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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태일이 누구요” 물었던 노무현, 내가 사회적 대화 이끄는 이유

    “전태일이 누구요” 물었던 노무현, 내가 사회적 대화 이끄는 이유

    “그런데 전태일이 누구요?” 뜻밖의 일이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문성현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위원장을 처음 만난 1985년에, 당시 대학생들이라면 이름 석자는 다 들어봤을 인물에 대해 그런 질문을 했다는 사실이 새삼 놀라웠다. 문성현 위원장은 마침 노 전 사망 10주기인 23일 서울 중구 롯데호텔에서 서울신문 광화문 라운지가 27번째로 연 ‘노동존중 사회와 사회적 대화’ 강연 첫 머리를 열며 노동자 계급을 처음 가슴으로 이해했던 대통령인 노무현과의 첫 만남을 떠올렸다. 두 사람의 만남은 1985년 구치소 변호사 접견실에서였다. 당시 경남의 방위사업체(통일중공업)에서 노조를 결성한 것만으로도 구속 감이었던 문 위원장은 파업까지 이끌어 구속된 뒤 부산에서 찾아온 노무현 변호사를 맞았다. 무명의 변호사라 마뜩치 않았다고 했다. 그런데 노 대통령이 “난 부산상고를 졸업해서 정말 쎄빠지게 공부해서 고시 패스한 뒤 판사하다 돈이 안돼 돈 벌려고 변호사가 됐는데, 서울 상대까지 가서 돈 버는 길 마다하고 왜 노동운동을 합니까”라고 단도직입적으로 묻자 금방 마음이 풀어졌다고 했다.문 위원장은 노 대통령에게 “날 이해하고 싶으면 조영래 변호사가 쓴 ‘전태일 평전’을 읽어보라”고 권했고, “전태일이 누구요?”라고 되묻던 노 대통령은 책을 사서 밤새 다 읽고 다음날 문 위원장을 찾아와 ‘내게 대학생 친구가 한 사람이라도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란 전태일의 얘기에 속속들이 공감했다고 했다. 노 대통령은 “진작 내가 전태일 평전을 읽었더라면 문 위원장처럼 노동운동을 했을 것이다. 난 대학도 나오지 않았고 공사판에서 일해기 때문에 문 위원장보다 노동운동을 더 잘했을 것”이라면서도 “지금은 변호사가 됐으니까 변호사로서 노동자를 위해서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했다는 것이다. 검사와 판사도 재판을 잘하려면 전태일 평전을 사서 읽어보라고 권했던 노 대통령은 징역형이 유력했던 문 위원장이 집행유예를 받게 만들었다. 첫 노동재판을 승리로 장식한 뒤 이듬해부터 1987년까지 경남 창원, 울산, 거제 등에서 ‘노동인권 변호사’로 활약하며 문 위원장과 돈독한 인연을 맺었다. 10년 전 그날, 문 위원장이 경남 봉하마을을 찾아 조문하고 조문록에 ‘노동자를 진심으로 사랑한 정치인 노무현. 노무현이 최초로 사랑한 노동자 문성현’이라고 적은 이유이기도 했다. 문 위원장은 “이 자리에 내가 서 있는 것은 노 대통령을 만났기 때문”이라며 “노 대통령도 변호사 시절 노동자였던 날 만났기에 조금 더 일찍, 그리고 깊이 있게 노동자를 사랑하는 변호사가 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2002년 16대 대통령 선거를 한달 앞두고 유시민 당시 작가가 “노 대통령 옆에는 노동자가 없어 외로우니 꼭 좀 같이 해달라”고 제안했지만 당시 민주노동당원으로 권영길 후보 대선 운동을 하고 있던 문 위원장은 거절했다. 그러자 노 대통령이 대선 투표 사흘을 앞두고 전화를 걸어와 “내가 대통령 된다. 같이 하자”고 했지만, 또 거절했다. 노 정부 시절에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때문에 청와대 앞에서 단식 투쟁을 하면서 대립각을 세웠다. 그러다 2009년 노 대통령이 사망하자 문 위원장은 곁에 있어 주지 못했다는 인간적 회한과 자책이 밀려와 힘들었다고 했다. 문 위원장이 2012년과 2017년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 운동을 돕고 노동계로부터 변절 얘기를 들으면서도 경사노위 위원장을 맡은 이유이기도 했다.문 위원장은 최저임금, 노동시간 단축, 탄력 근로제 등 노동계의 지난한 이슈들을 해결해 온 과정을 돌아보며 “사회적 대화가 참 어렵다”고 털어놓은 뒤 “대화의 참뜻이 뭔가, 이념이나 진영, 파당의 논리를 떠나 상대방을 존중하고 최선이 안되면 차선, 최악이 아닌 차악을 선택하며 타협하는 것이 진정한 의미가 아닌가 돌아본다”고 밝혔다. 또 자신이 온갖 핀잔과 험구(險口)를 들으면서도 버틸 수 있었던 힘은 노동자를 위해 뭔가를 해보려고 했던 노무현 대통령에게 다하지 못한 인간적 도리를 문재인 대통령에게라도 대신 해야 하겠다는 마음가짐 하나 때문이었다고 고백했다. 그가 강연 내내 강조한 것은 최저임금은 받는 사람도 중요하지만 주는 사람의 입장도 중요하니 정책을 결정하기 전에 국민토론회 같은 것을 열어 논의의 장을 만드는 것이 좋겠다 싶어 직언했지만 잘 이뤄지지 않았으며, 지금 최저임금 때문에 경제가 파탄났다고 프레임을 짜고 비판하는 이들이 있는데, 좋다, 그렇다면 최저임금 올리지 않을테니 반대하는 이들은 국내 제조업, 특히 자동차 산업을 살려낼 수 있는 방안을 제시해봐라, 민주노총이 여러 차례 불참과 참가를 번복하면서도 사회적 대화에 참여하는 타협의 DNA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인지, 한국노총 간부가 어용이란 비난을 듣고 ‘어려울 때 용기를 내는 게 어용’이라고 반박하며 사회적 대화에 꾸준히 나서는 이유를 돌아보라고 강조한 대목이다. 여기에다 북유럽의 사회적 대타협과 규모도 작고 거리도 있지만 SK이노베이션 등 SK 계열사 세 곳 노동조합은 기본급의 1%를 회사와 매칭펀드 형식으로 적립해 협력사 임금 인상 재원으로 활용하며 , 제2금융권 공공노조들은 비정규직 정규직화 재원 기금을 적립하고 있어 이를 전국적으로, 사회적으로 확산하는 노력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또 광주형 일자리를 값싼 일자리로 오해들 하고 있는데 중국 자동차 산업과 맞서 싸우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는 지난한 고민을 안고 출발해 만들어진 것이라며 아파트를 제공하는 것마저도 복지 차원이 아니라 제조업 경쟁력을 갖추기 위한 고육책이란 점을 모두가 알았으면 좋겠다며 강연을 마무리했다. 임병선 평화연구소 사무국장 bsnim@seoul.co.kr기민도 기자 key5088@seoul.co.kr
  • 부시 “노무현, 국익 위해 마다하지 않고 목소리 낸 지도자”

    부시 “노무현, 국익 위해 마다하지 않고 목소리 낸 지도자”

    조지 W.부시 전 미국 대통령이 23일 봉하마을에서 열린 고 노무현 전 대통령 10주기 추도식에 참석해 고인이 “자신의 목소리를 용기 있게 내는 강력한 지도자”였다고 회상했다. 부시 전 대통령은 이날 경남 김해 봉하마을에서 열린 노 전 대통령 추도식에 참석해 추도사를 통해 대통령 재임 시절 고인과의 인연을 하나씩 소개했다. 부시 전 대통령은 “저와 노 전 대통령은 기념비적인 새로운 자유무역협정(FTA)을 협상·체결했다”면서 “양국은 세계 최대의 교육국으로서 서로에 의지하는 동시에 자유무역협정으로 양국 경제는 크게 도움을 받았다”고 밝혔다. 또 “대한민국은 ‘테러와의 전쟁’에 참여해준 중요한 동맹국이었다”면서 “미국은 이라크 자유수호 전쟁에 대한민국이 기여한 점을 잊지 않는다”고 말했다. 추도식 참석을 위해 전날 방한한 부시 전 대통령은 직접 그린 노 전 대통령의 초상화를 권양숙 여사에게 선물했다. 그는 지난 2009년 1월 대통령 퇴임 후 전업 화가로 변신해 재임 중 만난 각국 정치인의 초상화, 자화상, 풍경화 등 다양한 주제로 작품 활동을 해왔다.부시 전 대통령은 “(초상화를 그릴 때) 인권에 헌신하면서 친절하고 따뜻한, 자신의 목소리를 용기 있게 내는 강력한 지도자의 모습을 그렸다”면서 “그가 목소리를 낸 대상에 미국 대통령도 예외가 아니었다”고 밝혔다. 이어 “노 전 대통령을 그릴 때 아주 겸손한 한 분을 그렸다”면서 “훌륭한 성과와 업적 외에도 그분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그의 가치와 가족, 국가, 그리고 공동체였다”고 덧붙였다. 또 “여느 지도자들과 마찬가지로 노 전 대통령은 국익을 위해 모든 것을 마다하지 않았고 목소리를 냈다”면서 “물론 우리는 의견의 차이는 갖고 있었다. 그렇지만 그런 차이점들은 한미동맹에 대한 중요성, 그리고 그 공유된 가치보다 우선하는 차이는 아니었다”고 설명했다. 부시 전 대통령은 “미국은 모든 한국인이 평화롭게 거주하고 인간의 존엄성이 존중되며 민주주의가 확산하고 모두를 위한 기본권과 자유가 보장되는 통일 한국의 꿈을 지지한다”며 “인권에 대한 고인의 비전이 국경을 넘어 북에까지 전달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고 말했다. 또 “노 전 대통령이 생을 떠날 때 작은 비석만 세우라고 했음에도 여러분이 더 소중한 경의의 마음으로 이 자리에 함께해주신 데 깊은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며 사의를 표하기도 했다. 부시 전 대통령은 봉하마을에 오기 전 청와대에서 문재인 대통령을 접견한 사실을 전하면서 “(노 전 대통령 당시) 대통령 비서실장께 환대를 받았는데, 그 비서실장이 바로 여러분의 현 대통령”이라고 말해 추모식에 참석한 사람들로부터 박수를 받기도 했다. 오세진 기자 5sjin@seoul.co.kr
  • ‘해투4’ 김정화 “강동원, 포옹할 때도 격식 차려”

    ‘해투4’ 김정화 “강동원, 포옹할 때도 격식 차려”

    ‘해투4’에서 김정화가 강동원과 격식 차린 애정씬을 촬영했던 사연을 밝힌다. 유쾌하고 찰진 토크로 목요일 밤을 책임지고 있는 KBS 2TV ‘해피투게더4’(이하 ‘해투4’)의 23일 방송은 ‘센 언니가 돌아왔다’ 특집으로 꾸며진다. 이날 방송에서는 화끈한 센 언니 군단 정영주-김정화-이주빈-허송연-AOA 혜정이 출연해 속 시원한 웃음을 선사할 예정이다. 최근 진행된 녹화에서 김정화가 드라마 ‘1%의 어떤 것’에 함께 출연한 강동원과의 특별한 인연을 공개해 이목을 집중시켰다. 김정화는 “나와 강동원 모두 낯을 가리는 성격이다. 드라마에서는 결혼 생활까지 촬영했는데, 현실에서는 포옹하는 장면도 격식 차리면서 촬영했다”며 뜻밖의 반전 현실을 공개했다. 심지어 “쫑파티에서는 90도로 인사하며 헤어졌다”고 덧붙여 웃음을 폭발시켰다. 하지만 김정화는 “드라마 촬영 중 강동원이 맨손으로 후진하는 차를 막아주기도 했다. 심쿵했다”고 밝혔다고 해 강동원과의 인연 풀스토리에 관심이 고조된다. 그런가 하면 김정화는 “작년에 ‘뉴논스톱’에 출연한 배우들이 한자리에 모였다”고 말해 눈길을 끌었다. 이어 그는 “조인성을 포함한 모두가 만약 ‘시즌2’가 제작된다면 출연하고 싶다고 했다”며 시간이 지나도 끈끈한 팀워크를 확인했다는 전언이어서 ‘뉴논스톱’ 동창회 비하인드에 기대감이 증폭된다. 또한 AOA 혜정은 “이종석 얼굴에 물세례를 퍼부었다”고 말해 모두를 깜짝 놀라게 했다. 드라마 ‘로맨스 별책부록’에 이종석의 전 여자친구로 출연했던 것. 이에 혜정은 “한 번에 OK 사인을 받기 위해 집에서 설거지하면서 연습도 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드라마 ‘신사의 품격’에 함께 출연한 김민종에게 미안한 마음을 전했다는 후문. 이에 그 이유가 무엇일지 궁금증이 높아진다. 최고의 스타들과 함께하는 마법 같은 목요일 밤 KBS 2TV ‘해투4’는 오늘(23일) 밤 11시 10분에 방송된다. 이보희 기자 boh2@seoul.co.kr
  • 5·18전도사 재미교포 서유진씨 5·18구묘역 안장

    아시아와 미주 등 전 세계인을 상대로 5·18정신을 전파한 서유진 전 아시아인권위원회 특별대사가 5·18구묘역에 안장된다. 5·18민주화운동 39주년을 이틀 앞둔 지난 16일 미국에서 숨을 거둔 서씨는 평생을 5·18을 알리는데 바치면서 ‘5·18 전도사’로 불린다. 23일 광주시에 따르면 시와 5·18기념재단, 5·18 3개 단체, 광주시민단체협의회 등으로 구성된 ‘5·18구묘역 안장심의위원회’는 서유진씨의 5·18구묘역 안장을 만장일치 결정했다. 5·18 사적 24호로 지정된 5·18구묘역은 5·18 당시 희생자들이 처음 묻혔던 곳이다. 안장심의위는 서씨가 1980년 직후부터 5·18의 진실을 비롯해 대한민국의 민주주의와 인권 등을 알리는 다양한 활동을 해 왔다는 점을 높이 평가해 안장을 의결했다. 고인을 추모하는 광주지역 인사들이 구성한 ‘서유진 선생을 추모하는 사람들’은 이번 결정에 따라 유족과 협의 후 조만간 서씨의 유골을 항공편으로 옮겨 안장할 예정이다. 서씨는 전북 완주군 삼례 출신으로 1970년대 미국으로 이민해 광주와 직접적인 인연은 없다. 하지만 5·18 이후 광주 오월에 관심을 갖기 시작해 1982년부터 미주 민주회복통일연합 사무총장으로 활동하며 국외에서 ‘5·18 전도사’ 역할을 해왔다. 특히 신군부로부터 사형 선고를 받았던 고 김대중 대통령이 미국에서 망명하던 시절 지근거리에서 함께하며 투쟁했다. 1992년에는 귀국해 1994년부터 광주시민연대에서 활동했다. 5·18정신을 아시아를 비롯한 세계에 전파하기 위해 1998년부터는 홍콩에 본부를 둔 아시아인권위원회(AHRC)의 특별대사로 활동하면서 스리랑카, 인도네시아, 미얀마, 캄보디아 등 아시아 각국 현장에서 인권 증진 활동을 펼쳐왔다.서씨는 5·18 광주정신 세계화 및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 등에 기여한 공로로 2018년 오월 어머니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서씨는 최근까지 광주에 머물다 신병치료를 위해 미국 볼티모어에 있는 자택으로 돌아간 지 이틀만에 세상을 떠났다. 서씨의 별세 소식이 알려지자 바실 페르난도(2001년 광주인권상 수상자) 아시아인권위 전 대표는 추도 성명을 내고 “5·18민주화운동 기념일 이틀 전, 한국 군사독재를 물리치기 위해 평생을 헌신하신 서유진 선생이 병환으로 세상을 떠나셨다”면서 “서유진 선생과 같은 분들이 있었기에 광주가 민주주의로의 길을 열어 세계적인 인권도시로 인정받을 수 있었다”고 추모했다. 유가족으로는 부인 유남점씨와 두 자녀가 있다. 광주 최치봉 기자 cbchoi@seoul.co.kr
  • [윤기자의 콕 찍어주는 그곳] 외나무 다리, 세상과 이어주는 영주 무섬마을

    [윤기자의 콕 찍어주는 그곳] 외나무 다리, 세상과 이어주는 영주 무섬마을

    # 시인 조지훈의 흔적, 폭 25cm 외나무 다리 그대로 “십리라 푸른 강물은 휘돌아 가는데 / 밟고 간 자취는 바람이 밀어가고” <조지훈의 시, 별리(別離) 중에서> 영주의 무섬마을을 노래한 조지훈(1920-1968)의 시다. ‘얇은 사(紗) 하이얀 고깔’로 시작되는 <승무(僧舞)>를 비롯하여 <고풍의상>, <봉황수> 등 우리 귀에 꽤나 익숙한 작품을 지은 조지훈은 혜화전문학교(동국대학교 전신)에 다녔다.당시 동학(同學) 친구였던 김용진의 본가가 영주 무섬마을이어서 방학 때마다 이곳에 들른다. 그리고 인연은 이어진다. 1939년 독립운동가였던 무섬마을의 선비 김성규의 장녀 김난희에게 장가를 든다. 스무 살 앳된 신랑은 사랑을 찾아 외나무다리를 건넜다. 예나 지금이나 양반마을이 아니라 선비마을이라 불리는 영주의 무섬마을, 그리고 외나무 다리다.우선 경상북도 영주로 가는 길부터 만만치는 않다. 서울 시내에서 자동차로 쉬지 않고 달려도 3시간은 훌쩍 지나간다. 중부고속도로에 차를 올려 중앙고속도로로 길을 바꾼 뒤 영주IC로 빠지고도 한참이나 길을 가야 드디어 문수면 수도리가 등장한다. 그리고 곧이어 무섬마을로 안내하는 다리가 나온다. 오직 튼튼하게만 지은 듯한, 1983년에 들어선 총연장 180m, 폭 5.5m의 현대식 콘크리트 다리인 수도교(橋)다. 무섬마을 안으로 이제야 접어든다.# 오지(奧地) 무섬마을, 3면이 강으로 둘러싸인 물돌이 마을 무섬마을은 경상도에 위치한 대표적인 물돌이 마을(마을의 삼면이 물로 둘러싸인 지형) 중의 하나다. 안동 하회마을을 비롯하여 예천의 회룡포 등이 대표적인 물돌이 마을들인데, 그 중에서도 무섬마을은 마을 깊이로는 첫 손에 꼽힐 만큼 내륙 중의 오지로 불렸다. 오죽하면 ‘물 위의 섬’이라 불러 ‘무섬’을 마을이름으로 지었을까? 낙동강에서 옆으로 뻗쳐 흐르는 내성천과 영주천이 무섬마을에서 합해져 인근의 태백산과 소백산을 한 바퀴 휘돌아 나가고, 마을 뒷면으로는 숲이 우거지고 앞으로는 백사장이 드넓게 펼쳐져 있다. 그러하니 한 번이라도 무섬마을 외나무 다리를 건너온 사람이라면 고즈넉한 마을 풍광에 매료되지 않을 수가 없다.무섬마을은 1666년 반남(潘南) 박씨인 ‘박수’가 마을에 터를 닦은 후 예안 김씨 가문이 박씨 문중과 혼인하면서 오늘날까지 두 집안의 집성촌으로 남아있다. 입향조(入鄕祖)인 박수 어른이 만든 만죽재(晩竹齎)를 비롯해 19세기 말 의금부 도사를 지낸 김낙풍이 지은 해우당 고택, 김규진 가옥, 김위진 가옥 등 9점이 경상북도 문화재자료와 민속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특히 폭 20~25cm, 높이 60cm로 만들어진 외나무다리는 수도교가 들어서기 전까지 350년 동안이나 무섬마을과 세상을 이어주었다. 지금의 외나무다리는 2005년에 복원한 것으로 무섬마을의 현재와 과거를 여전히 연결해주는 통로이기도 하다. <무섬마을에 대한 여행 10문답> 1. 꼭 가봐야 할 정도로 중요한 여행지야? - 영주 부석사, 소수서원을 오전에 방문한 뒤에 천천히 오후 반나절을 쉬고 싶다면 2. 누구와 함께? - 가족 단위, 특히 나이 드신 할아버지, 할머니와 함께라면 3. 가는 방법은? - 경북 영주시 문수면 무섬로234번길 31-12 - 일반 버스 20, 무섬마을 행 4. 감탄하는 점은? - 좁디 좁은 외나무다리와 비껴 다리, 조선 중기의 시간을 고스란히 간직한 고택들 5. 명성과 내실 관계는? - 생각보다 방문객들이 많지 않다. 6. 꼭 봐야할 것은? - 만죽재, 해우당, 각종 한옥들. 외나무 다리 7. 토박이들이 추천하는 먹거리는? - 영주 축협 한우프라자, 묵호문어집, 명동감자탕, 일월식당, 약선당 8. 홈페이지 주소는? - http://musum.kr/home/ 9. 주변에 더 볼거리는? - 부석사, 소수서원 10. 총평 및 당부사항 - 무섬마을은 관광지가 아니라 지금도 주민들이 거주하는 마을이다. 그러하기에 여느 관광지와는 다른 생활의 공간이 펼쳐진다는 점에서 매력적인 곳이다. 조용하고 평온한 쉼을 원하는 사람이라면 추천! 글·사진 윤경민 여행전문 프리랜서 기자 vieniame2017@gmail.com
  • [씨줄날줄] 학자금 대출 탕감/박록삼 논설위원

    [씨줄날줄] 학자금 대출 탕감/박록삼 논설위원

    1794억원. 지난해 말 국세청 국세통계연보에 나온 ‘취업 후 학자금 의무 상환 대상’ 금액이다. 학자금 대출을 받은 대학 졸업생들이 사회로 나와 취업하자마자 갚기 시작해야 할 빚의 전체 규모다. 하지만 이는 빙산의 일각이다. 한국장학재단, 사학연금, 공무원연금, 군인연금 등이 빌려준 학자금 대출 잔액은 15조원이라는 통계도 있다. 지난해 대학생 1명의 평균 대출금은 843만원, 졸업생만 따지면 한 사람당 평균 대출 규모가 1500만원이다. 취업도 전에 ‘빚쟁이 신세’다. 대출받고 아르바이트 해가면서 어렵사리 공부하고 졸업한 청년들을 기다리는 것은 살인적 취업난이다. 온갖 스펙 동원해 힘겹게 취업했더니 첫달 월급에서부터 밀린 빚을 갚아 나가야 한다. 월급으로 빚잔치를 하고 나면 작은 전셋집 마련도 어려우니 결혼을 선뜻 결심하기도 어렵다. 설령 결혼하더라도 출산 결심에는 더 큰 용기가 필요하다. 미래를 위한 투자는 언감생심이며 낮은 신용등급은 괴롭디괴로운 덤이다. 등록금 대출→취업난→취업 뒤 빚 상환→결혼난→저출산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의 무한루프’다. 그런데 비록 미국의 이야기지만 눈이 번쩍 뜨이는 뉴스가 최근 들렸다. 지난 19일 아프리카계 미국인 중 최고 부자로 꼽히는 로버트 프레드릭 스미스(56)가 조지아주 애틀랜타 모어하우스 칼리지 졸업식 축사에서 졸업생 400여명의 모든 학자금 대출(약 4000만 달러·478억원)을 대신 갚아 주겠다고 약속했다. 졸업식장은 뒤집어졌다. 스미스는 “우리 사회와 마을이 함께 키운 여러분이 자신의 재능을 환원할 수 있는 사람이 되길 바란다”면서 “여러분의 버스에 연료를 조금 넣어 주는 대신 여러분 또한 선행을 계속 이어 갈 것이라 확신한다”고 말했다. 모어하우스 칼리지는 인권운동가 마틴 루서 킹 목사가 졸업한, 흑인들이 많이 다니는 대학으로 잘 알려져 있다. 44억 달러(약 5조 2000억원) 자산가인 스미스는 이 대학이 아닌 코넬대학을 나왔다. 노블레스오블리주의 실천이다. 이 미담 기사에 달린 댓글은 부러움 일색이었다. 하지만 마냥 부러워만 할 일은 아니다. 미국의 학자금 대출 잔액 규모는 1조 5000억 달러(약 1793조원)다. 졸업생 1인당 1억~2억원 빚은 기본이다. 대학이 신분 상승은커녕 평생 빚에 허덕이게 하는 ‘2등 시민’만 양산한다는 비판이 끊이지 않는다. 학자금 대출 ‘깜짝 탕감’ 소식이 부럽긴 하다. 그래도 독지가 몇 명의 선의로 고등교육 시스템이 지탱되는 세상이라면 이는 모래성과 마찬가지다. 정도 차이만 있을 뿐 우리도 마찬가지다. 학력 차별, 학벌 중심 사회를 바꾸지 않으면 악순환의 고리는 쉽게 끊어지지 않을 것이다. youngtan@seoul.co.kr
  • “盧대통령 말·글 속에 산 지 15년 만에 ‘탈상’… 그분 소환 더 없었으면”

    “盧대통령 말·글 속에 산 지 15년 만에 ‘탈상’… 그분 소환 더 없었으면”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10주년이 되는 날이 오늘, 23일이다. 경남 진해시 진영읍 봉하마을에서는 부인 권양숙 여사와 유족을 비롯해 조지 W 부시 전 미국 대통령, 정당 대표, 지방자치단체장, 참여정부 인사, 시민 등 50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추도식이 열린다. 이번 10주기의 캐치프레이즈는 ‘새로운 노무현’이다. 추모 행사도 중요하지만, 이제는 자라나는 세대들, 새로운 깨어 있는 시민들이 정말로 노무현 정신이 어떤 것인지를 되새기고 미래지향적으로 나가야 한다는 뜻이다. 바로 이 캐치프레이즈를 ‘노무현의 입’이었던 윤태영(58) 전 청와대 대변인이 고안했다. 지난해 추모 행사의 캐치프레이즈였던 ‘평화가 온다’도 그의 머릿속에서 나왔다.참여정부의 탄생과 국정 운영을 이끌었던 사람들은 많다. 문재인 대통령을 비롯해 문희상 국회의장,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 등 노무현의 사람들은 문재인 정부 들어서도 대한민국을 이끄는 핵심권력으로 활약하고 있다. ‘인간 노무현’과의 친밀도를 따지면 윤태영만 한 사람이 없다. 윤 전 대변인에게 노무현은 어떤 존재일까. “제 인생의 절반입니다. 30대에 정치권에 들어왔는데 정치인 보좌관과 멘토, 40대에는 노 대통령의 측근 보좌관, 50대에는 노 대통령의 말을 기록하고 알리는 기록자로 일해 왔습니다. 근 30여년 동안 노 대통령과 함께 산 셈이죠.” 윤 전 대변인은 1988년 이기택 전 통일민주당 총재의 보좌관으로 일하면서 당시 13대 국회의원으로 정계에 진출한 정치인 노무현을 만났다. 1994년 잠시 여의도를 떠나 새터 출판사 편집장으로 일할 때 1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낙선한 노 전 대통령의 자전적 에세이 ‘여보 나 좀 도와줘’ 집필 작업에 참여하면서 인연을 맺었다. 그러다가 2000년 말 노무현 대선캠프에 합류하면서 본격적으로 ‘노무현 사람’이 됐다. 2002년 노무현 대선후보 홍보팀장이었던 그는 2003년부터 참여정부 청와대에서 연설담당비서관과 대변인, 제1부속실장, 연설기획비서관 겸 대변인을 차례로 맡으며 노무현의 ‘복심’(腹心)으로 통했다. 특히 2000년부터 2009년까지 10년 정도의 세월을 ‘노무현의 말’과 함께 살았다. 2003년부터 2007년까지는 대통령인 그의 말을 받아 적는 게 직업이었다. 노무현의 말에 관해 뜨거운 찬사와 차가운 비난을 함께 듣는 분신이었다. “요즘도 일주일에 두세 번씩은 대통령을 뵙니다. 물론 꿈속에서지요. 달변이셨던 대통령은 말씀을 많이 하시지는 않아요. 저와의 추억에 대한 회고를 하시는 건지 제 곁에 한참 동안이나 계시다가 묵묵히 가십니다.” 2008년 노 전 대통령이 퇴임한 뒤 ‘봉하 집필팀’을 이끌며 노무현의 말과 글을 기록하는 데 참여했던 윤 전 대변인은 2009년 5월 23일 노 전 대통령이 서거한 뒤 사라졌다. 최측근 참모로서 대통령의 죽음을 막지 못했다는 죄책감과 자책에 시달렸기 때문이다. 아픔을 달래느라 잘 못 마시는 술로 버티다가 병을 얻었다. 2011년 2월 지주막하 출혈이라는 뇌출혈로 중환자실에 2주일가량 입원했다. 퇴원 이후에도 뇌압이 심해 후유증을 앓았다. 그 후유증을 이겨내느라 파주의 산 밑에 가서 2013년까지 세상과 등진 채 살았다. “노 대통령을 지키지 못했다는 죄책감이 컸습니다. 사람들 앞에 나서는 것 자체가 두려웠어요. 몸도 아프고 마음도 아프고. 노 대통령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자책감이 들어 누구도 만나질 않았습니다.”윤태영을 다시 일으킨 사람은 역시 노무현이었다. 2014년 노 전 대통령 이야기를 담은 책 ‘기록’을 펴내면서 세상 밖으로 나왔다. 이후 지금까지 6년 동안 ‘대통령의 말하기’, ‘바보, 산을 옮기다’, ‘윤태영의 글쓰기 노트’ 등 7권의 책을 펴냈다. 이들 중 ‘대통령의 말하기’는 6만여권이나 판매됐다. 지난 17일에는 ‘윤태영의 좋은 문장론’(위즈덤하우스)을 출간했다. 좋은 글은 한 시간을 썼으면 세 시간을 다듬어야 한다는 지론을 내세운 첨삭 지도 책이다. 글을 잘 쓰는 방법, 그중에서도 문장 다듬기 기술을 집중적으로 소개했다. 좋은 문장을 만들기 위해 쓰고 다듬는 과정은 결국 ‘나와 세상을 바꾸는 여정’이라고 의미를 부여한다. 이처럼 윤 전 대변인의 책의 주제는 ‘노무현’ 아니면 ‘글쓰기’다. “노 대통령은 책을 읽고 사법시험을 치고 인권변호사가 되다 보니, 책에 대한 집착이 굉장히 강했습니다. 글로 쓰인 것에 굉장한 가치를 부여했습니다. 정치는 돈과 권력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말과 글로 하는 것이라는 말씀을 수시로 하셨습니다. 이런 노무현의 말과 글을 다듬으며 책을 쓰는 데 몰입하면서 병을 치유했습니다. 책을 쓰는 것 자체가 대통령의 말씀 속에서 살고 있었던 것이죠.” 윤 전 대변인은 노무현의 말을 500여권에 달하는 휴대용 포켓수첩과 100여권의 업무수첩, 1400여개의 한글파일로 담아 놓고 있다. 자신이 기록한 노무현의 말을 하나씩 풀어 책과 기록으로 남겨 놓는 작업을 묵묵히 해 왔다. 지금은 노 전 대통령과 관련된 마지막 저술 작업이라고 여기는 ‘노무현 평전’ 집필 작업에 몰두하고 있다. 올해 말이나 내년 초 탈고를 목표로 마지막 정성을 쏟고 있다. 내년 5월 노 전 대통령 서거 11주기에 맞춰 출간할 예정이다. 그는 ‘노무현 평전’ 집필이 끝나면 “적극적으로 강연도 하는 등 대중과 접할 기회를 자주 가질 것”이라고 했다. 그는 문 대통령의 2012년 민주통합당 대선후보 수락 연설과 2017년 대통령 취임사 초고를 다듬기도 했다. ‘기회는 평등할 것입니다. 과정은 공정할 것입니다. 결과는 정의로울 것입니다’라는 명 연설문을 그가 만들었다. 노 전 대통령과 문 대통령의 관계를 묻자 정치적 동지 이상이라고 했다. “원칙과 소신을 갖고 있던 노 대통령이 마지막 결정을 해야 하는 순간에 기대고 의지했던 분이 바로 문재인 변호사”라고 회고했다. 윤 전 대변인은 지난 2008년 18대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를 고려했다. 주위에서 “청와대 대변인도 두 번이나 해 얼굴도 많이 알려졌으니 총선에 출마하라”는 권유가 끊이질 않았다. 이런 얘기를 누구한테 전해들은 노 전 대통령은 윤 전 대변인을 따로 불렀다. 그리고 다짜고짜 “진짜 정치할 생각인가. 출마하지 말게. 내가 글쓰는 걸 도와주는 게 훨씬 잘하면서도 나라를 위한 일일 거야”라며 윤 전 대변인의 출마의지를 꺾었다. 노 전 대통령은 워낙 험난한 정치 역정을 걸어서인지 주변 사람들이 정치를 하는 걸 탐탁지 않게 여겼다. 실제로 노 전 대통령은 2009년 3월 4일 노 전 대통령의 홈페이지인 ‘사람사는세상’에 “정치하지 마라”는 글을 올렸다. 노 전 대통령의 참모들은 서거 두어 달 전의 글에 대한 진의를 놓고 아직도 해석이 분분하다. 이를 두고 윤 전 대변인은 “정치를 지향하는 사람들에게 정치를 하지 말라는 것보다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꿋꿋하게 정치를 하는 사람들을 외면하지 말라고 쓴 ‘역설적 표현’이다”라고 해석했다. 내년 4월 21대 총선 출마 가능성을 묻자 “그동안에는 생각이 없었는데 지금은 기회를 열어 놓고 생각하려 한다. ‘노무현 평전’이 끝난 뒤에…”라며 여운을 남겼다. ‘노무현 평전’의 탈고가 올해 말이면 공천 작업이 끝날 수도 있다고 하자 “그럼 할 수 없지요”라는 알 듯 말 듯한 대답이 돌아왔다. 2004년부터 시작한 윤 전 대변인의 노무현 글쓰기 작업은 15년 만에 막을 내린다. 그에게는 ‘탈상’(脫喪)이나 마찬가지다. 그는 이 지난한 작업을 마무리하면서 한 가지 소원이 있다고 했다. “그동안 노 대통령에 대한 오해와 편견이 많았잖아요. 책을 쓰면서 더이상 노 대통령이 현실정치에 소환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노 대통령의 말과 글을 정치권에서 정략적으로 삼지 않는 그런 분위기가 왔으면 좋겠습니다.” jrlee@seoul.co.kr
  • 방한 부시 첫 일정은 이재용과 단독면담

    방한 부시 첫 일정은 이재용과 단독면담

    李, 올 국내서 외국 정상과 세 번째 만남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22일 방한 중인 조지 W 부시 전 미국 대통령과 만났다. 부시 전 대통령은 23일 열리는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10주기 추도식 참석을 위해 이날 입국했다. 이 부회장은 오후 6시 30분부터 약 30분 동안 진행된 단독 면담에서 부시 전 대통령에게 최근 급변하는 글로벌 산업환경에서 기업의 역할에 대해 조언을 구하는 한편 삼성이 추구하는 지향점과 자신의 의견을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부시 전 대통령의 숙소 첫 일정인 이 부회장과의 회동은 원래 비공개로 진행될 예정이었다. 이 부회장이 부시 전 대통령의 숙소인 서울 광화문 근처 호텔을 찾는 장면이 목격되면서 일정이 공개됐다. 둘 사이 만남은 지난 2015년 10월 부시 전 대통령이 프레지던츠컵 대회 개막식 참석차 방한했을 때 이후 4년 만이다. 삼성과 부시가(家)의 인연은 이 부회장과 부시 전 대통령의 아버지 대부터 맺어졌다.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은 지난 1992년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부시 전 대통령의 부친인 조지 H W 부시 전 대통령을 재임 중 면담, 미국 내 투자 방안을 논의했다. 1996년 삼성전자는 텍사스주 오스틴에 최초의 해외 반도체 공장을 설립했고 1998년 이 공장 준공식에 당시 텍사스 주지사이던 부시 전 대통령이 참석했다. 2003년 오스틴 공장에서 열린 삼성전자의 ‘나노테크 3개년 투자’ 기념행사엔 아버지 부시 전 대통령이 참석했다. 한편 올해 들어 이 부회장은 국내에서만 세 번째로 외국 정상급 인사와 회동했다. 지난 2월 청와대에서 열린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의 국빈오찬에 초청받았고, 같은 달 방한 중 삼성전자 화성 반도체 공장을 방문한 아랍에미리트(UAE)의 무함마드 빈 자이드 알 나하얀 왕세제를 맞이했다. 앞서 두 번의 만남은 외국 정상급 인사의 요청에 따라 만남이 성사됐다. 특히 모디 총리는 국빈 방한 중 청와대에 “방한 기간에 이 부회장을 꼭 만나고 싶다”고 요청, 해외 출장 중이던 이 부회장이 일정을 바꿔 귀국해 오찬에 참석했다. 앞서 지난해 7월 이 부회장은 인도 노이다의 삼성전자 휴대전화 공장을 방문한 문재인 대통령과 함께 모디 총리를 만났다. 같은 해 10월엔 베트남 하노이에서 응우옌쑤언푹 총리를 면담한 바 있다. 각국이 삼성 투자 유치, 삼성과의 거래 기회 발굴에 적극 나서는 분위기 속에서 이 부회장과 방한한 정상급 인사들 간 스킨십이 강화되고 있다고 재계는 보고 있다. 홍희경 기자 saloo@seoul.co.kr
  • 깨어 있는 시민 사람 사는 세상

    깨어 있는 시민 사람 사는 세상

    선민 의식·보스 정치 부순 시민의 힘 풀뿌리 정치서 촛불혁명까지 이어져 시민, 통치의 대상에서 정치의 주체로 “盧, 시대에 맞는 의제 던진 첫 대통령”‘민주주의 최후의 보루는 깨어 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입니다.’ 23일로 서거 10주기를 맞은 노무현(1946~2009) 전 대통령의 묘석 아래에 간결하게 적힌 문장이다. ‘노무현 정신’의 핵심이자, 그가 우리 시대에 남긴 과제다. 노 전 대통령은 2003년 2월부터 5년간 나라를 이끌면서 시민의 참여와 탈권위를 국정의 뼈대로 삼았다. 노 전 대통령에 대한 공과는 엇갈리지만, 통치의 대상이었던 국민을 정치의 주체로 세우려 했던 철학은 지금을 사는 모든 정치인이 되새겨야 할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대통령 노무현은 등장부터 시민의 힘에 기댔다. 헌정사 최초로 국민이 직접 뽑는 ‘국민참여경선’을 통해 여당 대선 후보가 됐다. 정치인 팬덤의 시초 격인 ‘노사모’(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의 자발적이고 강력한 지지는 계파와 조직을 앞세우던 ‘보스 정치’를 무너뜨렸다. 당선 뒤 정부의 이름을 ‘참여정부’로 지었고 주요 국정과제 중 첫 번째를 ‘국민과 함께하는 민주주의’로 삼았다. 이준한 인천대 정치학과 교수는 “노 전 대통령은 ‘선민(애초 선택받은 사람)만이 대통령이 될 수 있다’는 인식을 깨고 노력하면 누구든 그 자리에 오를 수 있다는 걸 증명했다”고 말했다. 노 전 대통령은 기득권 세력이 누렸던 반칙과 특권을 깨려고 했다. 시민의 힘으로 대통령에 오른 국정 책임자의 당연한 과업이었지만, 정치·언론·검찰 등 권력의 카르텔 앞에서 좌절했다. 비교적 반발이 적었던 주민소환제와 주민투표제 등은 시행에 성공해 시민들이 풀뿌리 정치에 참여할 수 있는 길을 넓혔다. 조진만 덕성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민주화 이후 김대중 전 대통령은 눈앞에 닥친 외환위기를 극복하느라 시대정신까지 제시하지는 못했다”면서 “노 전 대통령은 기득권에 정면으로 맞서며 처음으로 시대에 맞는 의제를 던졌다”고 평가했다. 노 전 대통령이 열어젖힌 참여 민주주의는 이명박·박근혜 정부를 거치면서 뒷걸음질치는 듯했다. 시민들도 깨어 있기보다는 각자도생의 길로 달려가는 듯했다. 하지만 2016~2017년 촛불 혁명과 문재인 정부 출범을 거치며 깨어 있는 시민들이 역사의 주인이라는 노무현의 ‘명제’는 재차 증명됐다. 조 교수는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밀어붙였다가 처절하게 좌절하고 실패한 노무현의 경험이 우리에겐 역사로 남았다”면서 “그의 길을 되새겨보며 새 길을 만들어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깨어 있는 시민’ 문구의 원본 액자는 지금 문재인 대통령의 청와대 관저에 걸려 있다. 1990년대부터 노 전 대통령과 인연을 맺은 고재순 노무현재단 사무총장이 정의한 ‘노무현’은 이랬다. “철학과 원칙, 상식을 갖고 뜻을 펼친 정치인. 서민을 먼저 생각하는 따뜻함과 불의에 맞서는 분노를 동시에 지닌 사람. 수십 년 안에 다시 만날 수 없을 대통령.” 이하영 기자 hiyoung@seoul.co.kr이근아 기자 leegeunah@seoul.co.kr
  • 깨어 있는 시민 사람 사는 세상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는 깨어 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입니다.’ 23일로 서거 10주기를 맞은 노무현(1946~2009) 전 대통령의 묘석 아래에 간결하게 적힌 문장이다. ‘노무현 정신’의 핵심이자, 그가 우리 시대에 남긴 과제다. 노 전 대통령은 2003년 2월부터 5년간 나라를 이끌면서 시민의 참여와 탈권위를 국정의 뼈대로 삼았다. 노 전 대통령에 대한 공과는 엇갈리지만, 통치의 대상이었던 국민을 정치의 주체로 세우려 했던 철학은 지금을 사는 모든 정치인이 되새겨야 할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대통령 노무현은 등장부터 시민의 힘에 기댔다. 헌정사 최초로 국민이 직접 뽑는 ‘국민참여경선’을 통해 여당 대선 후보가 됐다. 정치인 팬덤의 시초 격인 ‘노사모’(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의 자발적이고 강력한 지지는 계파와 조직을 앞세우던 ‘보스 정치’를 무너뜨렸다. 당선 뒤 정부의 이름을 ‘참여정부’로 지었고 주요 국정과제 중 첫 번째를 ‘국민과 함께하는 민주주의’로 삼았다. 이준한 인천대 정치학과 교수는 “노 전 대통령은 ‘선민(애초 선택받은 사람)만이 대통령이 될 수 있다’는 인식을 깨고 노력하면 누구든 그 자리에 오를 수 있다는 걸 증명했다”고 말했다. 노 전 대통령은 기득권 세력이 누렸던 반칙과 특권을 깨려고 했다. 시민의 힘으로 대통령에 오른 국정 책임자의 당연한 과업이었지만, 정치·언론·검찰 등 권력의 카르텔 앞에서 좌절했다. 비교적 반발이 적었던 주민소환제와 주민투표제 등은 시행에 성공해 시민들이 풀뿌리 정치에 참여할 수 있는 길을 넓혔다. 조진만 덕성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민주화 이후 김대중 전 대통령은 눈앞에 닥친 외환위기를 극복하느라 시대정신까지 제시하지는 못했다”면서 “노 전 대통령은 기득권에 정면으로 맞서며 처음으로 시대에 맞는 의제를 던졌다”고 평가했다. 노 전 대통령이 열어젖힌 참여 민주주의는 이명박·박근혜 정부를 거치면서 뒷걸음질치는 듯했다. 시민들도 깨어 있기보다는 각자도생의 길로 달려가는 듯했다. 하지만 2016~2017년 촛불 혁명과 문재인 정부 출범을 거치며 깨어 있는 시민들이 역사의 주인이라는 노무현의 ‘명제’는 재차 증명됐다. 조 교수는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밀어붙였다가 처절하게 좌절하고 실패한 노무현의 경험이 우리에겐 역사로 남았다”면서 “그의 길을 되새겨보며 새 길을 만들어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깨어 있는 시민’ 문구의 원본 액자는 지금 문재인 대통령의 청와대 관저에 걸려 있다. 1990년대부터 노 전 대통령과 인연을 맺은 고재순 노무현재단 사무총장이 정의한 ‘노무현’은 이랬다. “철학과 원칙, 상식을 갖고 뜻을 펼친 정치인. 서민을 먼저 생각하는 따뜻함과 불의에 맞서는 분노를 동시에 지닌 사람. 수십 년 안에 다시 만날 수 없을 대통령.” 이하영 기자 hiyoung@seoul.co.kr 이근아 기자 leegeunah@seoul.co.kr ▶관련기사 3·4·5·27면
  • 유시민, 모친상에 조의금 받지 않은 이유

    유시민, 모친상에 조의금 받지 않은 이유

    “조의금 받으면 또 갚아야 해서 서로 부담 없이 하자”윤후덕 “조의금 안 받으면 정치행보 아직 헷갈리는 것”문재인 대통령 조화 보내…조문객에게 가족문집 선물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이 22일 모친상을 당해 다음날 있을 23일 경남 김해 봉하마을에서 열리는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 10주기 추도식에 참석할 수 없게 됐다. 유 이사장은 이날 경기 일산병원에 차려진 모친 서동필씨의 빈소에서 기자들과 만나 “저희 어머니가 못 가게 붙잡으신 것 같다”면서 “여기 있으라고 하신 것 같아서 (추도식에 가지 않고) 그냥 있기로 했다”고 말했다. 그는 “(노무현) 대통령님은 나중에, 10주기 행사에 못 가니까 어머니 장례가 끝나고 따로 찾아뵈면 된다”면서 “제가 거기(추도식)에서 하기로 했던 역할은 (재단의) 다른 이사님들이 나눠서 하시도록 해서 (권양숙) 여사님하고도 통화해서 양해말씀을 청했다”고 밝혔다. 노무현재단은 유 이사장의 모친이 최근 위독해진 점을 고려, 유 이사장이 추도식에 불참할 가능성에 대해서도 대비해온 것으로 전해졌다. 유 이사장은 이날 자신의 팬클럽인 ‘시민광장’ 회원들에게 ‘어머니의 별세에 대하여’라는 글을 보내 “제 어머니가 여든 아홉해를 살고 세상을 떠나셨다”고 알렸다. 그는 “어머니는 병상에 계셨던 지난 2년 반 동안 자신의 삶에 대한 만족감과 자부심을 여러차례 표현하셨다”면서 “다시는 목소리를 듣고 손을 잡을 수 없게 된 것은 아쉽지만, 저는 어머니의 죽음이 애통하지 않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저를 위로하러 오실 필요는 없다. 슬프거나 아프지 않으니까요”라면서 “마음 속으로 ‘서동필 어머니, 안녕히 가세요’라고 인사해주신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말했다.유 이사장은 조의금과 꽃을 받지 않았다. 유 이사장은 조의금을 받지 않는 것에 대해 “받으면 제가 나중에 또 갚아야 해서, 서로 조문을 마음으로만 부담없이 (하자는 것)”이라고 말했다. 빈소를 찾은 윤후덕 의원은 “우리 직원하고 올 때 ‘(유 이사장이) 부조금을 받으면 다음 정치행보를 안 하는 것이고, 안 받으면 아직도 헷갈리는 것’이라고 농담을 하고 왔다”며 뼈 있는 말을 던지기도 했다. 유 이사장은 대신 조문객들에게는 고인과 유 이사장 등 6남매가 함께 쓴 ‘남의 눈에 꽃이 되어라’라는 제목의 가족 문집을 나눠줬다. 유 이사장은 기자들에게 “어머니가 2년 반 전에 편찮으시고 나서 언제일진 모르지만 (이런 날이 오면) 조문 오신 분들에게 감사표시로 하나씩 드리면 좋지 않을까 해서 자녀와 손주들이 글을 쓰고 묶고 어머니 구술기록을 받은 것”이라고 가족문집에 대해 설명했다. 유 이사장은 ‘정치를 하지 않겠다’고 선언하며 여의도 등 정치권과 거리를 두는 모습을 보여왔지만, 이날 빈소에는 정치인들의 발길이 이어졌다.문재인 대통령은 빈소에 조화를 보냈다.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임종석 전 대통령 비서실장, 박양우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 진영 행정안전부 장관, 민주당 원혜영·홍익표·김정호·박경미·윤후덕·윤준호 의원, 김현 미래사무부총장, 바른미래당 손학규 대표, 민주평화당 장병완 의원, 정의당 이정미 대표와 윤소하 원내대표 등은 빈소를 찾아 고인을 추모했다. 배우 문성근씨와 방송인 김제동씨, 김구라씨,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 등도 조문했다. 유 이사장과 유시춘 EBS 이사장을 비롯한 유족은 이날 빈소에 식사 대신 간단한 다과와 샌드위치만 준비했다. 유 이사장은 노무현 전 대통령과 고인의 인연에 대해 “(노 전 대통령이 돌아가셨을 때 어머니가) 서울역 분향소에 오셔서 많이 우셨다”면서 “당신 아들을 아껴주는 대통령이라 많이 눈물이 나셨던 듯하다. 저희 어머니는 노 전 대통령이 대통령 되신 뒤로는 뵌 적이 없다”고 말했다. 고인은 생전 노 전 대통령을 각별하게 생각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노 전 대통령 서거 당시 서울역 광장의 분향소에서 “내 아들아, 내 아들아”라며 오열하고 “너무 원통하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강주리 기자 jurik@seoul.co.kr
  • 부시 ‘노무현 초상화’ 들고 방한…노무현 10주기 추도식 참석

    부시 ‘노무현 초상화’ 들고 방한…노무현 10주기 추도식 참석

    조지 W.부시 전 미국 대통령이 오는 23일 고 노무현 전 대통령 10주기 추도식에 참석하기 위해 22일 한국에 도착했다. 부시 전 대통령은 이날 낮 3시 40분쯤 서울 강서구 김포국제공항에 도착했다. 편안한 차림으로 입국한 부시 전 대통령은 귀빈실을 나오면서 환한 표정으로 취재진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취재진이 ‘한국에 온 것을 환영한다’고 하자 부시 전 대통령은 “Great friends”라고 답했다. 하지만 이후에는 취재진의 질문에 특별한 답을 하지 않고 대기 중인 차에 탑승했다. 부시 전 대통령은 오는 23일 오전 문재인 대통령과의 면담을 시작으로 방한 일정을 소화한다. 이어 낮 2시에 경남 김해 봉하마을에서 열리는 노 전 대통령 추도식에 참석한다. 추도식이 열리기 전 부시 전 대통령은 권양숙 여사와 문희상 국회의장, 이낙연 국무총리,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 해리 해리스 주한미국대사 등과 환담을 한다. 이 자리에서 부시 전 대통령은 직접 그린 노 전 대통령의 초상화를 권 여사에게 선물할 예정이다. 부시 전 대통령은 지난 2009년 1월 퇴임 후 ‘전업 화가’로 변신해 재임 중 만난 각국 정치인의 초상화, 자화상, 풍경화 등 다양한 주제로 작품 활동을 해왔다.앞서 노무현재단은 지난해 12월 노 전 대통령의 초상화를 그리고 싶다는 부시 전 대통령 측 의사를 접하고 두 정상이 함께 촬영한 사진을 포함해 14장의 사진을 전달했다. 추도식에서 부시 전 대통령은 문 의장, 이 총리에 앞서 가장 먼저 추도사를 낭독할 예정이다. 추도사는 미리 공개되지 않았지만,한미정상회담 등을 통해 쌓은 고인과의 인연을 회고하면서 한미동맹과 한반도 평화에 대한 고인의 업적과 열정을 기릴 것으로 보인다. 부시 전 대통령은 지난 2010년 발표한 회고록 ‘결정의 순간들’에서 노 전 대통령의 서거에 대해 “2009년 그의 갑작스러운 죽음을 접하고 깊은 슬픔에 빠졌음을 밝히고 싶다”고 적었다. 권 여사는 부시 전 대통령의 초상화 선물에 대한 답례로 노 전 대통령과 부시 전 대통령을 함께 새긴 판화작품과 노무현재단에서 준비한 10주기 특별 상품을 선물할 계획이다. 부시 전 대통령은 추도식 참석을 마치고 오후에 출국할 예정인 것으로 전해졌다.오세진 기자 5sjin@seoul.co.kr
  • ‘봄밤’ 한지민이 보여주는 퇴근 후 평화로운 일상의 모습은?

    ‘봄밤’ 한지민이 보여주는 퇴근 후 평화로운 일상의 모습은?

    한지민의 퇴근 후 여유로운 일상 속 모습으로 드라마 ‘봄밤’이 첫 포문을 연다. 22일 첫 방송되는 MBC 새 수목드라마 ‘봄밤’에서는 한지민(이정인 역)이 그녀의 절친 이상희(송영주 역)와 함께 절친 케미로 직장 여성의 평화로운 일상을 보여줄 예정이다. 공개된 사진 속에는 이정인(한지민 분)과 직장 동료 송영주(이상희 분)가 함께 맥주를 마시며 수다를 떠는 모습이 담겨 있다. 한 손에 맥주 한 캔 씩 들고 친근한 안주들을 한껏 펼쳐놓은 채 수다 꽃을 피우고 있어 보기만 해도 함께 어울리고 싶은 기분을 들게 한다. 이정인은 회사에서 미처 다 나누지 못한 수다들을 밤새 떨기도 하고, 한 밤중에 걸려온 전화에 촉촉한 눈빛을 빛내기도 해 밤사이 그녀에게 펼쳐질 다채로운 상황들을 예고하고 있어 보는 이들을 흥미롭게 만든다. 특히 이불도 없이 바닥에 한 자리 차지해 쿠션을 껴안고 잠이 든 이정인과 집안에 널브러진 어제의 잔재(?)들은 지난밤 수다가 꽤 오래 이어졌음을 예상케 한다고. 그뿐만 아니라 이날 숙취를 해결하려던 중 예기치 않은 인연과 마주하게 된다고 해 더욱 궁금해진다. 과연 평온한 일상의 이정인은 어떤 모습일지, 또한 일상의 행복을 누리던 이정인에게 찾아온 예기치 않은 인연은 누구일지 본 방송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다. 한편, MBC 새 수목드라마 ‘봄밤’은 22일 오후 9시에 방송된다. 사진제공=제이에스픽쳐스 임효진 기자 3a5a7a6a@seoul.co.kr
  • 제 5회 아시아에서 가장 일하기 좋은 기업에 대한민국 15개 기업 선정

    제 5회 아시아에서 가장 일하기 좋은 기업에 대한민국 15개 기업 선정

    미국, 독일, 중국, 한국 등 세계 63개국에서 신뢰경영지수를 발표하고 일하기 좋은 기업을 선정하고 있는 Great Places to Work® Institute는 21일 전국경제인연합회 컨퍼런스센터에서 Best Workplaces in Asia(아시아에서 가장 일하기 좋은 기업)에 대한 시상식을 진행했다. Best Workplaces in Asia는 아시아 지역 각 국가에서 추천된 2,500개 기업을 평가하고 1,200개 기업 및 기관을 후보군으로 확정해 최고의 GWP(신뢰경영)를 실현하고 있는 Best 75를 선정하는 제도로 조직내 임∙직원간의 신뢰지수(Trust Index©) 측정, GWP 합목적성 및 지속성, 매니지먼트 시스템 등에 대한 조직문화경영평가(Culture Auditⓒ) 등 글로벌 표준 평가를 통하여 선정한다. 금번 Best Workplaces in Asia 75에 선정된 기업 및 기관은 Salesforce, American Express, Adobe, SAS, Philips 등 세계의 유수한 기업을 비롯해 BNK부산은행, ㈜한국로슈, Cadence, EY한영, 한국남동발전㈜, 한국공항공사, 한국수자원공사, 한국임업진흥원, DHL코리아, 한국마즈, 효사랑가족요양병원 등 총 15개의 한국 기업 및 기관이 자랑스럽게도 선정됐다. 모범적이며 GWP 선진화를 위한 노력에 대해 그 공로를 인정하는 「가장 신뢰받는 CEO」에는 BNK부산은행 빈대인 은행장, (주)한국로슈 닉 호리지 Nic Horridge 대표이사, Cadence Lip-Bu Tan CEO, EY한영 서진석 대표이사, 한국공항공사 손창완 사장, 한국수자원공사 이학수 사장, 한국임업진흥원 구길본 원장, DHL코리아 한병구 대표이사, 한국마즈 정선우 대표이사, 효사랑가족요양병원 김정연 병원장 등이 선정됐다. 아시아 일하기 좋은 기업 평가위원이자 Great Place To Work Institute Korea의 지방근 대표는 한국 기업 및 기관이 1. 서로 이해하고 협조하는 노력 2. 다양성 존중 3. 건전한 비판과 수용 4. 협업하려는 의지가 높음 5. 여성의 참여 및 역량 발휘 기회 조성 6. 공동목표를 위해 기꺼이 헌신 한다는 면에서 탁월한 성과를 거둬 선정됐다고 전했다. 또 Best Workplaces in Asia 75에 선정된 한국 기업 및 기관은 신규 고용창출률 7.58%, 정규직 전환률 37.31%, 장애인 고용률 8.62%, 경단·워킹맘 고용률 3.07%, 이직률 2.31%을 나타내고 있고 이는 정부에서 발표되고 있는 고용지표 대비 신규 고용창출률은 2.68%, 직군전환률은 29.05%, 장애인고용률은 5.32% 높으며 이직률은 2.49% 낮은 등 탁월한 우위를 나타내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는 공직자들의 부정부패, 기업의 방만경영, 아동학대, 복지 논란, 정부의 수동적인 사건 대응태도 등 전반적으로 국민의 행복과 신뢰가 추락한 가운데 Best Workplaces in Asia 75에 선정된 기업 및 기관들은 내부신뢰를 강화하여 외부신뢰로 발현시키고 나아가 국민 및 국가 신뢰에 기여하는 노력에 눈길을 끈다. Best Workplaces in Asia 75에 선정된 자랑스런 대한민국의 15개 기업의 향후 모범적인 행보에 국민들의 지속적인 관심과 격려가 필요할 것으로 본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이기철의 노답 인터뷰] “광주 발포자 보고듣던 DJ, 조용히 눈 감더니 …”

    [이기철의 노답 인터뷰] “광주 발포자 보고듣던 DJ, 조용히 눈 감더니 …”

    ‘도덕성 회복’ 주창하는 허만기 총재가 말하는 ‘도덕과 정치’“역사적 대세가 대한민국으로 몰려오고 있습니다. 이런 중차대한 시기에 정치권이 국민의 장래에 폐를 주지 않고 꿈과 희망을 주도록 바짝 정신을 차려야 해요. 남북 관계, 경제 문제에 대해 국회의원들이 자기를 버리고 국가와 민족, 그리고 미래를 보면서 치열하게 논쟁하고 고민해도 모자랄 판에 국회를 내팽개치고 장외투쟁을 하는 것은 말이 안 됩니다. 주체성을 상실하고 도덕이 없는 집단인 겁니다. 광주민주항쟁이나 촛불혁명과 같은 민족의 기념비적 정신을 폄훼하고 모독하는 것은 반민주, 반도덕의 극치입니다. 물론 여당도 국정을 책임지는 위치이니 자기주장만 내세울 게 아니라 사리에 맞는 말에는 귀 기울여야 합니다.” 명함을 주고받는 수인사가 끝나자마자 그는 정치권 성토로 말문을 열었다.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아 최근 ‘국민 여러분에게 드리는 글’이라는 성명서를 낸 허만기 도덕성회복 국민연합 총재를 지난 15일 서울 여의도 사무실에서 만났다. 구순의 나이가 믿기지 않을 만큼 목소리는 쩌렁쩌렁했고, 기억은 어제 일을 말하는 것처럼 총명했다. 허 총재는 정치 원로로서 도덕이 없는 현재의 정치에 대해 신랄하게 일갈했다. “도덕성이 갖춰지지 않는 정치는 권력싸움에 불과하고, 진실이 없는 정치는 위선일 뿐”이라고 꾸짖었다. 그가 정치에 발을 내디딘 것은 1958년 제2대 경남도의원에 당선되면서부터다. 당시 자유당 부정선거를 폭로하면서 이승만 정부와 각을 세우다 구속되기도 했다. 전국적으로 유명해졌지만 1961년 5·16쿠데타가 발생하면서 ‘구정치인’으로 활동이 묶였다. “건국이념인 홍익인간·광명이세, 최고의 도덕도덕없는 정치, 권력싸움… 성명서 문의 많아” - 성명서를 냈습니다. 반응이 어떻습니까. “도덕성이 타락된 우리 정치가 너무한다 싶어서 성명서를 냈지요. 성명서를 내가 작성해서 아는 사람들과 기업인들에게 우편으로 보냈습니다. 반응이 아주 좋아요. 우리 시대의 교과서라거나, 좋고 옳은 말씀이라며 강의를 해달라 곳도 있고, 복사해서 써도 되느냐고 묻는 전화도 많이 옵니다.” - 정치권이 명심할 도덕을 들려주시면.“도덕이 한자여서 중국 것인 줄 아는데, 사실은 우리가 중국보다 훨씬 앞서 있습니다. 정치인들이 명심할 도덕은 조선의 건국이념인 홍익인간(弘益人間), 광명이세(光明理世) 입니다. 한자가 이 땅에 들어오기 훨씬 이전에 단군이 벌써 만들어낸 심오한 이념이지요. 사실, 이게 구전으로 전해오다 한문으로, 글로 남겨진 겁니다. 인간은 서로 도와야 하고, 인간 개인으로서의 우월성보다는 전체로서의 조화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인간이 먼저라는 것이지요. 광명은 밝음, 빛, 꿈, 희망, 기대를 의미합니다. 고대국가나 최첨단의 현대나 광명으로 국가와 민족을 이끌어가야 한다고 단군이 선포한 겁니다. 세상 어느 나라에 이렇게 거룩한 건국이념이 있습니까. 기껏해야 실용주의 내지 실리주의에 정직 정도이잖아요. 그런 면에서 기념일을 만들어 그 의미를 반추하자고 주장하고 싶습니다.” “남북문제 잘 풀면, 대륙국가가 되는 기회10대 경제대국 한계 벗어나 G2 압박할 것” - 우리나라에 대세가 왔다고 진단했습니다. “남북문제를 잘 풀면 우리나라가 섬나라에서 벗어나 대륙국가가 되는 기회가 될 것입니다. 여기에 협력하지 않고 엉뚱한 소리나 하는 것은 문재인 대통령이 모처럼 붙잡은 기회를 차버리는 행위입니다. 나는 문 대통령이 개성공단 가동과 금강산 관광 재개 문제와 관련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좀 더 강하게 이야기하면 좋겠습니다. 민족 내부의 문제이니, 이건 우리가 핸들링한다며 밀어붙이면 좋겠습니다. 이것을 두고 ‘김정은 편든다’거나 ‘북한 돕는다’고 생각하면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북한 김정은도 핵무기에 대해서는 사는 길을 찾는 것이지, 그놈을(핵무기를) 쥐고 있으면 자승자박이란 것을 깨달을 겁니다. 정치권이 싸우더라도 국가와 민족의 생존과 이익, 장래 문제는 별도로 해야 합니다. 국민의 미래를 망쳐서는 안됩니다.” - 섬나라를 벗어나자는 것은 어떤 의미입니까. “우리나라는 대륙국가와 해양국가라는 두 개의 큰 축을 씨줄날줄로 해서 내려왔습니다. 그런데 그게 지금 막혀 있지 않습니까. 북한 김정은을 끌어들여 경제공동체를 만들면 부산에서 구라파로, 중동으로, 러시아로 기차를 타고 바로 갈 수 있는 시대가 됩니다. 그래야 비로소 대륙국가가 됩니다. 그게 안되면 우리는 10대 경제대국 한계를 벗어날 수 없을 겁니다. 조선, 자동차, 반도체… 이런 것으로는 한계가 있습니다. 그 한계의 탈출구가 대륙이라고 봅니다. 투자 전문가 짐 로저스는 남북 간에 경제협력체가 형성되면 세계의 투자가 몰려올 것이라고, 미국 투자사 골드만삭스는 한국이 수십 년 안에 일본, 독일을 능가하고 G2를 압박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습니다. 우리 민족에게 크게 나갈 기회가 왔습니다. 정치권이 정신을 차려야 합니다. 언제까지나 앉은뱅이, 신세타령이나 하며 살겠습니까.” “김정은 핵무기 한계인식…설득하고 끌고가야한국 공산화?… 우리 국민이 그렇게 머저리냐”- 그런데 북한이 아직 핵을 포기하지 않고 있습니다. “김정은이 당장 핵을 폐기하지 않는다고 해서 손을 놓고 중도에서 포기해야 합니까. 어떻게든 김정은을 설득하고, 끌고 가야지요. 핵무기가 쌀이 나오는 것도 아닌데, 김정은도 핵무기를 끌어안고 한 발자국도 앞으로 나가지 못하면 그 자리에서 죽는다는 것을 알 겁니다. 나는 김정일이 그런 선택할 것이라고 보지 않고, 김정은도 자신이 한계에 왔다는 것을 알고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설득해서 핵을 폐기하게 하고, 과감하게 밀어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북한보다 국력이 20배나 강한데 북한이 무엇으로 우리를 이기겠어요. 공산화? 천만의 말씀입니다. 우리 국민이 그렇게 머저리입니까? 공산화에 설득당할 것 같습니까. 절대 아닙니다. 자신감을 가져야지요.” 올해 구순인 그는 서예인, 정치인, 유학자의 길을 걸었지만, 국민정신 선양과 관련된 일은 놓지 않았다. “1950년대에 심산 김창숙, 담원 정인보 선생을 모시고 정신문화 선양운동을 했습니다.” 이후 1960~70년대에는 노산 이은상 박사, 초대 문교부 장관을 지낸 안호상 박사와 함께 국민사상선양회를 창립했다. 이를 통해 산업화와 민주화, 국제화에 대한 이론적 뒷받침을 위해 정책 세미나와 강연회 등을 68차례에 걸쳐 진행했다. 그런 그가 2007년 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 지인들과 함께 도덕성회복 국민연합을 만들어 도덕성 회복을 주창하고 있다. “내 나이 90세, 무슨 욕심이 있겠어요. 다만 이 나라를 위해 발자취를 하나 남겨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도덕성회복 운동을 하는 이유를 설명했다. “도덕에서 가장 중요한 덕목은 효·경로사상孝, 유장한 구름 아닌 전화 한 통이면 실천” - 도덕성 회복 운동을 간단히 설명하시면. “오늘날의 타락은 도덕의 상실에서 비롯된 겁니다. 예나 지금이나 도덕성을 잃어버리면 사람들이 무도하게 되고, 타락하고 패륜과 부정, 비리가 판치게 됩니다. 도덕이 무너지면 결국 인간이 몰락하고, 나라가 망하게 됩니다. 현대 사회의 인간 상실과 자아 붕괴로 미루어볼 때 도덕성 회복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겁니다. 도덕성회복은 이 나라의 시대적 역사적 소명이며, 사람들에게 영혼의 안식과 정신적 평화를 가져다줄 겁니다.” - 젊은이들에게 가장 중요한 덕목은. “우리나라의 건국이념인 홍익인간, 광명이세가 있습니다만 한 명의 인간으로서 실천할 수 있는 것은 효와 경로사상이라 생각합니다. 효는 최고의 선이며, 도덕성의 원초입니다. 한 기자가 석학 아놀드 토인비에게 ‘선생께서는 만일 다른 별에 가서 살아야 한다면 지구에서 무엇을 갖고 가고싶나’고 물었더니 ‘코리아의 효사상, 경로효친과 가족제도를 가져가고 싶다’고 한 일화가 효의 가치를 말해 줍니다. 도덕은 이렇게 유장한 구름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가까운 곳에서 실천 가능한 것입니다. 젊은 사람들이 당장 전화 한 통이면 실천할 수 있는 것이 효입니다. 어렵게 생각할 것이 전혀 아닙니다. 내가 한 백년 가까이 살아서 압니다.” “노 前대통령, 내가 만든 장학회 수혜자, 후배靑비서실장 지낸 文 대통령도 자연스럽게 알아盧, 서거 수일 전 세상사 초월 당부 글씨 써 줘조선대 로스쿨 필요성 전달 … 성사되지 않아”- 문재인 대통령과의 사진이 있는데 어떻게 인연이 됩니까. “그전에 노무현 전 대통령과 인연이 있습니다. 제가 부산상고를 졸업했는데, 경남도의원 시절 부산상고 장학회를 저와 김지태 부산일보 사장 등이 만들었습니다. 그 장학금 수혜자 가운데 이성태 전 한국은행 총재뿐만 아니라 노 전 대통령도 포함돼 있지요. 13대 국회의 5공비리 청문회에서 같이 활동도 했습니다. 문 대통령이 노 전 대통령의 비서실장 등을 지냈으니, 자연스럽게 가깝게 지내게 됐고 …. 10년 전 노 대통령이 봉하마을에서 서거하기 수일 전, 궁지에 몰렸을 때 동문 골프모임에서 소동파의 적벽부를 한 구절 써주며 세상사를 초월하고, 유유자적하게 살라고 당부했는데…. 내가 조선대 석좌교수로 있을 때 조선대에 로스쿨의 필요성을 구두로, 편지로 노 전 대통령에게 전달했습니다만, 성사되지는 않았죠.” - 김대중 전 대통령과의 숨겨진 일화, 있으면 소개해 주세요. “12·12 쿠데타 주역 가운데 한 명인 정호용 장군이 1982년 어느 날 나를 급히 만나자고 했어요. 장 장군은 내 서예를 좋아해 허물없이 지내는 사이였거든. 그가 정색하고 굳은 표정으로 ‘오늘 아침에 DJ(김대중 전 대통령의 이름 영어 이니셜, 허 총재는 DJ로 지칭했다)의 생사를 결정합니다. 내가 어떻게 하면 좋겠소’라며 내 의견을 물었어요. 그래서 내가 ‘DJ는 민주화의 상징이자 선구자이다. 그를 죽이면 반인륜적·반도덕적 처사이고, 도덕성을 잃으면 모든 것을 잃는다. 차라리 미국으로 망명하게 하는 것이 어떻냐’고 했지요. 정 장군은 고개를 끄덕였지요. 그 후 정 장군은 전두환·노태우와의 3자 회동에서 DJ를 살렸다고 독백처럼 내게 말한 적이 있지요. 그 뒤 13대 국회에서 정 장군을 만났는데 그때 광주민주화항쟁의 발포자로 그의 이름이 오르내렸습니다. 정 장군이 나를 찾아와 ‘내 아버지를 두고 맹세하겠다. 나는 발포자가 아니다. 허 의원이 나를 불의한 사나이로 보면 어쩔 수 없고, 올바른 인간으로 믿어준다면 DJ에게 진실을 말해달라’고 했지요. 나는 그의 인격을 믿었고, 그 말을 믿었기에 새벽에 동교동에 갔었지요. 언제나처럼 정장차림으로 나를 맞아준 DJ와 이희호 여사에게 이 사실을 그대로 전달했습니다. DJ는 내가 보고하는 동안 눈을 감고 조용히 듣기만 할 뿐 아무 말도 없었습니다. 너무 정호용 장군을 변명해준 것 같은데….” “12·12쿠데타 주역 정호용, ‘DJ구명’ 내게 말해‘鄭, 광주 발포자 아니다’는 주장 DJ에 전달도DJ, 눈 감고 듣기만 할 뿐… 아무 말도 안 해” 그는 연세대를 졸업하고, 서울대에서 행정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하버드대학원 최고정책결정자(SEP) 과정을 수료했다. 13대 국회의원(1988~1992년)을 지내면서 평화민주당 당기위원장, 국회 5공비리조사 특별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했다. 2006년 성균관유도회 총재를 맡았고, 2009년 대한민국 헌정회 원로위원으로 선임됐다. 국회의장이나 당 대표 등을 지낸 이들로 대체로 구성되는 헌정회 원로위원에 초선에 불과한 그가 선임된 것은 다소 파격으로 받아들여졌다. 서예 전시회도 종종 가졌든 허 총재는 정치권에서도 알아주는 명필이다. “DJ, 선양회 세미나 참석하면서 인연 깊어져13대 국회 비례대표서 자신 앞에 나를 배치인내력, 상상력 뛰어난 초월적 능력 소유자” -김대중 전 대통령과의 인연이 예사롭지 않습니다. “1980년대에 내가 주관한 국민사상선양회 세미나에 DJ가 한번 참석하면서 인연이 깊어졌습니다. 아침 7시 강연에 이은상·정주영 현대그룹 회장·백선엽 장관·조영식 경희대 총장·윤일선 서울대 총장 등 기라성같은 사람들이 참석했습니다. 이 사람들은 DJ가 만나고 싶어했던 인물들이었습니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 DJ는 13대 전국구(비례대표) 후보에 자신의 바로 앞번호에 나를 배치했습니다. 나는 그 보답으로 12권짜리 김대중 전집을 만들어줬습니다. 청평별장에서 먹고 자기를 같이하면서 DJ를 옆에서 보니 이 나라에서 제일 부지런한 사람이었습니다. 인내력, 상상력, 추진력이 뛰어나고 실패나 좌절을 딛고 일어서는 초월적 능력의 소유자였습니다.” “YS, 사상선양회서 강연도…정무직도 제안YS와 가까우니 안기부, 내집 급습해 쑥대밭국회서 안기부장 유학성 만나 한 대 갈겨YS, 노태우와 야합… 도덕 없어 절교 선언”- 김영삼 전 대통령과 인연도 많다지요. “1980년대에 YS는 정무직을 제안했습니다만 저는 거절했습니다. 그랬더니 집으로 밀고 들어오기도 했지요. 내가 주관한 국민사상선양회에서 YS는 ‘정치발전과 정치인의 자세’라는 주제로 강연한 적도 있습니다. 당시에 내가 YS와 가깝게 지내니 안기부가 내 집을 급습했습니다. 아이들 방까지 수색해 집안을 쑥대밭으로 만들었습니다. 당시 서슬 시퍼렇던 안기부장이 유학성이었습니다. 국회 휴게실에서 만나 ‘유학성 이놈!, 나라를 위해 일해야지, 남의 뒤나 캐고 …” 하면서 한대 갈겨버렸습니다. 유학성이 쓰러졌지만 옆에 있던 민정당 의원 몇 사람이 있었지만 아무도 말리지 않았어요. 그런데 YS는 노태우 전 대통령과 야합하는 바람에 변절했지요. 일신의 명리를 위해서는 도덕도, 정의도, 원칙도, 국민도 다 저버릴 수 있다는 것을 알고 YS와 절교를 선언했습니다. 그랬더니 심복인 서석재 의원과 김덕룡 의원을 내 집으로 보내 나를 집요하게 설득하려 했습니다.” - 좋은 인연만 있는 것은 아니겠죠. “전두환과 악연이 생각납니다. 같은 고향이어서 서로 잘 알고 지냈습니다만 11대 국회의원 선거과정에서 제가 구속됐습니다. 전두환이 광주항쟁에 참가한 시민들에게 총부리를 겨누고, 국보위에서 스스로 대장 진급한 그런 부당성을 유세과정에서 비판하다 선거 3일 전에 덜컥 구속됐습니다. 누가 시켰겠어요. 그러다가 제가 13대 국회의 5공비리 특위 청문회에 활동했습니다. 그때 장세동 등을 상대로 일해재단 비리를 심문했습니다. 그리고 전두환의 정치자금 6000억원의 불법조성을 가장 먼저 폭로했습니다. 구체적인 비리를 밝혀낸 겁니다. 큰 기업에 부실기업을 안겨주고 장기저리로 대출해주면서 리베이트를 받은 것이죠. 당 총재인 DJ에게 보고하니 ‘허 의원, 그럴 수가 있나. 어떻게 6000억원을 받을 수 있나‘라며 처음엔 믿지 않았습니다. 어떤 기업으로부터 얼마씩 받았는지는 국회 속기록에 다 남아있습니다. 전두환이 돈을 받을 때 재무 공무원을 시키지 않고 최측근들에게 시켰더군요.” “요즘 신문 3개 읽고 독서 활동 꾸준히7시간 수면, 운동화 신고 많이 걸어다녀” - 고령인데도 활동이 많습니다. 건강 비결은. “일을 놓지 않는 게 비결입니다. 신문은 서울신문과 경제지 하나 등 3개를 매일 꾸준히 읽고 있습니다. TV로 뉴스를 한 시간씩 보고 밤 11시쯤 자서 다음날 아침 6시 일어납니다. 책을 꾸준히 읽고, 글을 쓰고 있습니다. 책은 안 보면 정신이 갑니다. 영혼을 맑게 하려고 고전을 읽습니다. 그리고 최근엔 좀 많이 걸으려고 합니다. (신고 있는 운동화를 가리키며) 많이 걸으라고 아들이 사 준겁니다. 운동화를 신으니 확실히 발이 편합니다. 고령일수록 꾸준히 일을 해야 합니다. 목숨이 다하는 그날이 은퇴하는 날이지요.” 글·사진 이기철 선임기자 chuli@seoul.co.kr
  • 사랑의 불시착 출연 확정, 현빈♥손예진 비즈니스 파트너로..

    사랑의 불시착 출연 확정, 현빈♥손예진 비즈니스 파트너로..

    현빈 손예진이 비즈니스 파트너로 다시 만난다. 22일 영화배우 현빈과 손예진이 tvN 새 드라마 ‘사랑의 불시착’(가제)에서 다시 만난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사랑의 불시착’은 패러글라이딩 사고로 북한에 불시착한 재벌 상속녀 ‘윤세리’(손예진)와 그녀를 지키다 사랑에 빠진 장교 ‘리정혁’(현빈)의 로맨스다. 현빈이 맡은 리정혁은 수려한 외모에 최정예 실력을 갖춘 장교다. 대한민국 상위 1% 상속녀 윤세리 역의 손예진은 톡톡 튀는 매력을 드러낼 전망이다. 현빈과 손예진은 영화 ‘협상’(감독 이종석·2018)으로 인연을 맺었다. 올해 초 미국 로스앤잴레스(LA) 동반 여행설과 함께 데이트 사진이 공개됐지만 부인했다. 드라마는 이번이 첫 호흡이다. ‘별에서 온 그대’(2013~2014), ‘푸른 바다의 전설’(2016~2017) 박지은 작가의 신작이다. ‘굿 와이프’(2016), ‘로맨스는 별책부록’(2019)의 이정효 PD가 연출한다. 올 하반기 tvN 방송. 사진 = 서울신문DB 연예부 seoulen@seoul.co.kr
  • [종합] 임창용 “단장이 방출 통보, 1년 더 하고 싶었다”

    [종합] 임창용 “단장이 방출 통보, 1년 더 하고 싶었다”

    지난 3월 프로야구 현역생활을 마무리하고 은퇴한 임창용이 김기태 전 감독과의 불화설과 갑작스런 방출 통보에 대해 고백했다. 22일 공개된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임창용은 “팀에서 방출된 뒤 다른 팀에서도 나를 받아들이기는 어렵겠구나 싶어 은퇴를 선언했다”고 입을 열었다. 임창용은 방출에 이르게 된 과정에 대해 “조계현 기아 타이거즈 단장이 나를 부르더니 ‘야구 계속할 거면 우리 인연은 여기까지다. 팀에서 나가라’고 하더라. 순간 할말이 없어 ‘알겠다’고 대답을 하고 나왔는데 서운하고 화가 났다”고 밝혔다. 팀의 마무리투수였던 임창용은 시즌 중 갑작스레 중간계투로 보직이 변경되며 김기태 감독과 마찰을 빚었다. 이후 한 달간 2군에 머무른 임창용은 1군 복귀 후 다섯 번째 선발 투수로 기용되는 등 원하던 보직을 얻지 못했고, 끝내 방출 통보를 받았다. 당시 기아 팬들은 서울 양재의 기아자동차 본사 앞에 모여 김기태 감독의 사퇴를 요구하며 임창용에 대한 구단의 대우를 촉구한 바 있다. 임창용은 “나에게 ‘임창용은 나이가 너무 많아서 김윤동을 키우고 싶다’거나 내게 어떤 이야기를 했더라면 받아들였을 것”이라면서 “그런데 몸도 풀지 않고 있던 김윤동을 올렸다”며 이게 당시 본인이 의견을 밝힌 이유라고 설명했다. “당시 분위기가 치고 올라오는 후배들이 있는데 임창용 선수가 본인의 프라이드 때문에 불만을 가져 팀 분위기를 망가뜨렸다는 이야기가 나왔다”는 지적에 대해서 임창용은 “맹세코 후배를 질투해서 그런 게 절대 아니다”라면서 “이 나이에 세이브, 홀드 등에 연연할 필요가 없다. 이렇게 굴러가면 안되겠다 싶어 얘기했던 것인데 상황이 이렇게 될지 몰랐다”고 말했다. 이어 “난 그저 1~2년 더 야구를 하고 싶었을 뿐이다”라고 덧붙였다. 임창용은 김기태 전 감독에 대한 생각도 털어놨다. 그는 김 전 감독의 사퇴에 대해 자신의 방출보다는 성적 부진으로 자존심이 상해 스스로 물러난 것 같다고 추측했다. 한편 임창용은 지난 3월 24년간의 프로야구 현역생활을 마무리했다. 임창용은 광주진흥고를 졸업하고 1995년 해태 타이거즈에 입단했다. 이후 삼성 라이온즈, 기아 타이거즈 등을 거치며 1998, 1999, 2004, 2015시즌 세이브 1위, 1999시즌 평균자책점 1위(2.14)를 기록했다. 또한 2008시즌에는 일본 야쿠르트 스왈로즈에 입단, 5시즌간 128세이브 방어율 2.09의 뛰어난 성적을 기록했으며 2013시즌에는 MLB의 시카고 컵스에 입단하며 빅리거로 활약했다. 이보희 기자 boh2@seoul.co.kr
  • 고아·장애아들에 희망 남기고 떠난 ‘말리 언니’

    고아·장애아들에 희망 남기고 떠난 ‘말리 언니’

    고아와 장애아동을 위해 평생 헌신한 말리 홀트 홀트아동복지회 이사장의 영결식이 21일 열렸다. 홀트아동복지회는 이날 경기 고양시 홀트 복지타운에서 지난 17일 84세로 별세한 홀트 이사장의 영결식을 가졌다고 밝혔다. 홀트 이사장은 2012년 골수암 판정 이후 투병해 왔다. 홀트 이사장은 홀트아동복지회 설립자인 해리 홀트와 버사 홀트 부부의 딸이다. 홀트 부부는 1955년 6·25전쟁에 참전한 미군과 한국 여성 사이에서 태어난 고아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본 뒤 입양 사업을 시작했다. 부부는 6명의 자식이 있었지만, 한국인 고아 8명을 미국으로 데려가 키웠고, 이듬해 한국으로 와 홀트아동복지회를 세웠다. 홀트 이사장은 1935년 미국 사우스다코타주 화이어스틸에서 태어나 오리건대 간호학과를 졸업했다. 1956년 홀트아동복지회에서 간호사로 근무하면서 한국과 처음 인연을 맺었고, 이후 60년 이상 한국에서 고아와 장애아동을 위해 일했다. 팔순을 넘긴 고령에도 홀트 복지타운에서 300여명의 중증 장애인과 함께 생활하며 이들을 직접 돌봤다. 독신이었지만 ‘고아와 장애아들의 어머니’, ‘미혼 부모들의 대모’, ‘말리 언니’로 불렸다. 김정화 기자 clean@seoul.co.kr
  • 서울 명예시민 된 덴마크 왕세자 부부

    서울 명예시민 된 덴마크 왕세자 부부

    박원순 서울시장은 21일 중구 장충동 신라호텔에서 프레데리크 크리스티안(51) 덴마크 왕세자와 메리 왕세자비에게 명예시민증을 수여했다. 왕세자 부부는 한국·덴마크 수교 60주년을 맞아 지난 20일부터 22일까지 2박 3일 일정으로 국빈방문 중이다. 왕실 부부가 동시에 서울시 명예시민증을 받기는 처음이다. 프레데리크 왕세자는 덴마크 여왕 마르그레테 2세와 부군 헨리크의 장남으로 덴마크 왕위계승 서열 1위다. 호주 출신 메리 왕세자비는 아버지인 존 도널드슨 교수가 2002년부터 3년 동안 카이스트에 재직해 한국과도 인연이 깊다. 박 시장은 수여식에 앞서 비공개로 열린 왕세자 부부 면담에서 주한 덴마크 기업들의 사회공헌 사업에 감사를 표시했다. 또 녹색성장 국가인 덴마크와 환경 분야 협력 방안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나눴다. 김희리 기자 hitit@seoul.co.kr
  • “18세기 장편 소설, 남성 아닌 여성이 썼다”

    “18세기 장편 소설, 남성 아닌 여성이 썼다”

    남성들이 한글소설 썼다고 알려졌지만 180권짜리 ‘완월회맹연’도 여성이 집필 그 방대함 다룬 ‘백탑파’ 다섯 번째 소설 “소설사를 논할 때 김시습의 ‘금오신화’, 허균의 ‘홍길동전’, 김만중의 ‘구운몽’·‘사씨남정기’, 이인직의 ‘혈의 누’, 이광수의 ‘무정’만 가르칩니다. 조선시대부터 중요한 소설들은 다 남자들이 쓴 것처럼. 그런데 1700년대 대장편의 시대가 열렸는데, 보니까 여자들이 쓰고 읽었다는 거죠.” 18세기 조선에는 100권, 200권에 달하는 어마어마한 분량의 한글 소설이 있었다. 이걸 쓰고 읽는 이는 뜻밖에 여성이었다. 김탁환(51) 작가의 장편 ‘대소설의 시대’(민음사)는 정약용, 박지원, 박제가 등 18세기 실학파를 중심으로 형성된 집단 ‘백탑파’를 다루는 시리즈의 다섯 번째 소설이다. 김진, 이명방 등 시리즈의 고정 인물들이 등장하지만 철저히 포커스는 대소설을 쓰고 필사하고 유통하는 여성들에 맞춰져 있다. 지난 20일 서울 서대문구 연희문학창작촌에서 만난 작가는 대학(서울대 국어국문학과) 때 교수님 서가에서 그 많은 궁체의 한글 소설들을 처음 접했다고 했다. “사대부 계층의 남자들이 쓰고 여자들이 읽었다고 배웠는데 이상했어요. 연애를 할 때 여자가 느끼는 감성들, 한 집안에서 처와 첩이 치고 박고 싸우는 사건들. 정말 남자가 썼으면 자료 조사 열심히 했나 보다 이런 생각을 했죠.” 그의 의심처럼 최근 180권에 이르는 ‘완월회맹연’ 같은 당대 대소설들이 여성들의 손에 쓰여졌다는 연구 결과들이 나왔다. 여기서 시작해 작가는 23년째 ‘산해인연록’을 써서 매달 혜경궁 홍씨에게 바치는 여성 작가 ‘임두’를 만들어 낸다. 199권까지 잘 써오던 임두는 뜻밖에 5개월째 200권을 쓰지 못하고, 궁에서는 김진과 이명방을 호출해 사정을 알아보라 명한다. 의아한 한문들의 향연인 목차 속 ‘곽장양문록’, ‘쌍천기봉’, ‘소현성록’ 등은 그 시절 소설들이다. 누락된 역사를 상기시키기 위해 일부러 넣었다. “1700~1800년대 한글로 된 소설을 아무도 모르는 겁니다. 목차를 보는 순간 ‘읽을 수 있나’ 겁을 주자는 생각이 들었어요. 괴작이라 망할 수 있겠다는 생각도 했어요. 하하.” 백탑파 시리즈 첫 번째인 ‘방각본 살인사건’(2003)은 18세기 후반 판을 사야 하고, ‘각수’라는 이가 돈을 받고 글을 판에 새기던 자본주의적 소설 생산 방식을 다룬 반면 이 시대 여인들의 소설 생산은 전적으로 아날로그적이다. “전자는 시중에서 사람들이 책을 사서 읽은 반면 후자는 계층이 훨씬 높은 사람들이 시간 제약과 돈 한두 푼 아끼려고 판을 줄여야 하는 일도 없이 무한대의 연재를 계속해 왔습니다.” 국학의 발전에 따라 백탑파에 대한 연구 성과도 점점 쌓이고 시리즈도 살아 있는 생물처럼 기반 서사가 발전하는 형국이다. 소설 속 등장인물들의 말은 단편의 시대에 홀로 장편의 시대를 사는 작가 김탁환이 하는 말과 다름없다. ‘하루를 양분하여 절반은 쓰고 절반은 읽는다’는 것(1권 198쪽), ‘대작을 이어 쓰려면, 소설가 외엔 직업을 버려야 한다’는 것(1권 23쪽) 등이다. 백탑파 외에도 틈틈이 ‘거짓말이다’(2016), ‘살아야겠다’(2018) 등 굵직한 단행본 장편을 써내려오고 있는 작가다. 그는 실제 오전에는 쓰고, 오후에는 읽는다. 1년에 두 달 ‘안식월’을 제외하고는 하루에 200자 원고지 20장씩 꼬박꼬박 쓴다. 2009년 교수직을 그만둔 이래 행정·회의·교육·잡문이 없는 시간 속 오로지 장편소설에만 매진하고 있다. “독자들이 되게 이상하대요. 백탑파 이야기이긴 한데, 김탁환이라는 사람이 얹혀서. 이종 듀엣곡 같다고 해야 하나. 한 피아노에 두 명이 앉아서 치는.” 그래서 작가는 “대소설의 시대가 내 인생 소설 같다”고 했다. 궁금해졌다. 작가가 장편을 고집하는 이유. 그렇게 쓰여진 장편소설이야말로 제대로 문제를 파악할 수 있는 글쓰기 방법이라는 게 작가의 생각이다. “장편소설 한 편을 쓰는 데 최소 3년 정도 걸린다고 하면 1000일 정도 되는 거죠. 장편은 어떤 문제와 다루고 싶은 주인공에 대해서만 천 번 생각할 수밖에 없게 나를 강제하는 장르예요.” 천 번 생각하고 공부한 흔적으로, 그의 책은 그 옛날 200권짜리 책처럼 읽힌다. 술술. 이슬기 기자 seulgi@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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