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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블랙 해커 잡는 착한 해커! 구글도 탐내는 수준급 실력파

    블랙 해커 잡는 착한 해커! 구글도 탐내는 수준급 실력파

    악성코드들이 날뛰는 세상이다. 빛의 속도로 진화를 거듭하고 있다. 특정 사이트에 접속하는 것만으로 악성코드에 감염된다. 수상한 첨부 파일을 열어보지 않는 고전적 대응으로 피해를 막을 수도 없는 세상이다. 그렇다고 마냥 손을 놓고 있을 수는 없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처럼 해커 잡는 해커 ‘화이트 해커’들이 나서고 있다. 이들은 민관에서 서버의 취약점을 찾아 제보하거나 보안 기술을 만드는 역할을 한다. 컴퓨터 시스템을 파괴하는 ‘블랙 해커’에 대비해 화이트 해커라고 불리는 이들의 세계를 들여다봤다. ●보안망 뚫린 기업, 정보보호 정책 14% 뿐 #1. 지난 3월 유명한 경제연구원의 홈페이지가 3시간가량 먹통이 됐다. 보안 전문가들은 ‘워터링 홀’ 공격이라고 판단했다. 물웅덩이를 뜻하는 워터링 홀은 물을 먹기 위해 무조건 웅덩이로 올 수밖에 없는 초식 동물을 잡아먹기 위해 숨어서 기다리는 사자처럼 해커가 사전에 공격 대상이 주로 방문하는 웹사이트를 감염시킨 후 접속하기를 기다리는 사이버 공격이다. 해커가 타깃으로 삼지 않은 사람도 웹사이트에 접속했다는 이유로 악성코드에 감염된다. 해당 홈페이지가 경제학자나 연구자들이 접속하는 곳이어서 국가 핵심정책이나 기업 기밀이 유출될 우려가 컸다. #2. 지난 1월 14일 A신문 기자에게 이메일 한 통이 전달됐다. 보낸 사람은 ‘통일부 공무원인 신OO씨’. 제목은 ‘외통위(외교통일위원회) 긴급 메일’이었다. 하지만 그 이메일은 북한 해커가 언론사를 타깃으로 보낸 것이다. 만약 기자가 이메일을 열어서 응답한 뒤 회사 내부 시스템에 접속해 기사를 송고했다면 기자들 컴퓨터 전체가 감염될 뻔했다. 하지만 해당 기자는 자신이 그런 이메일을 받았는지조차 모르고 있었다. 한국인터넷진흥원(KISA)이 매년 발표하는 ‘정보보호 실태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정보보호 정책을 수립한 사업체는 13.7%에 불과했다. ‘정보보호 조직을 운영’(7.9%)하거나 ‘정보보호 최고책임자를 임명’(11.0%)하는 기업도 10곳 중 1곳에 그쳤다. 정보보호에 투자하는 기업은 18.6%였지만, 정보기술(IT) 예산 중 정보보호 예산 비중이 5% 이상인 기업은 1.4%에 그쳤다. 그만큼 우리 기업들이 정보보호에 둔감하다는 얘기다. ●작년 ‘데프콘’ 우승 등 국내 100여명 엘리트급 국내 화이트 해커 수는 400명 정도(30여개 해커그룹). 이 가운데 엘리트급 해커는 100여명 수준이다. 수적으로는 블랙 해커에 비해 적지만 실력만큼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지난해 8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해킹 방어대회인 ‘데프콘 CTF23’에서 한국팀이 처음으로 우승했다. 이 대회는 세계적인 해커인 제프 모스가 창설한 ‘해커들의 월드컵’이다. 고려대 정보보호동아리 ‘싸이코’와 보안업체 라온시큐어 등 18명이 ‘데프코’(DEFKOR)라는 팀 이름으로 출전해 이룬 성과였다. 올해 세계 최대의 상금 규모를 자랑하는 ‘버그 바운티 대회’에서 마이크로소프트사의 ‘브라우저’(응용 프로그램)인 마이크로소프트 엣지의 취약점을 공격해 성공한 사람도 우리나라 화이트 해커였다. 이정훈씨는 이 대회에서 총 29만 달러(약 3억 3600여만원)의 상금을 받았다. 버그 바운티란 웹서비스나 소프트웨어의 보안 취약점을 찾아낸 사람에게 포상금을 지급하는 프로그램으로 마이크로소프트, 구글, 페이스북 등도 서비스 보안을 강화하기 위해 버그 바운티를 활용한다. 천재 해커인 이씨는 삼성SDS에서 근무하다 최근 ‘IT 공룡’ 구글로 스카우트됐다. 특별하거나 특이한 사람이 화이트 해커가 되는 것은 아니다. 보안업체인 라온시큐리티 양정규 대표는 “대학교 때 ‘천리안’을 통해 채팅하다가 방장이 아닌 사람이 방을 없애버리거나 누군가 원하지 않는 귓속말을 보내는 것을 목격하면서 해킹에 관심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보안업체 그레이해쉬 이승진 대표도 “17살 때 온라인 게임을 하다가 캐릭터의 능력치를 끌어올리고 싶어 해킹을 공부한 것이 처음이었다”고 설명했다. ●보안 시스템 취약점 발견해 개선방안 제시 화이트 해커의 역할은 보안 시스템의 취약점을 발견해 관리자에게 알려주거나 블랙 해커의 공격을 훼방하거나 퇴치하는 것이다. 기업들의 요청으로 모의 해킹을 하기도 한다. 모의 해킹이란 합법적으로 기업 시스템과 네트워크, 서비스 등을 해킹하는 것으로 실제 해커와 같은 도구, 기법, 접근 방식을 활용한다. 공격자 관점에서 보안 수준을 진단하고 취약점을 발견해 개선 방안을 제시하는 것이다. 삼성전자, SK텔레콤, KT 등 국내 대기업들의 보안 시스템은 거의 양 대표의 손을 거쳐 갔다. 양 대표는 2014년 구글 안드로이드의 치명적인 취약점을 발견해 구글에 제보하기도 했다. 그는 “일반적인 애플리케이션이 갖고 있는 권한이 제한돼 있는데 안드로이드에서 휴대전화 속 데이터를 지워버리거나 도청을 하는 등 모든 제어권을 가질 수 있는 취약점을 우연히 발견했다”며 “당시 구글에서 감사의 의미로 제 이메일을 홈페이지에 넣어줬다”고 말했다. 문종현 이스트소프트 부장은 국방부와 경찰청, 국가사이버안전센터 등에서 민간검증 자문으로 활동하고 있다. 문 부장은 “주로 정부 기관을 공격하는 북한이 최근에는 언론사와 금융사 등을 목표로 사이버 공격을 해오고 있다”면서 “우리나라는 컴퓨터를 안 쓰는 사람이 거의 없기 때문에 해커들에게 공격을 당하기 좋은 환경을 갖췄다”고 말했다. 이어 “정부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낮아서 그런지 아무리 북한 소행이라고 밝혀도 믿지를 않지만, 실제로 북한의 공격이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다”며 “(북한 소행이라는) 정부 발표를 두고 우리 국민끼리 싸우는데 그런 갈등 유발이 북한에서 원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정부, 미래의 해커 육성… 윤리 교육 강화도 사회에 꼭 필요하지만 어느 순간에는 선과 악을 넘나들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화이트 해커에 대한 사회적 풍토는 여전히 부정적이다. KISA는 이러한 부정적 인식을 개선하기 위해 지난해 ‘화이트 해커’계의 고수들을 모아 ‘사이버 가디언스’를 만들었다. 음성적으로 활동하는 해커들을 사회 제도권으로 끌어들이기 위한 취지다. 1기에는 천재 해커라고 불리는 이정훈씨를 비롯해 양정규 대표, 이승진 대표 등이 포함됐다. 2기에는 김진국 플레인비트 대표, 김경곤 고려대 정보보호융합학과 교수, 문종현 부장 등이 참여했다. 사이버 가디언스는 ‘2018 평창동계올림픽’의 사이버 위협에 대한 자문 활동을 펼치고 있다. 화이트 해커에 대한 윤리 교육도 강조되고 있다. 김경곤 교수는 “해킹 분야에서 유명해지면 두 부류의 단체에서 연락이 오는데 하나는 공공기관이고 또 다른 하나는 범죄집단”이라면서 “그만큼 한번 발을 잘못 들여놓으면 평생을 잘못된 길로 빠져들 수 있는 만큼 윤리적 측면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미래창조과학부는 내년까지 화이트 해커 5000명을 양성할 계획이다. 한국정보기술연구원은 ‘차세대 보안리더 양성 프로그램’(BoB)을 운영하고 있다. 고등학생과 대학생, 대학원생, 일반인까지 참여하는 BoB는 정보보호 현장에서 최고 전문가로 구성된 멘토들과 정보보호 분야의 난제 해결 프로젝트를 함께 수행한다. 양질의 교육으로 국내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호평을 받고 있다. 데프콘에서 우승한 ‘데프코’ 역시 BoB 출신이었다. 서울여대 정보보호영재교육원은 중고등학생을 대상으로 미래의 화이트 해커를 키우고 있다. 지난해까지 모두 174명의 중고생이 100여시간의 교육 과정을 수료했다. 정보보호뿐 아니라 윤리 부문도 비중 있게 교육시킨다. 양 대표는 “보안 분야는 하루가 다르게 기술이 변화해 공부의 끝이 없다”며 “단순히 유망 직업이라는 외양만 보고 섣불리 뛰어들기보다 이 분야에 관심과 열정이 있는 사람이 도전했으면 좋겠다”고 조언했다. 윤수경 기자 yoon@seoul.co.kr
  • [송혜민 기자의 월드 why] ‘전자파 과민증’ 15세 소녀 자살…스위스엔 스마트폰 금지 아파트

    [송혜민 기자의 월드 why] ‘전자파 과민증’ 15세 소녀 자살…스위스엔 스마트폰 금지 아파트

    지난해 12월, 영국 옥스퍼드셔에 살던 15살 소녀 제니 프라이가 극심한 알레르기 증상을 견디다 못해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고가 벌어졌다. 제니가 그토록 고통스러워 한 것은 다름 아닌 ‘와이파이’ (WiFi)전파였다. 제니의 병명은 전자파 과민증, 일명 EHS라 불리는 병으로, 발생 원인은 분명하게 규명되지 않았지만 전자기기에서 나오는 와이파이 등 전자파로 인해 두통과 두근거림 및 극심한 스트레스 등의 증상이 나타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전 세계 도시에 사는 사람들은 매 순간부터 와이파이를 비롯한 각종 전파에 노출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정보기술(IT)의 초고속 발전 덕분인데, IT 의 빠른 성장이 누군가에게는 병을 고치고 생명을 연장시켜 주는 빛이 되지만, 누군가에게는 건강과 목숨을 앗아가는 그림자가 되기도 한다. ●제약회사·IT “신약 만드는 AI 개발” IT의 발전은 지난 몇 년간 세상의 흐름을 바꿔 놓았다. 아침에 눈 떠서 잠들 때까지, 우리 일상은 IT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가 됐다. 최근 돋보이는 IT의 움직임 중 하나는 의학과의 협업이다. 지난 16일 다케다약품공업과 시오노기제약 등 일본 유력 제약사와 후지쓰, NEC 등 IT기업은 일본 정부 산하의 연구소 및 대학과 함께 신약을 만들어내는 인공지능(AI)을 개발하겠다고 공식 발표했다. 공동연구를 통해 탄생할 AI는 신약 후보 물질 탐색에 이용되며, 이러한 기술은 신약 후보물질을 찾는 데 걸리는 2~3년의 시간을 상당 부분 단축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부작용이 우려되는 신약 후보물질을 제거해 안전성을 높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글로벌 IT기업들도 인류의 건강 증진 및 질병 퇴치를 위한 다양한 솔루션을 선보이고 있다. 유럽 최대 반도체회사 ST마이크로일렉트로닉스 자회사베레두스연구소는 결핵 치료를 위한 다중 분자 진단칩을 개발했다. 기존에는 최대 8주가 걸리는 결핵검사를 3시간 안에 진단할 수 있는 획기적인 칩이다. IBM은 2014년 뉴욕게놈센터와 슈퍼컴퓨터 왓슨의 인지시스템을 활용한 유전체 의학 프로젝트를 발표한 바 있다. 왓슨은 유전자 정보뿐만 아니라 생체의학 문헌 및 의약데이터베이스도 분석할 수 있어 난치병과 불치병의 유전적 원인을 찾는 데 도움을 준다. 이 밖에도 심장박동수와 혈압 체크 및 걸음을 걸을 때 자세를 교정해 주는 스마트밴드 웨어러블 기기는 IT의 발전이 인류 건강에 미친 긍정적인 결과물이자 이제는 생활의 일부분이 된 익숙한 ‘IT약(藥)’이라 볼 수 있다. ●전자파 과민증부터 각종 중독까지 IT가 일상을 보다 빠르고 편리하게 향유할 수 있는 장점만 갖고 있다면 좋겠으나,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앞서 소개한 전자파 과민증의 경우 전 세계에서 이와 관련한 에피소드가 끊이지 않고 있다. 스웨덴에서 최초 보고된 전자파과민증은 유럽 전역으로 확산되면서 꾸준히 환자가 늘고 있다. 프랑스에 사는 한 50대 여성과 그녀의 딸은 전자파 과민증으로 도시에서의 모든 삶을 포기한 채 동굴에 숨어 지낸다고 밝혀 화제를 모으기도 했고, 스위스 취리히에는 이처럼 첨단 기술이 주는 피해를 견디다 못한 사람들끼리 모여 만든 유럽 최초 ‘스마트폰 사용 금지 아파트’가 등장하기도 했다. 스위스의 한 건강관련재단이 기획한 이 아파트에는 전자파 과민증 외에도 샴푸나 세제, 향수 등의 냄새만 맡아도 구토나 발열, 두드러기 등의 증상을 나타내는 화학물질 과민증을 앓는 사람들이 모여 산다. 아파트 입구에는 ‘블랙리스트’가 붙어 있는데, 여기에는 향수나 휴대전화, 햄버거 등 인스턴트식품 등이 포함돼 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전자파 과민증의 존재에 대해 인정하지만, 오염된 공기나 조명, 소음 등 다른 원인으로도 통증이 유발될 수 있다고 판단해 이를 질병(disease)이 아닌 증상(symtom)으로 본다. 하지만 전문가들의 의견은 다소 다르다. 영국 서머싯 지역보건의인 앤드루 트레시더는 “영국 정부와 WHO 측은 아직 이 병을 심리적 원인 때문이라고 판단하기에 환자들은 더욱 고통에 시달린다”면서 “이 증상과 관련한 과학적인 조사 등 대책이 시급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IT와 인류의 징검다리와도 같은 스마트폰은 각종 질환 유발자라는 오명을 쓰고 있다. 성장기 어린이의 경우 스마트폰 등 IT기기에 장시간 노출될 경우 호르몬 분비에 이상이 생겨 성장발육에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스마트폰이나 인터넷에 중독된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 비해 자살 충동이나 학교폭력 등에 노출될 확률이 높다는 사실 역시 익히 알려져 있다. IT는 지금 이 시간에도 다양한 분야에서 무궁무진한 성과를 이뤄내고 있다. 전 세계의 소식을 실시간으로 받아볼 수 있게 된 것도, 앉은 자리에서 원격으로 의사와 상담을 하고 병을 치료할 수 있는 것도 모두 IT의 공(功)임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적지 않고, 작지도 않은 부작용들이 속출하고 있는 것 역시 묵과할 수 없는 노릇이다. IT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현실이 돼 버렸다. 피할 수 없다면 즐겨야 하며, 즐기기 위해서는 건강해야 한다. 각국 IT기업 및 전문가들이 ‘IT 부작용’을 줄이기 위한 사회적 개선 방안을 찾는 일에도 힘써야 할 필요성이 제기되는 대목이다. huimin0217@seoul.co.kr
  • [시론] 보안 사고와 경영진의 책임/김승주 고려대 정보보호대학원 교수

    [시론] 보안 사고와 경영진의 책임/김승주 고려대 정보보호대학원 교수

    2015년 초 미국의 한 에너지 관련 기업은 전 최고경영자(CEO)를 고발했다. 퇴사를 하면서 회사 기밀을 가지고 나갔다는 이유였다. 2005년 미국 중앙정보국(CIA) 비밀 요원인 밸러리 플레임 윌슨의 신분을 측근이 노출했다는 이유로 조지 부시 대통령은 조사를 받았으며, 국무장관 시절 사설(私設) 이메일 계정으로 국가 기밀을 주고받았던 힐러리 클린턴은 이 일이 실수였다고 해명했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대선에서 떨어지는 주요 이유로 작용했다. 사람들은 ‘보안’이라고 하면 흔히 컴퓨터 바이러스, 해킹, 디도스(DDoS) 공격과 같이 외부의 위협들에 의한 피해를 떠올린다. 그러나 가장 큰 보안 위협은 내부에 있다. 특히 그중에서도 ‘최고책임자’(Chief)라는 의미를 담은 C레벨 직책의 임원진(CEO, CFO, CIO 등)에 의한 정보 유출은 치명적이다. 최근 보안업체 웹센스 시큐리티랩스가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대부분의 정보 유출 사고는 인가된 사용자에 의해 발생한다고 한다. 조사 내용을 살펴보면 내부 직원에 의한 정보 유출 발생 비율은 50%나 됐으며, 이 중 CEO 혹은 임직원들에 의한 기밀 정보 유출도 20%에 달했다. C레벨 임직원들에 의한 정보 유출이 특히 더 심각한 이유는 이들이 이미 내부 데이터베이스 시스템으로의 접근 권한, 그것도 최고 수준의 권한을 합법적으로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은 내부의 각종 보안 시스템을 정상적으로 통과해 은밀한 정보에 손쉽게 접근할 수 있으며, 혹 중요 기밀 정보들이 암호화돼 있다손 치더라도 이를 해독할 수 있는 키에 접근할 수 있을 확률이 매우 높다. 더욱 문제가 되는 것은 임직원들이 일반적으로 직원들의 보안 의식에는 신경을 곤두세우는 반면 본인들에겐 매우 너그럽다는 사실이다. ‘포네몬 리포트 2016’ 보고서에 따르면 외부 해킹으로 인한 보안 사고는 전체의 9.7%에 불과하며, 의도를 가진 내부자에 의한 사고가 21.8%, 우발적으로 발생한 내부자 보안 사고는 64.9%를 차지한다고 한다. 특히 의도를 가진 내부자는 비정상적인 행위를 통해 사고를 일으키는데, 이때 특권과 권한을 남용하며 의도적인 비행을 정당화한다고 한다. 최고 책임자에 의한 정보 유출 사고는 우리나라 정부나 정치권도 예외가 아니다. 국회 정보위원회에서는 특성상 비밀을 유지해야 할 내용이 많아 다뤄진 내용들을 여야 간사가 대표로 언론에 브리핑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개별 의원들이 개인적 공명심이나 특정한 목적을 위해 언론에 흘리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오죽하면 모 정당의 원내대표가 “해외에서는 국회 정보위원이 누구인지조차 이름을 공개하지 않을 정도로 비밀을 유지한다. 우리는 어떻게 1급 정보가 유출될 수 있느냐”며 탄식을 했겠는가. 또한 ‘최순실 국정 농단 사건’ 관련 검찰 발표에 따르면 박근혜 대통령은 취임 전 인수위원회 시절인 2013년 1월부터 올 4월까지 총 180개의 문서를 측근을 통해 외부에 유출했으며, 그중 47건의 문건은 ‘공무상 비밀’에 해당하는 것들로 정부 출범 초기 인사안은 물론 대통령 본인의 일정이나 외교·안보 현안, 국토교통부의 부동산 종합대책과 세부 계획 등이 줄줄이 담겨 있었다고 한다. 청와대는 통신망을 업무용과 인터넷으로 분리해 외부 침입과 내부 정보 유출을 차단하는 망 분리 체제를 갖췄으며, 이외에도 문서 암호화 솔루션, 자료 유출 방지 솔루션, 보안 USB 등 각종 최첨단 보안장치를 갖추고 있었음에도 비밀이 새나간 것이다. 저명한 보안 전문가이자 베스트셀러 작가이기도 한 브루스 슈나이어의 명언 중에 “보안이라는 사슬은 이를 구성하고 있는 수많은 고리들 중 가장 약한 고리만큼만 안전하다”라는 말이 있다. 이는 정책에서부터 기술, 그것을 운영하는 사람에 이르기까지 한 조직의 보안을 구성하는 요소들은 수없이 많은데, 이 구성 요소들은 모두가 똑같이 중요하며 예외가 없다는 뜻이다. ‘나는 CEO니까 괜찮아’, ‘그 사람은 믿을 수 있으니까 괜찮아’, ‘설마 그러겠어?’라는 마음가짐은 보안의 가장 큰 적이다.
  • 전화 한 통 ‘단박 대출’ 서면계약서 필요해요

    전화 한 통 ‘단박 대출’ 서면계약서 필요해요

    법제처, 내용·문구 파악 어려워 “전자문서 교부 제한” 법령해석 전화 한 통이면 바로 돈을 빌려준다는 이른바 ‘단박 대출’에 제동이 걸렸다. 법제처는 24일 단순히 전화(음성녹음)로만 본인 확인을 비롯해 대부금액과 이자율·변제기간·연체 이자율 등 자필기재 요건을 갖춘 경우라면 대부계약서를 이메일이나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앱)을 통해 전자문서 형식으로 교부할 수 없다는 내용의 법령해석 결과를 내놓았다. 한 대부업자가 금융위원회를 거쳐 2차로 유권해석을 의뢰한 ‘대부업 등의 등록 및 금융이용자 보호에 관한 법률’(대부업법) 제6조와 관련해서다. 공인인증서 프로그램이 구동되지 않는 앱을 통해 대부계약을 한 사례였다. 법제처에 따르면 거래 상대방이 대부계약 내용을 충분히 숙지한 상태에서 계약을 체결할 수 있도록 하고, 당초 예상과 달리 계약 내용이 불리하게 작성되거나 중요한 사항을 알지 못한 채 계약을 체결하게 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계약체결 절차와 형식을 일반적인 계약과 달리 엄격하게 규정한 대부업법 취지를 감안해야 한다. 법률 제6조를 보면 대부계약 땐 거래 상대방이 본인임을 확인한 뒤 원칙적으로 종이 대부계약서를 교부하도록 규정했다. 다만 전자서명법에 따른 공인인증서를 이용해 거래 상대방을 확인하고 인터넷으로 자필기재 사항을 직접 입력하게 하거나, 거래 상대방의 본인 여부와 자필기재 사항에 대한 동의 의사를 음성녹음 등으로 확인한 경우 당사자의 자필 기재로 간주된다. 또 제4조에선 음성녹음 방식을 ‘유무선 통신을 이용한 본인 여부와 자필기재 사항에 대한 질문, 또는 설명에 대한 답변을 녹음하고 그 내용을 전화, 인터넷, 홈페이지, 서면확인서 중 거래 상대방이 요청하는 방법으로 확인해야 한다는 두 가지 조건을 모두 충족할 때 해당한다’고 규정했다. 전자문서는 컴퓨터나 모바일 장치 등 전자기기를 통한 출력과정을 거치지 않고는 내용을 확인할 수 없고, 종이 문서에 비해 계약체결 과정에서 거래 상대방이 문서의 내용·문구를 자세히 파악하기 어렵기 때문에 제한하는 게 옳다는 결론이다. 송한수 기자 onekor@seoul.co.kr
  • “채점기준 파악 후 과목별 공략 효과봤죠”

    “채점기준 파악 후 과목별 공략 효과봤죠”

    2017년도 5급 국가공무원 공개경쟁채용 시험 일정이 확정됐다. 내년 1월 17일부터 20일까지 나흘간 원서접수를 시작으로 2월 25일 1차 공직적격성평가(PSAT)를 치른다. 3개월 후 시작될 내년도 공채 시험에 응시할 수험생을 위해 올해 최고득점 또는 최연소로 합격 문턱을 넘은 일반행정, 교육행정, 국제통상, 재경 직렬별 합격자 4명을 인터뷰했다. 과목별 공부 방법, 수험 기간 생활패턴 등 합격 비결을 들어봤다. ●일반행정-입법·사법고시 기출까지 정복 올해 일반행정 직렬 응시자 가운데 가장 높은 점수로 합격한 최일암(30·서울대 행정대학원)씨는 2010년 여름 수험생활을 시작했다. “1차 시험만 7차례, 2차는 4차례 응시했습니다. 마지막 단계인 3차 면접은 올해 첫 응시였는데, 다행히 합격할 수 있었습니다.” 학부에서 경제학을 전공한 최씨는 처음에는 재경직에 지원했다가 대학원 진학 후 정책학을 전공하면서 일반행정으로 응시 직렬을 변경했다. 최씨는 “일반행정직으로 응시할 경우 1차 PSAT합격이 재경직에 비해 상대적으로 쉽고, 거의 모든 부처에 지원할 수 있는 직렬이기 때문에 선택의 폭이 넓다”고 말했다. 최씨는 반드시 필요한 1차 시험 대비법으로 기출문제 분석을 꼽았다. “기출문제를 철저히 분석해 출제자 의도가 무엇인지 파악하는 훈련을 했습니다. 논리학, 법률, 어림산 요령 등 지식이 요구되는 부분은 공부를 했고요.” 2차 논술형 필기 과목인 행정학에 대해서는 “사례집 중심으로 서브노트를 만들고 헌책방에서 여러 교수의 사례집을 구입해 발췌했다”고 최씨는 전했다. 이와 함께 5급 공채 필기시험뿐만 아니라 입법고시, 사법고시 등 모든 기출문제를 풀면서 교수들의 채점평, 고시계 강평 등을 참고해 채점자인 교수가 원하는 답안이 무엇인지 파악하는 노력이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응시직렬을 재경에서 일반행정으로 바꾸면서 최씨가 가장 단시간 안에 공부했던 과목은 정치학이다. “수험기간이 짧을수록 공부범위의 한계선을 정하는 게 좋다고 생각합니다. 제 경우 합격생 강의를 선택해 강의내용을 컴퓨터로 필기하고, 그 자료에 추가할 내용을 덧붙여 풀어쓰는 방식으로 서브노트를 만들었습니다.” 그에게 가장 극복하기 어려웠던 과목은 행정학이다. 최씨는 “행정학은 경제학과 달리 많은 현상을 설명하기 때문에 논리적 엄밀성이 떨어져 명쾌하게 이해하기가 어려웠다”며 “신문 등을 읽으며 실사례를 찾아 이해도를 높였고, 아는 이론이나 사례를 동원해 답안을 완결하는 훈련을 했다”고 말했다. 최씨는 3차 면접 준비를 위한 스터디를 2차 합격자 발표 전부터 시작했다. 직접 인력을 배치한다면 어느 부서에 우선적으로 할 것인지 묻는 질문을 받았다. 마지막으로 최씨는 수험생에게 “방대한 내용을 먼저 공부한 후 채점기준을 맞춰 나가기보다 과목, 문제별 채점기준을 알아내고 그에 맞춰 공부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전했다. ●국제통상- 교재 하나 정해 통째로 암기 올해 국제통상 직렬 최고득점자 최우진(27·고려대 영문학과 4학년)씨는 2013년 2월부터 수험생활을 시작했다. 그는 1차 PSAT 준비 방법과 관련, “학원에서 치르는 PSAT 문제가 깔끔하진 않지만, 긴장감이나 부담감 때문에 체감 난도는 실제 시험과 유사하다”며 “시험일 20일 전부터는 기출문제와 모의고사를 반복해 풀며, 틀린 문제를 검토했고 과목별로 유념해야 할 주의사항, 함정 피하기, 자주 하는 실수 등을 A4용지 1장에 정리해 시험 시작 직전까지 살폈다”고 말했다. 최씨는 2차 시험 때 행정법, 국제정치학, 국제경제학, 국제법, 영어를 치렀다. “기본적으로 모든 과목을 한 권으로 정리해 통째로 암기했고, 이를 기반으로 답안을 작성하는 연습을 했습니다.” 행정학은 직접 손으로 정리하지 않았다고 했다. 최씨는 “학원강사들이 제작한 암기노트 중심으로 일부 내용을 추가해 통째로 외웠다”며 “국제법은 김대순 교수의 국제법론을 기반으로 직접 주요 내용을 정리했고, 국제경제학은 학원 강사가 만든 모의고사 문제집을 통째로 베껴 쓰고 외웠다”고 말했다. 수험 기간 동안에는 학교 고시반에서 생활하고 강의는 모두 인터넷 동영상을 활용했다고 한다. 면접 때는 공직사회의 소극행정 행태에 대한 원인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등의 질문이 나왔다. 최씨는 수험생들에게 “자신만의 템포를 찾아 공부방법을 찾는 게 중요하다”며 “제 경우 학원 강의는 2순환까지만 들었고, 2차 답안을 작성할 때는 최대한 출제의도를 정확히 파악하고 하나의 주제나 흐름으로 소문제 답안을 엮어 논리, 문맥을 유지하려고 했다”고 조언했다. ●교육행정-교육심리학 5년 기출 풀고 첨삭 최성용(30·서울대 물리교육과 졸업)씨는 교육행정 직렬 응시자 가운데 최고 득점을 올렸다. 최종 합격까지 5년 남짓 시간이 걸렸다. 최씨가 1차 PSAT 시험을 대비할 때 가장 신경 쓴 부분은 시간관리다. 최씨는 “10문제마다 시간을 측정해 속도를 조절했다”며 “기출문제나 모의고사를 풀면서 중요한 팁은 인터넷 클라우드에 업로드시켜 놓고 식사 때나 이동 시간에 봤다”고 말했다. PSAT 언어논리 과목은 참·거짓 문제나 벤다이어그램 등을 정리해놓으면 큰 틀에서 벗어나지 않게 출제된다는 게 최씨의 설명이다. “자료 해석은 숫자 계산 연습을 많이 했고, 상황판단 문제는 학원 강의를 2년 정도 들었습니다.” 2차 시험 과목에 대해 최씨는 “경제학은 미시경제학과 거시경제학 기본서를 읽으며, 내용·문제별 서브노트를 정리했다”며 “미시경제학은 문제를 많이 풀면서 답을 정확히 도출하는 연습을 했고, 거시경제학은 교과서를 여러 차례 읽은 뒤 가정과 모형에 대한 확실한 이해를 바탕으로 답안을 써내는 연습을 했다”고 말했다. 행정법에서는 판례를 암기하고 사례에서 쟁점을 찾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꼽았다. 최씨는 “판례 암기는 먼저 핵심 키워드를 암기한 뒤 판례문구를 스스로 만들어보며 조사와 서술어를 판례문구와 비슷하게 적는 연습을 많이 했다”고 말했다. 행정학 답안 작성 시에는 현실 행정사례 해결에 중점을 뒀다고 최씨는 설명했다. 교육행정직과 같은 소수직렬 과목은 학원 강의나 모의고사를 접하기가 어렵다. 대안으로 최씨는 기출문제를 철저히 분석하고, 학부시절 공부했던 교육학 교과서를 통독한 뒤 복사집에서 판매하는 합격생 서브노트를 구해 내용을 추가하며 공부했다고 말했다. 최씨가 가장 취약했던 과목은 교육심리학이다. “지난해 26점을 받다가 올해 시험에서는 40점 정도로 크게 올랐습니다. 지난해 겨울 교육심리학 교과서 2권을 꼼꼼히 1회독 한 후 최근 5년간 출제됐던 문제에 대한 답안을 작성해 첨삭을 받았습니다.” ●재경-모의고사 풀때 시간 더 촉박하게 올해 최연소 합격자는 재경 직렬에 응시한 유형석(20·서울대 경영학과 2학년)씨다. 유씨는 “대학 1학년 2학기 때부터 학업과 병행하며 시험 준비를 시작했다”며 “시험 준비기간은 총 3단계로 구분할 수 있다”고 말했다. 처음 반년간은 학교 수업 때 5급 공채 2차 시험과 겹치는 경제학, 행정학 등 과목을 수강했다. “학교 수업 외 시간에는 인터넷 동영상으로 학원 강의를 들으면서 단기간에 시야를 넓히고 회독 수를 높일 수 있었지만, 시간·체력 관리는 어려웠던 것 같습니다.” 1차 PSAT시험 준비기간은 단 1개월이었다. 유씨는 “준비기간이 짧았던 탓에 기출문제에만 집중했다”며 “3월부터는 휴학을 하고 본격적으로 학원과 독서실을 오가며 2차 시험을 준비했다”고 말했다. 1차 시험 관련 팁으로 유씨는 “실전에서는 항상 시간이 촉박하기 때문에 모의고사를 풀 때 실제 시험 시간보다 짧은 시간에 문제를 풀어내는 연습을 했다”며 “매일 기출문제를 풀면서 반복해 읽고 암기했다”고 말했다. 2차 시험일까지 4개월간은 모의고사와 강의, 자습의 반복이었다. 유씨가 치른 과목은 경제학, 행정법, 행정학, 재정학, 국제경제학이다. “경제학을 공부할 때는 항상 ‘그동안 공부한 내용을 답안지에 나타낼 수 있는가’를 염두에 뒀습니다. ‘정의, 가정-수식, 그래프-함의, 한계’ 틀을 계속 떠올리며 현재 공부하고 있는 내용이 이 중 어떤 단계에 포함되는지 생각해보려고 했습니다.” 경제학은 범위가 워낙 방대해 여러 책을 동시에 읽기보다는 한 책을 반복해 읽는 게 전체적인 틀을 파악하며 암기하는 데 도움이 됐다고 유씨는 전했다. 행정법은 가장 난해했던 과목이다. 그는 “기본서 두께에 위축돼 요약집을 반복해 읽다가 나중에는 문제점-학설-판례-검토별 키워드를 만들어 암기하니 효율적이었다”고 말했다. 행정학에 대해서는 “공부했던 내용과 시험문제가 크게 달라 가장 당황했던 과목”이라고 말했다. 유씨는 또 “재정학의 이론 부문은 경제학적 측면, 제도 부문은 행정학적 측면에 가깝다고 판단해 풀이방법도 다르게 쓰려고 노력했다”고 했다. 이어 “국제경제학은 가정 및 설정에 따라 모형, 그래프, 함의 등이 달라진다”며 “A4용지 한 장에 무역론의 모든 모형을 가정에 따라 정리하면서 체계화하는 게 좋다”고 조언했다. 최훈진 기자 choigiza@seoul.co.kr
  • [송혜민의 월드why] 병 주고 약 주고…IT의 빛과 그림자

    [송혜민의 월드why] 병 주고 약 주고…IT의 빛과 그림자

    지난해 12월, 영국 옥스퍼드셔에 살던 15살 소녀 제니 프라이가 극심한 알레르기 증상을 견디다 못해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고가 벌어졌다. 제니가 그토록 고통스러워 한 것은 다름 아닌 ‘와이파이(WiFi)’ 전파였다. 제니의 병명은 전자파 과민증, 일명 EHS라 불리는 병으로, 발생원인은 분명하게 규명되지 않았지만 전자기기에서 나오는 와이파이 등 전자파로 인해 두통과 두근거림 및 극심한 스트레스 등 증상이 나타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전 세계 대부분의 도시에서 태어나는 아이들은 세상의 공기를 마시는 순간부터 와이파이를 비롯한 각종 전파에 노출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IT의 초고속 발전 덕분인데, IT 기술의 빠른 성장이 누군가에는 병을 고치고 생명을 연장시켜주는 빛이 되지만, 누군가에게는 건강과 목숨을 앗아가는 그림자가 되기도 한다. ◆제약회사와 손잡은 IT, ‘유병장수’ 시대에 구원투수로… IT의 발전은 지난 몇년 간 세상의 흐름을 바꿔 놓았다. 아침에 눈 떠서 잠들 때 까지, 우리 일상은 IT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가 됐다. 최근 돋보이는 IT의 움직임 중 하나는 의학과의 협업이다. 지난 16일 다케다약품공업과 시오노기제약 등 일본 유력 제약사와 후지쯔, NEC 등 IT기업은 일본 정부 산하의 연구소 및 대학과 함께 신약을 만들어내는 AI를 개발하겠다고 공식 발표했다. 공동연구를 통해 탄생할 AI는 신약 후보 물질 탐색에 이용되며, 이러한 기술은 신약 후보물질을 찾는데 걸리는 2~3년의 시간을 상당부분 단축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부작용이 우려되는 신약 후보물질을 제거해 안전성을 높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글로벌 IT기업들도 인류의 건강 증진 및 질병 퇴치를 위한 다양한 솔루션을 선보이고 있다. 유럽 최대 반도체회사 ST마이크로일렉트로직스의 자회사 베레두스연구소는 결핵 치료를 위한 다중 분자 진단칩을 개발했다. 기존에는 최대 8주가 걸리는 결핵검사를 3시간 안에 진단할 수 있는 획기적인 칩이다. IBM은 2014년 뉴욕게놈센터와 슈퍼컴퓨터 왓슨의 인지시스템을 활용한 유전체 의학 프로젝트를 발표한 바 있다. 왓슨은 유전자 정보뿐만 아니라 생체의학 문헌 및 의약데이터베이스도 분석할 수 있어 난치병과 불치병의 유전적 원인을 찾는데 도움을 준다. 이밖에도 심장박동수와 혈압 체크 및 걸음을 걸을 때 자세를 교정해주는 스마트밴드 웨어러블 기기의 개발은 IT의 발전이 인류 건강에 미친 긍정적인 결과물이자, 이제는 생활의 일부분이 된 익숙한 ‘IT약(藥)’이라 볼 수 있다. ◆편한만큼 아파졌다? 전자파 과민증부터 각종 중독까지… IT가 일상을 보다 빠르고 편리하게 향유할 수 있는 장점만 갖고 있다면 좋겠으나,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앞서 소개한 전자파과민증의 경우 전 세계에서 이와 관련한 에피소드가 끊이지 않고 있다. 스웨덴에서 최초 보고된 전자파과민증은 유럽 전역으로 확산되면서 꾸준히 환자가 늘고 있다. 프랑스에 사는 한 50대 여성과 그녀의 딸은 전자파 과민증으로 도시에서의 모든 삶을 포기한 채 동굴에 숨어 지낸다고 밝혀 화제를 모으기도 했고, 스위스 취리히에는 이처럼 첨단 기술이 주는 피해를 견디다 못한 사람들끼리 모여 만든 유럽 최초 ‘스마트폰 사용 금지 아파트’가 등장하기도 했다. 스위스의 한 건강관련재단이 기획한 이 아파트에는 전자파 과민증 외에도 샴푸나 세제, 향수 등의 냄새만 맡아도 구토나 발열, 두드러기 등의 증상을 나타내는 화학물질 과민증을 앓는 사람들이 모여 산다. 아파트 입구에는 ‘블랙리스트’가 붙어 있는데, 향수나 휴대전화, 햄버거 등 인스턴트식품 등이 포함돼 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전자파 과민증의 존재에 대해 인정하지만, 오염된 공기나 조명, 소음 등 다른 원인으로도 통증이 유발될 수 있다고 판단해 이를 질병(disease)이 아닌 증상(symptom)으로 보고 있지만, 전문가들의 의견은 다소 다르다. 영국 서머셋 지역보건의인 앤드류 트레시더는 “영국 정부와 WHO 측은 아직 이 병을 심리적 원인 때문이라고 판단하기 때문에 환자들은 더욱 고통에 시달린다”면서 “이 증상과 관련한 과학적인 조사 등 대책이 시급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IT와 인류의 징검다리와도 같은 스마트폰은 각종 질환 유발자라는 오명을 쓰고 있다. 성장기 어린이의 경우 스마트폰 등 IT기기에 장시간 노출될 경우 호르몬 분비에 이상이 생겨 성장발육에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스마트폰이나 인터넷에 중독된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 비해 자살 충동이나 학교폭력 등에 노출될 확률이 높다는 사실 역시 익히 알려져 있다. IT는 지금 이 시간에도 다양한 분야에서 무궁무진한 성과를 이뤄내고 있다. 전 세계의 소식을 실시간으로 받아볼 수 있게 된 것도, 앉은 자리에서 원격으로 의사와 상담을 하고 병을 치료할 수 있는 것도 모두 IT의 공(功)임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적지 않고, 작지도 않은 부작용들이 속출하고 있는 것 역시 묵과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IT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현실이 돼 버렸다. 피할 수 없다면 즐겨야 하며, 즐기기 위해서는 건강해야 한다. 각국 IT기업 및 전문가들이 ‘IT 부작용’을 줄이기 위한 사회적 개선 방안을 찾는 일에도 힘 써야할 필요성이 제기되는 대목이다. 송혜민 기자 huimin0217@seoul.co.kr
  • [지역경제 활성화 부산 포럼] 스마트 시티 부산의 진화…2030년 AI 상상 그 이상

    [지역경제 활성화 부산 포럼] 스마트 시티 부산의 진화…2030년 AI 상상 그 이상

    사물인터넷(IoT)이 보편화하고 4차 산업혁명 시대가 열리면서 우리의 삶도 크게 달라지고 있다. 스마트폰으로 금융, 여행, 교통, 기상 등 다양한 생활 업무를 처리하고, 무인 전기자동차로 출퇴근하는 시대가 성큼 다가오고 있다. 앞으로 16년 뒤인 2030년 우리의 삶이 어떻게 바뀌었을지 궁금하다. 부산정보산업진흥원의 도움을 받아 ‘2030년 스마트시티 부산’을 미리 가 본다. 2030년 8월 10일 오전 7시 10분 부산 해운대구 A아파트 107동 1605호. 이화영(44)씨는 커피 한 잔을 마시며 15분 뒤 집앞 정류장에 올 시내버스를 기다리고 있다. ‘스마트폰 버스앱’으로 직장이 있는 서면으로 가는 시내버스가 7시 25분 아파트 버스정류장에 도착한다는 것을 확인했다. 과거처럼 무작정 버스를 기다리지 않는다. ●버스앱만 켜면 도착 시간 척척… 기다리는 일 없다 부산의 시내버스에는 운전기사도 없다. 자율주행(오토 파일럿) 기술의 발달로 ‘무인 자율주행 전기 자동차’가 운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인공지능이 버스에 달려 있는 고성능 카메라, 각종 센서, 실시간 들어오는 교통정보 등을 종합해 자율적으로 주행한다. 기계적으로 운전하니 사고가 줄었다고도 한다. 출퇴근길 사거리의 혼잡도 옛말이다. ‘스마트 신호등’이 차량의 흐름을 분석해 신호 주기를 바꿔 차량 흐름을 원활하게 한다. 버스에 오른 이씨는 버스앱을 켜 하차 목적지를 정한 뒤 하차 버튼을 누르고 휴식을 취한다. 버스가 목적지 두 정거장 앞에 도착하면 스마트폰에서 ‘도착 예정 알림 음’이 울린다. 하차 버튼을 누르지 않아도 알아서 버스문이 열린다. 이처럼 이씨의 하루는 스마트 시스템이 책임을 진다. ●톨게이트 통과땐 스마트 톨링으로 하이패스보다 빠르게 이날 오전 11시. 전주에 사는 김민호(33)씨는 가족들과 함께 여름휴가를 해운대에서 보내려고 서부산 톨게이트로 들어선다. 김씨의 승용차는 속도를 조금 줄인 뒤 아무 차선이나 정차 없이 톨게이트를 통과한다. 폐쇄회로(CC) TV가 차량번호를 인식해 김씨가 집을 나설 때 미리 등록해 둔 카드에서 통행요금을 자동결제하기 때문이다. 이 시스템의 핵심은 ‘스마트 톨링(자동요금징수) 시스템’이다. 스마트 톨링 시스템은 15년 전에 유행하던 하이패스보다 앞선 시스템이다. 요금소 설치나 통행권 발급이 필요 없다. 톨게이트 주변 정체도 사라졌다. 서부산 톨게이트를 나온 김씨는 목적지 해운대에 가려고 동서고가도로를 이용한다. 그러나 진입 차량 대수를 실시간 파악해 진입 램프로 들어오는 차량을 우회·분산시키는 안내 시스템이 도입된 이후 정체를 거의 찾아볼 수 없게 됐다. 김씨 옆좌석에 앉은 부인은 부산시 ‘주차앱’을 통해 해운대해수욕장 일대 주차 공간을 찾고 있다. 주차앱은 빈 곳이 없는 해수욕장 주변 대신 인근 마린시티 해안도로의 가변주차장을 권유한다. 3개면이 비어 있다. 부인은 주차장 B2면을 예약한다. 약간의 예약 수수료가 발생한다. 이제 부산 관광앱을 켜 파라솔을 1개 빌렸다. 파라솔 기둥에 스마트폰을 갖다 대면 1일 사용료가 결제된다. ●휴가철 해운대에선 스마트밴드 차면 미아 걱정 뚝 김씨는 또 해수욕장 관광안내소에서 ‘미아 방지용 무료 스마트밴드’를 빌려 3살 딸의 손목에 채운다. 딸과 자신의 거리가 20m 이상만 벗어나면 경보음이 울린다. 수십만명의 인파가 몰린 해수욕장에서도 딸을 잃을 염려가 없다. 다만 여기저기서 삑삑 경보음이 울리니 소음이다. 같은 시각 해수욕장 상공에는 해양경찰의 드론이 날아다니며 피서객의 안전을 감시하고 있다. 김씨 가족은 부산 여행 둘째 날 국립해양박물관을 찾았다. 박물관 로비에 들어서자 거대한 고래가 헤엄치는 홀로그램이 실행된다. 고래가 눈앞에서 헤엄치는 것 같다. 발걸음을 2층 가상현실(VR)관으로 옮겼다. VR 헤드셋을 쓰고 실제 스쿠버다이빙을 하는 것처럼 바닷속 탐험을 한다. 물고기와 산호초로 둘러싸인 남태평양 어느 섬에 놀러 온 듯한 느낌이 든다. 해양박물관에서 오전을 보낸 뒤 감천문화마을을 찾았다. 감천문화마을 앱을 켜고 문화마을을 화면에 비추며 돌아다니는데 갑자기 스마트폰 화면에 도깨비 캐릭터가 나타났다. 커피 한 잔이 무료인 ‘도깨비 잡기 게임’이다. 감천문화마을에는 해설사가 없지만, 스마트폰으로 작품에 대한 설명을 듣는다. 김씨 가족의 여름휴가 사흘은 스마트시티 부산에서 스마트하게 완료됐다. 닷새 뒤. ‘태풍이 부산을 지나간다’는 TV 뉴스가 나온다. 이번 태풍은 국지적인 폭우를 동반한 중급 규모다. 부산시는 강수량, 해수면 수위, 파도 높이, 풍속 등 기상정보를 수집·분석한 결과를 토대로 마린시티 일대에 태풍경보 발령을 내린다. 해안도로 일대에 주차된 차들도 대피시키고 시민·관광객들의 해안도로 출입을 통제한다. ●아파트 쓰레기통이 차면 AI 로봇이 알아서 척척 치워 스마트시티 부산의 첨단 시스템은 밤거리 ‘안심 귀가’도 책임진다. 스마트 가로등과 ‘비콘’(근거리 위치 정보를 인식하는 무선 센서), CCTV 등 똑똑한 장비가 있어 가능하다. 주택가 외진 곳 등에 설치된 CCTV가 실시간 위치를 확인해 주고, 귀가하는 사람이 정해진 경로를 벗어나면 비콘을 통해 보호자에게 곧바로 알려준다. 초등학교 앞 ‘스마트 횡단보도’도 눈길을 끈다. 차량이 초등학교 앞 도로를 시속 30㎞ 이상 속도로 주행하면 보행자들에게 경고음을 울려 준다. 또 횡단보도와 주변 지역을 학생들이 통행하면 도로에 설치된 전광판을 통해 운전자들에게 주의 신호를 보내 준다. 아파트 등 공동주택에는 ‘스마트 쓰레기통’이 등장했다. 쓰레기가 90%가량 차면, 구청 쓰레기 업무 담당자에게 정보가 전송된다. 구청 담당자는 쓰레기가 넘치기 전에 청소차를 보낸다. 환경미화 차량은 매일 오전과 오후로 나눠 컴퓨터가 계산한 최적의 경로로 지역 쓰레기를 치운다. 인공지능을 갖춘 청소 로봇이 도로와 거리의 쓰레기도 말끔히 치운다. 2030년 부산은 스마트하다. 부산 박정훈 기자 jhp@seoul.co.kr
  • AI의 무딘 사유 예술로 만나다

    AI의 무딘 사유 예술로 만나다

    구글 ‘딥드림’·오토인코더 등 AI기술 접목한 예술작품 전시 알파고와 인간의 바둑대결 이후 인공지능(AI) 기술과 학문 간 융합을 기반으로 한 연구 성과들이 쏟아지고 있다. 그렇다면 인간의 감성과 창의력의 결정체인 예술과 AI가 결합하면 어떤 결과물이 나올까. 국내외 아티스트와 개발자, 프로그래머 등 다양한 창작자들이 인공지능 기술을 활용해 제작한 작품을 선보이는 전시회가 서울 종로구 서린동 SK빌딩 4층에 위치한 아트센터 나비에서 열리고 있다. ‘아직도 인간이 필요한 이유 : AI와 휴머니티’ 전에서는 초기 단계이긴 하지만 예술과 인공지능의 접목 가능성, 예술과 인공지능 기술의 상호 연계성을 가늠해 볼 수 있다. 프랑스의 뉴미디어아트 작가 모리스 베나윤(홍콩 성시대학 크리에이티브미디어스쿨 교수)이 장 밥티스트 바리에, 토비아스 클랭과 공동으로 작업한 프로젝트 ‘브레인 팩토리’는 추상적으로 존재하는 인간의 감정을 마치 공장에서 나오는 제품처럼 출력해 보여준다. 관객은 편안한 의자에 앉아 몇 가지 단계를 거쳐 의식을 집중한 뒤 사랑, 욕망, 고통 등 감정이나 의식과 관련된 단어들을 응시한다. 뇌파를 측정하는 헤드셋에서 수집된 데이터는 작가가 설계한 시스템을 통해 3차원 형태로 변화되고, 최종적으로 3D프린터로 출력된다. 모리스 베나윤 작가는 “일련의 과정을 통해 인공지능 시대에 감정의 본질과 그 역할에 질문을 던져본 것”이라고 설명했다. MIT미디어랩 출신의 작가 하싯 아그라왈의 ‘탄뎀’은 인공지능과 사람이 서로의 시각언어를 교환하며 함께 그림을 완성해 나가는 작품이다. 구글의 AI 이미지 소프트웨어인 ‘딥드림’ 알고리즘의 일부를 활용한 것으로 관객이 터치스크린 위에 그림을 그리면 입력된 데이터를 바탕으로 인공지능이 표현한 새로운 이미지가 오버랩되어 작품이 완성되는 식이다. 테렌스 브로드는 영국 골드스미스 대학교 대학원에서 딥러닝 기술을 바탕으로 기계학습의 가능성을 연구하며 실험적인 작품을 발표해 왔다. 이번에 선보인 ‘오토인코딩 블레이드러너’는 인공신경망의 하나인 오토인코더로 영화 ‘블레이드러너’의 스토리 프레임을 학습한 뒤 인공지능이 스스로의 기억을 통해 영화를 재구성하도록 한 것이다. 화면 속의 일그러진 이미지와 변조된 음성이 그로테스크한 이 작품은 뉴욕 휘트니미술관에도 전시 중이다. 컴퓨터 소프트웨어를 기반으로 인공지능과 예술을 접목시키는 프로그래머이자 아티스트인 진 코건은 인공신경망 알고리즘으로 관객의 모습을 ‘큐비스트’, ‘칸딘스키’ 등 미술사조 혹은 작가의 스타일로 변형시켜 실시간 송출하는 관객 참여형 작품으로 선보였다. 기술과 예술의 접점을 탐구해 온 국내 작가들의 작품도 흥미롭다. 미디어아티스트 그룹 신승백과 김용훈의 ‘동물분류기’는 인공지능 연구에서 가장 중요한 키워드인 분류의 자의성과 불완전성에 대해 비판하는 작품이다. 양민하 작가의 ‘해체된 사유와 나열된 언어’는 과학 철학가들과 이론가들이 사유한 언어를 학습한 인공지능이 어떤 언어로 생성해 내는지, 사유의 가치가 있는지를 확인해 본 결과물이다. 양 작가는 “과학철학서적 9권을 기초로 35만 문장을 3개월 걸려 입력시켰지만 생성된 문장들은 대부분 무의미하고 불완전한 조합들이었다”며 “AI가 인간의 사유능력을 따라잡는 것은 현재로선 불가능한 것 같다”고 밝혔다. 최승준 작가의 ‘학습을 학습하기-연결과 흐름’은 인공지능과 기계학습의 연구과정을 시각화한 것이다. 작가는 “결국은 AI도 인간이 교육시켜야 할 대상이므로 효율성과 합리성을 어떻게 교육시킬 것인지를 연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전시를 참관한 IBM왓슨의 아르만도 아리스멘디 부사장은 “아직은 예술이 아니라고 느껴질 수 있지만 프로그래머와 예술가들의 다양한 시도들이 AI와 예술사에서 중요한 실험으로 남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 밖에 이번 전시에는 예술과 기술의 접점을 연구하는 창작연구소 나비 E I랩의 아트토이 ‘로보판다’, 소음을 음악으로 만드는 인공지능 로보틱스 시스템 ‘브레멘음악대’, 로봇과 인간이 함께 즐기는 ‘에어하키게임’, 인공지능을 접목한 재활치료기구 ‘네오펙트’도 선보였다. 아트센터 나비(관장 노소영)는 2000년 설립 이래 예술과 기술의 접점에서 다양한 활동을 선보여 왔으며 최근 3년 동안은 로보틱스, 사물인터넷(IoT), 웨어러블 테크놀로지 등 첨단기술을 활용한 작품 제작과 전시를 진행해 왔다. 전시는 내년 1월 20일까지. 글 사진 함혜리 선임기자 lotus@seoul.co.kr
  • 우주전투·총쏘기… 아찔한 VR에 게이머 열광

    우주전투·총쏘기… 아찔한 VR에 게이머 열광

    “비행기를 타고 날아다니는 느낌이었어요.” 4차원 가상현실(VR) 우주전투 시뮬레이션 게임인 ‘탑 발칸’을 체험한 이성준(21)씨의 얼굴에는 흥분이 가시지 않았다. 체감형 게임 개발사 모션디바이스가 개발한 ‘탑 발칸’은 게임장에서 볼 수 있는 4D 우주체험 아케이드 게임에 VR을 접목했다. VR헤드셋을 머리에 쓰고 의자에 앉으면 3차원 우주 공간이 눈앞에 펼쳐진다. 의자가 상하 좌우로 90도 가까이 움직이며 격렬한 전투를 벌이자 지켜보고 있던 관람객들 사이에서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이씨는 “사방에서 적이 날아오고 사운드도 생생하다”면서 “조금 어지럽긴 하지만 생생하고 재미있다”라고 말했다. 한국인터넷디지털엔터테인먼트협회 주최로 17일 부산 해운대구 벡스코에서 개막한 국제게임전시회 ‘지스타 2016’의 화두는 단연 VR게임이다. VR헤드셋을 쓰고 손을 허공에 휘두르며 총을 쏘는 모습은 흔한 풍경이 됐다. 오토바이를 타고 질주하거나 온몸에 센서를 부착해 뛰어다니는 등 VR에 다른 기기들을 접목한 게임들이 관람객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올해 지스타는 VR게임 시장의 개화(開花)를 알리는 신호탄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날 지스타에서는 소니와 HTC, 엔비디아 등 VR 분야 글로벌 선두기업들의 높은 수준을 눈앞에서 체감함은 물론 늦게나마 경쟁에 뛰어든 국내 게임업계의 가능성도 확인할 수 있었다. ●소니 40개 부스 북적… HTC ‘바이브’ 출시 골드만삭스는 VR 게임 시장이 2025년 110억 달러(약 13조원)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했다. 일본 소니와 페이스북 자회사 오큘러스, 대만 HTC 등 글로벌 기업들은 VR기기를 출시하고 게임업계와 콘텐츠 생태계를 넓히며 각축전을 벌이고 있다. 지스타에서도 소니와 HTC는 VR기기를 들고 한국 시장 공략의 속도를 높였다. 소니인터렉티브엔터테인먼트코리아(SIEK)는 지스타 조직위원회와 공동으로 40개 부스 규모의 VR 특별관을 꾸렸다. ‘배트맨 아칸’ ‘레지던트 이블’ 등 플레이스테이션VR 게임들을 체험하려는 관람객 수십명이 소니의 부스에 줄을 섰다. HTC는 ‘현존 최고 성능의 VR기기’라 평가받는 ‘바이브’(VIVE)를 이날 국내에 출시했다. 부산시와 손잡고 내년부터 VR 스타트업을 발굴·지원하기로 하는 등 생태계 확장에도 나서고 있다. ●함께 즐기는 국내 VR게임‘ 다크에덴2’ VR게임 진출이 다소 늦은 국내 게임업계도 성과물들을 내놓기 시작했다. 푸토엔터테인먼트는 국내 최초로 개발된 VR 기반의 혼합현실(MR·Mixed Reality) 게임 ‘다크에덴2’를 공개했다. 초록색 배경의 스튜디오에서 스틱을 쥔 손을 흔들면 컴퓨터 화면에서는 칼을 휘두르며 악마를 물리치는 유저의 모습이 합성돼 나온다. 홍철운 푸토엔터테인먼트 대표는 “주로 혼자 즐기는 VR게임을 관람객들이 함께 즐길 수 있도록 개발했다”면서 “게임방송과 같은 플랫폼으로 확장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엘케이컨버전스의 ‘폴 얼론’은 VR에 러닝머신의 일종인 트레드밀을 결합해 유저의 걸음걸이까지 인식한다. 유저는 어두운 지하실을 직접 달리며 좀비들과 전투를 벌인다. 그 밖에 탁구와 야구 게임, 스키점프, 패러글라이딩 체험등 각양각색의 VR게임들이 쏟아져나왔다. 이날 VR게임을 선보인 국내 게임사들은 대부분 중소, 중견게임사들이었다. VR기기의 가격 장벽과 어지럼증 등을 이유로 VR게임의 대중화 가능성에 의문이 제기되면서 대형 게임사들은 투자와 개발을 머뭇거리고 있다. 그러나 모바일게임 시장이 성장 둔화에 놓인 가운데 VR 등 차세대 플랫폼에 투자를 꺼리다 성장 동력을 잃을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시작은 늦었지만 국내 VR게임의 가능성은 밝다는 게 업계의 평가다. 이날 국내 VR게임을 둘러본 레이먼드 파오 HTC 부사장은 “한국 게임은 창의성과 그래픽 아트, 게임성에 있어 세계 최고 수준으로, 이들 기존의 강점이 VR 영역에서도 발휘돼 수준 높은 게임을 만들고 있다”고 평가했다. ●레고·스타워즈 등 지적재산권 경쟁도 치열 글로벌 시장에서 통할 인기 지적재산권(IP)을 둘러싼 경쟁도 치열했다. 게임업계 1위인 넥슨은 인기 장난감 ‘레고’의 캐릭터를 활용한 모바일게임 ‘레고 퀘스트앤콜렉트’를 공개했다. 올해 지스타의 메인 후원사인 넷마블게임즈는 엔씨소프트의 온라인게임 ‘리니지2’를 모바일로 옮긴 ‘리니지2:레볼루션’과 영화 ‘스타워즈’의 세계관과 등장인물을 바탕으로 한 ‘스타워즈:포스아레나’를 선보였다. 부산 김소라 기자 sora@seoul.co.kr
  • [열린세상] 기술의 특이점과 제조업의 미래/안남성 한양대 에너지학과 초빙교수

    [열린세상] 기술의 특이점과 제조업의 미래/안남성 한양대 에너지학과 초빙교수

    작년에 구글의 알파고가 인공지능을 이용해 바둑의 일인자인 이세돌을 이기면서 많은 사람들은 컴퓨터의 발달에 놀라면서 미래에는 컴퓨터의 능력이 인간보다 뛰어나 인간을 지배하는 세상에 살게 되지 않을까 걱정을 하고 있다. 이처럼 인공지능이 비약적으로 발전해 인간의 지능을 뛰어넘는 시점을 전문가들은 기술적 특이점(singularity)이라고 부른다. 미국의 수학자 존 폰 노이만, 미국 컴퓨터 공학자인 버너 빈지 등이 이 개념을 발전시켜 왔으나 이에 대해 가장 구체적인 전망을 한 사람은 컴퓨터 과학자이자 알파고를 개발한 구글의 기술부문 이사인 레이 커즈와일 박사다. 커즈와일 박사는 2005년 저서 ‘특이점이 온다’를 통해 2045년이면 인공지능이 모든 인간의 지능을 합친 것보다 강력할 것으로 예측했다. 2045년이 되면 인간이 인공지능을 통제할 수 없는 시점이 올 수 있고 그 시점이 바로 기술적 특이점이라고 말하고 있다. 기술적 특이점이 2045년에 올지 아니면 그전에 올지는 아무도 알 수가 없지만 인공지능을 이용한 컴퓨터의 능력은 기하급수적으로 발달하고 있고 이를 이용할 수 있어야 미래의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 그동안 우리 경제의 효자 노릇을 해 온 조선산업이 해운산업에 이어 구조조정에 들어가 있고 나머지 자동차나 철강 분야도 어려움이 예상되고 있다. 우리가 가장 경쟁력을 가진 것으로 알려진 휴대전화도 이미 중국에 추월을 당했다고 한다. 반도체나 디스플레이 분야만 아직은 경쟁력을 유지하고 있지만 중국의 추격이 맹렬해 크게 불안해하고 있다. 이러한 제조업의 어려움들을 들여다보면 지능화된 4차 산업 사회에서는 선진국의 기술을 빠른 속도로 습득해 성공해 온 그동안의 성공 방정식은 더이상 작동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이에 대한 대안으로 국내외 전문가들은 서비스업으로 빨리 전환을 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고 권고하고 있다. 그러나 대표적인 서비스업인 금융이나 의료, 법률 같은 분야는 선진국들과 같이 경쟁하기가 매우 어려운 분야들이며 이는 현실적으로 국가 경제의 축을 서비스업으로 전환하는 것이 어렵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 경제는 제조업을 기반으로 성장을 해 왔으며 제조업 경쟁력 확보가 국가 경제를 성장시킬 수 있는 핵심 수단이다. 지난 금융위기에도 제조업의 탄탄한 기반을 갖고 있는 한국을 비롯해서 독일이나 중국, 스웨덴, 일본 등은 큰 어려움을 겪지 않고 잘 극복했다. 제조업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는 선진국들은 4차 산업 사회에 대비한 제조업 부흥 정책을 추진 중이다. 미국은 리메이킹 아메리카 슬로건으로 리쇼어링과 플랫폼을 기반으로 하는 제조업 혁신을 추진하고 있고 독일은 잘 알려진 인더스트리 4.0 정책을 추진하면서 플랫폼 기술을 제조업에 빠르게 도입해 4차 산업시대의 적합한 제조업으로 전환을 하고 있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각국의 제조업 혁신정책은 정보통신기술혁신을 제조업에 접목시키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 제1차 정보통신 산업혁명은 자동화, 제2차 정보통신 산업혁명은 인터넷을 이용한 통합이었다면 제3차 정보통신혁명은 정보통신기술들이 직접 제품 안에 정착돼 제품과 제품, 제품과 사람, 사람과 사람의 연결성을 이용하는 스마트, 커넥티드 제품들로의 변신이다. 미국의 농기계 회사인 존 디어사는 이미 농기계와 기후, 토양 분석 서비스까지 농업의 토털 솔루션을 제공하는 제품을 공급하고 있으며 미국의 바볼랫사는 테니스 라켓에 센서를 설치해 인공지능을 통해 테니스 능력을 향상시키는 제품을 선보이고 있다. 마이클 포터 하버드 경영대 교수는 최근 논문에서 스마트, 커넥티드 제품과 같은 제조업 분야의 정보통신 주도 생산성 향상이 제4차 산업 혁명을 주도할 것이며 미래 기업의 경쟁력을 결정할 것으로 예측했다. 이러한 제조업의 혁명에 우리나라 제조업의 대응은 매우 미진한 것 같다. 기술은 기하급수적으로 발달하는데 이를 지원하는 정책 수립자들이나 기업 경영자들의 의식 구조는 선형적이기 때문에 이 차이를 어떻게 줄일 수 있는가가 우리가 당면한 제조업 경쟁력을 향상시키는 데 가장 어려운 숙제이다. 이제는 제조업이 정보통신산업과 같이 가야 생존할 수 있다.
  • 소세키 발자국 좇다가… 수레 속 보물 찾았다

    소세키 발자국 좇다가… 수레 속 보물 찾았다

    1장 - 도쿄역서 한 정거장에 책 천국이 일본의 수도인 도쿄, 그 중심에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도쿄 기차역이 있고 거기서 지하철을 타고 한 정거장만 가면 간다역이다. 도쿄의 고서점거리는 여기서부터 시작이다. 의외로 시내 중심부와 가까운 곳에 고서점거리가 있다는 것에서 우선 신선한 자극을 받는다. 올해 57회인 진보초 고서축제는 간다와 진보초 일대의 헌책방 200여곳이 참여하는 가장 규모가 큰 행사이다. 규모가 큰 만큼 축제 기간도 길어서 매년 10월 마지막 주 금요일부터 11월 첫 주까지 2주 동안 이 거리가 수많은 사람들로 북적거린다. 이 기간 동안 유통되는 책만 해도 100만권에 이른다고 하니 직접 가보지 않고는 축제의 면모를 다 알기 힘들 정도다. 이 지역에 헌책방들이 들어서게 된 것은 130여년 전부터다. 당시 일본은 근대 학문을 배우고 익혀 서양에 뒤지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여러 대학이 만들어졌다. 메이지대학(1881년 개교), 도쿄대학(1887년 개교) 등이 차례로 생겨났고 그에 따라 자연스레 책의 수요도 많아졌다. 진보초의 헌책방은 이런 역사를 배경으로 하나둘씩 문을 열었고 그것이 지금에 이르러 현재는 ‘세계 최대의 헌책방거리’라는 명성을 가지게 되었다. 오랜 시간이 흐르면서 거리 분위기가 조금씩 달라지기는 했어도 진보초에 있는 헌책방들은 여전히 예전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곳이 많다. 1918년에 처음으로 영업을 시작한 ‘야구치서점’은 100년 전 간판을 아직도 그대로 쓰고 있다. 그런가 하면 비틀스의 멤버인 존 레논이 직접 안경을 맞춘 곳으로도 유명한 안경점이 당시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한 채 여전히 그 자리에서 영업을 이어오고 있다. 그 외에도 둘러보면 곳곳에 100년 전 헌책방 거리의 모습을 이렇게까지 잘 보존하고 있는 것에 부러운 마음이 앞선다. 우리나라에도 인천의 배다리, 서울의 청계천, 부산의 보수동 등 헌책방 거리가 있지만 1980년대 이후 빠른 속도로 헌책방들이 줄어들고 있는 실정이다. 헌책방의 인기가 줄어드는 건 일본 역시 마찬가지다. 그러다 1991년 ‘북오프’(Book-off)라고 하는 대형 헌책방 프랜차이즈 업체가 등장하면서 헌책방 업계는 큰 변화를 겪게 되었다. 북오프는 헌책방이지만 새 책을 파는 대형서점처럼 깔끔한 분위기를 갖추고, 컴퓨터로 즉시 검색까지 할 수 있는 편리함이 강점이다. 사람들로부터 책을 매입하는 절차도 처음부터 시스템을 갖추고 시작했기 때문에 많은 중고 책들이 일반 헌책방보다는 북오프로 유입되었다. 매출과 매입에서 동시에 경쟁력을 잃은 기존의 헌책방들은 도미노처럼 도산했다. 진보초 헌책방거리의 상인들은 함께 모여 이 어려움을 헤쳐 나갈 방법을 고민했다. 진보초 고서축제는 이미 1960년대부터 해 오고 있었지만 새로운 콘텐츠가 없다면 앞으로 이곳의 상황도 어찌 될지 알 수 없는 것이다. 이에 고서협회와 진보초 상인연합회는 1990년대 후반부터 지금까지와는 다른 진보초 고서축제를 기획하기 위해 힘을 합쳤다. 그런 노력의 결과가 서서히 나타나고 있다. 2010년부터 매년 축제 기간에 발행되는 고서축제 공식 가이드북은 올해 축제의 주제와 함께 진보초 헌책방들의 면면을 소개하는 자료집이다. 가이드북이라고는 하지만 내용이 충실해서 1200엔이라는 가격이 아깝지 않다. 올해 발행된 7호 가이드북에는 소설가 나쓰메 소세키의 사후 100주년을 기념하는 행사 소개가 특집으로 실렸다. 소세키는 일본의 1000엔권 화폐에 얼굴이 실렸을 정도로 인기와 문학성을 함께 인정받은 국민작가의 한 사람이다.(현재는 세균학자인 노구치 히데오로 도안이 바뀌었다) 그는 일본의 제1호 국가유학생으로 영국에 건너가 신식 학문을 공부했고 돌아와서 교사생활을 하며 ‘도련님’, ‘마음’ 등 훌륭한 소설작품을 남겼다. 그런 작가에게 있어서 대학과 서점이 몰려 있는 진보초 일대는 특별한 공간이었을 것이다. 그 때문에 소세키가 쓴 작품 안에는 메이지시대 도쿄의 풍경과 당시를 살았던 지식인의 고민이 잘 드러나 있다. 2장 - 2주간 책 100만여권 유통 가이드북은 진보초 일대의 지도를 일러스트로 그려 놓고 소세키의 흔적이 남아 있는 곳에 따로 표시를 해 두었다. 소세키가 산책을 즐겼던 길, 소세키가 책을 구입했던 곳, 소세키가 점심을 먹었던 곳, 소세키가 차를 마시며 오후를 즐겼던 가게…. 옛 흔적이 남아 있지 않다면 자료조사를 통해 예측한 장소까지 자세하게 넣었다. 고서축제를 구경하러 온 사람들은 책도 책이지만 소세키의 흔적을 찾아 함께 헌책방거리를 걸어보는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다. 이런 행사를 기획할 수 있는 이유는 100년 전에 활동한 작가의 흔적을 고스란히 보존해 놓은 노력 덕분이다. 이렇게 쌓아 놓은 역사가 나중에 소중한 콘텐츠가 된다는 걸 배운다. 고서축제의 가장 큰 볼거리는 역시 거리로 쏟아져 나온 200여개 헌책방들이 만드는 ‘야외 책 수레’다. 책이 담긴 리어카를 야외로 갖고 나와서 파는 것이 뭐 그리 특이할까 싶지만 실상은 그렇지도 않다. 일본의 헌책방은 우리나라와 문화가 조금 다르다. 책을 구입하려는 의사와는 상관없이 손님이 헌책방에 들어가서 오랜 시간 동안 서가를 둘러보고 책을 뒤적거리는 것을 실례라고 생각해서 대개 매장에 들어갈 때에는 조심스러운 마음이 든다. 헌책방을 자주 이용하는 사람이라면 해당 헌책방에서 정기적으로 발행하는 도서목록을 이메일이나 우편으로 받아서 살펴본 뒤 필요한 책이 있으면 전화로 해당 책을 문의하고 방문 약속을 잡아서 책을 구입한다. 헌책방 이용이 이렇게 조심스럽다 보니 축제 때에 거리로 나온 야외 책 수레가 반가운 것이다. 여기라면 책을 마음대로 살펴보고 구입할 수 있으니 매년 고서축제 기간이 기다려진다. 더구나 이때에 맞춰서 각 점포는 그동안 숨겨 뒀던 특별한 책들을 공개하는 일도 있기 때문에 책 구입을 위해 이곳을 찾은 방문객에겐 더할 것 없이 좋은 기회인 것이다. 나는 오래전부터 영국 작가 루이스 캐럴을 좋아해서 운영 중인 헌책방 이름도 그가 쓴 작품 제목인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와 비슷하게 지었다. 일본은 루이스 캐럴 학회가 있을 뿐 아니라 진보초에는 빅토리아시대 작품들에 대한 책이 많아서 올해도 앨리스 책을 찾기 위해 서점을 몇 군데 들렀다. 맨 먼저 찾은 곳은 진보초 헌책방거리의 시작 시점인 스즈란거리 앞쪽에 자리잡은 ‘보헤미안 길드’이다. 이곳은 서양화가의 화집과 근현대 사진집을 주로 다루고 있는데 작년에 이곳에서 초현실주의 작가인 얀 슈반크마이어가 작업한 앨리스 그림책을 발견했다. 그다음은 고서센터 건물 근처에 있는 ‘오가와도서’다. 여기는 19세기 영문학에 관련된 책만을 주로 다루고 있기 때문에 앨리스 책을 찾기 위해서라면 반드시 들러야 하는 곳이다. 하지만 1800년대 후반에 출판한 초기 앨리스 책은 너무도 가격이 높기 때문에 발견한다고 하더라도 내 주머니 사정에 구입은 어림없다. 이번에 찾아갔을 때는 도서목록표에 16만엔짜리 ‘스나크 사냥’이 있었는데, 역시나 책을 눈에다가 담아 오는 것으로 서운한 마음을 달랬다. 대신 올해는 찰스 디킨스에 관한 책을 몇 권 구입했다. 마지막으로 향한 곳은 영문학 고서의 성지라고 불리는 ‘기타자와서점’이다. 1902년에 문을 연 서점은 지금까지 한 번도 문을 닫은 일이 없이 3대째 가업을 이어 오고 있다. 100년을 훌쩍 넘긴 서점의 역사만큼 고서를 찾는 사람들의 발길도 끊이지 않는 곳이다. 일본의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가와바타 야스나리와 오에 겐자부로가 이 서점에 드나들었다고 하니 어쩌면 이곳 서가 어딘가에 그들의 손때도 묻어 있으리라. 나도 이 서점에서 1930년대에 출판된 앨리스 책을 구입한 일이 있다. 오래된 책이었지만 보존상태가 매우 훌륭했고 주인의 해박한 서지학(書誌學) 지식에 놀랐던 기억을 지금껏 간직하고 있다. 그 외에도 진보초에는 수많은 헌책방들이 있는데 가장 놀라운 점은 200개에 이르는 헌책방들이 저마다 독특한 개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어떤 곳은 영문학 전문, 다른 곳은 고지도를 전문으로, 만화나 잡지만을 다루는 곳도 있으며, 일본인에게 인기 있는 쇼와시대 문화에 대한 책을 주로 취급하는 가게도 있다. 물론 성인물이나 오컬트, 만화, 스포츠, 서브컬처 전문 서점도 있다. 그러니 독자가 어떤 분야에 관심이 있든지 진보초에 오면 그것을 전문으로 삼고 있는 서점이 반드시 있다는 말도 있다. 3장 - 역사·개성·새로움 다 잡은 축제 헌책방들이 이렇게 자신만의 색깔을 간직하며 오래 영업할 수 있는 원동력은 상인연합회와 고서협회의 오랜 노력 때문이다. 고서협회는 회원 헌책방들이 달마다 내는 회비로 각종 사업과 헌책 매입을 주도한다. 매입한 헌책은 회원을 상대로 한 자체경매를 통해 순환시키고 전문 서점에는 경매를 진행할 때 나름의 우선권을 보장하기 때문에 헌책방들은 새로운 콘텐츠를 확보하는 데 도움이 된다. 또한 새로이 헌책방을 개업하려는 사람에게는 협회에서 마련한 교육프로그램을 제공해서 첫 시작부터 돕는다는 신뢰의 이미지를 더한다. 진보초 고서축제는 단지 많은 책을 늘어놓고 판매하는 행사에서 그치지 않는다. 매년 가도 언제나 새로운 이벤트가 있기 때문에 올해 고서축제가 끝나면 내년 축제기간이 기다려질 정도다. 일본은 축제의 나라라고 부를 만큼 전국에 다양한 마쓰리(축제)가 있다. 수십년 정도 이어 오는 고서축제가 있는가 하면 수백년 전통을 간직한 지역축제도 여럿이다. 이런 축제를 바라보면서 크게 느끼는 점은 역시 역사성이다. 축제의 콘텐츠 자체가 두터운 역사성에서 나오지 않는다면 깊은 맛을 내기 어렵다. 말 그대로 때가 되면 하는 행사가 되고 만다. 도쿄의 명물이라 불리는 고서축제를 탐방하고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우리나라의 책 문화를 다시금 되돌아본다. 책은 읽으라고 강요해서 독서량이 많아지는 건 아니다. 책을 읽을 수 있는 장치보다는 책을 읽어도 되는 환경을 만드는 게 무엇보다 필요하다. 그런 환경은 갑자기 만들어내기 힘들다. 일본의 경우만 보더라도 헌책방과 오프라인 서점들이 계속해서 인터넷서점과 멀티미디어매체 쪽에 밀리고 있을 때 생각해낸 해법이 문학의 역사를 발굴해서 독자들에게 그것을 직접 체험해 보도록 하는 것이었다. 인터넷의 약점을 제대로 공격한 통쾌한 한 방이다. 독자들이 방 안에만 있지 않고 서점거리로 나와서 함께 걷고, 즐기고, 작가의 흔적을 찾으면서 나와 비슷한 이름 모를 타인을 길거리에서 만나 자신도 모르게 느슨한 독서 공감대가 형성되는 것이다. 윤성근 이상한 나라의 헌책방 대표
  • 시선을 노리는 ‘광고 특공대’… 리모컨과 싸우는 60초 전쟁

    시선을 노리는 ‘광고 특공대’… 리모컨과 싸우는 60초 전쟁

    “60초 후에 공개합니다.” 케이블TV 엠넷의 예능 프로그램 ‘슈퍼스타K’에서는 승자 발표를 앞두고 긴장감이 한껏 고조된 상황에서 갑자기 방송을 끊고 중간광고를 내보낸다. 중간광고를 소개하는 이 멘트는 결과 발표를 고대하는 시청자를 애타게 만들면서 유행어가 됐다. 하지만 MBC 예능 프로그램인 ‘무한도전’에서는 이런 중간광고를 볼 수 없다. 케이블 등 유료방송 채널과 달리 지상파 방송은 중간광고가 금지돼 있기 때문이다. 시청자들이 중간광고뿐 아니라 컴퓨터 그래픽을 방송화면에 접목시킨 가상광고, 드라마 등에 상품을 노출하는 간접광고(PPL) 등에 익숙해진 지는 이미 오래다. 최근에는 채널을 변경할 때 순간적으로 노출되는 ‘재핑 광고’, 채널 사이에서 광고로 이동하도록 유인하는 ‘트리거 광고’ 등 새로운 유형의 광고도 속속 생겨나고 있다. 빠르게 진화하는 방송광고 시장의 현재를 들여다봤다. 현행 방송법에서 방송광고는 프로그램 전후에 편성하는 ‘프로그램광고’, 각 프로그램 사이에 넣는 ‘토막광고’, 문자나 그림으로 나타내는 ‘자막광고’, 시간을 고지하면서 내보내는 ‘시보(時報)광고’, 프로그램 중간에 넣는 ‘중간광고’, 컴퓨터 그래픽 이미지를 삽입하는 ‘가상광고’, 소품으로 활용한 상품을 노출하는 ‘간접광고’(PPL) 등 7가지로 분류된다. ●중간광고 최대 6회·1분 이내로 제한 편성시간에 따라 구분해 보면 ‘토막광고’는 한 방송과 또 다른 방송 사이에 편성되는 광고를 의미한다. 가령 뉴스가 끝나고 오락프로그램이 시작된다면 그사이에 나오는 광고가 ‘토막광고’다. ‘프로그램광고’는 프로그램 시작 전후에 편성된다는 점에서 토막광고와 같지만, 프로그램 타이틀이 나온 이후부터 프로그램 본방송이 시작하기 전까지 나온다는 점에서 토막광고와 다르다. 중간광고란 하나의 프로그램 사이에 편성된 광고를 말한다. 중간광고는 프로그램 사이에 들어가기 때문에 다른 형태의 광고에 비해 시청률이 높지만, 시청자가 광고를 회피할 기회를 제약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지상파에서는 허용되지 않고 있다. 1970년대 초반까지는 지상파에도 중간광고가 있었지만, 1차 석유파동 이후 에너지를 절약한다는 이유로 1974년 3월 폐지된 이후 현재까지 금지돼 있다. 반면 케이블 등 유료방송의 경우 신생 방송사업자에 대한 지원 측면에서 중간광고를 허용하고 있다. 시간에 따라 최대 6회까지 가능하고 매회 광고시간을 1분 이내로 제한하고 있다. 다만 운동경기, 문화·예술행사는 횟수 제한이 없다. 중국은 중간광고를 전면 금지하고 있으며 영국은 공영방송, 왕실행사 중계, 30분 미만 어린이 프로그램 등을 제외하고 중간광고를 최대 3분 30초 동안 허용한다. KBS, SBS, MBC 등 지상파 방송사들은 시대가 변한 만큼 방송통신위원회에 중간광고를 허용해 달라고 요구하고 있지만 유료방송 업계와 신문업계는 중간광고가 허용되면 1000억원 이상의 광고물량이 지상파에 더 배정될 것이라며 강하게 반대하고 있다. 성민정 중앙대 광고홍보학과 교수는 “지상파 중간광고의 장점으로는 방송광고 노출 효과 증대, 시청자들의 재핑(채널 돌리기) 완화, 방송광고의 효율적 배분 등이 꼽힌다”면서 “반면에 방송 소비자의 시청권 침해, 광고주의 영향력 증대, 방송의 공공성 저하, 매체 균형발전 저해 등의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광고는 노출되는 형태에 따라서도 구분이 되기도 한다. 가상광고는 방송 프로그램에 컴퓨터 그래픽을 이용해 만든 가상의 이미지를 삽입하는 형태의 광고로 2010년 처음 도입됐다. 처음에는 운동경기를 중계하는 방송 프로그램에만 한정적으로 허용됐지만 오락, 스포츠 보도 프로그램에도 확대 허용됐다. 프로야구 중계 중 이닝이 끝났을 때 푸른 그라운드 화면과 겹쳐 나오는 타이어, 텔레비전, 휴대전화 등이 가상광고의 대표적인 예다. ●가상광고 화면 4분의1 넘을 수 없어 가상광고는 화면의 4분의1을 넘을 수 없으며 DMB 방송의 경우 화면의 3분의1을 넘을 수 없게 돼 있다. 또한 방송광고 금지 상품, 허용시간 제한 상품은 가상광고로 만들 수 없다. 미국의 경우에는 가상광고에 대한 별도의 조항이 없다. 스포츠 경기를 중심으로 운영되며 자유로운 환경으로 인해 스포츠 외 다른 TV프로그램에도 가상광고가 확산되는 추세다. 간접광고는 드라마 등 방송 프로그램 안에서 상품을 소품으로 활용해 노출하는 형태의 광고를 의미한다. 올해 상반기 최대 히트작인 KBS 2TV ‘태양의 후예’는 남자 배우(진구)와 여자 배우(김지원)가 현대자동차를 타고 도로를 달리는 도중 주행보조시스템 버튼을 누르고 키스를 나누는 장면 등 지나친 PPL로 문제가 되기도 했다. 특히 인기 드라마일수록 PPL이 과도해 극의 흐름을 깨는 경우가 많다. 방통위는 전체 프로그램 시간의 100분의5, 화면의 4분의1 이내에서 간접광고를 하고 프로그램 전에 간접광고 포함 여부를 자막에 표기하도록 규제하고 있다. 영국은 일반적으로 BBC를 제외한 공영·민영 방송사 모두 PPL을 허용하고 있으며 아동, 뉴스 프로그램, 소비자 조언 프로그램이나 시사 프로그램에는 간접광고를 할 수 없도록 했다. 일본의 경우 공영방송에서는 PPL이 금지되며 민영방송은 PPL 고지를 전제로 자율규제에 따르고 있다. 이 밖에도 현재시간을 알려주면서 함께 방송되는 광고인 ‘시보광고’, 방송프로그램과 관계없이 문자 또는 그림으로 나타내는 ‘자막광고’ 등도 있다. 시보광고의 경우 하루에 10회 이내, 매시간 2회로 제한돼 있으며 광고 한 번에 10초를 넘겨서는 안 된다. 자막광고는 매시간 4회, 매회 10초, 화면 4분의1 크기 이내로 제한돼 있다. ●분유·젖병 광고 20년 전부터 금지 대상에 방송광고는 물품에 따라 전면 제한되기도 하고 시간이 제한되기도 한다. 금지·제한 품목으로는 주류, 조제분유, 혼인매개·이성교제업, 의료광고, 전문의약품, 담배, 복권, 경마, 고열량 저영양 고카페인 식품 등이다. 담배, 주류 등의 금지·제한은 미성년자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라 쉽게 이해되지만, 조제분유가 금지 품목이 된 데에는 특별한 이유가 숨어 있다. 조제분유의 방송광고가 금지된 것은 1991년 7월이다. 세계보건기구의 모유 먹이기 운동에 호응해 시민단체들이 강하게 요구하면서 입법화가 이뤄졌다. 엄마들에게 모유보다 분유를 먹이면 아기가 더 건강하게 성장한다는 잘못된 인식을 심어 준다는 이유에서였다. 젖병이나 젖꼭지 제품 역시 같은 이유로 1995년부터 방송광고가 금지됐다. 의료광고, 전문의약품, 원료의약품은 오남용에 따라 국민 건강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이유로 방송에서 자취를 감췄다. 모든 매체에 금지해 오던 병원 광고는 1996년 인터넷과 유인물 광고는 허용하는 방향으로 완화했다. 때로는 방송광고가 정부기관 사이의 갈등을 유발하기도 한다. 올해 8월에는 카페인이 많이 들어간 커피우유와 커피 아이스크림의 방송광고를 둘러싸고 식품의약품안전처와 방통위가 찬반 논란을 벌이기도 했다. 식약처가 어린이들이 TV를 많이 보는 오후 5~7시에 커피우유, 커피아이스크림 등 어린이 기호식품을 지상파나 케이블 TV에서 광고하지 못하도록 고시 개정안을 내자 방통위가 광고 제한의 실효성이 떨어지는 데다 규제 강화의 측면이 있는 만큼 신중해야 한다는 반대 입장을 낸 것이다. 당시 방통위는 오후 5~7시 시간대에 어린이와 청소년들이 방과후 활동이나 학원에 머무는 경우가 많아 방송시간 금지의 효과가 불분명한 데다 유료 방송 재원이 대부분 광고로 이뤄지는 상황에서 방송산업의 콘텐츠 투자 위축을 불러올 소지가 있다는 의견을 냈다. 방통위는 연말까지 ‘신유형 광고 제도화 방안’을 마련, 내년부터 도입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검토 대상에는 채널을 변경할 때 순간적으로 노출되는 ‘재핑광고’, 채널 사이에서 광고로 이동하도록 유인하는 ‘트리거 광고’, ‘VOD 광고’ 등이 포함됐다. 또 광고 안에 다른 광고를 넣는 ‘광고 내 광고’, 라디오 방송 진행자가 광고 문안을 읽거나 특정 상품·서비스를 홍보하는 ‘라이브 리드 광고’ 등도 논의 대상인 것으로 알려졌다. 방통위 관계자는 “시청자들의 방송콘텐츠 소비 형태가 변화하면서 등장한 신유형 광고의 정책 방향을 빠르게 모색할 필요성이 높아졌다”며 “신유형 광고 활성화의 기반 조성과 시청자 권익을 조화시키는 방향으로 법적 기틀을 만들겠다”고 밝혔다. 윤수경 기자 yoon@seoul.co.kr
  • ‘입’은 속였고 ‘손’은 정직했다… 온라인 표심 읽는 빅데이터

    ‘입’은 속였고 ‘손’은 정직했다… 온라인 표심 읽는 빅데이터

    지난 4월 20대 국회의원 선거와 6월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 그리고 최근 미국의 대통령 선거는 여론조사의 무덤이었다. 낮은 응답률과 속내를 제대로 밝히지 않는 응답자 행태 등의 제약으로 인해 여론조사는 무엇 하나 올바로 예측하는 데 실패했다. 부정확한 여론조사 결과에 대한 회의론이야 진작부터 있었지만 이젠 아예 여론조사의 종말을 얘기하는 상황에 다다랐다. 그리고 여론조사의 빈자리를 인터넷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의 빅데이터 분석이 대체할 것이라는 예측이 갈수록 설득력을 얻고 있다. 미래의 선거민심조사는 어떤 형태를 띠게 될지 전문가들에게 물었다. 빅데이터를 이용해 미국 대선 결과를 예측한 우종필 세종대 경영학과 교수는 11일 “미국 여론조사는 도화지에 찍힌 점 하나를 보는 수준으로 오류가 상당하다”고 지적했다. 여론조사는 통상 모집단에서 표본을 추출한 뒤 진행한다. 우 교수는 “미국 전체 유권자가 2억 1000만명인데, 이 중 60%가 투표한다고 생각하면 1억 2000만명의 표를 예측해야 한다”며 “하지만 현재 여론조사는 1000여명에게 묻는데, 이는 유권자의 0.00001%에 불과하다”고 설명했다. 표본이 적은 데다 제대로 된 표본 선발 과정도 없었고, 여론조사에서 자신의 의사를 제대로 밝히지 않는 ‘샤이 트럼프’ 현상까지 겹치며 표심을 제대로 읽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는 빅데이터를 대안으로 제시했다. 우 교수는 “유권자의 절대다수가 컴퓨터나 스마트폰으로 접속하는 온라인에서는 굳이 표심을 숨기지 않는다”며 “이번 미국 대선을 두고 SNS를 분석한 결과 힐러리 클린턴이 도널드 트럼프를 이긴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고 말했다. 한규섭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는 여론조사 3000개의 빅데이터를 분석해 여론조사의 허점을 보완한 뒤 두 후보의 지지율을 도출했다. 한 교수는 “올해 1월부터 선거 직전까지 전국구 여론조사 3000개를 분석하니 지지율에서 클린턴이 2.2% 포인트 앞서는 것으로 나왔다”고 말했다. 한 교수는 여기에 그치지 않았다. ‘숨은 표’를 감안한 분석을 별도로 실시했다. 그 결과 숨은 표가 없다고 가정했을 때 트럼프의 당선 확률은 5%에 불과했지만 1.0% 포인트의 가중치를 두면 30%로 올랐고 1.7% 포인트일 때는 50%, 2.0% 포인트일 때는 65%로 뛰어올랐다. 실제로 대선 결과 클린턴은 득표율(47.7%)에서 트럼프(47.5%)를 0.2% 포인트 앞섰지만 주(州) 선거인을 해당 주 승자가 독식하는 미 대선의 독특한 방식에 따라 선거인단 290명을 얻은 트럼프가 232명을 얻은 클린턴을 이겼다. 이번 미 대선은 족집게로 유명한 대선 예측 전문가 네이트 실버의 예측이 틀리면서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그가 운영하는 선거 예측 사이트 파이브서티에이트는 애초 클린턴의 승률을 72%, 트럼프의 승률을 28%로 예측했다. 그러다 지난 8일 개표 결과가 나오면서 밤늦게 트럼프의 승률을 61%로 수정했다. 김준석 동국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샤이 트럼프 현상은 언론과 여론조사기관의 책임 회피”라며 “여론조사의 한계가 극명히 드러났다”고 지적했다. 샤이 트럼프 현상은 독일 커뮤니케이션 학자 노엘레 노이만의 ‘침묵의 나선 이론’을 배경으로 한다. 다수의 의견과 자신의 의견이 다를 경우 침묵하게 된다는 것이다. 영국에는 숨어 있는 보수표를 의미하는 ‘샤이 토리’가 있다. 우리나라도 비슷한 전개를 보이고 있다. 극도의 보수주의자를 ‘수구 꼴통’으로 여기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보수표가 숨는 현상이 두드러졌다는 것이다. 한 교수는 “한국은 세대 간 이념과 정치 성향이 극명하게 차이 나고, 보수·진보 갈등도 어느 나라보다 심하다”며 “여론조사나 출구조사에서 새누리당 지지자들이 실제보다 과소평가되는 경우가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해서 지금의 여론조사가 무용지물이라는 판단은 이르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 김춘석 한국리서치 이사는 “내년 대선에서 휴대전화를 이용해 여론조사를 하게 되면 여론조사 신뢰도는 올라갈 것”이라고 밝혔다. 다른 여론조사기관 관계자는 “내년 대선에서 1% 포인트 미만의 표차만 나지 않는다면 여론조사로 결과를 예측할 수 있을 것”이라며 “빅데이터는 세대별, 지역별 지지율을 알아내기 어려운 만큼 전통적인 여론조사와 빅데이터가 공존하는 체제로 가야 한다”고 말했다. 우 교수도 “빅데이터도 다른 이슈로 인한 데이터 오류 등 부작용이 생길 수 있는 만큼 여론조사와 병행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이민영 기자 min@seoul.co.kr 홍인기 기자 ikik@seoul.co.kr
  • [현장 행정] 컴퓨터 앞에 앉은 어르신… 정보 격차 줄겠네요

    [현장 행정] 컴퓨터 앞에 앉은 어르신… 정보 격차 줄겠네요

    “정보의 격차가 큰 차이를 만들죠. 우리가 만능은 아니지만 어려운 일이 있으면 항상 상의해 주세요.” 유종필 관악구청장이 10일 서울대에서 기증한 중고 컴퓨터를 들고 찾은 곳은 보라매동의 한 모자 가정이다. 기초생활 수급권자인 어머니와 고등학생인 두 딸이 사는 가정으로 큰딸은 고3 수험생이지만 컴퓨터가 없어 그동안 인터넷 강의를 듣지 못했다. 문모씨는 “‘사랑의 컴퓨터’를 신청한 지 한 달도 채 되지 않았는데 이렇게 빨리 컴퓨터가 집에 설치될 줄 몰랐다”며 기뻐했다. 유 청장은 컴퓨터를 설치하며 중고 컴퓨터지만 내부 부속품은 새것으로 모두 교체했고, 혹시라도 고장이 생기면 본체에 스티커로 붙어 있는 연락처로 전화하면 구청 직원이 와서 무상으로 수리해 준다고 꼼꼼하게 설명했다. 산타클로스처럼 빨간 목도리를 맨 유 구청장이 보라매동 다세대주택에 이어 들른 곳은 보라매경로당. 그는 경로당에 들어서자마자 넙죽 큰절을 할머니들께 올렸다. 이어 “저는 여당도 야당도 아닌 경로당입니다”란 ‘전매특허 농담’으로 어르신들께 큰 웃음을 안겨 드렸다. 보라매경로당은 ‘사랑의 컴퓨터’로 노인들에게 정보화 강의를 하고, 영화도 틀 계획이다. 관악구는 지난 10년 동안 모두 1000여대의 중고 컴퓨터를 기증받아 기초수급자, 복지시설, 장애인 등에게 나눠줬다. 정보의 격차가 결국 경제적 격차를 낳는다는 생각에 구에서 무료로 제공한 것이다. 중고 컴퓨터는 대부분 구에서 쓰던 것과 서울대와 개인, 기업에서 기증한 것이다. 중고 컴퓨터의 모든 부속품을 갈고 새롭게 정비를 끝내 새 컴퓨터 못지않은 성능을 자랑한다. 또 ‘한글’과 같은 워드 프로그램을 기본적으로 탑재해 사용에 불편함이 없도록 했다. 사후관리도 빼놓지 않았다. 소모품인 하드 드라이브, 그래픽 카드 등은 직원들이 방문해 무상으로 고쳐준다. 컴퓨터 사용법 강의도 해서 정보 소외 계층이 발생하지 않도록 한다. 지난해는 어머니가 사망하고 홀로 대입 준비를 하던 19살 청년, 사무자동화 취업과정 시험준비를 하던 기초생활보장 수급자, 인터넷이 필요했던 홀몸 어르신 등이 사랑의 컴퓨터를 받았다. 유 구청장은 “어르신들이 컴퓨터가 생겼으니 이제 사용법도 배우게 될 것”이라며 “평생학습 도시인 관악구에서 ‘사랑의 컴퓨터’로 공부를 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고 있다”고 말했다. 윤창수 기자 geo@seoul.co.kr
  • [월드피플+] 뇌성마비 中 학생, 토플 고득점에 미국 유학

    [월드피플+] 뇌성마비 中 학생, 토플 고득점에 미국 유학

    중국의 한 뇌성마비 남학생이 토플과 GRE 시험에서 거의 만점에 가까운 실력을 기록해 주목을 받고 있다. 중난(中南)대학에 재학 중인 모톈츠(莫天池)는 어려서 불의의 사고로 뇌성마비를 앓게 됐다. 언어장애와 불안정한 걸음걸이는 물론 글씨 쓰는 속도도 정상인의 1/3 수준에 불과하다. 하지만 이 같은 장애도 그의 불타는 학구열은 막지 못했다. 모톈츠의 부친은 생후 8개월 무렵 여러 병원을 전전하며 검사를 받았지만 “아이는 제대로 걷지도 못하고, 지적장애자로 살아갈 것”이라는 의사들의 답변만 들었다. 하지만 부친은 한 살도 안된 모톈츠가 가르친 글자를 구분하는 것을 발견하고, 꾸준히 한자를 가르쳤다. 그는 한 살 무렵 2500자의 한자를 습득했다. 하지만 초등학교 입학 시기가 오자, 부모는 아이들의 놀림거리가 될까 두려워 아이의 입학을 주저했다. 그러나 유독 친구를 사귀고 싶어하는 아들은 학교를 가고 싶어했고, 결국 엄마는 아이를 등에 업고 함께 등,하교를 했다. 주변 우려와는 달리 그는 뛰어난 학업실력을 보였다. 초, 중, 고 모두 우수한 성적으로 상위권에 들었고, 대학입학 시험에서도 높은 성적으로 중난대학에 입학했다. 대학 2학년 때는 과학연구 논문 3편을 발표해 ‘2013년 중국컴퓨터학회 우수대학생’으로 선정됐다. 이 상으로 ‘2013 중국컴퓨터대회’에 참가해 ‘인터넷의 아버지’로 불리는 빈튼서프 구글 부회장을 만나기도 했다. 이 만남은 모톈츠에게 큰 감동과 자극을 주었다. 그는 2014년 최우수 성적으로 중난대학 소프트웨어학과 석사과정에 추천, 입학하게 됐다. 입학한 지 두 달 만에 아태 서비스컴퓨팅컨퍼런스에서 영문 논문을 발표해 석사과정 조기졸업의 자격을 얻었다. 현재 그는 두 편의 영문논문을 발표하고 해외 유학을 준비 중이다. 그는 이미 지난해 토플시험에서 스피킹 시험을 제외한 90점 만점에 86점을 획득했고, 올해 8월에는 GRE 시험에서 329점이라는 높은 점수를 받았다. 그의 신체적 특징상 토플시험에서 스피킹 시험(30점)은 면제받았다. 사람들은 모두 그가 ‘기적’을 일구었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는 “이건 기적이 아니에요. 나는 남들보다 몇 배의 노력을 해야 했어요”라고 말했다. 사실상 그는 어린시절 극도의 가난과 신체적 고통을 겪으며 자랐다. 이 같은 난관은 그로 하여금 남들보다 더 많은 노력을 쏟아 붓는 삶을 살게 했다. 그는 토플 시험 준비를 위해 하루에 12시간씩 공부를 했고, 리스닝 점수를 올리기 위해 매일 귀에 이어폰을 꽂다가 귀에 찰과상을 입었다. 결국 3개월 만에 리스닝 테스트에서 만점을 받았다. 그는 “비록 할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끝까지 해봐야 한다”고 말한다. 그의 어머니는 “아들은 자신이 목표한 일을 마무리하기 전에는 절대로 잠을 자는 법이 없다”고 전했다. 신체적 약점에도 불구하고 그의 얼굴에는 그늘이 없다. 자신의 약점을 감추지도 않는다. 늘 ‘낙관과 긍정’이 그의 트레이드 마크다. 그는 한국드라마, 영화, 유명작가의 소설 등을 즐겨 보며 감성코드도 키웠다. “이공계 학생들도 반드시 문학서적을 봐야 한다”고 주장하는 그의 책꽂이에는 다양한 문학서적들이 꽂혀 있다 그는 현재 스탠포드, 카네기멜론, 퍼듀 대학교에 입학 원서를 제출해 이미 몇몇 교수들의 연락을 받았다. 인공지능 분야의 박사과정을 고려 중인 그는 미국 내 해당 분야 상위 5위 안에 드는 학교에 원서를 제출했다. 이미 몇몇 학교로 응시자격을 얻었지만 내년 초에 모든 결과가 나온 뒤 진로를 결정할 예정이다. 무엇보다 그는 뇌성마비 환자는 지능이 낮을 것이라는 사회적 편견을 깼다. 많은 뇌성마비 환자들이 정상적인 지능을 가지고도 정신지체자로 오인 받는 경우가 많다. 아들이 뇌성마비가 되어 누구보다 가슴을 치며 살아왔을 그의 엄마는 이렇게 말한다. “하늘은 공평해요. 모든 문을 닫아 두면서도 창 하나는 열어두죠. 그것도 태양을 향해 난 창을 말이에요” 이종실 상하이(중국)통신원 jongsil74@naver.com
  • 양방향 소통하는 서울대 총학선거

    서울대의 총학생회장 후보와 유권자가 소통하는 인터넷 사이트 ‘스누초이스’(www.snuchoice.com) 실험이 학내에서 신선한 반응을 얻고 있다. 서울대 공대생들이 만든 시스템으로 학생들이 공식 질문을 사이트에 올린 뒤 학생 100명 이상이 ‘공론화’ 버튼을 누르면 해당 질문을 담은 공식 질의서가 총학생회 후보에게 전달된다. 6일 스누초이스 개발자인 김찬우(컴퓨터공학부)씨는 “학생회 후보가 공동 유세나 간담회에서 아무리 공약이나 비전을 얘기해도 실제 학생들이 일정에 따라 참여하기 어렵다는 점에 착안했다”며 “온라인 플랫폼으로 많은 학우가 쉽게 후보에게 접근하고 질문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 게 목표였다”고 설명했다. 제작에는 정우철(물리천문학부)씨, 정하빈(경영학과)씨가 동참했다. 이들은 총학생회 집행부에서 일해 본 경험이 도움이 됐다고 밝혔다. 스누초이스는 출시 이틀 만인 지난 4일 5400뷰(방문수)를 돌파할 정도로 호응을 얻고 있다. 현재 학생들의 지지를 받는 의견은 ‘시흥캠퍼스 조성 계획은 최종적으로 폐기돼야 한다’, ‘학생회는 최순실 사태에 대응해 집단행동을 조직해야 한다’, ‘서울대는 국립대학법인에서 국립대학으로 다시 전환돼야 한다’ 등이다. 학생회장 후보들은 이 질문들에 나름의 답변을 달아 두었다. 스누초이스 운영팀은 이 서비스를 매년 열리는 학생회 선거 때마다 제공하고, 특히 2년 뒤에 치르는 서울대 총장 선거 때도 활용한다는 계획이다. 명희진 기자 mhj46@seoul.co.kr
  • 제자의 갓난아기 안고 강의하는 美교수 감동

    제자의 갓난아기 안고 강의하는 美교수 감동

    아이를 키우는 엄마의 마음을 잘 이해하는 교수의 선행이 인터넷에 공개돼 미 전역의 화제로 떠올랐다. 지난 31일(현지시간) 미 CBS뉴스 등 현지언론은 갓난아기를 안고 강의 중인 한 교수의 사진과 이에 얽힌 사연을 보도했다. 사진 속 아기를 안고 강의 중인 교수는 사우스캐롤라이나주 랜더대학에서 수학을 가르치는 조시 라이언 교수. 놀라운 점은 이 아기가 라이언 교수의 자식이 아닌 수강 중인 학생의 아이라는 사실이다. 사연은 이렇다. 이 대학에서 수학과 컴퓨터 공학을 전공 중인 사라 톰슨은 이번 학기가 시작되기 1주일 전 출산을 했다. 문제는 아기 때문에 학교를 다닐 처지가 되지 못한 것. 이번 학기만 마치면 졸업을 해 취업 혹은 진학을 앞둔 상황이라 아쉬움은 더했다. 이때 도움을 준 것이 바로 라이언 교수다. 그는 톰슨의 상황을 파악하고 자신의 수업에 아기를 데리고 와도 좋다고 허락했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캠퍼스 내 마련돼 있는 수유실을 보여주며 꼭 학기를 마칠 것을 당부했다. 화제가 된 이 사진은 라이언 교수가 수업 중 직접 아기를 달래며 강의하는 모습을 담은 것으로 엄마 톰슨 입장에서는 백마디 말보다 더 큰 힘이 됐을 터. 톰슨은 "라이언 교수의 행동은 나에게 말로 표현하지 못할 정도의 큰 격려가 됐다"면서 "이 사진을 페이스북에 올린 이유는 아기 때문에 일이나 공부를 할 수 없는 많은 엄마들에게 힘을 주기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      박종익 기자 pji@seoul.co.kr
  • ‘클린턴 이메일’ 재수사… 트럼프 “찬스 잡았다”

    ‘클린턴 이메일’ 재수사… 트럼프 “찬스 잡았다”

    미국 대선을 불과 열흘 앞두고 연방수사국(FBI)이 불기소 처분한 민주당 대선 후보 힐러리 클린턴(69)의 ‘개인 이메일 스캔들’ 관련 재수사 방침을 밝히면서 대선판이 다시 요동치고 있다. 전국 지지율 조사에서 박빙 우위를 점한 클린턴이 이번 재수사로 인해 신뢰도에 타격을 입는다면 공화당의 도널드 트럼프(70)가 승부를 뒤집을 수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분석이다. 클린턴은 29일(현지시간) 플로리다주 데이토나 비치에서 가진 유세에서 “선거를 바로 앞에 두고 정보도 거의 없이 이런 결정을 (FBI가) 내린 것은 상당히 이상스럽다”면서 “그저 이상한 정도가 아니라 유례없는 일이며 심각하게 문제가 되는 일”이라며 FBI를 강력히 비난했다. 반면 트럼프는 28일 뉴햄프셔주 맨체스터 유세에서 “‘워터게이트 사건’보다 더 큰 뉴스”라며 “FBI가 마침내 옳은 일을 했다”고 주장했다. 앞서 제임스 코미 FBI 국장은 28일 미 의회 감독위원회 지도부에 보낸 서한에서 “나는 지난 (7월) 의회 증언에서 FBI가 클린턴 전 국무장관의 개인 이메일 서버 수사를 끝냈다고 밝혔는데 최근 새로 전개된 사건들 때문에 이를 보충하려 한다”며 “FBI는 연관이 없는 사건으로부터 이(이메일 스캔들) 수사와 관련된 것으로 보이는 이메일들의 존재를 알게 됐다. 나는 이 이메일들이 우리 수사에 얼마나 중요한지 평가하고, 기밀 정보를 포함하고 있는지 판단하기 위해 FBI 수사관들이 적절한 수사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데 동의했다”고 밝혔다. FBI의 재수사 결정과 관련해 코미 국장이 밝힌 ‘연관 없는 사건’은 클린턴의 최측근인 후마 애버딘의 전남편 앤서니 위너 전 하원의원의 ‘섹스팅’(음란한 문자를 주고받는 것) 사건으로, 위너 전 의원의 컴퓨터를 뒤지던 중 애버딘의 이메일 1000여건을 발견한 것이 계기가 됐다고 뉴욕타임스는 전했다. 클린턴은 세 번의 TV 토론 이후 승기를 잡은 듯했으나 최근 다시 트럼프와 혼전을 벌이고 있다. 워싱턴포스트(WP)와 ABC는 지난 24~27일 유권자 1148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클린턴이 47%, 트럼프는 45%의 지지율을 기록했다고 29일 보도했다. 두 후보는 오차범위 ±3% 포인트에서 초접전을 벌이는 모습이다. WP와 ABC가 지난 20~22일 벌인 조사에서는 클린턴이 50%의 지지율을 얻어 트럼프를 12% 포인트로 눌렀다. WP는 “공화당 지지층이 막바지에 결집하면서 트럼프의 지지율이 올랐다”고 분석했다. 27일까지 실시된 이번 여론조사는 FBI의 이메일 스캔들 재수사 방침에 따른 민심 변화가 반영되지 않았다. CNN이 여론조사업체 ORC와 2주 전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응답자의 62%는 “클린턴이 대통령직을 수행할 자질과 능력을 갖추었는지 판단하는 데 이메일 스캔들을 중요한 척도로 삼을 것”이라고 밝혔다. 정치전문매체 ‘파이브서티에이트’ 설립자 네이트 실버는 “악재도 1주일이면 여론에 충분히 영향을 미친다”며 “향후 클린턴의 전략은 트럼프의 더 큰 악재를 폭로하거나 코미 국장을 집중적으로 공격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워싱턴 김미경 특파원 chaplin7@seoul.co.kr 서울 박기석 기자 kisukpark@seoul.co.kr [용어 클릭] ■섹스팅(Sexting)이란 ‘섹스(Sex)와 문자메시지 송수신(Texting)’의 합성어로, 음란한 문자를 사진 등을 첨부해 주로 휴대전화로 주고받는 것을 말한다. 섹스팅은 2011년 미국의 미리엄 웹스터 사전에 독립된 단어로 등재됐다. 이번에 문제가 된 것은 민주당 대선 후보 힐러리 클린턴의 수행비서 후마 애버딘의 전남편인 앤서니 위너 전 하원의원의 섹스팅으로, 2011년 트위터로 사진과 음란한 문자를 한 여성에게 보냈다가 발각돼 그해 6월 의원직을 사퇴했다. 또 2013년 정계로 복귀하려다 다른 두 명의 여성과 섹스팅한 사실이 폭로돼 복귀가 좌절되기도 했다. 위너의 섹스팅에 사용된 인터넷 계정이 클린턴의 사설 서버였고, 이때는 위너가 애버딘과 이혼하기 전이었다.
  • [씨줄날줄] 말의 부메랑/강동형 논설위원

    [씨줄날줄] 말의 부메랑/강동형 논설위원

    부메랑은 호주의 원주민들이 사냥이나 전쟁 때 사용한 도구다. 부메랑의 생김새는 다양하지만 목표물에 명중시키지 못한 부메랑은 되돌아오는 특징을 지니고 있다. 그런데 제자리로 돌아오는 부메랑은 종종 던진 사람에게 치명적인 무기로 돌변한다. 이러한 현상을 그 결과가 좋든 나쁘든 부메랑 효과라고도 한다. 우리는 의도했든 안 했든 수많은 말과 글, 과거의 행위들이 침묵의 공간을 떠돌다 부메랑이 돼 돌아와 난처한 입장에 놓이는 사례를 수도 없이 목격하게 된다. 아마도 성인들이라면 한번쯤 이러한 일들을 경험해 봤을 것이다. 그만큼 인간은 불완전한 존재인 까닭이다. 특히 인터넷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가 발달한 요즘에는 과거의 흔적은 지워지지 않고 디지털 주홍글씨로 남아 있다가 언젠가 부메랑이 돼 돌아온다. 언론에서 최순실씨를 둘러싼 각종 의혹을 마치 수사기관처럼 들춰내는 것도 지워지지 않는 디지털 기록 때문이다. 장자는 일찍이 ‘남을 비방하는 것은 자신에게 돌아오는 화살’이라고 말했다. 우리 속담에서 남을 비방하는 것을 빗대 누워서 침 뱉기라고 하는 것도 같은 의미의 다른 표현이다. 아들과 딸을 키우는 부모들은 ‘도둑’과 ‘화냥’이라는 단어를 입에 올리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특히 정치인들은 말을 너무 함부로 한다. 언젠가 부메랑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은 안중에도 없다. 미국이라고 다를 건 없는 것 같다. 미국 공화당 대통령 후보 트럼프는 음담패설 녹음 파일이 공개되면서 스스로 목을 조이고 있다. 차기 유력한 대통령 후보 중 한 명인 문재인 전 대표도 송민순 전 외교부 장관이 사실이라고 강조하는 회고록에 담긴 내용으로 곤욕을 치르고 있다. 이원종 청와대 비서실장은 잘 알지 못하는 사실을 사실인 양 해명했다가 스타일을 구겼다. 그는 국정감사에서 최순실씨가 대통령의 연설문을 고치는 것을 좋아했다는 언론 보도를 확인하는 질문에 “봉건시대에도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강력하게 부인했다. 그런데 최씨가 사용하던 컴퓨터에서 대통령 연설문이 쏟아져 나와 할 말을 잃게 했다. 박근혜 대통령도 10년 전에 한 말이 부메랑이 돼 개헌의 동력을 떨어뜨리고 있다. 한나라당의 유력 대선 후보 중 한 명이었던 박 대통령은 당시 노무현 대통령의 4년 중임 원포인트 개헌 제안에 ‘참 나쁜 대통령’이라는 말로 개헌의 싹을 잘랐다. 이 말을 전한 사람이 당시 언론 특보였던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였다고 한다. 박 대통령의 개헌 제안에 이번에는 야권의 유력 대선 후보들이 일제히 ‘참 나쁜 대통령’이라는 말을 패러디하며 개헌의 순수성을 비판하고 나섰다. 말은 자신을 드러내는 표현 수단이다. 말이 부메랑이 됐을 때는 합당한 해명과 진정한 사과가 뒤따라야 할 것이다. 강동형 논설위원 yunbin@seoul.co.kr
  • ‘따뜻한 로봇’ 박사, 하반신 마비 장애인 걷게 하다

    ‘따뜻한 로봇’ 박사, 하반신 마비 장애인 걷게 하다

    하반신 완전마비 환자가 착용 계단 오르고 앉았다 일어서 “계단을 오르고 자리에서 일어나는 사소한 동작이 하반신 마비 장애인에겐 평생의 꿈이라는 것, 그리고 이 꿈이 현실이 되도록 하기 위해 인간의 모든 과학지식을 총동원한다는 것, 이 두 가지를 떠올리면 늘 겸허해집니다. 학계에서 인정받는 로봇이 아니라 사람의 삶을 바꾸는 로봇이 목표입니다.” 지난 20일 만난 공경철(35) 서강대 기계공학과 교수는 마음이 따뜻한 연구를 하고 싶어 장애인을 위한 ‘웨어러블 로봇’을 개발하게 됐다고 말했다. 자신의 연구팀을 이끌며 세브란스병원과 함께 하반신 완전마비 장애인의 보행을 돕는 웨어러블 로봇 ‘워크온’(Walk-On)을 개발한 공 교수와의 인터뷰는 그의 대학 연구실에서 1시간 30분가량 진행됐다. 워크온은 지난 8일(현지시간) 스위스 취리히에서 열린 제1회 ‘사이배슬론’ 대회의 ‘엑소레이스’(외골격 착용 로봇) 종목에서 독일과 미국팀에 이어 동메달을 받았다. 올해 처음 열린 대회지만 인터넷 생방송의 순간 시청자가 1억뷰를 돌파할 정도로 관심이 높았다. “워크온은 전체 6개 동작 중 10분 안에 푹신한 소파에 앉았다 일어나기, 4개의 폴 사이를 지그재그로 왔다 갔다 하기, 20도의 경사를 올라 문을 열고 닫은 후 다시 내려가기, 징검다리 건너기, 6개의 계단을 오른 다음 내려가기 등 5개 동작을 소화했죠.” 워크온의 작동 방식은 ‘자동차’와 비슷하다. 로봇을 착용한 장애인이 지팡이 역할을 하는 클러치를 잡은 후 손잡이에 달린 스위치를 누르면 원하는 움직임이 진행된다. 등에 장착된 회로부에는 행동을 제어하는 컴퓨터가 내장돼 있고, 가슴에 달린 모니터로 운행 상태를 확인한다. “사실 인간은 근육뿐 아니라 반동 같은 외부 힘을 이용해 몸을 움직입니다. 즉, 마비된 신체를 움직이는 큰 힘을 만들어 내는 게 웨어러블 로봇의 핵심이죠. 워크온은 모터만으로 150뉴트미터까지 출력을 냅니다. 로봇과 사람의 무게를 합해 100㎏을 움직여 계단을 오르내리고 걷고 뛰는 운동을 무리 없이 해내는 힘이죠. 착용부는 세브란스병원팀에서 디자인해 최대한 사용자의 몸에 무리가 가지 않도록 했습니다.” 공 교수는 사용자의 움직임을 위해서는 감정에 따른 행동 패턴과 의지까지 예측해 로봇에 프로그래밍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공 교수팀의 워크온을 입고 이번 대회에 출전한 김병욱(42·척수장애 1급)씨는 “훈련을 거듭할수록 로봇을 입고 움직이는 게 내몸처럼 더 편해졌다”고 말했다. 그는 뺑소니 교통사고로 하반신이 완전히 마비된 뒤 18년간 휠체어를 탔다. 그래서 일어서는 데 두려움이 컸다고 했다. “휠체어 럭비선수로 활약할 정도로 평소 운동을 많이 했지만 하반신 마비 장애인들은 뼈가 약하기 때문에 넘어지면 쉽게 뼈가 골절됩니다. 완치까지 6개월에서 1년은 족히 걸리죠.” 하지만 그는 “올해 3월 처음 로봇을 입고 뚜벅뚜벅 걸을 때 짜릿한 전율과 감동이 왔다”고 밝혔다. 김씨는 “본업까지 뒷전으로 하고 일주일에 사흘씩 연습에 몰두했다”며 “늘 누워서 생활해 퇴행성 관절염이나 소화 기능 장애가 있었는데 서 있는 것만으로 몸의 변화를 느낄 수 있었다”고 말했다. 공 교수는 장애인에 대한 편견이 장애인용 로봇에도 그대로 전이되는 것이 가장 힘들다고 했다. “왜 로봇으로 굳이 장애인을 돕는 ‘비대중적인’ 일을 하려고 하느냐는 시선 때문에 훈련 장소를 섭외하기도, 후원을 받기도 쉽지 않았어요.” 결국 그의 연구팀은 서강대 체육관에서 훈련을 하고, 연구진이 사비를 들여 개발을 진행했다. 아직 세계적으로 웨어러블 로봇 기술은 걸음마 단계로 워크온과 같이 상용화 수준의 기술을 보유한 국가는 거의 없다. 공 교수는 사람들의 공감을 얻어야 상용화가 가능하다고 전했다. “다른 나라는 로봇을 멋지게 만드는 게 중요한데, 우리는 최대한 눈에 잘 안 띄는 디자인이 필요한 상황입니다. 로봇을 입고 거리에 나서면 남들의 시선을 받는 게 부담스럽다는 거죠. 기술은 연구하면 개발할 수 있지만 편견은 과학으로 풀 수 없습니다. 하루빨리 이런 편견의 벽을 넘어 장애인을 행복하게 하는 로봇을 만들고 싶습니다.” 김희리 기자 hitit@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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