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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쟁대비에 부산한 각국의 표정

    ◎“페만 「시한폭탄」 터진다”… 지구촌이 초비상/TV정규프로 중단… 사태추이에 촉각/미국/결사항전 다짐속 터키국경 폐쇄 단행/이라크/사우디,전군에 비상령… 영은 전시내각체제로 ▷미국◁ 미국에 의해 대이라크 전쟁 개시 시점으로 거듭 확인돼왔던 15일 자정(미국동부시간)은 아무런 일 없이 지나쳤다. 철군시한이 지남에 따라 전문가들은 전쟁발발의 가능성을 깊이 우려하면서도 백보를 양보해도 군사적 충돌과 무고한 출혈보다 평화적 해결이 바람직하다는 의미에서 이라크의 양보,쿠웨이트 철수,외교적 협상에 의한 페르시아만 사태의 평화적 해결 가능성에 대한 기대를 버리지 않고있다. 그러나 미국시간 15일 자정이 지나면서도 이라크가 쿠웨이트로부터의 철수를 시작하지 않자 앞으로 수일내에 전쟁이 불가피할 것이라는 견해가 여전히 지배적이다. 이와 관련,미국은 이라크에 고도의 심리적 압박을 가한후 오는 20일쯤 결국 대규모 공격을 개시할 것이라는 분석이 유력하다. 철군시한인 15일밤 미 전역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TV의 철야방송을 통해전쟁발발 여부를 지켜보며 긴장속에 뜬눈으로 밤을 새웠다. 자정이 가까워지면서 미국의 주요 TV방송들은 정규프로를 중단한채 이라크·사우디아라비아·요르단 등 중동에 급파한 유명 앵커맨과 워싱턴의 백악관·국방부 출입기자들을 입체적으로 연결시켜 현지표정과 사태의 추이를 보도하는데 방송시간을 전면 할애했다. 백악관 주위에서는 수백명의 반전주의자들이 『전쟁 반대』 구호를 외치며 철야시위를 벌였다. ○음료수값 4배 폭등 ▷이라크◁ 사담 후세인 이라크 대통령은 유엔이 정한 철수시한이 지남에 따라 이제 더이상 공식석상에 나타나지 않을 것이라고 아랍권의 한 외교소식통이 16일 말했다. 이 외교관은 UPI통신과의 회견에서 『후세인은 미국이 주도하는 다국적군의 손쉬운 공격목표가 되지 않기 위해 당분간 공식석상에 나오기를 피할 것』이라고 전망하고 『현단계에서 후세인을 제거하는 것은 다국적군에게 있어 정당한 것이며 이라크군의 사기도 크게 저하시킬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편 터키 외무부는 16일 이라크가 터키와의 국경을 폐쇄시켰다고 발표했다. 터키 외무부의 무라트 숭가르 대변인은 이라크가 아무런 사전통보없이 마지막으로 열려있던 하부르 국경초소를 폐쇄했다고 밝혔다. 이에 앞서 터키 신문들은 이라크가 이라크인들의 월경을 막기 위해 국경 안쪽에 지뢰를 매설했다고 보도했다. 이른바 「용기의 날」로 지정된 15일 이라크 라디오방송은 수백만명의 국민들이 전국의 수개 도시에서 시위에 참가했다고 보도했으며 인구가 4백만명인 바그다드에서는 지난 88년 이란과의 휴전때 이래 최대의 인파가 이날 운집했다. 병에 든 식수는 평상시보다 4배나 비싼 값에 팔리기도 했는데 바그다드 시민들은 전쟁이 일어날 경우 식수공급체제가 무너질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설탕·통조림등 바닥 ▷사우디◁ 유엔이 설정한 이라크의 쿠웨이트 철수시한이 지남에 따라 다국적군의 일원인 사우디아라비아는 15일 전국에 비상경계령을 시달하는 등 이라크의 공격에 대비,임전태세에 돌입했다. 아랍 뉴스지는 사우디 각료회의가 15일 파드 국왕에게 사우디군의 전쟁준비 상태를 설명했으며 국방장관과 항공장관을 겸하고 있는 술탄 왕자는 14일 각료회의에서 행한 보고를 통해 사우디군이 최고 수준의 비상경계태세에 돌입했으며 전국의 주요 시설물들도 이라크 공군의 기습공격에 대비하는 만반의 방어체제를 갖췄다고 밝힌 것으로 보도했다. 이라크 미사일의 사정권안에 위치한 수도 리야드에는 정적이 감도는 가운데 팽팽한 긴장감이 고조피고 있으며 수도를 비롯한 주요 도시에서는 민방위대와 정부관리들이 주도하는 방공훈련이 실시되고 있다. 전쟁이 거의 확실시됨에 따라 전국적으로 생활필수품에 대한 사재기가 성행,리야드·제다 등의 주요 도시에서는 쌀·음료수·통조림·설탕·건전지 등의 물건들이 거의 바닥난 것으로 알려졌다. ○“바그다드후방 공격” ▷이스라엘◁ 이라크와 미국 주도 다국적 동맹군간의 전쟁이 『조만간』 시작될 것이라고 이츠하크 샤미르 이스라엘 총리가 16일 밝혔다. 샤미르 총리는 이날 라디오 방송을 통해 『사담 후세인이 보여주고 있는 비타협적인 태도때문에 페르시아만에 배치된 다국적 연합군과 이라크군간의 군사적 적대행위가 조만간 시작될 것』이라고 말했다. 전쟁발발시 이스라엘을 선제공격할 것이라며 이라크가 위협하고 있는 가운데 이스라엘은 15일 이라크측의 미사일 공격가능성에 대비하면서 그들이 바그다드 후방까지도 보복공격을 가할 수 있는 수단을 갖추고 있다고 경고했다. 공군 사령관인 아비후 빈눈 소장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이스라엘은 항공기가 연료를 다시 공급받지 않고 비행할 수 있는 거리인 국경선 넘어 1천㎞ 떨어진 이라크의 미사일기지를 공격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선철군 후회담 제의 ▷소련◁ 페르시아만에서의 전쟁을 피하기 위한 노력들이 모두 수포로 돌아간 가운데 소련은 16일 이라크가 쿠웨이트에서 철수할 경우 중동의 제반문제에 관한 총체적 해결을 위해 힘쓸 것이라고 제의했다. 알렉산데르 벨로노고프 소련 외무차관은 페르시아만사태에 관한 45분 동안의 소련 최고회의 보고에서 크렘린 당국은 사담 후세인 대통령과의 접촉을 계속 시도해오고 있다고 말하고 『만약 이라크가 쿠웨이트로부터 철군할 경우 아무도 이라크를 공격하지 않을 것이며 철군후에는 중동문제 해결을 위한 길이 열릴 것』이라는 메시지를 이라크측에 전달했다고 밝혔다. ○“후세인은 응징돼야” ▷영국◁ 정가와 일반국민들은 15일 프랑스의 중재노력을 마지막으로 모든 전쟁회피노력이 무위로 돌아가자 대이라크전은 불가피해진 것으로 일단 기정사실화하는 분위기다. 존 메이저총리는 이날 철군시한을 수시간 앞두고 벌어진 마지막 의회토론석상에서 『우리는 전쟁을 원치 않지만 사담 후세인이 그쪽을 선택하는 이상 다른 방도가 없다』고 밝히고 『영국은 지금 전쟁을 위한 모든 준비가 다 되어있다』고 선언했다. 한편 영국정부는 16일부터 전시내각체제로 들어가며 전시내각본부는 다우닝가 10번지 총리관저 지하실에 설치된다. ○불도 무력사용 지지 ▷프랑스◁ 페르시아만에 파견중인 프랑스군 1만2천명은 미국의 지휘하에 놓이게 될 것이지만 그것은 「예정된기간」과 「예정된 임무」에 한해서만 인정될 것이라고 미셀 로카르 프랑스총리가 16일 밝혔다. 로카르 총리는 이날 페르시아만 위기를 논의하기 위해 소집된 의회 특별회의에서 행한 연설을 통해 이같은 조치들은 쿠웨이트를 해방시키는 목적에만 국한,적용될 것이라고 말하고 쿠웨이트를 해방시키기 위해 이라크의 군사 기지를 파괴하는 것이 절대 필요하다는 점을 잘 이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앞서 프랑수아 미테랑 프랑스 대통령은 16일 쿠웨이트에서 이라크를 몰아내기 위해 군사력을 사용하는 것이 이제 합법화됐다고 지적하면서 프랑스는 다국적군의 대이라크 공격을 지원할 것이라고 밝혔다. 미테랑 대통령은 프랑스군의 군사적 개입에 대한 표결을 하기위해 긴급 소집된 프랑스 의회에 보낸 메시지를 통해 유엔 결의안을 존중키 위해 군사력 사용을 명령할 것이라고 말했다.
  • 중동대전 눈앞에… 「카운트다운」 돌입

    ◎“전쟁만이 해결책” 공감대 점차 확산/“단기전 시나리오 허점 많다” 군 일부선 우려도/개전 채비에 부산한 미국/워싱턴=김호준특파원 이라크군의 쿠웨이트 철군시한을 하루 앞둔 14일 미 국민들은 대부분 전쟁발발을 불가피한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고 있으면서도 한가닥 실낱같은 평화해결에의 희망도 버리지 못하고 있다. 미 상하 양원이 12일 이라크군이 유엔이 정한 철군시한인 15일까지 쿠웨이트에서 철수하지 않을 경우 부시대통령에게 군사력을 사용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선전포고 결의안을 통과시킴에 따라 이제 개전의 시기는 전적으로 부시대통령의 손에 달리게 됐느데 부시대통령은 의회가 결의안을 통과시킨 직후 『이는 이라크군이 철수하지 않으면 전쟁이 일어날 것이라는 가장 분명한 메시지』라면서도 『그러나 의회의 결의가 곧 전쟁이 불가피하다는 의미는 아니며 나는 아직도 평화적 해결을 희망하고 있다』고 밝혀 이같은 미 국민들의 분위기를 한마디로 표현했다. 15일 이후 어느때라도 전쟁돌입이 가능하게 되자 미 국방부는 페르시아만에 배치된 미군이 원활하게 임무를 수행할 수 있게 하기 위해 탄약과 연료,장비의 부품 및 의약품 등 물자보급에 더욱 더 분주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사막의 방패」 작전에 병참문제를 담당하고 있는 찰스 머레이소장은 『15일 이전에 도착하진 않겠지만 1주일 이내에 30일분의 연료와 부품,의약품들이 페르시아만 지역에 공수될 것이다. 15일 이후 미국은 전쟁을 치를수 있으며 또 언제까지라도 전쟁을 계속할 수 있을 것』이라고 장담하고 있다. 페르시아만에서의 전쟁이 점차 현실화하면서 반전시위도 베트남전 당시를 회상시킬 만큼 미 전역으로 확산되고 있다. 백악관과 의사당 앞에 모여든 반전시위대들은 선전포고 결의안이 의회를 통과한데 대해 『92년 선거에서 본때를 보여줘야 한다』고 분통을 터뜨리면서 『사우디에 파견된 미군들이 진실로 미국의 국익을 위해서 파견됐다고 믿는 사람은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더욱이 전쟁이 임박함에 따라 이제까지 미군 당국이 수립해온 단기전의 필승시나리오에 예상외의 변수와 허점이 많아 전혀 예상치 못했던 결과를 초래할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군내부에서 제기되고 있어 반전시위대로 하여금 목소리를 더욱 높이게 하고 있다. 이처럼 전쟁에 대한 찬반론이 여전히 엇갈리고 있기는 하지만 대통령에게 전쟁권한을 부여하는데 끝까지 반대했던 샘 넌의원(민주당)이 결의안 채택후 전쟁이 일어날 경우 미군을 뒷받침하겠다고 말한데서 알수 있듯이 대다수의 미 국민들은 전쟁이 일어나지 않고 위기가 해결될수만 있다면 가장 바람직하겠지만 의회가 선전포고 결의안까지 채택한 마당에 후세인이 끝까지 쿠웨이트 철수를 거부한다면 결국은 전쟁이외에 다른 선택방안이 있을 수 있겠느냐는 쪽으로 기울고 있다. 물론 전쟁이 꼭 일어날 것인지는 아직 누구도 확언할 수 없는 실정이다.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후 5개월 동안 바그다드를 지키다 13일 귀국한 조 윌슨 바그다드주재 미 영사는 『아직도 나는 평화적 해결이 가능하다고 믿고 있으며 마지막 순간까지도 우리는 이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는데 그것이 비록 아주 작은 희망에 불과할지라도 매달리지 않을수 없는 미 국민들의 심정을 대변해주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와관련해 제임스 베이커 국무장관이나 존 수누구 백악관 비서실장이 연이어 현재의 페르시아만 위기가 해결된 후에는 팔레스타인 문제를 논의할 국제회의의 개최가 가능할 것이라고 밝히고 있는 것은 마지막 타협의 가능성을 보이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점에서 주목을 끌고 있다고 할수 있다. ◎“신의 뜻대로”… 대피훈련 사이렌 요란/유류구입 장사진… 공항엔 탈출인파 북적/“폭풍전야의 긴장” 이라크/암만=김주혁특파원 제3신 「전쟁」은 바그다드 공항에서 시작된 듯했다. 이라크군의 쿠웨이트 철수시한을 불과 하루 앞둔 14일 바그다드 공항은 비행기표를 구입하려는 사람들의 「전쟁터」로 변했다고 이라크에서 요르단으로 빠져나온 외국인들이 전했다. 바그다드 공항은 이라크를 탈출하려는 사람들이 비행기표를 서로 빨리 사려고 밀고 당기고 하는 통에 심각한 혼돈상태에 빠졌다. 이라크에서 암만에 도착한 한 프랑스인은 『바그다드 공항의 질서가 곧 완전히 깨질 것으로 우려된다』고말했다. 그는 비행기표를 구입한 많은 사람들은 가장 소중한 것을 차지한듯 매우 행복한 미소를 짓는 모습이었다고 전했다. 일부 외국인들은 환호성을 울리는가 하면 V자를 만들어 보이기도 했다고 그는 덧붙였다. 바그다드 공항은 이라크군의 철군시한인 1월15일이 다가오면서 더욱 붐비고 있다. 이라크가 불시에 이라크 영공을 폐쇄할지 모른다는 우려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하루라도 빨리 이라크를 빠져나가려고 공항으로 몰리고 있는 것이다. 공항의 혼돈과는 달리 바그다드시는 긴장감이 돌긴 하지만 조용하다. 마치 폭풍전야의 정적과 같은 분위기이다. 이라크에서 암만에 도착한 외국인들은 가끔 대피훈련을 위한 사이렌소리가 바그다드의 정적을 깨긴 하지만 전반적으로는 아직 조용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주유소는 기름을 넣으려는 자동차로 장사진을 이루고 식료품점의 쌀·밀·설탕 등 생활필수품은 품귀현상을 빚고 있다고 한다. 전쟁에 대비한 준비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전쟁발발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미국·영국을 비롯한 서방국가 대사관은 거의 모두 철수했다. 소련·프랑스·쿠바 및 아랍국가들도 극소수의 필수요원만 남기고 그외의 대사관 직원들은 모두 철수시켰다. 한 외교관은 『전쟁이 나면 도망갈 곳도,대피할 곳도 없을 것』이라며 대규모 다국적군의 대이라크 공습에 두려움을 나타냈다. 암만에 도착한 아랍인들은 사우디아라비아·바레인 등 아랍국가들과 같이 이라크에서도 헌혈운동이 확산되고 있다고 전했다. 쿠웨이트·이라크에 이어 제3의 전쟁터가 될지도 모를 요르단의 암만 국제공항은 바그다드 공항과는 달리 한산한 편이다. 요르단에 내리는 겨울비는 한산한 암만공항을 더욱 을씨년스럽게 하고 있다. 암만공항은 한산하지만 이라크와 마찬가지로 요르단에서도 대피훈련을 하고 있다. 대피훈련을 알리는 사이렌소리는 사우디아라비아,바레인,아랍에미리트 등에서도 울리고 있다. 사이렌소리와 함께 D­데이를 향한 초침소리는 더욱 가까이 들리고 있다. 사담 후세인 이라크대통령은 14일 케야르 유엔사무총장과의 회담후 범아랍권의 이름으로 대미 성전을 촉구했다. 후세인은 성명을 통해 『쿠웨이트는 무신론에 맞서 아랍민족을 해방시키기 위한 대전장이 될 것』이라고 선언했다. 베이커 미 국무장관도 다국적군은 전쟁에 대한 준비가 돼 있다고 강조했다. 많은 관심속에 14일 열린 이라크 의회가 후세인의 쿠웨이트로부터의 철수불가 방침을 지지하고 나섬에 따라 전쟁의 불길한 그림자는 더욱 짙어졌다. 과연 페르시아만에서 다시 포성이 울릴 것인가. 케야르 유엔사무총장은 바그다드를 떠나면서 『페만에 전쟁이 발발할지는 오로지 신만이 알 것』이라고 말했다. 긴박감이 더해가는 중동의 많은 아립인들은 인샬라(신의 뜻대로)를 되뇌고 있다.
  • 요르단에서 김주혁특파원 제1신

    ◎암만공항 출국인파… 비행기료 웃돈 1천불/한국무역관,육로탈출 비상계획/이접경선 조명탄 발사… 불안 고조 아침 저녁으로 섭씨 3∼5도의 쌀쌀한 날씨가 계속돼 조금은 추운 느낌이 드는 요르단의 수도 암만은 겉으로 보기에는 조용한 편이었으나 사람들의 얼굴에는 당황한 기색이 뚜렷했다. ○당황한 기색 역력 이미 돈있는 사람들은 상당수가 떠났으며 요르단인들 사이에는 15일 이후의 사태에 관한 이야기가 무성한 편이었다. 그들은 한결같이 만일의 사태가 벌어지면 이라크와 이스라엘 사이에 끼인 요르단이 전장이 될 것을 우려하는 눈치였다. 요르단인 라미 마야씨는 요즘 어떠냐는 질문에 『지금까지는 좋았다』면서 앞으로의 상황에 대해서는 어두운 표정을 감추지 않았다. 암만시내 호텔은 방 구하기가 쉬웠으나 세계 각국에서 보도진들이 몰려들면서 프레스센터가 있는 인터컨티넨탈 호텔만이 만원사례를 빚고 있다. ○부자들 벌써 떠나 암만에는 그동안 바그다드에 남아 있던 각국 공관과 기업의 필수요원들이 속속 모여들고 있고 안정된 지역으로빠져 나가려는 사람들로 공항은 크게 붐비고 있었다. 반면 항공편 특히 유럽행 항공편은 거의 끊기고 있어 항공요금이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다. 며칠전만 해도 5백달러 정도의 웃돈이 얹혀져 거래되던 항공권이 12일부터는 무려 2∼3배나 뛰었으며 보험료도 편도 50달러,왕복 1백달러나 덧붙여진 상태다. 암만주재 한국무역관의 오진웅관장 등 3명은 13일 가족들을 대피시킨데 이어 14일 철수할 계획으로 있으며 대사관 직원들도 대피할 계획으로 있다. 오관장 등은 비행기표를 구하기 어려울 경우에 대비,육로로 탈출한다는 비상계획도 세우고 있으나 한국에서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준비는 잘 되고 있다고 말했다. 그밖에 교민들도 지난해 8월 한번 정도는 대피해본 경험이 있어 그다지 번잡하지 않게 대피준비를 갖추고 있으며 13일중에는 대피할 교민은 거의 다 빠져나갈 것으로 보인다. 이들중 상당수는 사태가 길어지지 않을 가능성에 대비,일시 대피후 상황이 진정되면 곧 돌아올 예정으로 있다. ○요르단 경계 강화 요르단정부는 점차 긴장이 고조되면서 경계태세를 강화하고 있는 상태다. 정체가 불확실하거나 암만으로부터 출발하는 항공권이 없는 제3국인에 대해서는 입국을 불허하고 있다. 요르단정부는 최근 이스라엘이 접경지역에서 조명탄을 쏘는 등 군사적 움직임을 보이는데 대해 『좌시하지 않겠다』며 예민한 반응을 보이고 있고 군대를 전진배치,만일의 사태에 대비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 우려되는 「일 문화 역류」/나윤도 문화부기자(오늘의 눈)

    가이후 일본 총리의 방한을 계기로 한일 양국이 문화통신사를 연례적으로 교환키로 합의함에 따라 「한일 신시대」가 개막된다. 그러나 선뜻 기자의 가슴에 와닿는 것은 이 문제가 자존의 문화교류로 성사되어야 할텐데 그렇지 못하지 않을까하는 기우같은 것이다. 아시아·태평양 시대의 동반자로 한일간의 다각적 협조 관계수립이 불가피하다는 점을 고려하면 문화통신사 교환은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질 수도 있다. 문화교류를 통한 기본적인 문화인식은 상호이해의 틀을 제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문화통신사의 교환은 우리측에서 먼저 1백여명의 각계각층 인사로 구성된 「한국 문화통신사」를 오는 11월 일본에 보내는 것으로 되어 있다. 그리고 우리 문화통신사들은 도쿄에서 공연단·재일 한국인과 도쿄 시민들이 함께 하는 대대적인 「한국민속잔치」를 열 계획이다. 이밖에 여러도시를 방문,학술심포지엄·각종 전시회·한국영화상영 등 다채로운 행사를 펼치도록 되어있다. 일본측에서는 92년 하반기에 비슷한 규모의 「일본 문화통신사」와 공연단을 우리나라에 파견,서울을 비롯한 전국 각도시에서 다양한 행사를 펼친다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여기서 신중히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상호교류에 따른 손익계산이다. 호혜평등원칙이라는 미명아래 그러지않아도 역류현상을 보이고 있는 일본문화가 일방적으로 흘러들어오도록 물꼬를 더 넓게 터주는 결과를 빚지않을까 하는 점이 바로 그것이다. 지금도 엄청난 물량의 일본문화가 우리 주위를 넘실거리며 틈만 보이면 새 들어오고 있지 않은가. 이번 문화통신사 교류계획을 보고 임란이후 일본에 파견했던 조선통신사를 돌이켜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다. 그 당시 우리 통신사들은 조선의 선진문화를 일본에 이식시켰다. 그래서 조선통신사들이 현해탄을 건너 에도(강호)로 가는 길은 어디나 환영인파로 넘쳤다. 숙소에는 이들 조선의 명사들과 시문을 교환하고 묵필 서화 전적 등을 얻어가기 위해 고을 유지들이 밤새 몰려들었다고 역사는 기록하고 있다. 아무튼 이번 한일 문화교류 계획에 따른 문화통신사 교환과 한일 합작영화 허용 등은 일본문화의 합법적인 국내유입을 허용하는 셈이다. 그속에 묻어들어오게될 저질 퇴폐 대중문화도 걱정이 되지만,그로인해 한국혼까지 빼앗겨 문화의 종속화가 이루어지는 일은 없어야할 것이다.
  • 다국적군 60만­이라크군 54만 “초긴장 대치”

    ◎요르단 국경·사우디 영공은 폐쇄/“이촉즉발” 위기속의 페만 현장 ○난민유입 방지 일환 ○…요르단은 9일 아리크와 쿠웨이트로부터 넘어오는 모든 비요르단인들에게 국경을 폐쇄한다고 밝혔다. 살라메 하마드 요르단 내무차관은 이날 국영 페트라 통신을 통해 이같이 밝히고 이 조치는 즉각 발효된다고 말했다. 하마드차관은 이라크와 쿠웨이트로부터의 난민들을 도울 국제지원을 받기까지는 국경폐쇄가 불가피하다고 말하고 요르단은 이제까지 제3세계 출신 난민들 85만여명을 돌보느라 외채에 시달리고 있음에도 불구,5천5백만달러를 썼으나 국제지원으로 받은 금액은 1천2백만달러에 불과하다고 덧붙였다. ○…사우디아라비아는 페르시아만 난민들을 본국으로 송환시키려는 비행기들에 대해 사우디 영공을 통과하지 못하도록 영공 폐쇄조치를 내렸다고 국제이민기구(IOM)의 암만소장이 9일 밝혔다. 이 소장은 8일 밤 리야드항공 관계자들로부터 이를 통보받았다고 말하고 이에따라 하노이로 떠나려던 비행기들이 출발하지 못하고 있으며 사우디 상공을 통과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덧붙였다. ○…현재 페만 지역에는 미군을 포함한 다국적군 60만5천여명과 쿠웨이트지역내 및 부근에 배치된 이라크군 54만명 등 모두 1백14만명이 대치중이라고 미 국방부가 8일 밝혔다. 피트 윌리엄스 미 국방부 대변인은 유엔이 결의한 이라크의 쿠웨이트 철군시한을 1주일 앞두고 논평을 통해 페만 지역에 미 육해공군 36만명 이상이 서구 국가들과 아랍 국가들의 다국적군 24만5천명과 함께 집결해 있다고 밝혔다. ○중화기 막바지 수송 ○…유엔이 쿠웨이트 점령 이라크군의 철군시한으로 설정한 15일이 다가옴에 따라 미군을 주축으로 하는 사우디 주둔 다국적군의 화력 강화를 위한 탱크와 중무기 등의 해상 수송 작전이 절정을 이루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서방의 군사소식통들은 사우디 항구에는 하루 평균 6∼7대의 군용물자를 수송하는 선박이 도착하고 있다고 밝혔는데 한 관계자는 수송작전이 최고조에 달해 있다고 말했다. 미국은 지난해 8월 23만명의 병력을 수송한 것을 시작으로 대규모 수송작전을 전개해 왔는데 지난해 12월까지 1백50여대의 선박이 병력은 물론 수백대의 탱크를 포함해 모두 2백만t의 물자를 수송했다. ◎“예상 밖의 평온” 바그다드/거리엔 젊은이 “북적”… 이따금 반미시위 ○…유엔이 정한 이라크의 쿠웨이트 철수시한을 불과 1주일 앞두고 페르시아만에 전운이 짙게 깔린 요즈음 바그다드시는 송년축제 때 쓰인 전구들이 아직 시내 곳곳에 줄지어 걸려있는 등 새해맞이 분위기로 가득차 있으며 긴박감이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다. 호텔 옥상으로 보이는 하늘에서는 별들이 초롱초롱 빛나고,시내 고속화도로 양편에는 붉은빛을 뿜는 가로등이나 혹은 행운을 상징하는 네잎 클로버 모양으로 된 네온등이 불빛의 행렬을 이루고 있다. 시내 야시장은 여전히 인파로 북적거리고 있으며 백화점에는 각종 상품들이 가득 진열돼있어 비록 유엔의 대이라크 금수이후 물가가 크게 오르기는 했지만 물자부족 등 즉각적이고 실제적 타격은 받지 않고 있는 듯하다. 그간 중재를 자청하고 바그다드를 숱하게 드나들었던 서방측 유명인사들중의 하나는 『전쟁에 관한 얘기는 바그다드에서보다 유럽에서 더 많이 하고 있다』며 바그다드의 평온에 고개를 갸웃했다. 이라크 정부가 17세에서 23세까지의 남자들을 공식적으로는 전원 징집했음에도 불구하고 이 연령층 젊은이들이 사둔가나 티그리스 왼쪽 강안을 따라 들어서 있는 번화가를 몰려다니고 있는 풍경은 예전과 다름이 없다. 이곳 서방외교관들은 이라크 정부당국의 민방위태세와 관련한 각종 성명과 발표들은 국민들을 대상으로 하는 동시에 대외적 선전효과도 노리고 있다고 보고 있다. 즉 예비군 동원령이 내려졌지만 『정규군은 동원된 예비군에 무장을 시킬 여유능력이 없는 것은 물론 군편제내에 흡수할 능력조차 없는 것 같다』는 것이 이곳 외교관들의 진단이다. ○…수백명의 이라크인들이 9일 바그다드주재 미국 및 영국대사관앞에 『미군은 즉각 철수하라』 『우리는 사담 후세인을 사랑한다』는 등의 구호를 외치며 항의시위를 벌였다. 이같은 항의시위는 미국이 페만 위기의 평화적 해결을 위한 『마지막이자 최선의 기회』라고 말하는 미·이라크간의 제네바 외무장관 회담이 열리기 직전 발생했다.
  • 신정 귀향길 비교적 한산/경부등 고속도 소통 원활

    ◎역·터미널 인파,평소 주말수준 상회 신정연휴를 하루 앞둔 지날달 31일 철도역과 고속버스터미널·시외버스주차장 등지에는 하오부터 귀성객이 몰렸으나 평소 주말 승객숫자를 조금 웃도는 수준에서 크게 붐비지는 않았다. 한국도로공사는 이날 하룻동안 차량통행량이 지난해와 비슷해 경부고속도로로 3만5천여대,중부고속도로로 3만2천여대의 차량이 서울을 빠져나간 것으로 추정했다. 도고공사측은 이에따라 당초 고속도로의 혼잡을 막기위해 경부고속도로는 반포∼수원구간,중부고속도로는 상일∼곤지암 구간에서 차량이 하행선에 진입하는 것을 통제하려 했으나 형편에 따라 탄력적으로 통제했다. 경찰도 헬기 10대,순찰차 2백11대,견인차 39대를 동원해 연휴기간 동안 전국 고속도로와 국도에 교통소통 비상대책을 펼치고 있다. 서울 강남 고속터미널의 경우 경부선의 예매율이 25%,호남·영동선의 예매율은 30%에 머물러 고속버스 이용객이 당초 예상을 크게 밑돌았다. 또 서울역에는 2천여명이 몰려 평소의 주말과 비슷한 수준이었으나 관공서 및 기업체의 종무식이 끝난 하오가 되면서 1만여명의 귀성객 등 인파가 몰렸다.
  • 어제 일찍 귀가… “가족과 함께”/차분한 성탄전야

    ◎오늘 낮 전국에 눈올듯 올해 크리스마스 이브는 조용하고 차분하게 지나갔다. 24일 하오 대부분의 시민들은 가족들과 조용한 성탄전야를 위해 일찍 집으로 돌아가 서울·부산 등 대도시의 도심지는 대체로 예년보다 한산한 편이었다. 퇴근길 거리에는 손에 케이크 등 선물꾸러미와 달력 등을 들고 버스를 기다리거나 전철을 타려는 시민들이 눈에 많이 띄었다. 서울 명동성당에는 이날 2천5백여명의 신도가 참석한 가운데 자정미사가 열렸고 영락교회에서도 3천여명의 신도가 모여 성탄절 축하예배를 가지는 등 전국의 성당과 교회에서 아기예수의 탄생을 축하하는 미사와 예배가 열렸다. 김수환 추기경은 명동성당의 자정미사에서 강론을 통해 『오늘날 우리사회는 어두우나 결코 밤의 어둠만이 뒤덮고 있는 것은 아니다』라면서 『그리스도가 가르친 사랑을 믿음으로 따를 때 우리사회의 분열과 단절,빈부격차,지역간·계층간 갈등의 벽이 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 종로와 명동 등 전국 대도시 유흥가에는 밤이 깊어지면서 인파가 몰려들어 붐비기도했다. 인파는 밤11시를 고비로 점차 줄어들기 시작했으며 자정이 지나 유흥업소들이 문을 닫기 시작하자 중심가는 곧 조용한 모습으로 돌아갔다.
  • 외언내언

    인생길을 싸움터로 표현한 사람은 많다. 강자의 논리 속에 끝없는 경쟁관계로 이어져 오기 때문. 로맹 롤랑도 그 중의 한 사람이다. 그는 말한다. 『…인생은 영원한 현재의 싸움터이다. 거기서는 과거와 미래가 끝없이 싸우고 있다』 ◆해마다 연말연시에 치르는 대학입시도 그것. 모든 사람들의 마음에 그것은 「입시전쟁」으로 입력되어 있다. 서전은 지난달 말의 원서접수로 막을 올렸던 것. 무슨 난리라도 난 것처럼 인파·차파는 이리 몰리고 저리 구르는 가운데 눈치 코치에 무전기가 등장하고 신문·방송까지 덩달아 법석을 떨고. 그로부터의 20일을 소강상태였다고 치자. 오늘은 다시 그 2막이 불꽃을 튄다. ◆수험생만이 치르는 「전쟁」은 아니다. 그 부모형제가 치르고 학교 교사들이 치른다. 교통경찰관에 운전기사도 치르고 시험과는 아무 관련이 없는 일반 시민들도 이 「전쟁」의 피해를 간접적으로나마 본다. 이게 오늘로 끝나는 것도 아니다. 전기대 발표에 이은 후기대 원서접수와 발표,전문대의 그것으로 줄곧 이어지게 된다. 그래서 우리의 겨울은 뜨겁다. 그리고 그 열기는 해가 갈수록 높아진다. ◆이걸 우리는 보통 「교육열」이라는 말로 표현한다. 하지만 이것은 차라리 「생존경쟁열」. 입시망국론에 고매한 전인교육 부재론이 아무리 외쳐져도 생존경쟁열 앞에서는 무색해진다. 『대학교육이 인생의 전부는 아니다』고 남을 위로하는 사람도 자기 자녀의 문제로 될 때 이 열기에 휩싸여 오지 않았던가. 이 열기현상은 「교육문제」의 차원을 넘어선다. 「생존경쟁력」을 염두에 둔 종합적 접근의 처방이 설 때 비로소 이 열기를 잠재울 수 있는 것이리라. ◆큰 추위는 없을 것 같다는 예보이니 다행이다. 수험생들을 위해 일반시민들도 할 수 있는 한껏 협조를 해야겠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차분한 마음가짐. 최선을 다하고 그 결과를 겸허하게 수용하는 것이 경쟁사회를 사는 마음자리 아닐까 한다.
  • 바웬사 58∼73% 득표 예상/폴란드 대통령 결선 개표에 돌입

    【바르샤바 AP 로이터 UPI 연합】 폴란드 자유노조 지도자 레흐 바웬사가 무명의 캐나다 이민출신인 스타니슬라프 티민스키 후보에 압승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폴란드 사상 최초의 민선대통령을 선출하는 결선투표가 9일 상오 폴란드 전역에 마련된 2만2천개 투표소에서 일제히 시작됐다. 폴란드 남부지역에 눈이 내린 가운데 영하의 날씨 속에서 실시된 결선투표는 상오 6시(한국시간 하오 2시)에 시작,하오 8시(한국시간 10일 상오 4시)에 종료된다. 투표종료 직후 폴란드 국영TV와 독일의 여론 조사기구인 인파스측의 첫 컴퓨터추계 결과가 발표되며 이날 자정(한국시간 10일 상오 8시)께 비공식 부분 개표결과가 나올 것으로 보인다. 최종 공식개표 결과는 10일 발표될 것으로 예상된다. 가장 최근 실시된 여론조사에 따르면 자유노조지도자 레흐 바웬사는 58∼73%의 득표율을 보일 것으로 예상된 반면,티민스키는 16∼23%의 지지를 얻을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이번 선거의 투표율은 60%일 것으로 예상됐다.
  • 생수시판과 깨끗한 물(사설)

    보사부 장관의 국감 답변을 통해 생수의 국내 시판이 내년부터 실시될 것임이 확인됐다.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일이라고 생각된다. 그 동안 생수시판에 관한 쟁점은 다분히 현실과 유리된 것이었다. 수돗물에 대한 불신감이 커지며 일부 계층만 먹게 됨으로써 계층간 위화감이 생길 수 있다는 게 반대의 논리였다. 그리고 깨끗한 수돗물을 먼저 만들어야 한다고도 했었다. 그러나 깨끗한 물이란 일정기간의 정책적 노력만으로 이루어질 수 있는 과제가 아니다. 수돗물 오염에 대한 충격과 파동이 연이어 있었지만 이는 오늘날 물만이 아닌 모든 환경오염 요소들의 동시적 개선을 통하지 않고서는 깨끗하게 할 수 없는 문제이다. 단지 오늘의 기술을 통해 비교적 좀 나은 깨끗함을 겨우 얻을 수 있을 뿐이다. 시판을 금지하고 수출만 하라는 조건으로 생수업체를 허용했던 것도 생수를 요구하는 국내시장을 눈앞에 두고 실은 비현실적인 접근이었다. 생수생산의 96%가 국내에서 소비된 것은 이미 밝혀져 있다. 금지함으로써 오히려 생수 그 자체의 품질상태만 애매하게 되었다. 아직도 공적인 생수생산 시설과 규격의 기준마저 마련하지 못한 형국이 되었다. 이 새 생수는 보통 수돗물에 염소소독을 해 판 가짜 생수로까지 발전되었다. 조건부 생산허가이므로 정부는 생수의 품질에 대해 사후관리책임까지 질 이유가 없다고 생각해온 것은 특히 잘못된 일이었다. 생수가 없으면 수돗물에 대한 불신감이 줄어든다는 것도 너무 단순한 관점이다. 지난해 물파동 이후 모든 사람들은 일단 수돗물을 기피하고 있다. 그래서 또 하나의 현상은 약수터로 몰려가는 일이었다. 서울주변의 약수터 인파는 하루 50만명으로 추산된다. 2백30여개의 약수터에서 2시간 이상씩 기다리는 사람들의 행렬을 사회적으로 보면 대단한 인력과 시간의 낭비에 불과하다. 이 현상은 전국적으로 비슷하게 돼 있다. 그러나 더 답답한 것은 이 약수들마저 실은 오염된 물이라는 사실이다. 이미 보사부와 서울시가 약수를 조사해서 폐쇄시킨 곳도 있다. 단순한 오염이 아니라 납·아연·철 등 중금속오염 약수만도 확인된 곳이 20여 곳이나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약수터로 가는 것이 시민이다. 이는 깨끗한 물에 대한 설득가능한 정책이 아직은 마련되지 않았다는 것을 뜻할 뿐이다. 따라서 수돗물 불신감은 생수와 같은 다른 조건에 의해서가 아니라 수돗물 그 자체의 신뢰도 증진으로만 해소될 수 있는 과제이다. 이 점이 특히 유념이 돼야 한다. 그러기 위해 생수관리만 해도 보다 철저함을 증거하는 계기가 돼야 한다. 일반 음료수보다 17배나 많은 세균이 들어 있기도 하다는 생수를 모두 잡아내야 하고 유통과정까지도 관리를 해야 한다. 이렇게 하려면 식용기간을 짧게 하는 용기의 크기도 조정해 주어야 하고 염소로 살균한 물이 아니라 진짜 생수만이 판매가 되도록 해야 한다. 허가만 내주고 기준만 정하면 됐다고 하는 불철저함이 생수관리에서도 또다시 나타나면 이 신뢰도로서는 수돗물 신뢰도 얻기란 더 어려워질 수밖엔 없다. 오늘날 깨끗한 물은 환경오염 그 전체와 싸워서 얻어내야 할 국민 모두의 책임 속에 있다.
  • 잇단 과격파 테러속「평성시대」개막/62년만의 일왕 즉위식 이모저모

    ◎「신헌법」 이후 첫 의식… 일 열도 흥분/일왕 오픈카 퍼레이드에 12만인파 환호/자위대기지 5곳 피습… 전철 운행도 중단 아키히토(명인) 일왕의 즉위식이 12일 하오 1시 왕궁내 세이덴(정전)의 마쓰노마(송□간)에서 일본왕족과 3부요인,세계 1백58개국 및 2개 국제기관의 사절 등 모두 2처5백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거행됐다. 일왕은 이날 『일본국 헌법과 황실전범에 정해진 바에 따라 이미 황위를 계승했으며 이제 소쿠이노레 세이덴노기(즉위례 정전□의)를 거행,즉위를 국내외에 선포한다』며 즉위사실을 선언했다. 그는 즉위에 즈음한 「말씀」을 통해 『쇼와(소화)천황의 60여년에 걸친 재위기간중 어떠한 때라도 국민과 고락을 함께 한 마음 씀씀이를 깊이 새겨 항상 국민의 행복을 기원한다』고 말하고 『일본국 및 일본 국민통합의 상징으로서의 직분을 다할 것을 맹세하며 국민의 예지와 꾸준한 노력으로 일본이 더 한층 발전을 이루어 국제사회의 우호와 평화,인류의 복지와 번영에 기여할 것을 간절히 희망한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가이후 도시키(해부준수) 총리가 축하의 인사와 함께 만세 3창을 선창했다. 이날 일왕의 즉위식은 1928년(소화 3년) 이래 62년만에 거행된 것이며 일왕의 지위가 「통치권의 총람자」에서 「상징천황」으로 바뀐 신헌법 하에서는 처음 거행된 것이다. 이날 즉위식은 규모면에서는 쇼와(소화) 일왕의 즉위식보다 성대했으나 도쿄(동경) 도심부 등 전국에서는 이날 새벽 JR역 및 지하철,자위대기지,신사 등을 겨냥한 28건의 동시 다발 과격게릴라 습격사건이 발생,3만7천여명의 병력을 풀어 경비중인 경찰당국을 당황케 했다. 이 게릴라 습격으로 도쿄의 순환동맥인 야마노테센(산수선)과 게힝도후쿠센(경빈동북선)은 2시간20분동안 운행을 중단,4만7천여 승객이 발이 묶이는 피해를 입었으며 나라시노(습지야) 육상자위대기지 등 5곳의 기지가 박격포 공격을 받았으나 별다른 피해는 없었다. 신사도 5곳이 방화됐다. 즉위식을 끝낸 일왕부처는 왕궁에서 아카사카고쇼(적판어소)에 이르는 4.7㎞를 오픈카에 동승하고 퍼레이드를 벌여 일장기를 흔들며 「천황폐하 만세」를 연호하는 약 12만 인파의 열렬한 환영을 받았다. ○…일왕의 즉위식은 12일 하오 1시 아키히토(명인) 일왕이 정전의 「마쓰노마」(송□간)에 모습을 나타내면서 시작됐다. 정전 북쪽 회랑을 통해 「마쓰노마」에 들어선 일왕은 중앙에 안치된 「천황의 자리」인 「다카미구라」(고어좌)에 들어섰다. 시신들이 이 좌대의 포장을 젖히고,일왕은 즉위의 「말씀」을 했다. 이번 즉위의 「말씀」은 62년전 「쇼와」천황(소화천황)이 즉위했을 때 보다는 많이 민주화됐다고 관계자들은 지적했다. 우선 과거에는 『일본국 헌법을 지키고』라고 말했으나,이날은 『준수하고』라고 바뀌었으며,『천황의 책무를 다할 것』이라는 표현도 『국민통합의 상징으로서 직분을 다하겠다』로 수정됐다. 그러나 전통의식에 따라 거행된 이날의 즉위식은 비록 신헌법하에서의 첫 즉위식이라고는 하나 여전히 「등극」의 분위기를 씻지는 못했다고 많은 사람들은 지적했다. 즉위식후 하오 3시30분부터 왕궁에서 아카사카고쇼(적판어소)에 이르는 4.7㎞의 연도에 늘어서 「반자이」(만세)를 외치는 많은 시민들의 모습도 일왕은 여전히 「일본의 천황」이라는 사실을 실감케했다. ○…일왕이 즉위를 선언한 정전내의 「옥좌」인 「다카미구라」(고어좌)는 8각의 3층 대좌인데 높이 6.5m,폭 5.4∼6m,무게 약 8t이다. 왕비가 앉는 「미조다이」(어장대)는 이보다 약간 작은 무게 약 7t 규모였다. 일왕은 이 대좌에서 즉위를 선언하는 「말씀」을 했다. 가이후 도시키(해부준수) 총리의 만세 3창은 본래 이 대좌가 있는 전상에서 내려서서 중정에서 할 예정이었으나 『민주국가에서 신하의 색채가 너무 강하다』는 의견을 받아들여 「다카미구라」가 안치된 전상에서 선창했다. 만세 3창을 선도하는 말도 처음에는 단순히 「천황폐하 만세」라고 되어 있었으나 『만세의 목적이 있어야 한다』는 야당측 주장에 따라 『즉위를 축하하여 천황폐하 만세』로 바뀌었다. 이번 사용된 「다카미구라」는 대정시대에 제작된 것으로 대정ㆍ소화 양 일왕이 사용했으며 교토(경도)에 보관중인 것을 옮겨와 수리하고 칠을 새로 입혔다. 이날 일왕이 서 있는 위치는 총리가 서있는 자리보다 1.3m 높았다. ○…일왕 즉위식에 관련된 비용은 총리부ㆍ궁내청ㆍ경찰청ㆍ외무성 등 관계 각 분야를 합쳐 모두 1백20억엔에 이르는 것으로 밝혀졌다. 이 가운데 즉위식 자체인 「소쿠이노레」(즉위□례)의 예산은 총리부에 계상된 33억8천5백만엔인데 내역별로는 메인 이벤트인 「세이덴노 기」(정전□의)에 14억3천6백만엔,오픈카 퍼레이드에 1억2천만엔,12일부터 15일까지의 7차례에 걸친 만찬비용 4억3천3백만엔 등이다. ○…일왕의 즉위식이 거행된 12일은 「국민의 휴일」로서 공립학교는 거의 휴교했으나 주로 기독교계통의 사립학교를 중심한 20여개교는 정상수업을 하거나 교사ㆍ학생이 자유참가하는 강연회 등을 개최했다. 특히 이가타(신석)의 경화학원고교 등은 평소대로 수업을 했다.
  • 베를린장벽 누가 허물었나/붕괴 1년… 치열한 공적 다툼

    ◎정부대변인의 “즉시 개방” 실언이 발단 슈피겔지/당일 밤 9시에 발포금지령 내려 성사 크렌츠/인파에 당황,상부지시 없어 독자결정 국경수비대 89년 11월9일.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가운데 전격적으로 발표된 베를린장벽의 개방결정은 1년도 안돼 동서독의 통일을 가져오고 냉전이후 시대의 새 질서가 뿌리를 내리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역사적인 사건이었다. 베를린시를 동서로 가른 장벽이 무너진지 1년이 지난 지금 「베를린장벽은 과연 누가 열었는가」라는 문제를 놓고 장벽개방의 공을 서로 자기가 차지,역사책에 기록되고 싶어하는 구동독 관계자들간에 치열한 싸움이 벌어지고 있다. 이같은 싸움에는 과거의 공산당 서기장에서부터 말단의 국경수비대원에 이르기까지 신분의 고하에 관계없이 조금이라도 관계된 사람은 누구나 이 영광에 조금씩 참여하고 싶어한다. 베를린장벽이 무너진지 1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장벽붕괴의 정확한 과정은 밝혀지지 않고 있지만 다음과 같은 몇가지 설이 대체적으로 나돌고 있다. 첫째는 에곤 크렌츠 당시 공산당서기장이 장벽개방을 결정했다는 설,둘째로 당시 국경수비대의 지휘관들이 물밀듯 밀려오는 동베를린 시민들을 막을 길이 없자 자신들의 재량으로 장벽개방을 스스로 결정했다는 설,셋째는 당시 공산당 중앙위원회가 마련한 새로운 여행 및 이민 시책을 발표하기로 돼있던 샤보브스키 동독 정부대변인의 실수로 베를린장벽의 개방이 앞당겨졌다는 설 등이다. 첫째의 크렌츠 결정설은 전적으로 크렌츠 자신의 주장을 바탕으로 한 것이다. 지금은 실직자로 지내고 있는 크렌츠는 그날밤 9시경 그가 발표한 지시가 없었던들 벽은 허물어지지 않았을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는 최근 로이터통신과 가진 회견에서 『상응하는 지시가 없이 국경이 열렸다고 주장한다는 것은 우스운 일』이라고 말했다. 그는 자신이 사태의 추이를 보아 그날밤 9시경 발포금지령을 내린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둘째로 당시 국경수비대 지휘관들의 재량으로 장벽이 무너졌다는 설 역시 이를 뒷받침할 뚜렷한 증거 같은 것이 없이 다만 당시의 상황과 한 관계자의 주장만으로 유포되고 있다. 사실 장벽개방 하루 전인 8일에만도 2만여명의 동독국민이 서독으로 탈출했을만큼 당시 동독인들의 서독으로의 탈출은 아무도 막기 힘들 정도의 거대한 흐름이었다. 이같은 탈출민들을 총을 쏘지 않고 막는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실정이었다. 당시 찰리 검문소 지휘관이었던 귄터 몰의 얘기를 들어보자. 『전날에 이어 9일에도 동베를린을 빠져나가려는 사람들의 물결은 조금도 줄어들지 않았다. 우리들은 상부로부터 어떤 지시가 내려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상부로부터는 아무런 지시도 없었고 사람들은 계속 밀려오고 있었다. 결국 밤 12시경 내자신이 개방결정을 내릴 수 밖에 없었다』 셋째로 샤보브스키의 실수설은 9일 하오 당중앙위원회에서 마련한 새 여행 및 이민시책을 이날 저녁 기자회견에서 발표하기로 돼있던 샤보브스키 대변인이 새 시책의 정확한 내용을 파악하지 못한채 기자회견에 임했다가 기자들의 질문에 당황,실수한 것이 새로운 역사를 창조하게 됐다는 것이다. 이상의 세가지 설 중에서 그래도 3번째의 「실수설」이 가장유력한 정설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결국 베를린장벽 붕괴는 엄청난 역사적 사건이지만 실제로는 그 중대성을 제대로 인식한 사람이 아무도 없이 어물어물하는 가운데 장벽개방이 현실로 나타나고 말았다는 것이다. 이 실수설에 대해서는 독일의 시사주간지 슈피겔지가 지난 10월호에서 자세하게 다루고 있다. 슈피겔지의 내용을 살펴보자. 크렌츠 서기장은 계속되는 동독인들의 탈출 물결로 곤경에 처해 있었다. 따라서 크렌츠는 새로운 여행자유화 방안을 구상중에 있었다. 이 구상은 9일 하오 열린 당중앙위원회에서 채택됐지만 실제로 9일밤 베를린장벽을 개방하는 내용은 아니었다. 그런데 이날 채택된 새 방안을 저녁때 기자회견에서 발표하기로 한 샤보브스키 대변인은 기자회견장에 들어가서야 그 내용을 읽어 보았고 이를 발표했다. 그러나 그 내용이 모호해 기자들의 질문이 계속됐다. 기자들의 질문은 주로 새 방안이 언제부터 발효되느냐는 것과 새 방안의 대상지역에 서베를린도 포함되느냐는데 집중됐다. 그러나 샤보브스키로서도 이를 알지 못하고 있었다. 잠시 머뭇거리던 그는 『즉각 발효되며 서베를린도 물론 포함된다』고 답했다. 이같은 샤보브스키의 대답은 즉각 동독 TV에 보도됐고 이는 엄청난 파급을 몰고 왔다. 베를린장벽의 통과가 당장 가능해진 것으로 여긴 사람들이 동서 양쪽에서 베를린장벽에 모여 『문을 열라』고 외쳐대기 시작했다. 베를린장벽의 붕괴가 기정사실화한 것이다. 슈피겔지에 따르면 당시 동독 TV들의 보도도 매우 큰 역할을 했다. 새 여행방안은 당초 10일 새벽 4시에 발표될 예정이었으며 관례대로라면 동독 TV들은 정부지침을 기다린 후에야 이를 보도했어야 했다. 그러나 과거의 관례를 깨고 이를 즉각 보도한 것이 장벽붕괴를 굳히는데 큰 기여를 했다는 것이다. 어쨌든 그날밤 베를린장벽 개방의 결정이 어떻게 내려졌는지를 정확히 파악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따라서 베를린장벽 개방의 공을 서로 차지하려는 싸움의 결과는 훗날 역사의 심판에 맡길 수 밖에 없을 것이다.
  • “건강나빠 동생에 이사장물려줬다”/박근혜씨,「육영재단」파문관련회견

    ◎“내가 동생에 먼저 제안… 불화설 사실무근” 육영재단 어린이회관의 이사장직과 「박정희 전대통령ㆍ육영수여사 추모사업회」회장직을 갑자기 사퇴,세간의 화제에 오른 박전대통령의 큰딸 근혜씨(39)는 7일 기자회견을 자청,『그동안 부모님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바로잡는데 많은 결실을 맺었다고 생각하며 이제 건강도 좋지않아 동생에게 이사장직을 물려줬다』고 밝혔다. 박근혜씨는 이날 하오 양장차림에 담담한 표정으로 서울 성동구 능동에 있는 어린이회관 이사장실에서 기자들과 만났으며 동생 근영씨와의 불화설에 대해서는 『전혀 사실무근』이라고 잘라 말했다. ­언제부터 이사장직을 그만두려 했는가. 『동생 근영이와 전에도 여러차례 의논을 해오다 지난달 아버님의 11주기 추모식직후 「재단을 맡아보겠느냐」고 제안했더니 동생도 「부모님의 유업에 참여하고 싶다」는 의향을 보여 다른 사람에게 맡기는 것보다 동생에게 맡기는 것이 좋다고 생각해 결정했다』 ­지금까지 기념사업회의 성과라면. 『사업을 통해 아버님의 업적을 담은 「조국의 등불」을 제작하고 「겨레의 지도자」라는 책과 많은 인터뷰를 통해 잘못된 국민의 인식을 바로잡았다. 지난해 10주기추모식에는 15만여명의 인파가 모여 부모님의 뜻을 기리는 등 성심성의껏 일해온 것이다』 ­6일 근화봉사단원들이 이사장직의 사퇴에 반대하는 시위를 하였는데 왜 그렇다고 생각하나. 『절대 반대시위가 아니었다. 동생 근영이를 재단간부들에게 소개하고 부탁하는 조촐한 상견례자리를 마련하려 했는데 나를 마지막으로 보려는 봉사단원들이 찾아온 것이 일부 회원들에 의해 반대운동으로 오해된것 같다』 ­일부에서는 최태민목사(69)가 육영재단을 좌지우지해 왔다고 지적하고 있는데. 『내가 누구로부터 조종받는다는 말은 내 인격에 대한 모독이다. 최목사는 청와대시절 새마음운동을 하면서 알게 된 사이로 지난 88년 기념사업회를 만들때 내가 도움을 청해 몇개월동안 나를 도와주었을 뿐 그동안 아무런 관계가 없다』 ­재단의 개편을 요구하는 「숭모회」의 모임은 어떤것이며 동생과는 무슨 관계인가. 『그 모임에 대해서는지난달 28일 이곳(어린이회관을 지칭)에서 발족대회를 가졌다는 것을 알뿐 그 이외에는 전혀 모른다. 그때 돌던 유인물을 보았지만 모두 잘못된 거짓말로 꾸며져 있어 언급하고 싶지 않다』 ­최근들어 어린이회관의 운영이 어려워 이사장직을 내놨다는 소문도 있는데. 『그렇지 않다. 사실 처음에는 어려웠으나 최근에는 많이 알려져 학생들이 찾아오고 있다. 원래 육영사업은 손익이 목적이 아니지 않는가』 ­외부에서는 동생과의 사이가 좋지 않다는 데. 『전혀 사실 무근이다. 내가 지금까지 한 일을 많은사람들에게 알리며 직접 사업일에 나서지는 않았지만 뒤에서 도와왔다. 동생과는 어느 자매 부럽지않게 사이가 좋다』 ­앞으로의 계획은. 『겉보기와는 달리 많이 지쳐있고 피곤해 당분간 쉬면서 동생이 하는 일을 뒤에서 도와줄 계획이다』
  • 휴일 단풍 인파 5백만/내장산 10만… 곳곳 교통전쟁

    ◎명산ㆍ행락지선 자연정화 활동도 10월 마지막 휴일인 28일 전국에서는 5백만명이상이 울긋불긋 단풍이 절정을 이룬 산과 들을 찾아 깊어가는 가을의 정취를 즐겼다. 지난달 25일쯤부터 물들기 시작한 단풍이 산허리자락까지 뒤덮은 설악산을 비롯,내장산 지리산 오대산 등 주요명산뿐만 아니라 대도시 근교의 여러산에도 단풍을 즐기려는 시민들이 몰려 지난 여름피서철 이후 최대의 행락인파를 기록했다. 설악산에는 지난 주말 3만4천명이 몰린데 이어 주말인 27일과 일요일인 28일 4만여명이 넘는 인파가 몰렸으며 10만여명이 몰린 내장산의 경우에는 정주까지 16㎞의 도로가 전국에서 몰려든 1만5천여대의 차량으로 심한 교통체증을 빚었다. 이날 국립공원관리공단 등 3개 환경보호 관련단체들은 서울 관악산 등 6곳에서 국토청결대회를 갖고 산을 찾은 단풍객들과 함께 자연정화활동을 벌이기도 했다. 서울역ㆍ청량리역과 강남고속버스터미널 등에는 이날 이른 아침부터 교외로 빠져나가려는 행락객들의 발길이 줄을 이어 크게 붐볐으며 북한산 도봉산 등가까운 산에도 2만명이상이 몰려들어 휴일을 즐겼다.
  • 「겨레의 번영」 함께 노래할 그날이/남북통일축구 서울경기를 보고…

    받아 놓은 날이 쾌청할 때 우리는 그것을 길조로 생각하게 마련이다. 남북통일축구 서울경기를 하기 위해 받아 놓은 날이 더없이 맑고 푸르렀다는 것은 통일과 연관되어 어떠 상서로움이 뻗칠 징조인 것만 같다. 그래서 들뜬 마음으로 경기장에 갔다. 그런데 그때,내가 어렸을 적의 일이 떠올랐다. 한국전쟁으로 더없이 불안해 있던 집안 어른들께서 하셨던 말씀이다. 『설마 저 애들이 클 때까진 화평한 시대가 오겠지』 그때 어른들은 한숨과 함께 곧잘 이런 말씀들을 내뱉곤 하셨다. 그러나 그 「설마」는 이루어지지 않고 40년이 흘렀다. 나는 그때 그 어른들을 흉내 내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설마 우리 애들이 장성하게 되면 판문점으로 해서 금강산도 구경하고 백두산도 오르겠지』 어찌 이러한 바람이 나뿐이겠는가. 그것은 잠실경기장을 메운 모두의 마음임에 틀림없다. 그렇지 않고서야 경기장에 이렇듯 많은 인파가 몰릴 까닭이 없는 것이다. 3시 정각. 스피커에서 선수입장을 알리자 요란한 박수소리가 경기장을 뒤흔들어 댔다. 고적대를 앞세우고남북의 선수단이 똑같이 입장했다. 양쪽의 선수들이 두 줄로 서서 어깨를 붙이고 입장한 것이다. 어느 쪽이 앞이고 어느 쪽이 뒤가 아니었다. 남쪽 선수는 빨간 유니폼,북쪽 선수는 하얀 유니폼으로 나란히 입장한 것이다. 그것은 예기치 못했던 아름다운 광경이었다. 나는 그 예기치 못한 선수입장 장면에 나도 모르게 힘을 주어 손뼉을 쳤다. 나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힘껏 손뼉을 쳤다. 이윽고 경기가 진행됐고 경기 초반에 북쪽의 오영남 선수에게 길기철 주심이 황색 카드를 내보이는 일이 벌어졌다. 룰에 어긋난 태클을 한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것이 공정한 판정임을 모를 리 없는 많은 관중들이 「우우」하고 야유를 보냈다. 카드까지 꺼낼 필요가 어디에 있느냐는 뜻이었다. 그러나 따지고 본다면 그것은 야유가 아니라 통일을 염원하는 함성이었다. 아마 길기철 주심도 그렇게 들었으리라. 잠깐잠깐 경기가 중단될 때마다 남북의 선수들이 사이좋게 물을 나눠 마시는 장면도 아름다운 광경이었고 북쪽의 슛에 아낌없이 박수를 보내는 관중들의모습 또한 아름다운 것이었다. 전ㆍ후반의 경기가 그런 분위기 속에서 진행되었고 결국은 전반전 17분 만에 남쪽의 황선홍 선수가 터뜨린 한골로 승부가 가려졌다. 그러나 1 대 0의 스코어 그 자체로 기뻐하는 관중들은 없는 듯했다. 이기면 뭣하고 지면 또 어떠냐는 생각들이 머리 속에 가득차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축구뿐만 아니라 다른 여러 종목의 경기들도 남과 북을 오가며 벌일 일이요 또 운동경기 말고도 무슨 명목이든 내세워 그렇게 남쪽사람과 북쪽사람들이 오고 가는 일이 잦아지게 됐으면 하는 마음들인 것이다. 때문에 이번의 축구경기는 관중들을 열광시키지 못했다. 그러나 그것이 어찌 관중들의 마음 탓이겠는가. 양쪽의 선수들,양쪽의 임원들,양쪽의 취재진 그 모두의 가슴 깊게 새겨진 통일의 염원 탓이 아니겠는가. 주심의 긴 호루라기 소리와 함께 경기를 마친 양쪽 선수들이 한 자리에 모여 섰다. 그리고 옷을 바꿔 입기 시작했다. 빨간 유니폼과 하얀 유니폼으로 나뉘어졌던 두 팀이 한 팀이 되고 말았다. 적백색 유니폼을 입은 한 팀이 된것이었다. 각 선수가 한 몸에 빨간 유니폼과 흰 유니폼을 입은 것이었다. 굳이 따지자면 흰 아랫도리에 빨간 윗도리를 입은 선수가 북쪽에서 온 선수이고 빨간 팬티에 흰 웃도리를 입은 선수가 남쪽의 선수였지만 서로 옷을 바꿔 입은 선수들은 그렇게 나눌 필요야 없지 않느냐며 나는 나를 나무랐다. 나도 모르게 내 눈이 빨간 팬티와 흰 팬티를 가리어 보려했기 때문이다. 누가 남쪽이든 또 누가 북쪽이든 우리는 원래 단군의 한 자손으로 동포가 아닌가. 그 동포가 서로 옷을 바꾸어 입은 동포요 또 서로 힘찬 포옹을 나눈 동포가 아닌가. 그 동포들은 한 무리를 지어 경기장을 한바퀴 돌기 시작했다. 동포인 관중들의 뜨거운 박수를 받으면서. 이러한 선수들과 관중에게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라고 외치는 노래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사실 그 노래의 노랫말은 「우리의 소원은 독립…」이었다. 독립을 염원하던 어두웠던 때 지어진 노랫말인 것이다. 그러나 독립과 함께 분단의 뼈아픔을 겪으며 45년의 세월을 허송세월 해 와야만 했던 우리는 그 노랫말의 「독립」을 「통일」로 바꿔 부르지 않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이제 우리의 소원 「통일」이 하루속히 이루어져 그 노랫말은 「우리의 소원은 번영…」으로 바뀌어져야 한다. 「북남통일축구 평양경기」가 열렸던 모란봉 5ㆍ1경기장을 끼고 흐르는 대동강과 「남북통일축구 서울경기」가 열린 잠실종합운동장을 끼고 흐르는 두 강물이 서해에서 서로 만나 한 바닷물이 되듯 우리도 그렇게 만나 바닷물처럼 큰 힘을 지닌 겨레여야만 된다. 경기장을 나와 걷다가 나는 잠실고수부지가 보이는 곳에서 발길을 멈추지 않을 수 없었다. 이번의 축구경기가 계획되기 이전에 한국불교종단협의회에서 그곳을 통일기원 유등제의 장소로 정해 놓았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유등제를 올리려고 받아 놓은 날이 공교롭게도 바로 오늘,남북축구경기가 벌어진 그날이요 또 장소가 바로 그곳 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잠실고수부지를 내려다 보며 합장을 했다. 『우리의 소원은 번영이라고 노랫말이 바뀌어져 불리는 날이 어서 오게 해 주십사』고.
  • “통일축구가 통일축제 되길 바란다”/북한 축구팀 서울 오던 날

    ◎연도 시민 열렬한 환영에 손들어 답례/만찬장서 「고향이 봄」ㆍ「우리의 소원」 합창/“평양냉면 맛있었다” “남쪽은 양 적지 않나” ▷판문점 도착◁ ○…김유순 위원장은 평화의 집에 도착한 뒤 별도의 도착성명은 발표하지 않고 우리측 김용균 체육부 차관과 장충식 KOC 부위원장의 안내를 받으며 곧바로 휴식처인 평화의 집으로 직행. 김 위원장은 『남측 땅을 밟고 보니 한 핏줄 한 조선땅임을 실감했다』고 말문을 연 뒤 『어떻게 갈라져 살겠느냐,빨리 같이 살아야겠다』면서 『통일축구가 통일축제로 되기를 바란다』고 방한 소감을 피력. ○…장충식 KOC 부위원장은 『남북축구경기 동안 북측 국민들이 보여준 열렬한 성원에 감사한다』면서 인사말을 꺼내자 김유순 북측 위원장은 『같은 식구들인데 응당 그렇게 해야죠』라며 화답. 또 김형진 부위원장은 『환영인파를 조직한 것도 아닌데 자발적으로 나와 열렬히 환영했다』며 『통일축구가 성공적으로 끝날 것으로 확신해 통일될 날이 당겨진 것 같다』며 응수. ○“축구표 파느냐” 질문 ○…김형진 부위원장은 『북남 축구 서울경기의 축구표를 파느냐』고 질문. 이에 대해 우리측 체육회담 대표인 이학래 한양대 교수가 『3시간 만에 매진되었다』고 말하자 김형진 씨는 『표가 매진된 것이 문제가 아니라 경기장에 온 관중들의 열기가 문제 아니냐』며 되받기도. 이어 평양경기에 참가했던 이학래 대표는 『평양에서 먹은 옥류관 냉면이 특히 인상적이었다』며 『김유순 위원장과 김형진 부위원장에게 남측 냉면맛을 한번 보라』고 권유. 이에 대해 김형진 부위원장은 『우리측은 대접용이니까 양이 많겠지만 남쪽은 장사를 하다보니 양이 적지 않겠느냐』고 농담. 이를 지켜보던 오완건 대한축구협회 부회장이 『두 분 위원장이 맛 보시겠다면 평양 때와 마찬가지로 큰 그릇에 양을 듬뿍 넣어 주도록 하겠다』며 맞받아치자 한바탕 웃음판이 벌어졌다. ○…이날 북한측 기자단은 김용균 체육부 차관에게 『평양축구를 마치고 돌아간 남측 선수들을 남측 국민들이 환영해주지 않아 섭섭했다는데 왜 환영을 해주지 않았느냐』며 『우리는 평양경기를 TV로생중계했고 남측도 생중계할 줄 알았는데 왜 하지 않았느냐』며 질문공세를 펴기도. 김 차관은 이에 대해 『TV중계는 북측과 남측의 중계방송 방식이 달라 못한 것으로 알고 있으며 축구단은 평양에서 돌아온 즉시 유스호스텔에서 대대적인 환영행사를 했다』며 어리둥절한 표정. ○“최순호 선수 최우수” ○…20명으로 구성된 북한 남자 축구팀은 회색 싱글차림으로 비교적 단정한 모습. 지난 1차전에서 페널티킥을 성공시켰던 탁영빈 선수는 2차전에 임하는 소감에 대해 『승부가 중요한 것은 아니다』며 『우리는 남북 축구대결을 통해 통일에 기여하려는 것이다』라고 피력. 탁 선수는 또 『한국 선수중 누가 제일 실력이 낫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최순호 선수의 활약이 가장 좋다』고 대답. 김광민 선수는 『2차전에 대비한 특별한 훈련은 안했다』고 밝히고 『우리는 승부에 관계없이 통일을 위해 싸우겠다』고 통일을 거듭 강조. 북한 선수중 유일한 조총련계 동포로 부모가 일본에 살고 있다고 밝힌 김종성 선수는 『부모 고향은 충남 부여이고고모가 서울에 살고 있다』고 말했으나 고모이름은 모른다고 언급. 한 선수는 또 평양에서 페널티킥이 나온 데 대해 『텃세였다. 섭섭하게 생각한다』고 말하고 『그러나 볼을 바깥으로 차버린 남조선 골키퍼의 행동도 잘못됐다』고 지적했다. ▷연도◁ ○…북측 대표단 78명은 승용차 18대와 버스 7대 등에 나누어 타고 판문점을 거쳐 상오 10시55분쯤 자유의 다리를 지니 임진각으로 넘어왔다. 이날 임진각에는 경찰이 일반차량 출입을 통제한 탓에 환영객은 많지 않았으며 관광객과 구경나온 이웃 주민 등 1백50여명 만이 망배단 등에서 북측 대표단을 맞았다. 이들은 북측 임원과 남녀 선수들을 태운 차량이 지나가자 활짝 웃는 얼굴로 박수를 치며 환영했으며 북측 대표들도 손을 흔들어 답례했다. 북측 대표단은 통일로∼독립문∼여의도∼올림픽대로 등을 거쳐 임진각을 통과한지 1시간20분 만인 낮 12시20분쯤 숙소인 워커힐호텔에 도착,여장을 풀었다. 북측 대표단 차량행렬이 통일로를 지나 서울시내로 접어들면서부터 환영시민들이 눈에 띄게 늘었고불광동을 지나자 거리에는 이들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는 사람들도 많았다. 경찰은 이날 학생시위 등 만일의 사태에 대비,통일로 곳곳에 경찰 4백여명을 배치하는 한편 경기도 고양군 삼송리 검문소 등에서 검문ㆍ검색을 했다. ○꽃다발 세례에 “상기” ▷숙소◁ ○…북한 선수단은 예정보다 20여분 늦은 낮 12시20분쯤 숙소인 쉐라톤워커힐호텔에 도착했다. 45명의 대원여고 고적대의 주악이 울려퍼지는 가운데 김유순 북한 국가체육위원회 위원장을 선두로 대형 버스에서 내린 북한 선수단 일행은 미녀모델과 연예인들의 꽃다발 세례를 받고 다소 상기된 표정을 지었다. ○…이날 호텔에는 코미디언 이주일 씨를 비롯한 가수 탤런트 모델 등 연예인 80여명이 상오 11시부터 꽃다발을 들고 북한 선수들을 기다렸다. 가수 김태화 정훈희 부부와 진미령,국악인 이호연 씨 등은 『북한 선수단이 온다는 소식에 잠까지 설치고 나왔다. 웬지 가슴이 설렌다』고 소감을 피력. ○공정경기 특별주문 ○…박종환 한국 남자팀 감독은 『안방에서 손님을 맞는 주인 입장에서 모든 정성을 기울이겠다』고 말하면서 『지난 11일 평양 5ㆍ1경기장에서 열렸던 1차대회와 같은 어이없는 판정은 없을 것』이라고 단언. 박 감독은 이번 서울대회 주심을 맡은 길기철 씨와 미리 만나 승부에 관계없이 공정하게 경기를 진행해줄 것을 특별히 주문했다고. 박 감독은 스코어에 연연하지 않고 우리팀이 실력이나 매너에서 모두 우위에 있다는 사실만 보여주겠다고 2차대회에 임하는 소감을 피력. ○…북한 선수단은 숙소인 쉐라톤워커힐 전체 6백37개의 객실중 64개를 사용. 김유순 단장은 17층 1백20평짜리 다이아몬드 룸에 묵는데 하루 숙박료가 85만원에 이르는 초호화 룸. 임원들은 16층 17개 객실에 나뉘어 묵게 되며 선수들은 15층 40개 객실에 분산투숙했다. ○“잠실 스타디움 훌륭” ▷경기장 답사◁ ○…북한 남녀 선수단 54명은 이날 하오 4시13분에 23일 경기가 펼쳐질 잠실올림픽 주경기장에 도착. 남자는 메인스타디움에서,여자는 보조구장에서 각각 40여분 동안 몸을 풀었다. 선수들이 몸을 푸는 동안 장내에는 「아리랑」 「고향의 봄」 등의 음악이 울려 퍼졌으며 동쪽에 설치된 대형 전광판에는 서울올림픽 개ㆍ폐회식과 각종 경기 장면 등으로 편집된 「서울올림픽 하이라이트」가 아름답게 수를 놓았다. 명동찬 남자팀 감독은 『잠실올림픽경기장이 북한의 5ㆍ1경기장보다 규모가 작긴 하지만 잔디상태가 아주 좋고 경기장이 아담해 좋은 경기를 펼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이날 경기장에는 한국 여자 대표팀 선수들이 마중나와 주경기장 2층에서부터 그라운드를 밟을 때까지 북측 선수들과 한 사람씩 짝을 지어 계단을 내려왔다. ○…이에 앞서 김유순 북한 국가체육위원회 위원장ㆍ김형진 부위원장 등 임원 일행은 선수단 도착에 앞서 3시25분쯤 경기장에 도착해 이병규 관리소장의 안내로 경기장ㆍ선수실 등을 둘러본 뒤 외빈실에서 30여분 동안 휴식하며 환담. 김유순 위원장은 색깔로 구분한 잠실경기장이 대단히 아름답다며 『남북이 하루빨리 통일이 돼 평양의 5ㆍ1경기장과 서울의 잠실 주경기장보다 더 큰 50만 수용의 경기장을 지으면 좋지 않겠느냐』고 말하는 등 화기애애한 분위기. 이날 경기장에는 지난 평양경기 때 부친을 상봉한 이회택 전 국가대표팀 감독이 나와 북한 선수 및 임원들을 반겼다. ▷만찬◁ ○…김우중 대한축구협회장 주최로 이날 밤 힐튼호텔 그랜드볼룸에서 열린 환영만찬회에는 정동성 체육부 장관ㆍ김유순 북한 국가체육위원회 위원장 등 남북 고위인사와 남북 남녀선수,그리고 초청인사 등 2백5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차분하면서도 정겨운 분위기 속에서 2시간10분 동안 진행됐다. 김우중 회장은 이날 『이번 통일축구 서울경기로 민족통일의 기반이 조성되길 바란다』며 건배를 제의하는 것으로 환영 인사말을 대신했고 김유순 위원장은 『남북통일축구경기가 통일운동사에 아로 새겨질 것으로 확신한다』며 역시 건배를 유도. 주빈석에는 정동성 장관ㆍ김유순 위원장ㆍ김우중 회장ㆍ김형진 북한올림픽위원회 부위원장과 축구원로 김화집옹 등 10명이 앉았으며 나머지 27개 테이블에도 남북 선수ㆍ초청인사들이 8∼10명씩 섞여 앉아 평양경기와 서울의 첫인상 등을 화제로 삼아 얘기꽃을 피웠다. 이날 저녁식사 메뉴로는 거위간ㆍ모듬생선회와 안심스테이크 등 8가지 코스인 양식으로 준비됐는데 북측 참석자들 대부분은 그릇을 깨끗이 비웠다. 호텔측은 지난번 총리회담 때 북측 인사들이 즐기던 곡주인 「문배주」를 포도주와 함께 내놓았다. 식사를 마친 북한 선수 및 임원들은 만찬장 출입구 맞은편 무대에서 펼쳐진 테너 엄정행ㆍ소프라노 백남옥 씨의 가곡공연을 관람했는데 노래가 끝날 때마다 박수를 보냈다. ○남북 선수 섞여 앉아 공연 마지막에 「고향의 봄」과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 합창되자 참석자 모두가 일어서 따라 부르기도. 김우중 회장은 북한 김유순 위원장에게 TV와 비디오 세트를 선물했으며 김 위원장은 미리 준비해온 인삼불로주와 대평곡주를 김 회장에게 전달했다. ○…북한 기자들중 비교적 나이가 많은 편인 리충국 중앙통신논설위원은 만찬이 끝난 뒤 『양식으로 차린 음식이 별로 입에 맞지 않았다』고 말하고 『호텔측에서는 정성을 다한 것 같으나 한식이었으면 좋았을 것』이라고 아쉬움을 나타냈다. ○…하오 9시30분쯤 만찬장인 힐튼호텔을 출발한 북한 선수단은 10시10분 숙소인 워키힐호텔에 도착,때마침 본관 지하1층 가야금홀에서 쇼를 관람하고 나오던 시민들의 환영을 받았다. 북한 선수들은 시민들이 『반갑습니다』라며 박수로 맞이하자 여유있는 모습으로 손을 흔들며 『반갑습니다』라고 답례. 북한 선수들은 이어 각자의 방으로 올라가 서울에서의 첫 잠자리에 들었다.
  • 단풍 설악산에 4만인파/올들어 최대… 주변호텔등 대만원

    【강릉=조성호기자】 주말인 20일과 21일 이틀동안 설악산에 4만여명의 관광등산객이 찾아와 올들어 단풍철 최대인파를 기록했다. 21일 국립공원관리공단 설악산관리사무소와 경찰에 따르면 단풍이 절정을 이룬 설악산 국립공원에는 20일 6천4백20여명을 비롯,21일 3만4천여명 등 모두 4만여명이 찾아들어 지난 주말 2만4천여명보다 1만6천여명이 더 많았다. 이로인해 설악동 관광촌의 83개 호텔ㆍ여관과 속초지방의 콘더미니엄과 여관 등 8천여개의 객실이 만원을 이뤘고 9천8백여대의 관광차량이 밀어닥쳐 속초와 설악산간 도로는 차량홍수를 이뤘다. 특히 21일에는 설악동 B지구∼소공원까지 2.5㎞ 구간은 경찰이 차량을 통제하는 가운데 곳곳에서 교통체증을 일으켜 평소 14분거리의 설악동∼속초간이 2시간이나 걸렸다. 또 설악산 대청봉(1천7백8m)에는 20일 밤에만 3천여명의 등산객이 플래시를 비추며 야간등반을 했는가하면 21일에도 4천여명이 이곳을 넘었다. 한편 국립공원 치악산에도 2만여명의 관광등산객이 몰려들었고 명주ㆍ평창지방의 오대산 국립공원에도 1만4천여명이 찾아들어 단풍관광이 절정을 이뤘다.
  • 늘어나는 세부담… 동독재건 달갑잖은 서독인(통일독일의 과제:중)

    ◎지원비용 10년간 8천억불 소요/1인당 1만불 추가부담 불가피/“일자리 줄고 일당 적어진다”… 볼멘 소리도 지난 3일밤 베를린에서 만난 헬무트씨(49)는 『통일이 이렇게 빨리 이뤄질 줄은 미처 생각지 못했습니다. 동독지역 사정을 알아보고 돈벌이 사업을 찾아보려고 합니다』라고 말했다. 중북부 고도 첼레시에서 선대로부터 가구점을 물려받아 경영해 오고 있는 헬무트씨는 라이프치히시 투자환경을 둘러보기 위해 가던중 호텔방을 못구해 민박을 하는 같은 아파트에 부부가 함께 방을 잡았다. 『동독지역에 복구사업이 본격화되면 신ㆍ개축하는 건물들이 많아 가구수요가 크게 늘어날 것』이라며 헬무트씨는 새 건물에 필수적인 카펫이 많이 팔릴 것으로 예상돼 라이프치히 시내에 큰 점포를 낼 계획이라고 말했다. 그는 마침 베를린에서 떠들썩하게 펼쳐지는 통일축제 행사에는 관심조차 없는 듯 다음날 새벽 짐을 챙겨 떠났다. 서독인들이 통일에 대한 반응은 얄미울 정도로 자기중심적이다. 돈벌이가 되는 사업은 어떤 것인가,세금은 얼마를 더 내야 하는가 등 우리가 보기에는 부수적인 문제에 더 큰 관심을 갖고 있다. 분단 반세기만에 역사적인 통일을 이룩했건만 서독인들에게서 당연히 기대할 수 있는 「게르만민족의 우수성」「세계사의 새로운 주도자」「자본주의와 사회주의의 비교」 등 거창한 대답을 들어볼 수 없는 일이 이상하게 느껴진다. 축제의 거리에도 요란한 구호를 적은 플래카드나 포스터가 없을 뿐더러 신문들도 주택ㆍ환경문제 등 통일후의 과제와 문제점에 더 큰 비중을 둔 기사를 싣고 있었다. 적어도 서독인에게는 통일이 이념적이라기보다는 현실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지는 것 같았다. 통일축제기간에도 중부도시 쾰른에서는 사진박람회가,남부도시 뮌헨에서는 10월 축제가 통일보다도 더 큰 관심속에 진행돼 수십만명의 인파가 몰렸다. 10월 축제장에서 만난 울리히 침머만씨(47)는 『동독지역을 서독수준으로 이끌어 올리려면 천문학적인 자금이 들텐데 결국 우리가 부담하게 될 것 아니냐』면서 『통일을 반대하지는 않지만 너무 서둘러 한 것 같다』고 말했다. 축제장의 대형 맥주홀인 호프 브로이하우스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대학생 로타르 브릿지케군(22)은 『통일이 됐다고 달라질 것은 없지만 아르바이트일자리가 줄어들고 일당이 낮아질 우려가 있다』고 걱정했다. 독일정부는 향후 2000년까지 동쪽지역 재건에 필요한 재정을 8천억달러 규모로 잡아놓고 내년부터 10년계획에 착수할 예정이다. 이 재원확보를 위해 국민 1인당 추가 담세액은 1만여달러(7백여만원)나 되며 서독인들은 이에 대해 강한 반발을 하고 있다. 이미 독일정부는 통합과정에서 1차로 1천1백50억마르크의 「통독기금」을 마련하기로 하고 올해에 2백20억마르크를 조성하고 있는 중이며 서독의 납세자들로부터의 강한 반발에 부닥치고 있다. 침머만씨는 『동쪽제도가 갑자기 붕괴되는 바람에 서독인들에게도 큰 부담을 안겨놓았다』며 『지난해 11월 동베를린 대탈출이라는 예기치 못했던 사태가 없었더라면 통일작업이 시간을 갖고 확실히 추진되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11월 일후 동독지역에서는 한달 1만여개씩 9월말 현재 10여만여개의 사기업이 생겨나고 이들중 절반이상이 자금ㆍ경영면에서 서독인들이 간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이들 사기업들은 당초 서독인들의 기대와는 달리 기능인력의 부족,경영미숙,낮은 생산성 때문에 서쪽지역의 투자자들을 불안하게 하고 있다. 사회주의체제 붕괴과정에서 동쪽지역에서는 서독지역의 신문ㆍ잡지 등이 불티나게 팔렸으며 최근에는 서독의 신문재벌들이 동독신문에 직접 투자하려는 움직임도 있었으나 주춤한 상태라고 한다. 베를린의 한 신문연구소에 따르면 서독의 신문들은 1페이지당 필요한 제작인원이 2ㆍ4명이나 동독신문은 5명이나 돼 동독신문을 인수하거나 투자하려던 서독신문들이 망설이고 있다는 것이다. 신문사 뿐만 아니라 일반기업들도 사회주의체제의 동독기업들이 생산규모에 비해 지나치게 많은 직원들을 고용하고 있어 생산성이 낮은데다 이들을 해고할 경우 사회적인 비판의 대상이 될 것을 우려해 동독지역의 진출을 망설이고 있는 실정이다. 서독 남서부 알브슈타드시에서 칭키스칸이라는 중국 음식점을 경영하는 교민 이종규씨(55)는 『이곳 바덴뷜템베르크주는 독일의 어느주보다도 가장 잘사는 주로 주민들은 통일의 환희보다는 통일후 짊어지게 되는 재정적 부담에 대해 더 큰 관심을 표시하고 있다』며 『독일사람들이 통일을 지나치게 이기적으로 받아들이는 모습을 볼 때 감정이 없는 국민인 것처럼 보인다』고 말했다. 이씨는 『우리도 분단국가인만큼 통일이 절대적인 소망이지만 지나친 기대나 환상에서 벗어나 현실적인 과제로 보고 차분하게 대비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역사적인 사흘간의 통일축제가 끝난뒤인 5일의 베를린시가지는 평상시의 제모습으로 돌아와 축제의 흔적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거리를 오가는 시민들은 자신의 나라가 통일이 된 사실조차 잊은듯한 표정들이었다.
  • 권기진특파원/현지서 본 북한사회(총리회담 취재기:상)

    ◎“철저한 통제 속의 계산된 개방” 실감/우리 기자 만난 사람 요원들이 뒷조사/「밀입북자 석방」은 모든 대화의 “지정곡” 북한은 여전히 철저한 통제사회임을 실감한 방북 나흘간이었다. 지난 16일 상오 9시부터 19일 하오 1시28분까지. 제2차 남북고위급회담 취재를 위해 북한에 체류한 약 76시간. 이 짧은 기간 동안 주마간산 격으로 살펴본 북녘땅은 숨막힐 듯한 통제가 조금도 달라지지 않고 있는 느낌이었다. 휴전선의 남북방한계선에 설치된 굵은 철조망과 초병의 모습에서만 남북의 긴박한 대치상황을 깨달을 수 있었을 뿐 북쪽과 남쪽의 산천은 너무나 흡사해 마치 고향을 찾는 것 같았다. 이같이 남북의 겉모양이 같고 말씨가 같았지만 북쪽 사람들의 사고와 의식이 크게 달라 생판 딴 사람들을 만나는 기분이 들었다. 정녕 45년간 체제가 다른 세계에서 살아온 두꺼온 벽을 절감할 수밖에 없었던 방북이었다. 2차 고위급회담 첫날 회의가 열린 지난 17일 상오 10시30분쯤. 회담장인 인민문화궁전에서 30여m쯤 떨어진 보통문 가내공장을 찾은 일부 사진기자들이 난처한 입장에 빠지고 말았다. 기자들이 여자 원피스를 만드는 이 공장에 들어서 사진을 찍기 시작하자 마침 작업중이던 여성노동자 30여명은 갑자기 『임수경은 어떻게 됐습니까』라고 한 뒤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라며 울음보를 터뜨렸던 것이었다. 물론 이날 기자들은 안내원에게 사전에 그 공장에 가보고 싶다는 뜻을 전한 다음 안내원이 먼저 그 공장에 다녀와서야 방문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같은 주민접촉도 통제 속에 이뤄졌지만 그들이 얘기하는 것도 하나같이 밀입북자 석방,유엔 가입문제,팀스피리트훈련 중지 등 북측이 주장하는 선결조건을 앵무새처럼 읊조리는 것이었다. 이는 비단 길거리에서 만난 사람들뿐이 아니고 만찬행사 참석자들도 한결같이 지정곡처럼 빼놓지 않고 화제를 삼았다. 이들은 대부분 으레 대화 첫머리에는 가족상황,평양과 서울얘기 등 부드러운 얘기를 하다가도 얼마쯤 시간이 지나면 무엇엔가 쫓기는 듯 「지정곡」을 불러댔다. 나중에 우리측 카메라맨들에게 들은 얘기지만 일부 만찬 참석자들이나 행인들이우리 기자들과 얘기하고 나면 요원들이 대화내용을 뒷조사한다는 것이었다. 이러한 통제 때문에 북한주민들은 북경아시안게임에서 북한이 한국과 일본을 제치고 2등을 했다고 알고 있는 것 같았다. 이번에 우리 대표단이 이용한 특별열차의 한 여자열차원과 백화원초대소의 한 여자접대원은 분명히 북한이 2등,한국이 3등한 것으로 보도됐다고 말했다. 이들은 우리 기자들이 그렇지 않고 한국이 2등,북한이 4등을 했다고 밝혀주자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었다. 우리 대표단이 지난 16일 낮 1시20분 특별열차 편으로 평양역에 도착했을 때 북측의 영접은 너무도 냉랭했었다. 역 앞 연도에는 환영인파를 찾아볼 수 없었으며 고작 일부 행인들이 손을 흔들 뿐이었다. 며칠 전에 이곳에 왔었던 축구대표단이나 범민족통일음악회 참가자들에 대한 열렬한 환영과는 너무나 대조적이었다. 북측 안내원들의 얘기로는 우리 대표단이 평양에 오면서도 밀입북인사 석방 등의 「선물」을 가져 오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여기에서 북측이 남북고위급회담과 축구 및음악인 교류 등 민간교류를 각기 다른 차원에서 추진하고 있는 계산된 통제를 엿볼 수 있다. 이렇게 볼 때 현재 북측이 꾀하고 있는 남북접촉도 「통제 속의 개방」 범주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최근 동구권 변혁으로 체제변화 위기를 느낀 북한이 체제고수를 위해 배수진을 친 꼴이라고 할 수 있다. 김일성ㆍ김정일 부자세습체제를 굳히며 통일의식 고취로 주민 불만을 누그러뜨리고 체제결속을 다지는 모습이 두드러졌다. 지난 89년 4월에 세워진 만경대 학생소년궁전 등 주요시설에는 김일성 부자의 교시가 나란히 걸리고 김정일화가 대대적으로 선전되고 있다. 학생소년궁전의 수영장 입구에는 『우리나라는 세면이 바다로 둘러싸여 있기 때문에 아이들이 커서 바다의 정복자로 되게 하여야 합니다』는 김일성 교시와 『세면이 바다로 둘러싸여 있고 강하천이 많은 우리나라에서 수영을 발전시키는 것이 중요합니다』라는 김정일 교시가 나란히 새겨져 있다. 이제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와 「친애하는 지도자 김일성 동지」는 공식인사의 서두로 될 만큼 김일성 부자세습은 구체화되고 있는 것이 북한의 현실이다. 이와 함께 통일의 열기는 이상할 정도로 달아오르고 있어 마치 북한주민들이 「통일 열병」을 앓고 있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진다. 지난 18일 상오 9시40분쯤 2차 남북고위급회담 이틀째 비공개회의가 열린 인민문화궁전 2층 외신기자실에서 북한 우표를 팔고 있던 국제통신국의 한 여성 우표취급원은 기자에게 『통일을 위해 오셨으니 한겨레의 소원인 통일성취를 위해 노력해주십시오』라며 다음과 같이 목청을 높였다. 『우리 인민은 위대한 수령님과 수령님의 위대한 후계자인 친애하는 지도자 동지를 모시고 오늘과 같은 행복한 나날을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어린이들도 행복하게 무상으로 교육받고 치료받으며 걱정없이 공부하고 있습니다. 선생님,남쪽의 어린이들은 그렇지 못하겠죠. 학비가 없어서 곤란을 겪고 있으며 먹고 입는 문제 때문에 살기가 힘든다고 생각합니다. 남쪽은 미국놈의 식민지사회여서 잘사는 사람은 끝없이 잘살고 못사는 사람은 끝없이 못살지 않습니까』 15년간 우표취급원으로 일했다는 이 여자는 통일얘기가 나오자 신들린 듯 열변을 토하며 서둘러 통일을 이루도록 노력해달라는 부탁을 빼놓지 않았다. 북한은 어린이 매스게임과 카드섹션에서도 남쪽의 콘크리트장벽 등을 연출하며 완전개방을 주장하는 등 통일무드를 고조시키고 있다. 마치 통일구호를 외치면 통일이 금방 이뤄지는 듯 열기에 들떠 있는 것을 보고 우리의 통일 열망과는 다른 이질성을 보는 것 같아 씁쓸한 기분에 젖는다.
  • 초라한 판문점 마중… 형평잃은 대접/한종태 정치부 기자(문화초점)

    ◎「남의 실체」 의도적으로 불인정 16일 상오 판문점 북측 지역인 통일각에서 있었던 우리측 대표단에 대한 환영행사는 예상밖으로 너무나도 「초라」했다. 북한측이 보낸 환영인사라고는 고작 김광진 인민무력부 부부장을 비롯한 북측 대표단 6명과 우리측 대표단에게 꽃다발을 안겨준 화동 7명뿐 더이상의 환영인파는 찾을 수 없었다. 「역사적」 등의 수사를 쓰지 않더라도 남한의 국무총리가 남북간 현안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분단 이후 처음으로 북한땅을 밟는다는 북행의 의미를 생각한다면 이날 북한측이 보여준 태도는 섭섭함마저 든다. 우리측 대표단이 개성역과 평양역에 도착했을 때도 환영나온 민간인은 한명도 없었다고 수행기자들은 전하고 있다. 우리모두가 잘 알다시피 우리측의 민간인이나 민간단체가 북행할 때는 표현이 힘들 정도로 엄청난 환영열기를 만들어준 그들이다. 물론 그것은 다분히 계산된 유화적 제스처다. 불과 이틀 전에 판문점 북측 지역인 판문각 앞뜰에서 행해진 범민족통일음악회 우리측 참가단에 대한 환영인파와 그보다며칠 전에 있었던 남북통일축구대회 참가 대표단에게 베풀어준 열렬한 환영모습에서도 이같은 현상은 뚜렷하게 나타난다. 무려 6백명이 넘는 환영인파가 좁은 장소에 나와 우리측 전통음악인들을 부여잡고 눈물까지 흘리는 장면에서도,15만명을 수용하는 5ㆍ1경기장을 가득 메운 통일축구대회 관중들에게서도 누구나 동족으로서의 가슴 찡한 무언가를 느꼈음 직하다. 북한측 자세의 이러한 대비는 자신들이 실체를 인정하지 않고 있는 남한당국의 고위인사들이 평양에 온다는 사실 자체가 반갑지 않다는 것 이외에는 달리 설명할 방법이 없다. 그렇더라도 「조국통일이 지상과제」라고 떠들어대는 북한측이 스스로 생각하는 비중은 다를지 몰라도 똑같은 초청대상자인 우리 정부당국과 민간인 사이에 이같이 형평잃은 대접을 했다는 것은 기본적인 의전절차를 떠나서 아무래도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지금까지 남한당국 배제논리에 따라 줄곧 남북간 민간대화를 부르짖어온 북한 입장에서는 당연한 일일 수도 있다. 또한 북한이 체제유지의 근간이념인 「하나의 조선」 정책을 수정하지 않는다면 앞으로도 남한당국에 대한 「오만함」은 계속될 수밖에 없고 또 이것이 엄연한 현실이다. 한소 수교 및 한중 관계개선,그리고 일 북한 관계진전 움직임 등 한반도주변 상황이 빠른 속도로 변화하고 있는데도 아직까지 대남 정책에서는 어떠한 변화 가능성도 용납치 않으려는 듯한 북한이 답답할 뿐이다. 결과적으로 이제는 최근 잇따라 있었던 남북 상호교환방문 사례들을 곰곰이 분석해보고 우리들의 대북 자세를 다시한번 정리해볼 시기가 아닌가 싶다. 몇차례에 걸친 북한의 유화적인 자세에 『북한이 드디어 화해와 협력의 국제적 추세에 동참하기 시작했다』라고 너무 성급하게 기대 이상의 판단을 내리지는 않았는지 곱씹어볼 때라고 생각된다. 일부에서는 오는 18일 김일성 주석이 강영훈 국무총리와의 단독면담에서 상당한 정도의 대남메시지를 전할 것으로 관측한 바 있으나 당분간 이같은 기대는 「기대」에 그칠 수밖에 없을 가능성이 크다. 우리가 아무리 정치ㆍ경제적으로 대북우위를 점하고 있더라도 북한이 「하나의 조선」이라는 빗장을 풀지 않는 한 진정한 남북 화해의 길은 요원할 수밖에 없고 그럴수록 남북현실에 대한 분명한 인식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고 느껴진다. 북한측이 보여준 이날의 초라한 영접에서 다시한번 『통일에 대한 환상은 금물』이라는 얘기를 가슴깊이 되새기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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