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포럼] 재계 정치활동 문제없나
전경련 등 5개 경제단체들이 정치활동을 선언하고 나서 정치판에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청와대가 신중을 당부하고 여야도 신경을 쓴다.이유는 간단하다.무엇보다 경제단체들이 시민단체나 노조와 달리 풍부한 돈이라는 ‘실질적인 힘’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재계에 의해 ‘찍힌’정치인이 자금 배분에서 소외되는 불이익을 당할 게 뻔한데다 혼탁한 금권정치의 폐해도 우려되는것이다.
오는 14일 ‘의정평가위원회’를 구성,정치인의 점수를 매기겠다는 경제단체들은 재계를 총망라하고 있다.전국경제인연합회,대한상공회의소,무역협회,중소기업중앙회와 한국경영자총협회 등이 그것이다.이 위원회는 국회의원의성향,의정활동 내역,국회 출석현황,국회 발언과 보좌관들의 역량 등을 구체적으로 조사한 보고서를 기업인들에게 전달할 것으로 알려졌다.말이 비공개이지 285만여명에 이르는 전국의 모든 기업인들에게 이 보고서가 건네져 사실상 ‘공개’되는 셈이다.
재계는 정치활동 배경에 대해 “국회의원들이 노조의 눈치를 보는 문제점을개선하고 노조의 정치활동 개시에 대응하는 것”이라며 “노동관계법을 중심으로 의정활동을 평가할 것”이라고 말했다.한마디로 ‘노조가 하니 우리도 가만있을 수 없다’는 단순한 계산인 듯하다.
이런 저런 단체들이 모두 정치판에 나서는 마당에 재계만 ‘가만 있으라’고 하기에는 형평성에 문제가 있을 수 있다.그렇다고 해도 재계가 노조에 일대일로 대응하는 것이 과연 옳은 인식인가는 짚어볼 필요가 있다.현재 노조가 ‘약자’인지는 논란 대상이지만 ‘약해지는 존재’란 점은 이론의 여지가 없을 듯하다.
우리나라 근로자들의 노조가입률은 지난 89년 최고치인 19.8%에서 95년 13.
8%,97년 12.2%로 10년도 채 안돼 3분2수준 밑으로 떨어졌다.98년에는 12.6%로 전년도보다 다소 높아지긴 했으나 감원으로 총 근로자가 줄어든 데 따른일시적인 현상으로 노동부는 분석하고 있다.
다시말해 근로자 100명 중 절대다수인 87.4명은 비(非)노조원이며 절반이상의 근로자(52.9%)는 임시직과 일용직으로 노조 영향력은 그 어느때보다 약하다.미국 14.1%나 일본 22.4% 보다 낮은 노조가입률이 앞으로 시장경제를 추진하는 경제여건에서 더욱 떨어지면 떨어졌지 높아지기는 힘들 것으로 보인다.
기업들이 법 테두리내에서 정리해고제와 파견근로제 등으로 탄력적으로 인력을 조절하는 현 상황이 노조의 실력행사와 정치활동으로 후퇴할 가능성은희박하다.노조전임자 임금 지급 허용 문제가 쟁점이 되고 있지만 재계의 정치활동을 합리화하는 근거로는 약하다.
따라서 재계가 노조에 맞서 정치활동을 개시하겠다는 이유는 설득력이 부족해 보이며 ‘과잉대응’으로까지 비쳐진다.자칫 대(對)정부와 국회 로비에만족하지 못한 경제단체들이 새로운 정경유착을 꾀하는 것이 아닌지 의구심도 든다.자본주의 역사를 보면 ‘사적인 권력’인 기업들이 힘을 너무 행사할 경우 지나친 이데올로기 편향을 보이는 데다 정치위기를 촉발한 폐해도적지 않아 우려감마저 들게 한다.
그렇지 않아도 우리나라는 경제단체의 난립과 중복활동이 문제되어왔다.기계협회와 자동차협회 등 기능별 또는 산업별 단체가 있는 상태에서 재벌총수의 친목단체인 전경련과,전국조직인 상공회의소,무역협회,중소기업중앙회에다 노조전담단체인 경총까지 생겨났다.개별기업은 10개 안팎의 각종 단체에가입해 연간 수십억원의 과중한 회비를 부담하고 있는 실정이다.
지난해 일본의 경제단체연합회(經團連)등 4대 경제단체들은 통합을 검토한것으로 알려지고 있다.우리 경제단체들도 대외 정치활동보다는 단체간 통합이나 방만한 조직의 정리를 먼저 생각하는 것이 바른 길이 아닌가 싶다.
이상일 논설위원 bruc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