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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해피투게더 서태지 이은성 양가 부모님 앞에서 ‘깜짝’ 이지아 이혼 질문엔…

    해피투게더 서태지 이은성 양가 부모님 앞에서 ‘깜짝’ 이지아 이혼 질문엔…

    해피투게더 서태지 “이은성 처음 만난 곳은…” 깜짝…이지아 이혼 질문엔 “어떻게 보면 내 사생활인데…” 신비주의를 벗고 KBS ‘해피투게더3’에 출연한 서태지가 아내 이은성과의 결혼식 스토리와 사진을 공개했다. 9일 방송된 KBS2 예능프로그램 ‘해피투게더3’에는 가수 서태지가 출연해 아내 이은성과 가정을 꾸리기까지의 과정과 현재 아빠로서의 생활 등 소탈한 일상 이야기를 나눴다. 서태지는 이날 이은성과의 인연은 자신의 뮤직비디오에서 시작됐음을 밝혔다. 그는 “뮤비 촬영 이후 이은성과 이야기가 잘 통했다. 그렇게 편하게 만남을 가진 후 문자로 연락을 주고 받다가 1~2주 뒤에 사귀자고 먼저 제안했다”라고 밝혔다. 이어 서태지는 “그랬더니 이은성이 ‘생각해보겠다’는 대답을 했다. 나는 ‘생각해 볼 것도 없겠구나’라고 느꼈다”라며 이은성도 자신에게 마음이 있음을 직감했다고 말했다. 또 이날 서태지는 방송 최초로 이은성과 연인시절 데이트를 하던 해외 여행 사진과 결혼식 당일의 고운 한복자태를 공개했다. 이날 ‘해피투게더’ MC들은 서태지에게 이지아에 대해서도 조심스럽게 물었다. 이에 서태지는 “그 이야기를 내가 외국에 있을 때 접해서 사실 그렇게 큰 일인 줄 몰랐었다. 그런데 한국에 와서 심각성을 느꼈다”고 운을 뗐다. 당시 서태지와 이지아는 갑작스러운 이혼소식을 전하며 전 국민을 충격에 빠뜨렸다. 서태지는 “어떻게 보면 내 사생활인데 그런 일로 인해서 심려를 끼쳐드려서 굉장히 죄송했다”고 말했다. 이어 “당시엔 많이 어렸었다. 그 때는 좋았고, 잘 될거라고 생각했는데 남녀 사이가 생각처럼 안 됐다”면서 “그 분도 힘들었을 거다. 내가 남자니까 다 잘못했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미안하다”고 전했다. 네티즌들은 “해피투게더 서태지 이은성, 이지아 이혼, 결혼 스토리가 흥미진진하네”, “해피투게더 서태지 이은성, 이지아 이혼, 그래도 이혼 뭐가 잘못된 건지 자세히 말하진 않네”, “해피투게더 서태지 이은성, 이지아 이혼, 서태지 이제 신비주의 벗고 나오나. 이런 모습이 훨씬 낫네” 등 다양한 반응을 보였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차노아 친부 소송 취하, 부인 이수진 첫만남 “차승원 내 미모에 군침 안 흘려”

    차노아 친부 소송 취하, 부인 이수진 첫만남 “차승원 내 미모에 군침 안 흘려”

    ‘차승원 공식입장, 차승원 부인 이수진, 차노아, 차승원 친부 소송 취하’ 배우 차승원이 공식입장을 통해 아들 차노아가 부인 이수진과 전 남편의 아들이라고 밝혔다. 한 매체는 5일 “한 남성이 차승원 아들 차노아가 자신의 친아들이라며 지난 7월 서울중앙지법에 차승원 부부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한 것으로 확인됐다”고 보도했다. 차승원의 소속사 YG엔터테인먼트는 6일 오후 ‘5일 보도된 배우 차승원 기사와 관련한 입장을 밝힙니다’라는 제목의 글에서 “차승원 씨는 22년 전에 결혼을 하였고, 당시 부인과 이혼한 전 남편 사이에 태어난 세 살배기 아들도 함께 한 가족이 되었습니다”라고 공식입장을 밝혔다. 이어 “차승원 씨는 노아를 마음으로 낳은 자신의 아들이라 굳게 믿고 있으며 지금도 그때의 선택을 후회하지 않는다는 입장”이라고 전했다. 차승원 공식입장에 차노아와 더불어 차승원 부인 이수진까지 화제가 되고 있다. 과거 이수진은 PC통신을 통해 차승원과의 첫만남부터 차노아 육아, 신변잡기 등의 글을 올리며 유명해졌고 이후 ‘연하 남자 데리고 아옹다옹 살아가기’라는 에세이를 발매하기도 했다. 당시 이수진 글을 살펴보면 나이트에서 처음 만난 차승원에게 첫눈에 반했고 그에게 어필하기 위해 노력했으나 결정적으로 다시 만난 것은 성당에서였다. 이수진은 친구 동생이 영세를 받는다고 해서 성당에 갔는데 그 동생 남자친구와 함께 있던 사람이 차승원이었다는 것. 이수진은 이때 차승원이 고등학생이라는 것을 알았고 당시 차승원에 대해 ‘잘난척 하고 앉아있는 표정이 재수 없어 보였다. 사실은 자존심이 상했다. 나 같은 미모를 봐도 군침을 안 흘리다니’라고 묘사하기도 했다. 이수진은 차승원의 나이를 알고 마음을 접으려 했으나 나이트클럽에서 또다시 차승원을 만났고 차승원이 연락처를 물어와 인연을 맺게 됐다. 한편 8일 법조계에 따르면, 지난 7월 차승원과 부인 이수진 씨를 상대로 서울중앙지법에 1억원의 손해배상 소송을 낸 조 모씨는 전날 대리인을 통해 소 취하서를 제출했다. 네티즌들은 “차승원 친부 소송 취하, 차노아 아들 아니었구나. 차승원 부인 이수진 대단하네”, “차승원 친부 소송 취하, 당시 엄청 예뻤나봐”, “차승원 공식입장 보고 호감 됐다. 차승원 친부 소송 취하 했구나”, “차승원 친부 소송 취하, 차승원과 많은 일이 있었구나”, “차승원 부인 이수진, 차승원 만날 때 이미 차노아 있었구나. 차승원 친부 소송 취하 왜?” 등의 반응을 보였다. 사진 = 방송 캡처(차승원 친부 소송 취하, 차승원 부인 이수진, 차노아) 연예팀 seoulen@seoul.co.kr
  • 서예지 소속사, 열애설 극구 부인에 유노윤호 소속사 입장은?

    서예지 소속사, 열애설 극구 부인에 유노윤호 소속사 입장은?

    배우 정윤호-서예지의 열애설이 터진 가운데 두사람의 소속사가 열애설을 부인했다. 9일 한 매체는 정윤호 서예지의 열애설을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두 사람은 야경꾼일지를 촬영하며 인연을 맺었고 연인으로 발전했다고 한다. 이에 양측 소속사는 “같은 드라마에 출연하는 동료 사이일 뿐이다”고 열애설을 반박했다. 사진=서예지SNS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해투’ 출연 서태지, 이지아 언급 ”남자로서 내가 잘못…진심 행복하길”

    ‘해투’ 출연 서태지, 이지아 언급 ”남자로서 내가 잘못…진심 행복하길”

    5년 만에 정규 앨범을 발표하는 가수 서태지(본명 정현철·42)가 배우 이지아(36)와의 비밀 결혼과 이혼에 대해 입을 열었다. 서태지는 지난 9일 밤 방송된 KBS 2TV 예능 프로그램 ‘해피투게더3’에 출연해 결혼 생활과 음악, 각종 루머 등에 대해 담담하게 이야기했다. 그는 방송 말미 진행자 유재석이 ‘과거 인연’에 대한 심경을 묻자 “저는 그때 외국에 있어서 그렇게 큰일인지 몰랐다”면서 “개인적인 사생활로 피곤하게 해드려서 미안한 마음이었다”고 이야기를 꺼냈다. 그는 이어 “그때 되게 어렸다. 당시 좋아하기도 했고 잘 될거라 생각했지만 남녀 사이는 생각처럼 안될 때도 있다. 그분도 힘들었을 것이다. 내가 남자로서 다 잘못했다고 생각한다”고 돌아봤다. 그는 “저는 이제 아기도 낳았는데, 그 친구도 자기 일 잘돼서 다 내려놓고 행복하게 잘 살기를 진심으로 바란다”고 덧붙였다. 서태지는 이와 함께 방송에서 ‘서태지와 아이들’ 활동은 물론 은퇴, 배우 이은성(26)과 결혼, 육아 등에 얽힌 사연도 이야기했다. 그는 ‘서태지와 아이들’ 당시 “수익은 서로 불만 없을 정도로 나눴다”면서 “활동 관련은 4(서태지)대3대3이었고, 음반은 곡을 제가 만들었으니 6대2대2였다”라고 밝혔다. 그는 갑작스러운 은퇴에 대해서는 “어려서 앞뒤 생각 안 하고 단순히 했다. 잘못 생각했던 것 같다”면서 “다시 돌아가면 은퇴라는 말을 안 쓰고 ‘쉬겠다’나 ‘잠정 중단하겠다’라고 했을 것 같다”고 돌아봤다. 서태지는 이은성과 만남에 대해 “너무 강한 인상이었다. 흡입력을 느꼈다”면서 “사실 은성 씨는 저의 팬이 아니었다. 원래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고 떠올렸다. 그는 이은성의 배우 활동을 찬성하느냐는 물음에는 “지금은 본인이 하고싶어하지 않는다. 대장부 스타일이다. 육아든 살림이든 다 자기가 해야 한다”면서 “본인이 하고 싶다면 나는 괜찮다. 키스신은 괜찮은데 베드신은 잘 모르겠다”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그는 ‘부인을 집에서 못 나가게 한다’는 루머가 있다는 지적에는 “감금의 아이콘이었다.(웃음) 그런 내용의 댓글에 상처를 받기도 했다”라고 털어놨다. 서태지는 10일 정오 공개되는 자기가 부른 ‘소격동’도 일부 선보였다. 앞서 아이유 버전이 선공개돼 음원 차트 1위를 석권했다. 서태지는 “9집 자체의 콘셉트가 동화다. 가족이 생기니까 하고 싶은 음악이 많이 변했다. 지금 잘할 수 있는 따뜻한 음악에 관심이 간다”라고 강조했다. 한편 이날 서태지 특집 ‘해피투게더3’는 닐슨코리아 조사 결과 전국 기준 7.5%, 수도권 기준 8.7% 시청률을 기록했다. 이 수치는 지난주보다 각각 약 4%포인트 하락한 것이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해피투게더 서태지 “이은성, 내가 먼저 사귀자고 했다” 도대체 왜?…이지아 이혼 “심려 끼쳐드려서 굉장히 죄송했다”

    해피투게더 서태지 “이은성, 내가 먼저 사귀자고 했다” 도대체 왜?…이지아 이혼 “심려 끼쳐드려서 굉장히 죄송했다”

    해피투게더 서태지 “이은성, 내가 먼저 사귀자고 했다” 도대체 왜?…이지아 이혼 “심려 끼쳐드려서 굉장히 죄송했다” 신비주의를 벗고 KBS ‘해피투게더3’에 출연한 서태지가 아내 이은성과의 결혼식 스토리와 사진을 공개했다. 9일 방송된 KBS2 예능프로그램 ‘해피투게더3’에는 가수 서태지가 출연해 아내 이은성과 가정을 꾸리기까지의 과정과 현재 아빠로서의 생활 등 소탈한 일상 이야기를 나눴다. 서태지는 이날 이은성과의 인연은 자신의 뮤직비디오에서 시작됐음을 밝혔다. 그는 “뮤비 촬영 이후 이은성과 이야기가 잘 통했다. 그렇게 편하게 만남을 가진 후 문자로 연락을 주고 받다가 1~2주 뒤에 사귀자고 먼저 제안했다”라고 밝혔다. 이어 서태지는 “그랬더니 이은성이 ‘생각해보겠다’는 대답을 했다. 나는 ‘생각해 볼 것도 없겠구나’라고 느꼈다”라며 이은성도 자신에게 마음이 있음을 직감했다고 말했다. 또 이날 서태지는 방송 최초로 이은성과 연인시절 데이트를 하던 해외 여행 사진과 결혼식 당일의 고운 한복자태를 공개했다. 이날 ‘해피투게더’ MC들은 서태지에게 이지아에 대해서도 조심스럽게 물었다. 이에 서태지는 “그 이야기를 내가 외국에 있을 때 접해서 사실 그렇게 큰 일인 줄 몰랐었다. 그런데 한국에 와서 심각성을 느꼈다”고 운을 뗐다. 당시 서태지와 이지아는 갑작스러운 이혼소식을 전하며 전 국민을 충격에 빠뜨렸다. 서태지는 “어떻게 보면 내 사생활인데 그런 일로 인해서 심려를 끼쳐드려서 굉장히 죄송했다”고 말했다. 이어 “당시엔 많이 어렸었다. 그 때는 좋았고, 잘 될거라고 생각했는데 남녀 사이가 생각처럼 안 됐다”면서 “그 분도 힘들었을 거다. 내가 남자니까 다 잘못했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미안하다”고 전했다. 네티즌들은 “해피투게더 서태지 이은성, 이지아 이혼, 서태지 스토리는 역시 재미가 있어”, “해피투게더 서태지 이은성, 이지아 이혼, 그래도 이은성 씨와 행복하게 살면 됐죠. 행복하세요”, “해피투게더 서태지 이은성, 이지아 이혼, 신고 나오니까 신비주의 벗네. 앞으로 방송에 자주 나와주세요” 등 다양한 반응을 보였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해피투게더 서태지 “이은성, 먼저 사귀자고 했다” 왜?…이지아 이혼 “굉장히 죄송했다”

    해피투게더 서태지 “이은성, 먼저 사귀자고 했다” 왜?…이지아 이혼 “굉장히 죄송했다”

    해피투게더 서태지 “이은성, 내가 먼저 사귀자고 했다” 도대체 왜?…이지아 이혼 “심려 끼쳐드려서 굉장히 죄송했다” 신비주의를 벗고 KBS ‘해피투게더3’에 출연한 서태지가 아내 이은성과의 결혼식 스토리와 사진을 공개했다. 9일 방송된 KBS2 예능프로그램 ‘해피투게더3’에는 가수 서태지가 출연해 아내 이은성과 가정을 꾸리기까지의 과정과 현재 아빠로서의 생활 등 소탈한 일상 이야기를 나눴다. 서태지는 이날 이은성과의 인연은 자신의 뮤직비디오에서 시작됐음을 밝혔다. 그는 “뮤비 촬영 이후 이은성과 이야기가 잘 통했다. 그렇게 편하게 만남을 가진 후 문자로 연락을 주고 받다가 1~2주 뒤에 사귀자고 먼저 제안했다”라고 밝혔다. 이어 서태지는 “그랬더니 이은성이 ‘생각해보겠다’는 대답을 했다. 나는 ‘생각해 볼 것도 없겠구나’라고 느꼈다”라며 이은성도 자신에게 마음이 있음을 직감했다고 말했다. 또 이날 서태지는 방송 최초로 이은성과 연인시절 데이트를 하던 해외 여행 사진과 결혼식 당일의 고운 한복자태를 공개했다. 이날 ‘해피투게더’ MC들은 서태지에게 이지아에 대해서도 조심스럽게 물었다. 이에 서태지는 “그 이야기를 내가 외국에 있을 때 접해서 사실 그렇게 큰 일인 줄 몰랐었다. 그런데 한국에 와서 심각성을 느꼈다”고 운을 뗐다. 당시 서태지와 이지아는 갑작스러운 이혼소식을 전하며 전 국민을 충격에 빠뜨렸다. 서태지는 “어떻게 보면 내 사생활인데 그런 일로 인해서 심려를 끼쳐드려서 굉장히 죄송했다”고 말했다. 이어 “당시엔 많이 어렸었다. 그 때는 좋았고, 잘 될거라고 생각했는데 남녀 사이가 생각처럼 안 됐다”면서 “그 분도 힘들었을 거다. 내가 남자니까 다 잘못했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미안하다”고 전했다. 네티즌들은 “해피투게더 서태지 이은성, 이지아 이혼, 서태지 스토리는 역시 재미가 있어”, “해피투게더 서태지 이은성, 이지아 이혼, 그래도 이은성 씨와 행복하게 살면 됐죠. 행복하세요”, “해피투게더 서태지 이은성, 이지아 이혼, 신고 나오니까 신비주의 벗네. 앞으로 방송에 자주 나와주세요” 등 다양한 반응을 보였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해피투게더 서태지 “이은성, 내가 먼저 사귀자고 했다” 깜짝…이지아 이혼 “내가 다 잘못했다는 생각”

    해피투게더 서태지 “이은성, 내가 먼저 사귀자고 했다” 깜짝…이지아 이혼 “내가 다 잘못했다는 생각”

    해피투게더 서태지 “이은성, 내가 먼저 사귀자고 했다” 깜짝…이지아 이혼 “내가 다 잘못했다는 생각” 신비주의를 벗고 KBS ‘해피투게더3’에 출연한 서태지가 아내 이은성과의 결혼식 스토리와 사진을 공개했다. 9일 방송된 KBS2 예능프로그램 ‘해피투게더3’에는 가수 서태지가 출연해 아내 이은성과 가정을 꾸리기까지의 과정과 현재 아빠로서의 생활 등 소탈한 일상 이야기를 나눴다. 서태지는 이날 이은성과의 인연은 자신의 뮤직비디오에서 시작됐음을 밝혔다. 그는 “뮤비 촬영 이후 이은성과 이야기가 잘 통했다. 그렇게 편하게 만남을 가진 후 문자로 연락을 주고 받다가 1~2주 뒤에 사귀자고 먼저 제안했다”라고 밝혔다. 이어 서태지는 “그랬더니 이은성이 ‘생각해보겠다’는 대답을 했다. 나는 ‘생각해 볼 것도 없겠구나’라고 느꼈다”라며 이은성도 자신에게 마음이 있음을 직감했다고 말했다. 또 이날 서태지는 방송 최초로 이은성과 연인시절 데이트를 하던 해외 여행 사진과 결혼식 당일의 고운 한복자태를 공개했다. 이날 ‘해피투게더’ MC들은 서태지에게 이지아에 대해서도 조심스럽게 물었다. 이에 서태지는 “그 이야기를 내가 외국에 있을 때 접해서 사실 그렇게 큰 일인 줄 몰랐었다. 그런데 한국에 와서 심각성을 느꼈다”고 운을 뗐다. 당시 서태지와 이지아는 갑작스러운 이혼소식을 전하며 전 국민을 충격에 빠뜨렸다. 서태지는 “어떻게 보면 내 사생활인데 그런 일로 인해서 심려를 끼쳐드려서 굉장히 죄송했다”고 말했다. 이어 “당시엔 많이 어렸었다. 그 때는 좋았고, 잘 될거라고 생각했는데 남녀 사이가 생각처럼 안 됐다”면서 “그 분도 힘들었을 거다. 내가 남자니까 다 잘못했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미안하다”고 전했다. 네티즌들은 “해피투게더 서태지 이은성, 이지아 이혼, 결혼 이혼 모두 대단한 스토리네”, “해피투게더 서태지 이은성, 이지아 이혼, 이은성과 결혼 정말 깜짝 놀랄만한 일이었지”, “해피투게더 서태지 이은성, 이지아 이혼, 서태지 신곡 나오더니 완전히 신비주의 벗기로 한 건가” 등 다양한 반응을 보였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차노아 친부 소송 취하, 차승원 부인과의 첫 만남은

    차노아 친부 소송 취하, 차승원 부인과의 첫 만남은

    차승원의 소속사 YG엔터테인먼트는 6일 오후 ‘5일 보도된 배우 차승원 기사와 관련한 입장을 밝힙니다’라는 제목의 글에서 “차승원 씨는 22년 전에 결혼을 하였고, 당시 부인과 이혼한 전 남편 사이에 태어난 세 살배기 아들도 함께 한 가족이 되었습니다”라고 공식입장을 밝혔다. 차승원 공식입장에 차노아와 더불어 차승원 부인 이수진까지 화제가 되고 있다. 과거 이수진은 PC통신을 통해 차승원과의 첫만남부터 차노아 육아, 신변잡기 등의 글을 올리며 유명해졌고 이후 ‘연하 남자 데리고 아옹다옹 살아가기’라는 에세이를 발매하기도 했다. 당시 이수진 글을 살펴보면 나이트에서 처음 만난 차승원에게 첫눈에 반했고 그에게 어필하기 위해 노력했으나 결정적으로 다시 만난 것은 성당에서였다. 이수진은 친구 동생이 영세를 받는다고 해서 성당에 갔는데 그 동생 남자친구와 함께 있던 사람이 차승원이었다는 것. 이수진은 이때 차승원이 고등학생이라는 것을 알았고 당시 차승원에 대해 ‘잘난척 하고 앉아있는 표정이 재수 없어 보였다. 사실은 자존심이 상했다. 나 같은 미모를 봐도 군침을 안 흘리다니’라고 묘사하기도 했다. 이수진은 차승원의 나이를 알고 마음을 접으려 했으나 나이트클럽에서 또다시 차승원을 만났고 차승원이 연락처를 물어와 인연을 맺게 됐다. 한편 8일 법조계에 따르면, 지난 7월 차승원과 부인 이수진 씨를 상대로 서울중앙지법에 1억원의 손해배상 소송을 낸 조 모씨는 전날 대리인을 통해 소 취하서를 제출했다. 연예팀 seoulen@seoul.co.kr
  • 차승원, 차노아 친부 아니라는 사실 밝혀지자 아내에 관심 이어져..

    차승원, 차노아 친부 아니라는 사실 밝혀지자 아내에 관심 이어져..

    차승원의 소속사 YG엔터테인먼트는 6일 오후 ‘5일 보도된 배우 차승원 기사와 관련한 입장을 밝힙니다’라는 제목의 글에서 “차승원 씨는 22년 전에 결혼을 하였고, 당시 부인과 이혼한 전 남편 사이에 태어난 세 살배기 아들도 함께 한 가족이 되었습니다”라고 공식입장을 밝혔다. 차승원 공식입장에 차노아와 더불어 차승원 부인 이수진까지 화제가 되고 있다. 이수진 씨는 차승원과 함께 방송에 동반출연한 적도 있으며 ‘연하 남자 데리고 아옹다옹 살아가기’라는 에세이를 발매하기도 했다. 당시 이수진 글을 살펴보면 나이트에서 처음 만난 차승원에게 첫눈에 반했고 그에게 어필하기 위해 노력했으나 결정적으로 다시 만난 것은 성당에서였다. 이수진은 친구 동생이 영세를 받는다고 해서 성당에 갔는데 그 동생 남자친구와 함께 있던 사람이 차승원이었다는 것. 이수진은 이때 차승원이 고등학생이라는 것을 알았고 당시 차승원에 대해 ‘잘난척 하고 앉아있는 표정이 재수 없어 보였다. 사실은 자존심이 상했다. 나 같은 미모를 봐도 군침을 안 흘리다니’라고 묘사하기도 했다. 이수진은 차승원의 나이를 알고 마음을 접으려 했으나 나이트클럽에서 또다시 차승원을 만났고 차승원이 연락처를 물어와 인연을 맺게 됐다. 한편 8일 법조계에 따르면, 지난 7월 차승원과 부인 이수진 씨를 상대로 서울중앙지법에 1억원의 손해배상 소송을 낸 조 모씨는 전날 대리인을 통해 소 취하서를 제출했다. 연예팀 seoulen@seoul.co.kr
  • 차승원 부인, 차승원과 첫만남 전해..

    차승원 부인, 차승원과 첫만남 전해..

    배우 차승원이 공식입장을 밝힌 가운데 아내 이수진이 쓴 에세이가 화제다. 과거 이수진이 쓴 ‘연하 남자 데리고 아옹다옹 살아가기’ 에세이를 보면 나이트에서 처음 만난 차승원에게 첫눈에 반했고 다시 만난 것은 성당에서였다. 이수진은 차승원의 나이를 알고 마음을 접으려 했으나 나이트클럽에서 또다시 차승원을 만났고 차승원이 연락처를 물어와 인연을 맺게 됐다. 한편 한 매체는 5일 한남성이 차노아가 자신의 아들이라고 주장하며 차승원부부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고 보도했다. 이에 차승원의 소속사 YG엔터테인먼트는 “차승원 씨는 22년 전에 결혼을 하였고, 당시 부인과 이혼한 전 남편 사이에 태어난 세 살배기 아들도 함께 한 가족이 되었습니다”고 설명했다. 사진 = 방송 캡처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선수와 볼보이’에서 ‘감독과 주장’으로, 토트넘 포체티노 감독과 카불 이야기

    ‘선수와 볼보이’에서 ‘감독과 주장’으로, 토트넘 포체티노 감독과 카불 이야기

    "나는 그 경기를 바로 어제처럼 기억한다. 포체티노가 오른발 발리골을 기록했고 호나우지뉴가 PSG에서 뛴 첫 경기였다. 당시 나는 볼보이였다." 이번 시즌 토트넘 주장에 선임된 유네 카불이, 자신을 주장에 임명해준 포체티노 감독과의 독특한 인연을 털어놔 눈길을 끈다. 카불은 6일(현지시간) 데일리미러와의 인터뷰에서 포체티노 현 토트넘 감독이 PSG(파리 생제르망)에서 뛰던 시절 볼보이로 활동하다가 그의 골을 바로 눈 앞에서 봤던 추억에 대해 이야기했다. 카불이 언급한 상황이 발생했던 것은 2001년 PSG 대 옥세르의 맞대결. 당시 옥세르 유스팀 소속이었던 카불은 "그 일을 바로 어제일처럼 기억한다"며 입을 열었다. 그는 "포체티노가 옥세르를 상대로 골을 넣었고, 당시 나는 볼보이였다"며 "그가 골을 넣었을 때 나는 골대 바로 뒤에 있었다. 오른발 발리골이었고 호나우지뉴의 PSG에서의 첫번째 경기였다"고 말했다. 포체티노 감독과 그 당시의 상황에 대해 이야기를 해봤냐는 질문에 카불은 "그도 그 골을 잘 기억하고 있었다"며 "이제 그가 나의 감독이라는 게 나는 무척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또 "포체티노는 최고 수준의 아주 세련된 수비수였다"며 "그의 경험 덕분에 우리는 많은 것을 배우고 있다"고 덧붙였다. 사진= 대화를 나누고 있는 포체티노 토트넘 감독과 주장 카불(출처 데일리미러) 이성모 객원기자 London_2015@naver.com페이스북 https://www.facebook.com/inlondon2015트위터 https://twitter.com/inlondon2015
  • 차이나머니 ‘뉴욕의 왕궁’ 삼켰다

    차이나머니 ‘뉴욕의 왕궁’ 삼켰다

    ‘뉴욕의 왕궁’이 중국 자본의 손에 넘어간다. 6일(현지시간) USA투데이 등에 따르면 세계적인 호텔 업체 힐튼월드와이드는 뉴욕 맨해튼의 상징적인 호텔 월도프 아스토리아를 19억 5000만 달러(약 2조 800억원)에 중국 안방보험그룹에 매각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힐튼월드와이드의 크리스토퍼 나세타 최고경영자는 성명에서 “안방그룹과 오랜 관계를 맺게 돼 들떴다”면서 “호텔은 앞으로도 수세대 동안 이름에 걸맞은 세계적인 규격을 보여줄 것”이라고 말했다. 세계적인 호텔 부동산 업체 로징이코노메트릭스의 브루스 포드 수석부회장은 이 호텔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호텔이자 가장 좋은 주소의 호텔”이라고 표현했다. 맨해튼을 방문한 각국 대통령이나 유명인사들의 단골 숙소이기도 하다. 메릴린 먼로가 한때 거주했었고 허버트 후버 이후 미국의 모든 역대 대통령이 묵었었다. 지난달 말엔 제69차 유엔총회 기조연설을 위해 방문했던 박근혜 대통령과 일본의 아베 신조 총리도 이 호텔에서 묵었다. 호텔이 현재 위치에 세워진 것은 1931년 10월이었다. 파크 애버뉴와 렉싱턴 애버뉴 사이의 1개 블록 전체를 차지하고 있다. 객실은 1413개다. 건축 당시 세계 최초의 마천루 호텔이었고 지금도 뉴욕에서 가장 아름다운 건축물 중 하나로 꼽힌다. 1949년에 콘래드 힐튼 창업주가 경영권을 획득하며 힐튼 가문과의 인연이 시작됐고 2013년 공개 시장에 나왔다. 이 호텔은 월도프 호텔이라는 이름으로 1893년 백만장자 윌리엄 월도프 아스토르에 의해 현재의 엠파이어스테이트빌딩 자리에 13층 높이로 세워졌었다. 아스토르는 월도프 호텔을 4년 뒤 자신의 월도프 타워와 합쳐 세계에서 가장 큰 호텔로 만들었다. 호텔을 매각했지만, 계약에 따라 힐튼은 앞으로 100년 동안 호텔 운영을 계속한다. 안방그룹과 힐튼 사이의 계약에는 대규모 리노베이션도 포함돼 있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안방그룹은 리노베이션을 통해 47층으로 월도프타워를 복원하고 그 일부를 콘도미니엄 형태로 분양할 것으로 보인다. 힐튼월드와이드는 호텔 매각으로 생긴 자금을 미국 내 다른 호텔을 인수하는 데 활용할 계획이다. 김민석 기자 shiho@seoul.co.kr
  • [재계 인맥 대해부 (1부)신흥기업 <3>미래에셋] 박현주·최현만·구재상 창업 3인방, 동원증권 한솥밥

    [재계 인맥 대해부 (1부)신흥기업 <3>미래에셋] 박현주·최현만·구재상 창업 3인방, 동원증권 한솥밥

    박현주(56) 미래에셋그룹 회장은 지연과 학연을 싫어한다고 공개적으로 밝힌 바 있다. 회사 내 정치를 용납하지 않는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이처럼 사람을 만나는 것에 까다로운 박 회장이기에 특정 모임을 둘러싸고 구설수에 오른 적이 별로 없다. 하지만 박 회장의 주변 인물들을 살펴보면 공통점으로 엮여 있다는 인상을 준다. 박 회장은 광주광역시 출신으로 지역 명문인 광주제일고(광주일고), 고려대 경영학과를 졸업해 동원증권에 입사했고 퇴사 후 미래에셋그룹을 만들었다. 이런 인연으로 묶인 이들이 미래에셋그룹의 정점에서 각 부문을 이끌어 가고 있기도 하다. 박 회장과 함께 미래에셋그룹의 창업 3인방 가운데 1명이자 그룹의 2인자인 최현만(53) 미래에셋생명 부회장은 전남 강진 출신에 광주고, 전남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했다. 최 부회장은 동원증권 서초지점장을 하다 박 회장과 함께 미래에셋을 만들면서 전남 지역과 동원증권이라는 끈으로 오래전부터 연결돼 있다. 박 회장은 1989년 동원증권 을지로 중앙지점장을 하던 시절 당시 대리였던 최 부회장과 구재상(50) 케이클라비스투자자문 대표(전 미래에셋자산운용 부회장)를 처음으로 만났다. 최 부회장은 미래에셋이 출범했을 때 관리와 영업을 책임진 바 있다. 인품이 따뜻하다는 평이다. 그는 미래에셋생명 전국 지점을 1년에 한 번 이상 직접 찾아가 살펴보기 위해 전국을 돌아다니고 있다. 박 회장, 최 부회장과 함께 미래에셋그룹을 창업한 ‘미스터 펀드’ 구재상 케이클라비스투자자문 대표는 전남 화순 출신으로 연세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동원증권 압구정지점장을 지내다 미래에셋그룹을 함께 창업했다. 그룹에서 자산운용을 맡던 구 대표는 2012년 미래에셋자산운용 부회장에서 자리를 떠나 독립해 케이클라비스투자자문을 운영하고 있다. 박 회장, 최 부회장의 뒤를 이어 그룹 서열 3번째인 정상기(55) 미래에셋자산운용 부회장 역시 전남 순천 출신으로 전남대 경영학과를 졸업했고 1998년 미래에셋자산운용 관리본부장을 맡으며 그룹에 합류했다. 미래에셋그룹은 다른 회사와 다르게 각 부문에 관리 책임자를 둔 것이 특징이다. 대표이사가 부사장급이어서 사장이 대표이사보다 직책이 더 높다. 이처럼 부문 대표제를 실시하는 것에 대해 박 회장은 “실무를 결정하는 권한을 관리책임자에게 줘서 믿고 써야 하며 그 사람이 능력을 발휘해 면을 성장시키고 다시 면과 면이 만나 조직의 체계를 구축할 수 있다”고 말하며 조직의 유연성을 강조하기도 했다. 때문에 주요 계열사인 미래에셋증권은 조웅기(50) 사장이 홀세일·기업RM·트레이딩부문 각자대표이사를 맡고 있고 변재상(51) 사장이 리테일·해외·경영서비스부문 각자대표이사를 맡고 있다. 지난 1월 2일 향년 66세로 작고한 고 김정태 전 국민은행장은 박 회장이 동원증권에 자리를 갖게 한 인연이 있고 평소 존경의 대상으로 자주 언급되기도 했다. 박 회장은 1988년 당시 동원증권 인사담당 전무였던 고 김 전 행장을 다짜고짜 찾아가 자신의 실력을 내세우며 입사를 요청했다. 고 김 전 행장은 박 회장의 형 박태성씨의 광주일고 동기동창이기도 하다. 장인환(55) KTB자산운용 사장과 송상종(54) 피데스투자자문 사장은 박 회장과 광주일고 동기동창이자 동원증권에서 함께 일하기도 했다. 송 사장은 미래에셋 창업에도 잠시 참여하기도 했다. 김진아 기자 jin@seoul.co.kr
  • 차승원, 부인과 어떻게 만났나 보니..

    차승원, 부인과 어떻게 만났나 보니..

    차승원의 소속사 YG엔터테인먼트는 6일 오후 “차승원 씨는 22년 전에 결혼을 하였고, 당시 부인과 이혼한 전 남편 사이에 태어난 세 살배기 아들도 함께 한 가족이 되었습니다”라고 공식입장을 밝혔다. 이어 “차승원 씨는 노아를 마음으로 낳은 자신의 아들이라 굳게 믿고 있으며 지금도 그때의 선택을 후회하지 않는다는 입장”이라고 전했다. 차승원 공식입장에 차노아와 더불어 차승원 부인 이수진까지 화제가 되고 있다. 과거 이수진은 PC통신을 통해 차승원과의 첫만남부터 차노아 육아, 신변잡기 등의 글을 올리며 유명해졌고 이후 ‘연하 남자 데리고 아옹다옹 살아가기’라는 에세이를 발매하기도 했다. 당시 이수진 글을 살펴보면 나이트에서 처음 만난 차승원에게 첫눈에 반했고 그에게 어필하기 위해 노력했으나 결정적으로 다시 만난 것은 성당에서였다. 이수진은 친구 동생이 영세를 받는다고 해서 성당에 갔는데 그 동생 남자친구와 함께 있던 사람이 차승원이었다는 것. 이수진은 차승원의 나이를 알고 마음을 접으려 했으나 나이트클럽에서 또다시 차승원을 만났고 차승원이 연락처를 물어와 인연을 맺게 됐다. 연예팀 seoulen@seoul.co.kr
  • 공적연금 받는 사람 내년 470만명 돌파

    내년에 국민·공무원·사학·군인연금 등 4대 공적연금을 받는 사람이 470만명에 달하고 나가는 돈은 35조원이 될 전망이다. 국민 100명당 9명꼴로 공적연금을 받게 되는 셈이다. 정부가 7일 국회에 낸 내년도 기금운용계획안에 따르면 4대 공적연금의 수급자는 올해 433만명에서 내년 468만 6000명으로 8.2%(35만 6000명) 증가한다. 기금운용계획상 수급자는 2008년 288만 4000명에서 2009년 300만명을 넘은 데 이어 올해 400만명을 돌파했다. 인구(추계치)에서 차지하는 수급자 비율을 단순 계산해보면 2008년 5.89%에서 올해 8.59%, 내년 9.26%로 높아진다. 수급자 증가에 따라 4대 연금의 급여지출액은 2008년 16조 8000억원에서 2010년(21조 2000억원) 20조원, 올해(31조 3000억원) 30조원를 각각 넘었다. 내년에는 1년 새 10.0%(3조 1000억원) 증가한 34조 4000억원으로 예상됐다. 내년 급여지출액과 수급자가 5년 전(2010년)보다 각각 62.3%, 36.5% 급증한 것이다. 특히 국민연금 수급자와 지출액의 급증이 전체 공적연금 규모의 확대로 이어졌다. 국민연금 수급자는 올해 382만 4000명에서 내년 414만 7000명으로 8.4% 늘며 처음 400만명을 넘고, 급여액은 14조 6000억원에서 16조 6000억원으로 13.8% 증가한다. 내년 공무원연금의 수급자와 급여액은 올해보다 각각 7.0%, 7.1% 증가한 39만 5000명, 13조 2000억원으로 잡혔다. 사학연금은 내년 5만 7000명에 2조 1000억원을 지급해 올해보다 각각 9.6%, 9.3% 늘어나고 군인연금은 8만 7000명, 2조 5000억원으로 각각 2.4%, 2.1% 불어날 것으로 추정됐다. 세종 이두걸 기자 douzirl@seoul.co.kr
  • 지드래곤 키코, 반복된 열애설+이별설 ‘벌써 4년 동안 계속된 인연’

    지드래곤 키코, 반복된 열애설+이별설 ‘벌써 4년 동안 계속된 인연’

    지드래곤 키코 열애설이 또 터졌다. 그룹 빅뱅 지드래곤과 일본 모델 겸 배우 미즈하라 키코의 열애설이 불거지며 그들을 둘러싼 많은 추측들이 수면위에 다시 오르고 있다. 지드래곤과 미즈하라 키코의 열애설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었다. 지난 2010년부터 지드래곤과 미즈하라 키코의 사이에 대해 팬들 사이에서도 말이 많았다. 지드래곤은 일본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이상형에 대해 “K…K…K…”라 답하기도 했다. 이에 팬들은 미즈하라 키코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냐고 추측했다. 뿐만 아니었다. 두 사람은 지속적으로 인스타그램 등을 통해 아이디를 맞추거나 커플을 암시하는 아이템을 게재해 의혹을 얻기도 했다. 또 지드래곤과 미즈하라 키코는 인스타그램에 비슷한 곳을 여행했음을 눈치 챌 수 있는 풍경 사진 등을 게재했다. 이와 더불어 두 사람이 함께 있다는 네티즌들의 목격담이 전해지며 열애설이 이어졌다. 지드래곤과 미즈하라 키코의 열애설이 오랜 시간 지속되며 그 사이 이별설도 있었다. 지난 3월 미즈하라 키코와 일본 배우 마츠모토 준의 열애설이 보도됐기 때문이다. 또한 지드래곤은 우울한 듯한 인스타그램 게시물을 게재해 이별설을 뒷받침하는 근거가 되기도 했다. 하지만 지난 8월 지드래곤의 비공개 인스타그램 계정에는 아이스버킷 챌린지 영상이 게재돼 두 사람의 사랑이 여전하다는 증거가 포착됐다. 지드래곤은 영상에서 다음 참가자로 미즈하라 키코와 그의 동생 유카를 지목했다. 지드래곤은 미즈하라 키코에 대해 “나의 친애하는 키코(My Dear Kiko)”라 말해 소중한 사람임을 입증했다. 지드래곤과 미즈하라 키코 양 측은 열애설이 불거질 때마다 친한 친구일 뿐이라 일축했다. 하지만 8일 한 매체가 두 사람의 데이트를 보도하며 열애설이 재점화되고 있다. 연예팀 chkim@seoul.co.kr
  • [김문이 만난사람] 데뷔 33년 ‘10월의 가수’ 이용

    [김문이 만난사람] 데뷔 33년 ‘10월의 가수’ 이용

    10월이 깊어간다. 이 계절에 가장 생각나는 노래는 무엇일까. 아마 그중 하나가 ‘잊혀진 계절’을 꼽을 수 있겠다. ‘지금도 기억하고 있어요/시월의 마지막 밤을/뜻모를 이야기만 남긴 채/우리는 헤어졌지요/그날의 쓸쓸했던 표정이/그대의 진실인가요/한마디 변명도 못하고/잊혀져야 하는 건가요~’ 30여년 전 발표하자마자 크게 히트를 쳤다. 지금도 10월만 되면 중장년층은 물론 젊은이들까지 한번쯤 떠올릴 만큼 추억의 곡으로 여전히 애창된다. 그랬다. 가수 이용(56)은 ‘10월의 가수’로 혜성같이 등장했고 지금도 그렇게 통한다. 매년 10월이면 1년 중 가장 바쁘게 움직이는 가수이기도 하다. 그도 그럴 것이 이맘때가 되면 라디오 등에서 가장 많이 선곡되면서 전파를 타고 여기저기에서 출연요청이 쇄도한다. 감수성이 절절한 가사 내용과 특유의 가창력 있는 목소리가 10월과 딱 맞아떨어지는 느낌을 선사한다. 지난 1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공원에서 그를 만났다. 나무 사이로 쏟아지는 가을 햇살이 따사로웠다. 운동하는 사람들도 있고 공원 벤치에서 사색에 잠긴 사람들도 더러 있다. 나이 지긋한 어르신, 아줌마, 젊은 연인들도 그를 알아본다. 벤치에 같이 앉으면서 “10월은 이용의 달이라 많이 바쁘겠다”고 인사를 건넸다. “맞습니다. 1년 중 가장 바쁜 달입니다. 옛날에는 헬기를 임대해 하루에 제주, 부산, 다시 서울에서 공연 일정을 소화한 적도 있어요. 10월은 1년 중 출연료를 가장 많이 받는 달이기도 합니다(웃음). ” 왜 ‘잊혀진 계절’이 인기가 있는 것일까. 비결을 물었다. 이에 대해 “10월은 더웠다가 시원해지는 계절이다. 또한 단풍과 낙엽을 연상하게 하는데 그 밤이 왠지 쓸쓸해지는 계절이기도 하다. 연인끼리 만남도 있지만 헤어지는 경우도 많으며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잊혀진 계절’을 생각하게 되는 것 같다”고 말한다. 이어 “주한미군이 한국에 올 때 먼저 왔던 고참들이 신참들에게 세 가지를 미리 알려주는데, 첫 번째는 한국의 장마이고, 두 번째는 빨리빨리 문화, 세 번째가 연인끼리 기념하는 날이 많다는 것”이라고 하면서 10월은 결국 연인의 계절이 아니겠느냐고 말한다. 이 곡의 노랫말은 시인이자 작사가인 고 박건호씨가 자신의 실제 이별 경험담을 풀어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낙엽과 함께 ‘그날의 진실했던 표정이 진실인가요~’라고 하면서. 이 노래를 소재로 1984년에 제작된 영화 ‘잊혀진 계절’에 이씨가 직접 출연해 전국적으로 개봉, 60만 관객을 동원했다. “이 노래는 원래 조영남씨한테 주려고 했으나 바쁜 일정으로 약속이 틀어지는 바람에 지구레코드사 사장이 고음을 잘 내는 가수한테 주라고 해서 제가 부르게 됐습니다.” 이씨는 이 노래로 1980년대 초반 조용필을 능가할 만큼 최고의 인기 가도를 달린다. 1982년 MBC 10대 가수 가요제 최고 인기상을 시작으로 그해부터 3년 동안 MBC 10대 가수상을 계속 수상했다. 또한 1982년부터 1983년까지 역시 3년 내리 KBS 가요대상을 수상했다. 뿐만 아니라 1982년 동아일보 ‘올해의 인물’ 선정, 1983년 주한 외신기자 선정 ‘올해의 가수상’ 등을 수상했다. 그동안 평양, 금강산, 개성 등 북한공연을 여섯 차례나 다녀오면서 북한에서도 인기를 얻었다. 그는 “북한 사람들은 ‘잊혀진 계절’에 대해서는 잘 알지만 가수 이용이라는 사람에 대해서는 그렇지 않은 것 같다”며 웃는다. ‘잊혀진 계절’ 외에도 그가 부른 ‘바람이려오’ ‘서울’ ‘첫사랑이야’ ‘후회’ 등의 노래도 한동안 많은 인기를 누렸다. 지금까지 12집의 앨범을 냈으며 자신이 직접 작곡한 노래도 80여곡은 된다. 그 중 김지애의 ‘몰래 한 사랑’, 하춘화의 ‘사랑은 길어요’가 대표적이다. 그는 1956년 3월 경기도 수원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출생신고를 2년 늦게 했다. 13개월 위인 형과 동시에 군대를 가면 안 된다는 이유에서였다. 당시는 6·25전쟁이 끝난 지 얼마 안 된 상황이어서 그런 일을 우려했던 것이다. 아버지는 평북 정주 출생으로 월남 후 육사를 나와 고급 장교로 근무했다. 어머니는 수원여고를 졸업했다. 그가 어릴 때에는 외갓집인 수원에서 자랐다. 외할머니를 친어머니로 여길 정도로 잘 따랐고 많은 사랑을 받았다. 외갓집은 당시 제재소를 운영했는데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부유한 집안이었다. 어머니는 평소 만약 아들 둘을 낳게 되면 첫째는 명문대에 보내 판검사를 시키고 둘째는 가수를 시켰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버지는 엄격한 성품이어서 연예인이 되는 것을 원치 않았다. 어린 시절을 수원에서 지낸 후 인천에서 학창시절을 보냈다. 아버지가 군 전역 후 인천에서 의료사업을 했기 때문이다. 이런 덕분에 이씨는 신장염으로 한동안 고생을 했지만 잘 극복할 수 있었다고 한다. 아버지는 이어 시멘트블록 사업에 손을 대면서 사업을 번창시켜 나갔다. 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아 하루아침에 망하고 말았다. 그러자 가족들이 서울 한남동 빈촌으로 이사를 했다. 이때가 휘문고 2학년 재학때였다. 학비를 대지 못할 만큼 집안 형편이 갑자기 어려워졌고 교회에서 쌀을 타다가 끼니를 때울 정도였다. 그는 이런 사정을 생각해서 등록금 걱정이 없는 육사에 진학하려고 했다. 당시 그의 가방에는 노래책만 있을 정도로 노래를 무척 좋아했다. 결국 고 3때 한 학기등록금을 못 냈다. 학교를 그만두어야 할 판이었으나 때마침 지인의 도움으로 등록금을 내고 고등학교를 겨우 마칠 수 있었다. 대학진학을 포기하고 우선 돈을 벌어야겠다는 생각에 여러 호텔을 전전하며 청소부 겸 노래 부르는 일을 했다. 그렇게 2년을 보낸 뒤 1977년 전방 백골사단에 입대를 하게 된다. 그는 운이 좋게도 이곳에서 ‘백골쇼’ 단원으로 발탁되면서 노래를 하게 된다. 특히 입대동기인 한규철씨와 함께 부른 노래, ‘사랑하는 그대여 날 좀 봐요 날 좀 봐요/날 좀 봐주세요~’라는 ‘밀양머슴아리랑’은 단연 인기였다. 당시 사단장이었던 박세직 장군은 물론 다른 여러 장교한테 많은 칭찬을 받았다. 이런 인연으로 그는 사단통신대대에서 대대장 당번병으로 근무했고 백골쇼가 있을 때마다 수시로 노래를 불렀다. ‘백골쇼’로 사실상 노래에 입문하게 됐으며 ‘노래가 내 인생’임을 깨달았다. 33개월 만에 만기제대한 그 해 11월 대학입학 예비고사에서 240점을 받고 연세대에 응시했으나 낙방하고, 서울예전에 전체 수석으로 입학했다. 대학 1학년 때 ‘국풍81’ 가요제에서 금상을 수상하면서 정식 데뷔하게 된다. 그는 학교의 명예를 빛낸 공로로 서울예전 재학 내내 ‘동랑 유치진’장학금을 받았다. 졸업 후 ‘바람이려오’와 ‘잊혀진 계절’을 불러 여기저기에서 ‘가수왕, 가수왕’이라는 찬사를 받으며 단박에 인기가수 반열에 올랐다. 그러다가 그는 절정의 인기를 뒤로하고 1985년 홀연히 미국으로 떠났다. 예기치 않은 소문에 휩싸여 모든 것을 잠시 내려놓고 공부나 할 생각으로 템플대 음대에 진학했다. 재학 중 부모 같은 테일러 교수를 만나면서 마음의 평정을 되찾아 음악공부에 전념했다. 이때 ‘몰래한 사랑’을 작곡했고 노래가 아주 좋다는 평가와 함께 A플러스 장학금을 받았다. 이 무렵 아버지의 건강이 좋지 않아 귀국했다. 그는 1988년 4월 아버지로부터 일생일대의 중요한 유언을 듣게 된다.“ 아버지께서는 ‘네가 가수생활을 하다가 스캔들이 난 거니까 다시 가요계에 컴백해서 명예를 회복하라’고 하셨어요. 아들이 가수가 되는 것을 원치 않았던 분이 세상을 떠나기 직전에 ‘가수 컴백’이라는 말씀을 해 주신 겁니다.” 이때부터 그는 하루에 밤 무대를 아홉 군데나 뛰어다니며 노래를 열심히 불렀다. 그렇게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자 조그마한 집이라도 장만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천에 있는 한 아파트분양사무실에 가서 ‘3순위라도 없나요’라고 사정을 해 어렵게 분양을 받았다. 밤 무대에서 번 돈으로 착실히 중도금을 마련해 갚아나갔다. 입주 6개월 전 한 지인으로부터 “과천에 단독주택 하나가 경매 나온 것이 있으니 관심을 가져 보라”는 얘기를 들었다. 때마침 부인이 알레르기 천식을 앓아 공기 좋은 데 살았으면 하는 생각을 하던 터였다. 그렇게 해서 분양받은 아파트를 중간에 팔고 은행 융자금을 보태 40대에 들어서 처음으로 집을 장만했다. 그 무렵 방송출연을 하게 되면서 꼬였던 노래인생도 서서히 풀렸다. 2003년 신곡 ‘후회’가 방송 1위 곡에 올랐고 2004~2005년 MBC라디오 두시만세 ‘꽁노래방’에 고정 게스트로 출연하는 것을 시작으로 라디오와 TV방송 프로그램 진행을 맡았다. 그러면서 여기저기에서 출연요청이 쇄도했고 바쁜 가수생활로 다시 한번 전성기를 걷게 됐다. 그는 틈틈이 양로원과 고아원, 재소자를 위한 봉사활동을 벌인다. 선행시민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앞으로 그는 무슨 계획을 갖고 있을까. “저는 피아노, 기타, 하모니카 등 레슨을 한 번도 안 받고 음악을 해왔습니다. 직장을 그만둔 베이비부머들에게 희망을 주는 역할을 하고 싶습니다. 그분들을 위해 젊어지라고 외치며 노래를 부르고 싶습니다. 그것이 곧 저의 의무라고 생각하고 있지요. 젊은 생각은 또 다른 제3의 인생을 찾게 하지 않을까요.” 선임기자 km@seoul.co.kr 가수 이용은 수원에서 태어나 1975년 휘문고를 졸업했다. 백골사단에서 만기제대한 뒤 서울예술대학을 졸업했다. 1985년 미국으로 건너가 템플대에서 음악공부를 했다. 1981년 ‘바람이려오’로 데뷔했다. 주요 히트곡으로는 ‘잊혀진 계절’ ‘서울’ ‘사랑, 행복 그리고 이별’ ‘태양의 저편’ ‘첫사랑이야’ ‘후회’ 등이 있다. 1981년 대학 가요제 금상 수상을 시작으로 1982년 MBC 10대 가수 가요제 최고 인기상(가수왕 상), 1982~1984년 MBC 10대 가수상, 1982~1984년 KBS 가요대상, 1982년 동아일보 ‘올해의 인물’ 선정. 1983년 제2회 가톨릭 가요 대상, 1983년 주한 외신기자 선정 ‘올해의 가수상’, 1983년 전국 프러덕션 연합회 주최 가수상, 1984년 선데이서울 주최 ‘올해의 7대 가수상’, 1989년 미국 내쉬빌 초청 가요제 본상 (내쉬빌 시장상), 1992년 서울 선행시민상, 1993년 환경처장관 유공자 표창 등을 받았다. 지금까지 12집 앨범을 냈다.
  • “추사 김정희는 한류의 원조… 지금도 ‘법고창신’ 의미 되새기게 해”

    “추사 김정희는 한류의 원조… 지금도 ‘법고창신’ 의미 되새기게 해”

    #1. “나는 옥에 갇혀 있고 바다 밖으로 귀양 가 있으나 아직 마음이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지금 한낱 부인의 죽음에 놀란 가슴이 무너져 마음을 겉잡을 수 없으니 어찌 된 까닭입니까.” 3년간 제주의 됫박만 한 한칸 방에 갇혀 지낸 추사 김정희(1786~1856)는 급작스러운 부인 예안 이씨의 죽음을 편지로 접하고 땅을 치며 통곡한다. “홀로 부인만 죽음이 있지 않을 수 있으리오”라면서도 죽음 곁으로 달려가는 것조차 허락되지 않은 통한을 속으로 삭여야 했다. ‘세한도’나 ‘고사소요’ ‘서원교필결후’ 등 9년의 제주 유배 생활이 남긴 작품들이 뼈대만 남은 앙상한 등걸처럼 거칠고 굳센 이유다. 최완수(72) 간송미술관 한국민족미술연구소장은 “당시 60세를 바라보는 추사의 작품들은 한티끌도 군더더기를 용납하지 않는 지고의 경지를 보여준다”며 “이렇게 창안해낸 고예체는 조화롭고 변화무쌍할 뿐”이라고 말했다. #2. “난을 치는 데 세 번 궁글리는 것으로 묘법을 삼아야 하는데 붓을 한번 쭉 뽑고 끝내 버렸구나.” 말년의 추사는 유일한 혈육인 서자 김상우에게 난초 치는 법을 가르쳤다. 이렇듯 추사의 가문인 경주 김씨는 정절을 앞세웠다. 고려 말 충청 관찰사를 지낸 김자수는 조선 개국과 함께 고향 안동으로 내려가 은둔하다 태종이 형조판서로 징소하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러나 이후 경주 김씨는 왕가와 혼인을 거듭하며 외척으로 위세를 누린다. 추사의 아버지 김노경 대에 이르러 풍양 조씨 가문과 손잡고 순원왕후의 섭정에 맞설 정도였다. 이런 집안 배경 속에서 ‘천재 소년’으로 불리며 성장한 추사는 23세에 생원시에 합격하고 이듬해 호조참판인 아버지를 따라 청나라 연경으로 떠난다. 옹방강 등 명망 있는 고증학자와 그 무리를 만나 친분을 쌓으며 금석학을 배워 온다. 추사는 북학의 대가인 박제가를 스승으로 모시고 있던 터였다. 지난 7일 서울 성북구 성북동 간송미술관에서 만난 최완수 소장은 “간송이야말로 한류의 원조”라고 말문을 뗐다. 청나라의 옹방강을 비롯해 그의 제자들이 추사의 글씨를 접한 뒤 “입신의 경지에 이르렀다”며 앞다퉈 작품을 받고자 했기 때문이다. 최 소장은 “비록 한자는 중국에서 들어왔으나 유라시아 대륙의 종착역인 한반도에서 동양문화의 정수를 융합해 새롭게 예술 세계를 완성한 이가 바로 추사”라고 힘줘 말했다. 최 소장과 추사의 인연은 남다르다. 첫 만남은 1972년 봄 보화각(간송미술관의 옛 이름)에서 열린 추사전. 보화각은 1971년 가을 겸재 정선의 작품들로 개관전을 연 뒤 이듬해 봄, 가을에 걸쳐 온통 추사로 전시를 도배했다. “처음에는 단순히 추사의 종가가 충남 예산에 자리해 같은 고향이란 생각에 관심을 기울였는데 서체를 보면 볼수록 빠져들었어요.” 이 화려한 전시는 32세의 젊은 미술사학자의 눈길을 사로잡았고 4년 뒤 추사의 후손인 김익환이 1934년 펴낸 ‘완당선생집’을 처음으로 번역하도록 이끈다. 추사의 글과 작품을 담은 ‘추사집’(현암사)이다. 이후 간송미술관 연구실장으로 재직한 그는 평생 추사의 생애와 작품을 연구해 왔고, 최근 새 책 수준으로 재구성한 개정판을 38년 만에 내놨다. 금석학, 경학, 불교학 등을 아울러 애초 393쪽이던 분량이 768쪽으로 곱절 가까이 늘었다. “사실은 출판사가 귀찮게 해 절판을 선언했어요. 당시 함께 책을 냈던 동갑내기 출판사 회장님은 이미 고인이 됐습니다. 연보와 도판을 보충하고 초판에 없던 해제 논문 등을 추가했어요.” 최 소장은 간송미술관에서 오는 12일부터 26일까지 ‘추사정화’(秋史精華)전을 연다. 추사체의 형성 과정을 보여주는 기획전이다. 87회 정기전으로 올 3월부터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외부 전시를 여느라 반년간 건너뛴 정기전을 재개한다는 의미도 지녔다. 전시에는 36세 추사가 옹방강의 서체를 따라 중후하게 써 내려간 행서대련을 비롯해 정치적으로 은둔해 지내던 49세 때 선사가 보낸 차에 대한 보답으로 굵직하게 써 보낸 ‘명선’, 70세로 사망하던 해 봉은사에 은거하며 썼던 행서대련에 이르기까지 굴곡진 일생을 통해 완성된 작품 40여점이 등장한다. 최 소장은 “추사는 중국 고대 상형문자부터 전한을 거쳐 청나라에 이르기까지 수천년간 이어져 온 중국 서법을 다 섭렵한 뒤 법고창신을 통해 추사체를 만들었다”며 “추사체는 서예적 의미를 넘어 지금 이 시대에도 법고창신의 의미를 되새기게 한다”고 말했다. 오상도 기자 sdoh@seoul.co.kr
  • 차승원 공식입장 “차노아, 마음으로 낳은 아들.. 후회 없다”

    차승원 공식입장 “차노아, 마음으로 낳은 아들.. 후회 없다”

    차승원의 소속사 YG엔터테인먼트는 6일 오후 “차승원 씨는 22년 전에 결혼을 하였고, 당시 부인과 이혼한 전 남편 사이에 태어난 세 살배기 아들도 함께 한 가족이 되었습니다”라고 공식입장을 밝혔다. 이어 “차승원 씨는 노아를 마음으로 낳은 자신의 아들이라 굳게 믿고 있으며 지금도 그때의 선택을 후회하지 않는다는 입장”이라고 전했다. 차승원 공식입장에 차노아와 더불어 차승원 부인 이수진까지 화제가 되고 있다. 과거 이수진은 PC통신을 통해 차승원과의 첫만남부터 차노아 육아, 신변잡기 등의 글을 올리며 유명해졌고 이후 ‘연하 남자 데리고 아옹다옹 살아가기’라는 에세이를 발매하기도 했다. 당시 이수진 글을 살펴보면 나이트에서 처음 만난 차승원에게 첫눈에 반했고 그에게 어필하기 위해 노력했으나 결정적으로 다시 만난 것은 성당에서였다. 이수진은 친구 동생이 영세를 받는다고 해서 성당에 갔는데 그 동생 남자친구와 함께 있던 사람이 차승원이었다는 것. 이수진은 차승원의 나이를 알고 마음을 접으려 했으나 나이트클럽에서 또다시 차승원을 만났고 차승원이 연락처를 물어와 인연을 맺게 됐다. 연예팀 seoulen@seoul.co.kr
  • [이슈&논쟁] 공무원연금 정부 개혁 방향

    [이슈&논쟁] 공무원연금 정부 개혁 방향

    정부가 재정 위기에 놓인 공무원연금 개혁안을 내놓았다. 공무원노조를 비롯해 각계각층에서는 다양한 논의가 쏟아지고 있다. “개혁은 필요하지만 이번 정부 개혁안은 문제가 많다”는 비판론도 만만찮다. 주은선 경기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정부가 목표로 하는 것은 공적연금 축소와 사적연금 확대일 뿐’이라고 비판한다. 공공성에 기반한 노후 소득보장 권리를 개혁론의 중심에 둬야 한다고 강조했다. 반면 김현숙 새누리당 위원은 재정 적자 문제와 너무 높은 보장률 등을 지적하며 고통 분담이 불가피하다는 점을 지적했다. 그는 국민연금과 공무원연금의 형평성과 함께 공직에 대한 국민의 신뢰회복을 위한 방안으로서 공무원연금 개혁을 역설했다. [贊]김현숙 새누리당 의원 “저부담 고급여 수급 재정적자 불가피…10년간 53조 국민혈세로 메워야 하나” 최근 들어 공무원연금개혁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이 날로 커지고 있다. 공무원 노조 측은 강한 반발을 표시하고 있지만, 이런 노조의 태도를 바라보는 국민들의 시선이 그리 달가워 보이지는 않는다. 사실 공무원연금개혁은 비단 어제오늘의 문제가 아니었다. 앞서 1995년 개혁을 시작으로 몇 차례 대대적인 개혁이 시도됐지만 매번 공무원노조의 반대와 정부의 셀프개혁 방식으로 인해 결국은 수박 겉핥기에 그쳐온 것이다. 그 결과 공무원연금 재정의 적자규모는 지금까지도 확대일로에 있으며, 이제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가 돼 버렸다. 그 와중에 지금은 우리나라뿐 아니라 전 세계 경제가 저성장 기류에 빠지면서, 국민 모두가 힘든 시기를 겪고 있다. 그 과정에서 국민연금보다 상대적으로 매우 유리한 공무원연금의 적자를 메우기 위해 보전해 줘야 하는 금액이 내년부터 3조원이 넘고, 향후 10년 동안 약 53조원의 재정을 투입해야 한다고 하니 국민들은 상대적 박탈감을 느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를 내버려뒀을 때 전반적인 충당부채 추정치는 거의 500조원 가까이 된다. 더구나 연금 총액과 보험료 총액을 나눈 수익비를 비교해 보면, 공무원연금의 수익비는 약 2.4이지만 국민연금의 수익비는 약 1.6에 불과하다. 이를 방증하듯 최근 한 주요 언론사가 실시한 여론조사에 의하면, 국민의 70% 이상이 공무원연금 개혁에 찬성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실 이와 같은 국민 여론이 아니더라도, 현재의 공무원연금제도는 심각한 저부담·고급여 수급 구조로 인해 장기적으로는 재정 문제를 발생시킬 수밖에 없다. 공무원은 재직 시절 공무원연금공단에 평균 1억 4000만원을 납입하고 퇴직하면 5억원이 넘는 연금을 받는다는 분석도 나왔다. 여기에 우리 사회의 급속한 고령화 추세가 문제를 더욱 악화를 더욱 가속화시킨 것이다. 공무원연금개혁에 대해 공무원노조는 외환위기 당시 정부가 공무원연금 기금을 목적에 맞지 않게 일정 부분 사용했다는 점, 공무원의 낮은 임금 수준 등을 근거로 반론을 제기하고 있다. 그러나 정부가 공무원연금기금을 목적에 맞지 않게 사용했던 것은 일정부분 사실이지만 지금까지 보전한 약 9.8조원의 공무원연금 적자규모, 그리고 향후 발생할 적자규모를 고려한다면 이는 개혁을 멈출 수 있는 근거가 되지 못한다. 또 공무원의 낮은 임금수준도 지난 90년 이후 꾸준히 현실화되고 있다는 점, 60세라는 안정적인 정년보장을 고려한다면, 이를 근거로 공무원노조가 국민들을 설득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사실 공무원연금은 매년 2조원 이상의 적자를 내 왔고 그 적자가 해가 갈수록 눈덩이처럼 불어나 이를 국민들의 혈세로 메워온 처지다. 또 이를 앞으로도 계속 메워 가야 해 국가재정에 엄청난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는 실정이다. 국민 혈세가 매년 3조~4조원, 심할 때는 몇십조원씩 드는 해도 있다. 앞서 어느 정부도 공무원들의 반발과 선거에서의 악영향을 이유로 공무원연금 개혁을 결행하지 못했던 게 사실이다. 박근혜 정부와 새누리당이 이를 감수하면서까지 공무원연금 개혁에 착수한 것은 어찌 보면 악역을 떠맡은 측면도 있다. 현재 안전행정부에서 공무원연금 개혁안을 준비하고 있다. 그러나 과거 정부가 직접 실시한 공무원연금 개혁이 셀프개혁이라는 비판을 받으며 결국 실패로 돌아간 점을 고려할 때 혁신적이고 강도 높은 개혁안이 아니라면 국민들이 납득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리고 제출된 안에 대해서 새누리당은 당정협의를 통해 공무원 노조는 물론 각계각층의 의견을 수렴하는 절차를 거칠 것이다. 이미 1988년 도입된 국민연금은 20년 만에 소득대체율을 70%에서 40%로 인하하는 불이익을 감수했다. 이제 공무원 사회도 한발 양보하고 자녀 세대들에게 부담이 되지 않게 고통을 분담하는 자세로 공무원연금 개혁이라는 폭탄 돌리기를 멈추는 데 동참해야 할 것이다. [反]주은선 경기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공적연금 축소, 사적연금 확대는 안돼…기금없이 퇴직연금 늘리면 재정 악화” 공무원연금 개혁의 필요성에는 반대하지 않는다. 다만 박근혜 정부의 공무원연금 개혁 추진에 대해선 문제가 많다. 정부가 개혁안을 폐쇄적으로 논의하고 있는 마당에 내용에 대한 비판이 가능할까. 그러나 공무원연금 태스크포스(TF) 논의 내용과 한국연금학회 발표안의 접근 방식을 논하는 것은 가능하다. 우선 공무원연금 개혁을 통해 현재 공무원연금이 직면한 문제를 합리적으로 풀어나가는 것은 정부의 목표가 아닌 것 같다. 정부는 공적연금 축소와 사적연금 확대라는 방향 속에서 공무원연금 급여 삭감을 추구하고 있다. 그 논리는 공무원연금과 국민연금의 형평성이며, 제시하는 방안은 공무원연금 급여를 국민연금 수준으로 낮추는 것이다. 물론 형평성은 중요하다. 문제는 하필이면 ‘저급여’ 상황인 국민연금이 형평성을 맞추는 기준이라는 것이다. 국민연금의 노령연금급여액 평균은 30만원대에 불과해 제대로 된 소득보장 기능을 수행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2007년 국민연금 급여를 대폭 삭감한 결과, 30년 가입 때 소득대체율은 30%에 불과하며, 실질소득대체율은 25% 이하다. 정부는 이를 사연금으로 메우도록 권장한다. 그럼에도 국민연금의 넓은 사각지대와 저급여 문제는 퇴직연금과 개인연금으로 보완되지 않는다. 그 결과가 바로 49%를 넘는 노인 빈곤율이다. 이런 국민연금을 따라 배워야 할 대상으로 삼아야 할 것인가. 2010년 공무원연금 개혁 이후 공무원연금은 30년 기여 때 평생 평균소득의 약 57% 수준으로 하향 조정됐다. 많은 복지국가에서 이미 보장하는 수준이다. 지금 한국의 노인복지 현실을 볼 때 기초연금과 국민연금 조합이 공무원연금을 벤치마킹 대상으로 해 형평성을 추구하는 것이 더 적합하지 않은가. 공적연금 개혁이 연금 급여의 적절성을 희생하면서까지 이뤄져서는 안 된다는 것은 연금개혁의 중요 원칙이다. 정부안은 공무원들에 대한 공적연금 축소를 퇴직수당 확충을 통해 보완하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별다른 적립기금 없는 퇴직연금 확대는 재정상태를 악화시킨다. 퇴직수당을 퇴직연금으로 돌린다면, 정부의 퇴직연금 기여분 8.3%를 굳이 사적연금에 투입해야 하는 이유도 모호하다. 공적연금이 가지는 인플레 대비 급여 안정성, 책임성, 재분배 가능성과 퇴직연금의 불안정성을 대비해볼 때 이는 의아하다. 같은 비용을 들여 공무원에게 불안정한 연금을 제공하는 것이 과연 국민에게 도움이 되는 길일까. 공무원연금 개혁은 갈 길이 멀다. 우선 어느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것은 재정적 지속가능성을 높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때의 원칙은 사용자로서 정부, 가입자, 은퇴자의 재정 책임을 명확히 하는 것이다. 우선 7%인 피용자 보험료와 11.2%인 사용자 보험료를 올려야 한다. 민간 부문 사용자의 퇴직금 부담분 8.3% 책임을 정부가 오랫동안 회피했지만 이만큼의 기여 책임은 필수적이다. 또 기여율 상한 제거와, 노사 기본 기여율 7% 인상도 검토할 수 있다. 더불어 은퇴자들의 재정책임 분담도 불가피하다. 최고급여액 규제는 강화될 필요가 있으며 물가조정 방식도 변경 가능하다. 또 공적연금임에도 재분배 장치를 결여하고 있는 것은 공무원연금의 큰 문제점이다. 2010년 연금개혁 이후 하위직급 공무원들의 급여 수준은 국민연금에 비해 큰 이점이 없다. 추가 급여 하락은 부당하다. 재분배 장치의 도입을 통한 내부 형평성 확보가 필요하다. 공무원연금의 지속 가능성과 합리성 확보, 평등의 제고는 공적연금 중심의 노후보장 원칙에서 가능하다. 적절한 수준의 노후보장은 특혜가 아니다. 사회적 권리이다. 아울러 국민연금이든, 공무원연금이든 어떤 공적연금에서든 당연히 추구해야 할 목표다. 기초연금 개혁에서 정부는 소득, 세대에 따른 국민 분할을 추구했다. 공무원연금 개혁을 통해서는 공공과 민간 사이의 대립을 조장한다. 이는 국민연금 인상을 통한 적정 노후보장 가능성의 포기이자 복지국가 전망의 포기를 낳는다. 서로의 권리를 지켜주는 협력이 필요하다. ‘바닥을 향한 질주’를 멈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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