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랍 한국인 1명 피살] “현지인들이 미안해 해요”
아프간 현지인들은 저를 만날 때마다 이번 사태에 대해 미안해합니다. 한국사람들이 자신들을 도우려 왔다는 것을 인정하기 때문이죠.
지난 24일 밤 한국인 피랍자 8명을 풀어준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25일 오후 7시 15분(한국시간 오후 11시 45분) 아프간 방송에서 탈레반이 한 명을 살해했다고 나오면서 희망이 절망으로 바뀌었습니다. 정말 악한 사람이 아니면 하지 못할 일을 했다면 개탄하고 있습니다.
현재 이곳은 지난 24일부터 26일까지 애도기간입니다.30년간 이탈리아에서 망명생활을 하고 본국으로 돌아온 이 나라의 마지막 국왕 모하메드 자히르 샤가가 지난 23일 돌아가셨기 때문이죠.
현지 사람들은 전 국왕이 돌아가신 경건한 시기에 이런 일을 저질렀다는 데 충격을 받은 분위기 입니다.
●현지인들 “국왕 애도기간중 탈레반 화해 제스처 기대했는데…”
현지 언론들은 외신의 보도를 전하지 않고 있습니다. 확실하지도 않고 탈레반이 이번 애도 기간에 좋은 일을 하는 것으로 선전하려는 제스처 일수도 있으니까요. 사실 현지인들은 맞교환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탈레반의 만행을 잘 알고 있는 현지인들은 많은 희생을 치르면서 잡아놓은 탈레반 지도급 인사들을 풀어준다는 것에 대해서는 부정적입니다. 그래서 “탈레반이 조건 없이 인질들을 풀어주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교민들의 걱정은 지금이 아니라 향후에 한국 정부가 이곳의 봉사활동을 제한할지 모른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는 다양한 경험과 기술을 가진 단기 봉사자들이 와서 많은 활동을 했는데 이것이 법적으로 금지가 되면 자연스럽게 위축되겠지요.
그래서 교민회를 중심으로 각 단체 대표들이 매일 모여서 회의를 하고 있습니다. 만일 강제 출국이 이루어진다면 이곳에서 사업을 하고 있는 교민들의 삶의 기반이 이곳에 있는데 이것을 모두 버리고 가는 것은 어려움이 많기 때문입니다.
비정부기구(NGO)에서 활동을 하는 사람들도 지금까지 많은 것을 이루어 놓았고 진행되고 있는 활동이 많습니다. 예를 들어 병원사업, 보건소사업, 교육사업, 지역개발사업, 구제사업 등이 있습니다. 이러한 활동들을 중단하고 철수하는 것은 현지인들과의 신뢰에 금이 가는 행동입니다. 정부에서 강제출국을 시키면 어떡하느냐는 이야기도 오가곤 합니다.
●“봉사활동 제한으로 교민들 설 자리 위축될까 걱정”
한국봉사단이 피랍된 가즈니 지역은 현지인들도 가기를 꺼려하는 곳입니다. 현지 운전기사들도 그 지역을 통과해야 할 때면 최고 속력으로 지나갑니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아프간은 중앙정부가 큰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곳으로 18개 군으로 이루어져 있고 936개 마을에 140만명 정도가 살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이곳으로 봉사활동을 오시는 분들은 한국에서 현지를 잘 아는 사람에게 충분한 사전 교육을 받고 오시길 당부합니다. 자신이 가고자 하는 지역이나 국가의 정치적인 상황, 종교적인 상황, 문화적인 상황 등을 충분히 숙지해야 합니다.
2003년 타지키스탄에서 누군가가 이슬람사원에 몰래 들어가 붉은 페인트로 정문과 기초석에 십자가를 그려놓은 사건이 있었는데 이러한 짓은 절대 안됩니다. 또 의욕만 앞서서 개별적으로 가가호호를 방문해 선교를 하는 것 역시 위험천만한 일입니다. 수백년 또는 수천년 내려온 그들의 문화와 종교를 이단시하거나 무시하는 마음을 가져서는 절대 안된다는 것입니다. 존중하고 이해하려는 마음이 필요한 것입니다.
단기 봉사자들 몇몇이 감정적으로 섣불리 선교활동을 하게 되면 그것으로 인해서 수년간 봉사활동을 해온 많은 사람들에게 엄청난 피해를 줄 수 있습니다.
빠른 시일 내에 피랍된 모든 한국인이 무사하게 돌아오길 진심으로 기원하며 이만 줄입니다.
●윤성환씨는
한국인 23명이 납치된 아프간 카불에서 의료 봉사활동을 하고 있는 윤성환(35·굿네이버스 아프간 지부장)씨가 25일 급박하게 돌아가는 현지 소식을 이메일로 서울신문에 전해왔다. 그는 2002년 세워진 카불 국립 이브니시나 응급병원과 카불 주내 보건소 3곳에서 현지인들과 함께 봉사활동을 펴고 있다. 이들 병원에서는 하루 500명가량을 진료한다. 지난 7년 동안 타지키스탄에서 활동을 했고, 올해부터 가족과 함께 아프간으로 옮겨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또 한국과 일본, 핀란드 등 국제자금으로 설립된 여성교육문화센터에서 문맹퇴치교실, 컴퓨터 교실, 영어교실, 공중보건교육, 문화교실 등을 운영하며 여성 권익보호를 실천하고 있다. 현재 아프간에는 동의·다산부대를 제외하고 교민 150여명이 생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