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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르디 사발의 ‘에스페리옹 21’ 내한공연

    조르디 사발의 ‘에스페리옹 21’ 내한공연

    ‘고(古)음악의 영웅’으로 불리는 비올라 다 감바의 명연주자 조르디 사발이 한국에 온다. 지난 2003년에 이어 두번째 내한하는 그는 19일 오후 6시 서울 역삼동 LG아트센터 공연을 시작으로 23일까지 경남 통영, 울산, 경기 안산 등을 돌며 공연한다. 스페인 바르셀로나 태생인 사발은 첼로로 연주활동을 시작했다가 1965년 이래 비올라 다 감바에 매료돼 고전음악 쪽으로 활동방향을 튼 인물. 고색창연한 악기의 명연주자라는 사실만으로도 관심을 끌기에 충분하다. 중세에서 바로크 시대까지 고음악 해석에 관한 한 세계최고의 권위자로 꼽히는 사발의 이번 공연에는 그가 직접 창단한 고음악 전문 실내악단 ‘에스페리옹 21’이 함께 온다. 1974년 창단한 에스페리옹 21에는 사발의 일가족이 주요 연주자로 포진해 있다. 그의 아내이자 음악적 동반자인 소프라노 몽세라 피구에라스를 비롯해 ‘알파 도피아’(옛 하프) 연주자인 딸 아리안나 사발, 바로크 시대에 사용된 만돌린 비슷한 악기 ‘티오르바’ 연주자인 아들 페란 사발 등이 함께 호흡을 맞춘다. 사발이 연주하는 비올라 다 감바는 첼로의 원형. 첼로와 연주방식이 거의 비슷한 여섯 혹은 일곱 현의 옛 악기로, 천재화가이자 과학자인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기막히게 연주한 악기로도 유명하다. 원래는 합주에서 낮은 음역을 소화하는 부수악기였으나 차츰 독주악기로 인기를 얻기 시작했다. 사발의 음악적 성과는 단지 무대 연주에 그치지 않는다. 고음악에 관한 각종 조사와 연구·해석을 거듭한 끝에 복원해낸 그의 음악은 진정한 클래식 애호가라면 반드시 섭렵해야 할 레퍼토리로 평가받는다. 이를 입증하듯 르네상스와 바로크 시대의 고음악을 연주한 2003년 첫 국내 무대에서도 그는 클래식팬들의 큰 호응을 받았다. 사발과 에스페리옹 21은 17일 개막하는 통영국제음악제에서도 유일한 고음악 프로그램으로 각광받을 듯하다. 통영 공연은 20일 통영시민회관 오후 7시. 이어 22일 울산 현대예술관(오후 8시),23일 안산 문화예술의전당(오후 8시)에서 공연한다. 한편 한양대 음악연구소는 24일 오후 7시30분 서울 여의도 영산아트홀에서 비올(viol) 음악의 역사를 살펴보는 ‘비올 음악의 역사, 그 시원에서 후기 바로크까지’라는 이색 프로그램도 마련한다. 비올은 16∼18세기 유럽에서 실내악 연주에 쓰던 현악기를 총칭하는 말이다.(02)2005-0114. 황수정기자 sjh@seoul.co.kr
  • 끔찍한 인터넷 심부름카페

    거액의 보험금을 노리고 인터넷 청부용역 카페에 부인과 자녀의 살인을 의뢰한 비정한 가장이 경찰에 붙잡혔다. 또 이 청부용역 카페 운영자로부터 빚을 갚으라는 압력에 시달리던 50대 주부는 숨진 채 발견됐다. 서울 수서경찰서는 28일 인터넷 청부용역 카페에 부인과 두 자녀의 살해를 청부한 이모(36)씨와 ‘살인계획’을 짠 카페 운영자 김모(29)씨를 살인예비 등 혐의로 구속했다. 이씨는 지난해 12월 중순 부인(32)과 딸(8)·아들(5)이 사고로 모두 사망했을 때 4억원 남짓 지급받을 수 있는 종신보험에 가입한 뒤 인터넷 포털사이트의 청부용역 카페에 살인을 의뢰한 혐의를 받고 있다. 김씨는 이씨로부터 “세 사람을 살해하면 5000만원을 주겠다.”는 제의와 함께 ‘착수금’ 400만원을 받고 살인을 저지르려 한 혐의를 받고 있다. 김씨는 이른바 대포차량으로 외출하는 부인과 아이들을 치어 살해하려 했으며, 이 시도가 실패했을 때를 대비해 집안에 LP가스를 틀어 폭발사고를 일으키는 계획도 세운 것으로 경찰 조사에서 밝혀졌다. 경찰은 이씨가 5년 전 컴퓨터 관련 직장을 그만둔 뒤 생활고에 시달려 왔다고 전했다. 지난해 12월 카페를 개설한 김씨는 또 캐나다 유학생 정모(20·여)씨로부터 “이곳으로 와서 남자친구의 하반신과 오른손을 못쓰게 해달라.”는 의뢰와 함께 200만원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이날 오전 7시45분쯤 김씨로부터 빚독촉을 받던 박모(50·여)씨가 강남구 대치동 자신의 아파트에서 숨져 있는 것을 방산업체에 근무하는 아들(25)이 발견해 경찰에 신고했다. 경찰 조사 결과 김씨는 지난해 12월 말 한 남성으로부터 “빚 8000만원을 받아달라.”는 부탁과 함께 선수금 160만원을 받고 박씨를 협박해 왔으며, 아들이 2차례에 걸쳐 60만원을 송금한 것으로 밝혀졌다. 남편이 대학교수인 박씨는 김씨가 일가족을 청부살인하려한 혐의로 검거된 뒤 참고인으로 경찰 조사를 받기도 했다. 경찰은 일단 박씨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보고 있으나, 부검으로 정확한 사인을 밝히기로 했다. 유지혜기자 wisepen@seoul.co.kr
  • [사회플러스] 의사·가입자 짜고 65억 보험사기

    의사와 보험설계사, 보험가입자 등이 공모해 거액의 보험금을 편취한 일당 149명이 경찰에 적발돼 이 가운데 35명이 구속됐다. 특히 보험설계사들은 3세부터 80세까지의 일가족 및 친인척 등을 23개 보험사에 가입시킨 뒤 전남 목포지역 8개 병·의원과 결탁, 각종 검사 대장을 허위로 작성해 모두 65억원 상당의 보험금을 편취한 것으로 드러났다.24일 전남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는 진료기록 조작 및 허위 입원사실 확인서를 발급,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 지급되는 요양급여비용을 편취한 혐의(사기 등)로 모 병원장 김모(38)씨 등 목포 지역 병원장 2명과 간호과장 1명을 구속했다.
  • 응급환자가족등 6명 참변

    6일 오전 5시10분쯤 충남 천안시 성거읍 경부고속도로 상행선(부산기점 348㎞)에서 운전사 김모(45)씨가 몰던 경기94바6038호 14t 화물트럭이 앞서가던 인천80아8847호 16t 화물트럭(운전사 고모씨)과 진주지역 ‘한국 129응급구조단’ 소속 79머3413호 승합차를 잇달아 추돌했다. 사고 직후 129구조단 차량에 불이 나면서 이 차량 운전사 최경철(39)씨와 이송 중이던 환자 강태규(51)씨와 일가족, 간호사 등 차량에 타고 있던 6명이 모두 숨져 천안 단국대병원으로 옮겨졌다. 사고를 낸 운전사 김씨는 지난해 운전면허가 취소됐고 사고 당시 혈중 알코올 농도 0.06%에서 운전을 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사망자 △강태규(51·경남 진주시 장대동)△문순분(50·여·〃)△강민정(18·여·〃)△강준규(44·〃)△최경철(39·운전사·〃)△임혜림(28·여·간호사·전남 광양시 태인동) 천안 이천열기자 sky@seoul.co.kr
  • 탐지기도 못찾아낸 몸 속 금괴

    남대문시장 노점상 조모(50)씨는 2000년 11월 귀금속 유통업자인 S사 사장 김모(43)씨로부터 귀가 솔깃한 제의를 받았다. 홍콩을 오가며 금괴를 몰래 사다주면 1㎏당 10만원씩 사례하겠다는 제의에 조씨는 매형 김모(55)씨와 누나, 동생, 동생의 처 등 일가족을 끌어들여 금괴밀수에 나섰다. 김 사장으로부터 신체의 은밀한 부위에 금괴를 숨겨오는 방법 등 범행수법을 배운 조씨 등 일가족은 같은 달 17일 홍콩에 건너갔다. 김 사장이 지목한 거래처에서 금괴를 건네받은 이들은 1㎏ 짜리 금괴를 250g씩 4등분해 동그랗게 다듬어 각각 콘돔에 넣은 뒤 항문에 집어넣고, 직사각형인 원래의 1㎏짜리 금괴는 양쪽 발바닥에 각각 한 개씩 묶어 김포공항 검색대를 무사히 빠져나왔다. 한 번에 1인당 3㎏씩 밀수한 것. 이들이 석달 동안 3일에 한 번 꼴로 31차례에 걸쳐 홍콩과 서울을 오가면서 밀수한 금괴는 402㎏, 시가로 42억 4400여만원 어치다. 이들은 철저하게 관광객으로 위장한데다 수하물도 없어 공항 세관이나 검색대에 한차례도 적발되지 않았다. 서울중앙지검 형사4부(부장 이홍훈)는 금 유통업자들의 탈세 등을 수사하다 관련 첩보를 입수했으며 30일 조씨와 매형 김씨를 관세법 위반 혐의로 구속기소하고, 달아난 귀금속 유통업자 김씨를 수배했다. 조씨의 나머지 가족들은 가담 정도가 약하다고 판단, 입건하지 않았다. 박경호기자 kh4right@seoul.co.kr
  • 세탁소 빚 8억 못갚아 일가족 5명 동반자살

    빚에 시달리던 40대 세탁소 주인이 모친, 세 자녀와 함께 불탄 차량 안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13일 오전 10시30분쯤 제주도 북제주군 금악리 문수동 누운오름 남쪽 목장 안에서 불에 탄 제주80나88XX호 그레이스 미니밴 차량 안에 시체가 뒤엉켜 있는 것을 목장 관리인이 발견, 경찰에 신고했다. 경찰은 세탁소 종업원 등을 통해 일단 형체가 남아 있는 시체가 차주이자 제주시 연동 S세탁소 주인 김모(40)씨로 확인했다. 나머지 시체 4구는 김씨의 78살 노모,5살·8살·11살 딸들인 것으로 추정하고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 유전자 감식을 의뢰했다. 경찰은 김씨의 아내가 4년여 전 자살한 데다 3년 전 세탁소 2층 건물을 신축하고 세탁기 등을 구입하면서 8억여원의 빚이 생겨 지난해부터 원리금 상환 독촉에 시달리자 최근 ‘죽고 싶다.’는 말을 자주 했다는 주변 사람들의 말에 따라 동반자살한 것으로 보고 정확한 사건 경위를 조사하고 있다. 제주 김영주기자 chejukyj@seoul.co.kr
  • [뒷골목 맛세상] 삼각지로터리 일대

    [뒷골목 맛세상] 삼각지로터리 일대

    남산타워에 올라 남산 기슭에서부터 비롯하여 한강에 이르기까지 푸르게 치달려 내려가는 호로병 형태의 드넓은 녹지대를 바라다보면, 무심코 어어! 하는 탄성을 지르게 된다. 눈앞에 펼쳐진 경관이 얼핏 사실로 믿기지 않아서이다. 서울에도 이렇게 아름다운 녹지공간이 있다니! 울창한 숲과 잔디밭 사이사이로 드문드문 서양식 가옥들이 들어선 이국적인 공원 같은 경관은 분명히 한 폭의 풍경화처럼 아름답다. 그러나 아름다운 녹지공간을 좀더 자세히 바라다보면, 시각적인 구도에 어딘지 모르게 전체적으로 균형이 맞지 않는 것 같은 불편한 느낌을 받게 된다. 그렇다. 녹지공간을 둘러싼 주변의 모든 도로며 건물들이 심하게 왜곡되어 있는 것이 너무 쉽게 눈에 뜨인다. 남산 기슭을 입구로 하여 호로병 형상인 녹지공간을 빙 둘러싸고 있는 도로며 건물들은 어쩔 수 없이 초라하고 볼썽사납다. 가운데 있는 녹지공간이 아름다우면 아름다울수록 반대급부로 호로병 바깥 공간은 더욱 흉물스러워 보이는 것이다. ●60·70년대식 후진 골목… 개발 바람도 잠잠 아름다운 녹지공간은 다름 아닌 미8군사령부다. 용산 동쪽의 대부분을 차지한 채 헬리콥터장이며 골프장까지 갖춘 미8군사령부의 녹지공간을 다치지 않기 위해, 잠수교나 동작대교 같이 한강을 건너 서울 중심부로 달리는 도로들은 왜곡되어 호로병 형상 바깥으로 빙 둘러간다. 어디 도로뿐이랴. 주변의 건물들마저도 군사상 고도제한지역으로 묶여 개발이 불가능하게 되는 바람에 오래된 일본식 적산가옥 따위들만이 호로병 바깥에 무슨 부스럼딱지처럼 다닥다닥 붙어있다. 그런 식이다 보니 삼각지 로터리 어름에 붙어 있는 국방부며 전쟁박물관도 어쩔 수 없이 미8군사령부의 그늘에 가린 것 같은 느낌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전쟁박물관은 육군본부가 들어서 있던 자리다. 불과 몇 해 전까지만 해도, 녹지공간 바깥의 호로병 지역에서도 가장 흉물스러운 곳은 삼각지 로터리 부근이었다. 역시 군사상 고도제한에 묶인 데다 주변의 한남동이나 이태원 등은 주로 미8군 소속의 미군들이 즐겨 찾는데 반해, 삼각지 로터리 부근만은 주로 우리 육군본부 소속 군인들이 즐겨 찾다보니 자연스럽게 거리며 건물 자체가 다른 곳보다 더 쇠락해진 것이다. 지하철 4호선의 삼각지역에서 내려 1번 출구를 빠져나와 단층짜리 우리은행 건물을 돌면, 바로 60,70년대식의 복고조 뒷골목이 나온다. 낡은 적산가옥 건물에 영빈관이라는 중국집이며 오래된 이발관이 있는 뒷골목의 어디에선가는 금방이라도 ‘친구’나 ‘효자동 이발사’ 시대의 주인공들이 뛰쳐나와 한판 싸움을 벌일 듯한 분위기인데, 여기가 바로 70년대 우리의 국민가수 배호가 낮고 흐느끼는 듯 특이한 음색으로 심금을 울린 ‘돌아가는 삼각지’의 본고향이다. 배호의 특이한 음색이 당장에 겨울바람을 타고 긴 꼬리처럼 귓바퀴에 맴돌 듯한 ‘돌아가는 삼각지’에만은 용산 일대에 거세게 불고 있는 개발 바람도 아직 다다르지 않은 모양이다. 여기가 또한 주민등록식 지번으로는 용산구 한강로 1가에 속하는 이른바 속칭 ‘대구탕골목’이다. 한때 육군본부나 국방부에 근무하는 장교들이며 사병들이 한번쯤은 들르지 않은 이가 없고 그렇게 이곳에 들렀다가 전후방으로 전출해 간 장·사병들 사이에 그 맛을 연연해한 끝에, 삼각지의 대구탕 골목을 모르면 간첩이라는 말이 만들어질 정도로 민간인들보다 군인들 사이에서 먼저 유명해진 골목이기도 하다. 얼핏 둘러보아도 원대구탕, 자원대구탕, 세창대구탕, 참원조대구탕, 등의 간판들이 골목 안에서 가장 많이 눈에 띈다. 그러나 대구탕 골목이라고 해서 딱히 대구탕만 유명한 것은 아니다. 군데군데 양곱창이며 차돌박이를 주로 하는 평양집이며 봉산집이 있고, 이겹살이며 모소리살 같은 돼기고기 특수부위만을 전문으로 하는 삼각정이며 신가생태매운탕 같은 뛰어난 맛집들이 섞여 있다. 어떻게 보면, 고도제한이라는 불리한 지역적 특성이 오히려 서민적인 맛집들을 버려진 들판의 야생화처럼 아름답게 꽃피워낸 것인지도 모른다. ‘원대구탕’(02-717-8222)은 2001년에 작고한 손양원씨가 1979년에 이 골목에 처음으로 대구탕을 시작한 대구탕 골목의 원조격이다. 그러나 그이가 처음부터 이 골목에서 대구탕집을 시작한 것은 아니었다. 경북 의성 출신인 그이는 원래 같은 골목에 있는 이발소 주인이었고, 부인인 김명희씨가 지금의 ‘자원대구탕’ 자리에서 보신탕집을 했는데, 워낙에 장사가 안 되니까 대구요리로 메뉴를 바꾼 것이었다. 그런데 대구탕, 대구지리, 내장탕으로 대구요리 일색인 단순한 메뉴임에도 불구하고 식당은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성공을 거두었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싼 가격에 비해 양이 많으면서도 맛 또한 뛰어나서 주로 육군본부 소속 군인들 사이에 입소문이 퍼진 때문이었다. ●군데군데 양곱창·차돌박이 등 서민적인 맛집 손양원씨는 이발소마저 때려치우고 부인과 함께 식당일에 매달렸고, 가게는 날로 번성해갔다. 그러자 원래 중국집을 하던 집주인이 계약기간이 끝나기가 무섭게 가게를 비울 것을 통고해왔다. 그리고 가게가 비자마자 바로 ‘자원대구탕’이라는 간판을 내걸고 대구탕을 시작했다. 이를테면 간판에 ‘자’자는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작게 쓰고 ‘원’자를 크게 쓰는 식이었다. 그이가 낙담하고 있을 때, 뜻밖에도 바로 옆 가게가 전세로 나왔다. 그이는 앞뒤 가릴 것 없이 있는 돈 없는 돈을 모조리 모아 전세를 얻어들었다. 그리고 다시 ‘원대구탕’이라는 간판을 내걸 수 있었다. 지금은 아들인 손석호씨가 원대구탕을 운영하고 있고, 딸인 손숙연씨는 금천구 시흥동에서 역시 같은 상호로 대구탕집을 운영하면서 2대에 걸쳐 가업을 이어가고 있다. 양쪽 모두가 대구탕, 대구지리, 내장탕이 6000원씩인데, 대구탕이며 대구지리는 다 먹은 후 공기밥을 넣어 볶아먹을 수 있다. 지하철 삼각지역 2번 출구를 나오면 바로 신아트와 원아트라는 그림재료를 파는 가게의 간판이 보인다. 그 사이로 겨우 리어카 한 대 지나다닐 만한 길이 나 있는데, 그 길을 따라 들어가면 ‘옛집’이라는 국수집을 찾을 수 있다. 탁자가 겨우 4개뿐인 서너 평의 좁고 허름한 공간이지만, 들어가 자리를 잡고 앉아 주인할머니 되는 배혜자씨나 그이의 따님 되는 김진숙씨와 눈빛을 마주치는 순간 뭔가 예사롭지 않은 느낌에 사로잡히고 만다. 세상에 이렇게 순하고 착한 눈빛을 지닌 이들이 또 있으랴. 그런 느낌으로 온국수를 시켜 김이 모락모락 오르는 국물과 함께 국수 가락을 입에 넣는 순간 또 한번 예사롭지 않은 느낌에 사로잡힌다. 세상에 이렇게 맑으면서도 진한 국물 맛이 또 있으랴. 결코 과장이 아니다. 고백하건대 취재를 갔다가 온국수 국물을 훌훌 마시면서, 나는 몇 번이고 까닭 없이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것을 경험했다. 말하기 좋게 선의(善意)의 사람들이라고 하지만, 이렇듯 선의의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선의의 음식을 맛본 적이 얼마만인가. 옛집의 두 모녀가 지닌 선의는, 음식을 생각하기 전에 먼저 그 음식을 먹을 손님을 생각하고, 손님을 생각하기 전에 먼저 손님의 주머니 사정을 생각하는 그런 선의이다. 나는 저녁이 늦어 이미 다른 집에서 식사를 한 후였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몇 번이고 눈시울을 뜨겁게 하면서 온국수 한 그릇에다가 김밥 한 줄까지 꾸역꾸역 다 먹어냈다. 만일에 조금이라도 남긴다면 자칫 벌이라도 받을 것 같은 그런 마음이었다. ●손님의 입맛·주머니 사정부터 헤아려 원래 국수집을 하던 가게를 인수받아 배혜자씨가 1981년에 국수집을 하며 다시 24년이 지났다. 그동안에 단골손님들이 어떻게 하면 그렇듯 맛깔스러운 국물 맛을 낼 수 있는가에 대해, 무슨 비법이라도 있느냐고 물으면, 그이는 한 마디로 대답했다.“비법은 무슨 비법이 있겄다요?있다면 손님을 생각하는 정성이제라우.” 큰 들통에 멸치와 다시마, 양파 등을 넣고 4시간 동안 은은한 연탄불로 오래 끓여낸 다음에 굵은 소금으로 간을 하여 국물을 만들어 낸다. 비단 겨울뿐만이 아니라 한 여름에도 연탄불에 끓여내는 것은 변함이 없다. 언젠가는 이제는 편하게 장사를 하라는 자녀들의 등쌀에 못 이겨 가스불로 바꾸었지만, 국물 맛이 나지 않아 당장에 다시 연탄불로 바꾸었다. 국물에 넣는 다데기는 해남에 사는 시누이에게 특별히 부탁하여 무공해로 기른 청양고추를 오래 곰삭혀서 재료로 사용한다. 이 집의 주메뉴인 온국수는 2000원이고, 비빔국수가 2500원, 칼국수가 3000원, 수제비가 3000원, 김밥이 1500원, 여름에만 하는 콩국수가 5000원이다. 손님이 원하면 얼마든지 무료로 사리를 더 준다. 얼마 전에 한 가지 메뉴를 추가했다. 이른 아침에 오는 단골손님들이 아무리 따뜻한 국물과 함께 먹는다지만 김밥을 먹는 것이 가슴 아파서,2000원짜리 우거지국을 팔게 된 것이다. 단 우거지국은 아침 9시까지만이다. 얼마 전에는 서울 시내에서 4식구의 일가족이 외식을 할 수 있는 식당 3곳을 뽑는데, 옛집이 당연히 들었다. ● 걸인도 다독이는 따스함 옛집의 벽에는 모 방송국 PD가 쓴 글이 걸려 있다. 그 글 중의 일부분을 여기에 소개하고자 한다. ‘삼각지 근처의 국수집 하나를 촬영했을 때의 일입니다. 멸치국물로 진하게 우려낸 국수와 속이 알차 보이는 김밥 정도가 메뉴의 전부이지만, 한 끼를 거뜬히 때우기에는 부족함이 없었습니다. 거기에 진짜 우리 할머니 같은 주인의 마음씨가 더해지면, 아무리 양이 많은 이도 그득해진 배와 벌어진 입을 추스르며 가게문을 나세게 되는 집이었습니다. 방송 다음날 무심코 제 앞의 전화가 울려서 받았습니다. 한 40대 정도의 남자가 간절한 목소리로 거기 갔다온 PD를 찾아서 당사자임을 밝혔더니 갑자기 귀가 따가워졌습니다.“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저는 그 할머니 때문에 인생이 뒤바뀐 사람입니다.” 황당한 서두였습니다만, 그의 이야기는 길었습니다. 그는 15년쯤 전, 사기를 당해 전 재산을 털어먹고 설상가상으로 아내마저 그의 곁을 떠나버리는 최악의 위기를 맞았다고 합니다. 요즘 말로 노숙자가 되어 용산역 앞을 배회하는 서글픈 인생이 된 거죠. 하루는 배가 너무너무 고파서 용산역 앞에 늘어선 식당들 앞에서 밥 한 술을 구걸했지만, 그는 어느 곳도 발을 들여놓지 못했답니다…. 박절한 세상인심에 그는 반미치광이가 되어갔습니다. 용산역 인근 식당을 일일이 다 들어갔으나 모든 곳에서 박대를 받고나오며 밤에 휘발유를 뿌리고 불을 질러버리겠다고 독한 마음을 먹었지요. 한 집 한 집 지나쳐가다가 작은 골목에 있는 할머니네 국수집까지 간 것입니다. 할머니는 그의 비루한 몰골을 보고도 환하게 웃으며 선선히 맞아주었습니다. 허겁지겁 국수를 퍼넣고 있는데, 할머니가 갑자기 그릇을 뺐었다네요. 그러더니 할머니는 삶은 국수와 국물을 한가득 다시 가져다주더랍니다. 거의 두 그릇 양은 됨직한 국수를 다 털어넣은 뒤에야 할머니께 무슨 말을 어떻게 할까 하는 걱정이 떠올랐습니다. 할머니가 국수를 삶는 틈을 타서, 그는 자리를 박차고 뛰어나갔습니다. 그때 “그냥 가, 뛰지 말어, 다쳐요!”라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자신을 속이기만 하던 세상, 자신을 버렸던 사람들이 쳐둔 얼음장 속에 숨막혀 가던 자신에게 할머니의 말 한 마디는 그야말로 따스한 불씨 한 조각이었다는 겁니다. 그는 얼마 뒤 몸과 마음을 추스르고 파라과이로 혈혈단신 이민을 떠났습니다.
  • [세계인-우리는 이렇게 산다] 中 새로운 도시빈민 ‘민궁’

    [세계인-우리는 이렇게 산다] 中 새로운 도시빈민 ‘민궁’

    중국에서는 농촌에서 도시로 흘러 들어온 노동자들을 민궁(民工)이라고 부른다. 도시민들이 기피하는 3D 업종에 종사하며 중국사회의 최하층으로 전락한 도시 빈민들이다. 시장경제의 급속한 확산과 농촌경제의 몰락은 중국 전역에서 1억명 안팎의 민궁들을 양산했다. 이들은 잡초 같은 생명력으로 중국의 저임금 경제구조를 떠받치는 기둥이지만 대량 예비 실업군으로 중국 사회 불안의 ‘아킬레스 건’이기도 하다. |베이징 오일만특파원|베이징(北京) 동북부 차오양(朝陽)구의 장타이루(將臺路) 인근은 신개발 지역이다. 포클레인의 굉음 속에서 전통가옥들이 속속 철거되고 고층 아파트와 빌딩들이 우후죽순처럼 솟아나고 있다. 길가에 들어선 아파트 단지의 뒷길로 100m 정도 들어가면 허름한 차림의 노동자들이 우마차와 뒤엉켜 있는 모습이 목격된다. 영하 10도 이하로 떨어진 추운 날씨에도 아랑곳없이 이들은 벽돌 파편 사이로 옹기종기 모여 앉아 ‘벽돌 고르기(挑頭)’ 작업에 여념이 없다. 이들은 철거 과정에서 버려졌지만, 그래도 쓸 만한 벽돌을 찾아내 건설업자들에게 되파는 민궁들이다. 이마 위로 쉼없이 흐르는 땀을 닦으면서도 주위에 공안들이 나타날까봐 눈을 번득이는 모습이 영락없는 민궁들이다. ●토지 수용돼 우마차 끌고 상경 이것저것 캐묻는 기자에게 경계의 빛을 보이다가 결국 말문을 열었다. 네이멍구(內蒙古) 지닝(集寧)시 인근의 농촌 출신들로 마을 사람들이 집단으로 상경한 경우이다. 리더격인 양(楊·45)씨는 “1년반 전에 정부에 땅을 수용당했다.1무(1畝·200평)당 500위안(약 6만 3000원)씩 헐값에 넘기고 살 길이 막막해 고향사람들과 상의 끝에 베이징으로 올라왔다.”고 밝혔다. 이들은 농사에 이용했던 우마차를 끌고 상경했다. 이들은 “맨 몸뚱이로 노동판을 전전해야 하는 다른 민궁들보다는 그래도 형편이 낫다.”고 서로를 위로한다. 베이징 인근의 건설현장을 돌아다니며 철거 가옥에서 나오는 중고 벽돌 찾아내는 일을 하루 종일 하면 우마차 1대 분량(대략 1000장)이 나온다. 그런 뒤 2시간 정도 베이징 외곽으로 나가서 중고 벽돌 도매상에게 넘긴다. 대략 하루에 50∼60위안을 받는다. 도매상들은 30% 안팎의 마진을 남기고 허베이(河北) 인근의 건설 공사장에 보낸다고 한다. 이들은 매일 새벽 5시면 어김없이 무허가 천막촌을 떠난다. 오후 5시가 넘으면 어두워지지만 캄캄해지는 저녁 7시까지 기다렸다가 숙소로 돌아간다. 공안(公安·경찰)들의 감시 때문이다. 베이징 정식 거류증이 없는 이들은 법적으로 ‘불법 체류자’이다. 공안의 불심검문에 걸리면 벌금을 물고 다시 고향으로 쫓겨가야 한다. 벌금 낼 돈이 없으면 일주일에서 심하면 한달까지도 강제 노역을 해야 한다. 노역을 마친 뒤 고향으로 추방됐다가 다시 베이징으로 돌아오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들은 “공안에게 쫓겨도 희망이 있는 이곳이 좋다.”고 입을 모은다. 비록 ‘잡초 인생’이지만 삶의 의욕이 있어서다. ●천막에서 생활하며 한달 8만원 벌어 왕징(望京) 지구 라이광잉(來廣營) 인근의 공사장에서 만난 인(銀·39)씨는 무작정 상경자이다.1년전 산둥(山東)성 단셴(單縣) 인근의 농촌에서 올라와 베이징 공사판을 전전하는 민궁이 됐다.“몸이 아파 쪽방에 누워 있을 때는 고향에 두고 온 아내와 딸이 생각나 절로 눈물이 나지만 성공해서 고향에 가는 날을 생각하면 아무리 힘들어도 참을 만하다.”고 웃음 짓는다. 인씨의 숙소는 공사장 안에 임시로 만든 천막이다. 틈새를 아무리 막아도 삭풍이 몰아치는 북방의 추위는 누구라도 견디기 쉽지 않다. 하지만 인씨는 “추위를 느낄 시간도 없다. 밤일까지 하고 간이 침대에 누우면 세상 모르고 곯아 떨어진다. 그래도 일거리가 있어 행복한 것 아니냐.”고 반문한다. 인씨의 수입은 월 600위안(약 8만원) 안팎. 그래도 고향에서 농사짓던 것보다 훨씬 낫다고 한다.“딸아이의 등록금(1학기 170위안)을 내지 못해 가슴을 쳤던 농촌생활보다는 도시 노동자 생활이 좋다.”며 “1년에 대략 4000위안을 고향의 아내에게 보낸다.”고 자랑한다. 배추를 식용유에 버무려 끓인 바이차이탕(白菜湯)이나 밀가루 빵인 만터우(饅頭), 탸오(面·국수) 등으로 끼니를 때운다. 그래도 세끼 식비와 숙박비 등으로 매일 8위안씩, 한달에 200위안을 낸다. 하지만 그는 요즘처럼 신바람이 난 적이 없다고 한다. 그의 마음은 벌써 오는 2월 춘제(春節·구정)때 고향길을 달려가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 사회의 천덕꾸러기로 베이징이나 상하이(上海), 광저우(廣州) 등 중국의 웬만한 대도시에는 이러한 민궁들이 넘쳐 흐른다. 중국 언론들은 농민들이 살길을 찾아 도시로 밀려드는 모습을 ‘민궁차오(民工潮)’라고 표현할 정도이다. 이들은 푹푹 찌는 여름날에도 묵묵히 공장에서 재봉틀을 돌리고 영하 20도의 강추위에도 아랑곳없이 노동판에 나선다. 중국의 저임금이 20여년 동안 지속되는 것도 따지고 보면 끝없이 도시로 밀려드는 민궁들 때문이다. 하지만 민궁들이 건설 노동자와 여공, 파출부, 청소부 등 궂은 일을 도맡아 하며 성장의 밑거름 역할을 했지만 지금은 각종 사회문제를 일으키는 도시의 천덕꾸러기로 전락하고 있다. 대부분 중국 내륙 출신인 민궁들은 열악한 노동환경 속에서 일부는 길거리 노숙자로 전락, 각종 범죄에 연루되는 등 심각한 사회불안 요소가 되고 있다.‘밥과 집, 그리고 일거리’를 달라는 이들의 외침은 중국 체제에 엄청난 위협으로 떠오르고 있는 것이다. ●중국 전역 생계·민생형 시위 확산 그래선지 최근 중국 전역에 확산되고 있는 ‘민생형 시위’에는 어김없이 민궁들이 참여한다. 당국의 농지 강제 수용, 경찰의 주민 구타 등에 불만을 품은 생계형, 민생형 대규모 항의 시위가 봇물 터지듯 분출되고 있다. 특히 요즈음에는 민궁들의 시위가 빈부격차에 따른 사회체제 불만으로 발전, 중국 지도부가 바짝 긴장하는 눈치다. 지난달 5일 산시(山西)성에서 철도 건설현장의 민궁 200여명이 교통경찰관 2명을 차로 치어 죽이고 경찰관서에서 난동을 부린 사건이 발생했다. 경찰이 뺑소니 사고를 수사하면서 건설현장 인부들을 연행, 구타하자 노무자들이 앙심을 품고 저지른 보복극이었다. 크리스마스인 지난달 25일엔 광저우에 인접한 둥완(東莞)시 다랑(大朗)진에서 군중 5만여명이 경찰 횡포에 항의하는 대규모 시위를 벌였다. 시위는 교통사고를 둘러싼 보상 문제로 시작됐지만 평소 경찰에게 수시로 구타당했던 민궁들이 가세하면서 대규모 시위로 번진 것이다. oilman@seoul.co.kr ■ 민궁 가족 인터뷰 |베이징 오일만특파원| 베이징 인근 장타이루(將臺路) 건설 현장에서 만난 옌(嚴·41)씨 일가족. 1년전 아내(38)와 함께 베이징에 올라와 온갖 고초를 겪으면서도 꿋꿋하게 뿌리를 내리고 있는 전형적인 중국의 ‘민초(民草)’들이다.“암울한 농촌보다는 도시에 희망이 있다.”는 이들은 생산수단인 우마차를 끌고 꼬박 3일을 달려 베이징에 왔다. 왜 농촌을 떠났는가. -네이멍구(內蒙古)에 있는 고향의 농지가 산림지역으로 지정돼 정부에 땅을 수용당했다. 보상받은 돈으로 장사도 해봤지만 실패했고 생계가 어려워 베이징으로 올라왔다. 먼저 와 있던 고향 사람들로부터 그럭저럭 생활이 된다는 말을 듣고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이 곳에 왔다. 도시 생활은 어떤가. -처음 1∼2개월은 일거리가 없어 애를 먹었다. 베이징 거류증이 없어 공안(公安·경찰)들의 눈을 피하는 것도 힘이 들었다. 지금은 재건축 바람이 불고 있어 벽돌 채집이 다소 쉬워졌다. 하루 열심히 일하면 60위안(약 7500원)까지 벌 수 있다. 둘(부부)이서 한달에 1500위안(약 19만원) 정도 벌어 방세(200위안)와 식비 등을 빼면 저축도 가능하다. 처음엔 아들(11·소학교 5학년)을 두고 와서 마음이 아팠는데 지금은 가족 모두가 함께 생활하고 있다. 함께 모여 있다는 것 자체가 행복 아닌가. 희망은 무엇이냐. -아들에게 미래를 걸고 있다. 여기서 열심히 일하면 한푼 두푼 저축도 가능하다. 당장 아들을 소학교에 재입학시키고 중학교와 고등학교까지 가르치겠다. 나는 못 배운 농민 출신이지만 아들만큼은 나 같은 인생을 살아서는 안 된다. (아들에게)이곳 생활은 어떤지. -네이멍구 고향집에 남아서 할아버지, 할머니와 생활했지만 엄마가 너무 보고 싶었다. 아빠가 조금 더 돈을 모으면 올 봄부터 학교에 다닐 수 있다고 했다. 솔직히 공부는 싫지만 학교에 가서 친구들과 맘 놓고 뛰어 놀고 싶다. (아내에게)고향에 돌아가고 싶지 않느냐. -(고개를 저으며)도시 생활이 더 낫다. 농촌은 희망이 없다.1년 내내 뼈빠지게 일해도 손에 쥐는 돈이 없다. 여기서는 공치는 날도 있지만 일을 하면 돈을 벌 수 있다는 희망이라도 있다. 고향 사람들도 적지 않아 서로 의지하며 살아간다. 가장 힘든 점은. -공안이다. 육체적으로 힘드는 일은 참을 수 있지만 거류증이 없는 우리로선 공안들만 만나면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고향으로 쫓겨가면 정말 희망이 없다. oilman@seoul.co.kr
  • 4대그룹 신년광고 희망·용기 담아 새해인사

    올해 최고의 기업은 어디가 될까. 일간지의 원단(元旦) 광고는 삼성, 현대차,LG,SK 등 4대 그룹이 장식한 것으로 나타났다.1월1일자 원단 광고는 해마다 기업들이 기싸움을 벌이는 장(場)으로 활용될 정도다. 어떤 회사가 어떤 내용을 호소했는지 그 면면을 살펴보면 올해 경제를 견인할 기업을 가늠할 수 있다. ●삼성 ‘30대 주부가 꿈꾸는 희망’ 모든 일간지의 1면을 장식한 기업은 삼성이다. 평범한 30대 주부로 보이는 한 여성을 내세워 “희망합니다….”란 주제의 신년 인사를 올렸다.(사진 왼쪽 아래) “출근하는 아빠들 어깨가 더욱 가벼워지기를 희망합니다. 활기찬 경제와 풍요로운 생활이 계속되기를 희망합니다. 서로 더 많이 사랑하고 도우며 살아가기를 희망합니다. 을유년 한해, 저마다의 희망이 모두 이뤄지기를 새해 새날, 새마음으로 희망합니다.”(삼성) ●현대·기아차 ‘희망의 태양 더 높이’ 맨 뒷면 광고인 ‘백면 광고’는 현대자동차가 차지했다.“희망을 띄웁니다. 세계를 밝히겠습니다.”란 제목과 함께 세계 차시장 빅5를 위협하며 무섭게 질주하는 자사의 기세를 그대로 반영했다. 떠오르는 태양을 바라보며 일가족이 한복을 차려입고 연놀이 하는 모습이 배경이다.(사진 오른쪽 위) “대한민국이 다시 힘차게 시동 걸리는 그 날을 기다립니다. 수출 1000만대 그 이상을 이루며 세계 최고의 품질을 향해 현대차도 고객과 함께 새해 새 희망을 높이 높이 띄우겠습니다.”(현대자동차) ●LG “당신의 볏을 세워라!” 지면 중간의 전면광고는 LG가 맡았다. 연두색 바탕 화면에 “새롭게 다짐한 그 각오 그대로 당신의 자존심을 한껏 세우십시오. 용기와 도전 정신만 있다면,2005년은 당신의 해입니다.”(LG)라고 적었다. 하단에는 “당신의 볏을 세워라!”며 을유년을 대표하는 닭이 목청을 높이고 있다. ●SK, 따뜻한 2005년 기원 3일자 1면 광고는 SK가 바통을 이었다. 사회공헌을 기업의 주요 모토의 하나로 삼은 만큼 신년 인사에서도 상부상조하는 2005년을 약속했다. “나눌 수 있는 마음만 있다면 올해는 희망의 해가 하나 더 뜰 것입니다. 그리고 12월 31일 서로가 등 두드리며,‘2005년은 참 따뜻했습니다.’하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 모두 한마음으로 만들어가는 희망의 새해가 되기를 기원합니다.” 백면 광고는 기아차가 맡았으며, 그밖에 KTF, 일동후디스, 신한금융지주 등도 얼굴을 내밀고 인사를 올렸다. 업계 관계자는 “일제히 용기를 복돋우는 메시지와 다부진 각오로 불경기 속에 찾아온 새해를 맞이하고 있다.”면서 “4대 그룹은 대한민국 대표 기업이라는 타이틀이 무색치 않게 지난 해 경영계획을 초과 달성하는 기염을 토했듯 올해에도 그들의 활약이 기대된다.”고 말했다. 주현진기자 jhj@seoul.co.kr
  • [지진 해일 대재앙] 적도의 생지옥엔 주인없는 시신들만

    |반다아체(인도네시아) 연합|이번 지진해일로 가장 피해가 컸던 인도네시아 수마트라섬 북쪽 아체주(州)의 참상은 한마디로 ‘생지옥’ 그 자체였다. 해변에 위치한 아체주의 수도 반다아체의 도심은 대부분의 건물이 무너져 내린 채 진흙을 뒤집어 쓰고 있었고 거리마다 남녀노소를 구별할 수 없는 시신이 뒤엉켜 나뒹굴고 있었다. ●도심엔 건물형체마저 사라져 주정부 청사 건물은 쓰레기더미에 뒤덮여 있었고 인구 밀집지역인 해변에는 건물의 형체도 남아 있지 않았다. 해안으로 흐르는 크루엥아체강 다리 밑에는 수백구의 시신이 둥둥 떠있다. 길바닥에 짐승의 주검처럼 방치돼 파리와 벌레들의 공격을 받는 시신들은 적도의 찌는 듯한 무더위로 급속하게 부패하고 있어 참혹했다. 누렇게 변색한 아기의 시신은 차마 눈뜨고 볼 수 없었고, 한 청년의 시신은 결혼반지를 낀 손가락을 하늘을 향해 치켜들고 있어 원망의 손짓을 하는 듯했다. 다리 앞에서 만난 말레이시아 구조대원 오마르(29)는 ‘시신들을 왜 빨리 수거하지 않느냐.’는 질문에 “우리도 정신이 없어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면서도 “우선 무너진 건물이나 강물 속 등을 수색하면서 혹시나 아직 생존자가 있는지를 집중적으로 조사하고 있다.”고 말했다. ●구조대원들 “뭘 해야 할지 모르겠다” 계엄령을 피해 다른 지역으로 삶의 터전을 옮겼던 희생자 가족들은 고향을 지키던 부모형제를 애타게 찾고 있으나 며칠을 둘러봐도 시신조차 찾을 수 없어 절망에 빠져 있었다. 그러면서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피해현장 곳곳에 가족들의 인상착의와 자신의 연락처를 적은 메모지를 붙이고 있었다. 어둠이 내리고 거리를 오가는 군인들과 희생자 가족들마저 자취를 감추자 반다아체는 주인없는 시체들만 모여있는 유령의 도시로 변해 버렸다. 태국 등 다른 피해국과는 달리 인도네시아의 사망자들은 신원 확인 절차도 제대로 거치지 않고 짐승처럼 무참하게 땅에 파묻히고 있다. 반다아체의 도심 곳곳에 널려 있던 시신을 수거해온 군용 트럭들은 도로변에 차를 멈추고 비닐 등에 싼 시신들을 끌어내려 거대한 구덩이에 아무렇게나 내던지고 있다. 그러나 오열하는 가족들이나 항의하는 외부 감시인들을 전혀 찾아볼 수가 없다. 주민들은 “계엄령 치하에서 정부군이 하는 일에 대해 불만을 제기하거나 항의를 한다는 것은 죽음을 자초하는 것”이라며 눈치를 보고 있다. ●대탈출 서두르는 생존자들 반면 익명을 요구한 한 정부군 관계자는 “지금까지 방치된 시신들은 대부분 일가족이 몰사한 것으로 보인다.”면서 “찾아올 가족도 없는 시신들을 무작정 길바닥에 내버려 둘 수는 없는 일 아니냐.”고 말했다. 이어 “전염병이 퍼질 가능성이 커 하루빨리 묻을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많은 주민들은 죽음의 도시를 벗어나기 위한 대탈출에 나서고 있다. 하지만 교통수단 부족과 기름 공급난 등으로 이마저 거의 불가능해 발만 동동 구르고 있었다.
  • [뒷골목 맛세상]해넘이 섬 강화도

    [뒷골목 맛세상]해넘이 섬 강화도

    한 해가 저문다. 한 해가 저문다고 해서 서녘 하늘에 곱게 지피는 노을이야 여느 때와 하등 다를 바가 없겠지만, 그러나 한 해가 저무는 무렵의 노을을 바라보는 이의 마음만은 어쩔 수 없이 만감이 겹쳐 노을 못잖은 붉은 색감으로 켜켜이 타오를 터이다. 지난 한 해를 돌아보는 감회도 감회려니와, 어쩐지 허송으로 보낸 것 같은 후회와 안타까움에 겹쳐 자칫 가슴을 에는 한 가닥 회한도 없을 수 없으리라. 아아, 나는 왜 그렇게밖에 못했을까. 조금만 더 정신을 차렸더라면 이 지경에 이르지는 않았을 텐데. 어차피 나는 그 정도밖에는 안되는 것일까. 나는 왜 좀 더 마음을 비우지 못했을까. ●자성과 다짐의 나들이 코스로 제격 한 해를 보내고 다가올 새해를 기다리는 순간에 자신을 돌아보고, 마음을 가다듬어 자성(自省)의 기회로 삼는 정경은 얼핏 보기에 참 아름다운 일이다. 그러나 자성이 지나쳐 자칫 회한이며 자학에까지 이른다면 그것은 아름다운 일이 아니라 자신에게 더욱 힘든 짐을 지우는 일이 되고 만다. 만일 그대에게 자성이 지나쳐 힘든 조짐이 보인다면, 그대는 과감히 자리를 떨치고 일어나 해넘이 여행길에 나서자. 이왕 한 해가 저무는 무렵이니, 가까운 서해안이라도 찾아 수평선에 펼쳐지는 낙조를 바라보면서 새로운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자. 서울에서 가장 쉽게 갈 수 있는 서해안으로는 역시 강화도가 제격일 터이다. 신촌로터리 어름에 있는 강화행 버스터미널에서 시외버스를 타면 불과 한 시간 남짓밖에 걸리지 않는다. 아득한 옛 시절에야 서울에서 강화까지의 나들이가 걷고 배를 타는 일정으로 꼬박 이틀이 걸렸다는 사실이 얼핏 상상이 가지 않지만, 어쨌든 한 시간 거리에 섬이 있고 해넘이의 해안이 있다는 것은 서울에 사는 이들의 행운이지 않으랴. 강화읍에서 군내버스를 타고, 외포리에서 다시 석모도행 배를 갈아탄 다음에 보문사를 찾아가자. 보문사에서 바라보는 낙조는 예부터 강화 8경으로 꼽히는 명승(名勝)이지만, 특히 보문사의 눈썹바위에 있는 높이 7미터의 거대한 마애석불좌상 앞에서 내려다보는 서해의 낙조는 더 이상 언설이 필요 없는 장관이다. 강화도의 해넘이 장소로는 구태여 석모도며 보문사를 고집하지 않아도 된다. 강화도의 서쪽 해안선 일대에 널린 돈대를 위시하여 어디를 가든지 뛰어난 해넘이 장소가 아닌 곳이 없다. 또한 경관이 그럴 듯한 장소에는 이미 횟집이며 카페, 민박집, 그리고 요즘 들어 부쩍 유행하는 펜션들이 눈에 질리도록 저마다 입간판에 뛰어난 해넘이를 내세우고 있다. 황금빛 노을, 노을이 내리는 아름다운 집, 노을과 함께, 추억 속으로, 뱃고동, 추억여행…. 그러나 이왕 석모도까지 찾아온 길이라면 역시 보문사의 마애석불좌상 앞이다. 아름드리 고목의 가지 사이로 저녁 해가 기운다. 이윽고 저녁 해가 그대의 눈길 아래로 떨어지고 그렇게 가없는 하늘은 물론 잔잔한 겨울바다마저 붉게 물들이며 노을이 지피는 순간, 그대의 힘든 몸뚱어리 또한 서서히 노을 속에 함께 지피는 것을 깨닫게 되리라. 어디 그대의 몸뚱어리뿐이랴. 그대의 몸뚱어리가 노을로 지피는 동안에 마음속의 회한이며 자학 따위도 함께 지펴, 마침내 그대를 새털처럼 가볍게 하리라. 그렇듯 새털처럼 가벼워진 그대가 무심코 눈썹바위에 서 있는 거대한 부처님을 돌아보면, 부처님 또한 노을 속에 함께 지피면서 그대를 향해 빙긋이 웃어보일지도 모른다. ●‘강화 8경’으로 꼽히는 보문사 낙조 불교에서는 세상에 하고많은 욕심 중에서도 가장 더럽고 끔찍한 욕심을 무엇인가 이루고자 하는 공부에 대한 욕심으로 규정하고 지극히 경계해 마지않는다. 자칫 공부란 것이 ‘지금 이 자리’에 있는 현재의 나를 인정하지 못한 채, 좀더 밝고 아름다운 무엇으로 나를 바꾸려 한다면, 바로 그런 공부야말로 얼마든지 더럽고 끔찍한 욕심으로 꾸짖어 마땅하다는 식이다. 대저 공부란 무엇인가. 바로 ‘지금 이 자리’에 있는 나를 제대로 바라보는 것이 공부가 아닌가. 그렇듯 ‘지금 이 자리’가 아닌 다른 자리에 서 있는 제자가 부처에 대해 물었을 때, 운문(雲門)선사는 서슴없이 대답한다.“똥막대기다!” 그렇다. 지금 이 자리가 아닌 다른 자리에 있는 무엇인가를 찾으면, 부처 또한 똥막대기인 것이다. 역시 ‘지금 이 자리’가 아닌 다른 자리에 서 있는 제자가 부처에 대해 물었을 때, 백장(百丈)선사는 아예 호통을 친다.“이놈아, 어찌하여 소를 타고서도 소를 찾느냐?” 지난해를 돌아보는 자성에는 무언가 ‘지금 이 자리’에 서있는 자신을 혐오하거나 기피하여 좀더 밝고 아름다운 다른 자리로 자신을 옮겨가려는 어리석은 불제자들의 공부 욕심이 없지 않을 터이다. 지금 이 자리에 없는 것이 어찌 다른 자리라고 생길 것인가. 어쩌면 진정한 자성이란, 바로 ‘지금 이 자리’의 자신을 인정하고, 나아가 ‘지금 이 자리’의 힘들고 무거운 자신을 따뜻하게 바라보는 눈길일지도 모른다. 비록 간단없는 회한과 자학이 자신을 피폐(疲弊)하게 하더라도, 바로 그런 피폐마저 너그럽게 껴안을 일이다. 그렇듯 자신과의 화해를 이루면, 비단 저녁노을이 지피지 않더라도 그대는 분명히 새털처럼 가벼워지리라. 새털처럼 가벼워진 그대가 어디에서 무엇을 하건 막히는 일이 무엇이랴. 어디에서 무엇을 하건 그대는 언제나 ‘지금 이 자리’에 있는 것이다. 자, 그대가 새털처럼 가벼워져서 돌아오는 길이다. 그대가 어디에 가서 무엇을 먹고 마시든지 맛있지 않은 음식이 있으랴. 그러나 그대가 혼자가 아니고 소중한 이와 함께라면 여행길의 한 끼 음식이라도 결코 소홀할 수는 없다. ●한자리서 50년 훌쩍… 고향냄새 물씬 먼저 강화읍의 중앙시장 안에 있는 ‘우리옥’(032-932-2427)을 권하고 싶다. 중앙시장에서 찬거리골목으로 30여m 안으로 들어가면 골목 안에 있는 듯 없는 듯 숨어 있는 평범한 백반집인데, 그러나 상차림을 보면 대뜸 머리가 좌우로 갸웃거려진다. 넉넉한 콩비지 한 대접, 조갯살을 넣은 미역국, 강화도순무김치, 꽁치조림, 고추장아찌, 숙주나물, 감자조림, 시금치, 고사리, 멸치볶음, 표고버섯볶음, 조개젓, 배추김치 등 갖은 반찬에다가, 장작을 때서 지은 강화쌀밥이 먹음직스럽게 김을 피워올리고 있다. 그런 풍성한 상차림인데 값은 고작 4000원이다. 소중한 이와 함께 한 그대가 어쩐지 4000원짜리 백반으로는 성이 차지 않는다면 거기에 3000원짜리 대구찌개를 더해도 좋다. 아니면 계절에 따라 병어회나 병어찜, 생굴, 불고기 등에서 하나를 안줏감으로 추가하여 강화도 특산인 인삼막걸리를 즐길 수도 있다. 추가되는 안줏감들은 각기 9000원에서 1만원을 넘지 않는다. 그대가 이제 막 수저를 드는데, 와락, 알 수 없는 친근감이 들어 다시 한번 상차림을 살펴보면, 자칫 오랜 만에 고향에 돌아와 늙은 어머니가 차려주는 밥상 앞에 앉아 있는 것 같은 순간적인 착각에 빠져든다. 실제로 주인 되는 방영숙씨는 힘들고 지쳐서 대문을 열고 들어오는 이라면 누구든지 자식처럼 껴안아줄 것만 같은 넉넉하고 수더분한 고향 어머니의 인상이다. 거기에 더하여 납작한 한옥집의 대문부터 비롯하여 주방이며 방에 이르기까지 어쩐지 낡은 손때가 묻어나는 집안의 만만한 분위기마저도 주인 되는 이와 함께 정감을 더한다. 원래 우리옥은 방영숙씨의 고모 되는 방숙자 할머니가 1953년에 현재의 자리에 문을 열었으니 한 자리에서 50년을 훌쩍 넘긴 셈이다. 방영숙씨가 연로한 고모를 대신한 것도 벌써 20여년이니 2대에 걸친 음식이며 집에서 어찌 고향냄새가 아니 나랴. ●공해 없는 저수지서 건진 월척만 조리 만일 그대가 미식가라고 자처한다면, 별미로 강화도의 붕어찜을 빠뜨릴 수 없을 터이다. 강화읍에서 교동으로 가는 길목에 있는 송해면의 숭뢰저수지에는 ‘돌기와집’(032-934-5482)이라는 붕어찜 전문식당이 있다. 야트막한 야산 아래 숲으로 담장을 이룬 듯 아늑한 옛 한옥이 산수화 한 폭처럼 고풍스러운데, 주인 되는 구옥순씨 또한 종갓집 며느리처럼 단아한 품새에 말씨마저도 도란도란 음전하여서 한 잔 술이 없이도 저절로 풍류의 마음이 일어날 듯싶다. 강화도라면 대부분이 얼핏 생선이며 조개 같은 해물을 먼저 떠올릴 것이다. 그러나 강화도는 뜻밖에도 농경지가 넓은 곳이어서 1980년대만 해도 전체 면적의 거의 절반이 농경지에다가 농가도 전체 가구의 70%를 차지하여서 농업이 중심 산업을 이루었다. 그런 만큼 여기저기 유명한 저수지가 많은데, 눈치 빠른 낚시꾼들은 바다낚시가 아니라 바로 민물낚시를 위해 거리가 멀다 않고 강화도로 몰려든다. 원래 민물고기는 저수지에 따라 맛이 천차만별인데, 낚시꾼들 사이에서 강화도의 민물고기가 맛에 있어서 으뜸으로 소문이 난 탓이다. 하기는 이렇다 할 공장이 드문 강화도에서는 여러 저수지마다 고기 맛을 헤칠 수질오염이며 공해 따위는 존재하지 않을 터이다. 돌기와집의 붕어찜은 무엇보다도 숭뢰저수지의 맛 좋은 참붕어 중에서도 월척붕어만을 재료로 하여, 다른 곳에서는 볼 수 없는 특이한 조리법으로 요리해낸다. 다른 곳에서 하는 대부분의 붕어찜이 20,30분 만에 조림해 내는 데 비해 여기서는 2시간 이상을 조림해 내는 식이다, 그리하여 다른 곳의 붕어찜은 우선 가시며 뼈를 고르느라 수고로운데, 이곳은 머리에서 꼬리까지 가시며 뼈를 고를 수고가 없이 통째로 먹을 수가 있다. 자칫 어느 것이 살이고 어느 것이 뼈며 가시인지 전혀 분간이 가지 않게 입안에서 부드럽게 녹아드는데, 뼈와 살이 함께 어우러지는 고소하면서도 깊은 맛은 과연 다른 곳에서는 맛볼 수 없는 일품이다. 얼핏 생각하기로는 2시간 이상 붕어찜을 조리다 보면 형체는 물론 맛까지도 변질될 것 같은데, 붕어 자체의 모양이 전혀 손상되지 않을 뿐더러 맛 또한 붕어의 고유한 향취가 제대로 살아있다. 어쩌면 주인 되는 이의 정성이 아니면 그런 식의 요리는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그리고 바로 그런 정성에 돌기와집만의 비법이 숨겨진 것인지도. 붕어찜은 대중소에 따라 3만원,2만 5000원,2만원으로 나누어지는데, 각기 붕어의 크기가 아니라 마릿수에 따라 4마리,3마리 2마리로 값이 다르다. 이밖에도 메기매운탕, 민물새우튀김, 추어탕이 있다. 돌기와집은 찾아가기가 약간 까탈스러운 편인데도 불구하고 한번만 맛을 들이면 단골이 된 손님들이 서울이며 인천 각지에서 할아버지에서부터 어린 손자까지 일가족이 동행하여 거리가 멀다하지 않고 찾아온다. ■ 제철 맞은 생선회 푸짐 그대가 회를 좋아하는 이라면 석모도에서 나오는 길에 외포리 선착장의 젓갈시장 옆에 있는, 얼핏 포장마차처럼 보이는 가건물을 놓치지 말일이다. 기실 강화도 일대의 해안선마다 한 집 걸러 한 집으로 죄다 횟집 아니면, 카페나 모텔이나 펜션이나 민박집들이어서 눈에 차일 지경이다. 그런 마당에 구태여 어느 횟집을 골라 권할 수 없지만, 그러나 나의 취향으로는 젓갈시장 옆의 포장마차식 가건물을 지나칠 수가 없다. 거기에는 값싼 횟집들이 서넛 사이좋게 함께 들어있는데, 이왕이면 다홍치마라고 가장 안쪽에 있어서 바다가 내다보이는 ‘풍년소라6호’(032-933-9223)라는 약간 엉뚱한 이름의 횟집을 권하고 싶다. 벌써 10년 전부터 이곳에서 횟집을 해왔다는 30대 후반의 박미경씨가 주인인데, 우선 싱글벙글 잘 웃는 이여서 횟감을 고르기 전부터 그만 기분이 좋아진다. 요즈음 같은 겨울에는 숭어가 제철인데,1㎏에 2만 5000원이다. 어른 둘에 어린아이들이 딸린 네 명 한 가족이 충분히 먹을 수 있는 양인데, 매운탕과 함께 밴댕이회며 멍게가 무료로 나온다. 이밖에도 삼식이가 역시 제철인데, 값은 숭어와 같다. 여기에 우럭, 광어, 노래미, 농어 등이 있고, 해삼이며 왕새우, 키조개, 개불 등 취향에 따른 갖가지 해물들이 여느 고급 횟집 못잖게 고루 준비되어 있다.
  • [범죄로 본 2004 서울] 동기없는 ‘묻지마 범행’… 괴담만 떠돌아

    [범죄로 본 2004 서울] 동기없는 ‘묻지마 범행’… 괴담만 떠돌아

    2004년은 어느 해보다도 범죄피해에 대한 불안이 컸다. 희대의 살인마 유영철 사건을 비롯, 서울 각지에서 흉악 범죄가 끊이지 않았다. 특히 서울 서남부 지역에서는 부녀자 피살 및 피습사건이 잇따랐다.‘서울판 살인의 추억’이라는 괴담까지 떠돌았지만, 경찰은 용의자조차 특정하지 못한 채 해를 넘기고 있다. 서울신문은 범죄전문가들에게 의뢰해 올 한 해 서울에서 일어난 살인 및 피습사건을 분석했다. 구로·관악·동작·강서구 등에서 잇따른 7건의 ‘서남부 연쇄살인’은 동일범에 의한 연쇄범행으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가양동의 20대 여성 살인사건과 용답동 모녀 살인사건은 ‘비오는 목요일’에 일어나 연쇄살인 괴담을 증폭시키는데 한몫했지만, 수사 결과 내연관계에 의한 치정살인으로 드러났다. 지난 5월 대림동 중국동포 살인사건 역시 평소 피해자와 금전 문제로 갈등관계에 있던 탈북자가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되고 있다. ●’비오는 목요일’은 없다 우연히 사건발생 요일과 날씨가 같았을 뿐 범행도구도 일치하지 않았다. 신림4동 여고생 피습사건에서는 10㎝ 정도, 신대방동 보라매 공원 여대생 살인사건에서는 18∼20㎝ 길이의 흉기가 사용된 것으로 추정된다. 피해자가 여성이라는 점은 일치하지만 연령은 10대에서 40대까지 다양하다. 그러나 연쇄살인범은 비슷한 범행대상을 고르고, 도구에 집착하는 성향도 짙다. 유영철 역시 20대 전화방 도우미와 출장마사지사를 주로 범행대상으로 골랐다. 형사정책연구원 최인섭 범죄동향연구실장은 “올해같은 ‘살인 괴담’이 등장한 것은 화성 연쇄살인사건 이후 처음”이라면서 “살인사건이 연속적으로 근접한 지역에서 일어나고, 일부 언론이 이를 과대포장하면서 막연한 공포심을 키웠다.”고 지적했다. 최 실장은 “경기불황으로 어려워진 시기에 강력사건까지 잇따라 공포로 시민들의 삶은 더욱 움츠러들었다.”고 덧붙였다. 전문가들은 올해 강력범죄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으로 ‘무(無)동기 범행’을 꼽았다. 범행동기나 목적이 뚜렷하지 않다는 것이다. ●범인추적 단서가 없다 신대방동 보라매공원 여대생 살인사건의 피해자는 사망 직전 “모르는 사람이 찔렀다.”는 말을 남겼다. 지난 8월 미아4동과 9동에서 10분 간격으로 일어난 심야 부녀자 피습 사건의 피해자들 역시 “갑자기 뒤에서 아무 말 없이 찔렀다.”고 진술했다. 고척2동 여대생 살인사건은 범인이 피해자의 집 현관 앞에서 기다렸고, 피해품이 없는 것으로 미뤄 원한에 의한 면식범 소행으로 추정했으나 주변인 수사는 성과가 없었다. 대부분 피해자를 흉기로 난자했다. 잔인한 범죄는 원한이 개입된 것이라는 상식도 뒤엎었다. 경기대 이윤호 행정대학원장은 “잇따르는 무동기 범죄는 금품을 목적으로 하는 생계형 등 ‘도구형 범죄’가 아니라 사회 전체에 대한 불만 등을 분출하는 ‘표출형 범죄’의 전형”이라고 분석했다.30년 경력의 한 형사는 “용의자가 주변인을 벗어나면 동종전과자에서 사회불만자, 여성혐오자까지 수사대상이 거의 무한대로 넓어진다.”면서 “범행동기조차 뚜렷하지 않아 범인 검거는 더욱 힘들다.”고 털어놨다. 대낮에 사람들의 출입이 잦은 상가에서 흉기를 휘두르고, 범행현장에 불을 지르는 등 범죄의 흉포화·지능화 성향도 짙었다. 지난 8일 오후 1시쯤 석촌동 상가에서 발생한 연쇄피살 사건은 피해자가 종업원으로 일하고 있는 비디오방 안에 손님이 있는데도 성인남성 2명을 여러 차례 흉기로 찌른 뒤 유유히 사라지는 대담함으로 시민들을 경악케 했다. ●흉포화 끝이 없다 부녀자를 대상으로 한 범죄가 많았지만 성추행이나 성폭행 시도가 거의 없었던 것도 특징적이다. 정액이나 체모 등 증거가 남을까봐 일체의 성접촉을 하지 않았다는 것. 고척2동과 보라매공원 살인사건 등을 비롯, 지난 5월 용산 원효로에서 목이 졸려 숨진 채 발견된 20대 여성에게도 성폭행 흔적은 발견되지 않았다. 모방범죄 우려도 커지고 있다. 지난 16일 서대문구 홍제동 다세대주택에서 숨진 채 발견된 50대 여성은 머리에 둔기로 수차례 맞아 함몰된 상처가 있었다. 지난 19일 광진구 중곡동에서 50대 건물주를 살해한 세입자 역시 둔기로 피해자의 머리를 수차례 때렸다. 모두 유영철 사건에서 수법을 착안했을 가능성이 있다. 지난 10월 금천구 독산4동에서는 40대 중국동포 여성의 토막난 시체가 여행가방에 든 채로 발견되기도 했다. 경찰대 표창원 교수는 “독재정치나 경제적 궁핍 등 국민을 위협하는 대형이슈가 사라지면서 개인의 범죄피해에 대한 사회적 관심은 커지고 있지만, 최근 범죄는 현장에서 과학적인 증거를 잡지 않는 이상 용의자를 특정하기조차 힘들다.”면서 “웰빙 등 삶의 질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상황에서 살인을 저지르고도 잡히지 않는 ‘괴물’의 존재는 새로운 위협적 요소로 자리잡고 있다.”고 말했다. 유지혜 이재훈기자 wisepen@seoul.co.kr ■ 수난의 공권력-올 25명 순직… 공격받는 경찰 2004년에는 범인을 검거하는 과정에서 경찰관이 목숨을 잃는 사례가 유난히 많았다. 흉기에 찔리거나 총상을 입는 등 공무를 수행하다 부상을 입은 경찰관도 급증했다. 올 한해 순직한 경찰관은 모두 25명이다. 이 가운데 범인에게 피격을 받아 숨진 경찰관은 이학만 사건에서 순직한 2명을 포함, 모두 3명이다. 지난 2003년과 2002년 순직자는 각각 27명,39명으로 올해보다 많았으나, 범인에게 피격된 사망자는 2003년 1명,2002년에는 한명도 없었다. 그만큼 경찰관이 목숨을 위협받는 강력범죄가 늘어나고 있는 셈이다. 특히 지난 8월 부녀자 폭행피의자 이학만을 검거하려다 경찰관 2명이 흉기에 찔려 숨진 사건은 경찰이 사건현장에서 처해 있는 위험성을 그대로 드러냈다. 상대는 흉기상해까지 저지른 전과 10범이었지만, 두 경찰관은 맨손으로 이에 맞서다 변을 당했다. 지난달에는 대구에서 경찰관이 수십차례에 걸쳐 절도와 방화를 저지른 모자 일당을 검거하려다 흉기에 찔려 사망했다. 이 경찰관은 중상을 입고서도 범인들을 추격, 휴대전화로 지구대에 연락한 뒤에야 숨을 거둔 것으로 알려져 안타까움을 더했다. 공무를 수행하다 다치는 경찰관도 크게 늘었다. 올해 1088명으로 지난해 896명보다 21.4%나 급증했다.2002년에는 803명이었다. 이처럼 범인으로부터 공격을 받아 목숨을 잃거나, 다치는 경찰관이 잇따르자 경찰의 총기사용규정 절차가 너무 복잡하고 제한이 많아 실질적으로 범인 제압에 총기를 효과적으로 사용하는 것이 힘들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이같은 상황에서 지난 9월 경찰이 총격전 끝에 날치기범들을 검거한 것은 총기사용의 선례를 남긴 것으로 평가받는다. 현장에 출동한 영등포경찰서 박현수(45) 경위는 범인이 휘두른 흉기에 오른쪽 엄지손가락이 잘리는 부상을 입으면서도 실탄을 발사, 총기를 소지하고 있는 범인을 검거했다. 함께 출동한 고남귀(30) 경장 역시 허벅지와 엉덩이에 총상을 입고도 2인조 일당 검거에 일조했다. 지난달에도 서울 서부경찰서 한재군(29) 경장이 강도강간 피의자를 검거하는 과정에서 흉기에 찔려 부상을 입었으나, 현장에 출동한 경찰들이 실탄을 발사하는 등 적극적으로 대응해 범인을 제압했다. 서울경찰청 송좌균 강력실장은 “갈수록 범죄가 흉포화하고 있어 경찰관도 언제 어디서 공격을 당할지 모른다.”면서 “총기 사용 교육을 강화한다는 것을 전제로 규정을 좀 더 완화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유지혜기자 wisepen@seoul.co.kr ■ “범죄로 인생역전” 한탕주의 기승 올해는 부유층을 노린 범죄가 어느 때보다 만연했다. 경기불황이 장기화하면서 로또복권처럼 ‘한방’에 ‘인생역전’을 꿈꾸는 범행이 잇따라 불황을 힘겹게 헤쳐가는 서민의 마음을 씁쓸하게 했다. 지난 1월30일에는 재력가 집안 여성이 자주 드나드는 것으로 널리 알려진 강남구 청담동의 최고급 옷가게 앞에서 가게 주인(72·여)이 떼강도 일당 5명에게 폭행을 당하고 납치된 뒤 현금 1500만원을 뜯겼다.9월에는 용산구 후암동 모 이동통신회사 전 사장(51) 집 앞에서 부인(51)과 처이모(60)가 금품을 노리던 성모(34)씨에게 흉기로 찔려 처이모가 숨지고 부인이 중상을 입었다. 특히 11월에는 일당 5명이 중소기업 회장(77)과 일가족 3명을 납치한 뒤 대낮 서울 시내 한복판에서 버젓이 현금 5억원을 건네받아 사라진 초유의 사건이 발생, 온 국민을 경악케 했다. 범인들은 인터넷 포털사이트의 ‘한탕’이라는 카페에서 만나 범행을 꾸민 사실이 알려져 화제가 됐다. 하지만 한탕을 노린 범죄들은 결국 성공에 이르지 못했다. 한탕 범죄를 위해 모인 집단은 대부분 돈을 보고 모인 범인들이라 조직력이 허술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최소 수억원 이상을 노렸던 청담동 옷가게 주인 사건의 범인들은 현장에서 챙겼던 1500만원이 의외로 적어 밖에서 지휘하던 공범들의 의심을 살까봐 일부러 돈을 가져가지 않기도 했다. 중소기업 회장 일가 납치사건을 수사한 남대문서 송용욱 수사과장은 “한탕을 노리고 다수가 가담하는 범죄는 결국 허점이 남을 수밖에 없다.”면서 “순간적인 허영심으로 한탕을 노린 결과는 결국 초라한 결과를 낳는다는 점을 명심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재훈기자 nomad@seoul.co.kr
  • [13일 TV 하이라이트]

    ●건강스페셜(SBS 오전 11시35분) 4년 전, 나이 쉰여덟에 대장암과 신장암 선고를 받았던 산부인과 의사 홍영재 박사. 치열했던 암과의 투쟁과 그 후 암을 극복하고 다시 사는 그의 인생 이야기를 들어본다. 강남 경희한방병원 이경섭 박사와 함께 골다공증이 왜 위험한지, 이에 대한 치료법 및 예방법을 알아본다. ●사이언스+(YTN 오전 8시30분) 현대사회는 지식 경쟁사회, 아이디어와 발명에 관한 독점권 확보가 치열하다. 따라서 특허권이 중요한 변수로 작용하는데 특허청은 오는 2006년까지 특허심사기간을 22개월에서 10개월로 단축한다고 발표했다. 특허 심사기간 단축에 따른 준비사항과 기업에 미치는 영향을 알아본다. ●하나뿐인 지구(EBS 오후 10시10분) 태초의 인류가 지구를 지배하기 이전부터, 지구의 생성과 함께 그리고 지금까지도 지구의 보이지 않는 지배자로 살아왔던 생명체는 바로 미생물이었다. 과연 그들은 어디에 존재하고 있는 것일까. 인류와 공존해 온 미생물, 그들의 존재와 역할을 우리의 생활 속에서 찾아본다. ●쇼킹월드 돌발사태 발생(iTV 오전 9시) 최악의 상황에서 기적적으로 생존한 사람들이 털어놓는 생생한 이야기. 전투기가 추락하면서 소풍 나온 일가족들에게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 진다. 차가운 얼음호수에 빠진 아이들 누가 이들을 구할 것인가. 비행하던 여객기가 고압선과 접촉해 폭발하는 결정적인 순간을 포착했다. ●영웅시대(MBC 오후 9시55분) 일국은 관리부장이 되어 대한물산의 조미료 공장 건설을 맡아 일을 하는데 자재 수급에 애를 먹는다. 그리고 제대한 이국은 세기건설의 잡역부로 취직하고 삼국은 군대에 간다. 조미료 공장 건립을 맡고 있는 국철민은 자금난을 해결하기 위해 설탕 값을 여러 번 인상한다. ●인간극장(KBS2 오후 8시55분) 다른 아이들과 똑같이 교복에 책가방을 맨 모습은 평범한 여고생이지만 수많은 학생들 사이에 섞여 있어도 튀는 노에미. 기말고사를 보고 집에 온 노에미는 라면으로 점심을 때우고, 같은 시간 막내 가브리엘은 한식 일색인 급식을 깨끗이 비운다. 노에미는 막내 가브리엘의 공부를 도와준다. ●그대는 별(KBS1 오전 8시5분) 정우와 인경 사이를 의심하기 시작한 홍기는 정우나 정우의 식구가 한 번만 더 눈에 띄는 날엔 신문사에 찾아가서 모든 걸 폭로하겠다고 말한다. 그런 후 술을 마시던 홍기는 결국 치밀어 오르는 분을 참지 못하고 정우에게 전화를 걸어 자신은 무서울 것도 없으니 조심하라고 경고한다.
  • 中企회장 일가 피랍 내부소행? 청부납치?

    中企회장 일가 피랍 내부소행? 청부납치?

    중소기업 회장 일가족이 괴한들에게 납치돼 거액을 건넨 뒤 풀려난 사건이 일어났다. 경찰은 회장이 탔던 레저용 차량에서 범인들의 것으로 보이는 지문 10여개를 찾아낸 데 이어 회장의 가족을 태웠던 1t 화물탑차를 운전한 범인의 얼굴이 담긴 비디오테이프를 확보하는 등 수사에 활기를 띠고 있다. ●이른 새벽 등산로 입구에서 납치 서울 남대문경찰서는 10일 “콘크리트 제품 생산업체 B사의 회장 일가를 납치한 뒤 몸값을 받고 풀어준 용의자들을 쫓고 있다.”고 밝혔다. 장모(77) 회장이 서울 집에서 부인과 딸, 회사 운전기사 강모(41)씨와 휴가차 강원도 홍천 대명콘도로 출발한 것은 지난 9일 오전 4시. 오전 6시45분쯤 콘도 뒤쪽 강대월계곡 입구에서 장 회장 일가가 산에 오를 준비를 하고 있는데 갑자기 나타난 흰색 1t 탑차에서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의 괴한 6∼7명이 우르르 내리더니 뒤에서 이들을 덮쳤다. 이들은 둔기를 들고 “엎드리지 않으면 죽이겠다.”고 위협하면서 점퍼를 덮어씌워 눈을 가리고 케이블을 묶는 흰색 끈으로 손을 결박했다. 이 과정에서 도망치려다 붙잡힌 강씨는 집단폭행을 당해 장이 파열되는 중상을 입었다. 범인들은 등산로 입구에 주차해 둔 장 회장의 렉스턴 승용차에 장 회장을, 박스형태로 되어 있는 탑차 화물칸에 부인과 딸, 강씨를 나누어 태웠다. 이들은 서울로 올라오는 동안 장 회장을 시켜 낮 12시부터 수차례에 걸쳐 아들에게 “이유는 묻지 말고 무조건 현금으로 5억원을 준비하라.”는 전화를 걸게 했다. ●시내 호텔 앞서 접선, 몸값 5억 받고 풀어줘 장 회장의 아들은 급히 마련한 현금을 서류 박스 3개에 나누어 담은 뒤 회사 구매부장과 서울 소공동 조선호텔 정문 앞에서 기다렸고, 약속한 오후 3시쯤 범인 가운데 1명이 장 회장을 데리고 나타나 차량 트렁크에 돈을 싣고 사라졌다. 이 과정에서 장 회장은 아들에게 “저 사람은 강도”라고 넌지시 알려줬다. 장 회장이 풀려났다는 소식이 없자 접선장소에 같이 나갔던 구매부장은 오후 3시19분 경찰에 납치사실을 신고했다. 범인들은 비슷한 시간에 남산 3호터널 입구에서 휴대전화와 지갑을 빼앗은 뒤 장 회장을 내려주었고, 탑차에 가둬놓았던 장 회장의 가족도 풀어준 것으로 밝혀졌다. 경찰 관계자는 “탑차에 타고 있던 범인들은 장 회장의 아들과 접촉하는 동안 주변을 배회하다 몸값을 받는 데 성공했다는 연락을 받고 가족들을 풀어준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장 회장의 렉스턴 승용차는 이날 오후 이태원에서 발견됐으며 경찰은 이 차량에서 10여개의 짓이겨진 지문을 찾아냈다. 경찰은 빠르면 11일 오전 이 지문의 주인을 밝혀낼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회장 일가 잘 아는 주변인물 대상 수사” 경찰은 장 회장이 이른 시각 주변에 알리지 않고 길을 나섰는데도 범인들이 장소와 시간 등을 정확히 파악하고 있었던 점과 처음부터 5억원이라는 거액을 요구한 것으로 미루어 회장 일가와 회사의 현금동원능력 등 내부사정을 잘 아는 사람이 연관된 계획적인 범행으로 보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범인들은 장 회장 일가가 서울에서 출발할 때부터 홍천까지 미행했을 가능성도 있다.”면서 “최근 회사를 그만 둔 사람이나 채권관계가 있는 사람 등을 대상으로 수사를 벌이고 있다.”고 말했다. 경찰은 납치됐던 강씨가 기억한 탑차의 차량번호를 토대로 이 차가 경북 경산에 살던 민모(30)씨 소유인 것으로 밝혀냈다. 민씨는 2∼3년전 신용불량자가 되기 전까지 건강식품판매업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또 남산 3호터널 톨게이트의 폐쇄회로(CC)TV에 찍힌 1t 탑차의 운전자 얼굴을 찾아내고, 이 운전자가 민씨인지를 확인하기 위해 형사대를 민씨의 마지막 주소지인 경산과 가족이 살고 있는 대구로 급파했다. 경찰은 범인의 얼굴을 본 장 회장과 회사 관계자들이 처음 보는 인물이라고 진술함에 따라 이들이 납치를 청부받은 폭력배일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동종전과자 등도 수사하고 있다. 유지혜 이재훈기자 wisepen@seoul.co.kr
  • [세상에 이런일이]황당한 가족

    교통사고가 났다고 허위로 신고해 4억원의 보험금을 받아낸 ‘황당한 가족’이 경찰에 적발됐다. 이 가족의 보험사기에는 부모는 물론 대학생 딸까지 동원됐다. 보험설계사인 정모(43·여)씨와 택시운전을 하는 정씨의 남편(47)은 2001년 7월17일 오후 7시쯤 인천시 남동구 만수동의 한 아파트 앞에서 교통사고가 났다며 보험회사로부터 2900만원의 보험금을 타냈다. 이후 정씨 가족이 3년 동안 번갈아가며 당한 교통사고는 모두 5차례. 가족은 3억 6000만원의 거금을 챙겼지만 물론 사고는 처음부터 있지도 않았다. 이들은 교통사고말고도 2002년 10월에는 집안 화장실에서 넘어졌다며 보험금 800만원을 타내는 등 가족이 번갈아 ‘중상’을 입는 바람에 3000만원의 보험금을 수령했다. ‘수익’이 나려면 ‘투자’가 필요한 법. 일가족의 명의로 되어 있는 상해보험은 자그마치 79개였다. 이 때문에 정씨 가족은 10개 보험사에 달마다 280만원의 거금을 보험료를 납부한 것으로 경찰 조사 결과 드러났다. 하지만 비슷한 사고가 한 가족에게만 잇따라 일어나는 것을 의심한 보험사의 신고로 경찰에 덜미를 잡혔다. 유영규기자 whoami@seoul.co.kr
  • 일가족 4명 저수지서 자살

    23일 오후 9시45분쯤 전남 화순군 한천면 금정저수지에 광주25가XXXX호 세피아승용차(운전자 박모·35)가 빠져 있는 것을 조모(40)씨가 발견,경찰에 신고했다.사고로 운전자 박씨와 부인 문모(35)씨,큰딸(9),작은 딸(7) 등 일가족 4명이 숨졌다. 조씨는 경찰에서 “저수지를 지나가다 불빛이 보여 가까이 가서 봤더니 승용차가 빠져 있었다.”고 말했다.박씨 가족은 지난 20일부터 친지들과 연락이 끊겼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앞서 이날 오후 8시20분쯤 박씨의 누나(경기 평택거주)는 “동생이 전화통화에서 ‘경제적인 문제로 자살하니 뒷일을 부탁한다.미안하다.’는 내용의 말을 하고 끊었다.”며 “동생 가족을 찾아달라.”고 경찰에 신고했다.경찰은 저수지에 빠진 차량을 견인한 결과 신고접수된 것과 같았다고 밝혔다.경찰은 일단 박씨 가족이 경제적인 문제로 자살한 것으로 보고 정확한 사인을 조사중이다. 화순 남기창기자 kcnam@seoul.co.kr
  • 두가족 8명 익사

    22일 오전 7시30분쯤 경북 포항시 남구 장기면 양포리 방파제에서 대구3모 69××호 쏘나타 승용차(운전자 우모·50·대구시 북구 구암동)가 바다로 추락했다.이 사고로 우씨와 아내 김모(50)씨,딸(20),아들(13) 등 일가족 4명이 숨졌다.경찰은 “승용차가 옆으로 기울더니 곧바로 바다에 빠졌다.”는 목격자들의 말과 차량 내에서 유서가 발견되지 않은 점,시신에 외상이 없는 점 등으로 미뤄 우씨가 방파제에서 U턴을 하다 운전부주의로 사고가 난 것으로 보고 있으나,동반자살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 한편 이날 오전 10시20분쯤에도 충북 제천시 수산면 능강리 인근 충주호에 경기33구 17××호 싼타페 승용차(운전자 이철휘·38·경기도 성남시 수정구)가 추락,이씨와 아내로 추정되는 정모씨,자녀로 보이는 7세와 5세 된 여자아이 2명 등 4명이 숨졌다. 포항 김상화기자 제천연합 shkim@seoul.co.kr
  • 在中 탈북자들 긴장의 나날

    “몇몇 민간기구가 시도한 기획망명이 고작 기십명의 탈북자 탈출에 성공하였으나,이는 중국 공안의 탈북자 단속을 강화하고 북한의 국경선에 대한 경비를 강화하게 함으로써 수십만의 북한 동포를 더욱 굶주리게 만들었다.” 지난달 통일연구원 주최 세미나에서 정현백 성균관대 교수가 탈북자문제와 관련한 민간기구 활동에 대해 냉철한 성찰이 필요하다며 제기한 주장이다. 실제 탈북자 450여명이 동남아 국가를 통해 입국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중국에 있는 탈북자들이 초긴장 상태에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중국 옌지시의 한 조선족은 28일 “북·중 국경지대와 동북3성 일대에 숨어 지내는 탈북자들은 이번에 남한으로의 대량 입국 사태로 중국 공안이 언제 일제 단속을 펼칠지 몰라 긴장하는 분위기”라며 “과거의 사례를 볼 때 이번에도 탈북자들에 대한 단속 열풍이 몰아칠 것”이라고 걱정했다. 북한과 중국은 지난 1996년 12월 고 김경호씨 일가족 17명이 입국한 이후 국경지대와 동북3성 지역에서 대대적인 탈북자 색출 작업을 펼쳐 상당수가 송환됐다. 김인철기자 ickim@seoul.co.kr
  • [희대의 증오살인 충격] 10개월간 범인 그림자도 못밟았다

    [희대의 증오살인 충격] 10개월간 범인 그림자도 못밟았다

    희대의 연쇄살인마가 10개월 가까이 서울 전역을 누비며 19명의 무고한 시민을 참혹하게 살해했지만 경찰의 수사망은 범인의 용의주도함을 따르지 못했다.관할 경찰서에서는 11명의 부녀자가 실종된 사실조차 모르고 있었고,검거한 뒤에도 감시를 소홀히 해 범인이 12시간동안 도주하기도 했다. 지난해 9월 유영철이 처음 강남구 신사동에서 노교수 부부를 살해한 뒤 두 달 동안 삼성동 노파 살인사건,구기동 일가족 살인사건,혜화동 노인살해 및 방화사건 등 부유층을 노린 살인사건이 잇따르자 경찰은 동일범의 소행으로 보고 공조체제를 구축해왔다. 처음 경찰은 사건 현장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된 B상표 신발의 족적을 단서로 동일범임을 확신,신용카드에 나타난 신발 구입자들의 명단을 토대로 수사를 벌였다.유영철은 경찰에서 “족적을 남겼을까 마음에 걸려 범행 뒤 신발을 잘게 잘라 쓰레기통에 버렸다.”고 진술했다.경찰이 수개월동안 매달린 족적은 결국 무용지물이었다. 경찰은 또 신사동 살인사건에 쓰여진 흉기가 2가지인 점을 들어 공범을 염두에 두었으나 이 역시 사전에 치밀한 계획을 세운 유영철의 단독범행이었음이 밝혀졌다.구기동 살인사건 이후에는 정신병자의 소행을 염두에 두고 최근 3년 정신병력이 있는 24만명을 대상으로 수사를 벌였다.하지만 유영철은 1995년 정신질환 치료를 받아 역시 수사망을 빠져나갔다.결정적 증거였던 혜화동 살인사건 현장 근처에서 찍힌 폐쇄회로(CC)TV 화면 역시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했다. 경찰은 사건 발생 지역에서 모두 34만 회선의 통신을 검색했다.사건 지역에서 범행시간대에 통화를 한 사람들을 4배수로 추려,모두 804명을 용의선상에 올리기도 했다.그러나 유영철은 포함되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간혹 경찰의 불심검문에 걸렸을 때도 유영철은 의도적으로 간질발작을 일으켜 빠져나갔다.바닥에 쓰러져 고통스러워하는 유영철을 보고 경찰은 여러차례 그냥 보내주었다.유영철은 지난 15일 경찰에 붙잡혀 조사를 받을 때에도 간질발작을 3차례나 일으키는 시늉을 한 끝에 경찰이 수갑을 풀어주자 3층에서 1층으로 뛰어내려가 달아났다.이때 유영철은 자살할 마음을 먹고 수면제 360알을 구입하기도 했다.그가 12시간만에 다시 붙잡히지 않았으면 희대의 연쇄살인사건이 영영 미궁으로 빠져들 뻔했다. 유영철은 지난 3월부터 출장마사지업소와 전화방에서 일하는 여성들을 자신의 원룸으로 불러들여 잔인하게 살해한 뒤 시체를 토막내 야산에 버리기를 11차례나 반복했으나 관할서는 피해자들의 실종사실도 파악하지 못했다.경찰은 “피해자들이 대부분 가족과도 연락을 하지 않고 혼자 살며 불법적인 윤락에 종사하는 여성들이라 주변에서도 신고를 꺼려했다.”고 설명했다.한편 지난 1일 살해된 김모(25·여)씨를 잘 아는 박모(46)씨에 따르면 김씨의 친구는 김씨의 납치사실을 경찰에 신고했다.박씨는 “김씨의 어머니와 어제 통화를 했는데 지난달 말쯤 김씨의 친구가 ‘납치당했다.’는 김씨의 전화를 받고 곧바로 경찰에 신고했다고 하더라.”라고 말했다. 유지혜기자 wisepen@seoul.co.kr
  • [희대의 증오살인 충격] 다섯가지 의문점

    [희대의 증오살인 충격] 다섯가지 의문점

    19명을 무참히 살해한 유영철의 범행이 속속 밝혀지고 있지만 여전히 의문점은 남아 있다. 무엇보다 노인들을 상대로 연쇄살인을 저지른 이유가 제대로 설명이 되지 않는다.아무리 부유층에 대한 복수가 목적이었다지만 현장에 있던 거액의 금품을 그대로 둔 것은 쉽게 납득할 수 없는 대목이다. 신사동 노교수 부부 살인사건 때는 2층에 1만원권 7400만원이 있었으며,투명한 보석함에 든 사파이어·다이아몬드 등 귀금속과 현금 280만원도 그대로 있었다.삼성동 노파 살인사건 때도 안방에서 현금 135만원과 100만원짜리 수표 3장이 손도 대지 않은 채 발견됐다. 경찰은 “금품을 훔치다 증거가 남을 것을 우려해 손을 대지 않은 것 같다.”면서 “개인 원한에 의한 면식범의 소행으로 가장,수사에 혼선을 빚기 위해 금품을 그대로 놓아두었을 가능성도 있다.”고 설명했다. 범행현장에서 쉽게 챙길 수 있는 거액을 모른 체한 유영철이 생활자금을 어떻게 조달했는지도 의문이다.경찰관을 사칭,윤락업주 등으로부터 수십만원씩을 뜯어내며 원룸의 월세 35만원을 충당했다지만 설득력은 별로 없다.보도방에서 알게 된 여성과 동거할 때는 그 여성이 생활비를 충당했다고 해도,그 이후는 설명이 되지 않는다. 또 당초 여성 출장 마사지사를 감금·폭행한 혐의로 경찰에 긴급체포됐을 때 “여자를 납치한 일은 없고 노인들은 많이 죽였다.사건이 20여개쯤 된다.”며 묻지도 않은 말을 순순히 털어놓은 것도 의문이다. 유영철의 주장대로 처음부터 끝까지 단독범행이었는지도 석연치 않다.지난해 10월 사전답사까지 하며 치밀한 계획을 세워 구기동 일가족 3명을 살인한 점 등 범행의 흉포화와 대담성으로 미뤄볼때 공범이 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경찰은 “공범이 있으면 발각될 가능성이 있어 혼자 저질렀다.”는 유영철의 진술과 현장검증에서의 정황을 종합해 일단 단독 범행으로 보고 있다. 마지막으로 추가 범죄 여부다.유영철은 인천 월미도 노점상 살인사건을 비롯,적어도 두 건 이상의 살인을 더 저질렀다고 진술했다. 경찰은 “인천 사건은 상당부분 진술이 확보돼 가능성이 높아 19일 현장검증 직후 공식발표 할 것”이라고 밝혔다. 경찰은 “부산에서도 범행을 저질렀다고 주장하지만,유영철과 하루이틀 같이 지낸 한두 명의 피해자가 보도방에 ‘함께 부산에 간다.’고 둘러댄 진술이 와전된 것 같다.”고 덧붙였다. 그럼에도 조사 초기 진술 등을 토대로 ‘피해자가 26명에 이른다.’는 설까지 흘러나오는 점은 경찰이 확인해야 할 대목이다. 한편 경찰은 서울 서남부에서 일어난 일련의 살인사건과 연관되었는지에는 “유영철이 아직 이들 사건에는 구체적 진술을 하지 않고 있다.”면서 “범행 수법 등이 다르기는 하지만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수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효용 유지혜기자 wisepe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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