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북핵문제는 ‘하나의 문제’ 일 뿐/백학순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
요사이 국내 상황을 살펴보면 충남 연기·공주지역으로의 수도이전 관련 공방 등 유쾌하지 않은 일들이 많다.밖으로 눈을 돌려보면,남북한간의 경협부문을 넘어선 군사부문에서의 협력 진전,북핵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베이징 제3차 6자회담 개최,주한미군의 1개 여단 이라크 차출과 내년 말까지 주한미군의 3분의1 감축 결정,이라크 추가파병 결정과 이라크 한국인 인질 살해 등이 우리의 눈길을 끌었다.
이러한 국내외 사건 중에서 가장 희망적이고 어찌 보면 유일하게 기분 좋은 뉴스가 남북관계에서의 협력과 진전에 관한 것이다.남한과 북한이 서해상에서의 우발적인 무력충돌을 방지하고,휴전선에서 상호 선전방송을 중단하고,선전물을 철거하기로 합의하고 이제 실행에까지 들어갔다.실로 4년 전 6월에 있었던 평양에서의 남북정상회담과 6·15 남북공동선언의 역사적 의의와 공헌,역사와 민족문제에 대한 김대중 전 대통령의 비전과 신념,그리고 그것을 실현시킨 의지와 정열에 대해 새삼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 없다.
지금 동아시아 국제관계는 구소련 멸망 이후 10여년 만에 바야흐로 또 한번의 거대한 구조조정 단계에 진입하였다.남북관계의 본격적인 해빙과 북한으로부터의 위협의 성격과 정도의 변화,미국의 해외주둔군 재배치계획(GPR)과 주한미군 감축결정으로 인한 기존의 한·미동맹관계의 변화,6자회담을 통한 북핵문제 해결 협상으로 지난 반세기 이상의 북·미 대결관계가 마지막 고비를 넘고 있는 등 남북,한·미,북·미 관계에서 본격적으로 큰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함으로써 한반도와 동아시아에서 6·25전쟁 이래 지속되었던 냉전구조가 와해되고 있다.
그렇다면,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우리가 지금 해야 하는 일은 남북관계,한·미관계,북·미관계라는 세 가지 관계에서 일어나고 있는 의미심장한 변화들을 한데 아울러 보다 크고 높은 개념과 전략으로써 새로운 질서의 틀을 짜는 일이다.큰 차원에서 본다면 북핵문제는 우리 앞에 놓인 모든 문제가 아니라 ‘하나의 문제’일 뿐이다.우리 정부는 그동안 북핵문제의 해결을 위해 여타의 외교·안보·통일 문제를 소홀히 하면서까지 과도하게 북핵문제 해결에 매달린 면이 있다.그리고 북핵문제 해결에서 진전이 없으면 남북정상회담도 없다는 식의 입장을 반복·천명해 왔다.
주변국가들은 북핵문제와 관련하여 어떻게 하고 있는가? 동아시아 국제질서의 대전환기에 일본이 우리처럼 북핵문제에만 매달려 이 문제가 해결되기 전에는 정상회담을 하지 않겠다는 식으로 생각하였다면,고이즈미 총리가 두 번이나 북한을 방문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우리는 북핵문제가 해결하는 데 많은 시간이 걸리는 문제,그렇지만 결국은 6자회담 틀 속에서 해결될 문제로 보고,이제는 북핵문제에 과도하게 묶여서 새로운 동아시아 질서를 짜는 데 있어서 중요한 여타의 외교·안보·통일 관련 문제들을 소홀히 하지 말고,우리에게 유리한 새로운 국제질서 창출을 위해 오히려 이들 문제를 함께 묶어내는 전략적 사고와 선택을 해야 할 것이다.
우리 앞에는 북핵문제 해결 외에도 북한으로부터의 군사적 위협 감소와 한반도에서의 군사적 안정화 문제,민족경제공동체 건설 문제,주한미군 감축 문제를 북핵문제 해결과 북한의 군비통제와 연결하여 미국과 협상하는 문제 등 한반도와 동아시아에서의 평화정착과 공동번영,그리고 평화통일의 토대를 마련하기 위해 중요하게 다루어야 할 문제들이 많이 놓여 있다.
우리 정부도 큰 전략적 방향에서 남북관계와 대외관계를 새롭게 정립하기를 새삼 기대한다.
백학순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