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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CEO 칼럼] 화합과 소통의 위대한 저력/장경작 현대아산 사장

    [CEO 칼럼] 화합과 소통의 위대한 저력/장경작 현대아산 사장

    지난 10일 불기 2555년 ‘부처님 오신 날’을 맞아 종교 간에 화합하는 모습이 눈에 띄어 우리를 즐겁게 했다. 이달 초부터 전국 각지의 성당과 교회 앞 길목에는 석가탄신일을 봉축하는 현수막이 내걸렸다. 지난 9일 명동성당에선 법정 스님을 추모하는 다큐영화 시사회가 열려 추기경이 직접 조계사의 주지와 동자승들을 반갑게 맞이했다. 이번 시사회는 지난 4월 부활절에 조계사에서 먼저 김수환 추기경 추모영화를 상영한 데 대한 답례로 이뤄졌다고 한다. 종교의 배타적 성향이 강했던 과거에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생전에 두 성직자의 교리를 초월한 인연이 아름다운 만남을 가능케 했고, 평화와 화합의 소중함을 다시금 되새길 수 있는 계기가 됐다. 화합은 말 그대로 화목하게 어울린다는 의미다. 세상 누구도 반목과 갈등을 원치 않듯이 화합에 대한 욕구는 이 시대 모든 사람들의 본성과도 같다. 하지만 과거에는 종종 화합과 통합보다는 분열과 갈등의 양상이 우세하게 나타났다. 이유는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지 않아서다. 진정한 화합은 서로를 알기 위한 노력과 더불어 서로의 생각을 나눌 수 있는 소통이 전제될 때 가능하다. 최근 그 어느 때보다 화합과 소통이 사회 각계의 키워드로 자주 등장한다. 정치권은 물론이고 지역사회, 기업, 종교, 예술, 스포츠 분야에 이르기까지 끊임없이 화합과 소통의 가치를 강조하고 있다. 이는 그만큼 화합과 소통이 결핍된 현실을 반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특히 글로벌 경제위기 속의 기업경영은 기업 간, 조직원 간의 더욱 긴밀한 유대를 요구한다. 과거와 달리 복잡다기하게 얽힌 지금의 기업생태계에서는 기업들 서로가 협력의 대상임을 인식하고 지속적인 소통과 화합의 노력을 통해 동반성장을 이뤄내야만 상생할 수 있다. 기업의 생존과 직결되는 화합과 소통을 올바로 실현하기 위해 어떤 덕목들이 필요한지 생각해봤다. 첫째, 내가 먼저 말하지 않고 귀를 크게 열어 듣는 자세가 필요하다. 소통형 리더로 유명한 스타벅스의 하워드 슐츠 회장은 일방적 업무 지시를 최소화하고 직원들의 의견을 직접 청취해 의사결정에 반영한다고 한다. 스타벅스 매출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인기메뉴 ‘프라푸치노’도 매장 종업원의 의견을 수렴한 결과라고 한다. 세계 커피시장을 평정한 스타벅스의 저력에는 ‘듣는 경영’이 숨어 있는 것이다. 둘째, 아무런 선입견 없이 상대를 인정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논어 자로편에서 공자는 “군자화이부동, 소인동이불화”(君子和而不同, 小人同而不和)라고 했다. 군자는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완전히 융화할 수 있지만, 소인은 같은 척 꾸밀 수는 있어도 진정으로 어울릴 수 없다는 의미다. 즉, 상대를 가감 없이 진심으로 인정할 수만 있어도 이미 화합은 이뤄진 것이나 다름없음을 강조한 것이다. 마지막으로 말로 그치지 않는 적극적인 실천이 필요하다. 행동하지 않는 화합은 공허한 슬로건에 지나지 않는다. 화합의 아이콘인 넬슨 만델라는 혹독한 인종차별의 벽을 넘어 남아공 대통령에 취임하고서도 백인 지배의 상징인 럭비팀을 해체하지 않았다. 오히려 럭비월드컵을 유치, 기적적인 우승을 일궈내 흑·백통합의 결정적인 계기를 만들어냈다. 이처럼 화합과 소통의 실현은 언제나 위대한 저력을 발휘한다. 우리는 1998년 외환위기 극복의 일념으로 350만명이 227t의 금을 모아 위기를 넘어섰고, 2002년 수백만명의 거리응원으로 월드컵 4강 신화라는 국민 대화합의 힘을 몸소 경험한 바 있다. 지금 대두되는 기업의 동반성장은 물론 집단·세대·양성·계층·지역 간 화합도 위대한 저력을 되살려 충분히 실현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또 장기간 성장통을 앓고 있는 남북관계도 민족화합이란 대승적 견지에서 서로의 다름을 이해하는 견화동해(見和同解)의 노력을 지속한다면 반드시 개선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 [주말 영화]

    ●왕이 되려던 사나이(EBS 토요일 밤 11시) 인도에 주둔했던 영국군 출신의 피치(마이클 케인)와 대니얼(숀 코너리)은 절도와 총기밀수 등 사기행각을 벌이다 추방당하게 된다. 피치는 과거에 키플링(크리스토퍼 플러머)의 시계를 훔쳤다가 알게 된 사이다. 키플링은 기회의 땅으로 가서 통치자가 되겠다는 피치와 대니얼에게 알렉산더 대왕이 그곳을 정복했었고 록산느라는 아내까지 있었다고 이야기해준다. 그러면서 프리메이슨 문양의 목걸이를 선물로 준다. 그렇게 무기와 술을 챙겨 길을 나선 두 사람은 혹독한 기후와 눈사태를 이겨낸 후 꿈에 그리던 카피리스탄에 도착하게 된다. 그곳에서 만난 구루족 출신의 보병 빌리 피시를 통역자로 쓰게 된 두 사람은 군사들을 정비해나간다. 마침내 전쟁이 시작되고 날아오는 화살이 가슴에 박히지만 대니얼은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전투를 승리로 이끈다. 이에 원주민들은 그가 ‘시칸더’ 즉 알렉산더 대왕의 아들이 신으로 내려왔다고 믿게 된다. ●라스트 프로포즈(OBS 일요일 밤 11시 50분) 명석한 두뇌에 뛰어난 외모의 샘(유덕화)은 홍콩 최고의 백만장자 사업가다. 모든 것을 가진 그이지만 세번의 이혼이 말해주듯 사랑만큼은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샘은 사업차 방문한 마카오에서 가난하지만 인생을 즐길 줄 아는 당찬 매력의 클럽 댄서 밀란(서기)을 만나 첫 눈에 반한다. 우연히 만난 두 사람은 달콤한 사랑을 키워간다. 하지만 행복한 순간도 잠시. 이들의 교제 사실이 알려지자 홍콩 사교계는 발칵 뒤집힌다. 밀란이 상류층 여자로서의 덕목을 배우는 동안 샘 주변의 사람들은 두 사람의 관계를 의심 가득한 눈초리로 바라본다. 결국 샘은 주위 사람들의 강요에 못 이겨 혼전 계약서를 내밀고 상처받은 밀란은 샘을 떠나고 만다. 그렇게 샘은 사업과 사랑 사이에서 일생일대의 결정을 내려야만 하는데…. ●신의 손(KBS1 토요일 밤 12시 55분) 1930년대 흑백 인종차별이 극심했던 시대. 미국 내슈빌의 밴더빌트 대학 연구소에서 청소 등 잡일을 하던 흑인 청년 비비언 토머스는 대학 문턱에도 가보지 못했지만 탁월한 손재주와 의사를 꿈꾸는 열정으로 저명한 백인 외과의사인 블레이럭 박사의 조교가 된다. 그후, 박사를 따라 존스홉킨스 의과대학으로 옮겨간 비비언은 블레이럭의 주요 의학 연구와 수술에 점점 더 없어서는 안 될 존재가 되어 간다. 유색인종은 뒷문으로 출입하고 화장실도 백인과 따로 써야 했던 시대에 백인 의사와 흑인 조교는 끊임없이 언쟁하고 갈등하면서도 평생 떨어질 수 없는 동반자가 된다. 극심한 논란 속에 치사율 백퍼센트였던 청색증 아기 환자의 심장을 세계 최초로 수술해 성공하면서 마침내 신의 영역으로만 여겨졌던 심장 수술의 길을 열게 된다.
  • “국적만 없을 뿐 한국인들과 차이 없다”

    “국적만 없을 뿐 한국인들과 차이 없다”

    “저는 다른 한국인들과 차이가 없었습니다. 다만 국적이 없었을 뿐입니다.” 김대원(44) 해외입양연대 대표는 다섯살 때 스위스에 입양됐다. 그후 대한민국 국적을 잃고 고국을 떠난 지 29년, 그에게 다시 대한민국 국적이 주어졌다. 복수국적을 허용한 개정 국적법 덕택이었다. 19일 법무부 주최로 열린 ‘해외 입양자 국적 회복 축하행사’에서 대한민국 국적을 다시 받은 그는 “내가 포기한 것도 아니었고, 내 의지와 상관없이 사라진 국적을 이제야 찾았다.”며 안도감이 섞인 소감을 전했다. 어린 나이에 스위스로 간 김 대표는 그곳에서 인종차별과 경제적 어려움의 이중고를 겪으며 청소년기를 보냈다. 대학진학도 양부모의 반대로 포기했다. 하지만 그는 어려운 환경에 굴하지 않고 스스로 학비를 벌어 취리히 대학에 입학, 5개 국어에 능통할 정도로 열심히 공부했다. 그러나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물음은 그치지 않았다. 결국 김 대표는 2002년 한국에 돌아왔고 친어머니까지 만나게 됐다. 그렇지만 거의 40년 만에 돌아온 조국에서의 생활은 불편했다. 주민등록번호가 없어 웹사이트 하나 가입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스위스에서 회계와 물류 관련 일을 한 김 대표는 귀국 후 10년 가까이 해외입양연대(사단법인) 일을 하고 있다. 자신과 같은 해외 입양자들을 위한 일을 하고 싶다는 이유에서다. 강병철기자 bckang@seoul.co.kr
  • 원숭이 된 오바마…대통령 비하 ‘인종차별’ 파문

    원숭이 된 오바마…대통령 비하 ‘인종차별’ 파문

    미국 대통령 버락 오바마를 원숭이로 묘사한 사진이 유포돼 인종차별 논란이 일고 있다. 17일(현지시간) 뉴욕 데일리 뉴스 등 미국 언론에 따르면 캘리포니아 주 오렌지 카운티의 공화당 중앙위원인 메릴린 대븐포트(여)는 지난주 일부 동료 위원들에게 문제의 이메일을 보내 물의를 일으켰다. 보수단체 ‘티파티’의 활동가이기도 한 대븐포트 위원은 이메일에서 원숭이와 오바마 대통령의 얼굴을 합성한 사진과 함께 ‘이제 출생증명서가 없는 이유를 알겠죠?’라고 썼다. 오바마 대통령이 미국 밖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피선거권이 없었다는 음모이론을 재탕한 사진과 설명 글이다. 이 이메일이 한 지역언론의 보도로 인종차별 논란이 일자 대븐포트 위원은 “풍자일 뿐이지 인종차별적 메시지를 전할 생각은 없었다.”며 해명과 사과의 뜻을 전했다. 하지만 이같은 조치에도 논란은 쉽사리 사그라지지 않고 있으며 공화당 측에서도 대븐포트 위원의 사임을 촉구하고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스콧 바우 오렌지 카운티 공화당 의장은 문제의 이메일이 “인종차별적이며 저급한 행동”이라고 맹비난했다. 이에 공화당 측은 대븐포트 위원의 행동에 대한 윤리위원회 조사를 검토하고 있다. 사진=뉴욕 데일리 뉴스 서울신문 나우뉴스 윤태희 기자 th20022@seoul.co.kr
  • [김문이 만난사람] ‘힙합의 대부’ 바비 킴

    [김문이 만난사람] ‘힙합의 대부’ 바비 킴

    이 세상에서 고독이라는 말보다 더 고독한 단어가 있을까. 어느 날 한 남자가 한번도 가보지 않았던 바다에 ‘풍덩’ 빠진다. 그러고는 고독하게 헤엄을 친다. 왜 그랬을까. 노래로 답한다. ‘파란 바다 저 끝 어디에선가 있는 꿈과 사랑을 찾아서~/하얀 꼬리 세워 길 떠나는 나는 바다의 큰 고래~’ 다시 까닭을 물었다. 돌아오는 답은 ‘나의 지친 몸짓은 파도 위를 가르네/나를 편히 쉬게 할 꿈인 걸 너는 아는지~’라는 진한 너울뿐이었다. 이렇게 시작된 그 남자의 꿈은 척박한 토양에서 싹텄다. 어린 나이 때부터 겪은 쓰디쓴 인종차별과 이방인의 외로움이 우선 그러했다. 오죽했으면 착해지는 자신이 나쁘다며 ‘오늘 단 하루만 착하지 말자.’고 외쳤을까. 그런 처절함에서 스스로 험한 바다를 택했고 한 마리의 ‘파랑새’에서 꿈을 찾아 떠나는 큰 고래가 됐다. 하여 아픔이 있어도, 그 어떤 고통이 가로막아도 ‘편히 쉬게 할 꿈’을 향해 거친 파도를 넘고 또 넘었다. 지금도 그렇게 ‘고래의 꿈’은 계속되고 있다. 국내 대표적인 힙합 뮤지션 바비 킴(38). 그는 요즘 20대에서 50대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층으로부터 많은 인기를 얻고 있다. 팬들에게 그 이유를 물어 보면 대개 ‘고독과 처절함에서 나오는 특유의 창법이 심금을 울린다.’고 답한다. 특히 대표곡인 ‘파랑새’와 ‘고래의 꿈’에서 흘러나오는 바비 킴의 음악적 향기에는 세대를 뛰어넘는 신선한 냄새가 짙게 깔려 있다고 한다. 사실 그는 무명세월 11년 동안 온갖 고생을 하다 2004년에 발표된 앨범 ‘고래의 꿈’으로 비로소 주목받기 시작했다. 이후 반응은 폭발적일 만큼 계속됐다. 그의 노래가 듣는 이에게 위안이 된다는 이유로 세대를 뛰어넘어 많은 마니아들을 탄생시켰다. 2009년부터 전국투어 콘서트에 나서면서 인기스타로서 바비 킴의 존재를 입증한다. 그해 3월부터 지난해까지 그는 30개 도시에서 50회 이상의 공연으로 9만여 관객을 모았다. 이는 불과 2년 만에 이룬 성과로 최고의 티켓 파워는 물론 뛰어난 가창력을 지닌 가수임을 입증한 셈이다. 팬들은 바비 킴을 가리켜 ‘솔의 대부’ ‘힙합의 대부’라고 칭한다. 그는 오는 26일 경기 고양시 아람누리 극장 공연을 시작으로 또 한번의 전국 투어 공연에 돌입한다. 상반기에 4개 도시, 하반기에 10여개 도시 투어를 계획하고 있다. 따라서 5월 중에는 누적 관객 10만명을 돌파할 것으로 예상된다. 객석 수가 한정된 공간에서 콘서트 3년차 만에 10만 관객을 채우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이번 공연에는 트로트를 ‘바비 킴’적으로 해석해 불러 볼 예정이어서 또 다른 반향을 불러일으킬 것으로 기대된다. 지난 15일 오후 서울 여의도동 한 카페에서 바비 킴을 만났다. 늘 그랬듯이 이날도 특유의 중절모를 쓰고 나타났다. 콧수염이 인상적이었다. 속으로 ‘그래서 팬들이 힙합의 할아버지라고 하나.’라는 생각을 잠시 했다. 먼저 이번 공연의 의미와 공연을 앞둔 소감을 물었다. “올해로 단독 콘서트는 3년째입니다. 그 중간에 조인트 콘서트가 있었지만 말이죠. 그동안의 콘서트가 바비 킴이 살아온 인생을 담았다면, 올해 콘서트는 바비 킴이 할 수 있는 음악과 바비 킴이 하고 싶은 음악, 그리고 팬들과 같이 할 수 있는 여러 음악을 선보일 생각입니다. 말 그대로 팬들과 함께하는 ‘솔 투게더(Soul Together)’이지요.” 그렇다면 지금까지와는 조금 다른, 좀 더 다양해진 콘서트 무대가 될 듯싶다. 어떻게 달라질까. “트로트곡을 제 스타일로 한번 소화해 볼 생각입니다. 물론 실험입니다. 사실 제가 아는 트로트곡은 하나도 없습니다. 트로트곡 10여곡을 선정해 하나 둘씩 들어가면서 선별할 예정입니다. 아직은 이거다 하는 것이 없지만 공연 때 2~3곡 정도 불러 볼 생각입니다. 제가 트로트를 부르는 것은 처음입니다.” 이런 시도는 그를 좋아하는 마니아 계층을 위한 팬 서비스 차원에서 ‘공연의 맛깔’을 더할 것으로 보여진다. 본인도 그런 차원에서 준비하고 있다고 귀띔했다. 여기서 잠깐, 한국말은 어떻게 익혔을까. 두살때 미국으로 건너가 스무살에 돌아왔으니 말이다. “국내 모대학 어학당에서 1년반 동안 배웠습니다. ‘가, 나, 다’부터 배웠죠. 한국인이면서도 한국말을 몰라 이방인으로 살았습니다. 한국에서 태어나긴 했지만 미국과 한국문화의 차이에서 오는 불편함이 상당히 컸죠. 한국어로 된 노래는 가사에 영어발음을 일일이 적어가면서 익히고 불렀습니다.” 한국에서의 적응은 힘들었다. 경제적으로 어려워 영어 테이프 녹음, TV드라마 엑스트라, 유아 TV프로그램 영어 강사 등 닥치는 대로 일을 했다. 아울러 힙합 음악을 고집하면서 그룹활동을 했지만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했다. 한국인으로서 미국에서의 적응도 순탄하지는 않았을 터. 그가 미국으로 가게 된 계기는 MBC 관현악단에서 트럼펫을 연주하던 아버지 김영근씨가 미국에서 음악활동을 하게 되면서였다. 그의 가족이 처음 정착한 곳은 샌프란시스코. 바비 킴은 초등학교 때부터 적지 않은 따돌림을 당했다. 미국 아이들에게 ‘칭크’(Chink:중국인을 비하하는 속어)라는 얘기를 자주 들었다. 이때마다 한국인이라고 해도 ‘동양인들은 다들 똑같지 않으냐.’는 대답을 계속 들어야 했다. “제가 살던 곳에는 필리핀과 중국인들이 살았어요. 또 백인과 흑인들도 많이 살았고요. 한국인은 별로 없었는데 어릴 때 미국인은 물론 똑같은 동양인 아이들에게도 왕따를 많이 당했지요. 화가 날 때에는 덩치 큰 선배들과 싸우기도 했어요. 처음에는 패배의식이 있었지만 나중에는 오히려 강해지는 것 같더라고요. 그런 마음을 음악으로 표현하려고 했습니다.” 바비 킴은 아버지의 음악적 영향을 받아 중학교 때 트럼펫을 몰래 배웠다. 또 학교 노래 발표회에도 솔로로 여러 차례 참가했다. 그때마다 성적은 아주 우수했다. 아버지는 이런 아들을 보고 혹시 음악 하는 것이 직업이 될까봐 극구 반대하고 나섰다. 그는 원래 음악적 자질도 타고났지만 운동신경 또한 그랬다. 초등학교 3학년 때 야구방망이를 잡기 시작해 고등학교 때는 학교 대표선수로 1번 타자와 포수를 맡았다. 특히 어깨 힘이 좋아 1루에서 2루로 도루하는 상대방 선수들을 거의 다 아웃시켰을 정도였다. 타격면에서는 3할대를 꾸준히 유지했다. 그러던 중 고 3때 한 스카우트로부터 ‘너는 동양인이어서 체격적으로 밀리기 때문에 서양인보다 3배 이상 훈련을 해야 성공할 수 있다.’는 얘기를 듣고 포기했다. “그때 야구도 그만두고 좋아하던 미식축구도 그만두었습니다. 몇날 며칠 방황과 좌절의 연속이었죠. 그러던 중 음악을 취미가 아닌 진짜 인생의 승부수로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성공할 수 있다는 자신감도 생겼고요. 미국에는 클럽 바에 가면 오픈 마이크라고 해서 누구나 무대에서 노래를 부를 수 있습니다. 거기에 자주 갔지요. 또 원맨쇼 코미디도 하고 노래도 부르고 나이트클럽 래퍼로 아르바이트도 했습니다.” 1992년 미국 LA에서 흑인폭동이 일어나자 바비 킴 가족은 한국행을 결심하게 된다. 이듬해 한국에 온 바비 킴은 아버지의 묵시적인 허락하에 음반사 여러 곳에서 오디션을 봤다. 이때 단골로 부른 노래가 이승철의 ‘마지막 콘서트’였다. 하지만 반응은 냉담했다. ‘리듬은 잘 타지만 목소리가 이상하다.’는 얘기를 자주 들었다. 바비 킴은 이에 대해 “어릴 때 흑인들과 자주 지내서 그런지 리듬을 타는 것은 아주 자연스럽다.”며 웃는다. 1994년 ‘닥터 레게’로 첫 앨범을 냈지만 인기를 얻지 못했다. 그러나 좌절하지 않고 터보, 젝스키스를 비롯한 여러 가수들의 코러스와 랩 피처링 등을 하면서 실력을 차근차근 쌓아나갔다. “저는 무명 11년 세월이 고맙게 여겨집니다. 만약 처음부터 성공했더라면 자만에 빠질 수도 있었는데 오히려 저의 문제점을 찾아내고 열심히 노력해야 된다는 것을 깨닫고 또 깨달았지요. 이제는 공연 때마다 제가 어떻게 살아왔다는 것을 얘기할 수 있고, 또 관객들과의 공감을 통해 하나하나 꿈을 이루어 나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비록 제가 (다른 가수들과) 음악의 색깔도 다르고 창법도 특이하다고 하지만 그런 것이 이제는 자신감으로 바뀌고 있습니다.” 바비 킴의 본명은 김도균이다. ‘바비’라는 이름은 세살 때 누나가 미국 TV시트콤을 보다가 바비라는 등장인물을 보고 그렇게 정했단다. 앞으로의 꿈에 대해 그는 “음악을 하다 보니 취미가 없어졌다. 요리에 관심이 많은데 그쪽 분야로 연구를 해볼 생각”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팬들과 함께하는 창조적 음악을 위해 열심히 꿈을 꾸며 살아가겠다고 강조했다. 결혼에 대해서는 “여자친구는 현재 없지만 나이 마흔이 되면 할 생각”이라며 웃는다. 중절모와 콧수염의 바비 킴. 특유의 애달프고 처절하고 고독한 창법이 앞으로 어떻게 깊어질지 기대된다. 편집위원 km@seoul.co.kr ◆바비 킴은 누구 1973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두살 때 MBC 관현악단에서 트럼펫을 연주하던 아버지를 따라 미국 샌프란시스코로 건너갔다. 초등학교 때부터 동양인이라는 이유로 차별대우를 받으면서도 음악과 운동을 병행한다. 음악은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트럼펫을 배웠고 노래도 했다. 학교 발표회 때마다 우수한 성적으로 주목을 받았다. 그러면서도 야구와 미식 축구 선수로도 활약했다. 특히 야구는 포수와 1번 타자를 맡았는데 고교 때는 학교 대표로 출전해 3할대의 타율을 자랑했다. 고교 졸업 무렵 클럽 바에 가서 아르바이트로 노래를 부르고 래퍼로 활동했다. 1993년 한국으로 돌아온 그는 가수가 되기 위해 음반사에 오디션을 보러 다녔다. 1994년 앨범 ‘닥터 레게’로 데뷔했지만 반응은 신통치 않았다. 이후 터보, 젝스키스 등을 비롯한 여러 가수들의 랩 피처링 등을 하면서 실력을 쌓아 나갔다. 1999년 룰라 이상민의 14인 프로젝트 그룹 브로스의 멤버, 2000년에는 무브먼트 크루의 멤버, 다음 해 부가 킹즈를 조직하면서 활동범위를 넓혔다. 그러던 중 2004년 8월에 발표한 새 앨범 ‘고래의 꿈’으로 많은 인기를 얻었다. 그의 독특한 창법이 SBS 코미디 프로그램 ‘웃찾사’의 ‘나몰라 패밀리’를 통해 패러디되기도 했다. 지난해 세 번째 정규 앨범 ‘하트 앤드 솔(Heart & Soul)’을 발표했으며 ‘쩐의 전쟁’ ‘하얀 거탑’ 등 드라마 OST에도 참여했다. 2009년부터 전국 투어 공연에 나서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
  • 10만 관객 앞둔 힙합의 대부 바비킴

    10만 관객 앞둔 힙합의 대부 바비킴

     이 세상에서 고독이라는 말보다 더 고독한 단어가 있을까. 어느날 한 남자가 한번도 가보지 않았던 바다에 ‘풍덩’ 빠진다. 그리고는 고독하게 헤엄을 친다. 왜 그랬을까? 노래로 답한다. ‘파란 바다 저 끝 어디에선가 있는 꿈과 사랑을 찾아서~/하얀 꼬리 세워 길 떠나는 나는 바다의 큰 고래~’. 다시 까닭을 물었다. 돌아오는 답은 ‘나의 지친 몸짓은 파도 위를 가르네/나를 편히 쉬게 할 꿈인 걸 너는 아는지~’라는 진한 너울뿐이었다.  이렇게 시작된 그 남자의 꿈은 척박한 토양에서 싹텄다. 어린 나이때부터 겪은 쓰디 쓴 인종차별과 이방인의 외로움이 우선 그러했다. 오죽했으면 착해지는 자신이 나쁘다며 ‘오늘 단 하루만 착하지 말자.’고 외쳤을까. 그런 처절함에서 스스로 험한 바다를 택했고 한 마리의 ‘파랑새’에서 꿈을 찾아 떠나는 큰 고래가 됐다. 하여 아픔이 있어도, 그 어떤 고통이 가로 막아도 ‘편히 쉬게 할 꿈’을 향해 거친 파도를 넘고 또 넘었다. 지금도 그렇게 ‘고래의 꿈’은 계속되고 있다.  국내 대표적인 힙합 뮤지션 바비 킴(38). 그는 요즘 20대에서 50대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층으로부터 많은 인기를 얻고 있다. 팬들에게 그 이유를 물어보면 대개 ‘고독과 처절함에서 나오는 특유의 창법이 심금을 울린다.’고 답한다. 특히 대표곡인 ‘파랑새’와 ‘고래의 꿈’에서 흘러나오는 바비 킴의 음악적 향기는 세대를 뛰어넘는 신선한 냄새가 짙게 깔려 있다고 한다.  사실 그는 무명세월 11년 설움을 견디며 온갖 고생을 하다가 2004년에 발표된 앨범 ‘고래의 꿈’으로 비로소 사람들에게 주목받기 시작했다. 이후 반응은 폭발적일 만큼 계속됐다. 노래를 듣는 이에게 묘한 위안을 준다는 공통분모로 세대를 뛰어 넘어 많은 마니아들을 탄생시켰다. 2009년부터 전국투어 콘서트에 나서면서 인기스타로서 바비 킴의 존재를 입증한다. 그해 3월부터 지난 해까지 그는 30개 도시에서 50회 이상의 공연으로 9만여 관객을 모았다. 이는 불과 2년만에 이룬 성과로 최고의 티켓 파워는 물론 뛰어난 가창력을 지닌 가수임을 입증한 셈이다. 팬들은 바비 킴을 가리켜 ‘소울의 대부’ ‘힙합의 대부’라고 칭하기도 한다.  그는 오는 26일 경기 고양시 아람누리 극장 공연을 시작으로 또 한번의 전국 투어 공연에 돌입한다. 상반기에 4개 도시, 하반기에 10여개 도시 투어를 계획하고 있다. 따라서 5월 중에는 누적 관객 10만명을 돌파할 것으로 예상된다. 객석 수가 한정된 공간에서 콘서트 3년차만에 10만관객을 채우리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이번 공연에는 트로트를 ‘바비 킴’적으로 해석해 불러볼 예정이어서 또다른 반향을 불러일으킬 것으로 기대된다.  지난 15일 오후 서울 여의도 한 카페에서 바비 킴을 만났다. 늘 그랬듯이 이날도 특유의 중절모를 쓰고 나타났다. 콧수염이 인상적이었다. 속으로 ‘그래서 팬들이 힙합의 할아버지라고 하나.’라는 생각을 잠시 떠올렸다. 먼저 이번 공연을 갖는 의미와 소감이 어떠한지 물었다.  “올해로 단독 콘서트는 3년째입니다. 그 중간에 조인트 콘서트가 있었지만 말이죠. 그동안의 콘서트가 바비 킴이 살아온 인생을 담았다면, 올해 콘서트는 바비 킴이 할 수 있는 음악과 바비 킴이 하고 싶은 음악, 그리고 팬들과 같이 할 수 있는 여러 음악을 선보일 생각입니다. 말 그대로 팬들과 함께 하는 ‘소울 투게더(Soul Together)’이지요.”  그렇다면 지금까지와는 조금 다른, 좀 더 다양해진 콘서트 무대가 될 듯 싶다. 어떻게 달라질까.  “트로트곡을 제 스타일로 한번 소화해 볼 생각입니다. 물론 실험입니다. 사실 제가 아는 트로트곡은 하나도 없습니다. 트로트곡 10여곡을 선정해 하나 둘씩 들어가면서 선별할 예정입니다. 아직은 이거다 하는 것이 없지만 공연때 2~3곡정도 불러볼 생각입니다. 제가 트로트를 부는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이런 시도는 그를 좋아하는 마니아 계층들을 위한 팬 서비스 차원에서 ‘공연의 맛깔’을 더할 것으로 보여진다. 본인도 그런 차원에서 준비하고 있다고 귀띔했다.  여기서 잠깐, 한국말은 어떻게 익혔을까. 두살때 미국으로 건너가 스무살에 돌아왔으니 말이다.  “국내 모대학 어학당에서 1년반 동안 배웠습니다. ‘가,나,다’부터 배웠죠. 한국인이면서 한국말을 몰라 이방인으로 살았습니다. 한국에서 태어나긴 했지만 미국과 한국문화의 차이에서 오는 불편함이 상당히 컸죠. 한국어로 된 노래가사에는 영어발음으로 일일이 적어가면서 익히고 부르고 그랬습니다.”  한국에서의 적응은 힘들었다. 경제적으로 어려워 영어 테이프 녹음, TV드라마 엑스트라, 유아 TV프로그램 영어 강사 등 닥치는 대로 일을 했다. 아울러 힙합 음악을 고집하면서 그룹활동을 했지만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했다.  외국인으로서 미국에서의 적응도 순탄하지는 않았을 터. 그가 미국으로 가게 된 계기는 MBC 관현악단에서 트럼펫을 연주하던 아버지 김영근씨가 미국에서 음악활동을 하게 되면서였다. 그의 가족이 처음 정착한 곳은 샌프란시스코. 바비 킴은 초등학교때부터 적지 않은 따돌림을 당했다. 미국 아이들에게 ‘칭크(Chink:중국인을 비하하는 속어)’라는 얘기를 자주 들었다. 이때마다 한국인이라고 해도 ‘동양인들은 다들 똑같지 않느냐.’는 대답을 계속 들어야 했다.  “제가 살던 곳에는 필리핀과 중국인들이 살았어요. 또 백인과 흑인들도 많이 살았구요. 한국인은 별로 없었는데 어릴 때 미국인은 물론 똑같은 동양인 아이들에게도 왕따를 많이 당했지요. 화가 날 때에는 덩치 큰 선배들과 싸우기도 했어요. 처음에는 패배의식이 있었지만 나중에는 오히려 강해지는 것 같더라구요. 그런 마음을 음악으로 표현하려고 했습니다.”  바비 킴은 아버지의 음악적 영향을 받아 중학교때 트럼펫을 몰래 배웠다. 또 학교에서 솔로로 노래 발표회에도 여러 차례 참가했다. 그때마다 성적은 아주 우수했다. 아버지는 이런 아들을 보고 혹시 음악하는 것이 직업이 될까봐 극구 반대하고 나섰다.  그는 원래 음악적 자질도 타고 났지만 운동신경 또한 그랬다. 초등학교 3학년때 야구방망이 잡기 시작해 고등학교때는 학교 대표선수로 1번타자와 포수를 맡았다. 특히 어깨힘이 좋아 1루에서 2루로 도루하는 상대방 선수들은 거의 다 아웃시켰을 정도였다. 타격면에서는 3할대를 꾸준히 유지했다. 그러던 고 3때 한 스카우터로부터 ‘너는 동양인이어서 체격적으로 밀리기 때문에 서양인보다 3배 이상 훈련을 해야 성공할 수 있다.’는 얘기를 듣고 포기했다.  “그때 야구도 그만 두고 좋아하던 미식축구도 그만 두었습니다. 몇날 며칠 방황과 좌절의 연속이었죠. 그러던 중 음악을 취미가 아닌 진짜 인생의 승부수로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성공할 수 있다는 자신감도 생겼구요. 미국에는 클럽 바에 가면 오픈 마이크라고 해서 누구나 무대에서 노래를 부를 수 있습니다. 거기에 자주 갔지요. 또 원맨쇼 코미디도 하고 노래도 부르고 나이트클럽 래퍼로 아르바이트도 했습니다.”  1992년 미국 LA에서 흑인폭동이 일어나자 바비 킴 가족은 한국행을 결심하게 된다. 이듬해 한국에 온 바비 킴은 아버지의 묵시적인 허락하에 음반사 여러 곳에서 오디션을 봤다. 이때 단골로 부른 노래가 이승철의 ‘마지막 콘서트’였다. 하지만 반응은 냉담했다. ‘리듬은 잘 타지만 목소리가 이상하다.’는 얘기를 자주 들었다. 바비 킴은 이에 대해 “어릴 때 흑인들과 자주 지내서 그런지 리듬을 타는 것은 아주 자연스럽다.”며 웃는다.  그러던 1994년 ‘닥터 레게’로 첫 앨범을 냈지만 인기를 못얻었다. 그러나 좌절하지 않고 터보, 젝스키스를 비롯한 여러 가수들의 코러스와 랩 피처링 등을 하면서 실력을 차근차근 쌓아나갔다.  “저에게는 무명 11년 세월이 고맙게 여겨집니다. 만약 처음부터 성공했더라면 자만에 빠질 수도 있었는데 오히려 저의 문제점을 찾아내고 열심히 노력해야 된다는 것을 깨닫고 또 깨달았지요. 이제는 공연때마다 제가 어떻게 살아왔다는 것을 얘기할 수 있고, 또 관객들과의 진실한 공감을 통해 하나 하나 꿈을 이루어 나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비록 제가 (다른 가수들과) 음악의 색깔도 다르고 창법도 특이하다고 하지만 그런 것이 이제는 자신감으로 바뀌고 있습니다.”  바비 킴의 본명은 김도균이다. ‘바비’(Boby)라는 이름은 세살 때 친누나가 미국 TV시트콤을 보다가 바비라는 등장인물을 보고 그렇게 정했단다.  앞으로의 꿈에 대해 그는 “음악을 하다보니 취미가 없어졌다. 요리에 관심이 많은데 그쪽 분야로 연구를 많이 해볼 생각”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팬들과 함께 하는 창조적 음악을 위해 열심히 꿈을 꾸며 살아가겠다고 강조했다. 결혼에 대해서는 “여자친구는 현재 없지만 나이 마흔이 되면 할 생각.”이라면 웃는다. 중절모와 콧수염의 바비 킴. 특유의 애닯고 처절하고 고독한 창법이 앞으로 어떻게 더욱 깊어질지 기대된다.    편집위원 km@seoul.co.kr
  • 브랜드명 ‘46664’

    남아프리카공화국 넬슨 만델라 재단이 ‘46664’란 상표로 패션사업을 벌인다. 넬슨 만델라 재단은 자선사업에 필요한 재원 마련과 남아공 패션사업 활성화를 위해 위탁업체를 통한 수익사업 형식으로 패션사업을 시작한다고 9일(현지시간) 발표했다. AP통신에 따르면 위탁을 받은 남아공 최대의 섬유·의류업체 시어델은 오는 8월부터 본격적으로 ‘46664 어패럴’ 제품을 내놓을 예정이다. 숫자 ‘46664’는 만델라 전 남아공 대통령이 로벤섬 감옥에 갇혀 있을 때의 수형번호이다. 만델라 전 대통령은 남아공의 인종차별정책인 아파르트헤이트 정책을 반대하다가 1964년 로벤섬에 466번째 수감자로 투옥돼 46664라는 수형번호를 부여받고 27년동안 복역했다. 만델라는 그동안 돈벌이에 자신의 이름, 얼굴 그리고 수형번호를 사용하는 것에 거부반응을 보여 왔으나 최근 장녀가 주도하는 집안의 와인 사업에 대해서는 자신의 이름을 사용할 수 있도록 했다. 이석우기자 jun88@seoul.co.kr
  • 유대·동양인 모욕 발언 존 갈리아노 디오르서 퇴출

     인종차별 스캔들에 휘말린 세계적인 명품 브랜드 크리스티앙디오르의 수석 디자이너 존 갈리아노(50)가 결국 해고됐다.  AP통신은 크리스티앙디오르가 인종차별적 언행으로 경찰 조사를 받은 갈리아노를 1일 해고한다고 밝혔다고 보도했다. 갈리아노는 지난달 24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의 술집 ‘라페를’에서 만난 유대인 여성과 동양계 남성에게 “더러운 유대인, 넌 죽어 마땅해.”, “동양X 내가 널 죽일 거야.” 등 모욕적인 언사를 퍼부은 혐의로 5시간 동안 경찰 조사를 받았다.  갈리아노는 지난해 10월에도 같은 장소에서 유대인이 아닌 여성(48)에게 “난 히틀러를 사랑해. 사람들은 네가 죽길 바랄 거다. 너희 엄마, 조상들도 다 가스실에서 죽었어.”라고 모욕한 혐의도 받고 있다. 특히 이 장면이 고스란히 담긴 동영상이 영국 타블로이드신문 ‘선’의 홈페이지에 올라오면서 파문이 확산되고 있다. 갈리아노는 경찰 조사에서 모욕 혐의를 전면 부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갈리아노는 오는 4일 크리스티앙디오르의 가을·겨울 패션쇼를 무대에 올리고 6일에는 자신의 컬렉션을 발표할 예정이었지만 모두 물거품이 될 위기에 처했다. 다양한 인종이 섞여 일하는 패션계는 인종차별을 엄금하고 있어 크리스티앙디오르가 갈리아노를 해임할 것이라는 소문이 예전부터 나돌았다. 특히 성 소수자인 게이로 알려진 갈리아노가 인종차별적 발언을 했다는 사실에 올해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수상자인 나탈리 포트먼 등 많은 인사들이 놀라움과 실망을 표했다고 외신은 전했다.  갈리아노는 영국인 배관공 아버지와 스페인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고 파리에서 20년간 살았다. 1987년부터 1997년까지 네 차례에 걸쳐 올해의 영국 패션 디자이너에 선정되기도 했다. 오달란기자 dallan@seoul.co.kr
  • 이시하라 도쿄도 지사”日 핵무장해야” 망언

    극우적이고 인종차별적인 발언으로 인해 ‘망언 지사’로 불려온 이시하라 신타로(78) 도쿄도 지사가 이번에는 일본이 북한과 중국에 맞서 자국을 지키기 위해 핵무기를 개발해야 한다는 주장을 내놓았다고 영국 텔레그래프가 4일 인터넷판에서 보도했다.  이 신문에 따르면 이시하라는 최근 센카쿠(尖閣) 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釣魚島>)를 둘러싼 중국과의 영토 분쟁에 대해 “일본이 핵무기를 가졌다면 중국이 센카쿠에 침입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고,북한이 일본인을 납치하는 일도 없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시하라는 2009년 초 조지 W.부시 미국 전 행정부가 북한에 납치된 일본인의 석방 문제를 해결하는 데 제대로 지원하지 않았다고 미국을 비판했었다.  이시하라는 “북한은 핵무기를 보유한 나라”라며 “미국이 리비아와 핵이슈 등으로 충돌을 빚었을 때 리비아의 트리폴리를 공격했고,당시 어린이들까지 사망하는 비극이 일어났지만 결국 리비아는 변했다”고 소개했다.그는 “북한에 대해선 이보다 보다 더 ‘심각한’ 접근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시하라는 그간 ‘난징 대학살 사건’이 중국 공산당에 의해 조작된 사건이라고 주장하는가 하면 게이나 레즈비언을 ‘장애인’으로 묘사하는 등 발언을 서슴지 않아 동아시아 주변국 등 국제 사회의 비난을 사 왔다.
  • [아시안컵] 51년만의 ‘왕의 귀환’ 물거품… 28일 밤12시 3·4위전

    [아시안컵] 51년만의 ‘왕의 귀환’ 물거품… 28일 밤12시 3·4위전

    반전 드라마는 없었다. ‘왕의 귀환’도 없었다. 한국축구가 ‘숙명의 라이벌’ 일본에 무너졌다. 승부차기 끝에 패해 아쉬움은 더 컸다. “일본과의 차이는 그라운드에서 보여주겠다.”던 호기로운 출사표는 공수표가 됐다. 51년 만의 아시안컵 우승은 이번에도 물거품이 됐다. 한국은 25일 카타르 도하의 알 가라파 스타디움에서 열린 아시안컵 4강에서 일본에 승부차기 끝에 졌다. 왕의 귀환’을 선포했던 한국은 준우승을 차지했던 1988년 카타르 대회 이후 23년 만의 결승진출을 노렸지만 코앞에서 좌절했다. 한국은 28일 밤 12시 호주-우즈베키스탄 패자와 3·4위전을 치른다. 예선 없이 다음 대회에 자동으로 출전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이겨야 한다. 한·일전다웠다. 그동안의 경기와 차원이 달랐다. 양국 모두 강력한 미드필드 압박으로 한치의 양보 없이 맞섰다. 태극전사는 박지성(맨체스터 유나이티드)-구자철(제주)-이청용(볼턴)을 축으로 원터치에 가까운 세밀한 패싱게임으로 공격의 물꼬를 텄다. 일본은 혼다 게이스케(CSKA모스크바)-하세베 마코토(볼프스부르크)-엔도 야스히토(감바 오사카) 가 팽팽하게 맞섰다. 악몽 같았다. 아니, 연장전까지는 ‘이보다 더 짜릿할 수 없는’ 드라마였다. 한국은 전반 23분 기성용(셀틱)이 페널티킥으로 선제골을 넣으며 기세를 올렸다. 기성용은 ‘원숭이 세리머니’로 스코틀랜드 팬들의 인종차별에 항의하는 동시에 일본도 긁었다. 그라운드는 후끈 달아올랐다. 그러나 전반 36분 마에다 료이치(주빌로 이와타)에 동점골을 내줘 연장에 돌입했다. 연장 전반 8분 호소가이 하지메(레버쿠젠)에 역전골을 내줬지만, 연장 종료 직전 황재원(수원)의 극적인 동점골로 승부차기까지 끌고갔다. 여기까진 완벽했다. 하지만 환희는 여기까지였다. 한국은 승부차기에서 0-3으로 무력하게 졌다. 키커로 나선 구자철-이용래(수원)-홍정호(제주)의 슈팅이 모두 불발됐다. 일본은 3번째 키커로 나선 나카토모 유토(AC 체세나)만 실축했을 뿐, 혼다-오카자키 신지(시미즈 에스펄스)-나카토모가 차분히 골망을 흔들어 결승행을 확정 지었다. 두 베테랑은 ‘아마도 마지막일’ 아시안컵에서 입맛만 다셨다. 이날 A매치 100경기째 출장, 센추리클럽에 가입한 박지성은 열정을 불태웠던 아시안컵 우승트로피를 놓쳤다. 이영표(알 힐랄) 역시 15경기째 아시안컵 그라운드를 밟아 이운재(전남)·이동국(전북)이 갖고 있는 대회 최다출장과 타이를 이뤘지만, 팀 패배로 빛이 바랬다. 후반 37분 이청용 대신 들어간 막내 손흥민(함부르크)은 애처롭게 울었다. 조은지기자 zone4@seoul.co.kr
  • 전세계 흔든 긴박감 넘치는 장편 스릴러

    세계적으로 5000만부가 팔린 스웨덴 작가 스티그 라르손(1954~2004)의 베스트셀러 ‘밀레니엄’ 시리즈가 국내에서 재출판됐다. 문학에디션 뿔 측은 14일 “2008~09년 국내에 밀레니엄 시리즈를 소개한 출판사의 저작권 기한 만료로 스웨덴 측과 새로 판권 계약을 체결했다.”며 “10억원대로 알려진 무라카미 하루키의 ‘1Q84’ 선인세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지만 밀레니엄의 판권료도 억대 수준”이라고 밝혔다. 뿔은 지난 12일 출간된 1부 ‘여자를 증오한 남자들’(전2권)을 시작으로, 2월에는 2부 ‘불을 가지고 노는 소녀’와 3월에는 3부 ‘벌집을 발로 찬 소녀’까지, 밀레니엄 시리즈 6권을 이어 낼 예정이다. 기자 출신의 무명 작가였던 라르손의 데뷔작이자 유작인 이 장편 스릴러는 2005년 스웨덴에서 1부가 처음 출간된 뒤 지금까지 스웨덴에서만 전체 인구의 3분의1이 넘는 350만부가 팔린 베스트셀러다. 사회 문제를 고발하는 잡지 ‘엑스포’의 편집장이었던 라르손은 2004년 ‘밀레니엄’ 출간을 6개월 앞두고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다. ‘밀레니엄’은 잡지사 기자 미카엘 블롬크비스트와 어두운 과거를 지닌 여성 해커 리스베트 살란데르가 한 소녀의 실종 사건을 계기로 미스터리한 사건을 해결해 나가는 과정을 긴박감 넘치게 그렸다. 파시즘과 인종차별, 극우파와 스웨덴의 여러 사회 문제를 고발한 잡지 ‘엑스포’의 편집장으로 반파시즘 투쟁에 앞장선 라르손은 끊임없이 암살 위협에 시달렸다. 18살에 베트남전 반대 시위에 참여했다가 만난 동갑 여성 에바 가비르엘손과 사랑에 빠져 사실혼 관계를 유지했지만 32년간 법적으로 혼인하지 못했다. 영화보다 극적인 삶을 산 저자의 경험이 녹아난 내용에다 라르손의 갑작스러운 죽음까지 겹쳐 밀레니엄 시리즈는 그야말로 열풍을 일으켰다. 라르손은 스웨덴 출신 동화작가가 쓴 ‘말괄량이 삐삐’의 열렬한 팬이었으며 추리문학과 만화 비평가로 활동했고, ‘스칸디나비아 SF 소설협회’를 이끌기도 했다. 밀레니엄 시리즈는 현재 46개국과 저작권 계약을 한 상태로 미국에서는 지금까지 1400만부가 판매됐다. 아마존의 전자책 서비스 ‘킨들’을 통해서도 100만권 이상이 판매돼 첫 밀리언셀러가 되기도 했다. 저자 라르손은 미국의 경제전문지 포브스 선정 ‘유명인사 사후 소득’ 순위에서 지난해 1800만 달러(약 200억원)의 수입으로 6위에 올랐다. 오는 12월에는 ‘세븐’의 데이비드 핀처 감독이 연출하고 ‘007 카지노 로열’의 대니얼 크레이그가 주연을 맡아 할리우드 영화로도 개봉될 예정이다. 국내에서는 그다지 반향을 일으키지 못했던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밀레니엄이 이번에는 한국 독자로부터 어떤 반응을 불러모을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윤창수기자 geo@seoul.co.kr
  • [3일 TV 하이라이트]

    ●인간극장(KBS1 오전 7시 50분) 10년 전, 세 번의 유산 끝에 ‘가족’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된 정희씨 부부. 자리에 앉아 마냥 아이가 태어나길 기다리기 보다는 직접 우리의 아이를 찾기로 결심한다. 그렇게 친자매였던 하은·하선을 시작으로 장애를 가진 여섯 아이를 입양하게 된다. 바라만 보아도 행복하고, 너무나 착하기만 해서 오히려 바보 같은 이 가족을 만나본다. ●월화 드라마 드림하이(KBS2 오후 9시 55분) 제 2의 조수미를 꿈꾸는 혜미는 얼마 전까지 미모에 실력까지 갖춘 부잣집 공주님이었지만, 아버지 고병직의 사업 부도로 모든 꿈이 산산조각 나버린다. 잠적한 아버지로 인해 추심업자 마두식은 혜미에게 아버지의 빚 1억을 갚으라고 협박을 한다. 우연히 혜미의 지갑을 줍게 된 진국은 위협받고 있는 혜미를 도와주는데…. ●몽땅 내 사랑(MBC 오후 7시 45분) 미선은 박식하고 능력있는 태수가 마음에 들어 금지와 이어주려고 한다. 금지도 태수한테 마음이 있어 못 이기는 척 미선의 말을 따르고, 미선의 행동을 눈치챈 태수는 금지에게 식사약속을 청한다. 한편, 두준은 금지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누드모델 아르바이트까지 하면서 구두를 사오고, 두준은 이 사실을 은희에게 들키고 만다. ●감성여행 내 안의 쉼표(SBS 오후 6시 30분) ‘눈물은 왜 짠가!’, ‘긍정적인 밥’으로 많은 사랑을 받아 온 강화도 시인 함민복이 의형제를 맺은 탤런트 임현식과 천년고도 경주로 겨울 여행길에 올랐다. 넉넉지 못한 가정 형편으로 인해 고등학교 졸업 후 경주 월성원자력 발전소에서 근무를 했던 함민복의 추천으로 이루어진 경주 여행을 떠나본다. ●세계의 교육현장(EBS 오후 8시) 남아프리카공화국에는 오랜 인종차별 정책이 남긴 상처가 심각한 빈부격차라는 흉터로 선명하게 남아있다. 그 현실은 교육현장으로까지 이어지고, 극심한 빈곤 생활은 많은 흑인 학생들을 학교로부터 멀어지게 한다. 같은 하늘 아래에서 서로 다른 얼굴로 펼쳐지는 남아프리카공화국의 교육현장을 들여다 본다. ●경찰25시(OBS 오후 11시 5분) 6㎜ 현장기록 프로그램의 경찰25시는 더욱 위험하고, 지능적이며, 다양해진 범죄와 현장들이 나온다. 형사들의 하루는 1시간이 더 늘어났다. 경찰25시는 수사현장의 긴박함과 형사들의 땀과 눈물을 통해 범죄의 위험성을 알리고 건강한 사회 수호에 힘쓰는 경찰관들의 노고를 통해 범죄의 경각심을 일깨운다.
  • 폭로로 드러난 ‘외교의 두얼굴’

    폭로로 드러난 ‘외교의 두얼굴’

    평등한 세상을 외치던 미국의 전직 대통령 리처드 닉슨은 뒤로 유대인과 흑인을 폄하했다. 노벨평화상을 받으며 ‘시대의 멘토’로 불렸던 백악관 보좌관 헨리 키신저는 같은 민족인 소련 내 유대인의 죽음을 ‘상관없는 일’로 치부하는 냉혈한의 면모를 보이기도 했다. ‘선린’과 ‘우의’를 입에 달고 사는 미국 외교관들은 주재국 정부와 주요인사에 대한 ‘뒷담화’를 일삼았다. 위키리크스가 불 붙인 폭로전은 미소 뒤에 담긴 치열한 각국 외교전의 두 얼굴을 낱낱이 내보인다. 뉴욕타임스(NYT)는 11일(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 린다에 있는 ‘닉슨 도서관 겸 박물관’이 공개한 녹음파일 내용을 인용, 닉슨 전 대통령이 재임 시절 인종차별적인 발언을 일삼았다고 보도했다. 265시간 분량의 이 녹음파일 내용은 닉슨 재임 시절 백악관에 비밀리에 설치됐던 녹음장치에 담긴 것이다. 녹음에는 닉슨이 퇴임하기 전 주변인들과 대화하면서 유대인·흑인은 물론 이탈리아계·아일랜드계 미국인들을 비하하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닉슨은 1973년 2월 13일 찰스 컬슨 법률고문에게 “유대인들은 공격적이며, 거친 성향이 있고 아일랜드인들은 술만 먹으면 심술 궂게 된다. 이탈리아계는 머리가 나쁘다.”고 말했다. 또 개인비서인 로즈 메리 우즈와의 대화에서는 “흑인들은 좀 더 격조 있는 시민이 돼야 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닉슨은 1973년 골다 메이어 당시 이스라엘 총리가 미국을 방문했을 때 열렬히 환영했지만, 그가 떠난 직후 태도를 완전히 바꿨다. 당시 메이어 총리가 닉슨과 키신저 당시 국가안보보좌관에게 “소련이 유대인들의 이민을 허용하고 처형이 이뤄지지 않도록 미국이 힘써 달라.”고 요청했지만 이를 일축했다는 것이다. 키신저는 닉슨에게 “소련 내 유대인의 이민문제는 미국 외교정책의 목표가 아니며, 유대인들이 가스실로 가더라도 이는 미국이 우려할 문제가 못 되고 단지 인도주의 차원의 우려 사항”이라고 말했다. 베트남전 종전을 이끌어내며 노벨평화상을 수상했지만, 실제로는 ‘협상의 달인’이자 “국제사회에는 이익관계만이 존재한다.”는 말을 남긴 키신저다운 조언이었던 셈이다. 이에 대해 닉슨은 “잘 알고 있으며 그 문제로 세계를 폭파시킬 수는 없다.”고 답했다. 나치 독일 정권에 극도의 혐오감을 나타내온 미국이 실제로는 나치 관련 인사들을 보호하고 이용했다는 자료도 공개됐다. AP통신은 이날 미국 의회자료를 토대로 “미국 중앙정보국(CIA)이 냉전시기에 구소련을 교란하기 위해 나치 관련 인사들을 우크라이나에 보냈다.”고 보도했다. 특히 이중에는 제2차 세계대전 중 인종청소를 주도한 전범 미콜라 레베드도 포함돼 있었다. AP통신은 또 “나치 비밀경찰 조직인 게슈타포의 고위 간부였던 루돌프 밀트너를 미국이 빼돌렸고, 밀트너는 아르헨티나로 도주해 유대인 학살 주범인 아돌프 아이히만과 만나기도 했다.”고 전했다. 각국 정상과 지도자, 정치인들에 대한 미국 외교관들의 비판도 꼬리를 물고 공개되고 있다. 폭로 전문 사이트 위키리크스가 이날 추가 폭로한 미 국무부 비밀 외교전문에는 미얀마 주재 미국 대사관이 민주화 지도자 아웅산 수치에 대해 “관리 능력이 빈약해서 미얀마와 민주화의 희망이 될 수 없으며, 당내 지도자들에 의해 조종되고 있을 뿐”이라고 평가한 내용이 담겨 있다. 이 밖에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총리와 멕시코 사태에 대한 정부 역할을 비판하는 내용도 포함돼 있다. 에르도안 총리가 스위스 은행에 비자금을 숨겨두고 있다는 정보와 터키의 정치적 리더십이 뚜렷하지 않다는 점과 멕시코 마약 조직이 급성장하면서 멕시코 정부가 일부 영토의 통제권을 상실할 수 있다는 멕시코 관리의 언급도 공개됐다. 외교전문 가운데에는 마약 카르텔 조직의 준동으로 멕시코 정부가 일부 영토의 통제권을 상실할 수 있다는 멕시코 관리의 언급도 담겨 있다.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은 이날 에르도안 총리와 펠리페 칼데론 멕시코 대통령에게 전화를 걸어 유감을 표명하는 등 파문 진화에 부심했다. 박건형기자 kitsch@seoul.co.kr
  • 노벨委 “류샤오보 정당한 투쟁… 中 변화 계기 되길”

    노벨委 “류샤오보 정당한 투쟁… 中 변화 계기 되길”

    ‘류샤오보’라는 이름이 불리는 순간 메마른 박수를 받아든 주인공은 ‘사진’이었다. 단상에 덩그러니 놓인 의자 뒤편에는 커다란 사진 액자가 걸려 있었고, 류샤오보는 그 안에 갇혀 있었다. 10일 오후 1시(현지시간)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수상자인 중국 반체제 인사 류샤오보의 자리가 비어 있는 가운데 2010 노벨평화상 시상식이 열렸다. 수상자는 물론 대리인·상금 전달자까지 참석하지 않은 노벨평화상 시상식은 109년 만에 처음이다. 주인공 없이 명분만 있는 시상식은 쓸쓸했고, 식장 밖에서는 서로를 비난하는 목소리가 전 세계를 뜨겁게 달궜다. 세계 인권의 날인 이날 벌어진 논쟁의 주제는 세계 평화에 공헌한 사람을 기리기 위해 주어지는 노벨평화상의 올해 수상자가 ‘인권탄압에 맞선 투사’인가, 아니면 ‘국가 전복을 꿈꾸는 범죄자’인가였다. 류샤오보가 평화상 수상자로 선정된 뒤 계속된 세계적 논란과 혼란은 시상식 당일 최고조를 이뤘다. 오슬로 시청에서 1시간 15분 동안 진행된 시상식에는 하랄 노르웨이 국왕과 소냐 왕비, 낸시 펠로시 미국 하원의장을 비롯한 저명 인사, 이병현 노르웨이 주재 한국 대사 등 각국 대사, 해외로 망명한 중국의 반체제 운동가 등 약 1000명이 참석했다. 노벨위원회가 초청한 류샤오보의 가족 및 지인 140명 중에서는 인권운동가 완얀하이가 유일하게 자리를 지켰다. 소프라노 조너선 만의 공연으로 막을 올린 시상식의 열기는 토르비에른 야글란 노벨위원회 위원장이 류샤오보의 수상 이유를 설명하며 최고조에 달했다. 야글란 위원장은 과거 노벨평화상 수상자가 독재정권의 탄압 때문에 시상식에 참석하지 못한 사례를 거론하며 “중국은 엄청난 경제성장에도 불구하고 그에 걸맞은 언론·표현·토론·시위의 자유가 충분히 보장돼 있지 않은 닫힌 사회”라고 비판했다. 이어 “류샤오보는 오직 정당한 권리를 찾기 위해 투쟁했을 뿐 아무런 잘못이 없고, 반드시 석방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야글란 위원장은 “미국이 진정한 강대국이 된 것은 마틴 루터 킹 목사가 인종차별 철폐를 주장해 관철된 이후”라며 “강대국이 된 중국은 이 같은 사례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중국 정부에 조언했다. 참석자들은 여러 차례 기립박수로 연설에 답했고, 일부 중국 반체제 인사들은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그는 30여분 넘게 진행된 연설의 대부분을 중국 정부의 민주화와 인권신장의 필요성을 주장하는 내용으로 채웠고, “류샤오보의 수상이 중국의 변화를 이끌어 내는 희망찬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는 말로 끝을 맺었다. 노벨위원회는 류샤오보의 빈 의자에 상장을 올려놓는 것으로 수여식을 대신했다. 이어 노르웨이 여배우 리브 울먼은 류샤오보가 지난해 쓴 “표현의 자유는 인권의 가장 기본적인 구성 요소이며 우리는 자유로운 중국에 대한 새로운 희망을 항상 가져야 한다.”는 내용의 원고를 대신 읽었다. 지난해 수상자인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은 시상식에 보낸 성명에서 “나보다 류샤오보가 노벨평화상을 받을 자격이 더 많은 인물”이라고 평가하면서 중국 당국에 그의 조속한 석방을 촉구했다. BBC, AP통신 등은 이날 약 2000명의 시위대가 ‘류에게 자유를’, ‘중국의 자유’ 등의 구호를 외치며 노르웨이 주재 중국대사관까지 가두행진을 벌인 뒤 류샤오보의 석방을 촉구하는 10만여명의 청원서를 공개했다고 전했다. 이날 시상식에는 초청장을 받은 65개국 중 중국 등 18개국이 불참했고, 한국을 비롯해 미국, 일본, 유럽 각국 등 47개국이 참석한 것으로 알려졌다. 불참한 나라는 러시아, 쿠바, 이라크, 카자흐스탄 등으로 중국과의 경제협력에 대한 고민 또는 자국 내 반체제 인사 감금에 대한 부담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반면 우크라이나, 콜롬비아, 세르비아 등은 시상식 직전 입장을 바꿔 참석한 것으로 알려졌다. 노벨위원회와 류샤오보의 수상을 지지하는 각국 정부는 잇따라 성명을 발표하고 중국 정부에 류샤오보의 석방을 촉구했다. 야글란 위원장은 9일 “중국은 유엔 회원국으로서 당연히 세계 인권선언을 준수할 의무가 있다.”면서 “강대국으로서 ‘토론과 비판’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밝혔다. 야글란 위원장의 이 같은 발언은 “인권 기준이 지역마다 다르다.”는 중국 정부의 주장에 대한 답변으로 분석된다. 야글란 위원장은 “류샤오보의 노벨평화상 수상은 중국을 겨냥한 결정이 아니었다.”고 강조했다. 박건형기자 kitsch@seoul.co.kr
  • ‘인종 차별’ 영상 올렸다 감옥행 남성

    ‘인종 차별’ 영상 올렸다 감옥행 남성

    동영상 사이트 ‘유튜브’에 인종차별 관련 영상을 기재한 한 남성이 유죄 판결을 받았다. 16일(현지시간) 영국 메트로는 “현지 리즈 크라운 법원이 인종차별 선동을 유도한 이 남성에게 1년3개월의 실형을 선고했다.”고 전했다. 이 매체에 따르면 현지 웨스트서식스주 보그너 레지스에 사는 게러스 헤밍웨이(29)는 유튜브의 개인채널에 ‘거룩한 인종 전쟁’이라는 제목의 영상을 직접 편집해 올렸고, 백인에게 폭행당하는 흑인 등 인종차별 관련 영상을 퍼왔다고. 현지 검찰청의 스튜어트 레이드로우는 “피고는 웨스트요크셔 카운티의 듀스베리에 거주하는 소수민족에 대한 폭력을 선동했다.”며 “일부 불법 인종차별단체의 폭력행사를 애국자로 묘사하기도 했다.”고 전했다. 한편 이 인종차별을 선동했던 남성은 공공질서법에 따라 총 다섯 가지 혐의가 드러났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윤태희 기자 th20022@seoul.co.kr
  • “수감자 인도적 처우 OK” “사형제 폐지 NO”

    미국 정부는 9일 인종차별, 국내외 수감자에 대한 인도적 처우 문제 등을 유엔인권위원회의 권고안에 부합하도록 개선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사형제도에 대해서는 “국제법도 허용하고 있다.”면서 전면 폐지하거나 중단하라는 유럽국가들의 요구를 거부했다. 북한과 이란, 쿠바, 베네수엘라 등이 미국 내 일부 재판 사례를 거론한 데 대해서는 ‘정치적 도발’이라며 관련 권고안을 거부했다. 이 가운데에는 쿠바인 5명을 간첩 혐의로 유죄판결한 사례도 포함돼 있다. 미국 정부의 이 같은 입장 표명은 지난 5일 열린 유엔인권위 회의에서 다른 회원국들로부터 228개에 이르는 인권 개선 사항을 지적받은 데 대한 응답 차원으로 이뤄졌다. 미국 정부는 이들 권고안을 전면적으로 검토한 뒤 내년 3월 회의에서 공식적으로 답변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유엔 인권위는 내년까지 4년에 걸쳐 192개 전체 회원국의 인권 상황을 검토할 예정이다. 미국은 조지 부시 전 대통령 재임 시절 유엔 인권위 참여를 거부했다가 지난해 다시 정식 회원 자격을 회복했다. 미국 대표단은 특히 오바마 정부가 외국인 테러 용의자 구금 시설인 쿠바 관타나모 수용소를 폐쇄하는 절차를 밟고 있으며 어느 수용 시설에서든 고문을 용납하지 않고 있다고 강조했다. 미 대표단의 고홍주(헤럴드 고) 국무부 법률고문은 “우리는 아직도 해야 할 일이 남아 있다는 사실을 겸허히 받아들인다. 앞으로도 (인권 개선에) 계속 노력하고 이런 대화를 지속해 나갈 것을 약속한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는 사법 당국이 피부색, 인종 등을 기반으로 용의자를 추적하는 인종 프로파일링 수사기법을 쓰지 못하도록 하고 청소년 혐의자들을 함부로 다루지 않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또한 투표권이 있는 사람은 누구나 출마할 수 있도록 하고 주택 구입, 은행 거래, 구직, 교육 등에서 모두 동등한 접근권을 갖도록 관련 법을 강화하겠다고 약속했다. 미국은 소수 인종에 대한 불공평한 사법 체계, 비인도적 수감자 처우 등에 관해 많은 국가, 인권 단체들로부터 비판을 받아왔다. 이에 대해 미국시민자유연합(ACLU) 자밀 다콰르는 수감자를 학대한 조사관은 물론 그를 승인한 부시 행정부 당시 고위관리들에 대해서까지 범죄 혐의 여부를 철저히 조사할 것을 미 법무부에 요구했다. 이석우기자 jun88@seoul.co.kr
  • [사설] 성·인종 차별적인 교과서 즉각 수정하라

    올해 개정된 초·중·고교 교과서에 차별·편견을 부추기는 반인권적인 내용이 여전히 많은 것으로 지적됐다. 내용을 보면 교과서가 변화된 사회와 국민 의식에 뒤처져도 한참 뒤처졌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초등학교 3학년 도덕 교과서에는 나라 사랑을 실천한 위인으로 남성 인사들의 사진만 실려 있다. 중학교 3학년 사회 교과서에도 정부 대표 등이 모두 남성으로 묘사돼 있다. 남성은 공적 영역에서 활동하는 ‘주연’인 반면 여성은 집안일이나 하는 ‘조연’에 머무는 식이다. ‘앉은뱅이’ ‘지진아’ 등 이제는 일상생활에서조차 거의 사용하지 않는 장애인을 비하하는 용어를 사용한 교과서도 있다고 한다. 이주 노동자에 대해서는 “노동력을 팔러 왔다.” 는 식의 인종차별을 암시했다. 고교 사회문화 교과서에서는 동성애자를 성매매 행위자 등과 같은 범죄 행위자로 간주해 성적 소수자에 대한 인권을 침해했다. 세계 각국에서 여성 대통령이 배출될 정도로 여성 지도자들이 활발한 활동을 하는데 우리 학생들이 성차별적인 교과서로 공부를 한다니 참으로 어이없다. 장애인과 같은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와 관심을 키워 주기는커녕 편견을 갖도록 부추기는 것도 문제다. 게다가 다문화시대에 접어들고 있는데도 은연중 단일민족으로서의 우월감을 갖도록 하는 것은 개인이나 국가 차원에서도 바람직하지 않다. 다행히 국가인권위원회가 이런 내용의 교과서를 수정·삭제할 것을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에게 권고했다고 한다. 교과부는 즉각 이를 시행해야 할 것이다. 인권위는 이미 지난해에도 교과서 학생 모니터단을 운영해 학생들의 눈높이에서 반인권적인 사례를 찾아 발표한 일이 있다고 한다. 올해 개정된 교과서에도 이런 일이 반복된 것을 보면 교과부의 인권의식 수준이 의심이 될 정도다. 교과부는 대학입시 위주의 정책에만 매달리지 말고 인권의 중요성을 담은 기본에 충실한 교과서 만드는 일부터 나서라. 학교 교육의 근본 가치는 학생들을 좋은 대학에 가도록 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다. 남녀가 평등하다는 인식을 갖고 사회적 약자 및 소수자들과 더불어 사는 성숙한 민주 시민을 기르는 데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 “유대국가 인정해야 시민권 준다”

    “유대국가 인정해야 시민권 준다”

    이스라엘을 ‘유대국가’로 인정하는 서약을 한 사람에게만 시민권을 부여하는 법안이 이스라엘 내각에서 승인됐다. 사실상 ‘앙숙’인 팔레스타인 이민자를 겨냥한 조치다. ‘충성서약법’ 통과에 대해 아랍계 이스라엘인과 지식인들은 물론 팔레스타인 자치정부가 극력 반발할 태세여서 중동지역 정세가 다시 얼어붙을 조짐이다. 11일 AFP 등 외신에 따르면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가 이끄는 이스라엘 내각은 지난 10일 각료회의에서 찬성 22명 대 반대 8명으로 시민권 관련 개정 법안을 통과시켰다. 의회의 최종 승인을 거쳐 발효할 이 법안에는 시민권을 취득할 때 ‘나는 유대 민주국가인 이스라엘에 충성하는 시민이 되고 이스라엘의 법을 준수할 것을 선언한다.’는 내용의 서약문에 서명해야 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다만 이미 시민권을 취득한 이스라엘 내 아랍계 주민이나 이스라엘에 이민 오는 유대인은 서명하지 않아도 된다. 내각을 통과한 개정안은 극우파인 ‘이스라엘 베이테누’ 당이 처음 제출한 발의안 가운데 ‘아랍계 이스라엘 시민은 군 복무를 하거나 다른 공익근무 활동을 해야 한다.’는 내용이 빠지는 등 다소 손질되기는 했으나 아랍계 이스라엘인과 결혼해 시민권을 취득하려는 팔레스타인 사람은 ‘충성 서약’을 해야만 하는 등 독소 조항을 그대로 담고 있어 인권 침해 논란이 예상된다. 법안이 통과되자 이스라엘의 아랍계 정치인들은 격앙된 반응을 보였다. 의회 내 아랍계 의원인 아흐메드 티비도 “특정 이념에 충성을 맹세해야 시민권을 주는 나라는 세계 어디에도 없다.”고 말했다. 이스라엘 지식인들도 법안 내용을 비판하고 나섰다. 예술가와 학자 등 100여명은 지난 10일 텔아비브의 독립기념관 앞에 모여 “민주주의가 후퇴하고 있다.”면서 법안폐기를 주장했다. 교육심리학자인 가브리엘 솔로몬 교수는 “이스라엘이 독일 나치가 1935년 제정한 인종차별법과 같은 법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스라엘 내 아랍계 시민단체들도 이 법안 통과로 전체 인구의 20%를 차지하는 아랍계 주민에 대한 차별이 더욱 심해질 것이라며 반발했다. 유대근기자 dynamic@seoul.co.kr
  • [열린세상]외국인 거주자들이 한국사회에 애착 갖도록/배기동 한양대 고고학 교수

    [열린세상]외국인 거주자들이 한국사회에 애착 갖도록/배기동 한양대 고고학 교수

    몇년 전, 테헤란의 그랜드 바자에서 낯선 이란 젊은이가 다가와서 한국말로 “교수님, 저 한국에서 살았어요. 정말 반갑습니다. 우리 집에 가셔서 차 한 잔 하세요.”라고 말을 걸어왔다. 경기도 안산에 근무하는 학교가 있어서 많은 외국인을 보아 왔지만, 만리타국에서 안산에 살다 온 이란인을 만나고서 ‘아하, 이게 바로 세계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외국계 주민이 200만명을 넘었고 이들 중에는 한국관광공사 사장인 이참씨처럼 정부의 고위직을 맡은 사람도 있다. 최근 우리 정부는 외국인 거주자나 외국계 한국민의 편의와 동질화를 위하여 여러 가지 방안을 마련해 왔다. 그러나 아직도 외국문화에 대한 이해가 그리 깊다고 할 수는 없다. 자문화중심의 민족주의적인 입장에서 이해하는 경우가 많고 문화평등주의나 인본주의에 입각한 외국문화의 이해는 깊지 못한 것이 현실이다. 이러한 인식은 베트남 신부가 살해된 사회적인 배경이기도 하고, 앞으로 우리 사회에 어려움이 닥친다면 심각한 인종차별 또는 민족차별의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 만일 민족 집단 간의 차별대우로 갈등이 내재하고 깊어지면 우리 사회는 이제까지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시련을 맞을 수도 있을 것이다. 또 한편으로 외국인 거주자들이 우리 사회에 실망하고 좌절하는 것은 우리 사회의 건전한 발전을 위해서 전혀 도움이 되지 못한다. 우리는 백의민족이라는 기치 아래 민족의 동질성을 강조했고, 또한 우리가 단일민족이라는 점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도록 교육받았다. 어떤 민족이든지 어느 정도 타민족과 혼합이 이루어지게 되고, 우리같이 반도에 사는 경우에는 대륙과 해양으로부터 이주하여 오는 여러 민족의 유전자 혼합과 문화혼합이 이루어진 것은 명확한 사실이다. 이러한 다민족적인 혼혈이야말로 우리 민족의 강한 체질을 만들어 냈다고 생각된다. 고대나 중세시대 우리의 문화는 상당히 개방적이었다. 신라 처용의 존재나 고려시대의 기록에서 보이는 내용에서도 그러한 분위기를 짐작하게 한다. 일본 제국주의 침략을 겪으면서 민족주의적이며 배타적인 순혈주의를 강조하게 되었고, 현대에서도 우리의 잠재의식 속에 남게 된 것이다. 경제의 외국 의존도가 높고 국제적인 교류가 우리 사회 발전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상황에서 오늘날 진행되고 있는 세계화의 과정은 숙명적인 과제로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다. 특히 산업인력 보충이나 결혼을 통해서 들어오는 외국인들이 우리 사회의 유지를 위해서 필수적인 존재가 되어가는 것이 현실이다. 장기적으로 제3세계의 많은 젊은이가 대학에서 우리의 기술과 관습을 배우도록 하여 모국에서 봉사할 수 있도록 하여야 한다. 이것은 한편으로 우리 대학의 국제적인 경쟁력 유지에 필수적인 관건이기도 하다. 결국, 우리 사회의 미래 과제 중 중요한 것은 앞으로 늘어갈 타민족집단과 혼혈집단을 어떻게 우리 사회에 동질화시키고 또한 사회적으로 왜곡된 시각을 줄일지가 문제이다. 오늘날 국제적인 분쟁에서 잘 볼 수 있듯이 다민족국가나 다문화국가에서는 차별적인 시각이 분쟁을 유발하게 한다. 차별적인 시각을 없애기 위해 우리는 하루속히 다민족 그리고 다문화사회를 인간평등의 시각에서 받아들이고 제도적으로 확고히 보장해야 한다. 문화다양성의 정도가 사회의 건전도를 나타내고 경쟁력을 높이는 것이라는 점을 분명하게 인식하는 것이 전제되어야 할 것이다. 외국인 거주자들이 한국 사회에 애착을 두고 공헌할 수 있도록 분위기를 만들어 주는 것 또한 중요한 관건이다. 이들에 대한 배려가 바로 우리나라에 대한 애착을 가져오게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들의 문화를 존중하도록 학교에서 가르치고 또한 그들이 이곳에서도 편안함을 느낄 수 있는 다문화공간을 만들어 주는 것이 필요하다. 그리고 세계문화박물관과 같이 그들의 문화를 자랑하고 우리가 그들의 문화를 배울 수 있는 공간도 만들어 내야 할 것이다.
  • 금발 늘씬女만 채용 ‘관광천국’의 대모험

    금발 늘씬女만 채용 ‘관광천국’의 대모험

    세계 최초로 지구에 금발의 미녀들만 일을 하는 섬이 탄생할까. 인도양 작은 섬들로 이뤄진 몰디브공화국에 금발의 미인들만 일할 수 있는 리조트 섬이 탄생할 것이라는 계획이 전해져 화제와 동시에 뜨거운 논란이 되고 있다. 리투아니아에 기반을 둔 여행사 울랄라(Olialia)는 “호텔 직원·매니저는 물론 수리공과 운전사 심지어 항공사의 승무원과 조종사까지 모두 금발의 미인으로만 이뤄진 섬을 2015년 문을 열겠다.”고 밝혔다. 몰디브는 각광받는 호화 신혼여행지 중 하나. 울랄라 측은 젊고 예쁘고 거기에다가 금발을 가진 여성들을 고용해 다른 섬과 차별되는 초호화 리조트 섬으로 거듭나겠다는 계획이다. ‘금발미인 섬’은 시선 끌기에는 어느 정도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영국, 러시아, 미국 등지의 언론매체가 섬에 대해 집중 보도했으며, 여행사 측에 따르면 벌써 자세한 정보를 묻는 여행가들의 문의가 끊이지 않는 것. 그러나 동시에 “금발미녀의 왜곡된 이미지를 내세운 성상품화 전략이며 인종차별적인 마케팅”이라는 비난도 만만찮다. 라투아니아의 한 언론매체는 “결국 금발 여성들의 성적 이미지를 내세운 조잡한 아이디어”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더욱이 몰디브 현지인들의 머리카락 색깔은 대부분 검은데, 현지법은 리조트 직원의 50%를 현지인으로 채용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어 금발미녀 직원의 채용이 사실상 어렵다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울랄라 측은 “전 직원을 금발미녀로 하는 건 획기적인 차별화 전략으로, 한해 수익 600만 파운드(100억원) 이상을 벌어들일 것으로 기대된다.”면서 “모든 여직원들은 미모 뿐 아니라 열정과 투철한 직업정신을 가진 인재들일 것”이라고 자랑했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강경윤기자 newsluv@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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