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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IS의 ‘비틀스’ 사형 선고 안할테니 정보 넘겨줘” 美 정부, 英에

    “IS의 ‘비틀스’ 사형 선고 안할테니 정보 넘겨줘” 美 정부, 英에

    영국식 억양 때문에 과격 무장조직 이슬람 국가(IS) 대원들 사이에 ‘비틀스’로 불린 네 명의 영국 국적 박탈자들이 있었다. 알렉산다 코테이와 엘 샤피 엘셰이크는 그 중에서도 끝까지 조직에 남아 있던 대원들이다. 2014년 이라크와 시리아의 서구 사람들을 납치해 살해한 혐의로 시리아의 쿠르드계 세력에 붙잡혀 현재 이라크 주둔 미군기지에 구금돼 있다. 미국은 영국과의 수사 협력을 원했는데 이들의 손에 희생된 이들의 친척들은 사형 선고를 내릴 가능성이 높은 미국에 핵심 증거를 넘겨주면 안된다고 소송을 제기하고 나섰다. 그런데 미국 정부가 이들의 유죄가 확정되더라도 사형이 집행되지는 않을 것이란 점을 분명히 했다고 영국 BBC가 19일(현지시간) 전했다. 윌리엄 바 미국 법무장관이 프리티 파텔 영국 내무장관에게 보낸 편지에 따르면 “만약 영국이 핵심 증거를 넘기는 데 합의하면” 두 사람의 구형 단계에서 사형을 고려하지 않을 것이라고 약속했다. 둘은 IS의 납치 조직원으로 미국인 기자와 영국인 구호 활동가들을 유인해 살해했다. 희생자들을 참수하고 죽는 장면을 동영상으로 촬영해 소셜미디어에 방송하는 끔찍한 일을 했다. 영국은 두 남성이 법적으로 영국에 추방될 수 없을 것이라고 믿고 있는데 2018년에 미국이 둘을 기소하기 위해 영국이 도움되는 정보를 달라고 요청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몇몇 영국 장관들은 사형 선고에 반대하지 않으며 정보를 공유하겠다고 답했다. 그러나 엘셰이크의 어머니는 사형제에 반대하는 국제적인 추세를 영국 정부가 앞장 서 거스르는 것은 말이 안된다고 소송을 제기하는 바람에 미국과의 협력은 중단됐다. 과거에도 영국은 자국이 정보를 제공하거나 용의자를 추방한 나라가 사형 선고를 사용하지 않는 경우에만 협력해 왔다. 미국 대법원도 영국으로부터 받은 핵심 정보를 이용하게 해달라는 미국 정부의 요청은 합법적이지 않다고 판시했다. 당시 영국 정부는 사형제에 반대하는 것이 “오랜 입장”이라면서 이번 사건은 “이 남자들을 범죄자로 기소하는 것이 당면 과제”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용의자를 재판 없이 구금하는, 말썽 많은 관타나모 미군 형무소로 둘을 보내면 영국은 정보를 제공하지 않을 것이라고 다짐했다. BBC의 군사안보 전문기자 프랭크 가드너에 따르면 미국은 이 문제를 10월 중순까지 매듭짓지 못하면 이라크 정부에 넘길 것이란 경고를 들었다고 전했다. 또 살해된 서구 인질들의 친척들은 사형 언도보다 공정한 재판을 통해 이들의 죄상이 낱낱이 공개되길 바라고 있다고 했다. 임병선 평화연구소 사무국장 bsnim@seoul.co.kr
  • 여성 납치해 인질극 벌인 남성에 구속영장 신청

    여성 납치해 인질극 벌인 남성에 구속영장 신청

    여성 운전자를 납치해 7시간 동안 인질극을 벌인 남성에 대해 경찰이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서울 강동경찰서는 30대 남성 A씨에 대해 강도상해, 특수공무집행방해, 재물손괴 등의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고 14일 밝혔다. A씨는 전날 오전 서울 서초구 서초동에서 모르는 여성인 B(30)씨를 납치하고 약 7시간 동안 차에 태우고 다니며 가족에게 몸값을 요구한 혐의를 받는다. A씨는 B씨가 지하주차장에서 승용차를 몰고 나오는 틈을 타 흉기를 들이대며 차를 빼앗았다. A씨는 B씨의 남편에게 연락해 돈을 요구해 500만원을 받았지만 B씨를 풀어주지 않고 1500만원을 추가로 요구했다. B씨의 남편은 오후 3시쯤 112에 신고했고 경찰은 경찰차 40여대와 경력 130여명을 동원해 추적했다. 쫓기던 A씨는 경찰차를 들이받고 달아나려고 시도하고 경찰차가 주위를 포위하자 차에서 내려 피해자를 흉기로 위협하기도 했다. 경찰은 A씨를 진정시키며 B씨를 풀어주도록 설득했고 전날 오후 5시쯤 경기 남양주시 와부읍에서 A씨를 검거했다. A씨는 면허 없이 B씨의 차를 운전한 것으로 조사돼 도로교통법 위반(무면허 운전) 혐의도 추가됐다. 오달란 기자 dallan@seoul.co.kr
  • 다급해진 트럼프, “급여세 유예·실업수당 연장” 독자행동(종합)

    다급해진 트럼프, “급여세 유예·실업수당 연장” 독자행동(종합)

    급여세 유예 ‘연봉 10만불 이하’ 대상“재선시 급여세 영구 감면” 감세 카드학자금 융자·세입자 강제퇴거 중단도 포함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8일(현지시간) 급여세를 유예하고 추가 실업수당을 연장하는 내용의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이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추가 부양안에 대한 여야 협상이 결렬되자 독자행동에 나선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뉴저지주 베드민스터의 개인 리조트에서 한 기자회견에서 이 같은 내용의 행정명령 내용을 발표한 뒤 서명했다. 또 학자금 융자 지급 유예, 세입자 강제퇴거 중단도 포함됐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학자금 융자 구제는 연말까지 연장되며 연장 기간이 더 길어질 수도 있다. 급여세 유예는 연봉 10만달러 이하 미국인에게 적용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11월 대선에서 재선에 성공한다면 급여세에 대한 영구적 감면을 시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또 소득세 및 양도소득세에 대한 감면 문제도 살펴보고 있다고 말했다고 로이터통신이 보도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최근 지지율 하락세가 두드러지는 상황에서 대선 국면에서 감세 카드를 적극적으로 꺼내 들었다. 추가 실업수당 지급 비용의 25%는 주(州)들이 부담하게 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우리는 미국 국민의 일자리를 구하고 미국인 노동자들에게 구제책을 제공할 것”이라고 밝혔다고 AFP통신이 보도했다. 그는 펠로시 하원의장과 슈머 상원 원내대표가 이번 구제책 입법안을 인질로 삼았다고 비난하며 민주당 책임론을 거듭 제기했다. 또 민주당의 구제안은 그들이 대선을 훔치길 원한다는 점을 보여준다는 주장을 폈다. 그러나 미 헌법상 연방 지출에 대한 권한은 기본적으로 의회에 부여돼 있어 트럼프 대통령의 이날 행정명령 서명을 놓고 소송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제기됐다. 김채현 기자 chkim@seoul.co.kr
  • [데스크 시각] 권력에 취한 정의/박상숙 국제부장

    [데스크 시각] 권력에 취한 정의/박상숙 국제부장

    스페인을 38년간 통치했던 후안 카를로스 전 국왕이 ‘망명객’이 됐다. 올해 82세. 수구초심(首丘初心)이 더욱 간절해질 나이에 등 떠밀려 타향살이에 나선 건 부패 스캔들 때문이다. 6년 전 아들 필리페 6세에게 왕위를 물려준 그는 재임 시절인 2011년 고속철 사업 유치에 관여해 사우디아라비아로부터 거액의 뇌물을 수수한 혐의를 받는다. 언론의 의혹 제기가 끊이지 않고, 스페인은 물론 비자금 은닉처인 스위스에서도 관련 수사가 진행되자 궁지에 몰려 보따리를 싼 것이다. 말년은 험하지만 그래도 ‘역사상 가장 위대한 스페인인’으로 꼽혔던 위인이었다. ‘군림하되 통치하지 않는’ 상징적 존재지만 대단한 결기로 스페인의 민주화 시대를 연 공로자다. 또한 카탈루냐 분리 독립 움직임을 달래 국민통합을 이뤄낸 업적도 대단하다. 왕으로서의 삶이 처음부터 순탄했던 건 아니었다. 공화국이 들어서며 쫓겨난 왕가의 후손인 그는 출생 때부터 타국을 떠돌았다. 자신의 사후 군주제를 부활하겠다는 독재자 프랑코의 엉뚱한 결정에 느닷없이 왕위 계승자가 돼 열 살 때 처음 고국 땅을 밟았고, 1975년 대관식을 치렀지만 ‘프랑코의 꼭두각시’라는 냉대를 오랫동안 견뎌야 했다. 그가 신임을 얻게 된 계기는 1981년 군부 쿠데타를 막으면서다. 당시 반란군 일당이 탱크와 장갑차를 동원해 국회 의사당을 점거하고 의원들을 인질로 삼은 일촉즉발의 순간 카를로스 국왕은 군복을 입은 결연한 모습으로 TV에 나왔다. 결사항전을 다짐하며 반란군을 향해 “나를 총살하라”고 외친 그에게 감읍한 100만 시민이 의사당 앞에 몰려나와 쿠데타 세력을 몰아낸 건 유명한 일화다. 그는 첫 민선 총리 아돌포 수아레스를 통해 민주주의의 기틀을 다졌고, 이후에도 역대 총리들의 든든한 버팀목이 됐다. 민주주의 수호자로, 도덕적 군주로 칭송받았던 그는 이후 스스로를 몰락의 길로 내몰았다. 초심을 잃고 권력을 남용해 뒷돈을 챙기는 한편 내연녀까지 두면서 추문을 달고 살았다. 2008년 경제위기가 한창일 때 온갖 호화사치를 부려 공분을 사기도 했다. 영웅에서 재앙이 된 그에게 분노한 국민의 입에선 이제 군주제 폐지가 오르내린다. 수도 마드리드에선 국왕의 이름을 딴 대학 명칭을 바꾸자는 청원이 시작됐고, 지방도시에 있는 동상이 철거되고 거리에서는 그의 흔적이 지워질 태세다. “그는 더이상 우리 사회의 도덕적, 민주적 가치를 대표하지 못한다.” 독재 체제에 종지부를 찍은 ‘투사’에게 치욕스런 국민의 심판이 떨어진 것이다. 카를로스 국왕의 반전 인생 행로에 우리나라 민주화 ‘일부’ 세력의 현재가 오버랩된다. 이 땅의 민주주의를 위해 헌신하고 희생한 동지들을 대신해서 정치권에 진입한 과거 운동권 인사들은 지금 금융사기, 뇌물·향응, 권력형 성범죄 등의 혐의자 명단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도덕성과 정의감으로 무장했던 자신들의 과거는 어디에 내다 버렸을까. 예전에 좋은 일을 많이 했기 때문에 어느 정도 실수는 괜찮다는 ‘도덕적 면허권’은 뻔뻔한 자기 정당화로 이어지고, 자신을 돌아보는 수오지심(羞惡之心)을 탈색시켰다. “부끄러움 없는 도덕성만큼 위험한 것도 없다. 부끄러움이 없는 도덕성은 자신을 정당화하고 자기성찰과 자기비판의 기회를 박탈하기 때문이다. 부정에 저항하고 억압에서 해방되려는 운동으로 시작한 권력이 부패하는 것도 결국 자기만의 작은 정의에 취해 버렸기 때문이 아닐까?” 10년 전에 나온 역사학자 임지현의 책에서 발견한 대목이다. 정의로운 사람조차 권력을 잡으면 필연적으로 퇴행할 수밖에 없는가 보다. okaao@seoul.co.kr
  • 신현준, ‘갑질 주장’ 전 매니저 고소 “타협 안해” [입장문 전문]

    신현준, ‘갑질 주장’ 전 매니저 고소 “타협 안해” [입장문 전문]

    배우 신현준이 ‘갑질’을 당했다고 주장하는 전 매니저 김모 대표를 상대로 경찰에 고소장을 냈다. 신현준의 법률대리인 법무법인 평안은 30일 “신현준이 김 대표에 대해 허위사실을 유포해 명예를 훼손했다는 내용의 정보통신망법 위반죄로 성북경찰서에 고소장을 제출했다”고 밝혔다. 신현준도 법률대리인을 통해 낸 입장문에서 “30년 배우로 생활하며 분에 넘치는 사랑을 받았지만 어려운 일을 겪은 적도 있다”면서 “짧지 않은 경험을 통해 분명하게 말씀드릴 수 있는 건 연예인의 이미지가 훼손되는 게 얼마나 치명적인지 누구보다 잘 안다는 점”이라고 했다. 이어 “설령 거짓이라도 폭로가 거듭될수록 피해를 보는 것은 익명성 뒤에 숨어있는 폭로자가 아니라 나와 내 가족이라는 것도 잘 안다”며 고소 배경을 밝혔다. 그는 “김 대표와는 1991년쯤 처음 만나 친구가 됐지만, 과거 내 주변에 많은 폐를 끼친 것을 알게 돼 수년 전에 관계를 정리했다. 그런 사람이 수년간 잠적했다가 최근 갑자기 나타나 나에 대해 거짓된 주장을 하고 자신이 피해자라며 저를 악의적으로 흠집 내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신현준은 “적당한 선에서 좋게 마무리하라는 조언도 받았지만 나는 타협하지 않으려고 한다. 얼마나 힘든 길이 될지 알지만, 이러한 신념으로 거짓과는 타협하지 않고 옳은 길을 가겠다”고 강조했다. 앞서 김 대표도 지난 27일 신현준을 허위사실 유포와 명예훼손으로 고소한 상태라 양측은 법적 다툼을 이어갈 전망이다. 신진호 기자 sayho@seoul.co.kr 다음은 신현준 측 입장문 전문 안녕하세요. 신현준입니다. 먼저 모두가 어려운 시기에 개인적인 일로 심려를 끼쳐 드려 너무나 죄송한 마음입니다. 저 신현준은 지난 30년간 배우로 생활하며 분에 넘치는 많은 사랑을 받았습니다.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반면 어려운 일을 겪은 적도 있었습니다. 짧지 않은 경험을 통해서 분명하게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연예인의 이미지가 훼손되는 것이 얼마나 치명적인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는 점입니다. 설령 거짓이라도 폭로가 거듭될수록 피해를 보는 것은, 익명성 뒤에 숨어 있는 폭로자가 아니라 저와 제 가족이라는 것도 잘 알고 있습니다. 저와 김모씨는 1991년경 처음 만나 친구가 되었습니다. 그 인연으로 1995년부터 2000년까지 저의 로드매니저로 지냈습니다. 그 후 10년 정도 헤어졌다가 김씨가 기획사를 차렸다며 도와달라고 하여 2010년부터 6년 동안 소속 배우로 이름을 올려 주었습니다. 그러나 김씨가 과거 제 주변에 많은 폐를 끼친 것을 알게 되어 수년 전에 관계를 정리하게 되었습니다. 그런 사람이 수년간 잠적했다가 최근 갑자기 나타나, 저에 대하여 거짓된 주장을 하고 자신이 피해자라며, 저를 악의적으로 흠집 내기 시작했습니다. 저와 제 가족들은 정신적으로 엄청난 고통을 받고 있으며. 오늘 고소를 통해 당분간 힘든 나날을 지내게 될 것입니다. 적당한 선에서 좋게 마무리하라는 조언도 받았습니다. 하지만, 저는 타협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연예인의 생명과도 같은 이미지를 인질로 폭로하겠다고 협박하는 것은 용서받을 수 없는 범죄행위라고 생각합니다. 배우의 사생활을 안다는 이유만으로 그것을 악의적으로 편집해 폭로하여 사익을 챙기려는 행위도 근절되어야만 한다고 생각합니다. 얼마나 힘든 길이 될지 알지만, 이러한 신념으로 거짓과는 타협하지 않고 옳은 길을 가겠습니다. 2020. 7. 30. 신현준 올림
  • 송파강 일부 석촌호수·새벽배송 원조 송파장… 원래 강북에 속했대요

    송파강 일부 석촌호수·새벽배송 원조 송파장… 원래 강북에 속했대요

    같은 길을 걸어도 누구에게나, 언제나 같은 세상은 아니다. 서울의 과거를 찾아 색다른 미래를 바라보게 만들어 주는 서울미래유산 코스를 따라 걷다 보면 그 말이 실감 나게 다가온다. 몰랐던 역사를 알고 나니 같은 거리도 이전과 다르게 보이는 것이다. 서울신문이 서울시, 사단법인 서울도시문화연구원과 함께하는 ‘2020 서울미래유산-그랜드투어’ 제9회 ‘잠실의 추억’ 편이 지난 25일 잠실 일대에서 진행됐다. 장마철 비구름이 잠시 숨을 고르는지 신기하게도 해가 반짝하고 맑은 바람이 불어 걷기 좋은 날이었다. 이날 답사의 출발지점인 잠실 지역은 지상 123층, 높이 554.5m로 대한민국 최고층 건물인 롯데월드타워를 비롯해 초고층 아파트가 빽빽하게 들어서 서울의 마천루를 상징한다. 그런데 잠실의 현재 지형이 불과 반세기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고 하면 믿을 사람이 몇이나 될까. 예전의 그림과 사진 자료 등 물증들을 보고 또 봐도 참 믿기 어려운 일이지만 사실이다. 이 지역은 원래 뚝섬과 연결된 강북에 속했다. 우리가 눈으로 보는 잠실 쪽 한강은 ‘잠실도’라는 섬이었고, 그 섬을 에워싸며 한강의 샛강인 신천강과 송파강이 흘렀다. 아름다운 풍광과 함께 시민들의 쉼터가 된 석촌호수는 송파강의 일부였다.‘잠실’이라는 지명은 조선 초 양잠을 장려하기 위해 잠실도회가 설치돼 있던 데서 유래한다. 1930년대만 해도 잠실섬에는 온 섬에 뽕나무가 무성했다. 1945년 해방 이후 채소밭이 됐다가 1971년 한강 공유수면 매립사업으로 물막이 공사를 하면서 육지로 변했다. 이때 송파강의 일부가 남고, 그 유로가 바뀌면서 만들어진 인공호수가 석촌호수다.면적 21만 7850㎡, 평균 수심 4.5m 깊이의 호수는 송파대로를 기준으로 동서로 같은 모양의 동호와 서호로 나뉘었다. 1981년 호수 주변에 산책로와 쉼터 등 공원이 조성됐다. 동호는 새벽 조깅코스와 주변 시민들의 휴식처, 산책로로 이용되고 서호에는 롯데월드의 매직아일랜드와 서울놀이마당이 있다. 우거진 나무 사이로 호숫가를 산책하는 가족, 건강 달리기를 하는 시민들의 모습은 도심공원의 소중한 가치를 일깨워 준다. 뽕나무밭이 푸른 바다가 됐다는 상전벽해(桑田碧海)가 바로 이를 두고 한 얘기일 것이다. 진경산수화의 대가 겸재 정선이 그린 ‘송파진’을 보면 사람들이 모래사장에서 강 건너편 송파진을 바라보고 있다. 저 멀리 남한산성도 보인다. 나루터에는 배들이 정박해 있고, 나룻배가 유유히 흐르는 한강을 건너고 있다. 그림 속 유유자적한 한강이 지금의 석촌호수가 된 것이다. 잠실역 3번 출구에 서서 바라보면 예전엔 그 풍경일 테지만 저 멀리 보이는 산 말고는 그림 속 송파진을 상상하기 어렵다. 눈앞에는 서울미래유산 석촌호수가 있을 뿐이다.이런저런 상념에 사로잡혀 걷다 보면 피할 길 없는 치욕의 역사를 만나게 된다. 삼전도비(三田渡碑·사적 제101호)다. 삼전도는 1439년(세종 21년) 신설된 나루터로 한강나루, 노들나루와 함께 경강삼진(京江三津)의 하나였다. 원래 삼밭나루로 불렸던 삼전도는 한양에서 경기도 광주의 남한산성에 이르는 길목에 있었고 영남로를 지나는 상인들이 주로 이용하던 교통의 요지였다. 1636년 12월 청 태종은 대군을 이끌고 병자호란을 일으켰다. 인조는 남한산성으로 피신해 항거하다가 결국 청나라 군대가 머물던 한강가의 나루터인 삼전도로 나와 항복의식을 행했다. 항복의 조건은 청과 조선이 군신의 의를 맺고, 명의 연호를 버리며, 명나라와의 국교를 끊고, 인조의 장자와 다른 아들 및 대신들의 자제를 인질로 할 것, 청나라가 명나라를 정벌할 때 원군을 보내고, 통혼하며, 성을 보수하거나 쌓지 말 것 등 굴욕적이고 가혹한 것들이었다. 병자호란이 끝난 뒤 청 태종은 자신의 공덕을 적은 비석을 세우도록 조선에 강요했다. 인조 17년 세운 삼전도비는 제목이 ‘대청황제공덕비’(大淸皇帝功德碑)다. 비석 앞면의 왼쪽은 몽골글자, 오른쪽은 만주글자, 뒷면은 한자로 쓰였다. 비문은 이경석이 짓고 글씨는 오준이 썼으며 비의 제목은 여이징이 썼다. 침략국 황제를 칭송하는 비문의 내용을 반복할 필요는 없을 듯하다. 임금의 명에 의해 글을 지을 수밖에 없었던 백헌 이경석은 글을 배운 게 천추의 한이라며 피를 토하듯 괴로워했다고 한다. 높이 3.95m, 폭 1.4m의 한 덩어리로 된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거대한 비석을 매일 바라봤을 백성들의 마음은 또 어땠을까. 삼전도비의 수난도 끊이지 않았다. 조선 임금이 항복했던 나루터인 삼전도에 비석을 세웠지만 1894년 청일전쟁의 패배로 청이 지배권을 상실하자 더는 굴욕적인 비석을 내버려 둘 이유가 없다며 사람들은 이 비석을 강물에 던져 버렸다. 그러나 일제가 우리 민족의 굴욕을 상기시키기 위해 건져다 다시 제자리에 세웠다. 해방 후 주민들은 청나라가 만들게 하고 일본이 도로 세운 치욕적인 비석을 나라를 되찾은 마당에 그냥 둘 이유가 없다며 땅속에 묻어 버렸다. 1963년 홍수로 삼전도비가 드러나자 사적으로 지정하고 석촌동으로 옮겼으며 1981년 문화재 명칭을 ‘삼전도비’로 바꿨다. 석촌호수 주변 현재 위치로 옮겨진 것은 2010년이다.삼전도가 조선 전기에 교통의 요지로 역할을 했지만 조선 후기 들어서는 송파나루가 더 중요해진다. 송파나루는 한양에서 강원도, 광주, 이천으로 가는 아주 중요한 길목이었다. 서울 외곽을 지키는 송파진(松坡鎭)을 설치할 정도로 중요한 이곳은 사람의 왕래뿐만 아니라 한강을 타고 물자의 이동도 활발했던 곳이다. 궁궐이나 집을 짓는 데 사용되는 굵고 튼튼한 나무들이 강원도에서부터 뗏목으로 송파나루까지 왔다. 송파나루 옆에 있는 송파장은 조선 후기 전국 15대 향시에 꼽힐 정도로 번성했다. 실록의 기록을 보면 한양 내에 있던 시전을 위협할 정도였다. 서울 주변의 일반 상인들이 시전 상인들의 독점을 피해 삼남지방이나 관동지방에서 들어오는 물품들을 이곳에서 미리 사들여 많은 이익을 남기는 도가의 근거지가 됐기 때문이었다. 전국의 산해진미가 모이는 송파장에서는 우시장이 특히 유명했다. 조선 시대 사대부들이 즐겼다는 ‘효종갱’은 송파장에서 그날 잡은 소의 고기와 삼남에서 올라온 전복 등 해산물, 각종 채소를 넣어 끓인 해장국이다. 밤새 푹 끓인 효종갱을 독에 담아 식지 않도록 명주에 싸서 품에 안은 채 말을 타고 달려 사대문이 여는 시간에 맞춰 당도한 뒤 주문한 사대부 집에 배달했다고 하니 이게 바로 새벽 배송의 원조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송파장에서는 한양과 경기의 유명한 연희자들을 초청해 큰 규모의 산대놀이를 공연하곤 했다. 송파산대놀이(중요무형문화재 제49호)는 서울놀이마당 전수회관으로 이어지고 있다. 나루터 기능은 1960년대까지 뚝섬과 송파를 잇는 정기선이 운항돼 명맥을 유지하다가 강남 개발과 샛강 매립으로 사라졌지만 그 흔적을 석촌호수 동호 남단 송파대로 쪽에 ‘송파나루터’가 새겨진 표석으로 남겼다. 번성했던 송파장과 관련해 경기도 암행어사 이건창의 활약이 전해 오고 있다. 이건창이 암행어사로 활동하던 시절 송파에 들러 신분을 속인 채 장터의 장사꾼들을 만나 그들의 고충을 듣고 용기를 북돋아 줬다. 그가 떠나고 난 뒤 이건창의 신분을 알게 된 상인들이 그의 공덕과 행적을 기려 1883년 5월 장터 입구에 비석 ‘이건창영세불망비’를 세웠다. 비석은 을축년(1925년) 홍수로 유실됐다가 1979년 발견돼 현재의 위치에 세워졌다. 그 옆에는 을축년대홍수기념비가 나란히 서 있다. 을축년 대홍수는 1925년 7월 16일부터 3일간 계속돼 수도권 지역에 300~500㎜의 많은 비를 뿌렸다. 이 폭우로 한강과 임진강이 범람해 647명의 사망자와 당시 조선총독부 예산의 58%에 달하는 재산 피해를 냈다. 피해가 가장 컸던 지역은 한강변의 이촌동, 뚝섬, 송파, 잠실, 신천리, 풍납동 일대였다. 송파나루터 일대는 특히 피해가 극심해 송파장터 마을이 다 떠내려가고 마을 주민 전체가 지금의 송파동 일대로 이주했다. 수마의 무서움을 체험한 송파 나루터 주민들은 홍수 이듬해에 홍수 피해를 잊지 말고 대비하자는 의미로 기념비를 세웠다. 가락로에 있는 석촌동 고분군은 가락동·방이동 무덤과 함께 백제의 문화와 역사를 보여 주는 중요한 자료다. 일제강점기에 처음 조사가 실시됐으나 270여개에 이르는 돌무덤은 이미 원형을 잃은 지 오래였다. 가장 큰 규모의 기단식 돌무지무덤인 3호분이 그나마 원형에 가깝게 유지되고 있었으나 1983년 절반이 잘려 나가는 등 보존과는 거리가 멀었다. 뒤늦게나마 역사적 가치를 깨닫고 발굴 작업이 이뤄지고 있어 불행 중 다행이라고 할 수 있다.잠실과 송파나루 길 답사를 마무리한 곳은 2013년 서울미래유산에 선정된 가락시장이다. 을축년 대홍수로 가락동으로 옮겨간 옛 송파시장의 의미를 되살리는 가락동농수산물시장에서는 수산, 축산, 청과 등 전국 최고의 식재료가 거래된다. 특히 싱싱한 수산물이 자랑이다. 펄펄 뛰는 참돔을 회로 떠서 먹으니 쫄깃한 식감이 지극히 훌륭하다. 치욕의 역사를 간직한 삼전도비를 보며 찝찝했던 기분도 어느새 사라지고 입안에는 진한 바다향이 감돈다. 글 함혜리 칼럼니스트사진 김학영 서울도시문화연구원 연구위원 ●다음 일정 : 제10회 삼청동 ●출발 일시 : 8월 1일 오전 10시 출발 ●신청(무료) : 서울미래유산 홈페이지(futureheritage.seoul.go.kr) ●문의 : 서울도시문화연구원(www.suci.kr)
  • “시드니 유학 친척의 이런 사진 받더라도 당황하지 마세요”

    “시드니 유학 친척의 이런 사진 받더라도 당황하지 마세요”

    호주 시드니의 중국인 유학생들이 몇백만 달러의 몸값을 요구하는 ‘납치 상황극’의 타깃이 되고 있다고 뉴사우스웨일즈(NSW) 경찰이 유의해줄 것을 당부했다. 올해 벌써 여덟 건의 가짜 납치극이 발생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이 가운데 실제로 한 사례에서는 200만 호주달러(약 17억원)가 중국 본토에서 송금됐다고 영국 BBC가 27일 전했다. 경찰에 따르면 피해자들은 가까운 친척 유학생이 머나먼 타국에서 영락 없이 봉변을 당하고 있다고 느꼈다고 털어놓았다. 수사 결과를 종합하면 중국 대사관이나 다른 기관원을 사칭한 사기꾼들은 학생들의 개인 정보가 도용 당했거나 중국에서의 범죄에 연루됐다고 겁을 준다. 주로 만다린 어을 구사하는 용의자들은 체포되거나 송환되는 일을 피하려면 수수료를 지불해야 한다고 요구한다. 일부 학생들은 이 와중에 가족이나 친구들과의 연락을 끊고 호텔 객실을 임대해 인질로 붙잡힌 것처럼 꾸며 돈을 보내달라고 해외에 있는 친척들에게 요구한다는 것이다. 앞의 200만 호주달러를 송금한 아버지는 딸이 알려지지 않은 장소에 끌려가 괴롭힘을 당하고 있다는 동영상을 전달받기도 전에 벌써 몸값을 지불해 버렸다. 그 뒤 그는 시드니 경찰과 접촉해 한 시간 동안 수색 작업을 벌인 결과 그녀 건강에 아무런 문제가 없으며 병원에서 잘 지내는 것을 확인했다.별도의 사건에서 중국의 가족들이 딸이 인질로 붙잡혀 있다고 판단해 30만 호주달러(약 2억5591만원) 이상을 송금한 일도 있었다. 많은 사례들에서 경찰은 다음날 아무런 일도 없는 피해자를 발견하곤 했다. 이에 따라 피해자들은 범죄 신고를 한 데 대해 당황하거나 부끄러워했다고 방송은 전했다. 호주 경찰은 이런 일이 호주에서 뿐만 아니라 뉴질랜드와 미국을 비롯해 전 세계에서 신고되고 있으며 취약한 계층을 착취하기 위해 점점 더 다국적으로 치밀하게 조직된 범죄 양상을 띤다고 지적했다. NSW 경찰은 “학생들은 이런 범죄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그런 일이 엄존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하고, 본인들이나 자신들이 안다고 생각했던 사람에게 일어나면 재빨리 도움을 청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임병선 평화연구소 사무국장 bsnim@seoul.co.kr
  • “생계형 해적들이 납치” 피랍 32일만에 석방 한국선원 5명

    “생계형 해적들이 납치” 피랍 32일만에 석방 한국선원 5명

    서아프리카 베냉 앞바다에서 나이지리아 해적에 납치된 지 32일 만에 지난 24일(현지시간) 무사히 풀려난 한국인 선원 5명이 소감을 밝혔다. 26일 주나이리지아 한국대사관(대사 이인태)에 따르면 석방된 선원 5명 가운데 한 명의 첫 질문은 “우리 피랍뉴스가 한국에 나갔나요”라면서 오히려 한국에 계신 팔순 노모를 걱정했다. 이들은 지난 6월 24일 참치 조업을 하던 ‘파노피 프런티어’호를 타고 있다가 납치됐다. 선장은 “석방 직후 가족과 통화에서 결혼생활 30년 만에 처음으로 아내가 울면서 감격했다. 피랍기간에 무사히 버틸 수 있었던 건 가족의 힘”이라며 눈물을 글썽글썽했다고 이인태 대사가 전했다. 이들이 같은 배에 타고 있던 가나인 한 명과 함께 스피드보트를 이용한 해적들에 끌려간 곳은 나이지리아 남동부 델타지역이며 그곳 해적 세력은 30∼40명인 것으로 알려졌다. 인질의 몸값을 요구하는 전형적인 생계형 해적들이었다. 선원들은 그동안 울창한 맹그로브 나무 밑에 바나나 잎으로 허름하게 지어진 숙소인 움막집에서 생활한 것으로 전해졌다. 마침 우기라 모기들이 없어 선원들은 다행히 말라리아에 걸리지는 않았지만, 개미들에게 물리고 가려움증에 시달렸다. 식사는 하루 두 끼 정도 인도미 라면만 주어졌고 총을 들고 무장한 해적들의 감시를 받았다. 해적들은 마약을 해 어떤 행동을 할지 몰라 더 위험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성수 주가나 한국대사는 “해적들이 ‘선원들을 영영 못 볼 수 있다’고 협박하기도 했다”면서 “국민의 생명이 달린 문제라 긴장의 연속이었다”고 전했다. 선원 송출회사는 부산에 있고 가나에는 법인이 있다. 석방된 한 선원도 “대사 차량기와 영사 조끼에 달린 태극기를 보는 순간 한 달 넘게 괴롭히던 긴장이 순식간에 풀려버렸다”면서 석방을 위해 노력해준 정부와 외교부, 나이지리아 대사관에 감사한다고 말했다. 나이지리아 대사관이 마련한 안전 숙소에서 생활하고 있는 선원들은 코로나바이러스 유전자증폭(PCR) 진단검사에서 모두 음성으로 나왔다. 함께 풀려난 가나인 동료도 병원 검진을 받고 가나 영사에게 인계됐다. 선원들이 납치된 기니만은 해적들이 자주 출몰하는,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바다다. 김채현 기자 chkim@seoul.co.kr
  • [씨줄날줄] 영사관 폐쇄와 문서 소각/임병선 논설위원

    [씨줄날줄] 영사관 폐쇄와 문서 소각/임병선 논설위원

    미국 정부가 휴스턴 주재 중국 총영사관을 72시간 안에 폐쇄하라고 21일(현지시간) 통보하자 중국 영사관 외교관들이 다음날 안마당에서 기밀문서를 태우는 모습이 동영상으로까지 공개됐다. 사정을 잘 모르는 미국시민들은 ‘중국이 구린 게 많나 보네’라고 생각할 만하다. 그러나 1975년 4월 베트남전쟁 종전을 며칠 앞둔 사이공(현 호찌민) 주재 미국 대사관에서 비슷한 일이 벌어졌다. 옥상에서는 헬리콥터가 분주히 날아들어 사람들을 피신시키는데 대사관 직원들은 지하 등에서 기밀문서를 단 하나라도 남겨선 안 되겠다는 각오로 불태우고 있었다. 당시 미국 대사관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대한민국 대사관의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사실 국교 단절이나 전쟁이 일어나기 직전 상대국에 주재하는 대사관과 영사관의 외교 문서를 소각하는 일은 기본 중 기본이다. 2차 대전을 태평양전쟁으로 이끈 진주만 침공 직전 미국 주재 일본 대사관과 일본 주재 미국 대사관도 그랬다. 1979년 11월 4일 이란 주재 미국 대사관 인질 사건 때 대사관 직원들이 파쇄기를 이용해 문서들을 갈아 버리는 모습은 영화 ‘아르고’에 긴박하게 담겨 있다. 당시 소각로가 고장 나 대사관 건너 가게에서 세로로만 잘리는 싸구려 파쇄기를 구입해 이용하는 바람에 이란 정부가 대학생 아르바이트들을 동원해 일일이 짜맞춰 CIA 문서의 기밀이 낱낱이 폭로되고 말았다. 오죽하면 미 국방부 산하 방위고등연구계획국(DARPA)이 파쇄 문서 복원 대회를 열기까지 할까? 기밀 보호는 파쇄기 대신 소각로를 써야 한다는 값비싼 교훈을 얘기하는 이들도 있다. 먼 과거로 시계를 돌릴 일도 없다. 2011년 5월 1일 오사마 빈라덴 사살 작전을 백악관 비상상황실에서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과 조 바이든 전 부통령이 지켜보는데 오바마 전 대통령의 무릎 옆에 소각 봉투가 비치된 장면이 언론에 노출됐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도 소각 봉투를 옆에 둔 채 사진을 찍힌 적이 있다. 휴스턴 중국 총영사관은 ‘핑퐁외교’로 미중이 1979년 수교 후 처음 설치됐다는 상징성이 있다. 코로나19 백신 정보를 해킹한 것으로 의심받는 인물들이 이 영사관과 연결돼 있어 트럼프 행정부가 첫 타깃으로 삼았다는 분석도 있다. 상대 외교관들을 추방하는 볼썽사나운 싸움이 시간문제가 되고 있다. 미국민이야 짐짓 놀랍다는 반응을 보일 수 있지만, 미국 언론까지 그런다면 위선적이다. 미중 무역전쟁의 합의는 이번 일로 또 깨질지도 모른다. 중국도 주중 미국영사관 폐쇄를 예고했다. 미중 갈등의 불똥이 어디로 튈까 걱정이다. bsnim@seoul.co.kr
  • IS에 참수당한 英 희생자 딸 “IS 신부 베굼은 시한폭탄”

    IS에 참수당한 英 희생자 딸 “IS 신부 베굼은 시한폭탄”

    지난 2014년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에 인질로 잡힌 후 참수당한 영국인 구호요원의 딸이 일명 'IS 신부'인 샤미마 베굼(20)의 영국행에 대한 분노의 목소리를 감추지 못했다. 21일(현지시간) 영국 데일리메일 등 현지언론은 영국인 구호요원 데이비드 헤인즈의 딸 배서니(23)가 베굼의 영국행을 허락해서는 안된다고 밝혔고 보도했다. 6년 전 목숨을 잃은 배서니의 아버지인 데이비드는 2013년 이탈리아인 동료 등과 시리아 난민캠프 부지를 둘러보고 터키로 돌아가다 무장괴한에게 납치됐다. 이후 테러리스트와는 몸값 협상을 벌이지 않는다는 영국 정부의 원칙에 따라 계속 억류된 그는 2014년 9월 IS에 의해 참수당했다. 특히 이 장면은 동영상으로 공개돼 전세계에 큰 충격을 안겼다. 그로부터 6년이 흐른 최근 이 사건이 다시 불거진 것은 ‘IS 신부‘로 불린 베굼이 고향인 영국으로 돌아올 수 있는 길이 열렸기 때문이다. 런던 출신인 베굼은 15세 시절이던 지난 2015년 2월 학교 친구 2명과 함께 시리아로 건너간 뒤 IS에 합류했다. 이후 IS를 위해 활동하던 그는 네덜란드 출신 IS 조직원과 결혼해 아이 3명을 낳았다. 그러나 IS가 패퇴하면서 오갈 데가 없어지자 그가 있을 곳은 시리아 난민촌 밖에 없었다. 이에 베굼은 다시 런던의 집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밝혔으나 영국 정부은 단박에 거절했고 이후 법적 소송이 이어졌다.특히 지난 16일 항소법원은 베굼이 공정하고 효과적으로 이의를 제기할 수 있도록 영국 입국을 허용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법원은 “이번 사건에서 공정과 정의가 국가 안보 우려보다 더 귀중하다”고 밝혔다. 이에 내무부 측은 “법원의 결정에 매우 실망했으며 이를 받아들일 수 없다”며 항소의 뜻을 밝혔다. 이같은 사실이 알려지자 영국 내 여론은 들끓었으며 그 가운데 유가족인 배서니의 분노는 가장 컸다. 배서니는 "지난해 그들의 사고방식을 이해해보려고 시리아 캠프를 찾아간 바 있다"면서 "IS에 대한 강한 유대감과 충성을 가진 사람을 만난다는 사실에 불안했지만 이는 옳은 일이었다"고 털어놨다. 이어 "이중 베굼을 만날 기회가 있었지만 단호히 거절했다"면서 "베굼은 여전히 영국에 대한 강한 증오심을 갖고있다. 똑딱거리는 시한폭탄"이라고 덧붙였다. 박종익 기자 pji@seoul.co.kr
  • “중국 ‘여우 사냥’ 표적 미국 시민권자에 귀국 협박한다”

    “중국 ‘여우 사냥’ 표적 미국 시민권자에 귀국 협박한다”

    FBI 국장 싱크탱크 연설서 주장… “해외 인사 검열”중국 정부가 미국에 사는 중국계 시민권자들에게 귀국하라고 협박한다고 미국 연방수사국(FBI) 국장이 주장했다. 중국 귀환의 협박 대상은 중국 장부 당국의 광범위한 ‘여우 사냥’을 피해 미국으로 건너간 이들이다. 크리스토퍼 레이 FBI 국장은 7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에 있는 싱크탱크인 허드슨 연구소 강연에서 “여기 미국에 ‘여우 사냥’의 희생자 수백명이 살고 있으며, 이들 상당수는 미국 시민이거나 영주권자”라며 “중국 정부는 이들이 돌아오도록 강요하고 있으며, 이를 실행하는 중국 전략은 쇼킹하다”고 주장했다. 여우 사냥은 2014년 시진핑 국가주석 등장과 함께 부패 척결을 명목으로 내세웠지만 실제로는 정적과 체제 비판자들을 제거한다는 비판을 받았다. 여우 사냥의 표적이 된 상당수가 미국으로 피신했다. 중국에 남은 가족 통해 협박… 인질로 체포되기도중국 대사관은 레이 국장의 연설에 대해 코멘트를 요청했으나 발언하지 않았다고 로이터통신이 전했다. 레이 국장은 중국 정부가 미국에 사는 여우 사냥 표적의 가족에게 밀사를 보내 “표적은 두가지 선택이 있다. 중국으로 돌아가든지, 자살하라”는 메시지를 남겼다고 말했다. 표적의 사는 위치를 확인하지 못해 중국 당국 관계자가 가족이 사는 집을 방문한 것이다. 그는 표적이 중국 귀환을 거부하면 “미국과 중국에 있는 가족이 협박받고 강요당하며, 중국에 남아 있는 가족들이 인질로 체포되기도 한다”고 전했다. 이런 작전의 궁극적인 목표는 해외에서 활동하는 비평가와 반체제 인사들을 검열하고 압박하려는 것이라도 했다. 한편 레이 국장은 FBI가 현재 중국과 관련해 2000건 이상을 수사하고 있으며 이 가운데 절반 이상은 지식재산권 절도 사건이고, 나머지 절반은 다양한 형태의 방첩 활동이라고 밝혔다. FBI는 평균 10시간마다 중국과 관련된 새로운 방첩 수사를 시작한다고도 했다. 중국 당국은 미국에서 사이버 절도 및 첩보 활동을 부인했다고 로이터통신이 전했다. 이기철 선임기자 chuli@seoul.co.kr
  • [세상의 밑변] 삼성 상대 ‘부당해고 사과’ 받아낸 두 사람의 투쟁 이야기

    [세상의 밑변] 삼성 상대 ‘부당해고 사과’ 받아낸 두 사람의 투쟁 이야기

    “김씨 지키려고 노동자와 연대 뜻 이뤄 자부심” ‘삼성해고노동자공대위대표’ 임미리 고려대 연구교수 “어떻게든 살아 삼성의 잘못을 고치고 싶었다”25m 높이 CCTV 철탑서 355일 농성 노동자 김용희씨‘철탑 위 인간 새.’ 세상은 355일간 서울 강남역 한복판 25m 높이의 폐쇄회로(CC)TV 철탑에 올라가 고공농성을 한 삼성 해고노동자 김용희(61)씨를 이렇게 불렀다. 새둥지 같은 좁은 공간에서 김씨는 사계절을 보냈다. 김씨가 기습적으로 철탑에 오른 건 지난해 6월 10일 새벽 5시. 김씨가 95년 노조를 설립하려 한다는 이유로 2차 해고된 지 24년째 된 때였다. 당시 김씨는 삼성생명 빌딩 앞에서 부당해고에 대한 사과와 복직 요구를 위한 노숙 투쟁을 2년째 이어 오고 있었다. 단식투쟁도 여러 번 한 상태였다. 최근 서울신문과 만난 김씨는 “철탑에 오르기 일주일 전부터 단식을 시작하며 마음의 준비를 했지만 잠이 오지 않더라”면서 “철탑에 오른다면 다시는 살아 내려오지 못할 거라 생각했다. 삼성과 이미 싸워 봤기에, 이길 수 없을 것 같았다”고 회상했다. 철탑은 목숨을 건 김씨의 최후의 방법이었다. 그런 그가 지난달 29일 힘겨운 투쟁 끝에 삼성과 합의하고 지상에 발을 디뎠다. 철탑 위 김씨는 물론 지상에서 김씨를 위해 애쓴 동지들이 일군 승리였다. 서울신문은 김씨와 임미리(53) 고려대 연구교수·정치학 박사를 만나 고공농성과 그 이후에 대해 들었다. 임 교수는 지난 4월 중순부터 ‘김용희 삼성해고노동자 고공농성 공동대책위원회’(공대위) 대표직을 맡아 삼성과 막판 협상을 했다. ●진료 받으면 투쟁현장 못 갈까봐 병원 안 갔다 고공농성 해제 뒤 만난 김씨는 말끔했지만 야윈 얼굴을 가리진 못했다. 철탑에서 내려온 김씨는 바빴다. 전국 투쟁사업장을 찾아 연대 투쟁을 했고, 전태일 열사 묘역도 참배했다. 김씨는 “철탑에 홀로 있을 때 너무 외로웠다. 내려오자마자 전국에서 외로이 투쟁하는 동지들에게 힘을 보태고 싶었다”면서 “철탑 위에서 힘들 때마다 전태일 평전을 읽고 ‘나는 어떻게든 살아서 삼성의 잘못된 부분을 바로잡겠다’며 마음을 다잡았다”고 했다. 주변 사람들은 ‘병원 진료를 받아야 한다’고 말렸지만 김씨는 “한 번 병원에 가면 그 뒤로 다시 투쟁 현장에 나서지 못하더라”며 고개를 저었다. 김씨는 철탑 위에서 수차례 곡기를 끊었다. 식사를 제대로 못 해 건강이 악화했다. 공황장애와 난청도 얻었다. 김씨는 25년간의 투쟁에서 “얻은 것보다 잃은 것이 더 많았다”고 돌아봤다. 김씨는 1982년 삼성항공 창원 1공장에 입사했다. 1989년 경남 지역 삼성계열사 노조설립 추진위원장으로 활동하면서 1991년 1차 부당해고를 당했다. 1994년 복직됐지만 노조설립을 포기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일년 만에 또다시 해고됐다. 김씨는 “인생을 통째로 바쳤다. 30대 초반에 해고돼 61살이 되어서야 끝났다”며 “올바른 정의가 배척당했다는 삶에 대한 분노가 때때로 아이들에게 영향을 미친 것 같아 미안하다”고 했다. 김씨의 희생은 삼성을 움직였다. 임 교수는 “김씨의 생명을 지키려는 여러 동지들의 연대로 삼성을 한 발자국 뒤로 물러나게 했다는 데 자부심을 느꼈다”고 했다. 삼성과의 협상 내용은 비공개 사안이다. 다만 삼성은 공개사과문에서 “김용희님은 해고 이후 노동운동 과정에서 회사와 갈등을 겪었고 그 고통과 아픔이 치유되지 않았다”며 “회사가 그 아픔을 적극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노력이 부족했다”고 밝혔다. 이재용 삼성 부회장은 그보다 앞선 대국민 사과에서 경영권 승계 논란, 노사 문제 등을 사과하고 “대한민국 국격에 어울리는 새로운 삼성을 만들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김씨와의 고공농성 해제 합의는 그 구상의 첫 성과로 평가된다.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고공농성 초반에는 국회의원들이 김씨를 찾아오는 등 사회적 관심이 쏠리기도 했다. 그 덕분에 삼성과 몇 차례 협상을 위해 만났지만 양측의 간극이 커 엎어지기를 반복했다. 철탑 위 김씨는 지쳐 갔다. 그러다가 지난 3월 임 교수가 김씨의 부탁으로 공대위에 합류하면서 삼성과의 협상 테이블이 다시 마련되기 시작했다. 임 교수는 “극한의 상황에 놓인 김용희라는 노동자의 생명을 한시라도 빨리 구하려면, 김씨가 살아 내려올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했다”면서 “‘한 사람의 생명을 구하는 것은 온 세상을 구하는 일’이라는 말처럼 다른 어떤 대의보다 노동자의 생존권을 지키고 싶었다”고 했다. ●함께한 이재용씨 배척한 듯 해석돼 내게 상처 임 교수는 김씨의 고공농성을 외면하는 국내 언론 대신 외신에 적극 알렸고, 철탑 밑으로 내려올 수 없는 김씨를 대신해 이 부회장 집 앞 등에서 농성을 이어 갔다. 동시에 4월 말부터는 삼성과 협상안을 주고받으며 양측 이견을 조율했다. 임 교수는 “중간에 삼성의 연락이 잠시 끊겼을 땐 ‘김씨의 생명을 인질로 삼고 협상을 의도적으로 지연시키는 것인가’ 하는 의구심까지 들었다”고 회상했다. 기다림과 협상의 줄다리기가 계속되면서 임 교수는 “삼성 측의 지연이 의도적인 게 아니라 노사협상의 경험이 없느 데서 오는 서투름과 관료주의적 문화로 인한 것임을 알게 됐다”고 했다. 협상에 나선 삼성 측에서도 “어느 순간부터 철탑 위 김씨가 보여 마음이 불편해 창문을 열고 싶지 않았다”는 이야기가 나왔다고 한다. 임 교수는 “삼성 역시 이 과정을 통해 노사 관계에 대해 돌아볼 기회가 되지 않았나 싶다”고 했다. 일각에선 김씨의 투쟁을 곱게 보지 않는다. 김씨가 처음 고공농성을 시작했을 때 함께한 해고노동자 이재용씨에 대한 협상이 함께 이뤄졌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철탑 아래에서 김씨의 투쟁을 도왔던 이씨는 협상 타결 약 두 달 전 투쟁을 접고 고향으로 내려갔다. 김씨와 임 교수 모두 이러한 지적을 알고 있다. 김씨는 “이씨가 고향으로 내려간 사실을 철탑 위에서 뒤늦게 알았고 이후 삼성과의 협상에서도 이씨 문제 역시 의제로 다루고 싶은 마음이 있었으나 결과적으로는 잘되지 않았다. 그것이 이씨를 배척한 것으로 해석돼 일부 동지들로부터 비난을 받는 것은 내게도 상처”라고 했다. 함께 연대한 하성애 공대위 집행위원장은 “김씨와 이씨는 투쟁 방식에서도, 삼성과의 협상 요구 조건에서도 차이가 있었다”면서 “이번에 이씨 문제까지 해결되지 못해 아쉬운 마음이지만 그것이 김씨를 비난할 이유는 되지 못한다”고 했다.●연대 경험, 선례 되길… 동지 위해 힘쓸 것 김씨와 임 교수는 모두 “이번 승리가 앞으로의 선례가 되길 바란다”고 했다. 임 교수는 “앞으로 직접적으로 투쟁에 뛰어드는 것은 다시는 없을 일이겠지만, 이번 투쟁은 우리 자신도 ‘오합지졸’이라 불렀을 만큼 노동운동 경험이 없는 일반인들의 연대로 이끌어 나갔다”면서 “이 연대의 경험이 선례가 되길 바란다”고 했다. 긴 투쟁 끝에 땅을 밟은 김씨 역시 ‘연대’를 먼저 말했다. 김씨는 지난달 29일 철탑 아래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제 문제보다 삼성 암보험 문제가 먼저 해결되길 기도하고 기도했다. 부끄러워서 암 환우님들과 눈을 못 맞추겠다. 과천 철거민 문제에도 삼성이 사회적 책임을 다할 수 있도록 관심을 부탁한다”고 말했다. 그간 철탑에 있던 김씨를 아래에서 자기 일처럼 챙긴 보암모(보험사에대응하는암환우모임)와 과천 철거민들에 대한 미안함과 고마움의 표현이었다. 김씨는 자신의 투쟁은 끝나지 않았다고 했다. 김씨는 “동지들의 연대와 애정, 관심 덕에 나의 문제가 해결될 수 있었다. 나 역시 살아 있는 동안에는 나처럼 힘들게 싸우는 동지들을 위해 힘쓰고 싶다”고 강조했다. 이근아 기자 leegeunah@seoul.co.kr
  • ‘355일간 고공투쟁 이야기’ 삼성 해고노동자 김용희·막판 협상 이끈 임미리 교수 인터뷰

    ‘355일간 고공투쟁 이야기’ 삼성 해고노동자 김용희·막판 협상 이끈 임미리 교수 인터뷰

    삼성 상대로 부당해고 사과 받은 두 사람의 투쟁 이야기‘철탑 위 인간 새.’ 세상은 355일간 서울 강남역 한복판 25m 높이의 폐쇄회로(CC)TV 철탑에 올라가 고공농성을 한 삼성 해고노동자 김용희(61)씨를 이렇게 불렀다. 새둥지 같은 좁은 공간에서 김씨는 사계절을 보냈다. 김씨가 기습적으로 철탑에 오른 건 지난해 6월 10일 새벽 5시. 김씨가 95년 노조를 설립하려 한다는 이유로 2차 해고된 지 24년째 된 때였다. 당시 김씨는 삼성생명 빌딩 앞에서 부당해고에 대한 사과와 복직 요구를 위한 노숙 투쟁을 2년째 이어 오고 있었다. 단식투쟁도 여러 번 한 상태였다.최근 서울신문과 만난 김씨는 “철탑에 오르기 일주일 전부터 단식을 시작하며 마음의 준비를 했지만 잠이 오지 않더라”면서 “철탑에 오른다면 다시는 살아 내려오지 못할 거라 생각했다. 삼성과 이미 싸워 봤기에, 이길 수 없을 것 같았다”고 회상했다. 철탑은 목숨을 건 김씨의 최후의 방법이었다. 그런 그가 지난달 29일 힘겨운 투쟁 끝에 삼성과 합의하고 지상에 발을 디뎠다. 철탑 위 김씨는 물론 지상에서 김씨를 위해 애쓴 동지들이 일군 승리였다. 서울신문은 김씨와 임미리(53) 고려대 연구교수·정치학 박사를 만나 고공농성과 그 이후에 대해 들었다. 임 교수는 지난 4월 중순부터 ‘김용희 삼성해고노동자 고공농성 공동대책위원회’(공대위) 대표직을 맡아 삼성과 막판 협상을 했다. 김용희 “나홀로 투쟁하는 동지들 돕겠다” 고공농성 해제 뒤 만난 김씨는 말끔했지만 야윈 얼굴을 가리진 못했다. 철탑에서 내려온 김씨는 바빴다. 전국 투쟁사업장을 찾아 연대 투쟁을 했고, 전태일 열사 묘역도 참배했다. 김씨는 “철탑에 홀로 있을 때 너무 외로웠다. 내려오자마자 전국에서 외로이 투쟁하는 동지들에게 힘을 보태고 싶었다”면서 “철탑 위에서 힘들 때마다 전태일 평전을 읽고 ‘나는 어떻게든 살아서 삼성의 잘못된 부분을 바로잡겠다’며 마음을 다잡았다”고 했다. 주변 사람들은 ‘병원 진료를 받아야 한다’고 말렸지만 김씨는 “한 번 병원에 가면 그 뒤로 다시 투쟁 현장에 나서지 못하더라”며 고개를 저었다. 김씨는 철탑 위에서 수차례 곡기를 끊었다. 식사를 제대로 못 해 건강이 악화했다. 공황장애와 난청도 얻었다. 김씨는 25년간의 투쟁에서 “얻은 것보다 잃은 것이 더 많았다”고 돌아봤다. 김씨는 1982년 삼성항공 창원 1공장에 입사했다. 1989년 경남 지역 삼성계열사 노조설립 추진위원장으로 활동하면서 1991년 1차 부당해고를 당했다. 1994년 복직됐지만 노조설립을 포기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일년 만에 또다시 해고됐다. 김씨는 “인생을 통째로 바쳤다. 30대 초반에 해고돼 61살이 되어서야 끝났다”며 “올바른 정의가 배척당했다는 삶에 대한 분노가 때때로 아이들에게 영향을 미친 것 같아 미안하다”고 했다.임 교수 “성역 같던 삼성 이겼다는 자부심” 김씨의 희생은 삼성을 움직였다. 임 교수는 “김씨의 생명을 지키려는 여러 동지들의 연대로 삼성을 한 발자국 뒤로 물러나게 했다는 데 자부심을 느꼈다”고 했다. 삼성과의 협상 내용은 비공개 사안이다. 다만 삼성은 공개사과문에서 “김용희님은 해고 이후 노동운동 과정에서 회사와 갈등을 겪었고 그 고통과 아픔이 치유되지 않았다”며 “회사가 그 아픔을 적극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노력이 부족했다”고 밝혔다. 이재용 삼성 부회장은 그보다 앞선 대국민 사과에서 경영권 승계 논란, 노사 문제 등을 사과하고 “대한민국 국격에 어울리는 새로운 삼성을 만들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김씨와의 고공농성 해제 합의는 그 구상의 첫 성과로 평가된다.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고공농성 초반에는 국회의원들이 김씨를 찾아오는 등 사회적 관심이 쏠리기도 했다. 그 덕분에 삼성과 몇 차례 협상을 위해 만났지만 양측의 간극이 커 엎어지기를 반복했다. 철탑 위 김씨는 지쳐 갔다. 그러다가 지난 3월 임 교수가 김씨의 부탁으로 공대위에 합류하면서 삼성과의 협상 테이블이 다시 마련되기 시작했다. 임 교수는 “극한의 상황에 놓인 김용희라는 노동자의 생명을 한시라도 빨리 구하려면, 김씨가 살아 내려올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했다”면서 “‘한 사람의 생명을 구하는 것은 온 세상을 구하는 일’이라는 말처럼 다른 어떤 대의보다 노동자의 생존권을 지키고 싶었다”고 했다. 임 교수는 김씨의 고공농성을 외면하는 국내 언론 대신 외신에 적극 알렸고, 철탑 밑으로 내려올 수 없는 김씨를 대신해 이 부회장 집 앞 등에서 농성을 이어 갔다. 동시에 4월 말부터는 삼성과 협상안을 주고받으며 양측 이견을 조율했다. 임 교수는 “중간에 삼성의 연락이 잠시 끊겼을 땐 ‘김씨의 생명을 인질로 삼고 협상을 의도적으로 지연시키는 것인가‘ 하는 의구심까지 들었다”고 회상했다. 기다림과 협상의 줄다리가 계속되면서 임 교수는 “삼성 측의 지연이 의도적인 게 아니라 노사협상의 경험이 없느 데서 오는 서투름과 관료주의적 문화로 인한 것임을 알게 됐다”고 했다. 협상에 나선 삼성 측에서도 “어느 순간부터 철탑 위 김씨가 보여 마음이 불편해 창문을 열고 싶지 않았다”는 이야기가 나왔다고 한다. 임 교수는 “삼성 역시 이 과정을 통해 노사 관계에 대해 돌아볼 기회가 되지 않았나 싶다”고 했다. 김용희의 투쟁은 계속된다 일각에선 김씨의 투쟁을 곱게 보지 않는다. 김씨가 처음 고공농성을 시작했을 때 함께한 해고노동자 이재용씨에 대한 협상이 함께 이뤄졌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철탑 아래에서 김씨의 투쟁을 도왔던 이씨는 협상 타결 약 두 달 전 투쟁을 접고 고향으로 내려갔다. 김씨와 임 교수 모두 이러한 지적을 알고 있다. 김씨는 “이씨가 고향으로 내려간 사실을 철탑 위에서 뒤늦게 알았고 이후 삼성과의 협상에서도 이씨 문제 역시 의제로 다루고 싶은 마음이 있었으나 결과적으로는 잘되지 않았다. 그것이 이씨를 배척한 것으로 해석돼 일부 동지들로부터 비난을 받는 것은 내게도 상처”라고 했다. 함께 연대한 하성애 공대위 집행위원장은 “김씨와 이씨는 투쟁 방식에서도, 삼성과의 협상 요구 조건에서도 차이가 있었다”면서 “이번에 이씨 문제까지 해결되지 못해 아쉬운 마음이지만 그것이 김씨를 비난할 이유는 되지 못한다”고 했다.김씨와 임 교수는 모두 “이번 승리가 앞으로의 선례가 되길 바란다”고 했다. 임 교수는 “앞으로 직접적으로 투쟁에 뛰어드는 것은 다시는 없을 일이겠지만, 이번 투쟁은 우리 자신도 ‘오합지졸’이라 불렀을 만큼 노동운동 경험이 없는 일반인들의 연대로 이끌어 나갔다”면서 “이 연대의 경험이 선례가 되길 바란다”고 했다. 긴 투쟁 끝에 땅을 밟은 김씨 역시 ‘연대’를 먼저 말했다. 김씨는 지난달 29일 철탑 아래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제 문제보다 삼성 암보험 문제가 먼저 해결되길 기도하고 기도했다. 부끄러워서 암 환우님들과 눈을 못 맞추겠다. 과천 철거민 문제에도 삼성이 사회적 책임을 다할 수 있도록 관심을 부탁한다”고 말했다. 그간 철탑에 있던 김씨를 아래에서 자기 일처럼 챙긴 보암모(보험사에대응하는암환우모임)와 과천 철거민들에 대한 미안함과 고마움의 표현이었다. 김씨는 자신의 투쟁은 끝나지 않았다고 했다. 김씨는 “동지들의 연대와 애정, 관심 덕에 나의 문제가 해결될 수 있었다. 나 역시 살아 있는 동안에는 나처럼 힘들게 싸우는 동지들을 위해 힘쓰고 싶다”고 강조했다. 이근아 기자 leegeunah@seoul.co.kr
  • 김부겸 “우리 정치, 밥값 좀 하자” 일침

    김부겸 “우리 정치, 밥값 좀 하자” 일침

    21대 국회가 임기를 시작한 지 한달이 다 되도록 정상 가동되지 못하고 있는 가운데 원외인 더불어민주당 김부겸 전 의원이 “국회가 존재하는 이유가 뭐겠나. 우리 정치, 밥값 좀 하자”고 야당에 일침을 가했다. 김 전 의원은 28일 페이스북에 “역대 최대 35조원대 3차 추가경정예산안이 국회에 제출된 지 3주가 지났지만 심의절차조차 시작하지 못하고 있다”면서 “문재인 정부의 3차 추경안은 수백만 국민의 생계가 달린 중대한 ‘민생추경’이지만, 미래통합당의 보이콧으로 ‘민생외면’ 국회가 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김 전 의원은 3차 추경안의 세부 내용을 전한 뒤 “민생은 결코 상임위원장 나눠먹기 협상의 인질이 아니다”며 “절벽에 내몰린 수백만 국민의 절박한 목소리가 보이지 않느냐”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민생 추경을 위한 전면적인 국회정상화를 강력히 촉구한다”며 “우선 추경안 심사를 위한 예결위만이라도 하루 빨리 가동해 달라”고 촉구했다. 강병철 기자 bckang@seoul.co.kr
  • 트럼프와 협상할까, 바이든을 기다릴까… 세계가 딜레마에 빠졌다

    트럼프와 협상할까, 바이든을 기다릴까… 세계가 딜레마에 빠졌다

    오는 11월로 예정된 미국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전 세계의 행보가 조심스러워지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재임하면 펼쳐질 수 있는 더욱 강경한 협상을 피하기 위해 지금 거래를 마무리해야 할까, 아니면 민주당 후보인 조 바이든 전 부통령을 기다려야 할까’를 두고 미국의 동맹국들이 딜레마에 빠졌다고 블룸버그통신이 23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이런 딜레마는 트럼프가 지난 5일에 이란이 미국 인질 석방을 축하하는 트윗을 날리면서 스스로 키운 측면이 있다. 트럼프는 트윗에서 “미 대선 후까지 협상을 기다리지 마라”며 “나는 이긴다. 여러분은 지금 협상하는 것이 더 낫다”고 했다. 트럼프 행정부 관리들은 자신들이 레임덕으로 취급될 수 있다는 것에 민감해한다고 블룸버그가 전했다. 특히 미국과 신냉전에 들어간 중국이 빠르게 계산에 들어갔다. 중국은 지켜보자는 전략을 취하고 있다고 블룸버그가 전·현직 관리들을 인용해 전했다. 중국 지도부는 트럼프가 동맹 국가들에 끼친 피해 때문에 트럼프 2기에서는 중국의 이해가 심대하게 손상될 것으로 보고 있다. 이에 대해 중국은 “미국 대선 결과가 미중 관계를 근본적으로 바꾸지는 못하겠지만 동맹을 파괴하는 트럼프보다는 동맹과 협력하는 바이든이 중국엔 더 위험하다”며 트럼프 재임을 희망했다.바이든은 당선되면 트럼프가 취한 정책을 원상 회복시키겠다고 장담했다. 바이든은 취임 첫날 파리기후협정에 재가입하고, 트럼프 행정부가 취한 미국의 모든 관세와 제재를 재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이란이 핵협정 준수 의무를 다시 지키면 미국은 핵합의에 돌아갔다고는 공약도 내걸었다. 트럼프 행정부는 세계보건기구(WHO)에 자금 지원을 끊으면서 중국에 경사된 편견을 고치고, 투명성을 개선하는 방향으로 개혁하라고 주문했다. 트럼프가 재선되면 WHO는 훨씬 더 고통스러운 양보를 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그러나 WHO는 특별한 반응을 내놓지 않았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백악관을 한번 찔러봤다가 쓴 맛을 맛봤다. 트럼프의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 초청을 거부하자 며칠 만에 독일에 주둔하는 미군의 4분의 1이 감축된다는 발표가 나왔다. 메르켈은 오는 7월에 워싱턴 DC 외곽에서 직접 만나자는 트럼프의 제안에 대해 코로나19 대유행으로 대면 접촉은 너무 이르다며 퇴짜를 놓았고, 트럼프는 독일이 나토 회원국의 방위비를 국내총생산(GDP)의 2% 충족하지 못한다며 주독 미군 감축으로 대응한 것이다. 당분간 각국은 바이든 행정부가 미국의 입장을 완화할 경우를 대비해 트럼프 행정부와 협상을 미룰 것으로 보인다. 유럽 몇몇 국가들은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보복 위협에도 기술기업에 디지털세 부과 움직임을 보이고, 한국은 미국의 대폭적인 방위비 인상 요구에 합의하지 않고 있다. 영국 런던에 있는 국제전략연구소(IISS) 존 칩맨 소장은 “유럽과 아시아는 코로나19를 핑계로 ‘통상적인 업무를 보기에는 너무 어렵다’며 정지 버튼을 누르고 있다”고 말했다. 코로나 대유행은 10월 이전에 종식될 것으로 보이지 않아 시간대가 미국 대선에 딱 맞물린다.미국 내의 코로나19 대응 및 인종차별 항의 시위도 외국에겐 기다리라는 신호를 주고 있다. 칩맨 소장은 “미국에서 일어나는 모든 상황 탓에 외국 자본이 트럼프 시절 더 투자하는 문제에 대해 의문을 일으키고 있다”고 말했다. 트럼프는 재선을 위해 외국에 혜택을 요구한 것은 더는 비밀이 아니다. 존 볼턴 전 백악관 안보보좌관이 쓴 ‘그것이 일어난 방’에 따르면 트럼프는 지난해 만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에게 대선에 승리할 수 있도록 농산물을 더 사달라고 부탁했다는 폭로도 나왔다. 트럼프는 이를 부인한다. 서방 정부들은 트럼프가 가치를 공유한 동맹보다 거래를 좋아하는 스타일에 우려를 표하고 있다. 예컨대 G7에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초청한 것을 두고 영국과 캐나다는 불만을 터트렸다. 극단적 무장 세력 이슬람국가(IS)와 싸우는 동맹군의 전 미국 특별대표인 브렛 맥거크는 “트럼프 하에서 악수(동맹)의 가치가 반감됐고, 우리의 가치는 너절해졌다”며 “러시아나 중국이 결코 상대할 수 없는 무시무시한 무형 자산인 소프트파워가 고갈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전 세계, 특히 서방은 2016년 대선에서 힐러리 클린턴의 승리에 베팅했다가 상당한 대가를 치렀다. 열탕과 냉탕을 오가는 미국의 커다란 정책 변화에 대해 동맹들은 대선에서 누가 승리하든 미국에 덜 의존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공화국의 방패, 트럼프와 미국 동맹의 위험’을 쓴 미라 래프 호퍼는 “외교에서 그나마 다행인 것은 동맹들에겐 미국이 없는 외교정책이 훨씬 더 비용이 많이 든다”고 말했다. 이기철 선임기자 chuli@seoul.co.kr
  • 프랑스에서 도난당한 뱅크시 작품, 이탈리아 농장서 발견

    프랑스에서 도난당한 뱅크시 작품, 이탈리아 농장서 발견

    프랑스에서 도난당했던 뱅크시의 작품이 이탈리아에서 발견됐다. 영국 국적의 ‘얼굴없는 작가’로 유명한 뱅크시는 2015년 프랑스 파리 바타클랑 극장에서의 테러 희생자를 추모하기 위해 이 극장의 비상구에 작품을 남겼다. 2015년 11월 이 극장에서 록 콘서트가 열리고 있을 때 무장괴한이 침입해 총기를 난사하고 인질극을 벌여 90명이 목숨을 잃는 끔찍한 참변이 있었다. 당시 뱅크시는 추모하는 표정이 가득한 소녀의 모습을 극장 비상문 중 하나에 남겼는데, 지난해 1월 누군가 이를 도려내 작품을 통째로 훔쳐 갔다. 당시 프랑스 경찰에 따르면, 모자를 뒤집어 쓴 일당 여러 명이 한밤중에 휴대용 전동 공구인 앵글 그라인더를 들고 뱅크시 작품에 접근했다. 이중 한 사람은 작품 앞에 차량을 대기해 놓고 있었으며, 남은 일당이 순식간에 작품이 그려진 문을 도려내 차에 실은 뒤 줄행랑을 쳤다. 1년 여가 지난 10일, 이탈리아 일간지 ‘라 레푸블리카’의 보도에 따르면 도난당한 뱅크시의 작품은 이탈리아 중부 아브루초주의 한 평범한 농장에서 발견됐다. 이번 수사를 이끌고 있는 아퀼라 지역의 검사인 미셸 렌조는 “이번 발견은 이탈리아 경찰과 프랑스 사법 당국의 합동 조사 덕분에 가능했다”고 밝혔다. 작품이 사라진 뒤 프랑스 당국이 꾸준히 뱅크시의 사라진 작품의 뒤를 쫓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다만 프랑스에서 사라진, 작지 않은 규모의 뱅크시 작품이 어떻게 이탈리아의 농장까지 건너갈 수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아직 밝혀진 것이 없다. 합동 수사팀은 도둑들이 국경을 넘을 수 있는 다양한 루트 중 어떤 방식을 택했는지, 어떻게 작품을 숨겼는지 등 조사 결과가 나오는 즉시 이를 상세히 공개하겠다고 약속했다.한편 뱅크시는 코로나19 팬데믹과 백인의 과잉진압으로 사망한 흑인 사건 등 전 세계를 휩쓸고 있는 주요 사건을 소재로 한 작품을 꾸준히 공개하고 있다. 지난 5월에는 영국 사우샘프턴 종합병원 외벽에 코로나19와 사투를 벌이는 의료진을 격려하기 위한 작품을 남겼고, 최근에는 조지 플로이드 사건을 빗댄, 촛불에 서서히 타오르는 성조기의 모습을 담은 새 작품을 SNS에 공개하기도 했다. 무려 20년 동안 자신을 철저히 숨기며 주옥같은 작품을 남기고 있는, 현존하는 최고의 작가로 꼽히는 뱅크시는 공공장소에 남몰래 작품을 남기고 바람처럼 사라지는 것으로 유명하다. 송현서 기자 huimin0217@seoul.co.kr
  • 구속 위기 벗어난 李, ‘뉴삼성’ 속도 낸다

    구속 위기 벗어난 李, ‘뉴삼성’ 속도 낸다

    대국민 약속 ‘준법경영’ 이행 탄력 하만 인수 같은 대규모 빅딜 관측구속 위기에서 벗어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바로 업무 재개에 나서며 ‘뉴삼성’ 전략을 차질 없이 추진하겠다는 의지를 대내외에 강조했다. 9일 삼성에 따르면 이날 새벽 법원에서 구속 영장이 기각되자 한남동 자택으로 이동해 휴식을 취한 이 부회장은 오전부터 정상 출근해 주요 현안을 챙겼다. 삼성 측은 당장 11일 검찰시민위원회가 수사심의위원회 소집을 결정할 부의심의위원회를 여는 만큼 검찰이 2017년처럼 구속 영장을 재청구할 가능성은 낮다고 보고 있다. 때문에 이 부회장은 변호인단과 기소에 대비하면서도 올 상반기 코로나19 와중에도 활발히 펴 온 경영 행보를 더욱 가속화할 전망이다. 지난달 6일 대국민 사과에서 약속한 신산업 발굴·투자와 준법 경영을 이행하는 데 중점을 둘 것으로 보인다. 시장에서는 현재 삼성이 보유한 순현금이 역대 최대 규모인 97조 5000억원(3월 말 기준)인 만큼 국내 최대 인수합병 사례로 기록된 2017년 자동차 전자장비업체 하만 인수(9조 4000억원) 같은 ‘빅딜’에 나설 거란 관측이 꾸준히 나온다. 김동원 KB증권 연구원은 “이 부회장은 중장기 경영 전략에 초점을 맞춰 풍부한 현금으로 적극적인 인수합병을 시도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삼성웨이’의 저자인 이경묵 서울대 경영학과 교수는 “구글, 애플 등 글로벌 공룡기업들이 공격적인 인수합병을 거듭하며 성장해 나가는 데 반해 삼성은 지속적인 사법 리스크, 대외신인도 하락 등으로 신수종 사업 발굴, 해외 기업들과의 협업, 빠른 의사결정과 실행 등이 지체되며 글로벌 경쟁력이 약화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지배구조 개편, 경영 투명성 강화를 위한 제도적 장치 마련도 묵은 숙제다. 경제개혁연대 소장인 김우찬 고려대 교수는 “매번 총수 구속 위기가 불거질 때마다 국민 경제를 볼모로 삼아 인질극을 벌일 게 아니라 각 계열사 대표는 주요 의사 결정을 주도하고 이사회는 이를 견제하고 가이드라인을 주는 방식으로 각자의 역할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정서린 기자 rin@seoul.co.kr
  • 조성환 의원, 경기도의료원 이전을 통한 공공의료 강화 촉구

    조성환 의원, 경기도의료원 이전을 통한 공공의료 강화 촉구

    경기도의회는 보건복지위원회 조성환(더불어민주당·파주1) 의원이 제344회 정례회 제1차 본회의 5분 자유발언에서 경기도의료원 이전을 통한 공공의료 강화와 남북보건의료 교류협력의 청사진을 제시했다고 9일 밝혔다. 조 의원은 “현재 경기도의료원의 예산과 조직, 인력수준은 국내 15위권의 규모”라면서 “과거 수십 년 전에 설립된 6개 의료원의 역할이 코로나19 이후를 대비한 공공의료를 감당하기엔 미흡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경기도 공공의료의 축인 경기도의료원과 도립정신병원, 민간위탁 중인 도립노인전문병원에 매년 수백억원의 예산이 지원되고 있지만 도민의 기대에는 미흡하다”면서 “코로나19와 같은 감염병 등 국가 재난에 대비한 업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기능을 재편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이를 위해서는 행정, 의료경영 분야의 전문가의 역할이 필요하다고 이야기하며 경기도의료원의 변화와 혁신을 촉구했다. 조 의원은 현재 경기도청 이전에 따른 구청사 활용방안을 원점에서 검토해 감염병 대응이 가능한 감염병전문병원, 외상센터를 포함한 광역응급센터, 장애인과 취약계층을 위한 급성기병동, 노인질환 등을 담당할 만성·재활병동 등으로 경기도의료원 및 수원병원을 이전 배치해, 공공의료 기능과 전문성을 개발할 연구기능을 갖춘 대한민국 공공의료의 중심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조 의원은 “국경 없이 넘나드는 감염병과 전염병에 대해 남북이 함께 고민하고 공동 대응해야 한다”면서 경기도의료원이 남북보건의료 교류협력의 거점병원이 될 수 있도록 경기도의 현명한 결정을 요청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구속 위기 벗어나자마자 업무 재개한 이재용

    구속 위기 벗어나자마자 업무 재개한 이재용

    구속 위기에서 벗어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바로 업무 재개에 나서며 ‘뉴삼성’ 전략을 차질없이 추진하겠다는 의지를 대내외에 강조했다. 9일 삼성에 따르면 이날 새벽 법원에서 구속 영장이 기각되자 한남동 자택으로 이동해 휴식을 취한 이 부회장은 오전부터 정상 출근해 주요 현안을 챙겼다. 삼성 측은 당장 11일 검찰시민위원회가 수사심의위원회 소집을 결정할 부의심의위원회를 여는 만큼 검찰이 2017년처럼 구속 영장을 재청구할 가능성은 낮다고 보고 있다. 때문에 이 부회장은 변호인단과 기소에 대비하면서도 올 상반기 코로나19 와중에도 활발히 펴온 경영 행보를 더욱 가속화할 전망이다. 지난달 6일 대국민 사과에서 약속한 신산업 발굴·투자와 준법 경영을 이행하는 데 중점을 둘 것으로 보인다. 시장에서는 현재 삼성이 보유한 순현금이 역대 최대 규모인 97조 5000억원(3월 말 기준)인 만큼 국내 최대 인수합병 사례로 기록된 2017년 자동차 전자장비업체 하만 인수(9조 4000억원) 같은 ‘빅딜’에 나설 거란 관측이 꾸준히 나온다. 김동원 KB증권 연구원은 “이 부회장은 중장기 경영 전략에 초점을 맞춰 풍부한 현금으로 적극적인 인수합병을 시도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삼성웨이’의 저자인 이경묵 서울대 경영학과 교수는 “구글, 애플 등 글로벌 공룡기업들이 공격적인 인수합병을 거듭하며 성장해나가는 데 반해 삼성은 지속적인 사법 리스크, 대외신인도 하락 등으로 신수종 사업 발굴, 해외 기업들과의 협업, 빠른 의사결정과 실행 등이 지체되며 글로벌 경쟁력이 약화될 수 있다”고 짚었다. 지배구조 개편, 경영 투명성 강화를 위한 제도적 장치 마련도 묵은 숙제다. 전문경영인 체제·이사회·준법 경영 강화에 속도를 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경제개혁연대 소장인 김우찬 고려대 교수는 “매번 총수 구속 위기가 불거질 때마다 국민 경제를 볼모로 삼아 인질극을 벌일 게 아니라 각 계열사 대표는 주요 의사 결정을 주도하고 이사회는 이를 견제하고 가이드라인을 주는 방식으로 각자의 역할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정서린 기자 rin@seoul.co.kr
  • 이란 억류 미국인 귀국길에, 美 구금 이란인 귀국 하루 만

    이란 억류 미국인 귀국길에, 美 구금 이란인 귀국 하루 만

    이란에 구금돼 있던 미국 해군 출신 남성이 2년 만에 풀려나 귀국 길에 올랐다고 영국 BBC가 가족의 발표를 인용해 4일 보도했다.  주인공은 마이클 R 화이트(48)로 2018년 마슈하드 시에 여자친구를 만나러 갔다가 체포돼 지난해 징역형을 선고받고 복역하다 코로나19 확산 위험에 따라 지난 3월 일시 석방된 마이클 R 화이트다. 브라이언 훅 국무부 대이란 특별대표가 의사와 함께 스위스 취리히로 날아가 화이트를 반갑게 맞은 뒤 함께 미국으로 돌아올 예정이다. 중립국인 스위스는 미국과 국교를 맺지 않은 이란에서 미국의 이익대표부 역할을 하고 있다.  해군에서 13년을 근무했고, 구금되기 전에 여러 차례 이란을 방문한 전력이 있는 화이트는 지난 3월 풀려난 뒤 그동안 테헤란 주재 스위스 대사관에서 지내왔다. 그의 어머니 조앤은 이날 성명을 통해 “지난 683일 동안 우리 아들 마이클은 이란첩보부에 의해 인질로 억류돼 있었으며 난 악몽 속에서 지내왔다. 그 악몽이 끝났으며 우리 아들이 안전하게 돌아오는 중이라고 선언하게 돼 복받았다”고 기꺼워했다. 빌 리처드슨 전 뉴멕시코주 지사를 비롯해 미국 국무부와 스위스 외교관들이 많은 노력을 해준 데 감사 드린다며 가족들의 사생활을 존중해 달라고 주문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도 이날 트윗을 올려 “참전용사 화이트가 이란 영공을 막 떠난 스위스 항공기에 탑승하고 있음을 기쁘게 알린다”며 “우리는 그가 곧 미국에서 가족과 함께 집에 있기를 기대한다”고 확인했다. 그는 이어진 트윗에서 “해외에서 인질로 잡힌 모든 미국인의 석방을 위해 난 결코 노력을 멈추지 않을 것”이라며 “큰 도움을 준 스위스에 감사하다”고 말했다.  화이트가 귀국한다는 소식은 미국에서 구금됐던 이란 과학자 시루스 아스가리가 추방된 지 며칠 뒤에 들려와 두 나라가 인질을 맞교환한 것이란 의심을 사고 있다. AFP 통신은 아스가리가 귀국한 지 하루 만에 화이트가 귀국 길에 올랐다고 전했다. 하지만 두 나라 정부 모두 두 남성의 석방이 관련돼 있다는 추측을 억측이라고 일축했다.  테헤란에 있는 샤리프 공과대학 재료공학 교수로 일한 아스가리는 미국 오하이오 대학에서 연구하다 교역 관련 기밀을 빼내 거래하려 한 혐의로 2016년 4월 기소됐지만 지난해 11월 무죄 판결을 받았다. 그 뒤 이민세관단속국으로 넘겨져 억류됐다가 전날 이란에 돌아왔다. AP는 화이트 석방은 아스가리 추방과 무관하며 다른 수감자 협상과 연관이 있다고 관리들이 말했다면서 “그의 석방은 미국 법무부가 기소한 이란계 미국인 의사와 관련한 합의의 일부였다. 몇 달 간 수감자들에 대한 조용한 협상이 이어졌다”고 전했다. BBC는 아스가리 석방 전에 이번주 이란인 과학자 마지드 타헤리가 미국 구금에서 풀려났지만 아직 미국 정부는 이를 공식 확인해주지 않고 있다고 전했다. 화이트까지 포함해 이란 교도소에 수감돼 있거나 보석으로 풀려나 체류 중인 미국 시민은 6명이었다.  2018년 이란 핵합의를 미국이 폐기한 뒤 두 나라는 심각하게 충돌했는데 지난해 12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중국계 미국인 연구자 왕시웨와 이란 과학자 마수드 솔레이마니를 맞교환하듯 풀어줬다. 그러다 지난 1월 미국의 드론 공격으로 이란 혁명수비대 카셈 솔레이마니 사령관이 폭사하자 이란은 이라크 주둔 미군 기지에 탄도미사일을 발사해 보복하는 등 두 나라 관계는 악화될 대로 악화됐는데 또다시 이번에 억류한 이들을 맞교환하듯 풀어줬다.  임병선 기자 bsnim@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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