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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 7개야당 연정 합의/대표자 회의/안보·외교 등 정책협의 착수

    ◎자민당의 38년 1당집권 막내려/총리 하타­호소카와 유력 【도쿄=이창순특파원】 일본의 비자민 7개야당이 연립정부 구성에 합의함으로써 38년간에 걸친 자민당 통치가 막을 내리고 비자민연립정권의 탄생이 확실해졌다. 이들 신당그룹은 28일하오 사회·신생·공명·민사·사민련 등 비자민 5당과 7당 서기장급 대표자 회의를 갖고 비자민 연립정권 수립을 추진키로 결정하는 한편 29일에 7당 당수회담을 개최하기로 합의했다. 당수들은 회담을 마친후 연립정부의 기본정책등을 발표할 예정이다. 한편 연립정권 수립의 열쇠를 쥐고 있는 일본신당의 호소가와 모리히로(세천호희)대표와 신당 사키가케(선구)의 다케무라 마사요시(무촌정의)대표는 이날상오 미쓰즈카 히로시(삼총박)자민당 정조회장과 회담을 갖고 두 신당은 비자민 5당과 정권협의에 들어갈 것임을 공식 통고했다. 호소가와 대표는 미쓰즈카 정조회장과 회담을 끝낸 뒤 『자민당의 정치개혁안과 관련한 제안은 매우 구체성이 결여돼 있다.이제부터는 자민당과 비자민 7당과의관계가 된다』고 말했다. 이에앞서 일본신당과 신당사키가케는 27일 자민당의 정치개혁안 수용에 대해 불충분하다는 결론을 내리고 사회,신생당 등 비자민 5개당과 외교·안보·자위대등 중요정책에 합의했다. 비자민 5당과 신당및 사키가케 등 7당은 이날하오 처음으로 서기장급 고위대표회담을 갖고 정치개혁안에 관해 확인작업을 벌인뒤 이날밤 정책실무회담을 열어 ▲미일관계및 한반도문제등 외교 ▲안보 ▲방위 ▲원자력등 기본정책과 ▲예산편성방침 ▲경기대책 ▲행정개혁 ▲쌀개방문제 ▲유엔평화유지활동 등 현안에 관해 합의를 도출했다. 비자민 7당은 헌법중시를 전면에 내세우고 외교등 기본정책에 관해서는 현 정권의 방침을 그대로 계승하며 각종 현안 역시 자민당정권의 해석을 존중한다는 기본원칙에 합의했다. 8월12일로 예정된 총리선거에서는 신생당의 하타 쓰토무(우전자)당수의 당선이 유력하나 호소카와 신당대표도 거론되고 있다. 비자민 7당의 연립정권수립이 성공하면 이는 지난 55년의 보수 대통합으로 탄생한 자민당 38년의 일당 지배의 종언을 의미하게 된다.
  • 핵문제 국제적 압력의식/“전투태세완비” 연일 강조

    【내외】 북한이 최근 「북방에서의 자위」와 전투태세 완비를 연일 강조하고 나서 주목되고 있다. 북한은 지난 11일 평양방송 논설을 통해 전군의 주체사상화로 모든 군인들을 「일당백의 전사」로 만들 것을 강조하면서 모든 무기의 자체생산·보장 및 후방강화를 촉구한데 이어 15일부터 19일까지 평양방송의 논설·대담프로에서 자위사상의 본질에 대해 여러차례에 걸쳐 반복 소개했다. 북한은 이들 프로에서 노동당이 제시하고 있는 「혁명적인 자위사상」에는 ▲국방건설과 군사활동의 궁극적 목적은 자기나라를 옹호보위하는 것 ▲자기 나라의 옹호보위는 자체의 방위력에 의거할 것 ▲국방건설과 군사활동에 있어 모든 문제는 자기 나라의 실정에 맞게 풀어나갈 것 등 3가지의 본질적 내용이 담겨져 있다고 주장하면서 자력에 의한 강력한 국방건설을 강조했다. 북한이 이처럼 「국방에서의 자위」를 강도높게 강조하고 있는 것은 최근 핵문제에 있어 「형제국가」인 중국마저 중립적 입장을 취하는 등 외부 지지세력이 전무한 상황에서 주민들에게 현실을냉철하게 인식시키고 앞으로 예견되는 국제적인 경제봉쇄나 군사적 압력에 일심단결,대처해 나갈 것을 독려하기 위한 것으로 보여진다.
  • “클린턴방한 북핵개발에 경고효과”/「서울의 1박2일」세계언론 평가

    ◎판문점방문,대한방위공약 재확인/미사일수출 중국에도 우려감 표현 세계의 유력 언론들은 주요 기사와 사설등을 통해 지난 주말 클린턴 미대통령의 방한과 연쇄 한미정상회담이 성과가 있었다고 평가했다. 특히 북한의 핵개발에 대한 경고효과는 상당했다고 풀이했다. 그런 가운데 일본 아사히신문이 발행하는 유력주간지 「아에라」는 최근호에서 김영삼대통령을 커버스토리로해 「한국의 무혈혁명」을 소개했다. 다음은 해외 언론들의 클린턴대통령 방한및 김대통령관련 보도내용 일부를 발췌한 것. 뉴욕 타임스=▲『한반도 내지 이 지역 전체에 북한의 핵무기계획보다 더 어두운 공포의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는 것도 없다』고 선언함으로써 클린턴대통령은 북한공산정부로 하여금 그 핵무기계획을 포기케하려는 압력을 가중시켰다.(11일자,1면) ▲클린턴대통령은 판문점을 방문하고 주한미군 유지공약을 재확인함으로써 한국인들을 안심시키는 한편 대북한 외교를 계속할 시간을 벌고 있다.(12일자,사설) 워싱턴 포스트=▲클린턴대통령은 한국전쟁이 종식된이래 40년간의 전임자들이 맡았던 역할로 시야를 돌리고 있다.즉 공산북한과 대치하고 있는 고독한 자유의 선구자를 지키는 강력한 파수꾼.(11일자,19면) ▲클린턴은 위험을 무릅쓰고 그 어느 미국대통령보다 북한에 근접한 곳으로 나아가 북한이 핵무기를 사용한다면 『이는 북한의 마지막이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12일자,9면) LA타임스=▲클린턴대통령의 극동여행은 경제등 국내문제에서의 우유부단을 외교쟁점을 이용,얼버무리려하고 있다는 일부 비난을 받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클린턴은 합리적으로 잘 행동했다.(12일자,사설) 르 피가로=▲아시아지역에서의 미국의 군사적 역할을 재확인하면서 클린턴대통령은 핵무기확산뿐 아니라 장거리미사일의 확산도 심각한 국제적 위협이 된다며 미사일수출을 계속하고 있는 중국과 북한의 태도에 대해 우려를 표현했다.(12일자,4면) 더 스탠더드=▲비록 운동권 학생들의 폭력시위가 있었지만 클린턴의 방한성과는 긴밀한 한미관계를 열망하는 사람들에게는 기대이상이었음이 의심의 여지가 없다.(12일자,사설) 인민일보=▲한미정상회담에서 양국 원수는 한반도 긴장완화를 위해 함께 노력하는 것에 의견일치를 보았으며 미국은 한반도문제가 남북한 쌍방의 협상에 의해 해결돼야한다는데 지지를 보냈다.(12일자,6면) 아에라=▲일본 정계의 개혁파는 자민당 일당지배로부터의 탈피에 의한 정계정화를 부르짖고 있으나 한국의 김영삼정권은 한발앞서 사실상의 정권교체를 이룩했으며 32년간 계속되어온 군인정권의 묵은 때를 벗기는 정치개혁을 추진하고 있다.김대통령의 심리적 뒷받침이 되고 있는 것은 여론의 압도적 지지이다.(김영삼대통령은 아에라지와의 특별인터뷰에서 박정희·전두환 전대통령에 대해 『개인적으로 연민의 정을 느끼며 인간적으로는 불행한 사람들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다』고 피력.김대통령은 또 자신이 입수한 정보임을 전제,『북한은 아직 핵을 보유하고 있지 않다』며 『그러나 북한이 핵을 제조중인 것은 확실하며 그것이 완성되면 한반도의 7천만 국민은 물론 일본과 중국 나아가서는 전 세계의 위험이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 일 하타파·사회당 등 범야권/총선후 자민배제 연정 합의

    ◎여론조사서 자민지지율 최악 【도쿄=이창순특파원】 일본의 야권이 오는 7월 총선거를 앞두고 집권 자민당의 과반수 획득 저지를 위해 강력한 대항세력을 형성할 움직임을 보여 주목되고 있다. 하타 쓰토무(우전자)신생당 당수는 24일 야마하나 사다오(산화정부)사회당위원장을 비롯,공명·민사당 대표등과 잇따라 회담을 갖고 선거후 비자민 연립정권 수립에 원칙적으로 합의했다. 야당 대표들은 일련의 회담에서 ▲총선거에서 야당 상호간에 선의의 경쟁을 벌여 자민당의 과반수 확보 저지에 전력을 다한다 ▲정치개혁의 청사진 작성과 현정권의 기본정책등을 계승하는 문제에 대해 계속 협의한다 ▲총선거 공고전에 개혁 추진파간의 영수회담을 개최한다는 것 등을 확인했다. 요미우리(독매)신문은 지난 주말 2천1백51명을 대상으로 전화여론조사를 실시한 결과 미야자와 기이치(궁택희일)총리내각에 대한 지지는 한달전보다 15.9%포인트 하락한 10.5%로 지난 91년11월 취임이래 가장 낮았다고 24일 보도했다.반면 미야자와총리를 지지 않는 사람은 19.4%에서78.6%로 급증한 것으로 조사됐다. 또 마이니치(매일)신문이 1천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전화여론조사결과 응답자의 30%가 총선후 자민당을 제외한 신생당 중심의 연립정부가 구성되기를 원했으며 자민당 일당집권에 대한 지지는 5%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 갈리총장 암살모의/미 경찰,6명 검거

    【뉴욕 로이터 AP 연합】 미국 경찰은 24일 부트로스 부트로스 갈리 유엔사무총장과 호스니 무바라크 이집트대통령등을 암살하고 유엔건물 등을 폭파하는 음모를 꾸민 일당 6명을 체포했다고 뉴욕 뉴스데이지가 보도했다.
  • 「선거비용 초과」 첫 수사의뢰/경기도 선관위

    ◎광명 정순주 전국민당 후보 경기도 선관위는 16일 지난 4·23 광명 보궐선거에서 낙선한 국민당의 정순주씨측이 선거운동원 1인당 일당 지급한도액인 7천원의 실비보상액을 초과지급한 사실을 밝혀내고 수원지검에 수사를 의뢰했다. 선관위가 선거가 끝난후 출마 후보자들이 사용한 선거비용에 대한 실사를 통해위법사례를 발견,검찰에 수사를 의뢰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경기도 선관위는 또 광명보선에서 당선한 손학규의원(민자)이 선거운동원에 대한 실비보상기준을 지켰으나 선거비용지출보고서에 일부 지출내용을 누락했다며 손의원의 선거사무장인 최종선씨를 경고조치했다.
  • 제3회 「마약류퇴치대상」 영예의 얼굴들/본상단속부문 이태우

    ◎히로뽕 밀매단 일망타진/상습투약·판매 48명도 검거 지난 90년부터 부산·경남지역의 마약사범 단속을 전담하고 있는 부산지방경찰청 강력수사대에 근무하면서 궂은일은 도맡아하고 있다.마약사범의 주요 근거지인 이지역의 마약범죄발생추이가 줄어들고 있는 것도 지속적인 마약사범 단속활동과 함께 이경장과 같은 악바리 단속원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이경장은 특히 지난해 12월에는 마약사범으로는 처음으로 사형선고를 받았던 히로뽕밀매범 최재도의 아들 최석운이 아버지의 뒤를 이어 히로뽕을 제조한다는 첩보를 입수해 배추장사 부부를 가장해 잠복,미행하는등 끈질긴 공작수사로 일당을 일망타진하고 히로뽕 제조기구 53점과 히로뽕 완제품 3.9㎏,반제품 20.5㎏및 원료 6㎏을 압수하는 개가를 올렸다. 또 올 2월에도 상습적으로 히로뽕을 투약하며 팔아온 일당 7명을 검거한 것을 비롯,지난해 6월부터 지금까지 48명의 히로뽕사범을 붙잡아 45명을 구속하는등 마약사범 검거에 남다른 공을 세웠다. 이와함께 구속된 마약사범과 가족들을 수시로 찾아가 마약의 폐해를 일깨워 줌으로써 재범방지에 노력하고 있다.이밖에도 공항과 세관등 유관기관 직원들과 마약류퇴치를 위한 정보를 교환하는등 단속 뿐만 아니라 예방을 통한 마약류퇴치 활동에 적극 참여하고 있다.
  • 대상 서울지검 마약수사반(인터뷰)

    ◎국제마약조직 공조수사 기틀마련/동남아·홍콩 등서 원료밀반입 차단 최대노력/외국과 정보교환체제 강화… 밀매근거지 발본 『이제 우리의 마약단속기법이나 수사체계도 세계수준에 뒤지지 않는다고 자부하고 있습니다』 「제3회 마약류퇴치대상」에서 영예의 대상을 차지한 서울지검 마약수사반을 총괄하는 정선태검사(37)는 『마약거래가 날로 국제화하고 있는 상황에서 외국수사기관의 도움을 받는 입장에서 철저한 기획수사로 국내에 침투한 국제마약조직의 뿌리를 캐내 국제수사를 유도할정도의 선진수사능력을 갖고있다』고 밝혔다.대한민국이 「마약수출국」이라는 오명에서 벗어나게 된 것도 이같은 단속의지와 노력의 결과라고 설명했다. 지난 89년 발족한 서울지검마약수사반의 활동실적은 짧은 역사에도 불구하고 폭넓고 다양했다.발족직후 서울 강남의 주택가 한복판에서 국내최대 규모인 2백20㎏의 히로뽕을 제조한 「피터팬파」일당을 검거하는 개가를 올렸다. 마약수사반은 이어 재벌2세들과 어울려 아파트 호텔등지를 돌아다니며 히로뽕등을 복용하고 퇴폐행각을 벌여온 전모·허모·노모씨등 인기여배우·모델과 Y백화점사장 김모씨등 부유층을 적발,마약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우는데 크게 기여했다는 평을 받았다. 또 「백두산」·「부활」·「H2O」등 인기헤비메탈그룹과 가수 이현우·신해철·신성우등 10대들의 우상을 대마초 상습흡연 혐의로 적발한 것도 마약수사반의 치밀한 수사결과의 사례로 꼽힌다. 90년 「범죄와의 전쟁」을 계기로 국내 마약밀조조직이 줄어든 대신 국제마약밀조단과 손을 잡는 사례가 급격히 늘어났다고 분석한 정검사는 김포공항의 마약분실등을 통해 세관·안기부등과 협조,동남아·홍콩등지서 밀반입되는 마약원료를 차단하는데 수사력을 총동원했다고 설명했다. 그결과 지난 3월에는 재미교포 폭력조직과 주한미군에 근무했던 전군속이 연계돼 대만산 히로뽕을 대량 밀반입하고 그 대금을 국내에서 돈세탁한 「제임스 김파」일당 9명을 검거했다. 이 사건은 한국수사기관이 미연방수사국(FBI)·대만 수사당국의 협조를 이끌어내 향후 국제마약거래에 대한 공조수사의 기틀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해외수사기관으로부터도 찬사를 받았다. 마약수사반은 이밖에도 ▲지난 2월 지하철역 주변 약국에서 진해거담제류의 환각성약품을 우범청소년층에 팔아온 무자격약사등 5명을 구속하고 ▲수시로 이동이 가능한 초미니 히로뽕 제조공장(포터블공장)조직 「종원파」 16명을 적발했으며 ▲남미 페루등지의 교포잡화상을 통해 원료및 기구를 구입,반제품을 제조한뒤 국내로 밀반입한 「정차선파」 4명을 검거하는등 지난해 6월이후 검거한 마약류사범만도 3백20여명에 이른다. 정검사는 『앞으로 세계주요국가들과의 정보교환체계를 더욱 강화,우리나라가 더이상 마약밀매의 근거지로 활용되지 못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정검사는 이와함께 『최근 무선호출기·카폰과 가스총등 기동성과 무장력을 갖춘 선진국형 마약조직이 주류를 이뤄 적발·검거가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소개하고 『앞으로 무술특기자 양성·전담검사 충원과 몰수된 마약자금을 수사기금으로 활용하는 방안등 제도적 뒷받침도 뒤따라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 아는 독일어는 “망명” 한마디/터키인 비극 다룬 영화 파문

    ◎수용소 전전끝 사망… 정부의 몰이해 고발 외국인에 대한 테러사건이 잇따라 일어나고 있는 독일사회에 최근 독일로 망명을 신청한 터키인의 삶을 주제로 다룬 영화「공포의 어두운 그림자」(원제:DUNKLE SCHATTEN DER ANGST)가 조용하지만 큰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한 개인의 운명과 그를 둘러싼 박애주의와 같은 인간본연의 문제에 대해 매우 진지한 자세로 접근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 영화는 쾌락과 흥미를 위주로 한 오락영화들이 대종을 이루는 최근의 영화풍조에 비춰볼때 시대에 걸맞지 않은 영화인지도 모른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공포의…」가 관심을 모으고 있는 것은 최근 사회문제로 부각된 외국인 배척감정을 주제로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터키에서 청소년기를 보낸 독일의 신예감독 콘스탄틴 슈미트의 데뷔작인 이 영화는 독일말이라곤 ASYL(망명)이란 한마디 밖에 알지 못하는 터키남자 모하메드와 고문의 후유증으로 실어증에 걸린 젊은 터키처녀(그녀는 이름조차 없다)를 남녀 주인공으로 내세워 망명신청자들에 대한 독일당국의 몰이해와 비인간적 처우를 고발하고 있다. 「공포의…」는 독일망명법의 개정 여부를 둘러싼 논란이 한창이던 92년 봄의 베를린을 무대로 하고 있다.모하메드와 젊은 처녀는 다른 몇명의 터키인들과 함께 독일로 불법입국하려다가 경찰에 체포된다.이들은 경찰서 유치장과 망명신청자 수용소,정신병원 등을 전전하면서 하나의 인간으로서 대우받지 못하고 망명신청자란 딱지가 붙은 비인격화한 물체로 취급받는다.이들의 눈에 비친 독일은 쌀쌀하고 배타적인 나라다.독일은 망명신청자들을 위해 최소한의 시간도 어떤 장소도 제공하지 않는다. 물론 이들을 도우려는 손길도 많이 있기는 하다.그러나 이는 독일국민 개개인의 인도적 차원이지 당국의 배려는 아니다.그리고 독일사회에 융화하려는 이들의 노력은 끝내 거부되고 만다. 실어증에 걸린 무명처녀의 마음의 병을 고치려는 한 여의사의 정성어린 노력도 수포로 돌아가고 모하메드는『독일에는 관료주의와 난민수용소,정신병원밖에 없단 말인가』라는 절규를 남기고 숨을 거둔다. 영화「공포의…」의 장면은 대체로 음울한 분위기를 전달하고 있다.그러나 이 영화가 망명신청자들의 삶을 가련하게만 묘사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이 영화는 터키인 망명신청자들의 삶이 결코 터키인들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니며 어느 누구든 상황이 뒤바뀌면 그같은 처지에 놓일 수 있는 가능성을 안고 있다고 강하게 암시하고 있다. 슈미트 감독은 결국 이 영화를 통해 외국인 배척감정이 기승을 부리는 독일사회에 인간성 회복에 대한 자신의 절규를 전하고 있는 것이다.
  • “정치불신 불식” 일도 개혁기치/선거제도개편논의 배경

    ◎중원 소선거제 놓고 여야 대립 일본에서도 요즘 정치개혁논의가 활발하다.정치자금스캔들로 얼룩진 일본정계 재편의 가능성을 내재하고 있는 이번 정치개혁논의의 최대 초점은 중의원선거제도 개혁이다. 선거제도개혁의 기본 방향은 중의원의 중선거구제를 소선거구제로 바꾸는 것이다.현행 중선거구제가 돈이 많이 들고 정치부패의 근원이라는 비난 때문이다. 이같은 비난을 배경으로한 여·야의 「정치개혁안」은 소선거구제를 기본 축으로 하고 있다.그러나 접근방법은 다르다.집권 자민당은 중의원 5백명중 3백명은 소선거구에서,나머지 2백명은 각당의 득표수에 따라 배분하는 이른바 「소선거구비례대표 병립제」를 중심으로 타협안을 구상하고 있다. 가지야마자민당간사장은 각파벌과 긴밀한 접촉을 하며 이같은 구상을 본격화하고 있다.미야자와총리도 파벌대표들을 만나 개혁에 대한 협조를 요청하고 있다.그러나 자민당 중의원을 대상으로 2일 실시한 앙케이트조사결과 60%는 타협안 구상에 지지를 나타냈으나 40%는 당초 제안한 단순소선거구제와 현행 중선거구제를 선호,당내 정치개혁파와 신중파간의 대립이 심각한 것으로 나타났다. 미야자와총리는 이같은 당내 대립을 조정하고 야당과 개혁안을 타협하여야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사회당,공명당등 6개 야당은 2일 소선거구에서 2백75명,비례대표에서 2백25명을 뽑는 「소선거구비례대표 연용제」를 타협안으로 정식 제시했다.그러나 「야당안」은 소선거구에서 많이 당선된 당은 비례대표에서 불리하게 되어 있고 비례대표수에서도 차이가 있기때문에 자민당은 난색을 보이고 있다. 야당은 자민당의 「병립제」에 약간 유연한 자세를 보이고 있으나 어느선에서 타협될수 있을지는 아직 불투명하다.더욱이 미야자와총리는 20일 끝나는 이번 국회에서의 개혁안 통과에 강한 의욕을 보이고 있지만 실현될지는 미지수이다. 그러나 국민의 정치불신을 불식시키고 새로운 국제정세변화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정치구조가 바뀌어야 한다는데는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고 있다.미래학자 앨빈 토플러는 전후 자민당 일당지배는 냉전형 정치구조였기 때문에 냉전이 끝난 지금 일본정치구조도 바뀌지 않을 수 없다고 예측한다.
  • 점령지역봉쇄 경제손실 막대/이스라엘

    ◎팔인 12만명 실직… 구인난 심각/상품판매 줄어 업계선 2중고 이스라엘 병사의 잇단 피살에 대한 보복으로 이스라엘이 지난 3월말 단행한 웨스트뱅크와 가자지구 등의 점령지 봉쇄조치로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 양측 모두가 막대한 타격을 받고 있다.유혈충돌은 눈에 띠게 감소했지만 팔레스타인인들이 입게되는 경제적인 손실은 엄청나다. ○통행증 없어 애태워 우선 이스라엘로 들어가 막일로 벌어먹던 12만여명이 졸지에 일자리를 잃고 실업자가 됐다.무단통행할 경우 체포돼 1천2백달러의 벌금을 물어야하니 들어갈 엄두조차 내지 못한다.이 때문에 평소 40%정도였던 점령지내 팔레스타인인의 실업률이 80%이상으로 치솟았다.예루살렘에 내다팔기 위해 재배한 야채와 과일이 썩어가도 통행증이 없어 발만 동동구르기 일쑤다.점령지내에서의 경제적 손실만도 하루 30여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문제가 심각해지면서 팔레스타인인들의 적대감이 더욱 고조되자 이스라엘정부는 최근 25세이상 기혼자 2만여명에 대해 이스라엘내 취업을 허용,통행증을발급했다.또 점령지내에 약5백80억원을 투자,1만5천여명분의 일자리를 만들 계획이나 불충분하기는 여전하다. ○농업·건설업은 마비 이스라엘편에서도 봉쇄조치후 팔레스타인인들의 상품구입 감소로 지금까지 수천억원의 손실을 보고 있다.팔레스타인인들을 고용해 왔던 농업 건설업 등이 거의 마비상태에 빠진 것은 더욱 심각한 문제다. 팔레스타인인들이 이스라엘내 노동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전체적으로 6%에 불과하지만 건설노무자의 50%,농사일손의 60%이상을 차지하고 있다.이들의 임금은 이스라엘 법정 최저임금(하루 20달러)에도 크게 못미치는 일당 9달러(약7천원)수준.유태인노동자에 비해 절반도 채 못받고 있으나 작업성과는 유태인에 비해 훨씬 높다.반면 유태인들은 실업률이 11%나 되지만 힘들고 지저분한 일은 거들떠보지도 않은 채 실업수당에 의존하며 살아가고 있다 ○근면회복운동 벌여 일이 이쯤 되다보니 이스라엘정부는 태국 폴란드 등 저임 외국인노동자를 들여오는 방안을 검토하는 한편 소매를 걷어붙이고 사막을 일궈 옥토를 만들었던 건국당시 유태인의 근면성 회복운동을 벌이고 있다.이와함께 35세이하 무직자에 대해서는 정부가 추천하는 일자리를 거부할 경우 실업수당 혜택을 박탈하는 내용의 입법도 추진중이다. ○구소귀국자도 골치 팔레스타인인 문제로 골치를 앓고 있는 라빈총리는 이스라엘국민의 나태해짐을 개탄하고 있다.그러나 국민들의 반응은 곱지만은 않다.특히 게으름뱅이로 불리고 있는 구소련으로부터 이민온 석·박사학위 소지의 고학력 유태인실업자들은 『일하기가 싫어서가 아니라 습득한 학식과 기술을 써먹을 일자리가 없기 때문』이라고 반발하고 있다.
  • 39세 “정의파” 홍준표검사/88년 전기환씨 구속시켜 광주좌천

    ◎외압속 국제pj파 32명 일망타진/타협모르는 “외곬”… 박철언수감 매듭 「6공의 황태자」 박철언의원의 팔목에 쇠고랑을 채운 서울지검 홍준표검사(39)가 또다시 화제의 인물로 부상하고 있다. 그는 새 정부 출범이후 최대의 사건인 정덕진사건을 맡아 슬롯머신에 얽힌 난마같은 비리를 파헤치고 지금까지 어느누구도 손대지 못했던 정씨와 엄삼탁병무청장을 철창에 보낸데 이어 박의원을 구속함으로써 일약 「명검사」의 반열에 올라서게 된 것이다. 그러나 이같이 화려한 명성뒤에 가려져있는 그의 고뇌와 외로움을 아는 사람은 적다. 그는 지금 눈에 보이지않는 질시와 모함과 외압을 검찰 내부에서는 물론 밖으로부터 끊임없이 받으며 힘겨운 길을 걸어가고 있다. 홍검사는 54년 경남 창녕 태생으로 대구 영남고교를 나와 고려대 법대를 졸업하고 82년 제24회 사법시험에 합격,사법연수원을 거쳐 85년 청주지검 검사로 첫 발을 내디뎠다. 그의 좌우명은 「불의에 타협하지 않고 꼿꼿하게 수사검사로서의 일생을 마친다」는 것이었다.실제로 그는 5·6공시절 누구나 가기를 원했던 공안부에 갈 생각도 않았고 끌어 주는 사람도 없었다. 그러나 수사검사로서의 그의 성과는 88년 서울지검 남부지청으로 전보돼 근무할 당시 인지수사를 통해 전두환 전대통령의 형 기환씨를 구속,「5공비리」 수사의 발단을 제공하면서 빛을 발한다.전전대통령의 갓끈이 떨어졌어도 영향력이 대단할때라 검찰수뇌부까지도 그의 저돌적 수사태도를 질책했다는 후문이다. 이러한 그의 노력은 그뒤 별 평가를 받지 못했다.혼신의 힘을 기울여 대어를 낚았음에도 오히려 그다음 인사에서는 광주지검으로 좌천(?)당하는 불운을 겪었다. 그렇지만 수사에 대한 그의 열정은 식지않았다.한번 검찰조직에 몸을 담은 이상 사회의 대표적 비리를 자기 손으로 반드시 뿌리뽑겠다는 야심을 키워 나갔다. 그에게 기회가 주어졌다.광주지역에서 가장 큰 폭력조직을 거느리고 있던 여운환씨(39·구속중)의 비위사실에 대한 수사를 맡아 몇달만인 지난해 여씨 일당 32명을 모조리 구속했다.아이러니컬하게도 그와 여씨는 같은 아파트에 사는 동갑네기였고아이들끼리는 동네 친구였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또한 여씨를 구속할 당시 경찰 고위층을 비롯한 지역 유지들의 외압이 대단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같은 그의 강인한 의지는 마침내 큰 일을 해내고 말았다.그동안 서울지검은 물론 전국 검찰에서 눈독을 잔뜩 들였던 슬롯머신업계의 대부 정씨에 대한 수사에 착수,구속하기에 이르른 것이다.검찰내부에서도 이 대목은 인정,그가 아니라면 아무도 엄두를 못냈을 것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그는 초임검사시절부터 슬롯머신비리에 관심을 가져왔고 이분야에 대한 자료와 정보를 꾸준히 수집해온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정씨 사건은 날이 갈수록 확대돼 엄삼탁전병무청장과 박철언의원등 6공의 실세 뿐아니라 검찰내부의 비호세력으로까지 수사를 확대케 한 장본인이 되고 말았다.그러나 배짱 두둑한 홍검사도 검찰자체에까지 수사가 불가피해진 것을 민망해 한다.선배 또는 동료들을 수사하지 않으면 안되는 인간적인 괴로움을 토로하는 그의 모습에서 의로운 길을 걷는 사람의 또다른 아픔을 가슴으로 느끼게한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번뇌가 밝은 사회를 바라는 많은 사람들의 성원속에 승화되리라는 굳은 신념을 갖고 있다.
  • 정계­검찰유력자와 “검은 교분”/빠찡꼬대부 정덕진은 누구

    ◎재산 수천억 추정… 현금동원 능력 “재벌”/폭력배사건 배후인물 “단골”… 손 못대 탈세및 재산해외도피 혐의등으로 3일 검찰에 연행돼 조사를 받고 있는 정덕진씨(53)는 자타가 인정하는 국내 슬롯머신(일명 빠찡꼬)업계의 대부로 통한다. 1급호텔인 부산로얄관광호텔과 신신관광호텔·서울희전관광호텔 등을 소유하고 있는등 겉으로 드러난 재산규모만도 수백억원대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그러나 다른 사람명의로 분산·위장 소유하고 있는 호텔빠찡꼬 및 카지노 지분등까지 합하면 실제 정씨의 재산은 수천억원대가 넘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특히 그는 「현금거래」가 필수적일 수밖에 없는 호텔업과 빠찡꼬를 운영하고 있어 현금동원능력은 웬만한 재벌총수를 능가한다는 말을 들어왔다. 지난 87년과 88년 국세청이 발표한 고액납세자 가운데 각각 46위와 39위를 차지,엄청난 재산규모에 대해서는 이미 「공인」까지 받기도 했다. 정씨는 이같은 재산을 배경으로 조직폭력배들에게 자금을 대주는등 「막후」의 실력자로 군림해왔으며 뛰어난 사교술로 정계·안기부·검찰등 사회각계의 유력인사등과 남다른 교분을 맺으면서 비호를 받아온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때문에 정씨는 그동안 빠찡꼬지분을 둘러싼 폭력배들간의 싸움이 있을 때마다 배후인물로 지목됐지만 한차례도 법망에 걸려들지 않았으며 폭력배의 대명사인 「서방파」두목 김태촌(구속중)등도 함부로 고개를 들지 못할정도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실제 김태촌일당의 제주 KAL호텔 빠찡꼬지분을 둘러 싼 강탈사건이 터졌을때 정씨가 배후인물로 공공연히 거명됐지만 검찰의 수사손길은 끝내 미치지 못했었다. 정씨는 함남 북청출신으로 6·25때 가족들과 함께 월남했으나 부친이 사업에 실패,가족이 뿔뿔히 흩어져 고아원 생활을 하면서 「밤의 세계」에 발을 디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 당시 그는 서울 종로 단성사부근에서 암표상을 하면서 돈을 모았고 종로일대를 주름잡던 주먹 유지광씨등과도 인연을 맺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정씨가 빠찡꼬업계에 본격적으로 투신한 시점은 지난 60년대 후반 현 D대학 교수인 Y모씨와 만나면서부터라고. 정씨는 당시 전자기계 제조회사를 경영하고 있던 Y씨가 개발한 전자오락기계를 공급받아 전자오락실에 손을 댄뒤 Y씨가 공부를 위해 사업에서 손을 떼자 전자오락기계 전국판매권을 넘겨받으면서 치부,빠찡꼬업계로 진출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정씨는 이후 조직폭력배들과 공생하면서 초기단계에 있던 국내 빠찡꼬업계를 점차 장악했으며 보스기질과 사교술로 사업터전을 계속 확장해 온 것으로 검찰은 보고 있다. 정씨와 함께 검찰의 추적을 받고 있는 형 덕중씨는 강원도도의회 부의장을 맡고 있으며 동생 덕일씨도 서울 뉴스타호텔대표로 활동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 수십억대 히로뽕밀매/일당 7명 영장

    【대구=남윤호기자】 대구 북부경찰서는 29일 대구지역 히로뽕 판매책 손원식씨(35·경북 칠곡군 약목면 복성리 1110)등 5명과 부산 공급책 양현우씨(32·부산시 부산진구 당감3동 633의15)등 2명등 모두 7명을 붙잡아 향정신성의약품관리법위반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경찰은 이들이 갖고 있던 히로뽕 2백9g(시가 6억원상당)과 휴대폰·주사기등 30여점을 증거물로 압수했다. 손씨등은 지난 28일 부산서 양씨로부터 히로뽕 53g(시가 1억6천만원)을 넘겨받아 이날 하오11시40분쯤 대구시 동구 효목동 갈대식당 앞길에서 이상수씨(40)등 투약자 10여명에게 0.03g당 10만원에 판매하는등 지난해 3월부터 지금까지 1년여동안히로뽕 8백g가량(시가 24억원상당)을 판매해 왔다는 것이다.
  • 벽지(알고 삽시다)

    ◎내수성·방염처리 등 고려해야/고급화 추세… 가격 평당 8백∼2만4천원 “천차만별” 봄 이사철을 맞아 집안 도배를 새로 하는 가정이 적지않다.도배지를 고르려 지물포에 들러본 사람들은 고급스런 벽지에 새삼 놀라게 된다.실내장식에 대한 관심과 해외여행 개방의 영향 등으로 몇년전부터 벽지는 실내장식의 중요한 요소로 부각되며 전체적으로 고급화되어가는 추세다.단조로운 단색위주나 요란한 색상보다는 대담한 색상임에도 은은한 파스텔조로 한껏 세련미를 더한 벽지들이 많이 선보이고 있다.몇년전 유행하던 요철형의 발포벽지는 퇴조하고 종이위에 염화비닐로 고급스런 섬유효과를 낸 비닐실크벽지가 인기를 끌고있다. 벽지는 재질에 따라 크게 종이벽지·발포벽지·비닐실크벽지·마직벽지·지사지·양단벽지 등으로 나뉜다.마직·지사벽지는 섬유나 종이로 만든 실을 종이위에 붙여 입체감을 강조한 고급벽지이며 양단벽지는 비단천으로 만든 최고급벽지로 주로 연회장 예식장 등의 벽지로 사용된다.따라서 가정용으로는 종이·발포·비닐실크벽지 등이 많이 이용되고 있다. 국내에서는 대동·럭키·하나·개나리·장미 등 5대 벽지제조업체를 비롯,수십개 업체에서 다양한 벽지들을 생산하고 있다.평당가격은 ▲종이벽지 8백∼1천원 ▲발포벽지 2천5백∼3천원 ▲비닐실크벽지 4천∼6천원 ▲마직·지사벽지 8천∼1만4천원 ▲양단벽지 1만6천∼2만4천원이다. 최근들어서는 이태리산과 독일산 비닐실크벽지도 많이 선보이고 있는데 가격은 평당 1만∼1만2천원이다.국산에 비해 디자인이 특색있고 7∼8도의 다색인쇄인 것이 다르다. 벽지를 고를때는 디자인·색상 등 시각적인 효과를 우선적으로 고려해야하지만 벽지가 지닌 물리적특성도 중요하다.특히 내수성 여부에 따라 청소의 가능범위가 달라지며 일부 특별한 시설에서는 방염처리된 벽지를 요구하기도 한다.비닐실크 정도가 물청소가 가능하며 발포·마직·지사벽지는 먼지털이개를 이용해야 한다.소방법에는 가정에서의 방염벽지시공에 대한 규정이 없어 거의 대부분의 벽지들이 불에 취약하므로 화재시 방출되는 포름알데히드 유독가스를 주의해야 한다. 또저급한 영세업체의 제품은 두께가 모자라거나 바른색깔이 나오지 않고 오래되면 변색되는 경우가 있으므로 가급적 믿을만한 업체의 제품을 고르는 것도 요령이다. 이밖에 벽지를 고를때는 시공비를 반드시 염두에 두어야한다.도배시공비는 1인 일당이 6만∼7만원이며 하루작업량은 ▲종이벽지 20∼25평 ▲발포벽지 15평 ▲비닐실크벽지 10∼12평 정도다.
  • 대한매일신보에서 서울신문까지(겨레의 맥박으로 89년:16)

    ◎혁신창간의 주역들/“새 민족신문” 애국지사 총결집/「민족대표 33인」중 오세창 등 3명 참여/편집진인선도 “독립완성” 부합 인물로/이관구주필 주도… 몽양도 “각당 함께 혁신” 축하 8·15해방의 감격이 채 가시지 않은 1945년 11월22일 우리민족을 대변할 진실된 언론기관으로 재출발하게 된 서울신문은 당시 우후죽순격으로 생겨나던 군소신문들과는 그 출발점에서부터 근본적으로 달랐다. 인쇄시설등 시설면에서의 완벽한 구비는 물론이거니와 1904년 항일민족지 대한매일신보로 창간되어 구한말 격동의 6년간과 또 일제하 총독부 기관지 매일신보로의 36년간등 모두 42년동안 중단없이 역사 기록자로서의 역할에 충실해왔기 때문에 서울신문이 국내외적으로 가장 큰 주목을 받는 것은 당연했다. 특히 당시 좌·우익 대립상황 속에서의 위상설정을 비롯,앞으로 서울신문을 이끌고 나갈 경영진과 편집진의 구성문제등은 단순한 일개 신문창간의 차원이 아니라 미군정당국의 향후 언론정책의 방향을 가늠케하는 중요한 의미를 띠고 있었다. ○하지중장이주문 미군정청으로부터 매일신보를 새로운 신문으로 창간토록 하는 임무를 부여받았던 사람은 성재 이관구와 안당 하경덕 이었다.해방 2개월 후인 10월중순쯤 하지중장은 조선일보 정경부장과 조선중앙일보 주필등을 거치며 언론계 중진으로 활약했던 이관구에게 매일신보를 인수,위창 오세창을 사장에 추대하고 새로운 신문을 창간해 줄것을 요청했다.또 한편으로는 당시 하버드대 출신 철학박사로 연전교수로 있던 하경덕을 매일신보의 자산을 인수,관리하는 재산관리인으로 위촉했다. ○김동준 재정담당 대임을 맡은 이들에게 놓여진 선결과제는 신문창간에 필요한 재원확보와 대내외적으로 수긍할수 있는 권위있고 양심적인 인사들로 경영및 편집진을 구성하는 문제였다.이들 문제는 그리 어렵지 않게 해결돼 나갔다.오세창선생의 서도 제자인 김무삼이 청년실업가 김동준을 이들에게 소개해왔던것.김동준은 광산업등으로 많은 재산을 모은 사람으로 해방과 건국 과정에서 언론의 중요성을 깊이 인식하고 있었고 때마침 원주의 토지를 매각한 충분한 현금을 보유하고 있었기 때문에 창간 자본금을 쾌척할 준비가 돼있었다. 이같이 재원문제가 해결되자 간부진 인선 역시 순조롭게 진행되었다.초대사장에 민족대표 33인의 한분으로 지조높은 항일민족주의자로 추앙받던 오세창선생을 추대하는 것에는 이의가 있을수 없었다.이어서 역시 33인중의 한분인 권동진과 벽초 홍명희 두사람을 상징적인 고문으로 추대,진용을 더욱 강화시켰다. 창간의 실질주역이자 미군정과도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던 하경덕은 부사장,자본투자자 김동준은 전무에,그리고 신문경영에 오랜 경험을 갖고 있던 이원혁과 조중환이 상무에 각각 인선됐다.해방직후 「매일신보 자치위」를 결성,6백여사원들과 함께 자체적으로 신문을 발행하며 외부로부터의 매일신보 접수기도를 막아냈던 문화부기자 윤희순은 출판국장겸 상임감사에 선임됐다.이렇게 짜여진 초창기 경영진은 다음과 같다. ▲사장=오세창 ▲고문=권동진 홍명희 ▲부사장=하경덕 ▲전무=김동준▲상무=이원혁 조중환 ▲취체역=김무삼 ▲상임감사역=윤희순 ○편집국에 10개부 당시 81세의고령인 오세창선생은 처음에는 사장취임을 고사했다.그러나 그가 자세를 바꿔 사장취임을 결심하게 된것은 해방후 혼란상을 보이고 있던 언론계 현실에 대한 우려 때문이었다.자신의 여생을 진정한 민족 언론기관 수립에 바쳐야겠다는 생각 뿐이었던 그는 서울신문 창간이 순조롭게 진행,자리가 잡히게 되면 물러서겠다는 마음가짐을 갖고 있었으며 실제로 창간 4개월만에 하경덕부사장에게 자리를 물려주고 떠났다. 한편 편집진용은 주필로 선임된 이관구의 주도로 짜여졌다.그는 창간사설에서 「해방후 민주주의적 질서수립과 독립완성」이라고 스스로 설정한 과제에 부합할 인물들을 물색했다.편집국장에는 대산 홍기문을 내정했다. 1903년 충북 괴산에서 벽초의 장남으로 태어난 그는 일찍이 일본으로 유학가 일본대학 문학부와 조도전대학 대학원을 졸업했다.귀국후 중동학교 교사로 있다가 부친의 권유로 조선일보 학예부장으로 언론계에 입문한 그는 논설위원도 겸임하며 문필을 날렸으며 문자보급 캠페인등 계몽사업에 주력했다.창간 편집진용은 다음과 같다. ▲편집국장=홍기문 ▲편집부=서강백(부장)허현 ▲정치부=박승원(부장)김영상 ▲경제부=주련(부장) ▲사회부=최금동(부장)고흥상 양형진 이봉구 인주현 여상현 한규호 윤일모 서병곤 오쾌일 유종대 ▲문화부=홍기무(부장) 조경희 노천명 이시우 이석희 ▲체육부=이용일 이유형 ▲특집부=김명수(부장) ▲사진부=조대식(부장)이병은 권태완 ▲교정부=최일준(부장) ▲조사부=한길수(부장) 이들 편집국의 창간진용은 이주필이 창간사설에서 밝힌 「일당일파에 기울어지지않는 공정하고 또 적확한 보도」를 위해 당시 혼란의 극치에 달했던 정치적 사회적 상황하에서 민족언론으로서의 흔들리지 않는 자세를 취해나갔다.또한 이주필의 「은같은 말은 김같은 실천이 뒤따라야 한다」는 가르침은 당시 기자들에게 철저한 기자정신으로의 무장과 발로 뛰어 확인하는 책임정신을 가르친 것으로 지금까지도 전해져오고 있다. ○벽초3부자 참여 이들 창간진용 가운데 문화부장 홍기무는 편집국장 홍기삼의 친동생으로 벽초3부자가 서울신문 창간에 함께 참여했다는 사실은 흥미롭다.벽초는 자식 사랑이 남달라 자식들이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아버지와 대화할수 있게 했으며 당시의 분위기로는 상상도 못할 부자상초(맞담배)를 허용,세간의 화제가 되기도 했다.자식들의 부친에 대한 효도 또한 지극해 홍기문은 월북한 부친을 따라 월북하기도 했다.벽초는 1948년 4월 과도입법의원 신분으로 평양의 남북연석회의 남한대표로 참석했다가 그대로 눌러 앉았으며 홍기삼은 같은해 11월 조선일보 전무로 있다가 아버지를 찾아 월북했다. 새로운 각오와 불타는 사명감에서 출발된 서울신문을 보는 외부의 기대도 컸다.당시 미군정장관 아놀드는 『나는 서울신문이 조선의 한 독립신문으로 호평받을 것을 확신한다』고 축하인사를 보내왔다.또 여운형은 『덕망 높은 신간부를 맞이하여 제호까지 고쳐 명실이 함께 혁신한 자태로 출발한다는 것은 우리 조선의 앞날을 위해 가장 경축할 일』이라고 치하했다.
  • 억대 보선밀수/일당 10명 영장

    【부산】 부산지방경찰청 강력수사대는 24일 수억원대의 보석을 밀수해 시중에 팔아온 밀수조직총책 함윤제씨(47·서울시 서초구 방배동)와 중간판매책 조상철씨(43)등 일당 10명을 붙잡아 관세법위반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경찰은 또 진주와 루비 산호등 보석류 9백여점 시가 2억원어치를 증거물로 압수했다.
  • 북한군부 원로는 누구인가

    ◎오진우/인민군 창건 주역… 20년간 군대부 군림/「빨치산」으로 김일성과 인연… 한때 숙청/최광/60년대 군외교전담한 대표적 강경파/김철만/백학림/김정일체제 구축한 소년유격대 출신 먼저 인민무력부장인 오진우(76·인민군원수).그는 당 정치국상무위원 국방위원회 제1부위원장을 겸직하고있는 권력서열 3위의 군부1인자.1917년생으로 함북 무산출생인 그는 만주 간도지방에서 어린시절을 보냈으며 33년부터 김일성을 따라 항일유격대 활동을 벌인 것으로 돼있다. 해방후 인민군창군에 관여했고 6·25때는 766유격부대장으로 참전했다.전후 군단장 공군참모장을 거쳐 60년대 서열 24위의 노동당중앙위원이 됐다.그는 69년 김일성이 당시 민족보위상이던 김창봉등 10여명의 빨치산파 장성들을 제거할때 앞장서 그공로로 같은해 2월 군총참모장에 올랐다.그후 76년 인민부력부장에 발탁됐고 이때부터 20년 넘게 군대부로서의 지위를 지켜왔다. 그 다음은 현 군총참모장 최광(인민군차수).권력서열 8위인 그는 오와 동갑내기로 역시 함북에서 태어났다.간도 용정의 대성중학교를 중퇴한 그는 35년경부터 빨치산에 가담한 이래 소련도피시절까지 김일성과 함께 움직였다.인민군창설때 제1사단장에 임명됐으며 일찍이 63년 총참모장에 오르는등 박성철이나 오진우보다 진급이 빨랐으나 69년 군부숙청때 군부내 반당음모를 제때 보고하지않았다는 이유로 탄광노동자로 쫓겨났다. 그러나 최는 이시절 모범적인 행동과 충성심을 과시,10년만인 77년 황남도 인민위원장에 기용됨으로써 권력일선에 복귀했다.그후 80년 당 정치국후보위원에 복귀한 그는 88년 김정일세대의 군부내 선두주자인 오극렬을 제치고 군총참모장에 재기용 됐다. 최와 함께 90년 권력서열 19위의 정치국 후보위원과 국방위원으로 10년여만에 권력무대에 복귀한 김철만역시 이른바 항일유격대출신으로 빼놓을 수 없는 인물.항일빨치산 출신인 그는 67년 부참모장에 기용된 이래 군사대표단으로 활발한 대외활동을 펼쳤으나 80년이후 모습을 나타내지 않았었다. 1918년생으로 추정되는 그는 보기드문 남한출신으로 3·1운동무렵 만주로 온가족이 이주,만주에서유격활동을 펼치다 46년 뒤늦게 입북해 군사령부의 작전군관으로 군경력을 시작했다.6·25때는 민족보위성 작전참모를 지냈으며 65년 중장으로 제2군단장을 거쳤다. 오진우 최광과 함께 대표적 강경파로 꼽히는 김철만이 90년 재기용되자 당시 혁명1세대들이 여전히 북한통치권력의 핵심실세가 아니냐는 관측을 낳았었다. 노동당 중앙위원겸 중앙군사위원이며 인민군차수로 치안과 대민사찰기구인 사회안전부 총수인 백학림(72)역시 이들 3인보다 연배는 다소 낮지만 대표적인 빨치산출신.그는 국방위 위원인 이을설(호위총국장·차수) 주도일(평양방어사령관·차수)당 중앙위군사위원인 이두익(차수)등과 함께 10대중반부터 이른바 소년유격대원으로 김일성을 따라다니며 항일빨치산활동을 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백은 6·25때 연대장으로 참전한후 민족보위성 정치안전국장·안전호위처 사령관등 전형적인 정치군인의 길을 밟아 85년 사회안전부장에 발탁돼 김정일체제구축에 앞장서왔다. 이들에 이어 북한군부의 핵심에 접근하고 있는 인물들은 전총참모장오극렬(인민군대장)을 필두로 김두남당중앙군사위원 김강환중장 최상욱중장 이봉원인민군대장 이하일당군사부장등 혁명2세대.이들은 한결같이 만경대혁명학원과 김일성종합대학을 나왔으며 군내 김정일친위그룹을 이루고있는 것으로 알려지고있다. 이중 김일성의 옛 전우 오중흡의 아들이라는 오극렬은 김정일의 오른팔로 알려진 대표적인 차세대 선두주자.1931년생인 그는 64년 소장,71년 공군사령관을 거쳐 79년 총참모장과 당 정치국후보위원이 되는 초고속승진을 거듭하면서 군부내 김정일세력구축에 앞장서왔다.
  • 보선후보 선거비용 실사/선관위/회계장부 추적… 위법땐 조치

    【부산=이기철기자】 김봉규 중앙선관위 사무총장은 21일 상오 부산시 선관위에서 기자간담회를 갖고 『이번 보궐선거가 공명선거가 정착되는 계기로 삼기 위해 각 후보자들이 쓴 선거비용을 실사하겠다』며 『후보자들의 인쇄물·선거운동원의 일당 등을 회계장부를 통해 끝까지 추적해 적절한 법적 조치를 취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김사무총장은 또 『현행 대선 총선 기초및 광역자치단체 등으로 구분돼 있는 선거법을 하나로 묶는 통합선거법을 추진하면서 모호한 선거법 규정을 보충하겠다』고 밝혔다.
  • 보선탈법 본격 단속/선관위

    중앙선관위(위원장윤관)는 20일 경기 광명,부산 동래갑 및 사하등 3개보궐선거지역의 막바지 금품살포·흑색선전등 혼탁양상을 막기위해 시·도및 구·시·군선관위직원 2백33명으로 특별단속반을 추가편성해 3개지역에 투입했다. 선관위는 이날 광명에 81명,동래갑 74명,사하 78명을 각각 배치하면서 「보선마무리 특별대책」을 통해 단 1건의 위법선거운동사례도 발생하지 않도록 음식점을 비롯,유흥업소 주택가 골목길 지구당 당직자거주지 주변등을 24시간 순회하면서 감시,위법사례를 적발하면 고발등 강력히 대처하라고 지시했다. 선관위는 선거종료후 각 후보자의 선거비용 지출보고서 내용을 검증할 수 있도록 관련 증빙자료를 최대한 수집하는 한편 선거운동원중 최소 30%이상을 면담해 7천원이상의 일당을 주고받는지 여부도 확인토록 아울러 지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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