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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다시 새기는 그 충절/이달의 독립운동가 지청천

    ◎독립군지휘,만주태평령서 일 연대 섬멸/33년 6·10대첩 독립전쟁 최대승리로 기록/무장투쟁 한평생… 40년 광복군사령관 역임/광복후엔 대동청년단 결성,“민족단결” 호소… 제헌­2대의원도 지내 선열들의 애국·애족사상을 길이 본받기 위해 서울신문사와 국가보훈처가 마련한 「이달의 독립운동가」로 백산 지청천장군이 선정됐다.6월의 독립운동가 지청천장군은 일본이 대륙침략에 기승을 부렸던 1933년 6월10일 만주의 길림성에서 독립군을 이끌고 일본의 이이즈카연대를 섬멸한 공을 세우고 40년부터는 임시정부의 광복군사령관으로 항일무장투쟁을 지휘했다.해방후 귀국한 지장군은 제헌의원과 2대의원을 지내고 57년1월15일 69세로 별세했다.지장군의 생애와 사상,업적을 되새겨 본다. 1933년 6월10일 만주의 길림성 태평령에서 한국독립군 2천5백명과 중국군 2천명의 연합작전을 지휘하던 지청천장군은 일본군과의 결전을 앞두고 짤막한 훈시를 했다. 『오늘의 공격은 2천만 대한인민의 원수를 갚는 것이다.총알 한개 한개가 우리 조상의 수천 수만의 영혼이 보우하여주는 피의 사자이니 제군은 단군의 아들로 굳세게,용감히 모든 것을 희생하고,자손 만대를 위해 최후까지 싸우라』 비록 몇 마디 되지 않는 짧은 훈화였으나 결전을 앞둔 독립군 병사들의 뼛속까지 사무쳐 대부분의 병사들이 눈물을 흘리며 조국의 광복을 굳게 다짐했다. ○소총등 다량 노획 이날 일본의 정예부대인 이이즈카연대는 한중연합군의 맹렬한 공격에 혼비백산했다. 동서남북으로 완전히 포위된 상태에서 4시간동안의 치열한 전투끝에 일본군은 완전히 전멸되고 말았다. 군복 3천벌,박격포 5문,군용물자 20마차,담요 3천장,평사포 3문,소총 1백50정을 노획해 한국독립사상 가장 큰 전승을 기록했다. 지청천장군의 태평령전투는 독립전쟁사중 20연대의 김좌진장군의 청산리전투와 함께 2대 대첩으로 평가되고 있다. 30년대의 지장군이 지휘한 태평령전투가 규모와 노획물이 더 큰 것으로 기록되고 있다. 지장군은 전투부대의 지휘관으로서 뿐만아니라 신흥무관학교 교장으로서 독립을 위한 청년장교들을 양성한 교육자로,광복후에는 제헌의원·청년운동 등으로 평생을 애국·독립운동에 헌신했다. 지장군은 1888년 2월15일 서울 삼청동에서 태어났다. 다섯살때 아버지와 사별하고 홀어머니(이씨)밑에서 자란 지장군은 우리나라에 종두법을 처음 도입한 아저씨 지석영의 권고로 교동국민학교를 거쳐 배재학당에 진학했다. 1904년 한국무관학교에 입학한 지장군은 1907년 일본이 한국군대를 강제해산하자 관비유학생에 선발되어 일본유학을 떠났다. 어머니는 적의 나라로 유학을 떠나는 지장군에게 『나는 너를 죽어 없는 아들로 생각하겠다.구국의 일군이 되지 못하거든 일본에서 돌아오지도 말고 나를 어머니라고 생각하지도 말라』고 엄하게 훈계했다. ○일 정규육사 출신 적도 도쿄에 도착한 지장군은 일본의 눈부신 문물을 보고 놀라면서 일본의 앞선 기술과 제도를 하나라도 더 배워 조국을 되찾는 첨병이 될 것을 다짐했다. 일본 유년육군사관학교를 거쳐 정규육사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한 지장군은 1914년 1차대전이 일어나자 일본군 제14사단에 배치되어 중국 산동성 청도에서 독일군과 치열한 전투경험을 하게 됐다. 당시의 전투경험이 만주에서의 독립군 전쟁에 큰 도움이 되었다. 일본군 중위로 진급한 지장군은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자 일본군을 탈출,독립운동의 요람이던 만주 봉천성 통화현에 도착,독립군 양성기관인 신흥무관학교의 교관이 되었다. 당시 만주에는 일본육사출신의 김광서장군과 구한말 군관출신인 신팔균 김창환 이범석 오광선등 쟁쟁한 인재들이 신흥무관학교를 중심으로 독립군을 양성하면서 민족의 힘을 키우고 있었다. 일본 육사에서 정규교육을 받은 지장군은 교성대장(교성대장)에 이어 교장에 선임되었다. 그러나 독립운동의 기반이 공고해질수록 일본의 독립군 탄압도 집요해져 지장군은 신흥무관학교출신을 주축으로 하는 서로군정서군을 이끌고 백두산 부근의 밀산으로 이동했다. 이곳에서 김좌진장군의 북로군정서군,홍범도장군의 대한독립군 등과 합세,대한독립군단을 결성하고 여단장을 맡아 군세를 통합했다. 지장군은 보다 조직적이고 지속적인 독립전쟁 수행을 위해 1921년 러시아 자유시로 이동,독립군부대를 고려혁명군단으로 개편하고 고려혁명군관학교를 설치,교장을 맡아 전열을 정비하고 일본과의 독립전쟁을 준비했다. 그러나 일본의 사주에 의한 소련정부의 배신으로 소련군과 혈전을 벌인 끝에 장군은 체포되어 러시아감옥에 갇혔다가 풀려났다. 구사일생으로 다시 만주에 돌아온 지장군은 국민대표회의 등을 통해 독립운동세력을 규합,1924년 정의부가 조직되자 중앙위원과 산하 의용군 총사령관이 됐다. 정의부소속 군대를 지휘하게 된 지장군은 일본경찰주재소를 소각하고 일본군부대를 습격하는 등 독립투쟁을 전개했다. 1931년 9월18일 일본은 중국침략의 마수를 뻗쳐 만주사변을 도발했다. 지장군은 만주지역의 중국군 이두·정초·고봉림장군 등과 한중연합군을 결성해 쌍성보,경박호,동경성,사도하자,대전자등 만주 각지에서 일본군과 맞서 혁혁한 전과를 올렸다. 지장군은 1919년부터 33년까지 14년간 만주 곳곳에서 항일무장투쟁을 하면서 수많은 독립군을 양성하고 강한 군대를 육성했다. 1933년 8월 일본이 만주를 석권하다시피하여 독립군의 항일투쟁이 어렵게 되자 임시정부의 김구선생은 지장군을 하남성의 낙양군관학교로 초청,한국청년들의 군사교육을 맡아줄 것을 요청했다. ○임정 군무부장에 넓고 넓은 만주땅을 베개삼아 죽으리라던 지장군은 이범석·오광선 등과 함께 낙양으로 내려가 한인청년들을 교육하고 1937년에는 임시정부의 군무부장,40년 9월17일 광복군이 창설되자 총사령관에 임명되어 참모장 이범석과 함께 명실공히 한국군을 대표하게 됐다. 광복군은 중국을 비롯한 연합군과 협력하여 일본군과 직접적인 전투를 벌이는 한편 대적선전·포로심문·선전전단작성·암호해득등 다방면에 걸친 눈부신 활동을 했다. 지장군은 1946년 4월28일 남한에 진주한 미군의 반대로 개인자격으로 중국에서 귀국했다. 귀국후 장군은 혼란한 국내정세를 바로잡을 원동력이 청년에게 있음을 깨닫고 전국적인 청년운동을 일으킬 것을 구상,대동청년단을 구성했다. 지청천단장은 전국청년지도후원회를 결성하고 『뭉치라,길은 하나이다』라는 구호로 민족단결을 역설했다. 1948년 5·10총선과 50년 5·30총선에 출마하여 초대 및 2대국회의원이 된 지장군은 국방위원장 등을 역임하며 건국의 기틀을 다졌다. 지장군은 57년 1월15일 69세의 일기로 서거했다. 정부는 62년 지장군에게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했다. 지장군은 달수씨와 복영씨등 남매를 두었는데 남매도 모두 광복군으로 항일활동에 참가했다. 달수씨는 63년 건국훈장 국민장을 받고 69년에 작고했으며 복영씨는 현재 지장군의 일대기를 정리하고 있다. ◎탁월한 전략·순수한 군인정신의 귀감/역사적 평가/이현희 성신여대교수 백산 지청천장군은 70평생을 조국과 겨레의 행복을 위해 보냈다. 8·15이전의 60평생을 조국광복을 위한 무장독립투쟁에 보냈으며 귀국후에는 제헌의원과 2대의원으로 국정에 깊이 관여했다. 한국무관학교 학생으로 입학해서 일본육사를 졸업한 지장군은 평생을 통해 권모술수를 모르는 순수한 참군인의 정신으로 독립운동에 헌신해왔다. 지장군이 일본육사에 진학한 의도는 적을 잡기 위해서는 적의 소굴로 들어가는 용기와 지혜가 있어야 된다는 생각에서 였다. 일본육사에 유학,현대 전략과 전술을 공부한 지장군은 훗날 만주에서 일본군과 무장투쟁을 하면서 일본육사에서 배운 군사학을 활용했다. 열악한 무장,숫적인 열세,보잘것 없는 보급을 받으면서도 지장군은 일본정규군을 자유자재로 유린하는 전술을 구사했다. 일본의 현지 지휘관들은 『지청천이가 일본의 전술과 전략을 너무 잘 알고있기 때문에 우리의 격전이 무색하다』고 격찬 한 사실을 보아도 지장군은 탁월한 지휘관이었다고 생각된다 지장군은 1940년에는 임시정부의 직할무장부대인 광복군의 총사령관으로 5년동안 국내외 청년들을 모아 훈련을 시키고 일본군 후방교란,연합군과의 연합작전,심리전 등을펴 명실공히 독립군의 최고지도자로 역을 다했다. 그는 건국후에도 광복군의 정통성을 의병독립군으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고 역설함으로써 민족정기를 바로잡는데 크게 기여했다.그러나 광복이후의 혼미한 정국에서 지장군의 크고 높은 뜻은 친일파와 민족반역자들의 반대에 부딪혀 별 호응을 얻지 못했다. 지장군이 별세한 35년이 지난 지금 그의 크고 높은 뜻이 마침내 달성되는 듯한 느낌이어서 다행스럽다 하겠다.
  • 일 야쿠자 국내잠입 “비상”/폭력단대책법 발효 따라

    ◎인접국 피신 움직임/경찰,공항·항구등 검색 강화 【부산=이기철기자】 일본 조직폭력배들이 일본정부의 검거를 피해 국내로 대거 진출을 시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경찰과 검찰이 대책마련에 나섰다. 13일 부산경찰청에 따르면 일본정부는 지난 1일부터 폭력조직인 야쿠자를 소탕하기 위해 폭력단대책법을 제정,전면적인 검거에 나서고 있으며 이를 피해 대부분의 야쿠자 조직원들이 우리나라를 비롯,동남아 등지로 잠입을 시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으며 특히 선거철을 맞아 사회분위기가 어수선한 우리나라로 잠입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경찰은 이에따라 법무부 출입국관리사무소와 합동으로 김해공항과 부산항을 통해 입국하는 일본인들에 대한 신분파악과 검문검색을 강화하는 한편 일본경찰로부터 야쿠자 명단을 넘겨받아 이들이 입국할 경우 동태를 추적,감시키로 했다.특히 경찰은 야쿠자들이 국내에 잠입,국내 폭력조직과 연계활동을 벌일 가능성도 높은 것으로 보고 현재 수배중인 「칠성파」 행동대장 권봉기씨(33)등 잔존 조직 폭력배 검거에 수사력을 모으고 있다. 한편 일본경찰은 폭력단대책법이 발효된 지난 1일 일본 최대폭력조직인 야마구치조(산구조)총본부 등을 급습,조직원 65명을 검거하는 등 야쿠자 소탕에 나서고 있다.
  • 독립유공자 2백명 새로 선정

    ◎3·1절 73돌 맞아… 만세 운동 주도 선열 대상/순국 최항진선생등에 훈·포장/보훈처,연내 5백여명 추가 서훈키로 정부는 3·1절 제73주년을 맞아 기미년 3월1일 독립만세운동에 적극 참여했던 독립유공자 2백명을 새로 선정,포상한다. 3월1일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릴 제73주년 3·1절 기념식에서 포상을 받게될 독립유공자들은 만세운동을 주도했거나 독립운동에 적극 참여하다 순국한 선열및 일본경찰에 체포돼 옥고를 치렀지만 형량이 낮거나 증빙자료가 없어 포상에서 제외됐던 사람들이다. 국가보훈처가 새로 선정한 독립유공자 2백명 가운데 1919년 4월 독립만세를 부르다 순국한 최항진선생(1881∼1919·경기도 안성)등 7명에게는 건국훈장 애국장,김두오선생(1898·황해도 평산)등 44명에게는 건국훈장 애족장이 서훈되며 김중석선생(1883·함남 함흥)등 8명은 건국포장,강재식선생(1895·경북 청도)등 1백41명은 대통령표창을 받게된다. 국가보훈처는 이날 건국포장을 받는 김중석선생등 8명과 대통령표창을 받는 강재식선생등 1백41명에게는 보훈연금은지급하지 않더라도 독립유공자와 그 후예들이 명예와 긍지를 갖도록 정신적 예우를 하기위해 보훈체계를 개선,선정하게 됐다고 밝혔다. 국가보훈처는 4·13임시정부수립기념일과 8·15광복절행사를 통해 올해 5백여명의 독립유공자를 새로 서훈할 계획이다. ◎훈­포장·표창받는 독립유공자 ◇건국훈장 애국장(7명)=구수암 김홍록 박로영 이맹삼 인한수 최항진 허경두 ◇건국훈장 애족장(44명)=김동하 김두오 김명규 김성복 김약준 김윤규 김충성 김치경 김태규 김필선 김화원 나상준 노윤길 목치숙 박두업 박장래 서승대 송병기 송지환 안은 여규병 오명근 유인수 유희탁 윤영주 이기육 이억근 이영화 이종국 이준용 이태학 이회리 임헌규 장문환 장영규 장원심 정공로 정제신 차철수 최경현 최덕용 최한두 허찬 홍세표 ◇건국포장(8명)=강락원 김상집 김유곤 김중석 백응선 송영찬 이봉철 전성철 ◇대통령표창(141명)=강기준 강재식 강태섭 구남회 구재균 구판돈 구판진 권석인 권석호 권석효 권세원 권오규 권점동 권종필 김기삼 김락원 김두영 김봉수 김봉준 김봉추 김삼도 김상직 김소지 김영옥 김용섭 김원술 김윤선 김응진 김이환 김일곤 김일봉 김종만 김종옥 김종태 김진봉 김찬선 김치만 김형렬 김호원 남경명 남병작 남병하 남호연 남호정 문명근 박도문 박명방 박명출 박문찬 박봉석 박수병 박수석 박수영 박순교 박재식 박재호 박중훈 배익조 백성흠 변희조 빈영섭 서진냉 손한조 송덕빈 승일상 신종환 신동개 신암우 안덕환 안도용 안만순 안상종 안화종 안효중 안희문 양일표 엄창권 여왕연 오창섭 윤강규 윤병관 윤상만 이근오 이길선 이두연 이만희 이범호 이상욱 이상호 이순근 이순철 이영섭 이영호 이원춘 이윤약 이린수 이인하 이정구 이종우 이주근 이준영 이중식 이중열 이창순 이홍근 임봉수 임삼선 임용섭 임정석 장영창 장재만 장정수 장형관 전병겸 전병항 전정길 정낙영 정백용 정 기 정세기 정재옥 정종호 조삼준 조쌍동 지도원 채송대 채희각 최기호 최무길 최봉용 최용문 최종하 최중모 하영규 하은호 한갑개 한용발 허 현 황인규
  • 3·1절 특집 다큐멘터리 방송

    ◎M­TV 「…부재 이상설」 K­1TV 「팔렬중학교…」/잊혀진 독립투사·독립만세 운동을 다뤄 KBS1TV와 MBCTV는 3월1일 그동안 잘 알려지지 않았던 독립투사와 독립만세운동의 현장을 다룬 다큐멘터리 1편씩을 각각 특집으로 엮어 방송할 예정이다. KBS1TV가 1일 상오8시10분부터 9시까지 선보일 「팔렬중학교의 3월」과 MBCTV가 이날 낮12시부터 하오1시40분까지 내보낼 「이역에 뿌린 망국한 보재 이상설(박재 이상설)」이 그것. 이 가운데 K­1TV의 「팔렬중학교의 3월」은 1919년 3·1운동이 일어난 한달뒤인 4월3일 강원도 홍천군 내촌면 물걸리에서 수천명이 참가한 대규모 만세시위가 일어나 주민 8명이 일본경찰이 쏜 총에 맞아 숨지고 20여명이 부상한 사건을 다룬 특집이다.「팔렬중학교」는 이 지역 주민들의 제안으로 3·1운동시위도중 숨진 8명의 열사를 기리기 위해 지난 1963년 설립된 학교. 따라서 「팔렬중학교…」은 팔렬중학교 설립배경과 함께,강원도 산간지방이면서 오지인 물걸리에서 이처럼 큰 만세운동이 일어난 이유와 과정을 생존자인박상기(당시 17세),변성환(당시 13세)씨의 증언을 통해 추적해간다. 한편 MTV의 「이역에 뿌린 망국한 보재 이상설」은 19 00년대와 19 10년대에 걸쳐 해외 독립운동을 주도적으로 이끌었지만 활동내용과 흔적이 거의 조명되지 않고 있는 이상설의 파란만장한 구국활동을 부각시킨 다큐멘터리. 이상설은 역사적인 「헤이그밀행」에서 대표로 활약하며 국권강제침탈사실을 만국에 알렸지만 당시 헤이그 만국평화회의의 대표였던 이준의 빛에 가려 드러나지 않고 있는 인물로 남아있다. MTV의 「이역에 뿌린…」은 충북 진천출신인 이상설의 어린시절과 구국독립운동가로 나서는 과정에서부터 만국평화회의 참석,미국 이민동포를 규합한 국민회 조직,블라디보스토크에서의 독립운동기지 한흥동 건설,상해 신한혁명당조직이후 소련 니콜리스크에서 48세로 생을 마감하기까지의 역정을 구체적으로 엮는다.
  • 다시 새기는 그 충절/이달의 독립운동가 편강열의사

    ◎서울신문사·국가보훈처 공동선정/의성단 조직,만주벌 항일무장투쟁/장춘 일 영사관 습격,7명이 일경 60명 사살/하얼빈역 광장서 포위된채 치열한 총격전/중과부적으로 피체… 옥중고문 후유증으로 37세에 순국 선열들의 애국·애족사상을 길이 본받기 위해 서울신문사가 마련한 「이달의 독립운동가」로 애사 편강열의사가 선정됐다.황해도 연백에서 출생,2일로 탄신 1백주년을 맞은 편강열열사는 만주에서 항일무장독립운동단체 의성단을 조직,장춘의 일본 영사관을 습격하는등 항일투쟁을 벌이다 체포되어 옥살이를 하다 일제의 고문으로 얻은 척수염으로 29년 37세의 나이로 순국했다.편의사의 생애와 사상·업적을 되새겨 본다. 일제하인 1924년8월 만주 하얼빈역 광장에서 완전무장한 일본경찰들이 무장항일독립운동가 편강렬의사를 체포하기 위해 겹겹이 포위하고 있었다. 만주일대에서 3백여명의 조선청년들을 이끌고 독립운동을 하던 편의사는 군자금과 무기를 조달한뒤 길림으로 돌아가는 열차를 타기 위해 하얼빈역으로 왔다가 밀정 김성곤의 밀고로 일본경찰의 포위망에 들게 되었다. 편의사는 길가 상점에 뛰어들어 장시간 총격전을 벌이다가 중과부적으로 왜경에 체포됐다. ○만철병원도 습격 편의사는 1924년 대원 5명을 데리고 봉천의 만철병원을 습격한뒤 같은해 대원 6명과 함께 장춘의 일본영사관을 습격,7시간에 걸친 격전끝에 적 60여명을 사살해 일본경찰의 추적을 받아왔다. 일경에 체포된 편의사는 25년 평양법원에서 징역 7년을 선고받고 신의주 감옥에서 복역중 고문으로 인해 생긴 지병으로 29년1월16일 안동현 적십자병원에서 37세의 나이로 숨졌다. 편의사는 병상에서 『내가 죽거든 유골을 내가 활동하던 만주땅에 묻고 나라를 되찾기 전에는 고국으로 이장하지 말라』는 비장한 유언을 남겼다. 편의사는 1892년 2월2일 황해도 연백군 봉서면 현죽리 목동에서 편상훈씨의 4남중 3남으로 태어났다. 편의사는 어려서부터 애국심과 충의심이 깊어 1905년 을사보호조약이 체결되자 14세의 어린 나이에도 의분에 떨어 1주일간 항의 금식했다. 1907년 전국 각지에서 일본에 복수를 주장하며 의병이 봉기하자 경상·충청일대에서 활약하던 의병대장 이강년대장을 방문,이대장 휘하에 들어가 소집장 및 선봉장으로 활동했다. 이듬해 의병을 인솔하고 경기도 양주에서 3일간 격전을 벌이다 부상을 입은 편의사는 1909년 고향으로 돌아왔다. 편의사는 평양의 숭실학교에 입학,항일운동에 정진하다 1911년 조선총독 데라우치 마사다케(사내정의)암살미수사건으로 체포되어 징역5년 선고를 받고 서대문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출옥한뒤에는 의병동지들과 무장결사대 광복회를 조직,친일파·민족반역자·일본경찰을 처단하는 격렬한 투쟁을 전개했다.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자 황해도일대의 만세시위운동을 주도하고 동생 덕렬씨를 상해임시정부에 파견,국내조직과 긴밀한 연락망을 구축했다. 그해 임시정부에서 파견한 최명식이 군자금을 모집하고 무기를 조달한뒤 항일무장투쟁을 할 거점을 마련키위해 군사준비단을 조직하자 편의사는 황해도 대표로 활동했다. ○밀고자 즉결처분 1919년 9월 다시 일본경찰에 체포된 편의사는 징역1년을 선고받고 21년에 출옥했다. 23년1월 편의사는 동지 김경배·김태규·조종호등과 함께 중국의 독립운동상황을 살피기위해 북경으로 가 상해·만주등지를 전전했다. 무장투쟁으로 일관한 편의사의 눈에는 창조파와 개조파로 나뉘어 논쟁만 일삼던 임시정부의 무력함이 도저히 성에 차지 않았다. 23년 10월 만주로 돌아와 강진지·양기탁·남정동지들과 무장항일투쟁비밀결사인 의성단을 조직,단장에 피선됐다. 의성단의 활동무대는 길림성과 장춘일대의 넓은 평야지역이었다. 편의사는 이 지역에 이주한 동포들에게 『조선인단체를 조직해 이민족에게 억압을 받지 않아야 한다』는 독립의식을 고취시키며 민족적 공감대를 넓혀갔다. 재만동포들의 물적 인적지원을 받은 편의사는 2백50명의 의성단원을 무장시켜 장춘·봉천일대의 일본인 병원·영사관·우체국·경찰서·철도·군수기지를 습격,혁혁한 공을 세웠다. 일본은 경찰력과 헌병·밀정등을 총동원해 편의사를 체포하려고 했으나 신출귀몰하는 그의 흔적도 찾을 수 없었다. 편의사는 의성단활동을 하는 한편 만주지방의 각 독립운동단체들을 통합하기 위해 전만통일의회를 조직했다. 편의사는 만주지역의 비밀항일무장단체들을 통합해서 강력한 군사조직으로 만드는 공작을 하던중 24년8월 하얼빈역에서 밀정 김성곤의 밀고로 일본경찰에 포위됐다. 당시 이범석장군은 비분함을 참을 수 없어 밀고자 김을 즉결처분했다. 편의사가 체포되자 의성단활동은 위축되고 2∼3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단원들도 뿔뿔이 헤어져 소멸됐다. 옥고를 치르는동안 편의사는 일제의 악랄한 고문으로 척수염을 얻어 불구의 몸이 됐다. ○왜놈치료는 싫다 혼자 일어설 수도,앉을 수도 없는 지경이된 편의사는 병보석을 얻어 28년 선천의 미동병원에 입원했으나 별효과가 없었다. 친지와 가족들이 의료시설이 구비된 일본인 병원으로 옮길 것을 권고했으나 『죽어도 왜놈에게는 치료를 받지 않겠다』고 완강히 거절했다. 28년9월 동생이 있는 만주의 안동으로 옮겼으나 4개월만인 1929년1월16일 순국했다. 편의사의 묘소는 중국 요령성 단동시 원보구 인충가 진강산 장군봉 뒤편에 있었으나매장후 61년이 지나는 동안 이 지역이 시가지로 개발되어 비석은 커녕 묘소의 흔적조차 남지않게 됐다. 지난해 가을 국가보훈처와 편강렬의사 탄신1백주년 기념사업회가 「편의사유해봉환반」을 구성,현지답사한 결과 밝혀진 사실이다. 편의사는 후사가 없어 동생 덕렬씨의 2남인 충무씨를 양자로 입양했으나 충무씨도 지난 80년대초 미국으로 이주했다. 정부에서는 62년 편의사에게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했다. ◎역사적 평가/“마지막 의병장” 불굴의 절개 빛나/17세때 13도창의군의 서울탈환대작전 참가 편강렬의사에게는 지난 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이 수여됐다. 그러나 편의사의 이름을 아는 이가 드물고 역사적 평가도 높지 못한 실정이다. 구한말의 의병전쟁에서 20연대 중반의 독립운동에 이르기까지 큰 운동에 참가해 청춘을 불살라버린 인물임에도 불구하고 웬만한 책에서는 그의 이름을 발견할 수가 없다.이때문에 편의사는 이름없는 독립운동가로 오늘에 이르고 있고 무덤마저 정확한 자리를 확인하지 못하고 있다.편의사는 중국단동 공동묘지 어디인가에서 압록강과 강건너 신의주를 바라보며 조국통일을 애타게 염원하고 있을 것이다. 편의사가 13도 창의군의 서울대탈환 작전에 참가한 것은 17세때이다.여기서 그는 부상을 입었으니 이 사실만으로도 독립운동가로 치부될 수 있다.그러나 이 부상은 37세로 순국할때까지 20여년간의 항일투쟁의 시작일 뿐이었다.1910년 압록강철교 준공식에 참석하던 사내총독암살음모사건으로 연루되어 최초의 옥고를 치르게 된 것은 나머지 그의 투쟁사와 기묘한 일치를 보여준다. 「양양한 압록강물은 흘러서 어드메로 가는가」라는 그의 옥중시에서 보듯 편의사의 일생은 압록강과 숙명의 관계를 맺고있다. 3·1운동후 두번째 옥고를 치르고 압록강을 건넜을 뿐아니라 세번째 마지막 옥고를 치를때도 압록강을 건느며 망국의 한을 달랬다. 한국인의 성품 가운데 끈기를 제일로 드는 이가 많다. 편의사야말로 독립운동 하나를 위해 일생을 바친 끈기의 대명사였다고 할 수 있다. 그를 위대한 독립운동가로 평가하는 것은 불요불굴의 절개라고 할 수 있다. 그는 마지막 재판정에서 7년 징역형이 내려졌을때 파안대소했는데 이는 그가 의병정신을 잃지 않았다는 증거라고 할 수 있다.의병정신이란 나라와 겨레를 위한 일이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고 반드시 하고야 마는 정신이다. 이런 의미에서 편의사는 한국의 마지막 의병장이었다고 할 수 있다. 편의사의 탄신 1백주년이기도한 2월을 맞아 새삼 조국통일로서 망국한을 달래드려야 되겠다는 마음이 간절하다.
  • 일 야쿠자 대거상륙에 “비상”/미국(움직이는 세계)

    ◎일계 미 시민 앞세워 정체위장/마약·부동산투기등 「사업」 확대/「아이스」등 각성제의 90%가 「야쿠자」서 반입 일본판 마피아로 불리는 「야쿠자」와 「보료쿠단」이 최근 미국 본토에까지 침투,갖가지 범죄행위를 자행하고 있어 미국 수사당국을 긴장시키고 있다. 이들 조직범죄단들은 도박·매춘·마약 밀매등의 범죄행위에서부터 부동산 투자,기업체 주식의 매입에 이르기까지 닥치는대로 분야를 확대하고 있으며,최근에는 권총등 소형무기까지 일본에 밀수출하고 있는것으로 미수사당국은 밝히고 있다. 일본경찰의 최근 통계에 따르면 일본내에는 약 2천여계파의 지하범죄 조직아래 90여만명이 직·간접적으로 이들의 범죄행위에 연루돼 있는것으로 집계됐다. 이들의 불법지하범법행위로 거래되는 액수는 약1백억 달러에 이르고 있으며,그중 3분1가량이 마약 밀매와 관련돼 있는것으로 미수사당국은 추산하고있다. 미연방수사국(FBI)의 최근 통계자료에 의하면 각성제 종류의 하나인 「메담피타민」(methamphetamine)이나 「아이스」(ice)의 약90%가 이들 일본인 범죄조직인 「야쿠자」에 의해 밀반입되고 있는것으로 밝혀졌다. 이같은 정보에 따라 각 공항의 이민국 직원이나 국경 경비대원들은 이들 불법 반입 물품의 색출을 위한 특별훈련까지 받을정도로 긴장하고있는 실정이다. 라스베가이스와 애틀랜틱 시티에서는 이들 지하범죄조직이 고급 매춘조직을 통해 미국내 일본계 부유층이나 여행객들을 상대로 성업중이다. 미국의 신탁통치령인 북부마리아나 군도내의 「티니안」섬의 경우 카지노산업을 주요 수입원으로 육성시키고 있는데 야쿠자의 조종을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한 회사가 카지노 면허 신청을 해놓고 있다. 라스베이가스에서도 이 야쿠자 조직들이 카지노와 주류판매 허가 등에 깊숙히 손을 대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일본계 미국시민들을 앞세우고 있어 확증을 잡는데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것이다. 이들은 유력한 미국의 저명인사측근들에까지 손을 뻗쳐 범죄행위의 은폐를 기도하고 있다.지난해 6월 부시 미국 대통령의 동생인 「프리스코드 부시」씨의 스캔들이 그 대표적인 예다.그는 야쿠자의 불법자금이 투입된 「도쿄투자 주식회사」의 상담역을 맡아 25만달러를 사례비로 받아 물의를 빚기도 했다. 이 야쿠자는 한국의 조직 폭력배들과도 연결돼 후견인 노릇을 하고 있는 것으로 최근 보도됐다.특히 각성제의 일종인 「아이스」밀반입에는 한국의 조직범죄단이 연관돼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한국경찰은 지난해 부산에 본부를 둔 지하범죄조직인 「백호단」을 일망타진,이들이 일본의 야마구치구미의 야쿠자 본부에까지 가서 10일간의 의식훈련과 세미나 등에 참석했던 물증을 확보한 적도 있다고 로스앤젤레스타임스는 보도하고 있다.이 신문에 의하면 하와이와 로스앤젤레스로 환각제인 「메담페타민」을 밀반입 하는데 한국의 지하 범죄조직이 깊숙히 개입돼 있는 것으로 수사당국은 파악하고 있다. 지난해 11월 호놀룰루 경찰은 27파운드의 환각제(시가 1천2백만달러)를 밀반입한 한국인 4명을 체포하기도 했었다. 그러나 오는 97년부터 중공의 통치아래 들어가는 홍콩을 거점으로 하고 있는 동남아계 중국인 비밀갱단이 미 본토로대거 잠입,기승을 부리지 않을까 미 수사당국은 벌써부터 우려하고 있다.
  • 독립유공자 장낙수옹

    독립유공자 장낙수옹(78)이 15일 서울 보훈병원에서 별세했다. 서울출신인 장옹은 지난 29년 중국 상해로 건너가 한국민족혁명당에 입당,군사부원으로 독립운동을 하다 37년 일본경찰에 체포돼 옥고를 치렀다.발인은 17일 상오10시.장지는 대전국립묘지 애국지사묘역.
  • 구토뒤 쓰러지자 참석자들 비명/세계 놀라게한 부시 졸도 이모저모

    ◎병원가던 부시 “관심끌고 싶었다” 농담/달러화 한때 급락… 내일부터 정상 업무/일 경찰 취재차단에 수행원들 “놔둬라” 고함 ○…부시 미대통령이 이날 일본총리관저에서 열린 만찬에서 건배직후인 하오8시19분쯤 갑자기 식탁밑으로 몸을 숙여 음식물을 토한 뒤 쓰러지자 부인 바바라여사가 비명을 지르는 등 만찬장에는 순식간에 긴장감이 엄습. 경호원과 미야자와 일본총리 등의 부축을 받아 창백한 얼굴로 일어선 부시대통령은 박수를 치는 참석자들에게 손을 흔들어 보인뒤 옆방으로 옮겨져 5분정도 휴식을 취하다 황급히 달려온 의료진의 진료를 받고는 스스로 현관까지 걸어나와 인근 병원으로 후송하기 위해 대기중인 구급차를 물리치고 리무진승용차에 올라타면서도 『다소 관심을 끌고 싶었을 뿐』『굿나잇』이라고 경호원들에게 농담을 건네는등 여유있는 표정. 부시대통령은 하오8시35분쯤 숙소인 아카사카영빈관에 도착,주치의로부터 위장염이란 진단을 받은뒤 2명의 의사가 지켜보는 가운데 잠자리에 들면서도 재선을 의식한 듯 『비록 쓰러지기는 했지만 의식을 잃지는 않았었다』고 해명. ○…부시대통령이 만찬장을 빠져나간 뒤에도 만찬은 계속된 가운데 스코크로프트 백악관안보담당보좌관이 부시연설을 대독한 후 바바라여사로부터 메모를 건네받은 미야자와총리가 방금 받은 연락이라며 『부시대통령의 건강상태에 이상이 없다』고 밝히자 참석자들은 우뢰같은 박수로 환영. 이어 등단한 바바라여사는 『오늘 아침 아키히토 일왕 부자와의 테니스복식경기에서 남편이 의외로 졌다』면서 『남편이 쓰러진데는 한조를 이룬 아머코스트주일미대사의 책임이 크다』고 조크. ○…피츠워터백악관대변인은 『대통령이 위장염에 걸렸을 뿐 크게 염려할 일은 아니며 지난해의 심장박동 이상증세와는 무관하다』면서 『내일 하오부터 예정된 일정대로 업무를 수행할 수 있을 것』이라고 건강에 이상이 없음을 강조. ○…졸도 사건 와중에 「대통령」에 관한 언론보도에 대처하는 미국과 일본 관리들의 판이한 형태가 극명하게 대조되기도. 사건이 터지자마자 만찬장에 배치됐던 일본경찰들은 대통령이 속수무책으로 쓰러져있는 장면이 기자들에 의해 사진찍히지 못하도록 즉시 흰 식탁커버로 현장을 가리는 한편 기자들의 접근을 철저히 막무가내로 차단시켰다. 그러나 미국의 백악관관리들은 일본경찰의 저지선을 뚫으려는 기자들에 동조,경찰들에게 『기자 「일」을 하도록 내버려둬라』고 같이 고함. ○…부시대통령의 졸도소식이 전해지자 국제외환시장의 달러화는 급속히 가치가 하락했으나 그의 건강상태가 양호한 것으로 알려지자 곧바로 원래수준을 회복. ◎부시 경선가도에 “제2의 악재”/경제침체 이어 「건강이상」 핸디캡으로/작년에도 입원… 유권자 등돌릴까 우려 조지 부시 미국대통령이 지난해 5월에 이어 8일 또다시 졸도함에 따라 그의 재선전망에 암운이 드리워졌다. 대통령자격요건으로 무엇보다 건강을 중시하는 미국사회의 풍토를 감안할때 그의 건강이상은 올 연말로 다가온 선거에서 크나큰 핸디캡으로 대두딜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부시대통령은 지난해초 걸프전을 승리로 이끈뒤 역대 미대통령사상 최고인 90%가까운 지지율을 얻어 재선이 확실시됐으나 그후 미국경제의 계속되는 침체와 불경기로 인해 인기도가 40%대로 떨어져 재선을 장담할 수 없는 불확실한 상황에 처해 있다. 그는 만67세 7개월(1924년6월12일생)의 고령에도 불구하고 하루 11시간씩 휴일없이 집무하는 만능스포츠맨 대통령으로 소문나 있으며 미역대 대통령중 외교적인 해외방문을 가장 많이한 인물이나 지난해 5월 캠프 데이비드 산장에서 조깅중 심장에 이상을 일으켜 워싱턴근교 베데스다해군병원에 입원,이틀간 치료를 받으면서 건강에 적신호를 밝혔다.당시 병명은 갑상선이상인 심방세동으로 스트레스가 주원인이었다. 부시대통령 주치의인 버튼리박사는 이날 부시대통령의 졸도원인이 『지난해의 심장이상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흔한 장염이며 내일 아침이면 평상시 건강을 회복할 것으로 확신한다』고 말했고 부시 자신도 『쓰러지기는 했지만 의식을 잃지는 않았다』고 거듭 밝혀 재선을 앞둔 부시진영의 안타까움을 드러냈다.미국인 유권자들이 이번 사고를 단순한 해프닝이라기 보다는 건강상의 문제로받아들이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는 것이다.
  • 일 야쿠자,이태원서 사기도박/비밀 카지노서 일인 관광객 돈 갈취

    ◎경찰청,일 경찰 요청받고 수사 경찰청은 12일 일본경찰청으로부터 일본 야쿠자들의 사기도박사건에 관한 수사협조요청을 받고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 일대 비밀사설카지노에 대해 수사에 나섰다. 이에앞서 일본경찰청 형사국 국제형사과 다나카 마사유키경감(전중창지·36)일행은 지난달 9일 서울에와 일본야쿠자 4명이 지난해 5월초 한국인이 몰래 운영하는 이태원등 카지노에서 일본인 관광객 나와타야 마쓰오씨(승전옥송웅·48·치과의사)등 3명을 상대로 바카라라는 사기도박을 벌여 현금 8억3천만엔,5층건물,토지차용증등을 빼앗았다고 알려왔다. 경찰청은 그러나 이태원동 일대에 대해 수사를 폈으나 일본인 피해자가 말하고 있는 비밀카지노는 발견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한편 경찰청은 최근 일본야쿠자들의 입국 범행이 늘어남에 따라 야쿠자의 계보와 동향등 자료를 일본경찰에 요청하기로 했다.
  • 일서 범행뒤 귀국/소매치기를 검거/경찰,인터폴 요구로

    일본에 원정갔던 소매치기가 일본경찰의 추적을 피해 국내로 되돌아왔으나 인터폴의 수사요청을 받은 우리나라 경찰에 붙잡혔다. 서울경찰청 도범계는 10일 일본원정소매치기 서경호씨(26·용산구 이촌동209)를 특정범죄가중처벌법위반등 혐의로 붙잡아 조사하고 있다. 서씨는 지난해 12월3일 하오 1시50분쯤 동경 신주쿠역 12번홈에서 조철기(25)·이종덕(26)·신달수씨(26)등과 함께 일본여인의 핸드백에서 일화 3만3천엔(16만5천원)을 소매치기한 혐의를 받고있다. 일본경찰은 현장에서 조씨와 이씨를 검거했으며 서씨등 2명은 국내로 되돌아왔다.
  • 재일교포 살해 혐의/한국인 넷 수사 요청/일 경시청

    경찰청은 2일 일본 시청에서 최근 일본에서 일어난 재일교포 살해사건의 용의자로 한국인 4명을 지목,수사협조를 요청해옴에 따라 수사에 나섰다. 일본경찰이 경찰청 국제형사계(한국인터폴)에 통보한데 따르면 지난 5월3일 하오2시쯤 일본 야마구치현 시모노세키시 경남상사 사무실에서 이 회사대표 김만길씨(39)가 목졸려 살해당했으며 이 사건의 용의자로 부산지역에 연고를 두고 있는 정모씨와 전모·김모·문모씨등 4명이 지목되고 있다는 것이다.
  • 일 원정 소매치기 차단/한­일 공조수사 합의

    ◎오늘 일 수사관 4명 입경 경찰청은 1일 최근 일본 사회에서 물의를 빚고 있는 한국인 소매치기범들의 일본원정 범죄를 근절하기 위해 일본경찰과 공조수사 체제를 갖추기로 했다. 경찰청의 이같은 방침에 따라 일본 경찰청과 동경 경시청 소속 수사간부등 일본의 소매치기 전담 수사요원 4명이 2일 서울에 도착,한국 경찰과 소매치기 수사대책을 협의한다. 경찰청은 이와함께 소매치기 전과자의 일본여행 규제방안을 외무부와 협의해 추진키로 했다. 경찰청 국제형사계(한국 인터폴)에 따르면 일본경찰청은 지난달 한국 경찰청에 수사관 파견계획을 전하면서 ▲일본에서 소매치기혐의로 구속 또는 수배중인 자와 공범인 것으로 파악된 용의자 17명의 인적사항과 여권번호,사진및 범죄수법 ▲한국소매치기단의 인적사항(계보)및 사진 ▲한국 소매치기 범죄현황 ▲한국의 소매치기사범 검거·방지대책 등에 관한 자료를 제공해 줄 것을 요청했다. 경찰청은 이에 따라 이들 용의자 17명의 인적사항을 확인,이들의 여권자료와 최근 3년간의 소매치기 범죄자료등을제공키로 했다.
  • 잼버리장 찾은 최고령 대원 윤문식옹

    ◎“일제치하서도 스카우트 정신 지켜”/조선척후단 창립단원… 남해지부 결성/「1일1선」 실천하며 독립운동도 참가 10일 세계잼버리 대회장을 찾은 한국최고령스카우트 윤문식옹(93·경남 남해군 남면 당황리)은 깊은 감회에 젖었다. 전세계에서 모인 청소년들의 구김살없는 얼굴과 훌륭한 시설을 둘러보며 지금으로부터 반세기가 훨씬 넘은 지난날 일제의 박해를 피해 스카우트활동을 하던 때의 모습이 주마등처럼 뇌리를 스쳤기 때문이리라. 부인 황다이 할머니(77)와 아들내외,손자들과 함께 대회장에 도착한 윤옹은 대회장입구에서부터 눈가에 이슬이 맺혔다. 김석원 총재등 대회관계자들의 따뜻한 환영을 받은 윤옹은 『스카우트 정신은 예나 지금이나 조금도 다름없이 고귀한 것』이라는 말과 함께 작은 정성이라며 금일봉을 전달했다. 윤옹은 조선소년군과 함께 한국보이스카우트의 전신인 조선소년척후단 창립단원. 기독교 신자였던 윤옹은 22년 경남 마산 문장교회 주최의 여름성경학교 강습회 참가중에 정인과목사로부터 『궁극적으로 조국독립에 기여하자는 것이 조선소년척후단 운동의 취지』라는 말을 듣고 관심을 갖게 됐다. 서울로 올라가 YMCA에서 상세한 취지와 목적·조직·활동방법등을 터득한 윤옹은 남해로 내려와 동지들을 규합,지도자 8명과 대원 26명등 34명으로 조선소년척후단 남해지부를 결성했다. 신념만큼은 누구보다 투철했지만 막상 활동을 전개하려고 보니 어려움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교재라고는 윤옹이 중앙본부에서 어렵사리 구해온 「소년척후교본」한권이 전부였다.복장도 평상시의 옷 그대로 제각각이라 체계적이고 조직적인 활동을 펼치기에는 너무 벅찼다. 황다이 할머니는 며칠을 꼬박 길쌈에 매달려 베를 짜고 물감을 들인뒤 손수 바느질을 해 단원들의 옷과 모자를 만들어내야 했다. 다음에는 일본경찰의 눈을 피하는 일이 뒤따랐다. 동네 주민들이 모아준 독립자금을 상해임시정부에서 파견된 밀사에게 전달하느라 수화(수화)까지 익혔고 때로는 일본경찰에 꼬리를 밟혀 몇달씩 산속에 숨어지내기도 했다. 남해지부의 특징은 단원 모두 10원씩의 비상금을 늘 지니고 있었다는 점. 당항교회 장로와 집사등 어른들이 논밭을 팔아 마련해 준 이 돈은 당시 시골은 물론 큰 도시에서도 아주 큰 액수로 끼니를 거르거나 병든 이들을 보면 그 자리에서 나누어 주는데 쓰여졌다. 윤옹은 손자뻘이 되는 이번 대회 참가대원들에게 『일일일선(일일일선)의 스카우트정신을 항상 마음에 간직해 훗날 세계평화에 앞장서는 지도자로 성장해줄 것』을 당부했다.
  • 마약수사의 「현주소」(번지는 「백색공포」:중)

    ◎뛰는 마약사범에 기는 수사 인력·장비/요원 부족… 한 명이 1천명을 추적/전문성 떨어져 검거율 52%에 불과/간이시약 개발·범국민 퇴치캠페인 시급 마약 때문에 골치를 앓고 있는 나라는 우리나라 뿐만이 아니다. 인구 10만명을 기준으로 한 마약사범수(마약범죄계수)를 보면 미국 6백27명,태국 98명,스페인 65명,프랑스 55명,일본 18명 등으로 많은 나라들이 마약 때문에 국가적 위기를 맞고 있다. 이들 국가는 물론 마약을 최대의 공적으로 삼고 이의 퇴치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우리나라의 마약범죄 계수는 5∼6년 전만해도 5이하이던 것이 지난 89년에는 9.2로 크게 올랐으며 지난해에는 10에 육박했다. 이에 비해 마약범죄에 대한 수사력은 아직 극히 미미하다는 것이 우리의 문제점이다. 정부는 마약류가 큰 사회적 문제로 대두된 3∼4년 전부터서야 마약퇴치를 위한 갖가지 대책을 펴 나가고 있으나 인력과 장비 및 전문성 등에서 선진국보다 크게 뒤떨어지고 있다. 마약수사전담기구조차 없던 형편에서 그나마 전국적으로 체계화된 마약수사체제가 갖춰진 것이 2년 남짓밖에 안 된다. 검사 1명과 직원 10명을 두고 있는 대검 마약과를 중심으로 한 우리의 마약수사체제는 이제 검찰과 경찰,세관에서 각자의 역할을 분담하면서 공조체제를 갖춰가고 있다. 그러나 전국 12개 검찰청과 93개 경찰서 및 23개 세관의 마약전담반에서 활동하고 있는 전담수사 요원은 고작 3백71명에 그치고 있어 수사요원이 크게 부족한 형편이다. 상습 마약복용자를 40만명으로 보더라도 한 사람이 1천명 이상을 맡고 있는 셈이다. 우리보다도 훨씬 더 심각한 상태이지만 미국은 지난 73년 법무부의 외청으로 마약범죄전문수사기구인 마약청(DEA)을 설치,마약수사의 전문화 및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고 4천5백여 명의 직원과 19개 지방청,43개 주의 65개 사무소를 운영하고 있다. 인력의 부족보다 더 큰 문제는 마약수사요원의 전문성이 떨어진다는 점이다. 대검에 마약과가 설치된 뒤 그나마 마약수사요원을 대상으로 한 전문교육과 해외연수가 이뤄져오고 있으나 극히 제한된 인원에 교육횟수도 많지 않아 큰 효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특히 경찰관의 경우 마약 수사교육을 받는 시간이 임관될 때의 5시간과정밖에 없으며 경찰대학도 마약교육에 배정된 시간은 4년 동안 겨우 12시간밖에 되지 않는다. 더욱이 각 경찰서마다 경찰관 3명으로 구성된 마약반이 편성돼 있으나 수사관들의 마약에 관한 지식이 부족할 뿐더러 잦은 인사이동으로 전문성이 크게 뒤떨어져 있다. 이 때문에 전체 마약사범의 99%를 검거하고 있는 일본경찰과는 달리 우리 경찰의 검거율은 52%에 그치고 있으며 밀조범이나 밀수범을 검거한 적은 거의 없다. 이번 서울 송파경찰서에서 적발한 의사와 기업인들의 히로뽕 복용사건도 폭력사건을 수사하던 과정에서 우연히 찾아낸 것일 뿐이다. 이는 그만큼 경찰의 수사력에 대한 의존도가 높다는 것을 말한다. 다행히도 검찰의 마약수사는 지난 89년말부터 상당한 성과를 거둬 「유한농장파」 「피터팬파」 「최재도파」 「동원목장파」 「차영수파」 등 29개파 2백69명의 히로뽕 밀수·밀조조직을 적발하는 실적을 올렸다. 그러나 마약조직은수사가 강화될수록 더욱 점조직화·기능화·국제화·전문화되는 경향을 보이고 있기 때문에 이에 따른 인력보강과 장비확충 및 외국과의 수사공조체제 확립 등 보다 적극적인 대책을 마련하는 일이 시급하다. 정부는 유엔의 마약류 퇴치 10개년계획(1991∼2000년)에 발맞춰 「마약없는 한국」을 이룩하기 위해 종합대책을 펴 나가고 있다. 마약수사요원의 증원과 전문교육 기회의 확대를 꾀하고 있고 마약복용자를 가려내기 위한 간이시약을 개발하고 있으며 가스총 75점과 망원카메라 16대,마약견 16마리 등 장비보강에도 애쓰고 있다. 또한 마약보상금을 크게 올리는 한편 마약정보의 전산화를 마쳤으며 마약관계관 회의를 정례적으로 열고 마약과 관련된 국제협약과 기구에의 가입을 추진하는 등 국제협력을 위해서도 노력하고 있다. 이밖에도 「마약류 퇴치의 날」 행사를 지난해부터 실시,마약퇴치를 위한 국민계몽도 강화하고 있다. 그러나 그 어느것보다도 마약제조와 복용에 빠지게 되는 근본적인 원인을 제거하는 게 중요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마약제조기술자를 엄격히 감시,폭력조직으로부터 보호해 국내에서 마약이 제조되는 것을 막고 빈곤과 불평등·사회적 소외계층·향락산업의 팽창 등 부정적인 문제들을 먼저 해소해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이와 더불어 항만과 공항의 감시체제를 강화,코카인이나 헤로인·아편·LSD 같은 위험성이 더욱 큰 마약의 밀반입과 히로뽕의 역수입을 철저히 차단해야 한다. 검찰통계에 따르면 지난 5년 동안 법원에 기소된 히로뽕 사범의 41%가 1심에서 집행유예를 선고받고 풀려나온 것으로 나타나 마약사범에 대한 처벌이 너무 가볍다는 지적을 받고 있을 정도이다.
  • 소 대통령 첫 방일 이모저모

    ◎“영토반환” 시위속 고르비 “입성”/국보 예상통과로 1.5m마다 경찰배치/고르비­일왕,관례 깬 40분 접견에 눈길 ○고르비,도착성명 생략 ○…16일 상오 예정보다 5분 빨리 하네다(우전)공항에 도착한 고르바초프 소련 대통령은 그 동안 소련·일본간의 소원했던 관계를 반영이라도 하듯 도착성명도 발표하지 않은 채 환영나온 나카야마 다로(중산태량) 일본 외상 등과 간단히 악수만 나눈 뒤 곧바로 소련에서 특별 공수해온 질 승용차에 올라 아카사카(적판)의 영빈관으로 직행. ○…영빈관에 도착한 고르바초프 대통령은 아키히토(명인) 일왕과 예정보다 10분을 넘긴 40분간에 걸쳐 접견을 가져 눈길을 끌었다. 일본 관리들은 일왕의 접견시간은 30분을 넘기지 않는 것이 통례이나 이날은 아키히토의 특별요청에 따라 접견시간이 40분으로 연장됐는데 이는 극히 이례적인 일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일왕 부처를 접견한 고르바초프와 라이사 부부는 일왕 부부와 선물을 교환했는데 일왕 부처는 꽃병과 핸드백,손수 서명한 자신들의 초상화를 선물했고 이에 대해고르바초프와 라이사는 꽃병과 보석을 답례로 선물했다. ○…극우 반공주의자들과 극좌파의 고르바초프 방일 반대시위가 예상되는 가운데 고르바초프 경호를 위한 1급 경계작전에 돌입한 일본경찰은 고르바초프 대통령이 지나가는 연도변에 1.5m 간격으로 경찰 1명씩을 배치하는 등 그야말로 물샐틈없는 경비를 폈다. ○라이사,은좌거리 방문 ○…고르바초프 대통령의 부인인 라이사 여사는 일본방문 첫날 도쿄의 번화가인 긴자(은좌)를 방문. 밝은 초록색 투피스를 입은 라이사 여사는 화려한 긴자거리를 걸으며 상점에 진열된 상품을 자세히 관찰하는가 하면 가부키연극도 관람했다. 라이사 여사가 한 어린아이를 포옹하자 주위에 몰렸던 많은 사람들이 따뜻한 환호를 보냈다. 그러나 이 어린아이는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흉기든 극우파 체포 ○…일본 경찰은 16일 고르바초프 소련 대통령의 수행원들이 머물 뉴오타니 호텔 앞에서 단도를 갖고 있던 한 우익분자를 체포. 경찰은 신원이 밝혀지지 않은 이 남자는 체포될 당시 전통적인 일본 예복에 메이지(명치)시대의 삿갓을 쓰고 있었으며 현재 신문이 진행중에 있지만 극우단체 소속인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지난 83년 대한항공기사건의 일본인 유가족들은 16일 방일중인 고르바초프 소련 대통령에게 한결같이 진상규명 촉구와 함께 일본인 시체·유품 반환을 호소했다. KAL사건 일본 유족회의 가와나씨(천명·54)는 이날 『최근 소련의 보도로서 블랙박스가 회수된 사실이 명확해졌다』고 말하고 『미국에서 공부를 하고 돌아오던 아들(당시 20세)이 왜 죽었는지 그 진상이나 알고 싶다』고 밝혔다. 가나와씨는 『이 사건의 진상규명을 건의하기 위해 일 외무성에 고르바초프 대통령의 면담을 신청하고 연락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일군 포로 유족에 애도 ○…고르바초프 소련 대통령은 아키히토 일왕이 주최한 궁중만찬에서 제2차 세계대전 후 시베리아에 억류돼 사망한 일본군 전쟁포로 유족들에게 애도의 뜻을 표했으나 공식사과는 하지 않았다. 고르바초프는 정부 및 경제계 지도자 등 1백60여 명이 참석한 만찬에서 일본과 소련정부는 고국에서 멀리 떨어진 시베리아에서 희생된 이들을 잊지 말아야 하며 소련은 유족들에게 깊은 애도의 뜻을 표한다고 말했다.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 대통령 영부인 라이사 여사가 일본에서의 스케줄을 마지막 순간에 바꿔달라는 어려운 요청을 해와 일본관리들을 당황케 했다고 일본 외무성 소식통들이 16일 전언. 외무성의 한 관리는 라이사 여사의 요청 중 하나는 평범한 시민들이 내집을 갖기에는 부동산 가격이 너무 비싸다고 알려진 동경의 중류층 가정을 방문하자는 것이었다고 밝히면서 『우리는 마지막 순간까지 스케줄을 마무리할 수 없었다』며 하소연. 이에 앞서 소련 대표단은 일본 관리들이 시간상의 제약과 보안상의 이유로 거리가 먼 교외지역으로는 갈 수 없기 때문에 동경시내 중심부에 살고 있는 몇몇 가정의 방문을 제안했으나 이들 가정이 너무 「상류층」이라는 이유로 거절했다.
  • 독립유공자 조길룡옹

    독립유공자 조길룡옹이 8일 하오 광주시 서구 주월동 자택에서 숙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82세. 조옹은 1929년 11월 광주학생 독립운동 당시 독립만세 시위운동을 벌이다 일본경찰에 체포되어 2년간 옥고를 치렀으며 그 공로로 지난 63년 건국훈장 국민장을 받았다. 유족으로는 미망인 임영남씨와 5남3녀. 발인 12일 상오8시. 장지 동작동 국립묘지 애국지사묘역. 연락처 (062)675­4181
  • 잇단 테러… 일왕 즉위식 경비 “비상”

    ◎D데이 10일 앞둔 도쿄의 표정/「폭쇄」 내건 과격파,경찰 숙소까지 폭탄 설치/공안당국,3만병력 동원… 육ㆍ해ㆍ공 경호 펴기로 아키히토(명인) 일왕의 즉위식을 열흘 앞두고 도쿄(동경) 도내에서 연쇄 폭발사건이 잇따라 발생,경찰을 긴장시키고 있다. 경찰은 오는 12일 즉위식을 앞두고 지난달 26일부터 도내에 2만6천여명의 병력을 풀어 비상경계중이었으며 1일 테러대상물이 된 기타 신주쿠(북신숙) 1정목 경시청 통합특기료인 세이와료(청화료)도 경비대상의 하나였기 때문에 경찰과 일본사회의 충격은 더욱 크다. 더구나 이날 폭발은 5분 간격을 두고 2차례에 걸쳐 시간차로 발생,사전 치밀하게 계획된 범행의 악랄성을 입증하고 있다. 이날 첫번째 폭발장소는 쓰레기 수거장 부근이었으며 두번째는 숙사에서 5∼6m 떨어진 주방 근처에서 일어났다. 최초의 폭발음을 듣고 기숙사안에 있던 경찰관등이 달려 나왔을때 다시 한번 폭발했다. 이 폭발로 기숙사 유리창이 깨지고 숙소 일부가 파괴됐다. 숨진 아오키 히로시(48) 순사장은 폭발물이 장치되어 있던곳으로 보이는 장소 바로 옆에 뒤로 젖혀 쓰러져 있었다. 폭발물은 그의 심장을 직격했다. 이 기숙사는 독신료로 신주쿠경찰서원 및 경시청 공안부원 등 70여명이 기거하고 있었다. 또 2일 상오 0시를 조금 지나 세다가야구(세전곡구)에 있는 경시청 독신료 현관 앞에서도 수상쩍은 소화기 3개가 비닐주머니안에 들어 있는 것을 경찰관이 발견했다. 경찰은 이것이 북신숙 폭발사건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고 폭발물 처리반을 동원,확인을 서두르고 있다. 이밖에도 1일 밤과 2일 새벽 사이 도쿄시내 도처에서 『폭발음이 들렸다』는 신고가 경시청에 잇따랐다. 2일 상오 1시49분에는 세다가야구 이케가미(지상) 방위청 숙사부근에서,51분에는 주오구(중앙구) 쓰키지마(월도)와 왕궁 와다구라몬(화전창문) 부근에서,58분에는 진구가이엔(신궁외원) 남문,2시에는 신주쿠교엔(신숙어원) 부근에서 각각 경계중인 경찰관들로부터 『폭발음이 났다』는 보고가 들려왔다. 경찰청에 따르면 올들어 게릴라사건으로 인한 사망자는 3명째이며,경찰시설이 습격대상이 된 것은 9번째이다. 올들어 발생한 게릴라사건은 지난 1월 11건을 비롯,모두 61건에 이르고 있다. 일왕의 즉위식에는 세계 1백60여개국의 수뇌급 사절들이 참석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이에 따라 경찰은 외국요인 및 왕족들의 경호 등을 위해 사상 유례없는 많은 병력을 투입할 방침이다. 이번엔 특히 과격파들이 「즉위식 폭쇄」「왕실 습격」 등을 구호로 내걸고 전에 없이 과격한 반왕실투쟁을 전개할 조짐을 보이고 있어 경계를 강화하고 있다. 따라서 경찰은 지금까지의 경비병력 2만6천명을 오는 6일부터는 3만2천명으로 늘리고 즉위식 직전에는 3만7천명으로 증원키로 했다. 과격파의 동향에 대해 일본정부는 지난달 23일 가지야마 세이로쿠(미산정육) 법상과 오쿠다 게이와(오전경화) 국가공안위원장의 연명으로 ▲범죄행위의 즉각중지 ▲파괴방지법을 비롯한 모든 법령을 적용,단호히 대처한다는 이례적인 성명을 발표했다. 이와 함께 경찰은 11월들어 육 해 공을 연결하는 사상 최대규모의 각종 훈련을 실시하고 있다. 외국사절들이 이용할 나리타(성전) 하네다(우전)공항에서는 1일 요인들에 대한 테러,하이재킹을 방지하기 위해 외무성직원 자위대원 사복경찰관 등이 참가,송영훈련을 벌였으며,도쿄만일대에 순시함정 93척,항공기 4대,해상보안청 직원 1천3백여명을 배치해놓고 물샐틈 없는 경계활동을 펴고 있다. 이것은 지난해 2월 쇼와(소화) 일왕의 장례식때에 비해 함정은 12 척,인원수는 3백명이 더 늘어난 것이다. 또 이날 상오 왕궁앞 니주바시(이중교)등 왕궁 둘레에 판 해자에서는 수난구조대원인 40여명의 잠수기동대가 물속을 뒤져 폭발물 장치 여부를 수색했다. 경찰은 오는 12일 즉위식 당일에는 과거 실시한 예가 없는 연도 시민들에 대한 보디체크와 소지품 검사를 실시할 방침이다. 연도경비에서 일반시민들에 대한 이같은 신체검색은 처음이어서 과잉경비라는 비판도 나오고 있으나 경시청은 『정세가 심각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말한다. 이날 즉위식후 일왕부부는 왕궁에서 아카사카고쇼(적판어소)까지 약 4.7㎞의 카 퍼레이드를 벌일 예정이다. 경찰은 이밖에 과격파인 중핵파가 로켓포를 발사할것에도 대비,발사 아지트가 될 우려가 있는 지역을 중점 경비하고 있다. 이같은 엄중 경계 속에서 일어난 1일 밤과 2일 새벽 사이의 연쇄폭탄 테러사건은 일본경찰의 허점을 보였다는 측면도 물론 있으나 반왕실투쟁을 벌이는 과격파의 무분별성과 「유엔평화협력법안」 등을 둘러싼 일본 사회의 의견분열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많은 사람들은 지적하고 있다.
  • “마약ㆍ테러 소탕 국제수사망 구축”/아ㆍ태 국제경찰장회의

    ◎미ㆍ일등 29개국 150명 참가/신종범죄 예방ㆍ공조수사 논의/“한국 조직범죄 미 마피아 초기단계” 지적 날로 늘어가고 있는 아시아ㆍ태평양지역의 마약사범을 퇴치하고 국제테러의 방지대책 등을 수립하기 위한 제3차 아ㆍ태지역 국제경찰장회의가 25일 상오10시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개막됐다. 치안본부와 국제경찰장협회(IACP)의 공동주최로 27일까지 3일동안 열리는 이번 회의에는 이종국치안본부장 등 한국대표 27명을 비롯,미국연방수사국(FBI)의 윌리엄 세션즈 국장,일본경찰청의 가나자와 아키오장관 등 아시아ㆍ태평양지역의 29개국 경찰수뇌 및 간부 1백50여명이 참가했다. 이번 회의는 ▲국제테러방지책 ▲아ㆍ태지역 마약거래현황 및 대책 ▲국제조직범죄 예방 및 수사협조 방안 ▲컴퓨터범죄 등 신종범죄 예방 및 수사기법 등이 논의된다. 안응모내무부장관은 이날 치사를 통해 『한국정부는 인류의 공적인 마약ㆍ테러 등 각종 국제조직범죄를 근절키위해 국경을 초월,세계 각국 경찰기관들과 긴밀한 협조체제를 유지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안장관은 또 『새로운 과학과 고도의 기술로 범죄자들의 수법이 더욱 빠르고 교묘해지고 있다』고 지적하고 『현재 세계각국의 국경이 범죄자를 쫓는데 장애물이 되고 있다는 현실을 깊이 인식,세계 각국 경찰기관들이 국경을 초월하여 국제화하고 있는 범죄를 막아야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치안본부장은 환영사를 통해 『전염병처럼 번져가는 국제 테러ㆍ마약ㆍ밀수 등 국제성 범죄를 차단하기 위해서는 한나라의 노력 뿐만이 아니라 세계각국 경찰의 협력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이날 열린 1차회의에서는 호주의 잔 템비 부정부패방지위원장이 공직자 부정부패수사 문제를,어니스트 렝길팔라우 법무차관보가 형사사법 문제를,미마약청 스테판그린 공작담당보가 아ㆍ태지역 마약거래 현황에 대해 각각 주제발표를 했다. 이틀째인 26일에는 ▲국제테러리즘 ▲한국 범죄현상의 특징과 대응책 ▲조직범죄 ▲경찰업무상 항공감시 ▲시민소요 등 특수사건관리 등이 집중 논의된다. 한국측은 이번 회의에서 「한국의 조직범죄」라는 보고서를 통해 『『우리나라의 조직범죄는 미국의 마피아와 같은 거대 범죄조직이 형성되기 직전의 초기단계로 집단범죄의 양상을 보이고 있다』고 밝히고 『최근에는 일본의 야쿠자 등 범죄집단과 연계를 맺거나 활동영역을 확대하려는 맹아기』라고 분석했다. 이 보고서는 또 한국조직범죄의 뚜렷한 특징은 조직원의 63%가 10∼20대로 연소화하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하고 앞으로 ▲조직 상호간의 집단폭력 증가 ▲범죄의 흉포ㆍ지능화 ▲고리대금ㆍ유흥가 등 시민생활 전반에 걸친 침투 ▲외국 범죄조직과의 연계를 통한 국제화를 초래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어 지금이 조직범죄를 없애야 할 적기라고 강조했다. IACP는 미버지니아주앨링턴에 본부를 둔 세계경찰기구로 각국 경찰지휘관들간의 정보교환과 협력 및 경찰행정의 과학화를 목적으로 지난40년 발족,현재 72개국 1만4천여명의 경찰지휘관들이 회원으로 가입해 있으며 우리나라는 지난57년 회원으로 가입했다.
  • 남로당총책 박갑동씨의 「체험적 6ㆍ25론」

    ◎“공산주의로 잘 산다는건 꿈” 뒤늦게 자각/휴전 임박해서 박헌영과 함께 연금생활/후퇴길에 평양보고 “거지공화국” 실망 6ㆍ25 동란당시 38선 이남지역 남로당 지하총책이던 박갑동씨(72)가 27일 한국전쟁기념사업회(회장 이병형)주최로 하얏트호텔에서 열린 6ㆍ25 40주년 국제학술대회에서 6ㆍ25체험담을 발표했다. 박씨의 체험담 요지는 다음과 같다. 50넌 6월 25일은 일요일이어서 나는 남로당 비밀아지트에서 쉬고 있었다. 아지트를 경비하는 사람이 외출후에 돌아와 전쟁이 터져서 피난민들이 미아리고개로 넘어오고 있다고 보고했다. 나는 순간 『김일성 이놈이 죽일놈』이라고 말하고 전신에 힘이 모두 빠져나갔다. 28일 새벽에 북한군이 탱크를 몰고 서울시내에 들어왔다. 나는 서대문 교도소에 갇혀있는 동지들을 구하기위해 나서며 비서에게 지하당원은 소공동 조선정판사빌딩에 모이도록 지시했다. 교도소에 갔다가 정판사빌딩에 가보니 비서 혼자 서있으면서 이승엽이 평양에서 전권을 가지고 서울시청에 와 당의 명령을 듣지않는 박갑동을 총살시키겠다고 화를 내고 있다는 것이다. 나는 어이가 없어 이승엽을 만나러 서울시청에 가서 정태식을 만났다. 그는 나를 보자 이가 매우 화를 내고 있어 주위사람들이 말리고 있으니 잠깐동안 몸을 피하고 있는 것이 좋겠다고 말해주었다. 나는 이때부터 김일성과 이승엽에게 밉게 보여 지위가 점점 낮아져갔다. 나는 복간된 해방일보 논설위원으로 명맥을 유지해가다 유엔군이 인천에 상륙하자 북으로 쫓기게 되었다. 유엔군이 북쪽에 가기도 전에 북쪽 사람들이 태극기를 들고 인민위원회를 습격하고 약탈하고 있었다. 10월이 되자 북쪽은 상당히 추웠는데 대부분의 북한사람들이 얇은 여름옷을 입고 이불도 못덮고 생활하고 있었다. 나는 『이놈의 나라가 인민공화국이라고 선전하고 있으나 거지공화국이 아니면 간부공화국』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김일성이 5년동안 사회주의를 건설했다고 하는데 이것이 사회주의의 실상인가 하는 의심이 들었다. 평양에 도착해서 소위 인민시장에 가보았다. 국영상점 이외에 협동조합상점과 개인상점도 있었는데 생필품이 부족했다. 고무신점에 가보니 여자고무신이 두 종류 있었는데 하나는 흰색이고 하나는 회색인데 주인이 흰색은 남한제품이라며 품질이 아주 좋다고 말했다. 포목점에 가보니 옥양목은 짜지 못하는지 조악한 광목밖에 없었다. 국영정육점에 가보니 점원이 세수도 하지 않은 얼굴과 손으로 고기를 자르고 있었다. 개인정육점에 가니 20세가량되는 처녀아이가 쇠고기1㎏을 정확히 한번에 잘라주는 것을 보고 국영상점과는 경쟁이 되지 않는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개인상점은 매일 매일 무거운 과세를 함으로써 국영상점을 우대했다. 국영상점 점원은 공무원이기때문에 손님에게 친절할 필요도 없고 많이 판다고 월급이 많아지는 것도 아니니 성의가 전혀없었다. 사회주의 경제는 상품생산과 유통시장이 존재하는 경제가 아니었다. 상품이란 소비자가 소중한 돈을 주고 사고싶은 물품을 사는 상행위가 기본이어야 하는데 공산주의 사회에서는 욕망을 최소한으로 줄이고 최저 최소의 생필품을 국가가 배급을 해주는것이 현실이었다. 휴전이 가까워지자 북한은 남로당계 인사를 출당하는 대대적인 숙청을 해 나는 박헌영과 함께 체포되어 56년 3월까지 감금생활을 했다. 56년 2월 소련공산당 20차대회에서 흐루시초프가 스탈린비판을 한뒤 석방되어 북경을 경유,공산권에서 탈출했다. 57년에 북경에 갔다. 중국은 사회주의도 자유주의도 아닌 대국주의ㆍ제국주의였다. 조선인민을 자기들이 도와서 미제국주의를 타도했다는 자부심으로 전국이 덮여있었다. 유엔군이 중국의 영토를 침범하지 않았으나 국경을 지키기 위해 출병했다는 것이다. 세계강대국이 모두 그런 생각을 한다면 지구상에는 하루도 전쟁이 그칠날이 없겠다는 생각과 함께 약소민족의 서러움과 비애를 느꼈다. 모택동의 소수민족정책이라는 것도 자세히 보면 일본제국주의가 만주국을 통치하는 것과 같은 방식이었다. 소련은 명목적이나마 공화국을 수립해주고 연방으로 묶어 통치하지만 중국은 소수민족의 공화국은 금지하고 직접 통치하고 있었다. 50년대 후반의 중국 공산주의는 정말로 「독점」「독선」「배신」의 연속이었다. 나는 공산주의가고상한 도덕이며 인도주의라고 믿어왔는데 실제로 공산주의가 실천되는 현장을 보니 정치적으로는 중세기 암흑세계이고 경제적으로는 기술이 낙후하여 자본주의 생산성에 도저히 따라 갈 수가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나는 일본제국주의 식민지하에서 독립을 해서 경제를 급속히 발전시키기위해 공산주의자가 되었는데 공산주의 국가 북한과 중국에 가서 앞날이 없는 공산주의 사회 현장을 목격하게 되었다. 내자신이 부끄러워서 일본에 망명하여 성명을 바꾸고 일개 노동자로 일평생을 살아가려고 했다. 그리하여 나는 일본에 망명하여 오키나와 사람이라고 속이고 고무공장 노동자를 몇해 하면서 숨어서 살아왔다. 당시 오키나와는 미군점령하에 있어 일본경찰이 본적을 조회할 수 없었다. 지금 여러분 앞에 나와있는 것이 정말 부끄럽다. 선조가 남겨주신 유산으로 일본유학까지 해서 당시로서는 조선최고의 인텔리의 한사람이 그 능력을 옳게 발휘하지 못한 것을 뼈저리게 뉘우치는 바이다.
  • 일본의 오만/임영숙 문화부차장(오늘의 눈)

    달포전 국내에서도 개봉된 「블랙 레인」(흑우)이란 영화가 지난해 여름 미국 뉴저지주의 한극장에서 상영됐을 때였다. 일본의 폭력조직 야쿠자를 쫓던 일본경찰과 미국의 수사관이 의견충돌을 일으켜 서로 다투던 끝에 미국의 수사관이 일본경찰을 때려 눕히자 객석에서 요란한 박수소리가 터져 나왔다. 미국 보통사람들의 일본에 대한 감정을 그곳에서 읽고 약간은 의아한 느낌이었는데 그해 겨울 워싱턴에서는 일본의 저명한 기업가와 정치인이 쓴 한권의 책이 다시 말썽을 빚어냈다. 문제의 책은 「라고 말할 수 있는 일본」이란 책으로 일본의 국제적 대기업 소니사의 사장 모리타 아키오와 일본정부의 장관을 역임한 바 있는 이시하라 신타로가 쓴 것이었다. 일본의 자신감을 과시하고 미국의 문제점을 지적한 내용의 이 책은 지은이들이 영어로 번역되기를 바라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미국에서 「무단번역」되어 「불법복제」판이 워싱턴정가와 기업인들 사이에서 무서운 속도로 읽혀졌다. 「일본이 미국을 꾸짖다」란 제목으로 이 사실을 보도한 미국의 한 신문은 미국의 자존심을 건드린 이 책이 『일본 지도자들이 이제는 자기주장을 해야할 때라고 믿는 일본의 여론을 반영한 것』이라고 풀이했다. 경제대국 일본의 지나친 자신감과 자기주장은 세계 곳곳에서 이제 마찰을 빚고 있다. 노태우대통령의 일본 방문을 앞두고 일제의 한국 식민통치 36년에 대해 『무릎 꿇고 사죄할 필요 없다』는 식의 신경질적인 발언으로 한국 국민의 오랜 상처를 후벼파낸 일본 「지도자」들이 최근 또 프랑스를 발끈하게 만들었다는 소식이다. 일본 닛산자동차의 구메사장이 90년대 말까지 지탱해낼 수 있는 유럽의 자동차 메이커로 이탈리아의 피아트와 서독의 폴크스바겐 2개만 꼽아 프랑스인들에게 모욕감을 느끼게 했다는 것이다. 상냥한 미소와 깍듯한 예의,좋은 품질의 상품으로 세계를 지배하다시피 하게된 일본의 숨겨진 본래의 모습은 타민족을 인정하지 않는 이 오만한 태도가 아닐는지. 서울에 머물고 있는 영국인ㆍ일본인과 우연히 자리를 함께 한 후 일본인이 없는 자리에서 그 영국인이 기자에게 물었다. 『당신은 어떻게 그 오만한 일본인에게 친절할 수 있느냐』고. 반공교육과 함께 반일교육을 받아온 세대로서 일본의 오만함은 끊임없이 묵은 역사의 상처를 덧나게 하지만 오늘 우리가 일본을 극복할 수 있는 길은 일본에 대한 감정적 대응보다 차가운 지일의 태도에 있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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