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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군사분야 점검 찾을까(남·북한 화해시대:7)

    ◎군상호사찰·핫라인 개설 과감히 시도/미군철수 겨냥한 10만감군론 경계/군축에 앞서 전쟁방지 선엄 모색 남북한 사이의 군사분야 현안을 군축으로 좁혀 보면 남북정상회담에서 합의될게 없다.북한이 줄곧 주장해온 「10만 감군론」은 핵문제보다 더 어려운 사안이다. 그러나 조금만 각도를 달리 하면 군사분야는 의견일치를 볼수 있는 소재를 가장 많이 가진 곳이다.서로가 쌓은 신뢰의 수준만큼 갖가지 합의를 도출해낼 수 있다. 정부의 분위기도 그 어느때보다 공세적이다.과거에는 우리측 주장이 논리적 설득력을 가졌음에도 「군축」주장은 북한의 전유물인양 인식되는 경향이 있었다.우리의 대응논리가 너무 복잡했기 때문이었다. 남북정상회담이 성사되기전까지 정부는 정치·군사적 신뢰구축­군비제한­병력축소라는 3단계 해결안을 제시해왔다.말이 단계적 해결안이지 밑에는 북한에 대한 불신을 깔고 신뢰구축에 보다 무게를 실은 것이었다. 그러나 이번 남북정상회담에서는 큰 방향만을 정하고 그것에 어긋나지 않는다면 군사분야에 대한 어떤 논의에도 과감한 자세를 보일 것으로 알려졌다.정부가 설정한 두가지 방향은 남북 사이의 직접 접근방식과 실현가능성이다. 먼저 정부는 이번 정상회담에서 미국,유엔등 국제사회가 연계되지 않는 범위안의 남북군사문제에 대한 토론을 활발히 하겠다는 내부방침을 정한 것으로 전해진다.이제까지 북한은 남북한 군축을 주한미군의 철수와 연계시켜 미국과의 직접 대화를 추구해왔다.우리를 배제하고 미국과 평화협정을 맺겠다는 발상도 같은 맥락이다. 정부는 또 실현가능한지를 중시하고 있다.무턱대고 60만 군대를 10만으로 감축하자는 것은 되지 않을 줄 알면서 선전이나 하자는 차원으로 들린다. 따라서 북한이 이번에도 「주한미군철수」나 「미국과의 평화협정체결」주장을 반복한다든지 실현불가능한 「10만 감군론」만 고집하지 않는다면 군사분야에서도 실질적 합의가 얼마든지 가능하다. 군사분야에서 남북한이 당장 의견일치를 볼수 있는 것은 군상호사찰,비무장지대에서의 양측 병력 완전철수뒤 평화지대화,팀스피리트중지,휴전선에서 상호비방중지,군당국자간 직통전화설치,상호 군사훈련참관등이다.이러한 내용 대부분은 이미 91년12월 체결된 남북기본합의서에 포함되어 있다.기본합의서를 준수하겠다는 다짐만 받아도 군사분야에서의 적대관계가 상당부분 누그러지게 되어 있는 셈이다. 정부는 이에 더해 현 시점에서 실현가능하면서도 의미있는 몇가지 제안을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대규모 부대이동의 사전통보및 통제,대량살상무기의 우선 철폐,화학·생물학 무기의 폐기와 함께 양측 병력을 휴전선에서 각자 50㎞밖으로 후퇴시켜 우발적 전쟁발발을 막자는 방안이 그것들이다.이것들은 하나하나가 모두 무게있고 궁극적인 군축의 디딤돌이 될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정부는 이러한 구체적 제안이 북한의 거부로 실현되지 않을 때에도 대비하고 있다.평화공동성명,전쟁재발방지선언등 비록 선언적이긴해도 남북의 평화의지를 담은 발표라도 이끌어 내겠다는 의지를 다지고 있다.나아가 통일시대에 대비한 군사분야 공동연구가 합의될수도 있다. 군사분야에 있어서는 선언적 합의만이 나올 것이라는 전망이 현재로서는 우세하다.양측의 주장이 거론되는 수준에 머물거나 서로 눈치보다 말도 못꺼낼 수도 있다는 비관론도 있다.하지만 우리가 전향적인만큼 북한이 다소라도 호응한다면 의외로 커다란 성과가 나올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 인천앞바다에 폐유/3일간 정화작업

    【인천=최철호기자】 인천 송도앞 남서쪽 5.6㎞ 해상 8만여㎡에 폐선박의 기름이 유출돼 인천해양경찰서가 지난 24일부터 26일까지 3일간 이를 제거하는 작업을 벌인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다. 26일 인천해경에 따르면 지난 24일 하오 인천수협이 송도앞바다에 기름띠가 떠있다고 신고해 와 현장에 출동해 보니 해상에 정박된채 (주)한성살베지에 의해 해체되고 있던 세인트 빈센트 국적 화물선 수롱호(5천t급)에서 벙커C유 7백ℓ 가량이 유출돼 있었다는 것. 인천해경은 이에따라 24일 하오 4시부터 26일 상오 5시까지 오염관리정 2척과 경비정 1척등 3척의 선박을 동원,유출된 기름을 완전히 제거하는 한편 기름이 더 유출될 경우에 대비,오염관리정 1척을 수롱호 주위에 배치했다. 이 사고로 송도및 척전 어촌계가 현장에 설치한 길이 5백∼7백m짜리 어망 20여책이 기름에 오염돼 못쓰게 됐다. 해경은 (주)한성살베지 관계자를 불러 기름 유출경위를 조사하고 있다. 수롱호는 지난 92년 3월20일 시멘트 3천포대를 싣고 인천항으로 입항하다 사고해상으로부터 30여㎞ 떨어진 자월도 부근에서 침몰한뒤 최근 한성살베지에 의해 인양돼 사고현장까지 예인된후 바지선으로 옮겨 싣기 위해 해체되고 있었다.
  • 제2경인·서해안고속도 일부구간 오늘부터 임시개통/예정 하루앞당겨

    정부는 철도 및 지하철파업에 따른 교통혼잡을 완화하기 위해 당초 오는 27일 임시개통하기로 한 제2경인고속도로 서창∼광명간 10.8㎞와 서해안고속도로 인천∼안산간 27.6㎞를 하루 앞당겨 26일 상오0시부터 개통하기로 했다. 임시개통기간은 파업이 끝날 때까지며 통행료는 받지 않는다.교통표지판 등 안전시설이 25일 밤12시까지 설치된다. 따라서 인천에서 광명이나 안양쪽으로 가려는 차량은 인천항의 개항 1백주년 기념탑 앞 고속도로 시작점이나 남동입체교차로에서 고속도로로 진입한 뒤 광명입체로를 통해 광명시나 인양시로 들어가면 된다.
  • 김 주석,역사앞에 서라/이재근(서울광장)

    『과거사를 돌이키면 북한이 폭력전략의 경력을 갖고있는게 사실이다.그러나 지금 북한은 변했다고 봐야한다.독선적인 판단으로 착오와 실수를 하는일은 있어도 마지막 순간에 멸망의 길을 피할줄 아는 지혜는 가졌을 것이다.요즘 세상에 죽음을 각오해 수단방법을 가리지않고 전쟁을 일으킬 나라가 있겠는가.평양의 지도자는 자기가 먼저 방아쇠를 당기면 자살행위가 될것이라는 사실을 잘 알것이다』 남북정상회담이 성사될 계제인데 아직도 무슨 전쟁얘기냐고 할지 모른다.하나 이것은 내 의견이 아니다.「조선전쟁」의 일본인 저자 가미야 후지(신곡불이·전 경응대교수)가 내비친 최근 한반도정세관이다.북핵제재문제를 둘러싸고 팽배했던 「한반도 전쟁위기론」은 하구라는 것이다.북의 전쟁도발 가능성에 대한 소박한 반대논거도 될 수 있다. 그런데 그것이 문제다.그것이 바로 「평화의 하구성」이다.전쟁은 예고되지 않는다.전쟁은 그것이 일어나기 전에는 언제나 부정되고 애써 회피되는 괴물이다.전쟁은 전쟁을 일으키는 사람만이 알고있다.쌓이고 쌓이다가 어느날 하루아침에 폭탄처럼 터져버린다.그것이 전쟁이다.그러니 상대국가의 두 정상이 만나서 얘기하거나 어쩌면 아예 터놓고 살고 있다하더라도 한쪽이 전쟁을 하려들면 전쟁은 터지는 것이다.44년전 6·25동족전쟁이 그러했다.요즘 남북예멘전쟁이 또한 그것이다. 이상하게도 이해 6월의 세상살이 주제는 온통 남북의 「전쟁과 평화」뿐이었다.카터 전미대통령이 서울과 평양을 오가더니 언뜻 남북정상회담을 끌어냈다.사태는 반전해서 이제는 그 위기론의 근거가 북한핵이라는 사실은 저만큼 잊고 남북정상회담이 모든것의 시작이요 끝인양 얘기들하고 나섰다.카터의 거중내용도 그러하지만 현실적으로 북한핵제재요인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는데 말이다.한마디로 북한핵의 「과거사」규명에 관한 국제여론은 침묵속에 들었다. 이 단계에서 성급히 단언한다면 남북문제의 전과정에 있어서 정상회담이란 그것이 성사되더라도 다만 시작에 불과하며 크고 깊숙한 주제속 각론의 한 대목이라는 사실을 알아야한다.중요한 것은 북한주석 김일성의 두주먹속에 북핵의과거가 꽁꽁 숨어있다는 사실을 아는 일이다.기실 북한핵문제는 지금까지 북한이 핵무기를 개발해왔다는 의혹에서 시작된 것이다.북핵문제 2년이 바로 그에대한 진상규명의 과정이었다.국제사회의 근거있는 우려대로 북한이 이미 핵폭탄을 만들기에 충분한 플루토늄을 보유했거나 2∼3개의 핵폭탄을 갖고있는데도 현재를 위해 과거를 불문에 부친다면 그것이 평화란말인가.과거 핵규명이 전제되지않은 정상회담은 또…. 저쪽의 의심되는 평화제스처는 또 있다.『북핵위기는 끝났다』고 장담한 카터는 귀국후엔,남북한 병력을 각 10만으로 줄이고 비무장지대(DMZ)로부터 완전 철군하자는 등의 제의를 북주석 김일성이 내놨다고도 했다.괴이쩍게도 카터씨는 김일성의 평화주의적 「대인풍」면모를 소개하는데 심혈을 기울이는듯했다.그 10만감축 제의를 『생각건대 매우 의미있고 역사적인 것』이라고 마음대로 평가하는가 하면 한국전 실종미군유해 송환논의때 김주석은 반대했지만 그의 부인 김성애가 부추기자 결국 동의했다고 전하기도 했다.『그것은 멋진 장면이었고 그녀는 매력적인 여자였다』고 회고한 카터였으니 무엇에 잔뜩 홀렸는가 의심이 안가는바도 아니다. 이른바 10만 감군의 위장평화제의가 언제적 얘기였는가 따져볼 일이다.과거핵이 의심스럽고 현재핵의 투명성이 확보되지 않은 상황에서 10만감축제의는 전혀 자신의 「폭력의 역사」를 망각한 또 하나의 평화제스처일뿐이다. 사실말이지 무기를 갖고는 어느 누구도 평화를 운운하지 못한다.맨손의 인간만이 평화를 만든다.평화는 헌장이나 협약 또는 정상회담으로 보장되지 않는다.사람 사람들의 마음속에 뿌리를 내려야한다. 그래서 전쟁과 평화를 얘기할적에 「좋은 전쟁」이니 「나쁜 평화」니 하는것은 의미가 없다.전쟁은 전쟁이고 평화는 그냥 평화일뿐이다.돌아간 카터씨가 감군과 미군유해송환 「미담」을 전했을때 우리 주변에서 들린 얘기들이 『이제 평화다.남북한 정상이 만나고 군대가 줄고 미국과 북한이 잘 나가는데 무슨 전쟁인가』였다.사실이 그렇다면 나쁘지않다.그런데 그것이 바로 또다른 하나의 「평화의 허구」이다. 이데올로기의 전쟁속에서 살아남기위해 삶이 얼마나 처절해야하고 어느 한쪽을 선택해야하는 인간의 변신과 고민이 어떠해야 하는가를 6·25전야의 텔레비전드라마는 말해줬다.한 젊은 대학강사가 피란을 가지못하고 서울에 남아 전쟁의 참상을 기록한 내용을 다시 꾸민 「역사 앞에서」가 그것이다.역사는 무엇이며 사람들은 왜 역사앞에 서야하는가를 알려준다. 카터씨를 만났던 북한주석이 정상회담을 전후해서 할일이 있다.양쪽에 움켜쥐고있을 수 있는 핵주먹을 활짝 펴보이라는 것이다.44년전에 일으킨 전쟁의 죄과를 시인하고 사과한다면 더욱 당연하다.다시 역사앞에 서라는 것이다.
  • 동네북과 교개위파동(서울광장)

    『우리가 뭐 동네북이니.연휴에 모처럼 나들이 갔더니 「안보불감증」이라고 두들겨 대고 곧 전쟁이 터질것처럼 호들갑 떨길래 아이들 좋아하는 라면,이참에 좀 넉넉히 사다 놓았더니 이번엔 또 「몰지각한 사재기」라고 비난하고.불과 2주일도 안된 사인데 어느 장단에 춤추어야 할지 모르겠다』『사실 라면등을 산것도 신문에 비상물품 목록까지 소개했길래 그거 오려 가서 들여다 보며 산거야.서울시에서 「비상대비 관계관 회의」란 것을 긴급소집해서 시민들에게 비상시 물자 확보를 권장키로 했다는데 그런 기사를 읽고도 가만 앉아 있다면 그거야 말로 안보불감증 아니니?』 오랜만에 학교시절 친구들을 만났다가 신문사에 근무한다는 이유로 비난의 표적이 되고 말았다.그러나 강남에 사는 한 친구에 의해 화제는 바뀌었다. 『심지어는 교육개혁도 우리 때문에 안된다니 기가 막히더라.교개윈가 뭔가 대학입시를 불과 몇개월 앞두고 입시제도 바꾼다고 어처구니 없는 소동을 벌여놓고서는 「대부분의 학생과 학부모들은 찬성하는데 강남8학군 학부모들의 이기주의 때문에 좌절됐다」니 참….우리가 정말 동네북인가봐』『본고사가 없어지면 내신이 정말 「종신형」 되고 말거야.우리 아이는 지금 정신 차려 열심히 공부하는데도 내신성적이 나빠서 좋은 학교에 가긴 힘들것 같아.그래도 본고사에 희망을 걸고 있어』재수생 아들을 둔,강북에 사는 친구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여기서부터 친구들의 이야기는 서로 엇갈리기 시작했다.『본고사가 없어져야 해.이러다간 과외비 때문에 살림 거덜날것 같애.아이들도 너무 고생하는게 불쌍하고』『그나저나 입시제도가 앞으로 어떻게 될지 빨리 결정되어야지.지금 3학년 아이들은 본고사를 본다지만 1·2학년은 어떻게 될지 모르잖아』 자기 아이의 성적과 학년에 따라 상당한 편차를 보이는 친구들의 이야기는 끝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고등학생 자녀를 둔 엄마들에겐 북한 핵 문제와 한반도 전쟁가능성보다 대학입시 문제가 더 시급한 발등의 불이었던 것이다. 다행히 친구들이 이번엔 신문을 공격하지 않았지만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언론과 교육개혁의 문제를 생각하지않을수 없었다.본고사 폐지 소동 역시 부끄럽게도 언론에 약간의 책임이 있다.「본고사=명문대학」이라는 이상한 등식에 사로잡혀 47개 대학이 95학년도 입시에 본고사를 채택하고 과열과외 바람이 불자 본고사가 우리 교육을 왜곡되게 한 원흉인양 호들갑을 떤것은 언론이었다.새 입시제도에 의해 본고사가 처음 실시된 94학년도 입시에서는 9개 대학만이 본고사를 채택하자 「교육부가 본고사를 보지 않도록 유도했다」고 비난한 것도 언론이다. 물론 언론은 시시각각 변화하는 현상에 초점을 맞추는 속성을 지니고 있다.따라서 그때그때 문제점이 되는 것들을 부각시킨다.그러다 보면 지엽적인 것들이 줄기보다 크게 부각되기도 한다.본고사에 대한 문제점 지적도 이를테면 그런 것이었다고 할수 있다. 어쨌거나 여론의 지지를 받을 것으로 오판한 교육개혁위원회는 이번 소동으로 그 위상이 땅에 떨어지고 그야말로 「동네북」신세가 되고 말았다.자업자득이지만 교육개혁에 대한 그 구성원들의 순수한 열정까지 매도해 버려서는 안될 것이다.실제로 본고사를당장 폐지하자는데 문제가 있는것이지 교개위가 제시한 개선안은 시간을 두고 검토할 필요가 있다.본고사를 폐지할 만큼 내신의 타당성과 공정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2천년대까지 치밀한 준비작업을 해 나가야 할것이다.또 수능시험의 변별력을 높이려면 문제은행식이 돼야 하고 우리 교육평가원이 미국의 SAT를 관장하는 ETS처럼 3천여명의 출제인원을 확보하지는 못한다해도 필요한 전문가와 예산을 확보하거나 공사화돼야 한다. 무엇보다 교육부는 교육현장의 혼란을 잠재울 96·97학년도 입시제도를 시급히 마련해야 할것이다.입시제도의 변경은 학생들의 혼란을 막고 신뢰이익을 보장해 주기 위해 3년의 예고기간을 두는것이 상식이므로 교개위의 개선안은 그 정신을 살리는것(본고사 과목 축소등)이상으로 당장 반영될순 없다고 본다.학생선발의 다양성과 대학의 자율성을 보장하는 개선안이 나오길 기대한다.
  • 한반도 위기설/미언론·보수세력이 과장

    ◎WP지,레이니 주한대사 지적 보도/기존 위기대응책 새전략인양 기사화/민방위훈련도 전쟁대비책으로 소개 국제사회가 북한핵과 관련한 한반도 상황에 전례없이 큰 관심을 보이고 있는 가운데 미국의 일부 언론과 보수세력이 위기 국면을 지나치게 부각시켜 실상을 오도하고 있다는 지적이 미국의 주요언론과 관계자들 사이에서 제기되고 있다. 이와 관련,워싱턴 포스트지는 15일 서울발로 제임스 레이니 주한 미대사가 빌 클린턴 대통령에게 제임스 울시 미중앙정보국장이 북한 핵위협을 과장하고 있다는 점을 언급한 것으로 전해졌다고 보도해 주목을 받고 있다. 미정부와 의회 안보관계자들은 한반도 유사시를 대비해 미국방부가 기본 틀을 마련해 놓고 있는 위기대책 방안을 마치 이번 사태로 인해 급히 만들어진 것처럼 일부 미국 언론이 전함으로써 긴장감을 더욱 높이는 결과를 초래했다고 비판했다. 한 예로 오하이오에서 발간되는 유력지 플레인 딜러지 14일자가 미국의 한반도 「전쟁계획」을 소개하면서 펜타곤이 미전투력의 근 절반을 차지하는 주방위군과 예비군에 즉각 동원령을 내릴 태세인 것처럼 보도한 사실을 지적했다. 또 시사주간 유에스 뉴스 앤드 월드 리포트가 20일자 최신호에서 「지구상에서 가장 위험한 곳」이란 제목을 달아 한반도 사태를 커버 스토리로 다루면서 한국전 재발시 벌어질 상황을 지도를 통해 상세히 소개한 점도 거론됐다. 이들 관계자는 이 가운데 CNN 보도가 특히 요즘 미국을 포함한 국제사회 전반의 대한반도 시각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게 현실이라면서 문제는 이 매체가 지나치게 「갈등지향적」으로 사태를 전함으로써 실상을 굴절시키고 있다는 점이라고 비판했다. CNN은 최근 며칠사이 카터 전대통령의 방북을 계기로 「한반도 위기」란 제목의 특집을 시간 단위로 계속 내보내면서 한국의 민방위 훈련을 본격적인 전쟁 대비책인 것처럼 거듭 소개하는가 하면 일각에서 일어나고 있는 사재기가 마치 전국적인 현상인양 부각시켜 보도하고 있다. 이에 대해 일부 미국 인사들은 CNN이 과거 걸프전 보도로 확고한 기반을 다졌음을 상기시키면서 북한핵과 여기서 촉발된 한반도 사태를 시청률확보를 위한 계기로 삼기위해 전력투구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했다. 워싱턴 포스트지는 지난 10일 CNN의 최근 보도 성향을 분석하면서 걸프전과 같은 「화끈한 뉴스원」이 마땅치 않은 상황에서 생방송을 강화하고 국제적 관심사에 대한 기획 취재를 활성화하는 등 자구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고 지적했다.CNN의 이같은 노력은 6월 현재 주요 시간대 시청률이 이례적으로 작년 대비 26%나 떨어진 것으로 전해진 것등과 무관치 않다는 분석이다. 북한핵등 핫 이슈에 대한 CNN의 보도 태도는 얼마전 미의회 청문회에서도 거론돼 터너가 직접 증언에 나서기까지 했다.터너는 당시 미의원들과 종일 방송 방식을 취하고 있는 CNN의 보도가 미국 외교정책에 미치는 영향의 긍정적·부정적 측면을 놓고 논쟁을 벌였다. 미관계자들은 미국의 정책 결정 과정에 대해 보다 많은 이해와 관심을 갖는게 한국측에 도움이 될 것이라면서 이를 통해 미언론 일각과 보수 진영의강경한 목소리로부터 보다 초연할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 “사전 협의·통고 없이…”중국 당혹/「북 IAEA탈퇴」세계의 반응

    대북한 제재를 둘러싼 북한핵사태가 13일 북한의 IAEA 탈퇴선언으로 긴장감을 더해가고 있다.미·중·러·일등 「주변4강」은 북한의 탈퇴선언을 어떻게 분석하며 또 어떤 대응을 준비하고 있는지,그리고 북한핵문제를 실무차원에서 다뤄온 IAEA는 어떤 반응을 보이고 있는지 현지 특파원들을 통해 점검해 본다. ▷IAEA◁ ◎“뜻밖”… 효력 검토착수/「전례」없어 대응책 마련에 고심 북한이 돌연 국제원자력기구(IAEA)를 탈퇴하겠다고 선언한 데 대해 IAEA는 한마디로 「의외」라는 반응이다.제재결의 이후의 북한 반응을 국제사회의 압력에 굴복,유화 제스처로 전략을 바꾸거나 아니면 강한 반발을 보여 핵확산금지조약(NPT)탈퇴 등 초강경 대응을 보일 것이란 2가지 정도로 내다봤던 IAEA로선 중간정도인 IAEA 탈퇴선언은 전혀 예상치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현재 IAEA는 북한으로부터 아무런 통보를 받지 못했다며 공식적인 언급을 자제하고 있다. 그러나 IAEA는 북한의 탈퇴선언의 속셈과 법적인 탈퇴효력문제 등에 대한 내부검토작업을 벌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IAEA가 특히 곤혹스러워 하는 것은 이제까지 회원국 탈퇴 전례가 없어 탈퇴의 법적 절차와 효력발생에 대해 신속한 대응책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는 사실이다.물론 북한으로서는 「회원국은 언제든 탈퇴의사를 기탁국에 서면통보하면 된다」는 헌장 18조 규정에 따라 현재 기탁국으로 돼있는 미국에 그 의사를 문서로 통보하면 탈퇴할 수 있다.미국은 서면접수를 받는대로 이사국과 회원국에 그 사실을 알리면 그만이다. 문제는 북한의 IAEA 탈퇴선언의 노림수가 무엇이냐는 것을 IAEA가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때문에 IAEA관계자들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IAEA의 한 관계자는 『얼핏 보기에는 강경한 입장 표명인 것같지만 내용적으로는 별다른 의미를 갖지 못한다』고 지적하고 『북한의 선언은 고도의 치밀한 연구 끝에 나온 것 같다』고 분석했다. 다른 관계자들은 북한이 IAEA의 즉각 탈퇴를 선언하면서 핵안전조치의 지속성을 위한 사찰도 허용할 수 없다고 「별도로」 밝힌 점에 주목하고 있다.이 말은 NPT를 의식한 것으로자신들이 NPT 당사국에 남아있는 한 핵안전협정을 지켜야한다는 점을 익히 알고 있으며 유엔안보리의 움직임에 따라 앞으로 NPT 탈퇴도 불사하겠다는 상징성을 담고 있다는 것이다. 동시에 실권이 없는 IAEA를 거치지 않고 미국과의 직접협상을 통해 핵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의사를 분명히 한 것으로 보고 있다. 요약컨대 북한은 탈퇴선언 이전보다 크게 달라진 것은 없지만 자신들의 고립감 정도에 따라 조만간 탈퇴절차의 공식이행,평양 사찰단의 추방,전면적인 사찰거부선언,NPT 탈퇴등 일련의 핵시나리오를 계속 취하면서 시간을 벌 가능성도 현재로서 배제할 수 없는 실정이다. ▷일본◁ ◎“최악의 시나리오 현실화 되나” 우려 일본은 북한의 IAEA 탈퇴선언 「진의」파악에 분주한 가운데 한국·미국등과의 공동대응방안 검토작업에 들어갔다. 일본의 하타 쓰토무(우전자)총리는 14일 클린턴 미국대통령과 긴급전화회담을 갖고 양국이 공동대응키로 합의한 뒤 『북한의 양보를 끌어낼 수 있는 제재가 되어야 한다』는 인식을 나타냈다.가키자와 고지(폐택홍치)외상도 이날 미국의 크리스토퍼국무장관과 긴급통화,북핵문제에 양국이 긴밀한 협력관계를 유지키로 입장을 재확인 했다. 가키자와외상은 회담에서 『북한의 행위는 국제사회의 요청에 역행하는 것으로 사태를 더욱 심각하게 만들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일본 외무성은 이날 북한의 IAEA 탈퇴를 비난하는 공식성명을 발표하고 북한의 재고를 촉구했으며 하타총리도 심각한 유감을 표명했다. 일본은 북한이 IAEA 탈퇴를 선언했지만 미국이 가장 중요시하는 핵확산금지조약(NPT)으로부터의 탈퇴는 여전히 「유보」상태로 두어 「NPT카드」를 「대화의 여지」로 남겨놓은 것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그러나 일본은 북한의 이러한 예상밖의 강경자세가 역으로 유엔을 무대로 논의되고 있는 경제제재를 더욱 촉발시킬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했다.하타정부는 지금까지 제재조치 전에 유엔에 의한 「경고결의」를 채택해야 한다는 입장을 견지해왔다.그러나 북한의 IAEA 탈퇴선언이 미국등의 강력한 반발을 촉발,유엔안보리가 대뜸 제재를 결의하게될 가능성이 커졌다는 것이다. 이 경우 북한이 선전포고라며 극단적 행동에 나설 경우 한반도에서 「최악의 시나리오」가 현실화할 우려가 있다며 우방들과의 대화활동에 나서고 있다. ▷미국◁ ◎“NPT탈퇴의 전주곡”/북서 IAEA사찰단 추방땐 강력대응 미국은 북한의 IAEA를 탈퇴에 대해 『대단히 심각한 상황』(마이어스백악관대변인),『새로운 위험한 사태발전』(매커리국무부대변인)이라는 인식이다. 클린턴행정부의 북핵정책조정팀장인 로버트 갈루치국무부차관보는 13일 외신기자들에 대한 북핵관련 특별브리핑에서 『핵안전조치 의무는 핵확산금지조약(NPT)가입에 따라 별도 서명한 핵안전협정에서 발생하는것』이라고 지적,북한이 설령 IAEA를 탈퇴한다 해도 사찰의 의무는 그대로 남는다는 입장을 보였다. 미국은 북한의 탈퇴선언 자체에는 「놀라움」을 표시하지 않고있다.그러나 갈루치차관보는 북한의 탈퇴선언이 현재 추진중인 유엔안보리의 대북제재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지적했다.현재 성안중인 기술지원및 과학·문화교류중지등을 내용으로 하는 「가벼운」1단계 제재결의안을 재검토,보다 강경한 내용을 포함시킬수도 있다는 것이다. 워싱턴은 북한의 탈퇴선언을 앞으로 유엔제재조치가 취해질때 NPT를 탈퇴하기위한 「전주곡」이라고 보고 있다.또 한편으로는 카터전대통령의 평양방문을 앞두고 극한적 대결상황을 연출,카터전대통령을 통해 미국에 전달될 메시지가 『많은 것을 양보한 것인양 위장하려는 전술』이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사태의 추이를 예의주시하고 있는 미국은 북한이 IAEA탈퇴에 그치지 않고 현재 녕변핵기지에 잔류해있는 IAEA사찰요원 2명을 강제출국시키고 핵시설에 설치된 감시장비들을 제거할 경우 이를 핵비확산체제에 정면도전하는 행위로 규정,최대한 강력대응할 방침이다.또한 북한이 사태를 악화시킬 경우 단계적 제재조치의 「단계」를 과감히 생략할 것으로 전망된다. ▷북경◁ ◎북한의 진의 파악에 동분서주 북경은 북한의 IAEA탈퇴선언에 대해 『드디어 올것이 왔다』는 생각과 함께 다른 한편으로는 「혈맹」을 강조하는자기들에게까지 사전통고 한마디 없이 탈퇴를 선언한데 대해 서운해하고 약간은 당황해 하는 기미마저 보이고 있다. 그러나 중국쪽에서 봤을땐 「제재보다는 대화와 타협」이라는 자신들의 일관된 주장이 맞았다는 사실이 입증됐다며 국제사회에 대해서는 어깨를 펼 수 있는 계기가 될 듯하다.북경의 한 관측통은 중국측이 『우리가 뭐라고 했는가.북한과는 압력이나 제재보다는 대화와 협상으로 문제를 풀어야 한다고 누차 강조하지 않았느냐』며 강경일변도로 몰아붙인 서방측에 대해 다소간 큰 소리를 칠 수 있게 됐다고 설명한다. 그러면서도 중국측은 이번에 북한이 취한 조치에 대해 내심 당황해 하는 눈치다. 중국의 관영 신화통신이 14일 하오 늦게까지도 이 사실 자체의 보도를 머뭇거렸던 일이나 외교부 당국자들이 허겁지겁 북한의 진의를 파악하느라 분주했던 사실이 이를 증명한다. 한가지 주목해야 할 사항은 중국이 그동안 국제사회에서 유일하게 북한의 입장을 지지하고옹호해 왔건만 IAEA탈퇴라는 중대 결정을 내리면서도 평양측이 중국측과 사전 협의는 물론 사전 통고마저 하지 않았다는 점이다.북한의 이같은 당돌한 행동은 앞으론 오직 미국과의 직접대화를 통해서만 모든 문제를 풀어나가겠으니 중국도 참견하지 말아 달라는 뉘앙스까지 풍기는 것으로 보여 중국측에는 별로 달갑지 않은 일이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하지만 중국측은 아직도 제재가 아닌 대화와 협상을 강조하고 있다. ▷러시아◁ ◎사실일땐 「강력한 제재」에 동참 러시아 외무부의 한 고위관리는 14일 북한핵문제와 관련,러시아정부의 입장은 일관되고 확고하다고 전제,『북한의 IAEA 탈퇴결정은 그것이 사실일 경우 매우 유감스런 일』이라고 말했다.이 관리는 『러시아는 일관되게 한반도의 비핵화,그리고 북한이 NPT체제에 복귀해 IAEA의 핵사찰을 받아야 한다는 것을 주장해왔다』고 밝히고 『북한의 IAEA 탈퇴가 사실일 경우 러시아는 그에 대한 모든 대비책을 강구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관리는 특히 옐친대통령이 13일 클린턴 미국대통령과 긴급전화를 통해 대북한 제재문제에 대해 논의한 점등을 상기시키며 러시아가 안보리 제재를 포함,강력한 대북압력에 동참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러시아 외무부는 북한의 IAEA탈퇴발표와 관련,아직 사실 확인이 안됐다는 이유로 14일 상오 현재 공식성명은 물론 일체의 공식논평을 보류하고 있다.주러시아 한국대사관의 한 관계자는 『사실확인 절차를 거쳐 14일 하오께나 외무부 성명등이 나올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성명에는 1차적으로 IAEA탈퇴에 대한 유감표명,한반도 비핵화에 대한 기존입장 천명,NPT체제에의 복귀 등을 요구하는 내용들이 포함될 것이라고 이 관계자는 전망했다. 한편 러시아의 공휴일인 관계로 신문들이 휴간한 13,14일 러시아의 텔레비전,라디오방송들은 북한의 IAEA탈퇴소식을 주요기사로 보도했다.모스크바 라디오는 14일 일본교도통신을 인용,북한의 IAEA탈퇴뉴스와 함께 한반도의 긴장상황,카터 전미국대통령의 방북계획,옐친대통령의 대북제재지지 표명 등을 상세히 보도했다.
  • 외교와 의정의 점수(이동화칼럼)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러시아의 태평양함대 사령부와 함선을 방문,태극기가 펄럭이고 애국가가 울려퍼지는 가운데 극진한 대접을 받는 모습을 TV화면에서 접했을때 필자는 잠시나마 감회와 흥분에 젖어있었음을 고백한다.한·러 양국대통령이 악수를 나눌때와는 또다른 감흥을 느낀것은 그장면이 나타내는 상징성때문이었을 것이다.아마 많은 사람들의 생각이나 기분도 비슷했으리라고 짐작해 본다. 이장면이 상징하는 바는 꼬집어 얘기할 수는 없지만 이때가 마침 6·25한국전쟁 발발 44주년이 코앞에 닥쳐온 시점인데다 그동안 우리의 머리속에 북한의 군사적 지원세력으로 그려져있던 러시아군이 북한의 뒤통수인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이같이 화려한 쇼를 펼친 것이 주는 인상은 만만치 않았다. ○북한의 위협과 읍소 우리에게는 안도를,북한에게는 당혹을 안겨주었을 이 쇼는 냉전의 종식을 실감시켰으며,국제정치환경의 변화를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더욱이 최근들어 북한핵문제를 놓고 한반도에 또다시 팽팽한 긴장감이 확산되고 있는 상황에서 이지역의 균형추로 작용할 러시아의 입장을 행동으로 나타낸 것이다.그의미는 실로 적지않다.이는 한반도의 긴장완화에 큰 도움을 줄 수 있는 사안으로 작용할 것이다. 이지역의 긴장이 완화되느냐 고조되어 최악의 경우 전쟁상태로까지 가느냐는 기본적으로 북한이 핵무기개발을 포기하느냐 아니냐에 달려있다.이를 포기하지 않을 경우 국제적 제재에 직면하게 되며 이경우 그렇지 않아도 나쁜 경제사정이 최악의 상황으로 치달아 체제붕괴의 위험성까지 있기에 북한은 제재를 피할 방법을 찾아내려 안간힘이다. 한편으로는 대북제재를 전쟁으로 간주하겠다고 거듭 위협하면서,또 한편으로는 중국에 읍소를 하고 있다.중국은 유엔안보이상임이사국이라 대북제재에 거부권을 행사할 수도 있고 경제적 봉쇄가 이루어졌을 때 유일한 보급로가 될수 있기 때문이다.대통령의 4각외교막판에 북한과 우호조약을 맺은 상태에 있는 러시아를 우리쪽으로 기울게 한 효과는 당장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우리도 이제 남은 것은 중국이라고 보고 한미간 전략을 숙의하던 한승주외무장관을 중국에 급파,국제사회의 여론을 업고 미·중의 견해를 조화시키는 작업을 벌이고 있다.그동안 국내에서 우리외교가 어쩌니 저쩌니하고 비판을 많이 받았지만 이시점에서 볼때 비교적 잘 대처해왔다고 평가해도 무리가 없다는 생각이다. 안보문제가 부각되면서 오히려 비판을 받아야 할곳은 국내쪽이다.특히 정치권을 보자.북한이 핵개발을 고집하고 제재에 맞서 전쟁위협을 거듭하는데도 국회는 말한마디 없다.국민의 의사를 결집해서 토론도 하고 결의를 모아 북한에 경고하고 국민을 안심시켜야 함에도 아직 그런 역할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오직 상무대국정조사만이 있을 뿐이다.국정조사자체가 잘못된 것이라는게 아니다.오히려 빨리 조사가 진전되어야 마땅한데 그렇지도 않고,그럼에도 그것이 전부인양 매달린채 정작 국민들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에는 전혀 손을 못대니 그것이 문제라는 것이다.저속한 「패거리놀음」만을 보여주고 있는 느낌이다.역사적 비판을 받을수도 있는 무책임성이다. 지금 국회가 핵심적으로 논의해야 할 사안은 안보문제다.안보문제에 초당적으로 대처해온 것이 국회의 관행이었다.그러나 국회는 지금 무엇을 하고있는가.우선 여당이 적극적으로 나서야함에도 그런 책임감이나 의무감은 볼수가 없다.야당이 딴소리만 할뿐 자진해서 당면한 중요현안에 달려들지 않는다면 여당은 그들을 끌어들이려는 노력을 배가해야 마땅하다. 좋은 카드를 마련하여 적극적으로 협상도 하고 필요하다면 「떡」도 줄수 있는 정치력을 발휘할 때가 되었다.또 여론과 국민의 뜻을 통해 야당의 태도를 바꾸게 만드는 방법도 강구할수 있다.국회의원은 표에 약하니까…. ○국회열어야 할때 국회를 빨리 열어 북한핵을 둘러싼 외교도 도와주고 한미연합전력을 점검도 해봐야 한다.또 최근 일부에서 우려하고 있는 안보관련 문제,예를 들어 「북한간첩이 늘어나는데도 못잡는다」든가 「한총련일부가 북한에 무조건 동조한다」든가 하는 문제까지도 하나하나씩 살펴보고 국민을 안심시킬수 있는 방안을 내놓는 일에 나서야 마땅한 때가 아닌가. 지난 현충일 연휴에 시민들이 행락에 몰려 고속도로가 주차장화하는등「안보불감증에 걸렸다」고 언론,특히 서방일부 언론이 이상하다고까지 하며 꼬집었지만 국민들은 지금 한반도정세가 어떤지도 모르는 경우가 태반이다.이제라도 정치권과 국회는 국민에게 필요한 부분을 알리고 건강한 자극을 주며 필요한 긴장을 하게 한다는 점에서도 보다 적극적으로 자기역할을 찾아야 할것이다.
  • 별을 보는 마음/김용한(굄돌)

    오래 전에 읽었던 수필 중의 한 귀절이 항상 내 마음 구석에 자리하고 있다.「친구와 술 한잔을 마시고 귀가하는 길에 우연히도 오랜만에 밤하늘을 보았습니다…」라는 내용이다.그 글을 처음 대했을 때 마치 내 자신의 얘기인양 느꼈던 기분은 지금도 마찬가지다.요즘도 고개를 들어 밤하늘을 바라다 본 기억은 별로 나질 않는다.더더욱 내 아이와 함께 별을 바라보며 대화를 나눈 기억은 전혀 없는듯 하다. 어린시절의 기억이 새삼 새로워 진다.여름날,저녁식사를 마친 뒤 아버지는 뒷짐을 지신 채 산보를 하시고,막내인 나는 형님,누나와 함께 툇마루나 장독대에 걸터 앉는다.부모님이 식사 뒤에 곧바로 책상에 앉거나 하는 것을 금하시기 때문이었다.잠시 후 설겆이를 마친 어머니도 자리를 함께 하신다. 아버지는 밤하늘을 보면서 내일의 일기예보를 해 주시고 별똥별이 큰 선을 그리며 떨어지면 어머님은 빨리 소원을 빌라고 채근하신다.그렇게 가족들의 얘기가 영글기 시작하면 그날 학교에서 있었던 일이며,자연시간에 배운 별자리 얘기,외지에서 공부하고있는 형님에 대한 걱정,장차 무엇이 될래 하는 식의 대화가 이어진다.혹간 참외라도 한쪽 있으면 더욱 좋은 자리였었다. 요즘 도시생활에서는 하늘을 보기가 점점 어려워 진다.높이 솟은 건물들이 시야를 좁게 하고,더욱이 심한 공해로 낮이건 밤이건 맑은 하늘을 접하기 어렵다.별빛도 예전같지 않다. 수필의 글귀처럼 내게도 밤하늘은 한잔의 술과 함께 존재하는 듯하다.왜일까.그 원인은 바깥보다는 내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라 생각한다.무엇엔가 항상 쫓기듯 생활하지만,막상 되돌아 보면 빈 껍데기 뿐인 그 분주함의 실체는 아마도 여유없는 마음이 아닐까 생각한다. 이젠 어렸을 적 부모님이 내게 가르쳐주신 별을 보는 여유로움을 되찾아 보겠다.그리고 내 아이에게도 그 가르침을 전해주고 싶다.결코 삭막하지 않은,밝고 건강한 인성을 갖도록….
  • 한글 진료기록(외언내언)

    얼마전 한 병원에서 환자와 의사가 치고 받는 사건이 있었다.치료해도 차도가 없는 병이 궁금하고 돈이 얼마나 더 들어야 하는지 걱정되어 의사에게 병명이나 알자고 졸라댔는데 한참 끌다가 바쁘다고 나가며 대답한 말이 영어 한마디였다.알아 듣지도 못했지만 그 말하는 태도가 너무도 없신여기는 것 같아 순간 주먹이 올라가더라고 친 내력을 설명했다. 간암을 앓고 있던 30대 환자가 유명하다는 큰 병원서 입원치료하고 있을 때이다.식구들은 본인 의지로 이겨내도록 병명을 감춘채 기적을 바라며 지극정성으로 간호하고 있었다.그런데 환자보호자가 잠깐 자리를 뜬 사이 환자가 집으로 내빼버렸다.가슴 수술자리가 아물기 전이다.집에 와서는 투약과 간호 모든 것을 마다하고 눈감고 회한에 잠겨 더욱 까부라졌다.결국 얼마못가 죽고 말았다.가족들이 두고두고 애통해한 것은 회진온 수련의 두명이 『말기암이라 희망없다』고 환자 옆에서 주고 받은 자기들끼리의 영어대화이다.이 환자는 일류대 독문학 전공인데다가 영어도 능통한 인재였다.곧 죽는다는 절망만없었어도 환자를 좀더 살릴 수 있었다는 안타까움이다. 의사들이 영어 쓸 때와 안쓸 때를 구별못한 예는 이 밖에도 많다.나름대로 이유는 있을 것이다.해방후 의학교육이 미국에서 입수된 영어교과서로 이루어졌고 병명 의학용어를 거의 우리말로 다듬을 사이없이 따르기 바빴다.선진의술 연수도 미국일변도로 치우쳐 국내서 한국의사와 청중을 대상으로 하는 의료집담회도 영어로 진행되는 것이 예사였다.미국 갔다오고 영어쓰는 것이 의료실력인양 과시돼왔던것. 보사부가 드디어 진료기록을 한글로 적도록 의료법으로 규제한 것은 시원한 일이다.한국에서 한국사람 대상의 병력과 가족력,주요증상 진단결과,진료경과,예견,처치같은 의사의 의료행위 내용과 소견등을 한글로 적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진료기록은 환자열람,타의료기관 이송요청에도 제시해야 하는 것이다.더이상 의사들끼리의 암호문같이 짧은 영어로 적혀서는 안된다.
  • 뒤늦은 국가체제 정비(백제를 다시본다:14)

    ◎5세기말에야 마한 완전 통합/부여족 남진정복… 토착세력과 갈등/방·군·성 지방행정망 갖춰 중앙통치/남북으로 긴 영토 사회통합 장애… 군정적 지배 의존 고구려나 신라에 비하면 백제의 국가형성 과정은 자못 다르다.주지하듯 백제는 북으로부터 남쪽으로 이동해온 부여주의 일파가 마한사회의 북방인 현재의 서울시 일대에서 지배권을 확립한 일종의 정복국가 성격을 띠고 있기 때문이다.부여족의 이동 정주를 계기로 하여 비로소 백제국가가 형성된 것인지 아니면 이미 마한토착세력에 의해 건국되어 발전 도상에 있던 백제 소국을 부여족이 정복한 것인지 비밀의 장막에 가려져 있다.그것은 어쨌든 백제국이 마한의 땅에서 형성된 부여족의 정권이라는 건국사정의 특수성으로 말미암아 정복자집단과 토착세력집단 간의 이중성이랄까 괴리현상이 심각했던 것으로 짐작된다.백제의 정치·사회사는 바로 이같은 이중성을 극복하기 위한 진통과정이었다고 할 수 있다. 백제가 직면한 또 다른 난관은 그 지형적인 특수성이었다.마한의 영역은 서해안을 끼고남북으로 길게 뻗쳐 있었으며 그 한가운데를 차령산맥과 노영산맥이 달리고 서해로는 금강과 영산강이,남해로는 섬진강과 탐진강이 각기 흐르고 있어 여러개의 고립된 지형구를 형성하였다.그 결과 마한사회는 소백산맥 동쪽에 펼쳐진 진한·변한사회에 비하면 현저하게 지역적 통일성을 결여하게 되었다.더욱이 서해안이 완전히 개방되어 있어서 마한의 50여개 소국들은 연안항로를 따라 한반도 서북지방에 설치된 중국군현인 낙낭군이나 대방군과 자유로이 접촉했다.이는 백제 주도하의 마한세력 통합을 장기간 방해했다.신라가 진한 12개국을 비교적 단기간내에 통일할 수 있었던 것은 그 자폐적인 자연환경에 힘입은 바 컸었다.그런데 마한사회는 각기 독자적인 지역성을 고집하는 다양한 지역사회를 포괄하고 있었으며 바로 이 다원적인 지역적 구성이 백제의 정복자들에게는 커다란 부담이 되었던 것이다. ○지리적 특수성 한몫 「삼국사기」 백제본기에는 백제의 마한정복을 시조 온조왕 27년(AD9년)때의 일인양 기술했으나 이는 엄정한 사료비판을 필요로 하는 대목이다.마한의 최북방에 해당하는 현재의 서울에서 국가형성에 성공한 백제가 남해안에 이르는 마한사회 전체를 호령하게 된 것은 대체로 4세기 후반 근소고왕 때의 일로 짐작된다.다만 마한을 정복했다고 해서 백제가 곧바로 한반도 서남해안지역에까지 통일된 지배망을 구축할 수는 없었다.최근 전남지방의 고분연구 성과를 토대로 하여 추측해 볼 때,백제가 이 지방의 마한세력을 명실공히 통합하여 동질화의 과정을 밟게 되는 것은 그로부터 1백년쯤 뒤인 5세기 후반,즉 백제가 한성에서 웅진(공주)으로 천도(475년)한 이후가 아니었을까 생각된다.사실 5세기 중엽까지만 해도 백제 지배층의 묘제인 횡혈식석실분은 영산강유역까지는 확대되지 못하고 있었으며,그대신 이곳에는 옹관묘(독무덤)가 여전히 유행했다.이 지역에서 옹관묘가 석실분으로 바뀌는 시기를 고고학 연구자들은 대체로 5세기말에서 6세기초로 보고 있다. 마한영역을 통합한 뒤 백제조정이 들고 나온 통치철학은 중국의 고전인 「주례」에서 많은 것을 차용한 느낌이 든다.이 「주례」는 중국전국시대 말기에 장차 출현하게 될 대제국의 정치적 체계를 위한 일대 청사진으로 만들어진 것이었다.거기에는 우주의 삼라만상을 포괄하는 통일적·체계적 이론이 제시되어 있다. 사비(부여)시대 재상을 선출할 때 후보자 3,4명의 이름을 적어 밀봉하여 바위 뒤에 두었다가 얼마뒤 개봉하여 이름 위에 도장이 찍혀 있는 사람을 뽑았다는 에피소드가 전해지고 있는 금강 대안의 규암면 울성산성 밑 호엽사터의 바위를 정사암 혹은 천정대라고 하는데 이 「천정」이란 말 자체가 「주례」에서 나온 것이다.즉 이 책의 천관 가재조에 의하면 천관은 3백60관을 총섭하는 최고의 관직이다.그러니까 천정대란 바로 그같은 천관의 정사를 수행하는 장소라는 뜻이다. ○「주례」의 통치철학 백제의 중앙정치제도를 보면 5,6명의 좌평이 재상으로 내관·외관을 합친 22개의 관청을 지휘 감독했는데 그 관청의 이름 중에는 사도부·사공부·사구부 등 「주례」에서 따온 것이 적지않다.실은 좌평이란 명칭 자체가 「주례」 하관 사마조의 「이좌왕,평방국」(왕을 보좌하여 나라를 평안하게 한다)이라 한데서 취한 것으로 생각된다.문무백관의 관등은 좌평 이하 16등급으로 정연한 체계를 이루었는데 그 명칭 또한 매우 우아한 한식으로 되어 있다.이는 토착적인 체취가 물씬 풍기는 고구려·신라의 관등 이름과는 큰 차이가 난다. 한편 지방통치조직은 국가권력이 강대해짐에 따라 차츰 정비되어 갔다.한성시대만 해도 전국의 각 지역세력의 대표자를 통해 성과 읍을 간접적으로 지배했다.근초고왕의 대정복사업이 성공리에 완수된 뒤 백제는 전국을 22개의 행정구역(당노)으로 나누고 지방관을 보내어 통치했다.이같은 담로체제는 공주로 천도하면서 더욱 충실해졌던 것으로 짐작된다.그러나 백제가 정연한 통치망을 구축하게 되는 것은 538년 부여로 천도한 뒤의 일이다.김동용봉봉래산향로에서 보여주는 것과 같은 고도의 기술을 바탕으로 축적한 국력이 크게 작용했다.이 사비시대에 백제는 고사성(전북 고부)을 중방으로 하여 전국을 크게 5개 방으로 구획하고 37개 군을 두어 2백개 내지 2백50여개에 달하는 성을 장악했다.이 성은 후일의 현에 해당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삼국중 가장 취약 이같은 방·군·성체제가 확립됨에 따라 국가권력은 지역사회에 어느정도 침투할 수 있었다.다만 백제의 지방지배는 멸망의 순간까지 현저하게 군사적 성격이 강했던 것으로 보인다.민정을 게을리 한 것은 결코 아니었으나 대체로 보아 군정적 지배로 일관한 듯하다.이는 앞에서 지적했듯이 백제사회의 구성이 본디 이중성을 띠고 있는 데다가 지역공동체의 세력이 너무나 강고하여 국가권력이 밑바닥까지 파고들어가는데 일정한 한계가 있었음을 반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것은 어쨌든 이는 고구려나 특히 신라의 경우와 비교할때 백제의 커다란 취약점이 아닐 수 없다.신라는 지역사회의 말단인 촌에까지 도사와 같은 행정관을 파견한다거나 혹은 지방세력가인 촌주에게 관등(이른바 외위)을 준다거나 하여 이들을 최대로 지배망에 포섭한 기반 위에서 삼국항쟁의 대열에 뛰어들었던 것이다.백제가 신라에 패망한 원인을 통치체제 면에서 찾는다면 바로 이같은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패망후의 마한/나주지역 중심 지방호족 할거/고유의 독무덤·금동관 출토가 증거 백제가 마한사회를 통합하기까지는 상당한 세월이 걸렸다.북방으로부터 남하한 백제가 비록 정복국가의 기틀을 잡았을지라도 토착세력을 쉽사리 편입시키지 못했다.이같은 정황은 오늘날 전남북지역에서 고고학적으로 발굴된 고대묘제를 통해 확연히 드러나고 있다. 그 대표적 사례가 지난 1917년 일본인들에 의해 발굴된 전남 나주군 반남면 신촌리 독무덤떼(옹관묘군)가운데 하나인 제9호분이다.마한의 전통묘제이기도 한 5∼6세기경의 이 무덤에서는 큰고리칼(환두대도),금동관,금동제신발(김동식리)등의 껴묻거리가 출토되었다.금동관은 9호분 안에 묻힌 8개의 독 가운데 가장 큰 이음독(합구식옹관)머리부분에서 나왔다.맞새김의 초화무늬 솟을장식(입식)을 단 외관안에 모자가 붙은 수준급 금동관으로 평가되었다. 이같은 유물은 5∼6세기경 까지도 영산강유역에는 막강한 토착세력이 존재했음을 의미한다.다시 말하면 나주지역 중심의 당시 영산강유역은백제 중앙정권의 통치권이 완전히 미치지 못한 가운데 지방호족들이 어느정도 할거했을 것이라는 이야기다.따라서 기층문화와 불가분의 관계를 갖는 묘제 역시 마한고유의 독무덤이 계속 이어진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영산강유역 나주지역에 백제의 묘제가 수용되는 시기는 6세기말∼7세기초다.이 시기는 사비시대에 해당하는데,백제 지배층의 묘제인 굴식돌방무덤(횡혈식석실분)이 나타난다.지난 1978년 당시 전남대 최몽용교수(현 서울대)가 발굴한 전남 나주군 반남면 대안리 제3호분이 이 시기의 백제계통 무덤이다.돌방과 널길(선도)을 갖춘 이 무덤에서는 긴목항아리(장경호),바리모양토기(발형토기),은장도조각,금실,쇠못 등이 출토되었다. 이렇듯 서남해안에 가까운 마한지역에는 백제의 발길이 더디게 미쳤다.
  • 백제문화권 개발의 방향/지명관(시론)

    지난5월8일에 정부는 충남 공주와 부여 일대를 백제문화권으로 크게 개발할 계획이라고 발표했다.「총 1천9백15㎦에 연간 5백70만명의 관광객」을 유치한다는 것이다. 앞으로 8년간 1조1천5백억원을 투입하고 「백만평의 역사촌,40만평의 관광단지및 관광농업단지」를 조성하고 「부여와 공주를 잇는 도로변」에는 「청소년 수련촌과 기업연수촌,노인휴양촌,오토캠프촌」등을 건설할 의욕적인 계획이다. 아마도 이 「백제문화권 개발사업계획안」은 건설부가 작성하여 관계부처및 관련 지방자치단체와 협의한다는 순서를 밟는 모양이다.지난해 6월에 이 지역을 「백제문화권 특정지역」으로 지정하고 조사를 해왔는데 금명간 최종 학정,올 하반기부터 본격적으로 사업에 착수한다는 것이었다. 오랫동안 잊어버리다시피한 백제문화가 크게 각광을 받게된다는데 이의를 달 사람은 없다.그 어마어마한 계획에 놀라면서 발전하는 한국의 모습을 머리에 그리고 기뻐할는지 모른다.사실 관광사업이란 지금 전세계가 열을 올리고 있는 중요한 산업이다. 외화획득이라는 면에서 본다면 그 가득률이 가장 높아서 어느 산업에 못지않게 주목을 받고있다.이번 계획에 있어서도 만성적인 적자에 허덕이고 있는 대일무역 문제도 염두에 두고 있을는지 모른다. 사실 일본인들에게 있어서는 백제문화란 그들의 본향인양 매력적이다.앞으로 고대사에 대한 연구가 바르게 진전되면 진전될수록 그들은 더욱 그런 느낌일 것이라고 생각한다.거기다가 요즘 관광객은 유락을 찾기보다는 문화를 찾는다고 하지 않는가.그러므로 이번에 뒤늦게나마 「백제문화권」대개발을 구상하게 된 것을 환영하면 했지 까탈을 부릴 생각은 추호도 없다.그런 뜻에서 몇가지 주문만 달고싶다.무엇보다도 지방의 시대가 온다는 세계적인 추세속에서 이번 계획은 중앙에 있는 정부가 너무 「과중부담」을 떠맡으려고 하는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지역 스스로가 그 지역발전을 모색하게 돼야한다.그것을 정부는 격려하고 도와야하지 않겠는가. 이번 계획에 지방의 그러한 자발적인 참여가 어느정도였는가를 알고 싶다.지역경제의 발전과는 그다지 관계가 없는 대기업이 세우는 호텔이니 골프장이니 휴양시설이니 하는 것만이 서고 그 지방거리는 낙후된대로 방치되는 것이 아닐까 염려하게 된다. 그 지역의 자연과 역사가 그대로 보존돼야 한다.아니 더욱 풍부해져야 한다.문화재에는 될수있는 한 손을대지 말아야 한다.그런 의미에서 역사가들이 이런 계획에 깊이 관여해야 한다.우리의 마음의 본향인 그 옛 문화재를 우리는 때로는 언덕길을 오르면서 때로는 오솔길을 걸으면서 명상속에서 찾아야 하지 않겠는가. 문화재란 찾는 사람이 없을 때면 퇴락하기 쉽다.명화에는 감상하는 사람들이 있어야 하는 것처럼 옛 문화의 터전도 찾는 사람,관광하는 일정한 길손들을 필요로 한다.문화재는 그 고장 거리와 하나가 돼 있어야 한다.그것은 그 거리와는 동떨어진 관광단지의 고급호텔에서 자동차로 휙 한번 돌아볼 고장이 아니다.관광객들은 그 고장 거리에서 그 고장 음식을 들고 옛 시대를 기리는 그 고장 물건을 살수 있어야 한다.그래서 그 고장 경제를 활성화시키는 것이다. 이렇게 생각했을 때 나는 경주의 관광개발이 한낱토목공사에 끝난 것이 아닌가 하는 인상을 씻을수가 없었다.고대문화는 그대로 우리 가슴에 와닿아야 하는데 왜 그것이 위락시설과 혼합돼 있어야 하는 것일까.그런 시설이 경주를 활성화시키고 경주거리를 아름답게 하는데 무슨 도움을 주었을까. 일본 서북쪽 해안에 가나자와(김택)라는 아름다운 도시가 있다.역사와 자연과 문화를 보존하면서도 어떻게 젊은이들에게 매력있는 도시일수 있을까 그들은 모색해왔다.고전적이면서도 현대적이려고 했다.인구 80만의 좁은 도시에 연간 6백만의 관광객이 모여든다.가나자와시의 예산의 10분의1은 관광수입에서 나온다고 했다.정말 부유하고 깨끗한 거리였다.그 도시를 떠날 때 그곳 시장이 들려주던 말이 잊혀지지 않는다. 『우리의 삶을 위하여 아름다운 도시를 만들때 관광객들이 찾아오는 것이지요.관광객을 끌어들이려고 도시를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 왕조의 유산/이태진 지음(화제의 책)

    ◎불 외규장각 도서 강탈경위 밝혀 프랑스가 병인양요 때 빼앗아간 외규장각 도서의 반환 문제를 처음 거론해 우리사회에 큰 반향을 불러일으킨 서울대 국사학과 이태진교수가 그동안의 경위등을 밝힌 책이다. 총론격인「왕조의 유산을 찾는 의미」,도서반환 요구를 둘러싼 그 동안의 경위를 자세히 쓴 「외규장각을 찾아서」,규장각의 역사와 외규장각터를 찾는 과정을 밝힌 「규장각 소사」와 「강화도 외규장각터 답사기」,규장각을 세운 정조임금을 새 각도에서 해석한 「정조­유교적 계몽절대군주」등으로 짜여졌다. 문화재 관련용어를 쉽게 풀어쓴데다 사진등 자료를 풍부하게 실어 일반인의 이해를 도왔다. 지은이는 서울대 규장각도서 관리실장을 지내면서부터 약탈당한 외규장각 도서를 추적했다고 밝혔다. 지식산업사 5천원.
  • 녹청자/고려청자의 시원 아니다

    ◎연세대 「고려·조선시대 사기그릇 특별전」서 밝혀져/귀족용 청자·서민용 녹청자 함께 제작/굽없는 납작밑바닥 형태,조선초까지 사용 고려시대 녹청자는 중국 청자의 영향을 받아 신라 질그릇과 청자 중간에 나타난 청자의 시원인가,또 당시에 이 그릇을 사용한 계층은 누구인가.이러한 질문에 대한 해답이 연세대박물관 주최 「고려·조선시대 사기그릇 특별전」(5월9∼6월17일)을 통해 명확히 제시되었다. 녹청자는 우선 서민들의 수요욕구를 채워주기 위해 청자와 함께 제작된 막청자라는 결론이 나왔다.이같은 사실은 연세대박물관이 특별전을 위해 녹청자를 수집하는 가운데 전국의 가마터를 조사한 결과 밝혀졌다.그러니까 고려왕실을 비롯한 귀족사회는 양질의 청자를 사용한 반면 일반계층은 조잡한 막청자에 해당하는 녹청자를 사용한 것으로 보고있다. 그리고 녹청자는 청자의 시원이 아니라는 것이다.녹청자를 같은 가마에서 청자와 함께 구어냈던 옛가마터는 전국에 널리 분포된 것으로 조사되었다.10세기말 고려초기부터 만들어지기 시작한 사기가마터는 경기도 용인군 서리,전남 해남 진산리와 함평 양재리,인천시 경서동 등에 남아있다.그리고 고려중기(1100∼1250년)의 가마터는 전남 강진과 전북 부안지역에 널리 흩어졌다.특히 11세기 후반부터 해안 가마들은 녹청자 대량생산시대를 맞아 전국적으로 보편화 됐다는 것이다. 그같은 근거는 지난 84년 전남 완도 어두리 앞바다에서 인양된 3만6백72점에 이르는 고려 녹청자에서 찾고있다.왜냐하면 방대한 분량의 녹청자가 한꺼번에 해저에서 인양되었다는 것은 대량제작에 따른 대량수송과정에 일어난 선박침몰사고로 볼 수 있기때문이다.어두리 해저유물 녹청자는 전국 청자가마터 출토품이나 각 지역에서 수집한 녹청자처럼 그릇생김새가 다양한 것으로 가려졌다. 녹청자는 대접류와 보시기,접시,잔과 잔받침,몸통이 큰 유병과 광구병,고려의 전형적 매병,합,항아리 등이 전해지고 있다.녹청자 항아리의 경우는 고려시대 질그릇 항아리 모양을 닮았는데,인천 경서동과 전남 해남 진산리 가마에서 많이 발견되었다.이같은 전통으로 미루어 녹청자는 토착적도자문화로 재해석되는 것이 마땅하다는 주장까지 제기되고 있다. 녹청자 그릇생김새의 특징중 하나는 굽이 없는 납작밑바닥(평저)이 많다는 점이다.납작밑바닥은 병과 항아리는 물론 접시에서도 발견된다.이는 선박 등을 이용해 그릇을 운송할때 넘어져 깨지는 것을 미리 막기위해 고안된 기형으로 풀이됐다.이번 특별전에는 납작밑바닥 녹청자가 많이 출품되어 일본학계가 큰 관심을 가지고 있다. 일본학계는 지금까지 일본에 산재된 납작밑바닥 녹청자는 중국이나 일본에서 만들어진 반자기성 그릇으로 해석해왔다.그러나 이번 특별전을 통해 납작밑바닥 녹청자가 한국에서 많이 수집됨으로써 인식을 달리하게 되었다.녹청자가 일본으로 흘러들어갔을 소지는 얼마든지 있다.이번 전시회를 위한 가마터 조사결과 녹청자의 전통이 고려에서 끝난 것이 아니라 조선시대 초기 분청사기가마에서도 발견되기 때문이다.이처럼 녹청자가 15∼16세기쯤 조선시대에 분청사기와 함께 구어졌다는 사실도 처음 밝혀진 것이다. 녹청자란 모래 따위의 잡물이 섞인 태토 위에 회유계통의 유약을 씌워 구어낸 조질의 청자.그래서 표면이 거칠고 녹갈색이나 고동색의 유색을 띠고 있다.지금까지는 중국의 청자 영향을 받아 9세기말에서 10세기초에 만들어진 시원적 청자 성격의 그릇으로 보아왔다.따라서 질그릇에서 청자로 가는 중간단계쯤의 그릇으로 해석되기도 했다.
  • 거북선 상판송곳 6점 발견/충무공 유물발굴단/여천 신덕앞바다서

    【여천=남기창기자】 전남 여천신덕앞바다에서 임란유물 발굴작업을 벌이고 있는 해군 충무공 해전유물발굴단(황동환대령)은 11일 거북선 도추(거북선 상판에 있던 송곳)로 추정되는 쇠송곳 6점을 무더기로 발견했다. 이날 인양된 거북선 도추는 거북선 상판에 꽂혀 있던 송곳으로 추정되며 총길이가 30㎝,손잡이 13㎝(직경 1.4㎝)로 칼날부분의 길이만 17㎝(직경 0.8㎝)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로써 지금까지 발굴단이 이 해역에서 발굴한 임란관련 유물은 24점으로늘어나 4백년전 건조된 것으로 알려진 거북선의 인양가능성을 한층 높게 해주고 있어 비상한 관심을 모으고 있다.
  • “외규장각 고서 불 소유권 근거 희박”

    ◎영국에 의궤1권 판 사실 뒤늦게 밝혀져/한·불 고문서 반환협상에 새쟁점 부상 프랑스가 병인양요(1866년)때 빼앗아간 외규장각 고문서 가운데 1권을 영국에 팔아넘긴 사실이 뒤늦게 밝혀져 한국과 프랑스간에 진행중인 고문서반환 협상에 새 쟁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현재 대영도서관에 소장된 것이 확인된 고문서는「기사진표리진찬의궤」로 프랑스측이 이 의궤를 1891년 영국에 팔았다는 사실이 서울대 이태진교수(국사학과)의 조사로 최근 밝혀졌다. 이 의궤는 조선 순조의 생모이자 정조의 후궁인 수빈 박씨의 관례 60주년을 맞아 벌인 행사내용을 수록한 것으로 국내에 없는 유일본이다. 또 이것말고도 프랑스가 약탈한 의궤 3백권 가운데 2권의 행방도 아직 드러나지 않고 있다. 한편 프랑스측이 이 의궤를 영국에 판 사실이 밝혀짐에 따라 현재 프랑스가 주장하는 외규장각 고문서에 대한 소유권의 근거가 희박해졌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이태진교수는 『이번 발견은 프랑스가 고문서 관리를 소홀히 했음을 보여준 것』이라고 말하고 『약탈 문화재를 1백년이나 임시창고에 방치했을 뿐만 아니라 멋대로 팔아넘긴 사실이 밝혀진 이상 프랑스측이 취득시효에 따른 소유권 이전을 주장할 수 없게 됐다』고 강조했다. 한편 외규장각 고문서는 지난해 9월 미테랑 프랑스대통령의 방한 때 돌려받기로 원칙적인 합의를 보았으나 이후 프랑스에서 반환을 극력반대하는 분위기가 조성되는 바람에 프랑스에서는 현재 「자동연장이 가능한 시한부대여방식」을,우리는 「영구임대형식」을 각각 주장하고 있다.
  • 프랑스는 약속 지키라(사설)

    우리나라에서 약탈되어 프랑스 파리국립도서관에 소장돼 있는 외규장각고서의 반환이 여의치 않은 것같다.지난해 9월 방한한 미테랑 프랑스대통령에 의해 반환이 약속되었음에도 지금까지 양국 실무접촉에서 이렇다할 진전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상태다.우리는 한·불정상회담에서 원칙이 합의된 외규장각고서의 반환에 대해 국내법상 「문화재반출금지」등의 이유를 들어 이론을 제기하고 있는 프랑스정부의 태도에 경악을 금할 수 없다. 미테랑대통령은 분명히 고서의 반환을 전제로 외규장각도서중 한권을 상징적으로 김영삼대통령에게 직접 전달하기까지 했다.그런데 이제 와서 시한부 상호교환임대방식이란 걸 제의하면서 사실상 반환의 의사가 없음을 분명히 하고 있다.시한부 상호교환임대방식이란 외규장각도서를 한국에 보내는 대신 우리측에서 그에 상당하는 고서를 프랑스측에 대여하되 시한부로 한다는 것이다.따라서 외규장각도서의 임대시한을 연장하기 위해서 우리측은 계속 다른 고서를 교체해주어야만 한다.이같은 프랑스정부의 제안은 우리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억지논리」다.배보다 배꼽이 더 큰 부담을 우리가 떠안게 되기 때문이다. 미테랑대통령은 지난해 방한을 앞두고 파리주재 한국특파원들과의 회견에서 『한국 역사와 문화에 있어서 매우 귀중한 것으로 생각되는 이 고문서들이 한국에 반환되는 것을 개인적으로 만족스럽게 여기고 있다』고 밝혔었다.이 발언은 순수한 반환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고 무엇인가.사태의 진전을 지켜보면서 우리는 프랑스에 농락당하고 있다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가 없다.우리정부는 당초의 반환에서 크게 양보,「영구임대」를 제의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영구임대방식을 프랑스가 거부한다면 고속철도의 테제베계약을 위해 외규장각도서반환을 이용했다는 비난을 면할 수 없을 것이다. 외규장각고서는 1866년 병인양요때 프랑스군이 강화도를 침범,불법약탈해 간 우리의 귀중한 문화재다.약탈문화재의 원소유국반환에 대해서는 유네스코협약이나 유엔총회결의,국제법에서도 명시하고 있다.이러한 규정이 없다 하더라도 양국 정상간의 약속은 당연히 지켜져야만 한다.그것은 외교적 관례이며 우호와 신의의 징표이기 때문이다. 정부는 외규장각도서를 영구임대방식으로 반환받는다는 원칙아래 관련기관 대책회의를 갖고 최종방침을 확정하리라고 한다.우리는 프랑스측의 어떤 명분이나 조건에도 영구임대방식 이상의 양보를 우리정부가 해서는 안된다고 믿는다.또한 프랑스정부는 문화대국답게 「반환원칙」의 정신으로 되돌아가 이 문제의 해결에 임해주길 바란다.고서반환을 둘러싸고 양국의 전통적인 우호와 친선에 흠집이 생겨서는 안될 것이다.
  • 금성정보 등 35사/내년에 기업공개

    통신기기 제조업체인 금성정보통신,유아복 전문업체인 아가방 등 12월 결산법인 35개사가 내년 중 기업을 공개한다.이들 35개사는 오는 95년 기업공개를 위한 절차의 하나인 감사인 지정신청을 4일 증권관리위원회에 제출했다. 공개 예정사는 금성일렉트론 환인제약 신우 신대양제지 경인양행 에넥스 동국합섬 조일제지 대주건설 우성화학공업 삼호건설 풍정산업 한국카본 풀무원식품 남해화학 한국안전시스템 무학주정 레이디가구 대한도시가스 코리아데이타시스템스 동양전자통신 유양화학 동화면세점 농심가 카스 삼우 한국전기초자 두고전자 성안 동양폴리에스터 계룡건설산업 전진산업 등이다.
  • 이창호에게 바둑전념에의 길을(박갑천칼럼)

    바둑의 「바」자라도 아는 사람이라면 프로기사로 입단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를 안다.언론고시네 행정고시네 하는 그 고시보다 어려운 관문 아닌가 한다.무엇보다 입단자의 수가 적으니 그야말로 낙타가 바늘구멍 뚫고가기.그렇게 어려운 입단을 하고서도 타이틀 따내기란 하늘의 별따기다.한국기원 소속 1백20명 프로기사가 참가하여 벌이는 싸움에서의 으뜸자리이기 때문이다.그거 한번 못따보고 시들어가는 프로기사가 좀 많은가. 이렇게 볼때 국내 16개기전 가운데 13개 타이틀을 거머쥔 실력이 어떤 것인가를 알수 있다.천군만마의 적진을 무인지경인양 짓쳐 나가는 효장을 생각케 하는 실력이다.한데 그 주인공은 약관에도 이르지 못한 19세의 소년.이창호 육단이다.그는 「황제」의 자리에 있던 스승의 왕관을 차례차례 제것으로 만들어온다.황제를 황제자리에서 끌어내리는 존재라면 그건 신일까.그래.신의 경지에 이른것 같이만 느껴지는,너벳벳한 얼굴의 승부사다. 갖가지 기록의 이정표를 세워오면서 숱한 화제를 뿌려오는 여드름쟁이.그러나 바둑판 앞에 앉으면 천년의 풍상을 견뎌오는 돌부처가 된다.판세의 유리·불리를 그의 표정에서는 읽을 수가 없다.이게 어른기사들의 기를 죽이는 대목.어른들은 여기서 심리적으로 이미 진 바둑을 두는 셈이다. 지그시 기다릴 줄을 안다.『굳이 한치를 전진하기 보다 오히려 한자를 후퇴한다』(불감진촌이퇴지)고 하는 노자의 경지를 터득한 듯한 자세다.팽조보다 더한 연륜의 내공을 느끼게 하는 의젓함이기도 하다.그러다가 때가 오면 질풍노도와 같이 몰아쳐 나간다.그는 바둑이 기라기보다 도이며 예임을 가르친다.귀기가 감전돼 오는 무서운 소년이다. 그가 군입대를 앞두고 있다.그도 물론 국민으로서의 의무를 다해야 하는 대한민국의 사람이긴 하다.하지만 이와 관련해서는 일본 바둑 유학중 병역의무 때문에 귀국했던 조훈현기사 생각이 난다.한창 기재에 물이 오를 무렵 제동이 걸렸던것 아닌가.거기 눌러있었다면 한국의 타이틀 휩쓸었듯이 일본의 타이틀 휩쓸었을지 모르는 일이었던 것을…. 바둑애호가들은 이 기린아의 입대가 솟아오르는 기력의 싹에 혹 흠집이라도 내는것 아닐까 걱정들을 한다.당장 그의 13개타이틀 반납부터가 바둑계의 파란이 된다.원칙에 예외도 있는 세상일에는 운영의 묘라는것 또한 있는 법이다.안되는 쪽에서 생각지 말고 그가 계속 바둑을 둘수 있게 하는 쪽에서 해결책을 찾았으면 한다.
  • “「유물전시관」 보다 「박물관」으로”(객석에서)

    우리나라 해양 유물 보존처리의 총본산인 목포해양유물보존처리소에 들어서면 「국립목포해양박물관」이라고 쓴 한장의 현판 스케치가 눈에 들어온다. 보존처리소 관계자들에 따르면 이 현판은 10년쯤 전에 한 미술전공 대학생이 만들어 보내온 것이라고 한다.당시는 신안유물선의 보존처리작업이 초기단계이고 완도유물과 유물선의 인양이 한창이던 때.물론 보존처리소를 박물관으로 개편한다는 계획 조차 누구의 머리속에도 없던 시기였다.그 이름은 보존처리소의 미래에 거는 이 지역사람들의 기대를 함축하고 있다고 보아도 좋을 것이다. 그 보존처리소가 멀지않아 「국립해양유물전시관」으로 확대·개편된다.이미 목포시내 갓바위문화공원안 바닷가에 새 전시관 건물이 세워져 있다.전시준비만 끝나면 언제라도 문을 열수 있을 정도다. 지금은 30대가 되었을 그 대학생은 지금쯤 자신의 생각이 맞아떨어졌다며 분명 기뻐하고 있을 것이다.그런 한편에는 「박물관」이 「유물전시관」으로 격하된 아쉬움을 토로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학자들 사이에서 유물전시관은 박물관에서 학예기능을 뺀 단순한 전시공간을 뜻한다고 한다.해양유물전시관과 덕수궁안에 있는 궁중유물전시관이 그같은 이름이다.그러나 이 두곳의 현실적인 기능은 박물관의 그것과 완전히 똑같다.오히려 「해양」의 경우 보존처리소측은 개편안을 마련하던 당시 「박물관」보다도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라는 이름을 더 선호했을 만큼 오히려 학예기능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이처럼 똑같은 기능을 수행하는 「박물관」과 「유물전시관」이 구별되고 있는 이유는 실상 엉뚱한데 있다.유물전시관은 문화재관리국 산하기관.국립중앙박물관이 포용하고 있는 각 지역의 국립박물관과는 소속이 다르다. 이 문제는 결국 네것내것을 구분해야한다는 두 기관의 보이지 않는 알력이 낳은 셈이다.이제 「박물관」이든 「유물전시관」이든 소속 구분은 문화체육부 안에서나 하고 국민들에게는 박물관이라는 이름을 하루빨리 돌려주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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