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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근혜 대통령·빌게이츠의 악수 미국인이 모르는 모욕사건 1위

    박근혜 대통령·빌게이츠의 악수 미국인이 모르는 모욕사건 1위

    박근혜 대통령과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MS) 회장의 한 손 악수 사건이 ‘미국인이 잘 모르는 모욕 사건’ 1위로 선정됐다. 미 중서부 유력지 시카고트리뷴은 지난달 30일(현지시간) 미국인들이 잘 모르는 모욕에 관련된 10가지 일화를 소개하며 첫 번째 사례로 이 사건을 꼽아 눈길을 끌었다. 지난 4월 청와대를 찾은 게이츠 회장은 박 대통령과 처음 만난 자리에서 왼손을 바지 주머니에 넣은 채 오른손으로 악수했다가 한국 여론의 집중적인 질타를 받았다. 트리뷴은 “일부 국가에서는 한 손을 주머니에 넣은 채로 악수하는 것이 모욕으로 간주된다”며 문제의 사진과 함께 이 사건이 지난 4월 한국에서 큰 논란이 됐다고 설명했다. 이 밖에 트리뷴은 성추문으로 연방하원의원직에서 물러난 뒤 최근 뉴욕시장에 도전한 앤서니 위너가 트위터의 섹스팅(음란 채팅) 가명으로 ‘카를로스 댄저’라는 히스패닉계 이름을 사용한 데 대해 경쟁 후보가 “히스패닉에 대한 모욕”이라고 비난한 사건을 선정했다. 또한 미국 코미디 영화 ‘뜨거운 것이 좋아’의 주연배우 토니 커티스가 당시 최고의 섹스 심벌 마릴린 먼로와의 키스를 “히틀러와의 키스 같았다”고 언급한 사례 등도 ‘모욕적인 사건’으로 뽑았다. 트리뷴은 지난달 토크쇼의 여왕 오프라 윈프리가 흑인이라는 이유로 스위스 고급 가방 가게 점원으로부터 무례한 대우를 받은 일화와 최근 흑인 인권운동가 제시 잭슨 목사가 플로리다주를 ‘아파르트헤이트’(남아프리카공화국의 인종차별제도)같은 인종차별이 잔존해 있는 곳으로 언급했다가 지역주민의 반발을 산 사실을 언급하며 “요즘 세상은 모욕의 시대”라고 평가했다. 최재헌 기자 goseoul@seoul.co.kr
  • 뉴칼레도니아 원시기록

    뉴칼레도니아 원시기록

    이 작은 섬나라에 ‘낙원’이라는 이름을 붙인 것은 소설1)과 드라마2)였다. 여행기자로서의 명명은 좀 달라야 한다는 부담감. 그러나 생각할 수 있는 모든 찬사는 이미 다 사용됐다. 검증만이 남았다. 1) <천국에 가장 가까운 섬> 일본 여류작가 모리무라 가쓰라가 1965년 출간한 소설로 우베아섬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우베아는 뉴칼레도니아 본섬에서 북동쪽으로 자리잡은 로와요떼 군도 중 하나다. 소설(영화화되기도 했다)의 유명세 덕택에 일본인들이 종종 찾아오지만 아직 개발의 손길을 덜 타서 파라디 우베아라는 이름의 호텔이 하나 있을 뿐이다. 2) <꽃보다 남자> 2009년 초 방영된 KBS 드라마로 뉴칼레도니아에서 촬영된 장면이 큰 화제를 불러일으켜 한국에 ‘프렌치 파라다이스’의 이미지를 각인시켰다. 이민호(구준표 역), 구혜선(금잔디 역), 김현중(윤지후 역), 김범(소이정 역), 김준(송우빈 역) 등이 이 드라마의 성공으로 일약 스타덤에 올랐다. 프랑스 죄수들이 건설한 도시 누메아에는 현재 뉴칼레도니아 인구의 40%가 살고 있다 New Caledonian History 그들은 배를 타고 왔다 섬이란 묘한 곳이다. 그 은근한 고립감은 사람을 유혹하기도 하고, 또 숨 막히게 하기도 하므로. 뉴칼레도니아는 침묵 같은 섬이다. 한번 흘러들어간 이야기조차 다시 나오는 법이 없다. 여기서 영원히 머물러도 좋다고 생각해서였을 것이다. 그것이 낙원의 속성이므로. 그 섬에 죄수들을 보낸 이유 1864년 5월, 처음 이 섬에 도착한 프랑스 죄수들의 생각은 달랐다. 가장 가깝다는 대륙인 호주조차 1,000km 이상 떨어져 있는 고립무원의 섬이 그들에게 낙원으로 보일 리 없었다. 정치범, 관습범, 매춘부, 강제 추방자들은 지금도 비행기로 10시간이 넘게 걸리는 먼 거리를 몇 달간 배에 실려 항해한 끝에 남태평양의 작은 섬에 도착했다. 지금은 본섬인 라 그랑드 떼르와 하나로 연결된 누메섬이 당시 입도하는 죄수들이 건강검진을 받던 관문이었다. 이 섬의 원래 주인은 3,000년 전부터 살고 있었던 카낙족Kanak1)이었지만 뉴칼레도니아라는 이름을 붙여 준 것은 제임스 쿡(1728~1779) 선장이었다. 1774년 항해에서 자신의 고향이었던 스코틀랜드(옛 이름이 ‘칼레도니아’였다)를 연상시키는 섬을 발견하고 뉴칼레도니아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그러나 1853년 이 섬을 점령한 사람은 프랑스의 나폴레옹 3세였고 프랑스식 정식 명칭은 누벨칼레도니Nouvelle-Caledonie다. 수도 누메아Noumea를 프랑스처럼 만드는 과업은 죄수들의 몫이었다. 1864년 첫 이송 이후 22년 동안 2만1,000여 명의 프랑스 죄수들이 75회에 걸쳐 뉴칼레도니아에 실려 왔다. 98%의 남자, 2%의 여자(고아, 과부, 창녀, 알콜중독자 등)로 구성된 그들은 8년간의 의무 노동으로 항구와 도시를 건설했다. 우엔토로 언덕128m이나 F.O.L 전망대에 올라가면 당시에 지어진 ‘신식민지 스타일’, 혹은 ‘뉴트로피컬 스타일’ 건축물들이 알알이 섞여 있는 풍경이 촘촘하게 들어온다. 1877년 완공된 (현재의) 누메아 시립 박물관이나 1887년부터 10년 동안 건설한 생 조셉 성당2)도 그중 하나다. 형을 마친 사람 중 많은 인원이 섬에 남았다. 가족들의 여행 경비를 지원할 정도로 프랑스 정부의 지원이 적극적이었다. 누메아의 고아만Baie de L’Orphelinat에는 이름 그대로 고아원이 있었다. 이곳 출신들은 대부분 죄수들과 결혼하여 가정을 꾸렸다고 한다.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100만명 미군이 남긴 것 낙원이 따로 있겠나. 정 붙이고 살다 보면 낙원이지. 하지만 1853년 니켈3)이라는 노다지의 발견은 뉴칼레도니아를 새로운 기회의 땅으로 만들었다. 땅속이 다 금고라서 이 ‘그레이 골드’를 그냥 꺼내 쓰기만 하면 된다. 그 수혜를 받는 뉴칼레도니아의 인구는 고작 25만여 명. 그래서 이 섬에는 치열한 경쟁이 존재하지 않는다. 게다가 인구의 15%가 20세 이하라서 섬은 여유로우면서도 활기차다. 이주민과 기독교도의 증가에 따라 식민 체제를 굳힌 이 섬에 낯선 신인류가 착륙한 것은 1942년이었다. 이후 4년 동안 15척의 군함을 타고 자그마치 100만명이 넘는 미군이 이 섬을 거쳐 간 이유는 뉴칼레도니아가 제2차 세계대전 동안 미군과 연합군의 태평양 사령부였기 때문이다. 전쟁이 끝나고 퇴군길에 미군은 들고 왔던 무기와 군함을 거두어 갔지만 초콜릿, 껌, 코카콜라, 비타민, 파이, 담배 등을 남겨 놓았다. 재즈와 클럽 문화도 남겨졌다. 별다른 나이트라이프가 없는 섬에서 클럽은 여행자들의 오아시스가 됐다. 해상에 방갈로처럼 떠 있는 레스토랑과 바 ‘르 루프Le Roof’는 젊은이와 여행자에게 지나치기 어려운 방앗간이라 주중에도 항상 붐비고 주말에는 발 디딜 틈조차 없었다. 멜라네시안4) 혼열인 듯 건강한 피부색을 지닌 여인의 몸놀림이 예사롭지 않았다. 미군들은 구매력이 높은 손님이기도 해서 뉴칼레도니아에 처음 상점이 생긴 것도 이 시기였다. 그린 파파야 사슴 구이, 생선 샐러드, 일데뺑의 달팽이 요리. 박쥐 스튜 등은 뉴칼레도니아에서 처음 맛보는 별미였다. 과일과 채소를 파는 상점들도 생겨났다. 모젤 항구Port Moselle 앞 아침 시장의 풍경 너머에 그런 스토리가 있었다니, 생선 한 마리도 예사롭지 않다. 와인, 치즈 등 프랑스 식문화의 영향도 분명하고 낯선 열대의 과일, 아시아 음식들, 그리고 마이크로네시안의 주식인 타로토란와 얌참마 등, 작은 시장 안에 뉴칼레도니아의 역사와 문화가 모두 섞여 있었다. 뉴칼레도니아는 이제 프랑스의 식민지가 아니라 자치령이다. 2차 세계대전 전후 가속화된 인종차별금지와 탈식민지화의 영향으로 1946년에는 시민권 권리 법규가 금지되었고 1957년에는 보통 선거권이 실행됐다. 1998년에는 누메아 조약을 통해 자치권을 확보했다. 그러나 경제적인 이점 때문에 실제로 완전 독립을 원하는 여론은 크지 않은 편. 하지만 낙원에도 만장일치란 없는 것인지, ‘선 경제자립, 후 독립’을 주장했던 카낙의 민족지도자 ‘장 마리 치바우Jean-Marie Tjibaou’는 1989년 극단주의자에게 암살당하고 말았다. 2014년과 2018년에 독립과 관련된 투표가 있을 예정이지만 찬성이 다수가 될 가능성은 높지 않다고 한다. 1) 카냑족 멜라네시안에 속하는 카냑족은 뉴칼레도니아 인구의 절반 이상이며 나머지는 유럽 혼열과 아시안, 폴리네시안 등이다. 하와이 말로 ‘사람’을 뜻하는 ‘카나카’에서 이름이 유래됐다. 전통의상인 뽀삐네popinee를 고수하며 아직도 짚으로 만든 지붕에 흙벽으로 이뤄진 전통 가옥 ‘꺄즈case’에 거주하는 사람들이 있다. 2) 생 조셉 성당 꼬꼬디에 광장 근처 경사면에 우뚝 자리한 생 조셉 성당은 당시 남태평양 유일의 고딕성당이었다. 지금도 누메아의 랜드마크 역할을 하고 있으며 소리 울림이 좋아 파리나무십자가 소년합창단이 공연을 한 적도 있다. 뉴칼레도니아 인구의 99%는 기독교이며 구교와 신교의 비중이 6:4 정도다. 3) 니켈 뉴칼레도니아는 캐나다, 러시아에 이어 세계 3번째 니켈 수출국으로, 전 세계 매장량의 25%, 생산량의 12%를 차지한다. 채광기술이 발달하지 않았던 초기에는 산에 불을 놓아서 오래도록 꺼지지 않으면 니켈광산이 있는 곳으로 추정했다. 가볍고 단단해서 동전의 원료로 사용되는데 한국에서는 수년 전 포스코가 진출해 광산개발사용권과 한국수출권을 획득했다. 4) 멜라네시안 멜라는 ‘검다’는 뜻으로, 원주민들이 피부색이 어두워서 붙여진 이름. 오스트리아 북동쪽으로 파푸아뉴기니, 비스마르크 제도, 솔로몬제도, 뉴헤브리디스, 바누아투, 피지 등이 멜라네시아Melanesia에 속한다. 서태평양 지역은 폴리네시아, 마이크로네시아, 멜라네시아로 구분되지만 그 기준은 그리 명확치 않다. New Caledonian Ecosystem 야떼를 여행하는 법 잠깐 사이였는데 일행을 놓쳤다. 좀 전까지 사람을 피해 일정한 거리를 두며 숨바꼭질을 하던 카구Cagou새들의 태도가 돌변했다. 상대가 수적으로 적다는 것을 파악하자마다 눈빛이 달라졌다. 빨간 눈동자로 레이저를 쏘듯 째려보며 포위망을 좁혀 왔다. 겁 없는 녀석들. 그러나 오싹한 기분. 뒤도 안 돌아보고 줄행랑을 쳐야 했다.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다 지구상에서 오직 뉴칼레도니아에만 살고 있으며 국조로 보호받고 있는 카구새1)는 날지 못한다. 울음소리도 얄궂어서 마치 짖는 듯하다. 천적이 없어서 나는 기능이 퇴화할 정도로 태평성대를 누리던 카구 새들은 개와 고양이 등 뉴칼레도니아에 살지 않았던 외래종이 유입되면서 개체수가 현저히 줄어들었다. 현재는 400여 마리밖에 남지 않는 국제보호조류다. 놀라운 것은 카구새가 뉴칼레도니아에 사는 7,000여 가지 희귀 동식물 중 하나일 뿐이라는 점. 이 섬이 아니면 세상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나무와 꽃들의 원조는 공룡 시대 이전으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간단히 말해 뉴칼레도니아는 생태적으로 시간이 멈춘 섬이다. 그 이유는 지리적 환경에 있다. 뉴칼레도니아는 뉴질랜드, 호주와 남극과 함께 곤드와나Gondwana 대륙에 속해 있다가 약 6,000만년 전에 뉴질랜드와 함께 떨어져 나왔다. 그후 오랜 시간 동안 서서히 가라앉아 2,300만년 전 즈음에는 대륙의 93%가 바다 밑으로 잠겨 버렸다. 그때 가장 높은 지대에 속했던 지역이 현재의 뉴칼레도니아와 뉴질랜드다. 오랜 시간 동안 극적인 지각변동과 기후 변화가 없었기 때문에 뉴칼레도니아는 여전히 공룡시대와 가장 유사한 생태계를 유지고 있다. ‘생물학적 노아의 방주’, ‘생태계의 엘로라도’라는 말이 과장이 아니다. 종 다양성에 있어서 아마존, 인도-말레이시아, 파푸아뉴기니, 마다가스카르에 이어 세계 5위로 꼽힌다. 그 원시의 자연은 멀리 있지도 않다. 누메아의 주택가에서는 마당의 정원수가 바오밥 나무다. 붉게 펄럭이는 꽃 때문에 불꽃나무라고 불리는 플레시아나도 흔한데 역시 마다가스카르에서 온 나무다. 공원의 절반 정도가 세계자연유산으로 지정된 블루리버파크The River Blue Park라면 또 얼마나 많은 희귀종들을 보유하고 있겠는가. 수도 누메아에서 남동쪽으로 1시간 정도 차를 몰아 야떼Yate지역에 도착했다. 공룡보다 오래된 소나무 가이드 프랑소와 트랑Francois Tran씨는 생태학자이자 한번 들은 한국어 단어까지 정확하게 구사하는 비상한 기억력,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었다. 그가 폭포수처럼 쏟아내는 어려운 설명들은 하나로 지루하지 않았다. 뉴칼레도니아의 생태계를 가장 잘 설명해 줄 수 있는 적임자였다. 공원으로 진입하는 동안 프랑소와씨가 가장 열정적으로 설명한 것은 아로카리아Aroucaria 나무였다. 뉴칼레도니아의 대표 수종인 이 나무는 사실 족보를 거슬러 올라가기가 힘든 만큼 까마득한 소나무의 조상님이다. 2억5,000만년 전 중생대 초반에 나타났으니 공룡보다 오래 살아남은 셈. 공룡 영화나 다큐멘터리를 촬영할 때 뉴칼레도니아를 찾아올 수밖에 없는 이유다. 아로카리아가 추운 날씨에 적응한 것이 지금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침엽수종의 소나무이고 더운 지방에서는 잎 모양이 넙적하고 부드러운 카오리 나무가 됐다. 그 잎 모양도 제각각이어서 현재 전 세계에는 19종의 아로카리아 나무가 남아있는데 그중 13종을 블루리버파크에서 볼 수 있다. 숲에서 직접 마주친 수령 1,000년 이상의 카오리 나무는 그 그늘의 폭조차 가늠하기 어려웠다. 높이 40m, 둘레 2.7m, 펼친 가지의 폭이 35m나 된다. 얼마 전에는 수령 700년 이상의 카오리나무 350그루가 새로 발견되기도 했다. 4,500년 넘게 살고 있다는 카오리 나무는 어떤 모습일지는 도무지 그림이 그려지지 않았다. 야떼는 열대림과 건조림2)이 섞여 있는 거대한 산림이다. 완주하려면 며칠씩 걸리는 트레킹 코스에 캠핑장, 호수, 연못, 폭포 등을 모두 포함한다. 그중에서 블루리버파크는 야떼 호수를 중심으로 9,000ha에 이르는 땅이다. 야떼Yate호수는 수력발전용 댐 건설로 생긴 담수 인공호수다. 호수에 잠긴 냐울리Niaouli3) 고사목은 물비늘을 뚫고 금방이라도 솟아오를 것 같았다. 오래 쳐다보기가 어려웠던 이유는 세기말적인 풍경이어서가 아니라 오후의 눈부신 은광 때문이었다. 드넓은 숲을 탐방하느라 점심 피크닉이 꽤나 늦어졌었다. 프랑소와씨가 만들어 온 새콤한 샐러드에 금방 구워낸 사슴고기, 멧돼지 소시지를 더하니 색다른 진수성찬이 차려졌다. 프랑스식인지, 원주민식인지 모르겠지만 이날의 점심은 2시간 가까이 충분한 휴식과 수다로 채워졌다. 우리와 계절이 반대인 뉴칼레도니아는 가을이 깊어지고 있었다. 지금쯤은 평균 기온 15~25℃ 사이의 겨울을 관통하고 있을 것이다. 뉴칼레도니아 사람들은 이런 환경을 ‘에버 스프링’이라고 부른다.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다지만 뉴칼레도니아의 숲에는 분명 영원에 가까운 기운이 감돌고 있었다. 블루리버파크 | 위치 누메아에서 동쪽으로 45km 거리. 차로 45분 정도 소요된다. 개장 오전 7시~오후 5시(입장은 오후 2시까지 가능, 월요일 휴관) 입장료 400퍼시픽프랑 문의 687-43-61-24 가이드 투어 예약 칼레도니아 투어스 687-78-68-38 caledoniatours@lagoo.nc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1) 카구새 몸 크기가 평균 55cm로 눈동자는 빨간 색이고 부리도 다리도 붉다. 수명이 30년 정도 되는 카구새는 1년에 1개의 알을 낳아 35일간 품은 후 부화시키는데 분가할 때까지 7~9년 정도를 가족 단위로 생활한다. 날지 못하는 대신 뛰는 속도가 상당히 빠르며 사람이 가까이 다가오면 한쪽 다리를 세워 바로 도망갈 자세를 취한 상태로 멈춰서 경계한다. 2) 냐울리 껍질이 하얗고 속살은 검어서 나무다멜라누까(블랙 & 화이트)라는 별칭이 있다. 껍질이 마치 종이처럼 벗겨지는데 불이 붙어도 겉만 타고 안은 잘 타지 않아서 목재로 잘 사용된다. 수액에 여러 가지 효능이 있어서 감기약이나 비누를 만들고, 사탕으로 먹기도 한다. 3) 열대림 vs 건조림 칼레도니아의 서쪽 해안지대, 한 해 강수량이 50cm~1m 정도밖에 되지 않지만 400여 종 이상의 식물들이 살고 있다. 냐울리 나무는 대표적인 건조림 수종이다. 건조한 환경에 적응해서 자라는 키 작은 관목지대를 ‘마이닝 마키아Maquis miniers’라고 부른다. 반면 동쪽 해안의 한 해 강수량은 3~6m 정도라서 풍성한 열대우림을 이루고 있다. 이 중 82%가 고유종이다. New Caledonian Island 비오는 날의 일데뺑 일데뺑Ile des Pins으로 가는 에어칼레도니 비행기는 20분간 태평양 바다 위에 떠 있었다. 바케트를 닮았다는 본섬과 그 둘레로 푸른 띠를 그린 라군들, 그리고 작은 부속섬들을 감상하기 위해서였지만 날이 흐렸다. 뿌연 시야에 잡히는 것은 가물거리는 형상들뿐이었다. 그리고 흐린 날씨는 일데뺑 일정 내내 계속됐다. 부니 나무를 닮은 사람들 기대에 찼던 오로 자연풀장Baie d’Oro et Piscine Naturelle에 도착했을 때에는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얕은 수심, 투명한 물, 고운 모래사장, 앙증맞은 열대어 무리까지, 완벽한 스노클링 조건을 갖춘 오로 풀장이었지만 단 한 가지, 날씨가 받쳐주지 않았다. 수온이 뚝 떨어져 수영은 포기. 입고 온 비키니가 무색했다. 하지만 그런 날씨조차 자연의 일부가 아니던가. 쭉쭉 뻗은 아로카리아 나무의 결기도, 부드러운 모래사장을 숨기고 있는 오로만의 청정함도 그대로였다. 해가 없어도 열대어들은 열심히 빵을 먹기 위해 모여들었고, 사위는 고요하고 평화로웠다. 게다가 아름다운 해변, 그 하나만을 기대하기에는 일데뺑은 의외로 큰 섬이었고 풍경은 여러 갈래다. 첫 갈래는 일데뺑의 남동부, 귀향자 수용소였다. 1871년 파리 코뮌이 실패로 끝난 후 쏟아진 정치범들, 알제리에서 일어난 까빌 반란 사건의 정치범 등 중범죄자들은 외딴 섬 안의 또 다른 외딴 섬인 일데뺑까지 보내져 수용소에서 생을 마쳤다. 규모가 꽤 컸던 이 수용소는 지금 폐허 위의 폐가로, 넝쿨에 휩싸여 있다. 시간의 옷을 입고, 숱한 이야기의 무대가 되었을 장소의 기운은 예사롭지 않았다. 수용소를 출발한 차가 쿠토 비치Baie de Kuto에서 카누메라 비치Baie de Kanumera로 연결되는 도로를 달릴 때였다. 갑자기 하늘이 어두워졌다. 울창한 부니Bugny 나무가 드리운 그늘 터널이었다. 부니 나무는 영화 <반지의 제왕>에 등장하는 거대한 ‘엔트’처럼 금방이라도 어깨를 흔들며 걸어 다닐 것 같았다. 우락부락하지만 강하고 듬직한 모습. 바오 마을Vao Village에서 만난 카낙족의 모습은 부니 나무를 닮아 있었다. 어떤 경계도 느껴지지 않는 적당한 무관심, 그러나 건네는 인사를 따뜻하게 받아주는 온정. 그리고 호기심보다는 수줍음이 많은 아이들. 이 마을의 중심인 바오 성당은 1860년 죄수들에 의해 건립된 것으로 멀리서 보면 전면 입구의 파사드와 후면의 붉은 첨탑이 퍼즐처럼 겹쳐 스위스 산장처럼 아담해 보인다.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생 모리스 기념비는 온통 산호석과 전통장승, 꽃으로 화려하게 꾸며져 있었다. 처음 가톨릭을 전파해 준 선교사들을 기리를 마음이 지극해 보였다. 바다거북과 함께 춤을! 일데뺑에서 다시 모터보트를 탔다. 마치 인형 속에 더 작은 인형이 줄줄이 나오는 러시아 인형 마트료시카처럼 작은 섬에서 또 작은 섬으로, 그리고 더 작은 섬으로 가는 중이다. 아직 정박할 만한 곳이 없는데 보트의 속도가 갑자기 느려졌다. 거북이의 등장이었다. 뉴칼레도니아의 바다에는 녹색 바다거북, 큰머리 거북, 붉은 바다거북 등이 살고 있다고 들었다. 배의 추격을 물리치고 도망가려는 거북이를 노칠세라 한 남자가 첨벙 물속으로 다이빙을 했다. 우리가 발견한 것이 거북이가 아니라 듀공dugong이었다면 그의 다이빙은 허락되지 않았을 것이다. 돌고래와 인어 전설의 기원이라는 듀공은 해초를 먹고 살기에 ‘바다의 소’라고 불리지만 몸길이가 3m나 된다니 말이다. 지구상에서 유일하게 살아있는 화석이라고 불리는 앵무조개1)도 뉴칼레도니아의 심해 속에 살고 있다. 30분쯤 지났을까, 갑자기 새하얀 모래사장이 등장했다. 마치 사막의 신기루를 만난 것처럼 반갑고 기이하나 한편으로는 현실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의구심마저 솟구친다. 배에서 내려 모래섬 위에 발을 내딛고 나서야 비로소 이 새하얀 모래섬이 현실임을 실감케 된다. 지금 내가 내려선 곳이 바로 그 유명한 노깡위Nokanhui Island라는 황홀한 현실. 이 풍경을 가능케 한 것은 라군2)이었을 것이다. 폭이 55~78km밖에 되지 않고 길이는 500km에 이르는 뉴칼레도니아는 섬의 둘레를 따라 세상에서 두 번째로 긴 1,600km의 라군석호이 띠를 두르고 있다. 섬과 산호초 사이의 바다를 이르는 라군은 파도가 없어 항상 잔잔하다. 그리고 그 사이에 일데뺑과 로와요떼 군도에 속하는 리푸, 마레, 우베아섬 등의 작은 섬들이 자리잡고 있다. 산호가 잘 자랄 수 있는 조건은 따뜻한 수온과 풍부한 햇볕이다. 산호초가 많으면 물속에 산호공급이 활발해 수중생물에게도 살아가기 좋은 조건이 된다. 그래서 산소탱크를 메고 깊은 바다에 들어가지 않아도 뉴칼레도니아에서는 살아있는 바다를 한껏 느낄 수 있다. 앙증맞은 조개껍데기와 산호 조각을 모아서 손바닥 위에 굴리면 만화경을 보는 것처럼 변화무쌍하다. 그런 자잘한 재미를 만끽하지 않는다면 노깡위를 섭렵하는 산책은 채 20분도 걸리지 않는다. 그 산책을 잠시 방해했던 것은 트리코레예라고 불리는 무지개뱀Rainbow Snake이었다. 빠비용처럼 띠무늬를 지닌 이 바다뱀은 물속에서 유유히 헤엄치다 인기척에 놀라서 나무더미 사이로 몸을 숨겼다. 독이 있지만 입이 너무 작아서 사람을 물 수는 없다고 하니 두려워할 존재는 아니다. 마지막으로 손에 쥔 마트료시카 인형은 개인 소유인 메트르Maitre섬이었다. 파도를 헤치는 요트 항해 끝에 도착한 이 섬은 2004년 에스카파드 아일랜드 리조트Escapade Island Resort의 개장으로 더욱 유명해졌다. 뉴칼레도니아 유일의 수상 방갈로가 S자로 줄지어 선 풍경은 꿈꾸던 바다 위의 휴가를 현실로 재현한 느낌이다. 테라스에 설치된 계단의 마지막 스텝은 열대어가 유영하는 바다다. 비 오는 일데뺑 여행은 마치 그 마지막 계단에서 우뚝 멈춰 서 버린 듯한 느낌이었지만, 그것이 다시 뉴칼레도니아를 가고 싶게 만든 이유이기도 했다. 글·사진 천소현 기자 취재협조 뉴칼레도니아 관광청 www.new-caledonia.co.kr, 에어칼린 www.aircalin.co.kr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1) 앵무조개 3억4,000만년 전부터 살았던 두족류 동물로 수심 150~600m의 심해에 살고 있다. 지름 20cm, 혹 9cm의 크기로 살아있는 화석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으며 갈색의 방사상 띠로 이루어진 껍질의 무늬가 앵무새의 부리를 닮았다고 해서 앵무조개라는 이름이 붙었다. 누메아 아쿠아리움에서 살아있는 앵무조개를 볼 수 있다. 2) 뉴칼레도니아 라군 세계에서 가장 넓은 면적을 자랑하는 24,000㎢의 라군으로 2008년 7월에 세계자연유산으로 지정됐다. 폭이 좁게는 30km, 최대 200km까지 펼쳐진 곳도 있다. 둘레의 총 길이는 1,600km로 호주 그레이트 배리어 리프 다음으로 길다. ▶travie info 항공편 2008년부터 에어칼린이 인천-누메아 사이를 주 2회(월, 토, 약 9시간 30분 소요) 운항하고 있다. 특히 최근의 기내 환경 업그레이드로 이코노미 좌석이 기존보다 15도 더 젖혀지며 손잡이도 자유자재로 조절이 가능해졌다. 개인별 최신 통합 리모콘뿐 아니라 USB 및 애플용 포트도 탑재했다. 이 밖에도 한국인 통역원이 탑승하고 있으며 기내식으로 김치를 제공하는 등 지역 맞춤형 서비스도 충실하다. 동계시즌인 10월30일부터는 수·일요일로 요일을 변경해 신혼여행객이 이용하기에 더 편리해질 예정이다. 문의 02-3708-8581 시차 한국보다 2시간 빠르다. 날씨 평균 기온 15~32도 사이의 초여름 날씨. 계절은 한국과 반대다. 화폐 퍼시픽프랑을 쓴다. 한국에서는 달러보다 유로화로 바꿔 가는 것이 유리한데 환전 수수료가 높으므로 웬만한 것은 카드로 결제하는 게 낫다. 물가는 유럽 수준.
  • 만델라 퇴원

    만델라 퇴원

    약 3개월 동안 병원에서 진료를 받아 온 넬슨 만델라(95) 전 남아프리카공화국 대통령이 1일(현지시간) 퇴원했다고 남아공 대통령실이 밝혔다. 대통령실은 성명에서 만델라 전 대통령의 상태가 위독하지만 안정된 상태에 있다며 그가 이날 오전 병원에서 퇴원해 요하네스버그 자택으로 복귀했다고 전했다. 성명은 만델라 전 대통령이 자택에서 계속 의료진의 집중적인 진료를 받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남아공 민주화의 상징인 만델라 전 대통령은 지난 6월 폐 감염증이 재발해 남아공 수도 프리토리아의 메디클리닉 심장병원에 입원해 치료를 받아 왔다. 그가 입원하면서 남아공 안팎에서는 쾌유를 바라는 목소리가 쏟아졌다. 만델라 전 대통령은 과거 인종차별 철폐 활동을 벌이다 30년 가까이 수감 생활을 했고 이때 폐 감염증을 얻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1993년 노벨평화상을 받았고 이듬해에는 남아공 최초의 흑인 대통령에 당선돼 5년 임기를 수행했다. 류지영 기자 superryu@seoul.co.kr
  • 쇼핑몰 쓰레기통에 오줌 누이는 중국女 논란

    쇼핑몰 쓰레기통에 오줌 누이는 중국女 논란

    한 동양인 여성이 캐나다의 한 공공장소에서 아이의 오줌을 누이는 장면이 포착돼 논란이 일고 있다. 최근 현지 소셜네트워크(SNS)를 타고 논란을 일으킨 이 장면은 최근 브리티시컬럼비아주 리치몬드시의 한 쇼핑몰에서 촬영됐다. 이 여성은 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통로에 설치된 쓰레기통에서 아이의 소변을 보게 했으며 이 장면을 목격한 캐나다인이 화가나 SNS에 사진을 올리면서 세간에 알려졌다. 이 사진을 최초 게재한 소셜 뉴스사이트 레딧 사용자는 “이 여성은 대륙에서 온 중국인으로 아이는 조카” 라면서 “문화적인 차이가 있다고 해도 캐나다에 왔다면 우리의 문화를 따라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나 반대의 목소리도 일부 있었다. 한 네티즌은 “당시 아이가 바지를 지린 상태로 화장실은 너무 멀었다” 면서 “여성에게 선택의 기회는 없었다”고 말했다. 특히 해당 사진이 인터넷에 올라온 후 인종차별 논란까지 일자 리치몬드시 교육부 측은 “사진 속 여성이 중국인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면서도 “이민자들은 해당 국가의 문화와 공중 도둑을 지키는 것을 아이들에게 가르킬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나우뉴스부 nownews@seoul.co.kr   
  • 비난받는 종교차별… “뉴욕경찰, 이슬람사원 감시”

    ‘미국 뉴욕에 있는 이슬람사원은 모두 테러조직?’ 미 뉴욕 경찰이 구체적 범죄 증거가 없는데도 시내 모든 이슬람사원(모스크)을 ‘테러조직’으로 지정하고 몰래 감시해 온 것으로 드러나 논란이 일고 있다. AP통신은 28일(현지시간) 자사 기자들이 쓴 ‘내부의 적’이라는 신간을 인용해 뉴욕 경찰이 정보원을 동원, 이슬람사원의 설교 내용을 기록하고 성직자들의 행동을 염탐했다고 전했다. 기밀문건과 현직 경관의 증언에 따르면 뉴욕 경찰은 2001년 ‘9·11 테러’ 이후 이슬람사원 최소 10여곳을 ‘테러조직 수사’(TEI) 기법을 적용해 감시했다. TEI는 경찰이 테러조직 등에 대한 수사를 하기 위해 만든 수사 방식이다. 뉴욕 경찰이 그동안 이슬람사원이나 단체를 테러활동 혐의로 기소한 적은 없었지만 감시를 계속해 온 게 밝혀진 셈이다. 기밀문건에는 또 뉴욕 경찰이 테러범 검거를 명목으로 뉴욕의 수많은 무슬림들을 조사하고 그들의 정보를 비밀문서에 기록한 것으로 나타나 있다. AP는 “뉴욕 경찰이 이슬람사원 모두를 테러조직으로 규정한 것은 예배하기 위해 사원을 찾은 어떤 일반인도 수사와 감시 대상으로 삼을 수 있다는 의미”라고 지적했다. 이번 폭로는 뉴욕 경찰이 범죄 척결 과정에서 유색인에 대한 인종차별적 자료를 수집했다는 이유로 제소당한 가운데 나와 주목된다. 이달 초 법원은 뉴욕 경찰의 ‘불심검문 신체 수색권’이 위헌이라고 판결한 바 있다. 미국시민자유연맹 등 인권단체들은 무슬림 염탐 프로그램이 위헌이라고 고소했다. 하지만 레이몬드 켈리 뉴욕시 경찰국장은 MSNBC 방송의 ‘모닝 조’ 프로그램에 출연해 “그 책의 상당 부분은 소설이고 절반 정도만 진실”이라면서 “그들은 다음 주에 출간되는 책을 홍보하려고 그런 기사를 썼을 것”이라고 반박했다. 김미경 기자 chaplin7@seoul.co.kr
  • 인종평등 씨앗 뿌린 그 곳에 ‘화합의 꽃’ 폈다

    인종평등 씨앗 뿌린 그 곳에 ‘화합의 꽃’ 폈다

    ‘50년 전 이 자리에 서 있었던 사람도 이런 느낌이었을까.’ 고(故) 마틴 루서 킹 목사의 ‘내겐 꿈이 있습니다’ 연설 50주년 기념행사가 열린 28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의 링컨기념관 앞 연못가. 이곳에 서서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연설을 듣다 보니 머릿속은 문득 시간을 초월하고 있었다. 킹 목사가 서서 연설했던 링컨기념관 앞 계단과 대형 연못, 저 멀리 워싱턴 모뉴먼트까지 구조물은 그때 그대로였기에 이런 생각이 드는 것은 어쩌면 당연했다. 달라진 것도 있었다. 인파가 50년 전보다는 다소 적었다. 50년 전에는 모뉴먼트 언덕까지 인산(人山)을 이뤘지만 이날은 연못 끝까지만 인파가 들어찼다. 그래도 평일인 데다 비가 오락가락하는 궂은 날씨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엄청난 인파임은 분명했다. 예상보다 백인이 많이 눈에 띈 것도 인상적이었다. 흑인과 백인 숫자가 거의 반반이었다. 50년 전에도 ‘예상외로 백인들의 참여가 적지 않았다’는 기록이 있다. 하지만 이날 백인들의 압도적 동참은 킹 목사의 유업이 인종을 초월해 영감을 주고 있음을 확인시켰다. 이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뉴욕에서 초등학생 아들 둘과 함께 왔다는 백인 래리 베이커(42)는 “인권을 위해 헌신한 킹 목사의 정신을 아이들에게 가르쳐주고 싶어 왔다”고 말했다. 흑인 인권이 극히 암울했던 50년 전에는 시위의 성격이 강했지만, 이날은 축제처럼 행사가 치러졌다. 물론 50년 전에도 주최 측의 비폭력 원칙으로 시위는 평화적이었다. 50년 전 흑인 일색이었던 단상도 달라졌다. 최초의 흑인 대통령 오바마 외에 빌 클린턴, 지미 카터 등 백인 전직 대통령도 연설대에 섰다. 킹 목사의 인권 운동을 지지했던 고 존 F 케네디 전 대통령의 딸 캐럴라인 케네디와 린든 존슨 전 대통령의 딸 린다 존슨도 연설했다. ‘토크쇼의 여왕’ 오프라 윈프리와 흑인 유명배우 포리스트 휘태커도 연설에 나서 많은 박수를 받았다. 킹 목사의 딸도 아버지의 피를 이어받은 열정적인 연설로 심금을 울렸다. 킹 목사가 섰던 바로 그곳에 서서 오바마 대통령은 “미국이 안고 있는 계층 간 경제적 불평등은 킹 목사의 꿈이 아직 실현되지 않았다는 증거”라면서 “끊임없는 경계심을 갖고 계속 행진해야 한다”고 연설했다. 5시간에 걸친 행사가 끝나고 인파에 떠밀려 나올 때 셔츠는 빗물과 땀으로 범벅이 돼 있었고, 땅바닥에 주저앉고 싶을 정도로 탈진했다. 워싱턴 김상연 특파원 carlos@seoul.co.kr
  • 철퇴 맞은 인종차별…美 사상 최대 1790억원 배상

    미국 대형 금융사인 메릴린치가 인종차별을 당한 직원 약 1200명에게 1억 6000만 달러(약 1790억원)를 배상하기로 했다. 미국 기업 역사상 직원에 대한 인종차별 배상금으로는 최대 규모다. 28일(현지시간) 파이낸셜타임스, BBC 등에 따르면 메릴린치에서 중개인으로 일하던 조지 맥레이놀즈는 2005년 회사 내 백인 남성에 의한 지배문화와 조직적으로 만연해 있는 인종차별에 항의하기 위해 메릴린치에 소송을 제기했다. 메릴린치에서 30여년간 근무한 맥레이놀즈는 회사가 흑인 직원들에게는 견습 사원들이나 하는 중요도가 떨어지는 업무를 맡겼다. 반면 백인 직원들에게는 높은 수익이 나는 거래를 맡겼다면서 회사 내 흑인 직원을 대표해 집단 소송을 냈다. 당시 메릴린치에서 근무하던 직원들 가운데 흑인의 비율은 단 2%였다. 회사가 미국 평등고용기회위원회에 약속한 흑인 채용 비율인 6.5%에 못 미쳤다. 맥레이놀즈는 회사의 인종차별 행태로 인해 흑인 직원들은 낮은 급여를 받을 뿐만 아니라 상대적으로 승진 가능성도 낮다고 주장했다. 소송은 이후 항소와 연방대법원 상고로 이어졌고, 8년에 걸친 법정다툼 끝에 판결 전 합의로 배상액이 결정됐다. 양측은 다음 달 3일 법원에 합의서를 제출할 예정이다. 원고 측 변호사인 수전 비시는 “수많은 역경을 이겨낸 이번 소송이 흑인들을 위한 기회를 제공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조희선 기자 hsncho@seoul.co.kr
  • ‘킹 연설 50주년’ 달아 오른 워싱턴… 오바마·카터·클린턴도 그 계단에

    미국 흑인 인권 운동가 고(故) 마틴 루서 킹 목사의 역사적인 워싱턴 연설이 있은지 꼭 50주년이 되는 28일(현지시간) 생존한 민주당 출신 전·현직 대통령 3명이 킹 목사가 연설했던 링컨 기념관 계단에 차례로 등단해 연설했다. 최초의 흑인 대통령인 버락 오바마뿐 아니라 백인 대통령인 빌 클린턴,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이 흑인 인권 운동을 기리는 무대에 함께 서는 역사적 장면이 연출된 것이다. 인종차별이 극심했던 50년 전만 해도 상상할 수 없었던 장면으로, 킹 목사의 족적이 인종을 초월해 존경을 받고 있으며 민주당의 정신을 상징하고 있다는 점을 공식화한 셈이다.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이 노예해방을 선언한 지 100주년이던 1963년 8월 28일 킹 목사는 링컨 기념관 앞에서 수십만명의 군중을 상대로 “내겐 꿈이 있습니다”(I have a dream)라는 연설을 한 뒤 시위대와 함께 ‘일자리와 자유를 위한 워싱턴 대행진’을 했다. 그로부터 50년 만인 이날 킹 목사 기념사업회(킹센터)가 ‘자유의 종을 울려라’라는 주제로 개최한 이날 행사 참석을 위해 이른 아침부터 많은 인파가 워싱턴으로 모여들어 의회 의사당에서 링컨 기념관에 이르는 3.2㎞를 행진했다. 하이라이트는 오바마 대통령이 킹 목사가 사자후를 토했던 그 시간(오후 3시)에, 바로 그 계단에 서서 소수 인종의 인권 신장을 주제로 연설했을 때였다. 미국 내 50여개 단체도 이 시간에 맞춰 타종했다. 클린턴 전 대통령은 전날 언론 인터뷰에서 “킹 목사의 연설은 수백만명의 미국민에게 인종 평등과 계층 간 경제 정의를 실현할 의무가 있다는 영감을 줬다”면서 “역사적인 날에 내 목소리를 보태게 돼 매우 영광”이라고 말했다. 카터 전 대통령도 “이 위대한 인물과 그 고귀한 메시지를 기리는 행사에 참석하게 된 것을 영예롭게 생각한다”고 했다. 킹 목사의 막내딸이자 킹센터 회장인 버니스 킹은 “미국민은 물론 세계인과 함께 아버지의 연설을 회고하고 인종과 종교, 국가를 떠나 통합을 도모하는 시간이 될 것”이라고 했다. 워싱턴 김상연 특파원 carlos@seoul.co.kr
  • 伊 극우 정치인, 진보적 흑인 女 장관에 “창녀”

    伊 극우 정치인, 진보적 흑인 女 장관에 “창녀”

    엔리코 레타 이탈리아 총리가 지난 4월 첫 흑인 장관으로 임명한 세실 키엥게(48) 국민통합장관이 우익 성향 지역 정치인으로부터 ‘창녀’와 비교당하는 등 또다시 인종차별적 모욕을 당해 논란이 일고 있다. 26일(현지시간) 가디언에 따르면 이탈리아 북서부 리구리아 디아노마리나시 크리스티아노 차 가리발디 부시장은 최근 자신의 페이스북에 “키엥게 장관이 창녀들에 의해 이용되는 지역에 자주 드나들며, 이들 매춘부의 많은 수가 흑인”이라고 묘사했다. 가리발디 부시장은 매춘부들이 많이 오가는 지역으로 추정되는 특정 지역명을 언급하면서 “나는 밤 늦게 그 지역을 돌아다닐 일이 없으니 키엥게를 만나기는 어렵겠다”고 비꼬았다. 그는 자신의 페이스북 글에 대한 논란이 일자 지난 25일 자신의 발언이 “천박하고 공격적”이었다고 밝히면서도, “이탈리아에서 높은 세금을 내야 하는 것에 스트레스를 받아 그 같은 발언을 한 것”이라고 변명했다. 키엥게 장관은 임명된 뒤 이민자 자녀라도 이탈리아에서 태어나면 이탈리아 국적을 얻을 수 있도록 법 개정을 추진해 왔으며, 최근에는 노숙자들에게 이탈리아의 ‘제2의 집’들을 빌려주는 방안을 제안한 바 있다. 김미경 기자 chaplin7@seoul.co.kr
  • [경제 브리핑] KB금융 보행보조기 300대 기증

    [경제 브리핑] KB금융 보행보조기 300대 기증

    KB금융은 27일 보행이 불편한 노인을 위해 한국노인종합복지관협회에 보행보조기(실버카) 300대를 기증했다. 김용수(왼쪽) KB금융 부사장이 서울 마포구 용강동 협회에서 이호경(오른쪽) 한국노인종합복지관협회장에게 기증서를 전달하고 있다.
  • 빈부격차의 비극 ‘설국열차’ 닮았다

    빈부격차의 비극 ‘설국열차’ 닮았다

    2154년, 인류는 특권층과 빈민층으로 양극화되어 있다. 지구에 버려진 사람들은 가난과 질병이 없는 우주정거장 엘리시움으로의 이주를 꿈꾼다. 맥스(맷 데이먼)는 제조 공정에서 일하는 공장 노동자다. 작업 중 치명적인 양의 방사선에 노출되면서 5일의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는다. 그가 목숨을 건질 수 있는 방법은 엘리시움에 들어가 최첨단 의료기기의 도움을 받는 것뿐이다. 절박해진 맥스는 무기 회사 사장 칼라일(윌리엄 피츠너)의 뇌 속 정보를 입수해 오면 엘리시움에 보내주겠다는 지하세계 지도자 스파이더(와그너 모라)의 제안을 받아들인다. 그러나 이들의 계획과는 달리 국방장관 델라코트(조디 포스터)의 사주를 받은 칼라일의 뇌 속에는 엘리시움의 판도를 통째로 바꿀 수 있는 엄청난 정보가 들어있다. 올여름 마지막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라 할 만한 ‘엘리시움’은 노골적인 계급 영화다. 엘리시움을 상징하는 델라코트는 첫 장면에서 순백의 옷을 입고 등장하는 화이트칼라이며, 맥스는 글자 그대로 푸른색 근로복을 입은 블루칼라다. ‘엘리시움’은 신자유주의가 극단으로 물화된 세계를 그린다. “당신이 아니라도 일할 사람은 많다”는 공장 감독관의 엄포에 맥스는 방사능이 가득한 작업 공간으로 내몰린다. 근무 중 화장실 사용은 1회로 제한되고, 감독관은 작업이 지체된다며 노동자를 박대한다. 맥스는 산업 재해를 당한다. 그러나 죽음을 앞둔 그에게 회사가 건네는 것은 몇 알의 진통제뿐이다.‘산재 노동자의 체제전복극’ 정도로 요약할 수 있을 만한 내용을 위해 닐 블롬캠프 감독은 SF적 상상력을 동원한다. 척추에 특수한 수트를 이식받은 맥스는 엘리시움의 기계 병사에도 맞설 수 있을 만큼 강력해진다. 맥스가 델라코트에게 고용된 지구인 용병 크루거(샬토 코플리)와 대결하면서 액션 영화의 쾌감이 발생한다. 영화는 양극화된 미래세계의 이미지도 충실히 재현한다. 엘리시움의 상류층은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이 흐르는 공간에서 파티를 즐기지만 디스토피아적 지구에 사는 빈민층들은 일자리를 얻기 위해 악다구니를 벌인다. 하지만 단점도 적지 않은 영화다. 가장 큰 문제는 매력적인 악당의 부재다. 델라코트와 칼라일은 탐욕에 눈이 멀었을 뿐 전혀 지능적이지 않다. 덩치 큰 느림보에 불과한 크루거에게는 맥스의 상대가 될 만한 카리스마나 강력한 힘이 느껴지지 않는다. 이야기의 개연성도 떨어진다. 칼라일은 대통령을 밀어내고 엘리시움을 차지하자는 델라코트의 위험한 제안을 아무런 고민 없이 받아들이고, 맥스의 어린 시절 여자친구인 프레이(앨리스 브라가)는 별다른 맥락 없이 크루거에게 납치된다. 최첨단 기술로 무장한 데 비해 엘리시움의 방어력은 턱없이 낮다. 감독의 전작 ‘디스트릭트 9’이 인종 문제를 SF적 서사로 풀어내며 전 세계 평단의 극찬을 받았던 점을 감안하면 ‘엘리시움’의 완성도는 여러모로 아쉽다. 26일 현재 평점 전문 사이트 로튼토마토에서 ‘디스트릭트 9’이 90점의 높은 점수를 기록하고 있는 반면 ‘엘리시움’은 68점에 그친다. 국내 관객이라면 ‘엘리시움’이 시스템의 탈취를, ‘설국열차’가 시스템으로부터의 탈주를 꿈꾼다는 점에서 엇비슷한 주제를 비교하는 재미가 있을 것 같다. 109분. 29일 개봉. 청소년 관람불가. 배경헌 기자 baenim@seoul.co.kr
  • 발칙한 인형들의 19禁 입담, 무대를 뒤집다

    발칙한 인형들의 19禁 입담, 무대를 뒤집다

    “넌 진짜 변태야. 보통 사람들은 집에 앉아서 인터넷으로 야동이나 보지 않아.” “아무것도 모르시네. 보통 사람들, 준비!” 무대 세트에 달린 창문 밖으로 인형들이 튀어나와 ‘야동 예찬’을 늘어놓는다. 관객들은 속내가 들통난 듯 더러는 박수를 치고 더러는 손으로 얼굴을 가리며 폭소를 터뜨린다. ‘개그 콘서트’나 ‘SNL코리아’ 얘기가 아니다. 이는 지난 22일 개막한 뮤지컬 ‘애비뉴 큐’(Avenue Q)의 장면들이다. ‘성인 퍼펫 뮤지컬(배우가 인형을 손에 끼우고 연기하는 뮤지컬)’을 표방하며 2004년 토니상에서 최고작품상과 극본상, 음악상을 휩쓸었던 이 작품이 2003년 미국 오프 브로드웨이 초연 후 10년 만에 우리나라 관객들을 만나고 있다. 미국의 유아 프로그램 ‘새서미 스트리트’ 속 캐릭터들이 성장해 뉴욕 할렘가보다도 낙후된 가상의 거리 ‘애비뉴 큐’에 모여 한심한 인생을 살아간다. 변변한 직업도 돈도 없는 자신에 대한 신세 한탄부터 청년실업, 성(性), 동성애, 인종차별 등에 관한 솔직한 속내를 거침없이 풀어낸다. 등장인물들은 하나같이 결핍된 존재다. 프린스턴은 대학 영문과를 나와 백수가 됐고, 케이트 몬스터는 예쁘고 똑똑한 유치원 교사지만 애인이 없다. 월스트리트 투자전문가 로드에게는 동성애자라는 말 못할 고민이 있고, 코미디언 지망생 브라이언의 개그는 썰렁하다. 여기에 야동 중독자 트레키 몬스터, 로드에게 빌붙어 사는 니키 등이 모여 “내 인생 열라 구려!”라 한탄한다. “첫 출근도 하기 전에 전화로 짤렸어!”, “남자들은 인터넷으로 주식을 관리하거나 쇼핑을 하지. 그다음엔 뭘 할까?”, “남의 불행은 곧 나의 행복!” 등 솔직한 대사들은 공감과 폭소를 이끌어낸다. ‘흑형’, ‘암내 나는 아랍인’, ‘양키’ 같은 표현들을 나열하며 “우리는 다 조금씩은 인종차별적”이라고 인정하는 대목에서는 인종차별이 남의 이야기 같은 한국 관객들도 고개가 절로 끄덕여진다. 이런 대담한 표현이 가능한 건 등장인물들이 사람이 아닌 인형들이기 때문이다. 눈이 초롱초롱한 인형들은 배우와 혼연일체가 돼 섬세한 표정과 손동작을 보여준다. ‘19금 드립’과 베드신, 욕설의 민망함은 “인형이 어쩜 저렇게 사람처럼 움직이지?”라는 감탄으로 치환된다. 그러면서도 결말에 이르러서는 스스로의 ‘찌질함’을 긍정하고 소소한 목표부터 찾아나가는 게 행복해지는 길이라는 위로의 메시지를 던진다. ‘애비뉴 큐’의 이번 내한 공연은 독창적인 뮤지컬이 한국 관객들에게 얼마나 통할지 가늠할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우리나라 뮤지컬은 가파른 성장과 맞물려 특정 스타일로의 쏠림현상이 심화됐다. 유럽 왕실과 귀족 이야기, 화려한 무대와 의상, 스타 마케팅이라는 공식이 바로 그것이다. 뮤지컬 평론가인 원종원 순천향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우리나라 뮤지컬 시장에서는 서구사회에 대한 환상을 채워주는 작품들이 인기”라면서 “실제 유럽이나 미국에서 공연된 작품보다 무대와 의상을 더 화려하게 바꾼 경우가 많다”고 분석했다. ‘애비뉴 큐’는 이러한 흥행 공식을 전면으로 뒤집는다. 스타 배우는커녕 배우가 아닌 인형들이 무대에 오른다. 이들이 풀어내는 지극히 현실적이고 솔직한 이야기는 환상속 서구의 이야기와 거리가 멀다. 허름한 거리와 집, 라이브 바,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정도가 전부인 단촐한 무대 위에서 펼쳐지는 작품은 연기와 스토리, 음악이라는 뮤지컬의 가장 기본적인 요소에 주목하는 효과를 가져온다. 원 교수는 “10여년밖에 되지 않은 우리나라 뮤지컬 시장의 빠른 성장의 이면에는 대중이 좋아하는 유행을 쫓는 관행이 있었다”면서 “앞으로 몇 년 사이에는 형식적인 일탈과 실험이 각광받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오는 10월 6일까지 서울 샤롯데씨어터. 5만~13만원. 1577-3363. 김소라 기자 sora@seoul.co.kr
  • 美 ‘1020세대’로 북새통… K팝의 힘 실감

    美 ‘1020세대’로 북새통… K팝의 힘 실감

    지난 25일(현지시간) 찾아간 미국 로스앤젤레스 시내의 메모리얼 스포츠 아레나. 1984년 하계 올림픽이 열렸던 이곳에 한국의 문화 및 서비스, 제품을 소개하는 큰 장(場)이 섰다. 이곳에서 ‘대박’이라고 한글이 적힌 모자와 역시 한글로 등판에 ‘제시카’ ‘로빈’ 등 자신의 이름을 적은 현지 10~20대들을 만나는 건 어렵지 않았다. 피부색이 다양한 이들이 ‘소녀시대’는 물론 뜬 지 얼마 안 된 걸그룹 ‘크레용팝’의 무대 의상을 똑같이 입고 싸이의 ‘강남스타일’에 맞춰 군무를 추다가 CJ 한식 브랜드 ‘비비고’의 비빔밥과 농심 ‘신라면’을 익숙한 듯 먹거나 현대자동차의 ‘벨로스터’를 관심 있게 지켜보는 모습은 사뭇 뿌듯한 감정을 일으켰다. 할리우드로 대변되는 ‘소프트파워’ 강국인 미국에서 CJ그룹이 올해 두 번째로 개최한 한류 마켓 페스티벌 ‘K-con 2013’은 산업적인 측면에서 한류의 가능성을 확인한 현장이었다. 작년보다 규모를 2배 키워 75개 기업의 100개 부스가 차려진 행사장은 미국의 ‘1020세대’로 발 디딜 틈 없이 붐볐다. 발랄한 청소년들 사이에서 만난 백발이 성성한 노부부의 입에서 ‘샤이니’ ‘엑소’ 등 한국 아이돌 그룹의 이름이 줄줄이 나오는 것처럼 신기한 일이 또 있을까. 16살 소녀 섀넌을 따라온 던(77)과 바브 러더(69)는 “손녀딸이 2년 전부터 K팝에 푹 빠진 이후 코리아타운에서 시간을 보내는 게 일상이 됐다”고 말했다. 그림에 소질이 있어 엑소 멤버 전원을 똑같이 그린 대형 초상화를 들고 나타나 주변 또래들의 환호를 한몸에 받은 섀넌은 “언젠가 한국에 꼭 갈 것”이라며 활짝 웃었다. 다양한 세대, 인종을 소통케 하는 K팝의 힘은 생각보다 강했다. K-con의 하이라이트로 행사 2일째인 25일 열린 한류 콘서트 ‘엠카운트다운 What’s up LA’로 LA는 또 한 번 들썩였다. 티켓값이 작년보다 3배나 뛰었는데도 1만 1000석이 순식간에 매진됐다. 관객의 80%가 미국인으로 300달러나 하는 VIP석의 경우 1200석이 판매 개시 10분 만에 동나기도 했다. 콘서트를 포함해 이틀 동안 K-con을 찾은 인원은 2만명을 훌쩍 넘는다. 첫 행사에서 K-con의 잠재력을 엿본 현대자동차와 미국 통신사 버라이존 등 2곳은 올해도 공식 후원사로 적극 참여했다. LG, 농심, 아시아나항공 등 국내 대기업뿐 아니라 국내 중소기업 20여곳도 당당히 부스를 차리고 현지 고객과 소통하는 기회를 얻었다. 특정 문화 행사와 기업의 브랜드 및 제품 마케팅이 한 장소에서 이뤄지는 ‘컨벤션 비즈니스’가 세계적인 추세로 떠오른 가운데 CJ그룹이 처음 시도하는 K-con의 의미는 남다르다. K팝을 원동력으로 음식, 패션 등 다른 산업으로 한류를 확산시킬 계기를 마련했기 때문이다. 그룹 관계자에 따르면 K-con은 이미경 CJ그룹 부회장의 아이디어다. 몇 년 전 이종 종합격투기 대회인 UFC 경기장을 찾았던 이 부회장은 그곳에서 관람객들을 대상으로 유수의 기업들이 자사의 브랜드와 제품을 알리고 소통하는 현장을 보고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 CJ그룹의 노희영 브랜드 전략 고문은 “가장 즐거울 때 접하는 제품이나 브랜드는 늘 좋은 추억으로 남는다”며 K팝을 원동력으로 삼은 K-con에 대해 밝은 전망을 내놨다. 지난해보다 협찬 액수가 7배나 뛰어 올해 손익분기점을 넘어섰지만, K-con은 단기간의 수익보다는 충성도 높은 미래의 소비자를 길러 내기 위한 투자로 본다. CJ는 K-con을 단계적으로 해외시장에서 확대해 나갈 계획이다. 내년부터 일본·중국에서 연 3~4회 개최한 이후 2020년까지 동남아와 유럽까지 K-con의 자장을 넓혀 나간다는 방침이다. 행사를 참관한 서울대 경영학과 김상훈 교수는 “콘텐츠 제작에서부터 배급·유통까지 하는 CJ그룹이 컨벤션 비즈니스의 적임자로 한류 산업의 불씨를 잘 피웠다”며 “K-con의 성공적 정착을 위해서는 참여 기업 수를 늘려 CJ만의 컨벤션이 아니라 ‘코리아 컨벤션’으로 승화시키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로스앤젤레스 박상숙 기자 alex@seoul.co.kr
  • [의정 포커스] 조남진 서울 마포구 의원

    [의정 포커스] 조남진 서울 마포구 의원

    “현장의 목소리를 열심히 들어서 최적의 대안을 마련해 왔다는 게 저의 자랑입니다.”26일 조남진(57) 서울 마포구의회 의원은 6대 구의원으로서의 의정 활동 소감을 이처럼 밝혔다. 첫발을 떼면서 가장 심혈을 기울인 부분은 복지사업. 2010년 첫 임기를 시작하자마자 2년간 복지도시위원장을 맡은 데 이어 지금까지도 복지도시위원회에 몸담고 있다. 이 문제에 관한 한 조 의원의 장기는 현장행정이다. “평상시 복지시설을 일일이 찾아다니면서 현장의 목소리를 듣는 데 많은 시간을 할애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각 시설의 현황과 문제점, 개선 방안 등을 꼼꼼하게 파악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우리마포복지관, 장애인종합복지관, 지역자활센터, 보육정보센터 등 지역 내 복지시설을 모두 쫓아다니면서 세세한 얘기들을 청해 들었다. 복지정책을 위해 꼭 복지시설만 돌아다닌 것은 아니었다. 마포자원회수시설, 와우산배드민턴장 같은 주민 편의시설은 물론, 초·중·고교 같은 곳도 꼭 직접 다녔다. 이곳에서 만나는 주민과 학생, 근무자들에게서도 배울 만한 아이디어가 있다는 생각에서다. 이런 경험들은 구체적 성과로 나오게 마련이다. 2011년 공동발의한 ‘서울시 마포구 지역아동센터 운영 및 지원에 관한 조례’와 ‘마포구 아동·여성 보호에 관한 조례’ 같은 것은 마포구에서 상대적으로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은 여성과 아동의 복지정책 개선에 도움을 줬다. 이 조례들을 토대로 마포구는 여성과 아동의 안전을 위해 여성·아동 폭력 관련 서비스 기관 간의 연계강화, 사전 예방과 보호·치료 등 필요한 행정적 지원을 추진할 수 있었다. 조 의원의 또 다른 관심 분야는 교육이다. 4년제 대학 진학률 등을 따져봤을 때 마포구의 교육여건이 열악하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교육특구 지정을 추진하기도 했다. 교육에 대한 꾸준한 관심은 지난해 ‘교육발전 자문위원회 설치 및 운영조례’를 제정하는 것으로 이어졌다. 조 의원은 “교육발전자문위를 통해서 마포구의 교육발전 방향을 고민하고 어떤 정책이 좋을까 논의하는 것은 물론, 소소한 학교 환경 개선 문제까지 함께 의논하는 것 등이 가능해지면서 주민들에게 호평을 받았던 일이 가장 가슴에 남는다”고 말했다. 조태성 기자 cho1904@seoul.co.kr
  • 요정은 그만, 이젠 여왕

    요정은 그만, 이젠 여왕

    고속 성장을 거듭하고 있는 ‘리듬체조 요정’ 손연재(19·연세대)가 세계선수권 대회에서 사상 첫 메달에 도전한다. 손연재는 오는 28일부터 우크라이나 키예프에서 열리는 국제체조연맹(FIG) 리듬체조 세계선수권에 출전한다. 이날 후프·볼 개인종합 예선을 치른 뒤 29일 새벽 종목별 결선에 나설 것으로 보이며 29~30일에는 곤봉·리본 예선과 결선을 각각 치를 예정이다. 개인종합 예선에서 24위 안에 들면 30일 오후 개인종합 결선에서 사상 첫 메달 사냥에 나선다. 손연재는 시니어 무대 데뷔 첫해였던 2010년 모스크바 세계선수권에서 개인종합 32위에 그쳐 높은 벽을 실감했다. 그러나 이듬해 프랑스 몽펠리에 대회에서 11위를 차지하며 올림픽 출전 티켓을 따냈다. 지난해 런던올림픽 5위의 쾌거를 이루며 기량이 급성장한 손연재가 올해 대회에서는 어떤 모습을 보일지 주목된다. 지난 2월 러시아 가스프롬 그랑프리를 시작으로 올 시즌 일정을 소화한 손연재는 꾸준한 발전을 보였다. 리스본 월드컵에서 볼 종목 동메달을 딴 뒤 페사로 월드컵에서는 사상 최초로 은메달(리본)을 목에 걸었다. ‘카테고리 A’ 대회인 소피아 월드컵에서는 후프 종목 동메달과 함께 개인종합 4위에 오르는 성과를 거뒀고, 민스크월드컵에서는 멀티 메달(후프 은메달, 곤봉 동메달)의 쾌거를 이뤘다. 6월 아시아선수권에서는 개인종합 금메달을 손에 넣었다. 손연재가 대회에 나설 때마다 한국 리듬체조 역사가 새로 쓰였다. 임주형 기자 hermes@seoul.co.kr
  • [위클리 포커스] 주목받는 28일 오바마 연설

    [위클리 포커스] 주목받는 28일 오바마 연설

    여름이 막바지에 다다른 이번 주 미국의 수도 워싱턴은 지난 반세기 만에 가장 뜨거운 열기를 예고하고 있다. 흑인 인권 운동가 고(故) 마틴 루서 킹 목사가 워싱턴의 링컨기념관 계단에서 수십만 명의 군중을 상대로 “내겐 꿈이 있습니다”라는 역사적 연설을 한 지 꼭 50년이 되는 28일 미국 최초의 흑인 대통령 버락 오바마가 바로 그 계단에서 인종평등을 주제로 연설할 예정이기 때문이다.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의 노예해방 선언 100주년을 맞은 1963년 8월 28일. 당시 34세였던 킹 목사는 연설을 통해 인종평등을 부르짖은 뒤 25만∼30만명의 시위대와 함께 워싱턴 모뉴먼트까지 ‘일자리와 자유를 위한 워싱턴 행진’을 벌였다. 미국 역사상 최대 규모의 인권 시위였다. 오바마 대통령은 24일(현지시간) 발표한 포고문을 통해 “50년 전 (행진이 벌어졌던) 내셔널몰에 족적을 남긴 사람들을 명예롭게 하기 위해 우리는 이 시대에 반드시 (인권의) 진보를 이뤄내야 한다”면서 “나는 모든 미국인에게 이날(28일)을 다양한 방법으로 기념해 달라고 요청한다”고 말해 28일을 전국적인 기념일로 규정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유권자의 다수를 차지하는 백인들을 의식해 인종 문제에 거리를 뒀던 임기 1기와 달리 재선 부담이 없어진 올해부터는 자신의 흑인 정체성을 거리낌없이 드러내고 있어 28일 얼마나 강도 높은 내용의 연설을 할지 주목된다. 지난 22일 퓨리서치 여론조사에서 응답자의 49%가 “인종평등을 달성까지 많은 노력이 더 필요하다”고 대답했을 만큼 미국 내 인종차별은 ‘현재진행형’이며, 특히 흑인들이 체감하는 차별은 백인들이 예상하는 것보다 크다. 28일 오바마 대통령의 연설에 앞서 토요일인 지난 24일 워싱턴 링컨기념관에서 모뉴먼트까지 50년 전의 ‘워싱턴 행진’이 재연됐다. 전미유색인종지위향상협회(NAACP) 등이 주최한 이날 대행진에는 수만 명의 시민이 참가해 열기가 달아올랐다. 행진에 앞서 킹 목사가 섰던 링컨기념관 계단에서는 인권 운동가와 유명 인사 등이 잇따라 등단해 킹 목사의 정신을 기리는 연쇄 연설에 나섰다. 흑인 최초의 법무장관인 에릭 홀더는 연설에서 “50년 전 워싱턴 평화대행진에 참가했던 그들이 없었더라면 내가 법무장관이 되거나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탄생하는 일은 없었을 것”이라면서 “(인종평등을 위한) 투쟁을 계속해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워싱턴 김상연 특파원 carlos@seoul.co.kr
  • “포용·배려심 품어야 좋은 리더 되죠”

    “포용·배려심 품어야 좋은 리더 되죠”

    재미교포 2세 바이올리니스트 데이비드 김(50)에게 붙어다니는 수식어는 15년째 변함없다. ‘세계 정상 오케스트라의 악장을 꿰찬 첫 한국계 연주자’라는 말이다. 1999년 미국의 ‘빅5’ 교향악단 가운데 하나인 필라델피아오케스트라의 악장에 뽑힌 그는 현재까지 악단을 대표하는 얼굴로 활약하고 있다. 악장 자리에서 유태계 바이올리니스트를 밀어낸 것은 필라델피아오케스트라 역사 100여년 만에 그가 처음이었다. 지난해부터는 미국 PBS방송이 미국 주요 오케스트라 수석 연주자들을 선발해 만든 올스타오케스트라의 악장으로도 활동 중이다. 23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리는 ‘마스터피스 시리즈 Ⅱ’ 연주회에서 KBS교향악단과 협연하는 그를 이메일 인터뷰로 미리 만났다. 세계 명문 오케스트라의 악장으로 군림하는 시간은 늘 꽃다발만 가득했던 것은 아니다. 그 자신, 밑바닥까지 가라앉았던 시간이 있었다고 했다. “악장으로 첫발을 내딛은 처음 7년간은 ‘나는 터프가이가 되어야 한다’, ‘보스가 되겠다’는 어리석은 생각을 했었어요. 단원들과 의견 충돌이 잦았고 불편한 순간들, 어색한 관계가 많을 수밖에 없었죠. 한마디로 최악의 시기였어요. 매일 아침 연습실에 들어갈 때마다 명치 끝이 아파올 정도였으니까요.” 하지만 그는 동료, 가족들의 도움으로 좋은 리더란 포용력과 배려심을 품어야 한다는 걸 깨달았다. “이젠 청중과 다양한 협연자, 지휘자, 동료들이 제게 불어넣어주는 용기 덕분에 끊임없이 감동받고 있습니다. 지난날의 경험이 저를 더 현명하고 겸손하게 만들어준 셈이죠.” 1963년 미국 일리노이주 카본데일에서 태어나 3살 때 바이올린을 처음 잡은 그는 8살 때 장영주, 이자크 펄먼 등을 키운 ‘바이올린계의 대모’ 도로시 딜레이를 사사했다. 줄리어드 음악원에서 학·석사를 마치고 1986년 차이콥스키 국제 콩쿠르 등에서 수상하며 솔리스트(독주자)로서도 탄탄한 입지를 쌓았다. 15년 전으로 시계바늘을 돌린다면 어떤 선택을 할까. “이따금 ‘세계를 여행하는 독주자의 인생이었으면 좋겠다’ 싶을 때도 있죠. 하지만 세계적으로도 유서 깊고 위대한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의 일원이라는 사실이 더 멋지다고 생각해요.” 사실상 미국인으로 살아왔지만 한국에서 공연을 할 때는 각별한 감정에 젖는다. 1996년에는 연세대에서 교환교수를 지내기도 했다. “미국에서 태어나긴 했어도 한국에서 연주할 때마다 뿌리를 느끼곤 해요. 그래서 세계 어느 나라에서보다 한국에서 연주하는 게 좋습니다. 한국 젊은 음악가들과의 작업이나 동대문 쇼핑도 즐겁고요(웃음).” 최근 빈심포니오케스트라에서는 플루트 수석인 최나경씨가 단원 투표에서 하차하는 일이 있었다. 최씨는 동양인 연주자에 대한 차별이 심했다고 주장해 논란이 일었다. 데이비드 김은 이에 대해 “내 경우에는 악단 내에서 인종 차별을 겪지 않았지만, 최나경의 오랜 친구로서 그가 이런 곤경을 겪었다는 사실이 슬프다. 이번 경험으로 더 강해질 거라 믿는다”고 했다. 명문 교향악단에 몸담고자 하는 국내 연주자들에게 선배로서 그가 건네는 조언에는 진심이 어려 있었다. “‘세상에 없는 것’을 무리하게 만들어 내느라 힘을 주기보단 기본에 충실하세요. 아름답고 따뜻한 소리, 견고한 리듬, 자연스러운 음악성을 지니고 있다면 충분히 앞설 수 있습니다.” 정서린 기자 rin@seoul.co.kr
  • [이용철의 영화 만화경] ‘폭스파이어’ 눈부시게 위험한 소녀들이여

    [이용철의 영화 만화경] ‘폭스파이어’ 눈부시게 위험한 소녀들이여

    22일 개봉한 ‘폭스파이어’는 억압받으며 자란 소녀들의 저항에 관한 영화다. 1950년대 미국 뉴욕 주의 북부, 매디(케이티 코시니)를 비롯한 소녀들은 집 안팎에서 버림받은 채 웅크리고 살아간다. 성폭행을 당한 뒤 귀가한 소녀가 따뜻한 치유를 받기는커녕 가장의 눈을 피해 홀로 슬픔을 삭여야 했던 시대. 젊은 여자가 독립하기 위해 얻을 수 있는 전문직이라고 해봐야 타자수나 비서직이 전부였던 시대. 매일 울분을 억누르던 소녀들은 어느 날 폭스파이어란 이름 아래 힘으로 맞서는 조직을 결성한다. 비열한 가면 밑으로 폭력적인 얼굴을 숨긴 몇몇 남자들에게 복수를 하는 것으로 행동을 개시한 그들은 함께 살아갈 공동체를 꾸리기에 이른다.‘폭스파이어’는 실패한 공동체의 기억에 관한 영화다. 리더인 렉스(레이븐 애덤슨)는 패잔병에 불과한 늙은 공산주의자의 회고담에 감명을 받아 신성한 공동체를 꿈꾸게 된다. 그녀의 강한 리더십과 과감한 태도에도 불구하고 공동체는 곧 한계에 처한다. 직업을 구할 수 없기에 경제적 기반이 미비하고, 그들 자신이 소외된 존재이면서 인종 차별의 벽을 넘어서지 못하며, 남성에 대한 증오심 외에 뚜렷한 비전이 없어 낭만적이고 유희적인 집단에 머문다. 폭스파이어가 결국 산적처럼 범죄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려 들면서 공동체는 파국을 맞는다. 하지만 그들의 이상을 얼룩지게 만드는 것은 범죄가 아닌 냉혹한 현실이었다. 로랑 캉테의 시선은 건조하면서도 뜨겁다. 인간이 아무리 선의에서 행동하더라도 그것이 과연 최선의 의도인지 그는 질문한다. 공동체는 바깥 시스템의 억압으로 인해 파괴되는 것이 아니다. ‘폭스파이어’는 공동체가 내부에서부터 붕괴되는 과정을 끈질기게 바라본다. 조이스 캐럴 오츠가 1993년에 발표한 동명의 소설을 영화화했다기보다 1950년대에 실재했던 소녀들의 공동체를 재연한 영화로 보인다(안젤리나 졸리가 주연을 맡은 1996년 버전은 소녀들의 일회성 일탈을 넘어서지 못한다는 점에서 캉테의 버전과 비교가 되지 않는다). 캉테의 버전은 10대소녀에 대한 남다른 애정을 품었던 캐럴 오츠의 원작에 충실하다는 평가를 들었으며, 인간과 시스템을 성실하게 읽어온 캉테는 어느덧 문화인류학자의 태도로 시대와 인간에 접근했다. 전작 ‘클래스’로 10대와 학교의 현실을 정면으로 다룬 바 있는 캉테는 다시 비전문 배우들을 캐스팅해 1950년대 미국 소녀들의 이야기에 도전했다. ‘폭스파이어’는 조직의 리더인 렉스의 이야기이면서 조직의 역사를 기록한 매디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시간이 흘러 평범하게 살아가는 매디는 신문을 통해 사진 한 장을 접한다. 사진 속 게릴라의 모습이 렉스인지 그녀는 확신하지 못한다(혹은 아픈 기억을 거부한다). 그러나 그녀는 한때 마음속에서 불타올랐던 매서운 불꽃을 잊지 못한다. 그것만으로 그녀의 10대는 값어치를 지닌다. 21세기 아이들에게 정열이 없다고 질책하는 대신 ‘폭스파이어’는 청춘은 불꽃만으로 충분히 아름답다고 말한다. 143분. 15세 관람가. 영화평론가
  • 日과 너무 다른 獨

    日과 너무 다른 獨

    다음 달 총선을 앞둔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20일(현지시간) 옛 나치 강제수용소를 찾았다. 전범을 합사한 야스쿠니신사 참배를 강행하려 하는 일본 총리와 정부 각료들에 대한 전 세계의 비난이 쏟아지는 가운데 이뤄진 것이어서 더욱 뜻깊다.독일 dpa통신 등에 따르면 메르켈 총리는 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 강제수용소였던 뮌헨 인근 다하우 수용소 추모관을 방문해 헌화하고 희생자들의 넋을 기렸다. 독일 총리가 다하우 수용소를 찾은 것은 처음이다. 메르켈 총리는 이곳에서 “다하우는 비극적이게도 강제수용소의 대표적인 이름으로 유명하다”면서 “이곳 수감자들의 운명을 떠올리면 깊은 슬픔과 부끄러움으로 가득 찬다”고 말했다. 그는 또 “이곳은 독일이 인종과 종교, 성별 등의 이유로 사람들의 생존권을 빼앗는 데 얼마나 잔인해질 수 있는지를 영원히 경고한다”고 덧붙였다. 이어 독일인 대다수가 당시 대학살을 모른 척하며 나치 희생자들을 도우려 하지 않았던 ‘대중의 침묵’을 지적하며 자신의 방문은 “역사와 현재의 다리가 돼 미래로 나아가기 위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다하우 수용소는 1933년 아돌프 히틀러가 권력을 잡은 뒤 만든 정치범 수용소로, 우리에게는 한 유대인 수용자가 벽에 남긴 ‘용서해라, 그러나 잊지는 마라’는 낙서로 잘 알려져 있다. 나치 정권은 이곳에 유대인과 동성애자, 집시, 전쟁 포로, 장애인 등 20만명을 가두고 4만 1000여명을 처형했다. 야당은 총선을 앞두고 메르켈 총리가 표심(票心)을 얻기 위한 수단으로 역사의 속죄를 이용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하지만 홀로코스트 생존자들은 뒤늦게나마 독일 총리가 수용소를 방문했다는 것만으로도 “역사적이었다”고 환영했다. 독일 유대인 평의회의 디터 그라우만 회장은 슈피겔 온라인에 “총리가 다하우에서 유세만 하고 갔다면 되레 ‘추모관을 방문하지 않았다’고 공격받았을 것”이라고 메르켈의 이곳 방문을 지지했다. 류지영 기자 superryu@seoul.co.kr
  • 美 한인 9년간 히스패닉계에 무료 점심… 인종 초월한 情

    美 한인 9년간 히스패닉계에 무료 점심… 인종 초월한 情

    “고달픈 삶의 모퉁이를 돌면 거기엔 놀라운 축복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19일 낮 12시쯤(현지시간) 미국 버지니아주 애넌데일의 한 공터. 땅바닥에 앉은 남루한 옷차림의 히스패닉계 30여명 앞에서 손에 성경책을 든 한 동양인이 스페인어로 열변을 토하고 있었다. 인근 ‘이글레시아 엔 크리스토’ 교회의 조영길(68) 목사였다. 10여분간의 간단한 설교가 끝난 뒤 한인 자원봉사단체 ‘굿스푼선교회’(회장 김재억 목사)에서 나온 대여섯 명의 자원봉사자들이 히스패닉들에게 무료 점심을 나눠주기 시작했다. 자원봉사자들이 정성껏 조리한 하얀 쌀밥과 불고기, 중남미식 샐러드가 1회용 도시락 안에 소담스럽게 담겨 있었다. 식사 전 손을 닦으라고 소독용 물수건을 일일이 나눠주는 데서도 세심한 배려가 읽혔다. 이런 풍경은 9년째 매주 월요일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중남미에서 막 이민 와서 고생하는 가난한 히스패닉들이 안쓰러웠던 김 목사가 스페인어가 유창한 조 목사의 도움을 받아 2004년 굿스푼선교회를 설립한 게 시초였다. 한인 사회 내부에서는 처음엔 얼마나 갈까 회의적인 시각이 많았지만 두 목사를 비롯한 자원봉사자들의 헌신으로 지금은 완전히 자리를 잡았다. 이곳을 찾는 히스패닉들은 대부분 막노동 등 일용직 노동자들이다. 아침에 일거리를 못 얻어 공치는 날엔 이곳에 와서 점심을 해결하며 고달픈 이민자의 시름을 달랜다. 멕시코 출신의 30대 남성 후안 사파테로는 “아무 보답도 바라지 않고 가족처럼 격려해주는 한인들이 정말 고맙다”고 말했다. 봉사활동이 알려지자 이 지역 미국인 인권 변호사 모임인 ‘저스티스 센터’도 동참했다. 센터 관계자가 매주 월요일 무료 식사 현장에 와서 “무료 법률상담을 해주고 있으니 억울한 일이 있으면 언제든 연락하라”고 공지한다. 조 목사는 “예전엔 한인을 ‘치노’(중국인을 일컫는 경멸적 속어)라고 부르던 히스패닉들이 지금은 깍듯이 존경심을 표한다”고 했다. 글 사진 애넌데일(버지니아주) 김상연 특파원 carlos@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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