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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일 고대 뱃길 통나무배로 고증 나섰다

    한·일 고대 뱃길 통나무배로 고증 나섰다

    한국과 일본 민간인들이 한·일 간 고대 뱃길 고증을 위해 통나무 배를 타고 6일 경남 거제에서 대마도를 향해 출항했다. 일본 시마네현 교사들이 주축이 된 민간역사연구 모임인 가라무시회(대표 모리 유타카)는 이날 오전 3시쯤 거제 지세포항에서 출발해 대한해협 쪽으로 항해를 시작했다. 뱃길 탐사에 나선 통나무배 ‘가라무시 4세호’는 길이 9.7m, 너비 60㎝, 무게 600㎏ 규모다. 고대인들이 탔을 것으로 추정하는 선박을 고증해 만들었다. 시마네현에서 수령이 250년 된 전나무를 어렵게 구해 도끼로 속을 파내는 등 전통 방식으로 제작했다. 탑승 인원은 7명이며 시속은 4.7㎞다. 가라무시회 모임은 35년 전에 설립됐으며 회원은 50여명이다. 이 모임은 ‘대한해협 횡단 프로젝트’를 통해 고대에 대한해협을 오갔던 통나무배의 이동경로와 소요 시간 등을 고증한다. 통나무배로 대한해협을 건널 수 있는지 확인하고 신라시대(157년) 연오랑 세오녀 설화를 재현하는 의미도 있다. 이 설화는 연오랑이 일본으로 건너가 왕이 됐고 부인 세오녀도 바위에 실려 일본으로 건너가 철기문화와 베 짜는 기술 등을 전해줬다는 얘기다. 부산외대 명예교수인 김문길 한일문화연구소 소장은 “고대 문헌에 기록된 사실들을 일본인들이 직접 고증하려는 의미 있는 시도”라고 평가했다. 이번 탐사 프로젝트에는 모임 소속 일본인 6명 외에 한국인 지원인력 등 모두 21명이 참여했다. 요트 2척과 고무보트 1척이 지원 선박으로 동행한다. 통나무배 항해는 일본인 6명과 한국인 5명 등 11명이 맡는다. 15년 전부터 가라무시회 모임과 인연을 이어온 유현웅(52)씨는 “역사를 제대로 알리려는 일본인들을 도와주고 싶었다”면서 “탐사단이 무사히 도착해 한·일 우호 증진에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예정대로라면 가라무시 4세호는 7일 오후 7시쯤 대마도 인근 해상에 도착한다. 모리 대표는 “준비과정이 쉽지 않았던 만큼 꼭 성공해 고대인들의 뱃길 발자취를 확인하고 싶다”고 말했다. 거제 강원식 기자 kws@seoul.co.kr
  • ‘고양이는 있다’ 전효성, 악역 변신 “욕 먹을 각오” 어떤 악역이길래..

    ‘고양이는 있다’ 전효성, 악역 변신 “욕 먹을 각오” 어떤 악역이길래..

    전효성이 악역을 맡은 소감을 밝혔다. 5일 서울 여의도에 위치한 한 카페에서 KBS1 새 일일드라마 ‘고양이는 있다’(이은주 극본, 김원용 연출) 기자간담회가 열렸다. 전효성은 극중 양순(최윤영)과 같은 잡지사 사진기자 한수리로 분한다. 수리는 귀하게 자라 공주병이 있는 인물로, 늘 양순과 비교 당해 자존심이 상해있다. 전효성은 이날 “수리는 악역이기는 하지만 허당기가 있고 주도면밀하지는 못하다. 귀여운 악역을 맡아 욕을 먹을 수도 있겠지만, 욕 먹을 각오는 돼 있다”고 말했다. 이어 “두 번째 정극이라 선배들, 감독님께 많이 배우면서 촬영 중이다”라고 덧붙였다. 한편 ‘고양이는 있다’는 고양이를 인연으로 만난 두 남녀가 각자의 잃어버린 고양이를 찾는 과정에서 그동안 몰랐던 가족 간의 숨겨진 비밀과 진실을 알게 되고, 그로 인해 그들과 그들 가족이 겪게 되는 갈등과 화해를 그린 드라마로 오는 9일 밤 8시 25분 첫 방송된다. 사진 = KBS 연예팀 seoulen@seoul.co.kr
  • [6·4 선택 이후-기초단체장 서울] 오세훈 때 부시장 출신 나란히 구청장 진출

    이번 6·4 지방선거에서 눈길을 끄는 대목은 전직 서울시 부시장들이 구청장으로 진출했다는 점이다. 선출직이라고는 하지만 그간 부시장까지 역임한 이들이 구청장에 나서는 경우는 상대적으로 드물었다. 더구나 이들 모두 오세훈 전 서울시장과 깊은 인연을 맺고 있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박원순 시장의 ‘오세훈 지우기’에 대한 반발이 이들의 출마를 부추긴 게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이들과 박 시장 간의 관계 설정이 주목된다. 가장 눈길을 끄는 이는 새누리당 나진구 중랑구청장 당선인이다. 나 당선인은 행시 23회로 서울시의 각종 요직을 거쳐 행정1부시장까지 역임했다. 중랑구 부구청장을 잠시 지내기도 했다. 정통 행정관료 출신으로는 가장 무게감 있는 후보자였다. 나 당선인도 “솔직히 왜 한 급을 낮춰 출마하려 드느냐, 행정 했던 사람이 괜히 정치판에 뛰어드는 것 아니냐는 주위의 만류가 많았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출마를 강행한 것은 개발에 뒤처진 중랑 지역 주민들의 간절한 요청 때문이었다. 해서 그는 선거 기간 내내 ‘격이 다른 후보’임을 내세웠다. 서울시, 청와대 근무 경험을 내세워 지역 현안이 발생했을 때 중앙정부와 서울시에 뛰어가 일을 처리할 수 있는 사람이 누가 있느냐는 주장이었다. 그럼에도 선거에서는 어려움을 겪었다. 중랑이 원래 야성이 강한 지역인 데다 상대 당 김근종 후보는 30여년간 밑바닥을 다져 온 인물이었다. 개표 결과도 48.62% 대 46.56%로 3700여 표, 2% 포인트 차이였다. 서울 지역 선거에서 가장 아슬아슬한 승리였다. 나 당선인은 “상봉역 주변을 코엑스로 만들고 신내차량기지 이전지에 첨단산업단지를 조성하고 면목 지역을 패션특정개발진흥지구로 지정하는 등 지역 주민들의 오랜 염원인 개발사업을 속 시원하게 해결하는 데 온 힘을 모으겠다”고 말했다. 박 시장과 당색이 다른 것에 대해서는 “박 시장은 균형 발전을 중시하는 분 아니냐. 뒤처진 중랑 발전을 더 힘차게 이끌어 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고 말했다. 나 당선인과 서울시에서 함께 근무하며 행정2부시장을 지냈던 최창식 중구청장 당선인도 49% 대 42.9%로 상대 당 후보를 따돌리고 무난히 재선에 성공했다. 최 구청장은 2011년 4·27 재·보궐선거 때 중구청장에 당선됐다. 여성전략공천으로 뽑힌 조은희 서초구청장 당선인 역시 오 전 시장 시절 정무부시장에 발탁된 인물이다. 조태성 기자 cho1904@seoul.co.kr
  • “적극 투자·고용확대 해달라”

    정부가 세월호 참사 이후 침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내수를 살리기 위해 재계에 적극적인 투자, 고용 확대를 당부했다. 이에 재계는 당초 세운 투자, 고용 계획을 차질 없이 추진하는 한편 세월호 참사로 취소한 광고·판촉 등 기업행사를 개최하고 임직원들의 소비도 늘리겠다고 밝혔다. 현오석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30대 그룹 사장단은 5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전국경제인연합회 회관에서 ‘세월호 사태 이후 정상적 경제활동 복귀를 위한 모임’을 갖고 이런 내용의 내수 회복 및 민생 안정 노력을 추진하기로 했다. 현 부총리는 “기업들은 계획된 투자를 조기에 집행하는 한편 새로운 투자를 더욱 확대하고 필요한 인력도 신속히 채용해 달라”면서 “연기, 취소했던 마케팅 등 정상적인 경제활동을 재개하고 세월호 사고의 영향을 직접적으로 받고 있는 소비 보완 노력에 적극 동참해주기 바란다”고 당부했다. 이날 모임에 참석한 강호문 삼성전자 부회장은 투자 계획의 차질 없는 집행을 강조했고, 박광식 현대자동차 부사장도 “계획된 투자를 예정대로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특히 SK그룹은 100억원가량의 국민관광상품권을 구입해 임직원들에게 나눠주고 주말이나 휴가 기간 동안 국내 관광, 문화, 음식 등에 소비하도록 독려하겠다고 발표했다. 장은석 기자 esjang@seoul.co.kr
  • 간암 투병 작가와 평론가의 문우지정

    간암 투병 작가와 평론가의 문우지정

    ‘돌이켜보면, 그도 알게 모르게 오디세우스의 행적을 따르려 했던 셈이다. 쓸모없는 지식들을 추구하고 ‘한가로운’ 걱정들을 하고. 하긴 그것이 그가 누린 특권이었다. 스스로 지식인이 되기를 열망한 사람들만이, 이 우주의 지도제작자들만이, 누리는, 누구도 물려주거나 건네줄 수 없는 특권이었다.’(200~201쪽) 간암으로 투병 중인 복거일(68) 작가가 최근 내놓은 장편소설 ‘한가로운 걱정들을 직업적으로 하는 사내의 하루’의 한 대목이다. 이를 두고 원로 문학평론가인 김병익(76) 문학과지성사 상임고문은 이런 ‘댓글’을 달았다. ‘복거일 자신이 스스로에게 내리는 이 세상에서의 자기 평가. 내가 그를 알고 그의 글과 말을 읽고 들을 수 있었던 것은 내가 이 세상에서 받아 지닐 수 있었던 하나의 크고도 따뜻한 혜택이었다.’ 최근 계간 ‘문학과사회’ 여름호(통권 106호)에는 편집자와 작가, 평론가와 작가, 학교 선후배 등으로 오랜 교분을 나눈 두 문인의 특별한 ‘문우지정’(文友之情)이 눈길을 끌었다. 복 작가가 보낸 소설 ‘한가로운’을 읽은 김 평론가가 애정 어린 독후기를 보내고 다시 복 작가가 화답한 서신이 계간에 실린 것이다. 두 사람의 인연은 27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문학과지성사 대표이던 김 평론가가 등단도 하지 않은 복 작가의 작품 ‘비명을 찾아서’를 출간해준 것. 지난 3월 김 평론가에게 소설을 보낸 복 작가는 다음 날 그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러곤 털어놓았다. 2년 반 전 간암 말기 진단을 받고 일체의 치료나 시술을 거부하고 글쓰기에 전념한 이야기를 쓴 책이라고. 이 말을 듣고 단숨에 책을 읽어내려간 김 평론가는 존경의 헌사를 바쳤다. “어떤 치료도 거절하고 나머지 주어진 시간을 글 쓰는 데 바치겠다는 그의 담담한 결연(決然). 이 때문에 그는 그 이후 글 쓰는 데 시간을 바칠 수 있었고 그의 병이 육체의 졸아듦을 좀 더 유예시켜 준 것은 아닐까. 그 초연함, ‘호모 스크립트쿠스’의 열정에 대한 나의 감동과 경의.” 이에 작가는 두 사람의 첫 인연에 대한 생생한 감회에 젖으며 감사의 편지를 건네왔다. “‘문학과지성사’에서 제 작품을 출간하고 싶다고 하신 선생님의 서한을 대전에서 받은 때가 스물일곱 해 전입니다. 제가 살던 아파트는 이십 년 전에 헐렸고 서울로 올라온 지도 십 년이 훌쩍 넘었습니다만, 선생님 서한을 안식구에게 보여주던 당시의 들뜬 마음과 첫 졸작을 서점에서 보았을 때의 느낌은 지금도 생생합니다.” 정서린 기자 rin@seoul.co.kr
  • 국내여행 | 제주를 걷는 새로운 방법①예술 따라 걷기-서귀포시 유토피아길

    국내여행 | 제주를 걷는 새로운 방법①예술 따라 걷기-서귀포시 유토피아길

    제주에 올레길만 있다고 생각하면 오해다. 그 동안 제주의 둘레만을 돌고 돌았던 당신에게 이제 제주의 속살을 밟아 보라고 말한다. 더 깊은 제주가 여기 있다.예술 따라 걷기 - 서귀포시 유토피아길추억 따라 걷기 - 제주시 두맹이 골목 자연 따라 걷기 - 산방산·용머리해안 지질트레일●예술 따라 걷기서귀포 70리 예술산책남인수의 노래 ‘서귀포 칠십리’를 아는 사람 혹은 서귀포 칠십리를 걸어 본 사람은 얼마나 될까? 그렇다면 서귀포 유토피아길을 걸어 본 사람은? 많다. 그러나 더 많아져야 한다.서귀포를 걸어야 하는 이유 서귀포칠십리시공원 입구에서 문득 궁금해졌다. “서귀포가 왜 칠십리인가?” 북쪽의 제주 시청부터 남쪽의 서귀포 시청간의 직선거리가 27.2km쯤 되는 걸 보니(70리는 약 27.5km이다), 그래서인가 했지만, 추측은 틀렸다. 1653년 발간된 <탐라지>에 의하면 서귀포칠십리길은 조선시대 새로 부임한 정의현 현감이 성읍의 현청을 출발해 서귀포구까지 초도순시를 나섰던 70리 길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당시의 청사와 객사, 민가 등을 볼 수 있는 곳이 바로 제주관광 필수코스가 된 남제주군 표선면의 성읍민속마을이다. 그 옛날 현감이 걸었던 길이 칠십리건, 구십리건 민초들이야 무슨 상관이었을까 싶었는데, 또 틀렸다. 서귀포 사람들에게 서귀포칠십리는 단순한 거리 개념이 아니라 이상향과 피안을 상징하는 의미를 지닌다고 했다. 1938년에는 ‘서귀포칠십리’라는 곡(조명암 작사, 박시춘 작곡, 남인수 노래)이 만들어져 서귀포가 제주를 너머 널리 알려지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지금도 서귀포 뒤에는 서귀포칠십리축제, 서귀포칠십리 건강달리기대회, 서귀포칠십리 70경, 서귀포칠십리 감귤 등 칠십리가 꼭 따라붙는다. 아무튼 오늘 걸어야 할 길이 70리가 아니라니 참 다행이다. 서귀포 시내를 타원형으로 돌게 만드는 ‘유토피아 길’은 고작 4.7km의 워킹투어 코스다. 천혜의 자연포구와 섬, 기암들이 줄지어 선 해안절경으로 이뤄진 비경만을 쫓는 길이 아니다. 제주를 사랑하는 아티스트들이 만들어낸 예술 풍경이 이 길에서는 더 중요한 테마다. 박물관을, 미술관을 제대로 관람하려면 걸음이 한없이 느려지듯, 유토피아길도 마찬가지다. 여기서 경고 하나. 하나하나 곱씹으며 걷다 보면 체감거리는 칠십리를 훌쩍 넘을 수도 있다.이중섭의 제주-추억유토피아길의 공식 추천 루트가 시작되는 곳은 이중섭 미술관이다. 사실 서귀포와 이중섭(1916~1956년)의 인연은 길지 않다. 1·4 후퇴 때 원산을 떠난 그의 가족이 부산을 거쳐 제주 서귀포에서 머문 시간은 1951년 1월부터 12월까지, 채 1년이 안 된다. 그러나 40세의 젊은 나이에 요절한 그에게는 결코 짧은 기간이 아니었을지 모른다. ‘서귀포의 환상’, ‘게와 어린이’, ‘섶섬이 보이는 풍경’ 등 여러 작품이 제주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귀포에 이중섭 미술관, 이중섭 거주지 그리고 이중섭 공원과 거리까지 조성된 것에는 시의 노력과 미술계의 도움이 컸다. 2003년에 가나아트가 ‘섶섬이 보이는 풍경’ 등 65점의 작품을 기증하면서 이중섭 전시관은 미술관으로 등록(2종)할 수 있었고, 2004년에 갤러리 현대가 ‘파란 게와 어린이’ 등 53점을 기증해 1종 미술관이 될 수 있었다. 서귀포시 중심에 위치한 이중섭 거리는 명소가 된지 오래다. 주말이면 지역 예술가들이 참가하는 목공, 도자기, 퀼트, 천연염색, 한지공예, 칠보공예, 민예품, 서화류 등을 판매하는 아트마켓(서귀포문화예술디자인시장)이 열려서 더 북새통을 이룬다. 봄꽃이 만개한 이중섭 공원의 벤치 위에 홀로 앉아 있는 이중섭 조각상이 상대적으로 쓸쓸해 보일 정도였다. 사실 이중섭의 일생은 죽는 날까지 가난하고 고독했다. 종이를 사기 어려워 쓰레기더미에서 주운 담배 은박지에 그림을 그렸다는 ‘은지화’ 탄생에 얽힌 그의 비화는 유명하다. 복원된 그의 서귀포 거주지는 꽤 커 보이는 초가집이지만 실제로 그의 가족들이 거주했던 곳은 1평 남짓한 구석방이었다. 가난했지만 가족들이 함께였기에 그에게 서귀포는 가족에 대한 추억이 가득한 낙원이었을지도 모른다. ‘길 떠나는 가족’처럼 수레를 타고 피난길에 오른 상황이든, ‘게와 어린이’처럼 먹을 것이 없어서 게를 잡아야 하는 상황이든, 그의 작품 속 가족의 풍경은 항상 행복하다. 이후 가족을 일본으로 떠나 보내고 홀로 남아 작품활동을 포기하지 않았던 그가 아내 야마모토 마사코(한국 이름 남덕)과 주고받은 애틋한 편지들도 미술관에 전시되어 있다.변시지의 제주-고독이중섭에 쏠린 관심에 비해 지난해 타계한 변시지(1926~2013년) 선생의 미술관 설립 계획이 무산 위기에 처한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현재 그의 작품은 외사촌인 기당奇堂 강구범 선생이 1987년에 설립해 시에 기증한 기당미술관에 전시되고 있다. 일본에서 수학하고 서울로 돌아와 초창기에 정밀한 풍경화를 그렸던 변 화백의 화풍은 후학양성을 위해 1975년 고향인 제주로 돌아온 후 크게 달라졌다. 바닥 장판색에서 착안했다는 흙빛에 담긴 제주의 바다와 바람은 그에게 ‘폭풍의 화가’라는 별칭까지 선사했다. 초가, 소나무, 돛단배, 조랑말, 까마귀, 청년 등 그의 작품에 공통적으로 등장하는 요소들을 관찰하고 있으면 작가의 심리상태가 가슴으로 파고드는 것 같은 전율이 느껴진다. 미국 워싱턴의 스미소니언 박물관에 그의 작품 2점이 살아있는 동양화가로는 최초로 2007년부터 10년간 상설전시된다는 사실에 많은 사람들이 흥분했지만 멀리 워싱턴까지 갈 필요 없이 기당미술관에만 가도 그의 작품들을 다수 볼 수 있다. 타계하기 전까지 그는 기당미술관의 명예관장이기도 했다. 작품뿐 아니라 건물도 훌륭하다. ‘눌(땔나무 등을 쌓은 더미를 말하는 ‘가리’의 사투리)’에서 영감을 얻어 나선형으로 설계한 박물관은 자연채광이 잘 들어오고 숨은 정원까지 있는 아름다운 건물이다. 그러나 시 외곽에 위치해 있기 때문인지 찾는 사람이 많지 않아 안타깝다. 미술관 앞에서 바라본 한라산의 전망도 최고인데 말이다. 그의 작품명이기도 한 ‘외로운 시간’은 아직도 진행 중인 것 같다.이왈종의 열정과 중도지난해 5월 서귀포에 문을 연 왈종미술관은 유포피아길 코스에 포함되어 있지 않다. 시립이 아닌 사설미술관이어서인지 모르겠으나 그림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빼놓을 수 없는 곳이다. 이왈종은 변시지와 더불어 제주를 대표하는 화가다. 젊은 사람들에게는 오히려 더 유명하다. 전국적인 커피체인점인 드롭탑의 콜라보레이션으로 그의 그림이 새겨진 텀블러, 머그컵, 핸드폰케이스 등이 판매 중이기 때문. 민화풍의 그의 그림은 꽃과 자연을 화사하게 담고, 춘화적인 요소도 강하다. 들판에서 커플이 자유롭게 사랑을 나누는 ‘제주 생활의 중도中道’처럼 거침없이 묘사된 제주의 일상은 요새 ‘제주앓이’를 앓고 있는 젊은이들의 마음을 더 불타 오르게 한다. 그러나 정작 이왈종(1945년~)이 제주를 선택했던 당시의 상황은 그리 밝지 않았다. 추계예술대 교수로 재직하다 그만두고 1990년 낙향했을 때 그의 소망은 남은 몇년을 그림만 그리며 살아 보자는 것이었다. 가족과 떨어진 고독한 생활을 20년 넘게 지탱해 준 것은 시와 그림이었다. 그런 그가 제주가 가장 아름다운 순간으로 태풍이 올 때를 꼽았단다. 변시지가 즐겨 그렸던 제주의 폭풍은 어쩌면 가장 황홀한 아름다움을 표현한 것이었을까. 현재 왈종미술관은 정방폭포 주차장 바로 맞은편에 세워졌다. 문화재보호지역이지만 미술관으로 겨우 허가를 받았다. 미술관 겸 그의 작업실, 주거지이지만 사실 그가 작품 300여 점을 기증해 설립한 왈종후연미술문화재단이 소유하고 있다. 1층은 어린이 미술교육실, 2층에는 자신의 작품 90여 점은 전시했고, 3층은 그의 작업실, 옥상 황토방이 그의 잠자리다. 자신이 머물 공간이었기에 설계에만 2년이 걸릴 정도로 신경을 많이 썼다. 제주가 천국보다 좋다는 그는 여생을 제주에서 아이들에게 미술을 가르치며 살 계획이란다. 현중화의 열정과 붓이왈종 선생은 어느 인터뷰에서 ‘글씨가 그림보다 한 수 위’라는 말을 한 적이 있는데, 그 말을 실감할 수 있는 곳이 왈종미술관에서 멀지 않다. 소암 현중화 선생(1907~1997년)의 서예 작품들을 전시한 소암기념관이다. 그의 탄생 100주년을 즈음하여 2008년에 세워진 곳이다. 모든 서체에 능했던 현중화 선생은 ‘먹고 잠자고 쓰기’만 했다고 할 정도로 작품활동과 후학양성에만 전념했다. 특히 취중에 흘려 쓴 선생의 ‘취필’은 소름이 돋을 정도로 강렬하다. 서예를 전혀 몰라도, 한자를 잘 몰라도 감탄이 절로 나온다. 같은 서체의 같은 글자라도 쓸 때마다 모양이 다른 화첩 앞에서는 할 말을 잃고 말았다. 일본에서 유학한 소암은 더 큰 무대에서 이름을 날릴 수 있었지만 49세에 귀국하여 여생 동안 서귀포를 떠나지 않았다. 기념관 옆에는 선생의 유택인 조범산방眺帆山房·돛단배가 바라보이는 집도 고스란히 남아 있다. 그가 오른 경지나 예술에 대한 열정은 절로 고개가 숙여지는 부분이지만 무료 관람에도 불구하고 관람객은 많지 않았다. 오히려 해외 서예동호인들이 더 열광한다고 한다. 참고로 소암기념관 앞은 먼나무 가로수길이다. 제주와 보길도 등 남부의 저지대에서만 자생하는 먼나무는 가지가 꺾일 듯 흐드러지게 맺히는 붉은 열매로 여행자들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예술가의 유토피아지금껏 대가들에게 헌정된 미술관 이야기만 했지만 사실 유토피아길의 진수는 길 위에 있다. ‘지붕 없는 미술관’이라고 부를 만큼 다양한 조각상, 설치 작품, 벽화들이 칠십리시공원과 서귀포시 이곳저곳에 자리잡고 있다. 2012년 진행된 마을미술프로젝트의 결과물이기도 하다. 40여 점이나 되니 잠깐 한눈을 팔면 놓치고 지나칠 정도다. 조가비, 도자기, 유리, 테라코타, 아트타일, 유리자갈 등을 이용한 부조벽화 작품들은 조용한 포구마을을 야외 갤러리로 만들었다.유토피아길 덕분에 한때 공동화 현상까지 나타났던 서귀포 도심은 활기를 되찾았다. 이중섭 거리의 상징과도 같은 건물인 옛 아카데미 극장도 현재 리모델링 공사가 한창이다. 1960년대 건립된 아카데미극장은 1980년대까지 운영되다가 방치된 상태였지만 조만간 문화예술공간으로 되살아날 예정이다. 그런 분위기 때문인지 아예 서귀포행을 선택하는 작가들이 늘어나고 있다. 홍대의 실험예술계를 이끌었던 퍼포먼스 예술가 김백기 선생도 2013년 서귀포에 자리를 잡았다. 2012년 마을미술프로젝트에 참가했던 것이 계기가 됐다. 제주가 홍대처럼 될 것이라고 했던 어느 기자의 예언은 불과 2년 만에 (좋건, 나쁘건) 현실이 된 듯하다. 이효리 같은 슈퍼스타들도 제주를 선택하고 있지 않은가. 제주의 바다, 제주의 꽃, 제주의 오름과 산, 제주의 돌멩이까지, 제주의 모든 것이 예술가들에게는 영감과 위로의 대상인가 보다. 돈도 명예도 마다하고 이 작은 섬에 살기를 고집할 만큼. 특히 서귀포가 대한민국 예술중심지로 부상하고 있는 것이 혹시 붓끝 모양을 닮았다는 섶섬의 기운 때문은 아닌지, 싱거운 생각마저 해 본다. 어떤 이유에서건 서귀포는 예술가들의 유토피아가 되고 있다.글·사진 천소현 기자 취재협조 호텔 섬오름 www.sumorum.com☞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찾아가기제주공항에서 600번 공항리무진탑승, 서귀포 경남호텔 하차. 이중섭거리에서 탐방 시작.문의 서귀포시 문화예술과 064-760-2481서귀포 유토피아길 | 서귀포 시내와 자구리해안로를 포함하는 총 4.7km의 워킹투어코스로 약 4시간이 소요된다. 이중섭 공원(출발)→이중섭미술관→이중섭거주지→동아리창작공원(아트하우스, 문화예술디자인시장)→기당미술관→칠십리시공원→ 자구리해안→소남머리→서복전시관→소암기념관 ▶프로그램 해설사와 함께하는 작가의 산책길 탐방 | 매주 토·일요일 오후 1시 출발,서귀포문화예술디자인시장 | 매주 토·일요일 오전 10시~오후 6시, 이중섭 문화의거리 일대 ▶통합입장권 이중섭 미술관, 기당미술관, 서복전시관, 소암기념관을 모두 입장할 수 있는 통합관람권을 1,300원(총 600원 할인)에 판매 중이다.글·사진 손고은 기자 취재협조 제주관광공사 www.ijto.or.kr
  • 성공회대 개교공신, 서울·경기 교육 이끈다

    성공회대 개교공신, 서울·경기 교육 이끈다

    6·4 교육감선거에서 진보 성향 조희연(서울)·이재정(경기) 후보가 나란히 당선됐다. 선거에 출마하기 전까지 성공회대 교수를 지낸 조 당선인과 역시 성공회대 석좌교수를 지낸 이 당선인의 인연은 성공회대의 전신인 성공회신학대학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정구 성공회대 총장은 “두 분은 우리 학교가 지금의 종합대학으로 거듭나는 데 큰 공을 세운 ‘개국공신’”이라고 말했다. 성공회 성직자를 양성하는 교육기관으로 시작한 성공회신학대학의 초대 학장으로 진보적 성향을 지닌 이 당선인과 당시 진보 소장학자였던 조 당선인은 서로 뜻이 잘 맞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 총장은 “이 교수가 조 교수를 많이 아꼈다. 나이 차는 있지만 정치적 성향도 잘 맞았고 두 분 모두 진보적이고 역동적인데다 부드러우면서도 강한 리더십도 잘 맞았다”고 전했다. 두 사람이 신학과밖에 없었던 성공회신학대를 종합대학으로 일궈나가야 한다는 공통의 비전을 갖게 된 것도 우연은 아니었던 셈이다. 성공회신학대학이 추구하는 ‘열림·나눔·섬김’이라는 종교적 가치가 인권·평화 등 우리 사회가 궁극적으로 지향해야 할 가치와 일맥상통한다는데 뜻을 같이했다. 성공회 교단에서 설립한 대학이지만 더 많은 학과를 개설해 인권과 평화의 가치를 가슴에 품은 인재를 길러내자는 결론에 이르렀고, 뜻을 함께하는 교내 구성원들을 모아 성공회대 출범을 추진했다. 성공회신학대학은 1994년 현 성공회대로 교명을 바꿨다. 종합대로 정식 출범한 것이다. 이 당선인은 이 대학의 초대 및 2대 학장을 지냈다. 조 당선인은 사회학부를 발전시키는데 앞장섰다. 두 사람은 이제 성공회대가 아닌 수도권을 아우르는 서울 교육과 경기도 교육을 책임지고 이끌어가게 됐다. 두 사람은 이미 후보 때부터 진보 시민단체들이 추대한 서울·경기 진보단일화 후보로 다른 지역 진보 교육감들과 함께 살인적인 입시고통 해소, 학생안전과 생명을 지키는 안전한 학교, 청렴한 교육청 건설 등의 공동공약을 내걸고 협력을 약속했다. 김서중 성공회대 교수는 “인권과 평화라는 가치가 실현돼야 할 가장 중요한 현장은 초·중·고교인 만큼 두 분 모두 그동안 살아온 삶의 연장선에서 성공회대가 지향하는 가치를 초·중·고교에서도 실현하시리라 믿는다”고 말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시장 출마했던 MBC 탤런트, 어찌됐나 보니…이색 낙선자들 화제

    시장 출마했던 MBC 탤런트, 어찌됐나 보니…이색 낙선자들 화제

    6·4 지방선거가 개표까지 모두 완료된 가운데 당선자와 낙선자 간에 희비가 엇갈리고 있다. 갖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1등에 밀려 분루를 삼킨 독특한 경력의 낙선자들을 추려봤다. 경기 시흥시장에 도전했던 중견 탤런트 한인수(66) 후보는 1등과 4000여표 차이로 낙선했다. 한 후보는 5일 최종 개표 결과 전체 유권자의 46.55% 지지를 얻어 49.72%를 얻은 새정치민주연합 김윤식 후보에 석패했다. 시흥 출신으로 MBC에서 잔뼈가 굵은 한 후보는 3대 경기도 의원, MBC TV 탤런트 실장, 박근혜 대통령 후보 시흥시 홍보위원장 등을 지냈다. JTBC 대하드라마 ‘궁중잔혹사-꽃들의 전쟁’, MBC 대하드라마 ‘이산’, SBS 대하드라마 ‘서동요’ 등 시대극과 ‘외길가게 하소서’, ‘여로’ 등의 영화에 출연했다. 영화 ‘변호인’에서 돼지국밥집 아들 ‘진우’역의 실존 인물로 관심을 모았던 송병곤(55) 후보는 부산진구 제3선거구에 새정치민주연합 대표로 출마했으나 새누리당 김병환 후보에 패했다. 송 후보는 1981년 신군부의 공안당국이 일으킨 부산지역 최대 공안 사건인 ‘부림 사건’에 휘말려 60여일 동안 불법감금을 당했고, 국가보안법 등 위반 혐의로 기소돼 징역형을 받았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무료 변론으로 1983년 풀려난 뒤 그 인연으로 법무법인 부산 사무장으로 노 전 대통령, 문재인 새정치연합 의원 등과 일해왔다. 광주 남구에서 생애 17번째 출마를 한 강도석(59) 남구청장 후보는 이번에도 새정치민주연합 최영호 후보에 크게 밀려 낙선했다. 2012년 국회의원 선거에 무소속으로 16번째 도전해 3명 중 3등으로 낙선한 강 후보는 1988년 13대 총선에 무소속으로 처음 출마해 총선에만 6차례, 남구청장 등 기초단체장 출마 7차례, 광역의원 4차례 등 이번까지 17차례 모두 광주 남구에서만 무소속으로 출마했으나 번번이 실패했다. 노익장을 과시하며 나주시장에 도전한 무소속 나창주(80) 후보는 9.91% 득표로 고배를 마셨다. 나 후보는 13대 당시 민자당(전국구)으로 정계에 진출했으며 이후 3차례 고향인 나주에서 국회에 도전했으나 낙선했다. 이번이 4번째 출마였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리마리오 이상훈, 러시아인 아내 “10년 전 쇼에서 첫 만남” 결혼결심 이유는?

    리마리오 이상훈, 러시아인 아내 “10년 전 쇼에서 첫 만남” 결혼결심 이유는?

    ‘리마리오 이상훈 아내 공개’ ‘리마리오’ 캐릭터로 인기를 모았던 개그맨 이상훈이 미모의 러시아인 아내를 공개했다. 3일 방송된 KBS2 ‘여유만만’에는 ‘리마리오’ 이상훈 알리나 부부가 출연했다. 이날 이상훈은 러시아인 아내와 함께 스튜디오에 등장한 뒤 “원래 이름은 미로노바 알리나 알렉산드로보나다. 너무 길어서 외우기 힘들다. 평소엔 알리나라고 부른다”고 아내를 소개했다. 리마리오 이상훈은 “쇼에 필요한 무용수가 있었는데 그때 유일하게 저랑 말이 통하는 아가씨였다. 그게 인연이 됐다. 벌써 십년 전 일이다”라며 아내와의 만남을 밝혔다. 알리나는 이상훈에 대해 “약속을 잘지키고 책임을 지키는 모습에 반했다. 작은 약속이라도 꼭 지켰다”고 말했다. 이상훈은 “알리나는 내가 연예인인 것을 모르고 순수하게 만났다. 어느 순간 보니까 알리나가 알뜰하더라. 그래서 결혼을 결심하게 됐다”고 털어놨다. 네티즌들은 “리마리오 이상훈 아내, 러시아인이었구나”, “리마리오 이상훈 아내, 미모가 보통이 아니네”, “리마리오 이상훈 아내와 잘 어울려” 등의 반응을 보였다. 사진 = KBS(리마리오 이상훈 아내) 연예팀 seoulen@seoul.co.kr
  • 개그맨 이상훈, 러시아인 아내 공개

    개그맨 이상훈, 러시아인 아내 공개

    3일 방송된 KBS2 ‘여유만만’에는 개그맨 이상훈 부부가 출연했다. 이날 이상훈은 러시아인 아내와 함께 스튜디오에 등장한 뒤 “원래 이름은 미로노바 알리나 알렉산드로보나다. 너무 길어서 외우기 힘들다. 평소엔 알리나라고 부른다”고 아내를 소개했다. 이상훈은 “쇼에 필요한 무용수가 있었는데 그때 유일하게 저랑 말이 통하는 아가씨였다. 그게 인연이 됐다. 벌써 십년 전 일이다”라며 아내와의 만남을 밝혔다. 연예팀 seoulen@seoul.co.kr
  • 이상훈, 러시아인 아내와 방송 출연

    이상훈, 러시아인 아내와 방송 출연

    3일 방송된 KBS2 ‘여유만만’에는 개그맨 이상훈 부부가 출연했다. 이날 이상훈은 러시아인 아내와 함께 스튜디오에 등장한 뒤 “원래 이름은 미로노바 알리나 알렉산드로보나다. 너무 길어서 외우기 힘들다. 평소엔 알리나라고 부른다”고 아내를 소개했다. 이상훈은 “쇼에 필요한 무용수가 있었는데 그때 유일하게 저랑 말이 통하는 아가씨였다. 그게 인연이 됐다. 벌써 십년 전 일이다”라며 아내와의 만남을 밝혔다. 연예팀 seoulen@seoul.co.kr
  • 김성령, 오거돈 부산시장 후보 유세 마이크 잡은 까닭은? ‘사돈관계’

    김성령, 오거돈 부산시장 후보 유세 마이크 잡은 까닭은? ‘사돈관계’

    김성령이 사돈 지원에 나섰다. 배우 김성령이 부산 시장 후보로 출마한 오거돈의 길거리 유세에 참여해 네티즌 눈길을 끌고 있다. 김성령의 부산 유세 영상은 오거돈의 트위터를 통해 공개된 것으로 “6월2일 김성령과 함께하는 유세현장 ‘남포동 BIFF광장’”이라는 제목과 함께 짧은 영상이 첨부, 공개되었다. 공개된 영상 속에는 오거돈의 선거 유세 차량에 올라 마이크를 잡고 시민들에게 인사를 하는 김성령의 모습이 담겨 있다. 이어 김성령은 부산 중구 남포동 비프(BIFF) 광장으로 이동, 족발 골목과 야시장 등을 돌며 인사를 전했으며 팬들과 틈틈이 인증샷을 찍는 모습으로 눈길을 끌었다. 한편, 김성령은 오거돈과 사돈관계로 알려졌으며 김성령의 남편이 부산의 유력 사업가로 부산과 인연이 깊은 것으로 알려졌다. 김성령 오거도 사돈 지원에 네티즌은 “김성령-오거돈 길거리 유세, 김성령이 유세에 참가했다고 해서 놀랐어”, “김성령-오거돈 길거리 유세..김성령 남편 누군지 궁금하다”, “김성령-오거돈 길거리 유세..유세 방법 다양하네”, “김성령-오거돈 길거리 유세..역시 미모는 숨길 수 없구나”등 반응을 보였다. 사진 = 해당 영상 캡처 (김성령-오거돈 길거리 유세) 온라인뉴스부 seoulen@seoul.co.kr
  • LG화학 여수공장 봉사단 어르신 돕는 손길 4년째

    LG화학 여수공장 사회봉사단이 노인복지시설에 의료기기와 가전제품, 생활필수품 등 운영물품을 꾸준하게 지원하고 있다. LG화학은 3일 여수지역 노인복지시설 2곳에 안마기와 2단 침대 등 의료용품과 드럼세탁기, 성인용 기저귀 세트 등을 전달했다. LG화학은 2011년부터 정부 지원 미흡 등으로 운영에 어려움을 겪는 13개 노인복지시설을 찾아 7000여만원 상당의 물품을 후원했다. 어울림 노래교실, 어르신 목욕봉사, 장수사진 촬영 등 다채로운 봉사활동도 함께 펼치고 있다. 올 하반기에는 눈 건강을 위한 ‘상안검하수 회복수술 사업’을 펼치는 등 건강하고 편안한 노후생활 챙기기에도 나선다. LG화학 여수공장 관계자는 “중증 장애나 치매를 앓는 어르신들과 함께 정을 나누고 소통하는 계기가 되고 있다”며 “건강한 노후 생활을 위해 든든한 후원자로 인연을 계속 이어갈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여수 최종필 기자 choijp@seoul.co.kr
  • 이상훈, 러시아인 부인 어떻게 만났을까?

    이상훈, 러시아인 부인 어떻게 만났을까?

    3일 방송된 KBS2 ‘여유만만’에는 개그맨 이상훈 부부가 출연했다. 이날 이상훈은 러시아인 아내와 함께 스튜디오에 등장한 뒤 “원래 이름은 미로노바 알리나 알렉산드로보나다. 너무 길어서 외우기 힘들다. 평소엔 알리나라고 부른다”고 아내를 소개했다. 이상훈은 “쇼에 필요한 무용수가 있었는데 그때 유일하게 저랑 말이 통하는 아가씨였다. 그게 인연이 됐다. 벌써 십년 전 일이다”라며 아내와의 만남을 밝혔다. 연예팀 seoulen@seoul.co.kr
  • [NOSSA! 월드컵] ‘11m 룰렛’의 악령

    “할 일이라곤 45m를 걸어가는 것뿐. 집어넣으면 끝이다.” 잉글랜드의 전설적인 수비수 스튜어트 피어스가 자서전에 적은 내용이다. 그러나 글처럼 쉽지는 않다. 심지어 11m 떨어진 골문을 향해 공을 차는 건 잔인하기까지 한 결과를 낳는다. 영국 BBC가 3일 역대 월드컵 대회에서의 승부차기 역사를 전해 눈길을 끈다. 패배하면 곧바로 탈락하는 월드컵 토너먼트에 승부차기가 도입된 건 1978년 아르헨티나 대회 때였지만 당시는 승부차기가 없었다. 1982년 스페인대회 준결승에서 서독이 프랑스를 5-4로 제압하면서 승부차기의 역사가 시작됐는데 2010년 남아공대회까지 토너먼트 승부 중 22차례(16.6%)가 승부차기로 갈렸다. 승부차기 킥은 204차례였다. 이 가운데 60차례는 실축하거나 골키퍼 선방에 막혔다. 월드컵에서의 ‘승부차기 악령’으로 팬들에게 깊이 각인된 로베르토 바조(이탈리아)는 1994년 미국대회 브라질과의 결승에서 실축한 것이 몇 년 동안이나 자신을 괴롭혔으며 축구 경력에서 지울 수 있다면 그렇게 하고 싶다고 털어놓았다. 월드컵 결승에서도 승부차기는 두 차례 벌어졌는데 굳이 그렇게 잔인하게 승부를 결정짓는 것이 타당하느냐는 논쟁은 지금도 여전하다. 바조는 “승부차기 패배를 결코 인정할 수 없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탈리아는 2006년 대회에서 프랑스를 승부차기로 꺾어 바조의 억울함(?)을 풀었다. 대회 통산 승부차기 성공률은 71%인데 결정적인 승부처에서는 수치가 달라졌다. 넣기만 하면 이기는 경우 93%나 성공했지만 실패하면 짐보따리를 싸야 하는 절체절명의 순간엔 44%로 확 떨어졌다. 10명이 찼을 때 여덟 번째 키커의 성공률이 55%로 가장 낮았다. 역대 대회에서 승부차기와 가장 인연이 깊은 나라는 독일이다. 옛 서독 시절 1982~1990년 3개 대회 연속에다 통일 이후 2006년 대회까지 네 차례 승부차기에서 모두 이겼다. 아르헨티나는 1990년 두 차례, 1998년 프랑스월드컵 한 차례 등 세 차례나 승부차기로 다음 라운드에 진출했다. 이탈리아와 잉글랜드는 나란히 두 번이나 승부차기의 희생양이 됐다. 이탈리아는 13개를 차서 7개를 실패했고, 잉글랜드 선수들은 20개 중 7개를 골문에 넣지 못했다. 벨기에와 파라과이, 한국은 다섯 번 차서 모두 성공시킨 반면 스위스는 2006년 우크라이나와의 16강전에서 단 한 차례도 성공시키지 못해 0-3으로 졌다. 그렇다면 골문 안의 어느 쪽으로 차면 가장 성공률이 높을까? ‘www.bbc.co.uk/guides/zgg334j#zwhttfr’에서 답을 찾을 수 있다. 임병선 기자 bsnim@seoul.co.kr
  • 남경필 김진표 투표 완료… “네거티브 없는 선거” “최선을 다해” 두 사람 인연은?

    남경필 김진표 투표 완료… “네거티브 없는 선거” “최선을 다해” 두 사람 인연은?

    남경필 김진표 투표 완료… “네거티브 없는 선거” “최선을 다해” 두 사람 인연은? 경기도지사 자리를 놓고 맞붙은 남경필 새누리당 후보와 김진표 새정치민주연합 후보가 각자 유세 레이스를 마친 소감을 밝혔다. 남경필 후보는 4일 오전 8시30분 매산동 제2투표소(대한대우아파트 관리사무소 경로당1층)를 찾아 한 표를 행사했다. 남경필 후보는 “치열했던 선거인데 네거티브하지 않고 정책선거를 해서 스스로 자랑스럽다”면서 “도민들께서 현명한 선택을 하실 것으로 믿는다”고 말했다. 김진표 후보는 앞서 지난달 30일 의정부시청 2층 대강당에 마련된 투표소에서 사전투표를 마쳤다. 김진표 후보는 “최선을 다했다. 투표만이 세월호 이후의 대한민국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경기지사 선거는 초접전 지역으로 분류되고 있는 만큼 투표함 뚜껑을 열어봐야 승패를 확인할 수 있을 전망이다. 특히 남경필, 김진표 후보는 경복고 동문으로 김진표 후보가 남경필 후보보다 17년 선배여서 선후배 대결로 더욱 주목받고 있다. 온라인뉴스부 @seoul.co.kr
  • [세계의 창] 억압과 통제 그 톈안먼은 여전히 굳게 닫혀 있었다

    [세계의 창] 억압과 통제 그 톈안먼은 여전히 굳게 닫혀 있었다

    1989년 중국 베이징 톈안먼(天安門)광장에서 민주화를 요구하는 시위대를 무력으로 진압한 ‘6·4 톈안먼’사태가 일어난 지 4일로 25주년이 된다. 그 사이 중국은 미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강대국으로 성장했지만 시위대가 요구했던 정치·사회 개혁은 제자리걸음이다. 톈안먼사태의 배경이 된 부정부패 등의 사회문제는 오히려 그때보다 심해졌고 민주 개혁 요구에 대한 당국의 억압과 통제 역시 한층 강화됐다는 평가마저 나온다. 지난 1일 세계 최대 광장이자 베이징의 심장부로 불리는 톈안먼광장을 찾았다. 광장으로 들어가는 입구마다 공항 검색대를 방불케 할 정도로 삼엄한 경비가 펼쳐졌다. 수도 베이징에만 10만여명의 보안 요원이 배치돼 최고 수준의 경비·경계령이 발동됐다는 외신 보도가 실감났다. 미국에 서버를 둔 중화권 매체 보쉰은 중국 당국이 최근 군대와 무장경찰, 소방당국에 통지문을 보내 임전 태세 돌입을 지시했으며 이런 상황은 앞으로 2개월간 계속될 것이라고 전했다. ●톈안먼사태 묻자 “그 폭동 말하는 거요?” 광장에서 만난 사람들에게 “톈안먼사건을 아느냐”고 묻자 대부분 고개를 저었다. 쓰촨(四川)성에서 왔다고 자신을 소개한 자오(趙·40)모씨는 “‘톈안먼 폭란(暴亂·폭동)’을 말하는 거냐”고 답했으나 자세한 내용에 대해선 알지 못했다. 당국은 시위 당시 인민일보 사설을 통해 사건을 ‘반혁명적 폭동’이라고 규정했다가 2004년부터 ‘1989년의 운동 풍파(정치 풍파)’라고 바꿔 부르고 있다. 중·고교 교과서에도 언급되지만 사회주의 우월성을 강조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어 사건을 제대로 알기가 힘들고 진상을 입에 올리는 것도 여전히 금기다. 중국 대학생들 중 상당수는 인터넷 등을 통해 톈안먼사태를 접했다면서도 별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중국의 정치 기류와 사회 형태가 1980년대와 달리 안정적이고, 젊은이들이 정치 개혁보다 돈 버는 일에 관심을 두는 분위기가 형성됐기 때문이다. 한 중국 전문가는 “톈안먼사태가 일어난 세 가지 원인은 부정부패와 물가 상승 그리고 민주화 요구인데 당국이 ‘부패와의 전쟁’에 총력을 쏟고 있고, 경착륙 우려 속에서도 물가를 억제하면서 민심을 달래고 있다”고 분석했다. 당국이 민주 인사들을 잡아들이는 등 통제의 고삐를 조이는 것도 사태에 대한 관심과 재평가 요구를 억누르는 주요 요인이다. ●민주화 요구에 반부패·물가 통제로 입막음 당국은 지난 5월 초 베이징의 한 가정집에서 ‘6·4 톈안먼사태 기념 토론회’를 위해 모인 인권변호사 푸즈창(浦志强) 등 민주 인사 5명을 공공질서 문란 혐의로 체포했다. 타이완 중앙연합신문망에 따르면 지난해 6월부터 올해 5월 말까지 인권운동가 228명이 당국에 체포됐다. 2일에도 왕젠민(王健民) 등 홍콩에서 활동 중인 반체제 성향의 언론인 2명이 체포됐다고 타이완 자유시보가 전했다. 당국은 톈안먼사태에 대한 추모 활동이 이뤄지지 못하도록 지난달 27일부터 ‘중국판 카카오톡’인 웨이신(微信)을 집중 단속하고 있다. 당시 시위에 참가한 베이징대 출신의 류쑤리(劉蘇里)는 “비록 사람들이 톈안먼사태를 잊은 듯 아무도 말을 하지 않고 있지만 중국 사회의 허리 세대는 사건을 잊지 않고 있다. 어떤 임계점을 계기로 침묵하는 이들 다수가 함께 입을 열 날이 올 것임을 공산당도 알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금은 침묵… 언젠가 함께 입 여는 날 올 것” 톈안먼사태로 이어진 당시 학생운동은 개혁파 후야오방(胡耀邦)의 급작스러운 사망이 도화선이 됐다. 1980년부터 총서기를 맡은 후야오방은 정치 개혁을 주장하고 당시 성행하던 학생 시위에 미온적으로 대처했다는 이유로 1987년 실각했으며 2년 뒤인 1989년 4월 15일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당시 그의 죽음을 기리는 대학생들이 톈안먼광장에서 벌이던 추모 모임이 정치 개혁을 요구하는 시위로 바뀌면서 유혈 사태로 이어졌다. 톈안먼사태는 1989년 4월 15일 후야오방 서거일부터 같은 해 6월 4일 당국의 유혈 진압으로 시위가 끝나기까지의 전 과정을 말한다. 시위는 톈안먼광장은 물론이고 중국 전역 400여개 도시에서 함께 이뤄졌다. 중화권에선 톈안먼사태라는 이름은 시위가 톈안먼에서만 이뤄졌다는 인상을 준다며 ‘89 민주화 운동’으로 불러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톈안먼사태와 후야오방의 깊은 인연 때문에 공산당 지도부나 관영 매체가 후야오방을 언급할 때마다 그의 복권과 톈안먼사태 재평가가 이뤄지는 게 아니냐는 기대로 술렁인다. 지난 4월 후진타오(胡錦濤) 전 국가주석이 후야오방 생가를 방문했을 때도 이러한 관측이 고조된 바 있다. 사회과학원 출신의 역사학자 장리판(章立凡)은 “후야오방은 중국 공산당 계보에서 개혁과 청렴을 상징하는 최대 자산으로 현 정권은 인민 지지를 높이는 데 그를 이용하고 있을 뿐”이라면서 “톈안먼사태 재평가는 공산당의 자기 부정이고 재평가를 기점으로 각종 불만 시위와 폭동이 도미노처럼 확산될 수 있어 재평가 가능성은 없다”고 말했다. 베이징 주현진 특파원 jhj@seoul.co.kr
  • [안전불감 대한민국…안전출구 찾아라] 피난용 승강기가 없다…불안한 고층

    [안전불감 대한민국…안전출구 찾아라] 피난용 승강기가 없다…불안한 고층

    서울의 30층 이상 고층건물은 화재 때 신속하게 대피할 수 있는 제연설비를 갖춘 피난용 승강기조차 없는 곳이 대부분인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는 2012년 신축 고층건물에 피난용 승강기를 1대 이상 설치하도록 하는 조항을 신설했지만, 지금껏 기준조차 마련하지 못했다. 자칫 화재가 발생할 경우 대형 참사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2일 서울시에 따르면 서울의 고층건물(30층 또는 120m 이상)은 초고층건물(50층 또는 200m 이상) 16동을 포함해 모두 327동이다. 특히 초고층건물 가운데 피난용 승강기가 설치된 곳은 2010년 건축 허가를 받은 영등포구 전국경제인연합회 회관(지상 50층·지하 6층)뿐인 것으로 확인됐다. 그나마 전경련 회관에 설치된 37대의 승강기 가운데 피난용은 2대가 전부다. 공사 중인 건물로 범위를 넓혀도 송파구 제2롯데월드(지상 123층·지하 5층)에 피난용 승강기 19대가 설치되는 것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신축 고층건물은 건축 허가를 받기 위한 최소 충족 요건인 1대만 설치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그나마 준고층건물(30~49층) 중 공동주택은 유동인구가 적다는 이유로 설치 대상에서 제외됐다. 빠른 대피를 위해 피난층에서 1층까지 한 번에 이동해야 하지만 현재는 각 층마다 멈추도록 돼 있는 등 운영 체계도 허술하다. 일반 승강기는 연기와 유독가스의 이동통로로 작용하는 탓에 화재가 발생하면 모두 멈추게 돼 있지만 피난용 승강기는 화재를 비롯한 재난 시 신속한 대피를 위해 존재한다. 미국에서는 2001년 9·11테러 이후 피난용 승강기를 도입했다. 정부도 2010년 부산 해운대의 38층 오피스텔에서 대형 화재가 발생한 이후 고층건물에 대한 방재 체제를 강화했다. 국토교통부는 2012년 1월 ‘건축물의 피난·방화구조 등의 기준에 관한 규칙’을 개정하고 30층 이상 고층건물에 피난용 승강기를 1대 이상 두도록 하는 조항을 신설했다. 하지만 2년여가 흐른 지금까지 피난용 승강기 기준조차 마련하지 못한 채 건물 규모에 상관없이 1대 이상 두기만 하면 되는 등 형식적인 수준에 그치고 있다. 강남구 삼성동 무역센터, 63빌딩 등 초고층건물들이 밀집한 서울시는 앞서 2009년 초고층건축물 가이드라인을 마련하고 국내 최초로 피난용 승강기를 설치하도록 규정했지만 기존 건물에 대한 소급 적용은 하지 않았다. 국토부 관계자는 “피난용 승강기를 설치하는 데 비용 부담이 있고 과도하게 규제한다는 의견 탓에 강행하기 어려운 점이 있다”면서 “해외 사례 등을 검토해 기준을 손질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고층건물 재난 대비책을 강화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윤병희 VT코리아(승강기 컨설팅업체) 대표는 “건축 설계 단계부터 화재 대피 시뮬레이션 등을 통해 방재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신융아 기자 yashin@seoul.co.kr
  • [사설] 세금 탕진에 눈감은 인기영합 공약 경계해야

    현실성을 외면한 포퓰리즘 공약은 6·4지방선거에서도 여야 가릴 것 없이 되풀이되고 있다. 특히 이번에는 세월호 참사 여파로 인기영합적 공약에 대한 재원확보 방안 등의 면밀한 검증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유권자들의 냉철한 판단과 선택이 요구된다. 시·도지사 등 지방선거 출마자들은 공식 선거운동 마지막 날인 오늘 하루만이라도 유권자들을 기만하는 허황된 공약은 하지 말기 바란다. 한국매니페스토실천본부가 지난 4월 발표한 자료를 보면 민선 5기 16개 광역 시·도 단체장들이 5년 전 내세운 2283개의 공약을 모두 실행하는 데 드는 비용은 470조원이다. 박근혜 대통령의 공약 이행을 하기 위해 필요한 재원 335조원보다 135조원이나 많다. 그러나 지자체장들이 지난해 말까지 확보한 예산은 국비와 지방비를 포함해 공약 이행을 위한 재정의 53% 수준인 250조원에 불과했다. 마무리 시점인 올해 6월까지 확보할 예산을 고려하더라도 가용재원을 훨씬 웃돈다. 6·4지방선거 공약의 양상도 별반 다르지 않다. 17개 주요 시·도지사 후보 가운데 매니페스토실천본부의 질의서에 공약가계부를 제시한 25명의 공약 실현에만 316조 4251억원이 들어간다. 가계부를 제출하지 않은 후보들을 고려하면 올해 정부예산 357조원을 훌쩍 넘을 것으로 추산된다. 남발하는 공약은 사회간접자본(SOC) 시설과 공짜 복지 관련이 주를 이룬다. 고속도로·공항 건설, 무상교육 및 급식, 무료버스, 무상의료 등 한두 가지가 아니다. SOC 시설이든 무상복지든 지자체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사안은 거의 없다. 대부분 국책사업이거나 중앙정부의 지원을 받아야 가능하다. SOC 공약들은 박 대통령의 공약 가계부 재원 조달을 위해 신규 SOC 건설을 최소화한다는 정부 방침과 상충한다. 무상복지 사업들도 그동안 중앙정부와 지자체들 간 갈등이 얼마나 많았는가. 중앙정부 지원 규모를 더 늘리지 않으면 지자체들이 중단해야 할 처지에 놓인 것이 현실이라는 사실을 유권자들은 인식할 필요가 있다. 여야 정치권과 지자체장 출마자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재난 관리 및 안전 공약도 강조하고 있다. ‘제2 세월호’를 방지하기 위해 바람직한 일이기는 하지만, 실행 방법은 구체화하지 못했다. 포퓰리즘에 치중한 공약이라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이유다. 붕괴 위험을 안고 있는 낡은 학교 건물이나 재래식 화장실 등 기본적 학교 안전·환경 관리부터 제대로 신경 쓰기 바란다. 초·중등학교의 학교시설 개선 사업이 지금처럼 찬밥 신세가 돼서는 안 된다. 어른들의 무관심과 잘못으로 아이들이 또다시 피해를 보는 일은 없어야 한다. 우리나라는 국가든 지자체든 공기업이든 부채 문제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 한국전력공사와 한국토지주택공사(LH) 등 부채 중점관리 대상 18개 공공기관의 지난해 이자비용은 9조 74억원으로 사상 처음 9조원을 돌파했다. 하루 이자 비용만 247억원이다. 정부 부채는 공기업 부채와 공무원·군인연금 충당부채를 합하면 국내총생산(GDP)의 150%가 넘는다. 공공기관 부채는 국책사업을 떠넘기는 등 정치권의 무리한 공약 영향이 적잖다. 선거 후유증으로 국가나 지자체 재정이 위험에 빠져서는 안 된다. 출마자들은 유권자들을 현혹하기 위한 시혜성 정책이 미래 세대의 부담을 크게 하는 등 부작용이 많이 생긴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 “노후대비 저축상품 가입할 이유가 없네”

    “노후대비 저축상품 가입할 이유가 없네”

    올해 3년차 대기업 직장인인 차모(28·여)씨는 입사 후 가장 먼저 들었던 연금저축을 올해 초 해지했다. 지난해 세법 개정으로 올해부터 연금저축의 소득공제가 12%의 세액공제로 바뀌면서 연말정산 때 돌려받을 수 있는 금액이 절반으로 뚝 떨어진 것이 차씨의 마음을 움직였다. 그는 “일반 회사원인 이상 노후 걱정을 하지 않을 수 없어 연금저축부터 들었는데 도중에 혜택을 확 깎아버리니 돈을 더 부어야 할 메리트가 없어졌다”고 말했다. 늘어나는 평균 수명과 빨라지는 은퇴 시기에 불안감을 느끼는 개인을 위해 마련된 ‘노후대비용 저축상품’이 찬밥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서민층의 목돈마련, 국민연금을 보완할 대안 등으로 인기를 누렸지만 저금리 기조로 낮아진 수익률과 크게 줄어든 세제혜택 때문에 오히려 해약 문의가 이어지는 상황이다. 2일 금융권에 따르면 국민·신한·우리·하나·외환 등 5개 주요 시중은행의 개인연금저축 판매 실적은 지난해 5월 기준 44억 9100만원에서 올해 4월 9억 3000만원으로 뚝 떨어졌다. 1인당 가입액은 110만원에서 23만원으로 5분의1 수준이 됐다. 세액공제로 바뀌면서 소득이 높을수록 공제받는 금액이 크게 떨어진 것이 큰 영향을 미쳤다. 연봉 4600만~8800만원인 직장인은 지난해까지 최대 납입금 400만원에 대해 96만원(24%)의 세금 혜택을 받았지만 올해부터는 48만원(12%)으로 줄어들었다. 김명준 우리은행 세무팀장은 “수익을 더 내도 세제 혜택의 차이를 메울 수 없는 것이 부진의 이유”라고 말했다. 서민층의 목돈마련 수단으로 지난해 부활한 재형저축은 새롭게 만들어지는 계좌보다 해지되는 계좌 수가 더 많은 형편이다. 지난 1월 말 기준 전 금융권의 재형저축 활동계좌는 175만 2297개로 한 달 전에 비해 2만 1131개 줄었다. 7년간 묶어 둬야 하는 단점을 극복할 만큼 금리 수준이 높지 않은 것이 부진의 원인이다. 4%대 고금리로 이목을 집중시켰지만 처음 3년간만 해당되고 나머지 4년 동안은 변동금리를 적용받게 된다는 점 역시 마이너스 요인이었다. 지난 3월 출시된 소득공제장기펀드(소장펀드) 역시 유일한 소득공제 상품임에도 10년간 돈을 묶어 놔야 한다는 부담 때문에 인기를 끌지 못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노후 대비 상품의 부진이 가계 저축률 하락과 국민들의 노후 대책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어 가입 요건 완화와 세제 혜택 재조정을 고려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시연 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추가 세제혜택을 주거나 외국처럼 저축액의 일정 비율을 국가가 민간 재원으로 적립해주는 매칭펀드 등의 지원도 고려할 수 있다”고 말했다. 윤샘이나 기자 sam@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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