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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환경보호, 호소하던 때 지나… 경제 가치로 환산·교환해야”

    “환경보호, 호소하던 때 지나… 경제 가치로 환산·교환해야”

    “환경을 경제적 가치로 환산해 어떻게 시장에서 교환할 수 있느냐를 고민하는 게 요즘 환경운동의 흐름이에요. 환경보호와 경제성장이라는 상충된 가치를 동시에 추구하는 거죠.” 환경운동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며 스마트한 환경운동을 이끄는 젊은이들이 있다. 김주헌(33·국제환경기구 프로젝트 코디네이터), 황진솔(32·환경컨설팅회사 컨설턴트), 유동주(32·대기업 경영팀 근무)씨가 그 주인공들. 일면식도 없던 이들은 각각 박수길 유엔한국협회 명예회장의 추천을 받아 지난해 ‘MDG 소사이어티’에 참여하게 됐다. 환경에 대한 평소의 관심이 그들을 이끌었다. ‘새 천년 개발 목표’를 뜻하는 MDG는 2000년 유엔이 채택한 빈곤퇴치, 환경보전 등 미래 세계를 위한 8대 어젠다를 말한다. MDG 소사이어티는 각 분야 전문가들이 모여 과제를 연구하는 비영리 모임으로 지난해 유엔의 인가를 받고 반기문 사무총장에게 활동 내용을 직접 보고하고 있다. 김씨 등은 MDG의 어젠다 중 환경 분야를 담당하고 있다. 유씨는 “기존 환경운동가와 젊은 청년들을 잇는 다리 역할을 하고 싶어 모임에 참여하게 됐다”면서 “더 창의적이고 재기 발랄하며 현실적인 환경보전의 접근법을 고민하고 있다”고 했다. 그동안의 환경운동이 환경을 보호하자는 일종의 ‘호소’였다면 이들의 접근 방법은 다소 특별하다. 이들의 환경운동은 기존의 운동과 거리가 먼 ‘자본’과 ‘성장’, ‘혁신’을 얘기한다. 하나로 뭉뚱그리면 ‘녹색성장’이다. 김씨는 “정부의 녹색성장이 국내에서 비판을 위한 비판으로 이용돼 제대로 주목받지 못한 것은 유감”이라면서 “국제사회에서 빈곤 퇴치를 이끄는 강력한 수단으로 환경이 급부상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들은 환경보호와 빈곤국가의 경제개발이라는 상대적인 모순을 해결할 대안을 고민한다. 황씨는 “최빈국 탄소배출거래제 등을 활성화하면 온실가스로 인한 기후 변화를 막고 개도국의 지속 가능한 개발을 도와 궁극적으로 환경보호와 경제성장을 한꺼번에 해결할 수 있게 된다”고 설명했다. 김씨는 유엔환경계획(UNEP)이 후원하는 연구사업 ‘생태계와 생물 다양성의 경제학’(TEEB) 보고서를 적극적으로 배포하기도 했다. 세 사람은 모두 유엔 등 국제기구에서 일해 본 경험이 있다. 스위스 제네바의 UNEP에서 근무했던 김씨는 “2년 동안 적정기술 프로젝트 팀장으로 캄보디아에 살았던 적이 있었는데 많은 분들이 수인성 질병이나 열병에 걸리기도 했다”면서 “국제기구에 대한 환상보다는 투철한 봉사 정신과 용기를 갖출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명희진 기자 mhj46@seoul.co.kr
  • ‘배트맨’에 기대 울어버린 中 인권운동가 천광청

    ‘배트맨’에 기대 울어버린 中 인권운동가 천광청

    중국의 시각장애인 인권운동가 천광청(陳光誠·왼쪽·41)이 영화 ‘다크 나이트 라이즈’에서 배트맨 역을 맡았던 주연배우 크리스천 베일(오른쪽)을 통해 국제인권단체가 수여하는 인권상을 받았다. 월스트리트저널(WSJ) 인터넷판 등 외신들은 26일(현지시간) 천광청이 국제인권단체 ‘휴먼 라이츠 퍼스트’(Human Right First)가 지난 24일 미국 뉴욕에서 개최한 특별행사에서 2012년 연례인권상을 수상했으며, 베일이 직접 상을 건넸다고 보도했다. 베일은 지난해 12월 당시 일면식도 없던 천광청을 만나기 위해 그가 가택연금 중이던 중국 산둥(山東)성 린이(臨沂)시 둥스구(東師古)촌을 찾았다가 공안들로부터 폭행당하고 쫓겨났으나 이후에도 천광청의 석방을 위해 지속적으로 활동하며 각별한 인연을 이어왔다. CNN은 천광청이 시상식에서 베일의 어깨에 기대 한참을 울먹이고, 베일도 그의 어깨를 두드리며 연거푸 격려의 박수를 치는 장면을 방영했다. 외신들은 “베일이 드디어 천광청을 만났다.”고 전했다. 베일은 시상식에서 “(천을 찾아갔던)나의 노력이 어떤 면에서는 성공적이기도 했으나 한편으론 그저 바보 같은 배우가 얻어터지는 구경거리를 제공했다.”며 둥스구촌에서 구타당한 사건을 상기시켰다. 천광청은 중국에서 미국으로 건너온 뒤에도 지속적으로 중국의 인권 상황을 비판하고 있으며 내년에는 타이완을 방문할 계획이다. 앞서 천광청은 중국 당국의 강제 낙태 실태를 폭로했다 장기간 가택연금을 당하는 등 박해를 받았다. 베이징 주현진특파원 jhj@seoul.co.kr
  • 창업자금 투자보다 공익모금·지적재산 후원 소셜펀딩 ‘기부천사’로 진화

    창업자금 투자보다 공익모금·지적재산 후원 소셜펀딩 ‘기부천사’로 진화

    지난 8월 지식 공유 프로젝트 ‘오픈 렉처 라이브’(Open Lecture Live·올리브) 운영진인 주영민(26)·최지태(25)·문영석(25)씨는 고민에 빠졌다. 대학생 신분으로 비영리 사업을 하면서 홈페이지 구축에 들어가는 비용을 구하기가 쉽지 않아서다. 강연이 10회 이상 진행되면서 강연을 단순히 듣고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누구나 볼 수 있는 콘텐츠로 발전시키고 싶어 했던 세 사람은 ‘소셜펀딩’으로 비용 마련을 시도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사람들의 자발적인 참여를 유도하는 것이 지식 공유와 나눔이라는 올리브의 뜻과도 맞다고 판단했다. 지난달 28일 소셜펀딩 전문 사이트 ‘텀블벅’에서 150만원을 목표로 시작한 펀딩은 기대 이상이었다. 44명의 후원자가 참여해 불과 열흘 만에 목표 금액을 초과 달성했다. 후원자 중에는 이들과 일면식도 없는 이재웅 다음커뮤니케이션 창업자도 있었다. 주씨는 “사람들을 일일이 찾아다니면서 도와달라고 했으면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이 들었을 테고, 모금 자체도 쉽지 않았을 것”이라고 밝혔다. 인터넷을 통한 새로운 투자 방식 정도로 여겨지던 소셜펀딩이 한국에서 나래를 펴고 있다. 소셜펀딩은 아이디어의 사업화나 기술 후원 등을 위해 불특정 대중으로부터 SNS 등을 이용해 소액을 모금하는 방식으로 2009년 미국에서 시작됐다. 원래 소셜펀딩의 시초는 창업자금 등을 구하기 어려운 사람들이 투자자를 모으는 형태인 투자형이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투자자에 대한 보상이나 사업화 과정의 투명성 등이 보장되지 않아 투자형은 아직 초기 단계다. 국내 소셜펀딩은 사업 영역보다는 공익성 모금이나 창의적인 지적재산을 후원하는 후원형이 대세다. ‘1초 오심 논란’으로 화제가 됐던 국가대표 펜싱 선수 신아람에게 금메달을 만들어 전달하자는 모금 운동이나 ‘장미란 선수와 함께 비인기 종목 돕기’ 등도 소셜펀딩을 통해 진행됐다. 아예 기부 자체를 목적으로 만들어진 사이트도 있다. ‘위제너레이션’은 일본군 위안부 문제 알리기 모금 캠페인 등을 벌이며 지하철 광고를 준비하고 있다. 지난여름에는 독거 노인 선풍기 전달 캠페인을 진행했다. 지난 13일에는 국내 대표적 민간 공익재단인 아름다운재단이 ‘개미 스폰서’를 개설했다. 시민들이 직접 아이디어를 제안할 수 있도록 한 게 특징이다. 아이디어만 있으면 누구든 공익사업을 할 수 있는 시스템 덕분에 사이트 개설 3일 만에 이미 20개가 넘는 사업에 3000여명의 후원자가 참여했다. 음반이나 영화도 소셜펀딩으로 나오고 있다. 광주민주화운동을 다룬 강풀의 만화 ‘26년’은 영화화 자금을 모으지 못해 제작이 무산될 위기에 처했지만 소셜펀딩을 통해 무려 4억원이라는 자금을 모아 촬영을 진행 중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3주기를 맞아 이달 초 발매된 ‘탈상-노무현을 위한 레퀴엠’ 음반 역시 소셜펀딩을 통해 시민 2300여명이 모금한 1억 6000만원으로 제작됐다. 전문가들은 인터넷의 특징인 익명성과 손쉬운 참여의 특성상 소셜펀딩이 앞으로 새로운 모금 문화로 자리 잡을 것으로 전망했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국내에서는 아직 기부 문화가 일상화되지 못해 약간의 불편함만 있어도 꺼리는 경우가 많다.”면서 “소셜펀딩은 SNS를 통한 손쉬운 참여에 더해 기부라는 행위 자체에서 얻을 수 있는 자기만족이 맞물려 새로운 기부 문화로 자리 잡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창호 숭실대 정보사회학과 교수는 “과거 방송이나 신문 등에서 진행한 공익 모금은 자신의 지위 등에 따라 체면 때문에 일정 금액 이상을 내놓는 등 주위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을 수 없었는데 소셜편딩의 경우 나를 드러내지 않으면서도 내가 바라는 목적을 달성하는 데 기여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면서 “클릭 한 번으로 5000원, 만원 등 똑같은 금액을 펀딩할 수 있는 구조가 소셜펀딩을 더욱 활발하게 할 것”이라고 진단했다. 박건형·윤샘이나기자 kitsch@seoul.co.kr
  • [김문이 만난사람] 성악 인생 50년 테너 박인수 교수

    [김문이 만난사람] 성악 인생 50년 테너 박인수 교수

    세계인이 가장 좋아하는 오페라는 과연 어떤 것일까. 아마도 ‘라보엠’이라는 말에 별로 토를 달지는 않을 터. 가난한 보헤미안 연인들의 가슴 아픈 사랑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라보엠’의 백미는 단연 ‘그대의 찬 손’이다. 한 대목 잠시 음미해 본다. ‘그대의 조그만 손이 왜 이다지도 차가운가요! 내가 따뜻하게 녹여 줄게요~ 저는 시인입니다. 비록 가난하지만 마음만은 백만장자랍니다. 저는 꿈이 많답니다. 시와 노래의 아름다운 낭만적인 낙원에서 살지요. 그러나 갑자기 그대의 눈길이 내 마음을 흔들어 놨습니다. 자 이제 이름이 무엇인지 말씀해 주시겠어요.’ 이 아리아는 성악을 하는 테너 가수라면 누구나 ‘로망’으로 여기고 있다. 이 노래, 그러니까 오페라 ‘라보엠’에 100여회 출연, ‘그대의 찬 손’을 수없이 불러 ‘한국의 도밍고’, ‘전설의 스텐토르’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50인의 목소리)라는 별명이 붙은 성악가가 있다. 1938년생, 우리 나이로 치면 74세임에도 불구하고 무대 위에서 쩌렁쩌렁하게 여전히 감동을 선사한다. 오는 10일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데뷔 50주년 기념음악회를 연다. 성악가가 50주년을 기념한다는 것은 실로 드문 일이다. 그에 걸맞게 김성빈, 김성준, 김성진, 류정필, 박현재, 신동원, 양인준, 왕승원, 윤상준, 이병삼, 이상규, 이성민, 정규남, 정의근, 정호윤 등 내로라하는 테너 성악가 제자들이 참여해 스승의 50주년을 기념한다. 누굴까. 클래식과 가곡을 접목한 ‘향수’로 대중들에게도 유명한 테너 박인수 백석대학교 석좌교수가 주인공이다. 서울대 음대를 졸업하고 미국 줄리어드 스쿨과 줄리어드 오페라센터를 거쳐 미국과 캐나다, 남미와 유럽에서 주역 테너로서 성공을 거두었다. 20여년간 모교인 서울대에서 제자들을 양성했고 300여회의 오페라 주역과 2000회를 훌쩍 넘는 콘서트로 오늘날까지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하여 우리나라 테너 음악계의 큰 스승으로 여겨진다. 소낙비가 내리던 지난 4일 오전 서울 방배동 백석대학교 연구실에서 박 교수를 만났다. 50주년 기념 음악회 얘기부터 나왔다. “그러니까 1962년 대학교 다닐 때였지요. 슈만의 연가곡 ‘시인의 사랑’으로 첫 독창회를 했습니다. 낭만주의 예술가곡의 시대를 연 슈만의 사랑과 서정적 선율이 돋보이는 노래를 불렀던 당시가 지금도 생생합니다. 참 좋은 노래입니다.” 50주년을 맞는 소감을 물었다. 편안한 웃음으로 대답한다. “구약성서에 ‘희년’(禧年)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50년마다 돌아오는 것이지요. 말 그대로 복되고 기쁩니다. 인생에 채무가 있다면 그것을 청산하는 홀가분한 마음도 있고요. 살아오면서 알게 모르게 쌓은 업보를 내려놓는 기분입니다. 아울러 노래 인생 50년을 맞이하면서 제자들과 같이 무대에 선다는 것 또한 매우 의미가 있습니다.” 이번 공연에 대한 설명이 더 이어진다. 모두 1, 2, 3부로 나뉘어지는데 1부에서는 박 교수의 제자들이 나와 ‘그대의 찬 손’, ‘별은 빛나건만’, ‘남몰래 흐르는 눈물’ 등을 부른다. 2부에서는 박 교수가 독창으로 ‘클레멘타인’, ‘메기의 추억’, ‘아 목동아’ 등을 부른다. 3부에서는 제자들과 함께 ‘그리운 금강산’, ‘향수’, ‘새타령’, ‘진도아리랑’ 등 우리의 가곡과 민요를 열창한다. 2년 전부터 제자들이 앞장서서 준비한 무대여서 성악계에서는 큰 잔치로 이미 소문 나 있다. 그는 제자들에게 각별한 사랑을 베푼다. “성악 하는 사람들은 원래 나이 50대면 끝난다고 하지요. 하지만 저는 70이 넘었는데도 노래를 하잖아요. 벨칸토 창법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저는 거기에다 나름대로 터득한 플러스알파까지 제자들에게 가르칩니다. 제 나이 60대에 많은 고민을 하면서 알게 된 것이지요. 그래서 다들(제자) 노래를 잘합니다.” 그는 순수와 대중음악의 벽을 허물면서 진정한 화합의 목소리로 주목을 받아 왔다. 까닭에 지금도 후학 양성과 끊임없는 콘서트로 노익장을 과시한다. ‘테너 박인수’ 하면 생각나는 것이 국민가요 ‘향수’다.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고 얼룩백이 황소가~’로 시작되는 이 노래는 1989년 당시 파격적으로 대중 가수 이동원씨와 함께 불렀다. “그 노래를 불러 잃은 것도 많고 얻은 것도 많습니다. 당시 이동원씨와는 일면식도 없었는데 재즈하는 김준의 소개로 만났지요. 이동원씨가 정지용의 시집을 갖고 와서 ‘향수’를 처음 접했습니다. 시가 너무 좋더군요. 이미 김희갑씨가 작곡을 했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바로 녹음하자고 승낙했습니다.” 하지만 의욕과는 달리 오페라 가수가 대중가수와 함께 음반을 냈다는 이유로 비난과 질타를 받았다. 당시 몸담고 있던 국립오페라단에서 ‘성악을 모독했다’는 말까지 들었다. 온갖 시련을 견디다 못해 결국 그는 국립오페라단을 제 발로 걸어나와야 했다. 그런 과정에서 ‘향수’ 음반이 1년 만에 130만장이 팔리는 흥행기록을 세우면서 그의 이름을 대중들에게 확실히 각인시켰다. “지금도 전혀 후회하지 않습니다. ‘향수’는 좋은 시이자 훌륭한 노래입니다. 문학적으로 보나 음악적으로 보나 가치 있는 일이라고 판단했지요. 저 개인적으로 ‘향수’를 부르고 나서 얻은 것이 훨씬 많다고 생각합니다. 성악가로서 대중적인 인지도가 높아졌잖아요(웃음).” 그는 음악의 본질에 대해 “100% 듣는 사람 위주로 가야 한다. 마음에 감흥이나 즐거움, 감동을 받는 음악이 돼야 존재 가치가 있다.”고 말한다. ‘향수’ 이후 그는 가수 이문세, 안치환 등과 함께 노래를 하고 음반을 냈다. 클래식을 대중화시키는 일, 많은 사람들에게 음악을 듣게 하는 일이라는 점에서 기꺼이 대중가수들과 합류했던 것. 화제를 과거로 돌렸다. 어떻게 해서 성악을 했을까. 그러자 “성악은 첫 번째도 소리요, 두 번째도 소리, 세 번째도 소리”라고 강조하면서 잠시 회고한다. “아버지가 노래를 아주 잘하셨습니다. 트로트, 발라드, 이탈리아 민요까지 불렀어요. 저도 따라 불렀는데 ‘울려고 내가 왔던가’란 노래는 지금도 생각납니다. 이것저것 부르다 보니 자연스럽게 노래가 좋아지더군요. 초등학교 5학년 때 합창반 오디션도 보고 중학교 때에는 교회 성가대에서 활동했지요. 고등학교 때 멋과 낭만이 있는 마도로스 영화를 감상하고 난 뒤 친구와 함께 마도로스의 꿈을 실현시키려고 부산으로 갔습니다.” 노래와는 담을 쌓으려고 했지만 ‘박인수는 노래를 해야 한다.’는 주변의 권유가 빗발쳤다. 결국 마도로스의 꿈을 접고 1년 동안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노래 레슨을 받아 서울대 음대에 진학했다. 하지만 그의 인생은 순탄치 않았다. 1967년 대학을 졸업할 무렵 국립오페라단에서 오페라 ‘마탄의 사수’ 주인공으로 출연했으나 너무 잘하려고 욕심을 내는 바람에 크게 실패했다. 방송과 여러 신문에서 혹평이 쏟아졌다. 음악을 그만둘 생각으로 전 재산을 투자해 간장 대리점을 차렸다. 장사가 신통치 않자 시장통에 음식점을 냈다. 그것도 얼마 못 갔다. 돼지와 양송이도 길러봤지만 사업과는 인연이 없었다. 그러다가 고교 시절 친구를 만나 고민을 털어놓은 것이 계기가 돼 리어카 하나를 사서 서울 신촌 뒷골목에서 동생과 함께 포장마차를 운영했다. 찾아오는 손님이 없어 동생과 함께 술 마시는 날이 더 많았다. “언젠가 리어카를 장만해 준 친구가 찾아왔어요. 술 한잔 하더니 ‘야, 너는 음악해야 돼. 포장마차 장사하기엔 너무 아까워’라고 하더군요. 그러면서 75만원이 든 통장을 주더라고요. 친구의 진심어린 권유로 용기를 얻고 1969년 시민회관(현재 서울시의회)에서 라보엠을 공연했습니다. 예상밖에 대박을 터뜨렸지요. 혹독하게 비판했던 언론에서도 찬사가 쏟아졌습니다. 다음 해에 미국에서 초청을 받는 등 사실상 새로운 음악인생을 시작했지요.” 이후 미국과 캐나다, 남미 등 순회공연에서 오페라 주인공을 맡으면서 이름을 널리 알렸다. 아울러 국내에서는 ‘박인수와 음악친구들’이라는 타이틀로 매년 200회의 공연을 하면서 대중들과 함께했다. “성악은 조물주가 준 훌륭한 악기입니다. 잘 사용하면 최고가 되고 잘못하면 악성이 나오지요.” 인터뷰를 마치면서 앞으로의 계획을 묻자 “우리의 민요와 판소리를 오페라에 접목시켜 세계화하는 일”이라고 말한다. ‘그대의 찬 손’이 아니라 ‘그대의 따뜻한 손’이라는 말이 떠오른다. 선임기자 km@seoul.co.kr ■ 박인수 교수는 오페라 ‘라보엠’ 주인공만 100회 넘어… ‘향수’로 대중적 인기 1938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경동고를 나와 서울대 음대를 졸업했다. 이후 미 뉴욕 줄리어드 음대, 맨해튼 음악대학원 석사과정을 수료했다. 서울대 음대 성악과 교수를 지낸 뒤 현재 백석대학교 석좌교수로 있다. 1962년 슈만의 ‘시인의 사랑’으로 데뷔했으며 1967년 국립오페라단 ‘마탄의 사수’ 주인공을 맡아 열연했으나 쏟아지는 혹평을 견디다 못해 간장 대리점, 음식점, 포장마차 등의 사업을 했다. 1969년 서울 시민회관에서 라보엠 공연으로 재기했다. 이후 현재까지 라보엠 주인공으로만 100여회 출연했다. 1989년 성악가로서는 보기 드물게 대중 가수 이동원과 함께 ‘향수’를 불러 인기를 끌었다. 70대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매년 200여회의 공연을 할 만큼 식지 않는 열정을 과시하고 있다. 1997년 문화체육부 한복애용자 표창 대상, 2011년 은관문화훈장 등을 수상했다.
  • 묻지마 범죄 기승… ‘화풀이’는 패배자의 몸부림

    며칠 전 회사들이 밀집한 서울 여의도 한복판에서 흉기 난동 사건이 일어났다. 자신을 따돌린다고 생각했던 전 직장 동료에게 복수하려던 칼부림이 일면식도 없는 행인에게까지 닿아 4명이 다쳤다. 나흘 앞서 지하철 1호선 의정부역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한 남성이 자신의 행동을 질책한 다른 남성에게 공업용 칼을 꺼내 휘둘렀다. 애먼 사람들도 상처를 입었다. 남성은 “순간 화를 참지 못했다.”고 했다. 무고한 타인을 희생양 삼아 분풀이를 하는 ‘묻지마 범죄’가 들끓는다. 진화생물학자인 데이비드 바래시와 정신과 의사인 주디스 이브 립턴 부부는 ‘화풀이 본능’(고빛샘 옮김, 명랑한지성 펴냄)에서 복수와 보복, 화풀이를 진화론으로 풀어냈다. 저자가 내세운 ‘3R(retaliation·redirecting aggression·revenge) 개념’ 중 보복과 화풀이는 동물의 본능이라고 할 정도로 진화한 생물 대부분에서 발견된다. 새끼를 위협하는 생물학자를 공격하려던 검독수리 어미는 상대가 자신보다 수 배 크다는 것을 깨닫고 근처를 비행하던 굴뚝새 무리를 추격하며 우렁차게 울어댄다. 저녁 사료가 늦어지면 서열 높은 암말은 짜증이 나 옆에 있던 어린 수말을 걷어차기 일쑤다. 짝짓기는 화풀이 행동이 빈번하게 나타나는 무대다. 모든 동물의 본능이라고 해서 인간의 보복과 화풀이를 정당화할 수는 없다. 저자들은 “인간의 행동에는 다른 생물들과 확연히 구별되는 측면이 많다. 그런 차이 가운데 가장 두드러지는 특징이 바로 한 개체의 행동이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대규모의 파급효과를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인종이나 종교가 다르다는 이유로, 국내 정치 상황을 반전시킬 명목으로 무차별 테러와 전쟁을 일삼는 동물은 인간밖에 없다. 저자들은 “인간은 분노를 곱씹고 숙고하고 오랫동안 생각”하면서 3R을 증폭시킨다고 본다. “국가 지도자의 위치에 있는 사람이 화풀이를 할 때 그 영향은 극적으로 배가 된다.”고 경고하는 저자들은 상대를 처벌하거나 ‘악의 화신’이라는 딱지를 붙이는 것으로는 3R의 악순환을 해결할 수 없다고 지적한다. ‘사법적 처벌’로 정의를 실현했다고 보는 데에도 의문을 제기한다. “피해자의 고통을 해소하기 위해 새로운 희생자를 만드는 ‘목적 있는 복수’일 뿐”이라고 말한다. 그럼 어떻게 용서할 것인가. 저자들은 이 내용에 대해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만든 ‘고통 최소화 원칙’과 종교 이론, 정신의학, 경제학, 게임 이론, 사회학 등을 빌려 다양하게 제안한다. 어쩌면 가장 어렵고 공허한 외침이 될 수 있는 부분에 대해 나름대로 성의 있게 설명한 것이 이 책의 미덕일 수 있겠다. 1만 8000원. 최여경기자 kid@seoul.co.kr
  • [사설] 병든 사회가 ‘묻지마 범죄’ 양산한다

    최근 불특정 대상을 겨냥한 ‘묻지마 범죄’가 잇따라 발생해 온 국민을 불안에 떨게 하고 있다. 엊그제 서울 여의도와 21일 용인과 수원 등 이달 들어 전국에서 일어난 10여건의 사건들이 모두 ‘될 대로 돼라’ 식으로 일어난 범죄들이다. 이들 범죄자들의 특징을 보면 한결같이 경쟁에서 밀려 더 이상 잃을 것이 없는 막다른 골목에 처한 이들이다. 가정·직장·사회에서 소외된 이들이 자포자기하는 심정에서 일면식도 없는 애꿎은 시민들에게 흉기를 휘둘렀던 것이다. 이런 범죄가 빈발한 것은 사회 양극화와 경제난 등 사회 구조적인 문제와 무관치 않다는 점에서 근원적인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하겠다. ‘묻지마 범죄’가 단순히 은둔형 외톨이들의 개인적인 불만과 분노가 폭발한 결과로만 보기 어려운 정황들이 곳곳에서 드러나고 있다. 여의도에서 전 회사 동료 4명을 흉기로 찌른 30대 김모씨만 해도 회사를 나온 뒤 직업을 구하지 못하자 복수심에 불탔다고 한다. 김씨가 “차라리 자살할까 하다 혼자 죽기 억울해 보복하고 싶었다.”고 경찰에 진술한 내용만 보더라도 사회적 실패자들의 개인적인 좌절이 사회에 대한 극도의 분노를 낳고, 이는 결국 범죄로 폭발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만큼 범죄의 유혹에 취약한 이들에 대한 주의 깊은 관심이 절실하다. 경찰청은 어제 경찰력을 최대한 투입해 치안 강화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런 범죄는 강력한 처벌과 단속만으로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치열한 경쟁 사회에서 낙오되거나 도태된 이들을 사회가 보듬고 가지 않는다면 언제, 어디에서든 유사 사태가 재연될 수 있다. 이번 사건들을 계기로 우리 사회를 되돌아봐야 한다. 성공 지상주의, 물질 만능주의가 판치는 병든 사회는 이런 유형의 범죄를 양산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직시하고 사회적 낙오자들에게도 패자 부활의 기회를 주는, 건강한 사회로 탈바꿈시키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 박지원 원내대표 검찰 자진 출석

    박지원 원내대표 검찰 자진 출석

    저축은행으로부터 금품을 수수한 혐의를 받고 있는 박지원(70) 민주통합당 원내대표가 31일 오후 검찰에 전격 출석했다. 박 원내대표가 승부수를 던진 것이다. 검찰이 지난 19일 1차 소환을 통보한 지 12일, 체포영장을 청구한 지 하루 만이다. 검찰은 박 원내대표를 한두 차례 더 조사한 뒤 정치자금법 위반 및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알선수뢰 등의 혐의로 사전구속영장을 청구할 방침이다. 대검찰청 저축은행 비리 합동수사단(단장 최운식)은 이날 박 원내대표를 피의자 신분으로, 임석(50·구속 기소) 솔로몬저축은행 회장 등으로부터 각종 명목으로 돈을 받았는지 등에 대해 강도 높게 조사했다. 박 원내대표는 2007년 가을 서울 여의도의 한 음식점과 2008년 3월 전남 목포의 한 호텔에서 임 회장으로부터 정치자금 명목으로 각각 3000만원과 2000만원을 받은 혐의를 받고 있다. 또 2010년 6월 목포의 한 사무실에서 오문철(60·구속 기소) 당시 보해저축은행장으로부터 수원지검의 수사 및 금융감독원의 검사와 관련한 청탁과 함께 3000만원을 받은 혐의도 받고 있다. 모두 8000만원을 받은 것이다. 박 원내대표는 검찰 조사에서 “임 회장, 오 은행장 등과 일면식은 있기는 하지만 금품을 받은 사실 자체가 없다.”는 취지로 혐의를 전면 부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 원내대표는 이날 오후 3시 대검찰청에 김학재·이춘석·송호창·박범계·김관영 등 같은 당 소속 전·현직 의원 5명과 함께 나왔다. 박 원내대표는 전격 출석한 배경에 대해 “검찰 출석과 관련해 당의 입장도 완강하고 저도 사실이 아닌 혐의에 대해 조사받는 게 억울하다.”면서 “하지만 19대 국회 개원 협상을 주도한 원내대표로서 민간인 불법사찰 국정조사, 내곡동 사저 의혹 특검 등 현안이 산적한 상황에서 저로 인해 민생 국회가 차질을 빚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정치권에서는 박 원내대표의 전격 출석과 관련, 대선을 앞두고 국회 체포동의안을 무산시키기 위해 필리버스터(합법적 의사진행 방해) 등을 강행할 경우 여론이 악화돼 12월 대선에까지 지장을 줄 수 있다는 정치적 부담이 작용한 것이라는 해석을 내놓고 있다. 또 8월 임시국회 개원의 명분을 쌓으려는 전략이라는 분석도 있다. 김승훈·강주리·안석기자 hunnam@seoul.co.kr
  • 안철수 대해부 ‘안철수를 알고 싶다’ 출간

    안철수 대해부 ‘안철수를 알고 싶다’ 출간

     유력한 차기 대권 주자로 거론되고 있는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을 해부한 ‘안철수를 알고 싶다’(윤문원 지음)가 출간됐다.  안 원장은 최근 ‘안철수의 생각’을 출간한 뒤 SBS ‘힐링캠프’에도 출연해 자신의 정치, 사회적 신념과 함께 대선 출마와 관련한 궁금증을 알렸다. 하지만 안 원장의 가족과 삶, 철학 등에 대해 알고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대부분의 국민은 안 원장에 대해 ‘의사를 하다가 컴퓨터 관련 일로 성공한 CEO’로 인식한다. 하지만 ‘안철수를 알고 싶다’는 안 원장의 가족 관계에서부터 그가 걸어온 길, 삶의 철학까지 상세히 분석해 놓았다.  후반부에서 저자는 그가 과연 대통령이 될 자격이 있는가에 대한 해부를 했다. 또 우리에게 어떤 리더십을 보여줄 것인가에 대한 미래그림도 그렸다.  저자 윤문원씨는 “안철수와 일면식도 없지만 그가 대권 후보 선호도 조사에서 수위권을 달리고 있는 이유를 파악하기 위해 연구를 했다.”면서 “자료들을 찾아 연구한 뒤 이 글을 쓴 것”이라고 밝혔다.  윤문원씨는 칼럼리스트이자 경제평론가로 저술과 강의를 하고 있다. ‘잘 나가는 청춘 흔들리는 청춘’ 등 30여권의 책을 썼다. 싱크파워 출간. 280쪽. 가격 1만 4000원. 문의 (031)501-8033.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지옥 따로 없어… 오만했던 내가 먼저 변하겠다” [단독]

    “지옥 따로 없어… 오만했던 내가 먼저 변하겠다” [단독]

    “‘우리 스님은 과격하고 무식하게 말하지만, 정직하고 청렴하고 한 점 티끌도 없을 것이라고 믿었던’ 신실한 신도들이 느낄 상처와 절망을 생각하면 지옥이 따로 없다.” 명진(62) 스님은 17일 서울 한남동 남산맨션의 사무실에서 칩거하며 “승복을 입고 세상에 나갈 엄두가 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최근 ‘승려 도박 동영상’ 사건과 연계돼 명진 스님과 총무원장 자승 스님 등 승려 4명의 2001년 룸살롱 출입 사건이 재차 주목 받게 되자 큰 고통을 받고 있다는 명진 스님. 당시 사건으로 종회 부의장을 사퇴했고, 법회나 언론 등을 통해 여러 차례 밝히고 반성했지만, 그를 따르는 신도 중 30~40%는 이번에 사건을 알게 돼 충격을 받고 있다는 것이다. 명진 스님은 “페이스북의 19살 친구가 스님을 존경했는데, 기대가 무너졌다고 써놓은 글을 보고, 기대와 희망을 무너뜨린 것은 죄”라고 했다. 승려 도박을 검찰에 고발한 성호 스님과 ‘한편’이라는 시각에 대해 “일면식이 없다.”면서 “성호 스님이 지난 3월 룸살롱 문제와 관련해 참회록을 보내와 다 끝난 줄 알았다.”고 했다. 스님들의 도박·음주·성매매와 같은 파계에 대해 명진 스님은 “일부 스님들의 문제일 뿐”이라면서도 “한국 불교가 선종으로 가면서 일반적으로 계율을 무시하는 경향이 있었고, 한국사회가 자본주의화되면서 스님들도 자본에 물들었다.”고 지적했다. 부처님 시대의 계율에 따르면 음악을 들어서도 안 되고, 여자와 단독으로 만나서도 안 되고, 돈을 수중에 지녀서도 안 된다고 했다. 9세기경 중국 화엄종의 청량 국사가 계율을 지키려고 늙은 어머니가 찾아와도 병풍을 치고 만난 사례를 들었다. 이런 형식적 계율의 엄수는 당대에 계율을 잘 지키지 않는 풍토를 개선하려는 것이었다고 한다. 명진 스님은 “다만, 복잡해진 현대사회에 맞는 새로운 계율이 필요하지 않은지 불교계가 고민할 시점에도 왔다.”고 제안했다. 자승 총무원장을 둘러싼 권력투쟁의 양상처럼 보이는 현 사태에 대해 명진 스님은 “나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말했다. 총무원장에 집중된 권력을 분산해, 현재의 ‘총무원-종회 권력분립형’ 체제는 1994년 한국 불교계의 진보·개혁적 사람들이 승려대회를 통해 종헌·종법을 고쳐서 나온 것이다. 당시 명진 스님은 “개혁에 실패하면, 내가 중노릇을 그만하겠다.”라고 선언한 뒤 밀어붙여 당시 ‘서의현 총무원장 3선 저지’에 성공했다. 차기 총무원장은 명진 스님의 은사인 탄성 스님이었다. 그러나 그 개혁으로 “서의현 총무원장은 사라졌지만, 계파 보스를 중심으로 한 ‘150명의 작은 서의현’들이 등장해 현재에 이르고 있다”고 지적했다. 과거에는 총무원장과 몇몇 비리스님을 쫓아내면 됐지만, 이제는 종무행정에 발을 딛는 스님들이 대부분 비리와 부패에 모두 엮이게 돼 문제의 해결이 더 어려워졌다. 다시 종헌·종법의 개정을 통한 개혁이 필요하다고 했다. 명진 스님은 “28일 초파일을 월악산 보광사에서 쇤 뒤 문경 봉암사에서 하안거를 하며 잘난 척하고 깝죽대고 오만했던 나를 다스리겠다.”면서 “이제 MB 정권 바꾸는 것보다 나를 변화시키는 것이 더 시급하고, 변하지 않으면 돌아오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 [도박 이어 성매수 의혹까지…불교계 진실게임] “추문 자료 있어… 양심선언하라”

    [도박 이어 성매수 의혹까지…불교계 진실게임] “추문 자료 있어… 양심선언하라”

    “룸살롱을 출입하고 도박을 한 고위직 스님들에 대한 자료를 가지고 있지만, 의혹을 받는 분들이 직접 나서서 양심선언할 것으로 믿고 기다리고 있다.” 김영국(53) 전 지관 총무원장 종책특보는 16일 “‘스님 도박 동영상’과 같은 시각적 증거는 없지만 상당한 수준의 자료를 확보하고 있다.”며 이렇게 말했다. 조만간 해당 자료를 언론에 공개할 것이냐는 질문에 그는 “고백할 일이 있는 분들은 고백해 달라.”며 확답을 회피했다. 김 전 종책특보는 “자승 총무원장이 룸살롱에 출입했다는 소문이 오래전부터 있었는데, 직접 해명을 하지 않으니 온갖 추문으로 확대되고 있다.”면서 “더 이상 침묵하지 말고 자신의 목소리로 ‘룸살롱에 갔다, 또는 가지 않았다’고 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 전 종책특보는 “명진 스님은 2001년 룸살롱에 갔던 사실을 인정했고, 당시 종회부의장에서도 사퇴했다.”고 상황을 환기시켰다. 11년 전의 해묵은 사건을 꺼내 들고 총무원을 압박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에 “총리·장관 후보자 등이 20~30년 전에 저지른 부동산 투기나 위장전입, 탈세 등이 문제가 돼 임명에서 탈락하기도 하지 않느냐.”면서 “성직자로서 잘못을 저질렀다면 그에 대해 책임을 지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반박했다. 김 전 종책특보는 “자승 총무원장과 지도부를 공격하고자 성호 스님, 명진 스님과 내가 연합해 ‘기획폭로’한 것처럼 알려졌는데 이는 사실이 아니다.”면서 “성호 스님과는 일면식도 없다.”고 했다.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 장나라 “대표 동안요? 저도 주름이 ^.^…노래에 대한 갈증 너무 풀고 싶었죠”

    장나라 “대표 동안요? 저도 주름이 ^.^…노래에 대한 갈증 너무 풀고 싶었죠”

    “아휴, 저도 가까이서 보면 주름이 자글자글해요(웃음).” 국내 대표 동안 연예인 장나라(31). 오죽하면 ‘동안 미녀’라는 제목의 드라마 주인공까지 맡았을까. 최근 서울 마포구 홍대의 한 카페에서 만난 그녀는 여전히 풋풋하고 솔직한 매력을 갖고 있었다. 먼저 4년 만에 새 앨범을 내고 가수로서 국내 활동을 재개한 소감부터 물었다. “오랜만에 무대에 섰더니 정말 긴장이 많이 됐어요. 아무래도 공백 기간에 대한 부담감일 수도 있고요. 중국에서 활동할 때는 관객 수는 굉장히 많지만 거리가 멀어서 덜 긴장됐거든요. 한국에서는 객석과의 거리가 가까워서 더 어색한 것 같기도 하고요.” 신곡 ‘너만 생각나’로 음악 프로그램의 첫 녹화를 했을 때 떨려서 제대로 한자리에 서 있기도 힘들었다는 장나라. 너무 긴장한 탓에 자신의 목소리가 끊어지는 것도 몰랐다고 하니 오랜만의 국내 무대가 상당히 압박감을 준 모양이다. 하지만 음원이 발표된 지난달 26일 인터넷 포털사이트 검색어 순위에 그녀의 이름과 노래 제목이 떠나지 않을 정도로 팬들은 반가운 기색을 표하고 있다. “사실 저 혼자 반가우면 어떡할까 걱정을 많이 했어요. 제 노래가 오랜만에 만나는 친구처럼 다가갔으면 했거든요. ‘너만 생각나’는 단순한 멜로디의 발라드로 가사도 굉장히 직설적이에요. 연인과 헤어진 분들께 위로가 돼도 좋을 것 같고…. 저도 나이를 먹는지 뭔가 와 닿는 것이 있어서 공감하면서 불렀어요.” 2001년 ‘눈물에 얼굴을 묻는다’로 데뷔해 ‘나도 여자랍니다’ ‘4월 이야기’ ‘사랑하기 좋은 날’ 등을 히트시켰던 장나라. 그는 배우로 한국과 중국에서 자리를 잡았지만 가수로서 노래를 하고 싶다는 갈증은 여전히 남아있었다. “국내에서 가수 활동을 하려고 준비했었는데 작품을 하게 되면서 앨범 발매 시기가 맞지 않았어요. 사실 제가 가수로서 비음도 많고 다른 가수들에 비해 소리도 약한 편이지만 매 앨범마다 장점을 꾸준히 살려가는 게 좋아요. 제가 폭발력 있는 느낌이 없고 목소리가 여려도 감성이 많이 담긴 편이거든요.” 이번 디지털 싱글 앨범에는 가수 알렉스와 함께 부른 ‘바로 너였어’도 수록돼 있다. ‘너만 생각나’와는 전혀 다른 분위기로 봄 느낌이 물씬 풍기는 달달한 곡이다. 장나라는 “두 곡 모두 들으실 때 편안한 느낌을 받으셨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녀를 이야기할 때 중국 활동을 빼놓을 수 없다. 장나라는 중국에서 ‘띠아오만 공주’ ‘순백지련’ ‘철면가녀’ 등 총 6편의 드라마에 출연하며 한류 스타로 입지를 굳혔다. 어느새 한국에서 출연한 작품 수와 똑같아졌다. 한류 스타 대부분의 고민처럼 한국에서의 공백이 부담스럽지 않았을까. “한국과 중국 활동의 분배를 잘하고 싶었는데 중국에서 할 수 있는 일을 계속 하다 보니 (활동이) 좀 치우친 면도 있었어요. 그런데 한국에 계속 있었다고 안 잊힌다는 보장은 없었을 거예요. 하지만 중국 활동을 하면서 감사한 일도 많고 배운 것도 많아요. 중국에 가기 전에는 세상을 보는 눈이 좀 편협했어요. 작은 어려움이나 불만이 생기면 내가 제일 슬프고 모든 짐을 다 진 것 같은 피해의식에 사로잡히기도 했었죠. 그렇지만 넓은 곳에서 일하면서 성공하기도 하고 큰일을 겪으면서 조금은 어른이 된 것 같아요.” 장나라는 중국에서 울화통이 치밀고 속상한 적도 많았지만 지금 돌아보면 다 만족스럽다면서 웃었다. 그녀는 “처음 중국에 갔을 때 누구를 믿어야 할지 몰라서 개런티 등의 문제와 관련해 속기도 하고 일면식도 없는 사람들이 내 매니저를 사칭한 적도 있었다.”고 털어놨다. 그러나 최근 중국 드라마에 높은 개런티를 받고 출연하는 한국 배우가 많다는 이야기를 전하자 그녀의 표정이 순간 진지해졌다. “개런티 부분은 거품도 많지만 어느 정도 현지 중국 배우들과 형평성을 맞춰야 한다고 생각해요. 요즘은 한국 뉴스가 실시간으로 중국에 전해지기 때문에 한국 배우들이 광고나 드라마에서 거액의 출연료를 받는 것이 그분들에게 상처가 될 수도 있거든요. 잘못하면 한류가 일방적인 자국 이기주의로 비칠 수도 있어요. 저는 한국, 중국, 일본의 대중문화가 어울림이 없다면 오래 지속되지 않을 거라고 봐요. 하지만 반대로 교류가 잘되면 할리우드가 부럽지 않다고 생각해요.” 장나라는 자신 역시 처음 중국에서 드라마를 촬영할 때 팀내에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는 배우들도 있었고 악의적인 중국 언론의 보도에 시달린 적이 있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하지만 “뭐니 뭐니 해도 내 말로 연기하고 노래하는 것이 최고”라며 웃는 장나라는 올해와 내년에 국내 활동에 주력할 예정이다. 여기에는 지난해 드라마 ‘동안미녀’의 성공이 발판이 됐다. 이후 시놉시스도 많이 쌓이고 있는 상황이다. “‘동안 미녀’의 첫 회를 보고 눈물을 터뜨렸어요. 혹시 저 때문에 드라마가 안 될까 봐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거든요. 다행히 작품이 잘돼서 감사했고 혼자 하는 연기가 아닌 다른 사람과 어울리는 연기를 배웠어요. 이후에 ‘동안 미녀’와 비슷한 캐릭터가 많이 들어오긴 해요. 그런데 저는 조금씩만 다르게 한다고 해도 만족해요. 그러다 보면 언젠가 많이 달라진 모습을 보여드릴 수 있겠죠. 데뷔 2~3년 차에 진짜 창피한 건 다 해봤기 때문에 이제 두려운 연기도 없고요.” 장나라가 지금까지 연예계에서 버틸 수 있었던 것은 아버지인 연극배우 주호성씨의 공이 컸다. 한때 그녀를 소속사 대표인 아버지에게 기대는 ‘파파걸’로 보는 시선도 있었지만 누가 뭐래도 아버지는 장나라의 가장 든든한 후원자다. “다른 아버지와 딸처럼 투닥투닥할 때도 있지만 아버지가 없었다면 아마 중국에서 일을 못 했을 거예요. 아버지는 처음에 중국말을 한마디도 못 했지만 독학으로 공부해서 이제는 계약도 혼자서 할 수 있을 정도의 수준에 도달했어요. 참 독하고 똑똑하신 분이죠. 저는 행동력 없고 현실에 안주하기를 좋아하는 성격인데 미래지향적이고 진취적인 아버지 덕분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얼마 전 사진 촬영을 하고 있는데 지나가는 어린 학생들이 “저 누나 처음 보는데, 누구야.” 하는 대화를 듣고는 웃음이 났다는 장나라. 그녀의 30대는 어떻게 진행되고 있을까. “사실 20대부터 이지적이고 커리어우먼의 상징인 30대가 되기를 기다렸어요. 그런데 막상 서른이 되니 현실은 너무나 다르더라고요. 내가 아무것도 아닌 것 같다는 생각에 8춘기까지 겪었죠. 나 자신을 추스르기도 힘든데 연애도 부담스럽고…. 하지만 전 일이 좋고 즐거워요. 조금 더뎌도 앞으로 계속 발전하는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어요.” 이은주기자 erin@seoul.co.kr
  • 같은 지역 talk… 공통 관심사 talk … 친밀감 톡톡

    같은 지역 talk… 공통 관심사 talk … 친밀감 톡톡

    지난 21일 저녁 서울 강남구 신사동 가로수길의 음식점에서 지역기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저스팟’의 ‘번개 모임’이 열렸다. 예약해 놓은 단체석 자리에 사람들이 하나둘 모여든다. 이들 중 일부는 이미 일면식이 있는 듯 친밀하게 인사를 나눈다. 처음 본 사람들은 이름을 확인하거나 저스팟에서 사용하는 아이디를 물어보기도 한다. 모두 12명이 함께했다. 일이 있어서 먼저 가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헤어질 때까지 유쾌한 모임을 이어갔다. 처음 보는 사람들이 대다수였지만 어색하지 않다. 모바일 속 저스팟에서 확장된 오프라인 모임에 어떻게 참석하게 됐는지 궁금했다. ‘그들은 왜 저스팟으로 갔을까.’ 페이스북과 트위터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던 이용자들이 특색 있는 SNS로 이동하고 있다. 23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공개형 SNS의 경우 사생활 노출 우려와 수많은 친구를 관리해야 하는 피로감 등을 이유로 계정을 삭제하거나 활동을 하지 않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이색 SNS들은 지역이나 사진, 음악 등 다양한 주제를 통해 특정인과 소통한다. 페이스북과 트위터가 대부분 불특정 다수와 소통하는 것과 다른 점이다. ●“공개형 SNS와 달리 사생활 노출 적어” 특히 이색 SNS는 같은 지역이나 관심사에 대한 공감대로 인해 친밀감이 높고 이 때문에 새로운 인맥을 쌓으며 폭넓은 인간관계를 맺기도 한다. 모임에 참석한 김경준(33)씨는 가로수길에 있는 직장에 다닌다. 김씨는 “저스팟은 지역기반 SNS이기 때문에 가로수길 인근 직장인들과 아무래도 공통점이 많아서 동네 사람들과 이야기하는 것처럼 편하다.”면서 “직장인 대부분이 그렇듯이 친구들을 평일에 만나기 어려운데, 주변 사람들과는 퇴근 후 모이기가 쉬워서 종종 만나다 보니 자연스럽게 친해진다.”고 말했다. ●“불특정 다수 관리하는 피로감도 없어” 김씨는 ‘통하는’ 몇몇과 정기적으로 모임을 갖는가 하면 인근 휘트니스클럽을 함께 등록하기도 했다. 직장인 이지은(29)씨의 경우는 페이스북과 트위터와 이별하고 저스팟만 사용하고 있다. 이씨는 “트위터에 내 생각을 올렸을 뿐인데 팔로어도 아니고 전혀 알지도 못하는 사람이 들어와서 공격하는 게 불편했다.”면서 “내가 써놓은 글에 무조건적으로 반론을 펴는 등의 일이 잦아지면서 자연스럽게 하지 않는다.”고 했다. 이씨의 말처럼 페이스북이나 트위터는 친구맺기를 하지 않아도 이용자의 친구들을 확인할 수 있으며 어떤 대화들을 나누는지 쉽게 볼 수 있다. 27년째 정보기술(IT) 업종에 종사하고 있는 장성순(53)씨는 스마트폰으로 갈아타면서 모바일 SNS를 하고 있다. 장씨는 “SNS는 나를 표현하는 공간”이라고 말하며 “쇼트 스토리에 관심을 가지고 있으며 저스팟에 사진과 짧은 글들을 올렸을 때 돌아오는 반응이 흥미롭다.”고 말했다. ●“동네 사람과 이야기하는 것처럼 편안” 노정석 아블라컴퍼니 최고경영자(CEO)는 저스팟의 장점에 대해 “주변의 모르는 사람들이 만나서 지역이나 공감하는 부분에 대해 대화하고 공유하면서 하나의 문화 블록이 형성된다.” 면서 향후 지역별 여러 블록들이 생겨 날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단순히 친해지는 것만으로는 지속성을 가지기 어렵다.”면서 “커뮤니티를 통해 컬처 그룹이 생길 수 있도록 계속되는 실험을 통해 이용자들이 원하는 서비스를 제공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한편 저스팟은 미국에 지사를 두고 시장 진출 시기를 조율하고 있다. 글 사진 홍혜정기자 jukebox@seoul.co.kr
  • “靑민정실서 준 5000만원 국세청 간부가 조달했다”

    장석명 청와대 민정수석실 공직기강비서관이 지난해 4월 류충렬 당시 국무총리실 공직복무관리관(현 국가경쟁력강화위원회 민관합동규제개혁추진단장)을 통해 장진수(39) 전 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 주무관에게 건넸다는 5000만원은 국세청 간부가 조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정당국 고위관계자는 19일 “국세청 간부가 지난해 1월 출처 불명의 돈 5000만원을 장 비서관 측에 전달했고, 이 돈이 장 전 주무관에게 건네진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또 “국세청 간부는 청와대 측 인사들과 총리실의 공직윤리지원관실 출범에 깊이 관여했던 인물”이라고 덧붙였다. 장 전 주무관에게 전달됐다는 5000만원을 국세청 간부가 조달한 것이 사실이라면 총리실, 청와대 민정수석실, 고용노동부에 이어 국세청까지 장 전 주무관 회유에 관여했다는 정황이어서 사회적·정치적 파장이 적잖을 전망이다. 앞서 장 전 주무관은 이날 “장 비서관이 지난해 4월 2심판결 직후 류 관리관을 통해 5000만원을 건넸다.”고 털어놓았다. 장 전 주무관이 공개한 류 관리관과의 대화녹취록 등에 따르면 류 관리관은 지난해 4월 서울 창성동 정부종합청사 별관 인근 음식점에서 장 전 주무관을 만나 “장 비서관이 마련했다.”면서 “항소심 판결로 마음이 좋지 않을 것 같아 주는 것”이라며 5000만원을 건넸다. 또 지난해 1월 “민정수석실이 장 전 주무관에게 건네기 위해 5억~10억원을 준비 중”이라고 말했다. 류 관리관은 당시 “2심에서 벌금형이 나오도록 장 비서관과 얘기가 돼 있다.”고도 했다. 류 관리관은 이에 대해 “액수는 노코멘트지만 개인적으로 그 친구를 돕기 위해 돈을 주기는 했다.”면서 “그러나 장 비서관이나 민정수석실로부터 돈을 받지는 않았다.”고 밝혔다. 장 비서관도 “장 전 주무관과는 일면식도 없다.”며 5000만원 제공설을 강하게 부인했다. 한편 장 전 주무관은 또 “최종석 전 청와대 행정관 지시로 2010년 8월 30일 이후 고용노동부 간부로부터 4000만원을 받아 자신의 변호사비로 1500만원을 사용하고, 나머지 돈은 최 전 행정관에게 전달했다.”고 주장했다. 현재 워싱턴의 한국대사관 주재관으로 근무 중인 최 전 행정관은 지난 5일 이후 사실상 잠적한 상태이다. 이 사건을 수사 중인 서울중앙지검 특별수사팀(팀장 박윤해)은 장 전 주무관을 20일 오전 10시 소환, 그가 폭로한 내용 등을 포함해 그동안 제기된 의혹을 모두 조사할 계획이다. 송찬엽 서울중앙지검 1차장검사는 “조사할 내용이 많아 몇 차례 더 소환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승훈기자·워싱턴 김상연특파원 hunnam@seoul.co.kr
  • 장석명 “일면식 없다… 5억이 어디있나”…류충렬 “개인적인 돈… 靑자금 아니다”

    장진수 전 국무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 주무관이 자신에게 5000만원을 전달했다고 지목한 장석명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은 19일 “전혀 사실무근”이라며 관련 사실을 일체 부인했다. 장 비서관은 장 전 주무관이 “지난해 4월 류충렬 당시 총리실 공직복무관리관(현 국가경쟁력강화위원회 민관합동규제개혁추진단장)을 통해 장 비서관이 자신에게 5000만원을 전달했다.”고 한 데 대해 “장진수씨와는 일면식도 없으며, 전화 통화도 한번 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 장 비서관은 이어 일부 언론에 실제 장 전 주무관에게 돈을 전달한 것으로 보도된 A씨에 대해서는 “아마 총리실에 있었던 류충렬 단장 같다.”면서 “류 단장은 당시 총리실 공직복무관리관이라 업무적으로 관계가 있어 자주 만났으며, 보도가 난 뒤 내용을 물어봤더니 ‘같은 총리실 직원인데 장진수씨가 불쌍해서 자주 만나 이런저런 얘기를 많이 해줬다’고 하더라.”고 말했다. 장 전 주무관에게 5억~10억원을 주겠다고 제안하고, 실제로 5000만원을 줬는지에 대해서는 “말도 안 되는 소리로, 평생 공무원으로 일한 사람이 5억, 10억원이 어디 있느냐.”고 부인했다. 류충렬 전 총리실 공직복무관리관은 그러나 장 전 주무관을 만나 돈을 준 사실은 인정하면서도, 돈의 출처와 액수를 밝히기는 거부했다. 그는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장진수씨에게 전달해 준) 돈은 장 비서관과는 관련이 없으며, 그는 장 전 주무관을 직접 만나 본 적도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개인적으로 돈을 주긴 했지만, 액수는 노코멘트이며 청와대나 민정수석실에서 받은 것은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그는 “장 전 주무관과 최종석 전 청와대 행정관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우리가 알 바 아니며 같은 총리실 동료로서 그 친구(장진수)를 도와주려고 했을 뿐”이라고 말했다. 이어 경북도 공무원으로 취직시켜 주고, 벌금형으로 해 주겠다고 회유했다는 장 전 주무관의 주장에 대해서는 “일주일에 1~2번 만날 정도로 친한 사이였으며, 내가 호기를 부리려고 술자리에서 한 얘기가 아닌가 싶지만 무슨 말을 했는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김성수기자 sskim@seoul.co.kr
  • ‘나경원 비방사건’ 1심 판사 “청탁받은 적 없다”

    새누리당 나경원 전 의원의 남편 김재호 서울동부지법 부장판사의 ‘기소청탁’ 의혹 수사가 이번 주 분수령을 맞는다. 이 사건을 수사중인 서울지방경찰청이 김 판사를 15일 소환, 조사키로 한 데다 필요할 경우 기소청탁을 받았다는 박은정 인천지검 부천지청 검사와 박 검사 후임으로 사건을 처리한 최영운 대구지검 김천지청 부장검사 간의 3자 대질도 배제하지 않는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박 검사의 서면진술서 공개로 김 판사의 청탁 전화는 일단 사실일 가능성이 높아졌다. 박 검사는 김 판사가 전화를 걸어와 “기소만 해주면 내가 여기서….”라고 말했고, 이런 사실을 후임인 최 검사에게도 알렸다고 밝혔다. 하지만 진술의 특성상 당사자들이 기억과 감정, 유불리에 따라 부인한다면 이를 확인할 방법이 없다는 점이 경찰로서는 가장 큰 애로가 될 수밖에 없다. 김 판사와 최 검사는 이미 한 차례 부인한 바 있다. 박 검사 진술대로라면 김 판사가 검찰 기소후 담당 판사를 통해 판결에 영향을 미쳤을 수 있다는 추정도 가능하지만 나 전 의원 비방 네티즌 고발사건의 1심을 담당했던 판사는 이런 정황을 전면 부인했다. 당시 1심을 담당했던 김정중 대법원 재판연구관은 11일 “김 판사로부터 청탁을 받은 적이 없고, 해당 사건을 맡고 나서 연락한 적도 없다.”고 밝혔다. 그는 또 “또 검찰로부터 김 판사와 관련된 이야기를 들은 사실도 없다.”면서 “판결문에 나와 있는 것이 판단 기준의 전부였다.”고 덧붙였다. 그는 2006년 5월 17일 나 전 의원을 비방한 김모씨에게 벌금 700만원을 선고하는 것으로 재판을 마무리 지었다. 대법원도 김 판사와 김 연구관이 “일면식도 없다.”고 거들었다. 대법원 관계자는 “인사 심의관실 확인 결과 김 연구관은 2006년 2월 20일 서울서부지방법원에 부임했고, 김 부장은 같은 날 해외연수가 시작됐다.”면서 “두 사람은 대학 시절은 물론 임관 이후에도 전혀 아는 사이가 아니라고 한다.”고 말했다. 결국 현재로써는 기소청탁에 직접 연루된 사람들 가운데 박 검사를 제외하면 기소 청탁이 있었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없는 셈이다. 기소청탁 의혹이 처음 불거진 것은 지난해 10월이다. 당시 시사인 주진우 기자가 “나 전 의원의 남편인 김재호 판사가 지난 2006년 나 의원을 비방한 네티즌을 기소하려고 담당 검사에게 청탁전화를 했다.”고 주장하면서다. 나 전 의원은 주 기자를 고발했고 경찰은 수사에 착수했다. 나 전 의원 측은 “기소 청탁 사실이 없었고, 총선용 음해와 선동일 뿐”이라고 맞섰다. 사건을 담당했던 검사와 판사 모두가 기소청탁이 없었다고 밝히고 있는 상황에서 경찰 수사를 통해 어떻게 결론이 날지 주목된다. 김동현기자 moses@seoul.co.kr
  • [시론] 꽃과 정치/김대우 시사평론가

    [시론] 꽃과 정치/김대우 시사평론가

    당당하게 선 화환들에 달린 이름표. 이를 보며 흐뭇해하는 표정들은 예식장 앞이나 출마 후보자의 선거사무실 개소식이나 다를 바 없다. 어전에서 머리 조아린 중신들처럼 서열 따라 세우는 줄. 그 순서가 제대로 되었는지 확인하는 것이 곧 한국 정치다. 주인도, 객도 후일을 위해서 대리 참석한 화환의 직책과 성명을 꼭 입력해 둘 필요가 있다. 당사자는 모르는데 제 돈으로 주문해 앞줄로 모신 실세의 화환이 있는가 하면, 이름 띠를 일일이 풀어서 별실에다 전시해 두는 정성도 보인다. 그런 사람들로부터 인정받고 있다는 뿌듯함으로 중독된 정치. 그것도 부족해서 주머니에 꽂아주는 꽃 한 송이. 알량한 그 꽃이 곧 귀하신 신분의 비표(秘標)다. 단상의 정치인들 가슴에 꽃이 안 보이면 그는 그 행사장에 굳이 가지 않았어도 될 존재였다. 박수와 꽃다발에 유독 약한 군상들. 호명 순서가 밀리면 무시당했다고 생각하기에 사회자는 긴장되고 행사는 지루하다. 한정된 시간만 개화하고 어김없이 고개 숙이는 꽃. 뻣뻣한 목에 힘이 빠질 때쯤 퇴장해야 하는 정치판. 계절 따라 꽃이 지듯이 세월 따라 명성도 지나니. 그렇게 꽃과 정치인은 지는 사이클이 같다. ‘살아서 돌아오라’고 주는 출정 길의 꽃다발과 생환을 축하한다고 가슴에 안기는 결전 후의 꽃다발. 조상의 이름과 선산을 팔고, 학력과 경력을 세탁하여 가족을 거리로 내몰고 치른 승전식의 인증 샷, 그 필수 액세서리의 대미가 바로 중앙당 현황판의 ‘당선 확정’ 꽃 한 송이다. 선거는 입문에서 퇴장까지 꽃으로 시작하고 꽃으로 끝나는 셈이다. 알고 보면 꽃이나 정치나 다 바람이 키운 산물로, 꽃이 영원히 사랑받는 것은 긴 시간 숨었다가 잠시 얼굴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어느 날 한 줄기 바람에 흩날리며 사라지는 꽃의 일생이 무상한 정치 인생과 닮았다. 늘 피어 있는 꽃이 눈길을 끌 수 없듯이 정치도 일상이 되면 관객들이 외면하는 지친 굿판이나 다름없다. 웅크림이 오랠수록 도약은 높고 침묵은 웅변보다 강하고 잠적이 노출보다 심각한 뉴스감인데, 정작 그걸 제대로 알고 활용하는 정치인은 드물다. 소수가 선택되고 다수가 물갈이되며 받는 상처. 검증받으면서 덧나는 숨기고 싶었던 흔적들. 이 모든 것들이 한바탕 바람으로 딱지가 되어 아무는 날까지 생소한 애송이와 노회한 원로들이 벌일 숙명의 땅따먹기. 다들 정치에 발목 잡힌 인연으로 인해 서로 상처를 주고받는 영혼들이다. 한 정당의 환골탈태 과정은 결국 오래 기여해 왔던 낯익은 동지들에 대한 구조조정이니 무대를 내려오면서 어찌 회한과 상처가 없으랴.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는 도종환의 시처럼 흔들리지 않고 하는 정치는 처음부터 불가능하다. 몸을 담은 배가 흔들리기 시작하면 기세등등하게 앞자리에 진열됐던 간판 상품도 어느 순간 재고로 전락하여 뱃전으로 추락한다. 그나마 온전하게 성명을 보전하고 스스로 물러나는 것도 영광이다. 포토라인에서 ‘기억에 없다’거나 ‘할 말이 없다’로 마무리되는 실세정치의 공식. 언제나 ‘어느 선까지 불 것인가’란 문제만 남는다. “오늘 이후 나는 당신을 알지 못한다. 우린 일면식도 없는 사이다. 그러니 당신도 나를 모른 체하라.”는 비정의 정치. 공천이 칼자루였던 구시대는 가고 그걸 쇄신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는 당위성이 점점 고조되고 있다. 이만큼 진행되는 변화도 실은 놀라운데 더 큰 개혁을 요구하는 여론에 눈치 보며 끌려가야 하는 수동의 정치. 그래서 권력은 시장에 넘어간 지 오래다. 보고 싶은 사람들이 많아졌다고 강제로 꽃을 피우려 든다면 결국엔…. 갈수록 여의도는 뜨거워지고 상처받은 영혼은 늘어날 것이다. 불판처럼 달아 오르다가 이내 식을 그 혼돈의 현장으로 불나방처럼 뛰어드는 용감한 신인들. 상처받지 않고 정치하겠다는 것은 가랑이 젖지 않고 맨발로 강을 건너겠다는 것. 시인 엘리엇이 말한 ‘가장 잔인한 달 4월’은 이미 강 건너 언덕에서 기다리고 있다.
  • 김효재靑수석 사의…檢, 내주 소환

    김효재靑수석 사의…檢, 내주 소환

    한나라당(현 새누리당) 전당대회 돈 봉투 살포 사건에 연루된 것으로 알려진 김효재 청와대 정무수석이 10일 사의를 밝혔다. 박정하 청와대 대변인은 이날 “하금열 대통령실장이 중동 순방 중인 이명박 대통령께 정무수석의 사의 표명 사실과 관련 상황에 대해 보고를 드렸다.”고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에 아무 말도, 아무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고 박 대변인은 전했다. 하 실장은 김 수석의 사의와 관련, “정무수석 입장에서는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어 보인다. 수용할 수밖에 없지 않으냐.”라고 말했다. 김 수석은 박 대변인을 통해 “국민들께 심려를 끼쳐드려 죄송하다. 모든 정치적 책임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김 수석은 지난달 고승덕 새누리당 의원이 돈 봉투 의혹을 제기하자 “고 의원과는 일면식도 없다.”며 관련 의혹을 강하게 부인해 왔던 터다. 서울중앙지검 공안1부(부장 이상호)는 김 수석을 늦어도 다음 주 후반 소환, 돈 봉투 살포 대상자와 자금 사용처 및 출처 등을 조사할 방침이다. 또 조정만(51) 국회의장 정책수석비서관에 대해 사전구속영장을 청구하기로 했다. 검찰은 박 전 국회의장이 라미드그룹에서 받은 변호사 수임료가 당초 알려진 1억원보다 많은 2억원이라는 진술을 확보, 자금 출처를 파악하는 데 수사력을 모으고 있다. 검찰은 또 라미드그룹 임원에 대한 조사에서 2008년 2월 박 전 의장 측에 행정소송 수임료로 지급한 돈이 2억원이란 진술을 확보하고, 회계장부를 통해 확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조 비서관이 라미드그룹에서 받은 수표 10장 가운데 4장을 전당대회 직전인 6월 25일에서 27일 사이에 현금으로 바꾼 사실도 밝혀냈다. 최재헌·황비웅기자 goseoul@seoul.co.kr
  • [사설] 박희태·김효재 檢에 나가 속시원히 진실 밝혀라

    박희태 국회의장이 어제 의장직을 사퇴함으로써 2008년 한나라당(현 새누리당) 전당대회 돈 봉투 살포 사건에 대한 검찰 수사가 정점으로 치닫게 됐다. 박 의장은 자신의 전 비서 고명진씨가 지금까지의 태도를 바꿔 검찰에서 진술을 번복하자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의장직을 그만뒀다. 고승덕 의원이 사건을 폭로한 지 36일 만으로, 비리로 물러난 첫 국회 수장이라는 불명예까지 안게 됐다. 또 다른 핵심인물인 김효재 청와대 정무수석도 이제 적절한 처신을 해야 할 것이다. 이 사건과 관련한 박 의장과 김 수석의 처신은 지극히 실망스러웠다. 두 사람은 돈 봉투 살포와 관련된 진술과 정황증거가 나왔음에도 시종일관 ‘모르쇠’로 일관했다. 박 의장은 검찰수사가 시작됐는데도 외교를 한다며 외국방문을 강행했고, 제기된 의혹에 대해서는 부인으로 일관했다. 그러나 박 의장도 고씨가 “사건을 은폐하라는 윗선의 지시가 있었고, 고승덕 의원으로부터 돈을 돌려받자 김효재 의원이 역정을 냈다.”며 사실을 털어놓자 두 손을 들고 말았다. 검찰도 전대에 즈음해 박 의장 측이 수표를 4000만원의 현금으로 바꾼 물증을 제시하며 압박했다. 19대 총선 불출마 선언까지 하며 퇴로를 모색해 오던 노 정치인의 추한 말로다. 전대 상황실장인 김 수석도 처음부터 거짓말로 일관해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렸다. 김 수석은 고 의원이 돈 봉투 반환 후 김 수석이 전화했다고 하자 고 의원과 말 한마디 나눈 적도, 눈길 한번 마주친 적도 없었다고 했다. 돈 봉투를 돌린 은평구 의원들이 김 실장의 책상 위에 놓여 있는 돈 봉투를 집어왔다고 하자 일면식도 없다거나 자금책이 아니었다고 부인했다. 이제 증거와 물증이 제시되면 김 수석은 또 뭐라고 변명할 것인가. 박 의장은 사퇴하면서 “모든 것을 짊어지고 가겠으며, 모든 걸 제 책임으로 돌려 달라.”고 했다. 그러나 이번 사건은 그냥 묻힐 수 없는 사안인 만큼 박 의장은 검찰 수사에 성실히 응해야 한다. 진상규명에 적극 협조해 돈 봉투가 횡행하는 후진적 정치문화가 종식되는 데 밑거름이 돼야 할 것이다. 김 수석 역시 수사에 적극 협조해야 한다. 검찰에 나가 국민이 궁금해하는 사건의 실체를 속시원히 밝히기를 바란다. 검찰도 실체적 진실을 규명하는 데 더 이상 머뭇거려서는 안 된다.
  • [박희태 의장 사퇴] “김효재도 즉각 사퇴” 野 파상공세

    민주통합당 등 야권이 박희태 국회의장의 퇴진을 계기로 검찰의 수사행태에 대한 파상 공세에 나섰다. 돈 봉투가 뿌려진 2008년 한나라당 전당대회 경선 당시 박 의장의 캠프 상황실장이었던 김효재 청와대 정무수석의 즉각 사퇴도 촉구했다. 한명숙 민주당 대표는 9일 고위정책회의에서 “야당에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노무현 전 대통령 등)을 죽음으로 내몰던 검찰이 (여당의)낡은 정치를 파헤치는 데는 모르쇠, 굼벵이 같다.”면서 “검찰이 밝혀 내지 못한다면 민주당이 특검을 통해서라도 이명박 정권 비자금 게이트의 진상을 낱낱이 밝혀 낼 것”이라고 비판했다. 박영선 최고위원은 “박 의장의 사퇴는 너무 늦었다.”면서 “비겁한 정치 검찰의 가면을 이제는 벗어 던질 때가 됐다.”고 성토했다. 민주당은 언론에 대한 서운함도 감추지 않았다. 한 대표는 “검찰과 축소보도하는 언론, 권력의 3박자가 앞으로 우리나라를 어디로 끌고 갈 지 알 수가 없다.”면서 “권력이 검찰을 눌러서 모든 걸 덮고 있다.”고 말했다. 한 대표는 이명박 정부 들어 두 건의 재판을 받았으며 정치자금법 위반 사건 1심, 뇌물 사건 1·2심에서 모두 무죄를 선고받았다. 한 대표는 이날 당 대표실을 예방한 하금열 대통령실장에게 “김 정무수석이 고승덕 의원과 일면식도 없다는 말을 했는데, 어떻게 보면 범법자이고 공직을 수행하기에 부적격자가 아닌가 생각한다.”고 사퇴를 촉구했다. 김 정무수석은 지난달 17일 한 대표를 예방한 자리에서 검찰조사로 힘들겠다는 한 대표의 말에 “특별한 역할이 없어 힘들 게 없다.”고 말하기도 했다. 박 최고위원은 “청와대와 국민을 연결하는 썩은 동아줄 김효재 수석도 물러나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통합진보당도 가세했다. 심상정 공동대표는 대표단회의에서 “돈 봉투 사건은 대통령 자신과 가신들, 정권과 새누리당 자체의 문제로 대통령이 책임 있게 문제를 밝혀야 한다.“고 말했다. 강주리기자 jurik@seoul.co.kr
  • [박희태 의장 사퇴] 부인·변명 일관… 36일만에 “모두 내 책임”

    [박희태 의장 사퇴] 부인·변명 일관… 36일만에 “모두 내 책임”

    박희태 국회의장이 9일 전격 사퇴한 데는 ‘돈 봉투 돌리기’보다 ‘거짓말 돌리기’가 더 크게 작용했다. 한 달 넘게 해명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지만, 스스로 기회를 외면했다. 박 의장의 거짓말은 그의 24년 정치 인생을 불명예로 막을 내리게 하는 단초가 됐다. 사건의 발단은 고승덕 새누리당(옛 한나라당) 의원의 입에서 비롯됐다. 고 의원은 지난달 4일 “18대 국회 들어 열린 전당대회에서 당 대표 후보 중 한 명으로부터 300만원이 든 봉투를 받았으나 곧바로 돌려줬다.”고 폭로했다. 2008년 전당대회를 통해 당 대표에 오른 박 의장에게도 의혹의 눈길이 쏠렸다. 그러나 박 의장은 고 의원의 폭로가 있은 직후 “모르는 일”이라고 잡아뗐다. 박 의장은 또 고 의원이 돈 봉투에 당 대표 후보의 명함이 들어 있었다고 언급한 사실에 대해 “나는 그때 평당원이었기 때문에 명함도 들고 다니지 않았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이는 금방 거짓으로 탄로났다. 고 의원은 지난달 8일 검찰에서 “봉투 안에 ‘박희태’라고 적힌 명함이 들어 있었다.”고 진술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박 의장은 연루 의혹에 대해 부인으로 일관했다. 해외순방을 위해 지난달 8일 출국한 박 의장은 해외 현지에서도 “혹시 보좌관 등 누가 했나 싶어 알아봤는데 아무도 돈을 준 사람도 없고, 돌려받은 사람도 없다더라.”, “(당시) 국회의원이 아니었기 때문에 비서관이 없었다.”는 입장만 되풀이했다. 이어 열흘간의 해외순방을 마치고 귀국한 지난달 18일에도 돈 봉투 살포 의혹에 대해 재차 “모르는 일”이라고 선을 그었다. 대신 “4월 총선에서 불출마하겠다.”고만 선언했다. 2008년 전당대회 때 박 의장의 선거상황실장을 지낸 김효재 청와대 정무수석도 “고 의원과 일면식도 없다.”, “돈 문제는 일절 모른다.”며 발을 뺐다. 그러나 박 의장의 전 비서인 고명진씨가 당시 돈 봉투 사건의 구체적인 정황에 대해 검찰에 진술하면서 박 의장과 김 정무수석 등의 ‘조직적 은폐’의 일단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박 의장은 임기를 불과 3개월여 앞두고 ‘중도 하차’의 길로 내몰리고 말았다. 1993년 4월 재산 파동에 휩싸인 박준규 국회의장이 의장직을 사퇴한 이후 19년 만에 이뤄진 입법부 수장의 불명예 퇴진이다. 앞서 박 의장은 2008년 18대 국회 들어 천당과 지옥을 오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검사장 출신으로 1988년 제13대 총선에서 민정당 소속 지역구 의원으로 정계에 입문한 박 의장은 17대까지 경남 남해·하동에서 내리 5선을 했다. 민정당 때부터 한나라당에 이르기까지 원내총무와 부총재, 최고위원 등 주요 당직을 두루 섭렵했다. 2007년 대선 때는 이명박 후보 측의 ‘6인 회의’ 멤버로 정권의 핵심으로 부상했고 18대 총선 공천에서 탈락했지만 2008년 당 대표에 오른 데 이어 2009년 10·28 경남 양산 재·보선에서 당선되는 저력을 과시하기도 했다. 2010년 18대 국회 후반기 국회의장직에 오르며 정치 인생의 정점에 섰으나 결국 돈 봉투 사건으로 인해 명예퇴진의 꿈은 물거품이 됐다. 박 의장 사퇴에 이어 김 정무수석도 검찰 소환을 앞두고 거취를 결정해야 할 상황에 놓였다. 김 정무수석은 이날 외부와의 연락을 끊었다. 청와대 관계자는 “중동 순방 중인 이 대통령에게 박 의장 사퇴 사실이 즉각 보고됐다.”고 전하고 김 정무수석의 거취에 대해서는 “아직 사퇴할 단계는 아닌 것으로 안다.”고 덧붙였다. 장세훈기자 shjang@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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