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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새자문委 위원 12명 위촉

    행정자치부는 29일 새로운 국새제작을 자문할 국새자문위원회 위원 12명을 위촉하고, 정옥자 서울대 국사학과 교수를 위원장으로 선임했다. 행자부는 내년 1월 국새 당선작을 선정해 2월부터 2008년까지 제작,2월부터 사용할 계획이다. 다음은 자문위원 명단. ▲정옥자(위원장) ▲김락회(제일기획 부사장) ▲김현(디자인파크 대표) ▲소재구(국립고궁박물관장) ▲안귀숙(인천공항 문화재 감정관) ▲이오희(한국전통문화학교 석좌교수) ▲전도진(한국서예대전 심사위원) ▲정형민(서울대 미술관장) ▲조창룡(한국기계연구원 책임연구원) ▲최병훈(한국인장업연합회 이사) ▲최은철(한국전각학회 이사) ▲김국현(행자부 의정관) 조덕현기자 hyoun@seoul.co.kr
  • “우리도 미국인이다”

    “우리도 미국인이다”

    ‘이민자의 나라’ 미국이 새 이민법 제정 문제로 진통을 겪고 있다. 불법 체류자 단속과 국경 통제를 강화하는 내용의 ‘센센브레너법’을 둘러싸고 정치권과 시민사회가 거센 분란의 소용돌이에 휘말린 것이다. 25일(현지시간) 로스앤젤레스(LA)에서는 50만명의 인파가 모여 새 이민법안 반대시위를 벌였다. 앞서 밀워키와 피닉스, 애틀랜타에서도 23일과 24일 수만명이 참여한 이민자 시위가 열렸다. 상원 법안심의를 앞둔 정치권도 이 문제를 쟁점화할 태세다.11월 중간선거에 미칠 파괴력을 의식한 탓이다.LA타임스는 경찰발표를 인용,“60년대 베트남전 반대시위는 물론 역대 최대 규모였던 1994년 이민정책 반대시위보다 훨씬 많은 수가 모였다.”면서 “미국 역사상 최대 규모의 이민자 시위”라고 보도했다. 히스패닉계가 대부분인 참가자들은 “미국은 이민자의 나라다.”“우리는 범죄자가 아니다.”라고 적힌 현수막을 앞세운 채 성조기와 멕시코 국기 등을 흔들며 행진을 벌였다. 현장에는 안토니오 비야라이고사 LA 시장과 길 세디요 캘리포니아주 상원의원 등 정치인들도 모습을 드러냈다. 이민자 권리를 위한 일리노이 연합의 조슈아 호이트 사무총장은 “정치인들이 잠자는 거인을 발로 찼다.”면서 “오늘 집회는 이민자 시민권 투쟁의 신호탄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시위는 이민자 단체뿐 아니라 노조, 교계, 인권단체의 지지를 얻고 있다. 가톨릭의 로저 마호니 추기경은 성직자들에게 법안이 통과될 경우 불복종 운동을 벌이라는 지침을 내렸다. 시위는 노동계와 시민단체가 행동의 날로 정한 새달 10일 정점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그러나 법안 찬성측 움직임도 심상찮다. 워싱턴과 보스턴에서는 27일 국경통제 강화와 불법 이민자 추방을 요구하는 이민법 지지시위가 예정돼 있다. 새 이민법안은 하원 법사위원장인 제임스 센센브레너 공화당 의원 주도로 지난해 12월 하원을 통과했다. 그러나 불법 체류자를 고용하는 사업주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는 내용과 함께 교회 등 봉사단체의 인도적 지원까지도 불법화함으로써 교계와 인권단체의 거센 반발을 불렀다. 28일 법안심의에 들어가는 상원은 자진신고한 체류자에 한해 일정기간 특정 직업에 종사할 수 있게 한 외국인 임시노동자(guest worker) 제도 등을 담은 수정안을 마련해 두고 있다. 중간선거를 앞두고 히스패닉계 달래기에 나선 것이다. 그러나 이민자 집단을 지지층으로 두고 있는 민주당은 모든 수단을 동원해 법안 통과를 막겠다며 벼르고 있다. 힐러리 클린턴 상원의원은 지난 22일 “새 법안은 천박하기 짝이 없는 것”이라고 맹비난했다. 반면 공화당의 입장은 양분돼 있다. 빌 프리스트 상원의원 등 주류 보수파들이 안보 문제를 이유로 이민자 통제 강화를 주장하는 반면, 재계 이익을 옹호하고 히스패닉의 표심을 잡으려는 현실주의 분파들은 법안에 반대하고 있는 것이다.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말 그대로 샌드위치 신세다. 그는 25일 주례 라디오 연설에서 “새 이민법은 미국인에게 ‘열린사회’와 ‘법치사회’ 사이의 양자택일을 강요하지 않아야 한다.”며 절충안을 주문하고 나섰다.1150만명 정도로 추산되는 미국내 불법 체류자들은 대부분은 농업이나 건설·서비스 산업의 저임금 직종에 종사하고 있다. 이세영기자 sylee@seoul.co.kr
  • 6만인파에 안전요원 57명뿐

    6만인파에 안전요원 57명뿐

    26일 터진 롯데월드 35명 부상사고는 사망자만 나오지 않았을 뿐, 지난해 11명이 숨진 상주 MBC공연 압사사고와 닮았다는 지적이다. ●롯데월드측 “사고원인 시민들 문화의식 부족탓” 이날 무료개장 행사는 지방에서까지 올라올 정도로 관심이었다. 하지만 롯데월드는 관할 소방·경찰 당국과 단 한마디 협의도 없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관할 송파소방서가 사태의 심각함을 파악한 것은 오전 7시23분 최초 119 부상자 신고를 받고 나서다. 이후 소방당국은 인근 6개 소방서의 구조인력 200여명을 현장에 급파하는 등 ‘구조2호’를 발령했다. 구조 2호는 일선 소방서에서는 10년에 한 번 있을 정도로 심각한 상황에서 내려진다. 관할 송파경찰서는 “롯데월드측으로부터 단 한차례도 경비요청을 받은 적이 없다.”면서 “오히려 우리가 먼저 안전대책 수립을 요청했지만 롯데월드측으로부터 무시당했다.”고 밝혔다. ●아수라장 정문, 롯데 직원은 7명뿐 게다가 롯데월드는 엄청난 인파가 몰릴 것이 예상되는데도 불구하고 인력배치를 허술하게 했다. 롯데월드는 “평소 휴일 근무인원 60여명의 세 배인 180여명을 장내에 배치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가장 혼잡할 것으로 예상됐던 정문 출입구에는 단 7명만 배치했다. 경찰은 “출근한 직원 가운데 안전관리요원은 14명, 청원경찰은 30명, 자체 보안요원은 13명이었던 것으로 조사됐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롯데월드측은 관람객들에게 책임을 떠넘기려는 등 엉뚱한 소리만 들어놨다. 김길종 롯데월드 마케팅이사는 “유관기관과 협조하고 동선에 따라 안전요원 210명을 배치하는 등 충분히 대비했으나 시민들의 문화의식 부족으로 사고가 발생했다.”고 주장했다. ●인파 몰려드는데도 문 안열어 당초 롯데월드는 오전 9시30분부터 문을 열 작정이었다. 그러나 새벽 5시부터 인파가 몰려들면서 오전 7시쯤에 하루 최대 수용인원 3만 5000명의 두배에 이르는 6만여명이 롯데월드 입구 주변을 가득 채웠다. 그런데도 롯데월드측은 철제 셔터를 굳게 내린 채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청소년 1500여명은 결국 닫힌 셔터를 억지로 열고 밑으로 기어서 입장하는 상황을 연출하기도 했다. 이번 사고는 지난해 상주 MBC압사사고와 비슷하다. 당시 행사주최측에서 사고 발생지점인 직3문 출입구를 미리 열어 찾아오는 시민들을 차례로 맞았다면 대형 참사로 이어지지 않았을 것이라는 지적이 많았었다. ●공짜 좋아하는 심리도 사고에 한 몫 한편 이번 사고는 공짜라면 너도나도 달려드는 ‘공짜심리’도 한 몫했다는 지적이다. 롯데월드 놀이기구를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자유이용권을 사려면 청소년은 1인당 2만 2000원, 일반인은 3만원을 내야 한다. 청소년 5명이 공짜로 입장하면 11만원을 ‘버는’ 셈이다. 실제로 이날 대부분의 관람객들은 친구들끼리 온 10대 청소년들로 밝혀졌다. 김기용 윤설영기자 kiyong@seoul.co.kr
  • 대형참사 부를뻔한 ‘공짜’

    대형참사 부를뻔한 ‘공짜’

    서울 잠실 롯데월드가 준비한 ‘공짜 개장 행사’가 하마터면 대형 참사를 부를 뻔했다. 롯데월드 무료개장 첫날인 26일 6만명(경찰 추산)의 인파가 한꺼번에 몰리면서 35명이 부상을 당했다. 무료개장은 이날 하루에 그치고 이후 행사는 전면취소됐다. 롯데월드측은 안전사고 발생 가능성에 대한 경찰 경고를 무시했을 뿐 아니라 오히려 사고 원인을 시민 질서의식 부재로 돌려 비난을 받았다. 사고는 롯데월드가 지난 6일 발생한 놀이기구 사망사고에 사과하는 뜻에서 이날부터 오는 31일까지 무료개방 행사를 열겠다고 한데서 비롯됐다. 롯데월드 입구와 잠실역 등에는 새벽 5시부터 청소년들이 모여 들었다. 새벽 5시35분 지하철 첫 열차가 도착하면서 인파가 본격적으로 늘기 시작했다. 인파는 롯데월드 건물 내부는 물론 롯데백화점·롯데호텔 등 주변도로를 가득 메웠다. 오전 7시23분쯤 밀려드는 인파들로 철제셔터가 망가지면서 수십명이 우르르 넘어졌고 이 과정에서 많은 10대들이 골절상과 찰과상을 입었다. 오전 8시쯤에는 청소년 1500여명이 셔터를 흔들어대며 개찰구로 진입, 입구는 완전히 아수라장이 됐다. 부상자는 35명으로 집계됐다. 오전 7시40분쯤 부상을 입어 서울의료원에서 치료받은 한모(13)양은 “뒤에서 미는 사람들 때문에 넘어지면서 깨진 유리에 손바닥이 찢어져 7바늘이나 꿰맸다.”고 말했다. 롯데월드측은 오전 7시쯤 직원들이 출근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실제 현장에 이들이 배치된 것은 오전 8시 전후로 알려졌다. 소방·경찰 인력도 오전 8시가 넘어서야 나왔다. 오전 8시10분 송파경찰서 등의 4개 중대 경비병력(400여명)이 배치됐고, 오전 8시19분 송파소방서는 ‘구조2호’를 발령했다. 이에 따라 강동·강남·양천 등 인근 6개 소방서 구조인력 200여명이 출동해 현장에 배치됐다. 소방당국은 추가 사고를 방지하기 위해 오전 8시20분 지하철 2호선의 잠실역 무정차통과를 요청하기도 했다. 롯데월드측은 오전 9시40분쯤 입장객이 당초 고지한 입장제한 숫자 3만 5000명을 넘어서자 입장을 중단시키고 대기 중이던 손님들에게 “집으로 돌아가 달라.”고 요청했다. 롯데월드에는 휴일에 통상 3만여명이 입장한다. 롯데월드측은 사고가 난 뒤 “충분히 대비했으나 시민들의 문화의식 부족으로 사고가 발생했다.”고 주장했다. 이날 롯데월드는 당초 폐장 시간보다 5시간 정도 이른 오후 6시에 문을 닫았다. 롯데월드측은 27일부터 31일까지 5일 동안 업무를 전면 중단하기로 했다. 경찰은 이날 저녁 롯데월드 정문 근무자 등 관계자들을 소환조사했다. 안전관리 소홀이나 인력 배치상 문제 등이 드러나면 업무상 과실치상 혐의를 적용, 형사책임을 물을 방침이다. 윤설영 김기용기자 snow0@seoul.co.kr
  • [사설] 롯데월드의 연이은 안전 불감증

    어제 롯데월드에서 또다시 어처구니없는 인명사고가 발생했다. 이달 초 놀이기구에서 발생한 사망 사고를 사과한다며 마련한 6일간의 무료 개장행사 첫날 엄청난 인파가 한꺼번에 들이닥치면서 출입구 유리창 파편 등에 수십명이 부상을 입었다. 새벽 4시부터 인파가 몰려들기 시작해 개장 10분만에 입장객이 3만 5000명을 넘어섰다고 한다. 인근 롯데월드 백화점과 잠실역 주변은 입장하지 못한 사람들로 큰 혼잡이 빚어졌음은 물론이다. 이번 안전사고 역시 충분히 예견된 일이었음에도 안이하게 대처한 롯데월드측의 안전불감증은 아연실색케 한다. 우선 비수기 입장객이 1만명 수준인데도 무려 3만 5000명이나 입장시키려 했던 것은 문제라고 본다. 입장객 상한선을 이처럼 높게 잡은 탓에 인파가 대거 몰릴 수밖에 없었다. 비용이 만만찮은 롯데월드의 모든 시설을 공짜로 이용한다는데 이를 마다할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안전요원이 턱없이 부족한데도 경찰에 지원요청을 하지 않은 것 또한 커다란 잘못이다. 사실 이번 행사를 앞두고 안전사고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많았다. 그런데도 회사측은 시민들의 문화의식 부족에만 책임을 돌리고 있으니 퍽 실망스럽다. 잇따른 안전불감증으로 안전사고를 계속해서 일으킨 롯데월드는 국민들에게 머리 숙여 깊이 사과해야 한다고 본다. 특히 부상자 치료에는 만전을 기해야 할 것이다. 수차례에 걸친 경찰의 안전사고 경고를 무시한 것도 결코 있어서는 안될 일이다. 혹여 사망사고로 입장객이 크게 준 후유증을 극복하기 위한 마케팅 차원에서 이번 행사를 마련했다면 진심어린 반성을 해야 할 것이다.
  • [월드컵 인사이드] (6) 상혼에 흔들리는 붉은악마

    [월드컵 인사이드] (6) 상혼에 흔들리는 붉은악마

    독일월드컵이 열리는 오는 6월 대한민국의 전역은 12번째 전사들의 붉은 물결로 또 한번 뒤덮일 것이다. 그런데 월드컵 응원의 상징인 ‘붉은악마’가 흔들리고 있다. 한국적 응원 문화의 상징인 붉은악마가 대기업의 마케팅 대상으로까지 전락하는 바람에 역설적이게도 응원 문화의 뿌리까지 흔들고 있는 것이다. 위기의 원인과 해결책은 무엇일까. ●길거리 응원의 탄생 2002한·일월드컵에서 세계인들을 가장 놀라게 한 것은 4강 신화를 이룬 한국선수들보다 거리를 온통 붉게 물들인 엄청난 규모의 응원단이었다. 수백만 시민들이 길거리에 앉아 똑같은 옷을 입고 한 가지 구호를 외치는 일은 그들에게 경이로움이었다. 더 놀라운 것은 엄청난 인파가 자발적으로 모였다는 점이었다. 또 응원하는 동안의 열광적인 모습과 달리 쓰레기 하나 남기지 않고 질서정연하게 자리를 정리하는 모습이었다. 모두 축구대표팀의 서포터스 붉은악마의 공이었다. 하지만 4년이 지난 지금 회원만 33만명(홈페이지 가입 기준)에 이를 정도로 비대해진 붉은악마는 논란에 휘말렸다. 자발적인 응원의 주체가 아닌 객체가 아니냐는 의심의 눈초리를 받고 있는 것이다. 우선 다양한 후원 계약이 발목을 잡고 있다.2002년 SK텔레콤 등 5개사와 후원계약을 맺었던 붉은악마는 현재 KTF, 현대자동차, 네이버로부터 9억여원의 후원을 받고 있다. 붉은악마 측은 “후원금은 사무실 운영, 응원도구 제작 등 공적인 일에만 사용되며 남는 돈은 전액 축구 발전기금으로 사용된다.”고 밝히고 있지만 내부에서도 “후원관계 때문에 불필요한 오해를 받을 필요가 없다. 이 기회에 정리하자.”는 목소리도 있다. 최근 물의를 빚은 서울 광장 응원 입찰 논란과 프로축구단 연고지 이전에 대한 항의 시위도 붉은악마의 순수성을 의심하는 논거가 되고 있다. 서울 광장 사용권 논란의 경우 현대자동차와 컨소시엄을 구성한 붉은악마측이 SK텔레콤(컨소시엄)에 광장 사용 독점권을 빼앗기면서 불거졌지만 순수해야 할 응원단이 대기업과 결합한 것부터 문제라는 지적이다. 문화연대는 “독점사용권을 팔겠다는 서울시의 해괴한 발상도 문제지만 붉은악마도 스펙터클에만 집착할 것이 아니라 열정적이면서도 소박한 응원을 고민해야 할 것”이라고 충고했다. 지난 3·1절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앙골라와의 A매치에서 검정색 비닐봉투를 뒤집어 쓴 채 퍼포먼스를 벌인 것도 국가대표 서포터스라는 붉은악마 본래의 목적을 벗어난 행위로 비난받고 있다. 이날 퍼포먼스는 프로축구 제주 유나이티드(옛 부천 SK)의 무원칙한 연고 이전에 항의를 벌인 것이지만 일반 팬들은 물론 선수들도 당황했다. 일부에선 “응원단 이상도 이하도 아닌 붉은악마가 A매치에서 정치적 퍼포먼스를 벌인 것은 본분을 잃은 행동”이라고 비판했다. ●후원 받는 악순환에 순수성 위협 이같은 논란에도 불구하고 이번에도 응원의 중심은 붉은악마라는 데 이견이 없다. 논란이 된 서울 광장 응원만 해도 여론의 뭇매를 맞은 SK텔레콤(컨소시엄)측이 뒤늦게 모든 단체에 광장을 개방할 뜻임을 밝혀 붉은악마가 참여할 길은 형식상 열려있다. 독일 현지에서의 응원계획도 차질없이 진행되고 있다. 붉은악마는 400명의 원정 응원단을 이미 꾸려 놓았다. 김정연 총무는 “지난해 11월 현지답사를 통해 현지 교민 2세들과 자원봉사 네트워크를 구축했다. 여러 경로로 현지에 합세할 분들과 최대한 큰 목소리를 낼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고 있다.”고 밝혔다. 축구평론가 정윤수씨는 “조직이 커진 붉은악마가 큰 판을 벌이겠다는 강박관념을 갖다 보니 기업 후원을 받는 악순환이 이뤄져 초창기의 순수성을 담보하기 어려워진 것이 안타깝다.”면서 “이들을 이용하기에 급급한 대기업과 거대 미디어들의 얄팍한 태도를 반성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 외국서포터스 “우리도 뛴다” ‘외국에도 붉은악마가 있다.’ 독일월드컵 개막까지 80일이 남았지만 각국 서포터스들의 열기는 벌써부터 후끈 달아오르고 있다. 한·일전의 특수성 때문에 10년 넘게 붉은악마와 라이벌구도를 이어가는 일본 울트라닛폰이 대표적이다.2004년 국제축구연맹(FIFA) 100주년 기념 서포터 부문 공로상을 붉은악마와 공동수상하기도 했던 울트라닛폰은 지난 92년 히로시마에서 열린 아시안컵 우승을 계기로 본격 출범했다. 붉은악마와 달리 조직적인 체계를 갖추지는 못했지만, 대표팀의 경기가 열리는 곳이라면 어디라도 쫓아가 광적인 응원을 펼친다. 잉글랜드는 축구종가인 동시에 훌리건들의 고향이다. 국가대표 서포터스인 ‘92클럽’은 여러차례 소요사태를 유발해 악명이 높으며 독일월드컵 조직위의 ‘블랙리스트’에도 올라 있다.1985년 리버풀-유벤투스의 챔피언스리그 결승전 당시 흥분한 잉글랜드 응원단이 이탈리아 응원단을 향해 돌진하다 담장이 무너져 39명이 숨진 사건은 이들의 과격성을 충분히 설명해 준다. 붉은 유니폼을 입는 미국의 ‘샘스아미’는 특별한 응원도구 없이 경기 내내 골문 뒤 관중석에 진을 치고 서서 노래를 부르는 것으로 유명하다.94미국월드컵에서 처음 모습을 드러낸 뒤 98프랑스월드컵을 거치며 미국 전역에 지부를 둔 전국구 조직으로 성장했다. 홈팀 독일에는 민소매 청재킷에 각종 배지를 잔뜩 달고 다니는 ‘그라운드후퍼스’가 있다. 이 가운데 일부는 훌리건으로 알려진 열혈남아들이지만 유럽 내에서는 상대적으로 얌전(?)한 편. 98프랑스월드컵 한국-네덜란드전에서 붉은악마들을 질리게 만들었던 네덜란드의 ‘오렌지후터스’는 강렬한 오렌지색 복장과 페이스페인팅으로 상대를 압도한다. 안방이나 다름없는 독일에서 열려 대규모 원정응원이 예상된다.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 佛시위 노동자·야당 가세

    |파리 함혜리특파원| 프랑스 정부의 새 실업해소 정책(새 노동법)에 반대하는 시위가 18일(현지시간) 전국적으로 150만명(경찰추산 50만)이 참여한 가운데 이어졌다. 지난달 초 시위가 시작된 이래 최대 규모다. 전국 160건의 시위 중 최대 인파가 동원된 파리 시위(주최측 35만명 참가주장)에서 시위대와 경찰이 충돌, 과격양상을 띠었다. 나시옹과 소르본 대학이 있는 캬르티에 라탱 구역에서는 밤 늦게까지 산발적인 시위가 계속됐다. 그동안의 시위는 대학생과 고등학생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이날 시위에서는 노동계와 사회당과 공산당 등 야당 지도부까지 가세하며 정부를 거세게 압박했다. 학생들과 노동계는 이날 자크 시라크 대통령과 정부에 대해 논란이 일고 있는 최초고용계약(CPE)을 48시간내(현지시간 20일)에 철회하지 않으면 더 강력한 저항에 부딪칠 것이라고 최후통첩을 했다. 평화적인 분위기에서 진행된 이날의 시위는 그러나 집결지인 나시옹 광장에서 시위대 중 일부와 경찰이 충돌하기 시작하면서 과격한 분위기로 바뀌었다. 일부 시위대는 광장에 있는 상점의 유리창을 깨뜨리고 자동차를 불에 태우는 등 폭력적인 행동을 보여 경찰의 제지를 받았다. 시위가 격화되자 시라크 대통령은 CPE를 의욕적으로 내놓은 도미니크 드빌팽 총리에게 학생 및 노동계 대표와 신속한 대화를 할 것을 주문했다. 진압경찰과 시위대가 약 4시간 동안 최루탄과 돌, 병, 골프공 등으로 공방전을 벌이는 과정에서 경찰관 9명과 시위대원 17명이 다쳤다.166명이 체포됐다. lotus@seoul.co.kr
  • [월드이슈] ‘격동의 조짐’ 발칸 재조명

    [월드이슈] ‘격동의 조짐’ 발칸 재조명

    슬로보단 밀로셰비치 전 유고슬라비아 대통령이 지난 11일 옥중에서 갑자기 사망함으로써 발칸반도에 새삼 관심이 쏠리고 있다. 오랜 민족간 각축에다 종교 갈등, 강대국의 개입까지 겹쳐져 1990년대 옛 유고연방 해체 이후 코소보 내전 등으로 피와 눈물이 그치지 않았다. 세계는 그의 죽음이 또다른 분쟁과 갈등의 불씨가 되지 않을까 주시하고 있다. 복잡하기 이를 데 없는 발칸반도의 어제와 오늘을 문답 형식으로 짚어본다. ▶옛 유고연방 이전의 역사는 어땠나요? -7세기부터 이곳에 정착한 세르비아인은 비잔틴 제국의 지배를 받으면서도 14세기 초 발칸반도 남부를 거의 장악할 정도로 강대해졌어요. 그러나 1389년 코소보 싸움을 계기로 400년 이상 오스만 투르크의 지배를 받았지요. 이것이 1990년대 후반 코소보 비극과 무관하지 않아요. 1830년 자치공국을 거쳐 1878년 독립됐지만 곧바로 오스트리아와 관계가 나빠지면서 1차 세계대전의 도화선이 됐지요. 종전 후 ‘세르비아·크로아티아·슬로베니아 왕국’을 거쳐 2차대전때 나치에 항전한 요시프 티토의 영도 아래 46년 유고인민공화국으로 재탄생했어요. ▶1990년대 옛 유고연방의 해체 배경은? -티토가 80년 사망하자 문제가 터져나오기 시작했어요. 여러 민족의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던 집단 지도체제는 그런대로 버티다가 민족주의에 자리를 내주게 됐지요. 밀로셰비치가 89년 집권한 뒤 코소보 자치권을 박탈하면서 해체의 길을 걸었어요. 여기에는 티토가 크로아티아 출신이라 세르비아인들이 핍박받은 설움을 만회해야 한다는 식으로 밀로셰비치가 교묘히 부채질한 측면이 강하지요. 그래서 뉴욕타임스 같은 신문은 밀로셰비치를 민족주의자가 아니라 기회주의자라고 폄하했어요. ▶‘인종 청소’란 말은 어떻게 나왔나요? -여러 민족의 주류 종교가 다른 데다 이들 민족이 오랫동안 물고 물리는 각축전을 벌여온 탓이에요. 그러나 그보다는 ‘종교 청소’라고 불러야 한다는 의견도 많아요. 왜냐하면 코소보와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는 이슬람 지역이고 세르비아는 그리스 정교, 크로아티아는 가톨릭을 각각 믿어요. 전쟁은 이 세 종교끼리 서로 밀쳐내고 죽이는 과정이었어요. ▶피의 역사는 어떻게 진행됐나요? -옛 유고연방의 중심이자 군사력이 가장 막강했던 세르비아는 91년 가장 먼저 독립을 선포한 슬로베니아와 전쟁을 시작했어요. 하지만 90%가 슬로베니아인인 이 나라 독립을 막을 명분이 없어 열흘 만에 접었지요. 그러나 마케도니아에 이어 크로아티아가 독립의 길을 걷자 세르비아는 2차대전때 세르비아인 수만명을 학살한 크로아티아인들의 파시스트 집단 ‘우스타샤’를 응징한다며 침공, 전쟁이 시작됐어요. 밀로셰비치는 또 92년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가 독립을 선언하자 이번에는 소수로 몰린 세르비아계의 무장을 도왔어요. 보스니아 수도 사라예보는 1000일간 포위돼 극심한 고통을 당했지요. 보스니아의 세르비아계 군대는 95년 이슬람 거주지인 스레브레니차에 진입, 닷새동안 어린이와 남성만을 골라 8000명이나 살해했어요. 이때의 잔학상은 세계인의 눈을 집중시켰어요. 또 99년에는 코소보 알바니아계가 무장노선으로 전환하자 밀로셰비치가 또다시 세르비아계를 지원했고, 나토(북대서양 조약기구)군은 이를 저지하기 위해 45일간 신유고연방을 공습하기도 했어요. ▶그럼 밀로셰비치와 세르비아만 문제였나요? -그렇지는 않아요. 프라뇨 투지만(99년 사망) 크로아티아 대통령은 세르비아에 맞서 보스니아의 크로아티아인들에게 무기를 지원했고 그래서 전쟁이 95년까지 이어졌지요. 다른 나라에서도 세르비아인에 대한 보복이 있었어요. 그러나 미 중앙정보국(CIA)이 2000년대 초 조사한 결과, 인권 유린의 90% 이상이 세르비아인에 의해 저질러졌다는 거예요.3년 동안 보스니아 내전에서만 25만명이 희생된 것으로 추정되고 옛 유고연방에는 200만명 이상의 난민이 생겨났지요. ▶밀로셰비치의 죽음이 세르비아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요? -물론 의문에 싸인 죽음 때문에 서구에 대한 증오를 표현하는 이도 있고 그가 주창했던 대(大)세르비아에 대한 향수도 존재하는 게 사실이지요. 그러나 이제 세르비아인들도 잘못된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공감대를 이루고 있다고 해요. 밀로셰비치가 죽기 전까지 총재를 맡았던 세르비아 사회당의 지지도는 높지만 의회 의석은 전체 91석 중 9석에 지나지 않아요. 특히 세르비아 정부는 현재 유럽연합(EU) 가입을 추진 중이에요. 실업률이 40%를 넘나들 정도로 형편없는 경제를 살리기 위해 EU에 가입하는 게 필요하다고 보고 있어요. 당장 다음달 5일 EU 가입의 전초전 격인 안정제휴협정(SAA) 체결을 위해서도 밀로셰비치 장례식을 말썽없이 치르는 게 필요하지요. 오히려 베오그라드 시민들은 인구 200만의 코소보 자치주가 완전 독립을 실현하느냐에 관심이 많아요. 또 5월21일 주민투표가 실시되는 몬테네그로의 독립, 라트코 믈라디치와 라도반 카라지치 등 나머지 전범들을 언제, 어떤 방식으로 세르비아인의 자존심을 지켜내면서 국제유고전범재판소(ICTY)에 넘겨주느냐에 관심을 쏟고 있어요. 이 세 문제들은 따로 떨어진 것이 아니라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있어요. 미국과 러시아,EU 등 강대국의 개입을 어떻게 조절하느냐도 관건이지요. ▶몬테네그로와 코소보 독립이 새로운 불씨가 될까요? -현재로선 그럴 가능성은 높지 않아요.EU는 몬테네그로 주민투표를 받아들인 ‘베오그라드 협정’을 세르비아와 맺으면서 찬성이 55%를 넘어야 한다는 조건을 달았어요. 몬테네그로 여론도 찬반이 엇비슷하대요. 또 몬테네그로의 경우 그동안 세르비아인들과 혼인 등으로 피가 많이 섞여 독립하더라도 별다른 문제가 없을 것으로 낙관하고 있다는 거예요. 지난달부터 본격화한 코소보의 지위 협상도 러시아와 중국이 독립을 가로막지 않겠다는 뜻을 밝혀 무난히 타결지을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이에요. 영국의 파이낸셜타임스는 15일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이 지난주 콘돌리자 라이스 미 국무장관에게 이런 뜻을 전달했으며 중국 관리들도 이견이 없었다고 보도했어요. 러시아와 중국은 코소보 독립을 용인할 경우 각각 체첸과 티베트·타이완에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입장을 바꾼 것 같지요? 임병선기자 bsnim@seoul.co.kr ■ 밀로셰비치의 유해 베오그라드 묻힐듯 슬로보단 밀로셰비치 전 유고슬라비아 대통령의 유해가 15일 밤 조국 세르비아의 수도 베오그라드에 도착했다. 지난 2002년 체포돼 조국을 떠난 지 4년여만이며 지난 11일 갑자기 옥사한 지 나흘 만의 일이다. 세르비아 정부 관리들은 그의 유해가 16일 오후 6시(한국시간)부터 베오그라드의 세르비아-몬테네그로 연방의회 앞에서 일반에 공개될 것이라고 밝혔다고 영국 BBC가 전했다. 이 관리들은 18일 베오그라드에서 남동쪽으로 50㎞ 떨어진 고향 마을 포차레바치의 가족 묘역에 안장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장지와 장례 일정에 대해 유가족들도 동의했는지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앞서 그의 사인에 대해 의구심을 품고 추가 검시를 요구해왔던 러시아 의료진도 네덜란드 법의학연구소측의 심장마비 소견에 동의했다고 현지 언론들이 전했다. 밀로셰비치가 죽기 전까지 총재를 지냈던 세르비아 사회당은 베오그라드에서 장례식이 거행될 경우 극단적인 민족주의자들의 결집을 불러올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로 극우 혁신당은 그의 유해를 영접하기 위해 베오그라드 공항에 10만명의 인파가 운집할 것이라고 공언했다. 앞서 세르비아 정부는 그의 장례가 국장으로 거행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못박았다. 보리스 타디치 세르비아 대통령도 “밀로셰비치가 돌아오는 것을 막지는 않을 것”이라면서도 “국장은 부적절한 일”이라고 밝혔다. 한편 보스니아의 국제평화유지군 소속 150여명이 북부 프룬야보르에서 밀로셰비치, 라트코 믈라디치와 함께 주요 전범으로 지목된 라도반 카라지치를 체포하기 위해 그를 돕는 것으로 알려진 기업과 가옥 등에 대한 수색을 벌였다고 BBC가 전했다. 그는 보스니아의 한 수도원에 은신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14일 국제유고전범재판소(ICTY)는 밀로셰비치의 사망에 따라 그에 대한 재판을 공식 종료했다. 윤창수기자 geo@seoul.co.kr
  • 탤런트 박상원씨 ‘명예변호사 1호’

    서울지방변호사회(회장 이준범)는 14일 탤런트 박상원씨를 ‘제1호 명예 변호사’로 위촉한다고 밝혔다. 박씨는 ‘개인파산·면책지원 변호사단’ 명예단원으로도 위촉돼 서울변호사회의 각종 공익사업 홍보 활동에 나서게 된다.
  • 자이툰부대병력 교체 동행기

    자이툰부대병력 교체 동행기

    김 상사님! 만약 당신이 지난 9일 서울공항에서 자이툰부대 교대 병력의 출국 장면을 지켜봤다면 실망하셨을 겁니다.41년 전 용맹스러운 제2해병여단의 일원으로 당신이 월남으로 떠날 때 부산항을 가득 메웠던 만큼의 환송 인파를 그곳에서는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활주로에 일렬로 늘어선 동료 군인들의 손짓만을 배경으로 트랩을 오르는 장병들의 뒷모습은 쓸쓸해 보였습니다. 이라크 파병을 둘러싼 숱한 찬반 논란의 포연(砲煙)에 질식하는 건 결국 장병들의 ‘실존’이 아닌지요. 그러나 김상사님! 저의 우울함은 기내로 들어선 순간 증발했습니다.300여명의 장정들이 일제히 뿜어내는 ‘테스토스테론’의 열기가 확하고 달려드는 것이었습니다. 베이지색 군복에 바짝 밀어버린 머리, 그리고 이글거리는 검은 눈동자는 흡사 질서정연한 사자떼의 모습이라 할 만했습니다. 저는 감히 그들을 정면으로 쳐다보지 못했습니다. 해석하기 힘든 침묵이 전장(戰場)으로 향하는 기내를 묵직하게 지배하고 있었습니다. 이륙 후 한참이 지나고 나서야 가까스로 뒷좌석의 한 병사에게 물었습니다. 두렵지 않으냐고.“담담합니다.”라는 대답이 돌아오더군요.‘불치의 직업병’에 걸린 기자는 재차 다그쳤습니다. 전체 감정 중에 두려움이 몇 퍼센트나 되느냐고. 이번엔 “그걸 딱 잘라 말하긴 힘들다.”는 대답입니다. 우문현답이었습니다. 어찌 사람의 감정을 일률적으로 재단할 수 있겠습니까. 호기심과 설렘에 온통 구름 위를 걷다가도 순식간에 공포가 엄습하면서 나락으로 떨어지는 게 인간의 한계가 아니겠습니까. 그러니 아(我)는 비아(非我)요, 무아(無我)라는 것이겠지요. 김 상사님! 이륙 10시간 30분만에 장병들을 실은 민항 전세기는 쿠웨이트의 무바라크 공군기지에 도착했습니다. 전장인 이라크로 진입하기 전 장병들은 쿠웨이트의 미군기지(캠프 버지니아)에서 하루를 묵습니다.41년 전 김 상사님은 6일의 항해 끝에 월남의 깜란만에 상륙, 바로 전투태세에 돌입했지만 지금 후배들은 잠시나마 숨을 고를 겨를이 있는 것입니다. 비행기에서 내린 병사들을 제일 먼저 맞아준 것은 악명높은 사막의 모래바람입니다. 얼굴쪽으로 사납게 달려드는 모래 세례에 눈을 뜨기도, 숨을 쉬기도 힘든 지경이었습니다. 사막의 신(神)은 이런 식으로 여기가 호락호락한 곳이 아님을 경고하는 듯합니다. 다음날 장병들은 공군 수송기인 C-130에 실려 이라크 아르빌로 향했습니다. 김 상사님,41년 전 당신은 미 해군 함정을 타고 월남에 와서 미군이 나눠준 탄약으로 전쟁을 치렀지만, 지금 자이툰 부대원들은 소총에서 비행기에 이르기까지 일체 우리 장비로 전쟁에 임하고 있습니다. 우리 국력의 성장치는 이렇게 확인됩니다. 물론 여기에는 김 상사님과 전우들이 흘린 피의 기여가 포함돼 있겠지요. 보일러실 내부처럼 어수선한 수송기에 앉아 고막을 찢을 듯한 소음을 듣고 있으려니 본격적으로 전쟁터로 향한다는 실감이 났습니다.2시간 가량이 흘러 착륙이 임박해졌을 때 기체가 롤러코스터처럼 심하게 요동치기 시작했습니다. 이른바 ‘전술비행’에 돌입한 것입니다. 이것은 이·착륙시 혹시 있을지 모를 적의 대공포 공격을 피하기 위해 기체를 지그재그로 선회하는 것입니다. 장병들 모양으로 방탄조끼와 헬멧을 착용하고서 10분 넘게 넘실대는 기내에서 중심을 잡다보니 속이 울렁거리면서 구토가 밀려올라왔습니다. 김 상사님도 월남으로 향하는 배 안에서 배멀미 때문에 죽을 고생을 했다고 하셨지요. 세상이 변해도, 또 기술이 진보해도 구역질을 견뎌내야 하는 것이 전쟁의 통과의례인가 봅니다. 수송기가 닿은 곳은 아르빌 국제공항입니다. 수송기 주위에 배치돼 집총자세로 삼엄한 경계를 펴고 있는 자이툰부대원들을 보면서 오싹 긴장감이 들었습니다. 이곳이 허허벌판이라고 해서 41년 전 밀림 속에서의 김 상사님보다 공포감이 덜하다고 보지는 않습니다. 어디선가 순식간에 날아오는 총탄에 격살될지도 모른다는 상상은, 무애(無碍)한 광야에서 오히려 더 섬뜩하게 전개되는 것 같습니다. 이라크 북부에 위치한 아르빌은 예상과 달리 사막이라기보다는 구릉지와 녹지가 군데군데 펼쳐진 초원지대에 가깝습니다. 부대원들이 완전무장 차림으로 철통 같은 경계를 펴고 있는 자이툰부대 영내로 들어선 순간 안심이 됐습니다.100만평 규모에 3000여명의 사단 병력이 주둔하고 있는 자이툰부대는 병원도 있고, 슈퍼마켓도 있고, 외환은행 지점도 있어 마치 한국의 어느 마을에 온 것 같은 착각에 빠질 정도입니다. 장병들의 식탁은 한국에서 배로 실어온 우리식 반찬으로 채워집니다. 김 상사님이 보시면 세상 참 좋아졌다고 하시겠지요. 김 상사님! 정작 놀라실 얘기는 지금부터입니다. 도착 다음날인 11일 자이툰 부대원들의 민사심리작전에 동행해 아르빌 외곽의 작은 마을로 향했습니다. 그런데 잔뜩 긴장해 있는 제 눈앞에 펼쳐진 장면은 흉악한 테러가 아니라 주민들의 따뜻한 미소였습니다. 자이툰 부대원의 차량을 발견한 어린이들은 하던 놀이를 제쳐놓고 손을 흔들며 수도없이 차량으로 달려들었습니다. 그들에게 손을 흔들어 주느라 팔이 아플 지경이었습니다. ‘피르라시’라는 마을에 다다르자 귀에 익은 우리 동요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이라크 어린이들이 용맹하기로 이름난 우리 특전사 요원들을 따라 율동에 맞춰 우리 말로 노래를 부르고 있는 게 아니겠습니까.“머리 어깨 무릎 발 무릎 발∼” “곰 세 마리가 한 집에 있어 아빠곰 엄마곰 아기곰∼” 서울에서 8400여㎞나 떨어진 이국의 하늘 아래서 우리 동요를 부르고 있는 어린이들을 보고 있자니 저도 모르게 울컥 눈시울이 불거졌습니다. 한쪽에서는 이라크 청년들과 우리 병사들 사이에 씨름대회와 줄다리기가 펼쳐지고 있었고, 호떡, 솜사탕 같은 우리 먹을거리도 차려져 있었습니다. 이 성대한 마을잔치는 오롯이 우리 군인들의 손으로 연출되고 있었습니다. 살벌한 전장을 상상하고 온 기자에게 이런 장면은 한바탕 충격이었습니다. 자이툰은 전투가 아닌 사랑을, 파괴가 아닌 재건의 씨앗을 뿌리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또 하나의 거대한 한류(韓流)였습니다. 이라크 파병이 어쩌고저쩌고하는 온갖 탁상공론을 자이툰은 총이 펜보다 강하다는 역설의 웅변으로 조롱하고 있었습니다. 지난해 6월 이후 아르빌에서 단 한 건의 테러도 일어나지 않은 기적은 이런 한류식 사랑의 결실입니다. 불퇴전의 특전사 요원들이 천진난만한 표정으로 어린이들과 껑충껑충 율동을 하는 것, 이것은 유난히 다정(多情)한 우리 민족이 아니고선 다른 어떤 나라 군인들도 감히 흉내낼 수 없는 발상의 전환이 아니겠습니까. 이런 한국군의 성과에 자극을 받은 도널드 럼즈펠드 미 국방장관은 최근 “한국군의 민사심리전을 벤치마킹하라.”고 지시했다고 합니다. 생사가 오락가락하는 전쟁터에서 민심부터 챙기는 것은 우리 군의 오랜 전통인 것 같습니다. 월남전 당시 채명신 주월 한국군 사령관이 “100명의 베트콩을 놓치는 한이 있더라도 1명의 양민을 보호하라.”고 신신당부했던 것을 김 상사님도 기억하시지요. 현지에서 자이툰은 치안유지에서부터 도로포장, 기술교육, 의료봉사 등등 수십가지의 민사작전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사실상 정부 역할을 대행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상황이 이러니 이곳 주민들은 한국군 철군 소식이 나올 때마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고 합니다. 이날 오후 만난 쿠르드 자치정부 관계자는 한국군이 얼마동안 주둔했으면 하느냐는 질문에 주저없이 “영원히(forever)”라고 하더군요. 12일 아침 저는 올 때와는 반대로 밝은 마음으로 아르빌을 떠날 수 있었습니다.6개월의 복무기간을 마치고 귀환하는 300여명의 교체 병력과 말입니다.14일 아침 드디어 서울공항에 비행기가 안착했을 때 한 병사(김금휘 병장)에게 제일 보고싶은 사람이 누구냐고 물었더니 “어머니”라고 답하더군요. 그 말을 들으니 고작 6일간 이라크 출장을 가는 아들 걱정에 식음을 전폐하다시피 하신 어머니 생각이 났습니다. 그러니 이라크에서 조국을 위해 생명을 담보잡힌 3000여 장병의 어머니들의 심정은 또 어떻겠습니까. 물론 41년 전 사지에 아들을 보내놓은 김 상사님의 어머니도 밤잠을 못 이루셨겠지요. 김상연특파원 carlos@seoul.co.kr
  • 춤과 노래로 밤새는 백사장

    춤과 노래로 밤새는 백사장

    <방콕=申禹植(신우식) 특파원> 태국엔 이름난 피서지가 많다.「방콕」에서 2백13km 거리에 있는「후아·힌」-비행기면 한시간, 급행열차면 5시간에 갈 수 있는 태국최고의 피서지로 손꼽히는 景勝地(경승지). 해수욕,「스포츠」의 설비, 시설이 그만이다. 하지만 여느 사람들은 엄두도 못내는 곳. 거기까지 가지 않더라도「방콕」에서 별로 멀지 않은 여름의 고장이 있기 때문에「후아·힌」을 굳이 생각지 않는다.「방콕」시민들의 사랑을 가장 많이 받는 피서지가 바로「방생」. 낮12시까지 잠자고 밤에 生氣(생기)를 되찾아 「방콕」에서 70「마일」, 자동차로 2시간이면 갈 수 있는 곳이「방생」이다. 여름의「피크」를 이루는 4월엔 3시간, 4시간이 걸릴만큼 人波(인파)가 몰려든다지만 이 常夏(상하)의 나라에선 언제나 피서지를 찾게 마련이다. 요즈음도 주말에는 10만, 20만의 人波가 밀려든다. 소시민들은 당일치기로 놀다 오는 경우도 없지않지만 웬만하면 금요일 저녁에 가서 일요일 저녁에 돌아오는「스케줄」을 짜게 마련. 낮엔 잠자고 밤엔 生氣(생기)있게 움직이는「방콕」의 생리가 이「방생」에서도 그대로 적용된다. 금요일 하오2시나 3시쯤「방콕」을 떠나서「방생」에 닿으면 바로 물속에 뛰어든다. 밤을 새워 수영하고 노래하고 춤을 추고 그리고「캠프·파이어」. 「방생」은 백사장도 좋지만 물이 따뜻한게 특징이다. 야자수의 행렬이 길을 이루고 그리고 끝없이 펼쳐진 백사장, 그 다음엔 수영하기에 딱 알맞은 온도의 바닷물. 이런「방생」에서 낮과 밤을 바꾸며 남녀 노소 가리지않고 찌들린 한주일의 더위를 씻어버린다. 밤새 수영하고 노래하고 춤추며 놀다간 새벽에 모두들「방갈로」로 기어들어간다. 「방생」에는「방갈로」도시라고 할 만큼 1백채가 넘는「방갈로」가 바둑판처럼 널려있다. 南國특유의 이「방갈로」들은 바닷바람을 마음껏 마시게 지어져있지만 방하나 하나에「에어콘」이 또한 장치되어있다. 하루 비는 값은 2백「바트」(美貨(미화) 10달러·3천원)안팎. 별장식 개인「방갈로」를 지닌 사람들도 숱하게 많다. 그런가하면 서민층을 위하여 돗자리도 빌려준다. 하룻저녁 10「바트」(50센트·1백50원)면 한가족이 넉넉히 지낼 수있다. 이런데서 새벽녘에 눈을 감으면 낮 12까지 잠잔다. 토요일이다. 다시 물속에 뛰어들고 춤추고 노래하며 다음날 새벽까지. 다시 낮 12시까지 잠자고 두어시간쯤 決算(결산)된 마지막 놀이를 즐기다가 하오 4, 5시면「방콕」으로 향한다. 이름에 어울리게 주말을 즐기는 셈이다. 태국의 피서지 가운데 가장 대중성이 있는 이「방생」에 가는데도 가지가지 방법이 있다. 자가용족은 말할나위도 없고 자동차 전세 내는데는 하루 3백「바트」(15달러·4천5백원). 대형「버스」는 片道(편도) 10「바트」(50센트·1백50원),「에어콘」이 된「마이크로·버스」는 30「바트」(1달러50센트·4백50원)로 갈 수있다. 「방생」에선 비단 수영뿐만 아니라「보트」놀이,「워터·스키」,「골프」등 주말을 즐기기에 어울리는 여러가지 시설이 갖추어져있다. 「방생」은 서민들의 피서지 부유층 즐겨 찾는「파타야」 이와같이 좋은 조건을 갖추고있는 피서지가「방콕」가까이에 있기 때문에「방생」을 찾는 것을 사람들은 어렵게 생각하지 않는다. 마음이 내키면 후딱 가 볼 수 있는 곳이 바로「방생」이다. 「방생」에서 자동차를 타고 약 30분쯤 더 가면「파타야」란 또하나의 해수욕장이 나타난다. 「방생」에 비해 물이 파랗고 맑다. 「방생」을 뚝섬에 비유한다면「파타야」는 광나루쯤될까? 10년전「프랑스」인들에 의해 개발된 이「파타야·비치」는 駐泰(주태)미군들이 휴가때면 즐겨찾는 곳. 태국인, 화교들도 즐겨 찾아오지만 비교적 부유층에 한하고 중류, 서민층은 역시「방생」쪽을 택한다. 『「카지노」 손님은「몬테칼로」로, 「플레이·보이」들은「카프리」섬으로, 「서핑」을 즐기실 분은「와이키키」로. 그러나 수영과 휴식이라면 단연「파타야」』라는 「캐치·프레이즈」가 거짓이 아닐 정도로 해수욕에 알맞은 휴식처다. 「코파카바나·비치」의 타원형해변이 무색할 반원형해변과, 반짝이는 은빛 모래사장, 모래사장을 벗어나면 곧바로 종려나무 그늘로 들어서 시원한 맥주를 마실 수 있다. 비교적 최근에 개발된 곳이라 오락·휴양시설은「방생」「후아·힌」등지에 비해 적은 편이지만 대신 시설들이 그야말로 「딜럭스」급. 현재「스위스」人 소유의「매머드·호텔」이 신축되고 있으며「워터·스키어」들을 위한 「보텔(보트+호텔)」도 신축중. 「방콕」중심가서 1백47km밖에 있는「파타야」는 자동차로 2시간반~3시간이면 닿는 곳. 현재 닦고 있는「수퍼·하이웨이」가 완공되면 1시간20분 동안 高速(고속)「드라이브」를 즐길 수도 있단다. 「니파·로지」社의「미니·버스」가 매일 아침 9시, 하오 3시 두차례 운행되고 있다(편도 50「바트」=7백50원, 왕복 80「바트」=1천2백원). 이밖에 정기운행의 값싼「버스」편이 있으며, 「방글라뭉」街(가)에 서 있으면 약삭빠른 합승「택시」운전사들을 만날 수 있다. 돌아오는 길에 약 20km거리에 있는「스리라차」란 자그마한 갯마을은 태국 제일의 생선요리를 맛볼 수 있는 곳. 더없이 좋은「보너스」가 된다. 67년까지만 해도「파타야」에는「니파·로지」「파타야·비치」「아보르」등 3개의「호텔」뿐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전해안이(몇「마일」에 걸쳐) 오락 휴양 시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다. 「에어콘」과 욕실이 있는「아보르·호텔」의 경우 1泊에 2백「바트」(10달러·3천원). 사람 많은「호텔」을 피해 종려수 그늘에 마련된「로크·코티지」(바윗집)나「방갈로」라면 1泊에 3백「바트」(15달러·4천5백원)가 든다. 이곳에선 태국 요리외에「프랑스」「멕시코」中國의 별미를 아무데서나 맛볼 수 있다. [ 선데이서울 69년 7/20 제2권 29호 통권 제43호 ]
  • 오토바이 빌려주고 1日 여보도

    오토바이 빌려주고 1日 여보도

    7월은 「바캉스」의 계절 - 주말이면 서울근교 유원지에는 으례 몇 10만의 인파가 몰려든다. 이중에서도 특히 뭇사람들의 시선을 끄는 것은 「오토·하이킹」. 쌍쌍이 어울려 시속 100km로 달리는 광경은 보기에도 시원스럽다. 그러나 - 「스카프」를 날리며 주말 「하이웨이」를 누비는 그 「오토·하이킹」에 이상있다. 1백25cc 못되는 소형은 면허만 있으면 번호없이 우리나라에 「오토바이」가 본격적으로 상륙한 것은 G산업이 63년3월, 「오토바이」를 생산해내기 시작하면서부터. 미국, 「유럽」등지서 「비트·붐」이 한차례 지나가고 난 뒤였다. 「선글라스」에 「리더·자키트」(가죽잠바), 「블루·진」(푸른 작업복바지)과 함께 「모터·사이클」은 「비트」족의 필수품의 하나. 좌절당한 젊음을 「모터·사이클」의 「스피드」속에 불살라버리던 「비트족」족의 풍속은 내용이야 어쨌든 3,4년 뒤늦게 우리나라에도 상륙해왔다. 처음엔 대부분이 자가용. 그러다 작년 가을부터 「오토·하이킹·붐」이 일기시작하면서 이상한 소문이 나기 시작했다. 1일대절 「오토바이」가 등장한 것이다. 그것도 동반할 여성을 경품부(景品付)로 붙여서. 좀더 자세히 알아보자. 현재 우리나라에선 배기량(排氣量) 1백25cc 이하의 「모터·사이클」은 「넘버」없이 마음대로 탈수 있다. 배기량 1백25cc이상의 대형 「모터·사이클」은 소형 자가용 「넘버」를 얻어야만 운행할 수 있다. 그래서 자연히 「넘버」없이 탈 수 있는 1백25cc이하의 것이 인기다. 시중에 나와있는 것중 90%가 90cc, 50cc의 것. 한편 이 「모터·사이클」을 타려면 타고 싶은 사람은 반드시 경찰당국으로부터 운전면허를 얻어야한다. 1백25cc 이상의 대형 「모터·사이클」이면 소형자동차운전면허를, 그 이하의 것이면 원동기 자전거 운전면허를 얻게 되어 있다. 원동기 자전거면허는 일반상식정도로 누구나 탈 수 있는 것. 이렇게 쉬운 면허만 갖고 있으면 아무때나 1백25cc이하의 「오토바이」는 빌어 탈수 있다는 얘기다. 1백25cc이하의 「오토바이」는 「넘버」없이 운행할 수 있다는 법규정을 교묘히 이용한 것이 중고(中古) 「오토바이」판매업자들의 교묘한 상흔. 오토바이삯은 2~3천원 1日여보 8천원~1만원 그중의 어떤 업자는 비밀조직망(?)을 통해 주말 「오토·하이킹」 희망자들을 모은다. 희망자들은 하루 2~3천원을 내고 「오토바이」를 빌어 탄다. 단순히 이것으로만 끝난다면 별 탈이 없다. 그러나 「오토·하이킹」에 뒷좌석이 비어있어서는 재미가 없다. 뒷좌석에 태울 여자 동반자를 자신의 능력으로 메울 수 있는 사람은 별문제지만 그렇지 못한 무능력자는 여자구하는일까지 「오토바이」상회에 위임하기 마련. 이런 경우 1일 8천원에서 1만원의 돈을 내면 「오토·하이킹」희망자는 「오토바이」와 뒷좌석 숙녀(?)를 하룻동안 소유(?)할 권리를 갖게 된다. 업자측으로 보아선 뒷좌석숙녀가 책임지고 「오토바이」를 되돌려 주어 1석2조의 효과. 희망자로부터 받은 돈은 업자측과 숙녀측이 반반씩 나눠 가진다. 그러니까 뒷좌석 숙녀의 하루일당은 4~5천원. 괜찮은 하루 수입이다. 여기에 숙녀의 「서비스」(?) 여하에 따라 응분의 「팁」이 따른다. 하루 6~7천원벌이가 상쾌한(?)「하이킹」 속에 이루어 진다. 식사, 음료수등 부수비용은 신사측이 부담하기 마련. 다방·터키탕·바의아가씨와 여대생(女大生)도 이래서 「오토·하이킹」엔 「오토·걸」이 따르기 마련이다. 「오토·걸」의 성분을 따져보자. 이들은 비밀「루트」를 통해 「오토바이」 상회와 연락을 갖게되는데 다방「레지」, 「터키」탕의 「서비스·걸」, 「비어홀」의「호스테스」, 그리고 고급 「콜·걸」의 순위다. 개중에는 여대생까지 끼여 있다는 소문. 이들은 전화연락을 받고 지정된 시간에 지정된 장소로 간다. 어느 「오토·하이킹·클럽」의 희망자들을 모으는 조직은 간첩망 못지않게 철저한 장막속에 감추어져 있다. 이들은 기존회원들의 추천으로 신청된 희망자들의 신원을 내사, 신원이 확실해야함은 물론, 이런 기밀을 외부에 누설하지 않을 사람이라야 받아들인다. 그리고 일단 회원수가 확정되면 상회에서 직접「오토바이」를 수교하는게 아니라 지정된 장소서 인수인계, 일반사람들의 눈을 피한다. 「오토·하이킹」의 「피크」는 목적지에 닿았을 때. 개인행동의 시간이 주어지면 1일연인 뒷좌석 숙녀를 요리(?)하는 것은 각자의 수단에 달렸다. 그러나 상습 「하이커」들의 말로는 숙녀들 자신이 이미 어느 정도의 각오(?)는 출발전에 되어 있으며 특별「서어비스」(?)는 불문율(不文律)처럼 되어있다는 것. 물론 1~2천원의 「팁」이 없을 수 없다. “손목쯤 될줄은 알았지만” 혼날뻔 한 여대생의 고백 모든 「오토·하이킹」이 다 이런 것은 아니다. 시내 M「클럽」처럼 매주일 회비 5백원씩 거둬 정기적으로 「하이킹」을 나가는 곳도 있다. 그러나 D극장주변에 집결되어있는 「오토바이」상회의 반수가량은 「오토바이」 판매·수선보다 「오토·하이킹」 알선으로 수지를 맞추고 있다는 소식이다. 다음은 일당 5천원에 매혹된 한 여대생이 혼날뻔한 얘기. ▲李정임(21·가명·H대학회화과 3년)양의 말=하루에 5천원을 벌 수 있는 「아르바이트」 자리가 있다길래 친구를 따라 나갔어요. 물론 하루쯤 대행애인노릇 해야한다는 건 알았어요. 그러나 기껏해야 손목쯤 잡히거나 어디 교외로 나가서 춤의 「파트너」노릇만 하는 줄 알았지요. 경춘(京春)가도를 2시간쯤 달려서 등선(登仙)폭포에 이르렀어요. 점심을 먹자며 들어간 곳이 여관도 아니고 음식점도 아닌 묘한 곳이더군요. 그러더니 맥주를 권하고 점점 태도가 이상해지지 않겠어요? 같이 갔던 친구를 찾았더니 곧장 춘천(春川)으로 갔다지 않아요? 방에서 튀어나와 「오토바이」 세워둔 곳에서 기다렸죠. 돌아오는 길엔 『기분잡쳤다』며 마구 속도를 내더군요. [ 선데이서울 69년 7/20 제2권 29호 통권 제43호 ]
  • “빚에서 해방되세요”

    서울신문에 ‘채무상담실’을 연재하고 있는 김관기(서강대 법학과 교수) 변호사가 파산과 관련된 그동안의 지식·경륜을 한편의 책으로 엮어냈다. 제목은 ‘합법적으로 빚에서 해방되는 법’(청림출판사 펴냄).김 변호사는 이 책을 통해 빚에 허덕이는 채무자들을 안전하고 합법적인 개인파산으로 인도하고 있다. 그는 현재 우리나라 법원에서 제공하는 파산 및 면책신청 서식의 작성 방법을 새로운 파산법과 실무관행에 맞게 설명해 준다.김 변호사는 “개인파산은 누구든지 노예나 노숙자의 처지에 떨어지지 않을 수 있도록 제공된 사회보험”이라고 강조한다.박경호기자 kh4right@seoul.co.kr
  • [사회플러스] 서울변호사회 개인파산 법률지원

    서울지방변호사회(회장 이준범)는 법원에 개인파산 및 면책 절차를 신청하는 채무자에게 법률서비스를 저렴하게 제공하는 ‘개인파산·면책 지원 변호사단’을 운영한다고 1일 밝혔다. 이를 이용하려면 서울 서초동 변호사회관 종합법률센터(02-3476-8080,0986)를 방문, 이용신청서를 작성하면 된다. 이용방법은 서울변호사회 홈페이지(www.seoulbar.or.kr)에서 안내한다.
  • [브로커 천국 코리아] 법조=김모 세무=박모… 큰손들 ‘전공’별 특화

    법조브로커, 건설브로커, 세무브로커, 병역브로커…. 브로커들은 나름대로 자신만의 전공 분야(?)가 있다.‘브로커 김모=법조브로커’,‘브로커 박모=세무브로커’ 하는 식이다. 물론 윤상림씨처럼 예외적으로 광범위한 인맥을 형성한 대형브로커도 있다. 대표적인 법조브로커로는 K씨와 김모씨 등이 있다.K씨는 지난해 경제사범들로부터 사건 무마를 미끼로 수억원을 받은 혐의로 체포됐다. 현재도 2건의 변호사법 위반 혐의로 재판이 진행 중인 K씨는 “2심에서도 실형이 나오면 그동안 관리한 판·검사 40명의 명단을 폭로할 것”이라고 큰소리를 치고 있다. 실제 그가 체포될 당시 판·검사 명단과 전화번호가 빼곡히 적힌 수첩이 함께 발견됐다. 이른바 경기도 부천 ‘신앙촌 재개발 비리’ 때 등장한 김모씨도 유명한 법조브로커로 통한다. 당시 현직 검찰간부 2명이 구설수에 올랐으며 그중 한 명은 2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지만 결국 대가성 있는 돈 거래 혐의로 불구속 기소돼 옷을 벗었다. 김씨 이름이 거론되자 상당수 검찰 간부들이 “아, 그 김모” 하며 유명한 법조브로커라는 사실을 상기하기도 했다. 최근에는 사건이 덜하지만 병무브로커로는 박노항씨가 있다. 박씨는 지난 1999년 이른바 ‘박노항 병역비리’의 몸통으로 지목돼 3년간 도피생활을 했다. 박씨는 병무청 파견 모병연락관인 원모씨, 병무청 사무관, 군의관 등과 짜고 2년6개월 동안 병역면제 등 각종 병무비리를 저지르고 돈을 챙겼다. 자녀들의 병역면제를 위해 박씨에게 돈을 건넨 사람들은 전직 국회의원과 변호사, 대학교수, 유명 연예인 등 100여명이 넘었다. 건설브로커 업계에서는 이모씨가 유명하다. 직접 토목업체를 운영하고, 스포츠단체장을 역임했던 이씨는 관급공사 수주명목 등으로 중소 건설업체들로부터 100억원대의 로비자금을 받은 혐의 등으로 기소됐지만 검찰은 40억원의 사용처 규명을 포기했다. 실세 정치인과의 친분을 과시하면서 로비자금을 받은 이씨가 돈의 행방에 대해서는 “먼 훗날 말하겠다.”면서 끝내 입을 열지 않았기 때문이다. 잔챙이 브로커들은 ‘유행’을 타기도 한다. 외환위기 직후 경매시장이 호황일 때는 ‘경매브로커’, 부동산붐이 일 때는 ‘부동산브로커’가 극성을 부리고, 최근 개인파산 등이 많아지자 변호사 명의만 빌려 업무를 처리하는 ‘개인회생·파산브로커’가 많아졌다. 한 검사는 “큰 브로커야 나름의 전문영역이 있지만 작은 브로커들은 ‘먹을 것’이 많은 곳을 이리저리 찾아다닌다.”고 말했다. 법조팀 newworld@seoul.co.kr
  • TV는 벌써 월드컵 열기

    축구응원을 소재로 삼은 또 하나의 광고도 화제다.KTF는 기존 스포츠 광고 형식을 철저하게 깨뜨리며 축구 경기 장면이 없는 광고를 내보내고 있다. 그러나 누구나 축구를 소재로 삼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대한민국 축구팀 공식 응원 유니폼이 돼 버린 빨간 티셔츠를 입고 있는 젊은이. 갑자기 젊은이가 서울 명동의 수많은 인파속에 메가폰으로 외치기 시작한다.“우리 미칩시다! 미쳐서 외치면 우리는 또 할 수 있습니다! 독일까지 들리도록 뜨겁게 뜨겁게 외칩시다! 대∼한민국, 대∼한민국.”길가던 시민들이 젊은이를 중심으로 둥그렇게 모여들더니 함께 박수를 치고, 같이 구호를 외친다.32초간의 광고는 모든 장면이 연출없는 현장 그대로의 모습이다. 조원석 감독이 인위적인 연출을 자제했다. 대신 카메라 맨 8명이 카메라를 숨긴 상태에서 대한민국을 외치는 젊은이에게 반응하는 시민의 다양한 표정과 느낌을 담아낸 ‘몰카’다. 광고를 통해 KTF는 ‘불광불급(不狂不及)’의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미치지 않으면 이룰 수 없다.’는 간결한 메시지를 통해 다가오는 독일 월드컵에서 국가 대표팀이 선전할 수 있도록 온 국민의 관심과 사랑, 열정을 하나로 모으자는 것이다. 이기철기자 chuli@seoul.co.kr
  • 미스아닌 미스코리어 金志娟

    미스아닌 미스코리어 金志娟

    『저도 떳떳이 새 생활을 열어보기 위해 영화계에 나가렵니다. 너무나 암울한 나날만 보냈읍니다』- 연기인지 꾸밈인지는 모르겠으나 금년도「미스·코리어」진(眞)을 「미스」가 아니란데서 실격한 - 말하자면 「미스·코리어」를 「미스」한 「미스·코리어」- 불운의 「퀸」김지연(金志娟·21)은 영화계에「데뷔」 하는 심경을 털어 놓았다. 김지연(金志娟)양은 요즘 한강변의 시영 H「아파트」에 살고 있다. 동거인은 오빠 김광수(金光洙·28)씨 부부. 약 1개월 전에 서울 시내 갈월동94의 집을 나왔다. 부모님 곁을 떠나 비교적 자유로운 오빠부부의 감독 밑에서 살아 보기 위해서란다. 그녀의 출연작품은 태창(泰昌)흥업의『상해(上海)의 방랑자(放浪者)』 (전우열(全右烈)감독). 지난 7월 2일부터 뚝섬의 촬영장에 나가고 있다. 계약금은 50만원. 이 중 20만원은 이미 받았단다. 金양은 허장강(許長江)군과 공연, 그의 외동딸 역을 맡게 됐는데 42「신」에 나오는 완전 주역. 열심히 일해서 훌륭한 배우가 되겠단다. 『저로서도 무엇인가 해야 하지 않겠읍니까? 집에서 부모님의 신세만 지고 놀 수는 없으니까요. 「패션·모델」과 영화계의 두 길을 일단 생각해 보았읍니다. 그 중 「모델」에는 별로 매력을 느끼지 못했읍니다. 이번 기회를 잡아서 저는 저대로 자기자신의 앞날을 걸어 보는 것입니다』 金양은 미인 탓인지「미스·코리어」眞 에 실격하면서 구설수가 따랐다. 고급 「바·걸」 이라는둥 비밀요정의 「호스테스」라는둥 그럴싸한 소문들. 소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또 뒤따랐다. - 金양이 나가는 요정에서는 줏가가 더 올랐다는 소문이던데? 『그 일(실격된 것)이 있은후 저는 집 안에 박혀 있었어요. 그 난리를 치러 놓고 제가 아무리 뻔뻔스럽기로서니 그런데 나갈 수가 있겠어요?』 - 소문은 상당히 구체적인걸요. 가령 「팁」이 얼마에서 몇만원으로 뛰어 올랐다느니 혹은 남자손님들이 金양의 실격을 위로해 주는 위로잔치를 베풀어 주었다느니 해서 말입니다. 『아이 참 멋대로 쓰세요. 그렇지만 「팁」이 몇 만원으로 뛰었으면 얼마나 좋겠어요. 하룻밤에 몇만원 벌 수 있다면 정말 나가 보겠어요. 그런데 한 군데 소개해 주세요. 영화계 보다 그 쪽이 낫겠어요』(똑 바로 쳐다 보던 얼굴을 옆으로 숙이고 눈을 내려 깔더니 오른 손으로 이마를 짚는다. 이마에 경련이 스친다) 『기자들을 만나면 사형선고를 받는 것 같았어요. 오늘은 옛날의 제가 아니고 영화계에 나가는 병아리 김지연(金志娟)으로서 만나고 있읍니다. 옛날 일은 너무 들추지 말아 주세요』 金양은 그동안 거리를 나다니는 것도 무서웠다고 실토한다. 『「미스·코리어」가 된 뒤부터 (실격이라는 말을 쓰지 않았다) 남의 눈이 두려워서 행동을 더 조심스럽게 하고 있습니다』 언젠가 동거하고 있는 올케와 같이 남대문시장에 갔을 때 그녀의 움직이는 곳마다 인파가 쏠렸다. 그것도 여자 구경꾼들. 그 여자들 사이에서는 별의 별 소리가 다 나왔다. 『저게 실격한 「미스·코리어」래!』하는 소리에서 『뻔뻔스럽지』라느니 『「미스·코리어」를 어떻게 알고 있는거야』하는 따위, 돌멩이가 날아 올까 봐 두려울 지경이었다. 그녀에게 반갑지 않은 말을 던지든지 눈을 흘기고 지나가는 사람은 모두가 모두 여자들. 남자들은 의외로 관대하더란다. 한번은 반도·조선 아케이드에 「쇼핑」을 갔을 때의 일. 金양을 한번 보기 위해 남녀 가릴 것 없이 온통 사람 울타리를 이루어 빠져 나오지를 못했었다고 한다. 그래서 목욕도 집에서 하든가 언니와 독탕을 이용했다. 복장학원으로 나가 「디자인」을 공부할 생각도 해 보았지만 사람 눈이 무서워 그만 두었단다. 되도록 조용히 지내려고 했는데 영화계의 등쌀로 그만 또 세상에 나가게 되었다는 것이다. 金양이 「미스·코리어」에 실격되자 모친은 고혈압으로 성모(聖母)병원에 열흘동안 입원을 하는 소동도 빚었다. 그러한 난리 속에 끈질기게 영화계인사들이 출연교섭 공세를 펴왔다. 출연교섭을 해 온 영화사가 열 손가락은 넘는다. 실격 첫 날부터 전화「벨」이 울리면 영화사에서 온 것 이었다. 계약금도 경쟁의 도에 따라 20만원에서 30만원, 40만원, 50만원으로 껑충껑충 뛰어 올랐고 50만원 보다 더 내겠다는 제작자도 있었다. 영화출연 교섭경위에 대해 오빠 김광수(金光洙)씨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받으면 많이 받든지 안 받으면 아예 안받든지 둘 중의 하나를 택하기로 우리들은 마음 먹고 있었읍니다. 그래서 출연영화의 「시나리오」를 사전에 읽어 보기도 했고 누가 감독을 하느냐를 검토하기도 했읍니다. 너무 어려운 역을 맡아서 「데뷔」와 동시에 실패하는 일이 없도록 해야겠고 여동생을 잘 키워 주는 믿을 수 있는 감독을 고르고 싶었습니다』 이러한 말은 제1회 작품의 연기에서 성공을 거두면 「스타돔」으로 향해 발돋움해 보겠다는 金양의 마음가짐을 간접적으로 뒷받침해 준다. 『전(全)감독이 제 친구입니다. 그래서 여동생을 한 번 맡겨 보기로 한 것입니다. 그것도 좋든 나쁘든 「매스콤」에 알려진 허명(虛名)을 선전으로 한번 이용해 보겠다는 속셈인지도 모르죠. 기왕 이렇게 된 바에야 믿고 나갈 수 밖에 없습니다』 그 옆에서 金양이 말을 이었다. 『모든 것이 경험에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겠읍니까? 저는 실격사건을 통해 세상공부를 많이 했읍니다. 새 인생의 「스타트」를 끊으려는 것입니다. 저를 좀 도와주세요』 21세의 젊은 나이치고는 파란 많은 인생을 살아왔다. 金양이 부모에게 끼친 심려의 횟수만해도 첫 번째가 65년 5월 시내 P여고를 3학년에서 퇴학당했을 때였다. 두 번째가 아직 법률상의 남편이 되어있고 한 때는 함께 살림을 한 김태문(金泰文·23)씨 와의 결혼식(67년 10월 31일)때. 이 때도 金양의 가정에서는 모두가 결혼에 반대했다. 그것을 무릅쓰고 김태문(金泰文)씨와 결혼했다. 세 번째가 반년도 못가서 결혼에 실패하고 친정으로 돌아 왔을 때. 이번에는 결혼에 반대하던 부모와 오빠들이 이혼에 반대했다. 일단 시집간 여자는 그 남편과 함께 지내야 한다는 완고한 가풍으로. 이 때도 金양의 모친은 집안체면이 망했다고 앓아 누웠다. 그리고 네 번째가 「미스·코리어」실격사건. 그때의 「쇼크」는 새삼 말할 것도 없겠다. 게다가 본인의 완강한 부인에도 불구하고 고급요정에서 인기를 독점하는 일류 「호스테스」가 되어 있다는 입방아는 여전 가시지 않고 있다. 『저는 저대로 이번 출연을 앞두고 여러 가지 생각을 많이 했읍니다. 이번에는 꼭 성공해서 부모님들을 안심시켜 드리고 싶습니다. 세상에 말하고 싶은 것은 저에게 꼭 한번의 기회를 달라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미스·코리어」로 뽑힌 미녀 중 김미정(金美貞),손미희자( 孫美喜子), 서양희(徐良姬) 의 3명이 영화계에 요란스럽게 「데뷔」했지만 3명이 모두 성공을 거두지 못하고 고독하게 사라져 갔다. 심지어 이중 한명은 현재 비밀 고급요정의 「호스테스」로 나가고 있다고 한다. 金양이 이러한 선배들의 선례를 깨뜨리고 우리나라 영화계의 빛나는 성좌의 일각을 차지할 것인지 두고 볼 일이다. [선데이서울 69년 7/6 제2권 27호 통권 제41호]
  • 다시한번! ‘2002 붉은함성’

    다시한번! ‘2002 붉은함성’

    ‘대∼한민국! 짝짝짝 짝짝∼.’ 세살짜리 딸아이가 최근들어 검지 손가락을 앞으로 쭉 뻗으며 붉은악마들의 응원을 따라하는 재미에 푹 빠져 있습니다. 독일월드컵이 다가오면서 텔레비전 방송에 붉은악마의 모습이 자주 등장하는 탓이지요. 난생처음 본 붉은악마의 응원 모습이 꽤나 인상적이었나 봅니다. 아내도 덩달아 “구청 여성축구단에 들어가 운동이나 해볼까.”라며 너스레를 떨고 있습니다. 오는 6월이면 월드컵의 붉은 감동이 재현됩니다. 서울 시청 앞을 붉게 물들였던 인파 속에 묻혀 태극전사와 하나됐던 그 때. 월드컵 첫승에 이어 사상 처음으로 16강에 진출하더니 8강,4강까지 태극전사들의 거침없는 질주는 아직도 눈에 선합니다. 그 날의 감동을 독일월드컵까지 이어갈 수 있는 시간을 마련했습니다. 먼저 가족과 함께 지난해 9월 문을 연 상암월드컵 경기장내에 있는 ‘월드컵 기념관’을 돌아보세요.2002년 6월의 역사를 그대로 간직한 그 곳에 가면 ‘4강’의 감동과 기쁨이 넘친답니다. 보는 것만으로 부족하다면 구청의 축구교실에 참가해 활동하는 것도 괜찮겠지요. 어린이, 주부, 어르신 할 것없이 함께 축구를 즐길 수 있답니다. 독일월드컵에서도 우리의 ‘꿈★’이 이뤄지기를 기원해 봅니다. 글 조현석기자 hyun68@seoul.co.kr ■ 4강 감동·축구발전사 한눈에 ‘어게인(Again) 2002!’ 서울 상암동 월드컵 경기장 내에 있는 ‘2002 FIFA 월드컵 기념관’에 들어서자 붉은 물결의 감동이 가슴에 물결쳤다. 붉은색 정문에 들어서자 내부는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2002년 6월로 돌아간 듯한 착각에 빠지게 만들었다. ●월드컵의 감동을 다시한번 먼저 거스 히딩크 감독과 차범근 감독 등 축구발전에 공헌한 6명의 축구인 흉상이 있는 ‘명예의 전당’을 둘러본 뒤 입장료 1000원을 내고 기념관에 들어섰다. 400평 남짓한 실내에는 내·외국인들 관람객들이 다시 돌아온 ‘월드컵의 해’를 반겼다. 가장 먼저 만난 곳은 한국 축구의 발전을 볼 수 있는 전시실. 엄마와 함께 놀러온 황현준(8·강원도 속초시 주문진초등학교 1년)·현후(7) 남매가 자원봉사자 고월덕(66·여)씨의 설명에 귀를 쫑긋 세우고 있었다. 아이들은 월드컵 당시 23인의 태극전사들의 사인이 들어간 유니폼과 축구공, 축구화, 기념주화, 기념품 등에 대한 설명에 푹 빠져 있다. “현준이는 2002년 월드컵때 ‘피버노바’ 공이 몇개 만들어졌는지 아니?” 고씨가 장래 희망이 축구선수라는 현준이에게 질문을 건네자 현준이가 잠시 고민한 뒤 “몰라요.”라며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었다. 고씨는 “2002개가 만들어 졌어. 혹시 퀴즈 프로그램에 나올지도 모르니까 잘 기억해 둬.” 고씨의 친절한 설명에, 현준이는 “네∼”라며 우렁차게 대답했다. 맞은편에 있는 영상관 앞에서 현후는 오빠와 함께 두손을 앞으로 펴고 연신 ‘대∼한민국’을 외쳐댔다. 이 곳은 최첨단 하이퍼 큐브 영상관으로 2002년 월드컵 하이라이트와 명장면을 모은 ‘6월의 붉은 함성’을 상영하고 있었다. 벽면에 6개의 대형 스크린이 둘러져 있어 이 곳에 들어서면 마치 당시의 느낌과 감동이 그대로 전해지는 듯하다. 코너를 돌아 만나는 ‘대한민국 우리들의 붉은 함성’의 광장에는 붉은 악마들의 함성이 울려 퍼졌다. 이어 ‘31일간의 대장정’ 코너에는 A∼H조까지 당시 월드컵에 참여했던 국가들의 전적 등 각종 정보는 물론 모형으로 제작된 피파컵과 당시 입장권 등을 볼 수 있다. 관람객들은 자원봉사자 고씨의 해박한 축구지식에 감탄을 쏟아낸다. 환갑을 훌쩍 넘은 나이에 누구보다 축구에 대한 열정이 넘치고 있는 그는 중국어 통역 담당으로 중국인 등 국내외 관광객들에게 월드컵의 감동을 전해준다. 고씨는 “축구는 알면 알수록 더 재미있는 운동”이라면서 “일반 관람객은 물론 외국인들에게 지난 2002년 월드컵 4강 이야기를 해줄 때 가장 신이 난다.”고 말했다. ●재미있는 체험거리 풍성 전시관은 보는데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이 마련돼 있다. ‘태극전사와 기념촬영’ 코너에서는 4강 신화를 만들어낸 태극전사들과 기념사진을 촬영할 수 있다. 태극전사의 기념사진에 직접 찍은 자신의 사진을 합성해 끼워 넣는 코너로 전시장 관람의 최고 기념품을 마련할 수 있는 곳이다. 이 곳에서 황의정(32·은평구 연신내동)씨가 “지윤아 웃어봐.”라며 딸 유지윤(4)양에게 기념사진을 찍어주고 있었다. “하나, 둘, 셋 찰칵∼” 사진촬영이 끝나자 곧바로 지윤이의 얼굴이 태극전사 기념사진에 합성됐고, 기계에 2000원을 투입하자 유니폼을 입은 지윤이의 멋진 기념사진이 프린트 됐다. 황씨는 “지윤이는 매일같이 스포츠 뉴스를 끝까지 볼 정도로 축구 등 스포츠를 무척 좋아한다.”면서 “태어나서 월드컵을 처음 본 아이에게 그때 감동을 전해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가장 인기있는 체험코너는 ‘가상 골키퍼 체험’. 외국인 여행객들이 천장의 빔프로젝터와 센서를 통해 날아오는 축구공을 막으려 허공으로 두손을 날린다.‘레프트, 라이트’ 등을 외치는 모습이 어린시절로 돌아간 듯하다. 바닥에 설치돼 있는 1m 크기의 터치 스크린의 축구공을 발로 밟자 축구공이 멋지게 날아가 골대에 빨려 들어갔다. 마지막으로 만나는 ‘꿈★은 이뤄진다’는 코너는 2006년 독일월드컵에 사용할 공인구 ‘팀가이스트’가 전시돼 있다. 관람을 끝낸 사람들의 얼굴에는 그날의 아름다운 기억 때문인지 함박 웃음이 가득했다. 기념관은 지난해 9월 축구협회 2층 축구박물관에 전시돼 있던 것을 멀티미디어 영상자료와 함께 개관했다. 대한축구협회에서 위탁운영하며, 관람시간은 40∼50분 정도 걸린다. ●관람 정보 가는 길은 지하철 6호선 월드컵경기장역 2번출구를 이용, 경기장 서문방향으로 경기장을 끼고 100m쯤 가다 보면 나온다. 관람시간은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연중무휴다. 관람요금은 일반 1000원(단체 700원), 장애인·65세 이상·12세 이하 500원(단체 350원)이다. 자세한 설명을 들으려면 안내원에게 설명을 부탁하거나 내부에 설치된 안내단말기를 통해 정보를 얻을 수도 있다. 외국인 관광객들을 위한 통역서비스도 제공된다. 자세한 정보는 기념관(3151-0231)이나 홈페이지(www.worldcupmuseum.co.kr)에서 얻을 수 있다. 글 사진 조현석기자 hyun68@seoul.co.kr ■ 배우고 즐길 곳 서울에만 1500여곳 월드컵 4강의 감동을 몸으로 체험하고 싶다면 가까운 축구 동호회나 구청 축구교실을 찾아가 보자. 서울에는 축구를 배우고, 즐길 수 있는 축구단과 시설들을 곳곳에서 만날 수 있다. 각 구별로 조기축구회와 축구동아리, 일반·직장인축구회, 주부, 어린이축구단 등이 있어 이를 모두 합하면 1500개가 넘는다. 또 시내 곳곳에는 60여곳의 축구장이 있어 어렵지 않게 축구를 즐길 수 있다. ●‘왕년의 스타’가 만든 축구교실 ‘영원한 리베로’ 홍명보 선수가 만든 ‘서초구 홍명보 축구교실’이 다음달 17일 문을 연다. 서초구는 어린이들의 체력향상과 스포츠맨십 습득을 위해 관내에 거주하는 6∼13세 어린이 120명을 뽑아 축구를 가르친다. 강의는 양재근린공원 잔디축구장에서 매주 금·토 주2회씩 열리며 연회비 6만원과 월 8만원의 회비를 받는다. 참가 어린이에게는 유니폼이 지급되고 상해보험에도 가입시켜 준다. 왕년의 스타들이 ‘꿈나무 육성’을 위해 문을 연 축구교실은 모두 12개. 양천구에서 지원하는 ‘김진국 축구교실’은 매주 수·토요일 안양천변구장에서 열린다. 또 신현호(송파구), 이태엽(강동구), 차범근(용산구) 등도 꿈나무를 키우기 위해 발 벗고 나섰다. 각 축구단에는 전문 지도자들이 체계적으로 축구를 가르치고 있다. ●일석삼조의 자치구 축구교실 자치구에서 운영하는 축구교실은 주부 축구교실이 대부분이다. 주부들은 상대적으로 축구에 입문하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동작구 여성축구교실과 영등포구 여성축구단, 송파구 여성축구단, 노원구 여성축구단 등이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회원에 가입하려면 각 구청 문화체육과에 문의하면 된다. 회원은 연중 모집하며 회비와 가입비가 저렴하다. 주부 축구교실의 장점으로는 축구도 배우고, 건강도 챙기고, 구민끼리 우의도 다질 수 있다는 것 등이 꼽힌다. 자치구 축구단 중 눈길을 끄는 축구단은 지난해 4월 발족한 ‘성동구 생활체육 70대 장수 축구단’. 축구단원 25명 전원이 70세 이상으로 평균나이는 72세이며 최고령자는 78세나 된다. 전체 축구단원의 나이를 모두 합치면 무려 1800세에 달한다. 이들은 축구로 건강과 우의를 다지고 있다. ●인근 공원에 축구하러 나가볼까 서울시가 운영하는 서울스포츠광장(http://sports.seoul.go.kr)에 따르면 서울시내 축구장은 모두 64개. 서울스포츠광장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가까운 축구장 정보를 검색할 수 있다. 가장 인기있는 인조잔디 축구장과 한강시민공원 축구장은 유료이며, 배수지 등에 마련된 동네 축구장은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10곳인 인조 잔디 축구장은 이용료가 상대적으로 비싼 편이다. 가장 비싼 곳은 송파구 잠실동 올림픽주경기장(2240-8746)으로 주경기장은 하루 111만 6000원, 보조경기장은 33만 6000원이다. 마포구 성산동 월드컵공원 내 인조잔디 축구장(330-5516)은 2시간에 평일 7만원, 주말·휴일 10만원이며, 중랑구립잔디운동장(490-3466)은 2시간에 주간 5만 5000원, 야간 7만 5000원이다. 한강시민공원사업소가 운영하는 축구장은 이촌·여의도·양화·잠실·반포·망원·난지·뚝섬·강서구·광나루지구 등 모두 13곳으로 이용료는 2시간에 1만 2000원이다. 조현석기자 hyun68@seoul.co.kr
  • 한글→영문 이니셜→아이콘으로 진화하는 CI

    한글→영문 이니셜→아이콘으로 진화하는 CI

    회사의 이미지를 표시하는 CI(Corporate Identity)도 진화한다. 한글 나열에 불과하던 기업명이 글로벌 경쟁시대가 시작된 1990년대에 영문 첫글자로 바뀌더니 최근에는 그래픽을 이용한 심벌마크인 ‘아이콘(icon)’ 중심으로 가고 있다. 지난 20일 발표된 LIG손해보험(LG화재)의 ‘희망구름’, 이달초 선보인 금호아시아나의 ‘꺾쇠’, 지난해 10월 발표된 SK의 ‘행복날개’ 등이 그 예다. 국민은행의 ‘별’, 하나로텔레콤의 ‘벌새’ 등도 있다.22일 업계에 따르면 글로벌 경쟁시대가 되면서 아이콘의 힘이 커지고 있다. 많은 기업들이 소비자에게 광고나 제품을 통해 접근, 정보가 넘쳐나는 와중에서도 소비자의 눈에 띄어야 하고 잠깐 노출시켜도 기억에 남는 CI가 필요해졌기 때문이다. LIG손해보험의 CI를 담당한 디자인파크의 손근민 실장은 “세계화 시대에 회사들이 도입했던 영문 이니셜은 세련미와 신뢰감은 있지만 구체적인 이미지를 전달하기에는 미흡하다.”면서 “강력한 기업 이미지 전달에 대한 욕구가 커지면서 글자마크보다 한 단계 진화한 도형 모양의 아이콘이 등장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아이콘의 또 다른 매력은 소비자의 상상력을 자극한다는 점이다.LIG손해보험은 아이콘을 ‘희망구름’이라고 명명했지만 보는 사람에 따라 운동기구인 아령이나 꽈배기가 될 수도 있다. 소비자들이 개인적인 경험이나 관심사에 따라 기억되지만 기본 개념인 ‘부드러움’은 유지되는 장점이 있다.LIG손해보험 관계자는 “이번에 교체한 CI는 여러 곳에 적용할 수 있는 유연성이 있는 점도 한 특징”이라고 말했다. 아이콘이 들어오면서 색깔도 다양해졌다. 지난해 그룹 CI를 발표한 GS그룹의 심벌마크는 오렌지색, 청색, 녹색이 기본이다.LIG손해보험도 같다. 이 세 가지의 색은 일상적인 색깔로 소비자들과 친숙함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다.SK,CJ 등에도 오렌지색이 쓰였다. 아이콘의 등장에는 법적 문제도 있다. 우리나라 기업들이 많이 쓰는 영문 알파벳 두 글자만으로는 ‘간단하고 흔한 표장’이라는 이유로 상표등록이 되지 않는다. 새로운 CI를 내부적으로 정해놓고도 국내외에 이미 등록된 상표와의 중복을 피하기 위해 발표가 몇달씩 늦어지기도 한다. 소비자들이 잘 기억할 수 있는 아이콘을 미리 자사 상표로 등록하는 것이 더욱 필요한 셈이다. 앞으로도 몇몇 그룹이 새로운 CI를 발표할 예정이어서 아이콘이 더욱 많이 등장할 전망이다. 올해 창사 110주년을 맞는 두산그룹,40주년이 되는 효성그룹,30주년의 현대상선 등이 CI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한화그룹도 기존 CI를 교체하는 작업을 벌이고 있다. 새로운 CI 작업에서 가장 중요한 변수는 경영진의 감성과 의지다. 특히 기업 소유주의 의중이 절대적이어서 실제 작업에서 복수의 후보군을 마련하곤 한다.CI교체에 들어갈 수백억원도 경영진의 의지를 시험하게 한다.SK의 경우 이번 CI교체에 1200억원이 쓰일 것이라 보고 있다. 사후관리도 중요하다. 메리츠화재(구 동양화재해상보험주식회사) 관계자는 “CI 감시를 조금 게을리하면 색깔이나 도형의 크기가 변하거나 심지어 변형도 일어난다.”면서 “기업 입장에서는 소비자들에 대한 시각적 일관성이 중요한 만큼 끊임없는 유지·관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전경하기자 lark3@seoul.co.kr
  • [클릭 지구촌 이곳!] 워싱턴 조지타운

    [클릭 지구촌 이곳!] 워싱턴 조지타운

    |워싱턴 이도운특파원|미국의 수도 워싱턴 북서쪽에 자리잡은 조지타운.‘밤 문화’가 거의 없는 워싱턴에서 유일하게 낮보다 밤이 화려한 곳이다.20세기 초반에 건축된 3층짜리 벽돌 건물들이 단정하게 늘어선 거리의 모습은 미국이라기보다는 유럽 같은 느낌을 준다. 조지타운에서도 남북으로 뻗은 위스콘신 애버뉴와 동서로 달리는 M스트리트가 만나는 네거리가 중심 지역이다. 우선 네거리 주변은 패션 매장과 화랑, 쇼핑센터, 커피 전문점이 집중된 젊음의 공간이다. 특히 네거리의 남서쪽 코너인 의류점 ‘바나나 리퍼블릭’과 북서쪽 코너인 ‘베네통’ 매장 앞은 약속 장소로 인기가 높아 늘 인파로 북적인다. 또 두 매장 앞에는 사람 많은 길목의 파수꾼 격인 ‘거리의 악사’와 거지 몇 명이 늘 한 구석을 차지하고 있다. 어떤 거지는 노트북을 가지고 나와 ‘한가한’ 시간에는 열심히 마우스를 움직이기도 한다. 네거리에서 서쪽으로 가면 명문 조지타운 대학이 나오고 동쪽은 워싱턴 도심과 이어진다. 남쪽으로 가면 포토맥 강가로 나갈 수 있고, 북쪽은 외교가인 매사추세츠 애버뉴와 딕 체니 부통령 관저까지 닿아 있다. 위스콘신 애버뉴를 따라서는 프랑스, 중국, 일본, 태국, 터키, 인도 등 각국의 음식을 파는 레스토랑이 줄지어 있다.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이 자주 찾았다는 이탈리아 레스토랑 ‘카페 밀라노’가 그 중에서도 유명한 편이다. 아쉽게도 한국 식당은 단 한 곳도 없다. 이 거리 주변에는 크고 작은 퍼블릭 및 프라이비트 클럽들이 숨어 있다. 워싱턴의 정치는 조지타운의 밤이 결정한다는 말이 있다. 밤에 이곳 클럽에서 만나는 정부 고위 관리들과 상원의원, 로비스트 등이 사실상 중요한 정책을 좌지우지한다는 뜻이다. 70년대 ‘코리아 게이트’로 워싱턴 정가를 뒤흔들었고, 지난달 이라크를 위해 유엔에 불법로비를 했다는 혐의로 미 당국에 구속된 박동선씨가 대학생 시절에 설립했던 ‘조지타운 클럽’도 위스콘신 애버뉴에 지금도 자리를 잡고 있다. 그 길을 따라 남쪽으로 내려가면 포토맥 강을 품고 있는 ‘워싱턴 하버’가 나온다. 강을 바라볼 수 있는 레스토랑과 노천카페, 분수가 어우러져 있고 휴일에는 유람선도 탈 수 있다. 워싱턴 하버에는 크고 작은 요트들도 정박해 있다. 이곳에서 배를 타면 곧바로 대서양까지 나갈 수 있다고 한다. M스트리트를 걷다 보면 음악을 들으며 술을 마시는 바도 많이 눈에 띈다. 새벽 1시가 넘어도 자리를 찾기 힘들 만큼 인기가 좋은 바도 몇 군데 있다. 워싱턴포스트에 따르면 그 가운데 하나인 ‘스미스 포인트’가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쌍둥이 딸로 교사 생활을 하는 제나의 단골집이라고 한다. 조지타운 네거리 동남쪽 코너에 자리잡은 레스토랑 네이선의 지배인 메디 조잔은 “7년 전 캘리포니아에서 워싱턴으로 이주해 조지타운에 처음 발을 들여놓았을 때 ‘와우’라는 탄성이 절로 터져나왔다.”면서 “최신 유행과 전통이 잘 어우러진 독특한 매력을 지닌 곳”이라고 말했다. daw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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