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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동북아에도 「신데탕트 바람」분다/한ㆍ소 정상회담의 파장

    ◎모스크바­북경­평양은 어떻게 보나/북한에 개혁압력 부수효과 기대 모스크바/신중한 반응속 새 기류 관망자세 북경/대소 의존 고려,대항조치 없을 듯 평양 오는 4일 하오 4시(한국시간 5일 상오 8시)샌프란시스코에서 개최되는 사상 최초의 한소정상회담이 냉전후의 세계재편을 가속화 시키리라는 것은 틀림없다. 아직 국교조차 없는 한소양국의 정상이 이처럼 전격회담을 갖는 것은 냉전후 재편성되는 국제정세의 급전개를 의미하는 것이며 이것은 또한 필연적으로 아시아 태평양의 장래에 새로운 개혁의 물결을 초래하리라는 예상을 어렵지 않게 한다. 노태우­고르바초프 회담은 동북아시아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 일본의 언론과 외교소식통들이 분석한 동북아시아 관련국가의 표정을 정리해본다. ▷모스크바◁ 한소 정상회담에 관해 고르바초프 소련대통령을 수행하고 있는 소련의 한 관계자는 31일 워싱턴에서 『이것은 외교관계 수립을 위한 비약적인 발전』이라고 말하고 국교정상화를 중심으로 경제협력 등을 포함한 광범위한 협의가 이루어질 것이라고 밝혔다. 또 이번 회담에 관해 『소련과 북한간의 사전협의는 없었다고 생각한다』고 주목할만한 발언을 했다. 이 관계자는 한소 정상회담이 소련과 북한과의 관계에 미칠 영향에 대해서는 논평을 회피했으나 소련측에는 한국과의 관계정상화를 일방적으로 진척시킴으로써 북한에 개혁을 촉구하려는 목적이 있는 것이라고 관계자들은 분석하고 있다. 이 소식통은 또 『이니셔티브는 한국측에 귀속한다』고 밝혀 이번 정상회담이 한국측의 적극외교에 의해 성사된 것임을 분명히 했다. 한편 아사히(조일)신문은 1일자 모스크바 특파원발신 기사에서 『한소정상회담이 갑자기 실현되는 배경에는 양국의 국교정상화를 이룩함으로써 한반도정세의 교착상태를 타개하고 경제적으로 눈부신 발전을 거듭하고 있는 아시아ㆍ태평양지역에의 외교공세를 본격화 하겠다는 소련측의 의지가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보여진다』고 전했다. 또 소련이 지금까지 대한 관계개선에 신중한 방식을 취해왔다는 사실을 생각할때 이번 일거에 수뇌회담으로 비약한 것은 그동안 「장애」가되어온 북한의 대응에 하나의 단호한 결단을 내렸기 때문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동시에 유럽을 무대로 진행되고 있는 서방측과의 협력관계에 있어서 대공산권 수출통제위원회의 규제완화문제등 생각대로 본격화 되지 않고 있는 현재의 상황타개를 노린 측면도 있다고 지적했다. 소련의 한반도문제 전문가들도 미소 수뇌회담에 맞춰 노태우­고르바초프회담이 이루어지리라는 것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것으로 『소련에 있어서는 아시아에 대한 외교정책의 흐름의 일환이다. 중국과의 관계도 개선되었기 때문에 「다음은 한국」이 라는 논리이다』라고 받아들이는 것이 일반적이다. 고르바초프 정권의 대아시아정책은 86년 7월 아시아의 안전보장체제 확립을 호소한 블라디보스토크 연설에서 시작됐으며,88년 9월에는 크라스노야르스크에서 행한 연설에서 직접적으로 대한관계에 언급,한소접근의 흐름이 본격화 했다. 그를 위해서는 남북분단ㆍ대립이 계속되는 한반도의 긴장완화가 불가결하며 대공산권과의 교류를 확대하는 북방정책을 표방한 노대통령과생각의 일치를 보았다고 아사히신문은 지적했다. 모스크바의 동양학연구소 한반도문제 전문가나 프라우다지의 저명한 정치평론가도 노­고르바초프 회담소식에 『전혀 들은 바 없다,정말인가』라고 되물었으며 외무성 정보국도 묵묵부답이었다고 전했다. 그만큼 이번 회담은 전격적이며 고도의 「정치적」인 것이었다고 이 신문은 말했다. ▷북경◁ 한소 정상회담에 관해 중국측은 일응 「무관심」을 가장하고 있다. 31일 이 문제에 관해 논평을 요청받은 중국 외무부대변인은 『그것은 그들 양쪽(한국과 소련)의 일이다』라고만 답변,중국과는 관계가 없다는 태도를 보였다. 중국공산당의 강택민총서기도 이날 일본 창가학회 이케다(지전) 명예회장과의 회담에서 한소 정상회담의 평가에 대해 『중국은 남한과 경제ㆍ무역을 중심으로 민간 왕래를 계속하고 있다. 한소 정상회담은 미묘한 문제이나 우리는 북한과의 관계에 유의하고 있다. 역사적인 관계가 있고 통일이 중요하다. 남북통일을 바란다』며 직접적인 논평을 피하고 중국의 원칙적 입장을 밝히는 데 그쳤다. 그러나 중국이 내심으로는 한소접근에 비상한 관심을 갖고 있는 것은 틀림없다고 일본언론들은 분석한다. 정경분리라는 명목하에 실질적으로는 한국과 중국의 경제적 파이프는 굵어지기만 한다. 그러나 소련처럼 한국을 정치적으로 인정할 수 없는 것이 중국의 약점이다. 북한과 국경을 접하고 있다는 외에 지난해 천안문사건이후 국제적으로 고립돼버린 중국에 있어서 북한은 일당독재를 견지하는 극소수의 맹우이다. 한국을 인정하는 쪽이 경제적으로는 유리하다는 것은 알면서도 외교ㆍ국방ㆍ이데올로기의 관점에서 볼때 그것이 불가능한 것이 중국의 현실이다. 그렇다고는 하더라도 중국의 일반대중이 북한을 보는 눈은 따뜻하지 않다. 중소논쟁이 벌어지면 북한은 중국편에서 서지 않고 『배반했다』라고 대중은 보고 있다. 게다가 공식적으로는 말하지 않고 있으나 북한정권의 「세습」을 강력히 비판한다. 중국국민의 기분은 북한보다는 남한쪽에 기울어 있다. 소련의 한국접근이 어디까지 이루어질 것인가. 그 결과 북한이 어떤 반응을 보일 것인가.중국지도부는 그것을 신중히 지켜보고 있다. 그 결과에 따라 중국의 앞으로의 한반도정책에 영향이 나올 것이라고 일본에서는 보고 있다. ▷평양◁ 한소 정상회담의 실현은 한국외교의 승리이며,북한에 있어서는 믿었던 한쪽 기둥이 완전히 붕괴되는 것을 의미한다고 일본언론들은 지적한다. 요미우리(독매)신문은 『북한이 소련으로부터 경제적ㆍ군사적 원조를 받고 있는 이상 소ㆍ북한관계를 결정적으로 악화시키는 대항조치를 취하지는 못할 것』이라고 말한다. 앞으로 북한은 중국에 더 한층 기울어져 소련을 견제함과 동시에 대미ㆍ대일정책에서는 점차 융화적인 자세를 보이며 한국에 대해서는 남북대화에 관한 제안공세 등으로 쫓기고 있는 국면의 타개를 꾀할 것이라고 일본에서는 전망하고 있다.
  • 소 급진개혁파 목소리 더 커질듯/옐친 러시아공 대통령당선의 여파

    ◎고르비체제 도전… 보수파와 마찰 불가피/“주권확대” 강력요구땐 「연방」재편 가속화 급진개혁파의 대표격인 보리스 옐친이 러시아공화국 최고회의의장에 선출됨으로써 집권 5년째를 맞은 고르바초프체제는 「개혁세력으로부터의 도전」이라는 어려운 상황을 맞게 되었다. 옐친은 지금까지 일관되게 현고르바초프정권의 개혁의지가 미흡하다며 더 과감한 개혁을 요구해 왔다. 그런 그가 소연방 전체 인구의 50%이상을 차지하는 러시아공화국의 수반에 오름으로써 정치 경제 등 여러 면에서 앞으로 그의 목소리는 상당한 파장을 불러일으킬 것이 분명하다. 관심의 핵으로 등장하고 있는 것은 무엇보다 러시아공화국의 주권확대문제이다. 최고회의의장 선거운동기간중 옐친은 연방당국과 러시아공화국간의 관계재정립을 요구,러시아공화국헌법이 연방헌법에 우선돼야 한다고 역설했다. 러시아공화국은 소련영토의 4분의 3,에너지전체생산의 80%를 차지하는 소련최대 공화국으로 앞으로 본격적인 주권확대요구가 이곳에서 제기될 경우 여타 공화국에도 연쇄파급효과를 미쳐 소연방의 재편을 가속화시킬 가능성이 크다. 옐친은 지난 24일 크렘린당국이 고심끝에 내놓은 시장경제체제로의 전환을 위한 경제개혁안에 대해서도 개혁 조치의 미흡을 이유로 반대입장을 밝히고 있다. 옐친은 단계적인 시장화가 아니라 일반기업에 더많은 자율권을 부여하는 급진적인 시장개혁을 즉각 실시하자는 입장이다. 이번의 경제개혁안 발표직후 물가폭등을 우려한 시민들의 사재기소동으로 벌써부터 혼란을 겪고 있는 상황에서 크렘린당국이 과연 옐친식의 급진개혁요구를 어떻게 수용할지 관심거리이다. 정치개혁분야에서도 옐친은 공산당의 지배와 사회 각분야에 뿌리깊게 자리하고 있는 관료세력들의 제거를 강력히 주장하고 있어 잔여 보수세력들과의 마찰이 불가피할 것 같다. 이번 최고회의의장선출과정서도 드러났듯이 이런식의 개혁요구가 수구세력들의 단결을 초래,자칫 군부ㆍ관료ㆍ당조직의 「수구대연합」 대 급진개혁세력간의 대결상태를 가져올 가능성도 있다. 옐친은 공산당의 일당지배체제를 실질적으로 종식시키기 위해 본격적인 다당제의 실시를 요구하고 있다. 지난해 7월 인민대회대의원 3백여명으로 구성된 「지역간 그룹」은 현재 옐친의 주도아래 정당으로 출범할 준비태세를 갖추고 있다. 옐친의 정치일선 복귀로 이 「지역간 그룹」의 정당출범시기 또한 앞당겨질 공산이 크다. 소련의 핵심현안인 민족문제에 대해서도 옐친은 크렘린당국과 입장을 달리하고 있다. 크렘린은 리투아니아공화국등 발트해 3개 공화국의 연방탈퇴요구에 절대 불가입장을 고수하는데 반해 옐친을 중심으로 하는 세력들은 이들의 독립을 궁극적으로는 허용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각 공화국주민들이 진정한 자유를 누리지 못하는 한 전체 소련국민들 또한 자유롭지 못하다는 논리이다. 따라서 그의 존재는 여타 공화국의 분리독립운동에 새로운 힘을 더해줄 가능성이 있다. 물론 옐친 자신은 부인하고 있지만 러시아공화국의 주권확대요구가 연방탈퇴 수준으로 발전될 가능성 또한 배제키 어렵다. 고르바초프는 옐친 등이 요구하는 러시아공화국 주권확대가 연방와해를 초래할 위험이 있다는 점을 벌써부터 경고하고 있다. 옐친의 러시아공화국 대통령당선으로 고르바초프는 그동안 추진해온 개혁의 의지자체에 도덕적 손상을 입은 셈이 됐다. 고르바초프가 자신의 페이스대로 통제가능한 개혁을 계속 유지할 수 있을지,아니면 급진개혁세력들의 요구대로 보다 과감한 개혁쪽으로 방향을 바꿀지 관심거리다. 옐친은 1931년 우랄지방에서 출생,81년 당중앙위 정위원에 선출됐고 85년 모스크바시당 제1서기로 정치국후보위원에 올랐다. 그후 87년 당중앙위서 당지도부를 정면비난했다가 정치국에서 축출된 바 있다. 그러나 그는 지난해 3월 인민대표회의 대의원선거때 모스크바시에서 89%의 압도적 지지를 얻어 대의원으로 선출됨으로써 4년여만에 화려한 정치적 재기를 이루었다.
  • 가죽원단 7억대 훔쳐/11명 영장/서울ㆍ경기지역 창고 털어

    서울시경은 25일 7억4천여만원상당의 가죽원단을 훔쳐 가죽제품 제조업자들에게 팔아온 김상극씨(26ㆍ전과1범ㆍ경기도 동두천시 상패동33) 등 가죽전문절도범 10명에 대해 특수절도혐의로,이들로부터 가죽원단을 사들여 제품을 만들어 팔아온 임동석씨(31ㆍ서울 용산구 이태원2동 542의9) 등 가죽제품업자 2명을 장물취득혐의로 각각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경찰에 따르면 중고교 선후배사이인 김씨 일당은 지난1월 서울 용산구 한남동 737의37 한남빌딩 709호에 「토탈무역」이라는 유령회사간판을 내걸고 지난 3월14일 새벽1시쯤 경기도 양주군 주식회사 「보국」피혁 창고에 들어가 소가죽 2만7천평(시가 1억원상당)을 훔쳐 임씨 등에게 판것을 비롯,지금까지 6차례에 걸쳐 서울 경기지역의 가죽창고에서 모두 12만7천평(시가 7억4천여만원상당)을 훔쳐 업자들에게 팔아온 혐의를 받고 있다.
  • 84년 「유감」보다 진전… 대승적 차원서 수용

    ◎일왕 「사과문안」 최종절충 안팎/가ㆍ피해자 명시됐지만 「책임」은 약해/일왕ㆍ총리 사과 합치면 우리측 요구수준 될듯 노태우대통령 방일시 아키히토(명인) 일왕이 궁정만찬석장에서 밝히게 될 대한사과문안에 대한 한일 양국간 협상은 방일 하루전인 23일 일단 마감됐다. 야나기 겐이치(유건일) 주한일본대사가 이날 하오 최호중외무장관을 예방,일본측이 과거사에 대해 가해자와 피해자를 명시하고 사과의 주체를 밝히는 내용의 최종적인 일왕사과문안을 전달했기 때문이다. 최장관도 이날 야나기 주한일본대사를 만난 뒤 기자들에게 『일본측이 노대통령을 정중하게 맞이하는 자세를 견지,신중하고도 많은 고심을 한 결과라고 일단 평가한다』며 일본측이 제시한 최종사과문안에 대한 소감을 피력한 데 이어 『이번 방일에서 아키히토 일왕이 밝힐 사과수준은 84년 전두환 전대통령 방일당시 히로히토(유인) 일왕이 말한 「유감표명」보다는 진전된 것』이라고 강조,우리측 요구가 상당부분 수용됐음을 시사했다. 일본측이 제시한 최종문안은 ▲한일 양국간 과거사에 있어 가해자및 피해자 명시 ▲사과주체의 표시 ▲84년 당시의 「유감」보다는 더 강도가 높은 사과표현이 담겨져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당초 우리정부가 요구한 가해자와 피해자의 적시,식민지배에 대한 「책임」과 「반성」을 분명히해야 한다는 수준에는 못미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같은 수준을 토대로 일왕사과문안을 정리해본다면 『본인(일왕)은 금세기 한 시기에 있어서 우리나라(일본)가 한국에 끼친 불행했던 과거가 있었던 데 대해 고통과 슬픔을 통절히 느끼며 다시는 이같은 일이 되풀이되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로 될 수 있을 것 같다. 결국 양국간의 이번 협상은 우리측의 강력한 입장개진과 일본측의 양보가 어우러져 마무리된 것으로 판단된다. 그러나 이번에야말로 완전한 과거청산을 희망했던 국민들의 반응이 어떻게 나타날지는 미지수라고 할 수밖에 없다. ○…일본측은 84년때와 마찬가지로 이번에도 정식외교경로 전달방식을 선택,이날 하오 야나기 대사가 최장관을 예방하는 자리에서 일왕의 최종사과문안을 한국측에 전달. 일본측은 이에앞서 22일 밤 고위특사인 세지마 류조(뇌도용삼)씨의 보고를 토대로 가이후(해부) 총리 주재로 나카야마 외상,사카모토 관방장관등이 참석한 가운데 대책회의를 열고 최종문안을 23일 제시키로 결정했다는 후문. 일본측은 이 자리서 일왕발언의 헌법상 허용문제를 감안,일왕의 사과표명을 한국측의 요구수준보다는 낮추되 대신 가이후 총리가 한국측의 요구를 대폭 수용,깊은 반성과 책임을 밝힌다는 기존의 방침을 재확인했다고. ○…야나기 대사는 당초 예정시간보다 35분가량 늦은 이날 하오 2시35분쯤 외무장관접견실로 최장관을 예방,최종문안 전달과 함께 일본측의 전반적인 상황을 설명했다고 한 배석자가 전언. 40여분간 계속된 이 면담에서 최장관은 『양국관계의 밝은 미래를 위해서도 일왕의 사과문안이 우리국민의 기대를 상당한 정도 담기를 희망한다』면서 일본측의 성의있는 자세를 재차 강조했으며 야나기 대사는 이에대해 어려운 일본 국내사정을 설명하며 양해를 구했다고. 일본대사관측은 야나기 대사가늦게 도착한 이유에 대해 『본국정부로부터 텔렉스 도착이 늦었기 때문』이라고 밝혀 일본측이 우리측에 공식통보하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진통을 겪었음을 시사. 최장관은 특히 야나기 대사가 『늦어서 미안하다』며 인사말을 건네자 약간 상기된 표정으로 『일왕의 최종사과문안 제시가 온 국민의 관심사항이 되고 있다』고 답변,일본측이 우리국민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사과문안을 갖고 왔음을 의식한 듯한 발언을 하기도. 최장관은 또 야나기 대사와 악수하는 포즈를 잡아달라는 사진기자들의 요청에 『그냥 앉아서 얘기하는 표정을 찍는 것이 낫지 않느냐』며 신중한 자세를 견지. 최장관은 면담을 끝낸 뒤 청와대로 직행,노대통령에게 최종사과문안및 일본측 정황등을 상세히 보고. ○…최외무장관은 이날 노대통령에게 일측 사과문안을 보고한 뒤 노재봉대통령비서실장과 만나 한동안 문안내용을 놓고 숙의. 노실장은 이어 삼청동에서 외무부관계자들과 대책을 논의,청와대로 돌아와 이수정공보수석비서관을 급히 찾았는데 주변에서는 『일측의 사과문안과관련한 우리측 대응입장을 다시 수정하기 위한 것이 아니냐』는 관측들. 노실장은 기자들이 『일왕사과문안은 절충이 모두 끝났느냐』는 물음에 직접적인 답변은 회피하면서 『비행기 타는 일만 남은 것 아니냐』고 말해 양국간의 절충이 사실상 마무리됐음을 시사. 노실장은 일왕의 사과수준을 캐묻자 『일왕과 총리의 사과내용을 합치면 우리가 요구하는 수준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해 다소 미흡함이 있음을 우회적으로 답변. 노실장은 이날 전달된 일본의 사과내용을 국민들이 납득할 수 있겠는가라는 질문에는 『당장 문안을 펼쳐보일 수는 없으나 긍정적일 것으로 본다』고 조심스레 피력. 청와대의 한 관계자는 일측 사과문안과 관련,『노대통령의 일왕주최 만찬답사ㆍ국회연설ㆍ일총리주최 만찬답사 등을 일부러 다시 손댈 필요는 없다』고 말하고 『일본측의 사과수준과 외교적으로는 정상적인 것 같다』고 피력해 다소 우리의 당초 기대에는 못 미치지만 「84년 사과수준」보다는 강도가 있는 것임을 시사. 이 관계자는 『일측의 사과문안이 일본내에서는 많은 반대견해가 있을 수도 있는 것으로 일본정부로서는 나름대로 노력을 했다고 볼 수 있다』고 언급. ◎노대통령 맞는 동경의 기류/「침략국」인상 씻고 “평화지향 일본” 부각 겨냥/“한ㆍ일 신협력시대”들어 실리 치중 말은 안해도,노태우대통령의 일본방문에 대해 일본측이 전례없이 중점을 두고 배려하고 있는 것은 다음과 같은 몇가지 「사정」에 기인한다. 물론 표면상으로는 미래지향적 우호ㆍ협력관계의 구축을 노대통령 방일실현의 첫번째 목적으로 꼽는다. 앞으로 다가올 아시아ㆍ태평양시대의 이니셔티브를 잡기 위한 두나라 공동전선을 구축하며,세계경제 블록화에 대처하기 위해 보조를 맞춘다는 명분론을 들고 있으나 그 「필요성」은 더욱 현실적인 데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우선 국내의 정치적 기반이 취약한 가이후(해부)정권의 장기안정화를 꾀하기 위해 외교에 치중할 필요가 있다. 오는 8월이면 발족 1년을 맞는 가이후내각으로서는 고르바초프 소련대통령 방일실현,한국과의 유대강화,동구제국과의 관계개선등 외교실적을 통해 국제적 지위를 부상시킴과 동시에 「본격정권」으로서의 이미지를 내외에 인식시켜줄 필요가 절실하다. 두번째는 일왕의 방한실현 타진이다. 침략군국주의의 대명사 쇼와(소화) 일본의 인상을 씻고 평화지향의 헤세(평성) 일본을 부각시키기 위해서는 아키히토(명인) 일왕의 한국방문이 필요하다. 일왕의 한국방문이 갖는 상징성은 매우 강하기 때문이다. 세번째는 경쟁상대로 떠오르고 있는 한국과의 경제협력을 원활히 함으로써 세계적 경제마찰의 초점을 분산시키자는 등의 계산이 깔려있다고 볼 수 있다. 동시에 신칸센(신간선)같은 대형 프로젝트의 판매등을 통해 기존시장을 확대하려는 의도도 없지않은 것으로 해석된다. 일본의 이같은 외교목표 설정은 한국의 그것과는 일치하지 않음으로써 지금까지도 불협화음을 빚고 있다. 지난 3월 일본의 학자ㆍ변호사ㆍ종교인등 58명은 『의회는 36년간의 식민지지배를 통해 일본이 한민족에게 헤아릴 수 없는 고통을 준 데 대해 반성하고 국민의 이름으로 사과한다』는 결의를 채택하도록 일본 중ㆍ참의원및 각 당에 요구했다. 와다 하루키(화전춘수) 동경대교수,다카키 겐이치(고목건일),변호사 다케우치 겐타로(죽내겸태랑) 일본기독교협의회장 등을 대표로 하는 이들은 「한국병합조약 80주년을 맞아 조선식민지 지배 반성의 국회결의를 요구하는 성명」을 통해 이같이 촉구했다. 이것은 진정한 인식전환만이 우호의 바탕이라는 사실을 일본인 스스로가 자각하고 있다는 증거이다. 평화ㆍ안전보장연구소 회장인 이노키 마사미치(저목정도)씨는 최근 산케이(산경)신문에의 기고를 통해 일왕은 일본의 책임소재를 명쾌히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일본국의 상징으로서,일본을 대표하고 있는 것은 천황이다. 노일전쟁으로부터 종전까지 일본은 가해자였으며 한국은 피해자였다는 것은 명확한 사실이기 때문에 천황의 사죄내용에 「일본의 책임에 의해」라는 의미가 명시되어야 한다. 총리가 제아무리 노력하더라도 한국민은 결코 만족하지 않을 것』이라고 간파했다. 그러나 이같은 식자들의 우려와는 달리 평소 일본의 대한관에서는 불과 반세기도 지나지 않은 일제의 침략과 수탈에 대한 뉘우침과 반성의 뚜렷한 기미를 찾아볼 수 없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오히려 최근의 오사카(대판) 나고야(명고옥)등지에서의 극우국수주의자들에 의한 폭발테러사건등에서 볼 수 있는 바와같이 일제당시의 의식과 시각을 그대로 갖고 있는 언행들을 많이 접할 수 있다. 과거 일본교과서의 역사왜곡도 그 좋은 예의 하나이다. 일본법원은 일본군의 「침략」과 「대학살」표현을 완화토록 지시한 문부성의 수정지시가 합법적이라는 판결까지 내렸었다. 역사적 사실을 수정하도록 강요하는 정부,또 이를 마땅한 것으로 판단하는 법조에 이르기까지 일본의 일부 지배층의 기본인식이 근본적으로 바뀌지 않는 한 진정한 의미의 한ㆍ일우호관계는 수립될 수 없다. 일본의 잘못된 대한인식과 태도는 지난번 재일한국인의 법적 지위보장ㆍ처우개선 협의에서도 잘 드러났다. 우여곡절끝에 「3세문제」에 대해서는 최소한도의 합의를 보았으나 1ㆍ2세문제는 거론되지도 않았다. 70여만명에 달하는 재일동포들의 법적 지위문제는 바로 인간의 기본권인인권과 생존권의 문제이다. 일본에서 태어나고 교육울 받으며 일본사회에서 살고 있는 재일동포와 그 자손들의 법적 안정성 보장및 차별철폐,원폭피해자문제,사할린거주 한국인문제등 일본이 역사적 책임을 져야만 하는 문제는 많다.
  • “체증 심해 수입 적다”… 이직 급증/택시운전사 “구인난시대”

    ◎기사없어 3천여대 “주차장신세”/회사마다 보상금주며 “유치작전”/무자격자도 마구 고용… 사고위험 부작용도 전국택시노련 서울시지부가 교착상태에 놓여있는 사업주측과의 임금협상에 불만을 품고 21일 저녁 대규모 차량시위를 감행하려는 가운데 택시운전사의 부족현상이 심각해 갖가지 부작용을 낳고 있다. 택시운전사의 부족현상은 날로 심화되고 있는 대도시의 교통체증에 따라 운행수입이 격감하면서 운전사들의 이직률이 높아진 때문에 빚어진 것이다. 이 때문에 서울시내만 하더라도 2백72개 업체 2만2천39대의 택시 가운데 12%가량인 3천여대가 운행을 못하고 서있는 상태이며 택시회사들은 이들 택시를 운행할 운전사를 구하기 위해 갖가지 수단을 다 쓰고 있다. 택시회사측은 소속 운전사를 총동원해 다른 택시회사나 버스회사 운전사를 스카우트하면서 다른 회사의 운전사를 데려오는 경우 한건에 3만∼5만원씩을 보상금으로 지급하는가 하면 택시운전사로 첫 취업하려는 사람들이 한달에 두번 교육을 받는 교통회관과 양평교육장 주변에 매일 20여개회사 간부들이 몰려가 점심을 대접하고 교통비를 대주는 등 선심공세를 펴고있다. 택시회사들이 이곳 등지에서 하루벌이 일당만 받는 떠돌이 운전사를 고용하는 경우 운전경험미숙 등으로 사고의 위험이 높아지는 것은 물론 승객들이 갖가지 횡포를 당할 가능성이 그만큼 커지게 된다. 도봉구 수유동 S상운 상무 김모씨(52)는 『택시들 가운데 10%가량이 떠돌이 무자격운전사에게 맡겨지고 있다』면서 『차량을 언제까지나 세워놓을 수 없는 형편때문에 운전솜씨가 웬만하면 차를 내주게 된다』고 말했다. 게다가 상당수 택시회사들이 노사분규의 대상이 되고 있는 월급제대신 도급제를 도입,자격유무를 따지지 않고 운전사와 개별계약을 맺어 난폭운전ㆍ승차거부ㆍ합승강요 등 부당행위를 부채질하고 있다. 운전사 도급제는 기본월급 없이 소형택시의 경우 하루 6만∼7만원,중형택시는 7만∼8만원만 회사에 입금시키고 나머지수입을 운전사가 모두 갖는 형식이다. 따라서 이들은 자기수입을 높이기 위해 온갖 부당행위를 일삼게 되고 회사측도 운전사를 바로바로 교대시키기 때문에 차량정비에 소홀하게 돼 사고의 위험성이 그만큼 커지게 된다. 전국택시노련은 이같은 운전사 도급제가 소형택시의 10%,중형은 50%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이같은 운전사 부족현상에 대해 성북구 장위동 Y교통 상무이사 김중호씨(47)는 『규모가 큰 택시회사 가운데는 하루 50여대가 운행을 못하는 곳도 있다』면서 『실제 가동률은 80%를 밑돈다』고 말했다.
  • 전대협출범식 광주서 강행/어제 전남대서/경찰과 대치속 1만여명참가

    ◎금남로 1차 국민대회는 무산 【광주=임시취재반】 전남대학생을 비롯,전국에서 모여든 「전대협」소속 대학생 1만5천여명은 19일 하오7시쯤부터 20일 상오2시쯤까지 광주 전남대에서 「제4기출범식」을 강행했다. 학생들은 이날 「출범식」이후 가두시위를 벌일것이라는 당초 예상과는 달리 교내에서 밤을 새웠으며 경찰도 교내진입을 하지 않아 특별한 충돌이나 불상사는 없었다. 경찰은 당초 이날 집회를 불법으로 규정,강제해산시킨다는 방침아래 4천5백명의 경찰을 교내에 투입하려했으나 한밤에 학생들이 강경하게 맞설경우 상당한 피해가 발생할 우려가 있다는 판단에 따라 강제해산 계획을 철회했다. 이날 「출범식」에는 구속영장이 미리 나와 있는 「전대협」의장 송갑석군(24ㆍ전남대총학생회장)이 나와 선언문을 통해 『「전대협」은 지난 87년 출범이후 백만학도의 정의와 애국적 신념을 담아왔던 단결과 투쟁의 심장부』라고 주장,『앞으로 민자당 분쇄및 노정권 퇴진투쟁과 반미통일운동,학원자주화투쟁을 벌여 나가겠다』고 밝혔다. 이에앞서 경찰의 검문검색을 피해 전남대에 집결한 전국 1백여개 대학생 8천여명은 강의실에서 밤을 지낸뒤 이날 상오9시부터 「남대협」소속 대학생 4천여명과 함께 스크럼을 짜고 교내 시위를 벌였다. 한편 「광주ㆍ전남민주연합」이 이날 하오2시 금남로일대에서 열기로 한 「5월항쟁계승과 민자당일당독재분쇄를 위한 1차국민대회」는 경찰의 원천봉쇄로 무산됐다. 또 「마 창노련」소속 근로자등 1천여명도 이날 하오9시20분쯤부터 조선대 실내체육관에서 「전국노동자대회전야제」를 가졌다.
  • “18일 상가철시 학생 동맹휴업”/광주 재야단체

    【광주】 광주ㆍ전남지역 41개 재야단체로 구성된 민자당일당독재분쇄및 민중기본권쟁취 광주ㆍ전남민주연합은 15일 상오 광주시 동구 궁동 5ㆍ18위령탑 건립및 기념사업추진위 사무실에서 5ㆍ18광주민중항쟁 10주기를 앞두고 「5월 투쟁방향과 시민행동수칙」을 발표,『오는 5월18일에는 모든 상가를 철시하고 노동자는 잔업거부,학생은 동맹휴학 또는 야간수업을 거부할 것』을 주장했다.
  • 몽고,새 입법원 설치/공산당서기장 밝혀

    【동베를린 로이터 연합】 몽고는 공산당 일당독재체제를 폐지하고 다당제를 도입키 위한 정치개혁의 일환으로 기존의 최고의회기구인 인민대회의 기능을 축소하고 직접선거에 의해 구성되는 새로운 입법원을 설립할 계획이라고 동독 관영 ADN통신이 10일 보도했다. 푼살마긴 오치르바트 몽고공산당 서기장은 이날 인민대회에서 이같이 새로운 입법원 설치계획을 밝히면서 기존의 인민대회는 앞으로 헌법개정 및 총체적인 정책조정만을 맡도록하고 일반법안과 정부예산ㆍ경제정책 등에 관한 심의는 새로 구성되는 입법원이 담당하도록 역할분담을 할 것이라고 말한 것으로 ADN통신은 보도했다.
  • 1만여대학생 “반민자”격렬시위/심야까지 도심 곳곳서 화염병 공세

    ◎전경버스등 차량6대 전소/미문화원 피습,1층 일부 태워/1백50명 연행… 전경등 2백명 부상 서울대ㆍ연세대ㆍ고려대 등 「전대협」소속 서울시내 32개 대학생 9천여명은 민자당 창당대회가 열린 9일 하오5시30분쯤부터 밤11시까지 시청앞ㆍ남대문ㆍ신셰계백화점앞ㆍ명동입구ㆍ서울역앞등 서울시내 도심 곳곳에서 『민자당해체』등의 구호를 외치고 돌과 화염병을 던지며 6공들어 최대규모의 시위를 벌였다. 또 부산ㆍ대구ㆍ광주ㆍ전주ㆍ마산 등 지방에서도 이날밤 대학생 5백∼1천여명이 지역별로 시내에서 화염병을 던지며 산발적인 시위를 벌였다. 이날 시위로 서울에서는 미문화원 1층 농업무역관등 30여평과 전경버스 4대와 형사기동대 봉고버스1대가 학생들이 던진 화염병에 불탔으며 서울의 용두ㆍ봉천파출소와 지방의 대구 중부경찰서,비산ㆍ동산파출소,부산 사상파출소,대전 대홍파출소,인천 축현파출소 등 10곳이 화염병 공격을 받았다. 이날 시위로 전경과 학생등 2백여명이 부상했고 시위학생 1백50여명이 경찰에 연행됐다. 이에앞서 서울지역 32개대학생 1만2천여명을 비롯,전국 95개 대학생 4만2천여명은 이날 낮 각 학교별로 「민자당해체 출정식」을 가졌다. 이들은 이어 「민자당 일당독재 분쇄와 민중기본권쟁취국민연합」측이 하오6시 17개 도시에서 동시에 열기로 한 「민자당해체 노정권퇴진촉구 국민궐기대회」에 참가하려 했으나 경찰의 저지로 무산되자 곧바로 가두시위에 들어갔다. 서울시내 대학생들은 이날 하오5시30분쯤부터 집회장소로 예정되어 있던 시청앞 쪽으로 몰려들었으나 경찰의 제지를 받고 남대문옆 삼성본관건물앞 차도를 점거하고 시위를 시작했다. 이어 시위대는 남대문에서 신세계백화점에 이르는 도로를 점거하고 2시간30여분동안 돌과 화염병을 던지며 격렬한 시위를 벌였다. 하오 8시쯤 학생들은 일단 흩어졌다가 3백명∼5백명 단위로 다시 모여 미도파 백화점앞과 롯데호텔앞,서울역광장등지에서 시위를 계속했으며 하오9시쯤에는 시위학생 숫자가 최고 1만여명으로 불어났다. 학생들 가운데 5백여명은 하오9시쯤부터 명동성당으로 들어가 철야농성을 벌였다. ◎지방서도 산발시위/파출소ㆍ민자지구당 기습 【부산=김세기기자】 부산시민운동본부 주최로 9일 하오6시 부산진구 옛 부산상고 교정에서 열릴 예정이던 「민자당 해체와 노태우퇴진을 위한 부산시민대회」가 경찰의 원천봉쇄로 무산되자 부산의 24개 대학(전문대포함) 2천여명의 학생들과 재야인사들은 하오6시쯤부터 서면ㆍ남포동ㆍ사상지역 등으로 진출,곳곳에서 화염병과 돌을 던지는 등 기습시위를 벌였다. 이들은 2백∼3백여명씩 떼를 지어 파출소2곳과 민자당 지구당사 1곳에 화염병을 던지는등 기습시위를 벌이다 자정쯤 해산했다. 【대구=김동진기자】 대구ㆍ경북지역 대학생 및 재야 15개단체회원 2천여명은 이날 하오3시 경북대에서 집회를 가진뒤 시내로 진출,하오5시30분쯤 북구 칠성시장에서 가두시위를 시작,하오11시까지 1백∼5백여명씩 몰려 다니며 시내 곳곳에서 민자당해체 『노정권퇴진』등을 외치며 가두시위를 했다. 시위대는 대구 중부경찰서에 화염병 1백여개를 던지고 비산파출소와동산파출소를 습격하는등 격렬한 시위를 벌였다. 【광주=임정용기자】 전남대ㆍ조선대등 전대협소속 대학생 1천여명은 이날 하오5시 전남도청앞 광장에서 광주ㆍ전남 민주연합 주최로 열려던 「민자당 해체,노태우정권퇴진 촉구 국민결의대회」가 경찰의 원천봉쇄로 무산된뒤 광주시내 곳곳에서 심야까지 산발적인 시위를 벌였다. 【수원】 경기도내에서는 9일 수원ㆍ성남ㆍ안양ㆍ부천ㆍ안산등 5개지역에서 3천1백여명의 학생ㆍ근로자들이 하오7시부터 『민자당 창당규탄 국민궐기대회』를 가지려다 경찰의 원천봉쇄로 무산되자 이날 자정까지 시내 곳곳에서 경찰에 돌과 화염병을 던지는등 산발시위를 벌였다. 성남시내에서는 1천2백여명의 학생ㆍ근로자들이 이날 하오8시쯤 행사장인 성남시청에서 5백여m 떨어진 인하병원앞에 집결,1시간가량 경찰과 대치하다 흩어져 시내 곳곳에서 산발시위를 벌였고 수원에서도 시위대 5백여명이 집회장인 수원역 부근에 집결하다 경찰의 최루탄 발사로 흩어졌다. 또 안양지역의 시위대 6백여명은 벽산빌딩앞에서,안산지역 시위대 3백여명은 나성호텔앞에서,부천지역 시위대 5백여명은 부천 북부역광장 등지에서 각각 산발시위를 벌였다. ○전민련등 재야단체 명동서 약식대회 한편 「전민련」 「전노협」 등 전국 52개 재야ㆍ노동단체들로 이뤄진 「민자당일당독재 분쇄와 민중기본권쟁취 국민연합」은 이날 하오6시쯤 서울 중구 명동성당 입구에서 약식으로 「민자당해체 노정권퇴진 국민궐기대회」를 강행했다. 이날 대회는 당초 서울시청앞 광장에서 열릴 예정이었으나 경찰의 원천봉쇄로 명동성당으로 개최지를 바꿔 계훈제씨ㆍ이부영씨등 재야인사ㆍ학생 1백5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1시간남짓 진행됐다.
  • 민자창당 반대집회/내일,재야 17개단체

    「전민련」 「전노협」등 17개재야단체로 구성된 「민자당일당독재분쇄 및 민중기본권쟁취를 위한 국민연합」은 7일 상오 『현 정권은 민자당을 즉각 해체하고 퇴진하라』고 주장하는 성명을 내고 오는 9일 하오6시 서울 부산 광주등 전국 주요지역에서 동시에 「민자당해체를 위한 국민대회」를 열겠다고 밝혔다. 이들은 9일 하오6시 모든 차량의 경적시위와 민자당사에 항의전화를 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 민자의원 사무실/청년들이 불질러

    【평택=김동준기자】 3일 하오9시쯤 경기도 평택시 평택동 66의1 민자당 평택 송탄시지구당(위원장 권달수의원)과 평택군지구당(〃이자헌의원) 사무실이 들어있는 3층건물에 대학생으로 보이는 청년 10여명이 침입,석유를 뿌리고 불을 지른뒤 달아났다. 이불로 2층 권의원사무실 문짝이 그슬리고 3층 이의원 사무실로 올라가는 통로의 유리창 2장이 깨졌다. 청년들은 또 건물주위에 「민자당일당독재 분쇄를 위한 애국청년결사대」명의로 「해체 민자당 퇴진 노태우」란 제목의 유인물 3장을 뿌렸다.
  • 민주 조직책 68명 발표

    민주당(가칭)은 27일 전국의 2백24개 지구당 가운데 1차로 68개 지구당 조직책을 확정ㆍ발표했다. ◇서울(17명) ▲성동병 강수림(43ㆍ변호사) ▲동대문을 김창환(55ㆍ8,9대의원) ▲도봉갑 조순형(55ㆍ11,12대의원) ▲용산 이태식(54ㆍ전민한당원외위원장) ▲성북갑 이철(42ㆍ12,13대의원) ▲노원갑 이필선(61ㆍ5,6대의원) ▲노원을 전대열(49ㆍ전민주통일당 대변인) ▲은평을 김유진(49ㆍ전고대학생회장) ▲구로을 김정강(50ㆍ구민주당원외위원장) ▲영등포갑 장석화(44ㆍ13대의원) ▲서초갑 박찬종(51ㆍ9,10,12,13대의원) ▲서초을 안동수(49ㆍ변호사) ▲강남을 홍사덕(47ㆍ11,12대의원) ▲강서을 최두환(49ㆍ구민주당원외위원장) ▲송파갑 김희완(36ㆍ구민주당 부대변인) ▲강동갑 김노식(44ㆍ11대의원) ▲강동을=홍성표(54ㆍ11대의원) ◇부산(7명) ▲중구 김광일(50ㆍ13대의원) ▲동구 노무현(44ㆍ13대의원) ▲영도 김정길(45ㆍ12,13대의원) ▲동래을 노경규(49ㆍ전신민당 총무국장) ▲남구을 손태인(44ㆍ전국회정책연구위원) ▲해운대 이기택(53ㆍ창당준비위원장) ▲사하 김영백(43ㆍ구민주당당보부주간) ◇대구(4명) ▲중구 김현규(53ㆍ구신민당 원내총무) ▲남구 성만현(47ㆍ구민주당원외위원장) ▲북구 박성수(34ㆍ안흥산업 전무이사) ▲수성 여동영(47ㆍ변호사) ◇인천(1명) ▲남구갑 명화섭(63ㆍ12대의원) ◇대전(2명) ▲동구을 송천영(51ㆍ12대의원) ▲서구 이희원(44ㆍ전국회원내총무실 행정실장) ◇경기(13명) ▲수원갑 박왕식(51ㆍ12대의원) ▲의정부 목요상(55ㆍ11,12대의원) ▲안양을 이준형(41ㆍ제주남양호텔대표) ▲부천남 박규식(53ㆍ12대의원) ▲파주 윤승중(49ㆍ전평민당원외위원장) ▲이천 황규선(53ㆍ치과의사) ▲가평ㆍ양평 이병대(47ㆍ구민주당원외위원장) ▲강화ㆍ김포 김선흥(54ㆍ구민주당위원장) ▲송탄ㆍ평택 장기천(51ㆍ구민주당원외위원장) ▲동두천ㆍ양주 김형광(55ㆍ10,12대의원) ▲구리 조정무(49ㆍ구신민당위원장) ▲여주 이규택(48ㆍ구민주당원외위원장) ▲화성 정동호(56ㆍ전한국노총위원장) ◇강원(7명) ▲원주 원광호(44ㆍ구공화당원외위원장) ▲강릉 김필기(47ㆍ구신민당도당부위원장)▲동해 지일웅(48ㆍ전평민당원외위원장) ▲명주ㆍ양양 최욱철(37ㆍ전명지대총학생회장) ▲홍천 장만준(33ㆍ영광엔지니어링이사) ▲춘성ㆍ양구ㆍ인제 박영석(53ㆍ전단국대 총학생회장) ▲횡성ㆍ원주군 정봉철(54ㆍ구민주당원외위원장) ◇충북(1명) ▲청주을 정기호(48ㆍ변호사) ◇충남(5명) ▲온양ㆍ아산 이진구(50ㆍ전평민당원외위원장) ▲대덕ㆍ연기 김원웅(46ㆍ구민정당원외위원장) ▲논산 김형중(56ㆍ전평민당원외위원장) ▲청양ㆍ홍성 홍문표(44ㆍ전국회의장 정무비서관) ▲예산 김성식(51ㆍ12대의원) ◇경북(4명) ▲포항 박기환(41ㆍ구민주당위원장) ▲점촌ㆍ문경 최주영(50ㆍ전민추협편집국장) ▲예천 정대수(54ㆍ보건연구원회장) ▲울진 이동일(49ㆍ정치학박사) ◇경남(7명) ▲창원 성종대(33ㆍ이철의원비서관) ▲마산갑 김호일(47ㆍ구공화당원외위원장) ▲진주 김재천(43ㆍ구민주당부대변인) ▲진해ㆍ의창 정차두(53ㆍ변호사) ▲충무ㆍ통영ㆍ고성 제정훈(46ㆍ전한겨레민주당위원장) ▲창녕 구자호(50ㆍ전국민일보 논설위원) ▲울주 권기술(51ㆍ구민권당 도당위원장)
  • 베트남 정치개방거부 경제개혁 모색/공산화 15년… 오늘의 실상점검

    ◎동구민주화 외면… 중국모델 사회주의고집/신외국인투자법 제정,합작투자 유치총력/고립탈피위해 아태국과 관계개선 시도… 미에도 유화 제스처 사이공 주재 미대사관 옥상으로부터 마지막 미군헬리콥터의 이륙과 함께 월남이 공산화된지 4월30일로 15년을 맞는다. 공산독재체제의 베트남은 미국과의 전쟁을 승리로 이끌고 「남북통일」이라는 위업을 달성했지만 종전 15년이 지난 오늘까지 가난으로부터의 탈출작전에서는 성공을 거두지 못하고 있다. 베트남의 국민소득은 75년 당시 월남보다도 훨씬 낮은 2백달러 수준에 머물고 있고 6천5백만 전체인구의 80%에 달하는 농민의 생활 수준은 아직도 열악한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사이공함락과 함께 시작된 베트남인들의 대탈출은 정치적 동기가 아닌 경제적 이유에 의한 「빈곤의 엑서더스」로 바뀌고 「보트피플」의 행렬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경제적 어려움에 대한 국민들의 불만이 날로 높아가고 있는 가운데 남북간 경제력의 차이는 국민화합을 가로막는 걸림돌이 되고 있으며 공산당독재체제에서 비롯된 당원의 부패 만연으로 정부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 역시 점점 엷어지고 있다. 올해는 베트남 공산당 창립 60주년이자 통일을 이룩한 호치민(호지명)탄생 1백주년이 되는 「축제의 해」이기도 하다. 그러나 호치민이 남긴 공산독재체제의 유산은 국민들의 개혁ㆍ개방요구와 동구의 개혁 외풍 등 국내외로부터 심각한 도전을 받고 있다. 베트남은 그러나 소련의 페레스트로이카정책과 동유럽의 대변혁에서 나타난 공산독재체제의 붕괴라는 역사적 흐름을 외면한 채 「베트남식 사회주의」를 고집하고 있다. 구엔 반 린 베트남 공산당서기장은 최근 『베트남은 결코 공산당의 지도적 역할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혀 베트남이 소련이나 동구식의 정치개혁을 수용할 뜻이 없음을 분명히 했다. 지난달 27일 폐막된 베트남공산당 중앙위도 「사회주의 고수」와 「당의 지도적 역할」을 확인한 결의안을 채택한 바 있다. 베트남이 정치적 개혁을 거부하고 있음은 지난번 중앙위전체회의에서 개혁파 정치국원 트란 수안바크(65)가 축출된데서도 분명히드러나고 있다. 바크는 다당제도입 등 과감한 정치개혁을 주장하며 현베트남 공산당지도부를 비난해오다 축출됐는데 그는 정치국원 자리외에 서기국원ㆍ중앙위원 등 모든 당직으로부터도 제명됐다. 바크의 축출로 13명의 정치국원 중 개혁파는 구엔 코타크(70)외무장관만이 유일하게 남게됐다. 베트남은 이같이 정치개혁은 완강히 거부하면서도 경제면에서는 일련의 과감한 개혁조치를 단행했다. 구엔 반 린 서기장도 기회가 있을때마다 경제개혁을 통한 점진적 민주화 추진을 천명하고 있다. 베트남은 지난 86년12월 제6차 당대회에서 소련의 페레스트로이카를 모방한 「도이 모이」(개혁)를 국민들에게 선보여 75년 베트남 통일이후 지금까지 팽배해온 국민들의 불만을 다소의 기대감으로 바꾸어 놓았다. 「도이 모이」정책은 시장경제도입,농토의 개인경작 및 자영기업의 허용,부가가치세의 도입 등 자본주의 요소를 과감히 수용한 경제개혁 조치이다. 지난 88년 1월에는 또 신외국투자법을 제정,외국인들의 1백% 단독 투자를 허용했는가 하면 조세감면과 과실송금을 보장하고 있다. 베트남의 이같은 시장경제 개혁은 경제외교적 고립과 미국 등 일부 서방국가들의 부분적인 경제봉쇄 정책으로 아직도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이 사실이나 베트남 경제가 호전되고 있음은 여러가지 경제지표에서 나타나고 있다. 지난 88년만 해도 7백%에 달하던 인플레는 국제통화기금(IMF)의 협조를 받아 실시한 긴축정책으로 지금은 50% 수준으로 낮아졌다. 더욱이 올 연말에는 인플레가 12∼15%까지 낮아질 것으로 전망되고 있는 가운데 베트남 화폐인 「동」의 가치도 점차적으로 안정되어 가고 있다. 베트남은 농토의 개인 경작과 농산물의 판매허용등의 농업개혁으로 쌀의 생산량이 급증,태국ㆍ미국에 이어 세계 3위의 쌀 수출국으로 부상하고 있다. 외국기업을 유치하기 위해 제정된 신외국투자법에 따라 외국과의 합작사업도 활기를 띠어 지금까지 1백건이 넘는 계약실적을 올렸고 베트남에 진출하려는 외국기업들이 점차 증가하고 있는 상황이다. 베트남은 또 외교적 고립을 탈피하기 위해 아시아ㆍ태평양 국가들과의 협력과 관계개선을 적극적으로 모색하는 한편 미국에는 캄란만과 다낭 등 미국이 전에 사용하던 군사기지의 재사용을 제의하는 등 유화 제스처를 쓰고 있다. 베트남의 이같은 제의는 물론 소련군이 오는 92년 캄란만에서 철수하고 소련의 대베트남 원조삭감에 대비한 전략적 차원에서 이뤄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소련은 최근 비료ㆍ건축자재와 원유공급을 대폭 감축할 것이라고 이미 통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제개혁 이후 나타난 호치민(구사이공)시의 활기찬 모습은 베트남 장래에 밝은 전망을 갖게 하기도 한다. 그러나 경제발전은 또다른 한편으로는 커다란 갈등요인으로 등장하고 있다. 중국의 천안문사태에서 볼 수 있듯이 경제개방은 필연적으로 정치민주화의 요구로 발전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베트남에는 아직까지 정치개혁을 요구하는 대규모 시위는 없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으나 최근에는 지식인과 노조ㆍ언론인 등을 중심으로 한 민주화 논의가 가열되고 있다고 한다. 정치민주화 요구가 점차 가시권에 들어오고 있는 것이다. 공산당 지도자들은 그러나정치개혁은 거부하고 공산당 일당독재체제의 유지를 천명하고 있다. 중국에서 실패한 「개혁실험」을 고집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정치민주화」라는 국제적 조류는 그들의 실험도 실패할 가능성이 높음을 시사하고 있다.
  • 조직폭력배 「유혈보복」/상대파 손목자르고 공기총 난사

    ◎2개파 13명 영장·30여명 수배 【영천=김동진기자】 경북 영천경찰서는 23일 라이벌폭력조직원을 집단폭행한뒤 생선회칼로 오른쪽 손목을 절단한 폭력조직 소야파 두목 이성환씨(34·영천시완산동1079의13),행동대원 김일만씨(21·영천시완산동1075의15)등 일당 13명을 범죄단체조직및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위반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하고 김모군(17·영천시오수동)등 우정파 30여명을 같은 혐의로 수배했다. 경찰에 따르면 이씨는 영천시내에서 소야룸살롱을 경영하면서 소야파란 폭력조직을 만들어 지난18일 자기파 행동대원 1명이 상대파인 우정파 행동대원의 습격을 받아 손가락을 절단당하자 21일 하오10시50분쯤 영천시 완산동 낙천탕옆 골목에서 우정파 행동대원 김모군(17·영천시창구동)을 붙잡아 다른 행동원들과 함께 집단 폭행한뒤 생선회칼로 김군의 오른쪽 손목을 절단하고 왼쪽 손목에 공기총 3발을 난사,관통상을 입게한 혐의를 받고있다.
  • 대낮 소매치기단 경관총 뺏어 도주

    【부산=김세기기자】 대낮 도심지에서 소매치기 일당이 출동한 경찰관에게 흉기를 휘둘러 상처를 입힌후 권총 1정을 빼앗아 달아났다. 23일 낮12시7분쯤 부산 북부경찰서 모라파출소 최종남경장등 경찰관 3명이 주민 이모씨(24)로부터 날치기사건 발생신고를 받고 출동,인근 평화가스앞 네거리에서 부산 3바3613호 개인택시를 타고 달아나려던 범인 4명중 김창수씨(26·대구시서구내당4동427의16)를 검거했으나 다른 3명은 이 택시를 타고 주례방면으로 달아났다. 최경장등의 통보를 받은 주례파출소 제준민순경등 경찰관 3명은 주례1동 대륙관광 앞길에서 이 택시를 발견,검문하려하자 범인들이 차에서 내려 회칼과 손도끼등 흉기로 제순경의 왼쪽 눈언저리를 찔러 전치 3주의 상처를 입히고 제순경이 소지하고 있던 C­3 3.8구경 권총 1정을 빼앗아 인근 백양산쪽으로 달아났다.
  • 중소의 「개혁이견」좁히기 여로/이붕의 모스크바행 안팎

    ◎공산권의 민주화ㆍ소수민족문제 주요의제로 부각/“사회주의노선 지속”이념적결속에 총력 기울일듯 중국 이붕총리가 오는 23일 모스크바를 공식 방문,26일까지 머물면서 고르바초프 소련대통령과 양국 현안 및 국제정세 등에 관해 논의하게 된다. 이총리의 이번 방소는 지난해 5월 중소정상회담때 고르바초프의 요청에 의한 것이며 그의 양부이기도 한 주은래전총리의 지난 64년 방문이후 중국고위층 인사로는 처음 있는 일이다. 이의 이번 모스크바행이 큰 주목을 받는 것은 미소간 냉전시대 복귀가능성이 엿보이는 등 최근의 국제정세가 짙은 불확실성의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데다 중소 모두 개방ㆍ개혁의 후유증을 심하게 앓고 있는 시점에서 이뤄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중국은 「6ㆍ4천안문사건」이후의 국제적 고립에서 벗어나고 개혁의 부작용에 대해 소측과 공동처방을 모색하기 위해 이번 이의 나들이에 많은 정치적 의미를 부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고르바초프의 입장에서도 이번 기회에 중국과의 유대를 강화함으로써 5월말 워싱턴에서열리는 미소정상회담이나 다른 서방국가들과의 협상테이블에서 자신의 입지를 보다 유리하게 만들려는 의도를 지닌 것으로 분석된다. 이러한 관점에서 이번 중소회담의 가장 중요한 의제는 소련ㆍ동구 등 공산국가의 민주화와 소수민족 독립 및 종교분쟁에 관한 것들이 될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이는 현실적으로 중소 두나라에 모두 해당되는 난제이기도 한 것이다. 중소가 점차 동병상련의 입장이 돼가고 있는 상황은 지난해 하반기까지만 해도 생각키 힘든 것이었다. 6ㆍ4사건으로 궁지에 몰렸던 중국은 동구에 개혁물결이 거세게 일고 소련도 공산당 일당통치를 포기한다는 방침을 밝히고 나서자 이같은 변화가 고르바초프의 섣부른 페레스트로이카 정책에 기인한 것이라는 비난을 서슴지 않았다. 때문에 지난해 5월 등소평ㆍ고르바초프 정상회담을 통해 정상화의 첫발을 내딛기시작 했던 중소관계를 적잖은 긴장상태로 몰아가기까지 했던 것이다. 그러나 최근 상황은 크게 달라지고 있다. 고르바초프가 리투아니아 공화국의 탈소독립선언에 의외의 강력한 수단으로 대응하고 있으며 미의 개입에 내정간섭이란 이유로 크게 반발하고 있다. 이밖에도 소련공산당은 당내 급진개혁파를 공격하고 나섰고 군부는 그들대로 리투아니아사태 강경진압을 주장하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는 실정이다. 관측통들은 요즘 고르바초프가 보여주고 있는 단호한 태도와 관련,『그는 공산당독재를 포기한다고만 했을 뿐 결코 마르크스주의와 사회주의를 없앤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면서 그의 개혁도 소의 공산당을 위기에서 건져낸 뒤 더욱 강화시키려는 전략이란 점에 의심할 여지가 없다는 견해를 모으고 있다. 이붕도 지난달 29일 북경에서 소련관영 타스통신 기자와의 인터뷰를 통해 『사회주의를 발전시키는데에 완전무결한 유일의 방법은 없다. 소련은 그들 나름대로,우리는 우리 현실에 맞는 방법으로 사회주의 완성을 위해 노력하는 중이다. 소의 개혁이 사회주의를 버리는 것이라곤 생각지 않는다』라고 밝힌 적이 있다. 같은 맥락에서 볼때 이는 고르바초프와 갖게 될 회담때 리투아니아를 비롯한 다른 공화국들의 소연방탈퇴 움직임에대해 현재 모스크바 당국이 취하고 있는 강경책을 적극 지지할 것으로 보이며 중소 두나라는 이번 회담을 계기로 사회주의노선을 견지키 위해 내밀한 결속을 다짐하는 등 새로운 이념적인 공동전선을 구축하게 될것 같다. 중국은 또 미의 리투아니아 사태 개입으로 미소간에 틈이 벌어질 경우 미의 적극적인 대중접근이 예상되므로 어부지리를 취할 수 있을 것이란 분석도 가능하다. 이붕의 모스크바 방문기간중 중소 두나라는 국경선 철군및 경제협력,과학기술교류 방안등에 대해서도 구체적인 협의를 하게될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러나 경협문제의 경우 두나라 모두 정책실패로 인한 곤경에 놓여 있기 때문에 큰 성과를 거두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 민연추 어제 발족/공동대표 백기완·이우재·고영구씨

    「민중의 정당건설을 위한 민주연합추진위원회」(민연추)준비회의는 13일 하오 서울 강남구 삼성동 한국종합전시장(KOEX)4층 국제회의실에서 민연추추진위원 4백47명과 재야인사등이 참석한 가운데 민연추발족대회를 가졌다. 이날 대회에서 추진위원들은 백기완 전전민련고문·이우재 전진보정당준비모임대표간사·고영구변호사 등 3명을 공동대표로 선출하고 이부영 전전민련상임의장을 집행위원장으로 선출했다. 추진위원들은 자주·민주·통일·복지 등을 이념으로 하는 10대 강령과 민연추의 조직체계등을 규정한 규약을 채택했다. 추진위원들은 또 범민주진영의 연대를 모색하기 위해 평민당과 민주당(가칭)및 「국민연합」에 「민자당 일당 독재저지공동투쟁기구 결성을 위한 민주진영 시국대책회의」를 개최하자고 제의했다.
  • 민연추,오늘 발족대회

    「민중의 정당건설을 위한 민주연합추진위원회」(민연추)준비회의는 13일 하오2시 서울 강남구 삼성동 한국종합전시장(KOEX) 4층 국제회의실에서 민연추 발족대회를 갖는다. 이날 대회에서 추진위원들은 규약과 강령,결성선언문및 국민에게 드리는 글을 채택하고 3인의 공동대표와 고문단,중앙위원(50∼1백명)을 선출한다. 이날 대회에서는 또 민주진영의 연합기구 구축을 위해 「민자당 일당독재저지 공동투쟁기구결성을 위한 민주진영시국대책회의」를 평민ㆍ민주(가칭)양당과 국민연합측에 제의할 예정이다. 한편 울산 창원등 14개지역 1백25개 노조의 전ㆍ현직위원장 91명은 12일 「민중의 정당건설을 위한 전국노동자추진위 준비모임」을 결성하고 민연추에 참여할 것을 선언했다.
  • 한ㆍ소 접근에 조총련 분열 조짐/상공인중심조직 크게 동요

    ◎강도높은 사상교육 “역작용” 초래/현직 부의장이 한덕수 발언 비판하기도/북한에 육친 「인질」… 정신적 갈등 한국과 소련의 급속한 접근에 자극받아 조총련이 또다시 분열의 조짐을 보이고 있다. 북한과는 달리 정보의 개방사회인 일본에 거주하고 있는 조총련계 상공인들은 북한의 종주국이었던 소련이 최근 어떤 자세로 한국과의 접촉을 심화 시키고 있는가에 관심을 모으고 있으며 서너명만 모이면 반드시라고 할 정도로 루마니아 사태 및 소련의 동향을 화제에 올리고 있다. 이같은 상황에서 북한은 조총련 내부의 동요를 막기 위해 김일성부자에 대한 사상 및 충성교육의 강도를 높이고 있으나 오히려 이것이 역작용을 일으켜 「통일의 최대 장애는 김일성왕조」라는 사실을 더욱 깊게 인식시켜 주고 있다. 북한이 올들어 조총련의 철저한 사상ㆍ충성 교육을 위해 내린 지시와 소집한 회의는 무수히 많다. ○소 태도에 깊은 관심 1월 1일 김일성 신년사 및 조총련 전국위원장 회의의장 한덕수 앞으로 보낸 김일성의 축전,1월5일부터 9일까지 개최된 노동당 중앙위 6기 7차 전체회의,1월12일 조총련 열성자대회,1월17일 조총련 전국위원장회의,1월19일 전국정치부장회의,2월7일 조총련 관동지구 조직부장회의,2월9일 전국선전부장회의 등이 그것이다. 한일 공안당국은 이외에도 이른바 「학습조」 조장회의가 매일 장소를 바꿔가며 개최되고 있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이들 회의가 김일성부자에 대한 충성심 교육을 주내용으로 하고 있음은 물론이다. 그러나 마찰은 도처에서 일어나고 있다. 지난 1월17일 개최됐던 조총련 전국위원장회의가 그 대표적인 예이다. 조총련 조직에서의 인사말이나 보고의 경우 미리 작성된 원고를 기계적으로 읽는 것이 상례이나 이날 한덕수의장은 이같은 관행에서 일탈,엉뚱한 행동을 했다. 한은 원고를 읽다말고 느닷없이 재일조총련계 상공인들을 비판하기 시작한 것이다. ○「루마니아」 화제로 『상공회 및 상공인들이 지난해 평양에서 개최됐던 제13회 세계청소년학생축전 때 비협조적 자세를 보인 것은 극히 유감스러운 일』이라고 트집을 잡았다. 바로 이때 이변이 일어났다.조총련중앙본부 선전국장을 역임,현재 부의장직에 있는 오형진이 벌떡 일어나 대든것. 『의장,원고대로 읽으시오,원고를. 쓸데없는 말을 하면 안돼요. 상공회와 상공인은 제13회 세계청년학생축전을 개최할 때 적극적으로 협력했소. 이런 애국적인 상공인을 비판한다는 것은 말도 안되는 소리요』 이같은 오의 발언에 이어 다수의 상공회의 간부들도 일제히 한의장의 발언을 비난하고 나서 전국위원장회의는 한때 혼란에 빠졌다. ○연일 「학습조」 회의 조총련조직은 소련ㆍ동구제국의 공산당 일당독재와 궤를 같이 하기 때문에 의장의 발언을 비판한다는 것은 조직으로부터의 추방 또는 제명처분에 상당하는 중벌행위에 속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벌행위를 저지른 당사자가 현직 부의장이라는 사실을 도쿄의 관계기관은 의미심장한 것으로 받아들인다. 오형진은 김정일직계로 알려져 있다. 즉 오는 일본 전국에 널려있는 조총련조직내 김정일파의 최고 정점에 서있는 인물로 김일성이 루마니아의 차우셰스쿠처럼 처형된다면 모를까,평온무사하게 은퇴하게 된다면 조총련 조직의 의장자리를 떠맡을 수 있는 최근거리에 있는 측근이다. 현재 부의장으로는 허종만도 있으나 그는 오와는 경쟁상대가 되지 않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오형진의 이같은 교만한 자세는 김정일의 후광을 빌린 행동으로서 장차 조총련조직의 정점에 설 사람은 자신이라는 사실을 시위하기 위한 의도적 제스처였던 것으로 관계자들은 분석한다. ○곳곳서 마찰 빚어 북한은 올들어 김일성 본인 및 권력 세습후계자인 김정일에 대해 어떤 일이 있더라도 충성을 다한다는 사상교육을 철저히 행하고 있으며 조총련 조직에 대해서도 사상교육의 강화를 지시하고 있다. 그러나 조총련계 상공인들은 이제까지는 육친이 북한에 「인질」로 잡혀 있다는 사실 하나로 발목이 잡혀 북한과 유대관계를 맺어왔으나 최근들어 한국과 소련이 수교관계에까지 이른데다 동구 여러나라에서 일어난 사상적 격동에 자극받아 어느 쪽을 선택할 것인가를 놓고 크게 동요하고 있는 것으로 관계자들은 분석하고 있다.〈도쿄=강수웅특파원〉
  • “위대한 몽골리안”… 칭기즈칸 복권운동 한창(깨어나는 몽고:2)

    ◎민족혼 “재점화”/민주화 바람 타고 “민족적 영웅” 추앙/“침략자”로 격하 70년만에 명예회복/배지ㆍ달력등 기념품 불티…묘찾기 작업 본격화 영하 15도에 매서운 한풍까지 심하게 몰아치던 4월1일 정오 울란바토르 시중심가에 자리한 야달트(승리) 극장앞. 약 5백명의 군중이 마이크 앞에서 외치는 연사들의 연설 내용을 듣고 있었다. ○행사장마다 추모행렬 군중이나 연사 모두가 추위에 아랑곳 않는 진지한 표정들이었다. 『칭기즈칸은 우리 몽고민족의 위대한 영웅입니다. 2백만 몽고 인민공화국 국민은 물론 중국의 내몽고나 다른 지역에 흩어져 살고 있는 우리 민족들은 이제 칭기즈칸의 정신밑에 하나로 뭉쳐야 할 때가 왔습니다』 연사의 말이 끝나자 우뢰같은 박수소리가 터져 나온다. 또 다른 연사가 등장. 『늑대를 잡으려고 초원 한 곳에 불을 질렀으나 그 늑대는 다른 넓은 초원으로 달아 났습니다. 소련은 칭기즈칸 정신을 말살시키려고 그에 관한 책이나 사적을 없애고 한낱 전쟁 미치광이로만 선전했습니다. 그렇지만 그의 정신,몽고인의민족적 자긍심은 초원을 끝없이 달리는 늑대처럼 굳세고 힘차게 우리 가슴속에 살아 전해 내려오고 있습니다. 칭기즈칸을 위해 만세를 부릅시다』 『칭기스칸 만세!』 『만세!』 ○“칭기즈칸 정신” 강조 곧이어 쇼열엘덴(발전하는 사회)이란 록그룹이 등장,칭기즈칸을 칭송하는 노래를 부르자 군중들도 모두 따라 합창을 했다. 추운 날씨속에 계속된 이 집회는 「칭기즈칸 추모사업회」 발족을 위한 것이었다. 연단앞에 걸린 거대한 그의 초상화가 후손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날 집회는 몽고의 저명작가 도초도르치를 비롯,시인ㆍ언론인ㆍ학자 등 지식인들이 주관했다. 흔히 외국인들이 「칭기즈칸」(Khan)이라고 부르는데 대해 몽고 사람들은 틀린 발음이며 「칭기즈한」(한)이 정확하다고 했다. 칭기즈는 몽고말로 강성하다라는 뜻이며 한은 왕ㆍ지배자를 가리킨다고 풀이했다. 요즘 몽고인들의 칭기즈칸 추모 열풍은 대단하다. 공산당 일당 독재를 폐기시킨 민주화가 민족혼을 불러일으켜 그들의 국민적 영웅인 칭기즈칸의 복권운동으로 점화된 것이다.○관련서적ㆍ사적 없애 추모사업회를 이끄는 작가 도초도르치는 『칭기즈칸의 대형 동상ㆍ기념탑등을 건립하고 그의 무덤을 찾아내 기념박물관을 세우겠다』고 말하고 있다. 울란바토르에 두 곳 뿐인 관광호텔과 단 하나의 외국인 백화점에선 칭기즈칸 배지ㆍ달력 등 그에 관한 기념품이 날개 돋친 듯 팔리고 있다. 지난 1921년 몽고가 소련의 지원으로 공산혁명에 성공한 이후 칭기즈칸은 철저히 무시당해 왔다. 몽고에 지배적인 영향력을 행사해 온 소련으로선 역사적으로 칭기즈칸에 대해 매우 굴욕적인 기억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러시아 최초의 국가인 키예프러시아를 1240년 멸망시킨 것이 칭기즈칸의 아들 오고타이이며 이들 몽고 기병은 불과 일주일만의 맹공으로 모스크바를 함락시키고 킵차크한국을 세워 무려 2백40년 동안이나 러시아인들을 노예로 부렸던 것이다. 몽고의 지배로 러시아는 서구의 르네상스ㆍ종교개혁 등 근대화에 필요했던 시대의 흐름에서 완전히 격리된 채 정체의 역사를 밟을 수 밖에 없었다. 울란바토르의 몽고 국립역사박물관장 다바삼부는 『칭기즈칸을 극도로 혐오한 스탈린의 영향을 받아 몽고의 민족 영웅인 칭기즈칸이 지나치게 천대받아 왔다』면서 앞으로 그의 유물과 유적을 모으고 보관하는데 여생을 보내겠다고 강조했다. 이 역사 박물관에는 3층 맨구석에 칭기즈칸의 초상화 하나만 덩그러니 걸려 있을 뿐 더 이상 그에 관한 흔적은 찾을 수 없었다. ○동상ㆍ기념탑 건립계획 박물관 안내를 맡았던 튤스양에 따르면 몽고라는 표기도 현재 중국ㆍ한국ㆍ일본 등 한자권의 국가에서만 쓸 뿐 다른 곳에선 몽골(Mongolㆍ용감하다는 뜻)로 부른다고 했다. 몽고의 정식 국명도 몽골인민 공화국이다. 몽고란 명칭은 원래 한족 중심의 중국인들이 주변 이민족을 몽매한 야만인라고 경멸하는 뜻에서 붙인 것이라 했다. 또 몽골은 칭기즈칸이 속했던 부족 이름이기도 하다. 어렸을 때 테무친(철목진)으로 불렸던 그가 타타르,나이만 등 다른 부족을 평정,대초원에 제국을 건설함으로써 몽골이란 말이 국명으로 채택됐다는 것이다. ○초상하나만 덩그렇게 튤스양은 또 역사상 모스크바를 점령한 사람은 칭기즈칸과 나폴레옹 두 명 뿐이나 나폴레옹은 그나마 며칠 후 퇴각하면서 공격을 받았기 때문에 비교가 안된다며 칭기즈칸을 추켜세웠다. 아시아에서 유럽에 거쳐 대제국 건설의 기초를 다진 칭기즈칸은 1227년 여름 서하를 정벌하고 돌아오는 길에 현재 중국의 감숙성 진주 육반산에 갔다가 그해 9월 65세로 풍운 가득찬 생애를 마감했다. 그의 시신은 고향땅으로 옮겨져 울란바토르 동북쪽 케룰렌강 주변에 묻혀졌다고 한다. 때문에 최근 몽고에선 그의 묘를 찾는 작업이 진행되고 있으나 정확한 지점이 어디인가는 아직 어림조차 되지 않고 있다. 지난해 발간된 몽골리아지는 「칭기즈칸의 무덤은 어디인가?」란 제목의 기사에서 몽고인들이 과거 봉분의 풍습이 없었던 데다 후세 이민족이 시신을 훼손할 것을 우려,칭기즈칸의 묘지 소재를 비밀에 부쳤다고 밝히고 있다. 이 잡지는 당시 칭기즈칸이 묻힌 자리를 1천마리의 말이 밟아 흔적을 없앴으며 그자리에 풀이 무성하게 자랄 때까지 3년동안 몽고기병들이 파수를 보았다고 했다. 또 묘지 넓이는 직경이 30리에 이르고 귀중한 부장품이 엄청나게 많이 묻혀 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칭기즈칸」 노래 유행 칭기즈칸의 아들과 동생들은 몽고대제국을 킵차크ㆍ오고타이ㆍ차가타이ㆍ일한국등으로 나눠 통치했으며 손자인 쿠빌라이는 원나라를 세워 북경을 수도로 삼았다. 그러나 이 방대한 대제국도 원의 멸망과 함께 붕괴되기 시작한다. 『용서해주세요 칭기즈칸/우리는 당신의 어두운 면만을 얘기했답니다/그러나 앞으로 우리는 당신을 민족최고의 영웅으로 받들겠습니다』 최근 유행하는 칭기즈칸 노래의 내용이다. 비록 소련의 입김에 의한 것이긴 하지만 조국에서 조차 제국주의자ㆍ전쟁광으로 낙인 찍혀 멸시 당했던 칭기즈칸. ○낙후 몽고에 새 활력 그러나 초원을 휩쓸고 있는 민주개혁의 열풍으로 다시 몽고 국민들의 우상이 된 그가 공산주의로 찌들리고 낙후된 이 나라의 내일에 어떤 형태든 활력을 불어 넣을 것이란 점을 부인할 수 없다는 느낌이 들었다.〈울란바토르=우홍제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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