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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공적연금 받는 사람 내년 470만명 돌파

    내년에 국민·공무원·사학·군인연금 등 4대 공적연금을 받는 사람이 470만명에 달하고 나가는 돈은 35조원이 될 전망이다. 국민 100명당 9명꼴로 공적연금을 받게 되는 셈이다. 정부가 7일 국회에 낸 내년도 기금운용계획안에 따르면 4대 공적연금의 수급자는 올해 433만명에서 내년 468만 6000명으로 8.2%(35만 6000명) 증가한다. 기금운용계획상 수급자는 2008년 288만 4000명에서 2009년 300만명을 넘은 데 이어 올해 400만명을 돌파했다. 인구(추계치)에서 차지하는 수급자 비율을 단순 계산해보면 2008년 5.89%에서 올해 8.59%, 내년 9.26%로 높아진다. 수급자 증가에 따라 4대 연금의 급여지출액은 2008년 16조 8000억원에서 2010년(21조 2000억원) 20조원, 올해(31조 3000억원) 30조원를 각각 넘었다. 내년에는 1년 새 10.0%(3조 1000억원) 증가한 34조 4000억원으로 예상됐다. 내년 급여지출액과 수급자가 5년 전(2010년)보다 각각 62.3%, 36.5% 급증한 것이다. 특히 국민연금 수급자와 지출액의 급증이 전체 공적연금 규모의 확대로 이어졌다. 국민연금 수급자는 올해 382만 4000명에서 내년 414만 7000명으로 8.4% 늘며 처음 400만명을 넘고, 급여액은 14조 6000억원에서 16조 6000억원으로 13.8% 증가한다. 내년 공무원연금의 수급자와 급여액은 올해보다 각각 7.0%, 7.1% 증가한 39만 5000명, 13조 2000억원으로 잡혔다. 사학연금은 내년 5만 7000명에 2조 1000억원을 지급해 올해보다 각각 9.6%, 9.3% 늘어나고 군인연금은 8만 7000명, 2조 5000억원으로 각각 2.4%, 2.1% 불어날 것으로 추정됐다. 세종 이두걸 기자 douzirl@seoul.co.kr
  • 지드래곤 키코, 반복된 열애설+이별설 ‘벌써 4년 동안 계속된 인연’

    지드래곤 키코, 반복된 열애설+이별설 ‘벌써 4년 동안 계속된 인연’

    지드래곤 키코 열애설이 또 터졌다. 그룹 빅뱅 지드래곤과 일본 모델 겸 배우 미즈하라 키코의 열애설이 불거지며 그들을 둘러싼 많은 추측들이 수면위에 다시 오르고 있다. 지드래곤과 미즈하라 키코의 열애설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었다. 지난 2010년부터 지드래곤과 미즈하라 키코의 사이에 대해 팬들 사이에서도 말이 많았다. 지드래곤은 일본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이상형에 대해 “K…K…K…”라 답하기도 했다. 이에 팬들은 미즈하라 키코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냐고 추측했다. 뿐만 아니었다. 두 사람은 지속적으로 인스타그램 등을 통해 아이디를 맞추거나 커플을 암시하는 아이템을 게재해 의혹을 얻기도 했다. 또 지드래곤과 미즈하라 키코는 인스타그램에 비슷한 곳을 여행했음을 눈치 챌 수 있는 풍경 사진 등을 게재했다. 이와 더불어 두 사람이 함께 있다는 네티즌들의 목격담이 전해지며 열애설이 이어졌다. 지드래곤과 미즈하라 키코의 열애설이 오랜 시간 지속되며 그 사이 이별설도 있었다. 지난 3월 미즈하라 키코와 일본 배우 마츠모토 준의 열애설이 보도됐기 때문이다. 또한 지드래곤은 우울한 듯한 인스타그램 게시물을 게재해 이별설을 뒷받침하는 근거가 되기도 했다. 하지만 지난 8월 지드래곤의 비공개 인스타그램 계정에는 아이스버킷 챌린지 영상이 게재돼 두 사람의 사랑이 여전하다는 증거가 포착됐다. 지드래곤은 영상에서 다음 참가자로 미즈하라 키코와 그의 동생 유카를 지목했다. 지드래곤은 미즈하라 키코에 대해 “나의 친애하는 키코(My Dear Kiko)”라 말해 소중한 사람임을 입증했다. 지드래곤과 미즈하라 키코 양 측은 열애설이 불거질 때마다 친한 친구일 뿐이라 일축했다. 하지만 8일 한 매체가 두 사람의 데이트를 보도하며 열애설이 재점화되고 있다. 연예팀 chkim@seoul.co.kr
  • [김문이 만난사람] 데뷔 33년 ‘10월의 가수’ 이용

    [김문이 만난사람] 데뷔 33년 ‘10월의 가수’ 이용

    10월이 깊어간다. 이 계절에 가장 생각나는 노래는 무엇일까. 아마 그중 하나가 ‘잊혀진 계절’을 꼽을 수 있겠다. ‘지금도 기억하고 있어요/시월의 마지막 밤을/뜻모를 이야기만 남긴 채/우리는 헤어졌지요/그날의 쓸쓸했던 표정이/그대의 진실인가요/한마디 변명도 못하고/잊혀져야 하는 건가요~’ 30여년 전 발표하자마자 크게 히트를 쳤다. 지금도 10월만 되면 중장년층은 물론 젊은이들까지 한번쯤 떠올릴 만큼 추억의 곡으로 여전히 애창된다. 그랬다. 가수 이용(56)은 ‘10월의 가수’로 혜성같이 등장했고 지금도 그렇게 통한다. 매년 10월이면 1년 중 가장 바쁘게 움직이는 가수이기도 하다. 그도 그럴 것이 이맘때가 되면 라디오 등에서 가장 많이 선곡되면서 전파를 타고 여기저기에서 출연요청이 쇄도한다. 감수성이 절절한 가사 내용과 특유의 가창력 있는 목소리가 10월과 딱 맞아떨어지는 느낌을 선사한다. 지난 1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공원에서 그를 만났다. 나무 사이로 쏟아지는 가을 햇살이 따사로웠다. 운동하는 사람들도 있고 공원 벤치에서 사색에 잠긴 사람들도 더러 있다. 나이 지긋한 어르신, 아줌마, 젊은 연인들도 그를 알아본다. 벤치에 같이 앉으면서 “10월은 이용의 달이라 많이 바쁘겠다”고 인사를 건넸다. “맞습니다. 1년 중 가장 바쁜 달입니다. 옛날에는 헬기를 임대해 하루에 제주, 부산, 다시 서울에서 공연 일정을 소화한 적도 있어요. 10월은 1년 중 출연료를 가장 많이 받는 달이기도 합니다(웃음). ” 왜 ‘잊혀진 계절’이 인기가 있는 것일까. 비결을 물었다. 이에 대해 “10월은 더웠다가 시원해지는 계절이다. 또한 단풍과 낙엽을 연상하게 하는데 그 밤이 왠지 쓸쓸해지는 계절이기도 하다. 연인끼리 만남도 있지만 헤어지는 경우도 많으며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잊혀진 계절’을 생각하게 되는 것 같다”고 말한다. 이어 “주한미군이 한국에 올 때 먼저 왔던 고참들이 신참들에게 세 가지를 미리 알려주는데, 첫 번째는 한국의 장마이고, 두 번째는 빨리빨리 문화, 세 번째가 연인끼리 기념하는 날이 많다는 것”이라고 하면서 10월은 결국 연인의 계절이 아니겠느냐고 말한다. 이 곡의 노랫말은 시인이자 작사가인 고 박건호씨가 자신의 실제 이별 경험담을 풀어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낙엽과 함께 ‘그날의 진실했던 표정이 진실인가요~’라고 하면서. 이 노래를 소재로 1984년에 제작된 영화 ‘잊혀진 계절’에 이씨가 직접 출연해 전국적으로 개봉, 60만 관객을 동원했다. “이 노래는 원래 조영남씨한테 주려고 했으나 바쁜 일정으로 약속이 틀어지는 바람에 지구레코드사 사장이 고음을 잘 내는 가수한테 주라고 해서 제가 부르게 됐습니다.” 이씨는 이 노래로 1980년대 초반 조용필을 능가할 만큼 최고의 인기 가도를 달린다. 1982년 MBC 10대 가수 가요제 최고 인기상을 시작으로 그해부터 3년 동안 MBC 10대 가수상을 계속 수상했다. 또한 1982년부터 1983년까지 역시 3년 내리 KBS 가요대상을 수상했다. 뿐만 아니라 1982년 동아일보 ‘올해의 인물’ 선정, 1983년 주한 외신기자 선정 ‘올해의 가수상’ 등을 수상했다. 그동안 평양, 금강산, 개성 등 북한공연을 여섯 차례나 다녀오면서 북한에서도 인기를 얻었다. 그는 “북한 사람들은 ‘잊혀진 계절’에 대해서는 잘 알지만 가수 이용이라는 사람에 대해서는 그렇지 않은 것 같다”며 웃는다. ‘잊혀진 계절’ 외에도 그가 부른 ‘바람이려오’ ‘서울’ ‘첫사랑이야’ ‘후회’ 등의 노래도 한동안 많은 인기를 누렸다. 지금까지 12집의 앨범을 냈으며 자신이 직접 작곡한 노래도 80여곡은 된다. 그 중 김지애의 ‘몰래 한 사랑’, 하춘화의 ‘사랑은 길어요’가 대표적이다. 그는 1956년 3월 경기도 수원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출생신고를 2년 늦게 했다. 13개월 위인 형과 동시에 군대를 가면 안 된다는 이유에서였다. 당시는 6·25전쟁이 끝난 지 얼마 안 된 상황이어서 그런 일을 우려했던 것이다. 아버지는 평북 정주 출생으로 월남 후 육사를 나와 고급 장교로 근무했다. 어머니는 수원여고를 졸업했다. 그가 어릴 때에는 외갓집인 수원에서 자랐다. 외할머니를 친어머니로 여길 정도로 잘 따랐고 많은 사랑을 받았다. 외갓집은 당시 제재소를 운영했는데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부유한 집안이었다. 어머니는 평소 만약 아들 둘을 낳게 되면 첫째는 명문대에 보내 판검사를 시키고 둘째는 가수를 시켰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버지는 엄격한 성품이어서 연예인이 되는 것을 원치 않았다. 어린 시절을 수원에서 지낸 후 인천에서 학창시절을 보냈다. 아버지가 군 전역 후 인천에서 의료사업을 했기 때문이다. 이런 덕분에 이씨는 신장염으로 한동안 고생을 했지만 잘 극복할 수 있었다고 한다. 아버지는 이어 시멘트블록 사업에 손을 대면서 사업을 번창시켜 나갔다. 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아 하루아침에 망하고 말았다. 그러자 가족들이 서울 한남동 빈촌으로 이사를 했다. 이때가 휘문고 2학년 재학때였다. 학비를 대지 못할 만큼 집안 형편이 갑자기 어려워졌고 교회에서 쌀을 타다가 끼니를 때울 정도였다. 그는 이런 사정을 생각해서 등록금 걱정이 없는 육사에 진학하려고 했다. 당시 그의 가방에는 노래책만 있을 정도로 노래를 무척 좋아했다. 결국 고 3때 한 학기등록금을 못 냈다. 학교를 그만두어야 할 판이었으나 때마침 지인의 도움으로 등록금을 내고 고등학교를 겨우 마칠 수 있었다. 대학진학을 포기하고 우선 돈을 벌어야겠다는 생각에 여러 호텔을 전전하며 청소부 겸 노래 부르는 일을 했다. 그렇게 2년을 보낸 뒤 1977년 전방 백골사단에 입대를 하게 된다. 그는 운이 좋게도 이곳에서 ‘백골쇼’ 단원으로 발탁되면서 노래를 하게 된다. 특히 입대동기인 한규철씨와 함께 부른 노래, ‘사랑하는 그대여 날 좀 봐요 날 좀 봐요/날 좀 봐주세요~’라는 ‘밀양머슴아리랑’은 단연 인기였다. 당시 사단장이었던 박세직 장군은 물론 다른 여러 장교한테 많은 칭찬을 받았다. 이런 인연으로 그는 사단통신대대에서 대대장 당번병으로 근무했고 백골쇼가 있을 때마다 수시로 노래를 불렀다. ‘백골쇼’로 사실상 노래에 입문하게 됐으며 ‘노래가 내 인생’임을 깨달았다. 33개월 만에 만기제대한 그 해 11월 대학입학 예비고사에서 240점을 받고 연세대에 응시했으나 낙방하고, 서울예전에 전체 수석으로 입학했다. 대학 1학년 때 ‘국풍81’ 가요제에서 금상을 수상하면서 정식 데뷔하게 된다. 그는 학교의 명예를 빛낸 공로로 서울예전 재학 내내 ‘동랑 유치진’장학금을 받았다. 졸업 후 ‘바람이려오’와 ‘잊혀진 계절’을 불러 여기저기에서 ‘가수왕, 가수왕’이라는 찬사를 받으며 단박에 인기가수 반열에 올랐다. 그러다가 그는 절정의 인기를 뒤로하고 1985년 홀연히 미국으로 떠났다. 예기치 않은 소문에 휩싸여 모든 것을 잠시 내려놓고 공부나 할 생각으로 템플대 음대에 진학했다. 재학 중 부모 같은 테일러 교수를 만나면서 마음의 평정을 되찾아 음악공부에 전념했다. 이때 ‘몰래한 사랑’을 작곡했고 노래가 아주 좋다는 평가와 함께 A플러스 장학금을 받았다. 이 무렵 아버지의 건강이 좋지 않아 귀국했다. 그는 1988년 4월 아버지로부터 일생일대의 중요한 유언을 듣게 된다.“ 아버지께서는 ‘네가 가수생활을 하다가 스캔들이 난 거니까 다시 가요계에 컴백해서 명예를 회복하라’고 하셨어요. 아들이 가수가 되는 것을 원치 않았던 분이 세상을 떠나기 직전에 ‘가수 컴백’이라는 말씀을 해 주신 겁니다.” 이때부터 그는 하루에 밤 무대를 아홉 군데나 뛰어다니며 노래를 열심히 불렀다. 그렇게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자 조그마한 집이라도 장만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천에 있는 한 아파트분양사무실에 가서 ‘3순위라도 없나요’라고 사정을 해 어렵게 분양을 받았다. 밤 무대에서 번 돈으로 착실히 중도금을 마련해 갚아나갔다. 입주 6개월 전 한 지인으로부터 “과천에 단독주택 하나가 경매 나온 것이 있으니 관심을 가져 보라”는 얘기를 들었다. 때마침 부인이 알레르기 천식을 앓아 공기 좋은 데 살았으면 하는 생각을 하던 터였다. 그렇게 해서 분양받은 아파트를 중간에 팔고 은행 융자금을 보태 40대에 들어서 처음으로 집을 장만했다. 그 무렵 방송출연을 하게 되면서 꼬였던 노래인생도 서서히 풀렸다. 2003년 신곡 ‘후회’가 방송 1위 곡에 올랐고 2004~2005년 MBC라디오 두시만세 ‘꽁노래방’에 고정 게스트로 출연하는 것을 시작으로 라디오와 TV방송 프로그램 진행을 맡았다. 그러면서 여기저기에서 출연요청이 쇄도했고 바쁜 가수생활로 다시 한번 전성기를 걷게 됐다. 그는 틈틈이 양로원과 고아원, 재소자를 위한 봉사활동을 벌인다. 선행시민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앞으로 그는 무슨 계획을 갖고 있을까. “저는 피아노, 기타, 하모니카 등 레슨을 한 번도 안 받고 음악을 해왔습니다. 직장을 그만둔 베이비부머들에게 희망을 주는 역할을 하고 싶습니다. 그분들을 위해 젊어지라고 외치며 노래를 부르고 싶습니다. 그것이 곧 저의 의무라고 생각하고 있지요. 젊은 생각은 또 다른 제3의 인생을 찾게 하지 않을까요.” 선임기자 km@seoul.co.kr 가수 이용은 수원에서 태어나 1975년 휘문고를 졸업했다. 백골사단에서 만기제대한 뒤 서울예술대학을 졸업했다. 1985년 미국으로 건너가 템플대에서 음악공부를 했다. 1981년 ‘바람이려오’로 데뷔했다. 주요 히트곡으로는 ‘잊혀진 계절’ ‘서울’ ‘사랑, 행복 그리고 이별’ ‘태양의 저편’ ‘첫사랑이야’ ‘후회’ 등이 있다. 1981년 대학 가요제 금상 수상을 시작으로 1982년 MBC 10대 가수 가요제 최고 인기상(가수왕 상), 1982~1984년 MBC 10대 가수상, 1982~1984년 KBS 가요대상, 1982년 동아일보 ‘올해의 인물’ 선정. 1983년 제2회 가톨릭 가요 대상, 1983년 주한 외신기자 선정 ‘올해의 가수상’, 1983년 전국 프러덕션 연합회 주최 가수상, 1984년 선데이서울 주최 ‘올해의 7대 가수상’, 1989년 미국 내쉬빌 초청 가요제 본상 (내쉬빌 시장상), 1992년 서울 선행시민상, 1993년 환경처장관 유공자 표창 등을 받았다. 지금까지 12집 앨범을 냈다.
  • “추사 김정희는 한류의 원조… 지금도 ‘법고창신’ 의미 되새기게 해”

    “추사 김정희는 한류의 원조… 지금도 ‘법고창신’ 의미 되새기게 해”

    #1. “나는 옥에 갇혀 있고 바다 밖으로 귀양 가 있으나 아직 마음이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지금 한낱 부인의 죽음에 놀란 가슴이 무너져 마음을 겉잡을 수 없으니 어찌 된 까닭입니까.” 3년간 제주의 됫박만 한 한칸 방에 갇혀 지낸 추사 김정희(1786~1856)는 급작스러운 부인 예안 이씨의 죽음을 편지로 접하고 땅을 치며 통곡한다. “홀로 부인만 죽음이 있지 않을 수 있으리오”라면서도 죽음 곁으로 달려가는 것조차 허락되지 않은 통한을 속으로 삭여야 했다. ‘세한도’나 ‘고사소요’ ‘서원교필결후’ 등 9년의 제주 유배 생활이 남긴 작품들이 뼈대만 남은 앙상한 등걸처럼 거칠고 굳센 이유다. 최완수(72) 간송미술관 한국민족미술연구소장은 “당시 60세를 바라보는 추사의 작품들은 한티끌도 군더더기를 용납하지 않는 지고의 경지를 보여준다”며 “이렇게 창안해낸 고예체는 조화롭고 변화무쌍할 뿐”이라고 말했다. #2. “난을 치는 데 세 번 궁글리는 것으로 묘법을 삼아야 하는데 붓을 한번 쭉 뽑고 끝내 버렸구나.” 말년의 추사는 유일한 혈육인 서자 김상우에게 난초 치는 법을 가르쳤다. 이렇듯 추사의 가문인 경주 김씨는 정절을 앞세웠다. 고려 말 충청 관찰사를 지낸 김자수는 조선 개국과 함께 고향 안동으로 내려가 은둔하다 태종이 형조판서로 징소하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러나 이후 경주 김씨는 왕가와 혼인을 거듭하며 외척으로 위세를 누린다. 추사의 아버지 김노경 대에 이르러 풍양 조씨 가문과 손잡고 순원왕후의 섭정에 맞설 정도였다. 이런 집안 배경 속에서 ‘천재 소년’으로 불리며 성장한 추사는 23세에 생원시에 합격하고 이듬해 호조참판인 아버지를 따라 청나라 연경으로 떠난다. 옹방강 등 명망 있는 고증학자와 그 무리를 만나 친분을 쌓으며 금석학을 배워 온다. 추사는 북학의 대가인 박제가를 스승으로 모시고 있던 터였다. 지난 7일 서울 성북구 성북동 간송미술관에서 만난 최완수 소장은 “간송이야말로 한류의 원조”라고 말문을 뗐다. 청나라의 옹방강을 비롯해 그의 제자들이 추사의 글씨를 접한 뒤 “입신의 경지에 이르렀다”며 앞다퉈 작품을 받고자 했기 때문이다. 최 소장은 “비록 한자는 중국에서 들어왔으나 유라시아 대륙의 종착역인 한반도에서 동양문화의 정수를 융합해 새롭게 예술 세계를 완성한 이가 바로 추사”라고 힘줘 말했다. 최 소장과 추사의 인연은 남다르다. 첫 만남은 1972년 봄 보화각(간송미술관의 옛 이름)에서 열린 추사전. 보화각은 1971년 가을 겸재 정선의 작품들로 개관전을 연 뒤 이듬해 봄, 가을에 걸쳐 온통 추사로 전시를 도배했다. “처음에는 단순히 추사의 종가가 충남 예산에 자리해 같은 고향이란 생각에 관심을 기울였는데 서체를 보면 볼수록 빠져들었어요.” 이 화려한 전시는 32세의 젊은 미술사학자의 눈길을 사로잡았고 4년 뒤 추사의 후손인 김익환이 1934년 펴낸 ‘완당선생집’을 처음으로 번역하도록 이끈다. 추사의 글과 작품을 담은 ‘추사집’(현암사)이다. 이후 간송미술관 연구실장으로 재직한 그는 평생 추사의 생애와 작품을 연구해 왔고, 최근 새 책 수준으로 재구성한 개정판을 38년 만에 내놨다. 금석학, 경학, 불교학 등을 아울러 애초 393쪽이던 분량이 768쪽으로 곱절 가까이 늘었다. “사실은 출판사가 귀찮게 해 절판을 선언했어요. 당시 함께 책을 냈던 동갑내기 출판사 회장님은 이미 고인이 됐습니다. 연보와 도판을 보충하고 초판에 없던 해제 논문 등을 추가했어요.” 최 소장은 간송미술관에서 오는 12일부터 26일까지 ‘추사정화’(秋史精華)전을 연다. 추사체의 형성 과정을 보여주는 기획전이다. 87회 정기전으로 올 3월부터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외부 전시를 여느라 반년간 건너뛴 정기전을 재개한다는 의미도 지녔다. 전시에는 36세 추사가 옹방강의 서체를 따라 중후하게 써 내려간 행서대련을 비롯해 정치적으로 은둔해 지내던 49세 때 선사가 보낸 차에 대한 보답으로 굵직하게 써 보낸 ‘명선’, 70세로 사망하던 해 봉은사에 은거하며 썼던 행서대련에 이르기까지 굴곡진 일생을 통해 완성된 작품 40여점이 등장한다. 최 소장은 “추사는 중국 고대 상형문자부터 전한을 거쳐 청나라에 이르기까지 수천년간 이어져 온 중국 서법을 다 섭렵한 뒤 법고창신을 통해 추사체를 만들었다”며 “추사체는 서예적 의미를 넘어 지금 이 시대에도 법고창신의 의미를 되새기게 한다”고 말했다. 오상도 기자 sdoh@seoul.co.kr
  • 차승원 공식입장 “차노아, 마음으로 낳은 아들.. 후회 없다”

    차승원 공식입장 “차노아, 마음으로 낳은 아들.. 후회 없다”

    차승원의 소속사 YG엔터테인먼트는 6일 오후 “차승원 씨는 22년 전에 결혼을 하였고, 당시 부인과 이혼한 전 남편 사이에 태어난 세 살배기 아들도 함께 한 가족이 되었습니다”라고 공식입장을 밝혔다. 이어 “차승원 씨는 노아를 마음으로 낳은 자신의 아들이라 굳게 믿고 있으며 지금도 그때의 선택을 후회하지 않는다는 입장”이라고 전했다. 차승원 공식입장에 차노아와 더불어 차승원 부인 이수진까지 화제가 되고 있다. 과거 이수진은 PC통신을 통해 차승원과의 첫만남부터 차노아 육아, 신변잡기 등의 글을 올리며 유명해졌고 이후 ‘연하 남자 데리고 아옹다옹 살아가기’라는 에세이를 발매하기도 했다. 당시 이수진 글을 살펴보면 나이트에서 처음 만난 차승원에게 첫눈에 반했고 그에게 어필하기 위해 노력했으나 결정적으로 다시 만난 것은 성당에서였다. 이수진은 친구 동생이 영세를 받는다고 해서 성당에 갔는데 그 동생 남자친구와 함께 있던 사람이 차승원이었다는 것. 이수진은 차승원의 나이를 알고 마음을 접으려 했으나 나이트클럽에서 또다시 차승원을 만났고 차승원이 연락처를 물어와 인연을 맺게 됐다. 연예팀 seoulen@seoul.co.kr
  • ‘가십걸’ 블레이크 라이블리, 결혼 2년 만에 임신…석양 속 D라인 공개

    ‘가십걸’ 블레이크 라이블리, 결혼 2년 만에 임신…석양 속 D라인 공개

    헐리우드 배우 블레이크 라이블리가 임신했다. 블레이크 라이블리는 최근 자신의 홈페이지에 친오빠 에릭이 직접 찍어준 사진을 공개하며 팬들에게 임신 소식을 알렸다. 공개된 사진속 블레이크 라이블리는 아름다운 석양을 배경으로 임신한 몸을 드러냈다. 특히 양 손으로 배를 감싸며 뱃속의 아이와 교감하는 라이블리의 행복한 미소가 눈길을 끈다. 한편 드라마 ‘가십걸’로 스타덤에 오른 블레이크 라이블리는 할리우드 배우 라이언 레이놀즈와 지난 2001년 영화 ‘그린 랜턴’을 통해 인연을 맺으며 2012년 결혼했다. 사진=블레이크 라이블리 홈페이지 김민지 인턴기자 mingk@seoul.co.kr
  • [열린세상] 고령사회와 장기 재정전략/김용환 서울대 초빙교수·전 문화관광부 차관

    [열린세상] 고령사회와 장기 재정전략/김용환 서울대 초빙교수·전 문화관광부 차관

    우리 사회는 작년 내내 기초연금의 지급 대상과 지급 금액을 두고 심한 사회적 갈등을 겪었다. 올해 들어와서는 재정부담 능력, 국민연금과의 형평성 등을 이유로 공무원연금 개혁이 추진되면서 공직사회가 요동치고 있다. 노인 진료비는 지난 7년 사이에 2.5배나 증가해 51조원에 달하는 국민건강보험 진료비 총액의 35%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노인 1인당 평균진료비는 국민 1인당 평균진료비의 3배가 넘고 있으니 고령화가 진행되면 될수록 의료비 증가와 건강보험료 인상은 피할 수 없는 일이 됐다. 고령사회로 진입함에 따라 재정혜택과 조세부담을 둘러싼 세대 간, 계층 간 갈등은 이미 현실이 돼 버렸고 앞으로 더욱 첨예하게 될까 걱정이 앞선다. 세계는 인류 초유의 고령시대에 접어들고 있다. 선진국은 물론 중국, 아세아 및 동부 유럽도 고령사회를 빗겨갈 수 없다. 우리의 경우는 그 심각성이 어떤 나라보다도 크다. 고령화에 대한 개인적·사회적 준비는 미흡한 반면 고령화 속도는 OECD 국가 중 가장 빠른 LTE급이다. 한강의 기적이라 불리는 지난 50년간의 빠른 경제성장으로 노후생활에 대한 기대수준은 높아진 반면 노후준비를 위한 개인투자나 사회자산은 충분치 못한 실정이다. 앞으로 10년 이내에 700만명이 넘는 베이비부머들이 노인인구로 편입될 전망이고 보면 준비 안 된 고령사회는 축복보다는 재앙임이 분명하다. 고령사회는 노장년층이 인구의 상당수를 차지하는 사회다. 이는 노장년층의 정치적 영향력이 강화됨을 의미한다. 각종 사회보장제도는 인구구조의 변화와 밀접한 연관이 있다. 미국의 경우 베이비부머들이 청년이 돼 노동시장에 본격 유입되면서 1965년에 노인연금의 지급연령이 75세에서 62세로 대폭 낮춰졌다. 베이비부머들의 고용 확대를 위해 노년층에게 더 빨리 연금을 줘서 은퇴를 촉진했다. 그러나 베이비부머들이 노령화돼감에 따라 노인연금의 지급연령도 62세에서 65세로, 그리고 70세로 상향됐다. 급증하는 연금재정 적자를 줄이고 노인들의 일자리 참여를 권장하기 위해서다. 우리 사회도 사정은 미국과 별반 다르지 않다. 최근 기초연금 실시, 정년연장 등은 노장년층의 강화된 정치적 영향력을 보여주는 반증이다. 노장년층의 정치적 영향력이 커짐에 따라 고령사회대책들이 지금 당장의 정치적 이해득실만으로 결정될 가능성도 없지 않다. 지금 세대 내에서도 특정세대는 혜택만 받고 여타 세대는 재정 부담만 지게 돼 세대 간 갈등이 촉발되기도 한다. 당장 먹기에는 곶감이 달다고 재정적자의 족쇄를 미래세대에게 채우기 십상이다. 이런 이유로 고령사회대책은 지금 세대와 미래 세대를 아우르는 긴 시계 하에서 윈윈 전략이 돼야 한다. 고령사회 대책과 같이 인구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정책은 긴 시계(視界)를 갖고 미리미리 준비해야 소기의 성과를 거둘 수 있다. 예를 들면 당장 노동력이 부족해 출산을 장려하더라도 지금 태어난 아이가 경제활동을 하려면 20년 이상이 지나야 가능하기 때문이다. 단견을 갖고 인구문제에 대응하다 보면 역작용만 초래할 수 있다. 저출산 문제를 눈앞에 두고도 ‘잘 키운 딸 하나 열 아들 안 부럽다’는 산아제한 정책이 1980년대 말까지 답습됨으로써 우리나라의 저출산 문제는 더욱 악화됐다. 미국의 경우 1996년에 클린턴 행정부가 정부혁신의 일환으로 공무원 인력감축을 강력하게 추진하면서 기존 공무원들은 그대로 둔 채 신규임용만 축소함으로써 공직사회의 급속한 노령화를 가져왔고, 불과 10년 후인 2007년에 베이비부머들이 62세 정년으로 일시에 대량 퇴직하자 공무원 부족을 메우기 위해 정년 연장자에게 세제혜택을 주는 일까지 발생했다. 그동안 우리 사회는 현안 해결에 치중하다 보니 빨리빨리 문화에 매몰돼 있다. 5년마다 정부가 바뀌다 보니 정부계획과 비전 역시 5년의 한계를 넘지 못하고 있다. 국가재정운영계획 역시 5년 단위로 한정돼 있다. 그러나 유례가 없는 고령사회에 대비하기 위해서는 보다 긴 안목을 갖고 미리미리 준비하고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야만 한다. 최근 기획재정부에 재정기획국이 신설된다 하니 이 차제에 지금 세대와 미래 세대를 아우르는 장기 재정전략이 수립될 수 있길 기대해본다.
  • 최룡해, 임수경 의원 보더니 손 잡으면서 “몸이 좋아졌다”…임수경 의원 대답은?

    최룡해, 임수경 의원 보더니 손 잡으면서 “몸이 좋아졌다”…임수경 의원 대답은?

    ‘최룡해 임수경’ 최룡해 임수경 만남이 화제다. 지난 4일 인천아시안게임 폐막식에서 이뤄진 북한 고위급 대표단과 여야 의원 회동은 새정치민주연합 임수경 의원과 최룡해 노동당 비서의 뜻하지 않은 ‘재회’로 시선을 끌었다. 지난 1989년 평양 세계청년학생축전 당시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전대협) 대표와 북한 사회주의노동청년동맹(사로청) 위원장 자격으로 만났던 두 사람이 25년 만에 상봉한 것. 국회 평창동계올림픽 및 국제경기대회지원 특별위원회 소속인 임수경 의원은 이날 폐막식이 ‘썰렁하게’ 끝날 것을 우려해 경기장을 찾았다가 북한 대표단과 여야 의원 회동 소식을 듣고 자리를 함께하게 됐다고 한다. 새정치연합 문희상 비대위원장은 회동 장에 들어온 임수경 의원을 가리키며 “이 분이 ‘통일의 꽃’”이라고 북한 대표단에 소개했다고 한다. 임수경 의원은 여야 의원들과 북측 대표단이 본격적 대화를 이어갈 땐 면담장 한쪽에 빠져 있었다고 한다. 혹시라도 본인이 화제에 올라 대화에 방해될 것을 우려했던 것이다. 임수경 의원이 최룡해 비서와 인사를 나눈 것은 회동을 마치고 서로 헤어질 때 즈음이었다. 최룡해 비서는 다른 의원들이 면담을 끝내고 나가려 할 때 “내가 꼭 소개하고 싶다. 예전에 같이 청년위원장 할 때 만났던 인연이 있다”며 임수경 의원을 참석자들에게 소개했다고 한다. 임수경 의원은 최룡해 비서에게 “잘 오셨다. 반갑다. 그대로시다”라며 인사를 건넸고, 최룡해 비서는 그런 임수경 의원을 보며 “몸이 좋아졌다”고 화답했다고 임수경 의원은 전했다. 임수경 의원은 “건강은 어떤지, 부모님은 어떠신지 그런 안부들을 주고받았다”며 “황병서 총정치국장도 내 손을 오래 잡으면서 반갑다고 하셨다”고 말했다. 임수경 의원은 “황 총정치국장을 만난 일은 없는데 여기 오면서 유일하게 아는 사람이 저 일 테고 마침 제가 그분들 맞이하러 가니까 반가웠던 것 같다”며 “북한 대표단을 끝까지 환송하고 싶었으나 시선이 집중될까 봐 먼저 나왔다”고 전했다. 최룡해 비서는 1989년 세계청년학생축전이 끝난 후 열린 환송대회에도 참여해 본인을 환송해주었다고 임수경 의원은 회고했다. 임수경 의원은 “정전 상황이라 당장 정치적 교류야 어렵겠지만 체육이나 문화 등 비정치적 교류를 통해 대화의 물꼬를 터야 한다”며 “그런 분야에서 남북 교류를 위해 열심히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인교진 소이현 결혼식, 웨딩드레스 보니 ‘8등신 볼륨몸매’ 여신 자태 뽐내..

    인교진 소이현 결혼식, 웨딩드레스 보니 ‘8등신 볼륨몸매’ 여신 자태 뽐내..

    인교진 소이현 결혼식 배우 인교진(34)과 소이현(30)이 4일 결혼식을 올렸다. 인교진 소이현은 4일 오후 6시 서울 역삼동의 한 웨딩홀에서 비공개로 결혼식을 올렸다. 인교진 소이현은 지난 4월 열애 소식과 함께 결혼을 발표했다. 12년 전 첫 만남을 가진 인교진 소이현은 동료 배우이자 친구로 지내오다 올해 초 연인으로 발전한 것으로 전해졌다. 당시 소속사 측은 인교진 소이현의 결혼을 발표하며 “같은 소속사 식구로 처음 만나 긴 시간 인연을 이어오면서 서로에 대한 깊은 신뢰를 갖고 있었다”며 “양가 부모님들께서도 서로에게 힘이 될 수 있는 인연이라고 조언하며 결혼을 적극적으로 추진했다”고 밝혔다. 인교진은 2000년 MBC 29기 공채 탤런트로 데뷔, ‘선덕여왕’ ‘내일이 오면’ ‘구암허준’ 등에 출연해 시청자들의 눈도장을 찍었다. 소이현은 2001년 SBS ‘슈퍼모델 선발대회’로 데뷔한 후 드라마 ‘때려’ ‘넌 내게 반했어’ ‘청담동 앨리스’ ‘쓰리데이즈’에 출연했다. 네티즌들은 “인교진 소이현 결혼식, 아름답다”, “인교진 소이현 결혼식 축하”, “인교진 소이현 결혼식, 소이현 웨딩드레스 자태 예쁘네”, “인교진 소이현 결혼식, 사랑스러워” 등의 반응을 보였다. 사진=더팩트(인교진 소이현 결혼식) 연예팀 seoulen@seoul.co.kr
  • 최룡해, 임수경 의원 보더니 손 잡으면서 “내가 꼭 소개하고 싶다”…어떤 인연?

    최룡해, 임수경 의원 보더니 손 잡으면서 “내가 꼭 소개하고 싶다”…어떤 인연?

    ‘최룡해 임수경’ 최룡해 임수경 인연이 관심을 모으고 있다. 지난 4일 인천아시안게임 폐막식에서 이뤄진 북한 고위급 대표단과 여야 의원 회동은 새정치민주연합 임수경 의원과 최룡해 노동당 비서의 뜻하지 않은 ‘재회’로 시선을 끌었다. 지난 1989년 평양 세계청년학생축전 당시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전대협) 대표와 북한 사회주의노동청년동맹(사로청) 위원장 자격으로 만났던 두 사람이 25년 만에 상봉한 것. 국회 평창동계올림픽 및 국제경기대회지원 특별위원회 소속인 임수경 의원은 이날 폐막식이 ‘썰렁하게’ 끝날 것을 우려해 경기장을 찾았다가 북한 대표단과 여야 의원 회동 소식을 듣고 자리를 함께하게 됐다고 한다. 새정치연합 문희상 비대위원장은 회동 장에 들어온 임수경 의원을 가리키며 “이 분이 ‘통일의 꽃’”이라고 북한 대표단에 소개했다고 한다. 임수경 의원은 여야 의원들과 북측 대표단이 본격적 대화를 이어갈 땐 면담장 한쪽에 빠져 있었다고 한다. 혹시라도 본인이 화제에 올라 대화에 방해될 것을 우려했던 것이다. 임수경 의원이 최룡해 비서와 인사를 나눈 것은 회동을 마치고 서로 헤어질 때 즈음이었다. 최룡해 비서는 다른 의원들이 면담을 끝내고 나가려 할 때 “내가 꼭 소개하고 싶다. 예전에 같이 청년위원장 할 때 만났던 인연이 있다”며 임수경 의원을 참석자들에게 소개했다고 한다. 임수경 의원은 최룡해 비서에게 “잘 오셨다. 반갑다. 그대로시다”라며 인사를 건넸고, 최룡해 비서는 그런 임수경 의원을 보며 “몸이 좋아졌다”고 화답했다고 임수경 의원은 전했다. 임수경 의원은 “건강은 어떤지, 부모님은 어떠신지 그런 안부들을 주고받았다”며 “황병서 총정치국장도 내 손을 오래 잡으면서 반갑다고 하셨다”고 말했다. 임수경 의원은 “황 총정치국장을 만난 일은 없는데 여기 오면서 유일하게 아는 사람이 저 일 테고 마침 제가 그분들 맞이하러 가니까 반가웠던 것 같다”며 “북한 대표단을 끝까지 환송하고 싶었으나 시선이 집중될까 봐 먼저 나왔다”고 전했다. 최룡해 비서는 1989년 세계청년학생축전이 끝난 후 열린 환송대회에도 참여해 본인을 환송해주었다고 임수경 의원은 회고했다. 임수경 의원은 “정전 상황이라 당장 정치적 교류야 어렵겠지만 체육이나 문화 등 비정치적 교류를 통해 대화의 물꼬를 터야 한다”며 “그런 분야에서 남북 교류를 위해 열심히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렉서스, 소형 크로스오버 SUV NX300h 출시

    렉서스, 소형 크로스오버 SUV NX300h 출시

    렉서스가 브랜드 최초의 콤팩트 크로스오버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인 NX300h를 국내 출시했다. 렉서스는 6일 인천 영종도에 위치한 그랜드 하얏트 인천에서 신차 발표회를 열고 NX300h를 공개했다. 하이브리드 모델인 NX300h는 렉서스의 하이브리드 강화 전략에 따라 내년 출시 예정인 2.0ℓ 가솔린 터보 모델인 NX200t에 앞서 한국 시장에 먼저 선보여졌다. 국내 판매 트림은 수프림(가격 5680만원)과 이그제큐티브(6380만원) 두 종류다. NX300h 도입에 따라 렉서스는 해치백 CT200h, 중형 세단 ES300h, 중형 스포츠세단 GS450h, 대형 크로스오버 SUV RX450h, 플래그십 세단 LS600hL 등 총 6개의 하이브리드 모델을 갖춰 국내 최다 하이브리드 라인업 보유사로서의 위상을 굳혔다. 요시다 아키히사 한국 렉서스 사장은 “ES300h와 함께 NX300h를 쌍두마차로 내세워 한국 고급 자동차 시장을 공략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ES300h(수프림 모델 5630만원)는 국내 수입차 시장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하이브리드 차량으로 유럽 디젤차가 휩쓸고 있는 최근 수입차 시장에서 디젤이 아닌 차량으로는 거의 유일하게 베스트셀링카 10위 안에 꾸준히 이름을 올리고 있다. 요시다 사장은 “NX300h는 ES300h와 비교할 때 4륜구동 시스템을 기본으로 장착하면서도 가격은 거의 비슷한 수준으로 맞춰 가격경쟁력을 극대화했다”며 “내년에 내놓을 예정인 가솔린 터보 모델 NX200t와 합쳐 연간 1000대 가량을 판매하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렉서스는 멋진 도심형 고급 스포츠카를 의미하는 ‘프리미엄 어반 스포츠 기어’를 콘셉트로 2009년 NX 모델의 첫 개발에 들어간 뒤 5년 여만에 개성있는 외관과 기능성 높은 내부, 다양한 첨단 기술이 조화를 이룬 소형 SUV를 탄생시켰다. 2.5ℓ 앳킨슨 사이클 엔진과 전기모터를 결합한 NX300h에는 렉서스의 고급 SUV인 RX에 탑재된 가변식 4륜구동 시스템 E-포가 기본 장착돼 평지, 눈길, 빙판길, 코너링 등의 상황에 맞춰 앞뒤 바퀴의 구동력을 적절히 배분, 조종 안정성을 구현한다. 공인연비는 12.6㎞/ℓ(복합연비 기준)다. 차의 흔들림을 감지해 노면 상태에 따라 구동용 모터의 토크를 세밀히 제어, 차체 요동을 억제하는 스프링 하중 감쇄 제어시스템도 렉서스 최초로 장착됐다. 이밖에 후진시 레이더를 이용해 차량 후면 사각지대를 감지하는 후측방경고시스템, 차선변경시 안전성을 높이는 사각지대 감지장치 등 안전시스템도 적용됐다. 길이 4630㎜, 너비 1845㎜, 높이 1640㎜로 이뤄진 외관은 도심 주행에 어울리는 크로스오버 SUV의 정체성을 살리기 위해 민첩한 느낌을 부각시키는 한편 로빔과 하이빔을 일체형으로 구성한 3렌즈 풀LED 전조등, 화살촉 형상의 주간주행등, 스마트키를 휴대하고 차에 접근하면 은은하게 빛을 밝히는 시스템 등을 채택해 고급스러움을 강조했다. 인테리어엔 렉서스 최초의 첨단 터치패드식 차세대 리모컨, 케이블 연결 없이 휴대용 기기를 올려놓는 무선 휴대전화 충전시스템 등을 적용한 것이 눈길을 끈다. 아울러 앞좌석을 오목한 구조로 만들어 뒷좌석에 넉넉한 무릎 공간을 제공하고, 뒷좌석을 눕히지 않고도 골프백을 최대 4개까지 수납할 수 있도록 실내공간을 여유있게 제작했다. 또 60대 40으로 분할할 수 있는 접이식 뒷좌석에는 세계 최초로 파워폴딩(이그제큐디브 모델 한정) 기능을 집어넣어 시트 좌우, 운전석, 트렁크에 달린 버튼만 누르면 뒷좌석을 다양하게 움직일 수 있게끔 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재계 인맥 대해부 (1부)신흥기업 다음카카오] 혼맥 아닌 꿈으로 일군 ‘IT 새 세상’… 벤처 1세대 인맥 ‘화려’

    [재계 인맥 대해부 (1부)신흥기업 다음카카오] 혼맥 아닌 꿈으로 일군 ‘IT 새 세상’… 벤처 1세대 인맥 ‘화려’

    “꿈으로 끝내지 말고, 꿈을 끝내지 않고.” 꿈을 이루기 위해 가는 길을 찾고, 가는 길이 어렵다고 해서 포기하면 안 된다는 김범수(48) 다음카카오 의장의 단골 멘트다. 꿈은 김 의장의 삶을 관통한다. 좌우명도 ‘꿈꾸는 자만이 자유로울 수 있다’다. 한게임, 네이버, 카카오를 거쳐 매머드급 정보기술(IT) 기업인 다음카카오의 최대 주주가 된 김 의장은 가(家)맥, 혼(婚)맥의 덕을 톡톡히 보는 재벌 기업인들의 성공과는 거리가 멀다. 1966년 서울에서 태어난 김 의장은 할머니 손에 자랐다. 본적은 전남 담양이다. 김 의장은 어린 시절을 ‘가난과 모성에 대한 트라우마’로 정의한다. 김 의장의 모친은 초등학교밖에 나오지 못했고 지방에서 식당일을 하며 2남 3녀를 키웠다. 담양에서 서울로 갓 상경한 부친 김진용(76)씨는 중졸로 막노동과 목공일을 번갈아 했다. 부친 김씨는 2003년 아내와 사별한 뒤 한상분(67)씨와 재혼했다. 대학을 나온 것도 김 의장뿐이었다. 단칸방에서 재수를 하면서 흐트러질 때마다 혈서를 쓰며 마음을 다잡았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그렇게 김 의장은 1986년 서울대 산업공학과에 입학한다. 그는 1991년 봄, 같은 대학 석사 논문 준비 중에 우연히 들른 후배 자취방에서 당시에는 생소했던 전자게시판(BBS)을 보고 본격적인 꿈을 꾸기 시작한다. 그는 1992년 석사 졸업 후 대학 동기들이 삼성전자나 삼성물산 등에 지원할 때 삼성SDS에 특례 보충역으로 들어가 컴퓨터 언어를 본격적으로 팠다. 그해 양식편집기 ‘폼 에디터’를 개발했고 1993년 호암미술관 소장품 화상 관리 시스템을 개발했다. 1996년에는 PC통신 유니텔을 개발해 유니텔 에뮬레이터 유니윈2.0, 유니윈98의 설계와 개발을 맡았다. 1998년 정식으로 연구소 생활을 시작한 그는 삼성SDS에서 평생 가는 동지들을 얻었다. 문태식 마음골프 대표, SDS 입사 선배이자 네이버컴과의 합병을 제의했던 김정호 전 NHN 글로벌 게임사업 총괄 등이 대표적이다. 특히 문 대표는 한게임 창업을 준비하며 동고동락한 끈끈한 ‘절친’으로 알려졌다. 문 대표는 연세대 전산과학과 89학번이다. 그는 한게임을 시작으로 NHN게임스 대표, 미국 법인 대표를 지내며 네이버의 미국 진출 기반을 닦았다. 2007년에는 사내 게임제작센터를 분리해 엔플루토를 설립했다. 김 의장은 삼성SDS에 재직 중이던 1998년 6월 서울 행당동 한양대 앞에 전국 최대 규모의 PC방인 ‘미션 넘버원’ 을 부업으로 열었다. 그는 한자리에서 모든 컴퓨터를 관리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개발해 6개월 만에 5000만원을 벌었고 1998년 9월 삼성SDS를 나왔다. 김 의장은 그해 연말 강남구 삼성동에 한게임커뮤니케이션을 차려 본격적으로 사업의 닻을 올린다. 이 시절 PC방 관리 프로그램을 관리하며 함께 꿈을 키워 갔던 이상곤 전 미디어웹 대표이사와의 진한 우정도 눈에 띈다. 한게임을 공동 창업한 남궁훈 게임인재단 이사장이자 전 위메이드 엔터테인먼트 대표는 삼성SDS 후배다. 그는 김 의장의 공동 창업 제안으로 게임업계에 발을 들여놓은 이후 네이버에서 김 의장과 오랜 인연을 맺는다. 서강대 경영학부를 졸업한 그는 2009년 CJ인터넷 대표이사를 지냈다. 박성찬 다날 창업자도 김 의장과 가까운 사이다. 1990년대 말 휴대전화 결제 서비스에 뛰어든 박 창업자가 한게임에 휴대전화 결제 서비스 제안을 하기 위해 김 의장과 만나면서 인연이 싹텄다. 박 창업자는 고려대 건축공학과 82학번이다. 김 의장과 평생의 라이벌로 맞붙게 된 이해진 네이버 의장의 인연도 특별하다. 대학 동기이자 직장도 같은 두 사람은 2000년 각각 한게임과 네이버컴을 합치는 중대한 결정을 내린 뒤 NHN 공동대표가 됐다. 어려운 가정환경을 딛고 일어선 김 의장은 일을 벌이는 스타일이었다. 반면 부친이 삼성생명 대표를 지낼 정도로 유복한 가정에서 자란 이 의장은 이를 잘 다듬는 성격이었다. 성격과 성장 배경이 사뭇 달랐지만 두 사람은 훌륭한 파트너십을 주고받았다. 김 의장의 인맥은 굵직굵직한 서울대 벤처 1세대 인물들과 관련이 있다. 이 의장을 비롯해 김정주 NXC 넥슨 대표와 김택진 엔씨소프트 대표는 김 의장과 서울대 동문이다. 김 의장은 김정주 대표, 이해진 의장과 산업공학과 86학번 동기이고 김택진 대표는 전자공학과 85학번으로 1년 선배다. 서울대 경영학과 90학번인 나성균 네오위즈홀딩스 대표와도 인연을 이어 오고 있다. 대학 이전부터 직장까지 이어진 인맥으로는 천양현 코코네 대표이사가 있다. 둘은 NHN 한게임의 창립 멤버인 데다 초등학교, 중학교는 물론 건대사대부고 3회 졸업생이다. 두 사람의 영문 이니셜을 따 공동 입주한 건물도 있다. 서울 역삼동 소재 8층짜리 빌딩인 ‘씨앤케이타워’가 그곳이다. 두 사람은 모교인 건대사대부고에 장학금을 함께 전달하기도 한다. 김 의장은 화를 잘 내지 않고 인화력이 뛰어난 인물로 평가받는다. 스스로도 최고경영자(CEO)에게 가장 필요한 덕목을 ‘유비 정신’이라고 짚을 정도로 좋은 사람을 곁에 두는 게 가장 중요하다는 소신을 가졌다. 김 의장은 카카오 경영 전반에 나설 때까지만 해도 주말이면 어김없이 업계 인사들과 골프장을 찾을 정도로 인맥 형성에 적극적이었다. 반면 ‘균형 있는 삶’을 기치로 가족을 살뜰히 잘 챙기는 아버지이도 하다. 그는 1993년 2월 부인 형미선(46)씨와 연애결혼을 했다. 일을 위해 앞만 보고 달려가던 그가 180도 바뀌게 된 건 10년 전 첫째 아들 상빈(23)씨가 자신을 외면한다는 느낌을 받고 충격에 빠진 이후부터다. 그는 그때부터 상빈씨, 딸 예빈(21)씨와 함께 매일 오락 게임을 1시간씩 할 정도로 자상한 아빠로 변했다. 김 의장은 2004년 NHN 단독 대표이사를 거쳐 2006년 NHN 해외사업담당 공동 대표이사, 2006년 NHN 미국 법인 대표이사 사장을 1년간 거친다. 하지만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늘 꿈을 꾸는 김 의장은 2007년 따뜻한 보금자리인 NHN을 떠났다. 그는 아이위랩에 이어 미국에서 가족과 함께 체류하던 2008년 3월과 6월에 소셜북마킹 서비스 ‘부루’와 ‘위지아’를 내놨지만 큰 재미를 보지는 못했다. 그러나 그의 비전과 꿈은 꺾이지 않았다. 치열하게 살아왔던 그의 인생은 그 정도의 시련은 감내할 수 있었다. 김 의장은 PC웹의 시대가 저물 것이라는 가정 아래 모바일 공략에 나섰다. 2009년 10월 애플의 아이폰이 국내에 출시되는 것을 보며 모바일 시대가 올 것을 확신했다. 2010년 3월 미국에서 귀국하자마자 ‘카카오톡’을 시장에 내놨다. 모바일 시대를 선점한 셈이다. 카카오를 창업하면서 네이버 때부터 인연을 이어 온 이석우 다음카카오 공동대표 및 이제범 대표와의 인연이 깊어진다. 미국 변호사 출신인 이석우 대표는 김 의장의 제안으로 2004년 네이버에 합류했다. 이후 김 의장을 따라 2011년 카카오에 부사장으로 입사, 공동대표직을 수락해 카카오 대외업무를 도맡았다. 카카오톡 기술 개발은 서울대 과 후배인 이제범 대표가 책임졌다. 이제범 대표는 97학번이다. 김 의장의 가족과 친척들은 다음카카오의 주주로 참여하고 있다. 처남인 형인우(42)씨는 다음카카오 통합법인의 2.8%를, 형씨의 부인 염혜윤(35)씨는 1.2%의 주식을 가지고 있다. 김 의장의 부인 형미선씨는 김 의장의 개인투자회사인 케이큐브홀딩스의 사내 이사로 이름을 올렸다. 김 의장의 막내 동생 화영(44)씨는 한때 케이큐브홀딩스 대표를 맡기도 했고 경기 성남시 판교에 있는 구 카카오사옥에서 ‘카페톡’을 운영했다. 여동생으로는 행자, 명희, 은정씨가 있다. 명희진 기자 mhj46@seoul.co.kr
  • 황병서 최룡해 김양건, 임수경 의원 보더니 손 잡으면서 “몸이 좋아졌다”

    황병서 최룡해 김양건, 임수경 의원 보더니 손 잡으면서 “몸이 좋아졌다”

    ’황병서 최룡해 김양건’ 황병서 최룡해 김양건과 새정치민주연합 임수경 의원과의 만남이 화제다. 지난 4일 인천아시안게임 폐막식에서 이뤄진 북한 고위급 대표단과 여야 의원 회동은 새정치민주연합 임수경 의원과 최룡해 노동당 비서의 뜻하지 않은 ‘재회’로 시선을 끌었다. 지난 1989년 평양 세계청년학생축전 당시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전대협) 대표와 북한 사회주의노동청년동맹(사로청) 위원장 자격으로 만났던 두 사람이 25년 만에 상봉한 것. 국회 평창동계올림픽 및 국제경기대회지원 특별위원회 소속인 임수경 의원은 이날 폐막식이 ‘썰렁하게’ 끝날 것을 우려해 경기장을 찾았다가 북한 대표단과 여야 의원 회동 소식을 듣고 자리를 함께하게 됐다고 한다. 새정치연합 문희상 비대위원장은 회동 장에 들어온 임수경 의원을 가리키며 “이 분이 ‘통일의 꽃’”이라고 북한 대표단에 소개했다고 한다. 임수경 의원은 여야 의원들과 북측 대표단이 본격적 대화를 이어갈 땐 면담장 한쪽에 빠져 있었다고 한다. 혹시라도 본인이 화제에 올라 대화에 방해될 것을 우려했던 것이다. 임수경 의원이 최룡해 비서와 인사를 나눈 것은 회동을 마치고 서로 헤어질 때 즈음이었다. 최룡해 비서는 다른 의원들이 면담을 끝내고 나가려 할 때 “내가 꼭 소개하고 싶다. 예전에 같이 청년위원장 할 때 만났던 인연이 있다”며 임수경 의원을 참석자들에게 소개했다고 한다. 임수경 의원은 최룡해 비서에게 “잘 오셨다. 반갑다. 그대로시다”라며 인사를 건넸고, 최룡해 비서는 그런 임수경 의원을 보며 “몸이 좋아졌다”고 화답했다고 임수경 의원은 전했다. 임수경 의원은 “건강은 어떤지, 부모님은 어떠신지 그런 안부들을 주고받았다”며 “황병서 총정치국장도 내 손을 오래 잡으면서 반갑다고 하셨다”고 말했다. 임수경 의원은 “황 총정치국장을 만난 일은 없는데 여기 오면서 유일하게 아는 사람이 저 일 테고 마침 제가 그분들 맞이하러 가니까 반가웠던 것 같다”며 “북한 대표단을 끝까지 환송하고 싶었으나 시선이 집중될까 봐 먼저 나왔다”고 전했다. 최룡해 비서는 1989년 세계청년학생축전이 끝난 후 열린 환송대회에도 참여해 본인을 환송해주었다고 임수경 의원은 회고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재계 인맥 대해부 (1부)신흥기업 다음카카오] 다음 창업주 이재웅은 누구

    [재계 인맥 대해부 (1부)신흥기업 다음카카오] 다음 창업주 이재웅은 누구

    이재웅(왼쪽·46) 다음 창업주는 현재 다음카카오 경영과는 전혀 상관이 없다. 고 이철형 전 한국종합건설 대표의 1남 2녀 중 장남인 그는 1995년 26세의 젊은 나이에 다음커뮤니케이션을 창업했다. 1999년 코스닥 상장과 함께 일약 벤처 재벌로 떠오른 그는 2007년 전문 경영인에게 회사를 맡기고 사임했다. 최근까지 다음 최대 주주 지위는 유지(주식 평가액 약 2900억원)했으나 다음카카오 합병 법인에서 그의 지분은 3.3%로 확 줄었다. 그는 2007년부터 2008년까지 디앤샵 경영자문담당 이사를 지내고 현재는 소셜벤처인큐베이터 업체 에스오피오오엔지(SOPOONG)의 대주주로 있다. 1986년 서울 영동고를 졸업하고 1991년 연세대 전산학과를 졸업했다. 같은 대학원을 마치고 이듬해 프랑스 파리 제6대학원에서 인지과정을 전공한 그는 다음 창업 전까지 프랑스 국립과학연구소 연구원으로 일했다. 2001년 6월에는 KBS 9시 뉴스 앵커를 지낸 전 KBS 아나운서 황현정(오른쪽·44)씨와 결혼했다. 둘 사이에 아이는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해진 네이버 의장과는 서울 진흥 아파트에 살면서 ‘동네친구’로 우정을 나눴다. 안철수 새정치민주연합 의원과의 인연도 눈에 띈다. 그는 안 의원이 벤처기업가로 활동할 때부터 정기적인 만남을 가졌다. 이 창업주는 안 의원이 2012년 대선 출마 기자회견 당시 자신의 트위터에 적극적인 지지 의사를 밝혔었다.
  • 인교진 소이현, 10년지기 친구서 부부로

    인교진 소이현, 10년지기 친구서 부부로

    인교진 소이현은 4일 오후 6시 서울 역삼동의 한 웨딩홀에서 비공개로 결혼식을 올렸다. 인교진 소이현은 지난 4월 열애 소식과 함께 결혼을 발표했다. 12년 전 첫 만남을 가진 인교진 소이현은 동료 배우이자 친구로 지내오다 올해 초 연인으로 발전한 것으로 전해졌다. 당시 소속사 측은 인교진 소이현의 결혼을 발표하며 “같은 소속사 식구로 처음 만나 긴 시간 인연을 이어오면서 서로에 대한 깊은 신뢰를 갖고 있었다”며 “양가 부모님들께서도 서로에게 힘이 될 수 있는 인연이라고 조언하며 결혼을 적극적으로 추진했다”고 밝혔다. 연예팀 seoulen@seoul.co.kr
  • 가난도 恨도 날린 헝그리 복서

    가난도 恨도 날린 헝그리 복서

    복싱이 12년 만에 금빛 펀치를 날렸다. 신종훈(25·인천시청)은 3일 선학체육관에서 열린 인천아시안게임 남자 복싱 라이트플라이급(49㎏) 결승에서 비르잔 자키포프(카자흐스탄)를 3-0 판정으로 꺾고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복싱이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획득한 것은 3개를 딴 2002년 부산대회 이후 12년 만이다. 2006년 도하에서는 은메달 3개와 동메달 1개, 2010년 광저우에서는 동메달 1개에 그쳤다. 가난이 싫어 글러브를 낀 신종훈은 전형적인 ‘헝그리 복서’다. 2009년과 2011년 세계선수권에서 각각 동메달과 은메달을 손에 넣었지만 아시안게임과 올림픽에서는 메달과 인연을 맺지 못했다. 이날 링에서 만난 상대는 2010년 광저우대회 8강에서 자신을 쓰러뜨린 자키포프. 설욕의 날을 기다렸다는 듯 1라운드부터 거센 펀치를 쏟아낸 신종훈은 시종일관 상대를 몰아붙였다. 3라운드 종료를 알리는 공소리가 울렸을 때 신종훈은 오른쪽 눈에 시퍼런 멍이 들었지만, 얼굴은 우승을 예감한 듯 활짝 웃고 있었다. 경기 후 애탄 마음으로 경기를 지켜보던 모친과 뜨거운 포옹을 나눈 신종훈은 “울고 싶은데 눈물이 안 나온다. 너무 좋아서 그런가 보다”며 감격을 감추지 않았다. 그는 “집안 형편이 좋지 않아 복싱을 시작했다. 현재 부유하지는 않지만 집도 마련했다. 내 방이 있다는 게 너무 행복하다”고 힘들었던 시절을 돌아봤다. 함상명(19·용인대)도 밴텀급(56㎏) 결승전에서 장자웨이(중국)를 3-0 판정으로 꺾고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1라운드에서는 고전하는 모습을 보였으나 2라운드 들어 상대의 체력이 떨어진 틈을 타 잇따라 유효타를 성공시켰다. 왼쪽 눈 위가 찢어지는 부상을 당한 함상명은 “첫 목표인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달성했다. 다음은 올림픽”이라며 포부를 드러냈다. 라이트웰터급(64㎏) 결승전에 나선 임현철(19·대전대)은 마수크 우티차이(태국)에 1-2 판정으로 아쉽게 져 은메달에 머물렀다. 임주형 기자 hermes@seoul.co.kr
  • 황정음 김용준 몰라보게 살빠진 김용준 근황 ‘눈길’

    황정음 김용준 몰라보게 살빠진 김용준 근황 ‘눈길’

    황정음 김용준 황정음 김용준 근황 인증샷이 화제를 모으고 있다. 지난 8월 20일 스파더엘 대표 이미나는 트위터 계정을 통해 “예쁜 내 동생 정음이. 정음이와의 인연도 13년 째. 사랑스런 용준 씨와 커플 컬러 심리 상담도 하고 그동안 못다한 이야기도 한가득 나누고. 이젠 정말 멋진 연기자로 뜨거운 사랑을 받고 있는 예쁜 동생 정음이”라는 글과 함께 한 장의 사진을 게재했다. 공개된 사진 속에는 대표 이미나 양쪽에 김용준 황정은 커플이 미소를 짓고 있는 모습이 담겨 있다. 특히 황정음과 김용준은 밝은 모습으로 9년차 장수커플로서 다정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어 눈길을 끌고 있다. 황정음과 SG워너비의 멤버 김용준은 2007년 열애를 인정한 후 9년째 만남을 이어가고 있는 연예계 공식 커플이다. 현재 황정음은 SBS ‘끝없는 사랑’에서 서인애 역으로 열연 중이다. 황정음 김용준 근황을 접한 네티즌들은 “황정음 김용준 오래 사귀는 모습 보기 좋다” “황정음 김용준 결혼했으면” “황정음 김용준 친구같은 커플” “황정음 김용준 우결이 엊그제 같은데” 등의 반응을 보였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황정음 김용준 벌써 9년차? 장수커플의 데이트 ‘눈길’

    황정음 김용준 벌써 9년차? 장수커플의 데이트 ‘눈길’

    황정음 김용준 황정음 김용준 근황 인증샷이 화제를 모으고 있다. 지난 8월 20일 스파더엘 대표 이미나는 트위터 계정을 통해 “예쁜 내 동생 정음이. 정음이와의 인연도 13년 째. 사랑스런 용준 씨와 커플 컬러 심리 상담도 하고 그동안 못다한 이야기도 한가득 나누고. 이젠 정말 멋진 연기자로 뜨거운 사랑을 받고 있는 예쁜 동생 정음이”라는 글과 함께 한 장의 사진을 게재했다. 공개된 사진 속에는 대표 이미나 양쪽에 김용준 황정은 커플이 미소를 짓고 있는 모습이 담겨 있다. 특히 황정음과 김용준은 밝은 모습으로 9년차 장수커플로서 다정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어 눈길을 끌고 있다. 황정음과 SG워너비의 멤버 김용준은 2007년 열애를 인정한 후 9년째 만남을 이어가고 있는 연예계 공식 커플이다. 현재 황정음은 SBS ‘끝없는 사랑’에서 서인애 역으로 열연 중이다. 황정음 김용준 근황을 접한 네티즌들은 “황정음 김용준 오래 사귀는 모습 보기 좋다” “황정음 김용준 결혼했으면” “황정음 김용준 친구같은 커플” “황정음 김용준 우결이 엊그제 같은데” 등의 반응을 보였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황정음 김용준 9년 애정 이상무 “내 짝꿍 옆에 있어줘 고마워” 눈물

    황정음 김용준 9년 애정 이상무 “내 짝꿍 옆에 있어줘 고마워” 눈물

    황정음 김용준 황정음 김용준 근황 인증샷이 화제를 모으고 있다. 지난 8월 20일 스파더엘 대표 이미나는 트위터 계정을 통해 “예쁜 내 동생 정음이. 정음이와의 인연도 13년 째. 사랑스런 용준 씨와 커플 컬러 심리 상담도 하고 그동안 못다한 이야기도 한가득 나누고. 이젠 정말 멋진 연기자로 뜨거운 사랑을 받고 있는 예쁜 동생 정음이”라는 글과 함께 한 장의 사진을 게재했다. 공개된 사진 속에는 대표 이미나 양쪽에 김용준 황정은 커플이 미소를 짓고 있는 모습이 담겨 있다. 특히 황정음과 김용준은 밝은 모습으로 9년차 장수커플로서 다정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어 눈길을 끌고 있다. 황정음과 SG워너비의 멤버 김용준은 2007년 열애를 인정한 후 9년째 만남을 이어가고 있는 연예계 공식 커플이다. 현재 황정음은 SBS ‘끝없는 사랑’에서 서인애 역으로 열연 중이다. 이와 관련돼 올초 ‘2013 KBS 연기대상’에서 배우 황정음이 연인 김용준을 언급한 내용도 눈길을 끈다. 지난해 31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KBS 공개홀에서 열린 ‘2013 KBS 연기대상’에서는 배우 황정음은 여자 최우수 연기상을 받았다. 당시 황정음은 “감독님께서 연기자 입장에서 배려를 많이 해주셨다. 정말 감사하다”며 “내 짝꿍 용준이 항상 옆에 있어줘서 고맙고 사랑한다”고 말해 시청자들의 부러움을 샀다. 황정음 김용준 근황을 접한 네티즌들은 “황정음 김용준 오래 사귀는 모습 보기 좋다” “황정음 김용준 결혼했으면” “황정음 김용준 친구같은 커플” “황정음 김용준 우결이 엊그제 같은데” 등의 반응을 보였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인교진 소이현 결혼, 10년지기 친구서 부부로

    인교진 소이현 결혼, 10년지기 친구서 부부로

    배우 인교진 소이현은 4일 오후 6시 서울 역삼동의 한 웨딩홀에서 비공개로 결혼식을 올린다. 인교진 소이현은 지난 4월 열애 소식과 함께 결혼을 발표했다. 두 사람은 12년 전 처음 만나 동료 배우이자 친구로 지내오다 올해 초 연인으로 발전한 것으로 전해졌다. 소속사 측은 두 사람에 대해 “같은 소속사 식구로 처음 만나 긴 시간 인연을 이어오면서 서로에 대한 깊은 신뢰를 갖고 있다”고 전했다. 연예팀 seoule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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