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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만델라 남아공 대통령 방한(사설)

    넬슨 만델라 남아프리카 공화국(남아공)대통령이 6일 국빈자격으로 우리나라를 공식방문한다.우리는 만델라 대통령의 서울방문을 진심으로 환영하면서 그의 이번 방한이 한국과 남아공 양국간의 우호협력관계를 한단계 끌어올리는 실질적인 결실을 남기기를 기대한다. 2박3일간의 짧은 일정이지만 그의 방문은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무엇보다 남아프리카 공화국 국가원수의 첫 한국 방문은 남아공의 아시아접근과 한국외교의 남아프리카 지역 본격진출이라는 새로운 지평을 열고 있다.불과 수년전까지만해도 남아공은 유엔의 경제제재 대상국이었고 우리는 그런 제재조치에 협조하는 멀고 먼 나라사이였다. 우리는 또 양국관계 이전에 만델라 대통령의 개인적인 업적에도 유념한다.외무부가 그의 방한 의미의 주요항목에 『만델라 대통령의 위대한 민주화 위업을 재조명한다』고 밝혔듯이 다른 국가원수들의 방문과는 달리 만델라 대통령의 경우 그의 개인적인 정치투쟁 역정을 높이 사는 뜻도 강조되고 있다.잘 알려진대로 만델라 대통령은 물경 27년간이나 옥살이를 해가면서 남아공의 악명높던 소수백인들의 인종차별정책(아파르트헤이트)을 무너뜨리고 다수 「흑인지배시대」를 성취해낸 역사적 인물이다.그런 점에서 30여년에 걸친 반독재 투쟁으로 민주화를 달성한 김영삼 대통령과는 정치적으로 닮은 점이 많다. 두나라간의 경제적 협력기반도 탄탄한 편이다.남아공 경제제재를 단계적으로 해제하기 시작한 91년 양국간교역규모가 3백30만 달러였던 것이 지난해에 10억달러를 넘어선 것만 봐도 알수 있듯이 양국간에는 경제협력의 여지가 얼마든지 있다.남아공은 우라늄 아연 구리등 풍부한 광물자원 보유국이고 한국은 만델라 대통령이 야심적으로 추진하고있는 5개년 재건개발계획(95∼99)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우리는 급격히 성장하고있는 인도양경제권의 핵심국가중 하나인 남아공의 외교적·경제적 중요성을 간과하지 말아야할 것이다.끝으로 만델라 대통령의 이번 여정이 편안하고 만족스러운 것이 되길 바라마지 않는다.
  • YMCA 1백주년 세계대회/새달1일∼18일 서울교육문화회관서 개최

    ◎아·태지역서 4번째… 92개국 6백여명 참가 대한YWCA(회장 김갑현)는 7월1일부터 18일까지 서울교육문화회관에서 세계YWCA 창립 1백주년기념 세계대회를 개최한다. 「비전을 가지고 앞으로」란 주제로 열리는 이번 대회는 92개국에서 6백50여명의 여성지도자들이 참가한 가운데 세계 YWCA총회(7월7∼13일)외에 세계여성지도자회의(IWS·7월3∼6일),청년대표회의(7월1∼3일)로 진행된다. 총회는 4년마다 열리는 YWCA의 최대 행사로 아시아·태평양지역에서는 중국·호주·싱가포르에 이어 네번째 열리는 셈.총회에서는 지난 4년간의 사업보고 및 평가,앞으로의 주요 정책을 채택하는 한편 다음 총회때까지의 사업계획도 수립하며 회장단 및 실행위원 선출과 헌장개정등의 작업도 벌인다. 특히 이번 회장단 선거에는 한국에서 김영정 IWS 준비위원회 위원장 겸 한국적십자사 부총재가 회장으로 출마,스웨덴의 아니타 앤더슨 세계 Y 실행위원과 조이스 세로크 남아프리카공화국 YWCA 사무총장과 경합을 벌여 관심을 모으고 있다. IWS는 세계Y가 창립 1백주년 기념사업의 하나로 개최하는 행사.각국의 YWCA 지도자외에도 자메이카 유엔대사인 루실 메어씨,유엔 지구통치위원회 대외담당관 라마 마니씨,에드가 아키노 국제사면위원회 위원등 각계 각층의 여성지도자들이 참가한다.이번 회의에서는 ▲세계경제 ▲세계의사 결정 ▲세계정의를 주제로 토론을 벌여 그 결과를 오는 9월 북경 세계여성대회에 상정할 예정이다. 총회가 끝난뒤인 7월14∼18일에는 세계대회 참가자들이 한국의 각 지역을 방문,민박을 하며 프로그램 정보교환과 YWCA 회원간 이해 도모등을 위한 지역방문 행사를 갖는다. 세계 YWCA는 지난 1894년 창설돼 현재 92개국 2천5백여만명이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국제적인 여성단체.여성인권,여성지위향상,여성지도력 개발등 여성문제를 비롯해 인종차별 철폐,반전,환경보존,생활환경개선등 다양한 활동을 전개해 오고 있다.본부는 스위스 제네바에 있으며 회장은 인도의 라지아 이스마일씨가 맡고 있다.
  • 조용한 불 지방의회 선거/박정현 파리특파원(오늘의 눈)

    프랑스 지방의회선거는 프랑스 국내보다는 외국에 보내는 메시지가 더 강하게 느껴진다. 우선 외국인들이 프랑스에서 살기가 점점 어려워진다는 점이다.인종차별과 외국인 이민 추방을 내건 극우파는 지난 11,18일 이틀동안 실시된 선거에서 「돌풍」을 일으켰다. 사상 처음으로 장악한 2개 시의회가 인종혐오증이 심하기로 소문난 남부지방에 국한된 곳이기는 하지만 프랑스 땅에 사는 외국인들을 긴장시키기에 충분하다. 주로 아랍인들을 대상으로 한 외국인에 대한 테러가 늘고 있는 추세여서 극우파의 약진을 바라보는 다른 프랑스인들의 시선도 밝지 않다.프랑스 지식인들은 「민주주의에 대한 도전」이라며 폐쇄적 극우의 위험성을 경고한다. 극우파의 돌풍에 대한 논쟁만 빼면 프랑스의 지방의회 선거는 너무 조용하다.도무지 51만2천여명의 지방의원과 3만6천여명의 시장을 뽑는 선거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이 정도의 숫자를 선출하려면 전국이 한바탕 몸살을 앓을 만 한데도 선거 과열현상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행여 지방 어디선가 그런 일이벌어졌는지 알 수 없지만 프랑스 언론매체에 비친 모습은 그렇다. 프랑스의 조용한 지방선거는 제도탓이다. 각 정파는 대표후보와 함께 후보자 명단을 내고 유권자는 이 후보자 명단에 투표를 한다.여기서 다수를 얻은 정파의 대표후보들은 자동적으로 시장이 된다. 명망있는 대표후보가 유권자들의 표의 향방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지만 다른 후보들의 면면도 적지 않게 작용한다.때문에 어느 한 개인이 시장이 되려고 사생결단을 할 필요가 없고 자파의 후보자들 모두가 지역주민들의 신망을 받아야 한다. 이런 간접선거 형태가 시장선출의 과열을 막는 비결인 셈이다.또 지방선거의 결과가 중앙정치무대에 미치는 영향은 미미하기 때문에 중앙의 선거 개입도 눈에 띄지 않는다. 알렝 쥐페 총리가 보르도에서 시장에 당선됐고 지스카르 데스탱 전대통령이 중부지방인 클레르 몽페랑에 출마하는 특유한 제도도 지방선거의 질을 높이는 요인의 하나라는 느낌이다. 프랑스는 지방자치제의 모범국가는 아니지만 조용한 지방선거는 배울 만한 것같다.
  • 불 지방선거/극우「국민전선」대약진/툴롱·마리냔 장악… 인종차별우려

    ◎10만이상 대도시 의회서 첫 승리 【파리=박정현 특파원】 프랑스의 극우정당인 국민전선(FN)이 지난18일 실시된 지방의회선거에서 남부의 툴롱·마리냔지방을 장악,충격을 주고 있다. 외국이민의 추방과 인종차별을 정책으로 내건 국민전선이 인구 10만명 이상의 도시 시의회에서 절대다수를 차지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국민전선의 장 마리 르 펜당수는 툴롱 등지에서 이긴 것은 인종차별로 비난받고 있는 자신의 정책이 이념적으로 승리한 것이라고 주장하고 동부의 뮐루즈 등지에서 패배한 것은 아랍출신 이민자들과 범법자들의 방해공작 때문이라고 비난했다. 또 이번 선거에서 우파는 자크 시라크 대통령의 아성인 파리의 18구에서 장 루이 드브레 내무장관이 패배한 것을 비롯,파리의 20개구 가운데 6개 구를 좌파에 내주었다.
  • 솔제니친 글로 말하라(해외 사설)

    알렉산더 솔제니친이 1년 전 오랜 망명생활을 청산하고 귀국했을 때 그것은 큰 사건이었다.반체제인사로 굴락(집단수용소)의 양심인 그 스스로 그렇게 말했다.귀국길에 그는 진짜 러시아인들을 만나 그들의 문제,즉 진리를 모스크바로 가져오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그 뒤 1년이 지나며 그는 이 고통속의 러시아를 위해 아무 말도,아무 일도 하지 않았다.정치적인 의미에서뿐 아니라 정신적인 면에서도 그랬다.물론 텔레비전에도 출연했지만 너무 진부한 말만 늘어놓아 그를 지켜본 사람은 불과 얼마 되지 않았다.그리고 이 시대의 가장 도덕적인 문제,체첸무력개입에 대해서도 그는 사실상 침묵으로 일관했다. 이 위대한 인물이 귀국하며 안겨준 기대를 충족시켜주지 못한 것이다.그 스스로 미국의 버몬트주를 떠나 블라디보스토크로 향하면서 그런 기대를 불러일으키게 만들었다.그는 러시아정치에 개입치는 않겠지만 지방에 사는 국민의 삶을 모스크바 지도부에 전달하겠다고 약속했다.즉 국민의 목소리가 되겠다고 약속한 것이다.그리고 그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이 나라는 지금 분명히 나갈 방향감각을 상실했다.이 길을 제시해주기 위해서는 정치가가 아니라 예언자가 필요하다.바츨라프 하벨이나 넬슨 만델라는 이 역할을 했다.이들은 권력을 잡았을 때 모든 사람이 동의할 일정을 제시해 그대로 추진했다.그것은 인종차별철폐와 시장경제로의 이행이었다.그러나 솔제니친은 그런 도덕적 권위를 더 이상 행사하지 못한다.아마도 그는 너무 오래 조국을 떠나 있었다.그의 사상을 나타내는 합의된 목소리도 분명치 않다.그는 자신의 글의 힘으로 독자와 공감하고 그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위대한 작가다. 선거철이 다가오는 지금 솔제니친에게 들려줄 가장 좋은 충고는 국회(두마)·크렘린,그리고 정치적 언론·텔레비전과 거리를 두라는 것이다.그리고 원래 그가 하던 일­글을 쓰라고 주문하고 싶다.
  • 만델라 대통령 새달 방한/6일/김 대통령과 정상회담

    넬슨 만델라 남아공 대통령이 김영삼 대통령 초청으로 오는 7월6일부터 사흘간 우리나라를 방문한다고 윤여전 청와대 대변인이 10일 발표했다. 국빈으로 방한하는 만델라 대통령은 청와대에서 김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갖고 민주화투쟁과 개혁문제등 공동관심사에 관해 의견을 교환하고 양국간 우호증진방안에 대해서도 폭넓게 협의 할 예정이다. 윤 대변인은 『만델라 대통령의 방한은 지난 92년 수교이래 남아공 국가원수로서는 첫 방문이며,이를 계기로 양국간 실질협력이 증진되고 우리의 대아프리카지역 교류가 더욱 활성화될 것으로 기대된다』고 밝혔다. 윤 대변인은 『투옥을 당하는등 27년에 걸친 험난한 투쟁 끝에 3백42년간 지속돼온 인종차별을 종식 시킴으로써 남아공 민주화의 상징이 된 만델라 대통령과 40여년의 정치역정을 한국의 민주발전에 헌신해온 김 대통령의 만남은 민주주의를 향한 세계 지도자들의 역사적 만남으로 기록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 남아공의 뿌리 흑백인의 만남(아프리카 기행:12)

    ◎남아공 원래 주인은 “산족 부시맨”/2천여년전 북부서 이주… 17C부터 유럽인 통치/흑인대통령 탄생 불구 경제권 등 백인들이 장악 우리가 남아프리카공화국이라고 부르고 있는 이 지역의 원래 주인은 영화를 통해 잘 알려진 부시맨들이었다.산족이라고도 부르는 이 유목민들은 2000년전쯤 지금의 수단 땅 아프리카 북부에서 양치는 법을 배우기 시작하면서 차차 남아프리카의 서부해안으로 이주해 이곳에 자리잡고 살게 되었다.그리고 나서 16세기에 비로소 이곳을 찾아온 백인들과 조우했다.다른 한편으로는 부시맨들과 아주 다른 언어인 반투어를 쓰는 코이코이족(네덜란드인들은 이들을 호텐토트족이라 부른다)이 있었는데 이들은 짐바브웨 지역에 살면서 철기를 다루고 소를 길러 양식으로 삼았다.이들 코이코이족은 남아프리카의 동부해안으로 내려와 자리잡았다.현재의 이스턴케이프에 해당하는 지역에 살았던 이들은 17세기에 백인들과 만나면서 서부해안의 부시맨들과는 달리 백인들과 정면으로 충돌했다. ○16세기 백인과 첫 충돌 유럽에서 남아프리카에 최초로 발을 들여놓은 사람들은 포르투갈인이었다.이들은 1487년부터 1488년 사이에 인도로 가는 항로를 발견해내기 위한 항해도중에 남아프리카에 닿았다.그러나 영구적인 정착지를 만들어낸 사람들은 네덜란드인들이었다.1652년 얀반 뢰빅(JANVAN RIEBEECK)은 일단의 네덜란드인들을 이끌고 오늘의 케이프타운에 해당하는 테이블마운틴 아래 해안가에 상륙했다.이 해안선을 지나가는 네덜란드의 선박들을 위한 중간기착기지로 삼기위한 것이었다.그러나 자신들의 식량자급이 힘들어지게 되자 뢰빅은 함께 온 부하들중 일부를 해방시켜 주변의 땅에서 농사를 짓게 하였다.그는 또한 아프리카의 다른 지역과 극동지방들로부터 노예들을 사들이기도하여 세력을 확장시켜 나갔다. 이렇게 해서 네덜란드인들은 해안지방에서 부터 내륙으로 야금야금 침투해 들어가면서 남아프리카를 그들의 식민지로 만들어 갔다.네덜란드에서 온 이주자들은 처음엔 보어인으로 불렀으나 나중엔 본토어에서 파생된 언어인 아프리칸스어를 쓰게 되면서 그 이름을 따 「아프리카너」라고불리게 되었다.그 뒤 부시맨 그리고 코이코이족과 아프리카너들 사이에서는 케이프컬러드(Cape Colored)라는 혼혈인종이 생겨나게 되었다.아프리카너들은 희망봉 일대에서 내륙쪽으로 이동하여 반유목생활을 하는 농민이 되었는데 주로 피시강 부근에 안정된 농경생활을 하던 이들은 비교적 인구가 많았던 코사족과 충돌하기 시작했다.1775년에는 사소한 소떼의 약탈이 원인이 되어 아프리카너와 코사족의 국경전쟁이 일어나 100년동안이나 간헐적으로 지속되었다. ○1백여년간 국경 싸움 한편 처음 아프리카너들과 충돌하였던 코이코이족은 자신들의 영토에서 쫓겨나 아프리카너들이 경영하는 농장에서 노동을 강요당하는 완전한 노예의 신분으로 전락하고 말았다.부시맨들은 불모지나 산악지대로 쫓겨나 굶주렸는데 굶주리다 못한 이들이 가축을 도적질하다가 수천명이 살해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남아프리카의 영토싸움과 인종차별은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었다.1795년에 영국군은 당시 케이프식민지였던 지금의 케이프주를 점령했다가 1802년 그 지배권을양보했었고 1806년 다시 점령지를 되찾는다.영국인들은 국경을 따라 코이코이족을 비롯한 반투어를 쓰는 종족들을 하나하나 정복하기 시작했다.그로써 18 30년대에 이르러 아프리카너들이 노예들을 데리고 오렌지강과 발강을 건너 북상하는 대이주가 시작되었다.바로 이 시기에 아프리카너(보어인)들은 오렌지자유국(1854)과 남아프리카공화국(1838,후에 트랜스발공화국이 됨)을 세운다.두 공화국은 1850년대 모두 영국의 식민통치로부터 독립되었다.그러나 보어공화국들은 영국인들이 자신들을 남아프리카연방에 포함시키려 하자 이에 맞서 저항하였고 그 결과 1899년 드디어 두 공화국과 영국 사이에 이른바 보어전쟁이 발발한다.그러나 1902년 보어인들의 저항은 진압되었다.두 공화국은 결국 남아프리카공화국에 포함되고 말았다. 남아공화국의 형성과정은 이토록 복잡한 역사적 질곡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그 나라가 겪고 있는 인종차별도 그런 역사 속에서 명료하게 찾아볼 수 있게 된다.그러한 질곡과 투쟁 끝에 흑인인 만델라가 대통령으로 선출되었다.트랜스발주에 있는 요하네스버그의 중심시가지에는 흑인노동자들과 노점상,그리고 실업자들이 분주하게 오갔지만 공기 좋고 그늘지고 경관 좋은 곳에 벌어진 벼룩시장의 난전에서는 흑인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수도 요하네스버그는 남아공의 수도이고 상업의 중심지로 금광회사의 본사가 대부분 이곳에 있기도 하다.이 나라에서 가장 인구밀도가 높은 곳이기도 한데 유색인종은 이 수도의 서부와 남서부의 특정지역에서만 주로 거주한다.차를 타고 다니는 사람은 거의가 백인이었고 걸어다니는 사람은 흑인들이었다. ○흑인은 거의 걸어다녀 우리를 시내의 언덕 위에 있는 대통령궁으로 안내하였던 백인 운전사는 불과 한달 전에 자신의 아내가 흑인들의 습격으로 숨졌다는 사실을 토로하였는데 운전기사의 표정이 시종 굳어 있긴 하였지만 도대체 불과 한달 전에 아내를 잃은 사람치고는 침울하다든가 슬프다든가 하는 기색을 찾아볼 수 없어 반신반의하게 만들었다.그는 만델라가 대통령이 된 이후로 신문에는 보도되지 않고 있지만 흑인에 의한 백인들의 피해가 뚜렷하게 증가하고 있다고 불평을 늘어놓았다.하지만 얼른 지나가는 관광객들의 시선에는 이 나라는 정치와 경제에 있어 아직도 백인들에 의해 지배되고 있다는 증거와 조짐들이 너무나 뚜렷하였다.남아공화국의 법률은 백인,그리고 흑인과 백인의 혼혈인 컬러드인,인도인을 주축으로 한 아시아인과 아프리카인(흑인),4대 인종집단을 인정한다.이중에서 아프리카흑인은 전인구의 3분의 2이상이고 컬러드는 10분의 1,백인은 전인구의 5분의 1이다.이 백인들이 대통령직을 제외한 남아공화국의 모든 것을 쥐고 있다는 인상을 떨쳐버릴 수 없었다.그러나 남아공의 출입국관리소 백인 직원은 멀리서 온 이 동양인에게 너무나 친절하고 싹싹해서 황송할 지경이었다.
  • 2차 대전/오늘 종전50돌… 되돌아보는 의미와 영향

    ◎5천만명 희생 교훈은 어디로/동서냉전 초래… 이젠 경제전쟁시대로/「민족」 앞세운 인종청소 등 유혈 아직도 1945년5월7일 독일이 연합군측에 항복을 선언하고 그 다음날인 8일 항복문서에 공식 서명함으로써 유럽에서의 2차대전은 막을 내렸다.그러나 5천3백만이 넘는 사망자와 약 1조6천억달러의 경제적 피해를 남긴 인류 최대의 비극이었던만큼 전쟁 자체는 끝났지만 2차대전은 아직도 세계질서 전반에 광범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한마디로 2차대전은 우리의 삶 구석구석에 살아있는 것이다. 중동분쟁의 근원인 이스라엘 문제만 하더라도 2차대전이 남긴 결과라할수 있다.2차대전을 전후해 6백만에 가까운 희생자들을 낸 유태인들에 대해 승전국들이 그들을 제대로 보호하지 못한데 따른 반성과 사죄의 의미에서 생겨난 나라가 바로 중동의 이스라엘.그러나 이스라엘의 건국이 낳은 팔레스타인 문제는 결국 최근 급속히 확산되는 평화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중동이 여전히 「세계의 화약고」란 오명을 벗지 못하게 하고 있다.이같은 예는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2차대전이 끝남에 따라 과거의 식민지배에서 벗어나 독립한 아시아·아프리카의 수많은 나라들에서 2차대전은 오늘의 삶을 형성하는 주요 요인일 수 밖에 없다.한반도의 분단 자체도 2차대전이 가져온 비극의 하나다. 초강국 미국의 탄생도 2차대전이 남긴 중요한 유산으로 꼽지 않을 수 없다.2차대전 당시의 세계 열강들(주로 유럽 국가들)이 전란의 큰 피해로 인해 국력이 쇠퇴했을 때 유일하게 전란의 직접 피해를 피한 미국은 유럽의 경제재건에 대한 경제원조를 통해 미국의 영향력을 뿌리내렸으며 국제질서를 감시하는 세계의 경찰로서 흔들리지 않는 확고한 지도국의 위치를 굳힌 것이다. 그러나 2차대전이 근대사에 미친 가장 큰 영향은 동서 냉전체제를 배태시켰다는 점이다.지난 45년간에 걸친 이념 대결의 시대도 미국과 함께 동·서 냉전의 나머지 주역을 차지했던 소련이 무너져내림에 따라 미국을 세계 유일의 초강국으로 만들면서 막을 내렸다.이제 미국을 견제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경제전쟁을 통한 길 밖에는 없게 됐다. 이같은 측면에서 2차대전의 패전국이었던 독일과 일본이 경제대국으로 부상한 반면 최대 승전국이라 할 미국이 정치부문에선 아직도 막강한 영향력을 휘두르고 있지만 경제분야에선 조금씩 밀리기 시작했다는 것은 50년만에 세계가 2차대전의 그늘에서 조금씩 벗어나 새 차원의 질서를 모색하게 된 것이 아니냐는 생각도 갖게 해준다. 2차대전이 갖는 중요한 의미중 하나는 전쟁을 통해 이뤄진 가공할 무기체계의 발달로 그같은 대규모 전쟁의 발발을 더이상 불가능하게 만들었다는 것이다.냉전이 극에 달했던 시절 미국과 소련의 경쟁적 군비경쟁이 가져온 「공포에 의한 균형」은 또한번의 대전은 곧 인류의 멸망으로 이어질 것이란 보이지 않는 묵계를 만들었다. 그러나 대규모 전쟁이 일어나지 않고 있다 뿐이지 소규모의 분쟁은 오히려 더욱 기승을 부리는 것이 오늘날 국제사회의 현실이다.2차대전의 발발 원인을 한마디로 규정하기는 힘들지만 게르만민족 우월주의라는 히틀러의 광적인 민족주의가 이를 일으키는 주요 동인이었던 것만은 틀림없다.그러나 오늘의 세계를 돌이켜보건대 민족주의는 여전히 세계 제1의 분쟁 요인으로서 맹위를 떨치고 있다.2차대전을 일으킨 당시의 전제정치에 억눌려 있던 목소리들이 2차대전이 끝남과 동시에 제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는 것이 그 이유일 것이다. 2차대전이 가져온 상상을 초월한 엄청난 피해 규모가 사람들의 마음 속에 이같은 비극을 되풀이해서는 안되겠다는 깊은 인식을 남긴 것은 틀림없다.승전국들은 전쟁이 끝나자 자신들의 승리를 전체주의자들과 인종차별주의자,그리고 살인적인 독재집단에 대한 승리라고 미화했었다.이같은 교훈은 언제까지라도 유지되어야 한다. 그러나 오늘날 옛 유고연방에서 자행되는 인종청소가 나치가 저지른 유태인 학살과 조금도 다를 바 없고 르완다에서와 같은 만행이 끊임없이 반복된다는 점에서 사람들은 2차대전의 교훈을 잊고 있다고 할 수 밖에 없다.5천만 희생자들이 얻고자 했던 것,곧 생명의 자유를 50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에도 인류는 얻지 못하고 있다. ◎도쿄와 판이한 패전 50주의 베를린/독/과거반성·전범추적 끝없는 노력/솔직한 역사교육·언론보도 「국민 공감대」 주도/청소년 72% “패전 잘된일”… 신나치 극소수 불과 독일군 항복에 따른 유럽에서의 2차대전 종전 50주년을 맞아 패전국 독일의 분위기는 문자 그대로 엄숙하기만 하다.4월의 유태인 대학살 현장 아우슈비츠,다카우 강제수용소 해방행사나,지난 2일의 베를린 함락전투 기념행사가 모두 그런 분위기속에서 치러졌다.당시 상황을 있는 그대로 담은 기록사진전이 곳곳에서 개최되고,언론들도 연일 종전관련 특집기사를 비중있게 다루고 있다. 역시 패전국인 일본과는 달리,잘못된 과거라고 해서 이를 덮고 부인하려 하지 않고,역사를 솔직히 시인하고 되풀이하지 말아야 한다는 공감대가 독일국민들 사이에 광범위하게 형성돼 있어 보인다. 물론 종전을 「나치폭압 체제의 종식과 독일인들의 해방」이라고 보는 공식적인 역사의미 해석에대해 이의제기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전·현직 고위정치인을 포함한 보수우익인사 2백80여명이 지난달 중순 유력지인 프랑크푸르터 알게마이네지에 낸 공동성명을 통해 「분단상황등 독일인들이 입은 피해의 시작이란 의미도 부각돼야 한다」며 역사 재해석을 요구하기도 했다.그러나 이같은 움직임은 비난의 화살을 자초했고 결국 자체행사계획도 유야무야됐다.콜총리는 종전의 중심적 의미가 「해방」이라고 독일의 책임을 다시 한번 강조,논란에 종지부를 찍었다. 이와 관련,권위있는 여론조사기관인 포르자가 최근 독일 청소년층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응답자의 72%가 독일의 패전이 잘된 일이라고 밝혔고,신나치주의자 등 극우파 세력에 동참하겠다는 청소년은 1%에 불과했다.전후세대가 총인구의 67%를 차지하는 시점에서 객관적이고 솔직한 과거사 교육의 결과다. 독일정부는 그동안 나치주의 부활을 방지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여 왔다.유태인 6백만명이 히틀러에 의해 학살당한 사실에대한 반론이나 나치식 경례를 불법화했다.전쟁 당시 탈영혐의로 처형된 독일병사 2만여명에 대한 명예회복 움직임도 일고 있다.근래에 들어 신나치주의자들의 과격행동이 있는것도 사실이지만 이들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아돌프 히틀러는 패색이 짙어지자 45년 4월30일 권총으로 자살했고,조셉 괴벨스 선전상도 다음날인 5월1일 자녀 8명및 부인과 함께 자살하는등 전쟁주범들은 이미 사라졌다.독일이 5월7일 항복을 선언하고 그 다음날인 8일 항복문서에 공식 서명한이래 수많은 나치추종자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거나 전범으로 법정에 세워졌다.세월이 흐름에 따라 증인들이 사망하거나 대부분 70∼80대로 기억력이 쇠퇴해지고,나치협력자들이 이름을 바꾸고 얼굴도 성형수술한채 숨어살아가는등 어려움은 있으나 정의를 구현하기 위한 전범추적 작업은 아직도 끊임없이 계속되고 있다. 어쨌든 히틀러가 꿈꿨던 독일의 세계제패와 유태인 말살은 이뤄지지 않았다.하지만 그 후손들은 전후 50년간에 걸쳐 「어두운 과거」를 거울삼아 경제적으로는 라인강의 기적을 이뤄냈고 전쟁발발의 징벌격인 동·서독 분단상황마저 극복해내기도 했다. ▷2차대전 주요 통계◁ ▲총사망자수(추정치):5천3백47만7천여명. 이중 소련군및 민간인 희생자가 2천2백32만여명. ▲독일및독일 점령지역에서의 유태인 인구:전쟁전 8백85만1천8백여명에서 전후 2백91만7천9백명으로 급감. ▲각국 병력수(전쟁이 최고조에 달했을 때):소련 1천2백50만,미국 1천2백36만4천여,독일과 오스트리아:1천만,일본:6백9만5천,프랑스·중국:각 5백만,영국:4백68만3천,이탈리아:4백50만. ▲전쟁으로 인한 경제적 피해:세계 전체 1조6천억달러,나라별로는 미국 2천8백80억달러,독일 2천1백23억달러,일본 4백13억달러. ▲무기생산량:전투기 44만3천31대,총류(개인화기및 대포)4천9백31만9천4백62정,탄약(실탄 및 포탄):8백23억5천2백31만4천4백72발,함정(군용및 상업용 망라):7천9백만t, 차량(지프차부터탱크까지 포함):5백15만7천4백58대. ▲전쟁포로수:◇연합군이 잡은 포로:독일군 63만,이탈리아군43만,일본군 1만1천6백. ◇독일군이 잡은 포로:프랑스군 76만5천,영연방군 20만,유고슬라비아군 12만5천,미군 9만. ◇일본군이 잡은 포로:영연방군 10만8천,네덜란드군 2만2천,미군 1만5천
  • 르완다비극의 배경은 식민통치(해외사설)

    르완다도 지금처럼 비극적으로 살지 않았던 시절이 분명 있었다.후투족과 투치족은 지난 30년간 부족간의 반목과 외세의 인위적인 조종 결과로 추잡스런 난민 수용소등에서 서로 죽이는 「인종청소」의 대학살을 반복해 왔지만 그 전에는 목가적이진 않더라도 마을단위로 행복하게 살았던 시절이 있었다.그것은 아마도 한세기 이전의 시대로 독일인들이 이곳에 상륙하기 이전의 일이다. 르완다와 부룬디는 1897년부터 1919년까지는 독일의 동부아프리카 식민지의 일부였고 1차대전이후는 벨기에에 이양됐으며 그후 국제연맹을 거쳐 국제연합의 신탁통치를 받아왔다.중요한 것은 금세기 초부터 어떤 세력이 이곳을 통치했느냐의 문제가 아니다.문제는 유럽의 국가들이 이곳에서 자국의 이익을 위해 인위적으로 귀족정치를 해왔다는 사실이다.즉 소수 인종인 투치족을 두드러지게 선호한 반면 다수족인 후투족은 피지배계급으로 삼았던 것이다. 벨기에가 르완다에 준 것이라고는 소수 투치족을 특권지배계급으로 하고 다수 후투족은 못배우고 빈곤한 상태로 내버려둔인종차별의 가혹한 계급체계라는 카드뿐이었다.이같은 체계는 한쪽이 다른 쪽을 살해하는데 쓰인다.한세기가 넘는 동안 지속된 식민지 착취와 무관심은 오늘날 르완다가 겪는 참담한 상황을 낳은 원인이 됐다. 르완다 사람들은 서로에게 못할 짓을 해왔다.후투족은 수백·수천명이 소수 투치족에게 칼을 휘두르고 총격을 가하고 돌을 던져왔다.한 후투인은 한번에 9백여명을 죽이는 경우도 있었다.또 수백명의 후투인들도 투치족이 휘두른 총·칼에 죽었다.이같은 유혈분쟁의 기저에는 외세가 오랜 동안 통치해온데서 기인한 두인종간의 경쟁심이 놓여있다. 지금 르완다는 아제르바이잔이나 보스니아·남부수단·터키와 쿠르드족등의 상태와 같이 돼가고 있다.서방세계는 이들 나라에서 일어나는 일을 지켜보고 있으며 화해를 이끌어내지 못한 것을 놓고 양손을 부여잡고 해결책을 짜내고 있다.그러나 사람들은 『그곳에서 비극이 벌어질 때 유엔은 무엇을 했느냐』고 물을 것이다.
  • 세기말 병리현상 무차별 집단테러/미·일 테러의 공통점/지구촌 테러

    ◎탈냉전 이후 격화… 다중에 공포감 심어/정치·이념 떠나 국가권력 무력화 기도 19일 일본과 미국에서 벌어진 두 테러사건은 과거 이념대결의 구도에만 매달려온 지구촌이 냉전종식 이후 무차별적으로 쏟아지는 각종 테러에 얼마나 취약한 지를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사건은 발생했지만 누가 무엇을 위해 사건을 저질렀는지 전혀 밝혀지지 않는 상황이 계속되는 것이다.뚜렷한 목적을 제시하지 않은채 무고한 시민을 대상으로 한 무차별 집단테러로 전세계가 테러의 어두운 그림자 속에 덮여 가고 있는 것이다. 오클라호마 폭탄 테러는 93년 뉴욕의 세계무역센터 테러사건처럼 과격회교분자에 의한 국제테러라는 의심을 강하게 받고 있다.또 19일이 사교집단 다윗파의 집단방화자살사건 2주년이라는 점에서 광신도에 의한 사건일 가능성도 일부 전문가들은 점치고 있다. 한편 요코하마에서의 독가스 사건이나 앞서 도쿄 독가스 테러는 사회내부에서 급격히 확산된 반사회적 감정의 폭발이라는 측면이 짙다. 그러나 이들 사건에는 분명한 몇가지 공통점이 발견되고 있다. 우선 시민 모두를 공격대상으로 삼은 「무차별성」이다.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테러범들이 공포분위기를 조성함으로써 언제 어디서 누구든지 공격을 받을 수 있다는 점을 일반에 인식시키기를 원하는 것』이라는 분석을 내놓는다.이는 어느 곳에 있는 누구도 안전할 수 없다는 이야기다. 또 범인들이 자신의 신분과 구체적 요구 사항을 밝히지 않고 있는 「익명성」도 미국과 일본에서 발생한 테러의 두드러진 특징이다. 과거의 정치테러·이념테러·종교테러는 자신들의 공격 대상이 명백히 정해져 있는 「선별테러」였다.테러범들은 테러 직후 자신의 신분과 테러 동기를 알리는 것이 보통이었다. 그러나 19일 미국과 일본에서 자행된 테러는 테러의 목적과 동기,테러범의 신분 등 구체적으로 드러나는 것이 없다.테러범들이 노리는 것은 대중의 공포와 국가권력의 무력화를 통한 기존질서에 대한 도전이다. 전문가들은 이같은 특징을 꼬집어 인종차별·국제적 분쟁·빈부갈등 등 현대사회의 병리구조가 「익명의 무차별 테러」로 반영된 것이라고 분석한다. 이번 미·일 테러의 또 하나의 공통분모는 원리주의 세력과 광신도 집단이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되고 있다는 점이다.이들은 냉전종식 후 자신들의 입지가 좁아지는데 대한 반동으로 익명의 테러를 자행한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일본에서는 옴 진리교가 혐의를 받고 있으며 미국에서도 국제적 테러 외에 2년전 집단방화자살 사건을 벌인 광신교 집단에도 혐의가 두어지고 있다.자신들만의 세계를 건설하려는 광신집단에게 기존질서는 깨뜨려야만 하는 커다란 장벽일 수 밖에 없고 그 벽을 부수는 수단으로 테러를 택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과연 누구의 소행인가/애 과격회교단체 지도자 체포 보복일지도 오클라호마시티 폭탄테러의 범인은 누구일까. 클린턴 정부는 수사에 방해가 된다는 이유로 용의자에 대해 입을 다물고 있으나 주로 중동 회교도들을 중심으로 결성된 몇 개의 단체가 혐의대상으로 떠오르고 있다.먼저 이번 폭탄테러와 관련해 미국인들은 93년 2월 발생한 뉴욕 세계무역센터 폭탄테러를 자연스럽게 연상하고있다.이 사건의 배후조종자로 2개월전 이집트 과격이슬람단체의 지도자 람지 아흐메드 유세프씨가 체포된 것에 대한 이 집단의 보복일 가능성이 높다는 의심이다. 또 하나 혐의의 대상으로 지목받고 있는 것이 팔레스타인 과격회교단체 하마스이다.이 단체는 지난 몇년간 오클라호마시티에서 열렸던 과격 이슬람교 집회에 참여해온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밖에 회교단체 가운데 의심을 받고 있는 것이 미국내 이슬람 흑인해방단체인 「이슬람의 국가」이다.사건직후 한 보도기관에 이 단체의 소행이라는 제보가 있었으나 이 단체는 폭력행사의 전력이 없다는 점에서 크게 주목받지는 않고 있다. 한편 테러가 발생한 19일은 2년전 다윗파 광신도들이 텍사스주 와코에서 집단자살한 날이기도 하다.이 때문에 한쪽에서는 이들을 범인으로 의심하고도 있으나 다윗파 생존자들은 「우연의 일치」일 뿐이라며 범행을 부인하고 있다. ◎왜 「오클라호마」택했나/회교활동 본거지… “안전한 곳은 없다” 본보기 미 중부에 위치한 인구 50만의 조용한 도시가 테러의 공포에 휩싸인 이유는 무엇인가. 이번 사건이 발생하기 전까지만 해도 오클라호마시티는 테러와는 무관한 살기 좋은 도시로 알려져 있었다.사건이 발생한다면 당연히 뉴욕 같은 정치·경제 중심지에서 일어날 것으로 여겨져 왔다.과거의 테러가 또 그러했다. 그러나 테러전문가들은 범인들이 바로 이 점을 노려 테러를 행한 것일 수 있다고 지적한다.테러범들이 이 정적인 도시를 파괴대상으로 삼음으로써 미국의 어느 곳도 안전할 수 없다는 것을 보여 주었다는 것이다.이슬람 근본주의자 전문가인 스티븐 에머슨씨는 『테러범들은 공포분위기를 만듦으로써 이득을 얻는다.그들은 언제 어디서나 우리를 공격할 수 있다는 점을 인식시키기를 바란다』고 설명했다. 오클라호마시티가 선택된 특별한 이유가 있었다는 주장도 있다.이 도시가 지난 10여년간 과격 이슬람교도들의 활동중심지였다는 사실이 그것이다.이들은 이 시에 본거지를 세우고 수차례 회교 관련 집회를 연 것으로 보도됐다.지난 92년에는 6천여명의 이슬람교도들이 유태인과 이교도를 죽이라는 구호를외치는 과격한 집회를 갖기도 했다.이들 중 일부가 이 도시를 범행대상으로 삼았다는 추측이다.
  • 이민차별법/플로리다주도 만든다/미 5주서 추진… 사회보장 제한확산

    【마이애미 로이터 연합】 작년 11월 불법체류 이민자들에게 사회보장 혜택을 금지하는 법을 제정하자는 주민투표가 캘리포니아주에서 통과된데 힘입어 이같은 운동이 애리조나,콜로라도,텍사스주에서 일어난데 이어 이번엔 플로리다주로 확산됐다. 올란도에 본부를 둔 SOS(우리 주를 구하자)라는 이 운동단체는 내년 11월에 불법체류이민자들에게 사회보장혜택을 금지하는 안을 주민투표에 회부하고 이에 관한 새 헌법을 주의회에서 통과시킬 계획이라고 밝혔다. 플로리다주의 불법체류이민자 차별법 제정을 위한 주민투표운동은 공식 명칭을 아직 확정하지 않았지만 행동노선을 캘리포니아와 비슷하게 함으로써 이 것을 놓고 찬반 양자간에 『단지 무자격자들에게 사회보장 혜택을 통제하는 것』과 『인종차별정책』이라는 상반된 견해를 나타내게 만들었다. SOS간사는 이 주민투표가 이민을 막거나 인종·민족차별에 근거를 두지 않고 캘리포니아주와 비슷한 것이지만 법령 개정이 아니라 주헌법 개정이 될 것이며 불법이민자에게 응급의료서비스를 제공하고 그자녀학생에게 예방주사를 무료로 접종케 해준다는 점 등에서 캘리포니아와는 다르다고 강조했다.
  • 남아공 헌법제정 마찰/인카타자유당,ANC 지침에 반발

    【요하네스버그 로이터 AFP 연합】 남아공의 비인종차별헌법 제정작업은 2일 넬슨 만델라 대통령의 아프리카민족회의(ANC)가 오는 99년 이후 연정 가능성을 일축하고 줄루족의 인카타자유당(IFP)은 자신들의 주장이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제도정치권 참여를 거부하겠다고 나섬에 따라 혼란에 빠져들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군소정당들과 연정을 이루어 남아공을 통치하고 있는 ANC는 이날 남아공의 정치적 장래를 논의하기 위한 이틀간의 협상일정을 끝낸 뒤 다수세력의 통치를 보장하고 많은 권력을 9개 성에 이양하는 것 등을 골자로 하는 헌법을 만들 것이라고 밝혔다. 타보 음베키 제1부통령은 『우리는 민주적 다수의 원칙에 따라 단합되고 인종의 구분이나 성차별이 없는 민주적 정부를 건설하기 위해 종합적인 제헌정책 지침을 마련했다』고 말했다. 이에 앞서 시릴 라마포사 ANC사무총장은 『99년 이후에는 강제적인 연정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었다.
  • 카스트로 방불 3박4일/「쿠바인권」비난 공세 “진화”

    ◎국제사면위의 인권조사 처음 수용/불 대선후보 회동 불발… 체면구겨 피델 카스트로 쿠바 국가평의회의장의 프랑스 방문 3박4일은 쿠바의 인권문제 비난을 어느 정도 누그러뜨리는 소득을 남겼다.르 몽드는 카스트로가 쿠바로 돌아간 16일자 신문에서 그의 방문이 인권 문제에 관한 한 전혀 헛되지는 않았다고 평가했다. 카스트로는 프랑수아 미테랑 대통령 부인 다니엘 미테랑 여사와 만난 자리에서 인권조사단을 수용할 것이라고 밝힘으로써 쿠바의 인권 상황을 확인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놓았다. 다니엘 미테랑 여사가 주도하는 인권단체인 「프랑스 리베르테」가 주축이 될 조사단에는 한번도 쿠바를 방문한 적이 없는 국제사면위원회의 대표도 포함될 예정이어서 상징적 의미를 더하고 있다.쿠바에는 5백∼6백명의 정치범들이 수용돼 있다는 것이다. 카스트로가 인권조사단의 활동에 얼마나 협조할지는 알 수 없으나 그의 발언은 미국을 향한 유화 손짓으로 소식통들은 분석하고 있다. 대통령 관저 엘리제궁에 들어서면서 『쿠바에 대한 인종차별 정책은 끝났다』고 카스트로는 감격해 했지만 중요한 방문 목적인 경제협력에는 만족하지 못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파리의 행사에서 군복 대신 이례적으로 양복과 넥타이 차림을 하는 등 신경을 썼지만 경영연합회측과의 만남에서 투자유치 설명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는 미테랑 대통령 부처와 필립 세갱 하원의장의 환대를 받았을 뿐 정부관계자나 대통령후보는 아무도 그를 만나지 않았다. 대통령 후보중 에두아르 발라뒤르 총리측은 『카스트로를 만나는 것은 쿠바내의 독재 희생자들에 대한 모욕』이라고 못마땅한 시선을 보냈고 리오넬 조스팽 사회당후보는 미국의 금수조치가 해제되어야 한다는 미테랑 대통령의 입장에는 동의하지만 카스트로 정권이 독재정권임은 분명하다고 말했다.여론조사에서 엘리제궁에 가장 근접한 것으로 나타나는 파리시장 자크 시라크 후보는 구체적인 언급이 없었다. 하지만 시라크를 지지하는 세갱 하원의장이 그의 개인적인 친분 때문에 카스트로를 의사당에 안내하는 등 화려한 접대를 했다.
  • 남아공/「흑백교육 갈등」 심화/학교시설 이용권싸고 충돌

    ◎흑인1만명 시위… 1명 숨져/케이프타운 【케이프타운 AFP AP 연합】 남아프리카공화국 흑인학생 1만여명은 16일 케이프타운에서 백인거주 지역인 루이터워치 관내 백인학교 시설을 흑인학생들이 사용할 수 있도록 요구하는 대규모 시위를 벌였다. 공영방송과 목격자들은 흑인학생 시위대가 이날 케이프타운 의사당까지 시위행진을 한 뒤 시중심가에서 상점을 약탈하고 행인과 기자들을 공격했으며 이 과정에서 관광객 1명이 칼에 찔려 부상하고 강도 혐의로 4명이 체포됐다고 전했다. 이에앞서 지난 14∼15일에는 루이터워치의 백인주민 2백여명이 관내의 폐교된 백인학교 시설을 인근 지역 흑인학생들이 사용하지 못하도록 곤봉과 가죽채찍을 들고 개까지 동원해 등교 저지 시위를 벌였으며 충돌 과정에서 흑인학생 1명이 사망했다. 이같은 사태는 넬슨 만델라 아프리카민족회의(ANC) 의장이 아파르트헤이트(인종차별정책)를 종식하고 대통령에 취임한 후 교육과 관계된 가장 심각한 흑백 대결이다. 이날 시위는 집권 아프리카민족회의(ANC) 연관단체인 민족교육조정위원회(NECC)가 주도한 것으로 이 단체는 흑인학생들이 백인및 다인종학교 시설을 이용하도록 허용할 것과 마르타 올커스 웨스트 케이프 주정부 교육장관 해임을 요구하고 있다.
  • 여대생 된 막내에게/김호기(일요일 아침에)

    사랑하는 우리 막내에게. 너의 대학입시합격을 진심으로 축하한다.돌이켜 보면 지난 1년은 그야말로 우리 모두 벽없는 감옥생활을 한 것이나 마찬가지였지.할머니를 여의고 쓸쓸해 하시는 할아버지께 하루도 가뵙고 위로해 드리지도 못할 정도였으니….유난히 정이 많으신 할아버지는 지척에 있는 귀여운 손녀를 그토록 오래 보지 못하시는 것을 내내 섭섭해 하셨단다.그동안 할아버지께서는 그 섭섭한 마음을 감추지 않으시면서 『자식을 그렇게 키우는 것이 아니라 개성을 살리면서 온전한 사람으로 자라나게 하도록 교육해야 한다』고 어머니 아버지를 수없이 나무라셨다.할아버지 말씀이 백번 옳은 것을 잘 알면서도 우리는 어쩔수 없이 세속적인 부모의 범주에서 벗어날 수 없는 부끄러운 사람들이었다.선거유세에서 인종차별을 열띠게 공격하고 나서 귀가해 보니 저녁상에 외동딸이 흑인남자 친구를 데려온 것을 보고 소스라치게 놀라던 어느 미국 영화속의 정치가와도 같이….네가 더 멋있는 처녀로 자라날 수 있었다고 후회해 보아도 부질없는 일이겠지.그것이 다 우리 어른들 탓임을 아프게 느낀다. 사랑하는 나의 딸아.이제 대학에 들어갈 만큼 다 자란 네가 대견하면서도 어린 너희들을 데리고 6년동안 파리에서 근무하던 때의 추억이 아버지의 뇌리를 아련히 스친다.유난히도 초롱초롱한 눈에 윤기가 흐르는 까아만 머리는 프랑스 아이들 가운데 돋보인데다 총명하고 상냥하여 모든 이들의 귀여움을 독차지한 너였단다.사람들은 너를 아예 너의 이름 남연대신 비슷한 발음의 민연(Mignionne)이라고 불렀었다.『귀엽다』라는 뜻이지.우리가 귀국한지 어언 십여년이란 세월이 흘러가서인지 모르지만 그토록 밝고 아리따웠던 너였는데 별로 「이유없는 반항」도 아닌것 같은데 애비앞의 너의표정은 어딘가 굳어 있는 것 같고,함께 지내는 시간도,함께 나누는 마음도 아버지에게는 무언가 아쉬움이 느껴지는 것은 웬일일까? 네가 특차로 합격했을 때 아버지의 마음은 이제는 너와 함께 지낼 시간이 많아질 것이라는 행복한 기대감으로 가득찼었다.요즈음 일찍 퇴근하는 이유를 네가 눈치채지 못하는 것이 솔직히 말해 섭섭하다고 느껴지니 어쩔수 없이 아버지도 나이를 먹어가는 모양이지. 불문과에 진학하게 된 너와 함께 보들레르의 시를 읽고,생텍쥐페리의 「어린왕자」별나라를 찾고,콩쿠르 수상작의 독후감을 나누는 즐거움을 바란다면 이 소박한 애비의 소원이 늙은이의 주책이겠느냐? 네가 「오빠부대」나 「로데오거리」같은 데가 있는 것 조차 모를 정도로 건실한 것은 물론 고맙기 그지 없다.그리고 대학입학 때까지 긴긴 시간을 외국어,컴퓨터,운전교육 등으로 알차게 보내고 있는 것도 말할 수 없이 대견하다.그래야 요즈음 사람마다 얘기하는 세계화시대의 주역으로서의 준비가 될 수 있을 것이다.옛 이집트의 파라오의 묘비에 씌어진 상형문자를 프랑스의 고고학자 샹폴로와가 해독하였는데 그 가운데 『요즈음 젊은이들 버릇이 나빠져서 인류가 한 세대만 지나면 멸망해 버릴것이다』는 말이 있었다고 한다.그후 수백세대가 지난 지금에도 여전히 인류는 건재하고 있으니 아마도 젊은이에 대한 기성세대의 우려는 하릴없는 노파심일지도 모르겠지.그러나 요즈음 세상이 아무리 생각해도 지금보다 훨씬 가난하던 옛날보다 좋아보이지 않는 것을 어찌하겠느냐.외국어와 컴퓨터와 운전은 꼭 배워야 할 생활의 방편이므로 열심히 계속해야 한다.그러나 너희가 암기식 교육으로 대학입시에 합격할 수 있었던 것처럼 인생에서 공부만으로는 성공이 보장될 수 없다는 것을 슬기로운 네가 더 인식해 주었으면 한다. 젊은이다운 패기로 넓은 세상을 바라보며 우리의 강산을 즐기고 그동안 하지 못한 독서를 통하여 선인들의 슬기와 경험을 배우며 문화의 향기에 젖을 수 있는 알차고 보람된 나날을 보내기를 바란다.그렇게 하여 그동안 입시용 암기교육으로 잃어버렸을 지도 모르는 인성을 되찾기를 바란다. 입학시험지옥에서 벗어난 해방감을 너희 또래끼리만 한껏 만끽하고 싶으면서도 가끔 팔순의 외로우신 할아버지를 찾는 너의 고운 마음이 아버지는 너무 고맙다.틀림 없이 나의 사랑어린 충고의 말을 너는 잘 받아들여 멋쟁이 대학생이 될거야. 이 좋은 일요일 아침에 사랑하는 나의 딸에게 세상에서 가장 참되고 멋있고 아리따운 여대생이될 것을 하느님께 기구드린다.
  • 남아공 정국위기 해소/만델라·클레르크 합의

    【프리토리아 AFP 연합】 넬슨 만델라 남아공대통령은 20일 프레데릭 데 클레르크 부통령과 회담을 갖고 과거 정부에서 아파르트헤이트(인종차별정책)정책을 주도했던 치안관리들에 대한 면책여부를 둘러싼 정국위기를 해소했다고 밝혔다. 만델라 대통령은 『그 문제는 이제 해결됐다』면서 이 날중으로 성명이 발표될 것이라고 말했으나 더 이상 자세한 내용은 밝히지 않았다. 만델라는 『과거사는 묻어 버리자』고 말하고 『중요한 것은 데 클레르크 부통령과 내가 오늘 회담에서 상당한 진전을 본 것』이라고 말했다. 데 클레르크도 이날 만델라와 만난후 『회담이 건설적이었으며 진전을 보았다』고 말했다.데 클레르크는 전법무장관과 전국방장관 및 3천5백여명의 경찰관에 대해 면책을 허용할 것을 요구해왔다.
  • 꿈·환상·모험의 나라로 여행/읽을만한 어린이 도서 풍성

    ◎겨울방학 맞아 출판사들 앞다퉈 출판/「교과서에 실린 명작」「문학상 수상작」 시리즈 출판/「마틴 루터킹」「삼강행실도」「만화… 경제」도 선보여 겨울방학을 맞아 서점가에 어린이책들이 쏟아져 나왔다.동화책하면 으레 「인어공주」나 「피노키오」따위 세계 고전명작들을 연상하기 쉽지만 요즘에는 훨씬 다양한 형태와 주제를 가진 책들이 출판되고 있다. 그 가운데서 우선 눈에 띄는 책들이 새롭게 기획한 외국 명작동화시리즈이다. 「세계 교과서에 실린 명작동화」(전 9권,일과놀이 펴냄)는 각 나라 국민학교 저학년 교과서에 실린 동화·동시들을 모은 책.어느 나라나 아이들에게 상상력·어휘력·사고력들을 키워주기 위해 최고 수준의 작품들을 교과서에 싣는다는 사실을 감안할 때 그야말로 대표작들이라고 할 수 있다.내용이 재미있으면서도 나라마다 특색이 있어 아이들에게 그 나라 정서를 알려준다는 것도 이 책의 장점이다. 현재까지 미국·일본·프랑스·독일·중국·러시아·이탈리아·남미국가편이 나왔고 곧 영국·이스라엘편을 낼 계획이다. 이에 견주어 중앙미디어에서 낸 「세계 아동문학상」시리즈 6권은 독일·프랑스·미국·오스트레일리아·노르웨이의 이름높은 아동문학상 수상작품들을 소개하고 있다.6권 모두 최근 작품들이어서 고전명작과는 또 다른 환상적인 동화의 세계를 현대 감각으로 보여준다. 장편동화이고 신나는 모험이야기라는 것도 공통점이다. 한길사에서 펴낸 「꿈과 모험의 나라 나르니아」시리즈(전 7권)는 영국의 학자이자 공상소설 작가인 C S 루이스의 대표작이다.어른들은 갈 수 없는 곳,사람과 동물이 함께 어울리는 환상의 땅 「나르니아」에서 벌이는 모험이야기로 각권마다 등장인물과 사건전개가 달라 다양한 즐거움을 준다. 시인이자 동화작가인 박상률씨가 아름다운 우리말로 옮겼다. 이밖에 「어린이 글짓기 소프트 200」,「마틴 루터 킹」,「삼강행실도」시리즈,「만화로 배우는 경제」시리즈들이 권할만한 책이다. 「어린이 글짓기…」(문학동네 펴냄)는 엄마시인 12명이 「어떻게 하면 아이들에게 좋은 글을 쓰게 할까」를 함께 고민하다 내놓은 글짓기교재.논설·설명·기록문과 동화·동시등 각 장르별로 자세히 설명하고 예문을 곁들였다.시인 이탄·박제천씨가 편집했다. 창작과비평사가 낸 「마틴 루터 킹」은 미국의 인종차별 정책에 맞서 싸우다 암살당한 흑인목사 킹의 일생을 그린 전기.그동안 어린이들에게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던 그의 삶을 통해 인권의 소중함을 일깨워 준다. 「만화로 배우는…」(전 2권,능인)은 어린이라도 경제개념을 가져야 한다는 전제 아래 줄거리를 가진 만화로 쉽게 풀이했으며,「삼강행실도」(전 3권,서해문집)는 나라사랑·부모사랑·이웃사랑등 3가지 주제로 나눠 그같은 삶을 산 선조들을 소개함으로써 교훈을 주고 있다.
  • 서울신문 선정/해외 10대 뉴스/대립·화해속 무한경쟁 시대로

    ○중동평화협정 조인 5월4일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간에 이스라엘 점령 예리코와 가자지구에 대한 자치협정이 맺어진데 이어 10월26일 이스라엘과 요르단 사이에 역사적 평화협정이 조인됐다.이스라엘은 또 시리아에 대해 골란고원 반환의사를 밝혔다.이같은 중동평화 진전의 공로로 이스라엘의 라빈 총리와 페레스 외무장관,아라파트 PLO의장이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다. ○르완다 내전… 50만명 희생 지난 4월 다수민족 후투족이 소수민족 투치족을 학살하면서 벌어진 르완다 사태는 내전발발 3개월만에 전체인구 7백50만명중 50만명이 희생되는 대학살극을 연출했다.참상의 여파로 아직도 2백50만명의 주민들이 기아와 질병에 시달리고 있으며 인근 자이르에 설치된 르완다 난민촌에서는 매일 수백명의 난민들이 죽어가고 있다. ○가트 해체… WTO비준 전후 세계무역질서를 이끌어온 GATT(관세무역일반협정)체제가 해체되고 그 대신 설립될 세계무역기구(WTO)의 출범준비로 세계 각국이 분망하게 보낸 한해였다.UR협정 타결에따라 내년 1월1일 창설되는 WTO는 12월1일 미의회의 비준동의를 비롯,연말까지 1백여개국이 비준을 마칠 것으로 보이나 중국가입,사무총장 선출등 몇가지 난제가 아직 풀리지 않고있다. ○남아공 첫 흑인정권 탄생 지난 4월 넬슨 만델라 아프리카민족회의(ANC)의장이 최초의 흑인대통령에 당선돼 「아파르트헤이트」(인종차별정책)로 대표되는 3백42년간의 소수 백인통치가 끝났다.14%의 백인이 76%의 흑인을 통치하는 기형적 정치체제는 「만델라 대통령­데 클레르크 부통령」이라는 흑·백 동거정권으로 대체됐고 남아공은 유엔에 복귀했다. ○아아티 군사정권 퇴진 미국은 아이티 민정회복이라는 명분아래 9월19일 아이티에 병력을 파병했다.그러나 외교특사로 나선 지미 카터 전미대통령이 아이티 군부지도자들로 부터 퇴진약속을 받아내 군사충돌을 피하고 사태를 해결하게 됐으며 이에따라 91년 쿠데타로 축출됐던 민선대통령 아리스티드는 3년여에 걸친 망명생활을 끝내고 10월15일 권좌에 복귀했다. ◎에스토니아호 침몰 대참사 1천54명을 태우고 에스토니아의 탈린항을 떠나 스웨덴의 스톡홀름으로 가던 여객선 에스토니아호가 9월28일 핀란드 인근 발트해상에서 침몰,9백여명이 익사하는 미증유의 대참사가 발생했다.에스토니아호는 이로써 19 12년 북대서양상에서 빙산과 충돌,1천5백3명이 사망한 타이타닉호 침몰사건 이후 최악의 해상사고 선박으로 남게 됐다. ○북·미 핵협상 극적 타결 전쟁위기까지 몰아갔던 북한핵문제는 10월21일 북·미 핵협상 기본합의서가 조인됨으로써 긴장해소의 전기를 마련했다.북한은 지금 미국과 경수로지원및 대체에너지 공급,연락사무소 설치문제 등을 놓고 협상을 진행중이다.특히 지난 7월의 김일성주석 사망소식은 이후 북한권부의 움직임과 김정일의 권력승계에 대한 많은 추측을 낳기도 했다. ○러,체첸공 무력 침공 분리독립을 주장하는 체첸공화국에 러시아가 군사개입을 단행함으로써 빚어진 체첸사태는 러시아의 소수민족문제 해결을 위한 시금석이 된다는 점에서 관심을 끌었다.옐친 러시아대통령은 날로 떨어지는 인기를 만회하고 체첸외에 독립을 꿈꾸는 여타 소수민족에 대한 본보기로 무력개입을 감행했으나 러시아내에서조차 비난여론이 들끓고 있다. ○미 공화당 의회 장악 지난 11월 미국 중간선거에서 야당인 공화당이 상·하 양원및 주지사 선거에서 압승을 거둬 40여년만에 양원을 모두 장악하게 됐다.미국민들의 「신보수주의 정서의 표출」로 일컬어지는 이번 중간선거에서 패함에 따라 빌 클린턴 미대통령은 집권후반기의 정국운영은 물론 오는 96년 대통령선거에서의 재선전망도 극히 불투명해졌다. ○「보스니아」 3년만에 휴전 「인종청소」라는 신조어를 만들어 내며 3년째 잔인한 도륙을 계속해온 보스니아내전은 세르비아계가 유엔설정 안전지대인 비하치를 사실상 점령한뒤 카터전미대통령의 중재로 24일부터 휴전에 들어갔다.세르비아계는 그동안 수많은 평화중재안을 거부한 채 국토의 70%를 점령했으며 보스니아사태 해결에 시종 미온적 태도를 보여온 EU회원국들은 손을 빼기에 급급했다.
  • 남아공/12개 댐이름 변경 싸고 “시끌”

    ◎“인종차별 정치인 이름 땄다” 정부 개명/“과거업적 깎아내기” 우익 백인들 반발 인종차별시대의 정치인 이름을 딴 12개의 댐이름을 바꾸는 문제를 놓고 최근 남 아프리카공화국에서 거센 찬반양론이 일고있다. 이 문제가 공식제기된 것은 남아공의 카더 아스말 임업및 수산장관이 댐이름의 개명을 발표하면서부터.그러자 백인 우익정치인들은 개명은 아프리카의 백인유산들이 새로 선출된 아프리카민족회의(ANC)정권하에서 살아남을 수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라며 즉각 반발하고 나섰다.또 지난 달 말에는 50명의 우익 시위대들이 9월에 철거된 헨드릭 베르부르트 전수상의 동상을 복원할 것을 요구하며 오렌지 자유주 패트릭 레코타수상의 집무실앞에서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그러나 레코타수상은 인종차별정책을 폈던 베르부르트를 영웅시하는 시위대를 비난한 뒤 동상을 복원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아스말장관은 인종간의 화해를 해치는 인종차별주의자들의 이름이 붙은 댐명칭을 바꾸기로 했지만 다른 정치인의 이름으로 대체하는 일은 피했다고 밝혔다.그 대신 댐이 위치한 지역명이나 댐에 물을 공급하고 있는 강의 이름들로 교체될 것이라는 게 그의 설명이었다.이에 따라 오렌지 자유주에 있는 베르부르트 댐은 지역 원주민들이 그 댐이 세워진 오렌지강에 붙였던 이름인 가립(황야의 뜻)댐으로 바뀌었다. 남아공 정부가 폐지한 댐이름 가운데는 지금은 없어진 가잔쿨루 흑인 집단거주지의 전임 수상이었던 허드슨 엔차뉘시같이 인종차별을 지지하는 흑인정치인들의 이름도 들어있다. 백인 우익 자유전선의 한 대변인은 『새 이름이 과거를 바꾸는 것은 아니며 자신들의 이익이 경시되고 있다고 느끼는 지역에서의 적대감만 조장할 것』이라고 주장했다.보수당의 대변인인 마리위스 오스토이센은 이같은 행위는 소위 인종차별을 한 사람들에게 망신을 주려는 「급진주의자들의 혁명」이라고 비난하고 댐이름을 베르부르트라고 지은 것은 그의 정치적 견해 때문이 아니라 관개사업추진에 대한 그의 통찰력 때문이었다고 강변했다. 그는 한술 더떠 지난4월 남아공 최초로 모든 인종을 대상으로 실시된선거에서 권력을 잡은 아프리카민족회의 정부가 베르부르트의 모든 업적을 파괴하는 것이 목적이라면 다이너마이트로 그 댐을 폭파해야 한다고 말했다. 아스말은 이에 대해 베르부르트댐을 포함,12개 댐의 이름은 아무리 화해정신을 발휘하더라도 살아남을 수없는 것이라고 단호한 입장을 보였다.그는 또한 댐이름의 개명에는 관계전문가로 구성된 16인 자문위원회의 조언이 있었다고 덧붙였다.
  • 여성 머리 스타일 사회적 위상 반영/미 「보그」지 보도

    ◎단발·긴 생머리·땋은 머리·흑인 고수머리·삭발…/여성 경제활동 때맞춰 단발 등장/긴머리 순결·삭발은 반항 이미지/스카이넴 생머리 여성해방 표현­대처 철갑머리 「철의 여성」 상징 미국 퍼스트레이디 힐러리 로드햄 클린턴의 머리스타일이 너무나 자주 변화한다고 AP통신이 보도,최근 세간의 관심을 끈 바 있다.세계적인 패션전문지 「보그」 12월호는 힐러리를 비롯,유명 여성들의 머리스타일을 예로 들며 머리모양은 여성의 지위변화등 사회적 배경을 짙게 반영하고 개인의 정치활동의 수단으로도 쓰인다는 내용의 기사를 게재,흥미를 모은다. 1920년대 여성머리모양에 단발이 등장하면서 혁명적인 변화는 시작됐다고 보그지는 전한다.서구의 산업화진행과 함께 여성들이 경제활동에 참여하고 남성들과 비슷한 생활방식을 좇으면서 나타난 스타일로 사회적으로 큰 반작용을 불렀는데 미국 시카고의 마샬필스백화점은 단발머리여성은 고용하지 않는다는 광고를 냈으며 아칸사스대학 당국은 긴머리의 여성이 더 지적이라는 연구결과를 발표하기도 했다.여성은 역사적으로 긴 머리카락을 유지해야 한다고 강조돼 왔다.서구 여성들이 「긴머리=여성의 당연한 미덕」이라는 사실을 유지하게 만든 것은 구약의 고린도 전서 제2권.『여성의 긴 머리카락은 영광,남성의 긴 머리카락은 수치』라고 한 구절때문이었다고 이 잡지는 설명하고 있다. 여성의 손대지 않은 긴 머리는 결혼전 때묻지 않고 순결하다는 의미로 인식돼 왔다.중세이후 16세기 중반까지 보편적이던 여성의 땋은 머리에 리본이나 보석류로 장식이 시작됐고 이 장식은 여성의 꽉 매인 생활상에서 창조와 개성을 발현하는 숨통역할을 했다는 것. 18세기 프랑스 왕비 마리 앙트와네트가 새장을 얹기도 한 과장된 탑쌓기 머리스타일은 극도의 사치로 불행을 초래,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지면서 함께 없어졌고 땋은 머리등 절제된 머리가 다시 유행했다. 60·70년대 비틀스와 롤링스톤스의 음악과 함께 남녀 머리의 마지노선은 없어졌고 인종차별·여성해방등 이념운동의 등장과 변화된 사회모습은 여성의 머리카락에 많은 정치색을 띠게 했다.60년대 흑인의 시민권 운동을 벌였던 안젤라 데이비스는 흑인의 고수머리스타일「아프로」(Afro)를 과장되게 하고 다님으로써 「민족적 자존심」의 상징으로 삼았고 여성운동가 글로리아 스타인넴은 손대지 않고 기른 머리를 「여성해방」의 명분으로 밀었다. 최근 여성의 사회 활동이 두드러지고 당연시되면서 여성의 머리스타일은 목적을 위한 수단 또는 정치색을 읽어내는 표시로 쓰이고 있다고 이 잡지는 덧붙인다.미국의 방송앵커 다이언 소이어는 부드러운 퍼머머리 대신에 짧은 컷의 단정한 머리스타일로 뉴스진행에 성공을 거두었고 힐러리는 의료개혁을 추진하면서 자신의 머리스타일을 자주 변화시키면서 잠재적인 영향을 미치고자 노력한다는 것이다.또 영국의 전 수상 마거릿 대처의 철갑헬멧 머리는 철의 여성이미지를 굳게 했고 아일랜드 출신 여가수 쉬네드 오코너의 삭발머리는 그녀의 반항적 이미지를 강조하는데 큰 역할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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