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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유없는 괴성·욕설… ‘중증 틱장애’는 장애입니다

    이유없는 괴성·욕설… ‘중증 틱장애’는 장애입니다

    “아들이 크게 소리를 지르고 발로 마구 바닥을 구르는 바람에 서울 아파트를 떠나 경기도 양평의 단독주택으로 이사를 해야 했습니다. 가족들은 지금도 매일 아들이 잠든 뒤에야 평화를 찾습니다.” 10년째 ‘투렛 증후군’으로 치료를 받고 있는 이모(24)씨의 아버지는 지난 6월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2심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해 이같이 말했다. 틱 장애는 특별한 이유 없이 얼굴이나 목 등 신체 일부분을 빠르게 반복적으로 움직이거나(운동 틱), 이상한 소리를 내는(음성 틱) 증상이다. 10세 내외 연령대에서 처음 나타난다. 운동 틱과 음성 틱 증상이 1년 넘게 심한 정도로 복합적으로 나타나는 경우 투렛 증후군으로 분류된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2013년 1만 6621명이 틱 장애로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다. 투렛 증후군은 1만명당 4~5명 정도, 전체 2만명에 육박하는 것으로 의료계는 추산하고 있다. 이씨는 13세에 병원에서 투렛 증후군 진단을 받았다. 대형병원을 찾아다니며 치료를 받았지만 증상은 나아지지 않았다. 친구들과 대화하던 중 괴성을 지르거나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선생님에게 욕설을 내뱉기도 했다. 이씨는 중·고교 생활 대부분을 양호실이나 특수반에서 보냈고, 이후 대부분 집에서만 생활했다. 병역도 면제받았다. 이씨의 병세가 나아지지 않자 이씨 가족은 2014년 양평군에 “일상생활과 사회생활에 상당한 제약을 받고 있다”며 장애인 등록 신청을 했다. 장애인 복지법은 등록된 장애인에 대해 재활상담과 생업지원 등을 제공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장애인연금과 장애인 직업 재활 등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양평군은 ‘시행령에서 규정하는 15가지 장애에 투렛 증후군은 포함돼 있지 않다’며 신청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씨 가족은 지난해 “헌법의 평등 원칙에 위반된다”며 소송을 냈다. 1심 재판부는 “국가는 한정된 재원을 가진 만큼 일정한 종류에 해당하는 장애인을 우선 보호한 것은 평등 원칙에 위반된다고 보기 어렵다”며 이씨의 청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러나 서울고법 행정2부(부장 이균용)는 1심과 달리 원고 승소 판결을 했다고 21일 밝혔다. 투렛 증후군을 국가가 법으로 지원해야 할 대상으로 인정한 법원의 첫 판결이다. 2심 재판부는 “이씨가 틱 장애 때문에 일상생활에서 얻는 제약이 중대한데도 시행령에 규정되어 있지 않아 법적 장애인으로 등록될 방법이 원천적으로 차단되어 있다”며 “행정입법 부작위로 이씨는 불합리한 차별을 받고 있는 만큼 헌법의 평등 규정에 위반된다”고 봤다. 이씨를 대리한 신태길 변호사(법무법인 천우)는 “하루빨리 투렛 증후군이 시행령상 장애에 포함돼 전국의 중증 투렛 증후군 환자들이 적절한 도움을 받을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소희 국립중앙의료원 정신건강의학과 과장은 “중증 투렛 증후군의 경우 약물치료로도 완치가 잘 되지 않는다”면서 “투렛 증후군 환자에 대한 사회적 인식 개선과 지원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서유미 기자 seoym@seoul.co.kr
  • 블랙핑크 인기가요, 1위 소감 “테디 오빠도 감사하다” 특별한 인연

    블랙핑크 인기가요, 1위 소감 “테디 오빠도 감사하다” 특별한 인연

    블랙핑크 ‘인기가요’ 1위 소감이 화제다. 21일 오후 블랙핑크 SNS에는 블랙핑크 멤버들의 모습이 담긴 영상이 게재됐다. 영상 속 블랙핑크 멤버들은 “안녕하세요. 저희 1위 했어요. 감사합니다. 사랑해요”라며 ‘인기가요’ 1위 소감을 전했다. 이날 방송된 SBS ‘인기가요’에서 블랙핑크는 1위를 차지였다. 첫 1위를 한 블랙핑크 멤버들은 “양현석 사장님 데뷔시켜주셔서 감사하다. 좋은 곡 주신 테디 오빠도 감사하다”고 소감을 밝혔다. 한편 블랙핑크는 21일 오후 방송된 SBS ‘인기가요’에서 아이오아이를 제치고 데뷔곡 ‘휘파람’으로 데뷔 후 첫 1위를 거머쥐었다. 사진 = 서울신문DB 연예팀 seoulen@seoul.co.kr
  • 서현진, ‘또 오해영’ 서블리 매력 다시 보여줄까?

    서현진, ‘또 오해영’ 서블리 매력 다시 보여줄까?

    서현진이 tvN ‘싸우자 귀신아’에 떴다. 21일 ‘싸우자 귀신아’ 제작진은 극중 서현진이 특별 출연한 장면의 스틸 사진을 공개했다. 사진에서 서현진은 주얼리샵 직원으로 변신해 ‘서블리’라는 별명다운 특유의 사랑스러운 미소로 시선을 사로잡고 있다. 또 다른 사진에서 서현진은 옥택연과 다정하게 눈을 맞추고 이야기를 나누는가 하면, 연출을 맡은 박준화 감독과 어깨동무를 하고 엄지를 치켜드는 등 의리를 과시하고 있어 눈길을 끈다. 제작진은 “서현진은 오는 22일 방송하는 13회 방송에 등장해, 존재감 있는 역할로 상큼한 매력을 발산할 예정이다. 서현진은 지난해 ‘식샤를 합시다2’를 함께 했던 박준화 감독과의 인연으로, 바쁜 스케줄에도 특별 출연 요청에 흔쾌히 응했다. 또한 특유의 서글서글한 성격으로 옥택연과도 좋은 호흡을 보여주며 극을 더욱 풍성하게 만들어 줘, 제작진도 굉장히 고마워하고 있다”고 밝혔다. 한편 ‘싸우자 귀신아’ 13회에서는 악귀와의 싸움 이후 봉팔(옥택연)에게 마음을 다시 여는 현지(김소현)의 모습이 그려지며 두 사람의 로맨스에 다시 불을 지핀다. 또한 악행을 거듭해 온 혜성(권율)은 기억을 잃은 현지에게 심리 치료를 핑계로 서서히 접근해, 한층 더 긴장감 넘치는 이야기가 펼쳐질 전망이다. 사진 = 서울신문DB 연예팀 seoulen@seoul.co.kr
  • 태권도 오혜리, ‘조연’ 꼬리표 떼고 이젠 ‘금메달리스트’로

    태권도 오혜리, ‘조연’ 꼬리표 떼고 이젠 ‘금메달리스트’로

    2016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태권도 여자 67㎏급에 출전한 오혜리(28·춘천시청)가 길었던 ‘조연’ 생활을 이겨내고 금메달리스트로 우뚝 섰다. 올해 한국나이로 29세인 오혜리는 여성 태권도 선수 중에서는 드문 경우로, 한국 태권도 선수 중 역대 최고령 금메달리스트가 됐다. 오혜리는 전국체전에서 2010년 대학부, 2011·2012년에는 일반부 73㎏급에서 3년 연속 우승하는 등 저력을 갖춘 선수다. 하지만 올림픽은 물론 국제대회와는 이상하리만치 인연이 없었다. 지난해 러시아 첼랴빈스크 세계선수권대회 73㎏급에서 금메달을 따기 전까지는 2011년 경주 세계선수권대회 같은 체급에서 딴 은메달이 태극마크를 달고 출전한 국제대회 최고 성적이었다. 한국 태권도 선수로는 처음으로 3회 연속 올림픽에 출전해 금메달 2개와 동메달 1개를 수확한 ‘여제’ 황경선(고양시청)의 그늘이 짙었다. 게다가 불의의 부상 등 불운도 겹쳤다. 오혜리는 2008년 베이징 올림픽 국가대표 최종선발전에서 황경선에게 밀렸다. 그 뒤 황경선의 훈련 파트너로 참가해 올림픽 금메달 획득을 도왔다. 2012년 런던올림픽 대표 최종선발전을 앞두고는 허벅지 근육이 파열되는 바람에 제 기량을 펼쳐 보일 수 없었다. 오혜리는 당시 “올림픽은 하늘이 정해준 사람만이 나가는구나”라고 생각할 정도로 상심이 컸다. 2013년 멕시코 푸에블라 세계선수권대회 때는 대표 1차 선발전을 앞두고 발복 인대가 끊어져 역시 제대로 태극마크에 도전하지 못했다. 오혜리는 2014년 춘천시청에 입단한 뒤 지난해 첼랴빈스크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우승하면서 뒤늦게 태권도 인생의 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자신을 지긋지긋하게 따라다녔던 ‘2인자’, ‘국내용’이라는 꼬리표도 뗐다. 8년 전 선배 황경선의 올림픽 금메달을 도운 조연이었던 그는 자신의 생애 처음이자 마지막 올림픽 무대가 될 수도 있는 리우에서는 당당한 주연이었다. 올림픽에 대한 욕심도 드러냈다. 당시 그는 “나는 밑바닥부터 밟아왔지만 경선 언니랑 선의의 경쟁을 해서 끝까지 살아남도록 하겠다”고 각오를 밝혔다. 이후 오혜리는 꾸준히 월드그랑프리 대회 등에 참가하면서 랭킹 포인트를 쌓아 세 번째 도전 끝에 올림픽 출전 기회를 잡았다. 그러고는 리우 시상대 꼭대기에 우뚝 섰다. 오혜리는 리우로 떠나오기 전 “포기했더라면 아마 올림픽 메달에 도전할 기회조차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대회를 준비하는 동안 자메이카 봅슬레이팀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 ‘쿨러닝’을 후배 이대훈(한국가스공사)에게 소개받아 봤다는 그는 “내가 준비는 안 하면서 욕심만 냈던 것은 아닌지 되돌아봤다”고도 했다. 오혜리는 2018년 자카르타 아시안게임까지는 도전해보겠다는 의사를 밝혀왔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행복한 후쿠이, 그곳엔 특별한 비밀이 있다

    행복한 후쿠이, 그곳엔 특별한 비밀이 있다

    이토록 멋진 마을/후지요시 마사하루 지음/김범수 옮김/황소자리/288쪽/1만 5000원 한반도 동해에 면한 일본 중부 호쿠리쿠 지역에 있는 인구 79만명의 작은 지방자치단체 후쿠이현. 일본인들에게조차 생소했던 이곳이 폭발적인 관심을 받는 지역으로 떠오르고 있다. 후쿠이현은 현재 일본 지자체 중에서 가장 많은 ‘1위 타이틀’을 보유하고 있다. 행복도 1위, 초중생 학력평가 1위, 노동자세대 실수입 1위, 정규직 비율 1위, 맞벌이 비율 1위, 대졸 취업률 1위, 서점 숫자(인구 10만명당) 1위, 세계시장 점유율 1위 제품 및 기술 14개, 아동·노인 빈곤율 최저, 실업률 최저…. 한국보다 20년 앞서 저성장과 고령화 늪에 빠진 일본의 지방 도시들은 퇴락해 가고 있다. 고령화는 저출산을 동반하며, 지역공동체는 기반부터 흔들리고 있다. 그런 점에서 후쿠이는 특별하다. 일본 언론들도 지난해부터 후쿠이를 주목하기 시작했다. 아베 신조 총리가 이곳을 찾아 “창의력으로 새로운 활력을 이끌어 낸 이곳의 사업을 전국적으로 확산시키고 싶다”고 말한 이후 ‘후쿠이 모델’ 배우기 열풍이 불기 시작했다. 신간 ‘이토록 멋진 마을’은 일본 내 모든 지표가 1위로 지목하는 가장 핫한 마을인 이곳에 어떤 비밀이 있는지를 탐구한다. ●비결1: 밑바닥까지 철저히 망한 후 역전극 세계 3대 안경 산지로 소문난 후쿠이현 중심 사바에시. 한때 일본 내 안경테 시장의 90%를 점유하며 호황을 누렸지만 1990년대 말부터 저가 중국산에 밀려 900여곳의 안경 회사가 500여곳으로 줄었다. 지역 경제 규모도 1100여억엔에서 500여억엔으로 반 토막 났다. 후쿠이현의 핵심 제조업이었던 섬유산업도 덩달아 추락했다. 거리에는 길고양이와 각종 전단지, 주정뱅이 실업자만 넘쳤다. 사바에시는 소재산업으로 눈길을 돌렸다. 후쿠이 안경 장인들이 협력해 신소재 혁신에 나서 티타늄, 형상기억합금 안경테를 출시했고, 루이비통, 레이벤 등이 라이선스 계약을 맺었다. 이곳 안경테 제조 공정은 지금도 ‘일급비밀’이다. 사양산업이었던 섬유 회사인 핫타타테아미도 신축성·통기성이 뛰어난 ‘더블 라셸 메시’라는 신소재를 만들면서 부활했다. 이 소재로 만든 신발을 신은 여성 마라토너 다카하시 나오코가 2000년 시드니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면서 글로벌 시장에 진출했다. 놀랍게도 혁신의 주인공들은 모두 중소기업이었고 더 강해졌다. ●비결2: 여러분 시장을 하지 않겠습니까 2006년 5월 사바에시 시장이 된 지 2년째인 마키노 하쿠오는 섬유, 안경에 이어 정보기술(IT)을 키우고 싶다는 꿈을 가졌다. 젊은 IT 기업인들은 그에게 “시장님 블로그부터 만드세요. 휴대전화 기종을 바꾸세요”라고 권했다. 마키노 시장이 개설한 블로그에 도쿄에 사는 다케베 미키가 접촉하면서 지역 활성화를 주제로 한 콘테스트 아이디어를 제시했다. 마키노 시장과 다케베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장차 일본을 짊어질 진정한 지도자로 성장하겠다면 일본이 안고 있는 난제인 지역 활성화에 도전해 보지 않겠습니까”라는 시장 공개 모집 광고를 냈다. 도쿄대, 교토대, 와세다대, 게이오대 등 전국에서 청년들이 사바에시로 모여들었다. 그중에서 24명의 시장이 선발됐다. 대성공이었다. 사바에시와 전혀 인연이 없는 학생 시장들이 지역 발전을 위한 많은 아이디어를 냈고 마키노 시장은 이를 정책으로 채택했다. ●비결3:후쿠이만의 자발 교육과 여성 인센티브 저자는 후쿠이현의 직장 환경은 육아에 맞춤형이라고 말한다. 가구당 월평균 수입은 63만 6000엔으로 도쿄를 제치고 전국 1위이며, 여성 1인당 1.61명을 낳고 있다. 나쁘지 않은 출산율이다. 이 모든 게 맞벌이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은 상황에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후쿠이는 여성들이 사업을 하면 공공사업 입찰 우선권을 주는 등 각종 인센티브를 부여한다. 일본 중소기업청은 이를 ‘호쿠리쿠 지역의 맞벌이를 통한 가치창조 모델’이라 부른다. 후쿠이현은 문부과학성이 해마다 실시하는 전국학력평가에서 1·2위를 다툰다. 학원에 다니는 학생 비율은 오히려 전국 평균보다 낮다. 후쿠이의 학교들은 ‘10년 앞을 내다본 수업’을 모토로 한다. 시험 점수가 아닌 사고 능력을 묻는 자체 학력시험을 치른다. 후쿠이의 학교들은 종합적 사고 능력을 중시한다. 저자는 “오랜 기간 빈곤과 실패의 역사를 간직한 지역, 첩첩 산으로 둘러싸여 믿을 것은 사람밖에 없었던 마을, 살아남기 위해 열심히 배우고 지혜로워질 수밖에 없던 후쿠이는 지금 일본을 넘어 세계가 연구하는 지속 가능한 공동체 모델이 됐다”고 말한다. 그는 한국어판 서문에서 “힘겨웠던 경험은 미래를 만드는 중요한 동력이며, 이 점에서 한국 사람들이 저출산 고령화 시대를 어떻게 이겨 낼지 응원하고 싶다”고 썼다. 안동환 기자 ipsofacto@seoul.co.kr
  • [커버스토리] 윽박지르고 거짓 인연 만드는 민원인… “심부름센터 직원과 다름없죠”

    여야 국회의원 대신 각종 민원을 처리해야 하는 보좌진은 ‘심부름센터 직원’과 다름없다고 하소연한다. 이들 대부분은 민원 내용보다 민원인들의 태도 때문에 전전긍긍하는 ‘감정 노동자’이기도 하다. 한 야당 의원 보좌관은 “의원실로 찾아와 다짜고짜 의원을 만나겠다고 해서 ‘안 계신다’고 했더니 ‘의원이 오전 9시 출근, 오후 6시 퇴근해야 하는 것 아니냐. 세금 도둑놈’이라고 큰소리치는 경우도 있었다”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또 다른 보좌관은 “한 지역 주민이 아랫집에서 본드 냄새가 난다고 경찰에 신고해 달라고 해서 신고했는데 결국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면서 “이후 이 주민은 주기적으로 의원실에 전화를 걸어 무리한 요구를 한다”고 난감해했다. 이렇듯 다자고짜 욕설부터 하는 민원인, 버럭 화를 내는 민원인, 무리한 요구를 하며 “들어주지 않으면 가만히 있지 않겠다”면서 으름장을 놓는 민원인들이 적지 않다고 한다. 하지만 “제 고향이 (의원님과 같은) ○○이다”, “의원님과 △△행사에서 만난 적 있다”, “선거 때 지역에서 몇 표를 끌어다 줬다”는 등 개인적 인연을 들먹이는 탓에 함부로 응대하기도 쉽지 않다는 것이다. 자칫 의원 얼굴에 ‘먹칠’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 국회의장단 소속 의원실 보좌관은 “거짓 인연을 내세워도 이를 지적하면 다른 꼬투리를 잡을까 봐 모른 척 넘어가기도 한다”고 귀띔했다. 특히 밀려드는 민원 탓에 대다수 여야 의원실은 ‘민원 담당자’를 별도로 지정해 두고 있다. 한 민원 담당 보좌관은 “하루 일과의 절반 이상을 민원 전화를 받고 이를 해결하는 데 쓴다”면서 “정작 주어진 업무는 일과 시간이 끝난 뒤에 처리할 수밖에 없다”며 고충을 털어놨다. 여당 중진 의원 보좌관은 “민원을 무리하게 처리하려다 보면 큰일난다. 특히 공공기관은 내부게시판에 청탁 내용을 올리기도 한다”면서 “민원은 선거 직후 특히 많고 선거가 닥칠 때는 안 해 주면 두고 보자는 식”이라고 말했다. 야당 의원실 소속 보좌관은 “업무 부담이 매우 크다. 되든 안 되든 성의를 보여야 하기 때문에 안 되면 왜 안 되는지, 어떤 절차를 거쳐야 하는지 등을 자세히 설명해 줘야 한다”면서 “스스로 해결할 수 없어 의원을 찾는 민원도 적지 않아 ‘해결’보다는 ‘위로’를 잘 해드리는 게 효과적인 상황이 더 많다”고 설명했다. 김민석 기자 shiho@seoul.co.kr 김진아 기자 jin@seoul.co.kr 강윤혁 기자 yes@seoul.co.kr
  • 신아람 ‘오심 1초’ 상대 하이데만, 이신바예바도… 日무로후시 ‘고배’

    신아람 ‘오심 1초’ 상대 하이데만, 이신바예바도… 日무로후시 ‘고배’

    유승민(34)과 함께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선수위원으로 8년간 활동할 3명이 18일(현지시간) 새롭게 선출됐다. 선수위원에는 러시아 도핑 파문에 연루돼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출전이 금지당한 ‘미녀 새’ 옐레나 이신바예바(34·러시아)와 베이징 올림픽 여자 펜싱 에페 개인 금메달리스트인 브리타 하이데만(34·독일), 런던 올림픽 수영 남자 평영에서 우승한 다니엘 주르터(27·헝가리) 등이 포함됐다. 장대높이뛰기 세계기록 보유자인 이신바예바는 2004년 아테네올림픽, 2008년 베이징올림픽, 세계육상선수권대회에서 다섯 차례 우승했다. 2005년 장대높이뛰기 종목에서 여자 선수로는 처음으로 5m 벽을 넘어섰다. 하지만 러시아 육상 국가대표팀 도핑 파문에 연루된 것이 논란거리다. 이번 리우올림픽에서도 출전 정지당하는 바람에 선수로 참여하지 못했다. 하이데만은 한국과도 인연이 있는 선수다. 4년 전 런던올림픽 펜싱 개인전에 출전했던 신아람(30·계룡시청)은 이른바 ‘멈춘 1초’로 불리는 오심 때문에 결승에 진출하지 못했다. 당시 상대 선수가 바로 하이데만이었다. 하이데만은 결승에서 져 은메달을 땄다. 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에 출전한 신아람은 한 인터뷰에서 “런던올림픽 이후에도 각종 대회에서 자주 만났다”면서 “(오심은) 그 선수 잘못이 아니다. 선수위원으로 뽑혔으면 좋겠다”고 밝힌 바 있다. 한편 육상 남자 해머던지기에서 2004년 아테네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인 무로후시 고지(42·일본)는 1070표로 10위를 기록하며 낙선했다고 교도통신이 보도했다. 무로후시는 런던올림픽 당시 1위를 차지했지만 일본올림픽위원회(JOC)가 지나친 선거운동을 한 것이 문제가 돼 결국 당선 무효가 됐다. 강국진 기자 betulo@seoul.co.kr
  • ‘청춘시대’ 박혜수♥신현수, 볼펜이 이어준 사랑 ‘달달 셀카’

    ‘청춘시대’ 박혜수♥신현수, 볼펜이 이어준 사랑 ‘달달 셀카’

    ‘청춘시대’ 박혜수 신현수 커플의 셀카가 공개됐다. JTBC 드라마 ‘청춘시대’(극본 박연선, 연출 이태곤 김상호)에서 호흡을 맞추고 있는 신현수 박혜수 커플이 두 사람을 만나게 해준 볼펜과 함께한 다정한 셀카 사진을 공개했다. 신현수는 19일 공식 SNS에 ‘청춘시대’ 촬영 현장에서 박혜수와 함께 찍은 셀카를 게재했다. 신현수는 볼에 공기를 빵빵하게 채우는 귀여운 표정을 하며 볼펜을 들고 있고 박혜수 또한 양 볼에 손가락을 갖다 대고 미소를 짓고 있다. 신현수는 “이 볼펜이 그 볼펜이더냐”라고 덧붙여 웃음을 자아냈다. 신현수 박혜수는 ‘청춘시대’에서 각각 윤종열 유은재로 분해 열연 중이다. ‘청춘시대’ 속 두 사람의 만남은 유은재에게 볼펜을 빌린 윤종열이 볼펜을 돌려주지 않고 잃어버리는 악연으로 시작됐다. 소심해 거절도 잘 못하고 손해를 봐도 참던 유은재는 참아왔던 분노를 윤종열에게 표현하며 “볼펜을 돌려달라”고 해 윤종열을 당황케 했다. 이를 계기로 인연이 이어진 두 사람은 20대 초반의 풋풋하고 달달한 연애를 보여주며 시청자들의 연애 세포를 자극하고 있다. JTBC 금토드라마 ‘청춘시대’는 외모부터 성격, 전공, 남자 취향, 연애스타일까지 모두 다른 5명의 매력적인 여대생이 셰어하우스에 모여 살며 벌어지는 유쾌하고 발랄한 청춘 동거드라마다. 매주 금, 토요일 오후 8시 30분에 방송. 이보희 기자 boh2@seoul.co.kr
  • [포토] 여자친구 예린·엄지, 같은 생일 특별한 인연…‘생일라인’ 깜짝 사진 공개

    [포토] 여자친구 예린·엄지, 같은 생일 특별한 인연…‘생일라인’ 깜짝 사진 공개

    걸그룹 여자친구 예린, 엄지가 8월 19일 생일을 맞아 공식 SNS를 통해 함께 찍은 사진을 깜짝 공개했다. 예린과 엄지는 같은 그룹에 소속되 생일이 같은 특별한 인연을 가지고 있다. 공개된 사진 속에는 예린과 엄지가 다정한 모습으로 카메라를 응시하고 있다. 사진=여자친구 공식 SNS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올림픽 여자배구, 세르비아 유력 우승후보 미국 꺾고 첫 결승행

    올림픽 여자배구, 세르비아 유력 우승후보 미국 꺾고 첫 결승행

    리우 올림픽 여자배구 4강전에서 세르비아가 유력한 우승후보였던 미국을 극적으로 꺾고 결승에 올라 은메달을 확보했다. 세르비아는 19일(한국시간) 브라질 리우 마라카낭지뉴 경기장에서 열린 여자배구 준결승전에서 미국에 세트스코어 3대2(20–25 25–17 25–21 16–25 15–13) 역전승을 거뒀다. 세르비아가 올림픽에서 거둔 가장 좋은 성적은 2008 베이징올림픽 5위다. 세르비아가 미국을 꺾고 결승에 진출하면서 세르비아는 중국과 네덜란드 승자와 금메달을 놓고 격돌한다. 금메달을 놓고 다툴 것으로 예상됐던 개최국 브라질이 중국에 덜미를 잡히면서 우승을 손쉽게 이룰 것이라는 전망과 달리 미국은 세르비아에 충격적인 패배를 당하며 올림픽 금메달과 인연을 맺지 못했다. 미국은 1984 로스앤젤레스, 2008 베이징올림픽, 2012 런던올림픽에서 세 차례나 결승에 올랐지만 모두 준우승에 그쳤다. 출발은 미국이 좋았다. 블로킹 6개로 세르비아의 공격을 꽁꽁 묶으며 가볍게 1세트를 따냈다. 하지만 이후 서브리시브가 흔들리면서 공격에 어려움을 겪었고 2, 3세트를 모두 세르비아에 내줬다. 미국은 4세트를 가져가며 승부를 원점으로 만들었다. 미국은 5세트 들어서도 12-10으로 앞서다 세르비아의 주공격수 밀레나 라식의 스파이크와 서브리시브 실수 등으로 순식간에 역전당했다. 이후 세르비아는 티자나 보스코비치의 공격으로 승부을 마무리했다. 이제훈 기자 parti98@seoul.co.kr
  • 이종석 한효주 ‘더블유’, 18.6% 최고 시청률 3번 찍어..“몰입도 최강”

    이종석 한효주 ‘더블유’, 18.6% 최고 시청률 3번 찍어..“몰입도 최강”

    ‘더블유(W)’가 몰입도 최강임을 인증했다. ‘더블유’는 이종석 한효주의 가슴 저릿한 리셋 선언 장면에서 최고 시청률 18.6%를 세 번이나 강탈한 것. 이종석은 ‘웹툰W’의 주인공답게 자신의 숙명대로 살겠다고 다짐했고, ‘인생의 키’ 한효주와 연결된 인연의 끈을 스스로 끊었다. 이 장면들은 18.6%의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며 ‘더블유’ 8회의 최고의 1분으로 선정됐다. 지난 17일 방송된 MBC 수목미니시리즈 ‘더블유’(송재정 극본/ 정대윤 연출/ 초록뱀미디어 제작) 8회에서는 ‘철연주’ 강철(이종석 분)-오연주(한효주 분)의 가슴 저릿한 ‘리셋 이별’ 모습이 그려졌다. 18일 시청률 조사회사 TNMS에 따르면 전날 방송된 ‘더블유’ 8회는 수도권 기준 15%로, 7회 연속 동 시간대 시청률 1위를 기록했다. 최고 시청률 세 번을 찍은 부분은 모든 것이 리셋 되기 전 옥상에서 마지막 대화를 나누는 강철-오연주의 모습(22:53), 잠에서 깨어난 뒤 기억을 리셋 당한 강철과 모든 것을 다 기억하는 연주의 안타까운 모습(22:56~22:57)이 담긴 장면으로, 이는 TNMS 수도권 기준 18.6%를 기록했다. 특히 예측할 수 없는 놀라운 전개와 이어질 수 없는 ‘철연주’ 강철-연주의 안타까운 숙명은 시청자들의 가슴을 저릿하게 만들었고 강철-연주의 폭발적인 감정선이 몰입도를 한껏 높이며 최고 시청률을 세 번이나 달성하는 기록을 세웠다. 전날 방송에서는 강철을 강하게 만들 설정값에 불과했던 가족 몰살의 진범이 나타나 현실세계의 인물인 연주에게까지 협박을 하는 모습이 그려짐과 동시에, 연주가 강철이 사는 ‘웹툰W’의 여주인공이 되면서 웹툰 속에서도 생명력을 가지는 모습이 공개됐다. 이에 강철은 ‘연주도 죽을 수 있다’는 생각에 몸서리쳤고, 등장인물의 역할을 다한 자신의 친구 윤소희(정유진 분)가 사라질 위기에 처해있다는 사실에 두려워했다. 결국 강철은 모든 상황을 제자리로 돌리고 자신에게 주어진 ‘웹툰W’의 주인공이라는 숙명을 다하기로 결심했다. 강철은 연주를 인생의 키로 생각하기 이전, 옥상에서 피습을 당했던 당시로 모든 걸 되돌리려 한 것이다. 존재도 모르는 진범을 찾기 위해 노력했던 그 때의 강철로 돌아가기로 마음을 먹었고, 이에 강철은 연주에게 “두 달 전에 우리가 처음 만난 그때부터 지금 이 순간까지 모두 꿈으로 만들어줘요”라고 부탁했다. 강철의 의지는 어느 때보다 굳건했다. 강철은 연주가 돌아가자마자 모든 걸 꿈으로 바꿔달라고 부탁에 부탁을 거듭했고, 연주는 지금 이 사실을 믿기 힘들어하면서도 그의 부탁을 승낙했다. 그리고 강철이 옥상에서 떨어지며 이야기의 엔딩을 맞았고, 강철은 연주와의 모든 추억을 잊은 채 눈물을 흘리며 꿈에서 깨어났다. 하지만 연주는 모든 것을 기억하고 있었고, 이는 더욱 안타까움을 주며 시청자들의 가슴을 더욱 아프게 만들었다. 한편 ‘더블유’는 현실세계의 초짜 여의사 오연주가 우연히 인기절정 ‘웹툰W’에 빨려 들어가 주인공 강철을 만나면서 이로 인해 스펙터클한 사건들이 연쇄적으로 일어나며 색다른 긴장감을 선사할 로맨틱 서스펜스 멜로 드라마다. 사진=‘더블유’ 방송화면 캡처 연예팀 seoulen@seoul.co.kr
  • [한길 큰길 그가 말하다] 미술자료전문가 김달진 관장

    [한길 큰길 그가 말하다] 미술자료전문가 김달진 관장

    “국립현대미술관 첫 출근일은 1981년 9월 23일, 결혼 날짜는 1982년 12월 20일입니다. 아직 기사 마감 전이면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인터뷰 다음날 그가 이런 내용의 이메일을 보내왔다. 인터뷰 때 정확한 날짜를 얘기하지 못한 게 마음에 걸렸던 모양이다. 이후로도 여러 차례 도움 될 만한 정보와 자료들을 문자와 이메일로 알려 왔다. 참 꼼꼼하고 철두철미하다 싶었다. 김달진미술연구소와 김달진미술자료박물관을 이끌고 있는 김달진(61) 관장은 그런 사람이다. 아마도 이런 섬세함과 집요함이 한국 근현대 미술자료 수집과 연구 분야의 독보적 존재로 지금의 그를 있게 했으리라. -“신문 쪼가리 모아서 밥은 어떻게 먹고살려는지…쯧쯧.” 어른들은 하나같이 혀를 찼다. 그럴 만도 했다. 한창 공부에 집중해야 할 고등학생이 신문이건 잡지건 서양 명화가 실린 자료라면 닥치는 대로 오려서 스크랩하는 데 정신이 팔려 있으니 나중에 밥벌이나 제대로 할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섰을 게다. 나도 앞날이 걱정되지 않는 건 아니었지만 당장은 좋아하는 취미가 우선이었다. 비록 인쇄물이긴 해도 르누아르, 피카소, 천경자, 박수근의 그림을 모으는 기쁨은 컸다. 고교를 졸업할 때 내가 모은 미술자료는 스크랩북으로 10권이나 됐다. 결과적으로 이 자료들이 내 밥벌이의 든든한 밑천이 됐다. -충북 옥천에서 5남 1녀의 막내로 태어난 나는 초등 4학년 때 어머니를 여읜 뒤 셋째 형님을 따라 대전의 중학교로 진학하면서 수집에 관심을 갖게 됐다. 시작은 껌종이, 담뱃갑, 우표 등이었다. 기념우표가 나오면 가장 먼저 우체국 창구로 달려가곤 했다. 그러다 ‘주부생활’ ‘여원’ 등 잡지에 실린 세계 명화를 접하며 새로운 세계에 눈을 뜨게 됐다. 서울로 올라와 고등학교를 다니면서 본격적인 수집에 나섰다. 틈만 나면 헌책방이 많았던 청계천 6, 7, 8가를 돌며 미술전집 등을 샀다. 서점 주인에게 그림 한 장을 뜯어서 팔라고 조르기도 했다. 1972년 고 3 여름 경복궁 국립현대미술관에서 본 ‘한국근대미술 60년전’은 내 인생의 전환점이 됐다. 인쇄물로 된 서양의 명화만 보다가 우리 근대미술의 주옥같은 작품을 실물로 보니 그 감동이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이걸 네가 직접 다 모은 거냐? 참으로 기특하구나.” 고 3때 당시 홍익대박물관장이던 이경성 교수님을 만나 뵈었다. 막연하나마 미술 관련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에 미술계와 학계, 출판계에 계신 분들에게 무작정 편지를 써서 보냈는데 뜻밖에도 이 교수님이 한번 보자고 하셔서 한달음에 달려갔다. 떨리는 가슴을 애써 누르며 큰절을 한 뒤 가방에 싸 간 스크랩북 10권을 보여 드렸다. 교수님은 깜짝 놀라시며 “열심히 하라”는 격려의 말씀과 함께 등을 두드려 주셨다. 천군만마를 얻은 느낌이었다. 이때의 만남이 나중에 큰 인연으로 이어졌다. -고교를 졸업하고 서울 인사동 전시장을 돌며 자료를 수집하던 시절 동대문도서관에서 월간 ‘전시계’라는 잡지를 알게 됐다. 잡지사에 편지를 보내 일하고 싶다고 했더니 최학천 사장이 전화해서 만나자고 하더라. 지금의 남대문경찰서 인근 초원다방에서 만났는데 대뜸 “잡지 일은 어렵다. 사환으로 심부름도 하면서 취재하러 다녀야 한다. 월급은 따로 없고 교통비 정도만 줄 수 있는데 그래도 하겠느냐”고 물었다. 두말없이 하겠다고 했다. 그때가 1978년이다. 취재해서 기사 쓰고, 미술자료 기획물도 연재하고, 편집일도 배우며 신나게 일했다. 하지만 1980년 언론사 통폐합 바람으로 잡지가 폐간되면서 일자리를 잃게 됐다. -“청소부라도 좋습니다. 미술관에서 일하고 싶습니다.” ‘전시계’가 폐간된 뒤 청주에서 누님이 운영하는 레스토랑에서 일을 도우며 지내던 1981년 이경성 교수님이 정년퇴임하고 민간인으로는 처음으로 국립현대미술관장에 취임하셨다는 기사를 봤다. 당장 편지를 썼다. 관장님은 흔쾌히 나를 받아 주셨다. 당시 미술관 직원은 30명에 불과했다. 전시과, 서무과 2개만 있었고 큐레이터란 직제는 아예 없었다. 나중에 국립현대미술관장을 지낸 오광수 선생이 그때 전문위원으로 큐레이터 역할을 했는데 전문위원실에 책상 하나를 얻어 자료 수집을 담당했다. 하루 4500원 일당의 임시 일용직이었지만 세상을 다 얻은 듯 기뻤다. -매주 금요일마다 출근부에 사인한 뒤 인사동, 사간동을 돌아다니며 자료를 모았다. 그전까지 미술관은 보내오는 자료만 수집했는데 그렇게 해선 안 될 것 같았다. 그때 얻은 별명이 ‘금요일의 사나이’다. 한쪽 어깨엔 가방을 메고, 다른 손엔 쇼핑백을 든 채 신문사와 전시장을 쏘다녔다. 화랑 관계자들은 “뭐하러 이걸 가지고 가느냐. 다 보내줄 텐데”라고 의아해했지만 내 눈으로 직접 전시장에 걸린 그림과 도록에 실린 작품을 하나하나 확인해야 직성이 풀렸다. 하도 집요하게 파고들다 보니 모 신문사 기자로부터 “편집광적이다”라는 말까지 들었지만 그런 사소한 오류들이 자꾸 눈에 띄는 걸 어쩌겠나. 한 번 잘못 기록되면 계속 확대재생산되기 때문에 처음부터 바로잡아야 한다는 게 내 신념이었다. 그때 하도 몸을 혹사한 탓인지 2011년 척추에 종양이 생겨 두 차례 수술을 받았다. -정년퇴직 때까지 미술관에서 일하는 게 꿈이었는데 그러지 못했다. 1996년 1월 미술관을 그만뒀다. 일한 만큼 대우를 받지 못하는 상황이 반복되다 보니 응어리가 지더라. 처음 별정직 7급 계약직으로 들어가 8년을 일했는데 그다음에 기능직 10급으로 강등됐다. 미술 잡지에 내가 쓴 미술자료 관련 글이 여럿 소개되고, 신문에도 인용 보도되면서 미술자료 전문가로 인정받았지만 승진은커녕 월급도 오르지 않았다. 당시 아들이 몸이 약해 큰돈이 들어가야 하는 처지였던 데다 좌절감까지 더해져 결국 미술관을 떠나게 됐다. 마침 가나화랑 이호재 사장과 인연이 닿아 자료실장으로 발탁됐다. 5년 10개월 근무하는 동안 ‘가나아트’ 잡지 편집회의에 참석했고, 기획물과 인터뷰 기사를 썼다. 이 사장이 프랑스에서 가져온 미술 정보지 ‘파리스코프’를 견본으로 포켓용 전시회 가이드를 만들기도 했다. 이 경험을 바탕으로 가나에서 독립한 뒤 월간 ‘서울아트가이드’를 내게 됐다. -2001년 12월 직장 생활을 끝내고 마침내 내 이름을 건 ‘김달진미술연구소’를 열었다. 이듬해 1월에는 월간 ‘서울아트가이드’를 창간했고, 그해 9월 미술정보 포털 사이트 ‘달진닷컴’도 오픈했다. 그리고 2008년 40여년 가까이 수집한 자료들을 한곳에 모은 ‘김달진미술자료박물관’을 개관했다. 각종 희귀 자료와 기증 자료, 단행본, 정기간행물, 학회 자료 등이 하루가 다르게 쌓이면서 공간은 점점 부족해졌다. 평창동, 통의동, 창성동, 창전동 등지를 옮겨 다니며 전월세 생활을 한 끝에 지난해 3월 상명대 입구에 지하 1층, 지상 3층 규모의 오래된 건물을 매입해 박물관 겸 사옥을 마련했다. 건물 사느라 은행에 빚을 많이 졌는데 건축가 김원이 재능 기부로 리모델링을 맡아 준 덕에 비용을 아낄 수 있었다. -미술자료를 수집·정리하면서 기록의 중요성을 실감했다. 잡지 미술 연재물 기록을 시작으로, 미술단체카드, 미술인명카드, 주제별 미술기사 색인 카드 등을 정리했다. 1980~90년대 중반까지 내가 발표한 글이 신문에 자주 인용 보도되면서 ‘자료 하면 김달진’이란 인식이 서서히 자리잡았다. 평론가를 비롯해 이런 글을 쓴 사람이 없었다. 특히 미술자료 기록의 중요성을 알리기 위해 ‘선미술’ 1985년 겨울호에 쓴 ‘관람객은 속고 있다-정확한 기록과 자료 보존을 위한 제언’이란 글은 사회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켰다. 자료의 힘이랄까, 자료의 활용도와 중요성을 널리 알린 게 나의 공이라고 생각한다. -일반적으로 미술인 하면 창작 활동을 하는 작가만을 생각하지만 나는 비창작 미술인인 미술평론가, 미술사가, 큐레이터, 미술행정가, 작품 보존 및 수복전문가 등에 대한 기록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서울아트가이드’ 미술계 인명록에 이런 인물에 관한 내용을 수집해 꾸준히 연재했다. 그리고 이를 보완해 2010년 ‘대한민국미술인 인명록 1’을 발간했다. 조선시대 초상화가 채용신부터 1850년 이후 태어난 4900명을 실었다. 정부 예산을 지원받아 1000부를 비매품으로 찍었는데 이 책을 보고 “우리 할아버지가 화가였다는 얘기만 들었는데 이 책에 약력이 실려 있어 깜짝 놀랐다. 가보로 삼겠다”는 반응을 들었을 때 가장 뿌듯했다. 밤하늘 별 중에 왜 일등별만 기억해야 하느냐. 이등별, 삼등별 자료도 남겨야 우리 미술계가 풍부해진다. 인명록에 숫자 1을 붙인 건 언젠가 2권을 꼭 만들겠다는 나의 다짐이다. 현재 달진닷컴에서 7800명의 미술인이 검색되니 곧 나오지 않을까 싶다. -나는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해 왔으니 후회는 없다. 하지만 가족들에게는 미안한 마음이 크다. 아내(최명자씨)는 전시계에서 일할 때 같이 근무한 동료였는데 책을 좋아하고, 서예가 취미인 점 등이 나와 잘 맞았다. 박봉으로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일할 때 아내가 아침마다 신문 배달하고, 우유 배달해서 살림에 보탰다. 직장이든 집이든 자료에만 매달려 있다 보니 아이들과 놀아 준 기억이 별로 없다. 아이들이 어릴 때 관악구 남현동의 오래된 예술인 마을에 살았는데 자료를 놓아 둘 데가 없어서 라면 박스와 사과 박스에 담아서 안방에 침대 매트리스처럼 깔아 놓고 그 위에서 잤다. 어느 날 무게를 못 이겨 마룻바닥이 휜 것을 본 주인이 방을 빼라고 하더라. 할 수 없이 앞집의 빈 지하실을 얻어서 자료를 옮겼는데 여름 장마철에 습기가 차서 자료를 몽땅 버려야 했다. 아이들이 어릴 때라 기억하지 못할 줄 알았는데 언젠가 그때 얘기를 하는 걸 듣고 마음이 아팠다. 딸 영나(32)와 아들 정현(29)은 지금 나와 함께 일하고 있다. 딸은 대학에서 만화창작을 전공했고, 아들은 미술경영학을 공부했다. 일부러 시킨 건 아닌데 자기들이 스스로 아빠가 하는 일의 중요성을 깨닫고 대를 잇겠다고 하더라. 미술계 지인들이 다 부러워한다. 아내도 서울아트가이드 발행인을 맡고 있다. -2013년 한국아트아카이브협회를 창립했다. 전시, 학술, 뮤지엄 분과로 나뉘어 있고 3권의 자료집을 발간했다. 라키비움(라이브러리+아카이브+뮤지엄) 강의 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다. 이우환, 천경자 화백의 위작 논란 등을 해결하기 위해선 작품 이력과 같은 객관적 정보들을 기록하고 관리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정부가 비엔날레 같은 대형 전시 등 눈에 보이는 지원에만 신경쓰지 말고 자료 수집과 보존, 디지털화, 공공 수장고 확보 등 미술계 토양을 튼튼히 하는 인프라에 좀더 지원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하신 일도 많으시지만 하실 일도 많으십니다.” 김영나 전 국립중앙박물관장이 2005년 11월 연구소를 방문했을 때 방명록에 남긴 글이다. 국내 미술계가 직면한 한국 미술의 정체성 문제, 미술계 위작 시비, 미술시장 활성화, 한국 미술의 해외 진출 등 많은 문제들의 단초가 오늘 내 가방 안에 들어 있는 작은 전시 리플릿 한 장, 메모 한 줄에 담겨 있다는 생각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30년 전 ‘관람객은 속고 있다’에 쓴 글 “오늘의 정확한 기록이 내일의 정확한 역사로 남는다”는 신념은 한 치도 달라지지 않았다. 이순녀 문화부장 coral@seoul.co.kr ■미술자료전문가 김달진 관장 46년간 한국 근현대 미술자료 수집과 보존, 연구에 매진해 온 자타공인 국내 미술자료 전문가 1호다. 미술계 안팎에선 오래전부터 ‘걸어다니는 미술사전’, ‘미술계 인간 자료실’로 통했다. 취미를 직업으로 삼는 데서 그치지 않고, 끊임없이 새로운 전문 분야를 개척해 온 그는 스스로를 “한국 근현대 미술의 기록과 공유를 지향하는 아키비스트(기록관리자)”라고 부른다. 2013년부터 라키비움 프로젝트를 통해 아키비스트 후학 양성에 힘쓰고 있다. ▲1955년 충북 옥천 출생 ▲서울과학기술대 금속공예과 졸업(1993), 중앙대 예술대학원 문화예술학과 졸업(1999) ▲월간 전시계(1978~1981), 국립현대미술관 자료실(1981~1996), 가나아트센터 자료실장(1996~2001) ▲2001년 김달진미술연구소 개관 ▲2002년 월간 서울아트가이드 창간 ▲2008년 김달진미술자료박물관 개관 ▲2013년 한국아트아카이브협회 창립 및 협회장, 한국박물관협회 홍보위원장, 서울시박물관협의회 이사, 종로구사립박물관협의회 회장 ▲대한민국문화예술상 대통령상(2010), 한국미술저작출판상(2014), 홍진기창조인상(2016)
  • 허창수 전경련회장 수난구조 훈련 참관

    허창수 전경련회장 수난구조 훈련 참관

    허창수(앞줄 맨 왼쪽) 전국경제인연합회장이 17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수난구조대를 방문해 구조 훈련을 참관하고 있다. 허 회장은 “여의도 수난구조대가 한강 수난구조의 절반을 담당하고 있다고 들었는데 시범훈련을 보니 베테랑 안전지킴이라는 말이 실감 난다”고 격려했다. 전경련 제공
  • 역시 거물은 檢에 ‘겹치기 출연’하네요

    역시 거물은 檢에 ‘겹치기 출연’하네요

    인맥으로 얽힌 정·재계 세태 반영 정운호 로비 의혹과 롯데그룹 비리, 대우조선해양 비리 등에 대한 검찰 수사가 동시다발적으로 이뤄지면서 서로 다른 수사에 ‘겹치기 출연’을 하고 있는 연루자가 많아 눈길을 끌고 있다. 굵직한 수사들이 동시에 진행되면서 문제가 있던 ‘거물’들이 수사망에 여러 차례 포착된 셈이다. 17일 검찰에 따르면 민유성(62) 전 산업은행장은 검찰 특별수사단(단장 김기동 검사장)의 대우조선 수사에서 남상태(66) 전 사장의 연임 로비 의혹 등과 관련해 핵심 수사 대상에 올라 있다. 반면 롯데그룹 수사에선 그동안 단서를 제공한 결정적인 제보자이자 조력자로 알려졌다. 민 전 행장은 신동주(62) 전 일본 롯데홀딩스 부회장의 최측근으로 SDJ코퍼레이션 고문을 맡아 왔다. 롯데그룹 경영권 분쟁의 한복판에서 신동빈(61) 롯데그룹 회장에 대한 ‘저격수’ 역할을 해 지난달 명예훼손 혐의로 법원에서 약식명령을 받기도 했다. 민 전 행장의 지인인 홍보대행업체 N사의 박모(58·여) 대표 역시 남 전 사장 연임 로비 개입 의혹으로 특수단의 주요 수사선상에 올라 있다. 박 대표는 정치·금융권의 마당발로 효성가(家) ‘형제의 난’에서 우병우(49) 청와대 민정수석 등과 함께 효성그룹 경영권 분쟁에 개입해 핵심적인 역할을 하고 거액의 대가를 받았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우 수석은 현재 처가 소유의 강남 부동산을 넥슨이 매입한 것과 관련한 특혜 거래 의혹 등으로 특별감찰을 받고 있다. 중앙지검 특수3부(부장 최성환)도 넥슨 사건을 수사하며 관련 의혹을 함께 살펴보고 있다. 또 중앙지검 특수1부(부장 이원석)에서 수사해 온 정운호(51) 전 네이처리퍼블릭 대표의 로비 사건과 관련해서도 정 전 대표의 원정도박 사건을 몰래 변론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신영자(74·여) 롯데장학재단 이사장 역시 정 전 대표의 롯데호텔 면세점 입점 로비 의혹에 연루돼 있다. 80억원대 뒷돈을 챙기고 횡령, 배임 등을 저지른 혐의로 롯데그룹 수사에서 오너 일가 중 최초로 구속 기소되는 불명예를 안기도 했다. 롯데그룹에 40년간 몸담아 롯데의 ‘큰 어른’으로 불리는 노병용(65) 롯데물산 대표는 롯데마트가 출시한 ‘와이즐렉 가습기 살균제’와 관련해 당시 영업본부장으로 주의 의무를 소홀히 해 업무상 과실치사상 혐의로 구속 기소된 상태다. 제2롯데월드 조성을 진두지휘한 만큼 향후 검찰의 제2롯데월드 관련 비리 수사가 본격화된다면 또다시 핵심 수사 대상으로 떠오를 것으로 전망된다. 검찰은 주요 수사에 중복 등장하는 연루자가 많은 상황이 나쁘지 않다는 판단이다. 한 검찰 관계자는 “우연치 않게 한 사건의 피의자가 다른 수사와 겹치기도 하는데, 대체로 자신과 직결된 수사에서 좀 더 유리한 입지를 확보하기 위해 다른 쪽 수사에 협조하는 경우가 많아 도움이 되는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반면 다른 검찰 관계자는 “정·재계에 영향력이 있는 인물들이 서로 이런저런 인연으로 얽혀 돌아가는 세태를 단적으로 보여 주는 장면”이라면서 “시너지 효과가 나기도 하지만 자기방어가 두터워지는 측면도 있다”고 밝혔다. 최지숙 기자 truth173@seoul.co.kr
  • 김동완, 1년 4개월 만 ‘나 혼자 산다’ 하차...신입 회원은 누구? 궁금증 ‘UP’

    김동완, 1년 4개월 만 ‘나 혼자 산다’ 하차...신입 회원은 누구? 궁금증 ‘UP’

    가수 김동완이 ‘나 혼자 산다’에서 하차하는 소식이 전해졌다. 17일 소속사 CI ENT 측은 “김동완이 1년 4개월 간의 활약 끝에 MBC 예능 프로그램 ‘나 혼자 산다’의 명예 회원으로 남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이어 “많은 관심과 사랑 보내주셔서 매우 감사드리고 향후 좋은 모습으로 찾아 뵙겠다”고 덧붙였다. 앞서 김동완은 ‘나 혼자 산다’를 통해 열정이 가득하고 솔직한 자신만의 일상을 보여주며 무지개 회원으로 자리잡았다. 그는 “‘나 혼자 산다’ 덕분에 좋은 인연을 많이 만들 수 있었고, 제 인생에 있어서도 방송 그 이상의 가치를 지니고 있다”며 프로그램을 향한 애정을 언급했다. 이어 “무지개 회원님들을 비롯한 많은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리고 앞으로는 애청자로서 응원하겠다”며 하차 소감을 전했다. 또한 “올 하반기에는 그룹 신화 활동을 통해 좋은 모습 보여드릴 수 있도록 열심히 준비하고 있으니 많은 기대 부탁드린다”며 향후 활동 계획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김동완에 이어 기존 멤버였던 개그맨 김영철의 하차 소식까지 이어지면서 신입 회원 기안84, 장우혁, 헤이즈의 활약에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임효진 인턴기자 3a5a7a6a@seoul.co.kr
  • 리우 비치발리볼]진격의 브라질, 믿을 건 비치발리볼

    리우 비치발리볼]진격의 브라질, 믿을 건 비치발리볼

    비치발리볼 두 개의 금메달이 브라질에게 돌아갈 가능성이 높아졌다. 브라질 남녀 대표팀 모두 결승에 진출하면서다. 브라질이 ‘축구의 나라’로 알려져 있지만, 비치발리볼과도 인연이 깊은 나라다. 비치발리볼이 미국에서 시작됐지만 처음으로 국제 경기가 열린 곳이 리우데자네이루다. 16일(현지시간) 브라질 리우의 코파카바나 해변에서 열린 준결승에서 남자 대표팀은 네덜란드와 접전 끝에 2-1 승리했다. 3라운드에서는 듀스까지 가며 손에 땀을 쥐는 경기를 펼쳤다. 여자 대표팀은 두 팀이 모두 준결승에 진출했는데 브라질의 아가타-바바라조가 미국의 월시-로스조를 2-0으로 격파하며 결승에 올랐다. 월시와 로스는 2012년 런던올림픽 때 각각 금메달, 은메달을 딴 미국의 간판 선수다. 월시는 이번 대회에서 4회 연속 금메달을 노렸지만 아가타-바바라조에 막혀 대기록 달성에는 실패했다. 브라질의 라리사-탈리타조 또한 결승 진출에 유력해보였지만 ‘복병’ 독일팀을 맞아 고전을 한 끝에 0-2로 완패했다. 이로써 브라질 대표팀 간의 결승 대결도 물거품됐다. 여자 결승전은 18일 오전 11시 59분에 열린다. 아가타-바바라조가 승리할 경우 브라질은 1996년 애틀랜타올림픽 이후 20년 만에 금메달을 손에 쥐게 된다. 남자 결승전은 19일 오전 11시 59분부터다. 런던올림픽에서 은메달을 딴 브라질의 ‘에이스’ 엘리송 세루티가 금메달을 목에 걸 수 있을지가 관전 포인트다. 김헌주 기자 dream@seoul.co.kr
  • [서울광장] 이재현 회장, 사업 완성으로 답해야/최용규 편집국 부국장

    [서울광장] 이재현 회장, 사업 완성으로 답해야/최용규 편집국 부국장

    이재현 CJ그룹 회장이 간절히 원하던 자유를 얻었다. 법원의 판결을 통해 무죄로 나왔으면 더할 나위 없었겠지만 대통령 특사(特赦)로 풀려났다. 편한 마음으로 신병을 치료하고 일도 할 수 있는 기회가 그에게 주어졌다. 이번 특별사면은 4876명의 사면자 중 이재현 이름 석 자만 눈에 들어올 만큼 ‘이재현을 위한 특사’라 해도 크게 틀리지 않다. 나머지는 구색 맞추기에 불과하다. 비난이 빗발칠 줄 뻔히 알면서도 정부가 이 회장에게 ‘특별한 혜택’을 준 까닭이 무엇인지는 이 회장 자신이 누구보다 잘 알 것이다. 형이 확정된 이 회장의 범죄 행위는 엄하고 중하다. 이 회장 사면으로 향후 우리 사회가 떠안아야 할 사회적 비용 또한 만만치 않을 것이다. 감옥에 갇힌 죄수 가운데 수형 생활을 할 수 없을 정도로 몸이 아픈 사람이 어디 이 회장뿐이겠는가. 아프다고 빼줄 것 같으면 죄를 짓거나 감방 가는 것을 무서워할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과연 이런 사회가 정상적으로 굴러갈 수 있을까. 더구나 이 회장은 2013년 7월 구속됐지만 이후 3년여 동안 옥살이를 한 것은 4개월에 불과하다. 2년 9개월을 형집행 정지로 서울대병원에서 치료받아 왔다. 유전병과 부인한테 이식받은 신장이 제 기능을 못해 몸이 망가졌다는 것은 언론 보도로 익히 알고 있지만 툭하면 형집행 정지였으니 보통 사람 눈에 곱게 비칠 리 없다. ‘지병 악화 등으로 사실상 형집행이 어렵다는 전문가의 의견을 감안해 인도적으로 배려했다’는 정부의 첫 번째 이유가 껍데기라면 ‘국가 경제에 기여할 수 있는 기회의 부여’라는 두 번째 이유가 이 회장 사면의 속살이자 알맹이다. 인터넷 댓글이 비난과 욕설로 가득 찰 것임을 예상하면서도 정부가 이런 수를 둔 것은 이 회장에게 자유가 절실한 것만큼이나 정부 역시 경제 발전과 회복이 절실했기 때문이라고 본다. 물론 이런 ‘원포인트 특사’는 박근혜 정부가 유일한 것은 아니다. 이명박 정부도 평창동계올림픽 유치에 빨간등이 켜지자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이던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에 대한 특사를 단행했고, 이 회장은 곧바로 해외로 나가 동계올림픽 유치에 크게 기여한 바 있다. 따라서 이번에 풀려난 이 회장과 그의 측근들은 경제적으로 기여하라는 메시지에 충실하게 답할 책무가 있다. 이 회장도 이미 이런 각오를 밝혔다. 이 회장은 재작년 7월 서울고등법원 505호실에서 했던 최후진술을 결코 잊지 못할 것이다. 이 회장은 재판장에게 “살고 싶습니다”라고 애원하며 “살아서 제가 시작한 사업을 포함한 CJ의 여러 미완성 사업을, 반드시 글로벌 생활문화기업으로 완성시켜야 합니다. 선대 회장의 유지를 받드는 것이고, 길지 않은 저의 짧은 여생을 국가와 사회에 헌신하는 길이라 생각합니다”라고 간곡하게 요청했다. 이 회장 말대로 CJ는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생활문화기업이다. 허민회 CJ오쇼핑 사장은 CJ푸드빌 대표 시절 “세계인이 일주일에 한 번 한식을 먹고 우리 영화나 드라마를 보도록 하는 것이 CJ의 목표”라고 말하기도 했다. 하지만 건강 때문에 선친의 첫 번째 추도식조차 참석하지 못한 이 회장이 지금 당장 그룹의 현안을 챙긴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몸을 추슬러 정상적으로 업무를 보는 데까지는 꽤 많은 시간이 걸릴 것이다. 그런 만큼 이 회장의 의중을 대변할 동력이 필요하다. 이 회장은 잃은 것만 있는 게 아니다. 얻은 것도 있다. 바로 ‘뉴CJ’를 이끌 인재들이다. 어려운 때일수록 인물이 돋보이는 법이다. CJ에도 주머니 속 송곳 같은 인사들이 이 회장 부재를 계기로 노출됐다. 구속된 이 회장과의 인연을 얘기하다 목이 메어 숟가락을 떨구던 A. 그는 친정인 CJ에 컴백하기 전 설화수라는 히트 브랜드를 만든 주역이었다. 이 회장 모친이 “이 사람 뭐하는 거야. 재현이를 도와야지”라는 한마디에 미련 없이 짐을 쌌다. ‘도쿄차사’(東京差使) B. 이 회장의 부친 이맹희 CJ명예회장이 일본 도쿄에 머물며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과 유산 소송을 벌이고 있을 때 일본으로 건너가 명예회장 설득에 나섰던 주인공이다. 역린(逆鱗)을 건드리는 일이었지만 이 회장 구명을 위해 ‘차사’를 마다하지 않았다. 이런 로열티가 뉴CJ를 이끌며 경제 발전으로 모아지길 기대한다. ykchoi@seoul.co.kr
  • [新전원일기] 슈퍼컴 만지던 공학도 시골 친환경 멘토되다

    [新전원일기] 슈퍼컴 만지던 공학도 시골 친환경 멘토되다

    연일 최고기온 기록을 경신하며 불볕더위가 기승을 부린다. 지글지글 끓어오르는 아스팔트 위로 피어오르는 아지랑이에 열기를 더하는 차량 행렬, 바스러질 것 같은 콘크리트 더미 사이로 비 한 방울, 바람 한 점 없는 들이다. 폭염 경보가 내려진 서울을 뒤로하고 세 시간 반을 달려 강원도 미시령을 넘었다. 맑은 하늘 아래 초록이 우거진 국도변의 수량 풍부한 강줄기들을 따라 달리다 만난 울산바위의 웅장함에 더위를 잊는다. 속초시 외곽을 돌아 대포항을 지나쳐, 물치항 앞에서 우회전해 천변을 따라 1㎞ 남짓 들어가니 강선리라는 작은 마을이 나타난다. 휴가철 관광지로만 알고 있었던 그곳에 친환경 과수 농장이 있다 하여 찾아가는 길이었다. 양양군 친환경연구회 이경수(64) 회장이 운영하는 농장 ‘솔랜드 패밀리’는 시원스레 뻗은 동해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동산 위에 자리하고 있었다. 주변에 풍채 좋은 소나무가 많아서 ‘솔랜드’라고 이름 붙였다는 농장의 입구로 들어서니 피톤치드 향이 물씬 풍겨 나온다. 실내 마감재로 쓰인 편백나무향이란다. 2008년에 이곳으로 내려와 지은 집이라는데, 8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는데도 그 향이 그대로 유지되고 있는 것에 새삼 나무의 생명력을 실감한다. # 환경 연구소장, 양양서 인생의 2막 열다 아무런 연고도 없는 양양군에 터를 잡아 제2의 인생을 시작하기 전까지, 이 회장은 고향인 서울을 떠나서 살아 본 적이 없었다. 전기공학을 전공해 슈퍼컴퓨터 엔지니어로 일하다가, 1986년 서울아시안게임과 1988년 서울올림픽 당시 전국 환경측정 전산망을 구축한 것이 인연이 돼 환경신기술개발연구소를 설립했다. 기업과 정부의 지원을 받아 환경 연구와 더불어 국내산 측정 기구 및 프로그램 개발에 몰두했다. “연구에는 꽤 진척이 있었는데, 정기 성과 보고 논문에서 자기 표절 문제가 발생했어요. 저는 아니고 다른 분이 예전에 발표한 내용을 인용한 건데, 다들 너무 바쁘고 정신이 없어서 각주를 일일이 달지 못했던 거죠. 그때까지 쓴 연구비를 전액 반환해야 하는 상황에까지 이르게 됐지요.” 이미 사용한 연구비의 반환도 큰일이었지만 연구를 지속할 수 없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였다. 결국 대표인 자신이 책임을 지는 것으로 정리 수순을 밟기 시작했다. 일뿐만 아니라 그때까지의 삶의 방식에 대한 정리 역시 필요했다. 하지만 무언가를 새로 시작하기에 서울 근교는 경제적 부담이 너무 컸다. 마침 사회복지사이자 인체교정사(카이로프락터)로 오래 일해 온 아내 김영선(60)씨와 함께 봉사 활동을 다니며 알게 된 인연으로 양양군에 사 둔 야산이 있었다. 2000여평의 동산으로, 조금만 마음을 달리 먹으면 못 갈 것도 없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다행히 아내도 흔쾌히 동의해 주었다. “처음 집터를 다질 때에는 마을 주민들의 반대가 심했어요. 몇 년씩 봉사 활동을 와서 며칠씩 있다 가곤 했던 터라 다들 잘 아는 사이였는데도, 야산을 깎아 집을 짓는다고 하니까 마을에 피해가 갈 것이라면서 민원을 넣고 난리도 아니었죠. 그런데 제가 명색이 환경 관련 일을 하던 사람인데, 주변에 피해 갈 일을 할 리가 없잖아요.” 우여곡절 끝에 집을 짓고, 농경용 미니 포크레인으로 직접 화전을 일구듯 주변 땅을 깎고 다져 밭을 일구었다. 평생 아스팔트만 밟고 살아온 터라 본격적인 농사는 엄두도 내지 못하고, 아내에게 필요한 약초나 심고 텃밭이나 일구자는 심산이었다. # 귀한 친환경 체리와의 우연한 만남 집 뒤의 동산에 오십 그루의 체리 묘목을 심게 된 것도, 조경 사업의 일환으로 마을에서 집집마다 무상으로 나눠주었기 때문이다. 어차피 땅은 있고, 꽃이 피면 보기도 좋다고 해 다른 집보다 좀 많이 가져다 심었다. 이장님의 권유였다. 다른 농가에 비해 이 회장네 체리나무는 유독 잘 자랐다. 연구와 실험이 일상이었던 이 회장이 습관처럼 밤이면 책과 인터넷을 뒤져가며 공부하고, 낮이면 직접 시연해 보며 시행착오를 거듭한 덕분이었다. 거기에 재미를 붙여 1000평의 땅을 따로 떼어 아예 체리 농장을 조성했다. 혼자 하는 공부만으로는 한계를 느꼈지만 주변에는 마땅히 물어볼 만한 곳이 없었다. 재배 농장을 수소문해 찾아가 보기도 했지만 신통한 설명을 들을 수 없었다. “모두는 아니겠지만 일부 농민들은 동일 작물을 하겠다고 하면 자꾸 부정적으로만 얘기하는 경향이 있더라고요. 그래서 방법을 달리했죠. 농협이나 국가기관에서 주관하는 강연이나 단기 코스의 교육을 통해 먼저 이론을 배웠어요. 강사로 오는 전문가들은 일단 가능성을 가지고 접근하니까요. 안 된다는 판단은 내가 직접 해보고, 나 스스로 내리고 싶었거든요.” 같이 공부하는 사람들과 단체로 견학을 가기도 하고 농업을 연구하는, 특히 체리가 전문인 박사 부부를 집으로 초청해 농장을 둘러보게 하고 조언을 듣기도 했다. “열심히 하다 보니 차츰 눈을 뜨게 된 거죠. 친환경 농법을 알게 되었을 때 ‘당연히 이것이다’라고 생각했어요. 바탕은 엔지니어지만 환경, 특히 오염 분야에 대해 연구를 했던 터라, 저는 거의 처음부터 친환경으로 시작을 했죠.” 현재 국산 체리는 전체 수요량의 7~8%에 불과하다. 나머지는 모두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전국에서 친환경 인증을 받은 농가는 네 곳뿐인데, 강원도에서는 이 회장의 ‘솔랜드 패밀리’가 유일하다. 체리는 묘목을 식재하고 4년째부터 열매가 달리기 시작해 판매로 이어질 만큼의 수확량이 나오려면 5~6년은 기다려야 한다. 1000평 규모에서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600㎏을 수확해 지인들에게 나눠주고 판매로 800만원의 소득을 올렸다. 내년부터는 수확량을 1~1.3t으로 늘려 2000만~2500만원의 소득을 목표로 하고 있다. 친환경 국산 체리가 워낙 귀하다 보니 이마트 친환경과수팀에서 먼저 연락이 와서 전량 수매를 원했지만 이 회장이 적극 참여하고 있는 양양군 친환경 농산물 장터(토요일마다 열리는)에도 내놔야 하고,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찾는 고객들이 있어 전량 다 줄 수는 없었다. # 주변 환경에 맞는 재배법을 연구하다 이 회장은 솔랜드 패밀리를 2000평 규모로 조성해 체리를 제외한 나머지 1000평에는 미니 사과와 감, 자두 등 과수를 심고, 지난해부터는 히카마(얌빈)이라는 열대작물을 재배하기 시작했다. 멕시코 감자로도 불리는 히카마는 껍질이 바나나처럼 벗겨지는 뿌리채소로, 달콤하면서 마 맛도 나고, 콩 맛도 나고, 배 맛도 나는 등 사람에 따라 대여섯 가지 맛을 느낄 수 있다고 한다. 2012년 미국 포춘지가 발표한 세계 20대 ‘슈퍼 푸드’ 중 하나로 고혈압, 당뇨, 변비, 다이어트에 좋다고 알려졌다. 우리나라에서도 수요가 급격히 높아져 일부 농가에서 멕시코와 베트남 남부에서 종자를 가져다 심었지만 대부분 실패했다. 이후 농촌진흥청에서 직접 나서서 연구하고 보급했다. 이 회장도 2014년 양양군에서 최초로 시험 재배에 성공했다. 이번에도 그의 전문 분야인 연구와 실험이 진가를 발휘했다. 기본적 이론만 배워 와서 주변 환경에 맞는 재배법을 개발한 것이다. 올해는 400평의 땅에서 3t을 수확해 약 2000만원의 수익을 낼 것으로 보고 있다. 이 역시 이마트에서 전량 수매를 원하고 있다고 한다. 이 회장은 이를 군청의 농업기술센터에 보고하고 주변 농가에 보급하도록 권유했다. 그리고 먼저 자신이 회장으로 있는 친환경연구회 회원 중 여섯 농가를 선별해 작목반을 구성하고, 베트남에서 직접 종자를 수입해 무상으로 보급했다. 재배 기술 일체를 전수한 것은 물론이고, 온라인으로도 피드백이 가능하도록 인터넷 작목반 커뮤니티(네이버 밴드)를 만들어 매일 재배일기를 나누고 있다. # 외지인이 정착해 지역사회를 이끌기까지 양양군은 바다를 끼고 있어 전통적으로 어업과 관광업이 발달했다. 농업은 열악했다. 바람이 세고 눈이 많이 내리며, 산짐승에 의한 농작물 피해도 심해 밭농사나 비닐하우스 재배도 어려웠다. 자연히 농민들의 관심도 부족해 선진농법 개발이 뒤떨어져 있었다. 그러한 지역에서 외지인인 그가 정착한 지 몇 년 되지도 않아 군청 산하의 친환경연구회 회장직까지 맡아 지역 사회를 이끄는 것은 신규 작물을 개발하고 친환경 농법으로 차별화해 기존 농가의 소득에 도움을 주고, 귀농·귀촌인들의 주소득원이 될 수 있도록 지역에 애착을 갖고 먼저 노력해 왔기 때문일 것이다. “양양군에도 귀농·귀촌 학교가 있습니다. 내가 겪은 시행착오를 뒤에 오는 분들은 조금이라도 덜 겪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제 경험을 나누고 있죠. 제가 요약해서 남들 가르치는 일 하나는 자신 있으니까요.” 분야는 달라도 컴퓨터 기술이나 농업 기술이나 어느 정도 지나면 이후의 과정은 비슷해지는 듯하다고 이 회장은 말했다. 농업기술센터에서 운영하는 체계적 교육 과정을 계속 밟다 보니 기본적인 베이스가 쌓이고, 자신만의 노하우들이 더해져 이제는 거꾸로 가르치는 입장이 됐다는 것이다. 사회복지사이자 카이로프락터인 아내 김씨는 몸이 불편한 마을 어르신이 있으면 한밤중에라도 달려 내려가 살펴드린다. 지역 사회에 더욱 단단하게 뿌리내릴 수 있는 밑거름이 되었을 것이다. 농장 인근에 올해 귀농해 1대1 멘토를 해 주고 있는 분들의 농막이 있다고 해서 내려가 봤다. 농막의 주인은 서울에서 사업을 하며 귀농 준비를 위해 주말 농장을 일구고 있는 분이고, 다른 한 분은 한국 농촌문제 연구로 이름이 높은 윤석원 중앙대 교수였다. 칼럼집 ‘쌀이 주권이다’의 저자이기도 한 윤 교수는 올봄, 정년을 3년 앞두고 현장에서 직접 농사를 지으며 연구를 지속하기 위해 귀농했다. 그런 이가 스스로 초보 농민이라 지칭하는 이 회장의 멘티가 되어 그의 현장 노하우를 전수받고 있었다. 부인들과 함께 농막에서 토종닭을 삶아 나누고, 텃밭의 수박을 쪼개 나누고, 서로의 친환경 작물들을 품평하며 농담을 주고받고 일상을 주고받는 모습에서 양양군 농업의 미래, 나아가 한국 농업의 미래가 보이는 듯했다면 지나친 감상일까. 뙤약볕이 밭을 건너 설악산 자락을 넘어가며 동쪽 바다로부터 제법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고 있었다. 2007년 문화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2013년 ‘괴산’으로 EBS 라디오 문학상 수상. 소설집 ‘붉은 나무젓가락’, 장편소설 ‘수목원’ 등.
  • 日병원서 섬뜩한 눈빛… 덕혜옹주 ‘망국의 한’

    日병원서 섬뜩한 눈빛… 덕혜옹주 ‘망국의 한’

    강제 결혼 소식에 사흘 식음 전폐 저자 “무서워 조현병 앓았던 걸까” 조선의 마지막 황태자 영친왕(1897~1970·이은)과 그의 하나뿐인 여동생 덕혜옹주(1912~1989)의 운명은 기구했다. “때가 오기까지는 모든 것을 꾹 참고 기다리라”는 아버지 고종(1852~1919)의 가르침을 가슴에 새긴 영친왕은 기쁠 때는 미소를 약간 짓는 데 그쳤고, 슬플 때는 억지로 참다가 밤중에 이불을 뒤집어쓰고 혼자 울었다. 영친왕은 말년에 실어증을 앓았고, 조국에 돌아온 뒤로도 7년간 병상에 누워 한마디 말도 하지 못한 채 영면했다. 누이인 덕혜옹주 역시 원치 않은 결혼을 한 후에 조현병과 실어증을 앓으며 세상을 향한 말을 잊고 타계했다. 400만 관객을 모으며 흥행 중인 영화 ‘덕혜옹주’에서 박해일이 연기한 김장한은 1950년 서울신문 도쿄특파원을 지낸 김을한(1905~1992) 기자를 모델로 했다. 영화 흥행 열기를 타고 김을한이 남긴 책 ‘조선의 마지막 황태자 영친왕’(페이퍼로드)이 재조명되고 있다. 이 책은 1970년 한 일간지에 연재된 것을 묶어 이듬해 단행본으로 나왔다가 2010년 39년 만에 재출간됐고, 이번에 다시 빛을 보게 됐다. 이 책은 영친왕이 주인공이다. 하지만 그와 인연을 맺은 다양한 인물들이 등장한다. 아버지 고종과 형님 순종, 누이 덕혜옹주, 명성황후, 대비 윤씨, 의친왕과 이우 등 왕손들의 삶은 쓸쓸한 역사의 뒤안길을 보여 준다. 영친왕은 평생을 조국에 죄과를 씻는 심정으로 살았던 것 같다. 당시 제3대 국회가 ‘구황실 재산처리법’을 제정해 고궁과 왕릉 등 구황실의 모든 재산을 국유화하는 조치를 취하자 일본 측은 영친왕에게 한국 정부를 상대로 한 소송을 부추긴다. “전하, 한국 정부가 전하의 재산을 다 빼앗고 생계비도 드리지 않는 것은 법률 위반이므로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면 꼭 이깁니다.” 그러자 영친왕은 “이것은 우리나라 내부의 일이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시오. 그리고 나는 아무리 곤란하더라도 내 나라 내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할 생각은 없소이다.”(234쪽) 김을한의 아들인 김수동 전 KBS 드라마국장은 책머리에서 고교 1학년 때 영친왕을 직접 만났던 일과 도쿄 인근의 마쓰자와 정신병원에 입원 중인 덕혜옹주를 문안한 뒷얘기를 전한다. 영친왕의 첫인상은 다부진 체격과 온화한 표정의 기품 있는 노신사였지만 정신병원에 있던 덕혜옹주의 말로는 참혹했다. 덕혜옹주는 1946년부터 1962년 1월 귀국할 때까지 마쓰자와 병원에서 지냈다. 김을한의 부인이자 덕혜옹주의 유치원 시절 동급생인 민덕임은 “중년 부인 한 분이 독방 한가운데 앉아 있다가 인기척을 느꼈는지 이쪽을 돌아보는데, 표정은 일그러져 있었고 큰 눈에는 광기가 섬뜩할 정도였다”고 덕혜옹주의 모습을 전했다. 덕혜옹주는 퇴계로에 있던 일출 소학교 4학년 때 일본에 끌려간 후 19세가 되던 해 대마도 번주의 아들 소 다케유키 백작과 정략결혼을 하게 된다. 덕혜옹주는 처음 그 말을 듣고 사흘 동안 식음을 전폐하며 울었지만 일본인 궁녀들은 “정말 시집을 아니 갈 테야”라고 윽박질렀다고 한다. 김을한은 “강제 결혼을 하게 되니 모든 것이 무섭고 구슬퍼서 필경 정신병 환자가 된 것이 아닐까”라고 썼다. 영화에서 덕혜옹주가 조선의 현실을 깨닫고 일제에 저항하는 모습으로 그려진 건 감독이 덕혜옹주를 재창조한 것이자 명백한 허구다. 일본군 육군 중장을 지낸 영친왕이나 평생을 정신병원에서 보낸 덕혜옹주가 독립운동에 기여한 기록은 전해지는 게 없다. 망국의 한만 전해져 올 뿐이다. 안동환 기자 ipsofacto@seoul.co.kr
  • 호남 잡으면 당권… 변수는 여전한 反文

    “계파 말하는 사람 안 찍겠다” “주류에 대한 반감 아직 있다” 대의원들 ‘반문’ 숨기지 않아… 당권주자들 치열한 ‘호남 대첩’ “호남 민심요? 지난 총선 때와 달라지지 않은 것 같아요. 여전히 문재인 전 대표를 믿을 수 없다는 분위기인데 당 대표 선거 결과도 이런 분위기의 영향을 받을 것 같다는 생각입니다.” 16일 더불어민주당의 전남 대의원대회가 열린 화순군 화순하니움문화스포츠센터에서 만난 대의원 김모(51·여)씨는 호남 민심에 대해 이같이 말했다. 김씨는 “누구의 계파, 누구의 사람이라고 주장하는 후보를 선호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한 70대 남성 대의원은 “총선 이후 문 전 대표에 대한 반감이 희석되긴 했지만 여전히 주류에 대한 반감이 있는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이날 대의원대회는 더민주 차기 지도부를 뽑는 8·27 전당대회를 앞두고 김상곤(기호순)·이종걸·추미애 후보가 호남 표심을 확보하기 위한 ‘호남대첩’의 마지막 일정이었다. 비록 4·13총선에서 궤멸 수준의 패배를 당했지만 여전히 호남은 야권의 심장이었다. 지금까지 열린 대의원대회 가운데 가장 많은 1500여명이 몰렸다. 대의원대회가 열리기 한 시간여 전부터 당 대표·최고위원 등 후보들의 이름을 외치는 지지자와 유세원들로 열기가 뜨거웠다. 8·27 전당대회의 향방은 친문(친문재인)의 의중에 달려 있다는 게 당 안팎의 지배적인 분석이다. 또 다른 관전포인트는 총선 이후 호남에서의 반문 정서가 얼마나 희석됐는지 여부다. 더민주 당 대표 경선에서 대의원의 비중은 45%에 이른다. 수도권에 대의원들이 가장 많이 몰려 있지만, 호남의 여론은 출향민들에게 영향을 주는 만큼 당 대표 후보들도 어느 지역보다 호남에 공을 들이고 있다. 후보들이 지난 13일부터 호남에 머물며 구애를 벌인 까닭이다. 이날 가장 먼저 연설에 나선 김 후보는 “광주에서 태어나 호남 정신을 실천해 온 후보”라고 자신을 소개한 뒤 “대선 3자 구도에서 호남을 포기해도 이길 수 있다는 것은 무책임하고 오만한 판단”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다시는 호남 홀대론이 나오지 않도록 하겠다”고 강조했다. 이 후보는 호남 내 반문 정서를 공략했다. 그는 “이번 전대는 호남의 아들을 뽑는 전대가 아니고 호남의 며느리를 뽑는 전대도 아니다”라면서 “문 전 대표를 대선 후보로 만들기 위해 충직한 대리인을 당 대표로 뽑는 전대도 아니다”라고 거듭 주장했다. 반면 추 후보는 이날 연설의 절반가량을 고 김대중 전 대통령과의 인연에 할애하며 ‘DJ 정신’을 강조했다. 추 후보는 “고 김 전 대통령이 마지막 남기신 말씀은 ‘꼭 통합하라’였다”면서 “그 유언을 민주 종가의 맏며느리 저 추미애가 이뤄 내겠다. 누가 분열의 대표가 될 것이고 통합의 대표가 될 것인가 이 자리에서 결정해 달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화순 김진아 기자 ji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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