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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보통사람 오신다” 차분한 대통령맞이/노대통령 방일 앞둔 일 표정

    ◎교포들,현수막등 내걸고 환영준비/궁중만찬선 「손에 손잡고」 연주 계획/한인 원폭희생자비 방화 등 일극렬파 극성 여전 ○…노태우대통령 방일을 맞는 일본에서는 전반적으로는 환영무드가 일고 있으나 좌ㆍ우익 과격파 단체등이 각각의 톤으로 방일반대운동을 벌이고 있어 경시청당국은 연일 2만여명의 경찰병력을 동원,노대통령 일행이 통과할 주요 간선도로변의 맨홀을 점검,봉인하고 교통규제를 실시하는 등 있을지도 모르는 좌ㆍ우익 과격파의 테러에 대비,24시간 비상경계체제를 펴고 있다. 당국은 아키히토(명인)국왕의 과거역사 사죄발언에 반대하는 우익과격파의 테러는 물론,천황에 반대하는 시민단체와 기독교단체 등 좌익단체들도 노대통령 방일이 자기들의 주장을 알리는 호기가 될것으로 판단,각종 테러를 자행할 우려가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노대통령 방일을 맞는 재일동포사회의 환영분위기도 전두환 전 대통령때와는 여러가지 의미에서 달라져 시대의 변화를 실감케 하고 있다. 전두환 전대통령 방일때는 한국국가원수의 첫 일본방문인데다 당시의 국내분위기가 재일동포 사회에까지 이어져 다소 긴장된 가운데 일견 요란한 듯한 환영행사가 많았으나 이번에는 『보통사람 대통령을 보통의 기분으로 따뜻이 맞이하면 된다』는 분위기가 주류를 이뤄 전에 비해 차분해진 느낌. 도쿄(동경)도내에 있는 재일거류민단본부에는 며칠전부터 「대통령 방일을 환영합니다」라는 현수막이 내걸렸고 민단 기관지 한국신문은 22일자 컬러판별쇄로 노대통령의 인물소개와 함께 「21세기의 한일관계 구축」「동포문제는 전후처리차원에서」등의 특집을 실었으나 전에 비해 절제된 분위기. ○…일본정부와 언론ㆍ재일동포사회의 이같은 환영분위기와는 달리 자칭 1백30개단체,1천6백명의 회원을 거느리고 있다는 우익단체연합회 전애회의와 재일한국청년동맹 등 좌ㆍ우익단체들은 전국 각지의 전철역 등지에서 방일반대전단을 돌리는 등 노대통령 방일반대운동을 벌이고 있다. 이들은 전단에서 『언제까지나 과거에 집착,일본을 모욕한다면 한일기본조약을 폐기하라』고 요구하고 『한일합방은 역사의 추세였으며당시 한국정부에 통치ㆍ외교능력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터무니없는 주장을 펴기도 했다. ○…일본경찰은 연일 2만명의 경찰병력을 동원,24시간 경비태세를 펴고 있는데 특히 과격 게릴라와 테러리스트들이 사정이 긴 화약류를 이용하거나 원격조정장치를 사용하는 등 활용범위가 넓어지고 있음을 고려,3백여군데에 검문소를 설치하고 경비범위를 전두환 전대통령때의 주요 시설물로부터 1m이상에서 이번에는 3m이내로 확대했다. 또 10대의 헬기와 29대의 순시선을 노대통령의 방문여로에 배치. ○…일본 국내청은 노대통령을 맞아 아키히토(명인)일왕이 24일 저녁에 베푼 궁중만찬에서 노대통령내외를 위해 요리와 음악ㆍ여흥 등에서 이례적으로 여러가지 특별서비스를 할 것으로 알려졌다. 궁내청에 따르면 궁중만찬의 경우 국왕이 손님을 만찬장으로 맞아들일때 일본음악인 「친애」가 연주되는 것이 관례이지만 노대통령이 서울올림픽 조직위원장을 역임했음을 고려,이번에 한해 올림픽 주제가의 하나였던 「손에 손잡고」를 연주키로 했다는 것. 당국은 이밖에 궁중행사의 경우 보통 국왕 한사람에게만 붙이도록 돼있는 통역을 표현의 차이로 인한 오해를 없애기 위해 노대통령에게도 한국인 통역을 따로 두기로 했으며 보통 국빈에게 제공되는 국화문양의 국왕전용 승용차(닛산ㆍ프린스 로얄)대신 가까운 곳에서 다이너마이트가 터져도 끄떡없는 외무성의 특별장비차를 제공키로 했다. ○…노태우대통령의 방일을 앞두고 나고야(명고실) 오사카(대판)등지에서 극우극력분자들의 소행으로 보이는 방화ㆍ테러사건이 빈발하고 있는 가운데 23일에는 히로시마(광도)평화공원부근에 세워진 한국인 원폭희생자 위령비의 대좌에 놓여있던 추모용 종이학이 방화로 불에 탔다. 이들 종이학은 수학여행온 학생들이 바친 것으로 이날 상오 1시20분쯤 불이 붙고있는 것을 통행중인 트럭운전사가 발견,소화기로 진화했다. 이날 방화로 위령비자체에는 피해가 없었다. 경찰은 이 사건이 노대통령의 방일을 반대하고 있는 극렬분자들의 소행으로 보고 수사중이다.
  • 일서 잇단 「반한테러」/「일왕사과」반대

    ◎도쿄등서 「게릴라방화」 5건 발생/나고야 민단본부 화염병 피습 【도쿄ㆍ나고야 AFP 로이터 연합 특약】 일본 나고야에 있는 재일거류민단 본부에 17일 하오7시40분쯤 화염병이 투척돼 건물벽 등이 그을렸다고 일본경찰이 밝혔다. 경찰은 『이번 사고는 노태우대통령의 방일에 대한 항의로 이루어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경찰은 『부상자는 없으며 민단본부 직원들이 불을 재빨리 진화했다』고 밝혔다. 이 사고로 대형 유리창 1장이 부서졌다. 일본의 극우파들은 한국이 아키히토일왕이 과거에 대한 공식사과를 희망하고 있는 것에 반발하고 있으며 좌익 게릴라 역시 노태통령의 방일에 반대하고 있다. 【도쿄 연합】 17일 상오 도쿄와 인근 지바(천엽)ㆍ가나가와(신내천)현에서 5건의 도시게릴라 방화사건이 동시 발생,일본경찰은 노태우대통령의 방일 등을 반대하는 과격파 테러 집단의 소행으로 보고 수사를 벌이고 있다. 경찰에 따르면 17일 상오 3시쯤 도쿄도내 신주쿠(신숙)구 소재 법무성 관련시설과 가나가와현의 법무성 직원 자택 주차장에세워둔 승용차가 펑하는 소리와 함께 불붙어 반쯤 타고 건물벽이 그을리는 등의 피해를 냈으며 현장에서 시한식 발화장치의 일부로 보이는 건전지와 인계철선이 발견되었다. 경찰당국은 일련의 방화사건이 노대통령의 방일과 재일 한국인 3세문제 해결을 위한 출입국 관리법 개정 등에 반대하는 집단의 테러행위로 보고 수사에 나섰다.
  • 관동대지진때 수용소억류 한인들/일 군부서 인근주민 동원 학살

    ◎민간단체서 목격자ㆍ유해매장장소 일부 확인/야산 끌고가 일본도 처형/「경찰ㆍ자경단만의 소행」설 뒤엎어 【나라시노연합】 지난 23년9월1일 관동대지진 당시 일본군대가 수용소에 억류돼있던 한국인들을 인근마을 주민들에게 강제로 분배,청부학살시키는 만행을 저지른 사실이 밝혀져 충격을 주고있다. 이같은 사실은 순수한 일본민간단체인 「지바현 관동대지진 조선인 희생자 추도 조사실행위원회」회원들이 지바현 나라시노시에서 있었던 「조선인 학살사건」을 10여년동안 추적,조사하는 과정에서 드러난 것으로 이들을 당시 주민들이 청부학살을 자행한 현장과 조선인들이 암매장된 장소등을 목격자들을 통해 확인,현재 유해 발굴운동을 활발히 추진중에 있다. 10일 이 위원회에 따르면 관동대지진이 발생한 직후 나라시노시에 주둔하고 있던 나라시노 기병여단은 「재난으로 인한 조선인 격리보호」를 이유로 다카쓰(고진)수용소에 억류돼 있던 조선인 3천1백96명중 반항자들을 골라 처형하면서 이들중 상당수를 수용소 부근 주민들에게 마을별로 할당,학살시키도록 했다는 것이다. 이처럼 마을주민들에 의해 학살된 조선인들의 숫자는 대지진당시 계엄령하에 있던 일본군이 관련서류를 소각,구체적으로 몇명인지는 밝혀지지 않고 있지만 목격자,증언자,관련자의 일기등을 통해 지금까지 확실하게 드러난 숫자는 20명,확인된 학살현장 및 유해 매장장소는 3곳에 이르고 있다. 이 위원회는 현재 1923년9월10일 하룻동안 다카쓰 수용소부근 3개마을에서 20명(목격자의 증언이 확실한 경우만 산정)의 「조선인」이 군대의 지시로 마을주민들에 의해 학살된 사실을 확인해 놓고 있다. 당시 마을주민들은 『조선인을 데려가 죽이라』는 군대의 통보를 받고 인근 관음사라는 사찰에 모여 조선인들을 분배받았으며 처음에는 「생사람을 어떻게 죽이느냐」며 서로 인수를 기피하다 결국 마을별로 할당된 「조선인」들을 끌고 갔다는 것이다. 이렇게 끌려간 「조선인」들은 마을의 야산이나 벌판에서 일본도로 목이 잘려 매장됐다. 이 위원회 회원인 이시와타 노부오씨(우도연남ㆍ48ㆍ교수)는 『관동대지진때 6천∼7천명의조선인이 주로 일본경찰과 자경단에 의해 학살된 것으로만 알고 있던 이들 주민들도 군대가 직접 학살 대상자들을 선정,민간인들에게 분배해 죽이도록 했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고 있다』고 강조했다.
  • 조총련계 체포 관련/북한,대일 비난성명

    【도쿄 AFP 연합】 북한은 9일 일본 당국이 이번주초 3명의 조총련계 간부를 체포한 것과 관련,이같은 행위가 지속된다면 일본은 예기치 못한 결과를 빚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날 도쿄에서 수신된 북한 관영 중앙통신은 지난 6일 일본경찰과 수백명의 조총련계 주민들이 충돌을 빚고 일부 조총련 간부들이 체포된 사건과 관련,『전례없이 발생하고 있는 최근의 사태는 일본의 몰염치하고 잔혹한 행위』라고 비난했다.
  • 일 경찰,조총련계학교ㆍ주택 수색/서류 등 2백90건 압수

    【도쿄=AFP 연합】 조총련계 재일한국인들은 7일 9년전 거주이전사실을 일본당국에 신고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지난 6일 일본경찰에 의해 체포된 3명의 동포들을 즉각 석방해 줄 것을 호소했다. 대부분 폭동진압장비로 중무장한 일본경찰은 6일 도쿄 북서지역에 있는 조총련계 고등학교와 수 곳의 주택을 급습했으며 이 과정에서 일본경찰은 수백명의 이 지역거주 조총련계 한국인들과 충돌을 일으켰다. 일본경찰의 한 대변인은 7일 조총련간부인 전영래(49)씨와 그의 부인 및 딸 등 3명을 체포한 사실을 확인하면서 이들은 지난 81년 주거지 이전 사실을 당국에 신고하지 않아 일본의 외국인등록법을 위반한 혐의를 받고 있다고 밝혔다. 경찰 대변인은 또 경찰의 이번 기습작전으로 약 2백90건의 서류를 압수했다고 덧붙였다.
  • 범죄자지문 “1분이면 가려낸다”/치안본부,컴퓨터자동검색시스템 가동

    ◎올안에 전과자 2백만명 입력/민생사범 수사에 큰도움 기대 각종 사건의 범인검거에 결정적 역할을 하고있는 지문감식이 앞으로 컴퓨터에 의해 자동처리돼 민생치안확립에 획기적인 기여를 하게됐다. 치안본부는 18일 연세대 박규태교수팀이 미국 프랑스 일본 영국에 이어 세계에서 다섯번째로 개발에 성공한 지문자동분류및 검색시스템을 가동,오는 연말안에 1차로 금고이상의 형을 치른 2백여만명의 주요 전과자지문 2천만개를 영상으로 입력시키기로 했다. 경찰은 그동안의 주민등록과정등에서 전과자 6백여만명을 포함한 국민 3천8백여만명의 지문 3억8천여만개를 확보하고 있으며 이 가운데 전과자의 지문 6천여만개를 내년안에 모두 분류입력시킬 계획이다. 경찰은 지난 87년 경찰장기발전계획을 세우면서 지문자동검색시스템을 일본등지에서 도입할것을 추진해오다 국내자체기술로 개발하기로 계획을 변경,박교수팀에 의뢰해 22억5천7백56만원을 들여 시스템개발에 성공했다. 이 시스템의 가동으로 앞으로 각종 범행현장에서 채취한 지문은 즉시 컴퓨터조회가 가능해져 범인검거를 신속ㆍ정확하게 할수 있게 됐다. 치안본부의 전진업감식과장은 『일본경찰의 경우 전체범인의 35∼40%를 지문수사로 검거하고 있다』고 밝히고 『우리나라는 그동안 범인의 지문을 체계적으로 관리하기도 어려웠고 채취된 지문을 가려내는데도 시간이 오래걸려 지문수사가 범인검거에 그다지 큰 역할을 못해왔었다』고 말했다. 전과장은 그러나 모든 지문이 컴퓨터에 수록되면 1분이내에 지문을 찾을 수 있으므로 과학수사가 제자리를 잡아나갈 것』이라면서 『그렇게 되면 민생치안확립에 크게 도움이 될것』이라고 기대했다. 경찰은 지금까지 확보된 지문을 문양의 흐름ㆍ간격ㆍ분기점등 12개의 특성으로 분류,일선수사경찰의 의뢰에 따라 감식요원들이 일일이 손으로 원장을 찾는 수동작업을 하느라 지문하나를 확인하는데 길면 1년 이상이 걸리기도 했었다. 그러나 새 컴퓨터시스템의 가동으로 채취된 지문의 특성을 한두가지만 입력하면 즉시 비슷한 형태의 지문이 모두 컴퓨터 화면에 영상으로 나타나 지문확인이 크게 간편해지게된다. 경찰은 이같은 지문자동분류및 검색시스템이 본격적인 가동과 함께 일선경찰의 과학수사능력을 높이기 위해 모든 형사ㆍ수사요원에게 지문채취등 감식과 관련된 교육을 실시키로 했다. 이에 따라 올 상반기안에 치안본부의 수사요원 2백60명이 감식교육을 받으며 하반기부터는 시ㆍ도경찰국과 일선 지파출소근무자 등이 교육을 받는다.
  • 「반민족적 폭력사」로 얼룩진 35년(흔들리는 조총련:하)

    ◎“인도주의”앞세워 교포 9만여명 북송/대한 침투 전진기지 삼아 문세광사건등 테러 자행/「세습 반대세력」늘어 노선전개에 타격 조총련의 35년 행적은 「반민족적 폭력사」바로 그것이다. 당초 정치적 색채가 없이 재일 한인들의 권익옹호를 위해 결성됐던 조총련의 전신 조련도 집행부가 공산계열의 장악하에 놓이게 되면서부터 일본 공산당의 외인부대로 전락했다. 조련은 그후 북한에 김일성을 중심으로한 소위 인민공화국이 들어서게 되자 남로당계에서 북노당계로 기울어 더욱 전투적 성격을 띠게 된다. 이때의 좌익활동은 일본 공산당의 혁명노선에 의거,질서와 경제를 교란시킴으로써 일본 공산화 여건을 앞장서 조성한다는 것이었다. 이들이 자행하는 폭력과 파괴활동으로 인한 일본내의 사회적 비난과 여론의 화살은 재일 한인사회전체와 산하 단체가 뒤집어 쓰게 되었다. 한편 북한은 한덕수에게 지령을 내려 대남침투를 위한 주일특무부대인 조총련을 결성하도록 조종했다. 이에 따라 조총련은 ▲북한으로부터 직접 지령과 조종을 받는다 ▲대남적화정책에 추종하는 일본주둔 특무부대로서의 기능을 담당한다 ▲재일 한국인의 포섭과 좌익을 대표하는 단체로서의 역할을 맡는다 ▲한일,한미간의 외교적ㆍ경제적ㆍ문화적 교류를 저지한다는 기본노선에 맞춰 모든 활동을 전개했다. 조총련의 제1차 사업은 재일 한인의 북송사업이었다. 북한당국이 이를 원하고 있다는 것을 안 조총련은 1958년 8월15일 해방 13주년 기념대회에서 북송을 제의했다. 이와 함께 조총련은 「중앙귀국 대책위원회」를 설치하여 조직을 총동원했으며 일본내의 언론기관에 호소,북한의 모습과 귀국의 필요성을 선전했다. 이와 때를 맞춰 북한의 김일성은 그해 9월8일 건국10주년 기념대회에서 귀환동포를 적극적으로 환영하도록 지시를 내렸다. 당시 북한은 전후복구사업에 많은 노동력이 필요한 상황이었다. 특히 일본에서 기술을 익힌 노동자의 귀환을 기대했다. 그러나 표면상으로는 인도주의를 내세워 조국에 귀환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선전공세를 폈다. 북한의 당시 속셈은 이를 계기로 자신들의 발전상을 일본에 선전하고 국제사회에 진출하는 발판으로 삼으려던 것이었다. 재일 한인들에 대해서는 북한은 세금을 내지않는 지상낙원이라고 꾀었다. 북한에 귀환하는 사람에게는 의식주를 해결해주는 것은 물론 직장을 제공하고 아동들은 즉시 취학시키며 정착금으로 성인은 1인당 2만원,14세 이하의 아동에게는 1만원씩을 지급한다고 했다. 당시 북한이 선전과 일본인 협력자 매수 등에 들인 비용은 2조원에 가까웠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같은 북한의 계략에 속아 북한에 송환된 북송자 숫자는 59년부터 82년사이 9만3천3백44명에 이른다. 북송사업은 한때 성공한듯 보였다. 59년 2천9백42명을 시발로,60년 4만9천36명,61년 2만2천8백1명으로 피크에 올랐었으나 이후 숫자가 격감했다. 68년부터 70년 사이에는 일시 중단된 적도 있었으며 그 이후는 몇백명ㆍ몇십명 단위였다. 니가타(신석)항에서 눈물을 뿌리고 떠난 북송자들은 그후 다시는 돌아오지 못했다. 일본에 남은 가족들에게 『헌것이라도 좋으니 의복이나 재봉틀,또는 라면을…』이라며 궁핍한 생활상을 편지속에 전해 오는 것이 고작이었다. 북한이 이들 북송자들을 인질로 잡고 조총련계 사업가들로부터 막대한 자금을 거둬가고 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조총련에 의해 자행된 대표적인 테러사건은 문세광 사건이었다. 1974년 8월15일 재일 한인 문세광(23)이 박정희 당시 대통령을 국립극장에서 저격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박대통령은 위기를 모면했으나 부인 육영수여사가 피격,절명했다.일본경찰 조사에 따르면 문은 오사카(대판) 스미요시(주길)구에서 상고를 중퇴하고 한때 한청 이쿠노(생야)구 지부맹원으로 활약하던 자였다. 문은 민단자주수호위원회 사무국에서 일하던중 조총련 이쿠노 서지부 정치부장 김호룡에게 포섭되어 특별훈련을 받고 국내로 잠입,범행을 저질렀다.민단에서는 문의 거주지인 이쿠노 북지부에 「박대통령 저격사건 긴급대책분실」을 마련하고 「살인귀 김일성 집단타도」 「비인도적 조총련분쇄」등 입간판을 이쿠노구안에 수백개 설치했다. 그러나 이 입간판은 설치한지 3시간도 안돼 60여개가 조총련계 청년들에 의해 파괴되었다. 이를 전후해 민단계와 조총련 청년들사이에는 난투극이 빈발했다. 한국정부가 민단에 대해 장기적인 지원정책을 실시하고 조총련계 인사들에게까지 모국방문ㆍ추석성묘등 획기적인 포섭정책을 편 것은 바로 이때부터 였다. 조총련이 북한의 대남침투를 위한 전진기지가 되어 그동안 저질러 온 각종 악랄한 공작은 일일이 그 예를 들기 힘들 정도다. 지난해 3월 문익환목사 일행의 방북사건도 전민련­범민족대회­한통련으로 이어지는 조총련과 지하수맥이 닿는 선에서 주선되었다는 사실을 도쿄의 공안관계자들은 인정하고 있다. 지난 55년 결성된 조총련은 하부조직의 정비를 서둘러 지금은 49개 지방본부,4백19개 지부,2천7백여개의 분회,2백46개의 단을 둔 방대한 조직이 됐다. 산하단체로는 「재일본조선인 청년동맹」을 비롯한 15개의 단체와 「조선보사」등 18개의 주관 사업체를 갖고 있다. 조총련은 형식상 북한의 소위 「조국통일 민주주의전선 중앙위원회」의 산하단체로 철저하게 북한의 지령에 따라 움직이고 있다. 이같은 조총련 조직을 뛰쳐나와 「김일성 독재체제타도 및 김정일 세습반대」를 부르짖고 있는 하수도씨등 반김일성세력은 조총련이 맹목적으로 추구하고 있는 북한의 노선전개에 하나의 걸림돌이 될 것으로 도쿄 각계에서는 주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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