사과했어야… 한국인 이중피해”

    “우리(히로시마 사람)는 그래도 사죄를 기대한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미국이 원자폭탄을 사용해 무고한 시민까지 살해한 것을 사과하고, 다시는 원자폭탄을 쓰지 않겠다고 약속해야 한다.” 히라오카 다카시(88) 전 히로시마시 시장은 “원폭으로 희생된 사람들을 진정으로 추모하고 이번 방문을 핵 없는 세계를 만드는 출발점으로 삼기 위해서라도 사과가 있어야 한다”면서 “오바마가 마지막 정치무대를 장식하는 계기로 이용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미국에 (원폭 투하) 사죄를 요구하기에 마음에 걸리는 게 있다”면서 “일본이 먼저 국제법을 어기고 기습 전쟁을 도발해 많은 사람을 죽이고, 이웃나라에 피해를 준 것을 사죄하지 않은 점”이라고 지적했다. “일본 정부가 사죄해야 했고 총리가 하와이 진주만에 가서 헌화하고 사과해야 했다”는 것이다. 그는 일본은 (전쟁을 도발한) 가해자이면서 (원폭) 피해자라는 양면성이 있다면서 “피해를 당했다고만 말하는 것은 역사를 왜곡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한국인 피폭자는 일본과 미국의 이중 피해자”라면서 “승전국 미국의 핵에 대한 언론 통제와 일본의 외국인 차별로 인해 한국인 피폭자에 대한 치료와 원호가 늦어졌다”고 설명했다. 그는 “일본은 과거 역사에 대해 한국에 확실하게 사죄하지 못했다”면서 가해자가 잘못을 인정하고, 피해를 배상할 때 화해가 이뤄진다고 말했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해서도 “일본이 강제성을 부인하는 한 근본적인 해결책을 찾았다고 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그는 1997년 재임 중에 한국인위령비를 평화공원으로 옮기도록 결정한 주인공이다. 도쿄 이석우 특파원 jun88@seoul.co.kr
  • ‘강남 화장실 살인사건’ 추모쪽지 보존 위해 자진 철거

    ‘강남 화장실 살인사건’ 추모쪽지 보존 위해 자진 철거

    ‘강남 화장실 살인사건’의 피해자 추모 공간이 강남역 10번 출구 인근에서 서울시청 시민청으로 옮겨 운영된다. 23일 서울시 등에 따르면 추모 운동을 이끌어온 여성 자원봉사자들은 이날 10번 출구 주변을 뒤덮었던 추모 포스트잇(접착식 메모지)을 자발적으로 떼어내 스티로폼 판넬에 옮겨붙였다. 24일 비가 예보돼 추모 쪽지가 훼손될까 봐 자진 철거한 것이다. 철거 뒤 서초구청으로 잠시 옮겨졌던 추모쪽지는 이날 오후 서울시청 지하 1층 시민청으로 옮겨졌다. 시는 이곳을 추모공간으로 꾸며 매일 오전 9시부터 오후 9시까지 운영하기로 했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지난 19일 강남역 10번 출구를 방문해 살인 피해자를 추모하고 관련 자료를 보존하도록 조치하겠다고 밝혔다. 시는 추모 쪽지 가운데 상징성이 있는 내용만 시민청에 전시하고 나머지는 동작구 대방동의 서울시 여성가족재단에 영구보존하기로 했다. 여성가족재단에는 일본군 위안부 자료나 성희롱 판례 등 여성 관련 사료들이 보관돼 있다. 재단 관계자는 “구체적 보관 장소와 방법 등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면서 “추모 쪽지를 일일이 사진 촬영해 디지털 보관소에 남기는 방안 등을 논의 중”이라고 말했다. 추모 쪽지는 서울뿐 아니라 대전, 대구, 부산, 전주 등 전국에 나붙었는데 이 쪽지도 서울시로 옮겨 함께 보존한다. 앞서 17일 새벽 강남역 인근 주점 화장실에서 23세 여성이 조현증세를 보인 남성에게 살해되자 강남역 10번 출구에 피해자를 추모하는 포스트잇이 붙기 시작했고 쪽지 물결은 전국으로 확산했다. 유대근 기자 dynamic@seoul.co.kr
  • 오바마, 고엽제 입 닫고 ‘안보·경제 선물’

    오바마, 고엽제 입 닫고 ‘안보·경제 선물’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21일(현지시간) ‘20세기 전쟁 역사 청산’을 위해 베트남과 일본 히로시마 방문에 나섰다. 71년 전 세계 첫 피폭지인 히로시마 방문 일정을 잡은 오바마 대통령이 41년 전에 전쟁이 끝난 베트남과 관련해 ‘고엽제 문제’에 대해 언급할지 주목된다. 오바마 대통령은 이날 오후 미 워싱턴DC 인근 앤드루스 공군기지를 출발, 23일부터 2박 3일간 베트남 하노이와 호찌민을 방문한다. 오바마 대통령은 쩐다이꽝 국가주석과 정상회담을 한 뒤 응우옌티낌응언 국회의장, 응우옌쑤언푹 총리, 응우옌푸쫑 공산당 서기장 등 지도자들과 만나 안보와 경제를 주제로 협력 방안을 논의하고 연설도 한다. 미 대통령으로서 베트남 방문은 2000년 빌 클린턴, 2006년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에 이어 세 번째다. 이번 방문은 오바마 정부의 ‘아시아 재균형’ 정책 강화 흐름 속에서 한때 적국이던 베트남과의 관계 진전을 통해 협력을 강화하기 위한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워싱턴 외교가는 오바마 대통령이 임기 중 처음 방문하는 베트남에 내놓을 선물로 1984년부터 적용해 온 대(對)베트남 무기 금수 조치를 전면 해제할지 관심을 쏟고 있다. 미국은 1995년 수교 이후 살상 능력이 없는 무기에 한해 수출 금지를 해제했고, 2014년 10월에는 P3C 초계기 등 해양 안보와 관련한 일부 살상 무기에 한해 금수 조치를 풀었다. 하지만 첨단 군사장비 판매는 여전히 금지하고 있다. 무기 금수 전면 해제는 남중국해에서 군사적 패권 확장을 노리는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서라도 필요하다는 의견이 다수지만 베트남의 인권 상황을 고려하면 시기상조라는 지적도 나온다. 경제협력과 관련, 베트남이 가입한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문제도 주요 의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 TPP 최대 수혜국으로 꼽히는 베트남 정부는 TPP 회원국 가운데 처음으로 오는 7월 국회에 TPP 비준 동의안을 제출할 계획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베트남의 TPP 비준 협조에 대해 사회기반시설 개발 지원과 투자 확대 등 ‘당근책’을 내놓을 것으로 전망된다. 이와 함께 오바마 대통령이 베트남전쟁 때 미군이 살포한 고엽제 문제를 언급할지도 주요 관심사다. 미군은 베트남전쟁이 한창이던 1961년부터 1971년까지 7200만ℓ의 고엽제를 살포했다. 베트남에서 고엽제 피해자는 300만~480만명으로 추정된다. 또 신장질환과 뇌수종, 지적장애 등의 선천성 장애아가 태어난 것으로 학계에 보고됐다. 그러나 미국은 고엽제와 베트남인의 건강 피해 간 인과관계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오바마 대통령은 또 고엽제 피해자와의 만남도 계획하고 있지 않아 이번에 고엽제 문제를 언급하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베트남 전역에 남아 있는 불발탄 80만t(추산)의 제거와 관련해 양측의 실질적 협의가 이뤄질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오바마 대통령은 이어 26일 일본 이세시마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에 참석한 뒤 27일 히로시마로 이동해 평화기념공원에서 연설하고 헌화한다. 히로시마 방문에는 태평양전쟁 당시 일본군의 가혹한 포로 학대의 대표적 피해자 중 한 명인 재향군인 대니얼 크롤리(94)도 동행한다. 오바마 대통령이 공원 내 한국인 희생자 위령비를 방문할지도 주목된다. 오바마 대통령은 22일 방송된 NHK와의 인터뷰에서 “이번 방문에서 (원폭) 피해자에게 사과할 생각은 없다”고 말했다. 워싱턴 김미경 특파원 chaplin7@seoul.co.kr
  • ‘흑룡강성 마지막 위안부’ 할머니의 가슴 아픈 인생사

    ‘흑룡강성 마지막 위안부’ 할머니의 가슴 아픈 인생사

     지난 17일 95세를 일기로 별세한 중국 헤이룽장(黑龍江)성의 마지막 위안부 이수단 할머니의 가슴 아픈 인생사가 뒤늦게 알려져 안타까움을 주고 있다. 특히 이 할머니의 슬픈 사연에는 당시 일본군의 잔학함 뿐 아니라 조선의 악습과 무능도 그대로 드러나 있어 더욱 마음을 아프게 한다.  22일 중국 내 최대 한글 신문인 흑룡강신문은 이 할머니의 기구한 운명을 상세히 전했다.  1921년 평양 부근 농촌에서 태어난 이 할머니는 16살되던 해 남편과 결혼해 딸 하나를 낳았다. 하지만 행복도 잠시. 이듬해 남편과 딸이 병으로 잇따라 숨을 거두면서 고난이 시작됐다.  더 이상 의지할 곳이 없어진 할머니는 시댁에서 나와 친정에 돌아왔다. 하지만 이미 부친은 새로 맞은 첩에게 빠져 조강지처를 내친 상태. 슬펴할 겨를도 없이 이 할머니는 어머니의 생계까지 책임져야 했다. 설상가상으로 19살때 어머니마저 큰 병에 걸려 급하게 치료비가 필요했다. 바로 이때 ‘중국 하얼빈에서 일할 공장 노동자를 모집한다’며 여종업원을 모집하는 사람들이 돌아다니는 걸 목격했다. 이 할머니는 이들의 말만 믿고 선뜻 어머니의 치료비 마련을 위해 하얼빈에 따라 나섰다.  하지만 할머니가 간 곳은 공장이 아닌 일본군 위안소였다. 그와 함께 끌려온 여성은 7~8명 정도였으며, 가장 어린 처녀는 13살 밖에 되지 않았다. 대부분 시집도 안 간 처녀들이어서 이들은 자기가 온 곳이 어디인지 알고는 결사적으로 도망쳤다. 하지만 얼마 안돼 다시 잡혀와 죽도록 매를 맞길 여러번. 이들은 “누구든 도망칠 생각을 아예 말라”고 윽박지르며 성노예 생활을 강요했다.  이 할머니는 21살 때 중국과 러시아와 접경지역인 헤이룽장성 둥닝셴(東寧縣)에 있는 일본 관동군 위안소로 옮겨졌다. 당시 이곳에는 13만명의 관동군이 주둔하고 있어 수천명의 위안부가 필요한 상황. 할머니는 이곳에서 비인간적 대우를 받으면서 비참한 생활을 했고 함께 간 위안부들이 병과 폭행에 시달려 죽어가는 것을 보며 혼자 가슴을 뜯을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일본 패망 무렵 이곳에서 사변이 일어나 혼란해진 틈을 타 이 할머니는 다른 위안부들과 함께 탈출에 성공했다. 이제 할머니는 어두운 과거를 끝내고 새 인생을 시작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 할머니에게 진정한 의미의 해방은 찾아오지 않았다.  이곳에서 생활하던 위안부 피해자들은 2차대전이 끝난 뒤 일본군에게 버림받았고 남북한 정부도 이들에게 전혀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바람에 고향에 돌아가지 못했다  결국 할머니도 둥닝셴에 남아 중국인 남성을 만나 다시 결혼했지만 아이는 생기지 않았다. 두 번째 남편은 그가 위안부 출신인 것을 불쾌해하며 수시로 모욕하고 때렸다. 처음에는 할머니도 모든 것을 참고 숙명으로 받아들이고 살려 했지만 강도가 더해가는 폭력에 위안부 출신이라는 비관, 고통스러운 결혼 생활 등을 견디지 못하고 여러 차례 자살을 시도하기도 했다. 말년에는 치매증세까지 보였다.  80년대 초 헤이룽장성 정부는 할머니를 가정 폭력에서 벗어나게 해 주려 양로원에 보냈다. 할머니는 마음이 답답할 때마다 강변에 나와 눈물을 흘리며 소리를 지르며 회한을 달래곤 했다고. 말년에는 인형을 끔찍히 좋아했는데 이 가운데 특히 두 아기인형에 ‘량량(亮亮)’과 ‘뉴뉴(??)’라고 이름을 지어주고 한시도 몸에서 떼지 않으려 했다고 한다.  이 할머니를 돌봐온 양아들 고지상씨는 “어머니가 아이를 기르지 못한 것을 인생의 한으로 생각해 왔으며 연세가 많아질수록 인형들을 더 좋아하셨다”고 말했다.  할머니는 조선을 떠나온지 너무 오래 돼 우리말을 다 잊어버렸지만 민족에 대한 정체성만은 확고했다고 한다.  2007년 하얼빈시 조선족 예술관에서 할머니에게 한복을 선물하자 감격이 북받쳐 눈물을 비오듯 흘리며 “죽을 때 이 한복을 입혀 보내달라”고 말하기도 했다.  1960년대에 평양에 사는 남동생에게 연락이 와 “고향으로 돌아오라”고 했고 한국의 여러 단체에서도 모셔가려 했지만 할머니는 이를 모두 거절했다.  그는 “고향에 돌아가고 싶지만 평양에는 친척이 없고 그저 배다른 남동생만 한 명 있을 뿐이다. 조선말을 잊어버려 남한이나 북한 어딜 가더라도 의사소통에 어려움이 클 것 같다. 이곳(둥닝셴)에선 모두 나에게 잘 대해주니까 죽을 때까지 여기 있는 게 더 나을 것 같다”고 말하곤 했다고 한다.  이 할머니의 사연은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쉼터인 ‘나눔의집’ 원장 혜진(惠眞) 스님이 1998년 이곳에 들러 이 할머니를 포함해 당시 5명의 위안부 피해 할머니가 생존해 있다는 소식을 한국에 처음 소개하면서 알려지게 됐다.  지난 20일 이 할머니는 생전 유언대로 한복을 입은 채 화장돼 헤이룽장성 하이린(海林)시 중·한우호공원에 안치됐다.  이 할머니 별세 소식을 접한 박근혜 대통령과 황교안 국무총리, 윤병세 외교부 장관은 화환을 보내 조의를 표했고 주심양 한국 총영사관 관계자들도 빈소를 찾아 조문했다.  류지영 기자 superryu@seoul.co.kr
  • ‘위안부’ 피해자 하상숙 할머니, 상태 호전돼 일반 병실로 옮겨

    ‘위안부’ 피해자 하상숙 할머니, 상태 호전돼 일반 병실로 옮겨

    지난달 10일 중국에서 국내로 이송된 위안부 피해자 하상숙(88) 할머니의 상태가 호전돼 일반병실로 옮겨질 예정이다. 22일 중앙대병원에 따르면 중환자실에서 치료를 받던 하 할머니가 인공호흡기를 뗴고 자가호흡이 가능할 정도로 상태가 좋아졌다. 중앙대병원 관계자는 “최근 혈압이 안정되고 가족과 의료진의 말을 알아듣고 반응할 정도로 의식도 정상에 가깝게 돌아왔다”면서 “23일 일반병실로 옮겨 치료를 지속할 것”이라고 밝혔다. 하 할머니가 처음 병원을 찾았을 당시에는 계단에서 넘어지면서 생긴 갈비뼈 골절과 평소 앓고 있던 고혈압, 천식 등의 지병까지 겹쳐 회복이 쉽지 않은 상태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게다가 고령으로 수술이 힘들어 항생제 등의 약물치료와 투석 상태를 유지하는 등 지속적 신대체요법을 받아왔다. 현재도 가래 등의 증상이 지속되고 몸을 자유롭게 움직이기는 힘든 상태로 퇴원 시기는 아직 알 수 없다는 게 의료진의 설명이다. 중앙대병원 관계자는 “처음 상태가 심각해 우려가 컸지만, 다행히 치료에 차도를 보여 일반병실 옮기게 됐다”면서 “퇴원 여부는 환자의 상태를 좀 더 지켜봐야 알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 할머니는 1944년 17세 나이에 일본군 위안부로 중국에 끌려간 이후 한국에 돌아오지 못하다가 지난 2월 계단에서 넘어지는 사고를 당했다. 현지에서 치료를 받던 중 평소 고국에 돌아가고 싶다는 하 할머니의 뜻에 따라 정부와 민간의 합심으로 지난 4월 중앙대병원으로 이송돼 치료를 받고 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오바마 히로시마 방문길에 일본군 포로 출신 노병 동행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오는 27일 일본 히로시마(廣島) 방문에 과거 일본군 포로였던 미국 재향 군인이 동행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결국 전쟁을 시작한 일본이 ‘가해자’라는 측면을 부각시켜 오바마의 방문이 일본에 원폭을 투하한 데 대한 ‘일방적 사죄 행보’라는 평가를 불식하려는 조치로 풀이된다.  22일 교도통신에 의하면 일본군의 포로 생활을 경험한 미국 재향군인들의 단체인 ‘바탄·코레기도르방어미군추모회‘(ADBCMS·이하 추모회) 회원인 대니얼 크롤리(94)씨가 오바마 대통령의 히로시마 방문에 동행한다고 추모회 잔 톰슨 회장이 21일 밝혔다. 톰슨 회장은 미국 정부로부터 타진을 받았다고 소개했다.  추모회에는 2차대전 당시 필리핀 바탄 반도에서 일본군에 붙잡힌 뒤 폭염 속에서 약 100㎞가량 걷기를 강요당했던 이른바 ’바탄 죽음의 행진‘ 생존자들이 포함돼 있다.  톰슨 회장은 21일(현지시간) 기자회견에서 전(前) 미군 포로와 히로시마의 피폭자가 만날 가능성을 염두에 둔 채 “(전쟁의) 희생자들이 대면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교도통신은 “전쟁의 피해자는 일본만이 아니라는 점을 내외에 강조하려는 목적”이라고 분석했다.  앞서 추모회는 지난달 오바마 대통령에게 보낸 공개 서한에서 ‘(일본 측이) 일본에서 사망한 미군포로에 대해 진심으로 추도할 때까지 히로시마행을 자제해달라고 요구한 바 있다.  한편, 요미우리신문은 22일자에 오바마의 히로시마 방문을 계기로 미·일간 역사논쟁이 재연될 우려가 있다고 전망했다.  신문은 “오바마 대통령이 히로시마를 방문하면 아베 총리도 답례로서 (1941년 일본의 진주만 기습이 있었던) 12월에 진주만을 방문하기 바란다는 목소리가 분명히 나올 것”이라는 토머스 센킨 전 미국 국무부 차관 수석 보좌관의 예상을 소개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위안부 피해자 공점엽·이수단 할머니 별세

    전남 해남에 살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공점엽(96) 할머니가 17일 별세했다. 또 중국에 사는 한국인 출신 위안부 피해자인 이수단(95) 할머니도 이날 오후 3시쯤(현지시간) 헤이룽장성 둥닝현의 한 양로원에서 지병으로 별세했다. 두 할머니가 세상을 떠남에 따라 정부에 등록된 위안부 피해자 238명 가운데 생존자는 42명(국외 2명 포함)으로 줄었다.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는 지난해 설 무렵 뇌졸중으로 쓰러진 공 할머니가 이날 오후 5시 12분쯤 지병으로 별세했다고 밝혔다. 공 할머니는 16세이던 1935년 직업을 소개해 준다는 말에 속아 일본군 위안소로 끌려간 뒤 1943년까지 모진 고초를 겪었다. 1945년 귀국해 전남 해남 땅끝마을에서 가정을 꾸리고 힘겨운 삶을 살아왔다. 2년 동안 노환으로 병상에 있었던 공 할머니는 두 달 전부터 몸상태가 나빠져 결국 이날 숨졌다. 이 할머니는 일제강점기 고향인 평양에서 ‘공인(工人)을 모집한다’는 광고를 보고 자원했다가 위안부가 됐다. 러시아 연해주에 인접한 국경도시인 둥닝에서 위안부로 고통을 겪었다. 이 할머니는 70년 넘는 세월 동안 본인의 이름 외에 한국말을 모두 잊어버리고 말년에는 치매증세을 보이기도 했다. 홍인기 기자 ikik@seoul.co.kr
  • 외교부 “일본에 위안부재단 설립구상 설명, 日자금출연 의견교환”

    외교부는 지난해 한국과 일본의 합의에 따른 일본군 위안부 지원 재단 설립 문제와 관련해 17일 한일 외교당국 국장급 협의를 통해 일본 측 자금출연 문제와 사업 시행 등을 논의했다고 밝혔다. 조준혁 외교부 대변인은 정례브리핑에서 “우리가 재단 설립에 관한 여러 구상과 일정을 설명하고 이에 대해 협의했으며, 일본측의 자금출연 문제와 사업을 어떻게 시행하느냐는 문제에 대해서 논의가 있었던 것으로 안다”고 설명했다. 조 대변인은 “가능한 한 조속한 시일 내, 적어도 수 주 내에 (재단설립) 준비위원회를 발족시키는 것을 목표로 일을 추진하고 있다”며 “준비위원회 구성이나 임무, 역할에 대해서도 준비 작업을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정병원 외교부 동북아시아국장은 이날 도쿄 외무성 청사에서 이시카네 기미히로(石兼公博) 일본 외무성 아시아대양주국장과 협의를 가진 뒤 기자들과 만나 재단 설립 논의에 진전이 있었느냐는 질문에 “그렇게 보아도 무방하다”고 말했다. 현재 목표로 하는 이달 중 재단설립준비위원회 발족, 상반기 내 재단 설립을 위해 양국 정부가 협의에 속도를 내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정부는 그동안 외교부, 여성가족부와 민간 인사들로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해 재단 설립에 관한 물밑 논의를 해 왔다. TF에는 유명환 전 외교통상부 장관 등이 참여해 자문한 것으로 알려졌다. 유 전 장관은 이날부터 도쿄에서 열리는 제48회 한일경제인회의 참석차 일본에 체류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재단설립위원회 발족이 임박한 상황에서 주일대사를 역임한 ‘지일파’ 인사인 유 전 장관이 일본 측 인사들을 만나 소통, 여론정지 작업 등을 하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한편, 정부는 미국 공화당의 사실상 대선주자인 도널드 트럼프의 외교 보좌역 왈리드 파레스가 최근 언론 인터뷰에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및 방위비 분담금에 대해 재검토·재협상 의사를 밝힌 데 대해서는 “우리 외교정책에 대한 이해 제고를 위한 노력을 지속해 나가겠다”는 원칙적 입장을 밝혔다. 조 대변인은 “대선 과정에서 한미동맹 문제나 한반도 이슈 등 정책에 대해 방향이 좀 더 구체화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앞으로 각 후보 정책에 대해서 보다 면밀한 분석과 검토를 진행해 나갈 예정”이라고 강조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부고] ‘고려독립청년당’ 독립운동가 이상문 선생 별세

    [부고] ‘고려독립청년당’ 독립운동가 이상문 선생 별세

    인도네시아에서 독립운동을 한 애국지사 이상문 선생이 숙환으로 별세했다고 광복회가 12일 밝혔다. 97세. 이상문 선생은 일본군 군무원으로 인도네시아 자바에서 연합군 포로감시원으로 근무하던 1944년 한인 동료들과 항일운동 단체인 고려독립청년당을 결성했다. 고려독립청년당은 1945년 1월 자바에서 일본군과 군무원 등을 사살하는 등의 활동을 했지만 일본군 탈취 계획이 발각되면서 그 실체가 드러났고, 선생도 체포돼 1945년 5월 군사법원에 넘겨졌다. 이후 군사재판에서 징역 7년을 선고받아 옥고를 치르다 해방 뒤인 1945년 9월 4일 석방됐다. 정부는 그의 공훈을 기려 2011년 건국포장을 수여했다. 유족으로는 부인 임보엽씨와 자형(국토개발기술사)·신형(전국경제인연합회 경영자문위원)·길형(홍익대 광고디자인과 교수) 3남이 있다. 빈소는 서울중앙보훈병원 장례식장(8호실), 발인은 14일 오전 7시. (010)6416-5111.
  • 정부 “위안부 피해자 지원재단 새달 설립”

    민관 참여 준비위 발족하기로 “사망·생존자 모두 지원 대상” 지난해 12·28 한·일 일본군 위안부 합의의 후속 조치인 위안부 피해자 지원재단 설립과 관련해 외교부 관계자는 “상반기 중 재단 설립을 목표로 관련 준비를 추진해 나가고 있다”고 10일 밝혔다. 이 관계자는 이날 기자들과 만나 “가능한 한 조속하게 이행이 이뤄질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며 “재단 설립 전에 준비위원회도 발족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이달 중 발족할 것으로 예상되는 재단 설립 준비위원회는 위안부 피해자 지원재단의 정관 작성이나 설립 등기, 운영 방향 등을 결정하는 역할을 하게 된다. 준비위는 또 일본이 재단에 일괄 거출하기로 한 10억엔(약 100억원)을 가지고 재단이 향후 어떤 구체적인 사업을 이어 갈 것인지 등도 검토할 것으로 전망된다. 준비위에는 민관 출신 구성원들이 두루 포함될 것으로 예상되지만 아직 인선은 완료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준비위 멤버들은 상당수가 추후 재단 활동에도 관여할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일본 정부의 출연금은 피해자 직접 지원에 활용한다는 입장을 이미 밝힌 바 있다. 또 생존자와 이미 사망한 피해자 모두 지원 대상으로 삼아 구체적인 집행 방향을 고민하고 있다. 정부에 등록된 위안부 피해자는 총 238명으로 이 중 생존자는 44명(해외 거주 3명 포함)이다. 외교부 관계자는 “기념사업, 기념관, 추모비 등도 포함돼야 하겠지만 피해자 지원을 중심으로 할 것”이라면서 “건물을 짓는 게 아니며 재단 운영 임차료, 인건비 등 행정비용도 최소화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아울러 외교부와 여성가족부 등 위안부 피해 지원 주무 부서들은 지난달 19일부터 지난 2일까지 약 2주간 자택에 개별 거주하는 위안부 피해자 29명 전원을 면담했다. 이 자리에서 정부는 피해자 할머니들과 가족 등에게 12·28 위안부 합의의 의미, 지원재단 설립 및 운영 방향 등을 설명하고 관련 의견을 수렴했다. 29명 중 극소수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피해자 할머니 및 가족이 추후 지원재단이 추진할 사업을 수용하겠다는 의사를 표명한 것으로 전해졌다. 강병철 기자 bckang@seoul.co.kr
  • 전남에도 평화의 소녀상 잇따라 들어선다

    전남에도 평화의 소녀상 잇따라 들어선다

    전남지역에 ‘평화의 소녀상’ 건립운동이 본격화된다. 전남 평화의 소녀상 건립운동본부는 10일 전남도의회에서 결성식을 갖고 “일본에 의해 강제 동원된 할머니들의 아픔을 치유하고, 일제의 만행을 고발하는 평화의 소녀상을 전남지역 곳곳에 만들어가겠다”고 밝혔다. 전남지역 시민사회단체들로 구성된 ‘전남 평화의 소녀상 건립운동본부’는 공동대표로 김양희 전남여성단체협의회 회장, 고진형 6·15공동위원회 전남본부 상임대표, 서창호 전남교육희망연대 상임대표, 박행덕 전남진보연대 상임대표가 맡는다. 앞으로 전체 대표자회의를 통해 공동대표를 추가 인선할 예정이다. 운동본부는 새달부터 2개월 동안 집중적인 모금 운동을 통해 오는 8월 14일 세계위안부 기림일(또는 광복절) 에 맞춰 전남도청 인근에 소녀상을 준공해 올 광복절 즈음에 ‘전남 평화의 소녀상’을 제막하기로 했다. 이들은 또 22개 시·군에 제안해 평화의 소녀상을 계속해서 건립해 나가기로 했다. 도교육청과 시·군 교육청과의 협조를 통해 일본군 위안부 문제 관련 수업도 관철해 나갈 방침이다. 현재 전남에는 해남지역 47개 시민사회단체들이 지난해 12월 건축한 소녀상이 해남공원에 유일하게 들어서 있다. 운동본부 관계자는 “얼마 전 소녀상에 대해 떠들지 않으면 사람들의 관심이 희미해질 것이고, 그래야 철거가 쉬워진다고 무토 전 주한일본대사가 망언했다”며 “할머니들을 기리는 일은 더 이상 늦출 수 없는 우리의 책임이자 역할인 만큼 바로 오늘부터 소녀상 건립운동을 시작한다”고 밝혔다. 무안 최종필 기자 choijp@seoul.co.kr
  • [수요 에세이] 책임감 있는 공무원이 절실하다/장태평 전 농림수산식품부 장관

    [수요 에세이] 책임감 있는 공무원이 절실하다/장태평 전 농림수산식품부 장관

    며칠 전 4월 28일은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탄신을 기리는 국가기념일이었다. 이순신 장군은 1545년에 태어났다. 대한민국의 기념일 중 위인들의 생일을 기념하는 것은 둘뿐이다. 하나는 세종대왕 탄신을 기념하는 스승의 날이다. 이순신 장군은 충신의 표본이다. 장군은 몸을 바쳐 국가를 구했고, 애국·애민 정신에서 누구도 비교할 사람이 없는 분이다. 이순신 장군은 기적을 만든 사람이다. 23전 23승. 한 번도 지지 않았다. 명량해전의 경우에는 13척의 함선으로 133척의 거대한 적군을 완파하기도 했다. 어떻게 가능했을까. 위대한 승리를 경탄하기에 앞서 수많은 의문이 꼬리를 물고 일어난다. 우선 군사력과 화력 등 전력의 차이가 엄청났다. 일본군은 통일을 이루기까지 수많은 전쟁을 통해 실전 경험이 풍부하고, 조총이라는 신무기로 무장한 정예병이었다. 일본군은 중국을 정복하겠다는 자신감을 가지고 있었다. 조선 해군은 몇 달 전 부산 앞바다에서 일본 해군에게 완전히 궤멸당한 후 적의 위세에 공포감으로 가득 찬 패잔병이었다. 내륙에서 우리 육군은 연전연패 추풍낙엽이 되어 국가의 존망이 임박한 상태였다. 해군을 해산하고 육군에 편입하려고 했다. 그런 상황에서 조선 해군이 어떻게 승리할 수 있었을까. ‘아직 신에게는 열두 척의 배가 있습니다.’ ‘살고자 하면 죽기를 각오하고 싸워야 한다.’ 장군의 책임감이 나라를 구했다. 중소기업이 부도의 위기에 처하게 되면 사장은 밤잠을 자지 않고 머리를 쥐어짜며 생각하고, 온갖 가능성을 다 찾아다니며 동분서주한다. 어떤 경우에는 목숨을 버릴 각오를 한다. 그렇게 싸워서 회사를 살린다. 이순신 장군이 그랬다. 병참과 군사의 이동 경로인 남해안을 놓치면 나라가 망한다. 모든 수단을 강구하여 이를 차단하여야 한다. 그 책임자는 장군 자신이었다. 책임을 완수해야 한다. 잠을 이루지 못하고 초조하게 고뇌하고 또 고뇌하면서 밤을 새웠다. 전선의 상황을 치밀하게 파악하고, 절치부심 필살의 전략을 찾아내야 한다. 장군은 오죽하면 시름에 차서 간장을 녹인다고 노래하였을까. 그것이 책임감이다. 우리나라는 쌀 관세화를 20년간 연기하면서 연간 쌀 의무수입물량이 41만t에 이르게 되었다. 일본, 대만은 모두 초기에 관세화를 받아들였기에 쌀 수입물량이 매년 수백t에 불과하다. 우리가 수입하지 않으면 안 되는 41만t은 우리 생산량의 10% 수준이고, 금액으로는 1조원 가까이 되는 시장이다. 정부가 쌀 관세화를 추진하려 했을 때 농업인들이 격렬히 반대하고 관련 단체, 학계 등이 이에 동참했다. 정치권은 이런 분위기에 편승하여 의사 결정이 이루어졌다. 그러나 이제 다시 이 일을 결정한다면 절대 이렇게 되어서는 안 되는 일이다. 공무원들은 그때의 상황이 어찌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고 말할지 모른다. 그러나 그 모든 책임은 공무원이 져야 한다. 죽을 각오를 하고 막았어야 한다. 이순신 장군과 같이 모든 수단을 강구했어야 했다. 길이 있었을 것이다. 필자도 재연장을 한 2004년 당시 그 주변에서 일했다. 발만 동동 구르며 어찌하지 못한 것이 몹시 후회스럽기만 하다. 부끄럽기도 하다. 지금도 그런 일이 많다. 청년 실업 문제, 조선 등 쇠락 산업 문제, 저성장 경제구조 문제, 사회적 갈등 문제, 노동개혁, 교육개혁, 금융개혁 문제, 개성공단 문제, 북한 핵 문제, 통일 문제, 정치권의 포퓰리즘 문제 등 모든 일이 그렇다. 누군가가 나서서 일을 해결해야 한다. 이런저런 사유로 반대하는 세력이 만만치 않은 사안들이다. 정치적으로도 쉽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질적으로 해결해야 할 장애물들이다. 흉내만 내서는 안 된다. 대처 총리의 영국 정부와 같이 전쟁을 각오해야 한다. 그렇게 하려면 그 안에서 일하는 돌쇠 같은 공무원들이 있어야 한다. 과거 정부청사에는 한밤에도 늘 불이 켜져 있었다. 노심초사 멸사봉공, 나라를 걱정하며 일하는 공무원이 있었다. 지금 국가가 백척간두에 서 있다. 저녁 6시가 되면 퇴근하는 직업인으로서의 공무원이 아니라 무한책임 자기희생, 해결사로 일하는 구국의 공무원이 필요하다. 이순신 장군을 전쟁 영웅으로만 기리지 말고 책임을 다하는 공직자의 모델로 삼으면 어떨까 생각해 본다.
  • “청계천 같은 사업하라고요? 이달 1000번째 어린이집…시민 삶 개선, 그게 내 행정”

    “청계천 같은 사업하라고요? 이달 1000번째 어린이집…시민 삶 개선, 그게 내 행정”

    -대담 문소영 사회2부장 “행정은 균형과 정의와 공공성 등에 기반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시대엔 빈부 격차라든지 큰 불평등이 야기돼 있잖아요. 가난하고 힘들고 억울한 사람들에게 힘을 실어주는 게 균형이고 정의죠. 제가 대학서 법철학 배울 때 “각자의 것은 각자에게”라는 선문답 같은 이론에 감동받았는데 힘이 모자라는 사람에게 힘을 더 보태주는 것, 이것이 정의이자 행정입니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지난 1일 서울시장실에서 서울신문과 단독 인터뷰를 한 자리에서 ‘행정’을 이렇게 정의했다. 그 스스로 정치를 시작하게 된 직접적 계기가 불의에 대한 분노였다. 시민단체를 운영하던 그에게 이명박 정부의 민간인 사찰이 있었다. 기업들이 무서워서 협찬을 안 하고, 강연하면 정보과에서 찾아왔다는 사실이 피드백이 됐다. 그는 “정치는 정의롭고 원칙적이어야 한다”고 거듭 강조한 뒤 “민주주의 대명천지에 음지에서 일하고 양지를 지향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박 시장은 야권의 유력 대선 주자이지만 ‘3선 서울시장’도 열어두었다고 했다. 그는 “대권, 3선을 고려하기 전에 위임받은 시민의 권력으로 서울시장을 잘해야 한다”고 말한다. 서울광장에서 집회가 끝난 뒤의 종이 쓰레기를 보고 “폐지 수거 노인 일자리 5개를 만들라”고 지시했다는 그의 꼼꼼함은 거대 담론 위주의 사회에서 단점이자 장점이다. →6년째 서울시장을 하고 있는데 서울시의 가장 큰 변화는 무엇인가. -시민의 삶 속으로 스며든 변화라고 할까. “서울시장이 생각보다 일은 잘하네”라고 한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하드웨어에서 소프트웨어로, 물량과 물질 중심에서 사람 중심으로, 추상과 거대 담론에서 꼼꼼한 정책으로 원칙을 세워 일한다. →‘박원순 업적’으로 특별히 기억나는 게 없을 수도 있다. -그렇지 않다. 시민 복지에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이 일어났다. ‘모든 국민이 알 수 있는 청계천 같은 사업을 하나 하라’는 요구를 끊임없이 받았다. 하지만 시장은 시민의 꿈을 실현하는 자리라고 취임할 때부터 선언했다. 모두가 다 기억하는 건 없을지 몰라도 시민들은 자기 영역의 변화를 알 것이다. 청년은 은평의 혁신 파크나 청년수당과 같은 청년정책을 기억하리라 믿는다. 해외 도시도 서울시 ‘정책바라기’를 하고 있다. →원래 서울시 정책은 전국에서 따라 한다. 서울 구들도 청계천을 따라 했다. -청계천 따라 하다 충북 영동천, 순천 동천, 광주 광주천은 토목공사를 해 아름다운 하천을 다 버려놓았다. 서울 홍제천 상류의 경관을 해치는 콘크리트도 다 들어낼 예정이다. 지난해 서울시의 채무 7조 8000억원을 갚는 대신 4조원을 복지에 투자했다. 강바닥에 갖다 버리지 않으니 시민 복지를 느끼지 않겠나. 복지단체들이 서울시 복지예산을 26%에서 30%로 올려달라 했는데, 내가 34%로 끌어올렸다. 이달에 서울에 1000번째 국공립 어린이집이 문을 연다. 서울시민 삶의 질이 엄청나게 개선된 거다. →광화문광장의 세월호 추모시설을 철거하지 않는다고 보수 쪽의 불만이 많다. -행정은 균형과 정의와 공공성 등에 기반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가난하고 힘들고 억울한 사람들에게 힘을 실어주는 게 균형이고 정의다. “각자의 것은 각자에게”라는 법철학 이론에 감동받았다. 힘이 모자라는 사람에게 힘을 더 보태주는 것, 이것이 정의이자 행정이다. 특히 강조하고 싶은 것은 세월호 미수습자 9명을 가슴에 새겨야 한다는 것이다. 민주주의는 다수결의 원칙이지만 소수자에 대한 배려도 굉장히 중요하다. 우리 현대사는 세월호가 있기 전과 후로 시대가 구분될 것이다. 세월호 추모시설은 서울시 공무원이 시민의 안전을 다짐하는 자리이기도 하다. 국가의 근본 목표는 국민의 안전을 보장하는 것이고, 서울시정의 최우선 순위도 안전이다. →20대 국회에서 세월호 관련 사항들이 어떻게 되어야 할 것 같나. -야당이 다수당이 됐으니 세월호특별조사위원회 권한도 연장될 것이다. 예산도 배치해야 한다. 미국 하와이의 진주만 기념관은 일본의 끔찍한 진주만 공습을 기억하고자 침몰한 군함 애리조나호를 인양하지 않고 바로 그 자리에 기념관을 세웠다. 배를 타고 바다에 가면 잠겨 있는 군함을 볼 수 있다. 제가 책임자라면 세월호를 인양해 3분의2 정도는 바다에 잠긴 상태에서 수상기념관을 만들고 싶다. →4·13 총선을 ‘사이다 선거’라고 평가했다. -민심은 참 위대하다. 박근혜 정부에 대해서는 분명한 심판을 했다. 국정 교과서 문제, 세월호 참사, 일본군 위안부 졸속 협상,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늑장 대응 등. 하나만 해도 어마어마한 일이다. 지지도가 꺼지지 않는다고 했지만 잘못된 여론조사가 문제라는 것이 이번에 드러났다. 야당에도 분명히 옐로카드를 보냈다. 더불어민주당이 제대로 했다면 3분의2가 넘는 의석을 차지했을 것이다. 서울은 야당이 3분의2가 넘었지 않나. 공(功) 다툼을 하면 안 된다. →호남의 더민주당에 대한 불신을 회복할 방법이 있을까. -광주·호남은 최근 현대사의 선거 과정에서 보면 가장 나침반 같은 역할을 늘 해왔다. 5·18 광주항쟁 이후 민주화를 주도해 왔고, 두 번의 민주정부를 만들어냈다. 민주당이 민주정부 수립 이후 광주·호남의 전폭적 지지에도 수권정당으로서의 모습을 보여주거나 ‘광주정신’의 지향을 제대로 실천했던가, 어버이연합 같은 사태가 비일비재한 일상이 왜 벌어지나, 이런 본질적인 질문에 야당이 답을 못 하면 회초리 드는 것이 당연하다. →호남 민심을 얻기 위해 방문하고, 민심을 다독여야 할까. -광주 시민은 ‘나한테 와서 엎드리면 봐준다’는 말초적인 반응이 아니다. 광주시민이 바라는 역사적 요구를 과연 수용하고 있는가라는 관점이 중요하다. 국민의당이 잘해서 선택한 것도 아니다. 더민주에 대한 불신·불만의 대안이었다. 선거가 본격화되기 전 호남은 ‘현역 교체론’이 압도적이었다. 지금 국민의당은 당시 현역들이다. 광주·호남의 본질적 선택이 아니라는 거다. →지난주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가 문재인 더민주 전 대표를 누르고 대통령 후보 지지도 1위에 올랐다. 박 시장은 5위다. -지지도는 뜬구름, 신기루 같다. 1년 전엔 나도 1등 했다. 지지도나 여론조사가 민심과 얼마나 다른지 이번 선거하면서 보지 않았나. 요즘 싱가포르의 명품행정에 관한 책 ‘역동적 거버넌스’를 읽고 있는데 참 감동이다. 미리보기, 돌아보기, 둘러보기 딱 세 가지로 설명한다. 6년 전 ‘말뫼의 눈물’로 유명한 스웨덴 항구도시 말뫼를 다녀왔다. 조선산업의 상징인 대형 크레인이 단 1유로에 2002년 현대중공업으로 팔렸다. 말뫼 사람들은 눈물을 흘리면서 도시재생과 대학과의 협업으로 완전히 새로운 창조산업을 일으켰다. 유럽에서 일본으로, 한국에서 중국으로, 조선 산업의 흐름을 보면 구조조정도 미리 예측했을 수도 있다. 성찰을 위해 외국 사례를 연구해야 한다. 싱가포르의 ‘마리나 베이 프로젝트’를 보고 와서 더 낫게 영동권 국제교류 복합지구를 만들고 있다. →서울시 공무원을 못 믿고 시민단체 출신의 ‘어공’(어쩌다 공무원)만 신뢰한다는 비판이 있다. -시장이 되면 1만 7000명의 서울시 공무원과 개혁을 함께하는 것이 신념이었다. 공무원을 적으로 돌려 무엇을 성공할 것인가. 다만 공무원이 순환보직제라 전문성이 떨어지니 외부의 전문성과 혁신성을 들여온 것이다. 과장·국장에 개방형 공무원을 모두 채웠다. →최근 ‘어버이연합 사건’ 덕분에 2013년 ‘박원순 제압 문건’에 할 말이 있을 것 같다. -‘박원순 제압 문건’은 아무래도 국정원에서 만든 것 같다. 국정원 아니면 누가 그런 걸 만든단 말인가. 서울시장 출마의 직접적 계기가 이명박 정부의 민간인 사찰이었다. 기업들이 무서워서 협찬을 안 하고 강연하면 정보과에서 왔다 갔다고 피드백이 왔다. 정치를 왜 이렇게 하냐고 분노했다. 정치는 정당하고 정의롭고 원칙적으로 해야 한다. 국정원 개혁은 정치개혁의 1순위다. →대통령에게 필요한 자질은 무엇인가. -세계를 둘러보는 통찰력과 글로벌한 리더십, 국민과 소통하는 능력, 거버넌스를 구성할 수 있는 협치 능력 등이다. 정리 윤창수 기자 geo@seoul.co.kr
  • “日, 소녀상 이전 안 돼도 10억엔 낼 방침”

    일본 정부는 서울 주한 일본대사관 앞 일본군 위안부 소녀상이 이전되지 않은 상황이라도 한·일 합의에 명시된 피해자 지원 재단 출연금 10억엔(약 106억원)을 낼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달 30일 니혼게이자이신문은 한국 측이 이달 중 재단 설립 준비위원회를 발족할 것이라면서 이 같은 일본 정부 방침을 소개했다. 다만 일본 집권 자민당 안에서는 소녀상 이전에 대한 강경론이 있어 한국이 최소한 소녀상 이전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하는 자세와 결의를 보여줘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고 덧붙였다. 니혼게이자이는 이와 함께 위안부 지원 재단이 6월 또는 7월에 출범할 것이라는 재단 설립 준비 관계자의 전망을 소개했다. 최근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측근인 하기우다 고이치 관방 부장관이 “소녀상이 어떻게 되느냐는 것은 (한·일 합의문에) 분명히 쓰여 있다”며 “양국 간 관계에서 말하자면 ‘패키지’라고 생각한다”고 답해 물의를 빚었다. 그 뒤 하기우다 부장관은 지난달 27일 공식 기자회견에서 “세부 사항의 하나로 (소녀상 철거가) 그런 것(양국이 조목조목 확인하지 않은 사항)에 포함돼 있다는 것이 내 인식”이라고 말했다가 다시 논란이 불거지자 “한·일 정부 간에 구체적으로 합의한 것은 아니다”라고 정정한 바 있다. 도쿄 이석우 특파원 jun88@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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